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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의 거부는 “개방물결 공포증”/평양은 왜 「대교류」 등 돌리나

    ◎대거왕래 따른 체제혼란을 우려/“당국 개입” 트집,특정단체 초청만 북한측이 선별적으로 초청하겠다고 밝힌 전민련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및 서총련등 특정단체의 개별방북에 대해서도 우리측이 이를 허용하는 공식 입장을 천명했음에도 불구,책임있는 당국간 접촉을 꺼리는 북측 고집에 막혀 「민족대교류」가 첫날부터 무산됐다. 북측의 이같은 외곬 주장으로 미루어 볼 때 앞으로 남은 4일간의 교류기간에도 남북간 인적 왕래는 실현되지 못할 것이 확실시 된다. 우리측 정부는 지난주말 3차례에 걸쳐 방북신청자 명단을 전달하려 했으나 북측의 거부로 모두 좌절,민족대교류 성사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지난 12일 홍성철통일원장관의 성명을 통해 북측이 선별 초청하겠다고 밝힌 전민련등 특정단체들의 명단만이라도 13일 북측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측이 이날 명단접수를 거부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당국배제 논리이다. 북측은 이날 하오 3시의 연락관 접촉에 앞서 하오 1시30분쯤 방송을 통한 조선학생위 대변인 담화에서 『남한 당국이 민간인 단체를 뒷전에 돌려놓고 전민련등 4개 단체의 명단을 넘겨주겠다며 간섭하고 있다』며 『14일 상오 9시 판문점에서 서총련대표 2명과 만나 신변안전보장과 편의제공문제등을 논의한 뒤 하오 6시 이들 단체에 대한 신변안전보장 각서를 정부당국에 전달하겠다』고 밝혀 정부당국을 완전히 배제시키겠다는 의도를 나타냈다. 우리측 정부는 이에대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고위당국자는 『정부가 해외여행을 하더라도 여권을 발급하고 상대국 비자를 받아야만 여행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진 정부로서는 당국간 신변안전보장없이 방북을 허용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짓일 뿐 아니라 이는 무정부 상태하에서나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북한측이 이같이 당국자를 배제시키고 전민련등과의 직접 접촉을 요구하고 나서는 것은 이들이 방북을 못하게 됨으로써 야기될 우리측 정부와 재야단체간의 불화를 조장하고 이를 크게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한 전민련등이 방북하지 못하게 된 원인이 우리측 정부의 개별접촉 불허방침에 있음을 주장,그 책임을 우리 정부에 전가시키려는 속셈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측은 앞으로 이같은 점을 크게부각,대대적인 선전공세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북측은 우리의 민족대교류 발표와 그에 따른 후속조치로 명분상 수세에 몰려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는 북측이 7·20이후 보내온 대남 전통문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북측은 지난 10일 민족 대교류의 전제조건으로 국가보안법 철폐,임수경위문단의 재소자 면회 등 3가지를 내세웠다. 재소자 면회는 우리 실정법상으로 가족·변호인단 외에는 허용될 수 없으며 국가보안법철폐 주장은 바로 내정을 간섭하는 것으로서 우리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북측이 이같이 우리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들을 주장한 것은 민족 대교류를 거부할 명분을 찾으려는 의도라는 것이 남북문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은 전민련등의 제한적인 교류도 전혀 원하지 않고 있으며 오로지 판문점 범민족대회 개최에만 관심이 있다고 보인다. 전민련·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민중당(가칭)·서총련 등 관계자 수백명이 평양등을 방문했을 때 개방과 교류의 물결유입으로 체제가 흔들리게 되는 것을 북측은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임양 위문단 파견도 애당초 뜻이 없고 단지 선전전 차원에서 제의한 것이며 정치선전장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는 판문점 범민족대회만 성사시키려는 속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북측은 개방과 교류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이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족 대교류가 성사되지 못한 점과 범민족대회에 우리측 단체가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앞으로 남북 대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북측은 내외부적인 개방압력으로 인해 시간이 지나면 남북대화와 회담에 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박정현기자〉
  • 북,개방 두려움에 「대교류」 차단/「방북명단」 수령 거부의 저변

    ◎사제단ㆍ전민련 등 선별초청도 포기한 듯/장벽ㆍ보안법 등 트집,역선전 강화 예상 북한이 9일 우리측의 북한방문증명서 발급 신청자명단 접수를 거부함으로써 오는 13일부터 17일까지 민족대교류 기간동안 방북을 희망했던 6만1천여명의 북한방문이 어렵게 됐다. 북한은 이날 우리측 방북희망자 명단 수령과 북한측의 임수경위문단 명단을 우리측에 전달하기를 거부,민족대교류를 실시할 의사가 없음을 시사하는 한편 남북개방과 교류의 길을 사실상 차단했다. 북측의 이러한 태도는 이미 어느정도는 예측되어 왔다. 북측이 개방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은 비단 남북문제 전문가와 정부당국의 관계자 뿐만 아니라 1천만 이산가족들까지도 예상했었으나 그것이 현실로 밝혀졌다. 실제 방북의 실현가능성이 희박할 뿐더러 괜한 방북 기대심리가 실망감으로 증폭될 것을 우려,실제 예상보다 적은 6만여명만이 방문증명서 신청을 한데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북한은 우리의 민족대교류를 수용해 남북교류를 받아들일 경우 그동안 북한측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콘크리트 장벽과 국가보안법 등의 대남논리가 무너지게 될 것을 무엇보다 우려해 이날 교류를 거부하고 나선 것으로 정부당국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또한 북측은 내부적으로 개방의 여건이 성숙되어 있지 않고 후계체제 구축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어 개방을 두려워 하고 있으며 이를 적극 저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북측이 이날 연형묵정무원총리 명의로 보낸 전통문에서 방북희망자 명단접수 거부의 가장 큰 명분으로 내세웠던 것은 바로 우리측 정부의 임수경양 위문단의 재소자 면담불허 방침이다. 북측은 전통문에서 임수경 위문단이 재소자의 가족이나 변호인단 면담은 허용하나 재소자 면담은 불허한다는 우리측 정부방침에 대해 『누구는 만날 수 있고 누구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은 8ㆍ15에 즈음한 5일 동안의 민족대교류와 자유왕래가 거짓이며 남북 사이에 그 어떤 왕래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선포하는 것』이라며 민족대교류 정신에 대한 흠집내기를 시도했다. 북측은 또 전통문에서 방문자 명단교환의 전제조건으로 첫째,임수경 위문단이임양ㆍ문익환목사ㆍ문규현신부를 직접 면회할 수 있고 둘째,전민련ㆍ전대협 대표들의 범민족대회 참가를 공식 허락해야 하며 셋째,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내세웠다. 북한측은 그동안 우리측의 민족대교류선언을 거부한다는 방침아래 대남전통문과 일방적인 방송등을 통해 명분쌓기와 시간끌기에 주력해 왔다는 것이 정부관계자들의 일반적인 지적이다. 즉 우리측이 지난 7일까지 민족대교류에 대해 응답을 촉구한데 대해 계속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왔으며 오히려 일방적인 방송을 통해 임수경위문단 파견을 발표하는 등 사실상 거부하기 어려운 민족대교류에 대해 희석작전을 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측이 재소자 면회불허,가족이나 변호인 면담허용의 방침을 발표하자 이러한 방침을 트집잡아 민족대교류와 이에따른 방문자 명단교환을 거부하고 나왔다. 북한측도 재소자 면담사실자체가 대내외적으로 정치선전의 효과가 그다지 크게 작용할 것으로는 보지 않고 다만 우리측의 수용거부를 트집삼으려는 수단으로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또 위문단이 우리측지역에 내려올 경우 위문단을 통한 개방물결 유입이 예상되는 만큼 실제 위문단 파견의사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측은 범민족대회 장소를 놓고 전민련측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는 등 대회 개최장소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는 북한측이 판문점 이외의 지역,즉 평양이나 개성 등의 지역에서 대회를 열게 되면 3백여명의 전민련인사를 비롯한 전대협 학생들이 북한의 폐쇄사회에 남기고 갈 개방과 교류의 후유증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판문점 이외의 지역에서의 대회 개최는 곧 개방물결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날 국가보안법 철폐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교류를 거부하기 위한 그동안의 논리를 그대로 되풀이한 것으로 남북인적왕래를 않겠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우리측의 전민련ㆍ전대협ㆍ민중당(가칭)ㆍ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에 대해서도 선별적 초청을 거부하겠다는 의도를 품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동안 북측이 전민련ㆍ민중당에 대해서는 방송을 통해 초청(신변안전보장)을 밝혔으나 명확한 입장표명을 유보해온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 이날 전통문에서 우리측이 사제단 방북을 불허했다고 밝혀 사제단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이날 북측이 방문자명단 상호교환을 거부한 데 대해 『앞으로 북측 태도는 일정한 원칙하에 가변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즉 10일 갑자기 방문자 명단을 교환하자고 제의한 뒤 실무접촉과정에서 또다른 트집을 잡아 이를 무산시키거나 시기적으로 교류가 이뤄질 수 없는 시점에서 실무접촉을 갖자고 제의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만큼 북측은 우리측의 민족대교류발표로 인해 명분상 몰려 있기 때문에 명분을 쌓기 위한 선전전과 함께 대내적인 결속 다지기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 「대교류」 흠집 내기에 「정공법」 대응

    ◎「북한위문단」 조건부 수용의 배경/민족화합 차원,일단 “환영” 표시/특정인 면담은 선전우려 불허/「7·20」 제의에 북,“거부명분 찾기” 속셈인 듯 정부가 6일 북한측이 현재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중인 임수경양등을 위문하기 위해 1백여명의 「위문단」을 파견하겠다고 제의한 데 대해 이를 환영하고 다만 그 시기를 민족 대교류기간(8월13∼17일)으로 하며 재소자 면회는 불허키로 한 것은 7·20 특별발표의 기본정신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부가 위문단을 환영한다고 밝힌 것은 이산가족을 비롯한 남북의 동포들이 서로 만나 분단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고 상호 신뢰와 이해의 폭을 넓힘으로써 민족화합과 통일을 이뤄낸다는 민족대교류 선언정신에 따른 것이지만 특정인인 재소자 면회는 남북대교류가 정치선전장의 기회로 이용될 수 없다는 기본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실정법을 위반한 재소자 면담이 7·20 특별발표의 기본정신에 위배되고 남북 관계개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아래 재소자 면담은 불허하는 한편 재소자의 가족과 변호인의 면담을 허용하고 방문기간을 북측이 당초 제의한 14일부터 18일까지가 아닌 민족 대교류기간인 13일부터 17일까지로 하자고 발표한 것은 위문단의 방문은 사실상 거부하고 전면 개방과 자유왕래에 북측이 호응해 올 것을 촉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북한의 위문단 파견 제의가 명백한 정치선전술의 의도라는 판단아래 허용여부를 놓고 한동안 고심한 듯하다. 결국 민족 대교류의 기본정신에 따라 교류기간 동안의 서울방문과 재소자 가족및 변호인에 대한 면담만을 선별적으로 허용한 것은 북측의 저의에 정면 대응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재소자에 대한 면회를 거부함으로써 북측이 대교류기간동안 우리측 지역에 올 경우 우리 실정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했다는 것이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물론 남북교류가 남북간의 합의로 성사될 경우에는 실정법보다는 쌍방 당국간의 합의사항이 우선 적용되는 데는 변함이 없다. 노태우대통령의 민족 대교류기간 발표이후 10여일동안 일체 공식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있던북한이 임수경양등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수감된 재야인사들을 위문하겠다고 제의해 온 것은 우리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예상한 민족 대교류 흠집내기라는 것이 남북문제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즉 북한측은 우리측이 남한 국민들의 북한방문을 제한없이 허용할 것이며 북한동포들이 우리측 지역에 들어올 경우 어느 지역도 자유로이 방문하고 누구와도 만날 수 있다고 밝힌 7·20발표 가운데 「어디서나 누구와도 만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재소자 면담을 거부한 사실을 크게 부각시켜 민족 대교류 정신을 비난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이날 재소자 위문단의 방문을 사실상 거부한 정부의 발표를 트집잡아 민족 대교류선언을 거부하기 위한 명분으로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7·20발표이후 공식입장을 회피해 온 북측은 지난 2일 밤 방송을 통해 위문단 파견을 제의하면서 이같은 위문단은 7·20선언의 취지에도 부합된다고 발표해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7·20선언을 인정한 셈이다. 북한측이 이같이 사안별로 7·20선언을 인정하고 나선 것은 우리측이 위문단 방문을 수용할 경우 임양 면담사실을 정치선전용으로 이용하고 이를 거부하면 거부를 빌미로 민족 대교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양면작전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북한은 민족 대교류가 명분상 거부하기 어렵다고 보고 이를 거부하기 위한 명분찾기에 고심해온 듯하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해 9월30일 결성된 「임수경 석방투쟁위원회」의 여연구위원장 명의로 노태우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겠다고 했으나 우리측이 접수를 거부하자 방송으로 일방적으로 공개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 북측은 남북대화에서 명분상 뒤질 때마다 이같이 상대방의 격을 무시한 비상식적인 태도를 취하는등 심리전을 펴왔다는 것이 북한 전문가의 지적이다. 또 전민련이 다소나마 정부당국과 같은 입장을 나타내는등 북측의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데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민련이 판문점 범민족대회 특정단체 참가 불허,평양 등 다른 지역일 경우 특정단체 참가 허용의 정부방침에 맞춰 오는 14·15일 서울에서,16·17일 평양에서 범민족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하자 지난 5일 밤 방송을 통해 전민련측에 대한 「유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측의 위문단은 임양 석방투쟁위원회 여연구위원장(조국통일 민주주의전선 의장및 조평통부의장)을 비롯,지난해 임양의 입북을 환영했던 조선학생위원회의 학생 및 취재기자단 등 1백여명 규모이다. 북측이 자유왕래와 전면개방의 민족 대교류의 전제조건으로 보안법철폐·보안법위반자석방·콘크리트벽 철거 등을 내세운 점을 감안하면 북측은 임양 위문단의 거부를 구실로 또 다시 보안법철폐·보안법위반구속자 석방을 주장하는 선전전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또 우리측이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민족 대교류에 대한 호응촉구에 대해 그 답변시한인 7일까지도 공식반응을 보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위문단 거부가 민족 대교류를 받아들이지 않는 데 대한 명분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측이 이날 위문단 파견에 거부의사를 밝혔고 민족 대교류 답변시한이 7일까지인 점을 감안하면 7일에는 어떤 형태로든 답변을 해올 가능성이 높다. 정부방침을 트집삼아 그동안 되풀이해온 보안법 철폐·구속자 석방 등을 요구하고 민족 대교류정신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면서 남북교류와 개방의 문을 일단 걸어잠글 것이라는 것이 유력한 분석이다. 북측은 언제까지나 개방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예상되는 북측의 성명전과 심리전에 우리측이 예민하게 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민족대교류는 8·15에 국한되지 않고 추석·설날 등 민족명절에도 가능한 만큼 앞으로의 직접적인 성명전보다는 북의 개방과 교류를 유도해 내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박정현기자〉
  • 통일의 길에 좌절은 없다/방북희망 신청행렬을 보고/박순녀 소설가

    벌써 수십년전의 일이라고 생각된다. 크리스머스밤에 서독 국민들이 촛불을 켜들고 통일을 기원하는 사진이 우리 신문에 실린 일이 있다. 나는 그때 그 사진을 보면서 눈알이 아팠다. 가슴은 찡하게 울리고 결국은 눈물을 흘렸다. 동독국민도 그 사진을 보았다면 서독국민과 한가지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무도 「지랄하네」하고 서독국민을 비웃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독일이 이제 합쳤다. 우리가 통일 운운했다가는 감옥에나 가기 십상인 그때에 독일에서는 통일을 위해서 촛불을 켜들고 기원하는 그런 광경이 벌어졌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우리네도 7ㆍ4남북공동성명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그리고 남북의 대표들이 통일을 의논하기 위해서 서울과 평양을 오갔다. 통일 통일,통일의 염원을 가슴앓이 같이 속에 품고 살아오던 우리가 제일 환희했던 것이 그 공동성명이 나왔을 때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첫새벽에 빗자루를 들고 나와서 우리 대표들이 북으로 가는 그 길을 쓸었다고 한다. 그렇게라도 해서 통일을 돕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7ㆍ4공동성명은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그 단순하고 순수했던 많은 사람들이 심한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아니,그것은 배신감이었다. 사람을 그렇게 가슴 부풀게 했다가 단 한마디,없던 일로 할 수 있는가. 통일의 길은 다시 보이지 않게 되고 우리는 우리의 대표가 북으로 가는 길을 쓰는 그 조그만 정성을 바치는 기회도 잃었다. 그리고 민주주의 속에서도 가장 고약한 민주주의를 하는 곳이 남한이고 사회주의 속에서도 가장 몹쓸 사회주의를 하는 곳이 북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시인되어 왔다. 그 책임을 우리는 위정자에게 돌리고 싶어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런 일을 가능케하는 우리들,국민에게도 많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위정자와 싸웠다. 국민에게는 힘이 있었다. 세상은 바뀌어지고 이제 북방외교니 북방정책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됐다. 판문점에서는 무슨무슨 회담이 잦아지고 우리는 통일,통일까지는 못가더라도 남북교류에 대해서 다시 기대를 갖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쩌면 모든게 다 우리들의 기대를 저버리기만 하는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제법 무엇이 될 듯 싶게 몇번이나 서로 만나고 몇번이나 서로 양보했다고 하고,어느 쪽이 더 하고 덜 하고,그런 보도가 되풀이 되다가는 아무 것도 성사된 것은 없이 끝장이 났다. 무슨 정치회담,무슨 적십자회담,무슨 체육회담,서로 따지고 트집을 잡다가는 등을 돌리고 서로 헤어졌다. 서로 뭔가를 할 의향은 있는 것인가. 지금은 우리 정부가 북을 다녀오고 싶어하는 사람을 무제한 보낸다고 희망자를 접수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선착순으로 보내는 줄 알고 접수처에 첫 새벽에 나왔다고도 한다. 저것이 가능할까. 남한사람들이 물밀듯이 북으로 가보고 싶다는데 북에서 어서 오라며 문을 열어줄까. 어렵지,하다가 나는 다시 머리를 흔든다. 남과 북의 이산가족이 서로 한번씩 다녀간 일이 있다. 그때는 2차 3차… 계속 서로 다녀갈 것 같았는데 한번만 서로 다녀가고 그만이 됐다. 그러나 세상만사 무엇이 어떻게 되어갈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요는 무엇이든지 시도해 보는 것은 해보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그래도 우리가 정책을 세우는 사람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충분한 자신을 가지고 국민에게 신의있게 행하라는 부탁이다. 언젠가 이남에 심한 수해가 있었을 때 북에서 쌀과 천을 배에 실어서 우리에게 보내왔다. 그때 그 쌀과 천이 어떻게 분배됐는지 우리는 모른다. 누군가 쌀을 조금 분배 받았다는데 그 소리를 듣고 그 쌀을 한줌 얻어다가 제사를 지냈다는 실향민의 얘기를 나는 들었다. 우리의 마음이 그렇다면 그 쌀을 종로나 시청앞에 갖다 놓고 한알씩 이라도 갖고 싶은 사람은 갖게할 수 없었을까. 쉬쉬,간단간단하게 뚝딱 처리해버릴 필요가 있었을까. 어차피 물은 높은데서 낮은데로 흐르게 마련인데 우리가 경제적으로 잘 산다면 그 물은 어디로 흐르게 되어 있는가. 또 그들의 주석ㆍ지도자 숭배는 세계가 다 아는 일인데,그래서 일본에 온 북의 어느 학자가 자기의 학설도 김일성주석의 주체사상 운운하는 것을 듣는 사람들이 다 이해해 줬다는데 우리도 이젠 그들을 이해해 줘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어느 기업이 북에 몇가지 물건을 무상으로보낼 때 그 사실이 신문에 보도됐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북에서는 그것을 도로 실어 보냈다. 우리가 진정 통일에의 길을 다질 마음이 있다면 이런 일에 신경을 써야 하리라. 솔직히 말해서 북에 가보겠다고 지금 신청서를 접수시키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다시 좌절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 가슴 아프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좌절의 역사가 우리 세월속에 묻혀가야만 그 어느날 통일의 관문이 열리는게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의 절망과 좌절과 슬픔… 을 딛고 통일은 온다고 믿어보자. 그래야만 단순하고 순수한 사람들의 오늘에 보답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1928년 함남 함흥태생 ■서울대 사대졸 ■196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케이스워커」당선 데뷔 「사상계 」지에 「외인촌입구」로 신인상 수상 「어떤 파리」「칠법전서」등 작품다수.
  • 술취한 탈영전경,난동 1시간/서울 아현동/경찰과 대치끝에 잡혀

    ◎이모부집서 “귀대권유”트집,자해도 5일 하오3시40분쯤 서울 마포구 아현1동 21의46 곽성남씨(40)집 2층 베란다에서 근무지를 무단이탈한 서울시경 제3기동대 소속 김진곤일경(24)이 술에 취해 과도와 가위로 가슴 세곳을 그어 자해행위를 하는 등 1시간 남짓 경찰과 대치하며 난동을 부리다 붙잡혔다. 김일경은 이날 상오7시쯤 마포구 아현1동 25에 사는 누나 김희옥씨(28)집에 찾아가 술을 마시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같은 부대소속 전경 2명이 부대에 복귀할 것을 권유하자 『누나가 왜 부대에 연락했느냐』면서 다락에 있는 톱으로 왼쪽팔을 그어 자해한뒤 이모부인 곽씨집으로 갔다. 김일경은 곽씨집에서 외할머니와 이모 등 친척3명에게 『왜 탈영사실을 부대에 알렸느냐』고 대들며 과도와 가위를 들고 자해행위를 하고 『경찰이 접근하면 죽어버리겠다』면서 난동을 부렸다. 김일경은 이같은 난동을 벌이는 것을 목격한 주민의 112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대치하다 4시40분쯤 설득하는 척하며 덮친 형사들에게 붙잡혔다. 김일경은 경찰에서 『부대에서 일을 열심히 해도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해 탈영했다』고 말했다. 김일경은 지난달 9일 하오1시쯤 부대에서 『돈을 찾으러 가겠다』고 외출증을 받아 부대를 나온뒤 그동안 광주ㆍ마산ㆍ충주 등지로 돌아다니다 이날 새벽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 남북왕래 실현위한 “최대의 양보”/선별초청 방북 허용의 배경

    ◎재야·사제단 방북가능성 높아져/북측엔 개방·교류압력으로 작용 홍성철통일원장관의 2일 기자회견의 요점은 재야단체의 범민족대회 참가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평양통일염원미사를 위한 방북을 조건없이 허용한 데 있다. 이는 이른바 북한의 선별초청 「공작」에도 우리측의 문을 완전히 열겠다는 것으로 어떻게 해서든 남북왕래를 실현해 보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시로 봐야할 것이다. 재야단체들의 대북교류를 예상할 수 있는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도 원칙적으로 허용한 데 대해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7·20 민족대교류선언의 의미를 보다 구체화시킨 전향적이고 통일지향적 조치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7·20 후속조치와 관련해 정부내부의 안보담당부처와 통일문제담당부처사이에 완급을 둘러싼 견해차가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날 정부의 조치는 우리 정부내에 통일우선세력의 입김이 강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부는 그동안 전민련과 북한이 공동주관하는 범민족대회가 남북대화의 유일한 통로인 판문점에서 개최되고,북한이 이 대회를 대남정치선전장으로 이용할 의도라고 판단,판문점대회 절대 불가,평양등 북한의 다른 지역에서 대회가 열리고 우리측 각계각층의 대표가 참여할 경우에만 방북을 허용할 수 있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이날 민족대교류 기간동안에 개최되는 범민족대회와 정의구현사제단의 8·15 평양통일염원미사를 위한 방북을 허용키로 한 것은 지난달 30일 민족대교류에 대한 북한측의 답변을 오는 7일까지 해올 것을 촉구한 데 이어 북측에 민족대교류 수용을 재촉구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범민족대회가 판문점에서 열릴 경우 대회의 명칭에 걸맞게 우리측 각계각층대표가 포함된다면 이를 허용할 수 있으나 전민련등 특정단체만 참여한다면 이를 불허키로 한 것은 판문점 출입이 극히 통제되어 있을 뿐 아니라 휴전상황하에서도 남북이 접촉하고 있는 민감한 지역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범민족대회를 판문점이외의 평양등 다른 지역에서 연다면 전민련 전대협 등에 국한해 신변안전보장과 무사귀환을 보장하더라도 이들의 방북을 허용한 것은 우리측으로서는 남북왕래 실현을 위한 최대한의 양보로 풀이된다. 우리측의 이같은 대폭 양보는 북한측에 상당한 개방의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경우도 북한은 통일전선전술의 차원에서 정치적 이용의 가치를 저울질하게 될 것이고 교류와 개방의 교두보가 될 지도 모를 종교집단의 방북을 놓고 상당한 고민을 할 것으로 보인다. 많은 국민들이 북한방문증명서 발급신청을 해오더라도 북한측이 오는 7일까지 민족대교류에 응해오지 않을 경우 증명서 발급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증명서 발급 신청자들이 북측이 응해오지 않아 발급을 받지 못하게 되면 북측은 이에대한 비난과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우리측이 범민족대회와 사제단 방북에 대해 대폭 양보하고 나선 데 대해 북측이 트집을 잡아 비난과 함께 성명전을 벌일 가능성도 예견된다. 홍 통일원장관이 이날 『전민련등 특정단체에 대해 선별적으로 신변안전보장을 해오더라도 방송등을 통해서는 안되며 남북 쌍방 당국간 전화통지문등을 통해서 가능하다』고밝힌 것은 북측이 특정단체만 초청한 뒤 태도를 돌변할 가능성에 대해 미리 문서로써 이를 확인해 두자는 의도로 풀이된다.〈박정현기자〉
  • “「민족대교류」 정신을 살리자”/정종욱 서울대교수(세평)

    ◎통일문제엔 정부­재야 공동보조 바람직 끝내 무산되고 만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이 우리 모두를 이렇게 실망과 허탈감에 빠지게 하는 것은 그것이 7·20 민족 대교류 제의에 이은 민간차원의 첫 교류시도였기 때문이다.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는 글자 그대로 자유왕래를 허용하겠다는 노태우대통령의 제의는 북측의 반응과 관계없는 우리측의 일방적 자유왕래의 실현의지를 담고 있었기에 대단히 신선한 것이었다. 특히 이번 대회를 주관한 단체가 전민련이였기에 우리는 정말 이제는 뭔가 되겠구나 하고 잔뜩 기대했었다. 전민련이 정부와는 다른 입장에서 통일문제를 접근해왔다는 점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북한측이 내세우는 전민족적 통일전선에서 남쪽의 핵심세력이 전민련과 같은 재야단체라는 사실도 부인할 필요가 없다. 그런 조직이 정부와 합의해서 우익단체들까지 포용하여 범민족대회를 준비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우익은 고향방문단에나 끼이고 반정부 인사들은 정부 몰래 평양축전이나 참가하는 비극이 이제는 되풀이될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흐뭇해 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자세한 사정을 잘 모르는 국민들에게는 사소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 때문에 분단의 벽을 뚫어놓을 역사적 기회를 놓쳐버렸으니 통탄할 수밖에 없다. 정부측에서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북측의 웬만한 트집은 포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7·20제의의 기본정신이였다고 보면 정부의 태도는 국민을 실망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북측 대표가 우리측의 안내를 받아야한다는 점은 충분히 납득하고도 남는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주최자인 전민련에게 모든 절차의 주도적 역할을 맡겨야 했었다. 북측 대표의 안전과 무사귀환을 요청한 총리간의 서신을 얘기하지만 이것이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우리를 실망하게 만든 것은 숙소와 회담장소문제이다. 주최측에서 아카데미하우스를 정했으면 정부가 이에 협조하면 그만일터인데 굳이 현대식 호텔인 인터콘티넨탈로 고집한 것은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북측 사람들을 1류 호텔에 투숙시켜 우리의 앞선 경제를 보여주겠다는 계산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이는 큰 잘못이다. 우리의 장점은 잘 사는 사람들이 있으면서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빈부의 격차가 공개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북에게 공개와 개방을 요구하는 마당에 우리 스스로는 반쪽의 공개만 고집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카데미하우스는 전민련이 주관하는 행사에는 적합한 장소이다. 경호상 문제가 있다고 하겠지만 그 정도는 감당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정부가 갖고 있지 않는가. 이번 일에서 우리는 다음 몇가지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정부와 민간간의 긴밀한 협조체제의 정립문제이다. 5명이 오건 백명이 오건 북한측 대표가 남한을 방문하는 일은 절차상 많은 문제들을 제기한다. 차량문제가 그렇고 숙소문제가 그렇고 경호문제가 그렇다. 이번 일은 전민련과 같은 단체가 혼자서 이런 엄청난 일들을 도맡아 준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 결국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앞장서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지원을 어떻게 해주느냐는 것이다.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해당 민간조직들간에 충분한 협의가 사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에도 그렇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해결의 방안은 정부와 민간사이에 협의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일이 터지고 난 다음에 서로 책임을 미루지 말고 미리 미리 서로 상의하고 협조하는 상설체제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둘째,북의 대남전략에 관한 문제이다. 이번 일에서 북한의 통일문제에 대한 기본 시각이 다시한번 확인되었다. 북은 지난 5월24일 김일성의 시정연설에서 분명히 밝힌 것처럼 남북대화를 정부차원과 민간차원에서 동시에 추진하려 하고 있다. 고위급 회담을 통해 정치군사문제를 다루면서도 범민족대회와 같은 민간모임을 통해 민족문제를 논의하려는 이원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른바 전민족적 통일전선의 구축을 노리고 있으며 동시에 정부주도라는 남쪽의 입장을 약화시키려 하는 것이다. 남한의 다원적 체제성격을 역이용하려는 낡은 전략이다. 이에대한 남쪽의 대응은 정면돌파밖에 다른 길이 없다. 북측의 계산이 눈에 보인다고 해서 정부차원의 대화를 중단시켜서도 안될 것이며 민간차원의 교류를 막아서도 안될 것이다. 그들의 계산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길밖에 없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이원적 접근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원적 접근이라해서 정부와 민간조직이 서로 평행선을 긋거나 불협화음을 내는 병존관계가 아니라 협조하고 협의하는 유기적 공존관계속에 이루어져야 한다. 북이 단기적 안목에서 전략적 접근을 하더라도 우리는 거시적 안목에서 원리적 접근을 해야 한다. 원리원칙을 고집하는 경직된 자세가 아니라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의식하는 가운데 전민족의 자유와 복지를 위해서라면 사소한 일에는 구애받지 않는 의연함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번의 범민대 예비회담의 무산에서 느끼는 점은 하루빨리 정부가 앞장서서 전민련과 같은 재야단체들과 협력관계를 다시 회복하라는 것이다. 이번 일에서 우리가 입은 가장 큰 손실은 모처럼 성사된 통일문제에 관한 정부와 전민련의 협조관계가 불신과 비난으로 점철된 지난날의 불행한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성과이다. 통일문제에서 정부와 재야가 갈려서는 안된다. 우리는 지난 오랜 역경과 시련을 거쳐 정부와 재야사이에 통일문제에 관한 한 불신과 반목의 요소가 차츰 사라지고 신뢰와 협조의 새로운 관계가 싹트고 있는 것을 대단히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 보았다. 이 점이 바로 6공이 이룩한 최대의 업적이랄 수 있다. 북방외교와 7·20제의가 안과 밖의 단기차액을 노린 국내 정치용이라는 비난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6공의 통일정책을 지지해 왔던 게 사실이다.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함몰되어 가는 재야와의 신뢰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통일문제에서 여와 야가 갈라지고 정부와 재야가 나뉘면 민주화도 없고 한반도평화도 없고 21세기의 청사진도 허상이 될 수밖에 없음을 깊이 인식하고 보다 과감한 결단이 있어야 할 것이다.〈본사 논평위원〉
  • 「전민련」에 당부한다(사설)

    남북의 보통사람끼리 만나 통일논의를 해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게 한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을 계기로 「전민련」이 우리앞에 명료하게 부상됐다. 정당성과 합법성에 의심을 받아가며 지하에 머무르는 것 같던 재야 운동권단체와 통일정책 당국이 보조를 맞추며 추진하는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의 주선과정은 짧은 동안 그 자체만으로 우리에게 기대와 호감을 제공해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6일,에비회담 첫날이 무산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가 느낀 심경은 깊은 실망의 늪을 헤매는 것이었다. 북측의 거의 시나리오화한 트집극은 차라리 예상했던 일이어서 새삼스러울 게 없다. 하지만 전민련측의 행동이 모처럼의 기대와 호감을 많이 희석시킨 것은 우리를 많이 서운하게 만들었다. 우선,이번 예비회담을 진정으로 성사시키려면 전민련측은 정부측의 「관례사항」 준수에 북측이 트집잡을 빌미를 줄여주도록 협조했어야 했다. 한마디로 회담이라지만 그것에 따르는 기계적인 절차와 현실적인 기능이 굉장히 많이 있다. 그것을 전민련측이 해내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회담장소ㆍ수용능력ㆍ경비 등은 치안을 주도하는 정부의 관장사항이다. 이런 일의 수행과정에서 관료적 경직성이 다소 작용하더라도 원숙하게 적응하는 것이 전민련측의 성숙함이고 승리이기도 하다. 재야적 시각으로 보면 정부측에 회담주도권 장악의 속셈이 비쳐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부측 처사를 의연하게 수렴하여 북측 대표를 회담장에 앉히기만 했다면 그 성과는 전민련의 공으로 결실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는 전민련측이 보여준 다소 과잉한 행동거지도 우리를 실망시켰다. 통일에의 비원은 전민련만의 것이 아니다. 가슴속에 통곡을 담고 반백년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동족 모두의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통일은 너무 절박하고 소중한 것이어서 일부 사람들이 자신들의 위상이나 행동을 정당화하고 선전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처럼 보이는 일에는 저항을 느낄 수도 있다. 또한 통일의 궁극적인 달성이 전민련이라고 하는 지극히 일부의 특정세력에 의해 이뤄질 수는 없다는 것을 7천만 한민족 모두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전민련이 통일의 카드를 무소불능의 면죄부처럼 휘두르며 국제법상의 민간인 통제구역에서 시위를 떼쓰고 제지하는 관리에게 극렬한 항의를 한다든지 북쪽의 생트집으로 무산된 엄연한 결과를 놓고 정부에 책임을 돌려 원색적 비난을 하며 농성을 기도하는 일 따위는 몹시 눈에 벗어나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또하나 우리를 아연케 한 일이 있다. 환영꽃다발을 줄 화동의 구성이다. 문익환목사의 손자녀와 함께 간첩복역수 자녀로만 구성되었다는 사실이 6ㆍ25 남침시절을 문득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감옥을 깨고 나온 사상범이 남침 인민군을 해방군으로 맞던 광경이다. 이 대회를 이렇게 이끌어간다면 「범민족대회」란 명칭은 부당하다. 북측에 악용될 소지만 명백하다. 특히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어린이들을 이렇게 이용하는 일은 위험하다. 어쨌거나 전민련은 이제 국민앞에 노출되었다. 정의로 포장된 연막속의 신비한 존재가 아니다. 정신이 노출된 뒤에 받아야 할 가혹한 비판에 대해서 깊은 사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간곡한 충고에 귀기울이기를 당부한다.
  • “통일일꾼” 전금철단장에게/황석현 북한부장(데스크 메모)

    전금철 단장선생. 평양에서 판문점까지 천리길을 내려왔다가 회담도 못한채 다시 돌아간 선생의 심경이 어떤지는 정확하게 헤아릴 수 없지만 조금은 미안하고 약간은 계면쩍은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아직 대면도 못한 처지에 이처럼 결례에 가까운 편지를 쓰는 것은 도리가 아닌줄 알지만 선생이 판문점까지 와서 저지른 방자한 행동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결례는 용서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회담하고는 전혀 관계도 없는 사소한 절차문제를 트집잡아 회담을 거부해버린 선생의 그 오만불손에는 울분을 금치 못했지만 한편으로는 가련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성사 안믿어 우리 털어놓고 얘기해봅시다. 선생이나 선생을 판문점까지 내려보낸 선생의 위대한 수령은 애초부터 회담을 할 생각이 없었읍니다. 북한부장이란 자리에 앉아 그쪽 사정을 조금이라도 안다고 자부하는 나는 처음부터 이 회담이 성사되리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선생은 회담을 하기위해 판문점까지 내려온 것이 아니라 어떤 트집이라도 잡아 회담자체를 무산시켜 버리고 그 책임을 남쪽정부에 전가시켜야 한다는 임무를 띠고 있었고 그 임무는 각본대로 진행된 것입니다. 선생의 심경이 「조금은 미안하고 약간은 계면쩍으리라」고 한 것은 바로 이때문입니다. 이른바 「판문점 범민족대회」란 것도 그렇습니다. 선생의 위대한 수령이나 선생이 부위원장이란 직책으로 몸담고 있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속셈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 보지요. 오는 8월13일부터 17일까지 판문점에서 열기로 되어있는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는 북쪽의 「통일일꾼」들과 해외의 친북인사들만 모여 그쪽의 통일노선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위한 굿판아닙니까. 이 굿판에 남쪽의 반정부단체인 전민련이 참가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래서 전민련을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써 왔지만 사실은 별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예정대로 「판문점 범민족대회」가 열리고 전민련이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막무가내로 실정법을 어기고 이때문에 몇몇 재야인사가 구속이라도 된다면 그쪽에서는 쾌재를 부르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전금철 단장선생. 어떻습니까. 쓴웃음을 지을지언정 틀렸다고는 못할 것입니다. 만일 그쪽의 각본대로만 된다면 쾌재를 안 부를 수도 없겠지요. 「남조선의 반통일 음해」를 전세계에 소리높이 선전할 수 있고 남쪽정부와 재야단체간의 갈등을 부추켜 「남조선에서의 혁명역량」을 보다 성숙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남쪽 정부가 전민련 뿐만아니라 모든 단체에게 이대회의 참가를 권유하고 전민련도 이에 동의했을 뿐만 아니라 북쪽 대표와 전민련과의 예비회담을 적극 지원하고 나서자 그쪽의 각본은 뒤틀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비회담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회담을 거부한 선생의 태도가 너무 치졸하고 방자했습니다. 민간기구끼리의 회담인데 정부 당국이 개입하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전민련의 안내로 전민련이 정한 장소에서만 회담을 하겠다고 우기다가 전민련이 정부측안을 모두 수용하자 이번에는 일방적으로 접촉을 끊어버렸습니다. 그래놓고는 하루가 지난뒤 다시판문점에 나타나 억지를 부리다가 돌아가버린 것 아닙니까. 전금철 단장선생. 선생은 예비회담을 하루앞두고 그쪽의 연형묵 정무원총리가 한국의 강영훈 국무총리에게 예비회담에 참석하는 북쪽대표단의 신변안전과 회담에 필요한 모든 편의를 제공해 줄 것을 요청하는 전화통지문을 보낸 사실을 잊지는 않았겠지요. 그래서 그 요청대로 회담장소를 보다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편의시설도 완벽하게 구비해 것입니다. 그것이 남쪽정부의 부당한 놓은 간섭이고 개입입니까. 또 선생은 북쪽대표들과 전민련의 예비회담을 민간기구끼리의 만남이라고 우겼다는데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억지입니다. 선생이 모시고 있는 조평통의 허담위원장은 그쪽 권력서열로 11위에 올라있는 막강한 실력자이고 선생도 노동당내에서 만만찮은 지위를 확보하고 있지 않습니까. 북한에 진정한 의미의 민간기구나 재야단체가 없다는 사실은 선생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곳엠도 사로청이나 여맹 등 이런저런 단체가 많지만 모두가 노동당 영도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행정부인정무원도 당의 지휘나 감독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북한의 체제가 어떻게 되어 있던 그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쪽으로서는 그것이 옳다고 믿고 45년간 그 체제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시시비비를 가릴 한가한 마음도 아닙니다. 그러나 남쪽에는 재야라고 일컬어지는 반정부단체가 엄연히 존재하고 그들 나름대로의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전민련이 재야단체라는 것은 선생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또 이 단체가 남쪽사회 일부계층의 의사를 대변하는 소수세력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남쪽사회에는 정부를 반대하는 단체도 있지만 정부를 지지하는 단체도 많고 중도적인 입장에 서있는 단체도 적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사고와 시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이 어울려 사는 「다원화의 사회」입니다. 그런데도 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를 열겠다면서 그쪽에서 신뢰하는 단체만 참가시키겠다니 어불성설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범민족대회가 열린다고 해서 당장 통일의 길이 열리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이 대회에는 우리민족이 하나로 되기 위한 갖가지 다른 목소리들이 한데 어울려 공감할 것은 공감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서 서로의 이해를 돕는 것이어야 합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지만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남북이 서로 동반자의 입장임을 계속 확인하면서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하나씩 하나씩 헤쳐나가야 합니다. 북쪽이 「판문점 범민족대회」를 정치선전이나 상투적인 평화공세의 장으로 이용할 뜻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남쪽의 모든 단체들이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단체에 문호 열라 전금철 단장선생. 평양에 가시거든 선생의 위대한 수령께 이점을 건의하십시오. 십중팔구 실패하겠지만 계속 건의해 보십시오. 진정한 「통일 일꾼」이라면 욕을 먹더라도,아오지탄광에 끌려가는 한이 있더라도 할말은 해야 합니다. 건승을 빕니다.
  • “통일의 길 정말 멀구나… ”/「범민족대회」 무산되던 날

    ◎북측 생트집에 시민들 허탈/출영객들 실망,발길 돌려/“기대 부풀었는데… 아쉽고 쓸쓸” 조국의 통일을 앞당기는데 나름대로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던 「범민족대회」 남북예비회담이 열리기도 전에 북한대표들의 입경거부에 따라 무산되자 국민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26일 아침부터 5년만에 오는 북한대표들의 입경여부에 관심을 가졌던 국민들은 이날 하루종일 남과 북이 판문점에서 입경조건을 놓고 실랑이를 벌인 끝에 북한측이 끝내 자리를 박차고 북쪽으로 되돌아갔다는 소식을 듣자 통일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점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국민들은 특히 이날 예정보다 2시간이나 늦게 판문점에 도착한 북한측이 회담장소문제 등을 트집잡아 예비회담을 무산시키자 『처음부터 그럴줄 알았다』며 북측을 원망했다. 일부에서는 이날 회담장 및 숙소를 「전민련」측이 당초 예정했던 크리스천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인터콘티넨탈호텔로 바꾸려한 정부측 입장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남과 북의 실랑이로 임진각 등에서 하루를 완전히 낭비한양측 관계자들도 모두가 허탈한 표정들이었다. ▷임진각주변◁ 이날 하오3시10분쯤 「전민련」의 김희택대변인이 『차량과 숙소,회담장 등 모두를 정부측이 제시하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는 성명을 내자 이날 이른 아침부터 6시간 이상이나 임진각 망배단앞 계단에 모여있던 환영단도 노래와 구호를 멈추고 북한측의 반응을 초조히 기다렸다. 그러나 『남한측의 확실한 결정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북한측이 제시한 하오4시가 지나고 5시가 가까워지자 계단에 앉아있던 80여명의 환영단은 20여명으로 줄었고 그나마 끝내 결렬되자 모두가 풀죽은 모습들이었다. 하오7시쯤 회담이 결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환영단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 등의 노래를 부르며 허탈한 감정을 달랬다. 환영단들은 판문점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강희남 「전민련」고문,이해남 「조통위원장」,김희선 「서울민협」의장 등 3명이 돌아올때까지 철야농성을 벌이기로 결의하기도 했으나 「전민련」간부들의 설득에 따라 서울로 향했다. 환영단들은 간부들이 『북한대표들은 오지 못했지만 그 동안 귀국조차 하지 못했던 해외대표들이 참가했다는 것 자체가 통일운동이 거둔 큰 성과』라고 설득하자 하오9시30분쯤 버스 2대에 나누어 타고 임진각을 떠났다. ▷전민련◁ 예비회담의 장소선정을 놓고 남북한 당국 및 「전민련」대표 등 3자간의 막후협상설이 숨가쁘게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이날 상오 「전민련」사무실에 회담장소를 문의하는 전화가 빗발치자 관계자들은 계속해서 『아카데미하우스에서 회의가 열릴 것』이라고 답변했다. 「전민련」측은 이날 상오까지 남북접촉 결과 회담장소가 인터콘티넨탈호텔로 정해졌다는 사실은 뜬소문이라고 일축하면서 「전민련」대표단은 북측대표단이 도착할 때까지 판문점에 대기하면서 정부ㆍ북한측ㆍ「전민련」 등 3자가 직접협상을 벌이겠다고 고집했다. 이날 「전민련」사무실에는 한 때 『판문점으로 갔던 대표단과 환영단일행 등 1백50여명이 전원 경찰에 연행됐다』는 헛소문이 나도는 등 이날 하룻동안 회담의 성사여부를 놓고 온갖 뜬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이날 하루종일 2백여통에 이르는 회담성사여부를 문의하는 전화를 받느라 시달려 온 「전민련」사회부장 남중현씨는 『이제 이 책임을 누가 지느냐』면서 『국민들의 질책을 어떻게 감당해 나갈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회담장주변◁ 경찰은 이날 인터컨티넨탈호텔 주변에 1천3백여명의 전경을 배치하는 한편 서울시내 전역에 경호경비를 위해 5천여명의 경찰을 투입했으나 민간차원의 회담이라는 점을 고려해 시민들의 눈에 잘 띄지 않게 평상복차림으로 배치했다. 이날 인터컨티넨탈호텔에는 이북5도민회 중앙연합회(대표의장 윤관ㆍ67)회원 2백50여명은 이날 상오11시쯤부터 호텔주변에 몰려와 『회담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할 텐데』라면서 조바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들은 「남북왕래 보장하여 통일 기틀 다지자」는 등의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나왔다가 『북한대표들이 판문점까지 왔다가 돌아갔다』는 소문을 듣고 크게 실망해 하오3시쯤 발길을 돌렸다. ▷시민반응◁ 회사원 정수씨(30)는 『모처럼 남북대화의 자리를 갖는다고 해서 기대를 가졌으나 역시 그들은 대화를 외면하고 말아 씁쓸한 기분』이라면서 『북한측은 이것으로도 대화에 임할 자세가 안돼있음을 보여줬고 그 원인은 역시 체제의 보수성을 떨쳐버릴 용기나 의도가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영욱씨(37ㆍA&E상사 대표)도 『남북한이 함께 해야할 민족대회이므로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했어야 하나 양쪽이 너무 성급했던 것같다』고 아쉬워하며 『서로가 제스처를 쓰는데만 신경 쓴 듯한 인상도 지울수 없어 섭섭하고 실망이 크다』고 말했다.
  • 「범민족대회」 서울 예비회담 무산의 저변

    ◎“대남혼란 유도”… 북의 「계산된 거부」/우리 정부에 무산책임 떠넘겨/재야단체 반정 투쟁 촉발 속셈/전민련등 실체파악,대남전략 자료 삼을 듯 「8ㆍ15 범민족대회」개최를 위한 서울에서의 제2차 예비회담이 북한측 대표들의 참가거부로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이번 예비회담에 참가할 예정이었던 전금철 북한측 준비위부위원장(조평통부위원장)등 북한측 대표단 5명은 회담외적인 사소한 절차상의 문제를 트집잡아 판문점통과를 거부함으로써 제2차 예비회담을 무산시키는 동시에 남과 북의 대표 및 해외동포들이 함께 하는 「범민족대회」의 개최를 어렵게 했다. 제2차 예비회담의 결렬은 표면적으로는 「전민련측의 동행안내」 「회담장소」를 둘러싼 양측의 이견에 의한 것이었지만 결국은 북한이 아직도 대남 적화통일전략을 수정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통해 남북문제를 해결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증한 것이라는 게 북한문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은 우리측 정부와 전민련이 특정단체나 특정인사들만이 아닌 각계각층의 민족구성원이 광범위하게 범민족대회에 참가하자고 한 합의와 관련,지난 24일과 26일의 범민족대회 북측 준비위원회(위원장 윤기복)의 성명을 통해 이는 『일종의 도전적인 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며 전민련과 전대협을 제외한 단체들의 대회참가를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함으로써 제2차 예비회담이 열린다해도 대화와 타협에 의한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임을 시사했다. 특히 북한은 그들 대표단이 평양을 떠나기전에 이미 한국의 민족통일협의회등 58개 사회단체들을 「어용ㆍ관제ㆍ반통일단체」라고 규정하는가 하면 이들 단체가 참여할 경우 대회의 성과적 진행에 커다란 난관과 장애가 조성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통일을 희구하는 모든 단체가 참여해 민간차원의 폭넓은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내 급진세력과 해외의 친북인사들만 끌어들여 적화통일을 위한 통일 전선을 구축하고 그들의 통일노선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범민족대회의 개최를 계획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북한의 이같은입장은 지난 20일 노태우대통령의 「민족대교류」제의를 거부하면서 『정치적 위기를 수습하기 위한 기만적인 선전광고에 불과하다』고 비난한 것과 일맥상통한 것으로,북한은 범민족대회의 개최를 통해 한국사회내의 혼란을 유도하고 정부와 재야단체와의 갈등을 촉발시킬 계산을 하고 있었으나 「참가범위」와 관련,한국정부와 전민련이 의견일치를 봄으로써 설사 예비회담을 성사시켜 범민족대회를 공동개최한다 해도 그들이 노리고 있는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국정부를 도와주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관련,극동문제연구소 강인덕소장은 『북한은 현재 대화를 하거나 개방과 개혁을 할 준비나 자세를 전혀 갖추지 못할 뿐 아니라 대남전략에서도 기존의 통일전선전략을 전혀 수정하지 않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북한은 처음부터 한국정부가 적극 지원하고 나선 예비회담을 성사시킬 뜻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즉 북한은 전민련등 재야단체가 한국사회내에서 통일논의를 주도할 수 있도록 전민련과 범민족대회의 공동개최를 주장해 왔는데,한국정부가 이를 적극 지원함으로써 이같은 기대가 무산되게 됐고 이 결과 예비회담을 결렬시키고 말았다는 설명이다. 북한은 이번 예비회담을 결렬시킨 뒤 책임을 한국정부에 전가시킴으로써 전민련과 전대협등 우리 사회내 재야단체들의 반정부 투쟁을 더욱 가열화시키는 계기로 이용할 것 같다. 도흥렬교수(충북대)도 『북한은 전민족적 통일전선구축과 우리 사회의 반정부인사들의 입지강화를 위해 범민족대회의 남ㆍ북 공동개최를 주장해 왔으나 현재와 같은 상황하에서 이 대회가 개최될 경우 예상되는 한국정부의 반대급부적 실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북한은 이번 예비회담이 형식상 전민련과 북측대표,해외동포 3자간의 회담이기는 하나 정부가 전민련의 회담참가를 허용하고 또 전민련도 정부측과 참가범위에 대해 합의까지 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는 그들이 말하는 민간차원의 대화가 아니라 정부차원의 협상이 되고 말았으며 이 결과 회담에서의 성과가 자칫 한국사회내의 갈등을 유발하기보다정치적으로 곤경에 빠진 한국 정부를 도와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다만 북한이 예비회담에 참가하려고 했던 것은 「참가범위」를 정부측과 협의한 전민련의 입장을 직접 확인하는 동시에 전민련등 한국내 재야단체의 실체를 파악함으로써 그들의 대남정책을 수립하는데 주요자료로 삼고자 한 것으로 분석된다.
  •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이 무산되기까지

    ◎“제의… 수용… 거부”… 입씨름 8시간/모두 7차례 접촉… 생트집 일관/정부­전민련 합의한 장소마저 끝내 거절 26일 하오 3시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범민족대회 2차 예비회담은 북한대표단이 판문점 북측 지역인 판문각에 도착하기는 했으나 회담장소 및 숙소문제와 전민련의 동행안내 등에 관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하는 바람에 이날 하오 4시까지 무려 8시간동안 모두 6차례의 연락관 및 간이접촉과 1차례의 직통전화 연결에도 불구하고 우리측과 타협점을 찾지 못해 끝내 무산. ▷판문점◁ ○…남북 쌍방은 이날 상오 7시30분쯤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 회의실에서 연락관 2명씩이 참석한 1차 실무접촉을 갖고 ▲북측 참가자들의 숙소(회담장 포함)는 인터콘티넨탈호텔로 하고 ▲북측 참가자들은 우리측 정부가 제공한 차량을 이용하며 각 차량에는 우리측 안내관 1명씩이 동승하고 ▲편의제공및 신변안전보장문제와 관련된 일체의 사항은 정부대표인 국토통일원과 협의하며 ▲서울 체류일정은 북측과 전민련측이 협의해 결정한다는 등 8개항에합의. ○…예비회담 북측 대표들은 이날 상오 9시 판문점을 통과할 예정이었으나 평양의 폭우로 헬기가 이륙치 못해 상오 8시쯤 승용차편으로 출발,낮 12시쯤 판문점 북측 지역에 도착. 그러나 북측 대표들은 헬기로 개성 근처 황주에서 내린 것으로 알려져 이날 예비회담에 임하는 북한측 태도를 예고. ○…북한측은 상오 9시50분쯤 간이접촉을 갖고 『정부는 편의제공만 하고 전민련측이 안내를 하기 바란다』며 1차 실무접촉의 합의사항을 번복한 뒤 두차례의 추가 간이접촉에서도 똑같은 주장만을 되풀이. 쌍방은 이어 상오 11시쯤 2차 연락관접촉을 가졌으나 『전민련이 아카데미하우스로 회담장소와 숙소를 정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거냐』며 전민련의 안내와 전민련이 정한 숙소를 고집하는 북측과 『연형묵정무원총리가 우리측 강영훈총리에게 신변안전보장을 요구한 만큼 신변안전을 위해 정부가 안내하겠다』는 우리측 정부입장이 팽팽히 맞서 10여분 만에 결렬. 이어 낮 12시25분쯤 가진 3차 연락관접촉에서 북측 전금철대표의 승용차에 전민련 상임고문이 동승할 것과 이해학 전민련 조통위원장등 전민련 대표 3명이 군사분계선까지 자신들을 영접하러 나올 것을 새로이 요구. 이에대해 통일원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북한측이 저렇게 트집을 잡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오늘 예비회담은 못 열리는 게 아니냐』는 예비회담무산론이 조심스럽게 대두. 정부는 3차 실무접촉의 북한측 요구를 수용,이를 북측에 전달했으나 북한측은 12시50분쯤 가진 실무접촉에서 우리측 정부와 전민련간 숙소문제에 대한 입장이 다른 점을 들어 전민련측이 안내할 것과 숙소문제에 대한 해결이 되지 않으면 예비회담에 참가할 수 없다고 주장. ○…전민련측은 하오 2시10분쯤 우리 정부측과 승용차 동승및 군사분계선 환영문제와 관련,오해가 생겨 기자회견을 갖고 판문점에서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으나 취재기자들의 입회하에 정부측과 회의를 가진 결과 이 문제는 해명돼 철수발표를 철회하기도. 정부측은 전민련이 하오 3시50분쯤 『모든 문제는 정부측에 일임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함에 따라 회담 상설 연락사무소간전화를 통해 『모든 문제가 전민련과 정부측간 해결되었으니 부당한 입장을 더이상 고집할 것이 아니라 서울 실무회담에 참가할 의사가 있다면 하오 5시까지 분명한 답을 해주기 바란다』는 전화통지문을 북측에 전달. 그러나 북측은 전민련 안내와 숙소문제에 대한 우리측 입장이 바뀌지 않았다면 전화통지문을 받을 수 없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결국 이날 예비회담은 무산. ○…우리측은 이날 하오 4시쯤 모두 6차례에 걸친 연락관접촉 이후 첫 전화접촉을 통해 북한대표단 파견문제에 대한 북측의 거부의사를 확인했으나 북측은 『전민련이 직접 안내하고 숙소도 전민련이 정한 곳이 아니면 갈 수 없다』는 입장만 밝힌 채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 대표단 파견 의사가 없음을 표시. ▷아카데미하우스◁ ○…회담장소문제로 혼선을 빚고 있는 가운데 아카데미하우스측은 이날 북측 대표와 수행기자 15명이 투숙할 3층 객실 5개를 마련한 데 이어 이날 하오 해외동포 대표 6명이 도착하자 3층 객실 5개를 추가로 배정,아카데미하우스측은 이날 세미나 참석차 예약해놓은 KS콘크리트협회 회원들의 양해를 얻어 이들이 예약한 객실 5개를 양보받아 해외동포 대표용으로 할당. ○…범민족대회추진본부 6인 실무대표 가운데 1인인 신창균의장을 포함한 지선스님ㆍ문정현신부ㆍ임수경양의 어머니 김정은여사 등 추진본부 집행부 10여명은 이날 하오 10시쯤 해외동포 대표들이 묵고 있는 크리스찬 아카데미하우스에 도착,회담이 결렬된 경위등을 설명했다. 지선스님은 『임진각과 판문점에 나가 있는 영접단과의 연락수단인 전화통화 사정이 낮 12시쯤부터 악화돼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며 『이에따라 회담준비등에 차질이 생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외동포추진본부 은호기 미주대표등 해외동포 대표 6명은 북한측 대표가 되돌아감에 따라 이날 하오 9시 본관 1층 양식뷔페식당에서 임시집행부와 함께 만찬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이들이 밤늦게까지 임진각에서 돌아오지 않자 학생등 1백여명과 함께 간단한 행사를 가졌다. 권형택추진위원이 사회를 맡은 환영행사는 「우리 함께 가자 이 길을」이라는 노래를 시작으로 전민련 박영모공동의장의 환영사,은대표의 인사 등의 순으로 진행. 은대표는 이 자리에서 『북한대표들이 회담에 참석하지 않아 안타깝다』면서 『그러나 대회성사를 위해 예정대로 일정을 마치고 8ㆍ15 이전까지 판문점에서 3자가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범민족대회추진본부는 26일 밤 북한측이 내일 상오 9시 판문점으로 다시 나오겠다고 밝혔다는 소문이 나돌자 회담무산으로 허탈해 하던 분위기속에 회담재개 가능성에 기대를 걸기도. 추진본부는 회담이 재개될 경우에 대비,이날 하오 11시30분쯤부터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임시집행위원회를 열어 27일 이후의 회담일정등 구체적인 준비상황을 논의했다. □시간대별 협상 요약 △7시30분:1차 접촉 8개항 합의 △9시50분:북측,「전민련 편의」 요구 △10시30분:「우리측 안내」 수용 제의 △11시35분:숙소 아카데미를 요구 △12시25분:전민련 차량 동승 요구 △12시50분:분계선 전민련 마중 요구 △16시00분:북측,전통문 접수 거부
  • 남북관계 3부장관 회견의 뜻(사설)

    남북한 대화와 교류및 궁극적인 통일문제의 핵심에 접근하고자 하는 민족 대교류 제의에 대해 북한측은 예상대로 거부반응을 보였다. 북한측의 거부는 특히 과거의 경우와 달리 우리측 제의 8시간 만에 나온 것으로서 제의 내용의 합리성이나 구체성과 관련하여 매우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측 민족 대교류 내용 모두가 남북문제 해결의 본질과제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북한은 거부 이유로 우리측의 국가보안법 철폐,콘크리트장벽 제거,불법방북인사의 석방등을 내세웠다. 이 모두가 작금에 그들이 대화교류를 거부 외면할 때 내놓던 것으로서 우리는 다시한번 북쪽의 대화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23일의 우리쪽 통일ㆍ법무ㆍ국방 등 3개 부처장관 합동기자회견 내용은 북한측 거부조건에 대한 명백한 해답이다. 우리로서는 이미 남북한의 조건없는 개방과 무제한 자유왕래 실현을 위한 전반적인 시행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북한측이 준비하고 있는 범민족대회에의 참가도 북측에 의한 「선별단체」가 아니라면 언제 누구라도 참가를 허용키로 했다. 국가보안법문제 또한 그러하다. 지난번 임시국회에서 통과,곧 시행될 남북관계 2개 법률은 신법 우위원칙에 따라 보안법에 우선한다. 남북 자유왕래가 실현될 경우 간첩행위를 제외한 이적성 보안법사건이 처벌되지 않는다. 보안법중 잠입 탈출죄와 회합통신죄등이 남북교류협력법에 의해 사실상 사문화된 셈이다. 정부 여당도 이미 보안법 개정방침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이쪽 보안법과 저쪽의 사회안전법이 연계 토의될 경우 양쪽의 장애요인은 제거되리라고 본다. 이른바 콘크리트장벽에 대한 입씨름만큼 비생산적인 것은 없다. 우리측은 이번 제의이전부터 그 실재여부에 대한 공동조사를 제의했었다. 철거만을 주장하며 실재여부에 대한 검증을 거부하는 쪽은 오히려 북한이다. 콘크리트장벽은 당국의 증거제시와 내외언론의 검증에 의해 실재하지 않음이 확인된 것이다. 엊그제 모스크바방송도 휴전선 콘크리트장벽이라는 것이 대전차장애물이라고 보도했었다. 보안법 철폐ㆍ콘크리트장벽 철거ㆍ방북인사 석방 등은 따지고 보면 하나같이 상대방 체제ㆍ이념에 대한 비방이며 내정간섭이다. 7ㆍ4 남북 공동성명 정신은 상대방 이념이나 체제에 대한 비방과 훼손 내정간섭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까지 이를 고의로 어기거나 교묘하게 위장하여 대남선동을 해왔다. 그같은 북한태도는 언제나 대남 적화전략이나 통일전선전략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 「민족 대교류」는 그러한 북측 태도와 전략마저도 크게 발전적으로 수용하면서 남북문제와 관련된 모든 장애요인을 솔선해서 제거한다는 의지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측은 더이상 쓸데없는 트집이나 고집을 버리고 조건없이 허심탄회하게 민족문제에 임해야 한다. 판문점에서의 범민족대회를 강행한다는 북한이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의 통일행진을 마다할 이유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남북한 무조건 개방과 무제한 왕래야말로 민족간 모든 교류와 친화의 선결요건이다.
  • “보안법 트집” 북한의 법체계

    ◎“반공산” 사상범은 무조건 중형/「노동당 규약」이 헌법보다 상위에/형사소추 시효도 재판소 재량에 맡겨 북한측이 남북교류의 전제조건으로 기회있을 때마다 폐지를 주장해온 「국가보안법」과 관련,이에 상응하는 북한측의 안보관계형사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의 법체계에는 우리의 국가보안법과 같은 안보관계형사법이 따로 마련돼 있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헌법보다 상위에 있는 「조선노동당규약」과 헌법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및 그 아래 있는 「형법」만 가지고도 사상범 또는 반혁명분자에 대해 우리보다 훨씬 가혹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조선노동당 규약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한 뒤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의 혁명과업을 완수,한반도 전체를 주체사상화시켜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고 당면과제를 설정해 놓고 있다. 또 북한헌법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우리나라의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조선노동당의 주체사상을 자기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고 대남 적화통일을 위한 주체사상론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비해 우리의 국가보안법은 남과 북이 지금처럼 분단된 상황에서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및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이라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다시말해 북한의 노동당규약과 헌법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반도전체를 공산화시키기 위한 공격적 규정인데 반해 우리 국가보안법은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고 자유민주체제를 지키기 위한 방어적 안보형사법이라는 해석이다. 북한은 실체에 있어 안보관계형사법을 특별히 제정하지는 않았지만 일반법인 형법에 우리의 국가보안법 보다도 훨씬 더 무거운 중형조항과 예외조항등을 두고 있다. 나아가 북한형법은 명백한 처벌규정이 없는 경우에도 그 행위와 가장 비슷한 죄에 관한 조항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유추해석」을 전면 허용하고 있다. 이는 근대형법의 기본원칙인 죄형법정주의를 완전히 무시한 전근대적 법률체계로 안보관계특별법이 없다 하더라도 형법만 가지고도 반체제범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공안사범의 경우 형사소추의 시효마저 재판소의 자유재량에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 국회회담 접촉 북은 왜 연기했나

    ◎「우리 국회 사태」 틈탄 역공세/“선전효과 기대 어렵다” 판단한 듯/당분간은 고위급회담 주력 예상 북한이 19일로 예정된 남북 국회회담 제11차 준비접촉을 일방적으로 연기 통보해와 실질적인 남북 관계개선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또다시 실감케 했다. 회담날짜를 불과 이틀 앞둔 17일 북한은 대남 전화통지문을 통해 「남북 국회에서 발생한 복잡한 사태」를 표면적인 이유로 회담을 당분간 연기할 것을 통보해 왔다. 『야당의원들이 의원직 사퇴표명을 거론,귀추를 알 수 없는 위기상황에서 북남 국회의원간의 정상적인 상봉이 제대로 이뤄질 것 같지 못하다고 인정해 제11차 판문점 접촉을 당분간 연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북측은 연기이유를 밝히고 있다. 바꿔말해 남북 국회가 어지러운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남북 국회회담준비접촉을 가질 수 없다는 게 북한측의 형식논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측이 내세운 이같은 외형적인 연기구실은 제1야당인 평민당의원들의 의원직 사퇴서가 아직 국회에 제출되지 않은데다 여야간 협상에 의해 원상회복될여지가 남아 있다는 측면에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이보다는 국회회담에 임하는 북한측의 대화자세가 바뀌었다는 데서 중요한 연기배경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최근 국회회담 준비접촉에 응하는 북한측 태도를 검토해볼 때 북한측은 더이상 국회회담에 대한 미련을 두지않고 있음이 명백하다. 지난 88년 8월19일 6공들어 기존의 남북대화중 국회회담 준비접촉이 처음 시작될 때만 해도 우리 국회는 「여소야대」이어서 모든 대남전략을 통일전선전술에 입각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3당통합으로 인해 「거대야소」로 바뀐 만큼 국회회담의 효용가치가 떨어졌다고 북한측은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남북 국회회담을 통해 남북 불가침선언을 채택하자는 것이 국회회담 준비접촉에 응해온 북한측의 가장 큰 이유였으나 「남북간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 해소문제와 다각적인 교류 협력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하게 돼있는 남북 고위급회담의 1.2차 본회담 개최날짜가 확정된 마당에 굳이 국회회담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북한측의 속셈으로 관측된다. 이밖에 국회회담 준비접촉이 원만하게 타결돼 개회식이 평양에서 열릴 경우(이미 쌍방간에 합의) 우리측은 국회의원 2백99명을 포함,7백여명의 대표단을 북한에 파견하게 되는데 아직 체제개방및 남북 인적교류를 받아들일 태세를 갖추지 못한 북한이 이를 수용하기가 벅차다는 사실도 지적할 수 있다. 북한은 이와함께 제도권 정치에 강한 불만을 품은 남한내 동조세력을 지원하고 부추긴다는 차원에서 남북 국회회담의 일방 연기통보를 했음직하다. 통일원의 고위당국자는 이날 이와관련,『북한측의 이번 연기통보는 「불난 집에 기름붓는 격」으로 해석된다』고 촌평했는데 바로 이 대목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결국 이번 연기통보를 볼때 북한은 앞으로 상당기간 이른바 「2중적 전략」에 의해 각종 남북대화를 추진해 나갈 것으로 짐작된다. 즉 중 소 등 외부의 입김을 의식해 겉으로는 대화를 계속 유지할 것이나 내부적으로는 대남 적화통일 노선을 견지하면서 통일전선전술 차원에 바탕을 둔 정치선전공세를강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측의 일방 연기통보로 인해 9월 초와 10월 중순 각각 서울과 평양에서 개최키로 돼있는 남북 고위급회담 제1.2차 본회담도 그 전도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고 보여진다. 이번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은 우리측이 예상치 못한 트집을 잡아 회담개최를 일방적으로 연기할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8월15일 북측이 판문점에서 개최하려는 범민족대회에 전민련 전대협 등 우리측의 재야단체가 참가를 강행한다면 필연적으로 다수의 구속자가 발생할 것이고 북한은 이를 구실로 1차 본회담의 개최를 일방연기할 개연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여하튼 국회회담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북한은 향후 기존 대화채널중에서도 남북 고위급회담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 험난한 앞길 세종대정상화/새이사진ㆍ수습대책위 발족 계기로 본 전망

    ◎학생측의 “이사진 거부”움직임이 큰 변수/“더 이상 「관용」엔 한계”문교당국선 강경 학교법인 대양학원이 박찬현전문교부장관(73)을 이사장으로 새 이사진을 구성하고 역시 문교부장관 출신의 서명원씨(80)를 위원장으로 「학원정상화수습대책위원회」를 발족시킴에 따라 말썽도 많던 세종대사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아직 학생들의 출석률은 20%를 밑돌고 일부 학생들은 벌써부터 새 재단진에 대해 불신하는 경향을 보이고는 있으나 우선 사태를 장악할 중립적인 행정기구와 수습책을 마련하기 위한 협의기구가 발족된 것이다. 이번 조치로 미루어 문교부로서는 유급대상학생들의 처리여하에 따라 아직도 상당한 사태의 변화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고는 하나 내심 2학기부터라도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었으면 하고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문교부로서는 그동안 3차례에 걸친 경고가 학생들에게 「엄포용」으로만 여겨져 별효과를 보지 못한 만큼 더이상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다가는 문교정책의 신뢰성마저 상실하고 말 것이며 학생들에게 끌려다니는 학교측에 사태수습을 맡길수도 없다는 판단에 따라 이번 개편을 단행하게 한 것으로 볼수 있다. 문교부관계자는 『만약 수업거부학생들과 학교측이 타협에 성공해 수업이 정상화되더라도 이러한 선례는 앞으로 수업거부가 학생들에게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될 가능성이 크고 이번 세종대사태가 세종대만으로 국한된 것이 아닌 「전대협」차원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때 다른 학교에까지 파급효과가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고충을 털어놓고 있다. 수업거부학생들과의 타협에 의한 정상화보다는 교육적 차원에서 선량한 다수의 학생들을 살리는,그리고 앞으로 세종대를 악습분규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 이번 조치의 배경이라는 것이 문교부측 주장이다. 문교부는 지난10일 기존재단측이 이사장으로 선임했던 유승필유유산업사장(44) 등 신임이사 4명의 승인을 『세종대 재단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이유로 거부,주영하(78)ㆍ최옥자씨(71) 등 설립자의 입김을 완전히 배제하려는 뜻을 분명히 했었다. 물론 수업거부학생들의표적이 되어온 기존재단 이사진을 완전히 퇴진시켜 목표물을 없애버린다는 측면도 고려됐고 이번 사태의 책임을 공유해야할 수업거부학생들과 재단에 한꺼번에 책임을 묻겠다는 뜻으로도 볼수있다. 문교부는 이와함께 새이사진이 주ㆍ최씨 등 설립자들과 관계가 없다치더라도 연고권이 남아있어 7명의 선임이사중 임기가 2년6개월인 이사 3명이 물러나면 주씨가 아니더라도 다시 그 측근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음에 대비해 재단정관에 학사간여를 못하도록 명문화시킬 계획이다. 그러나 수업거부 주동학생들은 벌써부터 관선이사의 성격과 함께 이사2명의 재단과의 관계를 트집잡아 신임이사진을 거부하는 투쟁을 벌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일단 기존재단의 퇴진을 자신들의 승리로 보고 이 기회에 아예 재단의 완전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수업불참학생들을 일단 유급처리한 뒤 대책위 등을 통해 2학기에 학교를 정상화시키고 수업불참학생을 선별처리해 주동학생을 완전 격리시킨다는 수순을 꾀하고 있는 문교부의 구도도 그렇게 순탄하지 만은 않을 것 같다는게 일반적 관측이다.
  •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5ㆍ18민주화운동 10주에 부쳐/조오현

    ◎“원을 원으로 풀순 없다” 법구경 되새겨야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지도 벌써 10년이 됐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의 세월,그러나 광주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은채 마치 악성종양처럼 우리 사회의 내부를 불신과 증오로 채워가고 있다. 광주문제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더 시간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 아픔이 10년이 지나고도 치유되지 않았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동안 광주문제를 정리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6공화국 출범이후 국회는 그동안 망월동에 묻어두었던 광주문제를 꺼내 진실을 밝히고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활동을 벌였다. 국민들을 모두 TV수상기 앞에 매달리게 했던 청문회를 통해 가려졌던 진실이 조금이나마 밝혀진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또 5공시절에는 광주문제를 단순히 「광주사태」로 부르고 희생자들도 「폭도」라고 매도했던 것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의미를 규정하고 「폭도」가 「희생영령」이란 말로 바뀐 것도 변화라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역사가 그만큼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표면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광주가 내장하고 있는 본질적인 몇가지 문제는 미결로 남아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이며 민주화를 어떻게 이루어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광주문제는 일부 정치군인의 권력장악에 맞서 긴 군부통치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민주화를 실현시키기 위해 일어난 민주항쟁이었다. 수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목이 터져라 외쳤던 구호도 민주주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부는 무력으로 이를 진압했고 선량한 시민과 학생은 폭도로 매도되었다. 처참한 살육전이 우발적인 것이었는지 계획적인 것이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어찌되었건 이로 인해 광주는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도시가 되고 말았다. 5월18일만되면 시내 전체가 죽은 사람을 위해 촛불을 밝히고 통곡하는 도시는 광주밖에 없다. 우리가 적어도 같은 하늘 밑에 사는 형제라면 광주의 이러한 아픔을 어떻게든 풀어주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진작 매듭을 풀고상처를 아물게 해야할,정치적으로 책임있는 사람들은 「광주의 아픔」을 미끼로 추악한 정치흥정만 계속하고 있는듯한 느낌이다. 보상문제만 해도 그렇다. 정부여당의 경우 광주문제에 보상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마치 무슨 항복문서에 도장찍는 일인 것처럼 주저주저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애써 광주문제의 본질과 진상이 밝혀지는 것을 원하지도 않을 뿐더러 무조건 덮어두자는 식이다. 광주문제를 빌미로 명분상 흠을 잡히지 않겠다는 속셈이다. 야당이라고 해서 이 문제 해결에 여당보다 적극적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야당은 광주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져 6공화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우위에 서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정치인들은 아무도 광주문제를 마무리짓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보인다. 말로는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떠들면서도 청산방법이 당리당략에 어긋날듯 싶으면 여지없이 생트집을 잡고 돌아앉고 만다.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지고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고 했다. 그러나 누구도 광주의슬픔을 진정으로 나누려고 하지 않고 사람의 목숨값을 무슨 물건값 흥정하듯이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면서 그 언저리에서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할 뿐이다. 저간의 형편이 이러하고 보면 광주문제가 10년이 지나도록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태는 죽은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지 않고 유가족들과 슬픔을 나누지 않는다는 단순히 도덕적인 이유로만 비난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더욱 큰 문제는 그로 인해 높아진 불신의 벽과 삭여지지 않는 분노의 감정이다. 광주에 가본 사람은 느끼겠지만 광주문제가 10년째 공산의 메아리마냥 울리기만 하고 실체가 잡히지 않자 이제는 분노를 넘어 증오감으로 치닫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또다시 어떤 비극적 사태로 발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광주사람들은 차마 입밖에 이런 말을 내뱉지 않고 있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불만이 낙진처럼 누적되고 있다. 일을 자꾸 어렵게만 만들어가서는 안된다. 광주의 슬픔이 아무리 크다고해도 10년을 거기에 매달려 역사의수레바퀴를 헛돌게 해서는 곤란하다. 수많은 사람이 광주항쟁때 쓰러져간 것은 길을 잘못 든 민주주의의 수레를 바로 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스스로 역사의 제단앞에 공양물이 되었다. 진흙에 빠진 수레를 건져 올리기 위해 돌이 되고 다리가 되었다. 지금 살아남은 사람이 할 일은 그 돌을 딛고 일어나 그 다리를 밟고 민주사회라는 피안에 도착하는 일이다. 그것이 죽은 사람의 죽음을 욕되지 않게 하는 길이요.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언제까지나 광주의 비극을 흥정만 한다면 광주의 역사적 의미인 민주화가 오히려 광주라는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 당장 우리가 서둘러 해야할 일은 우선 광주의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용서하고 청산하는 길밖에 없다. 개인적 감정으로야 도저히 용납할 수 없고 용서가 안될 수도 있다. 장승같은 자식 잃고 기둥같은 형제를 잃은 사람에게 용서하라고 말하는 것은 무례한 요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용서하지 않는다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오는 것도 아니고 용서와 관용이 아니면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없는 것을. 부처님은 「법구경」에서 우리들 중생에게 이렇게 가르친바 있다. 『원망은 원망으로 갚아지지 않는다. 원망은 또다른 원망을 낳기 때문이다. 원망은 용서함으로써만 갚을 수 있다』 어려운 때,마음이 상하는 때일수록 우리는 성인의 말씀을 삶의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분들의 가르침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슬기가 담겨 있다. 광주문제도 마찬가지다. 용서하고 관용하는 것만이 참으로 이기는 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과거를 잊자는 얘기는 아니다. 역사란 과거의 아픔과 경험을 바탕으로 전진하는 것이라면 간디의 말처럼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다시는 10년전 광주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한다. 중음으로 맴도는 광주의 원혼들도 그래야 하루속히 정토왕생 이고득락하게 될 것이다. □약력 스님ㆍ전불교신문 주필 1968년 문단데뷔 신흥사주지 역임
  • 북한,“금강산 남북공동개발 취소”/평양방송 통해

    ◎“남한 방해” 핑계 계약무효화 선언/현대제공 중장비등 수령거부/“무상공여 명색붙여 생색낸다” 트집 북한은 16일 현대그룹의 중장비및 승용차 7대의 북한무상공여와 관련,공여장비들을 받아들일 의사가 전혀 없다고 밝혀 이들 물품에 대한 수령을 거부했다고 통일원이 전했다. 북한은 이날 하오 5시 평양방송을 통해 『선의가 깃들여져 있어야 할 선물에 무상공여라는 명색을 붙여 생색을 내려하고 있는 것을 어느 누가 받아들이겠는가』라고 거절 이유를 밝혔다. 북한은 또 지난해 1월 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과 맺은 금강산공동개발에 대한 경제합작계약에 대해서도 『남한정권의 방해책동으로 인해 계약은 이미 무효로 됐다』고 밝히고 『남북간에 처음으로 맺어졌던 경제합작계약이 수포로 돌아간 책임은 전적으로 남한당국자들에게 있다』고 우리측을 비난했다. 한편 현대측은 지난 3일 정부의 승인아래 승용차 2대와 중장비 5대 등을 일본고베항을 거쳐 오는 29일쯤 평양근처 남포항에서 북한측에 인도할 예정이었다.
  • 업체비리 협박 갈취/군산신문사장 구속/취재부장도 함께

    【전주=임송학기자】 전주지검 군산지청은 15일 주간 군산신문 사장 순정일씨(45)와 취재부장 조정신씨(46)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공갈등)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12월 군산관광호텔이 호텔1층에 유리벽화원을 조성하면서 건축법을 위반했다는 약점을 이용,신문구독료와 광고료 명목으로 95만원을 뜯어낸 것을 비롯,군산시내 한약방과 건설업체들의 약점을 트집잡아 4차례에 걸쳐 모두 2백40만원을 갈취해온 혐의다.
  • 미ㆍ북한 접촉에 대한 시각(사설)

    동유럽을 중심한 사회주의권 내부의 정세변화로 국제적 고립에 몰려있는 북한이 요즘 다시 미국과 일본에 접근을 시도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과거와 달리 두드러진 사례로는 먼저 북한이 대미관계개선의 일환으로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미군5명의 유해를 곧 미측에 보내리라는 사실이다. 또 미국측으로서는 오는 17일부터 조지 워싱턴대 중소문제연구소 주최로 열리는 국제학술회의에 북한 노동당 대남 담당비서겸 조평통위원장인 허담이 참석을 희망해올 경우 미 입국을 허용하리라는 것이다. 미군의 유해반환은 미ㆍ북한간 해묵은 현안으로 언제라도 해결가능한 사안이다. 궁금한 것은 허담의 경우 「미 입국허용」과 「참석희망」을 놓고 미ㆍ북한사이에 어느정도의 사전논의가 있었겠느냐 하는 점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미측의 입장도 유연한 것이 현재로서 확실할 것 같다. 그러나 공식적인 태도는 유보한채 아직은 양쪽의 관계개선에 있어서는 남북한신뢰구축,핵협정조인등 북한측의 태도변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우고 있는 것 같다.어느 경우이든 북한이 스스로 국제적 고립을 벗어나고 또 그들이 원한다면 그것을 도와줄 수 있다는 입장인 것이다. 우리역시 그러한 사태변화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사실 요즘 들어서는 88년이래 북경을 무대로 간헐적으로 열려오다가 지난 연초 북한이 팀스피리트훈련을 트집잡아 외면해오던 미ㆍ북한접촉을 재개하려는 쌍방의 움직임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북한쪽은 또 얼마전 학술단체대표를 일본에 파견하여 「일ㆍ북한관계개선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제시하고 비밀교섭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고 전해진다. 북한이 은밀하지만 과거에 비해 구체적 행동으로 미일과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것은 국제관계의 급격한 변화로 초래된 그들의 외교적 위기를 극복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음은 분명하다. 북한의 그러한 자세변화가 사실이라면 그것은 한반도문제해결을 위한 국제적 여건과 분위기 조성에도 도움이 될뿐더러 지금은 거의 중단상태에 있는 남북대화와 교류의 재개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국제무대에서의 북한의 고립과 좌절감은어제 오늘에 시작된것이 아니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이 동유럽 6개국과는 물론 몽고와도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소련과의 수교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소ㆍ중국과는 경제를 비롯하여 여러분야에 걸쳐 교류를 확대하고 있음을 놓고 북한이 그들 입장에서 더이상 고립속의 방관을 계속해서는 안되리라는 결론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북한의 선택은 바로 그것이다. 북한역시 그들의 대남 적화전략이 낡은 시대의 유물임을 인식한다면 작금년에 걸친 동유럽 사회주의 세계의 엄청난 변화를 활용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미ㆍ소ㆍ중ㆍ일등 한반도 유관국가들도 북한의 그러한 선택을 부추기고 도와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이 세계적인 개혁과 개방시대에 한반도의 남북한이 더이상 비평화적 분쟁지역으로 남아있기를 원치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 변화의 물결을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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