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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태주 “15년 동안 母 소식 몰라...얼굴도 기억 안 나”

    나태주 “15년 동안 母 소식 몰라...얼굴도 기억 안 나”

    트로트 가수 나태주, 신인선이 김수미를 만난다. 1일 방송되는 SBS플러스 ‘김수미의 밥은 먹고 다니냐?’에서는 구수한 목소리와 화려한 퍼포먼스로 무대를 찢어버린 두 남자, 나태주 신인선이 출연한다. ‘미스터트롯’ 심사위원으로 활약한 대세 트로트 가수 진성의 부름에 한달음에 달려온 나태주, 신인선은 평소 진성에게 농담도 서슴지 않는 사이라며 두터운 친분을 자랑한다. 하지만 곧이어 나태주는 이찬원에게 300대0으로 패배하며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무대를 회상하며 진성에게 왜 (점수를) 안 줬는지 궁금하다고 물어 그를 당황케 만든다. 이날 나태주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볼 수 없었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방송 최초로 고백한다. 그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했다”라며 그 이후 15여 년 동안 어머니의 소식조차 모른다고 털어놓는다. 이에 김수미가 “그동안 (엄마가) 보고 싶지 않았냐”고 조심스럽게 묻자, 한참을 뜸 들이던 나태주는 “사실 엄마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담담하게 고백한다. 최근 사람을 찾아주는 예능프로그램 섭외 연락을 받았을 때 어머니가 떠올랐다고 밝힌 그는 “아버지에게 (엄마를) 찾으면 안 되겠냐는 말을 할 용기가 안 났다”며 엄마를 찾지 않은 이유를 덧붙인다. 나태주는 어디선가 보고 있을 어머니를 향해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진심 어린 메시지를 보낸다. ‘미스터트롯’의 투톱 퍼포머로 활약한 나태주, 신인선은 못다한 ‘미스터트롯’ 스토리를 공개해 눈길을 끈다. 두 사람은 ‘미스터트롯’ 멤버들 중 ‘카메라 앞과 뒤가 가장 다른 멤버’로 입을 모아 장민호를 꼽고 ‘연예인 병에 걸린 멤버’(?)로 각각 영탁과 정동원을 꼽아 궁금증을 자아낸다. 퍼포먼스만큼 화려한 입담으로 국밥집을 발칵 뒤집은 두 남자 나태주, 신인선의 이야기는 1일 밤 10시 SBS플러스 ‘김수미의 밥은 먹고 다니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유산슬·영탁과 같이 먹는 ‘국민콘’

    유산슬·영탁과 같이 먹는 ‘국민콘’

    빙그레의 인기 제품 ‘슈퍼콘’이 국민 MC 유재석이 트로트 가수에 도전하며 만든 캐릭터 ‘유산슬‘에 이어 영탁이 부른 CM송에 힘입어 최근 주문량이 큰 폭으로 늘고 있다. 빙그레가 2018년 4월 내놓은 슈퍼콘은 바삭한 식감, 풍부한 토핑, 독특한 포장 등으로 지난해 12월 기준 누적 판매 규모가 280억원을 돌파할 만큼 빠르게 아이스크림 시장에 안착하고 있다. 새로운 제조 공법으로 구현한 탁월한 맛과 유튜브 광고 조회 수가 500만회를 넘을 정도로 중독성 있고 재미있는 광고 효과로 최근 슈퍼콘을 찾는 소비자들의 손길은 더 늘어났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80% 급상승했다. 슈퍼콘의 인기몰이는 기존의 콘 아이스크림과 차별화를 이루려는 회사 측 노력에서 비롯됐다. 빙그레는 바삭한 콘 과자의 식감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보다 얇고 균일하게 콘 과자 안쪽을 초콜릿으로 코팅하는 새로운 공정을 도입했다. 아이스크림에서 콘 과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기존의 20% 내외에서 10% 이하로 줄여 아이스크림 맛을 극대화했다. 초콜릿, 땅콩 등 아이스크림의 맛을 더해 주는 토핑의 양도 기존 제품보다 50% 이상 늘렸다. 소비자들에게 다채롭고 풍부한 맛을 선사하기 위해 기존의 바닐라·초코맛에 더해 딸기·민트초코칩맛을 추가하며 제품 라인업도 꾸준히 확대해 나가고 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선 넘는 일요일] 패티김·이미자·양희은·희자매…‘국민가수’들의 과거는 과연?

    [선 넘는 일요일] 패티김·이미자·양희은·희자매…‘국민가수’들의 과거는 과연?

    ‘선데이서울’에 실린 전설적인 스타들의 그때 그 모습. 한국 가요계의 한 획을 그은 그들의 과거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한국 가요계의 전설’을 꼽아보자면 이미자와 패티김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두 사람은 같은 해인 1959년 가요계에 데뷔해 1960~70년대 가요계의 여왕으로 자리 잡았다. ‘엘레지의 여왕’으로 불리는 이미자가 한국적인 정서가 강한 트로트 음악을 주로 불러왔다면, 패티김은 서구적이고 세련된 분위기의 노래를 불러왔다. 데뷔 시기도 같은 데다가 나이대도 비슷해 언론에서는 자주 이미자와 패티김을 라이벌 관계로 묶어 비교하기도 했다. 이미자의 대표곡으로는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아씨> 등이 있으며 히트곡으로 분류되는 노래만 약 400여 곡에 달한다. 1964년 발표한 <동백 아가씨>는 여성 가수 최초로 음반이 100만 장 이상 판매되며 이미자를 ‘국민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하지만 1965년, <동백 아가씨>는 ‘왜색’을 이유로 금지곡 판정을 받아 방송과 음반에서 부를 수 없게 됐다. 결국 22년이 지난 1987년 6·29 선언 이후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신중현의 <미인> 등과 함께 해금(解禁)되어 방송에서 이 곡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패티김의 대표곡으로는 <서울의 찬가>, <이별>, <초우>, <그대 없이는 못 살아> 등이 있으며 ‘패티’라는 예명은 미국 가수 ‘패티 페이지’와 같은 명가수가 되고 싶다는 뜻에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해방 이후 일본을 거쳐 미국 카네기 홀,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공연 등 대한민국 가수 최초로 해외시장에 진출하기도 했다. 당시 큰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었지만, 동양 여성으로서 홀로 해외시장에 진출했다는 점에서 큰 평가를 받고 있다. 패티김은 한국 대중 가요사에서 수없이 많은 ‘최초’, ‘최고’란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최고의 ‘디바’였다. 2013년 10월 26일, 55년 가수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마지막 무대를 가지고 공식적인 은퇴를 선언했다.1975년, 작곡가 길옥윤의 곡 <당신은 모르실 거야>로 데뷔한 가수 혜은이는 외모와 가창력, 춤 실력까지 두루 갖춰 1970년대 후반 ‘혜은이 신드롬’을 일으켰다. 대표곡에는 <제3 한강교>, <감수광>, <진짜 진짜 좋아해>, <뛰뛰빵빵> 등이 있으며 1970년대 후반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 인기가수로 등극했다. 특히 1977년에는 대한민국 모든 가수상을 석권하는 진기록을 남겼고 10대 가수상·가수왕·최고 인기 가수상 등 3사 통합 가수왕을 수상하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1집부터 14집까지의 모든 타이틀곡이 1위에 등극하며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다. 또한 혜은이는 1978년 태평양가요제 입상 후 동남아 지역에 화제를 몰고 다녔던 원조 한류스타로서 패션, 헤어스타일 등의 유행을 주도하기도 했다. 가수 활동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 쇼 오락 프로그램, 뮤지컬 등에도 출연하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활발히 활동했다.2030 세대에게는 “너 이름이 뭐니?”라는 유행어로 더 익숙한 가수 양희은은 한국 포크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1971년 <아침 이슬>로 연예계에 데뷔했으며, <작은 연못>,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가을 아침>, <한계령>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양희은만이 가질 수 있는 중후한 성량과 호소력 짙은 음색으로 대중들의 감성을 자극해 많은 인기를 얻었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군부독재로 억압받는 상황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많은 사람들이 양희은의 곡을 불렀으며 데뷔곡 <아침 이슬>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곡이 되었다. 이로 인해 양희은의 곡 중 30여 곡이 금지곡으로 지정됐고, 1987년 6·29 선언 이후 대부분 해금(解禁)되어 음반 활동과 방송 활동을 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활발한 방송 활동과 라디오 DJ로도 그 이름을 떨쳤다. 최근에는 장르의 제약을 넘어서 이적, 육중완, 악동뮤지션 등 후배 가수들과 협업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1978년 데뷔한 3인조 걸그룹 희자매는 첫 정규 앨범의 타이틀곡 <실버들>로 TBC 가요차트 7주 1위를 하며 인기를 얻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바니걸스’, ‘숙자매’ 등과 함께 ‘걸그룹 트로이카’를 형성하며 많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가수 인순이를 주축으로 활동한 희자매는 화려한 무대 매너와 의상으로 당시 군인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얻기도 했다. 주로 디스코풍의 빠른 템포에 율동을 더한 음악들을 주로 했으며 <우리는 사랑해요>, <망향>, <참> 등의 히트곡이 있다. 글 장민주 인턴 goodgood@seoul.co.kr영상 임승범 인턴 장민주 인턴 seungbeom@seoul.co.kr
  • [선 넘는 일요일] 남진‧송대관‧윤수일‧조용필…대한민국 대표 가수들의 과거는 과연?

    [선 넘는 일요일] 남진‧송대관‧윤수일‧조용필…대한민국 대표 가수들의 과거는 과연?

    ‘선데이서울’에 실린 전설적인 스타들의 그때 그 모습. 그들의 과거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님과 함께>, <우수>, <둥지> 등 수많은 트로트 곡을 남긴 가수 남진은, 1965년 <서울 플레이보이>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팝 장르의 노래로 데뷔했지만, 큰 인기를 얻지 못하자 트로트로 전향해 본격적인 트로트 가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진을 가수로 알고 있지만, 그는 수십 편의 영화에도 출연한 배우이기도 하다. 1967년 박상호 감독의 <가슴 아프게>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영화배우로도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장일호 감독의 <그리움은 가슴마다>에 주연으로 출연했는데, 당시 잘생긴 외모와 많은 인기 덕분에 약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폭발적인 흥행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던 1968년, 해병대에 입대하여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전역을 10여 일 앞두고, 선데이서울 제18호(1971년 6월 20일자)에 앞으로 가수 활동 계획, 전역 소감 등을 밝히기도 했다.<네 박자>, <유행가> 등의 히트곡으로 유명한 가수 송대관은, 제207호(1972년 9월 24일자)에서 선데이서울이 선정한 ‘예비스타 베스트4’ 남자 가수에 부문에 김세환, 홍민, 서실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지금과 비교해도 변함없는 모습이지만 유난히 앳된 얼굴이 눈에 띈다. 송대관은 1967년 데뷔 후 한동안 무명 생활을 전전하다 1975년 <해뜰날> 발매 후 최고의 대중가수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송대관을 스타덤에 오르게 한 <해뜰날>은 위 기사처럼 당시 대마초 파동으로 다른 가수들이 무더기로 제명되었기 때문에 빛을 보게 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무명 생활을 하면서 힘들었던 시절을 희망적인 가사로 나타내 경제부흥기 대한민국의 감성을 표현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 인기에 힘입어 혜은이, 심수봉, 조용필 등과 함께 제577호(1979년 12월 16일자)의 ‘人氣歌手(인기가수)들의 그 노래 그 사연’이라는 특집 기사에 실리기도 했다.<사랑만은 않겠어요>, <아파트>, <떠나지마> 등 수많은 불후의 명곡을 남긴 윤수일은 한국적인 록사운드를 유행시킨 대표적 가수다. 1974년 언더그라운드에서 록 음악 가수로 시작한 후, 1977년 정규 1집 <사랑만은 않겠어요>로 연예계에 정식 데뷔했다. 1980년대 컬러 TV가 도입되면서 서구적인 외모를 가진 연예인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윤수일 역시 서구적인 외모와 큰 체격으로 인해 당시 많은 여성팬을 이끄는 대표 주자였다. 대중적인 인기뿐만 아니라 창작 능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은 그는, 소위 말하는 ‘엔터테이너’의 정석이기도 했다. 인기가 절정이었던 1979년, 선데이서울 제15호(1979년 1월 1일자)에 교제 중인 여자친구가 있음을 밝히며 결혼 계획을 알리기도 해 주목을 받았다.‘가왕(歌王)’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살아있는 전설’ 조용필도 1970년대 후반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은 가수 중 한 명이다. 1969년 미8군 무대에서 활동을 시작해 ‘화이브 핑거스’, ‘김트리오’ 등의 그룹으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75년 소집해제 후, 솔로 활동의 시작으로 발표한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고, 본격적인 ‘조용필 시대’가 시작되었다. 1979년, 현재의 그룹 ‘위대한 탄생’을 결성하고 <창밖의 여자>로 정식 데뷔했다. <고추잠자리>, <그 겨울의 찻집>, <단발머리>, <모나리자>, <킬리만자로의 표범>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조용필은 트로트, 록, 발라드, 재즈, 블루스 등 수많은 장르를 시도했으며 작사, 작곡, 편곡 등 못하는 것이 없어 ‘초인(超人)’이라고도 불렸다. 1971년에는 선데이서울이 주최한 ‘제1회 보컬 그룹 경연대회’에서 ‘가수왕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후, 선데이서울 제26호(1977년 3월 13일자) 인터뷰에서 “아무리 히트곡을 냈다 해도 보컬 그룹은 떠나고 싶지 않다”며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글 장민주 인턴 goodgood@seoul.co.kr영상 임승범 인턴 장민주 인턴 seungbeom@seoul.co.kr
  • ‘편성 갈등’ TV조선 ‘뽕숭아학당‘, ‘트롯신’에 앞섰다

    ‘편성 갈등’ TV조선 ‘뽕숭아학당‘, ‘트롯신’에 앞섰다

    방송 전부터 같은 시간대 편성으로 갈등을 보였던 SBS TV ‘트롯신이 떴다’와 TV조선 ‘뽕숭아학당’ 간 첫 대결에서 ‘뽕숭아학당’이 승기를 잡았다. 14일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오후 10시 방송한 ‘뽕숭아학당’ 첫 회 시청률은 11.8%~13.2%로 같은 시간 방송한 ‘트롯신이 떴다’(5.8%~7.5%)를 따돌렸다. ‘트롯신이 떴다’가 최근 9%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뽕숭아학당’에 일부 시청자를 빼앗긴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뽕숭아학당’은 ‘미스터트롯’의 임영웅, 영탁, 이찬원, 장민호를 내세운 트로트 예능으로, ‘트롯신이 떴다’에 출연 중인 김연자, 설운도, 주현미, 장윤정, 붐도 등장할 예정이어서 겹치기 논란을 불렀다. 특히 SBS가 TV조선에 공식적으로 두 차례 항의했지만 TV조선은 분량이 겹치지 않는다며 기존 편성을 굳혀 첫 방송에 관심이 쏠렸다. ‘뽕숭아학당’ 첫 회에서는 네 명의 트롯맨이 각자 어머니와 함께 첫 수업에서 예능감을 뽐내는 모습이 담겼다. ‘트롯신이 떴다’는 설운도의 별장에 모인 가수들이 ‘랜선 강의’에 도전하는 내용이 소개됐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SBS·TV조선, 트로트 가수 겹치기 출연 두고 ‘갈등’

    SBS·TV조선, 트로트 가수 겹치기 출연 두고 ‘갈등’

    ‘뽕숭아학당’ 출연 가수, ‘트롯신’과 겹쳐“조치 촉구” VS “동시간대 송출 안될 것”트로트 가수들의 예능 프로그램 겹치기 출연을 두고 SBS와 TV조선이 이틀째 이견을 보이고 있다. 최근 트로트 가수들 섭외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 여파가 방송사간 이례적 갈등으로 나타나는 모양새다. 지난 11일 SBS는 오는 13일 밤 10시 첫 방송되는 선보일 TV조선 새 예능 ‘뽕숭아학당’의 출연진 중 주현미, 장윤정, 김연자, 설운도, 붐이 같은 시간대 ‘트롯신이 떴다’와 겹친다며 항의 표시를 했다. 이에 TV조선은 해당 가수들의 출연은 일회성이며 시간대가 겹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프로그램 편성에 변동이 없자 12일 SBS는 한 차례 더 입장을 내 TV조선을 비판했다. SBS는 “그동안 방송사들은 진행자 및 출연자들이 같은 시간대에 소위 ‘겹치기 출연’으로 출연자들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해온 것이 오랜 관례였다”며 “하지만 ‘뽕숭아학당’은 ‘트롯신이 떴다’와 같은 시간대에 편성함으로써 출연진들이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TV조선 측이 대승적 차원에서 적절한 조처를 해 주시길 당부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TV조선은 “뽕숭아학당‘에 출연 예정인 레전드들의 출연 분량이 ‘트롯신이 떴다’와 동시간대 송출되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며 “제작진은 이미 이 부분을 ‘트롯신이 떴다’에 출연 중인 레전드들에게 말씀드린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제2 유산슬 찾는다” MBC도 트로트 프로그램 제작

    “제2 유산슬 찾는다” MBC도 트로트 프로그램 제작

    트로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방송사들이 관련 프로그램 제작에 뛰어든 가운데, MBC도 트로트 서바이벌을 만든다. 6일 MBC는 “올해 하반기 ‘트로트의 민족’(가제)를 제작한다”며 “전국 팔도에서 트로트를 가장 잘 부르는 트로트 왕을 뽑는 버라이어티 쇼바이벌” 이라고 밝혔다. MBC는 지역 방송 네트워크를 활용한 지역별 예심을 통해 전국 팔도 곳곳의 트로트 고수들을 찾아내 새로운 ‘국민 트로트 스타’를 만들어낸다는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최종 우승자는 오로지 국민들이 직접 뽑는 ‘국민 투표’로만 진행한다. 대국민 트로트 대전 MBC ‘트로트의 민족’은 2020년 하반기 첫 방송으로, 구체적인 일정은 추후 공개된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Focus人] 걸그룹 환상 벗어던지고 ‘여자 싸이’로 탈바꿈한, 차세대 트로트 가수 설하윤

    [Focus人] 걸그룹 환상 벗어던지고 ‘여자 싸이’로 탈바꿈한, 차세대 트로트 가수 설하윤

    “모든 가사가 속담으로 이뤄진 ‘속담파티’라는 신곡 녹음이 다 끝난 상태예요. 원래 3월쯤에 나올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선보이지 못하고 있어 너무 아쉬워요. 모든 분들이 힘들고 지치실텐데 힘내시고 하루빨리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돼서 찾아뵙고 싶어요.” 장윤정, 홍진영을 잇는 차세대 여성 트로트 가수로 평가받고 있는 설하윤씨(28). 2015년 12월 한 음악 방송프로그램에서 ‘불멸의 연습생 S양’이란 이름으로 출연해 출중한 노래와 춤으로 화제를 모았고 그를 눈여겨본 소속사들로부터 많은 걸그룹 제의가 들어왔다. 아이돌의 꿈을 위해 12년간 외롭고 힘든 자신만의 싸움을 묵묵히 견뎌낸 결과였다. 하지만 그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트로트 가수의 길을 택했다. 왜일까? “내가 다시 아이돌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두려웠어요. 어느날 소속사 대표님께서 ‘트로트 가수 한 번 해보면 어떨까’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가슴이 막 뛰더라고요.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건 다 똑같은데, 제가 단지 걸그룹이란 거에 매료돼 있었던 거 같아요. 공연 다니면서 사람들의 눈을 직접 보고 노래하면서 위로를 해드리는 게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에요”라며 트로트 가수가 된 걸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군부대에서도 교주급 지위를 누리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여자 싸이’라고 말할 정도로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단지 공연을 하러 온 것이 아닌 군인들과 함께 스트레스를 풀고 놀러 왔다는 마음으로 임한다고 한다. 공연 중 흥을 돋우기 위해 군단장께 가는 도중 군인들이 만들어 낸 ‘모세의 기적’을 체험했다는 그는 ‘역시 현역 군인들이 최고죠’라며 군부대 공연을 갈 때마다 늘 좋은 기운을 얻어 온다고 한다. 하루라도 빨리 그곳을 다시 찾아가고 싶다는 그를 지난달 24일 본사 스튜디오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Q) 데뷔 4년 차다. 인기 실감하는지아직까지는 크게 실감을 못하고 있어요. 코로나19 사태로 좀 어려운 시기라 사람들 접촉을 많이 못했기 때문도 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듣는 얘기들엔 조금 인기가 있다고, ‘핫’ 하다고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방송에서도 많이 찾아주셔서 고정예능도 하면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요. 저를 ‘리액션 요정’이라고 칭찬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Q) 본인 인생이 이렇게 될 줄 예상했는지12년이라는 긴 연습생 끝에 이렇게 데뷔를 했는데 트로트 가수가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고 더군다나 이렇게 활발하게 활동할 줄은 더욱 생각 못했었던 거 같아요. 지금 물 만난 물고기처럼 사람들하고 소통하고 공연하고 행사하는 게 너무나 행복해요. 사람들에게 위로도 드리지만 저 또한 위로를 받아요. 그래서 무대 위에서 ‘박수, 함성~’ 하면서 외칠 때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거 같아요. (Q) 가수를 꿈꾸게 된 계기는초등학교 5학년 친척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 준 적이 있어요. 그때 영화 타이타닉 주제곡 ‘My heart will go on‘을 불렀는데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 게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던 거 같아요. 그 당시 노래를 부르는데 소름이 돋았고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정말 멋진 일이구나’란 생각에 가슴이 막 뛰더라고요. (Q) 트로트 가수로 데뷔한 걸 후회하지 않는지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연습생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너목보’(너의 목소리가 보여)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죠. 엄마, 이모도 방송을 보러 오셨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제가 실력자로 나와서 이슈가 됐어요. 이후에 발라드 가수, 걸그룹 가수 등 제의가 많이 들어왔었는데 다시 아이돌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너무 두려웠어요. 그런데 그때 대표님께서 트로트 한 번 해보면 어떨까라고 제안을 해주신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고 가슴이 막 뛰더라고요. 왜 트로트를 하냐고 친구들과 부모님도 의아해했죠.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하는 게 다 똑같을 뿐인데, 단지 걸그룹에 매료돼 있었던 거 같아요. 아이돌은 ‘안녕하세요. 누구입니다’ 이렇게 예쁘게 딱 하고 더 이상 말을 못하잖아요. 저는 말을 너무하고 싶었거든요. 공연을 많이 다니면서 사람들의 눈을 직접 보면서 노래를 불러 드리고 위로를 해드리고 정말 매력적인 직업인 거 같아요. (Q) ‘신고할꺼야’ 첫 트롯 공식 데뷔 떨리진 않았는지긴장과 떨림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안 떨리는 거예요. 그냥 너무 행복했어요. 무대에 서는 순간 그냥 신나는 거예요. 그래서 저의 신나는 모습이 카메라에 너무 비쳐서 조금 릴랙스 하라고 대표님께서 말할 정도였으니깐요.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 모습에 카메라 감독님들께도 신인 같지 않다고 하시더라고요.(Q) 예능에서도 남다른 두각을 보이고 있는데정말 경험이 무시를 못한다고 예능이 정말 저한테 잘 맞는 거 같아요. 그냥 편하게 리액션을 하는 건데 너무 좋다고 칭찬을 해주시니깐 감사하죠. 저는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리액션이 나오니깐 피디님들 언제든 불러주세요. (Q) 콧구멍밖에 안 보인다는 악플에도 꿋꿋...‘너목보’라는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 밑에서 카메라를 찍기 때문에 코밖에 안 보인다는 댓글이 있는 거예요. 악플이라고 생각하면 악플일 수도 있는데 ‘콧구멍 큰 걸 잘 살리면 개인기로 만들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어서 오십원 넣었는데 들어가고 백원 넣었는데 들어가고 오백원 넣었는데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이홍렬 선배님 다음으로 콧구멍 개인기를 만들었죠. (Q) 장윤정, 홍진영을 잇는 차세대 트로트 여신과분한 거 같아요 아직까지는. 장윤정 선배님이 젊은 친구들이 트로트를 할 수 있게끔 길을 열어 주셨고 트로트 가수가 예능도 하고 노래도 하고 다 하네 이런 매력을 보여주신 게 홍진영 선배님이시기 때문에 제가 그 뒤를 잘 이어받으면 좋겠어요.(Q) 최초 여성 트롯가수 맥심 표지모델군인들의 최애 잡지 표지를 두 번이나 ‘아, 군통령 등극했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했죠. 여사친 콘셉트로 진행할 때, 좀 과하다고 생각한 의상을 주시더라고요. 제가 여사친 콘셉트가 맞는지 여쭤봤는데, 돌아온 답은 ‘예, 여사친 콘셉트입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Q) 군대에서 교주급 인기, 자신만의 ‘군대 콘셉트’많이 갈 땐 한 달에 13군데를 갔더라고요. 이틀에 한 번 꼴로. 군부대를 가면 좋은 기운을 많이 받는데 저도 뭔가 위로를 더 드릴 게 없을까라고 늘 생각해요. 그래서 특별한 이벤트를 자꾸 만들어요. 군인들한테 무대로 올라오게 해서 제 찐팬(진짜 팬)인지 물어보기도 하고 군단장님이랑 와이프 분이랑 셋이서 함께 블루스를 추고 놀아요. 군인들에겐 ‘나는 너희들과 스트레스를 같이 풀러 왔다, 놀러 왔다’란 마음을 갖죠. 예쁜 척 콘셉트보다는 제가 조금 더 스트레스를 풀어줄 만한 여자 싸이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Q) 속옷 매장에서 매니저 제안받을 정도의 남다른 ‘장사 수완’속옷 알바를 하다가 제가 너무 잘 파니깐 매니저 할 생각 없냐고 점장님께서 직접 물어보시는 거예요. 일단 손님께서 좋아하시는 취향에 대해 조심스럽게 여쭤보고 치수도 직접 재드리고 해요. 남자친구가 있는지도 물어보죠. 그 유무에 따라 대응하는 방법이 달라지거든요. 그런 걸 잘한 거 같아요. (Q) 꿈을 위한 기간 외롭고 힘들었을 텐데혼자서 많이 연습했던 거 같아요. 두 걸음만 옮기면 끝나는 좁은 방 안에서 계속 연습했죠. 제 목소리를 들으면서 많이 연구를 했고 다른 가수들이 어떻게 노래하는지도 많이 관찰한 거 같아요. 물론 외롭고 힘들었죠. 만약에 부모님이 안 계셨더라면 저도 굉장히 많이 힘들었을 거 같았는데 그 사랑이 저를 버티게끔 했었고 꿈을 그만큼 사랑했고 절실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죠. (Q) 이상형은듬직했으면 좋겠고, 묵묵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남자 품에 폭 안길 수 있는 키 큰 사람이면 좋겠고요. 그리고 제 성격이 너무 밝기 때문에 저를 부드럽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성격이라면 더 좋겠어요. (Q) 반려동물을 ‘푸딩’을 키우고 있는데반려동물 키우는 걸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어요. 진짜 많은 힘이 되고 가족과도 같은 존재예요. 바쁘고 힘든 생활 속에서 집에 들어가면 항상 반겨주는 게 반려동물이거든요. 그 행복감을 꼭 아셨으면 좋겠어요. 꼭 키우시길 권장합니다.(Q) <나는 트로트 가수다>를 통해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함께 했는데너무너무 행복했어요. 영광스러웠고. 좋은 조언을 정말 많이 해주셨어요. 조항조 선배님은 ‘하윤아 너는 어쩌면 그렇게 그림 같애’ 그러면서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주셨고요. 제가 돌아가신 할머니 얘기만 나오면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나요. 인터뷰하다가 할머니 얘기가 나와서 중단된 적도 있었거든요. 왕중왕전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5라운드 2차 경연에서 할머니가 좋아하셨던 주현미 선배님의 ‘신사동 그 사람’을 준비했죠. 근데 이덕화 선배님께서 할머니께 바치는 노래라며 소개해 주시는데 뒤에서 그 소리를 듣고 미치겠더라고요. 결국 감정조절에 실패해 뜻밖의 실수를 했죠. 이덕화 선배님께서 그렇게 말씀 안 하셨어도 제가 더 끝까지 잘 부를 수 있었던 거 같은데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원망은 전혀 없어요. (Q) 계획과 꿈SNS를 통해 혼자 노래 연습하는 것도 보여 드리고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팬들과 소통을 많이 하고 있어요. 지치신 여러분들한테 조금이나마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신곡도 준비하고 있어서 곧 소개할 예정이고요. 단독 콘서트를 여는 게 꿈이에요. 항상 트롯가수로 활동을 많이 하고 싶고 지방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많은 분들께 위로를 드리고 싶어요.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형우 기자 sungho@seoul.co.kr 임승범(인턴), 장민주(인턴)
  • 의정부문화재단 28일 부터 무관중 온라인 공연

    의정부문화재단 28일 부터 무관중 온라인 공연

    의정부문화재단이 오는 28일 부터 재단 유튜브 채널과 홈페이지를 통해 ‘무관중 랜선(온라인) 콘서트’를 선보인다. 25일 재단에 따르면 이번 무관중 온라인 공연은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상반기 모든 공연 프로그램이 취소된데 따른 것이다. 재단은 무관중 공연이 시민들의 문화적 허기를 채우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지역예술인들을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의정부문화재단의 ‘무관중 온라인 콘서트’는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장르의 지역예술인 및 단체를 섭외하여 공연 영상을 제작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재단 상주단체인 ‘창작국악그룹 동화’와 ‘의정부시 우수예술단체(W필하모닉오케스트라, 가야금산조진흥회, 퓨전엠씨)’를 비롯해 ‘고음악 앙상블’이 출연해 수준 높은 공연예술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실력파 인디밴드로 성장하고 있는 ‘가능동밴드’, KBS1 인간극장을 통해 새벽우유배달 트로트가수로 알려진 ‘지나유’, 전천후 힙합 래퍼 ‘누땡’과 중저음의 음색으로 대중과 공감하는 ‘장혜린’ 등 의정부 행복로 버스킹이 낳은 실력파 뮤지션들까지 지역을 대표하는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이 출연한다. 의정부문화재단 손경식 대표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지 고민하던 끝에 이번 무관중 온라인 공연을 마련하게 됐다”면서 “비록 현장감 있는 공연무대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코로나19로 지쳐있는 시민과 지역문화예술인들에게도 힘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나벨리, 신곡 ‘연모지정’으로 트로트 열풍 합류 예고

    나벨리, 신곡 ‘연모지정’으로 트로트 열풍 합류 예고

    최근 트로트가 세대를 초월한 음악으로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는 가운데, 실력파 트로트 가수 나벨리가 신곡 ‘연모지정’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한다. 2019년 디지털 싱글 앨범 ‘월광’으로 데뷔한 나벨리는 맑고 청아한 음색과 애절함을 담은 개성 있는 창법으로 트로트계의 신예로 떠올랐다. 특히 나벨리는 40년 만에 가슴 속에 품어왔던 가수의 꿈을 뒤늦게 이룬 트로트계에서의 귀추가 주목되는 신인 아티스트다.이번에 발표한 ‘연모지정’은 ‘가수 나벨리’ 프로젝트 정규 앨범의 두 번째 트랙이자 타이틀 곡으로, 이성을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정을 표현했다. 영화과 교수이자 감독 출신인 김태규 프로듀서가 직접 작사와 작곡, 앨범 기획 총괄을 맡았다. 곡은 정통 퓨전 댄스 트로트로, 미디엄 템포의 경쾌한 멜로디와 정통 악기를 재해석한 곡의 구성, 서정적이고 애절한 노랫말이 특징이다. 특히 더욱 성숙해진 나벨리의 가창력과 기교가 돋보이는 만큼, 트로트 열풍에 합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속사인 큐티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사랑하는 님에 대한 그리움과 애절함으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 첫 번째 싱글 월광이 나벨리의 감수성과 가창력을 뽐내는 곡이었다면, 신곡 연모지정은 짝사랑의 애틋함을 밝고 경쾌하게 재해석해 전 세대 즐길 수 있는 곡이다”라며 “청아하고 맑은 나벨리의 음색과 애절한 창법이 답답하고 어수선한 마음에 단비가 되어줄 것이다”라고 전했다. 트로트 가수 나벨리의 신곡 ‘연모지정’은 국내 주요 음원 사이트에서 감상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팔순, 내 나이가 어때서… 전국구 꿈, 완전 찐이야

    팔순, 내 나이가 어때서… 전국구 꿈, 완전 찐이야

    중국 만주에서 태어났지만 조선인이라는 한계에 부딪혀 북한으로 넘어갔고, 북에서는 중국 태생이라고 차별받아 남한으로 탈출했다. 일제강점과 해방, 분단을 거친 한국 현대사에서 그처럼 곡절을 겪은 이가 한두 명이겠느냐마는, 가수의 꿈을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버텼다.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북에서는 노동당에서 인정받고 남한에서는 가수협회에 등록해 80세인 지금도 매년 수십 차례 행사를 뛰는 현역 가수가 됐다. 하지만 인기가수로 거듭나 한민족에게 신바람을 주고 싶다는 꿈은 놓지 않고 있다. 탈북민 어르신으로 구성된 평양실버예술단 단장으로 활동했으며, 여전히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하고 있다는 김병수(80)씨를 지난 14일 서울 양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김씨는 1941년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구 투먼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애초에 투먼시와 접한 함경남도 온성에서 살았다. 두만강 건너 중국에서 싸리나무를 베어 온성으로 돌아와 장에 팔면서 생계를 꾸렸는데, 여름이 되면 두만강이 녹아 건너가기 어려웠다. 어차피 나무를 해서 살아야 한다면 중국이 낫겠다고 생각해 중국으로 넘어가 결혼하고 김씨를 낳았다고 한다. ●노래 잘하는 학생으로 소문 김씨는 투먼에서 초·중등학교를 다녔는데, 시(市)급인 현(縣)까지 소문난 노래 잘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변변한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고 예술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기에 고등중학교 졸업 후 옌지의 재정간부학교에 입학했다. 1962년 학교를 졸업하고 훈춘시 재정국에 배치됐지만 결핵성 늑막염에 걸려 6개월을 집에서 요양해야 했다. 요양을 마치고 재정국으로 찾아갔지만 ‘집에 가라’는 말이 돌아왔다. 김씨가 실직한 당시 중국에서는 ‘반우파 투쟁’이 한창이었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건너간 조선족들은 ‘조선’을 조국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중국 공산당은 이들을 ‘우파’로 몰며 탄압했다. 직장에서는 잘리고, 조선족 사회는 불안하고, 게다가 “회계는 죽어도 하기 싫었다”는 김씨는 결국 더 나은 삶을 찾아 1965년 혈혈단신 북한으로 넘어간다. 자강도 전천의 기계공장에 배치받아 조립공, 선반공으로 일했다. 회계를 전공해 기계는 전혀 몰랐던 김씨는 남들보다 두세 배 일했다. 입북 4년 만에 노동당에 입당할 수 있었다. 김씨는 북한에서도 끼를 감출 수 없었다. “입당 후 작업반장에 임명됐는데 선전선동 업무도 겸해야 했어요. 아침조회 때 직원들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치고 신문을 독보했는데 내 시간이 됐죠. 기념일이나 연말에는 김일성·김정일 사상을 공부하고 노래·춤 등으로 표현하는 직장별, 군(郡)별 경연대회가 있어요. 그 대회에서 우리 작업장, 공장이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죠. 공장 간부들이 알림판에 ‘공부하려면 김병수처럼 하라’고 써 놓기도 했답니다.” ●선전선동 업무서 끼 발휘… 예술단 등서 스카웃 제의도 예술단이나 선전단체로 옮길 실력은 됐지만 중국 태생이라는 꼬리표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공장에서 나와 같이 노래 부르던 사람들이 예술단이나 선전단체로 갔고, 나도 갈 수 있었는데 공장 간부가 잡더라고요. 내가 일을 잘해서 잡기도 했겠지만, 중국 태생이라는 점 때문에 선전선동 전문단체로 안 보낸 것 같아요.” 당시 북한에서는 중국 태생들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고 한다. “1970년대 공장에 근무하며 대학을 다녔는데 4학년 올라갈 때쯤 중국 연고자들은 높은 지위에서도 해임되고 평양에서도 쫓겨났죠.” 김씨는 공장에서 선전선동 업무를 통해 끼를 펼칠 수 있었으나 전문 가수의 꿈은 그만큼 더 커져 갔다. 1990년 전국 선전선동원대회와 전국 선전선동경연대회에 김씨의 공장이 참가할 수 있게 되자 김씨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김씨는 공장의 전문선동원은 아니었지만, 50세의 나이에도 노래와 춤을 독보적으로 잘해 참가 자격을 얻었다. 전국대회에서 입상해 선전선동원대회에 참가하게 되면 전문 가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김씨의 팀은 경연대회 3등에 올랐으나 그만 선전선동원대회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너무 분해서 공장 당비서에게 찾아갔어요.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당 비서가 그러더라고요. 중국 태생이라 그랬다. 반항도 못 했어요. 해 봐야 욕이나 더 먹겠죠. ‘여기서 더는 살 필요가 없다. 이 치욕을 나는 참을 수 있어도 자식들 보기 부끄러워서 못 견디겠다’고 생각했죠.”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탈북길 가수의 꿈도 좌절되고, 노래를 부를 의욕도 꺾인 김씨에게 1990년 중반 ‘고난의 행군’은 탈북의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김씨는 1996년 첫째 딸과 첫째 사위, 손자와 함께 탈북길에 올랐다. 전천에서 함경남도 함흥까지 12일 동안 산길을 걷고 함흥에서 온성까지 기차로 이동한 뒤 온성에서 두만강을 헤엄쳐 투먼으로 가는 험난한 장정이었다. 중국에서도 고난은 계속됐다. “둘째 딸이 공안에 붙잡혀 북송됐다 겨우 풀려나자 결국 가족들을 데리고 남한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탈북민 지원 단체의 도움으로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거쳐 2001년 남한에 온 김씨는 당시 61세라 마땅한 직업을 가지기 어려웠다. “탈북민 모임에서 주최하는 노래 경연대회를 알게 돼 참가했고, 북한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탈북민과 만나게 됐죠. 그와 소규모로 탈북민 예술단을 결성하고 공연을 다녔는데 당시 남북 관계가 좋아서 그랬는지 탈북민 공연도 인기가 높았죠.” 김씨와 그의 예술단은 많을 때는 한 해 300여 차례 공연을 했다. 북한에서 무용을 전공한 첫째 딸과 어려서 풍금에 소질을 보였던 셋째 딸도 같이 예술단 활동을 했다. 김씨의 딸들은 지금도 활발히 공연을 하고 있다. 탈북한 지 2년 만에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남인수가요제에 참가해 특별상을 받고 가수협회에 등록까지 해 정식 가수가 됐다. “탈북 후 탈북민 교육을 위한 하나원에 입소했을 때 ‘직업과 진로’라는 강좌를 들었는데 내가 남한에서 가수가 되겠다고 하니 강사가 ‘60대 늙은이가 어떻게 가수가 되겠나’라고 웃더라고요. 가수협회 등록하고 그 강사에게 전화해서 가수가 됐다고 말했죠.” ●주종목은 전통가요… 트로트 열풍 부니 해 뜰 날 있겠죠 가수의 꿈을 버리지 못했던 그는 2011년 71세 나이에 슈퍼스타K에 지원했지만, 아쉽게 3차 예선에서 떨어졌다. “TV에서 슈퍼스타K 지원자를 모집한다는데 1~99세까지 가능하다고 해서 지원했죠. 1, 2차 예선을 통과하고 코엑스에서 열린 3차 예선에 들어갔는데 심사위원으로 윤종신, 이효리, 길이 앉아 있었어요. 윤종신씨가 ‘아버님이 노래는 잘 부르시는데 이번 콘셉트와 맞지 않는다’고 해 속으로 울컥했죠. 1~99세는 모두 가능하다고 했지만 사실 30대 미만의 전도유망한 사람을 찾는 거라 생각했어요. 다만 이효리씨는 ‘저와 방송 같이해 보지 않겠나’라고 했는데 그때 대답을 못 했어요. ‘좋다’고 했어야 했는데 말이죠.” 김씨는 2013년 평양실버예술단을 조직했고 지난해에도 50여 차례 공연을 소화했다. 80세에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비결을 물었더니 “목소리를 위해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어렸을 땐 담배를 피웠는데, 북한 공장에서 선전선동 업무를 맡고 노래를 부를 때부터 술 줘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웠어요. 경연한다고 하면 감기 안 걸리도록 각별히 신경 썼고요. 남한에선 목을 부드럽게 한다며 생달걀을 먹던데 북한에서는 달걀을 기름에 풀어 볶아서 먹어요. 목소리가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게끔요.” 김씨의 주종목은 전통가요다. 9년 전 슈퍼스타K 때는 ‘콘셉트가 맞지 않는다’며 탈락했지만, 트로트 열풍이 불고 있는 2020년 그의 시대가 열릴지도 모를 일이다. “탈북민 예술단에서 활동하는 딸이 ‘아버지, 지금도 ‘막걸리 한 잔’ 부르면 영탁(트로트 가수)이보다 더 잘 부르고 소리도 더 맑으세요’라고 한답니다. 아직도 높은 음도 다 냅니다. 이 나이에 노래 부르고 춤추면 어르신들도 힘이 날 테고, 어르신들이 힘이 나야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원하려면 죄다 온라인으로 해야 해서 딸의 손을 빌려야 하는데 떨어지면 창피하다고 안 해 줘서 걱정입니다. 하하하.”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팔순 내 나이가 어때서… 전국구 꿈 완전 찐이야

    팔순 내 나이가 어때서… 전국구 꿈 완전 찐이야

     중국 만주에서 태어났지만 조선인이라는 한계에 부딪혀 북한으로 넘어갔고, 북에서는 중국 태생이라고 차별받아 남한으로 탈출했다. 일제강점과 해방, 분단을 거친 한국 현대사에서 그처럼 곡절을 겪은 이가 한두 명이겠느냐마는, 가수의 꿈을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버텼다.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북에서는 노동당에서 인정받고 남한에서는 가수협회에 등록해 80세인 지금도 매년 수십 차례 행사를 뛰는 현역 가수가 됐다. 하지만 인기가수로 거듭나 한민족에게 신바람을 주고 싶다는 꿈은 놓지 않고 있다. 탈북민 어르신으로 구성된 평양실버예술단 단장으로 활동했으며, 여전히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하고 있다는 김병수(80)씨를 지난 14일 서울 양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씨는 1941년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구 투먼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애초에 투먼시와 접한 함경남도 온성에서 살았다. 두만강 건너 중국에서 싸리나무를 베어 온성으로 돌아와 장에 팔면서 생계를 꾸렸는데, 여름이 되면 두만강이 녹아 건너가기 어려웠다. 어차피 나무를 해서 살아야 한다면 중국이 낫겠다고 생각해 중국으로 넘어가 결혼하고 김씨를 낳았다고 한다.  김씨는 투먼에서 초·중등학교를 다녔는데, 시(市)급인 현(縣)까지 소문난 노래 잘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변변한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고 예술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기에 고등중학교 졸업 후 옌지의 재정간부학교에 입학했다. 1962년 학교를 졸업하고 훈춘시 재정국에 배치됐지만 결핵성 늑막염에 걸려 6개월을 집에서 요양해야 했다. 요양을 마치고 재정국으로 찾아갔지만 ‘집에 가라’는 말이 돌아왔다. 김씨가 실직한 당시 중국에서는 ‘반우파 투쟁’이 한창이었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건너간 조선족들은 ‘조선’을 조국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중국 공산당은 이들을 ‘우파’로 몰며 탄압했다. 직장에서는 잘리고, 조선족 사회는 불안하고, 게다가 “회계는 죽어도 하기 싫었다”는 김씨는 결국 더 나은 삶을 찾아 1965년 혈혈단신 북한으로 넘어간다.  자강도 전천의 기계공장에 배치받아 조립공, 선반공으로 일했다. 회계를 전공해 기계는 전혀 몰랐던 김씨는 남들보다 두세 배 일했다. 입북 4년 만에 노동당에 입당할 수 있었다.  김씨는 북한에서도 끼를 감출 수 없었다. “입당 후 작업반장에 임명됐는데 선전선동 업무도 겸해야 했어요. 아침조회 때 직원들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치고 신문을 독보했는데 내 시간이 됐죠. 기념일이나 연말에는 김일성·김정일 사상을 공부하고 노래·춤 등으로 표현하는 직장별, 군(郡)별 경연대회가 있어요. 그 대회에서 우리 작업장, 공장이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죠. 공장 간부들이 알림판에 ‘공부하려면 김병수처럼 하라’고 써 놓기도 했답니다.”  예술단이나 선전단체로 옮길 실력은 됐지만 중국 태생이라는 꼬리표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공장에서 나와 같이 노래 부르던 사람들이 예술단이나 선전단체로 갔고, 나도 갈 수 있었는데 공장 간부가 잡더라고요. 내가 일을 잘해서 잡기도 했겠지만, 중국 태생이라는 점 때문에 선전선동 전문단체로 안 보낸 것 같아요.”  당시 북한에서는 중국 태생들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고 한다. “1970년대 공장에 근무하며 대학을 다녔는데 4학년 올라갈 때쯤 중국 연고자들은 높은 지위에서도 해임되고 평양에서도 쫓겨났죠.”  김씨는 공장에서 선전선동 업무를 통해 끼를 펼칠 수 있었으나 전문 가수의 꿈은 그만큼 더 커져 갔다. 1990년 전국 선전선동원대회와 전국 선전선동경연대회에 김씨의 공장이 참가할 수 있게 되자 김씨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김씨는 공장의 전문선동원은 아니었지만, 50세의 나이에도 노래와 춤을 독보적으로 잘해 참가 자격을 얻었다. 전국대회에서 입상해 선전선동원대회에 참가하게 되면 전문 가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김씨의 팀은 경연대회 3등에 올랐으나 그만 선전선동원대회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너무 분해서 공장 당비서에게 찾아갔어요.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당 비서가 그러더라고요. 중국 태생이라 그랬다. 반항도 못 했어요. 해 봐야 욕이나 더 먹겠죠. ‘여기서 더는 살 필요가 없다. 이 치욕을 나는 참을 수 있어도 자식들 보기 부끄러워서 못 견디겠다’고 생각했죠.”  가수의 꿈도 좌절되고, 노래를 부를 의욕도 꺾인 김씨에게 1990년 중반 ‘고난의 행군’은 탈북의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김씨는 1996년 첫째 딸과 첫째 사위, 손자와 함께 탈북길에 올랐다. 전천에서 함경남도 함흥까지 12일 동안 산길을 걷고 함흥에서 온성까지 기차로 이동한 뒤 온성에서 두만강을 헤엄쳐 투먼으로 가는 험난한 장정이었다. 함흥에서 첫째 딸 가족이 보안대에 붙잡혀 김씨는 홀로 투먼에 있는 여동생 집에 갔다. 다행히 첫째 딸 가족은 보안대로부터 풀려나 김씨를 뒤따랐고, 6개월 후 김씨의 다른 가족들도 탈북에 성공해 중국에서 상봉했다.  중국에서도 고난은 계속됐다. “공안들이 탈북민을 색출한다며 불시에 검문하는 통에 늘 불안에 떨며 살았죠. 둘째 딸이 공안에 붙잡혀 북송됐다 겨우 풀려나자 결국 가족들을 데리고 남한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탈북민 지원 단체의 도움으로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거쳐 2001년 남한에 온 김씨는 당시 61세라 마땅한 직업을 가지기 어려웠다. “탈북민 모임에서 주최하는 노래 경연대회를 알게 돼 참가했고, 북한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탈북민과 만나게 됐죠. 그와 소규모로 탈북민 예술단을 결성하고 공연을 다녔는데 당시 남북 관계가 좋아서 그랬는지 탈북민 공연도 인기가 높았죠.”  김씨와 그의 예술단은 많을 때는 한 해 300여 차례 공연을 했다. 북한에서 무용을 전공한 첫째 딸과 어려서 풍금에 소질을 보였던 셋째 딸도 같이 예술단 활동을 했다. 김씨의 딸들은 지금도 활발히 공연을 하고 있다.  탈북한 지 2년 만에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남인수가요제에 참가해 특별상을 받고 가수협회에 등록까지 해 정식 가수가 됐다. “탈북 후 탈북민 교육을 위한 하나원에 입소했을 때 ‘직업과 진로’라는 강좌를 들었는데 내가 남한에서 가수가 되겠다고 하니 강사가 ‘60대 늙은이가 어떻게 가수가 되겠나’라고 웃더라고요. 가수협회 등록하고 그 강사에게 전화해서 가수가 됐다고 말했죠.”  가수의 꿈을 버리지 못했던 그는 2011년 71세 나이에 슈퍼스타K에 지원했지만, 아쉽게 3차 예선에서 떨어졌다. “TV에서 슈퍼스타K 지원자를 모집한다는데 1~99세까지 가능하다고 해서 지원했죠. 1, 2차 예선을 통과하고 코엑스에서 열린 3차 예선에 들어갔는데 심사위원으로 윤종신, 이효리, 길이 앉아 있었어요. 윤종신씨가 ‘아버님이 노래는 잘 부르시는데 이번 콘셉트와 맞지 않는다’고 해 속으로 울컥했죠. 1~99세는 모두 가능하다고 했지만 사실 30대 미만의 전도유망한 사람을 찾는 거라 생각했어요. 다만 이효리씨는 ‘저와 방송 같이해 보지 않겠나’라고 했는데 그때 대답을 못 했어요. ‘좋다’고 했어야 했는데 말이죠.”  김씨는 2013년 평양실버예술단을 조직했고 지난해에도 50여 차례 공연을 소화했다. 80세에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비결을 물었더니 “목소리를 위해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어렸을 땐 담배를 피웠는데, 북한 공장에서 선전선동 업무를 맡고 노래를 부를 때부터 술 줘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웠어요. 경연한다고 하면 감기 안 걸리도록 각별히 신경 썼고요. 남한에선 목을 부드럽게 한다며 생달걀을 먹던데 북한에서는 달걀을 기름에 풀어 볶아서 먹어요. 목소리가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게끔요.”  김씨의 주종목은 전통가요다. 9년 전 슈퍼스타K 때는 ‘콘셉트가 맞지 않는다’며 탈락했지만, 트로트 열풍이 불고 있는 2020년 그의 시대가 열릴지도 모를 일이다. “탈북민 예술단에서 활동하는 딸이 ‘아버지, 지금도 ‘막걸리 한 잔’ 부르면 영탁(트로트 가수)이보다 더 잘 부르고 소리도 더 맑으세요’라고 한답니다. 아직도 높은 음도 다 냅니다. 이 나이에 노래 부르고 춤추면 어르신들도 힘이 날 테고, 어르신들이 힘이 나야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원하려면 죄다 온라인으로 해야 해서 딸의 손을 빌려야 하는데 떨어지면 창피하다고 안 해 줘서 걱정입니다. 하하하.”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대한민국 테크노트로트 창시자 ‘이박사’ 컴백

    대한민국 테크노트로트 창시자 ‘이박사’ 컴백

    대한민국 테크노 트로트 창시자 ‘이박사’ 그가 돌아온다. 이박사가 빅대디엔터테인먼트와 손을 잡고 컴백에 나섰다. 빅대디엔터테인먼트의 정재훈 대표는 이박사는 한국 트로트음악 장르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전설 중에 전설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박사는 머라이케리 등 세계적인 가수들이 소속됐던 일본 소니뮤직레코드사와 한국가수로는 최초로 전속계약을 체결하고 일본 대중음악계에서도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무도칸에서 한국 트로트가수 최초로 전석매진을 이뤄냈다. 겨울연가로 대표되는 한류현상 이전에 이 곳에서 공연했던 한국인 가수는 가왕 조용필과 신바람 이박사 딱 둘뿐이다. 이 정도라면 전설이라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후 이박사에게 시련이 닥쳤다. 100억 가까운 돈을 모두 날리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다리까지 부러지는 시련을 겪고 10여년을 음악을 접어야 했다. 그런 그에게 미스터트롯, 아내의 맛을 통해 요즘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노지훈을 발굴한 빅대디엔터테인먼트 정 대표가 손을 내밀었다. 정 대표는 “지금 대한민국은 트로트시대 이긴 하나 비슷비슷한 느낌들이고 독특하고 개성있는 트로트 음악이 없으며, 코로나 등 경기침체에 국민들 분위기도 흥이없는 시대”라며 “이럴 때 시기적절하게 다시 한 번 신바람을 일으키고 국민들게 즐거움을 선사할 사람은 이박사 뿐이라며 기대해도 좋다”고 자신감을 내비친다. 흥겨움의 황제 신바람 이박사는 요즘 한창 앨범작업에 박차를 가하며 어느때 보다 열정적으로 컴백날짜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앨범에 수록될 곡은 이박사 히트곡 몽키매직을 2020년 버전으로 그리고 동부민요인 옹헤야를 현대감각으로 재편곡한 신 옹헤를 선보이며 신곡 ‘술이 웬수다’도 함께 발매할 예정이다. 특히 신곡 ‘술이 웬수다’는 요즘 사람들에 딱 맞는 술과 돈에 얽힌 가사가 재미있고 중독성 강한 EDM 트롯이라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영탁과 열애설’ 직접 부인한 윤희 “걱정하지 마세요” [EN스타]

    ‘영탁과 열애설’ 직접 부인한 윤희 “걱정하지 마세요” [EN스타]

    트로트 가수 윤희가 영탁과의 열애설을 직접 부인했다. 16일 윤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한 네티즌이 영탁과의 열애설에 대해 묻자 “걱정하지 마세요. 아닙니다”라며 “지금 제가 회사랑 정리를 해서 공식입장 발표하는 과정이 생략이 됐네요”라고 직접 열애설을 부인했다. 앞서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영탁과 윤희가 열애설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이 커플 아이템으로 의심되는 물건을 쓰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면서 열애 의혹은 점점 더 커졌다. 실제로 두 사람은 트로트계에서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영탁은 윤희가 지난해 발매한 곡 ‘나 혼자 산다’의 작사 작곡을 맡은 바 있다. 또한 지난해 방송된 SBS ‘집사부일체’ 장윤정 편에 후배 가수로 함께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서 영탁 측은 지난 15일 윤희와의 열애설 관련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영탁에 이어 윤희 또한 열애설을 부인하며 루머를 일축했다. 한편, 영탁은 TV조선 ‘미스터트롯’에 출연해 최종 선(善)을 차지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윤희는 지난 2009년 ‘빨리와’로 데뷔해 2011년부터 2017년까지 그룹 오로라 멤버로 활동했다. 이후 솔로로 전향해 ‘아뿔사’, ‘나 혼자 산다’ 등을 발표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하트시그널 시즌3’·‘골목식당’ 등 오늘 결방...선거 개표방송 편성

    ‘하트시그널 시즌3’·‘골목식당’ 등 오늘 결방...선거 개표방송 편성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방송으로 수요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가 대거 결방한다. 15일 KBS 1TV, MBC, SBS 등 지상파 3사를 비롯해 JTBC, 채널A, TV조선, MBN 등 종합편성채널은 이날 오후부터 선거 개표 방송을 진행한다. 이에 따라 MBC는 오후 5시부터 ‘선택 2020 1부 제21대 국회의원선거 개표방송’을 편성, 수목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과 예능 ‘라디오스타’가 결방한다. SBS는 오후 4시부터 ‘2020 국민의 선택’을 편성했다. 이에 예능 ‘본격연예 한밤’, ‘트롯신이 떴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결방한다. JTBC는 오후 4시40분부터 ‘총선특집 우리의 선택 물음,표를 던지다’를 편성하면서 ‘차이나는 클라쓰’, ‘한끼줍쇼’가 결방한다. 채널A는 오후 2시50분부터 ‘진짜선택 2020’ 개표방송을 편성해 예능 ‘하트시그널 시즌3’이 결방된다. 개표방송을 하지 않는 KBS 2TV에서는 수목 드라마 ‘어서와’, 교양프로그램 ‘도올학당 수다승철’이 편성표대로 방송된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메모리스트’, MBC에브리원 ‘대한 외국인’, ‘나는 트로트 가수다’도 적상적으로 방영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영탁 윤희 열애설, 핸드폰 케이스가 커플 아이템? “사실 무근”

    영탁 윤희 열애설, 핸드폰 케이스가 커플 아이템? “사실 무근”

    ‘미스터트롯’ 선(善) 영탁과 트로트가수 윤희의 열애설이 불거진 가운데, 000 부인했다. 최근 영탁 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영탁과 윤희의 열애설이 언급됐다. 커플 아이템으로 의심되는 물건들이 두 사람 SNS에 각각 올라온 것. 실제 두 사람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희가 지난해 발매한 ‘나 혼자 산다’를 영탁이 작사·작곡을 한 바 있다. 또한 지난해 SBS ‘집사부일체’ 장윤정 편에 후배 가수로 함께 출연해 돈독한 사이임을 자랑한 바 있다.네티즌들은 친분이 있는 두 사람의 핸드폰 케이스가 커플아이템으로 알려진 제품이라며 열애를 의심했다. 이 외에도 영탁의 신발, 모자가 윤희가 소장한 것과 유사한 디자인 제품이라는 근거가 두 사람의 열애를 더욱 의심하게 했다. 이와 관련 영탁 측은 “윤희와 열애설은 전혀 들은 바가 없다. 본인 확인 결과 사실 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영탁은 최근 TV조선 ‘미스터트롯’에서 선(善)을 차지하며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윤희는 지난 2009년 ‘빨리와’로 데뷔, 2011년부터 2017년까지 그룹 오로라 멤버로 활동했다. 이후 솔로로 전향해 ‘아뿔싸’ ‘나 혼자 산다’ 등을 발표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포토] 송가인, 봄꽃 미소 ‘활짝’

    [포토] 송가인, 봄꽃 미소 ‘활짝’

    트로트 가수 송가인이 14일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 열린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유스케) 녹화를 위해 출근하고 있다. 2020.4.14 뉴스1
  • ‘송&송’, 뉴트로 음악예능에 뜬다

    ‘송&송’, 뉴트로 음악예능에 뜬다

    송창식·송가인, KBS ‘악인전’ 합류가수 송창식과 송가인이 KBS 2TV 새 예능 프로그램 ‘악(樂)인전’에 합류한다. 8일 KBS에 따르면 송창식은 새 음악 예능 ‘악인전’에 패널로 합류한다. ‘악인전’은 ‘음악인의 이야기’라는 뜻으로 음악에 한이 있는 음악 늦둥이들이 전설적인 음악인을 만나 컴필레이션 음반을 만드는 뉴트로 음악 예능이다. 송창식은 이 방송을 통해 1967년 데뷔한 뒤 53년 만에 첫 리얼리티 예능에 출연한다. 송가인도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한다. 2019년 트로트 열풍을 이끈 주역으로 장르와 세대를 초월한 음악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앞서 ‘악인전’은 이상민, 김숙, 김준현, 문세윤, 붐, 이주빈, 김요한이 출연을 확정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임영웅, 성형 계획 고백 “성형외과서 연락 폭주”

    임영웅, 성형 계획 고백 “성형외과서 연락 폭주”

    트로트 가수 임영웅이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미스터트롯’ 방송 이후 성형외과 원장님들의 연락이 폭주했다고 고백한다. 이와 함께 그는 솔직한 성형 계획을 털어놔 궁금증을 자아낸다. 오는 8일 방송되는 MBC ‘라디오스타’는 지난주에 이어 임영웅, 영탁, 이찬원, 장민호가 출연하는 ‘오늘은 미스터트롯’ 특집으로 꾸며진다. 임영웅은 “어떻게 수술해야 할까” 생각할 정도로 많이 고민했다며, 성형을 언급해 시선을 집중시킨다. 실제로 ‘미스터트롯’ 출연 이후 성형외과 원장님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가운데 그는 성형 계획을 솔직하게 밝혔다는 후문이다. 임영웅이 과거 홍석천의 픽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홍석천은 옹성우, 우도환 등을 일찌감치 알아보는 ‘유망주 감별사’로 화제를 모았다. 그 대열에 임영웅 역시 이름을 올린 것. 특히 홍석천이 임영웅의 ‘미스터트롯’ 출연 결정에도 한몫했다고 전해져, 어떤 사연인지 궁금해진다.지난주 마이크 에코, 게임 효과음 개인기로 ‘노잼’ 이미지를 벗고 재주꾼으로 새롭게 거듭난 임영웅이 이번엔 엉덩이춤으로 시선을 강탈한다. 엉덩이가 제일 자신 있다고 자부심을 드러낸 그는 치명적인 뒤태를 한껏 뽐내 웃음을 자아낼 예정이다. 그런가 하면 임영웅이 결혼 전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이것’을 최소 3개월 이상 해보고 싶다고. 연애, ‘이것’, 그리고 결혼까지 이어지는 그의 이상적인 플랜이 무엇일지 관심이 쏠린다. 한편, MBC ‘라디오스타’는 오는 8일 오후 11시 5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임영웅 ‘이제 나만 믿어요’ 직캠 라이브 공개 ‘감미로운 음색’

    임영웅 ‘이제 나만 믿어요’ 직캠 라이브 공개 ‘감미로운 음색’

    ‘미스터트롯’ 진(眞) 임영웅이 음악방송 무대 영상 100만뷰 공약을 지켰다. 6일 임영웅은 공식 유튜브 채널과 뉴에라프로젝트 트롯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신곡 ‘이제 나만 믿어요’ 직캠 라이브 영상을 공개했다. 편한 일상복 차림으로 카메라 앞에 선 임영웅은 휴대폰을 마이크 삼아 ‘이제 나만 믿어요’ 음악에 맞춰 감미로운 라이브를 선보였다. 정식 무대는 아니지만 진심을 다해 열창하는 임영웅의 모습은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앞서 지난 4일 MBC ‘쇼 음악중심’에 출연해 꿈에 그리던 음악방송 데뷔 무대를 펼쳤던 임영웅은 당시 무대 클립 조회수가 100만뷰를 넘겼을 경우 ‘이제 나만 믿어요’ 직캠 라이브 영상을 공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팬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임영웅의 ‘쇼 음악중심’ 무대 영상은 공개된 지 이틀도 채 안 된 시점에서 조회수 100만뷰 돌파에 성공했다. ‘이제 나만 믿어요’는 종합편성채널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 TV CHOSUN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우승자 특전곡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히트 작곡가 조영수와 히트 작사가 김이나가 ‘사랑의 재개발’ 이후 임영웅을 위해 다시 뭉쳤다. 스탠다드 팝발라드와 트로트가 만나 완성된 이 곡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현했다. 발매 직후에는 주요 온라인 음원사이트 실시간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화제를 모았다. 한편, 임영웅을 비롯한 ‘내일은 미스터트롯’ 입상자들은 각종 방송 출연 및 스케줄을 소화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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