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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산권변혁의 본질은 무엇인가/이기탁 연세대교수(특별기고)

    제2차 세계대전 종료 직후 영국의 국제적인 역할을 완벽하게 넘겨받은 미국이 직면한 문제점은 소련이라는 「파워」의 성격이 어떤 것이며 소련이라는 세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를 집약한 것이 조지 케넌의 「긴 전문」(A Long Teleg­ram)이었다. 모스크바에서 국무성으로 타전한 이 「긴 전문」은 외교문서라기 보다는 거의 철학적인 문장과 문맥을 지닌 내용의 논문이었다. 소비에트권력은 본질적으로 「혁명성」을 지니고 있으며 혁명을 「국경밖」으로 수출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지적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군사적인 「봉쇄정책」(Con­tainment)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조지 케넌의 현명성은 소비에트파워를 계속 끈질기게 봉쇄할 때에는 끝내는 소비에트사회의 「대내질서」의 「변질」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 「봉쇄정책」의 목적으로 지적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본질은 사유재산 환원 확실히 오늘의 소비에트사회는 본질적인 「대내체제」의 「변질」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없게 되었다. 고르바초프는 거의 전후국제질서의 종지부를 찍다시피하는 몰타회담으로 가기전 두가지 상징적인 소비에트체제의 마지막 변화의 암시를 과시하였다. 그 하나가 고르바초프 스스로가 쓴 프라우다의 「사회주의사상과 혁명적 페레스트로이카」라는 논문이었으며 또 하나가 바티칸과의 「이념적인 화해」였다. 전자의 논문에서는 고르바초프가 마지막 사회주의의 보루로 지키고 있었던 「레닌주의」를 실제에 있어서 포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사회주의국가들이 이데올로기의 난관에 직면할 때에는 「레닌주의의 창조적 적용」이라는 말로 벗어나곤 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실제상 레닌주의의 현대적 적용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하고 있다. 후자의 바티칸과의 「이념적 화해」는 공산당선언과 1917년의 볼셰비키혁명 이래의 사상적인 대전환이며 본질적인 소비에트의 이데올로기적인 「변질」에 속하는 문제영역이다. 주목을 요하는 것은 고르바초프가 바티칸회담을 끝내고 나오면서 한 짤막한 성명이다. 현재 소련 최고회의가 심의하고 있는 「양심의자유에 관한 법」(종교법)을 높이 평가하면서 소련내의 가톨릭문제를 긍정하였다는 점이다. 나아가서 고르바초프는 『모든 민중과 국가와 주의 정신적,문화적 주체성은 유럽과 세계의 안정에 불가결하다』고 단언한 점이다. 적어도 우리가 이데올로기라고 말할 때에 정신적인 세계질서는 1917년이래 완벽하게 단절되었던 바티칸과 소련과의 단절이 그 본질적인 의미였기 때문이다. 이도 소비에트사회의 대내체제의 「변질」과 관련하는 문제임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점은 고르바초프가 프라우다의 긴 논문의 서두에 쓴 「쿠다 무이 이좀?」(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서 보듯이 소비에트사회의 이념적이며 체제적인 붕괴에서 밖의 세계가 보다 우려하는 것은 과연 「변질된 소비에트」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문제일 수 밖에 없다. 좌익적인 노스탤지어를 지닌 논객은 하나의 사회주의에서 다른 수정된 사회주의로 이행할 가능성을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오늘의 소비에트사회의 본질적인 변화를 과소평가하고 있는데서 나오는 것이아니면 고의적 무지에서 나온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반공산주의라는 반사적인 사상에 깊히 젖어들어 그늘져 있던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하는,공산주의와의 「차이」를 새삼스러이 반성할 때라고 본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사유재산제도」의 산물임을 우리는 가끔 잊고 있는 것이다. 사유사회의 정치적 발전과 함께 완성되는 것이 민주주의인 것이다. 따라서 사유재산제도의 종식은 곧 민주주의의 사멸을 의미한다. 사유가 폐지될 때에는 민주주의가 철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이며 민주주의는 불필요하게 되며 사멸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중국이 남한의 경제계획과 박정희의 권위주의를 통한 근대화를 모방하면서도 남한으로부터 배워갈 수 없었던 것은 남한 사회의 사유재산제도였다는 점이며 오늘의 중국체제의 기본적인 딜레마는 결국 당이 소유하고 있는 「생산수단」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천안문사건」도 결국은 중국 공산당이라는 권력구조가 한국식 경제모델에서 획득한 이익을 권력과 바꾸어 먹은데서 나온 공산당의 부패라는 불가피한 현상에서 기인한 것이다. 동유럽은 이미 공산당의 간판을 내릴때 「시장경제」라는 접근을 통한 사유재산제도의 도입은 불가피하게 하고 있다. 공산당이 사라질때에 생산수단은 결국 국민에게도 돌아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의 소련사회가 확실히 성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인 「시장경제」에 내외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는 소비에트사회의 「대내체제」의 「변질」에서 기인한 다고 평가된다. 적어도 고르바초프가 실패하더라도 그가 남겨 놓을 역사적인 흔적은 지울 수 없는 소비에트사회의 「변질」이라고 본다. 다만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고르바초프 스스로가 과소평가했던 30년여의 스탈린통치와 20년의 브레즈네프통치가 소비에트사회 「인민」의 인간성을 근본적으로 말살하였다는 사회적 문제점을 회복시킬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된다. 사유재산을 박탈하는 순간 모든 인간의 자유가 박탈된 것이며 1917년이래 소비에트연방에 속하는 모든 인민의 인간성이 유린되어 왔다는 역사인 것이다. 이를 단순히 「인간적 사회주의」라는 말만을 갖고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프로세스를 진행시킬 수 있는 문제가 못되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는 실제에 있어서 그의 프라우다논문의 결론 부분에서 서두에서 제기한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대답은 없고,페레스트로이카라는 정치적 프로세스의 끝을 알 수 없다는 고백과 함께 페레스트로이카의 「역사적 전환기」에 접어드는 소비에트사회의 변화에서 이를 찾을 수 있기를 「희망」 한다고 결론을 그 끝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카를 마르크스로 시작하여 레닌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대안으로서의 소비에트사회의 전환을 바라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를 이해하기에 가장 어려운 최대의 난점과 맹점은 페레스트로이카의 소비에트사회의 역사적 사회적 「대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안으로는 「같이 노력」을 하자는 것이며 이제 자본주의세계의 「도움」을 통하여 나아가자는,이상 없는 이상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구체적 「대안」 제시못해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과연 소비에트 사회나 보다 연성적인 동유럽 사회마저도 과연 서방의 시장경제에 접근하려 할 때에 사회주의 국가들의 대내체제의 변화나 변질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수준의 문제와 이에 상응하는 시간적인 요소가 중대한 요인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 「화폐」다,「금융」이다,「시장」이다 하는 개념은 전부가 사회주의 사회와는 거리가 먼 체제적인 개념인 것이다. 지금까지 소련의 루블은 태환권이 없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인 것이다. 이는 1917년이래 법적으로 금지되어 왔으며 아직도 이를 페지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주의 사회가 서방의 자유주의 경제체제나 시장경제에 접근하려 할 때에는 이에 적응하는 구체적인 대내체제의 적응과 변화는 불가피한 것이다. 이제 동유럽의 공산당이 그들의 간판을 내리고 소련의 공산당마저 그 근거로 하여 사회적 변화를 유도하려 하고 있으나 오늘의 소련의 딜레마를 낳은 공산당을 갖고 소비에트 사회를 재구성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는 도리어 막연한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문제점,즉 페레스트로이카가 과연 사회주의 체제를 대신하여 대안이 될 수 있으며 사회주의 체제를 종료시킬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또 하나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점은 현재까지의 동유럽의 변화 「모델」이 동아시아에서는 어떤 적응과 파급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된다. 카를 마르크스 자신이 말했듯이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는 동아시아의 봉건적 특수성은 아시아의 공산주의에도 역사적인 전통으로 남아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동유럽의 변화와는 대조적일 수 있다고 본다. 오늘의 중국공산당ㆍ월맹공산당 및 북한을 포함하는 아시아적 공산당의 성격은 확실히 「봉건사회주의」라는 성격을 띠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북한체제도 끝내 변화 동유럽 국가들은 역사적으로 서구문명(Western Civilization)권에 속하였던 나라들이며 서구라는 지리적인 인접성으로 민주주의를 곁눈질 하면서도 「학습」 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13억 인구의 중국에게 동유럽 수준정도의 민주주의에 대한 전망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설혹 중국공산당이 해체되고 사유재산제도가 도입되고 시장경제가 형성된다 하여도 13억 인구의 시장경제를 뒷받침 할 만한 자유주의 경제체제의 힘이 동원되고 이를 뒷받침 할 만한 경제력이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전후질서인 냉전이라는 전초기지에서 남한과 같은 작은 규모의 시장경제는 서구의 쇼윈도로서 지금과 같은 시장경제가 가능하였다. 그러나 중국처럼 거대한 규모의 인구를 가진 사회주의 국가를 페레스트로이카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당분간은 기대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북경이라는 「바람막이」가 있는 한 북한이라는 「봉건사회주의」 체제의 존속은 부분적인 개방에도 불구하고 체제적 지속이 불가피하다고 본다면,북한이라는 체제도 북한의 대내체제의 변화가 야기되는 역사적인 전환점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본다. 북한도 아시아적 모델인 「봉건사회주의」로 시간적으로 지속될 수밖에 없으며 대내체제의 권력 변동이 있다 하여도 「시간」이라는 요인이 절대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유는 동유럽의 체제적 변화에서 보듯이 사회주의 체제내의 주민들 스스로의 반발과 혁명적 행동에서 변화가 촉진되고 있다고 보면 오늘의 북한의 봉건사회주의 체제에서 압살되어 온 주민에게 이를 금방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생활고가 민족분규 불댕겼다/영지가 분석한 오늘의 소 사태

    ◎에너지ㆍ생필품 태부족… 곳곳서 “빵달라” 항의 시위 고르바초프와 페레스트로이카. 소련의 운명이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가운데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소련 전문가 켄틴필의 이름으로 소련의 최근 정세를 다음과 같이 분석 보도했다. 소련 제국의 남쪽 변경인 아제르바이잔사태는 고르바초프로서는 최악의 시기에 들이닥친 것이다. 지금 소련 국민들은 어디를 막론하고 식량과 에너지 그리고 생필품의 극심한 부족 때문에 혹독한 불만의 겨울을 맞고 있다. 우랄의 대공업도시인 스베르들로프스크시에서는 배급 쿠폰을 갖고도 식료품과 보드카를 살 수 없게 되자 성난 군중들이 항의 데모를 벌였으며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심장부인 체르니고프에서는 한 공산당 간부의 승용차에 소시지와 보드카가 실려 있는 것을 본 행인들이 거의 폭동에 가까운 사건을 빚기도 했다. 시베리아에서는 유전 기술자들이 타고갈 비행기의 연료가 떨어져 원유를 채굴하지 못한 일도 일어났다. 게다가 앞으로 두달후면 지방의회선거가 있어 고르바초프의 공산당은 흡사 불난 호떡집 같다. 사실 고르바초프는 연방내의 각 공화국들이 명실상부한 자치권을 갖는 순수한 연방공화국권을 갖고 일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그가 그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수십년동안 누적된 회의론을불식시켜야 할 것이다. 5년전 고르바초프가 집권할 당시만해도 소련의 민족주의란 그가 미처 깨닫지 못한 암초였다. 브레즈네프나 흐루시초프와 같은 전임자들과는 달리 그는 소련 연방의 중심부에서만 근무해왔기 때문에 변두리 사정을 잘 모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최근의 아제르바이잔사태에 비상조치를 취한 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민족주의자들의 열망에 그가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문제다. 냉정한 논리로 보면 자주독립을 원하는 공화국들은 그들이 가고 싶은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누가 그 작은 발트국가들을 필요로 하겠는가. 에스토니아나 라트비아는 리투아니아보다도 작은 나라다. 코카서스 산맥 너머의 민족들은 로마시대 이래 정복자들이 억누르기 어려운 골칫거리였으며 1백명 이상의 통역을 불러야 할 정도로 상통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렇다면 그들의 탈출을 막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생각들이 고르바초프의 머리를 스쳐갔을지 모르지만 그가 한번도 이와 비슷한 소리를 입밖에 낸 일은 없다. 오히려 그는 지난 크리스마스때 공산당 중앙위에서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어느 곳도 연방으로부터의 이탈을 용납치 않겠다고 선언했듯이 그 반대의 얘기만 하고 있다. 그가 강조하는 연방의 결속 뒤에는 공산당의 결속을 기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하겠다. 그가 일부 연방탈퇴를 용인하려 할 경우 가장 불안한 것은 군부일 것이다. 이제 고르바초프가 처한 문제는 단지 연방내 일부 공화국들의 민족주의 물결이 그가 설득해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나쳤다는 것일 뿐만이 아니라 그가 추구해온 페레스트로이카 개혁논리가 그러한 독립운동을 추진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집권적 경제에서의 탈피와 독점적 통제체제의 폐기등 그가 추구해온 새 지표들은 사실상 각 공화국의 자주경제를 고무시켜 왔다. 발트해 국가들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현지 주민들에게 필요한 양의 물자를 떼어놓은 다음 여분이 있으면 이를 팔지않고 물물교환방식으로 부족한 다른 물자를 확보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작은 공화국들이 연방에서 떨어져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중앙과의 경제적 유대가 단절될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지금 당이나 소련 국민들이 연방의 해체를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을 잘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보수세력의 심각한 반동을 유발하지 않고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그 다음에는 가장 불만이 많은 일부 공화국의 이탈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 고르바초프「인종분쟁 위기」 극복할까/크렘린의 진화 시나리오 분석

    ◎“민족문제 해결에 「예외」는 없다” 강경/“지도부 권위 손상땐 개혁차질” 인식 아제르바이잔공화국의 민족분규가 일주일째 유혈충돌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크렘린 당국이 취할 향후 대응방안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당초 충돌발발 지역인 나고르노 카라바흐 자치주와 수도 바쿠에서는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민족간 충돌로 벌써 6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가운데 계속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15일 나고르노 카라바흐지역의 비상사태 선포에 이어 17일 현지 진압병력에게 발포명령이 시달됨으로써 소련당국이 일단 무력진압쪽으로 방침을 잡은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당국은 발포결정이 자위를 위해 부득이한 조치였다는 점과 함께 그동안 진압군이 최대한 자제를 해왔다는 점을 애써 강조함으로써 이번 결정이 내려지기까지의 고심한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두 민족간의 충돌이 점차 장기화ㆍ내란양상으로 악화될 조짐을 보이자 소련내 언론 등 일각에서는 비상사태 확대선포 등 고르바초프에 단호한 대처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방측 일부에서도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당국이 강제진압에 나서야한다는 권고가 나오고 있다. 이 지역에서 질서회복을 위해 공권력을 투입하는 것을 과거 소련체제의 인권탄압식 무력사용과 같은 맥락에서 보는 것은 곤란하다는 논리가 제기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고르바초프는 발포결정을 내리기 하루전 소련을 방문중인 케야르 유엔사무총장과 만나 이례적으로 개혁정책에 대한 서방의 이해와 협조를 구해 서방측의 여론에 신경을 쓰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고르바초프는 어떻게 보면 섣불리 무력진압에 호소했을 경우 생길 부작용을 너무 잘알기 때문에 끝까지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렸다고 할 수 있다. 소련의 민족분쟁이 모두 그렇지만 이 지역의 문제도 어제 오늘에 생긴 일이 아니다.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에서는 지난 2년간 두 민족이 충돌해 생긴 사망자가 1백80명으로 공식집계 돼있다. 당국이 조금 강경하게 나오면 주춤했다가 때만 되면 다시 가열되는 악순환의 연속인 것이다. 그래서 고르바초프는 무력사용이 결코 최선의 해결책이 아님을 잘알고 있었다고 볼수 있다. 자칫하면 실익도 없이 그동안 개혁과정서 쌓아온 평화이미지와 대 서방관계만 손상시킬 가능성이 있는 무력사용을 피하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발트해 3국의 경우에서 드러났듯이 이제 소련의 민족문제는 어느 의미에서 대화와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더이상 끌고가기가 힘든 상황이 된 것같다. 페레스트로이카는 그동안 각민족의 자치욕구와 민족의식을 높여주었다. 그리고 정치의 탈중앙집권화 추진은 각지역공화국에서 주민들의 정치참여도를 높여 결과적으로 대중의 조직적인 동원을 가능케 했다. 이것이 발트3국 등에서는 분리독립을 외치는 민족주의 운동으로 나타났고 아제르바이잔에서는 두 민족간의 민족감정으로 폭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 두 민족은 역사적으로 종교적으로 도저히 화합하기 힘든 관계에 있다. 하지만 보다 직접적인 충돌의 원인은 정치ㆍ경제면에서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아직도 소련지도부 내에는 개혁에 저항하는 보수세력이 여전히 많은 게 사실이다. 이들은 아제르바이잔에서와 같은 혼란이 초래케된 것을 페레스트로이카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들은 지금의 개혁이 「너무멀리,너무빨리」 진행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지금의 속도를 더 늦출 경우 변화를 바라는 세력으로부터 더 많은 저항을 받게 된다는데 고르바초프의 고민이 있다. 이번 발포명령을 비롯,크렘린당국이 민족문제에 대해 취하고 있는 조치들을 두고 볼 때 몇가지 흔들리지 않는 원칙들이 있음으로 알 수 있다. 첫째는 어떠한 국내문제도 고르바초프 자신을 포함한 현지도부의 권위자체에 손상을 주도록 방치되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수십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공권력이 마비되는 내란상태의 상황이 계속 방치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15개의 독립된 공화국으로 구성된 연방공화국으로 어떤 특정 민족의 문제를 「예외적인」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 만약 나고르노 카라바흐 같이 어느 특정자치구역의 귀속문제를 임의로 변경시켜줄 경우 소연방 전체가 유사한 요구로 엄청난 혼란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발트3국에서와 같은 분리독립 요구도 같은 차원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물론 이 지역의 사태발전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유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단계에서 소련당국의 대응방안 또한 구체적으로 예측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고르바초프가 취해온 입장을 토대로 볼 때 이번 사태가 페레스트로이카 노선자체를 변경시키거나 현지도부의 실권 위기상황으로까지 비화될 것 같지는 않다. 어떻게 보면 개혁과정에서 민족문제는 어차피 한번은 치르고 넘어야할 「예고된 의식」일 수도 있다. 물론 그로인해 개혁의 속도와 폭은 일시적으로 조정이 불가피할 지도 모른다.
  • “소 개혁 중대 위기”/이즈베스티야지

    【모스크바 AP 연합】 소련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는 소 관영매체로는 처음으로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이 발트해 유혈 민족분규로 심각한 위협을 받고있다고 논평했다. 이즈베스티야는 지난 15일자 1면 사설에서 이같이 지적하면서 고르바초프가 분규종식을 위해 나고르노 카라바흐 및 인근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정규군 및 KGB(보안위원회) 산하 병력을 급파한 조치를 옹호했다. 사설은 『페레스트로이카가 스스로를 옹호하도록 압력받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페레스트로이카 자체 또는 다른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비상조치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 몽고 「늑장개혁」에 불만 폭발/“독재종식”요구 대규모시위 안팎

    ◎다당제ㆍ자유총선등 체제변혁을 겨냥/민족주의 대두 편승,「발빠른 변화」기대 소련의 「위성국」으로 지극히 폐쇄적인 공산국가인 몽고에서 공산당일당통치 종식과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시작됐다. 소련에서 출발해 동구권을 휩쓸어버린 민주개혁의 물결이 「은둔의 나라」몽고에도 어김없이 찾아든 것이다. 지식인ㆍ학생층을 중심으로 지난달 결성돼 6만여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몽고민주연합(MDU)은 14일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영하20∼30도의 혹한에도 불구하고 5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몽고사상 최대규모의 시위를 벌인데 이어 오는 21일 또 다른 시위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집권 인민혁명당의 스탈린식 독재체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최고관리를 비난하는가 하면 32년간의 독재끝에 지난84년 권좌에서 축출돼 현재 모스크바에서 살고 있는 체덴발 전공산당서기장의 재판회부 및 스탈린동상의 제거,다당제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자유총선과 인권존중,각종 특권폐지,시장경제도입을 위한 국민투표실시,의회활동 활성화,탄압적이던 과거문제에 대한 수사 등도 이들의 요구사항에 포함돼 있다. 물론 몽고공산정권이 그동안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을 계속 거부해온 것만은 아니다. 몽고에 주둔하고 있는 소련군의 철수를 약속한 고르바초프의 지난 86년의 블라디보스토크선언을 계기로 86년 8월 중국과 영사조약을 체결하고 87년 1월 미국과 공식외교관계를 맺는등 서방세계와의 관계개선을 추구하는 한편 외국과의 합자기업법을 만들어 20개 자본주의국가에 2백여개의 무역상사를 설치하고 아시아개발은행 가입을 추진하는등 경제ㆍ외교적 노력을 통해 대소의존도를 줄이고 낙후된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애써왔다. 이같은 「시네치엘」(몽고판 페레스트로이카,몽고어로 쇄신)의 결과로 서방 자본주의국들과의 88년도 무역거래량은 87년에 비해 46%나 증가했다. 그러나 아직도 소련ㆍ동구권국가와의 불리한 교역이 몽고 총교역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높은 의존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1인당 국민소득 1천달러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더군다나 국내정치 여건에 있어서는국민들의 자유를 향한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시위를 계기로 몽고의 개혁추진속도가 빨라질 것임은 분명하다. 이번 시위자체가 당국의 허가를 받아 평화적으로 개최됐고 몽고정부가 한달전에 결성된 이 단체의 시위를 사전에 무산시키려는 노력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그러나 몽고의 개혁이 공산당지배의 골격을 유지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공산당독재종식을 통한 다른 체제의 국가수립으로까지 치달을지 여부는 미지수이다. 칭기즈칸의 후예인 몽고인들은 1911년 중국 신해혁명의 영향을 받아 독립을 선언한뒤 21년 입헌군주국을 수립했으나 곧이어 24년 소련의 지원을 받아 세계에서 두번째로 공산지배체제를 이룩한 이래 줄곧 소련에 예속되다시피 해왔다. 칭기즈칸의 말발굽에 짓밟혔던 소련의 피해의식을 그대로 수용,민족의 영웅인 칭기즈칸을 침략자로 규정할 정도로 모든 분야에 걸쳐 대소 의존도가 극에 달했으나 최근들어 칭기즈칸 복권운동이 일고 있는등 민족주의의 자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반도 7배 크기의 국토에 인구는 2백만명이다.
  • 벼랑에 몰린 「페레스트로이카」/아제르바이잔사태와 모스크바의 딜레마

    ◎「민족갈등」 불길 확산… 묘책 못찾아 전전긍긍/“지금은 빵이 더 아쉽다”… 욕구충족 못시켜 곤경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이 출범 5년만에 가장 큰 위기를 맞고있다. 경제개혁이 지지부진 한데다 최근 일고있는 유혈인종분규와 소수민족들의 독립요구시위는 소련의 고르바초프정권을 벼랑으로 몰고가고 있다. 소련 최고회의는 내전위기로 빠져들고 있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공화국 일대에 15일 비상사태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들 두 공화국 주민들의 무장충돌이나 시위사태가 어제 오늘에 발생한 것은 아니다. 벌써 2∼3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를 항용 있는 일로 치부하지 못하고 「위기」로 보는것은 사태가 과거보다 훨씬 심각해졌다기 보다는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다시 스탈린식 힘으로 억누르는 것 뿐인데 이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진정제 효과만 있을뿐 근본적인 치유책이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근본적 치유책 난망 지난 11일 고르바초프가 직접 방문했던 리투아니아등 발틱 3공화국도 페레스트로이카의 앞날을 어둡게 점칠 수 있는 걸림돌이다. 이곳 주민들은 소연방에서 탈퇴,독립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것이고 연방정부로서는 이들의 독립요구를 허용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들이 독립했을 때 그곳에 사는 러시아민족 처리도 문제지만 경제적 손실이 크고 무엇보다 소련의 막강한 발틱해군 기지를 잃게된다. 뿐만아니라 이곳이 독립할 경우 다른 소수민족들로 구성된 공화국들도 너나없이 독립투쟁을 벌일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고르바초프가 지난 11일부터 3일동안 리투아니아를 방문,한편으로 자율권 확대,정치적 다원화등 유화책으로,다른 한편으론 「독립을 하자면 큰 대가를 치러야한다」는 등 강경론을 내세워 이곳에 팽배한 민족주의 물결을 누그러 뜨리려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이같은 독립문제나 인종갈등과 같은 민족문제는 비단 이들 몇몇 공화국만이 안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백러시아로부터 우크라이나ㆍ그루지아ㆍ우즈베크ㆍ카자흐 등 소련내 15개 공화국중 러시아공화국을 제외한거의 모든 공화국이 민족갈등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브렌진스키 전 미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을 비롯한 일부 소련문제 전문가들은 페레스트로이카가 실패할 가능성의 가장 큰 이유를 이 민족갈등문제에서 찾고 있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성공시키자면 자유화ㆍ민주화를 추진해야 하고 이를 추진하면 할수록 민족문제는 더 크게 표출하지만 이 갈등을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족문제 못지않게 고르바초프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바로 경제문제다. 페레스트로이카정책 이후 소련 국민들은 『자유는 있으나 빵이 없다』고 불평하고 있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결과는 조사대상자의 90%가 현재의 경제상황을 위기로 보고 있었으며 52%가 경제사정이 과거보다 악화됐다고 말하고 있다. 페레스트로이카의 미래를 낙관하는 사람은 불과 18%인데 반해 성공불능이라고 답변한 사람은 24%에 달했다. ○다당제도입에 함정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된지 5년이 다 됐지만 경제사정이 호전되기는 커녕 오히려 악화하고 있는 것이다. 소련당국은 그동안 시장경제를 부분도입하면서 국영 및 집단농장 일부를 해체,자영농을 확대하고 기간산업을 제외한 기업들을 민영화하고 있으며 군수공장을 소비재생산공장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또 외국자본과의 합작회사 설립을 적극 권장하고 채권ㆍ주식등 자본시장까지 창출하려하고 있다. 이같은 시장경제의 도입은 필연적으로 물가를 자유화 하는 시장가격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88년말 물가를 자유화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렇지 않아도 빈약한 슈퍼마켓의 진열장은 순식간에 텅텅 비고 말았다. 당국은 물가인상에 앞서 소비자의 심리상태,시장의 변동,인플레에 견딜만한 사회적 준비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정치적 도전도 만만치 않아 페레스트로이카를 위협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공산당지배체제를 버리고 다당제를 도입하는 일이다. 고르바초프는 이 문제를 오는 10월의 28차 당대회때 논의하자고 뒤로 미루어 왔다. 하지만 페레스트로이카로 인해 야기된 동구개혁의 핵심은 바로 다당제도입이어서 소련도 이를 수용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만약 소련이 다당제를 실시한다면 이념이나 기능주의적 정당보다는 민족당 지역당으로 나뉘어 소련방 자체를 갈기갈기 찢어놓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높은 실정이다. 고르바초프는 레닌이래 지속된 투쟁적 정치스타일을 하루아침에 「조화의 모델」로 바꾸어 보려는 신사고를 통해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정책을 추진해 왔다. 국내는 물론 동구에서의 민주화,동서해빙을 주도하며 세계역사를 바꾸어온 그가 이제 뜻하지 않는 국민들 욕구의 동시폭발로 큰 위기를 맞고 있다. 과연 이 위기를 슬기롭게 넘길 수 있을지 아니면 과거 회귀의 반동세력이 크렘린의 성주로 다시 등장할지 주목되고 있다.
  • 개혁 연내 결실없을땐 소지도부 붕괴위기/아발킨 부총리ㆍ옐친 경고

    【암스테르담ㆍ도쿄 AFP 연합】 레오니드 아발킨 소련부총리는 15일 페레스트로이카(개혁)의 시한이 끝나가고 있다고 경고하고 소련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경제개혁이 올해 말까지 결실을 맺지 못한다면 소련 지도부는 축출될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련의 부총리 10명 가운데 한 사람이며 정부 경제개혁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아발킨 부총리는 네덜란드방문을 시작하면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히고 『우리의 경제개혁이 올해말까지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 우리의 신용은 땅에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일본을 방문중인 소련의 급진개혁파 지도자 보리스 옐친 최고회의 대의원은 16일 『소련은 현재 정치ㆍ경제ㆍ사회적으로 위기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옐친은 이날 『본질적이고 철저한 개혁이 실행되지 않으면 고르바초프 최고회의의장이 추진하고 있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는 앞으로 1년도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제조업종주 거래량 늘어/1년새 조립금속 16%서 24%로

    지난해 증시에서는 조립금속 기계장비와 석유화학업종등 제조업주식의 연간 거래량 및 시가총액 비중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한신경제연구소가 분석한 「업종별 상장주식 연간거래량 및 시가총액 비중 추이」에 따르면 지난해 주식거래총량 33억9천7백만주 가운데 조립금속ㆍ기계장비가 24.1%를 차지,전년의 16.5%보다 7.6%포인트 높아졌고 석유화학도 11.5%로 전년대비 4%포인트 증가했다. 그러나 소위 트로이카업종의 거래량은 금융 31.7% 건설 10.4% 무역 6.1%등 모두 48.2%를 기록,88년도의 64.2%에 비해 무려 16%나 낮아졌다. 시가총액(한전주 제외) 비중에서도 트로이카업종은 50.7%로 전년말보다 4.2%가 낮아진 반면 기계장비ㆍ조립금속(18.8%)은 3.2%,석유화학(9.8%)은 0.6%의 증가를 보였다.
  • 소,“동북아 평화정착 협력용의”/냉전탈피,긴장완화위해 적극 노력

    ◎고르바초프,아베 전 일외무와 회담서 밝혀 【도쿄=강수웅특파원】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서기장은 15일 상오 10시(한국시간 하오4시)부터 모스크바시내에 있는 소련 공산당중앙위원회본부에서 행해진 아베 신타로(안배진태랑)전 일본 외무장관과의 회담에서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의 안전보장문제에 대해 종전의 블라디보스토크ㆍ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의 자신의 연설에 언급,『우리들은 상호간에 공포심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지역에서 협력할 용의가 있다』며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갈 생각임을 밝혔다. 이날 고르바초프서기장은 아베 전장관이 미소양국의 몰타회담후 냉전으로부터 대화에로 크게 변모하고 있으므로 동서관계에 관련한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정의 문제에 대해 『아시아에는 한반도ㆍ캄보디아 등의 문제가 남아 있다. 그 가운데서 일본도 역할을 하고 있는데 소련도 한몫을 해주었으면 한다』는 말에 대해 이같이 답변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아베 전장관은 이날 회담에서 내년으로 예정되어 있는 고르바초프서기장의 방일을 확인하는 한편,경제ㆍ인적교류의 면에서 일소관계의 확대균형을 목표로 할 것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아베 전장관은 다방면에 걸친 협력의 구체적 정책으로서 고르바초프서기장이 추진하고 있는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의 지원을 명확히 표명했으며 생산성 향상을 위한 경영ㆍ품질관리의 노하우 제공등 8개항목을 제안했다. 이는 「북방영토」반환문제의 해결을 일소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 삼는 일본의 「정경불가분」의 대소 기본원칙을 사실상 수정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 「탈소도미노」확산땐 고르바초프“위기”/거세지는 소 민족분규의 저변

    ◎영토ㆍ종교ㆍ문화 달라 반목 고질화/소수민족정책 근본적 궤도수정 불가피 고르바초프서기장의 리투아니아방문 마지막날인 13일 남부 아제르바이잔공화국에서 유혈충돌이 벌어짐으로써 소련의 인종분규는 이제 동시 다발적인 국면을 맞고있다. 특히 이번의 유혈사태는 분리독립자제를 설득키 위한 고르바초프의 리투아니아방문이 실패로 끝난데 연이어 일어났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소련의 민족문제는 물론,러시아제국의 영토확장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인 뿌리를 갖는 것이지만 제민족의 불만이 이렇게 표면화된 것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기인하는 것이다. 특히 개방화로 인한 과거 역사의 재조명 움직임과 사회전반의 민주화ㆍ자유화가 소수민족의 독립분위기를 부추겼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드러나고 있는 소련내 민족운동의 흐름은 크게 세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반소ㆍ반러시아운동으로 궁극적으로 소연방에서의 분리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움직임이다. 최근 발트해 연안 3개공화국에서 일고있는 민족주의운동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소련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민족문제의 핵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리투아니아방문때도 드러났듯이 절대로 독립은 허용않겠다는 것이 소련당국의 입장인 반면 이들 3개공화국의 요구는 독립이다. 두번째는 소련영토내 각 공화국간의 영토와 영역의 변경을 요구하는 것으로 소수민족들끼리의 분쟁이다. 이번에 발생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인들간의 유혈충돌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분쟁의 주된 배경은 아제르바이잔내 나고르노 카라바흐자치주의 귀속문제 때문이다. 지난 1923년 스탈린에 의해 아제르바이잔에 강제편입된 이지역은 원래 아르메니아공화국에 속해있던 곳으로 지금도 주민의 80% 이상이 아르메니아인이다. 아제르바이잔인은 수니파회교도가 대부분이고 아르메니아인은 대부분이기독교도들로 역사적으로 양측간 민족감정은 좋지가 않았다. 수십년간 갖은 인종적 편견과 불이익을 당해온 이지역 아르메니아주민과 아제르바이잔인들과의 해묵은 감정이 소련사회의 전반적인 민주화분위기를 타고 폭발한 것이다. 지난 88년 2월에도 한차례 유혈충돌을 겪은 두민족은 이후 소련당국의 강경조치에 밀려 주춤한 상태였으나 양공화국이 각자 나고르노 카라바흐를 자국소유로 선포하는등 계속 불씨를 안고 있었다. 이 경우도 소련당국으로서는 쉽게 해결책을 찾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아르메니아측의 요구대로 이 지역을 넘겨줄 경우 아제르바이잔인들의 반발 또한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련은 현재 1백개가 넘는 다민족국가로 15개의 독립된 민족공화국,20개의 자치공화국,그리고 8개의 민족자치주가 어울려 살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곳에서 영토변경이 허용되면 도처에서 유사한 요구가 속출,엄청난 혼란에 빠져들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이번 아제르바이잔의 경우와 같이 탈소독립요구와 민족간 분쟁이 복합적으로 그리고 타지역과 동시에 진행될 경우 민족문제는 항시 유혈사태로 발전할 소지가 크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세번째로는 앞의 두 경우와 같은 폭발력은 없지만 러시아공화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퍼지고 있는문화적인 자치 무드이다. 각민족의 권리확대와 종교의 자유,독자 언어사용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확대되고 있는 이런 운동은 근본적으로 앞의 두가지 흐름과 맥을 같이하면서도 지속적인 성격을 가진다. 분리요구가 가장 강하게 일고있는 발트해 3개국은 제2차대전때 소련에 합병되기전까지 높은 문화적전통을 가지고 있어 반소ㆍ반러시아 의식이 특히 강한 지역이었다. 그것이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과 함께 「인민전선」등 조직적인 힘으로 발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역시 유혈참극을 빚은 그루지야와 아르메니아는 기독교도들이 많은 지역으로 종교적으로 회교도인 아제르바이잔인들과는 충돌의 요소가 많았다. 그러던 것이 전반적인 민주화분위기와 함께 내재하던 이질감이 표출된 것으로 볼수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제 민족문제에 대한 소련당국의 기본정책에 전면적인 손질이 불가피해졌다고 보고있다. 역설적이지만 1988년 제19차 당대회에서 개혁노선의 방향이 확실히 잡혀진 이래 민족분규는 한시도 그친 적이 없다.그해 6월 에스토니에서는 자체 국기게양과 함께 에스토니아어를 공용어로 채택했다. 그리고 11월 에스토니아의회는 주권국가임을 선포하고 연방법률의 비토권을 천명했다. 발트3국중 다른 2개 공화국도 거의 같은 길을 걸었다. 89년에는 그루지야의 압하지아에서 대규모시위가 일어나 군이 투입되고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오는 10월로 예정된 임시당대회에서는 민족문제에 관한 모종의 해결방안이 강구될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고르바초프가 리투아니아방문때 밝혔듯이 소련당국의 입장으로 미루어 각 공화국의 탈소독립은 거의 실현가능성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지금까지 해온 개혁과 개방의 기조 위에 각민족의 「실질적인 자치」를 허용한다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을 수 밖에 없을 것같다. 물론 이것이 가능키 위해서는 각공화국에 경제면에서 개혁의 실질적인 과실이 돌아가고 정치의 분권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 고르바초프 실정/소 개혁정책 위기/옐친,강력히 비난

    【도쿄 연합】 소련의 급진 개혁파 지도자 보리스 옐친 최고회의 대의원(전정치국원 후보)은 12일 고르바초프 의장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추진 자세는 『좌와 우,인민과 당기관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고 말해 고르바초프 의장의 우유부단한 자세를 비판했다. 14일부터 일본을 방문하는 옐친은 방일을 앞두고 모스크바 자택에서 가진 도쿄 신문과의 회견에서 그같이 말하고 『페레스트로이카와 고르바초프 의장은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보다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소 연방이탈 허용땐 외교정책 위기 직면/셰바르드나제

    【마드리드 로이터 연합 특약】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11일 분리주의가 소련을 약화시키고 소련의 외교정책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셰바르드나제는 이날 스페인의 엘 문도지와의 회견에서 현재 국제무대에서 일어나는 긍정적인 추세들은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같은 긍정적 추세가 유지되려면 소련이 강한 국가로 남아야 한다고 말하고 소련이 약화되면 외교정책의 효율적 수행이 어려워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민족분규」 확산… 소 개혁정책 “시련”

    ◎고르바초프 「현장방문」 속사정/발트해 3국 독립요구… 「연방존속」에 위기감/주민설득 실패땐 페레스트로이카 큰 곤욕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이 민족문제와 경제사정등 국내 사태의 악화로 시행 5년만에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민족문제에 있어 소련당국은 발트해 3개 공화국에 대해 지난 한햇동안 고유국기ㆍ고유언어의 사용허용과 함께 재정독립권을 부여하는등 제한적이나마 자치와 관련된 많은 조치들을 취해왔다. 그러나 이들 공화국은 이러한 제한적인 양보조치에 만족치 않고 일관되게 대소독립을 요구하며 1940년 소련과의 합병자체를 무효화시킬 것을 주장해왔다. 지난 12월 리투아니아공화국 공산당이 중앙당과의 분리를 결의함으로써 이러한 독립요구는 마침내 소련당국의 「허용한계」를 넘어서게 되었다. 이에 고르바초프는 흔히 써온 스타일대로 자신이 직접 리투아니아공의 수도 빌나를 방문,주민들에게 직접 분리결정의 철회와 독립요구의 자제를 호소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의욕적」인 개혁조치들에도 불구하고 개선의기미를 보이지 않고있는 경제사정 때문에 소련국내에서 그의 권위와 인기는 현저히 떨어져 있어 이러한 호소가 먹혀들지는 의문이다. 현재 동유럽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의 속도와 폭은 어느의미에서는 고르바초프가 당초 의도했던 수준을 넘어선 것이라 볼 수 있다. 고르바초프의 구상은 정치적으로 공산당 주도하의 제한된 복수주의와 경제적으로는 계획경제 중심의 역시 제한적인 시장제도 도입으로 지금의 사회주의체제를 재생시키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유럽 각국의 개혁은 이런 정도를 훨씬 넘어 사회주의 체제 자체의 붕괴선까지 발전해 가고 있고 이런 분위기가 결국은 소련의 개혁을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것으로 보이게 하고 있다. 새 의회(인민대표최고회의)가 구성되고 정책토의과정이 상당부분 언론에 의해 공개되는등 글라스노스트(개방) 면에서 이루어진 성과는 많으나 실질적인 페레스트로이카(개혁)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게 소련국민들의 불만이다. 가장 큰 요인은 경제면에서 나아진 게 없다는 점이다. 생산량이 늘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제도의 도입으로 일반국민들 사이에 생필품 부족현상은 더 심화되었고 가격인상까지 겹치고 있다. 5년이 지나도록 개혁의 실질적인 결실이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관료조직의 「태업」 행위와 일반국민들의 실망감,그리고 그로인해 사회전반에 무력증세가 확산돼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만요인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도력에 대한 조직적인 저항세력은 아직 없는게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개혁을 고르바초프를 비롯한 당지도부가 앞장서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유럽의 거센 개혁바람에도 불구하고 소련이 당분간은 지금까지 취해온 개혁의 페이스를 유지해 나갈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임박한 문제는 역시 발트해 3국을 포함한 각 민족의 독립요구들인데 이는 소련연방 자체의 존속문제와 관련,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 소련당국의 입장이다. 1백개가 넘는 다민족국가로서 각 연방공화국의 독립요구를 들어줄 경우 엄청난 혼란을 초래해 소연방의 존립자체를 어렵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고르바초프의 방문에 앞서리투아니아를 방문한 메드 베데프서기는 이달말께 모스크바에서 개최될 공산당전체회의에서 지방공화국 공산당의 조직자유확대가 대폭 제기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고르바초프의 보좌관인 블라디미르 사비츠키는 9일 리투아니아에서 대규모 항의시위가 있을 경우 고르바초프의 방문시기가 연기될 수도 있다는 시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리투아니아공산당의 연방공산당으로부터의 완전분리노력은 기필코 저지시키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소련은 그러나 지난 몰타 미소정상회담 때 약속한 대로 민족문제 해결에 무력을 사용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과연 어떤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만약 이번 리투아니아주민에 대한 고르바초프의 설득노력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그의 개혁정책 자체는 큰 시련기를 맞을 것같다.
  • 「소의 종말적 위기론」 필자는…/부시 친소책에 불만품은 관리

    ◎미 시사주간지서 3인 거론/게이츠 개혁실패 가능성 강조/러시아역사 저서 출간 빌링턴/로웬 비판논문 잡지에 게재 Z의 정체는 과연 누구일까. 추리소설의 내용같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워싱턴에서는 지금 알아맞히기 게임이 한창이다. Z는 미 학술원 계간지 「디덜러스」(Daedalus) 겨울호(곧 발간예정)에 고르바초프가 이끌어가는 소련이 현재 당면한 상황을 「종말적 위기」로서 묘사하는 글을 쓴 익명의 필자를 말한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구조개혁)의 장래에 관해 암울한 진단을 내린 Z의 논문으로 뉴욕타임스가 필자의 신원을 감추지 않는다는 관행을 깨면서까지 독자란(OP­ED)에 그 발췌문을 Z란 익명으로 게재함으로써 더욱 화제가 되었다. Z의 논문은 지난 1947년 조지 케난이 스탈린의 팽창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대소견제정책을 주창한 그의 역사적인 논문을 X란 가명으로 썼던 일을 상기시켜주고 있기 때문에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현재 워싱턴에서 나돌고 있는 유력한 견해는 Z라는 인물이 부시행정부의 친 고르바초프 정책노선에 내면적으로 불만을 품고있는 행정부의 고위관리일 것이라는 것. 이러한 추측의 논거위에서 시사주간 유에스 뉴스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세명의 가장 유력한 Z후보감들을 지목했다. ▲로버트 게이츠대통령 국가안보담당 부보좌관 ▲제임스 빌링턴 국회도서관장 ▲헨리 로웬 국방차관보가 그들인데 게이츠 부보좌관은 지난 10월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 성공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는 정책연설을 준비했다가 이를 보고 당황한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으로부터 저지당한 바 있다. 빌링턴관장은 원래 사학자로서 정책집행분야에 있는 건 아니나 러시아역사에 관한 매우 정평있는 몇권의 저서를 냈고 Z의 논문과 같은 우아한 문체의 글을 쓰는 학자로 알려져 있어 후보용의자로 꼽히는 듯하다. 세번째의 후보 로웬차관보는 86년 월 스트리트저널에 「고르바초프와 병든 러시아 곰」이란 제목의 소련비판 논문을 쓴 장본인인데 세 후보들은 모두 Z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고 있다.
  • 장세혼조… 장중등락 거듭/“사자”ㆍ“팔자” 팽팽… 보합세 머물러

    주가가 연이틀 장중 등락을 거듭하는 혼조양상을 보이며 보합세에 머물렀다. 9일 증권시장은 전일의 막판 오름세가 이어져 개장되자마자 종합주가지수가 4.36포인트 올랐으나 곧 통화환수설이 강력 대두돼 하락세로 돌아섰다. 10일의 노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 대해서도 「별다른 호재가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고개를 들어 그간의 상승종목들을 중심으로 대거 「팔자」 물량들이 출회,지수를 전일수준 밑으로 끌어내렸다. 낙폭이 커지자 전장끝무렵부터 제조업 관련 저가권 종목들에서 반발매수세가 일어 장세는 다시 오름세로 역전,후장중반 전일수준의 지수를 회복했으나 매도ㆍ매수세가 팽팽해 오름 폭은 아주 작았다. 종합주가지수는 전일보다 0.75포인트 오른 9백20.21. 중ㆍ대형주가 보합세에 그친 반면 소형주가 상당폭 올랐다. 그동안 상승세를 탔던 트로이카종목들이 모두 약세로 돌아섰으며 금융업중 단자주의 하락폭이 깊었다. 7백67개 종목에서 매매가 이뤄졌으며 상한가 1백개등 3백78개종목이 올랐고 하한가 7개 포함 2백99개 종목이 하락했다. 거래량은 1천8백64만주로 평소 수준이나 거래대금은 3천8백16억원으로 다소 늘어났다.
  • 하락 이틀만에 “오름세 반전”/저가주ㆍ트로이카 동반상승

    ◎장세혼조 거듭… 후장에 다시 올라/상한가 1백52개… 6포인트 껑충 주가가 하락 이틀만에 오름세로 돌아섰다. 주초인 8일 주식시장은 값이 싼 주식을 중심으로 매기가 일면서 남북관계개선 기대심리 등이 가세,비교적 높은 오름세로 출발했다. 그러나 투자분위기가 완전히 되살아나지 않은 상태에서 주가가 상승하자 대기 및 차익매물이 쏟아져 나와 다시 내림세로 반전하는 혼조양상을 보였다. 그러다가 후장들어 남북고위당국자회담 추진보도와 함께 투자신탁회사들의 4천억원규모 주식매입자금조성설 등으로 매수세가 살아나 종합주가지수는 6.60포인트 상승한 9백19.46으로 올라섰다. 이날은 뚜렷한 악재나 호재가 없었으나 저주가 및 제조업주식쪽으로 매기가 옮겨가는 순환매매양상이 두드러졌다. 거래동향을 보면 상한가 1백52개를 포함 5백40개 종목이 오른 반면 내린 종목은 하한가 7개등 1백62개 종목에 그쳤다. 업종별로는 음식료 섬유 의복 의약주 등이 오름세를 보였고 무역 건설주를 중심으로 트로이카주들은 동반상승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금융주 가운데 증권주만이 약세를 면치 못했다. 거래량은 1천7백55만주,거래대금은 3천6백94억원이었다.
  • “「힘의 균형」 지탱에 미ㆍ중 우호 필수적”

    ◎홍콩지,「닉슨 방중 비망록」 공개/“극좌성향 회귀땐 서방에 큰 위협/소 철권정치 복귀ㆍ일 군사 대국화도 견제” 지난해 10월말 미국정부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했던 닉슨 전 미대통령이 미ㆍ중 우호관계 회복을 강조한 「방중 비밀 비망록」의 내용이 친중국계 홍콩신문인 대공보 7일자에 상세히 보도했다. 대공보는 이 비망록이 지난 5일 비공식 경로를 통해 입수됐음을 밝히고 닉슨은 지난해 10월28일부터 11월2일까지의 방중일정을 마치고 귀국,이 비망록을 작성해서 부시 대통령과 상ㆍ하 양원의장 등 몇몇 정치적 영향력이 강한 인사들에게만 배포했다고 설명했다. 비망록은 특히 소련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이 실패로 끝나고 소련에 보수적인 철권정권이 들어설 것으로 예견,주목을 끌고 있다. 또 일본이 2천년대에 들어 군사ㆍ정치대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미측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닉슨은 이 비망록에서 고르바초프의 현 정책은 지금까지 미국이 소련의 사회주의에서 느꼈던 위협을 크게 덜어주고 있으나페레스트로이카의 실패에 대비하고 장기적인 전략이익을 위해 6ㆍ4 천안문사건 이후 소원해진 미ㆍ중관계 회복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ㆍ중 양국의 우호적인 협력없이는 세계적인 핵무기 확산 금지 노력이 성과를 거두기 힘들고 한반도와 대만등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닉슨은 이와함께 중국이 언젠가는 경제ㆍ군사 강국이 될 것이기 때문에 미측이 중국을 적대시하는 것은 하등의 이익이 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하고,지구 환경문제만 하더라도 전세계 인구의 5분의1을 차지하는 중국을 제외시키고는 해결이 어렵다고 밝혔다. 비망록은 미ㆍ중 우호가 소ㆍ일의 견제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각별히 강조하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동ㆍ서진영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볼때 소련이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는한 시장원리에 대한 저항으로 경제개혁은 실패할 것이고 민주ㆍ자유화 개혁도 좌절될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소련의 소수민족은 복잡하게 구성돼 있고 종교ㆍ역사적으로도 상호 강압과 핍박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에 소에 민주화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할 경우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은 해체 위기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소련에선 보수강경세력이 대두,고르바초프와 페레스트로이카를 내팽개치고 중앙통제의 철권정치를 하게 됨으로써 미ㆍ소 데탕트가 사라지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지속시켜 소와의 새로운 대결에 대비해야 힘의 균형이 이뤄져 세계평화에 도움이 된다는게 비망록의 견해이다. 일본에 대해서도 닉슨은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장래를 분석하고 있다. 그는 일본이 입으로만 누누이 자국의 경제중시정책과 세계평화를 주장하고 있으나 그들의 정치ㆍ군사적 역량은 날이 갈수록 증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비망록은 멀지않은 장래에 실현될 가능성이 많은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한 대처방안으로 미국이 중국을 도와야만 아시아 지역에서 힘의 안배가 이뤄져 무력분쟁의 가능성을 잠재울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밖에도 미국이 중국에대한 제재를 장기화하고 다른 서방국가들이 이에 동조할 경우 중국은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극좌 보수색채를 강하게 띠어 서방세계를 위헙하게 될 것이므로 제재의 고삐를 될수 있는한 빠른 시일안에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6ㆍ4천안문사건으로 크게 움츠러든 중국의 개방ㆍ개혁정책이 다시 활기를 띨수 있게끔 미국의 다각적인 정책배려가 있어야만 중국은 경제발전을 통해 정치ㆍ사회의 안정을 기할수 있다고 분석했다. 닉슨의 비망록이 어느정도의 영향을 발휘했는지 알수 없지만 어쨌든 미국은 지난 12월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을 북경에 보내 양국 현안을 논의했고,미국이 최대 출자국으로 있는 세계은행(IBRD)은 최근 3억5천만달러의 중국 철도건설 차관공여를 재개키로 결정했다.
  • 주가 이틀째 내림세/2포인트 빠져 9백10선에 머물러

    주가가 연이틀째 내림세를 보였다. 6일 주식시장은 전날로 조정이 끝난 것으로 판단한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사자에 나서 급락세가 진정되고 높은 오름세로 출발했다. 증권감독원이 1ㆍ4분기중 주식공급량을 최대한 억제하기로 했다는 소식과 함께 소련 공산당서기장 고르바초프의 실각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매수세가 크게 되살아나 종합주가지수는 한때 6.4포인트까지 올랐다. 그러나 주가가 이같이 상승하자 그동안 장세를 이끌어왔던 금융 무역 건설등 트로이카주식들을 중심으로 다시 차익 및 경계매물이 쏟아져나와 내림세로 돌아섰다. 그럼에도 값이 낮은 제조업주식들에 대한 매수세가 만만치 않아 소폭하락에 그쳤다. 거래동향을 보면 거래가 형성된 7백41개 종목 가운데 상한가 99개를 포함,3백88개 종목이 올랐으나 주가하락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형주 중심으로 2백43개 종목이 내려 종합주가지수는 2.25포인트 하락한 9백12.86으로 후퇴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전반적으로 강세를 나타낸 가운데 종이제조 관련주들이 지방자치제선거에 따른 특수기대로 큰 폭으로 올랐다. 이에 반해 단자를 제외한 트로이카주식들은 내림세 내지 약세를 나타냈다. 거래량은 반나절장인데도 1천2백51만주에 이르렀고 거래대금은 2천6백93억원이었다.
  • 소련에서 스러지는 ML주의(사설)

    마르크스­레닌(ML)주의가 소련 대학교의 필수과목에서 제외된다고 한다. ML주의는 소련의 국가건설 이념이다. 소련은 그로하여 사회주의 공산권의 종주국으로 군림해왔다. 그런데 그 이념을 전수하는 교과목이 스러지려는 것이다. 그것도 학생들의 요구에 의해서이고 그와 함께 현대 사회주의,소련 공산당사 등도 지금까지의 필수과목에서 선택과목으로 돌려졌다는 얘기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빚어내는 충격적이고 세계사적인 현상이다. 지금 개혁과 개방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동구권 국가들도 이미 사회주의 포기를 선언하거나 그들 국호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하고 국기에서도 사회주의 표지를 제거한 바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근본적으로 또 영원히 사회주의 공산체제를 방기하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브레진스키처럼 「공산주의의 종말」을 말하는 쪽도 있고 반대로 「공산주의의 르네상스」(카피차 소 동양학연구소장)라는 데 동의하는 쪽도 있다. 사회주의 체제의 변혁에 대한 평가야 어떠하든그 종주국의 대학 강의에서 ML주의가 「필수」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산업혁명이 막 끝났거나 그것을 겪고 있던 19세기 유럽사회를 배경으로 엮어진 혁명이론이다. 산업화의 안티테제로 등장했으니 만큼 그것은 곧 반자본주의이며 서구형 자본주의 사회의 타도를 겨냥했다. 또 레닌이즘은 마르크시즘의 많은 분파중의 하나로 레닌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붕괴론이나 계급투쟁론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여 후진적 봉건농업사회인 제정러시아의 부패타락한 전제정치를 타도하는 데 적용했다. 오늘의 소련은 정치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레닌이즘에 기초한 사회주의 국가이다. 사회주의의 성지와도 같은 곳에서 그 이념이 스러지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말이다 아니다의 논쟁은 무의미할지 모른다. 정치적 혁명에 성공한 레닌은 그러나 그후의 경제건설은 마르크스­레닌주의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생전에 이미 자기 노선을 수정한 것이 이른바 「신경제정책」(NEP)이다. ML주의의 황혼이나 쇠잔은 이미 그때부터 예고된 것이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우리 대학가 운동권의 양대 노선으로 김일성주의(주사파)와 마르크스­레닌주의(ML파)를 꼽을 수 있었다. 주사파는 남한을 「식민지 반자본주의 사회」라고 규정하고 그것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쪽이다. 또 ML파는 남한을 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보고 노동계급의 해방과 반독점투쟁을 벌인다고 했다. 그 무렵 동구권에서는 개혁과 개방의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고 모스크바의 ML주의는 황혼녘을 가고 있었다. 우리 학생들은 그만큼 시대의 추세를 지켜보지 못했다는 얘기도 된다. 고르바초프는 이미 지난해 1월 냉전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고 이어서 「사람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역설했다. ML주의를 무덤으로 보내는 그 자신이 지금 어떤 모순과 싸우고 있을지 모르나 그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지도적인 정치인으로 꼽히고 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그런데도 북한의 김일성은 레닌과 스탈린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 소 대학생 필수과목서 「마르크스 레닌주의」 제외

    ◎새학기부터 「현대사회주의」와 함께 선택으로 【도쿄 연합】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소련 대학생들의 필수과목에서 제외된다. 소련 대학교수용 신문인 우치 체리스카야 가제트는 지난 4일자호에서 소련 고등교육성이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올 새학기부터 마르크스주의ㆍ현대사회주의ㆍ소련공산당사등 세과목을 선택과목으로 돌렸다고 요미우리신문이 5일 모스크바발로 보도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종래 소련 대학생의 필수과목이었을뿐 아니라 좋은 시험점수를 얻어야 졸업후 취직에서 유리했었으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계기로 학생들간에 점차 인기를 잃더니 최근 들어서는 아예 「지루한 과목」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는 것. 새로운 선택과목이 된 현대 사회주의와 소련 공산당사는 현행 교과서에 고르바초프정권의 신사회주의관과 스탈린 비판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어 소련 학생들은 「고르바초프식」의 역사관을 배우게 되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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