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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펫 천재/디지 길스피 재평가작업

    ◎재즈음악 창시자… 지난달 75세로 타계/“청중 압도 불세출의 연주가” 추모 한창 미국에서는 요즈음 75세로 지난달 타계한 세기적인 트럼펫 주자 디지 길스피(Dizzy Gillespie)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한창이다. 그것은 재평가작업이라기 보다는 그가 남긴 업적과 연주자로서의 뛰어난 천재성에 대한 추모작업 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 할지도 모른다. 그의 천재적인 연주기법은 그가 활발하게 연주활동을 하던 50∼60년대에도 따를자가 없었지만 그 이후에도 그만한 연주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게 정설이다.그의 연주는 지극히 역동적이고 혁명적 이어서 청중들은 놀라움을 넘어 쇼크를 받곤 했다. 뿐만 아니라 작곡가이자 재즈음악의 한 창시자 이기도 한 그의 예술가적 유산은 어느 재즈음악가 보다 폭이 넓었다.디지는 몇사람만의 작은 그룹에서 부터 거대한 오케스트라에 이르기 까지 어느 그룹과도 자유롭게 연주를 했다.또한 재즈음악과 그가 생애 후반에 심취했던 라틴음악 사이를 아주 쉽게 넘나드는 보기드문 천재였다. 1917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한 시골에서 태어난 디지는 어려서 부터 아버지로 부터 사사를 받았다.직업연주자가 된 것은 18살때.그로부터 4년후인 스물두살 때는 벌써 당시 명성이 대단했던 캡 캘러웨이 오케스트라의 일원이 돼있을 만큼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20대때 이미 「비봅」으로 알려진 그의 고유한 연주 스타일을+ 창안해냈고 스물여덟살때인 1945년에는 대규모 모던 오케스트라를 창단 할만큼 성장 해 있었다. 디지 길스피가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것은 1956년.그와 그의 악단이 미국 국무부의 친선사절로 그리스 유고슬라비아와 라틴아메리카 여러나라를 순회연주 하게 되면서 부터였다.이 연주여행은 정부보조금으로 연주활동을 한 최초의 재즈음악인들로 더욱 유명 했었다. 디지가 지금 새삼스럽게 평가되고 있는 일면은 그가 이른바 「딴따라」와 위대한 음악가의 역할을 동시에 해냈다는 점이다.한 평론가는 『디지가 택한 길로 미국에서 혁명적인 일을 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인데 그는 해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의 뛰어난 포용력과 친화력은 언제나 무대를 지배했고 그는 또 그의 독특한 카리스마적 개성으로 연주장을 장악 했다.그래서 그는 그가 서는 나이트 클럽이나 거대한 콘서트 홀의 분위기를 마음대로 조종하는듯 했다.독특한 개성과 뛰어난 연주가 그에게 그런 능력을 부여 한 것이다. 『나는 결코 남이 무슨 연주를 했는지 또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뒤를 돌아 본적이 없다.오직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연습에 몰두하며 내 앞길만을 걸었을 뿐이다.때문에 나는 아프리카 어느 오지에서도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 본 일이 없다.어느 곳에나 어떤 것을 연주 할 새로운 방법이 있었다』 디지가 세상을 떠나기 1년전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 내년 개교 「예술학교」/정원안돼도 「수준급」만 선발

    ◎5.5:1 경쟁불구,대부분 “기대이하” 판정/“상대평가 아닌 절대평가”… 합격자 적을듯/바이올린·목관악 전부문 등 미달사태 예고 내년 봄 문을 열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의 첫번째 신입생은 정원을 상당히 밑도는 수준에서 선발될 것으로 보인다. 예술학교는 지난 24일부터 27일까지 서울 강남구 포이동 국립국악고등학교에서 신입생선발을 위한 1차시험을 치렀다.이번 시험에는 성악과와 기악과 작곡과 지휘과등 4개과 1백33명 정원에 모두 7백34명이 응시해 평균 5.5대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이같은 높은 경쟁에도 불구하고 학교측은 1차시험을 치른 결과 상당수의 전공부문이 정원을 채우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그것은 학교측이 원하는 수준에 연주력이 미치지 못했을 경우 정원에 관계없이 불합격시킨다는 예술학교의 방침때문이다.예술학교는 지난 9월 치른 예술영재선발시험에서도 모두 1백24명이 응시했음에도 1명의 합격자도 내지않았었다. 이번 1차시험에는 김영미(성악)와 이경숙·강충모(피아노),김남윤(바이올린)등 전임교수와 함께 안형일 이재판(성악),고순자(플루트),김동진(클라리넷),오순화(비올라)등 각부문별로 2∼5명의 교수가 심사에 참여했다.심사결과 6명 정원에 17명이 지원한 첼로 부문과 5명 정원에 22명이 지원한 더블베이스,3명 정원에 14명이 지원한 트럼펫부문등은 대다수 지원자들의 연주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됐다. 반면 22명 정원에 25명이 지원한 바이올린부문과 색소폰 클라리넷 플루트 오보에 바순등 목관 전부문은 기대에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에따라 이부문은 거의 합격자의수가 정원을 크게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학교측은 당초 1차시험에서 부문별로 정원의 그배수를 뽑은뒤 오는 10·11일 2차시험을 치를 계획이었다.학교측은 그러나 1차시험을 치른 결과 응시생의 실력편차가 대단히 큰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1차시험의 합격자가 2배수에 못 미칠수도 있다고 밝혔다.이에따라 응시생의 수준이 기대에 못미치는 일부부문의 경우 1차시험에서 부터 정원을 채우지못할 가능성도 배할할수 없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강숙교장은 『정확한 최종합격자의 수는 2차시험이 끝나야 알수있겠지만 1차시험에서도 연주기량은 이미 평가된 셈』이라면서 『최종합격자는 1백명 내외선에서 결정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번 시험은 예술학교의 첫입학시험일뿐 아니라 그동안 부정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실기시험을 학부모들에게 공개해 시비의 소지를 없앴다는 점에서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시험에는 또 47명의 현역 음대생이 응시해 화제가 됐다.학교측은 이들이 현재 일반대학의 교육과정이 실기능력을 기르는데 적합치않다고 판단했거나 국내정상급예술가들인 예술학교교수에게 배우기위해 응시한 것으로 보고있다.특히 바이올린부문의 주임교수인 김남윤교수의 전재직교인 서울음대에서 바이올린전공학생 4명이 응시하는등 「스승을 따라 학교를 옮기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학교측은 2차시험에서는 시험의 객관성을 높이기위해 헝가리와 폴란드의 지휘자 2명등 모두 18명의 외국인 음악가를 심사위원으로 초청했다고 밝혔다. 한편 예술학교는 서울대음대 이건용교수를 작곡과주임교수로 새로영입했다.
  • 예술종합학교/1차전형 11월17일∼20일

    ◎신입생모집요강 확정… 원서교부 10월15일∼24일/중3이상 「영재」 응시자격,133명 이내 선발 문화부는 20일 93학년도에 개교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의 예술사과정 신입생모집요강과 예술영재선발요강안을 확정,발표했다. 선발요강에 따르면 일반대학의 학사과정에 해당하는 예술사과정의 모집정원은 총1백33명 이내로 성악과 25명(남자10명,여자15명)작곡과 8명(작곡5명,이론3명)기악과 96명(피아노20명,바이올린20명,비올라8명,첼로6명,더블베이스5명,호른4명,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바순·트럼펫·트럼본·타악기 각3명,하프·오르간·하프시코드·기타 각2명,색소폰·튜바 각1명)지휘과 4명이다. 입학원서는 오는 10월15일부터 교부해 10월24일 원서접수를 마감하게 되며 10%의 내신성적과 90%의 실기로 점수를 매기는 1차전형은 11월17일부터 20일까지,공개실기경연성적으로 합격자를 가리는 2차전형은 12월10일과 11일 이틀동안 있다. 최종전형인 3차면접시험은 일반전기대학의 입시날인 12월23일 치르게 돼 음악원 3차시험응시자는 일반대학에응시할수 없게된다.최종합격자발표는 12월26일 있을 예정이다. 또 대입검정고시에 해당하는 음악분야 예술영재선발요강안은 그 자격을 중학교 3학년 재학생이나 고교 1·2학년 재학생으로 소속학교장이 음악분야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인정해 추천하는 사람으로 정해졌다. 음악원과정의 전분야에 걸쳐 선발될 예술영재에게는 당해연도에 한해 음악원 예술사과정의 입시에 응시할수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공개실기심사만으로 뽑게될 예술영재선발시험의 지원서는 오는 31일부터 교부해 9월4일 접수를 마감하게되며 실기고사는 오는 9월20일이나 21일 국립중앙극장소극장에서 있다. 이날 발표를 맡은 예술학교의 초대교장겸 음악원장 내정자 이강숙씨(음악평론가)는 『음악원의 교수진은 외국인 저명교수가 주축이 될 초빙교수와 음악원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전임교수,그리고 1급연주자들인 강사등 3단계로 구성될 것』이라고 밝히고 초빙교수로는 줄리어드음대의 도로시 딜레이등이 초청에 응할 의사가 있음을 알려 왔으며 전임교수의 경우 ▲피아노전공 주임에이경숙교수(연세대) ▲바이올린 주임에 김남윤교수(서울대) ▲성악주임에 김영미(재미소프라노)씨등이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한편 다음달 총무처에서 확정될 예술학교의 직제에 따르면 교장은 국립대학교의 총장급이 되며 사무국장은 이사관 또는 부이사관이 맡게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 무기수의 눈물겨운 결혼식/대구교도소 김상겸씨

    ◎옥바라지 여인과 5년 열애/편지 1천2백여통 교환… 내일 혼례 교도소에서 15년째 참회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한 무기수가 6년동안 옥바라지를 하며 사랑을 심어준 여인과 화촉을 밝히게 됐다. 8일 고향인 경남 고성군 회화면에서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7박8일동안의 모범재소자 귀향휴가를 얻어 6일 대구교도소문을 나선 김상겸씨(34). 김씨는 지난87년 사촌여동생이 맺어준 박정애씨(37·양장점경영)와 눈물겨운 열애끝에 백년가약을 맺게 됐다. 강도살인죄로 기약없는 수감생활을 하던 김씨는 사촌여동생과 함께 서울의 한 봉제공장에 다니던 박씨로부터 첫 「격려」편지를 받았을때만해도 「평생 교도소에서 지낼몸」이라는 생각으로 시큰둥했고 면회요구조차 거절했었다. 김씨는 그러나 희망을 잃지말고 진실하게 살아갈것을 간곡히 당부하는 박씨의 잇단 편지에 감동,마침내 마음의 문을 열고 말았다. 그동안 박씨로부터 받은 편지만도 1천2백13통에 이르렀고 면회 또한 1백5차례나 됐다. 김씨는 박씨와 사랑을 나누면서 양복기능사2급 자격증을 땄다.기독교에 귀의,교도소에서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면서 교도소에서 배운 트럼펫솜씨로 악대반장까지 맡고 있다. 두사람의 사랑이 깊어지면서 박씨는 지난 88년 주위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남 고성군 회화면 배둔리에 있는 김씨의 집옆에 그동안 배운 봉제기술을 바탕으로 양장점을 차려 김씨집 식구로 눌러앉았다. 시장에서 생선장사를 하는 김씨의 어머니(69)를 비롯한 여덟식구의 생계를 거들며 김씨의 옥바라지를 해온 박씨는 지난 90년 5월 마침내 혼인신고까지 마쳐 호적상 부부관계를 맺는 억척스러움을 보였다. 박씨는 『나의 작은 사랑이 그이에게 희망과 용기가 된다면 앞으로도 평생을 기다리며 살아갈것』이라면서 『귀향휴가가 끝나면 또다시 헤어지게되지만 우리는 소망을 갖고 누구보다 성실히 살아갈것』이라고 말했다.
  • 예술발전의 균형/전경화 공연기획가·미추홀예술진흥회대표(굄돌)

    얼마전 주한 벨기에 대사관으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물게 소프라노,트럼펫,파이프오르간으로 구성된 트리오 알라르미의 연주회를 알리는 초청장이 날아와 기대속에 연주회 장소인 성공회 예배당을 찾았다. 바로크시대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예배당안에서 듣는 소프라노,트럼펫,파이프오르간의 절묘하고 아름다운 앙상블은 오랜만에 바로크 음악의 진수를 맛보게 해주었다. 연주회가 끝나고 예배당 앞마당에서 간단한 리셉션과 함께 음악회에 참석한 청중들과 연주자들이 대화를 나누는 순서가 있었다. 서울시내 한복판에 빌딩숲 뒤로 우거진 고목 나무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하늘이 방금전의 아름다운 음악과 어우러져 한층 더 우리들의 마음을 싱그럽고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연주자들은 음악 매니저인 나에게 한국 연주전에 일본의 10여곳에서 연주회를 가졌는데 한국은 왜 한번밖에 연주를 할 수 없는지 궁금하다고 하였다.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음악가들도 많은데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안 좋아 하냐고 질문하는것이 아닌가! 나는 무척당황하며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우리나라는 언제나 일본 같이 각 도시마다 순회연주회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도 웬만한 중소도시까지 훌륭한 공연장들인 문화회관이 개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일변도의 공연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고 수치스러운 일이어서 이런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몇 가지 개선점을 생각해 보았다. 첫째 국가 차원에서 문화예술 진흥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 일시적인 전시효과나 단기적인 계획을 삼가하고 장기적인 투자를 하여야 한다. 둘째 공연기획의 부재를 벗어나기 위해 전문 예술 행정가들을 양성할 수 있는 교육기관을 제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셋째 기업이 문화사업에 꼭 동참하여 바람직한 기업문화를 창출하여야겠다. 이 모든 것들이 하모니를 이루어 나갈 때 문화예술이 발전하여 서울뿐 아니라 지방곳곳까지 아름답고 밝은 사회가 되리라 확신한다.
  • 내년 개교 종합예술학교 정원 확정(단신패트롤)

    ◎기악·지휘·성악·작곡 4개과 133명 모집 ◇93학년도 개교예정인 한국종합예술학교음악원은 기악과와 지휘과,성악과,작곡과 등 4개학과에 모두 1백33명을 모집한다는 시안이 마련됐다. 예술학교설립추진단(단장 김전배)은 19일 음악원설립추진위원회(위원장 이성재)가 마련한 음악원의 전공학과와 모집정원등에 관한 시안을 문화부에 제출했다. 이 시안에 따르면 우선 93학년도에는 기악과 96명,지휘과 4명,성악과 25명,작곡과 8명을 모집하게 된다. 기악과의 악기별 정원은 피아노 20명,바이올린 22명,비올라 8명,첼로 6명,더블베이스 5명,호른 4명,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바순·트럼펫·트럼본·타악기 각 3명,하프·오르간·하프시코드 각 2명,색소폰·튜바 각 1명,기타 2명등 19개 분야 96명이다. 성악과는 소프라노와 앨토,테너,베이스,바리톤등 5개 분야 각 5명씩 모두 25명이 모집된다. 학생선발은 예술학교설치령 제13조에 따라 출신학교의 내신성적,공개심사성적으로 1차선발하고 공개경연대회에서 실기시험으로 최종선발토록 되어 있다.
  • 선거전 막판 “한표얻기”묘안 백출/유권자 관심끌려 아이디어 총동원

    ◎목욕탕·이발소 하루 3∼4번 출입/등교길 주민자녀 사진 찍어주기/저소득층 지역서 숙식… 직접 대화/연설회장 이색입장… 소복차림 읍소작전도 3·24총선이 종반전으로 접어들어 후보들간의 경쟁이 더욱 가열되면서 각종 아이디어를 총동원한 기발한 득표전략이 백출하고 있다. 색다른 구호와 유인물배부는 이미 옛날 방식이 됐고 후보 자신이 직접 나서 유권자 자녀들의 사진을 찍어주는가하면 하루에도 서너차례씩 목욕탕이나 이발소를 찾거나 아예 저소득층 주민들이 많이 사는 곳에 숙소를 정해놓고 잠을 자면서 표를 모으고 있다. 어느후보는 자신의 인생드라마를 테이프로 제작,배포하기도 하고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가족들이 소복차림을 하고 다니는가 하면 선거사무소를 비닐하우스나 천막으로 설치한 경우도 있다. 또 선거법을 교묘히 이용,길거리에서 커피를 제공하거나 성냥등 작은 선물을 홍보용으로 나눠주는등 후보들은 색다른 득표전략을 짜기에 여념이 없다.그러나 후보들간의 득표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들 묘안들가운데는 선거법에 저촉되는 내용들이 포함돼있어 공명선거분위기를 흐릴 우려가 있다는 뜻있는 유권자들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전시 대덕구에서 입후보한 모후보는 매일 아침일찍 선거구관내 아파트단지를 돌며 폴러로이드카메라로 유치원에 가는 어린이들의 사진을 찍어 건네 주면서 배웅나온 어머니에게는 『당신의 아이처럼 때묻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며 한표를 부탁하고 있다. 충북 충주·중원 선거구 합동연설회장에선 모후보가 어린이들을 동원,장난감트럼펫을 불게했다가 선관위의 제지를 받기도 했으며 서울 동작갑 선거구에 입후보한 한후보는 자신의 이름이 암행어사와 같은데 착안,운동원들의 옷을 암행어사차림으로 입혀 연설회장에 내보내 눈길을 끌게 했다. 또 모당 울산지구당은 이곳에서 정당연설회가 열리는 날에 횃불을 이용,태화강변 고수부지에 당 대표의 방문을 환영하는 글씨를 써보여 유권자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전북 군산시에서 출마한 모후보는 저소득층이 사는 지역에 10여개의 임시숙소를 정해 놓고 매일 밤 이 숙소에서 잠을 자면서 저소득층주민들과 밤을 새워 대화하는 득표작전을 펴고 있다. 유권자들의 동정심을 얻어 표와 연결시키려는 작전도 사용되고 있다.동두천·양주지역의 모후보는 자신의 어린딸로 하여금 『불쌍한 우리아버지를 도와주세요』라는 편지를 유권자들에게 보내게 했다가 선거법위반혐의로 입건되기도 했으며 옥중출마한 부산의 한후보측은 부인과 네아들 그리고 며느리들이 검은 소복차림에 「옥중출마」라는 리본을 달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대전 동갑에 나온 모후보는 『표는 다져야 한다』며 자신이 다녀간 시장터 가게나 노인정에 다음날 부인이 반드시 방문케 하는 색다른 방식을 구사하고 있으며 상대후보는 그 곳을 다시 찾아다니는 방법을 쓰고 있다.
  • “연주수준 향상… 곡 중복은 피해야”/92교향곡 축제를 듣고

    「고향의 소리」라는 주제 아래 네번째를 맞은 92 교향악 축제(2월15일부터 3월17일까지·예술의 전당 콘서트홀)는 해를 거듭할수록 참가 악단이 늘어나고(1회 11개,2회 15개,3회 16개) 악단들의 수준이 높아져 예술의 전당이 주최하는 이 행사가 국내 교향악 발전사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금년에는 전국의 18개 악단이 불꽃튀는 열전을 벌였는데 양적 팽창에 비해 내용(연주곡)은 빈약한 편이었다. 그러나 지휘자들의 음악만듦은 구태의연했으나 악단들은 질적으로 발전된 면모를 보여주었다. 식상한 것은 그야말로 지휘자들의 레퍼토리 빈곤과 매너리즘을 느끼게 한 음악메뉴로 연주곡들은 작년보다 오히려 고전과 낭만음악에 치우쳐 있었다. 심지어 재현예술의 의미파악도 제대로 안된 지휘자도 있었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대체로 지방악단의 문제는 금관악기군(호른,트럼펫,트롬본)의 퇴화로 인한 협조적 방해기능이었다. 그러나 현과 목관악기군은 비교적 음이 정리가 잘되어 있었다. 교향악단의 음악이 되느냐 안되느냐의 문제는지휘자의 능력과 함께 각 악기의 정확한 음의 융합과 승화된 표현에 달려있기에 이의 해결이 시급하다. 특이한 것은 같은 악단이라도 외국객원지휘자가 음악을 만들면 음악이 되고 국내지휘자가 만들며 설익음이 느껴지는 것으로 지휘자의 능력문제도 있지만 단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자신들만의 지휘철학이나 연주철학이 결여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번 교향악축제에서는 기대했던 악단(수원·부천시향,KBS향)이 기대치 이하였던 반면 상상외로 지방악단(전주·부산·마산·광주시향)들이 설득력있는 좋은 연주를 해주었다. 세부적으로는 레퍼토리선정에 있어 「서곡­협주곡­교향곡」하는 식의 고정관념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연주메뉴가 되어야 할 것이고 악단간의 연주곡중복(스트라빈스키 「불새」)도 피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18개 악단이 연주한 55곡중 국내창작곡이 1곡뿐인 것은 교향악축제의 자존심 상실이다. 27명이나 되는 협연자들은 그 얼굴이 그얼굴이라 신선감은 없었으나 비중있는 연주자들이 대거 참가해 좋은 음악만듦은 되었다. 끝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전국의 모든 악단들이 개성상실로 인해 획일화되지말고 각 지역특성에 맞는 고유샐깔을 만들어가 「자기고장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어야만 교향악축제의 뜻이 있다고 본다. 이제 악단들은 감각적인 연주행위보다 지적인 해석미학이 깔린 음악을 보여줄 때가 됐다. 음악은 고도의 기술없이 의욕이나 배짱만으로 되는 예술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한다.
  • 교향악축제 참가 제주시향지휘자 이선문씨

    ◎“3개월간 연습… 중앙무대 서봤다는게 소득” 『부담스러운 연주회였습니다.그러나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한 만큼 중앙음악계의 평가가 크게 두렵지는 않습니다』 지난 90년에 이어 교향악축제에 2번째 참가해 22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회를 마친 제주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이선문씨(45·제주대음악과 교수)는 『3개월 동안에 걸친 엄청난 연습에도 말없이 따라와 준 단원들이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제주시향은 이날 쇼스타코비치의 「축전서곡」과 손국임씨(숙명여대교수)가 협연한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0번」그리고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을 연주해 『청중들을 충분히 즐겁게 해 준 연주회』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우리는 중앙무대에 우리 솜씨를 선보인다기보다는 큰 무대에 서봄으로써 단원들의 안목을 넓힐 수 있을 것같아 참가한 것입니다.그러나 교항악축제의 성격이 각 지역의 자존심을 건 경영장같이 인식되어 있는 상황에서 우리같이 여건이 좋지않은 교향악단은 좀 더 연습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주시향은 관악합주단인 탐라합주단과 시립합주단을 모체로 지난 87년 창단됐다.제주도에는 모두 12개 고교에 관악대가 있어 관악인구는 비교적 많으나 현악은 이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라고 한다. 『불과 5년전인 창단 당시 현악파트에는 전공자가 2명밖에 없을 정도였지요.지금은 현악파트에는 부전공자는 물론 비전공자도 있습니다』 이씨는 제주토박이로 관악명문 오현고교에서 트럼펫을 불기 시작해 경희대 기악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이씨는 교향악축제가 끝난 뒤 제주에 돌아가 귀향연주회를 갖는 등 올해 제주시향이 예정하고 있는 6회의 정기연주회를 모두 지휘할 예정이다. 『제주도는 신혼부부등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들지만 향락문화만 발달되어 있을 뿐 바람직한 밤문화가 없습니다.제주시향은 제주도민을 위한 연주는 물론 또 하나의 관광자원이 될 수 있도록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낡은 시민회관을 매각하고 탑동매립지에 야외음악당을 건설하자는 제안을 제주시측에 해놓고 있으며 호의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이씨는 야외음악당이 세워지면 부두의 불야성을 배경으로 한 그곳에서 최소한 1주일에 1번씩 팝스콘서트를 열 꿈에 부풀어 있다.그렇게 되면 삼다도제주에 또하나의 명물이 된다는 것이다.
  • 나치수용소 유태인에 “죽음의 전주곡”/바그너음악 이스라엘공연 논란

    ◎바렌보임 연주무산후 찬반논쟁 가열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이스라엘 필하모닉이 바그너의 작품을 공식적으로 연주할 수 있을까. 지난 연말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스라엘 필하모닉과 함께 바그너를 연주하려던 계획이 단원 및 여론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무산된 뒤에도 이를 둘러싼 논쟁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고 근착 뉴욕타임스와 시사주간지 타임이 잇따라 전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의 바그너는 지난 19 38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지휘한 팔레스타인 심포니의 연주 이후 공연계획표에서 사라졌다. 그 뒤 지난 81년 인도인이지만 이스라엘에 누구보다도 애정을 갖고 있는 주빈 메타가 「트리스탄과 이졸데」가운데 「사랑과 죽음」을 「금기를 깨기 위해」앙코르곡으로 연주하다 청중들의 흥분으로 중단됐다. 10년이 흘러 지난 해 바렌보임이 이스라엘 필하모닉과의 연주계획을 발표하며 바그너를 포함시키자 또다시 소동이 일어 오케스트라 회원 및 단원들은 투표끝에 연주를 거부했다. 바그너는 히틀러가 태어나기 6년전이고 권력을 잡기 무려 반세기전인 18 83년에 죽었다.그가 살아있는 동안 유대인을 혐오하는 글들을 쓰기도 했고 그의 작품속에 반유대주의적인 경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세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에서 그리고 있는 유대인의 모습처럼 구체적이지는 않다.사실 바그너적인 유대인에 대한 편견은 당대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문제는 그의 음악이 나치선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에따라 나치침략의 가장 강력한 상징이 되었다는데 있다. 특히 30만명에 이르는 「죽음의 수용소」의 생존자들에게는 당시 수용소의 나팔스피커에서 울려퍼지던 바그너의 음악이 곧 「죽음의 전주곡」으로 깊숙이 각인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대인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잭 스턴과 이츠하크 펄먼,슐로모 민츠,그리고 수용소 생존자인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 부악장 데이비드 아번 등은 바그너의 음악으로 히틀러가 힘을 얻었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수많은 수용소 생존자들에게 바그너는 고통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의 연주는 불가능 하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처럼 이스라엘에서의 바그너연주를 반대하는 쪽의 의사가 대부분 관철되고 있다. 그러나 메타나 바렌보임과 같은 노력도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수용소 생존자의 한 사람인 클리블랜드오케스트라의 트럼펫주자 데이비드 조더,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펠츠만,지휘자 레온 보트스타인 등도 그런 쪽의 사람들이다. 그들의 주장은 음악은 그 자체로 미하적 도덕적 기준을 적용해야지 청중의 경험과 결부시켜서는 안 되며 바그너가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이스라엘에서 바그너 음악의 연주가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바그너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유대인들도 흥분이 아닌 이성을 갖고 이 문제를 대하자는 것이지 과거를 잊자거나 나치의 역사와 화해를 하자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처럼 관대한 쪽의 유대인들도 막상 텔아비브에서 바그너음악회가 열리면 대부분 외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의 주장은 이스라엘에서의 바그너연주를 억지로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고통의 상징인 바그너의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세계의 사회면)

    ◎스커드미사일 공포 음악으로 극복했다 걸프전이 진행되는 동안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이 텔아비브 시가지를 전선의 참호로 바꾸어 놓았다면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인들은 보병이랄 수 있다. 음악의 대가 주빈 메타휘하의 이스라엘 국립 오케스트라는 걸프전을 견디는 이스라엘식 대응방안의 상징이 되었다. 이라크의 마시일공격을 받으면서도 참전은 할 수 없는 입장이었던 이스라엘인들은 되도록 정상생활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썼다. 이러한 노력에 참여한 사람들중에 바이올리니스트·트럼펫 주자·지휘자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 공격은 주로 야간에 실시되기 때문에 공연은 금지됐고 오후 공연일정을 알리는 신문광고도 청중들에게 가스마스크를 휴대하도록 충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공연도중 공습경보가 울려 방공호로 대피할 경우에 대비해 청중규모는 수백명에 불과했다. 객석 3천석인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본공연장은 부속 대피시설을 손보는 동안은 폐쇄됐었으나 26일 재개됐다. 걸프전을 계기로 고전음악의 몇몇 거성들은 이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자발적인 연대감을 보여주었다. 이들 음악의 대가들중에는 아이작 스턴,예핌 브론프만,다니엘 바렌보임,이츠하크 펄만 등이 포함돼 있다. 역시 뉴욕 하모닉의 음악감독인 메타는 걸프개전초 뉴욕 필의 공연일정을 취소한 채 이스라엘로 돌아와 텔아비브시장과 함께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에 파괴된 현장을 돌아보기도 했다. 『음악은 다른 곳에서라면 공연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곳에서는 일상생활의 일부』라고 시카고 심포니 음악감독으로 지명된 바렌보임은 말한다. 아르헨티나에서 출생했지만 이스라엘에서 성장한 바렌보임은 이곳 사태가 긴장된 이 때야말로 바로 음악의 의미가 어느 때보다 크다고 덧붙였다. 지난 23일에는 소련태생의 미국인 바이올린 대가인 아이작 스턴의 공연도중 공습경보가 울렸다. 청중은 곧 휴대한 가스마스크를 썼고 오케스트라는 무대를 떠났다. 그러나 스턴은 다시 무대에 나타나 생동감있는 바흐곡을 솔로로 연주해 청중을 감동시켰다. 객석의 분위기가 매우 초조하고불확실해 보여 무대로 나아가 음악을 들려주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24일 뉴욕으로 돌아간 후 말했다. 지난 25일 기자회견을 가진 바렌보임은 가스마스크를 쓴 청중앞에서 연주하는 느낌이 어떠했느냐는 질문에 『그들이 귀를 막지않고 내가 연주를 하는한 문제는 없다』고 대답했다.
  • 백범 묘소 찾는 귀국동포/서동철 사회부기자(현장)

    ◎중국서 영주 귀국… 「그때」기억 생생히 『영구 귀국한뒤 세번째 참석하는 백범선생 추모제이지만 이번에는 아들과 함께 나오게 돼 더욱 뜻깊게 생각합니다』 26일상오 서울 효창공원에서 열린 백범 김구선생 41주기 추모예전에 참석한 유수송씨(53ㆍKBS교향악단 트럼펫주자)는 외아들 승남씨(25ㆍKBS교향악단 트럼펫부수석)를 추모제에 나온 백발이 성성한 노독립투사들에게 소개하기에 바빴다. 유씨의 부친 평파씨(지난47년 43세로 작고)는 중동임시정부의 경호대 대부(부장)이자 김구선생의 경호부관을 지냈다. 이 때문에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는 지난 88년2월 중국 상해에서 트럼펫 주자로 일하던 유씨를 한국에 초청했고 유씨는 귀국하자마자 영주 귀국을 신청,그해 6월23일 영주권을 받은뒤 부인 하유신씨(51ㆍ중국기공의사)까지 불러 KBS교향악단 주자로 일하며 고국생활을 시작했다. 유씨는 이때 아들 승남씨도 같이 불렀으나 당시 상해교향악단의 트럼펫 주자로 있던 승남씨는 『89년 일본순회연주를 마친뒤 귀국해 달라』는 악단측의 간절한 요청에 따라 지난해 10월 이 교향악단의 일본연주가 끝날 때까지 귀국을 늦춰야만 했다. 이 연주가 끝나자 바로 귀국한 승남씨는 아버지가 평단원으로 있는 KBS교향악단에 부수석으로 들어갔고 현재 우리나라 젊은 세대의 트럼펫 연주자로는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유씨에게는 김구선생이 「위대한 독립운동가」로보다는 「자상한 큰어른」으로 기억된다고 했다. 유씨는 『지난45년 중경임시정부의 주석이던 백범선생이 중경교외에 있던 우리집으로 자주 찾아와 어머니의 요리를 맛보고는 칭찬을 아끼지 않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백범선생은 당시 유씨의 어머니 송정헌씨(76)가 만든 만두와 국수를 특히 좋아해 자주 찾아 왔었다는 것이었다. 이날 추모식장에 나온 중경임시정부시절 백범선생의 비서 선우진씨(69ㆍ김구선생 추모사업협회이사)는 유씨를 만나자 『백범선생은 수행원들과 함께 유대부의 집을 자주 찾아가 음식을 들며 광복군의 입국항전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말하곤 했다』면서 『당시 겨우 국민학교 2∼3학년이던수송씨를 여기서 다시보니 마치 유대부를 다시보는 것 같다』고 반가워 했다. 이날 추모제에 처음 참석한 승남씨는 『여기에서 주위분들로부터 백범선생과 할아버지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으니 할아버지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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