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트럭
    2026-06-24
    검색기록 지우기
  • 평상
    2026-06-2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145
  • 병력 8만 복구 투입/유휴 중장비 총동원

    국방부는 26일 수해복구를 위해 육군3만6천명,해군8천5백명,공군5백명,예비군 3만8천7백명등 8만4천3백여명의 병력과 불도저·포클레인·덤프트럭등 각종 중장비 1백93대를 동원,수해지역에 투입했다.
  • 동상의 운명/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출입문은 탱크라도 저지할수 있을 만큼 견고하게 차단되어 있고 정문에는 초소가 있어서 철저한 검색끝에 사람들의 출입을 허가했다. 엄청나게 넓은 경내에는 옛날 귀족의 영지를 연상하게 하는 화원과 과수원·수영장들이 있고,그럴듯한 코너에마다 별장과 방갈로가 있고 간이 숙소가 있었다.본부 건물로부터 이들 별장이나 방갈로같은 부속건물들을 찾아가려면 꽃밭도 지나고 과수원도 지나 30분도 넘게 걸리는 곳도 있을 만큼 넓었다.호젓하고 아름답고 우아한,이런 별장에서 당의 높은 사람이나 그밖의 특권계층이 「휴양」을 하기 위해 짧게 혹은 길게 머물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곳이 소련의 우즈베크공화국 수도 타슈켄트의 교외에 있는 「내각 제1초대소」라는 숙소였다.이곳에서 며칠 묵게 되었을 때 겪은 일이 여러가지로 인상적이었다.사무실에는 컴퓨터나 팩시밀리는 커녕 복사기도 없었다.방끼리 연락하는 교환전화시설도 없었으므로 방번호와 전화번호를 적은 일행의 명단을 만들어 나누어 가지려다가 복사하는 방법이 없어서 포기해야만 했다. 당의고급간부나 연방중앙에서 여행오는 실력자들이 묵어가는 이 호젓하고 아름다운 숙소가 과학기재나 시설에 있어서는 이렇게 「후지다」는 일을 한국서 간 일행들은 이해하기 어려웠다.낙후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한심하게 여기기도 했다. 중앙아시아의 그 뜨거운 태양볕과 건조한 일기탓인지 그 도시의 거리에는 엄청나게 큰 멜론과 수박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시원하게 해서 먹으면 맛 또한 기막히게 좋았다.그러나 우리가 묵는 내각초대소인 숙소에서는 그 수박과 멜론을 주지 않았다.탱자만큼 작은 복숭아와 호두만한 살구,우리의 옛 능금같은 과일만 아침식탁에 오를뿐이었다.아마도 경내의 과수원에서 소출된 과일인 것같았다.우리는 따로 돈을 낼터인즉 그 소담한 수박과 멜론을 먹게 해달라고 주문했다.그러자 사무실에서는 즉각 『안된다!』는 회답이 왔다.이 초대소에는 아주 엄격한 「식품 검사관」이 상주하는데 그 수박이나 멜론은 「좋지 않은 농약과 비료를 사용했으므로 합격시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선 호출기를 가진 경비원이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면서도 사무실에 복사기 한대도 없는 내각 제1초대소에서 완벽하게 「오염안된 식품」만 먹으며 별천지같은 휴양을 즐기는 귀족스런 지도층이 있는 사회. 이 도시에서도 가장 흔한 것은 「레닌동상」이었다.정부청사 앞에도 있고,분수광장에도 있다.입상도 있고 흉상도 있고,릴리프도 있었다. 23일 소련의 발트연안 공화국인 리투아니아공화국에서는 군중들의 환호속에서 수도 빌나에 세워진 레닌동상이 철거되어 트럭에 실려갔다고 한다.같은날 또다른 발트공화국인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도 레닌 기념비가 「강력한 크레인」으로 철거되었다는 라디오방송이 BBC에 청취되었다고 한다. 목에 밧줄이 감긴채 쓰러져 던져져있는 레닌동상의 사진도 전해졌다.오랏줄에 묶인 그동상을 보며 문득 특별한 보호구역 안에서 「몸에 좋은 것만」골라 먹어가며 발전한 과학기계까지도 활용할 생각은 안하는채 이기적인 특권을 누리던 「공산당귀족」을 연상했다. 사회주의 종주국에서 살아오다 자유에 눈뜬 민중들에게는거리거리에마다 서있던 「레닌동상」이 그들 특권계층과 일치되어 비쳐왔는지도 모른다. 서양문화는 광장의 문화다.광장에서는 불꽃튀는 민의가 작렬하고,위인과 영웅의 동상들이 시대를 초월하여 함께 숨쉰다.그런 동상들은 오랏줄에 묶여 끌려다니는 운명과는 만나지 않는다. 레닌동상이 수모를 당하는 일이 발트연안 공화국에서만 그칠리는 없다.조만간 중앙아시아에서도,종당에는 러시아 민족국가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이미 러시아공화국에서 KGB 창설자의 동상이 같은 운명에 처해지지 않았는가.동구에서는 벌써 거쳐갔고. 「레닌동상」은 그래도 오래되고 멀어서 증오감이 덜할 수 있다.살아있는 우상의 거대한 동상과 흉상 석상들을 만개도 넘게 세우고 매일매일 그 앞에 경배하며 어린이의 고사리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갈고 닦도록 강요되어온 동상이 우리의 「북쪽」에는 있다.장차 이 동상의 운명은 어찌 될까.봉사가 강요된,그만큼이 한으로도 남고 증악로도 전환되는 것은 아닐까. 민중의 환호속에 질질 끌려다니는 「레닌」을 보며,유사한 장면이 자꾸만 연상되어 무겁고 우울한 느낌이 든다.
  • 어느 모스크비치의 「쿠데타3일」/다시 공산노예 될 수 없어 저항

    ◎정변소식에 신혼아내도 “청사 지켜라”/19일/자정 탱크 모스크바진입… 5명 희생/20일/8인 탈출방송… 「피플파워」에 만세합창/21일 러시아정부청사·의사당부근에 모여 사흘밤낮을 꼬박 새운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아니었다면,맨몸으로 쿠데타군의 탱크에 맞서다 죽어간 젊은 희생들이 없었다면 쿠데타세력이 이렇게 쉽게 물러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광고회사직원인 스타니슬라프 소로킨씨(25)도 이 자유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사흘밤을 꼬박 길거리에서 보낸 평범한 모스크바시민이다.그러나 그가 들려주는 지난 3일간의 이야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뜨거운 자유에의 염원을 담고있다. 쿠데타 세력들이 물러난 21일 밤에도 우리는 이들이 다시 공격해올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많은 사람들이 남아 공화국 청사를 지켰다. 쿠데타를 주도한 8명을 모두잡아 재판에 회부하기 전까지는 결코 마음을 놓을수가 없었다. 쿠데타소식은 19일 아침 라디오 뉴스를 듣고 알았다. 모든 라디오·TV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국가비상위의 포고문만되풀이해 내보냈다.그들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건강을 들먹였지만 나는 쿠데타라는 것을 직감했다.힘들게 쌓은 우리의 민주화 노력을 일시에 무산시키고 소련을 다시 암흑기로 되돌려 놓으려는 엄청난 범죄행위가 저질러진 것이다. 모스크바 시내에 탱크·군인들의 수가 계속 불어났다. 많은 개혁조치들이 중단됐고 19일 저녁에는 1백여명의 사기업대표들이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시민들이 모두 나서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범죄행위를 막을 수 있는 기구는 러시아공화국정부밖에 남아있지 않았다.그들이 곧 러시아정부인사들의 체포에 나설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우선 화이트 하우스(러시아정부 청사)를 지켜야겠다는 결론이 섰다.아내에게 이야기했더니 2년전 결혼한 아내도 내뜻을 기꺼이 이해해 주었다.곧바로 회사로 달려가 동료직원 10명과 함께 화이트 하우스로 갔다.벌써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가장 시급한 것이 바리케이드를 만드는 일이었다.일을 시작하기 전에 군데군데 모여서 회합을 갖고 1백명씩으로 소그룹을 만들었고 그룹마다 자연스럽게 1명의 대표를 선출했다. 약 30%는 여성들이었고 젊은이와 나이든 사람은 각각 절반씩 되는것 같았다.학생들이 가장 많았지만 국가기업체·공장·개인기업종사자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모두 동지가 됐다.. 한번 만든 바리케이드도 계속 보강시켜 나갔다.트롤리버스·트럭·일반버스·시멘트 보드등 주위에서 구할수 있는 모든 재료들이 동원됐다.일부 시민들은 청사주위를 어깨동무를 하고 둘러싸 인간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 21일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가 개최되고 쿠데타군이 물러나기까지 이탈자는 커녕 참여시민의 수는 갈수록 늘었다.모두들 밤을 꼬박 새우며 바리케이드 보강작업을 계속했다. 19일 상오에 반쿠데타를 선언한 다만스크 기갑사단소속 탱크 10대가 청사앞에 도착했다.쿠데타군에서 이탈한 1백여명의 장교들이 함께 일한것이 큰 도움이 됐다.이들은 바리케이드 만드는 방법,시가지 어느 지점을 막아야 할지등을 우리에게 일일이 알려줬다. 우리는 물론 무기를 갖지 않고 맨손으로 싸웠다. 20일밤 나는 사도바야가에 설치한바리케이드를 지키고 있었다.자정무렵 지하차도앞 바리케이드를 부수며 탱크 2대가 나타났다.탱크병들은 기관총을 쏘아댔으나 처음부터 우리를 직접 겨냥하지는 않았다.머리위로 총탄이 지나가고 몇사람이 다쳤다.탱크1대가 지하차도 출구쪽 바리케이드를 뚫지 못하고 멈추어 서자 누군가가 탱크에 화염병을 던졌다. 장교1명이 우리를 바로 겨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자리에서 5명이 총에 맞거나 탱크에 깔려죽었다.모두 젊은이들이었다. 21일 하오3시쯤 라디오 뉴스를 통해 우리는 모두 승리의 기쁨에 젖어 한동안 서로 부둥켜 안았다. 이제는 누구도 그런 범죄행위를 저지를 생각을 쉽게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이같은 자신감을 갖게됐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자랑스럽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6

    ◎“포플러나무 잘라라”… 폴 버년작전 발동/21일 새벽 특공대 60명 돌진… 전폭기 엄호/“만행응징” 한밤 펜타곤서 작전개시 재가/김일성 “유감”표명… 9월8일 경계태세 「데프콘4」로 완화 8·18만행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첫째는 군사적 행동 없이 정전위를 통한 강력한 항의,두번째는 즉각적인 군사보복,세번째는 상징적 경고행위등이 스틸웰사령관에게 보고되었다. 스틸웰사령관은 지하벙커의 월 룸으로 곧바로 와서 참모회의를 열어 작성중인 OPLAN(작전계획)을 점검했다.우선 정전위 차석대표인 마크 푸르덴 해군소장을 불러 다음날 소집키로한 정전위원회에서 자신이 북한의 김일성에게 보내는 강력한 항의서한을 전달토록 지시했다.한편 즉각적 군사보복은 3차대전으로의 확대위험이 있다는 판단하에 상징적 경고행위를 채택키로 했다.그 작전은 유엔사령부의 힘을 명백히 보여주는 동시에 경고를 주기에 충분한 것이어야 했으므로 장소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로 한정키로 했다. ○「상징적 경고」 채택 작전의 주요내용은 문제의 포플라나무를 베어버리는 것이었다.결국 그 나무가 미국 권위의 상징처럼 된 것이다.지난 8월초 유엔군이 처음 그 나무를 베려했을때 북한군의 공갈협박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그것이 바로 북한군에게 약점을 보였다는 판단에서였다.따라서 증강된 무력시위와 함께 공동경비구역 안에 들어가 그 나무를 당당하게 베어버림으로써 북한측에 심리적 위축을 주자는 것이었다. 다음날인 19일 아침 본토의 합동참모본부로부터 미군의 방어태세를 데프콘­3로 격상시키도록 지시가 하달됐다.이는 1953년 휴전협정조인 이래 처음 내려진 조치였다.30분후 한국 국방부장관도 한국군에 비상전투태세를 명령했다.잠시후부터 SR­71초음속정찰기들이 고공으로 발진,DMZ 상공을 가로지르며 북한군의 움직임을 24시간 감시하기 시작했다.또 나이키­허큘리스 장거리미사일도 적의 레이다를 향해 발사준비를 완료했다.RF­4D 정찰기와 와일드 워젤 방공억제기가 일본과 필리핀기지에서 이날 아침 발진,한반도의 오산 군산 대구기지에 도착했다.또 미아이다호의 마운틴 홈 공군기지에서는 핵을 장착한 F­111전략폭격기가 한반도를 향해 출발했다.이로써 북한과의 신경전이 개시됐다. 지상군은 미보병2사단과 한미1군단이 DMZ를 따라 전진배치를 끝냈으며 여러 구경의 재래식 포와 전술핵 미사일등이 발사준비를 완료하고 있었다.수많은 트럭이 병력을 싣고 전방으로 투입됐으며 수송헬기가 계속 전선으로 보급물자를 날랐다.이같은 움직임은 과거어느때도 볼 수없는 규모로 북한측에게 불안한 징조로 받아들여졌음이 틀림없었다. 사건발생 다음날인 8월19일 밤까지 우리는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전시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전의 이름은 폴 버년(PAULBUNYAN)으로 명명됐다.작전의 목적은 공동경비구역은 물론 DMZ지역 어디서나 미군지휘하에 있는 유엔군이 권리를 침해당했을 경우 반드시 행동으로 응징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작전내용은 포플라나무를 자르고 또 지난 65년부터 북한측이 공동경비구역내 도로상에 불법으로 설치해 놓은 2개의 차량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었다.작전개시일은 8월21일 토요일 상오7시 정각이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군과 조우하지 않고 신속하게 작전을 수행하고 철수하는 일이었다. ○남침땐 핵 사용 공동경비구역내에서의 실제작업은 빅토르 비에라중령이 이끄는 한미합동으로 편성된 2개소대 60명의 특공대가 맡기로 했다. 20일 새벽 펜타곤으로 보내진 이 작전에 대한 최종 재가는 작전개시를 7시간여 남겨놓은 그날밤 23시45분에 내려졌다. 다음날 새벽까지 나는 이번 작전에 동원된 모든 예하부대 지휘관들로부터 전투준비를 완료하고 출발선에 대기중이라는 보고를 받았다.결전의 시간을 앞두고 나는 월 룸 맨끝에 있는 빈방으로 가서 기도를 올렸다.이번 작전의 전쟁발생 가능성은 반반이었다.만일 전쟁으로 비화된다면 불과 한시간도 못돼 수십만명이 피로 물든 산과 들에서 싸우다 죽어야할 것이었다.북한군의 살인공격은 미국의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부를 것이고 이 대응이 또 북한의 침공으로 이어진다면 대량살상을 피할수는 없을 것이었다.사실 우리는 북한군이 서울을 향해 대규모 공격을 가해온다면 2차대전 이래 최초로 핵무기 사용을 요청할수 밖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상오6시48분.특공대병력을 실은 대형트럭들이 키티호크기지를 떠나 공동경비구역으로 출발했다.앞에는 미군 소령이 칸보이했다.공동경비구역의 남쪽 통로인 제2초소를 통과,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소령은 인접한 중립국감시위원회 막사로 갔다.그곳에는 스위스대표 클라우드 무브덴소장과 스웨덴대표 라게 베른스테드소장이 있었다.소령은 그들에게 나의 인사장을 내밀고 방금 시작될 우리의 작전을 설명하고 북측의 폴란드와 체코대표단에도 통보해주도록 요청했다.그러자 장군들은 이 계획을 사전에 자신들에게 통보하지 않은데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공격은 공동경비구역 안으로 특공대트럭이 요란하게 돌진하면서 시작됐다. ○북 경비병들 당황 동시에 20대의 병력수송 헬기가 12대의 AH­1G 코브라건십의 에스콧을 받으며 공동경비구역 남쪽에 엄호병력을 풀었다. 동시에 대전차 F­4팬텀기와 F­111 중거리 전략폭격기들이 발진했으며 서해쪽으로는 괌기지에서 B­52 수개편대가,또 동해상으로는 항공모함 미드웨이호에서 40여대의 전폭기가 발진해 무력시위를 벌였다. 특공대중 1개소대는 포플라나무를 둘러싸고 다른 1개소대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쪽으로 가 북한군의 진입로를 차단했다. 북한경비병들이 놀라 자기네 진영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우리 작업단은 신속하게 나무밑둥을 베어나갔고 다른 작업팀은 적들이 설치해 놓은 차량장애물 쪽으로가 그 구조물을 크레인으로 들어내고 있었다.이때 수십명의 북한경비병들이 달려왔으나 몽둥이와 곡괭이등으로 무장한 건장한 60여명의 경비병이 작업단을 호위하고 있었으며 중무장된 한국군 수색대가 공동경비구역 남쪽에 포진돼 있는등 엄청난 규모에 놀라는듯 했다. 10분쯤후 우리 작업단이 잘라낸 밑둥을 작게 잘라 트럭에 싣고 있을때 버스 한대와 트럭 2대 그리고 덜거덕거리는 동독제 고물 세단 한대로 편성된 북한경비대가 경비구역 안으로 들어왔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 앞에 멈추더니 AK­47소총으로 무장한 1백50명가량의 병사들이 차에서 내려 제방주위로 포진했다.그러나 그들은 계속 지켜보기만 할뿐 이렇다할 행동은취하지 않았다. 우리 작업단이 경비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철수를 시작한 것은 상오7시45분부터 였다.적의 기습을 우려해 조심스럽게 철수가 진행됐으며 모두 키티호크기지로 귀환한 것은 8시30분 이었다.유엔측 경비병들은 정위치로 돌아갔고 북한경비병들은 포플라나무로 와서 잘린 부분을 살펴보고 철거된 장애물들을 돌아봤다. 작전은 무사히 끝났으나 상오10시15분쯤 공동경비구역남쪽을 날며 작전의 마무리를 지휘하던 브래디장군의 헬기가 북한군의 자동화기 사격을 받았다. ○폭력책임 첫 시인 그러나 여섯대의 코브라헬기가 사격자세를 취하며 선회하자 그들의 사격은 멎었다.정오무렵까지 더이상의 총성이 들리지 않았으며 북한측이 정전위원회를 즉각 열자고 제의해 왔다.이 회의에서 북한군측 대표는 그들의 총사령관인 김일성의 메시지를 읽어내려갔다.그는 8·18사건을 「유감」으로 표시했으며 남북 양측이 이같은 불행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주장했다.이는 휴전협정이 조인된지 23년만에 북한이 부분적일 망정 DMZ내에서 폭력의 책임을 시인한 최초의 일이었다. 이후 수일 동안 위성사진에 따르면 북한이 계속 방어적 배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그들이 서서히 경계를 완화시키는 동안 미군은 그대로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9월8일 북한이 우리들의 요구를 사실상 모두 수용했을때 합동참모본부는 경계태세를 데프콘­3에서 데프콘­4로 완화시켰으며 미드웨이호는 동해를 떠났다. 폴 버년작전은 북한의 오만하고 필사적인 공산지도자들을 힘으로 다스린 예가됐다.김일성이 마침내 물러서게된 유일한 이유는 그가 직면한 위험상태를 우리가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미군은 동남아시아에서의 퇴각에도 불구하고 동맹국 한국에 대해서는 강력한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 소 시민들,탱크 올라가 거센 항의/긴박한 모스크바

    ◎이기동특파원 긴급 통화/쿠데타군전차 수십대,크렘린궁 완전포위/시위대,군트럭 공격… 공포 쏴 해산/“고르비 실각은 신연방조약이 원인”/일부시민은 “오히려 잘된 일” 담담한 표정 ○…19일 하오(현지시간) 현재 국방부건물을 비롯,크렘린궁 주변은 수십대의 탱크가 포진,반고르비 세력들이 사태를 거의 장악한 듯한 분위기이다. 구토자브스키가·고르키가등에서는 군장갑차들이 계속 크렘린궁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목격되고 있다. ○…고르비의 실각소식에 접한 모스크바 시민들은 『흘러간 옛노래가 다시 되풀이되고 있다』며 불안한 반응들이었다. 한시민은 『스탈린시대로 되돌아갈까 무섭다』고 말하며 허탈한 표정이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아침7시 첫 TV보도가 나온뒤 매시간 반복되는 TV·라디오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과학아카데미산하 동양학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이런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며 고르바초프가 아발킨·프리마코프같은 개혁인사들의 말만 믿고 보수파와의 관계에 소홀히 한것이 큰 실책이었다고 지적했다.○…타스통신의 추다데프기자는 보수파들이 거사를 결심하게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신연방조약 체결이라고 밝히고 이번 사태로 인해 발트해 3국의 독립운동은 물론 앞으로 연방공화국들의 주권은 크게 제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이곳 관측통들은 대통령직 대행에 임명된 야나예프는 전혀 실권이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이다음 어떤 인물이 부각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부에서는 야조프국방장관,크류치코프 KGB의장등 군부 당·보안책임자들로 당분간 집단지도체제가 유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고르비 실각보도가 나온뒤 하오 현재 모스크바의 TV채널 5개중 제1채널인 중앙TV만 되풀이해서 비상위원회의 발표문들을 내보내고 있을뿐 나머지 채널은 모두 방송을 중단했다. ○…고르비의 신상에 대해선 피격설등 갖가지 추측이 나돌고 있으나 소련남쪽 모처에서 휴양중이라는 공식보도가 있었을뿐 전혀 오리무중인 상태이다. ○…한 소련외교관은 군부·강경보수파들의 권력탈취가 분명한 이상 일부 공화국에서 공화국 군·경찰들과 연방군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가장 큰 우려를 표시했다. 한편 일부 모스크바 시민들은 고르비의 실각에 대해 『그가 지난 6년동안 우리에게 가져다 준게 하나도 없다』며 환영을 하기도. 일리나(40)라는 한 주부는 『구호가 아니라 앞으로 「진짜 개혁」을 할 새 지도자가 나타난다면 나쁠 것도 없다』며 자신은 고르비에 대해 희망을 버린지가 이미 오래라고 말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 고르바초프 축출에 저항하는 총파업을 촉구한 직후 십여대의 탱크들이 19일 옐친의 본부인 러시아공화국 의사당건물 앞에 포진했다고 목격자들이 말했다. 러시아공화국의 이반 실라예프 총리는 의사당 안에서 기자들에게 『우리는 기관총도 탱크도 없으나 러시아 국민들과 모스크바 시민들이 우리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옐친 대통령은 고르바초프와 지난 18일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었으며 고르바초프는 당시 기분좋은 상태로 건강도 양호했다고 말했다.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크림반도에 있는 그의 별장에 연금되어 있다고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 대통령의 공보관이 19일 밝혔다. 보리스 옐친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고르바초프대통령을 접촉하려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소련의 모든 TV와 라디오 방송국은 쿠데타 음모자들의 수중에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러시아공 정부와 국민들에게 쿠데타 음모자들에게 불복종할 것을 명령할 것이라며 우파에 의한 이번 쿠데타를 논의하기 위해 다른 공화국 지도자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의 소련군이 19일 러시아공화국 의사당건물 부근에서 성난 시위대가 차량에 탑승한 병사들을 공격하자 이들을 해산하기 위해 공포를 쏘았다고 목격자들이 밝혔다. 약 60명의 소련군 병사들은 이날 두대의 군용트럭에 분승,시위대들이 의사당건물 인근 모스크바강의 한 교량에 설치한 바리케이드를 뚫으려 돌진했으며 성난 시위대가 이들 트럭을 공격하자 적어도 1명이상의 병사가 권총을 빼들어 공포탄을 쏜 것으로 알려졌다. 사상자에 대한 보고는 없었다. ○…새로 정권을 장악한 소련의 우익지도부는 19일일부 전국지 신문들을 제외한 모든 출판물에 대해 발간금지를 명령하는 포고령을 내렸다.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이날 자유성향의 이즈베스티야지만 제외하고 모두 우익계인 9개 신문들에 대해서는 별도 통고가 있을 때까지 계속 발간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검은 베레」란 속칭으로 유명한 소련 내무부소속 폭동진압 특수부대 병력이 이날 리투아니아공화국의 수도 빌나시에 있는 전화국을 장악하고 국제통신망을 차단했다고 현지 언론인들이 말했다. 이들 병력은 2대의 장갑차에 나눠타고 전화국 건물내로 돌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렘린궁 밖 마네즈광장에서는 19일 정오(한국시간 하오6시)경 1천여명의 시위군중들이 탱크를 둘러싼채 일부 시위대들은 탱크위로 올라가는 등 탱크의 길을 봉쇄했다고 목격자들이 밝혔다. 이 시위는 민주러시아운동(DRM)이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실각에 항의하며 일으킨 것으로서 일단의 병력수송차량과 트럭이 광장을 통과하려하자 시위대들이 모여들어 이를 가로막았다. 경찰이나 보안군은 보이지 않았으며 시위대들은 계속 광장으로 모여들고 있다.
  • 수입경유차,첫 운행 중지

    ◎소음검사서 7종 불합격 판정 내려/환경처,개선 안될땐 수입불허 올들어 7월까지 우리나라에서 수입한 외국의 유명경유자동차 82종가운데 9%인 7종이 국내소음인증검사에 불합격돼 운행이 보류된 것으로 밝혀졌다. 불합격된 7종의 차량에 대해서는 한번더 인증검사기회를 주고 그래도 불합격판정을 받을 경우 수입이 전면 금지된다. 16일 환경처에 따르면 주식회사 대연콘크리트가 일본에서 들여온 콘크리트믹서트럭등 미쓰비시중공업제품 3대,한국항공이 미국 가지트사에서 들여온 항공기급유차 2대,독일 네오플랜사에서 대림산업등이 수입한 2층버스 2대가 국내소음허용기준을 초과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독일제품인 2층버스는 과천과 시청사이를 운행하게 하기위해 대림산업과 현대자동차가 각각 서울시에 기증한 것으로 이번 인증검사에서 불합격됨으로써 당초 서울시가 8월 중순으로 예정한 2층버스운행계획이 차질을 빚게됐다. 이 버스는 「가속주행소음검사」결과 소음도가 85.6㏈,86.3㏈로 각각 나타나 국내허용기준인 85㏈을 0.6∼1.3㏈정도 초과했다. 또 미쓰비시사제품인 콘크리트믹서트럭도 0.3∼1.1㏈을 각각 넘어섰으며 항공기급유차량도 2.4∼4㏈까지 소음도를 초과했다. 수입인증검사는 환경처가 국내에서 개발되거나 외국에서 수입하는 신규차종에 대해 시판이나 운행에 앞서 매연·소음기준등을 검사하는 것으로 기준에 불합격될 경우 수입이나 운행을 할 수 없게된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5

    ◎「도끼만행」은 월남전뒤 “미 의지 시험용”/운명의 날 8·18… 4분만에 미군 2명 살해/참모회의중 일보… 스틸웰장군에 “귀환 급전”/북측 병사 30여명,「가지치기 현장」 포위… “의도적 도전” 내가 다시 한국에 근무하게 된것은 1976년 봄 소장으로 주한유엔군사령부의 참모장을 맡게 되면서였다.이 직책은 주한미군 참모장과 미8군 부사령관등을 겸하며 또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의 수석대표도 맡았다.나는 대장이 된 스틸웰사령관과 다시 만나게 된것이 기뻤다. 7월1일 아내 메리와 함께 김포공항에 도착,용산 유엔군사령부까지 가는 동안 놀랍게 발전된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그러나 이도시의 불과 25마일 북방에 싸늘한 긴장이 감도는 DMZ(비무장지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때 한국은 평화롭다고만 할수 없었다. ○군 배치 공격형으로 그당시 판문점에는 긴장이 높아가고 있었다.75년 베트남전쟁이 끝난후 김일성은 군대의 현대화 및 증강에 박차를 가했으며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부대배치를 방어형에서 공격형으로 전환시켜 놓고 있었다.이 사실의 발견은 당시 정보활동의 개가로 평가되고 있다.베트남이 붕괴되기 전까지는 CIA나 DIA(미국방정보처)의 사진분석가들이 인도차이나에만 매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북한관련 정찰사진이나 위성사진들이 제대로 분석되지 않은채 그대로 쌓여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남북한이 비슷한 군사력을 보유한 것으로 판단된 70년도의 평가를 아직도 그대로 채택하고 있었다.미국은 그같은 정보판단하에 닉슨독트린의 일환으로 한국에서 갑자기 7사단을 철수시켰으며 북한은 72년부터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해 왔다. 그러나 74년 민간 정보분석가들에 의해 북한이 엄청난 양의 철강과 콘크리트를 생산,불명확한 군사목적에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다음해부터 북한의 군사적 능력과 의도에 관한 조사가 국가안전국 특수조사팀의 일원인 베트남참전 보병장교 출신 민간인 존 암스트롱에 의해 행해졌다. 14개월간의 연구끝에 그는 북한의 군사력이 70년의 평가보다 80%이상 증강됐고 대부분이 DMZ 부근에 전진배치돼 있음을 밝혀냈다. 이같은 북한군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유엔군사령부는 76년말 김일성이 남침배치를 완료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이는 복잡한 국내문제와 외채압박등 경제난으로 전쟁도발은 어려울 것이라는 CIA보고와는 정반대 견해였다. 남침용 땅굴이 처음 발견된 것은 74년 11월로 그후 연달아 발견된 땅굴들은 북한의 침략의도를 보다 명백히 해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특히 내가 부임하기 수개월전부터 북한군은 한국군 순찰대에 사격을 가해오고 부비트랩을 설치하는등 DMZ에서의 도발을 한층 강화시켜오고 있었다.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에서도 북한경비병들의 도발 횟수가 늘고 있었다.우리정보기관들은 이를 지난 50년전쟁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침략을 위한 구실로 삼으려는 것으로 평가했다. ○“새 침략구실 노린듯” 북한군들이 저지른 대표적인 잔악한 도발이 부임후 두달이 채못돼 8월18일 아침 판문점에서 발생했다.JSA에서 북쪽을 연결하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까이에 높이12m 가량의 무성한 포플러가 있었는데 유엔군측 경비초소의 시야를 가려 가지를 칠 필요가 있었다.이날 북측에 사전통보를 하고 10명의 경비병과 도끼 사다리 톱등 작업도구를 든 5명의 작업단이 2.5t트럭을 타고 현장으로 들어갔다.아더 보니파스대위와 마크 바레트중위가 그들을 인솔했으며 한국군 김문환대위는 통역장교로 동행했다.적에 의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20명의 신속대응군이 JSA 바로 안쪽 제2경비초소 옆에 배치돼 있었다. 상오 10시30분 작업단은 두개의 사다리를 나무에 걸쳐놓고 작업을 시작했다.5분정도 지난후 북측트럭 한대가 오더니 장교2명과 사병9병이 내렸다. 인솔자 박철중위는 JSA에 오래 근무했으며 성질이 고약하기로 이름나 있었다.박철이 자꾸 작업을 간섭하더니 20분쯤 후에는 보니파스에게 작업중지를 요청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작업은 계속됐다.이어 북측 경비병 10명이 트럭을 타고 추가로 왔으며 근처 경비초소에서 6명이 더와 모두 30여명의 북측병사들이 작업장일대를 포위한 형상이 되자 박은 가지 하나라도 더자르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해 왔다. 보니파스가 작업계속의사를다시 명확히 하는 순간 박이 『죽여!』라고 외치며 보니파스를 세게 걷어차 수로로 쓰러뜨렸다.이것을 신호로 북측병사들은 주머니에서 쇠파이프와 곤봉등을 꺼냈으며 작업중이던 도끼도 빼앗아 주로 장교와 하사관을 공격했다.보니파스는 수로바닥에 쓰러진채 발길질과 쇠파이프를 피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그때 한 북측병사가 도끼로 그의 머리를 내려 찍자 그자리에서 바로 죽고 말았다.바레트중위는 공격을 피해 트럭쪽으로 뛰었으나 뒤따라온 6명의 북한병사들에 의해 역시 도끼와 쇠파이프등으로 두들겨 맞아 피투성이가 된채 쓰러졌다.신속대응군이 도착했을때는 북한군은 이미 돌아오지 않는 다리 건너편으로 달아난 후였다.정확히 4분동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신속 대응 군 힘못써 키티호크기지의 당직장교로부터 전화보고를 받은 것은 참모회의 중이었다.나는 우선 사령부 지하벙커에 있는 「월 룸」(전쟁지휘소)으로 갔다.그러나 사령관 스틸웰대장은 일본자위대의 초청으로 교토를 방문중이었고 부사령관 존 번 공군중장은 월례 연습비행을 위해 서해쪽으로 출격중이었다.리처드 스나이더주한미대사도 업무협의차 워싱턴에 가있었다.또 한미1군단사령관 존 쿠시맨중장은 의정부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유엔군사령부의 최고 선임자였다. 몇분후 보다 상세한 보고가 올라왔다.보니파스대위와 바레트중위가 살해당했고 수명의 경비병이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었다.이것은 분명 우리가 예측하고 있던 공산당의 의도적 도발이 틀림없었다.나는 즉시 주한미공군사령관 돈 피트만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스틸웰장군 귀환을 위한 비행기 급파와 연습비행중인 번중장에게도 급거귀환 연락을 하도록 지시했다.그다음 의정부의 쿠시맨중장에게 판문점의 상황을 보고하고 전투준비태세를 위한 데프콘 등급을 의논했다. 데프콘은 가장 약한 상태인 5등급에서 1등급까지 있는데 한국에서는 보통때도 데프콘4 상태였다.그러나 이를 높이기 위해서는 명백한 군사적 움직임이 수반돼야하기 때문에 적의 공격적인 대응을 예상해야했다.마침 스틸웰장군과 통화가 되어 그문제를 상의했다.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이번 사태에 대한우리의 대응은 보다 확고해야했다.분명히 북한측이 우리를 테스트하려 할것이기 때문이었다.또 그해는 선거의 해로 조지아주지사 지미 카터가 베트남전의 실패로 궁지에 몰린 제리 포드대통령에게 강력히 도전하고 있었다. 북한은 포드가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리라는 계산에서 도박을 걸어온 것이었다.앞으로 48시간내에 한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새로운 도발에 대해 전쟁을 개시하느냐,그대로 주저앉느냐를 선택해야 했다. 『좋소』 마침내 사령관의 대답이 떨어졌다.『당신이 펜타곤과 한국군측 그리고 우방국에 상세히 상황을 설명하시오. 정전위원회를 내일 열도록 요청하고 모든 부대는 데프콘3에 대비,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전부대원이 영내대기토록 하시오』 즉시 참모회의를 소집,우리의 대응계획인 OPLAN 작성에 바쁠때 서울의 미대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마침 이날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린 비동맹회의 기조연설에서 북한측대표 김정일이 이날 아침의 사건을 미군장교들의 인솔하에 저질러진 북한군에 대한 이유없는 공격이라고 설명하고 비동맹회의가 미국의 행위를 비난하는 동시에 유엔사령부의 해체와 한국으로부터 미군의 철수를 주장,쿠바의 열렬한 지지로 이 결의안이 통과됐다는 것이었다. 이날밤 김포공항에 도착한 스틸웰사령관에게 나는 세가지 대응책을 보고했다.
  • 「8·15경축사」 대북제의에 담긴 뜻

    ◎“유엔시대”… 남북협력의 지표 제시/“어떤 문제든 협의”는 개방유도 포석/자본 기술·노동력 결합,합작여지 커 노태우대통령의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는 두가지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남북관계에 대한 「의지」이며 또하나는 현대사에 대한 올바른 조명을 강조한 점이다. 남북관계에 관한 메시지는 ▲정치·군사분야를 포함한 모든 문제를 「제한없이」 북한과 협의 ▲북한지역에 합작공장건설 ▲관광·지하자원의 공동개발 ▲남북의 제3국 공동진출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함께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서는 통신·통행·통상등 「3통협정」의 체결,남북한관계 기본합의서 채택등이 필요하다는 기존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남북관계에 대한 경축사내용은 그동안 정부 각부처 등에서 산발적으로 제시해온것이긴 하지만 이번에 대통령이 종합적으로 언급했고 이번 경축사가 9월 남북한유엔동시가입 및 대통령의 유엔연설을 앞두고 이뤄졌다는 시기면에서 매우 주목된다. 우선 정치·군사문제할것없이 무제한적으로 협의하겠다는 것은유엔동시가입을 계기로 남북한관계개선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노대통령의 구상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무제한적 협의」는 북한이 제의하고 있는 불가침선언과 한반도 비핵지대화문제도 남북이 주도적으로 협의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특히 노대통령이 지난달 12일 민주평통 제5기 출범식에서 『현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실효성있는 불가침선언채택을 북측과 협의하겠다』고 밝힌 대목과 연관지어볼때 더욱 그러하다. 그동안 우리는 「선교류·신뢰구축 후정치·군사논의」입장이었다면 북측은 「선불가침선언채택」이었다. 따라서 노대통령의 이번 남북관계언급은 오는 27일 평양에서 열릴 남북고위급회담에 이어 9월 유엔동시가입을 계기로 북측의 요구를 대폭 수용,차제에 북한을 본격적으로 개방시키겠다는 방침의 일단을 보인것이라 할 수 있다. 가령 남북총리회담을 통해 3통협정,남북관계기본합의서및 불가침합의서의 일괄타결을 제의함으로써 남북관계개선에 있어 「선후문제」를 뛰어넘을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 특정지역에 합작공장을 건설하는 문제는 이미 업계차원에서 타당성 조사를 해온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중·소접경지역에 우리측이 자본과 기술을,북측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소비재공장을 세우는 방안에서부터 트럭등 차량의 합작생산,섬유·봉제공장합작건설,전자부품합작생산,어선합작건조 등도 가능할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관광·지하자원 공동개발은 이미 지난 89년1월 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의 북한방문당시 김강산관광개발을 합의한 사실도 있어 그 전망은 상당히 밝으며 무연탄이나 아연 등의 공동개발도 남북한 상호간에 큰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것으로 기대된다. 남북한의 제3국 공동진출분야도 가령 시베리아지역의 벌목등 산림자원개발,이미 남북한이 각기 진출한 경험이 있는 리비아등 중동지역의 건설진출등에 충분히 적용될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의 이같은 남북한간의 경제협력에 관한 준비태세언급은 결코 형식적인 얘기가 아니며 남북관계진전에 따라서는 당장이라도 실천에 옮겨질수 있는 실질적 내용들이다. 노대통령은 경축사 뒷부분에서 지속적인 경제발전,갈등·불안을 조장하는 정치가 아닌 문제를 해결하는 창조적인 정치를 강조한후 현대사의 올바른 조명을 강조하고있다. 정치적 변동이 있을때마다 과거를 송두리째 부정해옴으로써 우리의 현대사가 모조리 조각이 난 단절의 역사가 됐다는 인식이다. 우리가 민주공화국을 선포한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했다고 밝힌 대목은 통일을 지향하면서 정통성이 우리에게 있음을 강조한것이라고 할수있다. 또 역사의 단절이 잘못됐다고 지적한 언급의 행간에는 5공과 6공의 무조건 단절은 안된다는 뜻도 함축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노대통령의 남북관계 언급은 곧 있을 남북고위급회담과 9월24일 자신의 유엔총회연설을 통해 더욱 구체화될것으로 전망된다. 노대통령도 지적했듯이 남북한의 유엔가입은 「평화와 자주통일의 시대」를 여는 출발점이 될것이기때문에 이번에 밝힌 남북한 모든 현안의 무제한적 협의태세천명은 금세기안에 통일을 실현시키겠다는 다른표현의 강력한 메시지라고도 볼 수 있다.
  • “화해시대”… 세계군수산업 사양길

    ◎미·영·불 등서 신병기개발 잇단 취소/작년 재래식무기거래 35% 격감 한때 로켓발사기를 생산했던 체코의 무기생산공장은 지금 포크리프트 트럭을 만들어내고 있고 영국의 한 군수산업체는 첨단무기용으로 만들던 감지장치를 환경보호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스웨덴의 거대한 군수산업체는 인력을 최소한 24% 감축할 계획이며 아르헨티나는 미사일개발계획을 취소했다. 냉전시대의 종언은 이처럼 세계군수산업을 위축시키고 있다. 지난 수십년동안 늘기만 했던 세계의 국방예산은 4년째 내리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1990년 세계국방예산 총규모는 9천5백억달러로 25년전에 비하면 70%가 늘어난 상태이다. 스톡홀름 소재 세계평화연구소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 세계의 재래식무기거래는 2백17억달러로 35%가 줄었다.세계군비지출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과 소련은 무기구입이 각각 6%와 10% 감소했다. 미국·소련과 서유럽의 경우 군비지출이 금년에 5%정도 줄고 1995년에는 15∼30%축소될 것으로 전망한 이 보고서는 『미국의 거대한 군수산업은근본적인 기구축소와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 급속히 빠져들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의 주요 무기수입국으로 1985년부터 5년동안 1백74억달러 상당의 무기를 수입했던 인도는 1990년에는 무기수입이 15억달러에 불과했다.반면 일본의 군비지출은 1981년의 2백6억달러에서 1990년의 3백5억달러로 꾸준히 늘고 있으며 앞으로 3년동안 이러한 증가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세계국가들은 전반적으로 새 무기개발계획을 폐기하거나 개발비용이 덜한 무기로 대체하고 있다. 미국은 A­12어벤저 전투기개발계획을 취소했고 영국은 새 핵잠수함건조를 포기하는 대신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잠수함 트라팔가호의 능력을 개선하기로 했다.프랑스는 50억달러의 이동식 핵미사일계획을 취소했고 아르헨티나는 7년전에 시작한 콘도르­2 중거리 로켓개발을 중단했다. 군수산업위축의 결과로 서유럽의 경우 1백50만 군수산업체 인력중 1987년 이후모두 1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1995년까지 적어도 30만명의 실직자가 더 생겨날 것으로 예상된다. 소련은 1990년에 군수산업체 인력 4백25만명중 50만명이 줄었다.소련은 4백22개군수공장을 1995년까지 민수용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세계3위의 무기수출국인 중국도 일부 군수산업체를 민수용으로 바꾸고 있다.그러나 이란·사우디·파키스탄·이라크·태국·북한 등에 아직도 무기를 팔고 있다.
  • 「가공출하」 1호/연천 청산농협

    ◎직접 재배한 농작물로 김치등 생산/서울등 8개 직판장서 큰 인기/미·일에 수출… “UR파고 겁안나” 현대식으로 아담하게 지어진 하얀건물안 1백여평 크기의 작업장에서 위생복을 단정하게 입은 50여명의 부녀자들이 바쁜 일손을 움직이고 있다. 작업장 밖 한쪽에선 방금 4.5t 트럭에 실려온 싱싱한 배추를 내려 다듬고 공장안에선 배추김치를 정성스럽게 버무리고 있는 모습이 마냥 평화스럽기만 하다.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에 있는 청산 김치가공공장이다. 이곳에서는 청산군 농민들이 재배한 배추와 무·오이 등 농산물을 가공생산,농가소득을 높일 뿐만 아니라 선진농촌으로 가는 가교역할을 해내고 있다. 청산면의 12개리 농가 6백7가구 가운데 5백77가구가 조합원인 이곳 청산농협농민들은 지난 78년부터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조합원 협동출하반」을 운영,합리적이고 계획적인 농사방법으로 꾸준히 소득향상을 이뤄오고 있다. 농민들이 재배한 배추와 무 고추 오이 등 주요 농작물은 농협의 출하조절계획에 따라 청산농협이 지난 3월부터 가동하고 있는 청산김치공장으로 전량 출하돼 고부가가치를 창출함으로써 그 수익이 농민에게 되돌아가고 있다. 청산농협은 농산물 가격이 급격히 떨어졌던 지난83년 출하조절사업을 시작,84년부터 3년동안 농민들로부터 출하받은 오이 가운데 30%의 분량을 가공출하했다. 그결과 농가 1가구에 오이 한접에 1천4백∼1천6백원씩의 이익을 더 얻게해줬다. 이같은 실험결과에 착안한 청산농협은 지난 89년 농수산부로부터 「김치류·절임류 전통식품 시범사업」으로 지정받은데 힘입어 농민들이 생산하는 농작물 전량을 출하받아 가공생산·판매하기 위한 청산김치공장을 착공,8개월만인 지난 3월29일 완공하기에 이르렀다. 김치류와 절임류 등 하루 15t씩 연간 5천4백t의 생산능력를 갖춘 이 김치공장은 가동 5개월째에 접어든 현재까지 7백99t을 생산,이 가운데 절임류 29t은 이미 미국 로스엔젤레스 등 교민사회에 수출하기로 했다. 청산농협이 운영하고 있는 이 김치공장은 남자 20명과 여자 69명등 모두 89명이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생산직 사원은 1백% 조합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생산직 조합원들은 기본급 26만원과 상여금 등을 포함,한달 40여만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특히 생산직 여조합원 67명의 남편들은 농사를 계속 짓고 있어 소득증가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청산농협은 현재 서울의 7곳등 전국 8개 직판장에서 가공식품을 판매하고 있으나 지난7월 일본 요코하마의 대진상사와 48만5천6백엔어치의 신용장을 개설,오는 27일 첫 선적할 예정이기도 하다. 이곳 김치공장 여종업원 박영숙씨(41·연천군 차탄2리)는 『남편은 집에서 배추와 고추·참깨 등을 직접 재배하고 있다』면서 『공장에 처음 취직했을 때는 남편이 불편하다고 투덜대기도 했으나 이제는 소득을 더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적극 호응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청산농협 서승구상무(47)는 『농협의 마지막 보루인 가공사업에 과감히 손 댄 것이 농민들의 수입을 높여주는 것으로 직결됐다』면서 『3년전부터 유기질비료를 농작물에 주어 내년부터는 저공해 가공식품 생산에 들어가 부가가치를 더 높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4

    ◎중공군 대공세… 해리고지 3차례 사수/술주정뱅이 연대장과 불화로 지휘권 뺏겨/전선 교착되자 미 병사들 귀국날만 기다려 「철의 삼각지대」로 불리는 철원 부근의 MLR(MainLineofResistance:유엔사령부 주저항선)에 배치된 15연대 2대대의 대대장 명령을 받은 것은 52년 12월말이었다.정보계통에만 근무해 평소 보병대대장을 원했던 나로서는 매우 만족했으며 의욕에 가득차 있었다. 연대는 중부전선을 맡고 있던 미9군단 산하 3사단에 속해 있었고 대대는 9백여명의 병력으로 완전편성돼 있었다.판문점에서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졌으며 이때문에 대부분의 병사들은 전투의욕을 잃은채 고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이는 미국방부가 실시한 순환근무제의 영향 때문으로 MLR근무의 경우 보병은 한달근무에 4점,포병과 기갑은 3점을 주는데 그 점수가 36점이 되면,즉 9∼12개월만 무사히 넘기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첫 대대야간훈련을 실시한 것은 부임 3주후였다.밤새 실시된 이 훈련은 실제 야포와 박격포의 사격지원을 받으며 산악에서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큰 사고없이 치러졌다.다만 빙판에서 내 오른쪽 발목이 부러진 것이 사고였다.이동외과병원까지 후송됐으나 깁스만 하고 치료도 끝나기 전에 대대로 돌아와버려 상당기간 애를 먹었으며 병원일지에는 「탈영」으로 기록됐다. 그로부터 2주후 연대는 25사단 35연대와 교대,다시 전선을 맡게됐다.우리 대대는 동쪽으로 배치됐는데 전선을 시찰해보니 벙커보수는 물론 교통호 개수,철조망및 지뢰지대 설치등 손을 봐야할 곳이 너무 많았다.더욱이 MLR에서 동북방으로 2㎞쯤 떨어진 전초진지인 해리포스트가 문제였다. 전선 왼쪽에는 이지중대,오른쪽에는 폭스중대를,중앙의 해리포스트에는 조지중대를 배치한후 각중대에 공병팀을 배속시켜 대대적인 진지보수작업을 펴게했다.건너편의 중공군 진지에서도 부대가 바뀐 것을 눈치챘는지 사흘밤을 82㎜와 1백20㎜ 박격포로 신고를 해왔다.진지를 견고하게 구축하기 위한 많은 자재들의 수송작업은 한국인 근무지원단이 전적으로 맡았는데 사격위험을 무릅쓰고 추위에 험한산길을 무거운 짐을 지고 용감하게 일했다. 그러나 며칠후 나는 해리포스트에 갔다 오던중 길아래로 굴러떨어진 보급트럭을 발견하고 내려갔다가 적의 포격을 받고 오른쪽 팔꿈치에 부상을 입어 다시 후송되는 신세가 됐다. 적과의 큰 교전없이 진지강화에 힘을 쏟고 있는 동안 3월중순 스틸웰연대장이 1군단으로 전출되고 러셀 F 에이커대령이 새로 부임했다.그는 술주정뱅이였다.점심부터 마시기 시작하면 보통 밤까지 계속됐다.나도 술은 좋아했지만 전선에서 술만큼은 치명적이라고 생각,대대로 나오는 맥주 쿼터도 모두 유보시킬만큼 엄격했기 때문에 그와는 부임후 첫회식 때부터 충돌이 일어났다.그는 직접 마티니 칵테일을 만들어서 권했다.커피를 마시겠다고 우겼더니 나중에는 욕을 하며 『명령』이라면서 내밀었다.나는 끝내 마시지 않고 나와버렸다. 첫공세는 4월2일밤 개시됐다.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처음에는 60㎜ 박격포 몇발이 해리포스트 위에 떨어지더니 이내 82㎜,1백20㎜ 박격포 세례가 퍼부어졌다.잠시후 천둥소리처럼 큰소리가 나더니 적의 포병사격도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해리포스트는 화산이 폭발하는것 같았다.이따금 섬광에 적 보병부대들이 해리포스트의 등성이로 기어올라가는 것이 보였다.지상공격도 시작된 것이었다.우리 포병의 응사도 곧 개시됐다. 그러나 적들은 주도면밀하게 공격을 가해왔으며 해리포스트는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으나 대대본부와의 연결통로가 적에 점거된 상태여서 자칫 포위되기 직전의 상태였다.예비대의 반격을 개시할 시점이었다.오른편 전선을 맡고 있는 폭스중대쪽의 능선을 타고 해리포스트의 우측 적을 섬멸시키는 작전을 전개했다.폭스중대와 포병의 엄호사격이 가해지는 가운데 본부예비대를 내가 직접 지휘했다. 해리포스트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얼마동안 교통호를 따라가다 개활지를 건너야 하는 아주 위험한 이동이었다.적들은 이 반격을 기다렸다는 듯이 교통호를 향해 집중사격을 가해왔다.내가 먼저 개활지의 한쪽으로 올라서 쏜살같이 건너갔다.모두들 아직 교통호속에 올라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해리포스트 남쪽 통로를 점령하고 있던 적들과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해리포스트를 빼앗기느냐 마느냐의 처절한 싸움이었다.치열한 포성이 멎고 우리 예비대가 해리포스트 위에 올라선 것은 동녘이 밝아올 때였다.우리측 사망자는 9명,부상 21명이었으며 우리가 거둔 중공군 시체만 50구에 달했다. 이틀후 나와 애킨슨중위등 17명은 사단장 스마이드소장으로부터 이날의 공으로 은성무공훈장 등을 수여받았다. 중공군들은 끈질기게 공세를 감행,20여일후인 4월24일밤 2차공세가 있었고 또 5월10일밤에는 3차공세를 가해왔지만 해리포스트는 끝까지 사수했다.그러나 나는 3차공세를 잘 막아낸후 에이커연대장과의 불화로 그에 의해 대대장직을 박탈당했다.
  • 상용차시장/삼성,본격적 재시동… 업계 “비상”

    ◎빠르면 새달 일 닛산사 기술도입 신청/삼성중/“진출 허용땐 큰 타격”… 공동대응책 모색/기존 5사 삼성그룹의 해묵은 꿈인 자동차산업진출은 과연 실현될 것인가. 정부가 지난해 8월 삼성중공업의 상용차생산참여를 불허한 지 만1년이 지난 가운데 삼성중공업을 비롯,한라중공업,세일중공업(구 통일)등이 잇따라 정부에 상용차기술도입신고서를 제출할 것으로 알려져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 기아 대우 쌍용 아세아자동차등 기존 자동차업체들은 삼성등의 상용차사업 신규참여를 저지하기 위해 공동대응방안을 모색하는 등 상용차사업 신규참여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금 재연될 조짐이다. 국내 재벌급 기업들이 자동차산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것은 기계공업의 총아인 자동차생산이 부가가치가 높고 전후 연관산업에 미치는 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자동차 1대의 생산에 들어가는 부품만도 2만개나 돼 자동차생산은 곧 관련산업을 폭넓게 장악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2000년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자동차산업에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재벌그룹간에 상식처럼 돼있다. 특히 지난 89년 6월말로 자동차산업합리화기간이 끝나 누구라도 자동차산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정부가 과거처럼 업계에 대해 간섭할 수도 없도록 돼 있다. 삼성이 진출하려는 사업분야는 현단계에서 11t이상의 대형 상용차분야이다.상용차는 승용차와는 달리 수입규제를 전혀 받지 않는 품목인데다 경쟁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수출도 가능하기 때문에 내수에 치중하고 있는 현 업계판도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게 삼성측 주장이다. 그러나 기존업계의 반발은 매우 크다.지난해 대형트럭 및 특장차의 주문적체현상이 심각했으나 이는 주요 자동차 부품업계의 노사분규로 인한 부품공급차질과 이상 과열된 건설경기에 따른 비정상적인 수요급증에서 비롯됐고 올들어 신도시부실공사파문이후 건설경기가 진정되면서 그동안 주문적체 현상을 보이던 덤프트럭의 재고가 급증하고 있는 점을 들어 삼성의 신규참여는 부당하다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과 기존 자동차업계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보다 중요한 이유는 삼성의 승용차진출문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기존 업계와의 싸움에서 「판정패」한 삼성은 올10월이후 상용차사업 참여문제를 재론키로 한 정부방침에 따라 오는 9∼10월중 일본닛산사로부터의 기술도입신청서를 다시 상공부에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하고 있다. 이에따라 상공부의 기술도입신청 허용여부가 매우 주목되고 있다.상공부측은 상용차사업신규 참여 허용과 관련,『지난해 문제가 됐던 상용차수급불균형 해소여부,국내 자동차산업의 장기적인 발전에의 영향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해 결정하겠다』고 원론적인 방침만을 밝혔다. 지난해 삼성이 기술도입신고서를 제출한후 상공부는 허용의사를 밝혔다가 뒤늦게 기존업계의 상용차생산능력을 조사하기 위해 실사반을 구성,각 업체를 순방한뒤 불허결정을 내리는등 정책결정상의 혼선을 빚었다. 기존 업체들은 올해도 「삼성자동차」의 출현을 경계하며 자동차5사의 공동전선을 구축할 움직임을 늦추지 않고있다. 따라서 상용차사업신규허용여부를 놓고 앞으로 재벌의 업종전문화,상용차과잉생산과 장기적인 자동차산업육성등과 관련해 뜨거운 화제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
  • 교통경찰 윤화 조사중 역사/부산시경 김영록경장

    4일 상오 2시15분쯤 경남 울산군 두서면 미호리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서울기점 375.1㎞ 지점에서 교통사고 현장을 조사하던 부산시경 고속도로 순찰대원소속 김영록경장(41)과 한국도로공사 부산지사직원 이상웅씨(25)가 부산1노6492호 엑셀승용차(운전자 윤명호·36·경북 포항시 유흥2동 금산아파트 가동 202호)에 치여 숨졌다. 사고는 부산에서 서울쪽으로 달리던 엑셀승용차가 사고지점 2백m 전방에 안전표지판을 설치하고 충북7아1838호 11t 화물트럭(운전사 김종철·31)의 사고경위를 조사하던 김경장등을 미처 알아보지 못해 일어났다. 김경장은 이날 상오 1시45분쯤 사고신고를 받고 동료 박경식경장(35)과 함께 출동,현장에 흩어진 석재를 밖으로 옮기다 변을 당했다.
  • 고개드는 「신세대 핵」 경쟁론/「전략무기감축」 일단락

    ◎“고성능화로 수량제한 극복” 주장 대두/미·소,극 초단파 무기등 개발 추진 미소 정상회담에서 체결된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은 두나라가 현재 보유중인 전략핵무기들을 감축하도록 요구하고있으나 이보다 훨씬 위험한 신세대무기들의 연구 개발을 중단시키지는 못할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무기연구가들은 만약 보유할수 있는 핵무기의 수량이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축소되어야한다면 남아있는 무기의 성능은 더욱 우수해져야한다고 주장하고있다.즉 남아있는 무기들은 더욱 강력하고 사용하기 용이하고,적의 레이다를 더욱잘 피할수 있는 형태로 발전되어야한다고 이들은 주장하고있다. 미래 무기 개발을 위한 미소과학자들의 의욕은 양국간의 화해 분위기 확대와 예산상의 압력 증가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약화되지 않고 있다. 소련의 신무기 개발 계획을 추적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미국의 전문가들은 소련 과학자들 역시 「제3세대 핵무기」개발을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이 현재 개발중인 신세대무기들은 다음과 같다. ▲지하침투무기(EPW)=항공기,크루즈 미사일,탄도미사일에서 발사되는 이 핵탄두는 땅을 뚫고들어가 지하에서 폭발한다.당초의 개념은 소련 지도부의 지하 벙커를 파괴한다는 것이었으나 현재는 지하의 미사일 격납고 혹은 얼음바다밑의 잠수함을 파괴하기위해 개발되고있다.현재까지의 실험 결과 EPW는 지하 4m까지 파고 들어가 폭발하는 능력을 보여주고있다. ▲유도재돌입미사일(MARVS)=탄두에 장치된 유도 시스템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재돌입을 정확히 지시,중력에 의해 떨어지는 것보다 훨씬 정확히 목표물을 명중시킬수 있다.실험은 초기 단계. ▲극초단파(마이크로 웨이브)무기=제3세대 핵무기.수소폭탄의 폭발 에너지를 한 초점으로 집중,목표를 파괴.피해를 특정지역에만 국한하는 장점을 갖는다. ▲핵산탄총=핵탄두를 산탄총처럼 발사.진짜 탄두와 레이다 교란용 물체를 구별하기위해 우주에서 사용. ▲소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별명 미지트맨.트럭위에서 발사할수 있는 이동식 초소형 대륙간탄도미사일.현재의 미니트맨3을 퇴역시키는 결정이 내려지지않는한 미지트맨의 배치는 97년 이후로 미뤄질것으로 보인다. ▲X레이 레이저무기=우주에 배치,적의 탄도 미사일을 공격하기위해 개발되었다.92년 혹은 93년 한 차례의 실험이 계획되어있으나 지난 72년 미소간의 ABM조약으로 우주배치공격용무기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실험이후 배치는 유보된다. 한편 소련도 X레이 레이저무기를 연구중이라고 미국의 군축협회 매트 분은 주장하고있다.그러나 소련의 스텔드(레이다 회피 무기)기술은 미국에 비해 5∼6년 뒤져있다고 그는 말했다. 소련의 무기 개발을 추적하고있는 다른 전문가들은 소련이 현재의 SS­24와 SS­25를 토대로 새로운 탄도미사일을 개발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80년 초 이래 소련은 잠수함이나 항공기에서 발사하는 초음속 크루즈 미사일을 개발중이라고 군축협회의 다른 전문가인 던바 록우드는 말했다.
  • 트럭서 폐기물 유출/버스등 11중 추돌

    2일 하오11시쯤 서울 구로구 구로동 고척교아래 서부간선도로에서 M개발회사 소속 경기7도7967호 11t트럭(운전자 장재두·27)이 싣고 가던 윤활성 일반산업폐기물이 하중을 못이기고 도로위에 흘러내리는 바람에 뒤따라오던 코오롱관광소속 서울5바 1996호 대형 관광버스(운전사 정경택·49)등 차량 11대가 추돌하는 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추돌한 대형버스 2대가 길을 가로막고 서는 바람에 이일대 교통이 2시간이상 막혀 성산대교쪽 통행이 중단됐다.
  • 「전시접수국 협정」가조인의 함축/유사시 한·미 역할 구조적 조정

    ◎전시 탄약·차량등 광범위한 군수지원/평시엔 도상훈련만… 큰 비용 안들어/“미군의 즉각적 자동개입 조항 미흡”지적도 전시접수국지원협정(WarTimeHostNationSupport)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경우 미본토나 해외기지에서 신속히 전개될 미증원군이 한국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군수와 병참지원을 제공토록 규정하고 있는 조약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전쟁이 일어난 당사국에서는 우방으로부터 유사시 전개될 시차별부대전개목록을 받아 그 부대와 병력규모에 맞는 항만·도로·비행장 등 각종 시설과 유류·탄약·식품 등 전쟁물자,트럭·비행기·함정 등 수송수단과 노무지원 등에 대한 군수계획을 세워 전쟁에 대비한 양국간의 군사협정이다. 미국은 지난 85년5월 제17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이 협정의 체결을 제의했으며 87년5월 양국방장관 사이에 양해각서가 체결된후 지난해 11월 제22차 SCM에서 가능하면 빠른시일 안에 본협정을 체결한다는 일정에 합의했었다. 미국은 80년대초부터 벨기에·서독 등 나토회원 10개 국가와 이협정을 체결,유사시 전쟁자동개입과 즉시 증원군 파견의 의무를 갖고 접수국에서는 병참·수송·장비·보급 등 군수조달을 책임지도록 했다. 미국은 2차대전 직후부터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해도 전세계의 GNP중 약50%를 차지하는 막강한 경제력을 갖고 있어 전쟁이 일어나면 병력은 물론 장비·탄약·식량·유류까지 자국에서 동원해 전쟁을 했으나 현재는 경제력이 약화되어 대군을 유지할 수 없어 해외주둔병력을 감군하는 추세에 있다. 한국은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에 따른 안보상의 이유로,미국은 지상군이 감축된다고 해도 유사시 증원될 증원군의 작전을 보장하고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동아시아전략계회(EASI)의 하나로 이 협정체결의 필요성을 느껴왔다. 한국은 50년 6·25이후 안보·국방면에서 미국의 무상군원을 받으며 의존해왔으나 80년대 후반 이후 국력의 신장과 경제발전으로 국제적지위가 점차 향상되어감에 따라 이에 상응하는 방위비를 분담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주한미군의 역할도 주도적위치에서 보조적위치로 재조정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상 미국의 대한안보공약을 유지하면서 한반도유사시 미증원군의 파견을 용이하게하고 증원부대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배치를 가능케 함으로써 안보능력을 높이기 위해 이 협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국방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지난번 걸프전쟁에서 입증된 것처럼 현대전은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수송해야 하는 군수전쟁이어서 군수물자와 수송수단,병참기지의 확보가 보장되어야 한다. 더욱이 한국은 전선에서 후방사이의 거리가 짧아 조기경보시간이 극히 제한적이며 미증원군이 본토나 태평양지역에서 전개된다고 해도 10∼20일이 걸리는 어려움이 있어 이 협정은 전쟁당사국이나 지원국 모두에 필수적이라는 것이 협정초안작업에 참가했던 실무자들의 의견이다. 미국이 걸프전 군수부문에서 고전을 한것은 사우디아라비아정부와 이런 종류의 협정이 없어 군수물자와 병참기지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82년 미국이 서독과 체결한 협정에는 ▲유사시 증원군의 전개시기를 「D+30일」에서 「D+10일」로 단축하고▲증원부대의 규모를 「4개사단」에서 「10개 기계화사단」으로 증강하며▲미군사단의 주요장비를 서독내 기지에 「사전비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한미간의 협정에는 『미국은 유사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연합사령부 작전계획」에 따른 시차별 부대 전개목록에 따라 한국에 증원군을 파견하는 계획을 유지한다』라고 되어 있어 유사시 증원받을 부대의 규모를 명시하지 못한 것은 군사조약으로는 미흡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명시적으로 D+며칠안으로 몇개 사단의 증원군을 파견한다는 것이 아니고 유사시 증원부대목록과 예상도착일정만 적시해 놓아 유사시 미국의 즉각적인 자동개입을 보장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이 협정의 비준으로 인한 비용부담이다. 한국측은 WHNS훈련은 기존의 팀스피리트훈련이나 을지포커스훈련 등과 함께 병행해서 이 훈련은 도상훈련으로 하기 때문에 연간 추가비용이 3천만∼4천만원에 불과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서독처럼 3개 미군사단의 장비를 창고에 보관하려면 관리병력이나 예산이 많이 소요되나 한국의 경우 유사시 국가동원령이 내려졌을 경우에만 실제경비가 소요되어 평시에는 그다지 많은 비용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군관계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 한미 「전시 지원협정」 가서명/한국측의 군수지원 원칙 확정

    ◎11월 정식 서명… 내년부터 발효 한미양국정부는 25일 한반도유사시 미증원군이 한국에 신속히 전개되어 작전을 펼수있도록 군수지원을 규정한 「전시접수국지원협정」(WHNS)」에 가서명했다. 국방부 윤종호군수국장과 랜돌프 J 푸어 주한미군군수참모부장이 국방부에서 가서명한 협정은 한반도유사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파견되는 미증원군에대한 한국의 지원부담에관한 원칙을 규정한 포괄협정으로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23차 연례국방장관회담에서 정식서명,92년초 발효될 예정이다. 전문과 9개조항 2개부록으로 구성된 본협정은 한미양국이 6·25전쟁이후 체결한 4백78종의 각종 군사협정및 협약을 재검토,이중 11가지만 부록에 등재시키고 지원대상도 통신·공병·정비·수송·보급등 12개분야로 한정키로 합의했다. 양국은 또 유사시 미증원군파견및 그 지원계획이 차질없이 집행되도록 하기위해 국방부 군수국장과 주한미군사령부 군수참모부장을 공동의장으로 한 「한미연합운영위원회」를 설치하고 미증원군파견계획에 따른시차별부대전개목록과 접수국의 지원계획을 2년마다 재검토 수정,보완키로했다. 양국은 또 동원대상이 되는 트럭·함정·창고등 민간자원은 국가동원령 선포이후 한국측이 결정해 미증원군에게 지원할 수 있도록하고 예측하지 못했던 지원은 가용자산범위안에서 미국측이 그 기능을 대체할 때까지로 한정했다.
  • 건설기자재 수입/1년새 38% 늘어

    건설경기의 활황에 따라 건설관련 기자재의 수입이 계속 증가,기계류와 함께 전체적인 수입증가를 주도하고 있다. 24일 상공부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5월말까지 건설관련 기자재의 수입액은 모두 25억3천5백만달러로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38.1%가 늘어나면서 같은기간중의 총수입액의 7.5%를 차지했다. 건설관련 기자재 중에서도 국내공급이 달리고 외제품 선호도가 높은 원자재의 수입이 가장 많아 22억4천만달러로 작년동기보다 35.7%가 늘어났고 불도저·덤프트럭 등 건설장비의 수입은 2억5천6백만달러로 71.6%가 증가했다. 기타 주방용구·양탄자·가구·침대 등 내장재는 3천8백만달러로 작년동기보다 6.1%가 늘어났다.
  • 야적 한강모래 3만t 불법 유출

    ◎“품귀” 틈타 반출증 대량 위조/관리회사 감시원·업자등 4명 적발/경찰,공무원 결탁여부도 조사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난지도 야적장의 모래를 관리용역회사 직원들이 개인 골재업자와 짜고 반출증을 위조,대량으로 빼내오다 적발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22일 난지도 야적장의 관리를 맡고있는 한강종합기술개발공사(사장 홍은표·59)감시원 천용수씨(26)등 2명과 골재업체 덕원중기 대표 한성복씨(40),중동중기 대표 김남주씨등 관련자 4명을 불러 한강모래의 불법유출경위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감시원 천씨 등은 지난 18일 덕원중기등 골재업체들과 짜고 서울시 산하 한강공원관리사업소가 발행하는 반출증을 위조해 난지도 야적장에 있는 모래를 15t트럭 8대에 실어 몰래 빼내 민간업체에 팔아넘기려다 적발됐다. 난지도 야적장의 모래는 한강에서 채취한 것으로 관급공사에만 쓰도록 되어있으며 야적장 관리는 한강관리사업소와의 계약에 의해 정부재투자기관인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가 맡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87년부터 총 2백95만6천여t의 모래를 채취해 그동안 1백30만t을 관급공사에 사용하고 1백65만6천t을 난지도에 야적,보관해 왔다. 경찰은 이들이 모래품귀현상이 심각했던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모두 3천여트럭분(3만여t)의 모래를 빼돌린 것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또 서울시 관련 공무원들의 묵인없이는 난지도 야적장의 모래유출이 어렵다고 보고 감독관청인 한강공원관리사업소 방재과 공무원들을 불러 관련여부를 캐고 있다.
  • 물난리속 20여곳에 산사태/중부 폭우피해

    ◎용인선 일가족 5명 참변/출수앞둔 농지 25만㏊ 황폐화/터널붕괴·교량잠겨 한때 열차 발묶여 휴일인 21일부터 중부지방을 강타한 집중호우는 경기·강원·충북·경북일대를 삽시간에 물바다로 만들어 곳곳에서 참변이 잇따랐다. 특히 경기도에서는 일가족 5명이 매몰된 용인군 원삼면 죽릉4리를 비롯,20여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흙더미에 깔려 13명이 숨지고 도로와 철도·통신설비 등이 물에 잠겨 교통·통신이 한동안 두절되는 등 피해가 많았다. ▷산사태◁ 21일 폭우로 용인·오산·화성군 등에서 잇따라 산사태가 발생,일가족 5명이 흙더미에 깔려 숨진 것을 비롯,13명이 사망하고 3명이 실종,28명이 부상했다. 하오1시30분쯤 용인군 원삼면 죽릉4리 이강학씨(40·이장)집 뒷산에서 산사태가 나면서 흙더미가 이씨집을 덮쳐 집안에 있던 이씨와 승재(13)정재(11)영재(9)등 세아들,이씨의 어머니 안옥희씨(78)등 일가족 5명이 흙더미에 깔려 숨졌다. 또 하오1시45분쯤 오산시 은계동 56의2 차주성씨(56)집과 은계동20의1 정준교씨(32)집 뒷산이 무너져 방안에서 잠자고 있던 차씨의 딸 혜정씨(23)과 정씨집에 놀러왔던 정씨의 매제 성규채씨(35)등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철도피해◁ 이날 하오1시쯤 병점∼오산의 5㎞구간 가운데 상행선 7곳,하행선 4곳 등 모두 11곳이 유실되거나 산사태로 파묻혔다. 병점역부근의 서울기점 51.3㎞지점에서 하행선 20m가량이 산사태로 매몰되고 길이 2백40m의 오산터널 벽일부가 무너졌으며 3백20여m의 둑이 붕괴됐다. 비슷한 시간에 오산터널벽이 무너져 내렸으나 이곳을 지나던 서울발 부산행 제313호 통일호열차가 이를 보고 급정거해 사고를 피했다. 이날 사고로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열차 29편이 운행을 중지,승객 2만여명이 환불을 요구하거나 4∼5시간동안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등 큰 불편을 겪었다. ▷재산피해◁ 경기도는 이번 비로 2천2백27채의 가옥이 침수되거나 부서져 77억4천6백만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또 1천4백83명의 이재민을 냈으며 농경지 25만3천4백80㏊가 침수 또는 유실됐다. ▷군 구조◁ 육군은 집중호우가 내린 21일 하오5시30분부터 7시50분까지 경기도용인군원삼면미리내와 이동면에 UH1H 헬리콥터 2대를 동원,고립된 1백77명의 인명을 구조했다. 육군은 또 22일 상오 충북원성군대소면과 중원군·괴산군 지역에 트럭 21대·중장비 10대·병력 6백90명을 동원,유실된 국도 7m와 건물 7동·비닐하우스 1천9백평을 긴급복구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