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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 비평] 일밤 ‘우리 아버지’를 보고

    [TV 비평] 일밤 ‘우리 아버지’를 보고

    여기 한 고등학생이 있다. 문제아 ‘최기표’다. 학교 폭력서클인 ‘재수파’를 조직해 친구들을 괴롭힌다. 하지만 같은 반 반장 ‘임형우’는 기표를 돕는다. 기표의 어려운 가정형편을 알리고 모금운동에도 앞장선다. 형우의 노력으로 기표의 사연은 전국으로 퍼져 나간다. 언론 보도가 잇따르고 영화로도 제작된다. 하지만 기표는 도망쳐 버린다.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는 짤막한 편지를 남기고. 전상국의 단편소설 ‘우상의 눈물’ 내용이다. 소설은 물리적 폭력에 맞선 암묵적이고 지능적인 폭력을 소개한다. 부끄러운 가정사가 낱낱이 공개되면서 기표가 느꼈을 공포를 통해 ‘동정’(同情)이란 감성도 충분히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웅변한다. MBC의 간판 예능프로 ‘일요일 일요일밤에’(일밤)가 올 들어 신설한 ‘우리 아버지’ 코너는 신동엽, 김구라 등 예능MC들이 길거리에서 평범한 아버지를 만나 그들의 사연을 듣고 소개한다. 연예인들의 가십이나 수다가 아닌, 평범한 이웃의 사연을 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공익 예능’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소설 ‘우상의 눈물’이 전하는 메시지처럼 동정과 공감대 형성이라는 명분 아래 ‘합법적 폭력’을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지난주 말 방송분은 당뇨로 고생하다 아내와 이혼하고 홀로 딸과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의 사연을 전했다. 김밥집에서 만난 아버지는 자신의 고달픈 삶을 절절이 토로했다. 고등학생 아들은 등록금을 내지 못해 걱정이 한가득이고, 큰딸은 아버지 병수발 때문에 고교 진학조차 못 했다며 눈물을 쏟았다. 제작진은 아들에겐 고등학교 등록금을, 딸에겐 검정고시 학원 수강증을 전달해 주며 훈훈한 감동을 선사했다. 시청자들도 가슴 아픈 사연에 눈시울을 적셨다. 일밤뿐 아니라 일반 교양 프로에서도 종종 접하는 장면이다. 그 속에서 제2, 제3의 ‘기표’를 본다. 방송은 숨기고 싶은 가정사를 지나칠 정도로 적나라하게 끄집어낸다. 심지어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 나이까지 낱낱이 공개한다. 아직은 어려 거부감이 없다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의 동정 어린 시선을 의식하게 될 수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찍힌 ‘불쌍한 존재’라는 낙인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이들의 상처는 누가, 어떻게 치유해줄 것인가. 제작진은 출연 당사자들의 사전동의 아래 촬영을 진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섬세해야 했다. 적어도 아이들만큼은 모자이크 처리를 하고 음성 변조를 하는 식의 배려가 필요했다. 당사자들도 동의했다는 합리화 속에 시청자의 눈물샘을 어떻게든 좀 더 자극하고 감동을 끌어내려 한 것은 아닌지, 제작진은 반성해볼 일이다. 공익성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공익 트라우마’에 갇혀 본말이 전도된 것은 아닌지도 돌아봐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에게 은연 중에 ‘불쌍한 아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겨 넣는 것이야말로 공익의 탈을 쓴 합법적인 폭력이기 때문이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채식주의자

    부모가 싸우는 소리가 들리자 언니 지혜는 동생 영혜의 귀에 덮개를 씌웠다. 어린 동생이 험악한 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언니는 부엌으로 달려가 칼을 숨긴 다음 장독 뒤로 몸을 감췄다. 곧 아빠가 뛰쳐나와 칼을 찾다 부지깽이로 엄마를 때렸다. 어떻게 해도 분이 풀리지 않는 그는 자신을 향해 짓던 멍멍이를 손수 잡아버렸고, 이튿날 밥상엔 개장국이 올라왔다. 평범한(혹은 평범해 보이는) 여자로 자란 자매는 둘 다 평범한 가정주부가 됐다. 어느 날, 꿈에서 깨어나면서 영혜에게 낯선 변화가 일어난다. 일체의 육식을 거부하는가 하면 고기 냄새가 난다며 남편과의 잠자리를 피하는 거다. 보다 못한 가족들이 마련한 자리에서 아버지가 손찌검하며 고기 먹기를 강요하자, 영혜는 칼로 손목을 긋는다. ‘채식주의자’는 야만적인 공간과 짐승의 시간을 참고 버텨야 했던 여자의 죄의식과 도덕적 선택에 관한 영화다. 한 사람 영혜가 아버지의 폭력 아래 지옥을 통과할 동안, 이 땅에선 지배권력이 민중의 목을 죄는 일이 똑같이 벌어졌다. 그러나 누가 죽였는지, 누가 죽었는지, 누가 누구를 억압했는지 밝혀지지 않는 여기는 분명 야수의 땅이다. 꿈에서 지워진 얼굴을 본 영혜는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다.’는 진실을 깨닫는다. 알게 모르게 고통과 불면의 밤을 지새웠을 그녀가 무딘 일상에서 벗어나 선택한 ‘육식의 거부’에는 이중의 의미가 있다. 첫째, 짐승의 비릿한 숨결이 서려 있는 우리의 과거를 지우고, 둘째, 땅에 생명의 뿌리를 내리는 순수한 인간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현실의 끈을 놓은 듯 보이는 영혜를 비정상적인 인물로 대하고, 경계를 넘은 그녀가 자기들의 정상적인 영역으로 복귀하기를 원한다. 바꿔 말하면, 동지를 잃은 죄인들이 떠난 자를 되찾아 죄를 다시 공모하려는 형국이다. 그런 이유로, 이야기의 중심엔 영혜가 있으나, 영화는 (가족 및 사회를 대표하는)세 사람-영혜의 남편, 지혜의 남편, 지혜-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현실적이고 이기적인 남자는 넋을 놓은 아내 영혜를 쉬 포기한다. 그리고 지혜의 남편이자 비디오아티스트인 민호는 영혜에게서 아름다움의 에피파니(epiphany·사물이나 본질이 나타나는 순간)를 목격하지만 끝내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채 떠나게 된다. 두 남자로부터 바통을 이어받는 건 언니 지혜다. 그녀는 평소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던’ 사람이다. 트라우마가 밖으로 삐져나와 쓰러진 게 영혜라면, 지혜는 그걸 가슴 속에다 꾹꾹 눌러 담는 인물이다. 동생을 통해 지혜는 외면해왔던 트라우마와 조우한 셈인데, 두 사람의 ‘공포, 분노, 고통’이 만나는 지점에서 강렬한 빛을 발하던 영화는 바로 그 순간 멈춘다. ‘채식주의자’는 고통을 어루만지길 원하면서도 부숴진 꽃송이를 되살리는 건 자기 몫이 아님을 아는 영화다. ‘채식주의자’는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을 각색한 결과물이다. 지독한 비대중성에도 불구하고 여러 장점이 이 영화를 추천하도록 만든다. 자칫 관념적으로 흐를 수 있는 주제를 어렵지 않게 풀어놓았으며, 배우들의 충실한 연기에서도 인물의 본질에 접근하는 데 기울인 정성이 느껴진다. 18일 개봉. 영화평론가
  • [영화리뷰]‘식객-김치전쟁’

    [영화리뷰]‘식객-김치전쟁’

    한국 대통령이 일본 총리 관저에서 만찬을 갖는다. 세계 여러 곳을 장기간 순방하고 있는 한국 대통령이 입맛이 없어하자 일본 총리는 김치와 불고기를 대접한다. 한국 대통령은 맛있다며 흐뭇해한다. 그런데 일본 총리는 일본의 대표음식인 ‘기무치’와 ‘야키니쿠’라고 소개하며 뒤통수를 친다. 이 같은 장면으로 민족 감정을 은근히 건드리고 시작하는 ‘식객-김치전쟁’은 그런데, 음식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어머니에 대한 영화다. 2007년 영화 ‘식객’ 2008년 드라마 ‘식객’에 견줘, “맛을 느끼는 것은 혀끝이 아니라 가슴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이세상의 모든 어머니 숫자와 동일하다.”는 원작자 허영만 화백의 말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허 화백도 만화 ‘식객’에 해외 입양됐다가 어머니가 건네준 쌀맛을 찾아온 미군, 어머니가 해주던 부대찌개 맛을 잊지 못하는 세계적인 석학, 어머니가 쪄주던 고구마 맛을 느끼고는 참회하는 사형수 등 어머니의 맛에 얽힌 에피소드를 자주 등장시킨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백이면 백, 감동을 전달한다. ‘식객-김치전쟁’도 마찬가지. 모두 세 명의 어머니를 등장시켜 과하다 싶을 정도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어머니는 한순간 실수로 사람을 죽인 뒤 도망다니는 아들 여상(성지루)을 둔 여상모(김영옥)다. 여상은 어머니의 밥맛을 잊지 못해 늦은 밤 어머니의 허름한 식당을 찾고, 어머니는 정성스레 상을 차리지만, 여상은 한술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경찰에 체포된다. 주인공 성찬(진구)과 친어머니 성찬모(추자현)의 사연도 절절하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자신의 장애가 아들에게 해가 될까봐 눈물을 머금고 성찬을 수향(이보희)에게 맡긴다. 이때 얻은 트라우마는 성찬이 극복해야 할 과제가 된다. 유명한 전통음식점 춘양각의 여주인 수향에게는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천재 요리사로 성장한 딸 장은(김정은)이 있다. 장은에게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 채 기생집 딸이라고 놀림을 당하며 자라난 상처가 있다. 그래서 장은은 지우고 싶은 기억의 상징인 춘양각을 없애려고 하는데, 이것이 가장 큰 갈등의 축이 된다. 만화 원화를 활용한 오프닝 크레디트가 새콤하고, 백 가지가 넘는 수많은 김치들이 등장해 눈을 즐겁게 한다. 요리 대결이나 갈등 해소 과정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맛이 더할 나위 없이 진하기 때문에 다른 맛들은 다소 싱겁게 느껴진다. 진구의 선한 연기는 안정적이지만 무게가 부족하고, 냉철하고 무표정한 김정은의 모습은 어색하다. 모든 갈등이 해소된 뒤 환하게 웃는 김정은이 아직은 더 익숙한 듯. 전체 관람가. 28일 개봉.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브래드와 안젤리나, 아이티에 100만달러 구호금

    브래드와 안젤리나, 아이티에 100만달러 구호금

     아이티를 살리자!  최대 재앙이 덮친 아이티에 국제사회의 구원이 줄을 잇는 가운데 미국 할리우드의 부부배우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니 졸리도 사랑의 손길을 내밀었다.  미국의 연예주간지 피플닷컴은 14일 피트·졸리재단이 강한 지진으로 초토화 된 아이티의 응급의료 지원에 100만달러를 기부했다고 보도했다.졸리·피트재단은 평소 국경없는 의사회(Médecins Sans Frontiéres)에 기금을 내고 있다.  졸리는 “수십년간 소요와 폭력,극심한 가난을 겪고 있는 아이티 사람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대재앙이 온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다.”고 말했다. 피트는 “지금 거리의 난민들에게 즉각적 구호가 긴요하다. 그들은 트라우마(정신 적 외상)를 앓고 있다. 긴급히 돌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이티의 ‘국경없는 의사회’도 아이티에 있는 3개의 병원이 심각히 파손돼 의료진들이 야외 병원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장상옥기자007jang@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큰 고통받은 위안부·강제징용 문제 반드시 털고 가야”

    [한·일 100년 대기획] “큰 고통받은 위안부·강제징용 문제 반드시 털고 가야”

    한완상 전 부총리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신년특집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서로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부총리는 정부 차원에서 청소년 교류를 적극 추진하기를 희망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일왕의 방한 문제에 대해 “방한한다면 방문 자체로 그쳐서는 안 되며 역사적이어야 한다.”면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순종의 묘에 참배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 전 부총리는 일왕의 방안을 전제로 “100년 전 병탄의 부당성 등 일본의 잘못을 정중하고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고 말했다. 다음은 대담 형식으로 구성한 두 원로의 인터뷰다. │도쿄 박홍기특파원·서울 홍지민·강병철기자│ →한국(일본)에게 일본(한국)은 무엇인가. 한완상 전 부총리 일본은 20세기 초부터 36년간 한국을 식민지로 삼아 억압·수탈·차별한 나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 데다 아시아에 속하면서도 서구 열강에 속해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나라다. 와다 하루키 명예교수 일본과 한국은 무척 깊은 역사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본은 한국을 침략, 식민지화했다. 반성해야만 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봐도 한국은 일본에게 대단히 중요한 이웃 나라다. →지난 100년간 한·일 관계는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한 전 부총리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있었다. 1910년 한일병탄이 이뤄졌다. 늑약의 1조는 ‘통치권을 완전히 영구히 일본 황제에게 이양한다.’이다. 519년 조선 왕조가 끝나는 순간이다. 1936년 일본은 내선일체를 외쳤다. 창씨개명, 한글사용 금지 등도 강요했다. 문화와 민족혼마저 빼앗는 통치를 시도했다. 태평양전쟁에 패전한 일본은 승전국인 미국과 함께 한반도의 분단에 간접적인 책임이 있다. 전범국인 일본은 통일된 자유 국가로 남고, 식민지로 질곡의 세월을 겪어야 했던 한반도는 갈라져 있다. 100년을 되돌아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와다 명예교수 단적인 예로 조선은 식민지였기에 일본에 저항하지 못하고 침략전쟁에 말려들었다.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가장 큰 죄다. 1945년 한국은 독립을 맞았지만 일본은 침략과 식민 지배에 사과하지 않았다. 역사 자체를 내동댕이쳤다. 때문에 일본은 그때의 역사를 잊고 살아오게 됐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맺었는데 그 당시에도 과거의 반성 없이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한국은 엄청난 노력을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일제 강점이 현재 한국인이나 일본인에게 미친 영향은. 한 전 부총리 한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인 상처, 충격을 줬다. 씻기 힘든 수치심과 분노다. 백색(서구) 제국주의의 흐름을 타고 등장한 황색(아시아) 제국주의의 제물이 된 사실에 대한 울분과 함께 민족자주의식이 형성됐다. 해방됐을 때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말자. 일본이 일어난다. 조선은 조심해라.’라는 민담을 들었다. 백색·황색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일본을 향한 불신과 거부감이 한국인의 성격 속에 내면화된 것이다. 와다 명예교수 일본은 한국에 대한 병합(와다 명예교수의 표현대로)한 사실을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잊으려 했고, 실제 잊어버렸다. 그런 탓에 일본 젊은이들은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었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길 정도다. 반면 한국의 입장에서는 용서할 수도, 잊을 수도 없는 역사다. 상처를 준 사람은 상처를 받은 사람의 고통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또 지나쳐 버리고 싶어 한다. 한국을 병합했다는 사실 자체가 일본의 생활 속에서는 별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일본인은 분명하게 한국인의 감정을 읽어야 한다. 한 전 부총리 너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에게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라는 건 정말 잔인한 일이다. 울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가장 큰 고통을 받은 두 부류가 위안부와 강제 노동자다. 합리적으로 털고 가야 한다. 경제적 보상 이전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잘못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시인 받아야 한다. 또 최소한의 경제적 보상도 있어야 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람직한 미래는 가능한가. 한 전 부총리 가능하다. 19~20세기는 서세(西勢)의시대였다. 19세기는 팍스브리태니카 시대, 20세기는 팍스아메리카나 시대였다. 21세기는 동세(東勢)의 시대다. 동세의 기운을 정보기술(IT) 혁명이 활성화시키고 있다. 줄씨알(네티즌)이 국경을 초월하고 있다.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는 데다 연대 강화도 쉬워졌다. 동세의 기운이 솟구치고 있다. 21세기에 일본과 한국, 중국까지 평화의 중심세력으로 힘을 합칠 수만 있다면 글로벌 이슈, 즉 기후나 테러 등 어떤 문제에서든지 굉장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한·일간 평화 강화에 반하는 열악한 조건의 존재가 냉전벨트다. 한국 정부의 힘만으로 해체할 수 없다. 미국과 일본의 지원이 필요하다. 북한 경제에 대한 대국적인 지원은 한반도 냉전을 해체하는 출발점이다. 그렇게 되면 남·북, 북·일, 북·미 관계 정상화가 쉬워질 것이다. 한국, 미국, 일본 정부가 함께 한반도 냉전 체제를 확실히 깨 21세기에 세계에서 냉전체제가 종식됐다는 선언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와다 명예교수 미래를 생각하면 일본과 한국은 자국의 테두리만이 아니라 지역적인 공동 번영, 공생을 위해 협력해 나가야만 한다. 동아시아공동체 구축에서도 한국은 중심에 서서 추진자, 대안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일본도 성심성의껏 힘을 보태는 게 한·일의 미래지향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일본은 섬나라다. 한국은 반도국으로 대륙과 맞닿아 있는 만큼 지리적으로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 중요한 위치에 있다. 과감하게 말하면 한국과의 협력 없이 일본의 미래는 없다. →국제 사회에서 한·일의 경쟁과 협력은 필연적이다. 한 전 부총리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 문화 기술(CT) 분야는 일본과 격차가 없다. 서로 협력하며 경쟁할 수 있다. 협력 없는 경쟁은 금물이다. 21세기는 협력을 통한 경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처럼 서로 먹고 먹히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 실제 엇비슷한 수준의 IT, 동물 복제 등에서 강한 BT, 특히 한류로 대변되는 CT는 일본에 자극을 줄 수 있다. 또 제조업, 조선, 자동차 분야 등도 한국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단계에 올라섰다. 와다 명예교수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서로 이끌고 격려해야 한다. 뒤처진 부분은 서로 배우면서 따라가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서로 돕고 협력하면서 앞으로 나가길 바란다. 달리 말해 모든 것은 한 가지 사안 속에 경쟁, 협력이라는 두 측면이 있다. 어떤 것은 경쟁, 어떤 것은 협력이라는 식으로 이분화할 게 아니다. 조화시키며 동시에 추진해 나가야 한다. 한국의 에너지는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한·일 양국의 국민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와다 명예교수 과거 역사에 대해 반성하도록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렸으면 한다. 인내심을 갖고 말이다. 한국의 노력 덕에 일본에도 여러 변화가 가능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흘린 땀에 비해 일본 전체적으로는 크게 변하지 않는 점도 알고 있다. 초조하기도 하고, 불만이 있는 줄도 잘 안다.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한국을 여러 면에서 좋아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인은 과거의 역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역사는 역사대로 놓아두고 미래로 나갈 수는 없다. 미래를 위해 더더욱 과거 문제를 인식하려고 힘써야 한다. 한 전 부총리 일본은 한반도에서 저지른 부당한 조치들을, 최소한 독일이 연합국에 보여줬던 수준으로 시인했으면 좋겠다. 독일 정부는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고개를 숙인다. 나치 전범에 대해서는 시효가 없다. 일본이 왜 못하는지 안타깝다. 일본 지식인들의 말처럼 늘 아시아를 넘어 서구를 좇는다면 적어도 독일 수준으로는 가야 한다. 불행한 역사는 청산해야 한다. 양국에는 이를 거부하는 세력이 있다. 한국 쪽에도 식민지는 한국을 근대화시킨 시기라고 긍정하는 일부 지식인·정치인들이 있다. 일본에도 이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우파들이 있다. 친일 세력과 일본의 보수적 민족주의 세력의 냉전적 연대와 연계를 어떻게 성숙하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가가 중요한 과제다. 이런 것을 위해 한·일간 여러 차원에서 교류·협력이 필요하다. 와다 명예교수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뛰어넘는 ‘하토야마 담화’가 발표되기를 희망한다. 무라야마 담화는 침략과 조선지배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하는 내용으로 발표됐다. 담화가 나온 이후 일본 국회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병합을 강제적인 것으로 볼 것인지, 대등한 입장에서 체결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다. 담화로부터 15년이 지났다. 적잖게 훼손됐다. 그러나 식민지화가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 등에 대한 역사연구는 꾸준히 진행됐다. 병합은 한민족의 의지와 상관없이 힘에 의해 강제됐다. 따라서 ‘하토야마 담화’에는 진정한 의미의 역사적 판단을 담아야 한다. 전향적이고 획기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병합 100년은 상징적으로 아주 좋은 계기다. →한·일 양국의 젊은이들이 바른 역사관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 전 부총리 젊은 세대는 조부모·부모 세대가 이룬 성취, 즉 독립운동, 민주화, 인권운동, 평화운동 등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주요 문제는 좋은 직장과 안정된 삶 등 개인 중심적인 복지다. 어느 나라나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다. 분단의 아픔, 억울함에 대해 체계화되고 설득력 있는 지식을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게 됐으면 한다. 젊은이들은 지식을 획득하는 속도나 양에서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걸 보면 인터넷 시대에 새로 깨우쳐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와다 명예교수 젊은이들이 옛일에 대해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 사회에 있어서든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잊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태평양전쟁을 잊지 않도록 젊은 세대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사람들이 역사의 연구, 조사를 계속해야 한다. 역사란 건망증이 심하다. 방치해 두면 잊혀진다. 따라서 자국만이 아닌 넓은 범위에서 지역적 협력을 통해 건망증을 방지해야 한다. 한 전 부총리 일본 젊은이들은 조상들이 제국주의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10여년 전 중국 창춘(長春)에서 겪은 일인데 일본 청년이 위화관에서 인체실험인 마루타 전시를 보고 기절한 일이 있었다. 자기 조상들의 만행을 믿지 못해서다. 일본 교육이 문제다. 불과 할아버지 세대에 있었던 반인류 범죄인데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서대문 역사박물관에 있는 독립투사의 고문받는 모형을 보고도 충격을 받는다. 양국 청년들이 서로 불행했던 과거 역사를 정확하게 알고 서로 용서해 주는 두 민족 간의 정신적 트라우마(충격)를 극복하는 치유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일 청년들의 교류를 정부 차원에서 적극 추진했으면 한다. 비정부기구(NGO)나 종교단체도 앞장서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을 한국에 초청하겠다고 했는데. 한 전 부총리 일왕 초청엔 두 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100년 전 병탄의 부당성 등 일본의 잘못을 정중하고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그래야 한·일, 북·일 관계 모두에 도움이 된다. 동아시아공동체에도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 일왕의 가계는 한민족의 조상에 닿는다. 종묘에서 경의를 표하고, 특히 100년 전 병탄과 105년 전 늑약 때 가졌던 고종황제, 명성황후, 순종의 아픔 등을 되새기고 참배했으면 한다. 대학생들과 자유로운 간담회를 갖는 것도 좋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일왕 초청은 전적으로 찬성한다. 와다 명예교수 천황은 일본 국민의 상징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전쟁이 끝날 당시 지금의 아키히토 천황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신춘 휘호로 평화를 염원하는 글자를 썼었다. 마음이 깃든 휘호라고 본다. 천황은 히로히토 전 천황이 방문할 수 없었던 중국도 찾았다.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를 방문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단 한국 방문 자체에 그쳐서는 안 된다. 역사적이어야 한다.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순종의 묘에 참배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2010년에 실행된다면 매우 뜻깊을 것이다. 2010년은 100년이라는 역사 속에서 마지막 기회의 해다.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문제도 병탄 100년을 맞는 시점에서 중요한 문제다. 한 전 부총리 하토야마 정권이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려면 대북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방북 의사가 있다고 했다. 북한 지도자와 허심탄회하게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한 환경 조성에 앞장섰으면 한다.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하토야마 정권의 노력은 긴요하다. 역사적인 성취를 하려면 대북 관계를 전향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북한과 대화를 통해 두 나라 관계를 개선하면 불가피하게 거쳐야 할 부분이 식민지 청산문제다. 과감한 사죄와 적절한 보상조치를 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1965년 한·일 기본조약보다 훨씬 평가받는 북·일 기본조약이 나오고, 하토야마 정권이 주창하는 동아시아공동체가 구축될 것이다. 하토야마 정권은 동아시아의 비핵화도 강조해야 한다. 동아시아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는 함께 해야 할 과제다. 와다 명예교수 일본과 북한의 국교 정상화는 실현돼야 한다.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고 100년이 된 이때 피해를 입은 국가의 반쪽과 아무것도 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다. 어떻게 해서든 국교를 정상화해야 하는 것이 옳다. 교섭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불행하게도 북한의 핵개발이 국제적인 이슈가 됐다. 그러나 국교 정상화를 절차적으로 본다면 북한의 핵포기와 국교 정상화 추진을 동시에 진행시켜야 한다. 병합 100년이라는 측면에서 절호의 타이밍이다. 일본은 국교 정상화를 한 뒤 과거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경제협력을 약속할 수 있다. 경제 원조를 갑자기 추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국교정상화 뒤라면 자연스럽다. 그러면 남북대화에도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본다. 통일은 필연적인 것이며 머지않은 일이기도 하다. 중요한 전제는 모든 과정이 완전히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전 부총리 북·일 관계에서 한국의 역할은 분명하다. 일본이 6자회담 밖에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를 꺼낼 경우, 북한이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권고할 수 있다고 본다. 또 일본에 대해서도 납치문제가 한반도 평화 정착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6자회담에서 납치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새로운 채널을 가동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hkpark@seoul.co.kr ●한 前부총리는 1980년대 초까지 저항적 지식인의 대표적 인물이다. 제5공화국이 끝나도록 금서였던 저서 ‘민중과 지식인’은 운동권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다. 사회과학자이면서 교육, 정치, 종교계 등을 넘나들었다. 시민단체인 경실련에도 관여했다. 교수 시절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두 차례 해직과 복직을 거듭한 데다 수형 생활을 하기도 했다. 문민 정부와 국민의 정부 등 2대 정권에서 통일부총리, 교육부총리를 역임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한성대 등 3개 대학의 총장도 지냈다. 최근에는 언론, 논객, 시민과 대화한 내용을 묶으며 YS(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MB(이명박 대통령)까지 돌아보는 대담집 ‘우아한 패배’를 출간했다. ●와다 하루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진보학자이자 한반도 전문가다. 1960년 도쿄대 문학부를 졸업, 66년부터 도쿄대 강단에 섰다. 소련사와 북한 현대사가 전공이다. 1970~80년대 일본 지식인으로서 민주화 운동 때문에 투옥된 김대중·김지하씨 등의 구명운동에 앞장섰다. 1980년 김대중씨 사형 선고와 관련, 교수 신분으로 주일 한국대사관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조만간 러·일전쟁을 중심으로 1875~1904년의 역사를 다룬 저서를 상·하권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그는 “최근 틈나는 대로 대장금, 태왕사신기, 주몽 등 한국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혁명 1991’, ‘역사로서 사회주의’, ‘조선전쟁’ 등 30권 이상의 저서를 집필했다.
  • SK ‘버저비터 트라우마’

    버저비터는 0.00초의 미학이다. 공이 손을 떠나는 순간 흥분했던 선수들도, 관중들도 숨을 멈춘다. 모든 신경은 공 하나에만 집중된다. 공이 포물선을 그리는 찰나 종료 버저가 울린다. 그리고 림을 통과하는 마찰음. 버저비터는 한쪽엔 로망이지만 다른 한쪽엔 다시 꾸기 싫은 악몽이다.한 농구인은 “경험상 대개 시즌당 한두 번 나오는 진풍경이다.”고 했다. 그러나 SK는 이 진풍경을 올 시즌 3번 경험했다. 그것도 당하는 입장이다.지난 15일 전자랜드전도 버저비터로 패했다. 최하위 전자랜드에게만은 질 수 없었다. 의지만큼이나 경기는 팽팽했다. 69-71로 끌려가던 종료 2초 전 방성윤이 골밑슛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전자랜드 정영삼이 하프라인 근처에서 버저비터를 터뜨렸다. 지난달 22일 KCC전에서도 종료 2초 전 문경은이 역전 3점슛을 꽂았다. 노장 슈터는 포효했다. 그러나 그 순간 KCC 아이반 존슨에게 2점 버저비터를 얻어 맞았다. 시즌 초반 삼성전에선 심판의 오심에 이어 테렌스 레더에게 버저비터를 맞았다. 동점이나 역전이 가능한 터에 심판은 공격권을 상대에게 넘겼다.버저비터는 레이스에 오래 영향을 미친다. 이긴 팀 사기는 오르지만 진 팀은 거꾸로다. 추일승 MBC ESPN 해설위원은 “워낙 극적으로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에 선수들 감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실제 우승후보로 꼽히던 SK는 현재 8승17패로 8위다. 9위와 0.5게임차. 김진 SK 감독은 결국 16일 성적 부진을 이유로 감독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SK의 버저비터 악몽은 끝날까.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프로농구]‘함지훈 29점’ 모비스, 삼성에 한풀이

    [프로농구]‘함지훈 29점’ 모비스, 삼성에 한풀이

    프로농구 1위로 무서울 것 없는 모비스는 삼성 앞에만 서면 유난히 작아졌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왕좌를 차지했지만 4강 플레이오프에서 4위로 올라온 삼성에 1승 뒤 내리 세번 졌다. 리그 우승이 무색하게 맥없이 탈락한 것. 트라우마(?)는 올 시즌 들어서도 이어졌다. 삼성과 두번 만나 모두 졌다. 16일 경기 전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전적이 안 좋으니 신경쓰인다. 삼성의 노련미에 우리 애들이 당한다.”고 걱정했다. 안준호 삼성 감독은 “1위팀을 상대로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다.”고 겸손을 부렸지만 은근히 여유가 엿보였다. 올 시즌 삼성 빼고 다 이겨본 모비스는 집념을 불태웠다. 1쿼터에만 12점을 올린 함지훈(29점 5리바운드 6어시스트)을 앞세워 26-19로 기분좋게 첫 쿼터를 마쳤다. 2쿼터 삼성 이승준(14점 8리바운드)과 테렌스 레더(14점 6리바운드)에 반격을 허용하며 45-43로 전반을 끝냈다. 3쿼터 들어 모비스는 브라이언 던스톤(17점 6리바운드)이 9점, 함지훈이 7점을 쌓으며 야금야금 점수차를 벌려나갔다. 삼성은 4쿼터 들어 떨어진 집중력 탓에 슛 성공률까지 급격히 낮아졌다. 결정적인 순간 턴오버를 범했고, 가로채기까지 허용하며 추격 동력을 잃었다. 경기종료 3분 40여초를 남기고 무려 20점차(80-60). 결국 모비스는 29점을 쓸어담은 함지훈을 앞세워 삼성을 84-70으로 누르고 지난해부터 쌓였던 한(恨)을 풀었다. 18승7패로 단독 선두를 공고히 한 것은 물론 10월 24일 동부전부터 원정 11연승이라는 새 기록도 썼다. 2001~02시즌 SK와 KCC가 나란히 작성했던 기록을 하나 늘렸다. 삼성은 쓴 패배를 안으며 연승행진을 ‘3’에서 멈췄다. 안양에서는 동부가 KT&G를 79-70으로 누르고 KCC와 공동 3위(16승9패)로 한 계단 올라섰다. 김주성(18점 5리바운드 4어시스트)과 조나단 존스(16점 13리바운드)의 포스트 활약이 빛났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한양→경성→대경성’ 역동성을 파헤치다

    얼마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으로 한국 사회가 진통을 겪었다. 지금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형국이지만 언제든 다시 터져 나올 수 있는 ‘휘발성’을 가진 화두다. 근 100년 전의 망령이 여전히 한국 사회를 관통하며 다양한 시각과 의견의 충돌을 야기하고 있는 셈. 그런 점에서 ‘문학과 지성사’가 사회사 연구총서 시리즈 중 9번째로 펴낸 ‘지배와 공간’은 일제 강점기를 이해하는 새로운 인식의 틀을 제공하고 있어 반갑다. 저자인 김백영 광운대 교수는 책을 통해 그 시대를 보다 잘 이해하는 방법으로 현대 국민국가와의 시간적 연속성에서 접근하기 보다 과거 실존했던 ‘식민지의 지리적 판도’라는 공간적 연속성에 우선 순위를 두고 접근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왕조의 수도였던 ‘한양’이 식민지 도시 ‘경성’으로, 다시 ‘대경성’으로 변화하는 과정의 역동성을 당시 기층 민중을 포함한 여러 계층들의 관점에서 추적하고 해부해 보자는 것이다. 김 교수는 “민족사적 트라우마가 분단과 냉전시대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되면서 민족과 국가에 대한 지나친 신성화(神性化)를 초래했다.”며 “일제 식민통치와 그에 맞선 항일 독립영웅들의 굵직한 실천들만이 민족사적 사실로 공식화되는 과정에서 당시 암흑같던 사회의 밑바닥에서 설익은 근대문명을 체화하고 있던 사회 주체들의 다양성은 충분한 조명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유관순과 윤봉길의 투쟁사이자, 이광수와 염상섭의 번민의 시기로만 서술됐을 뿐, 대다수 민중들의 삶은 무채색 화면으로 처리됐다는 것. 따라서 친일과 항일이라는 흑백논리로는 포착되지 않는 식민지 주체들의 광범위한 삶의 공간을 정확히 이해해야 일제강점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틀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다만 “‘풍수단맥설’이 한국의 전통적 공간질서를 부정하고 말살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거나, 우리의 전통 문화 유산을 침탈하고 훼손한 것이 일제의 일관된 계획과 의도라고 단언하기는 곤란하다.”는 등의 접근 방식은 다소 껄끄럽게 받아들여 질 수도 있겠다. 3만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박재범 칼럼] 120엔젤이 부르는 희망가

    [박재범 칼럼] 120엔젤이 부르는 희망가

    최근 신문에 아주 작은 기사 하나가 실렸다. 대부분 무심코 지나쳤을 이 기사는 서울시 120다산 콜센터의 상담건수가 1000만건을 돌파했다는 내용이다. 가동된 지 고작 이년 남짓 된 곳으로는 경이로운 기록이다. 물론 이 기사를 거론하는 것은 수치화된 실적 때문은 아니다. 콜센터의 공무원과 민간상담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일궈낸 120엔젤팀의 섬김 리더십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들 500여명은 약자의 눈물을 닦는 데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썼다. 지난달 방모씨는 서울 인사동에서 시각장애인 초청 자선회화전을 열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들을 위한 손으로 만지는 그림전이다. 문제는 그림을 봐야 할 장애인들을 이동시킬 수단이 없다는 점. 방씨의 전화상담을 받은 서울시 직원들은 차량 5대를 몰고 나타났다. 방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친절함과 신속함, 따뜻한 배려는 감동”이라는 글을 올리면서 사연이 알려졌다. 셋째아이를 제왕절개로 출산했으나 남편의 오랜 실직으로 병원비 마련에 애태우던 산모 김모씨도 전화상담 끝에 지자체의 출산장려금 50만원에 이웃돕기 성금 10만원을 받았다. 이것뿐이 아니다. ‘홀몸 노인’에게 짬 나는 대로 “밤새 안녕하신지” 안부를 묻는다. 황정일 서울 고객만족추진단장은 “상식이고 전혀 생색낼 일이 아니다.”면서 “서울의 홀몸노인 18만명 모두를 돌보는 캠페인이 절실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세종시 등 굵직한 갈등이 춤추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내 몫이 왜 적으냐고 아우성칠 때 이들 엔젤팀은 그런 것에 무관심해 보인다. 1950년 말 흥남부두에서는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피란민 수십만명이 십수척의 LST에 오르려고 약육강식의 생존투쟁을 벌였다. 지금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개개인의 이기심과 무질서는 이런 참혹한 경험 등에 의한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반면 1914년 타이타닉호의 침몰로 승객 2200명 중 1500명이 숨졌을 당시 젊은 남성 승객들은 달랐다. 어린이, 노약자와 여성부터 비상구명정에 태웠다. 우리도 이제는 1차적 생존문제는 어느정도 해결됐다. 욕설과 주먹을 부르는 원초적 감성 대신 성숙한 사회의식이 자리를 잡아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한국 경제가 십여년째 G10으로 올라서지 못하고 오히려 뒷걸음질치는 것은 사회가 합의한 공동체의 행동기준이 미흡한 탓이다. 이 기준이 사회적 자본이다. 사회적 자본이 쌓여야 G10의 기대가 현실화된다. 120엔젤팀 등이 전하는 온기는 우리의 DNA가 전쟁 난민적 분노와 무질서에서 타이타닉호 승객이 보여준 섬김과 질서로 진화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무엇보다 사회 저변에서 소리소문 없이 변화의 불씨가 일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지난 23일 서울시와 25개 자치구에서 시민 자원봉사자를 모집한 결과를 보면 불과 며칠만에 100만명을 넘어섰다. 중용은 군자는 은미하고 알아달라고 외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군자의 도는 어둑어둑하지만 날로 빛나고,소인의 도는 뚜렷하지만 날로 사그라진다(君子之道 闇然而日章 小人之道 的然而日亡)고 했다.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며, 한발 더 나아가 성숙한 사회의식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사람들을 격려해 보자. 아직은 소수인 이들이 다수가 되도록 힘을 모으자. 120엔젤이 먼저 부른, 새 세상을 향한 희망의 노래를 함께 부를 때다. 주필 jaebum@seoul.co.kr
  • [영화리뷰] ‘나는 비와 함께 간다’ 치밀한 짜임새·영상미

    [영화리뷰] ‘나는 비와 함께 간다’ 치밀한 짜임새·영상미

    전직 형사 클라인(조시 하트넷)은 거대 기업의 중국인 회장에게서 실종된 아들 시타오(기무라 다쿠야)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홍콩으로 떠난다. 클라인은 2년 전 연쇄살인마 해스포드(엘리어스 코티스)를 근무 도중 죽이게 된 뒤, 심한 트라우마에 짓눌린다. 홍콩의 암흑가를 누비며 행적을 추적하던 클라인은 시타오가 마피아조직 보스 수동포(이병헌)의 연인 릴리(트란 누 엔 케)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5일 개봉한 범죄 스릴러 영화 ‘나는 비와 함께 간다’는 베트남 출신 감독 트란 안 훙의 작품이다. ‘그린 파파야 향기’(1993년)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과 신인감독상을, ‘씨클로’(1995년)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감독답게 치밀한 짜임새와 유려한 영상미가 돋보인다. 필리핀·홍콩· 로스앤젤레스를 오가며 촬영한 화면들은 이국의 매력을 고루 접하게 한다. 영화는 고통과 구원의 실체에 관해 물음을 던진다. 현대판 예수의 생애를 보여주는 스토리는 조금 난해하며 종교적, 철학적이다. 한·미·일 톱스타 배우들의 연기대결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시 하트넷의 격렬한 내면 연기, 이병헌의 압도적인 눈빛, 기무라 다쿠야의 파격 연기변신을 볼 수 있다. 릴리 역으로 출연한 트란 누 엔 케는 감독의 실제 부인이다. 18세 이상 관람가.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내 머릿속 지우개’…48시간 뒤면 기억 잃는男

    치매를 앓는 여자와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30대 영국 남성의 사연이 외신에 소개돼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영국 에식스 주에 사는 앤디 레이(32)는 경찰관으로 일할 때 받은 스트레스로 48시간이면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는 극심한 정신적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일간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레이는 2000년부터 4년 간 경찰관으로 일하다가 심한 두통과 어지럼증을 느껴 병원에 간 그는 분열성 기억상실증을 진단 받았다. 끔찍한 범죄 현장과 자살 등을 목격하면서 쌓인 극심한 충격으로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린 것. 일을 그만 두고도 점차 기억을 잃던 그는 급기야 가족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 레이의 부인인 조(34)는 “남편은 13년 간이나 함께 산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다. 우리는 남남이 됐고 새로운 연인처럼 다시 사랑을 키워야 했다. 손을 잡는데만 6개월이 흘렀다.”고 회상했다. 그가 기억할 수 있는 기간은 48시간에 불과해 종종 일기에 “클로에라는 꼬마가 자신이 내 딸이라고 한다. 조라는 여성과 대화를 했는데, 기억이 없다.”고 쓸 정도였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그는 “아내와의 결혼식이나 딸이 태어난 날은 기억할 수 없지만 그들을 너무나 사랑한다.”면서 “이 기억을 잊을까봐 가족과 떨어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아동성폭력과의 전쟁] (1)잘못된 수사관행 바꿔라

    [아동성폭력과의 전쟁] (1)잘못된 수사관행 바꿔라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아동성폭력을 제대로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가해자에게 형량을 높이는 등 법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아동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피해자를 위한 재활 시스템 등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아동성폭력에 대한 예방과 대책 등에 대해 4회에 걸쳐 짚어 본다. “검은 괴물이 내 배에 들어왔어. 내 거란 말이야. 여기 싫어” 지난 2003년 유치원에 다닌 지 사나흘이 된 A(당시 4)양이 잠에서 깨 울며 경기를 일으켰다. A양의 부모는 딸이 유치원에서 성폭력을 당했다고 고소했고 경찰이 캠코더로 A양의 피해 진술을 녹화했다. 그런데 경찰이 “사건 이관 과정에서 캠코더 조작 실수로 녹화 테이프가 삭제됐다.”고 통보했다. A양과 가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경찰의 수사상 잘못이 명백하고, A양이 불필요하게 반복된 조사녹화로 정신적 고통을 입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원고 승소 판결하고 A양과 고소 대리인인 어머니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에서는 참고인으로 조사에 참여한 아버지에게도 1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성폭력 피해를 당한 아동들이 범인을 잡기 위한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오히려 ‘2차 피해’를 입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피해아동의 트라우마를 배려하지 않고 객관적 정황 확보에 집착하는 수사관행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 무서워 화장실에 숨었다 증언 6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수행한 법무부 용역보고서 ‘아동성폭력 재범방지 및 아동보호대책’에서 아동 성폭력 전담기관인 서울 해바라기아동센터에 접수된 아동성범죄 사건 54건을 분석한 결과 아동이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한 사건은 8건이었다. 심리는 모두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안전하게 대기할 수 있는 별도 공간이 마련되지 않아 피고인쪽 관계자와 마주칠 것을 두려워한 아동이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증언대에 서는 경우도 있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피고인쪽 변호사가 피해아동의 학교 친구까지 증인으로 소환, 피해사실이 학교에 알려진 경우도 있었다. 해바라기아동센터 관계자는 “수사기록이 성인용, 아동용으로 따로 분리되지 않아 일시, 장소 등 사건성립 요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성기 크기가 자로 쟀을 때 얼마나 되더냐.’는 식으로 극히 구체적 정보까지 물어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나체인형 모형 등을 주고 피해를 똑같이 재연해 보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 피해아동에게 2차 외상이 가해진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수사기관이 초기부터 전문가의 참여를 요청, 피해아동의 정확성을 높이고 재조사를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동의 인지, 정서, 성폭력 후유증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법률적인 지식까지 고루 갖춘 전문가 풀을 양성하는 일도 시급하다. ●피해아동 진술능력 최대한 인정해야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지혜 상담가는 “아동은 공간과 시간에 대해 정확한 개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피해를 당하고도 그 사실을 설득력 있게 진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하지만 성인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뿐이지 피해사실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표현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가 등의 도움을 받아 아동의 기준에 맞게 진술을 받아 신빙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수사단계에서 증거보전 절차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법연수원 교수로 있는 김환수 부장판사는 “검찰이 아동의 진술 등에 대해 증거보전을 신청하면 법원이 심리를 하면서 신빙성을 확보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공판 과정에서 아동을 다시 불러 증언하게 할 필요가 없다.”면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법관도 수사 초기부터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어린 아이들일수록 시간이 지나거나 유도질문을 하면 영향을 받아 진술이 왜곡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자녀가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생각되면 부모가 먼저 다그치기보다는 곧바로 믿을 수 있는 성폭력 전문가나 수사기관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했다. 피해아동의 진술능력을 최대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가해자의 만취상태를 감경사유로 포함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피해아동의 어린 나이, 후유증 등을 참작해 진술능력을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유지혜 이재연기자 wisepen@seoul.co.kr
  • [씨줄날줄] 가마꾼의 어깨/김종면 논설위원

    국무총리 정운찬. 국회 인사청문회 이후 일주일간 “생애 가장 긴 시간”을 견뎌낸 그가 마침내 일국의 재상 꿈을 이뤘다. 그는 임명동의안이 처리된 뒤 “‘가마를 타게 되면 가마꾼의 어깨를 먼저 생각하라.’는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을 되새기겠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조선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귀양에서 풀려나 향리로 돌아와 쓴 한시 ‘견여탄(肩輿歎, 가마꾼의 탄식)’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다산은 가마 타는 즐거움은 알아도 가마꾼으로 징발된 백성의 괴로움은 모르는 관리들의 도덕적 무감각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사람들 가마 타는 즐거움은 알아도/가마 메는 괴로움은 모르고 있네/가마 메고 험한 산길 오를 때면/빠르기가 산 타는 노루와 같고/가마 메고 비탈길 내려올 때면/우리로 돌아가는 염소처럼 재빠르네…기진맥진하여 논밭으로 돌아오면/지친 몸 신음 소리 실낱같은 목숨이네/이 가마 메는 그림 그려/임금님께 돌아가서 바치고 싶네” 다산이 생생히 묘사했듯 밧줄에 눌려 어깨에 자국이 나고 돌에 차여 발이 부르트는 가마 메기의 괴로움을 관리는 알 길이 없다. 그러니 가마꾼을 부리는 관리로서 그들의 어깨를 먼저 살피는 것은 당연한 도리다. 가마꾼의 어깨란 곧 나보다는 남, 사회적 강자보다는 약자를 뜻하는 것일진대 정 총리의 일성은 진보 ‘서민총리’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서민출신이지만 진짜 서민은 아닌 것으로 밝혀진 그가 과연 가마꾼의 어깨를 늘 생각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조선 전기의 학자 매월당 김시습은 이조판서를 맡아 달라는 세조의 간곡한 요청을 “사슴이 마을에 내려가면 개한테 물릴 뿐”이라며 결단코 거절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런 기개 있는 사회라면 얼마나 좋을까. 총천연색 흠집이 드러난 정 총리는 비록 야당의 말이지만 하수인, 반신불수총리 등 온갖 욕을 다 들으면서도 총리 자리에 강한 집념을 보이며 ‘최고 관리’가 됐다. 그는 국가에 봉사함으로써 채무를 갚아 나가겠다고 했지만 이 참담한 신뢰 붕괴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정 총리는 언젠가 “이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문제를 더 멀리 깊게 볼 수 있다.”고 했다. 아무쪼록 그런 혜안의 정치, 아니 행정을 펼치길 바란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복도가 분만실?”…英산부인과 입원실 부족

    “복도가 분만실?”…英산부인과 입원실 부족

    영국에서 복도나 엘리베이트 등 병원 내 공동구역에서 첫 울음을 터뜨리는 신생아가 매년 늘어나고 있다. 입원실과 조산원 부족으로 입원 후 분만실에서 정상적으로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성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타블로이드 데일리 메일의 최근 보도 따르면 지난해 영국에선 여성 4000여 명이 병원 엘리베이터나 사무실, 화장실 등지에서 출산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15% 늘어난 것이다. 병원의 수용능력이 한계에 이르러 입원을 하지 못한 임신부가 분만실이 아닌 엉뚱한 곳에서 아기를 낳은 경우가 많았다. 신문은 “입원시설의 부족으로 산모와 신생아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2년간 통계를 보면 임신부가 병원으로 이동하던 중 태어난 아기는 608명이었다. 63명은 앰뷸런스 안에서 태어났다. 399명이 대기실 등 분만실이 아닌 산부인과 내 시설에서, 117명이 응급실에서 태어났다. 복도나 사무실 등 의료시설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비의료구역이 아닌 곳에서 엄마와 처음 만난 신생아는 36명이었다. 영국 보수당 관계자는 “지난 1997년부터 지금까지 노동당 집권기간 동안 산부인과 입원실 침대가 2340개나 줄었지만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일부 지역에선 출산율이 20% 증가해 문제가 커지고 있다.”고 고발했다. 이 관계자는 “적절하지 못한 장소에서 여성들이 출산하는 트라우마에 노출되어선 안 된다.”며 “긴급상황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병실이 모자라 이상한 장소에서 아기를 낳는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비관주의자 삶 통해 역사의 진보 말하다

    비관주의자 삶 통해 역사의 진보 말하다

    역사의 발전과 세상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낙관론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일까? 아니면 이율배반적이지만 비관론의 외피 속에서 오히려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는 것일까? 70~80년대 절박했던 민주화운동 대오의 맨앞 혹은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노()작가는 ‘위악적(僞惡的) 비관론’을 들고 나와 역사의 진보에 대한 당위성을 역설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을 맡아 잠시 문단 밖으로 외도를 했던 소설가 현기영(68)이 꼬박 10년 만에 새 장편소설 ‘누란’(창비 펴냄)을 내놓았다. 1975년 등단한 이후 참혹했던 제주 4·3사건을 ‘순이 삼촌’, ‘지상에 숟가락 하나’ 등의 소설로 고발하고, 억눌렸던 역사의 한(恨)을 풀어왔던 현기영으로서는 처음으로 평생의 화두인 ‘4·3’을 떠난 소설을 내놓은 셈이다. ●시대정신·공동체의식 실종 비판 ‘누란’은 1980년대 시민의 이름으로, 민중의 이름으로 꿈꾸고 그렸던 시대정신과 공동체 의식의 실종에 대한 강한 비판을 담고 있다. 또한 지금 오히려 더욱 강하게 드리워진 절망과 죽음, 공포의 실체를 직시하는 강고한 시선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 틀이 당혹스럽다. 현기영의 작품은 역사와의 두려운 만남을 회피하지 않는 서사의 묵직함과 문장의 아름다움이 특유의 미덕이다. 하지만 ‘누란’은 기존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이런 미덕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소설은 ‘386운동권의 막내’인 주인공 허무성이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결국 허무성은 동료의 이름을 불고 변절자,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그리고 자학적인 심정으로, 고문의 가해자이며 책임자인 박정희주의자 김일강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교수 자리까지 얻는 등 악마가 내민 손을 잡는다. 그러나 ‘자학적인 비관주의자’ 허무성은 87년 6월의 전국민적 승리의 기억과 그 당시 부르짖었던 시대정신을 몸에 각인시키고 있는 인물. 그는 2002년 월드컵 붉은악마의 물결과 서태지 신드롬, 대량생산, 대량소비로만 유지되는 사회, 비판과 저항문화의 실종, 파시즘으로 회귀하는 한국 사회 등에 대해 소설의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한’ 비관론적 자세를 잃지 않는다. 소설의 제목 ‘누란’은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사막 사이에 존재하다 모래폭풍에 뒤덮여 사라진 역사 속의 고대왕국이다. 비관론을 앞세워 풀어낸 작품답게 2009년 한국의 암담함에 빗댄 묵시록적인 제목이다. 현기영은 “나는 역사의 진보를 믿으며 여전히 낙관주의적 역사관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서도 “낙관주의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비관론을 갖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당혹해할지 모를 독자들에게 설명했다. ●“4·3에 대한 간절함 더해” 어쨌든 이 작품을 통해 현기영은 제주와 4·3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일까. 현기영은 “4·3은 나에게 실어증까지 앓도록 만든 내면의 억압이었다.”면서 “이를 떠나서는 단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었던 운명의 사건이자 나를 지배해온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일곱 살 소년이 생생히 목도한 목잘린 시체 등 참혹한 4·3학살의 장면들은 쉬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임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는 “오래 속박됐던 4·3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다른 얘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면서 “이 작품을 쓰면서 후련함도 들고,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벗어난 게 아니라 오히려 4·3에 대한 간절함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4·3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이 이뤄졌다고 하지만 최소 3만명 이상 죽음들의 억울함이 새삼스럽게 하나씩 밀려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덧붙였다. 변화하는 현기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하지 않는 현기영이 모두 반갑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영화로 진화하는 ‘이끼’ 저도 몹시 궁금”

    “영화로 진화하는 ‘이끼’ 저도 몹시 궁금”

    흥부와 춘향이를 비틀어 바라본 ‘연씨별곡’과 ‘춘향별곡’. 서울 아현동 가스폭발 사고,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했던 ‘야후’. 노인들의 사랑을 익살스럽게 다룬 ‘로망스’. 그리고 한국 만화에서 보기 드물게 스릴러 장르를 내세우며 독자들의 소름을 돋게 했던 ‘이끼’…. 뜨거운 관심 속에서 지난달 ‘이끼’를 마무리한 윤태호(40) 작가를 7일 서울 신사동 누룩미디어 사무실에서 만났다. 누룩미디어는 강풀, 양영순, 윤 작가 등이 뭉쳐 설립한 만화 전문 에이전시다. ‘이끼’에는 사소하게 보일 수도 있는 정의를 고집하다 모든 것을 잃은 주인공이 나온다. 산골마을에서 떨어져 살던 아버지의 부고를 접하고는 그곳에 내려가 아버지의 죽음과 마을 사람들에 얽힌 음모를 파헤치게 된다. 사회가 허용하는 용납이나 관용의 폭이 어느 정도인지 다뤄보고 싶었다는 게 윤 작가의 설명이다. ‘이끼’는 씨줄날줄로 촘촘하게 엮은 스토리, 섬세한 심리 묘사, 영화 같은 장면 구성,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연출력, 밀도 있는 대사로 큰 인기를 끌었다. 독자들이 댓글로 해설하고, 토론을 벌일 정도. ‘이끼’를 비롯해 그의 작품 전반에는 사회 고발적인 시선이 관통하고 있다. 윤 작가는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6·29선언 등 민주화 과정을 경험했죠. 비슷한 나이의 작가 가운데 대한민국의 사회성이 각인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그러한 시대를 거쳐온 사람으로서 당연히 갖고 있는 자세와 트라우마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에서 실패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실패하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읽혀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인지 모른다. 편하고 친철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 것도 윤 작가의 특징. 내러티브보다 캐릭터에 집중하며 인물 내면의 변화무쌍함과 다양성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명쾌하지 않고 모호해 독자들은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겉으로 드러나는 선명한 사건만으로는 요즘 독자층에게 감동을 이끌어내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풍성한 그림체와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을 과시해 스승인 허영만 작가의 뒤를 이어 한국 대표 만화가가 될 것이라고 평가받으면서도, 스승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지점이다. 윤 작가가 자신과 스승의 스타일을 비교하는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선생님이 불끈 튀어나온 힘줄을 그린다면, 저는 그 밑에 깔린 실핏줄을 탐닉합니다. 불륜 사건으로 치면, 선생님은 3자가 대면하는 커피숍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시작할 것 같아요. 그러나 저는 세 명이 각각 커피숍에 나오기 전까지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그리죠.” 그는 출판만화 시장이 열악해지며 힘겨운 시기를 거쳤다. 3~4년 정도 눈에 띄는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고 독자들과 멀어졌던 것. 웹툰은 새로운 돌파구가 됐다. “‘이끼’가 출판만화였다면 소수만 아는 안타까운 작품이 됐을 것 같아요.”라고 토로하는 그는 출판만화에 견줘 소재와 표현의 폭이 넓은 점을 웹툰의 장점으로 꼽았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곳이라 퀄리티가 보장되지 않은 아마추어적인 작품도 많다는 지적에 대해 윤 작가는 “독자와 시장이 판단해야 할 몫”이라면서 “독자가 자신들의 의견을 정확하게 표현해 좋은 작가를 살아남게 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이끼’는 영화로도 진화한다. 강우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조만간 크랭크인한다. 정재영, 박해일, 유선 등이 나온다. 독자들 사이에서는 강 감독이 연출을 맡은 게 적절한지, 정재영이 이장 역에 어울리는지 갑론을박이 무성하다.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이야기. 윤 작가는 “영화가 만화와 동일하거나 엇비슷하다면 별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감독이나 출연진 모두 제가 상상할 수 있는 조합을 넘어섰죠. 그래서 더욱 궁금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결과가 기다려집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그의 독특한 시선은 어디로 향할까. 바둑과 인천상륙작전이다. 바둑의 경우 아직 아이템만 있고 아이디어는 영글지 않은 상태. 요즘 열심히 바둑 관련 책을 들여다 보고 있다. 2년가량 구상했다는 인천상륙작전은 2년 정도 뒤에 독자들에게 꺼내놓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제가 바라보는 한국 근대사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가 생존해 있을 때는 힘들었겠지만 이제는 세대가 교체돼 이승만, 맥아더 등의 인물을 객관화·기호화시켜 저만의 시선으로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ㆍ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靑少年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靑少年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청소년은 누구이고,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 영어로 틴에이저(Teenagers) 또는 영 어덜트(Young Adult)라고 하는 청소년은 연령으로는 13~19살, 아직은 어른(Adult)이 아닌 사람이다. 어른들은 생각이 채 여물지 않았겠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사람이라고 정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을 어떻게든 뚫고 나온 어른들이 청소년기의 자신으로 돌아가 보면, 자신이 미성숙하거나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다는 것에도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시에 자신들은 충분히 성숙했다고 착각했을 터이고, 무한한 가능성은 오히려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켰을 테니 말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각별하게 보내는 능력이 있었다. 국가가 어려운 시기에 사회의 변화를 이끌었다. 17세 유관순 열사는 천안에서 3·1만세운동을 조직했고, 1929년 11월 광주학생들은 국내뿐 아니라 중국의 학생 항일운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3·15부정선거 규탄시위에 참여했다가 사망한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은 4·19혁명의 도화선이었다. 지난해 정부를 위기로 몰아넣었던 촛불시위도 시작은 고등학생들이었다. ●젊은 사진작가 9명 8개월간 작업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8월23일까지 ‘과연 청소년은 누구인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청·소·년’ 사진전을 연다. 미술관은 2006년 한국의 시각문화 사진전을 시작으로, 2007년 건축과 공간에 나타난 새마을운동, 2008년 산업현장을 돌아본 공장 등을 주제로 사진전시를 열었으며 청소년을 주제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학교에서 거리로 뛰쳐나와 촛불을 든 중·고등학생들은 한국의 문화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소재로 유의미했을 것이다. 지난해 10월부터 미술관과 9명의 젊은 사진작가가 만나 여러 차례의 회의를 거쳐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8개월간 작업했다. 여기에는 전업 사진작가도 있지만 학원 수학 강사, 대안학교 관계자, 교사 등 아마추어 작가들도 참여했다. 청소년을 자주 만나거나 그들의 문화에 최소한의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다. 강재구, 고정남, 권우열, 박진영, 양재광, 오석근, 이지연, 최은식, 최종규 등이 그들이다. 29살에서 45살의 작가들은 청소년들의 문화, 생각, 생활, 주변환경까지 섬세한 눈으로 잡아냈다. 일민미술관의 양유진 큐레이터는 “작업 초기에는 작가들이 모두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한 청소년이기에 카메라 앵글에 잡히는 청소년의 모든 것은 대체적으로 우울하고 어두침침한 것”이었다며 “서너 차례의 회의를 통해 우울한 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도록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청소년 사진전은 다소 우울하다. 작가들이 자신들의 학창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내고, 윤색하고, 그때의 기억에서 현재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개선됐는지를, 또는 세월과 무관하게 똑같은 것이 무엇인지를 잡아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사진전 속의 청소년들은 교실에서 여러 개의 의자를 붙여 놓고 대학 소재지가 표시된 전국지도 앞에서 단잠에 빠져 있는가 하면,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MP3와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쥐고 게임을 하거나 문자를 보내고 있다(이지연 작). 롱다리, S라인이 확실하다는 교복의 소비자(강재구 작)이자, 소녀시대, 동방신기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고, 코스튬 플레이로 만화 주인공을 흉내낸다(박진영 작). 학원 수학 강사인 작가는 청소년들이 낙오되는 현장을 지켜본다. 낮엔 학교에서, 야간엔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근로 청소년의 어려움도 묵묵히 바라본다(권우열 작). 스트레스를 날리기 위해 폭주족이 됐지만 뒤에 태울 여학생이 없어 강아지인형을 매달고 다니는 남학생의 모습은 정말 귀엽다(오석근 작). ●청소년 문화·생각·생활 섬세하게 렌즈에 담아 40대의 한 직장인은 최악의 악몽은 학력고사장에서 답안을 밀려 쓰는 꿈을 꿀 때라고 말했다. 벌써 20년도 넘은 과거의 일인데도 스트레스가 고조되면 반복적으로 그런 꿈을 꾼다고 했다. 정신적 상흔, 트라우마다. 그래서 깜깜한 밤하늘에 형광등이 환하게 빛나는 고3 교실의 야간자율학습 사진(최은식 작)을 지켜보는 마음은 처연해질 수밖에 없다. 사회가 학생들을 경쟁에 내몰고 있다고 불평하지만, 실제로 청소년들의 그 많은 학원순례를 끊어주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자녀들을 타이르며, 20~30여년 전 고통을 세습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도 겪었던 일이니 너도 잘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당연시하는 것은 어른들이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 아닐까. 전시회를 돌아본 한 청소년은 오히려 “사진 속의 청소년은 우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악몽’에 시달린다면 빨리 깨어나야 하니 말이다. (02)2020-2055.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보잘 것 없는 개인의 글을 검찰이 짜깁기해…”

     ”내 손끝이 만들어낸 사소한 문장들이 악의와 음모를 가진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면 나를 찌르는 섬뜩한 흉기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았습니다.(중략) 부끄러움을 아는 자들이라면,저보다 더 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중략) 개인 김은희가,지극히 사적인 언어로 쓴,단 한 사람에게만 읽도록 허락한 글들(중략) 검찰은 그것을 ‘작가 김은희’의 글로 세상에 공개했습니다.(중략) 그것도 수천 수만 개의 문장 중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좋은 문장들만 짜깁기해서 말이지요.”  검찰이 MBC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하면서 이메일 내용을 공개해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김은희 작가가 22일 검찰이 ‘개인 김은희’의 글을 ‘작가 김은희’의 글로 둔갑시켜,그것도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좋은 문장들만 짜깁기해서 세상에 공개했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김 작가는 이날 MBC구성작가협의회와 한국방송작가협회에 올린 ‘나의 죽음을 기억함’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착잡하고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또 검찰에서 그 문구들의 맥락과 취지에 대해 설명하기를 거부한 이유에 대해 “제가 메일을 읽도록 허락한 단 한 사람 외에 누구도 그에 대한 설명을 내게 요구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김 작가는 “이제는 말해야겠습니다.”라며 “검찰이 멋대로 발췌해 공개한 문구들에 대해 경위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참으로 어처구니없지만,비록 ‘개인 김은희’는 짓밟히더라도 ‘작가 김은희’가 열정을 다해 만들었던 프로그램의 정당성까지 함부로 훼손되고 공격받는 것만은 참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이어 “그 문장들이 담고 있는 나의 ‘상념’은 분명히 앞뒤 맥락과 경위가 있었고 검찰은 나의 ‘진의’를 왜곡하고 거짓말을 했다.”고 덧붙였다.  ‘범죄의 의도’ 입증 차원에서 이메일을 공개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 김 작가는 “달리 말해 광우병 프로그램 자체가 하나의 ‘범죄’ 또는 ‘불법 행위’라는 것인데,그렇다면 PD수첩 보도가 범죄, 불법행위가 아닌 것으로 판명될 경우 나의 이메일 공개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이겠죠? 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라며 “김은희 개인은 보잘 것 없지만 진실과 진정의 힘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다음은 김 작가의 글 전문.  나의 죽음을 기억함.  후아-  먼저 심호흡부터 하고 시작해야겠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탁탁 막히는 나날입니다.  태어나 이렇게 많은 전화와 문자를 받은 적도 처음입니다.  통화를 하고 있는 중에도 쉴 새 없이 전화와 문자가 들어오는 경험을 하며 처음엔 그저 어리둥절했고, 나중엔 신기했습니다.  내게 현실을 실감하게 해준 것은 바로 그런 전화와 문자들이었습니다.  ‘부엉이 바위는 꿈도 꾸지 마’ 라는 문자도 있더군요. ‘딴 생각 못하시게 옆에서 잘 감시하래요.’ 후배작가가 말했습니다. ‘별일 아닌 것처럼 보낼 수 있지? 은희야. 그럴 수 있지?’ 속상해 술을 마시고 들어온 선배언니가 내 손을 붙잡고 몇 번씩 같은 말을 했습니다. ‘며칠만 지나면 과거가 될 거예요. 견디고 버티세요.’ 지인이 메일을 보내주었습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 두 개의 문장이었습니다. ‘밥은 꼭 챙겨먹어. 잠은 꼭 자고.’ ‘기사도 댓글도 절대 보지 마라.’  외면하려 애쓰지만 잘 안 되는 경우들이 있지요. 누군가에게 마음을 뺐기는 경우가 그렇듯.  내 손끝이 만들어낸 사소한 문장들이 악의와 음모를 가진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면 나를 찌르는 섬뜩한 흉기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사람 하나 짓밟는 것쯤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이들을 보며 ‘살의’라는 단어 이외의 표현은 생각나지 않더군요. 글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 이제 나는 믿을 수 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어쩌다. 가족들이 걱정할 만큼 일밖에 모르고 일이 끝나면 사랑하는 조카들과 노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아는, 그저 말보다 글을 좋아하고 이런저런 상념을 글로 남기는 것을 지친 일상의 위안으로 삼아온 30대 평범한 대한민국의 여성이 어쩌다 졸지에 국가 전복의 음모를 가지고 국민들을 선동한 대단한 반정부적 인사로 낙인찍혔을까요. 어쩌다 촛불집회 군중들 뒤에서 음흉하게 키득거리는 마녀가 되었을까요. 부엉이 바위로 보내고 국민장을 치러야 한다는 저주를 받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괜찮습니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받은 치욕과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치유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쉽게 치유되기 어려운 트라우마를 남기기 마련이지요. 부끄러움을 아는 자들이라면, 저보다 더 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지치고 힘든 하루를 보낸 밤, 나는 이런저런 상념을 글로 쓰거나 주변사람들에게 써 보내며 마음을 추스르곤 했습니다.  일상에서 겪은 소소한 일들과 살면서 겪게 되는 불만들과 만난 사람들과 훌쩍 떠난 여행기와 허무맹랑한 공상과 우스꽝스러운 농담이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골목길에서 마주친 파지 할머니를 두고 몇 장의 글을 썼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한 곡, 빗소리, 신문기사 하나로도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 많은 글들 중엔 남들이 봐서는 안 되는 사생활도 들어있었습니다.  누구나 상념이라는 것이 있지요.  공적인 영역에서 일하며 공적인 언어만을 써야 하는 방송작가이기에 할 수 없는 말, 쓸 수 없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개인 김은희가, 지극히 사적인 언어로 쓴, 단 한 사람에게만 읽도록 허락한 글들이었습니다. 상대와 나의 말투, 글투, 성격, 관계가 녹아있는 글들이었고 농담도 과장도 정제되지 않은 표현들도 있었습니다. 모두 내가 잘 알고 나를 잘 아는 지인들에게 보낸 개인 서신들이었기에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문장들이었습니다.  그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검찰이 강제로 헤집고 들여다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그것을 ‘작가 김은희’의 글로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그것도 수많은 메일 중, 수천 수만 개의 문장 중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좋은 문장들만 짜깁기해서 말이지요. 개인적인 상념이 대중들에게 공개된 순간, 그것은 설명하고 해명해야 할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떤 기자가 ‘필이 꽂히다’라는 표현에 대해 묻더군요.  필이 꽂히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힘든 게 작가의 일이고 기자들이 그렇듯 시사 프로그램 작가들 역시 우리 사회의 큰 이슈, 중대한 사안일 경우 더 필이 꽂히기 마련이라고 나는 ‘설명’해야 했습니다.  ‘광적으로’ 일을 했다는 표현을 문제 삼았더군요. 광적으로 일한다는 것이 ‘열정’의 또 다른 표현이며 사생활도 뒤로 할 만큼 프로그램에 올인하는 것이 이 거친 방송계에선 작가의 ‘미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대체 어떻게 납득시켜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최근에 배우 김명민에게 ‘필이 꽂혔고’ 그가 출연한 드라마며 영화들을 편집실에 모아두고 며칠 밤을 새워 ‘광적으로’ 수백 권의 테잎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김명민은 거기 없었다’를 구성하고 대본을 썼습니다.  메일 계정 안에 모아두었던 수백 페이지의 메일 중 시국 관련이나 정치적인 것으로 읽힐 수 있을 만한 내용은 검찰이 공개한 그것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그것도 앞뒤 맥락과 취지가 모조리 왜곡된 채로 공개됐고, 활용되고 있습니다.  검찰에서 저는 그 문구들의 맥락과 취지에 대해 설명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제가 메일을 읽도록 허락한 단 한 사람 외에 누구도 그에 대한 설명을 내게 요구할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국가 기관과 거대 언론사로부터 일방적 ‘폭력’을 당한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말해야겠습니다.  검찰이 멋대로 발췌해 공개한 문구들에 대해 경위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참으로 어처구니없지만, 비록 ‘개인 김은희’는 짓밟히더라도 ‘작가 김은희’가 열정을 다해 만들었던 프로그램의 정당성까지 함부로 훼손되고 공격받는 것만은 참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공개된 메일 문구들이 훌륭하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만약 그것이 ‘작가 김은희’의 글로 어딘가에 공개되고 다른 누군가 읽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면 같은 내용이라도 그렇게 쓰지는 않았겠지요.  그러나 그 문장들이 담고 있는 나의 ‘상념’은 분명히 앞뒤 맥락과 경위가 있었고 검찰은 나의 ‘진의’를 왜곡하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설사 내용이 그보다 더한 것이라 해도 그것이 피디수첩 보도 내용의 진실성을 훼손할 수는 없습니다.  개인 상념이 무엇이든, 방송 프로그램은 방송 프로그램의 제작 시스템과 보도방식이 있고 시사 프로그램은 ‘사실 취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김은희 개인을 짓밟고 죽여도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과 정부의 졸속협상’이라는 진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검찰은 나의 이메일 공개가 ‘범죄의 의도’ 입증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더군요.  달리 말해 광우병 프로그램 자체가 하나의 ‘범죄’ 또는 ‘불법 행위’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피디수첩 보도가 범죄, 불법행위가 아닌 것으로 판명될 경우 나의 이메일 공개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이겠지요? 아마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나의 벗이 내게 일러주었습니다.  검사가 아무리 힘이 세도, 한 인간의 진실을 모조리 부정할 만큼의 대단한 권력을 가지고 있진 않다고. 이 경우 우리가 기대야 할 것은 언제나 진실과 진정이라고.  김은희 개인은 보잘 것 없지만 진실과 진정의 힘은 그렇지 않습니다.  격려와 응원, 늘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 ‘몸짓의 예술’ 화려한 무대 줄줄이

    ‘몸짓의 예술’ 화려한 무대 줄줄이

    현대 무용계의 흐름을 한눈에 확인하는 ‘국제현대무용제(MODAFE·모다페)’, 세계적인 무용수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세계 발레스타 페스티벌’, 이 시대를 대표하는 안무가를 만나는 ‘새라새 무용시리즈’, 중국 전통음악과 무용의 만남 ‘여인의 향기’…. 몸짓으로 표현하는 예술 무대가 줄줄이 펼쳐진다. 1982년에 첫선을 보이며 한국의 대표적인 무용축제로 자리잡은 ‘모다페’가 26일 개막한다. 12일간 서울 아르코예술극장과 아르코 시티극장, 서강대 메리홀 등에서 15개팀이 참가해 현대 무용계의 흐름을 보여준다. 개막작인 나세르 마틴 고셋의 ‘코미디’(프랑스)를 비롯해 이나 아슬라모바의 ‘미스트 윈터’(벨라루스), 크리스 해링의 ‘포징 프로젝트 B-더 아트 오브 시덕션’(오스트리아) 등 5개 작품을 해외초청작으로 준비했다. 국내에서는 김은희의 ‘에테르’, 최상철 의 ‘빨간말’, 김형남의 ‘아프다’, 국은미의 ‘몸의 몽상’ 등 10팀이 화려한 몸짓으로 무대를 꾸민다. 차세대 안무가를 발굴하는 ‘스파크 플레이스’, 젊은 안무가의 실험 무대 ‘모다페 오프 스테이지’, 안무가와 대화의 시간을 갖는 ‘모다페 토크’ 등도 마련했다. (02)765-5352. 중국의 전통음악과 현대 무용을 만나는 중국 랴오닝 가무단의 ‘여인의 향기’는 30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른다. 오페라 ‘투란도트’의 음악 소재로 사용된 중국 민요 ‘재스민 꽃’,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는 ‘양산백과 축영대’의 대표곡 ‘양축’등 20여개의 곡이 춤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여인의 일생을 신비롭고 낭만적으로 표현한다. (031)783-8000. 고양문화재단은 새달, 실험극장인 새라새극장에서 올해 첫선을 보이는 ‘새라새 무용시리즈’를 올린다. 5~6일에는 이해준의 ‘트라우마’를 준비했다. ‘트라우마’는 어린이 성폭행 미수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정신적 충격이 남기는 상처를 그린 작품으로, 인간의 폭력성을 통해 인간관계의 의미를 살핀다. 두 번째 작품인 류석훈의 ‘변신’은 12~13일 공연된다. 카프카의 ‘변신’을 재해석해 소외, 무관심이라는 원작의 주제를 쉽게 유희적으로 풀어냈다. 1577-7766. 또 새달 4~5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세계 발레스타 페스티벌’이 펼쳐진다. 러시아 키로프발레단, 쿠바국립발레단, 베를린 슈타츠오퍼 발레단 등 세계적인 발레단에서 주역으로 활동하는 최정상급 무용수들이 고전·현대 발레 작품의 하이라이트만을 모아 선사하는 갈라 공연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무용수인 김주원·장운규(국립발레단)는 ‘레이몬다’로, 황혜민·엄재용(유니버설발레단)은 ‘봉선화’로 무대에 설 예정이다. (02)751-9630.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데스크 시각] 경제위기를 신종플루 다루듯… /김태균 경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경제위기를 신종플루 다루듯… /김태균 경제부 차장

    또다시 전 세계 공통의 고민거리가 출현했다. 멕시코에서 시작돼 짧은 시간동안 20여개 나라로 퍼져나간 신종 인플루엔자(인플루엔자A/H1N1)의 공포다. 지난해 9월 ‘리먼 브러더스 사태’에서 비롯된 글로벌 경제위기에 이어 7개월여 만에 강한 위력과 파급력을 가진 신종 돌림병이 등장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신종 인플루엔자는 여러 면에서 닮았다. 둘 다 북미(미국·멕시코)발이란 사실은 우연이라 쳐도 전 지구적 공간 특성을 무색케 하는 빠른 전파 속도와 무차별적으로 우리 삶의 공간에 침투하는 파괴력이 그렇다. 세계 5대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메릴린치 매각으로 촉발된 금융위기는 삽시간에 유럽으로, 아시아로, 중남미로 전파돼 금융시장을 마비시켰다. 위기는 다시 실물경제로 옮겨져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던 세계경제를 멀찌감치 뒤로 후퇴시켰다. 우리나라는 10여년 전 외환위기의 트라우마로 위기의 진원지 못지않은 대혼란에 빠졌다. 공교롭게도 두 사태에 대해 때이른 낙관론이 나오고 있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보다도 위중한 사태라고 표현됐던 이번 경제위기가 당초 우려보다 일찍 종료될 것이라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도 멕시코가 비상사태를 부분 해제하는 등 초기 공포에서 벗어나면서 머잖아 진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흔히 위기의 초기에는 모든 나쁜 가능성들을 쓸어담아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를 만들지만 시간이 지나 공포에 익숙해지면 긍정적인 부분에 애써 눈길을 돌리려는 게 사람의 심리다. 그러나 위기 대응은 냉정한 관측과 분석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5일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한 감시를 강력하게 유지해야 한다.”며 낙관론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감염자가 지속적으로 늘어 1000명을 훌쩍 넘어선 가운데 미국 질병관리예방본부는 “미국 전역에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돌고 있으며 사망에 이르는 사례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우리경제의 사정도 낙관론은 때이른 기대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행의 올 1·4분기 경제 성장률 발표를 보면 긍정적인 대목을 찾기는 어렵다. 전분기 대비 0.1%로 아슬아슬하게 플러스 성장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5.1%로 워낙 나빴던 데 따른 기저효과의 측면이 크다. 전년동기 대비로는 4.3%나 줄었다. 지난해 4분기에 이어 2분기 연속 마이너스일 뿐 아니라 외환위기 이듬해인 1998년 4분기(-6.0%) 이후 가장 낮다. 설비투자는 전년동기 대비 -9.6%, 제조업 생산은 -3.2%로 줄었다. 최근의 주가 상승도 대세 하락기에 드물지 않게 나타나는 일시적인 반등장세(베어마켓 랠리) 이상의 의미를 찾기 힘들다.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경험해 온 것에 못지않은 새로운 악재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원·달러 환율 급등세가 멈춘 것은 고환율에 따른 수출증대 효과를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음을 뜻한다. 줄곧 악화돼 온 고용 위축은 소비 부진을 한층 더 심화시킬 수 있다. 당장 이번 2분기 성장률이 1분기 대비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지금 우리가 열심히 보아야 할 것은 한층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을 예상하고 쓴 비관적 시나리오다. 이를 바탕으로 개인·기업·금융에 걸쳐 잠재한 부실의 바이러스를 제거해야 한다. 뼈아픈 구조조정 노력을 몇몇 호전된 숫자에 기대어 게을리하거나 일부러 피해서는 안 된다. 또 하나, 위기는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가 계절성 인플루엔자와 섞여 더욱 강력한 변종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WHO의 우려처럼 말이다. 김태균 경제부 차장 winds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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