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트라우마
    2026-09-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901
  • 학생 때부터 ‘태움’ 호소했는데…괴롭힘도 교육이라는 간호대

    최근 서울의 한 대학병원 간호사가 ‘태움’(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 문화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예비 간호사들이 모인 간호대학 내에서도 괴롭힘 문화가 적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동기들 사이에서도 ‘나이’가 서열이 돼 나이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을 괴롭히기도 한다는 것이다. 일부 간호사와 간호학과 학생들은 “또 다른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면서 집단행동 움직임마저 관측된다. 28일 중형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A씨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간호학과 시절 동기 언니의 괴롭힘 때문에 극심한 신경증, 불안장애, 공황장애를 겪었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자살 충동도 수차례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2016년 간호사 국가고시에 합격하고 취업도 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1년 동안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간호사로 근무하는 지금도 심리 치료를 병행하면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1학년 초부터 이유 없는 괴롭힘에 시달렸던 그는 지도교수를 찾아가 상담도 받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너를 질투해서 그런 거다’ ‘이런 사람도 겪어 봐야 나중에 병원 가서 선배 간호사들로부터 더 힘든 일도 이겨내지 않겠느냐’는 등 실질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위로가 아닌 괴롭힘에서 벗어날 돌파구가 필요했는데 ‘힘들다’는 말을 하면 할수록 소문이 나면서 점점 더 괴롭히는 강도가 세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괴롭힘 문화를 단지 인력 부족의 문제로 치부하기보다 억압적인 교육 방식 등 보다 근원적인 부분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강지연 동아대 간호학과 교수는 2016년 쓴 논문 ‘간호사의 직장 내 괴롭힘 경험에 관한 근거이론 연구’에서 “괴롭힘의 중심에는 갈굼이 돼 버린 가르침이 있다”면서 “갈굼을 이겨낸 간호사들조차 전달(교육) 방식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를 한다”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자 현직 간호사와 간호대생 300여명은 오는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움 근절 집회를 열기로 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전북 연극계도 미투 파문

    전북 전주연극협회 소속 여배우가 극단 대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폭로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자신을 12년차 배우라고 밝힌 송원(여.31)씨는 26일 오후 전북경찰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010년 1월 극단 명태 대표 최경성(49)씨로부터 성적인 희롱과 신체적 접촉을 통한 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송씨는 최 대표가 당시 23세 이던 자신을 전주에서 전북대 뮤지컬 동아리 MT가 열린 충남 대천까지 차에 태우고 가는 과정에서 손을 주무르고 허벅지위 손을 얹었다고 주장했다. 또 대천 모텔로 데리고 들어가 침대 옆자리에 누우라고 강요하고 귓불을 만지는가 하면 뒷목에서 쇄골부까지 손으로 만져 성적 치욕감을 주었다고 밝혔다. 이날 최대표는 또 송씨의 허벅지를 쓸어내리는 등 추행을 계속해 뜬 눈으로 밤을 버텼다고 말했다. 이후 송씨는 집안사정을 핑계 대고 극단 명태를 탈퇴해 무기력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으나 최 대표가 단원들에게 자신이 남자 관계가 복잡해 극단에서 내?았다고 헛소문을 퍼뜨리는 등 명예를 훼손했다고 전했다. 송씨는 “저는 8년이 지난 지금까지 트라우마로 인한 상처에 시달리고 있는데 최 대표는 진심어린 사과를 하지 않고 악의적인 소문만 내고 있을뿐 아니라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봉송을 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고 가슴이 무너져내렸다”며 “연극계 또 다른 피해자들의 마음에 위로와 용기가 되기 위해 지난 상처를 밝힌다”고 말했다. 한편, 극단 명태는 적지 않은 여자 배우들이 오랫동안 활동하지 않고 뚜렷한 이유 없이 극단을 떠나 최 대표의 또 다른 성추행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삐익’ 소리에 철렁… 포항 “지진 문자 알림음 바꿔주세요”

    폭설ㆍ산불 등 재난 알림음과 동일 경북도, 기상청에 어제 공식 요청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울릴 때 마다 또 지진이 났나해서 깜짝깜짝 놀랍니다. 좀 살려주세요.” 지난해 11월 15일 규모 5.4의 강진 이후 100여회의 잦은 여진으로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포항 시민들이 긴급재난문자 시스템을 고쳐달라는 민원을 쏟아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진은 물론 폭설, 산불 등 각종 재해 경고 문자메시지의 알림음이 똑같아 휴대전화가 울릴 때마다 지진인줄 알고 혼비백산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경북도는 22일 지진 발생시 휴대전화 사용자들에게 발송하는 긴급재난문자 수신 알림음(경보음)을 다른 긴급재난문자 알림음과 차별화해서 전송해 줄 것을 기상청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기상청 등 정부 각 부처는 태풍·홍수·지진·폭설·폭염·화산·가스유출 등 각종 긴급재난 발생시 휴대전화 사용자들에게 40㏈(데시벨) 크기의 동일한 알림음(삐익~삐익~)을 보내는데, 지진의 경우에만 알림음을 다르게 해달라는 것이다. 김모(56·포항시 흥해읍)씨는 “휴대전화에서 삐익 소리가 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면서 “놀라서 들여다 본 문자메시지에 건조경보나 한파, 산불 같은 내용이 써있으면 그나마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말했다. 김정수 경북도 자연재난과장은 “긴급재난 문자 알림음에 따른 혼란을 피하기 위해 예측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지진·화산·가스누출 때와 예보가 가능한 태풍·홍수·폭염 시를 엄격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를 위해 지진 긴급재난문자 발송 주체인 기상청 뿐만 아니라 재난문자방송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와도 적극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안동·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지진 엑소더스?… 포항 흥해 인구가 줄어든다

    지진 엑소더스?… 포항 흥해 인구가 줄어든다

    지난해 11월 15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 지진 이후 진앙인 흥해읍 인구가 계속 줄고 있다. 일부에서는 오는 23일 포항 지진 발생 100일을 앞두고 계속되는 여진과 더 큰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잇따른 경고에 불안과 공포를 느낀 주민들의 엑소더스(대탈출)가 시작된 게 아니냐고 우려한다.21일 기상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포항 강진 이후 현재까지 총 97차례의 여진이 발생했다. 규모 2~3이 89회, 규모 3~4가 6회, 규모 4~5가 2회 일어났다. 특히 지난 11일 본진 이후 가장 큰 규모인 4.6 여진이 발생해 주민들이 또 다시 큰 피해를 입었다. 전날까지 포항시에 접수된 잠정 피해 신고가 2만 3514건에 이른다. 흥해읍 인구는 지진이 일어나기 전인 지난해 10월 3만 4181명에서 지난 20일 기준 3만 3525명으로 줄었다. 3개월여 만에 656명이나 감소한 것이다. 이는 2016년 10월(3만 4433명) 이후 1년 동안 252명 줄어든 것에 비해 2.6배나 많다. 이처럼 단기간에 인구가 급감한 것은 이례적으로 알려졌다. 읍민 가운데 상당수가 주소를 옮기지 않고 이주했거나 임시로 다른 곳에 사는 경우도 많아 실제 인구는 더 적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흥해읍민들은 “지난해 강진과 지난 11일 발생한 강력한 여진으로 극심한 지진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탈(脫)흥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갈수록 인구 감소는 더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박성대(57) 흥해읍장은 “읍민 감소와 엑소더스와는 상관이 없다”면서 “지진으로 주택 반파 이상의 피해를 입은 읍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잊힌 국가 범죄, 형제복지원 사건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잊힌 국가 범죄, 형제복지원 사건

    국회 앞에 사람이 살고 있다.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앞. 두 사람이 눕기도 비좁은 천막에서 한종선(42)씨, 최승우(49)씨가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한씨와 최씨가 지난해 11월부터 국회 앞에서 지낸지도 어느덧 100일이 넘었다. 21일은 농성 107일째 되는 날이다. 천막 옆 현수막에는 이들의 절규가 파랗고 빨간 글씨로 적혀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하라.’‘형제복지원 사건’은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발생한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건이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 7월 5일부터 1987년 6월 30일까지 약 12년 동안 부산 북구 주례동 산18번지에 있던 사회복지시설이다. 피해 생존자 한씨는 1984년 10월 두 살 많은 누나와 함께 아버지 손에 이끌려 형제복지원에 입소했다. 당시 부산에서 구두닦이를 하던 한씨의 아버지는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힘들어 형제복지원에 아이들을 보냈다. 당시 주변에서 “형제복지원은 좋은 곳”이라는 이야기가 많았고, 동네 사람들도 “먹고 살기 힘든데 잠시 그곳에 보내라”고 많이 권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곳은 생지옥이었다. 한씨는 형제복지원에 갇혀 있던 3년 동안 강제 노역과 구타, 고문, 굶주림 등에 시달렸다. 그는 “‘죽는 게 더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면서 “맞는 게 너무 두렵다 보니 일부러 입 안을 깨물어 기침할 때 피가 나오도록 해서 결핵병동에 입원하려고 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더 많이 맞았다”고 전했다. 한씨는 1987년 6월 30일 형제복지원이 폐쇄되면서 고아원으로 옮겨졌고, 그 후 약 20년 동안 아버지와 누나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다 2008년 허리를 다쳐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했는데, 가족관계 확인 과정에서 아버지와 누나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아버지도 3년 뒤에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끌려갔다고 한다. 형제복지원, 그곳은 생지옥이었다 1987년 1월 17일 형제복지원의 원장 박인근(2016년 사망 당시 85세)씨의 구속을 계기로 형제복지원 사건의 일부가 드러나면서 당시 제1야당인 신한민주당(신민당·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이 현장 조사에 나섰다. 신민당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해 당시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인원만 최소 3164명이었고, 12년 동안 최소 512명이 희생됐다. 1980년 삼청교육 과정에서 사망한 54명의 열 배에 가까운 숫자다. 조사 결과 ‘원장-총무-사무장-중대장-소대장-조장’으로 이어지는 군대식 지배 구조 아래 일상적인 강제 노역과 구타, 학대, 굶김, 성폭력, 살인 등이 자행됐다. 또 원생들 상당수가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연행·입소됐고, 원생들의 사망 원인과 사체 처리 과정 등을 적은 기록은 대부분 허위로 기재돼 있었다. 사체가 병원 등에 실험용으로 팔려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1982년 동생과 함께 형제복지원에 잡혀 들어간 피해 생존자 최씨는 그곳에서 사람이 죽는 장면을 처음 봤다고 한다. “조장들이 신입 한 명을 담요에 싸가지고 조장부터 소대장, 서무가 합세를 해서 사람 하나를 그냥 지근지근 밟아버리더라구요. 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혈기 왕성한 사람인데 눈이 휙 뒤집어지더니 동공이 하얗게 되고 입에서 거품이 질질 나오는 게 죽은 거 같았습니다.” 그런데 박씨의 구속 직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전두환 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외쳤던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관심이 박종철 열사의 죽음에 집중되는 동안 형제복지원 사건은 빠르게 잊혀 갔다. 또 특수감금과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씨는 1987년 6월 1심에서 징역 10년과 벌금 6억 8178만원을 선고받았으나 1989년 징역 2년 6개월형이 최종 확정됐다. 대법원은 박씨의 특수감금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이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반면 피해 생존자들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 공포의 기억 속에서 살고 있다. 구타 후유증으로 중증 장애에 시달리거나 우울증,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피해 생존자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잊혀 간 국가 범죄 그나마 한씨가 국회 앞 1인 시위(2012년 5월~2013년 2월)와 ‘살아남은 아이’라는 책을 통해 형제복지원 사건의 실상을 알리면서, 사회의 무관심에 눌려 숨죽이고 살던 많은 피해 생존자들이 어렵게 자기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한씨는 “피해 생존자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묻혀진 진실을 알리기 위한 활동이고, 피해 생존자들의 외침은 ‘살고 싶다’는 간절한 목소리”라고 말했다. 지난 6일 법무부 검찰 과거사 위원회는 검찰이 관련된 인권침해 또는 검찰권 남용 의혹이 제기된 사건 12건을 조사할 것을 대검찰청 산하 진상조사단에 권고했다고 밝혔다. 그 중 하나가 형제복지원 사건이다. 1987년 1월 박씨를 구속했던 당시 김용원 검사(현재 변호사)는 검찰 지휘부가 이 사건을 축소·은폐시켰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부산지검 울산지청(지금의 울산지검)에서 근무하던 1986년 12월 21일 지인과 경남 울주군 삼정리에 있는 야산(울주 작업장)을 지나가다가 허름한 옷을 입은 청년들이 괭이와 삽을 들고 땅을 파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들 주위를 몸집이 큰 개들과 몽둥이를 든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중대한 범죄라고 생각했던 김 변호사는 내사에 착수했고, 형제복지원 원생 180여명이 박씨 소유의 야산에 감금된 채 임금 없이 하루에 10시간 이상 강제 노역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원생들로부터 형제복지원 안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김 변호사는 울주 작업장에서 강제 노역한 원생들뿐만 아니라 부산 형제복지원 안에 수용된 원생들도 모두 조사하기 위해 부산지검 차장검사에게 승인을 받으러 갔다. 하지만 “뭘 수사를 해. 당장 철수시켜”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또 “울주군 작업장에서 맞아 죽은 원생의 사망 원인을 신부전증이라고 허위로 기재한 형제복지원 의사를 구속하려고 했지만, 검찰총장 동생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당시 부산지검장에게 청탁해 불구속 수사 지휘가 떨어졌다”고 김 변호사는 밝혔다. 박씨의 구속으로 세상에 알려진 이 사건은 결국 검찰 조직의 외압으로 그 실체가 제대로 규명되지 못했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는 “국가권력이 주도해서 아무런 죄도 없는 국민들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고, 남녀 성인 및 아동·청소년 수용자들을 장기간 감금하고, 무차별 폭행하고,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한씨는 검찰의 진상 조사에 대해 “고무적인 일”이라면서 “그 당시 형제복지원 내 인권침해를 알고도 수사하지 않았던 검찰은 당연히 사과해야 하고, 이 사과가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진상 규명과 책임 인정, 피해 구제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 모두가 단속 대상이었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의 여준민 사무국장은 “정부가 1975년 12월에 발령한 내무부 훈령 제410호와 신민당 보고서, 당시 경찰이 불법 체포한 시민을 복지원에 넘길 때 작성한 신병인수인계서 등으로도 이 사건의 국가 책임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내무부 훈령은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 ‘사회정화 작업’의 일환으로 적용됐다. 이 훈령은 ‘일정한 정주가 없이 관광업소, 접객업소, 역, 버스터미널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이거나 통행하는 곳과 주택가를 배회하거나 좌정하여 구걸 또는 물품을 강매함으로써 통행인을 괴롭히는 사람’을 단속할 것을 규정했지만 사실상 시민 모두가 정부의 단속 대상이 됐다. 특히 전두환 정권 때 단속이 심했다. 전두환씨는 1981년 4월 10일 당시 국무총리에게 ‘근간 신체장애자 구걸 행각이 늘어나고 있다는 바, 실태 파악을 하여 관계부처 협조 하에 일정 단속 보호조치하고 대책과 결과를 보고해 주시기 바란다’는 지휘서신을 보냈다. 이후 친척집에 가는 길에 부산역에 내려 배회하다가, 하굣길에 집에 가다가, 또는 집에서 TV를 보다가 경찰에 붙잡혀 형제복지원에 입소한 사람들이 생겨났다. 일부는 그곳에 가면 배불리 먹을 수 있고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허언에 속아 들어온 사람들도 있었다.피해 생존자들의 노력으로 국회가 움직였고, 현재 ‘형제복지원 사건 특별법안’(내무부 훈령 등에 의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 규명 법률안)과 ‘과거사정리법안’(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돼 있다. 그러나 형제복지원 사건 특별법안은 지난 19대 국회 때 발의된 법안임에도 지금까지 공포되지 못했고, 과거사정리법안은 아직 상임위원회 소위원회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최씨는 “지금 여당은 ‘당연히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법안 통과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고, 자유한국당 쪽에서는 ‘이 문제는 여야가 필요없는 문제’라면서 ‘우리는 법안에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법안은 통과가 안 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한씨는 “인권 문제에는 여야가 없다는 의원들이,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걸까라는 자책감마저 들었다”고 토로했다. “2012년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때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국회의원 보좌관 한 명이 저를 보더니 ‘이 사건 아직도 해결 안 됐어요?’라고 묻더군요. 그러면서 ‘전두환 정권 때 있었던 일 아닙니까’, ‘우리는 전두환씨 끌어내리면 다 해결되는 줄 알았다’고까지 말했습니다. 힘이 빠졌습니다. ‘그렇게 운동해서 저 같은 사람들이 말도 못 하고 죽어나간 것 아닙니까’라고 맞받아쳤습니다. 그랬더니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한씨는 “이 사건 피해자들은 국가에 의해 버려지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이라면서 “삶을 부정당한 데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와 트라우마를 피해자들은 살면서 계속 마주할 수밖에 없다. 이제 국회와 정부가 손을 내밀어줘야 하지 않을까”라고 호소했다.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4·3 ‘70주년’ 2018 제주 방문의 해] 70년 만에 이제사 말햄수다 “어멍ㆍ아방 눈물 꼭 닦아줍서”

    [4·3 ‘70주년’ 2018 제주 방문의 해] 70년 만에 이제사 말햄수다 “어멍ㆍ아방 눈물 꼭 닦아줍서”

    현대사 최대 비극인 ‘제주4·3사건’이 올해 70주년을 맞는다.제주도는 올해를 ‘제주 방문의 해’로 선포하고 화해와 상생, 평화, 인권의 4·3 역사를 국민과 세계인에게 알리는 다양한 기념 사업을 추진한다고 20일 밝혔다. 도민들은 올해가 4·3 완전 해결의 ‘원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제주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는 제주 4·3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 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한다. 진상조사보고서는 인명 피해가 2만 5000~3만명으로 추정했다. 7년간 제주도민 11%가량이 희생되는 참극이었다. 4·3의 광풍이 그친 1956년 서귀포시 대정읍 섯알오름 자락 옛 일본군 탄약고 터. 야심한 밤 군경의 눈을 피해 유족들은 방치된 132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1950년 여름 140여명이 국군에 의해 억울하게 총살당한 지 6년 만이었다. 유족들은 수습한 시신을 한데 모아 ‘132분의 조상이 한날, 한시, 한곳에서 죽어 뼈가 엉기어 하나가 됐으니 그 후손들도 모두 한 자손’이라는 의미로 ‘백조일손’(百祖一孫)이란 묘비를 세우고 통곡했다. 4·3은 이처럼 강요된 금기 속에 반세기가량 국가 권력에 의해 은폐되고 왜곡됐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자 국회에서 양민학살 진상 규명 조사단이 꾸려지고 학살 피해 접수가 잠시나마 이뤄졌다. 그러나 이듬해 5·16 쿠데타로 강요된 침묵 속에 다시 빠졌다. 1978년 제주 출신 소설가 현기영이 1949년 1월 북촌리에서 벌어진 양민 집단 학살을 다룬 소설 ‘순이삼촌’을 발표하면서 4·3은 마침내 다시 참혹한 모습을 드러냈다. 1989년을 기점으로는 민주화운동단체들이 연합해 4월 3일 ‘4·3 추모 및 범도민 진상규명촉구대회’가 4·3(1948년 기준) 이후 41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적인 추모 행사가 열렸다. 범도민 촉구대회에서는 4·3 관련 정부 보관자료 공개, 연좌제 폐지, 미군정의 4·3 학살 책임 인정, 국회의 4·3 진상조사 등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1989년 5월 문을 연 제주4·3연구소는 피해자·유족 채록집 ‘이제사 말햄수다’(이제야 말합니다)를 출간했다. 문민정부 수립 후인 1993년에는 제주도의회가 특별위원회를 구성, 피해 신고를 받는 등 4·3 문제를 공론화했다. 1999년 4·3 특별법이 국회에서 제정된 데 이어 2003년 10월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됐다. 2003년 10월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원수로는 처음 사과했다. 2014년 3월에는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이 국가추념일로 공식 지정됐다. 문재인 정부는 4·3의 완전한 해결을 100대 국정 과제로 선정했고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4·3 국가추념일 참석을 약속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중단된 4·3 희생자 유해 발굴 작업도 10년 만에 재개된다. 피해자 국가 배상·보상을 위한 4·3 특별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오영훈(제주시 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보상금 지급 등을 담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법률안은 직계나 배우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을 명시하고, 지급 액수와 방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직계나 배우자가 없으면 민법이 정한 상속인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이 외에도 4·3 당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형무소로 끌려간 수형 피해자의 명예가 회복되도록 했다. 유족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4·3 트라우마 치유센터를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오 의원은 “아직도 4·3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정신질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희생자와 유족이 많다”며 “현행 특별법으로는 명예회복과 피해 구제가 미흡해 4·3 완전 해결과 국민 화합 차원에서 법률안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남자들도 #_미투_ “性문제 아닌 범죄”

    남자들도 #_미투_ “性문제 아닌 범죄”

    “대부분 피해자 여성인데… 미투 본질 흐린다”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 이후 ‘미투(#Me too ) 운동’에 동참하는 여성들이 잇따르는 가운데 일부 남성들이 미투 운동 대열에 합류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성범죄·성폭력 피해에 있어선 남녀가 다를 수 없다”는 찬성 측 주장과 “미투 운동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반대 측 주장이 서로 충돌하는 모습이다.●남성도 성추행 경험 토로에 동참 모델 김모(27)씨는 18일 “지난해 8월 행사 뒤풀이 자리에서 모델 에이전시 소속 30대 여성 실장이 옆에 밀착해 앉아 몸을 만지며 억지로 술을 먹였고, 일행 중 한 명은 ‘오늘 실장이랑 뜨밤(뜨거운 밤) 보내고 일이 생기면 꽂아달라고 로비를 하라’며 귀띔했다”고 폭로했다. 헬스 트레이너 이모(39)씨는 “헬스장에 오는 아주머니들이 대놓고 엉덩이를 툭툭 치거나 안아 달라는 일이 자주 있다”면서 “이러지 말라고 얘기하면 아주머니들은 ‘남자가 너무 깐깐하다’고 타박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추행은 명백한 범죄인데 남자에 대해서는 잣대가 너무 무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학생 안모(24)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교회 남자 집사가 방송실로 따로 불러 ‘어른 말을 들어야 한다’며 ‘고추를 보여 달라’고 했었는데 그 기억이 평생 트라우마로 남았다”면서 “그 집사는 억지로 성기를 보이게 한 뒤 돈을 쥐여 주었는데 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였지만 수치심과 두려움을 느꼈다”고 전했다.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폭로가 쇄도하자 남성들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에 공감하며 자신들의 피해 사실을 털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남성들의 폭로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성폭력 피해자의 90% 이상이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의 미투 운동이 이번 사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네티즌은 “남성까지 피해자로 나서면 여성이 사회적 약자로서 받아 온 차별과 피해를 부각하기 어려워진다”며 반대했다. ● ‘男가해-女피해 ’ 시선에 공감 한계 하지만 찬성하는 측에서는 “성폭력 앞에서 수치심은 남녀 구별이 없다”면서 “그동안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감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쉽게 얘기를 꺼내지 못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폭력을 ‘폭력’으로 보지 않고 ‘성’에만 초점을 맞추면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라는 일방적인 프레임으로 이번 사안을 바라보게 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상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우리 사회엔 성범죄를 대할 때 ‘유혹하는 여성’과 ‘수동적 남성’이라는 각본을 대입해 피해 여성의 잘못을 짚어 내려는 잘못된 사회 통념이 존재하기 때문에 여성의 2차 피해가 불가피하고 남성의 피해 사실이 드러나도 이를 범죄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면서 “성범죄에서 성별을 의식적으로 거세하고 사건 그 자체를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폭력에 무감각해진 사회에 대한 경고!…‘액트 오브 워’ 예고편

    폭력에 무감각해진 사회에 대한 경고!…‘액트 오브 워’ 예고편

    액션 영화 ‘액트 오브 워’ 메인 예고편이 공개됐다. ‘액트 오브 워’는 특수부대 소속으로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제이콥’이 사회와 치르게 되는 또 하나의 전쟁을 그린 액션 스릴러 영화다. 공개된 예고편은 폭력에 둔감해진 사회와 전쟁터보다 냉혹한 현실에 괴로워하는 주인공 제이콥의 외롭고 치열한 싸움을 예상케 한다. 주인공 제이콥은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사회로 복귀한 전역군인이다. 베테랑 군인에서 민간인이 된 제이콥 앞에 펼쳐진 세상은 뒤틀리고 위태롭다. 그는 중동에서 8개월간 포로로 잡혀 생사의 경계를 경험했다. 직접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그와 달리 돌아온 세상은 무분별하고, 사람들의 태도는 환멸을 느끼게 한다. 더욱이 부조리한 현실은 그가 전쟁에서 얻은 극심한 트라우마와 혼재되면서 또다시 그를 폭력 속으로 이끈다. 영화는 자신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애썼던 국가와 이웃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으며 벼랑 끝으로 내몰린 주인공이 마침내 최후의 반격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 ‘액트 오브 워’는 오는 2월 22일 개봉한다. 청소년 관람불가. 99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씨줄날줄] 굿바이~영창/진경호 논설위원

    [씨줄날줄] 굿바이~영창/진경호 논설위원

    대한민국 남자들이 가장 많이 꾸고, 대한민국 남자들만(?) 꾸는 꿈이 있다. 군대 가는 꿈, 정확하게는 군대 다시 가는 꿈이다. 육군 병장으로 전역한 기자도 제대 30년이 다 됐건만 한두 해에 한 번쯤은 이 꿈을 꾼다. 군 생활이 마음 깊숙이 새겨 놓은 억압과 구속의 흔적이다. 심리적으로 대형 재난을 겪은 뒤의 트라우마와 맥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징병제 대한민국의 안타까운 그늘인 셈이다.한데 흥미로운 점은 군대 가는 꿈을 꿨다는 사람은 많아도 영창 가는 꿈을 꿨다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영창에 구금되는 병사는 한 해에만 1만명을 웃돈다. 2001년엔 1만 2746명, 2006년엔 1만 264명, 2011년엔 1만 4546명이 영창 신세를 졌다. 2016년만 해도 육군 1만 185명, 해군 1096명, 공군 369명 등 총 1만 1650명이 짧게는 사흘, 길게는 15일간 영창에 수용됐다. 2001년 이후 지난해까지 줄잡아 20만명이 영창을 다녀온 셈으로, 매년 현역 입영자 수가 25만명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병사 100명 중 4명은 영창 신세를 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상이 이런데도 군 생활 힘들었다고 입에 거품 무는 사람은 많아도 영창이 어떻더라고 말하는 이는 없는 걸 보면 영창이 안겨 주는 트라우마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짐작하게 한다. 실제로 지난 시절 영창은 인권을 운운할 수 없을 만큼 자연인으로서의 자존감이 무참히 짓밟히는 곳이었다. 쉴 새 없는 얼차려로 얼을 빼놓는 건 기본이고, 철창에 매달려 매미 소리를 내도록 하는 ‘매미’를 비롯해 갖가지 가혹행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시대가 바뀌어 지금은 일체의 가혹행위가 사라졌고, 이에 따라 영창 관련 사고도 크게 줄었다고 하나 입창(영창 입소) 결정이 규정을 벗어나 부대장 등의 뜻에 좌우되는 이른바 ‘원님 재판’은 여전히 많은 부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게 현실인 듯하다.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 관계자도 1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과거와 달리 최근엔 영창 내 가혹행위에 대한 신고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지만 영창 징계 결정이 부대장 뜻에 따라 자의적으로 이뤄졌다는 신고와 법적 공방은 지금도 끊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징벌제도에 뿌리를 둔 영창제도가 마침내 종언을 고할 듯하다. 영창 폐지를 담은 군인사법 개정안이 지난해 국회 국방위를 통과한 데 이어 국방부가 영창 폐지 방침을 밝혔다. 다른 논란을 접고라도 영장에 의하지 않는 신체 구금이라는 점에서 명백한 헌법 위반으로, 진작 퇴출했어야 할 제도다. 군 인권이 어렵게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
  • 포항 지진에 이재민 증가 ... 대피소 시설 확충에 무료급식 재개

    포항 지진에 이재민 증가 ... 대피소 시설 확충에 무료급식 재개

    경북 포항시는 11일 규모 4.6 지진 발생으로 재산,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이 늘자 대피소 시설 확충 등 추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포항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5일 규모 5.4 지진이 나고 지금까지 운영하는 대피소는 북구 흥해체육관 1곳이다.기쁨의 교회에도 3개월 가까이 대피소를 운영했으나 이재민 대부분이 새 보금자리로 옮기고, 자원봉사자 피로도 누적되자 지난 10일 철거했다. 현재 흥해체육관에는 텐트 160채를 설치했고 149가구 312명이 지내고 있다. 주택 전·반파에 따른 이주대상 주민뿐 아니라, 집수리 중이거나 지진 트라우마로 이곳에서 지내는 주민도 있다. 그러나 시는 이날 발생한 지진으로 대피소에 주민 200여명이 더 몰리자 텐트 60채를 추가 설치한다. 시는 “대피소에 추가로 온 주민 가운데 일부는 지진이 잦아들자 집으로 돌아갔다”며 “현재 약 100명이 귀가하지 않음에 따라 텐트를 더 설치해 머물 수 있도록 도울 방침이다”고 밝혔다. 이재민 음식 제공을 위한 대책도 마련했다. 최근까지 대피소에는 대한적십자사나 일부 종교단체가 무료 급식소를 운영해 왔으나 지난 10일 오후 중단하기로 하고 설비를 철거했다. 하지만 규모 4.0대 여진이 나자 대한적십자사는 오는 12∼14일 아침과 저녁은 무료급식을 다시 하기로 했다. 점심은 포항시가 맡는다. 설 연휴를 포함한 오는 15일∼19일에는 시가 자체로 도시락을 구매하는 등 방법으로 이재민에게 모든 급식을 제공한다. 그 뒤 20일부터는 대한적십자가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담당한다. 포항시 관계자는 “이재민이 대피소 생활에 불편을 겪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00초 PR-우리 영화는요!] ‘우리는 썰매를 탄다’ 김경만 감독 “신파 아닌 행복 찾기”

    [100초 PR-우리 영화는요!] ‘우리는 썰매를 탄다’ 김경만 감독 “신파 아닌 행복 찾기”

    “인간 승리나 장애에 무게를 두고 접근한 영화가 아니다. ‘인간의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를 연출한 김경만 감독의 말이다. 그는 “영화를 신파로 끌고 가지 않았다. 재미있는 스포츠 경기로 끌고 가지도 않았다. 단지 선수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거기서 저마다 다른 감정이 느껴지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우리는 썰매를 탄다’는 장애인 아이스하키(파라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이야기다. 비인기 종목이며 열약한 운동 환경과 고된 훈련 과정에도 그들이 세계 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까지 3년간 30여 회의 실제 경기와 경기장 안팎 선수들의 모습을 꾸밈없이 담았다.김 감독은 선수들의 장애에 무게를 두기보다 빙판 위에서 ‘행복을 느끼는 선수’에 초점을 맞췄다. 사실 그도 처음에는 ‘장애를 극복한 선수’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선수들을 만나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서서히 생각이 바뀌게 됐다. 감독은 “영화를 촬영하면서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선수들에게 언제 가장 행복하냐고 물어봤다. (당연히) 과거 다치기 전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떤 선수가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답했다. 또 다른 선수도 같은 대답을 했다”며 영화의 방향을 바꾸게 된 이유를 전했다. 결국 그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듣고) 시나리오 방향을 완전히 바꿨다. 이 영화는 장애인 휴먼 다큐멘터리, 인간승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은 언제 가장 행복할까?’, 행복에 관해 접근해보자는 것으로 연출 방향을 잡았다”고 덧붙였다.감독은 3년간 선수들의 모습을 꾸준히 카메라에 담았다. 그들은 저마다 아픈 사연 하나씩 안고 있다. 하지만, 빙판 위의 선수들은 달랐다. 현재를 행복해했고, 감사했으며, 내내 긍정적이고 활기찬 에너지를 뿜어냈다. 선수들은 태극 마크를 달고 국가대표로 뛸 수 있다는 것에도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김 감독은 “비장애인 중 ‘나는 언제 행복할까’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이 이 영화를 보시면, 굉장히 부끄러워할 것 같다. 저 선수들은 저렇게 힘든 운동을 하면서도 행복을 느끼는 데, 나는 왜 행복을 못 느끼나……”하고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행복해지고 싶거나, (현재)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보면, ‘행복해지는 영화’”라고 말했다.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는 스타 배우도, 화려한 볼거리도 없다. 내레이션도 배제했고, 음악도 최대한 절제했다. 음악 대부분은 감독이 직접 작곡했다.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활의 리더 김태원 씨가 작품을 위해 조용히 음악 두 곡을 선물했다.김 감독은 “영화를 본 관객이 안타까운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했으면 한다”며 “선수들이 왜 저렇게까지 고통스럽게 운동을 하는가. 그런 물음이 마음에 남으면 좋겠다. 영화를 본 분 중 엉엉 울었다는 분들은 없었다. 내심 울지 않기를 바랐는데, 기뻤다. 눈물을 흘려버리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가슴 아픈 것을 보고 시원해하지 말고, 좀 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고, 그 상태가 오래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는 말에 김 감독은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하는 이종경 선수를 꼽았다. 이 선수는 2002년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추락 사고를 당했다. 척수를 다친 그는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큰 부상을 당했다. 이에 김 감독은 “다치고 나면, 자살을 시도하는 선수도 있다. 3년간 집 밖으로 안 나간 선수도 있다. 중도 장애를 겪으면 그런 일들이 많다.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작품을 만들면서 “제 삶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어쩌면 이 사람들은 장애인이지만 장애가 없는 것이 아닐까. 오히려 비장애인 제가 더 장애가 많은 것이 아닐까, 하는 부끄러움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SBS PD로 활동하며 휴먼 다큐멘터리 외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출했던 그는 ‘우리는 썰매를 탄다’가 스크린 데뷔작이다. 사실 이 작품은 2014년 완성됐다. 하지만, 흥행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오랜 시간 외면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4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이에 대해 그는 “오랜 기다림 끝에 영화를 공개하게 됐다. 대작에 비해 스크린수는 10분의 1 정도 잡힐 것 같다. 여러분이 많이 찾아주시면 스크린수도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며 희망과 부탁의 메시지를 전했다. 끝으로 김 감독은 ‘우리는 썰매를 탄다’에 대해 “행복 찾기”라고 말했다. 세상에서 소외된 이들에게는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장애를 딛고 꿈을 안고 살아가는 선수들을 응원하고, 관객 각자의 행복을 찾는 과정에 작품이 작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휴먼 다큐멘터리 ‘우리는 썰매를 탄다’는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3월 9일)가 시작되기 이틀 전인 3월 7일 개봉한다. 전체 관람가. 70분.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문성호,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엄지ㆍ입술에 ‘문신ㆍ문신 ’ 슬로프에서는 안 보여요 ‘문신 사랑 ’ 英 스키 대표 체셔

    “엄마도 제 입술 문신을 싫어해요.”영국의 스키 프리스타일 하프파이프 대표 로완 체셔(22)는 역경을 딛고 평창에 온다. 4년 전 소치 대회 훈련 도중 넘어져 뇌진탕을 일으켜 출전권을 포기했다. 같은 해 10월 다시 머리를 다쳐 트라우마에 시달려 1년 반이나 스키를 타지 못했다.그런데도 체셔는 2016년 슬로프에 돌아와 평창동계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심리 치료도 받고, 체조 훈련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덕도 봤다. 여기에다 신세대의 자유분방함도 복귀를 앞당긴 것 같다. 7일 BBC 홈페이지에 실린 인터뷰 동영상을 보면 스스로를 소개해 달라는 주문에 두 차례 NG를 냈는데 첫 NG 때는 혀를 날름거리며 까르르 웃어댔다.?뇌진탕 뒤 슬로프 돌아온 ‘인간 승리자 ’체셔는 점퍼 깃이나 소매를 살짝 드러내며 문신에 얽힌 얘기들을 스스럼없이 들려줬다. 열여덟 살 때 미국 친구의 권유로 피어싱과 문신을 시작해 중독됐다. 사진 공유 사이트 ‘핀터레스트’에는 좋아하는 문신 디자인 아홉 가지를 뽑아 놓았다.오른손 엄지에 장미, 왼손 손목에 나방, 왼쪽 팔꿈치 안쪽에 양, 왼어깨 뒤쪽에 새, 오른쪽 어깨에 꽃봉오리를 새겼다. 특히 왼쪽 팔소매에 새긴 문신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해군 출신 할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배와 돛대 등을 그려 넣는 애틋함을 드러냈다.?장미ㆍ새ㆍ할아버지 추모 그림 등 다양그런 뒤 엄마랑 말다툼하다 안 될 것 같으면 입술을 까뒤집어 문신 ‘날 물어 줘요’(BITE ME)를 보여 준다며 또 웃어댔다. 목덜미의 문신은 영화 ‘반지의 제왕’ 대사인 ‘모든 방황하는 사람이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를 새겼다. 그중 가장 방정한 문신인 셈이다.체셔는 “한국에서의 올림픽은 내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부모님이 내 경기를 직접 보러 온 적이 없는데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더욱 기대된다”고 말했다.거칠 게 없고 엉뚱하다 싶을 정도로 모험을 즐기지만 이내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는 X세대, 그러고 보면 그가 출전하는 프리스타일 스키 하프파이프의 마력과 퍽 닮았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6살 아이에 주먹질한 보육교사… 친구들은 ‘얼음’

    6살 아이에 주먹질한 보육교사… 친구들은 ‘얼음’

    가해 교사 “훈육 차원서 때린 것”6살밖에 안 되는 아이들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른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이 경찰에 입건됐다. 지켜보는 아이들은 험악한 폭력에 따른 공포 분위기에 얼마나 기가 질렸는지 폭력이 자행되는 동안 군인들처럼 부동자세를 취할 정도였다. 인천서부경찰서는 7일 서구 가좌동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 A(42·여)씨와 B(27·여)씨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 어린이집 원장 C(46·여)씨도 교사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로 입건했다. A씨는 지난해 11월 중순 어린이집에서 원생 D(당시 6세)군의 머리를 손과 주먹으로 수차례 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이 확보한 어린이집 폐쇄회로(CC)TV에는 D군이 A씨로부터 폭행을 당해 바닥에 쓰러졌다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재빨리 일어나는 모습이 담겼다. A씨는 D군과 한 여자 어린이를 자신의 양옆에 세워두고 혼내다가 D군 머리를 두 차례 때리고 구석으로 몰아붙인 뒤 다시 수차례 때렸다. 함께 혼나던 여자 어린이는 D군이 맞는 동안 부동자세로 서 있다가 차마 끔찍한 폭행 모습을 보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숙였고, 옆에 앉아 있던 나머지 원생 8명도 공포에 질린 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폭행을 당한 D군은 이후 악몽을 꾸고 바지에 소변을 보는 등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증세를 보여 인천의 한 대학병원에서 20여일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A씨는 경찰에서 구체적인 폭행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훈육 차원에서 때렸다”고만 진술했다. 경찰은 지난해 말 D군 어머니 E(42)씨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E씨는 아들로부터 “선생님에게 맞았다. 온몸이 아파 일어나기 싫다”는 말을 듣고 어린이집 원장에게 항의했고, 이를 전해 들은 A씨는 E씨에게 전화를 걸어 “머리를 때린 사실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E씨는 “3년 가까이 다녔던 어린이집인데 지난 3월부터 아이가 ‘선생님이 때리고 혼내서 무섭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는 말을 했다”며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기려다가 원장이 설득해 계속 등원시켰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밝혔다. 경찰은 CCTV를 분석한 결과 다른 교사 B씨도 원생들을 학대한 사실을 밝혀냈다. B씨는 지난해 11월 어린이집에서 낮잠 시간에 자고 있던 원생들을 발로 차는 등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씨 역시 경찰에서 “훈육 차원에서 때렸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학부모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고은 시인 “정치인은 똥갈보, 문재인은 숫처녀”…과거 발언 논란

    고은 시인 “정치인은 똥갈보, 문재인은 숫처녀”…과거 발언 논란

    최영미 시인이 ‘괴물’이란 시로 문단 내 성추행을 폭로한 가운데 고은 시인이 성추행 가해자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고 시인은 과거에 문재인 대통령을 가리켜 ‘숫처녀’라고도 표현해 그의 성적 가치관이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나온다.안도현 시인은 2012년 대선 당시 자신의 트위터에 “일전에 고은 선생님, 문재인 후보하고 소주 한 잔 얼큰하게 하시더니 일갈. ‘보통 정치하는 사람들 똥갈보 같은데 이 사람(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은 숫처녀 그대로다’라고 하셨다”라고 적었다. 갈보라는 표현은 성매매 여성을 비하하는 말로 쓰인다. 이 때문에 남성과 성관계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여성을 의미하는 숫처녀를 고 시인이 우위에 뒀다는 해석이 나온다. 안 시인이 트위터에 남긴 글에 대해 윤단우 작가도 재차 확인하며 성추행 가해자로 고 시인이 지목되는 게 이상할 게 없다는 뜻을 밝혔다. 윤 작가는 지난 6일 자신의 트위터에 “고은 이야기, 대체 누가 놀라워 한다는 건지”라며 “일찍이 ‘정치인들은 다 똥갈보고 문재인은 숫처녀 같다’고 말했다고 안도현이 간증한 바 있지 않았나”라고 올렸다. 윤 작가는 “숫처녀를 칭찬이라고 입에 올리는 인간이나 그걸 칭찬이라고 낼름 옮기는 인간이나 대체 최영미 시인의 말 어디가 놀라움 포인트냐”고 지적했다.현재 안 시인은 고 시인이 문 후보를 지지한다는 의미로 관련 글을 올렸지만 논란이 일자 해당 글을 삭제한 상태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문학을 하는 사람의 표현이 왜 저런 식이냐”, “칭찬하는 표현을 이상하게 한다”, “저런 단어를 쓰다니 인식 수준이 어떤지 알겠다” 등의 반응을 쏟아냈다. 앞서 최영미 시인은 계간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게재한 시 ‘괴물’에서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Me too/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라는 내용의 시를 올렸다. 최 시인은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내가 소리쳤다/“이 교활한 늙은이야!”/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받고 나는 도망쳤다”는 내용도 담겼다. 시에서 최 시인은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이라며 ‘En’이라는 특정인을 거론했다.현재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해당 인물이 고은 시인이라며 ‘고은’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뜨고 있다. 한편 이승철 시인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영미 시인의 폭로를 언급하며 “그녀(최영미 시인)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남발했다”며 “최영미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는데 선병질적으로 튀는 성격이었다”고 비판했다. 이 시인은 “남성 혐오에 가까운 트라우마”라며 “문단에 만연한 성추행이라니, 최영미는 참으로 도발적인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잣대로 마치 성처녀처럼 쏟아냈다”고 맹비난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이승철 시인, 최영미 시인 ‘미투’에 “피해자 코스프레 남발”…‘2차 가해’ 논란

    이승철 시인, 최영미 시인 ‘미투’에 “피해자 코스프레 남발”…‘2차 가해’ 논란

    최영미 시인이 시 ‘괴물’로 원로시인 ‘En’의 상습적인 성폭력을 폭로해 문단이 떠들썩한 가운데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맡았던 이승철 시인이 최영미 시인 비판글을 올려 ‘2차 가해’ 논란이 일고 있다.이승철 시인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전날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최영미 시인의 인터뷰를 언급하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남발했다’고 표현했다. 이승철 시인은 “인터뷰를 보면서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면서 “최영미는 참으로 도발적인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잣대로 마치 성처녀처럼 쏟아냈고, 천하의 손석희는 한국문단이 ‘아, 이럴 수가 있나’하며 통탄하고 있었다”고 평했다. 이어 “(최영미 시인은) 메이저 출판사와 무소불위의 평론가들의 묵계를 강조하면서 그녀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남발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최영미 인터뷰는 한국문단이 마치 성추행 집단으로 인식되도록 발언했기에 난 까무라치듯 불편했다”면서 최영미 시인의 과거 행적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늘어놓았다. 이승철 시인은 최영미 시인에 대해 ‘튀는 성격’, ‘유아독존적’, ‘무례함’, ‘민족문학은 사실상 최영미 현상으로 인하여 절단나고 있었다’, ‘표절’, ‘난리 부르스’, ‘안하무인’, ‘싸가지 없던 악다구니’, ‘제기럴’ 등등 원색적인 표현을 동원해가며 비난했다. 그러면서 최영미 시인의 ‘돼지들’이라는 시집에 대해 “그 시집을 보면 시적 소재로 등장한 수많은 문화계, 문학계 인사들이 나온다. 시의 요점은 모두들 그녀에게 했다는 성적 추행의 이력이다”라면서 “어찌보면 지독한 남성혐오에 가까운 트라우마일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그는 ‘En’ 시인을 적극 옹호했다. 이승철 시인은 “‘En’ 시인의 기행에 대해서 숱한 얘기를 들은 적 있지만 먼먼 소싯적 얘기를 현재진행형하여(현재진행형인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조금도 납득할 수 없다”고 썼다. 그는 “난 ‘미투’가 두렵지 않다. 나도 한때는 여자사람을 좋아했는데 누가 나를 20년, 30년 전 일로 ‘미투’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잠시 옛날을 되돌아본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허나 ‘미투’ 투사들에 의해 다수의 선량한 문인들이 한꺼번에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라며 글을 맺었다. 이승철 시인의 글에는 80여개의 댓글이 달리며 뜨거운 반응을 불러왔다. 이승철 시인의 글에 공감하는 댓글도 있었지만, 이승철 시인이 최영미 시인에 대해 ‘2차 가해’를 한 것이라는 의견도 눈에 띄었다. 한 댓글은 “지금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에 동참하고 있는 중이란 걸 알아야 한다”면서 “아무리 오래 됐어도 범죄는 범죄고, 피해 사실의 흔적은 평생을 간다. 비록 최순실이라도 지나가다가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해 쓰러지면 가해자는 처벌받아야 하고, 피해자는 치료부터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이승철 시인이 올린 글 전문. 최영미 시인이 갑자기 떴다. 미투라고 했다. JTBC 손석희-최영미 인터뷰를 보면서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 문단에 만연한 성추행이라니, 최영미는 참으로 도발적인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잣대로 마치 성처녀처럼 쏟아냈고, 천하의 손석희는 한국문단이 “아 이럴수가 있나” 하며, 통탄하고 있었다. 메이저 출판사와 무소불위의 평론가들의 묵계를 강조하면서 그녀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남발했다. 최영미의 그런 발언에 대해 절실성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왠지 내가 그녀의 가해자가 된듯 나도 모르게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최영미 인터뷰는 한국문단이 마치 성추행집단으로 인식되도록 발언했기에 난 까무라치듯 불편했다. 왜 그녀가 이 시점에서 자기 체험을 일반화해서 문단 전체에 만연한 이야기로 침소봉대해 쏟아내는지 조금 의아했다. 지난번 호텔 집필실 사건이 터졌을 때 썩 달갑지 않았지만 그래도 난 그녀를 옹호했었다. 시인도 인간이기에 욕망에 자유로울 수 없지 않은가. 하긴 그녀는 손석희와 인터뷰 때 추악한 문단을 떠난지 오래였다고 했다. 허나 그 오랜 기억이 문단의 현재적 풍토인양 뉴스화됐다. 내가 1993년에 김남주 시인을 상임이사로 모시고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사무국장으로 일할 때 황석영 선생 귀국 문제가 조직의 현안으로 대두된 적이 있었다. YS 정권 초창기였다. 그해 4월에 황석영 작가가 오랜 망명생활 끝에 귀국하여 안기부(국정원)에 체포되었기에 ‘국제 엠네스티’ 등이 긴급행동요구를 발동해 황석영 석방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대두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최영미 시인이 작가회의 사무실에 놀러온 적이 있었는데 때마침 영국 엠네스티 본부에서 황석영 문제로 전화가 와서 (서)울대 출신인 그녀에게 바꿔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매우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했기에 난 그녀에게 작가회의 사무국 간사로 일할 수 있냐고 요청했고, 그녀가 흔쾌히 수락했기에 이후 한동안 사무실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었다. 최영미 시인, 그녀는 선병질적으로 튀는 성격이었다. 매우 완강한 자존의 소유자였고, 어찌 보면 유아독존적 처신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 시에 대해 추호의 비판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건 어찌보면 창비와 언론이 만들어낸 ‘최영미 현상’이 불러온 결과였기에 그녀의 무례함에 대해 누구도 대놓고 반박하지는 못했다. 그즈음 이 땅의 민족문학은 사실상 최영미 현상으로 인하여 절단나고 있었다. 그녀의 시 구절 - “컴퓨터와 씹하고 싶다”는 말만이 오랫동안 술좌석에 회자되었을 뿐, 그때 우리는 그녀가 야기한 환멸의 미학에 얼마나 통탄스러워했던가. 1994년 어느날이었을 것이다. 서울 마포 아현동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민족문학작가회의 시분과 합평회’가 열렸다. 그날 창비에서 출간된 그녀의 첫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잔치는 끝났다”는 표현은 서정주 시의 표절이었다)에 대해 수십명의 시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토론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저자인 그녀는 물론 민영 시인 등 원로 문인들도 자리를 함께 했는데, 몇몇 시인들이 그녀 시에 대해 사소한 비판을 했는데, 그때 그녀는 좌중이 놀랄 정도로 난리 부르스를 쳤다. 숫제 안하무인이었다고 할까. 그 싸가지없던 악다구니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합평회란 시의 문제점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이 오가는 게 상례건만 합리적 대화가 불가능한 정도로 그녀는 피해의식으로 부르르 온몸을 떨었다. 그무렵 그녀를 둘러싼 이런저런 소문이 있었다. 그녀 시집에 등장한 첫남편(노무현 정권 시절 청와대에 근무했었다)에 대한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얘기를 들었다. 남녀간 사랑이란 순탄치 않게 파국을 맞으면 둘 사이의 과거는 시쓰는 시인에게 증오로 표출될 수도 있다. 철학자 니체가 루 살로메의 가혹한 채찍을 언급한 것처럼 최영미는 그 남자의 혁띠를 들먹거렸다.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의 파탄은 통상 상대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만을 뇌리 깊숙이 각인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그즈음 그녀와 사귀고 있던 어느 소설가(유명 출판사 사장이었다)가 내게 무심결에 한 말을 듣고 난 깜짝 놀란 바 있었다. “야, 이승철 네가 최영미한테 무슨 잘못을 한 거야. 혹시 너, 달라고 추근거린 거 아니야. 최영미가 네 이야기가 나오면 그딴 인간과 왜 자주 만나냐고 난리치더라. 너와 다시는 만나지 말라는데 네가 무슨 잘못을 한 거야.” - 아, 잘못이라뇨? 형님! 내가 그 잘난 여자한테 무슨 잘못을ᆢ 다만 황석영 석방대책 건으로 사무국 간사로 선임했는데, 모 선배시인이 그 (미친) 여자를 왜 작가회의서 일하게 하냐고 해서, 할수없이 본의 아니게 한 달도 못되어, 그만두라고 한 적이 있었을 뿐입니다. 어쨌든 내가 미안하다는 사과편지를 건네주었고, 그 후로 사적으로 만난 적 이 없는데, 이런 제기럴 영미ᆢ. 그 선배작가는 최 시인이 날 우습게 여기더라는 말을 이후로도 안주삼아 몇번이나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난 이런 씨부럴 하며 울화를 달래야 했다. 최영미 시인이 십여년 전인가 실천문학사에서 ‘돼지들’이란 시집을 펴낸 적이 있었다. 그 시집을 보면 시적 소재로 등장한 수많은 문화계, 문학계 인사들이 나온다. 시의 요점은 모두들 그녀에게 했다는 성적 추행의 이력이다. 어찌보면 지독한 남성혐오에 가까운 트라우마일 수도 있다. 왜 그녀는 그 시집에 등장한 수많은 유명인사들과 일부러 만나 그런 사건을 만들어야 했는가. 어찌보면 난 그게 의문스러웠다. 그 시집을 읽고 이걸 팩트로 믿어야 하나, 물론 시적 장치이지만, 여러 의구심이 들었다. 최영미 발언이 용기 있다고 한다. 어허 그렇다면 한국문학의 상징, 우리 En시인은 어찌할꼬나. 물론 En 시인의 기행에 대해서 숱한 얘기를 들은적 있지만 먼먼 소싯적 얘기를 현재 진행형하여 매도하는 건 조금 납득할 수 없다. 남자의 성적 욕망이란게 얼마나 무서운가. 그리고 그 욕망의 피해자가 받는 고통은 또 얼마나 지속적이고 치유 불가능한가. 그걸 최영미 발언을 통해서 확인해본다. 1994년이던가? 소설가 이문열이 <시인>이란 소설로 En를 매도하다가 자신의 소설을 폐기처분한 바 있는데, 이제 최영미가 다시 등장했다. 난 미투가 두렵진 않다. 나도 한때는 여자사람을 좋아했는데 누가 나를 이십년, 삽십년 전 일로 미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잠시 옛날을 되돌아 본다. 타인의 불행이 더이상 나의 행복은 아니다. 허나 미투 투사들에 의해 다수의 선량한 문인들이 한꺼번에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연기력+참신성’… 보석 같은 두 배우의 발견

    ‘연기력+참신성’… 보석 같은 두 배우의 발견

    지난달 30일 끝난 JTBC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그사이)는 쇼핑몰 붕괴 사고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두 남녀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우리 사회에 실제 있었던 대형 사고를 모티프로 한, 드라마로서는 흔치 않은 시도였는데 월·화요일 밤 11시라는 늦은 시간대에도 탄탄한 대본과 완성도 높은 연출로 잔잔하게 입소문을 타며 호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주인공 강두와 문수를 연기한 이준호, 원진아 두 배우의 발견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성과다. 인기 아이돌그룹 2PM의 멤버인 이준호는 지난해 KBS 드라마 ‘김과장’에서 까칠하고도 매력적인 서율 이사로 강한 인상을 남긴 데 이어 ‘그사이’에서 사고로 인해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강두를 맡아 연기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드라마 데뷔와 동시에 주연을 맡은 원진아는 신인임에도 호소력 있는 연기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최근 만난 이준호(28)는 화려한 퍼포먼스로 무대를 휘어잡던 2PM의 준호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드라마 ‘김과장’ 때보다 조금 더 말라 보였는데 ‘그사이’를 찍으면서 7㎏이 빠졌단다. 부산에서 촬영을 진행하는 5개월 동안 원룸을 구해 난생처음 자취 생활을 했다며 지난 이야기를 풀었다. “굉장히 설레는 마음으로 (원룸의) 방문을 열었는데, 갑자기 막막함이 몰려오더라고요. 이게 강두의 시작인 것 같았어요.” 지난해 6월 대본을 받고 머릿속에 그린 강두는 “바람 불면 흔들릴 것처럼 벼랑 끝에 서 있는 모습”이었다. 이를 표현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터. “이 아픔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혼자 방 안에 처박혀서 커튼도 열지 않고 노래도 듣지 않고, 식사도 1일 1식하며 피폐한 상황을 만들었어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더라구요.” 그렇게 만들어진 강두여서 애정이 깊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소모시키면서도 강두가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사람과 사랑, 이것이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라는 게 드라마의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드라마 삽입곡 ‘어떤 말이 필요하니’를 직접 부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사실 시청자들의 몰입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내가 출연하는 작품의 노래는 절대 안 부르겠다는 게 신념인데 감독님이 제안하셔서 거절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연기자로서 이준호의 장점은 진정성이다. 캐릭터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때까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한다. 그는 “언젠가 연기가 익숙해지면 나도 모르게 요령을 피우고 있지는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면서도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 있게 더 건강해야지, 쉬지 말아야지 생각하게 됐다”고 힘줘 말했다.●원진아, 첫 드라마에서 주연 꿰차 강두 옆에는 같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문수가 있다. 맑고 순수한 이미지와 중저음의 차분한 음색으로 시선을 끈 원진아(27)는 문수 그 자체였다. 영화 ‘강철비’에 나온 두 명의 북한 소녀 중 한 명이 그녀인데, 드라마 ‘그사이’는 주연으로 나온 첫 작품이다. 신인인 그가 보여 준 안정적인 연기는 원진아라는 ’원석’(原石)이 앞으로 어떻게 다듬어질지 기대를 갖게 만든다. 원진아는 “저 또한 첫째 딸이어서 문수와 비슷한 점이 있다”면서 “실제 문수보다는 외향적이지만 힘든 내색을 잘 하지 않는 점은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수의 감정이 폭발할 때는 나도 우울하고 힘들어지기도 했는데, 반대로 문수가 담아 뒀던 말을 다 뱉어내면 희한하게 내 속도 다 시원해졌다”면서 밝게 웃었다. 오랫동안 꿈꿨지만 배우의 길로 들어선 건 20대 중반이 다 돼서였다. “제가 두 동생을 거느린 장녀이다 보니 부모님께 하고 싶은 것 하겠다는 말을 못 했어요. 스물네 살쯤인가 부모님이 집에 보탬이 안 돼도 되니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시더라구요. 곧바로 충남 천안에서 서울로 올라와 아르바이트하며 오디션을 보러 다녔죠.” 돈을 벌며 배우를 준비하는 일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오전 8시부터 시작해 새벽 2시까지 카페와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수많은 오디션에서 떨어졌고, 때로는 캐스팅이 성사됐다가 불발되는 일도 있었다. 그는 “한때 내가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고 사는 게 너무 속상해서 매년 연말을 울면서 보냈다”고 털어놨다. 원진아는 ‘그사이’ 오디션에서 12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배역을 따냈다. 그는 “정정당당하게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됐고, 나 같은 신인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이 뿌듯하다”면서 “처음에는 너무 무서워서 못 하겠다는 말이 턱밑까지 오기도 했는데, (배우나 스태프들과) 다 같이 모여 연습할수록 드라마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롤모델로는 ‘그사이’에서 마마를 연기한 원로 배우 나문희를 꼽았다. 그는 “오랜 경험에도 지금도 연기할 때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시는 걸 보면서 존경스러웠다”면서 “진심으로 연기하고 오래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포항 지진 임시구호소 운영 중단에 이재민 반발

    경북 포항시가 지진 피해 임시구호소 운영을 중단하기로 하자 이재민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포항시는 4일 “지진 피해 주민 이주대책이 사실상 마무리됨에 따라 설을 앞두고 오는 10일까지 북구 흥해실내체육관과 기쁨의 교회 등 임시구호소 2곳의 운영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재 흥해체육관과 기쁨의 교회에는 이재민 138가구 288명, 30가구 71명 등 모두 168가구 359명이 생활하고 있다. 앞서 시는 이 중 이주가 확정되지 않은 흥해체육관의 5가구 10명, 기쁨의교회 6가구 19명 등 11가구 29명에게만 설 전에 모텔 등 임시숙소를 제공해 주고 나머지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통보했다. 권의진 포항시 주민복지팀장은 “이주 대상이 아닌데도 여전히 대피소에 머무르고 있는 이재민에게 집으로 돌아가도록 권유하고 있다. 안전진단에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됐다. 언제까지 임시구호소를 운영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밝혔다. 시는 자원봉사자들의 피로 누적과 설 명절 봉사단체 활동이 어려운 점 등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지진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이재민은 보건소 심리지원단과 연계해 가정방문 치료를,몸이 불편한 이재민은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임시구호소에서 곧 쫓겨나야 할 형편에 놓인 330여명은 “엄동설한에 갑자기 내쫓으면 어디로 가란 말이냐”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지진으로 아파트가 기울어져 철거 대상이 된 대성아파트에서 50여m 떨어져 있는 한미장관 아파트 주민과 주변 빌라 등지 주민이다. 한미장관 아파트 주민 100여명은 지난달 31일 포항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어 “지진으로 우리 아파트 4개 동이 상당한 피해를 봤는데도 포항시 1·2차 조사에서 사용 가능 판정을 받아 이주대상에서 빠졌다”면서 “아직도 아파트 외벽에서 돌이 떨어지고 있다. 이렇게 위험한데도 포항시는 아무런 대책 없이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만 되풀이 한다”고 성토했다. 김홍제 한미장관 아파트 지진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우리 주민들은 최소한의 정주권과 생활권을 바라고 있다”며 안정적인 주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 아파트에는 240가구 600여명이 살고 있으며 지진이 나고 지금까지 68가구 주민이 흥해체육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은 행정안전부와 청와대 비서실에 안정된 이주대책을 마련해 줄 것으로 요구하는 청원서를 내기로 했다.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브라보 마이 라이프’ 종영, 존재감 드러낸 현우 ‘귀여운 심쿵남’

    ‘브라보 마이 라이프’ 종영, 존재감 드러낸 현우 ‘귀여운 심쿵남’

    ‘브라보 마이 라이프’ 현우가 뛰어난 연기력과 존재감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현우는 지난해 10월 첫 방송을 한 SBS 특별기획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 트라우마를 지닌 배우 범우 역을 맡아 명품 연기로 극을 풍성하게 이끌었다. ‘범우’는 공황 장애로 인한 카메라 울렁증으로 7년째 무명이었지만 도나(정유미 분)의 도움으로 드라마 데뷔를 한 인물이다. 현우는 극 중 범우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든 연기를 선보이며 호평을 얻었다. 공황 장애를 이겨내려 고군분투하는 모습부터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완벽한 연기를 펼치는 극적인 모습까지 빈틈없는 연기를 선보인 것. 현우는 꿈을 향해 뚝심 있게 나아가는 범우의 절박한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응원을 이끌어냈다. 또한 현우는 화수분 같은 매력으로 안방극장을 심쿵에 빠뜨리며 로맨스를 이끄는 남주인공으로 눈길을 끌었다. 현우는 짝사랑하는 도나에게 한 발짝씩 다가가는 간지럽고 설레는 로맨스로 달달함을 선사하기도 하고, 남자다움, 귀여움, 사랑스러움 등 천의 매력으로 매회 여심을 저격하기도 했다. 이처럼 현우는 캐릭터의 굴곡진 감정 연기부터 로맨스 연기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며 SBS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통해 한층 더 성숙해진 연기를 펼쳤다. 특히 깊이 있는 눈빛과 표정으로 디테일한 감정까지 고스란히 전달하며 스토리의 진정성과 설득력을 더해 극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명품 연기’를 선보였다. 매 작품마다 자신만의 색으로 캐릭터를 200% 소화해내며 대체불가 존재감을 보여주는 현우이기에 그의 다음 작품이, 앞으로의 연기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한편, SBS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지난 3일 종영했다. 사진=SBS ‘브라보 마이 라이프’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강다니엘, ‘힙합의 민족2’ 방청객서 포착 “거기서 왜 나와?”

    강다니엘, ‘힙합의 민족2’ 방청객서 포착 “거기서 왜 나와?”

    워너원 강다니엘이 과거 ‘힙합의 민족2’에 출연한 모습이 포착돼 화제다.지난 1일 네이버TV JTBC STAR 채널에는 “무려 ‘프듀2’ 출연 전 강다니엘이라니!”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해당 영상은 지난해 1월 종영한 JTBC ‘힙합의 민족2’ 최종 파이널 무대 영상이었다. 당시 최종 파이널에 오른 래퍼 피타입과 박광선은 ‘트라우마’라는 곡을 무대에서 선보였다. 두 사람의 완벽한 무대에 관객들은 크게 환호했다. 그러던 중 방청객들 사이에서 한 사람이 포착됐다. 바로 노란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강다니엘이었던 것. 이는 강다니엘이 지난해 4월 첫 방송된 Mnet ‘프로듀스 101’ 시즌2에 출연하기 전의 모습이었다. 지금과 다를 바 없는 귀여운 눈웃음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편, 강다니엘은 지난해 6월 워너원 멤버로 발탁돼 활동 중이다. 사진=네이버TV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아카데미 최고 감독은…데이비드 린

    아카데미 최고 감독은…데이비드 린

    영국 일간 가디언이 역대 아카데미상 감독상 수상자 중 최고의 감독으로 ‘아라비아의 로런스’를 연출한 고(故) 데이비드 린 감독을 선정했다.가디언은 31일(현지시간) 린 감독이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의 프랭크 카프라 감독, ‘젊은이의 양지’의 조지 스티븐스 감독, ‘대부 2’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허트 로커’의 캐스린 비글로 감독과의 경쟁을 뚫고 승자가 됐다고 전했다.‘아라비아의 로런스’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튀르크 지배에 놓인 아랍권의 항전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영국 배우 피터 오툴이 당시 사막의 반란을 주도한 영국군 장교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 역을 맡았다. 가디언은 “감독은 영화 안에서 전능한 능력을 발휘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 선택이 더 고통스러웠다”면서 “운명이 린 감독으로 하여금 서사시를 찍게 했다. 린은 그 운명 자체가 서사시인 감독이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어 “아날로그적 장인정신과 예술성이 디지털 시대를 뛰어넘는 뛰어난 작품”이라면서 “환상적이면서도 결함을 지닌 영웅인 로런스는 바로 린 감독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 이야기 구조, 작품의 규모, 클로즈업 등에서 원숙한 연출력을 보여 줬다”고 평가했다. 린 감독은 이 밖에 ‘콰이강의 다리’, ‘닥터 지바고’ 등 명작을 남겼다. 독자 투표에서는 코폴라 감독이 51%의 지지를 얻어 린(30%) 감독을 앞질렀다. 가디언은 ‘대부 2’에 대해 “코폴라 감독 최대의 업적”이라면서 “구조적으로 대담한 영화로 전례 없는 속편”이라면서 “코폴라의 영화는 최면적이고 압도적”이라고 평했다. 비글로(10%) 감독, 카프라(8%) 감독, 스티븐스(2%) 감독이 뒤를 이었다. 비글로 감독은 ‘허트 로커’에서 아프가니스탄 전투에 참전한 폭발물 처리반원의 트라우마를 깊이 있게 그려 큰 울림을 전했다. 제러미 레너가 주연을 맡았다. 가디언은 “액션 영화의 거장이 위대한 반전(反戰) 영화를 선사했다”고 호평했다. 카프라 감독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은 로맨틱 코미디의 원조로 꼽히는 명작이다. 클라크 케이블과 클로데트 콜버트가 출연했다. 스티븐스 감독의 ‘젊은이의 양지’는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아메리카의 비극’을 영화로 옮긴 작품으로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출연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