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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여성들의 분노, 성대결이 아닌 ‘일상화한 공포’입니다

    [영상] 여성들의 분노, 성대결이 아닌 ‘일상화한 공포’입니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2년이 지났지만 여성의 불안, 공포는 그대로다. 또,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대책 마련에 집중되지 않고 성대결로 번지는 양상 역시 2년 전과 변함이 없다. 홍대 몰카 사건에서 촉발된 남혐 대 여혐 구도도 마찬가지다.개별적 범죄가 ‘미러링(혐오를 상대에게도 그대로 반사해 적용하는 것)’ 그리고 ‘백래시(반격)’를 거치면 여지없이 성대결 구도로 변질되고 만다. 그러나 35만명 이상이 참여한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란 청와대 청원은 성대결 조장이 아닌 공포가 일상화한 대한민국 여성이 국가에 보내는 ‘구호 요청’이다. 실제로 지난 16일 대검찰청은 2017년 한해 동안의 여성 대상 살인, 성폭력 등의 강력범죄가 총 3만 270건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강남역 살인 사건이 발생했던 2016년 2만 7431건보다도 10% 가량 늘어난 수치다. 여성의 불안이 공상이나 과장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최근 ‘몰카’라는 사건을 계기로 다시 촉발됐지만, 일상 속에서 여성이 느끼는 공포는 비단 몰카 뿐만이 아니다. 여성은 일상 곳곳에서 시각적·촉각적 공격이나 폭력을 당한다. 일상 생활을 영유하는 대중적 공간에서조차 여성은 안심할 수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 일상 속 공포는 만연한데 처벌되는 범죄는 일부뿐 최근 논란의 한 가운데에 있는 몰카는 ‘찍는다’고 모두 처벌 받는 것은 아니다. 처벌 받는 행동이 특정되어 있기 때문에, 신고해도 사건 접수가 안 되는 경우도 많다. 특정 부위가 아니라 전신 촬영인 경우,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진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다. 실제 판례에도 지하철 몰카범에게 해당 사유로 무죄 판결이 난 사례가 있다. 이모(27·여성)씨는 붐비는 지하철에 서 있는 사이 앞좌석에 앉은 남성에게 몰카를 찍혔다. “남성의 어깨 너머 유리창에 비친 핸드폰 화면이 분명히 내 몸을 찍고 있는 걸 똑똑히 봤다”면서 “그땐 아무 말 못했는데 수치심을 느껴 뒤늦게 찾아보니, 특정 부위가 아니면 처벌할 수 없다더라”면서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모(29·여성)씨는 “마음에 든다, 번호 좀 달라”면서 아파트 지하 주차장까지 모르는 남성이 쫓아왔다. 김씨는 “살고 있는 아파트 동 바로 앞까지 왔기 때문에 또 찾아올지, 나중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겁이 덜컥 났다”고 말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주변에서 흔히 찾을 수 있다. 여성은 불안을 호소하지만, 남성이 집까지 쫓아와 처벌받는 경우는 ‘집에 침입하거나, 여성에게 신체 접촉을 가했을 때’에 한한다. 직접 접촉한 게 없고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사건 접수가 안 된다는 것이 경찰 측의 설명이다. ● 범죄라는 인식 없거나 있어도 잡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신고율 낮아 이모(50·여성)씨는 퇴근길에서 예상치 못한 손길에 깜짝 놀란 후부턴 밤길이 무서워졌다. 한 남성이 길을 걷던 이씨의 다리를 만지고 도망간 것. 이씨는 “처음엔 어이없어하며 넘겼지만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쁘고 무서워 이제는 퇴근길에 딸과 만나 함께 귀가한다”고 했다. 이씨의 딸은 “이런 사건이 신고가 되는지도 몰랐지만, 신고한들 잡을 수는 있느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신체 일부를 만지고 도망가는 이른바 ‘만튀(만지고 튀는 것)’는 엄연한 범죄이지만 이씨처럼 ‘범죄로 인식하지 못해서, 잡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 신고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만튀’는 그러나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는 강제추행죄에 해당한다. ● 주변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대중 속에서도 범죄 일어나 변모(61·여성)씨는 아침 출근 버스에서 한 청년이 때리려는 시늉을 한 뒤로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이유도 없이 “확! 씨!”하며 눈앞에서 때리려드는 청년에 놀라기도 했지만 주변에서 아무도 말리거나 신고해주지 않아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변씨는 “절대적으로 힘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어떤 반항도 할 수 없는 스스로가 무력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매일 출근길에서 마주치는 청년이기에 해코지를 당할까 신고도 제대로 못했다. 변씨가 불안을 호소하자 그녀의 아들이 며칠을 기다려 청년과 마주했다. 청년은 그제야 “술이 취해서 기억나지 않는다”고 변명하고 변씨에게 사과했다. 판례상 폭행죄는 멱살을 잡거나 때리는 시늉만 해도 인정된다. 하지만 변씨의 사례처럼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으면 신고조차 어렵고, 일회성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 가버리면 검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게 만드는 일상 속 공포 이 밖에도 야간 택시 이용, 공중화장실 몰카, 남녀 공용 화장실 공포 등 여성들의 일상 곳곳엔 불안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많은 여성들은 “밤에 택시 탔을 때, 택시 기사가 여성이면 크게 안심 된다”고 말한다. 그 순간부터 야간 택시 성추행 및 강도 예방을 위한 행동, ‘뒷자리에 탑승하라’, ‘지인에게 택시 차번호를 알려라’, ‘도착 전까지 졸지 마라’ 등의 불편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차례 다녀와야 하는 화장실조차 여성은 마음 편히 갈 수 없다. 특히 강남역 살인 사건의 배경이 됐던 ‘남녀 공용 화장실’과 구멍이 수십 개 뚫려 몰카를 걱정하게 하는 ‘공중 화장실’을 찾을 때면 여성들은 신경이 곤두선다. 남녀공용 화장실을 갈 때면 여성 여럿이서 짝지어 가서 문을 잠그거나 아예 다른 안전한 화장실을 찾는다. 공중 화장실을 갈 때는 구멍을 막을 휴지, 본드나 몰래 카메라 렌즈에 손상을 입힐 바늘, 매니큐어 등을 들고 다닌다는 여성들까지 여성 커뮤니티에 등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최소한의 자기 방어 행동조차 꺼려진다는 목소리도 있다. ‘카메라를 찾으려 구멍에 얼굴을 들이대면 몰카에 본인의 얼굴이 더 크고 선명하게 찍힐까봐 걱정 된다’는 것이다. 몇몇 여성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공중 화장실 이용을 포기한다고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몰카 범죄에 대한 엄벌 의지를 강조했다. 또, 경찰은 화장실 벽에 구멍을 내고 몰래카메라를 설치할 경우 손괴(파손)죄를 추가 적용하는 등 몰카 범죄 대응을 강화하기로 했다.● “많이 무서웠겠다”라는 공감이 절실하다 여성들에겐 공포가 일상이다. 나이가 많건 적건, 낮이건 밤이건, 주변에 사람이 많건 적건 간에 그 어느 여성에게도 세상은 안전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언제, 어디에서나 부지불식간에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피해자를 향해 흔히 하는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밤늦게 다니까 그렇지.”, “짧은 치마는 왜 입어서 그런 일을 만들어?”, “제대로 저항했어야지” 등의 말이 부적절한 이유다. 공감과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화장실 몰카 대책처럼 특정 장소, 특정 범죄를 대상으로 제도나 정책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여성이 일상에서 느끼고 있는 공포를 많은 이들이 함께 공감해주는 일이 현시점에선 더 절실하다. “진짜 그래?”, “무고아닐까?”라는 의심을 품는 대신 “그런 불편함이 있구나”, “무서웠겠다”라는 말만으로도 여성은 혼자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피해 사실에서부터 점차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구분을 지우고 피해자의 입장에 전적으로 공감할 때, 서로를 향한 날선 혐오도 해소할 수 있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훈남정음’ 황정음, 다이빙 선수로 변신한 모습 포착 ‘진지한 표정’

    ‘훈남정음’ 황정음, 다이빙 선수로 변신한 모습 포착 ‘진지한 표정’

    ‘훈남정음’ 황정음이 다이빙 선수로 완벽 변신했다.19일 SBS 새 수목드라마 스페셜 ‘훈남정음’ 측은 황정음의 다이빙 촬영 사진을 공개했다. ‘훈남정음’은 사랑을 거부하는 비연애주의자 ‘훈남’(남궁민 분)과 사랑을 꿈꾸지만 팍팍한 현실에 연애 포기자가 된 ‘정음’(황정음 분)이 연애불능 회원들의 솔로 탈출을 도와주다가 사랑에 빠져버린 코믹 로맨스. 공개된 사진은 ‘정음’이 다이빙 선수로 대회에 참가한 과거 장면을 담았다.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 정음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중요한 장면인 만큼, 높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신이었다. 황정음은 프로페셔널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미 다이빙 선수로 변신해 있었다. 촬영 시간보다 한참 앞서 수영장에 도착해 물 적응 훈련을 스스로 한 것은 물론, 실제 다이빙 국가대표 선수 출신 코치의 지도하에 다이빙 자세를 반복해 연습했다. 다이빙 점프대 끝에 서서 발끝을 들고, 양 팔을 반듯하게 벌리는 등 입수 전 다이빙 자세를 흐트러짐 없이 선보여 스태프들의 박수를 이끌어 냈다. 사실 황정음은 전직 다이빙 선수 출신 ‘정음’ 캐릭터를 위해 약 두 달여간 수영 연습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 덕분인지 아찔한 10M 높이의 다이빙 점프대에 올라서서도 강한 집중력을 보이며 무사히 리허설과 촬영에 임했다. 두려워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제작진은 “왜 황정음이 믿고 보는 배우가 됐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면서 “이 한 장면을 위해 수개월 동안 노력해왔고, 실제 촬영도 아주 순조롭게 이뤄냈다. 한 장면 한 장면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탄했다”고 박수를 보냈다. 한편, SBS 새 수목드라마 ‘훈남정음’은 ‘스위치-세상을 바꿔라’ 후속으로 오는 23일 첫 방송된다. 사진제공=몽작소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이제, 우리 사회도 이런 아저씨 한 명쯤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제, 우리 사회도 이런 아저씨 한 명쯤 필요하지 않을까요

    방영 초반 극중 24살 나이차 논란 딛고 따뜻한 연민과 이해 품은 명대사 주목우리 사회에도 이런 아저씨 한 명쯤 필요하지 않을까.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지난 17일 시청률 7.4%로 끝났다. 극 초반 과도한 폭력 장면에다 주인공 이선균과 아이유(이지은)의 나이 차(실제는 18살, 극 중에서는 24살 차이가 난다)로 롤리타 신드롬에까지 휩싸이며 논란이 됐지만, 이를 극복하고 호평 속에 막을 내렸다. 선입견과 달리 로맨스 대신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으로 드라마를 채워 완성도를 높였다는 평가다. 특히 ‘나의 아저씨’는 매회 인생을 통찰하는 명대사로도 화제가 됐다. 시청자들에게 오랜 여운을 남길 명대사를 짚어 봤다.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 삼형제 중 유일하게 번듯한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가족 관계, 직장 생활 등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갇혀 좀처럼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박동훈(이선균)의 속을 꿰뚫는 이지안(이지은)의 지적이다. 동훈은 자신에게 갑작스레 입을 맞춘 지안을 불러 “재밌냐? 나이 든 남자 갖고 노니까 재밌어?”라고 다그치자 지안은 “남자랑 입술 닿아본 지가 하도 오래돼서 그냥 대봤어요. 나만큼 지겨워 보이길래. 어떻게 하면 월 오륙백을 벌어도 저렇게 지겨워 보일 수가 있을까.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이라고 말한다.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회식 중 팀원들이 파견직이면서도 당돌하고, 때때로 불편한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 지안에 대해 뒷담화를 하자 동훈은 “너희들은 걔 안 불쌍하냐?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이 말해 주잖아.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라고 말한다. 동훈을 도청하는 지안은 이 말을 모두 듣는다.“망해도 괜찮은 거였구나” ‘나의 아저씨’는 동훈과 지안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도 삶의 단면을 드러낸다. 한때 천재 감독으로 불렸지만 영화가 망한 이후 재기하지 못한 채 청소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박기훈(송새벽)을 어느 날 배우 최유라(나라)가 찾아온다. 자신이 연기를 못해 기훈의 영화를 망쳤다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던 유라는 청소부가 된 기훈을 보고 외려 반가워하며 “감독님이 망해서 정말 기쁘다”며 실패하거나 망가져도 잘 살아 갈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천근만근인 것은 네 마음” 고단한 세속의 삶을 버리고 산사의 중이 된 친구에게 동훈이 ‘산사는 평화로운가? 난 천근만근인 몸을 질질 끌고 가기 싫은 회사로 간다’고 문자한다. 친구 겸덕(박해준)은 ‘니 몸은 기껏해야 백이십근. 천근만근인 것은 네 마음’이라고 답한다.“그 사람을 알아버리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 결말에 이르면서 동훈은 그동안 지안이 도준영(김영민)에게 돈을 받고 자신을 도청하고 자르려 한 사실까지 알게 되지만 지안을 용서한다. 지안이 “진짜 내가 안 미운가”라고 묻자 동훈은 “사람을 알아버리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 내가 널 알아”라고 답한다. 두 사람이 인간으로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보여 주는 장면으로, 극 초반 동훈이 “누가 날 알아. 나도 걔를 좀 알 것 같고. 날 아는 게 슬퍼”라고 한 장면과 연결된다. “할머니 돌아가시면 꼭 연락해” 잠적한 지안이 공중전화로 연락하자 동훈은 “할머니 돌아가시면 연락해”라고 전한다. 혈육이라고는 몸이 불편한 할머니밖에 없는 지안이 세상을 믿고 살아 갈 수 있는 힘을 여기서 찾는다.마지막 회에서 동훈은 약속대로 지안과 함께 할머니를 보내드리는 데 함께한다. 텅 빈 장례식장에 동훈의 가족과 친구들, 직장 동료가 자리를 채우기 시작하고 여느 장례식장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할머니를 편하게 보내드림으로써 지안도 비로소 평범한 공동체의 울타리에 들어온 것을 느끼고, 보통 사람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아는 동훈은 과거에도 한때 불편한 사이가 될 뻔한 지안에게 이렇게 말하며 타이른다. “(회사에서) 너 자르고 동네에서 우연히 만나면 아는 척 안 하고 지나갈 것 생각하면 벌써부터 소화 안 돼. 너 말고도 내 인생에 불편하고 껄끄러운 인간들 널렸어. 그딴 인간 더는 못 만들어. 학교 때 아무 사이 아니었던 애도 어쩌다 걔네 부모님 만나서 인사하고 몇 마디 나누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사이 아니게 돼. 나는 그래. 나 너네 할머니 장례식 갈 거고, 너 우리 엄마 장례식에 와. 그러니까 털어.”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이런 아저씨 한 명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명대사로 살펴본 ‘나의 아저씨’

    이런 아저씨 한 명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명대사로 살펴본 ‘나의 아저씨’

    우리 사회에도 이런 아저씨 한 명쯤 필요하지 않을까.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17일 시청률 7.4%로 끝났다. 극 초반 과도한 폭력 장면에다 주인공 이선균과 아이유(이지은)의 나이 차(실제는 18살, 극 중에서는 24살 차이가 난다)로 롤리타 신드롬에까지 휩싸이며 논란이 됐지만, 이를 극복하고 호평 속에 막을 내렸다. 선입견과 달리 로맨스 대신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으로 드라마를 채워 완성도 높였다는 평가다. 특히 ‘나의 아저씨’는 매회 인생을 통찰하는 명대사로도 화제가 됐다. 시청자들에게 오랜 여운을 남길 명대사를 짚어봤다.“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 삼형제 중 유일하게 번듯한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가족 관계, 직장 생활 등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갇혀 좀처럼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박동훈(이선균)의 속을 꿰뚫는 이지안(이지은)의 지적이다. 동훈은 자신에게 갑작스레 입을 맞춘 지안을 불러 “재밌냐? 나이 든 남자 갖고 노니까 재밌어?”라고 다그치자 지안은 “남자랑 입술 닿아본 지가 하도 오래돼서 그냥 대봤어요. 나만큼 지겨워 보이길래. 어떻게 하면 월 오륙백을 벌어도 저렇게 지겨워 보일 수가 있을까.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이라고 말한다.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회식 중 팀원들이 파견직이면서도 당돌하고, 때때로 불편한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 지안에 대해 뒷담화를 하자 동훈은 “너희들은 걔 안 불쌍하냐?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이 말해 주잖아.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라고 말한다. 동훈을 도청하는 지안은 이 말을 모두 듣는다.“망가져도 괜찮은 거였구나” ‘나의 아저씨’는 동훈과 지안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도 삶의 단면을 드러낸다. 한때 천재 감독으로 불렸지만 영화가 망한 이후 재기하지 못한 채 청소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박기훈(송새벽)을 어느 날 배우 최유라(나라)가 찾아온다. 자신이 연기를 못해 기훈의 영화를 망쳤다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던 유라는 청소부가 된 기훈을 보고 외려 반가워하며 “감독님이 망가져서 정말 기쁘다”며 실패하거나 망가져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천근만근인 것은 네 마음” 고단한 세속의 삶을 버리고 산사의 중이 된 친구에게 동훈이 ‘산사는 평화로운가? 난 천근만근인 몸을 질질 끌고 가기 싫은 회사로 간다’고 문자한다. 친구 겸덕(박해준)은 ‘니 몸은 기껏해야 백이십근. 천근만근인 것은 네 마음’이라고 답한다.“그 사람을 알아버리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 결말에 이르면서 동훈은 그동안 지안이 도준영(김영민)에게 돈을 받고 자신을 도청하고 자르려 한 사실까지 알게 되지만 지안을 용서한다. 지안이 “진짜 내가 안 미운가”라고 묻자 동훈은 “사람을 알아버리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 내가 널 알아”라고 답한다. 두 사람이 인간으로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극 초반 동훈이 “누가 날 알아. 나도 걔를 좀 알 것 같고. 날 아는 게 슬퍼”라고 한 장면과 연결된다. “할머니 돌아가시면 꼭 연락해” 잠적한 지안이 공중전화로 연락하자 동훈은 “할머니 돌아가시면 연락해”라고 전한다. 혈육이라고는 몸이 불편한 할머니 밖에 없는 지안이 세상을 믿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여기서 찾는다. 마지막 회에서 동훈은 약속대로 지안과 함께 할머니를 보내드리는 데 함께한다. 텅 빈 장례식장에 동훈의 가족과 친구들, 직장 동료가 자리를 채우기 시작하고 여느 장례식장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할머니를 편하게 보내드림으로써 지안도 비로소 평범한 공동체의 울타리에 들어온 것을 느끼고, 보통 사람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인간관계의 소중함을 아는 동훈은 과거에도 한때 불편한 사이가 될 뻔한 지안에게 이렇게 말하며 타이른다. “(회사에서) 너 자르고 동네에서 우연히 만나면 아는 척 안 하고 지나갈 것 생각하면 벌써부터 소화 안돼. 너 말고도 내 인생에 불편하고 껄끄러운 인간들 널렸어. 그딴 인간 더는 못 만들어. 학교 때 아무 사이 아니었던 애도 어쩌다 걔네 부모님 만나서 인사하고 몇 마디 나누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사이 아니게 돼. 나는 그래. 나 너네 할머니 장례식 갈 거고, 너 우리 엄마 장례식에 와. 그러니까 털어.”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인권위·광주트라우마센터 국가 폭력 피해 치유 MOU

    국가인권위원회와 광주트라우마센터가 17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국가 공인 공권력 피해자 치유 시스템 마련에 나섰다. 인권위에 따르면 유엔 고문방지협약 제14조는 고문생존자 치료재활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는 국가 공권력 행사 등으로 인한 인권침해 피해자를 위한 정부 차원의 치유 및 재활 체계가 없다. 때문에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민간에서 운영하는 재활 사업에 의존해야 했다. 광주트라우마센터는 국내 첫 고문·국가폭력 생존자 치유기관으로 5·18 민주화운동, 밀양 송전탑 사건 등의 국가폭력 피해자에 대한 치유 사업을 민간 차원에서 꾸려 왔다. 2012년 출범한 이 센터는 현재까지 국가폭력 피해자 1만 1853명(누적)을 대상으로 치유재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센터 근무자는 11명에 불과하지만 한국에 관련 시설이 없어 전국 곳곳의 피해자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 센터에서는 피해자들을 위한 상담, 신체적 후유증 완화, 예술치유, 사회적 관계 회복 프로그램 등 연간 약 15개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신혜선·양세종, 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출연 확정 ‘대세의 만남’

    신혜선·양세종, 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출연 확정 ‘대세의 만남’

    배우 신혜선, 양세종이 SBS 새 미니시리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출연을 확정했다.16일 오는 7월 첫 방송 예정인 SBS 새 미니시리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극본 조성희/연출 조수원/제작 본팩토리) 측은 “신혜선과 양세종이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에 주연으로 캐스팅됐다”고 밝혔다.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는 열일곱에 코마에 빠져 20대를 스킵한 채 서른이 돼 깨어난 ‘멘탈 피지컬 부조화女’와, 세상을 차단하고 살아온 ‘스팸男’이 만나 벌이는 코믹 발랄 치유 로맨스.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연출한 조수원PD와 ‘그녀는 예뻤다’를 집필한 조성희 작가가 의기투합한 작품으로 ‘믿보작감’(믿고 보는 작가 감독)의 탄생에 기대감이 모이고 있다. 이 가운데 신혜선과 양세종이 주인공으로 출연을 확정 지어 기대감을 한층 고조시킨다. 먼저 신혜선은 탄탄한 연기력과 매력적인 마스크 그리고 흥행 보증능력으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배우. 그는 ‘학교 2013’을 통해 데뷔한 이래 수많은 흥행작에 이름을 올리다 첫 주연작인 ‘황금빛 내 인생’을 통해 시청률 45%라는 진기록까지 달성하며 명실공히 ‘흥행요정’으로 거듭났다. 특히 신혜선은 조성희 작가와 ‘그녀는 예뻤다’ 이후 두 번째 호흡. 이에 3년만에 재회하는 신혜선과 조성희 작가가 만들어낼 유쾌한 시너지에도 관심이 높아진다. 양세종은 지난해 11월 종영한 ‘사랑의 온도’를 통해 대세 배우로 우뚝 선 바 있다. 특히 양세종은 데뷔 2년만에 ‘낭만닥터 김사부’ 등 굵직한 필모그래피를 쌓는가 하면 SF 스릴러와 멜로드라마의 주인공 자리를 꿰차며 ‘초고속 성장’의 바람직한 예를 보여주고 있는 배우. 이에 양세종이 선보일 첫 로코 연기에 관심이 높아지는 한편, 연일 상종가를 치고 있는 그가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를 통해서 핫한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더욱이 대세 배우계의 남녀대표선수라 할 수 있는 신혜선과 양세종이 어떤 하모니로 안방극장을 사로잡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런가 하면 극중 신혜선은 꽃다운 열일곱에 사고로 코마상태에 빠져 13년의 세월을 ‘간주점프’한 서른 살의 ‘멘탈 피지컬 부조화女’ 우서리 역을 맡았다. 우서리는 액면가 서른과 정신연령 열일곱 사이에서 스펙터클한 성장통을 겪게 될 인물. 반면 양세종은 언제든지 세상을 차단할 준비가 되어 있는 ‘스팸男’ 공우진 역을 맡았다. 공우진은 열일곱이었던 13년 전에 얻은 트라우마로 인해 타인과 얽히기 싫어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서른 살의 무대디자이너다. 신혜선과 양세종은 이처럼 각자의 이유로 ‘열일곱에 멈춰버린 서른 살 남녀’로 만나 코믹하고도 발랄한 케미스트리를 뽐낼 예정이다.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측은 “조수원PD와 조성희 작가 등 믿고 보는 제작진에 이어 신혜선-양세종이라는 대세배우가 합류해 한층 시너지가 발휘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청자 분들께 ‘로코 드림팀’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재미있고 사랑스러운 드라마를 만들 테니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 드린다”고 전했다. 한편 SBS 새 미니시리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는 ‘기름진 멜로’ 후속으로 오는 7월에 첫 방송될 예정이다. 사진=YNK엔터테인먼트, 굳피플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죽음에서 살아남았고 살기 위해 죽음을 썼다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죽음에서 살아남았고 살기 위해 죽음을 썼다

    베트남에서 온 작가는 한국의 해물탕을 좋아한다. 이유는 국토 한 면이 바다에 접한 나라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어제 병원까지 다녀왔던 분이라 뵐 수 없겠지 했는데 다행히 시간을 내주셨다. 서태지가 나왔던 1991년 현재, 16개국 언어로 번역됐고 노벨문학상 후보로 언급되는 그의 장편소설 ‘전쟁의 슬픔’은 제목만치 서글프다. 그를 만난 아침은 소설의 첫 장면처럼 축축한 습기로 가득했다. 소설 주인공 끼엔은 열일곱 살 때 북베트남 정규군에 입대한다. 당시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베트남의 젊은이들은 많이 자원입대했다. 온기가 남아 있는 적병의 몸에 못을 박듯 한 발 한 발 방아쇠를 당겼던 끼엔은 전쟁 후 살아남은 단 열 명의 병사 중 한 명이었다. 전사자 유해발굴단으로 끼엔은 부대원이 몰살당한 지역을 찾아간다. 가는 곳마다 끼엔은 생시를 구별할 수 없는 혼령을 목격하곤 한다. 머리가 잘려나간 한 무리의 흑인 병사가 산기슭으로 행군하는 것을 보았다는 이들도 있었다. 전쟁이 갈라놓은 첫사랑 프엉도 찾아온다.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겪은 끼엔에게 프엉만은 확실한 존재였다. 하지만 전쟁은 프엉과의 추억을 앗아갔다. 전쟁은 그녀를 변화시키고,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을 만들었다. 죽지 않기 위해 끼엔은 글을 쓴다. 악몽과 현실 사이에서 버티고자 끼엔이 할 수 있는 일은 죽음을 쓰는 일이었다.“신짜오(안녕하세요).” 중얼거리며 외웠는데 금방 잊은 인사말, 통역해 주시는 하재홍 선생께서 가르쳐 주셔서 인사할 수 있었다. 하 선생은 천호동에 있는 한 모텔에 머물고 있는 그를 모시고 내려왔다. 그는 담배를 맘대로 태울 수 있는 모텔이 호텔보다 좋다고 한다. 홍마초의 뿌리와 이파리, 꽃잎을 담뱃잎에 섞어 말아 피워 물고 환각에 들어가곤 했다던 북베트남 병사들이 떠올랐다. 꼬박 밤을 새운 나보다 더 초췌한 그를 만나 가까운 해물탕집으로 가려 할 때 비가 스멀스멀 내리기 시작했다. 전쟁 얘기를 시작할 때 마치 정글에 비 내리듯 한꺼번에 빗물이 쏟아졌다. 장딴지까지 차오른 핏물 속을 행군했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벌건 내장을 드러낸 해물탕이 나왔다. ‘전쟁의 슬픔’은 시간의 흐름대로 쓴 톨스토이식 소설이 아니다. 끔찍한 비극의 찌끼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청년이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기억, 지금과 과거를 오가는 ‘의식의 흐름’대로 쓴 소설이다. 그렇다고 도스토옙스키의 글쓰기와도 달랐다. “그래요. 맞아요. 의식의 흐름대로 쓴 소설이에요. 처음부터 그렇게 쓰자 해서 쓴 소설이 아니라 쓰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내 소설이 도스토옙스키 소설과 비슷하다는 데 베트남어판 도스토옙스키 소설은 번역이 이상한지 읽기 어려웠어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 1988년 베트남말로 번역됐는데 참 좋았어요.” 그가 ‘백년의 고독’을 읽었다는 말에 멈칫했지만, 단순히 마르케스의 영향으로는 읽히지 않았다. 신화나 전설을 차용했던 마르케스의 신화적 상상력과 달리, ‘전쟁의 슬픔’은 비극적 사실과 고통스러운 기억 자체를 신화적 상상력으로 끌어 쓰고 있었다.소설에서 2375회나 이름이 등장하는 끼엔은 1969년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입대해 북베트남 보병사단의 병사로 서부고원 전선에서 싸웠던 작가의 이력과 유사하다. 다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내가 보기에 끼엔이 아니다. 숨은 주인공이 있다. 끼엔이 외면적 주인공이라면, 950회 이름이 나오는 프엉은 내면적 주인공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작가들, 도스토옙스키나 카프카 같은 이들은 여러 인물에 자신의 내면을 투영해 넣는다. “어떻게 아셨어요? 맞아요. 끼엔은 베트남 전쟁을 겪은 베트남 병사의 일반적인 정서를 가진 인물이고요. 프엉은 내면의 제 자신입니다.” 마르케스와 다른 그의 글쓰기에는 베트남 특유의 상상력이 있었을 것이다. 죽은 혼령들은 왜 이리 많이 나오는지. 끼엔이 찾아가는 곳은 사람들이 많이 죽은 ‘고이 혼’이라는 지역이다. 우리말로 하면 ‘혼을 부른다’는 초혼(招魂) 지역이랄까. 거기서 끼엔은 죽은 자를 두 눈으로 자주 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으스러진 육신을 끌고 다니는 귀신들이 지천에 널려 있는 곳이다. 정신병이 아니라 해질녘 나무들이 바람결에 내는 신음이 귀신의 노랫소리로 들린다. 소설에는 귀신 72회, 유령 24회, 혼령 18회, 망령이 4회 등장한다. 모두 죽은 이의 영혼들이다.“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상상력이 아니에요. 동남아 사람들은 육신이 사라져도 혼령이 일상에 함께한다고 믿지요. 내 작품에서 영혼, 귀신, 죽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일반 사람들의 정서 속에 이렇게 남아 있다는 것을 그대로 쓴 거예요.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 전쟁에서 총에 맞아 죽어도 혼령으로 떠돌죠. 문화권이 다르면 이해하기 힘들겠죠. 공산주의 유물론의 관점에서는 유령이 뭐냐 하지요. 가톨릭 신도들은 영혼이 위로 간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위가 아니라 혼령은 영원히 우리 주변에 있다고 믿어요.” 작가로서 그는 죽은 자와 산 자를 소통시키는 영매(靈媒)다. 죽은 자 중에 호아라는 여성 병사 얘기가 가장 마음 아팠다. 호아라는 이름은 이 소설에서 98회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세 번째로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다. 호아는 부대원의 길을 인도하는 선도병이었는데 길을 잘못 들어 미군이 있는 곳으로 부대원을 인도했다. 그들을 포위한 미군이 다가오자 부대원을 남기고 호아가 미군에게 뛰어든다. 풀밭에 쓰러진 호아 위로 알몸의 미군들이 숨을 헐떡이며 먼저 차지하려고 으르렁댔다. 집단 강간당하는 장면을 숨어서 보면서도 끼엔은 수류탄을 던지지 못한다. 수류탄을 던지면 위치가 발각돼 죽을까 봐. 수류탄을 던지지 못했던 비겁함은 살아남은 끼엔에게 가장 아픈 트라우마로 남는다. “내가 경험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전쟁 때 여군들이 생포되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미군에게 강간당한다는 얘기가 많았어요. 그 얘기를 쓴 거죠.” 영화 ‘지옥의 묵시록’, ‘디어헌터’, ‘택시 드라이버’, ‘람보’, ‘플래툰’ 등은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한 미국 영화다. 지금까지 베트남 전쟁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미국의 시각을 통한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오리엔탈이면서 오리엔탈리즘 시각에서 베트남을 소비해 왔다. 이 영화들은 전쟁에 참여했던 미국인들이 겪는 내면의 싸움이며, 자가치유 방식이다. 미국인이 겪는 베트남전 트라우마가 이 영화들이 주제다. 그나마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안정효의 ‘하얀전쟁’,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은 우리의 입장에서 전쟁이 파괴한 인간을 그리고 있다. 한편 ‘전쟁의 슬픔’에는 영웅이 없다. 도박과 환각에 빠진 베트남 병사들이 등장한다. 짐승으로 오인해 민간인을 사살하는 장면도 나오기에, 베트남 정부로서는 지금도 꺼림칙한 소설이다. 승리한 전쟁을 ‘슬픔’으로 표현했다며 처음엔 제목이 ‘사랑과 숙명’으로 바뀌어 나왔다. 1995년 런던 인디펜던츠 번역 문학상, 1997년 덴마크 ALOA 외국문학상, 2011년 일본경제신문 아시아 문학상 등을 받았지만, 정작 베트남 정부로서는 감추고 싶은 금서(禁書)였다. 베트남 국내에서 학생들은 지금도 이 소설을 잘 모른다. 한국에 온 베트남 유학생에게 물어 보면 외국에서 이 소설이 유명하다는 사실을 한국에 와서 알았다는 학생도 있다. 그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인공 끼엔처럼 그는 아직도 악몽에서 괴로워하는 걸까. 이만큼 끔찍한 소설을 쓴 사람이 정상인으로 살 수 있을까. 베트남 파병을 다녀와서 매일 군인 수통에 소주를 넣어 마시고, 군용 단도를 차고 다니면서 주변 사람을 위협하는 등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돌아가신 한국인 얘기를 전했다. “많이 회복됐어요. 글을 쓰는 창작 활동이 치료에 도움이 되지요. 그래요. 그럴 거예요. 전쟁 후 베트남 사람들은 그래도 주변에서 대화도 하고 함께 울어 주고 그러는데 미군이나 한국군은 더 심하게 트라우마를 겪었을 거예요. 미군이나 한국군은 낯선 타국에서 전쟁의 비극을 겪은 것이죠. 베트남 군인은 함께 전쟁을 겪은 베트남 사람들이 위로해 주고 풀 수 있었는데, 미군이나 한국군은 아무도 공감해 주지 않았을 거예요. 대화 상대도 없으니 몸부림치다가 죽어갔을 거예요.” 이제 가장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1975년 4월 30일, 제27청년여단 소년병 500명 가운데 살아남은 열 명 중 한 명이었다. 전쟁의 트라우마로 방황하던 그는 어떻게 작가의 길을 선택했을까.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어요. 교수였던 아버지는 작가 친구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분들은 전쟁 무용담이나 문학 작품 얘기를 많이 했죠. 군에 입대하고 6년 동안 전쟁터에 있느라 글을 잊었지요. 전쟁 끝나고 돈 벌러 다녔는데, 아버지 친구들이 글재주 있다며 기억해 주셔서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간 거죠. 처음엔 전쟁 중 청년들의 연애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가장 깊은 체험이 전쟁이었기에 전쟁 소설을 쓴 겁니다.” 그에게 글쓰기는 슬픔을 극복하는 생존 방식이었다. 통일을 경험한 베트남 작가로 한국인에게 전할 말씀을 부탁드렸다. “베트남은 무력통일이었기에 승자 북베트남과 베트콩이 남베트남 체제를 완전히 바꿔 놓았어요. 통일 후 갈등이 컸어요. 남베트남 사람 중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은 보트피플로 망명했어요. 전쟁을 통한 통일은 가짜 통일이에요. 진짜 통일은 평화를 통한, 대화를 통한 통일이에요. 기다리는 시간이 중요해요.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인내가 필요해요.” 현재 한국의 교역국 1위는 중국, 2위는 미국, 3위는 베트남이다. 문재인 정부가 베트남과의 교역을 중요하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 소설과 베트남 문학은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텍스트다. 내년에 베트남 문학과 교류를 추진을 위해 베트남에 가볼 요량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2000년에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작가회의 회장이었을 때 베트남 작가협회와 결연을 했어요. 이후 경제협력은 많이 하는데 문학 쪽 교류는 거의 없는 편이죠.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하루키 등 일본 문학이 많이 번역되는데 한국 문학 번역은 고은, 방현석, 김영하 외에 뜸해요.” “깜언깜언(정말 감사합니다).” 배운 표현을 이제야 써 봤다. 기회 있을 때마다 조금씩 베트남 말을 써 봐야겠다. 해물탕이 많이 남았는데 더는 먹을 수 없었다. 위장이 아니라 마음이 쓰렸다. 아차, 지금까지 그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그의 필명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땅의 이름이다. 개울물도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흐르는 베트남의 지명이다. 그는 국제적인 인물로 적지 않은 인세를 받아 서방으로 이민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전쟁 중 정글에서 자던 병사처럼 지금도 허름한 곳에서 노숙인처럼 살아야 편하다는 그의 선조가 견디며 살던 땅의 이름이다. 1952년생 바오닌. 시인·숙명여대 교수
  • 사타구니 부상 류현진 시즌 전반기 ‘아웃’

    사타구니 부상 류현진 시즌 전반기 ‘아웃’

    다저스 10일짜리 부상자명단에 올려2013년 빅리그 진출 이후 8번째 DL류현진(31·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이 예상치 못한 사타구니 부상으로 ‘전반기 아웃’이라는 최악의 진단을 받았다. 미국프로야구 다저스 구단은 류현진을 10일짜리 부상자명단(DL)에 올린다고 4일(한국시간) 발표했다. 기간은 열흘짜리이나 부상 정도가 심해 재활 후 복귀까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은 7월 18일 워싱턴 D.C.의 내셔널스 파크에서 열린다. 류현진은 앞으로 13주간 재활을 마치고 후반기에나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할 것으로 점쳐진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미국 현지 시간으로 이날 오전 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MRI) 정밀 검진을 받은 류현진은 왼쪽 다리 사타구니 근육이 크게 손상됐다는 진단을 들었다. 뼈가 보일 정도로 근육이 찢어졌다. 이에 따라 류현진은 2013년 빅리그 진출 이래 통산 8번째로 부상자명단에 올랐다. 지난해 7월 5일 경기 중 타구에 발을 맞아 열흘짜리 DL에 오른 게 최근 사례다. 류현진은 부상 직후 “2년 전 사타구니 통증을 앓았을 때보다 더욱 안 좋은 것 같다”며 걱정했고, 실제 정밀 검진 결과는 암울했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류현진이 올 시즌을 아주 잘 준비해왔는데 매우 불행한 사고를 당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구체적인 류현진의 재활 계획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다저스 구단은 먼저 류현진이 부상 트라우마에서 극복할 시간을 줄 참이라고 MLB닷컴은 전했다. 류현진은 3승 무패, 평균자책점 2.12로 다저스 선발투수 가운데 최고의 활약을 펼치다가 부상 악재에 직면했다. 전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서 1-0으로 앞선 2회초 1사 후 30번째 공을 던진 뒤 류현진은 사타구니 통증을 호소했고, 결국 더 던질 수 없다고 판단해 강판했다. 류현진을 대신해 우완 강속구 투수인 워커 뷸러가 선발진에서 뛸 것이라고 미국 언론은 전망했다. 다저스는 이번 주에만 투타의 주축인 두 선수를 잃어 큰 위기에 빠졌다. 류현진에 앞서 주전 유격수이자 타선의 핵인 코리 시거가 오른쪽 팔꿈치 수술로 올 시즌을 일찍 접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건강을 부탁해] 지난밤 꿈을 기억해내고 싶다면 ‘이것’ 먹어야

    [건강을 부탁해] 지난밤 꿈을 기억해내고 싶다면 ‘이것’ 먹어야

    지난 밤 꾼 꿈이 생각나지 않을 때, 꿈을 다시 기억해내는데 도움이 되는 영양소가 있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호주 애들레이드대학 연구진은 호주 전역에 거주하는 18~40세 성인 10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이들이 자신의 꿈을 얼마나 자주, 명확하게 기억하는지 등을 우선적으로 조사한 뒤 이후 5일 동안 취침 전 비타민 B6 240㎎을 복용하게 했다. 그 결과 5일 뒤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의 꿈을 기억해내는 능력이 64% 향상된 것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비타민 B6와 꿈을 다시 기억해내는 능력의 정확한 매커니즘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비타민B6 속 아미노산이 우리 뇌에서 감정 및 수면과 연관된 화학적 물질로 전환돼 꿈을 기억해내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추측했다. 연구진이 꿈을 다시 기억해내는 것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진행한 이유는 이것이 악몽이나 포비아(혐오증) 등의 심리적 장애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자각몽(루시드 드림) 효과와도 유사하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자각몽은 스스로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는 꿈을 말한다.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때문에 꿈의 내용을 다소 통제할 수 있으며, 잠에서 깬 이후에 꿈을 생생히 기억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자각몽의 존재를 인정하고 자각몽에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시카고대학 수면실험실의 스티븐 라버지는 “자각몽은 자기계발, 자존심 강화 등 정신 건강을 강화해줄 잠재력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애들레이드대학 연구진 역시 꿈을 꾸고 기억하는 것이 악몽을 이겨내는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운동능력 등을 향상시키고 더 나아가 육체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를 이끈 덴홀름 에스파이 박사는 “사람들이 일생동안 꿈을 꾸는 시간은 평균 6년 가까이에 달한다”면서 “자각몽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꿈을 다시 기억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이 실험참가자에게 사용한 비타민B6 240mg은 바나나 558개를 먹어야만 섭취 가능한 많은 양이다. 일반적으로 당도가 높은 과일에는 약 0.43㎎이, 참치 78g에는 0.84㎎의 비타민B6가 함유돼 있다. 연구진은 비타민B6를 꾸준히 섭취하는 것이 꿈을 보다 선명하게 기억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지각과 운동기술‘(Perceptual and Motor Skills) 최신호에 실렸다. 사진=123rf.com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지난해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사고 목격 노동자 산재 인정

    지난해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사고 목격 노동자 산재 인정

    지난해 노동절(5월 1일)에 경남 거제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발생한 크레인 사고 현장을 목격한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산재로 인정받았다. 트라우마로 불리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자연재해나 사고 등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지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는 질병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800t급 골리앗 크레인과 32t급 지브형크레인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사고를 목격한 노동자 7명이 신청한 산재 요양급여를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했다고 27일 밝혔다. 이 사고로 노동자 6명이 사망했고, 이를 목격한 노동자들은 불면증과 심리적 불안에 시달렸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근무중 발생한 동료 노동자들의 사고를 목격해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이후 발생한 증상을 감안하면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로 인한 재해노동자 38명 중 산재를 신청하지 않은 경상자 5명, 하청업체 사업주 1명을 제외한 32명에 대한 산재는 모두 인정됐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자치광장] 더 큰 지진 대비해야/고인석 서울시 안전총괄본부장

    [자치광장] 더 큰 지진 대비해야/고인석 서울시 안전총괄본부장

    1995년 일본 고베지진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른바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 지진대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큰 규모의 지진이 기록되지 않은 도심의 직하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고베시에서 강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무방비 상태였던 고베시는 7.3 규모의 강진에 아수라장이 됐다. 사망 6435명, 부상자 4만 3792명, 건물 붕괴 10만여동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우리나라도 더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2016년부터 경주, 포항 등지에서 지진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과거 고베시가 지진 안전지대라 자신하며 지진 대비에 소홀했던 것은 지금 우리가 지진을 대하는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다. 서울시는 2016년부터 지진방재 종합계획을 수립, 각종 지진 대책을 추진했다. 그러던 중 경주, 포항 지진이 잇따라 발생함에 따라 그간의 지진 피해 사례와 시민들 요구 사항을 반영해 공공시설물 내진율 보강, 민간 건축물 내진성능 점검 지원, 지진 피해자 심리지원, 체험형 훈련 및 교육 확대 등 ‘서울시 지진안전종합대책’을 지난 15일 발표했다. 첫째 서울시 공공시설물 내진율은 현재 62.5%로 2020년까지 80.2%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3년간 2819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둘째 내진 보강 공사비 보조금 지원 등 민간 건축물 내진 보강을 위해 중앙정부와의 협조 체계를 보다 강화해 나갈 것이다. 현재 민간 건축물은 내진 설계가 도입되기 전인 1988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이 많아 내진율은 18.2%에 그친다. 셋째 재난 피해자 지원을 위해 ‘트라우마 아카데미’를 구축하고, 국가 트라우마센터와 연계한 심리지원 활동을 추진한다. 또한 현재 7곳인 소방서 안전체험교실 내 지진체험시설을 2020년까지 17곳을 늘리고, 연간 14만 4000명의 체험과 교육이 가능한 ‘안전교육센터’를 2022년까지 건립할 예정이다. 지진은 이제 우리에게도 언제 닥칠지 모르는 두려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대비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진다. 지진 발생 이후 고베시는 철저한 분석을 통해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고베시를 만들었으며, 이제는 일본 전역의 도시 지진 재해구호 시스템 개선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서울시부터 시민 생명과 재산, 도시의 핵심기능 보호를 위한 지진 안전 정책을 지속적으로 마련해 나가고자 한다. 하지만 정부의 거시적인 지원, 지자체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과 실행,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어우러져야만 지진에 안전한 서울을 만들 수 있다. 거대 도시 서울의 지진 대비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의 과제다.
  • [서울광장] 일본의 대담한 대북 외교를 기대하며/황성기 논설위원

    [서울광장] 일본의 대담한 대북 외교를 기대하며/황성기 논설위원

    비핵화 문을 힘차게 열 2018 남북 정상회담이 이틀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세계를 놀라게 할 결과가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장시간 회담을 거쳐 타전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남북 정상이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윤곽을 잡고 한 달 뒤쯤 북한과 미국이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할 것이다.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비핵화·평화 프로세스가 4·27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구상에서 경험하지 못한 속전속결의 북핵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한반도 모델’로 교과서에 기록되기를 기대한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전후한 남북 특사 교환 이후 3·27 북·중을 시작으로 4·18 미·일 등 정상 외교가 눈에 띈다. 5월 한·중·일, 6월 한·러 정상회담처럼 확정된 일정 외에도 북·중, 한·미 정상회담이 예상된다. 한반도와 주변국 정상이 몇 달 사이 자주 만나는 일은 21세기 들어 없던 일이다. 한반도 평화시대라는 전환기에 강대국들이 그들의 이해를 담아 개입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분주하다. 열강들의 한반도 개입이 역사의 트라우마처럼 다가오지만 이 땅이 다시는 전쟁의 길에 빠지지 않고, 민족의 경제공동체를 일구는 대장정을 하려면 이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약속을 받아냈다. 그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내정자의 4월 초 평양 방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6월 중 평양 답방 소식이 흘러나왔다. 요동치는 한반도 정세에 일본만 뒤처지는 느낌이지만 정작 당사자는 위기감이 없는 듯 보인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한 회견에서 ‘재팬 패싱’을 묻는 일본 기자의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고 부정했다. 과연 그럴까. 아베 총리는 올해 초만 해도 일본 외교가 역사상 최고점에 있다고 자화자찬했다. 역대 어느 총리보다도 많이 해외를 다니며 국익을 추구하는 ‘아베 외교’를 펼쳐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일어날 한반도의 지각변동은 예측을 못 하지 않았나 싶다. 일본 정부가 한반도 정세를 오독(誤讀)한 시점은 지난해 11월 북한의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봐야 한다. 그 선언을 김정은 정권의 ‘핵 담판’으로 읽었다면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발표되기 전까지 ‘대화 없는 제재와 압박’을 외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오죽하면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영원히 평양행 차표를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을까. 비핵화 열차의 종착역은 북·미 수교이다. 그 열차에 오를지는 전적으로 일본 정부에 달렸다. 일본은 남북,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보고 대북 외교의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자세다. “하도 북한에 속아서” 돌다리도 몇 차례고 두들겨 보고 건너려는 신중함이 느껴진다. 일본에서는 ‘버스를 놓쳤다면 무리해서 올라타기보다 일시정차할 때 타면 된다’는 얘기들을 한다. 그런 신중한 태도를 탓할 수는 없다. 일본 정부는 ‘납치, 핵, 미사일 등의 제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불행한 과거를 청산해 일·조(북·일) 국교정상화 실현’을 기본방침으로 하고 있다. 비핵화가 되더라도 납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북·일 수교는 어렵다는 얘기다.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납치 고백이 일본의 북한 때리기를 초래해 국교정상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경험이 있다.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북한은 납치에 관한 모든 것을 넘겨주고, 일본도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북·미의 비핵화 해결 방식으로 거론되는 ‘원샷’, ‘빅뱅’ 등의 대담한 타결이 북·일 관계에서도 필요한 까닭이다. 북한은 일본이 전후 처리를 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불행한 과거를 청산할’(2002년 북·일 평양선언) 책임, 일본에 있다. 문재인·트럼프 대통령에게 납치 문제를 제기해 달라는 아베 총리의 요청, 충분히 이해한다. 이제 스스로 대북 외교에 나서 비핵화 한반도와 협력하는 대국 일본의 역할을 할 때다. marry04@seoul.co.kr
  • 소리꾼 원진주 명창 “판소리 불모지 김포를 수도권 판소리한마당 메카로 육성하고 싶어”

    소리꾼 원진주 명창 “판소리 불모지 김포를 수도권 판소리한마당 메카로 육성하고 싶어”

    차세대 소리꾼 원진주 명창은 24일 김포한옥마을 인근 스튜디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판소리 불모지인 김포를 수도권 판소리한마당 메카로 육성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원 명창은 국악판소리대회 중 가장 공정하다고 평가받는 임방울국악제에서 2013년 대통령상을 거머쥐었다. 네 번 도전 끝에 김세종제 ‘춘향가’ 중 ‘십장가’ 대목을 불러 판소리 지존의 자리에 올랐다. 원 명창은 통으로 질러내는 꿋꿋한 동편제 소리를 구성진 통목으로 힘있게 질러내는 고음이 매력이다. 또 남도잡가인 육자배기와 흥타령·씻김굿을 진도에서 직접 배우며 동편제의 구성진 통목에 남도민요의 감성이 어우러진 성음을 자랑한다. 판소리만으로 2% 부족해 여성국극단에 직접 찾아가 연극을 배우면서 지금의 시어머니를 만난 인연도 흥미롭다. 명창 박송희 선생과 안애란 선생을 사사했다. 다음은 원진주 명창과의 일문일답. ⇒판소리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고 특별히 집안에 국악을 한 사람은 없다. 외가가 고창에 있다. 어릴 적 아버지와 헤어지게 되면서 홀어머니와 무남독녀로 자랐다. 초등학교 1학년 무렵 동요나 자작곡을 즉흥적으로 만들어 즐겨 부르곤 했다. 어머니께서 이 모습을 보시고 음악적 끼를 발견하신 것 같다. 남원 국악원에서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놀이로만 생각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철없던 사춘기시절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소리공부를 시작했다. ⇒고교때 처음 대회에 출전해 큰상을 받았다는데. –국악예고 시절 첫 도전한 동아국악콩쿠르에서 학생부 은상을 받았다. 주로 판소리 전공자들이 도전하는 대회로 상당히 유명한 대회다. 이화여대 재학중에는 경연대회 일반부에서 대상을 타기도 했다. 실력을 인정받고 싶어 대한민국 최고인 명창부에 출전하기로 마음먹었다. 2002년도 제6회 임방울국악제 명창부에 처음 도전했다. 그당시 최연소 26살이었다. 바로 대통령상을 받으려고 나간 게 아니었다. 명창부 소리수준이 어떤지 분위기와 과정을 실제로 느끼며 배우려고 출전했다. 그런데 명창부 최우수상인 2등을 탔다. 이게 임방울국악제와의 첫 인연이다. ⇒임방울국악제에 도전해 예선에서만 거푸 3번이나 고배를 든 이유가? –명창부는 1차는 즉석 제비뽑기로 곡을 정하고, 2차본선에서는 자유곡으로 부른다. 30분 이상 완창으로 불러야 하기 때문에 어느 대목이 뽑히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판소리 전 대목을 가사 한소절도 빼먹지 않고 완벽히 부를 수 있어야 출전 자격이 있다. 어린나이에 자만했던 탓인지 1차 예선에서조차 거푸 낙방했다. 그당시 회상해 보면, 경연대회를 나갈 때 마다 제비뽑기를 한 곡이 우연찮게도 매번 흥부가 중 ‘박타는 대목’이었다.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박타는 대목 가사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다음번에도 똑같은 대목을 뽑았는데 같은 대목에서 가사를 까먹는 실수를 했다. 결국 3번이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나도 모르게 트라우마가 돼버렸다. ⇒4번째 도전에서 대통령상을 못받으면 다 포기하고 결혼하려 했다? –2011년 초 여성국극단 대모인 시어머니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한번 만난 뒤 시어머니에게는 더이상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나는 게 주위시선 때문에 부담스러웠다.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처음 밝히는 건데, 사실은 뒤로 몰래 만나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년동안 시어머니한테는 비밀로 간직해 왔다. 그러다가 네번째 임방울국악제 도전때 남편에게 ‘이번에 대상을 못받으면 판소리를 아예 그만두고 같이 결혼하자‘고 했다. 가정생활을 꾸리며 살 생각이었다. 그랬더니 남편은 ‘판소리를 그만두면 내가 결혼을 거절할 테니 그리 알아라’고 폭탄발언을 했다. 이말을 듣고나서 되레 오기와 악이 생겼다. 그때 했던 남편의 그말이 나에게 보이지 않는 힘이 돼 큰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당시 대통령상 수상소감을 물을 때 마음속으로는 ‘자존심과 오기를 심어준 그사람 때문에 이 상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젊은 시각장애인 소리꾼을 제자로 뒀다는데. –그 제자는 현재 관현맹인전통연주단에서 판소리 단원으로 활동중인 김지연양이다. 김양이 고교2학년때 실로암시각장애복지관을 통해 처음 만났다. 서편제 주인공인 눈먼 송화의 이야기를 듣고 동감이 돼 판소리를 배우고 싶어 한다는 시각장애1급 소녀였다. ‘적성가’의 한 대목중 ‘아침안개~’라는 가사가 있다. 아침안개라는 게 뭔지 한번도 보지 못한 김양에게 이걸 가르치는 데 너무 답답하고 힘들었다. 또 부채를 폈다가 접는 방법부터 발림까지 모든 걸 가르치는 데 일반인에 비해 2배이상 시간이 걸렸다. 사랑가1절을 제대로 가르치는 데만 꼬박 석달이 지났다. 교육 1년반 만에 경기 수원대학교 정시모집에서 일반학생들과 겨뤄 당당히 합격하는 기적을 이뤄냈다. 그것도 4년간 장학생으로 졸업했다. ⇒여성국극단 활동을 했다는데 이유는. –판소리의 다양한 요소들 중 극적표현을 위한 공부가 필요했다. 그게 연극이었다. 인물캐릭터의 표정과 손짓으로 연기해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러 여성국극단에 내발로 찾아갔다. 4년간 창극 전통춘향가와 심청가 무대에서 활동하며 선배님들의 연기적 표현을 따라서 배웠다. 연기자들이 모두 여성이므로 남성역할까지 맡아야 한다. 그 시절 변학도 역할만 50년을 맡아온 허숙자 선생은 유명했다. 실제 보니 악덕한 변학도 모습이 아닌 집안에서는 알뜰히 살림을 챙기는 천상 여자의 모습이더라. 현재 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허 선생에게 연기를 배워보겠다고 했다. 춘향이를 맡길 줄 알았는데 방자역할을 맡게 해 못마땅해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나를 눈 여겨 보고 있다 별도로 불러 챙겨주시는 모습에 반해 지금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인연이 됐다. ⇒한때 방송화제였던 판소리 명창 서바이벌 ‘명창대첩’에도 참가했다? –국악판 ‘나는 가수다’로 화제를 낳았던 판소리 명창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 MBC 특별기획 ‘명창대첩’ 방송에 출연한 적 있다. 최강의 판소리 8명창을 뽑아 서바이벌 방식으로 취후 승자를 가리는 프로였다. 당시 쟁쟁한 왕기철과 왕기석·김연·장문희·박애리·김나영·노해현 명창들과 함께 출연했다. 이때 그룹 ‘위대한 탄생’의 드럼주자인 김희현 선생과 수궁가의 한 대목을 북장단 대신 드럼으로 연주한 게 기억에 남는다. ⇒소리무대 공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소리를 포기하려고 했을 당시 운명처럼 만난 제자인 시각장애인 김지연양과의 공연이다. 마침 이 제자를 만났을 당시 제가 경연대회에 도전하며 여러 차례 좌절을 겪고 있었을 때였다. 알려주는 데로 흰 도화지에 그림 그리듯 판소리를 통해 세상을 배워가고 있는 제자를 봤다. 제자를 보며 다시 힘을 내고 부딪히며 서로를 알게 됐다. 6년이 흐른 지금 판소리가 수준에 올라 스승과 함께 한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이젠 재능기부나 봉사공연도 함께 자주한다. 공연이 끝난 뒤엔 항상 가슴으로 눈물을 흘리곤 한다 ⇒앞으로 꿈이나 바람이 있다면. –김포를 수도권 최고의 판소리한마당 메카로 만들고 싶다. 현재 살고 있는 김포에는 전공국악인이 가르치는 판소리교육 공간이 없다. 많은 시민들이 판소리를 쉽게 접할 수 있고 배워 부를 수 있도록 하겠다. 5월부터는 판소리를 전공한 명창으로서 제대로 가르치는 정통 판소리교실을 열 예정이다. 또 기회가 주어지면 김포한옥마을 아트빌리지에서 진행하는 판소리 체험교실을 운영해보고 싶다. 소리꾼으로 살아온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의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판소리를 전수할 계획이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8번 시험 비행에도… 울릉도·독도 헬기 관광 논란

    올해 운항 예정됐던 계획 안갯속 20년 전 추락사 트라우마도 여전 뱃길만 있는 경북 울릉군에서 울릉도·독도 헬기 관광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19일 울릉군 등에 따르면 경북에 본사를 둔 A항공사가 영덕과 울릉을 오가는 관광헬기를 띄우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영주와 예천, 영덕 등지에서 울릉까지 14인승 헬기로 8차례 시험 비행했다. 영덕~울릉도 35분, 울진~울릉도 25분 만에 주파한다. 이 회사는 애초 올해 초 승객을 태울 계획이었지만 지금껏 운항이 미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울릉도에서 관광 헬기 운행을 놓고 여론이 엇갈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울릉도 관광 활성화를 위해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일부에선 바람과 눈이 많은 지역 특성상 헬기 관광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주민 김모(63·여)씨는 “울릉도·독도 헬기 관광시대를 앞당겨 관광 활성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모(51)씨는 “20여 년 전에 울릉도 헬기 관광으로 참사가 발생하는 등 사전 철저한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울릉도 헬기 관광사업은 여러 항공사가 도전했다 쓴맛을 봤다. 시티항공은 1996년 3월 관광용 헬기를 띄웠으나 몇 차례 운항 후 접었다. 2014년 말에는 강원항공이 시험운항만 했고, 1989년 7월에는 우주항공이 영덕 삼사해상공원과 울릉 사동을 오가는 헬기를 띄웠으나 취항 당일 추락해 탑승자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울릉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靑 견제는커녕 너무 몸 사렸다”… 김기식·드루킹 연타에 민주 ‘멘붕’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사퇴 후폭풍과 함께 드루킹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19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이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통에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국민투표법, 추경, 민생법안들을 발목 잡는 것이야말로 국기문란이고 헌정질서에 대한 도전”이라며 야당을 비판했다. 그러나 드루킹 사건이 오사카 총영사직 인사 청탁 문제를 넘어 대선 기간 당시 여론 조작 의혹으로까지 번지면서 개헌과 추경 등의 안건은 뒤로 밀려나는 등 야당에 대한 공세는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다. 여기에 드루킹 사건 연루 의혹을 받는 김경수 의원이 이날 우여곡절 끝에 경남지사 출마 선언을 했지만 이번 사건이 지방선거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그동안 청와대에 밀려 제 목소리를 못 낸 것이 결국 김 전 원장 사퇴에도 비판이 사그라지지 않고 드루킹 사건이 확대되고 있는 원인으로 보고 있다. 특히 청와대가 김 전 원장의 정치후원금 기부행위의 위법성 여부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묻는 과정에서 당·청 간 소통 부재가 뼈아팠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김 전 원장 논란이 확대되면서 이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대부분 판단했고 자진해서 정리할 기회를 줬어야 했는데 청와대가 왜 선관위에 법적 판단을 의뢰한다는 선택지를 낸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당·청 간 소통 부재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집권 초기에 여당은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을 한다는 지적이 어느 정권이든 나오지만 민주당이 너무 몸을 사린다는 비판도 있다. 한 의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 당·청 간 이견으로 문제가 많았다는 트라우마가 있어 조심하는 분위기인 것은 사실”이라면서 “친문이 아니면 안 되는 분위기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청 간 소통 부재의 또 다른 케이스로는 김 의원의 2차 기자회견도 꼽을 수 있다. 당초 청와대는 관련 사건을 알지 못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 의원이 백원우 민정비서관이 인사 추천 대상자였던 A변호사를 만난 일이 있다고 했고 민주당은 ‘우리가 댓글조작 사건의 피해자다’라는 주장 외에 다른 사실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벌써부터 한국당에서는 민주당이 피해자라면 진실 규명을 위해서라도 특검을 받아야 한다고 공세를 펴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현재 청와대에 있는 측근이 친문 성향 지지자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담당했기 때문에 당은 사실 잘 모르고 있다”며 “당이 사태 수습을 위한 밑그림조차 못 그리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사설] 靑, 국정 독주에 국민 피로감 직시하길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낙마에 청와대와 여당의 태도는 상식 밖이다. 심각하게 실망스럽다. 김 전 원장의 사퇴는 그가 청와대의 코드 인사였기 때문이 아니다. 여론이 근거 없이 뭇매를 들었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국회의원 시절 김 전 원장의 정치후원금 기부 행위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위법 판단을 내렸다. 선관위의 판단은 누구도 아닌 문재인 대통령이 판단 내용에 승복하겠다며 직접 유권해석을 의뢰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사표 수리만으로 없던 일 취급할 문제가 아니다. 부실해도 너무 부실한 청와대의 인사 검증 시스템을 원점에서 손보겠노라고 입에 발린 말이라도 해야 도리다. 일대 혼란을 빚어 놓고도 대국민 사과는커녕 “민정수석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고 선을 긋고 있다. 자리값을 못 한다는 원성을 듣는 조국 수석은 이번 인사 참사에서 역시 머리카락도 안 보인다. 집권당이라는 곳의 대응은 또 어떤가. 더불어민주당은 선관위를 향해 유감 표명을 했다. 민주당 의원모임 더좋은미래 소속 의원들은 “선관위 유권해석은 여론몰이식 해석”이라는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법치주의의 근간을 앞장서 존중해야 할 여당 의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고 선거법을 개정하고 헌재 심판청구를 하겠다니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엄연한 헌법기관인 선관위를 겁박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민주당이야말로 무얼 믿고 누구를 보고 정치를 하고 있는지, 어떻게 저런 오판이 가능한지 의아스러울 뿐이다. 청와대와 여당의 정무 감각이 마비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드루킹 사태의 대응 자세도 다르지 않다. 여당 핵심 인물인 김경수 의원이 연루된 드루킹 사건을 평창올림픽 댓글 조작으로만 보기에는 의혹의 판이 자꾸 커진다. 현직 민정비서관이 연루됐는데, 청와대는 “우리도 피해자”라고 남의 말 하듯 가볍게 뱉을 일이 아니다. 청와대가 가장 듣기 불편한 말이 “내로남불”이 아닐까 한다.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응하는 자세를 보자면 여론이 무엇 때문에 분노하고 있는지 읽을 마음이 없어 보인다. 국민에게 ‘불통 트라우마’가 얼마나 큰지는 누구보다 청와대가 잘 알 것이다. 불통ㆍ불신이 커지면 여당은 당장 대야 협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뭣 하나 신통한 게 없는 자유한국당이 때를 놓칠세라 국회 천막 농성에 나섰을 판이다. 국민 울화를 돋우는 이런 볼썽사나운 풍경을 지금 청와대와 여당이 자초하고 있다.
  • [커버스토리] 명예로운 감빵생활

    [커버스토리] 명예로운 감빵생활

    억압·폐쇄적 ‘간수’ 이미지에 공시생 외면… 수용자 폭행? 되레 맞거나 고발당해…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 정당한 평가 해주길 “교정·교화 업무는 어렵고 힘든 과정이지만 사회 구성원 중 누군가는 꼭 수행해야 하는 일이지요.” 정진우(안양교도소 총무과) 교감은 “국내 1만 6000여명의 교정공무원은 경찰·소방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업무의 경중과 가치의 차이가 없는, 국가의 근간을 유지하는 직렬”이라면서 “충분히 인정받을 자격과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법무부 직무 분석에 따르면 교정직 공무원 대부분은 ‘교정 업무가 사회적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유능한 인재 끌어오려면 교정행정 개선돼야 교정직 공무원은 공시생 사이에서 비인기 종목으로 꼽힌다. 지난 2월 23일 마감한 인사혁신처의 2018년 국가공무원 9급 공개채용시험 원서 접수 결과 교정직 경쟁률은 507명(남자) 모집에 1만 839명이 지원, 21.4대1로 나타났다. 행정직(전국)이 232명 선발에 3만 7543명이 지원, 161.8대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 것과는 차이가 크다. 9급 공채 전체 경쟁률인 41대1의 절반 수준인 셈이다. 지난 10년간 교정직 지원자 수는 2009년 5215명에서 올해까지 2배 넘게 꾸준히 증가하는 등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유능한 인재를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교정행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잠재적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는 교정직 공무원은 정당하지 못한 사회의 평가, 수용자의 고소·고발 및 진정, 열악한 근무환경, 교정사고 발생 두려움 등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일이 많다.우선 사회의 부정적 인식과 편견은 교도관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을 괴롭히던 일본인 ‘간수’에 대한 인식이 해방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는 시각이 많다. 일반인의 교정에 대한 이해 부족과 폐쇄적인 교정행정이 부정적 인식을 심화하는 데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형사정책연구원의 ‘교정행정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5.1%가 ‘가장 잘 모르는 공무원’으로 교정직 공무원을 꼽았다. 이정용 법무부 교정기획과 사무관은 “경찰과 달리 교정행정 특성상 국민이 변화된 모습을 잘 모른다”면서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교정업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지는지 형 집행에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진정 폭탄·자살 등 교정사고도 트라우마 또 교도소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영화 속 교정직 공무원의 모습이 과장·왜곡되는 일도 문제다. 정 교감은 “폭력, 폭언을 일삼으며 수용자를 억압하는 교도관이 많이 나오는데 수용자의 고소·고발, 진정이 잇따르고 있어 교도관의 구타나 욕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드라마를 본 가족이나 친구가 ‘실제로 진짜 그러냐’라고 물어올 땐 서글프고 안타깝다”고 호소했다. 2017년 교정통계연보의 ‘교정사고 발생 현황’을 보면 최근 5년간(2012~2016년) 수용자의 직원(교도관) 폭행은 256건인 반면 교도관의 수용자 폭행은 3건(법무부 자료)에 불과했다. 교도관이 수용자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일이 다반사라는 얘기다. 이뿐 아니라 수용자의 고소·고발, 진정, 청원에 따른 교도관의 심리적 부담도 크다. 이로 인해 정당한 업무 집행조차 위축될 수 있다. 최근 5년간 수용자의 고소·고발은 3371건, 인권위원회 진정은 1만 9103건에 이른다. 피소되면 사건 조사를 위해 교도관은 잘못이 있든 없든 검찰의 수사나 인권위원회의 조사를 받아야 하고 진술서를 작성해야 한다. 정 교감은 “수용자가 수용생활 편의 등 부정한 목적으로 이를 남발해도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어 교도관의 좌절감과 무력감이 심하다”고 말했다. 대량의 정보공개 청구도 교도관을 괴롭힌다. 수용자가 법무부에 요청한 최근 5년간 정보공개 청구는 무려 10만 2000여건에 달한다. 안양교도소 보안과에서 정보공개를 담당하는 김윤수(고충처리팀) 교위는 “부당한 요구 사항을 관철하려고 필요하지도 않은 정보를 대량, 반복적으로 청구해 행정력이 낭비되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교도소 22곳 30년 넘고 수용자 과밀화도 부담 교정사고에 대한 두려움은 교도관의 심리적 부담감을 증가시킨다. 최근 5년간 복역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교정사고 중 자살은 26건, 폭행치사와 폭행치상은 2104건에 이른다. ‘수용 인원 과밀화’와 ‘노후된 교정시설’도 교도관의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는 원인이다. 형사정책연구원의 연구보고서 ‘교정시설 과밀수용 현상과 대책’에 따르면 교도소 내 보안과 질서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과밀 수용으로 교도관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 교정기관의 일일 평균 수용 인원은 5만 7655명(2017년 8월 말 기준)으로 적정 수용 정원을 20.6%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52개 교정시설 정원은 4만 7820명으로 수용자 1인을 수용할 수 있는 기준 면적에 따라 산출된 거실별 수용 인원을 합산한 수치다. 2016년 12월 헌법재판소는 이런 과밀수용 행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가장 오래된 안양교도소를 비롯해 대전·대구·원주 등 8개 교정시설에 대한 현대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전국 52개 교정시설 중 22곳이 준공 30년이 지난 노후 시설이다. 교정통계연보에 따르면 노후된 안양교도소에 비해 남부교도소 등 현대화된 교정시설은 처우가 개선돼 수용자의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징벌 횟수가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4부제로 근무 일부 개선… 인원 부족은 여전 열악했던 근무 형태는 4부제 시행 이후 어느 정도 개선됐다는 평이다. 기존 3부제(주근-야근-비번)는 3일 주기로 1년 내내 야간근무가 이어져 긴장감과 피로감이 매우 높았다.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교정본부는 2014년부터 전국 모든 교정시설의 근무 형태를 4부제로 전환했다. 주간근무-야간근무-비번-윤번(격주근무)의 4일 주기로 순환하는 이 제도는 8일에 한 번꼴로 48시간을 쉴 수 있다. 교정시설에 따라 근무 여건이 달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3부제에 비해 대체로 할 만하다는 평이다. 하지만 교정본부에 따르면 근무 인원 부족으로 전체 윤번 휴무자 중 40%(2017년 기준)가 출근하고 있다. 한범석(안양교도소 보안 2과) 교위는 “윤번휴무만 잘 지켜진다면 근무할 만하다” 그럼에도 “근무시간이 많고, 일근 직원은 야근 지원이나 수용자 입원 시 계호(戒護·경계하여 지킴) 등 주말에도 출근해야 하고, 출정과 직원은 검찰조사가 길어지면 늦은 밤이 돼야 퇴근하는 일도 부지기수”라고 덧붙였다. 윤옥경 경기대 교정보호학과 교수는 “교정 현안을 해결하려면 교정본부가 독립적으로 정책을 기획하고 예산과 인력 수급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면서 “이는 형의 집행과 교정·교화라는 두 개의 임무를 수행하는 동력이 될 수 있고. 교정직 공무원의 사기를 진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핵잼 라이프] 쓰촨성 지진 속 생존 ‘콜라 소년’… 트라우마 딛고 진짜 ‘코크맨’ 됐다

    [핵잼 라이프] 쓰촨성 지진 속 생존 ‘콜라 소년’… 트라우마 딛고 진짜 ‘코크맨’ 됐다

    2008년 5월은 중국인에게 가장 아픈 날 중 하나로 기억된다. 쓰촨성에 규모 7.9의 지진이 덮치면서 최소 6만 9000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여전히 쓰라린 날들로 기억되는 쓰촨 대지진이 발생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눈물 없이는 듣고 볼 수 없는 수많은 사연이 쏟아졌던 가운데, 기적적으로 생존한 생존자들의 현재가 다시금 조명되고 있다. 그중 한 명인 쉐샤오(薛梟)는 당시 18살 소년이었다. 지진이 발생한 지 3일 무려 80시간 동안 건물 잔해 더미에 갇혀 있던 이 소년은 기적적으로 구출된 뒤 구조대원에게 “아저씨, 콜라가 먹고 싶어요. 차게 얼린 콜라 좀 주세요”라고 외쳐 화제를 모았다. 언론은 쉐샤오를 ‘콜라 소년’이라고 칭하며 앞다퉈 구조 과정을 상세히 보도했고, 쉐샤오는 끔직한 재난 현장에서 인간 승리의 기적을 보여 주며 ‘중국을 웃게 한 소년’이라 불렸다. 10대 소년이었던 쉐샤오는 지진의 공포를 딛고 1년 뒤 상하이재경대학에 입학해 금융경제를 전공했고, 2013년 졸업과 함께 한 회사에 취직해 지금까지 근무 중이다. 쉐샤오가 입사한 회사는 다름 아닌 코카콜라 중국지사. 생사의 갈림길에서 콜라를 외쳤던 소년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진짜 ‘코크맨’이 된 것이다. 인턴 과정을 거쳐 최근에는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는 기쁨도 얻었다. 물론 자신이 평소 좋아하는 음료회사의 직원이 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쉐샤오의 가족은 지진으로 터전을 잃었고, 쉐샤오 자신은 당시 입은 부상으로 오른쪽 팔을 잘라 내야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진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은 그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하지만 누구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공부를 쉬지 않았던 그는 자신이 겪은 아픈 과거를 당당하게 드러내 일자리까지 얻는 데 성공했다. 그는 청두비즈니스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지진으로 폐해 더미에 깔렸고, 이 과정에서 피부가 다 벗겨지고 팔이 잘리기까지 했다. 이런 일들도 극복했는데, 내가 헤쳐 나가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라며 ‘무한 긍정’의 모습을 보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트라우마와 싸우는 것은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일과 다르지 않다. 지난 10년간 쉐샤오는 끊임없이 두려움에 떨었고, 잘려 나간 오른팔을 보며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희망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콜라를 좋아했던 소년은 그렇게 ‘코크맨’이 됐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시간 지나도 기억은 더 또렷… 딸아, 진실 인양 못해 미안해”

    “시간 지나도 기억은 더 또렷… 딸아, 진실 인양 못해 미안해”

    다시 또 4월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가슴에 남은 아픔과 상처는 4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덧나는 모습이다. 귓전에는 아직도 아들·딸들의 목소리가 울리는 듯하다. 하지만 사회는 세월호의 아픔을 떨쳐내려 한다. 합동분향소와 세월호 광장은 철거될 운명을 맞았다. 이들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진상 규명’뿐이다.“시간이 흐르면 기억도 아픔도 흐려진다는데 저는 그 반대입니다.” 4·16 세월호 참사 4주년을 앞둔 지난 11일 단원고 2학년 3반 고 유혜원양의 아버지 유영민(49)씨는 벚꽃이 흐드러진 경기 안산 화랑유원지에 우두커니 서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씨의 시선이 향한 곳은 철거를 위한 기초 작업이 진행 중인 세월호 합동분향소였다. 유씨는 “분향소 내에서 희생된 아이들의 영정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도 괴롭고 미안해서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면서 “지난 4년 동안 혜원이와 단짝 세영양의 생일에만 딱 두 번 들어갔다”고 했다.유씨는 “매일 새벽 4시가 돼야 겨우 잠이 든다”며 수면장애를 호소했다. 병원도 찾아봤지만 수면제 처방이 전부였다. 딸을 떠나보낸 이후 건강도 나빠져 고관절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고통을 참기 위해 얼마나 이를 악물었으면 잇몸과 치아가 성치 않을 정도다. 생계마저 내던지는 바람에 치료비도 넉넉지 않은 형편이다. 유씨는 “사고 초기에는 미쳐서 사방팔방 뛰어다니느라 아픈 줄도 몰랐는데, 지금은 아이가 했던 말들이 불쑥불쑥 떠오르면서 잠도 못 자겠고 더 미칠 것 같다”면서 “자녀를 잃은 부모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화랑유원지 한쪽에는 4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무대를 설치하는 공사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오는 16일 이곳에서 정부 합동 영결·추도식이 열리고 나면 합동분향소는 이틀 뒤 철거된다. 이후 4·16 생명안전공원의 설립이 추진된다. 그러자 최근 공원 설립을 놓고 지역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화랑유원지 주변 아파트 단지에는 ‘세월호 납골당 반대’라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겐 ‘2차 피해’나 다름없다. 분향소 옆 컨테이너에는 유가족 대기실이 마련돼 있었다. 사회에 나서기 두려운 유가족들이 만들어 낸 유일한 치유 공간이다. 대기실에는 네댓 명의 유가족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기실 한켠에는 뜨개질, 가죽공예 등을 할 수 있는 4·16 공방도 설치돼 있었다. 한 유가족은 “이곳에서는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웃고 떠들고 노래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공간도 곧 분향소와 함께 철거될 운명을 맞았다.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의 트라우마를 회복하기 위해 설립된 안산 온마음센터에서 진행한 건강 및 생활 실태조사 결과 유가족들의 현재 심리상태는 참사 당시와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마음센터 관계자는 ”사고의 원인과 결과가 명백하게 인식돼야 치료 단계로 들어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월호 피해자들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면서 “어떤 유가족은 진상 규명이 이뤄지기 전까지 치료받지 않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내에는 ‘세월호 광장’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의 넋을 기리며 정부에 진상 규명을 촉구하기 위한 공간이다. 이곳을 지키고 있는 김용택(39) 상황실장은 “정권이 바뀌어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제자리걸음 중”이라면서 “도대체 뭐가 두려워서 우물쭈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2년 동안 세월호 광장을 지키고 있다. 그전에도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매주 촛불을 들었다. 그는 “참사의 원인과 구조에 실패한 해양경찰청, 해양수산부 관계자 등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한데 정부가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면서 “세월호 참사는 유가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자 아픔”이라고 강조했다. 세월호 광장도 현재 철거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직면한 상황이다.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 측은 “규모를 줄여 시민들과 어우러져 추모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재조성하기 위해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다음달에는 민간 공익재단인 4·16재단이 출범한다. 박래군 4·16연대 공동대표는 “4·16재단은 유가족들과 세월호 세대들이 꿈을 키워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비롯해 ‘세월호 치유’에 일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부처 초월한 재난대처 통합시스템 시급”

    “부처 초월한 재난대처 통합시스템 시급”

    “정부의 통합적인 재난 대응 시스템 발전과 함께 지역 사회와 시민의 대응력도 길러 대형 참사에 사회 공동체적 대처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세월호 4주년을 맞아 충북대 국가위기관리연구소와 국가위기관리학회 등 위기관리 관련 7개 기관이 1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했나’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류희인 행정안전부 차관 및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이날 축사에서 “정부에선 중대 재난 시스템 구축을 위해 현장 상황 판단을 중시하는 문제해결형 상황관리 체제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조 발제에 나선 박종운 전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안전소위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는 전 국민이 재난 현장과 국가의 실패를 영상 매체로 생생히 지켜봤고, 이를 계기로 사회적 참사의 악순환을 끊어내려는 열망이 강력해졌다는 데서 다른 양상을 보인다”면서 “때문에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정확히 규명해 재발을 막으려는 실질적인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부처를 초월한 재난 대처 통합 시스템 마련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배정이 중앙재난심리회복지원협의회 회장은 “세월호 참사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사람에 초점을 맞추지 않은 각 부처의 제각각 제도와 지원으로 경제적 손실은 물론이고 시민의 불안과 불신이 초래됐다”면서 “특히 트라우마 분야에 있어 부처를 넘어선 통합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꼬집었다. 재난을 대하는 공동체적 대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형 참사는 정부의 역량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면서 “대형 참사 대응, 복구가 집단적인 경험과 지식으로 공동체에 축적되면 사회가 재난에 대처하는 사회적 힘을 갖게 된다”고 조언했다. 글 사진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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