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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학대받고 자란 아이, 노화·치매 더 빨리 옵니다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학대받고 자란 아이, 노화·치매 더 빨리 옵니다

    아동학대 관련 소식은 들을 때마다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훈육을 빙자한 아동학대를 근절하고자 정부는 최근 민법에 규정된 부모를 비롯한 친권자의 징계권 조항을 삭제하기로 했습니다.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징계권은 체벌 정당화로 아동학대의 빌미를 제공해 왔다는 비판을 계속 받아 왔습니다. 어린 시절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심한 체벌이 트라우마로 남아 신체적, 정신적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들도 적지 않습니다. 미국 워싱턴대, 스탠퍼드대, 하버드대 실험심리학자들로 구성된 공동연구팀은 어린 시절 정신적, 신체적 학대에 노출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사춘기가 빨리 찾아오고 세포와 뇌의 노화 속도가 빠르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심리학회에서 발행하는 심리학 분야 국제학술지 ‘심리학 회보’ 8월 3일자에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어린 시절에 겪은 트라우마가 성인이 되고서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79개 논문과 보고서를 메타분석했습니다. 이들 연구 분석 대상은 총 11만 6000여명에 달합니다. 메타분석은 비슷한 주제로 연구된 문헌들을 통계적으로 통합하거나 비교해 새로운 결론을 도출해 내는 연구 방법입니다. 연구팀은 어린 시절 언어적·신체적 폭력, 정서적 방임, 방치 등을 겪은 성인들의 각종 건강 지수를 분석한 것입니다. 연구 결과 어린 시절 학대에 관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염색체 손상을 막아 주는 텔로미어가 훨씬 짧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신체 세포와 뇌 세포의 노화 속도가 또래보다 2~3배 빠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특히 아동기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은 대뇌 피질의 두께도 얇아 치매와 같은 퇴행성 뇌질환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연구팀은 밝혔습니다. 미국 노터데임대 생물학과, 미시건대 인류학과, 듀크대 통계과학과·진화인류학과, 텍사스 샌안토니오대, 프린스턴대 생태진화생물학과, 케냐 나이로비 케냐국립박물관 영장류연구소 공동연구팀도 개코원숭이 192마리를 대상으로 관찰실험을 한 결과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경험하면 성인이 되고서 정상적인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삶을 영위하더라도 스트레스지수가 일반인들보다 높다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미국 국립과학원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PNAS’ 8월 4일자에 실렸습니다. 일반적으로 타인과 강한 사회적 관계를 갖는 사람들은 스트레스지수가 낮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경험한 개코원숭이들은 성인이 되고서 정상적인 어린 시절을 지낸 개코원숭이들처럼 생활하더라도 스트레스를 쉽게 받고 평소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도 9~14%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사랑의 매’ 또는 ‘사회 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정도의 훈육’을 정량적으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 대 때리는 것은 괜찮고 두세 대를 때리는 것은 안 된다고 딱 잘라 이야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훈육의 기준은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체벌 없이 훈육하는 방법을 아이와 함께 고민할 때 아이도, 부모도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내 맘처럼 되지 않는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오늘도 고민하는 모든 부모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edmondy@seoul.co.kr
  • “목숨 걸고 일했는데 압수수색” 울분 터뜨린 소방관 가족

    “목숨 걸고 일했는데 압수수색” 울분 터뜨린 소방관 가족

    지난 23일 폭우로 인한 침수로 3명이 숨진 동구 제1지하차도는 위험 3등급 도로로 호우경보가 발표되면 사전에 통제돼야 하는 곳이었지만 그러지 않아 사고가 났다. 부산 지하차도 참사와 관련 검찰은 5일 전담팀을 꾸리고 원인 규명에 나섰다. 부산지방경찰청도 지난달 30일 전담팀을 편성해 부산소방재난본부와 중부소방서를 압수수색했다. 지하차도 관리 책임이 있는 일선 구청장은 휴가 중 소식을 듣고 뒤늦게 출근했고 부산시는 이날 호우경보 발효 1시간이나 지난 오후 9시까지 재난안전 문자와 자동음성을 보내거나 통보한 것이 활동의 대부분이었다. 동구는 행안부 지침에 따라 침수 우려가 있는 초량 제1지하차도를 사전 통제하지도 않았고 경찰에 협조 요청도 하지 않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깜깜한 물 속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 부산 침수 현장에 출동했던 한 소방관의 누나는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참사에 대한 책임을 소방관에게 미루지 말아달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청원인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고, 그 현장에는 제 동생이 었었다”며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동생과 동료들은 밀려오는 물살을 헤치며 맨몸에 밧줄 하나 매고 깜깜한 물속을 수영해서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안간힘을 썼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청원인은 “그런데도 최근 언론에서 쏟아내는 소방서 압수수색 기사는 말이 되냐?”며 “압수수색뿐만 아니라 몇몇 소방관들도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동료 소방관들도 있다고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청원인은 “정말 수사를 받아야 할 곳이 소방이 맞는지 도로통제, 교통통제 등을 적절하게 했는지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6명을 구조한 소방관들이 과연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는지 한번 생각해주었으면 한다”라고 당부했다. 끝으로 그는 “목숨을 걸고 일하는 소방관들에게 책임을 미루거나 하는 것을 하지 말아 달라”며 “그 어떤 어려움에도 국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읍소했다. 현재 해당 청원은 이날 오후 4시 기준 40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동의에 참여했다.피서객 구하다 순직…“장비 보완해 목숨 지켜달라” 장맛비로 물이 불어난 계곡에서 피서객을 구조하려다 급류에 휘말려 순직한 고(故) 김국환(30) 소방장은 2일 동료들의 마지막 배웅을 받고 대전 현충원에 안장됐다. 한 청원인은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소방관의 장비가 이렇게 허술하고 부실할 수 있느냐”며 “소방관의 장비를 납품하는 업체들에 대한 전수조사와 안전성의 확실한 확보, 또 장비를 관리하고 점검하는 전담인력의 배치를 요구한다”고 국민청원을 올렸다. 청원인은 “이외에도 현장에 있는 소방관들의 실질적인 의견과 아이디어를 수렴해 국민을 위해 일하는 소방관이 업무 중 사고 당하는 일만큼은 없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백종우의 마음의 의학] 정신건강 없이는 국민건강도 없다

    [백종우의 마음의 의학] 정신건강 없이는 국민건강도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의 가족이 우울해 죽고 싶다고 한다거나 조현병이 발병한다거나 술을 조절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비용 부담 없이 제대로 된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압도적인 자살률 1위를 십수년째 기록하고 있다. 동시에 힘들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회적 연결망도 최하 수준이다. 반면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덴마크는 7명 중 한 명은 지역사회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우리는 편견은 높고 찾아가는 서비스는 없으니 조현병과 같은 중증정신질환 치료는 빈번히 중단되고, 진주방화사건과 같은 사고에 편견만 강해져 당사자들의 부담은 더 커지는 악순환만 되풀이되고 있다. “정신건강 없이 국민건강은 없다”는 말은 2011년 영국 정부가 내세운 국가전략이다. 영국은 전국민에게 정신건강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고 2018년 국민의 외로움을 다루는 고독부 부장관을 이어 자살예방 부장관직까지 만들었다. 반면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에는 정신건강정책과와 자살예방정책과가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에는 담당 부서는커녕 정신건강 전담 공무원 한 명도 찾기 힘들다. 정부는 2016년에 정신건강종합대책을, 2018년에 자살예방국가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이전보다는 나아지고 있지만 움직일 곳은 주로 위탁으로 운영되는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와 자살예방센터뿐이다. 국립정신건강센터 등 국공립정신병원이 있지만 신체질환이 있으면 정신응급환자도 받지 못하고 재난지원 외엔 찾아가는 서비스도 부족해 공공서비스라 하기도 민망하다. 미국 뉴욕과 그나마 사정이 나은 서울을 비교해 보자. 인구 2000만명인 뉴욕주 15만 공무원 중 1만 4200명이 정신보건국 소속이다. 발달장애국과 교정국의 정신건강 전문가들까지 더하면 전체 15만명 중 3분의1을 차지한다. 민간보험 천국인 미국에서도 정신건강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뉴욕주 전체 예산 가운데 2.9%가 정신보건국 예산이다. 반면 서울은 0.16%뿐이다. 정신건강 담당 공무원은 시민건강국 보건의료정책과에 정신보건팀 7명과 시립정신병원 직원에 불과하다. 한국은 1993년만 해도 1만 3429명이나 됐던 교통사고 사망자를 2018년 3781명까지 줄인 경험이 있다. 국무총리실,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에 담당실이 있고 교통안전공단에만 1762명이 일한다. 지방경찰청, 지자체에 담당과가 설치돼 민관이 협력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2018년 기준 1만 3670명을 잃게 만든 자살 문제 역시 체계를 갖추고 노력한다면 해결할 수 있다. 지자체가 책임 있게 일하려면, 우선 복지부에 국 수준의 조직 체계부터 만들어야 한다. 알코올 문제, 트라우마, 심리방역 등 새로운 과제를 담당할 과도 필수적이다. 코로나19로 국민의 정신건강이 더 우려되는 지금 더 늦지 않을 변화를 기대한다.
  • 고관대작 집이었다는데… 옹기종기 한옥은 ‘조선 건축왕’ 항일의 상징

    고관대작 집이었다는데… 옹기종기 한옥은 ‘조선 건축왕’ 항일의 상징

    호기심이 없으면 질문이 없고, 질문이 없으면 새로운 발견도 있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낯익은 것을 낯설게 보기 위한 시도는 새로운 앎과 그걸 통한 성찰의 필수 조건이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20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0회 ‘삼청동’ 편이 지난 1일 삼청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이번 투어는 잘 알려진 곳을 대상으로 했다. 지극히 평범하기에 그래서 더 놀라운 발견이 가능한 곳, 굳이 서울 사람이 아니어도 모르는 이 없는 서울 북촌이 이번 대상지였다. 맹사성 대감의 집터를 포함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한옥 등 조선 시대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전통문화를 이어 왔다고 알려진 서울 북촌. 과연 북촌은 그렇기만 한 곳일까.장맛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행한 이번 투어는 이동은 최소화하되 공간의 맥락은 조금 더 깊게 살펴볼 수 있도록 코스를 잡았다. 시작점은 북촌의 터줏대감 격인 정독도서관. 유심히 살펴보면 현관에 한자로 ‘正讀圖書館’(정독도서관)이라고 걸려 있는 글씨체가 어딘가 낯익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놀랍게도 서울도시계획의 대전환과 관련 있는 흔적이다. 1968년은 그야말로 남북 갈등의 최정점을 찍던 해였다. 그해 1월 21일 김신조 등 30여명으로 구성된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 초입까지 잠입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바로 이틀 뒤엔 원산 앞바다에서 작전 중이던 미 해군 함정 푸에블로호와 북한군 간에 교전이 벌어진 끝에 1명의 사망자를 포함한 83명의 승조원 모두가 납치돼 끌려가는 사건이 벌어졌다. 더욱이 그해 말에는 울진과 삼척에 100명이 훌쩍 넘는 무장 공비가 들어와 쑥대밭을 만들어 버리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남북 충돌이 전방만이 아니라 청와대 앞에서, 그리고 경북 지역에서까지, 심지어 미군과의 사이에서도 벌어진 것이었다.●美 남북 충돌에 무관심… 자력갱생 계기로 문제는 미국의 반응이었다. 당시 한국은 미국을 위해 연인원 30만명이 넘는 장병을 베트남에 파병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미국은 한반도에서 벌어지던 이 극한 대결의 순간에 별다른 제스처를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이었는데 주요 쟁점이 베트남전에서 가능하면 빨리 발을 빼는 것이었다. 베트남전 조기 종식을 내걸고 당선된 리처드 닉슨 입장에서는 유권자들의 의지를 거슬러 섣불리 확전을 결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박정희 정권을 비롯해 한국민들은 국제 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1968년이면 6·25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15년 정도밖에 안 됐을 때다. 서울 시민의 뇌리에 각인돼 있던 전쟁의 기억 중 가장 강렬했던 것은 도강할 수단이 만만치 않다 보니 피난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던 현실이었다. 그런 면에서 1968년에 연이어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은 시민사회에 분노와 함께 공포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시작한 것은 행여 있을지 모를 전쟁과 피난에 대비해 서울 인구의 상당수를 미리 한강 이남으로 분산시키는 것. 당시 영동지구라 불렀던 지금의 강남 개발의 서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다만 문제는 누구도 강남 이주를 원치 않았던 데 있었다. 개발 도상에 있던 나라의 특성상 중산층을 중심으로 자녀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마련해 주기를 염원하고 있었기에 명문고가 있는 강북을 떠나 강남으로 이주하기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바로 그때 나선 게 박 전 대통령을 위시한 정부와 서울시였다. 당시 최고의 명문고로 이름 높았던 경기고 관계자들을 설득해 지금의 강남구 삼성동으로 옮겨 가는 데 동의를 얻어 냈고, 이후 휘문고와 서울고를 비롯한 명문고들이 강남 일대로 이전해 가게 된다. 그 뒤 벌어진 것은 누구나 아는 이른바 ‘말죽거리 신화’. 한국 사회가 걸어온 남북 대결의 역사를 소리 없이 웅변하는 증거물인 정독도서관이 바로 옛 경기고의 본관 건물이고, 그런 공간이기에 박 전 대통령의 글씨가 남은 것이다. 서울의 경우 평균적으로 지가가 높은 강남과 목동 등이 기본적으로는 학군의 문제와 직결돼 있는 듯하지만, 동시에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에서도 자유롭지 않음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1968년 김신조 트라우마로 생긴 연막탄 지주 정독도서관에서 발걸음을 조금 옮기면 또 다른 흔적도 만날 수 있다. 삼청로를 건너 팔판길 16과 30, 31을 연이어 지나다 보면 전봇대처럼 보이지만 전봇대는 아닌 구조물을 만나게 된다. 북촌과 청운동 등 청와대 주변 골목 사이에 있는 연막탄 지주들이다. 대통령 경호와 청와대 경비를 위해 낮에는 연막탄 발사대 지주로, 밤에는 조명탄 발사대 지주로 이용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시설물들이다. 총 68개의 연막탄 지주가 확인됐는데 그중 북촌 일대에 산재한 12개의 지주가 서울미래유산에 등재됐다. 물론 1968년의 트라우마가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혈맹이라고 늘 혈맹일 수 없음을 인식한 한국은 스스로 힘으로 일어서야 했고, 그 과정에서 장교들을 양성하기 위해 제2, 제3사관학교를 개교했고, 후방에서의 군사적인 대응을 위해 제대한 군인들에게 지역 방위를 맡기는 향토예비군을 창설했다. 여성들을 중심으로 반상회를 조직했으며, 교련이란 이름의 교과목을 만들어 학생들도 전쟁에 대비하게 했다. 평상시에는 차량 소통의 목적으로 쓰지만, 유사시엔 각각 십수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방공호 성격의 남산 1, 2호 터널을 팠고, 북쪽 주요 교통로와 하천에 대전차장애물을 설치했으며, 국방과학연구소를 설립해 직접 신무기 개발에 나섰다. 남북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언제 벌어져도 하등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준비한 응전의 증거물들이 북촌 한옥마을 사이사이에 박혀 있을 줄이야. 낯익은 것을 낯설게 보려 할 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새로운 발견들이다. 그러고 보면 북촌의 한옥도 자세히 한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몇 안 되는 한옥을 제외한 한옥들이 너무나 비좁아 보이지는 않는가. 북촌로5나길 84 정도의 위치에 서서 한옥 지붕들을 조망하거나 한옥 카페나 식당에 들어가 보면 그야말로 다닥다닥 옹기종기 밀집해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고관대작의 주거지로 이름 높았던 북촌이라고 들었는데 그들이 살았던 한옥이 이렇게 작다? 사실 북촌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 한옥 대부분은 근대의 유산들이다. 북촌로11가길 41 일대를 비롯해 계동길 100-8 일대의 한옥 밀집 지역이 서울미래유산에 등재돼 있는데, 이들 역시 일제강점기였던 1930~40년대의 한옥들이다. 물론 일제강점기의 한옥이라고 해서 중요성이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통의 멋스러움과 근대적인 재료와 기능이 결합해 탄생한 새로운 양식으로서 의미가 있다. 나아가 한옥이 이렇게 작아진 연유를 알게 되면 오히려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애초 대형 한옥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 북촌에 이렇게 작은 한옥들이 많아진 것은 정세권(1888~1965)이라는 부동산 개발업자가 내린 고민의 결과다. 그는 단순히 사업 수완만 좋았던 게 아니라 물산장려운동에 앞장서고 조선어학회에 건물을 지어 기부하는 등 민족정신도 지닌 인물이었다. 그에게 걱정은 대대로 조선인들의 공간이었던 북촌에까지 일본인들의 주거지가 확장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거대 한옥 부지를 사들여 필지를 쪼갠 뒤 상대적으로 빈약한 조선인의 경제력으로도 살 수 있는 소형 한옥을 지어 파는 것이었다. 그 노력의 흔적이 북촌 일대를 포함해 익선동과 성북동, 창신동, 행당동, 왕십리 등 서울 전역에 펼쳐져 있는 근대식 한옥들이다.●1987년 6·10 민주항쟁으로 헌법재판소 탄생 이번 투어의 종착점은 대통령 탄핵 사건을 거친 뒤 한국인이라면 그 존재를 모르는 이가 없을 헌법재판소였다. 과연 지극히 현대적인 건물이자 기관인 헌재가 서울미래유산에 등재된 까닭은 무엇일까. 한국은 광복 이래 삼권 분립을 한다고는 했으나 늘 대통령에 의한 독재가 횡행했던 게 사실이다. 남북 분단의 상황에서 늘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힘이 쏠렸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독재 정권에 힘없이 협조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승만과 박정희 독재를 거쳐 전두환 정권에 이르기까지 인권 신장과 개인의 자유 증진을 위한 민주화운동이 한시도 멈춘 적이 없었다. 그렇게 피나는 노력의 결과 결국 1987년 6·10민주항쟁을 통해 쟁취해 낸 게 지금의 헌법이다. 또 그 헌법을 토대로 법치주의를 실현해 나가며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을 최종적으로 견제하고 심판하기 위한 기구로서 출범시킨 게 헌재였다. 광복 후 남북 분단이라는 뜻하지 않은 상황이 잉태한 부조리들 속에서 각종 모순을 극복하고자 쉼 없이 달려온 지난 70여년…. 보통 역사 답사를 위해 헌재를 찾을 때면 재동 백송에 시선을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의 오늘과 내일의 민주주의와 관련해 헌재가 갖는 의미를 이해한다면 북촌 투어의 마지막 방문지로 삼을 만하지 않을까. 일상에 매몰되면 내 일상 그 이상도 이하도 보이지 않는다. 또 낯익은 것을 낯익게만 대하면 그 어떤 새로운 지식과 성찰도 불가능하다. 휴가철이라고 해서 꼭 멀리 떠날 게 아니라 내게 익숙했던 공간을 낯선 시각으로 보려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동안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고민과 숙고의 순간을 맞이한다면 그만큼 훌륭한 여행도 없을 듯싶다. 글 권기봉 ‘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11회 서울의 영화(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 ●출발 일시: 8월 8일 오전 10시 마로니에공원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불안한 우리의 일상, 묘한 위로를 만났다

    불안한 우리의 일상, 묘한 위로를 만났다

    팀 아이텔 ‘무제(2001-2020)’화폭 속 표정을 알 수 없는 사람들고독한 현대인의 모습 그려 시오타 치하루 ‘비트윈 어스’붉은 실로 연결된 30개 의자· 천장인간 내면의 불안·불확실성 나타내자발적 격리와 고독이 미덕인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대에 불안과 소외, 삶과 죽음의 경계 등 인간 존재의 내면을 성찰하는 세계적 미술가 2인의 개인전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대구미술관에서 열리는 팀 아이텔의 ‘무제(2001-2020)’와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시오타 치하루의 ‘비트윈 어스’(Between Us)다. ‘사색의 회화’, ‘붉은 거미줄’로 이미 국내에서도 상당한 팬을 확보한 작가들이지만 코로나 상황과 맞물리면서 이들의 작품 세계에 공감하는 관객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격리 중 신작… 대구미술관 10월 18일까지 팔짱을 낀 두 남녀가 흰 벽 사이를 가로질러 검은 통로 쪽을 향하고 있다. 연속 동작을 보여주듯 커플은 한 화면에 두 번 등장한다. 등을 돌리고 있어 표정은 알 수 없지만 화폭 윗부분을 장악한 검은 색과 좁은 통로가 왠지 모를 고립감과 불안함을 전달한다. 독일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팀 아이텔이 파리 자택에서 격리생활하며 그린 신작 ‘시퀀스(커플)’다. 또 다른 신작 ‘멕시코 정원-전경1’과 ‘멕시코 정원-전경2’에 등장하는 등 돌린 여인과 옆에 선 여인 사이엔 어떤 교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거리를 두고 각자의 공간에 멈춰 있는 이들의 모습은 코로나 시대에 일상이 된 격리와 소통 단절을 거울처럼 비추는 한편 비일상적인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묘한 위로를 전한다.지난달 7일 대구미술관에서 개막한 팀 아이텔의 개인전은 신작 3점을 포함해 지난 20년 간 그가 작업한 작품 70여점을 한자리에 모은 대규모 전시다. 추상이 더해진 구상회화로 독일 현대미술에 새 바람을 일으킨 신 라이프치히화파인 팀 아이텔은 입체감 있는 화면 분할, 등 돌린 인물 등 독특한 분위기와 화풍으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에선 황현산의 저서 ‘밤은 선생이다’를 비롯해 여러 작가의 책 표지에 사용돼 ‘책쟁이가 사랑한 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정적이고, 고요하다. 그는 수천 장의 스냅 사진을 찍은 뒤 여기에서 골라낸 배경과 인물을 화면에 담는다. 현실적인 듯 비현실적인 화면 구성과 시대를 초월한 듯한 분위기는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기보다 오래 들여다보고 곱씹을수록 깊은 여운을 남긴다. 시간을 들여 찬찬히 감상하길 권한다. 10월 18일까지.●붉은 실의 예술… 가나아트센터 23일까지 지난 연말 부산시립미술관 전시장을 붉은 실의 거미줄로 가득 채웠던 일본 작가 시오타 치하루가 이번엔 서울의 전시장을 붉게 물들였다. 가나아트센터 2층 300㎡ 공간에 빈티지 의자 30개를 설치하고 전시장 벽과 천장, 의자 사이를 붉은 실로 빈틈없이 연결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이 설치작품 제목은 ‘비트윈 어스’, 번역하면 ‘우리들 사이’다. 김선희 전 부산시립미술관장은 “서로 관계를 맺고 네트워킹하는 사회적 본능을 지닌 우리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평했다. 오사카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 중인 작가는 인간의 유한함과 그로 인한 불안한 내면을 형상화한 작품들을 주로 선보여왔다. 드로잉, 조각, 설치, 퍼포먼스 등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붉은 실로 엮은 설치작업이 특히 그를 각광받게 했다. 한 공간에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실을 통해 작가는 삶과 죽음의 경계, 복잡한 인간 관계, 정체성의 불확실성 등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그는 과거의 기억과 흔적, 트라우마를 적극적으로 작업에 끌어들인다. 어린 시절 이웃집에서 일어난 화재, 두 차례 암 투병에서 겪은 죽음에 대한 공포는 혈관, 머리카락, 피부를 연상케 하는 그로테스크한 결과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된 건 최근이지만 인기는 대단하다.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와 한남동 가나아트나인원 두 곳에서 열린 이번 전시에 60여점이 출품됐는데 지난달 16일 개막하자마자 두 세 작품을 빼고 모두 판매됐다고 한다. 가나아트나인원 전시는 2일 막을 내렸고, 가나아트센터에선 오는 23일까지 계속된다. 대구·서울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조선군 피로 얼룩진 ‘호랑이 입’, 이 땅에 새겨진 日 침략의 상흔

    조선군 피로 얼룩진 ‘호랑이 입’, 이 땅에 새겨진 日 침략의 상흔

    임진왜란은 수백만명이 학살되고 전 국토가 황폐화된, 역사상 최대의 외침이었다. 7년간 침략 전쟁은 36년간 일제강점보다 훨씬 처절한 피해를 입혔고, 동남해안에 남겨진 왜성들이 그 참혹한 역사를 증언한다. 한반도에 현존하는 30여 왜성 가운데 서생포왜성이 규모가 가장 크고 보존이 비교적 양호하다. 임진왜란의 주적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축조한 성으로 사명대사가 강화 교섭을 벌였던 곳으로도 유명하다.●임진왜란, 전투와 협상의 양면전쟁 1592년 4월 14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휘하의 왜군 1진이 부산포에 침략했다. 바로 뒷날, 가토 기요마사의 2진이 부산 다대포와 울산 서생포를 동시 침공했다. 임진년 침략 초기 12만명의 왜군은 17일 만에 한양을, 두 달 만에 평양을 점령할 정도로 일방적 판세였다. 고니시와 가토는 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측근 다이묘(유력자)였다. 고니시가 숙고형의 지략가였다면 가토는 무모할 정도로 타고난 무골이었다. 두 다이묘는 침략의 최선봉을 차지하려 경쟁했는데 조선을 자신들의 영지로 삼으려는 탐욕 때문이었다. 고니시는 한양을 점령하고 평양성에 주둔했으며, 가토는 한발 늦게 한양에 입성했다가 함경도로 진격했다. 두만강을 건넌 가토는 여진족의 저항으로 후퇴했고, 평양의 고니시는 명나라와 부딪치지 않으려 압록강 진격을 멈췄다. 그사이 조선 조정은 명에 원군을 청하는 등 실낱같은 반전의 기회를 만들었다. 파병을 결정한 명은 협상가 심유경을 평양에 보내 고니시와 강화협상을 시작했다. 본격 파병에 앞서 시간을 벌려는 기만술이었다. 이듬해 1월, 조명연합군은 평양성을 탈환해 전세를 바꾸었고, 왜군들은 행주대첩 패배 후 경상도 남부로 후퇴해 장기전에 돌입했다.1593년 8월부터 동남해안 일대에 19개의 왜성을 쌓아 일부 왜군을 남기고, 주력은 일본으로 철수했다. 명왜 협상으로 이룬 일시적 휴전이었다. 무력으로 대륙 정복을 꿈꾼 도요토미와 달리, 고니시는 싸우지 않고 한반도를 점령하기 위해 4년간 명과 협상을 지속했다. 반면 가토는 6000여 병사와 함께 서생포왜성에 주둔했고, 강화 중에도 2차 진주성을 공격해 함락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한편으로 조선 정부에 강화 교섭을 요구했고, 조선 측은 사명대사 유정을 대표로 내세웠다. 심유경·고니시 라인에서 소외된 가토와 조선의 이해가 일치한 결과였다. 4차례 교섭을 시도했는데, 1·2차는 사명대사가 직접 서생포왜성에 들어가 회담했다. 협상의 여러 조건이 있었지만 일본은 경상·충청·전라의 하삼도 분할 지배가, 명은 조속한 종전과 조선 철병이 본심이었다. 두 나라 사이에 낀 조선은 왜군의 완전 철수를 위해 명왜 협상을 어떻게든 결렬시켜야 했다. 사명·가토의 교섭은 이런 배경에서 진행됐다. 결국 1596년 9월 명왜 협상은 결렬되고, 1597년 14만 왜군이 재침공하니 정유재란이었다. 협상이 아닌 무력을 통해 하삼도 분할 점령을 시도한 2차 침략전쟁이었다. 임진년 직후에 축조한 왜성들은 주둔용 방어기지로 군수조달을 위해 부산 일대에 밀집했다. 반면 정유재란 때 신축한 왜성들은 전투용 전진기지였고 왜성 간 사이도 멀었다. 순천·남해·사천·고성·거제·마산·양산·울산의 8개 신축왜성은 최후의 남부 전선이기도 했다. 고니시는 서쪽 끝의 순천왜성에서, 가토는 동쪽 끝 울산왜성에서 농성했다. 결국 고니시는 노량해전을, 가토는 울산성전투를 치르고 구사일생 일본에 철군해 전쟁은 끝났다.●서생포왜성, 일본성의 실험 모델 서생포왜성이 자리한 울산시 서생면 서생리는 배산임해의 요충지로 원래 조선 수군의 만호진이 있던 곳이다. 임진왜란 후, 조선 수군은 왜성을 접수해 서생포진을 설치했다. 조선말까지 군사기지로 활용했기에 비교적 잘 보존됐다. 왜성은 진하해수욕장을 내려다보는 곳으로, 예전에는 바로 아래까지 바다여서 해상 보급이 용이했던 곳이다. 왜성은 동쪽 저지대의 외성과 서쪽 133m 높이 정상의 내성,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성곽의 총길이는 2.5㎞, 내부 면적은 4만 6000여평에 달한다. 왜군들이 설치한 지상 건물은 없고 성벽만 남았지만 일본 성곽 특유의 지형 이용법과 공간기법을 잘 살필 수 있다. 외성부에는 계단식으로 대지를 조성해 병사들의 주둔지로 이용했다. 최근 굴립주 건물지를 발굴했는데, 초석 없이 땅에 박은 굴립주는 일본의 전통적인 기법이며, 기다란 건물형태로 보아 병사들의 숙소였을 것이다. 내성부는 급경사를 따라 여러 겹의 성벽으로 감싸고 정상부에 텐슈가쿠(天守閣·성주의 거소)를 세웠던 천수대가 남아 있다. 내성은 다이묘와 가신 무사들의 핵심영역으로 최후의 방어지였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보편적인 성벽 기울기는 80도 이상의 수직에 가깝다. 그러나 서생포왜성의 성벽은 하부가 60도 정도로 완만하고 위로 갈수록 경사가 급해지는 오목한 곡선형이다. 성곽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은 외부로 통하는 출입문이다. 왜성의 주출입구는 양쪽의 성벽을 복잡하게 꺾어 문을 앞뒤에서 방어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성벽 위에 야구라(櫓) 등의 방어용 건물을 설치했다. 이러한 출입구를 고구치(虎口)라 하는데 ‘호랑이 입’이라는 이름처럼 철통같은 방어용 시설이었다.가토는 1597년 11~12월에 울산왜성(학성, 도산성)을 급히 축성했다. 정유재란을 일으켰으나 급성장한 조명연합군의 전투력에 밀려 최후 방어선을 구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존 울산읍성과 병영성을 헐어 그 석재를 가져다 쌓았기에 단기 완성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2만 3000명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했다고 한다. 동해로 연결되는 태화강을 배후로 하고 동산을 중심으로 3겹의 성곽을 둘렀다. 서생포왜성에 구현했던 오목형 성벽, 방어용 고구치 등도 적용했다. 이곳에서 정유재란 최대의 전투인 울산성전투가 벌어졌다. 조명연합군의 총공세를 가토의 1만 6000명 규모 왜군이 2주간 농성한 전투다. 인근 왜성에서 구원병 4만명이 올 때까지 가토군은 군마를 찔러 피를 마시고 말고기를 먹으며 겨우 버텼다고 한다.●왜성, 무엇을 지키려 했는가 귀국 후 가토는 자신의 영지에 구마모토성을 축성했다. 일본인들은 이 성을 오사카 나고야와 함께 일본의 3대성이라 하고, 가토를 축성의 달인이라 평가한다. 서생포와 울산왜성의 경험을 살리고 조선의 성들을 공격하면서 얻은 지식을 더했다. 아예 세이쇼류(淸正流)라 부르는 오목형 성벽의 곡선은 더욱 완만해졌고, 고구치나 텐슈가쿠는 더욱 견고해졌다. 돌출된 성벽(치) 등은 완연한 조선적 요소였다. 건물 바닥에 까는 다다미를 유사시 먹을 수 있도록 토란 줄기로 엮었고, 성안에 우물을 120개나 팠다. 울산성전투에서 겪었던 처참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방어용 건축인 성곽에 의미 없는 형태나 요소는 없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동화 속의 성들을 보자. 아래보다 위가 넓은 형태는 성벽에 붙은 적들을 바로 위에서 공격하기 위함이다. 높게 솟은 첨탑은 보다 멀리 적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함이다. 뾰족한 지붕과 매끈한 성벽은 외부의 잠입을 막기 위함이다. 단단하고 튼튼하다 보니 아름다워진다. 유려한 형태의 수원화성, 장대한 중국의 만리장성, 화려한 인도 델리의 레드포트 등 세계의 중요한 성들은 기능적인 디자인과 미니멀한 공법의 유산이다.한국과 중국은 물론 중세 유럽의 성곽은 곧 도시의 경계였다. 보호의 대상은 시민과 백성이었고, 보호 대상에 차별이 없어 한 겹의 단일한 성곽을 둘렀다. 반면 왜성과 일본의 성 안에 백성은 없고 무사들만 있을 뿐이다. 성안의 인원도 다이묘·가신·하급무사로 계급화해 여러 겹의 성벽으로 감쌌다. 보호의 대상은 오로지 성주인 다이묘였다. 한국의 성곽은 땅을 깊게 파서 기초를 튼튼히 하고 성벽을 쌓는다. 기간이 오래 걸리지만 성벽을 수직으로 세울 수 있었다. 반면 왜성들은 기초를 하지 않고 지상에 바로 성벽을 쌓기 때문에 완만한 곡선을 이루어야 무너지지 않는다. 일상이 전쟁이었던 전국시대에는 빨리 쌓아야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생포왜성의 존재는 과거 일본의 야만적 침략을, 낯선 형태는 봉건적인 호전성을 기억하게 한다. 역사적 상처의 아픔을 잊어선 안 된다. 아픔을 기억해야 반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통합당 지도부, 세월호 유가족 만났다…5년만에 공식 면담

    통합당 지도부, 세월호 유가족 만났다…5년만에 공식 면담

    미래통합당 지도부가 최근 세월호 유가족과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세월호 유가족이 보수정당 지도부와 공식 면담을 가진 것은 약 5년 만이다. 통합당과 유가족 측에 따르면 지난 23일 국회에서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를 비롯해 이종배 정책위의장과 성일종 비상대책위원 등 통합당 지도부와 유가족 5명이 면담을 가졌다. 이 면담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장훈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시절에도 면담을 요청했지만, 대꾸도 안 했다”며 “2015년 이후 처음 만났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은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지정기록물 공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협조 ▲세월호 폄훼 발언 자제 등 3가지를 통합당에 요청했다.통합당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한 대통령지정기록물 공개와 진상 규명에 대해선 “바로 결정하기는 어렵다”며 즉답을 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세월호 폄훼에 대해선 즉석에서 유감을 표명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한국당 시절 세월호 망언과 관련해 “실수가 많았다. 의도치 않은 말들이 툭툭 튀어나와 곤혹스럽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자신이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빗대 논란이 일었던 데 대해서도 “본의 아니게 짜깁기됐던 것 같다”며 “절대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추모시설이나 피해자 트라우마 치료 등과 관련해 상임위 간사들을 연결해달라는 요구에도 통합당은 흔쾌히 동의했다고 장 위원장은 전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국회 뛰쳐나가도 되나… 통합당 장외투쟁 고심

    국회 뛰쳐나가도 되나… 통합당 장외투쟁 고심

    더불어민주당의 독주에 대여투쟁 묘수가 없는 미래통합당은 지난 총선 이후 터부시됐던 ‘장외투쟁’ 카드를 두고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30일 의원총회에서 “우리가 장외투쟁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 가능성을 닫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민주당이) 176석의 힘으로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고 (우리가) 할 일이 없다면, 직접 국민에게 호소하는 것도 고민해야 하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21대 국회 들어 장외투쟁은 통합당의 대여투쟁 방법에서 논외였다. 자유한국당 시절 황교안 전 대표가 장외투쟁으로 세몰이를 시도했으나 그 결과는 지난 총선 참패로 나타났다. 이 경험으로 장외투쟁은 지지층만 결집시킬 뿐 표심 확장은 차단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국회에서 통합당이 견지한 ‘원내투쟁’ 방식이 수적 열세 속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당내에서는 전략 변경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내 중진인 정진석·홍문표 의원은 원내지도부에 공식적으로 장외투쟁을 촉구했다. 하지만 장외투쟁 방식에 대한 우려가 만만찮아 지도부는 당분간 원내투쟁 집중 전략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일부 지역의 폭우 피해 등이 벌어진 상황에서 장외투쟁에 돌입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최종적인 수단이 장외투쟁인데 아직은 그런 단계는 아니다”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특히 중도층의 반감을 샀던 강경우파 중심의 아스팔트 집회는 피한다는 데는 당내 공감대가 형성됐다. 피치 못해 장외투쟁에 돌입하더라도 플래카드나 구호 등에서 국민적 공감을 사지 못하는 표현을 지양하고 국민공감형 언어로 지지를 끌어낼 세련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재선 의원은 “총선 이후 통합당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겨우 그릇을 넓혀 가고 있는데 이를 과거로 되돌리는 방법을 택해서는 안 된다”면서 “확장성 있는 투쟁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국회 뛰쳐나가도 되나… 통합당 장외투쟁 고심

    더불어민주당의 독주에 대여투쟁 묘수가 없는 미래통합당은 지난 총선 이후 터부시됐던 ‘장외투쟁’ 카드를 두고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30일 의원총회에서 “우리가 장외투쟁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 가능성을 닫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민주당이) 176석의 힘으로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고 (우리가) 할 일이 없다면, 직접 국민에게 호소하는 것도 고민해야 하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21대 국회 들어 장외투쟁은 통합당의 대여투쟁 방법에서 논외였다. 자유한국당 시절 황교안 전 대표가 장외투쟁으로 세몰이를 시도했으나 그 결과는 지난 총선 참패로 나타났다. 이 경험으로 장외투쟁은 지지층만 결집시킬 뿐 표심 확장은 차단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국회에서 통합당이 견지한 ‘원내투쟁’ 방식이 수적 열세 속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당내에서는 전략 변경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내 중진인 정진석·홍문표 의원은 원내지도부에 공식적으로 장외투쟁을 촉구했다. 여당의 법안 일방처리 상황이 지속될 경우 결국 꺼내야 할 카드라는 데에는 상당수가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장외투쟁 방식을 두고는 여전히 고민이 많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일부 지역의 폭우 피해 등 사회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너무 이르게 장외투쟁에 돌입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최종적인 수단이 장외투쟁인데 아직은 그런 단계는 아니다”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특히 중도층의 반감을 샀던 강경우파 중심의 아스팔트 장외집회는 피한다는 데도 공감대가 형성됐다. 통합당은 장외투쟁 플래카드나 구호 등에서 국민적 공감을 사지 못하는 표현을 지양하고 국민공감형 언어로 지지를 끌어낼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한 초선 의원은 “수적 열세에서 뚜렷한 대여투쟁 수단이 없는 통합당이 그나마 기댈 것은 계속해서 국민에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밖에 없다”면서 “과거로 회귀하는 방식은 안 된다는 데 다들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진보 경제학자 “1가구 1주택 세금면제 환상 버려야”

    진보 경제학자 “1가구 1주택 세금면제 환상 버려야”

    “문 정부, 종합부동산세 트라우마 버려야” 진보 경제학자인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29일 창작과비평 논평을 통해 1가구 1주택에 대한 세금면제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금융위원회 해체 등 경제 전반에 대한 진보적인 관점에서의 제안을 내놓고 있는데 일단 현재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비판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깨뜨리고, 국민의 부동산 과다 보유를 막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비책’으로 소득이 아니라 재산에 대해 과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일가구 일주택은 세금 면제’라는 환상을 확실하게 버려 일가구 일주택 보유자라도 주택의 가치가 높다면 재산이 많은 것이고 그렇다면 세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 교수는 소득이 아니라 재산에 과세하는 방식을 택하면 조기 증여나 위장 이혼을 해도 소용없고, ‘똘똘한 한채’를 통한 부동산투기 유인을 완전히 잠재울 수 있다고도 밝혔다. 그는 “지금은 소득 창출이 부진하고, 흙수저가 열심히 일해서 연봉 1억 소득자가 되면 이를 소득세로 뺏어가지만 금수저가 할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아파트로 투기 이익을 얻는 것은 그대로 용인하는 세상”이라고 설명했다. “1억 연봉 흙수저는 소득세 내고, 금수저 상속 아파트는 인정” 따라서 상속받은 아파트에 과세를 강화하고 반대로 소득세는 조금 더 깎아주어 흙수저도 재산을 축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좋은 정책이라고 제시했다. 한편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을 설계한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2017년 8월 3일 부동산 대책에서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강화 정책을 제외하면서 “양도세는 발생한 소득에 부과하는 세금이고 보유세는 정규소득에서 낸다. 따라서 조세 저항이 더 심한 것은 분명하다”거나, “소득이 발생하지 않은 세금에 대해서 먼저 손을 대거나 누진구조에 변화를 준다면 상당한 서민들의 우려가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전 교수는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요인을 꼽으며 주택 구입시 내야 하는 취득세는 정상적인 주택 거래행위도 위축시키며, 보유세 중과는 소위 ‘똘똘한 한채’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증가시킨다고 분석했다. 똘똘한 한채의 대명사는 서울 강남 3구 지역의 아파트로 단순하게 일가구 다주택 규제만 강화하면 강남3구의 대형 평형 아파트에 대한 투기적 수요만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청년부추 & 동학개미/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청년부추 & 동학개미/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경제가 빈사 상태에 놓였다.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국경을 차단하면서 글로벌 공급사슬이 끊기고 유통망이 무너졌다, ‘집콕’해야 하니 소비 역시 기진맥진하다. 생산과 유통, 소비라는 경제 흐름이 동맥경화에 걸린 형국이다. 코로나19 확산→ 실물경제 강타→ 금융시장 악화→ 실물경제 충격을 낳는 악순환을 거듭하는 만큼 코로나 경제의 충격은 실물경제나 금융위기의 차원을 넘어 경제활동이 마비된 복합적 위기다. 여기에 심각한 재정적자, 누적된 기업·가계부채가 결합하면 극심한 경제 합병증을 유발한다. 세계 각국이 돈을 뿌려대지만 ‘언 발에 오줌누기’일 뿐이다. 더 답답한 것은 코로나가 언제 잡힐지 알 수 없는, 스스로 소멸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현실이다. 이 와중에 중국 증시가 숨가쁜 랠리를 펼치고 있다. 상하이 증시는 코로나19 진원지인 후베이성 봉쇄조치가 해제되면서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4개월간 오름폭은 20%를 넘어서며 빚내서 투자하는 ‘빚투’마저 횡행할 만큼 펄펄 끓는다. 2분기 성장률이 깜짝 플러스로 돌아서는 등 경기회복 기대감도 상승을 부추긴다. 중국 정부가 버블을 우려하며 신용투자 제한과 대출금리를 동결했지만 뜨거워진 증시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다. 중국 증시의 상승은 ‘청년부추’(?菜靑年)가 이끌고 있다. ‘부추’는 이른바 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를 뜻한다. 윗부분을 잘라내도 금세 또 자라나는 부추처럼 이들은 전문성과 자금력을 갖춘 기관과 외국인투자자에게 늘상 깨지지만 시장을 떠나지 못하고 이용만 당하는 바람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올 들어 증시에 새로 발을 들이는 부추 가운데 1990년대생이 주도세력으로 등장했다. ‘청년부추’로 불리는 이들이 시장을 뜨겁게 달구는 것이다. 중국 증시는 5년 전 버블 붕괴라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지금처럼 저금리와 유동성을 재료로 1년 새 150% 치솟으며 최고치를 찍었던 중국 증시는 아직도 반 토막에 머물 만큼 후유증을 앓는다. 당시 경기 침체의 늪에 빠지자 중국 정부가 돈풀기에 나섰고 개인들의 ‘묻지마 투자’가 성행했다. 하지만 정점을 찍은 주가는 곤두박질치며 3개월 만에 시가총액은 5조 달러 이상을 날렸다. 청년부추가 ‘루저’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증권가에는 주가가 개구리나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는 신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경제펀더멘털과 수급, 금리, 환율, 심리 등 여러 변수가 뒤엉킨 까닭이다. 한 석사논문에 따르면 13년간 200명 이상이 전업 투자에 뛰어들었지만 생존한 이는 고작 2명이 그쳤다. ‘성공’ 확률은 1%도 안 된다. 이들이 실패하는 것은 처음에 푼돈 번 것을 실력이라고 착각하고 대박을 터뜨리는 데 집착하는 탓이다. 초심자는 처음에 조심하고 행운마저 따라 ‘푼돈’을 버는 경우가 많다. 적지만 달콤한 수익을 맛본 이들은 첫 운이 실력인 양 오만해진다. 이때부터 자신의 주식이 떨어지면 온갖 핑계를 대고 자신이 믿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에 빠진다. 증권사 직원의 조언이 잘못됐고, 주식 기사가 엉터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결국 손해 보고 매도를 해야 할 시기에 손실을 벌충하려고 적금 깨고 카드론까지 당겨 물타기에 나선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속죄양을 찾기에 급급하면서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해 수렁에 빠진다. 이런 일이 청년부추에만 해당하는 일일까. 동학개미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1차전을 승리로 이끌어 자신감이 붙은 일부 동학개미가 중국 투자를 빠르게 늘린다는 소식이 들린다. 더욱이 서울 증시가 9월에 큰손의 전유물인 공매도를 풀면 그만큼 리스크가 커진다. 동학개미들이여, 이젠 냉정을 되찾을 때다. 2000년 전 한나라 학자 유향(劉向)이 설파했다. “불행은 연달아 오지만 행운은 연이어 오지 않는 법”(禍必重來, 福不重來)이라고. khkim@seoul.co.kr
  • “민주, 총선 대승 취해 있어선 안돼… 내가 정권 재창출 필승카드”

    “민주, 총선 대승 취해 있어선 안돼… 내가 정권 재창출 필승카드”

    더불어민주당 8·29 전당대회 당대표에 도전한 김부겸(62·기호 2번) 후보는 “민주당이 총선 대승에 더이상 취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후보는 26일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정당 득표율만 따지면 큰 승리가 아니었다. 그 위험요인을 깨달아야 가치 대 가치, 정당 대 정당이 펼치는 2022년 대선의 일대일 대결에 나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차기 대선이 아닌 민주당 대표 도전을 택한 이유는. “총선 대구 선거 결과가 결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300만표에 달하는 민주당의 취약 지역 민심을 어떻게 세워 문재인 정부의 성공적 마무리와 정권 재창출에 기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 끝에 나온 결심이다.” -왜 이낙연·박주민 후보가 아닌 김부겸인가. “나는 정권 재창출에 모든 것을 건 사심 없는 후보다. 이낙연 후보처럼 7개월을 거쳐 가는 당대표는 안 된다. 박주민 후보는 활력을 넣고는 있으나 대선이라는 큰 파도를 넘어 본 경험이 없다. 대구에서 낙선해도 늘 40% 지지를 받아 온 김부겸이 임기 2년을 책임지고 정권을 재창출할 적임자이자 필승카드다.” -최근 민주당 지지율 하락을 어떻게 진단하나. “총선 때 우리에게 힘을 몰아준 국민의 뜻을 우리가 정확히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고 부끄럽다. 민생과 직결된 분야에서 눈에 띄는 진전이 없다는 점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또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보여 주지 못한 상황에서 성인지 감수성 부족 등 ‘꼰대 정당’이라는 비판도 겹쳤다.” -소수 의견을 배제하는 당내 분위기에 우려가 나온다. “열린우리당 당시 우리가 제대로 헤쳐 나가지 못해 결국 노무현 대통령을 잃었던 상처와 트라우마가 아주 깊다. 정당도 자기 역사에서 배운다. 그 절박함으로 지금 우리는 고비를 하나씩 넘고 있다. 의원 한 분 한 분이 헌법기관으로 존중받아야 하지만 강제적 당론도 정당의 규율로 지켜져야 한다.” -내년 4월 재보선과 2022년 대선을 좌우할 시대정신은. “국민에게 감당할 수 없는 절망감을 안겨 준 양극화를 풀어야 한다. 부동산 정책에서는 특히 불로소득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한 메시지와 함께 내가 살 집을 갖고 싶다는 국민들의 건강한 욕망을 지원해야 한다. 1인·청년·신혼 가구에 대한 과감한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 또 재난이 오면 가장 먼저 위기를 맞는 약자들을 위해 전 국민 고용보험제 등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짜야 한다. 그것을 해내지 못하면 코로나19 재난에서 배운 게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행정수도 완성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국토균형발전과 지방분권 완성을 위해 당연히 가야 할 길이다. 국토가 계속 투기자본들의 먹잇감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행정수도뿐 아니라 김경수 경남지사가 말한 ‘메가시티’ 개념의 자생적 광역경제 거점 3~4개를 만들어야 한다. 야당 지도부도 다시 생각해 주길 바란다.” -개헌 논의의 적절한 시점은. “개헌의 적용 시점을 누구도 정치적 상황을 짐작할 수 없는 시기로 늦추고 논의를 시작하면 좋겠다. 코로나19로 힘든 국민 눈에 개헌 논의가 혹시 한가하게 비칠까 우려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표류할 수는 없다. 개헌은 필요하다. 분권은 물론 30년 동안 달라진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그동안 국가 운영의 틀에서 드러났던 맹점을 고쳐야 한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민주노총 노사정 합의안 결국 폐기… 김명환 위원장 등 지도부 사퇴 수순

    민주노총 노사정 합의안 결국 폐기… 김명환 위원장 등 지도부 사퇴 수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 합의안을 폐기하기로 했다.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의 사회적 합의도 ‘제1 노총’인 민주노총이 빠진 불완전 합의로 남게 됐다. 합의안 부결 시 물러나겠다는 배수진을 쳤던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사퇴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민주노총은 23일 전자투표로 진행된 대의원대회에 재적 대의원 1479명 중 1311명이 참여해 805명(61.73%)이 노사정 합의안에 반대해 합의안이 부결됐다고 밝혔다. 찬성 인원은 499명(38.27%)에 그쳤다. 7명은 무효표를 던졌다. 합의안 부결은 예견된 결과였다. 앞서 지난 20일 대의원 809명이 노사정 합의안 폐기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내는 등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노사정 대화에 참여했지만 이로 인해 정리해고제와 파견제가 도입되는 등 노동자 권익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트라우마가 깊다. 민주노총은 이후 노사정 대화를 거부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018년 11월 새롭게 구성된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2017년 당선된 김 위원장은 노사정 대화 복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강경 투쟁이라는 민주노총의 이미지를 벗고 성숙한 사회적 대화 주체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였다. 코로나19에 따른 노사 위기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였다. 이에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코로나19 ‘원 포인트’ 노사정 대화를 제안했다. 5월 정세균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열렸다. 40여일의 논의를 거쳐 최종 합의안이 마련됐지만 민주노총 내부 강경파의 반대로 협약식이 무산됐다. 반대파는 합의안에 해고 금지가 명시돼 있지 않고 전국민고용보험 가입 대상에 일부 특수고용노동자는 제외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현 민주노총 지도부와 찬성파는 노동시간 유연화 등 경영계의 요구안을 삭제하고 취약계층 보호 등 노동계 입장을 상당 부분 반영했다고 반박했다. 김 위원장은 합의안을 포기할 수 없다며 정파 논리에 덜 좌우되는 대의원대회에서 마지막으로 구성원들의 합의를 얻으려 했지만 끝내 다수의 반대에 부딪혔다. 노사정을 제안하고 주도했으나 내부 갈등으로 합의안을 무산시킨 민주노총은 상당 기간 후유증을 겪을 전망이다. 현 정부 임기 안에 노사정 대화에 다시 참여할 가능성도 낮다.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대화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중심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24일 오후 2시 기자회견을 열고 거취를 밝힐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일 합의안이 최종 부결되면 김경자 수석부위원장, 백석근 사무총장과 함께 즉각 사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민주노총, ‘코로나19 노사정 합의안’ 부결…사회적 대타협 차질(종합)

    민주노총, ‘코로나19 노사정 합의안’ 부결…사회적 대타협 차질(종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안’을 부결시켰다. 이로써 민주노총 집행부는 사실상 불신임 상황에 직면해 사퇴 수순에 들어갔다. 민주노총은 23일 온라인으로 개최한 71차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안이 부결됐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진행한 찬반투표에서 재적 대의원 1479명 가운데 1311명이 투표에 참여, 과반수인 805명이 반대해 합의안이 부결시켰다. 찬성과 무효는 각각 499명, 7명이었다. 노사정 합의안은 정세균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지난 5월 출범한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40여일간의 논의를 거쳐 마련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고용 유지, 기업 살리기, 사회 안전망 확충 등을 위한 노사정의 협력 방안을 담았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화를 가장 먼저 제안했고 노사정 대표자회의에도 참여했다. 노사정 대표자회의는 지난 1일 협약식을 열어 노사정 합의안에 서명하려고 했으나 김 위원장은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일부 지역본부 대표 등의 반대에 막혀 협약식에 불참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직권으로 임시 대의원대회를 소집해 대의원들의 뜻을 묻기로 했다.이날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 합의안이 부결된 것은 사실상 김 위원장에 대한 불신임의 성격을 갖는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10일 노사정 합의안이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될 경우 김경자 수석부위원장, 백석근 사무총장과 함께 즉각 사퇴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사퇴하면 민주노총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돌입할 전망이다. 더불어 차기 지도부 선거 국면으로 전환된다. 2017년 사회적 대화 참여를 공약으로 내걸고 직선으로 당선된 김 위원장은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에 실패한 데 이어 노사정 합의안 추인도 못 얻고 물러나게 됐다. 김 위원장은 24일 오후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거취를 포함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민주노총이 끝내 노사정 합의안을 거부한 것은 사회적 대화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 노사정위원회 합의에 참여했다가 내부 반발로 지도부가 사퇴하는 등 내홍을 겪은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노사정 합의안에 대해서도 반대파는 ‘해고 금지’ 등 노동계 요구가 빠졌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김 위원장을 ‘자본가 하수인’으로 매도하기도 했다. 노사정 합의안에 등을 돌린 민주노총은 당분간 장외 투쟁 중심의 노선을 걸을 전망이다. 극심한 양극화를 포함해 각종 사회 문제를 노사정 대화를 통한 사회적 대타협으로 해결해나간다는 문재인 정부의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민주노총, 노사정 합의안 결국 반대…22년만의 사회적 합의도 무산

    민주노총, 노사정 합의안 결국 반대…22년만의 사회적 합의도 무산

    재적 대의원 1479명 중 1311명 합의안 투표 참여대의원 805명(61.7%) 노사정 합의에 반대외환위기 이후 22년만의 노사정 합의 결국 무산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사퇴 수순 밟을 듯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 합의안을 폐기하기로 했다.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의 사회적 합의도 끝내 무산됐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집행부도 사퇴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민주노총은 23일 전자투표로 진행된 대의원대회에 재적 대의원 1479명 중 1311명이 참여해 805명(61.7%)이 노사정 합의안에 반대했다고 밝혔다. 반대 결과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앞서 지난 20일 대의원 809명이 노사정 합의안 폐기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내는 등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노사정 대화에 참여했지만 이로 인해 정리해고제와 파견제가 도입되는 등 노동자 권익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트라우마가 있다. 이후 노사정 대화를 거부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018년 11월 새롭게 구성된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코로나19에 따른 노사 위기를 극복하려면 경제 주체들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지난 4월 ‘원 포인트’ 노사정 대화를 제안했다. 이에 따라 5월 정세균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열렸다. 40여일의 논의를 거쳐 최종 합의안이 마련됐지만 민주노총 내부 강경파의 반대로 협악식이 무산됐다. 반대파는 합의안에 해고금지가 명시돼 있지 않고 전국민고용보험 가입 대상에 일부 특수고용노동자는 제외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현 민주노총 지도부와 찬성파는 노동시간 유연화 등 경영계의 요구안을 삭제하고 취약계층 보호 등 노동계 입장을 상당 부분 반영했다고 반박했다. 김 위원장은 합의안을 포기할 수 없다며 정파 논리에 덜 좌우되는 대의원대회에서 마지막으로 구성원들의 합의를 얻으려 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노사정을 제안하고 주도했으나 내부 갈등으로 합의안을 무산시킨 민주노총은 상당 기간 후유증을 겪을 전망이다. 사회적 대화 주체로서 신뢰에 상처가 생긴 것은 물론 앞으로 정치권과 경영계, 정부와의 협의에서 협상 주도권을 쥐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합의안 부결 시 사퇴하겠다고 밝힌 김 위원장과 지도부는 이르면 24일 거취를 밝힐 것으로 보인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오세훈·정진석 “행정수도 이전 찬성”에 김종인 “당 공식견해 아냐”

    오세훈·정진석 “행정수도 이전 찬성”에 김종인 “당 공식견해 아냐”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당 원내대표 출신 정진석 의원 등이 행정수도 이전론에 대해 적극 지지 의사를 밝히자 “당의 공식적인 견해가 아니다”라며 선긋기에 나섰다. 김종인 “그 사람들 개인적 이해관계서 얘기” 김 위원장은 이날 정진석·장제원 의원과 오 전 시장 등 행정수도 이전 찬성 발언 관련 “그 사람들의 개인적인 이해관계에서 얘기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거듭되자 “왜 자꾸 물어보느냐”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췄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행정수도 완성론을 꺼내자 “지난번에 헌법재판소 판결문에 의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이미 결정됐다”면서 “이제 와서 헌재 판결을 뒤집을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날 통합당 내부에서는 여권발 행정수도 이전론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끌어들이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어 충청 표심을 등에 업고 승리를 가져갔던 기억은 통합당의 입장에서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오세훈 “행정수도 이전 전향적 검토해야”장진석 “국회 이전, 헌법개정 없이 가능” 이 때문에 당 일각에서는 행정수도 문제를 적극적으로 받아 개헌 문제 등으로 전선을 확장해 논의를 치고 나가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공세적으로 여권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논리다. 대권 잠룡 중 한명인 오 전 시장은 이날 당내 한 공부 모임에서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행정수도 이전 논의 참여를 주장했다. 당내 최다선 의원 중 한 명이자 충남이 지역구인 정진석 의원은 헌법 개정을 전제로 행정수도 이전 공론화에 공개적으로 찬성했다. 정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국회에서 개헌을 포함한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찬성한다”면서 “국회의사당 이전은 헌법개정 없이도 가능하다”며 적극성을 보였다.장제원 “지역균형발전 더 강한 목소리 내야”이종배 “수도권 과밀화 해소” 靑 입장 요구 장제원 의원은 당이 행정수도 완성론을 반대로 일관하지 말고 지역균형 발전 전반에 대한 논의로 확대해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장 의원은 “당이 행정수도 완성론을 왜 반대로 일관하고 일축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서 “지역균형발전 전반에 대한 논의를 오히려 민주당보다 더 강한 목소리를 내며 주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종배 정책위의장은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지역균형 발전 측면에서 필요한 일”이라며 청와대의 공식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中 근대화 치수의 상징 싼샤댐… 부실공사 오명에 붕괴 공포 퍼져

    中 근대화 치수의 상징 싼샤댐… 부실공사 오명에 붕괴 공포 퍼져

    세계 최대 수력발전… 최고 수위 10m 남겨만리장성 후 32조원짜리 최대 토목사업“쓰촨 지진은 저수량 390억t 압박 탓” 주장정부 ‘뒤틀린 댐 사진’ 해명에도 민심 우려 중국 남부 지역에 한 달 넘게 폭우가 쏟아져 창장 유역을 중심으로 인명·재산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430여개 하천이 범람해 140명 넘게 사망했다. 이재민도 4000만명 가까이 생겨났다. 창장 수계 전역이 넘쳐 4150명이 숨지고 2억명 넘는 수재민이 발생한 1998년 대홍수 참사가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특히 창장에 위치한 세계 최대 수력발전소인 싼샤댐의 수위가 한계치에 다다랐다는 뉴스가 연일 타전돼 중국인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지난 19일 오전 현재 싼샤댐의 수위는 164m로 홍수 통제 수위인 145m를 20m 가까이 넘겼다. 최고 수위인 175m도 불과 10m 남겨 둔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곧 싼샤댐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된다. 전 세계 언론들이 갑론을박 중인 ‘싼샤댐의 미스터리’를 살펴봤다. ●양쯔강 치수는 역대 중국 지도자들의 꿈 20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우리에게 ‘양쯔강’으로 잘 알려진 창장은 중국 대륙 중앙부를 관통하는 하천이다. 아마존강(7062㎞)과 나일강(6690㎞)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 아시아에서는 가장 길다.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해 쓰촨성 청두와 충칭, 후베이성 우한 등을 지나 장쑤성 난징, 상하이 등 19개 성시를 두루 거친다. 창장은 아시아 지역에서 다양한 문화적 상징으로 쓰인다. 큰 하천을 뜻하는 ‘강’(江)이라는 일반명사는 원래 창장을 가리키던 고유명사였다. 소설 ‘삼국지연의’ 등에서 볼 수 있는 ‘강남’(江南)이나 ‘강동’(江東) 등도 이 강이 기준인 지명이다. 음력 5월 5일인 단오는 초나라 재상 굴원(기원전 BC 343~277)이 나라를 걱정하다가 창장에 몸을 던진 날을 기리는 행사다. 창장은 거대한 규모 때문에 크고 작은 범람이 끊이지 않는다. 이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은 중국 역대 지도자들의 핵심 과제였다. 쑨원(1866~1925)은 창장을 관리해 홍수를 예방하고 전기를 생산하는 것을 ‘치수’(治水)의 실현이자 조국 근대화의 상징으로 봤다. 1919년 출간한 ‘건국방략’을 통해 이 강에 댐을 짓자고 처음 제안했다. 1932년 중국 국민당 정부 수반이던 장제스(1887~1975)도 쑨원의 주장을 받아들여 댐 건설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했다. 마오쩌둥(1893~1976) 역시 이 사업을 지원했지만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등으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싼샤댐 건설 사업이 구체화된 것은 1980년대 덩샤오핑(1904~1997)이 관심을 두면서부터다. 개혁개방이 시작돼 중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하자 많은 양의 전기가 필요했다. 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는 환경오염 문제로 반발이 많았다. 상대적으로 수력발전소가 정치적인 부담이 적었다. ●세계 최대 규모 때문에 늘 구설 올라 결국 1992년 리펑 당시 국무원 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창장 상류인 후베이성 이창의 협곡을 이어 싼샤댐을 건설하자”고 제안했다. 공산당 내에서도 건설 능력에 대한 회의론과 환경 파괴, 문화재 수몰 등을 두고 논쟁이 거셌다. 표결 결과 대의원 2608명 가운데 3분의1에 가까운 841명이 반대·기권표를 던졌다. 지금까지도 전인대 역사상 찬성률이 가장 낮은 결정으로 남아 있다. 우여곡절 끝에 1994년 12월 착공식을 가졌다. 댐이 최종 완성된 것은 2009년으로 공사를 시작한 지 15년 만이었다. 싼샤댐은 높이 185m, 길이 2.3 ㎞로 세계 최대 규모다. 저수량은 약 390억t으로 우리나라 소양호의 14배다. 발전기 설비용량도 2250만㎾로 일반적인 원자로 출력의 20배가 넘는다. 워낙 거대한 공사였기에 ‘만리장성 이래 최대 토목공사’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이 댐은 건설 계획안이 공론화된 뒤로 붕괴 우려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사고가 나면 초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댐이 무너져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배후지인 이창에서만 50만명이 희생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한과 광저우, 난징, 상하이에도 큰 피해를 줘 4억명 이상의 이재민이 나올 것으로 추산된다. 대도시 주민들은 교통 체증 때문에 피난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중국이 전쟁을 일으키면 적국이 가장 먼저 싼샤댐을 공격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중국 정부는 부인하지만 댐이 가둬 놓은 엄청난 양의 물이 쓰촨성의 지반을 압박해 대규모 지진의 원인이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1975년 반차오댐 붕괴로 수십만명 사망 지난해 7월 싼샤댐이 전반적으로 휘어진 것처럼 보이는 구글 위성사진이 공개돼 중국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중국 매체들은 “위성사진이 보정되지 않아 나타난 단순 해프닝”이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과연 싼샤댐은 붕괴될 가능성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까지 나타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 의혹과 외신 보도는 댐이 부실하다는 주장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되지 못한다. 여러 전문가들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이상 징후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중국 정부도 싼샤댐의 상징성을 감안해 다른 댐보다 더욱 철저히 관리한다. 그럼에도 상당수 중국인들은 싼샤댐이 붕괴될 수 있다고 여긴다. 왜 그럴까. 중국에서는 1975년 8월 태풍 ‘니나’로 동부 허난성의 반차오댐이 허물어져 하루 만에 17만명 넘게 사망한 경험이 있다. 이때 중국인에게는 ‘언제고 댐이 무너질 수 있다’는 트라우마(정신적 충격)가 생겨났다. 중국 토건업계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붕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과 비슷하다. 최근 중국 온라인에서 중국건축과학연구원 황샤오쿤 연구원 명의로 “마지막으로 한 번 말한다. (싼샤댐이 있는) 이창 아래 지역은 달아나라”는 SNS 글이 널리 퍼진 것이 이같은 불안에 기름을 부었다. 중국 언론들이 “해당 글은 내가 쓴 게 아니다”라는 황 연구원의 해명을 전했지만 우려를 말끔히 지우지는 못했다. 중국 언론사들이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는 사실을 주민들도 잘 알기에 이들의 해명 보도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아서다. 싼샤댐이 ‘부실공사와 비리의 온상’이 된 이력도 한몫한다. 이 댐은 공사를 시작할 때 책정한 예산의 두 배 이상인 1800억 위안(약 32조원)이 투입됐다. 요즘 말로 ‘돈 먹는 하마’였다. 대만 등 중화권 매체들은 “싼샤댐 공정에 투자된 공사비 가운데 외국에서 부실 자재를 수입해 사용하는 수법 등으로 6분의1 정도가 빼돌려졌다”고 지적한다. 댐 건설을 제안한 리 전 총리의 측근과 친인척이 조직적으로 관여했다는 의혹은 더이상 비밀도 아니다. 그는 2003년 출간한 ‘싼샤일기’에서 “싼샤댐 프로젝트에 대한 중대한 결정은 모두 장쩌민이 내렸다”고 밝혔다. 책을 집필할 때 중국 최고지도자였던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을 사실상 부실공사 책임자로 지목해 자신에 대한 비리 수사를 원천 차단하려는 ‘물귀신 작전’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댐 준공식에 중국 지도부 불참 2006년 5월 싼샤댐 마무리 공사를 앞두고 열린 준공식에 후진타오 당시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가 불참한 것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이렇게 거대한 토목공사를 마무리하고도 국가 지도자들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당시 서구 매체들은 “그들이 총체적 부실 덩어리였던 싼샤댐 프로젝트를 승인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싶지 않았을 것”으로 분석했다. 수리학자인 황완리(1937~2001) 전 칭화대 교수의 이야기도 자주 오르내린다. 싼샤댐 건설을 반대하다가 중국 정부로부터 배제된 황 교수는 임종 직전까지도 “싼샤댐은 절대 안 된다”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그는 싼샤댐에 대해 12가지를 경고했다. 하류 제방 붕괴와 수질 악화, 이상기후 초래, 지진 빈발, 생태계 악화 등이다. 이 가운에 11가지가 적중하고 하나만 실현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바로 ‘댐 붕괴’다. 이렇게 중국 건설업계의 부실 공사와 비리 의혹, 언론 통제, 중국 지도부의 미온적 태도 등이 맞물려 멀쩡한 댐이 큰 비만 오면 언제라도 무너질 것 같은 ‘위험 구조물’로 각인된 것이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스페인 동물원 최초 ‘희귀 백사자’ 탄생…어미 외면에도 무럭무럭

    스페인 동물원 최초 ‘희귀 백사자’ 탄생…어미 외면에도 무럭무럭

    지난 5월 31일, 스페인 세비야의 동물원 ‘문도파크’에서 새끼 백사자 한 마리가 발견됐다. 동물원 관계자는 지난달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4년 전 태국에서 데려온 백사자 사이에서 새끼가 태어났다. 새끼는 출산 예정일보다 10일 늦게 태어났다"고 밝혔다. 예정일보다 늦을 출산에 새끼 백사자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순간은 아무도 지켜보지 못했다. 그러다 어미 없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새끼를 본 본 사육사들이 서둘러 새끼를 꺼내 돌보기 시작했다.동물원 측은 어미 외면으로 태어나자마자 돌봄을 받지 못한 새끼가 탈수와 저체온증, 저혈당 증세를 보였다고 전했다. 시름시름 앓던 새끼는 동물원 식구들의 보살핌으로 얼마 후 기력을 되찾았다. 또 어미가 출산 트라우마로 새끼를 외면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로 문을 닫았다가 지난달 12일 재개장한 동물원에서 새끼 백사자는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올라섰다. 아직 관광객과 직접 접촉하진 않지만 새끼 사자를 보려는 사람들로 우리 밖은 붐빈다. 15일에는 첫 걸음마도 내디딘 새끼에게 ‘화이트 킹’이라는 이름도 붙여졌다.하지만 아직 어미와 만날 길은 아직 요원하다. 어미 사자도 안정을 되찾았고, 새끼가 준비가 되면 부모 사자와 재회시킬 것이라는 게 동물원 방침이지만 아빠 사자와의 관계가 걱정이다. 사육사는 “어미 사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새끼가 아빠 사자와 경쟁하게 될 것”이라면서 “매우 미묘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백사자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9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팀바티티 지역에서 자주 목격된 백사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털로 뒤덮여 있지만 ‘알비노’는 아니다. 남아프리카 특정 지역에서만 발현되는 유전적 희귀종이다. 눈이 붉은색을 띄는 알비노와 달리 파란색 혹은 녹색인 것에서 그 차이를 확연하게 알 수 있다.현재 전 세계 동물원에 서식하는 백사자는 200여 마리 정도로 매우 희귀하다. 세계백사자보호기금에 따르면 야생에 남은 개체도 2018년 기준 11마리 정도 뿐이다. 1970년대 유럽 열강들이 아프리카에 유입된 후 백사자를 마구잡이로 사냥한 탓이 크다. 백사자보호단체가 나선 덕에 CITES(세계 동물거래 협약)에 의해 보호받고 있지만 규모는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게다가 백사자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의해 일반 사자로 분류돼 있어 보전 인식도 미흡하다. 백사자 보호단체는 “세계자연보전연맹 기준 백사자는 일반 사자와 다를 바 없다. 때문에 다른 사자와 마찬가지로 백사자도 멸종위기 ‘취약(VU : Vulnerable)’ 등급에 올라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아버지가 아우슈비츠 끌려갈 때까지 가족에 몰래 보낸 편지 250통

    아버지가 아우슈비츠 끌려갈 때까지 가족에 몰래 보낸 편지 250통

    아버지는 이탈리아 북동부 트리에스테의 코로네오 교도소를 시작으로 지금 폴란드 땅에 있던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감되는 여정 내내 사랑하는 가족에게 편지를 보냈다. 유대인 장식업자였던 다니엘레 이스라엘(1910년생, 사망 확인 못함)은 세탁을 위해 감옥 밖으로 보내는 죄수복 칼라에 편지를 넣은 뒤 바느질을 해 가족에게 전달하게 했다. 이제 85세가 된 아들 다리오와 한 살 아래 비토리오 형제가 아버지의 편지 250통을 소개했다고 영국 BBC가 11일(현지시간) 전했다. 가슴 먹먹해지는 내용이 조만간 책으로 엮여 나올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이 아닌 종업원들이 세탁물 가운데 그의 죄수복을 골라 아내 안나가 숨어 지내던 곳에 갖다줬다. 안나는 목 칼라와 소매 커프스 등에 숨겨둔 편지를 찾아냈다. 물론 종업원들에겐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비토리오는 가족 모두가 아버지 세탁물을 기다렸다가 어머니가 편지를 읽어주면 빙 둘러 앉아 들은 기억이 생생하다고 털어놓았다. 여덟 살, 아홉 살 무렵의 일이었는데도 기쁨과 걱정,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이 지금도 또렷하다고 덧붙였다. “아버지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편지를 썼을지 모른다. 우리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곤 했다. 그는 우리를 돌보고 싶다고, 우리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모든 편지에 솔직한 마음의 상태를 담았다. 늘 우리 걱정 뿐이었다. 어머니에겐 조심해서 우리가 발각되지 않게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안나는 셔츠를 빤 뒤 답장을 숨겨 바느질하고 종업원들에게 돌려줘 세탁물 바구니에 다니엘레가 부탁한 종이, 잉크, 먹거리 등을 함께 넣어 교도소에 반입하게 했다. 베니토 무솔리니가 세상을 떠난 뒤 나치가 이탈리아를 장악해 1943년 9월 트리에스테의 올드타운에 진주하자마자 위험을 직감한 다니엘레는 안나와 두 아들을 도시 밖 임시 거처로 옮겼다. 조금 있으면 잠잠해지겠지 싶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해 12월 30일 그는 트리에스테 근처 비아 기울리아에 있던 직장에서 장모와 함께 나치에 검거됐다. 당시 안나와 두 아들은 트리에스테에 있는 안나 형부 브루노의 목재소로 거처를 옮긴 상태였다. 수도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창도 없어 빛이라곤 천장을 통해 잠깐 들어오는 것 밖에 없는 방 하나에 숨어 지냈다. 화장실도 없었다. 브루노는 미군의 폭격에 집이 무너져내린 크로아티아 폴라(지금의 풀라) 피난민이라고 이웃들에게 둘러댔다.나치 친위대(SS) 간부가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들과 연락하는지 묻는다고 아버지는 편지에 적었다. 그런데 그 역시 가족들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다. 고문을 당한다고도 했다. 고문을 당한 날에라도 편지를 쓰면 견뎌낼 힘을 얻는다고 했다. 안나에게 절대로 발각되면 안된다며 잘 보관하라고 당부했다. 그렇게 안나는 다니엘레의 편지 250통을 온전하게 보관할 수 있었다. 물론 안나의 답장은 한 통도 남아 있지 않다. 늘 편지에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라도 내면 안된다고 했고, 사방에 첩자가 있으니 누구도 믿어선 안된다고 당부했다. 비토리오는 “운이 좋았는지 하느님의 뜻인지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은 들통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 형제가 이따금 “유대인 돼지들”이란 욕을 들었다며 울먹이며 귀가하던 일을 떠올리며 그 역시 아들들을 지켜주지 못해 화가 단단히 났었다며 아들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이 평생 후회된다고 적었다. 8월 20일 보낸 편지에 그는 200리라를 넣은 뒤 두 아들 생일에 선물을 사서 전해달라고 안나에게 당부했다. 연합군이 트리에스테를 공습했던 1944년 24시간 동안 실종된 일이 있어 다리오는 트라우마 때문에 그 해의 일이 통째로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면회 간 일이었다. 정식 면회가 아니었다. 뒷마당에 선 모자가 감방 안 아버지를 올려다볼 수 있게 어머니가 꾸민 일 같았다. 아버지는 손을 흔들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도 같은 감옥에 있었지만 아버지 밖에 보지 못했다. 다니엘레는 다음 편지에다 “비토리오도 데려와 주오”라고 적었다.다니엘레는 코로네오에 8개월 수감됐다. 연합군은 이듬해 봄 몬테 카시노, 6월 로마, 8월 피렌체로 북진했고, 다니엘레는 교도소에서 신문을 보는지 전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아들들은 그나마 아버지가 커튼, 의자, 매트리스, 심지어 법정의 가죽의자 등을 만들 정도로 비범한 손재주가 있어 뒤늦게 아우슈비츠로 이감된 것으로 믿고 있다. 독일인과 교도소 간수들이 집의 매트리스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한번은 독일인 집에 불려가 일하다 화장실 창문을 열고 달아나려 했으나 가슴이 콩닥거려 교도소로 돌아왔다고 편지에 적었다. 그보다 늦게 코로네오에 도착한 죄수들이 먼저 떠나기 시작하자 다니엘레는 의아해 했다. 처음에는 어디론가 일하러 가는가 보다 생각했는데 돌아오지 않았다. 깊게 생각하니 그들이 죽으러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니엘레와 장인장모가 아우슈비츠로 가는 열차에 오른 것은 1944년 9월 2일이었다. 놀랍게도 다니엘레는 계속 편지를 썼다. 열차 안에서 일하는 직공과 안면이 있어 그를 통해 안나에게 전하게 했다. 그리고 아우슈비츠가 보이는 지점에서 적은 편지를 마지막으로 보냈다. ‘멀리 연기가 보이오. 여기 연기가 엄청나게 피어오르오. 여기가 지옥이오.’ 형제들은 외조부모가 아우슈비츠에서 스러진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니엘레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종전 뒤에 소식을 들었는데 누군가 수용소가 해방된 지 2주 동안 살아 있는 것을 봤다는 목격담이었다. 안나는 사방으로 찾아 헤맸다. 적십자사에도 문의했고, 러시아로 끌려가 목숨만이라도 부지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니면 기억상실증에 걸려 집에 못 돌아온다고 생각했다. 형제들은 아우슈비츠가 아니면 유대인들을 더 서쪽, 독일 쪽으로 이감시키던 죽음의 행진 와중에 숨졌을 것이라고 짐작했다.종전 후 가족은 비아 기울리아의 집으로 돌아와 1949년까지 지냈다. 안나는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남편이 편지에 적은 대로 팔레스타인으로 건너갔다. 1939년에 팔레스타인으로 이민 갈까 하다가 안나 부모의 반대에 막혀 포기했던 일이 이런 비극을 가져왔다고 남편은 자책했던 것이었다. 안나가 12년 전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뒤에야 텔아비브 아파트를 정리하던 형제들의 눈에 아버지 편지 뭉치가 띄었다. 어머니나 형제들이나 편지 얘기를 꺼내는 일조차 생채기를 헤집는 것 같아 하지 않았다. 아우슈비츠의 연기 운운한 마지막 편지는 잃어버렸지만 형제는 종이의 질, 자구 하나하나를 뚜렷이 기억해 전했다. 편지들은 가족의 일로만 치부될 뻔했지만 2017년 그리스의 코르푸 섬에 뿌리를 둔 유대인의 존재를 규명하려던 마이헤리티지 연구진에게 우연히 알려졌다. 엘리자베스 제틀런드는 편지들을 본 순간 “진짜 보물이었다. 이런 걸 다시는 못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떤 때는 매일 한 통씩 보내기도 했다. 몇날 며칠을 영어로 옮기며서 마치 다니엘레와 함께 한방에 있는 느낌을 가질 정도였다고 했다. 편지 원본은 예루살렘에 있는 야드 야솀 세계 홀로코스트 기억센터에 보관돼 있다. 묘지조차 남기지 못한 남자가 가족들에 남긴 유언인 셈이다. ‘착하고 진정한 형제가 되고, 늘 서로 사랑하거라. 너희를 사랑하고 진짜 좋은 사람인 어머니와 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그 방법 뿐이다.’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아 비토리오는 목공, 다리오는 가구와 피아노 수리 일로 살아왔다. 둘은 아들 네 형제를 둬 13명의 증손주를 봤다. 형제는 비아 기울리아에 정착하려고 올해 귀향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류호정, “당신이 외롭지 않기를…죽음은 슬프지만 조문 않겠다”

    류호정, “당신이 외롭지 않기를…죽음은 슬프지만 조문 않겠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10일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시청 직원을 위로하며 박 시장의 조문을 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고인의 명복을 비는 사람들의 애도 메시지를 보고 읽었다. 고인께서 얼마나 훌륭히 살아오셨는지 다시금 확인한다”면서 “그러나 저는 ‘당신’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존경하는 사람의 위계에 저항하지 못하고 희롱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당신이, 치료와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는 정신과 상담을 받고서야 비로소 고소를 결심할 수 있었던 당신이, 벌써부터 시작된 ‘2차 가해’와 ‘신상털이’에 가슴팍 꾹꾹 눌러야 겨우 막힌 숨을 쉴 수 있을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영화 ‘굿 윌 헌팅’의 대사를 인용하며 해당 직원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 (It’s not your fault)”라고도 전했다. 또한 “어제 오늘의 충격에서, ‘나의 경험’을 떠올릴 ‘당신들’의 트라우마도 걱정이다”라며 “우리 공동체가 수많은 당신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류 의원은 “저는 조문하지 않을 생각”이라면서 “그러나 모든 죽음은 애석하고, 슬픕니다. 유가족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적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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