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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30] 이런 직장동료, 정말 꼴불견

    [20&30] 이런 직장동료, 정말 꼴불견

    직장인들은 삶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낸다. 마음이 맞지 않는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러나 함께 힘을 합쳐도 모자랄, 같은 연배의 동료에게서도 큰 ‘상처´를 받기 일쑤다. 혈기 왕성한 20∼30대 직장인을 힘들게 하는 동료는 누구일까. 헛소문을 퍼뜨리는 동료, 귀찮은 일을 떠넘기는 동료, 자기만 잘난 동료, 남녀를 차별하는 동료, 겉과 속이 다른 동료…. 얄궂은 동료 때문에 열받은 직장인들의 ‘뒷담화´를 들어봤다. 이모(27·여)씨는 늘 남의 말을 이상하게 소문내고 다니는 직장동료 K씨만 보면 이가 갈린다.K씨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일을 자기 마음대로 각색해 여기저기 소문을 낸다. 얼마 전엔 이씨도 K씨의 ‘소설´에 톡톡히 당했다. 나이 차가 여덟 살이나 나는 데다 애가 세 살인 유부남 직상 상사와 사귄다는 소문이 나 홍역을 치렀기 때문이다. 직장 동료들이 한동안 자신을 쌀쌀맞게 대하기에 알아봤더니 K씨가 “둘이 서로 불륜 관계더라. 둘의 데이트 장면을 봤다.”는 뜬소문을 냈다는 게 파악됐다.“너무 놀라서 K씨에게 따졌더니 미안한 기색도 없이 ‘아님 말고.´식의 태도더군요. 결국 소문을 들은 유부남 상사가 K씨를 불러 공개적으로 꾸지람을 주고서야 착각이라고 인정하더라고요.” 홍보대행사에서 근무하는 김모(30·여)씨는 툭하면 눈물을 뚝뚝 흘려대는 여성 동료 A씨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상사 지시를 잘못 헤아려 단체로 야단맞는 자리에서 A씨만 유독 ‘눈물의 힘´으로 위기를 모면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자 상사 앞에선 가만 있다가, 남자 상사 앞에서만 ‘울음 전법´을 쓰는 점도 눈에 확 드러난다.“그렇게 울면 다른 동료들에게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던 상사도 곧 수그러들고 오히려 달래기까지 해요. 여자 상사에게는 울었다간 혼만 더 날 거라는 걸 아니까 그 앞에선 울지 않죠.” ●뜬구름 잡는 소문 퍼뜨리는 ‘소설가´가 미워요. 지난해 공기업에 입사한 신모(29·여)씨는 일이 바쁠 때마다 상사에게 몸이 아프다고 말하는 입사 동기 강모(28·여)씨만 보면 눈을 자연스레 흘기게 된다. 강씨는 특히 야근해야 할 때면 구토 증상이 있다면서 의자에서 못 일어나는 시늉을 한다. 하지만 좋은 곳으로 떠나는 해외출장이나 야유회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건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벼르고 있던 신씨는 지난달 미국 출장 얘기가 나오자 일부러 부원들 앞에서 강씨에게 “넌 몸도 약한데 미국 출장을 못 가지 않겠니.”라고 물었다. 하지만 강씨는 “아무리 아파도 회사 일인데 최선을 다해서 해내야지.”라고 뻔뻔스레 말했다. 이런 강씨의 업무 스타일 때문에 부서 잡일은 거의 신씨에게 돌아온다.“아직은 참고 있지만 언제 폭발할지 몰라요. 몇 번이고 지적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신입사원이라 위에서 동기애도 없냐는 평을 들을까봐 그냥 혼자 삭이고 있습니다.” 직장인 남모(30)씨는 귀찮은 일이 생길 때마다 요리조리 피해가는 동료 Y씨를 볼 때마다 인상을 찌푸린다.Y씨는 희생이 필요한 회사 행사는 무조건 피해간다. 핑계도 흘러 넘친다. 늦게까지 팀원 모두 야근을 해야 할 때면 ‘어머님이 아프시다.´,‘머리가 아프다.´,‘집안에 제사가 있다.´는 등 갖가지 이유를 댄다. 때문에 직장에서 Y씨는 ‘미꾸라지´로 불린다.“누군들 일찍 퇴근하고 싶지 않겠어요. 모두 다 핑계대며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죠. 하지만 남 생각 안 하고 매번 그런 행동을 하는 Y씨를 볼 때마다 울화통이 터진다니까요.” 무역회사에 다니는 한모(32)씨는 술자리만 되면 술을 못 마시는 동료 B씨가 증오스럽다. 바이어들과 술자리가 많은 직종이지만 B씨는 이미 술을 거의 못 마신다고 회사에 공언한 상태라 늘 대충 버티다 일찍 집으로 간다. 때문에 업무상 술자리는 거의 한씨의 몫이 됐다. 결국 한씨는 속된 말로 ‘죽을 때까지´ 술을 마셔야 한다. 아침이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은 마냥 울렁거리지만 B씨는 멀쩡하게 업무에만 매진한다. 더욱 화가 난 건 B씨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B씨와 함께 아는 대학 동창이 있는데 대학 땐 두주불사로 술을 마셔댔다는 거예요. 게다가 혼자 다른 부서로 옮기겠다고 공부까지 하고 있단 얘기를 들으니 안 그래도 울렁거리는 속이 확 뒤집어질 거 같습니다.” ●남녀 동료 차별대우하는 사람 눈꼴시어요. 한 물류회사에 다니는 정모(31)씨는 남자와 여자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로 다른 여자 동료 C씨만 보면 늘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C씨는 여자 동료들과는 별로 얘기도 하지 않고 사무적으로만 대한다. 때문에 여자 사원들은 C씨를 따돌림하지만 C씨는 그마저 별로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남자 동료들과 있을 땐 태도가 달라진다. 애교도 부리고 툭툭 건드리며 스킨십을 하기도 하고 슬쩍 일을 떠넘기면서 친한 척하기도 한다. 게다가 후배를 가르칠 때도 여자 후배에겐 사사건건 트집을 잡지만 남자 후배에겐 상냥한 천사가 돼 이것저것 자세하게 일을 가르쳐준다. “사람이니까 개인 감정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할 순 없을 거고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건 자연스럽지만 그 친구는 심하게 말하면 ‘그저 남자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구나.´란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회사원 임모(29·여)씨도 자기 손익과 위치에 따라 사람을 전혀 다른 태도로 대하는 한 동료만 보면 고개가 돌아간다. 그 동료는 함께 일하다가도 옆에 있는 동료가 자신의 일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서면 대놓고 무시하며 태도가 달라진다. 하지만 자신의 일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사람이 나타나면 보기가 역겨울 정도로 치근덕거린다.“일도 결국 사람이 함께 하는 거잖아요.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이해득실로만 대하는 계산적인 사람은 회사에서 함께 일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사사건건 잘난 척 좀 하지 마시죠. 직장인 최모(25·여)씨는 늘 자기 행동에 대해 지적하며 “네가 아직 사회생활을 덜해봐서 그런가 본데….”라고 무시하는 ‘무개념´ D씨를 볼 때마다 숨고 싶어진다. 나이도 별 차이 없고 직장 경험도 얼마 차이 나지 않으면서 말끝마다 ‘사회생활´ 운운하며 잘난 척하기 때문이다.“D씨가 제 행동을 지적할 때마다 전 개가 멍멍 짖는 모습을 연상해요. 자기 자신의 행동은 어떤지 모르면서 남을 가르치려 드는데 사실 짜증도 나지만 얼마나 할 일이 없었으면 저럴까 싶어 그냥 무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원 박모(29)씨도 늘 자기만 일한다고 생각하는 직장동료 E씨를 보면 혀만 찬다. 최근 팀원 모두 고생하며 결과물을 낸 프로젝트에 대해 E씨는 자기가 가장 핵심적인 일을 했다며 다른 팀원들을 무능력자 취급했다. 사실 E씨의 업무능력을 칭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한 거래처 술자리에서 자신이 망쳐놓은 일에 대해 혼자 일처리를 다했다며 떠벌리는 데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결국 E씨는 회사에서 ‘잘난척 대마왕´,‘왕따 미스터E´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고 말았다.“E씨만큼 얼굴이 두꺼운 사람은 처음입니다. 그 근거 없고도 끝이 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궁금해요.” 교육 관련 기업에 다니는 유모(40)씨도 혼자 튀며 잘난 척하는 동료가 밉상이다. 최근 상사가 유씨 등 동료 4명에게 동종업계 시장현황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각자 담당 기업을 배분한 뒤 조사에 착수했다. 일주일가량 야근하며 고생했다. 그런데 상사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 한 동료가 불쑥 일어나 자신이 혼자 다 한 것처럼 말했다. 다른 동료의 노력까지 가로챈 것이다. 그 사람은 평소 동료들 사이에서 ‘뒤통수의 달인´으로 통한다. 동료들과 있을 때는 회사나 상사의 잘못된 점을 집중 성토하며 자신이 나서서 바로잡겠다고까지 공언한다. 하지만 정작 윗사람 앞에서는 꿀먹은 벙어리다.‘회비어천가´(회사 칭송)에까지 이르는 데는 할 말이 없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동료의 공까지 가로채고,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이익이 주어지는 일은 나몰라라 합니다. 그 친구를 보면 ‘저렇게까지 하며 살아야 하나.´란 회의감이 들 정도예요.” ●상사 앞에서만 열심히 하는 당신, 조심하세요! 의류업계에 종사하는 최모(29·여)씨는 상사가 있을 때만 일을 잘하는 척하는 동료가 어이없다. 동료 이모(30·여)씨는 평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손님이 와도 모르는 척하고 테이블 정리와 사무실 청소 같은 일은 할 생각조차 않는다. 하지만 윗사람만 있으면 솔선수범형으로 돌변한다. 사무실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웃으며 차를 내오거나 테이블을 깔끔하게 치우는 등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 출근시간도 가관이다. 최씨의 회사는 업무상 상사의 출장이 잦다. 이씨는 상사가 출장으로 자리를 비우는 날이면 느지막하게 회사에 나오고, 상사가 출근하는 날이면 아침 일찍 나와 분주하게 움직인다. 때문에 상사는 곧잘 최씨와 다른 동료들에게 이씨를 본받으라고 훈계까지 한다. “윗사람은 그 동료의 실체를 몰라요. 가끔 상사에게 말하고 싶지만 ‘질투 나서 그러느냐. 칭찬받으려면 너도 열심히 하라.´고 할까봐 말도 꺼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답니다.” 한 방송국 PD 이모(34·여)씨는 업무 협력을 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 얄밉다고 말했다. 이씨는 음향, 카메라, 소품 등 많은 파트를 조화시키는 일을 맡고 있다. 하지만 그 중 한 파트라도 신경을 덜 쓰면 전체적인 조화가 깨져 방송을 망치고 만다. 하지만 일부는 “대충해도 월급은 나온다.”는 식으로 일을 해 이씨를 분통터지게 한다. “둔감한 척하면서 슬쩍 손을 놓는 사람이 최악이죠. 결국 그런 사람도 설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좋은 말로 충고도 하지만 자존심만 세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요. 제 속만 새까맣게 타들어갑니다.” 사건팀 nomad@seoul.co.kr
  • 큰어머니의 손

    큰어머니는 자식을 낳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 어머니는 꽃다운 나이에 무슨 상처로 아버지의 작은댁으로 오게 되었던 것일까. 그렇게 우리 육 남매는 태어나보니 어머니가 두 분이었다. 내 어머니는 큰언니 진학을 위해 중학교가 있는 마을로 나가 보따리 장사를 시작했다. 올망졸망 어린 것들은 아버지와 큰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산더미 같은 빨래를 하고 나면 큰어머니는 뻑뻑한 무릎을 펴지 못하셨다. 겨울에 시린 손끝은 언제나 빨갰고, 봄엔 가뭄에 논 갈라지듯 툭툭 다 터져 있었다. 그럴 때마다 손가락 마디마디 감겨 있던 흰 반창고. 끝없는 농사일과 집안일, 어린것들 뒤치다꺼리에 손은 더 두껍고 딱딱해졌고, 거스러미가 일지 않은 데가 없었다. 큰어머니는 알갱이를 다 따낸 옥수수 속대처럼 깔끄러운 손으로 우리 등을 자주 긁어주셨다. 거친 손은 아랑곳않고 우리는 그저 시원해서 좋았다. 운동회 때다. 큰어머니는 쪽진 머리에 무슨 일이 있을 때면 한복을 입으셨다. 점심도 김밥 대신 깻잎 장아찌나 도라지 무침, 고사리 같은 걸 싸오셨다. 그게 싫어서 엉뚱한 핑계로 내가 심통을 부리면 달래느라 쩔쩔매셨다. 큰어머니의 품은 어미 새처럼 따뜻하기만 했건만 그땐 그걸 몰랐다. 한시도 손을 못 놓고 사시더니 57세에 뇌졸중으로 말이 어눌해지셨다. 잠시 일어나시는 듯했지만 병이 재발해 겨우 화장실 출입만 하시다 67세에 돌아가셨다. 우리들은 회한에 오열했지만, 아버지는 화난 사람처럼 잔뜩 인상만 쓰고 계셨다. 가까스로 눈물을 참고 계셨던 거다. 목욕을 시킬 때면 마지막으로 한 대 철석 때리는 것으로 마무리하시던 손, 겨울 새벽녘 구들장 온기가 식을세라 아궁이 가득 불을 지피고 들어와 목까지 이불을 덮어주시던 손, 봉숭아물을 들여주시던 늦여름 삭은 나무 등걸 같은 그 손이 너무 그립다. 그리고 홀로 억장 무너져 내렸을 그분의 삶에 가슴이 저민다. 다시 뵐 수만 있다면 이젠 내가 등을 긁어드리고 싶은데…. 그러나 마흔의 큰어머니 손처럼 시원하게 긁으려면 아마 수년은 더 찢기고 금 가야 할 것이다. 원채남 _ 엄마로, 아내로만 살아오다 불혹이 넘은 나이에 중랑 문학대학에서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글을 쓰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고 합니다. 딸아이를 재우고 늦은 밤 책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았지](53) 신입 조련사의 돌고래쇼 도전기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았지](53) 신입 조련사의 돌고래쇼 도전기

    “하늘 같은 고참이죠. 가끔 우리가 조련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니까요.” 서울대공원 동물원 해양관 돌고래쇼장에서 지난 1일 첫 데뷔무대를 가진 새내기 돌고래 조련사 서완범(28)·박성빈(27)씨의 소감이다. 경력을 따지면 ‘조련’이란 말이 무색하다. 공연경력만 10년차인 금등이(15·♂)부터 5년차 막내인 쾌돌이(11·♂)까지 4마리 베테랑 돌고래들이 초보 조련사와 함께 했기 때문이다. 가끔 호흡이 맞지 않아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춤추기부터 뒤로 걷기, 스핀점프, 장대넘기 그리고 고난도 연기인 보딩(돌고래 등 타기)까지 첫무대는 성공적이었다. ●울렁증에 시달리는 초보 이번달부터 서씨와 박씨는 하루 두차례 선배 조련사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사람 사는데 쉬운 일이 있겠냐마는 돌고래 조련사가 되는 과정도 험난하다. 두 사람 모두 동물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각각 서울대공원과 에버랜드 동물원에서 실습생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저 동물이 좋아 분뇨수거, 우리 청소, 동물 목욕시키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고 일했고 그런 경력이 인정받아 지난해 3월 공채를 통해 돌고래 조련사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정식 입사했다. 주위에선 “고생 끝, 행복 시작이 아니냐.”고 하지만, 두 사람은 “고생길은 지금부터”라고 입을 모은다. ●신참은 돌고래도 무시해요 조련사는 동물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요건이다. 말없이도 서로 원하는 것을 알아 차리려면 친해지는 것이 첫 번째다. ‘시간을 함께 하는 것 외엔 왕도가 없다.’는 충고에 출근부터 퇴근까지 꼬박 10시간 이상을 돌고래 뒤를 따라다니며 뒤치다꺼리를 했다. 하지만, 돌고래들의 맘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6,7세 어린이에 맞먹는 지능을 갖춘 돌고래들은 잘 놀다가도 심사가 뒤틀리면 갑자기 물속으로 줄행랑을 치기 일쑤였다. 고참 조련사들에겐 살을 비벼대며 친한 척을 하지만 신입이 오면 귀신 같이 알고 안면몰수를 했다. 어렵사리 지난해 11월부턴 본격적인 공연연습에 들어갔지만 물속으로 사정없이 끌고 다니는 통에 두 사람 모두 수족관 물로 배를 채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렇게 익힌 기술은 17가지 정도. 돌고래들에겐 새로울 것 없는 기술이니 사실 기술을 익힌 쪽은 사람이다. 다행히 돌고래들의 마음도 조금씩 기울어왔다. 막내 쾌돌이는 먼저 툭툭 건드리며 시비를 걸기도 한다. 박씨는 “아직 배우는 단계지만 몇 년 후엔 노련한 조련사로 거듭나 있을 것”이라면서 “그때쯤이면 4마리 모두 우리에게 살갑게 다가올 것”이라고 미소지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20&30]사내 왕따·은따들의 이야기

    [20&30]사내 왕따·은따들의 이야기

    ■그들이 ‘왕따’일 수 밖에 없는 이유 ●왕따 자처한 ‘처세의 달인´들 한 시중은행에 다니는 정모(29·여)씨는 40대 중반의 영업팀장만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직장 동료들은 그를 ‘왕미남´이라고 부른다.‘왕에 미친 남자´의 줄임말이다. 골프장에서 상사가 그날따라 골프공이 잘 맞지 않자 “그게 다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라고 했다는 팀장의 일화는 전설이다. 횡단보도에서 상사와 차 사이에 서서 손으로 막으면서 행여나 상사가 다칠까봐 신경쓰는 모습이 부하들의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다.“결국 그 영업팀장은 우리에겐 수치스러운 존재로 낙인 찍혀 스스로 왕따가 됐습니다.”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박모(30)씨의 소속 부장도 비슷한 케이스로 왕따가 됐다. 박씨의 부장은 ‘처세의 달인´으로 통한다. 윗선에서 입김을 불면 마치 태풍이 분 듯 행동한다. 부하 직원들의 얘기보단 윗선의 성향에 따라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서 더 유리할지부터 머리를 굴려 판단하고 행동하는 바람에 부하 직원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른다. 때문에 부하 직원들은 부장과의 식사 자리는 웬만하면 피한다.“점심 시간이 되면 사내 메신저로 대충 약속을 정한 뒤 마치 각자 약속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흩어지죠. 부장도 그걸 알까 모르겠네요.” 김모(29·여)씨가 다니는 한 외국계 회사의 만년 40대 과장은 정반대의 이유로 왕따가 됐다. 그는 외국계 회사 근무의 필수인 영어 능력이 모자란다. 게다가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필수적인 친화력과 유머도 없다. 때문에 직원들은 과장과 밥도 먹으려 하지 않고 근무와 관련된 보고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슬픈 건 그 과장 역시 그 사실을 안다는 것.“한 번은 ‘나도 왕따 당하고 능력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아이들 등록금 때문에 회사 끈질기게 다녀야 한다.´고 하더군요. 동정심이 일었는데 막상 또 같이 있으면 짜증이 샘솟아요.” 회사원 류모(27·여)씨는 한 살 많은 여선배가 ‘은따(은근히 따돌림)´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그 선배는 상사들에게는 예의 바르고 늘 상냥해 능력에 걸맞지 않은 큰 일을 따내는 유형이다. 하지만 능력이 모자라다 보니 위에서 압박을 받은 만큼 아래로 토해낸다.“후배들을 압박한 뒤 기대대로 못해 오면 온갖 히스테리를 부리고 후배의 후배가 있는 자리에서도 짜증을 내곤 해서 다들 몸서리를 쳤죠. 결국 저희 동기 10여명이 모두 선배를 메신저에서 삭제했고 선배의 전화가 와도 다 통화 상태가 좋지 않은 척하며 전화를 잘 받지 않아요.” ●종교에 심취해 회사업무 나몰라라 공기업에 다니는 윤모(31)씨의 부서 차장은 종교 때문에 왕따를 당한 경우다. 한 소수 종교에 심취한 차장은 가끔 지하 복도에서 이유없이 어슬렁거리고 혼자 중얼거리며 논다. 다른 사람을 쳐다보는 눈빛이 이상해 어떤 동료들은 “변태 같다.”며 피하기도 한다. 게다가 사내 행사를 준비하면서도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려 하지 않아 완전히 눈 밖에 났다. 업무 능력도 뛰어나지 않다 보니 결국 차장의 자리는 자연스레 ‘섬´이 됐다.“다들 다른 부서로 갔으면 하고 바라는데, 다른 부서에서도 서로 받지 않겠다고 해요. 그냥 어쩔 수 없이 왕따시키는 거죠.” 대기업에 다니는 이모(30)씨 회사의 한 과장은 학력과 경력 콤플렉스 때문에 결국 왕따로 발목 잡힌 경우다. 유명대 출신이 즐비한 대기업에서 과장은 예체능 계열 대학을 나왔다는 점에서 일단 소외됐다. 게다가 회사에서 추진하던 신규 사업이 애매모호하게 사라지고 그 사업을 위해 채용됐던 사람들이 고용승계되면서 한 자리를 겨우 차지하게 됐다. 회의를 해도 업무 파악이 느린 점이 학력 탓이 됐다. 대리급 직원들이 깔보고 대들기도 했고 시킨 일을 태업하면서 상사에게 야단맞게 만들기까지 했다.“과장은 상사에게 야단맞으면서도 그저 ‘예, 예.´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더라고요.” 다른 공기업에 다니는 박모(29)씨 부서의 전 과장도 왕따를 당하다 지난해 초 결국 지방으로 인사이동 조치됐다. 그는 업무 능력도 뛰어나고 머리도 좋으며 동료들의 기념일이나 행사도 잘 챙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늘 미묘한 분위기에서 눈치 없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는 바람에 결국 눈 밖에 났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의 어깨를 툭툭 치고 다니며 친한 척하는 바람에 좋지 않은 소문이 났고, 일찍 결혼한 상사를 두곤 “사고 쳐서 일찍 했대.”라며 민감한 소문을 스스로 퍼뜨리고 다니기도 했다. 결국 직원들의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게 됐고 윗선에도 보고가 되는 바람에 전출 조치를 당하고 말았다. ●여성들의 잔인한 복수, 은따 여성들이 많은 간호사들 사이에서도 왕따가 있다. 간호사 박모(27·여)씨가 다니는 대학병원은 살벌하다. 잘난 척하는 동료 간호사 한 명을 철저하게 왕따시켰다. 그 간호사는 늘 누구를 달래는 듯한 말투로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때문에 어떤 동료는 “다른 사람에겐 몰라도 나한텐 말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대놓고 시비를 걸었다. 모두가 그 간호사에게 등돌리고 서서 “저리 가라.”고 떠밀어도 그 간호사는 “저한테 관심 있어서 그런 거죠.”라며 투정을 부려 도리어 화를 돋우고 만다. 결국 지역 병원으로 이동하게 됐지만 조만간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에 모두 몸서리를 치고 있다.“응급의학과에서 초동 처리를 할 때 빠른 속도가 필요한데 그 간호사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해서 뭐라고 하면 오히려 어른이 아이를 달래는 듯 대꾸하는 거예요. 일을 못하면 선배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라도 하든지, 원.” 외국인 직원이기 때문에 왕따당한 경우도 있었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김모(27·여)씨는 동료들과 함께 중국인 신입사원 주모(29)씨를 따돌림시켰다. 한국말이 서툰 주씨는 입사하자마자 선배들에게 반말을 하며 상사처럼 ‘명령 하달´을 해 “싸가지가 없다.”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정서도 맞지 않는 데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 회사 생활을 견디지 못한 주씨는 결국 6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 하지만 주씨는 ‘보복´을 잊지 않았다.“회사를 그만두면서 사장에게 그동안 괴롭혔던 사람들과 회사에 대한 불만을 낱낱이 폭로하고 나가 한동안 회사 사람들이 곤욕을 치렀죠.” ●“내가 설마 왕따일 줄은…” 직장인 김모(26)씨는 왕따가 될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오랜 준비 끝에 원하던 회사에 입사한 지 1년째. 그토록 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무조건 열심히 했다. 상사 말에는 절대 복종하고, 시키지 않는 야근도 자청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일까, 상사는 그런 그를 예쁘게 봐주지 않았다. 입사 동기와 자신을 비교하며 “일을 그렇게밖에 못하나.”라고 핀잔주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김씨는 상사가 입사 동기를 편애하는 것이려니 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안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퇴근을 하려는데 상사가 뒤에다 대고 “OO씨는 술 잘 안 마시지. 그럼 우리끼리 회식간다.”고 선언했던 것. 상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료들은 가방을 메고 사무실을 떠나기 시작했다. 결국 김씨는 자신만 빼고 부서 사람들이 회식을 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제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성격이 밝고 싹싹해서 어디서나 예쁨을 받았거든요.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이재훈 황비웅기자 nomad@seoul.co.kr ■“잘 어울리지 못해서 따돌림 당한적 있다” 직장인 10명 가운데 3명은 사내에서 왕따를 당해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최근 20∼30대 직장인 953명에게 ‘직장에서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응답자의 30.7%가 ‘있다.’고 답했다. 왕따를 당한 이유로는 23.5%가 ‘잘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라서’를 꼽았다. 다음으로 ‘이유를 모르겠다.’(14.0%),‘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편이라서’(12.3%),‘업무상 실수를 많이 해서’(10.2%),‘이상한 소문이 퍼져서’(9.9%) 순이었다. 왕따를 당한 방법(복수응답)으로는 ‘대화 거부’가 45.7%로 가장 많았다. 이어 ‘업무 비협조’(37.9%),‘인사·말 등 무시’(31.1%),‘모욕적인 언행’(21.5%),‘허위소문 유포’(20.8%),‘혼자 식사’(19.8%) 등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왕따를 당할까. 왕따를 당하는 직원의 유형을 묻는 질문(복수응답)에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32.2%로 가장 많았다. 그 밖에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사람’(31.9%),‘독단적인 사람’(31.6%),‘잘난 척하는 사람’ (26.1%),‘책임회피를 잘하는 사람’ (25.0%) 등이 있었다. ‘왕따를 당한 뒤 어떤 점이 달라졌나.’(복수응답)라는 물음에는 41.6%가 ‘인간관계에 신경을 쓰게 됐다.’고 답했다. 또 35.5%가 ‘애사심이 떨어졌다.’,32.8%가 ‘소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라고 답했으며,‘우울증을 겪었다.’고 답한 사람도 32.4%나 됐다. ‘왕따를 당한 뒤 어떻게 대응했나.’라는 질문에 43.4%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22.2%는 ‘고치려고 노력했다.’고 답한 반면 13%는 ‘회사를 그만뒀다.’고 했고 ‘그 자리에서 반발했다.’고 답한 비율은 4.1%에 그쳤다. 이재훈 황비웅기자 nomad@seoul.co.kr
  • [S돋보기] ‘아니면 말고’ 비디오판독 안된다

    ‘아니면 말고식’ 비디오판독 요청에는 불이익을 주는 것은 어떨까. 한국배구연맹(KOVO)은 이번 겨울리그 ‘비디오 판독제도’를 본격 도입했다. 선진기법을 통해 판정시비를 없애고 좀더 정확한 결과를 내겠다는 ‘대의명분’이었다. 게다가 지난달 26일에는 올시즌 경기당 1회를 남녀 플레이오프전부터는 2회로 늘리기로 했다. 판독제 도입 결과 지난 시즌처럼 판정 결과에 항의하느라 10∼15분씩 선수와 감독이 코트를 어지럽히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은 확연히 없어졌다. 판정 시비도 비교적 줄어들었다. 하지만 비디오판독은 출발부터가 ‘절반쯤’ 부족했다. 자체장비 도입은 엄두도 내기 힘든 상황에서 TV중계방송사의 카메라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중계방송이 없는 경기는 비디오 판독 요청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여기다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비디오판독 요청으로 인해 오히려 심판 판정에 대한 불신이 심화됐다는 지적도 있다. 판정을 둘러싼 시비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 이런 지적을 뒷받침한다.선수와 팬들이 한창 몰두하는 시점에서 판독을 요청, 경기의 맥을 툭툭 끊어놓는다는 불만도 나온다.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달 14일까지 집계된 비디오판독 요청 신청률은 39.5%였지만 이 중 판정이 번복된 것은 불과 39.1%였다.판독 불가 사례 13.8%를 제외하면 절반 가까이가 애초 맞는 판정이었다. 심판과의 기싸움, 또는 경기 흐름을 의도적으로 끊기 위해 ‘아니면 말고식’ 비디오판독 요청도 있었다는 의미다. KOVO 김건태 심판부장은 “심판은 신이 아니기에 실수할 수 있지만 외국과 비교해도 우리 심판들의 수준이 뒤처지지 않는다.”면서도 “전임심판 확대 등 심판에 대한 처우개선과 지속적인 교육·훈련을 통해 수준을 한층 끌어올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옹벽 곳곳 기어오르려던 ‘최후의 흔적’

    옹벽 곳곳 기어오르려던 ‘최후의 흔적’

    8일 경기 이천시 ‘코리아 2000’ 냉동물류창고 지하 1층. 전날 40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간 화재 현장 입구에 들어서자 어둡고 메케한 공기가 코를 찌른다. 둥둥 떠다니는 그을음이 시야를 가렸다. 천장에선 열기에 녹은 전선이 툭툭 떨어진다. 동쪽 입구에서 30m 정도 들어서니 LP가스통이 나뒹굴고 있다. 옆에는 용접에 쓰인 듯한 화염분출기가 있다. 트럭은 열풍에 씻긴 듯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벽에 처박힌 지게차… 폭발 강도 대변 50m를 더 들어가니 최초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기계실이 나온다. 여기서 시너 유증기(기름 안개)가 폭발하며 숨을 거둔 25명의 시신이 수습됐다. 필사적인 몸부림의 흔적을 찾으려 했으나 바닥과 벽면에 그을음이 켜켜이 싸여 찾을 수 없었다. 천장 작업을 위한 지게차가 벽에 처박혀 있어 폭발의 강도를 말해 준다. 서울소방재난본부 특수구조대 김재근 화생방팀장은 “순식간에 쾅 터지면서 이어진 열풍이 대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기계실 안쪽에 들어서자 시너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 온다. 시너통으로 쓰인 듯한 가연성 에나멜통이 뒹굴고 있는 바닥 옆에도 가스통과 화염분출기가 놓여 있어 이 곳이 발화지점임을 짐작케 한다. 드럼통이 열기 탓에 곧 터질 것같이 팽창돼 있다. 전기 중앙제어실로 들어가니 뒤에 옹벽이 가로막혀 있다. 열기에 휘어져 나온 샌드위치 패널(얇은 철판 사이에 우레탄 등을 넣은 패널)과 옹벽 사이에 50㎝ 정도 공간이 있다. 사체 4구가 2∼3m 간격으로 벽을 기어 오르려다 지친 듯한 모습으로 발견된 곳이다. 소방대원들이 유류품 하나라도 더 건지려 샅샅이 뒤지지만 인근에서 타다 만 275㎜짜리 작업용 K2 안전화 밑창만 나온다. 옆에는 이젠 소용없게 된, 검게 그을린 소화기만 나뒹굴고 있다. 서울소방재난본부 특수구조대 박광일 소방장은 “폭발 지점과 거리가 있는 곳에서 작업하던 인부들이 어떻게든 공기가 새어 나가는 옹벽 쪽으로 붙어 탈출하려다 숨이 끊어진 것으로 보인다.”면서 “14년 동안 온갖 사고현장을 다녀봤는데 1994년 서울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 때처럼 당시의 충격이 엄청났던 것 같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축구장 2개크기 지하에 출입구 단 1개뿐 현장에선 뼛조각 등 사망자 신체의 일부가 수습됐다. 타다만 주민등록증 1점과 열쇠 2점, 혁대 버클 1점, 휴대전화 3점, 작업에 쓰인 줄자 1점도 나왔다. 구조기동팀 김종산 주임은 “컨테이너로 지어진 숙소가 불에 타 25명의 목숨을 앗아간 99년 씨랜드청소년수련원 화재사건 현장이 떠오른다.”면서 “창고가 축구장 2개 크기만큼 넓은 데 비해 출입구는 한 군데밖에 없고 비상구나 대피통로가 마련되지 않아 화를 자초한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천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희곡당선작] 별방/이양구

    [서울신문 신춘문예-희곡당선작] 별방/이양구

    등장인물 남자, 여자, 아들, 모(母), 부(父) 배경 단풍이 절정에 이른 가을, 오후, 외딴 산 속, 폐가, 마당 한가운데 튀어나온 바위 하나, 지붕과 마당·헛간에 낙엽 1 남자가 마당으로 들어온다. 고요히 폐가를 바라본다. 천천히 걸어가서 봉당에 앉는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여자와 아들이 들어온다. 여자 : 아이구 다리야… 이 먼 데를 오자고…. 남자 : …. 아들 : 평소에 운동 좀 하세요. 많이 걸어야 건강하대잖아요. 요샌 웰빙이라고 다들 일부러도 많이 걸어요.(다리를 주물러 주며) 미국에서도 저녁만 되면 파크에 조깅하러 나온 사람들 많아요. 세상이 아무리 살기 좋아지면 뭐해요, 내 몸이 건강해야지. 여자 : 우리 아들 미국 갔다 오더니 유식해졌네. 그래도 건강하자고 이 산골을 오니? 남자 : …. 아들 : 좋은데요… 아버진 여기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니신 거예요? 남자 : …. 여자 : 그 놈의 별방, 별방, 술만 먹으면 말 안 하디? 아들 : 별방… 아버지 회사 이름… 이 동네 이름에서 따오신 거예요? 남자 : …. 여자 : 뭐 좋은 기억이라고… 이 산 구석에서 살았던 기억을 잊고 싶지 않대나 뭐래나. 저래 뵈두 니 아버지가 감상적인 데가 있다. 아들 : 자기 뿌리를 잊지 않는 건 좋은 거죠. 전 미국에 가 있으니까 도리어 조국에 대해서 생각하게 돼요. 나를 있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요. 엄마는 어린 시절이 그립지 않으세요? 여자 :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이 뭐 그리울 게 있어. 그런 건 빨리 잊어버려야지. 먹고 살기도 바쁜데. 쓸 데 없는 생각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아들 : …아버지. 별방이 무슨 뜻이에요? 남자 : …. 아들 : 별… 방… 떨어져 있다는 뜻인가? 어쨌든 느낌이 좋아요. 왠지 별이 내려와 쉴 것 같은… 아랫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단풍 한 장 줍는다) …아버지. 아까부터 왜 그렇게 말이 없으세요? 무슨 걱정이라도…. 남자 : …조금 피곤해서. 여자 : 그렇게 한 번 와 보자더니. 와 봐야 뭐 있어. 그냥 폐가지. 근처에서 놀다 가자니까. 기어이 끌고 와서는… 다리만 아프지.…어머니도 어떻게 이런 데서 사셨을까…. 아들 : 할머니 할아버지 살아 계셨으면 같이 오고 좋았을 텐데…. 남자 : …. 여자, 뒤란으로 간다. 여자 : (소리) 웬 우물이래… 어머 대추 좀 봐. 아들, 뒤란으로 들어갔다 나온다. 손에는 대추 몇 알. 아들 : 이것 좀 드세요. 달아요. 남자 : …. 남자, 먹는다. 아들 : 달죠? 남자 : 그래…. 아들 : 어렸을 땐 많이 드셨겠네요. 남자 : 가을마다…. 여자, 나온다. 가방을 뒤진다. 아들 : 뭐 찾으세요? 여자 : …. 아들 : …놔두세요. 다람쥐들 먹게. 여자 : 두면 뭐해, 어차피 썩을 거. 아들 : 엄마…. 여자 : 시장 가서 사려고 해 봐. 얼마어친데. 여자, 두리번거리더니 막대기도 찾아서 뒤란으로 간다. 아들 : 엄마… 짐승 먹게 둬요…. 아들, 뒤란까지 갔다가 돌아온다. 남자 :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휴가 왔습니다. 아들이 미국 유학 갔다가 잠시 귀국해서요. 가족끼리 단풍 구경 왔습니다. 예… 우리가 고비 한 두 번 넘겼나요… 곧 결제하겠습니다. 아들 : 누구…? 남자 : 거래처. 결제해 달라고. 아들 : …요새 건설 경기 많이 안 좋다던데. 남자 : 밥걱정은 안한다. 아들 : …중견 건설회사 몇 개 무너졌다고. 남자 : 아버진 아직 괜찮아…. 아들 : …. 아들, 바위로. 바위를 발로 툭툭 찬다. 아들 : 마당 한가운데 바위라니… 흉물스럽게. 이거 왜 안 뽑았어요? 남자 : 생각보다 뿌리가 깊어. 아들 : 뽑아 봤어요? 남자 : 할아버지가. 너무 깊어서 다시 덮었대. 아들 : 어디… (뽑으려고 한다. 바위는 끄떡없다) 정말이네. 남자 : …. 아들, 바위에 걸터앉는다. 침묵 아들, 뭔가를 발견했다. 헛간 쪽으로 걸어간다. 동화책을 줍는다. 아들 : (툭툭 턴다) 동화책이에요… 전래동화.(넘겨본다) 아버지 건데요….5의 1 박상철…. 남자, 다가온다. 아들 : 기억나요? 남자 : …. 아들 : …. 남자 : …할아버지가 사다 주신 거야. 아들 : …. 남자 : …. 남자 봉당에 앉는다. 아들도 옆에 앉는다. 아들, 책을 읽는다. 뒤란에서 대추 터는 소리. 아들 : …밑줄이 있어요. 남자 : …. 아들 : (읽는다) 바위를 들추자 눈앞이 훤히 트이며 별세계가 펼쳐졌다… (뒤진다) 여기도 있어요. 눈을 떠보니 어느새 별세계에 와 있었다… 별세계… 별방… 별세계란 뜻이에요? 남자, 동화책을 받아서 넘겨본다. 아들, 바위로. 아들 : 어디, 다시 한 번. 힘을 준다. 꿈쩍 않는다. 남자가 온다. 아들 : 해보시게요? 남자, 바위로. 남자가 힘을 주려고 할 때 여자의 비명. 여자가 뛰어온다. 아들, 여자에게. 아들 : 왜요? 여자 : 쥐…. 아들 : 난 또…. 남자 : …. 여자 : 흰쥐였어…. 남자 : …. 아들 : 흰쥐가 이런 데? 남자 : …. 여자 : 여보. 남자 : …. 여자 : 뭐 해요? 아들 : 그게… 동화책. 여자 : 동화책? 아들 : 아버지가 어렸을 때 읽은 동화책에… 바위를 들추면… 남자가 바위를 힘껏 들춘다.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백색의 햇살. 차차 빛이 사라지며 시간과 공간이 응고된다. 남자 : (소리) 밤마다 꿈을 꿨어. 자고 있으면 누가 날 자꾸 깨워. 일어나 보면 흰쥐가 한 마리 서 있어.…따라가 보면 하얀 길이야. 사위는 캄캄한데 멀리서 불빛이 한 점 보여… 어릴 때 학교 갔다 늦게 올 때면 엄마가 처마 밑에 달아놓고 나를 기다리던 불빛 같아… 엄마가 있나 싶어 걸어가면 자꾸만 내가 녹아내려서… 더 걸을 수가 없었어… 내 가슴 한 복판에 얼음처럼 꽁꽁 얼어 있던 것이 자꾸만 녹아내려서…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어… 눈을 뜨면 나는 이 바위 앞에 와 있었어… 여기서 누가 날 부르는 것 같아서 오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어…. 남자, 쓰러진다. 암전 2 밤 같은 장소 남자가 바위 앞에 쓰러져 있다. 흰 옷을 입은 모가 방에서 나온다. 모 : …누구? 남자 : …. 모, 다가온다. 모 : …누구세요? 모, 깨운다. 남자, 정신을 차린다. 모 : …괜찮으세요? 남자 : 여보…? 모 : …. 남자 : 승우는…. 모 : …. 남자 : …우리 아들 못 보셨나요?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모 : 누구… 같이 오셨어요? 남자 : 예… 아들하고 아내하고…. 다들 어디 갔나요? 모 : 못 봤어요. 소리가 나서 나와 보니까… 이렇게…. 남자 : 소리가 나서…. 모 : 예… 큰 소리가 났어요…. 남자, 주위를 둘러본다. 남자 : 그럼… 여기 계셨단 말인가요? 모 : 예… 우리 집이니까…. 남자 : 우리집… 그럼 아직도 사람이… 분명히 폐가였는데…. 모 : 폐가였어요. 그런데 바깥양반이…. 남자, 주변을 돌며 찾는다. 남자 : (큰소리로) 여보… 승우야…. 모, 화급히 남자에게 다가가서 모 : 애기가… 남자 : …. 모 : 애기가 깨요…. 남자 : …. 모 : 방에 애기가 있어요. 남자, 방문을 열어본다. 남자 : …방금까지 여긴 아무도 없었는데…. 모 : (근심) 애기가… 남자 : 예…. 남자, 집밖으로. 돌아와서 뒤란으로 갔다가 다시 마당으로. 손에 대추 한 알. 대추알을 씹어본다. 남자 : 그대로야…. 남자, 돌로 간다. 뽑으려고 한다. 안 된다. 남자 : 이걸 들었는데… 이걸…. 다시 힘을 준다. 모 : 안 뽑혀요. 바깥양반도 뽑으려고 했다가… 뿌리가 너무 깊어서…. 남자 : …뿌리가 너무 깊어서…. 남자, 모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모 : …왜? 남자,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듯 헛간으로. 뒤란으로. 다시 돌아온다. 다시 한 번 모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봉당에 가서 쓰러지듯 앉는다. 남자, 고개를 숙인 채 긴 침묵. 모, 부엌으로 가서 냉수 한 그릇 떠 온다. 모 : 이거…. 남자, 모를 빤히 바라본다. 냉수를 받아서 마신다. 한동안 말이 없다. 남자 : 이 물 맛… 기억나요. 어떻게 잊겠어요…. 모 : …. 남자 : …흰쥐를 따라서 왔었어요…. 모 : …. 남자 : 밤마다… 여길 왔어요…. 모 : …. 남자 : 꿈을 꿨죠…. 모 : …. 남자 : 어쩌면 이것도 꿈일지도 모르죠…. 모 : …. 남자 : …믿지 못하시겠지만… 전 아주 먼 데서 왔어요…. 모 : 먼 곳… 어디? 남자 : …아주 먼 데요…. 모 : …. 남자, 모에게 그릇을 준다. 모 그릇을 가지고 부엌으로. 남자, 마당을 거닌다. 모가 나온다. 남자 : 아버지는… 아니, 바깥 분은요? 모 : …아직 산에요…. 남자 : 그러시겠죠… 오늘도 찬합에 술빵을 넣어서 가셨나요? 모 : 그걸 어떻게? 남자 : 달이 중천은 지나야 돌아오시겠죠…. 모 : …. 남자 : …당신은 상철일 재워놓고 처마밑에 앉아서 기다리셨을 테고…. 모 : 어떻게 우리 애 이름을? 남자 : …. 모 : …누구세요? 남자 : 절 보세요. 모 : …. 남자 : 자세히 보세요. 누굴 닮았는지…. 모, 남자에게 가까이.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본다. 모 : (떨림) 닮았어요… 아버님? 남자 : …그런가요? …아버지도 할아버지를 닮았을 테니까…. 모 : …. 남자 : …. 모 : 그렇지만 아버님은 돌아가셨어요… 형제도 없으시고…. 남자 : …. 모 : 누구세요? 남자, 마당을 걷는다. 남자 : …저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요. 이게 꿈이 아니라면… 아니, 꿈이라 해도… 당신이 지금 내 눈앞에 있고… 당신이 꾸는 꿈이든 내가 꾸는 꿈이든…. 모 : …. 남자 : …간절히 바랐어요. 꿈이어도 좋으니까… 꼭 한 번 어머니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요…. 남자, 모를 본다. 남자 : 늙으신 어머니 대신, 이렇게 젊은… 우리 어머니를 만나다니…. 모 : …. 남자 : …어릴 적 아버지가 사다 주신 동화책 속에나 나오는 얘기가… 애기 적 나를 키우는 어머니를 만나다니…. 남자, 바위로. 돌을 들추려고 한다.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남자, 다시 힘을 준다. 모, 남자에게 다가온다. 모 : …그러니까, 당신이 내 아들이란 말인가요? 남자 : …어머니께서 오십 년 넘게,…십년 전에 돌아가셨으니까… 사십 년 넘게 키운 아들이… (다시 돌에 힘을 준다) …이걸 들추고…. 남자, 안간힘을 쓰다가 넘어진다. 모 : …. 남자 : …. 모, 남자를 본다. 침묵 모 : …밤마다 같은 꿈을 꿨어요…. 남자 : …. 모 : …놀라서 잠을 깨면… 포대기에 싸둔 애기가 사라지고 없었어요… 문밖에서 애기 울음소리가 났어요…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애기가 먼 길 다녀온 사람처럼 지친 어깨로 서 있었어요….…얼굴이 늙어 있었어요…. 남자 : …. 모 : 늙은 애기가… 밤마다 찾아와서… 잘못했다고, 잘못했다고… 빌었어요…. 말도 못하는 우리 상철이가…. 남자 : …. 모 : …어떻게 이런 일이…. 침묵 모 : …그게 사실인가요? 남자 : …. 모 : …상철이가 빌었어요… 용서해 달라고…. 남자 : …. 모 : …돈이 필요했다고.…아니면 식구들 데리고 자기가 죽었을 거라고…. 남자 : …. 모 : …우리 상철이가…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끔찍한 짓을… 모, 손으로 입을 막는다. 모, 남자 옆에 쓰러지듯 앉는다. 침묵 모 : …애들은 몇이나 돼요? 남자 : …. 모 : …몇이나 돼요? 남자 : 하나…. 모 : …공부는 잘 해요? 남자 : …. 모 : …건강하고? 남자 : …. 침묵 모, 남자 쪽으로. 모 : …손 한 번만 잡아 봐도 돼요? 남자 : …. 모, 천천히 손을 내밀어 조심스럽게 손을 잡는다. 모 : …이상해요.…정말 내 아들인 것 같아요…. 모, 남자의 손을 더 따뜻하게 쓰다듬어 준다. 천천히 머리로, 어깨로. 남자, 벌떡 일어선다. 헛간으로. 도끼를 찾아서 쥔다. 남자, 방으로 뛴다. 모 : 안 돼! 남자, 문 앞에서 멈춘다. 모 : …그 애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살겠어요…. 그 애를 죽이는 건 나를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남자 : …. 모 : (손을 내민다) …어서. 남자 : …. 모 : 이리…. 침묵 모 : 어서…. 남자, 도끼를 떨어뜨린다. 모, 남자에게 다가온다. 도끼를 들고 밖으로. 남자, 힘없이 주저앉는다. 모, 빈손으로 돌아온다. 침묵 모 : …진지는? 남자 : …. 모 : …들어가세요. 남자 : …. 모 : …시장하실 텐데…. 남자 : …. 모 : 어서…. 모, 부엌으로. 주루막을 둘러멘 부(父) 들어온다. 남자와 부, 마주본다. 모, 나온다. 세 사람, 그 자리에. 암전 3 방안 호롱불 켜져 있고 세 사람 밥상에 둘러앉아 있다. 한쪽에는 포대기에 덮여 잠든 애기. 부 : …잡수세요…. 남자 : …말씀을…. 부 : …. 모 : …. 남자 : 말씀을 낮추셔야…. 부 : 그래도 어떻게…. 남자 : …. 모, 젓가락으로 더덕을 집어서 남자에게. 모 : …이것 좀…. 남자 : 이 귀한 걸…. 남자, 더덕을 집어서 모에게. 다시 한 젓가락 집어서 부에게. 모 : …. 남자 : …내다 파시지…. 부 : 또 캐면 되니까…. 부, 한 젓가락 집어서 남자에게. 남자 : …돌아가면 매일 먹을 텐데…. 남자, 한 젓가락 집어서 모에게. 모 : …. 남자 : …이보다 더 좋은 것도 매일 먹으니까…. 모 : …. 남자 : …고기도 매일…. 모 : …. 모, 남자에게 한 젓가락. 남자 : …. 부 : 귀한 손님인데…. 모 : 어서…. 남자, 망설이다가 한 입 떠 넣는다. 남자 : …두 분도…. 부 : …. 모 : …. 남자 : 두 분이 드셔야 저도…. 부모 : …. 부모 각자 한 숟가락씩 뜬다. 모, 숟가락을 놓는다. 남자 :…. 모 : 입맛이…. 침묵 남자, 수저를 놓는다. 부, 밥상을 옆으로 치운다. 침묵 남자, 지갑을 꺼낸다. 지폐를 꺼낸다. 부모, 손사래. 남자 : 전… 돌아가면 또 있으니까…. 남자, 다시 건넨다. 실랑이. 부, 돈을 받는다. 돈을 들여다보다 방바닥에 내려놓는다. 남자 : …. 모, 남편 가까이 와서 돈을 내려다본다. 모 : …. 부 : …. 남자, 돈을 다시 지갑 속으로. 침묵 남자 : …정말 그리 가면 돌아갈 수 있을까요? 부 : …가보기는 해야지요…. 모 : 옛날에도 그 굴로 들어간 사람이 있었다고…. 남자 : …. 부 : …온 뜻이 있으면 가는 뜻도 있을 테니…. 모 : …. 부, 일어선다. 부 : …한시라도 빨리…. 남자, 엉거주춤 일어선다. 모, 따라서 일어선다. 부 : 당신은…. 모, 애기 옆으로. 남자 : …어머니…. 남자, 절한다. 모, 어정쩡한 자세로 맞절. 남자, 일어선다. 남자 : 그럼…. 모 : …저기. 남자 : …. 모, 보따리를 내민다. 모 : 이걸…. 남자 : …. 모 : …승우를 만나면…. 남자 : …. 모, 남자의 손을 잡아준다. 모 : …다 잊고… 남자 : …. 모 : …우린 괜찮으니까…. 남자 : …. 모 : …승우를 생각해서…. 부와 남자 밖으로. 모, 마당으로 나와 둘이 사라진 쪽을 본다. 암전 4 같은 장소 황혼 여자와 아들 마당에. 남자, 집밖에서 들어온다. 보따리를 들었다. 여자 : 여보…. 아들 : 아버지. 남자 : …. 여자 : 어떻게 된 거예요? 남자 : …. 여자 : …당신 얼굴이… 머리에 웬 흰머리가? 남자 : …. 여자 : 그건 웬 보따리예요? 남자 : …. 여자, 보따리를 푼다. 더덕, 약초 등. 여자 : …이게 얼마어치야? 남자 : …. 여자 : 어떻게 된 거예요? 남자 : …어머니가…. 여자 : …. 남자 : 나… 당신한테 할 말이…. 아들 : …. 여자 : …. 남자 : …십년 전… 어머니 아버지 그 사고…. 여자 : 여보. 아들 : …. 남자 : 사실은…. 여자 : 여보! 아들 : …. 침묵 여자 : …너는 먼저 내려가. 아들 : …. 여자 : 어서. 아들 : 아버지. 하실 말씀이…. 여자 : 내려가라고. 아들 : …. 여자 : 아버지랑 내려갈 테니까. 아들, 밖으로. 남자 : …못 믿겠지만…. 여자 : 지나간 일이에요. 남자 : …. 여자 : 잊어요. 남자 : 당신…? 침묵 여자 :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어요…. 남자 : …. 여자 : 그렇게라도 살아야 했으니까…. 남자 : …. 여자 : 우리 여길 떠나요. 남자 : …. 여자 : …승우가 있잖아요. 남자 : …. 여자 : 먼저 내려가 있을 게요. 남자 : …. 여자, 보따리를 챙겨서 밖으로. 남자 그 자리에. 남자, 마당 한 가운데 튀어나온, 바위를 본다. 막
  • “마음 주고 몸도 주고…돌아버렸네”

    “마음 주고 몸도 주고…돌아버렸네”

    『사랑주고 마음주고 님은 멀어져 갔네. 마음주고 몸도주고 님은 멀어져 갔네…』싸움을 하다말고 곧잘 유행가가락에 맞춰 이상한 노래를 부르던 50대의 여인이 같이 살던 남편이 가출하자 20살이나 손아래인 그의 배다른 아들을 육체의 노예로 사로잡아 5년동안 뜨거운 관계를 맺어오다 며느리에게 들켜 쇠고랑을 찼다. 20세 연상(年上)의 불붙은 정열…감쪽같이 “오 내사랑” 5년 그는 젊은아들을「섹스」의 노예로 만들어 한껏 즐기다가 아들이 결혼하자 새로 들어온 며느리까지 학대하며 아들의 국부를 잡고 황혼질투전(?)을 벌이기도 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지난 15일 서울용산경찰서에 간통혐의로 구속된 전금례(全錦禮)여인(53·가명·서울용산구 용산동)과 그의 배다른 아들 김순성(金純星)씨(31·가명·회사원). 이들이 눈이 맞고 정이 들어 육체가 불덩어리로 변한 것은 5년전 일. 9년전 전여인을 세째번 부인으로 맞게된 김씨의 아버지 김노인(64)은 4년동안 함께 살다가 세상이 싫다며 어느 이름모를 절간으로 들어갔다. 주인없는 집에는 전여인과 그의 배다른 아들이 남게됐다.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명문대학의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김씨는 모회사에 취직했다. 64년 4월하순께.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취해 집에 돌아온 김씨는 여느때처럼 전여인과 한방에서 잤다. 새벽녘이었을까? 술이 깨기 시작한 김씨는 이상한 체온을 느꼈다. 전여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로 김씨의 그곳을 매만지고 있었다. 김씨는 조용히『왜 이러십니까?』하고 떠밀었다. 김여인은 대답대신 가쁜 숨을 몰아쉬며 김씨의 뭄뚱이를 터질듯이 껴안는 것이었다. 그 순간 김씨도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날부터 두사람의 관계는 한남자와 여자로 불륜의 정부 사이가 됐다. 전여인은 직장에서 돌아오는 김씨에게 깍듯한 대접을 했다. 나이는 비록 20살 위이지만 전여인의 정열은 대단했다. 하룻밤에도 몇번씩이나 김씨에게 뜨거운 육체를 식혀달라고 요구했다. “나혼자만 팽개쳐 두기냐”…침실 덮치고 망칙한 행패 김씨는 50대여인의 몸뚱이를 식혀주기에 힘이 벅찼다. 그러나 불륜의 관계는 5년동안 이웃에 들키지 않고 탈없이 계속됐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비록 배다른 사이지만 어엿한 모자관계로 행세해온 이들에게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김씨가 지난해 11월 25일 모여대를 졸업한 강칠숙(姜七淑)여인(24·가명)을 아내로 맞아들이면서부터. 결혼은 했으나 따로 방을 얻을 돈이 없었던 김씨는 계모와 함께 한집에서 살았다. 전여인은 벽하나를 사이에 둔 오른쪽 방을, 김씨는 왼쪽방을 썼다. 전여인은 아내를 새로 맞이한 아들이 자꾸만 멀어져가자 질투의 불길을 태웠다. 눈치를 챈 김씨도 전여인의 질투가 폭발할까봐 몹시 조심하며 아내몰래 드나들며 몸으로 시중(?)들기를 잊지않았다. 그러나 50대여인의 질투는 드디어 폭발했다. 지난해 12월 14일 밤이었다. 전여인이 술에 취해 아내와 함께 자고 있는 방에「팬티」만 입고 뛰어들어 며느리 강여인이 신혼여행때 입던 잠옷으로 갈아입고 김씨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왜 나를 두고 너희들끼리 먼저 왔느냐』며 한바탕 고함을 치던 전여인은 그래도 분을 가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김씨에게 달라붙어 김씨의 국부를 붙잡으며『너를 꽁꽁 말려서 죽이고 말겠다』고 막무가내였다. 이들 세식구는 이날낮 김씨친구의 초대를 받고 나들이를 갔다고 전여인만 남겨놓고 부부가 먼저 돌아왔던 것. 엉겁결에 이 광경을 목격한 김씨의 아내 강여인은 깜짝 놀랐다.(아무리 모자간이지만 성장한 아들의 그 부분을 붙잡고 앙탈을 하다니…) 노래속에 비밀이? 방문 연 새댁은 봤다 강여인은 세상에 흔히 있는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질투려니하고 넘겨버렸다. 그러나 남편의 행동은 날이갈수록 수상쩍기만 했다. 남편은 집에 돌아와 초저녁에는 자기와 자리를 같이하고 새벽녘이면 잠옷차림으로 시어머니방에 들어가 잠자고 아침에 돌아오곤 했다. 그래도 모자간의 정이려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강여인이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은 김씨 가 외국에 가는 수속을 한 구청에서 교부받아다 놓은 호적등본을 우연히 본뒤부터였다. 지금까지 자기에게 친어머니라고 해왔던 전여인이 남편의 계모인 사실을 알게됐다. 이와 더불어 남편이 잠자리를 비우는 습관은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됐다. 한편 전여인은 남편이 잠자고 나온날 아침이면 발을 씻는다며 세숫대야에 물을 떠오라고 했다. 또 강여인이 시어머니의 이부자리를 치우러 들어가면 이불과 방바닥에는 남자의 음모가 떨어져 있을 때도 있었다. 의심은 더욱 짙어만 갔다. 남편 전씨는 강여인과 잠자리를 함께 하다가도 옆방에서 전여인이 벽을 툭툭치며 어디가 아프다고 소리치면 곧장 옆방으로 들어가 자고왔다. 그러다가다도 두사람은 싸움을 하기가 일쑤였다. 아들과 대판 싸움을 벌이다가도 전여인은「히트·송」 에 가락을 맞춰 노래하며 빈정됐다. 『사랑주고 마음주고 님은 멀어져 갔네 마음주고 몸도주고 님은 멀어져갔네…』 노래속에 전여인의 비밀의 숨겨져있는 것 같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강여인이 못볼 것을 보고야마는 비극의 날은 오고야 말았다. 지난 2월 20일 새벽 2시쯤, 여느때처럼 밤중에 잠자리에서 빠져나가는 남편의 뒤를 강여인은 숨죽여 밟았다. 강여인이 방문을 열었으나 서로 엉킨 두몸뚱이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였다. 강여인의 가슴은 내려앉고 폭발하는 분노를 누를길없어 자기방으로 되돌아 오고말았다. 차마하니 있을 수 없는일, 못볼것을 보고야만 며느리 강여인은 그저 눈물만이 어이없이 얼굴을 적셨다. 며느리의 고발로 경찰신세를 지게된 전여인은 8·15때 남동생과 월남, 서울시내 모요정에서 접대부를 하며 착실히 돈을 모았다. 전여인이 김씨의 아버지 김노인과 재혼한 것은 9년전일. 주벽이 심한 김노인은 두번째로 아내를 여의고 세번째로 전여인을 맞았으나 4년동안 함께 살다가 훌쩍 집을 나가버린 것. 아마도 미치광이처럼 육정으로 기승을 떨어 견디다 못해 홀연히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를 일…. 불륜의 육정은 끝내 백일하에 드러나고 법의 판가름을 받게 되었지만 그 이전에 악몽을 깨칠만한 한가닥 양식이나마 없었던게 더욱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안태석(安泰錫)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4월 25일호 제4권 16호 통권 제 133호]
  • [베이징올림픽의 해 밝았다] 개최국 中 준비상황 태릉선수촌의 숨은 일꾼들

    [베이징올림픽의 해 밝았다] 개최국 中 준비상황 태릉선수촌의 숨은 일꾼들

    태릉선수촌에 입촌하는 국가대표선수들은 국내외 대회나 전지훈련 참가 등으로 들쭉날쭉하지만 하루 평균 350∼400명선. 이들이 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150명을 넘나드는 직원들이 선수들과 함께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나보다 더 힘들게 일하는 이들이 많은데….”라고 손사래를 치는 선수촌의 대표 일꾼들을 만나봤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혀끝으로 金메달 식단 완성 “식사예절 바른 선수들이 금메달도 따요.” 1984년 2월 태릉선수촌에 조리원으로 입사해 23년을 한결같이 대표선수들의 먹거리를 챙기는 데 헌신하면서 터득한 일종의 금메달 감식법이란다.98년부터 검식관이란 일반인에게 다소 낯선 직함으로 일하고 있는 신승철(47)씨. 청와대와 함께 공식 직함으로는 선수촌밖에 없다고 소개한 신씨는 대표선수들에게 배식하기 전 맛을 보는 것은 물론, 선수식당의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는 총감독 역할이다. “84년 LA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하형주·김진호 선수가 조리원 아주머니들 덕분에 금메달을 땄다며 당시에는 귀했던 14인치 컬러TV를 갖고 왔던 게 가장 기억에 남네요.” 반면 이런 선수도 있다. 배식시간에 아랑곳 않고 새벽운동했다며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치거나 배식 집게를 조리원 보는 앞에서 툭툭 던지는 선수도 있다. “그런 선수들 보면 대개 성적도 좋지 않아요. 반면 조리원들에게 고맙다고 인사 잘하고 예절 지키는 선수들일수록 성적도 좋지요.” 현재 대표선수들의 식단은 아침 5000원, 점심 1만 1000원, 저녁 8500원, 간식 1500원. 감독이나 코치들은 “집에서도 못 먹는 호사를 누린다.”고 감격하지만 일부 젊은 선수들은 “물린다. 성의가 없다.”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다. 그러나 그들 역시 해외 나갔다 돌아오면 어김없이 “선수촌 음식이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신 검식관은 1명의 영양사와 7명의 조리사,18명의 조리원과 함께 많을 때는 400명이나 되는 입촌 선수들의 건강을 책임진다. 신씨에게 안타까운 것은 종목별로나 세대별로나 선수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한달에 한번 급식평가를 하는데 젊은 선수들은 피자, 스파게티 등 퓨전음식을 바라고 영양탕 등 이른바 보신식품을 해달라고 매달리는 경우도 있어요.” 신승철 검식관 ●태극낭자 생활돕는 ‘선수촌 엄마’ “아이고, 그동안 얼마나 불편했는지 몰라요.” 지난달 21일 문화재청 산하 문화재위원회가 태릉선수촌 여자숙소의 리모델링 계획을 승인했다는 소식을 전하자마자 여자숙소장 서문옥(48)씨는 탄성부터 질러댔다.“남자숙소 4층에 더부살이하는 선수가 있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편하게(?) 돌아다니는 남자선수와 마주쳐 당황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또 여자숙소 목욕탕은 반지하 형식으로 창문이 외부에 노출돼 이만저만 신경 쓰였던 게 아니었다. 서씨가 선수촌에 몸 담은 것은 15년 전. 식당 등 여러 부서에서 일하다 여자숙소를 책임진 지 4년 반이 됐다.‘금남의 집’ 침구 정리하고 전구 갈아끼우고 화장실과 실내외를 청소하는 등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많을 때는 200명이 넘는 여자선수들이 일상생활에서 조금이라도 불편한 점이 없도록 거드는 ‘엄마’ 같은 존재인 셈. 선수들이 간식거리를 찾기에 식당에서 일한 경력을 살려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줬다가 나중에 체중이 갑자기 불어 코칭스태프가 이유를 찾겠다며 나섰을 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여자종목 중 가장 우악스러워 보이는 역도 선수들이 가장 섬세하고 여성적이며 정이 많다고 소개했다. 선수촌 사상 첫 여성촌장인 이에리사 촌장 얘기도 빠질 수 없다. 이 촌장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강단이 어우러져 새 기풍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전에는 약간 흥청대고 느슨한 분위기도 있었지만 숙소와 식당 등을 카드로만 출입하게 하고 폐쇄회로 카메라도 곳곳에 있어 술, 담배는 꿈도 못 꾸지요.”한창 배고플 나이의 선수들이 ‘철가방’들을 호출하거나 ‘개구멍’으로 음식을 반입하는 것도 철저히 통제해 대표선수들이 검증된 음식으로 체력을 관리하도록 했다. 또 간식을 안 먹고 모아뒀다 외출 때 들고 가던 풍경도 사라졌다. 여자숙소 문제만 해도 그렇다.“그렇게 조신하던 양반(이 촌장)이 투사처럼 강단있게 나설 줄 누가 알았겠어요. 호호홋.” 서문옥 여자숙소장 ●상담으로 불굴의 정신력에 일조 퀴즈 하나.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미국 210명, 중국 100명, 일본 80명, 한국 5명이었던 선수단 직책은? 답은 심리상담사. 이 숫자는 그대로 메달 숫자로 직결됐다고 대표선수들의 심리상담을 하고 있는 장덕선(50·한체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는 단정했다. 젊은 시절 사격 선수로 활약하던 장 교수는 군산대와 한체대(석사)를 거쳐 90년대 초 박사학위를 준비하면서 이 분야에 눈을 떴다.2002년 1월 체육과학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선수촌과 인연을 맺어 일주일에 하루 대표선수들의 어깨에 걸쳐진 정신적 짐의 무게를 덜어주고 있다. 체육과학연구원 소속 5명의 심리상담사가 종목별로 할당된 반면, 그는 종목을 가리지 않고 모든 선수들에게 문을 열어놓고 있다. 일반인들이 궁금해하는 이성교제 같은 민감한 상담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했다. 태극마크를 다는 과정에서 걸러진 것으로 보아도 좋을 만큼 대표선수들의 고민은 자신의 목표에 집중된다는 것. 그러나 “아직도 이쪽에 관한 인식이 부족해 찾아오는 데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며 자발적으로 찾는 경우는 하루에 적을 때는 한두 명, 많아야 서너 명이라고 했다. 대신 코칭스태프가 앞장서 선수들의 집단상담을 의뢰, 이미지트레이닝 등 정신력을 키우는 프로그램을 짜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 물론 종목에 따라, 선수가 얼마나 진지하게 따르느냐에 달리긴 했지만 엇비슷한 전력이나 실력이라면 분명 정신력은 무시못할 변수라고 장 교수는 못박았다. 4년 전부터 실시하고 있는 스포츠 심리상담사 자격증 제도 때문에 현재 장 교수와 이에리사 촌장 등 30∼40명의 1급,80∼90명선의 2급,200명 안팎의 3급들이 배출돼 있다. “한 명도 상근직이 없는 태릉선수촌에 적어도 20명 정도의 상근직이 근무하는 날이 오면 진정한 스포츠 강국 대열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 교수는 강조했다. 장덕선 심리상담사
  • [민속학으로 풀어본 ‘쥐’] 설화에 나타난 ‘쥐’의 캐릭터

    함경도 지방의 창세가(創世歌)에 보면 불과 물의 근원을 알려준 새앙쥐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 이 세상이 생길 적에 미륵이 해와 달을 이용하여 별을 만들고, 옷을 짓는데, 그 크기가 엄청났다. 미륵은 날곡식을 그대로 먹었는데, 불이 없었기 때문이다. 날곡식을 먹을 때마다 익혀 먹어야겠다고 생각하였으나 물과 불의 근본을 모르는 미륵은 풀메뚜기를 잡아다가 불기를 치며 물었다.‘풀메뚜기야 물과 불의 근본을 아느냐!’ 풀메뚜기는 자신은 모르지만 풀개구리는 알 것이라고 하였다. 역시 풀개구리를 잡아와 볼기를 치며 물과 불의 근본을 물으니 풀개구리도 자신은 모르나 새앙쥐는 알 것이라고 추천하였다. 새앙쥐를 잡아다 물으니 ‘가르쳐 드리면 무슨 공을 주시겠습니까?’했다. 이에 미륵은 ‘네가 가르쳐 준다면 이 세상의 모든 뒤주를 네가 차지하게 하겠다.’고 대답하였다. 새앙쥐는 ‘그렇다면 가르쳐 드리지요. 불의 근본은 금정산에 들어가서 한쪽이 차돌이고 한쪽이 무쇠인 돌로 툭툭 치면 불이 날 것이니 알 것이오. 그리고, 물의 근본은 소하산에 들어가면 샘물이 솔솔 솟아나서 물의 근본을 이룬 것을 알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미륵은 새앙쥐의 말을 듣고 금정산과 소하산에 들어가 불의 근본과 물의 근본을 밝혀 냈다. 이때부터 이 세상은 물과 불을 쓰게 되었다. 민속학자 임석재가 채집한 함경도 성인굿에서 서술되는 천지개벽 신화의 전개양상은 조금 다르나, 귀결점은 같다. 애초에 땅 위를 차지하고 있던 미륵을 석가가 사술(詐術)로써 내쫓고 그 땅을 차지한다. 이 석가가 쥐로 하여금 불을 마련하게 한다. 여기서도 쥐가 불을 처음 마련한다는 점에서 창세가의 쥐와 동일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쥐는 인간을 창조한 미륵신에게 불의 근원과 물의 근원을 가르쳐 주는 정보력을 과시한다. ‘황금구슬’이라는 옛날 이야기에 쥐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잉어를 놓아준 대가로 얻은 황금구슬로 부자가 된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쁜 할머니에게 속아 황금구슬을 도둑맞자 그 집의 개와 고양이가 황금구슬을 되찾으려고 나쁜 할머니의 집에 가서 대왕쥐를 잡는다. 개와 고양이가 대왕쥐를 잡는 이유는 쥐에게서 황금구슬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쥐는 집안의 곳곳을 돌아다녀 집안 사정이나 집안의 보물이 어디 있는지를 완전히 꿰뚫어 알고 있는 정보체로서 인식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이들 설화로 볼 때, 우리 선조들은 쥐는 비록 작지만 어느 곳이나 구석구석 돌아다닐 수 있어서 여기저기에서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조그만 정보통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쥐가 정보화(IT) 시대에 걸맞는 안성맞춤의 캐릭터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 [사설] BBK 논란에 왜 청와대 끌어들이나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검찰의 BBK수사 결과에 대해 청와대의 입장 발표를 연일 촉구하고 있다. 검찰 수사가 원천무효라면서 청와대가 직무감찰권을 행사하도록 요구했다. 청와대를 통해 검찰을 압박하는 정 후보의 전략은 옳지 못하다. 인기가 떨어진 노무현 대통령을 공격하거나 ‘노무현·이명박 빅딜설’ 등 음모론을 확산시켜 득표에 도움을 받겠다는 의도라면 더욱 비판받아야 한다. 검찰의 수사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청와대측이 제재하려 든다면 공정한 수사는 물건너 간다. 청와대가 이번 BBK수사에 간여하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정 후보는 검찰 독립을 외쳐온 참여정부의 핵심 인사가 아닌가. 뒤늦게 청와대의 개입을 촉구하거나, 그러지 않는다고 노 대통령을 비난하는 처사는 설득력이 별로 없다. 정 후보가 노 대통령이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를 하니까 그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고 있다. 정 후보 진영은 한때 ‘노무현 정부-이명박 후보 빅딜설’을 소식지에 올렸다가 취소하기도 했다.BBK 논란을 무리하게 확산시키려 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자충수일 것이다. 정 후보는 검찰이 이명박 후보에게 줄을 섰다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일부 검찰 간부가 설령 그랬다 쳐도 검찰 전부가 일사불란하게 수사결과를 조작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심정적으로 정 후보나 다른 후보들을 지지하는 검사들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검찰이 미처 챙기지 못한 새 증거가 드러난다면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범법혐의자 김경준씨가 툭툭 내뱉는 몇마디 말로 검찰 수사결과 전체를 흔들려는 언행은 그만두어야 한다. 특검법을 넘어 검찰 탄핵소추, 국정조사까지 거론하는 것은 정치공세일 뿐이다. 검찰 수사의 잘잘못은 이제 재판을 통해 가려야 할 차례라고 본다.
  • [대선후보 동행 25시] (3) 부드러워진 정동영

    [대선후보 동행 25시] (3) 부드러워진 정동영

    매일 아침 아내는 남편이 안쓰럽다. 유독 아침잠이 많은 사람, 머리를 긁적이며 눈을 껌뻑인다. 스르르 고개를 다시 떨군다. 앉은 채 존다.“조금만 더 주무세요.” 이 한마디가 입안을 맴돈다.‘꼭 저렇게까지 고생해야 하나.’아내가 살짝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깨워야 한다. 앞에 놓인 하루가 길고 또 길다. 아내는 손을 뻗어 남편의 손을 만져 본다. 살짝 코고는 남편, 대견하고 측은하다.“이제 일어나셔야죠.” 아내의 말에 남편이 부스스 눈을 떴다.“내가 또 졸았어요? 미안.” 의외로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슬쩍 웃더니 금세 나설 준비를 시작한다. 할 일이 너무 많다. 대선은 불과 20일 앞이다.29일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하루가 시작됐다. 정 후보의 부인 민혜경씨는 남편을 배웅한다.“오늘도 힘내세요.” 민씨는 “그것 외에는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다.”고 했다. ●“지친 사람들끼리 꼭 안아줍시다” 정 후보의 첫 행선지는 서울 여의도역 사거리였다. 오전 8시30분 바쁘게 오가는 직장인들 사이로 정 후보가 모습을 드러냈다.1초가 아깝고 한 사람이 아쉬운 때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지나가는 사람들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정 후보는 “얼마나 힘드세요. 안아주세요.”를 연신 되풀이했다. 통합신당이 대대적으로 준비한 ‘안아주세요’ 캠페인이다.‘행복’‘자상함’ 같은 ‘가족 대통령’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도입했다. 공식선거전 첫날인 지난 27일 정 후보는 서울 명동에서 처음 사람들을 안아주기 시작했다. 멋쩍어했다. 표정에 어색함이 묻어났다. 정 후보측 한 관계자는 “원래 정 후보는 수줍음이 많고 여린 사람”이라고 했다. 후보 선출 후 첫 방문지였던 동대문 평화시장의 한 상인도 “수금 안해 주면 돈 달라는 말도 못하고 계단에 앉아 기다리곤 했다.”고 정 후보를 기억했다. 그런 정 후보지만 이제 생면부지의 사람과 포옹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능숙하게 끌어안고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그는 “스킨십은 할수록 늘어요 지친 사람들끼리 꼭 안아주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라고 했다. ●트로트 박자는 놓쳐도 율동은 열심히 유세차에서 트로트가 흘러나온다.‘사랑해요 정동영’이다. 트로트 가수 장윤정의 ‘어부바’를 개사했다.‘아싸’ 선거운동원들이 일제히 춤을 추기 시작한다. 정 후보도 유세차에 올라 몸을 흔든다. 손을 올리고 발로 박자를 맞춘다. 그런데 잘 안 맞는다. 박자와 동작이 서로 엇나간다. 스스로도 ‘박치’라고 고백해 온 그다. 열심히 따라 하려는데 쉽지 않은 표정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 후보측 관계자가 혼잣말을 한다.“이거 율동 특별과외라도 시켜야 되겠구먼.” 한참 흔들어대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후보가 인사말을 시작한다.“여러분, 추운 아침에 웬 노랫소리에, 웬 춤에, 죄송합니다.” 쑥스러운 표정이 슬쩍 얼굴에 지나간다.“그렇지만 밝은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자는 뜻으로 받아주세요.”라고 덧붙였다. 이제 으레 시작될 정치인들의 일장연설. 그런데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트레이드마크인 격정적인 웅변, 화려한 제스처가 없어졌다. 정 후보는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듯 유세를 이어갔다. 부드러운 이미지로 다가서기 위해서라고 했다.“웅변투의 공격적인 정치인보다 자상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강조하려는 겁니다.” 정 후보측 한 관계자가 이유를 설명했다. 정 후보도 “제가 연설이라면 좀 할 줄 아는데 텔레비전엔 늘 고약하게 나와서 정 떨어진다고 하시더라.”고 했다. 또 “이제 더이상 연설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웅변 같은 연설보다 인간미로 승부 말버릇도 고쳤다. 정 후보는 자신을 지칭할 때 꼭 “정동영이는…”이라고 부르곤 했다. 오랜 습관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으로 알려져 있다. 김 전 대통령은 꼭 자신의 이름을 3인칭으로 부르곤 했다. 그 습관도 최근 “주변에서 그렇게 말하지 말라더라고…”라며 없앴다. 정 후보측 관계자들은 “겸손해 보이지 않아서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다.”고 전했다. 정 후보의 부인 민씨는 그게 남편의 본래 모습이라고 했다.“인간적이고 순진한 사람이에요. 정치하면서 많이 상처 받고 고생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하고 싶은 일은 꼭 이루겠다는 집념이 강한 사람이에요. 저는 믿습니다.” 민씨가 살짝 웃음을 짓는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영화 ‘우리동네’는

    영화 ‘우리동네’는 살인자를 먼저 던져준다. 그리고 관객의 어깨를 툭툭 친다. 그들의 관계도를 따라가 보라고. 사초동이라는 가상의 마을에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진다. 반라의 여자들이 십자가에 걸린 듯 매달려 죽었다. 튀튀복을 입은 유치원생 여아는 미끄럼틀에,30대 주부는 여관벽에,20대 여대생은 초등학교 운동장에…. 이른 아침 아이들이 등교하는 학교에 내걸린 시체 장면은 영화의 맥박이 기교로 뛰지 않는다는 것을 감지하게 한다. 용의자는 두명이다. 동네 문구점 주인 효이(류덕환)와 형사 재신(이선균)의 친구 소설가 경주(오만석). 경주는 밀린 집세로 내몰리다 가족 사진을 깬 건물 여주인을 죽이고 만다. 그는 동네에 유행하는(?) 연쇄살인을 흉내내 모방살인범이 된다. 연쇄살인범 효이는 자신의 수법을 따라한 그에게 답하기로 한다. 영화는 이때부터 살인범 대 살인범의 대결 국면으로 방향을 튼다. 배우 오만석은 감독이 “동물적인 감각”이라 표현할 만큼 계산없는 연기로 살인범을 빚어냈다. 이선균은 범인을 쫓는 형사반장이면서 친구의 모방범죄를 지우고픈 딜레마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다. ‘누가 죽였냐’가 아니라 ‘그들은 왜 죽였나’를 쫓는 ‘우리동네’는 급박한 화면 전개와 반전이라는 스릴러의 공식 대신 인간의 정서를 파고든다.18세 관람가.29일 개봉.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환상의 나래 그 끝없는 전위 오페라

    환상의 나래 그 끝없는 전위 오페라

    뮌헨에서 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진은숙 씨가 작곡한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 세계초연을 독일 현장에서 보고, 가슴 가득 끓어오르는 감격을 가눌 길이 없었다. 커튼 콜 때 무대를 향해서 “브라보 진은숙! 진은숙!”을 큰 소리로 연창했다. 주위 독일인들을 의식하지 않고 나도 모르게 터져나온 외침이었다. 진은숙 씨와 똑같은 한국여성임이 한없이 자랑스러운 날이었다. 이날의 커튼 콜은 독일 관객들의 열광 속에서 네 차례나 이어졌다. 독일 뮌헨에 있는 바이에른 국립극장은 유럽 오페라의 중심 무대 중 하나로 손꼽힌다. 1818년 세워진 이래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뉴른베르크의 명가수> <니벨룽의 반지> 중 1부 <라인의 황금> 2부 <발퀴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평화의 날>과 <카프리치오소>가 초연된 것으로 유명한 명문극장이다. 이 바이에른 극장에서는 해마다 6월말에서 7월말까지 한달 동안 여름 오페라 페스티발이 열리고 있는데, 올해 페스티발의 개막작품으로 진은숙 씨의 첫 오페라 작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선정된 것이다. 보수성이 강한 바이에른 극장에서 전위적인 현대 오페라, 그것도 한국여성의 작품을 개막작품으로 선정했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바이에른 극장의 200년 역사상 여성작곡가의 작품이 한번도 공연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진은숙씨의 작품이 워낙 뛰어나서 가능했으리라고 본다. 진은숙 씨는 2004년 작곡가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을, 2005년 쇤베르크상을 잇따라 수상했다. 베를린 필의 음악감독이며 지휘자인 사이먼 래틀은 세계 작곡계를 이끌 차세대 5명중 한사람으로 진은숙 씨를 꼽았고, 이번 공연한 작품도 바이에른 극장의 음악감독 겸 지휘자인 켄트 나가노가 로스앤젤레스 오페라 극장에 있을 때 작곡 위촉한 것으로 그가 강력히 추진해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의 원작(1865년)을 바탕으로 만든 오페라이다. 루이스 캐럴은 필명이고, 실제 작가는 영국의 수학자이자 성직자인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이라고 한다. 소위 난센스 문학으로 불린 루이스 캐럴의 판타지 이야기는 실제 인물의 풍자적 암시가 곁들여졌다. 사람들이 실제 인생에서 맞닥드리게 되는 일들이 복잡하고 다면적인 텍스트로 변신해 인생에서 가장 단순하지만 복합적인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해 주는 작품이다. 극도로 단순화된 복합성의 매력과 상상력 풍부한 스토리텔링 기법 때문에 수많은 영화 제작자들, 만화가들 , 작곡가들이 꼭 다루고 싶어하는 내용이었다. 진은숙 씨의 스승인 죄르지 리게티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사로잡혀 오페라로 남기려 열망했으나 사망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것을 제자인 진은숙 씨가 작곡해서 스승에게 헌정한 것이다. 대본은 영화 <M 버터플라이>를 쓴 중국계 데이비드 헨리 황와 진은숙 씨가 함께 썼고, 지휘는 일본계인 켄트 나가노가 했다.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성격이 강한 뮌헨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세계 초연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처음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는 소문이다. 그 이유는 독일인이 좋아하는 바그너류 하고는 거리가 먼 영국식 동화적 상상력에다가 대본마저 독일어가 아닌 영어이고, 특히 한국여성의 작곡, 중국계 헨리 황의 대본, 일본계 켄트 나가노의 지휘 등 동양계가 주축이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공연결과는 상상외로 좋았다. 캐나다의 작곡가 크리스 하먼은 “2시간 30분 내내 음악적 구조를 탄탄히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진은숙은 성공했다”고 말했다. 뮌헨 게르트너플라츠 오페라 극장의 수석 객원 지휘자 아드리안 뮐러도 “대단히 역동적이고 환상적”이라고 극찬했다. 진은숙 씨의 친언니이며 음악칼럼니스트인 진희숙 씨는 뮌헨의 초연을 보고 나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여타의 현대오페라와 확실하게 구별된다. 현대 오페라의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인 난해한 현학취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루이스 캐럴의 동화처럼 시종일관 상상력이 넘치며, 텍스트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배려한 다양한 음악적 시도들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기존 음악의 다양한 자원을 충분히 활용해 극적 리얼리티를 살리려는 노력과 작곡가 특유의 음악적 유머는 오페라를 보는 재미를 한층 배가해 주었다. 원작이 지니고 있는 기상천외한 상상의 세계를 그대로 음악으로 펼쳐 보인, 그래서 음악으로 듣는 동화의 전형을 보여준 오페라였다.” 동아일보의 객원 대기자인 최정호 교수는 뮌헨에 다녀와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공연은 대성공이란 것이 언론의 중평이다. 나는 개막 3일전의 드레스 리허설(총연습) 날 극장 주위에 수많은 팬이 ‘표를 구함’이란 쪽지를 들고 담을 쌓고 있는 남녀노소의 인파에 놀랐다. 왕년에 카라얀 공연 때도 보지 못한 규모의 인파였다.” “앨리의 무대장치와 조명도 맡은 아힘 프라이어의 연출엔 썩 만족할 수 없었다. 음악을 살려야 할 연출이 음악을 밀어 젖히고 지나치게 까발리며 나서고 있다는 인상이다. 나는 눈을 감고 앨리스의 음악만 들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봤다.” 연출의 문제에 대해서는 필자도 동감이다. 실제로 앨리스의 음악만 들었다면 더 감동적이고 황홀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오케스트레시션 음악만을 듣고 싶은 맘이 간절했다. 근래 유럽 오페라에서는 연출의 횡포라 할까, 연출가의 전횡, 독재가 문제되고는 한다. 작품에 상관없이 연출가의 의도가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심지어 연출가가 장기자랑으로 오페라를 재창조하려는 흐름이 압도적이다. “독일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는 루이스 캐럴의 원작은 물론 진은숙의 음악적 의도와는 상당히 어긋나는 나름대로 의 연출을 해 아쉬움을 남겼다. 그는 무대를 45도 각도로 세워놓고 거기에 몇 개의 구멍을 뚫은 다음 그곳에서 배우들이 서서 연기를 하도록 했고, 가수들은 앨리스와 여왕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대 아래쪽에서 그것도 때로는 가면을 쓴채 노래를 했다. 말하자면 노래는 가수가, 연기는 배우들이 따로 한 셈인데, 45도로 기울어진 무대와 가수들의 고정된 위치, 가면 등이 표현의 자유를 상당히 제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화가 출신인 연출가는 무대를 45도로 기울여 놓음으로서 무대를 그림 그리기 좋은 캠버스로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무대의 그림은 마치 동화책을 펼쳐놓은 듯 환상적이었다. 연출가는 그렇게 좋은 그림을 만들기 위해 등장인물들을 자신의 캠버스에 가두어 놓은 것이다.”라고 나는 마치 체스판 위에서 체스 말들이 툭툭 튀어나와 경쟁적으로 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런 아쉬움 속에서도 즐거운 점이 있었다면 출연한 가수들의 놀라운 가창력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앨리스역의 소프라노 샐리 매튜, 토끼역의 카운트 테너 엔듀류 왓츠의 실력이 놀라웠으며 여왕역으로 무대에 오른 왕년의 오페라 스타 소프라노 귀네스 존스는 7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한 노래실력을 보여 주었다. 연출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번 공연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관객들은 그림책을 한 페이지씩 넘기면 다른 그림이 나타나는 듯이 전개되는 무대 위의 장면들을 즐거워했으며 그런 면에서 아힘 프라이어는 명성에 걸맞는 저력을 갖고 있는 연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 아동극처럼 유치해질 수 있는 무대를 나름대로 철학적 해석을 거쳐 무언가 있는 것 같은 무대로 만들었다는 것에서 일말의 위안을 찾는다고나 할까” 연출의 문제에 대해서는 작곡가 진은숙 씨도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오페라의 마지막 장면처럼 제 의도와 부합되는 장면도 있었지만 전해 그렇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제가 의도적으로 아주 다이내믹하게 작곡한 부분에서 무대 역시 많은 움직임이 있기를 바랐는데, 연출가는 무대도 바꾸지 않고 인물들도 움직임 없이 그냥 두었다. 제일 아쉬운 부분이었다.” 진은숙 씨는 이번 앨리스의 속편격인 <거울 뒤의 앨리스>를 2013년경 뮌헨 바이에른 극장에서 초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기회에 한가지 집고 넘어갈 것은 역사적인 진은숙 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세계 초연에 초청받은 독일주재 한국대사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손님 접대 만찬 때문이라고 했으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자랑스러운 세계 초연에 주재국 대사라면 만사 제치고 와서 기뻐하며 축하해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올림픽 경기 우승이나 미스 월드 1위 우승보다 높은 가치의 예술문화외교를 경시하는 답답함에 솔직히 섭섭함이 치밀어 오르며 화가 났다. 올해의 음악계 화제 톱은 단연 진은숙 씨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세계 초연임에 틀림없다. 글 신갑순 삶과꿈 발행인, 삶과꿈 챔버오케스트라 싱어즈 대표 사진제공 김용원, 바이에른 국립극장     월간 <삶과꿈> 2007.09 구독문의:02-319-3791
  • [그림과 時가 있는 아침] 새벽 냄새/서량

    [그림과 時가 있는 아침] 새벽 냄새/서량

    새벽 냄새/서량 새벽에서 꽃 냄새가 난다 이상한 꽃 얼추 회색인가 싶었는데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에 내 대뇌피질을 툭툭 건드리는 빨갛고 파랗고 노랗고 초록색 숱하게 알록달록한 한참 전 음력설에 당신이 입었던 영락없는 색동저고리 냄새
  • “나무도 우리들 인생에 큰 스승이 될 수 있다”

    “나무도 우리들 인생에 큰 스승이 될 수 있다”

    설령 도회에서 자랐던들 나무에 얽힌 추억 한 둘 못 가진 사람이 있을까. 그것이 주린 배 속으로 허한 바람 일게 하던 들판의 미루나무든, 토담에 노구를 기댄 채 낱알을 툭툭 떨어뜨려 쌓던 밤나무든, 아니면 호랑나비가 고치를 뚫고 나오는 가시울 탱자나무든 나무는 모두에게 공유(共有)의 추억으로 남는다. 어느덧 문단의 중견이 된 작가 이순원이 장편 ‘나무’(문학에디션 뿔)를 출간했다. 온 가족이 함께 읽는 가족·성장소설이다. 작가는 이런 나무의 공유성에 눈길을 준다.‘열 두살의 네게는 무한한 질문의 나무, 스무 살의 그대에게는 엄마 몰래 숨겨놓고 싶은 비밀의 나무, 서른의 당신에게는 지혜로운 동반의 나무, 열매를 맺은 당신께는 나무 그 다음의 나무를 생각하는 나무’, 이런 식이다. 나무만큼 많은 사연을 간직한 물상도 흔치 않다. 뚜렷한 장소성 때문이다.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아들에게서 또 다른 아들로 나무는 사라지는 순간까지 수많은 사연들로 나이테를 만든다. 그 나무가 나누는 이야기들이 여름 원두막이나 겨울 화롯가 정담처럼 따뜻하다. 작은나무와 할아버지나무는 조곤조곤 귀엣말을 나눈다.“나무는 백 년도 살고, 천 년도 사는 몸들이란다. 오래 살며 열매를 맺자면 우선 제 몸부터 튼튼하게 만들어야겠지. 네 몸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꽃보다는 줄기와 잎에 더 힘을 써야 하는 게야.” 작가는 나무에서 이런 주제 스물 일곱개를 뽑아 옴니버스식으로 엮었다. 그 가운데 ‘봄을 여는 매화의 기상’ 편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간다.“그러면 지금 눈 속에 핀 저 꽃들에서 열매가 달리는 건가요?” “그렇지. 눈과 추위가 나무를 단련시키고, 꽃을 단련시키는 거지. 매화나무가 언제 내릴지 모를 눈과 추위가 두려워 제때 꽃을 피우지 않는다면 그 나무는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는 법이란다. 네 말대로 꽃샘을 피하려고 늦게 피어난 매화꽃엔 아무 열매도 안 열리지.” 작가는 나무를 통해 삶을 말한다. 때로는 지혜를, 때로는 용기와 참음 그리고 자연의 섭리를 들려준다. 자칫 어른들에게는 밍밍한 얘기로 읽힐 수 있지만 곱씹을수록 ‘생각’의 뿌리를 넌출거리게 하는 글편들이다. 이 ‘나무’를 두고 작가는 이렇게 술회한다. “내가 태어난 시골집에 있던 커다란 밤나무, 백 년 전쯤 할아버지가 심은 그 나무와 할아버지는 내게 나무도 사람과 우정을 나눌 수 있으며, 우리 인생의 큰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런 나무와 할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9000원.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희귀 난치병 도전과 정복] (44·끝) 문제점과 대책

    [희귀 난치병 도전과 정복] (44·끝) 문제점과 대책

    서울신문은 그동안 ‘희귀난치병’으로 고통을 받는 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국내 언론사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7월부터 ‘희귀난치병-도전과 정복’이라는 주제로 1년 넘게 장기 연재해 왔습니다. 분야별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전문의를 직접 만나 말단비대증 등 43종의 희귀난치병의 원인과 증상, 발병 추이와 치료법은 물론 대책과 건강보험 등 제도상의 문제까지 심층적으로 다뤘습니다. 오늘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관심을 가져주신 독자, 그리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전문의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이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국내 희귀난치병에 대한 문제점을 되짚어봅니다. <편집자 주> 정확한 통계는 어렵지만 국내의 희귀난치병 환자들은 수백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병마 외에 제도는 물론 일반인의 인식과도 싸워야 하는 등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중에서도 환자와 의료인들이 지적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현행 건강보험 제도. 제원 확보의 어려움이야 어차피 시간을 두고 해결할 수밖에 없다지만 납득할 수 없는 급여 기준을 설정해 수많은 환자와 가족들에게 주는 고통이 적지 않다는 것. ●건강보험 사각지대 많다 “혈우병을 예로 들면 현재 일반적으로 쓰이는 혈장분획 제제보다 훨씬 우수한 치료제로 평가받는 유전자 재조합 제제의 경우 건강보험 급여 기준이 1988년 이후에 출생한 혈우병 A형 환자와 모든 혈우병 B형 환자에 국한돼 있어 그 이전에 출생한 A형 환자는 속수무책입니다. 또 유전자 재조합 제제의 처방 횟수도 월 10회로 제한돼 출혈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중증 환자들이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지요. 이런 점은 당연히 정책적으로 해결해 줘야지요.”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유명철(병원장·정형외과) 박사는 이런 사례를 들어 희귀난치병 치료에 따른 제도의 문제를 지적했다. 건강보험 정책이 치료제 개발 등 의료계의 빠른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비단 혈우병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자가면역 질환으로 인체의 면역체계가 자신의 외분비선을 공격해 문제가 되는 쇼그렌증후군의 경우 2004년부터 건강보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진단 과정이나 이 병의 합병증인 심각한 치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치과치료의 경우는 아직 급여 혜택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 이와 유사한 문제는 치매나 알츠하이머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알츠하이머는 급속한 노령화 때문에 2020년에는 우리나라에만 100만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무서운 질환이지만 이를 예방적으로 치료하도록 하는 건강보험 지원은 현실과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건국대병원 신경과 한설희 교수는 “치매의 경우 대부분의 환자가 고혈압, 당뇨, 관절염, 심장질환, 호흡기질환, 파킨슨병 등 3종 이상의 질환을 함께 가져 기존 치료제 외에 추가로 치매와 행동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약물 투여가 필수적인데, 현행 보험제도가 이를 대폭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급여 못받는 희귀난치병 아예 급여 대상에서 빠진 질환도 잇다. 골화석증(骨化石症)은 한 가지 질병이 인간에게 어떤 고통을 줄 수 있는지를 가늠케 해주는 병이다. 뼈가 약해 가볍게 부딪치기만 해도 툭툭 부러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나 골화석증은 아직 보험급여 대상이 아니다. 현재 삼성서울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한정순(가명·47·여)씨의 경우 1983년 이후 오른쪽 대퇴골 13회, 왼쪽 대퇴골 6회의 골절상을 입어 그때마다 수술을 받아야 했다. 여기에다 지금은 만성 골수염과 시각장애, 골수 기능부전까지 앓고 있다. 한씨는 “다른 병과 달리 이 병만 예외라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가난한 살림이 나 때문에 거덜나는 걸 지켜보기가 죽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울먹였다. 비장증후군의 경우도 동반되는 심장병에만 급여가 적용될 뿐 질환 자체는 아직 보험 대상조차 아니다. 환자에게 적용하는 장애기준도 현실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세종병원 소아과 김수진 과장은 “환아들의 심장이 개구리와 닮아 장애 진단이 당연한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이 환자들에게 성인 기준을 적용한다. 그 사이에 환아들이 대부분 숨지는데 이런 기준을 적용한다는 게 부끄럽다.”고 토로했다. ●사회적 인식은 후진국 뇌성마비도 마찬가지이다.1회에 120만원이나 하는 보톡스 주사요법의 경우 만 2∼5살 환아는 급여 대상이지만 똑같은 환아도 대퇴부 근육의 문제로 보톡스 주사요법이 필요한 경우에는 보험 적용을 못 받는다. 여기에다 모든 뇌성마비 환자를 ‘비정상인’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인식도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꼽힌다. 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교실 박은숙 교수는 “뇌성마비 환자의 75∼80%는 독립 보행이 가능하며, 최근에는 중증 직업인도 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중등도의 환자 57%, 중증 환자의 35%가 직업을 갖고 있는데, 우리는 이들이 교육조차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하다. 이유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사회적 편견 때문에 환자와 가족들이 한사코 병을 숨기는 질환이 간질이다. 아직도 ‘지랄한다.’며 간질을 ‘천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국내에 40만∼50만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 간질은 대뇌 속에서 과도한 전기에너지가 발생해 생기는 질환으로, 정신질환도, 유전질환도 아니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신경과 허경 교수는 “이 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바로잡히지 않으면 수많은 간질 환자들이 무지와 편견의 희생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개탄했다. ●해법은 정책에 있다 의료인들은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체계가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으며, 급여 범위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으며, 정책의 문제 때문에 급여 형평성을 잃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안이비인후과병원장 권오웅 교수는 “사실 보험 재정이야 하루아침에 해소되지 않을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면서 “노인성 황반변성의 경우 급속한 노령화로 환자 수가 급증하지만 초기 진단법인 형광안저촬영과 레이저 및 광역학치료 일부만 보험 적용이 되는데 이런 문제는 당연히 정책적으로 풀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사건발생 일구팔공’ 리뷰

    ‘사건발생 일구팔공’ 리뷰

    미어지는 가슴, 스며 나오는 눈물. 그 와중에 툭툭 잽을 날리는 농담. ‘춘천 거기’로 2006년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한 ‘사건발생 일구팔공’(김한길 작·연출,8월19일까지, 대학로 쇼틱 시어터 2관)은 화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화해를 다룬 작품이다. 낡은 상 위에는 서너 가지 찬이 올라오고, 구형 라디오에서는 판소리가 흘러나온다. 밖에는 비까지 내린다. 서른 여덟이 되도록 초코파이를 입에 물고 사는 정신지체 둘째딸 순희는 동물병원에 강아지 보러 가자고 보챈다. 엄마 정자, 셋째딸 선희, 막내 춘구 등 가족 모두 집을 비우자 혼자 길을 나선 순희는 영정 사진으로 되돌아온다. 깊은 슬픔에 잠긴 집으로 선희와 결혼할 지훈이 찾아온다. 지훈은 춘구 앞에 식칼을 디밀고 말한다.“우리 여기서 서로를 죽이는 일이 있더라도 솔직하게 얘기 하나씩 할까.” 처남과 매형 사이에 줄타기 하는 얄궂은 운명을 가늠대에 놓고 춘구는 주먹 대신 이런 말을 날린다.“용서, 양심, 이 지랄 하면서 절대 입밖에 내지 마라.” 대체 어디서 화해가 가능하고, 어디서 용서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는 연출자의 갈등이 비로소 해소되는 지점이다. 배우들은 연극이 끝나고 눈가가 벌개 커튼콜에 나올 정도로 성실하게 작품에 접근한다. 감당하기 힘든 주제를 시답잖은 농담으로 거뜬하게 끌고 가는 치밀함도 보인다. 특히 춘구는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는 무심한 말투로 객석을 여러번 뒤집는다.“엄마랑 나는 일촌이야, 관심일촌. 그러니까 방명록에 글 좀 남겨.” 입 험한 그가 아기 같은 순희 누나 앞에서만큼은 “존나 많아.”를 “(예쁜 물고기)대다수 있어.”로 순화하는 순간은 웃기면서도 찡하다. 연출자는 “‘내가 그때 왜 그랬지.’ 하고 속죄하고 싶은 순간, 떠나간 건 매듭을 짓고 다음 발을 딛자는 의미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살면서 후회할 일 없이 산다는 거, 그게 되덜 않아.”라는 엄마 정자의 말에 먹먹해진 가슴이 풀리는 것도 그래서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서거한 ‘그’와 꼭 닮은 ‘그’

    서거한 ‘그’와 꼭 닮은 ‘그’

    “거짓말은 내 밥이지. 밥은 하루에 세 번 먹고 거짓말은 하루에 스무 번 정도 하니까.”(‘오늘의 거짓말’ 중에서) 작가 정이현의 두번째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문학과지성사)의 인물들은 거짓말에 능하다. 이들은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기억을 내밀지만 모두 ‘오늘’로 수렴된다. 2004년 봄부터 2006년 가을까지 써온 10편의 단편. 그 안에 맴도는 거짓말들은 작가의 말처럼 “맨들맨들해 보이는 안전한 일상 뒤의 틈새”를 가리는 안전장치다. “정이현을 위악적인 작가로 알고 있었다.”는 박완서는 이번 작품에서 따뜻하고 깊이 있는 시선을 봤다고 평했다. 그 평처럼 정이현은 그동안 멀찍이 떨어져 있던 인물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시대와 제도를 툭툭 냉소하던 태도도 달라졌다. 작가는 개인이 감내해낸 세월 속에 시대가 어떻게 침투했는지 밝혀낸다.“저는 역사의 사건을 막연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어간다고 봐요.” 그래서 연민의 시선이 느껴질 거라고 그는 추측했다. ‘삼풍백화점’이 그 한 예다.‘삼풍백화점’은 작가의 말을 빌리면 “지난 게 아니라 폭삭 무너져버린 청춘에 대한 얘기”다. 백화점이 무너지기 30분전에 빠져나온 경험이 있는 정이현은 “그 곳은 내게 개인적, 일상적 공간이었는데 무너지고 나니 사회의 문제가 집약된 공간으로 호명됐다.”고 회고했다. ‘오늘의 거짓말’의 주인공은 1979년이라는 출생연도를 통해 ‘박정희’라는 시대의 방점을 상징한다. 쿵쿵거리는 소음 때문에 윗집의 벨을 누른 주인공은 1979년에 서거한 ‘그’와 꼭 닮은 ‘그’를 보고 세상에 이 사실을 알려야하나 말아야 하나로 전전긍긍한다. 결혼이나 취직, 대학입학, 출산 등 정상인이라면 걸어야 할 삶의 코스들이 늘 궁금하다는 작가. 그게 개인의 문제인지 시스템의 문제인지, 왜 그렇게 됐는지를 캐묻는 게 그의 관심사다. 그 관심은 이번 소설에도 다양한 연령과 다른 성(性)의 화자를 통해 반복된다. 하지만 정이현은 여전히 ‘쿨한’작가로 남고 싶어한다.“그래도 냉정했으면 좋겠어요. 겉으로 보이는 건조함이나 차가움 속에서 작가의 물기나 흘리지 못하는 눈물을 읽어줬으면 하는 거죠.”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맨유 아시아투어 2007] 역시 호날두·루니…맨유, FC서울 친선전 4-0 대승

    얼굴이 경기장 전광판에 비치자 6만 4000여 관중이 함성을 질러댔지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입 주위를 약간 씰룩거리면서 굳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친선경기지만 확실히 골맛을 보여주겠다는 각오였을까. K-리그에서 가장 많은 관중을 동원한다는 FC서울이 2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세계 최고의 축구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맞섰지만 호날두의 원맨쇼에 농락당하면서 0-4로 무릎을 꿇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호날두, 웨인 루니, 크리스 이글스를 최전방에 포진시켰고 세뇰 귀네슈 서울 감독은 이청용과 기성용, 히칼도, 고명진, 이장열을 미드필더로, 아디와 곽태휘, 최원권을 수비로 내세우는 3-5-2로 맞섰지만 맨유의 삼각편대를 당해내지 못했다. 호날두는 서울 선수 중 가장 빼어난 활약을 보인 이청용과 함께 경기 최우수선수(MVP)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경기 전 퍼거슨 감독과 함께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던 박지성은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봤고 ‘퍼거슨의 영보이’로 지목된 박주영은 엔트리에서도 빠졌다. 전반 4분 페널티지역 바로 앞에서 루니의 패스를 이어받은 호날두가 공을 툭툭 건드린 뒤 날린 오른발 슛이 골망을 흔들면서 골퍼레이드가 시작됐다. 김병지도 잔뜩 대비했지만 반박자 빠른 슈팅에 당하고 말았다. 서울 문전을 집요하게 헤집던 호날두는 전반 18분 페널티지역 바로 앞에서 이글스에게 힐패스를 건네 두번째 골의 도우미가 됐다. 호날두는 또 2분 뒤 서울의 수비수 두 명을 앞에 둔 상태에서 뛰어들어오던 루니에게 정확하게 패스를 밀어줘 세번째 골을 터뜨렸다. 두 선수가 수비 뒷공간을 파고들며 득점 포인트를 잡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한눈에 보여준 장면. 서쪽 스탠드에서 붉은 색 물결 위에 하얀 글씨로 떠오르던 ‘MUFC’ 카드섹션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맨유 역시 점수차가 벌어졌다고 판단, 공세를 자제했다. 그러나 후반 15분 호날두 대신 들어간 라이언 긱스가 미드필드 중앙에서 길게 찔러준 패스를 이어받은 패트리스 에브라가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반대편 골모서리를 향해 네번째 골을 꽂아넣었다. 킥오프 2시간 전 스탠드 대부분이 채워질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던 관중들은 후반 40분도 안돼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축구평론가 정윤수씨는 “하프타임때 후반전을 뛰지 않는 호날두도 벤치 앞에서 몸을 풀었고 경기 뒤 맨유 선수들도 달리기 등을 했지만 서울 선수들은 들어가버렸다.”면서 “이런 작은 차이가 빅리그와의 격차를 설명한다.”고 말했다. 퍼거슨 감독은 “전반적으로 의도한 대로 잘 풀린 경기였고, 우리를 환영해준 한국팬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호날두는 “내년에 FC서울이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경기를 치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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