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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레시피] 외국산 닭고기도 뼈 있을 수 있어… 검붉고 툭툭 끊기면 냉동 수입산

    [건강레시피] 외국산 닭고기도 뼈 있을 수 있어… 검붉고 툭툭 끊기면 냉동 수입산

    주말 저녁 시원한 맥주와 함께 야구 경기를 볼 때, 그리고 밤에 배가 출출할 때 가장 많이 찾는 음식이 통닭이다. ‘치느님’이란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한국인의 통닭 사랑은 뜨겁다. 우리나라의 닭고기 소비량은 2012년 기준 1인당 15㎏ 정도로 중국의 2배나 되고 매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닭고기 생산량으로는 소비량을 맞출 수 없어 주로 미국, 브라질, 덴마크 등에서 수입한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미국에서 6만 7645t, 브라질에서 5만 2460t, 덴마크에서 4485t의 닭고기가 수입됐다. 현재는 미국과 브라질이 닭고기 수입국 1, 2위를 다투고 있다. 소비자들은 수입 닭고기에 있을지 모를 위해물질을 이야기할 때 흔히 ‘항생제’를 떠올린다. 하지만 국내에 들어오는 수입 닭고기는 모두 무작위 정밀검사(성분분석검사)를 거친다. 해로운 물질이 검출되면 부적합 판정을 내리고 돌려보낸다. 항생제, 항균제, 농약뿐만 아니라 보존료(아질산이온), 타르 색소 등의 첨가 여부도 식품 첨가물 사용 기준에 따라 엄격히 검사하고 있으며, 미생물의 오염도 또한 무작위 표본검사를 한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국가로부터는 살아 있는 조류, 병아리, 계란, 잠복기(21일) 안에 도축·가공됐거나 열처리(70도, 30분 이상)하지 않은 가금육 제품 등의 수입을 금지한다. 보통 수입산 닭고기라고 하면 닭 강정과 뼈 없는 닭고기를 떠올린다. 뼈 없는 닭보다는 뼈 있는 닭의 품질이 뛰어나다는 생각에 일부러 뼈 있는 닭고기를 주문하는 사람도 있는데, 뼈의 유무와 품질은 전혀 관계가 없다. 또 수입 닭고기는 뼈가 있는 것과 없는 것 모두 수입되고 있어 뼈가 있다고 모두 국내산은 아니다. 뼈 없는 수입 닭고기가 브라질산인 이유는 ‘발골’(뼈를 발려 냄)을 하는 데 드는 인건비가 미국보다 싸기 때문이다. 국내산 닭과 수입산 닭은 육안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일단 원산지 표시를 잘 확인하면 된다. 그 외에 큰 차이는 신선도다. 수입 닭고기는 냉동 유통되기 때문에 약간 검붉은 빛깔을 띠며 광택이 없다. 특히 수입 닭고기 중 다리 부위 근육이 검붉게 보이는 특성이 있다. 닭고기를 들여오는 동안 장기간 냉동하기 때문에 골수 속 혈색소가 밖으로 빠져 근육에 침투해 산화하면서 검붉게 보인다. 또 냉장육은 결대로 잘 찢어지지만 냉동육은 툭툭 끊어지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조금만 세밀하게 살피면 구분하기가 어렵지 않다. ■도움말 식품의약품안전처
  • [백문이불여일행] 눈을 감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백문이불여일행] 눈을 감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백문이불여일행(百聞不如一行) 백번 듣고 보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실제로 해보는 것, 느끼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보고 듣는 것’ 말고 ‘해 보고’ 쓰고 싶어서 시작된 글. 일주일간 무엇을 해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누고 이야기하고 싶다. 상설체험전시 ‘어둠 속의 대화’…직원 25명 중 18명이 시각장애인 세계 30개국 820만명 경험…국내 20만 관객 돌파 “지금부터 100분간, 모든 빛이 사라집니다.” 안내를 따라 ‘어둠’으로 들어서자 로드마스터의 목소리가 들린다. 100분간 8명을 이끌어줄 김혜성 로드마스터는 따뜻한 음색을 가진 여성분이다. 말 그대로 어둠이다. 눈을 아무리 크게 떠도 빛 한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암흑에서는 차라리 눈을 감는 게 낫다. 보이지 않는 빛을 찾는다고 눈을 계속 뜨고 있으면 시신경에 자극이 오기 때문이다. 시작 전 받은 시각장애인 지팡이로 바닥을 툭툭 짚으면서 나머지 한 손으로는 벽을 더듬었다. 로드마스터의 목소리에 의지한 채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새삼 빛과 시각에 얼마나 많이 의존했었는지 체감한다. 시각을 제외한 청각, 후각, 촉각, 미각에 집중하면서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어둠 속에서 로드마스터를 따라 새소리가 들리는 숲도 가고, 물소리가 들리는 다리를 건너 선착장에도 간다. 배를 타고 바닷물을 맞기도 하고, 도로를 건너 시끌벅적한 시장에도 들린다. 오직 촉각으로 시장에서 파는 물건을 알아맞히고, 대청마루에 누워 시원한 밤바람을 느껴보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카페에 들러 얘기도 나누고, 음료를 마신다. 눈을 뜨고 지낼 땐 평범했던 일상이 이곳에선 하나하나 특별한 체험으로 다가온다. 랜덤으로 받은 음료를 마시고 무엇인지 맞춰보라는 로드마스터의 말에 참가자들은 여러 번 맛을 본다. 펩시콜라와 코카콜라를 구별한 ‘장금이’ 같은 참가자도 있는가 하면 석류음료를 홍삼으로 착각하는 참가자도 나온다. 로드마스터는 “보이지 않을 때는 음료의 이름을 정확히 맞히기 힘들다”며 “오직 미각만 사용해 느낀 그 맛이 음료의 진짜 맛일 수 있다”고 말했다. 40분쯤 흘렀을까. 로드마스터는 어느새 100분의 시간이 지났다고 말해줬다. 참가자들 모두 “30~40분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다”며 믿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둠 속에서는 시간의 흐름조차 짐작하기 힘들다. 보이지 않는 탓에 다른 모든 감각에 집중하고 내내 긴장상태에 있었던 탓이다. 어둠 속에서 로드마스터가 자신의 ‘비밀’을 밝히고 작별인사를 했다. 때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을 때 더 빛나는 것도 있는 법이다. “저 되게 예뻐요.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죠? 여러분 상상 속에 맡길게요.” 마음 속에 소중한 기억하나를 심고 빛으로 나왔다. ‘어둠 속의 대화’ 보이지 않아야 보이는 것들 ‘어둠 속의 대화’는 1988년 한 독일인이 후천적으로 실명한 친구의 사회적응을 돕다가 ‘보이지 않는 경험을 다른 사람들도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체험전시 프로젝트다. 유럽, 아시아, 미국, 아프리카 등 세계 30개국 160개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850만명 이상이 경험했고, 7000명 이상의 시각장애인이 이 전시를 위해 고용되는 효과를 거뒀다. 국내에서는 2010년 신촌에서 시작돼, 2014년 11월 북촌 한옥마을 전용관으로 자리를 옮겨 상설체험전시로 운영 중이다. 7월까지 누적 관객 수 20만 명을 돌파했다. 편견과 선입견을 벗어나 본연의 모습으로 사람과 사람과의 소통을 경험하게 해 준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체험자들을 안내해주는 로드마스터 또한 동등한 입장에서 어둠 속을 걷는다. Switch off the sight, Switch on the insight. 보이는 것 너머 내면을 바라보세요. “가장 기뻤던 순간은 우리가 다시 빛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것”, “평생 잊을 수 없는, 잊고 싶지 않은 경험”,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있다” 관람객의 98%가 “내 생애 최고의 경험”이라고 답했고, 그 중 34%가 재관람을 하는 등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체험은 소그룹(최대 8명)단위로 15분 간격으로 입장하며 로드마스터의 안내에 따라 체험하는 방식이다. 관람가는 8세 이상이며 관람료는 3만원 내외다. 송영희 엔비전스 대표는 “우리의 전통이 살아있는 북촌 한옥마을에서 보이는 삶과 보이지 않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다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줄여가는 ‘따뜻한 어둠’을 체험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홈페이지(www.dialogueinthedark.co.kr), 문의 02-313-9977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위 속의 친위쿠데타’ 위산 역류증

     위산은 사람의 몸에서 분비되는 가장 강한 독성 물질입니다. 물론, 위산이 일상적으로 몸 속에서 독성을 나타내지는 않지만, 그렇게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강한 산성입니다.  이런 위산은 사람이 먹는 음식물을 소독하고, 질기거나 딱딱한 음식은 삭혀 소화 흡수를 돕지요. 즉, 섭생에서 위산이 없다면 인간은 생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지능적이고 적응력이 뛰어난 유기체인 인간의 몸은 만약 위산이 없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와 기능을 가진 생명체로 거듭 나는 적응력을 보이겠지만, 그러기까지 시간이 너무나 많이 걸려 인류가 살아남을 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어림잡아 추산을 해 볼까요. 인류는 지금으로부터 400만∼500만년에 출현했습니다. 아마도 원숭이에 가까운 형태였을 것입니다. 그 후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베이징원인이 나타났고, 지금부터 10만년 전에는 인류의 사촌 격인 네안데르탈인이, 4∼5만년 전에는 호로 사피엔스와 크로마뇽인이 등장하며, 이 직후에 현생인류의 직계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나타났지요.  대략 이렇다고 보면, 터무니없는 얘기지만, 위산을 분비하지 않는 쪽으로 집중적인 진화가 이뤄진다고 가정할 때 적어도 4∼5만년, 길게 잡아서 10만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 있겠지요. 그러니 이런 황당한 상상보다는 위산의 문제를 알고, 여기에 대응하는 편이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위에서는 아군, 식도에서는 적군  이처럼 강한 위산이 위를 손상시키지 않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위벽의 세포에서 염산의 강한 산성을 중화시키는 중탄산염을 분비해 보호막을 치기 때문입니다. 물론, 위산이 위 속에서 항상 바람직한 역할만 수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가끔은 일탈적으로 독성 물질의 본성을 드러내기도 하지요. 만약, 위벽의 보호막이 어떤 이유로 뚫리면 위벽이 위산에 의해 손상을 입는데, 이렇게 발생하는 대표적인 질환이 위염과 위궤양입니다.  위염과 위궤양은 위산이 위장 속에 머물때 생기지만, 위산이 더러는 위를 벗어나 자기 경로가 아닌 곳으로 흘러들어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바로 위산 역류현상입니다. 위산과 각종 소화효소가 느닺없이 윗쪽으로 역류하는 일탈을 자행하는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위의 상부인 식도는 위산에 버틸 수 있는 보호막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여기에 강한 산이 흘러들어와 고이면 순식간에 화상을 입을 수밖에 없지요. 이를 의학적으로는 역류성 식도염이라고 합니다.  타고난 기질 탓에 위산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분비되는 위산과다증이나 노화 탓이기도 하지만, 과식이나 야식, 비만, 음주, 흡연 등도 위산 역류의 요인이 됩니다. 위산이 인체의 소화 및 생리활동에 매우 중요한 물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게 식도로 역류해 일으키는 문제는 가히 친위쿠데타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위나 사람이나 허술한 문(門)이 문제  일상적으로 느낄 수는 없지만 위에도 두 개의 문이 있습니다. 위의 상부 식도 쪽에는 분문, 하부 십이지장과 닿는 곳에는 유문이 있고 항문처럼 괄약근이 있습니다. 위산의 역류는 이 중에서도 분문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젊고 건강한 사람이라면 이 분문이 열려야 할 때 열리고, 닫혀야 할 때 닫히지만, 노쇠하거나 앞서 지적한 문제를 가진 사람이라면 닫혀야 할 때 닫히지 않고 열려 있어, 위에 들어가 위산과 버무려진 음식이나 위산의 역류를 억제하지 못하게 됩니다. 중년을 넘기면서 생기는 위산 역류의 상당수는 몸이 전반적으로 노쇠해지면서 덩달아 이 분문을 통제하는 근육까지 약해져 필요할 때 문단속을 못하는 것이 원인입니다. 뻔한 얘기지만, 문이 허술하면 나가지 말아야 할 것이 나가거나, 들어오지 말아야 할 것이 들어와 문제가 되지요.  이처럼 위산이 역류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위의 근육을 조종하는 신경의 교란이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즉, 뇌의 중추신경은 식도를 통제하고, 소화기의 자율신경은 위 운동을 조종하는데, 이 두 신경계 간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종의 ‘사인 미스’가 발생해 문을 엉뚱하게 여닫거나, 위산과 소화효소를 질정없이 분비하게 하는 것이지요.  필자가 어렸을 때의 기억입니다. 마을의 아주머니 한 분이 늘상 몸이 편치 않아 시난고난 했는데, 사람들은 묵은 가슴앓이 때문에 그렇다고들 말하곤 했습니다. 말 못하고 속을 끓이는 마음의 병을 가슴앓이라고도 하지만, 구체적인 병증을 뜻하기도 했는데, 그런 증상의 특성을 가져다가 붙인 이름이 바로 가슴앓이(heart burn)였던 것이죠. 그 아주머니는 한번 병증이 나타나면 토방마루에 걸터앉아 맹물 같은 침을 줄줄 흘리며 꺽꺽댔는데, 어떤 때는 주먹으로 가슴을 툭툭, 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마루에 널부러져 몸을 뒤틀기도 했습니다.“살면서 하늘 보고 주먹질한 일도 없는데, 왜 맨날 가슴이 틀어오르는지 모르겄다”며 외꽃처럼 노랗게 가라앉던 그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 아주머니의 경우 기질적인 문제가 있었던 듯 하지만, 그렇지 않고도 쉽게 위산의 역류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지지리도 궁핍했던 예전에는 일년에 고깃국을 몇 번이나 먹고 나는 지 셀 수 있을 정도였는데, 그러니 쥐구멍에 볕 들듯 맞은 제사나 명절 때면 부침이며 떡을 실컷 먹고는 목구멍을 차고 오르는 ‘쓴물’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기억 쯤이야 누구나 갖고 있지요.  참, ‘개대가리 등겨 털어먹듯이’ 살았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세상에 조석으로 독한 위산이 차고 올라 식도의 화상이 심해지다가 마침내 밥 한술도 넘기기 어려우면 고작 한다는 게 푸닥거리 굿판이나 벌리는 것이었지요. 그러다 더러는 명줄 끊기는 일도 없지 않았을 터이니, 요즘에야 ‘절대로’ 죽을 병이 아닌 역류성 식도염을 ‘지독한 귀신’이 달라붙은 것 쯤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기억도 우리가 살아낸 세상의 아픈 편린 아니겠습니까.  옛날 일만은 아닙니다. 왜 해운대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설경구가 만취해 잠들었다가 속이 쓰리다며 일어나 엉겁결에 1회용 삼푸를 짜먹고 곤욕을 치르는 장면, 기억나시는지요? 요즘도 야식을 즐기거나 음주·흡연을 자주 하는 사람들 중에 더러는 자다가 쓴물이 차고 올라 잠을 깨기도 합니다. 그러면 흔한 제산제를 먹어 속을 달래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치료는 아닙니다. 분비된 산의 일부를 중화시켜 증상을 진정시킬 뿐, 위산이 과다하게 분비되거나 거꾸로 차고 오르는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니까요. 또 이런 제산제를 습관적으로 복용할 경우 위의 반사반응 때문에 더 많은 위산이 분비된다는 연구도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아주 사소하거나 너무 심각하거나  이런 위산 역류는 증상이 다양해 헷갈리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식도의 상부는 물론 울대 윗쪽 인두부까지 위산에 닿아 타는 듯한 작열감이나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이 통증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흉통처럼 느끼거나 헛배가 부르면서 트림을 할 때 역겨운 위산의 맛을 느끼기도 합니다. ‘신물이 넘어온다’거나, 폭음 후에 ‘똥물까지 다 게워냈다’고 할 때의 그 신물이나 똥물이 위산을 비롯한 위 속 소화효소지요.  증상이 항상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 무시하고 지나치는 사례가 훨씬 많습니다. 가슴이 쓰리거나 답답한 가슴앓이 증상을 보이는가 하면, 속쓰림과 신트림은 기본이고, 목에 뭔가 걸린 듯 하거나 식도 상부가 쓰리기도 합니다. 개중에는 역류한 위산이 성대를 건드려 쉰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고, 위산 역류로 생긴 가슴 통증을 엉뚱하게 심장병이라고 오인하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증상이 모두, 그리고 항상 위산과다나 위산 역류에 의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식도열공, 헤르니아, 담낭염이 원인이기도 하니까요.  그런 만큼, 이런 증상을 사소하게만 여겨 간단한 제산제로 수습하는 일을 반복하지 말기 바랍니다. 심해진 궤양이 천공이 되거나 큰 혈관을 건드리면 위와 십이지장을 절제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 위산 역류가 오랫동안 반복되다가 식도암으로 발전한 사례도 드물지 않으니까요.  더 심각한 문제는 갈수록 위산 역류질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의료계에서는 전체 인구의 40%인 2000만명 이상이 위산 역류를 경험했으며, 이 중 절반 가량은 병원 진료를 받은 적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치료가 잘 되지도 않습니다. 치료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들이 증상을 사소하게 여겨 자신의 나쁜 습관을 못 버리는 탓이 큽니다. 이 때문에 병원을 찾은 환자 중 최대 70%가 재발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사소하게’ 시작하는 위산역류질환을 ‘더 이상 사소하지 않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서구형 식생활이 주는 속 쓰린 결과  ‘서구형 식생활’을 말하면 먼저 떠오르는 계층이 젊은 층입니다. 기성 세대보다 훨씬 다양하고 폭넓게 서구형 식생활을 수용하고 있지요. 바로 이 계층에서 위산 역류질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더 기이한 사실은 남성보다 여성 환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위·식도 역류질환으로 진료받은 환자가 199만명이던 것이 5년 뒤인 2012년에는 336만명으로 늘었습니다. 연평균 14.2%씩 증가한 셈이지요. 또 이후 5년간 진료받은 위·식도 역류질환자는 여성이 58%로 남성(42%)보다 많았는데, 젊은 층인 20대의 경우 여성 위식도 역류질환자가 805만명으로, 남성(435만명)의 2배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뒤를 50대와 40대 여성이 잇고 있더군요.  여기에서 흔히 말하는 서구형 식생활이 어떤 식생활인지 간단히 짚고 가지요. 흔히 쓰면서도 애매한 말이니까요. 서구형 식단의 대표적인 특성은 우리에게 패스트푸드로 익숙한 밀가루 음식과 저질 육류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커피, 콜라 등 카페인 음료와 초컬릿, 스넥류 등이 포함되겠지요.  물론, 충분한 단백질과 싱싱한 채소 및 과일 섭취 등 제대로 된 서구형 식단은 장점이 많지만, 햄버거와 피자로 대표되는 싸구려 서구형 음식은 다릅니다. 이걸 ‘패스트푸드’도 모자라 ‘정크푸드’(쓰레기 같은 음식이라는 뜻)로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지요. 이처럼 입만 즐겁고, 몸에는 어울리지 않는 음식에 길들여진 세대가 바로 젊은 층입니다. 간단히 먹고 치울 수 있는 데다 상당한 습관성까지 보이니 왠만 해서는 떨치기 어려운 버릇이지요.  물론, 이런 식습관과 무관한 중년 이후 여성의 위산 역류는 간혹 호르몬치료와 연관이 있기도 합니다. 유방암이나 골다공증 치료를 위해 에스트로겐 치료를 받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서의 연구 결과, 호르몬 치료를 받은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위식도역류질환 발병 가능성이 46%나 높았으며, 에스트로겐 호르몬을 사용할 경우 그 가능성이 66%까지 높아졌다고 보고되고 있으니까요.  한국 전통음식이라고 이런 증상을 유발하지 않는 건 아니겠지만, 그 빈도는 높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카페인과 알코올, 초콜릿 등이 신경계에 작용해 분문의 식도괄약근을 약화시키기도 하고, 기름진 음식, 인스턴트 음식, 밀가루 음식과 불규칙한 식습관, 야식·편식과 비만이 훨씬 쉽게 위산 역류를 초래합니다.    ■모든 증상에는 대책이 있다  위산 역류는 초기 증상이 더부룩함이나 간단한 속쓰림 등 마치 소화불량 같지만, 이 단계를 넘어서면 가슴이 타는 듯한 통증이나 작열감 등이 나타납니다. 이 정도라면 위와 식도가 더 상하기 전에 치료를 서두르시기 바랍니다. 치료의 시작은 내시경검사입니다. 약물치료는 양성자펌프억제제(PPI)가 주로 사용되지만, 모든 약이 그렇듯 오래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마땅한 약제도 없는 한밤중에 위산 역류가 생겨 잠을 깼다면, 한 컵 정도의 생수를 천천히 마셔 식도의 위산과 소화효소를 씻어내린 뒤 바로 눕지 말고 얼마간 위장이 정리될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잠자리에 누울 때는 상체를 약간 높여주면 위산의 역류를 막는데 효과적입니다. 만약, 집에 생감자가 있다면 믹서 등으로 얼른 즙을 내서 마셔도 좋습니다. 이건 저의 경험담입니다.  명심할 점은, 이런 방법만으로 위산 역류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중요한 근치법은 식습관 등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런 노력 없이 알루미늄이 함유된 위산 중화제에만 의존하다가는 예기치 않는 위의 반란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중화제의 존재를 깨달은 위가 위장 내부를 산성화하기 위해 더 많은 위산을 분비하게 되니까요.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위산 역류가 심각하게 큰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겪어본 사람들은 그게 얼마나 귀찮고 짜증나는 일인지 압니다. 또 당장은 큰 문제가 아니지만, 드물게는 매우 위중한 사태도 낳을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몸에서 나타나는 모든 증상에는 대책이 있게 마련입니다. 만약, 이런 증상이 걱정이라면 곰곰 생각해 보세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증상이 나타난 거지?’라고. 그런 다음, 문제가 손에 잡히면 그걸 과감히 폐기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비만이든, 과식이든, 싸구려 서구형 식습관이든 모두.  jeshim@seoul.co.kr
  • [서울광장] 아이들 ‘바지저고리’ 만드는 오리무중 교육/황수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아이들 ‘바지저고리’ 만드는 오리무중 교육/황수정 논설위원

    교육부가 그 말 많던 인성평가를 대학 입시에 반영하지 않겠다고 백기를 들었다. 쏟아지는 부작용을 모른 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인성을 대입의 평가 잣대로 쓰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 지난 1월이다. 그때 학부모들은 말이 되지 않는 정책임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교육부는 반년이 걸렸다. 요령부득의 정책을 접겠다니 일단 한숨은 돌렸다. 하지만 조변석개(朝變夕改) 교육 방침에 이골이 난 학부모들은 긴장을 풀 수 없다.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된 마당이다. 학생 인성 교육을 위해 교육부 장관이 5년마다 관련 종합계획을 수립한다는 게 법의 골자다. 황우여 장관보다 더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장관이 다시 나오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요즘 아이들에게 인성 교육은 절실한 문제다. 그렇다고 바늘 허리에 실을 묶어 쓸 수는 없다. 인성은 시간을 두고 다듬어야 하는 훈육의 영역이지 속성 효과가 나타나는 교육의 범주에 애당초 있지 않았다. 인성 등급을 올려주겠다며 한 달에 수십만원씩 받는 학원이 이미 성업 중이다. 인성평가의 입시 반영 철회를 발표했지만 학원들은 문 닫을 것 같지 않다. 미련이 남았는지 교육부는 앞으로 교대와 사범대 입시에서는 인성 항목이 반영될 수 있도록 어떻게든 유도하겠다는 입장을 비친다. 어째서 교육부는 죽을 꾀만 내는지 알 수 없다. 중고생 자녀를 둔 엄마 몇한테만 물어도 빤히 답이 나올 일인데, 대체 누구를 붙들고 정책을 입안하는지 이젠 알고 싶지도 않다. 백번 천번 고민해 돌다리도 두들겨 만든 교육 정책이어야 동의를 얻는다. 무너질 걱정 없는 정책 마당 위에서 아이들은 활개를 칠 수 있다. 우리 상황은 완전히 거꾸로다. 이상과 현실의 거리가 얼마인지 실험하듯 툭툭 던져진 정책들은 아니면 말고 식이다. 이런 딱한 제도가 한둘이 아니다. 당장 2학기부터 시행되는 자유학기제 역시 학생, 학부모들에게는 오리무중 정책으로 통한다. 자유학기제는 대통령의 핵심 교육 공약이다. 중학교 과정의 한 학기라도 학생들에게 시험부담을 덜어 줘 꿈과 끼를 찾게 하겠다는 취지다. 올해 전국의 중학교 70%에서 1학년을 대상으로 시범 시행한 뒤 내년부터 모든 중학교로 확대하는 프로그램이다. 일찌감치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게 다양한 체험의 시간을 주자는 취지는 훌륭하다. 그러나 얼마나 실효가 있을지는 시작부터 회의적이다. 무엇보다 학부모, 학생들이 제도의 내용에 깜깜하다. 학생들에게는 지필고사를 보지 않는다니 그저 ‘신나는’ 시간이고, 학부모들에게는 학습 공백은 어떻게 메우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이다. 더 문제는 학교 선생님들조차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지난주 아이 학교의 설명회를 들렀다. 자유학기제 체험 프로그램을 담당한 교사는 엄마들에게 이것저것 설명하다 결국 “우리도 멘붕”이라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한 학기를 채워야 하는 백지 상태의 프로그램을 고작 네댓 달 만에 준비하기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일선 학교들의 고충과 혼란이 이만저만 아니다. 주요 과목의 수업 일수는 최대한 손대지 않으면서 정책의 입맛에 맞추는 프로그램을 눈치껏 짜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대통령 공약에 꿰맞추느라 엉뚱하게 아이들만 이중고를 겪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 방학을 맞은 학원가가 벌써 심상찮다. “자유학기제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실력 차가 하늘과 땅으로 벌어질 것”이라는 엄포를 놓는다. ‘자유학기제 집중 특강’을 내세운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나와 있다. 자칫 또 공교육만 놀게 될 판이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도를 제시하지 못하는 교육 정책은 학생들에게 불행이다. 차라리 그냥 두면 똑똑해질 아이들을 엉거주춤 바지저고리로 주저앉힌다. 고작 한 학기에 소방관 체험이나 토론수업 몇 시간 한다고 여유 있게 꿈을 찾을 수 있다는 계산은 어떻게 나왔을까. 입시 성적을 매기면 인성이 훌륭해질 거라는 발상과 똑같이 순진하다. 학생들의 진로 탐색에 진심으로 도움을 주겠다면 교육부는 당장 특별위원회라도 만들어 제대로 된 직업사전부터 갖춰 주는 일이 의미 있다. 적성을 고민해 보고 싶어도 미래 직업을 제시하는 안내서 한 권이 서점에 없는 현실이다. 실질을 챙기는 교육 정책이 아니라면 없는 편이 백번 낫다. sjh@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토종 물고기 보존하고 우리 농어민 보듬는다

    [명인·명물을 찾아서] 토종 물고기 보존하고 우리 농어민 보듬는다

     우리 강에서 토종 물고기들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갈수록 수질오염이 심각해지고 큰입배스, 블루길 등 외래종이 토종 생태계를 크게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서(水棲) 생태계의 무법자인 외래어종들은 우리나라 전 수역에서 빠른 적응력으로 왕성한 번식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엔 강원도의 한 저수지에서 사람까지 공격하는 무시무시한 아마존 식인 물고기인 피라니아와 레드파쿠가 발견돼 주위를 놀라게 했다. 전문가들은 토착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머지않아 토종 물고기의 씨가 마를 수밖에 없다. 이런 토종 물고기를 보존하고 산업화하는 시설이 최근 경북 의성군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문을 열었다.  낙동강 지류인 의성 비안면 서부로 위천변에 둥지를 튼 토속어류산업화센터. 경북도가 지난 5월 총사업비 186억원을 들여 완공했다. 도가 내수면의 무한 잠재력과 토속 어류의 산업적 가치를 인식하고 2007년 정부에 국비사업으로 건의해 추진했다. 최근 들어 내수면어업은 종자산업 및 관상어산업으로 연결되고, 농업과 결합한 친환경농업으로 이어지는 등 내수면산업화가 급부상하는 추세다.  토속 어류는 어느 일정한 지역이나 수역에만 분포하고 원래 그곳에서 서식하는 고유종이다. 일반적으로는 우리나라에만 살고 다른 나라에는 분포하지 않는 자생어종을 지칭하며 특산어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 자생어종은 모두 63종이다. 환경부는 이들 어종의 유전자 보호를 위해 해외로 밀반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대표 어종으로는 학술적 가치가 높은 어름치, 모양과 색채가 아름다워 관상어로 사랑받는 각시붕어, 영화로 유명해진 쉬리 등이 있다.  이곳은 기존 내수면연구소와는 차별을 두고 토속 어류를 이용해 돈이 되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새로운 개념의 전국 최초 연구소라고 경북도는 19일 설명했다. 총면적 7만 1700여㎡인 센터에는 실내외 양식시설, 친환경 논 농법을 연구하는 생태양식 시험포, 낙동강 토속 어류 종 보존시설, 정화시설 등을 갖췄다. 민물고기 전문가 8명도 포진했다.  실내 양식시설은 1·2동(608㎡)이 있다. 1동에는 종묘 생산용 어미 잉어, 붕어, 쏘가리, 비단잉어, 금붕어, 메기 등 물고기 5종 1000마리 정도가 사육 관리되고 있다. 이곳을 관람하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이 있다. 물고기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수조를 발로 툭툭 차거나 손을 수조에 함부로 넣어서는 안 된다. 먹잇감을 주거나 소리를 지르는 행위도 금물이다. 물고기들이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죽거나 산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에서는 낙동강 경북구간 700리에서 서식하는 토속 어류 23종을 구경할 수 있다. 새색시처럼 예쁘고 화려하다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각시붕어를 비롯해 아름다운 빛깔과 무늬를 뽐내며 1급수에서 서식하는 쉬리, 칼납자루, 줄납자루, 큰줄납자루, 참중고기, 긴몰개, 참몰개, 몰개, 점몰개, 왜매치, 돌마자, 됭경모치, 참갈겨니, 치리, 참종개, 미유기, 자가사리, 꺽지, 퉁가리, 얼룩동사리, 수수미꾸리 등이다. 대부분 신기한 모습이고 낯선 이름들이다.  어름치와 꼬치동자개, 흰수마자, 얼룩새코미꾸리, 둑중개, 묵납자루 등 다른 6종의 토속 어류도 낙동강 경북구간에 서식하지만 이곳에는 없다. 각각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 사육 관리가 엄격히 제한되기 때문이다. 센터는 환경부로부터 생물자원보조시설로 지정받은 뒤 이들 어류를 전시할 계획이다.  이처럼 낙동강 경북구간에 많은 고유어종이 사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경북이 지리적으로 산악지대가 많은 데다 크고 작은 강과 하천이 실핏줄처럼 이어져 어자원이 서식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라고 센터 관계자는 설명했다. 바로 옆 2동(종묘 생산동)에서는 쏘가리, 메기, 미꾸리, 동자개, 대농갱이 등 5종의 물고기 100만 마리 정도가 알에서 깨어나 치어까지 성장하는 과정(채란-수정-부화-자어-치어)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관람객들에게는 소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야외 사육수조(2026㎡)에는 치어와 어미 물고기 150여만 마리가 살고 있다. 관람객들이 수조 가까이 다가서면 물고기들이 한꺼번에 떼로 몰려들어 장관을 연출한다. 먹잇감을 던져 주는 것으로 착각해서지만 금세 알아채고는 흩어진다. 이곳의 치어들은 오는 9월쯤 토종 어자원 보호 등을 위해 도내 다양한 하천과 지류에 방류될 예정이다.  센터 한쪽 가장자리에는 벼와 메기, 미꾸라지가 공생하는 현장이 있다. 논농사를 지으면서 논에서 미꾸라지와 메기를 함께 키울 수 있는 ‘친환경 논 생태양식 기술’ 개발이 시도되는 곳이다. 논에서 내수면 어종을 벼와 함께 키우면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병해충을 예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벼만 수확하는 단일 경작농가에 비해 5배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을 고려한 기술이다. 벼를 심은 시험포(4198㎡) 6곳에 미꾸라지 4만 4000마리와 메기 2만 마리가 함께 서식하면서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이 이채롭다.  센터는 토속 어류 관상어 개발사업 청사진도 보여 줬다. 앞으로 버들붕어, 각시붕어, 감돌고기, 묵납자루, 꼬치동자개, 가시고기, 쉬리, 수수미꾸리 등 10여종을 관상어로 개발해 산업화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관상어 산업 규모는 2009년 2300억원에서 2013년 4090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수입액도 매년 90억원이 넘는 등 도전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권기수 경북도 토속어류산업화센터장은 “방문객들에게 낙동강 경북구간 수계에 서식하는 우리의 소중한 고유어종을 소개하고 그 가치를 일깨워 주는 현장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또한 종묘생산 기술 개발을 통해 외래어종에 잠식당하고 있는 낙동강 생태계를 건강하게 지키고 토속 어류 관상어 사업, 고부가어종 시험 연구 등에도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의성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글로벌 시대] 문화를 알아야 고객 반응도 좋다/김창후 LG전자 고문·전 터키법인장

    [글로벌 시대] 문화를 알아야 고객 반응도 좋다/김창후 LG전자 고문·전 터키법인장

    2007년 섣달 그믐 즈음 밤늦게 인천공항에서 이스탄불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0시간이 넘는 긴 비행 시간 내내 고민은 사라지지 않았다. 출범하는 오스만튀르크 제국(현 터키)의 법인 대표로서, 유서 깊은 시장과 고객을 이해하고 현지 고객의 마음속에 어떻게 우리의 브랜드를 감성적으로 연결해 바람직한 이미지를 심어 줄 것인가. 신규 법인 조직의 역량을 어떻게 키워서 빠른 시간 내에 본사 기대에 부응하는 매출과 수익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고성과 회사로 성장시킬 것인가. 유럽의 관문 아타튀르크 이스탄불 공항 입국 수속 절차를 밟고 있는데 한국에서 온 것을 눈치 채고 웃음을 띠면서 우리말로 짧은 인사를 건네는 공항 직원의 친절함에 피곤이 확 풀렸다. 짐을 찾고 공항터미널을 빠져 나갈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터키 남자가 자신의 담뱃갑 밑을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한 개비를 뽑아 주었다. 푸근하기만 한 터키인의 넉넉한 제스처가 한때 우리 시골 마을에서 담배가 떨어지면 으레 나누어 피우던 그 시절의 정경을 상기시켰다. 반도의 국민들은 감정적인 편이라고 하던데 터키인도 그런 이유에서 예외는 아닌 것 같았다.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까지 사무실 직원들과 상호 교감하며 소통하는 과정만으로는 유구한 역사의 배경을 등 뒤에 안고 있는 터키인들의 사회·문화적으로 내재된 요소를 인지하기에는 너무 부족했다. 약 한 달간의 5성급 호텔 생활을 끝내고 터키인의 집에 들어가 진정한 의미의 “터키 가족의 일원으로서 하숙 생활”을 하기로 했다. 시내 사무실에서 20여분가량 떨어진 중산층 마을인 ‘사리에르’에서 하숙 생활을 했다. 하숙 생활은 경영학이나 마케팅 책에서 결코 학습하기 어려운 높은 차원의 실증적 지혜와 깨달음을 주었다. 새롭고 값진 현지 통찰력을 바탕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었다. 하숙집 주인 위날의 부친은 6·25전쟁 참전 용사다. 위날의 부친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것을 자랑스레 여겼다고 한다. 혈맹의 역사적 유대 관계뿐 아니라 축구가 전 국민 생활의 일부이기도 한 터키인들에게 2002년 월드컵 3·4위전에서 한국의 팬들이 패했음에도 터키를 응원했다는 감동적인 사실은 그들의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형제 관계임’을 새겨 놓은 중요한 계기가 된 것 같다. 먼 시골이나 산간 마을에서 만난 촌부도 한국을 우선 ‘형제 우의의 나라’라는 말부터 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아침 새벽잠을 깨우는 모스크(사원)를 호기심으로 방문해 반갑게 맞는 마을 어르신들로부터 차 대접을 받고 올 때도 있다. 주말이면 주인 아저씨와 ‘보스 포로스’ 해변가 둑을 따라 하는 조깅도 일상화됐고, 근처 국립공원에서 텐트 치고 ‘망 갈’ (고기 바비큐) 파티도 밤늦도록 하며 도수가 높은 현지의 술 라크를 즐기곤 했다. 바비큐와 라크는 완벽한 궁합이라고 주인집 아저씨는 강조하며 술을 권하곤 했다. 터키에 조금씩 적응하면서 현지 직원과의 업무 보고 및 지시도 전보다 반응도 좋아 자신감이 생겼다. 직원들은 하숙 생활 시도에 대해 “현지 경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공감하면서 성큼 내편을 들어 줬다. 외부 대형 거래처 사장들도 나의 홈스테이를 좋은 시도였다며 격려의 편지를 보내 주었다. 그들은 우리의 제품을 그들의 매장에서 판매하는 데 성의를 보이며 챙겨 주기도 했다. 비즈니스에서도 터키인들은 감동적이고 정이 많았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
  • [독박(讀博) 육아일기] (15) 불어난 몸무게 만큼 고통과 행복이 함께 늘었다

    [독박(讀博) 육아일기] (15) 불어난 몸무게 만큼 고통과 행복이 함께 늘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의 내 삶이 어땠는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아이는 커다란 존재가 됐다. 불과 2년 전까지 아기가 없던 집에 우리 부부가 어떻게 지냈던 건지도 사진을 통해 확인하는 수준이다. 그렇지만 아기를 품고 있던 시간의 기억은 매우 강렬하게 남아있다. “임신을 하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궁금하다”는 후배의 초롱초롱한 눈을 떠올리며 기억을 끄집어냈다. 남자들 사이에서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만큼 엄마들 사이에선 임신 기간의 사연과 출산 후기가 화수분 같은 수다 주제다. 드라마에서는 밥을 먹다 갑자기 “우웩”하면서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주변에서 “혹시 임신 아니야?”라는 장면이 꼭 등장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아기가 나에게 왔을 것 같다는 직감이 먼저 들었다. 전혀 계획이나 준비를 하지 않던 때였는데도 느낌이 왔다. 임신을 확인하자 그 때부터 속이 울렁거린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열 달 내내 구토를 하는 입덧에 시달리는 임신부들도 많은데 그나마 복 받은 경우였다. 밖으로 빼내는 것은 한 번도 없었고 오히려 속을 채워야 하는 입덧이었다. 이름도 생소한 ‘먹는 입덧’. 배가 고프면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초반에는 하루종일 속이 느글거려서 쉽게 넘어가는 음식도 없었다. 한밤 중에 자다가도 속이 쓰려 맨 밥을 퍼먹었다. 종일 느끼한 속을 부여잡고 있으니 먹고 싶은 것은 맵고 자극적인 것들 뿐이었다. 며칠 동안 일하다 말고 매점에 내려가 작은 컵라면을 사먹으며 속을 달랬다. 먹고 나면 죄책감이 밀려와 괴로웠지만 국물을 들이키던 그 순간 만큼은 속이 편했다. 먹으면 안 된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더 먹고 싶었다. ●”나 혼자 먹는 게 아니다” 삼시 세 끼가 스트레스 12주까지의 울렁거림이 끝나자 폭풍 식욕이 밀려왔다. 먹는 입덧의 진가를 드러냈다. 살 찌는 걱정 없이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을 수 있어 즐거웠고 그 결과 몸무게도 무려 20kg나 불어났다. 그렇지만 사실 매일 밥을 먹는 일이 너무 곤혹스러웠다. 잘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침은 출근하느라 빵이나 김밥으로 떼웠고 점심은 회사에서 먹었으니 문제가 없었지만 저녁식사가 늘 골치 아팠다. 남편이 퇴근시간이 늦어 늘 혼자였다. 매일 혼자 무언가를 ‘제대로’ 챙겨 먹어야 한다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퇴근하고 9시쯤 들어가 요리를 하고 챙겨먹기가 쉽지 않았다. 나 혼자 먹는 게 아니다, 내가 먹는 것이 태아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늘 어깨를 짓눌렀다. 그래도 제대로 먹지 않았으니 마음만 불편했다. 가끔씩 정말로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면 집으로 포장해오다가 나중에는 혼자 식당에서 먹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혼자서는 외식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임신부가 되니 혼자 짬뽕 한 그릇을 해치우거나 순대국밥을 후루룩 먹는 것 정도는 거뜬히 할 수 있게 됐다. 사실 가장 먹고 싶은 것은 엄마가 해주는 밥이었다. 만날 뭔가를 먹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하는 것도 은근히 눈치가 보였다. 남편에게 한 여름 새벽에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하거나 생뚱맞은 음식을 사오게 해서 골탕을 먹이는 일은 할 겨를도 없었다. 밤마다 꿈에서 해외에 사는 친정 엄마를 만났다. 하루는 엄마와 함께 마트에 가서 “엄마, 고구마 먹고 싶어”라고 말을 했는데 엄마가 바로 얼른 사라고 답했다. 그 말을 하는 내가 너무 행복해서 꿈에서 깬 뒤로 며칠을 울었다. 엄마가 담근 김치, 엄마가 무친 나물, 엄마표 잡채. 요리를 막 마친 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엄마의 반찬을 호호 불며 집어 먹던 때가 무척 그리웠다. 무엇보다 임신 기간 중 가장 괴로운 것은 졸음과의 싸움이었다. 원래도 잠이 많긴 했다. 그런데 아기를 가진 뒤 몰아치는 잠은 대단했다. 임신 초기에는 쉴새 없이 졸렸고, 후기로 갈수록 불편해서 잠을 못자 피곤했다. 특히 일을 하는 동안 걷잡을 수 없이 잠이 쏟아졌다. 휴식 공간을 마땅히 찾지 못해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차 뒷좌석에 몸을 포개 20~30분 잠을 잤다. 제대로 잠도 못 잤을 뿐더러 정신을 차리고 나면 온 몸이 사우나를 한 것처럼 땀 범벅이 됐다. 거의 매일 화장실 변기 위에 걸터앉고 고개를 숙이고 쪽잠을 청했다. 요즘 화장실들이 좋아져 전부 비데가 설치돼 있다 보니, 변기 뚜껑을 덮어도 평평하지가 않다. 그리고 반듯한 변기 뚜껑 보다 힘이 약하다. 그 위에 대충 엉덩이를 걸치고 칸막이 벽에 머리를 댔다. 그렇게라도 10분 남짓 잠을 자면 조금 견딜 수 있었다. 나중에 돈이 생기면 많은 회사들이 몰려있는 광화문 한복판에 일하는 임신부들을 위한 ‘수면 카페’를 하나 차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배가 불러온다…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갑작스런 체중과 호르몬 변화 등으로 점점 내 몸이 내 것 같지 않았다. 임신부 체험 교육 등에서 남편들에게 10kg 이상의 짐을 배에 얹고 움직여보게 한다. 출산 기간 동안 평균적인 체중 증가는 10~12kg 정도로 알려져 있다. 8~9개월 사이 몸이 10kg가 불어버린다면 어떨지 감이 올까. 그것도 배만 불룩하게 나오면서 허리, 엉덩이, 다리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손 발은 퉁퉁 붓고 머리는 괜히 시도 때도 없이 어지러웠다. 25주쯤,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몸이 힘들어졌다. 허리가 아파서 오랫 동안 앉아 있는 것도, 서 있는 것도 괴로웠다. 다리가 부어 자다가 쥐가 나 소리를 지르며 깬 날이 수두룩하다. 아기가 본격적으로 태동을 시작하면서는 가뜩이나 앉아있는 것도 고통스러운데 하도 배가 꿀렁꿀렁거리니 사무실 책상에 닿는 배 부분이 아플 정도였다. 출산이 가까워질수록 배에서 아기가 튀어나올 것 같은 태동이 이어진다. 8개월부터는 밤에 잠을 자는 것도 어려운 시간들이 온다. 허리가 눌려서 반듯하게 누워서 잘 수는 없고 옆으로 자는 것도 무게가 쏠리다 보니 수시로 잠에서 깼다. 자다가 시도때도 없이 화장실에 가야하는 것은 이미 익숙해졌다. 임신 초반에만 잠깐 운전을 하고 계속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했다. 운전하는 데 정신적인 소모가 많아서였다. 운동을 할 겸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편도 1시간 거리를 움직였다. 20주를 앞두던 때에 처음으로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 받았다. 너무 감격스러워서 곧바로 SNS에 기록을 남겼다. 이후 만삭까지 누군가에게 양보를 받아 자리에 앉은 것이 열 손가락 안에 든다. 임신부처럼 안 보여서였을까, 라고 애써 좋게 생각해야 하나. 특히 10분도 서 있기 어려웠던 만삭일 때가 하필 겨울이어서 외투와 머플러로 배가 감쪽 같이 가려졌다. 오히려 옷이 가벼웠을 때, 배가 덜 나왔을 때보다 앉지 못했다. ●임신부에게는 자리 양보 말고도 필요한 게 많다 임신부에게 왜 그렇게 ‘자리’를 강조할까. 지하철 타는 것이 그렇게 힘들면 차를 가지고 다니면 되지 않나. 나도 이렇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늘 지하철을 타고 통학과 출퇴근을 했으면서도 막상 배가 불러보니 30분 남짓 서서 가는 길이 너무도 멀어 보였다. 운전을 하면 계속 앉아있을 수는 있지만 배가 나와 운전대에 부딪히고 그러다 보니 자세가 불편했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창문을 열고 운전하면 앞차의 담배 연기에 시달려야 했고 혹시나 담뱃재라도 튈까봐 항상 노심초사했다. 운전이라는 게 나 혼자 조심한다고 안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내 긴장을 해야 하니 마음이 편한 것은 대중교통 쪽이었다. 버스와 지하철에 서서 타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머리는 핑 돌고 어지러웠다. 차라리 그 자리에 주저 앉아 가고 싶을 만큼 진땀이 났다. 처음에는 노약자석에 앉기가 민망해서 일반석 쪽에 서 있었지만 나중에는 문이 열리자마자 곧바로 노약자석으로 갔다. 일반석에 서 있는 것이 마치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라고 무언의 시위를 하는 처지가 된 것 같아서였다. 11월 어느 날에는 출근길에 노약자석에 앉아 깜빡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나를 툭툭 쳐서 깨웠다. 중년 여성이었는데 남편이 다리가 아프니 일어나라고 했다. 허겁지겁 일어난 뒤 다시 돌아보니 발목에 감긴 붕대가 살짝 보였다. 물론 내가 크게 다쳤거나 당장 힘듦을 못 참을 정도로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게 왜 그렇게 서럽던지. 우리나라 아줌마들이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가방을 집어던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리 쟁탈전’을 벌이는 것이 어쩌면 임신했을 때의 서러운 기억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장 자리 양보를 잘 안 해주는 것은 20대 초반 여성들이었다. “너희들 나중에 임신해서 똑같이 당해봐라” 저주에 가까운 생각을 하며 노려봤다. 나 역시 임신부인지 아닌지 헷갈린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아 상처를 준 일이 있었을 것이다. 후회가 됐다. 그 다음 잘 안 해주는 40~50대 아주머니들에겐 “본인들도 다 겪었으면서 왜 양보를 안 해줄까” 더 서운했다. 자리가 없는 지하철을 타면 차라리 곧바로 문 앞에 손잡이를 잡고 서는 것이 가장 마음 편했다. 임신부가 되어 보니 우리나라가 저출산 국가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임신부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 전에는 어린 아기도, 임신부도 잘 보이지 않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여전히 임신부는 희귀한 존재인 것 같다. 그래서 여전히 임신한 여자를 보면 신기한 구경이라도 하는 양 빤히 쳐다보고, 아무나 배를 만져보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품고 있는 아홉 달 동안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배려와 도움이 필요하지만, 정작 대다수의 사람들은 임신부에게 자리 양보하는 것 말고는 뭘 도와야할지 전혀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내 자식 내가 품고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내 안에 새로운 생명을 지니고 있는 일인데 정말 힘이 들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일들은 두고두고 상처로 남았다. ●힘들었던 시간, 그래도 임신부가 부러운 이유 오랜만에 기억을 쏟아냈더니 힘들고 서러웠던 일들이 주루룩 나왔다. 그러나 요즘 나는 주변에 많은 임신부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느낀다. 몸은 많이 힘들었지만 정말 행복했던 기분이 남아있다. 특히 7~8개월쯤은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너무 행복해서 일하다 갑자기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가는 길을 손꼽으며 아기를 기다리는 설렘도 달콤했다. 매일 아기에게 편지를 쓰며 사랑과 고마움을 듬뿍 담았다. 호르몬의 영향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한 안정감이 느껴졌고, 뭐든지 좋게 보려고 노력해서였는지 즐거웠다. 물론 평소보다 더 예민해져서 동료들의 가벼운 농담에도 화를 버럭 내기도 했고, 말 한 마디에 꽁해서 토라진 적도 있었다. 내 몸무게가 늘어날수록 고통도 늘어났지만, 한 편으로는 행복함도 배로 늘어났다. 그래서 누군가 임신을 했다고 하면, 다른 무엇보다도 그 행복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부럽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홉 달 동안 자그마한 태아가 정말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서는 더 많은 것을 바꿔서, 비록 2년 전인데도 아득한 옛날 일처럼 되어버렸지만. 가끔 홀쭉해진 배가 허전하게 느껴질 만큼 문득 그 시간들이 그립기도 하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이 기사의 관련기사 (1)나홀로 육아 1년…외로움을 말한다 (2)엄마들은 왜 ‘토토가’를 보고 울었나 (3)엄마가 될수록…엄마만 필요했다 (4)세월호 참사가 초보 엄마에게 가르쳐준 것들 (5)내 아기가 타고났기 바라는 한 가지 (6)CCTV 단다고 걱정 사라질까 (7)“아기 왜 없어?”묻지 못하는 이유 (8)모유, 엄마의 눈물을 아기는 먹고 자란다 (9)잘하는 것도 없이 모두에게 미안한 삶 (10)나는 아이를 키우고 아이는 나를 키운다 (11)’아빠 육아’ 예능을 끊은 이유는 (12)엄마들은 왜 찌라시를 퍼다 날랐나 (13)온종일 놀면서 왜 어린이집에 맡기냐구요? (14)수능 성적표보다 떨렸던 아이 검진표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어른스러워서 더 건강한 노후

       건강한 노후에 대하여 그로부터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일년감 할매’의 주름이 깊어 쪼그라든 얼굴이 떠오르거나, 문득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일년감 할매가 돌아가신 게 30년도 전이니, 지금쯤 하늘 어디에선가 어설픈 작대기 하나로 굽은 등 버티며 바지런히 일년감 밭을 일구고 계시겠지요. 요새 흔한 토마토를 예전에는 흔히 일년감이라고들 불렀습니다.  나이가 들어 ‘노친네’의 자리를 꿰차고 앉아 ‘어른’ 노릇 대신 한사코 세상에 대거리를 하려고 드는 분들을 볼 때마다 그 할매 얼굴이 떠오릅니다. 너무 바싹 말라붙어 불씨라도 얹히면 금새 활활 타오를 듯 살벌하고 강퍅한 세상이어서 나이 잘 든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인가 봅니다. 나이 든다는 건 건강 상태가 점차 취약해진다는 뜻이니, 누구라도 건강한 노후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하는 건 당연한 얘기이지요. 그런데, ‘건강한 노후’라고 하니 자꾸 신체의 건강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예전의 체육정책의 슬로건이 틀린 건 아니지만, 뒤집어서 정신이 건강하면 몸의 건강이 따르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니, 다 생각 나름인 것 같습니다.  나이 든다는 것은 양보와 배려를 안다는 것  나이 드신 분들은 체력은 물론 면역력이나 섭생 등 건강의 기초가 취약한 데다 자칫 세상의 일에서 배제되고 소외됐다고 여기기 쉬워 잘 살펴야 하는데, 요즘의 세상을 보면 뭐가 그리도 바쁜지 젊은 사람들이 노인을 따로 돌아보는 일도 없어 뵈고,그래선지 더러는 한사코 엇나가 세상일에 버럭질이나 하려고 드는 노인들이 더 많아지는 듯도 합니다.  ‘경로(敬老)’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나이 들어 근력이 약해진 고령의 노인들을 고된 일터에서 물러서게 해 노후를 편하게 맞으라는 기성세대의 배려이기도 하고,이제는 몸을 내세워 일하기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삶의 경륜을 잇게 하는 소위 ‘어른 노릇’을 하시라는 주문일텐데, 어른 노릇을 하려는 쪽이나 가르침을 받으려는 쪽이나 다 그런 염의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온몸으로 아이들 지키려다가 그만 실신해 자빠진 옛날의 그 일년감 할매가 두고 두고 그리울 밖에요.  이웃에 사셨던 그 할매는 노인 반열에 들어서도 여전히 숫기가 없어 말도 가려서 하셨고, 오지랖 넓게 이 일, 저 일 설치지도 않는 그냥 찬찬한 성품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가세가 풍족해 몸을 놀리지 않아도 먹고 사는 일이 어렵지 않은 살림이 못 됐던 탓에 종일 들에 나가 하다 못해 밭두렁에서 쇠비름이라도 뜯어야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간다는 타고난 농투산이 일꾼이기도 했지요. 워낙 말수가 없어 하루 종일 들일을 하면서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입을 열지 않았는데, 젊은 아낙들이 “아니, 고되실텐데 죙일 입 막고 무슨 일만 그렇게 하시느냐”고 농이라고 건넬라치면 그제서야 쪼글쪼글한 얼굴에 소녀같은 웃음을 지으며 “쉰소리 해봐야 배나 꺼지지”라고 내뱉듯 대꾸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잘 가꿔 탐스러운 일년감의 유혹  아마 제가 초등학교 1∼2학년 무렵이었을 겁니다. 그 할매가 한 해는 마을 초입의 텃밭 귀퉁이에 토마토를 심었는데, 조석으로 돌보고 갈무리한 덕분에 어떤 놈은 어른 주먹을 둘쯤 보태놓은 것처럼 크고 실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오가면서 발그레 맛이 들어가는 토마토를 볼 때마다 한 입 베어물고 싶은 생각에 한참씩 그걸 바라보곤 했는데, 코흘리개가 입맛을 다시며 토마토를 쳐다보는 모양이 그랬던지 그 할매는 “다 익으면 너도 한 개 줄테니 좀만 기다려라”시며 오져 하곤 했지요. 그 뒤로 학교가 끝나면 굴렁쇠를 굴리며 부리나케 집으로 향해 그 집 텃밭에서 익어가는 토마토를 곁눈질하며 지나치곤 했는데, 하루는 어린 나이에 그 탐스러운 일년감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일을 벌이고 말았습니다.  그 날, 저녁을 먹고 나서 또래 동무와 둘이 슬그머니 마을을 빠져나왔습니다. 일부러 마을을 멀리 돌아 나간 뒤 다시 마을로 들어오는 길을 잡아 들어오면 그 텃밭이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아이들이라도 상당한 지능범 수준이어서 요즘 신문, 방송에서 뉴스 보도하는 식으로 말하면 ‘계획 범행’임에 틀림없습니다. 벌써 어두워졌지만 어둠이 눈에 익어 주렁주렁 달린 토마토가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주변을 쓱, 살핀 뒤 날다람쥐처럼 생울을 비집고 텃밭으로 들어가 손에 잡히는대로 토마토를 서너개 따 들었는데, 아뿔싸, 마을쪽 텃밭 어귀에서 할머니의 쇠된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눔들, 가만 있거라. 그거 먹으면 안 된다”며 토마토밭 고랑을 타고 후적후적 달려오는 소리에 그만 오금이 얼어붙었습니다.  어느새 이마에는 찐득하게 진땀이 배고,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 숨조차 쉬기가 어려웠는데, 그 때 밭고랑에 바싹 엎드려 있던 동무가 다급하게 나를 잡아끌고는 냅다 줄행랑을 쳤습니다. 그 와중에 간이 쪼그라들어 토마토는 어디다 내던졌는지 기억도 나질 않습니다. 어둑한 밭두렁을 타고 걸음아 날 살려라 내달리는데, 참 일이 난감하게 됐습니다. 그 할매가 한사코 뒤쫓아 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들 다람쥐같이 뛰는 아이들을 따라잡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한참을 뛰다가 돌아보니 멀리 신작로 어귀에서 그 할매가 가쁜 숨을 내쉬며 여전히 고함을 질러대고 계셨습니다. 가만 들어보니 “그거 먹지 말고 이리 가져와라. 내가 사탕 주마”라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할매는 숨길이 가빠 몇 걸음 떼다가 이내 길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는데, 그 때까지도 숨을 헐떡거리며 “그거 갖고 이리 와라”고 쇠된 소리로 외치고 계셨습니다. 부리나케 뛴 덕분에 잡힐 걱정은 없었습니다. 사방이 어두워 우리가 누군지 알 턱도 없고, 이 길로 뽕밭은 가로 질러 마을 뒷편으로 돌아 집으로 들어가면 쥐도 새도 모를 일이었지요.  막 따 쥔 토마토를 내버리고 튀는 동무도 마찬가지여서 둘 다 헛웃음만 내뱉으며 몰래 마을 뒤 고샅길로 들어섰는데, 마을 어귀에서는 그 할매의 고함소리에 놀란 아낙들이 두런거리며 눈을 꿈벅이고 있었습니다. 텃밭이 마을 입구여서 요요한 저녁에 할매가 내지른 고함소리가 마을 곳곳으로 퍼져나갔을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니까요. 벌렁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집으로 들어왔는데,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어머니가 닥달을 하십니다.  “이눔아, 토마토 어쨌어. 당장 내놔” 불문곡직 불호령부터 쏟아내는 어머니에게는 둘러댈 말도 생각나지 않았고, 꿀먹은 벙어리처럼 웅얼대다가 마침내 전말을 죄다 토설해야 했는데, 그 때 골목 어귀에 나와 있던 아낙들이 두런대는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와박혔습니다. “찬호 할매가 실신해 신작로에 나자빠진 걸 찬호 아부지가 업어왔대. 이게 무슨 일이래” 뜻밖에 사단이 지경이 되고 보니 당장 제 멱살을 거머쥐고 찬호 할매한테 달려가 이실직고라도 할 태세이던 어머니도 목소리를 낮추고 가만 바깥 동정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러면서도 “이 일을 어쩔래”라며 연방 머리통을 쥐어박았는데, 저는 낯이 뜨겁고 가슴이 울렁거려 숨도 크게 쉴 수 없었습니다.  웅숭 깊었던 그 할매의 배려  그 밤, 찬호 할매가 기를 쓰고 우리를 뒤쫓았던 사연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 날 해질녘, 찬호 할매가 토마토밭에 농약을 쳤는데, 요즘처럼 기능성이 강화된 농약이 없던 시절이어서 무식하게 독성만 센 DDT를 뿌렸다는 겁니다. 그 시절에야 분무기도 없어 그냥 하얀 DDT를 삼베주머니에 넣은 뒤 밭고랑을 따라가며 막대기로 툭툭, 쳐서 뿌리곤 했는데, 낮이라면 허연 DDT 가루가 금방 눈에 띄어 따먹을 엄두도 못 냈겠지만 밤에 일을 벌였으니 그게 눈에 보일 리도 없고, 그래서 철부지들이 주린 배에 그걸 맛있다고 따먹었더라면 아마 개거품 물고 나자빠졌겠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신에서 힘이 빠지며 왈칵, 눈물이 흘렀습니다. 어린 ‘세견머리’에 토마토가 아까워 그렇게 악다구니를 부렸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혹시라도 토마토를 먹고 어찌 될까봐 당신은 실신하도록 우리 뒤를 쫓으며 “그거 먹지 말고 가져와라. ‘아메다마’(사탕) 줄테니 이리 와라”시며 한사코 우리 뒤를 쫓으신 거지요. 찬호 할매가 절규처럼 토해낸 외침이 밤새 귀 속에서 징징 울렸습니다.  어른스러워서 더 건강한 노후  다시, 그 날을 생각합니다. 다들 잠자리에 드는 저녁까지 혹시 농약 사단이라도 날까봐 텃밭을 떠나지 못한 그 할매의 심지 깊은 사려가 없었더라면 제가 지금 이 곳에 있지도 못했겠지요. 그 어른스러운 마음씀이 자꾸 지금의 노인들과 겹쳐 새삼 가슴이 아려옵니다. 막말로, 누군가 야밤에 토마토를 서리해 먹고 죽어나가도 요즘 정서로 말하자면 그 할매는 책임질 일이 없는 일이지요. 그 시절에야 그냥 서리였지만 요즘으로 치면 절도니까요.  나이를 잘 먹는다는 것, 그 수준을 넘어 아름답게 늙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일만은 아닙니다. 노탐의 무게에 짓눌려 아귀처럼 남의 것 뺏으려고만 들거나,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서 젊은 사람을 마치 변종 바이러스처럼 여기는 건 천박하고 강퍅해 보여 싫습니다. 도대체 세상을 어떻게 살았길래 나이 들어서도 젊은 사람에게 충고는 언감생심 권고 한 마디 건넬 요량을 못 갖췄으며, 이념에 대한 생각은 또 왜 그렇게 꽉 막혀 있는지 한심합니다. 나이 들어 수수함의 격을 잊고 비싼 옷, 값진 장신구로 겉치장만 해대 돈자랑 하려고 드는 것도 저급하고, 뭘 그리 세상을 올곧고 바르게만 살았는지 허구헌날 목에 핏대만 세우려 드는 관용을 모르는 노후도 안타깝습니다.  찬호 할매야 초등학교도 못 나왔으니 당연히 글을 읽고 쓰지 못하고, 평생을 빈천하게 살았으니 노탐이라야 이밥에 쇠고깃국 한번 원없이 먹어보거나,안 아프고 편하게 죽는 것이었을테고, 주제를 아는 탓에 그 나이토록 누군가를 단죄하거나 가르치려는 생각도 꿈에도 못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살면서 무시로 그 할매 얼굴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그런 추억이 몰래 토마토 하나 따먹으려다 들통 나 뽕밭 어름에 납작 엎드려서 들었던 개구리 울음이 그리워서라기엔 그 분의 마음이 너무 따뜻하고 곱습니다. 저의 철 없는 서리 행각이 부끄럽다고만 여기기에는 그 분의 정이 너무 이타적입니다.  건강한 노후를 위해서는 당연히 몸의 건강을 살펴야 합니다. 그래서 기를 쓰고 좋은 것 찾아 먹고, 운동도 열심이지요. 그런 노후가 보기 좋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나이 들면서 마음 건강을 도모하는 지혜도 몸 건강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아직 그 나이에 이르지 않아서 제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럴 수 있다면 이기심, 노탐, 벽창호 같은 옹고집을 좀 덜어내고, 그 자리에 배려와 양보, 넉넉한 포용과 비움의 미덕 같은 걸 채워넣고 싶습니다. 정신 건강에는 그런 것들이 약이니까요.  아마도 찬호 할매는 하늘에서도 자그마한 땅에 일년감을 키우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삶이 지상에서든, 천국에서든 모든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노후를 고민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피할 수 없는 게 많고, 한사코 운명을 회피하려다 추해질 수도 있을 터이니 너무 애 닳아 하지 말고, 찬호 할매가 그랬듯 주변도 돌아보면서 사는 게 건강하고 아름답게 늙어가는 선택 아닐까요. 내려 놓을 것 조금씩 내려 놓으면서….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프로듀사’ 차태현-공효진-김수현 삼각관계…공효진 “뽀뽀는 왜 했냐!”

    ‘프로듀사’ 차태현-공효진-김수현 삼각관계…공효진 “뽀뽀는 왜 했냐!”

    ‘프로듀사 차태현 공효진 김수현’ ’프로듀사’ 차태현이 공효진의 마음을 거절한 가운데 김수현, 공효진, 차태현의 삼각 관계가 본격화됐다. 지난 29일 방송된 KBS2 ‘프로듀사’ 5화에서 차태현은 만취한 공효진의 고백을 모른 척 하지만 극 후반에서 김수현과 얽힌 사연이 공개돼 삼각 관계의 서막을 알렸다. 극중 공효진은 술에 취해 신발을 벗고 화장실에 들어가고, 고백과 애교 등 연이은 술주정을 선보였다. 아기처럼 먹고 싶은 메뉴를 줄줄이 읊고, 혀 짧은 소리로 “포장마차에 가자”고 조르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특히 만취한 공효진은 자신을 친구로만 대하는 차태현에게 투정을 부리듯 툭툭 쏘아대는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억눌러 왔던 마음을 털어놓는다. 결국 공효진은 차태현에게 “선 볼 거면서 내게 뽀뽀는 왜 했냐”며 소리를 지르고, “마음을 털어 놓을 사람이 없어 힘이 든다”며 눈물을 보였다. 공효진의 섬세한 연기 덕에 예진의 감정은 시청자들에게 깊이 있게 전달됐다. 극 후반에 차태현이 공효진의 마음을 알면서도 친구 관계를 선택했다는 것이 드러난 가운데 김수현이 공효진과 차태현의 관계를 질투하는 모습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프로듀사’ 차태현-공효진-김수현 삼각관계 본격화…공효진 “뽀뽀는 왜 했냐!”

    ‘프로듀사’ 차태현-공효진-김수현 삼각관계 본격화…공효진 “뽀뽀는 왜 했냐!”

    ‘프로듀사 차태현 공효진 김수현’ ’프로듀사’ 차태현이 공효진의 마음을 거절한 가운데 김수현, 공효진, 차태현의 삼각 관계가 본격화됐다. 지난 29일 방송된 KBS2 ‘프로듀사’ 5화에서 차태현은 만취한 공효진의 고백을 모른 척 하지만 극 후반에서 김수현과 얽힌 사연이 공개돼 삼각 관계의 서막을 알렸다. 극중 공효진은 술에 취해 신발을 벗고 화장실에 들어가고, 고백과 애교 등 연이은 술주정을 선보였다. 아기처럼 먹고 싶은 메뉴를 줄줄이 읊고, 혀 짧은 소리로 “포장마차에 가자”고 조르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특히 만취한 공효진은 자신을 친구로만 대하는 차태현에게 투정을 부리듯 툭툭 쏘아대는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억눌러 왔던 마음을 털어놓는다. 결국 공효진은 차태현에게 “선 볼 거면서 내게 뽀뽀는 왜 했냐”며 소리를 지르고, “마음을 털어 놓을 사람이 없어 힘이 든다”며 눈물을 보였다. 공효진의 섬세한 연기 덕에 예진의 감정은 시청자들에게 깊이 있게 전달됐다. 극 후반에 차태현이 공효진의 마음을 알면서도 친구 관계를 선택했다는 것이 드러난 가운데 김수현이 공효진과 차태현의 관계를 질투하는 모습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데스크 시각] 태극기 게양, 애국심을 강요할 순 없다/송한수 정책뉴스부 차장

    [데스크 시각] 태극기 게양, 애국심을 강요할 순 없다/송한수 정책뉴스부 차장

    어언 30여년 전을 떠올린다. 꼬맹이들 가슴이 뻥 뚫렸다. 애국가 소리가 울려 퍼진다. 경기장 태극기 게양과 함께. 자칫 울음까지 쏟을 뻔했다. 우리 선수들은 잘도 해냈다. 약소국 설움을 날려 보냈다. 아시아 대회를 휩쓸곤 했다. 근데 국기 하강식 땐 달랐다. 얼른 친구와 놀아야 하는데, 국기에 대하여 경례할 때다.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대고. 날마다 오후 5시 시작됐다. 가끔씩 헷갈리기까지 했다. 왼손을 오른쪽 가슴에 댄다? 아님,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제법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딴 친구들 모습을 커닝했다. 들킬세라 얼른 손을 바꿨다. 바로 30여년 전, 그땐 그랬다. 엿새 뒤 호국보훈의 달이다. 태극기를 건너뛰지 못한다. 정부 방침 하나가 눈에 띈다. 공공기관 게양대 크기 문제다.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단다. 미국 상대로 연구에 들어갔다. 옥상에 내거는 길도 꾀한다. 훨씬 커다랗게 만들 참이다. 멀리서도 보이도록 하자며. 늦어도 8·15엔 판가름 난다. 계획을 나무랄 필요는 없다. 대장관을 연출할지 모른다. 백악관 성조기와 동급이니. 국기 게양 홍보는 당연하다. 그러나 염두에 둘 게 적잖다. 낮은 게양률을 탓하지 말라. 또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애국심 운운은 더하다. 정부·여당은 이를 연결한다. 종종 국기 소각도 지적된다. 집회에서 이따금 일어난다. 분명히 반길 태도는 아니다. 냉정하게 따져야 할 게 있다. 한편으로는 ‘정부=국가’다. 정부 스스로 되돌아볼 때다. 게양률은 정부 신뢰를 말한다. 게양 의무화 논란이 그렇다. 넉 달 전인데 여운은 남았다. ‘억지춘향’은 폐해만 낳는다. 속마음을 줄 리가 만무하다. 타초경사(打草驚蛇)란 격언이 말한다. 풀을 툭 쳤는데 뱀이 나왔다. 여기엔 교훈이 숨었다. 선의(善意)도 뜻밖의 일을 부른다. 국민 애국심은 곧 증명된다. 스포츠 경기를 예로 꼽는다. 월드컵 땐 나라가 들썩인다. 행사엔 거의 국민의례를 치른다. 착한 국민이라고 하겠다. 한 학자는 논문에 이렇게 썼다.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는 국민. 따라서 국기에 대한 경례는 자기 소유물에 절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은 모순을 알아채지 못한다. 오히려 따르지 않으면 불순한 사람으로 보인다고 여긴다. 이제 거창한 구호를 떠나자. 혹 고쳐야 할 제도는 없는가. ‘국기법’ 규정은 꽤 불편하다. 매일 오전 7시 게양하란다. 오후 6시 하강하도록 했다. 게양·하강식 또한 못박았다. 애국가 연주에 맞춰 하도록. 한 초등학교장은 항변한다. 지킬 수 없는 규정이라고. ‘불량 교사’ 양산을 거론했다. “현실을 무시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법 개선을 촉구했다. 정부3.0과 관련, 검토할 만하다. 군 철책도 허문다지 않았나. 강원도에서 박수를 받았다. 동해안 60년 숙원이 풀린다. 국기 논란은 툭툭 불거진다.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같다. 분명한 것은 국민 관점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선례다. 정부는 행사 때 제창을 금했다. 대신 합창만은 막지 않았다. 여느 국민은 차이를 묻는다. 제창과 합창, 어떻게 다른가. 정부는 억울(?)할 수도 있다. 영화 ‘라스트 캐슬’에 꽂힌다. 미군 교도소를 소재로 한다. 라스트 신이 기억에 남는다. 성조기를 거꾸로 내걸 뻔했다. ‘패륜 교도소장’에 맞서서다. SOS를 요청하는 작전이다. 리더는 총을 맞으며 게양한다. 구조 신호를 보내려 애쓴다. 그렇지만 예상은 빗나간다. 성조기는 똑바로 내걸린다. 장군의 부하들은 거수경례를 올린다. 남의 영화라도 배우면 그만. 이런저런 논란은 차치하고. 파국을 면한 지혜가 부럽다. 올해는 광복·분단 70돌이다. onekor@seoul.co.kr
  • 피해자가 저항 안 했다고 성폭력 무죄라니…

    성폭력 기소 사건에서 논란을 부르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잠을 자고 있는 여성의 몸을 만진 남성에게 ‘피해자가 자는 척하며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심, 2심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여성계에서는 법원의 시각이 편향됐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 이원형)는 유사강간 및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37)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대로 무죄를 선고했다고 20일 밝혔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A씨는 지난해 5월 자신의 집에서 남자직원과 남자직원의 여자친구 B씨와 술을 마셨다. 그러다 남자직원과 B씨가 잠이 들자 A씨는 B씨의 몸을 툭툭 건드린 뒤 이불을 들치고 잠시 지켜봤다. B씨의 반응이 없자 다리, 엉덩이와 신체 주요 부위를 만졌다. 하지만 B씨는 자신이 일어나면 난처한 상황이 벌어질 것을 우려해 잠을 자는 척하고 있었다. 그러다 남자직원이 인기척을 내자 A씨는 방에서 나갔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이선미 활동가는 “이미 피해가 발생한 상황에서 저항 여부를 따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이런 판결이 나오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법적으로 정당하게 문제 제기를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50년 내 인생이 잔잔한 울림으로…40년 동고동락 부부로 산다는 건…

    50년 내 인생이 잔잔한 울림으로…40년 동고동락 부부로 산다는 건…

    시한부 판정을 받은 두 시인이 있다. 한 시인은 병마와 사투를 벌이며 생의 마지막 불꽃을 살라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시집을 냈다. 다른 한 시인은 온몸이 굳어가며 온기가 사라져 가고 있다. 꺼져가는 불꽃을 병상에서 바라보는 시인의 아내가 남편 생전 첫 시집을 냈다. ‘무엇을 남겨야 하나//생명보험을 들까 백만 불짜리//검사관이 오피스에 와서 피를 뽑는다/주사기에 기어들어 가는 나의 삶이 보인다//(중략) 아니다 새벽마다 꼿꼿이 앉아/생각의 조각에 시 한 편씩 꿰어보는 거다//그 모습을 남기는 거다’(생명보험) 윤석훈(55) 시인은 마지막 힘을 모아 50여년의 삶을 정리했다. 시집 ‘종소리 저편’(서정시학)에서다. 내적 사유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가치관에 대한 묵상, 그리움과 외로움 극복을 위한 영혼의 힘 등이 녹아 있다. 그는 “세상의 구석에서 따뜻한 미소와 잔잔한 울림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시인은 2008년 4월 폐선암 3기 진단을 받았다. 7년째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해 말 위험한 고비를 가까스로 넘기고 산소통에 의지해 살고 있다. “작년 말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왔습니다. 주변에 저와 똑같은 진단을 받은 후배가 있는데 10개월을 못 넘겼어요. 그런 면에서 제게 주어진 시간은 덤으로 얻은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1997년 2월 도미했다. USC 치과대학 졸업 뒤 LA 실버 레이크에 정착, 치과 클리닉을 운영했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아내가 곁에서 돌봐주고 있어요. 아내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나무 같은 사랑 하나/목숨에 심고//어지러운 골목길/돌아 나오면//언제나 서 있는 당신//오후 세시가 지나도/울려 퍼질/종소리 저편에 서서//언제나 기다려 줄 당신’(나무/아내에게) 2003년 현대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박덕규 문학평론가는 “잠잠한 침묵 같은 것 안에 아픔과 슬픔이 있다”고 했고, 나태주 시인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움직이게 하는 감동이 있다”고 평했다. 그는 “생명 다하는 날까지 시를 쓰고 싶다”고 갈망했다. “완치되지 않더라도, 산소통에 의지하더라도 목숨이 붙어 있다면 두 번째 세 번째 시집도 내고 싶어요. 투병 중에도 시 쓰기를 놓지 않은 건 병마와 싸우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걸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병마를 툭툭 털고 일어날 그날이 속히 올 것이라고 믿으면서 시를 쓰려 합니다.” 김원옥(70) 시인은 시한부 남편의 병상을 지키며 지나온 삶을 되돌아봤다. 시집 ‘바다의 비망록’(황금알)에서다. 살아오면서 겪은 마음의 흔적들, 기쁨이나 슬픔 같은 온갖 마음의 변화들을 담았다. 부부의 연을 맺어 40년 넘게 동고동락하면서 겪은 남편에 대한 감정들도 곳곳에 녹아 있다. ‘언제부터였나/우리는 나란히 걸었다/땀 펑펑 쏟아지는/들판 한가운데로 난 철길 위로//(중략) 기차는 이미 지나갔다/아른아른 보이는 저 끝/40년 신은 닳고 닳은 신발 털어 신고/또 가자/곧은 길이라 여기며 걸어온 철로/돌아보니/굽은 허리였네’(내 생의 철길) 부부의 삶을 ‘원형 감옥’에 비유하기도 했다. ‘숨으려야 숨을 곳이 없는/이 둥근 무덤 속//(중략)당신은 눈으로/나는 귀로 붙잡는/서로는 포로//끝끝내 끊어지지 않는/질긴 생의 그물망’(판옵티콘) 판옵티콘(Panopticon)은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목적으로 1791년 설계한 원형 감옥이다. 시인은 “부부란 서로가 서로에게 감시자가 되기도 하고 죄수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며 “질긴 인연”이라고 했다. 시인의 남편도 시인이다. 이가림(72) 시인이다.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인하대 불문과 교수를 지냈다. 남편은 루게릭병이 진행 중이다. 2011년 발병했다. 온몸이 마비돼 음식을 삼키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한다. 인공호흡기에 생명을 의지하고 있다. “나이 들어선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데 희귀하게도 걸렸어요. 대학 정년퇴임 뒤 1, 2년 정도 강의도 하고 했는데 갑자기 발병했습니다. 수술해서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을 때까지 병이 계속 진행돼요. 1년 안에 죽는다는 사람도 있는데 남편은 4년을 버텼습니다.” 시인은 2009년 격월간 ‘정신과표현’을 통해 늦깎이로 등단했다. 매일 남편 병상을 지킨다.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제 나름의 속도로 살아왔어요. 아이 키우고 남편 내조하고 그러다 보니 등단도 늦었습니다. 옛날의 보통 부부들처럼 살았어요. 남편이 건강해지길 바랄 뿐 다른 건 바라지도 않아요.”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독박(讀博) 육아일기] (7) “아기 왜 없어?” 묻지 못하는 이유

    [독박(讀博) 육아일기] (7) “아기 왜 없어?” 묻지 못하는 이유

    ‘독박 육아’라는 말은 친정이나 시댁 등 보조 양육자가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엄마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는 은어로, 육아의 책임을 ‘혼자 뒤집어 썼다’는 뜻이지요. 아무런 도움 없이 나홀로 육아를 하다 보니 세상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초보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더 넓게 읽게 됐다는 뜻에서 ‘독박(讀博) 육아’라고 제목을 지었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몰라주는 육아맘들의 세계를 저의 경험을 통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허백윤 기자는 2008년 8월 서울신문사에 입사해 2009년 2월부터 정치부 국회 출입기자로 민주당과 새누리당을 취재했습니다. 2013년 5월부터 온라인뉴스부에서 일하던 중 2013년 12월부터 출산휴가·육아휴직으로 15개월을 보내고 3월 11일 복귀했습니다. 엄마가 되고부터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일종의 금기어로 여기는 것이 생겼다. 바로 ‘자녀 계획’에 대한 질문이다. “아기가 왜 없으세요?” “둘째는 안 가지세요?” 등의 물음을 어느 순간부터 하지 못하게 됐다. 일단 아이 한명 키우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알기 때문에 나부터 ‘둘째’를 당연시하는 듯한 말에 ‘자기가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하고 반감이 먼저 든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이유는 아기를 갖는 것부터, 그리고 낳기까지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해서다. 사실 계획했던 것보다 빨리 아기가 생기는 바람에 아기를 언제 갖느냐는 압박에 시달리진 않았다. 그래서 잘 몰랐다. 남의 자녀 계획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지. 진짜 궁금해서라기 보다는 거의 인사치레 수준으로 “아기는 언제 가질 거냐, 왜 아직 아기가 없냐”는 등의 질문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누군가에겐 무심코 던진 물음이 엄청난 비수가 된다는 것을 말이다. 엄마 되기, 정말로 쉽지 않다. 아마 평생을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만, 그 전에 엄마라는 이름을 얻는 자체가 너무 어렵다. 임신과 출산이 누구나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사실 충격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한다는 비판만 숱하게 들어왔지, 정말 아기를 갖고 싶어서 못 갖는 사람도 많다는 것은 먼 얘기인 줄만 알았다. 아니, 누구나 임신을 할 수 있다 해도 뱃속에 한 생명을 품는 일인데 너무 가볍게 여겨지는 게 아닌가 싶다. 아기를 가진 뒤부터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이, 주변에서 아기 문제로 마음 고생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아기를 간절히 기다리는데 소식이 없거나 아기를 잃게 됐거나, 상황도 다양했다. 그들의 고통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주위의 아픔은 나에게도 난감한 일들이었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 된다는 걸 알기에 제대로 말도 못 붙이며 눈치만 쌓여갔다. 임신의 기쁨과 고충을 나눌 수 있는 범위가 점점 좁아졌다. 육아 얘기를 함께 할 사람들이 적어졌다. 만나려면 아기를 데려가야 하고 만나서 할 이야기가 아기 얘기 밖에 없다 보니 점점 연락하는 횟수가 줄어드는 사람들도 생겼다. 정상적인 부부관계로도 1년 안에 아이가 생기지 않을 경우를 ‘난임’이라고 한다는데, 주변을 보니 1년 안에 아이를 갖는 게 더 기적처럼 보였다. 산부인과, 산후조리원, 그리고 이후에 아기를 통해 알게 되는 많은 엄마들 가운데 나는 가장 어린 나이에 빨리 아기를 갖게 된 경우에 속했다. ●”지난해까지 7년간 난임 진단 16% 증가”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박윤옥 새누리당 의원이 받은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난임 진단을 받은 사람이 2007년(17만 8000여명)에서 지난해(20만 8000여명)까지 7년 동안 16% 남짓 증가했다. 병원을 찾은 경우가 이 정도이니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난임이 증가하는 원인으로 흔히 여성의 고령 임신(35세 이상)이 증가하면서 난소기능이 저하하고 자궁내막증 등이 발생되는 경우들이 언급된다. 남성의 경우 스트레스나 음주·흡연 등으로 정자의 활동성이 저하되는 게 주된 이유라고 알려졌다. 그런데 주위에서는 정말 별 다른 이상이 없는데 아이가 안 생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딱히 이유도 모르는데, 아기가 안 생긴다고 하면 뭔가 몸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는 시선들이 생겨나고 “남편의 문제냐, 네 문제냐”를 캐묻는단다. 다른 사람의 부부생활까지 꼬치꼬치 물을 수 있는 것을 우리 사회가 그만큼 자유로워졌다고 봐야하는 걸까. 아이가 안 생겨 마음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마음 편히 가지라”는 말이라고 한다. 한 난임 관련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공감하는 댓글이 수십개가 달렸다. 스트레스 갖지 말라면서, 마음을 편히 가지라면서 자꾸 ‘진행 상황’을 묻는다고 한다. 무슨 문제 때문에 애가 안 생기는 거냐, 주위에 누구는 몇년 만에 아이를 가졌다, 누구도 유산을 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건넨단다. 도통 위로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나도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가볍게, 또 어줍잖게 위로를 한답시고 그런 이야기를 전한 적이 있었다. 얼마나 상처가 됐을지 두고두고 미안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 최고의 위로인 것 같다. 겨우 임신을 하게 되면 그 다음이 더 문제다. 아이를 열 달 동안 무사히 품는 것은 더 큰 난관이다. 사람들에게 자녀 계획을 물을 수 없는 진짜 이유는 유산 때문이었다. 6~8주 초기 유산은 마치 매달 생리를 하는 것처럼 흔한 일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아기를 잃고 자책하는 여성들을 위한 위로 차원의 이야기일지 몰라도 시간이 짧든 길든, 아기가 크든 작든 내 품 안에 찾아왔던 생명인데, 잃게 됐을 때 어떤 기분일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임산부 10명 중 1명꼴로 유산의 아픔” 남윤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국회 복지위)은 “임산부 10명 중 1명꼴로 유산의 아픔을 겪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출생자 및 임신출산 진료비 지원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지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5년 동안 임신·출산 진료비를 지원 받은 인원이 239만 3383명인 데 비해 출생자수는 218만 6948명으로 나타났다. 진료비를 지원받은 임산부가 출생자보다 9.4%이 더 많은 것이다. 경험을 비춰봤을 때 임신·출산 진료비를 지원받는 것도 아기가 정상적으로 자리를 잡은 뒤에 예정일이 정해지는 8~9주쯤 이후였던 것 같다. 진료비 지원을 받기 전의 초기 유산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통 임신 12주만 넘기면 ‘안정기’라 여겨지지만 그것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내가 주장하는 임신·출산 지론 중 하나가 “임신에 안정기란 없다”는 것이다. 중기 유산, 조산으로 고통받는 엄마들이 너무 많은 것을 봤기 때문이다. 2013년 12월 말 기준 미숙아(37주 이전 출생) 수가 2만 6408여명이었다고 한다. 당시 출생아가 전체 43만 6455명이었다. 2009년 1만 6223명에서 5년 새 1만명 가량이 늘었다. 태어나는 아기는 계속 줄어드는 반면 미숙아, 또는 40주를 채웠더라도 체중이 2.5kg이 안 되는 저체중 출생아는 매년 늘고 있다고 한다. 임신·출산 관련 커뮤니티에서 ‘이른둥이’ 엄마들의 사연은 눈물겹다. 신생아 중환자실을 오가며, 안지도 못할 만큼 작은 아기가 몸에 각종 의료기기를 몸에 달고 힘겨워 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가슴 아픈 글들이 넘쳐났다. 때로는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 조차 감사해야 할 경우도 더러 있다. 출산 직후인데 몸조리는커녕 엄마들은 줄곧 걱정과 죄책감에 시달려야 한다. 임신의 어려움을 모른 채 아기가 생겼고 입덧도 심하지 않았기에 ‘임신 체질’이라고 자부했던 나 역시 13주에 출장을 다녀오자마자 하혈이 있어 난생 처음 회사를 조퇴하고 유산방지주사를 맞았다. 병원에 가는 택시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 뒤부터 뱃속 아기에게 “아가야, 보고 싶어. 빨리 만나자”라고 말하던 것을 멈췄다. 엄마 말을 잘 듣고 너무 빨리 나올까봐, “정말 보고싶지만 우리 천천히 건강히 만나자”고 매일 속삭였다. 34주에는 갑자기 조기진통으로 일주일이나 입원을 해야 했다. 하루종일 배가 심하게 뭉치고 불편한 느낌이 계속돼 밤에 응급실에 갔더니 아기가 나올 지도 모른다는 거다. 밤새 분만실에서 주사를 맞고 병실로 옮겨졌다. 출산하기 바로 전까지 회사에 다니겠다던 자신만만하던 꿈은 의지와 상관없이 무너졌다. 출산휴가를 앞당겨 한 달 동안 꼼짝도 못하고 집에서 누워 지냈다. 그렇게 버텨 38주에 건강히 아기를 낳았으니 무척 행복한 케이스였다. 임신 기간 내내 거의 대부분을 병원 침대에서 보내야 하거나 응급수술을 해서 아기가 빨리 태어나는 것을 막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이렇게, 엄마가 되기 위해 저마다 사연과 아픔이 있다. “아이가 왜 아직 없냐”는 말이 더 이상 툭툭 내뱉을 만한 인사치레로 생각되지 않는다. 과거 선거철에 정치권에서 단일화로 인해 후보를 못낸 상대 당에게 ‘불임 정당’이라는 말을 썼다가 수많은 난임 부부들이 가슴을 쳤다는 것도 이해가 됐다. 임산부를 배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단순히 배가 부르고 몸이 무거운 산모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해 주자는 구호에 그쳐선 안 된다. 건강한 아이를 낳도록 도와주는 것은 가족들만의 몫이 아니다. 우리는 늘 사회 통념상의 기준에 따라 다른 사람의 인생 과업을 이야기하는 데 익숙하다.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은 언제 하느냐, 일자리를 잡으면 곧바로 결혼은 언제 하느냐, 결혼을 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아기는 언제 갖느냐는 질문을 한다. 심지어 아이가 돌이 될 무렵부터 나는 “둘째는 언제 갖느냐”는 질문에 시달리고 있다. 아직 생각이 없다고 하면 형제는 꼭 있어야 한다며 또 한참 동안 귀가 따가워진다. 공부와 직장, 결혼까지는 스스로 계획에 따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생명이란 건 내 마음 같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를 낳아서 기르다 보니 아기라는 존재에 대해 함부로, 가볍게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정이 뚝 떨어지기도 한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를 품고 기르는 일이 바로 임신과 출산, 육아다. 여자라면 누구나, 때가 되면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귀하고 신비로운 일로 인식되길 바란다. 자녀 계획. 이젠 더 조심스럽게, 서로 배려해야 할 주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이 기사의 관련기사 (1)나홀로 육아 1년…외로움을 말한다 (2)엄마들은 왜 ‘토토가’를 보고 울었나 (3)엄마가 될수록…엄마만 필요했다 (4)세월호 참사가 초보 엄마에게 가르쳐준 것들 (5)내 아기가 타고났기 바라는 한 가지 (6)CCTV 단다고 걱정 사라질까
  • 렛 잇 비·헤이 주드… 빗속 老음악가의 ‘160분 열창’

    렛 잇 비·헤이 주드… 빗속 老음악가의 ‘160분 열창’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을 타고 ‘렛 잇 비’의 전주가 시작되자 4만 5000여 관객이 모인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은 휴대전화 불빛으로 넘실댔다.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다 고개를 든 폴 매카트니(72)는 한동안 객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관객들의 하모니가 어우러지며 밤하늘 한복판을 유영(遊泳)하는 듯한 신비로움이 공연장을 휘감았다. 지난 2일 밤 열린 폴 매카트니의 첫 내한공연은 한국의 ‘비틀마니아’들의 갈증을 때맞춰 내리는 비처럼 단번에 씻어 준 뜻깊은 순간이었다. 비틀스의 첫 싱글 ‘러브 미 두’가 발표된 1962년 이후 비틀스의 멤버가 한국 관객들을 만난 건 53년 만에 처음이다. 폴 매카트니는 2시간 40분 동안의 공연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지휘하며 객석을 압도했다. 관객들도 열정적인 ‘떼창’과 이벤트로 화답하며 무대와 객석을 감동으로 이었다. 무대 양 옆 대형 화면에 그의 과거 사진과 히트곡을 엮은 영상이 상영되던 오후 8시 20분, 함성 속에 폴 매카트니가 무대에 올라섰다. ‘에잇 데이즈 어 위크’와 ‘세이브 어스’를 열창한 그는 “안녕하세요. 한국 와서 좋아요. 드디어!”라며 한국어로 첫 인사를 건넸다. “오늘 신나게 즐겨 봅시다. 한번 놀아 볼까요?”라며 객석을 달아오르게 한 그는 ‘제트’를 시작으로 앙코르 곡까지 총 37곡을 단숨에 불러 내려갔다. ‘페이퍼백 라이터’ ‘블랙버드’ 등 비틀스의 히트곡부터 ‘렛 미 롤 잇’ ‘밴드 온 더 런’ 등 윙스의 히트곡, 솔로로 활동하는 그의 최신작 ‘뉴’의 수록곡 ‘뉴’ ‘퀴니 아이’ 등 그의 50여년 음악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1980년 세상을 떠난 존 레넌에게는 ‘히어 투데이’를, 2001년 세상을 떠난 조지 해리슨에게는 ‘섬싱’을 바쳤다. 72세 노장은 자신이 왜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로 불리는지를 증명해 냈다. 공연 내내 그는 긴 멘트로 숨을 돌리지도 않았고, 물로 목을 축이지도 않았다. 비가 내렸지만 머리에 묻은 빗물을 손으로 가볍게 털 뿐 오직 음악에만 전념했다. 현란한 악기 연주 솜씨와 샤우팅 창법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 소소한 몸짓으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유머감각 또한 일품이었다. 전설과 호흡하는 관객들의 열기도 뜨거웠다. ‘오블라디 오블라다’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췄고, ‘롱 앤드 와인딩 로드’에서는 빨간 하트가 그려진 손 팻말을 흔들었다. 폴 매카트니는 턱으로 손을 괴고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거나 오른손으로 가슴을 툭툭 치는 등의 모습으로 감동을 드러냈다. “유아 투 굿, 투 그레이트” “코리아, 유 아 쿨” 등의 멘트로 화답하다 한국어로 “대박”이라 외치기도 했다. 불기둥이 솟아나고 폭죽이 하늘을 수놓은 ‘라이브 앤 렛 다이’에 이어 ‘헤이 주드’에서 공연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나 나 나 나나나 나~”라는 후렴구가 시작되자 관객들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떼창’을 시작했다. ‘나’ 혹은 ‘NA’가 적힌 손 팻말도 등장했다. 공연이 끝나고도 “나 나 나~”를 외치는 관객들을 이기지 못한 폴 매카트니는 다시 무대에 올랐다. ‘헤이 주드’가 두 번째 불리는 진풍경 속에 그는 태극기를 흔들어 한국 관객의 뜨거운 호응에 화답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사설] 또 선거용 호남 총리론인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그제 4·29 재·보궐선거 지원 유세차 광주에 가서 ‘호남 총리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완구 총리가 경질되면 그 자리에 전라도 사람을 총리 시켜 주길 (박근혜 대통령에게) 부탁드린다”며 “그렇게 해서 굳게 닫혔던 광주시민, 전라도민 여러분의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정현 최고위원이 총리를 하면 얼마나 잘하겠나”라고도 했다. 집권 여당 대표의 말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천박하기 짝이 없는 현실 인식을 드러낸 단세포적 발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갓 정치인의 선거용 립서비스라고 치부하면 그만일지 모른다. 하지만 일부 정치인들이 툭툭 던지는 설익은 지역감정 발언이 얼마나 국민에게 상처를 주고 우리 정치의 수준을 떨어뜨리는지를 생각하면 그냥 흘려들을 수만은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충남 출신 이완구 의원의 총리 후보 지명과 관련, “호남 인사를 발탁했어야 했다”고 말해 지역감정 논란을 불러일으킨 게 불과 몇 달 전이다. 김 대표의 발언 또한 선거를 의식한 정략적 접근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전라도 사람을 총리 시켜 주지 않아서 그 지역 사람들 마음의 문이 닫혀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필요할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입에 발린 호남 총리론이야말로 뿌리 깊은 소외 의식에 시달리는 호남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의 빗장을 더욱 걸어 잠그게 하는 일임을 왜 모르는가. 인사에 관한 한 대한민국은 ‘반쪽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 의전서열 10위(국회부의장은 2명)까지 11명 중 8명이 영남 출신이다. 검찰·경찰·국세청·감사원·공정거래위원회 등 5대 권력기관장 전부가 영남 출신이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속보이는 호남 총리 타령을 할 게 아니라 좀처럼 변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의 마이웨이식 편중 인사부터 정색하고 비판하고 나서야 마땅하다. 자기 당의 누구를 총리 시키면 얼마나 잘하겠느냐는 둥 뜬금없는 소리를 늘어놓을 때가 아니다. 우리 국민은 지금 역대 최악의 ‘총리 잔혹사’를 지켜보고 있다. 정부 출범 2년여 만에 또 여섯 번째 총리를 뽑아야 할 판이니 임명권자도,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이라도 박 대통령은 초심으로 돌아가 탕평인사를 몸소 실천해야 할 것이다. 국민 통합은 시대정신이다. 김 대표 또한 선거를 앞두고 퇴행적인 지역감정을 부채질하는 반편스런 저질 정치를 삼가기 바란다. 진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호남 총리론은 해악에 가깝다.
  • 선명하게 잡아낸 詩語의 단선들

    선명하게 잡아낸 詩語의 단선들

    우리 문단의 대표적인 서정시인 문태준(45)이 돌아왔다. 관계, 죽음, 불교적 사유 등 등단 이후 20여년간 천착해오던 주제들을 더 짧고 선명한 시적 언어로 담아냈다. 불교적 사유가 도드라졌던 ‘먼 곳’ 이후 3년 만에 낸 여섯 번째 시집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창비)에서다. 지난해 서정시학작품상을 받은 ‘봄바람이 불어서’를 비롯해 64편이 실렸다. ‘드로잉 연작’ 14편은 이번 시집에서 시인이 추구한 ‘짧고 선명한 시적 언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를 떠나려네//야위어서/흰 뼈처럼/야위어서//이젠 됐어요/이젠 됐어요//보잘것없는/나/툭툭 내던지는/비’(가을비·드로잉 6) “드로잉은 사물의 움직임이나 특징을 잡아내 단선으로 그린 그림이다. 드로잉처럼 사물이나 사건, 마음을 움직인 것들을 선명한 이미지로 쓰고 싶었다. 선명한 언어로 쓰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 독자들에게도 의도가 오해 없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 언어를 아껴 여백도 생기고 비교적 단일한 걸 이야기하기 때문이 시가 조금 쉬워진 측면도 있다.” 시인에게 ‘관계’는 여전히 제일 화두다. 이번에도 대상과 대상, 존재와 존재, 생명과 생명 사이의 수평적 관계를 탐구했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이를 ‘수평적 상상력’이라고 했다. ‘노랗게 잘 익은 오렌지가 떨어져 있네/붉고 새콤한 자두가 떨어져 있네/자줏빛 아이리스 꽃이 활짝 피어 있네/나는 곤충으로 변해 설탕을 탐하고 싶네/누가 이걸 발견하랴,/몸을 굽히지 않는다면/태양이 몸을 굽힌, 미지근한 어스름도 때마침 좋네/누가 이걸, 또 자신을 주우랴,/몸을 굽혀 균형을 맞추지 않는다면’(몸을 굽히지 않는다면) ‘귀휴’(歸休)에선 인간 중심의 생각을 벗어나 ‘닭에게 마당을 꾸어 쓰는’ 데까지 시적 상상력이 미친다. 마당 주인을 집주인이 아니라 마당에서 사는 닭으로 설정, 서로가 서로에게 존엄한 관계임을 역설했다. 시인은 “우열이 없는 대등한 관계는 내 눈높이와 지위를 상대와 같은 위치에 두고 권위나 선입관을 버리고 상대와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죽음·이별도 파고들었다. 고정돼 있지 않고 계속 변화하다 어느 시점엔 사그라지는 존재의 속성을 들여다봤다. 임종을 앞둔 친척 병문안 때 보고 느꼈던 걸 쓴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이 대표적이다. ‘당신은 나조차 알아보지 못하네/요를 깔고 아주 가벼운 이불을 덮고 있네/한층의 재가 당신의 몸을 덮은 듯하네/눈도 입도 코도 가늘어지고 작아지고 낮아졌네/(중략) 나는 이 세상에서 혼자의 몸이 된 당신을 보네/오래 잊지 말자는 말은 못하겠네/당신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네/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을 보네’(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친척께선 호흡을 겨우 하고 계셨다. 그 모습에서 태어나는 순간과 비슷한 상태로 돌아가 있는 생명의 끝자락을 봤다. 몸이 갖고 있던 욕망의 불도 다 꺼지고 세속적 기준으로 가치 있다고 봤던 것들도 다 내려놓고 오롯이 하나의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생의 삶이 지나치게 물질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 같다.” 등단 초기의 불교적인 시선도 여전히 예리하다. ‘밝은 곳과 어둔 곳의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눈두덩과 눈, 콧부리와 볼, 입술과 인중, 목과 턱선의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안면의 윤곽이 얇은 미소처럼 넓적하게 퍼져 돌 위에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여시·如是) 마애불을 보고 돌아와서 쓴 여시에선 자신의 본래 면목에 대해 물음을 던졌다. 여시는 여시아문(如是我聞·나는 이렇게 들었다)의 여시로, ‘있는 그대로를 보면 그러하다’라는 의미다. “비바람에 깎이면서 모든 경계가 흐릿해진 마애불을 보면서 마애불의 불성을 떠올렸다. 형체는 사라지더라도 마애불이 본래 갖고 있는 면목, 이를테면 자비나 사랑의 마음이 내게도 있는지, 내 본래 면목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처서 외 9편이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인은 등단 21년을 돌아보며 “시 쓰는 순간이 제일 행복하면서도 늘 두렵고 조심스럽다”고 했다. “시를 쓸 수 있는 조건들이 예민한 것 같다. 아무 때나 시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가 태어나는 조건들을 생활 속에서 유지해 가는 게 여전히 어려운 것 같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술 취한 게 아닙니다, 저는 파킨슨병 환자입니다

    술 취한 게 아닙니다, 저는 파킨슨병 환자입니다

    15년째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이윤옥(58) 씨는 얼마 전 시장에 갔다가 동결 증상이 발생해 도로 한복판에 멈춰 섰다. 발이 땅에 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지만 이씨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번이라도 눈이 마주치면 “도와달라”고 말했을 텐데, 양옆으로 경적을 울리며 차가 지나가는데도 사람들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갈 길을 재촉했다. 그렇다고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하기는 싫었다. 이씨는 한참 시간이 지나 동결 증상이 풀린 뒤에야 귀가할 수 있었다. 누구든 조금만 관심을 두고 이씨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 줬더라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이었다. 보행장애는 파킨슨병 환자의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대표 증상이다. 걸음을 걷다가 양쪽 발이 마치 얼어붙은 듯 그대로 멈춰 서 상체가 앞으로 쏠리며 넘어지기도 하는데, 마치 환자의 발을 아교풀로 땅에 붙여놓은 것과 같다고 하여 보행동결이라 부른다. 보행동결이 심해지면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도 양쪽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아 다음 열차를 기다리거나 다른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데도 혼자 우두커니 서서 지켜만 보는 난감한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어렵게 마라톤에 도전한 한 파킨슨병 환자는 갑자기 보행동결이 일어나 뛰던 모습 그대로 멈춰 섰는데 함께 마라톤을 뛰는 사람들이 툭툭 치며 ‘파이팅!’을 외치고 갔다고 한다. 그저 힘들어서 쉬는 줄 알았던 것이다. 이 환자는 결국 30분 동안 마라톤 코스에 서 있다가 들것에 실려 갔다. 보행동결이 발생한 장소가 실내나 비교적 안전한 인도라면 다행이지만 건널목에서 발이 땅에 붙어버리면 교통사고를 당할 수 있어 문제가 심각해진다. 동결 증상 때문에 건널목 한복판에 멈춰 선 것인데 운전자들은 파킨슨병 때문인지 모르고 욕을 퍼부으며 지나간다. 환자들은 생명에 위협을 받는다. 파킨슨병 환자들은 특유의 걸음걸이 때문에 술에 취했다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파킨슨병에 걸리면 걸을 때 두 발 사이의 간격이 좁아지고, 한쪽 발이나 양쪽 발을 끌면서 걷게 된다. 또 팔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걸을 때 팔다리가 많이 흔들린다. 술 취한 사람의 걸음걸이와 비슷하다. 몇몇 행인은 이렇게 걷는 파킨슨병 환자를 보고 “대낮부터 술을 저렇게 마시고 다니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이씨는 “제일 많이 듣는 소리가 ‘술을 마셨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술에 취한 사람이 어떻게 얼굴색도 정상이고 술 냄새도 나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많은 환자가 이런 일을 자주 겪으며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고 털어놨다. 파킨슨병 증상인 서동증도 환자에게 많은 고통을 준다. 처음에는 환자나 보호자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몸의 움직임이 느려지다가 병세가 진행되면서 손동작이 매우 느려져 음식을 만드는 데도 이전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옷의 단추를 끼우기가 어려워지며, 컴퓨터의 마우스를 더블클릭하기도 어려워진다. 손이 느리다 보니 일을 할 때 핀잔을 듣기 일쑤다. 이씨는 “파킨슨병 확진을 받기 전에 직장을 다녔는데, 손동작이 느리니 직장 동료가 지나가는 말로 ‘언니네 시어머니는 속이 터지시겠다’라고 했다”며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내 서동증을 보고 한 소리였다”고 말했다. 파킨슨병은 다른 병처럼 많이 알려진 병이 아니다 보니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오해를 사는 일이 숱하다. 병세가 악화되면 목소리가 작아지고 말이 느려지면서 억양도 없어져 의도치 않게 상대방에게는 상당히 퉁명스러운 말투로 들리기도 한다. 사람을 상대하고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병이다. 대한파킨슨병협회는 파킨슨병 증상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높이고자 이달 초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앞에서 파킨슨병 알리기 플래시몹을 하기도 했다. 최진경 대한파킨슨병협회 대표는 “건널목을 건너다 갑자기 움직이지 못해 서 있는 사람을 보면 건널 때까지만 도와주셨으면 한다. 또 지하철에서 머뭇거리고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역무원에게 말씀해 달라”며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당부했다. 파킨슨병은 1817년 영국의 의사 제임스 파킨슨이 몸을 떨며 마비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 관한 글을 에세이집에 발표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당시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50년 뒤 차콧이라는 의사가 이 질환을 파킨슨병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해 현재까지 파킨슨병으로 불리고 있다. 파킨슨병은 뇌의 신경세포가 점점 소실돼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부족해지면서 발생하는 퇴행성 질환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권투선수인 무하마드 알리, 영화배우인 마이클 제이폭스도 이 질환을 알았다. 파킨슨병은 노인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에게도 발생할 수 있으며, 전체 환자의 8% 정도가 45세 이전에 발병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선주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도파민성 신경세포가 70% 이상 소실됐을 때 비로소 파킨슨병 운동 증상이 발생한다”며 “증상이 심하지 않고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파킨슨병 환자라도 뇌에서의 질환 발생은 이미 5~6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증상은 서서히 시작돼 조금씩 진행된다. 파킨슨병의 대표적인 증상인 떨림증, 동결, 서동이 나타나기 수년 전부터 계속되는 피로감, 무력감, 팔다리의 불쾌한 느낌, 기분이 이상하고 쉽게 화내는 등의 막연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파킨슨병은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지만 아직 병의 구체적인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파킨슨병 환자는 최근 5년간 2만 4000명쯤 증가했으며, 인구고령화로 전 세계적으로도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그가 그리울 때쯤… 봄바람이 불어왔다

    그가 그리울 때쯤… 봄바람이 불어왔다

    ‘광화문 연가’, ‘사랑이 지나가면’, ‘소녀’, ‘옛사랑’ 등 숱한 히트곡으로 1980~90년대 가요계를 풍미한 한국 팝발라드의 시초 이문세(56). 그가 7일 정규 15집 앨범 ‘뉴 디렉션’을 냈다. 무려 13년 만이다. 요즘 가요계야 10~20대 아이돌 그룹이 대세다. 80년대 절정을 누렸던 기억들은 새로운 음악 작업에 오히려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이문세다. 철 지난 가수가 될 수도, 복고적 흐름에 머무를 수도 없었다. 14집 이후 새 앨범을 내기까지 10여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열린 새 앨범 음악감상회에서 그는 “과거 영광을 내려놓고 새로운 음악, 새로운 삶을 살아 보자는 제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라고 이번 앨범을 소개했다. 새 앨범이 파격적이거나 한 것은 아니다. 대신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음악에 도전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여러 면에서 감지된다. 가장 큰 차별점은 창법이다. 과거 멜로디를 강조하기 위해 두드러졌던 가창력은 그가 지닌 음악적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감정을 전달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문세스러운 창법이라고 하면 ‘옛사랑’처럼 툭툭 시를 읊조리거나 ‘그녀의 웃음소리뿐’처럼 샤우트 창법으로 크게 내지르는 것을 생각하시는데 이번에는 편곡과 음악의 흐름에 섬세하게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과거 명콤비였던 고 이영훈 작곡가와 작업하며 숱한 히트곡을 발표했던 그는 이번에 국내외 작곡가들로부터 200여개의 곡을 받아 그중 9곡을 직접 추렸다. 진짜 ‘이문세표 음악’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노영심, 조규찬 등 유명 작곡가뿐만 아니라 뉴아더스 등 신예들의 음악도 포함돼 있다. 특히 그는 후배들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 타이틀곡인 ‘봄바람’은 러브홀릭의 강현민이 작곡한 곡으로 나얼이 피처링을 맡았다. 기타, 베이스, 드럼이 조화를 이루면서 도입부의 코러스부터 경쾌한 봄의 기운이 묻어나는 ‘봄 캐럴’ 같은 곡이다. 그는 “나얼이 처음부터 앨범에 참여 의사를 밝혔고 그가 이 곡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를 줬다”면서 만족스러움을 표했다. 노영심이 작곡하고 스스로 작사한 ‘그녀가 온다’는 슈퍼주니어의 규현과 함께 부른 듀엣곡. 그의 히트곡 ‘깊은 밤을 날아서’처럼 동화 같은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처음에 이 곡을 혼자 불렀는데 밋밋하고 힘이 떨어지는 것 같았어요. 마침 규현이 제 노래를 리메이크한 인연으로 같이 불렀죠. 아무리 후배 덕 좀 본다고 하더라도 음악으로 서로 누를 끼치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규현이 여러 가지 버전의 하모니를 연구하고 꼼꼼하게 악보를 준비해 와서 놀랐어요.” 이 밖에도 피아니스트 김광민과 재즈 전문 아티스트 송영주 트리오 등 장르를 뛰어넘는 컬래버레이션으로 음악적인 다양성을 넓혔다. 그는 지난해 갑상선암이 재발해 수술을 받았다. 목소리를 잃을 것을 우려해 성대 가까이에 있는 암세포를 완벽하게 제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건강에는 전혀 문제없다며 밝게 웃는 그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홈레코딩 방식으로 녹음했다. “수술의 후유증은 전혀 없었어요. 노래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날의 컨디션이죠. 녹음실을 잡아 놨는데 쉰 목소리가 난다면 치명적이잖아요. 그래서 작업실을 집처럼 꾸며 놓고 컨디션이 최상일 때만 마이크를 잡았어요.” 가장 이문세표 발라드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은 ‘사랑 그렇게 보내네’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심정을 담은 곡으로 세월호 1주년을 맞는 시점과 묘하게 들어맞는다. “작사가가 갑작스럽게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쓴 곡인데 부모, 자식, 연인에게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 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아픔을 담았어요. 저 역시 세월호의 한 장면만 떠올려도 울컥해서 노래를 못하는 상황이었죠. 꼭 세월호를 의식하고 만든 곡은 아니지만 그들에 대한 위로를 비롯해 우리가 만나고 싶지 않은 슬픈 감정을 담았습니다.” 앨범에는 30년 넘게 음악 활동을 한 가수로서 그의 속내도 엿보인다. 그가 직접 작사한 ‘무대’에는 ‘사람 가고/나는 남고/어둠은 이렇게 오고/세상은 이렇게 가고’라는 대목이 나온다. “누구나 인생의 무대에 서는데 스포트라이트가 화려하게 비출 때도 있고 빛이 스멀스멀 빠져나가 저무는 시절도 있기 마련이죠. 퇴장을 아름답게 하는 것도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모든 것을 섭리에 맡겨야죠.”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51. 안방극장에 불어닥친 코미디 바람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51. 안방극장에 불어닥친 코미디 바람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지난달 초 이 코너를 통해 ’코미디언의 희극적 출세비화’(1977년 2월 20일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상-중-하 3회에 걸쳐 보내드린 바 있습니다. 1970년대 후반 안방극장의 꽃으로 자리잡은 코미디 프로그램과 코미디언들의 전성기를 소개하는 기사였습니다. 이번에는 TV에서 코미디가 주류로 등장하던 초기의 사정을 1972년 8월 기사를 통해 알려드립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51. 안방극장에 불어닥친 코미디 바람…시청률 높아지자 TV국 마다 열올려 -선데이서울 1972년 8월 20일자 TV에 코미디 물결이 일고 있다. 연속극으로 시청자 쟁탈전을 벌이던 각 방송국이 코미디 프로(프로그램)로 작전으로 바꾼 것이다. 미개발 지대 같은 코미디가 이제는 제구실을 해낼 것인지? TV에서의 코미디는 처음에 공개 오락 프로나 가요 프로의 양념 같은 구실을 했었다. 그러던 것이 MBC의 ‘웃으면 복이 와요’의 히트를 계기로 각 TV국이 다투어 코미디 프로를 신설. 지금은 코미디 위주의 프로가 7개로 늘어났다. TBC는 하계 프로 개편을 단행, 저녁 7시대의 골든타임에 매일 나가는 코미디 드라마를 배정하는 한편 지금까지 주간물이던 ‘여보 정선달’을 다시 매일물로 바꿔 9시대에 집어넣었다. 이것은 민방끼리의 경쟁 의식에도 기인하나 코미디의 시청률이 아주 높아졌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되자 A클래스 코미디언들은 TV 녹화 스케줄이 빽빽이 들어차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되었다. 따라서 수입도 급격히 올라 K씨 같은 사람은 방송에서 한 달 동안 거둬들이는 수입만도 무려 200만원이 된다는 놀라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스타 8인의 장기와 비밀 남을 웃기는 것을 천직으로 삼고 있는 코미디언들. 그들은 어떤 경우에 스스로 웃을까? 대중은 그들의 얼굴만 보아도 웃음을 터뜨리지만 이들의 웃음을 쏘는 작업은 그렇게 웃음처럼 수월하지가 않다. 10년 이상 된 인기 코미디언 8명의 표정에서부터 웃기는 무기, 걸작, 실소기까지를 지그재그로 엮어 보았다. 곽규석 <장기>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총포 소리 흉내. 박격포, 기관포, 함포, 다발총, 기관총 소리에 제트기의 비행음까지 곁들여 익살을 피우는 원맨쇼. 요즘은 후배들이 흉내내 별로 쓰지 않지만 어쨌든 ‘후라이보이’의 출세작임엔 틀림없다. ‘딘 마틴’, ‘페리 코모’의 성대 묘사도 일품. <슬퍼서 웃은 얘기> 제1차 주월군 위문공연 갔을 때.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얼마나 감동을 줬는지 장병도 울고 이미자도 울고 곽규석도 울었다. 그 분위기 속에서 장병들을 웃기려니 도무지 먹혀들어가지 않아서. 구봉서 <전직> 28년 전 태평양 극악단의 무명가수로 출발했으니까 가수. 함께 일하던 희극배우가 펑크를 내서 대신 무대에 올라 즉흥연기를 한 게 코미디언이 된 계기다. 무뚝뚝한 노련미가 인기의 초점. <수입> TV에서는 최상급인 특A급 대우.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1회 출연료가 3만원선. 요즘 나가는 작품이 ‘웃으면 복이 와요’ 등 라디오, TV 포함해서 평균 10편선. 확실한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TV 출연자 중 최고로 200만원 상회설. 송해 <자천 걸작> “나는 포목상 주인. 손님이 물건을 사러 와서 주인을 찾는다. 나는 내가 주인이라고 밝혔지만 인상착의를 훑어본 손님은 내가 주인임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화가 난 나는 내 가게의 옷감들을 갈기갈기 찢어 보임으로써 주인임을 증명해 보인다.” 이 난센스 코미디의 한 토막에 대중들은 포복절도. 그의 생김새, 동작이 난센스 코미디에 제격이란 증거가 된다. <요즈음> TV 코미디 프로엔 거의 빠지지 않는다. 쇼 프로 사회자로도 동분서주. 코미디언 중 술 실력이 세기로도 첫째. 라디오 가요 프로 등에서 이순주와 콤비를 이루고 콩트를 하기도. 배삼룡 <본명> 배창순. “해방되던 해 12월입니다. 춘천에 악극단이 들어왔는데 가수가 되겠다고 무조건 단장을 만났죠. 오디션을 본 단장이 너 오늘부터 이름을 삼룡이라고 해라. 아마 그때는 내가 좀 모자라 보였던가 보죠.” <바보 역에 대해서> “관객들은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을 보고는 결코 웃지 않아요. 코미디언의 원리는 관객보다 못나고 바보스러워 보이는 데 있죠. 바보이기 때문에 자연히 선량해 보이는 동정을 사고. 나는 세상에서 제일 바보로 보이고 싶습니다.” 이기동 <걸어온 길> 본명은 이헌. “원산에서 6·25 때 단신 남하했다. 악극단에 들어온 1960년 이전의 직업은 ①부두 노동자 ②여관집 종업원 ③술집 웨이터 ④미군부대 하우스 보이 ⑤출판사 제본공 ⑥중(僧) ⑦해군사병 ⑧해병대 사관 후보생-자칫 해병대 장교가 될 뻔했는데 훈련소 교관으로 활약 중 신병에게 너무 고된 훈련을 시키다가 사고가 생겨 불명예 제대하고 말았다.” 이순주 <버릇> “말할 때 옆 사람을 툭툭 치는 것. 점잖은 어른한테 무안을 당하기도 했다. 내 말을 잘 들어 달라고 하는 버릇이기도 하고 친밀감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한데.” <전직> “무용수였죠. 춤이라면 고전무용 현대 발레 모두 자신 있죠. 가수가 될까 생각했을 만큼 노래도 좀. 코미디까지 하니까 진정한 의미의 탤런트가 아닌가요?” <불평> “여자 코미디언이니까 남자의 보조역쯤으로 생각한다. 그게 못마땅하다” 김희자 <몸무게> 40㎏에 키 158㎝의 경량급으로 초미니 아가씨란 별명이 붙었다. 6·25동란 직후 자유 극단에 입단. 가수 겸 코미디언 겸업으로 연예계 첫 선. <구혼장> 코미디에 미치다(?) 보니 적령기를 놓쳤다. ‘올드올드미스’라며 데려가는 남자만 있으면 언제라도 코미디언 폐업. 주부로 돌아간다. 박시명 <콤비> 한때 송해와 잘 맞는 콤비를 이뤄 잘 나가다가 이순주에게 뺏기고 말았다. “라미라 악극단에 있을 때 일인데 누가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대요.” 만나본즉 그 사람이 송해. 손발이 어떻게 잘 맞던지 40분 동안을 쉬지 않고 뽑은 기록이 있단다. <부업> 사업에도 코미디 못지않은 자질. 1971년 진주 양식 사업에 손대 짭짤한 재미 보았다. 올해에는 어린이용 롤러스케이트 생산에 손을 대볼 셈. 나중에 불우 청소년 돕기 운동이나 성실히 벌일 계획이란다.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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