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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 총리선거/강경파 야 후보 우세

    ◎네탄야후 50.3%… 「부재자」 당락 좌우 【예루살렘 외신 종합 특약】 29일 치러진 이스라엘의 사상 첫 총리 직선에서 일반투표의 개표를 마친 결과 야당인 리쿠드당의 강경파 지도자 벤야민 네탄야후 당수가 노동당의 시몬 페레스 현총리를 근소한 차이로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스라엘 선거관리위원회는 30일 부재자 투표를 제외하고 일반투표 개표를 완료한 결과 네탄야후 후보가 총 3백90여만명의 유권자중 79%가 투표한 이번 선거의 유효투표중 50.3%를 얻어 49.0%를 획득한 페레스 후보를 2만여표 앞선 것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누가 당선될 지는 아직 불투명하며 약 15만명의 군인,외교관,입원환자,수감자,선원등 부재자투표 결과에 따라 승리자가 결정되게 됐다.
  • 인 집권 국민회의당 총선 패배/출구조사 결과

    ◎47년만에 참패… 「BJP」 1당 전망/연정통해 집권은 계속할 듯 【뉴델리 AFP AP 연합】 힌두교 민족주의 정당이 7일 사실상 완료된 인도 총선의 출구조사 결과 집권 국민회의당에 굴욕적인 참패를 안겨주고 제1당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총선 승리가 예상되는 바라티야 자나타(BJP)당은 그러나 독자적으로 집권할 수 있는 과반수 의석 확보에는 크게 못미친데다 배타적 종교정당 색채가 강해 연정구성에 실패할 것으로 보이며 집권 국민회의당이 연정을 통해 계속 집권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국영 TV 방송이 이날 최고 10%의 오차율을 전제로 발표한 출구조사는 하원의석 5백45석중 바라티야 자나타당(BJP)이 1백92석,국민회의당은 1백42석,중도 좌파연합인 민족전선­좌파전선(NF­LF)이 1백34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달 27일부터 3차례에 걸쳐 실시된 이번 총선에서는 5백45석중 정부가 임명하는 2석과 추후 투표가 실시될 선거구의 6석을 제외한 의석이 결정되며 국민회의당과 BJP,민족전선­좌파전선 외의 나머지는 군소 지방정당과 무소속의석이다. 선거 이전 실시된 여론 조사와 대체로 일치한 이번 출구조사 결과가 현실화될 경우 지난 47년 건국이래 사실상 줄곧 집권해온 국민회의당은 충격적인 참패를 기록하게 된다.
  • 방송3사 「MBC 출구조사」 맹비난/투표소앞 조사 장면 반복방영

    ◎“「사과」 약속뒤 정당화 논리 펴는것 용납못해 방송 4사의 빗나간 4·11총선 개표예측보도의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 현행 통합선거법과 방송사간 합의를 어기고 「출구조사」를 강행한 MBC에 대해 KBS·SBS·CBS 등 나머지 3사가 12일 하오 뉴스시간을 통해 맹비난하고 나섰다.여기에 YTN까지 가세했다. KBS의 저녁 9시 「뉴스9」와 밤 11시 「뉴스라인」 및 SBS 하오 8시 「뉴스2000」은 MBC의 의뢰를 받은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의 여성조사원이 서울 송파구 오륜동 제3투표소앞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시민에게 투표결과를 물어 보는 장면을 반복해서 방영했다. 여조사원은 자신이 『MBC의 의뢰를 받아 출구조사를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KBS와 SBS측은 11일 MBC가 서울시내 경합지역 20여곳에서 출구조사를 강행해 물의를 일으키자 보도이사들이 회동한 결과,MBC측이 사과방송을 내기로 했고 각서까지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반성은 커녕 오히려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MBC는 개표가 완료된 12일 상오 7시에 방송된 「뉴스투데이」와12일 저녁 9시 「뉴스데스크」 등을 통해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한 합동전화여론조사의 문제점에 따라 국민의 알권리를 총족시키기 위해 출구조사를 실시했으나 타방송사에 의해 방해를 받았다』고 거듭 방송했다. 이에 대해 KBS와 SBS는 각각 저녁 9시와 8시 메인 뉴스를 통해 『MBC가 방송사간 합의를 깨고 출구조사를 시도했던 사실이 들통나자 사과까지 해놓고도 다시 뉴스시간을 통해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김재순·김환용 기자〉
  • 오늘 15대총선 투표/상오 6시∼하오 6시/자정께 당락 윤곽

    ◎여­“북 위협 막게 국론통일을”/야­“견제의석 확보” 한표 호소/여야,막판까지 부동표 흡수 총력 선택의 날이 밝았다.21세기의 새로운 의회상을 구현할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가 11일 상오 6시부터 하오 6시까지 전국 1만6천3백94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실시된다. 지난 26일부터 시작된 후보들의 법정선거운동은 10일 자정으로 끝났다. 이날 투표가 완료되면 전국 3백2개 개표소별로 투표함이 도착된 직후부터 개표에 들어가 12일 새벽쯤 당락과 정당별 의석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는 방송3사가 공동으로 투표를 전후해 실시하는 3차례의 여론조사 결과를 투표 종료 직후 보도할 예정이어서 비공식 후보별 당락과 정당별 의석의 윤곽은 11일 저녁 일찍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지역구 2백53명과 전국구 46명의 의원을 뽑는 이번 총선에는 지역구에서 여야 4당 공천자와 무소속후보 등 모두 1천3백85명(등록무효자 4명 제외)이 출마,평균 5.5대 1의 경쟁률을 보였고 전국구후보는 1백60명이 등록했다. 이번 총선의 유권자는 총3천1백48만8천2백94명으로 선관위 관계자들은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으로 투표율은 역대 총선 최저인 70%선을 오르내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앞서 여야 4당과 후보들은 투표일을 하루 앞둔 10일 지도부의 기자회견과 경합지역에서 정당연설회등을 통해 마지막 득표활동을 벌이는 한편 상대방의 금품살포 및 흑색선전을 막기 위한 24시간 비상근무체제에 들어갔다. 신한국당의 이회창 선대위의장은 이날 투표참여를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가진데 이어 관악갑등 서울 5개지역 연설회에 참석,『북한의 비무장지대 파기선언은 우리에게 통일을 위해서는 냉정한 현실인식에 기초한 국론통일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준다』며 『우리당은 평화통일을 이루고 일류국가의 반열에 세울 능력과 비전과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지지를 당부했다. 박찬종 수도권선대위원장은 『우리정치는 아직 불안정을 장기적으로 견뎌낼수 있을 만큼 건강하지 않다』면서 『여소야대는 정국의 기본틀을 흔들어 놓고 혼란을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국민회의의 김대중 총재는 경기 고양갑과 서울 은평을등 수도권 6곳에서 유세를 가진데 이어 저녁에는 KBS­1TV를 통해 방영된 TV유세를 통해 견제를 위한 3분의1 의석을 거듭 호소했다. 김총재는 『남한에 선거가 있거나 정치적 변화가 있을 때마다 북한은 꼭 문제를 만들었고 정부여당은 기다렸다는듯 이를 이용해 득을 봐왔다』면서 『정부가 매일 안보분위기를 조장하고 있지만 냉철한 심판을 해달라』고 역설했다. 민주당 홍성우 선대위원장은 서울지역 후보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투표참여 호소대회」에서 『이번 총선은 위선과 부패,지역할거주의,맹목적 충성강요를 특징으로 하는 낡은 3김정치를 지속하느냐,아니면 무공해 청정정당인 민주당과 함께 새로운 정치의 희망을 가꾸어 가느냐를 결정하는 역사적인 분수령』이라며 『3김씨의 부패정치를 확실하게 심판하자』고 호소했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서울과 경기,인천등 수도권과 충남 예산에서 마지막 유세를 갖고 『김대통령은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채 신판 문민독재를 하고 있다』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막기 위해 내일 선거에서 정부여당을 준엄하게 심판해야 한다』고 지지를 호소했다.〈특별취재단〉
  • “개표방송 「밤샘시청」은 옛말”/방송3사 첨단예측시스템 등 도입

    ◎자정이면 당락·정당별 의석 등 알아 KBS,MBC,SBS 방송3사의 15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방송이 11일 하오 5시부터 일제히 시작한다.투표가 완료되는 6시에는 각 방송사와 5개 조사기관이 공동 실시한 투표자 전화결과를 바탕으로 각 정당별 예상의석수와 당선가능후보자들을 바로 알려준다. 개표가 3%정도 진행된 하오 9시쯤부터는 첨단예측시스템을 활용,「당선확실」 후보를 미리 방송하기 시작해서 밤 12시이전까지 전체 선거구의 90% 이상의 당락을 확정발표한다는 것이 방송사의 계획.따라서 유권자들은 예년과 달리 밤을 새우지 않고도 선거결과를 알수 있게됐다. KBS­1TV 「국회의원선거 개표속보」는 드라마 「사랑할때까지」(하오 8시30분∼9시)를 제외한 모든 정규방송을 폐지하고 다음날 개표완료때까지 계속된다.MBC­TV의 「선택96 개표방송」은 12일 상오 8시40분까지 정규방송을 중단한채 진행되고 이후 「총선이후의 정국전망」대담프로가 이어진다.SBS 역시 「96총선 국민의 선택」을 12일 상오 9시까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진행하며 12일 10시부터는 「총선결산 100분 대토론」을 방송한다.케이블TV YTN도 하오 8시35분부터 다음날 상오 9시까지 개표방송을 하고 다음날 하오 3시에는 당선자 프로필을 방송한다.
  • “선관위 준비끝”/선거관리 대책 점검/투·개표업무 22만명 참여

    ◎1만6천여개 투개표소 설비 마무리/비상발전기 설치… 경찰 1곳 60명 배치/전산시설 시험가동… 불량회선 등 교체 선거 D­1. 4·11총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투·개표를 준비하는 선관위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선관위는 투·개표 과정에서 폭력이나 점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경찰과 소방 인력의 지원을 받는 한편 투·개표에서 착오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권자와 관리 요원을 철저히 교육하고 홍보하는 등 준비를 거의 완료한 상태다. 이번 선거에서는 전국의 학교,읍·면·동사무소,공공기관 등에 1만6천3백94곳의 투표소와 3백2곳의 개표소가 설치된다. 3천명 이상이 투표를 하는 투표구는 1천5백55곳이며 투표자가 5백명이 안되는 투표구도 8백94곳이다. 전국에서 투표자가 가장 많은 투표구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불정 제3투표구로 유권자가 4천3백17명이며 최소 투표구는 인천 강화군 삼산면 제6투표소로 투표자가 단 26명이다. 선관위는 투표소에 명부 대조석과 기표대,투표함,참관인석 등 설비를 10일까지 완료하기위해 마무리작업을 하고 있다. 날씨가 갑자기 나빠질 우려가 있는 도서·산간지방에는 이미 투표용지와 투표함 등을 수송,설비를 마쳤다. 투표용지는 투표구 위원장이 인수하는 즉시 자물쇠를 채워 투표소에 보관하거나 읍·면·동사무소에 보관한 것은 선거일에 무장 경찰의 호송을 받아 투표소로 옮긴다. 또 개표소에는 정전에 대비해 이중 전원과 비상발전기를 설치했으며 개표소마다 60∼70명씩의 경비경찰과 소방·구급시설,구급요원도 배치할 계획이다. 선관위는 개표소의 전산집계시설을 시험가동,불량통신회선을 교체하거나 보완한뒤 11일 아침 투표가 시작되면 가동에 들어간다. 특히 입력을 잘못해 집계에 착오가 생기는 일이 없도록 입력요원들도 충분히 교육시켰다. 개표는 구·시·군청의 회의실을 주로 쓸 예정이며 이밖에 체육관,학교 강당,시민회관 등이 사용된다. 강원도 횡성 선거구에서는 유일하게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을 개표소로 이용한다. 투·개표에는 투표사무원 15만2천5백여명과 개표사무원 6만9천7백여명 등 22만2천2백여명이 동원된다.이 가운데 투표 과정을 직접 관리하는 인원은 8만2천2백명이며 개표 작업에는 3만명이 참여한다. 투·개표 관리요원은 공무원들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2만5천9백여명의 교원과 은행원 등 금융기관 직원 1천9백여명의 일손도 빌린다. 선관위는 이들에게 투·개표 관리요령도 이미 숙지시키는 등 차질없이 투개표를 실시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선관위는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가하기 전에 안내책자 등을 통해 투표 요령을 익혀 무효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줄 것을 당부했다.〈손성진 기자〉
  • 이회창 의장“국익위해 지역 초월해야”/뜨거운 여야 지도부 유세전

    ◎신한국­경인운하 건설 등 31개 공약 발표/국민회의­고려대 방문… 청년학생 투표 당부/자민련­JP,4개 창당대회 참석 강행군 여야는 21일 수도권과 경북 등지에서 필승결의대회 등을 잇따라 열고 총선승리를 다짐했다. ▷신한국당◁ 21일 하오 인천 필승결의대회를 갖고 압승을 다짐했다. 실내체육관을 꽉 메운 당직자 7천여명이 11명의 지역 공천자를 일일이 연호하며 단합을 과시했다.신인천 시대의 개막을 부르짖으며 안정속의 개혁에 힘을 주었다. 이회창 선대위의장은 격려사에서 『총선 승리를 통한 개혁 완성으로 인천을 21세기 동북아시대의 거점도시,서해안시대의 중핵도시로 발돋움시키자』면서 『국가와 국익앞에서 지역을 초월해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독려했다. 박찬종 수도권선대위원장은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자민련 김종필 총재를 겨냥,『내년 대선을 전후해 신한국당은 젊은 지도자들이 새로 주인이 되고 얼굴이 되고 간판이 되지만 야권은 이미 대통령후보가 정해져 있다』면서 『총선에서 양금만은 확실하게 퇴진시켜 YS퇴임과 함께30년 3김 정치를 확실히 종식시키자』고 강조했다. 이 지역 서정화 선대위부의장은 『이번 선거는 동북아 물류센터의 중심지로서 계속 성장하느냐,서울의 주변도시로 주저앉고 마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라며 집권여당에 힘을 실어달라고 당부했다. 이승윤 인천선대위원장은 ▲국제종합무역센터와 국제해양·사적관광단지,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 건립 ▲경인운하 건설 ▲신공항철도 조기 건설 ▲제3경인고속도로와 해저터널 건설 ▲경인전철 복복선 건설 조속 완료 ▲송도 신항만 건설 등 31개 공약사항을 발표했다.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이날 강남갑지구당 창당대회와 광진갑 당원교육에 잇따라 참석,월남과 쿠바를 예로 제시하면서 『미국이 전쟁으로는 월남을 개방시키지 못했으나 햇빛정책으로 문을 열게했다』며 『그러나 대결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쿠바는 아직도 개방이 안되고 있다』고 지적,정부의 북한 대결정책을 공격했다. 정대철 선대위의장은 이날 상오 신계륜 의원 등 「그린캠프 21」 대표들과 고려대를 방문,대학생들과 간담회를 갖고 『국민적 여망인 대선자금청문회 개최는 청년학생들의 투표에 달려있다』며 『청년학생들이 민주주의와 통일조국을 앞당기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포항남·울릉군 등 경남·북 4개 지구당창당대회에 참석하는등 강행군을 계속하며 경북지역의 교두보 확보에 진력했다. 김총재는 『1인의 절대권력으로 대통령을 더이상 불행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며 『이제 제도를 바꿔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고 내각제 도입을 거듭 역설했다. 또 『경제발전 세력이며,유일한 보수세력인 자민련에 힘을 보태줘야 나라가 안정된다』고 안정론을 강조했다.
  • 20일 팔레스타인 자치선거(’96지구촌 선거)

    ◎대통령제 집행의장/아라파트 “적수 없다”/평의회의원 88명 선출… 독립기틀 다지기 지난 67년 3차 중동전쟁후 29년간 이스라엘군의 점령하에서 모든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했던 팔레스타인 주민이 오는 20일 사상 처음으로 보통·자유·평등·직접선거에 의해 스스로의 자치기구를 선택한다.팔레스타인 주민은 이제 비록 내부치안·민정권에 그치지만 독자적인 권력을 행사하게 됐고 독립국가 수립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이른바 「대이스라엘 정책」을 버리고 팔레스타인인이 거주하는 요르단강 서안지역을 팔레스타인에게 되돌려주는 대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인을 전멸시킴으로써 민족국가를 수립하겠다는 기존 목표를 완전 포기하는 것을 전제로 지난해 9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자치확대 협정에 서명한데 따른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은 의회격인 팔레스타인평의회와 대통령 또는 총리에 해당하는 집행기관의장을 동시에 선출한다.평의회는 입법권과 행정권을 가지되 입법권은 전체평의회가,행정권은 평의회의원들과 소수의 임명관리들로 구성되는 소위원회(행정당국)가 행사한다.평의회설치가 완료되면 이스라엘 군정및 행정청은 해체된다. 팔레스타인은 이미 이스라엘로부터 통치권을 이양받은 예닌·툴카름·나블루스·칼킬야·베들레헴등등의 지역에서 선거에 나설 후보들의 명부확정작업을 끝냈다.팔레스타인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2일부터 3주일동안 진행된 유권자 등록기간중 1백4만명의 만18세이상 유권자가 등록을 마쳐 83%가 넘는 등록률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동예루살렘에서는 영토반환을 거부하는 과격파 유태인들의 위협을 두려워한 팔레스타인 주민의 주저로 65%만이 등록,등록기간을 1주일간 연기하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마흐무드 아바스 중앙선관위원장은 총16개 선거구에서 88명의 평의회의원을 뽑는 투표가 실시되며 총선후보 6백78명중 4분의 3이 무소속이며 나머지 4분의 1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12개파 소속이라고 밝혔다.이들 12개파 가운데 야세르 아라파트 PLO의장의 친위그룹으로 팔레스타인 최대파벌인 파타가 70명을 등록시켰으며 무소속후보중 상당수도 아라파트의 지지자로 분류되고 있어 아라파트 의장측의 대승이 확실시 되고 있다. 집행기관의장으로는 아라파트 의장과 여권운동가이자 사회복지활동가로 이스라엘에 지나치게 양보한 자치확대협정을 폐지하겠다는 사미하 하릴여사가 맞서고 있으나 아라파트의장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는 지난 9월말 이스라엘과의 자치확대협정 조인으로부터 선거일까지의 기간이 4개월에 불과,준비기간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안팎으로부터 쏟아져 나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라파트가 조기선거를 강행하는 이유는 자치정부를 조기에 현실화시킴으로써 정통성을 갖는 동시에 자신의 권력기반을 가자로부터 요르단강 서안 전역으로 확대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한편 유럽연합·미국·한국등 국제선거감시단은 지난 1일 이번 선거에 대해 아라파트 의장이 평의회 정수를 4번이나 변경해 선거법을 무시하고 선거운동개시일을 늦춰 선거기간을 단축하는 등 불공정행위를 했다고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대의 관심거리였던 이슬람 과격파 하마스는 이스라엘과의 자치협상을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에 따라 선거에 불참한다.그러나 하마스는 PLO와의 협상에서 선거보이콧을 선동하지 않고 PLO쪽에 대한 무력사용을 중지한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선거전후의 혼란은 크게 줄어들게 됐다.
  • 다자주의·자유무역질서 뿌리내린다/미 찰스 쿱찬 교수 지구촌 조망

    ◎정치­고립주의 탈피… 분쟁 단체해결 보편화/경제­실업 등 개방초기 부작용 극복이 과제/중·러의 국제체제 효과적 편입이 21세기 평화 좌우 20세기가 끝나려고 하는 지금 국제 체제는 역사적 교차로에 다다랐다.냉전시대에 길러진 국제주의 시각과 국가간 기구들의 조직망들은 쇄신의 기로에 서있다.앞으로 수년동안 세계지도자들은 국제질서를 관리하는 새로운 정신적 틀과 구체적 구조를 끌어내야만 한다.이 일이 잘되느냐 못되느냐에따라 90년대가 어두운 격동기 1930년대 바로 전 착각의 평화시대였던 1920년대의 재판이 되느냐,아니면 굳건한 안정과 성장의 새 시대 초두가 되느냐가 결정된다. ○각국 개방조치 잇따라 이 미래의 선택에대해 낙관적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여럿 들 수 있다.다음 3가지 측면에서 세계정치는 지난 89년이래 결정적으로 긍정적인 방향을 향하고 있다. 첫째,냉전의 블럭체제가 무너지자 세계 경제의 극적인 개방이 뒤따랐다.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유럽연합(EU) 등의 지역교역체의 결성에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완료에 의한 전세계적 자유화가 동반되었다.옛 시장들은 다시 뛰어오르고 새 시장들은 반듯이 줄을 맞추고 있다.경제적 부의 증가는 각국의 국내안정에 크게 기여한다. ○경쟁시대로 복귀 안해 둘째,큰 나라든 작은 나라든 국제적 문제해결에 다자주의와 단체적 행동방식을 신봉하고 있다.소련붕괴 이후 힘우위의 정치가 팽배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민주국가들간의 협력체제가 와해되거나 자기만의 이득 쟁취를 위한 각국간의 경쟁시대로 복귀하지는 않았다.걸프전 때의 역사적 결집,동구 민주전환국에 대한 나토의 개방적 태도,러시아군의 보스니아 평화실현군 참여,동아시아국가간의 협력,중동평화에 관한 지역국가들의 도움 등 최소한 지금까지는 통합력이 분해의 힘을 이겨내고 있다. 셋째,냉전이후의 첫 5년간은 변혁의 심대한 폭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평화스러웠다.국내·외적 체제전환은 불안정과 알력을 낳기 마련이다.그러나 90년대는 이의 예외 케이스로 선뜻 지목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자화자찬하고 자기만족에 빠지기에는 때가 너무 이르다.이 3가지 긍정적 추세의 하나하나는 금방 뒤집어질 수 있다.번영과 상호의존의 증가를 약속하는 세계경제의 자유화는 다른 한편으론 기존 경제강국들에게 어려운 변화를 요구한다.철의 장막에 의해 동구권 상품에 대한 보호주의를 가만히 앉아서 누렸던 서구는 정책조정이 긴요하지만 최근의 프랑스파업에서 보듯 선거로 뽑힌 관리들이 시도할 수 있는 개혁의 범위는 몹시 한정되어 있다.미국도 NAFTA,APEC 동반자들의 약진을 국내실업 원인으로 몰아붙이는 분위기를 감당해내야 한다. 작금의 다자주의,지역협력체,특별사안에 대한 연합형성 바람은 아무리 열렬하다 해도 아직은 뿌리가 깊지 못하다.보스니아 평화유지를 위한 다국적군의 실현도 미국의 단독플레이에 의해 3년이나 뒤늦게 이루어졌다.각국의 국내정치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수십년간의 냉전체제에 물든 선진 민주국가의 일반국민들은 긴박한 위협이 목전에 다가왔을 때만 희생의 필요를 인정하는 버릇이 붙었다.더 이상 핵심적인 국가이익이 위협에 처해지지 않아 정치가들이 눈치를 봐야하는 유권자들은 생명이나 재정의 충당을 요구하는 외교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특히 미국 의회는 위험할 정도로 고립주의의 기만적 안락함 뒤로 몸을 숨기려 한다. ○침략국가로 돌변 가능성 역시 평화적 체제전환도 외관보단 빈약하다.러시아는 아직도 커다란 장애물을 눈앞에 두고있다.경제적 고통과 국제사회에서의 위신상실에 대한 반발로 최근 총선에서 공산주의자와 국수주의자가 기세를 얻었다.지난 1930년대의 일본,독일의 역사가 예시하듯 경제적 불안정은 막 날아오르려는 신흥 민주정체를 악의적인 침략국가로 단숨에 돌변케 할 수 있다.중국 역시 아직 커다란 의문부호다.중국은 10∼20년내에 경제·군사 강대국으로 자리잡을 것이나 이 힘을 중국이 어떤 목적에다 쓸 것인지 지금 잘 알 수가 없다.중국의 발전방향과 외교정책의 행로는 아마도 다음 세기 세계의 틀을 잡는 가장 중요한 미지수라고 할 만하다. 세계 정치지도자들은 탈냉전 초기시대의 긍정적 추세가 뒤엎어지지 않고 한층 심화되도록 구체적 정책을 세워야 하며 이는 능히 할 수 있는일이다.먼저 자유 국제무역질서 이념에 확고히 발을 내디뎌야 한다.각 나라마다 보호주의 물결과 맞서야 하며 자유무역의 장기적 혜택을 유권자들에게 교육해야 한다. 유럽연합은 세계경제로부터 표류하지 않기 위해서 미국을 시장의 일원으로 포함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일·독 국제적 역할 늘려야 정치지도자들은 또 다자적 참여 외교정책의 혜택과 고립주의의 위험을 국민들이 깨우치도록 힘써야 한다.현상유지 세력들이 국제적 책임을 회피하고 뿔뿔이 자기 길만 걸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는 19 30년대가 잘 말해준다.일본과 독일은 세계의 위기관리와 평화유지에 보다 더 큰 역할을 떠맡는 데 적극적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평화적인 상태에서 국제체제의 전환이 계속되도록 국제사회는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특히 러시아와 중국 두나라를 세계정치와 경제 틀에 자연스럽게 통합시키는 전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이뤄진다고 해서 21세기가 미증유의 평화시대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그러나 역사적 교차로에 다다른 국제사회는 최소한올바른 방향을 향하여 서 있음을 확신할 것이다. □찰스 쿱찬(CHARLES A.KUPCHAN) 현 미 조지타운대 외교학 교수 겸 외교연구위원회(CFR.『포린어페어즈』발간) 유럽담당 위원 클린턴행정부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NSC) 유럽국장 역임 프린스턴대 정치학 교수/하버드대 졸업 옥스포드대 박사학위 저서 「새 유럽의 민족주의와 민족국가」(95년) 「제국의 취약성」(94년) 「걸프만과 서양」(87년) □96년도 주요 국제행사일정 ◇1월 △14일:과테말라 대통령 결선투표 △14일:포르투갈 대통령선거 △17일: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총리의 부패 재판시작 ◇2월 △1일:미국­프랑스 정상회담(워싱턴) △5일:교황 요한 바오로2세 과테말라등 남미5개국 순방 △20일:미국대통령 예비선거 시작­콩코드(뉴 햄프셔주) △26일:베를린 국제 영화제 ◇3월 △1일:제1회 아시아­유럽 정상회담 △5일:콜로라도주,메릴랜드주 미국대통령 예비선거 △7일:뉴욕 미국대통령 예비선거 △23일:대만,최초의 직선 총통 선출 ◇4월 △9일:국제원자력기구 체르노빌 원전사고10년 기념회의 △16일:클린턴 미대통령 일본방문 △26일:제9차 유엔 무역 및 개발회의 ◇5월 △5일:국제여성 리더십 포럼(남아프리카) △9일:칸 영화제 △19일:에콰도르 대통령선거 및 총선 ◇6월 △5일:석유수출국회의(OPEC)총회­비엔나(오스트리아) △16일:러시아 대통령선거 △22일:유럽연합 정상회담­플로렌스(이탈리아) △29일:G7 정상회담­리옹(프랑스) ◇7월 △19일:하계올림픽 개막­애틀랜타(미 조지아주) ◇8월 △12일: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샌디에이고(캘리포니아) △12일:리베리아 대통령 및 의회 선거 △26일: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시카고(일리노이주) ◇9월 △17일:유엔총회 개막 ◇10월 △10일:노벨상 수상자발표 ◇11월 △5일:미국대통령 및 의회선거 ◇12월 △10일:노벨상 시상식
  • 민주·개혁신당 당명 「통합민주당」으로

    ◎오늘 선관위 등록으로 통합 마무리/당헌에 대선후보 예비선거제도 도입/지역기반 없어 가능성·한계 함께 지녀 민주당과 개혁신당이 13일 당헌당규를 확정짓고 중앙선관위에 「통합민주당」(약칭 민주당)의 당명으로 정식 등록한다.이로써 양당은 지난 달 7일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은 지 한달여 만에 법적 통합을 완전 마무리하게 됐다. 새롭게 단장한 통합민주당은 다른 정당들과 비교되는 몇가지 차별성을 갖고 있다.우선 지역기반이 없다는 점이다.이는 곧 전국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절대권력을 쥔 「소유주」가 없다는 것도 특징이다.김원기·장을병 공동대표와 이기택 고문이 당권을 삼분,확실한 지배주주가 없다.때문에 사당화될 염려가 작은 반면 계파갈등이 상존할 우려가 크다. 당 운영에 있어서 민주적인 절차를 새롭게 마련한 것도 통합당의 특징이다.민주당은 12일 마련한 당헌·당규를 통해 공직선거 후보직에 대해 미국의 예비선거제를 가미한 당원 직선제를 도입했다.즉,대통령선거 후보자를 선출할 때는 우선 당원들이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대의원을 투표로 선출하고 이들이 다시 투표로 대선후보자를 뽑는 방식이다. 조직책 선정에 있어서 당밖의 인사가 참여하도록 한 점도 특기할 사항이다. 보수와 진보세력이 뒤섞여 있는 점도 세 정당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이는 뒤집어 보면 서로 이질적인 양 진영이 어떻게 화학적 융합을 이뤄내느냐의 과제를 던져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날 법적 통합을 완료,민주당은 당직자 인선과 조직책 선정등 총선준비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그러나 내년 총선의 야전사령관을 맡게 될 사무총장직을 놓고 이고문측과 김대표의 통합모임측이 팽팽하게 맞서 진통이 불가피하다.13일 선출될 6명의 최고위원에는 강창성 의원과 장경우·이부영·김정길 전의원,개혁신당의 홍성우·서경석·장기표씨가 거론된다.이철 원내총무와 이규택 대변인은 유임될 것으로 알려졌다.
  • “5·18진상규명”입법의지 변함없다/청와대­여권「특별법」추진방향

    ◎국민정서·처벌 여론 최대 반영/위헌 소지 피할 방법 다각 연구 헌법재판소의 「5·18」불기소처분에 대한 최종 결정이 임박한 가운데 특별법제정을 통해 「5·18」과 「12·12」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김영삼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의지가 더욱 굳어지고 있다. 헌재는 지난 27일 5·18관련,내란죄의 공소시효가 끝났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30일 판결을 내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군사반란죄의 경우에는 공소시효에서 반란과 관련된 대통령의 통치기간은 빼야한다고 결론지을 것으로 전해진다.그렇다면 전두환·노태우 두전직대통령은 형법상 내란죄가 아닌 군형법상 반란혐의로 기소할 수 있으며 나머지 5·18주도자들은 처벌이 불가능해지며 따라서 총체적 진상규명과 응징이 어려워진다는 얘기가 된다. 헌재의 최종 결정이 이렇게 날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야는 모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너무 법 조항에만 매달려 국민정서와 정치적 현실이 무시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여권은 헌재의 결정이 어떤 방향으로 나더라도 특별법을 제정,5·18의 전체적인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다짐하고 있다.한 고위관계자는 28일 『헌재의 결정이 5·18특별법 제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특별법을 만들어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김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여권은 헌재가 공소시효관련 부분에서 지금까지 언론에 알려진 대로 최종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여권의 다른 고위관계자는 『헌재의 고유 심판 기능에 압력을 넣을 생각도 없고 또 그럴 여지도 없다』는 전제 아래 몇가지 「기대치」를 피력했다.그는 『헌재가 내부적으로 의견을 모은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있어 내란죄의 공소시효가 완료됐다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진다고 1백% 확신하기 어렵다』면서 『여야 정당의 분위기,그리고 국민정서를 고려할때 가장 좋은 방안은 헌재가 검찰의 불기소조치가 잘못됐음만 밝히고 공소시효부분은 특별법에 맡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헌재가 내란죄에 대한 공소시효 만료를 결정한다면 여권으로서 택할 수 있는 방법은▲독일이 통독후 구동독의 전범을 처리키 위해 만든 방식의 특별법 제정 ▲헌법개정을 통해 부칙에 예외조항을 두는 방안뿐이라고 설명했다.그가 이런 방법까지 거론하는 것은 여권 핵심의 5·18진상규명 의지가 그만큼 강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민자당도 어떤 형식으로든 두 전직대통령외에 여타 5·18관련자들도 기소할 수 있는 특별법을 만들 생각이나 헌재 결정에 반할때는 소급입법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다.또 헌법개정은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등 절차가 복잡해 채택에 어려움이 많다는 지적이다. 민자당 일각에서는 전직대통령이 아닌 책임자들을 공동정범,종범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특별법에 명기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이것도 헌재 결정에 배치된다면 논란의 소지가 있다. 국민회의·민주당등 야권에서는 헌재의 결정 자체를 연기하고 그전에 특별법을 우선 처리,관련자를 기소하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여권은 헌재의 결정이 내려지면 앞서 언급된 방법중 적절한 것을 선택,특별법 제정을 밀어붙일 것으로 전망된다.최종 헌재 결정까지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 모두 긴장된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할것 같다.
  • 파 대통령 공산계 당선/크바스니에프스키 바웬사 눌러

    【바르샤바 로이너 AFP 연합 특약】 19일 실시된 폴란드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의 중간개표 결과,공산당원이었던 알렉산데르 크바스니에프스키가 52.32%를 얻어 47.68%를 얻은 레흐 바웬사 현대통령을 여유있게 앞서고 있다고 폴란드의 PAP 통신이 20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이같은 결과가 폴란드의 49개 지방 가운데 개표가 완료된 40개 지방의 개표결과를 집계한 것이라고 밝혔다. 크바스니에프스키는 35개 지방에서 개표가 완료됐을 당시 27개 지방에서 승리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이번 대통령 선거의 투표율은 68.61%에 이르고 있다. 크바스니에프스키가 승리할 경우 지난 93년이후 그의 민주좌파동맹(SLD)이 의회의 다수파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행정부와 입법부 모두를 공산당원 출신들이 장악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또 자유노조 민주화운동으로 지난 89년 폴란드의 공산통치에 종지부를 찍었던 전기기사출신의 정치인,바웬사를 지지했던 폴란드 가톨릭 교회의 패배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바웬사 대통령의 대변인 마레크 카르핀스키는 폴란드 라디오와의 회견에서 바웬사대통령의 패배를 시인하면서 『이는 폴란드를 위한 「또 하나의 교훈」이 될 것이다.우리는 크바스니에프스키가 선거공약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지 예의주시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 홍콩의 마지막 입법선거/왕가영 홍콩중문대 아태연연구원(해외논단)

    ◎정치대결 넘어 홍콩 민주발전에 기여/시민들 97년 주권이양 우려… 대중 비판의식 표출 왕가영 홍콩중문대학 홍콩아시아태평양연구소 연구원은 홍콩입법국(의회)선거결과를 분석한 글을 19일자 홍콩 연합보에 기고했다.다음은 기고문 내용. 영국식민지아래서 홍콩의 마지막 입법선거가 어제 완료됐다.이번 선거는 중국과 영국정부의 홍콩에 대한 정치개혁 협상이 실패한뒤 중국정부의 반대아래서 홍콩의 영국정부 단독결정으로 치러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 선거를 둘러싸고 중국과(홍콩의)영국정부사이의 마찰·갈등은 물론 「민주파」와 「친중파」를 둘러싼 2대 정치세력사이의 공방및 정치적 긴장이 조성됐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선거결과는 현지는 물론 홍콩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되는 97년까지 정치적 합의와 정치발전전망,각종 모순과 문제를 담고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홍콩의 영국정부는 이런 선거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광고및 대민선거등에 적잖은 돈을 투입하는등 물량작전을 펼쳤다.반면 이 선거에 대한 중국정부의 입장은 선거를 부정하면서도 「친중파」를 통한 선거참여에는 적극적인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홍콩에서 중국정부를 대표하는 신화사는 선거당일에도 중국정부는 97년 7월1일,입법의회에 대한 해산방침엔 변함없음을 다시한번 강조하면서 이번 선거의 과도적인 성격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그러면서도 「친중세력」의 참여극대화에 노력했다.97년 홍콩을 접수할때 「친중파」를 통한 각 권력기관들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과 정치적 우위를 장악하려는 계산이었다. 이번 선거의 투표자는 92만여명으로 이전 투표자수보다 17만여명이나 많다(투표율 35.79%).투표자 수로 따질때 홍콩투표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투표한 것이 된다.구체적으로 입증되기는 어렵지만 각종 정치활동을 제약하는 무형의 압력속에서도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가한 것은 홍콩시민들의 민주·자치선거에 대한 긍정과 정치적 성숙성으로 해석해도 될 듯하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합의는 미래 정치발전과 판도에 대한 충격성에 있다.이번 선거에서의 「민주파」의 승리로앞으로 홍콩입법의회에서 민주적 성향과 탈중국적인 자주성향의 색채가 짙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민주파」는 친중적이고 보수적인 세력에 대한 강한 대항능력을 갖게 됐다고 할 수 있다. 또 이번 선거에서 두드러진것은 「민주파」의 방대한 동원능력과 민간의 지지다.반대로 친중파인 민건련의 김옥성주석등 핵심인물들이 참패,낙선한 것은 일반 홍콩시민들의 중국정부에 대한 항의와 비판의식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지난 89년).천안문 6·4사태가 지난지 오래지만 이에대한 홍콩시민들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은듯 하다. 97년 주권이양에 대한 홍콩인들의 일종의 감정이 이번 선거에서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민주파」를 선출하는 것이 「친중파」를 뽑는것보다 더 주권이양의 과도기에서 더 홍콩시민들의 이익을 보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번 선거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다른 각도에서 볼때 이번 선거에서 「친중 인사」들의 낙선으로 97년 주권회복이후 홍콩에 대한 중국정부의 정책은 더 보수화될 것으로 보인다.특히 현행 선거방식과 제도에 대한 변화도 예상된다.현행 소선구제에서 나타날 수 있는 1등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제도를 대선구제,또는 중선거구제로 변화시켜 「민주파」가 우세를 나타내지 못하는 방식으로 희석시켜 나갈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친중적인 민건련의 핵심인사들은 낙선했지만 그들의 지지율 자체는 과소평가할 것은 아니다.이 점에서 이들 역시 이미 홍콩시민들의 민의에 대한 기초를 확보해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친중인사들의 주요 패배 요인 가운데는 중국과 영국의 홍콩정부사이의 차이및 모순으로 인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앞으로 중·영관계가 개선되고 양쪽의 차이가 줄어든다면 이들의 활동공간도 커질것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직접 선거구민들을 대면하고 선거운동을 한 친중인사들의 행동은 대단히 용기있는 것으로 평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들이 승패로서 영웅을 논하지 않고 민주파와 친중파라는 이원대립의 정치대립을 넘어서서 말한다면 이들은 모두 다 홍콩 민주정치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즉 이러한 선거를 치러 냈다는 과정 자체가 민주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 이들에게서 「민주파」와 「친중파」라는 딱지를 떼어버리면 누가 정말 민주정치의 실천자인지 분별해 내기가 쉽지는 않다.이것을 확인하는데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것으로 생각된다.
  • 홍콩 의회선거/민주세력 압승/직선 20석중 16석 차지

    ◎친중계는 2석/중,주권 환수땐 해산 【홍콩 외신 종합】 영국 통치하에서 마지막으로 실시된 17일 홍콩 입법국(의회) 입법위원 직접선거에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를 지지하는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고 중국의 지지를 받는 「홍콩발전을 위한 민주동맹」이 참패한 것으로 개표 결과 밝혀졌다.그러나 민주화계열 후보들은 직능대표를 포함한 60명 전체 입법위원의 과반수 획득에는 실패했다. 18일 개표완료된 이번 입법위원 선거에서 지역구 주민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되는 입법위원 20개 의석가운데 민주당 12석 등 민주화계열 후보가 16석을 확보한 반면 「홍콩발전을 위한 민주동맹」의 지도자인 창 욕 싱등의 후보가 패배하는 등 2석확보에 그쳤고 나머지 2석은 무소속후보들에게 돌아갔다.이같은 선거결과는 홍콩반환을 1년9개월 앞둔 중국에는 큰 좌절이 될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 패튼 총독의 민주개혁안에 따라 입법위원 60명중 30명을 뽑는 직능대표 선거와 선거위원회 관리들이 간접투표로 10명을 뽑는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11석을 친중국계인 「홍콩발전을 위한 민주동맹」이 4석을 각각 추가로 확보했다. 이로써 총의석은 민주당 23석,민주당 지지성향후보 6석,「홍콩발전을 위한 민주동맹」 6석,친자본가 성향의 자유당 10석,군소정당및 무소속 15석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선거당일인 17일에도 패튼 총독이 중국의 승인을 받지않고 민주개혁안을 도입해 이번 선거를 실시했기 때문에 97년 7월1일 주권을 돌려받게되면 곧바로 입법국을 해산할 것이라고 거듭 선언했다.
  • 한국­격동의 반세기 발자취/1945∼95:1

    ◎분단대결 구도속 민주주의 꽃피우다/동족상잔의 전쟁 발발… 전국토 초토화­1950년/5·16 쿠데타… 본격 개발독재시대 돌입­1961년/유신 선포… 장기집권의 「정치암흑기」로­1972년 95년 8월15일.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을 되찾은지 쉰번째 맞는 광복절이다.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민족상잔의 비극과 국토의 허리가 꺾이는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분단을 원죄 삼아 정치·사회등 각부문에서 여러가지 사건들이 꼬리를 물었으며 최근들어서는 고속성장의 후유증으로 붕괴·폭발등 인재가 속출,광복 반세기사에 깊은 골이 패이게 했다.그러나 한민족은 이같은 역사의 도전을 끈질김과 슬기를 갖고 성공적으로 극복,전쟁의 폐허속에서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눈부신 꽃봉오리를 피워냈다.광복 및 분단 반세기동안 빚어진 영욕의 역사를 연도별로 간단히 정리해본다. ▷1945년◁ 8월15일 한민족은 36년간의 일제강점에서 벗어났다.그러나 얼마뒤 9월2일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소양군의 한반도 분할점령이 발표돼 분단의 씨앗이 심어졌다.김일성은 9월19일 원산항을 통해 북한에 들어왔다.이 가운데 10월25일 미국에서 돌아온 이승만을 중심으로 2백여 정당대표가 회합해 조선독립 촉성중앙협의회를 발족시켰다.김구등 임정요인들은 11월23일 개인자격으로 뒤늦게 환국했다.연합국은 12월28일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조선 신탁통치를 결정,12월31일 반탁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됐다. ▷1946년◁ 조선공산당은 1월2일 입장을 급선회,신탁통치 지지에 나섰다.5월23일에는 군정장관의 허락없이 38선을 무단 월경하는 것이 금지돼 분단이 사실화됐다.이에 따라 이승만은 6월3일 남한단독정부 수립을 천명했으며 소련은 7월2일 서울영사관을 철수했다.대구에서 쌀배급요구를 내세운 10·1폭동이 일어나 3천7백명이 체포돼고 16명이 숨졌다. ▷1948년◁ 2월26일 유엔은 남한단독 총선거 실시를 결의했다.김구등 한독당 대표들은 이에 반발해 4월19일 38선을 넘어 김일성과 남북연석회의를 갖고 통일방안을 논의했다.또한 제주도에서 4월3일 남한단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그러나 결국 5월10일 유엔 한국위원회의 감시 아래 남한단독 첫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됐다.총선 이후 첫 소집된 국회는 7월1일 대한민국을 국호로 결정했으며 원내 선거로 초대대통령에 이승만을 선출했다. ▷1949년◁ 5월20일 남로당 국회프락치사건이 일어나 국회의원들이 체포됐다.미국은 같은날 미군철수를 발표했으며 6월29일 철수를 완료했다.이에 앞서 6월26일 민족지도자 김구선생이 안두희에 의해 피살,국민의 깊은 슬픔을 자아냈다. ▷1950년◁ 미 애치슨 국무장관은 1월12일 미방위선에서 한국이 제외된다고 말했다.반면 1월26일에는 외침시 미군의 개입을 보장하는 한미상호방위원조협정이 체결됐다.마침내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53년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3년여간 전국토가 전화에 휘말려 폐허화됐다.3일만인 6월28일 서울이 인민군에 함락됐으며 같은날 새벽 3시 한강인도교가 폭파됐다.미국은 6월27일 참전을 결정하고 유엔 안보리에 연합군 결성을 제안,7월7일 안보리에서 유엔군 최고사령부 설치를 채택됐다.부산까지 계속 밀리던유엔군은 9월15일 새벽 인천상륙작전을 감행,9월26일 서울을 수복한데 이어 38선을 돌파하고 북진에 들어갔다. ▷1951년◁ 중국군은 1월1일 6개군단으로 38선을 넘어 남하했고 정부는 다시 1월4일 부산으로 후퇴했다.이 가운데 공비토벌을 이유로 거창양민 6백63명을 국군이 학살한 사건이 벌어졌다. ▷1953년◁ 이승만은 미측의 조기 휴전 추진에 반발해 6월18일 반공포로 2만7천여명을 석방하는등 미측에 압력을 가했다.그러나 7월27일 유엔과 북한·중국이 당사자로 서명한 가운데 휴전협정이 조인됐다.북한에서는 8월7일 박헌영등 남로당 계열을 간첩혐의로 사형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1960년◁ 전년의 사라호 태풍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것을 간신히 수습하고 3월15일 정부통령 선거가 실시돼 4대 대통령에 이승만대통령이 당선됐다.그러나 부정선거였음이 밝혀져 거센 항의시위가 빚어졌다.4월11일 마산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김주렬군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됐다.4월19일 서울에서 2만명의 학생들이 대대적인 도심시위를 벌여 4·19혁명의 불길이 당겨졌다.4월26일 이승만대통령은 마침내 하야성명을 발표했다.이에 따라 4월28일 과도내각이 구성됐으며 이승만은 5월29일 하와이로 망명길을 떠났다. ▷1961년◁ 5월16일 박정희소장의 주도로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전두환대위가 이끄는 육사생도들은 18일 쿠테타지지 시위를 벌였다.박정희는 20일 국가재건 최고회의를 결성하고 의장에 취임했다.이어 용공분자와 깡패 6천2백여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7월27일 미측은 한국군사정부를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1962년◁ 한일양국은 3월12일 외무장관 회담을 개최했다.또 3월19일 최고회의는 63년 민정이양을 발표했으며 정치활동정화법을 공포했다.이에 따라 윤보선대통령이 사의를 표명하자 박의장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했다.또 6월10일에는 10환을 1원으로 평가절하하는 화폐개혁이 단행됐다.10월15일에는 한미행정 협정실무자회담이 학생들의 반대속에 18개월만에 재개됐으며 11월12일 김종필은 일본 오오히라와의 비밀메모를 작성했다. ▷1963년◁ 1월18일 민주공화당이 발기선언을 가졌으며 박정희는 민정불참을 발표했다.25일 김종필은 순회대사 자격으로 자의반 타의반 외유길에 올랐다.11월26일 실시된 6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공화당은 압승을 거두고 이어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1964년◁ 4월1일 국회에서 김종필과 오히라간의 비밀메모가 공개되면서 학생시위가 격렬해지자 정부는 6월3일 각급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1965년◁ 국회는 1월26일 베트남에 대한 국군공병단의 파견동의안을 통과시켰다.또 2월20일에는 한일기본조약이 가조인됐다.군은 한일조약에 대해 반대하는 시위가 날로 거세지자 4월19일 위수령을 발동했으며 정부는 6월22일 한일협정을 정식조인했다. ▷1966년◁ 6월18일 장창선이 세계아마레슬링 플라이급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땄다.1주일 뒤인 6월25일에는 김기수가 국내 처음으로 주니어미들급으로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1967년◁ 3월22일 북한 중앙통신부사장 이수근이 위장 귀순했다.5월3일 제6대 대통령선거가 실시돼 박정희후보가 당선됐다.7월8일 중앙정보부는 동베를린 간첩단사건 관련자1백94명 가운데 1백4명을 구속했다. ▷1968년◁ 1월21일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31명이 청와대기습을 위해 서울에 잡입했다.1월23일에는 푸에블로호가 납북됐다.4월 파라과이와의 이민협정에 체결됨으로써 남미 이민의 막이 올랐다. ▷1969년◁ 2월5일 서울시 중학교 무시험 전형이 실시됐다.3월22일에는 3·1고가도로가 개통됐다.3월28일 김수환대주교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추기경에 선임됐다.10월17일 3선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가결됐다. ▷1970년◁ 3월17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강변로에서 정인숙이 피살,배후를 놓고 전국이 들끓었다.4월8일 와우아파트가 무너져 33명이 사망했다. 11월13일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이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 자살해 노동운동의 험난한 앞길을 예고했다.
  • 제헌국회의 공과(새로쓰는 한국현대사:29)

    ◎헌법·각종 기본법률 제정… 민주주의 토대구축/일제잔재 청산 미비·농지개혁 실패 등 실정도 1950년 5월 30일 제헌국회는 두번째 정기회기를 마침으로써 2년여만에 막을 내렸다.이 날은 마침 제2대 국회 구성을 위한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한 날이었다.대한민국 출범이후 지금까지 14대의 국회가 구성됐지만 제헌국회의 의미는 각별할 수 밖에 없다. 제헌국회는 헌법을 비롯한 각종 기본적인 법률의 제정,초대 대통령 선출등 대한민국 탄생의 산실이었기 때문이다.또 일제 잔재 청산등 묵은 시대를 정리하고 민주주의에 기초한 새 시대의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 업적은 대단하다.물론 새로 도입한 민주주의 제도가 우리 사회에는 생소한 것이어서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고 일제 청산이 미흡한 점 등 부족한 부분도 많았다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이는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제헌국회 2년을 수치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1948년 5월 10일 실시한 선거에서 의원 1백98명이 선출됐다.회기는 그해 5월 31일 개막해 2백3일동안 계속된 임시회를 비롯,임시회와 정기회를 합쳐 6차례,6백40일동안 문을 열었다.임기 7백30일 가운데 90일을 제외하곤 늘 개회 상태였으니 신생국가의 첫 의회답게 엄청난 열정을 보였던 것이다.실제로 첫 임시회는 정기국회 개회를 이틀 앞둔 48년 12월 18일 폐회,하루만 쉬고 다시 회기에 돌입할 정도였다. 이같은 열의로 제헌국회는 2백34건의 법률안을 통과시켰다.또 2백26건의 청원을 접수해 65.5%인 1백48건을 처리했다.국회 자체의 건의·결의안은 모두 1백45건이나 됐으며 1백1건을 가결했다. 이같은 활동 중에서도 제헌국회가 다룬 주요 의제로는 반민족 친일파의 처벌,미군 철수대응,국가보안법 제정,농지개혁과 지방자치제 실시 등을 꼽을 수 있다.특히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대응은 새로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사활이 걸린 최대 현안이었다.남북에 별개의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분단은 곧 전쟁을 불러오리라는 예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더욱이 북한의 군사력이 대한민국의 수준을 능가한다는 사실도 이미 확인된 상태였다.따라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국가안보를 위해 꼭필요했고,만약 미군이 떠난다면 그에 앞서 자체 국방력을 대폭 강화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주한미군 철수의 칼자루는 물론 미국 정부가 쥐고 있었던 만큼 당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미 정부는 1947년 9월 말 한반도문제를 유엔으로 이관함으로써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정지작업을 했다.하지만 미 국무성과 육군성,그리고 주한 미 군정 사이에는 입장에 따른 견해차가 있었다. 육군성은 『한국에 대해 군사전략적인 이해를 거의 갖고 있지 않다』는 합동참모부(JCS)의 분석을 바탕으로 미군 철수를 강력하게 주장했다.미 군정도 군정을 지속시킬 수 없을 정도로 한국 상황이 악화됐다는 이유로 철군을 지지했다.국무성도 철군주장에는 동의했다.다만 한국이 공산화하지 않도록 철군에 앞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미정부는 1948년 4월 초 「한국에 대한 미국의 입장(NSC 8)」이라는 문서를 채택함으로써 주한미군 철수를 결정했다.이 문서에는 주한미군이 그해 12월 31일까지 철군을 완료하도록 규정돼 있었다.하지만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남북한간 정세가 불안정해지자 철수는 계속 연기됐다. 한국 정부는 처음부터 미군철수를 반대하지만 일단 기정사실로 굳어지자 더 많은 경제원조와 군사원조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꿔 미 정부에 집요하게 요구했다.이에 미국도 군사고문단을 설치하고 국방경비대를 강화하는 등 철군이후 한국의 안전보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제헌국회 내에서도 미군 철수는 최대의 논쟁점이 되었다.1948년 10월 13일 제87차 본회의에서 의원 46명은 「외군철회 요청에 관한 긴급동의안」을 제출했다.그들은 『자주국가로서 자율권이 엄연한 이상 외군의 주둔을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 다음 유엔을 겨냥,『유엔은 총회에서 19 47년 11월 14일 결의한 기록을 회상해』외군철수를 조속히 시행하라고 요구했다.이에 대해 많은 의원들은 「공산당 모략」이라고 흥분했고 양쪽 의원들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국회의장이 경위를 출동시키기 까지 했다. 이어 11월 19일에는 최윤동 의원 등 99명이 『대한민국의 방위태세가 정비될 때까지 미군의남한주둔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미군주둔에 관한 결의안」을 제출했다.이 결의안은 약간의 논란을 거친 뒤 표결에 들어가 재석 1백13명 가운데 찬성 88,반대 3의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됐다.「외군철회 동의안」이 나온 뒤 빗발치는 여론의 비난 속에서 미군철수 주장이 급격히 사그라든 결과였다. 일제강점기 때 민족반역자 노릇을 한 친일파를 처벌코자 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사안이다.제헌국회는 48년 9월 친일파를 사형까지 시킬 수 있도록 규정한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고 곧 이어 이를 실행할 기구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반민특위」는 김상덕 의원을 위원장으로 뽑고 중앙과 지방에 사무국을 설치했다.또 친일파를 기소·재판할 특별재판부·특별검찰부도 정하는 등 발빠르고 치밀하게 움직였다. 위원회는 넉달동안 3백5명의 친일분자를 검거하는 실적을 올리지만 곧 활동이 벽에 부딪힌다.친일파를 대거 기용한 이승만 정부가 시국이 불안정한데 사회지도급 인사를 대량검거하면 사회불안을 가중한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게다가 19 49년 6월에는 친일파의 조정을 받은 사회단체가 『반민특위를 해체하라』며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특위 소속 사법경찰관이 습격을 받는 등 온갖 행패가 자행됐다.국회는 그해 8월 22일 「반민특위 폐지안」을 통과시킴으로써 행정부에 굴복했고 친일파 처리는 흐지부지돼 아직도 역사의 짐으로 남아 있다.제헌국회가 친일파 처리에 좌절한 것은 당시 국회·행정부를 차지한 계층의 본질적 한계였다고 할 수 있다. 제헌국회는 이밖에도 국가보안법·농지개혁법·지방자치법등을 제정해 국가의 기틀을 튼튼히 하고 개혁 의지를 보였다.『국헌을 위배해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결사 또는 집단을 구성한』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한 국가보안법은 48년 11월 19일 통과됐다.이 법에 대한 논의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이 『악용할 소지가 있다』고 반대했고 일부 문구의 수정이 있었지만 투표에서는 찬성 84,반대 3으로 가결됐다.남북이 대치하고 「여순반란사건」등 공산주의 폭동을 여러차례 겪은 그때 상황에서 국가보안법 제정은 어쩔 수 없는선택이었을 것이다. 「농지개혁법」은 49년 6월 21일 제정됐다.헌법 제86조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소유의 한도,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는 규정에 따라 하위법으로 마련된 이 법은 유상매수­유상분배를 골자로 했다.농지개혁법도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결국 대농에게 토지가 집중되는 현상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주한미군사령부 전문/이 대통령,49년4월11일 미군철수 동의/1년간 강력반대… 미,계획 수차례 연기/무기이양·군사고문단 설치 조건 수락 대한민국 수립직후부터 한국과 미국 양 정부는 주한미군 철수를 둘러싸고 협의를 계속했다.한국은 철군을 강력하게 반대한 반면 미국은 한국 안보를 위한 보완책을 제시하며 설득했다. 미 정부는 1948년 4월 2일 국가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에서 정리한 「한국에 관한 미국의 입장 (NSC 8)」을 미군철수의 지침으로 삼고 있었다.그 내용은 49년 3월 31일까지 철군을 끝낸다는 것이었다.그러나 한국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미국이 계획한 철수 일자는 점차 늦어졌다. 시한은 5월 10일로 한번 수정됐다가 49년 3월 23일 채택한 「NSC 8­2」에서 그해 6월 30일로 최종 결정됐다.따라서 49년 4월 미국으로선 상당히 초조한 상태였다.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은 당시 양국에서 오간 문서 가운데 한국측 입장 변화를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전문을 발굴했다.워싱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입수한 이 문서는 주한미군사령부가 49년 4월 12일 미 국무성에 보낸 것이다. 그 내용은 「이승만 대통령이 전날 미군철수에 마침내 동의했으며 며칠안에 이같은 사실을 국민에게 공개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이와 함께 철군에 앞서 미군이 한국의 육군,해안경비대,경찰에 장비를 이양하며 정식으로 군사고문단을 설치한다는 조건에 합의했음을 밝혔다. 이대통령은 합의에 따라 4월 18일 주한미군 철수를 공표했으며,주한미군 1천5백여명은 49년 6월 27일 인천항을 통해 철수했다.
  • 투표율 68.4%/4대 지방선거

    15개 시·도지사를 비롯,기초단체장및 광역·기초의회의원 등 모두 5천7백58명(비례대표 시·도의원 97명 포함)의 지방공직자를 선출하는 4대 지방선거의 개표작업이 27일 하오부터 전국 3백76개 개표소에서 밤을 새워가며 순탄하게 진행됐다. 개표는 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광역의회의원,기초의회의원 선거의 순서로 진행됐다. 서울시장을 비롯한 15개 시·도지사 선거 당락의 윤곽은 28일 새벽 2시쯤 드러나기 시작,상오 6시쯤 대부분 지역에서 당선자가 확정됐다. 기초의회의원 선거를 마지막으로 개표작업은 28일 자정쯤 완료될 전망이다. 투표는 이날 상오 6시부터 하오 6시까지 전국 1만7천2백30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실시됐다. 선관위 최종 집계에 따르면 총유권자 3천1백4만8천5백66명 가운데 2천1백23만9천7백44명이 투표,전국 평균 투표율은 68.4%로 지난 91년 기초의회선거 최종투표율 55.0%,광역의회선거 58.9% 보다 훨씬 높았다.92년 총선때 투표율은 71.9%,92년 말 대통령선거 투표율은 81.9%였다. 특히 투표 초반에는 투표율이 종전 선거보다 두배에 가까울 정도로 높았으나 하오 3시 쯤부터 투표율증가속도가 떨어져 지난번 총선보다 다소 낮아졌다. 처음 예상보다 투표율이 높아진 것은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등장에 따른 지역감정 재연과 여야 정당간의 치열한 선거전에다 선거 막판 혼전지역이 늘어나면서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도 증폭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들 가운데 선출되는 시·도지사 15명,기초단체장 2백30명은 다음달 1일,시·도의회의원 9백72명과 시·군·구의회의원 4천5백41명은 다음달 8일부터 3년간의 임기에 들어간다. 한편 무투표선거구는 광역의원 41개,기초의원 2백42개(1인 선거구 2백2개,2인 선거구 40개)등 모두 2백83개로 27일 집계됐다. 이에 따라 무투표 당선자는 광역의원 41명,기초의원 2백82명등 모두 3백23명이다.
  • TV중계 개표마감때까지 계속

    KBS등 방송사들은 27일 하오 6시 지자제 투표가 끝나는 것과 함께 철야 개표방송을 시작,28일 개표가 마감되는 시간까지 특별방송을 실시한다. KBS는 1TV를 통해 하오 6시부터 개표방송을 시작,일일극「바람은 불어도」(하오 8시)와 9시뉴스를 제외한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28일 개표가 끝나는 시간까지 계속한다.또 MBC는 하오 6시부터 개표방송에 돌입,이 시간 이후 모든 정규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철야방송을 하며 SBS는 이날 하오 5시30분부터 개표방송을 시작하여 철야로 진행한다. 한편 YTN은 이날 하오 6시부터 다음날 상오 11시까지 17시간 동안 개표상황 방송을 실시하고 28일 정오부터는 매시간 「정규뉴스」와 함께 개표 완료시점까지 개표 특별방송을 실시한다.
  • 전산망 보완… 주개표 준비 “완벽”/선관위 준비상황 최종점검

    ◎투표용지 가인작업 오늘 새벽 매듭/정전대비 한전직원 4천여명 대기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은 전국 1만7천2백30개나 되는 투표소와 3백76개 개표소에 대한 마지막 점검을 마쳤다.단1분을 아끼며 초조하게 뛴 후보자들보다,더 애타는 마음으로 분주하게 땀 흘렸다.선거 당일인 27일 새벽까지­. 중앙선관위 정일환 홍보관리관은 『후보자등록 당시 나타났던 전산망의 미흡한 부분을 많이 보완해 이제는 문제점이 별로 없다.최선을 다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26일 하오6시까지 투표용지·투표함·기표대등 투표장비를 대부분의 투표소로 옮겼다.일부 늦어진 곳에서는 투표시작 1시간 전인 27일 새벽 5시까지 운반했다. 또 투표용지에 제1당과 제2당 정당추천인의 도장을 찍는 가인작업도 밤을 새워 끝냈다. 가인작업은 유권자 수가 3천1백4만8천5백66명에 달해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제1당은 모든 선거구에서 후보를 낸 민자당이고 제2당은 대체로 민주당이다.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지역에서는 자민련이 제2당이다.대개 동사무소에서 하는 가인작업은 투표용지가 워낙 많아 완료 예정시간이 26일 자정을 넘겨 27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선관위는 투표완료 직후 바로 이어질 개표에 대비해 개표장 설비도 26일 하오6시까지 마쳤다.전화를 설치하고 외부의 전기 인입선을 끌어오는 작업을 모두 완료했다. 컴퓨터집계전산망은 지난 17일 모두 완료하고 그동안 꾸준히 가동연습을 실시해왔다.늘 하는 일이지만 정전에 대비해 비상발전기를 확보하고 그것도 모자라 비상라이트까지 준비했다. 비가 올 경우에 대비해 투표소 입구에 모래를 실은 차량을 대기시키도록 행정기관의 협조를 이미 얻어놓았다.빗물에 손이 젖어 투표용지가 젖거나 기표한 표시가 번져 무효표로 처리되는 일을 막기 위해 친절하게 수건도 비치했다. 지난 12일 후보등록 마감일에 작동이 늦어 애를 먹었던 전산시스템도 이제는 제 기능을 회복했다. 중앙선관위 전산팀의 남재희계장은 『그때는 투·개표 집계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작업을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다소 문제가 발생한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은 문제가 없다』고말했다. 은행에 가서 통장을 새로 만들 때 이름·주소등을 적는 것처럼 인적 사항을 기록하는 중이었으므로 일부 차질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선관위는 이번 선거에 대비해 중앙선관위에 국산주전산기인 「TICOM 2」 2대를 설치했다.또 11개 각 시·도 선관위에도 1대씩을 확보시켰다.인천·광주·대전·제주등 구·시·군 의원의 숫자가 10명 안팎으로 적은 곳에는 「Work Station」을 1대씩 설치했다. 선관위의 전산망은 구·시·군 선관위의 자료가 각 시·도 선관위를 거쳐 중앙선관위로 이송되는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또 내무부의 행정정보통신망과도 연결되어 있다. 선관위의 전산시스템은 「에러(Error)방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잘못된 자료가 입력될 경우에는 곧 잘못이라는 표시를 내보낸다. 예를 들어 유효투표수를 입력시켜 놓았기 때문에 후보자별 득표수를 합한 숫자가 유효투표수보다 많을 때는 곧바로 「에러 방지 시스템」이 작동한다.선관위는 통신회선에 문제만 없으면 전산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 한전은 27일 실시되는 지방자치제 선거와 관련,투개표장에 대한 전력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대책을 수립했다. 26일 한전에 따르면 전국 1만7천6백39개소의 투개표장에 전력을 공급하는 2백41개 변전소,3백26개 배전선로 및 투표장에 배치할 비상발전기 2백60대에 대한 정비를 마쳤다. 선거당일에는 상오6시부터 개표종료 때까지 본사 및 전국 배전사업소 직원 4천5백93명을 투개표장에 대기토록 했다.
  • 4대 지방선거 오늘 투표/상오 6시∼하오 6시/개표는 밤부터 전국

    ◎시·도지사 내일 새벽 당락 판명 서울시장을 비롯한 각급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선출하는 4대 지방선거 투표가 27일 상오 6시부터 하오 6시까지 전국 1만7천2백여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시작된다. 지난 11,12일 후보등록과 함께 시작된 선거운동은 26일 자정을 기해 마감됐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15명의 시·도지사와 2백30명의 시장·군수·구청장,9백72명(비례대표 97명 포함)의 시·도의원,4천5백41명의 시·군·구의원을 뽑으며 당선자들은 다음달 1일(시·도의원은 8일)부터 3년 임기를 시작한다. 선관위는 총유권자 3천1백4만8천5백66명 가운데 2천2백여만명이 투표,70% 안팎의 투표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선관위는 투표가 끝나고 투표함이 전국 3백76개 개표소로 옮겨지는대로 부재자투표함과 시·도지사선거 투표함부터 개표에 들어가며 개표작업은 29일 하오쯤 완료될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개표가 시작되는 시·도지사선거는 28일 상오 2시쯤 당락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이나 서울,강원등 혼전지역은 이날 아침에야 결과가나올 것으로 보인다. 한편 그동안의 선거운동 결과 광역단체장의 경우 민자당은 서울·경기·인천·강원·충북·경북·부산·경남등 8곳,민주당은 서울·경기·광주·전북·전남 등 5곳,자민련은 대전·충남·충북·강원등 4곳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으며 대구·제주지역은 무소속이 강세를 보이는 혼전지역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장을 비롯한 시·도지사 선거결과가 정당별 지역분할구도로 나타날 경우 내년의 15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 재편과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정치전면재개 및 야권분열,내각제 개헌등이 정국의 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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