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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염 전 주교황청대사 “베네딕토 16세는 원칙주의자, 프란치스코는 공감능력자”

    성염 전 주교황청대사 “베네딕토 16세는 원칙주의자, 프란치스코는 공감능력자”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두 교황’이 꾸준한 인기를 얻으며 교황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영화에서 진보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추기경 시절 보수적인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만나 종교·사회적 이슈를 두고 대립하지만, 끝내 두 교황은 신 앞에서 서로 이해하고 개인적 신뢰와 우정을 쌓는다는 이야기는 비가톨릭 신자들에게도 깊은 감동과 사색을 안겼다. 베네딕토 16세와 직전 교황인 요한 바오르 2세 재임 기간에 주교황청 한국대사를 지냈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두 차례 알현해 한국에서 세 교황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인 성염(78) 전 대사를 지난 18일 서울 도봉구 자택에서 만나 세 교황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교한다면. “요한 바오로 2세는 연극인이다. 연설이나 표정에 연극인다운 제스처가 있었다. 베네딕토 16세는 원칙주의적 학자였고, 교황청 내 검찰청 격인 신앙교리성에서 수십년간 근무해 표정이 딱딱했다. 교회 문제에서도 진중한 스타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 신부이자 교구장으로서 계속 사람을 상대하고 사귀어 온 분이다. 내가 만났을 때 이야기를 하면 그는 나의 눈을 쳐다보며 경청하고 공감하는 공감능력자였다. 교회와 신도들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항상 생각하고 같이 고민해 온 개방적인 분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화하면 영화처럼 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우의 연기가 대단했다.” -영화에서 진보주의자로 표현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실제로도 가톨릭 개혁에 주력하고 있는데. “가톨릭 내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는 이슈 중 하나는 이혼이다. 가톨릭 신자 간 결혼에 대해선 이혼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혼한 신자가 교회를 찾아오면 다른 신자들은 그들을 낮춰 보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혼이 교리에 어긋나는지 아닌지의 논쟁을 넘어 이미 이혼한 신자를 파문자 취급은 하지 말자고 말했다. 그들도 교회의 자녀이고 상처 입은 사람이니 교회를 찾아오면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이미 재혼하고 자녀까지 낳은 그들에게 이혼은 교리에 어긋나니 헤어지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결국 교황은 즉위 후 5년간 노력해서 이 문제를 풀었다.” -보수파가 반발하지는 않았나. “가톨릭 교회 안에 여전히 율법주의 전통이 존재하기에 교황이 개혁적 행보를 하면 보수파는 책을 내서 공개적으로 교황을 비난하는 등의 일이 허다하다. 보수파는 이혼 문제와 관련 ‘자비가 계명을 면제해주지 않는다’며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교황은 동성애에 반대하고 깨끗한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하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이혼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지금처럼 코로나19에 걸렸다는 이유로 그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것은 더 큰 죄라는 입장이다. 교황은 즉위하자마자 ‘가엾어서 택하노니’라는 표어를 택했다. 하느님은 사람을 불쌍해서 부르지 선량해서 부르는 게 아니다. 가엾은 사람에게 가서 교회로 오게 하자는 것이다.” -세 교황은 한반도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다. “2003년 주교황청 대사로 부임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신임장을 제정할 때 30분 정도 요담을 나눴다. 교황은 각국에서 새로 부임한 대사가 신임장 제정사를 하면 답을 하는데, 이를 통해 그 국가의 국민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당시 북핵 위기였는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북핵 문제는 철저하고 검증 가능하게, 그러면서도 공평하게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지만 동시에 미국의 핵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부활절이나 성탄절 계기에 한반도와 북핵 문제를 이야기했다. 국제사회에 북핵 문제를 무력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해결할 것을 호소하고 대북 지원에서 인도주의 원칙을 강조했다. 대북 지원을 북핵 협상의 조건으로 삼지 말라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한 후 전임 교황이 계획한 해외 순방지 외에 첫 순방지로 한국을 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부터 남북 대화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열 번 이상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다.” -대사께서는 김희중 대주교와 함께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특사단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예방했다. 당시 북미 대립이 격화되며 한반도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이었는데 교황이 한반도 문제를 언급했나. “특사단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예방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교황과 회담하기 하루 전이었다. 우리는 교황을 예방하기 앞서 총리 격인 국무원장과 대화를 했다. ‘문 대통령께서 교황님의 많은 지도와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했다’고 전달했더니 국무원장이 ‘우리가 내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는데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닌가’라고 물었다. 북핵과 한반도 문제에 대한 메시지는 없느냐는 뜻인 것 같았다. 우리는 ‘북핵 문제 해법은 북미가 직접 회담으로 풀어야 하고, 북미가 회담을 하려면 정기적인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하지 않는 게 방법’이라고 했다. 이튿날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이 무슨 대화를 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이후 바티칸 외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교황께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여러분이 바라는 바를 다 전달했다’고 하더라.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1년 후 한미 연합훈련은 유예되고 북미 회담이 이뤄지지 않았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10월 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방북 요청을 사실상 수용했다. 하지만 2019년 북미·남북 관계가 교착되면서 교황의 방북 가능성은 낮아진 것 같은데 어떻게 전망하는가. “‘교황’은 라틴어로 ‘폰티펙스’(pontifex)다. ‘폰티’는 ‘다리’, ‘펙스’는 ‘만드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교황은 즉위 직후 바티칸 주재 외교관들을 만나 ‘제가 하는 일은 다리를 놓는 일이다. 사람을 만나게 하고 화해하게 하고 격려하게 하는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되면 제가 한다’고 했다. 교황도 국가원수라 상대국의 공식 초청이 없으면 움직이기 어렵지만, 교황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볼 때 평화에 기여한다면 어디나 기꺼이 찾아갈 분이다. 교황이 인권을 탄압하는 북한에 가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기독교를 ‘인간 존엄성에 대한 경탄’으로 재정의했다. 인간 존엄성이란 인권이다. 다만 바티칸은 민족자결주의, 즉 한 국가가 왕정이든 민주정이든,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선택할 수 있는 권리도 중시한다. 그래서 교황은 쿠바든 북한이든 어디든 가서 인간 존엄성을 호소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박한 행보로도 화제를 모았는데. “소박한 행보 또한 ‘기독교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경탄’임을 실천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인 비서가 들려준 이야기인데, 교황이 즉위한 지 3일 후 이 비서가 교황에게 구두를 닦아 주겠다며 달라고 하자 교황은 ‘평생 내 손으로 구두를 닦았는데, 평생 해온 나의 직업을 뺏는 게 말이 되는가’라며 위트 있게 거부했다고 한다. 교황의 소박한 행보는 ‘가난한 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 신자유주의는 우상숭배’라는 그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교황이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상·하원 의장의 만찬 초대에 대해 선약이 있다고 불참한 뒤 현지 교회에서 마련한 노숙자와의 파티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교황과의 만찬을 기대했던 정·재계 인사들은 ‘있는 놈들도 천국 가자’라고 비아냥댔지만, 교황은 ‘가난한 사람을 만져 보면 그리스도의 살결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성 전 대사는 세 교황과 한국을 연결하며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 외교관이기도 하지만, 교부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등을 라틴어 원전에서 번역하는 신학자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는 고립된 광주의 상황을 서울에 알리고 광주민주화운동의 주모자로 수배된 투사를 숨겨주기도 했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의 역사적 과오를 비판하고 사회에 정의 구현을 외치는 종교·사회 개혁가로 활동해 왔다. 80년 가까이 숨 가쁘게 달려온 그의 일생을 들어보았다. -가톨릭을 어떻게 접하게 됐는지. “할아버지 적부터 개신교를 믿었다. 다만 집안이 가난해 학비는 물론 숙식까지 해결되는 가톨릭 미션스쿨 광주 살레시오중학교에 들어갔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 돼 가톨릭 입교를 준비하시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종교적 유산도 있고, 가톨릭계 학교의 은덕도 있어 자연스럽게 가톨릭 신자가 됐다.” -가톨릭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사제를 준비하다가 포기했는데. “살레시오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살레시오 수도회 수사신부들이 가난하고 불우한 청소년들을 보살피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나도 그들처럼 되겠다는 생각에 가톨릭대 신학과에 입학하고 10년간 사제가 되는 길을 걸었다. 그런데 1972년 어느 날 가톨릭과 개신교, 불교, 천도교, 원불교, 유교 청년 대표들이 모이는 ‘종교제’에 나갔는데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첫눈에 반했다. 두 갈래 길에서 고민했지만 사제를 포기하고 결혼을 택했다. 지금까지도 후회는 없다. 이 길을 걸어온 게 아주 행복하다. 잘 걸어왔다.” -동양인 최초로 교황립 살레시안대학교 라틴어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자의 길을 택한 이유는.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로마문화와 합류해 4세기쯤 중세와 근현대의 유럽 문화를 형성한다. 그 지점에 교부라고 불리는 학자들, 대표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가 있었다. 이들이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로마문화를 어떻게 통합시키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했는지 연구하고 싶었고, 그래서 이들의 저작을 번역하고자 라틴어를 배우고자 했다. 처음에는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자 했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한국외대에서 중세철학과 라틴어를 공부해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강의할 사람을 찾았고, 나를 뽑았다. 이후 서강대에서 중세철학을 가르치시던 정의채 교수가 은퇴하자 나를 초빙했다.” -가톨릭 내 대표적 진보단체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에서도 활동했는데. “내가 태어난 곳이 전남 장성인데 1948년 제주민 토벌에 파병되기를 거부한 군인들이 주도한 소위 여순사건이 있었다. 당시 우리 마을 삼서 소룡리도 여수·순천 인근이라 초토화됐다. 그러니 나는 지독한 반공주의자가 됐어야 했다. 그런데 어릴 적 성당에서 주일학교 선생님이 교리를 가르치면서 아이들을 모아 놓고 우익 계열인 서북청년단에서 활동했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여자 빨치산을 잡아 어떻게 난자해 죽이는지를 아이들에게 자세하게 이야기하더라. 나는 ‘가톨릭 신자인데 사람을 저렇게 죽여서 되겠는가’라고 생각하며 트라우마가 생겼다. 이후 1970년대 해방신학을 접하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며 크리스천의 양심, 의무를 갖고 사회문제에 투신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마지막 수배자’였던 윤한봉 씨를 자택에 숨겨주고 망명을 도왔다고 들었다. “당시 서울에 있었는데 아무도 광주에서 일어나는 일을 몰랐다. 나를 비롯해 교회 내 동료들은 교회 조직을 통해 간간이 소식을 듣고 있었다. 크리스천으로서 진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교회에 나오는 신자들이 모두 읽는 주보에 광주 소식을 실었다. 그러던 중 동료들이 윤한봉 씨를 숨겨달라고 부탁해 집에 잠시 숨겨줬다가 여의치 않아 안전한 장소를 구해 옮겨줬다. 윤 씨는 군부 세력에 의해 광주민주화운동의 ‘원흉’으로 몰렸으니 잡혔으면 재판도 없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대사님을 교회에서 사회로 나오게 했던 크리스천의 양심, 의무란 무엇인가. “1960년대 가톨릭은 크리스천이 정의 구현을 복음선포의 사명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사회가 정의와 평화, 화해, 공평과 같은 가치 위에서 정화되도록 하는 게 신앙인으로서 크리스천의 사명이라는 가르침이다. 크리스천의 의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논변하기도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에서 팔이 안으로만 굽는 사사로운 사랑은 지상의 나라에 속해 구원의 범위에서 벗어나지만, 이해관계와 이념을 넘어 타인들을 품어주는 사회적 사랑은 하느님의 나라에 속한다고 설파했다. 인간은 사회적 사랑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사회적 사랑이란 다름 아닌 정치적 사랑을 가리킨다고 했다. 가난하고 약한 자를 위한 정의를 세우고, 이를 위해 정치에 참여하고 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이 정치적 사랑이다.” -가톨릭 내에서도 보수·진보 간 갈등이 존재하나. “일부 교회에선 신부가 정치 이야기를 하면 보수적인 신자들이 일어나 ‘정치 이야기를 하지 말라’며 소리친다고 한다 신부가 ‘이는 정치 문제가 아니라 복음 문제다’라고 하면 그들은 ‘누가 당신에게 월급 주냐. 우리가 헌금해서 주지 않느냐’는 반박까지 나온다고 한다. 신부들도 지역감정이나 정치적 이념에 따라 갈리곤 한다. 어떤 분은 ‘박근혜 대통령이 무엇을 잘못했냐’고 강변하고, 어떤 분은 세월호 참사 이후 팽목항에 가서 산다. 주교들도 마찬가지다. 가톨릭 교회 내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 운동이 벌어졌을 때 주교들에게 서명을 요청하니 둘로 갈리더라. 마치 선거에서 영호남이 갈리듯이. 그런데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 감사하다는 뜻으로 한국 주교단이 바티칸에 갔는데, 교황이 주교들에게 ‘세월호는 어떻게 됐는가’라고 물었다. 주교들이 모두 충격을 받았는지 이후, 적어도 가톨릭 모든 교회에서는 4월 16일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미사가 있었다.” -최근 보수 개신교 일부가 보수 정치 세력과 결합하면서 점차 극단적, 배타적으로 흘러간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 진보적 종교 단체가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한 반감도 존재한다. 종교인의 정치 참여 어떻게 봐야하나. “결국 사회정의를 세우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성경 마태복음 25장에는 인류 전체가 운명을 판가름 받는 최후의 심판이 그려진다. 인간을 멸망과 구원 두 패로 나누는데, 내 옆에서 누군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을 때 입을 것을 주고 감옥에 갔을 때 찾아가는 자들을 구원한다고 설명한다. 예수를 믿어서 천국에 가는 게 아니다. 인간과 인간이 관계를 맺는 것을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가 결정되는 것이다.” -일반 신자들은 어떤 믿음을 갖고 정치에 참여해야 하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야기한 바가 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비밀투표를 한다. 이는 모세의 장막과 비슷하다. 모세는 자신의 백성을 거느리고 이집트를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장막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하느님과 만났다. 하느님과 독대하는 자리인 것이다. 투표소에서도 하느님과 일대일로 마주한다. 당신이 누구에게 투표하는지는 하느님만 안다. 하느님의 가르침대로만 투표하면 된다. 가난하고 약하고 소외받는 사람을 위해 한 표를 던지는 것이 하느님의 가르침이다. 이 외에는 이기심일 뿐이다. 다른 종교 신자도 마찬가지다. 불자라면 부처님의 대자비에 따라서 투표하면 된다.” -대사님께서는 지금도 아우구스티누스 라틴어 원전을 번역하시고 출간해오고 계신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지. “2007년 대사직에서 물러나고 조용히 산을 보며 번역 작업을 하고자 경남 함양의 지리산 자락에 집을 마련했다. 이후 서울에는 한 달에 한두 번 일이 있을 때만 오고 나머지는 함양에 머문다. 지리산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의 혜택을 받으니 건강한 것 같다. 그리고 위대한 사상가의 책을 읽고 천착하면 정신 건강은 유지되는 것 같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을 읽으면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착오로 저질러지는 게 아니라 신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가 함께 만들어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실수를 해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역사관에는 인간의 사회적 사랑이 자리한다. 정의구현이 곧 복음선포라는 가르침이 자리한다. 신앙을 가진 지성인으로서 올바른 정신을 갖고 똑바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지성인으로서의 건강이라고 할 수 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코로나 사태에도 식지 않은 재외국민투표 열기

    코로나 사태에도 식지 않은 재외국민투표 열기

    - 재외선거인 전체 등록자는 20대에 비해 증가 - 중국 감소·우한은 10분의 1로 감소 - 일본 크게 감소21대 총선 재외선거인등록 신고신청이 마감한 가운데, 21대 총선에 신고한 재외선거인 총 인원은 20대 총선에 비해 늘었지만 중국에서의 신고·신청은 줄어든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여파가 일부 영향을 미쳤지만 총선에 대한 열기를 꺾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7일 21대 국회의원 재외선거인등록신청 현황을 공개했다. 선관위에 따르면 한국시각 2월 17일 오전 7시 현재로 21대 국회의원 재외선거에 국외부재자 14만7175명, 재외선거인 2만9924명이 등록을 마쳤다. 이는 추정 재외선거권자 214만여 명의 8.24% 수준이며, 19대 총선 12만 4424명 대비 42.3%, 20대 총선 15만 9636명 대비 10.9% 증가한 수치다.특히 중국의 신청자는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재외선거인등록자는 20대 총선에서 2만 2327명이었지만, 이번 21대 총선에서는 1530명 줄어든 2만797명이 등록했다. 특히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우한에서 재외선거인으로 신청한 사람은 20대 총선 1946명에서 21대 175명으로 급감했다. 최근 코로나19가 급격히 퍼지고 있는 일본도 지난 총선에 비해 신청자가 크게 줄었다. 일본에서 20대총선 재외선거인으로 등록한 사람은 총 2만9434명이었지만 21대 총선에서는 그보다 6276명 줄어든 2만3158명이 등록했다. 한편, 공관별로는 일본대사관이 9044명으로 가장 많고, 호치민총영사관 8635명, 로스엔젤레스총영사관 8025명 순이었다. 재외선거인명부등은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10일간 작성한 후, 열람 및 이의신청 기간을 거쳐 다음달 16일에 확정된다. 또한, 중앙선관위는 오는 24일부터 27일까지 선거연수원에서 재외선거 투표관리 교육을 실시한다. 이번 교육은 전 세계 116개국 164개 공관의 재외선거 영사 등 164명과 26개의 추가투표소 관리자 29명, 4개 파병부대 투표소 등의 투표관리인력 10명 등 총 203명을 대상으로 2회로 나누어 실시한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이종수의 헌법 너머] 이제는 정당정치에서 시민정치로

    [이종수의 헌법 너머] 이제는 정당정치에서 시민정치로

    총선이 임박해 있고, 늘 그래왔듯이 정당들의 이합집산이 요란하다. ‘자유’, ‘민주’, ‘정의’, ‘평화’ 등등…. 이렇듯 모두가 공감하는 단어들을 가져다가 이름붙인 정당들이 행하는 정치에 정작 아무런 감동이 없다. 오늘날의 대의제민주주의에서 주권자들의 축제여야 할 선거에서 정당들만 갖은 변죽을 울린다. 그들만의 잔치다. 우리네 정당정치에서 그간 소속의원 빌려주기 등의 편법이 있었는데, 선거법 개정이 있고서 이번에는 급기야 ‘위성정당’이라는 별종(別種)까지 등장했다. ‘관제정당’이 그렇듯이 국민이 만든 정당이 아니라 정당이 만든 정당이다. 어쨌든 현행 정당법 제2조는 정당을 ‘국민의 자발적 조직’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편법이라도 여하튼지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리려는 꼼수다. 게다가 이 위성정당으로 내보내려고 딱히 해당(害黨)행위가 없는데도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소속 의원들을 제명시키고, 제명된 당사자들 역시 흔쾌하기만 하다. 노동조합과 마찬가지로 정당도 처음에는 의회 안에서 몰래 음모(陰謀)를 꾀하는 단체쯤으로나 여겨져서 핍박을 받았었다. 그래서 독일의 헌법학자 하인리히 트리펠은 정당에 대한 헌법의 입장 변화를 적대시에서 무시로 그리고 합법화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선거철이 되면 정당들은 늘 환골탈태를 말하지만, 한때 음모단체로 낙인찍혔던 태생적 DNA는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인류의 발전이 그래왔듯이 분업의 미덕에 따른 책임정치가 대의제민주주의의 유일한 장점이다. 그런데 선거 때만 되면 책임 전가에다 통폐합과 당명 변경 등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 정당과 정치인을 찾기가 어렵다. 어디 그뿐인가. 정당들에 지급되는 보조금으로 매년 수백억원의 세금이 나간다. 명색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조직이기에 원칙적으로 당비 등의 자체 수입으로 운영돼야 마땅한데도, 대부분 정당들이 국고보조금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한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지급을 두고서 처음에는 정당의 국가로부터의 독립성 훼손과 지급액수에 따른 정당들 간의 격차 심화를 우려해서 위헌으로 판단했으나, 이후에는 선거준비기관으로서의 공적 기능을 인정해 입장을 번복하면서도 조건을 달았다. 이른바 ‘상대적 상한선’이 그것인데, 정당에 당비 등 스스로 충당한 재원 액수를 초과하는 국고보조금 지급은 여전히 위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혹자의 표현에 따르자면 ‘거의 백화점식으로 망라한’ 다양한 정치자금제도를 갖추고 있다. 예컨대 소득세 연말정산에서 10만원까지의 정치후원금액은 세액공제로 전액을 고스란히 돌려주는 후덕한 제도까지 갖추고 있다. 낸 돈을 그대로 돌려받으니 결국 기부가 아닌 셈이다. 이러한 가운데 필자는 오래전부터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지급 총액을 선거에서의 전체 투표율과 연계시키자고 주장해 왔다. 낮은 투표율은 그 자체로 정당정치의 실패를 뜻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페널티라도 있어야, 정당들이 그나마 더 많은 유권자들을 투표소로 모으려고 애쓰지 않을까 싶어서다. 헌법학에서 정당의 기능은 국민과 국가 사이를 중개하는 도관(導管)으로 설명된다. 즉 국민의 뜻을 국가의사로 매개하는 역할이다. 이 도관이 깨끗해야 국민의 의사가 왜곡 없이 국가의 정책결정에 연결된다. 녹슨 낡은 도관에 아무리 깨끗한 물을 흘려보내도 수도꼭지에서는 더러운 녹물만 나올 뿐이다. 헌법은 정당에 정치적 의사형성에 대한 국민의 참여를 요청하지만, 헌법재판소도 그간 수차례 경고해 왔듯이 정당의 정치독점이 주어진 현실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이 그렇다. 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후보자에 대한 낙천?낙선운동을 금지하면서 그저 가만히만 있다가 투표소로 가기를 기대한다. 정치학계에서는 여전히 이른바 ‘정당강화론’이 대세인 듯한데, 이제는 정당을 대체하는 다른 도관을 보다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됐다 싶다. 즉 정당 말고도 예컨대 외국의 경우처럼 유권자연합 등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조직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도적으로 열어 주어야 한다. 이로써 낡은 정당정치의 그늘에서 벗어나 비로소 시민정치로 나아갈 수 있는 통로가 확보될 것이라고 믿는다. 정당들끼리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다른 정치주체들이 정당정치에 맞서면서 경쟁적 민주주의가 복원되기를 바란다.
  • “이낙연? 황교안? 둘 다 꼴 보기 싫어… 커리어 위해 볼모 잡아”

    “이낙연? 황교안? 둘 다 꼴 보기 싫어… 커리어 위해 볼모 잡아”

    “이낙연? 황교안? 둘 다 꼴 보기 싫어요. 이번엔 투표소 안 가려고요.”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서울 종로는 이번 4·15 총선에서도 이름값을 톡톡히 하게 됐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한 달여 동안 고심 끝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총리와의 빅매치가 성사됐기 때문이다. 종로 밖 정치평론가들은 대선 전초전이 될 종로 선거를 예측하고 후폭풍을 가늠하느라 여념이 없지만, 막상 투표권을 쥐고 있는 유권자들은 싸늘했다. 정권도 심판해야 하고, 야당도 심판해야 하는 복잡한 심사가 고스란히 감지됐다. 종로에서 30여년을 살면서 선거 때마다 꼬박꼬박 투표하는 것으로 종로 주민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진덕수(65)씨는 9일 민심을 들으러 온 서울신문 기자에게 “두 후보 다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다”면서 “좀더 두고 봐야겠지만, 이번 선거에선 유난히 마음을 정하기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총선 때마다 여야 정치 싸움의 격전지로 종로가 오르내리는 데 불만을 토해 내는 목소리도 많았다. 종로 이화동 거주 5년차 직장인 진모(31)씨는 “종로의 주목도가 큰 것은 이해하지만, 지역 사회와 밀접한 인물이 출마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면서 “솔직히 본인들 정치 커리어를 위해 종로 유권자를 볼모로 잡는 것 아니냐”며 양측 후보를 모두 비판했다. 선거철마다 시끄럽기만 할 뿐 지역 주민들에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싸늘한 민심 속에선 승자를 예측하기 어려워 보였다. 40년간 평창동에서 살았다는 김상학(67)씨는 “요즘 종로 가게들이 워낙 문을 많이 닫아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꼽힌다”면서 “아무래도 정권을 심판하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황 대표가 근소한 차이로 역전승을 이루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그러나 관철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박모(59)씨는 “경제가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지금 한국이 보릿고개를 넘는 수준이 아니지 않으냐”면서 “문재인 정부가 남은 기간 동안 안정감 있게 개혁을 추진하려면 이 전 총리에게 힘을 실어 줘야 한다”고 했다. 이 전 총리는 미래 비전과 지역 공약을 제시하며 정권 심판론의 예봉을 피하려 했다. 그는 이날 사직동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4·15 총선을 종로와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출발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용산~고양 삼송 구간 신분당선 연장 추진 등 첫 번째 지역 발전 공약을 내놓았다. 이 전 총리는 “청년이 돌아오는 종로로 바꾸려면 교육, 보육, 주거환경, 산업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면서 “광화문광장 조성 문제는 교통문제 해결이 선결된 뒤에 공론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 대표가 종로를 ‘정권심판 1번지’로 만들겠다고 한 것에 대해 이 전 총리는 “다른 후보들의 선거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추가 언급을 삼갔다. 지난 7일 황 대표가 출사표를 던졌을 때 이 전 총리는 “미래를 위한 선의의 경쟁을 기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뒤늦게 종로에 뛰어든 황 대표는 이날 첫 행보로 지하철1호선 종각역 ‘젊음의 거리’를 찾았다. 높은 공실률로 붕괴된 종로 상권을 잘 드러내는 곳이다. 정권심판론을 펴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기도 했다. 한때 인파가 끊이지 않았던 젊음의 거리는 초입 양측 첫 건물부터 ‘임대’라고 큼지막히 쓰인 현수막이 나붙어 있었다. 그 뒤로도 텅 빈 가게가 즐비했다. 한 상인은 “1년 넘게 빈 상가도 꽤 많다”고 귀띔했다. 황 대표는 상인들을 만나면서 “제가 알던 종로는 경제·정치 중심지였는데 지금은 옛날의 활력은 없어지고 참담한 상황”이라면서 “잘못된 정책으로 망가진 종로 경제를 반드시 살려 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소속 이정현 의원의 거취도 변수다. 보수 진영에서는 표 분산을 우려해 이 의원과 황 대표의 단일화를 바라는 분위기다. 이 의원 측은 “이번 주 내로 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종로는 15대 총선 이후 6번의 총선에서 보수 진영이 4번, 진보 진영이 2번 승리했다. 지난 20대 선거에서는 당시 민주당 정세균(52.6%) 후보가 새누리당 오세훈(39.7%) 후보를 크게 이겼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이낙연? 황교안? 둘 다 꼴보기 싫어…이번엔 투표소 안 가요”

    “이낙연? 황교안? 둘 다 꼴보기 싫어…이번엔 투표소 안 가요”

    ‘정치 1번지’ 서울 종로 빅매치 르포 “이낙연? 황교안? 둘 다 꼴 보기 싫어요. 이번엔 투표소 안 가려고.”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서울 종로는 이번 4·15 총선에서도 이름값을 톡톡히 하게 됐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한 달여 동안 고심 끝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총리와의 빅매치가 성사된 탓이다. 종로 밖 정치 평론가들은 대선 전초전이 될 종로 선거를 예측하고 후폭풍을 가늠하느라 여념이 없지만, 막상 투표권을 쥐고 있는 유권자들은 싸늘했다. 정권도 심판해야 하고 야당도 심판해야 하는 복잡한 심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종로에서 30여년을 살면서 선거 때마다 꼬박꼬박 투표하는 것으로서 종로 주민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진덕수(65)씨는 9일 민심을 들으러 온 서울신문 기자에게 “두 후보 다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다”면서 “좀더 두고 봐야겠지만, 이번 선거에선 유난히 마음을 정하기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총선 때마다 여야 정치싸움의 격전지로 종로가 오르내리는 데 불만을 토해내는 목소리도 많았다. 종로 이화동 거주 5년차 직장인 진모(31)씨는 “종로의 주목도가 큰 것은 이해하지만, 지역 사회와 밀접한 인물이 출마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면서 “솔직히 본인들 정치 커리어를 위해 종로 유권자를 볼모로 잡는 것 아니냐”며 양측 후보를 모두 비판했다. 선거철마다 시끄럽기만 할 뿐 지역 주민들에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싸늘한 민심 속에선 승자를 예측하기 어려워보였다. 40년간 평창동에서 살았다는 김상학(67)씨는 “요즘 종로 가게들이 워낙 문을 많이 닫아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꼽힌다”면서 “아무래도 정권을 심판하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황 대표가 근소한 차이로 역전승을 이루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그러나 관철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박모(59)씨는 “경제가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지금 한국이 보릿고개를 넘는 수준이 아니지 않느냐”면서 “문재인 정부가 남은 기간 동안 안정감 있게 개혁을 추진하려면 이낙연 전 총리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이 전 총리는 미래 비전과 지역 공약을 제시하며 정권 심판론의 예봉을 피하려 했다. 그는 이날 사직동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4·15 총선을 종로와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출발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용산-고양 삼송 구간 신분당선 연장 추진 등 첫 번째 지역 발전 공약을 내놓았다. 이 전 총리는 “청년이 돌아오는 종로로 바꾸려면 교육, 보육, 주거환경, 산업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면서 “광화문 광장 조성 문제는 교통문제 해결이 선결된 뒤에 공론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 대표가 종로를 ‘정권심판 1번지’로 만들겠다고 한 것에 대해 이 전 총리는 “다른 후보들의 선거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추가 언급을 삼갔다. 지난 7일 황 대표가 출사표를 던졌을 때 이 전 총리는 “미래를 위한 선의의 경쟁을 기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뒤늦게 종로에 뛰어든 황 대표는 이날 첫 행보로 종각역 ‘젊음의 거리’를 찾았다. 높은 공실률로 붕괴된 종로 상권을 잘 드러내는 곳이다. 정권심판론을 펴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기도 했다. 한때 인파가 끊이지 않았던 젊음의 거리는 초입 양측 첫 건물부터 ‘임대’라고 큼지막히 쓰인 현수막이 나붙어 있었다. 그 뒤로도 텅 빈 가게가 즐비했다. 한 상인은 “1년 넘게 빈 상가도 꽤 많다”고 귀띔했다.황 대표는 상인들을 만나면서 “제가 알던 종로는 경제·정치 중심지였는데 지금은 옛날의 활력은 없어지고 참담한 상황”이라면서 “잘못된 정책으로 망가진 종로 경제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황 대표가 젊은 시민들과 대화를 시도하자 이를 거부하며 줄행랑치는 모습도 보였다.무소속 이정현 의원의 거취도 변수다. 보수진영에서는 표 분산을 우려해 이 의원과 황 대표의 단일화를 바라는 분위기다. 이 의원은 “이번주 내로 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종로는 15대 총선 이후 6번의 총선에서 보수 진영이 4번, 진보 진영이 2번 승리했다. 지난 20대 선거에서는 당시 민주당 정세균(52.6%) 후보가 새누리당 오세훈(39.7%) 후보를 크게 이겼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대구·경북 신공항 어디로… 오늘까지 주민 사전투표

    대구·경북 신공항 어디로… 오늘까지 주민 사전투표

    대구·경북 통합 신공항 이전지 선정을 위한 주민 사전 투표가 시작된 16일 오전 경북 의성군 의성읍 주민자치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 주민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정부는 2018년 3월 후보지로 군위군 우보면(단독 후보지)과 의성군 비안면·군위군 소보면(공동 후보지) 2곳을 정했다. 최종 이전지는 16~17일 사전 투표와 21일 본 투표에서 투표율과 찬성률이 높은 지역으로 결정된다. 의성 뉴스1
  • [포토] 투표 위해 줄 선 대만 유권자들

    [포토] 투표 위해 줄 선 대만 유권자들

    11일 대만 타이베이 샤오싱베이제(小興北街) 투표소 앞에서 유권자들이 총통과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 英 총선 출구조사 “보수당 368석” 개표 결과 “364석, 단 4석 차이”

    英 총선 출구조사 “보수당 368석” 개표 결과 “364석, 단 4석 차이”

    12일(이하 현지시간) 밤 10시 영국의 조기총선 투표가 마감되자 곧바로 보수당이 368석을 차지해 하원 과반 의석을 확보할 것이란 출구조사 결과가 공표됐다.  영국 하원 의석 수는 총 650석으로 과반 기준은 326석이다. 노동당은 191석으로 200석에도 못 미칠 것으로 예측됐다. 2017년 총선과 비교하면 보수당은 50석을 더 얻지만, 노동당은 무려 71석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대신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은 2017년 대비 20석이 늘어난 55석으로 제3당의 지위를 공고히 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브렉시트(Brexit) 반대를 공약으로 내건 자유민주당은 한 석 늘어난 13석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개표 결과 보수당은 365석, 노동당은 203석, SNP는 48석, 자유민주당은 11석을 차지했다. 보수당은 출구조사 결과와 3석 차이 밖에 나지 않았다. 반면 노동당은 12석 차이가 났다.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BBC와 ITV, 스카이뉴스 등 방송 3사가 출구조사를 실시한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의 114개 선거구 유권자들이 투표를 마친 뒤 곧바로 어느 당에 표를 던졌는지 조사한다. 북아일랜드는 제외되는데 정당 분포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가끔 거짓을 얘기한다. 해서 틀리기도 한다. 연합뉴스는 지난 2017년 출구조사 결과와 실제 개표 결과를 비교해 영국의 출구조사 결과가 높은 정확도를 자랑한다고 보도했는데 꼭 그렇진 않았다. 과거 엉터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출구조사를 실시하는 선거구는 인구분포를 반영하고 농촌과 도시를 균형되게 선택하고 정확한 예측이 어려운 지역에는 가중치를 매긴다. 한번 선택된 선거구는 일관성을 위해 다음 선거 때도 채택되는데 예외는 있다. 선거구 획정이 바뀌어 다른 선거구로 병합되는 경우, 의장의 선거구에는 전통적으로 다른 정당이 후보를 내지 않아 제외된다.  출구조사 종사자들은 선택된 선거구의 특정 투표소에다 본부를 차리고 투표 시작부터 끝까지 조사를 실시한다. 예를 들어 유권자 가운데 10번째 유권자를 골라내 여론조사 전문기관 입소스 모리가 고용한 조사요원들이 다가간다. 모의 투표용지를 건네 실제 투표한 것처럼 기표하도록 한다. 그런 뒤 실제 투표와 마찬가지로 기표함 안에 넣도록 한다.  스티븐 피셔 옥스퍼드 대학 정치사회학 조교수는 유권자가 큰소리로 떠벌이게 하지 않고 실제 기표하는 것처럼 하는 것은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 결과는 런던의 모처로 보내져 전문가들의 분석을 거친다.  거칠게 얘기하면 출구조사 예측 정확도는 15석 정도의 오차라면 정확하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피셔 교수는 말했다. 2015년 출구조사 결과는 선거운동 기간의 설문조사 결과보다 정확했지만 보수당이 다수당이 되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2017년 총선 때 초기 출구조사 결과는 보수당이 1당이 될 것을 예측하긴 했지만 사실상 연정을 구성해야 할 정도였던 것을 내다보진 못했다고 BBC는 지적했다.  2017년 출구조사 결과는 보수당이 314석, 노동당이 266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측했는데 실제로는 각각 318석과 262석으로 상당히 근접했다. 우리네와 비교하면 적중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가장 최악의 출구조사는 1992년이었다. BBC와 ITN이 따로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연정을 구성해야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개표 결과는 존 메이저가 이끄는 보수당이 의석 수가 예상보다 조금 줄긴 했지만 단독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홍콩 뒤덮은 ‘노란리본’…2030, 시진핑에 ‘레드카드’

    홍콩 뒤덮은 ‘노란리본’…2030, 시진핑에 ‘레드카드’

    홍콩 민주화 요구 시위가 6개월째 이어진 가운데 홍콩 사태의 분수령이 될 24일 홍콩특별행정구 구의회(우리의 지방의회 격)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사상 처음으로 과반의석을 차지했다. 홍콩 전역이 민주파를 상징하는 ‘황쓰’(黃絲·노란 리본)로 뒤덮였다. 노골적 친중 성향을 드러낸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을 심판하고자 ‘2030’세대가 대거 투표에 참여한 결과다.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투쟁 동력을 잃은 시위대에 힘이 실리고 행정장관 직선제 등 정치개혁 요구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25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에 따르면 비건제파(범민주 진영)는 전날 치러진 구의원 선거에서 전체 452석 가운데 오전 10시(현지시간) 현재 388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뒀다. 친중세력인 건제파 진영은 58석을 얻는 데 그쳤다. 범민주 진영은 홍콩 구의원 선거 역사상 최초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선전했다. 시위대의 타깃이 될까봐 활동을 자제하던 친중파 후보들은 선거 막판 시위가 잠잠해지자 주말 내내 거리로 나와 유세를 펼쳤지만 유권자의 마음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이번 선거 결과는 민주화를 바라는 홍콩의 민심이 그대로 반영됐다. 홍콩 민주화 시위를 주도한 재야단체 민간인권진선의 지미 샴 대표가 샤틴구에서 당선됐다. 그는 당선 발표 뒤 “내가 이긴 것은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홍콩의 승리”라며 “강경한 캐리 람 행정장관이 여론에 부응해 하루 빨리 5대 요구를 수용하기 바란다”고 했다. 앞서 지미 샴 당선자는 지난달 쇠망치 등 둔기를 든 4명의 괴한에게 테러를 당해 중상을 입었다. 2014년 홍콩의 민주화 운동인 ‘우산혁명’을 이끈 청년 활동가 조슈아 웡이 피선거권을 박탈당하자 대신 민주파 진영 후보로 나온 케빈 람도 사우스호라이즌스 웨스트 구에서 당선됐다. 람 당선자는 “민주파가 여러 선거구에서 승리한 것은 홍콩 정부와 중국 정부의 정책에 강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홍콩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는 총 294만여명의 유권자가 참여해 투표율 71.2%를 기록했다. 홍콩 선거 사상 역대 최고치다. 4년 전 구의원 선거 때의 47.0%보다도 크게 높아졌다. 시위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범민주 진영과 친중 진영 모두 ‘투표 결과로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이번 선거에 대거 결집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일부 해외 유학생은 이번 선거에 참여하고자 일부러 귀국해 투표하기도 했다. 광둥성 등 홍콩과 가까운 본토 지역에서 일하던 시민들도 버스 등을 대절해 고향으로 돌아와 투표소로 향했다. 범민주 진영이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사회 변화 의지를 표출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18∼35세 젊은 층 유권자가 12.3% 늘어 연령대별로 최대 증가 폭을 보였다. 젊은 층 유권자가 많이 늘어난 것은 진보적 성향의 범민주 진영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선거에서 뽑힌 구의원은 우리나라의 지방의회 의원에 해당된다. 4년 임기로 시정, 교통 등 지역정책을 다룬다. 입법회(우리의 국회 격) 의원만큼 영향력이 크진 않지만 일부 구의원은 입법회 의원을 겸할 수 있고 2022년 행정장관 선거인단 1200명 가운데 117명이 참여할 수 있다. 행정장관은 선거인단 간접선거로 선출되는데, 구의원 몫인 117명은 진영 간 표 대결로 이뤄진다. 구의원 선거에서 이긴 진영이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가는 방식이다. 이번 선거로 친중파 일색인 선거인단 구성에 다소나마 세대교체가 이뤄질 전망이다.범민주 진영이 압승하면서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수세에 몰렸던 시위대도 재평가를 받게 됐다. 당장 범민주 진영 공민당은 당선자 32명 전원이 홍콩이공대로 달려가 교내에 남아 있는 시위대를 격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의 젊은이들도 소설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선거 승리를 뒤로 하고 이제 이공대 시위대를 구하자”는 내용의 글을 공유하고 있다. 반면 홍콩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은 이번 선거에서 친중파 진영이 참패한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강경 대응 방침을 버리고 새로운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조만간 새 행정장관 후보를 물색하며 조기 교체에 나설 것이 확실시된다. 홍콩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홍콩 구의원 선거 “당락 갈린 451석 가운데 민주화 진영 385석 휩쓸어”

    홍콩 구의원 선거 “당락 갈린 451석 가운데 민주화 진영 385석 휩쓸어”

    민주화 요구 시위의 향배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는 24일 홍콩 구의원 선거의 초기 개표 결과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야권이 압승을 거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25일 낮 12시(이하 현지시간) 현재 전체 18개 구의회 452석 가운데 무려 385석을 차지해 전체 의석의 85.2%를 확보했다. 친중파 진영은 고작 58석(12.8%)에 그쳐 궤멸 수준에 직면했으며, 중도파가 8석을 차지했다. 나머지 한 석만 주인이 가려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범민주 진영은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사상 최초의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선거혁명을 이뤘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5개월 이어진 가운데 치러진 이번 선거는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앞날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됐는데 전체 유권자의 71% 이상인 294만명이 투표에 참가할 정도로 열기가 높아 2015년 선거 때 47%를 크게 웃돌았다. 선거는 24일 오전 7시 30분부터 밤 10시 30분까지 홍콩 일반 투표소 610여곳과 전용 투표소 23곳에서 일제히 평화롭게 진행됐다. 도심 센트럴에서 외곽의 위엔룽에 이르기까지 상당수 투표소는 몰려든 유권자들로 긴 줄이 형성됐다. 일부 지역에서는 밤늦게까지 투표 행렬이 이어져 한 시간 이상 기다리기도 했다. 740만명의 홍콩 주민 가운데 이번 선거를 위해 등록한 유권자는 413만명으로, 지난 2015년 369만명보다 크게 늘었는데 투표소 주변에서 우려했던 큰 혼란은 빚어지지 않았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투표소 인근에 폭동진압 경찰을 배치했지만 선거 영향 논란을 의식한 듯 최대한 유권자들의 눈에 직접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경비를 섰다. 민주화 요구 진영에서도 선거일에는 최대한 폭력을 자제하고 투표로 현 정부를 심판하자는 목소리가 컸다. 전체적으로 투표 절차가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지만,어느 때보다 치열한 선거전이 벌어지면서 부정선거 고발 건수는 크게 늘었다. SCMP는 4800건에 이르는 부정선거 고발이 접수됐다고 보도했다. 현재 홍콩 구의회는 친중파 진영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최대 세력을 자랑하는 민주건항협진연맹(민건련)이 115명의 구의원을 거느린 것을 비롯해 친중파 진영이 327석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범민주 진영은 118석으로 친중파 진영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민주당이 37명으로 가장 많은 구의원을 거느리고 있으며, 다음으로 신민주동맹(Neo Democrats)이 13석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지난 6월 8일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100만명 행진을 계기로 홍콩에서 전면적인 민주화 요구 운동이 벌어진 이후 진행되는 첫 선거라는 점에서 역대 구의원 선거와는 정치적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차기 행정장관 선거의 바로미터란 의미도 있었다. 452명 구의원 가운데 117명은 홍콩 행정장관을 선출하는 1200명의 선거인단에 포함된다. 구의원 몫의 117명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것은 진영 간 표 대결을 통해 이뤄지는데 구의원 선거를 이긴 진영이 선거인단 117명을 독식하게 된다. 아울러 홍콩은 내년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입법회 의원 선거도 앞두고 있다. 최종 개표 결과 범민주 진영이 승리할 경우 중국 중앙정부의 강경 대응 방침 등으로 최근 들어 수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시위대에 큰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행정장관 직선제 등 정치개혁 요구가 활기를 띨 가능성도 있다. 친중국 진영이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둔다면 수세에 몰린 시위대의 기세가 더욱 꺾일 가능성이 크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개 vs 바퀴벌레… 분열의 홍콩, 민주화 열망 표심으로 극복할까

    개 vs 바퀴벌레… 분열의 홍콩, 민주화 열망 표심으로 극복할까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홍콩의 민심은 친중파가 장악한 정치 판도를 흔들 수 있을까. 지난 6월 9일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시작된 뒤 처음으로 홍콩특별행정구 구의회(우리의 지방의회 격) 선거가 24일 치러졌다. 유권자 413만여명이 오전 7시 30분(현지시간)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투표소 630여곳에서 투표권을 행사했다. 홍콩에서 구의원은 지역 현안을 자문하는 역할을 해 입법회(우리의 국회 격) 의원만큼 영향력이 크진 않다. 하지만 일부 구의원이 입법회 의원을 겸할 수 있고 2022년 행정장관 선거인단 1200명 가운데 117명이 참여할 수 있어 의미가 크다. 특히 이번 선거는 홍콩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민심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선거를 전후해 홍콩 이곳저곳을 다니며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18~35세 유권자 2015년보다 12% 증가 이번 구의원 선거는 과거 어느 선거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관심 속에서 진행됐다. 아침 일찍부터 대부분 투표소에서 장사진을 이뤘고 일부에서는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투표를 할 수 있었다. 오후 8시 30분 현재 274만여명이 참여해 투표율 66.50%를 기록했다고 홍콩 선거관리위원회가 밝혔다. 2015년 선거(47%)를 훨씬 뛰어넘는 역대 최고 수준의 투표율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예전과 달리 젊은이들이 대거 투표소를 찾아 이번 선거가 범민주 진영에 유리할 것임을 짐작하게 했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18∼35세 유권자가 2015년보다 12.3% 늘어나 연령대별 증가율이 가장 컸다. 이 같은 투표 열기에 동참한 시민들의 목소리에서 홍콩의 분열상이 그대로 느껴졌다. 상당수 반중 세력은 현 정부와 경찰에 대한 반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몽콕 지역에서 만난 앨리스 람(25·여)은 “시위대와 경찰은 서로를 ‘권력에 복종하는 개’와 ‘퇴치해야 할 바퀴벌레’로 부르며 비난하는 일이 일반화됐다”고 말했다. 청년과 노인의 갈등도 불거졌다. 현재 홍콩에서는 중국의 내정 간섭에 반대하는 ‘2030’세대를 ‘황쓰’(黃絲·노란 리본)로, 중국의 홍콩 지배를 인정하자는 ‘5060’세대를 ‘란쓰’(藍絲·파란 리본)로 부른다. 특히 란쓰는 파란색 시체라는 뜻의 ‘란스’(藍屍)와 발음이 비슷해 더욱 경멸적인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구의원 일부, 행정장관 선거인단 참여 기업도 ‘친중 대 반중’ 구도로 확연히 갈렸다. 중국은행과 샤오미 등 본토 업체와 미국계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 등이 시위대의 주된 타도 대상이 됐다. 홍콩에서 스타벅스는 친중 성향인 맥심그룹이 운영한다. 이 때문에 상당수 홍콩 스타벅스 매장은 시위대의 공격으로 현관이 부서져 흰색 보호막을 두른 채 영업한다. 자신을 대학생이라고 소개한 데니스 추(22)는 “시위가 격해지면 누군가 텔레그램 등으로 ‘오늘은 파란색 가게(친중 성향 매장) 인테리어를 새로 해 주러 가자’고 제안한다. 그러면 다 같이 목표 대상을 정해 부수고 온다”고 말했다. 일부는 홍콩을 든든하게 떠받쳐 온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에 우려를 표시했다. 일찍 투표를 마치고 센트럴 지역에 쇼핑을 나왔다는 제임스 토(19)는 “경찰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중학생(우리의 고등학생 격)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었다. 급여가 좋고 시민들로부터 권위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6월 시위 뒤로는 경찰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 시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중국 정부의 ‘꼭두각시’ 역할만 해 분노가 커졌다. 친구들 가운데 경찰시험에 합격했다가 포기한 이들도 많다. 경찰 지원자 수도 크게 줄었다”고 덧붙였다. 중국 중앙정부도 ‘람 장관 카드’를 포기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베이징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중국 당국은 언론매체 등을 통해 ‘람 장관을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홍콩 시위 사태 장기화의 책임이 그에게 있다고 보고 조만간 교체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성격의 람 장관이 홍콩 시위 초기부터 지나친 자신감으로 강경 대응에 나섰다가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홍콩 문제를 관할하는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판공실에서도 더이상 캐리 람 행정부의 보고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별도의 채널을 가동해 재확인한다는 신호가 여럿 감지됐다”고 밝혔다. 이종석 홍콩한인회 문화담당 이사는 “시위 초기 홍콩 정부가 민심의 분노를 정확히 읽고 송환법 추진을 철회했다면 아주 평화롭고 간단하게 끝날 일이었다. 람 장관의 오판으로 이제 시위대나 정부 모두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개탄했다. 홍콩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홍콩 투표소마다 100m 줄… “친중정부 심판” 투표 열기

    홍콩 투표소마다 100m 줄… “친중정부 심판” 투표 열기

    홍콩 민주화 요구 시위가 6개월째 이어진 가운데 홍콩 사태의 분수령이 될 홍콩특별행정구 구의회(우리의 지방의회 격) 선거가 24일 치러졌다. 홍콩 시위로 촉발된 민심의 향배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 결과에 전 세계의 관심이 모아진다. ●“정치 냉소가 송환법 사태 불렀다” 자성 18개 선거구에서 구의원 452명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는 투표소마다 100m 넘게 장사진을 이뤄 홍콩 시민들의 정치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주말까지도 ‘유혈 사태’가 반복된 것에 비춰 볼 때 투표일이 겹친 이번 주말은 되레 어색함이 느껴질 정도로 차분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홍콩 경찰은 물론 시위대도 선거를 의식해 폭력을 최대한 자제한 결과였다. 하지만 투표장에 길게 줄을 선 시민들의 ‘열기’ 이면에서는 친중 정부를 반드시 심판하겠다는 ‘살기’가 읽혔다. 홍콩 시민들의 인권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중국 정부 눈치 보기’에 급급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과 여당 의원들을 심판하겠다는 생각이 공감대를 이룬 듯 보였다. 격렬한 시위 장소였던 몽콕 지역의 한 투표소에서 만난 켈빈 첸(31)은 “그간 홍콩 주민들이 정치에 너무 냉소적이었던 것이 지금의 화를 불렀다. 친중파가 세상을 지배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지켜만 보니까 홍콩 정부가 주민을 우습게 보고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까지 만들려고 한 것”이라며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자유를 스스로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투표장에 왔다”고 말했다. 홍콩 한인사회 ‘대변인’ 역할을 하는 이종석 홍콩한인회 문화담당 이사는 “그간 홍콩 주민들은 영국이나 중국 정부의 지배를 받다 보니 정치 현실에 무감각했다. 그러다가 송환법 파문으로 자신들의 자유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하자 투표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고 설명했다. ●민주 압도 전망 속 ‘샤이 친중’ 표심 주목 범민주 진영이 압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친중파 진영도 ‘침묵하는 다수’가 표심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한다. 민주 진영이 승리하면 시위대에 힘을 실어 줄 수 있지만 친중파 진영이 예상 밖으로 선전하면 더이상 시민 참여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리샤오빙 중국 난카이대 교수는 “중국 정부도 이번 선거가 친중 진영에 매우 힘든 싸움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선거를 미루면 더 큰 반발을 불러오게 돼 그야말로 진퇴양난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홍콩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홍콩 부정선거 고발 4800건…“친중 유권자 버스로 실어날라” 소문도

    홍콩 부정선거 고발 4800건…“친중 유권자 버스로 실어날라” 소문도

    과거 노인들에 친중 후보 찍도록 유도 사례“한 주소에 다른 이름 8명” 가짜 유권자 논란 홍콩 전역에서 24일 구의원 선거가 치러지는 가운데 이날 선거와 관련해 4800여건에 달하는 부정선거 고발이 접수됐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가짜 유권자’를 만들려는 사례 등을 포함해 전날까지 위원회에 접수된 부정선거 고발 사례가 4800여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날 구의원 선거에서는 18개 선거구에서 452명의 구의원을 선출한다. 홍콩 구의원은 한국의 지방의회 의원에 해당하지만 홍콩 행정장관 선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구의원 중 117명은 홍콩 행정장관을 선출하는 1200명의 선거인단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홍콩 행정 수반인 행정장관은 직접선거가 아닌 간접선거로 선출된다. 현지에서는 지난 6월 초부터 계속되는 송환법 반대 등 반중 시위 등의 영향으로 친중파 진영이 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선거를 무사히 치르기 위해 시민들은 시위를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홍콩 선거관리위원회가 1시간 반 이상 방해가 지속되면 선거를 연기하겠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대신 젊은층들은 온라인을 통해 일찍부터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선거 부정에 대한 신고도 빗발치고 있다. 홍콩 췬완 지역에서 출마한 노동당 로이드 치우 후보는 ‘가짜 유권자’와 관련된 제보를 100건 이상 받았다고 밝혔다. 치우 후보는 “이전 선거에서는 한 주소에 11명의 다른 이름을 가진 유권자가 있었던 적도 있었는데, 이번 선거에서도 한 주소에 8명의 다른 이름을 가진 유권자가 등록되는 등 ‘가짜 유권자’가 판을 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선거까지는 유권자 이름과 주소 등을 담은 선거구별 유권자 명부가 언론 등에 공개됐지만, 이번 선거 때는 시위대 강경 진압으로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경찰 가족에 대한 ‘신상털기’ 방지를 위해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공개 결정에 ‘가짜 유권자’를 만들어 투표 결과를 조작하려는 시도가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홍콩의 반부패 기구인 ‘염정공서’(廉政公署·ICAC)도 지난 20일까지 이 기구에 접수된 부정선거 시도 고발 건수가 201건에 달해 이전 선거 때보다 급격히 늘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67건은 선거 후보자나 예비 후보자 등에게 물리력을 행사하거나 협박을 가한 사건이었으며, 37건은 선거와 관련된 금품 수수 사건 등이었다. 부정선거 시도는 홍콩 전체 유권자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61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도 많다. 이전 선거에서 요양원 등의 노인들이 선거하러 투표소로 이동할 때 누구를 찍어야 할지 적힌 종이를 가지고 들어가거나, 손바닥에 투표할 후보자의 번호를 적어놓은 채 들어가는 사례들이 적발됐던 적이 많았다. 특히 이러한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부정선거 사례들은 대부분 친중파 후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이날 홍콩에서는 홍콩 영주권을 지니고 있지만 중국 내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친중파 진영 후보에 투표하기 위해 전세버스 등을 타고 대거 홍콩으로 왔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염정공서는 부정선거 시도가 적발될 경우 최고 7년의 징역형과 50만 홍콩달러(약 7500만원)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면서 부정선거를 시도하다가 적발된 사람은 엄벌하겠다고 밝혔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포토] 이른 아침부터 투표소 찾은 홍콩 시민들

    [포토] 이른 아침부터 투표소 찾은 홍콩 시민들

    홍콩 구의원 선거일인 24일 오전 홍콩 레이몬디 중학교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 인권위 “당내 선거에서도 장애인 참정권 보장해야”

    인권위 “당내 선거에서도 장애인 참정권 보장해야”

    대의제 민주주의…장애인의 정당활동 참여 보장해야정당 내 선거에서도 장애인에게 점자 투표용지 등을 제공해 참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30일 “국민의당(바른미래당으로 통합) 내 대통령 후보 경선을 하면서 시각장애인의 투표에 필요한 편의제공 요청을 거부한 행위를 차별이라고 판단하고, 향후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중증시각장애인 A씨는 “2017년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자 경선 현장투표에 참여하려고 국민의당 해당 지역당에 연락해 투표보조용구 및 보조인, 이동편의 등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어떤 편의도 제공받지 못해 투표에 참여하지 못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국민의당은 “경선을 4일 앞두고 정당 최초로 완전 국민경선방식이 확정되면서 시간상으로 매우 촉박해 전국 191개 투표소에 투표용지를 제공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시각장애인용 투표용지 등을 제작·배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공직선거법은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고, 공직선거관리규칙에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투표용지나 투표 보조 용구 등의 제공이 규정돼 있다. 인권위는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민의를 반영하려면 보다 다양한 구성원의 참여가 필요하고,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정당 활동 참여를 보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인권위 관계자는 “장애인이 동등한 당원으로서 정당 활동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정당이 관련 시설, 인력, 정보제공 등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면서 “경선 일정이 촉박했다는 사정만으로 장애유형을 고려해 특수투표용지 등을 제작하지 않은 것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아프간 목숨 건 투표… 테러로 4명 사망

    아프간 목숨 건 투표… 테러로 4명 사망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28일(현지시간) 낭가르하르주 잘랄라바드의 한 투표소에서 무장 경찰이 투표소를 찾은 시민의 소지품을 검사하고 있다. 선거에 반대해 온 무장반군 탈레반의 공격에 대비해 7만여명의 치안 병력이 투표소에 배치됐지만, 폭탄 테러 등의 여파로 대선 기간 동안 최소 4명이 사망하고 80명이 다쳤다. 이번 투표 최종 결과는 11월 초에 나올 예정이며 과반 득표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11월 말 결선투표가 실시된다. 잘랄라바드 EPA 연합뉴스
  • 아프간 목숨 건 투표… 테러로 최소 5명 사망

    아프간 목숨 건 투표… 테러로 최소 5명 사망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28일(현지시간) 낭가르하르주 잘랄라바드의 한 투표소에서 무장 경찰이 투표소를 찾은 시민의 소지품을 검사하고 있다. 선거에 반대해 온 무장반군 탈레반의 공격에 대비해 7만여명의 치안 병력이 투표소에 배치됐지만, 폭탄 테러 등의 여파로 대선 기간 동안 최소 5명이 사망하고 80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투표 최종 결과는 11월 초에 나올 예정이며 과반 득표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11월 말 결선투표가 실시된다. 잘랄라바드 EPA 연합뉴스
  • [열린세상] 누구나 첫 투표는 이렇게 어렵나요?/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열린세상] 누구나 첫 투표는 이렇게 어렵나요?/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이 사람 얼굴 알아요.” 선거공보를 처음 제대로 본다는 그는 30대 초반의 발달장애인이다. 특수학교인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 유권자가 됐지만, 아무도 선거가 무엇인지 알려 주지 않았다고 한다. 선거 날 왜 사람들이 회사에 가지 않는지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20대를 그냥 보내고 장애인 복지관 시민인권 수업에서 ‘선거’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고, 그 무렵 도착한 선거공보를 보게 된 것이다. 생애 첫 투표를 앞두고 그에게는 혼란스러운 일이 참 많았다. 살면서 그렇게 큰 우편 봉투는 처음 받아 보았다고 한다. 안에는 알록달록 인쇄물이 여러 개 있었는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진이 한꺼번에 배달 온 것인지 신기했다’고 한다. 그 사진들을 하나 하나 넘겨 보다가 얼마 전 구청에서 있었던 행사에서 악수하며 자신을 끌어안던 한 남자(현재 구청장)의 얼굴을 알아본 것이다. 복지관 선생님들이 ‘투표는 우리나라를 위해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원래 어른이 되면 하는 것인데 어른이 되고도 한참 후에야 처음 하는 이 투표가 괜히 더 설?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투표소에서 기분 나쁜 일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는 아주 가까이 있는 것만 볼 수 있었던 시각장애인이 투표용지가 잘 보이지 않아서 동행인과 함께 투표하려고 했다가 혼이 났다고 한다. “괜찮아요. 잘하실 거예요.” 투표가 재미있을 것 같다며 잘해야겠다는 결심에 차 있는 그의 모습은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비장애인 중심의 투표소가 내뿜는 경직성과 권위주의가 걱정될 뿐이었다. 사실 지난 번 선거에서 한 뇌병변 장애인은 ‘걸음걸이가 온전치 못하다’(그렇기 때문에 온전한 판단을 할 수 없을 것이다)며 투표소에서 쫓겨났었다는 이야기를 전하지 못했다. 거소투표를 신청해 도착한 발달장애인들의 투표용지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신 투표하던 어느 시설의 대표 이야기는 더욱 할 수가 없었다. 개표가 모두 마무리되고 다음날 그에게 연락을 해 보았다. 그의 생애 첫 투표가 어땠을까 궁금했다. 힘없는 목소리기 전해 온다. “너무 어려웠어요.” 어떤 점이 제일 어려웠는지 물어보니 다시 이야기한다. “빈칸이 너무 많아요.” 정답이다. 종이도 빈칸도 너무나 많았다. 그해 받았던 투표용지는 7장이었다.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기초비례대표, 광역단체장, 광역의원, 광역비례대표, 교육감을 전부 선출하는 선거였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우편배달 온 선거공보를 7개로 나누어 기호 순서대로 분류하는 것도 꽤 복잡한 일이었다. 애초에 배달 올 때 그렇게 한 봉투 안에 일곱 더미가 왔었더라면 쉬웠을까? 어려운 한자어와 외래어로 채워진 글자들,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숫자들이 가득 찬 선거공보 더미를 찬찬히 읽는 것은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었다. 첫 투표이기에 어려웠을까? 발달장애인이라서 어려웠을까? 아니다. 이런 식이면 누구에게나 귀찮고 어려운 일일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설 및 설비, 참정권 행사에 관한 홍보 및 정보 전달, 장애의 유형 및 정도에 적합한 기표방법 등 선거용 보조기구의 개발 및 보급, 보조원의 배치 등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공직선거 후보자와 정당은 ‘장애인에게 후보자 및 정당에 관한 정보를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한 정도의 수준으로 전달하여야’ 한다고도 적혀 있다. 대만 투표용지에는 선거포스터와 똑같은 후보자 사진이 인쇄돼 있다. 읽기 쉬운 선거공보, 접근하기 쉬운 투표소, 사진이 박힌 투표용지는 발달장애인을 넘어 노인, 글자가 어려운 사람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이를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2018년 5월 발의된 이후 지금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다. 내년 총선은 또 이렇게 다가오고 있는데 말이다. 정국이 언제 멈출지 알 수 없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그래도 ‘가을국회’는 열릴 것이다. 그에게 말해 주고 싶다. 첫 투표라서 어려웠던 것이 아니라, 발달장애인이라서 어려웠던 것이 아니라 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부디 그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블랙홀에서 살아남아 속히 통과되기를 바란다.
  • 불안한 네타냐후 5선

    불안한 네타냐후 5선

    미국·이란 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과 반(反)이란 전선을 구축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재집권이 달린 조기 총선에서 우파 리쿠드당과 중도정당 청백당이 접전을 벌였다. ●연정 실패로 재총선… 이번에도 과반 불확실 AP통신 등에 따르면 17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이스라엘 전역 1만 1163개 투표소에서 제22대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 의원 120명을 뽑는 선거가 실시됐다. 유권자들은 개별 후보가 아닌 전국을 하나의 선거구로 하는 정당 명부에 투표를 하며 전체 의석이 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된다. 이번 선거에는 31개 정당이 출사표를 던졌으나 안팎의 관심은 13년 6개월간 장기 집권하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의 5선 달성 여부에 쏠려 있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과 정적인 베니 간츠 전 참모총장의 청백당 모두 승리가 확실치 않다. 지난 13일 현지 방송 채널12와 채널13의 조사 결과 양당은 총선에서 31~32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됐다. 연정을 통해 과반(61석)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올해 4월 9일 치러진 총선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레우벤 리블린 대통령으로부터 연정구성권을 부여받았으나 연정 구성에 실패하며 결국 이스라엘 역사상 처음으로 한 해 두 번의 총선을 치르게 됐다. ●네타냐후 패배땐 뇌물·배임·사기 혐의 법정행 이번 총선은 네타냐후 총리에겐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다. 검찰로부터 뇌물수수와 배임 및 사기 등 세 가지 혐의를 받는 그로서는 이번 총선 승리만이 재판을 피할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히브리대학의 형법학 교수 모르데하이 크렘니저 교수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의 면책을 지지해줄 정당과의 연정 구성에 필사적”이라면서 “연정에 참여한다는 것은 곧 총리의 면책을 찬성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치 분석가 유리 드로미는 “재임에 성공해도 당장이 아닐 뿐 언젠가는 법정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선거 직전까지 극우파 표심을 집결하는 데 총력을 다했다. 지난 15일 서안지구 요르단 계곡에서 각의를 열며 정부 승인 없이 개척된 유대인 정착촌을 합법화하는 조처를 내렸다. 이튿날에는 요르단강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을 합병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37년 철권 통치 무가베 전 짐바브웨 대통령, 95세 일기로 사망

    37년 철권 통치 무가베 전 짐바브웨 대통령, 95세 일기로 사망

    37년 동안 독재 권력을 휘둘렀던 로베르트 무가베 짐바브웨 전 대통령이 95세 일기로 눈을 감았다. 무가베 전 대통령 가족들이 그의 죽음을 확인했다고 6일 영국 BBC에 털어놓았다. 파드자이 마헤레 짐바브웨 교육부 장관이 트위터에 “로베르트 무가베여 영원한 안식을”이라고 적었다. 1924년 2월 21일 지금의 로디지아에서 태어난 그는 1964년 로디지아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재판 없이 수감돼 10년 이상 복무했다. 수감 중이던 1973년 짐바브웨 아프리칸 내셔널 유니언(ZANU) 의장으로 선출됐는데 창당 발기인이기도 했다. 그는 독립 이후 처음 치러진 1980년 선거를 통해 총리로 선출됐으나 스스로 총리 직을 없애고 1987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집권 초기에는 흑인들의 건강과 교육 접근권을 넓혀 좋은 평가를 들었다. 하지만 보수적인 토지 개혁 프로그램 때문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말년에는 권한 남용과 부패로 이름을 더럽혔다. 짐바브웨 독립 후 첫 대통령에 취임했던 그는 지난 2017년 11월에 군사 쿠테타에 의해 쫓겨났다. 무가베는 퇴임하기 얼마 전까지도 여러 나라를 치료 차 찾은 적이 많았으며 최근 두 달 동안은 싱가포르에 머물러왔다. 그의 재임 중 정부 관리들은 그가 눈이 좋지 않아 치료가 필요하며 암에 걸렸다는 소문을 부인했다. 에머슨 음낭가그와(76) 현 대통령은 지난 7월 부정 논란으로 얼룩진 대통령 선거에 당선돼 무가베의 권력을 승계했는데 “지극한 슬픔”을 느낀다며 고인을 “짐바브웨 건국의 아버지”와 “해방의 아이콘”이라고 적었다. 사실 음낭가그와 대통령은 무가베를 축출한 쿠데타 주역이었으며 중국 정부의 후원을 등에 업고 있는 것으로 공공연히 알려져 있다. 무가베의 젊은 부인 그레이스(54)와는 후계자 싸움을 벌였는데 그레이스는 사치벽으로 국민감정이 좋지 않아 밀렸다. 무가베 부부는 지난해 7월 대선 투표소에 나란히 나타나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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