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투치족
    2026-06-05
    검색기록 지우기
  • 여성 서사
    2026-06-05
    검색기록 지우기
  • 투표소
    2026-06-05
    검색기록 지우기
  • 김미자
    2026-06-05
    검색기록 지우기
  • 경기
    2026-06-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4
  • 부룬디 새 대통령 피에르 부요야(뉴스의 인물)

    ◎87∼93년 집권경험 온건성향/「부족간 평등」 노력 기울이기도 투치족이 주도하는 부룬디 군부에 의해 대통령으로 옹립된 피에르 부요야(47)는 유럽에서 교육을 받은 군 출신으로 지난 87년부터 93년까지 부룬디를 통치한바있다. 퇴역 장성인 부요야는 인종 갈등으로 매달 1천명 가량이 숨지는 부룬디에서 비교적 온건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군부의 대통령 옹립으로 후투족 반군에 대한 투치족의 전투를 이끌 책임을 맡게된 부요야는 역설적이게도 부룬디에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도입한 사람이다. 87년 발생한 쿠데타로 집권한 그는 부룬디를 구성하는 세 부족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국민단결헌장으로 부족간 증오 분출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다.그는 그러나 93년 6월 자신이 준비한 31년만의 첫 다당제 자유선거에서 후투족출신의 야당후보 멜시오르 은다다예에게 패배했다. 그가 선거에서 패배하자 그해 10월 투치족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에 후투족이 저항해 두 부족간 유혈충돌로 이어지면서 5만명이 숨지고 인구의 5분의1이 국외로 탈주하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후투족 정치인들은 부요야가 다른 고위 관리들과 함께 93년 발생한 쿠데타에 연관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부줌부라 로이터 연합〉
  • “부룬디 과도정부 곧 구성/후투족 무력 포기땐 대화”/부요야

    【부줌부라 AFP 로이터 연합】 투치족이 주도하는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부룬디의 새 지도자 피에르 부요야는 26일 수일내에 과도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요야는 이날 수도 부줌부라에서 쿠데타후 첫 기자회견을 갖고 『부룬디의 현실을 감안, 수일내에 과도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군의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회견장에 도착한 그는 이어 『나는 부룬디의 민주주의를 회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전제, 『그러나 이것은 우리나라를 괴롭히고 있는 종족간 집단학살이 종식된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후투족과의 대화문제와 관련, 그는 『그들 (후투족)이 폭력을 포기하고 무기를 버린다며 대화를 가질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 「제2의 르완다 대학살」 조짐

    ◎후투­투치족 비율 85:14… 대통령­총리 권력 분할/20일 투치족 340명 집단살해이후 공존 깨져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부룬디가 다시 종족간의 내전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이 분노한 군중의 돌팔매질과 쇠똥세례를 받고 미국대사관으로 몸을 숨긴 가운데 쿠데타가 발생한 이 나라는 지난 94년이후 50만명이 학살당한 르완다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두나라 모두 62년 벨기에에서 독립했고 전체인구에서 후투족과 투치족이 차지하는 비율이 각각 85%와 14%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두나라사이의 다른 점은 르완다는 피비린내 나는 내전끝에 투치족이 정권을 완전 장악한 반면 부룬디는 양 부족이 정권을 공유하기로 한 점이다.즉 대통령은 다수족인 후투족이 맡고 총리는 군사력을 장악한 투치족이 맡는 공존을 선택키로 한 것이다.그러나 25일의 쿠데타로 양 종족의 이같은 공존도 막을 내리게 됐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발단은 지난 20일 부룬디 중부에 위치한 투치족 난민촌에 후투족 반군이 침입,3백40명을 무차별 학살한데서 비롯된다.부룬디정부는 일주일간의 애도기간을 설정했고 후투족출신의 실베스트르 은티반퉁가냐 대통령(40)은 종족화해의 표시로 이번 희생자추도예배에 참석했다가 극도로 흥분한 투치족의 집단행동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추진해온 화해조치는 그동안 많은 난관에 부딪혔다.동족인 후투족은 대통령이 투치족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한다며 등을 돌렸고 투치족은 대통령이 후투족 반군을 너무 온건하게 대한다고 불평해왔다.현재 미대사관에 몸을 숨기고 있는 은티반퉁가냐대통령은 탄자니아로 피신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편 유엔은 종족간 대량학살사태를 막기 위해 부룬디사태에 개입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코피 아난 평화유지활동담당 유엔사무차장은 24일 현재 구호물자제공과 군사적 개입 등 상황에 따른 두가지 긴급대책을 입안중에 있다면서 군사적 개입결정이 내려질 경우 유엔군은 인권감시단과 함께 파견돼 인종간 충돌차단과 보호구역설정을 통한 민간인보호 등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는 현재까지 잠비아와 말라위,차드 등 3개국이 부룬디에 대한 파병의사를 밝혀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의 쿠데타로 양 종족간의 반목과 증오가 더욱 증폭됨으로써 비록 유엔이 개입하더라도 부룬디의 앞날은 대학살사태를 부른 르완다와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한층 켜졌다고 하겠다.〈유상덕 기자〉
  • 부룬디에 쿠데타/투치족 주도… 부요야 전 대통령 전권 장악

    ◎은티반퉁가냐 대통령 미 대사관 피신중 【부줌부라 AP AFP 로이터 연합 특약】 투치족이 주도하는 브룬디군이 25일 쿠데타를 일으켜 부룬디의 연립정부를 전복시키고 투치족 출신의 전대통령 피에르 부요야를 새대통령으로 옹립했다. 브룬디군은 쿠데타의 명분으로 국가의 불안정과 정부의 통치실패를 내세웠다. 목격자들은 총을 든 괴한들이 부룬디의 수도 부줌부라에 있는 주요 시장에 수류탄들을 투척했으며 투치족 주도의 군은 도시주변의 도로를 차단하고 방송국으로 움직였다고 말했다. 이번 쿠데타로 실각한 은티반퉁가냐 전대통령은 현재 미국대사관에 피신중이다.
  • 부룬디 대통령 은티반퉁가냐 미 대사관 피신

    【부줌부라(부룬디) AFP 로이터 연합】 부룬디의 투치족 집단학살 사건을 계기로 투치­후투족간의 종족분규가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후투족 출신의 실베스트로 은티반퉁가냐 대통령(40)이 안전을 우려해 수도 부줌부라의 미 대사관저로 피신해 있다고 미국무부 관리가 24일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리는 『은티반퉁가냐 대통령이 23일 밤 미대사관저로 피신해와 24일까지 계속 머물고 있다고』고 말했다. 은티반퉁가냐 대통령의 피신은 투치족을 대표해 온 제1야당인 민족진보연합(UPRONA)이 지난 20일 발생한 투치족 집단학살에 분개,대통령이 후투족 학살자를 지지하는 국가반역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그에 대한 지지 철회를 선언한 직후 이뤄졌다.
  • 부룬디 반군,난민 2백명 학살/수용소 공격

    ◎정부선 르완다 난민 1,800명 강제추방 【나이로비·키갈리 로이터 연합】 투치족이 장악하고 있는 부룬디 정부군은 20일 부룬디 중부 기테가 지역의 한 난민수용소에서 후투족 반군이 투치족 난민 2백여명을 학살했다고 주장했다. 부룬디 국방부의 한 영관급 간부는 주요 반군세력인 「민주주의수호민족위원회」(CNDD)가 이날 새벽 기테가 지역의 분겐다나수용소를 공격,투치족 난민 2백명이 사망하고 5백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한편 부룬디 정부는 자국내에 있는 1천8백명의 르완다 난민을 강제 추방했다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관계자들이 20일 밝혔다. 이들 관계자는 부룬디 정부가 서북부 키베지 수용소를 폐쇄하기 위한 조치에 착수,내전을 피해 현지에 와 있는 르완다 출신 후투족 난민 1만5천명 가운데 일부를 전날밤 트럭에 태워 국경 너머로 보냈다고 전했다.
  • 후투족 난민 2천명/르완다에 귀환 허용

    【키갈리 AP AFP 로이터 연합】 2주전 수천명의 대량학살극이 벌어졌던 르완다남부 키베호난민캠프에 투치족군대에 의해 포위돼 있던 약 1천8백명의 후투족난민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데 합의했다고 세스 센다숀가 내무장관이 4일 발표했다. 후투족난민이 무사히 고향으로 귀환하게 되면 추가유혈사태로 번질 것으로 우려되던 키베호난민촌의 포위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센다숀가 장관은 『원칙적으로 그들은 모두 귀향하는 데 동의했으며 우리의 목표는 난민촌에서 그들을 체포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당국이 그들중 극단주의자를 색출할 수 있도록 고향으로 귀환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 르완다비극의 배경은 식민통치(해외사설)

    르완다도 지금처럼 비극적으로 살지 않았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후투족과 투치족은 지난 30년간 부족간의 반목과 외세의 인위적인 조종 결과로 추잡스런 난민 수용소등에서 서로 죽이는 「인종청소」의 대학살을 반복해 왔지만 그 전에는 목가적이진 않더라도 마을단위로 행복하게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그것은 아마도 한세기 이전의 시대로 독일인들이 이곳에 상륙하기 이전의 일이다. 르완다와 부룬디는 1897년부터 1919년까지는 독일의 동부아프리카 식민지의 일부였고 1차대전이후는 벨기에에 이양됐으며 그후 국제연맹을 거쳐 국제연합의 신탁통치를 받아왔다.중요한 것은 금세기 초부터 어떤 세력이 이곳을 통치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문제는 유럽의 국가들이 이곳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인위적으로 귀족정치를 해왔다는 사실이다.즉 소수 인종인 투치족을 두드러지게 선호한 반면 다수족인 후투족은 피지배계급으로 삼았던 것이다. 벨기에가 르완다에 준 것이라고는 소수 투치족을 특권지배계급으로 하고 다수 후투족은 못배우고 빈곤한 상태로 내버려둔인종차별의 가혹한 계급체계라는 카드뿐이었다.이같은 체계는 한쪽이 다른 쪽을 살해하는데 쓰인다.한세기가 넘는 동안 지속된 식민지 착취와 무관심은 오늘날 르완다가 겪는 참담한 상황을 낳은 원인이 됐다. 르완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못할 짓을 해왔다.후투족은 수백·수천명이 소수 투치족에게 칼을 휘두르고 총격을 가하고 돌을 던져왔다.한 후투인은 한번에 9백여명을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또 수백명의 후투인들도 투치족이 휘두른 총·칼에 죽었다.이같은 유혈분쟁의 기저에는 외세가 오랜 동안 통치해온데서 기인한 두인종간의 경쟁심이 놓여있다. 지금 르완다는 아제르바이잔이나 보스니아·남부수단·터키와 쿠르드족등의 상태와 같이 돼가고 있다.서방세계는 이들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고 있으며 화해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을 놓고 양손을 부여잡고 해결책을 짜내고 있다.그러나 사람들은 『그곳에서 비극이 벌어질 때 유엔은 무엇을 했느냐』고 물을 것이다.
  • “「르완다 학살」국제 조사”/비지뭉구 대통령

    ◎“책임자 위법 처리 하겠다” 【키베호 AP 로이터 연합】 파스퇴르 비지뭉구 르완다 대통령은 27일 최근 키베호의 후투족 난민수용소에서 정부군의 대량학살로 실추된 정부의 국제적 위신을 되살리기 위해 이 사건에 대한 국제적 조사를 단행할 것을 발표하는 한편 매장된 시체들을 모두 발굴해 낼 것을 명령했다. 투치족 정부의 비지뭉구 대통령은 이날 외국 외교관들과 구호활동가들을 키베호 난민촌에 초청,정부군이 후투족 난민에 대해 과잉대처했는지 여부를 중립적 국제조사단을 통해 규명하는 한편 모든 시체들을 발굴해 정확한 희생자 규모를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로손 미대사는 『그들이 철저히 조사코자 하는 것이 분명하며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 르완다 난민 10만대탈출/학살참극 파장/미·유엔,만행중지 촉구

    ◎후투족 2천∼8천명 피살 【키갈리·워싱턴 로이터 AP 연합】 르완다 남서부 키베호난민촌에서 22일 정부군이 수천명의 후투족 난민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공포에 질린 난민 약 10만명이 24일 필사의 탈출에 나섰다. 미국과 유엔은 23일 르완다 학살극에 대해 우려의 뜻을 표명하고 그같은 만행의 즉각중지를 촉구했다.미국은 조지 무스 국무차관보를 특사로 르완다에 파견했고 유엔도 특사를 파견키로 결정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의 레이 윌킨슨 대변인은 부녀자와 어린이,부상자와 병자등 난민 10만여명이 피난봇짐을 가볍게 하기 위해 소지품을 버려가면서 진흙길을 걸어 키베호난민촌에서 동쪽으로 32㎞ 떨어진 부타르로 향하고 있고 이들의 피난행렬이 15㎞에 걸쳐 있다고 전했다. 윌킨슨 대변인은 부타르에 도착한 난민들이 23일 한 축구경기장과 시내 유엔건물에 수용돼 유엔의 식량배급과 치료를 받고 있으나 르완다당국은 이 후투족 난민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면서 24일 트럭에 태워 강제로 귀환시키기 시작했고후투족 난민에 대해 투치족 주민이 돌을 던지거나 구타하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말했다.난민중 약6백명은 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키베호수용소 인근 교회에 집결,정부군에 필사의 항전을 다짐했고,르완다정부군은 이들에게 24일밤까지 철수토록 경고했다. 한편 윌킨슨 대변인은 지난 22일 대학살은 수용촌난민이 갑자기 내린 비를 피하기 위해 감시병의 대열을 뚫으려던 것이 병사의 오해를 불러 난민에 대한 총격이 시작됐으며 난민자체 무장세력이 반격하자 대규모 포격이 실시됐다고 말했다.사망자수에 대해서는 2천∼8천명선이란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 곳곳에 시체더미… 지옥 방불/르완다 난민촌 학살 현장

    ◎수류탄에 사지잘린 어린이 시체도/후투족,“투지족 정부군 계획적 살육” ○…대학살이 벌어진 르완다의 키베호난민촌 현장에는 24시간이 지난 23일에도 시체들이 폐허속에 널려있어 글자 그대로 지옥을 방불. 키베호 난민촌을 방문한 유엔 및 원조팀 관계자들은 5천구 이상의 시체를 발견했으며 사진 기자들은 이를 『지옥의 광경』이라고 묘사. 밟혀죽은 수많은 시체들 속에 웅크린 채 숨진 여성들,폭탄에 머리가 터진 남자들,수류탄에 의해 사지가 잘린 어린이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르완다애국군(RPA)과 유엔군은 이날 하루 종일 시체 매장 작업을 계속했으나 하오가 되자 매장되지 못한 시체가 2천여구에 이르렀으며 살아남은 난민 수천명은 12㎞ 떨어진 부타르로 피란을 계속. 구호요원들은 르완다군이 학살후 서둘러 시체를 구덩이와 무덤에 쓸어넣어 『치워버렸기 때문』에 정확한 사망자 수를 파악할 수 없다고 말하고 호주의료팀과 잠비아군이 집계한 것만 해도 4천50구가 넘는다는 것. ○…인근 자이르에 망명중인 르완다 후투족들은 투치족중심의 르완다정부가키베호 난민학살을 계획적으로 주도했다고 주장. 이들은 성명을 통해 이번 사태의 책임이 폴 카감 국방장관과 자크 비호자가라 재건및 난민담당 장관에게 있다며 이번 사태는 『용의주도하게 계획된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수아라고만 알려진 25세의 한 부상자는 『RPA가 우리에게 난민촌을 떠나라고 내몰더니 언덕에서 우리에게 총격을 가했다』고 증언. 그러나 학살과 관련,파스퇴르 비지문구 르완다대통령은 유엔군의 추청치 8천여명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사망자수는 3백명에 불과하다고 상반된 주장. ○…국경없는 의사회(MSF)는 이날 성명을 통해 『(총격 후) 생존자들이 RPA에 의해 난민촌 밖으로 내몰려 현재 20㎞ 떨어진 부타르로 끌려가고 있다』고 밝히고 이들중 수십명이 땡볕에서 물도 식량도 얻지 못해 도중에서 지쳐 쓰러졌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또 『많은 난민들이 지방 주민들에 의해 구타당했다』고 증언하고 RPA가 부상자 후송을 방해해 40명만이 22일밤 부타르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비난. ○…학살극이 빚어진 난민촌은 23일 사격이 중지됐으나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고 유엔 대변인이 밝혔다. 이 대변인은 샤하랴 칸 유엔특사가 키갈리에서 전화로 이날 상오부터 키베호에는 사격이 중지됐으나 여전히 혼란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음을 전달.칸 특사는 르완다당국이 키베호사태 이후 다른 난민촌 3곳도 폐쇄했다고 전언.
  • 인종전쟁(외언내언)

    지난 20일 발표된 올해 퓰리처상 보도사진부문 수상작은 허술하기 이를 데 없는 아프리카의 난민캠프에서 한 흑인 어린이가 열병으로 죽은 어머니를 깨우려 울부짖는 모습을 담은 것이었다. 23일 로이터통신이 전한 르완다학살사건의 스케치기사는 『한 아기가 죽은 어머니의 젖을 빨고 있었고 몇몇 어린이들이 시체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엄마를 찾고 있었다』고 쓰고 있다.르완다사태의 비극성을 잘 그리고 있는 기사들이다. 르완다의 후투족과 투치족 간의 부족갈등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5백여년전 투치족이 르완다로 이주해 들어오면서부터.백인 식민지시대가 되면서 백인들은 소수민족인 투치족을 중용해 다수인 후투족을 견제하는 데 이용했다.62년 르완다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게 되자 후투족정부가 들어서게 됐다.그때부터 후투족의 투치족에 대한 보복이 시작됐다. 그동안 투치족이 얼마나 희생됐는지는 아무도 정확한 숫자를 알지 못한다.철저히 은폐·조작돼 왔기 때문이다.94년초에만 50여만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투치족이 94년 4년여의 내전끝에 정권을 차지하게 되자 이번엔 반대로 투치족의 후투족에 대한 보복이 시작됐다.22일 감행된 투치족 정부군에 의한 후투족 대학살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같은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에서는 부족끼리의 내전으로 92년 한해에만 35만명이 죽고 6백만 인구중 2백만명이 아사위기에 빠지는 사태가 있었다.동부유럽의 보스니아내전도 「인종청소」로 통한다.세르비아계와 회교도및 크로아티아계간의 민족분쟁에서 3년여동안 20만명의 사상자와 인구의 절반이 난민이 됐다.체첸사태도,지난 3월 터키군이 쿠르드족 소탕전을 벌인 것도 모두가 인종갈등의 소산이다. 반인륜·반문명적인 이런 인종전쟁이 어디까지 갈지는 예측불허다.아무도 해결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점도 인종분쟁의 특징이다.유엔의 기능이 보다 강화돼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 부룬디 종족간 유혈충돌 이틀째/투치족,후투 대량학살

    ◎「르완다 재판」 우려 【부줌부라 로이터 연합】 중앙 아프리카 부룬디의 수도 부줌부라 외곽에서 24일 후투족과 이들을 축출하려는 투치족 극단주의자들의 무력충돌로 5백명이 사망한데 이어 25일에도 두 부족간 전투가 재개돼 르완다내전과 같은 대학살이 다시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부줌부라 외곽 브위자와 부옌지에서 24일 투치족의 공격으로 발생한 두 부족간의 무력 충돌로 5백명이 살해됐으며 피살자는 주로 후투족이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한편 자이르와 부룬디 국경 세관관리들은 이날 하오부터 25일 오전까지 두 지역에 거주하는 후투족 4만∼5만명이 자이르로 대거 탈출했다고 밝혔다.
  • 르완다·보스니아 종족학살 최대비극/되돌아 본 지구촌 ’94

    ◎중동·남아공·아일랜드 평화 큰 걸음/아·구·미주 경제블록간 경쟁 격화 예고/부패스캔들·폐페스트 공포로 “홍역” 94년 역시 수많은 사건·사고가 지구촌에서 벌어졌다.제각기 별개의 사건들인 이것들을 하나로 묶어 말하기는 어렵다.하지만 굳이 두드러진 한가지 추세를 끄집어낸다면 종족분쟁으로 대표되는 정치 측면에서의 분열과 블록화라는 말로 상징되는 경제 측면에서의 통합이라는 상반된 현상이 두드러졌던 한 해였다. 이같은 양극화 현상은 앙골라·라이베리아 내전 등의 휴전 돌입,남아공·북아일랜드에서 볼 수 있었던 기대 이상의 평화 진전 및 반세기만에 관계개선의 돌파구를 찾은 미국과 북한,노벨 평화상 공동수상자를 낳은 중동 각국간의 관계 개선에 비해 눈에 띄게 심했던 보스니아와 르완다,체첸공화국 등에서 목격된 비극적 분쟁에서도 뚜렷한 대비를 나타냈다. ○명암 뚜렷이 갈려 국제정치면에서는 냉전구조 와해 후 단결목표를 잃은 각국이 아직 윤곽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새 국제질서를 어떻게든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확립하기 위해 끝없는 암중 대결을 계속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미국에 밀리기만 하던 러시아는 옛 영화를 되찾으려는 듯 코지레프 외무장관,옐친 대통령 등이 미국에 대해 러시아를 배제한 국제사회의 안정은 있을 수 없다는 경고를 잇따라 내놓았다.또 그동안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기만 했던 아시아에서도 일본과 동남아 등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독주를 견제하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오랜 동맹관계에 있던 서유럽도 보스니아 내전 해결 방안을 놓고 미국과의 대립을 서슴지 않았다. ○미·러 대립 새국면 공산체제가 무너진 후 이념 대립에 따른 대결 구도는 사라졌다.그러나 종족대립과 종교갈등 등이 그 빈 자리를 완벽하게 대체하면서 아프리카와 옛 소련,동유럽 등지에서 과거와는 다른 국지적 분쟁이 94년 지구촌의 새 이슈로 떠올랐다.종족·종교갈등은 분쟁의 최대 원인으로 부각됐다. 소수 투치족에 대한 다수 후투족의 학살로 시작돼 5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르완다 내전과 이슬람교를 믿는 보스니아 주민들에 대한무자비한 「종족 청소」가 끝없이 이어진 것은 94년 지구촌의 최대 비극으로 기록됐다.분리독립을 선언한 체첸공화국에 대한 러시아의 전격 무력침공은 「도를 지나친」 인권탄압이란 비난을 불렀고 성탄절을 앞두고 벌어진 알제리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비행기 납치와 인질 살해극은 사랑과 평화로 가득해야 할 성탄절을 피로 물들게 했다.협상을 통한 통일성취로 부러움까지 샀던 예멘은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불만을 극복하지 못하고 남예멘측이 다시 독립을 시도,전쟁까지 치른 끝에 무력으로 독립 움직임을 잠재웠고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또다시 쿠웨이트에 침공 위협을 가해 걸프전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았음을 새삼 깨닫게 하기도 했다. ○러 인종분규 이슈화 이같은 사건들은 국제정치 분야에서 확실한 중심 핵이 사라짐으로써 옛 체제속에서의 협조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데서 비롯되었다.구심점을 잃은 국제정치무대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목소리만 커졌고 구멍난 협조체제의 균열 사이를 종족·종교갈등과 이해대립이 비집고 나왔다.옛 소련의 자멸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란 뜻하지 않았던 지위를 얻은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확고한 지도자의 위치를 굳히려 했지만 소련의 공백을 채우지 못함으로써 기대 만큼의 영향력을 확보하는데는 실패했다. 그 반면 나날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경제 분야에서는 세계경제를 하나의 협조틀 속에 묶는다는 취지 아래 오랜 우여곡절을 극복하고 세계무역기구(WTO)를 내년초 출범시키기로 합의했다.그러나 WTO체제가 얼마만큼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선 전망이 불투명하다.협조체제 구축보다는 치열한 경쟁에 따른 이해 마찰의 소지가 아직도 더 크다.살아남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올 한해 지구 전체에서 큰 유행을 이룬 통합의 물결은 경제주도권을 잡기 위한 통합경제세력간의 경쟁이 격화할 것을 예고해 주고 있다. ○WTO성공 불투명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한 유럽경제지대(EEA)의 창설과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를 미주자유무역지대(AFTA)로 확대·발전시키려는 움직임,가장 활발한 경제성장을 계속한 아시아지역에서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출범 노력등 94년 내내 이어진 활발한 통합 물결은 정치분야와는 달리 경제분야에서는 어떤 틀을 형성해 간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이같은 경쟁 심화는 한편 실질적인 경제 성과와는 관계없이 경제적인 위기감을 느끼게 해 국민들로 하여금 보수화의 길을 걷게 했다.그 대표적인 예가 40년만에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한 미국 중간선거 결과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깨끗한 정치와 개혁을 내걸고 출범한 일본 연립정권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자민·사회 연정에 정권을 내준 것이라든지 독일의 콜 총리가 전후 최장수 총리 기록을 경신하면서 재집권한 것과 프랑스 좌파정부의 몰락,동유럽에서 확연히 눈에 띄는 옛 공산정당들의 부활 추세 등 보수화의 물결은 올 한해 지구촌 곳곳을 휩쓸었다. 한국에서도 세도사건으로 나라가 온통 시끄러웠지만 유럽,특히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도 부정·부패 스캔들은 94년 주요 뉴스로 연일 현지 언론들을 장식했다.지난 3월 화려한 출범식을 가진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끝내 부패의 올가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임,단기총리로 막을 내렸다.프랑스에서는 끝없는 각료들의 부정·부패 스캔들로 현직 각료가 구속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영국에서 전해진 살을 파먹는 괴박테리아 소식과 인도에서 발생한 폐페스트 소식은 전염병에 대한 인류의 공포에 다시 한번 불을 지폈다.지옥이 따로 없는 참극을 빚은 르완다는 곳곳에 널린 난민들의 시체와 불결한 위생 상태로 온갖 전염병의 발원지가 됐으며 그밖에도 아프리카와 동남아,러시아와 동구,또 중국에서도 페스트와 콜레라,디프테리아,홍역 등 갖가지 전염병의 발병 소식이 전해졌다. ○종파갈등 더욱 심화 한편 연초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연말 일본에서 일어난 강진,유난히 잦았던 호우·가뭄 등 자연재해와 일본에서의 여객기 추락과 에스토니아호 침몰 등 많은 인명피해를 낸 대형사고 앞에서 인류는 엄청난 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미약하기만 한 존재를 다시 실감해야만 했다.「인간복제」실험은 그 결과가 가져올 가공할 사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논란을 빚었으나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의 메디컬센터연구팀이 결국 이 연구를 중단해 인간의 오만에 대한 자성의 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서울신문 선정/해외 10대 뉴스/대립·화해속 무한경쟁 시대로

    ○중동평화협정 조인 5월4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간에 이스라엘 점령 예리코와 가자지구에 대한 자치협정이 맺어진데 이어 10월26일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에 역사적 평화협정이 조인됐다.이스라엘은 또 시리아에 대해 골란고원 반환의사를 밝혔다.이같은 중동평화 진전의 공로로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와 페레스 외무장관,아라파트 PLO의장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르완다 내전… 50만명 희생 지난 4월 다수민족 후투족이 소수민족 투치족을 학살하면서 벌어진 르완다 사태는 내전발발 3개월만에 전체인구 7백50만명중 50만명이 희생되는 대학살극을 연출했다.참상의 여파로 아직도 2백50만명의 주민들이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인근 자이르에 설치된 르완다 난민촌에서는 매일 수백명의 난민들이 죽어가고 있다. ○가트 해체… WTO비준 전후 세계무역질서를 이끌어온 GATT(관세무역일반협정)체제가 해체되고 그 대신 설립될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준비로 세계 각국이 분망하게 보낸 한해였다.UR협정 타결에따라 내년 1월1일 창설되는 WTO는 12월1일 미의회의 비준동의를 비롯,연말까지 1백여개국이 비준을 마칠 것으로 보이나 중국가입,사무총장 선출등 몇가지 난제가 아직 풀리지 않고있다. ○남아공 첫 흑인정권 탄생 지난 4월 넬슨 만델라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장이 최초의 흑인대통령에 당선돼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로 대표되는 3백42년간의 소수 백인통치가 끝났다.14%의 백인이 76%의 흑인을 통치하는 기형적 정치체제는 「만델라 대통령­데 클레르크 부통령」이라는 흑·백 동거정권으로 대체됐고 남아공은 유엔에 복귀했다. ○아아티 군사정권 퇴진 미국은 아이티 민정회복이라는 명분아래 9월19일 아이티에 병력을 파병했다.그러나 외교특사로 나선 지미 카터 전미대통령이 아이티 군부지도자들로 부터 퇴진약속을 받아내 군사충돌을 피하고 사태를 해결하게 됐으며 이에따라 91년 쿠데타로 축출됐던 민선대통령 아리스티드는 3년여에 걸친 망명생활을 끝내고 10월15일 권좌에 복귀했다. ◎에스토니아호 침몰 대참사 1천54명을 태우고 에스토니아의 탈린항을 떠나 스웨덴의 스톡홀름으로 가던 여객선 에스토니아호가 9월28일 핀란드 인근 발트해상에서 침몰,9백여명이 익사하는 미증유의 대참사가 발생했다.에스토니아호는 이로써 19 12년 북대서양상에서 빙산과 충돌,1천5백3명이 사망한 타이타닉호 침몰사건 이후 최악의 해상사고 선박으로 남게 됐다. ○북·미 핵협상 극적 타결 전쟁위기까지 몰아갔던 북한핵문제는 10월21일 북·미 핵협상 기본합의서가 조인됨으로써 긴장해소의 전기를 마련했다.북한은 지금 미국과 경수로지원및 대체에너지 공급,연락사무소 설치문제 등을 놓고 협상을 진행중이다.특히 지난 7월의 김일성주석 사망소식은 이후 북한권부의 움직임과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대한 많은 추측을 낳기도 했다. ○러,체첸공 무력 침공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체첸공화국에 러시아가 군사개입을 단행함으로써 빚어진 체첸사태는 러시아의 소수민족문제 해결을 위한 시금석이 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옐친 러시아대통령은 날로 떨어지는 인기를 만회하고 체첸외에 독립을 꿈꾸는 여타 소수민족에 대한 본보기로 무력개입을 감행했으나 러시아내에서조차 비난여론이 들끓고 있다. ○미 공화당 의회 장악 지난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공화당이 상·하 양원및 주지사 선거에서 압승을 거둬 40여년만에 양원을 모두 장악하게 됐다.미국민들의 「신보수주의 정서의 표출」로 일컬어지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패함에 따라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집권후반기의 정국운영은 물론 오는 96년 대통령선거에서의 재선전망도 극히 불투명해졌다. ○「보스니아」 3년만에 휴전 「인종청소」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3년째 잔인한 도륙을 계속해온 보스니아내전은 세르비아계가 유엔설정 안전지대인 비하치를 사실상 점령한뒤 카터전미대통령의 중재로 24일부터 휴전에 들어갔다.세르비아계는 그동안 수많은 평화중재안을 거부한 채 국토의 70%를 점령했으며 보스니아사태 해결에 시종 미온적 태도를 보여온 EU회원국들은 손을 빼기에 급급했다.
  • 피그미족 거의 전멸/르완다내전때 후투족이 학살/소수족보호협 주장

    지난 4월이후 최근까지 계속된 르완다내전의 와중에서 바트와 피그미족이 후투족 암살대에 의해 거의 전멸됐다고 바트와 피그미주보호협회의 우위라기예 사무국장이 24일 밝혔다. 우위라기예씨는 이날 소수민 권익단체인 「대표 미파견 민족·종족기구」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사망자들의 수를 정확히 추산하기는 어렵지만 3만명의 바트와 피그미주들 가운데 약 75%가 실종됐거나 살해당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르완다의 피그미주들은 대부분의 우림지대가 벌목돼 농경지로 바뀔 때까지 숲속에서 살다가 최근에는 농업과 요업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는데 후투족과 투치족 모두로부터 배척당해 왔다. 르완다내전이 일어날 때까지 중앙아프리카지역에는 모두 25만명의 피그미족이 살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 르완다 정부군인 후투족 보복학살/탈출자들 증언

    【고마(자이르) AFP 연합】 현재의 르완다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투치족의 르완다애국전선(RPF)군에 의한 대학살이 지난 4일 르완다 비룽가 국립공원에서 있었다고 학살현장에서 탈출한 두 르완다인이 20일 폭로했다. 르완다 학살과 관련,증거수집에 나섰던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은 이와 관련 르완다및 자이르 당국에 철저한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두 사람은 당시 자이르로 탈출하려는 한 무리와 르완다로 귀환하려는 또 다른무리 등 1백50명 가량이 비룽가 국립공원의 숲속에서 자동소총과 로켓발사대 등으로 무장한 18명의 애국전선 대원들과 조우했는데 대원들이 자이르내에서의 전정부군들의 활동상황과 관련,질문을 마친 뒤 총칼을 동원해 곧바로 사살했다고 밝히고 자신들은 머리와 목에 상처를 입었으나 「죽은자」로 처리돼 현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 「르완다 대탈출」 재연 가능성/“불군철수뒤 80만명 월경”

    ◎유엔관리/난민촌,발진디푸스 번져 【부카부(자이르)·기콘고로(르완다) 로이터 AFP 연합】 유엔관리들은 9일 르완다에 주둔하고 있는 프랑스군이 예정대로 오는 22일까지 철수할 경우 르완다의 후투족 난민 80만명이 다시 자이르로 탈출해 최악의 위기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이 자이르의 부카부에 파견한 피터 로마노브스키대표는 『이곳에 재앙이 임박했다』면서 『우리는 심연의 끝에 서있으며 만약 난민 10만명이 다시 이곳으로 쏟아져들어오면 심연으로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로마노브스키대표는 『만약 난민 약 1백만명이 이곳으로 밀려온다면 걸프전 당시와 같은 군사작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엔고등난민판무관실은 지난 3주간 부카부에는 르완다난민 약 32만명이 몰려들었다고 밝힌 뒤 이들은 대개 르완다반군의 소수 투치족의 보복을 두려워해 피신한 다수 후투족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인도문제 담당 피터 한센 유엔사무차장은 9일 프랑스군이 철수한뒤 아프리카군을 주축으로 하는 유엔평화유지군이 이들을 돌보지 못하면 최고 2백만명까지 자이르로 탈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제네바 로이터 연합】 콜레라와 이질이 창궐해 많은 사상자를 냈던 르완다 난민촌에 이번에는 발진디푸스로 추정된는 전염병으로 19명이 사망,이 병으로 또다시 많은 희생자가 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시바나포아대변인은 9일 자이레동부 고마근처의 무궁가난민촌에 있던 르완다인 30명이 고열과 신경질환에 대한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으로 이송됐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 불 연감 「퀴드」(박강문 귀국리포트:12)

    ◎파리시내 비둘기 수까지 수록/31년째 발간… 4·6배판 2천페이에 없는게 없어 서울 본사의 느닷없는 「벼락 주문」.『파리 시내 비둘기는 몇마리고 비둘기로 인한 폐해는 어떤 것이며 어떻게 조치하고 있는가 알아보라』 이런 지시가 그것도 주말에 떨어지면 몹시 난감하다.전에 듣고 본 것들로 대충 얽어 놓기는 하지만 비둘기가 몇마리냐는 것은 어디 가서 누구에게 물어본단 말인가. 궁하면 통하는 법,웬만큼 해결하는 길이 있다.프랑스의 연감 「퀴드」(키드라고도 함)를 뒤적거리는 것이다.파리에 경기용 비둘기가 3만5천마리가 있다고 돼 있고 비둘기애호가협회 주소,비둘기에 관한 잡지 이름 세가지도 나와 있다.식용 비둘기는 농산품 부문에서 따로 다루고 있는데 전국에서 연간 4천6백t의 비둘기고기가 생산되고,사육되는 마리수는 메추라기와 합쳐 1천1백만마리가 된다고 밝혀놓았다. 「퀴드」란 말은 라틴어의 Quid로서 「무엇」이란 뜻의 의문대명사다.Quid?하면 『뭐냐』하는 물음이다.로베르 라퐁 출판사가 31년째 내고 있는 퀴드는 『뭐냐』는 물음에 뭐든지 답해준다.이 책을 이리저리 들쳐보노라면 참말로 없는 게 없구나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18세기의 백과전서파를 낳은 프랑스의 지적 전통을 예서 본다. 처음 나온 퀴드 1963년판은 6백여 페이지의 포켓판이었다.그후 판형이 커지고 페이지수도 2천 페이지로 늘었다.책끝 색인의 주요 탐색어만 해도 4만5천개다.미국이나 독일의 연감은 포켓판이나 그에 가까운 크기이며 갱지에 인쇄한 염가판이다.퀴드는 보통 사전만한 부피이고 고급 인도지를 쓰고 있다.2백페이지 포켓북 84권에 필적하는 것이라고 한다.값은 약 3만4천원이다. 퀴드에서 파리의 다리에 관한 것을 찾아보자.파리에는 다리가 모두 35개 있다.가장 오래된 다리는 프티 퐁(1852년 재건)이고 비노슈 주연의 영화 「퐁뇌프의 연인」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퐁뇌프(1578∼1604년 건설)가 그 다음이다.퐁뇌프는 「새로운 다리」라는 뜻.가장 넓은 다리는 너비 42m의 알마 다리다. 최근 킬링 필드가 되었던 르완다 항목을 보면 인구가 7백33만6천명(1990년)이고 그 구성은 후투족(농경) 89.8%,투치족(목축) 9.8%,트와스족(수렵) 0.4%인 것을 알 수 있다.그밖에 이 나라에서 일어난 주요 정변들을 간략하게 정리해 놓은 것을 보면 후투와 투치 두 종족의 상대방 학살 악순환으로 피범벅된 역사를 알 수 있다. 퀴드는 세계 주요 예술가들의 이름도 싣고 있는데 한국인 음악가 강동석 백건우 정명훈 정경화 네 사람이 올라 있다.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억2천만명)로 돼 있다.가장 많은 엑스트라를 쓴 영화는 「간디」(30만명)인데 한국의 「왕마귀」라는 영화가 15만7천명으로 그 다음이다. 언제 들여다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 책.올해 봄 내가 서울에 귀임한 뒤 파리의 후임자에게 사서 서울로 부쳐달라고 부탁한 유일한 물건이 퀴드 1994년판이었다. 『완벽성은 퀴드의 한결같은 모토였다.가장 확실한 참고서…』(르 몽드),『정보의 성서』(가정 잡지)­퀴드 30년 역사를 기리는 말들이다.
  • 르완다 학살극 주도/혐의자 2백명 체포

    【키갈리 AFP 연합】 르완다정부는 민간인 1백만명의 대량학살을 주도한 혐의로 2백여명의 전직 정부관리들을 최근 체포했다고 파우스틴 트와기라문구 총리가 8일 말했다. 르완다내에 전범재판을 위한 국제사법재판소 설치를 지원하고 있는 그는 전르완다정부군 및 극렬 민병대에 의해 자행된 소수 투치족 1백만명의 학살행위에 대한 진상조사 등 국제사회의 대응이 너무도 미온적이다고 불평했다. 트와기라문구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하루속히 그들에 대한 공정한 재판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