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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義烈 독립투쟁] 金祉燮 의사(3)

    ‘동지 여러분 앞.삼가 새해를 축하합니다.제(弟)는 288시간만에 세상 구경을 하게 되었습니다.참말 지저(地底)의 생활이었습니다.그 속에서 생각할 때에는 이 세상 비애,적막,번민 모든 고통이 한꺼번에 이 사람의 흉중으로 총집되어 경도광랑(驚濤狂浪)의 소리만 들릴 적에 할 일없이 어서 나와 어복(魚腹)으로 들어가라고 유인하고 최촉하는 공포를 주던 것이 마치 왕생(往生)의 일인 것 같습니다.…’ 이 내용은 1924년 1월 5일 도쿄 소재 일왕(日王)의 궁성 앞 니주바시(二重橋)에 폭탄을 투척,조선민족의 독립의지를 만방에 떨친 김지섭(金祉燮)의사가 일본에 도착한 후 상하이(上海)의 동지들에게 보낸 편지의 모두 부분이다.무려 12일간을 석탄 운반 화물선의 창고에 몸을 숨긴채 일본에 도착한 김의사는 당시의 고통스런 상황을 마치 죽었다 살아 나온 것 같았다고 적고 있다. 김 의사는 1884년 7월 21일 경북 안동에서 출생하였다.20대 청년시절 한때상주보통학교 교원과 금산지방법원 서기 겸 통역으로 재직하기도 하였으나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귀향하여 뜻을 같이하는 동지를 모아 국권회복의길을 강구하였다.이후 김 의사는 만주·연해주·상하이 등을 다니며 독립운동에 전념하였으며 1922년 4월에는 고려공산당에,그 해 여름에는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다. ‘이중교 의거’에 앞서 김 의사는 1923년 3월 같은 단원인 김시현(金始顯)·유석현(劉錫鉉) 등과 함께 국내에 있는 일제의 침략기관을 파괴하기로 하고 대량의 폭탄을 중국으로부터 국내로 반입하려 했다.그러나 이 계획은 동지로 위장침투한 경기도 경찰부 소속 조선인 경찰 황옥(黃鈺)의 밀고로 실패하고 말았다.김 의사는 다행히 사전에 피하였으나 김시현·유석현 등은 일경(日警)에 체포돼 옥고를 겪었다. 그 해 12월 김 의사는 거사 자금을 마련키 위해 조선인 총독부 판사 백윤화(白允和)에게 5만원을 요구하였다.그러나 백은 요구를 들어줄 듯하다가 결국에는 배신,동지 윤병구(尹炳球)만 체포되고 말았다.백방으로 거사자금 마련을 하던 중 1924년 초 도쿄에서 일본 총리를 비롯하여 조선총독 등이 대거참석하는 ‘제국의회(帝國議會)’가개최된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김 의사는 일제 침략주의자들을 처단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판단,동지 최윤동(崔允東)에게서 입수한 폭탄 3개와 여비 100원을 준비하여 상하이 포동(浦東)부두에서 도쿄로 향했다.당시 김 의사는 일본인 소유 석탄운반선 천성산환(天城山丸)의 창고에 몸을 의탁하였는데 이 과정에는 일본인 공산주의자 히데시마 히데지(秀島廣次)와 선원 고바야시 간이치(小林幹一)·구로시마 리게이(黑島里經)의 도움이 있었다. 1923년 12월 31일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縣)에 도착하여 나카무라 겐타로(中村彦太郞)라는 일본 이름으로 여관에 투숙한 김 의사는 여기서 3일을 보낸후 모포·외투·시계 등을 전당포에 맡겨 여비를 마련한 다음 도쿄로 향했다.기차 안에서 제국의회가 휴회됐다는 소식을 접한 김 의사는 거사계획을 변경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일왕(日王)의 궁성을 폭파키로 결정하였다. 1월 5일 도쿄에 도착한 김 의사는 우선 궁성의 규모·구조를 사전답사한 후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다.오후 7시경 일본인 관광객과 뒤섞여 이중교 앞으로 접근하자 감시 경찰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더 이상 궁성 쪽으로 접근하지 말 것을 종용하자 김 의사는 일경을 향해 폭탄 한 발을 던지고 재빨리 이중교를 건너 궁성 정문쪽으로 향하였다.이에 궁성 보초병 2명이 달려들며 김 의사에게 총을 겨누자 김 의사는 나머지 폭탄 2발을 일경들이 달려드는 궁성쪽을 향해 연속적으로 던졌다.그러나 김 의사가 던진 폭탄 3발은 모두가 불발이었다.김 의사가 타고온 배는 습기가 많은 화물선이어서 도쿄로 오는 동안폭탄의 화약이 모두 젖어버린 탓이었다.김 의사의 의거로 일본전역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자신들이 ‘신(神)’으로 받드는 일왕의 궁성에 조선인이 폭탄을 들고 뛰어들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내무차관의 견책에이어 경시총감·경무부장·궁성 경비책임 경찰서장 등 치안책임자가 줄줄이파면되었다. 현장에서 체포돼 히비야(日比谷)경찰서에 구금돼 있던 김 의사는 1924년 9월 9일 열린 공판에서 직업을 묻는 판사에게 “조선 독립당원과 혁명사원이다”라고 당당히 말하였다.또 10월 11일 공판에서는 장문의 ‘진술서’를 통해 일제의 침략정책을 통박한 다음 “이번에 내가 취한 행동은 침략정치에도취된 왜국(倭國)관민을 각성시키고 반성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다”라고 밝혔다. 재판정에서 김 의사는 자신에게 사형이 아니면 무죄를 줄 것을 주장하였으나 일제는 무기징역을 언도하였다.1927년 20년으로 감형된 김 의사는 옥중에서도 의거 당시의 의기를 굽히지 않았으나 고문 후유증이 악화돼 이듬해 2월 20일 뇌일혈로 지바(千葉)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그 때 김 의사의 나이는 44세였다.채영국 독립기념관 연구원*金祉燮 의사 후손 근황 김지섭 의사의 직계 유족으로는 며느리 최수희(崔秀禧·75·대구 거주) 여사와 손자 3형제가 있다.김 의사의 외아들 재휴(在烋)씨는 생전에 회사원으로 근무하다가 지난 94년 78세로 노환으로 작고했다. 김 의사의 손자 3형제는 모두 각자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장손 두현(斗鉉·47)씨는 경북고와 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한 수재로 현재 전남 여수에거주하고 있는데 독일계 외국인회사인 한국바스프(주)생산부장으로 재직중이다.슬하에 1남1녀. 둘째 손자 광현(洸賢·44)씨는 대학졸업 후 롯데건설에 근무중이며 경기도부천에 거주하고 있다.셋째 손자 기현(己鉉·39)씨는 모친 최 여사를 모시고 대구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장손 두현씨는 “어릴 때부터 아버님으로부터 할아버지께서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자랐다”며 “할아버님의 애국정신을 본받아 열심히 살고 있다”면서 “현재 선산에 안장돼 있는 할아버지를 국립묘지로 이장하고싶다”고 말했다. 김 의사의 묘소는 경북 예천군 호명면 직산리 대지동에 자리잡고 있다.김의사를 기리는 기념물로는 경북 안동 영호루에 있는 기념비와 독립기념관 경내 시비(詩碑)가 있다.매년 2월 20일 김 의사 순국일에 추모행사가 거행되고 있으나 별다른 기념사업회는 없는 상태.1962년 김 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이 추서됐다.정운현기자 jwh59@*日 궁성 어떤 곳인가 일본인들은 그들의 왕이 거주하는 궁성을 ‘황거(皇居)’라고 부른다.수도도쿄(東京)시내 치요다구(千代田區)에 위치한 일본의 왕궁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정권을 잡고 막번체제(幕藩體制·1603∼1867)를 이끌 시기에는 에도성(江戶城)으로,제122대 왕인 메이지(明治·1868∼1912)가 ‘황거’를 교토(京都)에서 옮겨온 이후에는 도쿄성(東京城)으로 불렸다.막번시기에는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인 쇼군(將軍)이 궁성의 주인이었으며 메이지 이후부터는 왕의 거주지가 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물리치고 권력을 잡은 이에야스는 자신의위엄을 살리기 위해 히데요시가 세운 오사카성(大阪城)보다 훨씬 더 큰 궁성을 만들 것을 명령하였다.따라서 이 궁성은 그의 손자인 3대 쇼군 이에미쓰(家光)시대에 와서야 완성되었다. 이같이 오랜 기간 대규모로 축조된 궁성의외부에는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해자(垓字·궁성 밖으로 둘러서 판 연못)가 이중으로 설치돼 있다.해자는 간다천(神田川)에서 북서방향으로 우시고미·이치가야·요쓰야·아카사카 등을 띠를 두르듯 감싸고 있다.그리고 궁성에는 아카마쓰 성문(파수꾼이 망을 보는 바깥쪽 성문) 등 36개의 성문이설치돼 있다.현재는 안쪽 해자로 둘러 싸인 약 30만평의 땅에 궁성이 조성돼 있고,현 일왕 아키히토(明仁)가 이 곳에 살고 있다. 일본의 이같은 왕궁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한국을 침략하면서 부터는 한국 의·열사들이 폭파대상으로 삼은 주요 목표물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그곳에 거주하는 일왕 역시 처단대상이었다. 김지섭(金祉燮) 의사의 ‘이중교의거’ 이외에도 1932년 1월 8일에는 이봉창(李奉昌) 의사가 왕궁의 사쿠라다문(櫻田門) 앞에서 일왕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김 의사가 폭탄을 던진 이중교는 궁성 정문 앞에 있는 다리.이중으로구성돼 있다고 해서 이중교(二重橋)라고 부른다.길이는 약 29m,폭은 약 7m다. 채영국 연구원
  • 朴義鼎씨 ‘페인트 투척’ 진상

    재미교포 박의정(朴義鼎·71)씨의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에 대한 페인트 투척사건은 김 전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으로 저지른 단독범행인 것으로 일단 결론이 내려졌다.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폭행죄를 적용,박씨를 구속 조사한 서울강서경찰서는 7일 이 사건을 서울지검 남부지청에송치했다.경찰은 박씨가 미국에서 귀국한 뒤 한달동안 친구 유모(69)씨 등 4명을 2∼5차례 만났지만 공범이나 배후세력으로 볼만한 혐의점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고 밝혔다. 박씨는 지난달 4일 귀국,종로구 평창동 윤모(70·S병원 원장)씨의 집에 한달동안 머물렀다.윤씨와는 91년 4월 방북했을 때 북에 있던 윤씨의 남동생을 찾아준 인연으로 알게됐다.박씨는 74년 미국으로 이민,97년 미국 시민권을획득한 이중국적자로 지금까지 3차례 북한을 방문했다.국내에는 1년에 2∼3차례,지금까지 모두 30여차례 왕래했다. 이번에 귀국해서는 김 전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상도동집 주변을 배회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다 김 전대통령의 일본방문계획을 우연히 알게돼 김포공항으로 찾아가기로 하고 범행준비를 했다.현장에서 뿌린 ‘김영삼씨는 국민앞에 사죄하라’는 유인물은 지난달 31일 알고 지내던 전 서울시의원 김모(50)씨의 강동구 성내3동 T건축사무실에서 직원 김모(25)씨에게 타이핑을 한뒤 30장을 복사하도록 시켰다.이어 지난 1∼2일 윤씨집 냉장고에 있던 달걀에 미리 준비한 주사기로 붉은색 페인트를 주입,비닐랩으로 싸서 양복주머니에 숨긴 뒤 3일 김포공항에서 김 전대통령에게 던졌다. 박씨는 범행동기에 대해 “IMF환란을 초래한 김 전대통령이 반성하지 않고경거망동하는 것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박씨는 “92년 대선 직전 김 전대통령을 만나 전국구 공천을 요구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해인간적인 배신감을 느껴왔다”고 털어놓았다. 김성수기자 sskim@
  • ‘YS 페인트세례’ 수사 종결…朴義鼎씨 단독범행 결론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에 대한 페인트 투척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강서경찰서는 6일 이번 사건을 재미교포 박의정(朴義鼎·71·구속)씨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짓고 수사를 종결했다.경찰은 지난 달 4일 귀국한 박씨가국내에서 접촉한 인물과 휴대폰 통화내역을 조회한 결과,범행을 미리 알았거나 모의한사람은 없었다고 밝혔다. 김성수기자 sskim@
  • YS ‘페인트 세례’ 박의정씨 구속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에 대한 페인트 투척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강서경찰서는 4일 박의정(朴義鼎·71·미국 캘리포니아주 거주)씨를 폭행혐의로구속했다. 이에 앞서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한 서울지법 남부지원 형사 6단독 홍진원(洪鎭元) 판사는 “박씨는 재미교포로서 친구집에 거주하고 있어 도주할 우려가 있고 자신이 잘한 일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어 재범의 가능성이 높아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경찰은 박씨가 친구 윤모(70·의사·종로구 평창동)씨 집에서 30일간 머물면서 접촉한 인물과 휴대폰 통화내역도 조회,배후세력 및 공범이 있는지 여부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박씨가 현장에서 뿌린 ‘김영삼씨는 국민 앞에 속죄하라’는 A4용지 30장의 유인물을 지난달 중순 성동구 금호동에서 자신이 아는 전 국회의원의 부하직원을 시켜 제작했다고 주장함에 따라 사실로 확인되면 수사를 벌일방침이다. 김성수기자 sskim@
  • 이달의 독립운동가 朴殷植 선생

    국가보훈처는 4월‘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민족사학자이자 언론인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白巖 朴殷植 선생(1895∼1925)을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3·1운동 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한국민노인동맹단을 조직,姜宇奎 의사를 서울로 파견해 일제에 폭탄을 투척하는 거사를 일으켰고 1925년 3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2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 1월의 호국인물에 金相玉의사

    전쟁기념사업회는 7일 일제에 맞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金相玉의사(1890∼1923)를 1월의 호국인물로 선정,8일 전쟁기념관에서 金의사의 아들 金泰運씨,徐英勳 김상옥의사 기념사업회장,李元範 3·1운동 기념사업회장,金三悅 독립유공자 유족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을 거행한다. 서울 태생인 金의사는 1917년 조선물산장려운동과 일화(日貨) 배척운동을전개한데 이어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비밀결사인 혁신단을 조직,혁신공보를 발간하며 독립사상을 계몽했다. 金의사는 1920년 韓焄·柳장烈의사와 함께 전라도 지방에서 친일 민족반역자 수명을 총살하고 오성 헌병대 분소를 습격한 뒤 사이토총독과 일반 고관들의 암살 계획도 추진했으나 사전에 발각돼 중국 상해로 망명했다. 金의사는 1922년 일본총독 암살과 주요 관공서 파괴를 목적으로 국내로 잠입,1923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달아났다가 추격중인 일본경찰과대치하며 3시간여동안 총격전을 벌이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뒤 자결,순국했다. 정부는 1962년 金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金仁哲 ickim@
  • 세밑 관가 송년회마다 신종 폭탄주에 ‘비틀’

    ◎수류탄酒·드라큘라酒·칙칙폭폭酒…/‘술로 부서 장악’ 속설 따라 기술직·경제·법무부 애용 ‘수류탄주’,‘드라큘라주’,‘물레방아주’,‘칙칙폭폭주’…. 연말 관가(官街)의 망년회에 등장하는 신종 폭탄주들이다.과거부터 관가는 술로 부서를 장악해야 업무가 돌아간다는 속설이 지배했다.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서도 폭탄주 공세는 여전하다. 정통(?)폭탄주는 큰 글라스에 맥주를 가득 따르고 그 안에 양주를 담은 작은 잔을 넣어 맥주와 양주를 함께 마시는 술이다.맥주를 섞어 마실 경우 흡수가 빨라 단시간에 취할 수 있다. 최근 등장한 수류탄주는 맥주 캔의 따개 부문을 자른 뒤 맥주를 조금 따르고 양주를 넣어 가득 채운 폭탄주의 일종.다 마신후 빈 캔을 천장에 ‘투척’한다고 해서 수류탄주라 한다.드라큘라주는 포도주에 양주를 넣어 만든 폭탄주로 마신후 포도주가 입가에 흐르는 모습을 따서 이름지은 것.물레방아주는 정통 폭탄주의 변형으로 양주잔을 맥주잔위에 잡고 마시면 양주가 맥주잔에 똑똑 떨어지는 모습을 가리킨 것. 칙칙폭폭주는 맥주잔과 양주잔 5∼7개를 한 줄로 세워놓고 노래 한곡이 끝날 때까지 하나씩 빨리 마셔야 한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많은 사람이 모일 경우 폭탄주를 하게 된다”며 “빨리 취할 수 있는데다 잔이 상급자에게 집중되는 것을 피하고 참석자들이 똑같은 양의 술을 마실 수 있어 폭탄주를 자주 마신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금융기관의 K모 차장은 “일반 직장인들은 폭탄주를 마시지 않는다”며 “비싼 양주를 낭비하는데다 과음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 조총련 본부에 화염병/건물 일부 화재… 사상자는 없어

    【도쿄 AFP 연합】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도쿄 본부에 3일 화염병이 투척돼 건물 일부가 불에 탔으나 사상자는 없었다고 일본 경찰이 밝혔다. 조총련계 주민들은 지난 8월31일 북한이 일본 열도 상공을 통과하는 로켓을 발사한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살해와 강간,납치 등의 협박을 받아왔다.
  • 長江日記/정정화 지음(화제의 책)

    ◎독립운동에 몸바친 할머니 일대기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각계에서 조명작업이 활발하다.대개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캠페인을 담고 있다.앞으로의 결의를 다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묻혀있는 과거의 올곧은 삶을 조명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이 책은 백범 선생이 ‘한국의 잔 다르크’라 부른 정정화 할머니의 일대기를 다루었다.저자의 삶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상해 임시정부의 역사이자 우리 독립운동사에 대한 증언이다.1900년 태어나 독립운동가 집에 시집온 뒤, 20살 되던 해 시아버지와 남편의 뒤를 따라 중국 상해로 가면서 맺게된 임시정부와의 인연.독립운동 자금모집의 밀령을 띠고 여섯 차례에 걸쳐 국경을 넘나들었고,32년 윤봉길 의사 폭탄 투척 사건이후 상해를 탈출한뒤 김구·이동녕 선생등을 뒷바라지 하면서 10년간 망명정부의 궂은 일을 도맡은 과정 등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이 책의 내용은 23일까지 연강홀에서 ‘아,정민화’라는 연극으로 공연되고 있다.학민사.1만원.
  • 콜롬비아 교도소 피습/좌익 죄수 326명 탈옥

    ◎총격전 3시간… 6명 死傷 【보고타 AP 연합】 콜롬비아의 좌익 게릴라들이 24일 상오 이 나라 서남부의 포파얀의 한 교도소를 공격,3시간여 동안 총격전을 벌인 뒤 최소한 326명의 동료 죄수들을 탈옥시키는데 성공했으나 와중에 간수를 포함 3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했다고 콜롬비아 당국이 밝혔다. 현지의 세사르 네그레트 지사는 이날 방송에서 “다이너마이트와 중무기로 무장한 200여 게릴라들은 산 이시드로 교도소를 포위한 뒤 점거해 버렸으며 수백명의 죄수들이 포파얀 일대를 헤메는 등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밝혔다. 이날 교도소를 습격한 게릴라들은 콜롬비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대규모인 ‘콜롬비아혁명무장군’ 소속으로 이들중 1명과 죄수 2명은 게릴라와 교도소경비병들간의 총격전 및 수류탄 투척중에 숨졌으며 간수 2명과 죄수 1명이 부상했다. 또 총격전이 벌어지자 이 교도소에 수감중이던 총 970명의 죄수들중 거의 3분의 1이 탈옥했으며 그중 47명은 군의 도움으로 재검거됐다고 당국이 밝혔다.
  • 훈련중 수류탄 폭발 교관·신병 함께 숨져/4명 중경상

    21일 하오 2시15분쯤 충남 공주시 반포면 국곡리 32사단 신병 교육대에서 수류탄 투척 훈련 중 수류탄이 터져 교관 朴承園 중위(24)와 훈련병 金有新(20)이 숨지고 劉景鎬 중위(25·학군 34기) 등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는 金훈련병이 수류탄을 던지기 위해 안전핀을 뽑았으나 곧바로 던지지 못하고 놓치면서 일어났다.
  • 尹奉吉 의사 사적비 제막/중국 上海 옛 홍구공원서

    梅軒 尹奉吉 의사 사적비 제막식이 29일 의거현장인 중국 상해시 노신공원(옛 홍구공원)에서 尹의사의 동생인 尹南儀 기념사업회 고문과 尹炳奭 인하대 교수를 비롯,교민 등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상해시 홍구구가 제작한 사적비에는 ‘독립운동을 위해 1932년 4월29일 이 곳에서 폭탄을 투척,상해 주둔 일본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대장 등을 폭사시켰다’는 내용의 공적이 한국어와 중국어로 새겨져 있다.
  • 오사카 한국 총영사관에/일 우익 화염병 투척 시도

    독도 접안시설 완공에 항의하는 일본 우익단체 회원이 7일 새벽 오사카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화염병을 투척하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화염병 투척 미수범은 우익단체 ‘황국헌정당’소속 구로다 쥰이치(흑전순일·27)로 이날 상오 4시45분쯤 총영사관에서 50m 떨어진 거리에서 화염병에 불을 붙이다 손을 데 병을 땅에 떨어뜨린 뒤 총영사관 경비 경찰에 체포됐다.
  • 알제리 회교게릴라 대학살극/AFP 기자 목격

    ◎마을 습격… 민간인 300여명 숨져 【알제 AP AFP 연합】 알제리 남부 시디모우사 지구에서 28일 하룻밤 동안 3백여명이 학살되는 참극이 빚어졌다고 주민들과 병원관계자들이 29일 밝혔다. 이같은 규모의 대학살은 5년전부터 시작된 회교근본주의 무장세력과 치안부대간의 충돌과정에서 발생한 학살극중 최악의 규모이나 이에대한 알제리 당국의 공식 확인은 나오지 않고 있다. 수도 알제에서 남쪽으로 20㎞ 가량 떨어진 이 지구의 한 마을을 방문한 AFP 사진기자는 수십구의 시체가 포개진채 쌓여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무장 게릴라들이 이 지구의 ‘파노라마’ 카페에 강력한 폭탄 2발을 투척해 당시 안에 있던 시민 수십명을 사망케 한 것을 시발로 민간인들의 목을 베고 목구멍을 도려냈으며 사체에 불을 지르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 화염병시위 7년 징역/정부,처벌 강화/정황증거만 있어도 사법처리

    정부는 한총련의 잇따른 폭력시위에 강력 대처하기 위해 앞으로 화염병을 투척·제조·운반하는 학생들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검찰과 경찰은 8일 현재 당정 협의를 거쳐 국회 내무위원회에 계류중인 「화염병 사용 등의 처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이달중 열릴 예정인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되도록 적극 추진키로 했다. 이 개정안은 화염병을 사용하는 사람에 대한 처벌을 강화,7년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5년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원이하의 벌금형인 현행 처벌규정에서 형량을 늘리는 대신 벌금형을 폐지키로 했다. 또한 화염병 제조 및 보관·운반·소지한 자는 현행 「3년이하의 징역 또는 3백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5년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원이하의 벌금」으로 강화한다. 화염병 제조에 사용되는 물건이나 물질을 보관·운반·소지한 자에 대한 처벌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백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백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바꿨다. 한편 한총련 출범식이 열린 지난달 30일부터 6월1일까지 3일간 한총련시위 현장에서 학생들은 모두 1만1천여개의 화염병을 사용했으며,이로 인해 경찰관 1명이 숨지고 22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또한 올들어 지난 2일까지 학생들은 모두 200여 차례의 시위현장에서 6만여개의 화염병을 던져 경찰관과 전·의경 690여명이 부상했다. 검찰도 이날 화염병 투척 등 폭력시위의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도 시위에 적극 가담한 정황증거가 있으면 관련자들을 모두 엄중 사법처리하도록 전국의 검찰 및 경찰에 지시했다. 특히 대학을 옮겨 다니며 시위에 적극 가담한 학생들에게도 폭력시위의 공범으로 처벌키로 하는 등 구속기준을 완화,처벌의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 검찰 “관련자 모두 구속”

    대검찰청 공안부(주선회 검사장)는 4일 한양대 학생회관에서 시체로 발견된 이석씨(23)가 한총련 학생들의 집단폭행으로 숨진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한총련 지도부 등 관련 학생 모두를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하기로 했다. 대검은 또 한총련 시위 가담자 가운데 화염병 소지·운반·투척자,쇠파이프 사용자,열차 탈취 및 지하철 운행 중단에 관련되거나 시위 전력이 있는 학생도 구속 수사하라고 일선 검찰에 시달했다.
  • 한총련 한때 지하철 운행 저지/2호선 상왕십리∼신당역

    ◎선로로 이동… 전동차 20분 중단/밤늦게까지 도심 곳곳서 화염병 시위/경찰,사흘간 552명 연행… 10명 구속방침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제 5기 출범식이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학생들이 지하철 2호선 선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지하철운행이 20여분간 중단됐다.또 학생들이 한총련 출범식과 대규모 집회를 가지려고 했던 한양대와 서울 시청역 주변에서는 행사를 저지하려는 경찰에 맞서 학생들이 수백개의 화염병을 투척하는 등 밤늦게까지 격렬한 시위가 계속됐다. 대학생 300여명은 이날 하오 4시50분 지하철 2호선을 이용,시청역으로 가려가 경찰이 검문을 강화하자 상왕십리역에서 내린 뒤 선로를 따라 신당역으로 몰려갔다.이 때문에 지하철 운행이 20여분간 중단됐다. 신당역 역무주임 김기씨(40)는 『학생들이 선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전철운행이 중단됐다』면서 『전철이 비상등을 켜고 서행함에 따라 불상사는 없었다』고 말했다. 학생 1천여명은 또 하오 5시쯤 출범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양대로 진입을 시도했으나 경찰이 저지하자화염병 500여개를 던지며 2시간여 동안 격력한 시위를 벌였다.이들은 경찰의 저지선을 뚫지 못하자 하오 7시쯤 마장동·동대문·신당역 주변에서 가두시위를 하던 학생 6천여명과 합세했다. 7천여명으로 불어난 학생들은 청계천과 신설동을 거쳐 하오 8시쯤 돈암동 4거리에 도착,도로를 점거한 채 1시간여동안 연좌시위를 벌인뒤 고려대로 이동해 철야농성을 벌였다. 한총련은 이에 앞서 이날 하오 한양대 학생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출범식은 장소의 변동없이 반드시 한양대에서 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번 시위와 관련,지금까지 대학생 5백52명을 연행해 2백34명을 훈방하고 남총련 소속 대학생 35명을 포함한 3백18명에 대해 시위 가담정도를 조사중이며 이중 쇠파이프를 소지하거나 화염병을 던진 서울대 안모씨(20) 등 10명은 구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캄 반정시위대 수류탄 피격/11명 사망 112명 부상

    ◎민족당 당수 라인시 암살 모면 【프놈펜 AP AFP 연합】 캄보디아 프놈펜의 국회 의사당 앞에서 30일 오전 반정부시위를 벌이던 시위대가 수류탄 공격을 받아 최소한 10명이 죽고 1백19명이 다쳤다고 정부관리들이 밝혔다. 크메르 민족당 당수 삼 라인시가 이끄는 약 2백명의 시위대가 국회 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중 오전 8시20분께(한국시간 오전 10시20분)흰색 승용차에서 시위대를 향해 수류탄 3개가 던져졌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시위대에 대한 수류탄 투척은 라인시를 암살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나 라인시는 수류탄 파편으로 인해 다리를 약간 다친 것 외에는 다른 부상을 입지 않았다. 캄보디아 내무부 대변인은 이를 『테러행위』라고 말했으나 라인시는 경찰과 훈센 제2총리가 이번 수류탄 투척 사건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내년 11월 총선을 앞두고 발생한 것이어서 캄보디아의 불안정한 민주주의의 장래에 불확실성을 던져줌과 동시에 정치폭력이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을 낳게 하고 있다.
  • 「세」 경찰,반정시위 진압 강행/가두행진 저지

    ◎대법원 “라포보도 야 승리 인정” 【베오그라드 AP 연합】 세르비아 경찰은 7일 사실상 반밀로셰비치 집회가 된 정교회의 성탄 예배장에 최류탄을 투척하고 3만여명이 모여 베오그라드 중심부에서 벌인 가두 행진을 저지하는 등 마침내 반정 시위를 진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르비아 대법원은 이날 지난해 11월 실시된 14개 지역 지방선거에서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3개 도시 외에 라포보 지역에서도 야당이 승리했음을 인정함으로써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에게 또다른 타격을 가했다. 또 유고연방 몬테네그로공화국의 국회의원들도 반정 시위를 지지하는 뜻에서 밀로셰비치가 지방선거 결과에 완전 승복할 때까지 유고 연방의회를 거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밀로셰비치의 지방선거 결과 무효화 조치로 촉발된 세르비아 사태는 이번주를 고비로 무력 진압되거나 아니면 다른 해결책이 모색될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세르비아 경찰 수천명은 7일 버스에 탄 채 가두행진을 벌이던 3만여명의 시위대 앞에 저지선을 만들고 행진을 막았다.그러나 양측간의 격렬한 충돌 등 이렇다할 불상사는 없었다.
  • 가투 등 담은 비디오로 「투사」 양성/「일심전사대」 암약상

    ◎학교 뒷산 등서 구보·PT체조 등 극기훈련/쇠파이프­각목 사용·화염병 투척 연습도/못하면 얼차려… 훈련뒤 자체평가회의 23일 경찰이 단국대 주사파 조직 「일심전사대」로부터 압수한 「운동권 교육용」 비디오테이프는 학원가의 폭력시위가 영상매체를 통해서도 학생들에게 침투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쇠파이프 타격 등 군대 훈련을 뺨치는 강도높은 실전 모의훈련,가두투쟁 장면 등이 녹화된 이 테이프로 학원가 폭력시위가 조직적인 교육의 산물임이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 37분짜리로 제작된 테이프는 저학년 학생들이 선배들에 의해 「투사」로 만들어지는 장면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훈련은 학원가 폭력시위의 특징인 「치고 빠지기」를 능숙히 해내기 위해 학교 운동장과 학교 뒷산 등지에서 구보를 하거나 군대 유격훈련인 PT체조 등을 하는 등 극기훈련을 중심으로 실시된다. 학교 뒷산에서 쇠파이프나 각목으로 전경의 방패를 때리거나 화염병·돌 등을 던지는 법도 연습한다. 주로 선배가 후배를 개별지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훈련이 끝난 뒤에는 전투력 향상을 위해 자체 평가회의를 갖기도 했다.훈련과정에서 잘하지 못하는 조직원들은 「원산폭격」 등 군대식 얼차려를 받았다. 특히 94년 6월15일에 있었던 김창학씨(25)의 지휘 아래 복장을 흰색 운동복으로 통일하고 무전기를 든 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외인 주택에 난입,미군 경비원을 구타하고 성조기를 하강한 뒤 달아나는 장면도 녹화돼 있다. 투쟁의식을 높이는 간부들의 인사말과 함께 조직에 새로 가입한 김민욱군이 『선배들의 권유로 가입했다.청년학도의 옳은 길이며 체계적·조직적·집단적 생활이 좋다』며 투쟁을 맹세하는 내용의 인터뷰도 담겨있다. 이밖에 학내 야간 순찰 및 조직원 취침 점검,학교 정문 앞 등지에서의 유인물 배포 연습,구호제창 연습 등도 녹화돼 있다. 이들은 지난 8월 한총련 사태때는 경찰무전기 교신내용을 감청,연세대 정문 앞의 경찰배치 상태,검문 실태,경찰병력 이동상황 등을 파악하는 등 고단위 정보수집 임무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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