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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농민 “파리 봉쇄”… 유럽 곳곳서 시위 몸살

    정부 농업정책에 반발해 트랙터 시위를 벌여 온 프랑스 농민들이 수도 파리를 봉쇄하겠다고 예고했다. 28일(현지시간) AP·dpa 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전국농민연맹(FNSEA)은 29일 오후 2시부터 파리로 향하는 모든 간선도로를 무기한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보안군을 투입해 파리 근교 렁지스 도매시장과 파리공항 봉쇄를 저지하고 농민들의 파리 진입도 막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농민들은 도로용 외 경유 면세의 단계적 폐지와 유럽연합(EU)의 지나친 환경규제 정책, 수입 감소 등에 항의하며 이달 18일부터 고속도로와 국도를 트랙터 등으로 막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남서부에서 시작한 트랙터 시위는 점점 범위를 넓혀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16번 고속도로까지 확대됐다. 지난 23일 여성 농민과 그 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일까지 겹쳐 투쟁 수위를 끌어올렸다. 가브리엘 아탈 총리는 지난 26일 소 사육농장을 찾아가 경유 과세 조치 취소 등 농가 지원책을 내놨지만 농심을 누그러뜨리진 못했다. 프랑스 외에도 유럽 곳곳에서 한 달째 농민들이 같은 이유로 반기를 들고 있다. 독일에선 트랙터 시위를 벌이고 있고, 폴란드와 루마니아 농민들은 값싼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에서 대치 중이다. 헝가리,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리투아니아에서도 봉기 조짐이 보인다.
  • 청주지검 청주간첩단 사건 중형 구형

    청주지검 청주간첩단 사건 중형 구형

    검찰이 북측 지령을 받고 간첩활동을 한 혐의를 받는 이른바 ‘청주간첩단’에게 중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29일 청주지법 형사11부(부장 김승주)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충북동지회 활동가 A(60)씨 등 2명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C(50)씨에게는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은 북한 지령에 따라 비밀 지하조직을 결성하고 탐지 활동을 했다”며 “명백한 증거에도 일관되게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이들은 북한 대남혁명전략과 동일한 사상학습을 실시하고 북측 지령에 따라 청주공항 스텔스기 도입 반대투쟁 1인 시위를 전개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9년 7월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하위 조직원 영입을 위해 특정정당 충북도당 간부의 신원자료와 사상동향을 탐지하고 2020년 5월에는 충북지역 농민운동 실태 및 전망 자료를 북측에 보고한 혐의도 받고 있다. 60여차례 걸쳐 북한 지령문 수신, 대북 보고문 발송, ‘주체의 한국사회변혁운동론’ 등 이적표현물 1395건 소지 혐의도 추가됐다.
  • ‘日전범기업’ 폭파한 일본인, 말기암에 자수했지만…결국 ‘사망’

    ‘日전범기업’ 폭파한 일본인, 말기암에 자수했지만…결국 ‘사망’

    자신을 1970년대 일본 전범 기업의 본사나 공장을 연속적으로 폭파했던 급진 무장단체 ‘동아시아 반일 무장전선’의 조직원 기리시마 사토시(70)라고 주장한 인물이 49년 만에 자수했지만 사망했다. 29일 일본 NHK 등에 따르면 1975년 4월 도쿄 긴자에 있던 ‘한국산업경제연구소’ 건물 폭파 사건을 일으킨 용의자 기리시마 사토시(70)라고 주장하는 남성이 이날 오전 병원에서 사망했다. 지난 25일 현지 경찰은 폭발 사건으로 지명수배된 기리시마가 수도권인 가나가와현 내 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말기 암에 걸려 입원 중인 이 남성은 “마지막은 (가명이 아니라) 본명으로 맞고 싶다. 나를 체포하라”고 병원 관계자에게 자신의 신원을 밝혔고, 이 정보가 경찰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남성은 올해 입원할 당시 가명을 사용했다고 한다. 경찰이 남성을 찾아가자 그는 자신이 기리시마 사토시라고 밝히고는 사건 당시 상황에 관해 얘기했다. 교도통신은 “이 남성이 범인밖에 알 수 없는 사건 정보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리시마 사토시는 해당 사건과 관련해 지금까지 49년간 지명수배된 인물이다. 한국산업경제연구소는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이 ‘일본 전범 기업에 한국 관련 정보를 제공했던 아시아 침략의 거점’으로 지목했던 곳이다. 이에 경찰이 남성의 DNA 분석 등을 통해 진범이 맞는지 서둘러 확인하던 중이었다.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은 1974년 8월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폭파사건, 같은 해 10월 미쓰이물산 본사 폭파사건 등 1974∼1975년 일본 기업 본사나 공장을 연속적으로 폭파한 무장투쟁그룹이다. 대학 중퇴생, 한국 근현대사 전공 대학원생, 회사원 등으로 구성됐던 이 단체는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 지배로 성장한 주요 기업들을 폭파하며 일제의 무반성과 무책임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을 요구했다. 조직원들은 대부분 당시 체포돼 수감 중 사망했거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했지만, 기리시마는 경찰에 붙잡히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사건 발생 50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열차역이나 파출소 등에 그의 지명수배 전단이 붙어 있었다. 한편 현지 경찰은 사망한 남성이 기리시마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DNA 분석과 남성이 진술한 내용을 토대로 조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 포탄 살 돈 빼돌려…우크라서 ‘535억원 군납비리’ 적발

    포탄 살 돈 빼돌려…우크라서 ‘535억원 군납비리’ 적발

    우크라이나 사법기관이 535억원에 달하는 우크라이나 국방부 관계자들의 군납비리를 적발했다.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매체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은 전날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 국방부 관리와 군수업체 대표 등 최소 5명의 연루자에게 군납비리 혐의 통지서를 보냈다고 밝혔다. SBU는 “국방부 전·현직 부서장과 군수업체 리비우 아스널 간부 2명, 국외 업체 관계자 등 5명이 우크라이나군의 포탄 구매 비용 중 일부인 15억 흐리우냐(약 535억원)를 횡령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지난 2022년 8월쯤 리비우 아스날과 대규모 포탄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지 6개월 만이었다. 이후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계약에 명시된 금액 전액을 해당 회사의 계좌로 이체했다. 회사 경영진은 대금 중 대부분을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보내기로 한 국외 업체로 송금했다. 그러나 이 업체는 우크라이나에는 단 한 발의 포탄도 보내지 않고 발칸반도 내 계열사로 자금만 이체했다. 나머지 금액은 리비우 아스날의 키이우 은행 계좌에 남아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부패 척결에 앞장서고 있는 SBU는 이후 횡령 계획을 추적할 수 있었고, 모든 가담자의 신원을 확인했다. 횡령 자금은 압류됐고, 이를 우크라이나 예산으로 어떻게 반환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지난 26일 우크라이나 법원은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포탄 공급 계약을 이행하지 않은 리비우 아스널로부터 15억 흐리우냐를 환수하라는 1심 판결을 내렸다. 앞서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는 리비우 아스널이 국방부로터 120㎜와 82㎜ 박격포탄 대량 공급을 위해 14억 흐리우냐가 넘는 돈을 받았으나, 지금까지 단 한 발의 포탄도 우크라이나군에 보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번 소식은 미국 공화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을 하려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노력에 맞서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지원에 반대해온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공화당 후보로 순항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라고 AFP통신은 전했다. 로이터 통신도 이번 군납비리는 지난 2년 가까이 지속된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우크라이나에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고질적인 부패를 척격하기 위한 투쟁은 여전히 중요 문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번 군납비리는 전임 국방부 장관 시절 발생했다. 올렉시 레즈니코우 전 국방장관은 서방 동맹국들과의 논의에서 우크라이나를 대표해 확고한 평판을 얻긴 했으나 각종 부패 사건에 연루되면서 지난해 9월 해임됐다. 레즈니코우 전 장관이 개인적으로 부패에 직접 가담했다는 주장은 없었지만, 그의 지휘 아래 있는 군대에서 식량 및 군복 납품 등 각종 비리가 불거진 바 있다.
  • “반성하라” 日전범기업에 폭탄 던진 조직원 49년 만에 자수

    “반성하라” 日전범기업에 폭탄 던진 조직원 49년 만에 자수

    1970년대 일본 전범 기업의 본사나 공장을 연속적으로 폭파했던 급진 무장투쟁 단체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의 조직원으로 보이는 용의자가 자수했다. 범행을 저지르고 도망친 지 49년 만이다. 27일 일본 공영방송 NHK 등에 따르면 경찰은 1975년 4월 도쿄 긴자에 있던 ‘한국산업경제연구소’ 건물 폭파 사건을 일으킨 용의자 기리시마 사토시(70)라고 주장하는 남성을 찾아냈다. 지난 25일 기리시마가 가나가와현의 한 병원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경찰이 이 남성을 찾아갔더니 그는 자신이 기리시마 사토시라고 밝히고는 사건 당시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말기 암 환자인 그는 올해 입원할 당시에는 가명을 사용했다. 그러나 “마지막은 (가명이 아니라) 본명으로 맞고 싶다. 나를 체포하라”고 병원 관계자에게 자신의 신원을 밝혔고 이 정보가 경찰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남성은 입원하기 전 가나가와현에서 일하고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 남성은 범인밖에 알 수 없는 사건 정보를 이야기했다고 한다. 경찰은 이 남성의 DNA 등을 통해 용의자가 맞는지 확인하는 한편 수십 년 동안 그가 숨는 것을 지원해 준 이가 있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은 1974년 8월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폭파사건, 같은 해 10월 미쓰이물산 본사 폭파사건 등 1974~1975년 일본 기업 본사나 공장을 연속적으로 폭파한 무장투쟁그룹이다. 대학 중퇴생, 한국 근현대사 전공 대학원생, 회사원 등으로 구성됐다. 일제의 침략과 식민 지배로 성장한 주요 기업들을 폭파하며 무반성과 무책임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을 요구했다. 이들으 한국산업경제연구소가 일본 전범 기업에 한국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등 아시아 침략 봉사 활동의 거점이라고 보고 일본 경제인의 방한을 반대하기 위해 폭탄 테러를 일으켰다. 조직원들은 대부분 당시 체포돼 수감 중 사망했거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했지만 기리시마는 경찰에 붙잡히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사건 발생 50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열차역이나 파출소 등에 그의 지명수배 전단이 붙어 있다. 기리시마는 공범이 해외로 달아나 국제 수배가 내려지면서 공소시효가 정지된 상태라 처벌이 가능하다. 다만 이 남성은 현재 말기 암으로 병세가 심각해 용의자 본인으로 확인돼도 체포나 구류를 견디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 [세종로의 아침] 불출마와 권력/이민영 정치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불출마와 권력/이민영 정치부 차장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거대 양당을 통틀어 22대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국회의원이 10명을 넘었다.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과 대화를 나누다 ‘왜 그랬냐’고 물었는데, “창피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실제로 대다수 의원, 특히 초선 의원의 ‘불출마의 변’은 크게 다르지 않다. 21대 국회에서 가장 먼저 불출마를 밝힌 오영환 민주당 의원은 “오로지 진영 논리에 기대 상대를 악마화하기 바빠서 국민을 외면하는 정치 현실에 대해 책임 있는 정치인 한 명으로서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고 했고,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이제 제가 가진 마지막 카드까지 던진다”고 했다. 불출마 선언문을 읽어 보면 정치권, 특히 권력에 대한 환멸과 염증이 느껴진다. 의원들은 저마다 청운의 꿈을 품고 국회에 입성한다. 오 의원처럼 소방관의 처우 문제 등을 해결하려고, 김 의원처럼 사정기관 재편 문제를 제기하려고 하는 등 명분도 다양하다. 그런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평생 여의도에서 살아온 생계형 국회의원이든, ‘국가 공인 자격증’이 있는 법조인이든 마찬가지다. 불출마를 결심한다는 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지난달 벌어진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사퇴 과정만 돌아봐도 그렇다. 세간에 알려진 것은 김 전 대표가 총선 불출마를 요구받았지만 거부하고 대신 당대표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김 전 대표의 결정은 당시만 해도 당 안팎의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통령까지 꿈꾸는 정치인이 ‘소탐대실’한다는 것이다. 이번 주에 벌어진 당정 충돌로 김 전 대표의 사퇴가 재조명됐는데 “계속 대표를 했어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어쨌든 김 전 대표는 당대표와 지역구 국회의원 중에 ‘금배지’를 선택했다. 그런가 하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취임하자마자 불출마를 선언해 정치권에 충격을 안겼다. 여야 막론하고 올드보이, 각료들이 너나없이 뛰어드는 정치판에서 국회의원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이례적이다. 차기 정치 지도자 조사에서 1위를 다투는 한 위원장에게 ‘초선 의원’이라는 훈장은 필요 없다는 조소도 있지만, 차별화된 행보를 보여 준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김 전 대표의 선택과 비교되는 효과도 분명히 있었다. 한 위원장의 불출마 불똥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튀었다. 최근 만난 민주당 인사는 이 대표와 친분 있는 의원들이 ‘당대표를 유지하고 불출마를 선언하자’고 권유했으나 이 대표가 거절했다는 후문을 들려줬다. 총선까지 70일 넘게 남았으니 상황은 변할 수 있다. 민주당 대표를 지낸 이낙연 새로운미래 인재위원장은 불출마하겠다고 했다가 주변 요구에 입장을 선회하는 분위기다. 여야 전현직 대표의 선택이 엇갈리는 걸 보면 권력에 대한 가치 판단도 각자 다른가 보다. 김 전 대표의 사퇴 이후 최근 한 위원장의 사퇴 거부까지 일련의 충돌과 갈등 상황은 권력이란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없다’는 권력의 속성을 오롯이 보여 주는 사건들이 정치권에는 즐비하다. 지금도 물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추측만 할 뿐이다. 공천 신청 마감을 앞둔 현시점에서 더이상의 불출마 선언은 없을 것이다. 곳곳에서 권력 투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불출마를 선언한 정치인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최소한 권력을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를 보여 줬기 때문이다.
  • 자유·존엄 잃어가며 비판 정신마저 잊은 요즘… 당신, 괜찮아요?

    자유·존엄 잃어가며 비판 정신마저 잊은 요즘… 당신, 괜찮아요?

    신자유주의는노동자들 스스로를착취하게 만드는지배기술로 저항 무력화순위와 평점으로인간을 상업화하는‘산 죽음’의 좀비한국 사회 바로 지금이의식의 혁명이 필요한 때! 죽을 때까지 자신을 최적화하는 ‘성과 좀비’, 히스테리적으로 죽음을 거부하는 ‘보톡스 좀비’, 관심을 갈구하는 인간 ‘호모 살리엔스’(Homo saliens) 등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이름 붙인 디지털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 군상이다. 그가 관찰한 사람의 변화는 디지털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왜 혁명이 더이상 조직되지 않는지’, ‘자본주의는 왜 맹렬하게 축적을 추구하는지’를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 이 책은 우리 삶 구석구석을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교묘한 권력 기술을 환기하며 섬뜩한 경고를 내놓는다. 대표작 ‘피로사회’, ‘정보의 지배’, ‘투명사회’ 등을 통해 날카로운 통찰을 제시해 온 그의 순도 높은 철학적 언어는 강렬하고 명료하다.독일에서 먼저 출간된 ‘자본주의와 죽음 충동’ 원제를 한국어판에서 도발적인 제목으로 바꾼 건 저자의 의지였다. 그의 비평 에세이 곳곳에 기술된 한국 사회에 대한 문제적 인식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사뭇 선언문에 가까운 저자의 ‘오늘날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라는 논제는 10여년 전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1933~2023)와 벌인 논쟁이 발단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에 맞선 ‘다중’(연결된 저항과 혁명군중)을 통한 전 지구적 저항을 열망하는 80대의 네그리를 향해 한병철은 공개적으로 순진하다고 공세를 폈다. 한병철은 과거 억압적인 산업사회의 체제 유지 권력과 다르게 신자유주의에서 권력은 “유혹적이며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착취하게 만드는 지배 기술”로 저항을 무력화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스스로를 부리는 주인인 동시에 굴종하는 노예의 처지인 시스템에서 계급투쟁은 자신과의 내적 투쟁으로 변질됐고 “저항해야 할 적도 없다”고 반박한다. 책은 혁명의 종말 징후를 한국 사회에서 엿본다. 1997년 외환위기 후 급진적으로 신자유주의 체제가 고착된 한국 사회에서 자본에 대한 저항은 거의 사라졌다. 대신 극도의 성과사회에 대한 순응주의가 삶을 지배한다. 그는 우울증과 소진(번아웃·Burnout)이 만연하고, 세계 최고의 자살률이라는 정신적 재앙을 겪고 있는 한국을 ‘피로사회’의 최종 단계에 진입했다고 진단한다. 사람들이 사회를 바꾸려 하는 대신 자기 탓을 하고, 순위와 평점으로 인간을 상업화하는 세상에서 ‘혁명’은 가당치도 않다는 게 저자의 인식이다. 한병철은 자본주의의 맹목적인 축적의 근원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고찰한다. 인간은 더 많은 자본을 가질수록 죽음을 통제할 수 있다는 불멸의 환상을 갖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자본을 축적한다. 책은 그런 생존 양식을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설죽은 삶, 산 죽음’의 좀비 상태로 규정한다. ‘삶의 총체적 상업화’ 흐름은 무자비한 자기 착취를 가속화한다. 이 책에서 한병철이 그려 낸 초상대로라면 우리는 자본주의의 합병증을 심각하게 앓고 있다.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이 만든 ‘총체적 감시사회’, 다름과 낯섦의 부정성이 모두 사라진 ‘투명사회’(또는 ‘같음의 지옥’) 같은 세상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저자가 지목하는 건 지금과 ‘다른 삶’이고, 역설적이지만 “지금이 저항을 조직할 때”이며 인간의 ‘의식 혁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글과 말로 철학적 봉기를 꿈꾸는 당대의 철학자가 겨냥하는 건 신자유주의의 권력 기술이 아니다. ‘자유와 존엄’을 잃어 가는데도 어떤 저항감이나 비판 의식도 품지 못하는 무감각한 세태를 통렬하게 꼬집는다.
  • 그 검사들은 왜 청년 전세사기 책 읽었나[서초동 로그]

    그 검사들은 왜 청년 전세사기 책 읽었나[서초동 로그]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부장 홍완희) 소속 검사들은 최근 ‘전세지옥: 91년생 청년의 전세사기 일지’와 ‘루나의 전세역전’ 두 권의 책을 열독했습니다. 두 권 모두 청년들이 실제로 겪은 전세사기 경험담을 담은 책입니다. ‘전세지옥’은 파일럿을 꿈꾸며 착실하게 살아가던 한 청년이 하루아침에 전세사기로 전 재산을 잃은 후 벌인 820일간의 투쟁 기록을 담았습니다. ‘루나의 전세역전’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작가가 어느 날 갑자기 전세사기 피해자로 전락하며 겪은 절망감과 극복 과정을 그린 웹툰을 모은 책입니다. 냉철하게 법리를 따지는 검사들이 갑자기 단체로 청년들의 수기를 읽은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형사8부는 최근 전세사기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습니다. 서울 강서구 등에서 피해자 33명으로부터 전세보증금 합계 약 52억원을 편취한 혐의로 무자본 갭투자자를 구속 기소했습니다. 공범인 부동산 중개 브로커와 대출 브로커 등은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세입자들의 전세금을 빼돌린 것도 모자라 해당 빌라를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 챙긴 ‘신종 전세사기’였습니다. 검찰은 수사하면서 피해를 본 세입자 20여명에 대해 참고인 조사를 했는데 대부분 20~30대 청년층이었다고 합니다. 수사 과정에서 세입자들의 마음을 좀더 이해해 보고자 유사 사건 피해자가 쓴 책을 읽게 됐다는 후문입니다. 특히나 책을 통해 청년들의 절망감에 공감할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형사8부 소속의 한 검사는 “신혼 때 빌라 전세를 살았었다”며 “남의 일같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검사 중 한 명은 사건에 몰입하다 보니 전세사기를 당하고 집이 압류되는 꿈을 꿨다고 합니다. 흔히 검찰 수사라고 하면 권력형 비리, 공직자의 부정부패, 선거범죄 등 거악 척결을 떠올리고는 합니다. 하지만 국민에게 피부로 와닿는 건 전세사기, 보이스피싱과 같은 서민 생활과 직결된 민생사건 수사일 겁니다. 피해자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검사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 윤-한 저격 민주당 “본질은 김 여사 죗값 치르는 것… 정치쇼 변명 안 돼”

    윤-한 저격 민주당 “본질은 김 여사 죗값 치르는 것… 정치쇼 변명 안 돼”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충남 서천 화재 현장을 함께 방문한 것을 두고 ‘봉합쇼’라고 맹비난했다. 24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는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모든 발언자가 한목소리로 두 사람이 전날 서천 화재 현장에서 갈등 봉합에 나선 것을 두고 맹비난하며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을 부각시켰다. 이재명 대표는 “서천시장 사건은 아마 역사에 남을 사건으로 생각된다”면서 “절규하는 피해 국민 앞에서 그걸 배경으로 일종의 정치쇼를 한 것은 아무리 변명해도 변명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국민 눈높이는 사과로 끝내는 봉합쇼 정도가 아니다. 뇌물을 받았으면, 범죄를 저질렀으면 수사를 받고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익표 원내대표도 “자신들의 권력 다툼에 대한 화해의 현장에 재난 현장을 장식품으로 사용한 게 아닌지 매우 유감스럽다”고 지적하며 “한 위원장에게 국민 눈높이를 맞추고자 했던 자세를 다시 한번 기대해 보겠다. 그러기 위해선 ‘쌍특검’(김건희 여사·대장동 특검법)에 대해 찬성 의견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정청래 최고위원은 “현장 상인들은 전 재산을 잃고 울부짖는데 꼭 그 처참한 무대에서 봉합쇼 한 컷을 찍어야 했나. 당신들이 사람인가”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는 “‘김건희 특검’, ‘김건희 디올백’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합당한 처벌만이 디올 백 전쟁의 종전 조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재난 현장을 권력 투쟁의 현장으로 둔갑시키고 비통한 화재 현장을 김건희 명품백으로 촉발된 대통령실 당무 개입 수습을 위한 한동훈 진압 쇼의 뒷배경으로 전락시켰다”면서 “본질은 김 여사의 죗값을 치르는 것으로 김건희 특검법을 수용하고 명품백 창고 공개, 수사에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대통령이 그냥 가면 어떻게 하느냐’, ‘왜 왔느냐’며 항의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공개하며 “염장 지르러 갔냐. 비정하고 매정한 대통령, 못된 한 위원장에 국민 마음이 다 떠났다”라고 비판했다. 서은숙 최고위원도 “국민을 주권자로 생각하지 않는 독재자는 국민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고민정 최고위원은 “결국 김 여사 명품백에 대해 어떤 행동을 보여주는지에 따라 국민들이 이를 쇼로 볼지 진정한 봉합으로 볼지 판가름 날 것”이라고 했다. 박정현 최고위원도 “분노하는 서천군민과 충청도민에게 사과하고 명품백 수수 의혹을 받는 김 여사를 사법의 심판대에 세우라”고 요구했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취재진에게 이어 “며칠 있으면 한 위원장의 취임 한 달이 되는데 이번에 화재 현장에 달려가 90도 고개를 숙인 모습이 한 위원장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나는 한 장면이었다”면서 “역시 김건희 여사 방탄, 윤 대통령과 일심동체 되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다는 말씀들도 있었다”고 부연했다. 박 대변인은 ‘이재명 대표가 윤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는데 당 차원의 법적 대응이 있냐’고 묻자 “법률위원회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 ‘윤석열 대통령 멘토’ 신평 “한동훈 물러나야…‘국가 지도자’ 환상 젖어있어”

    ‘윤석열 대통령 멘토’ 신평 “한동훈 물러나야…‘국가 지도자’ 환상 젖어있어”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 논란을 빚는 신평 변호사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비대위원장의 법무부장관 시절 공직 수행에 대해 혹평한 뒤 “비대위원장이 된 뒤 자신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자기암시의 환상에 젖었다”고 비난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7일 새벽 2시에 신 변호사의 페이스북 글에 직접 ‘좋아요’를 눌러 화제가 됐다. 신 변호사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혹하게 들리겠지만 그는 스스로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나마 여권에 초래될 상처의 크기를 작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그가 그런 희생의 자세를 보일 때 비로소 자신의 정치적 장래가 어느 정도 보장될 것”이라고 썼다. 그는 “애초에 나는 한동훈 법무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옹립하는 것을 보고 혀를 끌끌 찼다. 여권에 저토록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사실에 깊이 낙담했다”며 “일찍이 윤석열 당선인이 그를 법무장관으로 지명하겠다는 기자회견에 배석했을 때, 우연히도 나는 그(한동훈)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가 가진 마음의 그릇 크기를 대번 짐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신 변호사는 “다들 그가 법무장관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으로 말들을 하는데, 나는 일관하여 그렇지 않다고 말해왔다”면서 “그가 대야투쟁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고 한다. 하지만 법무장관은 대야투쟁하는 자리는 아니다. 법무장관은 좋은 나라를 만드는 기본 뼈대를 짜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법무장관직 수행이 불충분했다는 면에 관해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우리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민법과 형법은 아득히 먼 1960년대 초반에 마련한 법률들”이라면서 “시대는 엄청나게 변했다. 그 사이에 두 법률은 누더기로 돼버렸다. 그가 법무장관으로서 어느 정도 소양을 갖춘 사람이라면 적어도 (민·형법) 개정작업을 주도할 위원회라도 발족시키는 작업을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신 변호사는 “한동훈 비대위원장 체제가 그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전제하에 나는 다음과 같은 대책을 제시했다. 첫째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교체하는 것, 그러나 이는 여권이 감당하지 못할 부담을 초래하리라고 보았다. 둘째는 안목을 갖춘 다른 사람을 그와 함께 공동비대위원장으로 임명하는 것이고, 셋째는 선거대책위원회를 빨리 발족시켜 그가 갖는 역량 부족과 인간적 결함이 묻히도록 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이미 (대통령실의) 교체 시도가 나온 이상 교체를 하는 쪽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단언했다. 이어 “그는 비대위원장으로서 여권의 강성지지층이 보내는 환호와 열성에 도취했다. 급기야 자신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자기암시를 걸기 시작했고 그것이 만든 환상에 완전히 젖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될만한 마음그릇을 갖추지 못했다”면서 “누구의 말대로 그는 ‘발광체’가 아니다. 다른 발광체의 빛이 지나가는 자리에 앉아 마치 빛을 내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했다.
  • 조국 “한동훈 사퇴 요구, 대통령실의 명백한 당무개입…탄핵 사유”

    조국 “한동훈 사퇴 요구, 대통령실의 명백한 당무개입…탄핵 사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실의 ‘한동훈 사퇴 요구’ 보도와 관련해 “대통령 비서실장이 여당 대표의 사퇴를 요구한 것은 명백한 ‘당무개입’으로 처벌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불법이 확인되면 기소 전이라도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된다고 설명하면서도 검찰이 검사 출신인 대통령을 수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전 장관은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같이 밝히며 “비서실장에게 이런 불법을 지시한 대통령도 임기 뒤 기소돼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소 전이라도 수사를 통해 불법이 확인되면 탄핵 사유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충견(충성스러운 개)이 주인을 수사할 리 만무하다”면서 검찰을 ‘충견’에, 검사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을 ‘주인’으로 비유해 양측 모두를 비판했다. 조 전 장관은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의 책 ‘침팬지 폴리틱스’를 언급하며 “(책은) 이에론, 루이트, 니키라는 세 명의 수컷 침팬지 간의 투쟁, 연합, 배신 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오늘 하루 집권 세력 내부에서 벌어진 일은 책보다 더 날 것이고 노골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날 사태는) 집권 세력 안에서 ‘불가침의 성역’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선명하게 보여준다”며 “봉건 시대 ‘역린’(逆鱗)은 ‘용’, 즉 왕의 분노 유발 지점을 뜻하는데, 현재 대한민국에서 진짜 ‘용’이 누구인지도 다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이는 최근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공식 석상에서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을 비판한 것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앞서 일부 언론은 전날 오전 대통령실과 여당 측 주류 인사들이 한 위원장과 비공개 회동을 가졌으며, 이 자리에서 한 위원장에게 사태요구를 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한 위원장을 비공개로 만나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위원장은 해당 보도 이후 즉시 공식 입장을 내고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며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대통령실과 한 위원장은 최근 김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한 사과 여부와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 논란’ 등 문제를 놓고 갈등이 쌓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 박유진 서울시의원 “공예란 인간의 온도…서울여성공예센터 가치 사수 결의”

    박유진 서울시의원 “공예란 인간의 온도…서울여성공예센터 가치 사수 결의”

    지난 12일 서울시의회 박유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은평구 제3선거구, 행정자치위원회)은 서울여성공예센터에서 비상대책위원회와 간담회를 가졌다. 서울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은 서울시로부터 두 달 내로 건물을 비우라고 통보받았다. 더아리움은 국내 유일 여성 공예 창업보육시설로서 여성 창업 및 경제 활동 참여 제고를 위한 여성공예 창업공간을 지원했다. 센터사업 종료 시, 서울여성공예센터 입주기업과 센터직원 모두 갈 곳을 잃게 된다. 예산 삭감 확정 후, 입주기업들은 서울시에 존속과 입주 기업에 대한 피해보상을 위한 공문을 발송했으나 현재까지 아무런 회신도 받지 못했다. 서울여성공예센터 입주기업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피켓시위와 기자회견을 하는 등 센터 폐관을 지속해 반대했으며, 다른 여성창업센터들도 ‘서울여성공예센터처럼 예산이 삭감되어 사라질 수 있으니 염두에 둬라’라는 언질을 받은 상태이다. 간담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와 입주기업은 공통의 목소리를 냈고, 간담회 참석자들은 “시민이 누릴 수 있는 공간을 줄이는 것, 더 나은 방향이 아니라 폐쇄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서울시는 소통의 여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서울여성공예센터가 사라지게 된다면 다음엔 무엇이 사라지게 될 것인가. 그다음으로는 ‘유아’, ‘여성’의 존재가 지워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간담회를 마무리하며 세 가지를 강조했다. 먼저 서울여성공예센터는 지난 7년 동안 놀라운 성과를 거뒀으며, 매출액은 총 100억원에 달하고 이는 다른 서울시 사업과 비교했을 때 높은 이익률을 보여준다고 했다. 또한 ‘공예’라는 것은 인간의 온정을 느끼게 해주는 특별한 예술이며, 작은 것의 아름다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다. 이러한 가치를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박 의원은 서울시는 ‘약자와의 동행’을 시정 철학으로 채택했으나, 정작 약자들의 의견은 무시한 채 일방적 소통만 추구하고 있다며, 투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서울시와의 소통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한 다른 이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북한군 밀려와도 끝까지 찍은 ‘호외’…“우리는 돌아왔다” [서울신문 역사관]

    북한군 밀려와도 끝까지 찍은 ‘호외’…“우리는 돌아왔다” [서울신문 역사관]

    1950년 6월 25일, 부슬비가 내리던 일요일 새벽 4시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 10개 사단 20만명이 38선 전역에서 남침을 감행했다. 압도적인 북한군의 전력에 국군 4개 사단, 1개 연대가 지키던 방어벽은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졌다. 광복의 기쁨을 누린 것도 잠시, 한반도가 전쟁의 참화에 빠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참화 속에서 용맹하게 신문을 발행한 불굴의 서울신문 기자정신은 한국 언론사에 또 하나의 신화로 남았다. ●호외 12회…마지막까지 사옥을 지키다 토요일이었던 6월 24일 여유롭게 퇴근했던 사원들은 다음날 이른 아침 소집명령을 받고 저마다 회사로 달려 나왔다. 박종화 사장은 물론 주필 겸 전무 오종식, 편집국장 우승규를 비롯해 편집국 기자 전원은 비상제작 체제에 돌입했다. 국방부를 출입하던 사회부 기자 한규호와 김우용은 각각 중서부전선과 동북부전선으로 급파됐다.박 사장과 주필, 편집국장이 지휘하는 편집국은 사태추이를 지켜보며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샜다. 당시 석간 체제였던 서울신문은 26일 오후 2시까지 무려 6차례나 호외를 찍어냈다. 이후 27일 오후 4시까지 5차례 호외를 더 찍었다. 그러나 27일자 서울신문이 독자의 손에 쥐어진 새벽녘, 사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 26일 밤부터 서울 북방의 국군 방어선이 뚫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27일 대전으로 남하했다. 뒤늦게 피란길에 오른 150만명의 시민이 우왕좌왕하며 서울은 혼란한 상황이었다. 밤새 한강 다리를 넘으려는 인파가 서울역에서 용산까지 이어졌다. 한강 인도교가 끊긴 시각은 28일 오전 2시였다. 27일 오후 사내에선 “다른 신문사는 이미 해산해버렸는데 우리도 무슨 채비를 해야 할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등 여타 중앙지는 이미 해산하고 문을 닫은 형편이었고, 동아일보는 이날 오후 4시 “전황이 절망적이고 더 이상 취재활동을 할 수 없다”며 호외 300장을 찍어 차에서 뿌리며 피란을 떠나버린 상태였다. 그러나 서울신문에선 “문을 닫는 건 좀 더 두고 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27일 오후 9시까지도 사장과 주필, 편집국장을 비롯한 기자, 직원 등 20여명은 회사에 남았다.일단 귀가를 결정하고 막 자리에서 일어서려 할 때, 때마침 이선근 국방부 정훈국장이 직접 서울신문사로 달려왔다. 그는 28일 미명을 기해 유엔군 항공기가 전투에 참가한다는 내용의 호외 10만장을 인쇄해달라고 다급히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 12번째 호외가 제작됐다. 남은 직원 20여명이 회사를 나간 시각은 28일 오전 2시 30분. 그 때는 이미 한강 다리가 폭파돼 끊긴 시점으로, 그들은 결국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이 가운데 8명은 목숨을 잃거나 납북되는 등 큰 희생을 치렀다. ●“북한군, 아군으로 위장”…한규호, 끝까지 전황 알리다 순직 차량으로 피신하던 박종화 사장의 비서 이승로가 북한군 총탄에 목숨을 잃고 김경진 이사, 김진섭 출판국장, 박종수 편집부국장, 이종석 사회부장이 납북됐다. 사회부 기자 한규호는 취재 중 순직했다. 한규호 기자는 25일 비상소집과 동시에 국군부대에 합류해 27일자 호외에 북한군이 아군으로 위장한 사실과 임진강 전선의 적군이 2개 사단 이상의 대규모 병력이라는 점, 개전 초기 국군의 무방비 상황 등 전황을 생생하게 전달했다.그러나 이후 취재는 이어지지 못 했다. 28일 새벽 파죽지세의 북한군은 최후 저지선인 미아리고개를 넘었다. 한강다리는 이미 끊긴 상태로, 그도 역시 다른 사원들처럼 한강을 넘지 못 한 채 숨어서 수도 함락을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찍혀나간 27일자 신문은 현상수배 전단이나 다름 없었다. 한 기자는 서울로 돌아온 28일 당일 북한 내무서 요원에게 체포돼 순직했다. 6·25 전쟁 당시 순직한 종군기자는 외국기자들이 대부분으로, 국내 기자로는 한 기자가 유일했다. 맥아더 장군의 지휘로 1950년 9월 15일 국군과 유엔군은 함정 260척을 동원해 인천상륙작전에 나섰다. 작전이 성공하고 낙동강 전선에서도 북진 총반격이 이뤄져 같은 달 28일 마침내 수도 서울을 탈환했다. 서울신문은 10월 1일 중앙일간지 중 처음으로 ‘수복신문’을 냈다. 청량리 삼양고무공장 창고에서 해체된 윤전기 1기를 회수하고 신교동 맹아학교 등에 흩어져 있던 주조기, 납활자, 조판시설을 어렵게 찾아내 복원한 시설로 신문을 찍어낸 것이다. 그러나 서울 수복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 했다. 중공군의 기습 참전으로 서울신문 직원들은 이듬해 1월 4일 마지막 신문을 찍은 뒤 다시 피란길에 올랐다.고난은 이어졌다. 신문 제작에 필요한 활자 등 기자재를 실은 차량을 미군에 모두 징발당한 것이다. 신문 발행을 위해 마지막까지 서울에 남았던 직원 10여명은 빈 손으로 부산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부산에서 모인 50여명의 서울신문 직원들은 함께 숙식하며 국제신보(현 국제신문)의 인쇄기까지 빌려 ‘피란신문’을 발행했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에 신문 발행은 한 달 반 밖에 유지하지 못 했다. ●“진중신문, 한국 언론인의 꺾이지 않는 투지” 1951년 4월엔 포성이 울리는 서울에 돌아와 19일간 ‘진중신문’을 발행했다. 정부도 8월에야 서울로 복귀할 정도로 엄중한 상황이었지만, 신문을 하루 최대 3만부까지 매진시키는 등 전시 상황에서 민심을 안정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문이 찍혀나오는 정오쯤 서울신문 사옥 주변은 독자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아예 아침 일찍부터 사옥주변에 군데군데 모여 앉아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주고받다가 정가 100원짜리 서울신문이 나오면 앞다퉈 사가곤 했다. 진중신문은 전기가 없어 5대의 고성능 윤전기를 세워둔 채 ‘평판기’를 직접 손으로 돌리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찍어냈다. 회사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밥을 짓고, 반찬은 옥인동의 우승규 편집국장의 집에서 만든 소금에 절인 무가 전부였다. 숙소도 따로 없어 직원들은 사옥도 지킬 겸 지하실의 교환실이나 전기실에서 새우잠을 잤다.다른 피란신문과 달리 서울신문 진중신문은 전시 서울과 중부 일원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기에 한층 돋보일 수 있었다. 2면 왼쪽에 실린 서울시내 납치∙피살∙행방불명자 4616명의 명단은 시민들이 목마르게 기다리던 정보였다. 또 한강 남쪽에 집결해 서울 입성을 초조히 기다리며 집결한 10만여명의 난민 모습을 취재한 기사는 ‘그리운 고향에 들어가게 해주오’라는 부제로 큰 화제를 모았다. 4월 10일엔 대한민국 신문사에 길이 남게 된 우 국장의 명사설 ‘우리는 돌아왔다’를 냈다.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6월 11일 다른 언론사보다 빨리 감격스러운 속간호 1호를 찍어냈다. 진중신문의 눈부신 족적은 한국 신문사에 오롯이 남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펴낸 ‘한국신문 100년지’는 “각 신문이 피란살이 신문을 발행하고 있을 때 서울신문은 정부의 환도 전 처음으로 국배판 2면 신문을 발행해 일부 남아 있던 서울시민들을 기쁘게 했다”며 “이 진중신문은 출중한 것으로서 한국 언론인들의 꺾일 줄 모르는 투지를 단적으로 나타낸 하나의 표본이 됐다”고 서술했다. 최준이 펴낸 ‘신보판 한국신문사’는 “뉴스에 굶주렸던 극소수의 서울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간단한 진중신문에 전신경을 집중해 한 끼의 밥은 못 먹더라도 신문 한 장만은 사서 봐야 되겠다는 열의에 가득 차 있었다”고 서술했다. 송건호가 펴낸 ‘한국언론사’도 “내일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전란의 와중에도 국내외의 뉴스를 갈구하는 한민족의 모습은 그대로 내일의 생명과 희망을 추구해 마지않는 투쟁력이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 구국운동의 횃불 ‘대한매일신보’…국채보상운동을 이끌다 [서울신문 역사관]

    구국운동의 횃불 ‘대한매일신보’…국채보상운동을 이끌다 [서울신문 역사관]

    서울신문의 뿌리 ‘대한매일신보’는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던 암흑기에 겨레의 독립자존을 일깨운 민족의 횃불이었다. 일제의 침략 야욕에 비수를 들이대고 반일항쟁의 불씨를 지핀 구국운동의 선봉장이기도 했다. 대한매일신보는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4년 7월 18일 영국인 배설(본명 어니스트 토마스 베델)과 양기탁 등 민족진영 인사들이 합심해 탄생시켰다. 그 해 대한제국 정부는 정초부터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전운이 감돌고 일본의 한국침략 야욕이 뚜렷해지자 주권을 지키기 위해 어떤 나라의 편에도 서지 않는 ‘국외중립’을 서둘렀다. 이에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구열강의 주한외교사절들은 1월 말까지 각각 본국 정부를 대신해 국외중립 선언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일제는 이를 무시하고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하기 위한 전략으로 러시아와 일전을 겨루기로 결의, 병력을 한반도에 집결시킨 뒤 2월 10일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일제는 같은 달 23일 강제로 대한제국 정부와 ‘한일의정서’를 체결, 군사적으로 필요한 한국 내 지역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또 한국 국권을 장악할 수 있는 협약을 잇따라 강요, 검열을 통해 민족 신문을 통제하며 일본의 지배권을 강화해 나갔다. ●“일제의 검열을 받지 않는 신문이 필요하다” 언론 환경은 열악했다. 당시 서양어 소식지라고는 미국인 헐버트가 내는 영어잡지 ‘코리아 리뷰’가 전부였고, 황성신문·제국신문 등 한문판 신문이 있었으나 일제의 탄압에 눌려 제대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한제국 정부는 해외에 한국입장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선 일본의 검열을 받지 않는 영자신문이 필요하다고 보고 적합한 외국인 기자를 백방으로 수소문했다.대한매일신보 초대 사장인 배설은 서울에서 취재를 하던 영국인 특파원이었다. 그는 취재 과정에 고종의 영어 통역인이었던 민족진영 인사 양기탁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이들은 양기탁이 소속된 대한제국 궁내부 예식원의 지원 아래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극비리에 영자신문 창간을 추진한다. 이에 따라 1904년 6월 29일 ‘코리아 타임스’라는 영문시험판이 제작됐다. 그러나 시험판이 10여회 나오는 동안 외국인 독자보다 한국인들에게 세상 물정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렇게 해서 7월 18일 탄생한 것이 항일민족지 대한매일신보다. ●양기탁·신채호·안창호…구국인사 힘을 모으다 신문사 사장에는 배설이 취임하고 총무에 양기탁이 임명됐다. 양기탁의 주도로 취재·편집진은 자연스럽게 항일투사로 채워졌다. 백암 박은식이 주필, 당시 ‘탐보원’으로 불렸던 기자급으로는 단재 신채호를 비롯해 최익·옥관빈·변일·장도빈이 참여했다. 이후 도산 안창호와 대한제국 군인 출신이었던 이갑 등 평안도 인사들로 구성된 구국운동 조직 ‘서북학회’ 인사들도 가세했다. 대한매일신보 창간호는 지금의 타블로이드판보다 약간 넓은 26.5㎝×40㎝ 크기였다. 지면은 6개면으로 영문이 4개면, 한글이 2개면을 장식했다. 영문 4개면 중 2개면은 광고로 채워 영문과 한글 기사의 비율은 비슷했다.대한매일신보는 창간 직후부터 일제의 침략 야욕에 정면으로 맞섰다. 국민의 자존심을 자극해 항일운동의 시발점이 됐고, 일제의 만행과 독립의지를 기록한 중요한 사료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신문은 1904년 7월 창간 직후부터 일제의 ‘한반도 황무지 개간 계획’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포문을 열었다. 일제가 실제 황무지도 아닌 땅의 ‘개간권’을 얻어 영구 지배하려는 식민지화 공작이라는 점, 전쟁 비용을 얻기 위한 수작이라는 점을 설파했다. 1905년 11월 초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서울에 온 이유에 대해 일제가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귀속시키려 하기 때문이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그해 11월 17일 을사조약 체결 이후 일제의 언론 탄압은 더욱 극심해졌다. 황성신문 사장 장지연은 11월 20일자 황성신문 논설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이유로 구속되고 신문은 정간됐다. 그러나 대한매일 신보의 항일 의지는 더욱 불타올랐다.대한매일신보는 같은 달 21일자 논설에서 ‘을사조약은 대신들을 협박해 강압적으로 체결했고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이유만으로 장지연을 구속한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장지연에 대해 ‘대한제국 전 사회 신민의 대표가 되어 광명정직(光明正直)한 의리를 세계에 발현했다’고 추켜세우고 민영환, 조병세, 이한응, 이상철 등 자결한 지사들의 충절을 기렸다. 27일엔 을사조약의 진상을 파헤친 ‘한일신조약청약전말’이라는 특집 기사와 함께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그대로 실어 일제의 만행을 폭로했다. ●‘고종 밀서’ 대서특필…항일운동의 시발점 신문은 을사조약에 서명한 ‘을사오적’에 대해선 ‘매국대신’, ‘역당’이라는 표현으로 신랄한 비판을 이어갔다. 대한매일신보의 이런 투쟁을 접한 고종은 배설에게 친필 특허장을 내리고, 비밀리에 매월 1000원씩 경비를 보조해주는 등 항일 투쟁을 이어가도록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고종은 1906년 1월 ‘을사조약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긴 밀서를 썼다. 붉은 옥새가 찍힌 이 밀서는 영국 트리뷴지가 입수해 보도했다. 대한매일신보는 16일 고종이 트리뷴지 특파원에게 이 밀서를 전달해 보도하게 됐다는 내용을 대서특필하게 된다. 일제는 통감부를 통해 밀서가 가짜라고 주장했지만, 대한매일신보는 진짜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국민들의 저항 운동에 불을 댕겼다. 대한매일신보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면서 민중 속으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 당시 국채는 일제 통감부가 도로와 각종 기간시설, 금융기관 등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제멋대로 써서 생긴 나라빚이었다. 국채보상운동은 국채 1300만원을 국민성금으로 갚기 위해 일어난 운동이다. 이 빚 중 1000만원은 연 이율이 무려 6.5%에 이르렀다고 한다. 1906년엔 국채가 1650만원이라는 막대한 금액으로 불어났다. 당시 쌀 한 말 값이 1원 80전, 궁내부 주사 한 달 봉급이 15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금액이었다.●신문으로 주도한 ‘국채보상운동’…성금 쇄도 대한매일신보는 1907년 2월 21일부터 대구민의소의 의견을 수렴해 ‘국채 1300만원 보상취지서’ 전문을 싣는 등 대대적인 운동을 이끌었다. 국민들은 전국 각지에서 담배를 끊거나 월급, 쌈짓돈을 아껴 운동에 동참했다. 1907년 봄이 되자 성금을 낸 사람이 4만명에 이르렀다. 신문은 매월 특별광고로 성금 모금 액수를 공개했다. 특별성금 내역을 보려는 국민이 쇄도하면서 대한매일신보 부수는 1908년 5월 1만 3000부를 넘겼다. 성금 기탁자가 광고란에 게재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부록을 발행하기도 했다. 1908년 5월 기탁금은 6만 1042원에 이르렀다. 대한매일신보는 1907년 4월 국권회복을 목표로 극비리에 조직된 국내 최대 항일민족단체 ‘신민회’와 손잡으면서 민족계몽운동에도 나섰다. 미국에 있던 안창호는 그 해 귀국해 양기탁과 함께 신민회 조직에 나섰다. 배설이 사장이었던 대한매일신보는 치외법권으로 일제의 감시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신민회 본부도 신문사 안에 있었다. 신민회는 대한매일신보의 51개 지국을 활용해 조직을 꾸리고 국권회복을 위한 교육기관 양성에 주력했다.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와 평양의 대성학교 등이 그것이다. 또 외국에 독립운동 기지를 구축하고 무관학교를 설립하며 독립군을 창설할 계획이었다. ●“안중근 의거는 국권회복운동” 애국적 분발 촉구 이렇듯 국권회복운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가 한국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대한매일신보는 사건의 추이만 다룬 여타 신문과 달리 안 의사의 의거를 ‘국권회복운동’으로 평가하고, 이토를 처단하게 된 이면을 상세히 알림으로써 국민의 애국적 분발을 촉구했다. 심지어 국내 친일단체인 ‘일진회’를 겨냥해 “안중근의 의거와 관련해 부끄럽게도 대표를 일본에 파견해 ‘사죄’하려 한다”고 폭로했다.또 기획기사로 안 의사의 약력을 소년시절부터 자세히 소개하고 뤼순감옥에서의 당당한 수감생활 모습을 전하기도 했다. 12월 14일 안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자, 1면에 보도하고 안 의사가 재판정에서 진술한 답변을 중심으로 공판기록을 7회에 걸쳐 연재했다. ‘안중근 공판’ 기사는 ‘하얼빈의 암살은 한국 독립투쟁의 일부분이오, 또 우리들이 일본 법정에서 일본 재판을 받는 것은 전쟁에 패배하여 포로가 됨이오’라는 안 의사의 답변을 가장 돋보이는 특호 활자로 게재했다. 일제는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배설과 양기탁을 쫓아내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논설 내용 등 온갖 트집을 잡아 두 사람을 고발했다. 결국 1909년 5월 배설이 사망하면서 사세가 기울었고, 통감부는 1910년 5월 당시 사장이었던 영국인 알프레드 만함으로부터 비밀리에 대한매일신보의 경영권을 사들였다. 일제는 그 해 8월 29일 한일병탄을 저질렀고, 대한매일신보를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에 흡수시켰다.
  • 트럼프 “核보유 북한과 전쟁하려 했는데…똑똑한 김정은”

    트럼프 “核보유 북한과 전쟁하려 했는데…똑똑한 김정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미국에 대한 ‘공세적 초강경정책’을 천명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본인의 재임 기간 김 위원장과의 개인적 관계가 미국 안보에 도움이 됐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 첫 대선 후보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를 하루 앞둔 14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 인디애놀라 심슨 컬리지 유세에서 “재임 중 북한과 전쟁하려 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그는 이날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실정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또 최근 공화당 내 중도파를 중심으로 지지율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니키 헤일리 전 유엔(UN) 대사가 민주당의 편을 들고 있다고 집중공격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녀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잘못된 사고와 정책을 갖고 있는 데다 충분히 터프하지 않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거친 인물들을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본인은 세계에서 가장 터프한 지도자들과 협상을 했다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일일이 언급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특히 “김정은은 매우 똑똑하고 매우 터프하다”며 “그는 나를 좋아했고 나는 그와 잘 지냈으며 우리는 안전했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는 그들과 전쟁을 하려 했었다. 그들에게 대량의 핵 보유고가 있는데, 아마도 그 누구보다 더 많지 않나 싶다. 우리는 훌륭한 일을 했다”고 부연했다. 대량의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과 전쟁을 할 뻔했지만, 본인이 김 위원장과의 비핵화 담판으로 긴장을 해소했음을 과시한 것이다. 2017∼2021년 재임 시절 김 위원장과 3차례 만났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자신이 김 위원장과의 정상외교를 통해 북한과의 ‘핵전쟁’을 막았다는 주장을 계속해왔다.한편 김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 5일차 회의에서 “강대강, 정면승부의 대미·대적 투쟁 원칙을 일관하게 견지하고 고압적이고 공세적인 초강경 정책을 실시해야 하겠다”며 강경한 대미·대남 노선을 예고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경고와 대화촉구에도 북한은 지난달 18일 미국 전역을 사정권에 둔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8형 시험발사를 감행하는 등 잇따라 도발행위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시간으로 14일 오후 2시 55분쯤에는 평양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중거리급 탄도미사일(IRBM) 1발을 발사했다. 미사일은 약 1000㎞ 비행 후 동해상에 탄착했다. 북한 미사일 도발은 올들어 처음이자 지난해 12월 18일 이후 27일 만이다. 북한은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극초음속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IRBM용 대출력 고체연료 엔진을 개발해 1, 2단 엔진의 지상 분출 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지 약 두 달 만에 극초음속 미사일에 적용해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
  • [사설] 이낙연 탈당, 민주당엔 자성 목소리조차 없다

    [사설] 이낙연 탈당, 민주당엔 자성 목소리조차 없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주당 탈당과 신당 창당을 어제 공식 선언했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이 자랑했던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와 품격은 사라지고, 폭력적이고 저급한 언동이 횡행하는 ‘1인 정당’, ‘방탄 정당’으로 변질했다”고 탈당의 변을 밝혔다. 신당을 창당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거대 양당이 진영의 사활을 걸고 극한투쟁을 계속하는 현재의 양당 독점 정치구조를 깨지 않고는 대한민국이 온전하게 지속될 수 없다”고 했다. 이를 위해 혐오와 증오의 양당제를 끝내고 타협과 조정의 다당제를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이 전 대표는 개헌을 통한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 특권 없는 정치와 성역 없는 법치, 새로운 성장동력 개발, 중부담·중복지 원칙 등 신당의 비전과 목표도 함께 내비쳤다. 이 전 대표가 탈당을 선언하면서 야권의 본격적인 분열은 가속화될 듯하다. 이 전 대표는 그제 탈당을 선언한 민주당 비명(비이재명)계 모임 ‘원칙과상식’의 이원욱·김종민·조응천 의원과도 협력하겠다고 했다. 이런 탈당 릴레이는 이재명 대표 체제가 혁신을 요구하는 당 안팎의 목소리에 귀를 닫은 탓이 크다. 민주당 지도부는 친명(친이재명)계와 비명계의 내홍을 잠재우기는커녕 총선의 초기 공천 단계부터 노골적인 친명계 편들기로 ‘공천 사유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11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맞춰 대의원 권한을 축소하는 당헌 개정안을 의결한 것은 ‘이재명 사당화’의 결정판이었다. 최근 이 대표와 최측근 정성호 의원이 친명계인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성희롱성 발언에 대한 징계 수위를 논의한 문자가 언론 카메라에 포착된 것은 이재명 사당화의 민낯 그 자체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민주당에서 자성의 목소리는 찾기 어렵다. 반성과 성찰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민주당 의원 129명은 어제 단체로 성명을 내고 이 전 대표의 탈당을 규탄하며 정계 은퇴까지 요구했다. 당 지도부인 정청래 최고위원도 ‘생존형 탈당’이라고 평가절하했을 뿐 당 혁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었다. 향후 민주당 공천 상황과 제3지대 지형에 따라 추가 탈당을 배제할 수 없는데도 민주당은 변화와 혁신에는 침묵할 뿐이다. 이 대표가 피습 8일 만인 그제 퇴원하면서 “나 역시 다시 한번 성찰하겠다”고 했지만 말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이재명 사당화 논란을 이대로 방치하면 총선 민심은 더욱 멀어질 것이다.
  • [열린세상] 새해 벽두 평양의 수사적 긴장 격화/김정 북한대학원대 교수

    [열린세상] 새해 벽두 평양의 수사적 긴장 격화/김정 북한대학원대 교수

    김정은 북한 조선로동당 총비서가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를 통해 대남정책의 급진적 전환을 공언했다. “10년도 아니고 반세기를 훨씬 넘는 장구한 세월, 그 어느 하나도 온전한 결실을 맺지 못했으며 북남 관계는 접촉과 중단, 대화와 대결의 악순환을 거듭”한 결과 “더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고 정의했다.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들”인 한국은 “사회 전반이 양키 문화에 혼탁되었으며 국방과 안보는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반신불수의 기형체, 식민지속국”이라고 규정했다. 그 정치적 귀결로서 “대남 투쟁 원칙과 방향을 전환”하여 “적들의 무모한 북침도발 책동으로 하여 조선반도에서 언제든지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남반부의 전 영토를 평정하려는 우리 군대의 강력한 군사행동”을 준비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전쟁 이후 대남정책의 기조였던 ‘고려연방제’와 ‘통일전선전술’을 폐기하고, 한국전쟁 이전 대남정책의 기조였던 ‘민주기지론’과 ‘영토완정론’의 부활이 뚜렷하다. 평양은 21세기 남북 관계를 ‘냉전’ 시대로 회귀시키려는 시도를 넘어 ‘열전’ 시대로 역류시키려는 열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 셈이다. 2024년 새해 벽두 김정은 총비서가 발신한 수사적 긴장 격화는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점진적으로 축적한 대남정책 진화의 결과물이다. 그해 12월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자력갱생’ 노선으로의 전환, 2020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및 대남정책의 대적 사업으로의 변경, 2021년 제8차 당대회에서 당 규약 ‘조국통일 투쟁’ 및 ‘우리민족끼리’ 삭제, 2022년 김여정의 ‘담대한 구상’ 비난 및 한국 정부 무시 발언, 2023년 ‘남조선’ 혹은 ‘남측’ 대신 대한민국으로 호칭 등 북한은 차곡차곡 대남정책의 전환을 누적해 왔다. 21세기 대남정책에서 ‘고려연방제’와 ‘통일전선전술’을 폐기하고 ‘민주기지론’과 ‘영토완정론’을 부활시키는 평양의 정책 전환이 그다지 놀랍지만은 않은 연유다. 오히려 흥미로운 대조는 김정은 총비서가 2018년 신년사에서 천명한 수사적 긴장 완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불과 6년 전 평양은 “북과 남은 정세를 격화시키는 일을 더이상 하지 말아야 하며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여야”한다고 서울에 촉구했다. 그 기저에는 “북남 관계는 언제까지나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이며 북과 남이 주인이 되어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민족자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우리 민족끼리 해결해 나갈 것이며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내외 반통일 세력의 책동을 짓부시고 조국 통일의 새 역사를 써 나갈” 것이라는 남북 관계에 대한 인식이 깔려 있었다. 남북 통일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상대방을 자극하면서 동족 간의 불화와 반복을 격화시키는 행위들은 결정적으로 종식되어야” 할 과거의 일로 지목했다. 북한의 대남정책에서 ‘열전’ 시대의 논리는 물론 ‘냉전’ 시대의 논리 또한 자취를 감췄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김정은 총비서가 발신하는 2018년 긴장 완화의 수사와 2024년 긴장 격화의 수사는 모두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북한의 전략적 목표인 ‘핵보유국’ 지위 획득을 달성하려는 수단에 해당한다. 당 중앙위 제8기 제9차 전원회의가 “당의 존엄사수, 국위제고, 국익수호의 원칙에서 강국의 지위에 맞는 공화국의 외교사를 써 나가야 한다”고 말할 때, 핵보유국 지위 획득은 그 모든 목표를 관통하는 북한의 핵심 이익이다. 남북 관계의 수사적 긴장 완화 혹은 수사적 긴장 격화는 모두 핵보유국 지위 획득이라는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 수단인 셈이다. 평양의 평화 공세에 지나친 기대를 하지 말고, 전쟁 위협에 과도한 반응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 친명 김하중, 탈당 이원욱 지역구 ‘저격 출마’

    친명 김하중, 탈당 이원욱 지역구 ‘저격 출마’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원칙과상식’ 소속 의원 3명이 신당 창당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들을 향한 이른바 저격 출마 선언이 민주당 내에서 잇따르고 있다. 이날 국회에서 원칙과상식 소속 이원욱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화성을’ 출마를 선언한 김하중 전 국회입법조사처장이 대표적이다. 지난 대선 때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법률특보단장을 지낸 김 전 처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동안 당내 민주주의를 외치며 탈당까지 감행한 분이 검찰공화국으로 지탄받는 윤석열 정권에 대해선 왜 침묵을 지켜 왔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이 의원을 비판했다. 이어 “민주당은 모든 역량을 결집해 투쟁해야 할 때”라며 “적전분열은 패배와 고통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강경파 친명(친이재명) 원외 인사들 모임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의 이원혁 대변인과 이 대표와 경기도에서 호흡을 맞춘 진석범 전 경기복지재단 대표이사 등도 경기 화성을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원칙과상식 소속인 김종민 의원의 지역구 ‘충남 논산·계룡·금산’에는 친명을 자처하는 황명선 전 논산시장이 나선다. 또 조응천 의원 지역구인 ‘경기 남양주갑’에는 ‘이재명 대선 후보 미디어특보단장’을 역임한 최민희 전 의원이 출마를 준비 중이다.
  • “방탄정당 민주”… 새집 짓는 ‘DJ 적자’ [뉴스 분석]

    “방탄정당 민주”… 새집 짓는 ‘DJ 적자’ [뉴스 분석]

    “1인당으로 변질” 이재명 공개 저격다당제·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언급“총선 불출마” 제3지대 개편 속도 이낙연(72)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총선을 90일 앞둔 11일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추구한 중도개혁의 길을 가겠다”며 ‘DJ의 적자’로 평가받으며 24년간 몸담았던 민주당을 탈당했다. 제3지대 정계 개편의 신호탄이 될지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과거 제3지대를 표방한 정당들이 모두 명맥 유지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전망도 나왔다. 또 당내에서는 계파를 막론하고 비난이 터져 나왔다. 이 전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자랑했던 김대중·노무현의 정신, 가치, 품격은 사라지고 폭력적이고 저급한 언동이 횡행하는 1인 정당, 방탄 정당으로 변질했다”고 밝혔다. 이어 “마음의 집이었던 민주당을 떠나는 것은 괴로운 일”이라고 했다. 탈당과 신당 창당의 변으로는 “윤석열 정부는 ‘검찰 공화국’을 거의 완성했고, 민주당은 스스로의 사법 리스크로 ‘검찰 폭주’를 제어하지 못한다. 극한투쟁을 계속하는 양당 독점 정치 구조를 깨지 않고는 대한민국이 온전하게 지속될 수 없어 타협과 조정의 다당제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전날 탈당한 이원욱·김종민·조응천 의원 등 민주당 내 혁신 비명(비이재명)계 모임이었던 ‘원칙과상식’과 힘을 합치겠다며 청년과 전문직의 참여를 당부했다. 또 이 전 대표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개혁신당’(가칭)에 대해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협력해야 한다”고 했다. 제3지대로 거론되는 양향자 의원, 금태섭 전 의원, 류호정 의원 등 지향점이 다양한 정치인에 대해서도 “공통점을 찾아 추구하겠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거대 양당의 독점 구조를 깰 수 있을 만큼 되도록 많은 의석을 얻고 싶다고 했고, 개헌으로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서는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다. 의원직 대신 제3지대 형성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고 자처한 것으로 읽힌다.‘이낙연 신당’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호남에서 최소 2당은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민주당 텃밭인 전남 영광 출신인 이 전 대표는 동아일보 기자 시절 옛 민주당을 출입하면서 동교동계와 교분을 쌓았고, 2000년 DJ의 권유로 16대 총선에 나서 당선됐다. 민주당에서 5선 국회의원과 전남지사,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2020년 ‘어대낙’(어차피 당대표는 이낙연)으로 불리며 당권을 쥐었다. 하지만 그는 2021년 신년사에서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필요성을 언급했고, 이에 대한 민주당 지지층의 큰 반발로 ‘이낙연 대세론’이 무너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이 전 대표는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은 2021년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성 비위 논란으로 공석이 된 2곳에 시장 후보를 냈다가 참패했고, 대선 경선에서 이 대표에게 밀렸다. 그의 탈당은 최측근인 남평오 전 국무총리실 민정실장이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2021년 대선 경선 당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언론에 최초로 제보한 인사라고 확인하면서 기정사실이 됐다. 이른바 ‘대선 앙금’이 결별로 이어진 셈이다. 일각에서는 친명(친이재명)계가 장악한 민주당의 구조상 이 대표를 누르고 차기 대선 후보가 되기는 힘들어 결별을 택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이 전 대표의 탈당 선언과 맞물려 원칙과상식 의원들도 12일 별도의 신당 창당 계획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개혁신당까지 모여 제3지대가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원칙과상식 소속 김 의원은 한 방송에서 “궁극적으로 총선에서 3파전 구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책무”라고 했고, 조 의원도 “신당의 1차 목표는 (기호 3번을 받을 수 있는) 7석 이상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제3지대 빅텐트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 전망이 우세하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38석을 확보해 제3당의 입지를 굳혔던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 정도가 성공 사례로 꼽히지만 당시에는 민주당의 ‘호남 홀대론’으로 호남 민심이 이탈했다. 차재권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의당의 (일시적) 성공은 당시 안철수라는 대선주자를 낀 데다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현재는 정권심판론이 화두여서 중도 무당층을 안거나 민주당 지지층을 끌어가기가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이낙연 신당이 수도권 후보를 낼 수 있을지도 변수다. 이준석 개혁신당과의 연대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하지만 이들이 정치철학 공유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전 대표는 “(지금이 1997년 대선 당시) DJP(김대중·김종필) 연합보다 훨씬 더 거리가 가깝다”고 했지만 ‘낙준(이낙연·이준석) 연대’는 결국 서로의 장점을 희석한다는 비판도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준석 신당의 장점은 2030 남성의 지지인데 이들은 반민주당 성향”이라며 “각각 호남과 영남을 기반으로 해 정체성도 뒤죽박죽”이라고 말했다.
  • ‘DJ 적자’ 자임한 이낙연 “중도 개혁의 길 갈 것”…3지대 빅텐트 성공은 가시밭길

    ‘DJ 적자’ 자임한 이낙연 “중도 개혁의 길 갈 것”…3지대 빅텐트 성공은 가시밭길

    이낙연(72)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총선을 90일 앞둔 11일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추구한 중도개혁의 길을 가겠다”며 ‘DJ의 적자’로 평가받으며 24년간 몸담았던 민주당을 탈당했다. 제3지대 정계 개편의 신호탄이 될지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과거 제3지대를 표명한 정당들이 모두 명맥 유지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부정적 전망도 나왔다. 또 당내에서는 계파를 막론하고 비난이 터져 나왔다. 이 전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자랑했던 김대중·노무현의 정신, 가치, 품격은 사라지고 폭력적이고 저급한 언동이 횡행하는 1인 정당, 방탄 정당으로 변질했다”며 “민주당을 벗어나 대한민국에 봉사하는 새로운 길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어 “마음의 집이었던 민주당을 떠나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라면서도 “민주당의 정신과 가치를 지키고 구현할 만한 젊은 국회의원이 잇달아 출마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탈당과 신당 창당의 변으로는 “윤석열 정부는 ‘검찰 공화국’을 거의 완성했고, 민주당은 스스로의 사법 리스크로 ‘검찰 폭주’를 제어하지 못한다. 극한투쟁을 계속하는 양당 독점 정치구조를 깨지 않고는 대한민국이 온전하게 지속될 수 없어 타협과 조정의 다당제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전날 탈당한 이원욱·김종민·조응천 의원 등 민주당 내 혁신 비명(비이재명)계 모임이었던 ‘원칙과상식’과 힘을 합치겠다며 청년과 전문직의 참여를 당부했다. 이날 원칙과상식 소속 김 의원은 이 대표의 기자회견장을 찾아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또 이 전 대표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개혁신당’(가칭)에 대해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협력해야 한다”고 했다. 제3지대로 거론되는 정치인들이 양향자 의원, 금태섭 전 의원, 류호정 정의당 의원 등으로 가치 지향점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지적에는 “공통점을 찾아 추구하겠다”고 했다. 이외 이 전 대표는 거대 양당의 독점 구조를 깰 정도의 되도록 많은 의석을 얻고 싶다고 했고, 개헌으로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서는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다. 의원직 대신 제3지대 형성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고 자처한 것으로 읽힌다. ‘이낙연 신당’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호남에서 최소 2당은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민주당 텃밭인 전남 영광 출신인 이 전 대표는 동아일보 기자 시절 옛 민주당을 출입하면서 동교동계와 교분을 쌓았고, 2000년에 DJ의 권유로 16대 총선에 나서 당선됐다. 민주당에서 5선 국회의원과 전남지사,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를 역임했고 2020년에는 ‘어대낙’(어차피 당 대표는 이낙연)으로 불리며 당권을 쥐었다. 하지만 그는 2021년 신년사에서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필요성을 언급했고, 민주당 지지층의 큰 반발로 ‘이낙연 대세론’이 무너졌다는 평가다. 이후 이 전 대표는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은 2021년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지자체장들의 성 비위 논란으로 공석이 된 2곳에 시장 후보를 냈다가 참패했고, 대선 경선에서 이 대표에게 밀렸다. 그의 탈당은 최측근인 남평오 전 국무총리실 민정실장이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2021년 대선 경선 당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언론에 최초로 제보한 인사라고 확인하면서 기정사실이 됐다. 이른바 ‘대선 앙금’이 결별로 이어진 셈이다. 일각에서는 친명(친이재명)계가 장악한 민주당의 구조상 이 대표를 누르고 차기 대선 후보가 되기는 힘들기에 결별을 택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이 전 대표의 탈당 선언과 맞물려 원칙과상식 의원들도 12일 별도의 신당 창당 계획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이 전 대표와의 연대가 예상되나 합당일지 선거 연대일지는 의견이 갈린다. 일각에서는 개혁신당까지 모여 제3지대가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원칙과상식 소속 김 의원은 한 방송에서 “궁극적으로 총선에서 3파전 구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책무”라고 했고, 조 의원도 “신당의 1차 목표는 (기호 3번을 받을 수 있는) 7석 이상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제3지대 빅텐트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 전망이 우세하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38석을 확보해 제3당의 입지를 굳혔던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 정도가 성공 사례지만 당시에는 민주당의 ‘호남 홀대론’으로 호남 민심의 이탈이 주효했다. 차재권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의당의 (일시적) 성공은 당시 안철수라는 대선주자를 끼고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현재는 정권심판론이 화두가 된 상황에서 이낙연 신당으로는 중도 무당층을 안거나 민주당 지지층을 끌어가기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이 전 대표의 확장성에 약점이 있다는 얘기다. 이낙연 신당이 수도권 후보를 낼 수 있을지도 변수다. 개혁신당과의 연대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하지만 이들이 각각 DJ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입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다는 점에서 정치철학 공유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전 대표는 “(지금이 1997년 대선 당시) DJP(김대중·김종필) 연합보다 훨씬 더 거리가 가깝다”고 강조했지만 ‘낙준(이낙연·이준석) 연대’는 결국 서로의 장점을 희석한다는 비판도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준석 신당의 장점은 2030 남성의 지지인데 이들은 반민주당 성향”이라며 “각각 호남과 영남을 기반으로 해 정체성도 뒤죽박죽”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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