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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이후 17년 투쟁으로 민주화 쟁취”

    “5·18이후 17년 투쟁으로 민주화 쟁취”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발발, 과정, 이후의 민주화 투쟁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5월 항쟁사’가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전남대 사회학과 나간채(64) 교수는 수년간에 걸친 취재와 연구자료 등을 토대로 최근 ‘한국의 5월운동’(한울)을 펴내고 오는 28일 출판 기념회를 갖는다. 저자는 5·18을 승리한 항쟁으로 전제하고, 이를 위한 모든 저항적 투쟁을 ‘5월 운동’으로 규정했다. ●5·18이 민주화 운동 흐름 주도 모두 519쪽으로 이뤄진 이 책은 5·18 과정을 담은 1부와 사회학적 의미를 되짚은 2부로 구성됐고, ‘민주·정의·인권을 위한 17년의 항쟁사’란 부제가 달렸다. 5·18 이후부터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명예회복 등을 통해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을 상징적으로 마무리 짓는 문민정부 말기(1997년)까지 17년 동안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1부(5월 운동의 진실)는 ▲광주항쟁의 최후 ▲절망과 두려움을 넘어 ▲암흑 속의 투쟁 ▲성장하는 저항의 힘 ▲고조되는 5월 공세 ▲대단원 등 치열한 저항투쟁의 사례로 구성됐다. 2부(5월 운동의 사회학)는 5월 운동의 상징과 개념 ▲내부 구조와 전개과정 ▲목표와 전략 ▲운동 주체의 형성과 발전 ▲해외 5월운동 ▲5월 운동의 결과 등 5월운동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꾀했다. 나 교수는 이 책을 통해 5월 운동이 갖는 역사적 의의를 두 가지 관점에서 파악했다. 첫째는 5·18이 198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민주화운동의 중심에서 그 흐름을 주도해 왔고, 이를 통해 1987년 6월 항쟁과 군사독재 종식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5월 운동’이 1946년 대구인민항쟁, 1948년 제주 4·3항쟁, 1979년 부마항쟁 등에서 겪어야 했던 민중의 비극적 좌절과 1986년 필리핀 인민항쟁, 1988년 버마(미얀마)의 민주항쟁, 1989년 중국의 톈안먼 항쟁 등 아시아 각국의 항쟁 패배를 뛰어넘어 ‘승리의 역사’를 만들었다는 점을 꼽았다. ●민주화·희망 공동체 회복으로 결실 나 교수는 “5월 투쟁은 민주화와 희망의 공동체를 되찾는 열매를 맺었다.”며 “이 책은 민주·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좇는 인간 역사의 값진 자산이란 생각으로 그 흔적을 모아 엮은 것”이라고 말했다. 시인 김준태는 추천사에서 “압제자에 대한 민중의 투쟁과 진실은 궁극적으로 승리한다는 역사관이 담겨 있다.”고 평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사설] 연평도 포격 2주년… 대선에 끼어드는 北

    북한이 연평도 민간인 거주지역에 무차별 포격을 가한 지 23일로 2년이 된다. 북한은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우리 영토에 대한 직접 도발을 자행해 고귀한 인명을 잃게 하고 주민의 생활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연평도 주민들은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연평도를 포함한 서북도서는 평화를 회복했지만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5∼8월 서해안 북한 측 초도에서 대규모 상륙훈련을 실시했다고 한다. 북방한계선(NLL) 이남 서북도서 기습공격 시나리오를 완성했다는 분석도 있다. 우리 군의 서북도서 전력증강 계획이 차질 없이 이뤄져야 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북한의 해안포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스파이크 미사일 도입이 내년으로 연기되는 등 차질을 빚어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북한이 우리 대통령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최근 노동당 산하 대남혁명 전위기구를 통해 국내 종북세력에 ‘반(反)새누리당 투쟁’을 부추기는 격문을 하달하는 등 대남 선전·선동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김황식 국무총리가 그제 국무회의에서 지적했듯 북한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며 어느 때보다 강력한 대응 의지와 안보태세를 가다듬어야 할 때다. 북한은 우리가 개혁·개방을 촉구한 점 등을 거론하며 대선 개입은 “응당한 단죄”라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이 선거 때마다 남남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철지난 상투적 수법이지만 자계(自戒)의 끈을 늦춰서는 안 된다. 북한은 대선정국에 편승한 무모한 도발로 남북관계의 파국을 자초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선 후보들이 모두 NLL 사수 의지를 밝히는 등 안보문제를 무겁게 여기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보다 구체적이고 확고한 비전을 제시해 국민의 안보불안감을 불식시켜 주기 바란다.
  • 오바마의 5시간 40분, 美 -미얀마 ‘20년 악연’을 풀다

    오바마의 5시간 40분, 美 -미얀마 ‘20년 악연’을 풀다

    미국 대통령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9일 미얀마 땅을 밟았다. 이에 맞춰 이날 미얀마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 수용 의사를 전격적으로 밝혔다. 오랜 세월 적대관계였던 미국과 미얀마 관계가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기점으로 급속히 가까워지는 모습이다. 이에 비례해 미국의 ‘중국 봉쇄’와 ‘북한 고립’ 정책도 탄력을 받는 양상을 보인다. 재선 후 첫 해외순방으로 동남아 3국을 택한 오바마는 이날 오전 대통령 전용기로 두 번째 방문국인 미얀마의 양곤에 도착, 5시간 40분 동안 체류하면서 역사적인 발걸음을 남겼다. 그는 먼저 테인 세인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정치범 석방 등 과감한 민주화와 인권 개선을 촉구했다. 또 북한과의 핵 개발 등 군사협력을 끊고 국제사회의 규범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미얀마의 정치개혁 진전 여부에 따라 향후 2년간 1억 7000만 달러(약 1850억원)를 지원할 의사가 있다는 계획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세인 대통령은 IAEA의 핵 사찰을 수용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는 전날 백악관이 미얀마 정부를 향해 “북한과의 군사협력을 끝내라.”고 촉구한 직후에 나온 것이다. 세인 대통령은 또 회담에서 전날 수감자 66명에 대해 추가 사면령을 내렸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1시간가량의 회담 후 오바마와 나란히 취재진 앞에 선 세인 대통령은 “우리는 오늘 미얀마에서 민주화를 진전시키자는 데 동의했다.”면서 “미얀마의 번영을 위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인권을 보호하도록 미국과 협력해 두 배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오바마는 ‘버마’라는 국명 대신 그동안 군사정부를 용인하는 인상을 줄까봐 사용을 꺼렸던 ‘미얀마’라는 국명을 미국 정부 인사로는 처음으로 구사하면서 세인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오바마는 이어 야당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자택을 찾아 면담했다. 그는 “수치 여사가 가택연금에서 풀려나 총선에 출마할 수 있게 되는 등 지난해 미얀마에서 고무적인 발전의 징후들을 목격했다.”면서 “우리의 목표는 미얀마 민주화의 활력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수치 여사는 미얀마의 급격한 정치개혁이 ‘성공의 신기루’가 될 위험이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오바마는 반정부 투쟁의 심장부 역할을 했던 양곤대에서도 연설했다. 그는 “극적인 변화의 시기에 있는 미얀마의 경제 재건에 미국이 힘을 보태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기 양곤에서 아시아 지역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면서 “북한 지도부가 핵무기를 내려놓고 평화와 전진의 길을 택하면 미국으로부터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대통령 전용기를 함께 타고 양곤 국제공항에 도착했으며, 오바마 일행이 공항을 떠나 시내로 이동할 때 거리에 운집한 수만명의 미얀마 시민들이 성조기와 미얀마 국기를 들고 “미국”을 연호하며 열렬히 환영했다. ‘사랑해요 오바마’, ‘당신은 세계의 영웅이자 전설’ 등의 포스터를 들고 있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사정부의 압제에 신음하던 나라의 풍경으로 믿어지지 않는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5대종단 지도자 쌍용차 단식 농성장 방문

    5대종단 지도자 쌍용차 단식 농성장 방문

    5대 종단 지도자들이 19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 천막에서 쌍용차 정리해고 관련자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41일째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는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을 방문, 단식 중단을 호소하고 있다. 김 지부장은 이날 오후 건강이 악화돼 병원으로 호송됐다.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당대회 전후 티베트인 13명 분신… 민족갈등 해결도 과제

    ‘시진핑(習近平) 시대’ 중국의 사회 안정을 위협하는 한 축이 빈부격차로 인한 양극화라면, 또 다른 한 축은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움직임이다. 실제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 중심의 5세대 지도부가 출범한 18차 전국대표대회(전대)를 전후해 티베트인들의 분신시위가 최고조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달라이라마 “中 무력 사용 말라” 17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18차 전대 개막 전날인 지난 7일 이후 분신한 티베트인은 최소 13명에 이른다. ‘연쇄 분신’을 통해 티베트인들이 중국의 강압통치에 항거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 다람살라의 티베트망명정부 집계에 따르면 2009년 이후 분신한 티베트인은 최소 79명이며, 이 가운데 59명이 숨졌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인들의 잇단 분신과 관련, 중국 정부에 탄압중단과 무력사용 금지를 촉구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달라이 라마를 분신시위의 선동자로 지목하면서 대내외적으로 그를 강력 비난하고 있다. 문제는 티베트인들의 항거 지역이 점차 확산된다는 데 있다. 실제 티베트인들의 분신은 맨 처음 쓰촨(四川)성의 아바(阿?)자치주에서 시작됐지만 최근에는 칭하이(靑海)성, 간쑤(甘肅)성 등 인접지역으로 확산됐고, 심지어 중국이 대대적으로 틀어막고 있는 티베트인들의 본거지 시짱(西藏·티베트)자치구 지역도 들썩이고 있다. ●초기엔 안정위해 강압 이어갈 듯 시 총서기는 집권초기 정권 안정을 위해 소수민족의 시위 문제에 전임자들처럼 강압적인 자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특히 티베트 등을 ‘핵심이익’으로 규정, 분리독립 요구에 절대 응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민족갈등의 ‘폭발력’이 변수다. 점화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파괴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섞어 사용하며 갈등의 확대를 저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인터넷사이트 인민망은 18일 시 총서기의 부친인 시중쉰(習仲勛)이 티베트 지도자 샹첸(項謙)을 여러 차례 설득해 무장투쟁을 포기토록 만든 일을 전하며 그의 민족문제 해결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스토리는 도전·투쟁·해법 담아야 감동

    요즘 ‘스토리텔링’이란 말을 자주 한다. 엔터테인먼트 분야뿐만 아니라 여러 비즈니스에 중요하게 적용되고 있다.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나 감동, 줄거리 등을 전달하지 못한 영화나 소설은 금세 외면받기 마련이다. 숫자의 정확성보다 훨씬 강렬한 이야기 상대방의 심장에 꽂아야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스토리’란 과연 무엇일까. 신간 ‘성공하는 사람은 스토리로 말한다’(피터 구버 지음, 김원호 옮김, 청림출판 펴냄)의 본문 38쪽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사람들을 사로잡는 이야기는 도전과 투쟁과 해답을 담고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사로잡는 이야기를 만들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기억해 두자. 첫째, 상대방이 예상하지 못했을 법한 도전이나 의문을 통해 상대방의 주의를 사로잡는다. 둘째, 도전을 극복하거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투쟁이나 노력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상대방의 감성에 경험을 제공한다. 셋째, 놀라운 해법을 제시함으로써 상대방의 적극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그를 통해 상대방의 행동변화를 유도한다….’ 이 책은 비즈니스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관한 성공 사례집이다. 그동안 비즈니스계는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의 힘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해왔다고 말한다.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사실 관계, 숫자, 데이터 같은 영혼이 없는 자료에 의존해왔다는 것이다. 경제 불확실성이 높고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요즘에는 0과 1로 이루어지는 디지털 혁명이 아니라 바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 피터 구버는 소니픽쳐스 경영자(CEO)였고 ‘레인맨’ ‘배트맨’ ‘컬러 퍼플’ ‘플래시 댄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등의 작품을 제작해 명성을 얻었다. 지금은 자신의 회사인 만델레이 엔터테인먼트 그룹의 CEO이자 회장으로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만난 유명한 인사들을 통해, 그들만의 설득방법과 자신이 40여 년 동안 설득해온 다양한 경험들을 소개하고 있다. 1만 5000원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시론] 검찰과 경찰, 누구를 위해 대립하는가/오영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장

    [시론] 검찰과 경찰, 누구를 위해 대립하는가/오영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장

    현직 부장검사의 뇌물수수 사건에 대한 수사를 놓고 검찰과 경찰이 또 한번 격한 대립을 벌이고 있다. 검찰이 경찰의 수사에 대해 때이르게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것을 ‘제 식구 감싸기’라고 하는 시각이 있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검찰의 ‘제 조직 감싸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던 검찰 고위간부마저도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의 무정함과 이로 인한 검찰 조직에 대한 배신감을 호소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처럼 검찰이 제 식구를 감싸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제 조직을 감싸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뇌물 사건은 이전의 ‘그랜저 검사 사건’ 등에 비해 그 액수가 매우 크다. 검사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검찰 조직 전체의 위상과 신뢰의 추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사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어떻게 개시되었고 그 동기가 무엇인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검찰은 이번 경찰의 수사를 지난번 룸살롱 업주로부터 뇌물을 받은 경찰관들을 수사한 검찰에 대한 보복수사 또는 수사권 확보를 위한 경찰의 도전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특임검사의 발언에서 나타났듯이 자신들보다 아래라고 여겼던, 그러나 끊임없이 자신들에게 도전해 오는 경찰로부터 현직검사가 수사를 받는 것은 검찰의 품격에 반한다고 느끼는 것 같다. 반면 경찰은 이번이야말로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검찰과 경찰이 경쟁하고 대립하는 구도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이 국가와 국민에게 이익이 된다면 오히려 권장할 만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의 경쟁과 대립은 국민을 위한다는 같은 방향에서의 경쟁과 대립이어야 한다. 마주 달리는 기관차와 같이 오로지 상대를 향해 반대 방향으로 질주하는 과정에서의 경쟁과 대립이어서는 안 된다. 검찰과 경찰의 대립으로 인해 이중수사의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전자와 같은 경쟁과 대립 관계에서는 이중수사가 좀 더 치밀한 수사라는 긍정적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그러나 후자와 같은 경쟁과 대립 관계에서는 이중수사란 ‘이상한 수사’가 될 뿐이다. 이상한 수사는 무리한 수사로 이어지고 국민을 실망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먼저 양 조직에서 무엇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길인가를 숙고해야 한다. 검찰은 경찰을 자신의 하부기관이 아니라 대 범죄 투쟁을 위해 상호 협력하는 동지로 인식해야 한다. 경찰 역시 대립적 자세가 아니라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대승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 수사권에서 ‘권’은 ‘권한’이지 ‘권리’가 아니다. 권리에는 이익이 따르지만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 이익이 아니라 책임이 따르는 수사권을 검찰과 경찰이 서로 갖겠다고 다투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경찰은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검찰도 지금과 같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생각해야 한다. 품격 있는 조직은 적법한 행위에 만족해서는 안 되고 좀 더 바람직한 행위를 지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어떻게든 해결되겠지만, 앞으로도 검·경의 수사권 조정 문제는 우리 사회의 시한폭탄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나 국회가 지금처럼 수수방관하는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 검찰도, 경찰도 자신들의 주장이 모두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분명 어떤 해결책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두 기관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민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검찰, 경찰 모두 자신의 주장과 그 논거를 다 제시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결단을 해도 좋을 시기가 되었다. 따라서 정부나 국회는 공정하고 전문적 식견을 지닌 인사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만들어 이 문제에 대해 결단을 내리도록 하거나, 이 위원회로 하여금 이를테면 검찰과 사법경찰을 통합하여 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방안들도 연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 [中 시진핑시대] 부친 실각·입당 10차례 퇴짜… ‘고난’이 키운 1인자

    [中 시진핑시대] 부친 실각·입당 10차례 퇴짜… ‘고난’이 키운 1인자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은 15일 새로 출범하는 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의 첫 번째 전체회의(18기 1중전회)를 통해 13억명의 중국인, 8200여만명의 중국 공산당원 가운데 서열 1위의 인물로 올라서게 된다. ‘만인지상’의 자리인 공산당 총서기에 오르기까지 시 부주석은 여러 차례 중요한 고비를 넘겨야 했다. 태자당(당·정·군 혁명원로 자제 그룹) 원로이자 시 부주석의 정치적 후원자인 쩡칭훙(曾慶紅) 전 부주석이 2007년 “모든 계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이라며 그를 5세대 지도자로 천거했을 때만 해도 시 부주석의 입지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밀었던 리커창(李克强) 부총리에 비해 넓지 않았다. 시 부주석은 평생 크게 네 차례의 중대 고비를 넘겨 중국의 1인자가 된다. 첫 번째 고비는 1962년 부친인 시중쉰(習仲勛·1913~2002) 전 부총리의 실각과 뒤이어 찾아온 문화대혁명(1966~1976년)의 광풍 속에서 시작됐다. 공산당 고위 간부들의 집단거주지인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 출신의 ‘홍색 귀족’ 태생이지만 아홉살 때 아버지가 류즈단(劉志丹) 사건에 연루돼 권력투쟁에서 밀려나면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4년간은 그럭저럭 버텼으나 문혁이 시작되자 사상 비판을 받고 13세의 나이에 소년관리소라는 교화시설에 다녀온 데 이어 15세 되던 해에 ‘지식청년’으로 분류돼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시 량자허(梁家河)촌으로 하방됐다. 하지만 시 부주석은 3개월을 못 버티고 베이징으로 탈출했다. 만약 복귀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시진핑은 있을 수 없다. ‘소년 시진핑’은 백부와 백모의 설득에 따라 농촌에서 뼈를 묻는다는 각오로 량자허로 돌아갔고 이때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훗날 그는 당시 생활에 대해 오관(五關·5대 관문)을 거쳤다고 회고했다. 벼룩, 노역, 배고픔, 고된 일상, 부적응이다. 그는 2000년 잡지 중화아녀(中華兒女)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량자허촌에서의 체험 때문이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실사구시가 무엇인지 대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고 나 스스로에 대해 굳은 자신감을 키웠다.”고 회상했다. 두 번째 고비는 공산당 입당 거절이다. 하방 기간 동안 그는 공산당에 입당하려 애썼지만 당국은 부친의 사상 등을 문제 삼아 열 차례 퇴짜를 놓았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행히 그의 성실성을 눈여겨본 간부의 추천으로 부친에 대한 명확한 평가가 나오기 전인 1974년에 입당을 허가받을 수 있었고, 이어 량자허 당지부 서기도 됐다. 1975년 칭화대에 입학할 수 있는 공농병 청강생 정원 두 자리가 옌안에 할당됐고, 한 자리가 그에게 돌아가면서 7년간의 하방 생활을 접고 베이징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지식청년으로 분류되면서 중2 중퇴의 학력이 전부인 그에게 학업의 기회가 주어졌고 인생의 반전이 시작된 것이다. 시 부주석은 1985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17년 동안 남동부 푸젠(福建)성에서 근무했다. 샤먼(厦門)시 부시장부터 시작해 성장까지 역임했다. 그런 그가 ‘위안화(遠華)그룹 밀수 사건’의 폭풍 속에서 살아남은 것은 세 번째 고비를 넘은 것으로 평가된다. 위안화그룹은 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530억 위안(약 9조 5400억원)의 밀수에 관여했고, 위안화그룹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푸젠성의 주요 간부들이 줄줄이 처벌됐다. 시 부주석이 이 사건을 계기로 청렴성을 인정받았다고도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가 1999년 푸젠성 대리성장 당시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7년 6월 25일은 시 부주석이 잊을 수 없는 날이다. 2002년 공산당 16차 전국대표대회(전대)에서 시 부주석은 가까스로 16기 중앙위원이 됐다. 반면 리 부총리는 후 주석의 총애를 받으며 차세대 주자로 떠올랐다. 국내외 언론도 리 부총리를 집중 조명했다. 하지만 17차 전대를 석 달여 앞둔 2007년 6월 25일 공산당 간부와 원로 400여명을 상대로 실시한 ‘차기 정치국위원 선임과 관련한 민주적 추천’ 조사에서 시 부주석은 압도적인 표차로 리 부총리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이 고비를 끝으로 시 부주석은 5세대의 1인자 ‘티켓’을 당당히 거머쥐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죄송합니다… 정화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정화하겠습니다”

    올 한해 한국불교 맏형 격인 조계종은 큰 수치와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다. 이른바 ‘승려 도박’ 사태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 혼란의 단초를 제공한 건 고불총림 백양사였다. 그 백양사 문중이 의기투합해 정신 개혁운동에 나섰다. 한국 선(禪) 불교를 중흥시킨 전 백양사 방장 서옹(2003년 입적) 스님의 부활이다. 서옹 스님 탄신 100주년을 맞아 제자들은 “서옹 스님을 다시 보자.”며 ‘참사람 결사’를 선언했다. 서옹 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법회(23일 백양사 대웅전 앞 특설법단)에 앞서 12일 조계사 앞 음식점에서 만난 진우(백양사 주지), 금강(미황사 주지), 미산(상도선원 선원장), 무아(백양사 고불총림 선원장) 스님과 서옹 스님 생전 시봉했거나 큰 가르침을 받았던 손상좌(손자뻘 제자)들은 “백양사 사태로 큰 실망을 안겨 죄송하다.”며 조심스러우면서도 결연한 어조로 스승 서옹 스님과 서옹 스님의 ‘참사람 주의’를 앞다퉈 입에 올렸다. “혼란스러운 불교계를 정화하고 사죄한다는 차원에서 서옹 스님이 생전 줄곧 강조하셨던 참사람 운동을 다시 시작하겠습니다.”(진우 스님) 서옹 스님의 참사람 주의는 누구나 본래 갖고 있는 참사람의 성품을 발견할 때 모든 갈등과 투쟁이 사라지고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이 서로 존중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요체. 진우 스님의 말꼬리를 잡은 미산 스님은 “참사람은 그야말로 참진리를 실천하는 사람이자 지혜를 완성하고 완성된 지혜를 구체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말을 이었다. 제자들이 말을 섞는 가운데 요즘 유행인 힐링이 자연스럽게 도마에 올랐다. “요즘 각 분야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힐링은 일시적으로 마음이 편해지는 상태에 머무는 한계를 갖고 있어요. 근원적인 치유와는 멀지요. 스스로 깨달음을 통해 얻는 치유가 아니라면 고통이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서옹 스님은 늘상 “지금이 인류역사상 가장 위기의 상황이고 한국사회는 그중에서도 더 큰 위기에 빠져 있다.”고 경계했다고 한다. 따져보면 제자들은 이미 서옹 스님 생전에 스승의 경계와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모였던 적이 있다. 1997년 수행 프로그램을 만들어 그해 하안거와 동안거 때 운영했고, 서옹 스님이 입적할 무렵 본격적으로 스승의 사상을 실천하기 위한 결사본부까지 구성해 놓았다. “우리 사회의 발전에 있어서 스님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 늦었지만 그 역할을 다시 찾자는 것이지요.”(금강 스님) 23일 기념법회를 참사람 운동의 결사법회로 정해 이날 ‘참사람 운동본부’ 발대식도 겸한다고 한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서옹 스님은 누구 백양사 만암 스님 문하에 출가해 오대산 방한암 스님에게 탄허, 고암, 월하 스님과 선 수행을 지도받아 평생 선 수행에 매진한 선승이다.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 전신)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거쳐 선교(禪교)와 불전에 통달한 선교일치의 대표적 큰 스승으로 꼽힌다. 1974년부터 5년간 조계종 제5대 종정을 지냈다. 동화사·백양사·봉암사 선원 조실을 지내며 수좌들의 참선 수행을 지도했고, 1996년 고불총림 초대방장으로 취임해 입적 때까지 수행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2003년 12월 백양사 선설당에서 세수 92수, 법랍 72세를 일기로 좌탈입망(앉은 자세로 입적)했다.
  • ‘남영동’ 눈물의 결의?

    ‘남영동’ 눈물의 결의?

    문재인 민주통합당,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는 12일 저녁 단일화 회동 이후 6일 만에 다시 만났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상영된 정지영 감독의 영화 ‘남영동 1985’ 시사회장에서다. ●文, 4대 외교원칙 발표 고(故)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이 민주화 운동 당시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던 실화를 다룬 영화다. 야권 단일화 협상이 급물살을 타는 상황에서 두 후보가 이 영화를 매개로 만난 것 자체에 관심이 쏠렸다. 영화가 끝난 뒤 두 후보의 눈가엔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문 후보는 “아주 고통스러운 영화였다.”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영화”라고 평가했다. 안 후보도 “보는 내내 고통스러웠다.”면서 “역사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는 느낌이었고 우리가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소중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두 후보 이외에 심상정 진보정의당,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도 시사회에 참석했다. 이에 앞서 문 후보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에서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어 나가겠다.”며 4대 외교 원칙을 밝혔다. 여기에는 ‘평화선도 외교’ ‘균형 외교’ ‘국제협력 외교’ ‘국민이 참여하는 공공 외교’ 등의 화두가 포함됐다. ●安 “朴, 정수 문제 해결하라” 그는 “한·미 동맹은 더욱 공고하고 성숙하게 다지고 한·중 관계는 경제 관계를 필두로 더욱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도 부산대에서 ‘과거에서 미래로 갑니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그는 강연에서 “여당 후보를 이기기 위한 단일화가 돼야 국민이 동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이날 박 후보를 겨냥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앞서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 투쟁’으로 해고된 이정호 전 부산일보 편집국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우리의 국격과 품위를 위해서 박 후보가 스스로 (정수장학회 문제의)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안 후보 캠프가 여론조사 기관에 돈을 풀었다는 얘기가 돈다.”는 권영세 새누리당 종합상황실장의 발언에 대해 “사람은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본다. (새누리당이) 옛날 경험을 되돌아봤을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부산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출연료 13억 지급하라” 한연노, KBS 촬영 거부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이하 한연노)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KBS 촬영 거부 투쟁 출정식과 기자회견을 잇달아 열고 KBS 측에 미지급된 출연료 13억원을 지급하라고 촉구했다. 한영수 한연노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KBS는 출연료를 방송 마지막회 촬영 전에 연기자들에게 직접 일괄 지급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연노는 구체적으로 ▲2010년 9월 맺은 합의서상의 출연료 지급 보증 약속 이행 ▲단체협약 준수 ▲출연료와 수당 현실화 ▲미지급 출연료 13억원 지급 ▲편성상 초과 시간에 대한 출연료 지급 등을 요구 사항으로 제시했다. 한연노는 ‘프레지던트’ 5억 4000만원 등 출연료가 지급되지 않은 KBS 드라마가 5편, 액수로는 총 12억 7400만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반면 KBS 측은 이에 대해 “이미 외주 제작사에 제작비를 전액 지급했으며 전적으로 외주 제작사의 책임”이라고 반박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朴 “바닥민심 잡아라”… 野안방 호남서 7개월만의 ‘외박’

    朴 “바닥민심 잡아라”… 野안방 호남서 7개월만의 ‘외박’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12일 호남을 기점으로 지역 민생투어를 시작했다. 특히 대선 행보에서는 처음으로 1박 2일로 일정을 잡아 지역에 머물렀다. 지난 4·11 총선 유세 당시 부산에서 외박을 한 뒤 처음이다. 박 후보는 이날 전북 익산과 광주를 잇따라 찾은 뒤 13일 충남 천안으로 이동한다. 평소 무박 일정을 고수했던 박 후보가 대선을 30여일 앞두고 본격적으로 지역 밀착형 움직임에 시동을 걸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단일화를 두고 연일 신경전을 벌이는 틈을 타 지역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현안을 챙기는 준비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도 보인다. 박 후보는 전날 중앙선대위 회의에 참석해 “결국 중요한 것은 국민에게 어떤 것이 준비된 정당이고 준비된 자세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줘야 하는 것”이라면서 “나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외박 정치’를 하게 된 호남과 충청은 박 후보에게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곳이다. 호남 지역은 박 후보가 핵심 과제로 내세운 국민대통합과 관련해 가장 상징적인 곳으로, 박 후보 자신도 이 지역에서의 높은 득표율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대위 안에서는 20%대 이상의 득표율까지 바라는 분위기다. 박 후보는 오후 광주역에서 “동서 화합의 시작이 바로 광주”라면서 “어느 정부도 성공하지 못한 동서 화합과 국민대통합을 다음 정부에서는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특히 호남이 텃밭인 민주당을 겨냥해 “그동안 정치 투쟁만 해 온 정당이 호남의 예산을 제대로 가져왔느냐.”면서 “새누리당에 맡겨 주시면 호남에 필요한 예산을 책임지고 아낌 없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박 후보는 저녁에는 전남 담양의 한 리조트에서 숙박을 했다. 이곳에 있는 온천은 고(故)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도 방문한 곳이다. 호남에서의 1박이 박 후보로서는 이 지역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표현이라고 박 후보 측은 전했다. 그동안 박 후보는 경호팀의 어려움을 고려해 가급적 외박 일정을 잡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박 후보의 지역 민생투어 일정은 주로 시장과 기차역, 거리 등에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박 후보는 익산 금마시장에서 상인들과 만나 전통시장 활성화를 약속하고 이어 광주역과 충장로에서 젊은 층과 만났다. 스킨십에도 더욱 적극적이었다. 광주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4) 1930년대 모던 보이 vs 마르크스 보이

    [선택! 역사를 갈랐다] (34) 1930년대 모던 보이 vs 마르크스 보이

    조선시대 서울의 공식 이름은 한성부(漢城府)였다. 사람들은 한양이라 불렀다. 한양은 북한산 남녘과 한강 북쪽 사이에 자리 잡은 양지바른 터전이라는 뜻이다. 1910년 일제는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면서 한성부를 경성부(京城府)로 바꾸고 경기도에 소속시켜 위상을 낮추었다. 서울을 일본의 오사카나 교토와 같은 지방 도시로 만든 것이었다. 1920년부터 1935년까지 경성의 인구가 많이 늘어났다. 1935년에는 44만명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25% 남짓이 일본인이었다. 식민지 도시 경성은 청계천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나뉘었다. 청계천 이남에는 본정통(오늘날 충무로), 명치정(지금의 명동)에서 일본인 상가를 중심으로 남촌이 생겼다. 진고개 중심의 남촌 상가는 근대의 상품과 화려한 건물, ‘현대인의 신경’인 네온사인으로 덮였다. 카페, 우동집, 빙수집, 찻집이 즐비했다. 남촌은 ‘경성 속의 일본’이었다. 오늘날 명동 부근인 진고개는 본디 변두리 마을이었다.일본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와 ‘작은 도쿄’를 세우고 주인으로 들어앉았다. 백화점과 카페, 당구장, 극장 같은 근대 유흥시설이 남촌에 몰려 있었다. 청계천 이북에는 조선인 상가가 많았던 종로통을 중심으로 북촌이 되었다. 북촌 지역은 전통 한옥과 나지막한 상점들이 있었으며 밤거리는 어두컴컴했다. 식민 도시의 ‘원주민 상가’였던 종로는 중심에서 밀려났다. 종로의 밤거리에는 온갖 ‘싸구려’ 물건을 파는 야시가 열렸다. “극도의 생활난에 빠진 빈궁한 사람들이 혹시나 입에 풀칠이나 할까 하는 눈물겨운 생각”으로 야시에서 물건을 팔았다. 경성은 식민지 지배층이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는 ‘하이칼라 경성’과 식민지 빈곤층과 실업자가 넘쳐나는 ‘실업 경성’의 두 모습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쾌락 추구 ‘모던 보이’ 1920년대가 되면서 양복 입은 남자와 양장한 여성이 늘어갔다. 옷과 장신구 등은 유행 바람을 탔다. 헤어스타일도 바뀌었다. 사람들은 이발소에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면도를 하는 것을 ‘신식’으로 가는 길처럼 여겼다. 그럼에도 여자 단발은 아직 문제가 되었다. 단발한 여인들은 ‘단발미인’이라 하여 뭇사람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엔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몇몇 여인이 단발했지만, 1930년대 중반부터 단발이 크게 번졌다. 일부 여성은 단발에 ‘물결을 일으키는’ 파마도 했다. 겉모습만이 아니다. 생각과 취향이 남다른 사람이 생겨났다. 1920년대 중반부터 그들을 일컬어 모던 보이, 모던 걸이라고 불렀다. 모던 세대들은 사랑법도 새로웠다. 그들은 자유연애를 바랐다.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누구인지를 딱 부러지게 정의 내리기는 힘들다. 모던 세대란 도시와 서구 또는 일본문화를 즐기며 근대를 적극 받아들인 신세대로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대개 이들은 식민지 현실이나 사회모순에 관심을 두지 않고 ‘모던’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다. 모던 보이, 모던 걸은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영화가 문화 영역에서 터를 잡았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배우를 따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축음기가 보급되면서 대중음악 시장이 커졌다. 1930년대 초반 ‘레코드의 홍수, 유성기의 천하’라는 말이 떠돌았다. 모던 보이는 근대적 유흥공간을 찾아 여가와 유흥도 즐겼다. ‘거리의 오아시스’ 다방에서 근대의 상징처럼 커피를 마시며 서양음악을 듣기도 했다. 그 무렵 다방은 하나의 문화공간이기도 하고 ‘도시인의 피난처’이기도 했다. 그러나 카페는 문제가 있었다. 도시의 분위기를 좇던 모던 보이를 ‘에로’의 길로 안내한 것이 바로 카페였기 때문이다. 카페란 여급이 술시중을 드는 곳에서 비싸게 술을 먹는 곳이었다. 여급에게 팁도 주어야 했다. 카페는 ‘퇴폐적 취미’를 발산하는 곳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카페를 ‘에로의 신전’ 또는 ‘향락 제작소’라고 불렀다. 모던 보이들은 백화점 가기를 좋아했다. 1930년 일본 미쓰코시 백화점이 문을 연 뒤 잇달아 히라다·조지야·미나카이·화신백화점 등이 문을 열었다. 백화점의 화려한 쇼윈도는 ‘시각의 쾌락’을 맛보게 한다. 최첨단 기기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으리으리한 백화점에 들어선다. 갖가지 물건을 쓰임새에 따라 가지런하게 분류해 놓은 백화점은 ‘과학적’이다. 매장 앞에는 ‘어여쁜 숍걸’이 매우 상냥하다. 어디 그뿐인가. 백화점은 호화로운 식당과 전람회를 열 수 있는 전시공간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모던 보이들은 ‘도시의 심장’인 백화점에서 도시의 감각과 유행의 물결을 느꼈다. 모던 보이는 갑자기 닥쳐온 근대 도시의 습속을 하루라도 먼저 몸에 익혀야 했다. 그러한 모던 보이에게 경성은 근대의 훈련장이자 여가와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유흥의 도시였다. 그들은 자기가 경험하는 근대가 ‘혼종의 근대’ 또는 ‘식민지 근대’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 식민 도시를 거닐고 근대를 소비했다. ●이재유의 경성 1936년 12월 25일이었다. 농사꾼, 장돌뱅이, 노동자, 학생 등으로 변장한 32명의 경찰이 ‘검거 중대’를 만들어 창동 남쪽에서 시골 농민 차림인 30대 초반의 한 남자를 체포했다. 일제에 맞서 비합법 혁명운동에 몸을 던졌던 이재유였다. 이재유는 식민지 조선에서 보통 사람으로 살기에는 너무나 ‘불온’했다. 이재유는 일제 식민지 체제에서 해방되고 노동자와 농민이 새 나라의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려 했다. 이재유는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굳게 믿었다. 이재유의 정세 판단은 헛된 꿈에 지나지 않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혁명적 낙관주의 없이 어떻게 온몸을 던질 수 있겠는가. 1930년대는 대공황이 닥쳐와 자본주의가 큰 위기에 빠졌다. 숨통을 연장하려는 자본주의는 노동자와 농민을 더욱 수탈했다. 이에 맞서 곳곳에서 노동자 투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 투쟁은 아직 공장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농민투쟁도 기껏해야 군단위에 머물고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툭툭 불거지는 여러 투쟁을 한데 묶어 한꺼번에 타오르는 들불로 만들 수는 없을까. 이재유는 1920년대 노동조합·농민조합과는 다른 혁명적 노동조합·혁명적 농민조합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이 조직은 선진 활동가들의 비합법 모임이다. 그러나 혁명적 노동조합과 혁명적 농민조합만으로 혁명운동을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재유가 보기에 혁명운동을 앞장서 이끌 혁명가들의 조직인 ‘조선공산당’이 없으면, 혁명이란 헛된 꿈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공황을 벗어나려고 제국주의자들이 전쟁에 뛰어드는 형국에서 반제국주의 투쟁을 조직하려 해도 당은 꼭 있어야 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이재유는 1920년대처럼 전국적인 당 조직을 먼저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역에서 시작해서 전국으로 확장하는 당 조직을 만들려 했다. 그는 운동의 근거지를 경성으로 삼았다. 이관술, 김삼룡, 이현상, 이순금, 정태식 등 수많은 동지가 그와 함께했다. 이재유 수사기록에는 “요즈음 경성을 중심으로 일어난 거의 모든 공산주의운동의 흑막으로 이재유가 활동함으로써 수많은 청년 남녀가 해를 입었다.”고 적었다. 이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재유 조직에는 학생과 노동자, 농민도 많았다. 이재유는 피검과 고문, 옥살이, 탈옥, 재검거를 되풀이했다. 일제 탄압으로 조직이 무너지면 다시 세우면서 굽힘 없이 혁명운동을 했다. 이재유는 1932년에서 1936년 말까지 ‘경성 트로이카’, ‘경성재건그룹’, ‘조선공산당재건 경성준비그룹’을 만들었다. 이재유에게 경성은 혁명운동의 근거지이자 그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킬 발판이었다. ●모던 보이의 ‘핑크’ vs 이재유의 ‘적색’ 1930년대 일본에서 ‘에로’가 유행했다. 이것은 하나의 문화 현상이었다. 왜 그랬을까. 한 연구에 따르면, “1930년대 ‘공황과 전쟁의 시대’를 맞이하여 일본 청년들은 일본의 긴자거리를 배회하며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핑크’가 되거나 진지하게 사회주의 혁명을 실천하는 ‘마르크스 보이’, ‘엥겔스 걸’이 되어 ‘아카(red)’가 되는 것, 둘 가운데 하나였다.” 식민지 조선도 이와 비슷했다. 식민지 조선의 모던 보이는 경성의 혼마치(지금의 충무로)부근을 서성였다. 이 ‘핑크’들은 카페와 기생집을 드나들며 향락의 길로 들어섰다. 이와 상반되는 ‘마르크스 보이’, ‘엥겔스 걸’도 조선에 있었다. 1920년대 근대 교육을 받은 젊은이 사이에서 사회주의가 크게 유행하여, “입으로 사회주의를 말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졌다.”고 했다. 이 새 세대를 일컬어 조선에서도 ‘마르크스 보이’, ‘엥겔스 걸’이라고 불렀다. 1920년대 신문과 잡지에는 거의 빠짐없이 사회주의 관련 글이 실렸고,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을 비롯해 주요 사회주의 글도 번역됐다. “사회주의를 믿고 안 믿는 것은 다른 문제요, 사회주의가 실현되고 안 되는 것도 다른 문제다. 다만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는 알아야만 행세를 하게 된 것이 오늘의 형편이다.”는 책 광고까지 있었다. 일제 기록에 따르면, “예전의 독립운동이 실패를 거듭함으로써 초조해진 민중에게 사회주의운동은 일종의 자극과 광명을 주었다.” 1905년에 태어난 이재유도 ‘마르크스 보이’였다. 개성 송도고보에 다닐 때부터 ‘마르크스 보이’가 된 이재유는 동맹휴학으로 퇴학당했다. 그 뒤 그는 여러 단체에서 실천운동을 하다가 옥살이를 했다. 감옥에서 나온 이재유는 1932년 ‘경성트로이카’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적색’ 혁명가가 되었다. ‘트로이카’란 “몇몇 지도부가 먼저 당의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세 마리 말이 자유롭게 마차를 끄는 것과 같이 회원 모두가 저마다 자유롭게 선전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이재유는 “일생을 혁명가로서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남기기로 결심했다.” 그는 감옥에서도 조선어 사용금지 반대, ‘수감자 대우 개선’ 등의 투쟁을 했다. 이재유는 형이 다 끝나고도 전향하지 않았기 때문에 청주보호교도소에 갇혔다. ‘핑크’의 모던 보이가 ‘메이크업’한 경성을 누빌 때 지하에서 혁명운동을 했던 이재유, 그는 1944년 10월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뒷날 사람들은 그를 “비합법 혁명운동사에서 최고의 기록을 남긴 사람”으로 기억했다. 최규진(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
  • 中 언론보도서 빠진 원자바오… ‘왕따설’

    권력교체가 이뤄지는 18차 전국대표대회(전대)가 진행 중인 가운데 중국의 관영 언론들이 원자바오(溫家寶) 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국무원 총리의 전대 동정을 늦장 보도해 공산당 내부 권력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9일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등 관영언론들은 일제히 당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담화를 소개했으나 유독 원 총리만 제외시켰다. 전날 전대 개막식에서 정치보고를 발표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제외한 나머지 당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들은 모두 같은 날 오후 각자 소속된 지역의 대표단 분임 토론에 참석했고, 관련 담화 내용은 당일 저녁 전국 뉴스 프로그램인 신문연보와 9일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지면 등 조간 신문에서 각각 상세히 소개됐으나 원 총리만 이례적으로 빠진 것이다. 원 총리의 담화는 하루 늦은 9일 오후 4시쯤에야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보도됐다. 중국에서 주요 지도자의 보도 누락, 지연 등은 비정상적인 실각이나 퇴진을 암시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 전문가들은 대표적인 우파 인물인 원 총리만 이례적으로 ‘왕따’를 당한 것은 중국이 권력교체기를 맞아 당내 노선 논쟁과 권력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방증으로 보고 있다. 원 총리는 9명의 상무위원 가운데 유일하게 서방의 보편가치를 인정하는 등 ‘튀는’ 언행으로 배척을 당해 왔으며 최근 일가의 ‘비밀 재산’ 폭로 기사도 좌파의 공격이란 분석이 나온 바 있다. 일각에서는 원 총리에 대한 보도 누락은 당의 단합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전대에서 정치체제 개혁과 관련한 민감한 발언을 쏟아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원 총리는 전날에도 “공산당과 국가의 영도(지도) 제도를 개혁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한편 법치를 실현해야 한다.”며 “이 같은 임무는 매우 중요하고 절박한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안철수, 양대 노총 찾아 비정규직 달래기

    안철수, 양대 노총 찾아 비정규직 달래기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9일 양대 노총을 찾았다. 지난달 24~25일 쌍용차 해고노동자 농성장과 현대차 비정규직 근로자 고공 농성장을 방문한 데 이어 노동계 표심을 겨냥한 행보다. 안 후보 측은 “어제 기업주, 재벌을 대변하는 전경련 회장단을 만났다면 오늘은 또 다른 중요한 축인 양대 노총을 방문한 것”이라며 “여러 계층,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만나고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는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을 찾아 정의헌 위원장 직무대행과 정용건 부위원장, 양성윤 사무총장 직무대행 등 민주노총 지도부를 만났다. 안 후보 측에서는 노동연대센터의 이용식 대표와 곽태원 상임위원이 배석했다. 안 후보는 “비정규직 문제는 차기 정부가 반드시 풀어야 할 중요한 국정과제 중 하나”라면서 “노사정위원회의 위상을 높이고 협력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 비정규직 노동자와 자영업자를 노사정위원회에 포함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지난달 제안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 민주노총도 참여해 달라고 부탁했다. 정 위원장 직무대행은 “이명박 정권에서 노동자와 서민의 삶의 고통이 컸다.”면서 “목숨을 걸고 생존권 투쟁을 벌이는 노동자 문제가 하루속히 해결되도록 안 후보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 달라.”고 주문했다. 안 후보는 이어 여의도 한국노총 회관에서 문진국 위원장을 만나 노동계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안 후보는 한국노총에도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말 민주당이 민주통합당으로 새로 출범할 때 시민사회세력과 함께 한 축으로 참가했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선대위의 노동위원회 위원장도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이 맡는 등 문 후보 측과 밀접한 관계다. 문 위원장은 “안 후보가 지난달 발표한 고용·노동정책은 한국노총의 정책과 비슷한 것들이 많다.”면서 “안 후보가 노동기본권 보장과 노조법 개정에 힘을 실어주면 노동자에게 환영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KBS 새사장 후보에 길환영씨… 노조측 “부적격 인사” 반대

    길환영(58) KBS 부사장이 임기 3년의 차기 KBS 사장 후보로 선정됐다. KBS 이사회는 9일 서울 여의도 KBS 사옥에서 사장 공모 지원자 11명을 대상으로 면접 심사를 거쳐 길환영 부사장을 제20대 KBS 사장으로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하기로 했다. 길 사장 후보는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KBS 공채 8기(PD)로 입사했다. 대구방송총국장, 콘텐츠본부장 등을 거쳐 지난해 9월부터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가 사장에 취임하면 KBS PD 출신 최초의 KBS 사장이 된다. 한편 언론노조 KBS본부(이하 KBS 새 노조)는 길 사장 후보에 대해 부적격 인사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김현석 KBS 새 노조 위원장은 “이사회가 정치권의 오더를 받아 임명한 사장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오는 24일 사장 첫 출근 날부터 출근 저지 투쟁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노조는 길 사장 후보가 ‘이승만 다큐’, ’이병철 탄생 기념 열린음악회’ 등 정권 편향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며 반발해 왔다. 이에 따라 이날 오전 5시로 예정됐다가 유보된 KBS 새 노조의 총파업 재개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복수노조인 KBS 새노조 외에 1노조도 새 사장 후보자 11명 가운데 적격자가 없어 누가 되더라도 다시 파업의 깃발을 들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中 시진핑시대] “시진핑 권력승계 둘러싼 中의 정치암투… 뿌리째 끝장내는 잔혹성 더해져 진행중”

    [中 시진핑시대] “시진핑 권력승계 둘러싼 中의 정치암투… 뿌리째 끝장내는 잔혹성 더해져 진행중”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이 오는 15일 18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전대)에 이어 열리는 18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18기 1중전회)를 통해 일인자인 총서기로 등극하더라도 그 위상이 확고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시 부주석의 권력승계를 둘러싸고 건국 이후 최대의 권력투쟁이 벌어졌고, 그 수법은 더욱 잔혹해졌다. 그리고 장막에 쌓인 권력암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우파 역사학자인 장리판(章立凡)은 시 부주석의 권력승계를 둘러싸고 치열한 암투가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그가 전하는, 장막에 가려진 중국 권력교체의 이면은 사뭇 충격적이다. 장리판과의 인터뷰는 18차 전대 개막 전날인 지난 7일 베이징 중심가인 총원먼(崇文門)의 한 타이완 식당에서 이뤄졌다. →시진핑 권력승계 과정을 평가한다면. -총칼만 안 들었을 뿐 신중국 건립 이후 최대 권력투쟁이다. 시작은 결국 솽카이(雙開·당적과 공직 동시 박탈) 처리된 보시라이(薄熙來)의 권력 찬탈 기도에서 비롯됐다. 과거 권력투쟁 사례들과 비교할 때 퇴로와 체면을 남겨주지 않고 뿌리째 뽑아내 끝장을 보는 잔혹성이 중국 권력투쟁의 새로운 추세로 자리잡고 있다. →암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됐나. -시 부주석이 지난 9월 2주간 모습을 감춘 것은 권력투쟁 과정의 ‘시위’ 성격이었다. 어떤 혼란이 생기는지 보여줌으로써 일련의 사건을 처리하는 데 있어 자신의 지분을 강조한 것이다. 권력암투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보시라이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노골화됐다. 한쪽에선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와 단절시킴으로써 보시라이를 구하려 했지만(※좌파의 시도로 해석됨), 다른 쪽에선 보시라이의 죄상을 공개해 그의 일가를 멸문(滅門)시켰다(※후진타오, 원자바오 등 우파의 공세가 이어졌다는 뜻). 이 과정에서 시각장애 인권운동가 천광청(陳光誠)이 산둥(山東)성에서 탈출, 사법계통을 관장하는 저우융캉(周永康) 정법위 서기에게 치명상을 남겼다(※우파들이 보시라이의 후원자인 저우융캉을 공격하기 위해 천광청 탈출을 도왔다는 뜻). 공격과 반격은 계속됐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로 촉발된 반일시위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지지자들을 대거 동원함으로써 위협감을 줬고, 원 총리의 비밀재산도 폭로했다(※좌파들의 반격). 원 총리는 돌연 ‘선샤인법’(공직자 재산공개법)을 전면 추진할 것 같은 제스처를 취했는데 이는 재산을 공개하려면 다 같이 공개하자는 역공인 셈이다. →시진핑이 권좌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은. -중국에는 마오쩌둥·덩샤오핑(鄧小平)과 같은 절대권력자가 사라지면서 각 파벌의 원로들에 의해 후계자가 합의로 낙점되는 문화가 생겨났다. 시진핑이 첫 사례다. 원로들은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후덕하며 말을 잘 듣는 사람을 좋아한다. 혼란을 만들지 않고 (자신들의)이익을 지켜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어떤 색깔을 가졌는지 그동안 드러낸 적이 없고, 동시에 적도 만들지 않았다. →중국의 미래 권력구도는. -태자당(당·정·군 혁명 원로의 자제그룹)과 퇀파이(團派·공산주의청년단파)의 양대 구도가 될 것이다. 상하이방(상하이지역 기반 정치집단)의 수장 장쩌민(江澤民)도 엄밀히 말하면 태자당과 같은 훙얼다이(紅二代·혁명2세대)이고, 상하이방은 태자당을 통해 그 권력을 영속시키기 때문에 양대 구도가 형성된다. 시진핑은 태자당 위주의 권력을 구축하려 들 것이고, 후진타오의 계승자인 리커창(李克强)은 공청단이 세력을 잡기를 바란다. 중요한 변수는 파벌이 아닌 이익이 사람을 움직인다는 데 있다. 류윈산(劉雲山) 중앙조직부장은 공청단 출신이지만 장쩌민의 사람이 됐고, 장더장(張德江) 충칭(重慶)시 당서기는 장쩌민 계열이지만 광둥(廣東)성 당서기 시절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勛)을 극진하게 모셔 시진핑과도 끈끈하다. →시진핑의 앞날은. -중국은 지금 외세 침략이 없다는 점을 빼고 청나라 말기와 꼭 닮았다. 풍랑을 만난 배가 침몰하지 않기 위해 무거운 짐을 내던져야 하듯 시진핑 역시 기득권 세력의 이익 보따리를 도려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집권 초기에는 감세, 사회보장 강화 등 민생을 챙기는 쪽으로 국민들의 불만을 달래겠지만 ‘밑천’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 시진핑의 과제다. 글 사진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역사학자 장리판은 공산당 거침없이 비판하는 우파 지식인 장리판(章立凡·62)은 마오쩌둥(毛澤東) 옹호자들이 ‘공공의 적’으로 꼽는 대표적인 우파 지식인이다. 중국 역사학계 대표 주자로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을 지냈다. 건국 후 식량부 부장(장관) 등을 지낸 부친 장나이치(章乃器)는 마오쩌둥 통치 시절인 1957년 우파로 몰려 숙청됐다. 홍콩의 명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중화권 언론을 통해 중국 공산당을 거침 없이 비판해 왔다.
  • “왕리쥔도 부적절한 성관계”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와 마찬가지로 그의 실각에 중요한 역할을 한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부시장 겸 공안국장도 여러 명의 여성과 부적절한 성관계를 가진 사실이 확인됐다고 충칭일보가 지난 8일 보도했다. 왕 전 국장이 지난 9월 24일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중급인민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을 때 적용됐던 직무유기·반역도주·직권남용·뇌물수수 등 4가지 혐의 외에 권력을 이용해 여성들과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는 등 중대한 기율위반 사실이 적발됐다는 것이다. 왕 전 국장은 금품수수 사실도 드러나 공산당 및 정부 고위 공직자로서 청렴 의무를 위반했기 때문에 솽카이(雙開·당적 및 공직 박탈) 처분을 받았다. 특히 이날 보도는 왕 전 국장이 1심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고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사건이 사실상 종결된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베이징 정가에서는 주요 포털 및 언론 웹사이트들이 일제히 왕리쥔 사건을 보도한 데 주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만간 보 전 서기 재판이 시작될 예정인 가운데 그의 부적절한 성관계를 부각시키기 위해 왕 전 국장의 성추문을 흘렸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보 전 서기 처리가 좌우파간 권력투쟁의 결과로 비쳐지는 것을 경계하면서 ‘추잡한’ 사생활과 부정부패에 초점을 맞춰 형사처벌 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공산당 중앙기율심사위원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보 전 서기는 뇌물수수·직권남용·인사규정 위반 외에도 여러 명의 여성과 부적절한 성관계를 가진 혐의를 받고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현대차, 불법파견 8년째 모른 척… 이젠 인정하라”

    “현대차, 불법파견 8년째 모른 척… 이젠 인정하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노사 특별협의회가 40여일 만에 재개됐지만 양측의 이견으로 험난한 교섭을 예고했다. 노사 교섭위원들은 8일 울산공장에서 만나 앞으로 교섭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 나가자는 원론적인 입장만 확인했다. 교섭에 나선 노사의 입장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쉽게 해법을 찾지 못하면서 23일째 철탑에 올라 농성을 벌이고 있는 사내 하청 해고 근로자 최병승(38)씨와 비정규직 노조 천의봉(31) 사무국장의 고공 농성도 장기화될 전망이다. 최씨는 문제 해결을 위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것과 관련,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특별협의회가 재개되더라도 해법을 쉽게 찾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하지만 고공 농성이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근로자 불법 파견에 맞서 8년간 벌인 노동자들의 힘겨운 투쟁을 세상에 알리는 기회가 됐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불법 파견 승소 판결 당사자인 최씨는 천 사무국장과 함께 지난달 17일부터 송전 철탑에 올라 ▲사측의 신규 채용 중단 및 불법 파견 인정 ▲비정규직 근로자 전원 정규직화 ▲불법 파견으로 근로자 임금 갈취한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구속 등을 요구하고 있다. 최씨는 “비정규직 문제는 그동안 세 차례의 국정감사를 통해서도 해답을 찾지 못하면서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조차 무시하는 등 법 자체를 어기고 있다.”면서 “그래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8년 동안 현대차의 불법 파견에 맞서 힘겹게 투쟁하고 있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고공 농성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별협의회가 오늘 열렸지만 처음부터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대차가 불법 파견을 인정하는 전향적인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대차에서 불법 파견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면 집행부 등과 논의해 고공 농성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는 “현대차가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달렸다.”면서 “불법 파견을 인정하고 교섭에 나서면 집행부와 논의해 고공 농성을 중단할 수 있는 만큼 (현대차의) 국면 전환 노력이 필요하다. 8년 동안 이를 인정하지 않았던 만큼 공식적인 절차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현대차가 불법 파견만 인정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세부적인 사안은 쉽게 풀릴 것으로 본다.”면서 “그렇지만 처음부터 기간을 정해 놓고 고공 농성을 시작한 것은 아닌 만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투쟁할 계획”이라고 강조해 농성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음을 내비쳤다. 그는 대선 주자들의 방문과 관련해 “유력 대선 후보들이 바쁜 가운데 농성장을 찾아줘 매우 고맙다.”면서도 “장기적인 해결책도 중요하지만 대법원 판결까지 나온 만큼 빠른 시일 내 해결할 수 있는 단기 처방을 마련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오바마가 당선 연설서 가장 많이 쓴 단어는?

    ‘변화’(Change)와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라는 슬로건으로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4년 전, 그의 연설로 인해 전세계가 연설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됐다. 이는 단어 하나하나의 선택에서부터 억양, 호흡까지 세계 최고의 브레인들과 함께 만들어낸 그의 연설이 미국인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런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미 대선에서 재임에 성공한 승리 연설에서 주로 택한 단어에는 무엇이 있을까. 9일 일본 야후 재팬에 실린 마이나비 뉴스 보도에 따르면 세레고 저팬(세레고 글로벌의 일본 계열사)이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 연설 내용을 대상으로한 키워드 트렌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지난 7일과 지난 2008년 11월 5일 발표한 승리 연설에서 사용 빈도가 높은 키워드를 순위로 공개했다. 그 결과를 보면, 올해에는 “워크”(work·일)가 15회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는 “컨츄리”(country·국가)가 13회, “포워드”(forward·앞으로)가 9회, “퓨처(future ·미래)”“호프”(hope·희망 혹은 기대)가 각각 8번씩 반복 사용됐다. 이에 반해, 4년 전 연설에서는 “투나잇”(tonight·오늘밤)이 13회로 가장 많이 사용됐다. 이어 “피플”(people·사람들) 12회, “네이션”(nation·국가 혹은 국민)이 8회, “예스 위 캔”(Yes We Can·우리는 할 수 있다)이 7회, 그리고 “체인지”(Change·변혁)와 “호프(hope·희망)가 각각 6번씩 사용되고 있어 올해와는 크게 달랐다. 이에 대해 세레고 저팬은 “4년 전 당선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생각과 의지를 나타내는 단어를 많이 선택한 반면, 이번 재임 성공 연설에서는 앞으로의 일에 대한 신념을 나타내는 단어를 많이 썼다.”고 분석했다. 즉, 그가 이번 연설에서 강조한 말은 “워크(work), 파이트(fight), 잡(job)”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말처럼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세레고 저팬이 발표한 오바마 대통령이 승리연설에서 사용 빈도가 높았던 키워드 순위다.    2012년 11월 7일  1위 work (일) 15회  2위 country (국가) 13회  3위 forward (앞으로) 9회  4위 future (미래) 8회  4위 hope (희망, 기대) 8회  6위 believe (믿는) 7회  6위 fight (투쟁) 7회  6위 thank (감사) 7회  9위 family (가족) 5회  9위 job (일) 5회    2008년 11월 5일  1위 tonight (오늘 밤) 13회  2위 people (사람들) 12회  3위 nation (국가 국민) 8회  4위 Yes We Can! (우리는 할 수 있다) 7회  5위 Change (변혁) 6회  5위 hope (희망) 6회  7위 answer (응답) 5회  8위 first (처음) 4회  8위 generation (세대) 4회  10위 democracy (민주주의) 3회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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