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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기숙 “미투, 사생활 폭로 아냐…‘사이비 미투’ 오염 시작”

    조기숙 “미투, 사생활 폭로 아냐…‘사이비 미투’ 오염 시작”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모처럼 피해자 여성의 용기 있는 폭로가 사이비 미투에 의해 오염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조 교수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금은 미투를 오염시키는 언론을 경계할 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미투는 공인의 성적 추문이나 사생활을 폭로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조 교수는 “미국에서 미투 운동은 위력과 위계에 의한 반복적이고 상습적인 성폭행을 폭로하는 데에서 시작됐다. 상대의 권력이 너무 커 조용히 법적으로 해서는 이길 수 없기에 다수의 여성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실명공개로 한 남성의 추행을 연대 고발함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하고 여론재판을 하게 된 것”이라며 “법치국가에서 여론재판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이런 특별한 경우에 한해 효력을 발휘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나 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일회적인 성추행(으로 느꼈던 행위), 그것도 당시 권력이 없는 사람의 미수 행위, 여러 여성에게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던 것이 아니라 한 여성이 한 번 경험한 것은 미투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Me only(미 온리)일 뿐”이라며 “게다가 익명에 기대 증거나 논리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사생활을 폭로하는 건 정치를 시궁창에 처박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 교소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성추문 사례를 언급하며 “미국 경제를 역대 최고의 호황으로 이끈 클린턴은 사생활이 도덕적이어서 훌륭한 대통령이었나?”라고 했다.조 교수는 “위계와 위력에 의한 상습적 성범행만이 폭로에 의해 국민적 공감을 얻는 미투로 자리 잡을 수 있다”라며 “일부 언론은 미투와 사이비 미투를 구분할 능력도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론에 대한 지속적 감시와 비판이 없으면 미투운동도 결국은 사이비미투로 오염되면서 사그라들까 두렵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다음은 조기숙 교수 페이스북 글 전문 <지금은 미투를 오염시키는 언론을 경계할 때> 내가 지난 해 말, 언론의 자유를 포기하고 정치적 발언을 금하겠다고 한 이유는 내 발언을 의도적, 상습적으로 왜곡하는 언론에 대한 항의를 표하기 위함이다. 내 발언이 언론에 왜곡되면서 혹시라도 문재인정부의 성공에 부정적 요인이 될까봐 침묵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이들이 단식을 하거나 침묵시위를 했다. 생명권, 언론의 자유 등은 정부가 보장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태어나면서 타고나는 것이라 천부인권이라 부른다. 같은 시민권이라도 투표권이나 복지권 등은 국가가 보장해줘야만 누릴 수 있는 시민권(civil rights)이라면 천부인권은 국가가 개입하지 않아야 개인이 누릴 수 있는 권리라 civil liberties라 부른다. 즉, 이들 권리는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데, 하늘이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나와 관련된 정치인에 대해 댓글을 단적이 있다. 담벼락에서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논란에 휩싸이고 싶지 않아 댓글을 달았을 뿐인데 “정치적 발언 안한다더니 왜 하냐”며 시비를 건 사람이 있었다. 이건 정치적 문제이기 이전에 내 문제였다. 내가 완전히 침묵하겠다고 한 적도 없거니와 설령 내가 정치적 발언을 한다해도 그건 누구도 참견할 수 없는 나의 천부인권이다. 나의 권리 포기는 오로지 나만이 결정할 수 있을 뿐, 타인이 참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하느님이나 되는 줄 착각한 것이다. 단식투쟁을 하는 사람에게 “소금과 물을 먹으며 단식하는 게 무슨 단식이냐”며 시비를 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에게 죽어라 죽어라 하는 행위이다. 앞으로 내 발언이 정치적인지 아닌지 따지는 사람은 천륜을 저버린 것이니 차단할 생각이다. ******************************************************************* 모처럼 피해자 여성의 용기있는 폭로가 사이비 미투에 의해 오염되기 시작했다. 미투는 공인의 성적 추문이나 사생활을 폭로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미국에서 미투운동은 위력과 위계에 의한 반복적이고 상습적인 성폭행을 폭로하는 데에서 시작됐다. 상대의 권력이 너무 커 조용히 법적으로 해서는 이길 수 없기에 다수의 여성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실명공개로 한 남성의 추행을 연대 고발함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하고 여론재판을 하게 된 것이다. 법치국가에서 여론재판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이런 특별한 경우에 한해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러나 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일회적인 성추행(으로 느꼈던 행위), 그것도 당시 권력이 없는 사람의 미수행위, 여러 여성에게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던 것이 아니라 한 여성이 한 번 경험한 것은 미투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Me only일 뿐이다. 게다가 익명에 기대 증거나 논리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사생활을 폭로하는 건 정치를 시궁창에 처박는 일이다. 미국 경제를 역대 최고의 호황으로 이끈 클린턴은 사생활이 도덕적이어서 훌륭한 대통령이었나? 위계와 위력에 의한 상습적 성범행만이 폭로에 의해 국민적 공감을 얻는 미투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일부 언론은 미투와 사이비 미투를 구분할 능력도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우리사회에 정작 미투가 필요한 곳은 지속적인 왜곡과 오보로 한 인간을 인격파탄으로 이끄는 일부 언론들이다. 자격 미달의 언론이 미투 운동을 좌지우지 하는 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언론에 대한 지속적 감시와 비판이 없으면 미투운동도 결국은 사이비미투로 오염되면서 사그라들까 두렵다.! 이혜리 기자 lee@seoul.co.kr
  • 강감창 서울시의원 ‘의정활동 100대성과 보고서’ 펴내

    강감창 서울시의원 ‘의정활동 100대성과 보고서’ 펴내

    서울시의회 강감창 의원(송파, 자유한국당)은 「10년후 송파, 의정활동 100대성과 보고서」라는 제목의 의정보고서를 펴내 지금까지의 의정활동 성과를 주민들에게 자세히 공개했다. 16페이지 분량의 「10년후 송파, 의정활동 100대성과 보고서」에는 지역구인 석촌동, 가락1동, 문정2동 관련 사업에 대한 예산 확보 내역 및 사업성과 뿐 아니라 자신의 의정활동 성적을 계량화하여 객관적 데이터로 제시했다. 의정활동 보고의 주요내용으로는 ▲지역구 교육환경개선사업비 140억 확보 ▲본회의장 발언 34회, 언론보도 1,200회 ▲9대 의회 출석률 100%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8회 수상 등이 제시됐다. 특히 주목할 만한 내용으로는, 도시는 사회적 약자부터 담아야한다고 강조하며 9년간의 투쟁으로 개미마을 주민을 지켜낸 것, 석촌시장 노점상의 존치방안을 모색해온 노력, 그리고 무허가 판자촌 화훼마을 주민을 위해 펼친 활동 등이다. 강감창 의원의 의정활동은 각 지역별 맞춤형공약과 특화된 접근방식에서 차별화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지역별 키워드를 제시하며 주민들의 요구와 산적한 지역현안에 대한 명쾌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석촌동은 ‘석촌고분에서 찾아가는 송파의 미래가치 창조’, 가락1동은 ‘더 진화하는 빛’ 헬리오시티, 문정2동은 ‘행복한 주거권+환경권 지키기’를 키워드로 접근했다. 의정활동 보고에서는 석촌동을 변화시킨 내용으로 가득하다. ▲석촌호수~석촌고분간 명소화사업 추진 ▲석촌고분에서 찾아가는 송파의 미래가치창조 사업 ▲주민주도의 마을공동체사업 지원 ▲4차산업 활성화 노력 ▲금년 10월 개통 예정인 지하철 9호선 3단계사업 추진 ▲교육환경 및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이룩한 각종 사업 등 일목요연하게 제시했다. 가락1동 ▲가락아파트 재건축 3종 상향 결실 ▲탄천유수지를 주민친화적 공간개발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 ▲가락시장 재건축 문제 및 장기간 순환개발 문제 지적 등을 통해 헬리오시티를 지속적으로 진화시켜 나가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정2동의 주거권과 환경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내용으로는, ▲교육환경 개선 ▲가락시장내 도축장 이전 ▲문정지구 열병합시철계획 백지화 ▲동남로에 광폭의 녹지 조성 ▲탄천동측도로 훼밀리아파트 구간 250m 탄천연결녹지 조성 ▲문정지구 오피스텔의 주민주도형 관리인선출 지원 ▲문정지구를 동남권역의 신성장동력으로 발전시켜가는 활동이 담겨있다. 강감창 의원은 의정보고서를 통해, “도시는 사회적 약자와 미래가치를 담아야 한다”고 자신의 신념을 반복적으로 밝히고 있다. 도시의 미래가치를 담아내는 활동으로는 △석촌호수와 석촌고분을 중심으로한 명소화거리 조성, △주민주도형 마을기업 발굴 및 역사문화기반 마을공동체사업지원, △석촌역과 문정지구, 등 송파대로를 중심으로 한 송파의 미래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전문성을 바탕으로 열정적으로 일하는 시의원, ‘정책에는 당당하게 주민께는 겸손하게 다가서는 반듯한 시의원이 되겠다’고 주민에게 약속한 초심을 잃지 않는 시의원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단독] “처음엔 무서웠는데 조폭도 사람이더라”

    [단독] “처음엔 무서웠는데 조폭도 사람이더라”

    학생운동으로 강력누범방 생활 택시강도·앵벌이·운동권 학생 같은 시대 산 다양한 군상 그려“산만 한 덩치에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사람들을 마주하니 머릿속이 하얘지더라고요.” 20년 전 일이지만 김홍모(47) 만화가에게는 그날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범죄자들이나 가는 거라 생각했던 구치소, 그것도 강력 전과 3범 이상들만 모이는 ‘강력누범방’에 들어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김 만화가가 8개월간의 옥살이 경험을 담아 펴낸 만화 ‘좁은방’(보리)은 그 생생한 기록이다. 학생운동을 하던 그는 ‘공안수’가 되어 1997년 8월 영등포 구치소에 들어간 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1998년 3월 출소했다. 김 만화가는 삼수 끝에 1992년 꿈에 그리던 홍익대 미대에 입학했다. 대학에 오기 전만 해도 ‘북한 사람들은 다 늑대처럼 생기고, 운동권 학생은 죄다 빨갱이’인 줄 알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5·18광주항쟁의 진실을 알게 된 뒤 본격적으로 운동권의 길로 들어섰다. 홍익대 3학년에는 미대 학생회장, 4학년 때는 총학생회 부학생회장이 돼 격렬한 정부 반대 투쟁에 나섰다. 수배를 받고 도망다니다 1997년 8월 붙잡혀 구치소에 들어갔다.지난 6일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만난 김 만화가는 “당시 경험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더니 ‘신기하고 재밌다’는 반응이 많아 2009년부터 시나리오를 썼다”고 설명했다. 이 시나리오로 2010년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창작 지원작에도 선정됐다. 이후 지식·교양만화 웹툰 플랫폼인 ‘어른’에 2015년 12월부터 1년여 동안 만화를 연재했는데, 어른이 적자로 문을 닫으며 마지막 회만 남겨둔 상태에서 연재가 종료됐다. 작품을 사랑하던 이들의 성원에 김 만화가가 마지막 회를 붙여 1년여 만에 한 권짜리 단행본으로 나왔다. 만화에서는 김씨가 수용됐던 ‘3동 상6방’을 비롯해 건달 상현과 춘삼, 택시 강도 춘길, 앵벌이 용식 등 감방 동기의 실명이 그대로 사용됐다. 다만 주인공 이름만 ‘홍모’가 아닌 ‘용민’으로 정했다. 김 만화가는 “단순히 내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동료의 이야기를 대변하고 싶었다”면서 “주인공 이름과 시나리오를 매끄럽게 하기 위한 일부 설정을 빼면 95% 정도는 모두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엔 무섭고 겁났는데 적응되니까 조폭도 결국엔 모두 사람이었다”고 떠올렸다. 예컨대 상현은 틈만 나면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 춘삼은 용민에게 연애편지를 써 달라 조르기도 한다. 용민이 구치소에서 정권 퇴진 운동을 벌이면 함께 민중가요를 부르고, 용민이 구치소 생활에 적응해 나태하게 굴면 “학생운동 하다 들어온 놈이 왈왈이(개) 짓을 하느냐”고 쓴소리도 잊지 않는다. 김 만화가는 “구치소에서 나온 뒤 조폭이었던 상현 형이 홍익대 총학생회에 찾아오기도 했다. ‘또 수배되면 숨겨줄 테니 전화 달라’며 술잔을 기울였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만화는 용민이 구치소에서 나오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현실의 주인공인 김 만화가는 학사경고 누적으로 제적돼 졸업하지 못했다. 김 만화가는 이후 집회 걸개그림과 선전물을 그리는 집단인 ‘그림공장’에서 활동하다 2006년 단행본 ‘소년탐구생활’로 만화가가 됐다. 지난해 동료들과 남파간첩 이야기를 다룬 만화 ‘빨간약’을 그려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3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지금은 제주도에서 살며 작업하다 가끔 서울에 올라온다. 그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볼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만화가가 된 것에 후회는 전혀 없다”고 했다. 좁은방에 관해 “80년대 독재정권 타도에 맞춘 학생운동과 달리 90년대 학생운동은 ‘극렬좌익’이라는 딱지가 여전한 것 같다”며 “9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싸웠는지 만화를 통해 독자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군청 앞 ‘확성기 소음 시위’…“스트레스 유발은 폭행” 유죄

    군부대와 행정기관 앞에서 2년 동안 장송곡을 틀어 악성 소음을 일으킨 시위자 4명에게 공무집행방해와 공동상해 혐의가 인정돼 실형이 선고됐다. 전주지법 형사4단독 노종찬 부장판사는 8일 육군 35사단의 전북 임실군 이전을 반대해 부대와 군청 앞에서 장송곡을 틀어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오모(64)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 등 2명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서모씨에게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악성 소음 시위에 대해 상해 혐의를 인정한 드문 사례다. 노 판사는 “상대방에게 고통을 줄 의도로 고성능 확성기를 틀어 피해자들에게 급성 스트레스를 준 것은 폭행에 해당하고 피고인들의 행위가 합리적인 의사전달 행위를 넘어섰다”면서 “피고인들이 죄질이 좋지 않지만, 고령이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35사단 임실 이전 반대투쟁위원회’의 관계자였던 이들은 부대 이전을 시작한 2013년 12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부대 앞에서 44~74데시벨로 장송곡을 틀어 업무와 장병 훈련을 방해하고 군인 4명에게 스트레스 반응과 이명 등 상해를 입힌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신계용 과천시장, 과기정통부 이전에 따른 자족기능 확보 대책 요구

    신계용 과천시장, 과기정통부 이전에 따른 자족기능 확보 대책 요구

    경기 과천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세종시 이전 반대 삭발 투쟁에 나섰던 신계용 과천시장이 6일 김부겸 행정자치부장관을 만나 지원 대책을 요구했다고 7일 밝혔다.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면담에서 신 시장은 과천시가 자족기능을 갖출 수 있도록 한국예술종합학교 과천 유치, 청사 앞 유휴지 개발, 보통교부세 지원 약속 이행, 과천복합문화광광단지 조성 등 건립 지원, 국무총리실 주관 특별대책팀 구성 등 구체적인 지원책을 제시했다. 이 자리에는 신창현 국회의원, 이홍천 시의회 의장, 김성훈 과천회 회장, 최창선 청사이전공동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이 함께 참석했다.신 시장은 “과기정통부 이전은 세종시에 청사가 신축되고, 시가 추진 중인 개발사업이 완료돼 재정적으로 안정되는 2021년 이후가 바람직”하다며 “시 특성에 맞는 보통교부세 지표 반영과 레저세 징수 수수료 요율을 3%에서 10%로 상향 조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과천시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그러나 청사 이전 계획은 각 부처 간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답했다. 또 “과천시에서 요구한 특별대책팀을 운영해 지역 현안을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과천 경마장으로 인한 교통정체 등에 대한 보상으로 지원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정보통신부 이전 후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입주는 검토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신계용 시장과 과천청사이전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 등 시민 350여명은 ‘중앙행정기관 이전계획 변경 공청회’가 열릴 예정이던 정부서울청사 별관 회의장을 점거하고 과기정통부 세종시 이전 반대 농성을 벌였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참정권 투쟁 이후 가장 뜨겁다… 지구촌 덮은 여성혁명 물결

    참정권 투쟁 이후 가장 뜨겁다… 지구촌 덮은 여성혁명 물결

    “때는 지금이다.”(Time is now)8일 110주년을 맞는 세계여성의날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해보다 뜨겁다. 지난해 미국과 유럽을 강타한 미투(#Me Too) 캠페인이 지구촌으로 퍼져 나가면서 페미니즘이 전 세계를 휩쓰는 이슈의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유엔여성기구는 110주년을 앞두고 “성평등과 정의를 위한 전례 없는 세계적인 물결 속에서 올해 세계여성의날을 맞이하게 됐다”면서 이번 세계여성의날을 관통하는 주제로 ‘때는 지금이다’를 언급했다.페미니즘 사상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만큼 8일 세계여성의날 행사도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릴 예정이다. 런던에서는 150여개의 관련 행사가 치러질 예정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워싱턴DC, 호주 멜버른에서 각각 여성 수십만명이 가두 행진을 벌일 것으로 기대된다고 CBS는 전했다. 애플은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프랑스 파리 마르셰 생제르맹에서 성평등을 주제로 기업 채용 행사를 열 계획이다. 사전 집회 및 행사도 곳곳에서 열리는 등 분위기도 진작부터 달아올랐다. 지난달 여성 참정권 100주년을 맞은 영국은 지난 4일 런던 트래펄가광장에 시민 수천명이 모여 “임금 격차를 줄이자”, “서프러제트(참정권을 위해 싸운 여성 운동가들)를 이어 가자” 등이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했다. 인스타그램에는 페미니즘과 관련한 해시태그 타임스 업(#Time’s up·그런 시대는 끝났다), 프레스 포 프로그레스(#Press for Progress·변화를 위한 압력) 등을 붙인 게시글 수십만개가 쏟아지고 있다. 미국 페미니스트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최근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최근의 여성운동은 내 인생을 통틀어 한번도 보지 못한 수준의 적극성을 띄고 있다”며 놀라워했다. 페미니즘 열풍은 지난해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스캔들로 촉발된 미투 캠페인이 도화선이 됐다. 미국에서는 2016년 힐러리 클린턴 당시 대선 후보가 강력한 여성 정책을 예고하며 젠더 이슈가 주목을 받은 터였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에는 그의 반(反)페미니즘 기조에 깊은 반감이 형성됐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0월 와인스타인이 30여년간 여배우들을 성추행·폭행했다는 폭로가 터져 나오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해시태그 미투(#Me Too) 캠페인이 시작됐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영화계뿐만 아니라 언론계, 정재계 등 사회 각 분야 유력 인사들의 성추문 스캔들이 연이어 폭로되면서 연쇄 추락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해 말 앨라배마주 연방상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인 로이 무어는 미성년자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면서 텃밭을 민주당에 내주기도 했다. 미투 캠페인은 유럽 사회도 뒤흔들었다. 마이클 팰런 전 영국 국방장관은 15년 전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나와 테리사 메이 총리에게 사직서를 제출하고 물러났으며 성희롱 의혹으로 조사를 받던 웨일스 자치정부의 칼 사전트 지역사회·아동부 장관과 노동당 당직자는 자살했다. 미투 캠페인은 평소 여성인권이 높은 북유럽 스웨덴에서도 벌어져 ‘안전 지대’가 없음을 실감케 했다. 스웨덴의 유명 예술가, 언론인,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 위원 등이 성폭행 가해자로 밝혀지자 스웨덴 유력지 다겐스 뉘헤테르(DN)는 “미투 운동은 이제 ‘혁명’이며 ‘1919년 여성 참정권 운동 이후 가장 큰 여성 운동’”이라고 보도했다. 미투 캠페인이 페미니즘 확산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성추문이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있는 일상적인 소재였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신하영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은 “기존의 여성주의는 학문으로서만 다뤄져 보통 여성들에게 동의를 받지 못했지만, 미투 캠페인 이후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남의 일이 아닌 바로 내 문제로 인식하면서 일상 속의 페미니즘을 말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진 환경 또한 미투 캠페인의 파급력을 더했다”면서 “과거 가정에만 머물렀던 여성들이 겪어 보지 못한 성추문은 오늘날 전 세계 일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굉장한 공감을 샀다”고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미투 캠페인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은 전반적으로 높아졌지만, 페미니즘 트렌드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뿐 뿌리 깊은 구조적 성 불평등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회원국 평균 남녀 임금 격차는 2016년 기준 14.1%로 최근 10년 사이 약 1.3%밖에 줄지 않았다. 여성 의원 비율도 10년 전 25.1%에서 2017년 기준 27.9%로 큰 변화가 없다. 신 위원은 “미투 폭로 이후 가해자의 탓,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분위기가 있는데 미투 캠페인이 폭발적으로 터질 수밖에 없었던 구조를 생각해야 한다”면서 “페미니즘 열풍이 실질적인 여권 향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여성을 대하는 방식에만 접근하지 말고 캐나다의 남녀 반수 내각처럼 정부가 공격적인 성평등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과르디올라 “노랑 리본은 정치적 메시지, FA 징계 받아들이겠다”

    과르디올라 “노랑 리본은 정치적 메시지, FA 징계 받아들이겠다”

    그동안 노랑 리본을 착용하는 것에 대해 정치적 메시지가 아니라고 반박해 온 펩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 감독이 결국 잉글랜드 축구협회(FA)의 규정을 위반했다는 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FA가 “특히 노랑 리본이라 정치적 메시지를 표현한 것”이어서 장비 및 광고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자신을 징계에 회부한 것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BBC가 5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이에 따라 청문회가 열리게 돼 곧 날짜가 잡힐 것으로 보인다. FA는 이미 두 차례나 공식 경고를 했지만 그는 지난해 12월 FA컵 경기 도중에도 리본을 착용했다. 앞서 아스널, 첼시와의 프리미어리그 경기 때는 리본을 옷깃으로 가린 채 나서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지난달 19일 위건과의 FA컵 5라운드 도중에는 옆줄 근처에서 경기를 지휘하면서도 리본을 착용했다. 청문회에서는 이것이 고의였는지, 아니면 그저 겉옷을 여미지 않아 일어난 일인지를 추궁하게 된다. 사실 FA는 경기 전후에는 어떤 복장 규제도 하지 않지만 90분 경기 중에는 정치적 메시지를 표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그가 노랑 리본을 처음 상의에 붙이고 나선 것은 지난해 11월. 당시 그는 고향인 카탈루니아 독립을 위해 투쟁했고 한달 전 독립 투표를 주도한 혐의로 수감된 두 정치인의 석방을 위해 착용했다고 설명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감옥에서의 하루는 이미 너무 많이 지내봤다. 지금 그들이 얼마나 거기 오래 있었나 한 번 보라”면서 “모두가 알듯이 조만간 리본을 다는 걸 멈출 수 있길 바란다. 감옥에 있는 모든 정치인들이 석방돼 집에 돌아가 가족과 함께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삶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리처드 콘웨이 BBC 라디오 5 기자는 과르디올라 감독이 사과를 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일하고 있는 나라의 규칙을 준수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했다. 하지만 유럽축구연맹(UEFA)은 공격적이지만 않은 메시지를 담으면 정치적 상징을 부착하는 행위를 인정하고 있어 서 FA가 너무 고루한 규정을 들이댄다는 과르디올라와 맨시티 구단의 입장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씨줄날줄] G2 정상의 위험한 독주/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G2 정상의 위험한 독주/이순녀 논설위원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어제 개막하면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장기 집권 공식화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국가주석직 2연임 초과 금지를 삭제하고, 시진핑 신시대 사상을 삽입한 헌법 개정안이 오는 11일 전인대에서 통과될 예정이다.개헌안에는 당원뿐만 아니라 공무원까지 모두 통제하는 초강력 사정기구인 국가감찰위원회 설립안도 포함됐다. 종신 집권도 가능한 안정적인 기반과 국가감찰위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양손에 거머쥐게 되는 것이다. ‘시황제’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건국의 아버지’로 27년간 절대권력을 누린 마오쩌둥(毛澤東)에 이어 권력을 쟁취한 덩샤오핑(鄧小平)은 집권 이후 개혁개방 경제 정책과 더불어 1인 독재를 경계하기 위한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했다. 국가주석 3연임 금지조항도 이때 생겼다. 이후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를 거치며 1인자의 권력은 더 줄어들었다. 하지만 시진핑은 달랐다.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어부지리 격으로 지도자가 된 시진핑은 집권하자마자 강력한 권력 집중화를 꾀했다. ‘반부패’ 카드로 정·관계를 장악하고, ‘중국몽’으로 중국 인민들의 자존감을 높여 민심을 얻었다. 시 주석은 이에 그치지 않고 마오쩌둥에 버금가는 절대권력을 향해 시동을 걸었다. 군사굴기의 야심도 숨기지 않고 있다. 중국은 이날 업무보고에서 국방 예산을 작년 대비 8.1% 늘리겠다고 밝혔다. 전년도 국방 예산 증가 폭 7%에 비해 높은 수치다. 향후 미국과 맞먹는 군사대국의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의 거침없는 욕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모한 독주와 맞물려 세계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주요 2개국(G2) 정상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할 두 지도자의 최근 행보는 상식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트럼프는 동맹국조차 예외 없이 관세 폭탄을 터트려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하겠다고 선전포고했다. 미국 주도로 세운 국제 자유무역질서를 스스로 부정하고, 보호무역에 올인하겠다는 트럼프의 편협한 사고방식은 공화당과 백악관 내부에서조차 비판과 이견이 나올 정도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글로벌 무역전쟁은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할 뿐이다. 브레이크 없는 차량처럼 질주하는 시진핑과 트럼프가 무역전쟁과 군비경쟁 등에서 본격적인 패권 다툼에 나설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렵다.
  • 금호타이어 노조 15일 총파업

    채권단의 중국 더블스타 매각 방침에 반발 중인 금호타이어 노조가 오는 9일 부분파업에 이어 15일 총파업에 나선다. 금호타이어 노조는 5일 “채권단이 해외 매각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면 9일 4시간 부분파업, 15일 하루 총파업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광주 시민의 고용과 지역경제 혼란 따위는 채권단의 안중에 없다”면서 “제2의 한국GM, 쌍용차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전면 투쟁에 나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밀양 ‘의열기념관’ 내일 개관

    밀양 ‘의열기념관’ 내일 개관

    경남 밀양시는 5일 항일 독립운동 의열투쟁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기념관을 7일 개관한다고 밝혔다. 시는 의열단 단장 김원봉 장군의 생가 부지(내이동) 150㎡와 생가 자리에 건립된 2층 건물을 2016년 11월 매입해 리모델링했다. 전국 최초 의열기념관으로 12억원이 들었다. 의열투쟁 주요 사건 관련 자료와 동영상, 김 장군의 연설 동영상 등 항일 독립운동 당시 목숨을 걸고 벌인 의열투쟁을 소개하는 다양한 자료를 전시한다. 밀양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게이라는 이유로 운전시험 못본 청년, 억대 배상금 받아

    게이라는 이유로 운전시험 못본 청년, 억대 배상금 받아

    성적 정체성을 이유로 운전면허시험 보지 못한 이탈리아 청년이 긴 법정투쟁 끝에 거액의 배상금을 받게 됐다. 2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탈리아 법원은 게이라는 이유로 차별 피해를 봤다며 다닐로 지우프리다(35)가 낸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면서 법원은 지우프리다에게 피해배상금 10만 유로(약 1억3300만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지우프리다는 10년 전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시험에 응시했다. 문제는 성별을 밝히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동성애자인 지우프리다는 자신은 게이라고 밝혔다. 당국은 돌연 '시험 보류'라는 결정을 내렸다. 아예 시험조차 치르지 못하게 된 지우프리다는 "명백한 성소수자 차별"이라고 강력히 항의했지만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지우프리다는 변호사를 고용, 운전면허 업무를 총괄하는 교통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25살 때인 2008년의 일이다. 의외로 빨리 나온 1심 판결에서 지우프리다는 승소했다. 재판부는 "교통부가 성소수자를 차별한 점이 인정된다"며 2만 유로(약 2660만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지우프리다는 재판에선 이겼지만 항소했다. 배상금이 너무 적다는 이유에서다. 2심은 지루하게 진행됐다. 장장 10년간 재판이 진행되면서 진이 빠질 만도 했지만 지우프리다는 포기하지 않았다. 드디어 최근 열린 최종 재판에서 법원은 또 지우프리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성적 취향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건 헌법이 보장한 권리"라며 기본권 침해가 인정된다고 봤다. 배상금은 1심보다 5배 많은 10만 유로로 불어났다. 법원은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공공기관이 성적 취향을 이유로 응시의 기회를 박탈한 건 매우 심각한 차별"이라고 꾸짖었다. 지우프리다는 "이번 법원의 판결은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성적 취향을 이유로) 매일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 성소수자 모두의 승리"라고 말했다. 사진=트위터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시인 고은의 성추행 #미투에 반박하는 ‘술집 마담’ 화제의 글

    시인 고은의 성추행 #미투에 반박하는 ‘술집 마담’ 화제의 글

    원로 시인 고은씨에 대한 충격적인 ‘미투(#metoo) 폭로’에 대한 반박의 글이 올라왔다. 1993년 언저리 서울 종로구 한 술집에서 여성이 포함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위 행위를 했다는 최영미 시인의 폭로에 대해 해당 술집 여주인으로 알려진 한모씨가 “소설”이라고 반박했다.한씨는 지난달 28일 오후 늦게 자신의 SNS 계정에 글을 올려 “최영미 시인이 언급했던것 처럼 문단에도 성추행 성희롱 성폭행 만연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면서도 “그러나 최 시인이 언급한 고은 시인은 그런 부류가 아닌것으로 기억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분은 승려출신이라는 자긍심이 항상 있었고 입으로는 수없이 기행적인 행동과 성희롱 발언을 언급 했을지언정 의자 위에 등을 대고 누워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자신의 아랫도리에 손을 넣고 만지고 그런 추태적 성추행 기행을 했던 기억은 아닌것 으로 안다”며 “그 시대 그시 절에는 성희롱이란 개념없이 노상방뇨도 하고 횡단보도 옆에 두고 차도로 뛰어다니고 질서와 상관없이 쾌쾌한 담배연기 속에서 질퍽한 밤 문화를 보내기도 했던 미성숙했던 문화적 흐름을 지금의 잣대로 처벌을 하는 건 심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특히 최영미 시인의 폭로 글에 등장한 “누워서 황홀경에 빠진 괴물을 위에서 내려다보더니 술집마담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아유 선생님두’”라는 대목에 대해서도 “최 시인이 고발장에서 마치 내 말인 것 처럼 인용한 글 ‘아유 선생님두’라는 말은 한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영미 시인 그대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질문하고 싶다. 탑골 공원 주변 정확한 장소명과 그 자리에 함께 동행한 인물명 그리고 고은시인의 추태 목격자 문인을 거명해달라”며 “문단에 물과기름 처럼 겉도는 최영미 시인 평소 욕심이 남다르다는건 알지만 문단의 거목을 낭설만 가지고 진흙탕으로 끌어들여 매장시키려하는 저의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또 “ 문단에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그런 사실이 없었다는건 아니다”면서도 “알맹이들은 빼고 껍데기를 논하면서 실체없이 허무하다. 그 시절은 남자 문인들보다 젊은 20~30십대 여성들이 문단에 등단 하고 싶어서 어떻게들 했는지 묻고싶다. 명망 높은 출판사에 시집 출간내고 싶어 어떻게들 했는지? 그러고서들 시대가 바뀌니 모든 책임들을 강자 약자로 분류를 한다면 그건 아닌것 같다”라고 주장했다. 한씨는 자신에 대해 “나는 최영미 시인이 동아일보에 쓴 고발장에서 언급한 ‘1992년 겨울에서1994년 봄 사이 탑골공원 인근의 한 술집’ 인 ‘탑골’을 운영 했던 주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시절만 하여도 탑골은 가난한 문인들이 낭만을 노래하고 배고프고 술고픈 문인들이 가난하지만 인정이 넘치고 눈물이 넘치던 순정이 어우러지는 문화적 공간”이라며 “있을수 없는 가공의 소설은 삭제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다음은 한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전문이다. 성추문 으로 사회가 요동을 친다. 썩거나 앓던 이는 언젠가는 뽑게 되어있다. 힘의 논리로는 강자가 약자를 추행하면 힘없이 당한자는 일생을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로 인하여 멍에로 끓려 다닌다. 성추행 폭로 고발자의 용기에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 화이팅!~ 하라고, 최영미 시인이 언급했던것 처럼 문단에도 성추행 성희롱 성폭행 만연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최시인이 언급한 고은시인은 그런부류가 아닌것으로 기억한다. 그분은 승려출신이라는 자긍심이 항상 있었고 입으로는 수없이 기행적인 행동과 성희롱 발언을 언급 했을지언정 의자 위에 등을 대고 누워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자신의 아랫도리에 손을 넣고 만지고 그런 추태적 성추행 기행을 했던 기억은 아닌것 으로 안다. 고은 시인은 시인이며 입답꾼 재담가다. 30년전 그시절 문화는 섹시하다. 입술이 매력적이다. 맛있게생겼다. 그런 농을 침을 흘려가면서 위안 삼아 많이들 입에 오르내리며 순정이있던 밤문화 시절이 있었다. 최루탄 가루에 콧물 눈물 흘리고, 암울했던 6월 항쟁과 민주화 투쟁의 연장선에서 시대의 아픔과 새희망을 노래하며 뜻을 함께 하는 문인들이 모여 그시대 그시절에는 성희롱이란 개념없이 노상방뇨도 하고 행단보도 옆에 두고 차도로 뛰어다니고 질서와 상관없이 쾌쾌한 담배연기 속에서 질퍽한 밤문화를 보내기도 했던 미성숙했던 문화적 흐름을 지금의 잣대로 체벌을 하는건 심한것 같다. .... 8살만 되어도 아이 손에는 핸드폰을 들려주고 각가정에는 승용차 성인1대씩 소유하고 전국 팔도를 자유자재로 유람하고 세계여행을 내땅 밟듯이 자유로이 문화생활을 즐기는 최첨단 문화왕국에서 금연지역 시각으로 희뿌연 30여년전 벌어졌던 성희롱 발언들을 어떻게 부풀려도 너무 부풀려 마녀사냥 하듯 죽일 죄인을 만드는것 해도 해도 너무 한것 같다. 최영미 시인 그대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질문하고 싶다. 탑골 공원 주변 정확한 장소명과 그자리에 함께 동행한 인물명 그리고 고은시인의 추태 목격자 문인거명요함. 문단에 물과기름 처럼 겉도는 최영미 시인 평소 욕심이 남다르다는건 알지만 문단의 거목을 낭설만 가지고 진흙탕으로 끌어들여 매장시키려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그래야만이 자신이 주목받기 때문인지? 아니면 성희롱 내지 성추행 또는 성폭행을 직접적 으로 당한적은 있는지? 펙트로근거를 올렸으면 한다. 여론에 휘말려 매장 당하게 하지 말고 정획한 펙트가 아니면 소설 그만 쓰고 반성할게 있으면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사죄하길 바란다. 그렇게 소설 쓰면서까지 자신을 홍보하고 싶나? 문인이면 문인답게 좋은글로 독자들에게 평가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설설설 갖으고 진실인 처럼 모든이의 눈과 귀를 어둡게 하지 말기를 ... 그렇다하여 문단에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그런 사실이 없었다는건 아니다. 알맹이들은 빼고 껍데기를 논하면서 실체없이 허무하다. 그시절은 남자 문인들보다 젊은 20~30십대 여성들이 문단에 등단 하고 싶어서 어떻게들 했는지 묻고싶다.?... 명망 높은 출판사에 시집 출간내고싶어 어떻게들 했는지? 그러고서들 시대가 바뀌니 모든 책임들을 강자 약자로 분류를 한다면 그건 아닌것 같다. 거두절미 하고 소설은 그만 쓰고 고은시인이 사회에서 지탄 받을 만큼 근거있는 기행 펙트로 밝혀 주기를... 다시 말하지만 이번 일간지에 1000자 분량 올린글은 최영미 소설 이였다가 펙트다. ㅡ참고로 나는 최영미 시인이 동아일보에 쓴 고발장에서 언급한 <1992년 겨울에서1994년 봄 사이 탑골공원 인근의 한 술집> 인 <탑골>을 운영 했던 주인 으로서 ( 최영미 표현에 따르면 “ 술집마담 ” ) 최영미가 고발장에서 언급한 고은 시인의 그러한 자위행위 장면은 전혀 목격한 적이 없으며 10년을 넘게 그분을 지켜 보았어도 그런적은 없었다. 그리고 여기자들과 인터뷰하실때도 농담을 흘리기는 했을지언정 잡스럽거나 추행은 일절없이 목소리를 깔고 젊잖으셨다.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그러기에 최시인이 고발장에서 마치 내 말인 것 처럼 인용한 글 ㅡ“ 아유 선생님두” 라는 말은 한적도 없다는 것을 밝힌다. 소름끼친다. 나의 성격이 곰살부리는 여우도 아니고 거친 야생마 기질이 강한 내가 섹기 부리듯 ... 헐 ㅡ참고로 나는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이야기들>에서 [풍류탑골] 2000년4월부터 50회가량 민족문학인들의 뒤이야기를 연재 하기도했다. 고은시인이 만약 그러한 기행을 했다면 그 재미난걸 왜 내가 연재할 당시 추가시키지 않았겠는가. 최영미가 언급한 1992년겨울~1994년 봄 최시인이 문단에도 등단하기 전에 잘나가는 명망 높은 출판사 사람들 틈에 끼여서 왔던 기억도 생생하고 그는 고은 선생님과 함께 동석한 적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시절만 하여도 탑골은 가난한 문인들이 낭만을 노래하고 배고프고 술고픈 문인들이 가난하지만 인정이 넘치고 눈물이 넘치던 순정이 어우러지는 문화적 공간이였지 있을수 없는 가공의 소설은 삭제하기 바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르키나파소 프랑스대사관 ·육본 피습…최소 15명 사망

    부르키나파소 프랑스대사관 ·육본 피습…최소 15명 사망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의 수도 와가두구에서 2일(현지시간) 프랑스대사관과 육군본부 사무실 2곳이 차량 폭탄 공격을 받았다. 테러범과 군인을 포함 최소 15명이 사망했다고 외신은 전했다.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인 부르키나파소 정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육군본부에서 4명, 인근 프랑스대사관에서 4명 등 모두 8명의 테러범이 사망했고, 7명의 군인이 숨졌다”고 말했다. 또 이번 연쇄 테러 사건으로 8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클레망 사와도고 보안장관이 밝혔다. 프랑스대사관에서는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15분쯤 무장 괴한 5명이 픽업트럭에서 내린 뒤 프랑스대사관으로 진격하면서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이들은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친 뒤 총을 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간대 이곳에서 약 1㎞ 떨어진 프랑스 문화원과 부르키나파소 육군본부 인근에서 폭탄이 잇따라 터졌다. 테러 배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사와도고 장관은 현지 방송에 출연해 “와가두구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G5 회담’을 겨냥한 테러 공격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날 육군본부 청사에서는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차드, 말리, 모리타니 등 5개국이 참여하는 G5 사헬 연합군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회담이 열릴 예정이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이 회의는 장소가 변경돼 다른 곳에서 열렸다. G5 사헬 연합군 창설을 지원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로슈 마크 크리스티앙 카보레 부르키나파소 대통령에게 전화해 사망자 유족에 대한 애도를 표명하고 “테러 활동 격퇴를 위한 의지와 G5 사헬 국가들에 대한 완전한 지원”을 약속했다.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성명을 내고 “폭력적인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에 맞서 안보 분야 개혁을 유지하고 국가적 화해를 촉진하며 지속 가능한 평화와 개발을 위한 환경을 만들려는 부르키나파소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프랑스는 옛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의 사헬을 이슬람 테러조직의 온상으로 보고, 2013년에 4천여 명의 병력을 직접 보내 테러 격퇴전을 수행하고 있으며 G5 사헬 연합군 창설도 주도했다. 특히 부르키나파소는 테러조직과의 투쟁에 있어 최전선과 같은 지역이다. 지난해 11월 와가두구에선 마크롱 대통령의 방문을 시간 앞두고 프랑스 군인을 표적으로 한 폭탄 공격이 일어났으며 같은 해 8월에도 한 터키 식당에서 발생한 테러로 18명이 숨졌다. 2016년에는 카페 폭탄 테러로 약 30명이 숨지는 등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에 의한 테러가 잇따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희망 안 보이는 한국GM… ‘희망퇴직’ 신청 저조

    철수설에 2월 내수판매 ‘반토막’ 노조, 6일 장기투쟁 계획안 발표 한국GM 사태의 돌파구가 좀체 보이지 않고 있다. 인건비 절감을 위한 ‘희망퇴직’은 목표치에 못 미치고 노사 협상 역시 진전이 없다. 실적도 쪼그라들고 있다. 한국GM은 2일 1만 6000여명의 국내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 접수를 마감했다고 밝혔다. 퇴직금과 별도로 근무 기간에 따라 최대 연봉 3년치에 달하는 퇴직위로금을 지급할 방침이다. 한국GM은 군산공장 폐쇄 발표를 한 지난달 13일 이후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2~3차례에 걸쳐 이메일로 희망퇴직 시한을 알리며 공지해 왔다. 하지만 전날까지 접수자가 1000명을 웃도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 관계자는 “오늘 오후 5시 현재 상황으로는 당초 회사가 목표했던 수준(3000명)에는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정년이 가까운 직원들이 마감 직전까지 고민하다 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군산공장의 경우 1996년 완공돼 희망퇴직 신청 시 연봉의 2.5년치(1991~1999년 입사자)를 받을 수 있는 근로자가 다수인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GM은 접수를 마무리하면 다음주 중 심사 등 절차를 진행한 뒤 오는 7일 최종 숫자를 확정하기로 했다. 만일 희망퇴직 신청자가 예상에 미달할 경우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을 벌일 수도 있다. 이 경우 군산공장 폐쇄 철회를 주장하는 노조와의 갈등은 더 깊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까지 세 차례 노사교섭을 진행했지만 아무 진전 없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한국GM 노조 관계자는 “오는 6일 노조의 실사 참여와 적자 원인 규명 등 요구안을 비롯해 노조의 장기적 투쟁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GM의 2월 총판매 대수는 3만 6725대(완성차 기준)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9% 감소했다. 특히 내수 판매(5804대)가 48.3% 급감하며 반 토막이 났다. 군산공장 폐쇄 발표로 다시 불붙은 ‘철수설’이 국내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에 부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된다. 향후 애프터서비스(AS)를 어디서 받을 수 있는지, 중고가격은 많이 떨어지지 않을지 등의 불안감 때문이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단독] “각서·금품 약속 받은 사람들, MB 집권하자 靑 찾아가 압박”

    [단독] “각서·금품 약속 받은 사람들, MB 집권하자 靑 찾아가 압박”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김성곤 위원이 만났습니다 - ‘MB 저격수‘ 정두언 前의원 평창동계올림픽이 마무리되면서 국정원 특수활동비 유용과 다스 실소유주 의혹을 받고 있는 이명박(MB) 전 대통령 소환이 초읽기에 돌입했다. 이미 MB의 형인 이상은 회장, 조카 이동형 부사장, 아들 이시형 전무(이상 다스), 사위 이상주 삼성전자 전무 등 친인척이 줄줄이 조사를 받았다. 관심은 MB와 부인 김윤옥 여사로 모아지고 있다. 2007년 대선 때 MB의 가족이 당락에 영향을 미칠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 세 가지가 있었다고 말해 화제가 된 정두언 전 의원을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에서 만났다. 뜻 맞는 전직 관료들이 모여서 일한다는 그 법인의 휴게실 벽엔 수십 병의 와인이 채워진 와인 냉장고가 있었고, 옆엔 드럼, 색소폰, 기타 등이 있는 연주실이 구비돼 있었다. 그때서야 정 전 의원이 음반을 낸 아마추어 가수라는 게 기억났다. 동료가 모여서 가끔 노래와 연주를 한단다. 궁금한 것은 경천동지였지만 바로 묻진 못했다. “그런 것은 말 못 해요”라고 하면 인터뷰가 싱겁게 끝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근황부터 물었다.→요즘 같으면 정치를 접은 것 같다. 방송인도 괜찮은 것 같은데. -종편과 라디오 몇 개, 자원봉사 겸해서 다문화TV에 나가서 진행도 하고 패널도 한다. 인터넷 강의로 상담도 하고 있다. 진짜 은퇴하면 자원봉사하려고 자격증도 땄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어려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카운슬러라면 잘할 것 같았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지 않나. 허허허. →그래도 본업은 정치 아닌가. -정치는 그만뒀다. 접었다. 지구당 사무실도 정리했고 당 소속도 없다. 정치 접었다고 써도 된다. 어릴 적 꿈은 연기였다. 이곳저곳 문을 두드리는데 연락이 안 온다. 이 나이에 주인공을 할 것도 아니고, 악역을 하고 싶다. 황정민이나 송강호도 악역으로 시작한 것 아닌가. 그래야 뜬다. 하하하. →‘MB 저격수’로 불려서 나중에 정치에 부담되는 것 아닌가 했다. -정치를 시작하면서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말 다하면서 하자고 다짐했다. 정치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정치를 하면서 무엇을 하는가가 목적이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행운아다. 난 다섯 번 출마를 했는데 한 번도 공천 경합을 한 적이 없다. 우리 지역구(서대문을)가 구여권에 굉장히 불리한 곳이어서 공천 신청자가 없었다.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 →나중에 마음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어느 당에 가겠나. 정치를 하려고 해도 방법이 없다. 길이 있어야 정치를 하지. 당이 있어야 정치를 하지, 정치권이 천지개벽하듯이 변하면 몰라도 지금은 정치를 할 수 없다. 자의 반 타의 반 정치 그만두게 된 거다. →본래 고향은 어디인가. -광주다. 작고하신 백부가 광주에서 6선 하신 정성태 전 의원이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생활이 어려워 어렸을 때 광주 외가 등에서 좀 살았다. 하지만 학교는 모두 서울에서 다녔다. 차별을 받아서인지 호남 사람이 서울에 살면서 호남 출신이라고 안 하는 경우가 많다.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 되니까. 평생 안 그러다가 “내가 호남이다”라며 총리도 하고, 장관 한 사람도 많다. MB 정권 땐 장관을 시켜 놓고 원적을 찾아내 호남 사람 만들기도 했다. 오기 때문인지 차별받으니까 오히려 난 호남이라고 박박 우기며 살았다. 공무원 시절 청와대 파견 갔는데 신원 조회에서 세 번이나 걸렸다. ▶ [단독] “각서·금품 약속 받은 사람들, MB 집권하자 靑 찾아가 압박” →MB가 당선되고 인수위원회에서도 그런 게 있었나. -그때 내가 인사를 많이 주관했다. 요즘 실세라고 하나. 견제가 심했다. 세 번에 걸쳐 나를 음해했다. 엉뚱하게 서울의 한 사립대 총장도 하고, 대구에서 국회의원도 한 H씨가 MB를 만나 “물갈이를 해야 하는데 정두언을 그대로 두면 호남 출신만 중용할 것이다.” 이게 첫 번째다. MB가 수긍 안 하니까 “정두언이와 일하는 애들이 운동권인데 그대로 두면 빨갱이 세상 못 바꾼다.” 두 번째다. 그래도 반응이 없자 세 번째로 들이댄 게 “정두언이가 부인 화랑을 하면서 돈을 빨아들이고 있다”고 했다더라. 결국은 내가 나오고 그 자리를 박영준(당선인 비서팀 총괄팀장)이 차지했다. 형님(이상득 전 의원) 뜻대로 된 것이다. 그 후 그들이 결국 인사를 좌지우지한 것 아닌가. →MB가 왜 그렇게 형님에게 의존했다고 보나. -형님한테 빚을 많이 진 셈이다. 특히 돈 관리는 위험한 것인데 형님이 다 했다. 그래서 이상득 전 의원이 한 번은 저축은행으로, 그다음은 포스코 관련으로, 이번에는 특수활동비로 조사를 받는 것 아닌가. 역할 분담을 한 것이다. MB는 우유부단해서 인사나 이런 것은 결정을 못 한다. 형님이 그런 것 나서서 많이 했다. 인사를 못 한다는 것은 사람을 못 믿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의심하는 줄 아는가. 잘 속이는 사람이 의심도 많다. 남들도 다 그러리라 생각한다. →MB와 틀어지게 된 계기는. -결정적인 게 한상률 전 국세청장 때문이다. 대선 후 국세청에 MB 파일을 내놓으라고 했다. 노무현 정부 때 한 전 청장이 만든 것들이다. 검찰에서 ‘도곡동 땅이 제삼자의 것으로 추정된다’며 애매하게 결론 내렸지만, MB를 많이 괴롭힌 파일이다. 대선 후보 경선 때는 최대 걸림돌이 도곡동 땅이었고 본선 때는 BBK였다. 그래서 MB에게 국정원과 국세청 파일을 받겠다고 보고까지 했다. 그런데 국정원 자료는 신문 스크랩 수준이었다. 국세청에도 파일을 내놓으라고 했더니 아무리 독촉해도 안 내놓았다. 이게 남아 있으면 나중에 무슨 일을 할 줄 모르니까 (방비 차원에서) 한 것인데…. 아마 그때가 한 전 청장과 이상득 전 의원이 거래를 했던 때였던 것 같다. 이 전 의원 아들이 세무조사를 받고 있을 때니까. 그런데 한 전 청장이 “정두언이가 MB 파일 뒤지고 있다”고 모함을 한 것이다. MB에게 “쓸데없는 짓하고 다닌다”며 한 시간을 깨졌다. 당선자 신분이니까 롯데호텔에서 박영준 팀장, 김모 교수 등 셋이 있는 자리였다. 나는 그를 보호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 파일이 진짜 문제가 있는 거였다. 지금 그게 드러나고 있다. 그때부터 틀어졌다. 자기가 떳떳하지 못하니까 날 배척한 것이다. →그런데도 배신자 프레임을 씌우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해서 인수위에서 나왔는데 나를 괴롭혔다. 뒷조사하다가 나에게 들켰다. 그때 내가 모 언론사 간부하고 술 먹다가 욱해서 MB 정권의 인사 등에 대해 하소연을 했는데 그게 ‘고소영 강부자’(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에 강남 부동산 자산가가 요직을 차지한다는 것을 빗댄 말) 내각 건이다. 그 이후에 박영준 등 청와대 참모 개편이 이뤄졌다. 원인은 이상득 전 의원이다. 한나라당 55인 서명 파동도 이재오 전 의원이 시작해 놓고 쏙 빠지면서 내가 총대를 멨다. 65세 이상을 커트라인으로 정해 박희태 전 의원 등은 공천에서 다 날리면서 형님만 준 것 아닌가. 결국은 내가 주동자를 자임했다. 내가 모든 게 옳진 않지만, 그래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라고 얘기한다. 박근혜 정부 때 유승민 의원 쫓아내려고 할 때도 나는 바른말을 했다. 그러다가 배신자로 덧칠해졌고, 권력과 투쟁만 하는 사람이 돼 버렸다. →경천동지를 언급해 화제다. 욕도 많이 먹고. -경천동지를 꺼낸 배경을 생각했으면 한다. 김희중 전 청와대 부속실장이 착실하고 깨끗한 친군데 이혼했다가 재결합했다. 어려울 때 집이라도 하나 만들어 보려고 실수를 한 것인데 “너 돈 받은 놈 아니냐” 하고 내쳐 버렸다. 김희중은 MB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데 실수 한 번에 내쳐졌다. 부인이 기다리다가 출소 두 달 전에 자살했는데 문상도 없었다. 그런데 각종 의혹에 대해 최근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떳떳한 것처럼 하는 것을 보고 나서 어이가 없어서 그런 얘기를 했다. 사실 MB와 나만 아는 것이 있잖겠는가. 적어도 본인은 알 텐데, MB는 공사 구분이 안 된다. ‘권력의 사유화’란 말을 내가 처음 만들어 냈다. 정권을 잡은 게 아니라 이권을 잡은 것이라고 했잖나. 국민은 MB는 실제로 돈이 많은데, 그렇게 돈이 많으면서 왜 그러냐고 욕한다. 병적이다. 돈이 신앙인 것이다. →MB 구속이 불가피해 보인다. -형량이 얼마냐만 남은 것 같다. 그에게는 선민의식이 있다. “하늘이 자신을 보호하고,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얘기를 자주했다. 자기 뜻대로 인생이 흘러왔고 돈, 명예, 권력을 다 가진 그에겐 지금이 괴로울 것이다. →경천동지에서 한 발짝만 더 나가 보자. 가족과 돈 얘기라고 했는데.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도 관련된다고 얘기했다. 돈 얘기 아닌 것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돈이다. 이후에 돈이 들어갈 일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정말 무덤까지 가져가야 한다. 밝히면 MB에게 큰 위해가 간다. 지금도 MB는 물려 있는 데 나까지…. →김윤옥 여사 얘긴가. -(한참 생각을 하더니) 엄청난 실수를 했다. 정신 나간 일을 한 것이다. 당락이 바뀔 수 있을 정도인데, 그 일을 막느라고 내가 무슨 짓까지 했냐면 ‘집권하면 모든 편의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각서도 써 줬다. 거기서 요구하는 돈도 다 주면서…. 사재를 털어 가면서 많이 줬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MB 정부 출범 후에 찾아왔더라. 그래서 내가 “권력하고 멀어져 있었는데 살아 있는 권력에 가서 얘기하라”고 했다. 자기네가 기획 일을 한다고 하더라. 인쇄 이런 것인데 당시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에게 도와주라고 했더니 그냥 대충해서 보낸 모양이더라. 그래서인지 그 이후에도 자꾸 괴롭히기에 청와대 가족 담당하는 민정수석실 경찰 출신 김모 행정관에게 연결해 줬다. 그 후 보상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이 건도 수사를 할 것으로 보나. -검찰에서 누군가 선을 대서 내게 한 번 연락이 왔다.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엮이긴 싫었다. 그리고 아마 MB가 구속되더라도 거기까진 안 갈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지간하면 가족을 같이 구속하지는 않으니. 여기까지만 하자. sunggone@seoul.co.kr■ 정두언 前의원 프로필 4집 음반을 낸 아마추어 가수다. 지금은 시사평론가이지만 꿈은 연기자였다. 악역을 원해 곳곳에 문을 두드리지만 아직 답을 못 받았다. 좀더 늙으면 어려운 이웃에게 상담을 해주는 카운슬러가 되려고 한다. 상담사 자격증도 땄다.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상과대학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행정고시(24회)에 합격해 21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끝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2004년 17대 총선(서울 서대문을)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당선된 뒤 3선을 했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이명박(MB) 후보를 도와 서울시장 당선에 기여했고,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본부장을 맡는 등 MB의 최측근이었다. 대선 뒤 당선자 비서실 보좌역으로 인수위원회에 참여했지만, MB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 등 영포라인(경북 영일·포항)에 밀려 중도 하차한다. 이후 한나라당 최고위원, 여의도연구소장, 19대 국회 국방위원장을 역임했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뒤 우울증에 빠져 모진 맘을 먹기도 했었다. 지금은 방송에 출연하며, 행정서비스 자문 및 대행 법인인 ALPS의 고문직을 맡고 있다.
  • ‘적자 수렁‘ 한국GM 구조조정 칼바람 부나

    ‘적자 수렁‘ 한국GM 구조조정 칼바람 부나

    2000명+α 미달땐 정리해고 가능 지난해에도 적자 9000억 달해 年 50만대 생산인력만 남길 듯 한국GM 임직원 1만 6000명에게 ‘잔인한 하루’가 다가왔다. 심각한 경영난을 이유로 한국GM이 전체 임직원들에게 받고 있는 ‘희망퇴직’ 신청이 2일 마감하기 때문이다. 신청자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만약 본사인 제너럴모터스(GM)가 만족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판단하면 인위적 정리해고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1일 한국GM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군산공장 폐쇄 결정과 함께 시작된 부평·창원·군산 공장 인력 대상 희망퇴직 접수는 2일로 마감된다. 희망퇴직은 사실상 1만 6000명 임직원 모두가 대상이다. 한국GM은 이미 희망퇴직 신청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2~3차례에 걸쳐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이런 조건의 희망퇴직 기회는 마지막’이라는 취지의 이메일을 발송했다. 2일까지 신청하지 않은 사람은 위로금조차 없이 회사를 떠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다. 한국GM 정규직의 경우 근무 경력에 따라 희망퇴직 시 위로금으로 약 2~3년간의 연봉과 일부 학자금 지원을 받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 관계자는 “희망퇴직은 전무 이상 극소수 임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임직원이 신청할 수 있다”면서 “임원과 팀장급의 경우 희망퇴직으로 감축률이 달성되지 않을 경우 선별적 계약해지(해고)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카허 카젬 사장은 본인 명의의 사내 공지문을 통해 “올 3분기까지 전무 이상 임원을 35%, 팀장과 상무를 20%씩 줄이겠다”고 밝혔다. 고임금 논란에 오른 외국인 임원 수(36명)도 절반인 18명까지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일부 구조조정의 그림도 나온다. 한국GM의 한 임원은 “전체 구조조정 목표가 2000명+α(알파)라는 게 윗선의 이야기인데 관건은 본사가 알파를 얼마 정도로 생각하고 있냐는 것”이라면서 “요즘 연간 생산량은 50만대를 밑돈다. 앞으로도 50만대의 생산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 인원만 남기고 모두 정리하겠다는 생각이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조원의 희망퇴직 신청 현황은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퇴직이 얼마남지 않은 고참 직원들이 명퇴신청에 나서면서 ‘매우 저조’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 노조가 군산공장 재가동 등을 주장하며 강경 투쟁 중인 만큼 희망퇴직 신청자가 GM의 마지노선에 해당하는 2000명을 채우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희망퇴직 신청자 규모가 드러나는 2일 이후다. GM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발 빠르게 해고 등 인위적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8일 진행된 3차 노사 임단협 교섭에서 사측은 ‘희망퇴직 시한(2일) 이후 방침’을 묻는 노조에 “아직 이후 계획을 구체적으로 거론할 상황이 아니다”라는 애매한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 비정규직의 상황은 더 암담하다. 이미 군산공장 비정규직 200여명은 3월까지 회사를 떠나라는 일방적 통지를 받은 상태다. 한국GM 군산공장 비정규직 해고 비상대책위원회는 “정규직에는 희망퇴직 시 퇴직금, 위로금, 자녀학자금, 차량구매 지원금 등이 지원된다”면서 “해고로부터 구제가 어렵다면 희망퇴직자에 준하는 위로금 등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가운데 한국GM은 산은과 우리 정부에 “지난해 연간 90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고 밝혔다.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증빙용 자료를 제시한 셈이다. GM은 우선 지난해 당기순손실이 9000억원에 달한다는 실적 추정치를 산은에 제시했다. 이는 2014년 3534억원 순손실을 낸 이후 2015년 9868억원, 2016년 6315억원에 이어 4년 연속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는 의미다. 4년간 손실 규모를 합하면 3조원에 육박한다. 지난해 매출 추정치는 10조 7000억원이다. 이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9조 5325억원) 이후 가장 작은 규모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삼일절 기념식 ‘서대문 형무소’…문 대통령의 특별주문

    삼일절 기념식 ‘서대문 형무소’…문 대통령의 특별주문

    문재인 대통령은 1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거행되는 제99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했다.문재인 정부는 최초로 3·1절 기념식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개최했다. 이 장소는 1000명에서 3000명에 이르는 3·1운동 참가자들이 이곳에 수감됐던 곳으로 유관순 열사로 대표되는 3·1운동, 3·1절과 가장 밀접한 공간이다. 이날 문 대통령은 독립유공자와 사회각계 대표, 시민,학생들과 함께 독립문 앞까지 3·1만세운동을 재연하고,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행사 등을 진행한다. 그간 정형화된 정부 행사의 틀에서 벗어나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공유·공감하는 행사로 준비하라는 문 대통령의 특별한 주문이었다. 문 대통령은 고(故) 조양원 선생(3·1운동, 건국훈장 애국장)의 손녀인 조선혜씨, 고 이용국 선생(국내항일운동, 건국훈장 애족장) 외손자인 박준석씨, 고 지광호 선생(의병, 건국훈장 애족장)의 조카인 지용준씨, 고 이긍하 선생(의병, 건국포장) 증손자 이규학씨, 고 김윤국 선생(3·1운동, 대통령 표창)의 손녀인 김춘화씨 등 5명의 독립유공자 후손과 함께 입장한다. 독립선언서 낭독은 ‘독립운동가 후손과 함께 읽기’ 콘셉트로, 박유철 광복회장·독립운동가 후손 김세린·강충만 학생·성우 강규리 씨·독립운동가 후손 오기연 학생·안중근 의사의 독립투쟁을 그린 뮤지컬 ‘영웅’에서 안 의사 역을 맡았던 배우 안재욱 씨의 순으로 진행된다. 또한 해금연주, 무용과 함께 무대 전면에서 고복의식(북쪽을 향해 ‘순국선열 복’이라고 세 번 부른 후 마지막에 흰 천을 하늘로 던지는 의식)을 행하는 초혼 포퍼먼스가 진행된 데 이어 국방부 의장대가 독립운동 당시 사용했던 6종류의 태극기를 들고 무대 위쪽에 도열한다.한편 문 대통령은 서대문형무소와 남다른 인연이 있다. 대학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다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됐던 문 대통령은 지난 2012년 서대문형무소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출마 장소로 서대문형무소를 택한 데 대해 “이 자리는 애국, 민주, 헌신이라는 세 가지 가치가 살아 숨 쉬는 역사의 현장”이라며 “저는 역사가 보는 앞에서 대통령 출마선언을 함으로써 역사 앞에 제 자신을 바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힌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3·1절엔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정부 기념식 대신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제98주년 3·1절 ‘1919 그날의 함성’ 행사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검은색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오늘 3·1만세 시위를 재현하며 정권교체를 통해 적폐를 청산하고 진정한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을 만들자는 결의를 온 국민이 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독립운동의 공적을 후손들이 기억하기 위해 임시정부기념관을 건립하겠다”고 약속했고 국가보훈처는 2020년 8월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을 목표로 건축·전시 공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대장장이 등 이름 없는 의병 831명을 기억합니다

    대장장이 등 이름 없는 의병 831명을 기억합니다

    부대장급 위주 기존 기록 보완 평민 주축 무명 활약상 찾아내 ‘가장 치열했던 한말…’ 발간대장장이, 제지업자, 상인…. 일제에 맞서 대한독립을 외치다 이름 없이 순국한 전북 지역 민초(民草) 의병 831명에 대한 독립유공자 추서가 추진된다. 전북도는 제99주년 삼일절을 맞아 광복회 전북지부, 전주대 한국고전문화연구원과 공동으로 무명 의병의 활약상을 찾아내 ‘가장 치열했던 한말 전북의병사’를 펴냈다고 28일 밝혔다. 이 의병사는 부대장급 위주로 작성된 기존 의병사에 비해 평민 의병을 대거 발굴해 포함시킨 게 특징이다. 지난해 8월부터 공훈록, 전북의병사 등 20여 종의 기록물에서 평민이 주축인 일반 의병에 대한 연구조사를 벌여 무명 의병들의 활약상을 찾아냈다. 전주 출신 상인 김법윤(1889~1908)은 1907년 충남 공주에서 동지들을 모아 무장투쟁을 하다 1908년 체포돼 19세의 나이로 교수형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장장이 출신 박영춘은 전북에서 의병활동을 벌이다 일본군에 체포돼 교수형을 당했다. 익산과 군산에서 무장투쟁을 하다 체포된 여학봉(익산·생몰년 미상)은 종신형을 선고받고 옥중 순국했다. 제지업자 최봉갑(순창·생몰년 미상) 역시 임실에서 의병자금을 모으다 체포돼 옥사했다. 이강안 광복회 전북지부장은 “그동안 부대장급은 기록물 발굴작업이 활발해 독립유공자로 인정됐지만 일반 의병에 대한 연구조사는 부족했다”면서 “이번 사업은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등에서 자료를 수집했기 때문에 의병 참가자들의 신원 회복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북도 관계자는 “이번에 확인된 무명 의병을 모두 독립유공자로 추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면서 “10년 이상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무명 의병도 수백명에 이르는 만큼 후속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한국GM 임단협 또 결렬… 손도 못댄 ‘인건비 감축안’

    군산 비정규직 200명 해고 통보 신차 배정 앞두고 장외투쟁 지속 존폐 갈림길에 선 한국GM이 인력과 임금 줄이기에 나섰다. 당장 GM 본사에서 빌린 돈을 갚아야 하는 시기가 코앞에 닥친 데다 신차 배정을 받으려면 ‘비용 절감’ 노력을 먼저 보여 줘야 해서다. 하지만 ‘핵심 변수’인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은 타결이 감감하다. 28일 3주 만에 재개된 3차 교섭도 빈손으로 끝났고, 노조는 장외 투쟁을 이어 가고 있다. 한국GM은 ‘전무급 임원 35%, 상무·팀장급 임원 20%’ 감축을 추진 중이다. 한국GM의 팀장급 이상 인원은 약 500명, 임원급은 10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임원을 포함한 팀장급에게 ‘올해 임금 동결’도 통보했다. 이들은 노조원이 아니기 때문에 임금 조정 과정에 합의나 동의가 필요 없다. 법인카드 사용과 마케팅 행사비 지출도 막았다. 간식비, 회의비, 활동비, 비품 구매비 등 운영비도 바짝 죄고 있다. 군산공장은 폐쇄 방침에 따라 200여명의 사내 비정규직 직원이 이미 해고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만여명이 넘는 노조원의 인건비 감축은 아직 논의가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임단협에 진전이 없어서다. 한국GM 노사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경기 부평공장에서 3차 교섭을 진행했지만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하고 헤어졌다. 임금 동결 및 승급 유보, 복리후생 축소 등을 담은 사측의 인건비 절감 교섭안은 제대로 다뤄지지조차 않았다. 노조는 경영 부실의 숨은 원인인 연구개발(R&D)비 의혹 등을 먼저 다뤄야 한다고 맞섰다. 한국GM 노조 관계자는 “정작 본사가 매출원가를 높이고 높은 이자를 받아 챙겨 적자가 난 셈인데 경영을 잘못한 (고액 연봉) 임원들보다 묵묵히 일한 직원들에게만 희생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3차 교섭이 결렬되자 단체로 서울로 이동해 정부청사 앞에서 ‘공장폐쇄 규탄 및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를 열고 청와대 사랑채 앞까지 행진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과기부 등 세종시 이전 공청회, 과천시민 점거 농성으로 무산

    과기부 등 세종시 이전 공청회, 과천시민 점거 농성으로 무산

    정부과천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세종시 이전에 반대하는 과천시민 점거 농성으로 28일 예정됐던 ‘중앙행정기관 등 이전계획 변경안 공청회’가 무산됐다. 행정안전부는 정부서울청사 별관 3층 국제회의장에서 과기정통부 등의 세종시 이전 계획과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소복을 입고, 빨간 머리띠를 두른 과천청사이전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 등 시민 350여명은 공청회가 열리기 1시간 전부터 회의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시민 10여명은 ‘과천경제 파탄 내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이전 결사반대’, ‘감액된 보통교부세 지원약속 이행하라’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회의장 단상을 점거하고 과기정통부 이전에 거세게 항의했다. 행사 예정 시간을 넘겨서도 과천시민의 점거 농성이 계속되자 행안부는 공청회를 취소했다.이날 회의장 점거농성을 이끈 신계용 과천시장은 윤기만 과천시장상가연합회장 등 4명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삭발하고 과기정통부 세종시 이전 반대시위를 벌였다. 신 시장은 “삭발투쟁을 통해 과기부 이전 반대에 대한 과천시민들의 엄중한 뜻을 전달하겠다”라며 “정부는 과천시의 존립을 위협하는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말고, 과기부 이전 추진을 중지하거나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지원책 마련을 선행하라”고 밝혔다. 또 “세종시에 과기부가 입주할 공간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전을 추진하고 있어, 임대료와 리모델링 비용 등으로 수천억 원에 달하는 혈세가 낭비되게 됐다”고 덧붙였다. 앞서 신 시장은 과기부 이전 추진에 대해 반대하며 지난 12일부터 4차례에 걸쳐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와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과기부 이전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경기도도 지난 27일 과기정통부의 세종시 이전과 관련 과천시와 공동 대응 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도는 과기정통부 이전에 따른 종합대책 마련을 위해 과천시, 경기연구원과 함께 지난 2월 두 차례에 논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과천시는 미래산업 연구개발(R&D)및 테스트베드센터, 글로벌 인재양성 중심의 ‘첨단지능정보 브레인빌리지’ 조성을 건의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2일 지방분권·지역균형발전을 위해 과기정통부의 세종시 이전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소속 공무원 777명은 세종시로 근무지가 변경된다. 현재 정부세종청사에 입주공간이 없어 정부는 민간건물을 임차해 2019년까지 이전을 완료하고, 2021년까지 과기정통부가 입주할 청사를 신축할 계획이다. 이전비용은 신청사 건립비용 1995억원을 포함 2290억원(부지매입비 별도)으로 추정된다. 거기에다 사무실 임차료와 이전비용 295억원(1년 임차료)을 행안부는 예상하고 있다. 행안부는 공청회 일정을 다시 잡아 추진할 계획이며, 전자공청회는 지난 22일부터 진행해 이날 마무리될 예정이다. 빠르면 3월 ‘중앙행정기관 등의 이전계획 변경안’이 고시될 예정이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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