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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 ‘입장하게 해달라!’ 삼성 주총 참석 요구하는 민주노총

    [포토] ‘입장하게 해달라!’ 삼성 주총 참석 요구하는 민주노총

    삼성전자는 20일 서울 서초사옥에서 주주, 기관투자자와 김기남·김현석·고동진 대표이사 등 경영진이 참석한 가운데 올해 정기 주주총회를 열었다. 이번 주총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삼성전자의 ‘제50기’ 회의인 데다 지난해 50대 1 액면분할 이후 첫 번째여서 특히 관심이 쏠렸다. 민주노총 조합원과 삼성 해고노동자 등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앞에서 ‘국정농단 주범 이재용 재구속 촉구, 경영권 박탈 투쟁선포 기자회견’을 마치고 주주총회 참석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글로벌 In&Out] 코민테른 창립 100주년과 한국독립운동/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글로벌 In&Out] 코민테른 창립 100주년과 한국독립운동/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지난 3월 1일, 한국이 3·1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1919년 3월 1일 발생한 3·1독립운동은 한국 민족해방투쟁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고, 헌법에 명시된 것처럼 대한민국 정부의 법통인 임시정부의 기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1919년 3월에는 한민족독립운동과 일제 멍에로부터의 해방투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건이 한 가지 더 있다. 3·1운동이 발생한 바로 다음날인 1919년 3월 2일 서울로부터 약 6600㎞ 떨어진 모스크바에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약칭 코민테른) 창립회의가 열렸다. 1920년대 한국의 민족해방운동과 코민테른의 관계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1917년 10월,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으며 세계 최초의 노농국가인 소비에트 러시아가 탄생하였다. 10월 혁명을 주도한 레닌과 러시아 공산당은 러시아 혁명을 세계 혁명의 일환으로 봤으며 유럽 여러 공산단체와 함께 세계 혁명의 확산과 투쟁 중인 각 민족의 노동계급 지원 등을 목적으로 국제기관을 설립하기로 하였다. 1919년 코민테른 창립회의에는 조선에서 국민회 대표로 강상주가 참여하였으며 한국인들의 반제·반식민지 투쟁에 관해 이야기했고, 3월 17일 대한국민의회가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서 독립선언을 발표했으며 1부를 코민테른에 전달했다. 4월 20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노령한인노동단체대회에서 강상주가 코민테른 창립회의에 대해 연설했으며 러시아 외무인민위원회 동방부장 보즈네센스키가 소비에트 정부를 대표해 연설했다. 독립에 대한 한국인의 열망을 실감한 보즈네센스키는 같은 해 7월 26일 ‘한국의 혁명적인 단체인 국민회와 온 한국인들에게’라는 소비에트 정부의 선언을 발표했다. 많은 한국 혁명가가 이미 붉은군대에 입대하고 극동지역에서 일제와 싸우고 있다면서 한국인들에게 국내에서도 항일무장투쟁을 벌일 것을 호소했다. 또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된 한국대표단이 문전박대 당하고 열강과의 외교로 독립을 추구해야 한다는 외교독립론이 사실상 붕괴하면서 무장투쟁론이 강화되어 갔다. 많은 무장투쟁론자는 세계 혁명을 추구하고 1918년 러시아 내전에 개입하여 연해주 지역의 일부를 점령한 일제와 싸우는 소비에트 정부와 코민테른을 당연한 동반자로 간주해 러시아로 건너와 무장투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소비에트 정부와 코민테른은 이들을 지원했다. 좌익 민족운동은 문제도 많았는데 분파투쟁이 치명적이었다. 코민테른의 지원을 받으려는 독립운동가들은 분열돼 서로 권력다툼을 벌였다. 그 결과, 1920년대 초 코민테른이 독립운동과 ‘상하이에서의 혁명사업’을 위해 제공한 거액의 자금을 둘러싼 분쟁(이른바 ‘모스크바 자금사건’)이 일어났고, 모스크바 자금을 상하이로 가져온 김립이 살해되었다. 또한 분파투쟁, 통수권 다툼, 국제정세 변화, 극동공화국과 코민테른 간의 갈등 등으로 인해 1921년 6월 자유시 참변이 발생해 많은 운동가가 살상당하고 부대들은 무장해제되었다. 코민테른은 조선 내 반일·혁명투쟁을 지도하기 위해 통일조직으로 공산당 설립을 수차례나 시도했으나 분파투쟁과 일제의 탄압으로 실패했다. 코민테른은 식민지 독립운동을 지도·지원하려고 노력했다. 그 집행위원회는 조선인 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을 설립하고 한국, 중국, 베트남 등의 젊은이들에게 민족해방과 혁명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쳤다. 그 대학 동문 중에 중국의 덩샤오핑과 류사오치, 베트남의 호찌민, 일본의 가타야마 센, 한국의 조봉암과 박헌영 등 유명한 정치가가 있다. 또한 코민테른은 1922년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할 목적으로 극동민족대회를 열었다. 참석자 중에 한국인이 제일 많았으며 그 의장단에 김규식과 여운형 등이 선출되었다.
  • “지역산업 기반 둔 ‘러닝 팩토리’ 확대 구축… 4차 산업혁명 대비”

    “지역산업 기반 둔 ‘러닝 팩토리’ 확대 구축… 4차 산업혁명 대비”

    ‘민주노총을 이끌던 강성 노동운동가에서 직업훈련 전문기관의 총책임자로.’ 2017년 12월 이석행(61)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이 새로 임명됐을 땐 기대보다 우려가 컸다. 강경 투쟁을 일삼던 그가 과연 4차 산업혁명의 첨병인 교육 기관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세간의 우려를 모를 리 없던 이 이사장은 현장으로 눈을 돌렸다. 취임한 이후 지금껏 폴리텍 관할 전국 캠퍼스 36곳과 기술대안고교(다솜고등학교) 1곳, 연수원 1곳까지 총 38곳을 세 차례나 방문한 이유는 현장에서 소통하며 문제점을 찾던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의 습관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파급력은 누구도 섣불리 단언할 수 없다. 산업 전반에 걸쳐 근본적인 구조 변화가 일어날 거란 막연한 전망뿐이다. 현장의 수요에 맞게 인력을 공급하는 직업훈련 기관의 이사장으로서 그의 임무가 막중한 이유다. 이 이사장은 1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자리가 있어야 노동운동도 있는 것이어서 일자리 만드는 학교에 온 것은 노동운동의 연속”이라면서 “사람과 함께 가는 4차 산업혁명에 폴리텍이 대비할 수 있도록 교수들과 끊임없이 토론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인상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노동운동과 직업훈련기관 이사장은 어떻게 다른가. “기계공고 1기 출신으로 졸업 후 바로 산업현장에 뛰어들었다. 노동운동은 사명감만 갖고 했던 것 같다. 그때도 책임을 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책임이 더 막중하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서 더 긴장하고 촘촘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일자리가 존재해야 노동운동도 존재한다. 일자리를 만드는 학교에 온 것은 결국 노동운동의 연속이다. 다만 노동운동을 할 땐 나의 의사표현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속내에 다른 심산이 있을 것이라는 오해가 있었다면 지금은 직업훈련기관의 수장으로서 산업현장의 어려움과 직업 교육에 대한 목소리를 낼 때 힘이 실린다. 주변에서 신뢰해준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학과 개편을 열정적으로 추진했다. 교수들의 반발은 없었나. “인구 구조가 바뀌고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산업현장이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폴리텍의 경쟁력은 산업 수요를 잘 반영하는 것에서 나온다. 폴리텍에 처음 와서 느낀 점은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40년 전과 지금이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대로 가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과감한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중복되거나 유사한 학과는 통폐합했다. 별도의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대표적으로 남인천캠퍼스와 인천캠퍼스에 각각 있던 신소재응용과를 인천캠퍼스로 합쳤다. 전체 13개 학과다. 처음엔 교수들의 반발이 거셌다. 캠퍼스에 직접 찾아가서 교수들과 왜 폴리텍이 바뀌어야 하는지 치열하게 토론하고 설득했다.”-통폐합하고 남은 자리에는 어떤 학과를 새로 만들었나. “폴리텍 캠퍼스가 있는 ‘지역’에 눈을 돌렸다. 전남 목포를 보면 항구도시로 발전했던 동네가 지금은 많이 뒤처져 있다. 그런 영향이 폴리텍 캠퍼스에도 왔다. 지역과 학교를 동시에 살릴 방법을 생각했다. 가까운 전남 나주가 보였다. 한국전력공사가 있는 나주에는 ‘에너지밸리’가 들어서 있다. 이곳에 입주하는 기업에 필요한 기술 인력을 공급하면 좋겠다고 판단했다. 전남도와 업무협약을 맺고 전력기술교육센터 설립을 추진하려고 한다. 건립에 드는 예산 350억원을 확보하고자 중앙부처와 국회를 상대로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인천에는 항공정비(MRO) 교육센터를 지으려고 한다. 지난해 말 인천국제공항공사와 MRO 전문인력 육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은 바 있다. 인천공항 항공기 정비단지에 2023년 완공을 목표로 기체 중정비 교육센터를 설립할 계획이다. 글로벌 정비 인증 취득 교육프로그램도 유치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공사뿐 아니라 국제 항공기업인 보잉사 관계자와도 실무회의를 통해 세부 추진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고용 상황이 심각한 수준이다. 폴리텍 졸업생들의 사정은 어떤가. “폴리텍 2년제 학위과정 취업률은 2016년 82.9%에서 2017년 79.7%로 떨어졌다. 지난해 자체 집계한 취업률은 81.6%로 추정되면서 다소 반등했다. 폴리텍 모든 직원들이 취업률에 매달리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취업률이 높아졌다고 본다. 이사장으로 와보니 방에 책만 가득하더라. 책 볼 시간은 없을 것 같았다. 다 빼고 취업 현황판을 들여놨다. 취업 현황이 캠퍼스별로 나온다. 캠퍼스 학장들이 긴장한다. 그렇다고 상대평가를 하는 것은 아니다. 막판에 취업이 잘 안 되는 곳은 학생들 명단을 다 달라고 한다. 명단을 받아서 어떤 기업에 취업하면 좋을지 고민한다. 취임 이후 인턴십을 포함한 현장실습 29명, 취업 29명, 취업컨설팅 1292명, 취업매칭 52명 등을 지원했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다. 폴리텍에선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4차 산업혁명으로 단순 기능직 일자리가 줄어들 거라고 예상한다. 폴리텍에서 방향성을 잘 잡아서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독일 정부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인더스트리4.0’을 제시했다. 핵심은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다. 제조업의 근간인 뿌리산업에 종사하던 사람들과 함께 최첨단 산업으로 나아간다. 이들이 폴리텍에서 자신의 직업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으로 가능하다. 지역의 산업 수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자신들이 종사하는 산업의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폴리텍에서 배워야 한다. 지역산업에 바탕을 둔 ‘러닝 팩토리’를 확대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러닝팩토리란 학과 간 칸막이를 없애고 설계에서 제품 완성까지 통합 교육이 가능하도록 장비를 한곳에 갖춘 실습 지원센터를 뜻한다. 지난해 12월 인천캠퍼스에 시범 설치했다. 아직 폴리텍 내부에서 이런 방향성에 모두가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제가 폴리텍 이사장으로 있는 동안 꾸준히 현장을 찾으면서 교수들을 설득할 계획이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선거제 개편에 밀린 검경수사권·공수처법

    바른미래 내홍 일자 “정부 원안대로 될 듯” 한국당 “무소불위 대통령 만들 것” 반기 정치권이 선거제 개편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태우는 문제를 놓고 진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검찰·경찰수사권 조정안 등 중요 개혁법안이 선거법 개정안에 가려 관심을 덜 받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자칫 선거제 개편안을 둘러싼 각 당의 이해관계 때문에 패스트트랙이 좌초할 경우 이들 2개 개혁법안까지 덩달아 무산될 우려가 제기된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이날 뒤늦게 2개 법안에 대한 협상에 나섰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오늘부터 공수처 법안과 검경수사권 조정 등에 대해 바른미래당 당내 의견을 수렴한 내용을 기초로 협상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4당은 이날 원내대표 회동을 통해 선거법과 공수처, 검경수사권 조정 등에 대한 각 당의 입장을 조율했다. 이 자리에서 바른미래당 측은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에 관한 자체 안을 민주당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민주당은 주로 바른미래당 등 야 3당의 입장을 청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관계자는 “바른미래당 측이 공수처에서 수사한 피의자를 검찰이 기소하는 안을 요구했고, 민주당이 이를 수용할지는 지켜봐야 알 듯하다”고 했다. 바른미래당 지도부는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최종 단일안이 마련되는 즉시 의원총회를 소집해 추인을 받는 절차에 들어갈 계획이다. 하지만 옛 바른정당 출신의 당 소속 의원들이 졸속 입법 위험성을 경고하며 “탈당 불사” 등을 외치고 있어 합의에 도달할지는 미지수다.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은 “공수처와 검경수사권 조정안은 포괄적 논의 과정이 생략된 채 정부 원안대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계했다. 애초 여야의 패스트트랙 논의를 ‘야합’이라며 총력 투쟁을 선언했던 한국당은 공수처법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대통령이 공수처를 자신의 마음대로 휘두르는 칼로 만들고 수사권, 기소권을 독점한다면 무소불위의 대통령을 만드는 제도”라고 주장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한유총 부이사장 김동렬, 새 이사장 후보 단독 출마… ‘親이덕선계’ 강성 기조 고수

    ‘개학 연기 투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이덕선 이사장이 물러난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에 다시 강성 지도부가 들어설 전망이다. 사립유치원의 사유재산권을 주장하는 현재의 기조를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 한유총은 19일 차기 이사장 후보로 김동렬 수석부이사장이 단독 출마한다고 밝혔다. 앞서 김 수석부이사장과 오영란 전남지회장이 차기 이사장 후보로 나섰지만 오 전남지회장이 이날 후보에서 사퇴했다. 김 부이사장은 한유총이 지난해 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됐을 때 이덕선 당시 비대위원장을 보좌했다며 ‘친(親)이덕선계’를 자처한다. 한유총은 이 이사장이 개학 연기 투쟁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로 하면서 오는 26일 새 이사장을 선출한다. 강경파로 분류되는 김 부이사장 체제의 지도부가 들어서면 한유총은 기존의 대정부 투쟁을 이어 갈 가능성이 크다. 김 부이사장은 “우리나라 유아교육을 110년 동안 묵묵히 수행한 사립유치원에 국가가 비리 프레임을 씌워 적폐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면서 “이 이사장을 보좌하며 쌓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어달리기를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사립유치원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에듀파인의 수정·보완 ▲사립유치원 재산권·학습자율권 보장 ▲유아교육법 시행령 등 개정안 대응 방안 ▲사립유치원 ‘퇴로’ 마련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에듀파인을 “조건 없이 수용하겠다”던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는 등 반성 없이 유치원 공공성 강화에 대립각을 세운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유총은 개학 연기 투쟁의 위법성을 따지는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수사 및 조사를 받고 있다. 또 서울시교육청은 한유총의 설립 허가 취소를 앞두고 오는 28일 한유총의 의견을 듣는 청문회를 연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코민테른 창립 100주년과 한국독립운동 100주년

    코민테른 창립 100주년과 한국독립운동 100주년

    지난 3월 1일, 한국이 3·1 독립운동의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1919년 3·1 독립운동은 오늘 한국 민족해방 투쟁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고, 헌법에 명시된 것처럼 대한민국 정부의 법통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원이다. 1919년 3월에는 한민족독립운동과 일제 멍에로부터의 해방 투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건이 한가지 더 있었다. 1919년 3월 2일 서울로부터 약 6600㎞ 정도로 떨어진 모스크바에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약칭 코민테른)이라는 조직의 창립회의가 열렸다. 물론, 한국 독립운동사에 있어서 코민테른의 역할에 대한 평가는 소위 ‘색깔론’ 등의 영향이 남아 있는 오늘에는 보는 시각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있으며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에는 연구가 아직 부족하다.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잔재는 바로 색깔론이며, 이를 위해서 역사를 객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려면 연구가 필요하다. 이번에는 1920년대의 한국의 민족해방운동과 코민테른의 관계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1917년,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일어났으며 세계 최초의 노농국가인 소비에트 러시아가 탄생하였다. 10월 혁명을 주도한 레닌과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은 러시아 혁명을 세계혁명의 일환으로 봤으며 유럽 여러 공산단체와 함께 세계혁명의 확산하고 투쟁 중인 각 민족의 노동계급 지원할 목적으로 국제기관을 설립하기로 하였다. 코민테른 창립회의에는 국민회의 대표로서 강상주가 참여하였으며 한국인들의 반제·반식민지 투쟁에 관해서 이야기했고, 3월 17일 대한국민의회가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서 독립선언을 발표했고 1부를 코민테른에 전달했다. 4월 20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노령한인노동단체대회에서 강상주가 코민테른 창립회의에 대해 연설했으며 러시아 외무인민위원회 동방부장 보즈네센스키가 소비에트 정부를 대표하여 연설했다. 독립에 대한 한국인의 열망을 실감한 보즈네센스키는 1919년 7월 26일 ‘한국의 혁명적인 단체인 국민회와 온 한국인들에게’라는 소비에트 정부의 선언을 발표하였으며 많은 한국 혁명가들이 이미 붉은군대에 입대하고 극동지역에서 일제와 싸우고 있다면서 한국인들에게 국내에서도 항일무장투쟁을 벌일 것을 호소했다. 또한 파리 강화회의에 파견된 한국대표단이 문전박대당하고 열강과의 외교를 통해 독립을 추구해야 한다는 외교독립론이 사실상 붕괴되면서 무장투쟁론이 강화되어 갔다. 많은 무장투쟁론자들은 세계 혁명을 추구하고 1918년 러시아내전에 개입하여 연해주 지역의 일부를 점령한 일제와 싸우는 소비에트 정부와 코민테른을 당연한 동반자로 간주하여 러시아에 넘어오고 무장투쟁에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소비에트 정부와 코민테른은 그들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좌익민족운동은 문제도 많았으며 가장 치명적인 것은 분파투쟁이었다. 코민테른의 지원을 받으려는 독립운동가들은 통일조직을 결성하지 못하였으며 서로 권력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그 결과, 1920년대 초 코민테른이 독립운동과 ‘상해에서의 혁명 사업’을 위해 제공한 거액의 자금을 둘러싼 분쟁(이른바 ‘모스크바 자금 사건’)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모스크바자금을 상해로 가져온 김립이 살해되었다. 또한 분파투쟁, 통수권 다툼, 국제 정세 변화, 극동공화국과 코민테른 간의 갈등 등으로 인해 1921년 6월 자유시 참변이 발행하였으며 많은 운동가가 살상당하였고 그 부대들은 무장해제되었다. 코민테른은 한국 국내 반일·혁명투쟁을 지도하기 위해 통일조직으로 공산당을 수차례나 설립 시도했으나 분파투쟁과 일제의 탄압으로 실패했다. 코민테른은 식민지의 독립운동을 지도·지원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였다. 그 집행위원회는 한국인 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을 설립하고 한국, 중국, 베트남 등 국가의 학생들에게 민족해방과 혁명 사업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쳤다. 그 대학 동문 중에 중국의 덩 샤오핑과 류 사오치, 베트남의 호찌민, 일본의 가타야마 센, 한국의 조봉암과 박헌영 등 유명한 정치가가 있다. 또한 코민테른은 1922년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하는 목적으로 주도로 극동민족대회를 열었다. 참석자 중에 한국인이 제일 많았으며 그 의장단에 김규식, 여운형 등이 선출되었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국제 환경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 초에 고조되었던 세계 혁명정세가 1920년대 후반에 완전히 퇴조하였다. 이 상황에서 세계혁명을 강행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으며 코민테른의 힘도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1937년에 시작한 소련 대숙청 과정에서 한국인 간부들을 포함한 많은 좌익운동가가 희생당하였고, 1943년 코민테른은 공식 해산되었다.글. 사진:바실리 V 레베데프(고려대 사학과 석사)
  • [데스크 시각] 노동자 출신 홍영표 대표와 문성현 위원장의 경우

    [데스크 시각] 노동자 출신 홍영표 대표와 문성현 위원장의 경우

    “노동안정성을 강화하는 대신 노동유연성도 높여야 한다. 실적 변동을 반영해 성과급을 주는 방안도 필요하다. SK하이닉스는 협력사와 임금을 공유하는 상생협력 모델을 도입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요구한 수많은 내용 중 일부다. 대우차노조 간부 출신인 그는 노동운동을 발판 삼아 GM대우 공장이 있는 인천 부평에서 내리 세 번 당선됐다. 이날 홍 대표가 경영계에 요구한 것은 “노동안정성을 강화하는 대신”이란 문구 정도다. 홍 대표의 연설은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과 빼닮았다. 2016년 9월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발해 노조가 파업을 벌이자 당시 이기권 노동부 장관은 “상위 10% 노동자의 양보와 노동시장의 낡은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성과연봉제를 필두로 ‘쉬운 해고’가 가능한 ‘일반해고 지침’을 밀어붙였다. 이 지침은 문재인 정부 들어 가장 먼저 폐기된 ‘적폐 정책’이다. 홍 대표의 ‘성과급’과 박근혜 정부의 ‘성과연봉제’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SK하이닉스의 임금공유제도 2015년 10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것이다. 그해 이 회사 정규직과 사측은 각각 30억원을 내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4000여명에게 1인당 150만원을 줬다. 시급으로 따지면 400원 정도였다.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5조 3000억원, 임원 보수 한도는 120억원이었다.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떼어 비정규직에게 전달하는 게 과연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상생의 길인가.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도 노동자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문 위원장은 전노협에서 투쟁하며 민주노총 건설에 온몸을 던진 인물이다. 그런 그가 요즘 “기득권 노조의 임금을 올리는 노동운동이라면 다신 안 할 것”이라며 민주노총을 비판하고 있다. 민주노총 집행부의 관료화와 대기업 노조의 귀족화를 비판하는 말이라면 경청할 만하다. 그러나 그가 화가 난 이유는 따로 있다. 탄력근로제 확대안이 민주노총과 비정규직·여성·청년 대표들의 비협조로 경사노위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점이 그것이다. 근로시간을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이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는 재계의 숙원이었고, 이를 ‘사회적 대타협’으로 포장하는 게 문 위원장의 목표였으며, 3월 국회에서 입법화하는 것은 홍 대표의 의무다. 탄력근로제 확대에 따른 임금손실 방지 의무와 근무일간 11시간 연속 휴식 의무는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만 있으면 면제된다. 노조 없는 일터가 90%에 이르는 우리 현실에서 근로자 대표는 유령과 같은 존재다. 경사노위 사용자 대표인 경총은 노조법 개정 사안으로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대체근로 전면 허용, 부당노동행위 처벌 조항 삭제,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 강화, 단협 유효기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하나하나가 파업권을 무력화할 사안인데, 문 위원장은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와 단협 유효기간 연장 정도는 필요하다는 입장을 언론에 밝혔다. 해고 위기에 처한 노동자에게 공장 대신 공원에 가서 피켓을 들란 말인가. 홍 대표와 문 위원장은 “초심을 잃은 노조 때문에 경제가 파탄 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노동운동 경력을 발판 삼아 국가 정책을 좌우하는 위치에 올랐지만, 최저임금 언저리에서 맴도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고달픈 현실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앞으로 누군가가 ‘노동계 대부’라는 수식어를 붙여 주면 “거추장스럽다”며 정중하게 사양하길 바란다. window2@seoul.co.kr
  • 소박함만 한국의 美라더냐… 고려의 호방함 서린 ‘독립운동 성지’

    소박함만 한국의 美라더냐… 고려의 호방함 서린 ‘독립운동 성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으며 가장 주목받는 문화재는 단연 경북 안동의 임청각(보물 182호)이다. 경술국치 직후 집주인 이상룡은 일가 친족을 이끌고 서간도로 망명했다. 막대한 재산을 처분한 자금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무장독립운동의 주역들을 양성하고, 임시정부 제3대 대통령 격인 국무령을 역임했다. 오랫동안 방치되던 임청각은 독립운동의 성지가 되어 대대적으로 복원 정비할 예정이다. 이 집은 올해 창건 500주년을 맞으며, 고려 주택의 전통을 가진, 매우 드물고 소중한 건축 유산이기도 하다.●고성 이씨 법흥파종택… 이명이 1519년 창건 임청각은 고성 이씨의 한 분파가 안동 법흥동에 건립한 파종택이다. 하나의 옛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가문의 역사를 들추는 수고를 해야 한다. 집은 곧 인격의 표현이고, 종택은 오랜 시간의 축적물이기 때문이다. 고성 이씨의 시조는 고려 문종 때 호부상서를 지낸 이황이다. 그는 거란의 침략을 막아 내는 큰 무공을 세워 철령군(철령은 경남 고성의 옛 이름)에 봉해졌다. 이 가문은 고려조에 정승급만 5명이나 배출한 명문가로 성장했고, 조선 초 좌·우의정을 지낸 이원이 용헌공파를 이루게 된다. 그의 아들들은 전국에 걸쳐 번성했는데, 6남인 이증(1419~1480)은 안동부 남문 밖으로 이주해 안동 지역의 입향조가 됐다. 그의 차남인 이굉은 낙동강 건너 현 정상동에 귀래정을 지었고, 이 일대는 고성 이씨의 씨족 마을로 발전했다. 이증의 3남 이명은 1519년 영남산 남록, 법흥동의 낙동강변에 정자를 지어 임청각이라 이름하니, 현재의 군자정 건물이다. 1540년, 여기에 본격적인 살림채와 가묘를 세워 파종택으로 정착시킨 이는 이명의 6남인 또 다른 이굉이다. 임청각 정착의 역사는 한 가문이 어떻게 명문가로 성장하는지, 그리고 어떤 건축적 장치가 필요했는지를 보여준다. 소수 귀족만이 성씨를 가졌던 고려시대에는 국가적 공헌을 이뤄 성씨를 하사받았다. 성씨와 동시에 일정 지역을 식읍으로 받는데, 곧 본관이 된다. 왕조가 바뀌는 조선 초는 기존 명문가들의 명암이 엇갈리는 시기였다. 새 왕조에 참여한 가문은 더욱 번창하게 되지만, 반대의 경우 멸문지화를 입던지 재야의 향반으로 전락하게 된다. 조선 초의 향촌은 고려적 장원 체제가 해체되고 새로운 체제로 전환하는 큰 변혁기를 맞았다. 이 시기에 번창한 가문의 자손들은 전국 각지의 새로운 소유지를 찾아 분파하게 되며, 파종가들이 출현했다. 종가가 되려면 종택을 짓고, 시조를 제사할 사당을 세워야 한다. 또한 향촌의 절경 곳곳에 개인 소유의 정자를 세운다. 지역의 경관을 소유하는 자가 바로 지역의 세력가가 되기 때문이다. 임청각은 별장인 정자로 시작해서 살림집과 사당을 가진 종택으로 확장한 경우다. 가문을 연지 500년 만의 결실이며, 그로부터 또 다른 500년이 흘렀다. ●고려 한옥의 또 다른 흔적, 온돌이 드문 2층집 우리의 건축들은 임진왜란 때 거의 파괴되어 현존하는 대부분은 17세기 이후에 지어진 것이다. 임란 이전의 것으로 임청각같이 큰 집이 온전히 남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 집은 오래되고 거대할 뿐만 아니라 후대의 다른 살림집과 확연히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을 갖는다. 남아 있는 부분만도 1층 50칸, 2층 12칸의 큰 규모로 후대의 한옥이라면 적어도 5채의 독립 건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 집은 별채인 군자정을 제외한 모든 살림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하늘에서 보면 마치 불완전한 용(用)자와 같이, 5개의 안마당을 중심으로 기와지붕의 선들이 이어진다. 평면 구성만도 밀집되고 복잡한데, 경사지를 활용한 3차원적 구성은 더욱 복합적이다.임청각의 눈에 띄는 특징은 2층 구조가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 현재 2층 공간은 12칸이 남아 있지만, 원래는 20여 칸이나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머리가 부딪힐까 걱정해야 하는 다락이 아니라 충분히 생활이 가능한 정식 2층 공간이다. ‘한옥은 단층’이라는 상식은 임청각에서 여지없이 깨진다. 김시습의 ‘금오신화’ 중 ‘이생규장전’은 고려 말 개성을 무대로 전개되는 연애기담이다. 2층루가 있고 이들을 은밀한 복도가 연결하는 것으로 여주인공의 집을 묘사했다. 아마도 이 소설을 쓴 조선 초까지, 개성과 한양의 큰 살림집의 일반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다. 임청각의 2층 바닥은 물론 1층 대부분도 마루 바닥이었다.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온돌은 총 70칸 중 5칸에 불과했다. ‘한옥은 온돌’이라는 상식도 깨진다. 후대에 온돌로 개조한 부분까지 다해야 겨우 10칸이다. 서울 종로의 공평지구 재개발 때 조선 전기의 한옥 마을을 발굴하게 되었다. 보통 10여 칸 집에 단 1칸만 온돌방이며 마루가 주된 바닥을 이룬 집들이었다. 온돌이 한옥의 주된 바닥형식이 된 것은 17세기 이후이다. 이 집의 창호들 역시 후대의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창틀이 벽 가운데 떠 있는 것 같이 보이는 이른바 ‘액자창’들이 대부분이며, 아예 벽의 일부에 창을 끼운 것 같은 붙박이창도 여럿이다. 2짝 여닫이창들은 예외 없이 가운데에 문설주를 둔 ‘영쌍창’들이다. 이러한 액자창, 붙박이창, 영쌍창은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이며, 18세기 이후의 한옥에서는 보기 힘든 오래된 기법들이다.한마디로 임청각은 고려 살림집의 전통을 간직한 호방하고 웅장한 집이다. 흔히 한국적 미학이라 일컫는 ‘소박하고 단순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 수도 개성의 풍물을 그린 ‘고려도경’의 묘사와도 같이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건축이다. 13칸 행랑채의 수평적 장대함, 거의 3층 높이 안채의 수직적 당당함, 오래된 창호형식의 고졸함, 낙동강의 풍경을 감싸 안는 군자정의 넉넉함…. 이제는 거의 사라져 임청각만이 간직하고 있는 우리 건축의 또 다른 전통이다. ●보수 속 혁신… 남자는 군자정·여자는 살림채 써 임청각의 500년 세월 가운데 수차례 대대적 수리를 했지만, 후손들은 선조의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는 원론적 보수는 아니었다.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마루들을 온돌방으로 개조했다. 남자 주인들은 별당인 군자정을 거처로 삼아, 살림채 대부분의 사용권을 여자 가족과 하인들에게 넘겨주었다. 옛 형식은 지키되, 새로운 내용을 수용한 은밀한 혁신의 결과다.석주 이상룡(1858~1932)은 이 가문의 가장 혁신적인 인물이다. 퇴계학파의 정통을 이은 안동의 큰 유학자로서 을사늑약 때부터 의병활동과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 1911년 노비를 해방하고 조상들의 위패를 묻은 뒤 서간도에 망명, 만주 땅에서 74세로 운명할 때까지 무장독립 투쟁에 헌신했다. 노비 해방과 제사 철폐는 정통 유림에게 있을 수 없는 패륜이다. 심지어 종손으로서 종가인 임청각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으로 썼다. 그러나 그는 군자정의 주인답게 진정한 ‘군자’였다. 군자란 누구인가? 세상의 문제와 해답을 깨달은 사람, 더 나아가 깨달음을 온몸으로 행하는 지행합일의 인간이다.1700년대 언저리, 이 집안의 두 형제가 분가해 임청각 좌우로 탑동파종택과 평지파종택을 세웠다. 1941년 일제는 고성 이씨 3형제 동네 앞에 중앙선 철도를 부설했다. 임청각의 대문채 등이 파괴되었고, 탑동파종택 앞의 법흥사지7층전탑(국보16호)은 기울어졌으며, 철도 노선에 포함된 평지파종택은 아예 흔적이 사라졌다. 일가족 10명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불령선인의 가문에 대한 야만적 보복이었다. 1913년 임청각을 한 일본인에게 2000원(현 가치 200억원 추산)에 팔았는데, 이를 알게 된 고향의 일가들이 합심하여 3000원에 곧 되사 보존할 수 있었다. 이 거액 매입을 주도한 이는 석주의 20촌 동생인 평지파종택의 이태희였다. 그는 일제 식민 치하의 수모를 감내하며 자신의 방법으로 고향과 가문을 지켰다. 보수와 혁신은 한몸이었다. 정통 유림이 무장투쟁가로 변신하고, 해방된 노비가 독립군이 됐다. 망명해 딴 나라에서 순국한 이도 있고, 고향에 남아 은밀히 독립운동을 도운 이도 있다. 비록 모두를 추서할 수는 없어도, 모두가 애국자이다. 280억원의 예산으로 임청각 일대를 복원 정비한다고 한다. 철도 이설과 임청각 정비뿐 아니라 사라진 평지파종택을 비롯해 외거 노비들의 가랍집까지 복원해야 한다. 이들 모두가 보수의 전통 속에서 혁신을 꿈꾸고 몸 바쳤던 역사이기 때문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건축학자
  • [종합] 이미숙·송선미, 故장자연 사건에 언급된 이유?

    [종합] 이미숙·송선미, 故장자연 사건에 언급된 이유?

    배우 이미숙, 송선미가 고(故) 장자연 사건에 언급됐다. 18일 디스패치는 ‘“이미숙은, 모릅니다?”...장자연, 마지막 CCTV 분석’이라는 단독 기사를 통해 장자연과 이미숙의 관계를 조명했다. 장자연은 소위 ‘장자연 리스트’라고 불리는 A4용지 4장에서 6장 분량의 글을 남겼다. 이 문건에서 장자연은 “사장님이 이미숙이 ‘자명고’에 출연하게 됐으니 저도 ‘자명고’에 출연시켜 주겠다며 밤에 감독님을 보내 술접대를 강요했다”, “(접대를 받을 분이) 송선미 씨보다 저를 더 이뻐하기 때문에 저를 대신 부를 거라며 룸싸롱에서 저를 술접대를 시켰다, ”사장님의 강요로 얼마나 술접대를 했는지 셀 수가 없다“, ”룸싸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다“ 등 자신의 피해 사례 뿐 아니라 이미숙과 송선미의 피해사례도 적었다. 이 문건에는 작성 일자와 지장, 주민등록번호, 자필 사인, 간인(이음도장.서류의 종잇장 사이에 걸쳐서 도장을 찍는 것)까지 담겼다. 이에 대해 경기대학교 이수정 교수는 ”유서로 보기 어렵다“면서 ”마치 수사기록 혹은 참고인 진술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장자연의 친오빠는 ”(유장호에) ‘왜 유서가 있다고 인터뷰를 했냐’고 따졌다. 유장호는 계속 김성훈을 죽여야 한다 말했다“고 주장했다. 문건을 두고 처음 유서라고 말한 것은 유장호였다.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 주요 참고인으로 여러차례 검찰, 경찰에 조사를 받았던 배우 윤지오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장자연이 남긴 문건을 ‘유서’가 아닌 ‘투쟁하기 위한 문건’으로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지오는 ”유서는 편지 형태의 감정을 서술하는 것이다. (장자연이 남긴 문건은) 그런 것이 아니라 목차처럼 나열, 이름이 기재됐고 본인이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지 기술되어 있고 주민등록번호, 사인, 지장까지 있었다. 그렇게 쓰는 유서를 단 한 번도 못 봤다“면서 ”세상에 공개하려고 쓴 게 아니라 법적 대응을 하려고 쓴 것. 김대표를 공격할 수단으로 작성했다. 그렇기 때문에 명확한 사실만 기재했을 것이다“라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문건을 돌려받고 싶어 했는데 돌려받지 못했다. (매니저 유장호로부터). 함께 투쟁하기로 했던 그 분들은 피해를 우려해서 유서라고 이야기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디스패치는 ”장자연 유서는, 블랙홀이었다. 세상 모든 이슈를 빨아 들였다. 예를 들어, 신영철 대법관 ‘촛불재판’ 개입 논란. (이명박 정부판 사법농단 의혹은, 장자연 문건 이후 물밑으로 가라 앉았다.) 김종승 vs 송선미, 김종승 vs 이미숙으로 이어질 소송전도 뒤로 밀렸다“면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 장자연이 김종승과 송선미, 이미숙, 유장호가 얽힌 계약 문제에 우연히 끼어든, 고래 싸움에 휘말린 새우로 표현했다. 당시 김종승은 ‘더컨텐츠엔터테인먼트’ 대표로 이미숙과 송선미, 장자연과 전속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그러나 이곳의 매니저로 일하던 유장호가 2008년 8월 ‘호야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고 2009년 1월 이미숙과 송선미를 데리고 갔다고. 그러나 이미숙 계약이 아직 1년가량 남아있어 계약위반에 휘말렸다. 이미숙은 정세호 감독에게 ”김종승이 저를 상대로 전속계약 위반 문제가 있는데 감독님이 김종승과 친분이 있으니 혼내달라“고 부탁했다. 디스패치가 정세호 감독이 제출한 사실확인서를 바탕으로 대화체로 재구성한 정세호 감독과 이미숙과 나눈 대화를 보면 “유장호가 ‘A4용지’ 갖고 갈테니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달라”, ”장자연이 나를 찾아와 울면서 부탁했다. 유장호가 A4용지를 작성해 왔다. 감독님과 장자연이 태국에서 골프 쳤다는 내용도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러나 이미숙은 경찰 조사에서 장자연을 알고 있었냐는 질문에 ”과거에는 몰랐고 이번 사건을 통해 이름만 들었다“고 답했고 문건을 작성한 사실에 대해서도, 문건을 봤는지에 대해서도 부정했다. 정세호 감독의 진술에서 A4용지를 언급했냐는 질문에는 ”정세호 감독이 잘못 들었나보다“라고 말했다. 윤지오는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저보다 더 많은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함구하는 배우분들이 있다”며 “저보다는 영향력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나서는 것이 두렵겠지만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서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다”며 나서주길 부탁했다. 윤지오가 언급한 인물이 장자연 문건에 등장하는 이미숙과 송선미가 맞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12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공개된 사건 재수사를 촉구하는 국민청원은 청원 7일만에 62만명이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단의 활동 시한은 이달 말로 끝나는 가운데 아직 과거사위의 활동 연장은 승인되지 않았다. 윤지오는 18일 SNS에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 다시 한 번 의지를 다잡는 내용의 게시글을 올려 관심을 독려했다. 윤지오는 ‘개와 늑대의 시간’을 언급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해질녘 형체를 가늠하기 힘든 때 즉, 무언가를 확실히 정의할 수 없는 상황. 이어 윤지오는 “누군가를 믿고 의지해야할 시간은 이미 지난 지 오래. 10년 동안 긴장하며 살았다”라고 심정을 털어놨다. 마지막으로 윤지오는 “스스로 알고 있는 진실을 의지해 나아가보려 한다. 잘 버텨왔으니 언젠간 동이 틀 그날까지 이겨내 보겠다”라고 확고한 의지를 덧붙여 눈길을 끌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In&Out] 박용만의 대조선국민군단 병영터 현장을 찾아서/심헌용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In&Out] 박용만의 대조선국민군단 병영터 현장을 찾아서/심헌용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군사편찬연구소는 지난해 12월 탐방단을 꾸려 항일 독립운동가 박용만의 무장투쟁 행적을 찾기 위해 하와이에 다녀왔다. 하와이에 한인이 처음 도착한 때는 1903년 1월 13일이다. 한인들은 어려운 노동 과정에서도 자신들의 수입 25%를 독립 의연금으로 내놓았다. 이민자 사이에 독립운동가 박용만도 포함됐다. 1905년 2월 도미한 박용만은 1908년 9월 네브래스카주 헤이스팅스대학에서 정치학을 배우며 ROTC에 입단했다. 그는 대학의 한 건물을 임차해 학생들을 기숙시키고 군사훈련을 시켰다. 해외 한인사회 최초의 일이었다. 그는 1909년 6월 커니 농장에서 시작된 한인소년병학교를 이듬해 4월 헤이스팅스 기숙학교로 옮겨 운영했다. 미래 독립 전쟁에 나설 군인을 양성하는 게 목적이었으나 일본의 압력과 재정난으로 지속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박용만은 훗날 독립 전쟁을 수행할 부대와 군인을 양성하고자 2000~3000명의 장정으로 구성된 병학교를 창설하고자 했다. 박용만은 자금을 모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이때 파인애플 농장을 운영하려던 박종수가 뜻밖에 농장을 내놓았다. 이번 답사 중 확인한 ‘박종수 수기’에 따르면 그는 1913년 말 오아후섬 동쪽 카할루 지역에서 파인애플 농장 관리 회사로부터 땅 400여 에이커를 5년간 임차하고 있었다. 박용만의 포부를 들은 박종수는 자신의 농장을 선뜻 박용만에게 인계해 대조선국민군단이 정식으로 창설됐다. 박용만은 군단장, 박종수는 대대장을 맡았다. 코올라우산 너머에 위치한다 하여 ‘산 넘어 병학교’라 불렸다. 대조선국민군단은 하와이 한인사회에서만이 아니라 상하이나 간도 지방에서도 학생이 지원했다. 선발된 학생 240명은 대략 17~35세 사이의 장정들이었다. 이 중 75명이 대한제국 군인 출신인 ‘광무군인’(光武軍人)이었다. 국민군단 학생은 오전 4시 기상해 5시 식사를 마치면 7시부터 농장 작업을 하고 9시에서 11시까지는 군사훈련에 임했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농장 작업에 투입되고 7시부터 학교 교육에 임하는 등 노동과 학습, 군사훈련을 병행했다. 그러나 병학교는 지속되지 못했다. 최영호 전 하와이대 교수는 하와이 주정부 문서보관소에서 찾은 문서를 단서로 일본의 견제로 병학교 운용이 더이상 불가능했다고 추론했다. 1915년 7월 6일 미 국무장관은 하와이 주지사에게 한인들의 반일 활동에 대한 주미 일본대사관의 불만 내용을 전했다. 하와이 주지사는 조사 후 일본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회신했지만, 분란의 소지를 계속 안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 후 대조선국민군단은 카후쿠로 이동했다가 다음해 해체됐다. 그럼에도 박용만은 미래 독립 전쟁에 대비한 군인 양성 사업을 무장투쟁론 실현을 위한 핵심이란 지론을 견지해 나갔고, 3·1운동의 촉발로 그 실천 장소는 미주 하와이가 아니라 만주 연해주로 이어지게 됐다.
  • 대형 사립유치원 모두 에듀파인 도입… 유치원 3법 통과만 남았다

    이덕선 이사장 설립한 유치원도 수용 내년부터 전체 사립유치원으로 확대 유은혜 장관 “회계 투명성 높일 첫걸음” 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는 국가회계관리 시스템인 ‘에듀파인’이 적용 대상 유치원에 사실상 100% 도입됐다. 유치원 비리를 막기 위해서는 에듀파인 도입을 넘어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교육부는 3월 15일 기준 에듀파인 1단계 도입 의무 사립유치원(원아 200명 이상) 570곳 중 568곳(99.6%)이 참여했다고 17일 밝혔다. 미도입 2개 유치원은 폐원신청을 냈고 원아가 모두 다른 곳으로 이동해 사실상 모든 유치원이 에듀파인을 도입했다고 교육부는 설명했다. 에듀파인은 국공립유치원과 초·중·고교에서 쓰는 온라인 회계관리 시스템으로 설립자와 원장 외에 일반 교사들도 회계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기존에 사립유치원들은 설립자와 원장들이 ‘주먹구구’식으로 회계를 운영해 비리를 저지를 수 있는 여지가 많았고, 부정을 저지르더라도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최근 개학 연기 투쟁을 주도하다 여론의 역풍을 맞고 사퇴한 이덕선 전 한유총 이사장이 설립한 경기도 동탄의 유치원도 에듀파인 도입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유치원은 지난 13일 이 이사장의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밖에 도입 의무 대상이 아닌 사립유치원 199곳(공영형 7곳 포함)도 자발적으로 에듀파인을 도입했다. 교육부는 현장의 에듀파인 적응을 돕기 위해 대표강사 134명 등을 투입해 사용자 교육도 실시한다. 에듀파인은 내년부터 전체 사립유치원에 의무 적용된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유치원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첫걸음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립유치원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서는 ‘유치원 3법’ 통과 등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유치원 3법은 사립유치원 설립자 등이 교비를 교육 목적 외 사용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법으로는 유치원 교비를 사적으로 유용해도 금액만 보전하면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국회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유치원 3법은 최장 330일이 지나야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는 규정에 따라 오는 12월까지 처리가 미뤄질 수 있다. 이 사이 한유총을 비롯해 유치원 3법 통과를 반대하는 강경파 유치원들이 ‘태업’(급식이나 간식의 질을 떨어뜨리는 등 고의로 서비스 질을 떨어뜨리는 것)에 나서거나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공동으로 법안 통과 저지 운동을 벌일 수도 있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회 위원은 “유치원 3법은 사립유치원 사태를 촉발한 원인인 설립자들의 교비 사적 유용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잠시만 집으로 가자”… 광화문 광장 품고 진실 찾아 떠난 세월

    “잠시만 집으로 가자”… 광화문 광장 품고 진실 찾아 떠난 세월

    손바닥만한 작은 영정 받아든 유가족들 “안전한 국가로 만들어달라” 마지막 당부 영정 실은 버스 광장 한바퀴 돈 뒤 시청行 서울시 청사 지하 4층 서고에 임시 보관 “분향소 철거, 끝이 아닌 진실규명의 시작” “우리 아들 딸들아, 저 조그만 사진 틀 안에서 예쁘게 웃고 있는 아가들아. 엄마 아빠 가슴에 안겨 이제 잠시만 집으로 가자. 이곳에서 밥을 굶고, 머리를 자르고, 눈물과 절규로 하루하루를 보낸 우리 엄마, 아빠들 지켜보느라 고생이 많았다. 집에 가서 예쁘게 단장하고 다시 오자. 우리를 지켜준 모든 분들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집에 가자.” 17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천막. 장훈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진혼사를 읽어내려가자 유가족들은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이어 안산 단원고 학생들부터 희생자 289명의 이름이 하나씩 불리고 유가족들은 힘겨운 발걸음으로 분향소 앞으로 나와 사진을 받아들었다. 손바닥 만한 액자 속 가족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마지막 인사를 건넨 유족들은 영정을 천으로 닦은 뒤 검은 상자에 조심스럽게 담았다. 이날 이안식을 시작으로 18일까지 광화문 광장의 세월호 천막은 모두 철거된다. 2014년 7월 처음 설치된 이후 4년 8개월 만이다. 5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 온 영정들이 1시간 30분에 걸쳐 모두 떼어지는 동안 노란색 옷을 입은 시민들은 영정 하나하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안식이 끝나고 영정을 담은 상자를 태운 버스는 수많은 눈물과 아픔이 있던 광화문 광장을 한 바퀴 돈 후 서울시청으로 향했다. 장훈 운영위원장은 추모 낭독에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못 했는데 광화문 분향소를 정리한다는 것이 가족들에게는 힘이 든다”면서 “하지만 광화문광장은 시민의 공간임을 잘 알기에 이안식을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은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야 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국가는 국민을 지켜야 한다”며 다시 한번 안전한 국가를 소망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추모 발언에서 “광화문 광장 내 세월호 천막은 촛불 항쟁의 발원지이자 중심지”라며 “분향소를 닫는 것이 끝이 아니라 진실을 마주할 때까지 행진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천막을 철거해야 한다고 한 언론, 폭식 투쟁했던 ‘일베’ 회원, 옆을 지나가며 욕설을 퍼붓는 태극기 부대도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이안식에 앞서 종교인들도 가족들을 위로했다. 명진 스님은 “아이들이 하늘의 별이 되어,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음을 알려줬다”며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 이 광장에서 울었던 모든 날들, 꿈꾸고 희망했던 모든 것을 가슴에 담아 기억하는 날”이라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 세월호 천막은 참사 3개월 만인 2014년 7월 14일 처음 설치됐다. 당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단식농성을 시작한 유가족들이 광화문에서 동시에 단식에 돌입하면서 만들어져 시민들에게 참사와 진상규명 필요성을 알리는 거점 역할을 해왔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46일간 단식 농성 벌인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같은 해 8월과 9월에는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 회원들이 단식을 조롱하며 농성장 코앞에서 음식을 먹는 ‘폭식투쟁’을 벌이는 등 유족들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대형 사립유치원 에듀파인 참여율 ‘사실상 100%’

    대형 사립유치원 에듀파인 참여율 ‘사실상 100%’

    에듀파인(국가관리회계시스템) 도입을 반대했던 대형 사립유치원들이 100% 수용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교육부는 에듀파인 도입 의무 대상인 대형 사립유치원(원아 200명 이상) 570곳 중 568곳(99.6%, 15일 기준)이 에듀파인 참여 의사를 전했다고 오늘(17일) 밝혔다. 교육부는 “에듀파인을 끝내 도입하지 않은 경기도의 유치원 2곳은 폐원 신청을 했고, 현재 재원 중인 원아가 없다”면서 “사실상 100% 도입을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덕선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이사장이 설립한 경기도 동탄의 유치원도 에듀파인을 도입한다. 해당 유치원은 지난 14일 이 이사장의 횡령 등 혐의 때문에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바 있다. 대형 사립유치원은 지난해 10월 공시 기준으로 581곳이었다. 최근 폐원 신청한 2곳을 포함하면, 581곳 중 13곳이 유치원 비리 사태 이후로 휴원 혹은 폐원을 결정했다. 6곳은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개학 연기 투쟁’ 철회 이후로 폐원·휴원을 결정했다. 의무화 대상이 아니지만, 에듀파인을 도입하기로 결정한 원아가 200명 미만 사립유치원은 공영형 유치원 7곳을 포함해 199곳이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에듀파인 도입으로 유치원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첫걸음이 시작됐다”면서 “내년에 전체 사립유치원에 차질 없이 적용하도록 보완하고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에듀파인을 도입하기로 한 유치원들에 대해 사용법 연수 및 전문 상담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임정, 온전한 조국 독립 꿈꿨는데… 통일이 진정한 광복 완성”

    “임정, 온전한 조국 독립 꿈꿨는데… 통일이 진정한 광복 완성”

    이런 삶을 살아온 이가 있다.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이하 임정) 청사 옆에서 도산 안창호(1878~1938) 등의 축하를 받으며 태어났다. 상하이~항저우~난징~창사~광저우~류저우~치장~충칭으로 이어지는 중국 대륙을 임정과 함께 풍찬노숙하며 횡단했다. 한국인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김(金)씨 대신 진(陳)씨로 성을 바꿔 학교를 다녔고, 백범 김구(1876~1949)와 김치에 거친 밥을 겸상했다. 석오 이동녕(1869~1940)과 성재 이시영(1869~1953)을 할아버지라 부르며 졸졸 따라다니던 소년이었다. 1930년대 중국 영화 황제 미남배우 김염(1910~1983)이 드나든 집에서 자란 이 소년은 훙커우공원 폭탄의거의 윤봉길(1908~1932)이 “내 아들과 동갑”이라고 사탕 사주며 예뻐했다. 엄마 손잡고 약산 김원봉(1898~1958)의 부인이자 여성 독립운동가인 박차정(1910~1944)이 폐병으로 세상을 뜨기 전 병문안 다니곤 했다.이 소년은 열아홉 되던 해 광복을 맞았다. 올해로 91세인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의 이야기다.만주군 장교에서 일제 패망 직후 광복군으로 신분을 바꾼 박정희(1917~1979)와 거의 같은 시기 미군 수송선을 타고 임정 식솔과 함께 상하이에서 부산으로 왔다. 귀국 뒤 이승만(1875~1965)에게 세배를 갔고, 결혼식 주례는 해공 신익희(1894~1956)가 섰다. 의용군으로 끌려가다 겨우 도망쳤더니 아버지는 전날 납북돼 영원한 이별을 하고 말았다. 조선일보 수습 1기 기자로 일하며 모스크바 3상회의에 대한 역사적 오보를 바로잡는가 하면, 박정희 정권에 의해 ‘사법살인’을 당한 뒤 훗날 무죄로 판결난 조용수(1930~1961)와 함께 민족일보 창간멤버로서 진보언론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그의 삶 곳곳에는 현대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숱한 인물들이 출몰한다. ●모스크바 3상회의 역사적 오보 바로잡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역사의 한복판에서 부침을 함께한 김 회장. 대한제국 법무대신 등을 지내다 가솔을 이끌고 임정으로 망명한 뒤 독립운동에 나섰던 동농 김가진(1846~1922)이 그의 할아버지고,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김의한(1900~1964)과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정정화(1900~1991)가 그의 아버지, 어머니다. 2019년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은 감회는 누구와 비교할 바 아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임시정부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김 회장을 만났다.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함께 충칭 임정 청사를 방문해 당시의 삶과 활동을 설명할 정도로 기력이 좋았지만, 지금은 거동이 좀더 불편해졌고, 청력도 많이 약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기억은 또렷했고, 또박또박 짚어내는 임정의 가치와 정신은 청춘처럼 빛났다. -올해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은 소회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 “임정은 조국의 독립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지금 같은 반쪽짜리 독립은 아니었습니다. 분단은 진짜 독립이 아닙니다. 분단이 있는 한 광복은 미완성입니다. 1946년 제가 귀국할 때만 해도 분단이 이렇게 오래가리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70년 동안 분단이 고착됐으니 짧은 시간 내에 통일은 어려울 듯합니다. 일단 남북의 평화로운 공존이 필요하고, 자유롭게 교류하고 협력하는 모습 자체가 통일의 과정이지요.” -젊은 사람들은 물론 많은 사람이 임정 100주년의 의미나 혹은 독립운동 자체에 대해 별 감흥이 없는 듯합니다. 그런 반응을 접하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감흥이 없는 게 당연하지요. 그렇다고 젊은 세대를 탓할 것은 아닙니다. 국가와 정치가 하기에 달려 있는 부분이고 그만큼 잘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대한민국은 헌법에서 밝히고 있듯 임정의 법통을 이어 왔습니다. 광복 이후 그 부분을 좀더 정확히 밝히고 임시정부의 목표와 강령을 실천했다면 그렇지 않았겠죠. 정치를 통한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교육을 통해 이를 후세와 공유해야 합니다.” -최근 정부가 임정 수립일인 4월 11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려다 사실상 백지화하기로 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쉽습니다. 한때 건국절 등 논란이 일기도 했던 만큼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대통령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시대인 만큼 어쩔 수 없죠. 교육기관 등을 통해 항일투쟁의 역사, 친일 인사들의 행적, 일제의 침략 역사 등을 정확히 배울 수 있게 하고 임정의 가치를 잘 공유하면 됩니다.” ●남북관계 복원 난관… 곧 좋은 소식 있을 것 기대 -통일이 광복의 완성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최근 북미 정상회담 흐름 등 한반도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지만 지난달 베트남 회담에서 확인됐듯 여전히 뿌리 깊은 북미 상호 불신을 드러낸 부분 또한 있습니다. 일본과의 관계도 악화일로고요. “일단 남과 북이 서로를 통일의 주체로 인정해야 합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유소년 시절 서구에서 유학하는 등 서구문화의 영향이 분명히 있을 것이며, 그로 인해 안목 또한 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완전히 망쳐 놓은 남북 관계를 복원하는 작업인 만큼 난관이 있더라도 곧 좋은 소식이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야 우리의 통일에 관심이 없겠지만, 자신의 명망을 높이는 일이거나 미국에도 이익이 되는 일이니 북미 관계 정상화 및 한반도 평화를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일본이야 기대할 부분이 별로 없고, 당분간 집권당도 안 바뀔 것 같고…. 훼방하지 않도록만 우리가 잘 관리해야죠. 내 생전에 통일까지는 아니라도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남북의 모습은 꼭 봤으면 좋겠습니다.” 김 회장은 임정의 정신과 교훈을 얘기하며 평화와 통일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실제 임정은 공화주의를 지향한 좌우합작 정부였다. 좌익, 우익, 아나키스트, 유림까지 모두 모인 용광로 같은 곳이었다. 우익 인사인 백범이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며 평양을 찾은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임정의 정신이 통일 지향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다음달 11일 열리는 임정 수립 100주년 기념식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 선포식’도 치러질 예정인데 이 기념관 건립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요.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그 선양사업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현재는 아무개 선생, 아무개 선생 등 개별 후손 중심으로 기념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후대로 넘어갈수록 먹고살기 바쁘고 관심도 시들해져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념관이 만들어지면 국가가 체계적으로 독립운동 관련 자료도 한데 모으고 개별 독립운동가들의 뜻과 업적을 기릴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2021년 완공 예정인데, 늠름히 서 있는 모습을 꼭 보고 싶어요.” -꼭 그러셔야죠. 그런데 조심스럽습니다만, 말씀하신 임정의 진정한 독립 정신을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제대로 이어 가지 못한 채 과거 독재정권과 타협하는 일도 제법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을 탓할 수만은 없어요. 시대가 그랬고, 교육이 그랬으니까요. 또 후손들이라고 아버지, 어머니와 똑같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물론 타협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광복회를 만들어서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을 권력 주변으로 많이 포섭했습니다. 유공자 서훈도 원칙과 기준 없이 남발하다시피 했고요.” 실제 김 회장의 조부(동농 김가진)는 항일 비밀조직인 조선민족대동단을 결성해 활동했고 망명 뒤 임정 고문, 북로군정서 고문을 맡았으며, 그의 장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장으로 치러졌다. 하지만 아직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밖에 약산 김원봉 또한 독립유공 서훈이 없다. 반면 이승만 전 대통령의 비서 출신인 임병직 전 외무부 장관은 가장 높은 서훈인 대한민국장을 받아 원칙과 기준에 대한 의문을 낳게 했다. 지난 13일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 포상 보류자 2만 4737명에 대해 재심사를 하겠다고 밝힌 만큼 투명하면서도 체계적인 서훈이 내려질 것인지 기대를 모으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임정 건국강령 21세기 복지국가정책 닮은 꼴 임정이 1941년 발표한 건국강령은 21세기 복지국가들이 표방하는 정책과 다를 바 없다. 1948년 제헌의 내용적 기초가 됐으며 2019년 현재도 여전히 유효한 실천적 과제를 담고 있다. 의료비 면제, 학비 면제, 최저임금제, 노동자 대표 경영관리 참여권 보장, 실업보험, 사형제 폐지, 노동자와 이익을 나누는 이익균점제, 몰수 재산 무산자 이익 위한 국영기관 이전 등을 주 내용으로 삼았다. 김 회장과의 얘기가 깊어질수록 100년 전 임시정부가 꿈꾼 나라를 우리가 잘 만들어 가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youngtan@seoul.co.kr
  • 혼다 전 美하원의원 “아베, 과거사 솔직히 사죄해야”

    혼다 전 美하원의원 “아베, 과거사 솔직히 사죄해야”

    진선미 “김복동 할머니 안 외로우실듯”“아베 총리가 이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솔하게 사죄해야 합니다.”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주도한 마이크 혼다(78) 전 의원이 13일(현지시간)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과 함께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해켄섹의 위안부 기림비를 참배한 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과거사 인식을 강하게 비판했다. 진 장관은 유엔 여성지위위원회(CSW) 연례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이다. 해켄섹 기림비는 2013년 버겐카운티 법원 앞 ‘메모리얼 아일랜드’에 세워졌으며 미국 자치정부가 건립한 첫 위안부 기림비다. 미 노예제도로 희생된 흑인, 나치에 학살된 유대인, 아일랜드 대기근 희생자, 아르메니아 학살 피해자 등을 추모하는 기림비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혼다 전 의원은 이날 “위안부 이슈는 동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후세대에 역사를 가르쳐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일본은 모든 것을 요구하고, 한국은 많은 것을 내준 불평등한 합의였다”면서 “무엇보다 그 합의에는 할머니들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만약 내 할머니가 그런 치욕을 느꼈다면 외교 무대에서 지금과 같은 예의를 잠시 옆으로 치워두겠다”고 덧붙였다. 이는 2015년 합의가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배려없이 이뤄졌으며 일본 정부가 진실한 사죄 없이 배상금 몇 푼으로 역사를 지우려 했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이어 혼다 전 의원은 “그(아베 총리)에게 사과는 자신의 할아버지와 모든 이들이 잘못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면서 “그의 역사 부정은 미국에 노예가 없었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사죄를 촉구했다. 또 그는 “아주 많은 일본인은 이 사실을 잘 알고 마음 아파하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없다”면서 “언론이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진 장관은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다 함께하면서 외롭지 않으시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화답했다. 혼다 전 의원은 미 정계에서 일본의 과거사 인식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온 일본계 3세 정치인이다. 2001년부터 17년간 민주당 소속 하원 의원으로 활동하다 이후에는 위안부 문제 등 인권 운동에 참여해왔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쾌감과 좌절감 사이…가려졌던 北 만나다

    쾌감과 좌절감 사이…가려졌던 北 만나다

    북한★여행/뤼디거 프랑크 지음/안인희 옮김/한겨레출판/436쪽/2만원 ‘보여 주려는 데가 아닌, 그 이면에서 더 많은 걸 볼 수 있는 곳.’ 북한을 여행해 본 이들이 한결같이 털어놓는 소감이다. 이동과 접촉의 엄격한 통제에 따른 제한적 방문과 목격에 대한 불만일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서양인들은 북한 방문을 원한다. 특히 북미 정상회담 이후 그 욕구는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KDB 미래전략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북한은 원산·금강산을 비롯한 6개 관광개발구와 압록강·만포 등 5개 관광산업 관련 경제개발구를 지정했다. 북한 지역의 관광 기회가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이 책은 북한 지역의 가려진 모습을 냉정한 시선으로 보여 줘 눈길을 끈다. 저자는 30년간 북한 곳곳을 다닌 오스트리아 빈대학교 ‘동아시아 경제와 사회’ 교수. 1991년 평양 김일성종합대학에 유학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5월까지 매년 북한을 드나들며 이면의 실상을 추적해 왔다. 책은 그 끊임없는 발품의 결산이다. 북한 전문가 자격으로, 때로는 여행객으로 찾아가 드러낸 북한 9도 16개 대표도시의 이면이 생생하다. 중국이나 서해안에서 들어와 평양으로 가는 물품들이 전국으로 흩어지는 평성, 진짜 시장을 방문할 수 있는 라선, 전통 기와지붕과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그대로 보존된 그림 같은 개성…. 그곳들을 밟아 본 저자의 소감 역시 일반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 여행은 감정적으로 매우 도발적이고 절묘한 줄타기이다. 방문객들은 쾌감과 좌절감 사이에서 정서적 롤러코스터를 탄다.” 그 소회대로 저자가 조심조심 훑어 낸 실상은 기존 지식에 비춰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전통 방식이 여전히 통용되는 쇼핑이 대표적이다. 구매자가 판매원에게 원하는 물건을 말하면 판매원은 종이쪽지를 구매자에게 주고 구매자는 쪽지를 들고 따로 떨어져 있는 계산대로 간다. 계산대에 돈을 내면 종이에 도장을 찍어 주는데 이 종이를 들고 판매원에게 돌아오면 이미 포장을 마친 상품을 종이와 바꿔 준다.평양에 퍼져 있다는 게릴라 식당도 눈길을 끈다. 눈에 띄지 않는 주택가의 게릴라 식당은 북한 사람들로 바글거렸고 음식은 전에 맛본 어떤 한국 음식보다 훌륭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잘 먹는 것이 중요한 사람들이 평양에 충분히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렵게 찾아간 찻집 인상기도 눈에 띈다. “주인이 있는 동안에는 모든 게 다 잘 돌아간다. 하지만 주인이 집을 비우고 가게 운영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서비스의 질과 기업가 정신은 사회주의 게으름에 자리를 내주고 이따금 뭔가가 없어지기도 한다.” 초코파이 이야기도 있다. 초코파이 한 개가 암시장에서 10달러에 팔린다는 소문은 서양의 미디어가 북한에만 존재하는 외화원(외환 계산을 위한 원)의 작동 원리를 몰랐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임을 지적한다. 실제로 초코파이는 시장에서 대략 1200원(약 0.15달러)에 팔렸다고 한다. 그 숨은 이야기들은 어찌 보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을 수 있을 만큼 크게 놀랄 만한 것들이 아닐 수 있다. 그보다는 감춰진 장소와 그곳 사람들에 대한 냉정한 시선과 평가가 돋보인다. 이를테면 당창건기념탑을 방문하곤 이렇게 쓰고 있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처럼 북한에서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지식인은 가혹한 박해를 받았다. 하지만 중국의 문화혁명처럼 지식인 전체에 대한 무차별 박해는 없었다. 완전히 획일화되어 국가 노선을 따르는 예술계와 학계의 풍경을 보면 김일성과 투쟁 동지들은 지식인을 공공연히 배제하기보다는 통합할 만큼 영리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해부터 저자의 북한 방문이 막힌 이유는 이 책 때문이라고 한다. “머지않은 시기에 이 책이 한 시대의 기록물로만 남기를 바란다”는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 뼈 있는 말을 남겼다. “북한은 분명 낙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옥도 아니다. 일면적인 관찰은 불공평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도 하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순천시민사회단체, 포스코에 환경권 회복 범시민 소송할 터

    순천시민사회단체, 포스코에 환경권 회복 범시민 소송할 터

    “미세먼지의 주범인 포스코에 환경권을 회복하는 범시민참여 소송을 전개하겠다.” 순천시민단체가 순천만 국가정원에서 스카이큐브를 운영하는 포스코에 잔뜩 화났다. 순천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포스코 환경권침해회복 범시민소송단 조직위는 14일 순천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스코가 순천시에 스카이규브 운행적자 1367억을 보상 청구한다는 사실에 분노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순천지역 시민단체는 스카이큐브 운행계획이 수립되던 2010년부터 줄곧 사업의 부당성과 순천시와 맺은 협약의 불공정성을 지적해왔다. 이날 참석한 시민단체 50여명은 “운행계획이 30년이지만 5년도 안돼 포스코는 적자가 200억이 누적됐다고 주장하고 사업을 접겠다는 의사를 지난 1월 순천시에 통보했다”며 “최근에는 1367억이라는 턱없는 보상액을 산출해 대한상사중재원에 조정해달라는 신청서를 준비 중인 황당함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포스코가 손해발생 시 순천시에 보상을 요청하지 않겠다고 했었다”며 “운행적자는 포스코 기획팀의 무능의 소치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들은 “공영기업인 포스코가 시민의 혈세를 털어가려면서 사회공헌을 운운하냐”며 “소형무인궤도차 사업은 순천시의 필요성보다는 포스코의 도시교통수단에 대한 미래형 전략투자사업이었다”고 꼬집었다. 순천시민단체들은 “투자손실에 대한 보상 요구는 포스코의 알량한 사회사업의 이면에 감추어진 부도덕하고 배부른 자들의 경영방식이다”면서 “상생의 고리를 포스코가 먼저 끊은 만큼 전남동부권 시민들과 연대해 포스코에 대한 정당한 환경권 회복 투쟁을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포스코 자회사인 에코트랜스는 2012년 순천시와 스카이큐브 운영 협약을 하고 30년간 운행한 뒤 기부채납하기로 하고 2014년부터 운행에 들어갔다. 에코트랜스 측은 협약 초기에 연간 100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측했으나 이용객이 줄면서 5년간 쌓인 적자만 200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에코트랜스는 순천시가 협약을 이행하지 않아 운영 중단의 책임이 있다며 대한상사중재원에 중재를 신청할 계획이다. 이와관련 순천시는 “사업자의 경영부실을 시에 떠넘기려 한다”며 “1천억원이 넘는 보상금을 요구하는 것은 협박과 다름없어 시민사회와 정치권 등에 포스코의 부당함을 알리겠다”고 밝혔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검찰, 이덕선 전 한유총 이사장 자택·유치원 압수수색

    검찰, 이덕선 전 한유총 이사장 자택·유치원 압수수색

    검찰이 14일 이덕선 전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이사장의 자택과 유치원에 대해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했다. 수원지검은 이날 오전 9시 이 전 이사장의 서울 여의도 자택과 경기 화성 동탄의 유치원 등 총 5곳에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을 벌였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두 곳을 상대로 이 전 이사장이 받고 있는 횡령 및 사립학교법 위반 혐의와 관련한 자료를 확보 중이다. 검찰의 압수수색은 이 씨가 한유총 이사장직을 사퇴한 지 사흘 만에 이뤄진 것이다. 앞서 경기도교육청은 사립유치원에 대한 감사 과정에서 이 씨의 이 같은 혐의를 확인해 지난해 고발했다. 검찰은 이 전 이사장이 원비를 정해진 용도 이외에 사용했다고 보고 수사해왔으며 이미 이 씨를 여러 차례에 걸쳐 소환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 전 이사장은 경찰 단계에서부터 계속 불러 조사해왔다. 자세한 혐의 내용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전 이사장은 국가관리회계시스템 에듀파인 도입과 회계비리 적발 시 형사처분을 골자로 하는 유치원 3법 등에 대해 반대하면서 한유총의 이른바 ‘개학연기’ 투쟁을 주도했다. 그러나 여론이 크게 악화하고 정부가 압박에 나서면서 한유총은 투쟁을 중단했고, 결국 지난 11일 이 전 이사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아름다운 세상’ 추자현, 안방 복귀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강하다”

    ‘아름다운 세상’ 추자현, 안방 복귀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강하다”

    배우 추자현이 ‘아름다운 세상’으로 오랜만에 드라마로 컴백,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강하다는, 아름다운 진심이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오는 4월 5일 첫 방송 되는 JTBC 새 금토드라마 ‘아름다운 세상’(극본 김지우, 연출 박찬홍, 제작 MI, 엔케이물산)은 학교폭력으로 인해 생사의 벼랑 끝에 선 아들과 그 가족들이 아들의 이름으로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추자현은 아들 선호(남다름)의 사건 뒤에 감춰진 진실을 찾기 위해 온몸으로 투쟁하는 엄마 ‘강인하’를 연기한다. 이름 그대로, 그리고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강인한 엄마다. “쉬지 않고 연기를 해왔지만, 한국 드라마로는 9년 만에 시청자들을 만난다. ‘나’라는 배우를 찾아준 감독님과 작가님에게 감사한다”며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을 만난 소감을 전한 추자현. 오랜만에 돌아온 현장에서의 설렘도 잠시뿐, 수많은 고민과 책임감이 밀려왔다. “예전에 내가 했던 연기는 테크닉에 많이 의지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데 대본을 받고 보니 100% 진심이 아니라면 인하의 감정이 전달되지 않겠더라. 그래서 첫 촬영 때 많이 떨었다”는 기억을 떠올린 것. 그때 “우리가 뒤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박찬홍 감독의 독려가 큰 힘이 됐다. 그렇게 조금씩 엄마 인하가 돼간 추자현. 고등학교 물리 교사인 무진(박희순)과 결혼해 두 아이 선호와 수호(김환희)의 이름을 딴 ‘호호’ 베이커리를 운영하며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온 인하에 대해 “엄마의 유형은 상황과 배경에 따라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인하는 그냥 엄마, 보통 엄마”라고 표현했다. 자식이 있는 엄마라면 누구라도 스스로를 덧그릴 수 있는 캐릭터이기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눈물 한 방울을 흘려도, 내 가슴에 울림이 없으면 안 되겠더라. 그래서 감정이 100% 차오르지 않을 땐 스태프들에게 기다려달라고 양해를 구했다”라는 추자현은 “어떤 부분은 서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가슴으로 연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요즘 제목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고 있다. 처음엔 “너무 평범하지 않나”라는 느낌도 받았지만, “요즘 사람들이 ‘아름다운’이란 표현을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제목이 주는 역설이 더욱 와닿았다”고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얼마 전 엄마가 됐다. 그래서 내 아이가 컸을 때 세상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다”며 “드라마의 모든 여정이 끝났을 때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제목이 시청자들에게도 남다른 의미로 남길 바란다”는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캐릭터를 향한 그녀의 깊은 공감과 남다른 애정이 담긴 ‘아름다운 세상’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한편 ‘아름다운 세상’은 ‘부활’, ‘마왕’, ‘상어’, ‘발효가족’, 그리고 ‘기억’을 통해 인간에 대한 성찰과 깊은 울림이 있는 메시지를 담은 드라마로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콤비, 박찬홍 감독과 김지우 작가의 작품이다. ‘리갈하이’ 후속으로 오는 4월 5일 금요일 밤 11시 JTBC에서 방송된다. 사진제공 = MI, 엔케이물산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좌익 경력 298명 포함 여성·의병 독립운동가 적극 발굴

    국가보훈처가 좌익 활동을 했던 ‘독립운동가 포상 보류자’를 일부 포함해 여성·의병 독립운동가를 적극 재심사해 발굴하겠다고 밝히면서 약산(若山) 김원봉(1898∼1958) 선생 등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투쟁가들이 포함될지 관심이 쏠린다. 보훈처가 13일 해외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면보고한 ‘2019년 업무보고’에 따르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계기로 광복 후 좌익활동 경력자 298명을 포함해 독립유공자 포상 보류자 2만 4737명에 대해 재심사를 실시한다. 우선 여성 및 의병 독립운동가 중 미포상자 1892명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적심사를 실시한다. 전체 2만 4737명인 포상 보류자에 대해서는 수형 기준 미달자 3133명과 광복 후 좌익활동 경력자 298명 등을 재심사하기로 했다. 보훈처는 지난해 광복절에 수형최저기준 3개월을 완화하고 ‘광복 후 행적 불분명자’(사회주의 활동 경력자)도 포상할 수 있도록 한 바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 독립유공자 지정 여부로 논란이 된 김원봉 선생은 북한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냈다는 이유로 올해 재심사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광복 후 행적 불분명자의 포상 기준에는 ‘북한 정권 수립에 직접 기여하지 않은 인물이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독립운동가 포상 기준은 국무회의나 국회를 거치지 않는 내부지침이다. 따라서 향후 심사기준이 개정되면 김원봉 선생이 재심사 대상이 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김원봉 선생은 1919년 12월 의열단을 조직히 일제 수탈 기관을 파괴하고 요인 암살 등으로 투쟁을 했다. 1930년대부터는 조선민족혁명당을 지도하며 중국에서 민족해방운동을 주도했고, 조선의용대라는 군사조직을 편성키도 했다. 1942년 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 및 군무부장도 지냈지만 1948년 월북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됐다. 이후 국가검열상, 노동상 등을 지냈으나 1958년 숙청됐다. 이외 보훈처는 기존 독립유공자의 공적을 전수조사해 친일 행위 등이 확인되면 서훈을 취소할 방침이다. 특히, 심사가 미흡했던 1976년 이전 서훈자부터 단계적으로 검증한다. 우선 검증 대상자는 587명으로 오는 7월에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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