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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람] 이종격투기 도전 신종우 한양증권 이사

    [이사람] 이종격투기 도전 신종우 한양증권 이사

    요즘 바쁘게 생활하는 직장인 중에도 틈틈이 운동을 하며 건강을 챙기는 이들이 많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선 체력도 실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업 경쟁이 치열한 증권사의 40대 임원이 가장 격렬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이종격투기(MMA)에 흠뻑 빠져 있다면 보통의 경우는 아닐 것 같다. 신종우(41) 한양증권 법인영업팀 이사가 그 주인공이다. ●내년엔 링에서 1승이 목표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근처의 한 스포츠센터. 각종 스포츠 단련장이 즐비한 이곳에 이종격투기 체육관도 있다.K-1 선수로 변신한 최홍만 덕분에 이미 눈에 익숙한 포즈로 땀을 흘리는 동호인들이 제법 많다. 여성 회원들을 포함해 거의 대부분 직장인들이다. 한쪽 링에서 다부진 덩치(키 173㎝)의 신 이사가 키가 좀 커 보이는 회원과 맞붙었다. 신 이사는 링에 오르자마자 상대방의 무차별 주먹을 안면에 허용했으나 왼발 ‘미들킥’으로 옆구리를 차고 재빨리 목조르기(암트라이앵글초크)에 들어갔다. 이종격투기는 복싱, 레슬링, 무예타이 등 갖가지 무술의 장점을 합친 종합무술이다.K-1과 경기방식이 거의 똑같지만, 선 채로만 경기를 하는 K-1과 달리 레슬링처럼 누워서 조르기 등을 할 수 있다. 신 이사는 법인영업 업무 특성상 저녁식사 약속이 많지만 약속이 없으면 일주일에 2∼3번씩 체육관을 찾는다. 약속이 있어도 오후 3시 주식시장이 끝난 뒤 꼭 몸풀기 훈련이라도 하고 약속 장소에 간다.2년째 이종격투기에 매료된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년의 꿈은 아마추어 대회에서 1승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고픔 잊으려고 다시 운동 신 이사는 어릴적부터 운동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운동이 한때 자살충동에 빠질 만큼 망가졌던 자신을 수렁에서 건져주었기 때문에 지금은 삶의 일부로 여기고 있다. 대구에서 자란 신 이사는 1984년 영남대 법학과에 입학하기 전에 공인 유도 3단, 합기도 2단의 실력을 갖췄다.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그는 대학축제의 ‘A급 MC’로도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대학생의 월 수입이 600만∼700만원이나 돼 술집 출입도 잦았다. 학사장교로 군에 입대, 육군 특공연대에서 특공무술도 익혔다. 군 전역후 투자신탁증권사에 입사했다. 동료들을 앞질러 능력을 발휘하며 몇년 만에 핵심 영업점인 압구정동 지점장으로 나갔다. 적립식펀드와 비슷한 주식형수익증권을 판매하면서 ‘원금보전기법’의 상품을 ‘원금보장’상품이라고 둘러대고 목돈 유치에 과욕을 부리다 그만 사고를 친다. 주가하락으로 각서까지 써주고 끌어들인 고객 계좌와 선후배들의 채무보증이 빚으로 바뀌었다. 갚아야 할 빚이 5억원이나 됐다. 월급은 차압을 당하고 가족과 함께 수원의 월세 단칸방으로 밀려났다. 볼모로 직장생활을 하며 외환위기를 맞았다. 신 이사는 “주머니에 돈이 없어서 직장 동료들이 점식을 먹으러 나가면 혼자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배고픔을 잊기 위해 회사 체력단련장에서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면서 “바벨을 들면서 대학 때 흥청망청 돈을 쓰고, 하루에 수십억원을 주무르던 투신사 지점장의 처지가 처량하고 또 부끄럽기도 해서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운동이 재기의 투지를 불러 그러나 운동을 시작하자 ‘다시한번 해보자.’는 투지가 생겼다. 퇴근하면 증권가에서 ‘투자의 귀재’로 통하는 전문가를 찾아가 돈 버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떼를 썼다. 딱한 사정을 이해한 전문가로부터 장외주식거래, 파생상품 투자 등에 대한 노하우를 배웠다. 또 새벽 3시에 수원 집을 나와 과천의 청계산을 4시간 동안 등반하고 회사에 출근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6개월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차츰 돈벌이가 좋아져 3년여 만에 5억원의 빚을 모두 갚았다. 그는 “빚을 다 갚고 회사를 그만두는 날 남은 재산은 760만원뿐이었다.”면서 “앞으론 빚 없는 세상에서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문사 등을 거쳐 3년전 한양증권에 둥지를 틀었다. 브라질 유술인 ‘주짓수’ 등 운동은 계속했다. 법인영업은 펀드매니저, 연금 담당자 등을 상대로 수천만원에서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기관 자금의 주식매매를 유치하는 업무다. 어떻게 하든 ‘큰손’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기부는 즐거움이며 책임감 때문 신 이사는 법인영업을 하며 자신이 건네준 명함이 그 자리에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경험을 수없이 했다. 그러나 그 정도에 기가 죽을 그가 아니었다. 언젠가 한 법인 사무실에 들어선 그는 무작정 한 책임자의 옆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당신 누구냐.”고 책임자가 묻자,“이곳에 아는 사람이 없어 창피해서 그러니 잠시만 앉아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몇분 뒤 꾸벅 인사만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신 이사는 “3∼4번 그렇게 행동하자 나중에 그 책임자가 ‘뭐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먼저 말을 걸더라.”면서 웃었다. 신 이사는 지금 증권가에서도 손꼽히는 수억원대 연봉의 영업전략 전문가다.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가까운 사찰을 찾아 시주하는 게 즐거움이다. 매월 사회복지재단과 노숙자단체에 상당한 금액을 기부하는 것은 힘겹게 보낸 과거를 되돌아보며 어떤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는 “결코 다시는 인생의 링 위에 쓰러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인사]

    ■ 금호생명 (지역본부장) △서울 朴鍾哲△충청 柳相烈△부산 金冕煥 (팀장)△인력개발 文炳述△AM 李亨淵△고객서비스 洪東基△영업지원 具熙泰△영업교육 黃圭榮△제휴사업 朴永昇 (지점장)△강서 宋基般△스타 申鉉敦△한양 洪淳赫△마포 李在雄■ 미래에셋자산운용 (부사장) △운용부문 최고 책임자 CIO 손동식 (상무보)△마케팅본부장 이철성 (이사대우)△컴플라이언스본부장 여중기 (본부장)△투자전략 강두호△주식운용4 김태홍 (팀장)△주식운용 김관오 김성우 구용덕△투자전략 박재홍△시스템운용 이현경△경영관리 형정숙△마케팅 임명재 권오성 △국제영업 박명주△e-business 구필희 ■ 미래에셋투신운용 (상무보) △채권운용본부장 김성진 (이사대우)△마케팅1본부장 김종육△마케팅2본부장 권순학 (본부장)△주식운용2 이주윤 (팀장)△주식운용 박진호 소진욱 차진호△채권운용 서재춘△마케팅 성태경△경영기획 김형진△인사총무 임덕진 ■ 맵스자산운용 (상무보) △부동산투자본부장 신봉교 (이사대우)△주식운용본부장 이준용 (팀장)△주식운용 이태윤 김승철△PEF투자팀장 유혁상 이상준 성익환△컴플라이언스2 김헌주■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선임연구본부장 崔憲宗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양그룹-창업주 故 이양구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양그룹-창업주 故 이양구회장家

    동양은 국내 재벌가(家)에서 최초로 사위가 승계한 그룹이다. 동양 창업주인 고 이양구 회장이 1945년 북에서 혈혈단신으로 월남한데다 이관희(76)여사 사이에 딸만 둘을 둔 것과 무관치 않다. 이 창업주의 차녀인 화경(49)씨가 일찍이 경영에 참여해 현재 오리온 사장직을 맡고 있지만 동양의 ‘경영 대권’은 맏사위인 현재현(56) 동양 회장과 둘째 사위인 담철곤(50) 오리온 회장에게 돌아갔다. 가족 구성원이 단출한 만큼 이 창업주가(家)의 혼맥도는 정·관·재계에 든든하게 뿌리를 내린 국내 여느 재벌가와 달리 단순하다. 또 이 창업주가 딸들의 통혼을 통해 사돈가(家)의 후광을 기대하기보다 자신의 유업을 이어갈 사위들의 ‘사람 됨됨이’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도 혼맥의 단순함을 더했다. 특히 오리온 담 회장의 집안이 화교 출신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설탕왕·시멘트왕’ 이양구 창업주 동양 창업주인 서남(瑞南) 이양구 회장은 1916년 함경남도 함주군의 작은 농가에서 부친 이교흠(작고)씨와 모친 김성자(작고)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이 25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면서 서남의 어린 시절은 힘겨운 생활로 점철됐다.15세의 늦은 나이에 보통학교 졸업장을 받은 서남은 상급학교 진학 대신 ‘함흥물산’이라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식료품 도매상에 취직했다. 서남은 훗날 이곳에서 ‘정직과 신용’이라는 상도를 배웠다고 밝혔다. 8년간 악착같이 돈을 모은 서남은 1938년 식품도매상인 ‘대양공사’를 시작으로 6·25전까지 수차례의 회사를 세우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그때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고향에 수십만평의 토지와 1억원에 가까운 거금도 삼팔선과 전쟁으로 잃었다. 그러나 그는 부산에서 설탕도매업을 기반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전시의 특수 경기와 생필품 부족이 거꾸로 그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서남은 부산과 마산, 대구 등에서 이른바 ‘설탕왕’으로 불렸다. 서남은 당시 국내 유일하게 설탕을 생산했던 고 이병철 삼성 회장, 고 조홍제 효성 창업주와 가까운 사이였다. 서남은 1955년 삼성 이 창업주와 풍국제과의 배동환씨 3인의 공동 출자로 동양제당공업주식회사를 설립했으며, 풍국제과의 경영에도 참여해 오늘날 오리온(옛 동양제과)의 기틀을 다졌다. 또 동양제당이 국내 최고의 역사를 지닌 삼척시멘트를 인수하면서 서남은 자연스럽게 시멘트 사업에 진출하게 됐다. 서남은 1957년 삼척시멘트를 동양시멘트공업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 뒤, 노후시설 교체와 증산을 통해 한때 시멘트 왕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 경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신규 업체의 대거 진입으로 시멘트가 남아돌았고, 정부의 금융 긴축정책으로 동양은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서남이 훗날 ‘운명의 날’이라고 밝혔던 1971년 9월10일 법원에 회사보전신청을 제출해 세인으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눈덩이처럼 불어난 사채에도 불구하고 동양은 살아났다. 정부의 사채동결조치가 사실상 동양의 구명줄이었으며, 평상시 쌓아온 정직과 신용도 큰 도움이 됐다. ●운명적인 만남 서남과 이관희 여사의 인연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6·25가 이들을 만나게 하고, 또 헤어지게 만들었지만 결국은 거제도에서 부부의 인연을 맺게 했다. 6·25 발발로 3년 5개월만에 공군 소속으로 귀향한 서남은 모친의 부탁에 이관희씨와 약혼했다. 그의 나이 34세였다. 관희씨는 당시 함흥의 명문인 영생고녀(永生高女)를 나와 교편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군의 전쟁 개입으로 두 사람은 결혼식도 못올리고 생이별을 하게 됐다. 부산으로 내려온 서남은 가족 소식을 알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다가 뒤늦게 피란선을 타고 월남해 거제도에 머물던 관희씨와 극적으로 만났다. 이 여사는 현재 서남재단 이사장으로 남편의 유업을 기리고 있다. 서남과 이 여사는 슬하에 장녀 혜경(53)씨와 차녀 화경씨 등 2녀를 뒀다. 이화여대 미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혜경씨는 평소 집안끼리 잘 알고 지내던 고 김옥길 이화여대 총장의 중매로 1976년 현재현 회장과 결혼했다. 현 회장은 당시 부산지검 검사로 재직중이었다.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대학 3학년 때 1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혜경씨는 현재 전공을 살려 동양매직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 회장의 집안은 전형적인 선비 가문이다. 고려대 초대 총장을 지내고 ‘유학계의 마지막 거두’로 알려진 고 현상윤 총장이 그의 조부이며, 이화여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고 현인섭씨가 그의 부친이다. 그는 고 현 교수의 3남2녀 가운데 셋째다. 첫째는 고려대 대학원장인 현재천(61)씨이며, 둘째는 현재민(59) KAIST 교수, 장녀는 현재희(51) 세종대 교수, 차녀는 현재란(49) 의사로 현재 이화의원 원장이다. 현 회장과 이 고문은 ‘정담(28·여)-승담(25·남)-경담(23)-행담(18)’ 등 1남3녀를 두고 있다.2세 모두 미국 스탠퍼드대를 다녀 현 회장과 동문이다. 첫째인 정담씨는 스탠퍼드대에서 심리학과 경제학을 복수로 전공한 뒤 지금은 MBA(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장남 승담씨는 컴퓨터 사이언스와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차녀 경담씨는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있다. 막내딸 행담씨는 스탠퍼드대 교양학부 1학년에 재학중이다. 서남의 둘째 딸 화경씨는 이화여대 사회학과 출신으로 1980년 뜨거운 열애끝에 담철곤 회장과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담 회장의 선친은 대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했으며, 타이완 국적으로는 한의원 경영이 쉽지 않아 일찍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화경씨와 담 회장은 슬하에 경선(20)씨와 서원(16·남) 1남1녀를 뒀다. 경선씨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서원군은 국내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서남가(家)의 혼맥은 이처럼 단순하지만 그나마 현 회장 집안을 통해 정·재계에 인연이 이어진다. 현 회장의 조부인 현상윤 전 총장은 6∼8대 국회의원이었던 김봉환 전 국회법사위 위원장과 사돈지간이다. 김 전 법사위원장은 손경식 CJ 회장과 사돈으로 연결된다. ●잉꼬 부부 이 고문과 현 회장은 중매로 만났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애틋하고 각별하다. 결혼 이후 경영수업을 위해 미국 스탠퍼드대에 홀로 유학한 현 회장은 이 고문에게 자주 편지를 보냈고, 편지 첫 머리에 늘 ‘사랑하는 당신’이라고 적었다. 담 회장과 이 사장은 서로가 첫 사랑이다. 대구에서 서울로 유학온 담 회장은 중학교 3학년 때 이 사장을 같은 반 친구로 처음 만났다. 이 때부터 서로에게 끌린 두 사람은 10년 이상 연애했다. 담 회장이 미국 조지워싱턴대로 유학간 4년이 유일하게 떨어진 시간이었다. 이 때도 두 사람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수백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으며, 하루가 멀다하고 비싼 국제전화를 하는 탓에 꾸중도 많이 들었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친구에서 연인, 다시 부부로 인연이 이어지기까지 두 사람은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오랜 만남을 지속했던 두 사람이었지만 막상 결혼때는 집안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담 회장과 이 사장은 국내 재계에서 보기 드문 ‘부부 CEO(최고경영자)’다. 담 회장은 현재 이 사장이 총괄경영을 맡고 있는 오리온의 엔터테인먼트사업 아이디어를 추진한 주역이다. 이 사장은 “나는 다소 감성적인 반면 담 회장은 실용적이어서 상호 보완이 된다.”면서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져 이제는 이 세상에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시에 더없이 훌륭한 사업 파트너”라고 곧잘 언급한다. ●혹독한 경영 수업 서남은 사위들을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더 철저하게, 더 강하게 경영 수업을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내 딸, 내 사위라고 해서 특혜는 없다.”는 것이 서남의 ‘후계자론’이다. 현 회장은 75년 부산지검 검사로 입문한 뒤 결혼과 함께 경영자로 변신했다. 그는 77년 동양시멘트 이사로 재계의 첫 발을 내디뎠고, 초고속 승진을 통해 동양의 후계자로 대내외에 알려졌다. 그러나 후계자의 길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이 창업주는 타계하는 날까지 두 사위와 작은 딸에게 이론과 실전으로 혹독한 경영자 수업을 시켰다. 현 회장은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국제금융을 전공한 이후, 이 창업주로부터 직접 경영수업을 받았다. 낮에는 현장을 같이 누비며 실전과도 같은 수업을 받았고, 밤에는 새벽까지 수십년동안 쌓아온 이 창업주의 경영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이 창업주의 경영수업은 이틀 정도 잠을 안재우는 일이 허다할 정도로 강도가 높았다. 이화경 사장은 동양제과(현 오리온)에서 인턴사원으로 일을 시작했으며, 담철곤 회장도 유학을 마친 후 동양시멘트 구매부 과장으로 입사했다. 이 창업주는 ‘경영자가 되려면 기본부터 충실해야 한다.’며 두 사람 모두 구매부로 발령냈다. 이후 이 사장은 영업부를 제외한 각 부서를 돌며 업무를 익혔다. 특히 마케팅담당 시절엔 획기적이고 신선한 광고로 광고담당자들을 놀라게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초코파이의 ‘정(情) 시리즈’ 광고다. 그는 입사 26년만에 오리온그룹의 외식과 엔터테인먼트사업을 담당하는 CEO에 올랐다. 이 사장은 최근 경제전문지 포브스코리아가 발표한 한국의 여성부호 50인 가운데 8위(1652억원)에 올랐다. 담 회장도 81년부터 동양제과로 자리를 옮겨 구매부장과 사업, 관리, 영업 상무 등을 거치며 89년 동양제과 CEO에 올랐다. ●동양·오리온의 분가 이 창업주가 1989년 타계한 이후 동양의 경영권은 가족간 협의를 통해 맏사위인 현 회장이 승계했고, 둘째 사위인 담 회장은 동양제과를 맡았다. 현 회장과 담 회장은 13년간 각각 시멘트·금융, 제과·엔터테인먼트 등의 사업영역에서 독자 경영을 해왔다. 이 때문에 사위간에 기업 분할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여기에 동양제과가 영상미디어 분야에 투자와 외자유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30대 기업집단으로 제한을 많이 받아 계열분리가 빨라졌다. 동양제과는 2001년 9월1일 동양에서 분가했다. 동양그룹 32개 계열사 가운데 제과와 엔터테인먼트 계열의 16개사가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러나 동양과 오리온(옛 동양제과)은 여전히 그룹 CI(기업이미지)를 함께 사용할 정도로 뿌리에 대한 깊은 유대감을 이어가고 있다. 현 회장은 “동양과 오리온의 분가는 미래 지향적인 경영을 위해서이며, 한 뿌리에서 나온 두 그룹이 한국경제의 거목으로 성장하기 위해 가지를 펼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계열분리 이후 동양은 금융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은 증권·종금·투신업을 아우르는 종합금융사로 거듭났으며, 동양생명은 6년 연속 흑자를 내고 있다. 동양은 현재 제조업 6개사, 금융 7개사로 총자산은 15조원 수준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4조 300억원을 기록했다. 오리온그룹은 케이블 방송과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집중해 계열사를 26개사로 늘렸다. 지난해 매출액 1조 5300억원을 올렸다. 특히 미디어플렉스의 극장사업체인 메가박스는 전국에 117개 스크린을 확보하며 최고의 영화관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영화투자 배급사인 쇼박스는 ‘말아톤’과 ‘웰컴투 동막골’,‘가문의 위기’ 등을 잇달아 흥행시켜 설립 3년만에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여기에 베니건스를 중심으로 한 외식사업과 편의점 사업체인 바이더웨이 등도 견고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동양·오리온의 대표 CEO 노영인(59) 동양시멘트 사장은 30여년을 시멘트업계에 종사한 산증인이다.98년 동양시멘트 대표이사로 취임한 그는 외환위기 한파를 수출로 돌파했다. 그동안 시멘트 수출은 채산성이 안 맞고, 선진국의 품질검사가 까다로워 시늉만 내왔다. 그러나 노 사장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밀어붙여 99년에는 창사이래 최대 물량인 171만t을 세계 각국으로 수출했다. 덕분에 579억원의 순익을 기록해 기나긴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노 사장은 동양의 실질적인 지주회사인 동양메이저의 대표이사도 겸직하고 있다. 박중진(54) 동양종합금융증권 부회장은 금융업계에선 신사로 통한다. 친근한 말투가 트레이드 마크. 그는 조지워싱턴대 MBA 출신으로 미국 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을 갖고 있다. 탄탄한 이론을 바탕으로 동양증권과 동양생명, 동양종금을 거치며 10년이상 실전 금융을 익혔다. 윤여헌(57) 동양생명 사장은 행시 14회 출신으로 건설부와 재무부를 거쳐 95년 동양에 합류했다. 윤 사장은 겉치레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내실형’ 스타일이다. 철저한 손익 위주의 경영을 선호한다. 오리온그룹을 이끄는 전문 경영인으로는 김상우(48) 오리온 대표이사를 꼽을 수 있다. 김 대표는 1987년 오리온(옛 동양제과)에 입사한 이후 줄곧 마케팅 분야를 맡았다. 농심이 장악한 국내 스낵시장에 포카칩과 스윙칩 등을 출시해 오리온의 돌풍을 일으켰다. 오일호(53) 스포츠토토 사장은 1987년 오리온 마케팅부 과장으로 입사해 오리온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004년엔 스포츠토토 사령탑을 맡아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초기 난관을 극복했다. 특히 가라앉은 ‘토토´를 최근 ‘토토 붐´으로 확산시킨 것은 그의 공이 컸다는 평이다. golders@seoul.co.kr ■ 창업주 두딸 이혜경·화경씨 ‘닮은 듯 닮지 않은 두 자매.’ 이혜경(53) 동양매직 고문은 국내 ‘재벌가(家)의 딸’들이 그러하듯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전공(이화여대 미대)을 살려 동양매직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가정에 더 충실한 편이다. 그러면서도 장녀로서 모친인 이관희(서남재단 이사장) 여사를 도와 부친의 뜻을 기리는 서남재단의 이사로서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적이다. 반면 이화경(49) 오리온 사장은 1975년 동양제과(현 오리온) 인턴사원으로 입사해 밑바닥을 두루 거친 뒤 26년만에 오리온 사장에 올랐다. 약력에서 알 수 있듯 이 사장은 그동안 ‘경영자의 길’을 걸어왔다. 언니와는 다르게 ‘바깥 일’을 더 중시한다. 이 때문에 자매를 잘 아는 지인들은 보통 언니를 ‘살림꾼’으로, 동생을 ‘여장부’로 부른다. 이 고문은 소박하면서 다정다감하다. 살림을 손수 챙기며, 요리 실력이 수준급이다. 미술 감각을 살려 실내 장식과 정원 등은 손수 꾸민다. 또 혼자서 곧잘 동대문 시장에 나가 살림 도구나 가족 옷을 산다. 자녀 교육에도 각별한 정성을 쏟는다.1남3녀를 모두 미국의 명문 대학인 스탠퍼드대에 진학시킨 것은 이 고문의 노력과 관심 덕분이다. 이 고문은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때 사회활동을 극도로 자제했으며, 수년간 미국에 머물며 자녀 뒷바라지를 했다. 현 회장도 틈틈이 아이들의 영어와 수학을 직접 가르쳤다. 막내딸 행담씨가 올해 대학에 들어가면서 이 고문은 건강 관리를 위해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이 사장은 경영인, 아내, 엄마의 ‘1인3역’을 소화하느라 늘 시간에 쫓긴다. 그렇다고 어느 하나 소홀한 법이 없다. 자녀(1남1녀)와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업무 외의 약속은 잡지 않는다. 경영인으로서 이 사장은 어떨까. 호탕하고 도전정신이 강해 부친을 빼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월간 현대경영이 2003년 8월 100대 기업 비서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신세대 여비서들이 모시고 싶은 CEO’에 뽑히기도 했다. 그만큼 업무상의 유연함과 직원 배려가 돋보인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인턴사원으로 출발해 구매부, 조사부, 마케팅부 등 주요 부서를 거쳐 누구보다 현장 분위기와 실무진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 오리온의 외식 및 엔터테인먼트 계열사 직원들은 이 사장을 열정적인 CEO로 평가한다. 이 사장이 전담하는 계열사는 온미디어와 미디어플렉스, 외식 사업부문인 롸이즈온 등 3개사. 일주일을 나눠 각각의 회사에 출근한다. 이 사장은 현장 경영을 중시한다. 직원들과 직접 회의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며, 영화사업을 담당하는 CEO로서 때로는 서울 삼성동의 메가박스에서 하루종일 영화를 보기도 한다. 이 사장은 “내가 재밌고, 감동을 받아야 관객들에게 권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golders@seoul.co.kr ■ 두 CEO 경영스타일 비교 ‘외유내강 VS 실용주의’ 사위들이 경영권을 승계하다 보니 현재현(56) 동양 회장과 담철곤(50) 오리온 회장은 곧잘 비교의 대상이 된다. 재계 안팎에선 현 회장을 선 굵은 외유내강형으로, 담 회장을 철저한 실용주의형으로 분류한다. 기업의 성장세로는 담 회장의 오리온이 빠르다.1989년 매출액 1360억원에 불과했던 동양제과(현 오리온)를 지난해 1조 5300억원으로 10배 이상 키운 것은 신규 사업을 진두지휘한 담 회장의 공이 크다. 현 회장은 오리온이 분가한 이후 그룹 구조조정에 매진했다. 금융계열사를 통합, 매각하면서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 주력했다. 이 덕분에 1000%를 웃돌았던 부채비율은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진입했다. 상대적으로 그룹의 외적 성장은 더디었지만 속은 눈에 띄게 알차졌다. 현 회장은 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에서 유창한 영어 실력을 과시하며, 재계의 ‘스타 CEO’로 떠올랐다.CEO 서밋 의장으로서 각국 CEO(최고경영자)들과 토론 및 기자회견을 깔끔하게 소화해 화제가 됐다. 그는 이처럼 남들이 멍석을 깔아주지 않는 한 자신의 진면목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외유내강형 CEO로 불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현 회장은 화를 내지 않는다. 늘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그룹 총수가 화를 내서 임직원들의 기를 꺾으면 차후 일 진행이 쉽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대신 원칙에 따라 결정된 내용은 남들이 주저해도 과감하게 추진한다. 현 회장이 경영자로서 평가받은 첫 사업은 1984년 일국증권(현 동양종합금융증권) 인수다. 당시만 해도 증권사는 대형사고와 부실경영의 대명사로 인식됐던 터라 임직원들의 증권사 인수 반대는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만 현 회장은 자본금 20억원에 지점이 덜렁 하나뿐인 일국증권을 불과 5년만에 10대 증권사로 키워냈다. 이를 계기로 동양은 30년간 지속된 시멘트와 제과 사업에서 탈피해 금융업 중심으로 업종 다변화를 일궈냈다. 현 회장의 취미는 바둑. 중학교 시절 바둑을 배워 고등학교 때는 적수가 없을 정도였고, 대학 때는 교내 대회에서 수차례 우승을 했다. 장수영 9단에 2점으로 버티는 아마 고수다. 현 회장의 고교·대학 동기들은 그를 ‘티없는 친구’로 기억한다.“품성이 맑고 깨끗하며 원만할 뿐 아니라 일처리까지 깔끔하다.”는 것이다. 담철곤 회장은 실용주의자이자 ‘일벌레’라는 평가를 받는다. 요즘도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골프를 치지 않는다. 대신 스키 등 다이내믹한 스포츠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냉혹한 스타일도 아니다. 직원들은 잔정이 많은 CEO라고 얘기한다. 한 임원의 설명이다.“부장 시절에 기획안을 제출했다가 담 회장으로부터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그 다음날 회장으로부터 휴대전화가 왔습니다.‘다시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다’는 내용이었죠. 직원의 기를 꺾지 않으려는 회장의 배려였지요.” 담 회장은 인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90년대 초반에는 20대 중심의 신규 사업팀을 구성한 뒤 수십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여러 분야의 사업에 진출해 쓴맛을 많이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들은 훗날 오리온의 케이블 TV사업과 극장·외식사업 등으로 진출해 현재의 그룹 규모를 갖추는데 일조했다. 담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잘 엮는다. 국내 제과사들이 90년대 안방시장에 안주하며 저성장의 어려움을 겪을 당시, 해외시장을 개척하며 오리온의 고성장을 주도했다.2003년엔 남들이 모두 망했다고 평한 체육복표 사업체 스포츠토토를 인수해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바꿔 놓고 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자산운용업 금융선도산업으로”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25일 “자산운용산업을 동북아 금융허브 실현을 위한 선도산업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윤 위원장은 이날 한국능률협회 초청 최고경영자 조찬회 강연에서 “투신사 구조조정을 빨리 마무리해 자산운용산업이 새 출발하는 기틀을 마련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대규모 투자자금을 운용할 수 있도록 사모투자전문회사(PEF) 제도를 도입했으며 앞으로 우량기업의 국내 증시 상장과 외국 거래소와의 교차거래를 통해 시장 저변을 넓히겠다.”고 설명했다. 윤 위원장은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을 갖춘 혁신형 중소기업의 성장 기반을 공고히 하는 것에 금융감독 방향의 초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2006학년도 대입수능] “장애 딛고 꿈 이룰래요”

    [2006학년도 대입수능] “장애 딛고 꿈 이룰래요”

    23일 치러진 200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지난해 대규모 부정행위 파문의 영향으로 전에 없이 삼엄한 감독 속에 진행됐다. 올해에도 많은 학생들이 역경을 이겨내고 수능에 응시, 주위의 따뜻한 박수를 받았다. ●지그재그 책상배치에 감독관 화장실 동행 교육부의 휴대전화 반입 금지령 속에 수험생들은 휴대전화, 위성 DMB폰,MP3플레이어, 계산기능이 있는 디지털 시계 등을 감독관들에게 맡기고 고사장에 들어갔다. 일부 고사장에서는 임시보관된 휴대전화 등이 교실마다 15개에 달했다. 반입금지 물품을 적발하기 위해 금속탐지기가 이용됐고, 입실 수험생도 지난해 32명에서 28명으로 줄였다. 책상도 지그재그로 배치하고 감독관이 화장실까지 동행했다. ●지각 수험생 배려…경찰 수송 비지땀 지각 수험생을 배려한 수험장도 눈에 띄었다. 서울 필운동 배화여고. 재수생 이모(20·여)씨는 입실시간(오전 8시10분)에 맞출 수 없게 되자 학교에 전화를 걸어 사정했다. 이씨가 가쁜 숨을 내쉬며 도착한 8시15분까지 교문은 닫히지 않았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이날 배화여고를 찾아 “날씨가 춥지 않아 다행”이라며 “내가 어려우면 다른 사람도 다 어려운 게 시험이니 평소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라.”고 수험생을 격려했다. 경찰은 순찰차 1975대, 사이드카 1201대 등 전국에 4212대의 차량을 배치했다. 경찰은 일반차량 연계수송 1214명, 경찰차 직접수송 676명을 비롯해 고사장을 잘못 찾은 수험생 145명, 수험표 분실자 33명, 희귀질환 수험생 4명 등 2219명을 고사장으로 안내했다. ●아버지 간 이식 한달만에 시험 지난달 25일 아버지를 위해 간 이식수술을 했던 천안북일고 이상현(18)군도 미처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천안농고에서 시험을 봤다. 이군은 아버지 이광우(49·해군 중령)씨를 위해 서울대병원에서 7시간동안 이식 수술을 받았다. 경기도 구리시 토평고 수험장에서는 1교시 시험을 치르던 유모(18)군이 복통을 호소, 응급실로 이송됐다. 유군은 진통제를 맞은 상태에서 경찰이 매시간 수송해 준 문제지로 시험을 치렀다. ‘국민의 여동생’인 영화배우 문근영(18·광주국제고 3년)양은 이날 취재진을 따돌리고 광주 북구 풍향동 동신여고 내 휴게실에서 홀로 시험을 치렀다. 시험감독위측은 문양으로 인해 다른 수험생들이 정신을 집중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판단해 별도의 수험장을 마련했다. 뇌성마비 장애인 26명은 서울 종로구 경운학교에서 수능을 봤다. 수시모집에 합격한 1명만 이날 결시했다. 한국삼육학교 동급생 김진주(19)양은 친구 이승화(19)양의 휠체어를 밀면서 함께 고사장으로 이동해 박수를 받았다. 감독관 29명과 교사 50여명이 이들을 도왔다. 장애로 답안지에 직접 쓰기가 어려운 학생은 본부요원이 답안지를 대신 작성했다. 한 학부모는 “대학도 모두 같은 곳에 가 평생 서로를 밀고 끌어주는 친구가 되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70대 할머니, 13세 소년·소녀도 도전 올 수능 최고령 응시자는 고졸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여고에서 시험을 본 장옥기(70·여)씨로 나타났다. 최연소자는 광주 전남고에서 시험을 본 정가람(13·서구 월산동)군. 정군은 지능지수 160인 영재로, 지난해 1월 광주 방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8월 중졸, 올해 4월 고졸 검정고시를 치러 이번에 수능에 도전했다. 과외없이 홀로 오전 6시부터 새벽 1∼2시까지 책과 씨름했던 정군은 점심 시간에 아버지 정길웅(51)씨에게 전화를 걸어 “수학 문제가 몇개 까다로웠지만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가람이는 집중력과 기억력이 뛰어나고 특히 수학을 잘한다.”고 말했다. 부산지역 최연소인 배애현(13)양은 부산진여고에서 시험을 봤다. 초등학교 4학년만 마친 배양은 지난 4월 중졸 검정고시를 통과한 뒤 8월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배양은 “평소 독서를 많이 했고 대학에 진학해 교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수능 부담 재수생 아파트 투신 이날 오전 6시10분쯤 서울 강북구 번3동 한 아파트 9층에서 재수생 임모(19)군이 투신했다. 임군의 아버지(43)는 “수능시험을 보는 아들을 깨우러 방에 갔더니 창문이 열려 있었고 아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임군이 최근 수능시험을 앞두고 심한 부담을 가졌다는 가족의 진술에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사상 초유의 수능 부정행위로 곤욕을 치른 전남 경찰은 ‘꺼진 불도 다시 보자.’며 수능생 못지 않게 하루 종일 초조해 하는 분위기였다. 한달 전부터 부정행위 전담반을 가동중인 전남경찰청은 광주시와 전남도교육청, 일선 시·군 교육청 등 유관기관과의 연락망을 가동하고 광주시내 PC방 등 사이버 공간에 대한 탐문과 순찰을 해왔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행위보다는 대학생 대리시험이나 혹시나 있을지 모를 전화나 인터넷 제보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특히 수능이후 부정행위 제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학교와 입시학원, 수능 동호회 등의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을 샅샅이 조사할 계획이다. 광주 남기창·서울 안동환 나길회 이유종 김준석기자 kkirina@seoul.co.kr
  • [이수일 前국정원차장 자살] 참여정부들어 검찰조사중 자살한 정·재계인사는 5명

    20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수일 전 국정원 2차장뿐 아니라 참여정부 들어 정·재계 인사들이 검찰의 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기 보다 조사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2003년 8월 대북사업과 관련, 대북송금과 현대 비자금 150억원 조성 의혹 사건에 대해 수사를 받다 투신자살한 정몽헌 전 현대아산회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어 지난해 2월에는 안상영 전 부산시장이 진흥기업 박모 회장에게서 1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수감돼 재판을 받아오다 교도소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또 지난해 3월 대우 비자금 조성과 노무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에게 3000만원을 준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던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도 이 문제와 관련된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 직후 한강에 몸을 던졌다. 이어 4월에는 건강보험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측근의 뇌물수수에 개입한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던 박태영 전 전남지사가 자살했다. 같은해 6월 이준원 전 경기 파주시장도 검찰의 내사를 받던 중 한강에 몸을 던져 숨졌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이수일 前국정원차장 자살] “이런 상황서 살아야 하나”

    [이수일 前국정원차장 자살] “이런 상황서 살아야 하나”

    20일 변사체로 발견된 이수일(63)씨는 최근 “내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살아야 하나.”며 괴로운 심정을 지인들에게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건 전 국정원장의 재임기간인 2001년 3월부터 2003년 4월 사이에 2차장으로 재직한 이씨는 지난 11일 검찰에 세번째로 소환돼 조사를 받은 뒤 외부와 접촉을 아예 끊은 것으로 전해졌다. 14일 서울 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이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은 그가 조사에 응해 진술한 지 바로 사흘뒤다. 이씨와 절친했던 정치권의 A씨는 “그의 성격은 결백에 가까울 정도로 깔끔한 편”이라면서 신건 원장의 구속 방침발표이후 직장 선후배로부터 ‘배신자’라는 말을 듣는 모멸감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너무나 여린 성격으로 상황이 만들어내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국정원 관계자도 있었다. 특히 이씨는 행정고시 합격후 경찰에 투신, 경찰청 정보국장을 역임하는 등 줄곧 경찰 관료를 지내다 같은 호남인 신건 전 국정원장에 의해 요직인 2차장으로 발탁된 케이스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자신을 발탁한 신건 원장이 도청 사실을 검찰에서 시종 부인하고 있는데, 자신은 사실 관계를 말해야 하는 심적 부담이 엄청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11일 마지막 소환 이전에 열린 대학 관련 조찬모임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연락을 아예 두절했다. 이달 초 이씨는 김은성 차장과 신건 전 원장을 만나 “사실대로 말하고 국민들에게 용서받자.”고 설득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2차장을 마친 203년 12월 제8대 호남대 총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내년 3월 임기가 끝난다. 전북 완주 출신으로 중동고·서울 법대를 졸업했다.10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경찰에서 20년간 일했다. 그 뒤 차관급인 감사원 감사위원과 한국 감정원장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정란씨와 2남. 녹조근정훈장, 홍조근정훈장, 황조근정훈장, 보국훈장국선장을 서훈했다. 김수정 구혜영기자 crystal@seoul.co.kr
  • [인사]

    ■ 건설교통부 ◇이사관 승진 △홍보관리관 權鎭鳳△철도기획관 洪淳晩△국토균형발전본부장 李宰榮△기술안전기획관 沈爀倫◇부이사관 승진△물류산업팀장 朴廷熙△기반시설기획팀장 張萬錫△토지정책팀장 鄭完大◇과장급 전보△건축기획팀장 金基奭△미국 연방지리정보위원회 韓昌燮■ 대신증권 △자산영업팀장 曺湧現△신탁팀장 南基允△투자전략팀장 梁敬植■ 대신투신운용 △투자전략팀장 羅民昊■ 미래에셋생명 ◇이사 △마케팅추진2본부장 薛敬錫 ◇본부장 △기획관리본부 金載一△리스크관리본부 金光彬△계약관리본부 柳禹鉉 ◇팀장 △경영기획팀 裵昶俊△변액보험팀 洪淳昊△운용기획팀 姜恩圭△일반계정운용팀 吳周鏞△심사기획팀 韓相大△보험심사팀 李廷賢△마케팅전략팀 趙成濟△운영지원팀 鄭權根△퇴직연금운용팀 金鍾鎬
  • [박은영의 DVD 레서피] 무중력 세계로의 달콤한 동경

    [박은영의 DVD 레서피] 무중력 세계로의 달콤한 동경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던가.‘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멸망한 지구를 떠나 우주를 떠도는 지구인과 외계인 친구의 기상천외한 여행기다. 원작은 소설인데 ‘반지의 제왕’과 마찬가지로 제작되기 전까지는 영화화되기 불가능한 소재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나이트가운과 타월을 두른 히치하이커들의 여행은 초기 ‘스타워즈’를 연상시키는 SF 영상에 능청스러운 농담이 더해져 기발하기 이를 데 없다. 어린 시절 우주여행을 꿈꿔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우주여행이 일반화되려면 멀었다는 것과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도 무중력 세계와 외계 생명체와의 만남에 대한 동경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는다. 마치 아이들이 북극 어딘가에 있다는 산타의 크리스마스 선물 제조공장에 가는 걸 꿈꾸듯이 말이다. ‘폴라 익스프레스’는 산타를 믿지 않는 소년이 크리스마스이브에 북극행 열차를 타고 떠나는 환상적인 여행기다. 원작은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동화인데 아이에게 이 동화를 읽어주던 톰 행크스가 로버트 저메키스에게 아이디어를 냈고, 꿈을 잃어가는 아이들과 유년의 순수함을 그리워하는 어른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되었다. 크리스마스의 환상을 극대화한 영상과 사실적인 묘사가 시종일관 시선을 사로잡는다. ●폴라 익스프레스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개봉했으니 거의 1년 만의 DVD 출시다. 홀드 백 기간을 고려하면 초여름에는 출시되었어야 하지만 역시 이 계절에 봐야 제 맛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기술력으로 무장한 이 애니메이션은 센서를 단선적으로 몸에 부착해 배우의 연기를 잡아내던 모션 캡처보다 한층 더 입체적인 퍼포먼스 캡처를 도입해 살아 있는 듯한 움직임을 잡아냈다. 더불어 화려하고 다양한 색체감, 카메라 앵글이 잡을 수 없는 환상적인 각도의 영상과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속도감도 보여준다. 부가영상에서는 톰 행크스가 1인 5역을 소화한 흥미로운 제작과정도 확인할 수 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우리나라에선 조용하게 단관 개봉되었지만 명색이 미국 박스 오피스 1위에 등극한 블록버스터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화무쌍한 상상력을 고풍스러운 인형들과 세트로 표현해 온통 CG로만 도배한 최근 SF들과는 다른 아날로그의 미덕이 느껴진다. 돌비 디지털 5.1 사운드가 우주선의 이동감이나 전투신을 박진감 있게 표현했으며 특히 엔딩과 오프닝에 수록된 코믹한 주제곡은 잔잔하면서도 재치 있게 들린다.2가지 버전의 코멘터리와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삭제장면, 제법 심도 있게 꾸며진 제작과정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달래 준다. mlue@naver.com
  • 한화증권 총괄임원 진수형씨 한화개발 대표이사 김광욱씨

    한화그룹은 한화증권㈜ 총괄임원에 진수형 전 산은자산운용 대표이사를, 한화개발㈜(서울프라자호텔) 대표이사에 김광욱 조선호텔 상무를 영입했다고 15일 밝혔다. 한화그룹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금융업과 호텔업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전문경영인을 영입했다고 설명했다. 진 총괄임원은 대우증권을 거쳐 서울투신 대표이사와 산은자산운용 대표이사를 역임했으며,20여년간 증권투자 분야에 몸담은 금융전문가다. 김 대표이사는 79년 호텔신라에 입사한 뒤 마케팅 담당 상무를 거쳐 조선호텔 외식사업본부장, 마케팅·홍보 담당 상무를 지내는 등 25년간 호텔업에 종사해 왔다. 진 총괄임원과 김 대표이사는 오는 21일 공식 취임할 예정이다.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금융벽 넘은 ‘짝짓기’ 한창

    금융벽 넘은 ‘짝짓기’ 한창

    퇴직연금의 시행을 앞두고 금융권이 ‘짝짓기’에 몰두하고 있다. 은행, 보험, 증권, 자산운용 등이 제각각 다른 금융기관과 결합, 비전문 분야의 단점을 보완하고 공동 마케팅 등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실질적인 효과보다는 시장 쟁탈전에 나서기 전에 몸집을 부풀려 고객의 환심을 사려는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산업은행+미래에셋 효과 14일 금융계에 따르면 은행계들은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자회사를 총동원해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 우리·신한·하나(12월1일 출범) 등 3대 금융지주는 은행 외에 증권사를 갖고 있다. 더불어 우리와 신한은 자산운용사를, 하나는 생명보험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은행의 막강한 판매망과 증권사·자산운용사 투자 노하우의 결합이어서 선전이 예상된다. 은행계에선 한국산업은행과 미래에셋생명의 결합이 돋보인다. 두 금융기관은 지난 1일 ‘퇴직연금 사업을 위한 포괄적인 업무협약’을 맺었다. 산업은행은 100% 정부출자은행으로 퇴직연금의 전신이 될 퇴직신탁 부문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자랑하고 있다. 반면 미래에셋은 3개 펀드 운용사 등 9개 계열사가 있는 금융그룹으로서, 투자수익률 부문에서 독보적인 선두를 지키고 있다. 따라서 산업은행이 안정성을 내세워 고객을 모셔오면 미래에셋이 발군의 투자 실력을 발휘하겠다는 복안으로 비춰진다. 산업은행은 이밖에 대우증권, 산은자산운용과 공동으로 전문가 교육을 하면서 우의를 다지고 있다. ●삼성 ‘금융4형제’ 출격 보험과 증권사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삼성과 교보, 동부 등 다른 금융 계열사를 둔 대형 보험사들은 여유가 있는 편이다. 시스템 개발과 전문가 교육에서 힘을 합쳐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설명회에선 ‘△△ 공동주최’ 등의 간판을 자신있게 내걸고 있다. 특히 삼성은 퇴직보험의 34%를 확보하고 있는 생명보험을 중심으로 증권, 화재보험, 투신운용 등 ‘4대 금융형제’가 남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똘똘 뭉쳐 움직이고 있다. 금융계 최초로 전산시스템 개발을 끝낸 뒤 정보교환, 공동 마케팅 계획을 다 짜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이 필요한 요소인가 단순한 주식매매 업무에만 전념하던 증권사들도 넋을 놓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대우증권은 미래에셋과 어설프지만 손을 잡았다. 현대증권은 와이즈에셋자산운용의 보유지분(33.0%)을 늘렸다. 이에 앞서 지난 2월 부국증권은 유리자산운용을 인수했다. 그러나 퇴직연금을 의식한 결합의 효과에 대해선 이견이 엇갈린다. 우리투자증권 유용주 연구위원은 “현실적으로 은행을 끼지 않고는 금융산업에서 더 이상 성장하는 게 힘들다.”면서 “비은행계는 특화된 분야나 상품을 노리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려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산업은행과 미래에셋이 주목되지만, 결국 금융 결합은 시장 선점을 위한 힘 과시용”이라면서 “어차피 고유 상품의 판매 경쟁이기 때문에 다양한 계열사로 라인을 갖추고 고객의 조건에 맞는 최적의 상품을 권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코오롱그룹-이웅열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코오롱그룹-이웅열 회장家

    코오롱의 역사는 한국 섬유산업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이 땅에 가장 먼저 나일론을 들여와 의생활에 혁명을 가져왔으며, 한때는 수출 한국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성숙산업에 따른 한계로 인해 코오롱은 재계서열이 점점 밀려났다. 섬유산업의 위상이 갈수록 위축되는 모양새와 별반 다르지 않다. 코오롱의 3세 경영이 닻을 올린지 올해로 10년째. 이웅열(49) 회장은 올해를 그룹경영의 ‘터닝포인트’로 만들기 위해 낮은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다. 제2의 도약을 위해 노후화된 주력 사업에 다시 기름을 칠하고, 쪼이고, 닦고 있는 것이다. 혹독한 외환위기를 거치며 체질을 바꾼 코오롱이 재도약을 위한 또 한번의 체질 개선 시험을 치르고 있다. ●풍운아 이원만 창업주 코오롱 창업주인 고 이원만 회장과 이동찬(83) 명예회장은 부자간이면서도 사업 동지이자, 인생의 동반자였다. 이 창업주가 그룹의 외연을 넓히고 사업의 ‘바람막이’가 돼 줬다면, 이 명예회장은 그룹의 안살림을 챙겼다. 부자는 동업자로서 40년 가까이 함께 일하며 코오롱의 기틀을 만들었다. 이 명예회장이 2세이면서 창업 1.5세대로 불렸던 까닭이다. 부자는 사업 파트너로서 환상의 듀엣이었지만 가정적으론 한때 애증의 관계였다. 기업가보다 정치가로서 더 알려진 이 창업주는 워낙 풍류를 즐기는 성격인 데다 이 명예회장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남은 전답마저 처분하고, 사업을 위해 훌쩍 일본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이 명예회장은 어린 나이에 모친과 누이동생을 돌보며 가장 역할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선친은 이 명예회장에게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선친의 호방한 성품과 능숙한 화술 등은 당시 정·재계에서 유명했다. 이 창업주는 술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술자리에선 재담으로 좌석을 압도했으며,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는 ‘문화재’로 불리울 정도였다. 이 창업주는 1930년대 초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 기반을 닦았으며, 해방 후에는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들여와 국내 섬유산업을 개척했다.1957년엔 국내 첫 나일론사 제조 공장인 한국나일론(현 ㈜코오롱)을 설립했으며,63년엔 나일론 원사 공장을 지었다. 그는 또 한국산업수출공단 창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오늘의 구로공단과 구미공단을 조성하는 산파역할을 했다. 이 창업주는 정계에도 발을 들여 대한민국 초대 참의원과 6,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를 기반으로 그는 인맥 만들기에 탁월한 수단을 발휘했다. 이 때문에 이 창업주는 1960∼70년대 정·재계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혔다. ●1.5세대 창업주 이동찬 명예회장 “이 명예회장은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항상 비서와 한 방에서 잡니다. 비서들에게 해외 출장은 그야말로 곤욕이었죠. 회장이 바로 옆에서 주무시는데 잠이 편히 옵니까. 출장에서 돌아오면 몸무게가 3∼4㎏은 그냥 빠져요. 그렇다고 1달러가 아쉬운 나라에서 잠자는 곳에 돈낭비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씀에 뭐라고 할 수도 없고요.” 코오롱 비서 출신의 한 임원 얘기다. ‘가장의 짐’을 일찍 떠안은 탓에 이 명예회장은 근검 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한 번은 이 명예회장이 1947년부터 50여년 이상 신었던 슬리퍼를 비서실에서 새 것으로 바꿨다가 된통 야단을 맞고, 쓰레기통을 뒤져 간신히 찾았던 적도 있다. 또 이 명예회장의 점심 메뉴는 주로 된장찌개와 칼국수, 수제비 등이었으며, 삼복 더위도 부채와 선풍기로 보냈다. 그는 15세 때 경리사원으로 부친의 사업을 도운 지 35년 만인 1977년 코오롱 회장에 올랐다. 그는 등산식, 마라톤식으로 표현되는 꾸준한 내실 경영으로 그룹의 체질을 다져놓은 이후 섬유와 무역에 치우친 사업구조를 건설과 화학으로 확대했다.1980년대는 전자소재와 합성섬유 등 신업종으로 영역을 더욱 넓혔다. 이 명예회장은 과외 활동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1974년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직을 맡은 이후 1975년 농구협회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등으로 다양한 단체에서 활약했다.1980년에는 대한농구협회 회장을 맡았으며,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서 스포츠 외교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경총 회장은 82년부터 무려 14년간이나 했다. 1996년 1월 이 명예회장은 10년 이상 경영수업을 받은 장남인 이웅열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고 선친처럼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3박4일’ 이웅열 회장 이웅열 회장은 5명의 누이들 속에서 컸지만 성격은 대단히 남성스럽다. 특히 스포츠를 좋아해서 축구와 야구, 테니스, 탁구, 당구, 골프 등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또 시작하면 프로(?)수준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그의 별명이 ‘3박4일’로 불린 이유는 무엇이든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 때문이다. 그의 학창 시절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다지 풍족하지 않았다. 부친인 이 명예회장이 박하지 않을 정도의 용돈만 줬기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재벌 아들이 ‘짜다’는 소리를 수시로 들었다. 그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거쳐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학 석사(MBA)를 받았다. 이 회장은 활달하고 사교적이다. 전경련 e비즈니스 위원장을 맡아 재계 2∼3세의 리더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최태원 SK㈜ 회장과 신동빈 롯데 부회장, 류진 풍산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가깝게 지낸다. 그의 이같은 사교적인 성격은 조부인 이원만 창업주의 성품과 닮았다. 호방하고 풍류를 즐겼던 이 창업주는 사업가보다 정치인으로 이름이 더 잘 알려졌다. 1989년 그룹 기획조정실장으로 그룹 경영에 참여한 이 회장은 이동통신사업을 직접 진두지휘하면서 그룹의 변화를 이끌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파고로 계열사 매각과 신세기통신(현 SK텔레콤) 지분(1조 700억원어치)을 팔아야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 회장은 당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미래를 팔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침통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코오롱의 어려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화섬산업이 고유가와 중국의 저가 공세로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올해를 ‘턴어라운드’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과감한 구조조정과 수익구조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경영권 장자 승계 코오롱 가문은 재계에서 보기 드물게 아들이 귀한 집안이다. 창업주인 이원만 회장은 슬하에 2남4녀를 뒀지만 이 명예회장은 1남5녀, 이웅열 회장도 1남2녀다. 그룹 경영은 장남만 참여하고, 딸들과 사돈가의 경영참여는 철저히 배제한다. 장자일계(長子一系)의 경영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코오롱가의 특징이다. 다른 그룹들이 사돈을 비롯한 친인척들로 방대한 족벌 경영체제를 이룬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 명예회장과 숙부인 이원천 전 사장간의 경영권 분쟁이 친인척 배제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이 창업주가 그룹경영을 맡고 있을 때는 사위들의 경영 참여가 적지 않았지만, 이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면서 이같은 장자 승계의 원칙이 정해졌다. 이 명예회장은 그의 자서전 ‘벌기보다 쓰기가 살기보다 죽기가’에서 “우리 집 여자들은 아버지 사업이나 남편이 하는 일에 개입하는 법이 없다. 사위들이 처가 덕을 보고 한자리 하겠다면 득보다 해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전문경영인에게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잘 해내는 경우에도 열등감이 생긴다. 능력이 없다고 ‘백년손님’이라 쫓아낼 수는 없는 일이니 난처해질 것이고, 훗날 내가 일선에서 물러날 땐 조용해지기 어렵다.”고 했을 정도로 철저히 장자일계의 경영구조를 갖춰 경영권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이나 다툼을 미리 차단했다. ●김종필 전 총재와 한때 사돈 이원만가(家)의 혼맥은 국내 재벌가의 최정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될 정도로 화려하다. 이 창업주의 넓은 정계 인맥과 국내 굴지의 섬유그룹인 코오롱을 기반으로 정·관·재계 곳곳에 혈연 관계를 맺었다. 이 창업주와 이위문(작고) 여사는 2남4녀를 뒀다. 이 창업주의 영향력이 정·재계에 미치기 전에는 자녀들을 평범한 집안과 통혼시켰지만, 사업 성공에 이어 정치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던 시기엔 국내 내로라하는 집안을 사돈으로 맞았다. 이 때문에 정략 결혼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장남 이동찬 명예회장은 1944년 ‘학병으로 끌려가기 전에 장가부터 들라.’는 부친의 강요로 맞선을 본 지 1주일 만에 평산 신씨가(家)의 무남독녀 덕진(82)씨와 결혼했다. 이 명예회장 부부는 지난해 1월 결혼 60주년을 맞아 회혼례를 올리기도 했다. 장녀 봉필(72)씨는 54년 고향 인근 임병진씨의 아들 승엽(작고)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승엽씨는 삼경물산 사장을 거쳐 그룹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차녀 애란(63)씨는 노영태(63)씨와 혼인을 치렀다. 3녀 미자(61)씨는 포항지주인 박문학가(家)의 장남 성기(66)씨와 결혼했다. 성기씨는 한국바이린 사장을 역임했다. 차남 이동보(56) 전 코오롱TNS 회장과 막내딸 미향(51)씨의 결혼으로 코오롱가는 재계 혼맥도의 핵심으로 올라선다. 이 전 회장은 74년 제3공화국의 2인자였던 김종필 전 총재의 장녀 예리(54)씨와 결혼했다. 이를 통해 코오롱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한 다리 건너 사돈이 됐으며, 최고 권력가와 혈연의 끈으로 이어졌다. 이들의 결혼은 육영수 여사가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은 성격 차이로 갈라섰다. 이동보 전 회장은 1988년 코오롱그룹으로부터 분가했지만 부도와 구설수에 휘말려 고초를 겪기도 했다. 막내 미향씨는 삼립식품 창업자인 허창성 집안으로 출가했다. 식품종합그룹인 SPC의 허영인(56) 회장이 그의 남편이다. ●정략결혼과 3세 혼맥 코오롱가의 혼맥은 3세로 내려가면 더욱 빛이 난다. 이 창업주가 자신의 입지와 뜻을 펼치기 위해 손주들을 정략 결혼시킨 경우가 있어서다. 이 명예회장과 신 여사는 슬하에 경숙, 상희, 혜숙, 은주, 웅열, 경주씨 등 1남5녀를 뒀다. 장녀인 경숙(59)씨는 1969년 당시 공화당 의장 서리였던 고 이효상 전 국회의장의 3남 문조(65)씨와 화촉을 밝혔다. 이 전 국회의장은 도쿄대를 나와 경북대 교수로 있다가 1960년 정치에 투신해 5선 의원을 지냈다. 정계에선 대구·경북(TK) 인맥의 대부로 통했다. 국회의장을 비롯해 공화당 총재, 영남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문조씨는 현재 영남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차녀인 상희(56)씨는 국내 대표적 ‘송상(松商)’으로 불렸던 고홍명 한국빠이롯드 회장 집안으로 출가했다.1973년 고 회장의 장남 석진(작고)씨와 결혼했다. 석진씨는 코오롱제약(옛 삼영신약) 사장을 거쳐 빠이롯드전자 회장을 지냈다. 하지만 부도로 인해 고통을 겪다가 98년 별세했다. 3녀인 혜숙(53)씨는 고 이학철 고려해운 창업주의 장남인 동혁(58)씨와 결혼했다. 현재 고려해운 회장인 동혁씨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컬럼비아대학 석사 출신이다. 해운선사로서는 처음으로 타이완과 홍콩 등 동남아 항로에 진출해 해운업계의 프런티어 경영인으로 이름이 높다. 4녀인 은주(51)씨는 테니스 인연으로 신병현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의 장남 영철(55·의사)씨와 결혼했다. 신 전 부총리는 한국은행 총재와 상공부 장관, 무역협회장, 은행연합회장 등을 지냈다. 이들 부부 결혼식은 신 전 총재가 직접 주례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웅열 회장은 큰 누이 경숙씨의 소개로 1983년 황해도 출신인 서병식 동남갈포공업 회장의 장녀 창희(45)씨를 아내로 맞이했다. 서 회장은 1962년 고급벽지의 대명사인 갈포벽지를 만들어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인물이다. 부인 창희씨는 이화여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이 회장 부부는 규호(21)와 소윤(18), 소민(16) 등 1남2녀를 두고 있으며, 규호씨는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5녀인 경주(46)씨는 개인사업을 하는 최윤석(46)씨와 결혼했다. ●딸·며느리 모두 이대 동문 장자 경영과 친인척 경영 배제의 원칙 때문인지 코오롱가의 딸과 며느리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잘 벗어나지 않는다. 대외 활동보다 가정주부로서 남편 뒷바라지와 자식 교육에 애쓴다. 이 명예회장의 부인인 신 여사는 지금껏 바깥 사교모임에 한번도 참석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신 여사는 집안에서 살림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한다.3세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는 이 명예회장의 모친인 고 이위문 여사가 남편인 이 창업주의 호방한 성격과 바깥 활동으로 마음 고생이 매우 심했지만 결코 내색하지 않고, 자식들을 바르게 키운 선례 때문이다. 코오롱가의 딸과 며느리들은 또 모두 이화여대 동문들이다. 장녀 경숙씨가 생활미술과를 나왔으며, 상희씨는 기악과, 혜숙씨는 가정학과, 은주씨는 도서관학과를 나왔다. 이 명예회장은 평소에 딸들을 이렇게 평했다고 한다.“장녀는 걷는 모양부터 급한 성격까지 나를 제일 많이 닮았으며, 둘째는 시댁에서 살림만 하는 편이지만, 항상 밝고 착한 데다 쓸데없이 친정에 오는 일이 없다. 셋째는 공부도 제일 잘했고, 바른 소리도 잘했다. 악바리면서 의리가 강하다. 넷째는 활동적이고 운동을 좋아해서인지 덜렁이라는 별명이 잘 어울린다.” 며느리 창희씨도 코오롱가의 여자답게 대외 활동보다 조용히 집에서 자녀 교육과 남편 내조에 열심인 한국적인 주부다. 사교 모임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창희씨지만 코오롱그룹 간부 부인들로 구성된 ‘코오롱가족사회봉사단’ 활동엔 적극 나서고 있다. golders@seoul.co.kr ■ 코오롱의 ‘李트리오’ 지금의 코오롱그룹 토대를 쌓은 주역 가운데 한 명이 고 이원천 전 한국나일론(현 ㈜코오롱) 사장이다. 창업주인 고 이원만 회장의 동생이며, 이동찬 명예회장에겐 숙부가 된다. 이 전 사장은 일제시대 때부터 일본에서 형님인 이 창업주의 사업을 도왔다.1957년에는 한국나일론 사장직에 추대돼 코오롱의 ‘섬유시대’를 이끌었다. 당시 이원만-이원천-이동찬 3인은 코오롱에서 ‘이 트리오’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이 전 사장은 조카인 이 명예회장과 회사 분할을 놓고 첨예하게 맞서면서 나중엔 경영권 분쟁에 빠졌다. 이 전 사장은 결국 1976년 한국나일론의 경영에서 손을 떼고 자신의 지분을 챙겨 원진레이온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1년만에 쓰러졌다. 이 창업주는 이후 장남인 이 명예회장에게 경영권을 맡겼고, 회장에 오른 이 명예회장은 동생인 이동보 전 코오롱TNS 회장을 분가시켰으며, 매제들도 계열사 경영에서 손을 떼게 했다. 이 명예회장은 그의 자서전에서 “숙부에 대한 회한이 커지는 요즘에도 회사 분할에 반대한 것은 옳은 일이 아닌가 싶다…. 숙부와의 경영권 분쟁은 결국 조카가 숙부의 세력을 완전히 퇴치해 버린 것 아니냐는 평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그룹을 살리는 데에 도움이 된 것이라면 나는 굳이 부인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사업엔 실패했지만 이원천가(家)의 혼맥은 어디에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다. 형님인 이원만 창업주가 제3공화국의 실력자 김종필 전 총재와 인연을 만들었다면, 이 전 사장은 또다른 실세였던 정일권 전 총리와 혈연관계를 맺었다. 이원천가(家)는 육군참모총장 출신으로 국무총리와 국회의장을 지낸 정일권 집안과 사돈간이다. 고 정 총리의 딸 희경씨가 이 전 사장의 아들과 결혼했다. 또 이원천가(家)와 영풍그룹은 한 다리 건너 사돈간이다. 고 정 총리의 장남인 세훈씨가 장병희 영풍그룹 창업주의 딸 현주씨와 인연을 맺었다. 영풍그룹은 또 60년대 박정희 정권에서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김세련씨 가문과도 연이 이어진다. golders@seoul.co.kr ■ 코오롱 이끄는 전문경영인들 ‘코오롱호’를 이끄는 대표 최고경영자(CEO)는 누가 있을까. 한광희(56) ㈜코오롱 대표는 코오롱그룹의 간판 CEO다. 그는 요즘 한계사업 정리와 차세대 먹을거리 준비에 분주하다.1976년 코오롱에 입사한 이후 기획관리 등 주요 사업부를 두루 거쳤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한 대표는 책상에 앉아 숫자놀이를 하는 것보다 현장 영업을 더 즐기는 실물형 CEO에 속한다. 민경조(62) 코오롱건설 대표는 23년간 건설에서만 근무한 전문경영인으로 위기관리가 뛰어나다는 평이다. 사내에선 따뜻한 집안의 가장 같은 CEO로 불린다. 수시로 사내 메신저를 통해 막내 직원과 대화를 나눌 정도로 상하간 의사소통을 중시한다.“똑똑… 민경조입니다, 야근 힘들죠, 문제되는 게 뭔가요, 오늘 팀원들과 저녁 같이 합시다.”로 유명해 먼저 다가서는 CEO로 통한다. 논어를 1000번 이상 읽을 정도로 고전에 관심이 많다. 제환석(59) FnC코오롱 대표는 현장주의자다.2003년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후 800개에 이르는 매장을 서울에서 제주까지 하나하나 찾았다. 지금도 주말을 이용해 매장을 방문하고 있다. 제 대표는 또 CEO 명함 외에 ‘열사모’의 방장 직책을 갖고 있다. 열사모는 제 대표가 만든 모임으로 오프라인의 단체나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적인 사원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가상의 모임이다.“스스로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원 모두가 열사모의 열사”라고 말하는 제 대표는 열사모 방장의 이름으로 직원들과 곧잘 의견을 교환한다. 배영호(61) 코오롱유화 대표는 엔지니어로서는 드물게 미국 뉴욕지사 근무를 했다. 아무도 도와 주지 않는 해외 영업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죽기살기로 부딪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배 대표는 당시 직원 가운데 한국으로 되돌아온 유일한 사람이라고 한다. 첫 직장에 대한 그의 신의와 열정은 특유의 사업감각과 합쳐져 코오롱유화를 종합화학 회사로 도약시켰다. 김종근(55) 코오롱글로텍 대표는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여긴다. 직원 이름을 기억하고, 애로와 고충을 들어주며, 중요한 정보는 경영에 곧바로 반영한다. 또 직원들에게 책상에 앉아있지 말고 현장을 돌면서 문제와 해결방안을 찾으라고 한다.“사장님은 오늘도 지방사업장을 순회하고 있습니다. 바로 대표와 직원들간의 간담회 때문이죠. 간담회라는 자유로운 형식을 통해 직원들과 허심탄회한 만남을 갖고 있습니다.61개 사업장인데 올해만 해도 벌써 세번째 라운딩입니다. 연초에 전직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바쁜 일정에도 사업장을 순회하고 계십니다.”한 직원의 이러한 설명에서 올 상반기에 비상장 5개사를 합병, 덩치가 커진 코오롱글로텍을 외형만큼이나 건실하게 키우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학부·학과 올 가이드] (6) 경제·경영

    [학부·학과 올 가이드] (6) 경제·경영

    직장을 다니든, 자기 사업을 하든 돈을 많이 벌려면 금리와 저축과의 관계, 가격과 소비와의 관계, 환율과 수출입과의 관계 등 각종 경제현상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상경계열 학부는 이처럼 경제현상을 이론적으로 공부해 개인이나 조직의 경제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실천적 사회과학을 배우는 곳이다. 상경계열에 관심있는 학생들을 위해 내년에 문을 열 금융전문대학원도 소개한다. ■ 경영학부 기업체 등 조직을 이끌어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각종 의사결정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할 것인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사, 조직, 생산, 마케팅, 재무 등 경영학의 기능 영역별 전공분야를 중심으로 기업이 처해 있는 모든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탐구한다. 관련 전공으로는 경영학과, 정보경영학과, 산업경영학과, 보험학과, 전자상거래과, 축산경영학과 등이 있다. ●뭘 배우나? 기업경영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마케팅, 생산관리, 인사관리, 재무관리, 회계학 등이 경영학의 주요 연구분야다. 요즈음은 통계학, 심리학, 사회학 등의 분야도 경영학에 응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의사결정 과정에 컴퓨터가 이용되면서 컴퓨터 관련 교과목도 필수사항이다. 경영학은 어떤 학생들이 전공하는 게 좋을까? 우선 사회과학에 대한 관심과 외국어와 수학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라면 좋다. 기업의 사회적 윤리성이 강조되면서 단순한 학과 성적뿐만 아니라 조직원이 갖춰야 할 인성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건전한 윤리의식을 학생시절부터 생활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졸업 이후에는 일반적으로 기업체에 취직한다. 대학원에 진학, 연구직으로 취업할 수 도 있다. 자격고시를 통해 공인회계사, 변리사, 세무사, 손해사정사 등으로도 활동할 수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2003년 9월에 실시한 대학졸업생 취업실태 조사결과, 경영학부 전공학생들의 취업률은 79.3%로 대학교 전체 취업률(68.4%)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다. ■ 경제학부 인간의 물질 생활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에 대해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기업에서 어떤 제품을 어떻게, 그리고 얼마만큼 생산해서 팔 때 가장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가정이라면 한정된 수입으로 교육비나 생활비에 얼마를 사용하고 어느 정도 저축을 하는게 합리적인지를 따지는 셈이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을 연구하는 학문인 셈이다. 관련 학과로는 경제학과, 디지털경제학과, 국제경제학과, 산업경제학과, 도시개발 경제학, 소비자 경제학 등이 있다. ●뭘 배우나? 시장에서의 가격결정과 변화, 국민소득 수준의 결정, 경제성장, 국제수지 등을 배운다. 공공재 및 환경문제와 같이 시장체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도 연구한다. 일반적으로 교과과정은 기초과목과 전공 과목으로 나뉜다. 기초 과목에서는 경제학 연구에 필요한 수학에 대한 기초를 익히고 경제현상 분석을 위해 통계학의 기본개념과 활용방법 등도 배우게 된다. 전공 과목에서는 이론경제 분야, 응용경제 분야, 경제사 등을 배운다. 경제학을 전공하려면 수학과 통계를 기본적으로 알아야 한다. 사회학이나 정치학 등 관련 사회과학에 대한 관심은 물론 철학이나 역사에 대한 이해도가 깊다면 경제현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게 보다 용이하다. 분석적.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고능력도 필수다. ●졸업이후 진로는? 기업으로의 진출은 물론이고 한국은행 등 각종 경제관련 연구기관, 은행, 증권사, 투신사 등 자신의 전공을 살려 취직할 기회가 많다. 재경분야 행정고시를 보거나 공인회계사 시험도 볼 수 있다. ●내년 3월 금융대학원 개교 상경계열에 관심있는 학생이라면 금융전문대학원 제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상경계열은 다른 인문계열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직하기 수월한 학부로 인정받고 있으나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 취직하려면 이같은 전문대학원을 노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부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등 금융허브 구축을 추진 중인 다른 아시아 경쟁국들을 제치고 우리나라를 동북아 금융산업의 허브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전문대학원제 도입은 이같은 정부 방침에 따라 나왔다. 금융전문대학원은 자산운용, 파생상품, 리스크 관리 등 실무 중심의 교육을 받고 졸업과 동시에 바로 금융시장에서 일할 수 있는 금융분야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곳이다.2년제 금융 경영대학원(MBA)과정 100명,6개월짜리 금융전문가 과정 100명 등 200명의 금융전문 인력을 배출하게된다. 정부는 금융전문대학원을 내년 3월에 개교한다는 목표 아래 준비중 이다. 기획예산처는 내년 예산안에 교육기자재 등 초기 인프라 구축비 25억원과 운영비 32억원 등 모두 57억원을 반영했다. 재정경제부에서는 오는 25일까지 금융전문 대학원 설치를 희망하는 대학을 공개모집한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경상계열 지원전략 경영·경제 계열은 법학 계열과 함께 인문 계열 전공에서 최상위권 계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경영·경제 계열 정시모집에서 당락을 가르는 가장 큰 변수는 수능 성적. 내신이 반영되기는 하지만 실질 반영률이 낮은 편이고, 논술이나 면접도 수시모집 때처럼 당락을 결정지을 정도는 아니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 대학들의 경우 대부분 대학별고사로 논술을 실시하지만 수시모집과는 달리 일반적인 논술 형태다. 단, 서울대는 논술에 심층면접까지 치른다. 일정한 제시문을 주고 면접관들의 질문에 단계적으로 답하는 방식이다. 지방대들은 수능과 내신만 반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능 반영 영역은 대부분의 대학들이 언어·외국어·사회탐구 등 세 영역을 반영한다. 그러나 건국대와 경희대, 고려대, 동국대, 서강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연세대, 중앙대, 홍익대 등 서울 지역 주요 대학들은 여기에 수리 영역을 반영하는 추세다. 내신이나 대학별 고사는 수시모집 때와는 달리 정시에서는 점수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편이다. 수능에서 변별력이 가장 강한 영역은 수리 영역이다. 인문 계열 학생들이 전통적으로 수리에 약하기 때문이다. 특히 상위권 대학으로 갈수록 당락은 수리 영역 성적에서 판가름난다. 특히 상위권 대학에 지원하는 수험생들의 경우 경영·경제 계열에 진학하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재수생들의 강세도 두드러진다. 수험생 전체 가운데 재수생의 비율이 30% 안팎인 반면 경영·경제 계열 합격생 가운데 재수생 비율은 40%를 넘는다. 상위권 대학에 지원하려는 수험생들이 가장 신경써야 할 부분이 수리 영역이라는 얘기다. 경영 계열의 경우 수능점수의 합격권은 상위권 주요 대학들의 경우 법대에 비해 3∼6점 정도 낮은 편이다. 고려대와 한양대, 성균관대는 법대와 10점까지 차이가 난다고 한다. 수능 등급으로 보면 서울 지역 주요 대학들의 경우 1등급에서 2등급 상위권 정도는 되어야 한다. 대학별로 수능 백분율로 따지면 서울대는 상위 0.8% 이내, 연세대와 고려대는 1∼2%, 한양대와 서강대 등은 3∼4% 이내에 해당한다고 알려져 있다. 서울과 수도권 소재 중위권 대학 정도라면 수능 상위 10∼15%대의 성적을 요구한다. 지방 국립대까지 포함하면 상위 20%까지라고 보면 된다. 경제 계열은 경영 계열에 비해 수능 총점 기준으로 3∼4점 낮은 편이다. 단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의 경우 학부 단위로 학생을 뽑기 때문에 전공별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다. 수능 등급으로 보면 상위권 대학들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경제학과보다 경영학과가 조금 높다고 보면 틀리지 않다. 지방대의 경우 두 전공은 눈치작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해마다 당락 등급이 달라지는 데 주의해야 한다. ■ 도움말 종로학원 평가연구실 남윤곤 팀장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자격증 하나쯤은… ‘경상계열도 이젠 자격증 시대.’ 최근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경영·경제 계열에서도 다양한 자격증이 대학생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취업에도 도움이 되지만 전문 분야를 개척한다는 측면에서 대학 진학 이후 고려해볼만 하다. 가장 잘 알려진 자격증으로는 공인회계사(CPA)를 꼽을 수 있다. 기업 조직에 대한 재무제표를 기업회계 기준에 따라 감사하는 일이 주요 업무로 주로 회계법인에서 활동한다. 대학 재학생들이 가장 많이 준비하고 있는 자격증이기도 하다. 금융위험관리사(FRM)는 국제재무위험 관리전문가협회에서 주관해 실시하는 재무위험관리 분야 유일의 자격증이다. 금융기관과 기업체의 각종 금융 위험을 예측하고 측정해 적절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주요 업무다. 자꾸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따른 각종 재무위험을 과학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공인재무분석사(CFA)는 재무 관련 사항을 분석하는 업무를 위한 자격증으로 대학을 마쳐야 딸 수 있다. 기업이나 시장을 분석하는 업무가 주인 애널리스트와, 이를 바탕으로 실제 펀드를 운영하는 펀드매니저로 진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CFA 자격이 있는 오모(30)씨는 “은행이나 보험사, 증권사, 투신사 등 진출 분야도 다양하고, 외국계 금융기관에서는 이 자격을 지원자격으로 내걸기도 한다.”면서 “그러나 자격증 자체보다는 본인의 능력에 따른 성과를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국제공인생산재고관리사(CPIM)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생산관리(SCM) 분야에서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자격증이다. 최근 대부분의 제조업이 글로벌화하면서 생산과 재고, 품질관리, 조직관리, 유통 등을 하나의 사슬로 엮어 관리하는 전문 업무를 위한 것이다.CPIM을 딴 뒤 대기업 제조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이모(31)씨는 “제조업이나 물류 분야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도전해볼 만하다.”면서 “최근에는 컨설팅 분야로도 진출한다.”고 말했다. 국제정보시스템감사사(CISA)는 정보 분야의 감사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공인회계사가 회계를 감시하듯 해킹과 바이러스, 정보유출 등 정보보안 분야를 감시한다. 진출 분야는 회계법인이나 IT컨설팅 업체. 최근 CISA 자격을 딴 김모(30)씨는 “누구나 응시할 수 있고, 수요도 느는 추세지만 해마다 전문 교육을 받아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운 편”이라고 말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인사]

    ■ 문화관광부 ◇서기관 승진 △문화산업국 게임산업과 金定勳■ 산업자원부 ◇파견(과장급) △의료산업발전기획단 趙天行 (서기관)△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 尹鍾郁■ 대신증권 △국제팀장 金洪男■ 대신투신운용 △마케팅2팀장 盧耀攝■ 동부화재 (파트장)△일반계정2 李東根△사고접수센터 車勝煥■ 한화증권 △광화문지점장 崔忠洛 (팀장)△영업추진 康太國△투자정보 李尙穆△주식 姜薰植■ 고려대 의료원 △기획조정실장 겸 대외협력실장 박승하△교육수련실장 조원용△정보전산실장 유기환■ 한국공항공사 ◇전보 △홍보실장 曺珍鉉△목포지사장 周永滿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1)-창업주 김연수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1)-창업주 김연수家

    일반인들에게 ‘삼양설탕’(현 ‘큐원설탕’)으로 익숙한 삼양사는 한국 근대경제사를 주도한 명문 기업이다. 호남 거부의 후예인 김연수(金秊洙) 창업주는 일제하인 1924년 순수 민족자본으로 기업을 설립, 한국기업의 명맥을 이었다. 김 창업주는 형인 인촌(仁村) 김성수씨가 동아일보를 설립하고 꾸려가도록 뒷받침했고, 여러 차례 재산을 털어 고려대와 고려중앙학원의 기틀을 마련하도록 뒤에서 도왔다. 그러나 김 창업주는 일제하에 기업을 경영함으로써 최근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사인명사전을 편찬하면서 친일인사로 선정하는 등 사후에 ‘친일’ 시비에 휘말리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근대 한국경제의 산증인인 김 창업주의 삶은 굴곡 많은 우리 근대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병약했던 어린 시절 김 창업주는 1896년 10월1일 전라도 고부군 부안면 인촌리에서 부친 김경중씨와 모친 장흥 고씨 사이에서 2남으로 태어났다. 형의 호인 인촌은 바로 두 형제가 태어난 동네 이름을 따온 것이다. 김 창업주의 부친은 1만 5000석 지기의 호남 최대 거부였고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부친은 일제하에서 나라가 영영 없어지는 것으로 알고 당시 저명한 사학자들을 몰래 불러 ‘조선사’를 17권이나 엮을 정도로 민족애가 투철했다는 게 삼양그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 창업주는 어린 시절 외롭게 지냈다. 김 창업주의 부모는 그가 태어나기 전 세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일찍 잃었다. 여기에다 한 명뿐인 형인 인촌이 큰아버지인 김기중씨가 대를 이을 아들이 없자 양자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어릴 적 김 창업주는 몸이 허약했다. 폐가 약했으며 위도 튼튼하지 못해 일찍이 폐와 소화기 계통의 질병으로 자식을 잃은 경험이 있는 부모의 애를 끓게 했다. 이런 이유로 개구쟁이처럼 장난이 심하고 활발했던 인촌과는 달리 김 창업주는 조용한 것을 좋아했고, 과묵하고 내성적인 성품을 지녔다. ●27세에 경영인으로 출발 김 창업주는 15세 되던 1910년 12월8일 자신보다 두 살 위인 박하진씨와 혼인을 맺었다. 결혼 이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인 최초로 교토제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온 이듬해인 1922년 형의 권유로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전무와 상무에 취임, 경영인의 삶을 시작했다. 김 창업주는 고무신과 ‘태극성표’ 광목을 대히트시킴으로써 일본자본과 맞서는 최대의 민족회사를 일궜다. 집안 내력을 잘 아는 김재억 삼양사 상임감사는 “30년대 경성방직은 우리나라 금융거래 절반을 담당할 정도의 민족 최대 기업이었다.”고 말했다. 김 창업주는 또한 농촌재건을 위해 소작농을 협동농업 형태로 결합한 근대영농을 시작했다. 이를 발판으로 1924년 삼수사(三水社)를 설립해 호남 일대의 소유농토에 대한 근대화 작업에 나섰다. 장성, 줄포, 고창, 명고, 신태인, 법성, 영광농장을 차례로 개설해 기업형 농장으로 탈바꿈시켰다. 간척사업에도 눈을 돌려 손불농장과 해리농장의 2개 지역에 1070정보의 농토를 만들었다. 이 시기에 상호가 삼양사(三養社)로 바뀌었다. 어느 날 한 작명가가 찾아와 ‘물 수’(水)를 ‘만인의 양식’이라는 뜻인 ‘기를 양’(養)으로 바꿀 것을 권했다고 한다. 김 창업주는 만주벌 개척에도 나섰다.5개 협동농장을 개설한 데 이어 봉천에 남만방적을 설립했다. 남만방적은 한국기업 최초의 해외생산법인이다. 그러나 1945년 해방으로 만주의 사업장들을 고스란히 놓고 철수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제당업으로 재기에 나서 해방공간을 겪으면서 반민특위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김 창업주는 한국 전쟁 이후 해체상태에 놓였던 삼양사 재건에 나섰다. 그는 재기의 발판으로 제당업과 한천제조업을 선택했다. 당시 설탕은 수입에 의존해온 대표적인 외화소비 품목이었기 때문이다. 울산 바닷가를 메워 그곳에 제당공장과 한천공장을 건설했다. 그는 1956년 삼양을 제당으로 키우면서 주식회사 삼양사를 출범시켰다. 자신이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고, 사장에 3남인 상홍(83), 상무에 5남 상하(80)를 앉혔다.3남과 5남이 삼양사를 맡는 전통은 3세에도 그대로 이어져 삼양그룹은 현재 상홍씨의 장남 윤(53)씨와 상하씨의 장남 원(48)씨가 삼양사 회장과 사장을 맡고 있다. 둘째 아들들인 량(51)씨와 정(46)씨도 각각 삼양제넥스 사장과 삼남석유화학 부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당시 삼양사보다 수익률이 높았던 해리염전을 삼양염업사라는 별개의 회사로 독립시키고 맏아들 상준(작고)을 사장에 임명해 경영을 맡겼다.3공화국때 문교부장관과 5공화국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한 차남 상협(작고)에게도 삼양염전의 지분 25%를 떼어주어 형제간 경영권을 일찌감치 교통정리했다. ●재계의 거목으로 김 창업주는 1962년 설립한 삼양수산을 통해 다양한 어종을 가공, 수출하는 등 한때 냉동선만 21척을 보유할 정도로 수산업에도 주력했다. 이처럼 제당과 수산업으로 재기에 성공한 그는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자 한국경제협의회(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에 취임, 한국 재계의 얼굴이 되었다. 경영이 본 궤도에 오르자 김 창업주는 전주방직을 인수, 삼양모방(주)을 설립했다. 이어 1969년 전주에 대단위 폴리에스테르 공장을 건설했다. 이로써 70년대 들어 삼양은 국내 초창기 산업의 중심이었던 제당으로 확고한 제조업체로의 변신을 이룩했다. 이 당시 삼양은 매출액에서나 기업선호도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국내 정상급 기업으로 우뚝 섰다. 김 창업주는 사업에 투신한 지 만 53년이 되던 1975년 회장을 상홍에게, 사장에 상하를 임명하는 등 ‘2세경영’을 출범시키고 은퇴했다. 그의 나이 80세일 때였다. 그는 은퇴 후 농촌으로 돌아가 마지막 열정을 쏟다가 1979년 84세의 일기로 생애를 마감했다. ●교육사업도 아낌없는 지원 그는 기업경영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고려대와 고려중앙학원의 운영기금을 출연한 것을 비롯해 양영회와 수당장학회를 설립, 교육사업에도 힘썼다. 문성환 삼양사 부사장은 “창업주는 두 재단을 통해 대학생 2만여명에게 대학등록금을 비롯해 하숙비, 책값, 소정의 용돈까지 장학금으로 대줬다.”고 회고했다. 이런 김 창업주의 혜택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는 한덕수 경제부총리, 오세철 연세대 교수 등이 꼽힌다. 경성방직의 회계를 맡아 김 창업주를 도왔던 국어학자 이희승 박사는 “수당(秀堂·김 창업주의 호)은 돈 쓰는 데도 일가견을 가진 사람으로 만금을 쓰면서도 기업경영에는 한 푼을 아꼈다.”고 그의 용전(用錢)철학을 전했다. 김 창업주는 경쟁회사에도 관대했던 묵묵한 성격의 경영인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1966년 삼양의 경쟁회사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운영하던 한국비료가 이른바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곤혹을 치렀다. 임원들이 ‘사카린 없는 삼양설탕’이라는 문구로 대대적인 광고전을 벌이자고 수차례 건의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은 사례는 그의 성품을 읽는 일화로 경영인들에게 지금껏 회자되고 있다. ●방대한 혼맥…사회 각 분야와 사통팔달 김 창업주는 부인 박씨와의 사이에 7남6녀 13명의 자녀들을 두었다. 아들로는 장남 상준(작고), 차남 상협(작고),3남 상홍(83),4남 상돈(81),5남 상하(80),6남 상철(70),7남 상응(작고) 등 7남과 장녀 상경(79), 차녀 상민(78),3녀 정애(75),4녀 정유(73),5녀 영숙(72), 막내 희경(66) 등 6녀를 두었다. 김 창업주 가문의 혼맥은 정계·관계·학계·언론계·재계·교육계 등과 거미줄처럼 얽힌 방대한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김 창업주의 성격이 소탈해 자식들에게 정략 결혼을 요구하기보다는 평범하고 무난한 결혼을 시켰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김재억 감사는 “창업주의 생활철학이 권세를 배격하는 것이어서 자식들이나 3세들의 결혼에도 사돈 될 집안의 내력과 상대방의 성실성을 먼저 봤다.”고 회고했다. 김 창업주는 특히 자녀들의 대부분은 중매결혼으로 짝지웠지만 사위와 며느리를 맞는 데서는 당시로는 상당히 진보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사위를 고를 때는 가문을 따지지 않고 사람됨됨이와 능력을 위주로 보았고, 며느리는 후덕한 집안 출신으로 신식교육을 받은 신여성이기를 원했다. 특히 사돈가의 위치를 보고 정혼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해 그의 직접 사돈 가운데는 정관재계의 거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김 창업주의 며느리들 가운데 위로 세 명은 이화여전 출신 등으로 당시의 김 창업주가 원했던 신여성들의 표본이 많았다. 반면 창업주의 형인 인촌 성수씨도 9남4녀를 두어 대가를 이뤘는데 장남인 상만(작고)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직계 자손들은 화려한 혼맥을 자랑하고 있다. 고려대 이사장이자 동아일보 전 회장인 장손 병관씨는 장남 재호(41·동아일보 대표이사 전무)씨를 이한동 전 총리의 차녀인 정원(38)씨와 결혼시켰고,2남 재열(37·제일모직 상무)씨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녀인 서현(32·제일모직 상무보)씨와 결혼했다. 김연수 창업주 자녀들의 혼맥을 살펴보면 장남 상준씨는 당시 집안과 각별하게 지내던 이화여대 총장 김활란 박사의 소개로 이뤄져 1943년 구영숙씨의 맏딸 연성(85)씨를 부인으로 맞았다. 상준씨는 보성전문 상과를 나와 조흥은행에 근무할 때였고 연성씨는 이화여전 음대를 졸업한 직후였다. 상준씨는 3명의 딸을 출가시켜 정·관·재계 인맥을 형성했다. 장녀 정원(62)씨의 부군은 고려대와 국가대표팀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했던 김선휘(68·삼양염업사부회장)씨다. 축구를 좋아하던 상준씨는 모교인 고려대 축구팀을 지원했는데, 이 일로 선휘씨가 상준씨 집에 드나들면서 자연스럽게 혼사가 맺어졌다. 차녀 정희(58)씨는 5공시절 당시 거물 정치인이었던 김진만씨의 맏며느리로 보내 동부그룹 회장인 김준기(64)씨를 사위로 맞았다.3녀 정림(57)씨는 전 문교장관 윤천주씨의 장남 대근(59)씨와 결혼했다. 대근씨는 현재 동부아남반도체 대표이사 부회장과 동부그룹 소재분야 부회장을 맡고 있다. 상준씨의 장남 병휘(60)씨는 한양대 자연과학대 자연과학부 수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차남 범(52)씨는 독신으로 지내며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차남 상협씨는 해방 직후 고려대 부교수 시절, 의사 김준형씨의 2남3녀 가운데 맏딸 인숙(82)씨와 연애결혼에 성공했다. 인숙씨도 니혼조시 대학을 나온 당시 보기 드문 일본 유학 신여성이었는데 상협씨의 도쿄제대 동창 부인의 소개로 만나 연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장녀 명신(58)씨를 송진우 전 동아일보사장의 아들인 상현(65) 서울대 법대교수와 혼인시켰다.2녀 영신(56)씨는 정태섭 전 변호사의 아들 성진(58)씨와 결혼했다. 외아들 한(52)씨는 메리츠증권 부회장으로 있다. 3남 상홍(83)씨는 구 치안본부 재직시절 수원갑부 차준담씨의 2남2녀 가운데 맏딸 부영(79)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부영씨는 이화여고와 이화여전을 나온 재원이었다. 상홍씨는 2남2녀 가운데 장남 윤씨를 전 서울신문사 김종규 사장의 딸 유희(46)씨와 혼인시켜 벽산그룹 김인득 회장과 한 다리 건너 사돈이 됐다. 또 차남 량씨는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의 막내딸 영은(46)씨와 백년 가약을 맺었다. 영은씨의 오빠 장대환씨는 매일경제 신문 창업주 정진기씨의 사위로, 현재 매일경제신문 대표이사회장 인쇄인 겸 발행인과 현 매일경제TV 대표이사 회장이다. 장녀인 유주(56)씨를 사업가 윤주탁씨의 2남 영섭(59·고려대 상대교수)씨에게 시집 보내 윤주탁씨와 직접 사돈간인 박태준 전 민자당 최고위원과 연결되고 있다. 영섭씨의 남동생인 영식씨가 박 전 위원의 장녀 진아(48)씨와 결혼했다. 4남 상돈씨는 6·25 직후 김유황 전 광장㈜ 부사장의 딸 용옥(73)씨와 결혼했다. 상돈씨는 맏형인 상준씨의 중매로 장남 병진(52)씨를 축구협회 부회장과 축구대표팀 감독을 지낸 한흥기씨의 딸인 혜승(45)씨와 맺어줬다. 차남 영로(50)씨는 사업을 하던 정형식씨의 딸 은미(46)씨와 혼인했다. 외동딸 희진(45)씨는 전 대한항공 이사 오명석씨의 외아들 광희(49)씨에게 시집갔다. 광희씨는 전 나이스정보통신 전무이사를 역임했다. 5남 상하씨는 삼양사 설탕공장 설립관계로 일본에서 일하고 있던 1953년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귀국, 바로 박상례(75)씨와 혼인을 맺었다. 상례씨는 공무원 출신인 박규원씨의 딸로 김 창업주의 친구가 중매를 섰다. 외동딸인 영난(44)씨를 송하철(45·주식회사 항소 사장)씨와 결혼시켜 송남석 모나미 회장의 막내며느리로 보냈다. 장남 원씨를 배영화 경희어망 회장 딸인 주연(45)씨와 맺어 줬다. 차남 정씨는 안상영 전 부산시장의 딸인 혜원(39)씨와 결혼했다. 6남 상철(70)씨는 사업을 하던 우근호 씨의 딸 정명(63)씨를 부인으로 맞았다. 7남 상응(작고)씨는 공무원 생활을 했던 권오경씨의 5녀중 셋째딸 명자(53)씨와 결혼했다. 장녀 상경(79)씨는 아폴로박사 조경철씨와 결혼 후 이혼해 조서봉(필립), 조서만(조지) 등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차녀 상민(78)씨의 남편은 이두종(작고)씨로 활발하게 삼양사의 경영에 참여했다. 온양 지주의 아들로 자란 두종씨는 1956년 삼양사 과장으로 입사해 이 회사의 대표이사 부사장까지 올랐다.1984년 회사를 떠난 뒤에도 삼양그룹이 운영하는 재단법인 양영회와 수당장학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3녀 정애(75)씨는 교육계에 몸담았던 조종립씨의 아들 석(작고)씨와 결혼했다. 석씨는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결혼 후인 57년 삼양사에 사원으로 입사, 총무부장·경리부장·이사·상무·대표이사 부사장을 거쳐 전 삼양제넥스 상임고문까지 역임했다. 4녀 정유(73)씨의 남편은 전 서울대 부총장인 김영국(작고)씨다. 그는 인천에서 사업을 하던 김덕창씨의 8남매 가운데 3남으로 인천이 낳은 천재로 불리었다. 이들은 김 창업주 친구의 소개로 결혼했다. 영국씨는 서울대 정치학과 총동창회장을 지낸 상하씨의 후배이자 매제인 셈이다. 5녀 영숙(72)씨는 미국인 스테푸친과 결혼, 딸 페기, 아들 프랭크를 두고 미국에서 살고 있다. 막내딸 희경(66)씨도 교육자였던 김종규씨의 아들 성완(68·삼양사 의약사업 고문)씨와 결혼,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성완씨는 미국 유타대학 석좌교수로 인공심장 분야의 권위자다. jrlee@seoul.co.kr ■ 창업주의 친일논란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8월29일 친일인사인명사전 편찬을 앞두고 수록예정자 명단 3090명의 이름을 공개했다. 이 명단에는 삼양사의 창업주 김연수씨도 포함됐다. 김씨는 전쟁협력 분야에서 ▲1939년 만주국 명예 총영사 ▲1940년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이사 ▲조선방적 이사장 ▲1940∼1945년 중추원 참의(자문위원)를 지냈다는 이유로 선정됐다. 이에 대해 삼양그룹측은 대응을 일절 자제한 채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다만 그룹의 한 관계자는 “창업주가 일제의 압제에 죽음으로 항거하는 등 깜짝 놀랄 만하게 대항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름대로 일제의 폭거에 맞서 민족자본을 형성했다.”며 “후세에 역사가들이 올바른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비교적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보다 반일 감정이 팽배했던 1949년 반민특위 재판에서도 창업주는 무죄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또 창업주는 창씨 개명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 창업주의 일대기인 ‘한국 근대기업의 선구자’에는 일제시대 그의 행적이 상세히 수록돼 있다.6부로 구성된 전기에는 4부 ‘고난의 시절’ 편에 일제에 협조할 수도, 항거할 수도 없었던 고심의 일단들이 실려 있다. 김씨는 중추원 참의 임명과 관련해 1940년 5월 조간신문에 자신이 칙임참의에 임명됐다는 기사를 보고 내무국장 우에다키에게 항의하러 갔지만 결국 그의 완력에 굴복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후 ‘설사 내가 지녔던 일제치하의 모든 공직이나 명예직이 스스로 원했던 것이 아니고 위협과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일단 그런 직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국과 민족앞에 송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통렬한 자기반성의 글을 실었다. 김 창업주는 반민특위에 검거돼 7개월간 수감됐지만 이런 반성의 자세가 참작됐는지 재판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는 경성방직을 경영함에 강력히 일본자본과 싸웠고, 항상 한민족을 위한 경제적 기반확립에 노력했고, 경성방직의 상표를 태극기에서 모방한 것으로 보아 피고의 행위는 많이 참작할 곳이 있으며, 그 외의 관직 및 명예직은 일제의 압력에 못이겨 피동적으로 맡은 것이라고 증명되며, 또 피고는 한국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많은 학생에게 원조를 해 그의 혜택을 본 자의 수는 현재 수백명에 달하는 것이니 이 점으로 피고가 남긴 공적은 크다고 할 것이며, 기타 증인의 증언을 통해 볼 때 피고를 단순히 친일 및 반민족행위자라고 규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jrlee@seoul.co.kr ■ 형 김성수와 동생 김연수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인촌(仁村) 김성수와 수당(秀堂) 김연수를 아는 주위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인촌과 수당은 호남갑부 김경중씨의 두 아들이었지만 성격은 딴판이었다. 수당은 어릴 때부터 말수가 적고 침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반면 형 인촌은 활달하고 외향적이었다. 여기에 형제는 다섯살이나 터울이 져 어린 시절엔 서로 어울리는 일이 적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평생을 친한 형제로 지냈다. 인촌은 수당이 근대적 교육을 받도록 인도했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일본으로 가게 해 중·고등학교와 교토제대 경제학부를 졸업하도록 도왔다. 수당은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일찍이 ‘기업인’이 될 것을 결심했다. 오사카의 공장지대에서 받았던 강렬한 인상이 결단의 계기였다. 이처럼 수당의 행적은 형 인촌의 행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실제로 수당이 기업가로서 길을 걷는 데는 인촌이 설립하고 인수한 기업의 경영을 맡음으로써 시작됐다. 수당이 경영인으로 첫 발을 내디딘 것도 1922년 형이 운영하던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경영인을 맡고부터다. 이후 수당은 경영인으로서 성공하자 인촌을 적극 도왔다. 생전에 인촌은 수당이 없었으면 교육사업을 비롯한 자신의 활동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곧잘 술회했다. 수당은 언제나 인촌에게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마음껏 뜻을 펼치라고 말했다. 인촌이 설립한 고려중앙학원이나 고려대, 경성방직과 동아일보 등 모두 동생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않은 것이 없었다. 특히 수당은 1940년대까지 고려중앙학원과 고려대에 기부한 재산이 연 평균 250만원에 이르렀는데, 이를 현 시가로 어림잡아 환산하면 1000억원(쌀값 기준)을 훨씬 넘는 액수다. 그러면서도 동생은 형이 하는 일을 뒤에서 묵묵히 돕기만 했다. 그는 “모든 것을 형님이 알아서 하시니까 나는 재정적인 지원만 하면 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형을 만날 때마다 “형님은 교육과 문화사업을 하세요. 저는 뒤에서 돈을 대리다.”라며 든든한 후원자를 자임했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펀드도 ‘명품시대’

    펀드도 ‘명품시대’

    최근 1년 이상 종합주가지수 상승률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내는 이른바 ‘명품(名品)펀드’에 거액의 시중자금이 몰리고 있다. 은행과 증권사들은 고수익을 올리는 몇몇 펀드의 유명세를 등에 업고 각종 아이디어를 동원, 유명 펀드에 판매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명품 펀드의 ‘수명’이 곧 다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외곬 투자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충고한다. ●13개 펀드의 유명세 13일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추석연휴 직전인 9월15일부터 지난 11일까지 주식형펀드에 2조 7660억원이 밀려들면서 수탁고는 18조 2857억원을 기록했다. 하루 평균 1730억원씩 몰린 셈이다. 하루 유입액은 그 이전의 평균 600억원에 비해 3배 이상 불어났다. 주식형펀드의 수탁고는 지난 1월말(8조 7993억원)보다 두배 이상 증가했다. 펀드 자금은 일부 유명 펀드에만 집중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에 6020억원, 미래에셋투신에 3888억원이 몰려 미래에셋그룹이 수탁고의 3분의1(9908억원)을 차지하고 있다. 이어 SEI에셋 2280억원, 신영투신 1780억원, 유리자산 1620억원 등으로 집계됐다. 설정기간 1년 이상, 설정액 100억원 이상의 주식형펀드 83개 가운데 1년 수익률이 50% 이상인 명품펀드는 13개다. 이들 명품 펀드는 채권형을 포함해 전체 400여개 펀드 가운데 4%도 안 되는 귀한 몸이다. 명품펀드는 주로 중·소형 가치주, 중·소형 배당주, 저평가 성장주 등을 족집게처럼 골라내 집중투자하는 펀드들이다. 위험 부담을 안고 순발력이 강한 펀드운용사들이 강자로 부상했다. ●유명 펀드는 몸관리 필요 주식형펀드의 인기 덕분에 증권가에 새로운 풍속도가 등장했다. 과거에 붐을 이루던 ‘주식투자설명회’가 사라지고 ‘펀드설명회’가 생겼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달말부터 전국 12곳을 돌며 업계 최초의 펀드설명회를 갖고 있다. 대우증권도 주식투자에 대한 거부감을 피하기 위해 ‘자산운용세미나’라는 간판을 달고 펀드를 홍보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백화점의 주부대상 문화센터에서 정기 펀드설명회를 연다. 펀드에 가입하면 보험 등 부가서비스 혜택을 주기도 한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은 ‘우리가족꿈나무 적립식상품’에 가입하면 어린이상해·휴일교통상해 보험에 무료로 가입해 준다. 어린이경제캠프, 웨딩 리무진 제공, 부부동반 여행권 혜택도 덤으로 준다. 대우증권은 가입자를 대상으로 추첨을 해 상금도 준다.CJ자산은 공연초대 등 ‘팬서비스’ 수준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삼성증권은 삼성자산운용의 펀드만이 아니라 다른 회사 상품이라도 유명 펀드만 골라 판매하는 ‘명품관’ 전략을 쓴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명품전략 이후 하루 5억원이던 펀드 판매액이 30억원으로 급증했다.”면서 “고객 대부분이 유명 펀드의 이름을 먼저 알고 찾아온다.”고 말했다. ●쪽박 펀드로 전락 위기 돈이 특정한 펀드에만 몰리면서 펀드매니저들의 고민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명품펀드의 수익률이 월등히 높았던 이유는 중·소형 종목에 집중 투자한 덕분인데, 웬만한 종목은 이미 주가가 많이 올라 숨겨진 가치주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수요에 비해 공급 과잉으로 주가가 급락하면 명품이 졸지에 ‘쪽박’ 펀드로 전락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미국의 뮤추얼펀드 ‘마젤란’이 올 상반기에 주식형펀드의 평균 수익률(4.2%)에도 못미치는 수익률(3.1%)을 내고 뒷전으로 물러난 것을 예로 들었다. 이 때문에 미래에셋자산은 명품 펀드로 꼽히는 ‘3억만들기 중·소형주식투자신탁1호’에 대해 12일부터 당분간 신규자금을 받지 않기로 했다. 유리자산도 1등 펀드인 ‘유리스몰뷰티주식’의 누적수익률이 200%를 넘으면서 당분간 판매를 중단했다. 삼성투신운용 임창규 팀장은 “설정액 3000억원 이상의 대형펀드는 중·소형과는 달리 아직 자금 유입을 거절할 상황은 아니지만 주가가 많이 올라 신규 주식매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투신운용 김상백 본부장은 “목표 수익률을 달성한 펀드는 일부 자금을 환매해 안정형이나 대형주 위주의 펀드로 자금을 분산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고금리戰’ 외국계 짭짤

    ‘고금리戰’ 외국계 짭짤

    ‘특판 정기예금에 몰렸던 돈이 어디로 갔을까?’ 지난달 초 외국계 은행이 연 4.5% 안팎의 특판예금을 내놓은 이후 국내 은행들이 줄줄이 가세하면서 특판예금은 시중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했다. 지난 11일 콜금리 인상에 따라 특판예금과 일반예금의 금리차가 좁혀지자 국민은행과 우리은행 등이 특판 판매를 중지,‘특판 전쟁’은 일단락됐다. ‘특판 정기예금에 몰렸던 돈이 어디로 갔을까?’ 지난달 초 외국계 은행이 연 4.5% 안팎의 특판예금을 내놓은 이후 국내 은행들이 줄줄이 가세하면서 특판예금은 시중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했다. 지난 11일 콜금리 인상에 따라 특판예금과 일반예금의 금리차가 좁혀지자 국민은행과 우리은행 등이 특판 판매를 중지,‘특판 전쟁’은 일단락됐다. 11일 현재 국민, 우리, 조흥, 신한, 하나, 외환,SC제일 등 7개 시중은행의 특판 정기예금 판매액은 8조 2997억원. 이 상품의 만기가 대부분 1년 이상이기 때문에 은행들이 장기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자금을 충분히 확보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판예금은 정기예금에 포함된다. 따라서 당연히 정기예금 잔액도 특판예금 증가액만큼 늘어나야 하지만 7개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 8월 말에 비해 4조원 느는 데 그쳤다. ●특판 팔았는데 정기예금 잔액은 오히려 줄기도 국민은행의 특판 판매액은 무려 2조 6753억원이었지만 8월 말 대비 정기예금 증가액은 7155억원에 불과했다. 특판으로 1조 4756억원을 유치한 우리은행의 정기예금 증가액도 7243억원에 그쳤다.5000억원의 특판예금을 한정 판매한 외환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8770억원이나 줄어드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가장 큰 이유는 특판예금이 신규 자금을 끌어들였다기보다는 만기가 돌아온 기존 정기예금을 다시 유치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은행의 경우 특판 판매액 중 신규로 들어온 돈은 2374억원에 불과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기예금 잔액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했는데 사뭇 다른 결과가 발생했다.”면서 “이번 특판은 개인 고객에게 초점을 맞춘 만큼 기업의 정기예금이 상대적으로 많이 빠져나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외국계 은행은 새로운 고객 확보가 목적이었지만 토종 은행은 고객 지키기가 목적이었다.”면서 “정기예금 잔액이 크게 늘지 않거나 줄어든 것은 고객의 ‘로열티’가 그만큼 낮은 것을 말한다.”고 말했다. ●외국계 은행만 재미봤다? 수치상으로 보면 특판예금으로 가장 짭짤한 재미를 본 은행은 SC제일은행이다. 맨 먼저 ‘특판경쟁’에 불을 지른 SC제일은행은 특판으로 1조 1888억원을 모았고, 정기예금 잔액도 1조 6259억원이나 됐다. 공격적인 특판 판매로 신규 고객과 신규 자금을 많이 끌어들였다고 볼 수 있다. 역시 외국계 은행인 한국씨티은행 관계자는 “옛 한미은행과 씨티은행의 전산통합 작업 지연으로 정확한 정기예금잔액과 신규 유치액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특판예금에 몰린 1조원의 대부분을 신규자금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대부분의 국내 은행들은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금리 부담을 무릅쓰고 특판에 나선 셈이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문제는 주택담보대출 시장이 얼어붙고, 중소기업대출도 여의치 않아 고금리로 어렵게 잡아놓은 예금을 길게 운영할 곳이 없다는 데 있다.”면서 “역마진을 보면서까지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투신권의 MMF(머니마켓펀드)에 자금을 운영하려는 조짐까지 보인다.”고 말했다. ●예금금리 싸움 2라운드로 콜금리 인상에 따라 특판예금의 이점이 사라지면서 은행들은 다양한 형태의 정기예금으로 또다른 금리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이번에는 특판예금 당시 뒤늦게 따라붙었던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이 먼저 치고 나오는 양상이다. 정기예금 잔액이 점점 줄고 있는 외환은행은 12일 연 5.0%의 금리가 적용되는 정기예금에다 코스피200지수에 연동, 최고 연 10%의 수익률을 낼 수 있는 복합예금을 내놓았다. 특판 결정을 놓고 심사숙고했던 국민은행은 콜금리가 인상되자 가장 먼저 일반 정기예금 금리를 최고 0.45%까지 높였다. 고금리 경쟁이 일반 정기예금으로 옮겨가면서 은행들은 가중되는 수신금리 부담을 대출금리로 전가시킬 가능성이 크다. 결국 예금보다 부채가 많은 서민들의 부담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활황증시 오늘의 종목] 동양종금증권

    [활황증시 오늘의 종목] 동양종금증권

    동양종금증권(003470)은 추가 상승이 기대되는 작지만 강한 우량 종목이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은 지난 1일 동양그룹의 같은 계열사인 동양오리온투자증권을 인수합병함으로써 금융 예탁자산이 18조원으로 불어났다. 업계 순위가 중위권에서 5위로 껑충 뛰었다. 예탁자산을 1년 안에 25조원,2010년에는 50조원으로 늘려 삼성증권과 나란히 하는 게 목표다. 전문가들은 이를 공허한 기업목표로 여기지 않는다. 증권·종금·투신 등 3대 업종을 골고루 갖고 있는 유일한 미래형 종합금융사이기 때문이다. 은행처럼 여수신 업무가 가능해 어음관리계좌(CMA) 자산규모가 1조원에 이른다. 주식투자 외에도 채권, 파생상품 등 전문적인 다양한 금융상품을 취급함으로써 지난 2년동안 1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단순한 주식투자 수수료 비중은 다른 증권사의 절반인 35%에 불과하다. 증시호조 때만 ‘반짝수입’을 올리는 ‘뜨내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3년전 세계물산으로부터 인수한 160만평의 경기도 마석 땅은 레저타운 부지로 개발이익이 기대된다.45%의 지분을 갖고 있는 동양생명의 기업공개(IPO)도 2∼3년안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주가가 올해 초에 비해 이미 두배 이상 올랐으나 추가상승의 여력이 충분하다는 게 정설이다. 목표주가는 1만 1600원. ■ 도움말 현대증권 심규선 연구원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의사자 인정 받아도 산재보상”

    의사자 인정을 받아도 산업재해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자신의 업무와 관계없이 다른 사람을 구했을 때 의사상자로 인정되는 반면, 산업재해 보상금은 업무상 재해를 당했을 때 지급된다. 얼핏 보면 양쪽 중 하나의 보상금을 지급받으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법원은 “의사상자 예우법과 산재보험법은 입법 목적이 다르다.”면서 “의사자로 인정받았다고 산재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 신동승)는 지난해 한강에 투신한 경기도 파주 시장 이준원씨를 구하려다 숨진 운전기사 이원범씨의 유족이 유족급여를 지급해 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10일 밝혔다. 재판부는 “공용차 운행 중 생명이 위험해진 승차자를 구조하는 일도 운전기사의 업무범위에 속한다.”고 밝혔다. 이어 “직무상 의무 범위를 벗어났다고 산재보험에 명시된 업무가 아니라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하나금융지주 설립 예비인가

    금융감독위원회는 30일 ㈜하나금융지주의 설립에 대한 예비인가를 했다. 이에 따라 하나금융지주가 설립되면 하나은행, 대한투자증권, 하나금융경영연구소, 하나아이앤에스 등 4개 자회사와 하나증권, 하나생명, 하나캐피탈, 대한투신운용, 청도국제은행, 하나펀딩 등 6개 손자회자를 거느리게 된다. 하나금융지주 4개 자회사는 다음달 17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지주회사에 주식이전 등을 의결할 예정이다.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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