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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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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열리기 시작한 ‘입’들

    또다시 ‘입’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끝난 것을 전후해 보수와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논객들이 연일 입을 열고 있다.    ●조갑제 “난 21세기 한국의 갈릴레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자살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은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가 31일 “사실을 사실대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가 욕을 먹으니,지동설을 주장하였다가 연금당한 갈릴레오가 생각났다.”고 말했다.  조 전 대표는 이날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언론은 자살을 자살이라고 써야 한다.’는 주장은 ‘지구는 태양 주변을 돈다.’는 주장과 같은 진리이다.나는 21세기 한국에서 갈릴레오처럼 비판 받는 존재가 되었다.”고 개탄했다.이어 “한국의 언론은 국민장 기간 광적인 선동과 미화로써,자살한 형사피의자를 순교자,성자,영웅 수준으로 격상시켰다.”면서 “그들의 광기에 합세하지 않고 제정신을 차린 사람들을 일부 기자,교수들이 욕을 해대고 있으니 한국의 지식인 사회는 부분적으로 중세 암흑기로 후퇴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한국의 언론은 아직 ‘지동설’을 핍박하는 수준”이라며 “신문에 ‘투신 서거’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기자들은 자살이란 말을 쓰기 싫어했다.”고 말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표기할 자유를 말살하려는 세력은 김정일을 ‘위원장’이라고 부르지 않을 자유도 말살할 수 있는 이들”이라며 “노무현 씨의 죽음을 서거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욕하는 이들은 가슴속에 히틀러나 김일성이 들어 있지 않은지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동길,MB 겨냥 “왜 대통령이 되셔가지고…”  지난달 1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자살하라고 썼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거센 비난을 불러일으켰던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도 전날 홈페이지에 이번 국민장을 ‘세기의 장례식’이라고 칭하고 방송 3사가 총동원되어 노 전 대통령을 ‘순교자’로 만들었다고 꼬집었다.특히 인도의 성자 간디와 중국의 모택동 주석과 북한의 김일성 주석의 장례식과 비교하며 “성자 간디가 암살되어 화장으로 국장이 치러졌을 때에도 우리나라의 이번 국민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초라했던 것으로 기억된다.”면서 “중국의 모택동 주석이나 북의 김일성 주석의 장례식도 2009년 5월29일 국민장을 능가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짐작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사람은 실황중계를 시청하다 꺼버렸다고 들었지만 나는 TV 앞에서 오후 시간을 몽땅 보냈다.”며 “서울광장은 완전히 황색으로 물들어 있었다.노사모 회원들의 장례식 준비만은 완벽했다.”고 덧붙였다.김 교수는 또 “혼자만의 느낌인지는 모르겠으나 또 하나의 정부’가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마땅히 존재한다고 우리가 믿고 있는 그 정부보다 훨씬 유능하고 조직적이고 열성적인 또 하나의 정부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정부가 보이는 정부보다 훨씬 능력이 있다면 이명박 후보를 전적으로 지지한 1천만은 낙동강의 오리알이 되는 것”이라며 “왜 대통령이 되셔가지고 우리를 모두 이렇게 만드십니까”라고 답답해 했다.     ●전여옥 “노무현의 힘 현실로 인정해야”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국민장이 치러진 지난 29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대통령 노무현으로서 기억되어야 한다.”며 “노짱과,노간지로,달빛의 신화로 기억할 것인가,아니면 대한민국의 대통령 노무현으로서 엄중한 역사속에서 기억할 것인가.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무현을 달빛이 비춘 신화로 기억한다면,그는 노사모의 짱으로만 머무를 것”이라며 “그러나 찬란한 햇빛아래 기억한다면 역사속의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조문 열기에 대해 “보통사람들이 대통령의 서거에 문상 간다는 것은 그리 쉽지는 않은 일이고,분명 잘 알던 이의 상가를 찾는 것과는 매우 다른 일일 것”이라며 “많은 이들이 노무현대통령의 빈소와 분향소를 찾았고,바로 그 점이 정치인 ‘노무현의 힘’이라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일체감´이 (갖는) 정치적 효과나 반향도 꽤 클 것”이라며 “이 친근감과 친밀함,그런 특별하고 독특한 정서에 대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주문해 눈길을 끌었다.    ●진중권 “이제 칼을 뽑지요”  반면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논객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5년 전 인터뷰에 대해 반성하는 글을 올린 데 이어 “이제 칼을 뽑지요.”라는 의미심장한 글을 올려 주목받았다.  진 교수는 29일 밤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그 동안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공격은 그냥 무시해 버렸지요.억울한 오해를 받아도 대중의 오해를 허락하는 것이 제 성격이기도 하고...하지만 이번엔 공격이 권력을 끼고 들어왔습니다.”라며 “(공격의) 배후에 어른거리는 권력은 그냥 무시해 버릴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지요.들려오는 소리도 심상치 않고...”라고 지적해 그 배경을 둘러싸고 궁금증이 일고 있다.  그는 나아가 “위험한 싸움을 시작하는 셈인데,일단 싸움을 하기 위해 주변을 좀 정리했습니다.나 자신을 방어하는 싸움은 그 동안 해 본 적이 없어 익숙하지도 않고....그 과정에서 자신을 변명해야 하는 구차함도 마음에 안 들고....별로 내키는 싸움도 아니지만...가끔은 피할 수는 없는 싸움도 있는 것 같습니다.이제 칼을 뽑지요.”라고 밝혔다.  주변을 정리했다는 것은 지난 28일 진보신당 게시판을 통해 “그것(자살세 발언 등)은 분명히 잘못한 것”이라며 “변명의 여지가 없고,아프게 반성한다.”고 밝힌 것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진 교수는 지난 2004년 한 인터뷰에서 “정몽헌 현대아산회장의 자살에 대해 ‘사회적 타살’이라는 의견이 많았고…”라는 질문에 “자살할 짓 앞으로 하지 않으면 되는 거예요.(웃음) 그걸 민주열사인 양 정권의 책임인 양 얘기를 하는데,그건 말도 안 되고,앞으로 자살세를 걷었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시체 치우는 것 짜증 나잖아요.”라고 독설을 퍼부었다.그는 또 남상국 전 대우 사장에 대해서도 “그렇게 명예를 중시하는 넘이 비리나 저지르고 자빠졌습니까?…검찰에서 더 캐물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하는 넘들이 있다고 합니다.…검찰에서는 청산가리를 준비해놓고, 원하는 넘은 얼마든지 셀프서비스하라고 하세요….”라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이같은 진 교수의 발언은 한동안 잊혀졌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다시금 논란거리로 떠올라 보수 진영으로부터 공격받는 빌미가 됐다.진 교수는 당시엔 “그 분들의 죽음을 부당한 정치적 탄압의 결과인 양 묘사하는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태도가 ‘역겨워서’ 독설을 퍼붓다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시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마지막 선물/박명호 동국대 정치학 교수

    [시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마지막 선물/박명호 동국대 정치학 교수

    이번 주는 우리에게 참담한 시간이다. 퇴임 대통령의 불행한 모습을 또 보기 때문이다. “망명, 암살, 소환, 구속, 그리고 투신자살…” 이제 더 이상은 없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더는 대한민국의 비극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앞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예상할 수 없는 강도와 방향의 후폭풍이 예상된다는 것.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다를 게다. 원망과 비난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고, 이번 일을 자성의 계기로 삼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사회로 진화할 수도 있다. 증오의 악순환을 반복하느냐, 아니면 화해와 공존으로 나아가느냐는 ‘노무현 가치’에 대한 이해와 실현 여부에 달려 있다. ‘노무현 가치’는 무엇인가? 정치인 노무현은 시대를 앞장서 개척하고 시대정신을 대표했다. ‘바보 노무현’이라고 불릴 정도로 우직했다. ‘노무현 가치’는 민주화와 인권, 기득권 타파를 통한 평등과 기회의 확대, 그리고 남북화해와 공존이다. 특히 지역주의 정치구조를 해체하고 정책대결의 정당정치를 이루고자 그는 부단히 노력했다. 물론 그의 시도가 항상 현실적 결과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사회적 편 가름은 더욱 심해지고, 갈등과 대립은 격화되었고 일상화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노무현 가치’가 부정당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의 가치가 실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하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극단적 선택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는 것은 바로 그가 생전에 실현하고자 했던 ‘노무현 가치’ 때문이다. 그는 끝까지 살아남아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그것이 자신의 진정성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영원한 비주류로서 노 전 대통령은 특권배제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노력했다. 한 동안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변화와 개혁을 상징했다.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것은 민주주의의 완성이고, 대한민국 공동체의 실현이다. 따라서 그의 죽음을 계기로 대한민국은 증오와 분열의 악순환을 끝내고 국민통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그의 비극적 죽음을 승화시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의 죽음이 정쟁을 격화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누구 책임이냐를 놓고 격한 정치적 대립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만약 정상적 국정진행에 영향을 줄 정도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부패와 비리의 고리를 제거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제왕적 성격의 대통령제에서 분권과 견제, 그리고 균형의 정치제도로의 변경도 대안이다. 보다 근본적으론 정치문화의 후진성 극복이 중요하다. 퇴임 후를 걱정하지 않고 국가원로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전직 대통령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동시에 새 정부의 정당성을 과거정권 두들기기에서 찾는 퇴행적 관행도 사라져야 한다. 정치인 노무현은 지사형(志士型)이다. “굴하지 않고, 굽히지 않으며 실패할 때 결국 홀로 목숨 놓는 삶을 고귀한 것”으로 인식한 이가 노 전 대통령이다. 이러니 그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항상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치는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소통과 합의의 정치복원을 통한 국민통합을 이루라는 것이 노무현의 마지막 선물이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학 교수
  • ‘성적꾸중’ 중학생 자매 투신 숨져

    28일 오전 2시30분쯤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 한 아파트 앞에서 모 중학교 3학년 A(14)양과 A양의 2살 아래 여동생(12·1학년)이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숨져 있는 것을 아파트 주민 이모씨가 발견했다. 이씨는 “‘쿵’하는 소리가 들려 베란다 밖을 내다봤는데 여자아이 두 명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 자매의 부모는 경찰에서 “이틀 전 작은아이가 학업 성적과 관련해 거짓말을 해 큰아이까지 함께 불러 훈계했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오고 둘이 함께 집을 나갔는데 밤늦도록 귀가하지 않아 행방을 찾고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자매가 발견된 아파트의 13~14층 사이 복도에 이들의 가방이 놓여 있는 점으로 미뤄 함께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경호관 “보이지 않는다” 전화 뒤 30분간 봉화산 헤매

    [노 前대통령 국민장] 경호관 “보이지 않는다” 전화 뒤 30분간 봉화산 헤매

    27일 경찰은 2차 수사브리핑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당일 오전 사저를 나서 병원으로 후송되기까지의 행적을 전면 재발표했다. 출발시간부터 시작해 이동경로, 투신시간, 발견시간 등이 이전 발표와는 모두 달랐다. 26, 27일 이틀 동안 이병춘 경호관을 상대로 한 조사내용이 바탕이다. 23, 25일 조사를 토대로 1차 발표한 내용과 같은 대목은 ‘담배와 관련된 대화가 오고 갔다.’는 것뿐이다. 경찰의 2차 브리핑에 따르면 폐쇄회로(CC)TV 자료를 통해 밝혀진 노 전 대통령의 사저 출발 시간은 5시47분이다. 1차 브리핑 때 경찰이 발표한 5시50분보다 3분 빠르다. 유서 작성시간과 이 경호관이 ‘등산을 나간다.’는 노 전 대통령의 연락을 받은 시점(5시45분) 등 출발 이전 상황은 이전 조사와 동일하다. 사저를 나선 노 전 대통령과 이 경호관은 등산로 입구 마늘 밭에서 일하던 박모씨를 만나서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이어 오전 6시7분쯤 정토원 입구 90m 지점까지 올라갔으나 노 전 대통령이 “힘들다. 내려가자.”고 말해 발길을 돌렸다.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 도착한 시간은 6시10분쯤. 노 전 대통령은 이 경호관에게 “부엉이바위에 부엉이가 사나?”라고 말한 뒤 “담배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 경호관이 “없습니다. 가져오라 할까요?”라고 되묻자 “그럼 됐다.”고 대답했다. 이어 “폐쇄된 등산로에 사람이 다니는 모양이네.”라고 말했고 이 경호관은 “그런 모양입니다.”라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은 6시14분쯤 이 경호관에게 “정토원에 선(진규) 법사가 계시는지 보고 오지.”라고 지시했고, 이 경호관이 “모셔 올까요?”라고 묻자 “아니, 그냥 확인만 해 봐라.”고 했다. 이 경호관이 선 법사가 있는 것을 확인한 뒤, 부엉이바위에 다시 도착한 때는 6시17분쯤. 노 전 대통령은 자리에 없었다. 이 경호관은 휴대전화를 이용, 사저 경호동에 있는 신모 경호관에게 “심부름을 다녀온 사이 대통령께서 보이지 않으니 내려오시는가 나와서 확인 좀 해라.”고 지시했다. 이 경호관은 이후 마애불 등산로와 부엉이바위 등산로, 호미든관음상, 봉화산청소년수련원을 둘러봤다. 이 과정에서 이 경호관은 나물 캐는 오모(57·여)씨, 젊은 부부 한 쌍 등을 만나 노 전 대통령에 관해 탐문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이어 6시30분쯤 정토원 앞에 다시 도착한 이 경호관은 선 법사가 “무슨 일이냐, VIP 오셨냐.”라고 묻자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답하곤 부엉이바위로 다시 출발했다. 35분쯤 부엉이바위에 간 이 경호관은 경호동의 신 경호관으로부터 “정토원에 가보라.”는 전화연락에 “아니 없더라.”라고 답하면서 순간적으로 부엉이바위 아래를 떠올렸다고 진술했다. 이 경호관이 약수터 밑에서 부엉이바위 아래 산 아래쪽을 보고 모로 누워 있는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한 것은 6시45분. “사고가 났으니 차를 대라.”고 지원을 요청한 뒤, 노 전 대통령을 오른쪽 어깨에 메고 봉화산 아래 공터로 이동해 인공호흡을 두 차례 시도했다. 이후 도착한 차량에 탑승, 52분 김해시 세영병원으로 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경찰은 밝혔다. 창원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공시족’에게 공직이란?…달라진 의식들 “비정규직 차별 임금 차액 전액 지급하라” 인천 도심 난투극 조폭 108명 검거 서울대 주요학과 합격자 출신고 분석하니 올 지방직 9급 시험문제 분석해보니
  • “노 前대통령 오전 6시14~17분 사이 투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3일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한 시간은 당초 경찰 발표보다 최소한 30여분 빠른 오전 6시14~17분 사이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을 경호했던 청와대 이병춘 경호관이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봉화산 정토원에 갔다가 부엉이바위로 돌아온 때는 오전 6시 47분이었다. 앞서 경찰은 노 전 대통령이 오전 6시45분쯤 투신했다고 발표했다. 전후 사정을 감안하면 노 전 대통령은 투신할 때부터 발견되기까지 30분가량 혼자 있었던 셈이다. 경남지방경찰청은 27일 이같은 내용의 재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지난 24일 경찰의 1차 발표 때와는 크게 다른 내용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노 전 대통령이 이 경호관이 부엉이바위에서 자리를 뜬 오전 6시14~17분 사이에 투신한 것으로 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투신 시점 등이 오락가락한 것과 관련, 이운우 경남청장은 이날 본지 기자와 만나 “(청와대) 경호관의 위세가 심해서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밝혔다. 경호관의 비협조로 수사가 제대로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어 “(조사 대상이) 청와대 경호관이다. 이들은 상급기관이라 경찰 지시는 잘 안 따른다. 서장들을 오라가라 하는데 누가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수사 착수와 관련해서도 이 청장은 “지난 24일 봉하마을에 조문 갔다가 정토원 선진규 법사의 말을 듣고 선 법사를 참고인으로 조사했고 곧바로 이 경호관에게도 연락했지만 이 경호관이 처음에는 거부했다.”면서 수사의 애로점을 털어놨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이후 24, 25, 27일 등 지금까지 네 차례 경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창원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경호관은 은폐 시도… 경찰은 부실 수사

    27일 경찰이 밝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당일 행적은 지난 25일 이뤄졌던 1차 브리핑 내용과는 크게 다르다. 이병춘 경호관의 진술에만 지나치게 의존한 경찰의 수사미숙이 원인이다. 나머지 봉하 경호팀원들의 당일 행적 및 경찰수사에 어떤 방식으로 협조했는지는 여전히 궁금점으로 남아 있다. ●정토원 법사에 말맞추기 시도 이 경호관은 사고 당일 이뤄진 경찰의 1차 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동행해 오전 6시20분쯤 부엉이바위에 도착, 20여분간 이야기를 나누다 오전 6시45분쯤 투신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조사에서 이 경호관은 당일 오전 6시10분쯤 부엉이바위에 도착, 노 전 대통령이 정토원에 가보라고 지시했고 오전 6시17분쯤 다시 부엉이바위에 왔더니 노 전 대통령이 보이지 않았다고 당초 진술을 번복했다. 아직 수사가 종결되지 않아서 노 전 대통령이 이 시간대에 투신했다고 단정짓기는 이르지만 그 무렵 사저에서 5분여 정도 거리의 고추밭에서 일하던 한 마을 주민이 ‘쿵’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해 경찰이 밝힌 투신 시간대와 대략 비슷하다. 이 경호관은 정토원 방문 여부에 대해서도 오락가락했다. 노 전 대통령도 함께 갔다고 했다가 정토원에 자신만 갔다 온 사이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했다고 했다. 이 경호관은 조사과정에서 정토원 방문 횟수도 번복했다. 당일 오전 6시15분쯤 정토원에 갔다가 부엉이바위에 내려온 뒤, 노 전 대통령이 보이지 않자 오전 6시30분쯤 다시 정토원에 찾아간 것으로 드러났다. 두 번째 방문은 노 전 대통령의 행방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이 경호관은 말맞추기 시도도 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다음날 정토원 원장인 선진규 법사에게 전화를 걸어 “정토원에 내가 갔다는 얘기는 경찰에서 진술하지 않았으니 그런 줄 알고 있으라.”라고 당부하는 등 은폐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이미 경찰에 정확한 진상파악을 지시했다.”면서 “필요하면 추후 해당 경호관을 문책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목격자·교신·CCTV 조사 안해 경찰의 안이한 대응도 비판받고 있다. 전직 대통령 서거라는 중대사안을 수사하면서 초동 수사 때부터 이 경호관의 진술에만 의존한 채 목격자 조사 및 무선교신 내용, 폐쇄회로(CC)TV 확보 등 수사기본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1차 조사 브리핑이 있었던 지난 25일엔 이 경호관으로부터 정토원 방문에 대한 진술을 듣고도 발표하지 않았다. 결국 부실수사 논란이 확산되고 나서야 ‘놓쳤다.’ ‘보이지 않는다.’는 무선교신 내용을 확보해 이 경호관이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있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경찰이 2차 브리핑을 통해 진실규명 의지를 보였지만 의문점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봉하마을 경호대의 업무수행 적정성이다. 이 경호관을 제외한 나머지 경호요원들이 서거에서부터 경찰의 2차 수사발표가 나오기 전까지 현장에서 어떤 조치를 했는지, 청와대 경호처에는 어떻게 보고했는지 등이다. 경찰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동료 경호관들의 설득으로 이 경호관이 마음을 정리하고 사실대로 진술하게 된 것으로 분석한다고 밝혔다. 이는 경찰수사에 앞서 나머지 경호관들은 이 경호관이 거짓말을 하고 있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김해 김승훈 박성국기자 hunnam@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봉하마을 빈소 표정 ]“꽃잎처럼 흘러가시라”…[동영상] 인천 도심 난투극 조폭 108명 검거 유학생 입국 시즌… 신종플루 금주가 고비 서울대 주요학과 합격자 출신고 분석하니 올 지방직 9급 시험문제 분석해보니
  • 밭일하던 마을주민 “아침 6시10~20분쯤 툭 탁 쿵 소리’”

    ”부엉이바위 근처 고추밭에서 일하다가 ‘툭 탁 쿵’ 소리를 들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했던 지난 23일 아침 큰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는 마을 주민의 증언이 나왔다.  봉하마을 주민 이모(60)씨와 김모(여·58)씨 부부는 27일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고추밭에서 일하는데 ‘툭’ ‘탁’ ‘쿵’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며 “그때는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무엇이 떨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새벽이라 소리는 굉장히 컸다.”고 기억했다.  이씨 부부는 사건 발생 당일 오전 5시50분쯤 부엉이바위로부터 100여m 떨어진 고추밭에서 일을 하기 위해 위해 집을 나섰다.김씨는 “남편은 농약을 치고 나는 김을 매고 있는데 아주 가까운 곳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남편 이씨도 “두 번 정도 제법 큰 물체가 땅에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며 “하지만 비명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집으로 가던 중 경호관이 투신한 노 전 대통령을 안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밝혔다.김씨는 “부엉이바위 밑에서 한 남자가 또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려고 하는지 두 손으로 안고 있었다.”며 “그때는 노 전 대통령과 경호관일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집에서 나와 밭일을 시작하는 데 길게 잡아도 10분 이상 걸리지 않는다.”며 노 전 대통령 투신 시점을 ‘6시10분에서 20분 사이’로 추정했다.경찰은 25일 1차 브리핑 때에는 투신 추정 시간을 ‘23일 오전 6시 45분’으로 발표했다가 27일 2차 브리핑에서는 ‘23일 오전 6시 14~17분’으로 정정했다.  또 경호관이 노 전 대통령을 안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것도 오전 6시 30분이 되기 전이라며 경찰 발표와 다르다고 말했다.경찰은 27일 브리핑에서 그 시간에 경호관들이 주변을 수색하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씨 부부는 또 경호관이 최근 진술에서 노 전 대통령 지시로 인근 정토원에 다녀온 뒤 등산객이 오는 것을 봤다고 했지만 “밭이 등산로 입구에 있는데,당시 그런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사설] 경호·경찰조사 부실 책임 따져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경위를 놓고 말들이 많다. 경호관의 경호수칙 위반과 진술번복, 그리고 경찰의 부실투성이 수사 탓이다. 생전의 모든 허물을 한 몸에 지고 간 노 전 대통령의 뒷자리가 이렇게 어수선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우리는 사건 당일 경호관의 경호수칙 위반사실을 여러 곳에서 확인했지만 탓하지 않았다. 경호관이 일평생 질 부담에 대한 인간적인 동정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서거현장에 없었다는 사실을 숨긴 것은 엄중한 잘못이다. 수칙대로 복수의 경호관이 현장에 있었더라면, 바위 아래로 몸을 던진 노 전 대통령을 찾느라 30분을 허비하지 않았을 수 있다. 30분은 꺼져가는 생명을 구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경찰의 한심한 수사력도 서거 경위가 세상에 잘못 알려지게 하는 데 한몫했다. 유서를 처음 발견한 정황과 투신 직전의 행적 등 기초적인 사항과 증거를 챙기지 못했다. “정토원에 갔다가 부엉이 바위로 되돌아왔다.”고 경호관이 중요한 진술을 했지만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 같아 공개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였다. 경찰 수사력의 현주소에 혀를 차게 된다.경찰의 부실 수사와 경호관의 진술번복으로 인해 온갖 설이 난무하고 있다. 음모설에 이어, 심지어 타살설마저 나돈다. 변호사 출신의 전직 대통령이 법적 효력이 없는 컴퓨터 유서를 작성했고, 119구급대를 부르지 않고서 낙상을 입은 대통령을 업고 차량으로 옮긴 점, 장기기증 서약을 한 노 전 대통령이 화장을 요청한 점 등 때문이다. 색안경을 쓰고 삐딱하게 보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이런 억측을 생산하는 의혹을 풀 정밀한 재수사가 필요하다. 또 자신이 속한 조직의 안위를 위해 거짓말을 한 경호관과 사실확인 소홀로 억측을 유발한 경찰도 면책대상이 될 수 없다.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노 前대통령 투신때 경호관은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3일 오전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했을 당시 경호관이 곁에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경찰의 초동수사가 부실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경찰은 최종수사 결과를 27일 발표하기로 했다. 경남경찰청 고위관계자는 26일 “1차 조사 때와 달리 2차 조사에서 이병춘 경호관이 노 전 대통령 투신 당시 자신이 곁에 없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해 시간대별 이동경로 등 당시 행적에 대해 정토원 원장과 초소 근무자 등 관계자들과 대질 신문 중”이라면서 “현재까지의 조사결과, 이 경호관의 2차 진술의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고 밝혔다. 또 다른 경남경찰청 관계자는 이날 노 전 대통령이 이 경호관과 투신 직전 정토원을 방문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노 전 대통령은 부엉이바위에서 있으면서 이 경호관에게 ‘정토원 원장이 계신지 알아보라.’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정토원에 들른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 23일 1차 수사결과 발표 때 “노 전 대통령과 이 경호관이 오전 6시20분에서 45분까지 함께 부엉이바위에 머물렀다.”고 밝혔다. 김해 강원식 박성국기자 oscal@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1차조사 “함께 있었다” 2차조사땐 “혼자였다”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1차조사 “함께 있었다” 2차조사땐 “혼자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할 당시 경호관이 없었던 것으로 26일 확인됨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당일 행적에 대한 전면 재조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경찰은 1·2차 수사결과를 통해 이병춘 경호관이 노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노 전 대통령 부모의 위패가 모셔진 봉화산의 사찰 정토원에 들른 사실을 발표하지 않은 데다 서거 당일 이 경호관이 노 전 대통령 곁에 없었다는 점을 서거한 지 4일이 지난 뒤에야 밝히는 등 부실 수사와 그 배경에 대한 의문점이 증폭되고 있다. ●부엉이바위→정토원→부엉이바위 26일 정토원 관계자 등의 발언을 종합하면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3일 오전 6시20분부터 45분까지 25분간 부엉이바위에 머무는 사이에 이 경호관에게 잠시 정토원에 들러 정토원 원장이 있는지 확인하라고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정토원에 들렀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토원은 부엉이바위에서 250m쯤 떨어져 있는 사찰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부엉이바위에서 5분간 머문 뒤 부모의 위패가 모셔진 정토원에서 하직 인사를 하고 이동하면서 15분을 보냈고, 다시 부엉이바위에서 5분간 머물다 몸을 던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수사결과 발표에서 고인이 부엉이바위에서 회한의 시간을 보내다 이 경호관이 제지할 틈도 없이 몸을 던졌다고 했다. 정토원 선진규 원장은 26일 “당일 새벽 이 경호관이 찾아와 ‘원장님 계시느냐.’고 물었고, (내가) ‘VIP(대통령)도 함께 오셨느냐.’고 물었더니 이 경호관이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선 원장은 “나는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지 못했으나 사찰에서 음식조리를 담당하는 보살이 ‘노 전 대통령이 법당에 모셔진 부모님의 위패에 예를 표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이 경호관의 정토원 방문 사실과 노 전 대통령의 정토원 방문 여부에 대한 경위파악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경호관이 ‘정토원쪽으로 갔다가 되돌아왔다.’고만 진술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천호선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와 관련, “노 전 대통령께서 경호관에게 정토원에 가보자고 했고, 선 법사가 있는지를 확인하라고 한 지시를 (다른 사람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고 경호관에게 말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천 전 수석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소속 이 경호관이 전직 대통령의 추락을 막지 못한 데에 대한 책임 추궁을 우려했고, 경찰은 이를 감춰주려 했다는 의구심이 들 수 있는 대목이다. ●등산객 “정토원~부엉이바위 경호관 혼자였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당일 이 경호관이 수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사건은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27일 경찰의 수사발표에서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하기까지의 정확한 경위가 밝혀질지 주목된다. 경찰은 이 경호관의 진술이 명확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부실한 수사로 일관했다는 비판은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토원 방문 여부 등 천호선 전 홍보수석이 경호관의 말을 빌려 설명한 내용과 경찰이 당초 파악했던 것에 차이가 나는데다 당일 정토원과 부엉이바위 사이 등산로에서 이 경호관을 만났다고 증언한 등산객도 3차 조사에서야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경찰은 지난 1·2차 수사결과 발표에서 이 경호관의 진술에만 의지하는 등 중대사안에 대한 안일한 대처로 일관했다는 정황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김해 강원식 유대근기자 kws@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고비마다 그의 손엔 담배가 있었다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고비마다 그의 손엔 담배가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하기 직전에 수행 경호관에게 “담배 하나 있냐.”고 물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 분향소마다 고인의 영정 앞에 불 붙인 담배가 제기(祭器)에 오르고 있다. 주변의 측근들은 노 전 대통령이 생애의 고비마다 겪었던 고뇌와 인간적 면모를 보여 주는 상징으로 담배를 꼽기도 한다. 고인이 괴로울 때에는 하루에 2갑 이상 줄담배를 피워 물었고, 안정기에는 금연을 결행하는 등 행동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시절 ‘애연가’로 통했던 노 전 대통령은 값이 싼 담배라고 할 수 있는 ‘디스(2000원)’를 즐겼다. 그것도 중간에 끄는 게 아까워 필터 앞까지 끝까지 피우는 알뜰 흡연습관을 지녔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 출마 결심을 굳힌 2001년 10월에 금연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듬해 10월쯤 대선 후보로 선출된 후 10%대의 부진한 지지율로 고전하면서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대통령에 당선되자 다시 담배를 끊었다가 일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참모진에게 담배를 찾곤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검찰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봉하마을 사저를 나서기 직전에도 참여정부 인사 30여명과 차를 마시며 담배 두 개비를 피웠다. 착잡한 심경을 담배로 달랬다. 검찰조사 중 잠시 쉴 때마다 담배를 피웠다. 김해 강원식 박정훈기자 kws@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투신전 부모님 위패에 마지막 인사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3일 봉하마을 뒷산인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하기 직전 정토원에 들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곳에는 노 전 대통령의 부모와 장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정토원은 부엉이바위와 250m 정도 떨어져 있다. 25일 정토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서거 직전 이병춘 경호과장과 함께 부모님과 장인어른의 위패가 모셔진 정토원에 들러 이승에서 삶을 마감하는 인사를 드린 것으로 파악됐다. 정토원에 들른 시간은 당일 오전 6시30분 전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토원의 선진규 원장은 “그 날 새벽 노 전 대통령과 경호원이 정토원에 들렀다.”면서도 “나는 노 전 대통령을 못 봤고 경호원만 봤다. 부모님 위패가 모셔져 있으니 와보고 싶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선 원장은 구체적인 방문 시간은 밝히지 않고 “경찰 수사가 다시 이뤄질 것이니 그때 밝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다른 정토원 관계자는 “선 원장이 경호원에게 VIP(노 전 대통령)와 함께 왔냐고 하니까 혼자 왔다고 대답하는 걸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이 경호과장에게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고 원장이 계신지 알아 보라.”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은 이 경호과장이 정토원측에 문의하는 동안 혼자 법당 뒷길을 통해 부엉이 바위쪽으로 먼저 내려갔고 이 경호과장이 뒤따라가 노 전 대통령과 동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경찰은 지난 24일 브리핑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이 유서를 쓴 직후인 오전 5시50분쯤 이 경호과장과 함께 봉하마을 사저를 출발해 약 30분 동안 산을 올라 6시20분쯤 부엉이 바위에 도착한 뒤 6시45분쯤 투신했다.”라고만 발표, 정토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정토원 방문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재연 유대근기자 oscal@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사저 운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함에 따라 앞으로 그가 머물던 고향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의 운영방안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봉하마을에 정착하기 위해 마련한 사저가 이제 바깥주인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장례도 끝나지 않은 현재로서는 사저 활용에 대해 이렇다 할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부인 권양숙 여사가 지금처럼 사저에 계속 머물지, 아니면 기념관 등으로 활용할지는 아직은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권 여사가 다른 곳으로 이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괸측된다. 한 측근은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부엉이 바위가 사저 뒤로 약 500m의 지척이어서 권 여사가 사저를 드나들 때마다 아픈 상처가 되살아나 괴롭지 않겠느냐.”며 이사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만약 권 여사가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면 현재의 사저는 노 전 대통령의 기념관으로 활용될 공산이 크다. 반면 봉하마을 주민들은 권 여사가 마을에 남기를 원하고 있다. 한 주민은 “비록 지아비를 잃은 아픔이 크지만 권 여사가 고향 마을을 지키며 함께 살기를 원한다.”며 “(권 여사가)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는 것보다 차라리 고향인 이곳에서 마을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는 게 더 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또 권 여사가 환멸을 느껴 자녀가 있는 미국 등으로 거처를 옮겨갈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퍼스트 레이디’를 지냈다는 점에서 현실성과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아무튼 사저의 활용 향방은 장례가 끝나고 난 뒤 한참 후에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사저는 지난 2007년 1월 공사에 들어가 2008년 2월 초 준공됐다. 총 비용은 땅 매입비 등 12억원이 넘게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건축면적이 993㎡ 규모로 착공됐으나 설계변경을 통해 연면적이 1277㎡로 30%가량 늘어났다.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황톳빛 외벽에 수십개의 유리창이 들어간 ‘ㄷ’자 구조이다. 3채의 독립 건물이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김해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유시민 “내게는 영원한 대통령”

    유시민 “내게는 영원한 대통령”

     25일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부 공식 분향소에서 조문객을 맞고 있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자신의 팬클럽 사이트인 ‘시민광장’에 ‘서울역 분향소에서’란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유시민 전 장관은 시(詩)처럼 짧은 문장들로 이뤄진 글에서 “연민의 실타래와 분노의 불덩어리를 품었던 사람,모두가 이로움을 좇을 때 홀로 의로움을 따랐던 사람이 떠났다.”고 가슴 아픈 심정을 내비쳤다.  이어 “스무 길 아래 바위덩이 온몸으로 때려 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껴안고 모두의 존엄을 지켜낸 남자 그를 가슴에 묻는다.”고 썼다.  마지막으로 “내게는 영원히 대통령일,세상에 단 하나였던 사람”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다.  유 전 장관은 전날 노 전 대통령이 투신 직전 경호관에게 담배가 있느냐고 물었던 사실 때문에 경남 김해 봉하마을 빈소에서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영전에 바쳐 눈길을 끌었다.그를 따라 봉하마을을 찾은 조문객들이 담배에 불 붙여 영전에 올리는 모습이 잇따랐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노 前대통령 서거] 北 ‘서거’ 하루만에 보도

    북한이 24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하루 만에 보도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전 남조선 대통령 노무현 사망’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보도에 의하면 전 남조선 대통령 노무현이 5월23일 오전에 사망했다고 한다.”고 논평 없이 짧게 전했다. 통신은 노 전 대통령의 투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북한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하루 만에 보도한 것은 이례적으로 신속한 것이다.북한이 남북 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 유가족 등에 조전을 보낼지, 보낸다면 누구 명의일지도 주목된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김동길 “(박정희 때도) 이렇게 슬퍼 안해”

    김동길 “(박정희 때도) 이렇게 슬퍼 안해”

    지난달 15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자살을 하거나’라고 썼던 사실 때문에 비난이 집중된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노무현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뿐”이라며 “이 비극의 책임은 노 씨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김 명예교수는 25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지금은 할 말이 없습니다’란 제목의 글을 올리고 “사법부는 노 씨에 대한 모든 수사는 이것으로 종결한다고 하니 이건 또 어찌된 일인가.그렇지 않아도 어렵게 된 검찰의 입장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려는 속셈인가.이 나라에는 법은 없고, 있는 것은 감정과 동정뿐인가.”라며 수사를 촉구했다.  그는 “사람이 죽었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고 지적하면서도 “고종황제나 박정희 전 대통령 때도 이렇게까지 슬퍼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이어 “그런데 모든 언론매체들이 왜 이렇게도 야단법석인가.”며 “노 씨가 산에서 투신자살했기 때문이냐.”고 되물었다.  앞서 김 명예교수는 ‘먹었으면 먹었다고 말을 해야죠’라는 글에서 “그(노 전 대통령)가 5년 동안 저지른 일들은 다음의 정권들이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도덕적인 과오는 바로잡을 길이 없으니 국민에게 사과하는 의미에서 자살을 하거나 아니면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서 복역하는 수밖에는 없겠다.”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같은 논란에 김 명예교수는 “마치 내가 노 씨 자살의 방조자인 것처럼 죽이고 싶어 하는 ‘노사모님들’의 거센 항의의 글이 쇄도하여 나의 홈페이지는 한참 다운이 되어 있었다고 들었다.”고 밝힌 뒤 “나는 내 글을 써서 매일 올리기만 하지 내 글에 대한 댓글이 천이건 만이건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하도 험하게들 나오니까 내 주변의 가까운 이들은 ‘테러를 당할 우려가 있으니 혼자서는 절대 집을 나가지 말고 밤에는 더욱이 외출을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한다.”고 한 뒤 “어떤 위기에 처해도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 명예교수의 글 전문    제목 : 지금은 할 말이 없습니다  사람이 죽었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여·야의 모든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어떤 “은퇴” 정치인은 자신의 반이 떨어져 나간 것 같다고 비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청와대도 슬픔에 잠겼다고 들었습니다. 가게를 지키고 앉았던 사람들도, 길을 가던 사람들도 모두 슬픔을 금치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나라의 임금님이, 예컨대 고종황제께서 붕어하셨을 때에도, 그 시대에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백성이 이렇게까지 슬퍼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박정희 장군이 현직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생각이 부족한 어느 한 측근에 의해 피살되었을 때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궁정동의 그 때 그 참사는 국민 모두에게 큰 충격이기는 했지만 오늘과 같은 광경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의 모든 언론매체가 왜 이렇게도 야단법석입니까. 노무현 씨가 산에서 투신자살했기 때문입니까. 그러나 설마 국민에게 자살을 미화시키거나 권장하는 뜻은 아니겠지요. 내가 4월에 띠운 홈페이지 어느 칼럼에서 “노무현 씨는 감옥에 가거나 자살을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하여 이 노인을 매도하며, 마치 내가 노 씨 자살의 방조자인 것처럼 죽이고 싶어 하는 “노사모님들”의 거센 항의의 글이 쇄도하여 나의 홈페이지는 한참 다운이 되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나는 내 글을 써서 매일 올리기만 하지 내 글에 대한 댓글이 천이건 만이건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하도 험하게들 나오니까 내 주변의 가까운 이들은 “테러를 당할 우려가 있으니 혼자서는 절대 집을 나가지 말고, 밤에는 더욱이 외출 하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에 내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가 늙어서 반드시 요를 깔고 누워서 앓다가 죽어야 한다는 법이 있나. 테러 맞아 죽으면 영광이지.” 아직은 단 한 번도 테러를 맞은 일이 없지만 앞으로도 마땅히 내가 해야 할 말을 하다가 폭도들의 손에 매 맞아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떤 위기에 처해도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하지는 않을 겁니다. 나이가 몇인데요. 여든 둘입니다.  사법부는 노 씨에 대한 모든 수사는 이것으로 종결한다고 하니 이건 또 어찌된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어렵게 된 검찰의 입장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려는 속셈입니까. 이 나라에는 법은 없고, 있는 것은 감정과 동정뿐입니까. “검찰이 노무현을 잡았다.” - 이렇게 몰고 가고 싶은 자들이 있습니까. 천만의 말씀! 노무현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뿐입니다. 이 비극의 책임은 노 씨 자신에게 있습니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검찰이 ‘사람 잡은’ 경우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검찰이 ‘사람 잡은’ 경우

    측근과 가족을 통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640만달러의 뇌물을 받고 사업 특혜를 봐줬다는 의혹을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자살함으로써 검찰 수사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첫 대통령으로 기록되게 됐다. 2003~2004년 사이 수많은 정·관계 및 재계 인사들이 검찰 수사를 받다 목숨을 끊었다. 대북송금과 관련, 특검에서 기소된 뒤 150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대검 중앙수사부의 수사를 받던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은 2003년 8월4일 서울 계동 현대 사옥 집무실에서 투신했다. 이듬해인 2004년에는 안상영 전 부산시장,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등 다섯명의 피의자가 잇따라 자살해 ‘자살 신드롬’까지 우려됐다. 안 전 시장은 운수업체에서 뇌물 1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됐고, 별건으로 서울에서 조사를 받고 내려온 뒤 2월4일 부산구치소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2004년 3월11일에는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에게 인사청탁 대가로 3000만원을 준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남 전 사장이 한강에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노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고 “대우건설의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라고 발언한 직후였다. 4월29일에는 건강보험공단이사장 재직 시절 납품비리 등의 의혹으로 서울남부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박태영 전남지사가 역시 한강에 몸을 던졌고, 6월4일에는 전문대 설립 과정에서 뇌물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의 내사를 받던 이준원 파주시장이 역시 한강에서 투신 자살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산행 나서기 30분전 컴퓨터에 유서 남겨

    투신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평소 즐겨하던 독서도 못한 채 밤을 설친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부인 권양숙 여사의 검찰 출두가 임박하자 극심한 정신적 압박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노 전 대통령의 비서관과 경호원 등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로 인한 스트레스로 수일 전부터 잠도 못 자고 식사도 제대로 못 한 채 사저 집무실에도 나오지 않았다. 한동안 끊었던 담배도 피웠다. 오랜 친구이자 고교 동창인 ㈜센트랄 강태룡(63) 대표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다른 친구들이 잠시 만났는데 노 전 대통령이 무척 면목없어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윤원호 전 열린우리당 부산시당 위원장은 “정신적 압박감으로 몸무게가 많이 빠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서거 하루 전인 22일 사저 움직임은 평소와 사뭇 달랐다. 이날 오후 평소 1~2명씩 퇴근하던 비서관과 사저 근무자들이 한꺼번에 6~7명 퇴근했고, 퇴근 시간도 평소에 비해 30분~1시간 정도 일렀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참모들을 사저에서 일찍 내보내고, 주변을 정리한 것이 아니냐는 추정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새벽 5시10분쯤 사저 안에 있는 컴퓨터로 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유서가 최종 저장된 시간은 오전 5시21분이었다. 이미 자살 결심과 자살 방법을 굳히고 봉화산에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유서는 한 비서관에 의해 뒤늦게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이 가족들에게 남긴 유서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중략).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화장해라. 운명이다.”라고 적혀 있다. 유서에는 노 전 대통령의 착잡한 심경과 함께 가족들을 위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라는 대목에선 고향에 남고 싶은 심정을 드러냈다. 김해 특별취재팀 ksp@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검찰과의 질긴 악연

    23일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검찰의 ‘악연’은 노 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 전 대통령은 81년 사회과학 서적을 읽은 혐의로 대학생 20여명이 기소된 ‘부림사건’을 맡아 검찰에 맞섰다. 87년에는 대우조선 노동자가 시위 도중 사망한 사건에 연루됐다가 제3자개입 혐의로 구속수감됐다. 당시 검찰은 그를 구속하기 위해 하룻밤새 3번이나 판사들 집을 찾아다니며 영장 청구를 시도했고, 이를 전해들은 노 전 대통령은 검찰에 대한 불신을 키우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악연의 끈은 끊어지지 않았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 2003년 3월 인사 쇄신을 통한 검찰 개혁을 내세워 판사 출신의 강금실 전 장관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데 대해 평검사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직접 나서 ‘검사와의 대화’를 갖고 평검사들과 생중계 토론을 벌였다. 당시 “대통령도 취임 전 부산 동부지청장에게 청탁전화를 한 적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라고 맞받아쳐 화제를 모았다. 이듬해 3월 검찰이 고(故)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에게서 인사청탁 대가로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형 건평씨를 불구속기소하자 기자회견을 열어 남 전 사장을 비판했고, 결국 남 전 사장은 한강에 투신자살했다. 남 전 사장의 유족은 최근 검찰에 노 전 대통령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다음 검찰의 칼끝은 본인을 직접 향해 왔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뒤 ‘e지원 서버(옛 청와대 온라인업무관리시스템)’를 봉하마을에 구축하고 임의로 기록물을 가져간 데 대해 검찰이 지난해 8월부터 수사에 착수한 것. 기록물 유출 혐의가 있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검찰이 방문조사 카드를 꺼내자 노 전 대통령은 곧바로 “혐의가 있다면 내가 자진출석해 조사받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이후 노 전 대통령쪽과 의견을 조율하는 데 상당 시간을 소요했고, 세종증권 매각비리 사건이 터져 건평씨가 구속되면서 수사는 사실상 중단됐다. 악연의 끝은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구속한 ‘박연차 게이트’로 마무리됐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검찰에 소환돼 권양숙 여사와 아들 건호씨, 딸 정연씨가 박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는지 등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유지혜 김민희기자 wisepen@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경호수칙 준수 논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 사저 인근에 있는 봉하산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해 서거하면서 경호관들이 경호 수칙을 준수했는지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순간에 경호관 한 명이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순간을 함께한 유일한 사람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을 근접 경호했던 경호관이 당국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투신 직전 경호관에게 “담배가 있느냐.”고 물어본 것으로 전해진다. 경호관이 “가져올까요?”라고 묻자 “됐다. 가지러 갈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은 바위 아래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며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말했다. 청와대에서 봉하마을에 파견된 경호관은 모두 10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호팀은 조를 나눠 24시간 노 전 대통령을 경호해 왔다. 이들은 봉하마을에 마련된 숙소에서 의식주를 모두 해결하며 노 전 대통령의 사저 안팎을 호위해 왔다. 전직 대통령이 청와대 경호처의 경호를 받는 기간은 퇴임 후 7년까지다. 경호관들은 노 전 대통령이 사저에서 나오거나 산책을 할 경우 경호 대상자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실시하는 근접경호를 한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이날 새벽 산에 오를 당시에는 단 한 명의 경호관만이 근접 경호를 해 노 전 대통령의 투신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경호처는 “현재 경호관을 상대로 투신 상황을 조사하고 있다.”면서 “경호팀의 경호가 적절했는지, 경호관이 경호수칙을 제대로 지켰는지에 대해 현재로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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