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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미 여성운동 ‘대모’ 벨 훅스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미 여성운동 ‘대모’ 벨 훅스

    미국을 대표하는 페미니즘 사상가이자 활동가 벨 훅스가 69세를 일기로 15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AP 통신과 일간 워싱턴 포스트(WP),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유족 측은 이날 성명을 통해 켄터키주 베리아시 자택에 머물던 훅스가 가족과 친지 품에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사인이 공식 확인되지 않았으나 자매인 그웬다 모틀리는 WP에 훅스가 신부전 말기였다고 밝혔다. 측근인 린다 스트롱-리크 박사도 고인이 장기간 투병 중이었다고 설명했다.E 1952년에 태어난 그의 본명은 글로리아 진 왓킨스로 벨 훅스는 외증조 할머니 이름을 딴 필명이다. 훅스는 언제나 필명을 소문자로 기재했다. 독자가 자신이 누구인지보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집중했으면 하는 뜻에서였다. 시인이자 사회평론가이면서 학자로서 평생 마흔 권이 넘는 책을 낸 훅스는 미국 흑인 페미니즘 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페미니즘을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적 착취·억압을 끝내기 위한 운동’으로 규정한 혹스의 정의는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문장이라고 AP는 전했다. 그러나 사실 훅스가 성차별을 종식하는 과격한 정치운동으로만 페미니즘을 좁게 해석한 것은 아니다. 인종주의, 자본주의, 성역할, 정치와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목소리를 내온 혹스는 페미니즘이 인종·계급·젠더를 초월해 모두의 삶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훅스는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경제적 불평등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논리를 제시하며 페미니즘의 영역을 사회 여러 분야로 넓혔다. 1981년 첫 저서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를 통해 페미니즘에서 흑인 여성이 간과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1985년 출간한 ‘페미니즘: 주변에서 중심으로’에서는 초기 페미니즘 운동이 부르주아 계급 출신 백인 여성만을 주축으로 했다고 비판하며, 소외된 이들을 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2년 출간한 ‘행복한 페미니즘’이 2017년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으로 번역된 것을 포함해 10여권의 저서가 국내에도 번역돼 있다. 훅스는 1973년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했으며, 1976년에는 위스콘신 대학에서 영문학 석사, 1983년 샌타크루즈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예일 대학과 오벌린 대학, 뉴욕시립대 영문학 교수를 역임했다. 훅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여성계, 학계와 출판계 등에서 애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베스트셀러 ‘나쁜 페미니스트’의 작가 록산 게이는 트위터를 통해 “마음이 아픈 소식이다. 훅스의 명복을 빈다. 그의 빈 자리가 얼마나 클지 가늠도 안 된다”고 애도했다. 영국 소설가 볼루 바발롤라도 트위터를 통해 “벨 훅스는 직접적으로 흑인 여성을 다룬 글을 써줬다”면서 “혹스는 우리를 향한 사랑을 저작을 통해 제대로 보여줬다”고 밝혔다.
  • ‘일제 피해자 인권운동‘ 이금주 유족회장 별세

    ‘일제 피해자 인권운동‘ 이금주 유족회장 별세

    일제의 강제동원 사과를 요구하며 평생을 헌신한 이금주 태평양전쟁 희생자 광주유족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101세. 13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따르면 이 회장은 병마로 입원했던 전남 순천의 모 요양병원에서 지난 12일 오후 11시55분 숨졌다. 이 회장은 결혼한 지 2년 만인 1942년 11월 남편이 해군 군속으로 남태평양 전선으로 끌려갔다. 강제동원 후에도 편지를 몇차례 주고 받았지만 어느날 생후 8개월 된 아들을 남겨둔 채 소식이 끊어졌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45년 4월쯤 전사통지서를 받았다. 이 때부터 이 회장은 남편의 원한을 풀기 위해 일본의 전쟁범죄를 규탄하고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앞장섰다. 그는 1988년 태평양전쟁 희생자 광주유족회를 결성한 뒤 초대 회장을 맡아 30여년간 일제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에 앞장섰다. 1990년대부턴 피해자들을 모아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본격적인 소송에 나섰다. 1992년엔 피해자 1273명이 참여한 광주 천인 소송을 시작으로 귀국선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위안부·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등이 참여한 관부 재판 소송 등 7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일본 사법부에 제기했지만 모두 패소했다. 그는 우리 정부를 상대로 한 ‘한일회담 문서 공개 소송’에도 직접 원고로 나서는 등 ‘강제동원 특별법’ 제정에도 헌신했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2004년 ‘강제동원 특별법’이 제정된 데 이어 한일회담 문서가 공개됐다.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은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했지만,양금덕 할머니 등 일본 소송 원고들이 2012년 10월 광주지법에 소송을 제기해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고인은 일제 피해자들의 권익을 위해 헌신해 온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다. 이 회장은 지병 등으로 인해 활동을 할수 없게 되자 지난 2012년 5월 손녀가 있는 전남 순천으로 거처를 옮긴 뒤 지역 요양병원에서 투병했다. 빈소는 광주 천지장례식장이며,15일 발인을 마치고 순천시립공원묘지에 안장된다.
  • [나우뉴스] 죽은 아내 못잊어 냉동인간 만든 남편의 4년 후 선택은

    [나우뉴스] 죽은 아내 못잊어 냉동인간 만든 남편의 4년 후 선택은

    사망한 아내를 냉동 보존한 남편이 새 인연 앞에서 망설이는 사연이 공개됐다. 사연의 주인공은 중국 산둥성 출신의 남성 구이쥔민 씨다. 구이 씨는 지난 2017년 중국에서는 최초의 냉동인간이 된 여성 잔원리엔(당시 47세)씨의 남편으로 유명세를 얻은 인물이다. 그의 아내는 지난 2015년 폐암 진단 후 약 2년 간의 투병 생활 끝에 2017년 5월 –196℃, 2000L 액체질소 탱크에 잠들었다. 계획대로라면 구이 씨의 아내는 냉동인간이 된 지 50년이 지난 오는 2067년 잠에서 깨어난다. 당시 중국에서는 시행된 적 없었던 냉동인간의 첫 사례가 된 잔 씨의 호흡기를 직접 제거한 이도 남편 구이 씨였다. 그렇게 잔 씨는 남편의 동의 하에 현재 산둥성 인펑 생명과학연구소 액체질소관 안에 냉동돼 잠들어 있는 상태다. 당시 아내를 냉동시킨 구이 씨의 사연은 현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총 300여명의 의료진의 자문과 미국에서 초빙한 인체 냉동분야 전문가 아론 드레이크 박사도 잔 씨 냉동인간 수술에 참여했다. 당시 언론들은 잔 씨의 냉동인간 수술에 대해 ‘중국이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독자적인 인체 냉동기관을 가진 국가가 됐다’면서 대대적인 홍보 기사를 이어갔다. 덕분에 남편 구이 씨는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때문에 이후 수 년이 지난 최근 그가 새로운 연인을 만나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세간의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반면 구이 씨는 자신에 대한 대중들의 비판에 대해 “만약 내 아내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오히려 축하해주고 새 인연을 만들어갈 것을 독려했을 것”이라면서 “나 역시 내가 만약 아내처럼 냉동인간이 되어 누워있는 처지였다면, 아내가 새로운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외로움에 고통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이 씨와 만남을 시작한 연인은 10살 연하의 여성이다. 그는 “새 여자친구의 개인 정보와 신상에 대해 누리꾼들이 조사해 공유하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면서 “하지만 아내가 잠들어 있는 연구실에도 동행해 아내 허락을 이미 받았다. 오히려 내 새 여자친구는 내 아내와 나의 애틋한 사연을 알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털어놨다. 구이 씨는 미래에 깨어날 냉동 상태의 아내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그 일은 그때가서 생각해 결정하면 될 문제다”면서 “누군가는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비난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냉동시킨 뒤 그녀가 깨어날 날만은 손꼽아 기다리는 고통을 경험 하지 않은 사람은 나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월드피플+] 약혼 11년 만에 면사포 쓴 英 신부, 사흘 만에 하늘로

    [월드피플+] 약혼 11년 만에 면사포 쓴 英 신부, 사흘 만에 하늘로

    약혼 11년 만에 꿈에 그리던 면사포를 쓴 신부가 결혼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 신랑은 “사랑 고백을 미루지 말라”며 신부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지난달 17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슈롭셔 텔포드에서 신부 젠 쿠퍼(43)와 신랑 벤 쿠퍼(34)의 결혼식이 열렸다. 두 사람이 약혼한 지 11년 만이었다. 부부는 2010년 약혼했지만 직장 문제와 잇단 출산으로 결혼식을 미룬 채 살았다. 특히 아내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두 아이에, 벤과의 동거 중 낳은 세 아이까지 자녀 다섯을 키우느라 바빴다. 그 사이 아내는 몹쓸 병을 얻었다. 9일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아내는 동거 중 유방암 진단을 받고 투병을 시작했다.힘든 과정이었지만, 아내는 다섯 자녀를 위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혼인신고만 하지 않았다 뿐이지 사실상 남편이나 마찬가지였던 쿠퍼도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그 덕에 아내는 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인생의 굴곡을 함께 이겨낸 부부의 사랑은 더욱 견고해졌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지난해, 부부는 약혼 10주년이자 암 완치 5주년을 맞았다. 가족, 친구와 축하 파티를 열어 기쁨을 나눴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축하 파티 몇 달 만에 아내의 암이 재발했다. 아내는 겨드랑이 아래 혹이 만져져 병원을 찾았다가 암이 재발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좀 살만하다 싶었는데 더 큰 위기가 닥친 것이다.아내의 암 재발로 가정은 쑥대밭이 됐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직감한 가족은 작별을 준비했다. 특히 남편은 미루고 또 미뤄온 결혼식을 서둘렀다. 그러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내가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의료진 연락에, 남편은 예정보다 열흘 빠른 지난달 17일 부랴부랴 병원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약혼 11년 만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내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감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급조한 결혼식이었지만, 꿈에 그리던 면사포를 쓴 아내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남편은 그런 아내의 야윈 손을 말없이 부여잡았다.그리고 사흘 후, 아내는 남편 손을 꼭 잡은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남편은 “임종을 지키며 아내에게 나와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속삭였다. 그때 텔레비전에서는 20년 전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아내에게 인생 마지막 영화가 20년 전 할리우드 삼류 코미디 영화라니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내 심장은 멈췄다”고 전했다. 남편은 “이제 아내는 떠나고 없다. 예약해둔 결혼식장은 12월에 생일이 몰려있는 아이 셋의 합동 생일파티장으로 써야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마침내 내 인생의 사랑과 결혼했는데, 이 결혼이 몇 해가 아니라 며칠로 끝나 마음이 아프다. 지체 말고 지금 당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고백하라”고 당부했다.
  • “화이자 백신 맞은 16살 아들 완치 백혈병 재발, 난 멍청한 엄마”

    “화이자 백신 맞은 16살 아들 완치 백혈병 재발, 난 멍청한 엄마”

    “아이, 화이자 접종 이틀 뒤 흉통 등 호소”백신 맞은 지 20일 만에 백혈병 재발 진단“일단 맞고 보란 말 말라… 너무 무책임”“1천명이 아파야 부작용 인과성 인정하나”“아이 다시 항암치료로 고통, 백신 강압 말라”백혈병이 완치됐던 16세 남학생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인 화이자를 접종한 뒤 백혈병이 재발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청원인은 아이가 접종을 완료한 지 20일 만에 백혈병 재발이라는 진단을 받는 과정을 소상히 공개한 뒤 “의사가 꼭 맞아야 한다고 해서 맞았는데 일단 백신 맞고 보라는 말은 너무 무책임하다”면서 “백신을 맞아야만 뭐든 할 수 있는 시스템은 ‘선택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뒤에 숨은 강압’”이라며 인과성을 인정해줄 것을 호소했다.  “백혈병 완치로 처음 학교생활하고친구도 사귀며 건강히 잘 지냈는데…” 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멍청한 엄마의 선택’이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에 따르면 그의 아들 A군은 수년간 항암 치료를 받으며 백혈병 투병을 하다 골수 이식을 받고 백혈병 완치 판정을 받았다. 청원인은 “매일 밤 꿈에 그리던 학교에도 가고, 강도 센 항암 치료로 항상 자라진 않고 빠지기만 하던 머리카락을 길러보고, 처음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하고, 친구들도 사귀어보면서 운동도 열심히 하며 건강히 잘 지냈다”고 전했다. 그러다 “접종을 꼭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믿고 지난달 10일 화이자 2차 접종을 마쳤다”고 했다. 그런데 이틀 뒤인 12일 A군이 갑작스레 흉통, 두통, 근육통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청원인은 “인근 병원에서 피검사를 해 보니 ‘혈소판 수치가 떨어졌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채혈 중 나올 수 있는 수치’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그러나 아이는 계속해서 통증을 호소했다”고 말했다.아이, 2차 접종 후 보름 넘게 통증 호소의사 “백신이 림프구 자극했을수도” A군은 보름이 넘게 지속되는 통증에 고통을 호소하다 지난달 27일 피검사를 다시 받았다. 청원인은 “백혈구 수치가 8만개라는 진단을 받았다”면서 “기존 치료하던 대학병원 응급실로 급히 입원한 결과 30일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고 말했다. 백혈구 정상범위는 마이크로리터당 4000개에서 1만개 정도로 알려져 있다. 코로나 백신을 맞은 지 20일 만에 백혈병 재발 진단을 받은 것이다. 청원인은 “대학병원 교수님은 ‘백신이 아이의 림프구를 자극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감기 바이러스나 다른 바이러스로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백신 부작용에 따른 백혈병일 수도 있음과 동시에 또, 아니라고 확정 지을 순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인과성 인정 받으려 다할 수 있지만백혈병과 싸움 시작돼 그럴 여력 없어”“다른 아이에 같은 불상사 생기지 않길” 청원인은 “다시 이런 진단을 받으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면서 “저희 가족은 이런 진단으로 또 다시 뿔뿔히 흩어지고 아들은 다시 시작된 항암에 고통받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청원인은 “모두에게 부작용이 오는 건 아니지만, 수만명 중 한 명에게라도 부작용이 나온다면 그것 또한 부작용이지 않나. 10명, 100명, 1000명이 아파야만 부작용이라고 인정해준다는 것인가”라면서 “일단 백신 맞고 보라는 말은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 백신을 맞아야 학교를 갈 수 있게 하고 뭐든 할 수 있는 시스템은 ‘선택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뒤에 숨은 강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라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이런 상황에서도 작은 아이 백신 2차 접종을 시켜야 한다”면서 “큰 아이에게 골수 이식을 해 주려면 큰 병원에 가서 검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청원인은 “아이가 안 아플 수 있다면 백신 부작용이라는 걸 인정받기 위해 무엇이든 다 하겠지만, 또 이미 다시 시작돼 버린 백혈병과의 싸움에 그럴 여력이 없다”면서 “단지 (인과성을) 인정하고 검토해 달라고만 하고 싶다. 다른 아이들에게 우리 아이와 같은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올라온 청원글은 하루도 안돼 3500명 이상이 동의했다.정은경 “청소년 방역패스 불편 개선”“청소년 방역패스, 접종률 높이는 목적”“접종자 중심으로 안전하게 이용해야” 정부는 이날 ‘청소년 방역패스’ 논란과 관련해 내년 2월 시행 전까지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내년 2월부터 청소년에도 방역패스를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데 대해 학생, 학부모들의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세부 내용을 보완하는 쪽으로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이날 ‘코로나19 예방접종 특집 브리핑’에서 청소년 방역패스 시행이 너무 이르다는 지적에 “학생과 학부모, 관련 단체의 의견을 수렴해 보완할 부분과 개선점을 반영하고, 이러한 불안과 불편을 줄일 수 있는 대책을 관계부처와 협의하겠다”고 답했다. 정 청장은 “청소년에 대해서도 방역패스를 적용하기로 한 것은 접종률을 높이려는 목적도 분명히 있다”라면서도 “동시에 청소년들이 주로 생활하는 공간을 접종자 중심으로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목적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정부가 지난 3일 특별방역대책을 발표하면서 내년 2월부터 청소년도 방역패스를 적용하고 학원 등도 방역패스 적용 대상 시설로 포함하겠다고 하자 학생·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접종 강요’라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실제로 이날 전국학부모단체연합 등 60여개 단체는 충북 오송 질병관리청사 앞에서 청소년 방역 패스 철회 등을 요구하는 항의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백신을 정부가 어린 소아, 청소년들에게 강제 접종하려 한다면서 방역패스 정책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죽은 아내 못잊어 냉동인간 만든 남편의 4년 후 선택은

    죽은 아내 못잊어 냉동인간 만든 남편의 4년 후 선택은

    사망한 아내를 냉동 보존한 남편이 새 인연 앞에서 망설이는 사연이 공개됐다. 사연의 주인공은 중국 산둥성 출신의 남성 구이쥔민 씨다. 구이 씨는 지난 2017년 중국에서는 최초의 냉동인간이 된 여성 잔원리엔(당시 47세)씨의 남편으로 유명세를 얻은 인물이다. 그의 아내는 지난 2015년 폐암 진단 후 약 2년 간의 투병 생활 끝에 2017년 5월 –196℃, 2000L 액체질소 탱크에 잠들었다. 계획대로라면 구이 씨의 아내는 냉동인간이 된 지 50년이 지난 오는 2067년 잠에서 깨어난다. 당시 중국에서는 시행된 적 없었던 냉동인간의 첫 사례가 된 잔 씨의 호흡기를 직접 제거한 이도 남편 구이 씨였다. 그렇게 잔 씨는 남편의 동의 하에 현재 산둥성 인펑 생명과학연구소 액체질소관 안에 냉동돼 잠들어 있는 상태다.당시 아내를 냉동시킨 구이 씨의 사연은 현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총 300여명의 의료진의 자문과 미국에서 초빙한 인체 냉동분야 전문가 아론 드레이크 박사도 잔 씨 냉동인간 수술에 참여했다. 당시 언론들은 잔 씨의 냉동인간 수술에 대해 ‘중국이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독자적인 인체 냉동기관을 가진 국가가 됐다’면서 대대적인 홍보 기사를 이어갔다. 덕분에 남편 구이 씨는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때문에 이후 수 년이 지난 최근 그가 새로운 연인을 만나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세간의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반면 구이 씨는 자신에 대한 대중들의 비판에 대해 “만약 내 아내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오히려 축하해주고 새 인연을 만들어갈 것을 독려했을 것”이라면서 “나 역시 내가 만약 아내처럼 냉동인간이 되어 누워있는 처지였다면, 아내가 새로운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외로움에 고통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구이 씨와 만남을 시작한 연인은 10살 연하의 여성이다. 그는 “새 여자친구의 개인 정보와 신상에 대해 누리꾼들이 조사해 공유하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면서 “하지만 아내가 잠들어 있는 연구실에도 동행해 아내 허락을 이미 받았다. 오히려 내 새 여자친구는 내 아내와 나의 애틋한 사연을 알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털어놨다.  구이 씨는 미래에 깨어날 냉동 상태의 아내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그 일은 그때가서 생각해 결정하면 될 문제다”면서 “누군가는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비난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냉동시킨 뒤 그녀가 깨어날 날만은 손꼽아 기다리는 고통을 경험 하지 않은 사람은 나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 “급성 백혈병 초등생 딸 도와주세요”…A형 혈소판 헌혈 호소

    “급성 백혈병 초등생 딸 도와주세요”…A형 혈소판 헌혈 호소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어린이의 부모가 투병 과정에서 필요한 ‘RH+ A형 혈소판’ 헌혈을 호소하고 나섰다. 5일 경북 칠곡군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J양 부모에 따르면 J양은 지난달 24일 학교에서 호흡 곤란, 어지럼증 등을 느껴 쓰러졌다. 학교 보건교사가 학부모에게 “따님이 학교에서 갑자기 쓰러졌다”고 연락했다. 학교에서 쓰러진 뒤 지난달 25일 구미의 한 병원을 찾은 J양은 피 검사 등을 받은 결과 혈소판 등의 상태가 좋지 않았고, 대구의 칠곡경북대병원으로 이송된 뒤 지난달 27일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J양은 지난 1일부터 항암치료를 받고 있으나 A형 혈소판이 크게 부족한 상태다. 항암치료를 시작한 후 구토하고 많이 힘들어한다고 J양의 가족은 전했다. J양의 부모는 딸의 병세를 늦추고 원활한 치료를 위해서 RH+ A형 혈소판의 꾸준한 공급이 필수적이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J양 어머니는 “치료를 위해 응급 혈소판을 구하고 있다”며 “코로나19 때문에 사람들이 헌혈을 기피한다고 들었지만 부디 헌혈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 ‘로봇 찌빠’ ‘도깨비 감투’… 세대 뛰어넘은 명랑만화 대부

    ‘로봇 찌빠’ ‘도깨비 감투’… 세대 뛰어넘은 명랑만화 대부

    ‘명랑만화 대가’이자 ‘로봇 찌빠’의 아빠인 신문수 화백이 별세했다. 82세. 1일 만화계 등에 따르면 신장암으로 투병하던 신 화백은 전날 새벽 병세가 악화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오후에 끝내 눈을 감았다. 그는 병마와 다투면서도 수개월 전까지 경기 분당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려 온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명랑만화를 통해 당대 어린이들에게 건강한 웃음과 희망을 선물했던 신 화백은 1939년 충남 천안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인 그는 중학교 은사인 유촌 김화경에게서 동양화를 배우기도 했다. 군 제대 뒤 신문과 잡지에 작품을 투고하던 그는 명랑만화의 원조 격인 고 길창덕의 추천으로 만화잡지 ‘로맨스’에 콩트 만화를 싣게 됐고 이를 계기로 1964년 병영을 소재로 한 명랑만화 ‘카이젤 상사’를 연재하며 만화가로 정식 데뷔했다. 대표작은 1974년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에서 연재를 시작한 ‘도깨비 감투’와 1979년 ‘소년중앙’에서 첫선을 보인 ‘로봇 찌빠’다. 설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도깨비 감투’는 귀신 머리카락으로 만든 도깨비 감투를 다락에서 발견한 혁이가 감투를 쓰고 투명인간이 돼 펼치는 이야기다. ‘로봇 찌빠’는 어설픈 인공지능 로봇과 팔팔이가 펼치는 우정과 모험담을 그렸다. ‘도깨비 감투’와 ‘로봇 찌빠’는 2000년 대 이후에도 복간되며 세대를 뛰어넘어 독자들과 만났다. 생전 인터뷰에서 한국 만화의 한 축이던 명랑만화를 위한 기념관이 생기기를 고대했으나 아쉽게 바람을 이루지는 못했다. 지난달 ‘제21회 만화의 날’ 기념식에서 명랑만화 전성기를 이끈 ‘꺼벙이’의 길창덕, ‘요철 발명왕’과 ‘맹꽁이 서당’의 윤승운, ‘심술통’의 이정문, ‘고인돌’의 박수동 화백과 공로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4녀가 있다. 빈소는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일 오전 6시.
  • [월드피플+] “책임질게” 중병 걸린 전처와 재혼…투잡 뛰며 간호하는 中 남성

    [월드피플+] “책임질게” 중병 걸린 전처와 재혼…투잡 뛰며 간호하는 中 남성

    한국 못지않게 이혼이 흔해진 중국에서 중병에 걸린 전처와 재혼한 남성이 화제다. 30일 중국 매체 펑파이는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전처와 재혼, 밤낮으로 일하며 간호하는 남편의 사연을 전했다. 중국 허난성 상추시에 사는 첸젠펑(38)은 올해 전처인 시에훙샤(35)와 재혼했다. 2019년 양가의 갈등으로 이혼한 지 2년 만이다. 그가 재결합을 결심한 건 뜻밖에도 전처의 병간호를 위해서였다.그의 아내는 말기 신부전증으로 투병 중이다. 콩팥 기능 저하로 노폐물이 걸러지지 않고 몸 안에 쌓이는 요독증이 생겼다. 식욕부진과 구토, 폐부종에 시력장애까지 얻어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처지다. 혈액 속 노폐물을 기계적으로 걸러내는 투석도 한계에 이르러, 이제는 콩팥 이식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남편 첸씨는 “원래 건강했던 사람이다. 이혼할 때만 해도 멀쩡했는데 아프다고 해서 많이 놀랐다”고 밝혔다. 곧장 병원으로 달려간 그는 전처에게 재혼을 청했다. 첸씨는 “내게 아픈 전처를 돌볼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처는 단칼에 거절했다.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병세는 갈수록 나빠지고, 병원비는 불어나는 상황에서 이혼한 전 남편 도움을 받을 순 없다는 게 전처의 생각이었다.첸씨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거의 매일 같이 병원을 찾아가 전처를 간호하며 설득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올해 초 끊어졌던 부부의 연을 다시 이었다. 여의치 않은 상황이지만 아내를 보살피려는 첸씨의 의지는 누구보다 강하다. 그는 “집을 팔아서라도 아내 병을 고쳐줄 생각”이라면서 “아내만 살릴 수 있다면 내 콩팥이라도 떼어줄 수 있다. 내 수명이 줄어 드는 건 상관없다”고 말했다.첸씨는 아내 치료비 마련을 위해 밤낮으로 일하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병원비를 대기에 회사 월급 3000위안(약 55만원)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 투석 치료에 월 평균 6000위안(약 110만원)이 든다. 의사가 콩팥 이식을 권했는데 수술비 등으로 80만 위안(약 1억4000만원)이 필요하다”면서 “병원비를 벌고자 밤에는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뛰고 있다”고 전했다.첸씨 사연이 전해진 후 현지에선 활발한 모금 운동이 전개됐다. 각계각층 기부로 2만 위안(약 370만원)의 성금이 모였다. 그는 “남자로서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책임을 져야겠단 생각뿐이었다”며 주변 관심에 감사를 드러냈다. 이어 “부부라면 생로병사를 불문하고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상유이말’(相濡以沫, 마른 샘의 물고기가 서로 거품을 내어 적셔준다)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첸씨는 “곤경에 처했을 때 미력한 힘으로나마 서로 돕는 게 부부의 도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려워하지 말아라. 당신 눈이 먼 다면 내가 곁에서 당신 눈이 되어주겠다”는 말을 아내에게 전했다.
  • ‘로봇 찌빠’ 신문수 화백 하늘로

    ‘로봇 찌빠’ 신문수 화백 하늘로

    1970~80년대 ‘명랑만화 대가’이자 ‘로봇 찌빠’의 아빠인 신문수 화백이 별세했다. 82세. 1일 만화계 등에 따르면 신장암으로 투병하던 신 화백은 전날 새벽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눈을 감았다. 고인은 병마와 다투면서도 수개월 전까지 경기도 분당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을 만화 주인공으로 내세워 당대 어린이들에게 건강한 웃음과 희망을 선물했던 고인은 1939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인 고인은 중학교 은사인 유촌 김화경에게서 동양화를 배우기도 했다. 군 제대 뒤 신문과 잡지에 작품을 투고하던 고인은 명랑만화의 원조격인 고 길창덕의 추천으로 만화 잡지 ‘로맨스’에 꽁트 만화를 실었고 이를 계기로 1964년 병영을 소재로 한 명랑만화 ‘카이젤 상사’를 연재하며 만화가로 정식 데뷔했다.대표작은 1974년 어린이 만화잡지 ‘어깨동무’에서 연재를 시작한 ‘도깨비 감투’와 1979년 ‘소년중앙’에서 첫 선을 보인 ‘로봇 찌빠’다. 설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도깨비 감투’는 귀신 머리카락으로 만든 도깨비 감투를 다락에서 발견한 혁이가 감투를 쓰고 투명 인간이 되어 펼치는 이야기다. ‘로봇 찌빠’는 어설픈 인공지능 로봇 찌빠와 팔팔이가 펼치는 우정과 모험담을 그렸다. ‘도깨비 감투’와 ‘로봇 찌빠’는 2000년 대 이후 복간을 통해 세대를 뛰어 넘어 독자들과 만나기도 했다.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었던 ‘로봇 찌빠’는 2009년 후배 작가에 의해 웹툰으로 리메이크 되기도 했다. 2011년에는 26부작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만들어졌다. 만화계 대표 낚시모임인 ‘심수회(마음이 물과 같다는 뜻)’ 멤버였던 고인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 만화가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2008년 고바우 만화상을, 2014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생전 인터뷰에서 한국 만화의 한 축이었던 명랑만화를 위한 기념관이 생기기를 고대했으나 아쉽게 바람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난달 ‘제21회 만화의 날’ 기념식에서 1970~80년대 명랑만화 황금기를 이끈 고 길창덕, 윤승운, 이정문, 박수동 화백과 공로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4녀가 있다. 빈소는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일 오전 6시.
  • 독극물 사형 실패로 목숨 건진 美 사형수, 결국 암으로 사망

    독극물 사형 실패로 목숨 건진 美 사형수, 결국 암으로 사망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사형집행 실패로 목숨을 건진 사형수가 결국 갑상샘암으로 사망했다. 지난 29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앨라배마주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형수 도일 리 햄(64)의 변호사는 햄이 전날 갑상샘암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햄은 지난 1987년 앨라배마주 콜맨의 한 모텔에서 종업원을 총격 살해한 후 410달러(약 48만 원)를 빼앗은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2014년 갑상샘암 판정을 받은 후, 암 투병 때문에 사형집행이 불가능하다며 연방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앨라배마주 법무부는 암으로 인한 사형집행 중단은 감형이나 다름없다며 이를 반박했고, 결국 연방대법원은 햄의 처형을 허가했다. 이에 따라 앨라배마주 교정국은 2018년 2월 햄의 사형 집행을 강행했다. 앨라배마주는 사형 집행시 독극물 주입 방식을 사용하는데, 암 투병으로 햄의 상반신에서는 주사할만한 혈관을 찾을 수 없자 당시 교정국은 하반신 무릎 아래 정맥에 주사하는 방법으로 사형을 집행키로 했다. 햄은 사형 집행 당일에도 형 집행정지를 신청했으나 기각됐고 결국 2018년 2월 22일 사형집행이 시작됐다. 그러나 사형집행인은 햄의 몸에 6차례 주삿바늘을 꽂았으나, 독극물을 주사할만한 정맥을 찾지 못했다. 결국 2시간 30분 만에 교정국은 사형 집행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했다. 사형집행 실패 한 달 후 교정국은 햄에 대해 더 이상의 사형집행을 시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햄은 처형 실패 후 갑상선암이 악화해 사형수로 3년을 더 산 후 지난 28일 숨졌다.미국 교도소에서는 독극물 주사로 인한 사형 집행 실패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지난 10월 28일에는 오클라호마주에서 사형수 존 그랜트(60)가 독극물 주사를 투여받은 후 여러 차례 경련과 구토를 일으키다 사망했다. 당시 집행 과정을 지켜본 KOKH 방송 댄 스나이더 기자는 “첫번째 약물을 주입하자마자 그랜트는 경련과 구토를 시작했다”면서 “의료진이 사형 집행장에 들어가 토사물을 닦아낼 정도였다”고 전했다. 
  • 루이비통 천재 디자이너 아블로 사망

    루이비통 천재 디자이너 아블로 사망

    낙서같이 프린팅된 후드티와 스니커즈, 벙거지 모자 등 길거리에서나 볼 법한 스트리트패션을 프랑스 명품 패션쇼 무대에 올린 천재, 버질 아블로 루이비통 남성복 수석 디자이너가 28일(현지시간)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들은 이날 아블로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가 2019년 희귀암인 심장 혈관육종 진단을 받고 투병해 왔다고 알렸다. 유족들은 “암은 아블로의 근면함과 무한한 호기심, 낙관주의를 결코 흔들지 못했다”며 “예술과 디자인에서 더 큰 평등을 위한 길을 닦고 다른 사람을 위해 문을 여는 임무에 헌신했다”고 애도했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그룹(LVMH) 회장은 공식 트위터를 통해 “아블로는 천재 디자이너였을 뿐만 아니라 선지자였고 아름다운 영혼과 훌륭한 지혜를 지닌 사람이었다”고 추모했다. 1980년 미국 일리노이주 록포드의 가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아블로는 위스콘신 매디슨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일리노이공대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직접 그린 티셔츠를 팔던 그는 래퍼 카니예 웨스트의 눈에 띄어 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음반과 무대 등을 디자인했다. 2013년 스트리트패션 브랜드인 오프화이트를 설립한 그는 뛰어난 창의성과 고정관념을 깨는 과감한 시도를 인정받아 2018년 3월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루이비통 남성복의 수석디자이너가 됐다.
  • 스트릿 패션, 명품 반열 올린 버질 아블로 암 투병 끝에 사망

    스트릿 패션, 명품 반열 올린 버질 아블로 암 투병 끝에 사망

    래퍼 카니예 웨스트 눈에 띄어 발탁LV 첫 흑인 남성복 수석 디자이너미래 세대, 이민자, 흑인 인권에 관심낙서같이 프린팅된 후드티와 스니커즈, 벙거지 모자 등 길거리에서나 볼 법한 스트리트패션을 프랑스 명품 패션쇼 무대에 올린 천재, 버질 아블로 루이비통 남성복 수석 디자이너가 28일(현지시간)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들은 이날 아블로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가 2019년 희귀암인 심장 혈관육종 진단을 받고 투병해 왔다고 알렸다. 아블로는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힘든 치료를 견디면서도 패션과 예술, 다양한 문화를 아우르며 활약했다. 유족들은 “암은 아블로의 근면함과 무한한 호기심, 낙관주의를 결코 흔들지 못했다”며 “예술과 디자인에서 더 큰 평등을 위한 길을 닦고 다른 사람을 위해 문을 여는 임무에 헌신했다”고 애도했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그룹(LVMH) 회장은 공식 트위터를 통해 “아블로는 천재 디자이너였을 뿐만 아니라 선지자였고 아름다운 영혼과 훌륭한 지혜를 지닌 사람이었다”고 추모했다.1980년 미국 일리노이주 록포드의 가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아블로는 위스콘신 매디슨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일리노이공대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직접 그린 티셔츠를 팔던 그는 래퍼 카니예 웨스트의 눈에 띄어 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음반과 무대 등을 디자인했다. 2013년 스트리트패션 브랜드인 오프화이트를 설립한 그는 뛰어난 창의성과 고정관념을 깨는 과감한 시도를 인정받아 2018년 3월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루이비통 남성복의 수석디자이너가 됐다. 나이키, 이케아, 페리에, 메르세데스벤츠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협업을 통해 패션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8년에는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아블로는 평소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은 열일곱 살의 나를 위한 것”이라고 할 정도로 아이들을 위한 활동과 자신의 정체성이기도 한 이민자, 흑인 인권 향상을 위해 힘을 쏟았다. 가나 이민자 출신인 영국 보그의 편집장 에드워드 에닌풀은 “아블로는 커리어보다 더 큰 대의를 위해 일했는데, 미래 세대를 위해 예술과 패션의 문을 열어 그들이 창조적인 세상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며 “그는 우리가 어린 시절 가졌던 상상력을 되살릴 수 있다면 인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추모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섀넌과 두 자녀 로(8), 그레이(5)가 있다.
  • “마음에 평화” 안락사 허가받고 활짝 웃은 50대 여성

    “마음에 평화” 안락사 허가받고 활짝 웃은 50대 여성

    지난 8월, 콜롬비아에 사는 50대 여성 마르타 세풀베다는 루게릭병으로 극심한 통증 때문에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했다. 그런데 안락사를 15시간 앞두고 집행이 취소되고 말았다. 1997년부터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는 콜롬비아는 안락사 집행을 하루 앞두고 이를 번복했다. 존엄사 학제간과학위원회는 재심의 결과 세풀베다의 경우 말기 질환 환자여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안락사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콜롬비아 헌법재판소가 말기질환 환자가 아니어도 고통이 극심하다면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음에도 위원회가 이같이 결정하자 현지에서는 “세풀베다를 두 번 죽였다”“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세상을 떠나는 건 개인적인 결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세풀베다는 포기하지 않았고, 지난달 존엄하게 생을 마무리할 권리를 얻어냈다. 콜롬비아 법원은 관계기관에 48시간 이내에 세풀베다와 안락사 일시를 협의하라고 지시하면서 안락사를 허가했다. 말기 환자가 아님에도 안락사를 허가받은 첫 사례가 된 것이다.2018년 세풀베다가 진단받은 루게릭병은 운동신경세포가 파괴되는 질병으로, 서서히 몸이 마비되면서 사망에까지 이르는 퇴행성 질환이다. 세풀베다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겁쟁이일 수도 있지만 더는 고통받고 싶지 않다. 지쳤다. 안락사 허가를 받은 후에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더 잘 웃고 잠도 잘 잔다”라고 활짝 웃었다. 그의 아들도 “어머니가 행복해하신다”고 말했다. 세풀베다는 두 번째 안락사 날짜를 받고 삶을 마감하게 된다. 콜롬비아에서는 1997년 안락사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고, 2015년 안락사가 법제화된 뒤 지금까지 157명이 세풀베다처럼 당국의 허가를 받아 생을 마감했다. 콜롬비아 외에도 캐나다, 벨기에, 네덜란드, 스페인 등에서 안락사가 허용되고 있다.
  • 이봉주 2년 만에 다시 달렸다

    이봉주 2년 만에 다시 달렸다

    “오늘은 이봉주가 다시 태어난 날입니다.” 28일 경기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이봉주 쾌유 기원 마라톤’에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51)가 마지막 주자로 나섰다. 결승선까지 남은 거리는 1.2㎞. 이봉주는 주위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뛰었다. 결승선을 통과한 이봉주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번졌다. 이날 행사는 투병 중인 이봉주의 쾌유와 재기를 응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마지막 주자로 나선 이봉주는 트랙을 세 바퀴 돌고 결승점을 통과했다. 이봉주는 지난해 1월부터 근육긴장 이상증을 앓았다. 수술을 받고 어느 정도 일상생활이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허리를 숙인 채 걷는다. 이봉주가 다시 달리는 모습에 팬들은 눈시울을 적시며 함께 달렸다. 그가 1㎞ 이상을 달린 건 희소병이 발병하고 나서 약 2년 만이다. 이봉주는 “허리와 골반 등에 통증을 느꼈다. 그래도 세 바퀴만은 완주하고 싶었다. 몸이 불편한 많은 분께 희망을 드리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 전두환 장지 사흘째 못 정해…화장 후 연희동 자택으로

    전두환 장지 사흘째 못 정해…화장 후 연희동 자택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례식 사흘째인 25일 아직도 장지가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전씨의 최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은 “일단 화장해 자택에 모셨다가 장지를 정한 뒤 옮길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씨는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사망했다. 그는 지난 8월 악성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 확진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었다. 떠나기 전까지 역사적 과오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고, 약속했던 재산 헌납도 지키지 않았다. 추징금 2205억원 중 미납한 금액은 956억원에 달한다. 전씨는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북녘땅 내려다보이는 전방 고지에 그냥 백골로 남아 있고 싶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내란죄 등의 혐의로 퇴임 후 실형을 선고받은 전씨는 애초 국립묘지 안장이 불가능하다. 국가보훈처도 “국립묘지 안장 배제 대상”이라고 못박았다. 앞서 정부는 전씨 장례에 관해 정부 지원이나 조문, 조화는 일절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에 따라 빈소 설치와 운구, 영결식, 장지 등 모든 절차를 가족이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으로는 이승만·윤보선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로 국가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치르는 셈이다. 현행 국가장법에 따르면 국가장은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결정을 거쳐야 하며, 전·현직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인에게만 해당한다. 국가장 대상자와 관련해서는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한편 이날 오전 입관식이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미국에서 귀국한 삼남 재남씨가 코로나19 유전자증폭(PCR)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늦어져 오후 5시로 변경됐다. 발인은 27일이다.
  • 전두환 형 구속했던 홍준표 “조문 가려고 했는데…”(종합)

    전두환 형 구속했던 홍준표 “조문 가려고 했는데…”(종합)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은 24일 전두환 전 대통령 빈소에 조문을 하기로 했던 계획을 접었다면서 “조문을 가려고 했는데 절대적으로 반대 의견이 많다. 그 의견을 받아들이겠다. 그러나 고인의 명복은 빌어야겠다”라고 말했다. 홍준표 의원은 전날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 “제 두 번째 고향이 (경남) 합천인데 전 전 대통령은 제 옆 동네 분이었다”라며 “정치적 이유를 떠나서 조문을 가는 것이 도리라고 보는데 어떻느냐”라고 물었다. 온라인 청년 소통 플랫폼 ‘청년의꿈’ 문답 코너에서 ‘생전의 전두환 씨는 어떤 사람이었다고 평가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이같이 답한 것이다. 홍 의원의 답변에 “청년 층에서 전두환이라는 사람 이미지는 굉장히 나쁘다고 생각한다. 조문 갈 필요 없다”라는 쪽과 “조문 간다고 전두환을 사랑한 게 되느냐. 가셔도 상관없다”는 쪽으로 답변이 나뉘었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은 “정치인으로서의 선택은 악수라고 생각한다. 조국수홍 프레임에 갇혀서 눈물 흘리시고 또 프레임에 갇힐 여지를 안 주시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광주에 가서 ‘보수당은 싫어도 홍준표는 싫어할 이유가 없다’라고 외치신 게 물거품이 되어버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같은 맥락으로 “조화 정도 보내시면 안 되겠느냐”, “인간적으로 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안 좋다”, “지금 상황을 보니 2030분들이 매우 걱정하고 싫어하는 것 같다” 등의 댓글이 있었다. 반면 “그 분에 대한 역사적 비판은 따로 하더라도 죽음은 다른 논리인 것 같다”, “개인적인 차원의 조문을 적절하다고 본다” 등의 의견도 있었다.전두환 시절 파견검사 제의받아 1986년 청주지검 초임 검사이던 홍 의원은 전경환 당시 새마을 사무총장이 ‘청와대 파견검사를 해주겠다’며 찾아오라고 했을 때 거절한 일이 있었다고 밝혔다. 홍 의원은 “그때 거절했기 때문에 1988년 11월 5공 비리 사건 중 노량진 수산시장 강탈사건을 수사할 수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전씨와의 고향 인연 등을 바탕으로 청와대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거절함으로 그 가족의 비리 사건을 수사할 수 있었다는 의미로 보인다. 홍 의원은 1988년 서울지검 남부지청 특수부 검사로서 노량진 수산시장 강탈사건을 수사, 전 전 대통령의 큰 형 전기환 씨와 청와대·안기부 고위 관계자들을 구속했다. 90세로 사망한 전두환 조문없어 악성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 확진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던 전씨는 23일 오전 8시 45분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90세로 사망했다. 청와대는 “사과가 없어 유감”이라며 조화와 조문은 보내지 않기로 했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전씨를 “내란·학살의 주범”이라며 “조문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전직 대통령이니 가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가 “조문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 전두환 형 구속했던 홍준표 “조문 가는 것이 도리”

    전두환 형 구속했던 홍준표 “조문 가는 것이 도리”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은 23일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 “제 두 번째 고향이 (경남) 합천인데 전 전 대통령은 제 옆 동네 분이었다”라며 “정치적 이유를 떠나서 조문을 가는 것이 도리라고 보는데 어떻느냐”라고 물었다. 홍준표 의원은 이날 온라인 청년 소통 플랫폼 ‘청년의꿈’ 문답 코너에서 ‘생전의 전두환 씨는 어떤 사람이었다고 평가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홍 의원의 답변에 “청년 층에서 전두환이라는 사람 이미지는 굉장히 나쁘다고 생각한다. 조문 갈 필요 없다”라는 쪽과 “조문 간다고 전두환을 사랑한 게 되느냐. 가셔도 상관없다”는 쪽으로 답변이 나뉘었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은 “정치인으로서의 선택은 악수라고 생각한다. 조국수홍 프레임에 갇혀서 눈물 흘리시고 또 프레임에 갇힐 여지를 안 주시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광주에 가서 ‘보수당은 싫어도 홍준표는 싫어할 이유가 없다’라고 외치신 게 물거품이 되어버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같은 맥락으로 “조화 정도 보내시면 안 되겠느냐”, “인간적으로 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안 좋다”, “지금 상황을 보니 2030분들이 매우 걱정하고 싫어하는 것 같다” 등의 댓글이 있었다. 반면 “그 분에 대한 역사적 비판은 따로 하더라도 죽음은 다른 논리인 것 같다”, “개인적인 차원의 조문을 적절하다고 본다” 등의 의견도 있었다.전두환 시절 파견검사 제의받아 1986년 청주지검 초임 검사이던 홍 의원은 전경환 당시 새마을 사무총장이 ‘청와대 파견검사를 해주겠다’며 찾아오라고 했을 때 거절한 일이 있었다고 밝혔다. 홍 의원은 “그때 거절했기 때문에 1988년 11월 5공 비리 사건 중 노량진 수산시장 강탈사건을 수사할 수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전씨와의 고향 인연 등을 바탕으로 청와대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거절함으로 그 가족의 비리 사건을 수사할 수 있었다는 의미로 보인다. 홍 의원은 1988년 서울지검 남부지청 특수부 검사로서 노량진 수산시장 강탈사건을 수사, 전 전 대통령의 큰 형 전기환 씨와 청와대·안기부 고위 관계자들을 구속했다. 90세로 사망한 전두환 조문없어 악성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 확진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던 전씨는 23일 오전 8시 45분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90세로 사망했다. 청와대는 “사과가 없어 유감”이라며 조화와 조문은 보내지 않기로 했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전씨를 “내란·학살의 주범”이라며 “조문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전직 대통령이니 가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가 “조문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 “광주는 폭동” “전 재산 29만원” 분노만 키운 정치군인의 퇴장

    “광주는 폭동” “전 재산 29만원” 분노만 키운 정치군인의 퇴장

    빈농의 아들 출신으로 12·12 군사쿠데타를 통해 제11·12대 대통령직을 움켜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권력욕은 굴곡지고 어두운 대한민국 현대사를 만들어 냈다. 전씨는 12·12 군사반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일절 인정하지 않은 채 23일 세상을 떠났다. ●한국전쟁 중에 육군사관학교 입학 전씨는 1931년 경남 합천의 빈농에서 10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어린 시절부터 일본인 식품공장에서 배달 일을 하는 등 가족을 부양했다. 전씨는 대구공고를 졸업한 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 “내 성적은 228명 중 끝에서 두 번째였다. 육사 합격은 내 인생에서 운명적 전환점이었다”고 밝혔다. 1955년 육사 11기로 졸업한 후 군인의 길을 걸었으나 처음부터 돋보이지는 못했다. 군 생활 초반에는 한직을 전전하다 1961년 박정희 당시 육군 소장이 일으킨 5·16 군사정변에서 육사 생도들의 지지 선언을 주도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박 소장의 눈에 띈 이후 당시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비서관으로 기용된다. 그후 중앙정보부 인사과장, 30대대장, 1사단장, 보안사령관 등 출세가도를 걸었다. 그가 속했던 하나회의 전신 오성회도 군 내 주류 모임으로 급부상했다. 전씨가 보안사령관으로 재직하던 1979년 유신 통치의 마침표를 찍은 10·26 사태가 발생한다. 그는 하나회를 등에 업고 박정희 대통령 총격 사건 수사·처리를 맡은 합동수사본부를 이끌면서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에게 총격을 가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체포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마저 체포하면서 12·12 신군부 반란을 일으켰다. 1980년 5월 17일 전국 대학생들이 군부에 반기를 들고 ‘서울의 봄’이라 불리는 민주화 요구 시위에 나선다. 그러자 전씨는 ‘시국 수습’을 핑계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민주화 세력을 탄압했다. 5월 18일 서울 시위에 이어 광주에서도 ‘전두환 퇴진’ 등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자, 신군부는 계엄군·공수특전여단을 투입해 무력 진압하며 걷잡을 수 없는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같은 달 27일에야 마무리된 계엄군의 무분별한 진압은 무고한 광주시민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개헌까지 하며 11·12대 대통령 연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신설하며 국정 실권을 장악한 전씨는 1980년 최규하 대통령 사임 직후 선거에 단독 입후보해 제11대 대통령이 된다. 같은 해 10월 ‘7년 단임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새 헌법을 공포하고, 1981년 간선제로 치러진 제12대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해 당선되며 제5공화국을 열었다.‘3저(저유가·저금리·저달러) 호황’을 누리는 국가 개발 시기에 정권을 잡았으나, 끊임없는 민주화운동 탄압은 그의 몰락을 앞당겼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대통령 직선제 요구가 거세졌고, 맞대응으로 내놓은 4·13 호헌조치는 6월 항쟁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결국 당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선후보가 집권여당 대표로 6·29 선언을 발표하면서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다. 1988년 대통령 임기를 마친 전씨는 여생 내내 심판대에 올랐다. 퇴임 직후 전씨가 ‘5공 청문회’에 나와 5·18 진압에 대해 “자위권 발동”이라고 답한 데 대해 이철용 평화민주당 의원이 “살인마”라고 비판한 것은 사회가 그의 책임을 묻기 시작한 상징적 사건이다. 이후 계속되는 대규모 시위에 전씨는 부인 이순자씨와 강원 백담사로 들어가 769일간 은둔 생활을 했다. 문민정부 들어 본격적인 법적 심판이 시작된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은 5·18 특별법을 제정했고, 그해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반란수괴죄 및 살인,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2심을 거쳐 1997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을 최종 선고받았다. 1997년 김영삼 정부는 국민 대화합 명분으로 그를 특별 사면했다. 전씨는 이후에도 반성 없는 모습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던 전씨는 2003년 법원의 재산 명시 명령에 ‘예금 29만원’을 기재하며 사실상 납부를 거부했다. 2006년 노무현 정부는 전씨 등 3년 이상 형을 선고받은 176명의 서훈을 취소하고 훈장 환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전씨는 훈장 반환도 거부하다 7년 만인 2013년에야 12·12 이후 받은 9개 훈장을 반납했다. ●조비오 신부 사자 명예훼손 등 1심 유죄 2017년 4월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도 논란이 됐다.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비상계엄은 “정당한 법 절차를 따랐다”고 주장했다.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두고는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했다. 5·18 관련 단체들은 사자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적시 등으로 고발했다. 전씨는 1심 내내 알츠하이머 투병, 고령 등을 이유로 출석을 거부하다 2019년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고 지난해 11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불복, 항소해 재판을 진행하다 오는 29일 변론을 앞두고 있었다. 올해 8월 다발성 골수종 확진을 받았던 전씨는 생전 가깝게 지낸 노 전 대통령이 별세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 사죄없이 떠난 현대사의 오점

    사죄없이 떠난 현대사의 오점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키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했다. 전씨의 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 투쟁을 벌인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전씨의 동료이자 후계자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전씨까지 모두 세상을 떠남에 따라 현대사의 한 페이지가 완전히 넘어가게 됐다. 전씨는 생의 마지막 날까지 자신의 과오에 대한 일말의 사과나 반성을 하지 않았다. 전씨는 오전 8시 40분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쓰러져 8시 55분쯤 경찰과 소방에 신고됐다. 경찰은 오전 9시 12분쯤 사망 사실을 확인했으며, 시신은 신촌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다. 전씨는 지난 8월 악성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 확진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었다. 1931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전씨는 1955년 육사(11기)를 졸업한 뒤 군인으로 승승장구했다.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를 만들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지원했고, 10·26 사태가 발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정권을 찬탈하기 위한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하고 간선제 투표로 11, 12대 대통령에 올라 7년여간 독재 통치를 했다. 전씨는 내란죄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가 1997년 12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이후 전씨는 과오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약속했던 재산 헌납도 지키지 않았다. 추징금 2205억원 중 미납한 금액은 956억원에 달한다. 최근에는 광주 시민들을 향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청와대는 고인의 명복을 빌었지만, “끝내 역사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었던 점에 대해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조문이나 조화도 하지 않기로 했다. 대선후보 모두 빈소를 찾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전씨는 명백하게 확인된 것처럼 내란 학살 사건의 주범이다. 최하 수백 명의 사람을 살상했고 중대 범죄를 인정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처음엔 “전직 대통령이시니까 조문을 가야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가 2시간 뒤 조문을 가지 않겠다고 번복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순자씨와 아들 전재국·재용·재만씨, 딸 효선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이다. 발인은 27일 오전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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