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투병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지반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동성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진보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음료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660
  • 뉴딜정책 기수 프랭클린 루즈벨트:하(미국의 대통령 문화:5)

    ◎2차대전 적극 개입… 1천만 실업자 구제/전후 평화 정착 기대속 4선 당선 영광/대통령 문화 요람 도서관 시스템 도입/부인 일리노어 적극적 사회 활동/헌신·박애정신 국민 마음속 각인/동상 선 세계 최초 퍼스트 레이디 【워싱턴〓나윤도 특파원】 대공황의 질곡에서 미 국민을 구출할 희망의 상징으로 32대 대통령에 취임한 프랭클린 루즈벨트(애칭 FDR)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강력한 뉴딜정책을 추진했다.테네시강 개발사업,국가부흥청 설립,농업조정법 제정,사회보장제도 도입,노동조합 활성화 등 100일 입법을 통한 새행정부의 의욕적인 정책추진은 무기력과 절망에 빠졌던 국민들에게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뉴딜정책 평가를 위한 국민투표의 성격을 띤 1936년 대통령선거에서 FDR은 선거인단수 523대 8의 미 역사상 최대의 표차로 재선고지에 오를 수 있었다.그러나 활기찬 뉴딜정책의 추진에도 불구하고 대공황으로부터의 탈출은 요원했다.36년 다소 회복되는 듯 하던 경기는 37년 중반부터 다시 불경기로 돌아섰으며 38년에는 최악의 상태로 떨어져 실업자가 전체 노동력의 5분의 1인 1천만명에 달할 정도였다. 당초부터 실험적 성격이 강했던 뉴딜정책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사방에서 FDR에 대한 비난의 소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천운을 타고난 듯,뜻하지 않은 방향에서의 해결책이 마련됐다. FDR의 대통령 취임과 같은 해인 33년 독일의 권력을 장악한 아돌프 히틀러가 국제연맹을 탈퇴,인접국들에게 과거 독일영토의 반환을 요구하며 전쟁준비에 광분하면서 유럽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마침내 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대전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마침내 전쟁에 개입하게 되었고,이로 인해 군수산업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면서 미국의 경제상황은 대공황에서 탈피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전후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전쟁이 미국을 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전쟁이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던 40년,미 대통령선거의 최대쟁점은 참전문제였다.초기 FDR은 재선한 대통령으로서 명예로운퇴진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전쟁에 직면한 위기상황에서 민주당은 전폭적으로 그를 또 다시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그는 참전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으나 미국이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막강한 군대가 필요함을 역설했다.미 국민은 그를 미 역사상 최초의 3선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전쟁 초기 FDR은 곤경에 처한 영국을 도우려 했지만 고립주의자들로 가득찬 미 의회의 거부로 소규모 제한적인 원조밖에는 할 수 없었다.그러나 그는 “미국은 민주주의의 거대한 무기고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며 의회와 국민을 설득,마침내 ‘무기대여법’을 통과시켜 본격적인 지원에 나설 수 있었다.39년 10월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핵폭탄에 관한 서신에 접한 FDR이 즉시 비밀계획팀을 만들어 연구에 착수,마침내 원자탄을 만들어내게 한 것도 이같은 그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던 중 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미국의 본격적인 참전 계기가 됐다.참전은 모든 미국 경제를 전시경제로 돌아서게 했고 미 전역의 공장들로부터 막대한 양의 군수물자들이 쏟아져 나왔다.1천만에 달하던 실업자가 방위산업 증강에 따른 구인수요와 군입대로 사라지게 됐다.또한 FDR의 활발한 전시외교는 그를 자연스레 국제지도자로 부상시켰다. 44년 11월,아이젠하워 장군 지휘하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연합군이 최후의 승리를 위해 독일로 진격하고 있을 때 미국은 다음 대통령선거를 치렀는데,FDR은 공화당의 토머스 듀이를 물리치고 4선 대통령에 당선됐다.전쟁의 마무리 뿐 아니라 전후평화에 있어서도 미 국민은 그의 영도력에 큰기대를 걸었던 것이었다.그러나 격무에 시달리던 그는 취임 3개월도 못된 4월12일 조지아주 웜스프링 휴양지에서 뇌출혈로 숨졌다.그의 나이 63세. 라이딩스의 대통령 순위에 따르면 FDR은 지도력과 정치력에서 각각 1위,업적 및 위기관리와 용인술에서는 각각 2위,성격 및 집중도에서는 15위를 기록해 전체 순위에서는 링컨에 이어 2위로 나타나 있다. 당시 육군참모총장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과의 일화는 그의 지도력 및 용인술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첫대통령 취임 직후 FDR의 군예산 대폭 삭감계획에 불만을 품은 맥아더 육군참모총장이 조지 던 전쟁장관과 함께 백악관을 방문했다.대통령과 부딪히는 것을 꺼리고 있던 던 장관을 제치고 맥아더가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FDR은 빈정거리는 투로 평화시에 많은 군대를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고 답했다.두사람 사이에는 다소 설전이 오갔다. 마침내 맥아더가 자제력을 잃고 “만일 다음 전쟁에서 미국이 져 미국 병사들이 적의 군화발에 짓밟힌다면 그들은 맥아더가 아닌 루즈벨트를 원망할 것입니다”라고 대들었다.그러자 FDR 역시 화를 버럭내며 “당신이 대통령 앞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라며 고함을 질렀다.잠시 침묵이 흘렀다.맥아더의 생명은 끝난 것과 다름 없었다.군통수권자에 대한 모욕은 군법회의 감이었다.그는 사과를 한 후 총장직 사의를 표하고 뒤돌아 나왔다. 맥아더가 막 집무실 문을 나서려는 순간 뒤에서 대통령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더글라스,어리석은 짓 말게.여기 당신의 목과 예산안을 함께 가져 가게” FDR의 정치생애에서 가장 주목을 받아야할 사람은 부인일리노어 여사라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그녀는 남편의 투병중 세심한 간호는 물론 그가 주민들로부터 잊혀지지 않도록 정치활동을 대신,남편의 정치적 재기를 가능케 했다.또 퍼스트 레디가 된 후에도 신문에 ‘마이 데이’라는 칼럼을 정기적으로 썼으며 적극적인 사회활동으로 현대적 퍼스트 레디상을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FDR이 죽은후 그녀는 남편 생가의 옆동네인 바킬의 고향집에서 17년을 더 살았으며 트루만 대통령의 요청으로 6년간 유엔총회 미국대표단장을 역임하는 등 공직생활을 하기도 했다.62년 78세로 생을 마감한 그녀는 국민들 마음에 헌신적이고도 박애적인 영원한 퍼스트 레디로 깊이 각인됐으며 지난 여름에는 워싱턴에 동상이 선 첫 퍼스트 레디가 됐다. FDR의 업적 가운데 주목받는 것으로는 대통령도서관 시스템의 도입이 있다.역사기록의 중요성과 대통령직 수행 자체가 국민의 위임에 의한 것임을 자각했던 그는 1기 임기가 끝났을 때 자신의 모든 자료들과 하이드파크의 생가를 국가에 기증,대통령도서관을 만들어 국민들이 언제라도 편하게 접할 수 있게 했다.현재 미국내 존재하는 대통령도서관은 모두 11개로 국립문서보관소(National Archives)의 관할 아래 제31대 후버 대통령부터 41대 부시 대통령까지 주로 생가에 건립돼 있으며 미 대통령문화의 요람이 되고 있다. ◎수잔 쿠퍼 미 국립문서보관소 대통령도서관 담당/“대통령직 관련 자료 보존·열람 FDR 투철한 역사의식서 시작” 미 국립문서보관소의 수잔 쿠퍼 대통령도서관 담당관은 “미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대통령직 수행과 관련된 자료들을 한데 모아 보존하고 열람시키는 전통을 수립한 것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투철한 역사의식에 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도서관의 설립 동기는. ▲1939년 두번째 임기중이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하이드파크의 생가일부와 소장하고 있던 모든 자료들을 연방정부에 기증하고 그 관리를 의뢰하면서부터 시작됐다.도서관 건물은 이듬해인 40년 후원회에서 건립후 국가에 헌납했다.1955년 ‘대통령도서관법’이 제정돼 도서관의 건립은 대통령후원회 등 개인이 맡고 관리만 국립문서보관소에서 하도록 돼 있다. ­이전에는 대통령문서가 어떻게 보존돼 왔나. ▲대통령마다 의회도서관 또는 출신대학,거주지 도서관 등에 기증하거나 혹은 후손에 남기는 등 가지각색이었다.그래서 팔려나간 경우도 있고,훼손·분실되는 일도 많았으며 여러군데 흩어져 있는 경우도 많았다. ­현재 대통령도서관 현황은. ▲최근 텍사스 A&M유니버시티 내에 개관한 부시도서관을 포함 모두 11개이다.루즈벨트에 이어 트루만(미주리 인디펜던스),후버(아이오와 웨스트브렌치),아이젠하워(캔자스 애빌린),케네디(매사추세츠 보스톤),존슨(텍사스 오스틴),포드(미시간 앤아버),카터(조지아 애틀란타),레이건(캘리포니아 시미 밸리)도서관 등이 있다.워터게이트로 물러난 닉슨의 도서관은 캘리포니아 요루바린다에 있으나 의회명령으로 방대한 양의 워터게이트사건 관련 문서들은 아직 국립문서보관소의 닉슨자료실에 보관돼 있다. ­대통령 도서관에 전시되는 자료들의 내용은. ▲대통령이나 비서진에 의해 공식적으로 만들어진문서,국내외로부터 받은 문서 및 서신,취임전후의 자료,사진·필름 등 각종 오디오 비디오 자료,유품 등 개인소장물품과 공식선물 등이다.
  • 백혈병·소아암 어린이 송년잔치

    ◎의사·환자 부모 모임 주최로 한양대 병원서/투병 50명 부모 손잡고 노래·춤솜씨 자랑/‘토끼의 꿈’ 연극 해 보이며 완쾌의 꿈 키워 “어른조차 견디기 힘든 항암 치료의 고통 속에서도 산타를 기다리는 어린이들에게 조그만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25일 하오 서울 성동구 행당동 한양대병원 1층 로비에서는 이 병원 소아과의사들과 소아암 환자 부모들의 모임 ‘한마음회’(회장 김영훈) 주최로 백혈병과 소아암으로 투병 중인 어린이들을 위한 ‘한마음 송년잔치’가 열렸다. 올해로 6번째를 맞는 이날 행사에서 백혈병과 소아암을 앓는 어린이 50여명은 부모들의 손을 잡고 노래와 춤솜씨를 뽐냈다.링거 주사액을 꽂은 채 휠체어에 의지한 중증 어린이도 박수를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입원 어린이들에게 치료비를 지원하고 명절 때마다 위문 행사에 참여해 온 자원봉사모임 ‘하눌타리’ 회원 12명은 달걀 깨뜨리기,풍선으로 모형 만들기,청기 백기 게임,과자로 탑 쌓기 등 다채로운 놀이로 분위기를 돋우었다. 투병 어린이들은 ‘토끼의 꿈’이라는 연극을 해보이며 완쾌의 꿈을 키웠다.방사선 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지고 창백한 얼굴이 동심을 되찾고 해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3년간 백혈병 치료를 받은 끝에 지난 3월 완쾌된 최원제군(9·청솔초등 3년)은 “함께 치료를 받던 친구들과 놀 수 있어서 너무 즐겁다”면서 “다른 친구들도 나처럼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배우 이주실씨 고향무대에/자전극 ‘쌍코랑 말코랑‘ 어제 공연

    말기 암과의 투병으로 언제 끊길지 모를 실낱같은 삶을 지탱하고 있는 연극배우 이주실씨(53)가 마침내 그렇게도 고대하던 고향무대에섰다. 이씨는 24일 부천시민회관 소극장에서 자신의 자전적 모노드라마 ‘쌍코랑 말코랑 이별연습’으로 두 차례 고향사람들을 만났다. 연극무대에 선지22년만에 갖게 된 첫 고향무대. 금의환향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녀는 깊은 병을 안고 돌아왔다. 연극속의 ‘이별연습’을 위해서라지만 그 연습은 언제 실제화될지 모르는 상태. 하지만 이씨는 고향에서의 공연이 자신의 간절한 소원이었기에 어느 때보다 마음이 푸근하고 뿌듯하다고 말한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마지막 무대라 생각하고 또 무대위에서 삶을 마감하고 싶어하는 이씨에게 이번 고향공연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모교인 부천북초등학교 동문회와 자신이 명예회원으로 있는 복사골문학회가 뜻과 정성을 모아차린 무대이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난 뒤엔 복사골문학회원들이 매일 돌아가며 이주실을 위해,이주실의 연극을 위해,이주실의 두 딸을 위해 기원하는 시낭송의 무대를 별도로 마련하고 있다. ‘쌍코랑 말코랑 이별연습’은 암선고를 받은 이씨가 자신의 인생사를 정리할겸 두 딸에게 전해주려 쓴 일기장을 토대로 만든 자전극.지난해 11월 대학로 공연때 애절한 사연과 죽음을 앞둔 이씨의 투혼의 연기에 관객들이 눈물바다를 이뤘던 작품이다. 쌍코·말코는 이씨의 큰딸 도란이와 작은딸 단비의 별명. 두 딸과 이별연습을 하는 한 어머니가 자신의 삶과 이별을 이야기하는 이 연극은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과 사랑 그리고 가슴뭉클한 감동을 안겨준다. 27일까지 하오 4시·6시30분.문의 032­654­1677.
  • 반상회비 모아“이웃돕기”/서울 암사동 주민 매달 1∼2만원씩적립

    ◎소년소녀 가장 3명에 훈훈한 인정 전달 “적은 돈이지만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에게 작은 보탬이 됐으면 좋겠어요” 온 국민의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 IMF의 한파 속에서도 서울 강동구 암사동 29통 1·2반 주민들은 24일 올 한해동안 매달 1∼2만원씩 적립해 온반상회비 30만원을 이웃에 사는 소년소녀 가장 등 불우이웃 3명에게 전달했다. 신부전증으로 투병중인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소년가장 이호연군(14·신양중 2년)과 일찍 남편을 잃고 정신지체아 등 3남매를 혼자 힘으로 어렵게 키우는 김영민씨(32·여)등에게 주민들의 온정을 전했다. 이 동네 주민들 대부분은 인근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반상회에서 회비를 모아 매년 2차례 인근 고아원과 양로원 등 사회단체와 무의탁노인,소년소녀가장 등을 7년째 돕고 있다. 김한수통장(40·세탁업)은 “많은 사람들이 각박한 도시생활에 찌들어 이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매달 한번씩 반상회를 통해 한가족처럼 지낸다”며 “주민들이 어렵게 생활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어려운 이웃의 사정을 잘 알고 있어 모두가 한뜻으로 불우 이웃돕기에 앞장서고 있다”고 말했다. 91년 처음 시작된 이 동네 ‘이웃사랑 반상회’는 부부는 물론 동네 노인들 참석한다. 14가구가 모여사는 조그만 동네의 반상회지만 인원은 항상 30명을 넘는다. 송년 반상회와 야유회 때는 인근에 사는 소년가장이나 불우이웃을 초대 자리를 함께 하기도 한다. 소년가장 이군은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며 주민들의 온정에 답했다.
  • 뉴딜정책 기수 프랭클린 루즈벨트:상(미국의 대통령 문화:3)

    ◎휠체어 앉아 ‘미국’을 일으킨 영웅/맥빠진 국민에 “무엇이든 해보자”/노변정담 설득… 공황극복 견인/국민신뢰 대단… ‘대통령학’ 모델/정계입문 초기 잇따라 선거 패배/소아마비로 “정치생명 끝장” 중평/목발 짚고 민주 전대 웅변 감동적 “나는 여러분에게 맹세합니다.또 나 스스로에게 맹세합니다.미 국민을 위한 ‘새로운 정책’(New Deal)을 펼 것을 말입니다” 1932년 7월2일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장.대통령후보지명 수락연설에 나선 프랭클린 루즈벨트 당시 뉴욕주지사가 처음으로 ‘뉴딜’을 외쳤을때 아무도 그 한 단어가 미국을 절망에서 구출하고 세계최고의 번영으로 인도할‘키워드’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후 ‘뉴딜’은 ‘대공황’의 반대어로 자리매김했으며 미국민의 자존심과 긍지를 나타내고 승리를 대표하는 어휘가 됐다. 루즈벨트는 선거운동과정에서도 대공황 여파로 자신감을 상실한 채 무기력해져 있는 미국민들을 향해 외쳤다.“어떤 방법이든 택하여 그것을 해봅시다.만일 실패한다면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다른것을 해봅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해보자는 것입니다” 워싱턴 중심의 몰공원 남쪽 포토맥강가에 지난 여름 개장된 프랭클린 루즈벨트 기념공원은 어린 학생부터 노인들까지 하루종일 수많은 관람객들로 붐빈다.미 역사상 훌륭한 대통령 빅3에 들면서도 수도 워싱턴에 이렇다할 기념관 하나 마련돼 있지 않아 워싱토니안(워싱턴사람들)은 물론 관광객들로부터도 많은 아쉬움을 불러일으키던 참이어서인지 더욱 찾는 사람이 많다. 이 공원에는 그의 재임 4기를 시기별로 네개의 공간에 나누어 각종 상징적 조형물을 세우고 또한 대표적 어록을 벽에 새겨놓아 당시의 시대상과 루즈벨트 대통령의 업적 등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미시간주에서 관광온 테드 모간씨(74)는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국민 설득을 위해 자주 사용했던 라디오연설을 들은 기억이 있다”면서 한 실업자가라디오 앞에서 대통령의 방송을 듣고 있는 상징물 앞을 떠날 줄 몰랐다.‘노변정담’(fireside chats)이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시도됐던 루즈벨트 대통령의 라디오연설은 당시 절망감에 사로잡힌 국민들에게 최고의 인기있는 복음이었다고 모간씨는 회상했다. 1차대전 이후 호황기의 절정에 다달았던 29년 말부터 갑자기 몰아닥친 대공황은 3년동안 5천개의 은행을 문닫게 했으며 그에 따른 기업과 공장들의 연쇄도산이 뒤를 이었다.근로자들이 땀흘려 저축한 돈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전체 노동력의 40∼50%에 달하는 3천4백만의 실업자가 하루하루의 생계를 위해 거리를 배회했다. 이같은 암흑기를 지나면서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눈덩이처럼 커진 미국민들에게 루즈벨트는 공황의 종식을 위한 ‘뉴딜’을 외치며 균형예산과 실업자 구조,금주법의 폐지 등을 공약으로 제시,무기력한 후버 행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특히 루즈벨트가 실의에 빠진 유권자들에게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은 선거공약의 내용및 실현성 여부를 떠나 ‘의욕’이라는 심리적인 자극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그는 희망이 사라진 곳에 희망을 불러 일으켰으며 확신이 상실된 곳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결국 선거결과는 루즈벨트가 유효표의 57%를 득표,선거인단 472명을 확보함으로써 40% 득표에 선거인단 59명을 확보한 후버 현직대통령을 압도적으로 물리치고 승리했다.이렇게 해서 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미국을 세계 최강의 국가로 자리매김한 4선 대통령 루즈벨트시대가 개막된 것이다.초대 워싱턴 대통령 이래 불문율로 지켜져온 중임 전통에도 불구하고 미국민들로부터 네차례나 대통령직을 부여받을 정도로 그는 존경과 사랑을 받았으며 그같은 지지를 바탕으로 경제위기와 전쟁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미현대사에 있어 가장 훌륭한 대통령의 모델로 기록되고 있다. 1882년 뉴욕주 업스테이트의 허드슨강변 동쪽 언덕에 위치한 하이드 파크에서 출생한 루즈벨트는 부유한 가정형편 덕분에 개인교습을 받고 사립학교에 다녔으며 어려서부터 유럽여행을 다니는 등 풍족하고 귀족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했다.특히 그의 성장기에 대통령으로 명성을 날리던 테오도어 루즈벨트(26대)는 먼 친척 형(12촌)뻘로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그의 부인이 된 일리노어 루즈벨트는테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조카로 부친을 일찍 여의였기때문에 1905년 그들의 결혼식에는 현직 대통령이 신부를 데리고 입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바드 대학과 콜럼비아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로 활동하다 1910년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정계입문한 루즈벨트는 각종 선거에서 여러차례 낙선을 경험하는 등 초기에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우드로 윌슨 대통령(28대)에 의해 해군성 차관보로 임명돼 1차대전 당시 중요한 해군전략 수립에 관여했으며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다.이같은 1차대전때의 그의 경험은 대통령으로 2차대전을 맞았을때 십분 활용됐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패배했으며 1920년 38세의 젊은 나이로 제임스 콕스 대통령후보의 런닝메이트로 출마해 고배를 마시는등 중앙정치무대와는 인연이 없는듯 했다.엎친데 덮친 격으로 잠시 금융회사의 임원으로 정치를 떠나 있을때 그는 엄청난 개인적 불행을 당하게 된다. 이듬해 8월 캐나다 해안에서의 휴가중 찬물에 빠져 감기에 걸린 것이 척수성 소아마비로 발전,양다리를 못쓰게 됨은 물론 팔과 손에까지 부분 마비가오게 되었다.당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정치적 생명은 끝난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그는 의지를 잃지 않았다.조지아주의 웜스프링스로 가서 3년동안 기적적인 투병으로 그는 스스로 휠체어를 타고 움직일 수 있었다. 1924년 그가 휠체어를 타고 민주당 전당대회장에 나타났을때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랐으며 그가 목발에 의지해 단상에 기대서서 연설할 때는 그의 인간승리 모습에 감동적인 환호를 보냈다.결국 그는 1928년 뉴욕주지사로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했다. ◎루즈벨트 도서관 사서 레이몬드 타이크만/“항상 국민과 함께한 지도자”/4연임,전쟁 마무리 위한 국민의 선택 FDR(프랭클린 D.루즈벨트의 약자 애칭)학의 권위자인 뉴욕주 하이드파크 프랭클린 루즈벨트 도서관의 선임 사서레이몬드 타이크만 박사는 그가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어느 대통령보다도 국민과 함께 하려고 노력한 대통령이었다고 소개했다. -FDR이 미국민들로부터 빅3로 추앙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공황으로 잃은 정부의 신뢰회복을 위하여 그는 국민들과의 직접대화를 택했다.라디오 연설시간인 ‘노변정담’을 통해 그는 정부정책에 대한 세세한 설명과 이해를 구했다.국민들은 그가 국민편에 있다고 생각했다. -뉴딜정책이 국민들에게 어필한 이유는. ▲후버 대통령이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제퍼슨적인 자유주의 입장에서 있었다면 FDR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해밀튼적인 보수주의 입장에서 있었다.대공황으로 의욕을 상실하고 무력감에 빠져있던 국민들에게 정부와 대통령의 적극적인 유도는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당시 불문율로 돼있던 중임 전통을 깨고 3연임에 도전하게된 이유는. ▲FDR도 처음에는 주저했다.그러나 대공황의 그늘이 아직 걷히지 않은 가운데 2차대전이 발발했고 불과 수개월만에 프랑스가 붕괴되는 상황에서 그의연임은 국민적 합의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연임 역시 전쟁의 성공적 마무리에 대한 국민의 기대 때문이었다. -FDR에게 4연임까지도 허용했던 미국민들이 1951년대통령 임기를 중임으로 제한하는 22차 헌법수정안을 서둘러 마련한 이유는. ▲국민들이 경제위기및 전쟁위기 상황하에 있을때는 강력한 정부,강력한 지도력을 원했지만 일단 모든 것이 정상상태로 회복된 후에는 큰 정부의 필요성도,집중된 권력의 필요성도 인정치 않았기 때문에 견제와 균형의 기본원칙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 예비역장성 12명 영입/국민회의

    국민회의는 16일 정숭렬·배일성 전 육군군수사령관,이상호 전 국방부 군수본부장,김정신 전 8군단장 등 중장급 4명을 포함한 예비역 장성 12명의 입당을 발표했다. 이날 입당한 나머지 8명은 김기성(전28사단장) 박판길(전 육군작전참모부차장) 전종배(전 전투병과학교장) 송병채(전 국방부 제1차관보) 이민홍(전 제5군수지원사령관) 문일섭(전 한미연합사군수참모부장) 황철구(전 해사교장) 전춘우씨(전 공사교장) 등이다.국민회의는 이외에도 김진선·정진태·조남풍씨 등 예비역 4성장군들에 대해서도 영입교섭을 계속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주유엔 북 대사 이형철

    북한은 김형우 전 유엔(UN)주재 북한대사 후임에 이형철 외교부 미주국장을 외교부 부부장급으로 승진시켜 발령한 것으로 11일 알려졌다. 정부의 고위당국자는 “북한은 간암증세로 투병중인 김형우 대사가 지난달 17일 북한으로 들어감에 따라 공석중인 북한대사 후임에 이형철 외교부 미주국장을 승진,발령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 “날좀 보소” 영남표심 파고들기/여야 대선후보들의 주말 행보

    ◎이회창­“경제기구·기능 대폭 지방분산” 약속/김대중­“이번에 찍어주면 꼭 보은” 한표 읍소/김종필­월드컵축구 응원… 오늘 다시 부산행/조순­포항공대 방문 ‘한국경제’ 영어특강/이인제­영남지역 50% 몰표 다짐 동분서주 여야 대선 후보들은 주말인 4일 영남권을 공략하거나 월드컵 축구경기 관람 등을 통해 표심을 파고 들었다.특히 신한국당 이회창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문민정부의 산실인 부산에서 지지를 호소하며 정면대결을 펼쳤다. ○…신한국당 이총재는 부산·경남(PK)방문 이틀째인 이날 상오 경남도청에서 김혁규 지사로부터 도정보고를 받은뒤 부산으로 이동,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에 들러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이총재는 이어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지역상공인들과 도시락으로 오찬을 나누며 지역 경제현안과 애로사항을 청취했다.이총재는 이 자리에서 “경제력 집중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문화와 행정,경제의 조직과 기능을 대폭 지방에 이양하고 실제 경제 운영의 측면에서도 지방 분산정책을 펴겠다”며 지역개발을 강조했다.이총재는 또 상공회의소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를 통해 “PK지역이 정권을 다시 창출하는데 힘있는 저력을 발휘할 것으로 믿는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이총재는 특히 당내 비주류 인사들의 ‘10월 거사설’과 관련,“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결국은 서로 이해하고 당을 위해 뜻을 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총재는 이날 투병중인 최형우 고문의 부산 연제 지구당에 윤원중 비서실장을 보내 최고문의 쾌유를 기원하는 난화분을 전달하는 등 비주류 끌어안기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경남 산청이 고향인 이총재의 부인 한인옥 여사도 9·30 대구 전당대회이후 계속 부산·경남지역에 머무르면서 지역여성 단체 대표 등과 잇따라 만나는 등 측면지원을 벌였다. ○…부산방문 사흘째를 맞은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는 이날 지역공약 발표를 위한 기자회견을 갖고 부산시청을 찾은데 이어 종교·노동·여성·재계에 김해 김씨 종친회까지 섭렵하는 등 ‘반DJ정서 추스르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김총재의 이날 부산공략은 이 지역을 21세기의 중심도시로 이끌겠다는 정책공약과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읍소에 가까운 호소,그리고 이 지역 출신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평가라는 3방향에 촛점에 맞추어졌다. 김총재는 전날 밤 지역방송 3사의 토론회에서 자갈치시장축제의 구호를 본 땄다면서 ‘오시소,보이소,찍어주이소’라고 경상도사투리를 써가며 ‘거부감 줄이기’에 진력한데 이어 이날도 가는 곳마다 “더 이상은 (대통령선거에)나오라고 해도 못나온다”면서 “한번 찍어주면 은혜를 꼭 갚겠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김총재는 숙소인 롯데호텔에서 있은 정책기자회견에서는 ‘부산은 민주화의 성지’라고 추켜 세웠다.그러면서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고서도 출신지역이기 때문에 오히려 적극 나서서 추진하기 어려웠던 부산 발전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이날 하오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B조경기인 한국과 UAE전을 관람했다.앞서 상오에는 중앙당 사무처 월례조회를 통해 당원들의 단합을 독려했다. 또 일요일은 5일에는 부산으로다시 내려가 부산시민의 날 기념강연에 나선다.강창희 사무총장,안택수 대변인,오효진 TV방송단장 등 14명이 수행하고 정상천 부총재 김허남 의원 등 부산시 지구당위원장 15명이 현지에서 합류한다. ○…민주당 조순 총재는 4일 경북 포항을 시작으로 5일 울산과 부산,6일 대구를 방문,지난 주에 이어 영남권 공략을 계속한다.조총재는 이날 하오 포항공대를 찾아 ‘동아시아 연구중심 대학교협의회 3차총회’에 참석,‘기로에 선 한국경제의 선택’이란 주제로 20여분동안 강연했다.일본 동경대 하수미 신메이코총장을 비롯,동아시아 16개 대학 총장들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조총재는 별도의 원고없이 영어로 연설,10년간 미국유학시절 갈고 닦은 영어실력을 발휘하며 다른 후보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였다. ○…독자출마 선언이후 첫 방문지로 부산을 택했던 이인제 전 경기지사는 5일부터 3일간 재차 부산공략에 나설 예정이다. 이 전 지사측은 이후보가 영남권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점을 감안,영남공략을 강화해 이지역에서의 득표율을 최소 50% 선 이상으로 올린다는 복안이다. 이 전 지사는 부산 창당대회에 이어 13일 대구에서 창당준비위 행사를 마련하는 등 영남지역을 필두로 세대교체 바람을 일으킨뒤,정권교체를 내세우고 있는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에 맞설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자신을 부각시킨다는 계획이다.
  • 이 총재 PK표심잡기 나들이/문민정부 정통성 계승의 상징적 행보

    ◎지도부 대거동행… 전대이후 단합과시 9·30 전당대회로 힘을 얻은 신한국당 이회창 총재가 3일 취임후 첫 지방나들이로 문민정부의 산실인 부산·경남(PK)지역을 방문했다.2박3일 일정이다. TV의 대선후보 토론 참석이 이유지만 지역 여론을 살피고 지지를 호소하는 일정도 마련했다.특히 이번 방문에는 강삼재 사무총장과 강재섭 특보,윤원중 비서실장,이사철 대변인,박종웅 기획조정실장,신경식 대선기획단 홍보본부장 등 지도부가 대거 동행,전당대회 이후 당의 달라진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날 하오 항공기편으로 김해공항에 도착한 이총재는 창원으로 이동,경남지역 지구당 위원장과 당소속 광역·기초단체장,도지부 주요당직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만찬을 함께 했다.이총재는 이자리에서 “주류·비주류라고들 하지만 전당대회를 계기로 당에는 주류만 있을뿐”이라며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저력으로 힘을 뭉쳐 대선승리를 이루자”고 당부했다.이총재는 이어 창원 KBS가 주최하는 TV토론에 참석,정국 현안 등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이틀째인 4일이총재는 버스편으로 부산으로 이동,경남도청과 상공회의소를 방문해 경제문제 등 지역 현안을 청취한 뒤 부산 MBC토론에 참석한다.특히 윤비서실장은 이날 투병중인 최형우 고문의 부산 연제 지구당사에 들러 쾌유를 비는 이총재 명의의 난을 전달할 예정이다.이총재는 앞서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에 들러 준비상황을 청취하고 관계자들을 격려한다. 마지막날인 5일에는 부산지역 지식인과 조찬간담회를 갖고 여론을 청취한 뒤 양산 통도사를 방문,월하종정 스님과 만날 예정이다. 이총재의 이번 부산·경남지역 방문은 이곳 출신인 김영삼 대통령이 정치일선에서 물러난 직후에 이뤄진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는 지적이다.
  • 백혈병 사망 ‘시인교사’/퇴직금 전액 장학금 기탁(조약돌)

    ○…제주시 오현고 교사로 재직중 지병으로 숨진 김영흥 교사(56·시인)의 유족들이 최근 고인의 뜻에 따라 퇴직금 5천만원을 학교측에 장학금으로 기탁,뜨거운 감동을 주고 있다. 한복집을 운영하는 미망인 고정자씨(52)는 “남편이 숨지기 전 어려운 학생을 위해 장학사업을 펴고 싶다는 뜻을 밝혀 장학금을 기탁한다”고 말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학으로 대학을 마친 김씨는 지난 76년부터 교직에 봉사해왔으며 90년 계간지 ‘시조문학’에 추천시인으로 등단,창작활동을 벌이면서 시집 ‘부재증명’을 남겼다. 김씨는 93년 만성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4년여 투병생활을 하다 지난 7월 타계했다.〈제주=김영주 기자〉
  • 가족 모두 암걸린 동료 돕자/사시동기 판사,변호사 개업(은방울)

    ○…서울지법 판사로 재직하다 지난달 25일 변호사로 변신한 임경윤 변호사(40)는 사시 23회 동기로 일가족의 암투병때문에 서울고법 판사직에서 물러난 박형준 변호사(42)를 돕기 위해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낸 것으로 밝혀져 법조계에 훈훈한 화제. 이들은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83년 9월 부산지법에 나란히 발령을 받아 같은 하숙방을 쓰면서 우정을 키워왔다. 하지만 박변호사에게 갑작스레 불행이 닥쳐 95년 8월 어머니가 위암 진단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4개월 뒤에는 동생이 대장암,96년 4월에는 부인이 유방암 판정을 받았고 한달뒤 박변호사 본인이 대장암 선고를 받았다. 박변호사는 휴직계를 내고 1년여의 투병 끝에 건강을 되찾았으나 가족의 엄청난 병원비 부담 등을 고려,판사의 길을 포기. 이같은 소식을 전해 듣고 함께 사표를 낸 임변호사는 “변호사 일을 혼자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운데 누구보다도 사정을 잘 아는 내가 외면할 수 없었다”고 설명.〈김상연 기자〉
  • 온산 문병 마치고 귀국한 이인제 지사

    ◎이대표 지지율 하락 안타까워/출마여부 추석전 밝히겠다 이인제 경기지사는 31일 연말 대선 독자출마설과 관련,“최종 입장은 추석이전에 밝히겠다”고 말했다.이지사는 이날 하오 신한국당 최형우 고문 문병차 3박4일 일정으로 북경을 다녀온뒤 김포공항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일문일답 내용을 간추렸다. ­많은 변화를 기대해도 되겠는가. ▲변화는 끊임없이 일어난다. ­독자출마하는 것인가.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았다. ­이회창 대표의 지지율 하락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출마를 반대하는 여론도 있는데. ▲꼭 여론의 수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그러나 소수의 의견이라도 존중해야할 필요있다면 따라야 한다.역사와 국민앞에 떳떳하게 책임질수 있는 선택을 하겠다. ­최고문과 어떤 얘기를 나누었나. ▲투병중이라 무거운 얘기는 일체 안했다.건강과 옛날 애환을 얘기했다. ­민주계의 후보교체론에 대해. ▲어떤 특정 방안을 놓고 생각하진 않고 있다.당이 처한 어려움과 위기와 본질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눈을 똑바로 뜨고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당원 모두가 강구해야 한다. ­이대표를 도울 생각은.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출마를 만류하는데. ▲많은 충고와 좋은 의견이 있을수 있고 다 듣고 있다. ­언제 최종 행보를 결정하나. ▲안개가 걷혀야 추석 귀향길이 잘 보일 것이다. ­이대표의 대통합 정치론은. ▲당에서 어떤 논의를 거쳤는지 잘 모르겠다.
  •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2’ 동숭씨네마텍서 방영

    ◎‘정신대할머니 삶’ 담은 방화 23일 개봉/신분 스스로 밝히고 당당히 살아가는 모습 그려/삶의 터전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중심으로 전개 일제 강점기때 일본군에 끌려가 위안부 노릇을 해야만 했던 일본군 위안부(정신대) 출신 할머니들의 요즈음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낮은 목소리­2’(감독 변영주,제작 기록영화제작소 보임)가 23일 서울 동숭씨네마텍에 오른다. 이 영화는 지난 95년 4월 장편 다큐멘터리로서는 처음으로 일반 상영관에서 개봉됐으며 야마다카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를 비롯한 국내외 영화제에서 상을 휩쓴 ‘낮은 목소리’의 후속편. 전편이,위안부로 강제 연행된 과정과 위안소에서의 생활 등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고,그들의 마수에서 벗어난 뒤 최근에 이르기까지 겪은 삶의 고통과 회한을 다루었다면 2편의 주제는 전혀 다르다.곧 위안부 출신임을 스스로 밝힘으로써 새로 형성된 주위의 편견을 극복하고 당당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는 할머니들 삶의 터전인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중심으로 전개된다.69∼79살에 이르는 할머니 일고여덟명은 텃밭에 농사를 짓고 닭을 키우며 활기차게 살아간다. 아이 머리통보다 큰 호박을 이고 뒤뚱걸음을 하다 쏟는가 하면 양계장을 치우면서는 “닭똥 냄새때문에 영감도 안 붙겠다”고 투덜거리기도 한다.때로는 술에 취해 흥겹게 춤추고 노래하기도 한다. 할머니들은 이제 남을 원망하거나 위안부였던 과거를 끝없이 부끄러워 하지는 않는다.호박이 크면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줄 생각부터 하고,자신이 겪은 일을 젊은이들이 제대로 알아 역사의 교훈을 배우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나 할머니들에도 바램은 있다.다시 태어난다면 여느 여자들처럼 결혼해 남편사랑도 받아보고 배불러 아이도 낳아보고 싶은 것이다.다만 김순덕 할머니(76)만은 “남자로 태어나 군인이 되겠다”고 했다.일본군들에게 당한 분풀이를 하고 싶은 걸까.할머니는 “군인 가서 이 나라를 지키고 싶어.빼앗기고 짓밟힌게 너무 억울하고 원통해서”라고 말했다. 영화는 한편으로 강석경 할머니(1929년 생)의 투병과 죽음도 함께 보여준다.강 할머니는 지난 92년 위안부 출신임을 처음 공개한 다음 일본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운동에 앞장선 주인공.강 할머니는 95년 12월 폐암 말기임을 통고받아 투병하다 지난 2월 결국 눈을 감았다. 변영주 감독은 “다시는 체념하며 살지 않겠노라는 선배여성들의 당당함이 있기 때문에 이 영화는 할머니들과 함께 만든 출사표”라고 선언했다.그러나 꽃다운 나이에 끌려가 몸과 영혼을 짓밟힌 그들의 과거가 여성만의 문제일까.영화는 부끄러워 할 사람은 나라를 잃고 누이들을 빼앗긴 우리 모두임을 통렬하게 일깨워준다.
  • 굿맨 아메리칸대 교수 미 공보원 저널 기고(해외논단)

    ◎“민군협력 탈냉전시대에도 긴요” 냉전종식과 함께 전세계적으로 군의 역할이 축소되는 추세이다.이와관련,미 어메리컨대의 루이 굿맨 외교대학원장은 보다 긍정적인 민·군관계 정립을 위한 민·군의 협력을 강조한다.이같은 요지로 굿맨 교수가 미 공보원 정기저널에 기고한 「탈냉전시대의 민·군관계」를 요약한다. 1985년 이래 전 세계적으로 각국의 국방인력은 15%이상 줄었으며 군사비는 이의 두배이상 감축되었다.이같은 감축은 구소련 붕괴로 인한 안보환경의 변화에서 주로 비롯됐다.극소수의 예외가 있긴 하지만 이제 고도의 임전태세와 함께 대규모 전투병력이 배치되여야 하던 시대는 지나갔다.미국 러시아,그리고 이들의 동맹국 대부분들은 군사력 다운사이징과 방위산업 전환에 관한 총체적인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다운사이징에도 불구하고 군은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가장 거대하고,가장 재정지원을 잘받고,또 예외없이 가장 잘 조직된 기관이다.이런 현상은 세계의 민·군관계에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정부가 일을 하는데군이 개입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만큼 군대에 대한 민간통제는 충분한 것인가. ○군감축과 새로운 위상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1979년도엔 19개국이 군인을 국가수반으로 하고 있었다.오늘날은 한 곳도 없다.탈냉전 시대에선 쿠데타와 군사정부란 것이 하도 희귀해져서 군대가 그 나라의 민주주의를 강화하는가,약화하는가를 알려면 아주 섬세한 잣대가 필요할 정도다. 냉전이후 거의 전세계 국가들을 민간인이 통치하고 있는 상황에서,각 나라들은 자국의 민·군관계 성격을 어떻게 가늠해볼수 있을까.군대가 나라의 정치체제 안에서 너무나 많은,혹은 너무나 미미한 책임을 지고 있는가 아닌가가 이에 대한 답변의 관건이 된다.국가에 안보력을 제공하는 것이 지금도 군의 제일의 목적이지만,진행중인 군 다운사이징은 군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군대가 맡은 특정한 임무가 민주주의를 강화하는가,약화하는가를 판단하는데는 다음 질문을 똑똑히 해봐야 한다.첫째 군이 맡게된 비 전통적인 임무가 그 나라 민주주의의 강화에 이바지하는가.예컨대 어느 나라의 아주 궁벽한 오지에 교육이나 보건 관리가 공무를 수행할 수 없을때,군이 이에 관여한다면 이는 국가의 통합을 지탱하고 경제발전을 촉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둘째 군의 비 전투적 임무관여가 군의 정치적 비중과 성격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가.예컨대 군이 국내 보안,교육,경제 등 민간적 업무에 관여하더라도 그것이 군에 가외의 특권을 부여함없이 행해질 땐 군의 이같은 임무수행은 민주주의를 강화시킨다. 셋째 군의 비 전투 임무관여는 군이 스스로의 핵심 임무를 수행하는데 지장을 주지 않아야만 민주주의 강화에 도움을 준다.핵심임무는 물론 국가의 대외 안보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방위정책 전문역 맡아 냉전종식과 더불어 민간인이 최고 직위에 피선되는 일은 커다란 진전을 보고 있으나,많은 나라에서 사회적인 것과 제도적인 것 사이에 아직도 깊은 갭이 남아있다.갓 민주화된 많은 나라의 민간인들은 민간­방위 정책 전문가로서의 군의 제도적 개입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이같은 역할은 군이 필요로 하는 바를 선출직 관리들에게이해시키고,군과 사회 사이의 대화중재자로서 긴요한 것이다. ○신뢰감 무너지면 파행 이는 탈냉전 세계에서 특별히 중요하다.초강대국 간 경쟁 종식과 기술발전으로 인한 군 구조의 변화는 국방정책 관계자들에게 전례없는 불확실성을 주기 때문이다.군사작전의 변화로 좀 더 작고,첨단기술을 활용해 기동성은 더 뛰어난 군대를 선호하게 됨에 따라 관련 민간인 관리들이 그들의 요구를 이해하고 있다는 군장교들의 확신은 한층 필요해졌다.이같은 민간관리들의 전문성이 충족되지 않으면 튼튼한 민·군 관계를 엮어내는 신뢰감이 쉽게 허물어지고 만다.그러면 서로가 따로 놀게 되고 정치적인 파행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보아왔다. 앞으로 세계가 워낙 빨리,복잡하게 변화함에 따라 군과 민간 감독당국은 서로의 필요성을 이해하려면 긴밀히 협력해야만 한다.이 협력이야말로 민·군 관계를 강화하는 초석인 것이다.〈정리=김재영 워싱턴 특파원〉
  • 신촌 세브란스 도서대여 자원봉사/서울여대 3학년 박진희양

    ◎“투병 환자들에 작은 힘 됐으면…”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되고 싶어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도서대여 자원봉사를 하는 박진희양(21·서울여대 생물학과3년). 박양은 병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를 돌보기 위해 지난 6월말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 곧바로 이곳을 찾았다. 박양은 “백혈병과 소아암으로 고생하는 어린이 모습을 TV에서 보고 무척 가슴이 아팠다”면서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이곳으로 달려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양은 어린이를 돌보는 간병인은 전문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할 수가 없었다. 박양이 먼저 시작한 일은 책정리.5백여권의 책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사무실을 청소하고 찢어진 책은 테이프로 붙여 책꽂이에 정리했다.소설과 비소설,어린이 동화책 등은 나누어 분류했다.그리고 문앞에 큰글씨로 ‘무료로 책을 빌려가세요’ 안내문도 내붙였다. 박양의 노력으로 지금 이곳에서 책을 빌려 가는 사람은 하루 20여명. 장기 입원환자와 병원직원,장시간 치료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들이찾아온다.환자들이 주로 찾는 책은 소설과 잡지,시집 등이다. 박양은 “환자들이 내가 빌려준 책을 보고 잠시나마 아픔을 잊을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보람을 느낀다”며 밝게 웃었다.
  • 박재삼 추모시집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

    ◎병상서 노래한 시와 눈물 〈어쩌다가 땅 위에 태어나서/기껏해야 한 칠십년/결국은 울다가 웃다가 가네/이 기간 동안에 내가 만난 사람은 헤아릴수 없이 많지만/그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점지해준/빛나고 선택받은 인연을/물방울 어리는 거미줄로 이승에 그어 놓고/그것을 지울수 없는 낙인으로 보태며/나는 꺼져갈까 하네〉(박재삼의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 전문).미당 서정주는 박재삼 시인을 서러움을 가장 아름답게 성취한 자유인이라고 불렀다.극심한 투병생활중에도 맑은 눈빛으로 영혼의 순수를 노래했던 박 시인은 지난 6월 지병인 신부전증으로 그의 시구처럼 지울수 없는 자취를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우리 문학사에 ‘슬픔의 시인’‘서러움의 시인’으로 각인될 박재삼 시인을 추모하는 서정시선집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오상)가 나왔다.이번 시선집에는 ‘울음이 타는 가을강’‘천년의 바람’‘찬란한 미지수’‘바람의 인연’‘빛나는 부활’‘천지의 교향악’‘허무의 큰 괄호 안에서’‘사르트르사원 부근’‘바라나시 구경’등70여편의 시가 실렸다.시인은 ‘시작노트를 대신해서’라는 글을 통해 ‘시와 눈물이 있어야 생활에 물기가 있다’는 자신의 지론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 바쁜 일정속 투병 최종현 회장 위로

    ◎숙소인근 병원 입원 소식에 문병 준비/“감염우려 면회 불허”에 쾌유기원 친서 김영삼 대통령이 바쁜 정상외교 일정에서 짬을 내 병마와 싸우고 있는 최종 현전경련회장(선경그룹회장)을 위로했다. 최회장은 최근 뉴욕에서 폐암수술을 받았다.김대통령은 뉴욕도착직후 숙소인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에서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암전문센터의 중환자실에 최회장이 입원해있다는 보고를 받고 『직접 병문안을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회장 가족들과 선경측은 김대통령의 방문의사를 전달받고 『폐수술후 감염우려가 있어 병원측이 가족들을 포함,누구의 면회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고 전해왔다.김대통령은 이에 뉴욕방문을 수행한 김호식 재경비서관을 통해 최회장의 쾌유를 기원하는 친서를 26일 상오(현지시간) 김영만 선경부회장(재미한국상공회의소 회장)에게 전달했다. 김대통령이 친필로 직접 작성,서명한 서한에는 「최종현 전경련 회장의 조속한 쾌유를 빌며 우리 경제발전에 더많은 기여를 하시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겨져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대통령이 한국의 대표적 경제인의 한명인 최회장이 와병중이고,최회장의 부인이 병간호중 별세한 것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며 서한전달 배경을 설명했다.
  • 김동리 2주기/평론·에세이집 나란히 출간

    ◎문학과 인간­문학사 전환의 징후 예리한 포착/나를 찾아서­담백한 문체에 유년시절 등 담아 한국문학사의 큰 봉우리인 소설가 김동리의 2주기를 기려 그의 평론집 「문학과 인간」,자전적 에세이집 「나를 찾아서」가 민음사에서 나왔다.이 책들은 「무녀도」에서 「을화」에 이르기까지 장·단편소설을 모은 1차분 6권에 이어 「김동리 전집」 2차분으로 출간된 것.유종호 연세대 석좌교수,김윤식 서울대 교수,소설가 이문구씨 등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 김동리 문학은 우리 근대 소설사에서 시금석의 의미를 지닌다.일제 강점기의 순수문학을 거쳐 해방이후 이른바 「구경적 생의 형식」 또는 「문협정통파」로 이어지는 우리 소설의 가장 유력한 흐름을 대표하는 존재가 바로 김동리이기 때문이다.그는 지난 90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5년에 걸친 투병끝에 95년 83세로 작고했다. 김동리는 우리 문단내의 대표적인 논쟁인 「신세대 논쟁」「순수문학 논쟁」「본격문학 논쟁」 등에서 날카롭고 치밀한 논리로 상대를 제압했던 논객이었다.「문학과 인간」은김동리의 유일한 평론집으로 문학사의 고비마다 시대적 전환의 징후를 예리하게 포착해낸 「작가적 비평」의 진면목을 엿볼수 있다.김동리는 이 책 후기에서 『나는 지금까지 「인간」을 떠나 문학을 생각하고,인간을 떠나 문학을 논의한 적이 없다.나에게 있어서는 시고 소설이고 평론이고 일체의 문학이란 다만 인간을 인식하고 인간을 정화하고 인간을 구제하기 위한 방법에 불과한 것』이라고 자신의 문학관을 밝히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유의 담백한 문체로 작가의 개성적인 감각과 취향을 드러내는 「나를 찾아서」는 김동리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전,그동안 발표했던 470여편의 에세이중 자전적 성격이 강한 70여편을 손수 고른 책.「김동리 자서전」이라고도 할만한 이 책에서 김동리는 유년시절 이야기에서부터 집안이야기,미당 서정주와의 만남·등단시절 이야기 등 문단이면사,만해 선생과 「등신불」,화개장터와 「등신불」 등 창작의 은밀한 기원과 관련된 단서 등을 털어놓고 있다.
  • 여의자동화시스템 성명기 사장(빌게이츠 꿈꾸는 한국의 도전자)

    ◎외제장악 원격제어시장 탈환 선봉/4년 위암투병 공백딛고 새시스템 개발/대형프로젝트 잇단 수주… 해외시장 도전 대부분 후미진 곳에 있는 도시가스 정압실엔 가스 누출센서 및 압력·온도 계측장비 등이 설치돼 있다.수시로 변하는 데이터는 네트워크를 타고 가스회사 본사 상황실에 있는 컴퓨터와 이에 연결된 대형 상황판에 나타난다.이상이 생긴 곳은 가스관 밸브가 자동차단되고 상황판엔 즉시 빨간 불빛이 나타난다.상황실에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문제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정비요원차량을 보내 수리케 한다.원격자동제어시스템으로 가능한 작업이다. (주)여의자동화시스템(02­469­1203)의 성명기 사장(43)은 컴퓨터를 이용한 원격자동제어시스템 개발에 14년째 몰두하고 있다.그동안 공장자동화시스템(FA)을 비롯해 폐수정화처리,수질분석,지하철 신호감시 제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크고 작은 단위의 원격제어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국내에선 일급 기술력을 갖춘 회사를 만들었다. 원격자동제어분야는 시스템 장비구입에 들어가는돈이 만만치 않고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는데 적지않은 시간이 필요하다.응용프로그램 하나 잘 만들면 떼돈을 버는 PC소프트웨어 분야보다 「벤처적 성격」이 떨어지는 셈.「벤처 붐」이 일어도 이 분야에선 그리 활발하지 못한 이유기도 하다. 성사장이 원격자동제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연세대 전자공학과)을 졸업한 뒤 첫 직장이던 한 방산업체 연구소에서였다.컴퓨터로 함포를 쏘는 원격제어기술을 공장 자동화에 접목하면 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창업 무렵인 84년엔 IBM사 16비트급 PC가 나와 영세기업도 소프트웨어 개발이 가능하게 됐다.처음엔 공장자동화의 일부분인 불량품 검사 소프트웨어와 보드를 개발,짭잘한 재미를 봤다. 그러나 86년 날벼락같은 위암선고를 받고 투병생활에 들어가면서 남보다 앞선 출발로 이룬 작은 성공은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동생이 회사를 맡아 운영했지만 명맥유지에 불과했다.기적처럼 건강을 되찾아 현업에 복귀한 90년은 시장상황이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원격자동제어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고조돼 있었고 외국산이 시장의 한가운데를,국산 모방품이 귀퉁이를 차지한 꼴이었다. 그는 대규모 사업장에 들어갈 중량급 시스템 개발에 힘을 쏟아야겠다고 판단했다.몇몇 공장,빌딩에 전력감시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90년 3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한 뒤 해마다 40%를 웃도는 꾸준하면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어나갔다. 여의의 실력이 업계의 인정을 받으면서 동국합섬 제사기 관리시스템,노원 열병합발전소 열량 계측 시스템,동양 엘리베이터 원방감시시스템 등 굵직한 아이템 수주도 잇따랐다.지난해 매출액 33억원에 이어 올해 목표는 50억원.현재 환경부 발주 4대강 수질분석 시스템,지하철 3·4호선 신호감시 및 제어 시스템을 구축중이다. 개발도상국을 타깃으로 한 해외시장 진출노력도 병행하고 있다.태국,베트남 업체의 입찰에 참여했으며 인도네시아 한 대형 식품제조업체의 화재감시 제어시스템을 수주하는 실적도 올렸다. 성사장은 『외국업체와의 싸움에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한다.저렴한 인건비와 꾸준한 기술개발로 가격대비 성능이 외국산보다 앞선다는 생각이다.또 자동제어시스템에서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사후관리에 국내업체가 갖는 장점을 최대한 살린다는 전략이다. 그도 여느 벤처업체 사장들과 다름없이 국내업체들의 국산품 불신에 이의를 단다.국산과 외산의 장단점을 면밀하게 비교,분석하는 낙찰과정이 아쉽다는 얘기다.『국산이라고 무조건 사서 쓰랄 수는 없겠죠.단지 정당하게 평가해 달라는 겁니다』 기술이 전부인 벤처기업인의 호소다.
  • 김 대통령 운전기사 이충일씨 빈소찾아 애도

    ◎“25년간 손과발이 되어주었는데…” 김영삼 대통령이 7일 하오 서울대 병원을 찾았다.1년 동안의 투병생활 끝에 이날 상오 위암으로 숨진 김대통령의 운전기사였던 이충일씨(55)의 빈소를 조문하기 위해서였다. 이씨는 신민당총재 시절인 70년대 초반 김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25년 동안 김대통령의 「손과 발」이 되어왔다. 김대통령은 이씨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영안실을 찾아 조의를 표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김대통령은 이기사와의 긴 만남을 짧은 눈물로 마감했다』고 표현하면서 『유신을 포함해 어려운 시절 고생을 많이 하고 이제와서 좀 살만해지니 세상을 떠났다』고 애석해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