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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이거노믹스’ 레이건 前 美대통령 사망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냉전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 미국의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5일 오후 1시(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9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미망인 낸시 레이건(82) 여사는 성명을 통해 “레이건 대통령이 10년간 알츠하이머와의 투병생활 끝에 사망했다.”며 “모든 이들의 기도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보좌관격인 조앤 드레이크는 그가 알츠하이머와 폐렴의 합병증으로 사망했으며 낸시 여사와 두 자녀인 로널드 2세·패티 데이비스가 임종을 지켰다고 전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장례는 오는 11일 워싱턴에서 국장으로 치러지고 그의 시신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레이건대통령 도서관’에 안치된다고 로스앤젤레스 소재 CBS2 뉴스가 전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1∼1988년 대통령을 지내면서 공화당을 보수적인 색채로 재편하고 옛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를 목표로 소련과의 경쟁에 몰두했다.세금감면 등 ‘레이거노믹스’로 미 경제를 살렸으나 국방비 과다지출로 임기중 국가 부채가 3배로 늘어나 3조달러에 달했다.이란에 무기를 밀매하고 그 돈으로 니카라과 콘트라 반군을 몰래 지원한 ‘이란-콘트라’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다. mip@seoul.co.kr
  • [레이건 사망] ‘세계제국’ 꿈꿨던 배우대통령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대통령에 취임한 지 69일만에 로널드 레이건이 6발의 총격을 받아 수술실로 갈 때였다.그는 병상에 누워 의사들에게 “당신들 모두가 공화당원이기를 바란다.”고 농담을 던졌다.그의 낙천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정치적 감각이 비상함을 보여 준다. 1991년 자서전에서 그는 ”나의 꿈은 모두 실현됐다.”고 말했다.그러나 출발은 화려하지 않았다.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연거푸 지냈지만 1980년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섰을 때만 해도 ‘3류 배우’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레이건은 1911년 일리노이주 탐피코에서 구두 세일즈맨인 존 레이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음주벽이 심한 부친과 지병으로 고생한 모친을 두는 등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그러나 종교를 강조한 모친의 영향으로 미소와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늘 ‘영웅주의’에 이끌렸다.10대 때 좌우명은 ‘인생은 위대하고 달콤한 노래같은 것’이었다. 유레카 대학을 졸업한 1932년 그는 아이오와 지역 라디오 방송의 아나운서로 취직했다.당시 시카고 컵스팀의 야구경기를 ‘전신’만 보고 실황중계,능력을 인정받았다.이후 워너브러더스의 테스트를 받아 합격한 뒤 영화배우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B급 영화에만 출연제의가 왔고 맡은 역할도 침팬지를 기르는 대학 교수나,풋볼 선수 등으로 대중적 이미지를 얻지 못했다.그보다는 ‘위대한 전달자’ 라는 평판에 걸맞게 뛰어난 언변과 협상력으로 영화배우조합 활동에 주력,두차례나 조합장을 맡았다. 그는 1954년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주말 TV 시리즈물로 종업원들의 사기를 복돋우고 애로사항을 전하는 사회자 역할을 맡았다.당시만해도 레이건은 뉴딜 정책을 추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영웅으로 신봉하는 민주당원이었다.그러나 근로자의 과중한 세금부담과 정부규제 등에 눈을 뜨면서 점차 보수주의자로 바뀌었다. 전국적 인물로 알려진 것은 1964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배리 골드워터를 위한 연설을 하면서부터다.민주당의 린든 존슨 대통령에 패배했지만 그의 직설적 언변은 시사 주간지 타임이 ‘암울한 선거운동 가운데 한줄기 빛’으로 묘사할 만큼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이후 1980년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을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미 4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를 일관한 사상적 배경은 두가지다.‘작은 정부’와 ‘반공주의’다.작은 정부는 세금감면과 정부지출 감소 및 규제완화라는 ‘레이거노믹스’로 실현됐다.취임 2년간 기록적인 실업률과 은행과 농장의 파산으로 레이거노믹스는 비판을 받았으나 1983년부터 인플레이션이 꺾이고 고용이 늘면서 2차대전 이후 최고의 팽창기를 맞았다. 반공주의는 옛 소련과의 군비경쟁과 ‘스타워스’로 이어졌고 결국 소련이 핵감축 등에 합의,냉전종식의 밑바탕이 됐다.그러나 국방비 과다지출로 재정적자가 심화돼 1987년 10월 19일 미국 증시가 대폭락,‘레이거노믹스’는 역사의 뒷전으로 사라졌다.니카라과 좌파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이란에 무기를 판 돈으로 콘트라 반군에 지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레이건은 정확한 사실을 모른다고 말해 행정 장악력이 취약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통령에서 물러날 당시 역사학자들로부터는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최근에는 케네디 이후 최고의 대통령으로 재조명됐다.1994년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 10년간 투병생활을 했다. mip@seoul.co.kr ■로널드 레이건 일생 -1911.2.6. 일리노이주에서 출생 -1932. 일리노이 유레카대 경제학과 졸업 -1937.영화‘사랑은 방송중’으로 데뷔 -1947. 미국영화배우협회 회장 당선 -1952.3. 낸시 데이비스와 재혼 -1962. 공화당 입당 -1966.11. 캘리포니아 주지사 당선 -1976.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 낙선 -1980.11. 40대대통령 당선.81년 1월 취임 -1981.3.30. 워싱턴의 호텔에서 피격 -1984.11. 대통령 재선 -1989.1. 퇴임,캘리포니아로 귀향 -1994.11. 알츠하이머 병 앓아왔다고 발표 -2001.10.11. 가장 오래 생존한 미국 대통령이 됨 -2004.6.5. 93세 일기로 타계
  • [레이건 사망] ‘세계제국’ 꿈꿨던 배우대통령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대통령에 취임한 지 69일만에 로널드 레이건이 6발의 총격을 받아 수술실로 갈 때였다.그는 병상에 누워 의사들에게 “당신들 모두가 공화당원이기를 바란다.”고 농담을 던졌다.그의 낙천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정치적 감각이 비상함을 보여 준다. 1991년 자서전에서 그는 ”나의 꿈은 모두 실현됐다.”고 말했다.그러나 출발은 화려하지 않았다.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연거푸 지냈지만 1980년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섰을 때만 해도 ‘3류 배우’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레이건은 1911년 일리노이주 탐피코에서 구두 세일즈맨인 존 레이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음주벽이 심한 부친과 지병으로 고생한 모친을 두는 등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그러나 종교를 강조한 모친의 영향으로 미소와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늘 ‘영웅주의’에 이끌렸다.10대 때 좌우명은 ‘인생은 위대하고 달콤한 노래같은 것’이었다. 유레카 대학을 졸업한 1932년 그는 아이오와 지역 라디오 방송의 아나운서로 취직했다.당시 시카고 컵스팀의 야구경기를 ‘전신’만 보고 실황중계,능력을 인정받았다.이후 워너브러더스의 테스트를 받아 합격한 뒤 영화배우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B급 영화에만 출연제의가 왔고 맡은 역할도 침팬지를 기르는 대학 교수나,풋볼 선수 등으로 대중적 이미지를 얻지 못했다.그보다는 ‘위대한 전달자’ 라는 평판에 걸맞게 뛰어난 언변과 협상력으로 영화배우조합 활동에 주력,두차례나 조합장을 맡았다. 그는 1954년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주말 TV 시리즈물로 종업원들의 사기를 복돋우고 애로사항을 전하는 사회자 역할을 맡았다.당시만해도 레이건은 뉴딜 정책을 추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영웅으로 신봉하는 민주당원이었다.그러나 근로자의 과중한 세금부담과 정부규제 등에 눈을 뜨면서 점차 보수주의자로 바뀌었다. 전국적 인물로 알려진 것은 1964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배리 골드워터를 위한 연설을 하면서부터다.민주당의 린든 존슨 대통령에 패배했지만 그의 직설적 언변은 시사 주간지 타임이 ‘암울한 선거운동 가운데 한줄기 빛’으로 묘사할 만큼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이후 1980년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을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미 4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를 일관한 사상적 배경은 두가지다.‘작은 정부’와 ‘반공주의’다.작은 정부는 세금감면과 정부지출 감소 및 규제완화라는 ‘레이거노믹스’로 실현됐다.취임 2년간 기록적인 실업률과 은행과 농장의 파산으로 레이거노믹스는 비판을 받았으나 1983년부터 인플레이션이 꺾이고 고용이 늘면서 2차대전 이후 최고의 팽창기를 맞았다. 반공주의는 옛 소련과의 군비경쟁과 ‘스타워스’로 이어졌고 결국 소련이 핵감축 등에 합의,냉전종식의 밑바탕이 됐다.그러나 국방비 과다지출로 재정적자가 심화돼 1987년 10월 19일 미국 증시가 대폭락,‘레이거노믹스’는 역사의 뒷전으로 사라졌다.니카라과 좌파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이란에 무기를 판 돈으로 콘트라 반군에 지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레이건은 정확한 사실을 모른다고 말해 행정 장악력이 취약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통령에서 물러날 당시 역사학자들로부터는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최근에는 케네디 이후 최고의 대통령으로 재조명됐다.1994년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 10년간 투병생활을 했다. mip@seoul.co.kr ■로널드 레이건 일생 -1911.2.6. 일리노이주에서 출생 -1932. 일리노이 유레카대 경제학과 졸업 -1937.영화‘사랑은 방송중’으로 데뷔 -1947. 미국영화배우협회 회장 당선 -1952.3. 낸시 데이비스와 재혼 -1962. 공화당 입당 -1966.11. 캘리포니아 주지사 당선 -1976.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 낙선 -1980.11. 40대대통령 당선.81년 1월 취임 -1981.3.30. 워싱턴의 호텔에서 피격 -1984.11. 대통령 재선 -1989.1. 퇴임,캘리포니아로 귀향 -1994.11. 알츠하이머 병 앓아왔다고 발표 -2001.10.11. 가장 오래 생존한 미국 대통령이 됨 -2004.6.5. 93세 일기로 타계 ˝
  • [하프타임] 김소희 레이크사이드여자오픈 우승

    신인 김소희(22·빈폴골프)가 4일 경기도 용인 레이크사이드골프장(파72·6368야드)에서 열린 레이크사이드여자오픈골프대회 마지막 3라운드에서 2언더파 70타를 쳐 사흘 내내 선두를 지킨 끝에 합계 14언더파 202타로 우승했다.지난해 2부투어에서 네 차례나 ‘톱10’에 오르며 프로테스트를 면제받고 데뷔한 김소희는 두번째 대회만에 우승컵을 안았다.암투병 중에도 코스를 따라다닌 아버지 김주영(51)씨를 위해 ‘아빠 사랑해요.’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나온 김소희는 “아버지께 큰 선물을 드려 너무 기쁘다.”며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 오답도 우열도 없는 서울 용암초 이순희선생님의 도예교실

    “선생님∼.이거 이렇게 하면 돼요?” “선생님∼.망친 거 같아요.”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2가동 용암초등학교 4층 실과실.1학년 학생들이 흙으로 범벅이 된 손을 들어 선생님을 찾았다.먹이를 재촉하는 새끼 제비가 이럴까.담임 이순희(51·여) 교사는 아이들의 물음에 일일이 답을 해주면서도 마냥 즐거운 듯했다. 이날 수업은 1학년 2반의 도예수업.‘청토로 액자만들기’시간이다.아빠,엄마가 미리 적어보내준 글을 고사리같은 손으로 오몰락 조몰락 흰 흙을 실지렁이처럼 떼어다 흙판에 붙이는 아이들의 눈은 여느 수업보다 진지하기만 했다.‘밥 잘 먹자.’‘엄마 말 좀 들어라.’‘일찍 일어나자.’ 등 내용도 갖가지다. 저학년은 참기 힘든 1시간20분의 긴 시간이지만 지루해하는 아이는 없었다.“컴퓨터 오락보다 더 재미있다.”는 재필(8)이는 맨 먼저 ‘작품’을 완성한 뒤 친구들의 손놀림을 간섭했다.희주(8·여)는 지난 시간에 만든 화분에 심은 봉선화에 새 싹이 돋은 것을 뽐내느라 진도가 늦어지는 줄도 몰랐다. 도예시간은 이 학교 학생이라면 가장 인기있는 수업으로 손꼽는다.도예수업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01년.이 교사의 노력으로 평생교육 시범학교로 지정되면서 학부모 20여명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학부모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용기를 얻은 이 교사는 이듬해 학부모 대신 생활도예반을 특별활동반으로 운영,4∼6학년들을 가르쳤다. 지난해부터는 전교생으로 대상을 넓혔다.학생들은 1년 동안 80분씩,10차례 수업을 받고 있다.수업시간은 이 교사의 정규 수업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활용했다.수업 주제는 전 학년을 똑같게 하되 난이도를 조정해 수준별 수업이 이뤄지도록 했다.머그잔과 화분 등 학생 스스로 만든 것을 실생활에 직접 활용하도록 하니 교육 효과로도 ‘딱’이었다. 한 학기 수업에 필요한 흙은 모두 600㎏.매 학기 대치동에 있는 전문점에서 한꺼번에 구입,서늘한 학교 지하창고에 저장해 두고 사용한다.한 차례 수업에 드는 흙은 약 10㎏으로 5000원이 채 안 든다.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업개선교사로 뽑힌 이 교사는 서울시교육청에서 지원하는 올 한 해 연구비 100만원의 거의 대부분을 흙을 사는데 사용했다. 그의 노력이 알려지면서 지난해에는 관할구청인 용산구청에서 400만원짜리 전기가마를 지원했다.실과실에 설치된 지름 1m,높이 1.5m 크기의 가마는 온도와 시간만 입력해주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하지만 1200도의 고온에서 작업이 이뤄지는 만큼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방과 후 이 교사 혼자 초벌·재벌구이를 한다. 올해 그는 목표 하나를 세웠다.도예수업을 다른 학교로 널리 퍼뜨리는 것이다.도예교육의 효과를 체험한 덕분이다.산만한 아이들은 차분해졌다.공격적인 성향의 아이들도 몰라보게 얌전해졌다.주민 이모(31·여)씨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수업 도우미를 자청했다. 5년 전 뇌수술에 이은 투병생활로 자신의 주민등록번호조차 기억하지 못하던 이씨의 기억력은 거의 매일 수업에 참여하면서 사고 전의 기억력을 거의 회복했다. 이 교사는 “교단에 선지 25년이 흘러서야 미술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 안타깝지만 앞으로 도예수업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고 교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02)796-2167.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美軍감축 작년 2월 통보받아” 공식확인

    정부는 주한미군 감축을 포함한 미군 재배치 계획을 지난해 2월 미국측으로부터 공식 통보받은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열린우리당 소속인 장영달 국회 국방위원장은 이날 기자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이던 지난해 2월4일 당시 민주당 의원들과 미국을 방문,폴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을 만났을 때 울포위츠가 ‘2003년 6월부터 전 세계 미군 재배치 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며,여기에는 한국도 포함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장 위원장은 “울포위츠의 발언을 듣고 노 대통령 당선자와 국방부 장관 등 정부 당국자들에게 미국측의 계획을 알려줬으며,정부는 최근의 미군 재배치에 대해 오래전부터 대비해 왔다.”고 덧붙였다. 책임있는 여권 당국자가 지난해 2월 이미 미측으로부터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을 통보받았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하기는 처음이다.지난해 2월 장 위원장과 정대철 대통령 당선자 특사 등이 방미기간 한·미간에 주한미군 재배치 논의가 있었다는 기사가 일부 언론에 보도된 적은 있었으나,지금까지 여권은 그같은 관측을 공식 부인해 왔다. 장 위원장은 “군사문제는 고도의 보안이 필수적이어서 국민에게 미리 알리지 못했다.”면서 “노 대통령도 지난 21일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미국과의 협의사항인데,미리 발표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니 곤혹스럽다.’고 하더라.”고 전했다.장 위원장은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울포위츠 부장관 등은 1989년 미 의회에서 통과된 ‘넌-워너 수정안’을 재가동해 주한미군을 감축,재배치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이 수정안의 핵심은 90년부터 2000년까지 3단계에 걸쳐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것이다.이에 따라 1단계(90∼92년) 기간에 공군 및 비전투병력 6987명이 철수했으나,제2단계가 진행되던 93년 북핵 문제가 터져 철수작업이 전면 유보됐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1년여 준비작업 끝에 지난해 11월 해외주둔군 재배치(GPR) 구상을 공식 발표했다. 장 위원장은 “첨단과학시대에 지상군의 규모에 연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면서 “주한미군은 이제 지상군을 상징적인 규모만 남겨놓고 대폭 축소하고,대신 해군과 공군 전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아하 그렇구나] 리메이크 앨범 낸 JK김동욱

    왜 하필 죽은 사람들의 음악을 선택했을까.하지만 어두울 거란 생각은 기우다.그의 목소리는 창에 스며드는 따스한 봄볕처럼 포근하게 세상을 떠나버린 사람들의 오라(aura)를 감싸안는다. JK김동욱(29).그가 최근 발표한 2.5집 ‘Memories in Heaven’은 유작 리메이크 모음집이다.첫 CD엔 김광석,김현식,유재하 등 국내음악이,둘째 CD엔 마빈 게이,지미 헨드릭스,토미 볼린 등의 외국음악이 그만의 색채로 다시 불려졌다.“고인이 된 선배들의 곡이 조금씩 잊혀져 가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에겐 사실 죽음을 추억하는 것이 익숙하다.처음 진지하게 음악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도 죽마고우가 군대에서 죽음을 맞이한 뒤였다.이름에 붙여진 K자도 캐나다 유학시절 암에 걸려 투병중이던 옆집 꼬마아가씨 이름인 케이트에서 따왔다.“처음엔 서글프고 화가 나기도 했죠.하지만 지금은 삶보다 죽음이 더 길다는 생각을 합니다.” 절친한 사람들을 잃고난 뒤 더 성숙해져서일까.그의 목소리는 나이답지 않은 깊은 울림이 있다.데뷔 당시에는 임재범과 비슷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록 보컬로 출발한 임재범과 달리 그의 목소리는 둥글고 깊게 감싸안기에 솔과 재즈에 잘 어울린다.드라마 ‘위기의 남자’의 삽입곡 ‘미련한 사랑’으로 스타덤에 오른 탓에 아직도 그를 발라드 가수로 오해하는 이들도 많지만,그의 음악적 뿌리는 솔과 재즈다.대학에서의 전공도 재즈 보컬이다. 솔풍의 발라드 위주였던 데뷔앨범 ‘Lifesentence’(2002년)와 달리 재즈와 랩 등으로 장르를 넓힌 ‘Multiplepersonalize’(2003)에 이어 이번 앨범도 재즈에 많이 기대고 있다.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는 보사노바 스타일의 재즈로,김현식의 노래 ‘내 사랑 내 곁에는’는 스탠더스 재즈로 편곡되는 등 그의 목소리 위로 서로 다른 느낌의 재즈가 화사한 붓질을 했다. 그의 목소리도 곡마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감칠맛나게 때로는 간지럽게 파고들면서 다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색깔이 뚜렷한 곡들이라 처음엔 잘 소화해낼 지 두려웠어요.곡의 느낌을 깨지 않으면서 곡마다 다른 나만의 색깔을 담고 싶었습니다.” 70년대 인기를 끈 ‘장계현과 템페스트’의 베이시스트였던 아버지로부터 가장 많은 음악적 영향을 받았다는 그는 “피는 못 속이더라.”며 멋쩍게 웃었다.어릴 때는 음악을 하느라 자주 집을 비우는 아버지가 싫었고,좀 자란 뒤에는 거꾸로 아버지가 힘들다며 음악을 하는 것을 반대했지만,그는 결국 뮤지션의 길로 들어섰다. 데뷔 3년차 가수지만 “하고 싶은 음악이 너무도 많다.”는 그에게 음악은 숙명적인 듯했다.하지만 음반시장이 침체화되고 가수들이 엔터테이너화되는 요즘 시대에 뮤지션의 길을 걷기란 힘들지 않을까.“아무리 피와 땀을 쏟아내 음악을 만들어도 팬들이 사랑해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음악이 없는 세상이란 상상할 수도 없잖아요.” 김소연기자 purple@˝
  • [기획] 美서 본 주한미군 이라크 재배치

    미국이 주한미군 3600명을 이라크로 차출한 것과 관련,워싱턴 조야의 시각은 거의 같다.미 국방부가 마련한 ‘수정된 신(新)군사전략’과 이에 따른 ‘해외주둔군 재배치전략(GPR)’의 일환이라는 점이다.일각에서 제기된 한·미간 이견이나 이라크 추가파병 지연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말한다.이라크 사태가 새로운 군사전략의 도입 시기를 앞당겼을 뿐이며,필요한 곳에 병력을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는 지적이다.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미군의 새 전략은 특정한 ‘적’을 상대로 특정한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장기간 주둔시키는 기존의 개념을 거부한다.소규모로 무기를 첨단화·경량화해 예상치 못한 적들을 빠르고 강력하게 격퇴한다는 식이다.그런 측면에서 옛 소련을 상대로 독일이나 한반도 주변에 20만명의 병력을 배치한 것은 비효율적으로 본다.여단급 단위로 병력을 개편,이동성을 높인 ‘신속군’ 개념이 21세기에 적합하다고 본다. ●새로운 군사전략 한반도 첫 적용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24일 정례 브리핑에서 “주한미군 차출은 GPR의 일환으로 한국 정부와 긴밀히 논의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일부 병력을 감축한다고 해서 지역안정을 유지한다는 우리의 공약은 약화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도 최근 의회에 출석,미군의 개혁과 21세기 군사전략을 상세히 밝혔다.그는 특히 ▲해외주둔군의 군사능력과 각 지역의 특정한 상황을 조합하는 방식을 재고하고 ▲언제,어느 장소에서나 미군의 작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주둔군 병력 보충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해외주둔 미군을 재배치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울포위츠 부장관은 특히 새 전략은 한반도에도 적용될 것이며,이는 세계 각지에서 미 병력의 순환배치를 더욱 용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와 관련,워싱턴의 군사소식통은 “한반도의 대치 상황이 미군 주둔이라는 상징성에만 의존하던 과거와 달라졌으며 군사작전이 진행되는 지역에는 미군 병력을 신속하게 배치해야 한다는 점을 밝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21세기 미군의 군사능력은 병력이나 탱크,전함,전투기의 수가 아니라 실질적인 전투능력에 달렸다고 줄곧 강조했다.리언 러포트 주한 미군사령관 역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대북 억지력을 증대하기 위해 4년간 정보·정찰·감시·지휘통제·작전수행 능력의 증강과 신속한 군의 배치 등을 다짐했다.주한 미군을 감축하더라도 첨단무기로 군사력을 보강하면 연합방위력은 증강될 수 있다는 백악관의 입장과 일치한다.물론 그 비용은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대규모 병력의 주둔은 비효율적이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투에서 배운 점을 4가지로 꼽는다.정보의 중요성,병력 배치의 신속성,공격의 정확성과 치명성 등이다.특수부대가 공격에 앞서 적군의 통신 기간망과 사령부의 위치 등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개전 초기 치명적 타격을 입히는 게 승리의 원동력이라고 미 합참은 지난해 의회에 낸 보고서에서 평가했다. 미군은 이에 따라 군사교본에서 ‘전장(battlefield)’이라는 기존의 용어 대신 ‘전투공간(battle space)’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육·해·공군의 역할이 수평적으로 분리된 게 아니라 하나의 지휘·통제선에서 동시에 이뤄진다는 개념이다.정보당국과 군의 합동작전이기도 하다.기업측 관점에선 전투마다 ‘태스크 포스’가 움직이는 것으로 보면 된다. 울포위츠 부장관은 이를 ‘압도적인 군사력’이라고 표현했다.후속 지원부대가 올 때까지 전장에서 마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전쟁의 시작과 끝이 한꺼번에 이뤄진다고 했다.예컨대 9·11테러가 터진 뒤 한 달도 안된 10월7일 부시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공격 계획을 지시했고 2주 뒤 특수부대가 현지에 투입됐다.이어 11월13일 카불이 미군에 떨어졌다. 이처럼 신속한 작전이 요구되는 시점에 육군 전투병력 2만 8000명을 한반도에 반영구적으로 상주시킬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을 국방부가 제기했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미 군사전문가들도 한반도뿐 아니라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 해병대 2만여명도 재배치할 것을 강조한다.이같은 논리가 주한 미군의 차출로 이어졌고 장기적으로 감축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게 워싱턴 안팎의 시각이다. ●디지털로 향하는 미군의 개편 과거 2개의 전쟁지역(예를 들면 중동과 한반도)에서 동시에 이긴다는 정형화한 ‘윈윈 전략’은 사라졌다.대신 미군이 필요한 지역이면 어디든지 최강의 군사력으로 통렬한 승리를 거둔다는 개념이 도입돼 미 육·해·공군의 개편도 빨라지고 있다. 현재 미군의 병력 수는 139만명으로 육군이 10개 사단 등에 48만명,해군이 12개 항공모함을 포함해 38만명,공군이 36만명,해병대가 17만명 등이다.당초 국방부는 병력 수를 대폭 감축할 계획이었으나 이라크전쟁 등을 겪으면서 병력 교체 등에 어려움이 있자 현 병력을 상당부분 유지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육군은 앞으로 25년에 걸쳐 현재 사단급 규모를 여단급의 신속군으로 개편하는 동시에 기계화사단을 디지털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해군은 전함에 승선한 병력 수를 줄이고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구축함과 토마호크 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 개조를 서두르고 있다. 군함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작업도 병행 중이다.공군은 무인항공기 개발과 우주통신 및 미사일 방어(MD)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한편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달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만 미군을 1만 5000명 줄여야 한다고 보도했다. 의회예산국(CBO)은 주한 미군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절반 또는 1000명까지 줄이는 방안을 검토했으나,국방부는 의회가 예산 차원에서 분석한 ‘검토안’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mip@seoul.co.kr ■ 美군사전문가들의 분석 |워싱턴 백문일특파원|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과 관련,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과 군사 소식통들은 동북아 정세나 한반도 안보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진단한다.경제 전문가들도 한국의 경제규모를 감안할 때 주한미군 10%의 차출은 작은 것에 불과하며 한국 경제의 신인도를 추락시키는 요인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 선임연구원은 “한국과 일본,태평양 지역에서 미군의 중복되는 지휘체계가 효율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며 “한·미 양국간 시작된 주한미군 감축 논의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점증하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감안하면 비무장지대(DMZ)에 배치한 미 2사단의 병력은 더이상 필요 가치가 없으며,장기적으로는 병력 수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오핸런 연구원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새로운 군사전략을 강조한 것을 감안하면 주한미군뿐 아니라 일본 오키나와에 미 해병대 2만명을 계속 주둔시킬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한반도에서 미군의 ‘인계철선(tripwire)’이 사라져야 한다는 책을 출간해 유명해진 CATO연구소의 더그 밴도 선임 연구원은 “한국은 스스로 방위할 능력이 충분하며 미국은 한반도에서 점차적으로 완전 철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위험스러운 존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대부분의 행동은 국제사회의 주의를 끌려는 ‘절망적인’ 시도이며,한국을 공격하려는 의도보다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일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핵이나 미사일을 개발하고 확산하려는 것도 남한을 공격하기 위한 방편이기보다 고립된 환경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 수석 경제학자를 지낸 마이클 무사 국제경제연구소(IIE) 선임연구원은 “주한미군을 차출하는 것은 한반도 안보나 한국의 경제상황에 결코 ‘큰 문제(big deal)’가 아니다.”며 “대외신인도에 영향을 주느냐가 관건인데,당장 철군이 결정된 것도 아닌데다 한·미 방위력에 변화가 없다는 미 국방부의 다짐으로 경제적인 측면에 부정적 영향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 美예비군 추가 동원은 어려워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미군이 주한미군을 차출하지 않고 자체 예비군을 추가로 동원할 수는 없는 것일까.현재 이라크에 배치한 병력 13만 8000명 가운데 약 28%인 3만 9000여명이 동원 예비군들이다.이들은 1년 또는 9개월 단위로 교체되는 현역과 달리 2년간 근무 예정으로 미 본토에서 차출됐다. 그러나 추가 동원은 현재로선 어렵다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설명이다.예비군 동원은 정치적 결정으로 부시 행정부의 대선가도에 큰 부담이 되는 데다 미 예비군 120만명 가운데 18%인 21만여명이 9·11테러 이후 각종 군사작전에 동원돼 여력이 많지 않아 한계가 있다. 게다가 이라크 상황은 치안 유지를 위해 전투병력이 요구되지만 예비군들은 통상 1∼2주간 기본훈련만 받고 부대에 배치,대테러 임무를 위한 소탕작전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다.더욱이 포로 학대 문제를 일으킨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의 헌병들처럼 긴급히 동원되는 바람에 후방지원 임무에 관한 수칙을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은 최소 2년간의 복무기간을 마친 현역병들을 본인의 의사에 따라 현역에 잔류시키며,전역을 희망할 경우 ‘주방위군(National Guard)’이나 ‘동원예비군(Ready Reserve)’으로 양분된 예비군에 편성한다. 45만명에 이르는 주 방위군은 주 정부 산하의 전투 및 전투 지원,전투근무 지원 등의 부대에 배치된다.평상시 직장을 다니다가 한달에 이틀씩 1년에 최장 2주간의 훈련을 받는다.육군 35만명,공군 11만명이다.일반 동원예비군은 주 정부 소속이 아니라 각자의 직장에 가까운 국방부 예하 지원부대에 편성된다.동원 명령을 받으면 직장을 휴직하고 2주 정도의 기본훈련을 받은 뒤 현장에 배치된다.동원기간이 끝나면 직장에 복귀할 수 있으며 회사는 이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줄 수 없다. ˝
  • 암울한 80년대 ‘인권지킴이’ 잠들다

    한승헌·이돈명씨 등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꼽히는 유현석 변호사가 25일 오후 별세했다.향년 77세. 52년 제1회 판·검사 특별임용시험에 합격해 법조계에 발을 들여놓은 유 변호사는 14년간의 판사 생활을 마치고 66년 변호사로 개업한 뒤 명동 구국선언문 사건을 비롯,시국·공안사건의 변호를 도맡았다. 유 변호사는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된 민주화 인사들의 변론을 맡아 당시 서슬이 퍼렀던 군사법정에서 “용기를 내 법관으로서 양심에 맞는 판결을 해달라.”고 재판장을 훈계,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80년대 들어 권인숙양 성고문 재정신청 사건,박종철·강경대군 치사사건,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 등 사회적 이목을 끌었던 주요 공안사건의 변론도 맡았다.이같은 공로로 지난해 대한변협이 주관하는 제34회 한국법률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고문인 유 변호사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대리인단의 대표로 법정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지만 지난 4일 극심한 복통으로 쓰러져 투병생활을 해왔다.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기각 결정이 나왔던 12일 문재인 변호사 등 대리인단이 유 변호사가 투병중인 병실에 들러 소식을 전하려 했지만 혼수상태에 빠져 끝내 기각 소식을 듣지 못했다. 유족으로는 원규(서울고법 부장판사)·형규(미국 리드대 교수)·이규(작은형제회 신부)·정규(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상규(한국주택금융공사 홍보실장)·지영(신사중 교사)씨 등 5남1녀가 있다.빈소는 서울대병원,장례미사는 27일 오전 10시 서울 혜화동 천주교회에서 봉헌된다.(02)760-2091∼2. 박경호기자 kh4right@˝
  • “희귀·난치병 고통 나누자”

    사단법인 희귀·난치성질환자연합회는 23일 오전 건국대 새천년홀에서 ‘희귀·난치성 질환자의 날’을 선포했다. 로또공익재단이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희귀·난치성 질환자와 가족,각계 인사 900여명이 참석해 선포식을 기념했다.연합회 신현민 회장은 “현재 국내에는 110여종 50만여명의 희귀·난치성 질환자들이 병명과 치료방법도 모른 채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며 “희귀·난치성 질환자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회와 로또공익재단은 지난 한 달 동안 희귀·난치성 질환자의 날 제정을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여 5만여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김성수기자 sskim@˝
  • 케리 “당선되면 이라크서 철군”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미국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존 케리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은 대통령에 당선되면 첫 임기 4년 안에 이라크에서 거의 모든 전투병력을 빼내 올 것이라고 공언했다. 케리 의원은 19일 AP통신과의 회견에서 “이라크는 베트남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 병력이 명예롭고 국익에 맞게 이라크에서 빠져 나오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병력의 이동 배치를 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지금의 방식처럼 심각한 ‘죽음의 지대’에 개입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케리 의원은 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우방과의 관계를 손상시켰다고비난하며 손상 정도가 너무나 심각해 새로운 대통령만이 관계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는 “지금은 미국이 영향력과 존경심,세력을 심하게 잃어버린 시기이고,우리는 이 때문에 전세계에서 대가를 치르고 있다.”면서 “대통령이 되면 다른 나라를 설득해 이라크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토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문제와 관련,케리 의원은 “이스라엘은 적절한 억제 수단으로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면서 이스라엘 지지 의사를 밝혔으며,포로 학대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이라크와 관타나모에서 제네바 협약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교육부 직원 “백혈병 동료 돕자”

    교육인적자원부는 정기적으로 혈액을 투석해야 하는 백혈병의 일종인 ‘재생불량성 빈혈’으로 투병중인 국제교육협력과 김태경(33·여) 사무관을 위해 성금 모금에 나섰다. 김 사무관은 골수 기증자가 나타나 다음달 초 수술을 위해 지난 10일 1년 동안 휴직했다. 이 병은 피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함에 따라 주기적으로 외부에서 피를 공급해 줘야 하는 희귀병으로 정확한 치료법이나 치료약이 없다는 게 병원측의 설명이다. 97년 2월 국제전문직 공채 출신인 김 사무관은 프랑스에 있는 유네스코에 3년 동안 파견돼 근무하기도 했다. 공채 동기인 같은 과 박보배 사무관은 “수술이 성공해 예전처럼 같이 근무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박홍기기자 hkkpark@
  • 우연정 “15억 대출사기” 진정서

    70년대 유명 영화배우였던 우연정(55·본명 박희자)씨가 15억원의 대출사기를 당했다며 19일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냈다. 우씨는 진정서에서 “90년대 초 전 남편 H씨가 인천의 한 상호저축은행에서 돈을 빌리면서 내 명의로 된 인천 부평역 앞 상가건물(시가 32억원)을 나 몰래 17차례에 걸쳐 연대보증의 담보로 제공했다.”며 “담보금액은 모두 15억 7000만원”이라고 말했다. 우씨는 “H씨의 담보제공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2000년 7월 상호저축은행이 채권회수를 위해 상가를 경매하면서 처음 알게 됐다.”고 밝혔다.금감원은 해당 저축은행이 대출 과정에서 H씨와 공모하거나 절차상 잘못을 했는지 여부를 조사할 방침이다. 70년대 영화배우로 활약했던 우씨는 오른쪽 허벅지에 골수암이 생겨 3년간 투병하다가 한쪽 다리를 잘랐으며 영화 ‘그대 앞에 서리라’(81년)에서 자신의 투병경험을 공개했었다. 김태균기자 windsea@
  • [희귀병 환자에 희망을] 깊은시름 덜어 준 감동의 선물

    [희귀병 환자에 희망을] 깊은시름 덜어 준 감동의 선물

    “원빈 형,장동건 형을 좋아하는 만큼이나 우리 형을 좋아하거든요.” 지난 5일 어린이날.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는 최진홍(12)군은 큰 ‘선물’ 하나를 받았다.자신을 극진히 돌봐주는 형 태홍(18)군과 유원지에 가고 싶다는 소원을 이룬 것이다. 휠체어를 탄 진홍이가 사람 많은 유원지에서 놀기는커녕,마음 편히 돌아다니는 것조차 힘들다.진홍이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로또공익재단에서 홍보팀의 도움으로 부천의 테마파크 아인스월드에서 형과 함께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너무 재미 있었어요.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장소네요.나나 형이 좋아하는 원빈형이 영화를 찍었기 때문에요.” 서울신문,로또공익재단과 같이 하는 ‘희귀병환자에 희망을’ 캠페인의 하나로 본지에 게재됐던 희귀병 환자 3명의 소원을 들어주는 ‘소원 들어주기’프로그램이 어린이날 선물로 실시된 것이다.진홍군,부모님과 함께 첫 뮤지컬 관람을 원한 김민섭(5)군,어린 딸과 같이 잘 수 있는 넓은 침대를 바랐던 최경하(33·여)씨의 소원이 로또공익재단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뮤지컬 관람도 관람이지만,온 가족이 처음으로 같이 외출했어요.그것만으로도 너무 좋습니다.” 두개골골간단형성부정증을 앓고 있는 민섭이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뮤지컬을 관람하면서 내내 부모님 손을 놓지 않았다.흥분과 기쁨이 혹시나 사라질까 두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루프스병을 앓고 있는 최경하씨는 지난 8일 ‘넉넉히 큰 침대’를 받았다.투병 중에 목숨걸고 낳은 딸 문주희(6)양과 편하게 같이 잘 수 있게 됐다.“아픈 엄마가 기운이 없어 제대로 업어주지도,책도 읽어주지 못해 늘 가슴이 아팠습니다.”주희는 언제 어머니가 또 아플까 걱정돼 잘 때도 엄마 곁을 뜨지 않으려 하지만,침대가 좁아 어머니 옆에서 새우잠을 자곤했다.새 침대에 딸과 함께 앉아 희색을 감추지 못한 최씨는 “주희가 꼭 이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크길 바란다.”고 감사의 말을 대신했다.후원계좌번호:국민은행 480001-01-158778 (사)한국희귀난치성질환협의회. 채수범기자 lokavid@
  • [문화마당] 골방의 기록/ 백지연 문학평론가

    청춘의 고독과 방황을 섬세하게 그려낸 여러 소설들 중에서도 김승옥의 작품들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우리 소설사에서 김승옥만큼 화려하고 짧게 당대의 소설계를 빛낸 작가도 드물 것이다.그의 소설은 6·25전쟁 후 황막한 폐허 속에서 움트기 시작한 예술적 자의식을 새로운 형태로 보여주었다.한 예로 그의 ‘무진기행’의 마지막 구절은 지금 읽어도 그 청신한 감수성에 가슴이 설렌다. “한 번만,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안개를,외롭게 미쳐가는 것을,유행가를,술집 여자의 자살을,배반을,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다.꼭 한 번만.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라는 주인공의 고백 속에서 자신의 방황에 대한 위로와 확인을 얻은 문학 청년이 한 두 명이 아니었으리라.청춘이 증명하는 자기결벽과 우울증을 이처럼 아름답고 명징하게 그려낸 소설가도 없다. 얼마 전 출간된 김승옥의 산문집 ‘내가 만난 하나님’(작가)을 읽으면서 새삼스러운 감회에 사로잡힌 것도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작가의 투병과정 중에 출간된 이 책은 한 시대의 빛나는 기록들을 담고 있는 솔직한 자기고백서라는 점에서 특별한 느낌을 준다.물론 제목이 상징하듯이 산문집의 절반 이상을 채우고 있는 것은 작가의 절실한 신앙간증이다. 신선한 감수성으로 한국소설사를 장식했던 명민한 재능의 소유자가 어느 순간 소설쓰기를 중지하고 종교에 귀의하게 된 일은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다.소설을 쓰다가 영화각본을 쓰고 영화감독으로 데뷔도 하였다가 잡지사에서 근무하는 등 여러 행로를 거친 김승옥은 한동안 소설을 쓰지 못했다.유신시대와 민주화운동이라는 사회적 격류 속에서 충격과 분노 때문에 글을 쓰지 못했다는 그의 기록은 가슴 저릿하게 다가온다.그의 문학적 결벽증과 섬세한 감수성을 생각한다면 그를 찾아온 ‘종교적 계시’가 갑작스러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그 어느날 갑자기 ‘하얀 손’이 나타나 “인도에 가서 전도하라”(‘내가 만난 하나님’)는 명언을 내렸다는 그의 간증은 단순한 신앙고백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실제로 이 책에서 흥미롭게 다가온 것은 종교 이야기보다도 유년기와 대학시절에 관한 회고담이었다.‘옛날,하나님을 만나기 전’으로 표기되어 있는 과거사들은 작가 김승옥을 이해하는 또 다른 코드를 제공한다. 특히 ‘나의 첫 창작’은 김승옥 자신이 처음 ‘꾸며낸 이야기’에 대한 흥미로운 자료로 읽힌다.어린 김승옥에게 외사촌형과 그의 친구들이 속삭이던 여자친구 이야기와 음담패설은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높은 탑에서 서로 껴안고 있는 남녀가 있는 이상한 서울’에 대한 소년의 환상은 이후의 김승옥 소설에서도 자주 되풀이되는 문학적 모티프가 된다. 도시에 대한 동경과 좌절을 젊은이의 예민한 감수성으로 포착한 김승옥의 소설은 우리에게 남아있는 빛나는 소설의 기억이다.정든 누이와 어머니가 있는 서늘한 해풍을 등지고 찾아온 서울은 젊은이에게 안식을 주지 못한다.그에게 “우뚝우뚝 솟은 빌딩들이 몸뚱이의 한편으로는 저녁 햇빛을 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짙은 푸른색의 그림자를 길게길게 눕”(‘力士’)히는 도시의 고독한 풍경은 문학의 골방으로 파고들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김승옥의 글을 읽으면서 그 연약하고 섬세한 청춘의 감수성이 가슴 한 구석에 만든 생채기를 오래도록 들여다보게 되는 것은 괴롭고도 행복한 일이다. 백지연 문학평론가˝
  • [희귀병 환자에 희망을] 깊은시름 덜어 준 감동의 선물

    “원빈 형,장동건 형을 좋아하는 만큼이나 우리 형을 좋아하거든요.” 지난 5일 어린이날.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는 최진홍(12)군은 큰 ‘선물’ 하나를 받았다.자신을 극진히 돌봐주는 형 태홍(18)군과 유원지에 가고 싶다는 소원을 이룬 것이다. 휠체어를 탄 진홍이가 사람 많은 유원지에서 놀기는커녕,마음 편히 돌아다니는 것조차 힘들다.진홍이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로또공익재단에서 홍보팀의 도움으로 부천의 테마파크 아인스월드에서 형과 함께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너무 재미 있었어요.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장소네요.나나 형이 좋아하는 원빈형이 영화를 찍었기 때문에요.” 서울신문,로또공익재단과 같이 하는 ‘희귀병환자에 희망을’ 캠페인의 하나로 본지에 게재됐던 희귀병 환자 3명의 소원을 들어주는 ‘소원 들어주기’프로그램이 어린이날 선물로 실시된 것이다.진홍군,부모님과 함께 첫 뮤지컬 관람을 원한 김민섭(5)군,어린 딸과 같이 잘 수 있는 넓은 침대를 바랐던 최경하(33·여)씨의 소원이 로또공익재단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뮤지컬 관람도 관람이지만,온 가족이 처음으로 같이 외출했어요.그것만으로도 너무 좋습니다.” 두개골골간단형성부정증을 앓고 있는 민섭이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뮤지컬을 관람하면서 내내 부모님 손을 놓지 않았다.흥분과 기쁨이 혹시나 사라질까 두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루프스병을 앓고 있는 최경하씨는 지난 8일 ‘넉넉히 큰 침대’를 받았다.투병 중에 목숨걸고 낳은 딸 문주희(6)양과 편하게 같이 잘 수 있게 됐다.“아픈 엄마가 기운이 없어 제대로 업어주지도,책도 읽어주지 못해 늘 가슴이 아팠습니다.”주희는 언제 어머니가 또 아플까 걱정돼 잘 때도 엄마 곁을 뜨지 않으려 하지만,침대가 좁아 어머니 옆에서 새우잠을 자곤했다.새 침대에 딸과 함께 앉아 희색을 감추지 못한 최씨는 “주희가 꼭 이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크길 바란다.”고 감사의 말을 대신했다.후원계좌번호:국민은행 480001-01-158778 (사)한국희귀난치성질환협의회. 채수범기자 lokavid@˝
  • 한나라 “주한미군 감축 반대”

    “주한미군 차출은 한·미동맹의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강두 정책위의장) “미2사단 전투병력의 절반이 빠져 나가는데도 정부는 자꾸 ‘괜찮다.’고만 한다.”(이상득 안보정책 및 이라크파병대책특위 위원장) 18일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회의에서는 주한미군의 이라크 파견을 놓고 안보공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참석 당직자들은 사태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정부가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질타했다.그러면서도 주한미군이 빠져 나가는 만큼 국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이날 열린 안보정책 및 이라크파병특위 2차 회의에서는 주한미군 감축반대 입장을 정리했다.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전날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을 ‘이해한다.’고 밝힌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특위는 “국가의 안위가 달려 있고,국민적 관심사인 주한미군 감축을 어떻게 국민과 국회에 한마디 의견을 구함없이 대통령 혼자서 동의해 줄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특위는 또 “노 대통령은 수차례 한·미동맹이 이상없다고 강조한 바 있는데 아직도 한·미동맹이 건강하다고 보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이라크 추가파병에 대한 정부의 모호한 태도가 이런 사태를 촉발한 것 아니냐.”며 해명을 요구했다.이어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남아 있는 주한미군의 추가 감축도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며 대책을 추궁했다. 박대출기자 dcpark@˝
  • [나눔세상] 대일고 1회 졸업생 동창아들 백혈병 치료 돕기

    “고교시절 까까머리가 흰머리로 변해가지만 친구들의 30년 우정은 변함이 없네요.” 졸업한지 30년 가까이 된 고교 동기생들이 친구 아들의 백혈병 치료를 돕기 위해 십시일반으로 ‘우정’을 모으고 있다.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이는 1976년 2월 서울 강서구 등촌동 대일고등학교를 1회로 졸업한 안철호(47)씨.아들 상준(14·중학 2년)군의 투병 소식을 전해들은 동기생들이 2주만에 2600여만원의 성금을 보내왔다.졸업 이후 연락이 끊겼거나 해외에 사는 친구들까지 격려를 보냈다.동문회 홈페이지(www.daeil.org)를 통해 사연을 알게 된 후배들도 하나 둘씩 힘을 보태고 있다. ●2주만에 2600만원 모금 상준군이 백혈병 진단을 받은 것은 지난 4월 말.종아리의 큼직한 멍자국이 마음에 걸려 동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기본적인 검사를 마치고 “지체할 시간 없으니 바로 큰 병원으로 가라.”고 소견서를 써줬다. 그날 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상준군은 정밀검사를 받고 혈액암의 일종인 급성골수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안씨는 “책이나 TV에서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눈앞이 까마득해졌다.”고 그때의 심경을 밝혔다.1차 항암치료를 마친 상준군은 앞으로 4차례 치료를 반복한 뒤 골수이식수술을 받게 된다.대략 1억원이 넘는 치료비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안씨의 형편은 그리 넉넉하지 않다.한때 보험회사에 다녔던 안씨는 고교 시절 취미로 즐겼던 사진일을 직업으로 택해 20년 전 충무로에 사진관을 차렸다.그러나 안씨는 97년 IMF사태에 이어 최근 디지털카메라 붐 때문에 손님이 크게 줄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57년생 닭띠들의 희망심기 안씨의 처지는 우연히 동기생들에게 알려졌다.해외에 체류하다 일시 귀국한 김정현씨가 전화를 걸었다가 술 약속을 거절하는 안씨에게 이유를 캐물었다.김씨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은 동기회장 이근철씨가 몇몇 친구들과 대책회의를 가진 뒤 부지런히 전화와 이메일을 돌렸다.연락이 닿은 친구들은 적게는 5만원에서 많게는 500만원까지 선뜻 정성을 전해왔다. 이들은 평소 친목모임에서 ‘부모에게 마지막으로 효도하고,자녀에게 처음으로 홀대받는 475세대’(40대,70년대 학번,50년대생)라고 푸념해왔다.하지만 이들은 “서로 돕는 정이 살아 있으니,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고 입을 모았다. 고교 1학년 때 안씨와 단짝이던 김재영씨는 ‘30년 전 학교 가기 싫으면 너랑 같이 배아프다고 꾀병을 부리곤 했는데,네 아들은 배포도 크게 백혈병이라고 ‘꾀병’을 부리는구나.우리처럼 네 아들도 곧 나을테니 힘내라.’며 멀리 캐나다에서 이메일을 보내왔다.부인이 상준군의 간병을 자처한 김성엽씨는 “철호가 학창시절부터 신망이 두터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안씨는 16일 오후 여의도성모병원 아들의 병상을 찾은 이근철씨의 두 손을 꼭 잡고 “배를 곯던 학창시절 생각하며 희망을 잃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
  • [문화마당] 구상 시인에 관한 斷想/유성호 한국교원대 교수· 문학평론가

    11일 새벽에 유명을 달리한 구상(具常) 시인은 분단시대를 온몸으로 겪은 마지막 증인이 아닐까 한다.광복 직후 그는 원산에서 동인지 ‘응향(凝香)’에 참여한다.그 책에 실린 ‘여명도(黎明圖)’ 등의 시편이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으로부터 공상적·퇴폐적·현실도피적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자 그는 이른바 ‘반동문인’으로 지목되었고,이 필화사건은 결국 그를 남쪽으로 내려오게 한다. 그 후 구상은 분단 반세기 동안 가장 대표적인 ‘월남문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한다.이제 우리 문학사에 월남문인은 2000년 황순원 선생에 이어 구상 시인마저 타계함으로써 상징적 마감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가 50년이 넘는 창작 여정을 통해 줄곧 추구해온 시의 주제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 하나가 현실에 대한 첨예한 역사 의식이었다면,다른 하나는 기독교적 감각에 바탕을 둔 인간 구원의 추구였다.그 점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대로,현실 증언의 구체성(具)과 종교적 영원성(常)을 동시에 추구한 시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구상은 15세 되던 해 가톨릭 사제가 될 것을 지망하고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3년 만에 환속한다.문학에 대한 열정이 그를 종교적 생애에 묶어두지 않은 것이다.이처럼 그의 일생은 종교와 문학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갈등과 화해가 교차한 과정이었다. 시인은 줄곧 기독교적 존재론을 기반으로 미의식을 추구했지만,여기에 전통 사상과 선불교나 노장 사상까지 포괄하는 범(汎)종교적인 정신 세계를 수용하여 인간 존재와 우주의 의미를 탐구하는 구도적 시편들을 많이 남겼다. 그는 투병 중에도 장애인들의 문학지인 ‘솟대문학’에 커다란 지원금을 쾌척하는가 하면,가난하고 불우한 이웃들을 누구보다도 헌신적으로 도왔다.또한 사형 언도를 받았다가 무기수로 감형된 최재만씨를 아들로 삼아 석방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이처럼 청빈과 긍휼의 삶을 살아간 시인은 세상에 휘말리기 싫다며 조용히 초야에 묻히길 자처하였고,문단에서도 이렇다 할 높은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 구상 시인은 폐질환이 깊어져 지난해부터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시인은 입원해 있는 동안 기관지 절개 수술을 받아서 유언도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다만 지난해 ‘한국문인’에 ‘오늘’이라는 시편을 남겼는데,그것이 그의 생을 함축하는 일종의 유언처럼 읽혀 이채롭다.그 작품에서 그는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오늘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노래한 것이다. 오래 전에 ‘길 떠나는 가족’이라는 연극을 본 적이 있다.이는 구상과 함께 월남한 화가 이중섭의 그림 제목이다.소달구지에 올라타 따뜻한 남쪽 나라로 함께 떠나가는 일가의 광경을 그린 유화가 ‘길 떠나는 가족’이다. 이 그림 제목을 딴 연극의 주인공은 이중섭이었지만,거기서 구상은 젊은 나이에 죽어간 천재를 친구로서 애도하였다.이제 구상 시인도 북에 두고 온 고향에 대한 수구초심을 접고,역사의 저편으로 흘러갔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이처럼 따뜻한 ‘길을 떠난’ 시인을,가난과 불행 속에서 요절했던 천재 화가가 맞아주지는 않을까? 유성호 한국교원대 교수· 문학평론가˝
  • 별세 구상시인 詩세계·일생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오늘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시 ‘오늘’ 중) 11일 작고한 구상 시인의 삶은 ‘구도자적 자세’와 ‘영원한 현역 시인’으로 압축할 수 있다.산소호흡기를 쓰고 투병하던 지난해 격월간 문예지 ‘한국문인’ 10,11월호에 유언과 함께 남긴 위의 유언시는 이런 고인의 삶을 잘 보여준다. 구상 시인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두고 ‘마치 흐르는 물같은 삶을 산 사람’이라고 한다.그렇듯 그의 삶은 문학과 신앙이라는 두 축으로 지탱되는 구도(求道)의 그것이었다. 노년 들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짤막한 턱수염,얼마간 창백해 보이는 길다란 얼굴에 그럴 듯하게 구레나룻까지 이루며 자란 이 수염은 항상 그의 무명 한복과 어울려 이 땅의 수많은 독자와 문인들에게 ‘따뜻하고 순결한 시인’이라는 지워지지 않는 표상으로 각인돼 있다.문인이기 전에 그는 암울한 식민지의 신문기자였다. 스물 네살 나던 1943년에 함흥에 있는 ‘북선매일신문’ 기자로 세상과 맞닥뜨렸던 젊은 구상은 이후 두 차례의 필화사건과 6·25,감옥생활과 질병 등 온갖 신산을 겪으며 오로지 문학에의 열정과 종교(가톨릭·세례명 요한)적 신념으로 시대를 앞서 이끌었다. 그가 겪은 첫번째 필화사건은 1946년에 일어났다.원산문학가동맹의 주축멤버였던 그는 해방 1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동인시집 ‘응향(凝香)’에 발표한 ‘여명도’‘길’‘밤’등의 시가 퇴폐적이고 악마적이라며 반동으로 몰리자 이듬해 2월 서울로 월남해 이산의 삶을 시작했다.이때 남한에서는 남로당 기관지였던 ‘문학’이 이 시집을 대대적으로 소개했고,민족진영에서는 김동리씨 등이 나서 이에 반박하는 등 한차례 격랑이 일기도 했으며,이 와중에 그는 별도의 입상이나 추천 절차없이 문단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 본격적인 민권운동에 나선 그의 길은 평탄치 않았다.전쟁 후 영남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있던 그는 칼럼 ‘고현잡화(考現雜話)’와 시사평론집 ‘민주고발’ 등으로 사사건건 당시 자유당 정권과 부딪쳐 이적죄로 15년형을 선고받는 두번째 필화를 겪었다.그런가 하면 그는 평생 갖가지 병력(病歷)을 체험하며 형극의 길을 걸어온 시인이기도 했다.폐결핵으로 두번이나 수술을 했는가 하면 두번의 큰 교통사고와 당뇨병,만성 천식과 전립선 비대증,망막염과 백내장 등 수많은 병마와 싸워야 했다. 이런 역경 속에서도 고인의 지사적 풍모는 돋보였다.4·19 이전에 대표적 민권운동가였던 엄상섭,전진한씨 등과 함께 시국강연회를 갖는 등 치열하게 민권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그의 고고함은 5·16쿠데타 직후 박정희 장군의 상임고문역 추대를 거절한 것이나,전두환 정권의 부당한 학·예술원법 개정에 맞서 홀로 입법기구 회원직을 사퇴한 사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권력에 초연함을 유지했던 고인의 인품은 현세의 이해관계에 초월해 예술세계를 지키며 외롭게 살다간 예술가들에 대한 애정으로 나타나 소장품을 내놓고 모금운동을 벌여 서울신문이 주관하는 ‘공초(空超) 오상순 문학상’의 토대를 세우기도 했다. 시인 구상은 그의 삶이 험난할수록 더욱 강고하게 종교에 집착하는 면도 보여 주었다.이런 영향으로 그의 시에는 대부분 동양적 관조와 기독교적 영원성이 깊게 배어 있다.연작시 ‘그리스도 폴의 강’은 이런 그의 정서를 대변하는 작품이다. 한편 서울 강남 성모병원 빈소에는 김수환 추기경,서영훈 전 적십자사 총재,박삼중 스님,이한택 주교를 비롯해 문덕수,박연희,김남조,김광림,구중서,성찬경,김종길,김종해,신세훈,신달자,김이연,류자효씨 등 많은 종교인과 문인들이 찾았다.노무현 대통령은 조화를 보내 조의를 표했다. 김 추기경은 “고인은 좁은 의미의 가톨릭이 아니라 종파를 넘어서 온세계를 아우르는 의미로서의 가톨릭 시인이었다.모든 것을 향해 열려 있었고,항상 마음을 비우는 진실의 사람이었다.”고 추모했다. 구중서씨는 “고인은 전쟁 중에는 인민군의 묘지를 만들어 준 뒤 ‘적군 묘지 앞에서’라는 시를 썼고,베트남 전쟁 때 미군이 승승장구할 때는 ‘인류가 아직 깜깜하다.’며 인간의 도덕적 양심을 묻는 시 ‘베트남 기행’을 썼다.”면서 “이데올로기나 정파,권력에 가담하지 않고 인간 본성과 양심을 쉬우면서도 뜻이 깊은 시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초토(焦土)의 시(詩)’ 8 - 적군 묘지 앞에서 오호,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욱 신비스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땅은 30리면 가로막히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람 속에 깃들어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 구상시인 연보 ▲1919년 서울 이화동 출생.본명 구상준(具常浚) ▲1941년 일본대학 전문부 종교과 졸업 ▲1946년 원산에서 시 ‘여명도’등으로 필화,월남 ▲1948∼1950 연합신문 근무 ▲1952∼1956 효성여대 교수 ▲1961∼1965 경향신문 논설위원겸 동경지국장 ▲1976∼1999 중앙대 대우교수 ▲주요 저서 시집 :‘구상(具常)’,‘초토(焦土)의 시’,‘까마귀’,‘모과 옹두리에도 사연이’,‘개똥밭’,‘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다면’,‘오늘속의 영원,영원속의 오늘’,‘인류의 맹점에서’,‘홀로와 더불어’ 등. 수상집 :‘침언부어(沈言浮語)’‘영원속의 오늘’‘실존적 확신을 위하여’‘시와 삶의 노트’ 사회평론집 :‘민주고발(民主告發)’,수필집 ‘우주인과 하모니카’ ‘현대 시창작입문’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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