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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원한 박치기왕’ 故김일씨 일생과 빈소표정

    ‘영원한 박치기왕’ 故김일씨 일생과 빈소표정

    김일씨의 을지병원 빈소에는 아들 수안(56)씨와 첫째 딸 애자(61), 둘째 딸 순희(59)씨 등 친인척, 제자 이왕표 한국프로레슬링연맹 회장 등 지인 30여명이 모여 김씨의 임종을 지켰다. 박재호 국민체육공단 이사장이 노웅래 국회의원, 이대표 등과 함께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은 가운데 ‘닛칸 겐다이’ 등 일본 언론들도 이 곳을 찾아 높은 관심을 보였다. 김씨는 1960∼70년대 안방극장의 슈퍼스타였다. 당시 급속히 보급되기 시작한 흑백TV의 힘을 빌려 프로레슬링은 당대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았고, 동네에 TV가 있는 집이면 사람들이 빼곡히 몰려 들어 ‘링위의 결투’에 환호성을 질러댔다. 코너에 몰리다 통쾌한 박치기 한방으로 외국선수들을 넘어뜨리는 김일에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찌든 가난을 잠시 잊었다. 김씨는 전남 고흥 출신으로 1950년대 초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 프로레슬링 최고의 스타 역도산(본명 김신락)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오키 긴타로(大木 金太郞)란 이름으로 일본 프로무대에 데뷔했다.196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세계프로레슬링 챔피언으로 등극하면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2년 뒤 자신의 신원보증인이기도 한 스승 역도산이 사망하자 곧바로 귀국, 이때부터 각종 국내외 타이틀 매치를 벌이며 국민적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70년대 중반 김씨는 자신과 함께 역도산의 3대 수제자였던 자이언트 바바, 안토니오 이노키(본명 이노키 신지) 등 일본에서 활동하던 프로레슬러들을 국내로 불러들여 타이틀전을 치르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김씨가 최고의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박정희 정권’의 지원이 깔려 있다는 주장도 있다. 국가재건을 위해 스포츠영웅을 필요로 했던 당시, 정권이 김일을 적임자로 선택했다는 얘기다. 어쨌든 ‘김일’이라는 든든한 스타를 가진 프로레슬링은 사람들의 마음 깊숙이 자리잡았다. 그러나 레슬링의 폭발적인 인기도 사회변화에 따라 서서히 뒷전으로 밀리기 시작했다.80년 들어 야구를 시작으로 축구, 씨름 등이 프로화의 길을 걸었고, 그 사이 김씨를 이을 걸출한 후계자를 만들어내지 못한 프로레슬링은 쇠퇴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은퇴한 김일은 1984년 노구를 이끌고 ‘제2의 중흥’을 위해 링에 다시 올랐지만 시대의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이후 사업가로의 변신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후 급격히 사람들의 머리에서 잊혀진 김씨는 1991년 30여년에 걸친 무수한 박치기의 후유증과 고혈압 등 합병증으로 병상에 누웠다. 서울 상계동 을지병원의 도움으로 입원,1994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투병생활을 해 왔다. 을지병원 측은 아예 고정 병실을 내줬고, 김씨는 재혼한 부인 이인순(60)씨와 5평 남짓한 병실에서 신혼같은 살림을 꾸려 왔다. 13년의 병원 신세였지만 최근 김씨의 행보는 건강한 사람 못지 않았다. 고향 후배인 류화석(54) 전 현대건설 배구팀 감독과의 인연으로 배구팬이 된 김일은 지난해 2월 프로배구 원년 개막전에 참석, 수 년만의 바깥 나들이를 시작했다. 또 올 초에는 국내 한 방송사의 일본 일주 프로그램을 찍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고, 당시 예선을 치르고 있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을 만나 선동열 삼성 감독과 선수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지난 9월10일에는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WWA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기 위해 링을 찾았고, 직후 바로 옆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프로야구 SK-LG전에 시구를 자청, 휠체어를 타고 공을 던지는 등 스포츠에 대한 식지 않은 애정과 노익장을 과시했다. 김씨는 국내보다는 일본에서 더 후한 대접을 받았다.1995년 4월 도쿄돔에서 6만여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려한 은퇴식을 가졌다. 이후 국내 은퇴식이 추진됐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미뤄지다 2000년 3월 지인들의 힘을 빌려 장충체육관에서 조촐히 거행됐다. 김일은 이날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아 어려운 시절 국민들의 시름을 덜어준 공로를 조금이나마 인정받았다. 최병규 박준석기자 cbk91065@seoul.co.kr
  • [메디컬 라운지]

    분쉬의학상에 이경수 교수 대한의학회와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이 제정한 분쉬의학상 제16회 본상 수상자로 성균관의대 영상의학교실 이경수 교수가 선정됐다. 또 젊은의학자상 기초 부문에는 전남대의대 약리학교실 국현 교수, 임상 부문은 서울대의대 내과학교실 강현재 교수가 각각 선정됐다. 본상 수상자인 이 교수는 저선량 CT를 이용한 폐암선별검사를 국내 처음으로 도입한 공로 등이 인정됐다. 시상식은 11월15일 오후 6시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다. 말라리아 치료제 ‘말라론’ 출시 다국적 제약사 글락소 스미스클라인(GSK)은 급성 비복합성 열대열 말라리아 치료제 ‘말라론’을 최근 출시했다. 이 약은 기존 말라리아 치료제가 듣지 않는 내성지역에서 1차 예방약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미국 질병관리센터에서 권고하고 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말라리아는 열대 아프리카, 남미 아마존 강 주변 지역, 인도차이나 반도 주변 등을 중심으로 매년 3억∼5억 명이 감염되는 질병으로, 사망자가 전 세계적으로 매년 100만명에 이른다. 성숙지방세포 분리배양기술 개발 세원셀론텍(회장 장정호)은 지방조직에서 지방전구세포(지방이 되기 직전의 세포)와 성숙지방세포를 각각 분리 배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국내 특허등록을 마쳤다고 최근 밝혔다. 이 회사 중앙연구소 장재덕 박사는 “이번 기술을 이용하면 일반 세포 크기의 10배 이상에 달하는 성숙지방세포까지 분리, 배양함으로써 지금까지 버려질 수밖에 없었던 대량의 지방세포를 모두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국 20개 병원 조울병 공개강좌 한국아스트라 제네카가 후원하는 조울병 공개 강좌가 12월까지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 20개 종합병원과 전문병원 등에서 열린다. 이 강좌는 조울병 환자와 가족, 조울병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에게 조울병에 대한 의학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투병 생활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됐다. 참가자에게는 조울병 정보 책자와 함께 간식, 기념품 등이 제공된다. 문의(02)2190-7318. 화병 임상시험 환자 선착순 모집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은 화병 환자의 이완 훈련 및 음악청취 프로그램 효능에 대한 임상시험 환자를 모집한다. 대상은 30∼50대 여성 환자이며, 선착순 30명으로 참여를 제한한다. 문의(02)440-7134.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홍남순과 DJ의 화해(?)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홍남순과 DJ의 화해(?)

    얼마 전 타계한 고(故) 홍남순 변호사는 대표적 인권변호사로 민주화 운동의 거목이자 큰 별이었다. 이명박·박근혜·고건·손학규·정동영 등 대권주자들과 여야 정당 대표들까지 줄줄이 빈소를 찾았으니 그의 비중을 능히 알 만했다. 홍 변호사는 60∼70년대 반독재 투쟁과 시국사범의 변론을 도맡았고,80년 5·18 민주화운동 때에는 내란수괴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칠순 가까운 나이에 1년 7개월간이나 옥고까지 치렀다. 감옥에서도 온갖 고초와 고문, 협박을 당했지만 의연하고 남다른 기개를 보여줬다고 한다. 그의 민주화 운동 궤적에서 잘 나타나듯이 홍 변호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다. 같은 호남 출신인 DJ와 홍 변호사가 민주화 동지로서 수십년간 형제와도 같은 끈끈한 정을 나눠 온 것은 주지의 사실. 홍 변호사는 DJ가 군사정권 시절 생사의 고비를 넘기는 등 숱한 고초를 겪을 때마다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이런 홍 변호사에 대한 DJ의 고마움은 88년 13대 총선 때 가시적으로 나타난다. 홍 변호사의 둘째 아들인 기훈을 전남 화순에 공천한 것이다. 당시 전남 지역에서 DJ의 공천은 100% 당선을 뜻하기에 기훈은 35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정계입문에 성공했다. 홍기훈 의원은 14대 총선에서도 재공천 받으면서 홍 변호사와 DJ의 관계는 바위 같은 신뢰관계를 구축하게 된다. 그러나 도저히 깨질 것 같지 않던 두 사람의 신뢰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것 역시 결정적 계기는 국회의원 총선거다.96년 15대 총선 때 당연히 전남 화순에서 세번째 공천을 받으리라 생각했던 홍기훈 의원이 그만 공천에서 탈락한 것. 이와 관련해선 구전(口傳)으로 전해지는 야사(野史)가 있다. 깃발만 꽂으면 되는 곳인 만큼 DJ측에서 공천 대가를 요구했다는 얘기도 있고, 네번째 대권 도전의 목표를 확실히 한 DJ가 전열정비 차원에서 물갈이를 하다 보니 시원찮은 의원 평가 성적을 받은 홍기훈 의원이 대상자가 되었다는 설까지 나돈다. 공천 대가와 관련, 구체적 액수까지 전해지나 확인할 길은 없다. 또 당시 야당의 경우 전국구(지금의 비례대표)나 당선 확실지역의 공천을 받으면 당연히 일정액의 거금을 내는 게 상례였다. 어찌됐건 이 일로 해서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된다. 홍 변호사는 지인들에게 “DJ가 공천 장사를 한다.”,“DJ가 호남을 망치고 있다.”며 원색적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DJ측도 홍 변호사의 이같은 비난에 무척 섭섭해했다고 한다.DJ의 한 측근은 “아들에게 두 번이나 금배지를 달게 해줬으면 보답은 된 것 아니냐.”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가 원하는 만남을 갖지 않았다.2년 후인 98년 DJ는 대통령에 당선됐고,2001년에는 홍 변호사가 그만 뇌졸중으로 쓰러져 5년간의 기나긴 투병생활에 들어가면서 두 사람의 물리적 화해는 불가능해졌다. DJ가 홍 변호사 빈소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많은 이들은 민주화운동의 거목인 두 사람이 화해하지 못한 것을 무척 아쉬워한다. 허주(虛舟·고 김윤환 의원의 아호)도 생을 마감하기 전 철천지원수처럼 여겼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용서하지 않았던가. 찰나에 지나지 않는 인생을 살면서, 현실적 가치에 집착하다간 정말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우(愚)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jthan@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비둘기집’의 황손가수 이석(1)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비둘기집’의 황손가수 이석(1)

    ‘비둘기집’. 그동안 결혼식 축가로 8000회가 넘게 불러 왔다는 이 아름다운 노래의 주인공, 가수 이석(65)씨는 현재 생존해 있는 ‘마지막 황손’이기도 하다. 고종황제의 손자이자 의친왕의 열한 번째 아들로 41년 ‘사동궁’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이해석, 어릴 때 아명은 ‘영길’로 항상 상궁들에게 둘러싸여 ‘애기씨 마마’, 혹은 ‘사동궁 도령님’이라 불렸던 황손의 후예, 그러나 지금은 대중가요 가수로서의 이석씨를 만나본다. 이석씨에게 있어 황손이라는 신분이 거역할 수 없는 핏줄의 요소였다면, 노래는 이석씨가 스스로 선택한 삶이었다. 본래 외교관이 되고 싶어 했던 그는 외국어대 스페인어과에 들어간다. 스페인에는 왕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며 왕실 여인에게 청혼하겠다는 꿈을 꾸었을 만큼 낭만적인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허나 일제강점기를 지나 이승만 정권에서 박정희 시대로 상황이 계속 바뀌어가는 과정과 궤를 같이해 황실 가족의 거처 역시 ‘사동궁’에서 ‘별궁’ ‘칠궁’으로 변했다. 후궁이었던 어머니 남양 홍씨 역시 황실의 몰락과 더불어 명륜동에서 성북동의 별장 ‘성낙원’으로 거처가 옮겨지면서 급기야 이석은 어머니와 세 동생의 생업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 신분이 바뀌어져 있었다. 심지어 학비 때문에 학업을 도중하차해야 했을 만큼 생활은 어려워져갔고 때문에 선택한 길이 연예계다. 이미 경동고 3학년 때부터 종로의 음악감상실 ‘뉴 월드’에서 DJ를 보았을 만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가 연예계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62년, 당시 미8군 연예회사 ‘화양’의 오디션에 ‘더블A(A+)’로 통과한 뒤 본격적으로 미8군 무대에 서면서부터. 물론 이 당시까지만 해도 주위의 관계자들은 이 가수 지망생이 황손이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한다. 스페인어 전공으로 영어까지 유창했던 그는 미8군 무대에서 가수로 그리고 MC로 활동하다가 TV의 쇼 프로그램 사회자로까지 나서자 그야말로 황실 가족들은 발칵 뒤집혔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 황실이 망했다지만, 이렇게까지 망할 수 있느냐며 개탄해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도 자신만의 삶과 생계수단이 필요하다며 활동을 계속한다. 타고난 재능과 바리톤의 성량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64년, 드디어 첫 음반을 취입한다.‘낭만의 해변(Stranger on the Shore)’을 타이틀로 한 이 음반(베스트레코드사,BL 3001)은 당시 색소폰 연주자로 미8군 쇼 ‘에이트레인’의 단장이었던 강철구 작, 편곡집으로 ‘세상이 그대 눈처럼(Dark Eyes)’ 그리고 창작곡인 ‘그대 위한 노래’ ‘그대 눈동자’ 등이 담겨 있다. 비록 대중적인 히트를 기록하지 못했지만 이 음반은 그의 뛰어난 음악성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음반이다. 사동궁에서 지내던 창경초등학교 유년시절, 왕족은 절대 뛰어다니면 안 되는 법도 때문에 급한 연락이라도 취하려면 교장선생님이 직접 그에게 달려왔을 정도로 높은 신분이었던 그가 한 시대를 지나면서 노래로 대중들 앞에 직접 나선 것이다. “지금까지 늘 두 가지 갈등 속에서 살아왔어요. 현실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과 동시에 그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갈등…” 자신은 늘 엇박자의 리듬처럼 살아왔다고 술회한다. 이 무렵 예측할 수 없이 급변하는 정치상황과 맞물려 황실의 몰락은 이미 현실이었다. 깊은 좌절의 나날 속에 그는 마침내 66년 군예대에 지원, 월남에 파병된다. 전투병으로서 군예대 위문공연단의 일원이었지만 공연 차 이동 중에 자동차가 전복되면서 팔에 큰 부상을 당한다. 결국 이 부상으로 전역하지만 왕족의 체면 때문에 원호신청조차 하지 못했다. 69년 ‘상이군인’의 몸이 되어 귀국한 그는 다시 국내 무대에 복귀한다. 이 무렵 발표한 노래가 ‘두마음’을 비롯한 ‘비둘기 집’ 등. 특히 이 ‘비둘기 집’은 발표되자마자 당시 새마을합창단의 지정곡으로 선정되는 등 전국 방방곡곡 메아리치며 어느덧 국민가요로 자리매김한다.(계속) sachilo@empal.com
  • 본지 보도 그후…희귀병 어린이 2명 희망의 한가위

    본지 보도 그후…희귀병 어린이 2명 희망의 한가위

    희귀병을 앓는 환우들에게도 추석은 마냥 즐겁고 기다려지는 명절이다. 힘든 투병 생활을 잊고 가족과 친지들을 만나 언젠가 완치되리라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꿈에 부푼다. 서울신문을 통해 세상에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던 ‘희귀병 어린이’ 형준이와 원기를 만나 보았다. ■ 진행성 근이영양증 홍원기군 “원기도 꿈을 이뤘어요. 모두 희망을 가지세요.” 한가위 연휴를 하루 앞둔 4일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 진행성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는 홍원기(8)군은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서울신문 4월3일자 6면 보도)평소 비행기 조종사가 꿈이었던 원기는 지난달 29일 공군의 도움으로 헬기를 타고 1시간30분 동안 서해안을 누비는 소원을 이뤘다. 서울신문 보도를 통해 원기의 초이동 집이 화재로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모두 1600여만원의 성금을 모아 전달했다. 돌려받은 전세금과 이 성금으로 원기네는 4월 중순 망월동에 새 보금자리를 꾸렸다. 하지만 원기는 요즘 힘들다는 얘기를 부쩍 자주 한다. 밤에 자다가 다리가 펴지지 않는다며 서너차례씩 어머니 김오숙(40)씨를 깨워 주물러 달라고 보챈다. 단백질 결핍 때문에 점점 팔·다리 등의 근육이 굳어지는 진행성 근이영양증의 증세가 악화됐기 때문이다. 화재 당시만 해도 조금씩 걸을 수 있었지만 이젠 다리에 힘이 빠져 혼자서는 일어설 수조차 없다. 결국 지난달 한 복지단체의 도움으로 300만원을 주고 전동 휠체어를 구입했다. 수영을 통한 근육강화 운동도 시작했다. 어머니 김씨는 원기의 상태를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보통 환우들보다 진행이 좀 빠른 편이라 걱정이에요.‘나도 걷고 싶어. 뛰고싶어.3000년 뒤에 다시 태어나면 나 걸을 수 있는 약이 나올까.’라고 묻기도 해 눈물을 짓곤 합니다.” 매일 복지관과 병원을 오가는 강행군을 하고 있는 원기에게 이번 추석 연휴는 말 그대로 ‘쉬는 날’이다. 요즘 재미를 붙인 인근 미사리 산책으로 투병에 지친 몸을 달랠 예정이다. “원기가 비록 몸은 안 좋아지고 있지만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마련한 보금자리에서 힘을 얻고 있답니다.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느꼈던 희망을 결코 잃지 않을 테니 여러분들도 행복한 한가위 되시길 빕니다.” 원기 후원계좌는 농협 560-17-002612(예금주는 원기 치료를 돕고 있는 하남시종합사회복지관). ■ 간문정맥 혈관기형 박형준군 “할머니, 기다리세요. 형준이가 갈게요.” 서울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 판자촌에 살며 간문정맥 혈관기형이라는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는 박형준(4)군에겐 이번 한가위가 어느 때보다 새롭다.(서울신문 3월7일자 8면 보도)자주 입과 항문으로 피를 토하던 형준이는 주변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아 이제는 병세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덕분에 이번 추석에는 1년만에 대전 할머니 댁으로 가는 귀성길에 오를 수 있게 됐다. 올해 설은 서울의 병원에서 보낸 형준이였다. 병치레 스트레스로 자주 짜증을 부렸던 형준이는 일곱달만에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제법 애교도 부리는가 하면 뭐라는지 알아듣기 힘들던 발음도 꽤 정확해졌다. 보기 힘들었던 미소도 가끔씩 지어보이며 포이동 판자촌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 이런 형준이를 이웃 사람들은 ‘포이동 마스코트’라고 부른다. 서울신문 보도가 나간 뒤 모두 2500여만원의 성금이 답지했다.7월초 버릇처럼 물어뜯은 손가락 상처를 통해 들어간 균이 장을 감염시키는 바람에 한차례 피를 쏟았고, 그 바람에 치료비로 300여만원이나 들었다. 이전에는 고스란히 빚으로 남을 치료비를 이번에는 주변의 따뜻한 온정이 담긴 성금으로 충당할 수 있었다. 형준이는 한달 전부터 일주일에 두 차례씩 강남구청 옆 한 아동발달연구소에서 언어·놀이치료를 받고 있다. 유독 말이 늦고, 심하게 낯을 가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할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치료한 뒤부터는 의사표현도 확실하게 하고, 붙임성도 꽤 늘었다. 형준이 어머니 김연(29)씨는 “시간당 6만원이나 드는 비용이 부담스럽지만 형준이가 점점 나아져 너무 좋다.”고 말했다. 아버지 박종묵(42)씨는 “항상 멀리 나가면 형준이 때문에 불안했는데, 다행히 이번 추석은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형준이도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이 즐거운 한가위를 맞길 바랄 것”이라고 말했다. 형준이 후원계좌는 국민은행 767401-01-167369(예금주 김연). 글 사진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씨줄날줄] 품위있는 죽음/황진선 논설위원

    웰다잉(well-dying), 즉 품위 있는 죽음은 이제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다. 웰빙은 자신의 경제력에 따라 다른 사람을 흉내내 해결할 수 있지만, 웰다잉은 다르다. 죽음은 대부분 거부감과 두려움에 떨며 고스란히 개인적으로 겪어내야 하는 고통이다. 우리처럼 급속하게 고령화로 치닫는 사회에선 갈수록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2005년 6월 창립된 ‘죽음학회’ 회원들은 잘사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는지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들은 ‘좋은 죽음’이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맺혔던 것을 다 풀어서 여하한 감정도 남기지 않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호스피스는 환자에게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위안을 베풀지만, 연명의술(延命醫術)을 권하지는 않는다.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점을 인식시키면서 정신적·육체적 고통이 완화되도록 도움을 준다. 안락사를 둘러싼 논쟁은 지구촌 곳곳에서 가열되고 있다. 지난해 초 미국의 ‘테리 시아보 사건’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15년째 급식 튜브로 연명하는 식물인간 아내 테리(사망 당시 41세)의 튜브를 제거해 달라는 남편의 소송에 미 연방대법원은 친정 부모와 미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손을 들어주었다. 네덜란드는 2003년 환자가 자발적으로 분명하게 요구해야 한다는 등의 요건을 갖추는 조건으로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해 유럽연합(EU)으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조화로운 삶’의 저자인 미국의 자연주의자 스코트 니어링의 죽음은 인구에 회자된다. 그는 1983년 99세의 나이로 죽기 얼마전 이런 유서를 작성했다.“죽을 병이 오면…나는 어떤 의사도 곁에 없기를 바란다…죽음이 다가오면 나는 음식을 끊고 마시는 것도 끊기를 바란다…사람들은 마음과 행동에 조용함, 위엄, 이해, 기쁨과 평화로움을 갖춰 죽음의 경험을 나누기 바란다.” 지난 8월25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70대 여인 변사 사건은 15년동안 뇌졸중으로 투병하던 아내를 간병하며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던 74세 남편이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도 스코트 니어링처럼 자신의 의지로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을 수는 없는 것일까.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 15년 뇌졸중 아내 “죽여달라”에 우울증 앓아오던 남편이 살해

    지난 8월25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70대 여인 변사사건은 오랜 병구완으로 우울증 등에 시달리던 남편의 범행으로 드러났다. 포항 북부경찰서는 15년간 뇌졸중으로 투병하던 아내를 살해한 혐의(살인)로 김모(74·무직·포항시 북구)씨에 대해 2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는 지난 8월25일 오후 1시쯤 자신의 집 안방에서 누워 있던 아내 김모(71)씨를 둔기로 때려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뇌졸중으로 거동을 못하는 아내를 지난 15년간 병구완하다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려 치료를 받아왔다.”며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김씨는 자신이 용의선상에 오르는 데다 살해에 대한 죄의식 등으로 최근 자해를 해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 김씨는 수도권 등지에 자녀 3명을 두었으나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서 어렵게 지내왔다.”면서 “하지만 자녀들이 부모를 수시로 찾아 위로하는 등 무관심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숨진 아내가 남편에게 순간적으로 ‘죽여 달라.’고 말하자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포항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미8군 해체된다

    미8군 해체된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한국에 들어와 반세기가 넘게 주둔해온 ‘미 8군’이 해체돼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전세계적인 미 육군 조직 개편의 일환이다. 29일 군 소식통에 따르면, 미 육군은 기존의 ‘군’(Army) 단위 조직을 없애고 현재의 군단, 사단 조직을 ‘미래형 군단’(UEy)과 ‘미래형 사단’(UEx) 조직으로 개편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8군이 해체되면 이 조직이 ‘UEy’로 변신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UEy,UEx는 기존의 군단, 사단과 달리 평소에는 전투병력을 보유하지 않고 사령부 조직만 운용하다가, 유사시 각 여단급 이하 병력을 차출해 임시적으로 결성하는 군단급, 사단급 조직을 말한다. 임무가 끝난 뒤에는 다시 사령부만 남기고 전투병력은 여단급 이하로 복귀한다.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처하는 ‘신속 기동군’ 개념의 일환이다. 미 8군 휘하의 2사단은 지난해 UEx로의 전환을 완료했다. 이에 따라 현재 미 8군은 ‘2사단 UEx’(1만 5000여명)에 항공여단과 지원여단 등을 넘겨주고 외곽 지원부대만 거느린 명목상의 지휘부대로만 남아 있다. 조직체계상 8군 소속 병력은 총 2만 8000여명에 이르지만, 실질적으로 8군 임무를 수행하는 병력은 100∼200명에 불과한 형편이다.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도 이날 기자들에게 “미 8군은 한국전쟁시에는 전쟁수행본부였지만, 지금은 전시지원을 수행하는 역할”이라며 “과거처럼 하면 전투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복잡하게 만들 소지가 있다.”고 8군 해체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는 “미 육군은 지난 5년간 재편을 통해 산업혁명시대의 군 구조에서 정보화시대의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고 했다. 군 소식통은 “UEy로 개편되는 8군사령부가 이름을 바꾼 채 한반도에 잔류하면서 새로 창설될 ‘주한 미 합동군사령부’(USJTF-K)에 배속될지, 아니면 다른 나라로 이동하게 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자(前者)의 경우 전시증원군 전개 등의 임무를 맡을 수도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부고] ‘괴물’의 이강산 조명감독 별세

    ‘괴물’ ‘살인의 추억’ ‘역도산’ 등의 영화에 참여한 이강산(52) 조명감독이 28일 별세했다. 이 감독은 간경화로 투병 중이던 2005년 7월 간 이식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었으나 최근 병세가 다시 악화됐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2남이 있다. 1979년 영화계에 입문한 이 감독은 1995년 ‘은행나무 침대’로 조명감독 타이틀을 달았다. 이후 ‘깡패수업’ ‘비트’ ‘태양은 없다’ ‘박하사탕’ ‘인터뷰’ ‘봄날은 간다’ ‘중독’ ‘무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등 주옥 같은 작품의 조명을 책임졌다.2003년 ‘살인의 추억’으로 대종상 조명상을 수상한 바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발인 30일 오전 9시30분.(02)590-2576.
  • ‘거지왕’ 김춘삼 힘겨운 투병

    TV 드라마 ‘왕초’의 실제 주인공인 ‘거지왕’ 김춘삼(78)씨가 고령과 폐질환으로 힘겹게 투병하고 있다. 27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달 13일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온 뒤 지금까지 40일이 넘도록 중환자실과 일반병실을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고령인 데다 만성 폐색성 폐질환, 기흉, 만성 신부전증 등 6∼7개 질환이 겹쳐 신체기능이 매우 약해져 있다. 현재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으며 거동도 전혀 못해 코에 연결된 호스로 미음식을 주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1928년 평안남도 덕천에서 태어난 김씨는 8세 때 대전으로 개가한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가 사냥꾼들에게 붙잡혀 짐승을 유혹하는 미끼 노릇을 하면서 ‘거지 세계’에 들어섰다.20대에 전국의 거지를 통솔하는 ‘거지왕’이 된 뒤 거지 구제사업에 앞장서면서 전설적 인물이 됐다. 1950년대에는 전쟁고아를 수용하는 합심원을 전국 10여곳에 세웠으며 20여차례에 걸쳐 거지 합동결혼식을 마련하기도 했다. 현재 아내 남윤자(63)씨와 서울 마포구 망원동 다세대 주택에서 살고 있는 김씨는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정부보조금과 한국전쟁 참전에 따른 국가유공자 지원금으로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보험급여 항목을 제외하고 현재 김씨가 부담해야 할 병원비가 600만원 정도 된다. 김씨의 사정을 감안해 병원 복지기금으로 일부는 충당할 예정이지만 지원 손길이 없으면 딱히 대책이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 해임 천량위 누구인가

    해임된 천량위(陳良宇·60) 상하이시 공산당 서기는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최측근이다. 장 전 주석 퇴임 뒤 ‘상하이방(幇)’으로 불리는 장쩌민계 인맥의 맏형으로 정치적 거점인 상하이를 책임져 왔다. 1970년 상하이 펑푸(彭浦)기계공장 엔지니어를 시작으로 상하이 전기공사 서기, 상하이 황푸(黃浦)구 서기, 상하이시 부서기 등 줄곧 상하이에서만 관료생활을 해왔다. 인민해방군 후근(後勤)공정학원 건축학과와 영국 버밍엄대학을 졸업한 그는 서기 발탁 당시부터 장 전 주석의 뒤를 이을 적임자로 꼽혔으나 후진타오(胡錦濤) 체제가 출범하면서 집중견제를 받기 시작했다. 경기과열 논쟁 당시 내부회의 도중 중앙정부의 정책실패를 따지며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향해 언성을 높이는 등 반기를 든 것으로 유명하다. 후 주석이 그를 교체하려고 한다는 소식이 여러차례 외신에 보도됐으나 상하이방의 강력한 저항 때문에 실행되지는 못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별한 사이인 황쥐(黃菊) 부총리가 암 투병으로 일선으로 물러난 올해 초부터는 공개 연설 때마다 후 주석을 적극 옹호하며 관계개선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내년 시즌 준비에 구슬땀 LG 봉중근

    [스포츠 라운지] 내년 시즌 준비에 구슬땀 LG 봉중근

    메이저리그 생활을 접고 국내 프로야구에 입단한 봉중근(26·LG). 요즘 경기도 구리의 팀 연습장에서 비지땀을 쏟고있다. 오후 연습 시간이 되자 하나 둘씩 선수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안녕하세요.”라고 씩씩하게 인사하는 봉중근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잔뜩 배어있었다. ●얻은 자신감, 버린 자존심 신인 신분이라 2군경기에도 나갈 수 없어 그저 내년 시즌을 위해 열심히 몸을 만들고 있다. 오전 웨이트트레이닝 시작이 9시30분이지만 1시간 전에 나와 몸을 푼다.2시간 정도 땀을 쏟고 나면 그야말로 파김치가 된다. 자신이 선택해서 돌아온 만큼 누구보다 열심이다. 오후 1시부터는 필드연습이다. 러닝과 스트레칭, 그리고 멀리 공던지는 연습을 한다. 재활훈련 중에는 일체 공을 만지지 못하게 하지만 얼마전 코칭스태프로부터 공을 던져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최근에는 하프 피칭도 병행한다. 합류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100% 팀에 적응했다. 낙천적인 성격 때문에 오랜 미국생활이 전혀 걸림돌이 되지않았다. 메이저리거로서의 자신감을 갖고 있되 자존심은 버렸다. 선배들이 물을 떠오라면 두말없이 따른다. 그리고 훈련하는 동안에는 메이저리그 생활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욕심도 있지만 조심스럽다. 한국보다 한 두 수위인 메이저리그를 경험했지만 일단 내년 목표를 선발 30차례 등판에 10승 이상으로 잡았다. 하지만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뛴 만큼 첫 해에 15승 이상을 올려야 하지 않느냐는 주변의 말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올림픽 출전이 목표 봉중근은 손민한(롯데)과 구대성(한화)을 좋아한다.“빠르지 않는 공을 갖고도 여유있게 상대타자를 압도하는 게 인상적”이라고 말한다. 틈만나면 타자 분석에 여념이 없다. 특히 자신과 비슷한 투구폼인 ‘괴물 루키’ 류현진(한화)의 경기를 보면서 타자 요리법을 연구한다. 봉중근은 “2군으로 내려가지 않고 부상없이 매 시즌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일단 앞으로 5년 동안 야구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다짐이다.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해 태극마크를 달았다. 고교 이후 처음 달아본 것이어서 아직도 기억이 새롭단다. 이번 도하아시안게임엔 출전하지 못하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 출전에 욕심을 낸다. 그는 미국생활을 접은 것에 후회는 없단다. 무엇보다 마음이 편하다. 자신의 심정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와 동료가 있어 더욱 야구가 즐거워졌다. 하지만 다소 아쉬움이 남은 것 또한 감출 수 없다. ●은퇴 후에는 가족 여행 지금 서울 동부이촌동에서 부인 박경은(28)씨와 단 둘이 산다.2세 계획도 있다. 그는 “아이 둘을 낳고 싶은데 아내는 셋을 원한다.”며 웃었다. 투병 중인 아버지의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외아들이라 부모님을 모시지 못한 것이 그동안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는 홀가분하게 야구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은퇴한 뒤에는 미국으로 건너갈 생각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단다. 처음엔 한국행에 아내가 반대했다. 그는 “그렇지만 나의 의지가 강한 것을 보고 아내가 양보했기 때문에 다음엔 내가 아내에게 양보할 차례”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아내와 함께 무작정 밖으로 나간다. 둘 모두 영화를 좋아해 최근 ‘괴물’과 ‘한반도’를 함께 봤다. 노래방도 자주간다.“아내가 성악과 출신”이라면서 은근히 아내의 노래 실력을 자랑했다. 자신감에 마음의 평안까지 찾은 봉중근은 내년 시즌이 더욱 기다려진다. 글 사진 구리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기형도 시인의 ‘빈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잃어버린 후 슬픔을 덜어내기 위해 글을 씁니다. 유성순 님(전북 고창군 고창읍)은 한동안 그 사람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몸이 아파서 입원했을 때 그가 몰래 다녀갔다는 걸 알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가슴이 따뜻하면서도 외로운 그 사람을 이제는 만질 수도, 잡을 수도, 어디에 있는지 찾아갈 수도 없기에 이름만 불러본다”며 편지를 띄웠습니다. 이장면 님(경북 청송군 진보면)은 젊은 날의 실수로 교도소를 가면서 어머니와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너 혼자 두고 안 죽는다”는 말이 무색하게 어머니는 암에 걸렸습니다. “나는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짐을 꾸릴 때야 한여름 장마처럼 눈물이 흘러내렸다.” 황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어머니는 손가락으로 아들의 손바닥에 ‘사랑한다’고 쓰고는 두 눈을 감으셨다고 합니다. 의사인 이현 님(부산 해운대구 좌동)도 얼마 전 투병 중인 아내를 하늘로 떠나보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이제 당신이 짊어졌던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세속의 굴레에서 벗어나 고통 없는 천국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길 빕니다. 비록 몸은 떠났지만 당신의 따뜻한 미소와 순수함은 언제나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막다른 절망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아내를 보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절박한 순간에도 사랑은 다시 살아납니다. 송자일 님(강원도 철원군 갈말읍)은 이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며 4년 전 하늘나라도 떠나간 여자 친구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아름다웠던 추억은 추억으로 남기고 너를 잊으려 한다. 너와 이루지 못했던 행복들을 새로운 사람과 이룰 수 있도록 축복해주길 바란다.” 사랑 때문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던 그 시절을 기록하기 위해 사람들은 오늘도 글을 씁니다. 그러면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도,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도 과거로 향합니다. 고통은 언젠가 지나가게 마련입니다. 월간<샘터>2006.09
  • 36.5℃의 사랑, 400㎖의 기적

    36.5℃의 사랑, 400㎖의 기적

    ”생명의 나눔, 헌혈” 간호사 김혜란 씨(22세)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교통사고, 화상 등의 사고로 출혈이 심한 환자가 수시로 발생하는 중환자실. 수술을 해야 하는데 피가 모자라면 속수무책으로 기다려야 한다. “헌혈은 보험이에요. 언제, 어디서 저에게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잖아요. 제가 헌혈한 피가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고 있다고 믿어요. 또 저도 언젠가 도움을 받을 수 있고요.” 이것이 그가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는 이유다.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하죠… 헌혈 “가족이 수혈을 받는다 생각하시고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환자의 입장에서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혈액을 받는 거니까요. 최근에 병을 앓았거나 해외여행을 한 적이 있으세요?” 회기 헌혈의 집에서 근무하는 정미옥 씨(39세)는 건강한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 문진問診을 한다. 오전 내내 한적하던 ‘회기 헌혈의 집’엔 오후가 되어서야 헌혈자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헌혈등록카드를 작성하고 문진을 마친 헌혈자들 사이에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선글라스와 콧수염, 범상치 않은 용모의 이정완 씨(29세). 록밴드 ‘링크’에서 베이스를 치는 뮤지션이란다. 스튜디오에서 연습을 하다가 달력을 보고 헌혈할 때가 지난 것 같아 이곳을 찾았다. “예전엔 이유 없이 나 자신을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어요. 조금이나마 다른 사람에게 보탬이 되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헌혈을 시작한 거죠. 지금은 습관이 돼서 안 하면 오히려 답답해요.” 대학생 이현웅 씨(25세)는 오늘이 50번째 헌혈을 하는 날이다. 만 16세 생일이 지나자마자 헌혈의 집을 찾았다가 현재까지 등록헌혈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에게 헌혈은 일석삼조의 일이다. 채혈을 통해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며, 여가를 활용한다. 요즘엔 헌혈의 집의 시설이 개선되어 헌혈을 하면서 만화책도 보고 음료수를 마시며 쾌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처음에 왔을 땐 주사 바늘도 두꺼워 보이고, 이거 뭐 호스를 꼽나, 하는 생각에 덜컥 겁도 났어요. 근데 지금은 아주 편해서 놀러 오듯 헌혈하러 와요. 이래서 헌혈은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믿고 맡겨주시면 좋겠어요… 검사, 제제, 공급 회기 헌혈의 집에서 채혈된 피는 혈액 박스에 보관되어 8시간 안에 동부혈액원으로 옮겨진다. 오후 무렵 동부혈액원 검사실은 혈액 샘플 검사가 한창이다. 혈액형 검사, 매독, 에이즈, B형 간염 등 다양한 검사가 이뤄지는데, 혈액의 수명을 고려할 때 늦어도 다음날엔 결과가 나와야 한다. 몇 해 전 수혈사고가 터진 후로는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에, 검사실의 최경진 씨(37세)는 마음고생이 많았다. “잘못한 경우에 처벌을 받기는 하지만 모든 혈액이 그런 것은 아니에요. 잠복기 혈액 검사를 보완하기 위해 핵산증폭검사NAT를 새로 도입했는데, 현행 제도에서는 가장 선진화된 방법이죠. 저희도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 믿고 맡겨주시면 좋겠어요.” 혈액 검사와 동시에 오후 4시 반부터 수혈을 위한 적혈구, 백혈병 치료를 위한 혈소판, 혈우병 환자를 위한 신선동결혈장 등으로 혈액을 분리하는 제제製劑 작업이 시작된다. 원심분리기를 통해 분리된 혈액은 공급실 냉장고에서 보관되었다가 다음날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판명되면 병원으로 나간다. 신청한 순서대로 공급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예외도 있다. 공급실의 송창면 씨(35세)는 먼저 신청한 병원에 양해를 구해 위급한 환자가 발생한 병원에 먼저 보내기도 했다. “혈액이 부족할 땐 참 곤란해요. 한번은 환자의 보호자가 여기까지 찾아와 울며불며 부탁을 하시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혈액을 구해드려야 했어요. 그때 내가 하는 일이 사람의 생명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죠.” 이것이 생명의 온기구나… 수혈 “큰 교통사고가 나서 응급 수술을 할 경우엔 많게는 20~30개(1개 400㎖) 혈액을 써요. 그땐 보호자들이 헌혈자를 찾느라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죠.”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의 한 관계자는 혈액원으로부터 필요한 혈액의 70% 정도만 제공받는 수준이라 항상 혈액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특히 혈액암 환자의 경우 조혈모세포이식을 하더라도 수술 후 2~3일에 한 번씩 혈소판을 맞아야 하는데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엄청난 부담이다. 힘겨운 투병 과정, 엄청난 치료비와 더불어 혈소판을 구하는 일은 그들이 겪는 공통적인 어려움이다. 김지숙 씨(39세, 가명)는 얼마 전 골수이식을 받은 초등학생 아들의 병실을 지키고 있다. 아이의 생명줄인 혈액을 구하는 고생은 여전하다. “친구들도 두 번은 못 부르겠더라고. 한번은 아픈 아이가 자기 입으로 혈소판 구해달라고 얘기하는데 어찌나 안타깝던지….” 2개월 전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은 딸을 둔 이미숙 씨(43세)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소용없어요. 피는 공장에서 만들 수 있는 공산품이 아니잖아요. 사람이 움직여 나눌 수밖에 없어요.” 그들은 보호자 대기실에서 시름으로 누워 있다가도 낯선 사람이 찾아오거나 혈소판 얘기만 나오면 벌떡 일어나 애간장을 태운다. 이런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초조한 마음을 이성원 씨(37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골수이식 수술을 받아 이제는 거의 완치된 상태지만 투병 기간의 고통을 떠올리며 백혈병 환자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골수를 받아 새 생명을 얻은 그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이 누구보다 진해졌다. “다른 사람의 피가 몸속으로 들어올 때의 기분은 뭐라고 표현할까요…. 몸이 화해져요. 생명이 들어오고 있구나, 느낄 때면 몸이 찌릿찌릿 놀라 움직이죠. 이것이 생명의 온기구나. 내가 다시 살아나고 있구나!” 우리나라 헌혈자 수는 최근 3년간 2003년 253만 명에서 2005년 227만 명으로 약 10.3%가 줄어들었다. 2005년 기준으로 19만 명의 등록헌혈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나 3만 1천여 명만이 4회 이상 헌혈에 참여했다. 2006년 8월 6일 하루, 전국 2,332명이 헌혈에 참여했다. 적혈구 농축액의 적정 재고량은 약 3만 3천여 개인데, 현재 1만 4천여 개의 재고량을 유지하고 있다. 적십자에서는 전국 16개의 혈액원과 99곳의 헌혈의 집, 107대의 헌혈 차량을 운영하며 헌혈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혈액관리본부 02-3705-3705 서울 중구 남산동 3가 32 | 서울 중앙혈액원 02-6711-0114 서울 강서구 염창동 280-17 | 남부혈액원 02-570-0600 서울 강남구 포이동 267 | 동부혈액원 02-952-0322~8 서울 노원구 상계6동 764 | 서부혈액원 02-2600-5400 서울 양천구 신월2동 472-1 | 부산혈액원 051-810-9000 부산 부산진구 전포3동 362-5 | 대구 경북혈액원 053-605-5610~18 대구 중구 달성동 147-2 | 인천혈액원 032-815-0631~4 인천 연수구 연수3동 581 | 울산혈액원 052-245-2982~4 울산 중구 성안동 872-5 | 경기혈액원 031-220-8500~7 경기 수원시 권선구 권선1동 1015-6 | 강원혈액원 033-269-1000 강원 춘천시 퇴계동 862-3 | 충북혈액원 043-253-2654~5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 15 | 대전 충남혈액원 042-623-2166~8 대전 대덕구 송촌동 294-6 | 전북혈액원 063-270-5800 전북 전주시 완산구 태평동 209-18 | 광주 전남혈액원 062-600-0600 광주 남구 송하동 127-4 | 경남혈액원 055-262-5161~4 경남 창원시 용호동 4-4 | 제주혈액원 064-758-3504~5 제주도 제주시 용담1동 266-1 수혈에 관한 오해와 진실 1. 혈소판, 혈장만 뽑아서 채혈할 수 있다? Yes. ‘헌혈’하면 일반적으로 일정량의 피를 뽑아내는 ‘전혈全血’만 생각하기 쉬운데 그 외에도 ‘성분채혈’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혈장 또는 혈소판 성분을 채혈하는 헌혈을 말한다. 회복이 늦은 적혈구를 되돌려받으므로, 남성에 비해 철분 보유량이 적은 여성도 부담이 없다. 전혈보다 회복이 빨라 2주에 1번 정도 참여할 수 있다. 2. 혈액도 수입한다? Yes. 수혈용 혈액은 국내에서 헌혈을 통해 충당하고 있다. 수입하는 혈액은 의약품 제조용으로 쓰이는 ‘분획分劃용 혈장’이다. 이는 미국, 중국, 스페인 등지에서 수입하며, 화상이나 환자 회복에 사용되는 알부민, B형 감염, 혈우병 치료 등의 의약품 원료로 쓰인다. 3. 헌혈증으로 수혈 비용을 보상받을 수 있다? Yes. 병원에서 수혈받은 환자가 진료비를 계산할 때 헌혈증을 제출하면 일정한 한도 내에서 진료비를 공제받을 수 있다. 전혈 400㎖를 수혈받아 51,891원(수혈 수수료:주사료 외 3개 검사료 포함)을 내야 할 경우, 헌혈증 1매에 대한 보상 한도는 건강보험 적용을 제외한 본인 부담금 20%이므로 10,378원이 된다. 4. 수혈 1순위는 사고로 인한 대량 출혈이다? No. 헌혈 혈액제제 사용량 상위 10개의 질병을 알아보면, ‘급성 백혈병’이 42%로 전체 사용의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이어 림프 및 비非급성 백혈병 15%, 각종 암 13.5%, 간 질환 9.5%, 외과 수술 7.5%, 적혈구 질환 6.9%, 기타 질병 3.6%, 위장관 출혈 2% 순이다. 내가 헌혈 부적격자라고? 누구나 한 번쯤 헌혈을 하러 갔다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허탕치고 돌아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쉬움이 채 가시기 전에 드는 당황스러움. ‘내가 헌혈 부적격이라니. 이렇게 건강한데?’ 헌혈을 할 수 없는 몇 가지 사례를 뽑아보았다. 1. 한약을 복용 중인데 이것도 헌혈할 때는 제약사항입니다. 치료를 목적으로 복용한다면 치료 중인 질환이 완치되어야 헌혈이 가능하고요, 단순히 보약 목적이라면 복용 중단 후 1주일 정도 지나 헌혈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윤주 _ 대전 유성구 신성동 2. 치과 치료 중에는 헌혈을 못 한대요. 발치, 스케일링, 치주염, 신경치료 등 구강 내 출혈이 있는 경우 병원균이 피를 타고 들어가 몸의 다른 부위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군요. 진료 후 3일 이상 지나거나 완치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정인숙 _ 서울 관악구 봉천동 3. 대학생이 되고 기분이 좋아 귀를 뚫었거든요. 착한 일까지 하고 싶어 태어나 처음으로 헌혈의 집을 찾았는데 한 달간 헌혈 보류래요. 혈액으로 인한 감염 예방을 위해서라는데. 얼른 상처가 아물었으면 좋겠어요. 장원미 _ 경기 여주시 여주읍 4. 올 1월에 한 달간 인도로 배낭여행을 다녀왔거든요. 전혈 헌혈은 1년 후에야 할 수 있대요. 인도가 말라리아 감염 지역이라는 우려 때문이죠. 만약 감염 예상지에서 한 달 이상 숙박했다면 귀국 후 3년이 지나야 헌혈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두세요. 이종환 _ 서울 강북구 수유동 믿음의 헌혈, 편리한 수혈 1. 안전성 확보 - 믿음을 줘야 헌혈하러 가지! 우리나라의 헌혈과 수혈 체계는 질적인 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여전히 미흡한 편이다. 일부 부적격 혈액의 출고로 인한 감염사고 반복으로 혈액사업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안감은 계속되고 있다. 수혈 사고로 인해 헌혈 참여자까지 줄어들어 자발적인 개인 헌혈보다는 군인, 학생 등의 단체 헌혈이 많은 후진적인 채혈 관행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5년엔 헌혈자 227만 명 중 절반이 넘는 120만 명이 단체 헌혈자였는데, 단체 헌혈의 경우 문진이 형식화되어 감염 위험자의 사전배제가 어렵다. 현재 적십자에서는 등록 헌혈제를 권장하고 헌혈의 집 시설을 개선하며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잠복기 혈액의 유입을 사전 방지하는 철저하고 체계적인 문진이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질병관리본부와 적십자사가 함께 혈액유보군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하는 것도 시급한 문제다. 2. 혈소판 논쟁 - 환자가 직접 피를 구하라고요? 지난 7월 26일, 국회에서는 ‘혈소판 성분제제 공급부족 해소를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백혈병 환자의 치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혈소판 수혈을 위해 환자 및 보호자가 직접 헌혈자를 구하는 어려움이 반복되고 있기 대문이다. 혈소판이 부족한 것은 근본적으로 헌혈자가 부족하다는 문제 외에도 적십자사와 병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적십자사는 혈액수가가 낮다는 이유로 적극적인 혈소판 공급을 꺼리고 있다. 병원도 적십자사의 공급이 부족하고, 보존기간이 짧아 미리 확보해놓기 어렵다며 환자에게 직접 혈소판을 구해오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안기종 사무국장은 “피값을 내는 환자와 보호자가 직접 피까지 구해야 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일이다”라며 환자와 보호자가 투병과 간병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적십자사와 병원이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월간<샘터>2006.09
  • [부고] 문화유산 사진작가 김대벽씨 별세

    문화유산과 일생을 함께 한 대표적인 사진작가 김대벽씨가 18일 오전 2시35분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77세. 고인은 지난해 말까지도 사진가방을 둘러메고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한국문화의 원형을 담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니는 노익장을 과시했으나 이후 건강이 악화돼 투병생활을 해왔다.1929년 함경북도 회령 출생인 고인은 신학을 전공했으나 매형이자 당시 저명한 사진작가인 정도선씨를 사사하면서 사진에 입문했다. 이후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 사진 담당, 학원사 사진부장, 삼화인쇄 사진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한국문화유산계를 대표하는 사진작가로 명성을 쌓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민혜식(76)씨와 아들 일석(목사), 일웅(공군 중령)씨가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0일 오전 11시.(02)921-1099.
  • 변질‘센트룸’ 유통 논란

    변질‘센트룸’ 유통 논란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사는 김창길(37·회사원)씨는 지난 7월 중순 아내(36)가 복용해온 약을 반으로 갈라보고는 깜짝 놀랐다.6월22일 동네 S약국에서 조제해 온 2개월치 약 포장에 각각 한 정씩 들어 있던 종합비타민제 센트룸이 검버섯 같은 것이 끼어 있는 등 변질돼 있었다. 김씨가 약국으로 찾아가 확인한 결과 약의 유통기한은 내년 4월30일까지였다. 김씨는 “만성 당뇨병과 갑상선염으로 투병 중인 아내가 전에 없이 만성 두통과 소화불량, 신경과민을 호소해 약에 문제가 있나 싶어 잘라 본 것”이라면서 “유통기한도 지나지 않은 유명 약품이 썩어 있었다니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전세계로 유통되는 유명 종합비타민제 센트룸이 유통기한을 9개월이나 앞둔 상태에서 변질돼 복용자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지만 제약회사측은 약국과 복용자의 잘못된 관리 탓이라며 나 몰라라 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신문 취재진이 S약국에 확인한 결과 김씨 아내와 비슷한 시기에 조제된 센트룸을 복용한 박모(60·여)씨 등 4명이 똑같은 피해를 호소한 것으로 밝혀졌다.S약국 김모 약국장은 “약은 유통기한이 지나도 변질 가능성이 아주 낮은 제품이다.25년 동안 약국을 운영해 왔지만 약이 이렇게 변질된 건 처음이다. 원 제조국인 미국 제품에 비해 캐나다에서 수입된 센트룸은 방습코팅이 좀 약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제품은 외국계 제약회사인 ㈜한국와이어스가 지난해 7월 캐나다에서 100정 들이 1만 6000통을 수입해 온 물량 중 일부다. 하지만 ㈜한국와이어스측은 별다른 대책이나 피해 보상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국와이어스 품질관리과 홍기형 과장은 “약통에 담겨 있었으면 이상이 없었을텐데 약국에서 별도의 봉투로 조제된 제품을 장마철에 관리를 잘 하지 못했거나 젖은 손으로 만져 습기가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일차적인 책임은 약국에 있어 제품을 조제하고 있는 약국측에 앞으로 컨테이너 보관상태에서 처방하도록 조치를 내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한약사회 고위 관계자는 “국내 다른 비타민제들도 장마철 습기 등에 대비해 제조되고 있는데 유독 센트룸만 변질됐다는 점에서 최초의 제조 과정에서 내수성을 높이기 위한 포장이나 코팅 등이 잘못됐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에 나온 제품들을 모두 조사해 리콜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伊 전설적 종군 여기자 팔라치 별세

    세계 정치지도자들을 물고 늘어지는 공격적인 인터뷰와 전쟁 취재로 이름을 날렸던 이탈리아 원로 여기자이자 작가인 오리아나 팔라치가 15일 숨졌다. 향년 77세.이탈리아 안사 통신은 수년 전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오던 팔라치가 이날 고향인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1929년 태어나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독재정권 아래서 자란 팔라치는 지하 레지스탕스 전사 등으로 활동하다 1950년 기자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종군기자로서 베트남 전쟁, 인도-파키스탄 전쟁, 중동전쟁, 아프가니스탄 내전,1990년대 걸프전쟁까지 취재하며 전쟁터의 참상을 보도했다. 또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장,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 등 당시 거물 지도자들을 거칠게 몰아붙이며 화제를 만들어냈다. 키신저 국무장관을 카우보이에 비유하는가 하면, 호메이니와 마주앉았을 때에는 이슬람 여성의 전통 베일인 차도르를 벗어던지기도 했다. 평생 결혼은 하지 않았으나 그리스 민주화운동가며 시인인 알레코스 파나굴리스와 연인관계를 맺었다. 파나굴리스가 1979년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뒤 ‘한 남자’라는 저서를 영전에 바쳐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부고] 아랍 첫 노벨문학상 마푸즈 별세

    아랍권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이집트의 문호 나기브 마푸즈가 카이로의 경찰병원에서 타계했다고 AP통신이 30일 보도했다.94세. 지난 1994년 장편 ‘게벨라위의 아이들’이 신성모독 논란에 휩싸이면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로부터 테러를 당하기도 했던 그는 지난달부터 지병이 악화돼 병원에서 투병해왔다. 1911년 카이로에서 태어난 마푸즈는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는 지식인의 표상으로 이집트뿐 아니라 아랍권에서도 이름을 날렸다.1988년엔 아랍권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대표작 ‘광기의 속삭임(1938년)’ 등 10여권의 단편집과 30여권의 장편,30여편의 시나리오를 남겼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김성호 법무 후보자 인사청문회

    김성호 법무 후보자 인사청문회

    김성호 법무장관 후보자가 25일 ‘1차 관문’인 국회 법사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민감한 질문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라는 말만 거듭하다가 “소신있게 답변하라.”는 지적을 여러차레 받았다. 민주당 조순형 의원은 ‘보은사면’ 등 사면권 남용 논란과 관련해 ‘전매상품’격인 쓴소리를 어김없이 내놨다. 조 의원은 “서면 답변에서 사면권이 사회정의 실현과 국민통합을 위한 헌법적 고유권한이라고 했는데 8·15 특사도 그렇게 이해하느냐.”고 물었고, 김 후보자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조 의원이 “판결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대통령 측근들을 사면시킨 것이 사회정의라는 게 말이 되느냐. 너무나도 국민과 동떨어진 이해”라고 매서운 질책을 가했다. 결국 김 후보자는 “저도 사면법을 수정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한다. 대통령의 권한으로 돼 있지만 권한을 적절히 행사하도록 보장될 필요가 있다.”며 한 발짝 물러섰다. 김 후보자의 차남이 96년 현역병 입영대상 처분을 받았다가 이듬해 신(腎)증후군으로 병역이 면제되는 과정에 대한 질의도 쏟아졌다. 그는 “92년 발병해 생사를 걱정하는 투병생활을 했고 지금도 하루 10시간 이상 자지 않으면 안된다.”고 항변했다. 고정수입이 없던 두 아들의 재산이 3억 2000만원인 것과 관련해 증여세를 내지 않은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장남이 고시원 얻을 때 3000만원, 차남에게 오피스텔비 2000만원을 준 게 전부”라고 답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이종현의 나이스 샷] 골프공에 대한 단상

    얼마 전 국내 골프장 해저드에서 골프공 150만개(3억원 상당)를 전문적으로 훔쳐 판 사람들이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그동안 골프공을 훔쳐 파는 절도범들은 해외토픽에서만 접해왔던 내용이다. 국내서는 골프장 직원이 몰래 해저드에 망을 쳐놓고 팔다 적발되거나 오너가 직접 내다 팔아 손가락질을 받는 정도였다. 그러나 일본과 미국처럼 잠수장비를 갖추고 골프공을 훔쳐 파는 것을 보면서 남의 나라 일이 아님을 느낀다. 일본과 미국서는 해저드에서 골프공을 훔치려고 잠수하다가 산소 부족으로 숨지는 사건도 일어난다. 그런가 하면 일본, 미국엔 정식 계약을 통해 골프장 내 로스트볼을 전문적으로 수거해 재생 판매하는 회사가 있다. 국내서도 곧 유사한 회사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골프공은 골퍼에겐 희로애락이, 어떤 이들에겐 생존수단이 되기도 한다. 동남아시아에선 골프공이 해저드에 빠지면 주변에서 기다리던 아이들이 쏜살같이 뛰어들어 볼을 건져와 돈을 요구한다. 공의 가치보다는 뛰어든 아이의 정성에 대부분 달러를 건넨다. 또 중국 청도의 A골프장은 아예 공이 떨어질 지점에 텐트를 쳐놓고 공을 슬그머니 주워가는 사람들도 있다. 골퍼들은 이곳을 블랙홀이라고 말한다. 텐트 주인에게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어 웃으며 지나치곤 한다. 이들이 이렇게 공에 집착하는 이유는 하루 노동으로 버는 돈보다 수입이 더 좋기 때문이다. 하루 노동으로 2∼3달러 버는 것에 비해 운만 좋으면 20달러 이상을 챙기니 골프공이 황금알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고 보면 지름이 4.26㎝밖에 되지 않는 작은 공 하나가 타이거 우즈에겐 한 해 1000억원을 벌게 해 주는 신통한 도구이고, 동남아 골프장 주민들에겐 하루 양식이 되기도 한다. 골프공은 국내서도 많은 골퍼들을 웃고 울리고, 술자리서는 안주거리가 되기도 한다. 공 아까운 줄 모르는 여성 골퍼에겐 ‘볼 한 개 값이 계란 두 판’이라고 말하면 아까워서 안절부절한다. 티샷 한 볼이 러프에 살아 있자 신발로 꾹 밟는 동반자나 주머니에서 슬그머니 볼을 꺼내 찾았다며 한판 실랑이를 벌이는 이들 역시 공 하나에 희비가 교차된다. 또 외국의 모 프로골퍼는 우연히 집으로 날아든 골프공이 예쁘고 신기해서 골프를 시작해 톱 골퍼가 됐다. 골프공이 자신이 낳은 알인 줄 알고 봄 내내 품고 있는 새, 암 투병중인 아들과의 라운드에서 터진 홀인원 공이 아들을 살릴 수 있는 징조로 굳게 믿는 어느 골퍼의 내용은 가슴이 따듯하게 한다. 골프공엔 희망과 꺼지지 않는 열정이 있다. 레저신문 편집국장 huskylee1226@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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