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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ul 요모조모-만원의 행복] 용산구 전쟁기념관

    [Seoul 요모조모-만원의 행복] 용산구 전쟁기념관

    좋은 일을 기념하면 더없이 좋지만, 세상엔 그렇지 않은 것도 숱하다. 일제가 남긴 마뜩잖은 유산도 더러는 간직해야 한다.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자는 뜻이 담겼다. 한국주둔 미군이 떠나도, 전국을 뒤흔든 연평도 사태가 수그러들어도 마찬가지다. 용산구 남영동에 전쟁기념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전쟁에 담긴 교훈을 일깨우는 곳이다. 매주 월요일을 빼고 오전 9시~오후 6시 무료 개방한다. ●호국추모실 등 6개 전시실 8만 2500㎡(2만 5000평)에 6개 전시실을 꾸몄다. 호국추모실은 수많은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다 숨진 넋을 기리는 공간이다. 16만여명이나 되는 전사자 명부를 봉안했다. 전쟁역사실은 선사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의 대외항쟁 자료, 무기와 장비 등을 시기별로 한눈에 보여준다. 한국전쟁실에는 전쟁 발발부터 휴전협정까지 총체적인 실상을 담았다. 황해북도 개성 송악산 육탄 10용사 동상, 중앙청 태극기 게양 및 중공군 인해전술 디오라마(배경 위에 모형을 설치하여 하나의 장면을 만든 것), 참전 16개국의 전투병 모형이 대표적이다. 해외파병실에는 통일신라 때부터 베트남전, 국제연합평화유지군(UNPF)에 이르기까지 총 12회의 해외파병 기록, 국군발전실에는 한국군 창설에서부터 오늘날 국군으로 발전하기까지 군사제도·무기 및 장비·복식과 교육훈련 모습을 전시했다. 대형장비실에선 한국전에 동원된 모든 항공기·전차·화포 등 큰 전투장비는 물론 이후 국내 방위산업체에서 생산한 전차·유도탄·대공포·소총·탄약 등 무기류를 들여다볼 수 있다. ●‘포옹하는 형제 병사상’ 뭉클 2일 학습차 기념관을 찾은 중학생 김시내(14)양은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포옹하는 형제 병사의 동상이 나타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떠올렸다.”며 “스크린을 통해 봤던 것보다 훨씬 가슴 뭉클하다.”고 말했다. 걸어서 5분 안팎에는 들를 만한 음식점도 많다. 명화관(전화 792-2969)은 짬뽕 한그릇에 4500원, 자장면 한그릇에 4000원을 받는다. 원대구탕(797-4488)에선 7000원에 일품요리를 맛볼 수 있다. 밥을 볶으면 1000원 추가, 공기밥은 공짜다. 진주집(797-8065)에선 7000원짜리 고등어구이와 갈치조림이 입맛을 당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부고] 원종문 외교부 인사제도팀장

    외교통상부에서 특채 파동 이후 격무에 시달렸던 한 간부직원이 한달여 폐암 투병 끝에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외교부 인사제도팀장 원종문씨는 1일 오전 4시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올해 45세인 그는 지난 10월 말 몸이 갑자기 나빠져 병원에 입원해 건강검진을 받은 결과 지난달 3일 폐암 판정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원 팀장은 9월 초 유명환 전 장관 딸 특채 사건이 불거진 뒤 행정안전부의 인사 감사, 국회 국정감사, 인사쇄신안 마련 등 업무가 폭주하면서 야근은 물론 주말도 쉴 새 없이 일해 왔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 3일 오전 8시. (02)3410-6905.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부고] 홍종욱 전 의원 별세

    11·12대 국회의원(민정당)을 지낸 홍종욱씨가 지난달 30일 별세했다. 86세. 고인은 디스크수술을 받은 뒤 3년 동안 투병 생활을 해 왔다. 고인은 1926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강원도교육감을 거쳐 민정당에 입당한 뒤 11대 때는 춘천 지역구에서, 12대 때는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 뒤 민족문화추진위원회 회장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순규씨와 아들 순주(춘천 스프링베일골프장 사장), 딸 혜순·영순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 3일 오전 7시. 장지는 춘천시 서면 신매리 선영. (02)3010-2230.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부고] ‘제국의 역습’ 어빈 커시너 감독

    영화 ‘스타워스’ 시리즈 가운데 ‘제국의 역습’ 편을 만든 감독 어빈 커시너가 폐암 투병 끝에 지난 27일 타계했다. 87세. 1923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커시너는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영화학교를 졸업했으며 1958년 데뷔작 ‘스테이크아웃 온 도프 스트리트’를 시작으로 영화감독의 길을 걸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제국의 역습’ 외에도 007 시리즈 영화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과 ‘로보캅2’ 등이 있다. 조지 루커스 감독은 커시너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낸 성명에서 “세계는 위대한 감독을 잃었다.”며 애도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부고] “내가 죽으면 청바지 입혀 화장을…”

    [부고] “내가 죽으면 청바지 입혀 화장을…”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하던 원로배우 트위스트 김(본명 김한섭)이 30일 오전 10시 40분쯤 별세했다. 74세. 고인은 2006년 9월 부산의 한 호텔에서 공연을 하다가 외상성 뇌출혈로 쓰러진 뒤 뇌수술만 세 차례 받는 등 4년이 넘도록 힘든 투병 생활을 해왔다. 아들인 준홍씨는 “아버지는 지난 3년여간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상태로 병상에 누워 지냈다.”면서 “오늘 아침 돌아가실 때 눈물을 흘리셨다.”고 말했다. 1936년 부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9년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 연구생으로 들어가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1962년 영화 ‘동경서 온 사나이’가 데뷔작으로 알려져 있으나, 생전 인터뷰에서 고인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1962년 ‘아름다운 수의’를 촬영할 때 고인의 춤을 눈여겨본 신상옥 감독이 트위스트 김을 예명으로 지어줬다. 고인은 1964년 당대 청춘스타 신성일, 엄앵란 등과 함께 출연한 영화 ‘맨발의 청춘’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 청바지와 청재킷 차림, 재치 있는 말솜씨와 뛰어난 춤솜씨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고인은 1960~70년대를 정점으로 ‘오늘은 왕’ ‘성난 영웅들’ 등 160여편의 영화에서 개성파 조연 배우로 활약했다. 1 999년 영화 ‘그림일기’로 사실상 활동을 접었으나 2001년 악극 ‘아빠의 청춘’, 2005년 TV 드라마 ‘맨발의 청춘’에 출연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 들어서는 한 청춘스타와 관련된 친자설 발언으로 소송에 휘말리고, 예명을 도용한 성인 사이트와 소송을 벌이는 등 구설수에 올랐다. 고인은 2006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성인 사이트로 인해 겪었던 고통을 털어놓으며 “(한강에)자살하러 갔을 때 마지막으로 써 놓은 글이 있다. 청바지 1호가 트위스트 김 아닌가. ‘내가 죽으면 청바지 입혀서 화장을 시켜 달라’고 써놓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옥이씨와 아들 준홍, 딸 영신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쌍문동 한일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2일 오전 9시.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암투병 여성과 메일 주고 받으며 힘겨운 세상의 희망·사랑 담담히

    “인생에는 살맛이 있습니다. 절대 포기하면 안 됩니다.” 갑작스럽게 닥쳐온 시련 앞에 누구나 가끔씩 좌절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여성 암환자와 중년 기자는 입을 모아 이렇게 이야기한다. 오풍연 서울신문 부국장이 펴낸 ‘여자의 속마음’(오래 펴냄)은 진솔한 목소리로 일상의 희로애락을 솔직하게 담은 수필집이다. 올해로 기자 생활 25년째에 접어드는 저자는 자신의 첫 번째 에세이집 ‘남자의 속마음’을 펴낸 뒤 우연한 기회에 속편 격인 ‘여자의 속마음’을 썼다. 뜨거운 연애를 해본 적도 없고 딸 자식도 없고, 오직 아내뿐이어서 속편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는 그는 암투병 중인 여성 독자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여자의 속마음을 알게 됐고, 책으로까지 옮기게 됐다. 책에는 힘겨운 세상살이를 의미있게 만드는 소소한 일상을 간결한 문체에 담은 170여편의 수필이 실려있다. 저자는 군대 간 아들을 염려하는 아버지이자 가족을 걱정하는 아내를 다독이는 남편, 실의에 빠지거나 건강을 잃은 주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글을 통해 가족의 의미와 부부 간의 사랑, 친구와의 믿음을 이야기한다. 저자가 ‘누님’이라고 칭하는 여성 독자는 50대의 평범한 가정 주부로 몇 년전 남편을 암으로 떠나 보낸 데 이어 자신마저 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이다. 하지만 그녀는 ‘풀벌레 우는 밤’, ‘감사합니다’, ‘두 딸과의 여행’ 등의 글을 통해 시련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을 나지막이 속삭인다. 안방 침대에 누워 산으로 넘어가는 달을 볼 수 있는 집에 산다는 것에 감사한다는 저자의 소박함과 “행복은 가진 것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는 따뜻한 감동을 준다. 법조 대기자를 거쳐 이제는 작가로서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저자는 삶과 죽음 등 인생은 물론 시의성 있는 주제를 날카로운 시선과 깊은 통찰력으로 짧고도 간결한 문체에 담는다. 반면 여성 독자의 글은 호흡은 길지만 감성적이고 솔직한 필체로 묘한 대조를 이룬다. 각자 처한 입장과 상황은 다르지만 서로를 통해 배려와 상생을 통한 삶의 자세를 배웠다는 두 사람의 우정이 행간에 묻어난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전경련 “이건희 차기회장직 수락 기다리는 중”

    전경련 “이건희 차기회장직 수락 기다리는 중”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추대하기로 하고 수락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18일 밝혔다. 정병철 전경련 상근 부회장은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정례 회장단 회의를 가진 뒤 언론 브리핑에서 “지난 7월15일 회장단 회의에서 이 회장에게 차기 회장을 맡아 달라고 했을 때 3~5개월 시간을 갖자고 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회장은 지난 7월 전경련 회장단을 삼성그룹 영빈관인 한남동 승지원으로 초대해 만찬을 가졌다. 이때 회장단이 이 회장을 차기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은 이 회장이 언급한 3~5개월의 시간이 경과돼 이날 회의에서 차기 회장 추대 문제를 다시 논의한 끝에 시간을 좀 더 갖고 기다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 부회장은 이 회장의 차기 전경련 회장 수락 가능성에 대해선 “우리의 희망사항”이라며 “대안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전경련은 지난 7월 초 투병으로 사임의사를 밝힌 조석래 회장의 임기가 내년 2월까지여서 그동안 차기 회장 추대를 공식화하지 않았다. 재계에선 이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수락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전경련이 재계 1위 기업을 이끄는 이 회장을 추대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과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전경련도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는 상황이다. 한편 전경련 회장단은 이날 내년 국내외 경기 하락에 따른 충격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회장단은 회의 발표문에서 “적극적인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통해 경제 활성화와 서민들의 체감경기 개선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겠다.”면서 “또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환경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내년 경기 하락에 대비해 대부분의 기업들이 보수적으로 2011년 경영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면서 “전경련 회장단은 선제 대응을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서민 등에게 미칠 경기 불황의 연쇄 충격을 완화하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코레일 직원 이용렬씨, 암투병 김세곤씨에게 간 이식

    코레일 직원 이용렬씨, 암투병 김세곤씨에게 간 이식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직원이 간암 투병 중인 동료에게 간을 이식해 줘 주변에 훈훈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코레일 전남본부 전기팀에 근무하는 이용렬(38·3급) 신호제어파트장. 이 파트장은 지난 9월 같은 지역본부인 덕양신호제어사무소에 근무하는 김세곤(37·4급)씨가 간암 투병 중 간 이식이 시급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기증 의사를 밝혔다. 1994년 철도고를 졸업하고 8급으로 코레일에 입사한 이 파트장은 김씨와 같이 근무한 경험도 없지만 전기 파트에 근무하는 ‘직장 동료’라는 마음에 선뜻 간 이식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파트장 외에 전남본부가 업무 포털에 김씨에게 간 이식이 필요하다는 글을 올리자 또 다른 직원 2명도 기증 의사를 밝혔지만 지난달 18일 조직검사 결과 이 파트장이 최종 이식자로 선정됐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이 파트장 가족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두 자녀의 아버지인 가장의 건강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이 파트장은 아내를 설득한 후 술을 끊고 퇴근 후에는 운동을 함께 다니는 등 수술을 준비했다. 지난 15일 삼성서울병원에서 13시간에 걸친 이식 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김씨는 1년, 이식을 해준 이 파트장도 6개월의 회복기간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파트장의 부인 윤은경(34)씨는 “남편은 평소 사후 시신을 기증하겠다고 말해 농담인 줄 알았다.”면서 “처음에는 싸움도 했지만 말린다고 포기할 사람도 아니어서 뜻을 따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윤씨는 “전북 익산의 시댁과 친정에는 알리지 않았고 두 아들에게는 아빠가 아파서 수술을 하는 것으로 말했다.”면서 “초등학생인 아이들에게는 좀 더 시간이 지난 후 얘기해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코레일은 전례가 없지만 이 파트장의 아름다운 희생을 높이 사 ‘공가’로 처리하기로 했다. 전재근 코레일 전남본부 전기팀장은 “이 파트장이 처음 기증 의사를 밝혔을 때 존경스럽기까지 했다.”면서 “수술·치료비가 엄청나 우선 전남본부와 전기분야에서 모금활동을 벌일 계획이다.”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발목절단 직전에 기적이 찾아왔다

    발목절단 직전에 기적이 찾아왔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요.” 지난 8월 압축천연가스(CNG)버스 폭발사고로 두 발목이 거의 잘리는 중상을 입은 이효정(28·여)씨는 “이번이 정말 끝”이라며 용기를 냈다. 두 차례의 수술에서 큰 희망을 보지 못한 터라 낙담하던 효정씨의 어머니도 딸아이의 간절함을 외면할 수 없었다. 지난달 28일 서울 한양대병원 본관 5층 중앙수술실. 오전 8시 ‘수술중’이란 불이 들어왔다. 이번엔 허벅지살을 떼어냈다. 12시간의 대수술. 그러나 이번 수술은 이전과 달랐다. 수술 후 2주가 지났다. 두 발에 온기가 돈다. 근육에도 조금씩 힘이 붙고 있다. 걸을 확률이 거짓말처럼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효정씨에게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난 10일 저녁 무렵 효정씨가 입원해 있는 한양대병원 20층 병실을 노크했다. 아직 누구를 만나기 힘든 건 아닐까. 초조했다. 언론과 처음 인터뷰하는 효정씨는 2시간 넘도록 표정이 굳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면 말보다 울음이 먼저 터졌다. 하얗고 앳된 얼굴, 몰라보게 야윈 몸집, 철제 보조기구로 고정해 놓은 두 다리. 가슴이 먹먹했다. 홀어머니와 두 동생을 묵묵히 돌봐온 ‘효녀가장’. 2주 전만 해도 상태가 악화돼 오른쪽 발목을 절단하고 보조기를 달기로 했던 그녀였다. 80% 가까이 잘려 나간 오른쪽 발목에 옆구리살을 이식했지만 혈류가 통하지 않아 점점 괴사가 일어나서였다. “우리 애 이제 살았어요. 혹여 부정이라도 탈까 봐 말도 못하고 있었는데….” 효정씨의 흐르는 눈물과 어색한 침묵 속에서 어머니가 말을 꺼냈다. 눈가는 벌게져 있었다. 누워 있던 효정씨가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담당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 정형외과 수술이 남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세번에 걸친 ‘피판수술’(몸의 한 조직을 다른 부위에 옮겨 조직을 재건하는 수술)성공으로 걸어서 나갈 확률이 높아졌다.”고 했다. “통상 10×10㎝ 면적의 재건 수술도 큰 수술로 치는데, 효정씨의 경우 35×12㎝의 수술을 진행했다. 이렇게 넓은 부위를 채우는 수술도 드문 데다, 이식한 혈관과 근육조직이 정상적으로 연결된 것도 기적에 가까운 결과”라고 설명했다. 효정씨는 다음주부터 휠체어 연습과 물리치료에 들어간다. 그러나 갈길이 멀다. 이르면 다음달부터 인공뼈·관절 삽입 등의 외과 수술일정을 또 잡아야 한다. 지팡이 없이 절뚝이지 않고 제대로 걸으려면 길게는 몇 년을 수술과 재활치료에 전념해야 한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등 정신과 치료도 받아야 한다. 아직도 효정씨는 밤잠을 설친다. 그녀는 “자꾸 깨어요. 무섭고, 가끔씩 너무 아파서요.”라고 지워지지 않는 ‘그날의 악몽’을 이야기했다. 효정씨는 “3개월 동안 10㎏ 넘게 빠졌다.”고 말했다. 퇴원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제주도 여행을 가보고 싶어요. 엄마랑 한번도 어디 놀러간 적이 없어서….” 또 울음이 터졌다. “우리 엄마 고생 많이 했는데….” 어머니는 이미 눈물범벅이 됐다. 올 장애인체전 테니스 금메달리스트인 여정혜(35·여)씨가 이날 효정씨를 응원하기 위해 용인에서 직접 차를 몰고 병문안을 왔다. 그는 지쳐 있는 효정씨를 위해 힘겨운 재활과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경험담을 솔직하면서도 익살스럽게 털어놨다. “나 미니스커트 입고 다녀. 어린애들이 철로 만든 의족 보고 사이보그인 줄 알고 신기해해. 완전 스타야.” 정혜씨의 코믹한 말투에 다른 사람들은 ‘킥킥’거리거나 웃음을 터뜨려도, 효정씨만은 눈시울을 적셨다. 아직도 상처가 가시지 않는 듯했다. 특히 어머니와 효정씨는 서울신문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효정씨의 안타까운 사연과 후원계좌를 알린 보도 이후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성금을 보내왔다고 했다. 합의금이나 보상금을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만 대략 1~2년. 특별한 수입이 없는 효정씨네가 생활하는데 이 성금이 큰 보탬이 됐다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는 “(그 돈으로) 환자가 개인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가래흡입기 등 의료기기도 샀어요. 없는 형편에 얼마나 고맙고 감사했는지….”라며 꼭 기사에 실어달라고 부탁했다. 한동안 상태가 나빠진 효정씨를 기운나게 만든 것도 이웃들의 따뜻한 온정이었다. 제대로 일어나 앉지도 못하는 효정씨는 통장에 돈을 보낸 이들이 남긴 ‘힘내세요.’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등 격려 메시지를 보고 통곡했다. “이렇게나 많이, 제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저한테 도움을 주셨다니… 어떻게 이 은혜 다 갚죠?” 모녀는 4시간 가량의 인터뷰 동안 열번도 넘게 눈물을 흘렸다. 끔찍한 사고 기억이 떠올라서, 도움이 고마워서, 서로에 대한 미안함과 안쓰러움 때문에. 100일 전이나 지금이나 원망은 한마디도 없었다. 배웅하러 나온 어머니가 기자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셔서 우리 애 힘내서 일어선 거예요. 정말 고맙습니다.” 어머니의 눈가가 또 젖어 왔다. 백민경·윤샘이나기자 white@seoul.co.kr
  • 발목절단 직전에 기적이 찾아왔다

    발목절단 직전에 기적이 찾아왔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요.” 지난 8월 압축천연가스(CNG)버스 폭발사고로 두 발목이 거의 잘리는 중상을 입은 이효정(28·여)씨는 “이번이 정말 끝”이라며 용기를 냈다. 두 차례의 수술에서 큰 희망을 보지 못한 터라 낙담하던 효정씨의 어머니도 딸아이의 간절함을 외면할 수 없었다. 지난달 28일 서울 한양대병원 본관 5층 중앙수술실. 오전 8시 ‘수술중’이란 불이 들어왔다. 이번엔 허벅지살을 떼어냈다. 12시간의 대수술. 그러나 이번 수술은 이전과 달랐다. 수술 후 2주가 지났다. 두 발에 온기가 돈다. 근육에도 조금씩 힘이 붙고 있다. 걸을 확률이 거짓말처럼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효정씨에게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난 10일 저녁 무렵 효정씨가 입원해 있는 한양대병원 15층 병실을 노크했다. 아직 누구를 만나기 힘든 건 아닐까. 초조했다. 언론과 처음 인터뷰하는 효정씨는 2시간 넘도록 표정이 굳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면 말보다 울음이 먼저 터졌다. 하얗고 앳된 얼굴, 몰라보게 야윈 몸집, 철제 보조기구로 고정해 놓은 두 다리. 가슴이 먹먹했다. 홀어머니와 두 동생을 묵묵히 돌봐온 ‘효녀가장’. 2주 전만 해도 상태가 악화돼 오른쪽 발목을 절단하고 보조기를 달기로 했던 그녀였다. 80% 가까이 잘려 나간 오른쪽 발목에 옆구리살을 이식했지만 혈류가 통하지 않아 점점 괴사가 일어나서였다. “우리 애 이제 살았어요. 혹여 부정이라도 탈까 봐 말도 못하고 있었는데….” 효정씨의 흐르는 눈물과 어색한 침묵 속에서 어머니가 말을 꺼냈다. 눈가는 벌게져 있었다. 누워 있던 효정씨가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담당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 정형외과 수술이 남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세번에 걸친 ‘피판수술’(몸의 한 조직을 다른 부위에 옮겨 조직을 재건하는 수술)성공으로 걸어서 나갈 확률이 높아졌다.”고 했다. “통상 10×10㎝ 면적의 재건 수술도 큰 수술로 치는데, 효정씨의 경우 35×12㎝의 수술을 진행했다. 이렇게 넓은 부위를 채우는 수술도 드문 데다, 이식한 혈관과 근육조직이 정상적으로 연결된 것도 기적에 가까운 결과”라고 설명했다. 효정씨는 다음주부터 휠체어 연습과 물리치료에 들어간다. 그러나 갈길이 멀다. 이르면 다음달부터 인공뼈·관절 삽입 등의 외과 수술일정을 또 잡아야 한다. 지팡이 없이 절뚝이지 않고 제대로 걸으려면 길게는 몇 년을 수술과 재활치료에 전념해야 한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등 정신과 치료도 받아야 한다. 아직도 효정씨는 밤잠을 설친다. 그녀는 “자꾸 깨어요. 무섭고, 가끔씩 너무 아파서요.”라고 지워지지 않는 ‘그날의 악몽’을 이야기했다. 효정씨는 “3개월 동안 10㎏ 넘게 빠졌다.”고 말했다. 퇴원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제주도 여행을 가보고 싶어요. 엄마랑 한번도 어디 놀러간 적이 없어서….” 또 울음이 터졌다. “우리 엄마 고생 많이 했는데….” 어머니는 이미 눈물범벅이 됐다. 올 장애인체전 테니스 금메달리스트인 여정혜(35·여)씨가 이날 효정씨를 응원하기 위해 용인에서 직접 차를 몰고 병문안을 왔다. 그는 지쳐 있는 효정씨를 위해 힘겨운 재활과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경험담을 솔직하면서도 익살스럽게 털어놨다. “나 미니스커트 입고 다녀. 어린애들이 철로 만든 의족 보고 사이보그인 줄 알고 신기해해. 완전 스타야.” 정혜씨의 코믹한 말투에 다른 사람들은 ‘킥킥’거리거나 웃음을 터뜨려도, 효정씨만은 눈시울을 적셨다. 아직도 상처가 가시지 않는 듯했다. 특히 어머니와 효정씨는 서울신문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효정씨의 안타까운 사연과 후원계좌를 알린 보도 이후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성금을 보내왔다고 했다. 합의금이나 보상금을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만 대략 1~2년. 특별한 수입이 없는 효정씨네가 생활하는데 이 성금이 큰 보탬이 됐다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통장만해도 두개이 족히 넘는다. 어머니는 “(그 돈으로) 환자가 개인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가래흡입기 등 의료기기도 샀어요. 없는 형편에 얼마나 고맙고 감사했는지….”라며 꼭 기사에 실어달라고 부탁했다.한동안 상태가 나빠진 효정씨를 기운나게 만든 것도 이웃들의 따뜻한 온정이었다. 제대로 일어나 앉지도 못하는 효정씨는 통장에 돈을 보낸 이들이 남긴 ‘힘내세요.’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등 격려 메시지를 보고 통곡했다. “이렇게나 많이, 제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저한테 도움을 주셨다니… 어떻게 이 은혜 다 갚죠?” 모녀는 4시간 가량의 인터뷰 동안 열번도 넘게 눈물을 흘렸다. 끔찍한 사고 기억이 떠올라서, 도움이 고마워서, 서로에 대한 미안함과 안쓰러움 때문에. 100일 전이나 지금이나 원망은 한마디도 없었다. 배웅하러 나온 어머니가 기자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셔서 우리 애 힘내서 일어선 거예요. 정말 고맙습니다.” 어머니의 눈가가 또 젖어왔다. 백민경·윤샘이나기자 white@seoul.co.kr
  • [부고] ‘슬픔의 노래’ 폴란드 작곡가 고레츠키 타계

    [부고] ‘슬픔의 노래’ 폴란드 작곡가 고레츠키 타계

    제3번 교향곡 ‘슬픔의 노래’로 세계적 명성을 쌓은 폴란드 작곡가 헨리크 미콜라이 고레츠키가 오랜 투병 끝에 76세로 타계했다고 로이터통신이 12일 보도했다. 1976년 작품인 ‘슬픔의 노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에 갇혔던 고레츠키가 가스실에 끌려가 생을 마감한 유대인들이 벽에 남긴 글귀들을 보고 느낀 감상 등을 표현한 작품으로 그가 남긴 최고의 명작으로 꼽힌다. 1933년 폴란드 남부 음악인 가정에서 태어난 고레츠키는 초창기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센, 벨라 바르톡 등 전위파 작곡가들의 영향을 받아 꾸밈없고 사색적인 작품세계를 일궈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부고] 1인 밴드 ‘달빛요정’ 이진원

    [부고] 1인 밴드 ‘달빛요정’ 이진원

    1인 프로젝트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으로 활동하던 이진원이 뇌출혈로 투병하다 지난 6일 오전 8시 13분 숨졌다. 37세. 이진원은 지난 1일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채 발견돼 서울 영등포동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쓰러진 지 만 하루 이상 지나 발견된 탓인지 의식을 찾지 못했다. 2004년 홈레코딩을 통해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데뷔 앨범을 낸 이진원은 사회를 직시하는 노랫말에 흥겹고 상큼한 멜로디로 인디 음악계에서 널리 사랑받아 왔다. 대표곡으로는 ‘절룩거리네’와 ‘스끼다시 내 인생’ ‘고기반찬’ 등이 있다. 이진원의 동료들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홈페이지를 통해 “달빛요정이 이 세상과의 인연을 마치고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고 전했다. 그의 별세 소식을 접한 이적, 윤종신, 사이먼디 등도 트위터를 통해 애도의 뜻을 전했다. 빈소는 가톨릭대 여의도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8일 낮 12시. 한편 당초 이진원의 쾌유를 기원하며 10일 서울 홍익대 앞 클럽 타에서 열릴 예정이던 모금 콘서트는 고인의 장례를 치른 뒤 개최 여부를 확정짓기로 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뇌출혈’ 달빛요정 쾌유 희망콘서트

    “진원아! 이제 슬슬 타석에 들어서서 역전 만루홈런을 날릴 때다!! 모두가 너를 보고 있다!!” 뇌출혈로 투병 중인 동료 뮤지션을 위해 서울 홍대 앞 인디 음악인들이 뭉친다. 오는 10일 오후 7시 서울 서교동 라이브클럽 타(打)에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쾌유를 기원하는 모금 공연’이 열린다. 싱어송라이터 이한철, 오지은, 밴드 와이낫, 좋아서하는밴드, 갤럭시익스프레스가 무대에 오른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하 달빛요정)은 2004년 정식 데뷔 앨범을 낸 이진원(37)의 1인 프로젝트 밴드. 포크 록에 바탕을 둔 달빛요정은 사회를 직시하는 노랫말에 흥겹고 상큼한 멜로디로 인디 음악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1일 뇌출혈로 쓰러진 그를 합주 시간에 늦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집으로 찾아간 동료들이 발견해 서울 영등포동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겼다. 수술을 받았으나 지금까지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콘서트는 모금 공연의 물꼬를 트는 자리다. 바드, 한음파, 하이미스터메모리 등 수많은 동료 밴드와 뮤지션이 발벗고 나서는 상황이라 모금 공연은 2차, 3차, 4차 등 꾸준히 이어질 예정이다. 공연 입장료는 2만원. 수익금 전액은 달빛요정의 치료비로 쓰여진다. 클럽 타의 서동혁 매니저는 4일 “달빛요정을 위해 무대에 서겠다는 요청이 끝없이 밀려들고 있다. 달빛요정이 건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02)6085-5150.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한국 대표 여성작가 이성자·윤영자·천경자 불꽃같은 예술혼 ‘아름다운 대화’

    한국 대표 여성작가 이성자·윤영자·천경자 불꽃같은 예술혼 ‘아름다운 대화’

    이성자(1918~2009), 윤영자(1924~), 천경자(1924~).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6·25전쟁의 폐허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불꽃같은 열정과 예술혼으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한국 대표 여성 작가들이다. 비슷한 연배에다 공교롭게도 이름의 끝자를 공유한 이들 3인의 전시회가 ‘아름다운 대화’란 제목으로 서울 남대문로 롯데갤러리 본점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해 타계한 이성자는 전쟁 직후인 1951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이응로·김환기 등과 함께 세계 미술의 중심지에서 활동했다. 구상과 추상이 어우러진 초창기 작업을 거쳐 생명의 근원을 기하학적인 상징물로 표현하는 데 주목했던 작가는 말년에는 인간과 우주의 존재론적 성찰을 화폭에 담는 데 열중했다. 평생 파리에서 살았던 작가는 2001년 프랑스 예술문화공로훈장과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전시작 16점은 유족을 통해 파리에서 공수해 왔다. 윤영자는 홍익대 미술학부 첫 여성 졸업생이면서 목원대 미술학부를 창설한 한국 여성 조각의 선구자다. 절제된 형상과 리듬감 있는 곡선으로 인체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킨 그의 작품들에는 여성과 모성이란 일관된 주제가 녹아 있다. 공공조형물 제작에도 활발히 나선 그는 석주문화재단을 만들어 여성 미술인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작가 소장품 15점이 전시됐다. 천경자는 이국적인 정취와 독창적인 화풍의 여인과 꽃 그림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대표적인 원로 화가다. 1998년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 93점을 기증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딸과 지내고 있는 그는 건강 악화로 투병 중이다. 전시에는 개인 컬렉터 소장의 미인도와 꽃 그림 10점이 걸렸다. 11월 15일까지. (02)726-4428.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올리비아 뉴튼 존 10년만에 한국에

    올리비아 뉴튼 존 10년만에 한국에

    1970~80년대 뭇 남성들의 가슴을 흔들었던 팝의 여신 올리비아 뉴튼 존(62)이 10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영국 출신 호주 가수 올리비아 뉴튼 존이 오는 12월 6~7일 오후 8시 서울 회기동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월드 투어 공연을 갖는 것. 이번 월드 투어에서 그가 방문하는 아시아 지역은 일본과 한국 뿐이다. 한국에 오는 것은 2000년 8월 이후 10년 만. 뉴튼 존은 마돈나와 휘트니 휴스턴 등이 등장하기 이전 명실상부한 팝의 여왕이었다. 1980년 빌보드 싱글 차트 10주 연속 1위를 차지했던 히트곡 ‘피지컬’은 올해 빌보드지가 ‘20세기 가장 섹시한 노래’로 꼽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유엔 환경대사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1990년대 초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오랜 투병 생활 끝에 병마를 이겨낸 뉴튼 존은 1999년 17년 만에 대규모 전미 투어를 가지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2000년엔 호주 시드니올림픽 개막 공연과 성화 봉송주자로 나서기도 했다. 뉴튼 존은 같은 해 8월 한국을 찾아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공연을 펼쳤다. ‘아이 어니스틀리 러브 유’ ‘렛 미 비 데어’ ‘서머 나이트’ 등 보석 같은 히트곡들을 요즘 감각에 맞게 편곡해 들려줄 예정이다. 지휘자 최선용이 이끄는 서울아트오케스트라가 협연한다. 뉴튼 존의 시드니오페라하우스 공연을 지휘했던 릭 킹도 함께한다. 오프닝 무대는 영화 ‘그리스’를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그리스’의 한국 공연팀이 장식한다. ‘그리스’는 뉴튼 존이 존 트라볼타와 함께 나왔던 1978년 뮤지컬 영화로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9만 9000~33만원. (070)4064-7247.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인사동 노점상, 그들은 어디로…

    인사동 노점상, 그들은 어디로…

    서울 인사동에서 14년째 노점상을 하고 있는 이영석(61)씨. 15일 인사동 한켠 골목길에서 만난 그의 얼굴에는 세월의 풍파가 굵은 주름으로 깊게 새겨져 있었다. 3년 전 근육암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그는 설상가상으로 지난해는 시각장애 1급 판정까지 받았다. 이런 그가 막막한 생계대책 때문에 속을 태우고 있다. 서울시와 종로구청의 정비계획에 따라 인사동에서는 이제 노점상이 사실상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뒷골목으로 쫓겨나는 일이 병마(病魔)보다 더 암담하다.”는 그는 “세계 어느 나라도 노점 없는 곳은 없다. 인사동 노점도 보기에 따라 문화상품이 될 수도 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정비계획에 따라 종로 일대 노점들을 이면도로로 재배치하면서 마찰음이 잇따르고 있다. 시와 구청은 올 초부터 종로 1~6가 대로에 밀집한 740여개의 노점상을 이면도로로 내보내는 정비사업을 벌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인사동 노점상이다. 담당 공무원들은 다음달 1일까지 노점을 모두 정리할 계획이었지만 곧바로 노점상 단체의 반발에 부딪혔다. 구청 측은 일단 “강제정비는 하지 않는다. 22일 공청회를 연 뒤 연말까지 순차적으로 정비하겠다.”고 밝혔지만 노점상들의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다 이면도로로 옮긴 노점상들이 “장사가 잘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김근기 종로노점상연합회 부회장은 “다른 종로 노점상들이 이전할 때 시와 구청에서 홍보대책을 약속했지만 결국 헛공약에 그쳤다.”면서 “이면도로로 간 노점상 중에 이전 수준의 수입을 올리는 경우는 5%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구청 측도 할 말이 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노점이라는 게 다 불법 아니냐. 시민의 불편을 해소하고 도시미관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관광객과 주변 상인들의 생각도 엇갈린다. 러시아에서 온 루드밀라 로시코브스키(36·여)는 “어떤 사람들은 노점을 좋아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특별한 풍미라고도 할 수 있다.”고 아쉬워했다. 미국인 개리(62)·폴라(55·여) 부부도 “일반 상점보다 가격이 싸기 때문에 노점도 한국의 좋은 문화라고 생각한다.”면서 “미국에서도 허가를 받으면 대로에서 영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인사동에서 공예품을 판매하고 있는 한 상인은 “보통 가게 월세가 수백만원인데 노점상은 돈도 내지 않고 좋은 자리를 다 차지해 영업을 방해하고 시민들 보행에 불편만 준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노점 특화거리 조성 등의 대책을 마련하고 홍보대책을 추진해 논란을 해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업형 노점과 생계형 노점을 구분, 도로점용료를 차등 부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남진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생계형 노점의 경우 무조건 이면도로로 내몰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라도 장사를 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지자체에서 실사해 기업형과 생계형에 대한 차별적인 도로점용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부고] 소프라노 조앤 서덜랜드

    최고의 소프라노 가운데 한명이라는 명성을 얻었던 조앤 서덜랜드가 10일 스위스의 자택에서 숨졌다고 유족들이 지난 11일 밝혔다. 83세. 유족들은 이날 서덜랜드가 오랜 투병 끝에 “10일 밤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고 전했다. 호주 출신인 서덜랜드는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후계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가장 위대한 콜로라투라(오페라 등에서 화려한 기교를 담은 악구) 소프라노”라고 격찬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행복 전도사’는 왜 죽음을 택했을까

    ‘행복 전도사’는 왜 죽음을 택했을까

    지난 7일 오후 8시30분 경기 고양시 장항동의 한 모텔방. 경찰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날 아침 7시15분쯤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투숙했는데, 아무 기척이 없어 들여다보니 숨져 있었다는 종업원의 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여자는 침대에 단정히 누운 채, 남자는 화장실에서 목을 맨 채였다. ‘행복 전도사’로 널리 알려진 최윤희(63)씨와 남편 김모(72)씨였다. 방 안에는 편지지 1장 분량의 유서 한 통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겉봉에는 “완전 건강한 남편은 저 때문에 동반여행을 떠납니다. 평생을 진실했고 준수했고 성실했던 최고의 남편.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요!!”라고 적혀 있었다. 전날 오붓하니 여행 다녀 오겠다기에 지방에 요양이라도 간 줄 알았던 자식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설마했던 일이 기어코 일어나고야 만 것이다. 그것도 아버지와 함께라니…. 최씨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유서에 적어놨듯 2년 전부터 몸 상태가 극도로 악화됐다. 폐에 물이 들어차면서 숨 쉬기가 힘들어지는 바람에 지난 추석 때는 응급실에 실려가기까지 했다. 심장에도 이상이 생겼다. 절망에 빠진 최씨는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 내려가 자살하려 했다. 그때 막아선 이는 남편이었다. 홀로 목숨을 끊으려 했을 때 남편이 119에 신고했다. 최씨는 왜 자살을, 그것도 한사코 말리는 남편과 함께 가는 길을 택했을까. 최씨의 인생 역정은 충분히 ‘긍정적’이었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최씨는 38살이던 1985년 1330대1의 경쟁률을 뚫고 현대그룹 주부 공채에 합격, 광고 회사 카피라이터로 변신했다. 22살에 만난 남편의 사업 실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사회생활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사회생활은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톡톡 튀는 젊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광고 회사에서, 그것도 남녀 차별이 심한 시절에, 마흔 살 코앞의 아줌마는 울기도 참 많이 울었지만 현대방송 홍보국장으로 영전했다. 최씨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그냥 전업주부로 살았을 것”이라면서 “사업 실패로 힘들었지만 사회생활을 하게 해준 남편이 지금은 너무 감사해서 매일매일 표창장을 준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 쉰둘의 나이에 사표를 던졌다. 자신이 나가면 젊은 친구 3명 정도는 더 일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이어 대한민국 주부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에세이집 ‘행복, 그거 얼마예요’를 내놨다.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이화여대 교지 편집장 출신다운 글재주와 대한민국 아줌마의 입심으로 방송은 물론 대학, 기업, 군, 경찰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강연 요청을 끌어냈다. 최씨가 강연이나 책에서 가장 강조했던 말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행복을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었다. 예쁘지 않은 외모 때문에 스스로를 “엉겅퀴, 씀바귀, 고들빼기 삼종 혼합인간”이라고 부르면서도 “못생긴 거, 가난한 거, 무식한 거는 죄가 아니다. 죄는 딱 한 가지다. 열심히 안 사는 죄”라고 잘라 말했다. 이때부터 그에게는 ‘행복 전도사’, ‘행복 디자이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런 그도 2년여의 투병생활 앞에서는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최씨는 유서에 “링거 주렁주렁 매달고 살고 싶지는 않았다.…700가지 통증에 시달려 본 분이라면 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했다.”고 적었다. 말없이 담배 피워 무는 우수에 찬 모습에 반해 억지로 졸라서 결혼했다던 남편과의 동반자살에 대해서는 “저는 통증이 너무 심해 견딜 수 없고, 남편은 그런 저를 혼자 보낼 수 없고, 그래서 동반 떠남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밥은 굶어도 희망은 굶지 마라’, ‘최윤희의 웃음비타민’, ‘딸들아 일곱번 넘어지면 여덟번 일어나라’ 등 고인의 책을 낸 원앤원북스의 강현규 이사는 “내가 만나 본 저자들 가운데 가장 인간적이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했고. 글 쓰신 그대로 사시는 분이구나 싶어 참 좋아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4일에도 고인과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강 이사는 “‘행복 전도사가 자살이 웬말이냐.’ 하는 글들이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던데, 정말 아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런 생각이 먼저 든다.”고 했다. 언젠가는 글에서 하도 남편 자랑을 하기에 그렇게 좋으냐고 최씨에게 슬쩍 찔렀더니 “젊었을 때는 ‘웬수’였는데 늙으니까 너무 좋다고 하시는데 그 표정이나 말투가 정말 사이가 좋으시구나 싶었다. 자제 분들도 부모와의 관계가 좋은 친구처럼 보였다. ”는 말도 덧붙였다. 충격과 애도 속에 네티즌들은 “힘든 마음을 모르지는 않으나 그래도 자살은 안 된다.”는 글들을 올리고 있다. 동반 자살에는 건강 외에 다른 이유가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전문가들은 만성통증의 위험성에 주목했다. 최씨의 병명은 ‘흉반성 루푸스’와 ‘세균성 폐렴’. 각 신체기관에 만성적으로 염증을 불러일으키는 면역계 질환이다. 김종우 경희의료원 정신과 교수는 “만성화된 통증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을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면서 “(최씨의 자살은) 충동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통증에 대한 무기력증에서 나오는 우울증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미국에 거주하는 딸과 아들(38)이 있다. 최씨 부부의 시신은 경기 일산병원에 안치되어 있다. 빈소는 평소 고인의 뜻에 따라 차리지 않았다. 시신은 10일 화장될 예정이다. 조태성·홍지민기자 cho1904@seoul.co.kr
  • 산삼 두 뿌리 캐 투병이웃에 선물

    산삼 두 뿌리 캐 투병이웃에 선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근무하는 강도근(49) 대리가 산삼 두 뿌리를 캐서 병마와 싸우는 이웃들에게 나눠 줬다. 5일 현대차에 따르면 강 대리는 추석 연휴기간 경남 밀양 얼음골에 갔다가 산삼 두 뿌리를 발견했다. 강 대리는 자신이 산삼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진짜 산삼이 맞는지 대구 약령시장을 찾아가 전문가로부터 감정까지 받았다. 두 뿌리 모두 50년근으로 확인됐다. 강 대리는 한 뿌리는 파킨슨병을 앓는 직장동료의 부친에게, 또 한 뿌리는 호흡기 질환과 허약 체질로 고생하는 한 기초수급대상자 가구에 전달했다. 강 대리는 “저에게 찾아온 뜻밖의 행운을 이웃과 함께 나누고 싶었을 뿐”이라며 “산삼이 약효를 발휘해 기증받은 두 분 모두 건강을 꼭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후두암 투병중 마이클 더글라스 최근 모습

    후두암 투병중 마이클 더글라스 최근 모습

    지난 8월 후두암 판정을 받고 투병중인 마이클 더글라스(66)의 최근 모습이 영국 데일리 메일에 공개되어 많은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할리우드 명배우 커크 더글라스의 아들이자 ‘원초적 본능’, ‘월스트리트’로 잘 알려진 마이클 더글라스는 ‘월스트리트’에서의 호연으로 1987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마이클 더글라스는 후두암 판정이후 8주 동안의 특별 항암치료 과정을 받고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기력을 회복하는 중이다. 5일에도 그는 자신의 딸인 캐리의 손을 꼭 잡고 학교에 데려가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항암치료로 쇠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보도내용에 의하면 빠르게 기력을 회복하는 중으로 담당의사도 80%의 생존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그의 아내인 캐서린 제타 존스는 “마이클은 강하다” 며 “항암 치료를 받는 여느 사람들처럼 8주 동안 치열하게 암과 싸웠으며 치료결과는 매우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캐서린 제타 존스는 마이클 더글라스를 간호하기 위해 강하게 애착을 가졌던 ‘ My Week with Marilyn’의 배역을 포기하기도 했다. 사진=데일리 메일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경태 tvbodag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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