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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무뇌증을 안고 태어나 베이비박스에 놓인 ‘생명이’…“1년에 하루는 나들이 나가는 게 소원입니다”[나에게도 스무살이 올까요]

    [단독] 무뇌증을 안고 태어나 베이비박스에 놓인 ‘생명이’…“1년에 하루는 나들이 나가는 게 소원입니다”[나에게도 스무살이 올까요]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 담벼락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의 벨이 울렸다. 이곳은 부모가 양육을 포기한 아기를 임시로 보호하는 시설이다. 아기 곁에는 ‘미안합니다’란 글과 함께 태어난 날짜, 앓고 있는 질병 등이 적힌 쪽지가 놓여 있었다. 이제 갓 태어난 듯한 아기가 포대기도 없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발로 박스에 놓여 있었다. 작고, 예쁘고, 아픈 아기였다. 눈이 유독 많이 내렸던 2011년 2월 어느 날 아침이었다. 이렇게 찾아온 ‘생명이’는 201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시각장애와 분열뇌증을 안고 태어났다. 분열뇌증은 대뇌에 비정상적인 틈이 생겨 신체마비, 발달지연 등이 나타나는 희귀질환이다. 병원으로 옮겨진 아기는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곳을 운영하는 이종락 목사는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생명’이란 이름을 지어줬다. 생명이는 서울대병원에서 9차례나 큰 수술을 받았다. 뇌에 찬 물이 빠지지 않으면서 뇌압이 계속 높아졌기 때문. 물을 빼주는 장치를 머리에 연결해야 했는데, 다행히 병원 측이 독일에서 들여온 여분이 하나 있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고 생명이는 이름처럼 삶을 찾았다. 생명이 곁에는 이 목사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같은 병동에서 치료를 받던 다른 환아 부모들이 돈을 모아 3000만원의 수술비를 대신 냈다. “원래도 잘 웃는 생명이인데, 오늘은 유난히 웃음이 많네요.” 지난 5월 만난 생명이는 방긋 웃음을 띤 채 동요를 듣고 있었다. 어느덧 열 세 살이 된 생명이는 교회가 운영하는 장애인단기보호센터에서 살고 있다. 앞을 보지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어 온종일 침상에 누워 있어야 하지만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듯 했다. 이날 생명이는 서울새롬학교 김연수 방문교사와 함께 음악 수업을 하고 있었다. 새롬학교는 사회복지법인 SRC(옛 삼육재활센터)가 설립한 지체장애 특수학교다. 생명이는 1주일에 2차례 새롬학교로부터 촉감치료와 미술·음악 수업 등을 받는다. 매주 월요일에는 인근 한방병원 재활센터 전문가들이 찾아와 첼로클리닉 등을 진행한다. 시각장애인인 생명이는 주로 청각을 통해 세상을 느끼기에 음악 치료가 특히 중요하다고 한다. 매주 두 번씩은 서울보라매병원에서 도수치료를 받는다. 생명이의 손목은 인대 당김으로 늘 바깥쪽으로 굽어 있다. 손목 마사지를 받을 때면 고개를 끄덕이며 기분이 좋은 듯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이곳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정주영 센터장은 말한다. “온 종일 누워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힘든 아이들을 보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빨리 숨을 거두는 게 고통을 덜어주는 길 아니냐고. 하지만 저 아이들은 살고 싶어 합니다. 옆에 누군가만 있어줘도, 작은 소리라도 들려주면 미소를 지으며 행복해합니다. 희귀병을 앓고 장애를 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태어날 권리, 그리고 살아야 할 권리가 박탈당해선 안 됩니다.” 베이비박스가 생긴 2010년부터 현재까지 이곳에 맡겨진 아이들은 2143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희귀질환을 앓아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135명(6.3%)이다. 우리나라 영유아 중 장애 비율이 0.5%가량인걸 감안하면 13배 가까이 높은 비중이다. 건강하지 못한 아이는 부모로부터 버림받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생명이 옆 침상은 희망(15)이의 자리다. 희망이는 한쪽 두개골이 함몰된 채 태어났다. 원인은 알 수 없다. 희망이의 친부모는 의료진 과실을 주장하며 산부인과에 아이를 맡긴 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병원에 떠넘겨진 희망이는 의사의 품에 안겨 이곳에 왔다. 재성이란 원래 이름이 있지만 센터에서는 희망이로 불린다. 희망이가 힘든 투병 생활을 이겨낼 수 있기를 기원하며 센터 사람들이 붙여준 애칭이다. 희망이는 작년 말 잠깐 심장이 멈췄다. 온종일 누워 있는 탓에 욕창이 번졌는데,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오던 중 갑자기 숨을 쉬지 않았다. 심폐소생술을 거듭한 끝에 다행히 호흡은 돌아왔지만 그 사이 면역력 저하로 폐렴 등 합병증이 발병했다. 희망이 욕창을 치료한 병원에 입원시키려 했지만 거부당했다. 희망이가 잘못될 경우 책임을 떠안을까 봐 외면했다는 게 센터 사람들의 말이다. 여기저기 병원을 옮겨다니며 6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희망이는 심정지를 이겨낼 정도로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아이에요.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으면서도 산소포화도가 계속 떨어졌던 순간이 있었어요.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고 저도 ‘아이를 그만 힘들게 하고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도 놀라 ‘너무 성급했다’고 사과했어요.” 정주영 센터장은 “희망이를 보면서 삶을 결코 쉽게 내려놓아선 안 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했다. 희망이는 지난달 말 병원 생활을 마치고 보금자리인 센터로 돌아왔다. 치료가 끝난 건 아니었지만 전염성이 강한 옴이 발병해 병원에서 퇴원을 권했다고 한다. 희망이에게 청구된 병원비는 1400만원. 정 센터장의 얼굴이 잠깐 어두워졌다. 생명이와 희망이가 생활하는 센터는 교회가 지난 2019년 인가를 받아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이다. 시설은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기 천사’ 중 희귀질환이나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를 돌본다. 생명이와 희망이처럼 홀로 생활이 불가능한 아이들은 사실상 평생 보살핀다. 뇌병변 시각장애를 앓고 있는 ‘나단’이는 센터 운영자들의 사랑 속에 어느덧 스물셋의 어엿한 성인이 됐다. 센터에서 활동하는 7명의 사회복지사와 2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엄마·아빠 역할을 한다. 코로나19 전에는 자원봉사자가 100여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많이 줄었다. 아이들의 증세가 언제 악화될지 모르기에 2명은 항상 24시간 근무를 하며 밤에도 대기한다. 서울시 등 정부는 사회복지사 인건비와 함께 연간 1700만원가량을 지원한다. 아이들의 병원비는 물론 각종 의료용품 충당하기도 턱없이 부족하다. 교회와 독지가들의 지원이 지금까지 아이들을 키웠다. 정 센터장은 “1년에 한 번이라도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밝은 햇살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나들이를 하려면 아이들을 태울 수 있는 특수차량과 전문적인 의료지식을 갖춘 인솔자가 있어야 하는데, 센터의 빠듯한 예산으론 엄두를 낼 수 없다.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나들이를 나간 건 10년 전인 2014년이다. 그는 말했다. “아이들이 한 번도 바다에 가본 적이 없어요. 보면 얼마나 신나할지…. 언젠가 꼭 보여주고 싶어요.”
  • 서동주 “父서세원 영정사진 앞 ‘숭구리당당’ 춤춘 김정렬에 오열”

    서동주 “父서세원 영정사진 앞 ‘숭구리당당’ 춤춘 김정렬에 오열”

    방송인 겸 미국 변호사 서동주가 자신의 부친인 개그맨 서세원 장례식에서 ‘숭구리당당’ 춤을 췄다가 악플 피해를 입은 개그맨 김정렬에 감사를 전했다. 서동주는 21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작년은 제게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였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냥 평볌하게 돌아가신 게 아니었다. 제 입장에서는 의문사였다. 아버지를 발인하는 날 키우던 16살짜리 강아지가 죽어 바로 강아지 장례식도 치렀고, 어머니는 암 투병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동주는 “보통 사람들은 인생 전반에 걸쳐 천천히 겪을 일을 몰아서 겪다 보니 아무리 내가 회복력이 좋아도 우울해질 것 같았다”며 “못 일어나는 것 아닌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잘 지나간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서동주는 “당시 감사한 건 아버지 빈소에 많은 사람들이 와 주셨는데 그분들 얼굴이 다 기억난다. 평생 은혜 갚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면서 논란이 됐던 개그맨 김정렬의 ‘숭구리당당 댄스’를 언급했다. 서동주는 “그분께 나중에 악플도 달리고 그랬다. 저는 당시 그 자리에 있었다”며 “숭구리당당 춤을 추셨을 때 웃긴 게 아니라 저는 오열을 했다. 고차원적인 예술 같은 거다.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이 춤을 췄을 때 거기서 오는 감동이 현장에서 굉장히 컸다. 다 같이 울었는데 (악플이 달려) 속상했다. 당시 느낌은 감사하고 그랬다”고 밝혔다. 서세원의 장례식 당시 김정렬은 “탄생도 기쁨이고, 죽음도 가야 될 길이라서 기쁘다. 제 숭구리당당으로 가시는 길 잘 가시라고 밀어드리겠다”며 춤을 췄다. 한편 서세원은 방송인 서정희와 결혼해 서동주 등 1남 1녀를 뒀지만 2015년 이혼했다. 이후 서세원은 23세 연하 해금 연주자와 재혼을 해 딸을 낳았다. 서세원은 재혼 후 캄보디아로 이주해 미디어 및 대규모 부동산 건설, 호텔, 카지노 사업 등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난해 4월 현지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 “내 입장에서는…” 서세원 사망에 딸 서동주가 한 말은

    “내 입장에서는…” 서세원 사망에 딸 서동주가 한 말은

    방송인 겸 변호사 서동주가 부친인 고 서세원의 사망에 대해 언급했다. 21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서동주는 “작년이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였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또 평범하게 돌아가신 게 아니었다. 해외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고 내 입장에서는 의문사였다”며 “그때 내가 키우던 열여섯살짜리 강아지도 아버지 발인하는 날 죽어서 연달아서 강아지 장례식을 치렀다. 또 어머니도 암투병하고, 미국 집도 똥값이 됐었고, 너무너무 힘들었다”며 당시 상황을 털어놨다. 서세원은 지난해 4월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한인병원에서 링거를 맞던 중 사망했다. 서세원은 2015년 모델 출신 방송인 서정희와 이혼한 뒤 이듬해 재혼해 캄보디아로 이주했었다. 다만 서동주는 괴로웠던 시기를 잘 넘겼다고 했다. 그는 “보통 다른 사람이 인생에서 하나씩 하나씩 겪을 일을 몰아서 겪다 보니까 이번에는 내가 아무리 회복력이 좋은 사람이어도 우울할 것 같다, 못 일어나는 건 아닐까 하고 스스로 걱정도 많이 했는데 잘 버티는 스타일이라 그래도 잘 지나간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사했던 게 있다”며 “아버지 빈소에 사람들이 많이 왔다. 얼굴이 하나하나 다 기억나고 은혜 갚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위로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 말기암母 위해 글쓰던 ‘13살 문학영재’ …8년 뒤 ‘예상 못한 근황’ 공개됐다

    말기암母 위해 글쓰던 ‘13살 문학영재’ …8년 뒤 ‘예상 못한 근황’ 공개됐다

    지난 2016년 SBS ‘영재발굴단’에 출연해 ‘문학 영재’로 이름을 알렸던 정여민의 근황이 8년 만에 공개됐다. 지난 18일 유튜브 채널 ‘우와한 비디오’에는 ‘성인이 된 문학 영재 정여민, 8년 만에 만났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정여민은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16년 SBS 프로그램 ‘영재 발굴단’에 문학 영재로 출연했다. ‘영재발굴단’은 특정 분야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을 찾아 그들의 잠재력을 관찰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고민하는 프로그램이다. 정여민은 무려 8000:1의 경쟁률을 뚫고 전국글짓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문학영재다. 그는 부모님과 함께 깊은 산골에 살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정여민의 어머니는 흉선암을 진단 받은 말기암 환자였다. 정여민은 엄마의 병에 대한 슬픔과 엄마를 향한 애틋한 사랑을 자신의 시와 산문 안에 고스란히 담아내 ‘엄마를 위해 글을 쓰는 시인 영재’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안긴 바 있다. 그가 가족을 떠올리며 쓴 ‘마음속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라는 제목의 시는 2015년 전국 어린이 글짓기 대회에서 8042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대상을 거머쥐었다. 이번 ‘우와한 비디오’ 영상에서 8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정여민은 188㎝의 건장한 청년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정여민은 “채널에 근황을 알려달라는 댓글이 많더라”라며 “올해 전역했다. 부모님에게 전해 듣기로 tvN ‘유퀴즈’에서 연락이 온 적 있다 들었다. 그걸 듣고 저는 ‘저를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즐겨보는 거라서 되게 신기했다”고 말했다. 정여민은 엄마의 근황도 전했다. 그는 “옛날에는 살이 되게 많이 빠지셨는데 지금은 5㎏ 정도 찌셔서 옛날보단 훨씬 더 건강해지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좋은 소식도 전했다. 이전에 출연한 영재발굴단 영상이 최근에 다시 화제가 되면서, 그가 방송 출연 뒤 출간했던 책 ‘마음속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를 구매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는 “(원래는) 어린이 맞춤 도서였는데 성인 시점의 개정판으로 리메이크됐다”고 했다. 다만 정여민은 “글 작가로서 나아갈 예정인가”라는 질문에 예상 외의 답변을 내놨다. 그는 “글은 일단 취미로 하고 모델 쪽으로 (가려 한다)”고 밝혔다. 정여민은 “사실 준비한 지는 오래 안 됐다. 고2 때나 고3 때부터 생각해서, 군대 전역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해보자 생각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보다 더 어렵더라. 걸음마부터 떼는 수준이다. 자세도 되게 신경 써야 되고. (학원 다닌 지는) 한 달 좀 넘었다. 워킹은 어렵다”며 웃었다. 현재 정여민은 모델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에 상경, 스스로 학원비를 벌며 모델 훈련에 임하고 있다. 그는 도시 생활에 대해 “산골에서는 그냥 글 쓰고 아무 생각 없이 평화롭게 살았던 것 같은데 서울 올라와선 좋긴 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걱정들로 복잡하다”며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암 투병 중이던 정여민의 어머니 박향숙씨도 직접 영상에 출연해 근황을 전했다. 박씨는 몸무게가 38㎏까지 내려가며 몇 번의 고비를 겪었지만, 매일 운동과 식이 관리를 하며 치료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씨는 처음에 아들의 새로운 꿈에 대해 반대했다고 했다. 그러나 남편이 “요즘엔 꿈이 없는 사람들이 많대. 여민이는 꿈이 있잖아. 그 길이 아니라면 멈추면 되지. 미리 막지는 말자”라는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고 전했다. 정여민의 아버지 정경식씨는 “여민이를 시인으로만 생각하시지 마시고 뭔가를 새롭게 도전하려고 하는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를 해보려고 하는 사람으로 인정해주시고 응원해주시면 좋겠다”고 전했다.
  • “父 위암, 母 유방암 투병” 고백한 유명 배우

    “父 위암, 母 유방암 투병” 고백한 유명 배우

    배우 온주완이 부모의 암 투병 사실을 고백했다. 19일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 출연한 온주완은 “20년 전 아버지가 위암 수술을 하셨고, 4년 전에는 어머니마저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부모님의 투병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암이 얼마나 힘든 병인지 실감했다”고 털어놨다. 이날 방송은 인류가 가장 정복하고 싶은 난치병인 ‘암’을 주제로 진행됐다. 온주완은 “다행히 아버지가 건강검진을 통해 초기에 암을 발견해 복강경수술로 빠르게 제거할 수 있었고, 어머니도 샤워 중 멍울이 만져지며 병원에 갔는데 유방암을 초기에 발견하신 편이라 예후가 좋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건강검진을 제때 받아, 암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암 예방에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헸다. 한편 온주완은 이날 ‘암의 역사’를 고찰하며 다양한 지식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영화 ‘미이라’ 속 등장인물인 ‘빌런’ 이모텝이 실제 이집트의 천재 의사이자 ‘치유의 신’으로 불린 ‘임호텝’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라면서 “외과 수술을 하는 이발사들로 인해 흰색(붕대)-파란색(정맥)-빨간색(동맥)으로 구성된 삼색등이 유래됐다”고 전하기도 했다.
  • “나 눈감으면 반려견도 안락사” 알랭 들롱 과거 발언에 동물보호단체 ‘화들짝’

    “나 눈감으면 반려견도 안락사” 알랭 들롱 과거 발언에 동물보호단체 ‘화들짝’

    ‘미남의 대명사’ 알랭 들롱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별세한 가운데, “내가 죽으면 반려견도 안락사해달라”는 과거 발언이 재조명되고 있다. 프랑스의 동물보호단체 등 각계에서 그의 반려견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유족은 “우리 가족의 일부”라며 진화에 나섰다. 20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들롱은 지난 2014년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루보’라는 이름의 반려견을 입양해 키워왔다. 그는 지난 2018년 프랑스의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루보에 대해 “내 인생에서 50마리의 개를 키웠지만 이 개는 나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면서 “그는 내가 없을 때 나를 그리워한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내가 그보다 먼저 죽으면 그는 내 무덤 위에서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이할 것을 안다”면서 “차라리 수의사에게 우리를 함께 데려가 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그는 내 품에 안겨 잠에 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당시에도 프랑스의 동물보호단체들과 반려동물 애호가들의 반발을 일으킨 바 있다. 이후 그가 세상을 떠나자 루보 역시 안락사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프랑스 동물보호협회(SPA)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동물의 생명이 인간에 좌우돼선 안 된다”며 루보에게 새 가족을 찾아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동물보호단체인 브리지트 바르도 재단은 들롱의 딸 아누슈카와 통화했다며 “루보는 가족의 일부이며 가족이 계속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들롱의 세 자녀는 아버지의 별세 소식을 전하는 성명에서도 “알랭 파비앙, 아누슈카, 앙토니, 루보는 아버지의 별세를 발표하게 돼 매우 슬퍼하고 있다”면서 루보가 가족의 일원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1957년 데뷔해 영화 ‘태양은 가득히’, ‘한밤의 암살자’, ‘누벨 바그’ 등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군림했던 그는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투병을 이어가다 88세에 세상을 떠났다. 생전 “반려견들과 함께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던 그는 그간 키웠던 반려견들을 묻은 프랑스 중부 두쉬의 사유지에 묻힐 것으로 보인다.
  • “반려견들과 함께 여기에 묻히겠다” 세기의 미남 배우가 선택한 곳

    “반려견들과 함께 여기에 묻히겠다” 세기의 미남 배우가 선택한 곳

    투병 끝에 최근 사망한 프랑스의 유명 배우 알랭 들롱이 자신이 생전 살았고 임종을 맞은 프랑스 중부 두쉬의 사유지에 묻힐 것으로 보인다. 20일(현지시간) 프랑스 앵포 등에 따르면 들롱은 병이 악화하기 전 두쉬에 있는 소유지 내 예배당에 묻히고 싶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들롱은 1971년 여배우 미레유 다르크와 함께 두쉬에 처음 정착했다. 그는 1980년대 스위스로 잠깐 이주하기도 했으나 1987년 네덜란드 모델 로잘리 반브리멘을 만나면서 다시 두쉬에 왔다. 사후 이곳에 묻히겠다고 마음먹은 들롱은 수년에 걸쳐 소유지 내 예배당 주변에 자신과 함께해 온 반려견 수십 마리를 묻기도 했다. ‘반려견들과 함께 묻히고 싶다’는 게 들롱의 유언 중 하나였다. 프랑스에서 사유지 매장은 특정 조건에서만 허용된다. 우선 매장지가 도시 지역 외부여야 하며, 최소한 주거지로부터 35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 또 시신 매장에 따른 수질 오염 위험이 없다는 전문 수생학자의 의견서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자체장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데, 들롱은 생전 지자체장에 요청해 ‘원칙적 동의’ 의견을 받아냈다. 들롱의 구체적인 장례 절차나 일정 등은 조만간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대표 미남 배우로 손꼽혀 온 들롱은 지난 18일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태양은 가득히’(1960),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1966), ‘사무라이’(1967) 등 9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그는 ‘세기의 미남’이라는 별명으로 인기를 누렸다. 2017년 영화계 은퇴를 선언한 들롱은 2019년 뇌졸중으로 쓰려진 이후에는 쭉 투병 생활을 해왔다. 그의 아들은 올해 초 언론에 들롱이 림프구 암인 B세포림프종 진단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들롱이 마지막으로 공개 석상에 등장한 것은 2019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였다. 그는 자신을 돌봐준 일본인 동거인과 자녀들 간 불화설, 자신의 건강 상태를 둘러싼 자녀들 간 고소전이 벌어져 씁쓸한 말년을 보냈다.
  • ‘가장 아름다운 남자’ 알랭 들롱… 태양 곁으로

    ‘가장 아름다운 남자’ 알랭 들롱… 태양 곁으로

    佛 영화 황금기 이끈 미남 배우영화 ‘태양은 가득히’로 스타덤마크롱 “프랑스 기념비적 존재”복잡한 사생활·문제 발언 논란 ‘가장 아름다운 남자’로 전 세계의 추앙을 받으며 프랑스 영화 황금기를 이끈 배우 알랭 들롱이 18일(현지시간) 중북부 도시 두쉬에 있는 자택에서 89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그의 세 자녀 알랭 파비앙, 아누슈카, 앙토니는 이날 AFP통신을 통해 성명을 내고 “우리는 아버지의 죽음을 발표하게 돼 매우 슬퍼하고 있다”면서 “아버지는 이날 오전 2시 자택에서 세 자녀와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그의 가족은 2022년 뇌졸중으로 투병하는 들롱이 안락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프라이버시 보호를 이유로 안락사 여부는 언급하지 않았다. 1935년 파리 외곽에서 태어난 그는 4세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누구도 그를 키우려 하지 않아 위탁 가정에 맡겨졌다. 17세 때 프랑스 해군에 입대해 인도차이나전쟁에 참전해서는 지프차를 훔친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되기도 했다. 1956년 파리에서 웨이터 일을 하던 그는 영화제를 구경하러 칸에 갔다가 할리우드 에이전트 헨리 윌슨의 눈에 띄었다. 윌슨의 소개로 이탈리아 로마에서 에이전시와 계약을 하고 파리로 돌아와 영화 ‘여자가 끼어들 때’(1957)에서 배역을 맡아 대중 앞에 등장했다.이후 프랑스 영화계에서 주연급 배우로 빠르게 성장했고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1960)로 세계 영화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가 연기한 톰 리플리는 신분 상승과 물적 욕망을 이루기 위해 거짓말, 사기,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인물로 심리학 용어인 ‘리플리 증후군’을 명명하는 데 영감을 줬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창시자 중 한 명인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은 들롱을 보자마자 “바로 저 사람이다”라고 외치며 ‘로코와 그의 형제들’(1960)에 캐스팅했다. 또 다른 이탈리아의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일식’(1962)에서 현대인의 소외를 섬세한 연기로 그리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세기의 미남’으로 불리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고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1966), ‘볼사리노’(1970), ‘조로’(1975) 등 90여편 영화에 출연했다. 들롱은 복잡한 사생활과 문제적 발언으로 수많은 논란을 만들기도 했다. 2019년 칸영화제 집행위원회가 그에게 평생공로상을 수여하겠다고 하자 영화계 일부에선 데이트 폭력, 동성애 혐오 발언 등 전력을 들어 거세게 항의했다. 당시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그는 불쾌감을 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각한다. 거짓말로 주의를 끄는 이 시대에 칸은 언제나 예술가 개인의 편에 서겠다”며 그에게 명예 황금종려상을 안겼다. 이 상을 받으면서 들롱은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 섰다. 이후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 생활을 이어 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에 “그는 스타 그 이상이었다. 프랑스의 기념비적 존재”라고 추모했다. AFP는 “프랑스 최고의 스크린 유혹자”라며 고인을 기렸다.
  • [단독] 자녀 병원비 대려 위장 이혼까지… 부모들의 마음까지 병든다[희귀질환아동 리포트: 나에게도 스무살이 올까요]

    [단독] 자녀 병원비 대려 위장 이혼까지… 부모들의 마음까지 병든다[희귀질환아동 리포트: 나에게도 스무살이 올까요]

    “딱 3개월이었어요. 모아 뒀던 전 재산이 모조리 병원비로 들어간 시간이요. 나라의 지원으로 아이 병 치료를 계속하기 위해선 이혼할 수밖에 없었어요.” 레녹스가스토증후군(LGS)인 아들(12)을 둔 서아영(45·가명)씨는 “최소한 중소기업 사장님이 아니면 버틸 수 없다”며 희귀질환 자녀를 치료하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희귀뇌전증인 LGS는 소아기에 발생하는 증상이 심각한 간질이다. 서씨 아들은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증상을 보였고, 단란했던 가정은 막대한 치료비 부담에 무너졌다. 부부가 모은 2억여원은 아들이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나서 3개월 만에 모두 동났다. 자녀 살리기 위해 합의 이혼입원 3개월 만에 전재산 2억 소진의료 지원 소득 기준 맞추려 이혼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희귀질환으로 인정된 환자에 대해 산정특례를 적용해 병원비 90%를 지원한다. 하지만 희귀질환 아동은 통상 중환자실로 가야 하는데, 며칠만 입원해도 수백만원이 든다. 치료가 길어질 경우 병원비 90%를 지원받는다 해도 부담이 상당하다. 또 희귀질환으로 인정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이 기간은 산정특례 적용을 받지 못하고 병원비를 오롯이 환자 측이 책임져야 한다. 희귀질환 확진 판정을 받는 데 6개월이 걸린 서씨 가정이 그런 경우였다. 가구 소득이 중위소득 130% 이하(성인 환자 120% 이하)라면 산정특례에서 제외된 나머지 10%까지 전액 지원받을 수 있다. 서씨처럼 고비용 치료를 이어 가야 하는 희귀질환 가정에는 나머지 10% 지원도 절실하다. 이 때문에 서씨는 남편과 이혼을 해 가구 소득기준을 맞췄다고 털어놨다. 한정된 지원에 경제 부담 여전산정특례로 병원비 부담은 줄지만필수 의료 소모품·약제 등 비급여 산정특례가 병원비 부담을 줄여 준다지만 비급여(비보험) 의료비 지출까진 지원하지 않는다. 김해환(6)군은 소장 길이가 짧아 영양소 소화 흡수 기능이 떨어지는 단장증후군을 앓고 있는데, 매달 의료 소모품에만 150만원 이상이 들어간다. 김군의 경우 소장이 10㎝만 남아 있어 매일 10시간 동안 주사를 맞으며 영양소를 공급받아야 한다. 여기에 쓰이는 호스와 소독제, 영양제 등은 다 비급여라 산정특례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병원에서 받는 비급여 약제와 처치 등에도 40만여원이 들다 보니 치료비에만 매달 200만원을 쓴다. 희귀질환 아동 가정이 산정특례 제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가 환자와 보호자 704명을 대상으로 ‘2023 희귀질환 환우 대상 국가 지원실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4.8%가 투병 후 생활수준이 낮아졌다고 답했다. 이처럼 경제적 부담이 큰 탓에 희귀질환 아동을 집에서 돌보며 주사 처치 등 간단한 의료행위를 직접 하는 부모가 많다. 하지만 의료법은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의료행위를 하는 것을 불법으로 간주하기에 범법자가 될 수도 있다. 희귀질환 아동의 어머니 김다영(41·가명)씨는 “아이가 의사와 간호사의 돌봄을 받는 병원에 평생 있을 수는 없기에 결국 부모가 기본적인 처치를 해야 한다”며 “일정 기간 교육을 받은 중증질환 보호자 등에게 간단한 의료행위를 허용하는 유연성을 갖췄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막대한 비용에 직접 주사 처치부모가 집에서 간단한 의료행위불법행위로 간주… 범법자 ‘낙인’ 희귀질환 아동 가정이 정확한 진단이나 치료를 받기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진단 방랑’도 애달픔을 더한다. 우리나라는 특히 서울에 의료기관이 집중돼 있어 비수도권 환아 가정의 어려움이 크다. 서울신문이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건보의 ‘희귀질환자 지역별 환자 거주지 및 진단 기관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산정특례를 새로 적용받은 희귀질환 환자는 5만 1474명이다. 이 중 43.9%인 2만 2574명이 서울에 있는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았다. 하지만 거주지가 서울인 사람은 1만 583명에 그쳤다. 나머지 1만 2000여명은 지방에서 진료를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을 찾은 것이다. 희귀병 환자들의 ‘진단 방랑’서울에 의료기관 집중되어 있어병명 진단받으려 여러 병원 전전 경북의 경우 2292명이 희귀질환 환자로 새로 인정됐는데, 지역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사람은 484명(21.1%)에 불과했다. 환자의 80% 가까이는 다른 지역 병원에 간 것이다. 전남 역시 환자 1550명 중 이 지역 병원을 찾은 이는 440명(28.4%)밖에 되지 않았다. 질병관리청은 희귀질환 환자들의 의료기관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전국 17개 병원을 희귀질환 전문기관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비수도권 병원에는 희귀질환 전문 의료진이 충분치 않아 ‘빛 좋은 개살구’란 지적이 나온다. 희귀질환 예방과 진료 및 연구 등에 관한 정책을 종합적으로 수립·시행하기 위한 희귀질환관리법이 2016년 시행됐지만 미흡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김진아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국장은 “희귀질환은 제대로 된 통계조차 아직 갖춰져 있지 않다”며 “일단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돼야 환자들의 이력을 추적할 수 있고 신약 개발 연구와 글로벌 제약사의 국내 임상시험 등이 활기를 띨 것”이라고 말했다. 조 의원은 “산정특례 제도를 통해 희귀질환 환아에 대한 의료비를 지원한다지만 사각지대에선 ‘가정 붕괴’에 이를 정도의 어려움을 겪는다”며 “적어도 어린아이들의 질병만큼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단독] 자녀 병원비 대려 ‘위장이혼’까지…부모들의 마음까지 병든다[나에게도 스무살이 올까요]

    [단독] 자녀 병원비 대려 ‘위장이혼’까지…부모들의 마음까지 병든다[나에게도 스무살이 올까요]

    “딱 3개월이었어요. 모아 뒀던 전 재산이 모조리 병원비로 들어간 시간이요. 나라의 지원으로 아이 병 치료를 계속하기 위해선 이혼할 수밖에 없었어요.” 레녹스가스토증후군(LGS)인 아들(12)을 둔 서아영(45·가명)씨는 “최소한 중소기업 사장님이 아니면 버틸 수 없다”며 희귀질환 자녀를 치료하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희귀뇌전증인 LGS는 소아기에 발생하는 증상이 심각한 간질이다. 서씨 아들은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증상을 보였고, 단란했던 가정은 막대한 치료비 부담에 무너졌다. 부부가 모은 2억여원은 아들이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나서 3개월 만에 모두 동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희귀질환으로 인정된 환자에 대해 산정특례를 적용해 병원비 90%를 지원한다. 하지만 희귀질환 아동은 통상 중환자실로 가야 하는데, 며칠만 입원해도 수백만원이 든다. 치료가 길어질 경우 병원비 90%를 지원받는다 해도 부담이 상당하다. 또 희귀질환으로 인정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이 기간은 산정특례 적용을 받지 못하고 병원비를 오롯이 환자 측이 책임져야 한다. 희귀질환 확진 판정을 받는 데 6개월이 걸린 서씨 가정이 그런 경우였다. 가구 소득이 중위소득 130% 이하(성인 환자 120% 이하)라면 산정특례에서 제외된 나머지 10%까지 전액 지원받을 수 있다. 서씨처럼 고비용 치료를 이어 가야 하는 희귀질환 가정에는 나머지 10% 지원도 절실하다. 이 때문에 서씨는 남편과 이혼을 해 가구 소득기준을 맞췄다고 털어놨다. 산정특례가 병원비 부담을 줄여 준다지만 비급여(비보험) 의료비 지출까진 지원하지 않는다. 김해환(6)군은 소장 길이가 짧아 영양소 소화 흡수 기능이 떨어지는 단장증후군을 앓고 있는데, 매달 의료 소모품에만 150만원 이상이 들어간다. 김군의 경우 소장이 10㎝만 남아 있어 매일 10시간 동안 주사를 맞으며 영양소를 공급받아야 한다. 여기에 쓰이는 호스와 소독제, 영양제 등은 다 비급여라 산정특례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병원에서 받는 비급여 약제와 처치 등에도 40만여원이 들다 보니 치료비에만 매달 200만원을 쓴다. 희귀질환 아동 가정이 산정특례 제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가 환자와 보호자 704명을 대상으로 ‘2023 희귀질환 환우 대상 국가 지원실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4.8%가 투병 후 생활수준이 낮아졌다고 답했다. 이처럼 경제적 부담이 큰 탓에 희귀질환 아동을 집에서 돌보며 주사 처치 등 간단한 의료행위를 직접 하는 부모가 많다. 하지만 의료법은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의료행위를 하는 것을 불법으로 간주하기에 범법자가 될 수도 있다. 희귀질환 아동의 어머니 김다영(41·가명)씨는 “아이가 의사와 간호사의 돌봄을 받는 병원에 평생 있을 수는 없기에 결국 부모가 기본적인 처치를 해야 한다”며 “일정 기간 교육을 받은 중증질환 보호자 등에게 간단한 의료행위를 허용하는 유연성을 갖췄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희귀질환 아동 가정이 정확한 진단이나 치료를 받기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진단 방랑’도 애달픔을 더한다. 우리나라는 특히 서울에 의료기관이 집중돼 있어 비수도권 환아 가정의 어려움이 크다. 서울신문이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건보의 ‘희귀질환자 지역별 환자 거주지 및 진단 기관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산정특례를 새로 적용받은 희귀질환 환자는 5만 1474명이다. 이 중 43.9%인 2만 2574명이 서울에 있는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았다. 하지만 거주지가 서울인 사람은 1만 583명에 그쳤다. 나머지 1만 2000여명은 지방에서 진료를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을 찾은 것이다. 경북의 경우 2292명이 희귀질환 환자로 새로 인정됐는데, 지역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사람은 484명(21.1%)에 불과했다. 환자의 80% 가까이는 다른 지역 병원에 간 것이다. 전남 역시 환자 1550명 중 이 지역 병원을 찾은 이는 440명(28.4%)밖에 되지 않았다. 질병관리청은 희귀질환 환자들의 의료기관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전국 17개 병원을 희귀질환 전문기관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비수도권 병원에는 희귀질환 전문 의료진이 충분치 않아 ‘빛 좋은 개살구’란 지적이 나온다. 희귀질환 예방과 진료 및 연구 등에 관한 정책을 종합적으로 수립·시행하기 위한 희귀질환관리법이 2016년 시행됐지만 미흡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김진아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국장은 “희귀질환은 제대로 된 통계조차 아직 갖춰져 있지 않다”며 “일단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돼야 환자들의 이력을 추적할 수 있고 신약 개발 연구와 글로벌 제약사의 국내 임상시험 등이 활기를 띨 것”이라고 말했다. 조 의원은 “산정특례 제도를 통해 희귀질환 환아에 대한 의료비를 지원한다지만 사각지대에선 ‘가정 붕괴’에 이를 정도의 어려움을 겪는다”며 “적어도 어린아이들의 질병만큼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배우 장근석, 갑상선암 투병 고백

    배우 장근석, 갑상선암 투병 고백

    배우 장근석이 갑상선암 투병 소식을 전했다. 16일 유튜브 채널 ‘나는 장근석’을 통해 오랜만에 대중과 만난 장근석은 “1년 전 갑상선암 진단받았어요”라고 알렸다. 그는 “사람들이 알면 놀라려나”라며 “많은 분이 놀라실까 봐 이야기를 못 했다”고 밝혔다. 장근석은 “입을 아직 벌리지 못한다”면서도 “다행히 수술은 잘 마쳤고 2주가 지난 오늘 확인한 결과, 경과도 좋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제 건강을 되찾아 여행을 가려고 한다”라며 제주도 여행을 예고했다.
  • [진경호 칼럼] 소년공의 정치, 방직공의 정치

    [진경호 칼럼] 소년공의 정치, 방직공의 정치

    결핍은 힘이 세다. 사람을 나락으로 떠밀기도 하고, 시련을 헤쳐 갈 필생의 힘이 되기도 한다. 정치판에도 그 예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임을 눈앞에 둔 이재명. 부산지역 최고득표율로 재선 의원이 된 국민의힘 김미애. 63년생, 69년생인 두 사람은 많은 부분 삶의 궤적이 겹친다. 학교 대신 공장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고, 주경야독의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을 다녔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고, 정치인이 됐다. 부모와 다섯 형제, 일곱 식구가 단칸방에서 지내야 했던 가난 속에서 중학교 진학을 접은 이재명은 1981년, 열여덟 살까지 고향 안동의 작은 공장들을 떠돌았다. 손가락을 다치고 손목이 프레스에 으깨어졌지만 돈도, 치료도 온전히 못 받았다. 그가 긴 어둠에서 벗어나 중앙대 장학생으로 인생의 새 막을 열 무렵, 포항에선 열네 살 김미애에게 불행이 닥쳤다. 아버지와 오빠, 언니가 객지로 떠나 소식조차 가물거리던 때,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마저 4년 투병 끝에 그의 곁을 떠났다. 구룡포 바닷가 외딴집에서 두 해를 홀로 지낸 미애는 결국 고1 여름 학교를 접고 친구 따라 부산으로 떠났다. 이재명이 대학 졸업과 함께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성취의 삶에 접어들기 시작한 1986년의 일이다. ‘소년공’의 삶 6년이 인간 이재명의 인생 서사를 좀더 극적으로 만드는 미장센의 성격이 짙다면 김미애의 그늘은 보다 실재적이다. 부산 방직공장 여공을 거쳐 장사도 해보고 초밥집도 해보고 하다 1997년 스물여덟 살 늦은 나이에 동아대 야간학부에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8년차 변호사 이재명이 성남에서 시민운동을 하며 한창 주가를 높여 가던 때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은 그로부터도 5년 뒤. 엄마를 잃은 때로부터 20년이 지나서였다. 어린 시절의 결핍은 훗날 가진 것 없는 사람에 대한 남다른 시선을 이들에게 안겼다. 그러나 결은 다르다. 이재명은 많은 인터뷰에서 밝혔듯 약자의 문제를 잘못된 세상에서 찾고 이를 해결할 방책으로 ‘힘’, 권력을 택했다. 일찌감치 편먹기, 세 불리기에 눈을 떴다. 성남시장으로 있던 2015년 프레시안 인터뷰다. “구성원 모두가 n분의1로 결정 권한을 갖는 게 아니다. 다수는 무관심하고, 관심 있는 소수가 경합해 그중 센 쪽으로 권한이 이동하는 것이고, 그들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이런 말도 했다. “지지 않을 싸움만 골라서 하는 편이다. 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작은 승리를 많이 해야 된다는 생각이다. 지는 것도 습관이다.” 개딸을 기반으로 도장깨기 하듯 당을 장악한 지금의 이재명을 설명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김미애는 힘을 모으는 대신 가진 힘을 나누는 데 공을 들인다. “열심히 살아서 내가 잘 살고, 그것으로 어려운 사람 돕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변호사로 아동·여성을 위한 국선변호를 700여차례 했고, 국회의원이 돼선 4년여 동안 줄곧 세비 30% 안팎을 기부한다. 결혼 대신 80일 된 영아를 입양해 엄마가 됐고, 사춘기에 접어든 이 딸이 혹여라도 엄마의 빈자리를 느낄까 싶어 밤낮 없이 여의도 국회와 지역구 해운대를 출퇴근한다. 아기들이 버려지는 걸 막으려 보호출산제 입법을 주도해 성사시켰고, 시행 한 달도 안 돼 100여명의 아기를 구했다.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염원하지만 친윤 초선 48명의 ‘나경원 연판장’ 동참 요구는 뿌리쳤다. 패거리 정치는 그의 길이 아니다. 대통령에게 문자로 직언을 보낼지언정 마이크나 SNS를 통한 ‘입정치’는 삼간다. 힘을 길러 세상 뜯어고치겠다며 이를 갈았던 소년공은 이제 ‘아버지 이재명’이 됐다. 친명 일색 의원들의 결사옹위 속에 나흘 뒤면 일극체제의 최고 존엄에 오른다. 갖가지 무상정책을 앞세운 ‘기본사회’를 당의 강령에 새로 담는다는데, 눈에 들어오는 건 그의 절대 권력뿐이다. 밥자리, 김미애 의원이 얕은 한숨을 뱉는다. “요즘은 조금 힘드네요….” 거대 야당의 벽, 무력감. 무료변론의 포만감이 가득했던 부산 변호사 시절이 그립다고 했다. 열심히 일해서 잘 살고, 그 힘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던 그의 소박한 꿈이 힘에 부친다. 누구를 위한 권력이고, 정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방직공 소녀가 모두에게 묻는다. 진경호 논설실장
  • “어쩐지 한국인 같더라니”…브레이킹 금메달男 깜짝 정체

    “어쩐지 한국인 같더라니”…브레이킹 금메달男 깜짝 정체

    2024 파리올림픽을 통해 올림픽 첫 정식종목이 된 브레이킹에서 금메달을 딴 남성이 한국인 목회자의 아들인 사실이 알려졌다. 지난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콩코드광장에서 열린 브레이킹 남자부 결승에서는 캐나다 국가대표인 필 위자드(27·필립 김)가 프랑스의 대니 댄(36·다니스 시빌)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비보잉으로도 알려진 브레이킹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젊은 관객들이 올림픽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이번에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도입했다. 본명이 필립 김인 필 위자드는 한인 2세로 알려졌는데 그의 부친이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김병태 목사인 것으로 13일 파악됐다. 김 목사는 1997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이민 목회를 시작한 뒤 최근에는 치매로 투병 중인 어머니의 간호를 위해 목회를 사임하고 한국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필 위자드는 김 목사가 캐나다 밴쿠버에서 이민 목회를 시작할 때 현지에서 출생해 캐나다 국적이다. 마법사란 뜻의 위자드는 필립 김이 속한 댄스 크루의 이름이었다가 그의 예명으로 굳어졌다. 김 목사는 서울남연회 강남지방회 밴쿠버 동행교회 소속이다. 밴쿠버 동행교회는 감리회 미주자치연회 소속이었다가 연회가 분열되면서 서울남연회에 편입됐다. 필 위자드는 아버지가 자신의 브레이킹을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우승 후 그는 “오늘이 브레이킹이 얼마나 놀라운지 세상에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가 됐으면 한다. 그게 나의 유일한 목표였다”면서 “우승까지 하게 돼 행복하다. 세상에 브레이킹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것을 훌륭하게 해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도경완, 급성 골수염 투병 고백 “수술 5번…눈물·대소변 빨갛게 나와”

    도경완, 급성 골수염 투병 고백 “수술 5번…눈물·대소변 빨갛게 나와”

    KBS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도경완이 급성 골수염 투병을 털어놨다. 도경완은 12일 방송된 채널A 토크 예능물 ‘절친 토큐멘터리 4인용식탁’에서 “작년에 손톱 밑에 뭐가 나서 정형외과에 갔는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의사에게 수술하고 집에 갈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런데 병원 측은 입원해야 한다고 답했다. 급하게 수술하고 일주일 뒤에 드레싱을 교체하려고 보니까 손가락이 고름덩어리였다. 결국 종합병원으로 전원됐다. 뼈에 폐 결핵균이 감염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도경완은 “손가락 뼈 조직을 검사했다. 수술을 다섯 번을 했다”며 “되게 드물고 안 죽는 균이라더라. 하루에 세 가지 정맥주사를 맞아야 했다. 아이들을 봐야 한다고 사정해서 먹는 약으로 바꿔서 퇴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약을 먹으니까 항생제 부작용이 심했다. 도경완은 “눈물, 소변, 대변이 다 빨갛게 나오고 신장 기능도 안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손톱이 안 자랄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자라기 시작했다는 도경완은 “예쁘진 않지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도경완은 “속상하다고 생각하다가 병원에서 퇴원하는데 두 달 입원하니까 보험금이 나오더라. 병원비는 아내(장윤정) 카드로 결제했고, 300만원 가까이 내 통장으로 들어왔다. 그걸로 백화점에 갔다. 백화점 광고에 어떤 남자가 손목 시계 광고를 하는데 그 금액대에 맞게 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걸 차고 다니면서 시계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시계의 역사나 시계 5대 브랜드나. 그런데 그걸 살 능력은 안 되고 빈티지하거나 희소성 있는 시계를 구해보자 해서 중고 시장도 알아보게 됐다. 작년에 퇴원하고 시계 열 개 정도를 모았다. 몇 만원 짜리도 있다”고 털어놨다.
  • ‘독립운동영화 제작비’ 착복한 김희선 전 의원, 재판서 혐의 인정

    ‘독립운동영화 제작비’ 착복한 김희선 전 의원, 재판서 혐의 인정

    독립운동가 관련 영화 제작 비용을 부풀려 보조금 수천만원을 부정으로 수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희선 전 의원이 첫 재판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서울북부지법은 형사11단독 이창원 부장판사는 12일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보조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의원에 대한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김 전 의원 측 변호인은 이날 공판에서 검찰 측 공소 사실을 모두 인정하냐는 판사의 질문에 “인정한다”고 했다. 김 전 의원 측 변호인은 김 전 의원이 알츠하이머 투병 중이라고 밝히며 대부분의 답변을 대신했다. 이날 김 전 의원은 휠체어를 타고 재판에 출석했다. 김 전 의원은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던 중 2021년 9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추모문화제’ 관련 영화 제작 비용을 부풀려 보조금을 신청한 다음 업체로부터 리베이트(뒷돈 수수) 방식으로 5000만 원 상당의 보조금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검찰 수사 결과 김 전 의원은 사무국장인 A씨에게 지시해 국가보훈처로부터 영화 제작비를 2배 부풀려 보조금을 받아내 영화 제작업체에 지급한 후 이 중 절반을 다시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에 대한 기부금 명목으로 돌려받아 운영비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3월 국고보조금 부정 수급 정황을 포착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는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 및 홍보를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이사장인 김 전 의원은 16·17대 서울 동대문구갑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 구글·유튜브 키운 테크업계 여성 선구자

    구글·유튜브 키운 테크업계 여성 선구자

    구글의 탄생에 핵심 역할을 하고 유튜브의 수익 모델을 확립한 수전 워치츠키(56) 전 유튜브 최고경영자(CEO)가 폐암으로 사망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2년간 폐암으로 투병해 온 워치츠키가 지난 9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누구보다도 그녀는 구글 역사의 핵심이며, 그녀가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애도를 전했다. 그는 추모의 글에 “나는 그녀를 알게 되면서 더 나아진 수많은 구글러 가운데 한 명”이라고도 썼다. 워치츠키는 2006년 구글 경영진에게 구글이 자체 제작한 플랫폼을 앞질렀던 비디오 사이트 유튜브를 인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앞서 구글을 창업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는 자기 집 차고를 빌려준 뒤 구글 초기 작업을 함께했다. 폴란드계 미국인으로 스탠퍼드대 물리학과 교수였던 아버지를 둔 워치츠키는 어린 시절 마시멜로 실험에 참여했다. 스탠퍼드대에서 이뤄진 이 실험은 마시멜로를 15분간 기다렸다 먹은 어린이의 성적이 더 좋았다는 취지였으며 워치츠키의 어머니는 ‘성공적인 사람을 키우는 법’이라는 책에서 그가 다른 어떤 학생보다 강한 자제력을 보였다고 썼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구글의 16번째 직원으로 입사한 워치츠키는 자신의 야망대로 “텔레비전을 재창조”한 유튜브를 키웠다. 월간 활성 이용자 수가 20억명을 넘어설 정도로 유튜브를 성장시킨 동시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콘텐츠 단속에 힘을 기울였다. 그 자신이 네 자녀의 어머니로서 일하는 미국 여성의 유급 출산휴가 권리 확보를 위해서도 애썼다.
  • 차고 빌려줬던 “가장 중요한 구글 직원” 워치츠키 유튜브 전 CEO 별세

    차고 빌려줬던 “가장 중요한 구글 직원” 워치츠키 유튜브 전 CEO 별세

    구글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후 유튜브의 수익 모델을 확립했던 수전 워치츠키(56) 전 유튜브 최고경영자(CEO)가 폐암으로 사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현지시간) 지난 2년간 폐암 투병을 한 워치츠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가 추모의 글을 올렸다고 전했다. 피차이는 “그녀는 누구보다도 구글 역사의 핵심이며, 그녀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다”며 “나는 그녀를 알게 되면서 더 나아진 수많은 구글러 가운데 한 명”이라고 애도했다. 워치츠키는 회사 밖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가장 중요한 구글 직원으로 유명한데, 2006년 구글이 자체 제작한 플랫폼을 앞질렀던 비디오 사이트 유튜브를 인수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구글을 창업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자기 집 차고를 빌려주고 구글 초기 작업을 함께했다. 폴란드계 미국인으로 스탠퍼드대 물리학과 교수였던 아버지를 둔 워치츠키는 어린 시절 마시멜로 실험에 참여했다. 스탠퍼드대에서 이뤄진 이 실험은 마시멜로를 15분간 기다렸다 먹었던 어린이의 성적이 좋았다는 내용으로 워치츠키의 어머니는 ‘성공적인 사람을 키우는 법’이라는 책에서 그가 다른 어떤 학생보다 강한 자제력을 보였다고 썼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구글의 16번째 직원으로 입사한 워치츠키는 자신의 야망대로 “텔레비전을 재창조”한 유튜브를 키웠다. 월간 활성 이용자 수가 20억명을 넘어설 정도로 유튜브를 성장시킨 동시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콘텐츠 단속에도 힘을 기울였다. 네 자녀의 어머니로 일하는 미국 여성의 유급 출산휴가 권리 확보를 위해서도 애썼다.
  • 유튜브 전 CEO 수전 워치츠키, 암 투병 중 별세

    유튜브 전 CEO 수전 워치츠키, 암 투병 중 별세

    미국 테크업계의 선구자인 수전 워치츠키(56) 전 유튜브 최고경영자(CEO)가 암 투병 끝에 숨졌다. 56세. 10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이 사실을 알렸다. 피차이는 “소중한 친구였던 수전 워치츠키가 2년간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믿을 수 없이 슬프다”며 “워치츠키는 구글의 역사에서 누구보다도 중요한 인물이었고, 그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다”고 적었다. 워치츠키의 남편인 데니스 트로퍼도 페이스북을 통해 워치츠키가 비소세포성 폐암 투병 끝에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1968년 7월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워치츠키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주목받은 여성 중 한명이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한 워치츠키는 이후 인도에서 포토 저널리스트로 일했고, 캘리포니아로 돌아와서는 인텔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구글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자기 집 차고를 빌려준 일화도 유명하다. 1998년 페이지와 브린은 워치츠키의 차고를 사무실 삼아 구글을 창업했고, 워치츠키도 이듬해 구글에 합류했다.이후 오랜 기간 구글에서 일하며 디지털 광고 시스템을 만들어 수익 기반을 다졌고, 2006년에는 유튜브 인수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글의 광고 담당 수석부사장 등을 지낸 워치츠키는 2014년부터는 유튜브를 이끌며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블룸버그는 소셜미디어(SNS) 시대의 인터넷 경제에서 워치츠키만큼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도 없었다고 평가했다. 워치츠키는 지난해 가족과 건강, 개인적인 프로젝트에 집중하기 위해 유튜브를 떠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당시에는 건강 상태에 관해서는 자세한 언급을 하지 않았었다.
  • ‘미스트롯’ 양지은, 부친상…신장 나눈 아버지와 이별

    ‘미스트롯’ 양지은, 부친상…신장 나눈 아버지와 이별

    가수 양지은이 부친상을 당했다. 8일 소속사 티엔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양지은의 아버지는 이날 오후 5시 별세했다. 고인은 서울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투병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지은은 지난 5일 SNS에 부친의 위독한 상태를 알린 바 있다. 그는 “2010년 8월 4일 아빠와 신장을 나누고 세월이 흘러 같은 날, 같은 곳에 다시 아빠와 함께 있다”며 “다시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아빠를 배웅해 드렸다”고 했다. 또 병원에서 부친과 포옹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하며 “아빠의 따뜻한 품, 오늘도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한 하루”라고 적기도 했다. 양지은은 2021년 방영된 TV조선 경연프로그램 ‘미스트롯2’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방송 출연 당시 과거 판소리를 했지만 아버지에게 왼쪽 신장을 이식한 후 수술 후유증으로 노래를 포기했다고 밝혔다.
  • “죽음 공부는 삶을 더 뜻있게 살 수 있는 길… 죽음도 계획해야”[박상숙의 호모픽투스]

    “죽음 공부는 삶을 더 뜻있게 살 수 있는 길… 죽음도 계획해야”[박상숙의 호모픽투스]

    한국 사람 100명 중 80명이 병원에서 삶을 마감한다. 발달된 의료 기술은 노화와 죽음을 치료와 극복이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어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를 병실에 잡아 둔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수액줄을 주렁주렁 매단 채 생을 마치는 게 흔한 일이 됐다. 죽음의 풍경이 차가울수록 무엇이 존엄한 죽음인지에 대한 고민은 깊어진다. ‘죽음학 전도사’로 통하는 정현채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내 삶을 내 뜻대로 정리하기 위해선 죽음에 대한 공부와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죽음에 대한 인식 차이노화·죽음을 극복 가능하다고 여겨한국 10명 중 8명꼴 병원서 삶 마감퀴블러로스 “죽음 이후의 삶은 실재인간, 육체 벗고 다른 차원으로 이동”외국의 죽음 교육·연구영국·독일 등 초교부터 죽음 가르쳐日 시한부 삶·장례식 구상 교육하니집단 따돌림·폭력·자살 등 대폭 감소의사·과학자도 근사체험 연구 활발죽음 준비 친숙한 문화로한국 10~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죽음 어찌 대할지 진지한 교육 필요세대 사이 소통 없어 연명 치료 횡행부모 먼저 나서 ‘임종 대화’ 시작해야2007년부터 ‘죽음학 강사’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정 명예교수가 건넨 명함에는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은 벽이 아닌 열린 문으로서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일 뿐이다’라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죽음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재수 없다’며 기피하고 금기시하는 문화를 바꿔 일상에서도 친숙하게 만들어 가는 게 그의 목표다. 어느덧 17년간 진행한 죽음학 강연은 755회를 기록했다. 그간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 가면서 안락사에 대한 논의를 비롯해 웰다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정 명예교수는 죽음에 대한 척박한 인식은 나아진 게 없다고 말했다. “처음 강연에 나섰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죽음’을 대놓고 제목으로 올리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기업 임원 퇴직자를 대상으로 한 강연의 제목을 ‘죽음은 소멸인가, 옮겨감인가’로 했었는데 변경 요청이 왔어요. 그래서 ‘지성인을 위한 아름다운 마무리’로 바꿨죠. 죽음, 임종 이런 단어에 부정적인 반응은 여전합니다.” 그는 이런 사회 분위기가 내세관이 없는 유교 문화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전통 장례식만 봐도 부모를 여읜 자식은 죄인처럼 처신하죠. 망자의 영혼을 부르는 고복(皐復)을 하고, 저승사자 밥상에 간장 종지를 놓는 풍습(저승사자가 간장을 물인 줄 알고 먹었다가 목이 말라 망자를 데리고 돌아오게 비는 행위)이 현세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 주는 거죠.” 사람 살리는 직업을 가졌던 그가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20년 전 나이 오십을 앞두고서다. 가족과 지인의 죽음을 겪으며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두려움이 갑자기 엄습했다고 한다. 불면증까지 앓을 정도로 괴로웠던 그는 ‘구원’처럼 책 한 권을 만났다. “아내의 권유로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사후생’을 읽고 죽음이 꽉 막힌 벽이 아니라 열린 문이며,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을 뜻하는 것임을 깨달은 후 두려움에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스위스 출신의 정신과 의사인 퀴블러로스는 죽음과 임종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자로 우리에겐 ‘분노의 5단계’ 이론으로 친숙하다. 분노의 5단계란 사람이 죽음을 선고받고 이를 인지하기까지 부정, 분노, 타협, 우울감, 수용 등의 심리 상태를 차례차례 겪는다는 것이다. ‘사후생’은 퀴블러로스가 자신이 돌본 환자들의 근사체험(육체이탈 체험)을 바탕으로 죽음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책의 요지는 ‘인간은 죽는 게 아니라 육체를 벗고 또 다른 차원의 존재로 변화 내지 이동하는 것으로, 죽음 이후의 삶은 실재하기에 사람들은 지금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퀴블러로스는 죽음을 앞둔 어린 백혈병 환자들에게 뒤집으면 나비가 되는 고치 벌레 인형을 보여 줬어요. 죽음이 다른 존재로 변하는 이동이란 걸 알리며 위로한 거죠.” 정 명예교수의 명함에 담긴 문구와 고치를 벗고 날아가는 나비 그림이 그제야 이해가 갔다. 사후의 삶에 관한 연구나 논의가 비과학적이라며 국내에서는 푸대접하지만 근사체험 관련 논문이 200년 역사의 과학잡지 ‘랜싯’에 실리는 등 외국에서는 이 분야에 대한 의사, 과학자들의 연구가 활발하다고 한다. 정 명예교수는 죽음을 수용하는 태도가 그 사회의 성숙도를 알려 주는 척도라고 했다. 외국에 나가 보면 공동묘지가 주택가에 자리해 있는 것처럼 그는 “죽음을 일상으로 끌고 나오는 게 필요하다. 자식들이 말을 먼저 꺼내기 어려우니 부모가 나서서 어떻게 임종할 것인지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권했다. 세대 간에 서로 소통이 없어서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횡행한다고도 지적했다. “현재 사전연명의료계획서 시행은 임종기에나 기능합니다. 말기암 환자가 호흡 불안정 등으로 응급실을 찾게 되면 가망이 없는 상황인데도 기도삽관 등 방어진료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병원에 들어온 이상 자발적 퇴원은 불가하고 결국 임종을 병원에서 맞게 되는 거죠.” 1997년 일어난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가족들의 동의하에 호흡기를 떼고 퇴원한 환자가 사망하자 의료진은 살인방조죄로 처벌됐다. 지난 6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연명의료중단 등에 대한 결정 시행 대상을 임종이 임박한 환자에서 말기 환자로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것도 이런 문제 때문이다. 지난달 작고한 김민기 학전 대표는 위암 4기였는데 임종 3~4개월 전부터 항암치료 등의 연명요법을 중단하고 가족이나 지인들과 작별 인사를 하며 보냈다고 한다. 유명 인사들의 위엄 있는 마무리는 사회의 귀감이 된다. 정 명예교수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 이는 건축가 정기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를 설계한 그는 5년간 대장암 투병 끝에 2011년 별세했다. “그분의 마지막 소원이 아차산의 봄 내음을 맡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세상을 뜨기 며칠 전 병상에 누운 채로 가족들과 함께 소풍을 다녀와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무도 고맙고, 바람도 너무 고맙고, 하늘도 고맙고, 공기도 고맙고,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정 명예교수는 죽음도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미리 계획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6년 전 찾아온 방광암에 삶을 다시 돌아봤다는 그는 2018년 앞당겨 퇴직한 뒤 제주도로 거처를 옮겼다. 10년 전부터 계획한 장례식 준비 상황을 매년 업데이트하고 있으며 가족과 종종 ‘데스 카페’(Death Cafe)도 연다. 데스 카페는 영국에서 시작됐는데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커피나 빵을 앞에 놓고 수다 떨 듯 죽음에 관해 얘기하는 모임이라고 한다. ‘내 죽음과의 대화’라는 다큐 영화 촬영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인터뷰 전날에도 3시간이나 부인, 두 딸, 사위들과 모처럼 머리를 맞댔다. “장례와 관련해 내 뜻대로 진행되도록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족들에게 거듭 얘기해야 합니다. 암이 죽음을 구체적으로 준비할 시간을 주기 때문에 어떤 면에선 장점도 있긴 합니다.(웃음)” 그가 짜 놓은 장례식은 화사하다. 태워도 유해물질이 나오지 않는 옥양목 수의를 마련해 놨고, 초록빛이 도는 예쁜 유골함은 친한 도예가에게 선물 받았다. 장례식에서 틀 음악도 700곡이나 추려 놓았다. 부의금은 생화 한 다발로 갈음하며, 평소 즐기던 와인을 조문객들에게 대접하는 등 잔치 분위기로 만들 작정이다. 제주도 집에서 가족장을 먼처 치른 뒤 서울에서 따로 추도식을 갖도록 가족들에게 당부도 했다. 철저한 ‘자기 주도 장례식’이다. 그가 운영하는 네이버의 죽음학 카페는 현재 회원 수가 5000명에 육박한다. 매일 5~6개의 글을 꾸준히 올리며 회원들과 소통하고 있다. 강연과 카페 활동을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나며 자신이 얻는 게 더 많다고 한다. 방광암 투병 생활은 비슷한 처지에 대한 공감 능력을 더욱 깊게 만들어 누군가를 살리는 역할도 한다. “한번은 자살을 결심한 한 30대 여성이 제 글을 보고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국어 교사였던 아내의 도움을 받아 꼬박 7시간을 들여 답장을 써서 보냈는데 결국 마음을 바꿨다는 연락을 받고 안도하기도 했었죠.”죽음을 공부한다는 건 역설적으로 현재의 삶을 더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청소년기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독일, 영국 등 초등학교 때부터 죽음을 교육하는 나라들도 있다. 일본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반려동물의 죽음부터 시한부의 삶, 자살 등 여러 형태의 죽음을 가르치고, 직접 장례식도 구상해 보게 하는 등 10여차례 교육을 했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리나라 같으면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칠 만한 일이죠. 그런데 죽음 교육 이후 교내에 만연했던 집단 따돌림, 폭력, 자살 등이 대폭 줄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10~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입니다. 죽음을 진지하게 가르치는 교육이 필요한 때입니다.” 국내에서 움직임이 없는 건 아니다. 지난해 제주도의회는 전 도민을 대상으로 한 죽음교육진흥조례를 통과시켰다. 다만 교육 현장으로까지 확대하자는 제안은 반대가 심해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정 명예교수는 “우리는 일평생 죽음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다가 중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거나 죽음을 맞닥뜨리게 되면 당황하게 된다. 죽음을 일찍 준비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리스 아토스산 성바오로 수도원 벽에 이런 격언이 쓰여 있다고 한다. ‘당신이 죽기 전에 죽는다면, 당신은 죽어도 죽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엄습하는 죽음의 공포가 우리의 삶을 삼켜 버리지 못하도록 미리미리 죽음을 의식하고 학습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 정현채 명예교수는 1980년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로 재직했다. 대한소화기학회 이사장, 한국죽음학회 이사 등을 지냈다. 저서로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가 있다. 박상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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