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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쌍둥이 낳고 행복했는데…” 악동클럽 출신 이태근 사망

    “쌍둥이 낳고 행복했는데…” 악동클럽 출신 이태근 사망

    그룹 악동클럽 출신 이태근(41)이 세상을 떠났다. 이태근은 코로나19 백신 부스터샷 접종 후 중태에 빠졌고 3년간 투병하다 지난 3일 세상을 떠난 사실이 알려졌다. 빈소는 충주시 탄금장례식장에 차렸으며, 5일 오전 발인을 마쳤다. 이태근은 2001년 MBC ‘목표달성 토요일’의 인기 코너 ‘악동클럽’으로 인기를 얻어 2002년 악동클럽으로 정식 데뷔했다. 2006년에는 디 에이디로 재데뷔했다. 이후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춘 이태근은 2022년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으로 뇌출혈이 발생해 위독한 상황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태근의 아내는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에 “30대 쌍둥이 아빠 화이자 백신 부스터샷 맞고 지주막하 출혈로 겨우 숨만 쉴 정도로 힘든 상태”라며 “정부 차원에서 우리 남편이 살 수 있게 꼭 도와 달라”는 글을 게재했다. 아내에 따르면 이태근은 2021년 12월 16일 오후 5시 30분 코로나19 백신 부스터 샷을 접종하고 3시간 뒤부터 두통, 구토, 어지러움 등의 증상을 겪기 시작했다. 이후 23일 CT 촬영 결과 뇌에 출혈이 의심된다는 연락을 받았고, 이후 심각한 뇌 손상으로 줄곧 병원에서 투병했다. 당시 이태근의 지인은 지정 헌혈을 요청하며 “(이태근이) 기저질환이 있었지만, 쌍둥이를 낳고 행복하게 잘살고 있었다. 백신 3차를 맞고 지금은 중환자실에 있다고만 전해 들었는데 헌혈이 급하다”고 간절히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태근은 이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쌍둥이 딸과 나들이 중인 사진을 공개하며 회복 의지를 전했지만 3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가 전해져 주위의 안타까움이 커지고 있다.
  • 뇌 신경마비 투병…김윤아, 병실에 누워있는 근황 전했다

    뇌 신경마비 투병…김윤아, 병실에 누워있는 근황 전했다

    혼성 밴드 자우림 김윤아가 병실에 누워 치료받는 근황을 전했다. 김윤아는 3일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다시 보조배터리의 날. 이번 달도 잘 부탁해”, “81/54 요즘 아플 때 꾸는 꿈의 향연중인데 활력 값이 희미하니 그럴 만도. 원기버섯이랑 원기배스 구워서 식량 칸 채워야 겠다”라는 글과 함께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있는 사진을 업로드 했다. 김윤아는 지난 7월 유튜브 채널 ‘세바시 강연’을 통해 “저는 긴장을 내려놓는 일을 정말 못한다. 근육과 관절들이 항상 당기고 있고, 잘 때도 이완이 안 돼서 자고 나도 몸이 뻐근하다”고 말했다. 김윤아는 “몸만 그런 건 아니다. 뇌도 항상 긴장을 하고 있다. 항상 ‘다음에 무슨 일을 해야 하나, 눈앞에 처리할 일은 없나’ 생각하고 계획을 세운다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면 대비책이 필요하겠지 하고 생각한다. 이게 어쩌면, 20년 이상을 한 순간도 안심을 못하고 긴장하고 지냈기 때문인 것 같다”고 고백했다. 김윤아는 “우리 인생에서 절대 불변의 진리는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라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는 마지막이 존재한다”면서 “2011년에 자우림의 8번째 정규앨범을 만들고 면역력이 너무 약해져서 뇌 신경 마비가 왔었다. 선천성 면역 결핍자라서 지금도 매달 치료를 받고 있다. 당시 뇌 신경마비로 후각, 청각, 미각, 통각, 냉온감, 얼굴부터 상체 근육과 미주신경까지 다 영향을 받고 문제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김윤아는 “지금도 마비 후유증 때문에 몇 가지 기능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라며 “사실은 약간의 발성 장애가 남았는데 힘으로 억누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비와 싸우며 만든 앨범이 8집 ‘陰謀論 (음모론)’이었다. 김윤아는 “앨범을 보면서 ‘이게 나와 자우림이 만든 마지막 앨범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일할 때 제일 중요한 청각에 이상이 왔기 때문에 장담할 수 없겠더라”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김윤아는 “다행히도 청각과 근육들도 어느 정도 회복돼서 일을 할 수 있게 됐지만, 그때 그 경험 이후로는 항상 ‘이번 일이 내 마지막 작업이 될 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더욱 더 모든 걸 다 쏟아 부으면서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마지막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 지금 바로 이 순간 가장 밝게 타올라야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인생도 마찬가지 같다. 이 마지막 지점이 언제 올지 모른다면 죽음이 언제 올지 모른다면 오늘 여기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어야하지 않을까”라고 전했다.
  • “안락사, 의사가 환자 도울 수 있어야” 75세 거장 알모도바르 주장

    “안락사, 의사가 환자 도울 수 있어야” 75세 거장 알모도바르 주장

    첫 영어 장편 ‘더 룸 넥스트 도어’베니스영화제 초연 전 기자회견서“전 세계 안락사 가능해야” 발언암 투병 여성이 죽음 결심한 얘기 스페인의 유명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75)가 그의 첫 영어 장편 영화와 관련해 “전 세계적으로 안락사가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이 전했다. 이탈리아 리도섬에서 열리고 있는 제81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알모도바르는 이날 경쟁 부문에 진출한 자신의 영화 ‘더 룸 넥스트 도어’(The Room Next Door) 최초 상영을 앞둔 자리에서 “이 영화는 안락사를 지지한다. 의사는 환자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영화는 미국 소설가 시그리드 누네즈의 ‘어떻게 지내요?’를 모티브로 해 제작됐다. 종군 기자로 일하며 딸과 갈등을 빚는 엄마 마사(틸다 스윈튼 분)와 그런 모녀 사이를 지켜보는 마사의 친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잉그리드(줄리안 무어 분)의 이야기를 다룬다. 암에 걸려 자살을 결심한 마사는 오랜 친구인 잉그리드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마사는 “내가 먼저 도착하면, 암이 나를 이기지 못할 거야”라며 목표에 도달할 방법을 찾지만, 그와 잉그리드는 이를 위해 마치 범죄자처럼 행동해야 한다. 스페인은 2021년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어떤 형태의 안락사도 합법적인 전 세계 11개 나라 중 하나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 안락사는 살인 또는 과실치사로 간주되며 관여한 사람은 최대 종신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가디언은 설명했다. 알모도바르의 40분짜리 단편 영화 ‘더 휴먼 보이스’(The Human Voice)에 출연한 적이 있는 스윈튼은 이번 영화와 관련해 “저는 개인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윈튼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저는 우리가 멈춘다는 것을 안다. 그것(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느끼고 본다”며 “이 영화는 자기결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과 죽음을 자신의 손에 맡기기로 결심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주연배우 무어는 “알모도바르의 영화에는 엄청난 생명력이 있다”며 “그의 영화를 볼 때 모든 사람의 심작 박동을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무어는 이번 영화에서 알모도바르가 두 노년 여성 사이의 우정을 무게감 있게 다룬 데 대해 “매우 이례적”이라며 칭찬했다. 한편 알모도바르의 25번째 영화인 ‘더 룸 넥스트 도어’는 베니스영화제에서 공개된 후 연말쯤 개봉할 예정이다.
  • ‘이춘재 살인사건’에 성범죄 누명까지…친형 “동생 고문한 경찰 꼭 처벌해달라”

    ‘이춘재 살인사건’에 성범죄 누명까지…친형 “동생 고문한 경찰 꼭 처벌해달라”

    ‘이춘재 연쇄 살인사건’과 성범죄 누명까지 써 실형을 선고받았던 고(故) 윤동일씨에 대한 재심 첫 공판이 열린 가운데 윤씨 측 변호인이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경찰관 4명 등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피고인 윤씨의 친형은 “동생이 경찰에 고문을 받고 여러 고통을 겪다가 출소 후에는 암투병을 하다가 죽었다”며 동생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3일 수원지법 형사15부(부장 차진석) 심리로 열린 윤동일씨 강제추행치상 사건 재심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피고인 윤씨 측 박준영 변호사는 “당시 수사 경찰관 4명과 이 사건 피해자, 재심 청구인이자 윤동일씨의 친형인 윤동기씨 등 6명을 증인으로 신청한다”고 말했다. 이에 다음 공판준비기일에서 해당 경찰관들이 증인으로 나올지, 어떤 발언을 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윤씨는 1990년 11월 9일 오후 7시쯤 경기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 일대를 지나던 여성 A씨를 강제 추행하고 다치게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윤씨는 판결에 불복해 상소했지만 모두 기각, 1992년 1심 판결이 확정됐다. 또 윤씨는 해당 성범죄뿐 아니라 이춘재 살인사건 중 9차 사건의 가해자로 몰리기도 했다.9차 사건은 1990년 11월 화성시 태안읍 야산에서 김모(13)양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인데, 이춘재는 9차 사건 등 자신이 14건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당초 가해자로 몰렸던 윤씨는 현장검증을 위해 경찰과 함께 찾은 야산에서 “나는 범인이 아니다”거나 “경찰 고문에 의해 허위 자백을 했다”고 소리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가 살인사건 누명을 벗게 된 건 그로부터 3개월 뒤인 1991년 2월이다. 피해자 김양의 옷가지에서 채취된 DNA가 윤씨의 것이 아니라는 감정 결과가 나오면서다. 윤씨의 친형은 이날 첫 공판에서 발언 기회를 얻어 “동생이 누명을 쓰고 34년정도 세월이 흐른 것 같다”며 “동생이 고문을 받고 여러가지 고통을 겪은 뒤 몇 개월 후엔 암에 걸려 죽었다”며 “동생이 죽고 나서 부모님도 정신적 고통을 많이 느꼈고, 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로 인해 모든 가족이 고통 속에서 지금껏 살아왔다”고 했다. 또 친형은 공판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시 동생을 고문했던 경찰들이 수사과정을 허위로 조작했다. 진술서도 27번이나 쓰게 하고 닷새간 잠도 안 재웠다더라”며 “그 경찰관들이 꼭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이날 재판부는 증인신청을 한 윤씨 측 변호인에게 증인 신문 순서 등에 대한 의견서를, 검찰 측에는 윤씨 측의 증인신청에 대한 의견서를 다음 기일 전까지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음 공판 준비기일은 다음 달 8일 오전 11시 30분이다. 한편 윤씨 측은 국가를 상대로 한 배상청구소송도 서울중앙지법 제기한 상태다. 박 변호사는 피고인 윤씨뿐 아니라 가족의 피해도 상당하다고 보고 수억원 상당의 위자료 등을 요구하는 소를 제기했다고 부연했다.
  • 中에도 ‘송혜희씨 아버지’가…9년간 아들 찾아다닌 母, 암투병 끝 숨져

    中에도 ‘송혜희씨 아버지’가…9년간 아들 찾아다닌 母, 암투병 끝 숨져

    실종된 딸 송혜희씨를 25년간 찾아 헤맨 아버지 송길용씨가 지난 26일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을 주고 있는 가운데, 중국에서도 실종된 아들을 9년 동안 찾아다닌 어머니가 아들을 만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어머니가 암투병을 하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사연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알려온 터라 그의 사망에 중국 네티즌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29일 중화망 등 중국 언론에 따르면 실종된 아들을 찾기 위해 9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던 리쉐메이(41)가 지난 19일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2년 전 폐암 진단을 받아 투병해왔던 리 씨는 지난달 SNS를 통해 “암이 뼈에 전이돼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밝혔다. 또 아들을 향해 “엄마는 어쩌면 널 못 볼 것 같다. 엄마의 가장 큰 소원은 너를 한 번이라도 보는 거였어. 씩씩하게 살아야 해”라는 애끊는 영상 편지를 남겼다. 광둥성 허위엔시의 한 시골 마을에 살던 리 씨는 2015년 당시 5살이던 아들 리우자주가 실종되는 비극을 겪었다. 아들은 중추절(추석)을 하루 앞두고 친구와 함께 집 근처의 밭에서 놀다가 종적을 감췄다. 리 씨와 남편은 아들을 찾는다는 전단지와 포스터를 만들어 전국 각지에 뿌렸고, SNS 계정을 개설해 인터넷의 힘으로 아들을 찾아보고자 노력했다. 경찰에 DNA 정보를 등록한 리 씨 부부는 다른 실종 아동의 가족들이 DNA 추적을 통해 자녀를 찾는 모습을 지켜보며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9년 동안의 노력에도 아들의 소식은 알 수 없었다. 리 씨가 폐암으로 투병하고, 설상가상으로 리 씨의 부모마저 건강이 악화되자 리 씨는 남편에게 부모의 치료비까지 부담하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혼했다. 남편은 자폐가 있는 딸을 돌보며 슈퍼마켓에서 일하며 매달 4000위안(75만원)을 벌어 이중 2500위안을 딸의 특수학교 학비에 보태왔다. 남편은 “아내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서라도 아들을 계속 찾아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 “많이 아프다”던 배우 한정수 여동생, 이른 나이에 하늘로

    “많이 아프다”던 배우 한정수 여동생, 이른 나이에 하늘로

    배우 한정수가 여동생을 먼저 하늘로 보냈다. 연예계에 따르면 한정수의 여동생은 26일 4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정수는 슬픔 속에 빈소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정수는 지난 6월 소셜미디어(SNS) 통해 여동생의 투병 소식을 전한 바 있다. 한정수는 “여동생이 많이 아프다”며 “밝고 건강한 아이였는데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된 후까지 신경 한 번 써준 적이 없어 너무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기도해달라”고 했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여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고인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8일 오전 7시다. 장지는 천주교 용인공원묘원이다. 한정수는 2021년 드라마 ‘리더의 연애’ 출연 이후 작품 활동을 잠시 쉬고 있다. 지난해 ‘오은영의 금쪽상담소’ 출연 당시 가장 친한 친구였던 배우 김주혁을 떠나보내고 공황장애 등을 앓게 됐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 [단독] 안구 없는 재민이의 건반… ‘함께’라는 감동 울렸다[희귀질환아동 리포트: 나에게도 스무살이 올까요]

    [단독] 안구 없는 재민이의 건반… ‘함께’라는 감동 울렸다[희귀질환아동 리포트: 나에게도 스무살이 올까요]

    “모재민군은 태어나서 한 번도 사물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들은 것을 오래 기억해 연주하는 재능이 있습니다. 재민이는 세상을 피아노로 소통합니다. 2012년 베이비박스를 통해 저희에게 왔습니다. 현재 서울 종로구에 있는 라파엘의집에서 생활하고 있고 서울 맹학교 5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재민이의 꿈은 ‘하늘을 나는 피아니스트’입니다.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는, 하늘을 나는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감상할 준비가 됐나요.” ●선천성 무안구증… 세상 본 적 없어 지난 5월 1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광림아트센터. 선천성 무안구증을 앓고 있는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재민(12)이를 맞이하기 위한 소개 글이 무대 뒤 장막에 올라왔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조명이 들어오자 검은색 연미복에 흰 와이셔츠를 입은 재민이가 지도교사의 손을 잡은 채 등장했다. 긴장된 표정으로 관객에게 정중한 인사를 올린 재민이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신 뒤 건반에 손가락을 올렸다. ●악보 없는 피아노, 관객은 눈물 악보도 없는 피아노에서 쇼팽의 ‘녹턴 20번’이 섬세한 선율로 울려 퍼졌다. 온 신경을 집중했는지 굳어 있던 재민이의 표정이 서서히 풀렸다. 연주가 마음에 든 듯했다. 관객들은 곳곳에서 눈물을 훔쳤다. 첫 곡이 끝나자 관중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잠깐 땀을 닦은 재민이는 두 번째 곡 바흐의 ‘칸타타 147번’을 물 흐르듯 이어 갔다. 마침내 건반에서 손을 뗀 재민이가 일어나 다시 한번 인사를 올린 뒤 오른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가슴으로 연주하는 재민이네 살 ‘절대음감’ 알아봐준 수민 쌤보호시설·보조교사 등 모두가 스승“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길”이날 공연은 주사랑공동체가 주최한 ‘봄날의 베이비박스 콘서트’. 재민이는 특별출연자로 초청받아 오프닝 공연을 맡았다. 대기실에서 기자와 만난 재민이는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무대를 미리 머릿속에 그렸다. “사람들이 박수 치고 환호하면 무대가 더 달아오를 거예요. ‘앙코르’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쇼팽을 한 곡 더 연주할 거예요.” 재민이는 두 살 때 장애아동 생활시설인 서울 라파엘의집에 입소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탓인지 내성적이었고 작은 소리에도 불안해했다. 하지만 네 살 때 운명처럼 만난 피아노가 모든 걸 바꿨다. 악보를 볼 수 없는데도 재민이는 들리는 음을 그대로 재현하는 절대음감의 재능을 갖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건 다섯 살 때인 2017년. 서울맹학교 음악교사인 최수민(51)씨가 재민이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재민이는 1년 만에 콩쿠르에 출전해 비장애인 또래들을 제치고 대상을 받았다. 첫 콩쿠르를 함께한 이도 최씨였다. 이날 베이비박스 공연 마지막 무대에 최씨 손을 잡고 다시 오른 재민이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스승의 은혜’와 ‘어머니의 마음’을 열창했다. 조성진처럼 세계적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재민이. 그가 재능을 활짝 피우도록 도운 건 최씨와 라파엘의집만이 아니다. 등굣길마다 음료와 간식을 챙겨 준 카페 주인, 손수 점자 읽는 법을 알려 주며 글을 깨치게 한 이웃, 시설에서 멀리 떨어진 피아노 학원에 갈 수 있도록 날마다 바래다주는 보조교사….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아이를 사랑으로 보듬은 많은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재민이가 존재했다. 김종민 서울 라파엘의집 원장은 “재민이가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2003년 일곱 살의 나이로 탈북한 모친과 함께 한국에 온 정혜연(28·가명)씨는 어린 시절부터 이유 없이 코피를 쏟았다. 지혈이 되지 않아 세숫대야를 흠뻑 적실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북한에서 병원을 찾았을 땐 병명을 알 수 없는 희귀질환이란 말만 들었다. 새 삶 얻고 보답하는 혜연씨탈북 가정엔 버거운 골수이식비용익명의 독지가 도움으로 건강 찾아심리상담사로 일하며 봉사활동도한국에 온 뒤 대학병원에서 온몸의 혈관에 혈전(피떡)을 유발하는 ‘원발성 항인지질항체증후군’이란 진단을 받았다. 몸의 면역체계가 세포와 조직을 잘못 공격하는 자가면역 질환의 하나다. 당시에는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혈관수축 효과가 있는 스테로이드제를 임시방편으로 복용했다. 정씨의 증상은 계속 악화돼 지난 2012년엔 ‘골수이형성증후군’(골수 이상으로 혈액세포를 만들 수 없는 질환)이란 진단을 추가로 받았다. 치료하려면 골수이식을 받아야 했지만 검사비까지 합쳐 1억원가량이 필요했다. 탈북자 출신 가정이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었다. 희귀질환 환자 후원사업을 벌이는 ‘여울돌’이 정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울돌은 정씨 사연을 전한 뒤 치료비를 지원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고, 익명의 독지가가 나섰다. 열아홉 살 때인 지난 2015년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 정씨는 그렇게 새 삶을 얻었고, 현재 심리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다. 여가 시간이 날 때면 여울돌을 찾아 봉사활동을 한다. “평생 아팠던 제가 수술을 받은 뒤 제대로 된 일상생활을 하기 시작했어요. 의사에게 스무 살을 넘기기 힘들단 말을 들었는데 건강해지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잠깐 우울증이 왔지만 극복하고 제가 받은 사랑과 도움을 다른 이들에게 베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에 심리상담사란 직업을 갖게 됐습니다.” 다시 그라운드 누비는 민재희귀 백혈병에 기약없는 항암치료병원 복지팀 도움에 ‘멘털’ 다잡아2년 만에 축구팀 돌아가 ‘희망 슛’‘제2의 손흥민’을 꿈꾸며 그라운드를 누비던 강민재(14)군이 축구를 멈추게 된 건 목에 큰 멍울이 발견된 2021년 6월. 숨쉬기 힘들 정도로 목이 부은 민재는 병원 세 곳을 돌고 나서야 희귀 백혈병의 일종인 ‘림프모구성 T-세포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소아암 환자 중에선 빨리 병이 발견된 편이지만 급성으로 진행되는 증세에 민재의 몸과 마음이 무너졌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취미로 시작한 축구에 소질을 보여 1년 만에 수원FC 15세 이하(U15) 축구팀에 들어갔던 민재는 서울성모병원에서 기약 없는 항암 치료를 받으며 병상에만 누워 있었다. 아직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기엔 너무 어린 민재. 민재 엄마 김남영(43)씨는 “병원 사회복지팀이 아이를 살렸다”고 되돌아봤다. 복지팀이 틈날 때마다 민재를 찾아 이야기를 들어 주며 힘겨운 투병 생활을 버틸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아 줬다고 한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이 후원하는 ‘어린이학교 사회복귀지원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도 매달 30만원씩 민재 치료비를 지원했다. 민재는 지난해 7월 항암치료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건강을 회복하고 축구팀에 복귀했다. 민재는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친구들이랑 실력 차이가 크게 나면 어쩌나 불안했다. 열심히 연습해서 한국을 빛내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며 웃었다.
  • [단독] 해마다 14억~20억원, 온 국민이 내민 ‘따스한 손길’…기업·자산가·연예인도 쾌척[희귀질환아동 리포트: 나에게도 스무살이 올까요]

    [단독] 해마다 14억~20억원, 온 국민이 내민 ‘따스한 손길’…기업·자산가·연예인도 쾌척[희귀질환아동 리포트: 나에게도 스무살이 올까요]

    희귀난치성연합 5년 새 6억 늘어여울돌 등 단체에도 연 2억~3억故 이건희 회장 유지 3000억 기부 희귀·난치병 아이들이 소중한 생명을 지키거나 병마를 딛고 일어선 것은 우리 사회의 따스한 ‘온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치료비로 거액을 쾌척한 기업과 자산가뿐만 아니라 안타까운 사연을 접할 때마다 십시일반 기부에 동참한 국민들이 희귀·난치병 아이들을 살렸다. 25일 서울신문이 국세청 자료를 바탕으로 희귀질환 환자를 돕는 사회복지기관 기부금 현황을 파악해 보니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에는 해마다 14억~20억원의 후원의 손길이 이어졌다. 지난 2019년 14억 3156만원에서 지난해는 20억 7143만원으로 기부금이 늘었다.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전국의 희귀·난치병 환자들이 지난 2001년 자발적으로 모여 설립한 단체다. 희귀질환으로 투병하는 아이들을 후원하는 여울돌에도 매년 2억 3000만~3억 7000만원의 기부가 이어졌다. 난치병아동돕기운동본부에는 지난해와 올해 각각 2억 9576만원과 2억 2552만원의 기부금이 쌓였다. 희귀·난치병 아이들을 위해 가장 많은 지원을 한 이는 고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이다. 삼성 총수 일가는 지난 2020년 이 선대회장이 별세하자 고인의 생전 유지를 받들어 3000억원을 소아암·희귀질환 환아 지원에 써 달라며 서울대 어린이병원에 기부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해 11월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소아암·희귀질환 3984건을 진단하고 2336건에 대한 치료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사원들이 사원증을 키오스크에 찍을 때마다 1000원씩 모아 2억 3000만원을 희귀·난치병 아동 지원으로 기탁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지난 2022년 사재 10억원을 털어 아이들의 치료에 써 달라며 서울삼성병원과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월드비전에 기부했다. 배우 이영애는 지난 6월 쌍둥이 자녀와 함께 5100만원을 쾌척했다.
  • [단독] 상어 같던 심장보조장치도 친구로… 놀이로 ‘몸과 맘’ 어루만지다[희귀질환아동 리포트: 나에게도 스무살이 올까요]

    [단독] 상어 같던 심장보조장치도 친구로… 놀이로 ‘몸과 맘’ 어루만지다[희귀질환아동 리포트: 나에게도 스무살이 올까요]

    “오늘은 꽃게 장난감 만들어 볼까? 옆으로 가는 거 진짜 신기하지?” 지난 6월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이수미 놀이치료사가 준비한 장난감과 색연필을 꺼내자 다섯 살 지윤(가명)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나만의 꽃게를 만들자’는 제안에 지윤이는 몸에 연결된 커다란 심장 보조장치를 잠시 밀어 두고 의자에 앉았다. 물고기와 해초를 하나씩 붙이고 알록달록 색도 칠한 지윤이는 자기만의 바다를 만들어 갔다. “이거 이름 꽃게!” 직접 만든 장난감을 들고 씩 웃더니 게걸음처럼 옆으로 걸어 치료실을 나가는 지윤이를 보는 치료사들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었다. 소아암에 심부전까지 고통몸보다 큰 ‘바드’ 달고 24시간 생활‘윙윙’ 소음·진동 오롯이 받아내야소아암 환자였던 지윤이는 암 투병 중 항암제 부작용이 찾아와 심부전이라는 또 다른 질병과 싸우고 있다. 심장 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아 8개월째 자신에게 맞는 심장을 기다리는 중이다. 기약 없는 그날까지 지윤이는 자기 몸보다 큰 보조장치 ‘바드’를 달고 24시간 생활해야 한다. 지윤이가 놀이치료에 열중하는 동안 ‘바드’는 끊임없이 윙윙 소리를 냈다. 기계 소음과 진동을 오롯이 몸으로 받아내고 긴 병원 생활을 버티는 데 놀이치료 같은 완화치료는 큰 도움이 된다. 완화치료가 가능한 건 세브란스 소아청소년과 완화의료팀 ‘빛담아이’의 프로그램 덕분이다. 소아청소년 완화의료는 환자의 통증을 정확히 평가하고 효과적으로 조절하기 위한 의료를 말한다. 중증 질환 치료 중에 환자와 가족이 겪는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덜어 주는 게 목표다. 치료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고, 다른 일반적인 치료나 진료에서는 알 수 없는 환자의 상태도 찾아낼 수 있다. 담당 주치의가 완화의료팀에 협진을 의뢰하면 의사·간호사·사회사업사·미술치료사·놀이치료사·음악치료사 등 각 분야 전문가가 팀을 꾸려 환아를 지원한다. ‘빛담아이’ 팀의 지원을 받는 환아는 1년에 통상 약 200명. 중증도가 높은 환아들은 일주일에 한 번 미술·놀이·음악치료나 개인 또는 집단 상담 등 자신에게 맞는 완화치료를 받는다. 세브란스 완화치료 ‘빛담아이’미술·놀이 등 협진으로 안정 도움국내선 인력·예산 탓 소수 기관만 지윤이가 받는 놀이치료는 병원 생활로 또래와 접촉이 적은 아이들이 친구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보통 비슷한 나이의 2~3명이 집단으로 진행하는데, 상호작용을 통해 정서도 환기하고 치료에 대한 두려움도 덜어낸다. 이 치료사는 “청소년도 이런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12세 아이까지 치료하고 있다”며 “친구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스트레스도 덜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치료를 거치면 아이들은 변화한다. 낯가림이 심한 성격이 좀더 활발해지고 치료에도 익숙해진다. ‘빛담아이’ 팀 김소원 간호사는 “처음에는 아이가 ‘바드’를 무서운 상어라고 했는데 나중엔 상어가 기분이 좋아졌다고 표현하기도 한다”며 “치료 장치를 신체의 일부처럼 느끼는 과정”이라고 했다. 국내 소아청소년 완화의료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은 10곳 남짓뿐. 희귀·난치질환을 앓는 아이들을 포함해 수요는 많지만 기회는 부족하다. 완화의료에 대한 인식 부족과 인력, 예산이 충분치 않아서다. 김 간호사는 “외국은 수십 년 전부터 중요성이 알려졌지만 한국에선 2018년에 시작됐다”며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 보니 후원금을 보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 [단독]상어 같던 의료기구도 친구로…다섯살 몸과 마음, 놀이로 어루만지다[나에게도 스무살이 올까요]

    [단독]상어 같던 의료기구도 친구로…다섯살 몸과 마음, 놀이로 어루만지다[나에게도 스무살이 올까요]

    “오늘은 꽃게 장난감 만들어 볼까? 옆으로 가는 거 진짜 신기하지?” 지난 6월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이수미 놀이치료사가 준비한 장난감과 색연필을 꺼내자 다섯 살 지윤(가명)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나만의 꽃게를 만들자’는 제안에 지윤이는 몸에 연결된 커다란 심장 보조장치를 잠시 밀어 두고 의자에 앉았다. 물고기와 해초를 하나씩 붙이고 알록달록 색도 칠한 지윤이는 자기만의 바다를 만들어 갔다. “이거 이름 꽃게!” 직접 만든 장난감을 들고 씩 웃더니 게걸음처럼 옆으로 걸어 치료실을 나가는 지윤이를 보는 치료사들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었다. 소아암 환자였던 지윤이는 암 투병 중 항암제 부작용이 찾아와 심부전이라는 또 다른 질병과 싸우고 있다. 심장 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아 8개월째 자신에게 맞는 심장을 기다리는 중이다. 기약 없는 그날까지 지윤이는 자기 몸보다 큰 보조장치 ‘바드’를 달고 24시간 생활해야 한다. 지윤이가 놀이치료에 열중하는 동안 ‘바드’는 끊임없이 윙윙 소리를 냈다. 기계 소음과 진동을 오롯이 몸으로 받아내고 긴 병원 생활을 버티는 데 놀이치료 같은 완화치료는 큰 도움이 된다. 완화치료가 가능한 건 세브란스 소아청소년과 완화의료팀 ‘빛담아이’의 프로그램 덕분이다. 소아청소년 완화의료는 환자의 통증을 정확히 평가하고 효과적으로 조절하기 위한 의료를 말한다. 중증 질환 치료 중에 환자와 가족이 겪는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덜어 주는 게 목표다. 치료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고, 다른 일반적인 치료나 진료에서는 알 수 없는 환자의 상태도 찾아낼 수 있다. 소아 완화치료 필요하지만 국내선 소수 기관만 담당 주치의가 완화의료팀에 협진을 의뢰하면 의사·간호사·사회사업사·미술치료사·놀이치료사·음악치료사 등 각 분야 전문가가 팀을 꾸려 환아를 지원한다. ‘빛담아이’ 팀의 지원을 받는 환아는 1년에 통상 약 200명. 중증도가 높은 환아들은 일주일에 한 번 미술·놀이·음악치료나 개인 또는 집단 상담 등 자신에게 맞는 완화치료를 받는다. 지윤이가 받는 놀이치료는 병원 생활로 또래와 접촉이 적은 아이들이 친구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보통 비슷한 나이의 2~3명이 집단으로 진행하는데, 상호작용을 통해 정서도 환기하고 치료에 대한 두려움도 덜어낸다. 이 치료사는 “청소년도 이런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12세 아이까지 치료하고 있다”며 “친구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스트레스도 덜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치료를 거치면 아이들은 변화한다. 낯가림이 심한 성격이 좀더 활발해지고 치료에도 익숙해진다. ‘빛담아이’ 팀 김소원 간호사는 “처음에는 아이가 ‘바드’를 무서운 상어라고 했는데 나중엔 상어가 기분이 좋아졌다고 표현하기도 한다”며 “치료 장치를 신체의 일부처럼 느끼는 과정”이라고 했다. 국내 소아청소년 완화의료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은 10곳 남짓뿐. 희귀·난치질환을 앓는 아이들을 포함해 수요는 많지만 기회는 부족하다. 완화의료에 대한 인식 부족과 인력, 예산이 충분치 않아서다. 김 간호사는 “외국은 수십 년 전부터 중요성이 알려졌지만 한국에선 2018년에 시작됐다”며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 보니 후원금을 보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 [단독]희귀병 아동 도와주세요...‘이건희 전 회장부터 JYP까지’ 복지단체에 이어진 온정들[나에게도 스무살이 올까요]

    [단독]희귀병 아동 도와주세요...‘이건희 전 회장부터 JYP까지’ 복지단체에 이어진 온정들[나에게도 스무살이 올까요]

    희귀·난치병 아이들이 소중한 생명을 지키거나 병마를 딛고 일어선 것은 우리 사회의 따스한 ‘온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치료비로 거액을 쾌척한 기업과 자산가뿐만 아니라 안타까운 사연을 접할 때마다 십시일반 기부에 동참한 국민들이 희귀·난치병 아이들을 살렸다. 25일 서울신문이 국세청 자료를 바탕으로 희귀질환 환자를 돕는 사회복지기관 기부금 현황을 파악해 보니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에는 해마다 14억~20억원의 후원의 손길이 이어졌다. 지난 2019년 14억 3156만원에서 지난해는 20억 7143만원으로 기부금이 늘었다.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전국의 희귀·난치병 환자들이 지난 2001년 자발적으로 모여 설립한 단체다. 희귀질환으로 투병하는 아이들을 후원하는 여울돌에도 매년 2억 3000만~3억 7000만원의 기부가 이어졌다. 난치병아동돕기운동본부에는 지난해와 올해 각각 2억 9576만원과 2억 2552만원의 기부금이 쌓였다. 희귀·난치병 아이들을 위해 가장 많은 지원을 한 이는 고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이다. 삼성 총수 일가는 지난 2020년 이 선대회장이 별세하자 고인의 생전 유지를 받들어 3000억원을 소아암·희귀질환 환아 지원에 써 달라며 서울대 어린이병원에 기부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해 11월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소아암·희귀질환 3984건을 진단하고 2336건에 대한 치료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사원들이 사원증을 키오스크에 찍을 때마다 1000원씩 모아 2억 3000만원을 희귀·난치병 아동 지원으로 기탁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지난 2022년 사재 10억원을 털어 아이들의 치료에 써 달라며 서울삼성병원과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월드비전에 기부했다. 배우 이영애는 지난 6월 쌍둥이 자녀와 함께 5100만원을 쾌척했다.
  • [단독] 안구가 없는 재민이의 연주…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를 쏟아냈다[나에게도 스무살이 올까요]

    [단독] 안구가 없는 재민이의 연주…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를 쏟아냈다[나에게도 스무살이 올까요]

    “모재민군은 태어나서 한 번도 사물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들은 것을 오래 기억해 연주하는 재능이 있습니다. 재민이는 세상을 피아노로 소통합니다. 2012년 베이비박스를 통해 저희에게 왔습니다. 현재 서울 종로구에 있는 라파엘의집에서 생활하고 있고 서울 맹학교 5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재민이의 꿈은 ‘하늘을 나는 피아니스트’입니다.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는, 하늘을 나는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감상할 준비가 됐나요.” 지난 5월 1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광림아트센터. 선천성 무안구증을 앓고 있는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재민(12)이를 맞이하기 위한 소개 글이 무대 뒤 장막에 올라왔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조명이 들어오자 검은색 연미복에 흰 와이셔츠를 입은 재민이가 지도교사의 손을 잡은 채 등장했다. 긴장된 표정으로 관객에게 정중한 인사를 올린 재민이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신 뒤 건반에 손가락을 올렸다. 악보도 없는 피아노에서 쇼팽의 ‘녹턴 20번’이 섬세한 선율로 울려 퍼졌다. 온 신경을 집중했는지 굳어 있던 재민이의 표정이 서서히 풀렸다. 연주가 마음에 든 듯했다. 관객들은 곳곳에서 눈물을 훔쳤다. 첫 곡이 끝나자 관중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잠깐 땀을 닦은 재민이는 두 번째 곡 바흐의 ‘칸타타 147번’을 물 흐르듯 이어 갔다. 마침내 건반에서 손을 뗀 재민이가 일어나 다시 한번 인사를 올린 뒤 오른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날 공연은 주사랑공동체가 주최한 ‘봄날의 베이비박스 콘서트’. 재민이는 특별출연자로 초청받아 오프닝 공연을 맡았다. 대기실에서 기자와 만난 재민이는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무대를 미리 머릿속에 그렸다. “사람들이 박수 치고 환호하면 무대가 더 달아오를 거예요. ‘앙코르’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쇼팽을 한 곡 더 연주할 거예요.” 재민이는 두 살 때 장애아동 생활시설인 서울 라파엘의집에 입소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탓인지 내성적이었고 작은 소리에도 불안해했다. 하지만 네 살 때 운명처럼 만난 피아노가 모든 걸 바꿨다. 악보를 볼 수 없는데도 재민이는 들리는 음을 그대로 재현하는 절대음감의 재능을 갖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건 다섯 살 때인 2017년. 서울맹학교 음악교사인 최수민(51)씨가 재민이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재민이는 1년 만에 콩쿠르에 출전해 비장애인 또래들을 제치고 대상을 받았다. 첫 콩쿠르를 함께한 이도 최씨였다. 이날 베이비박스 공연 마지막 무대에 최씨 손을 잡고 다시 오른 재민이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스승의 은혜’와 ‘어머니의 마음’을 열창했다. 조성진처럼 세계적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재민이. 그가 재능을 활짝 피우도록 도운 건 최씨와 라파엘의집만이 아니다. 등굣길마다 음료와 간식을 챙겨 준 카페 주인, 손수 점자 읽는 법을 알려 주며 글을 깨치게 한 이웃, 시설에서 멀리 떨어진 피아노 학원에 갈 수 있도록 날마다 바래다주는 보조교사….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아이를 사랑으로 보듬은 많은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재민이가 존재했다. 김종민 서울 라파엘의집 원장은 “재민이가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2003년 일곱 살의 나이로 탈북한 모친과 함께 한국에 온 정혜연(28·가명)씨는 어린 시절부터 이유 없이 코피를 쏟았다. 지혈이 되지 않아 세숫대야를 흠뻑 적실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북한에서 병원을 찾았을 땐 병명을 알 수 없는 희귀질환이란 말만 들었다. 한국에 온 뒤 대학병원에서 온몸의 혈관에 혈전(피떡)을 유발하는 ‘원발성 항인지질항체증후군’이란 진단을 받았다. 몸의 면역체계가 세포와 조직을 잘못 공격하는 자가면역 질환의 하나다. 당시에는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혈관수축 효과가 있는 스테로이드제를 임시방편으로 복용했다. 정씨의 증상은 계속 악화돼 지난 2012년엔 ‘골수이형성증후군’(골수 이상으로 혈액세포를 만들 수 없는 질환)이란 진단을 추가로 받았다. 치료하려면 골수이식을 받아야 했지만 검사비까지 합쳐 1억원가량이 필요했다. 탈북자 출신 가정이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었다. 희귀질환 환자 후원사업을 벌이는 ‘여울돌’이 정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울돌은 정씨 사연을 전한 뒤 치료비를 지원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고, 익명의 독지가가 나섰다. 열아홉 살 때인 지난 2015년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 정씨는 그렇게 새 삶을 얻었고, 현재 심리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다. 여가 시간이 날 때면 여울돌을 찾아 봉사활동을 한다. “평생 아팠던 제가 수술을 받은 뒤 제대로 된 일상생활을 하기 시작했어요. 의사에게 스무 살을 넘기기 힘들단 말을 들었는데 건강해지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잠깐 우울증이 왔지만 극복하고 제가 받은 사랑과 도움을 다른 이들에게 베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에 심리상담사란 직업을 갖게 됐습니다.” ‘제2의 손흥민’을 꿈꾸며 그라운드를 누비던 강민재(14)군이 축구를 멈추게 된 건 목에 큰 멍울이 발견된 2021년 6월. 숨쉬기 힘들 정도로 목이 부은 민재는 병원 세 곳을 돌고 나서야 희귀 백혈병의 일종인 ‘림프모구성 T-세포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소아암 환자 중에선 빨리 병이 발견된 편이지만 급성으로 진행되는 증세에 민재의 몸과 마음이 무너졌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취미로 시작한 축구에 소질을 보여 1년 만에 수원FC 15세 이하(U15) 축구팀에 들어갔던 민재는 서울성모병원에서 기약 없는 항암 치료를 받으며 병상에만 누워 있었다. 아직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기엔 너무 어린 민재. 민재 엄마 김남영(43)씨는 “병원 사회복지팀이 아이를 살렸다”고 되돌아봤다. 복지팀이 틈날 때마다 민재를 찾아 이야기를 들어 주며 힘겨운 투병 생활을 버틸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아 줬다고 한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이 후원하는 ‘어린이학교 사회복귀지원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도 매달 30만원씩 민재 치료비를 지원했다. 민재는 지난해 7월 항암치료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건강을 회복하고 축구팀에 복귀했다. 민재는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친구들이랑 실력 차이가 크게 나면 어쩌나 불안했다. 열심히 연습해서 한국을 빛내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며 웃었다. 유튜브: https://youtu.be/lq8X9gUsan0 네이버TV: https://tv.naver.com/v/59891815
  • [단독] ‘분열뇌증’ 안고 버려진 ‘생명이’에겐, 매일이 새 생명입니다[희귀질환아동 리포트: 나에게도 스무살이 올까요]

    [단독] ‘분열뇌증’ 안고 버려진 ‘생명이’에겐, 매일이 새 생명입니다[희귀질환아동 리포트: 나에게도 스무살이 올까요]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 담벼락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의 벨이 울렸다. 이곳은 부모가 양육을 포기한 아기를 임시로 보호하는 시설이다. 아기 곁에는 ‘미안합니다’란 글과 함께 태어난 날짜, 앓고 있는 질병 등이 적힌 쪽지가 놓여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듯한 아기는 포대기도 없이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상태였다. 작고, 예쁘고, 아픈 아기였다. 눈이 유독 많이 내렸던 2011년 2월 어느 날 아침이었다. ●얼음장처럼 식어간 아기에게 온 기적 이렇게 찾아온 ‘생명이’는 201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각장애와 분열뇌증을 안고 태어났다. 분열뇌증은 대뇌에 비정상적인 틈이 생겨 신체마비, 발달지연 등이 나타나는 희귀질환이다. 병원으로 옮겨진 아기는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곳을 운영하는 이종락 목사는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생명’이란 이름을 지어 줬다. ●9차례 수술에도 생명의 끈 놓지 않아 생명이는 서울대병원에서 9차례나 큰 수술을 받았다. 뇌에 찬 물이 빠지지 않으면서 뇌압이 계속 높아졌기 때문. 물을 빼주는 장치를 머리에 연결해야 했는데, 다행히 병원에 여분이 하나 있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생명이는 이름처럼 삶을 찾았다. 생명이 곁에는 이 목사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같은 병동에서 치료를 받던 다른 환아 부모들이 돈을 모아 3000만원의 수술비를 대신 냈다. “원래도 잘 웃는 생명이인데 오늘은 유난히 웃음이 많네요.” 지난 5월 만난 생명이는 방긋 웃음을 띤 채 동요를 듣고 있었다. 어느덧 열네 살이 된 생명이는 교회가 운영하는 장애인단기보호센터에서 살고 있다. 앞을 보지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어 온종일 침상에 누워 있어야 하지만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듯했다. 이날 생명이는 서울새롬학교 김연수 방문교사와 함께 음악 수업을 하고 있었다. 새롬학교는 사회복지법인 SRC(옛 삼육재활센터)가 설립한 지체장애 특수학교다. 생명이는 1주일에 두 차례 새롬학교로부터 촉감치료와 미술·음악 수업 등을 받는다. 매주 월요일에는 인근 한방병원 재활센터 전문가들이 찾아와 첼로클리닉 등을 진행한다. 시각장애인인 생명이는 주로 청각을 통해 세상을 느끼기에 음악 치료가 특히 중요하다고 한다. 매주 두 번씩은 서울보라매병원에서 도수치료를 받는다. 생명이의 손목은 인대 당김으로 늘 바깥쪽으로 굽어 있다. 손목 마사지를 받을 때면 고개를 끄덕이며 기분이 좋은 듯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이곳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정주영 센터장은 말한다. “온종일 누워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힘든 아이들을 보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빨리 숨을 거두는 게 고통을 덜어 주는 길 아니냐고. 하지만 저 아이들은 살고 싶어 합니다. 옆에 누군가만 있어 줘도, 미소를 지으며 행복해합니다. 희귀병을 앓고 장애를 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태어날 권리, 그리고 살아야 할 권리가 박탈당해선 안 됩니다.” 미소로 세상을 느끼는 ‘생명이’사회복지사 등이 부모 역할 대신해곁에 누군가만 있어줘도 웃음 가득베이비박스가 생긴 2010년부터 현재까지 이곳에 맡겨진 아이들은 2143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희귀질환을 앓아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135명(6.3%)이다. 우리나라 영유아 중 장애 비율이 0.5%가량인 걸 감안하면 13배 가까이 높은 비중이다. 건강하지 못한 아이는 부모로부터 버림받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생명이 옆 침상은 희망(15)이의 자리다. 희망이는 한쪽 두개골이 함몰된 채 태어났다. 원인은 알 수 없다. 희망이의 부모는 의료진 과실을 주장하며 산부인과에 아이를 맡긴 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병원에 떠넘겨진 희망이는 의사의 품에 안겨 이곳에 왔다. 재성이란 원래 이름이 있지만 센터에서는 희망이로 불린다. 희망이가 힘든 투병 생활을 이겨 낼 수 있기를 기원하며 센터 사람들이 붙여 준 애칭이다. 희망이는 작년 말 잠깐 심장이 멈췄다. 온종일 누워 있는 탓에 욕창이 번졌는데,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오던 중 갑자기 숨을 쉬지 않았다. 심폐소생술을 거듭한 끝에 다행히 호흡은 돌아왔지만 그사이 면역력 저하로 폐렴 등 합병증이 발병했다. 욕창을 치료한 병원에 희망이를 입원시키려 했지만 거부당했다. 희망이가 잘못될 경우 책임을 떠안을까 봐 외면했다는 게 센터 사람들의 말이다. “희망이는 심정지를 이겨 낼 정도로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아이예요.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으면서도 산소포화도가 계속 떨어졌던 순간이 있었어요.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고 저도 ‘아이를 그만 힘들게 하고 보내 줘야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도 놀라 ‘너무 성급했다’고 사과했어요.” 심정지 딛고 살아가는 ‘희망이’ 선천적 두개골 함몰… 삶 의지 강해정부 지원으론 병원비 턱없이 부족정 센터장은 “희망이를 보면서 삶을 결코 쉽게 내려놓아선 안 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했다. 희망이는 지난달 말 병원 생활을 마치고 보금자리인 센터로 돌아왔다. 치료가 끝난 건 아니었지만 전염성이 강한 옴이 발병해 병원에서 퇴원을 권했다고 한다. 희망이에게 청구된 병원비는 1400만원. 정 센터장의 얼굴이 잠깐 어두워졌다. 생명이와 희망이가 생활하는 센터는 교회가 지난 2019년 인가를 받아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이다. 시설은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기 천사’ 중 희귀질환이나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를 돌본다. 생명이와 희망이처럼 홀로 생활이 불가능한 아이들은 사실상 평생 보살핀다. 뇌병변 시각장애를 앓고 있는 ‘나단’이는 센터 운영자들의 사랑 속에 어느덧 스물셋의 어엿한 성인이 됐다. 센터에서 활동하는 7명의 사회복지사와 2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엄마·아빠 역할을 한다. 코로나19 전에는 자원봉사자가 100여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많이 줄었다. 아이들의 증세가 언제 악화될지 모르기에 2명은 항상 24시간 근무를 하며 밤에도 대기한다. 서울시 등 정부는 사회복지사 인건비와 함께 연간 1700만원가량을 지원한다. 아이들의 병원비는 물론 각종 의료용품 충당하기도 턱없이 부족하다. 교회와 독지가들의 지원이 지금까지 아이들을 키웠다. 정 센터장은 “1년에 한 번이라도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밝은 햇살을 느끼게 해 주고 싶다”고 했다. 나들이를 하려면 아이들을 태울 수 있는 특수차량과 전문적인 의료지식을 갖춘 인솔자가 있어야 하는데 센터의 예산으론 엄두도 낼 수 없다.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나들이를 나간 건 10년 전인 2014년이다. 그는 말했다. “아이들이 한 번도 바다에 가 본 적이 없어요. 보면 얼마나 신나할지…. 언젠가 꼭 보여 주고 싶어요.”
  • [단독] 무뇌증을 안고 태어나 베이비박스에 놓인 ‘생명이’…“1년에 하루는 나들이 나가는 게 소원입니다”[나에게도 스무살이 올까요]

    [단독] 무뇌증을 안고 태어나 베이비박스에 놓인 ‘생명이’…“1년에 하루는 나들이 나가는 게 소원입니다”[나에게도 스무살이 올까요]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 담벼락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의 벨이 울렸다. 이곳은 부모가 양육을 포기한 아기를 임시로 보호하는 시설이다. 아기 곁에는 ‘미안합니다’란 글과 함께 태어난 날짜, 앓고 있는 질병 등이 적힌 쪽지가 놓여 있었다. 이제 갓 태어난 듯한 아기가 포대기도 없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발로 박스에 놓여 있었다. 작고, 예쁘고, 아픈 아기였다. 눈이 유독 많이 내렸던 2011년 2월 어느 날 아침이었다. 이렇게 찾아온 ‘생명이’는 201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시각장애와 분열뇌증을 안고 태어났다. 분열뇌증은 대뇌에 비정상적인 틈이 생겨 신체마비, 발달지연 등이 나타나는 희귀질환이다. 병원으로 옮겨진 아기는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곳을 운영하는 이종락 목사는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생명’이란 이름을 지어줬다. 생명이는 서울대병원에서 9차례나 큰 수술을 받았다. 뇌에 찬 물이 빠지지 않으면서 뇌압이 계속 높아졌기 때문. 물을 빼주는 장치를 머리에 연결해야 했는데, 다행히 병원 측이 독일에서 들여온 여분이 하나 있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고 생명이는 이름처럼 삶을 찾았다. 생명이 곁에는 이 목사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같은 병동에서 치료를 받던 다른 환아 부모들이 돈을 모아 3000만원의 수술비를 대신 냈다. “원래도 잘 웃는 생명이인데, 오늘은 유난히 웃음이 많네요.” 지난 5월 만난 생명이는 방긋 웃음을 띤 채 동요를 듣고 있었다. 어느덧 열 세 살이 된 생명이는 교회가 운영하는 장애인단기보호센터에서 살고 있다. 앞을 보지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어 온종일 침상에 누워 있어야 하지만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듯 했다. 이날 생명이는 서울새롬학교 김연수 방문교사와 함께 음악 수업을 하고 있었다. 새롬학교는 사회복지법인 SRC(옛 삼육재활센터)가 설립한 지체장애 특수학교다. 생명이는 1주일에 2차례 새롬학교로부터 촉감치료와 미술·음악 수업 등을 받는다. 매주 월요일에는 인근 한방병원 재활센터 전문가들이 찾아와 첼로클리닉 등을 진행한다. 시각장애인인 생명이는 주로 청각을 통해 세상을 느끼기에 음악 치료가 특히 중요하다고 한다. 매주 두 번씩은 서울보라매병원에서 도수치료를 받는다. 생명이의 손목은 인대 당김으로 늘 바깥쪽으로 굽어 있다. 손목 마사지를 받을 때면 고개를 끄덕이며 기분이 좋은 듯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이곳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정주영 센터장은 말한다. “온 종일 누워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힘든 아이들을 보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빨리 숨을 거두는 게 고통을 덜어주는 길 아니냐고. 하지만 저 아이들은 살고 싶어 합니다. 옆에 누군가만 있어줘도, 작은 소리라도 들려주면 미소를 지으며 행복해합니다. 희귀병을 앓고 장애를 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태어날 권리, 그리고 살아야 할 권리가 박탈당해선 안 됩니다.” 베이비박스가 생긴 2010년부터 현재까지 이곳에 맡겨진 아이들은 2143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희귀질환을 앓아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135명(6.3%)이다. 우리나라 영유아 중 장애 비율이 0.5%가량인걸 감안하면 13배 가까이 높은 비중이다. 건강하지 못한 아이는 부모로부터 버림받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생명이 옆 침상은 희망(15)이의 자리다. 희망이는 한쪽 두개골이 함몰된 채 태어났다. 원인은 알 수 없다. 희망이의 친부모는 의료진 과실을 주장하며 산부인과에 아이를 맡긴 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병원에 떠넘겨진 희망이는 의사의 품에 안겨 이곳에 왔다. 재성이란 원래 이름이 있지만 센터에서는 희망이로 불린다. 희망이가 힘든 투병 생활을 이겨낼 수 있기를 기원하며 센터 사람들이 붙여준 애칭이다. 희망이는 작년 말 잠깐 심장이 멈췄다. 온종일 누워 있는 탓에 욕창이 번졌는데,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오던 중 갑자기 숨을 쉬지 않았다. 심폐소생술을 거듭한 끝에 다행히 호흡은 돌아왔지만 그 사이 면역력 저하로 폐렴 등 합병증이 발병했다. 희망이 욕창을 치료한 병원에 입원시키려 했지만 거부당했다. 희망이가 잘못될 경우 책임을 떠안을까 봐 외면했다는 게 센터 사람들의 말이다. 여기저기 병원을 옮겨다니며 6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희망이는 심정지를 이겨낼 정도로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아이에요.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으면서도 산소포화도가 계속 떨어졌던 순간이 있었어요.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고 저도 ‘아이를 그만 힘들게 하고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도 놀라 ‘너무 성급했다’고 사과했어요.” 정주영 센터장은 “희망이를 보면서 삶을 결코 쉽게 내려놓아선 안 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했다. 희망이는 지난달 말 병원 생활을 마치고 보금자리인 센터로 돌아왔다. 치료가 끝난 건 아니었지만 전염성이 강한 옴이 발병해 병원에서 퇴원을 권했다고 한다. 희망이에게 청구된 병원비는 1400만원. 정 센터장의 얼굴이 잠깐 어두워졌다. 생명이와 희망이가 생활하는 센터는 교회가 지난 2019년 인가를 받아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이다. 시설은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기 천사’ 중 희귀질환이나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를 돌본다. 생명이와 희망이처럼 홀로 생활이 불가능한 아이들은 사실상 평생 보살핀다. 뇌병변 시각장애를 앓고 있는 ‘나단’이는 센터 운영자들의 사랑 속에 어느덧 스물셋의 어엿한 성인이 됐다. 센터에서 활동하는 7명의 사회복지사와 2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엄마·아빠 역할을 한다. 코로나19 전에는 자원봉사자가 100여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많이 줄었다. 아이들의 증세가 언제 악화될지 모르기에 2명은 항상 24시간 근무를 하며 밤에도 대기한다. 서울시 등 정부는 사회복지사 인건비와 함께 연간 1700만원가량을 지원한다. 아이들의 병원비는 물론 각종 의료용품 충당하기도 턱없이 부족하다. 교회와 독지가들의 지원이 지금까지 아이들을 키웠다. 정 센터장은 “1년에 한 번이라도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밝은 햇살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나들이를 하려면 아이들을 태울 수 있는 특수차량과 전문적인 의료지식을 갖춘 인솔자가 있어야 하는데, 센터의 빠듯한 예산으론 엄두를 낼 수 없다.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나들이를 나간 건 10년 전인 2014년이다. 그는 말했다. “아이들이 한 번도 바다에 가본 적이 없어요. 보면 얼마나 신나할지…. 언젠가 꼭 보여주고 싶어요.”
  • 서동주 “父서세원 영정사진 앞 ‘숭구리당당’ 춤춘 김정렬에 오열”

    서동주 “父서세원 영정사진 앞 ‘숭구리당당’ 춤춘 김정렬에 오열”

    방송인 겸 미국 변호사 서동주가 자신의 부친인 개그맨 서세원 장례식에서 ‘숭구리당당’ 춤을 췄다가 악플 피해를 입은 개그맨 김정렬에 감사를 전했다. 서동주는 21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작년은 제게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였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냥 평볌하게 돌아가신 게 아니었다. 제 입장에서는 의문사였다. 아버지를 발인하는 날 키우던 16살짜리 강아지가 죽어 바로 강아지 장례식도 치렀고, 어머니는 암 투병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동주는 “보통 사람들은 인생 전반에 걸쳐 천천히 겪을 일을 몰아서 겪다 보니 아무리 내가 회복력이 좋아도 우울해질 것 같았다”며 “못 일어나는 것 아닌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잘 지나간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서동주는 “당시 감사한 건 아버지 빈소에 많은 사람들이 와 주셨는데 그분들 얼굴이 다 기억난다. 평생 은혜 갚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면서 논란이 됐던 개그맨 김정렬의 ‘숭구리당당 댄스’를 언급했다. 서동주는 “그분께 나중에 악플도 달리고 그랬다. 저는 당시 그 자리에 있었다”며 “숭구리당당 춤을 추셨을 때 웃긴 게 아니라 저는 오열을 했다. 고차원적인 예술 같은 거다.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이 춤을 췄을 때 거기서 오는 감동이 현장에서 굉장히 컸다. 다 같이 울었는데 (악플이 달려) 속상했다. 당시 느낌은 감사하고 그랬다”고 밝혔다. 서세원의 장례식 당시 김정렬은 “탄생도 기쁨이고, 죽음도 가야 될 길이라서 기쁘다. 제 숭구리당당으로 가시는 길 잘 가시라고 밀어드리겠다”며 춤을 췄다. 한편 서세원은 방송인 서정희와 결혼해 서동주 등 1남 1녀를 뒀지만 2015년 이혼했다. 이후 서세원은 23세 연하 해금 연주자와 재혼을 해 딸을 낳았다. 서세원은 재혼 후 캄보디아로 이주해 미디어 및 대규모 부동산 건설, 호텔, 카지노 사업 등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난해 4월 현지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 “내 입장에서는…” 서세원 사망에 딸 서동주가 한 말은

    “내 입장에서는…” 서세원 사망에 딸 서동주가 한 말은

    방송인 겸 변호사 서동주가 부친인 고 서세원의 사망에 대해 언급했다. 21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서동주는 “작년이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였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또 평범하게 돌아가신 게 아니었다. 해외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고 내 입장에서는 의문사였다”며 “그때 내가 키우던 열여섯살짜리 강아지도 아버지 발인하는 날 죽어서 연달아서 강아지 장례식을 치렀다. 또 어머니도 암투병하고, 미국 집도 똥값이 됐었고, 너무너무 힘들었다”며 당시 상황을 털어놨다. 서세원은 지난해 4월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한인병원에서 링거를 맞던 중 사망했다. 서세원은 2015년 모델 출신 방송인 서정희와 이혼한 뒤 이듬해 재혼해 캄보디아로 이주했었다. 다만 서동주는 괴로웠던 시기를 잘 넘겼다고 했다. 그는 “보통 다른 사람이 인생에서 하나씩 하나씩 겪을 일을 몰아서 겪다 보니까 이번에는 내가 아무리 회복력이 좋은 사람이어도 우울할 것 같다, 못 일어나는 건 아닐까 하고 스스로 걱정도 많이 했는데 잘 버티는 스타일이라 그래도 잘 지나간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사했던 게 있다”며 “아버지 빈소에 사람들이 많이 왔다. 얼굴이 하나하나 다 기억나고 은혜 갚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위로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 말기암母 위해 글쓰던 ‘13살 문학영재’ …8년 뒤 ‘예상 못한 근황’ 공개됐다

    말기암母 위해 글쓰던 ‘13살 문학영재’ …8년 뒤 ‘예상 못한 근황’ 공개됐다

    지난 2016년 SBS ‘영재발굴단’에 출연해 ‘문학 영재’로 이름을 알렸던 정여민의 근황이 8년 만에 공개됐다. 지난 18일 유튜브 채널 ‘우와한 비디오’에는 ‘성인이 된 문학 영재 정여민, 8년 만에 만났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정여민은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16년 SBS 프로그램 ‘영재 발굴단’에 문학 영재로 출연했다. ‘영재발굴단’은 특정 분야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을 찾아 그들의 잠재력을 관찰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고민하는 프로그램이다. 정여민은 무려 8000:1의 경쟁률을 뚫고 전국글짓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문학영재다. 그는 부모님과 함께 깊은 산골에 살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정여민의 어머니는 흉선암을 진단 받은 말기암 환자였다. 정여민은 엄마의 병에 대한 슬픔과 엄마를 향한 애틋한 사랑을 자신의 시와 산문 안에 고스란히 담아내 ‘엄마를 위해 글을 쓰는 시인 영재’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안긴 바 있다. 그가 가족을 떠올리며 쓴 ‘마음속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라는 제목의 시는 2015년 전국 어린이 글짓기 대회에서 8042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대상을 거머쥐었다. 이번 ‘우와한 비디오’ 영상에서 8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정여민은 188㎝의 건장한 청년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정여민은 “채널에 근황을 알려달라는 댓글이 많더라”라며 “올해 전역했다. 부모님에게 전해 듣기로 tvN ‘유퀴즈’에서 연락이 온 적 있다 들었다. 그걸 듣고 저는 ‘저를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즐겨보는 거라서 되게 신기했다”고 말했다. 정여민은 엄마의 근황도 전했다. 그는 “옛날에는 살이 되게 많이 빠지셨는데 지금은 5㎏ 정도 찌셔서 옛날보단 훨씬 더 건강해지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좋은 소식도 전했다. 이전에 출연한 영재발굴단 영상이 최근에 다시 화제가 되면서, 그가 방송 출연 뒤 출간했던 책 ‘마음속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를 구매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는 “(원래는) 어린이 맞춤 도서였는데 성인 시점의 개정판으로 리메이크됐다”고 했다. 다만 정여민은 “글 작가로서 나아갈 예정인가”라는 질문에 예상 외의 답변을 내놨다. 그는 “글은 일단 취미로 하고 모델 쪽으로 (가려 한다)”고 밝혔다. 정여민은 “사실 준비한 지는 오래 안 됐다. 고2 때나 고3 때부터 생각해서, 군대 전역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해보자 생각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보다 더 어렵더라. 걸음마부터 떼는 수준이다. 자세도 되게 신경 써야 되고. (학원 다닌 지는) 한 달 좀 넘었다. 워킹은 어렵다”며 웃었다. 현재 정여민은 모델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에 상경, 스스로 학원비를 벌며 모델 훈련에 임하고 있다. 그는 도시 생활에 대해 “산골에서는 그냥 글 쓰고 아무 생각 없이 평화롭게 살았던 것 같은데 서울 올라와선 좋긴 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걱정들로 복잡하다”며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암 투병 중이던 정여민의 어머니 박향숙씨도 직접 영상에 출연해 근황을 전했다. 박씨는 몸무게가 38㎏까지 내려가며 몇 번의 고비를 겪었지만, 매일 운동과 식이 관리를 하며 치료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씨는 처음에 아들의 새로운 꿈에 대해 반대했다고 했다. 그러나 남편이 “요즘엔 꿈이 없는 사람들이 많대. 여민이는 꿈이 있잖아. 그 길이 아니라면 멈추면 되지. 미리 막지는 말자”라는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고 전했다. 정여민의 아버지 정경식씨는 “여민이를 시인으로만 생각하시지 마시고 뭔가를 새롭게 도전하려고 하는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를 해보려고 하는 사람으로 인정해주시고 응원해주시면 좋겠다”고 전했다.
  • “父 위암, 母 유방암 투병” 고백한 유명 배우

    “父 위암, 母 유방암 투병” 고백한 유명 배우

    배우 온주완이 부모의 암 투병 사실을 고백했다. 19일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 출연한 온주완은 “20년 전 아버지가 위암 수술을 하셨고, 4년 전에는 어머니마저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부모님의 투병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암이 얼마나 힘든 병인지 실감했다”고 털어놨다. 이날 방송은 인류가 가장 정복하고 싶은 난치병인 ‘암’을 주제로 진행됐다. 온주완은 “다행히 아버지가 건강검진을 통해 초기에 암을 발견해 복강경수술로 빠르게 제거할 수 있었고, 어머니도 샤워 중 멍울이 만져지며 병원에 갔는데 유방암을 초기에 발견하신 편이라 예후가 좋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건강검진을 제때 받아, 암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암 예방에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헸다. 한편 온주완은 이날 ‘암의 역사’를 고찰하며 다양한 지식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영화 ‘미이라’ 속 등장인물인 ‘빌런’ 이모텝이 실제 이집트의 천재 의사이자 ‘치유의 신’으로 불린 ‘임호텝’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라면서 “외과 수술을 하는 이발사들로 인해 흰색(붕대)-파란색(정맥)-빨간색(동맥)으로 구성된 삼색등이 유래됐다”고 전하기도 했다.
  • “나 눈감으면 반려견도 안락사” 알랭 들롱 과거 발언에 동물보호단체 ‘화들짝’

    “나 눈감으면 반려견도 안락사” 알랭 들롱 과거 발언에 동물보호단체 ‘화들짝’

    ‘미남의 대명사’ 알랭 들롱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별세한 가운데, “내가 죽으면 반려견도 안락사해달라”는 과거 발언이 재조명되고 있다. 프랑스의 동물보호단체 등 각계에서 그의 반려견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유족은 “우리 가족의 일부”라며 진화에 나섰다. 20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들롱은 지난 2014년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루보’라는 이름의 반려견을 입양해 키워왔다. 그는 지난 2018년 프랑스의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루보에 대해 “내 인생에서 50마리의 개를 키웠지만 이 개는 나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면서 “그는 내가 없을 때 나를 그리워한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내가 그보다 먼저 죽으면 그는 내 무덤 위에서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이할 것을 안다”면서 “차라리 수의사에게 우리를 함께 데려가 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그는 내 품에 안겨 잠에 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당시에도 프랑스의 동물보호단체들과 반려동물 애호가들의 반발을 일으킨 바 있다. 이후 그가 세상을 떠나자 루보 역시 안락사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프랑스 동물보호협회(SPA)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동물의 생명이 인간에 좌우돼선 안 된다”며 루보에게 새 가족을 찾아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동물보호단체인 브리지트 바르도 재단은 들롱의 딸 아누슈카와 통화했다며 “루보는 가족의 일부이며 가족이 계속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들롱의 세 자녀는 아버지의 별세 소식을 전하는 성명에서도 “알랭 파비앙, 아누슈카, 앙토니, 루보는 아버지의 별세를 발표하게 돼 매우 슬퍼하고 있다”면서 루보가 가족의 일원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1957년 데뷔해 영화 ‘태양은 가득히’, ‘한밤의 암살자’, ‘누벨 바그’ 등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군림했던 그는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투병을 이어가다 88세에 세상을 떠났다. 생전 “반려견들과 함께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던 그는 그간 키웠던 반려견들을 묻은 프랑스 중부 두쉬의 사유지에 묻힐 것으로 보인다.
  • “반려견들과 함께 여기에 묻히겠다” 세기의 미남 배우가 선택한 곳

    “반려견들과 함께 여기에 묻히겠다” 세기의 미남 배우가 선택한 곳

    투병 끝에 최근 사망한 프랑스의 유명 배우 알랭 들롱이 자신이 생전 살았고 임종을 맞은 프랑스 중부 두쉬의 사유지에 묻힐 것으로 보인다. 20일(현지시간) 프랑스 앵포 등에 따르면 들롱은 병이 악화하기 전 두쉬에 있는 소유지 내 예배당에 묻히고 싶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들롱은 1971년 여배우 미레유 다르크와 함께 두쉬에 처음 정착했다. 그는 1980년대 스위스로 잠깐 이주하기도 했으나 1987년 네덜란드 모델 로잘리 반브리멘을 만나면서 다시 두쉬에 왔다. 사후 이곳에 묻히겠다고 마음먹은 들롱은 수년에 걸쳐 소유지 내 예배당 주변에 자신과 함께해 온 반려견 수십 마리를 묻기도 했다. ‘반려견들과 함께 묻히고 싶다’는 게 들롱의 유언 중 하나였다. 프랑스에서 사유지 매장은 특정 조건에서만 허용된다. 우선 매장지가 도시 지역 외부여야 하며, 최소한 주거지로부터 35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 또 시신 매장에 따른 수질 오염 위험이 없다는 전문 수생학자의 의견서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자체장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데, 들롱은 생전 지자체장에 요청해 ‘원칙적 동의’ 의견을 받아냈다. 들롱의 구체적인 장례 절차나 일정 등은 조만간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대표 미남 배우로 손꼽혀 온 들롱은 지난 18일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태양은 가득히’(1960),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1966), ‘사무라이’(1967) 등 9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그는 ‘세기의 미남’이라는 별명으로 인기를 누렸다. 2017년 영화계 은퇴를 선언한 들롱은 2019년 뇌졸중으로 쓰려진 이후에는 쭉 투병 생활을 해왔다. 그의 아들은 올해 초 언론에 들롱이 림프구 암인 B세포림프종 진단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들롱이 마지막으로 공개 석상에 등장한 것은 2019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였다. 그는 자신을 돌봐준 일본인 동거인과 자녀들 간 불화설, 자신의 건강 상태를 둘러싼 자녀들 간 고소전이 벌어져 씁쓸한 말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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