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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하, 쿠싱증후군 투병으로 달라진 외모 “수술도 못해” 안타까운 사연

    이은하, 쿠싱증후군 투병으로 달라진 외모 “수술도 못해” 안타까운 사연

    ‘마이웨이’에서 가수 이은하가 굴곡진 인생사를 전했다.30일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TV조선 교양프로그램 ‘인생다큐 마이웨이’(이하 ‘마이웨이’)에는 이은하의 인생사가 그려졌다. 이은하는 ‘밤차’ ‘아리송해’ ‘님 마중’ 등 많은 히트곡을 배출하며 당시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가수로 자림매김했다. 이은하는 1970~80년대 디스코의 여왕으로 불리며 전성기 시절엔 9년 연속 ‘10대 가수상’은 물론, 가수왕도 3번이나 차지했던 톱스타였다. 그런 이은하가 가수의 길을 걷게 된 건 이은하가 13세가 되던 무렵. 당시 이은하는 아버지의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았고, 그는 나이까지 속이며 데뷔해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이은하는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빚 때문에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한때는 사채 빚이 50억까지 늘어났다. 결국 이은하는 파산신청을 하고 면책 받기까지 힘든 삶을 살아왔고, 이날 ‘마이웨이’를 통해 이를 덤덤하게 털어놨다. 이은하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를 용서했다며 “미움, 원망, 사랑 모든 것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간다.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어머니, 아버지가 저렇게 눈가에 주름이지고, 눈 뜨기도 힘들어 하시는 모습 보니까 그냥 서글프다”며 소회를 밝혔다. 모든 것을 잃었던 이은하는 쿠싱증후군을 앓았다. 척추분리증을 앓고 있었던 이은하는 진통제 부작용으로 3개월 사이 15kg이나 늘었다. 뒤틀려 버린 허리는 움직일 때마다 온 몸이 저미는 고통을 줬다. 고통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라 진통제를 끊을 수 없었고 쿠싱증후군이 왔다. 쿠싱은 우리 몸이 필요 이상 많은 양의 당류코르티코이드라는 호르몬에 노출될 때 생기는 질환으로 목 뒷부분의 지방축적, 성욕 감퇴, 붉고 얇은 피부, 가늘어지는 팔다리, 달모양의 둥근 얼굴, 골다공증, 근력 약화, 온몸의 잔털, 우울, 복부비만 등의 증상을 보인다. 실질적인 가장이었던 그녀에게는 뒤틀린 허리보다 경제적인 것이 먼저였다. 이은하는 “언제 일을 할지 몰라서 수술을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톱스타가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을 것 같다”는 질문에 “많이 싫다. 지금도 싫고 민망하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러나 이은하는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남은 희망은 오직 노래뿐이다”라며 “어느 순간 제 동생이 ‘뭘 하고 싶은데?’ 라고 물어보는데, 그동안 해본 것이 노래밖에 없더라. 저는 그냥 노래하는 게 전부였던 것 같다”고 노래가 삶의 전부임을 밝혔다. 얼마 전 이은하 아직까지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작은 콘서트를 열었다.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부터 ‘봄비’까지, 주옥같은 노래들로 공연장을 채우자 오랜 세월 동안 이은하와 함께한 팬들은 금세 감성에 물드는 모습을 보였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돕는 일은 삶의 일부… 자원봉사로 더 큰 꿈 키워요”

    “돕는 일은 삶의 일부… 자원봉사로 더 큰 꿈 키워요”

    청소년들에게 자원봉사란 어떤 의미일까. 내신 성적에 반영되고 대입 입시를 위한 포트폴리오쯤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봉사활동이야말로 청소년들이 나눔과 배려를 배우고 꿈을 키우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이 주관한 ‘2017 청소년 자원봉사 콘텐츠 공모전’에서 송길현(전주영생고등학교 2학년) 군이 대상을 받았다. 지난 6월 1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이번 공모전에 UCC, 웹툰, 사진, 수기 4가지 분야에 걸쳐 총 125건의 작품이 접수됐다. 대상을 받은 송길현 군은 중증장애인 야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엄마를 따라나서면서부터 큰 변화가 생겼다. 검정고시 준비로 꿈을 키우는 야학교의 중증장애인들을 만날 때마다 신체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꿈을 향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도전의식을 갖게 된 것. 그러던 중 지난해 4월 중증장애인 야학교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자폐아 친구 민수(가명)를 만났다. 민수의 이해하기 어려운 말과 반복적인 질문,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는 행동 등으로 마음을 열고 교감하는 데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이때 가치관이 바뀌게 된 계기가 됐다고 송 군은 말한다. 민수를 만난 후 자폐와 장애에 관심을 갖게 된 송 군은 진로를 명확히 정했다. 뇌질환과 신경계통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뇌신경재활학 분야를 연구해 자폐와 장애의 해결되지 못한 부분의 대안을 찾아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다는 뚜렷한 꿈을 갖게 된 것. 송 군은 지금도 중증장애인 야학교 자원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송 군은 고등학교 입학식 때 받은 장학금 전액을 희귀·난치성질환으로 투병 중인 아동들을 위해 기부했다. 또한 해외아동 결연 후원에도 정기적으로 참여해 에티오피아의 한 아이를 지원하고 있다.●명장공방봉사단, GYSD 최우수상 받아 송 군과 같이 청소년 개인이 하는 봉사활동 외에도 동아리나 단체로 재능나눔형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청소년들도 있다. 나주공고의 ‘명장공방봉사단’ 동아리는 올해 ‘2017 세계청소년자원봉사의날(GYSD)’ 우수활동 동아리·단체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세계청소년자원봉사의날은 1998년 시작돼 현재 전 세계 120여 국가가 참여하고 있는 국제행사로, 한국은 2003년부터 동참하고 있다. 최우수상을 받은 나주공업고등학교의 명장공방봉사단 동아리는 전남 나주지역 내 독거노인이나 주거 취약계층을 방문해 낡은 보온재 시설과 수도꼭지, 싱크대 등 위생설비의 배관 시설을 수리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봉사활동이 지역에 알려지면서 유관단체와 장애인복지센터 등이 힘을 보탰다. 올해에만 30대의 보일러를 지원받아 노후 보일러를 새 보일러로 교체해줬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靑 ‘낙태죄’ 공론화 신호탄 쐈다

    조국 수석 “OECD국 80% 허용… 현행 법제 국가·남성 책임 빠져” 年 16만건 추정·기소 10건뿐… 23만여명 靑홈피 청원에 답변 법조·종교·여성계를 중심으로 해묵은 논쟁을 거듭해 온 낙태죄 폐지 논란이 재점화됐다. 2012년 8월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 이후 4년여 만에 임신부와 의사의 낙태 처벌 조항(형법 269조 1항, 270조 1항)이 위헌인지를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 사건을 헌재가 심리 중인 가운데 청와대가 낙태죄 폐지에 대한 국민청원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음으로써 사실상 공론화한 것이다. 특히 청와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신중절에 대해서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면서 “‘태아 대 여성’, ‘전면금지 대 전면허용’ 등의 대립 구도를 넘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단계”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26일 국민청원 홈페이지에서 23만여명이 동의한 ‘낙태죄 폐지’에 대해 8년간 중단됐던 정부의 ‘임신중절 실태 조사’를 내년부터 재개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답변을 내놓았다. 조국 민정수석은 청와대 페이스북 등을 통해 “내년에 임신중절 실태 조사를 실시, 현황과 사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겠다”면서 “결과를 토대로 논의가 한 단계 진전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임신중절 실태 조사는 5년 주기로 진행됐지만 2010년을 끝으로 중단됐다. 2010년 기준 임신중절 추정 건수는 연 16만 9000건에 이르지만, 합법 시술(부모의 우생학·유전학적 장애, 강간·준강간에 의한 임신)은 6%에 불과하며 불법낙태·시술로 기소되는 규모는 한 해 10여건 수준이라고 조 수석은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80%인 29개국에서 사회·경제적 사유를 포함해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조 수석은 “태아의 생명권은 매우 소중한 권리이지만 처벌 강화 위주 정책으로 임신중절 음성화, 불법시술 양산 및 고비용 시술비 부담, 해외원정 시술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빠져 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외에 불법수술 과정에서 여성의 생명·건강권 침해 가능성 역시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제한 남성과 헤어진 후 임신 발견 ▲별거 또는 이혼 소송 상태에서 법적 남편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발견 ▲실직·투병 등 경제적 어려움으로 양육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발견한 경우 등 현재 범죄에 해당하는 경우에 대해 고민해 보자고 제안했다. 청와대는 청원에 답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와 세 차례에 걸친 회의를 통해 현황과 쟁점을 검토하고 답변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유상무, 김연지와 꿀 떨어지는 데이트 포착 “럽스타그램”

    유상무, 김연지와 꿀 떨어지는 데이트 포착 “럽스타그램”

    개그맨 유상무가 여자친구인 작곡가 김연지와의 다정한 데이트를 공개했다. 26일 유상무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아잉 참 뭐가 그리 좋은데? 뭘 그리 눈을 못떼는데~? #그야말로 #럽스타그램 #끝판왕 #종일 #이러고있다 #암것두안할랭 #행복해 #냉무얀디”라는 애교섞인 말과 함께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유상무가 여자친구 김연지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는 모습이 담겼다. 김연지는 유상무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달달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상무의 모습 또한 달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편, 지난 4월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은 유상무는 최근 마지막 항암치료를 마치고 건강을 되찾았다. 지난 6일 그는 투병 중 곁을 지켜 준 김연지와 공개 열애를 공식 인정했다. 사진=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싱어송라이터 오세은, 암 투병 중 별세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싱어송라이터 오세은, 암 투병 중 별세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1970년대 딕 훼밀리의 히트곡 ‘또 만나요’를 작곡한 싱어송라이터 오세은이 암 투병 중 별세했다. 향년 69세. 2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오세은은 올해 초부터 폐암과 투병해왔다. 최근 뇌로 전이되면서 급격히 나빠져 어제(21일) 오후 4시 세상을 떠났다. 오세은은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라는 가사로 유명한 ‘또 만나요’를 작사·작곡했다. 이 곡을 비롯해 1974년 발표해 당시 금지곡이 된 ‘고아’ 등의 대표곡이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1남 1녀가 있다. 빈소는 건강관리공단 일산병원 장례식장 9호실, 발인은 24일 오전 7시30분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93년 윔블던 준우승 후 다이애나 비가 위로‘ 노보트나 암으로 세상 떠

    ‘93년 윔블던 준우승 후 다이애나 비가 위로‘ 노보트나 암으로 세상 떠

    1998년 윔블던 여자단식을 제패했던 테니스 스타 야나 노보트나(체코)가 암과 투병 끝에 4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여자테니스연맹(WTA)은 20일(현지시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인이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스티브 사이먼 WTA 사무총장은 “야나는 코트 안팎에서 그녀를 알게 된 기회를 가진 누구나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였다”며 “그녀의 별은 WTA 역사에 항상 밝게 빛날 것이다. 유족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1993년과 1997년 윔블던 여자단식 결승에서 분패했다가 1998년 나탈리 토지앗(체코)을 물리치고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랜드슬램 대회를 제패했다. 1993년 결승에서 슈테피 그라프(독일)에게 진 뒤 펑펑 울자 다이애나 비가 끌어안고 어깨를 다독였던 일로 테니스 팬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2005년 인터뷰를 통해 이 장면이 전면에 실린 신문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며 “내가 우승한 것처럼 느껴졌다, 여자테니스 역사에 길이 남을 인간적인 장면이었다”고 털어놓았다.그녀는 나중에 다이애나 비가 “언젠가 우승할 것”이라고 위로했다고 전했지만 1997년 결승에서도 마르티나 힝기스(스위스)에게 진 뒤 이듬해 우승하며 29세 9개월로 최고령 첫 그랜드슬램 단식 우승자로 이름을 올렸다. 서브 앤드 발리 게임으로 유명했던 그녀는 세계랭킹 2위까지 올랐으며 그랜드슬램 대회 단식에서는 윔블던 우승 1회에 그쳤지만 복식에서는 12차례, 혼합복식에서는 네 차례 우승해 2005년 테니스 명예의전당에 입회했다. 당연히 복식에서는 세계 1위에 올랐다. 최근까지 BBC 해설위원으로 활약했는데 언제나 나직한 목소리로 표현을 아주 섬세하게 골라 하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윔블던과 호주오픈 홈페이지는 물론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체코), 크리스 에버트, 팸 슈라이버(이상 미국) 등 레전드들이 너무 빠른 그녀와의 이별을 애석해 하며 애도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문화 낙원 꿈꾼 ‘우리들의 한나’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문화 낙원 꿈꾼 ‘우리들의 한나’

    미모·다재다능…드라마서 활약 연예 생활 중 본명 ‘안영채’ 등단 장편 ‘우리들의 한나…’만 본명 써‘우리들의 한나는 왜 서울을 떠났나.’ 1970년대 한국 영화를 좋아해서 시간 날 때마다 찾아 감상하고 있다. 내가 운영하는 헌책방에서 만나는 손님들도 영화를 즐기는 분들이 더러 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이럴 때 흔하게 나오는 화제가 ‘어느 배우를 좋아하느냐’인데 보통은 여배우 이름이 많이 나온다. 신성일, 허장강 등 훌륭한 남자 배우도 여럿이지만 그런 이름이 거론되는 경우는 열이면 한둘 정도에 불과하다. 대개는 흔히 ‘트로이카’라고 불리는 문희, 남정임, 윤정희, 유지인, 장미희 등의 이름이 자주 불려 나온다. 그런데 트로이카라고 불리지 않았던 배우들 중에서 유독 사람들 기억 속에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이가 있다. 트로이카처럼 많은 활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만큼 엄청난 인기를 끌어안고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다고 여겨질 만큼 이미지가 뚜렷했던 배우가 있다. 그중 하나가 안옥희(安玉姬)다.배우 안옥희는 1953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났고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특출한 외모와 함께 다양한 재능을 갖추었던 그녀는 일찌감치 예술가로 성공할 가능성을 보였다. 이미 열아홉 살 때 희곡 ‘여우와 소’를 발표했고 아동극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를 연극 무대에 올렸다. 이 작품은 1979년에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스무 살 때는 연극 ‘러브스토리’와 ‘검은 고양이 네로’에 출연해 이 즈음부터 연기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바로 그즈음 텔레비전 신인 탤런트 모집에서 무려 2800대1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비로소 시청자들 앞에 나타났다. 영화 출연은 많지 않았지만 ‘어머니’를 비롯해 ‘꽃신’, ‘수초의 노래’ 등 텔레비전 드라마에서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그런데 안옥희는 배우로서 재능만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0대 시절부터 희곡과 아동문학을 쓰면서 기본기를 다진 그녀는 1977년 월간문학에서 동화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데뷔했다. 다음해에는 ‘마지막 일기’로 성인문학 부문에서도 입선을 했는데 이때 안옥희는 이미 잘 알려진 연예인이었다. 그런 이유로 문학작품을 발표할 때는 안옥희라는 이름 대신 본명인 안영채(安榮蔡)를 썼다. 문단 데뷔를 위해 작품을 보낼 때도 ‘영채’라는 이름을 써서 자신의 현재 신분을 가렸다. 많은 사람들이 안옥희라는 이름을 연기자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녀는 안영채라는 이름으로 한국문인협회, 한국아동문학평론가협회, 한국수필문학가협회, 그리고 한국희곡작가협회의 정회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녀가 쓴 대부분의 문학작품은 앞서 말했듯 안영채라는 이름이 저자로 돼 있다. 1975년에 발표한 수필 ‘귀뚜라미의 외출’을 시작으로 ‘춤추는 무리들’(1976), ‘아아, 저 눈빛이’(1988), ‘혼자 사는 여자’(1993)까지 작가로 활동할 때는 옥희가 아닌 영채였다. 그런데 안옥희라는 이름을 쓴 장편소설이 있다. 이 책은 안옥희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인데 유독 이 작품에서 그녀는 안옥희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이 책은 안옥희가 쓴 유일한 장편소설인 ‘우리들의 한나는 왜 서울을 떠났나’다. 출간 연도는 1979년. 그러니까 한창 배우로서 바빴던 시기에 시간을 쪼개어 장편을 써 냈던 것이다. 나도 전에는 이 책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는데 몇 해 전 수원에 사는 어떤 분 댁에 가서 책을 매입했을 때 발견한 것이다. 처음엔 제목이 좀 유치해서 웃고 넘기려고 했는데 표지에 한자로 쓰인 저자 이름을 읽어 보니 안옥희인 것이다. 설마 이 옥희가 바로 그 연기자 안옥희일까? 에이 설마, 그래도 혹시? 하면서 표지와 면지를 넘겨 보니 정말로 저자는 유명한 배우 안옥희였다. 소설이 시작되기 전 편집자는 우선 왜 이 소설에 ‘영채’ 대신 ‘옥희’라는 이름을 썼는지 밝히고 있다. 안옥희는 문학작품을 출판할 때 영채라는 이름을 줄곧 써 왔기 때문에 여기서도 그 이름을 쓰고자 했으나 소설을 검토해 본 결과 옥희라는 연기자의 이름을 쓰는 것이 굳이 핸디캡이 될 수 없겠다는 판단을 내린 게 요점이다. 그러면서 편집자는 소설가 안옥희를 버지니아 울프, 조르주 상드, 캐서린 맨스필드와 견줄 만하다고 소견을 말하고 있다. 물론 약간 과장을 덧붙인 비교일 수도 있지만 과히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작품을 읽어 보니 저자는 주인공 ‘한나’를 포함한 여러 여성 캐릭터들을 특히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 낸 것이 흥미로웠다.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 후반, 그러니까 당시로선 현대물인데 사회 분위기상 이처럼 여성이 주체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된 작품은 그렇게 많지 않다. 여성은 대부분 약하고 순결한 이미지이기에 가부장적인, 마초적인 남성에 종속돼 휘둘리는 역할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한나는 그런 남성들에게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강인한 캐릭터다. 소설 내용을 가볍게 보자면 일단은 연애소설이다. 한나는 대학교 졸업반이지만 이미 문예잡지에 시(詩)가 추천받아 게재되면서 신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변엔 한나를 좋아해서 따르는 남자 셋이 등장한다. 말이 좋아 따르는 것이지 이들은 사실 한나를 힘으로 제압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가장 어린 강동민은 20대 대학생으로 화가가 되려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직업은 딱히 없고 순수하지만 앞뒤 안 가리는 저돌적인 성격이다. 그의 삼촌인 강이권 역시 한나를 좋아하는데 나이는 40대이고 관광사업 투자 회사를 운영 중이다. 세상의 가장 큰 가치를 자본에서 찾는 인물이다. 아는 언니로부터 소개받은 김원일이라는 사람은 30대로 서울 모 지역구의 5선 국회의원의 맏아들이다. 독일에서 유학하다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서양식 예의범절을 갖추고 있어서 신사적인 면도 있지만 아버지를 닮아서 기본적으로 정치 쪽 야심이 대단하다. 주인공 한나는 이 세 명의 남자들 사이에서 오도 가도 할 수 없는 먹잇감 신세가 되는가 싶더니만 이내 기지를 발휘해서 빠져나오기를 반복한다. 한나가 원하는 행복은 남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처음부터 남자에게 기대어 무언가를 이룰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마음 한구석엔 언제나 쓸쓸함이 있다. 어머니인 송 여사는 이런 말을 한다. “행복은 스스로 느끼며 살아가는 것 아니겠어? 그런데 내겐 작은 행복들이 없어. 그저 더듬이를 상실한 곤충 같지.” 이런 말을 남긴 후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생각하며 한나는 큰 결심을 세우고 안면도로 떠난다. 거기 작은 중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한나 주위를 맴도는 남자들이 그려 내지 못한 큰 그림을 시작하려 한다.당시만 하더라도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안면도에서 주민들과 함께 서울과는 다른 행복하고 자연친화적인 문화공동체를 구상한 한나는 그 옛날 덴마크를 발전시킨 니콜라이 그룬트비히의 모습을 그려 보는 중이다. 하지만 그런 꿈을 꾸는 것도 잠시뿐 사업가 강이권과 서울에서 온 D재벌이 안면도를 장차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지역 유지들과 물밑 작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진정한 행복을 찾아, 편안하게(安) 쉴 곳(眠)을 찾아 안면도까지 온 한나는 힘과 자본을 앞세운 이들의 야욕 앞에서 절망하고 만다. 결국 한나는 강이권 몰래 안면도에서 빠져나와 또 다른 곳을 향해 떠난다. 그곳이 어디인지 소설은 알려 주지 않는다. 서울을 떠난 한나는 안면도에서 비로소 ‘우리들의 한나’가 된다.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니라 이제 어디로든 떠날 수 있고 거기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한나는 그 누구의 한나가 아닌 우리들 모두의 한나인 것이다. 어느 곳에서 한나는 어머니가 말했던 잃어버린 삶의 더듬이를 찾을 수 있을까. 한나가 안면도를 떠난 뒷이야기가 무척 궁금하지만 우리는 영원히 한나가 또다시 어디로 향했는지 알 수 없게 됐다. 작가 안옥희는 1993년 10월 위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 연기자로나 문학가로 한창 꽃피울 시기인 서른아홉 어린 나이에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한나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그녀가 어느 곳으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그곳에서 한나의 또 다른 이야기를 써 나가고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한나는 끝내 행복해야 한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아나필락시스 투병 구혜선, 근황 셀카 공개 ‘불변의 미모’

    아나필락시스 투병 구혜선, 근황 셀카 공개 ‘불변의 미모’

    배우 구혜선이 근황을 전했다.구혜선은 1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구혜선”이라는 짧은 글과 함께 셀카를 올렸다. 사진 속 구혜선은 아기 같은 피부에 커다란 눈망울을 자랑하고 있다. 구혜선은 지난 3월 알레르기성 쇼크(아나필락시스)가 발병해 방송 활동을 중단하고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구혜선은 투병 중 희귀 난치성 질환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1천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JTBC ‘전체관람가’를 통해 정윤철 감독의 단편 영화 ‘아빠의 검’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하기도 했으며 악보집도 출간하는 등 여전히 다방면으로 활동 중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이건희·이재용 불참 속…‘조촐한’ 호암 30주기 추모식

    이건희·이재용 불참 속…‘조촐한’ 호암 30주기 추모식

    호암 이병철삼성그룹 창업주의 30주기 추모식이 기일 이틀 전인 17일 오전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인근 선영에서 열렸다.추모식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이자 이병철 선대회장의 며느리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두 손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등이 가족 대표로 참석했다. 오전 8시 40분쯤 선영에 도착한 이들은 약 20분 동안 참배를 하고 자리를 뜬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투병 중인 이 회장과 구속 수감 중인 이재용 부회장은 참석하지 못했다. 오후에는 범삼성가 인사들이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손경식 CJ 회장, 이채욱 CJ 부회장 등 CJ계열사 임원진이 선영을 찾았다. 조동길 한솔 회장, 장재영 신세계백화점 대표, 이갑수 이마트 대표 등도 고인의 넋을 기렸다. 장손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이날 추도식에는 불참했지만, 기일인 19일 서울 중구 필동 CJ인재원에서 별도로 기제사를 주재할 예정이다. 이 회장은 4년 만에 참석한 지난해 제사 때는 건강상의 문제로 직접 주재하지는 못했다. 삼성그룹은 매년 호암의 기일인 11월 19일 용인 선영에서 추모식을 열어 왔다. 올해는 19일이 일요일이어서 이틀 앞당겼다. 2012년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과 이건희 회장 사이에 상속 분쟁이 불거진 이후에는 같은 날 시간을 달리해 그룹별로 진행하고 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마이웨이’ 오승근, 故김자옥 3주기 근황 공개 “빚 때문에 아내 혹사?”

    ‘마이웨이’ 오승근, 故김자옥 3주기 근황 공개 “빚 때문에 아내 혹사?”

    포크송 가수 오승근이 세상을 떠난 아내 김자옥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16일 방송되는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는 故(고) 김자옥 3주기를 맞아 남편 오승근의 근황이 전파를 탄다. 지난 2014년, 대장암 판정을 받은 뒤 투병 중에도 끝까지 연기의 혼을 불태웠던 김자옥은 폐로 암이 전이 된 탓에 결국 우리 곁을 떠났다. 현재 남편 오승근은 살던 집을 아들 부부에게 물려준 뒤, 아내와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고인의 봉안묘 근처로 이사를 했다. 평소 깔끔한 성격으로 정리정돈이 잘 된 집안 곳곳에는 아내와 함께 쓰던 가구들이 그대로 배치돼 있고, 아내의 사진들과 마지막으로 남긴 자필 메모까지 소중히 간직돼 있었다. 현재 오승근은 호스피스 병원으로 봉사활동을 다니기도 하고, 아들 내외와 어린 손자를 돌보는 일상으로 슬픔을 잊어가고 있다. 아들 오영환 역시 “시도 때도 없이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말하며 고인을 그리워했다. 오승근도 “손자를 돌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다. 아기를 보고 있으면 슬픈 일도 다 잊을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오승근은 공백기 동안 사업으로 부도를 맞은 일과 이 일 때문에 아내가 돈을 버느라 고생해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항간의 루머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해명하기도 했다. 최근 5년 만에 신곡 ‘맞다 맞다 니 말이 맞다’와 ‘청춘아 어디갔니’를 발표하며 다시 한 번 전성기를 준비하는 오승근의 인생 스토리는 16일 오후 10시 방송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감사원, 백남기 사인 늑장 수정 서울대에 주의

    감사원은 서울대병원이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를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하는 데 9개월이나 걸린 것에 대해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중요 사항을 지연 처리해 기관의 신뢰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도록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주의 조치했다. 감사원은 이런 내용을 포함한 ‘서울대병원 기관운영감사’ 보고서를 15일 공개했다.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수정 지연과 응급실 접근성 문제, 영상검사 판독료 부당검사 청구 등 모두 31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백남기 농민은 2015년 11월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1차 민중 총궐기’ 집회에서 경찰 살수차의 물줄기를 맞고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로 서울대병원 응급센터로 이송됐다. 그는 서울대병원에서 317일 동안 투병하다가 2016년 9월 25일 숨졌다. 감사원은 “서울대병원은 유족의 소장이 도달한 2월 1일 이후 대응 과정에서 3월 14일 관련 회의 후 논의를 중단했다가 2개월이 지난 5월 19일에서야 다시 회의를 진행하는 등 사망진단서 수정업무 관련 의사결정이 지체됐다”면서 “서울대병원(의료윤리위원회)의 최종 의사결정 시기와 관련해 언론 등에 또다시 사회적 논란이 제기돼 대외 신뢰도에 타격을 입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감사원은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수정 관련 ‘외압’ 의혹도 들여다봤지만 기존에 알려진 내용 이외에 새로 확인된 사실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감사원 ‘백남기 사망진단서 늑장 수정’ 서울대병원에 주의 조치

    감사원 ‘백남기 사망진단서 늑장 수정’ 서울대병원에 주의 조치

    서울대병원이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 경찰 살수차의 직사살수를 맞고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 종류를 ‘병사’라고 했다가 ‘외인사’로 뒤늦게 수정한 일에 대해 감사원이 주의 조치했다.감사원은 ‘서울대병원 기관운영감사’ 보고서를 15일 공개하면서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중요사항을 지연 처리해 기관의 대외 신뢰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도록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주의 조치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2015년 11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 살수차의 물대포를 정면으로 맞고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로 서울대병원 응급센터로 이송됐다. 고인은 서울대병원에서 317일 동안 투병하다 지난해 9월 25일 눈을 감았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 고인의 치료를 맡았던 전공의 A씨는 담당 교수였던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에게 전화 통화로 사망 사실을 보고했고, 백 교수는 사망 종류를 ‘병사’로 기록해 사망진단서를 작성토록 지시했다. 백 교수가 고인의 사망 종류를 병사로 기록하도록 한 사실이 논란이 일자 서울대병원은 지난해 10월 1일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사망진단서 작성 과정에 외압이 있었는지 조사했다. 하지만 사망진단서 작성 과정에서 외압은 없었다고 확인했고, 백 교수는 사망진단서를 수정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이에 백씨 유족이 소송을 제기하자 서울대병원 의료윤리위원회는 지난 2월 22일 ‘소송대응 관련 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백 교수는 계속 병사를 고수했고, 이후 법적 측면에서는 사망진단서 작성 명의자인 전공의 A씨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됐다. 그러다 지난 3월 14일 서울대병원은 ”전공의 A씨가 담당교수 백 교수와 같은 팀에서 수련을 받는 기간에는 두 사람이 사제지간으로서 특수한 상황이므로 전공의 A씨의 입장을 고려한다“면서 약 두 달간 논의를 중단했다. 이 병원은 지난 5월 19일에 다시 소송대응 회의를 열었고, 전공의 A씨가 ”사망진단서를 수정할 의사가 있으나 담당교수가 병사를 고수하는 상황에서 임의로 수정하기 어려우니 병원 차원에서 수정할 근거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의료윤리위원회는 지난 6월 7일 ”전공의에게 권한과 책임이 있음을 확인하고, 수정할 것을 권고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이에 따라 지난 6월 14일, 9개월 만에 사망진단서 수정이 이뤄졌다. 감사원은 “이 사건의 사망진단서 관련 사항과 같이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중요사항에 대해서는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해 사회적 논란을 해소하고 기관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서울대병원은 유족의 소장이 도달한 지난 2월 1일 이후 대응과정에서 지난 3월 14일 관련 회의 후 논의를 중단했다가 2개월이 지난 5월 19일에서야 다시 회의를 진행해 사망진단서 수정업무 관련 의사결정이 지체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에 따라 서울대병원(의료윤리위원회)의 최종 의사결정 시기와 관련해 언론 등에 또다시 사회적 논란이 제기됨으로써 위 병원의 대외 신뢰도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대법, 삼성반도체 노동자 ‘뇌종양 산업재해’ 첫 인정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악성 뇌종양으로 사망한 노동자에게 산업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백혈병을 산재로 인정한 사례는 있었지만 뇌종양을 산재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14일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서 일한 노동자 이윤정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 환송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사업장과 이와 근무환경이 유사한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뇌종양 발병률이 한국인 전체 평균발병률이나 이씨와 유사한 연령대의 평균발병률과 비교해 유달리 높다면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데 유리한 사정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이씨가 퇴직 후 7년이 지난 다음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는 점만으로는 업무와 뇌종양 발병 사이에 관련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1997년 삼성전자 온양공장에 입사한 이씨는 반도체 조립라인 검사공정에서 6년 2개월간 근무하다 2003년 퇴직한 뒤, 7년 후인 2010년 뇌종양 진받을 받았다. 이씨는 공단에 산재 인정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고 2011년 4월 소송을 냈다. 그가 2012년 5월 투병 중 사망하자 유족들이 소송을 이어받아 진행했다. 1심은 이씨를 산재로 인정했지만 2심은 업무와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 인정이 어렵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대법원 “삼성반도체 노동자 뇌종양 산재로 인정해야”…원심 파기환송

    대법원 “삼성반도체 노동자 뇌종양 산재로 인정해야”…원심 파기환송

    삼성전자 LCD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악성 뇌종양으로 2012년 숨진 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동안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가 백혈병에 걸려 산재로 인정받은 사례는 있었지만 뇌종양을 산재로 인정한 취지의 대법원 판결은 처음이다.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고(故) 이윤정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사업장, 그리고 이 곳과 근무 환경이 유사한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뇌종양 발병률이 한국인 전체 평균 발병률이나 망인과 유사한 연령대의 평균 발병률과 비교해 유달리 높다면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 인과관계를 인정하는데 유리한 사정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망인이 퇴직 후 7년이 지난 다음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는 점만으로는 업무와 뇌종양 발병 사이에 관련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1997년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삼성전자 온양공장에 들어갔다. 그는 반도체 조립라인 검사공정에서 일하다 6년 2개월 만인 2003년 퇴직했고, 그로부터 7년 뒤인 2010년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이씨는 자신의 질병이 ‘업무상 재해’라고 판단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험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공단은 ‘업무와의 관련성이 없다’면서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이에 이씨는 공단을 상대로 2011년 4월 소송을 냈다. 하지만 선고 결과를 보지 못하고 2012년 5월 투병 중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유족들이 소송을 이어받았다. 1심은 “삼성전자에 근무하는 동안 벤젠과 납, 포름알데히드, 극저주파 자기장 같은 유해화학물질에 일정기간 지속적으로 노출된 후 뇌종양 등이 발병했다”면서 “업무와 연관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반도체 공장 노동자가 뇌종양을 산재로 인정받은 첫 판결이었다. 반면 2심은 “연장 근무 등으로 인한 과로나 스트레스가 뇌종양을 유발하거나 그 진행을 촉진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만한 근거가 없고, 퇴사 후 7년이 지나서 뇌종양으로 진단받은 점 등에 비춰 업무와 발병 사이의 상당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산재가 인정될 여지가 크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월드피플+] ‘콩팥이 필요해’ …거리로 나선 70대 사랑꾼 남편

    [월드피플+] ‘콩팥이 필요해’ …거리로 나선 70대 사랑꾼 남편

    지난 달 중순 한 노인이 팻말을 몸에 걸고 차량이 쌩쌩달리는 도로 옆 인도를 정처없이 걸었다. 노인이 몸 앞뒤로 걸친 팻말에 쓰인 글귀는 다름아닌 '아내를 위해 신장이 필요하다'(need a kidney 4 wife)는 것.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ABC뉴스 등 현지언론은 유타 주 파웨스트에 사는 올해 74세의 노인 웨인 윈터스의 사연을 전했다. 앞 뒤로 걸친 팻말때문에 현지에서 '샌드위치 맨'이라는 별명을 얻은 할아버지는 지난달 중순부터 매일 길거리를 걷고 또 걷는다. 고령의 나이에 쉽지않은 일이지만 할아버지가 고행길을 나선 이유는 투병 중인 아내 디앤을 살리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다. 26년 간 함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 아내가 말기신부전으로 이제는 신장 이식 외에는 살 방법이 없었던 것. 할아버지는 "신장이식을 받기 위해 대기한 시간이 벌써 2년 째로 더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면서 "어떻게든 살리고 싶은 마음에 고민하다가 우연히 다른 샌드위치 맨의 소식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앞서 똑같은 팻말을 목에 걸고 아내를 위한 신장 기증자를 찾은 한 중년 남성의 기적같은 소식을 알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70대 나이에 하루 몇㎞ 씩 걷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응원메시지를 보내줘 전화에는 700~800개의 메시지가 가득찼다"고 말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노력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지난 5일 아내에게 딱 맞는 신장을 찾았다는 병원의 전화를 받게된 것이다. 미국에서 장기이식 대기자만 10만 명이 넘고 매일 13명이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큰 행운이 찾아온 셈이다. 특히 할아버지는 아내의 신장을 구하는 목적을 이뤘지만 신장 기증 홍보를 위해 당분간 샌드위치 맨으로 계속 걷고 또 걸을 예정이다. 할아버지는 "신장 이식수술이 무사히 끝나 현재 아내가 건강을 회복 중"이라면서 "이제 아내와 제2의 인생을 함께 걸어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며 기뻐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김우빈 비인두암 투병, 이어지는 동료들의 응원 “완치 기도”

    김우빈 비인두암 투병, 이어지는 동료들의 응원 “완치 기도”

    비인두암 투병 중인 김우빈에게 관심이 쏠린 가운데 그를 향한 동료 배우들의 응원 또한 재조명되고 있다.지난 8월 SBS ‘본격연예 한밤’ 측은 비인두암으로 투병 중인 김우빈의 이야기를 다뤘다. 당시 김우빈은 1차 항암치료를 마친 상태로, 체중이 10kg 정도 빠진 것으로 알려져 팬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그의 비인두암 투병 소식이 알려지자 동료 배우들의 응원도 이어졌다. 당시 영화 개봉을 앞둔 배우 강하늘은 김우빈의 대표작인 드라마 ‘상속자들’과 영화 ‘스물’을 함께 촬영한 만큼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강하늘은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지금도 김우빈 생각이 많이 난다. 진심을 다해 완치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강하늘 외에 함께 작품을 했던 배우 임주환, 김영광 또한 SNS와 인터뷰 등을 통해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한편,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은 홍종현 또한 최근 가진 인터뷰 자리에서 비인두암 투병 중인 김우빈을 언급했다. 홍종현은 “처음에는 너무 미안해서 연락을 못 하겠더라. 뭐라고 말해야 할지를 몰랐다”며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문자를 남겼다. 지금도 많이 응원하고 기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SBS ‘본격연예 한밤’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멕시코 여대생들의 긴 머리, 암 투병 아이들의 미소

    멕시코 여대생들의 긴 머리, 암 투병 아이들의 미소

    곱게 기른 머리를 미련없이 자르는 멕시코 여대생들이 언론에 소개돼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멕시코 푸에블라주의 몬테레이기술대학의 여학생들은 해마다 어린이 암환자를 위해 머리카락 모으기 캠페인을 벌인다. 올해는 8일(현지시간) 캠페인을 시작했다. 슬로건은 ‘내 머리카락, 당신의 미소’. 이틀 내 길게 2~3가닥으로 땋은 머리카락 350묶음을 모으는 게 목표다. 목표가 달성되면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어린이 암환자들에게 가발을 만들어줄 계획이다. 캠페인을 기획한 마리아 아이데 소리아노는 머리카락 기부의 베테랑이다. 그는 “올해도 학생들이 많이 동참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소리아노는 암환자를 위해 민간단체가 벌이는 머리카락 모으기운동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학교에서 이 운동을 벌였다. 반응은 뜨거웠다. 학생뿐 아니라 어른들까지 동참해 모두 187명이 기꺼이 머리를 잘라 기부했다. 소리아노의 기억에 남는 건 자식들과 함께 머리카락을 기부한 한 아주머니다. 그는 “얼마 전 조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며 세 딸과 함께 머리카락을 잘라 기부했다. 지난해 캠페인이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면서 올해는 목표를 3배로 높였다. 소리아노는 “겨우 이틀이지만 꼭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머리카락 기부가 어린 암환자들에게 큰 용기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머리카락 기부에는 엄격한 기준이 있다. 머리카락의 길이는 최소한 15㎝ 이상이어야 한다. 염색한 머리는 기부가 불가능하다. 소리아노는 어린이 암환자 23명에게 가발을 선물할 계획이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김우빈 비인두암 투병, 홍종현 “응원하고 기도”

    김우빈 비인두암 투병, 홍종현 “응원하고 기도”

    배우 홍종현이 최근 비인두암으로 투병 중인 김우빈에 대해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은 모델 겸 배우 홍종현은 최근 데뷔 10주년 기념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 이날 홍종현은 과거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함께 출연한 동료 배우 김우빈에 대해 언급했다. 지난 5월 김우빈 소속사 싸이더스HQ 측은 “김우빈이 최근 비인두암 진단을 받았다”고 밝혀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비인두암은 인두의 가장 윗부분에 생기는 악성 종양으로 알려졌다. 김우빈은 지난 8월 1차 항암치료를 완료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종현은 김우빈에 대해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많이 좋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나중에 기사를 통해 (비인두암 투병 사실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너무 미안해서 연락을 못 하겠더라.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고,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 자체도 스트레스일 것 같았다”며 동료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홍종현은 이어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문자를 남겼는데 ‘괜찮아지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지금도 많이 응원하고 기도하고 있다”며 김우빈의 완쾌를 빌었다. 사진제공=더팩트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정신주의’ 詩 대부 조정권 시인 별세

    ‘정신주의’ 詩 대부 조정권 시인 별세

    1990~2000년대 ‘정신주의’ 시 사조를 이끈 조정권 시인이 8일 새벽 5시 30분 별세했다. 68세. 고인은 간 경화와 뇌출혈 등으로 수년간 투병해 오다 병세가 나빠졌다.조정권 시인은 1990년대 시단에 등장한 정신주의 계열을 이끌며 독자적인 시 세계를 이루며 우리 시문학에 뚜렷한 인장을 남겼다. 정신주의는 전통 서정시에 토대를 두고 고고한 정신성을 지향하려는 흐름이다. 그의 시 쓰기 화법이 그대로 녹아 있는 대표작 ‘산정묘지’는 제10회 김수영문학상과 제6회 소월시문학상을 동시에 받았다. 녹원문학상, 한국시협상, 현대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목월문학상, 질마재문학상, 한국서정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건축, 무용, 미술, 음악 등 다른 예술 분야에도 조예가 깊었던 고인은 1983년부터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문학·미술부장, 국제사업부장, 기획조정부장 등을 지내며 문화예술 진흥에도 힘썼다. 유족으로는 방송작가인 부인 주경희씨와 두 딸이 있다. 장례는 한국시인협회 시인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발인은 10일 오전 8시, 장지는 용인공원묘원. (02)2072-2011.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전 축구선수 신영록 “다시 뛸 의지 보일 것”…투병 중인 딸 둔 아버지 “희귀병 극복 응원”

    전 축구선수 신영록 “다시 뛸 의지 보일 것”…투병 중인 딸 둔 아버지 “희귀병 극복 응원”

    성화 주자 7500명은 남북한 평화와 화합을 기원하는 의미로 한반도 인구 7500만명을 상징하는 숫자다. 화합과 축제의 장을 잇도록 ‘인종과 국적, 나이, 성별을 떠나 누구나 주자로 참여할 수 있다’는 대원칙 아래 한류 스타부터 스포츠 스타, 다문화가정, 장애인, 소외계층, 사회 공헌자 등 두루두루 포함됐다.그리스 아테네에서 두 번째 성화 주자로 뛴 박지성을 비롯해 김연아, 이봉주, 이승엽, 진종오, 차범근, 차두리, 류현진, 추신수, 유승민 등 유명 스포츠 스타들이 성화 봉송 대열에 합류한다. 또 국민 MC 유재석, 박명수, 하동훈, 정준하, 양세형 등 무한도전 멤버와 가수 수지, 영화배우 이영애, 탤런트 박보검 등 한류 스타들도 대거 모습을 보인다.6년 전 그라운드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46일 만에 극적으로 의식을 되찾은 전 축구선수 신영록은 “선수로 다시 그라운드를 달릴 수는 없지만 코치나 감독으로라도 그라운드에 다시 두 다리로 서고 싶다”면서 “성화 봉송을 신청한 것은 이러한 제 의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 최초의 올림픽 스키국가대표인 임경순씨는 “1960년 동계올림픽에 참가했는데 이제 58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려 감개무량하다”며 “몸은 늙었지만 옛 기억을 되새기며 성화 봉송에 참여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걸그룹으로 데뷔한 김소혜씨는 “연습생 시절 매일 꿈꾸던 삶을 지내는 요즘은 매일매일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오랜 시간 열심히 준비한 선수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며 파이팅을 외쳤다. 갖가지 사연으로 뽑힌 국민들도 많다. 인천에 사는 유성길씨는 “딸이 희귀성 난치질환인 ‘혈구탐식성 조직구증식증’으로 투병 중인데, 아픈 딸과 간호하는 와이프를 응원해 주고 싶다”며 지원 사연을 소개했다. 2015년 1월 경기 의정부 아파트 화재에서 밧줄로 몸을 묶고 가스 배관을 타고 내려가 이웃 주민 10명을 구한 ‘시민 영웅’ 이승선씨는 “안전한 대한민국, 안전한 올림픽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성화 주자로 나섰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관심사인 올림픽 개막식의 최종 성화 주자는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상당수 국민들과 해외 언론들은 ‘피겨 여왕’ 김연아를 꼽고 있지만 실제로 이뤄질지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역대 올림픽에서 마지막 성화 주자는 주로 주최국의 스포츠 스타였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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