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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살 가슴 절제” 여가수 충격 고백

    “29살 가슴 절제” 여가수 충격 고백

    가수 수란이 ‘유방암’ 투병한 사실을 밝혔다. 지난 16일 방송된 MBC 에브리원 ‘비디오스타’에서 가수 수란이 “사실 4년 전 유방암에 걸렸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그때 수술을 해서 가슴 한쪽이 없는 상태다. 그걸 20대 때 겪다 보니 나름 충격적이었다”며 “그 후로 내 여성성이 많이 죽은 것 같더라. 원래는 굉장히 여성적이었는데 옷 입는 스타일이나 태도가 중성적으로 변했다. TV에 나오는 내 모습을 사람들이 다른 성격으로 보는 것 같아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를 들은 MC 박소현은 “굉장히 용기 내서 말해주는 거다”라며 수란에게 고마움을 드러냈고, 김숙 또한 “그 당시에는 얼마나 큰 충격이고 그랬겠냐”고 깊이 공감했다. 이에 수란은 “약물치료를 하면서 호르몬이 불균형해지다 보니까 감정 기복도 심해졌다”며 “그래도 지금은 관리를 잘하고 있는 상태고 신경 쓰이는 부분이 없어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당찬 모습을 보여 눈길을 모았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임산부처럼 부푼 2살 여아의 배…원인은 희귀암

    임산부처럼 부푼 2살 여아의 배…원인은 희귀암

    잉글랜드 랭커셔카운티 블랙풀에 사는 섀넌 라탐(23)과 파트너 라이언 키넌(26)은 지난 2월 딸 클레오 키넌(2)의 복부가 갑자기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것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클레오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지만, 의료진은 호르몬 불균형에 따른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클레오의 배는 점점 부풀어 올랐고 임신한 사람의 배처럼 보일 지경에 이르렀다. 복통도 심해져 결국 전문 병원으로 옮겨진 클레오는 지난 1일 부신암 3기 진단을 받았다. 클레오의 어머니 섀넌은 “딸의 배가 너무 부풀어 올라서 걱정이 됐지만 호르몬 때문이라길래 그런 줄 알았다. 잔병치레는 있었지만, 여느 두 살배기처럼 별 탈 없이 자라고 있었기에 암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클레오가 생존할 확률이 25%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사람은 좌우 양쪽에 두 개의 신장을 가지고 있는데 부신도 양쪽 신장의 위쪽 안쪽에 하나씩 존재한다. 부신은 스테로이드와 알도스테론 등 호르몬을 분비해 우리 몸의 대사와 면역반응을 조절하고 혈압, 혈액량, 전해질 조절에 관여하는데 이 부위에 발생하는 희귀 악성종양이 부신암이다. 부신암 진단을 받은 클레오는 다음날부터 바로 항암제 복용과 화학요법 등 항암치료에 돌입했다. 섀넌은 “수혈과 약물주입 등을 반복하면서 딸은 매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기 힘들 정도”라고 설명했다. 클레오는 올해 말 부신 제거 수술이 예정돼 있으며 그전까지 추가적인 화학 치료를 통해 종양의 크기를 줄여야만 한다. 그러나 수술 후에도 암이 재발할 확률은 80%에 달한다고 섀넌은 밝혔다. 치료비 역시 문제다. 데일리메일은 16일(현지시간) 파트너인 라이언과 떨어져 클레오 말고도 2명의 자녀를 홀로 키우고 있는 섀넌이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녀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는 클레오의 투병이 치료비 때문에 좌절될까 걱정하고 있다. 현지 언론은 섀넌이 딸을 지키기 위해 모금페이지를 개설했다며 관심을 호소했다. 섀넌은 모금페이지에서 “클레오가 어려운 항암치료 속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딸이 병마와 싸우면서 또래보다 성숙해졌다. 마치 네다섯 살 된 아이처럼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모습이 더욱더 안타깝다”며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그녀는 작고 어린 클레오가 이 싸움을 이겨내고 또 다른 인생의 페이지를 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페이스북을 통해 클레오의 암 투병 일지도 공유하기 시작했다. 클레오는 일단 올해 말 부신 제거 수술 전까지 화학요법을 이어갈 계획이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강남순의 낮꿈꾸기] 장애를 지닌, 그 한 사람의 권리를 기억하라

    [강남순의 낮꿈꾸기] 장애를 지닌, 그 한 사람의 권리를 기억하라

    우리는 동일한 시간과 장소에 있어도 동일한 것을 보지 않는다. 내게는 보이는 것을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을 내가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함께 TV를 보아도, 남편이 부인에게 반말을, 부인은 남편에게 존대하는 드라마가 어떤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심한 문제로 들린다. 신년토론에 나온 대담자들이 100% ‘남성·비장애인·중년층·이성애자’ 인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장면이지만,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한국사회의 중심부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들이 배제되어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생략에 의한 차별’의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인식의 사각지대’를 지니고 있다.비장애인인 나에게 인식의 사각지대가 있음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된 것은, 장애를 지닌 나의 친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그녀는 나의 미국 유학시절에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다. 그런데 그녀는 박사과정 공부를 하던 중,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해 한쪽 다리를 완전히 절단했어야 했다. 투병 생활을 하면서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박사학위를 마치고, 캐나다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게 되었고, 어느 해 한국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하고서 나와 함께 서울과 강원도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의족을 하기도 하고, 목발을 짚고서 이동해야 하는 그녀와 함께 여러 곳을 다니면서 그동안 나의 눈에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비로소 내게 보이기 시작했다. 가파른 계단들을 올라가야 들어갈 수 있는 경사진 곳의 카페나 레스토랑들은 아무리 좋아 보여도 들어가지 않았다. 이전에 보이지 않던 계단들, 경사진 곳들, 엘리베이터가 없는 2~3층 건물들이 곳곳에 많다는 사실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나를 불편하게 느끼게 한 것은 내 친구와 함께 가는 곳마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백인의 몸을 지닌 그녀가 한쪽 다리가 없는 장애를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신기한 존재’로 바라보는 그 시선들 속에서 나의 친구는 단지 호기심과 측은지심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녀를 구성하는 수많은 결들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그녀의 ‘육체적 장애’라는 ‘이슈’로만 규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장애를 가진 친구와 일주일을 함께하면서 나의 보기 방식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삶의 다양한 정황들 속에서 장애를 지닌 사람이 경험하는 차별과 배제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는 것, 동일한 자리에 있어도 장애를 지닌 사람과 아닌 사람이 경험하는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나는 이론만이 아니라 함께하는 삶을 통해서 배우게 되었다.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라는 개념은 장애를 지닌 사람의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서 장애를 지닌 여성과 장애를 지닌 남성이 경험하는 세계는 겹치는 부분만이 아니라 전혀 상이한 부분들이 있다. 장애를 지닌 여성은 장애를 지닌 남성들이 경험하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전통적인 가부장제적 사회에서 여성의 가치는 몸 그리고 그 몸의 기능과 연결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남성중심적 사회에서는 육체적 미(성적 어필)가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가치가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들에게 주입된다. 따라서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력이 아니라, ‘육체적 외모와 그 성적 기능’이라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남성은 물론 여성 자신도 내면화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장애를 지닌 여성은 그러한 두 역할, 즉 성적으로 어필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서 출산과 양육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장애를 지닌 남성과 참으로 다른 경험을 하며 살게 된다. 이렇게 가사, 출산, 육아의 담당 능력 여부에 따라서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고정되어 있을 경우, 돌봄노동의 전담자로서의 역할과 출산능력에 대한 기대에 맞지 않는 경우일 때, 장애를 지닌 여성들은 장애를 지닌 남성들의 경험과 다른 이중 삼중의 다층적 차별과 배제를 경험한다. 장애를 지닌 남성과 결혼하는 비장애 여성은 많지만, 거꾸로 비장애 남성이 장애를 지닌 여성과 결혼하여 그 여성에게 돌봄노동의 전담자로 살아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을 아는 사람들은 많다. 그런데 그가 지닌 질병을 넘어서는 학문적 업적을 이루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곁에서 그를 전적으로 돌보는 역할을 했던 배우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1세부터 루게릭병으로 휠체어에서 살아야 했던 중증의 장애를 지닌 스티븐 호킹 곁에는 30여년 동안 돌봄노동의 전담자로 함께 했던 비장애 여성이었던 그의 배우자 제인 호킹이 곁에 있었다. 그녀가 호킹이 필요한 모든 돌봄노동의 전담자 역할을 하였기에 호킹은 글을 쓰고 이론을 발전시키는 일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호킹이 여성이었다면 어떠한 상황이 되었을까.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이 세계에 정신적 또는 육체적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세계 인구의 10%라고 한다. 장애인의 날, 여성의 날, 어린이날 등 이러한 ‘특별한 날’에 호명되는 존재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한 사회에서 ‘주변부적 존재’라는 점이다. ‘장애인의 날’은 그저 매년 한번 치르는 연례행사가 아니라, 여전히 그들이 인간으로서의 평등성이 제도화되지 못했다는 것을 자각하는 성찰과 연대의 날이 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인식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 중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경험하는 차별과 배제는 제도적 차원만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도 심각하다.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장애인’이라는 표지만을 지닐 뿐, 한 ‘인간’임을 보지 않는 사실 자체가 심각한 문제이다. ‘장애인’은 ‘장애를 지닌 인간’일 뿐이다. 즉 개별인 ‘인간’으로서의 독특성과 유일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 따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젠더, 나이, 성적 지향, 경제적 계층 등의 요소들이 어떻게 작동되고 교차하는가를 복합적으로 조명해야 한다.장애차별(ableism)이란 문자적으로 하면 육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 여부에 따른 차별을 의미한다. 그 차별에는 눈에 보이는 제도적 차별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차별도 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보다 ‘열등한 존재’로 간주된다.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은 다양하게 그들을 ‘열등한 존재’로서 고착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장애 차별은 다층적 차별과 편견을 작동시키는 가치관과 제도를 말한다. 인류 역사에서 장애차별의 대표적인 경우는 나치 독일에서이다. 1939년에서 1941년까지 독일에서 약 7만명의 장애인 여성, 남성, 아동들이 학살되었으며, 1945년까지 20만명의 장애인이 더 학살되었다. 장애인에 대한 노골적 학살의 역사인 것이다. 나는 ‘장애인’ (a disabled person)이 아니라, ‘장애를 지닌 사람’(a person with disability)이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쓴다. ‘장애인’이라는 표현은 ‘장애’만이 그 사람을 규정하는 고착된 장치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장애를 지녔다고 해서 모두 동일한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그 사람의 젠더, 계층, 나이, 인종, 종교, 학력, 개성 등 다양한 요소들이 그 사람의 삶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라는 표지로만 한 사람을 고착시킬 때, 문제는 모든 장애인들이 마치 젠더, 계층, 나이, 인종, 학력 등에 상관없이 ‘단일한 집합체’라고 간주하게 되며, 결국 하나의 ‘이슈’로만 보게 한다. ‘페미니즘은 여성도 인간이라는 급진적 주장’이라는 모토는 장애 문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장애인의 날’에 호명되는 장애인은 종종 하나의 ‘이슈’로만 간주된다. 그러나 갖가지 특별행사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개별성을 지닌 ‘인간’임을 인식하는 것, 그래서 인간으로서의 자유로운 이동권, 평등권, 직업권, 교육권, 거주권 등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시혜’나 ‘특별대우’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라는 인식이다. 장애인은 ‘이슈’가 아니라, 인간이다. 분명히 기억하자. 이 명료한 진실을. 글 텍사스 크리스천대,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그림 김혜주 서양화가
  • 차지연, 갑상선암 진단..뮤지컬 ‘안나 카레리나’ 하차[공식]

    차지연, 갑상선암 진단..뮤지컬 ‘안나 카레리나’ 하차[공식]

    뮤지컬 배우 차지연이 갑상선암 진단으로 뮤지컬 ‘안나 카레리나’에서 하차한다. 15일 소속사 씨제스엔터테인먼트는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배우 차지연이 건강상의 이유로 뮤지컬 ‘안나 카레리나’에서 하차하게 됐다”고 밝혔다. 소속사 측은 “지난주 병원 검진을 통해 1차적으로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세부 조직 검사를 진행 중”이라며 “차지연은 투병과 치료에 전념하고 당사 또한 배우가 건강을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차지연 측은 현재 출연 중인 뮤지컬 ‘호프’의 경우, 제작사와 논의해 공연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씨제스엔터테인먼트 공식 입장 전문. 안녕하세요. 씨제스엔터테인먼트입니다. 배우 차지연이 건강상의 이유로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에서 하차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초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건강관리에 힘을 쏟았는데, 지난주 병원 검진을 통해 1차적으로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세부 조직 검사를 진행 중입니다. 당사는 배우 보호 차원에서 차기작을 하차하고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호프´의 경우도 제작사와 원만히 논의하여 공연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향후 차지연은 투병과 치료에 전념하고 당사 또한 배우가 건강을 회복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공연이 임박한 상황에서 하차의 상황을 이해해 주신 제작사 ´마스터 엔터테인먼트´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차지연을 기다려주신 많은 관객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하루빨리 배우가 무대에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여군, 그는 왜 직업군인을 택했나

    [밀리터리 인사이드] 여군, 그는 왜 직업군인을 택했나

    여군 1만명 시대…‘최초’ 수식어도 새롭지 않아경제적 이유보다 국가 헌신·남성 중심 조직 도전일부 남성화 동화 경향…성평등 더욱 강화해야 여군. 그들에게 시련의 기간은 길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까지 ‘여군’은 단지 병과의 하나였습니다. 보병·포병·기갑처럼 하나의 기능으로 분류했던 겁니다. 모든 여군에게 임신이 허용된 것도 1988년부터입니다. 부사관은 결혼과 임신이 모두 금지됐고, 장교는 결혼만 가능했습니다. 여군에게 결혼·임신은 제대를 의미하는 거였죠. 여군은 2002년까지 ‘여군학교’에서 따로 교육을 받았고, 지난해에야 여군 보직제한 규정이 완전히 폐지됐습니다. 그래도 극심한 차별을 감수하고 군문(軍門)에 도전하는 여성들은 적지 않았습니다. 그 수는 해마다 늘었고 2016년 여군 장교와 부사관은 1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이제 여군에 붙는 ‘최초’, ‘1만명 시대’라는 수식어가 더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남성들은 여군이 군 조직에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합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남성을 밀어내고 군을 택한다며 비하하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직장’으로서 군대를 선택하는 게 비난받을 일일까요. 과연 경제적인 이유로 여군이 되려고 하는 걸까요. ●“돈이 이유였다면 군 생활 하지 않았을 것” 마침 조선웅 육군사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지난달 관련 보고서를 냈습니다. ‘여성의 군대 지원 동기에 관한 연구’입니다. 갓 임관한 1년차 소위부터 26년차 중령까지, 11명의 여군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비전투병과는 2명뿐이었고 나머지 10명은 전투병과 소속이었습니다. 이들 중 7명은 경제적 이유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고, 3명은 약간 언급하긴 했지만 지원 이유와는 관련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2명은 “돈이 이유였다면 아마 군 생활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유일하게 경제적 이유로 군에 지원했다고 한 응답자는 “대학 졸업 후 바로 독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습니다. 일부 발언을 옮겨보겠습니다. “나는 1990년대에 잘 나가는 과외선생님이었습니다. 한 달에 150만원씩 벌었습니다. 소위 딱 달고 55만원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행복하게 군 생활을 했습니다. 돈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쓰지 않았습니다.”(26년차 중령) “경제적 안정성이 이유였다면 교사나 공무원이 됐을 텐데 왜 군인이 됐겠습니까. 교대에 합격했지만 진학하지 않았습니다.”(6년차 대위) 반면 ‘국가에 대한 헌신’을 적극적으로 설명한 장교들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제의 침략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도발을 떠올렸습니다. ‘국제사회 기여’를 거론한 여성도 1명 있었습니다. 여성의 애국심을 저평가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미국에서도 두 번의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 9·11 테러 등 전쟁을 겪거나 외부의 공격을 받았을 때 여성의 군대 지원율이 높아졌다고 합니다.한 응답자는 직업을 생각할 때 ‘국가에 대한 기여’를 떠올렸다고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일제시대(일제강점기)에 대한 내용을 많이 접했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국가에 힘이 있어야 치욕적인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지원했습니다.”(12년차 대위) 대다수 여군 장교들은 남성적인 군대에 반발심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느꼈다고 합니다. “군대가 왜 남성의 전유물이냐”고 불만을 가졌다가도, “여성도 군대조직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는 겁니다. 일부는 “외향적인 성격이어서 남성적인 군대에서 잘 적응할 것”이라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군대 분위기가 여성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소수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면 눈에 쉽게 띄어 직업적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내 몫의 역할을 하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계급을 달고 남성이랑 똑같이 동료로서 역할을 하면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그런 생각입니다.”(26년차 중령) “‘군대라는 남성 위주의 특수성이 있는 집단에서 소수로 활약하는 여군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멋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10년차 대위) ‘경제적인 이유로’, 더 노골적으로는 ‘돈 때문에 군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남성화된 군 이미지 개선해야…성평등 문화 필요” 다만 조 교수는 이들을 인터뷰하면서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도 일부 발견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남성 중심의 군대문화를 바탕으로 성장한 ‘남성화된 여군’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조 교수는 “개인이 조직의 문화에 적응할 때 자신의 문화나 정체성을 버리고 조직의 문화만 받아들이는 ‘동화’와 같은 맥락”이라며 “한국에서 남성화된 군대의 이미지가 얼마나 뿌리깊은지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표현했습니다. 이어 “군대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의식이 성평등한 문화 속에서 발휘될 수 있도록 해야지 여군이 남성화돼 또 다른 성차별적 문화를 생산해내는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남성화된 여군과 그렇지 않은 여군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표했습니다. 과거에 입대해 근무기간이 길수록 이런 ‘남성화’ 경향은 짙어졌고 새로 입대하는 여군 장교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마찰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겁니다. 조 교수는 “군에서는 군인의 역할을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홍보해서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며 “비록 작은 일이라도 그 의미를 충분히 알려 동기부여를 하고 잘못된 업무 관행은 과감히 바로잡아 여군의 지원동기가 잘 발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IMF 때문에 어쩔 수 없다니”...‘혈액암 투병’ 허지웅, 마닷 부모에 일침

    “IMF 때문에 어쩔 수 없다니”...‘혈액암 투병’ 허지웅, 마닷 부모에 일침

    혈액암 투병 중인 방송인 허지웅이 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래퍼 마이크로닷 부모를 향해 비판했다. 10일 허지웅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너무한 거 아닌가. ‘IMF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니. IMF 터지자마자 대학교 입학해서 집세·생활미 모두 알아서 해결했다. 그 시절을 청년으로, 가장으로 통과해 낸 수많은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버텼는데 그런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놓고 이제 와서 뭐라는 건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체 어떤 삶을 살고 나잇값에 관한 아무런 자의식이 없으면 저런 변명을 할 수 있는 건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라며 ‘마닷부모’라는 해시태그를 덧붙였다. 앞서 마이크로닷 부모인 신모씨 부부는 지난 8일 오후 7시30분쯤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대한항공 KE130편을 타고 인천 국제공항을 통해 자진 귀국했다. 이날 신씨 부부는 취재진에 “당시 IMF(외환위기)가 터져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신씨 부부는 20년 전 충북 제천에서 친척과 이웃 등에 거액을 빌린 뒤 갚지 않고 뉴질랜드로 도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해당 의혹은 지난해 11월 인터켓 커뮤니티를 통해 제기됐다. 논란이 커지자 제천경찰서는 인터폴에 신 씨 부부에 대한 적색수배를 신청했다. 인터폴은 경찰 요청을 받아들여 지난해 12월12일 신 씨 부부에 대한 적색수배를 발부했다. 경찰은 인천 국제공항에서 신 씨 부부의 신병을 확보한 후 8일 오후 10시30분쯤 제천경찰서로 압송했다. 경찰은 9일부터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한편, 허지웅은 지난해 12월 혈액암의 일종인 악성림프종 투병 사실을 고백한 이후 출연 중이던 방송에서 모두 하차하고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사진=뉴스1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박준규 누나, 세상 떠나기 전 마지막 선물

    박준규 누나, 세상 떠나기 전 마지막 선물

    배우 박준규의 누나 고(故)박선빈 씨의 선물이 화제다. 최근 박준규는 MBC 새 드라마 ‘검법남녀 시즌2’에서 감초 형사 ‘강동식’역을 맡아 촬영 중이다. 그런 박준규의 드라마 촬영 현장에 특별한 커피차 선물이 도착해 스태프들에게 가슴 따뜻한 감동을 안겼다. 얼마 전 백혈병 투병 끝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박준규의 누나 박선빈 씨의 이름으로 커피차가 도착한 것. 커피차에는 ‘우리 준규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없는 곳에서 앞으로도 우리 준규 많이 사랑하고 아껴주세요’라는 내용이 적힌 현수막과 함께 동생을 생각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함께 담겨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평소 누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컸던 박준규는 이를 보고 “떠나는 누나의 마지막 선물에 큰 힘을 얻었다”며 “하늘에 있는 누나가 아픔 없는 곳에서 잘 지내기를 기도한다”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이번 커피차는 박선빈 씨의 남편 김혁 씨가 평소 박준규를 생각했던 누나의 바람을 담아 대신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박준규가 출연하게 된 MBC 새 드라마 ‘검법남녀 시즌2’는 오는 6월 방영 예정이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신의 저주다”…호주 섬 원주민들 덮친 미스터리한 질병

    “신의 저주다”…호주 섬 원주민들 덮친 미스터리한 질병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섬마을 원주민들이 집단으로 미스터리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벌써 많은 주민이 목숨을 잃었고 5분의 1가량이 투병 중이다. 데일리메일은 6일(현지시간) 오스트레일리아 노던주의 외딴섬 그루트 아일런드에 희소병이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루트아이런드는 네덜란드어로 ‘큰 섬’이라는 뜻으로, 1623년 네덜란드 선박이 발견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최고점 180m의 낮고 평평한 이 섬은 바위가 많아 개발이 어려워 불모지 상태에 있다. 데일리메일은 이 섬의 원주민들이 같은 질병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 100명 이상이 팔다리가 굳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 전신장애를 겪고 있으며 주민 654명 모두가 위험에 노출돼 있다. 70대 중반의 여성 가양와 랄라라 역시 오래 전부터 이 같은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가양와의 형제 자매 6명 모두 40대부터 증상이 시작됐으며 아버지도 같은 병을 앓았다. 그녀는 “모두 우리가 저주 받았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그녀의 조카들도 같은 진단을 받았으며 한 명은 지난 2014년 이 병으로 사망했다.이 지역 주민들 사이에 퍼진이 미스터리한 질병의 정체는 ‘마카도 조셉 병’(MJD, Machado-Joseph disease)이라는 희소 질환이다. 마카도 조셉 병은 매우 드문 유전성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영구적인 신체 장애로 발전한다.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생성된 단백질이 소뇌의 신경세포를 죽여 근육약화와 강직, 통제력 저하 등을 일으킨다. 부모 중 한 명만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도 유전된다. 이 병은 포르투갈 아소로스 지역의 집안에서 유래됐으며 지금도 그 후손들은 높은 유병률을 보이고 있다. 합병증을 동반하며 심할 경우 평균 수명이 35년 정도로 매우 짧다. 증세가 심하지 않은 경우 정상 수명을 다하기도 한다. 이 병으로 인한 증세를 약화시키는 약물 치료는 가능하지만 완치제는 없다. 전문가들은 이 질병이 세대를 거치면서 더 이른 나이에 발현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리비 매시 MJD재단 연구교육국장은 “마카도 조셉 병을 가진 누군가 아이를 가질 때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환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이 병의 치료법을 찾기 위해 얼룩말을 이용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으며 병의 원인으로 여겨지는 독성 단백질을 제거하는 데 효과가 있는 여러 약물을 테스트하고 있다. 매시 국장은 그러나 아직까지 완치제가 없는 병인 만큼 현재로서는 대를 잇는 것에 대한 심각한 고민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배정남, 폐암 투병 중 별세한 이일재 추모 “너무나도 멋진 선배님..”

    배정남, 폐암 투병 중 별세한 이일재 추모 “너무나도 멋진 선배님..”

    배우 배정남이 폐암 투병 중 별세한 이일재를 추모했다. 5일 배정남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너무나도 멋지시고 인자하신 선배님 편히 쉬세요...”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한 장 게재했다. 사진은 故 이일재와 배정남이 함께 찍은 것으로 이일재는 배정남의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올리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앞서 이날 배정남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향년 59세.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인 이일재는 1981년 연극배우로 데뷔했고, 1990년에는 ‘장군의 아들’을 통해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후 영화 ‘해적’, ‘의혈’, ‘깡패 법칙’, ‘건달 본색’ 등에 출연했으며 드라마 ‘야인시대’, ‘각시탈’, ‘불멸의 이순신’, ‘장녹수’, ‘연개소문’, ‘대왕세종’ 등에 출연했다. 2000년 14살 연하 아내와 결혼해 슬하에 두 딸이 있다. 이일재는 지난해 12월 방송된 tvN ‘둥지탈출3’에 출연해 폐암 투병으로 연기 활동을 중단했음을 고백했다. 당시 이일재는 “아이들이 컸으면 상관이 없는데 이제 중·고등학생이니까 부모로서의 책임감을 다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많이 힘들었다”면서 “‘이런 병이 나에게도 오는구나’싶었다. 제가 결혼을 늦게 해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내가 잘못됐을 때 누가 책임져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무조건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열심히 살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 바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7일 예정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종합] 폐암 투병 이일재 별세..4개월 전 모습 ‘안타까워’

    [종합] 폐암 투병 이일재 별세..4개월 전 모습 ‘안타까워’

    폐암으로 투병 중이던 배우 이일재가 5일 별세했다. 향년 59세. 5일 이일재 소속사 하얀돌이앤앰 측은 “이일재가 오늘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앞서 이일재는 지난해 12월 방송된 tvN ‘둥지탈출3’에 출연해 폐암 투병으로 연기 활동을 중단했음을 고백했다. 당시 이일재는 “아이들이 컸으면 상관이 없는데 이제 중·고등학생이니까 부모로서의 책임감을 다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많이 힘들었다”면서 “‘이런 병이 나에게도 오는구나’싶었다. 제가 결혼을 늦게 해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내가 잘못됐을 때 누가 책임져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무조건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열심히 살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일재는 2000년 14살 연하 아내와 결혼해 슬하에 두 딸이 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인 이일재는 1981년 연극배우로 데뷔했고, 1990년에는 ‘장군의 아들’을 통해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후 영화 ‘해적’, ‘의혈’, ‘깡패 법칙’, ‘건달 본색’ 등에 출연했으며 드라마 ‘야인시대’, ‘각시탈’, ‘불멸의 이순신’, ‘장녹수’, ‘연개소문’, ‘대왕세종’ 등에 출연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7일 예정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이일재, 폐암으로 별세 “다시 일하고 싶다” 끝까지 타올랐던 열정

    이일재, 폐암으로 별세 “다시 일하고 싶다” 끝까지 타올랐던 열정

    폐암으로 투병 중이던 배우 이일재가 5일 사망했다. 향년 59세. 5일 이일재 소속사 하얀돌이앤앰 관계자는 “이일재가 오늘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7일 예정이다. 이일재는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지난 1981년 연극배우로 데뷔했고, 1990년에는 ‘장군의 아들’을 통해 영화에도 진출했다. 이후 영화 ‘해적’, ‘의혈’, ‘깡패 법칙’, ‘건달 본색’ 등에 출연했으며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과 ‘각시탈’에도 출연했다. 이일재는 지난해 tvN ‘둥지탈출3’에 출연해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사실을 밝혔다. 당시 방송에서 그는 “얼굴이 좀 괜찮아지면 다시 일할 생각이다”며 연기에 대한 열정과 회복 의지를 불태웠지만, 끝내 세상을 떠났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월드피플+] 세상 떠난 엄마에 편지 쓴 꼬마 딸과 천국에서 온 답장

    [월드피플+] 세상 떠난 엄마에 편지 쓴 꼬마 딸과 천국에서 온 답장

    엄마를 잃은 소녀에게 천국에서 편지 한통이 날아왔다. 스코틀랜드 이스트에어셔 킬마녹에 사는 꼬마숙녀 엘라 레논(4)은 올해 처음으로 엄마 없이 ‘어머니의 날’을 보냈다. 4년간 뇌종양으로 투병하던 엘라의 엄마 제니퍼 레논은 어린 엘라를 두고 지난해 12월 8일 세상을 떠났다. 엘라는 ‘어머니의 날’을 맞아 엄마를 그리워하며 천국으로 축하 카드를 띄웠다. 영국에는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이 따로 있는데 보통 사순절 4번째 일요일이 어머니의 날이다. 사순절이 해마다 바뀌는 것처럼 어머니의 날도 매해 달라지는데 올해는 3월 31일이 어머니의 날이었다.엘라는 엄마 제니퍼가 세상을 떠난 뒤 맞은 첫 '어머니 날'을 기리며 가족을 그린 카드에 '천국에 계신 엄마께, 어머니의 날을 축하하며. 사랑해요 엄마. 엘라가'라는 메시지를 담아 우체통에 넣었다. 그리고 이틀 뒤인 지난 2일(현지시간) 엄마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 엄마가 보낸 편지에는 '사랑스러운 내 딸 엘라에게. 아주 특별한 어머니날 카드 잘 받아보았다. 너는 내게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딸이야. 영리하고 특별한 소녀로 자라고 있는 네가 엄마는 무척 자랑스럽구나. 비록 엄마는 천국에 있지만 매일 널 지켜보고 있단다. 사랑과 포옹과 키스를 담아 보낸다. 천국 구름 속 천사게이트 1번지에서 엄마가'라고 적혀 있었다.생각지도 못한 엄마의 답장에 엘라는 뛸듯이 기뻐했다. 엘라의 이모이자 제니퍼의 동생인 린다 로스는 우편회사 ‘로얄 메일’에서 날아온 익명의 손편지에 감동을 받아 이를 SNS에 공유해 폭발적 관심을 받았다. 린다는 “엘라의 카드를 흘려보낼 수도 있었지만 누군가 이렇게 천국에 있는 언니 대신 엘라에게 답장을 써주었다”면서 “언니가 죽은 후 엘라가 이렇게 환한 미소를 짓는 걸 처음봤다”며 고마워했다. 엘라의 아빠 딘 레논 역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을 가진 익명의 우편회사 직원에게 이렇게라도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감동적인 엘라의 사연이 SNS에 공유되자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편지”, “눈물이 난다”는 반응을 보이며 익명의 발신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한편, 엄마를 잃고 상심에 빠졌을 엘라에게 위로를 보내고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씨줄날줄] 온라인 채용설명회/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온라인 채용설명회/박현갑 논설위원

    대학 졸업은 하지만 취직난으로 졸업을 유예하는 취업준비생들이 적지 않다. 여기저기 취업의 문을 두드리나 원하는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기업마다 회사 홈페이지에 채용 절차, 보수와 복지 수준 등을 안내하지만, 취준생의 이런저런 궁금증을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하다. 대학 캠퍼스를 찾아가서 하는 채용설명회도 마찬가지다. 수요자 맞춤형 채용설명회 성격이지만, 제한된 공간과 질의응답 시간 등 시공간적 제약으로 취준생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다. 지방에 있는 학생들이라면 고충은 더하다. 수도권에 비해 채용설명회 등 취업정보를 접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적다. 이런 점에서 몇 년 전부터 붐이 인 온라인 채용설명회는 공평하다. 서울에 있든, 지방에 있든 물리적 이동 없이 집안에서 평상복 차림으로 기업의 채용정보를 들을 수 있다. 온라인 채용설명회는 오프라인 설명회에서 충족시키기 어려운 시시콜콜한 궁금증도 해소할 수 있다. 지난해 지원했다가 탈락했는데 재지원 불이익은 없는지, 학점이 낮고 나이는 많고 전공도 직무와 관련 없는데 지원해도 괜찮은지, 특정 전공우대라고 소개한 분야에 일반 전공자가 지원할 경우 서류전형 통과도 되지 않는지, 구체적인 자소서 작성 요령 등 취준생 입장에서는 궁금한 것들을 실시간 채팅창을 이용해 물어볼 수 있다. 기업에 온라인 채용설명회는 우수 인재를 선발하는 효과적인 방법인 동시에 또다른 기업 홍보 수단이다. 오프라인 설명회가 일회성이라면 온라인 설명회는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어 지속적인 홍보채널이다. 이 때문에 사전 질문지 확인과 방송 연습 등 치밀한 사전준비는 기본이다. 이런 준비는 초기화면 구성에서부터 드러난다. 3일로 예정된 라이브 채용설명회를 안내하는 한화의 유튜브 초기화면은 전투비행기에 낙하산에다 총을 든 전투병들까지 등장해 눈길을 끈다. 화약ㆍ방산 부문의 모든 것을 주제로 1시간 30분 동안 카카오TV 라이브 플랫폼을 활용해 온라인 시청자에게 채용설명을 한다. 한화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채용 당시 첫 온라인 라이브 채용설명회를 했는데 당시 오프라인 설명회보다 20배 많은 지원자들이 참여하는 등 호응도가 좋아 올해도 온라인 채용설명회를 마련했다”고 소개했다. CJ그룹은 2015년 상반기 실시간 온라인 화상채팅 채용설명회로 업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SK텔레콤은 지난달에 인턴사원 채용 지원자를 위한 채용설명회 T커리어 라이브를 했다. 기업과 취준생의 온라인 만남이 기업과 취준생 모두에게 만족스런 결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agleduo@seoul.co.kr
  • “윤지오 호소에 용기… 이 싸움 걱정 안 한다”

    “윤지오 호소에 용기… 이 싸움 걱정 안 한다”

    “장자연씨 사망 사건의 목격자로서 공개 고발에 나선 배우 윤지오씨 등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 6년 전 정재계와 방송계 고위급 인사들에게 성희롱·모욕을 당했다고 주장한 배우 이매리(47)씨가 폭로에 나선 배경을 밝혔다. 카타르에 머물고 있는 이씨는 지난 27일 밤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최근 윤지오씨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지만, 동참해달라’고 한 호소를 듣고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피해 사실 고발에) 나서게 됐다”면서 “그간 윤지오나 반민정씨의 싸움을 지켜보며 참 힘들었겠다 생각했다”고 전했다. 반씨는 영화 촬영 중 상대역인 남성 배우에게 성추행당한 사실을 폭로했다. 이씨는 “2013년 서울의 한 대학 언론홍보대학원 최고위 과정 35기 동기와의 술자리에서 정재계 관계자들이 술시중을 들게 했고, 그중 한 명은 당시 투병 중이던 아버지에 대해 ‘너희 아빠 왜 안 죽냐’며 모욕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언론사 간부였던 한 남성은 차에서 자신을 성추행했다고도 말했다. 이씨는 싸움을 멈출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앞서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해자 실명을 적은 고발글을 올렸다가 지웠다. 이에 대해 이씨는 “조심하려고 지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남을 짓밟고 잘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더 이상 가만히 바보처럼 있지 않겠다”며 “이 싸움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했다. 그는 “오랜 세월 가슴에 맺힌 시간을 회수할 것”이라며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다”고 했다. 오는 7월 아버지 기일 전에 모든 당사자들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다는 입장이다. 이씨가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한 현직 고위공무원 A씨는 법적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씨는 오는 4월 5~10일 사이 귀국해 시민단체 정의연대와 함께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다. 정의연대 이민석 변호사는 “이씨가 수년 전부터 일관성 있게 진술해 왔고, 내용도 구체적이어서 신빙성이 있다”며 “기자회견에서 소상하게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은 이씨가 지목한 정계, 학계, 방송계 관계자들의 입장을 듣고자 수차례 전화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암 걸린 딸 질식시켜 죽인 벨기에 의사, 집행유예 받은 사연

    암 걸린 딸 질식시켜 죽인 벨기에 의사, 집행유예 받은 사연

    암에 걸린 딸을 질식시켜 죽게 해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온 한 유명 여의사가 실형을 면해 세상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 21일(이하 현지시간) 벨기에 루뱅 고등법원에서 신경외과 전문의 메나스 디드가르(51)가 14세 딸 엘린을 살해한 혐의가 인정돼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고 예트라스트스테늬우스(HLN) 등 현지언론이 보도했다. 이에 따라 디드가르는 이튿날인 22일 하셀트 여자교도소에서 석방됐다. 디드가르는 사람 목숨을 존중해야 하는 의사임에도 친딸의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를 저질러 재판에 넘겨졌다. 이에 검찰 측은 그녀에게 징역 26년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페터르 하르토흐 판사는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고 판결하기가 그 어느 때보다 까다로운 재판”이라고 말하며 디드가르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디드가르의 딸 에린은 7세 때 갑상샘암을 진단받았다. 디드가르는 지난 7년 동안 딸의 투병 생활을 곁에서 지켰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딸이 죽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디드가르에 따르면, 에린은 그녀에게 “왜, 우리는 죽기를 기다려야 해? 난 지금 당장 죽고 싶어”면서 “앞으로 결혼도 하기 싫고 아이도 갖기 싫어”라고 말했다. 어쩌면 딸의 이런 말이 디드가르의 마음 마저 꺾어버린 모양이다. 사건은 지난 2017년 7월 26일 일어났다. 디드가르는 근무처인 루뱅대학병원에서 약을 몰래 빼내 집으로 가져와 딸의 의식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이어 딸의 입과 코 위에 비닐봉지를 덮어 질식시켰다. 그 후 디드가르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고 차를 타고 자택을 떠났다. 곧 친구가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1시간 뒤 길가에서 타이어가 펑크 난 차에 타고 있던 그녀를 경찰이 체포할 수 있었다. 당시 그녀는 경찰 조사에서 “죽기 위해 다리 쪽으로 차를 몰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디드가르는 법정에서 “당시 난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기에 환자에게 자주 처방하던 약을 가지고 나왔다. 당시 난 딸과 함께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이렇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에린의 아버지이자 메나스 디드가르의 전 남편인 스테번 판스는 딸은 나이가 들 때마다 자신의 암에 맞설 수 있게 됐다고 주장한다. 이번 재판에서 메나스 디드가르의 변호사인 제프 베르마선은 “이 사건은 어머니가 딸을 너무나 사랑해서 벌인 일로 그것이 그녀의 유일한 죄이다. 그녀는 자기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잘 알고 있다“고 호소하며 집행유예를 요구했다. 그 결과 그녀에게 집행유예 5년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그녀는 이 외에도 정신적인 지원을 받도록 선고받았다. 디드가르는 이번 판결 뒤 “내게 다시 한번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제부터는 확실히 나아가겠다”면서 “만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이런 일을 절대로 벌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난 살인자 따위가 되고 싶지 않았다”면서 “에린의 아버지인 스테번이 얼마나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는 물론 그런 그에게서 내가 그의 가장 사랑하는 딸을 빼앗은 상대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사진=HLN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월드피플+] 눈으로 ‘희망일기’ 쓴 루게릭병 거부, 6명에 생명주고 떠나다

    [월드피플+] 눈으로 ‘희망일기’ 쓴 루게릭병 거부, 6명에 생명주고 떠나다

    최근 중국에서 루게릭병을 앓던 한 백만장자가 장기 기증을 통해 6명의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났다. 무엇보다 사지가 마비된 가운데 간신히 눈동자와 눈꺼풀만 움직여 써 내려간 ‘투병일기’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던 ‘철인’의 숭고한 죽음이었다. 신안만보, 안휘망 등 중국 언론은 지난 21일 허페이(合肥)에서 생을 마감한 우젠핑(武建平)의 사연을 전했다. 17년 전 우씨는 아내와 함께 학교 앞 노점상에서 아침 식사를 팔며 돈을 모았다. 이후 금속섬유 공장에 취업해 ‘세일즈 왕’으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하지만 창업의 꿈을 안고 친구와 함께 인테리어 사업에 뛰어들었다. 초창기에는 숱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성실과 신뢰를 바탕으로 사업은 위기를 넘긴 뒤 승승장구했고, 그는 거부가 되었다. 하지만 2012년 위기가 왔다. 한 부동산 건설 책임자가 공사비 6000만 위안(101억원)을 갖고 사라졌다. 사업 위기로 그는 불면증에 걸렸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왼팔이 들어 올려지지 않았고, 신체 여기저기에 이상 신호가 왔다. 2013년 말 그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서서히 근육이 굳어져 사지가 마비되는 병으로 남은 삶의 기간이 3~5년에 불과하다고 했다. 인생의 최고 절정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바닥까지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병세는 점차 악화하여 전신 마비에 호흡조차 기계에 의존해야 했다.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신체 부위는 ‘눈’이었다. 그는 재산을 팔아 사업을 정리하고, 눈꺼풀과 눈동자의 움직임으로 자판을 쓸 수 있는 기계를 마련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나의 글은 비참함을 알리려는 것이 아니라, 환자들과 좌절을 겪는 사람들을 응원하기 위해서”라고 전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그의 글은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응원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인생이 어찌 다 뜻대로 되겠는가, 절반의 족함만을 구할 뿐이다(人生哪能多如意,万事只求半称心)’ 이 글귀는 그의 삶을 가장 잘 대변한다고 전했다. 80년대 말 대만의 한 절에서 처음으로 이 글귀를 마주했고, 20년 뒤 마흔의 나이에 다시 이 글귀를 다시 마주할 때도 그저 웃고 넘어갔다. 하지만 지금 와서 이 글귀는 “가장 사실적인 인생의 진실”을 전한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의식을 잃은 그는 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21일 뇌사 판정을 받았다. 그의 아내는 “그의 남은 유일한 소원은 장기 기증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 간, 신장, 각막, 췌장을 6명에게 ‘생명의 선물’로 전하고 하늘로 떠났다. “생명은 사랑의 방식으로 이어진다. ‘종착점’ 없이 ‘시작점’만이 있을 뿐”이라던 생전 그의 글에 수많은 누리꾼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이매리 “3000만원 회유…윤지오·반민정보고 용기나”

    이매리 “3000만원 회유…윤지오·반민정보고 용기나”

    “남 짓밟은 사람에 바보처럼 있지 않을 것”“싸움 걱정 않는다”…멈출 뜻없음 내비쳐이씨, 4월 초 귀국해 폭로 기자회견 예고“장자연 사건의 목격자로서 공개 고발에 나선 배우 윤지오씨를 보고 용기 얻었다.” 6년 전 정·재계와 방송계 고위급 인사들에게 성희롱과 모욕을 당했다고 최근 주장한 배우 이매리(47)씨가 폭로에 나선 배경을 밝혔다. 현재 카타르에 머무는 이씨는 27일 밤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최근 윤지오씨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지만 동참해달라’고 호소한 것을 듣고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해 (피해 사실 고발에) 나서게 됐다”면서 “그간 윤지오나 반민정씨의 싸움을 지켜보며 ‘참 힘들었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반씨는 영화 촬영 중 상대역인 남성 배우에게 성추행당한 사실을 폭로한 여배우다. 이씨는 “2013년 서울의 한 대학 언론홍보대학원 최고위 과정 35기 동기와의 술자리에서 정재계 관계자들이 술시중을 들게 했고, 그 중 한명은 당시 투병 중이던 아버지에 대해 ‘너네 아빠 왜 안 죽냐’며 모욕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언론사 간부였던 한 남성은 차에서 자신을 성추행했다고도 말했다. 이씨는 “지난해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 ‘풍문으로 들었쇼’에서 이런 내용을 언급하자 당사자 중 한 명이 찾아와 치료비 명목으로 3000만원을 주겠다며 더는 발설하지 말라고 했다”면서 “사과도 아니고, 그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씨는 이번 싸움을 멈출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앞서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해자 실명 등을 적은 고발성 글을 올렸다가 지웠다. 이에 대해 이씨는 “실명 언급은 조심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남을 짓밟고 잘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더 이상 가만히 바보처럼 있지 않겠다”며 “이 싸움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했다. 그는 “오랜 세월 가슴에 맺힌 그 시간을 회수할 것”이라며 “그간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다”고 했다. 오는 7월 아버지 기일 전에 모든 당사자들의 사과를 받고 싶다는 입장이다. 이씨가 술시중 가해자 지목한 현직 고위공무원 A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적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씨도 오는 4월 5~10일 사이 귀국해 시민단체 정의연대와 함께 기자회견할 예정이다. 정의연대 이민석 변호사는 “이씨가 수년 전부터 동일한 진술을 일관성있게 계속해 왔고, 내용이 구체적인 것을 봤을 때 신빙성이 있다”며 “오는 기자회견에서 소상하게 내용을 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신문은 이씨가 지목한 정계, 학계, 방송계 관계자들의 입장을 듣고자 수차례 전화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연기의 신’ 신은경, 텐프로까지 찾아간 이유?

    ‘연기의 신’ 신은경, 텐프로까지 찾아간 이유?

    배우 신은경의 연기 열정이 화제다. 신은경은 최근 SBS 드라마 ‘황후의 품격’에서 태후 강씨 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방송 내내 시청자들은 신은경의 연기력을 극찬했다. 신은경의 연기 열정은 유명하다. 실제로 신은경은 연기를 위해 텐프로에 찾아가 화류계 여성들을 관찰할 만큼 열정적이었다. 당시 신은경은 영화 ‘설계’에서 평범한 대학생에서 텐프로 최고 에이스로, 이어 사채업계의 큰손이 되는 캐릭터를 맡았다. 이와 신은경은 “사실 그들을 만나기 전엔 굉장히 특별하고 뭔가 별난 점이 있을 거란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말 그냥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술 마시는 자리 같은 느낌이더라”라고 말했다. 신은경은 “아마도 내가 직접 보지 않았다면 오버를 해서 캐릭터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영화 리얼리티가 더 떨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신은경은 “길을 가다 마주쳐도 외모가 좀 더 빼어난 사람일 뿐, 딱히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평범한 여성들이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신은경은 과거 방송에서 뇌수종 투병 중인 아들 이야기를 해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마이웨이’ 윤문식 폐암 투병, 18세 연하 아내 “문화재 부식되는 느낌”

    ‘마이웨이’ 윤문식 폐암 투병, 18세 연하 아내 “문화재 부식되는 느낌”

    배우 윤문식이 ‘마이웨이’에서 사별과 재혼, 폐암 투병에 대해 털어놨다. 윤문식은 27일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재혼 10년차, 18살 연하 아내 신난희 씨와 함께하는 일상을 공개했다. 윤문식의 전 아내는 약 11년 전 세상을 떠났다. 윤문식은 “당뇨합병증이었다. 발부터 썩어들어가는. 그래서 대소변도 다 받아내야 한다. 15년 동안 내가 병원을 전전하는데 30년 중의 반은 그렇게 아팠다. 30년을 같이 살았더라. 계산해보니까”라고 회상했다. 윤문식은 “배고프고 힘들 때 내가 수유리에서 마포구까지 차비가 없어 걸어간 적이 몇 번인데. 딸은 외가에서 키웠고 아들은 내가 업도 다니며 공연했다. 연습하다 나오면 애가 포대기 밖으로 나온다. 머리는 뒤로 늘어져 있고 그걸 업고 장위동까지 버스 타고 가는 거다. 산 게 다행이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하다. 우리 아들이. 그렇게 해서 키웠다. 둘 다 어떻게 보면 결손 가정이다. 사고치는 것도 없이 잘 커줬다”고 말했다. 이어 아내가 세상을 떠난 시기에 대해 “딸 결혼식 날짜 잡아놓고 한 달 전에 연락이 왔더라. 돌아가셨다고”라며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 간 게 내 탓이 아닌가. 딴따라가 아닌 직장이 있었으면 살지 않았을까 죄의식도 많이 느끼고 그렇다”고 털어놨다. 윤문식은 첫 번째 아내와 사별한 후 1년 만에 재혼했다. 18살 연하 아내와 1년 만에 재혼한다는 소식에 주변 시선들은 결코 달갑지 않았다고. 성인이 된 윤문식 자식들에게도 새 엄마는 부르기 낯설고 어려웠던 이름이었다. 재혼한 아내는 결혼 전 윤문식의 팬이었다. 아내는 국회도서관에 소장된 윤문식 사진 등 직접 스크랩한 자료들을 보여줬다. 무려 33년 전 신문 기사도 있었다. 윤문식은 “사람들은 왕왕 그럴 거다. 저 사람 미쳤나. 왜 나이도 젊은데 쟤가 뭐 볼 게 있어 갔나. 뭐 쓸 만한 게 어디 있나 싶지만 이 사람 눈에는 보석같이 보이는 구석이 있었던 거다”고 말했다. 아내는 “가끔 눈에 보였는데 저 사람이 내 짝이라는 생각은 0.0001%도 가져본 적 없다. 어느날 어깨도 축 늘어져 있고 술은 더 취해 다니고.. 사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그런 모습이 급격히 눈에 띄었다. 문화재가 부식돼 가는 느낌. 망가져가는 게 보이더라. 아까웠다. 복원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결혼한 이유를 밝혔다. 이에 윤문식은 “이런 말을 하는데 진짜 고맙다. 우리 친척도, 동료들도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없었다. 날 값비싸게 생각해주는 것 같고 삶의 목적도 생기는 것 같고. 그런 사람이 어딨나”라고 고마워했다. 윤문식은 1년 전 오진으로 폐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이후 재검을 통해 1기 판정을 받고 오른쪽 폐 40% 가량을 떼어내는 수술을 마쳤다. 그는 “누구나 다 죽기는 죽는 건데 뭐 그렇지. 그걸 말로 어떻게 표현하겠냐. 좀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었다”며 “아내 손 잡고 ‘자네, 미안하네’ 그 한마디가 나오더라. 나한테 시집와 일찍 혼자 된다는 게 좀 미안했다. 이젠 나 혼자의 몸이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윤문식은 최근 폐암 수술 후 전과 다름없이 활동 중이다. 꾸준한 운동을 통해 건강을 관리하며 출연하던 생방송과 마당놀이에 출연하고 있다. 그는 “난 광대다. 나도 솔직히 거울이 있으니까 내 얼굴이 어떻게 생긴지 안다. 순애보 연기를 하면 막 근질근질하더라. 난 마당놀이랑 어울린다”고 전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한·벨기에 정상회담 협력 방안 논의

    한·벨기에 정상회담 협력 방안 논의

    文대통령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동참을” 필리프 국왕 “한국 정부 평화 정착 노력 지지”문재인 대통령은 26일 한국을 국빈 방문한 필리프 벨기에 국왕과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 우호 증진 및 실질협력 강화 방안, 한반도 정세를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필리프 국왕의 방한은 벨기에 국왕으로서는 27년 만이며, 문 대통령 취임 후 유럽왕실 인사의 첫 방한이다. 필리프 국왕은 왕세자 시절 다섯 차례나 방한할 만큼 ‘친한’ 인사로 알려져 있다. ●왕세자 시절에 5차례 방한 ‘친한’ 인사 문 대통령은 확대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벨기에는 다른 언어와 문화에도 불구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높은 사회적 통합을 이루고 나아가 유럽연합(EU) 통합까지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많은 나라”라며 “‘통합이 힘이다’는 벨기에의 국가 모토는 평화 통일을 바라는 우리 국민들에게도 참으로 공감이 가는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지난달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비롯해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환경에 대해 설명한 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인 벨기에가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지지를 보내준 것에 감사를 표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여정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필리프 국왕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이후에도 변함없이 지지하고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필리프 국왕은 “문 대통령의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역할에 대해서 감사와 치하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필리프 국왕의 국빈 방문에는 공식대표단을 비롯해 기업 최고경영자(CEO) 90명과 주요 대학 총장 등 총 250여명의 대규모 수행단이 동행했다. ●국왕 6·25전쟁 참전 벨기에 용사 추모식 참석 앞서 필리프 국왕 내외는 이날 오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6·25전쟁 참전 벨기에 용사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식에 참석했다. 추모식에는 레이몽드 베르 벨기에 한국전 참전협회장을 비롯한 참전용사 등 50여명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 등 우리 군 관계자들이 함께 했다. 벨기에는 1951년 1월 보병 1개 대대 규모의 전투병력을 파병했다. 106명이 희생됐고, 9명의 시신은 수습되지 못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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