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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동산 8·31기조 흔들리면 더 큰 혼란”

    “부동산 8·31기조 흔들리면 더 큰 혼란”

    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1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감하다’는 표현을 써가면서도 정부정책을 여러 차례 비판했다. 분양가 상한제 등의 정책에는 적지 않은 경고음을 울렸으며 잠재성장력 저하 가능성에는 기초체력의 문제라고 위기감을 드러냈다. 국책연구기관장의 발언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대목이 적지 않았다. 국민의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경륜과 학자로서의 예리함이 함께 묻어났다. 다음은 서울 홍릉 KDI 원장실에서 만난 현 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부동산 정책을 펴는데 첫번째로 고려할 사항이 있다면. -20년간 우량주식을 보유할 때와 같은 기간 땅이나 아파트를 사뒀을 때를 비교하면 분명히 금융자산의 수익률이 낫다. 그런데도 한국 사람은 돈이 생기면 10명 중 8명이 부동산에 투자한다.‘부동산 불패’ 신화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8·31’이나 ‘3·30’ 대책은 방향이 맞다고 본다. 이같은 기조가 흔들리거나 180도 전환될 것이라는 시그널을 시장에 주면 더 큰 혼란이 예상된다. 다만 경제원리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공급은 좀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 ▶분양가 상한제의 확대 적용은. -민감한 문제이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필요하지만 시장 메커니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분양가를 제한하면 주변의 다른 주택 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서는 안 된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주택과 기존 주택의 가격에 차이가 나면 누가 주택을 공급하든지 시장에선 혼란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특히 질적으로 똑같은 주택을 한쪽에선 싸게 판다면 시장의 가격결정 기능에 왜곡이 생길 수 있다. ▶일각에선 부동산 세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본 원칙이나 방향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기술적이고 세부적인 문제는 전체 방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필요한 적응’을 하는 게 필요하다. 모순될지 모르지만 보완·개선하자는 의미다. 보유세는 3∼4년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잘못한 것도 없고 내 집만 갖고 있는데 왜 세금을 더 내야 하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보유세 강화는 세계적인 추세이다. 따라서 보유세가 부담이 돼 집을 내놓으려 하는데 거래세와 맞물려 꼼짝달싹하지 못한다면 보완할 필요가 있다. 양도세를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거래와 관련된 것은 개선하자는 차원이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다고 보는가. -금융쪽에 있는 사람들은 유동성이 많다는 느낌을 갖고 있으며 당국이 신경을 써야 한다는 데에는 인식이 같다. 하지만 당국이 대출한도 규제 등 여러 방안을 내놓은 것에는 생각이 갈린다. 가장 쉬운 것은 금리로 유동성을 조절하는 것이다. 물론 경기에 대한 부담이 있고 환율이 문제되니까 지급준비율도 올렸지만 성숙된 경제구조라면 쉽게 결정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꾀’를 많이 냈는데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의 인식이 다르기 때문인가. -경기조절과 관련된 거시정책은 신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당국자간 인식을 같이하는 게 중요하다. 재경부뿐 아니라 경제부처와 한은, 국회가 모두 당사자이다. 사이클 측면에서 경기가 바닥이라든가, 시중에 유동성이 많다든가 하는 문제에는 공감대가 형성된 뒤에 정책이 나와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지금은 당사자간 엇박자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직 공유가 안됐다면 그것도 좋은 시그널로 볼 수 있다. 지금의 정책기조를 급진적으로 바꿔야 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환율은 민감하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 특히 원·엔 환율이 오버슈팅된 감이 있다. 달러화와 달리 엔화는 일본 경제가 괜찮아 앞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내년에 일본 금리가 인상될 것으로 본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환차익과 저금리 때문에 엔화 차입을 늘리던 분위기는 바뀔 수 있다. 원·엔 환율은 상황이 약간만 틀어져도 확 달라진다. ▶우리경제의 성장동력이 꺼져간다는 지적이 많다. -두가지 축으로 인식해야 한다. 하나는 국내에서의 제도정비이고 다른 하나는 국제시장에 얼마나 접근했느냐는 점이다. 적어도 국제적인 측면에서의 해답은 99% 확실하다. 경쟁을 확산시키고 외국인 투자를 더 들어오게 하고 시장을 넓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중국과 인도, 동남아시아 등의 성장세가 올라가는 이유는 개방에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에서는 서비스업으로 방향을 잡고 각종 규제를 풀어야 한다. 문제는 정부가 구조조정을 언급하지 않은 점이다. 전국에 식당은 대략 60만개가 있는데 우리 인구 4800만명으로 나누면 식당 1개에 80명꼴이다. 노약자 및 농촌인구와 줄서서 기다리는 식당 등을 빼면 식당 1개는 고작 50여명을 보고 장사해야 한다.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이런 시스템에서는 성장동력 확충이 곤란하다. ▶정부는 규제완화로 성장동력을 높인다고 하지 않았는가. -규제 하나 하나를 따지면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고 나쁜 게 없다. 하지만 정부가 지도하고 점검한다고 그 목적들을 달성할 수는 없다. 다른 나라에서 30일 걸릴 것을 왜 우리나라에선 60일이 걸리겠는가. 정부가 환경·건축·노동 등 모든 부분에서 다 규제할 수 있다는 기대를 없애야 한다. 현재 규제의 절반만 풀어도 잠재성장률은 0.5%포인트 올라갈 것이다. 외환위기 직후 규제를 절반 이상 풀었는데 99년 이후부터 다시 규제가 늘어났다. 병역이나 조세 부분을 제외하고는 과감히 풀어야 한다.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은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경제자유구역을 한다면 정말로 경제자유를 줘야 한다. 여성인력 활용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노동투입이 남자와 비슷한 스웨덴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멕시코와 필리핀 수준으로 여성인력을 활용한다면 잠재성장률은 0.2∼0.3% 포인트 높아질 것이다. 일자리가 없다는 단기적인 이유를 들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여성을 일터로 끌어내는 노력이 절실하다. 규제는 더 풀어야 한다.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은. -올해 5% 성장보다 둔화된 4.3%로 전망한다. 문제는 선진국 진입에 따른 성숙된 나라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냐는 점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인 미국이 3.5% 성장한다는데 이머징 마켓이라는 한국이 4% 초반 성장에 그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또한 중국이나 인도보다는 못하겠지만 우리보다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싱가포르나 아일랜드의 성장률에 뒤처진다면 기초체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토지임대부 아파트 ‘반값’만 강조는 곤란 토지임대부 아파트가 ‘반값 아파트’라면 임대아파트는 ‘공짜 아파트’라는 얘기인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토지임대부 분양방식의 반값 아파트에 대해 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논리의 전개가 잘못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현 원장은 18일 “토지임대부나 환매조건부 분양방식은 국내에서의 주택공급이 한정됐고 그로 인해 일반 국민들이 주택소유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을 다소 완화하자는 측면에서 논의돼야 함에도 마치 아파트 값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기대를 주는 방식으로 진행돼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토지는 임대하고 건물만 분양하는 반값 아파트를 공급하면 기존의 아파트 값도 점차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게 논의의 초점인데 여기에는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먼저 모든 아파트를 토지임대부로 분양할 수 없다는 게 현실이다. 정부도 재정적으로 부담이 되고 그만한 공공택지도 많지 않다고 설명한다. 또한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지는 공영개발의 경우 누구에겐 반값으로 주고, 누구에겐 온값으로 주는 게 가능하냐는 주장이다. 만약 반값 아파트로 주변의 다른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반값에 받은 아파트를 2배 이상으로 팔려고 해 투기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건물 값만 계산해서 반값이라는 논리를 확산하면 임대아파트는 ‘공짜 아파트’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임대아파트는 토지와 건물에 대한 소유권은 넘기지 않고 임대료만 받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재 공급된 아파트는 온값과 공짜 두가지만 있으며 반값 아파트의 논리를 적용하면 임대아파트의 공급으로 기존 아파트 가격은 내려야 한다. 하지만 모두 임대아파트만 공급되는 것도 아니고 공짜인 임대아파트의 등장 이후 전국의 집값이 내려간 것은 더더욱 아니다. 현 원장은 국민의 정부 시절 경제수석으로 있을 때 호주산 소의 수입 결정과정을 사례로 들었다. 당시 쇠고기 수입과 사료가 개방된 상태여서 호주산 소를 국내로 들여와 키우려 했는데 농민이 들고 일어섰다. 정부 내부에서도 반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완제품인 쇠고기와 기초 원자재인 사료가 수입되는 형국에서 중간재인 호주산 소를 반대하는 게 타당하냐고 주장해 무마시켰다. 현 원장은 토지임대부 아파트도 주택공급 방식을 다양화해 시장을 활성화하자는 차원에서 ‘호주산 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인데 이를 거두절미하고 ‘반값’만 강조하면 2∼3년 뒤 정책불신만 가중시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임대아파트가 주택공급의 일부분만 차지하고 나아가 기존의 주택시장에선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토지임대부 아파트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기 보다 분양제도의 다양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뿐 아니라 언론들도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말했던 ‘반값’이라는 표현에 너무 매료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프로필 현정택 원장은 1949년 경북 예천에서 출생했다. 행시 10회 출신으로 경복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중 한국대사관 참사관, 재정경제원 국제협력관, 주 OECD대표부 경제공사, 여성부 차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국민의 정부), 인하대 경상대학 국제통상학 교수, 외교통상부 경제통상 대사를 역임했다.
  • 헌소 ‘개정 사학법’ 치열한 공개변론

    헌소 ‘개정 사학법’ 치열한 공개변론

    “개정 사학법은 학교 법인과 설립자의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을 침해하는 반개혁적 법안이다.”(사학재단측) “개정 사학법은 사학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높여 사학비리의 원인을 없애고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교육부측)14일 오후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대심판정.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통과된 개정 사립학교법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공개 변론이 열렸다. 사학재단측은 물론 여·야 등 정치권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안으로, 지난해 말과 올 3월 학교법인 우암학원 외 14명과 우암학원 설립자 조용기씨 등이 학교법인의 이사 선임권을 제한한 개정 사립학교법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면서 관심이 증폭됐다. 이를 반영하듯 대심판정에는 사학법인 관계자 등 100여명이 공개변론을 지켜봤고, 공개변론에 앞서 사학수호국민운동본부 50여명은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정 사학법에 대한 위헌 결정과 재개정을 촉구했다. 공개 변론은 ▲학교운영위원회와 대학평의원회에서 2배수 추천한 인사 중 이사 정수의 4분의1 이상을 선임하도록 한 개방형 이사제 ▲선임 요건을 완화하고 임기 제한을 없앤 임시이사제도 ▲학교법인 이사장의 배우자, 직계존비속과 그 배우자의 학교장 임명 제한 등이 대상이었다. 공개 변론에서 사립학교측과 교육부측 변호인들은 여·야 간의 정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공방이 치열했다. 청구인측 이석연 변호사는 “개정 사학법은 일부에 불과한 비리 사학을 빌미로 모든 사립학교를 공립화와 사회화를 꾀하는 것”이라면서 “이는 학교법인과 설립자의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은 물론 헌법의 기본토대인 사적자치와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흔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교육부측 법무법인 태평양의 가재환 변호사는 “개정 사학법은 사학의 건학이념을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학교법인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제고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장치”라고 강조했다. 핵심 쟁점사항인 개방형 이사제에 대해서도 논쟁이 뜨거웠다. 교육부측 곽태철 변호사는 “개방형 이사제는 외부인의 참여를 통해 투명성과 민주성을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로 전체도 아닌 4분에1에 불과한 인원으로 사학의 설립취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반면 사학재단측 이헌 변호사는 “사학의 설립 목적과 전혀 관계 없는 외부인사의 의무적 참여를 규정하는 것은 사학의 인사권과 경영권 등 본질적인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개정 사학법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재의 결론은 내년 초쯤 내려질 전망이다. 통상 공개변론이 열린 뒤 1∼2개월 뒤에 선고가 이뤄져 왔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행정플러스] 철도공 임원들 ‘직무청렴계약’

    한국철도공사 이철 사장과 임원진은 11일 정부대전청사에서 ‘직무청렴계약’을 체결했다. 직무청렴계약 대상은 사장을 포함해 감사·부사장·상임이사(5명)들로 ▲공정한 직무수행 ▲부당이득의 수수 금지 ▲정보 및 재무관리 투명성 ▲건전한 공직풍토 조성 등을 담고 있다. 청렴계약을 위반해 형사처벌을 받으면 성과연봉 전액 또는 일부를 환수하거나 지급하지 않는 ‘경제적 제재’도 포함된다.
  • 복지법인에 개방형이사제 권고

    국가청렴위원회는 12일 사회복지법인의 비리 근절을 위해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할 것을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에 권고하기로 했다. 하지만 개방형 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처럼 사회복지법인의 개방형 이사제 도입 문제는 사회복지법인의 반발로 논란이 예상된다. 청렴위가 마련한 ‘사회복지시설·법인 운영지원의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일정규모 이상의 사회복지시설·법인은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하도록 했다. 개방형 이사의 추천권은 사회복지협회 등 관련 단체나 법인의 시설운영위원회 등이 갖도록 했다. 그러나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제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인 사회복지사업법에서는 관선이사 1명을 시·도지사가 임명하도록 하고 있어 청렴위의 권고안과는 차이가 있다. 청렴위는 이사의 자격요건이나 전체 이사 가운데 개방형 이사의 비율 등에 대해서는 복지부가 세부 기준을 마련하도록 했다. 법인 이사가 해임돼 정상적인 법인 관리가 곤란할 경우 주무관청이 임시 이사를 파견토록 했다.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시민사회 정보 공개돼야 자선시장 활성화”

    “시민사회 정보 공개돼야 자선시장 활성화”

    “시민사회 정보도 공개돼야 합니다. 이를 통해 신뢰가 구축돼야 기부가 늘고, 시민·사회단체가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시민사회의 투명성 감시기구인 시민사회정보시스템(CSS)을 창안해 국제적 단체로 키우고 있는 버즈 슈미트 가이드스타 인터내셔널 회장이 5∼6일 서울을 다녀갔다. 한국의 가이드스타코리아 설립을 지원하기 위한 행보다. 올해는 우리 시민단체도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기부금 등의 정보 공개는 그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슈미트 회장은 정보공개의 견제보다는 긍정적 효과를 강조했다. 그는 자선도 투자로 본다.‘자선 시장(charity marketplace)’에서 올바른 결정을 하려면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며, 이러한 정보제공은 투자의 효율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자선시장 자체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가이드스타를 시작했을 때 시민·사회단체의 반응은.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곧 달라졌다. 신뢰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보의 업데이트 속도에 대해 불평을 하고 있을 정도다. ▶기본 정보를 미국 국세청(IRS)으로부터 받는다는데. -IRS는 세무와 함께 모든 비영리단체(NPO)의 등록을 받는 게 주요 업무다. 연간 기부금 2만 5000달러를 초과하여 면세를 받고자 하는 단체는 ‘양식 990’을 작성해야 한다.20쪽에 이르는 이 기록은 기부자의 이름 부분만 빼고는 기부금 수입, 사용처 등 모두를 공개토록 돼 있지만 분량이 방대하여 찾아보기가 어렵다. 가이드스타는 1백만 NPO의 회계자료를 검색하기 쉽게 만들고 추가로 각 단체가 자발적으로 보고한 서술적 정보를 제공한다. 기부를 하고 싶은 사람은 시민단체의 임무, 구성, 활동분야, 성과, 재정, 수익활동 내역 등을 살피며 기부처를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정보들만으로 충분한 감시가 될 수 있을까. -충분하지는 않지만 투명성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사용자가 늘고 영향력이 커지면 시민·사회단체도 스스로 단체운영 방식과 보고 수준을 높이게 된다. 강조하건대 가이드스타는 시민사회를 위축시키자는 게 아니다. 시민·사회단체와 자선재단, 기부자, 규제기관 모두가 발전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호응이 있나. -자발적으로 보고서를 보내오는 비영리단체의 숫자가 3년전 7만 5000개에서 작년에는 10만개, 올해는 12만개로 늘었다. 사이트 방문자 숫자도 하루 1만 5000명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영국 가이드스타가 생겼고, 현재 인도, 독일, 남아공, 헝가리 일본 등 12개국이 설립을 추진 중이거나 예정이다. ▶한국은 시민사회 역사가 10년 안팎이다. 미국도 겨우 1994년 시작한 제도를 한국이 받아들이면 시기상조가 아닐까. -그렇지 않다. 좋은 보고체제, 좋은 정책결정은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 이제 싹트기 시작한 기부문화를 합리적으로 이끈다면 이상적 시민사회를 육성할 수 있다. 신연숙 문화담당 대기자 yshin@seoul.co.kr
  • 한국군 참전 삭제할 만큼 ‘우호적’ 금융시장 개방… ‘기회의 땅’ 부상

    |호찌민 이창구특파원|호찌민시 전쟁기념관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만행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군 참전에 대해서는 간단한 주둔 위치만 표시돼 있을 뿐, 다른 행적은 찾아볼 수 없다.KOTRA 호찌민무역관 이성훈 관장은 “전쟁기념관에서 한국군의 기록까지 삭제할 정도로 베트남은 한국에 우호적”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이미 베트남의 가전제품 시장을 석권했고,GS건설 등이 대규모 부동산 개발에 착수했다. 거리의 자동차 가운데 70%가량이 현대자동차의 중고차들이다. 베트남 관료들은 한국의 ‘공업혁명’을 배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성훈 관장은 “선진국이 그동안 관심을 갖지 않아 한국 업체가 베트남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베트남의 WTO 가입에 맞춰 미국과 일본이 베트남 투자를 대폭 확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GS건설의 베트남SPC 이상기 이사도 “WTO 가입으로 외국업체의 진입이 쉬워지고, 시장의 예측가능성과 투명성도 높아질 것”이라면서 “베트남 시장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외국인 투자에 관한 제도와 법규가 완비되지 않아 사업 인·허가가 나오기까지 3년 이상 걸린다는 점은 한국기업이 넘어야 할 과제다. 외국 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 추세에 있는 중국보다 베트남이 훨씬 개방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더욱이 금융시장의 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어 베트남은 국내 금융회사에 ‘기회의 땅’이다. 우리은행 황영기 행장은 “베트남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의 금융거래 가운데 한국의 은행이 담당하는 부분은 40%에 불과하다.”면서 “베트남이 동남아의 금융허브(중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국내 은행이 미리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window2@seoul.co.kr
  • 이용섭 건교 후보자 인사청문회

    이용섭 건교 후보자 인사청문회

    국회 건설교통위원회는 6일 이용섭 건교부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열어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문제점과 ‘코드인사’에 따른 전문성 부족 문제를 집중 추궁했다. 부동산 공청회를 방불케 하는 청문회였다. ●또 세금 정책으로 해결? 여야 의원들은 국세청장 출신인 이 후보자가 공급 확대가 아닌 세제를 통한 투기 수요 억제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열린우리당 한병도 의원은 “행자부 장관 취임 뒤 ‘공급 확대로는 집값을 잡을 수 없다.’고 했는데 세금으로 투기를 억제하려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한나라당 윤두환 의원은 “시장 논리를 무시하고 세금 일변도로 가다 부동산 문제가 이렇게 됐다.”면서 “후보자도 조세 전문가지 부동산 전문가는 아닌데 세금만 가중시키는 정책을 펴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이 후보자는 “취임 후 발언은 공급확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얘기였고 부동산 문제는 투기억제, 투명성 확보, 공급확대라는 세가지 대책이 적절하게 조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투기 목적이라면 아파트 사지 말것” 이 후보자는 열린우리당 정장선·강길부 의원이 토지 임대부 분양제도에 대한 견해를 묻자 “토지임대부 분양제든 환매조건 분양제든 취임 후 면밀히 검토해서 빠른 시일 내에 결론 내겠다.”고 즉답을 회피했다. ‘지금 아파트를 사야하냐.’는 질문에는 “주거 목적이라면 사야하지만 투기 목적이라면 사지 말것을 권유하고 싶다. 조만간 물량이 쏟아지면 손해를 볼 것이기 때문이다.”고 대답했다. 아파트 택지비 원가 공개 문제에 대해서는 “확대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재건축 규제 완화와 관련,“공급은 어느 정도 늘겠지만 그 효과보다는 주택가격 상승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의원들의 질타에 “실패를 논하는 것은 빠르다.”고 소신 답변했다. 그러자 민주당 이낙연 의원이 “부동산 문제로 인한 국민의 고통에 둔감한 것 아니냐.”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코드 인사 또 도마에 한나라당 정희수 의원은 “반 FTA 폭력 시위를 책임져야 할 사람이 건교부 장관으로 영전했으니 전형적인 코드인사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라면서 “문외한이 어떻게 난제를 풀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석준 의원은 “‘보은인사’로 보는 사람이 많다.”면서 “다른 부동산 전문가들에게 양보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아이칸, 1500억 먹고 튀었다

    아이칸, 1500억 먹고 튀었다

    칼 아이칸이 KT&G를 떠났다. 주식을 취득한 지 1년이 조금 넘는다.KT&G 투자로 아이칸측이 벌어들인 돈은 15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적극적 경영참여를 통해 기업 투명성과 주주가치를 높였다는 일부 평가도 있지만 인수합병(M&A) 재료를 부각시켜 주가를 띄운 뒤 단기간에 차익을 챙겨 나가는 ‘먹튀’ 행태를 다시 한번 보여준 셈이다. 외환은행 인수 당시의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론스타,SK를 공격했던 소버린 등에 대한 기억들도 다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아이칸이 첫번째 한국 사냥의 목표물로 민영화된 공기업을 겨냥, 큰 이익을 얻었다는 점도 앞으로 논란의 여지가 일 전망이다. ●1년에 1500억! 아이칸은 5일 KT&G 주식 700만주(4.75%)를 개장 전 시간외 대량매매를 통해 다수의 외국인 기관투자자에게 주당 6만 700원에 팔았다. 아이칸이 가진 보유주식 776만주(5.26%)의 대부분을 처분한 것이다. 아이칸이 KT&G 주식을 사들이면서 투자한 돈은 3351억원이고 이번 매각대금은 4225억원이다. 매각만으로 874억원을 챙겼고 남은 80만주도 이날 주가인 6만 500원으로 계산하면 484억원이 더 남는다. 아이칸이 KT&G에서 받은 배당금 124억원까지 더하면 투자이익이 1482억원이다. 또 아이칸이 KT&G를 사들일 당시는 원·달러환율이 980∼1050원이고 현재 920원대라는 것을 고려하면 환차익도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칸이 KT&G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한 건 지난해 9월부터다. 지난 1월에 아이칸측이 KT&G를 방문, 자회사인 인삼공사를 팔고 유휴부동산을 팔 것을 요구하면서 KT&G 주가는 급등세를 타기 시작했다. 아이칸은 3월 주주총회에서 표대결을 통해 사외이사 1명을 이사회에 진출시켰다. 이에 KT&G는 8월 자사주 소각 등 최대 2조 8000억원 규모의 주주환원정책이 포함된 중장기 경영계획을 발표했다. 아이칸의 공격과 회사의 주주환원정책 등으로 올초 4만원대에 머물던 KT&G 주가는 6만원대로 올라섰다. 한화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소버린이 SK를 공격할 때만 해도 기업 투명성 제고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었지만 아이칸 사례에서는 그런 점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 센터장은 “헤지펀드는 한 기업에 대해 대체로 2∼3년 이상 투자하는데 아이칸의 투자기간은 상대적으로 짧다.”고 덧붙였다.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KT&G는 지분이 분산돼 있어 상대적으로 기업투명성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었다. ●아픈 기억들 소버린이 SK에 투자한 기간은 2년 4개월이다.2003년 3월 SK㈜의 분식회계가 터지면서 주식을 매수,14.99%의 주식을 보유했다. 이사회 구성 등 경영권 분쟁을 통해 M&A 소재가 부각되고 회사 차원의 노력도 곁들여 SK주가는 분식회계 당시 2만원을 밑돌았으나 현재 6만원대를 웃돌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15%를 보유한 소버린보다 85%를 보유한 한국이 이익을 더 많이 얻은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외주사, 제작비 40% PPL로 충당

    “드라마가 뜨면 제품 홍보가 절로 되는데 뒷거래가 없겠습니까.” 30일 검찰이 발표한 방송 관계자들의 금품수수 비리 수사결과를 지켜본 방송가 사람들의 공통된 목소리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상품이나 브랜드를 노출시켜 간접적으로 광고효과를 높이는 PPL의 홍수가 결국 비리를 낳았다. 일각에서는 이번에 적발된 비리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으로 보기도 한다.●공중파 드라마 70~80% 외주제작 그만큼 PPL이 방송에서는 개인 차원을 벗어난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부상한 지 오래다. 현행법상 PPL은 정책적 차원에서 외주제작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외주제작사에 한해 허용되고 있다. 제작비가 10억원이 필요한 드라마의 경우, 공중파 방송사는 외주제작사에 6억원 정도만 지급한다. 나머지 제작비는 외주제작사가 알아서 충당해야 한다.PPL이 없다면 드라마를 제작하려야 제작할 수 없는 구조다. 하지만 2000년 이후 PPL이 허용된 덕분에 독립제작사들이 활발하게 양성됐다. 현재 방영되거나 제작되고 있는 공중파 드라마의 70∼80%가 외주제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PPL이 얼마나 활성화돼 있는지 추정할 수 있다. 문제는 투명성이다. 한 외주제작사 대표는 “PPL은 모두 정식계약을 통해 제작비로 들어오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착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송가에서는 PPL과 관련,PD와 업체를 비밀리에 연결시켜 주는 브로커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방송가에서 PD들에게 접근하는 ‘PPL 브로커’는 1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PPL의 효과가 입소문을 타면서 건별로 활동하는 브로커도 적지 않다고 한다.●방송가 브로커 10여명 기승 한 지상파 방송국 PD는 “브로커들의 경우 대부분 방송제작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광고대행사나 업체로부터 10∼20%의 수수료를 챙기고, 업체와 PD를 연결시켜 준다.”고 말했다. 지난해 히트한 한 지상파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타고 다닌 승용차가 덩달아 히트를 쳤다.PPL 효과가 극대화됐던 것. 한 PD는 “대박이 눈에 보이는데 검은 뒷거래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으냐.”고 꼬집었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민간주택 분양원가 공개 반대”

    “민간주택 분양원가 공개 반대”

    아파트 분양가 문제를 검토할 분양가 제도개선위원회 위원들 중에는 공공택지든 민간택지든 민간주택의 분양원가 공개에 대해서는 찬성보다는 반대하는 쪽이 많다. 서울신문이 28일 박환용(경원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분양가 제도개선위원장을 포함한 15명을 상대로 분양원가 공개 여부와 범위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다. 노무현 대통령은 분양원가 공개 적절성을 판단해 보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에 따라 이달 초 15명의 민간 전문가로 분양가 제도개선위원회가 구성됐다. 분양원가 공개범위와 관련, 공공택지내 공공아파트의 분양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는 항목에서 찬성은 7명, 반대는 5명이었다. 그러나 공공택지든 민간택지든 민간아파트의 분양원가 공개에 대해 반대하는 위원은 8명으로 찬성하는 위원(4명)의 두 배였다. 신현윤 연세대 법대교수 등 3명의 위원들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많은 위원들은 분양원가 공개와 분양가 인하는 별개 사안으로 생각했다. 다만 공공택지의 경우 전용면적 25.7평 이하 중소형 아파트(공공·민간)에 대해서는 이미 분양가내역 일부를 공개하고 있는 만큼 공공아파트에 한해 범위를 확대하고 세분화하는 방식으로 원가를 공개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박환용 위원장은 “분양원가 공개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반대하지만 현재 공공택지내에 25.7평 이하 중소형 아파트는 이미 택지비를 공개하는데 이를 지금처럼 두루뭉수리하게 제시하기보다 수용원가 등 상세 내역을 세분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강태경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설코스트연구센터장도 “공공택지내 중소형에 대해 공개되는 7개 분양원가 내역을 공공아파트에 한해 200개까지 쪼개 공개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면서 “원가공개는 주변 민간 아파트에 심리적인 부담을 주어 견제효과는 있겠지만 이로 인해 분양가가 큰 폭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박헌주 주택도시연구원장과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장은 “분양원가를 공개하면 민간업체들은 그 가격에 맞춰 원가 항목을 구성할 것이어서 오히려 결과적으로 고분양가를 인정해 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차라리 분양가를 일정 한도로 묶는 게 분양가 인하의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민간아파트의 분양가를 공개하면 소모적인 사회적 비용과 부작용이 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건설업체의 기술개발투자비, 브랜드가치 등 유·무형의 비용을 어떻게 산출하고 검증할지 사회적 논란만 낳을 것”이라며 “공공부문의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사업이 끝난 뒤 상세 내역에 대해 알려줄 수는 있겠지만 이는 알권리 충족 차원이지 분양가 인하 효과와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김남근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은 “광역단위로 분양가 검증위원회를 만들어 업체가 제출한 분양가를 검증하고 적정한 수준으로 지도한 뒤 이를 거부하면 분양 승인을 내주지 않는 법적 근거를 만들어 실시해야 한다.”면서 “민간주택을 빼놓고 얘기하면 분양원가 공개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공직비리도 진화

    공직비리도 진화

    제이유 그룹 로비 의혹에 고위 공직자들이 대거 연루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법조브로커 비리, 사행성 게임 비리 등에 이어 이완된 공직사회의 기강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에도 청와대·경찰청 등 비리를 바로잡아야 할 자리에 있는 고위직들의 이름이 ‘로비 리스트’에 실려 떠돌아 다닌다. 특히 청와대 비서관 가족이 다단계 업체와 10억원대 거래를 하고 경찰 간부가 은밀한 주식 투자를 시도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지적이다. ●“공직자는 생선가게 터는 고양이” 스캔들만 터졌다 하면 하위직부터 고위직까지 줄줄이 걸려드는 일이 되풀이되자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느끼고 있다. 사행성 게임 비리만 해도 그렇다. 문화관광부와 경찰의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된 데 이어 지난 23일에는 문화부, 영상물등급위원회 등 37명이 감사원에 의해 비위 혐의로 검찰에 통보됐다. 제이유 그룹이 검·경, 국회의원 등에 100억원대의 로비자금을 뿌렸다는 국가정보원의 정보보고는 차츰 사실로 확인돼 가고 있다. 서울에서 포목점을 하는 김정희(43·여)씨는 “공무원들의 부적절한 돈 거래가 문제될 때마다 수억, 수천만원이란 말이 나온다. 생선가게를 고양이한테 맡기는 일이 왜 자꾸 반복돼야 하는지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비즈니스성 비리’의 법 피해가기 한 국책연구기관 선임연구원은 최근의 부패 구조를 과거와는 다른 ‘비즈니스성 비리’로 규정했다. 그는 “과거 독재시절 정경 유착으로 대표되는 부패는 권력의 핵심 소수가 이권을 약속하거나 압력을 행사해 거액을 챙기는 노골적인 비리였다. 하지만 최근의 부패는 합법적이고 사업적인 형태를 띠는 비즈니스성 비리의 특성이 강하다.”고 말했다.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드는 탓에 수사선상에 오르더라도 처벌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투명성기구에 따르면 일반 형사사범의 무죄 비율은 0.79%인데 반해 비리 고위공직자의 무죄 비율은 7.72%로 10배에 이른다. 공무원 범죄 기소율도 36%에 불과하다. 입건된 3명 가운데 1명만이 기소당하는 셈이다. 정부의 레임덕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투명성기구 강성구 사무총장은 “현 정권 들어 부패 문제에 신경을 써 왔다곤 하지만 법과 제도를 힘차게 밀어붙여야 할 시점에 정작 힘이 떨어져 의식까지 개혁시키지 못한 것이 한계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법과 함께 의식이 변해야 이재근 참여연대 투명사회팀장은 “그간 고위 공직자들의 부패 문제에서 수사 주체가 수사 대상이 되는 문제가 반복돼 왔던 만큼 공직자 수사를 책임 있게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기구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경찰 등의 업무 재량권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제도가 없다.”면서 “미국이나 영국, 호주 등과 같이 시민과 법조인, 전문가 등이 자체 조사권과 인력을 가지고 형사사법 분야를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영규 서재희기자 whoami@seoul.co.kr
  • [열린세상] 대북 수출통제 역량 강화 서둘러야/전봉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로 전략물자 수출통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응징으로 유엔 안보리는 10월15일 안보리결의 1718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하여 모든 회원국이 대북 경제제재에 동참할 것을 결정하였다. 여기서 제재의 핵심은 대량살상무기 제조에 필요한 물자와 기술의 대북 이전을 차단하기 위해 ‘수출통제’ 조치를 엄격히 집행하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정부와 기업의 수출통제 역량을 재점검하고 보강할 것을 제기한다. 불과 4,5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은 수출통제의 무풍지대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청화소다의 불법 대북수출(2003년), 리비아 사찰시 전략물자인 한국산 밸런싱머신 발견(2004년), 개성공단에 일부 기자재 반출 통제(2004년), 그리고 북한 미사일과 핵실험에 대한 안보리의 대북 제재결의(2006년)는 한국을 수출통제 태풍의 눈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것은 근래 한국이 산업수준 고도화로 주요 전략물자 공급자로 급부상한 것과 관련이 있다. 한국이 중동, 중국, 동남아국가 등 대량살상무기 확산우려국과 활발한 교역관계를 갖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한국은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70%가 넘는 통상국가이며 통일을 지향하는 분단국가이므로 대외교역과 남북경협의 확대에 사활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또한 수출통제는 21세기 최대 안보위협인 ‘대량살상테러’를 방지하는 주요 수단이다. 한국은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국가이며 세계 10대 무역국으로서 수출통제에 적극 참여할 의무와 책임을 지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 하에 우리의 수출통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과제 3개를 제시한다. 첫째, 다자수출통제체제에 대한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9·11 테러 이후 미국은 컨테이너안보구상(CSI,2002년), 확산금지구상(PSI,2003년), 유엔안보리 결의 1540(2004년) 등을 주도하여 수출통제 체제를 강화시켰다. 한국도 1995년 처음으로 원자력공급자그룹에 참여하기 시작하여,2001년 미사일기술통제체제에 참가함으로써 4대 다자수출통제체제에 모두 가입하였다. 그러나 다자 통제체제의 규범 창출과 통제품목 선정 등 핵심 활동분야에서 한국의 참여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 우리도 국익을 증진하기 위하여 통제물품의 규격과 기준을 정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수출통제 전문가를 육성하여 인적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둘째, 국내 수출통제 제도를 정비하고 집행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2003년부터 수출통제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하여, 유엔안보리 결의 1540(2004년)을 이행하면서 동 제도를 완비하였다. 현재 한국은 선진화된 수출통제 제도를 갖추고 있으며, 수출허가 정보화 시스템은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의 실행력과 의식이 많이 부족하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 전문가를 육성하고, 비확산 의식을 확산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2004년 전략물자무역정보센터를 설립하여 기업홍보와 교육을 확대하였지만,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특히 대기업의 의식은 개선되었으나, 중소기업은 수출통제를 새로운 비용요소로만 간주하여 기피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계도와 지원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셋째, 남북경협과 개성공단의 확대에 대비한 수출통제 역량을 길러야 한다. 수출통제 문제로 2004년 개성공단 시범단지 가동이 지연된 적이 있으며, 진출 업종도 제약을 받고 있다. 이대로는 개성공단을 첨단 산업기지로 발전시키려는 청사진도 실현될 수 없다. 정부와 기업은 개성공단의 수출통제 제도를 정비하고 통제 역량을 서둘러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홍콩의 수출통제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 개성공단 자치기구인 관리위원회는 자율적 수출통제권한을 행사하고, 기업은 수출통제 자율관리제를 도입하여 수출통제의 객관성과 투명성도 높여야 한다. 전봉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 [오늘의 눈] 갈지(之)자 주택정책/류찬희 산업부 차장

    누구나 샤워를 하다가 예상치 못한 찬물이나 뜨거운 물이 나와 손잡이를 확 돌리거나 닫아버린 경험이 있을 게다. 마음이 급한 나머지 제대로 샤워를 끝내지도 못하고 샤워실을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정책도 그렇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고도 장기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면 애초 목표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이랬다저랬다 하다 보면 정책의 신뢰성만 떨어지고 ‘갈지(之)자 정책’이라는 비난을 받기 일쑤다. 주택공급제도가 그렇다. 장기 플랜이 없고, 어렵게 세운 정책도 이리저리 휘둘린다. 정치권·시민단체·언론의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개선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너무 흔들린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가 그렇고 누더기처럼 변한 청약제도도 매 한가지다. ‘11·15대책’을 발표한 지 며칠 됐다고 정부는 신도시 아파트 공급 일정과 목표를 놓고 또 왔다갔다한다. 애당초 달성 불가능한 목표를 세워놓고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이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의아심이 들 정도다. 정부 스스로 세운 로드맵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나왔다. 아파트 후분양제도는 꽃도 피기 전에 비바람을 맞고 있다. 후분양제는 아파트 분양가를 끌어내리고 소비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주자는 차원에서 나왔다. 그런데 신도시 아파트 공급(분양 시점 기준)일정을 앞당기려고 후분양제 확대 적용을 미루려는 움직임이 있다. 무주택자들의 입주 일정은 전혀 바뀌지 않는데도 선분양이니 후분양이니 하면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판교 신도시에 적용했던 채권입찰제도 역시 갈대처럼 흔들린다.‘로또’ 당첨자에게 돌아가는 개발이익을 환수하려고 도입된 제도다. 그런데 채권을 쓰다 보면 분양가격이 주변 시세와 비슷하게 책정돼 정부가 거품 가격을 인정하는 꼴이라는 비난을 받자 손을 댄다고 한다. 개발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개발 이익 귀속 주체를 명확하게 밝혀낼 수 있는 제도 마련은 뒷전이다. 오락가락 주택정책은 찬물 나온다고 갑자기 뜨거운 물로 바꾸다가 샤워를 망치거나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정책 당국자들이 깨달았으면 한다. 류찬희 산업부 차장 chani@seoul.co.kr
  • 법·검 론스타 비밀회동 “밀실협의” 논란 확산

    론스타 사건 관련 영장 기각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법원과 검찰의 비공식 회동이 논란이 되고 있다. 두 기관간의 오해를 풀기 위해 만났다고 설명했지만 논란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지난 10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일식집에서 법원·검찰의 고위간부 4명이 회동을 가졌다. 당시는 외환카드 주가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두번이나 기각되고, 검찰은 세번째 영장청구를 준비하던 때였다. 이상훈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는 사법연수원 동기인 박영수 대검 중수부장에게 영장청구와 기각이 반복되면서 두 사법기관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는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며 직접 만나 오해를 풀자고 제의했다. 이 자리에는 민병훈 영장전담 부장판사와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도 함께 참석했다. 여러 얘기를 나누던 참석자들은 유씨 등의 구속영장 문제에 대해 “죄질이 나빠 구속해야 한다.”(검찰),“수사가 마무리된 만큼 불구속 기소해도 되지 않느냐.”(법원)며 논쟁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영장과 관련한 법원과 검찰의 비공식 모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2004년 서울중앙지검이 불량 고춧가루 유통·강동시영아파트 재건축 조합비리 사건 등과 관련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되자 당시 남기춘 특수2부장이 이충상 부장판사와 비공식 소통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중수부 수사를 지휘하는 박 중수부장은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는 입장이고 민 부장판사는 그 영장의 발부 여부를 판단한다. 특정 구속영장 등을 법원과 검찰이 비공식 자리에서 논의하는 것은 사실상 ‘밀실협의’로 만남 자체가 부적절한 것으로 비난받을 여지가 충분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또 이들의 만남은 대법원이 정한 법관윤리강령과 법관 면담지침을 정면으로 위배해 논란이 예상된다. 대법원은 재판 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법관은 법정 이외의 장소에서 변호사 또는 검사와 면담하거나 접촉할 수 없다.”는 면담지침을 시행하고 있다. 또 법관윤리강령에도 사건 당사자나 변호인과 만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대법원은 잇단 법조비리로 사법부의 신뢰가 추락하자 면담지침을 지난 10월 개정했다. 이어 11월에는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를 통해 윤리강령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키로 했다. 논란이 커지자 이 형사수석은 “오해가 있다면 풀고, 이해의 폭을 넓히려고 한 것으로 법원과 검찰이 서로 잘 하자는 취지로만 얘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 중수부장도 “대화를 하는 도중 유씨에 대한 얘기가 있었지만 영장기각이 맞지 않다는 검찰측의 주장에 이 형사수석이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으면 구속할 필요성이 없다는 개인 소신을 밝혔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김효섭 박경호기자 newworld@seoul.co.kr
  • [함혜리기자의 프렌치 리포트] (5) ‘학벌’ 신분사회

    [함혜리기자의 프렌치 리포트] (5) ‘학벌’ 신분사회

    프랑스에 대해 우리가 정확하지 못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가 사회 시스템이다. 자유·평등·박애를 국시(國是)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모두가 차별없이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모든 사람이 균등한 기회를 누리는 평등한 사회일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프랑스는 철저한 신분사회다.21세기에 인도도 아니고, 사회민주주의의 본산인 프랑스를 ‘신분 사회’라고 단정하는 것에 반박할 사람도 많겠지만 실상이 그렇다. 소수의 엘리트들이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의 지도층을 구성하고, 다수의 평범한 시민들이 중간층을 구성한다. 그 아래는 사회 안전망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노약자와 극빈층, 그리고 외국의 이민자들로 구성된다. ●능력만큼 대접받는다 프랑스 사회를 특징짓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메리토크라시(meritocratie)’다. 대혁명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부(富)와 특권을 일부 계층이 세습하는 데 대해 많은 비판이 오갔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합의가 바로 능력에 따라 보상을 받도록 한다는 메리토크라시였다. 사람의 능력을 어떻게 판가름할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을 것이나 프랑스에서는 학력을 가장 공평한 기준으로 간주한다. 개인의 성취도를 학력으로 평가하고, 공부 잘해서 좋은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다른 나라와 큰 차이가 없다. 프랑스의 엘리트 시스템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들을 소수 정예로 선발해 가르치고 훈련시켜 등용한다는 점이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각 분야의 엘리트들을 배출하는 고등 교육기관이 그랑제콜(Grands Ecoles)이다. 프랑스의 고등교육 체계는 아주 독특하고 복잡한데 영미식 고등교육제도에 견줘 가장 큰 차별성을 보이는 부분이다. 프랑스의 그랑제콜들은 대부분 대혁명 이후인 18∼19세기 세워졌다. 인문계, 자연계 구분없이 전 분야에 걸쳐 공·사립 학교가 전국에 수백 군데 분산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인문계의 고등사범학교(ENS)와 이공계의 에콜폴리테크니크(X)는 최고의 수재들만이 입학할 수 있는 명문 중의 명문이다. 200년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자존심’ 에콜폴리테크니크의 엘리자베드 크레퐁 부총장은 “프랑스의 고등교육은 사회를 이끌어갈 고급 엘리트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그랑제콜과 대중적인 고등교육을 위한 일반 대학으로 이분화된 것이 특징”이라며 “대학과 그랑제콜은 기본적으로 지원 자격, 선발 방법, 교육 방법이 다르고 졸업 후의 역할도 큰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화·서열화된 학벌 카스트 일반 대학은 대학입학 자격 시험(바칼로레아)만으로 무시험 진학하는 데 반해 그랑제콜은 국가가 실시하는 시험(콩쿠르)을 거쳐야만 입학이 허용된다. 선발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바칼로레아 후 2∼3년간의 그랑제콜 준비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준비 과정은 전국 480개 고등학교에 설치된 그랑제콜 준비반(CPGE)에서 이뤄지는데 이곳 역시 고교 2년 말 학교성적이 5∼10%에 들어야 한다. 이들은 최하 4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그랑제콜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출세가 보장된다. ENS나 에콜폴리테크니크 같은 국립 그랑제콜의 경우 학생들에게 월급까지 주며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시킨다. 졸업생들은 프랑스 최고의 엘리트로 대접받으며 많은 특권을 누린다. 졸업과 동시에 주요 부처의 관료로 임명돼 중요한 정책을 입안하거나, 국·민영 기업체의 간부로 스카우트돼 곧바로 현장에 투입된다. 학교 순위에 따라 연봉도 다르다. 이공계 최고의 명문 에콜폴리테크니크 출신의 첫해 연봉은 3만 8000유로(4700만원 정도), 상공계 최고의 명문 고등상과대학(HEC) 졸업자 초봉은 4만유로(5000만원) 정도다. 이들 학교의 졸업 학위는 일반 대학의 석·박사 학위와는 다르다. 대학 졸업장은 고등학교 졸업장 정도로 보면 된다. 프랑스에서는 대학을 나와봐야 번듯한 직장을 구할 수 없다. 대학의 박사학위도 그랑제콜 졸업장과는 비교가 안 된다. 프랑스의 그랑제콜 졸업장은 우리나라의 고시 합격증과 비슷한 수준이다. 평생을 좌우하는 명함이나 다름없다. 그랑제콜 졸업생들이 행정부로 진출하는 경우 이들은 각각 출신 학교별로 특수한 관료집단을 형성한다. 각 특수 관료집단은 고유의 호봉체계와 승진규정을 갖고 요직을 독식한다. 이들은 정·재계와 연결되어 정치인이 되거나 장·차관이 되고, 혹은 대기업의 사장이 된다. 해당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특수 관료집단에 편입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사회갈등 유발? 프랑스인들 대부분은 그랑제콜 출신들은 평등한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남들보다 훌륭한 능력을 보였으며, 이들 선발된 인재가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최근 들어 많이 바뀌고 있다. 소수의 엘리트교육에만 치중하다 보니 대학 수준이 형편없이 떨어져 교육불균형을 초래한다는 비판과 함께 지나친 학연 중시와 파벌조성, 그리고 사회 저변과의 큰 괴리 등 문제점도 지적된다. 최근 들어서는 학력에 의한 ‘부의 세습’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그랑제콜 출신의 자녀들이 공부를 잘해서 다시 그랑제콜에 가고, 또 그 자손이 그랑제콜을 나오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트 시스템이 프랑스를 서유럽의 중심국가로 만들고, 눈부신 성장을 이루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한경쟁의 글로벌 시스템에서 조금씩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lotus@seoul.co.kr ■ 국립행정학교 ENA는 프랑스의 국립행정학교(ENA)는 정치행정 엘리트의 산실이다.2차대전 직후인 1945년 당시 드골 총리가 프랑스의 행정 인재를 발굴해 훈련시킨다는 취지로 만들었다. 국립정치학교(시앙스포)나 고등사범(ENS) 등 그랑제콜 출신 학생들이 다시 경쟁시험을 거쳐 들어간다. 일반직 공무원으로 일정기간 이상 근무한 사람, 유럽연합(EU) 회원국의 공무원, 일반 기업체의 관리들에게도 일정 비율 입학을 허용하고 있다. 외국인 공무원들을 위해 13개월간의 단기 연수과정도 마련돼 있다. 학생들은 27개월 동안의 집중 교육을 받는데 이 중 11개월은 지방 행정원에서,2개월은 기업에서 연수한다. 특이한 점은 교육기간 중 성적에 따라 발령부처가 달라진다는 것. 때문에 정·재계 진출의 기회가 많고 중요한 정책을 관장하는 부처에 배속돼 출세가도를 달리기 위해서는 시험합격 이후에도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NA는 지난 60년간 5585명을 배출했으며 이 중 4551명이 아직도 활동 중이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이 학교 출신이며 알랭 쥐페 전 총리, 도미니크 드 빌팽 현 총리 등 최근 10명의 총리 가운데 7명이 이 학교를 나왔다.2007년 대권에 도전하는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과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당수 부부는 드 빌팽 총리와 ENA 동기생들이다. 통상적으로 정부 각료의 35∼50%가 ENA 졸업생으로 채워지며 현재의 각료 31명 중에서도 8명이 ENA 출신이다. 유능한 행정관료를 배출한 것은 사실이지만 폐쇄적인 엘리트주의는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 된다. 지난봄의 정적 음해사건(클리어스트림스캔들)과 관련,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은 “ENA 출신의 폐쇄성은 정책의 불투명성을 증가시켰으며 밀실정치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 [사설] 출총제 완화, 기업이 답할 차례다

    대표적인 재벌개혁정책으로 꼽혔던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가 적용대상을 대기업집단에서 중핵기업으로 축소하고 출자한도도 현행 순자산의 25%에서 40%로 대폭 확대하는 내용으로 정부안이 확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고집했던 환상형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는 ‘이중규제’라는 여론에 밀려 백지화됐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재벌을 옭매었던 규제를 최대한 완화한 것이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재벌개혁의 포기라고 비난하고 있으나 사전적 규제는 최대한 줄이고 사후 감시체계를 강화한 정부의 정책 방향이 옳다고 본다. 출총제의 조건없는 폐지를 요구해온 재계로서는 출총제 일부 존치가 불만일 수도 있겠으나 사실상 폐지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완화된 만큼 이제는 투자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금의 경기 하강세를 재정이 감당하기엔 역부족일 뿐 아니라 재정 건전성 악화 등 심각한 부작용도 감수해야 한다. 성장률 기여도에서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민간부문에서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해야 잠재성장 여력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재계는 외환위기 직후 출총제 폐지를 이용해 재벌총수 일가의 지배권만 강화했다가 출총제 부활을 불러들인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내부 감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스스로 높여야 한다. 그래야만 반기업 정서를 완화할 수 있다. 앞으로 국회 심의과정에서 정부안이 바뀔 가능성도 있겠으나 출총제를 완전 폐지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 [특집 Travel] 가을 속으로 푹푹 빠져드는 만추 서정

    [특집 Travel] 가을 속으로 푹푹 빠져드는 만추 서정

    가을이 깊어갈수록 술 취한 새우와 전어 굽는 냄새로 서해안 일대가 고소하다. 영양 많은 굴밥과 알이 꽉 찬 꽃게 등 푸짐한 먹거리 외에도 다양한 볼거리가 기다리는 서해안을 비롯해 산 능선 전체가 억새꽃으로 뒤덮이는 명성산 억새꽃 축제는 가을 풍경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준다. 이 무렵 황금비 날리는 수묵빛 추사 고택은 만추(晩秋)란 바로 이런 모습임을 절감케 하는 풍경이다. 아름답지만 그만큼 짧은, 눈부신 만추 풍경 세 곳을 추천한다. ★ 추천 1 : 술 취한 새우, 가을전어… 맛있게 익는다 서해안 일대가 맛있게 익어 가는 계절이다. 고소하기가 ‘깨가 서 말’이라는 가을 전어가 쏟아져 나오고, 펄펄 살아 뛰는 대하 꼬리에 힘이 넘친다. 알이 꽉 찬 서산 꽃게와 곰삭은 젓갈, 고소한 조선김 등 갖가지 향토 미각이 줄을 잇는다. 푸짐한 먹거리 외에도 이맘때 서해안 나들이는 어느 곳보다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다양한 볼거리가 기다리는 안면도와 태안반도 일대며 천수만의 낙조,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무창포와 대천 앞바다가 한 걸음에 닿는다. 전어는 특히 가을 생선을 대표한다. 바닷물이 차가워지는 이때 지방 함량이 3배쯤 높아지면서 고소한 맛이 돌기 시작한다. 뼈째 숭덩숭덩 썰어먹는 전어는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진하다. 오죽하면 ‘가을전어 대가리는 깨가 서 말’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전어는 너무 작으면 씹는 맛이 없고, 너무 크면 뼈가 억세서 회로 먹기에 거칠다. 또한 갓 잡은 펄펄 뛰는 신선한 전어일수록 그 맛이 부드럽고 고소하다. 하지만 전어는 성질이 급해 그물에 잡혀 육지로 올라오자마자 죽어버린다. 서해안 일대를 여행하면서 만나는 전어는 적어도 신선도에 있어서는 으뜸인 셈이다. 대하는 매년 9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가 제철이다. 물이 차가워지면 더 이상 양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무렵 서해안 곳곳에는 일제히 대하 굽는 냄새로 가득하다. 조리방법도 가지가지. 강화도와 대부도, 제부도 등지에서는 청주를 살짝 뿌려 굽는’술 취한 대하구이’를 선보이는가 하면 홍성, 보령 일대에서는 왕소금을 뿌려 빨갛게 구워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펄펄 살아 뛰는’ 대하를 구워낼 때면 뜨거운 불판 위에서 튀어 오르는 새우를 막기 위해 뚜껑을 덮는다. 솥 안에 갇힌 새우가 뚜껑을 때리는 소리가 마치 콩 볶듯 요란하다. 이 일대 주변 포장마차 쪽으로 슬쩍 눈을 돌리면 구이법이 또 다르다. 화덕에 알루미늄 포일을 깐 뒤 여기에다 굵은 소금을 뿌려 그 위에다 대하를 구워 먹는다. 그 모습이 더욱 군침을 돌게 한다. 양식대하는 어린아이 팔뚝만한 크기도 있다. 11월 중순을 넘기면 산 새우를 만나기 어렵고 급속 냉동시킨 대하가 기다린다. 굴 단지가 있는 천북면으로 방향을 틀면 향긋하고 고소한 ‘굴밥’이 기다린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보령시 천북면 앞바다에서 채취되는 굴은 성장은 느리지만 맛과 영양 면에서는 탁월한 것으로 이름 나 있다. 광천읍의 그 유명한 토굴새우젓과 조선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광천은 한때 각종 고기잡이배들이 몰려드는 서해안의 대표적인 수산물 집산지였다. 그러나 60년대부터 대천항 등 해안과 가까운 항구에 물동량을 빼앗긴 뒤 이를 만회할 방법을 찾다가 옛 폐광 속에서 100여 일간 발효, 숙성시킨 토굴새우젓을 개발해 그 명성을 전국에 알리고 있다. 이곳에서 추천하는 맛있는 새우젓은 약간 붉은 색을 띠어야 하며 껍질이 얇고 속살이 있는 것이라고. 멸치액젓은 붉은 포도주 빛깔과 투명성, 구수한 향을 두루 갖추어야 최상품이다. 황석어젓은 색깔이 노랗고 알이 들어 있는 것이 좋다고 한다. * 맛있는 집| 천북면 하만리에 있는 가든단호박(041-641-3072)은 인근에서 소문난 굴밥집이다. 굴과 콩나물을 실하게 넣어 고슬고슬하게 밥을 짓고 오색채(신김치, 도라지, 시금치, 호박, 당근)에 참기름, 김가루를 넣고 갖은 양념을 한 달래간장으로 비빈 굴밥은 향긋한 굴 향이 그대로 살아나는 별미다. 거기에 시원하고 담백한 바지락 국물을 곁들이면 금세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낸다. * 가는 요령|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가 마음 내키는 곳 어느 곳에서든 빠져나가면 서해안 별미와 만날 수 있다. 홍성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나와 지방도 622번을 타면 대하구이로 유명한 남당리에 이른다. 또 이곳에서 안면도로 방향을 잡기에도 좋다. 광천 인터체인지를 이용할 경우 광천 읍내 토굴젓갈 기행과 천북면 굴단지를 찾아가는 데 수월하다. 굴밥집 ‘가든단호박’은 광천 인터체인지에서 벗어나 광천 읍내와 반대쪽인 천북면으로 방향을 잡는다. 천북지서 지나 3km 남짓 더 가면 오른쪽 길가에 자리잡고 있다. ★ 추천 2 : 황홀한 억새꽃 축제와 평강식물원 구름 위를 걷는 것일까, 은빛 융단을 밟고 있는 것일까? 경기도 포천과 강원도 철원에 걸쳐져 있는 명성산(922.6m) 능선을 따라 오르다보면 그런 착각을 하게 된다. 6만여 평의 드넓은 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은빛 억새밭은 황홀하고도 눈부시다. 태봉국을 세운 궁예가 망국의 슬픔을 통곡하자 산도 따라 울었다는 전설이 있는 이곳은, 산자락에 산정호수를 끼고 있어 등산과 호수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전국 5대 억새 군락지로 손꼽히는 명성산 정상에 오르면 끝없이 펼쳐지는 은빛 억새밭의 장관이 말문을 막는다. 특히 산 아래 산정호수의 잔잔한 물빛과 드넓게 펼쳐진 은빛 억새밭이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를 방불케 한다. 바람이 불 때면 마치 산이 살아 움직이듯 넘실거리는 은빛 물결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곳에서 매년 가을이면 산정호수 명성산 억새꽃 축제가 열린다.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축제는 오는 10월 12일(목)~15일(목)까지 4일간 열린다. 축제 기간 동안에 명성산 등반대회를 비롯해 산정호수 상동에 설치된 야외무대에서 초청 공연과 풍물놀이, 난타 등 다양한 문화 공연들이 관광객들의 흥을 돕는다. 이곳에 최근 새롭게 떠오르는 명소가 있다. 지난 5월 문을 연 동양 최대 생태식물원인 평강식물원이 바로 그곳. 꽃보다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을 한눈에 보여주는 평강식물원의 가을은 가슴 저 밑바닥으로 번져오는 감동을 체험할 수 있다. 포천시 영북면 우물목 마을에 위치한 평강식물원은 18만 평의 공간에 4,500여 종의 다양한 식물을 보유하고 있다. 7년 동안 준비한 정성이 곳곳에 배어 있는 이곳은 철저하게 식물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식물원이다. 식물들에게 그들의 고향을 찾아준 셈이다. 평강식물원은 이곳을 처음 찾는 이들에게도 고향처럼 편안하고 익숙한 느낌을 준다. 해발 300m의 고원 분지인 공간은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하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12개의 테마 가든이 저마다의 개성을 자랑하며 멋을 간직하고 있다. 고지대 습한 땅에서 자라는 희귀식물들을 볼 수 있는 고층습지와 세계 각처의 진기한 습지식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고산습원이 있다. 어른들에게는 그 옛날 뛰놀던 뒷동산을 보는 듯한 아름다운 들꽃동산은 야생화들이 자연스럽게 얽히고 설켜 피고지고를 반복하면서 사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바위와 돌 틈을 뚫고 자라나는 식물의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암석원은 백두산, 한라산, 로키산맥, 히말라야, 알프스 지역에서 자생하는 희귀고산식물을 모두 볼 수 있다. 크고 작은 연못을 조성해 물에서 피는 수생식물과 다양한 꽃을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연못정원은 한동안 발걸음을 움켜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문의 031-531-7751) * 맛있는 집| 억새꽃 축제가 열리는 동안에는 포천 특산물과 별미를 맛볼 수 있는 웰빙 먹거리촌이 형성된다. 평소에도 산정호수 주변, 이동의 갈비촌, 파주골 순두부촌, 신북 오리촌 등등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일 만큼 소문난 별미가 줄을 잇는 곳이다. 평강식물원 내에 위치한 레스토랑 ‘엘름’에서는 식물원에서 재배한 채소를 사용해 약선 비빔밥과 산채육개장, 평강약계탕 등 몸에 좋은 약선 요리들을 선보이고 있다. 특급요리라고 할 수 있는 이 요리들은 일류 호텔 출신 주방장이 직접 개발해 찾는 이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 가는 요령| 동부간선도로가 가까운 경우 의정부 방향으로 진입하고, 장흥이 가깝다면 동두천 방향에서 진입하는 게 빠르다. 의정부에서 국도 43번을 타고 포천, 철원 방향으로 향하다가 성동 삼거리에서 직진해 운천 제1교차로→문암 삼거리에서 우회전한다. 한화콘도를 지나 산정호수 매표소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정수식당이 보인다. 식당을 끼고 우회전해 조금 가면 평강식물원 주차장이다. 혹은 성동 삼거리에서 우회전하거나 국도 47번을 타고 수입교차로에서 산정호수 방향으로 접어든다. 산정호수 매표소를 지나 오른쪽으로는 명성산,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평강식물원이다. ★ 추천 3 : 묵향 가득한 추사 고택 바람이 불 때마다 은행잎이 우수수 우수수 비처럼 날린다. 충남 예산군 신암면에 위치한 추사 고택은 온통 가을 속에 서 있다. 수묵빛 고택과 어우러진 황홀한 가을빛은 잘 그린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황금비를 내리는 은행나무와 붉은 단풍나무, 토담 아래로 수북수북 쌓인 낙엽들, 뒤뜰 감나무엔 주홍빛 감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그림처럼 매달렸다. 만추란 바로 이런 모습임을 절감케 하는 풍경이다. 조선조 헌종 때의 문신이었던 김정희(1786~1856)는 실사구시의 실학을 전개했던 선각자로 벼슬이 대사성, 이조참판에까지 이르렀다. 고증학 금석학에 밝았고 추사체를 완성한 서법의 대가이다. 추사 고택은 추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진이 건립한 것으로, 18세기 중엽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 동안 추사의 후손이 거처했으나 1968년 타인에게 매도되는 것을 충청남도에서 매수했다. 76년 1월 9일 지방문화재 제43호로 지정하고 그해 9월 유적정화사업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고택은 모두 80.5평으로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사당채가 있다. 안채는 6간 대청과 2간통의 안방, 건넛방이 있고, 안방 및 건넛방의 부엌, 안대문, 협문, 광 등을 갖춘 입구(口)자형의 집이다. 안방과 건넛방 밖에는 각각 툇마루가 있고 부엌 천장은 다락으로 되었다. 안방과 건넛방 사이에 있는 대청은 6간으로 그리 흔하지 않는 규모이다. 이런 입구(口)자형 가옥은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이른바 대갓집형이다. 특히 바깥 솟을대문을 지나 자리잡은 ‘ㄱ’자형 사랑채에는 추사 선생의 유품이 남아 있어 당대의 명필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사랑채는 남쪽에 한 칸, 동쪽에 두 칸의 온돌방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대청과 마루로 되었다. 사랑채 댓돌 앞에 석년(石年)이라 각자된 석주가 세워져 있는데 이 석주는 그림자를 이용해 시간을 측정했던 해시계이다. 옛 대갓집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추사 고택 외에도 이곳에는 추사묘, 추사의 증조모인 화순옹주묘, 천연기념물 제106호인 ‘예산의 백송’과 추사가 수도했던 절 화암사가 근처에 있다. 화암사에는 추사의 친필 편액이 남아 있다. 추사의 묘는 고택 남쪽에 잘 가꿔져 있다. 근처에 증조모인 화순옹주(영조의 2녀)의 묘와 열녀문도 있다. 화순옹주 열녀문인 홍문에서 북쪽으로 400m 가면 영의정을 지낸 고조부 김흥경의 무덤과 그 앞에 보물 제106호로 지정된 희귀종 백송이 서 있다. 백송은 중국 북부 지방이 원산지로 우리 나라에 몇 그루 없는 희귀한 수종이다. 이곳의 백송은 추사 선생이 25세 때 청나라 연경에서 돌아올 때 백송의 종자를 붓대 속에 넣어 가지고 와 고조부 김흥경의 묘 입구에 심었다고 한다. 원래는 밑에서 50cm부터 세 줄기로 자라다가 서쪽과 중앙의 두 줄기는 부러져 없어지고 동쪽의 줄기만이 남아서 자라고 있다. 1980년에 줄기의 피해 부분을 외과 수술하여 치유하였고, 그 후부터는 철저하게 보호, 관리하고 있다. * 맛있는 집| 예산 읍내로 나가면 별미집이 기다리고 있다. 50여 년 동안 갈비를 구워온 유명한 소복갈비집(041-335-2401)이 바로 그곳. 여느 갈비집과 달리 큰 석쇠에 갈비를 통째로 얹어 구운 후 뜨겁게 달군 돌판에 담아 먹는 집이다. 50년 농익은 손맛이 색다른 갈비 맛을 보여준다. 또한 자연산 생굴을 국물과 조리한 굴탕을 자랑한다. * 가는 요령| ①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경우 서해안고속도로 해미 인터체인지에서 빠져나와 국도 45번을 타고 예산읍으로 향한다. 예산읍에서 21번 국도(외곽도로)를 타고 구충방 앞 사거리에서 우회전, 32번 국도(합덕 방면)-고택주유소를 지나서 좌회전하면 추사 고택 주차장이다. ② 경부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경우 경부고속도로 천안 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가 우회도로를 타고 온양 → 국도 21번을 타고 17km 가면 신례원역 앞 삼거리. 우회전해 국도 32번으로 옮겨 타고 두곡리 삼거리까지 가면 왼쪽으로 추사 고택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을 따라 얼마쯤 들어가면 추사 고택 주차장이다. 글 사진 김혜숙 여행 칼럼니스트     월간 <삶과꿈> 2006.11 구독문의:02-319-3791
  • 투기는 불로소득… 거래차익 환수책 필요

    이번이 마지막이다. 정부는 부동산 추가 대책 발표를 앞두고 어떤 내용을 담을지 고민이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눈과 귀도 온통 정부 대책에 쏠려 있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듯이 내놓는 정책보다는 투기의 뿌리를 잘라낼 수 있는 근본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책이 효과를 거두려면 원활한 공급과 거래 활성화를 유도하고, 투기성 거래를 철저히 가려내 제재하는 맞춤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은행돈으로 집사서 배 불리기 투기 잡아야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13일 “투기의 뿌리가 무엇인지 찾아내 이를 뽑아내는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단순 물량 공급이나 타깃(목표)이 없는 무차별적인 투기단속만으로는 집값 안정을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투기의 요체는 단기간에 걸친 시세차익(불로소득)이다. 따라서 ‘투기성 거래’에 대한 기준을 정한 뒤, 거래 차익 중 상당부분을 세금으로 환수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투기성이 짙은 단타 거래, 다주택보유자의 집 사재기. 거래 횟수가 많은 사람에게는 양도차익을 사실상 모두 거둬들이는 과감한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투기성 거래에 대한 기준은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지지받는다. 금융제재도 투기성 거래 여부를 따져서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김태호 부동산랜드 사장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제한 등은 자칫 실수요자인 일반 서민들만 피해를 준다.”며 “1가구 2주택 이상 주택 거래나 단타 거래 경험이 있는 수요자에게는 주택마련 대출을 제재하는 조치가 따라야 손쉽게 은행 돈으로 집을 사서 배 불리는 투기심리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개발과정의 투명성 확보 아파트 고분양가 논란은 개발 과정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아 생기는 문제다. 장희순 강원대 교수는 “개발사업의 모든 과정을 유리알 보듯이 점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개발이익의 귀속 주체를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 체제도 필요하다. 주택개발사업이 투명해지면 시행자와 건설사 중 누가 이익을 가져가는지 드러난다. 그런 다음 개발이익에 대한 정당한 세금을 물려야 한다. 운 좋아 싼 분양가로 아파트를 당첨돼 불로소득을 챙기는 사람에게도 사전에 이를 막을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김홍배 대한주택건설협회 부회장은 “시장가는 비싼데 무조건 원가에 맞춰 공급하라는 요구는 무리”라면서 “사업시행자나 건설사의 이윤은 충분히 보장하되 사업 이익에 대한 적정한 세금 환수가 이뤄지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정부위원회 위원후보 부패전력 조회 의무화

    앞으로 정부 위원회의 위원 후보는 부패전력 조회가 의무화되고, 불법행위를 하면 공무원에 준해 처벌된다. 정부는 9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제8차 반부패관계기관협의회를 열어 이런 내용의 ‘각종 위원회 운영의 공정성·투명성 제고방안’을 마련했다. 국가청렴위원회는 이날 정부의 각종 심의·의결위원회가 실질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데도 각종 비리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부패전력이 있는 인사가 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하지만 위촉된 뒤에도 부패에 연루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청렴위는 위원들의 장기 연임·중복 위촉을 제한하는 장치를 마련해 다양한 우수인력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위원이나 감독기관의 권한 남용을 통제하기 위해 제척, 기피, 회피제도를 도입하고, 지방의원의 위원회 참여는 배제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한국 부패지수 2단계 하락

    정부와 정치권의 부패 수준이 좀체 개선되지 않고 있다. 반부패 국제 비정부기구(NGO)인 국제투명성기구(TI) 한국본부는 6일 한국의 2006년도 부패인식지수(CPI)가 지난해보다 0.1점 상승한 5.1점(10점 만점)이라고 밝혔다. 점수가 높을수록 부패 정도가 낮다는 뜻이다. 그러나 전체 조사대상인 163개국 중 42위에 그쳐 40위(조사대상 159개국)였던 지난해보다 오히려 2계단 떨어졌다. 부패인식지수는 공무원과 정치인들 사이에 부패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지에 대한 인식 정도를 점수화한 것으로, 세계경제포럼(WEF) 등 9개 기관이 다국적 기업 관계자와 각국 기업인, 국가 애널리스트 등을 상대로 조사한 12개의 자료를 토대로 산출한다. 핀란드와 아이슬란드, 뉴질랜드가 각각 9.6점으로 공동 1위에 올랐고 아시아 국가 중 싱가포르(9.4점·5위), 홍콩(8.3점·15위), 일본(7.6점·17위), 마카오(6.6점·26위)가 우리나라보다 좋은 점수를 받았다. TI 한국본부는 “지난 몇 년간 사회 고위층 인사들의 부패가 끊이지 않았던 까닭에 국민의 부정적 인식이 개선되지 않았다.”면서 “정부가 부패 전담 특별수사기구 설치를 통해 사회지도층의 부패에 엄격한 법 집행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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