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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네마천국]23일 개봉 ‘돌려차기’

    23일 개봉하는 ‘돌려차기’(제작 씨네2000) 제작사는 이 영화를 홍보하면서 “한국영화에서 한번도 다뤄진 적이 없는 청춘 스포츠물”이라는 문구를 내걸었다.하지만 ‘슬램덩크’부터 ‘으랏차차 스모부’까지 일본만화와 영화에서 수없이 다뤄졌던 설정을 그대로 따왔다는 사실은 왜 숨겼을까. 그래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억지 웃음보다는 정공법으로 드라마를 끌어가기에,완성도는 최근 줄지어 나온 10대 타깃의 다른 청춘물보다 나은 편이다.스포츠 드라마 특유의 긴박감과,다양한 캐릭터들이 주는 웃음,10대들의 성장통에 초점을 맞춘 감동이 적당히 공존하는 것도 영화의 미덕이다. 전통을 자랑했던 만세고 태권도부는 주장 민규(현빈)를 제외하고는 변변한 선수 하나 없는 삼류팀으로 전락한 지 오래.어느날 하굣길 만원 버스에서 만세고 주먹대장 용객(김동완) 일당은 태권도부와 패싸움을 벌이고 유치장에 끌려가게 된다.태권도부의 부활을 꿈꾸는 교장은 용객 일당이 태권도부에 가입해 예선전만 통과한다면 퇴학을 면하게 해주겠다는 묘책을 짜는데…. 초반부의 얼개는 좀 엉성하다.별 이유 없이 과격한 액션신에 힘을 준 것도 그렇고,학교에 미련 없이 말썽만 부리던 ‘녀석들’이 퇴학을 빌미로 태권도부에 들어간다는 설정도 설득력이 약하다.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캐릭터간의 대립에 살이 붙고,문제아들이 ‘뭔가 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괜찮은 성장드라마로 발전하는 것. 화려한 스타 한 명 없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만만찮다.그룹 신화 출신의 김동완은 가수라는 꼬리표를 떼기에 충분하다.“여기서 그만두면 평생동안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며 울컥하는 감정을 연기하는 그의 표정에는 진실함이 묻어있다.‘깐죽대기’가 주특기지만 묵직한 남자 정대 역의 김태현의 연기도 탄탄하다. 여전히 아쉬운 건 드라마의 강약을 잘 살리지 못했다는 점.태권도 경기라는 액션신이 갖는 긴박감은 있지만,매 경기 고비를 넘겨 한 단계씩 올라가며 더 어려운 상대와 대결하는 묘미는 거의 없다.또 스포츠부에 양념처럼 여학생 부원이 들어있고,경기중 한 명이 퇴장당하자 어리버리한 후보생이 정식선수가 되는 등 거의 공식화된 일본 스포츠물을 그대로 베꼈으면서도 더 재미있게 만들지 못한 연출력의 한계가 노출된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시네마천국]23일 개봉 ‘돌려차기’

    23일 개봉하는 ‘돌려차기’(제작 씨네2000) 제작사는 이 영화를 홍보하면서 “한국영화에서 한번도 다뤄진 적이 없는 청춘 스포츠물”이라는 문구를 내걸었다.하지만 ‘슬램덩크’부터 ‘으랏차차 스모부’까지 일본만화와 영화에서 수없이 다뤄졌던 설정을 그대로 따왔다는 사실은 왜 숨겼을까. 그래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억지 웃음보다는 정공법으로 드라마를 끌어가기에,완성도는 최근 줄지어 나온 10대 타깃의 다른 청춘물보다 나은 편이다.스포츠 드라마 특유의 긴박감과,다양한 캐릭터들이 주는 웃음,10대들의 성장통에 초점을 맞춘 감동이 적당히 공존하는 것도 영화의 미덕이다. 전통을 자랑했던 만세고 태권도부는 주장 민규(현빈)를 제외하고는 변변한 선수 하나 없는 삼류팀으로 전락한 지 오래.어느날 하굣길 만원 버스에서 만세고 주먹대장 용객(김동완) 일당은 태권도부와 패싸움을 벌이고 유치장에 끌려가게 된다.태권도부의 부활을 꿈꾸는 교장은 용객 일당이 태권도부에 가입해 예선전만 통과한다면 퇴학을 면하게 해주겠다는 묘책을 짜는데…. 초반부의 얼개는 좀 엉성하다.별 이유 없이 과격한 액션신에 힘을 준 것도 그렇고,학교에 미련 없이 말썽만 부리던 ‘녀석들’이 퇴학을 빌미로 태권도부에 들어간다는 설정도 설득력이 약하다.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캐릭터간의 대립에 살이 붙고,문제아들이 ‘뭔가 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괜찮은 성장드라마로 발전하는 것. 화려한 스타 한 명 없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만만찮다.그룹 신화 출신의 김동완은 가수라는 꼬리표를 떼기에 충분하다.“여기서 그만두면 평생동안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며 울컥하는 감정을 연기하는 그의 표정에는 진실함이 묻어있다.‘깐죽대기’가 주특기지만 묵직한 남자 정대 역의 김태현의 연기도 탄탄하다. 여전히 아쉬운 건 드라마의 강약을 잘 살리지 못했다는 점.태권도 경기라는 액션신이 갖는 긴박감은 있지만,매 경기 고비를 넘겨 한 단계씩 올라가며 더 어려운 상대와 대결하는 묘미는 거의 없다.또 스포츠부에 양념처럼 여학생 부원이 들어있고,경기중 한 명이 퇴장당하자 어리버리한 후보생이 정식선수가 되는 등 거의 공식화된 일본 스포츠물을 그대로 베꼈으면서도 더 재미있게 만들지 못한 연출력의 한계가 노출된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마니아]조기축구 뒷얘기

    이날 두 경기 모두 동점이 되자 더욱 치열해진 한판 승부를 반영하듯 경기장 안팎 곳곳에서 작은 실랑이가 이어지더니 관중들과 선수·심판이 그라운드에 뒤엉키는 일까지 벌어졌다.‘중랑-용산’ 경기가 막바지로 치달은 오후 4시15분쯤 본부석 맞은 편 코너킥 라인 근처 모서리에서 드로인 과정에 시비가 불거졌다. 워낙 많은 경기를 치르다 보니 에피소드도 쏟아진다.서울시내 544명의 생활체육 축구 ‘포청천’을 대표하는 이희성(44) 심판부장은 “지난 4월 심판을 보는 데 경고를 준다는 게 순간 착각으로 빨간 카드를 빼들어 혼난 적이 있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힘차게 왼손을 뻗어 반칙한 선수에게 카드를 내보였는데 “어떻게 퇴장이냐.”는 말을 얼핏 들었단다.“얼른 확인해 오른손을 높이 흔들어 보인 뒤 노란 카드를 다시 꺼내들고 즉각 사과까지 해 진정시켰다.”며 “지금 생각해도 진땀 나는 장면”이라고 되돌아봤다. 이기영(61) 서울시 축구연합회 사무처장은 “지금은 학창시절 유니폼을 입었던 선수 출신이 엄청 늘어나면서 경기력 향상과 함께 매너도 좋아지는 ‘개발도상’ 단계쯤 된다.”면서 “그럴듯한 연습장을 갖추는 등 면모를 달리해 가면서 규칙도 제도화하는 대전환기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AFC 아시안컵] 본프레레호 공식데뷔전

    ‘본프레레호’가 공식 데뷔전부터 불안하게 출발했다.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9일 중국 지난 산둥스포츠센터스타디움에서 열린 2004아시안컵축구선수권 조별리그 B조 첫 경기에서 중동의 신흥 강호 요르단과 득점없이 비겼다. 이날 무승부로 1·2회 대회(56·60년) 이후 44년만의 정상 탈환을 노리는 한국은 남은 조별리그 2경기에 큰 부담을 갖게 됐다.한국은 오는 23일 아랍에미리트연합과 조별리그 2차전을,27일에는 쿠웨이트와 마지막 경기를 갖는다.이번 대회에는 16개국이 4개조로 나눠 조별리그를 치른 뒤 조 2위까지 8강에 진출하며,이후 토너먼트로 우승팀을 가린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2차례의 평가전에서 1승1무를 기록한 본프레레 감독은 첫 공식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각오를 보였지만 한국대표팀의 국제대회 첫 경기 징크스에 울어야 했다. 한국은 이날 이동국과 안정환을 투톱으로 세워 초반부터 강하게 요르단을 몰아붙였다.그러나 초반 골 사냥에 실패하자 서서히 요르단의 공격이 살아났다.역습이 더욱 거세지면서 일진일퇴의 공방전 양상이 돼 갔다. 요르단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40위로 한국(20위)보다 낮았지만 평균연령 23세의 ‘젊은 팀’답게 지칠줄 모르는 체력과 패기로 한국에 맞섰다.수비를 탄탄하게 구축하면서 공격시에는 수비 2명 만을 남기고 전원 공격에 가담하는 적극성도 보였다.지난해 11월과 지난달 중동의 강호 이란을 연파한 것이 운이 아님을 여실히 증명해 보였다.그리고 한국의 공격루트를 정확하게 파악,중간에서 공을 가로채는 등 사전에 철저한 분석과 준비를 한 것으로 보였다. 이에 견줘 한국은 요르단의 빠른 공수전환에 애를 먹었다.여기에 게임메이커 박지성의 부상 결장이 뼈아팠다.박지성 대신 출전한 정경호는 상대 수비의 밀집수비에 막혀 좀처럼 찬스를 만들지 못했다.후반 차두리를 교체 투입돼 공격의 활로를 되찾는 듯 했지만 역시 골사냥에는 실패했다.더구나 후반 38 최진철이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하자 조직력이 급격하게 무너졌고 이후 여러차례 실점 위기를 맞는 등 전체적으로 불안감을 드러냈다. 수비에서도 허점이 보였다.본프레레 감독은 한국선수들에게 익숙한 스리백을 들고나왔다.그러나 좌우측 측면에서 자주 상대공격수들에게 공간을 내줘 위협적인 문전 센터링을 허용했다.이에 따라 다음 경기부턴 공수에서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한편 같은 조의 쿠웨이트는 UAE를 3-1로 꺾고 조 선두에 올랐다. 박준석 홍지민기자 pjs@seoul.co.kr
  • [마니아]조기축구 뒷얘기

    [마니아]조기축구 뒷얘기

    이날 두 경기 모두 동점이 되자 더욱 치열해진 한판 승부를 반영하듯 경기장 안팎 곳곳에서 작은 실랑이가 이어지더니 관중들과 선수·심판이 그라운드에 뒤엉키는 일까지 벌어졌다.‘중랑-용산’ 경기가 막바지로 치달은 오후 4시15분쯤 본부석 맞은 편 코너킥 라인 근처 모서리에서 드로인 과정에 시비가 불거졌다. 워낙 많은 경기를 치르다 보니 에피소드도 쏟아진다.서울시내 544명의 생활체육 축구 ‘포청천’을 대표하는 이희성(44) 심판부장은 “지난 4월 심판을 보는 데 경고를 준다는 게 순간 착각으로 빨간 카드를 빼들어 혼난 적이 있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힘차게 왼손을 뻗어 반칙한 선수에게 카드를 내보였는데 “어떻게 퇴장이냐.”는 말을 얼핏 들었단다.“얼른 확인해 오른손을 높이 흔들어 보인 뒤 노란 카드를 다시 꺼내들고 즉각 사과까지 해 진정시켰다.”며 “지금 생각해도 진땀 나는 장면”이라고 되돌아봤다. 이기영(61) 서울시 축구연합회 사무처장은 “지금은 학창시절 유니폼을 입었던 선수 출신이 엄청 늘어나면서 경기력 향상과 함께 매너도 좋아지는 ‘개발도상’ 단계쯤 된다.”면서 “그럴듯한 연습장을 갖추는 등 면모를 달리해 가면서 규칙도 제도화하는 대전환기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코파 아메리카] 아르헨-콜롬비아, 4강서 만나네

    ‘남미의 자존심’ 아르헨티나와 디펜딩챔피언 콜롬비아가 4강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됐다. 아르헨티나는 콜롬비아와의 상대 전적에서 14승5무7패로 앞서지만 지난 1999년 코파 아메리카 조별리그에서는 0-3으로 완패했다.지난달 미국 초청대회에서도 0-2로 졌다.두 팀은 오는 21일 리마에서 결승행 티켓을 놓고 다툰다. 아르헨티나는 18일 페루 치클라요 엘리아스아귀레 스타디움에서 열린 코파 아메리카 8강전에서 ‘조커’ 카를로스 테베스(20·보카 주니어스)가 교체투입된 지 3분 만에 프리킥 결승골을 터뜨려 개최국 페루를 1-0으로 울리고 4강에 올랐다.역대 전적에서도 26승10무5패의 우위를 이어갔다. 전반은 느슨했다.아르헨티나가 공 점유율에서는 앞섰지만 2만 5000여명의 홈팬 응원을 업은 페루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전반 서너차례의 찬스가 골로 연결되지 않자 아르헨티나의 마르셀로 비엘사(48) 감독은 후반 13분 미드필더 안드레스 디알레산드로(23·볼스프부르고) 대신 지난해 남미 ‘올해의 선수’ 테베스를 투입했다.‘젊은 피’ 테베스는 3분 뒤 페루의 왼쪽 골문을 가르는 멋진 프리킥을 성공시키며 비엘사 감독의 선택에 화답했다. 4분 뒤 페루도 프리킥 기회를 맞았으나 놀베르토 솔라노(34·아스톤 빌라)의 슛이 크로스바를 맞는 불운을 겪었다.페루는 골잡이 제퍼슨 파르팬(24·PSV 에인트호벤) 등 3명이 부상과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아르헨티나는 ‘포스트 마라도나’ 하비에르 사비올라(23·FC 바르셀로나)가 다리 근육 부상으로 2경기째 벤치를 지켰고,주장이자 수비의 핵 로베르토 아얄라(31·발렌시아)가 이날 경고 누적으로 퇴장,4강전에 출전할 수 없어 부담을 안게 됐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하프타임] 김호곤호 모로코와 0­0 무승부

    올림픽 사상 첫 메달에 도전하는 한국 올림픽축구대표팀이 16일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열린 본선 진출국 모로코와의 경기에서 전반 22분 스트라이커 조재진(23·시미즈 펄스)이 퇴장당해 10명이 싸우는 수적 열세 속에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이로써 ‘김호곤호’는 유럽 전지훈련 동안 연습경기 등을 포함해 1승2무의 성적을 거뒀다.대표팀은 17일 귀국한 뒤 오는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일본과 평가전을 치른다.
  • [차이나 리포트 2004] (3)경제를 보는 두 시각

    [차이나 리포트 2004] (3)경제를 보는 두 시각

    중국은 논쟁의 나라다.역사적으로 수많은 논쟁이 있어왔으며 근대화 과정에서도 마르크스주의자와 자본주의자들간의 논쟁이 치열했다.마르크스주의자들이 퇴장한 지금 또 하나의 논쟁이 불 붙고 있다.아직은 서구 자본주의로 무장한 학자들간의 논쟁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그러나 ‘중화민족’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이 태동하는 조짐도 보인다.역사학계의 ‘동북공정론’과 국제정치학계의 ‘다극화론’은 ‘중화민족주의’의 반영이다.경제학계의 ‘긴축 논쟁’도 그 뿌리는 이런 이데올로기와 맞닿아 있다. 중국 정부는 과거 중요한 고비가 있을 때마다 학자들간에 논쟁을 유도했고 논쟁에서 정리된 결론들을 정책에 반영했다.이번 긴축 논쟁은 향후 중국정부의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에도 지난 2001년 주식시장 논쟁과 마찬가지로 국무원발전연구중심의 우징롄(吳敬璉)과 베이징대학의 리이닝(勵以寧) 교수가 양팀의 주장을 맡고 있다.이들은 모두 덩샤오핑(鄧小平)사단의 개혁파 그룹에 속하며 중국 경제학계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논쟁의 핵심은 긴축의 강도와 정부의 시장개입 여부다.지난 2001년의 주식시장 논쟁에서는 중국 정부가 우징롄의 입장을 지지함으로써 우징롄이 판정승을 거둔 바 있다. ●긴축을 지지하는 관방학자들 중국정부의 긴축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곳은 정부 연구기관인 국무원발전연구중심과 사회과학원이다.사회과학원의 판강(樊綱)은 “중국경제가 이미 감당하기 벅찰 정도의 경기과열로 들어섰으므로 정부가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그는 철강,에너지 등 일부 원부자재의 병목현상이 너무 심각하므로 현재의 투자과열을 진정시켜야만 물가상승 압력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징롄은 판강과 같이 정부의 시장개입에 동의하면서도 물가상승보다는 부동산,주식시장의 거품을 더 우려하고 있다.이들은 모두 “정부가 경기과열을 계속 방치하면 심각한 시장주의의 오류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학계는 정부의 시장개입에 비판적 반면,상당수의 학자들이 이번에 정부가 시장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있다고 생각하며,겨우 걸음마 단계에 있는 중국의 시장기능이 긴축 조치로 다시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한다.리이닝 베이징대 교수는 현재의 중국경제 상황을 ‘정상적인 경기순환의 과정’이라고 표현했다.중국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경기침체이지 경기과열이 아니라는 것이다. 젊은 해외유학파의 대표주자격인 후쭈류(胡祖六) 골드만삭스 중국 지사장 역시 “개도국인 중국경제가 9∼10% 성장을 하는 것은 당연하며,현재 중국경제는 결코 과열상태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다만 현재의 부동산시장과 자동차산업은 문제가 있으므로 이들 산업에 대해서는 정부의 선별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홍콩대학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는 장우창(張五尙) 교수도 “현재의 상황을 결코 통화팽창이라고 볼 수 없다.”며 정부의 직접적인 시장개입을 반대하고 있다. ●정부 부처간에도 입장 달라 경제부처들도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통화관리 주무부처인 중국인민은행은 현재 통화팽창 압력이 있으므로 이를 해소할 정부의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국가발전개혁위원회(한국의 재정경제부)와 국가통계국은 약간 다른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국가통계국은 최근의 소비자 물가상승 추세가 지속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지나친 통화긴축이 기업에 어려움을 줘 경기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국가발전개혁위원회 산하의 거시경제연구원도 현재 거시경제지표들이 합리적인 수준내에 있으므로 지나친 긴축은 필요치 않다는 시각이다. 정부 안팎에서 이처럼 경제상황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과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어 당분간 중국정부가 초강력 긴축 수단을 동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금리 인상을 하더라도 그 폭은 소폭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베이징 이문형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mhlee@kiet.re.kr ■ 경제 움직이는 싱크탱크들 중국의 대표적 싱크탱크로 국무원발전연구중심(DRC)을 들 수 있다.1981년 경제개혁을 담당할 인재와 정책수단을 개발하기 위해 국무원 산하에 독립된 기관으로 설립하였다.기관장은 장관급으로 책정되어 있다.자오쯔양(趙子陽) 전총서기의 브레인이었던 마홍이 장기간 주임으로 있었으며 현재는 왕멍쿠이(王夢奎)가 주임으로 있다. 성장,고용,지역발전,농촌,산업,국제경영 등 경제 전반에 걸쳐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중국 개혁정책 성공의 최대 공로자중 하나이다.전체 연구원 직원은 700여명,그중에서도 박사급 연구원은 200여명이며 대표적 연구원으로 우징롄(吳敬璉)을 들 수 있다. 또 다른 국무원 산하 학술기관으로 사회과학원이 있다.국무원발전연구중심이 정책수단 개발을 주 임무로 맡고 있는 반면,사회과학원은 이데올로기 개발을 주 임무로 하고 있다.최근 국내에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동북공정의 주역들이 사회과학원 소속 연구원들이다.대표적 경제학자로 초창기 개혁멤버중 하나인 류궈광(劉國光)을 들 수 있다. 중국은 각 부처별로 정책연구를 보좌하는 연구기관들을 내부에 두거나 또는 외부 독립기관으로 두고 있다.대표적 연구기관으로 중국 핵심 경제부처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거시경제연구원,상무부의 국제무역경제합작연구원(1997년 설립),중국인민은행 산하의 금융연구소(1956년 설립) 등을 들 수 있다. 1990년대 들어와 미국 등 해외에서 유학한 고급 두뇌들이 대학으로 들어오면서 대학의 정책연구기능도 크게 활성화되고 있다.베이징대학 중국경제연구중심과 칭화대학 경제연구중심 등이 대표적 대학 부설 연구기관들이다.베이징대 중국경제연구중심은 1994년 설립되었으며 리이닝,리이푸(林毅夫) 등이 대표적 학자이다. ■ 경제학계 주류·비주류 중국 경제학계의 주류는 극좌인 마오쩌둥 사상을 버리고 극우인 자본주의 경제학으로 무장하고 있다.지난 20여년간 개혁정책으로 인해 상하이에 천지개벽이 일어났듯 경제학계에도 버금가는 변화가 생긴 것이다. ●정부개입 최소화를 주장하는 주류 학자들 중국의 주류 경제학자들,이들은 연령층으로는 개혁 초창기 세대인 70대와해외유학파인 30대가 주력을 이루고 있다.중국내 정부나 기업 등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40대와 50대 연령층이 없다.1960년대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문을 닫음으로써 이 기간에 학교를 다녀야 했던 40대와 50대가 정규 교육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국무원발전연구중심 등 개혁후 새로 설립되어 보수가 좋은 정부 연구기관이나 대학,증권기관 등에서 근무하고 있다.개혁정책의 이론을 제시하고 구체적 정책수단들을 개발하고 있다. 실제 개혁정책을 만들고 그리고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중국내 신흥 화이트 칼라층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공평보다는 효율을 주장하며,정부의 개입보다는 시장기능을 중시한다.규범경제학보다는 실증경제학을 선호하고 국제무역에 있어서는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신봉하고 있다. 소유제에 있어서는 사유제의 도입을 적극 주장하고 있으며,국유기업의 ‘철밥통 근로자’들을 ‘노동귀족’으로 간주하며 철저한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서구 경제학 남용에 반대하는 비주류 학자들 대표적 비주류 경제학자로는 쭤다페이(左大培,사회과학원),리우리췬(劉力群,국무원발전연구중심),양빈(揚斌,廈門大) 등을 꼽을 수 있다.이들은 서구식 자본주의 경제학의 지나친 남용과 재벌 학자들의 부패를 반박하면서 ‘경제학 정화론’을 주장하고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 지금은 상당한 세력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최근 다시 대두되고 있는 중화사상과 개혁정책의 부작용에 따른 사회적 불만을 배경으로 생겨난 학파이다. 이들은 신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며 정부의 시장개입을 옹호하고,보호주의와 산업구조 고도화 정책을 지지한다.다국적기업과의 협력에는 원천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인식하고 민족기업을 적극 지지한다. 대체로 50대 전후의 세대로 민족관이 뚜렷하다.노동자와 농민을 지지기반으로 삼아야 하며 민생주의에 입각한 지역간,계층간 소득격차를 해소하는 데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문형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mhlee@kiet.re.kr
  • [차이나 리포트 2004] (3)경제를 보는 두 시각

    중국은 논쟁의 나라다.역사적으로 수많은 논쟁이 있어왔으며 근대화 과정에서도 마르크스주의자와 자본주의자들간의 논쟁이 치열했다.마르크스주의자들이 퇴장한 지금 또 하나의 논쟁이 불 붙고 있다.아직은 서구 자본주의로 무장한 학자들간의 논쟁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그러나 ‘중화민족’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이 태동하는 조짐도 보인다.역사학계의 ‘동북공정론’과 국제정치학계의 ‘다극화론’은 ‘중화민족주의’의 반영이다.경제학계의 ‘긴축 논쟁’도 그 뿌리는 이런 이데올로기와 맞닿아 있다. 중국 정부는 과거 중요한 고비가 있을 때마다 학자들간에 논쟁을 유도했고 논쟁에서 정리된 결론들을 정책에 반영했다.이번 긴축 논쟁은 향후 중국정부의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에도 지난 2001년 주식시장 논쟁과 마찬가지로 국무원발전연구중심의 우징롄(吳敬璉)과 베이징대학의 리이닝(勵以寧) 교수가 양팀의 주장을 맡고 있다.이들은 모두 덩샤오핑(鄧小平)사단의 개혁파 그룹에 속하며 중국 경제학계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논쟁의 핵심은 긴축의 강도와 정부의 시장개입 여부다.지난 2001년의 주식시장 논쟁에서는 중국 정부가 우징롄의 입장을 지지함으로써 우징롄이 판정승을 거둔 바 있다. ●긴축을 지지하는 관방학자들 중국정부의 긴축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곳은 정부 연구기관인 국무원발전연구중심과 사회과학원이다.사회과학원의 판강(樊綱)은 “중국경제가 이미 감당하기 벅찰 정도의 경기과열로 들어섰으므로 정부가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그는 철강,에너지 등 일부 원부자재의 병목현상이 너무 심각하므로 현재의 투자과열을 진정시켜야만 물가상승 압력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징롄은 판강과 같이 정부의 시장개입에 동의하면서도 물가상승보다는 부동산,주식시장의 거품을 더 우려하고 있다.이들은 모두 “정부가 경기과열을 계속 방치하면 심각한 시장주의의 오류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학계는 정부의 시장개입에 비판적 반면,상당수의 학자들이 이번에 정부가 시장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있다고 생각하며,겨우 걸음마 단계에 있는 중국의 시장기능이 긴축 조치로 다시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한다.리이닝 베이징대 교수는 현재의 중국경제 상황을 ‘정상적인 경기순환의 과정’이라고 표현했다.중국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경기침체이지 경기과열이 아니라는 것이다. 젊은 해외유학파의 대표주자격인 후쭈류(胡祖六) 골드만삭스 중국 지사장 역시 “개도국인 중국경제가 9∼10% 성장을 하는 것은 당연하며,현재 중국경제는 결코 과열상태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다만 현재의 부동산시장과 자동차산업은 문제가 있으므로 이들 산업에 대해서는 정부의 선별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홍콩대학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는 장우창(張五尙) 교수도 “현재의 상황을 결코 통화팽창이라고 볼 수 없다.”며 정부의 직접적인 시장개입을 반대하고 있다. ●정부 부처간에도 입장 달라 경제부처들도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통화관리 주무부처인 중국인민은행은 현재 통화팽창 압력이 있으므로 이를 해소할 정부의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국가발전개혁위원회(한국의 재정경제부)와 국가통계국은 약간 다른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국가통계국은 최근의 소비자 물가상승 추세가 지속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지나친 통화긴축이 기업에 어려움을 줘 경기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국가발전개혁위원회 산하의 거시경제연구원도 현재 거시경제지표들이 합리적인 수준내에 있으므로 지나친 긴축은 필요치 않다는 시각이다. 정부 안팎에서 이처럼 경제상황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과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어 당분간 중국정부가 초강력 긴축 수단을 동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금리 인상을 하더라도 그 폭은 소폭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베이징 이문형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mhlee@kiet.re.kr ■ 경제 움직이는 싱크탱크들 중국의 대표적 싱크탱크로 국무원발전연구중심(DRC)을 들 수 있다.1981년 경제개혁을 담당할 인재와 정책수단을 개발하기 위해 국무원 산하에 독립된 기관으로 설립하였다.기관장은 장관급으로 책정되어 있다.자오쯔양(趙子陽) 전총서기의 브레인이었던 마홍이 장기간 주임으로 있었으며 현재는 왕멍쿠이(王夢奎)가 주임으로 있다. 성장,고용,지역발전,농촌,산업,국제경영 등 경제 전반에 걸쳐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중국 개혁정책 성공의 최대 공로자중 하나이다.전체 연구원 직원은 700여명,그중에서도 박사급 연구원은 200여명이며 대표적 연구원으로 우징롄(吳敬璉)을 들 수 있다. 또 다른 국무원 산하 학술기관으로 사회과학원이 있다.국무원발전연구중심이 정책수단 개발을 주 임무로 맡고 있는 반면,사회과학원은 이데올로기 개발을 주 임무로 하고 있다.최근 국내에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동북공정의 주역들이 사회과학원 소속 연구원들이다.대표적 경제학자로 초창기 개혁멤버중 하나인 류궈광(劉國光)을 들 수 있다. 중국은 각 부처별로 정책연구를 보좌하는 연구기관들을 내부에 두거나 또는 외부 독립기관으로 두고 있다.대표적 연구기관으로 중국 핵심 경제부처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거시경제연구원,상무부의 국제무역경제합작연구원(1997년 설립),중국인민은행 산하의 금융연구소(1956년 설립) 등을 들 수 있다. 1990년대 들어와 미국 등 해외에서 유학한 고급 두뇌들이 대학으로 들어오면서 대학의 정책연구기능도 크게 활성화되고 있다.베이징대학 중국경제연구중심과 칭화대학 경제연구중심 등이 대표적 대학 부설 연구기관들이다.베이징대 중국경제연구중심은 1994년 설립되었으며 리이닝,리이푸(林毅夫) 등이 대표적 학자이다. ■ 경제학계 주류·비주류 중국 경제학계의 주류는 극좌인 마오쩌둥 사상을 버리고 극우인 자본주의 경제학으로 무장하고 있다.지난 20여년간 개혁정책으로 인해 상하이에 천지개벽이 일어났듯 경제학계에도 버금가는 변화가 생긴 것이다. ●정부개입 최소화를 주장하는 주류 학자들 중국의 주류 경제학자들,이들은 연령층으로는 개혁 초창기 세대인 70대와해외유학파인 30대가 주력을 이루고 있다.중국내 정부나 기업 등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40대와 50대 연령층이 없다.1960년대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문을 닫음으로써 이 기간에 학교를 다녀야 했던 40대와 50대가 정규 교육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국무원발전연구중심 등 개혁후 새로 설립되어 보수가 좋은 정부 연구기관이나 대학,증권기관 등에서 근무하고 있다.개혁정책의 이론을 제시하고 구체적 정책수단들을 개발하고 있다. 실제 개혁정책을 만들고 그리고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중국내 신흥 화이트 칼라층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공평보다는 효율을 주장하며,정부의 개입보다는 시장기능을 중시한다.규범경제학보다는 실증경제학을 선호하고 국제무역에 있어서는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신봉하고 있다. 소유제에 있어서는 사유제의 도입을 적극 주장하고 있으며,국유기업의 ‘철밥통 근로자’들을 ‘노동귀족’으로 간주하며 철저한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서구 경제학 남용에 반대하는 비주류 학자들 대표적 비주류 경제학자로는 쭤다페이(左大培,사회과학원),리우리췬(劉力群,국무원발전연구중심),양빈(揚斌,廈門大) 등을 꼽을 수 있다.이들은 서구식 자본주의 경제학의 지나친 남용과 재벌 학자들의 부패를 반박하면서 ‘경제학 정화론’을 주장하고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 지금은 상당한 세력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최근 다시 대두되고 있는 중화사상과 개혁정책의 부작용에 따른 사회적 불만을 배경으로 생겨난 학파이다. 이들은 신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며 정부의 시장개입을 옹호하고,보호주의와 산업구조 고도화 정책을 지지한다.다국적기업과의 협력에는 원천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인식하고 민족기업을 적극 지지한다. 대체로 50대 전후의 세대로 민족관이 뚜렷하다.노동자와 농민을 지지기반으로 삼아야 하며 민생주의에 입각한 지역간,계층간 소득격차를 해소하는 데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문형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mhlee@kiet.re.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왕년의 조기잡이 메카 ‘연평도’

    ●전설로만 남은 바다의 시장 ‘파시’ 왕년에 ‘조기잡이의 메카’였던 연평도는 이제 꽃게잡이로 근근이 삶을 이어간다.그저 오지의 섬으로만 알려졌을 뿐이나,황해도와 매우 가까운 연평도는 분단 이전만 해도 결코 머나먼 낙도가 아니었으며,중국에 이르는 뱃길의 중요한 기착지이자 해상교통의 요지였다. 연평도는 20세기 중반까지도 조기잡이로 명성을 날렸다.‘세종실록지리지’에서,‘토산은 석수어(조기)가 남쪽 연평평(延平坪)에서 나고,봄과 여름에 여러 곳의 고깃배가 모두 이곳에 모이어 그물로 잡는데,관에서 그 세금을 거두어 나라 비용에 쓴다.’고 하였다.조선 전기부터 조기떼가 대규모로 잡히고 있었음을 말해준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영광의 파시평(波市坪)과 더불어 황해도 연평평의 조기잡이가 등장한다. 파시 같은 ‘바다의 시장’은 너무 일찍이 사라져 흥청거리던 파시의 풍경은 이제 전설로만 남게 되었다.연평파시는 연평파시평,연평작사라고도 불렸다.지금은 조기의 씨가 말랐지만,불과 30∼40년 전인 1960년대까지만 해도 연평파시는 수천 척의 배와 어우러져 성황을 이뤘다.칠산파시와 더불어 최대의 조기어장을 형성하면서 남긴 이야기도 셀 수 없이 많다. 연평어장은 해주만 일대의 잘 발달한 리아시스식 해안과 자잘한 섬들을 포괄한다.미력리도 갈리도 장재도 초마도 같은 자잘한 섬들이 길목을 지키고 있어 연평열도로도 불린다. 인천에서 뱃길로 연평도엘 들어서자면 소연평도가 먼저 나타난다.해주 수양산의 정기를 받아 우뚝 봉우리가 솟은 소연평은 늘 실안개가 감도는 명산이다.그래서 산연평도(山延坪島)란 별칭이 붙었다.섬에 굴이 있고,거기에 용이 살고 있어 하늘로 승천한다고 전해오는 섬으로,사람이 승천하는 용을 보면,용이 그만 바다로 떨어져서 이무기가 되고 만다는 전설의 섬이다.소연평의 높은 봉우리는 뱃사람들의 항로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였다. ●연평도 서쪽 10~15리는 조기잡이 주어장 조선 후기와 구한말에 대연평 소연평 용매도 대수압도 소수압도 등이 모두 황해도 해주군에 속했다.오늘날에는 분단으로 인하여 남쪽으로 편입되었으며,여러차례의 행정구역 개편을 거쳐서 인천광역시 옹진군 송림면 연평리에 속하게 됐다. 조기잡이 중선의 주어장은 연평도 서쪽 10∼15리 인근 해상이었다.어구는 중선,건강망,궁선,어살 등이 쓰였다.중선은 연평도 앞바다보다도 서쪽에 길게 돌출한 황해도 등산곶(登山串 )근역과 구월봉 아래에서 조업을 했는데,수심 20m를 넘는 곳이다.구월봉 아래는 이른바 ‘구월이바다’로 불리는 구월반도가 길게 늘어진 곳이다.구월봉은 조기잡이배들이 자신의 위치를 판단하는 ‘가늠잡이 봉우리’다.‘등산이’와 구월이 앞바다는 자잘한 여와 모래밭으로 형성되어 있어 조기에게는 최적의 산란장이었다.옛 만호진이 있던 등산이라고도 부르는 등산포(登山浦)가 자리잡고 있으며,청송백사로 유명한데,바람에 날린 모래가 백사장을 이루어 사냥터로도 유명했다.아마도 황해도 사람들은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기억 속에 아련히 간직하고 있으리라. 연평파시에는 황해도,경기도,평안도 등 각지의 배가 몰려들었다.연평도 조기는 멀리 남지나해에서 북상한다.이들 중 선발대는 음력 3월 하순에 이미 연평도에 당도하며,후발대도 4월 초파일 무렵에는 모두 연평도 해역에 도착한다.연평도에서 4월 초파일을 ‘조기의 생일’이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칠산바다에서 곡하사리가 펼쳐졌다면,인천과 연평바다에서는 소만사리가 펼쳐졌다.조기잡이가 끝나는 5∼6월은 ‘파송사리’로 불렸다.반면에 새우잡이를 포함한 모든 고기잡이가 완전히 끝나는 10월은 ‘막사리’라고 불렸다. ●개성으로 서울로 팔려갔던 연평 조기 1968년,조기잡이가 공식적으로 퇴장할 때까지 수천 척의 배들이 줄지어서 포구에서 당섬까지 배를 디디고 걸어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연평파시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뱃사람들은 어로에 쓰일 나무와 쌀,물 따위를 이곳에서 장만하였으니,이런저런 장사꾼들이 몰려들어 극성을 떨었고,300곳이 넘는 술집이 번성하여 수많은 여성들이 몸단장하고 뱃길에 지친 사내들을 기다렸다.배들이 몰려오면 물동이를 머리에 인 아낙과 처녀들은 허리께까지 바닷물에 적시며 배 있는 곳까지 다가가 물을 팔았다. 조기가 잡히면 시선배가 몰려왔다.마포나루에서 얼음을 잔뜩 실은 시선배들이 땔깜,식량 따위를 싣고 연평도까지 와서 사로잡은 조기와 맞바꾸었다.이 중 일부는 해주항을 거쳐 개성 부잣집으로 실려가기도 했다.얼음에 차곡차곡 채워진 조기들은 강화도 북단을 지나 곧장 한강으로 들어 마포나루에 물산을 풀었다.경강상인(京江商人)으로 불린 이들은 서울의 생선 공급을 도맡아 했다. 그러나 중선배 등에 의한 선단어업만이 연평어장의 주업은 아니었다.당연한 결론이지만,고기가 풍부했을 당시에 연평도를 둘러싼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어살을 통한 자연어법이 차지하는 어획고는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이곳 어살어업의 어획량을 명기한 문헌자료는 없다.그러나 ‘조기떼가 몰려와 울음소리 때문에 잠을 못이루었다.’는 구전에 비추어 볼 때,만만치 않은 고기들이 어살을 통해 어획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조기잡이의 신’ 임경업 장군 이 어살은 또 임경업 장군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연평도에는 임경업 장군을 모신 충민사(忠愍祠)라는 사당이 전해진다.임 장군 굿당이었던 자리에 후대에 충민사란 당을 새로 지은 것.서해안 어부들은 임경업 덕분에 조기를 잡게 되었다는 믿음을 지니고 열성으로 임 장군을 섬겨왔다.임경업은 최영과 더불어 무속신앙의 조종(祖宗)으로 모셔지는 인물.특히 연평도 임경업당은 ‘민간신앙의 메카’로서 수많은 고기잡이배들의 순례지였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조선과 청국의 갈등구조에 휘말린 임경업이 마포나루를 출발해 중국 산둥반도 등주로 가던 도중에 잠시 연평도에 들러서 구찌나무가지를 꽂아 만든 어살로 바다를 막았더니 조기가 하얗게 걸려들어 뱃꾼들을 배불리 먹이고 무사히 중국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연평도에서 탄생하였다.그로부터 임경업은 ‘조기잡이의 신’으로 군림하면서 황해 어민들의 추앙을 받는 신이 되었다. 연평도의 임 장군 설화는 여러가지 점에서 함축적 의미를 내포한다.명말청초의 격동기를 살았던 한 장군의 고난에 찬 삶,그리고 그가 어살이라는 생업도구를 통하여 조기의 신으로 변신하게 되는 신화탄생의 생생한 장면을 알려준다. 연평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어살은 당섬과 모니섬 사이 안목이라 부르는 곳에 있다.숲이 우거진 모니섬은 당섬과 연륙되어 이어진다.인천에서 배를 타고 연평항으로 들어서자면 뱃전의 왼쪽 방향,소연평도 쪽으로 거대한 어살이 한눈에 들어온다.소연평도와 대연평도가 마주보는 길목인 안목에 유서 깊은 어살이 자리잡고 있는 것.‘임 장군이 뽀르세나무를 꽂게 하자 가시마다 조기의 눈이 꿰어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는 그 현장이다. ●연평도의 삶 고스란히 담긴 안목어살 안목은 예로부터 연평도 어업생산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연평도의 물살은 상당히 빠른데 그 중에서 당섬과 모니섬 사이의 길목이 가장 가파르다.그 물목에 길이 100여 m의 어살을 설치하였다.이 어살은 현재 12명이 공동 소유하고 있다.예전에는 17인이 공동소유했는데,고기가 들지 않자 차차 소유권을 정리해 지금은 12명으로 줄었다.그나마 지금은 거의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어살의 어획량이 크게 떨어지면서 소유권을 사고 파는 일 자체가 무의미해진 탓이다. 안목어살은 조기가 많을 때는 동(1000마리)을 거두기도 했다.‘안목은 고기반 물반’이란 말도 여기에서 유래됐다.조기가 사라지고 난 다음,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홍어 농어 같은 고기가 워낙 많이 잡혀 등짐으로도 지고 오지 못할 정도였는데,9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는 3∼4일에 광어 한마리도 안 걸린다고 이곳 어부들은 푸념이다.간재미나 병어 한 두마리가 어쩌다 잡히는 정도란다.‘삼마이그물’이 들어와 20년이 넘게 불법으로 바다를 훑어대 고기씨가 마른 탓이다. 인구 수십호를 넘지 못하는 자그마한 섬에 당대의 풍운아 임경업이 배를 몰고와 정박했다가 중국으로 떠났다면,그의 출현 자체가 대단한 회오리바람이었으리라.모니섬과 당섬 사이의 안목어살을 조사한 결과,신화에 등장하는 바로 그 어살이 21세기에도 이어짐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신화와 어로기술이 결코 따로가 아님을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안목어살은 이렇게 연평도의 삶과 신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니,안목어살을 보지 않고 어찌 연평도를 다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왕년의 조기잡이 메카 ‘연평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왕년의 조기잡이 메카 ‘연평도’

    ●전설로만 남은 바다의 시장 ‘파시’ 왕년에 ‘조기잡이의 메카’였던 연평도는 이제 꽃게잡이로 근근이 삶을 이어간다.그저 오지의 섬으로만 알려졌을 뿐이나,황해도와 매우 가까운 연평도는 분단 이전만 해도 결코 머나먼 낙도가 아니었으며,중국에 이르는 뱃길의 중요한 기착지이자 해상교통의 요지였다. 연평도는 20세기 중반까지도 조기잡이로 명성을 날렸다.‘세종실록지리지’에서,‘토산은 석수어(조기)가 남쪽 연평평(延平坪)에서 나고,봄과 여름에 여러 곳의 고깃배가 모두 이곳에 모이어 그물로 잡는데,관에서 그 세금을 거두어 나라 비용에 쓴다.’고 하였다.조선 전기부터 조기떼가 대규모로 잡히고 있었음을 말해준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영광의 파시평(波市坪)과 더불어 황해도 연평평의 조기잡이가 등장한다. 파시 같은 ‘바다의 시장’은 너무 일찍이 사라져 흥청거리던 파시의 풍경은 이제 전설로만 남게 되었다.연평파시는 연평파시평,연평작사라고도 불렸다.지금은 조기의 씨가 말랐지만,불과 30∼40년 전인 1960년대까지만 해도 연평파시는 수천 척의 배와 어우러져 성황을 이뤘다.칠산파시와 더불어 최대의 조기어장을 형성하면서 남긴 이야기도 셀 수 없이 많다. 연평어장은 해주만 일대의 잘 발달한 리아시스식 해안과 자잘한 섬들을 포괄한다.미력리도 갈리도 장재도 초마도 같은 자잘한 섬들이 길목을 지키고 있어 연평열도로도 불린다. 인천에서 뱃길로 연평도엘 들어서자면 소연평도가 먼저 나타난다.해주 수양산의 정기를 받아 우뚝 봉우리가 솟은 소연평은 늘 실안개가 감도는 명산이다.그래서 산연평도(山延坪島)란 별칭이 붙었다.섬에 굴이 있고,거기에 용이 살고 있어 하늘로 승천한다고 전해오는 섬으로,사람이 승천하는 용을 보면,용이 그만 바다로 떨어져서 이무기가 되고 만다는 전설의 섬이다.소연평의 높은 봉우리는 뱃사람들의 항로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였다. ●연평도 서쪽 10~15리는 조기잡이 주어장 조선 후기와 구한말에 대연평 소연평 용매도 대수압도 소수압도 등이 모두 황해도 해주군에 속했다.오늘날에는 분단으로 인하여 남쪽으로 편입되었으며,여러차례의 행정구역 개편을 거쳐서 인천광역시 옹진군 송림면 연평리에 속하게 됐다. 조기잡이 중선의 주어장은 연평도 서쪽 10∼15리 인근 해상이었다.어구는 중선,건강망,궁선,어살 등이 쓰였다.중선은 연평도 앞바다보다도 서쪽에 길게 돌출한 황해도 등산곶(登山串 )근역과 구월봉 아래에서 조업을 했는데,수심 20m를 넘는 곳이다.구월봉 아래는 이른바 ‘구월이바다’로 불리는 구월반도가 길게 늘어진 곳이다.구월봉은 조기잡이배들이 자신의 위치를 판단하는 ‘가늠잡이 봉우리’다.‘등산이’와 구월이 앞바다는 자잘한 여와 모래밭으로 형성되어 있어 조기에게는 최적의 산란장이었다.옛 만호진이 있던 등산이라고도 부르는 등산포(登山浦)가 자리잡고 있으며,청송백사로 유명한데,바람에 날린 모래가 백사장을 이루어 사냥터로도 유명했다.아마도 황해도 사람들은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기억 속에 아련히 간직하고 있으리라. 연평파시에는 황해도,경기도,평안도 등 각지의 배가 몰려들었다.연평도 조기는 멀리 남지나해에서 북상한다.이들 중 선발대는 음력 3월 하순에 이미 연평도에 당도하며,후발대도 4월 초파일 무렵에는 모두 연평도 해역에 도착한다.연평도에서 4월 초파일을 ‘조기의 생일’이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칠산바다에서 곡하사리가 펼쳐졌다면,인천과 연평바다에서는 소만사리가 펼쳐졌다.조기잡이가 끝나는 5∼6월은 ‘파송사리’로 불렸다.반면에 새우잡이를 포함한 모든 고기잡이가 완전히 끝나는 10월은 ‘막사리’라고 불렸다. ●개성으로 서울로 팔려갔던 연평 조기 1968년,조기잡이가 공식적으로 퇴장할 때까지 수천 척의 배들이 줄지어서 포구에서 당섬까지 배를 디디고 걸어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연평파시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뱃사람들은 어로에 쓰일 나무와 쌀,물 따위를 이곳에서 장만하였으니,이런저런 장사꾼들이 몰려들어 극성을 떨었고,300곳이 넘는 술집이 번성하여 수많은 여성들이 몸단장하고 뱃길에 지친 사내들을 기다렸다.배들이 몰려오면 물동이를 머리에 인 아낙과 처녀들은 허리께까지 바닷물에 적시며 배 있는 곳까지 다가가 물을 팔았다. 조기가 잡히면 시선배가 몰려왔다.마포나루에서 얼음을 잔뜩 실은 시선배들이 땔깜,식량 따위를 싣고 연평도까지 와서 사로잡은 조기와 맞바꾸었다.이 중 일부는 해주항을 거쳐 개성 부잣집으로 실려가기도 했다.얼음에 차곡차곡 채워진 조기들은 강화도 북단을 지나 곧장 한강으로 들어 마포나루에 물산을 풀었다.경강상인(京江商人)으로 불린 이들은 서울의 생선 공급을 도맡아 했다. 그러나 중선배 등에 의한 선단어업만이 연평어장의 주업은 아니었다.당연한 결론이지만,고기가 풍부했을 당시에 연평도를 둘러싼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어살을 통한 자연어법이 차지하는 어획고는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이곳 어살어업의 어획량을 명기한 문헌자료는 없다.그러나 ‘조기떼가 몰려와 울음소리 때문에 잠을 못이루었다.’는 구전에 비추어 볼 때,만만치 않은 고기들이 어살을 통해 어획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조기잡이의 신’ 임경업 장군 이 어살은 또 임경업 장군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연평도에는 임경업 장군을 모신 충민사(忠愍祠)라는 사당이 전해진다.임 장군 굿당이었던 자리에 후대에 충민사란 당을 새로 지은 것.서해안 어부들은 임경업 덕분에 조기를 잡게 되었다는 믿음을 지니고 열성으로 임 장군을 섬겨왔다.임경업은 최영과 더불어 무속신앙의 조종(祖宗)으로 모셔지는 인물.특히 연평도 임경업당은 ‘민간신앙의 메카’로서 수많은 고기잡이배들의 순례지였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조선과 청국의 갈등구조에 휘말린 임경업이 마포나루를 출발해 중국 산둥반도 등주로 가던 도중에 잠시 연평도에 들러서 구찌나무가지를 꽂아 만든 어살로 바다를 막았더니 조기가 하얗게 걸려들어 뱃꾼들을 배불리 먹이고 무사히 중국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연평도에서 탄생하였다.그로부터 임경업은 ‘조기잡이의 신’으로 군림하면서 황해 어민들의 추앙을 받는 신이 되었다. 연평도의 임 장군 설화는 여러가지 점에서 함축적 의미를 내포한다.명말청초의 격동기를 살았던 한 장군의 고난에 찬 삶,그리고 그가 어살이라는 생업도구를 통하여 조기의 신으로 변신하게 되는 신화탄생의 생생한 장면을 알려준다. 연평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어살은 당섬과 모니섬 사이 안목이라 부르는 곳에 있다.숲이 우거진 모니섬은 당섬과 연륙되어 이어진다.인천에서 배를 타고 연평항으로 들어서자면 뱃전의 왼쪽 방향,소연평도 쪽으로 거대한 어살이 한눈에 들어온다.소연평도와 대연평도가 마주보는 길목인 안목에 유서 깊은 어살이 자리잡고 있는 것.‘임 장군이 뽀르세나무를 꽂게 하자 가시마다 조기의 눈이 꿰어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는 그 현장이다. ●연평도의 삶 고스란히 담긴 안목어살 안목은 예로부터 연평도 어업생산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연평도의 물살은 상당히 빠른데 그 중에서 당섬과 모니섬 사이의 길목이 가장 가파르다.그 물목에 길이 100여 m의 어살을 설치하였다.이 어살은 현재 12명이 공동 소유하고 있다.예전에는 17인이 공동소유했는데,고기가 들지 않자 차차 소유권을 정리해 지금은 12명으로 줄었다.그나마 지금은 거의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어살의 어획량이 크게 떨어지면서 소유권을 사고 파는 일 자체가 무의미해진 탓이다. 안목어살은 조기가 많을 때는 동(1000마리)을 거두기도 했다.‘안목은 고기반 물반’이란 말도 여기에서 유래됐다.조기가 사라지고 난 다음,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홍어 농어 같은 고기가 워낙 많이 잡혀 등짐으로도 지고 오지 못할 정도였는데,9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는 3∼4일에 광어 한마리도 안 걸린다고 이곳 어부들은 푸념이다.간재미나 병어 한 두마리가 어쩌다 잡히는 정도란다.‘삼마이그물’이 들어와 20년이 넘게 불법으로 바다를 훑어대 고기씨가 마른 탓이다. 인구 수십호를 넘지 못하는 자그마한 섬에 당대의 풍운아 임경업이 배를 몰고와 정박했다가 중국으로 떠났다면,그의 출현 자체가 대단한 회오리바람이었으리라.모니섬과 당섬 사이의 안목어살을 조사한 결과,신화에 등장하는 바로 그 어살이 21세기에도 이어짐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신화와 어로기술이 결코 따로가 아님을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안목어살은 이렇게 연평도의 삶과 신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니,안목어살을 보지 않고 어찌 연평도를 다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 [코파 아메리카] 아르헨도 멕시코도 우루과이도 8강

    아르헨티나가 다시 신·구 합작포를 가동하며 멕시코 우루과이와 함께 8강에 합류했다. 아르헨티나는 14일 페루 피우라 미구엘 그라우 스타디움에서 열린 B조 3차전에서 근육통을 호소한 하비에르 사비올라(23·FC 바르셀로나) 대신 선발 출장해 2골을 작렬시킨 신예 골잡이 루시아노 피게로아(23·크루스 아술)를 앞세워 ‘전통의 강호’ 우루과이를 4-2로 꺾었다.승점 6(2승1패)을 확보한 아르헨티나는 이날 에콰도르를 2-1로 제압한 멕시코(승점 7·2승1무)에 이어 조 2위로 8강에 안착했다.3위(승점 4·1승1무1패)에 그친 우루과이도 와일드카드로 8강에 턱걸이했다. 남미의 전통 라이벌간 경기에서 우루과이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전반 7분 파비안 에스토야노프(22·페닉스)가 전광석화 같은 23m짜리 중거리 슛을 성공시킨 것.그러나 아르헨티나는 금방 되치기를 시작했다.전반 19분 미드필더 크리스안 곤살레스(30·인터 밀란)가 페널티킥으로 우루과이 골망을 갈랐고,1분 뒤 루이스 곤살레스(23·리버플라테)의 슛이 상대 골키퍼를 맞고 흐르자 문전 쇄도하던 피게로아가 다시 꽂아 13분 만에 역전에 성공했다. 우루과이는 전반 35분 수비수 조 비세라(24·페나롤)가 심판을 밀치다 퇴장당한 상황에서도 비센테 산체스(25·톨루카)의 중거리 슛으로 동점을 만들었으나 이후 주도권은 아르헨티나에 넘겨주고 말았다. 후반 들어 압도적인 공세를 펼친 아르헨티나는 34분 주장 로베르토 아얄라(31·발렌시아)의 헤딩슛으로 균형을 깼고,종료 직전 피게로아가 쐐기골을 보탰다. 북중미 초청팀으로 지난 11일 ‘남미의 자존심’ 아르헨티나를 제압하는 파란을 일으킨 멕시코는 아돌포 바우티스타(25·과달라하라)의 활약에 힘입어 에콰도르를 2-1로 눌렀다.바우티스타는 전반 27분 페널티킥을 얻어낸 데 이어 42분에는 20m짜리 슛으로 골망을 흔들어 승부에 종지부를 찍었다. 노장 아구스틴 델가도(34·아우카스)가 1골을 만회하는데 그친 에콰도르는 조별리그 전패로 탈락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하프타임] 청소년축구, 미국에 1 0 설욕

    한국 청소년대표팀이 22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04부산국제청소년(19세 이하) 축구대회 첫날 미국전에서 후반 16분 터진 오장은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이겼다.이로써 한국은 지난해 8월 17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이 2003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미국에 1-6으로 참패,8강 진출이 좌절됐던 것을 설욕하며 우승을 향해 순조롭게 출발했다.앞서 열린 대회 개막전에서는 브라질이 후반 1명이 퇴장당하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폴란드를 1-0으로 물리쳤다.˝
  • [유로2004] 체코 극적인 뒤집기 쇼

    체코가 네덜란드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04) 8강에 선착했다. “가장 환상적인 날이었다.”는 미드필더 파벨 네드베드의 말처럼 체코는 대역전 드라마를 연출하며 표를 구하지 못해 경기장 주위를 맴돌던 3만여명의 발을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묶어 놓았다. 체코는 20일 새벽 포르투갈 아베이루에서 열린 D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먼저 2골을 내준 뒤 얀 콜레르,밀란 바로스,블라디미르 스미체르가 내리 3골을 뿜어내 3-2로 역전승했다. 2연승으로 승점 6을 확보한 체코는 ‘죽음의 조’에서 당당히 살아남아 16개 본선 진출국 중 가장 먼저 8강행을 확정했다.특히 체코는 라트비아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도 역전승(2-1)을 거두는 등 거푸 ‘뒤집기 쇼’를 펼쳐 최고의 인기팀으로 급부상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공동 5위(네덜란드)와 11위(체코)의 차이만큼 전문가들은 네덜란드의 우세를 조심스레 점쳤다.그러나 체코 선수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천적으로 자부할 만큼 네덜란드에 유독 강한 면을 보여왔기 때문.지난해 유로2004 예선(3그룹)에서도 네덜란드에 1승1무를 거두며 그룹 1위로 본선에 직행했다. 네덜란드는 전반 4분 얻은 프리킥을 아르옌 로벤이 골문으로 올리자 빌프레드 보우마가 다이빙 헤딩슛으로 네트를 갈랐고,19분 루드 반 니스텔루이가 추가골을 뽑아 낙승하는 듯했다.그러나 체코는 이때부터 본 실력을 뽐냈다. 전반 23분 203㎝의 장신 콜레르가 추격골을 성공시킨 데 이어 후반 26분 바로스가 오른발 논스톱 슛으로 네트 상단을 흔들어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이후부턴 체코의 일방적인 페이스.특히 후반 30분 네덜란드 욘 헤이팅가가 퇴장당해 수적 우위까지 점했다.종료 2분 전 극적인 결승골이 터졌다. 네덜란드 골키퍼 반 데르사르가 바로스의 슈팅을 가까스로 쳐내자 골지역 오른쪽에 있던 카렐 포보르스키가 공을 낚아채 골키퍼 반대편으로 살짝 밀어줬고,교체멤버 스미체르가 뛰어들며 네트를 갈랐다.1무1패가 된 네덜란드는 8강진출을 위해서는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라트비아에 반드시 이기고,독일-체코전 결과까지 지켜봐야 할 신세가 됐다. 랭킹 53위 라트비아는 대회 3회 우승팀 독일(8위)을 맞아 예상을 깨고 0-0으로 비겼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삼성증권배 2004 프로야구] 곰 “아싸, 또 밀어내기~”

    ‘뚝심’의 두산이 파죽의 5연승을 달리며 선두 현대를 단 1승차로 위협했다. 두산은 18일 잠실에서 벌어진 프로야구에서 3-3이던 9회말 1사 만루 때 대타 채상병의 끝내기 밀어내기 볼넷으로 서울 맞수 LG에 4-3의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냈다. 두산은 이로써 지난 12일 광주 기아전을 시작으로 5연승의 휘파람을 불며, 독주하고 있는 현대를 턱밑까지 추격했다.두산은 또 지난 15·16일 삼성전에서 끝내기 몸에 맞는 공과 끝내기 폭투로 신승하는 등 3경기 연속 행운의 1점차 승리의 무서운 뒷심을 발휘했다. 2-3으로 뒤진 8회말 최경환의 중전 적시타로 동점을 이룬 두산은 9회말 안경현의 볼넷과 상대 투수 실책,손시헌의 고의 볼넷으로 맞은 1사 만루의 천금 찬스에서 대타 채상병이 류택현과의 풀카운트 접전 끝에 볼넷을 얻어 짜릿한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한편 8회 구원 등판한 LG 서승화는 첫 상대인 전상열의 헬멧을 맞혀 올시즌 개인 최다인 네번째 퇴장의 불명예를 안았다. 한화는 대전에서 장단 13안타를 효과적으로 터뜨려 현대를 7-4로 잡고 2연승했다.8회 2사 후 구원 등판한 권준헌은 16세이브째를 올리며 구원 선두 조용준(현대)과의 격차를 1세이브로 바짝 좁혔다.3회 두번째 투수로 등판한 고졸 3년차 ‘중고 신인’ 정병희는 4와 3분의2이닝 동안 3안타 2볼넷 무실점 호투하며 시즌 3승째를 올렸다.현대는 에이스 김수경을 투입하고도 2연패에 빠졌다. 삼성은 대구에서 케빈 호지스의 호투를 앞세워 SK를 5-2로 꺾고 LG를 끌어내리며 4위로 올라섰다.호지스는 7이닝동안 삼진 8개를 솎아내며 7안타 5볼넷 2실점(1자책)으로 막아 20일만에 3승째를 챙겼다. 롯데-기아의 사직경기는 5-5로 맞선 8회말 2사1루에서 갑작스러운 폭우로 시즌 첫 강우 콜드 무승부를 기록했다.롯데는 이종범의 만루포,장성호의 1점포 등으로 8회초까지 2-5로 끌려갔으나 8회말 페레즈의 통렬한 2점포 등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유로 2004] 영국, 루니 2골로 8강희망 살려

    ‘지옥에서 천국으로.’ ‘축구 종가’ 잉글랜드가 알프스산맥을 뛰어넘으며 ‘3분의 악몽’에서 깨어났고,‘아트사커’ 프랑스는 복병 크로아티아와 진땀 승부 끝에 비겨 다소 체면을 구겼다. 잉글랜드는 18일 코임브라에서 열린 유럽축구선수권(유로2004) B조 2차전에서 ‘신동’ 웨인 루니를 앞세워 스위스를 3-0으로 완파하고 1승1패(승점3)를 기록,조 2위로 뛰어올랐다.잉글랜드는 오는 22일 리스본에서 3위 크로아티아와 8강 진출을 결정짓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갖는다. 브라질의 ‘축구황제’ 호나우두를 연상케 하는 플레이로 ‘루나우두’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루니는 이날 2골로 유럽축구선수권 최연소 골을 터뜨린 선수로 기록됐다. 마이클 오언과 투톱으로 선발 출장한 루니는 미드필드 공방이 계속되던 전반 23분 선제골을 터뜨려 승부의 추를 잉글랜드로 돌렸다.팀의 주장 데이비드 베컴이 페널티 지역 오른쪽 외곽에서 넘겨준 크로스를 오언이 받아 문전으로 띄워주자 루니가 수비수의 견제를 제치고 뛰어 올라 헤딩슛으로 스위스의 골망을 가른 뒤 특유의 텀블링 세리머니를 펼쳤다. 후반 15분 스위스 수비수 베른트 하스가 퇴장당해 수적 우위를 점한 잉글랜드는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고,루니에게 다시 기회가 왔다. 30분쯤 오언과 교체 투입된 다리우스 바셀이 페널티 지역 왼쪽으로 찔러준 공을 오른발로 강하게 찼고,공은 왼쪽 골 포스트를 맞고 튀어나오다 몸을 날린 스위스 수문장 요르크 슈티엘에게 부딪혀 다시 골문 안쪽으로 굴러 들어갔다.공식 기록은 루니의 골. 잉글랜드는 전열이 허물어진 스위스를 계속 몰아붙이다가 미드필더 스티븐 제라드가 후반 37분 게리 네빌의 크로스를 오른발 슛,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크로아티아는 레이리아 페소아 스타디움에서 ‘우승 0순위’ 프랑스를 맞아 예상을 뒤집고 2-2로 비겼다.반면 프랑스는 A매치(국가대표팀간 경기) 20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이어가는 데 만족해야 했다. 기선은 프랑스가 잡았다.지네딘 지단이 전반 22분 페널티지역 왼쪽 외곽에서 얻은 프리킥 찬스에서 문전으로 절묘한 크로스를 올렸고,땅에 한번 튀긴 공은 크로아티아 수비수 이고리 투도르의 발을 스친 뒤 굴절돼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공식기록은 투도르의 자책골. 승부는 후반전 크로아티아의 대공세로 반전되기 시작했다. 후반 3분 얻어낸 페널티킥을 밀란 라파이치가 골문 안에 꽂아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고,4분 뒤에는 챔피언스리그 득점 2위 다도 프로쇼(AS 모나코) 가 페널티지역 정면에서 수비수 2명을 제치고 강력한 왼발 슛을 성공시켜 역전을 끌어냈다. 프랑스를 패배의 나락에서 구해낸 것은 다비드 트레제게.후반 19분 상대 백패스를 가로채 골키퍼마저 제친 뒤 텅 빈 골문에 차넣어 한숨을 돌리게 했다.그러나 슛 동작 이전에 일어난 트레제게의 핸들링 반칙을 심판이 인정하지 않아 무승부마저도 유쾌하지 못한 뒷맛을 남겼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유로 2004] 포르투갈 “두번 악몽은 없어”

    포르투갈이 러시아를 꺾고 8강 진출의 불씨를 살렸고,개막전 이변의 주인공 그리스는 강호 스페인과 비겨 돌풍을 이어갔다.포르투갈은 17일 리스본 루즈 스타디움에서 열린 유럽축구선수권(유로2004) A조 2차전에서 마니셰(27)와 후이 코스타(32)의 연속골로 러시아를 2-0으로 눌렀다. 1승1패를 기록한 포르투갈은 오는 21일 스페인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8강 티켓을 노릴 수 있게 됐다.반면 2연패에 빠진 러시아는 본선 진출국 가운데 가장 먼저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됐다. 포르투갈의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56) 감독은 지난해 브라질에서 귀화한 ‘슈퍼’ 데코(27)를 파울레타(30)와 함께 전방에 내세우고 수비진도 대부분 교체하는 초강수를 던졌고,전반 7분 만에 러시아 문전을 파고든 데코가 건네준 공을 아크 정면에 있던 마니셰가 잡아 대각선으로 슛,기선을 제압했다. 러시아는 전반 인저리타임 때 페널티지역 밖에서 고의적으로 공을 건드린 골키퍼 세르게이 오브치니코프(34)가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수적 열세에 몰렸지만 후반 초반에는 오히려 포르투갈을 압도했다.좀처럼 득점 찬스를 찾지 못하던 포르투갈의 ‘배고픔’이 해결된 것은 후반 43분.교체 투입된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19)가 러시아 진영 왼쪽에서 크로스를 띄웠고,문전으로 쇄도한 코스타가 가볍게 발을 대 승부를 끝냈다.‘돌풍’ 그리스는 스페인과 1-1로 비겨,남은 러시아전에서 무승부만 기록해도 8강에 진출하게 됐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올림픽 여자배구 ‘왕언니’ 김화복

    지난 16일 태릉선수촌의 한낮은 뜨거웠다.오후 훈련이 시작되는 3시 반.일찌감치도 찾아온 6월 무더위는 안그래도 실내 훈련으로 텅빈 오후의 선수촌 중앙 광장을 더 깊은 고요 속으로 밀어 넣었다. 빨간 벽돌로 새옷을 입은 운영동 뒤편 배구장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웃음소리가 적막을 깬다.네트 너머로 보이는 12명의 한국 올림픽여자배구대표팀 선수들 가운데 앉은 이의 모습이 낯설다.의아한 표정을 읽은 듯 말많은 김사니(도로공사)가 나선다.“모르세요? 이 언니 김화복 언니잖아요.” 달라진 얼굴만 빼면 왜 모를까.배구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1980년대 초반까지 여자 코트를 주름잡은 한국 최고의 공격수 김화복을….올드팬들의 기억 속에 흑백 화면으로만 남아 있는 그는 20년 세월을 훌쩍 넘겨 지금은 여유있는 중년으로 변해 있었다. ●태릉선수촌 생활지도위원으로 ‘제2인생’ 그의 직함은 태릉선수촌 생활지도위원.“여자 선수들의 숙소 생활을 책임지고 있으니 거창하게 말할 것 없이 ‘사감 선생’ 정도로 생각하면 쉬울 것”이라고 둘러친다.여자 선수 모두를 뒷바라지하는 것이 맡은 일이지만 아무래도 배구 선수들에게 신경이 더 쓰이는 것은 당연하다.더구나 이들은 지난달 일본 도쿄에서 이탈리아 러시아 등 세계 최고의 팀들을 연파하며 3회 연속 올림픽 진출권을 따낸,자랑스럽고 부러운 후배들이기 때문이다. 김화복은 지난 69년 부산 남일초등학교 6년때 배구공을 잡은 이후 14년간 코트를 누볐고,남성여고 1년때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올림픽 무대는 한번도 밟지 못했다.단 한 번 찾아온 기회(80모스크바)는 한국이 불참하는 바람에 날려 버렸다.올림픽 때만 되면 아쉬움과 설레임이 되살아나는 이유다.지난 4월 겨울리그가 끝난 뒤 국가대표를 고사한 노장 장소연 강혜미(이상 30·현대건설)를 전향(?)시킨 ‘특사’ 노릇을 한 것도 그래서다. 그의 배구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은 하나 더 있다.그는 국제배구연맹(FIVB)의 통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184연승이라는 대기록의 주역.69년 국세청으로 출발해 대농-미도파로 이어진 소속 팀이 세운 기록이다.76년 입단해 기록 경신에 한몫을 한 그는 그러나 5년 뒤인 81년 5월 전남 광주에서 열린 종별선수권대회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진리에 고개를 떨궈야만 했다.선경과의 경기 직전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출전을 못한 것. ●장소연 등 국가대표 은퇴 번복시킨 특사 주포가 빠진 미도파는 결국 국가대표 센터 김애희와 레프트 진춘례가 버틴 선경에 져 연승 행진에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그는 “기록이 깨지는 순간 배구가 끝나는 줄 알았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는 배구만 빼면 모든 면에서 지각생.83년 선수 생활을 접은 그는 27세의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 석사까지 마쳤고,35세에 노처녀에서 탈출했다.“되돌아 보니 모든 일에는 반드시 ‘때’가 운명처럼 다가오더라.”고 말한다.“선배 언니 소개로 지금의 아이 아빠를 만나고 보니 이전에 아는 스님이 예언해준 나이,모습 그대로더라구요.그래서 후다닥 해버렸지요.” 그는 첫 태극마크를 달고 찾은 지난 74년의 태릉선수촌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겨울이면 추워서 양말을 몇 켤레씩 껴신고 잠을 청하던 숙소며,여름이면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에 미끄러지던 배구장 바닥.30년 세월따라 지금은 모두 변했지만 12명의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해주는 ‘배구 이야기’는 그 시절 선배에게 들었던 것과 똑같다.“배구요?날아다니는 공이 바닥에 떨어지면 지는 경기잖아요.우리 삶도 목표가 손에서 떨어지는 순간 눈물 닦으며 퇴장하는 수밖에요.” 오는 8월 아테네까지 동행할 김화복은 분명히 이번 올림픽여자배구대표팀의 왕언니이자 13번째 선수다. 글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병원…택시…금속까지…249곳서 동시파업

    병원 파업 일주일째인 16일 민주택시노조와 금속노조까지 파업에 가세,노동계의 하투(夏鬪)가 총력투쟁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병원 노사는 이날 오후 4시부터 고려대의료원에서 협상에 나섰지만 주5일근무제 등 주요 쟁점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병원측은 이날 교섭에서 1일 8시간,주 40시간 근무에 토요일 외래진료유지 등을 담은 두 가지의 최종안을 노조측에 통보하며 “더 이상의 양보는 없다.”고 밝힌 뒤 오후 8시30분쯤 퇴장했다. 병원측이 제시한 최종안 중 첫 번째는 ▲1일 8시간 주 40시간 근무 ▲병원은 필요한 경우 토요일 외래진료 유지를 위한 방안을 강구할 수 있으며 노조는 이에 협조할 것 ▲생리휴가 무급화에 따른 월정액 수당 신설 ▲연차휴가 25일 초과분 금전보상 및 월차휴가 폐지 등이며,두 번째는 ▲1일 8시간 주 40시간 근무 ▲토요일 진료기능의 50%를 유지할 것 ▲생리휴가 무급화에 따른 보전방안 해당지부와 협의 등이다. 노조측은 협상안을 거부했으나 “교섭을 계속하면서 요구안을 조정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편 파업 장기화로 인해 일선병원에서 급식차질과 수술 축소 등으로 이날도 환자들이 큰 고충을 겪었다.일부 환자들은 “환자는 뒷전인 채 잇속 챙기기에 급급하다.”며 노사를 싸잡아 비난한 뒤 “신속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라.”고 요구했다. 병원파업에 이어 민주노총 산하 전국민주택시노조연맹도 ‘유류 부가가치세 환급분 전액지급’과 ‘택시제도 개선’ 등을 요구하며 이날 오전 4시부터 총파업에 들어갔다.택시노조는 그러나 이날 오후 9시20분쯤 건교부와의 교섭에서 진전된 내용이 있다며 파업을 일시 중지키로 했으나 서울 일부 택시회사와 광주·강릉지역에서는 계속 파업을 벌이고 있다. 택시노조는 ▲택시요금 인상계획 백지화 ▲유류비 사업자 전액부담 법제화 ▲사납금 폐지를 위한 전액관리제 강화입법 등을 요구하고 있다. 금속산업연맹 산하 금속노조도 ▲손배·가압류 금지 ▲최저임금 76만 6140원 보장 ▲구조조정시 노사합의 ▲임금인상(기본급 12만 5000원) 등을 요구하며 이날 오후 1차 4시간 경고파업을 벌였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날 택시파업 90개 사업장 4568명을 포함,249곳 2만 6000여명이 전면 또는 부분파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파업을 벌이고 있는 병원노조와 민주택시,금속노조가 속해 있는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과 부산역,대구 국채보상공원 등에서 전국 동시다발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민주노총은 현재 진행 중인 파업 외에도 ▲23일 화학섬유연맹 ▲29일 금속산업노조연맹 등 2차연대파업을 선언한 상태다.여의도 집회에는 1주일째 파업중인 의료보건노조 3500여명을 비롯해 민주택시노조연맹 1500명,금속노조 500여명의 조합원 등이 참가했다. 유진상 유영규기자 jsr@seoul.co.kr˝
  • [6·15 남북정상회담 4돌] 盧대통령·김정일·DJ의 ‘간접대화’

    노무현 대통령과 6·15남북정상회담의 주역인 김대중 전 대통령,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간접 대화를 나눴다.15일 남북공동선언 4주년 기념 국제토론회에 참석중인 북측 이종혁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이 간접대화의 중개역이었다. ●친서 있었나,없었나 이 부위원장이 토론회에 앞서 오전 9시25분쯤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이 환담을 나누던 접견실을 찾으면서 ‘3인 정상간 간접대화’가 이뤄졌다.문밖에서 기다리던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의 안내를 받아 접견실로 들어선 이 부위원장은 먼저 김 전 대통령에게 “밤새 평안하셨습니까.”라고 인사를 건넸고 김 전 대통령은 “잘 쉬었습니다.”라고 화답했다. 노 대통령은 “북쪽 사람을 오늘 처음 만난다.만나 보니 자주 보던 분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이에 이 부위원장은 탄핵정국을 염두에 둔 듯 “그 사이 아주 고생이 많으셨다.”고 인사를 했다.그는 이어 “장군님(김정일 위원장)께서 조국통일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신 분을 잊지 않는다.”면서 “6·15 행사가 서울에서 열려 저희들을 보내셨다.”고 김 위원장의 지시로 남측을 방문했음을 분명히 했다. 이어 풀기자가 퇴장한 뒤 이 부위원장은 노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위임을 받아 “남북이 현재의 좋은 흐름을 계속 끌고 나가 남북관계를 크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김 위원장이 노 대통령에게 안부인사를 겸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주목된다. 노 대통령은 “6·15공동선언의 의의를 높이 평가하고 이를 이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남북간 신뢰와 약속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북핵 문제가 조속히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북핵문제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두 정상의 메시지가 서로 교환된 셈이다. 세 사람의 대화 시간은 8∼9분 정도였고,때문에 당초 9시30분 정각에 시작하려던 토론회는 늦어졌다.이 자리에는 권양숙 여사,이희호 여사,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임동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이종석 사무차장,북측 원동연 통일문제연구소 부소장 등이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친서전달 여부에 대해 윤태영 대변인은 “특별한 제안이나 현안과 관련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고 말했다.공개석상인 만큼 친서를 전달할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DJ는 철학이 있는 대통령” 노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승계에 머무르지 않고 정상회담 성과를 발전시켜 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노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실제로 남북관계를 해보니 김 전 대통령이 설계해 놓은 대로 그렇게 하고 있다.”면서 “아주 중요한 토대를 놓으셨다.”고 극찬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제가 다 한 것은 아니다.”면서 “설계보다는 건축이 중요하다.”고 마무리를 강조했다.노 대통령은 축사에서 “김 전 대통령은 철학이 있는 대통령이라고 저는 가끔 말했다.”며 존경심을 표시했다.이어 “남북한 정상이 서로 얼싸안는 사진은 제게 벅찬 감동으로 남아 있다.”면서 “그 사진 한 장은 온 겨레의 화합과 평화의 가능성을 심어준 희망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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