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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찰 正道 못가면 공공의 적”

    “짠 맛을 잃은 소금은 내버려져 짓밟힐 따름이다.”,“마음 속에 식지 않는 열과 성을 가져라.” 임기 2년을 마친 송광수 전 검찰총장은 2일 올곧은 검사가 되달라는 당부와 함께 공직생활 29년을 마감했다. 후배 검사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그는 “검찰은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를 척결해야 할 세상의 소금”이라면서 “정도(正道)를 벗어나 사도(邪道)를 넘나들면 ‘공공의 적’으로 전락한다.”고 당부했다.“국민은 검찰이 사회적 약자에게 더 없이 따뜻하지만, 잘못된 권력과 강자에게는 정정당당하길 바란다.”면서 “사회악에 맞서 정의와 인권을 세우는 명예로운 검찰이 되달라.”고 주문했다. 송 전 총장은 “‘중립과 독립을 지키는 정의로운 검찰’을 위해 작은 디딤돌을 놓는다는 마음으로 항해를 시작했다.”면서 “권위적인 모습을 떨쳐버리고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애썼다.”고 지난 2년을 되돌아봤다. 또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총선사범의 엄정한 처리를 통해 깨끗한 정치문화로 옮겨가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와 관련, 송 전 총장은 “수사기관이 부족해 부패가 근절되지 않았겠느냐.”며 반대입장을 되풀이했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대해서도 “경찰 수사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국민의 인권보호를 위해 마련된 (검찰 지휘권)체계를 허물어선 안된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는 가족여행을 다니며 휴식을 취한 뒤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열 계획이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큐! 아름다운 노년] ①일하는 실버 영원한 젊음

    [큐! 아름다운 노년] ①일하는 실버 영원한 젊음

    지난 3월15일 오전 서울 노원구 불암산 초입. 숲생태해설사 정문환(66)씨 등 ‘종로시니어클럽’ 회원들의 발걸음은 젊은이와 다름 없었다. 대부분 환갑을 넘겼지만 얼굴에는 생기가 잔뜩 묻어났고, 잎이 떨어진 나무를 바라보는 두눈에도 생기가 넘쳐났다.“일하면 젊어져요.” 산을 내려오던 중 한 여성 회원이 던진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정예 멤버 대부분 문인 숲생태해설사들의 모임인 종로시니어클럽은 모두 59명의 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날 숲생태학습에는 회장인 정씨를 비롯해 이광희(66), 이일선(62·여), 이윤옥(69·여), 국승윤(57·여), 이춘자(60·여), 정찬영(65·여)씨 등 모두 7명이 참여했다. 꼬박꼬박 얼굴을 비추는 이들이 클럽의 ‘정예 멤버’라고 한다. 멤버 대부분은 문인이다.33년간 경찰생활을 하다 1994년 정년퇴임한 정 회장은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이다. 경기도 이천시청에서 30년간 공직자 생활을 하다 퇴직한 이광희씨는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돌아본 인생’이란 수필집도 냈다. 은행원이었던 이윤옥씨와 미8군에서 30년간 근무한 정찬영(시인)씨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이다. 문인의 마음과 눈으로 나무와 꽃을 바라보고 이를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숲생태해설사로 나선 것은 2001년 6월. 노원구 재현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불암산에서 처음 실시했다. 숲생태해설사 활동의 효시(嚆矢)였던 셈이다. 정 회장은 “퇴직하고 여러 일을 생각하다가 혜화동 성공회 지성희 신부가 숲생태해설사를 모집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발걸음을 옮긴 게 이 일을 하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일과 함께 건강도 좋아져 회원들은 건강과 삶의 활력을 되찾은 게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털어놨다. 이춘자씨는 “혈압이 높아 약을 먹어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숲생태해설사로 일하면서 혈색도 좋아지고 혈압도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자랑했다. 회원들은 너도나도 젊어졌다고 한목소리다. 이일선씨는 “무릎이 아팠는데 이제는 말끔하게 가셨다.”면서 “좋은 공기 마시고 학생들과 대화할 수 있는 게 즐거움”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도 대단하다. 학생들에게 우리의 소중한 자연을 가르친다는 것이 기쁨 중의 기쁨이라고 했다. 국씨는 “자연과 대화할 수 있어 행복하고 생명이 귀중하다는 것을 느낀다.”면서 “작품의 소재로도 많이 활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숲생태해설은 일요일을 제외하고 평일과 토요일 어느날이든 학교에서 일정을 잡아주면 나간다. 오전 10시부터 낮 12시까지 2시간동안 학습이 이뤄진다. 처음에는 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했지만 지금은 초등학교로까지 확대될 만큼 학교에서도 인기있는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100회 이상 숲생태해설을 했다. 불암산, 수락산, 북한산, 안산 등 서울시내 산뿐만 아니라 경기도 양평의 풍류산, 축령산 등도 다녀왔다. 현재는 전국적으로 네트워크화돼 전국 각지에서 실시되고 있다. 4월부터 11월까지가 본격적인 시즌이다. 대신 비시즌에는 매주 한 차례 연구모임을 한다. 숲과 풀, 나무 등에 대한 심층연구가 이때 이루어진다. 또 광릉수목원 등에서 펼쳐지는 수목연구도 이들이 거쳐야 할 필수 코스다. ●“보수 좀더 많았으면 좋겠어” 회원들은 너나할 것 없이 노력 만큼 소득이 보장되기를 기대했다. 즐겁게 산에서 내려오던 이들도 ‘얼마를 버느냐.’라는 질문을 받자 표정이 이내 굳어졌다. 정 회장은 “초창기에는 숲생태해설 1회에 4만원을 받았는데 지금은 절반 수준인 2만원에 불과하다.”면서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줬으면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회원들은 우리가 무슨 100만원,200만원을 바라겠느냐면서도 적정한 수입을 요구했다. 월 30만∼40만원을 적정선으로 제시했다. 국씨는 “학생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지 돈 보고는 못 나온다.”고 말했다. 숲생태해설사에 대한 예산은 국비와 시비, 구비 등으로 짜여진다. 그러다 보니 서울시내 일부 구청(종로, 도봉, 서대문, 관악, 강남)은 관내 노인들만을 대상으로 숲생태해설사를 선정, 운영한다. 정 회장은 “숲생태해설사를 하나의 노인직업으로 제도화하고 이에 걸맞은 예산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나도 60대” 최선길 도봉구청장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아는 것 아닙니까.” 노인 일자리 창출에 열성을 보이고 있는 이유를 묻자 최선길(66) 서울 도봉구청장은 이렇게 말하며 크게 웃었다. 그는 그러면서도 “단순히 생물학적 나이가 많아 노인 일자리를 만드는 데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업만 바라볼 수 없고 이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최 구청장은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현 상황을 볼 때 노인문제, 특히 일자리 문제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면서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될 단계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얼마있으면 고령사회로 접어드는 만큼 노인의 노동력을 활용, 총체적 생산성을 높일 때 국가적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도 폈다. 그의 이런 마인드는 도봉구를 노인 일자리 만들기 모델 자치구로 자리매김시켰다. 지난해에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전국 최우수 노인인력지원기관으로 선정돼 3000만원의 인센티브를 받는 기쁨도 누렸다. 도봉구의 노인일자리 사업은 다양하다. 지난해부터 운영되고 있는 공동세탁장은 노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쌍문1동 경로당 등 3곳에 마련된 공동세탁장에는 모두 45명의 노인들이 세탁일을 하고 있다. 구는 대형세탁기를 지원했고, 노인들은 식당과 여관 등지에서 나오는 수건과 이불 등을 세탁해 주고 월 10만 정도의 용돈을 번다. 최 구청장은 “경로당은 더 이상 고스톱 치는 곳이 아니다.”며 일하는 경로당으로의 개편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65세 이상 노인 68명을 선발해 어린이공원과 마을마당 47곳의 관리를 맡겼다. 집 가까운 곳의 공원에 출근해 시설물 상태를 점검한 뒤 구청에 보고하고 청소를 하는 일이다. 구에서는 이들에게 10만∼16만원의 급료를 지급한다. 또 지난달 18일에는 노인일자리사업 발대식을 갖고 지역환경지킴이로 일한 87명 등 모두 157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최 구청장은 “지자체는 이제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면서 “노인들에게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과 낚싯대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65세 이상 취업 통계자료도 없어 현재 65세 이상 노인들에 대한 취업률과 보수 등 공식적인 자료는 정부조차 가지고 있지 않을 정도로 취약하다. 경제활동인구에서도 제외돼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노인지원과 유병희 사무관은 3일 “65세에서 74세까지를 취업가능자로 분류하고 있다.”면서 “300여만명 가운데 30% 정도가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일부 연구조사에 나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하는 노인 대부분은 취업이나 개인사업 등 사회적 일자리 차원이 아니라 사실상 평생직업이나 다름없는 농·임·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형편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3만 5127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대부분 국비·지방비를 투입한 공익형 일자리다. 환경지킴이, 숲·문화재 해설, 공원관리인 등이다. 올해도 국비와 지방비 425억원을 투입해 3만 5000개의 노인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유 사무관은 “65∼74세 노인 중 일자리를 달라고 요구하거나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숫자는 30만명 정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일자리 정책이나 사업은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고령자(55∼64세)에 대한 정책은 관심분야다. 조만간 ‘고령자종합대책’을 세워 발표할 계획이다. 2003년 현재 55∼64세 고용률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인 50.8%를 약간 웃도는 57.8%다. 하지만 미국, 일본, 스웨덴 등과 비교하면 낮은 수치다. 고령 취업자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훨씬 많다. 업종별로는 농림어업, 광업 및 부동산, 임대업 등에 취업 비중이 높은 편이다. 전문성을 요하는 통신업, 금융·보험업 등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世銀, 울포위츠 만장일치로 총재 선출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세계은행은 31일(현지시간) 집행이사회를 열어 폴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을 차기 총재로 선출했다고 발표했다. 세계은행은 성명을 통해 “집행 이사들이 만장일치로 울포위츠를 선출했다.”면서 “5월31일 퇴임하는 울펀슨 총재의 뒤를 이어 6월1일부터 신임 총재의 임기가 시작된다.”고 밝혔다. 울포위츠는 신임 총재 선출 직후 성명을 발표,“이사회의 신임 결의에 감사하다.”면서 “막중한 국제기구의 수장을 맡게 돼 영광”이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세계은행에는 184개 국가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으며 지난해 기준으로 기금총액은 200억달러(약 20조원)이며 245개의 프로젝트를 관장하고 있다. 울포위츠가 차기 총재에 만장일치로 선출되기는 했지만 앞길이 순탄한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그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적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내의 대표적인 네오콘(신보수주의자)으로 이라크전을 주도한 울포위츠가 후진국의 빈곤 퇴치 등 세계은행의 본업보다는 미국의 이해를 우선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유럽지역을 중심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캐럴 그라함 연구원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울포위츠는 미국 행정부와 세계은행 사이의 완충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그러나 그가 미 정부쪽으로 기울면 세계은행에도 해로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울포위츠는 성명에서 “지난달 30일 브뤼셀을 방문, 유럽연합(EU) 관리들을 만났을 때 받은 조언과 질문은 건설적이었으며, 임기 동안 귀중한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유럽 등 국제사회와의 협력적 태도를 보였다. 그는 또 “세계은행이 당초 설립 목적을 충분히 이행하도록 하는데 총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하고 “후진국의 빈곤 및 에이즈·결핵 퇴치, 교육기회 확대 등 지난 2000년 9월의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 합의 결과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울포위츠가 취임하자마자 선진국을 상대로 세계은행 기금을 확충하는 쉽지 않은 과제부터 떠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함께 울포위츠는 유럽측의 요청대로 국제금융에 밝은 유럽인들을 실무 책임자로 임명해 업무를 보좌하도록 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dawn@seoul.co.kr
  • [내 인생의 등대] 하종현 서울시립미술관장

    [내 인생의 등대] 하종현 서울시립미술관장

    “몇 년 전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하며 새로운 인생 지침을 만들었습니다. 그 이전의 삶은 받기만 했던 것이었는데 지금은 그 지침에 따라 하나 둘씩 사회에 돌려주고 있습니다.” 하종현(70)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지난 2001년 홍익대에서 30여년간의 교수생활을 마치면서 ‘사회 환원’이라는 새로운 인생 목표를 설정했다. 그의 ‘환원 실천’은 퇴직금으로 받은 2억 3000만원 전액을 기증해 젊고 유망한 작가들을 위한 지원비로 사용하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는 이어 2003년 1월 처음 개방직으로 바뀐 서울시립미술관장에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외계층이나 일반 시민들에게 더 많은 것을 돌려주기 시작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공적 기능과 사회환원에 관한 자신의 신념을 결부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부임하면서 장기 계획을 세웠습니다. 첫해는 미술관 조직을 정비했고 두번째 해는 미술관 알리기, 세번째 해는 미술관이 사회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원년으로 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샤갈전(展)’ 등을 통해 미술관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올해부터는 사회환원을 실천할 때라는 설명이다. 그는 올해 서울시립미술관의 공적 기능과 자신의 사회 환원에 대한 신념을 접목해 소외계층에 대한 프로그램을 크게 확대했다. 미술관 남서울분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청각 장애아를 위한 미술 프로그램이나, 오는 20일부터 시작되는 ‘장애아동 미술교육 강좌’도 모두 하 관장의 아이디어다. “환원이라는 의미를 늘그막에 깨달아 부끄럽지만,‘사회환원’을 남은 인생의 소중한 목표로 삼고 더이상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환원’은 나이든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젊은 사람들도 결국 나중에 사회에 뭔가를 돌려주기 위해 현재의 삶에 충실해야 하니까요.” 하 관장은 평생을 미술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장과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 퇴임 전까지 개인전을 20여차례 개최하고 단체전에 10여차례 참가하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화려한 이력이 말해주듯 폭넓은 대외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하 관장의 화려했던 경력보다도 사회환원을 목표로 한 제2의 삶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대북유화파 日다나카 심의관 은퇴

    |도쿄 이춘규특파원|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2002년 9월 전격적인 북한 방문을 성사시키는 등 일본 외무성의 대표적 대북(對北) 유화파로 꼽혀온 다나카 히토시(58) 외무심의관이 은퇴할 것으로 31일 알려졌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다나카 심의관은 동기생인 야치 쇼타로 사무차관이 지난 1월 취임함에 따라 러시아 또는 중국 주재 대사로 나가라는 제안을 받았으나 ‘조직을 떠나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퇴임을 전제로 도쿄의 유명 사립대학으로부터 교수 제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자민당 등 정치권으로부터 “지나치게 북한에 대해 유화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taein@seoul.co.kr
  • ‘태백산맥’ 11년만에 무혐의로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를 놓고 검찰이 11년째 법리 검토를 해 온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처리 방침이 다음달 초 마침내 불기소 쪽으로 결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태백산맥의 저자인 조정래씨와 출판사 대표 등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고발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구본민)는 지난해 국보법 개폐 논의가 본격화된 뒤 대검 공안자문위원회의 의견을 수렴하고 남북관계의 변화 등을 감안한 결과 무혐의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송광수 검찰총장이 퇴임하는 4월 2일 전에 공식 발표키로 했다. 이 사건 수사는 1994년 4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모씨 등이 “태백산맥이 이승만 정권을 친미 괴뢰정부로 묘사하고 빨치산의 활동을 미화했다.”며 조씨와 출판사 대표를 국보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국보법 개폐 논의가 가속화하자 처리를 미루는 것이 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우세해지면서 불기소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마찬가지 맥락에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공방을 야기했던 국가정보원 휴대폰 도청 의혹을 둘러싼 6건의 고소·고발사건도 다음달 초 일괄 불기소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조정래씨는 ‘태백산맥’에 대한 국가보안법 고발사건이 무혐의 처리된 것에 대해 “대단히 기쁘며, 분단의 비극이 다시는 창작의 올가미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만 10년을 짊어져온 짐을 벗은 심정을 “날개를 단 것같다.”고 표현한 조씨는 “3인칭 기법으로 분단과 좌우 이념대립의 현실을 진솔하게 표현했을 뿐 소설 속 등장인물의 말과 행위를 놓고 이적성을 논한 것 자체가 넌센스였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지난 일들을 모두 과거의 사실로 수용해야 한다.”는 판단에서 전남 보성 벌교읍에 세워지는 ‘태백산맥 문학관’에 이 사건과 관련된 10여년의 기록들을 전시할 계획이다. 박경호 황수정기자 kh4right@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자서전 ‘대화’ 낸 리영희 전 한양대교수 산행 인터뷰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자서전 ‘대화’ 낸 리영희 전 한양대교수 산행 인터뷰

    ‘아큐정전’의 저자 루쉰(魯迅)은 생전에 영국의 시인 바이런을 예찬했다.‘영국’이라는 속박에서 끊임없이 벗어나려는 저항정신을 사랑했다. 얼마전 중국은 네티즌 13만명을 상대로 20세기 중국사회에 가장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루쉰을 1위로 꼽았다. 한국의 루쉰으로 일컬어지는 사람이 있다. 누굴까.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한다. 파란과 곡절의 삶 그 자체이다. 주위에서는 ‘60% 저널리스트,40% 아카데미션’이라고 한다. 르몽드지는 ‘사상의 스승’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1999년 ‘연세대학원신문’이 교수와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20세기 영향력 있는 학자와 저작’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국내 학자 가운데 리영희(77)씨를 가장 으뜸으로 꼽았다. 또 모언론사에서 지난 한 세기동안 가장 영향력있는 100대 인물 중 리씨가 24위로 조사됐다. 리씨는 “나의 글은 루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루쉰을 좋아한다. 흥미로운 것은 루쉰과 리씨가 해양대학 출신의 지식인이라는 점. 리씨 역시 온몸으로 ‘저항’하며 한 시대를 깨우치려 했다. 또 올곧은 사상가의 길을 걷고자 했다. 경기도 군포시 수리동의 한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다. 신분을 밝히자 “문이 열렸으니 그냥 들어오세요.”라고 했다. 안으로 들어섰다.40평쯤 돼 보였다. 리씨는 식탁에서 혼자 과일을 먹고 있었다.“점심을 지금 막 먹었거든. 조금만 기다려주게.”라고 했다. 잡안에는 조수미의 ‘새야새야’가 조용히 울려퍼졌다. 이윽고 리씨와 마주앉았다. 이런저런 인사말이 오고갔다. 그는 “오늘 날씨도 좋은데 뒷산 구경이나 할까.”라면서 옷을 갈아입었다. 이때 전화벨이 울렸다. 본의 아니게 전화내용을 듣게 됐다.“요새 글 못써. 책도 안 읽어. 스트레스 받으면 재발하거든. 뭐? 대학에서 두번 쫓겨나는 바람에 연금도 없어. 내가 언제 감투를 써봤나. 요새 책도 안팔려, 전자매체로 다 보잖아.” 문득 벽에 걸린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손자손녀들과 밝게 웃는 모습의 사진도 보였다. 전화통화를 끝낸 리씨는 “가족이란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해야 기억할 수 있지. 손자들은 서울 신촌에 살고 있어.”라며 노년의 외로움을 감추지 못했다. 잠시후 마을 뒷산인 수리산 입구에 들어섰다.“이 산은 말야, 해발 489m의 야트막한 산이지. 그런데 물이 좋아. 약수물 받으러 오는 사람 많아.” 리씨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 천천히 걸었다. ●이번 자서전이 마지막 글 최근 발간된 자서전 ‘대화’(한길사刊)에 대한 얘기가 먼저 나왔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직접 글을 다듬고 쓰지 못해 어려움이 많았지. 서울대 학생이 우리집에 기거하며 정리해 주었어.2년 걸렸지. 누락됐거나 생략된 것도 많아. 살아온 76년은 한마디로 ‘야만의 시대’였지. 일제와 해방후 50년은 반인간적 생존환경이었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싸우는 고결한 정신의 소유자들 돕기 위해 많은 글을 썼지. 문장으로는 꽤나 중국의 루쉰 같은 스타일로 써왔어.” 20분 가량 걸었다. 약간 힘들었는지 의자에 앉자고 했다. 푸른 소나무 사이로 새들의 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혔다. 자연이 그에겐 어떤 모습으로 다가갈까. 잠시 하늘을 쳐다보다가 “아름다운 경치야. 무심(無心)으로 걸어. 자연의 오묘한 변화를 새삼 느끼지. 몸이 불편하니까, 지난날의 정열과 행동양식이 내면화되니까, 정서가 합치돼.”라면서 지나온 세월을 잠시 돌이켜본다. “참으로 우역곡절과 파란만장이었어. 어떤 장면과 국면에 가까이 안가도 될 것을, 지성인의 본질적 책임을 위해 개인의 안락보다는 사회쪽으로 시선을 돌렸지. 가정위주로 산다는 것은 배반이었어. 자식들에겐 굉장히 미안해. 또 지나칠 정도로 논증적으로 빈틈없이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었지. 정서적 내면은 철저히 억압됐어.” 이같은 고통스러운 삶으로 술은 늘 곁에 끼고 있었다고 했다. 모언론사 외신부장 시절이다. 부원들과 팔당에서 야유회를 가졌다. 부원들은 정종을 마셨지만 리씨는 들고온 고량주(10홉짜리 큰병)의 뚜껑을 땄다. 안주없이 벌컥벌컥 5홉을 연거푸 마셨다. 정신을 잃었다. 이튿날 배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위궤양이었다. 성인의 위두께가 보통 11㎜인데 9㎜까지 파고들었단다. 이후 15년 동안 위궤양으로 고생했다. 리씨는 인터뷰에 앞서 스트레스 받는 질문은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온국민의 관심사인 독도문제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본은 모든 상황을 1945년 이전으로 롤백하려는 큰 구상 속에 영토문제를 꺼내고 있지. 우리는 고증과 실증을 통해 법률적 역사적 근거를 제시해야 해. 걱정되는 것은 우리 국민의 ‘냄비’ 정서야. 항상 반응적이거든. 그러나 독도문제만큼은 영국 국민처럼 뚝심으로 대처해야 해.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은 불독처럼 말야. 여기에 일본인 같은 교묘함도 염두에 두어야 해.” ●한·일 우익들의 밀착이 문제 이어 “이번 사태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의 친일파 우익과 일본의 우익단체간에 밀착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라면서 “한국과 일본의 우익 뒤에는 항상 미국이 있지. 김대중 정권에서도 그랬지만 노무현 정권에 와서 미국은 남한의 우익을 더욱 부추기고 있어. 기독교 인사, 전직 장관, 군부세력 등 남한의 우익단체가 더 무서워. 자기 몸속의 벌레를 찾아내야 해.”라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혈압이 오르는 것을 느낀 듯 “그만두자.”고 했다. 화제를 돌렸다. 여생에 뭔가 또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자 “한 인간으로 할 수 있는 분량이 있어.40년간 범속한 지식인의 머리로 쓴 소리도 많이 했지. 국민들에게 시대의식과 세계관을 바로잡는 데 나름대로 기여했다고 봐. 또 우리 국가나 사회가 대체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이 기쁘고 행복해. 이만하면 분량을 다했어.”라며 말끝을 흐린다. ●광주 배후자로 몰려 수차례 고초 그는 1929년 평북 운산에서 3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부친은 구한말 신식교육을 받은 선비형이었다.14세 때 경성의 ‘공립5학년제 갑종 중학교’에 입학한 뒤 1945년 11월 미국식 6년제가 된 고등학교에 5학년으로 편입했다. 이때 담배말이와 성냥장사를 했지만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정도였다. 그러던 1946년 국비로 입혀주고 먹여준다는 말을 듣고 해양대학 1기생으로 입학해 1950년 3월 졸업했다. 6·25전쟁이 나자 연락장교에 지원해 7년 동안 전방근무를 했다. 전방 근무시절엔 권총을 잘 쏘아 명사수로 명성이 자자했다. 제대 1년전 56년 스물일곱에 하숙집 아줌마의 중매로 결혼했다. 제대후에는 합동통신사 외신부 기자로 취직했다. 슬하에 2남1녀를 두었는데 셋다 합동통신사 다닐 때 태어났다. 이후 72년 신학기부터 한양대 강단에 서면서 무섭게 글을 썼다.77년에 ‘8억인과의 대화’‘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을 한데 묶어 2년 동안 투옥된다. 수감 중에는 ‘D검사와 리교수의 하루’라는 소설을 썼다. 대학에 복직됐으나 ‘광주폭동’ 배후자로 몰려 다시 해직되는 등 수차례 고초를 겪는다. 정년 퇴임후 그는 시대적 소임을 다했다고 자위하며 조용히 살았지만 2000년말 일흔나이에 뇌출혈로 쓰러졌다. 언어장애까지 겹쳤다. 다행히 요즘들어 건강이 다소 회복됐다. 그러나 오른손의 떨림과 손가락마비는 여전해 장마철만 되면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의 심한 고통을 느낀다고 했다. “내가 할 일은 다했다.”고 거듭 말하는 리씨. 그는 자신의 책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며 저녁노을을 뒤로 하고 쓸쓸히 산을 내려왔다. ■ 그가 걸어온 길 ▲1929년 평북 운산 출생 ▲50년 해양대학 1기 졸업, 경북 안동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중 6·25전쟁이 나자 연락장교 지원 ▲57년 대위로 군제대 ▲57∼64년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 ▲64∼71년 조선일보·합동통신 외신부장 ▲72년 한양대 문리과대 교수 ▲76년 박정희 정권때 해직 ▲80년 3월 복직됐으나 그해 여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됨. ▲84년 재복직 ▲87년 미국 버클리대 부교수 초빙 ▲95년 한양대에서 정년퇴임 ▲99년 동대학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 역임 ■ 주요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74년), 우상과 이성(77년),8억인과의 대화(77), 분단을 넘어서(84년), 베트남전쟁(85년), 인간만사 새옹지마(91년) 등 km@seoul.co.kr
  • [씨줄날줄] 검찰인사 청탁/ 우득정 논설위원

    ?:국민의 정부 시절, 검찰 인사를 관장하는 법무부 검찰국장 집무실.A국장의 전화기 옆 메모꽂이에는 휘갈겨 쓴 메모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주로 외부에서 온 인사청탁이란다. 불과 보름 전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인사청탁을 하면 반드시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언한 엄포가 무색할 정도였다. 장관과 총장의 약속대로 메모지에 적힌 당사자들만 불이익을 줘도 인사하기 쉽겠다고 하자 “동냥을 주지는못할 망정 쪽박을 깰 수는 없지 않으냐.”고 했다.A국장은 청탁한 사람들은 자신의 목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위치에 있는 실력자들이라면서 갈수록 인사청탁이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며칠 후 B 부장검사의 방. 연수원 14기(사시 24회)인 그는 13기 때문에 검찰의 물이 흐려졌다고 목청을 높였다. 사시 300명 시대의 첫 주자인 13기가 부장검사 승진을 앞두고 전방위 로비를 펼치는 바람에 당시 검찰 수뇌부가 고심 끝에 한명의 열외없이 모두 승진시켰다는 것이다. 집단적인 로비로 ‘선별 승진’이라는 보루가 무너진 만큼 인사 로비는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검찰 인사철만 되면 전국의 검찰청 주변에는 ‘∼카더라’식의 소문에서 익명의 투서에 이르기까지 인사청탁과 관련된 온갖 풍문이 나돈다. 요직에 발탁된 검사 뒤에는 ‘누구의 줄을 잡았다.’는 해석이 그럴듯한 정황 증거와 함께 덧붙여진다. 어떤 검사들은 고위층과의 친분을 과시하기 위해 ‘형, 아우 사이’임을 공공연하게 내비친다. 실제 출입기자들을 앞에 두고 고위층에 전화를 걸어 ‘형님, 접니다.’라고 떠벌린 검사도 있었다. 참여정부에서는 달라졌겠거니 싶었는데 아닌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내달 초 퇴임을 앞둔 송광수 총장이 여기저기에 인사청탁을 하고 다니는 검사는 ‘용심’을 부려서라도 옷을 벗기겠다고 경고했겠나.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는 전례없을 정도로 높아졌는데 2년에 걸친 송 총장의 검찰 바로세우기 노력이 인사청탁 잡음으로 도로아미타불이 되지나 않을까 안타깝다. 서울 고검 검사에서 옷을 벗은 한 변호사는 사석에서 후배 검사들에게 “보직을 놓고 다투지 말라.”고 충고했다. 별 볼일 없다는 고검 검사도 변호사 3명 정도의 값어치가 있더란 말과 함께.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儒林(310)-제3부 君子有終 제2장 鄒魯之鄕

    儒林(310)-제3부 君子有終 제2장 鄒魯之鄕

    제3부 君子有終 제2장 鄒魯之鄕 퇴계를 태운 가마가 죽령기슭에 이르렀을 때였다. “나으리, 나으리.” 퇴계를 쫓아온 관졸들이 손에 다발을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가마를 세우고 퇴계가 묻자 관졸들이 말하였다. “나으리, 이것은 삼베를 짜는 삼이옵니다. 이것은 아전(衙田)에서 거둔 것인데, 퇴임하는 사또께서 노자로 쓰기로 전례가 되어 있어 가져온 것이기에 바칩니다.” 아전이란 관청에 딸린 밭으로 동헌 근처에서 심은 삼이었던 것이다. 이것들은 국가의 소유로 대부분 관아에서 사용하는 비용이나 혹은 사또의 개인 사비로 충당하는 관례가 있었던 것이다. 특히 삼은 줄기껍질로는 섬유를 짜서 삼베를 만들고 씨로는 기름을 짜는 대마(大麻)라 불리던 유용식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관례에 따라 군졸들이 삼베를 거두어 퇴임하는 퇴계에게 가져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퇴계는 이를 단호히 물리쳤다고 이덕홍(李德弘)은 퇴계언행록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러자 선생은 ‘내가 명령한 것도 아닌데 왜 그것을 가지고 왔느냐.’하고 이내 물리치셨다.” 이 일을 기록한 이덕홍은 이퇴계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扈從)하였고 성리학과 역학에 뛰어난 문인이었다. 이덕홍은 스승이 이 무렵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퇴계가 단양의 군수에 재직하고 있을 무렵 아들 준에게 보낸 편지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대상날짜가 임박해지는구나. 제상은 여기서 보낼 작정이다. 쌀과 면을 만들 감은 보낼 형편이 못된다. 그러니 집에서 준비하여라. 다만 저축해둔 곡식이 없을까 걱정이다.” 편지 중에 나오는 대상이란 퇴계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권씨의 장례를 말하는 것으로 이 무렵 퇴계의 집은 저축해둔 곡식이 없을 만큼 궁핍하였던 것이다. 그뿐인가. 아들 준에게 보내는 다음과 같은 편지도 바로 이 무렵 쓴 것이다. “…내 갓과 신이 다 닳아서 새로 장만하여야 하겠다. 스무날께 베를 보내다오. 옷과 갓을 인편에 부치거라.” 옷을 만드는 베조차 부족하여 이를 보내달라는 퇴계의 청렴한 공복(公僕)정신은 오늘날 공무원들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정신인 것이다. 따라서 전근하는 퇴계에게 군졸들이 삼을 가져온 것은 바로 이러한 사또의 딱한 처지를 헤아려 거두어 온 것인데, 퇴계는 단호히 이를 물리쳤던 것이다. 이때 퇴계의 처신을 제자였던 김성일은 언행록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선생이 단양을 떠나 돌아갈 때에는 선생의 행장에는 쓸쓸하게도 다만 괴이한 수석이 두 점 있었을 뿐이었다.” 단양은 예로부터 괴석과 수석이 유명한 곳. 단양을 떠나는 퇴계의 행장에는 괴석 두개만 달랑 들어 있었다는 것이 김성일의 기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하였음일까. 단양을 떠나는 퇴계의 짐 속에는 김성일의 표현대로 괴석 두 개만 들어 있었을까. 아니었다. 퇴계의 행장 속에는 매화분 하나가 남의 눈에 띌세라 깊숙이 보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 송광수총장 “공수처 설립 당혹스러워”

    송광수총장 “공수처 설립 당혹스러워”

    송광수 검찰총장은 21일 퇴임 기자간담회를 갖고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설립에 대해 “당혹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라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다음달 2일 퇴임하는 송 총장은 공수처 설립에 대한 의견을 묻자 마음에 담아두었던 듯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원래 조사처였는데 어느새 수사처로 바뀌었더라.”라고 말문을 연 송 총장은 “동남아 국가의 제도를 모방해 공수처를 만들었는데 이들은 검찰이 없거나 검찰이 공직자 관련 수사를 하지 않는 나라라 우리와 사정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공직자 비리는 수십년간 정치·사회·문화적 배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어서 새 기구를 만든다고 비리가 씻은 듯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 ●“정치권이 검찰권 약화시키려는듯” 공수처는 차관급 이상 공무원, 국회의원, 지자체장, 법관·검사 등 사정기관 및 고위 공무원의 비리조사를 전담하는 기구로 다음달 임시국회에서 처리돼 설립될 예정이다. 검찰은 그동안 공수처 설립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반대 의사를 밝혀왔다. 송 총장은 “기존 기관을 보강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면서 “(정치권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심해 (정치권이) 검찰권을 약화시키려 공수처를 설립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하고 싶지만, 마음이 자꾸 그쪽으로 가 안타깝다.”고 털어놓았다. ●“불법대선자금 수사는 90점짜리” ‘불법 대선자금 수사 때 외압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송 총장은 “초기에는 내게 직접 얘기가 있었지만 이후에는 없었다. 중간간부, 수사검사, 법무부 등 여러 통로를 통해 압력이 들어온다는 보고는 받았다.”면서 “그러나 수사팀 의지 등을 고려할 때 영향을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고 돌이켰다. 그는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 등을 고려할 때 대선자금 수사는 90점짜리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1977년 서울지검 수원지청 검사로 출발한 송 총장은 2003년 4월 검찰 수장 자리에 올랐다. 김각영 전 총장이 취임 4개월 만에 전격 사퇴한 뒤였다. 그는 어수선한 내부 분위기를 다잡은 뒤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거물급 정치인은 물론 대통령 측근들을 잇달아 사법처리,‘성역없는 수사’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송 총장은 “총장 자리는 감옥살이만큼이나 제약이 많지만,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한 따뜻한 검찰이 돼 달라.”고 후임 총장에게 당부했다. 퇴임후 계획을 묻자 그는 “후배 검사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당분간 쉬면서 잘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데스크시각] 신격호 회장의 카리스마/홍성추 산업부장

    롯데 그룹 신격호 회장은 국내 10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창업주다.83세의 고령임에도 일본과 한국을 넘나들면서 근무하는 이른바 ‘셔틀 경영’으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 9일 귀국, 한국에서의 집무가 시작되면서 신 회장의 행보에 재계의 관심이 쏠려있다. 롯데 그룹이 잇단 악재에 시달리고 있음을 감지한 신 회장이 어떤 대응카드를 들고 나올 것인가 하는 궁금증 때문이다. 지금까지 롯데는 신격호 회장의 ‘카리스마’에 의존해 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23세 때인 1945년 일본 도쿄의 한 낡은 창고를 빌려 가마솥을 걸어놓고 기름·비누공장을 설립, 오늘의 ‘롯데 왕국’을 키워냈다. ‘조센징’이라는 핍박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 냈다. 당시 교포들 대부분은 ‘파친코’나 불고기집,‘야쿠자’ 등으로 흘러들었지만 신 회장은 제조업으로 승부, 일본인들도 놀랄 정도로 기업인으로 성공했다. 이 여세를 몰아 지난 67년 한국에 진출, 그룹을 명실상부한 식품과 유통의 대명사로 키웠다. 현재 건설 화학 음료 등 41개 계열사에 연 매출 22조원을 기록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이 됐다. 지주회사격인 롯데칠성의 주가는 100만원을 웃돌아 ‘황제주’로 대접 받고 있다. 지금은 한국 롯데가 일본 롯데를 매출이나 순익에서 크게 앞지르고 있다. 그만큼 한국에서도 성공했다는 방증이다. 신 회장은 철저한 현장주의 경영자다. 아침에 일어나면 2시간30분 이상을 걸어다니며 잠실 롯데월드를 꼼꼼히 챙겨 직원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든다. 백화점이나 호텔도 마찬가지다. 안전과 품질에 대한 완벽은 결벽증에 가깝다. 또한 수치 감각이 뛰어나 어떤 전문경영인도 신 회장 앞에 서면 쩔쩔 매고 만다고 퇴임한 전직 임원이 전했다. 그 대신 롯데는 대부분 정년을 보장해 주는 편이다.IMF 환란 사태 이후 수 많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펼칠 때도 롯데만큼은 남의 얘기였다. 최근 롯데호텔에서 명퇴를 받는다고 했을 때 오히려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냉철한 승부사 기질도 가지고 있다. 동생인 신춘호 농심 회장이 분가할 때나 막내 동생인 롯데햄 신준호 회장이 권위에 도전했을 때 보여준 냉정함은 그의 단면을 보여준 일화다. 이러한 롯데에 파열음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영등포 롯데백화점 에스컬레이터 고장으로 승객이 사망한 사건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직원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다가 직원 잘못으로 밝혀지면서 도덕성에까지 먹칠을 하고 말았다. 입점 점포직원이 고발하면서 사실이 밝혀졌다는 후문은, 롯데의 현주소를 그대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입점 상인들에게 백화점 직원들의 ‘횡포’가 대단하다는 얘기다. 서울 소공동 본점 옆의 옛 한빛은행 자리에 들어서는 명품관 ‘에비뉴엘’ 개관을 둘러싸고 노점상들과 충돌하는 것 역시 시민들에게는 볼썽사나운 모습이다. 메이저 그룹으로서의 일처리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느냐는 것이다. 말끔한 일처리와 도덕·안정성을 철학으로 삼고 있는 신 회장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신 회장은 귀국하자마자 계열사 별로 업무보고를 받으며 직접 현안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그룹 정기인사에서 차남인 신동빈 부회장에게 상당부분 경영을 일임했던 신 회장이었다. 신 부회장은 10개 계열사 대표이사를 교체하는 등 사실상 경영 전면에 나선 상태다. 그러한 와중에 일련의 일들이 잇따라 터져 신 회장 부자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신 회장은 작금의 사태들이 자칫하다가는 그룹의 위기로까지 비화될 수 있음을 감지하고 있는지 모른다. 특히 유통업계의 지존으로까지 대우받던 롯데가 최근 할인매점인 이마트 등에 밀려 상당히 고전하고 있다. 유통업의 변신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한데 따른 실책이라고 업계에선 분석하고 있다. 현재의 롯데는 분명한 기로에 서 있는 것 같다.2세로의 경영권 이양 연착륙과 훼손된 유통 명가의 자손심을 시급히 회복하는 일이다. 신 회장 특유의 ‘카리스마’가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재계는 주시하고 있다. 홍성추 산업부장 sch8@seoul.co.kr
  • 그린버그 AIG회장 불명예 퇴진

    |뉴욕 AFP 연합|세계 최대 보험회사인 미국 AIG의 모리스 그린버그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79)가 사임했다. 14일 AIG 이사회는 ‘경영승계계획’에 따라 그린버그를 퇴진시키고 마틴 설리번 공동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부회장을 새 CEO로 선출했다고 발표했다. 그린버그는 비등기 이사 회장직은 계속 맡을 것이라고 성명은 밝혔으나 그의 경영 책임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프랭크 자브 AIG 이사회 의장은 회사의 성장과 성공에 대한 그린버그 회장의 헌신을 높이 평가하지만 “이사회는 지금 새 지도부로 개편하는게 주주와 고객, 직원들 이익을 위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 언론은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AIG가 증권거래소와 뉴욕 검찰 등으로부터 부정거래 의혹에 대해 잇따라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과 관련, 이 회사 이사회가 13일 모임을 갖고 그린버그의 퇴임 조건을 협의했다고 보도했다. 뉴욕 출신으로 미국 재계의 대표적인 지한(知韓)파인 그린버그 회장은 1960년대초 이름도 없던 AIG의 중간 관리자로 출발,1967년 CEO 자리에 오른 뒤 특유의 공격 경영으로 4년만에 AIG를 세계 최대의 보험사로 키운 월가의 거인이다. 그는 20대에 한국전에 참전, 동성무공훈장을 받는 등 한국과 인연이 남다르다.
  • 김영일 재판관 “국민기본권이 헌법 장식물이냐”

    김영일 재판관 “국민기본권이 헌법 장식물이냐”

    11일 정년퇴임식을 가진 헌법재판소 김영일(65·사시 5회) 재판관은 수도이전 위헌결정 등을 비난한 정치권에 “헌재 결정을 폄하하는 지각없는 사람들”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헌재 재판관 구성의 다양화를 담은 여당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잘못된 생각”이라고 했다. 김 재판관은 이날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헌재가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다.’며 헌재의 결정을 폄하하는 의견이 있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정치권을 겨냥한듯 “이들이 진정 나라를 위하고 헌법을 수호하며 국민 의지를 대변하는 사람들인지 대단히 의심된다.”고 격한 감정을 쏟아냈다. 김 재판관은 또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로 재판관을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잘못된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헌재는 법의 고유한 의미를 찾고 헌법정신을 해석, 의미를 전달하는 일을 맡는다.”면서 “이는 오랜 세월 법을 해석하고 국민 기본권을 지켜온 법률가의 영역”이라고 주장했다. 김 재판관은 또 “재판관의 정치적 감각은 헌법을 해석할 때 도움을 줄 수 있지만, 헌재 결정까지 나가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헌재가 정치권의 움직임까지 고려하면 헌정 질서가 무너지고, 국민의 기본권은 헌법의 장식물로 몰락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김 재판관은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조치법을 위헌이라고 결정한 쪽에 섰었다. 지난달 호주제 관련 민법 조항에 대해선 “우리 고유의 부계혈통주의 전통”이라며 합헌 의견을 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이젠 사람입국이다] 16. HP “직원교육이 경쟁력”

    [이젠 사람입국이다] 16. HP “직원교육이 경쟁력”

    정확한 평가를 통한 올바른 인사가 사람중시 기업경영의 핵심이다… 직무능력 평가의 시작은 문화적 충격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지도자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 |팔로알토(미 캘리포니아주) 전경하특파원|휼렛패커드(HP)는 지난 2002년 직원들의 학습기록과 업무평가기록을 통합했다.15만명에 이르는 전 직원이 어떤 교육을 받았고, 직무능력은 어떠했는지를 보기 위해서는 사내 인터넷의 직원 사진을 클릭하면 된다. 이 작업을 총괄한 데이지 잉 HP 인력개발담당 부사장은 “통합작업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HP가 정보기술(IT) 업체였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밝혔다. 학습평가기록과 업무기록이 통합됨에 따라 적재적소의 인사가 가능해졌다. 잉 부사장은 “정확한 평가를 통한 올바른 인사가 사람중시 기업경영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철저한 평가는 위부터” 직무능력 평가와 관련, 잉 부사장은 “직무능력 평가의 시작은 문화적 충격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지도자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HP의 경우 5단계로 이뤄진 평가 과정에서 최고경영자(CEO)는 가장 높은 0단계에 해당된다.CEO는 1단계에 속하는 임원 및 부회장이나 사장급을 평가하고 1단계 임원 등은 2단계 임원들을 평가한다. 잉 부사장은 2단계 평가 대상이다.2단계 임원들은 다시 하위직을 평가하게 된다. 지도자의 솔선수범은 교육프로그램에서도 나타난다.CEO는 지도자 교육프로그램의 첫날과 마지막날을 포함해 1년에 6차례에 걸쳐 의무적으로 직원 교육에 참여해야 한다. HP의 교육프로그램은 4단계로 구성된다.1단계에서는 모든 직원들이 참여하며, 직원당 40시간이 투자된다. 전체 직원의 30∼40%가 참여하는 2단계에서는 교육 시작 전과 교육이 끝난 뒤 교육 내용 등을 평가한다. 전 세계 150개 지역에 있는 평가센터에서 컴퓨터를 이용한 온라인 평가 방식으로 이뤄진다. 3단계는 관리자급,4단계는 미래와 현재의 지도자를 위한 과정이다. 잉 부사장은 “3·4단계는 프로그램의 속성상 개발과 운영에 많은 돈이 필요하지만 행동 변화를 다루기 때문에 정확한 평가는 어렵다.”고 설명했다.4단계 교육을 받는 직원은 전체 직원의 15% 안팎이다. 직원들의 특정 프로그램 학습이 끝나면 인력개발부에서 일괄적으로 직원의 교육기록을 수정하게 된다. HP의 교육담당 직원은 전문가 200여명을 포함해 800명이며, 연간 3억달러가 직원교육에 투자된다. ●세계 150개 센터서 온라인 평가 교육프로그램 개발은 철저한 수요 조사에 의해 이뤄진다. 잉 부사장은 “기존 교육프로그램이 이뤄낸 성과와 앞으로 필요한 교육프로그램 등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좋은 교육 프로그램 개발의 전제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우선 프로그램을 개발하기에 앞서 해당분야의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신상품에 대한 특징 및 판매기술 등에 대해 묻는다.HP 직원들은 모두 컴퓨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두번째는 관리자 면접을 통해 필요한 프로그램을 찾아낸다. 세번째는 HP에 충실한 고객들을 만나 그들이 HP로부터 무엇을 더 원하는지를 파악하고 고객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어떤 직원교육이 필요한가를 평가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개발된 신상품에 대해 7개의 언어로 번역된 360개 문항에 대해 1만 1000명의 판매직원에게 이해 여부를 물었다. 또 고객들에게는 판매직원이 어떤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기를 원하는지를 문의했다. 이를 토대로 각각 8∼10명의 판매원을 책임지는 판매관리자들의 교육프로그램을 작성했다. 프로그램의 큰 틀은 본사에서 정하고 이를 전 세계에 적용한다. 또 컴퓨터를 통한 교육에 100% 의존할 수 없을 때에는 현지의 교육기관과 연계,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본사의 경우 스탠퍼드대학이 주요 파트너다. ●개인의 성장 가능성을 열어줘야 잉 부사장은 “HP의 장점 중 하나는 직원을 교육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재배치를 통해 성장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직원들의 소속감을 불러일으켜 회사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 출신의 잉 부사장도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에서 10년 근무한 뒤 캐나다에서 10년 근무했다. 이어 2년전부터는 미 텍사스주의 휴스턴에 근무하면서 인력개발 프로그램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여러 나라에서의 근무 경험을 통해 국제감각을 키웠고, 인력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게 되면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됐다.”고 설명했다. lark3@seoul.co.kr ■ HP의 기업문화 |팔로알토(미 캘리포니아주) 정재삼 이화여대 교수·전경하 특파원|지난 2월 칼리 피오리나 휼렛패커드(HP) 최고경영자(CEO)가 퇴임한 것에 대해 일부 외신은 ‘HP 가치관의 승리’라고 표현했다. 지난 2001년 컴팩을 인수한 이후 실적 부진에 허덕이던 HP가 지난해 컴퓨터 판매 목표량을 달성하지 못하자 피오리나는 최고경영진 3명을 과감하게 해고했다. 전통적으로 인화(人和)를 중시하는 HP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정이었다. 미국은 고용시장의 유연화로 이직률이 높은 편이다. 특히 정보통신(IT)이 중심인 캘리포니아주 실리콘 밸리의 이직률은 유난히 높다. 하지만 HP는 이직률이 낮다. 동종업종인 IBM이나 선마이크로시스템스에 비해 경영학석사(MBA)가 많으며 미국 시민들의 높은 존경을 받고 있는 편이다. 이는 HP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된다. ●지도력과 인간존중이 이끈 성장 HP는 1939년 스탠퍼드대 출신의 공학도인 윌리엄 휼렛과 데이비드 패커드가 한 주택의 차고에서 523달러로 시작한 회사다.66년이 지난 지금 연매출 810억달러,178개국에 15만명의 직원들이 진출해 있는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사의 성장 원동력은 창업자들이 보여준 탁월한 지도력과 인간존중의 기업문화였다. 창업자들은 1940년대에 MBWA(Management By Walking Around)를 도입했다. 상급자가 부하직원을 찾아다니며 고충을 듣고 결재도 하는 내용이다.‘목마른 사람’인 상급자가 부하직원을 찾아다니게 해 여러 사람의 수고를 덜어주도록 했다. 철저한 개방정책을 고수한 것도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HP는 자재창고도 개방돼 있다. 이로 인해 물품 낭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개방정책은 종업원들은 물론, 종업원과 경영자 사이에 생기는 오해와 불신을 없애는 효과를 봤다. 문제가 생기면 서로 솔직한 토론을 통해 해결책을 찾는 기업문화가 발전했다. 회사의 수익 일부를 사회로 환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IT가 큰 자산 HP의 인적자원개발 기초는 평생학습 지원이다.HP는 모든 구성원이 유연하며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IT같이 빨리 변하는 산업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아울러 직원 모두가 자신을 개발시키려고 노력해야만 HP가 세계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HP가 IT업체라는 사실은 평생학습을 실행하는 데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HP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학습 도구를 갖고 있다. 인터넷상에 구현된 가상교실이나 학습자 프로그램 등을 통해 모든 직원들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학습할 수 있다. 2004년 한해 동안 57개국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인터넷상의 교육시스템을 방문한 건수는 100만건을 웃돌았을 정도다. 교육프로그램 개발에 있어 소비자와의 접촉이 많은 소매업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행해진다. 현재 HP는 소매업자 관리팀에 상담기술과 주요 영업이슈 등에 대한 교육을 진행 중이다.HP는 교육이 끝난 개별 팀이 3년 안에 각각 3배의 이익신장을 이끌어낼 것이라 보고 있다.HP 회사 전체로는 3억 7500만달러에 달한다. HP는 또 모든 직원들에게는 자신의 경력개발 계획을 만들어 상급자와 의논하도록 권유한다. 직원들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해 학습프로그램을 개발하는 ‘Learning on Demand’도 가동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는 지난 2002년 학습관리시스템(LMS)과 업무평가관리시스템(PMS)을 통합한 것이 큰 자산이 됐다. 두 시스템의 통합은 인적자원과 정보기술 부문의 협력을 통해 가능했다. 개인은 학습프로그램을 이용해 직무능력 향상과 연계시킬 수 있다.HP는 이 시스템의 통합으로 모든 정보가 인터넷상으로 공급됨에 따라 2700만달러를 절약했다고 밝혔다. chungjaesam@korea.com
  • 미리 들여다 본 서울대 기록관

    미리 들여다 본 서울대 기록관

    서울대 기록관이 전시시설을 갖추고 올해 말 정식으로 문을 연다. 기록관은 지난 10년 동안 서울대와 관련한 모든 기록을 모아왔다. 서울대의 역사는 이 대학만의 것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기록관의 출범은 의미있다.‘기록은 과거를 회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서울대 기록관으로 들어가 본다. “금번에 동 대학 사학과에서 화물자동차를 이용하여 여주 신륵사에 지방고적답사를 다녀오고자 합니다.” 1957년, 사학과 이병도 교수는 답사를 앞두고 동숭동에 있던 문리대의 관할서인 동대문경찰서에 허가를 요청했다.‘서울대문리대학교’의 요청에 ‘허가’를 뜻하는 동대문경찰서장의 직인이 찍힌 이 답사 허가서는 2003년 3월 정양모(71) 전 국립박물관장이 서울대 기록관에 기증했다. 기록관장인 송기호 국사학과 교수는 “당시 유적답사를 트럭을 타고 다녀왔다는 사실도 재미있는 데다, 연구활동의 일환인 학생들의 단체이동마저 경찰의 통제 속에 이루어졌던 사회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며 웃었다. ●40평 서고 속의 시간여행 초대 기록관장을 역임한 김기석 교육학과 교수는 “우리는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유신시대를 거치면서 훌륭했던 기록의 전통을 잃어버렸다.”면서 “불행한 기록이라도 남겨두면 훗날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좋은 기록도 체계적으로 보관하지 않으면 5년 안에 잊혀진다.”고 기록관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이같은 안팎의 인식 속에 서울대 기록관이 설립된 것이 2001년이다. 송 교수는 “기록관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요즘은 구성원들이 자료를 기록관으로 보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 자료 수집이 한결 수월해졌다.”고 4년 남짓한 시간 동안의 변화를 설명했다. 기록관 소장품은 학교 당국에서 보관하고 있던 자료도 있지만 기증받은 것이 많다. 지난달 28일 정년퇴임한 김명렬(65) 명예교수는 연구실을 정리하면서 1958년부터 1961년까지 학생 등록카드 7점 등을 기탁했다. 누렇게 변색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카드의 뒷면은 성적표다. 한 학기 동안 수강한 과목 이름과 학점이 펜글씨로 정성스레 씌어 있다. 과목 이름이든 학점이든 모두 인쇄되어 나오는 요즘의 성적표와는 다르게 사람 냄새가 묻어난다. 함께 기증한 학생증에는 서기가 아닌 단기로 표시되어 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김진균 사회학과 교수의 자료는 5t 트럭 한 대 분량이다. 강의노트와 계획서, 민주화교수협의회 활동 자료부터 연하장과 메모 쪽지까지 그득하다. ●역사 되살리는 문서의 힘 학생과 창고에 잠자고 있던 기록들도 기록관으로 넘어왔다. 인적사항 등이 적시된 기록이 많아 공개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목록만 살펴보아도 과거 ‘학생 사찰’이 실재했음을 알 수 있다. 목록에 따르면 1980년대까지 흔하던 ‘상황’이라는 파일 이름이 1990년대 초에는 사라진다. 서울대의 한 관계자는 “‘상황’이라는 이름의 보고서에는 학생회를 비롯해 학회와 학생 조직에 대한 동태보고 등이 담겨 있다.”고 귀띔했다. ‘학생 동향보고서’도 있다. 총학생회와 학회 동향이 열거된 1964년 자료의 말미에는 “3·24 한·일회담 반대 데모를 주동한 김중태 등의 복교문제를 학교 당국과 절충 중이며 학생운동이 전개되면 제2과에서 자문역할을….”이라는 전망이 곁들여져 있다. 앞서 학생회가 만들고 학생과에서 수집한 유인물에는 ‘激(격)’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씌어 있다.‘한·일굴욕회담에 반대하며 단식을 한다.’는 선언 다음에 열거된 단식참여자 명단에는 김지하 시인의 이름도 보인다. 학생과에서 근무하던 임선웅씨는 1997년 9월에 80년대 학생운동 자료 600여건을 기증했다.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단과대 건물 옥상에서 뿌린 전단과 화장실 곳곳에 붙였던 격문도 포함돼 있다. 김명진 기록관 전문위원은 “갖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됐던 기록이 한 사람의 관심 덕에 살아 남았다.”면서 “임씨의 기증품은 ‘임선웅 컬렉션’이라는 주제로 전시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문서로 남은 학생운동 학생회와 대학신문사가 갖고 있던 자료도 넘어왔다. 학생운동의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는 자료들이다. 김기석 교수는 “학생들이 처음에는 자료를 주지 않으려 했지만 기록관이 기록을 악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자 기탁했다.”고 밝혔다. 김 전문위원은 “1960년대에는 판에 철심으로 글을 쓰고 등사를 했지만,1980년대부터 타자기 글씨가 보이기 시작한다.”고 ‘유인물의 변천사’를 설명했다. 1960년대 중반, 학생회 기록에는 요즘에도 되풀이되고 있는 등록금 투쟁 관련문서도 남아 있다.“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이며 특히 후진(後進) 한국의 근대화에 가장 큰 원동력이 된다.”라는 구호로 시작된 건의서는 수혜자 부담원칙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기록은 발전의 동력 김기석 교수는 “기록관은 역사기록소가 아니라 학교 발전의 동력이 되는 엔진”이라면서 “예를 들어 황우석 교수의 논문은 도서관에서 보관하면 되지만, 그가 논문을 쓰기까지의 과정은 어디에서 찾겠느냐.”고 반문한다. 서울대는 앞으로 행정·학생·교수자료를 기록관에서 일원화하여 관리하는 체제를 갖추기로 했다. 장기적으로는 교육·연구·봉사에 헌신한 교수들의 ‘명예의 전당’을 만들어 연구와 시행착오 과정을 보여주기로 했다. 또 정운찬 총장도 임기가 끝나면 재임기간의 일정표를 비롯한 모든 기록을 기록관에 기증하는 등 기록 보존을 서울대의 새로운 전통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글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서울대 기록관은 서울대 기록관은 행정·교수·학생 기록을 포함하여 대학과 관련된 모든 기록물을 생산·수집·발굴하는 일을 한다.2001년 설립 이후 행정기록물 3000건, 학교 역사 관련 자료 4020건, 학생운동 기록 4330건 등 모두 1만 건이 넘는 기록물을 소장하고 있다. 서울대는 개교 50주년을 맞은 1996년 ‘서울대 50년사’를 편찬하며 체계적인 자료수집의 필요성을 절감했다.10년에 한 차례씩 학교의 역사를 책으로 만들었지만, 관련자료는 출간 이후 폐기되거나 소실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50년사를 만들며 남아 있는 기록이 워낙 부실해 미국 공문서보관소(NARA)와 미네소타대학의 자료를 참고해야 하는 촌극을 겪기도 했다. 초대 기록관장 김기석 교육학과 교수는 “60년사·70년사를 편찬할 때도 똑같은 과정을 반복할 수는 없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기록관에 앞서 1997년 대학사료실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 산하에 만들어진 대학사료실은 1998년 기획실의 대학기록관실,2001년 대학기록관으로 바뀌었다. 소속과 이름이 바뀌면서 자료수집에 치중하던 업무 영역도 보존 영역까지 확대됐다.2003년에는 전문위원 2명을 채용하고 항온·항습 시설이 갖추어진 보존 서고도 마련할 수 있었다. 2002년부터는 자료를 디지털화하고 있다. 대학창설 및 국대안 기록, 미군정청 기록, 학생운동 기록 등은 작업이 마무리됐다. 이 자료들은 서울대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열람이 가능하다. 서울대는 2006년 개교 60주년을 앞두고 올해 안에 전시실을 개관한다는 계획이다. 전시실은 추모실, 업적실, 역사실로 이루어진 상설 전시실과 기획전시실로 꾸며지게 된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서울대 기록관 소장품 현황 ▲행정기록 약 3000건 -회의 및 행사, 교수요원채용, 수업편성, 농촌봉사, 학생단체, 대학문화 육성 등 ▲대학 역사 자료 4020건 -대학 창설 관련 기록 587건 -미군정청 기록 2543건 -50주년 기념행사 수집자료 654건 -교수기증 기록 975건 -인문대 기증기록 975건 -학생처장 기증기록 756건 ▲학생운동 기록 4330건 538철 -학생과 기록 538철 -박물관에서 넘겨받은 기록 882건 -학생자치도서관에서 넘겨받은 기록 2512건 -교수 기증기록 254건 -학생과 직원 기증기록 682건 ▲계 1만 1330건 538철
  • 보잉 후임CEO 물색 ‘급물살’

    보잉의 해리 스톤사이퍼(68) 최고경영자(CEO)가 7일 여성 임원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경질되면서 후임 CEO 선임작업이 빨라지고 있다. 내년 5월 물러날 예정이었던 스톤사이퍼의 퇴임 시기가 1년 이상 앞당겨지면서 보잉 이사진은 후임자 선정에 본격 착수했다. 루이스 플랫 보잉 회장은 “대기업 최고경영자로서, 이사진으로서 풍부한 실무 경험을 가진 인물로 향후 10년 동안은 CEO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고 인선 기준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사회가 사내외 인사들을 포함해 차기 CEO 후보감을 가려 놓았다고 덧붙였다. 미국 언론들에 후임 CEO감으로 거론되는 내부 인물로는 보잉의 상업용 항공기 부문 부사장 겸 CEO인 앨런 뮬랠리와 방위산업 부문을 총괄하는 제임스 알보그 CEO이다. 스톤사이퍼도 두 사람이 차기 CEO로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한 바 있다. 외부 인사로는 제너럴 일렉트릭(GE) 출신으로 3M의 CEO인 제임스 맥너니가 가장 유력하다.2년 전에도 보잉이 CEO직을 타진했던 인물이다. 이밖에 또 다른 GE 출신으로 홈디포 CEO를 맡고 있는 로버트 나르델리, 데이비드 칼훈 GE 항공기 엔진부문 책임자 등도 거론되고 있다. 후임 CEO가 누가 되든 CEO 2명이 잇따라 사내 인사와의 부적절한 관계 및 국방부 대형 방위산업 입찰 스캔들로 불명예 퇴진하면서 실추된 보잉의 이미지를 회복하고 에어버스와 록히드 마틴 등 경쟁사들과의 경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한편 지난 2월 중 미국의 CEO 교체가 2001년 이후 4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고 CNN머니가 보도했다. 재취업 알선기관인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에 따르면 2월 중 CEO 교체를 발표한 기업은 휼렛 패커드 등 103곳으로 1월의 92곳보다 12% 늘었다.CEO 교체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경기가 회복되면서 침체기에 회사를 운영했던 CEO를 회복·성장기에 맞는 CEO로 바꾸기 위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단국대 새 이사장 박석무씨 “정치인보다 교육자로 남고파”

    단국대는 7일 박석무(62) 5·18기념재단 이사장을 제21대 이사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장충식 전 이사장의 퇴임 이후 공석이었던 이사장직에 박석무씨가 취임함으로써 파행으로 얼룩졌던 단국대 운영이 정상을 찾을지 주목된다. 단국대는 “박 이사장은 중·고교 교사, 국회 교육위원, 다산연구소 이사장을 거치면서 교육계는 물론 정계와 학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라며 이사장 선임 배경을 밝혔다. 박 이사장은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80년대 투옥 경력으로 교단에서 해직된 뒤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지만 정치인이기보다는 교육자이자 학자로 기억되고 싶다.”면서 “단국대 이사장직도 교육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수락했다.”고 말했다. 전남 무안 출신인 박 이사장은 전남대 법대 재학시절인 64년 한·일굴욕외교 반대 시위와 65년 월남파병 반대 시위 주도 혐의로 투옥됐다.73년 광주 석산고 교사 시절에는 유신반대 유인물 ‘함성’지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대동고 교사로 재직하던 80년에는 5·18광주민주항쟁으로 또 다시 투옥, 해직됐다. 15대에서 낙선한 뒤에는 현재 여권의 핵심인 노무현 대통령과 김원기 국회의장, 이미경 의원, 김정길 대한체육회장 등과 함께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를 결성해 활동했다. 박 신임 이사장은 다산사상의 권위자이기도 하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농협조합장 선거 ‘새바람’] 자진해산 파주교하농협은

    [농협조합장 선거 ‘새바람’] 자진해산 파주교하농협은

    농협사상 최초로 자진해산의 진통을 겪은 전 파주 교하농협은 지난해 8월 ‘개혁농협 1호’를 표방, 신교하농협으로 출범하면서 정관을 개정해 조합장을 비상임·명예직으로 바꿨다. ●‘개혁농협 1호’ 전국서 벤치마킹 그동안 인사·재정 등 권한 집중에 따른 농협조합장의 전횡이 방만·부실운영으로 이어져온 악순환을 앞장서서 끊겠다는 조합원들의 열망이 반영된 조치였다. 또 전국 조합장 선거에서 비일비재했던 과열·혼탁선거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효과적 방안이라는 점도 함께 고려됐다. 신교하농협은 대신 경영전문인제를 도입, 상근 상임이사를 뒀다. 조합장의 임기도 4년 연임가능에서 4년 단임(초대는 3년)으로 못박고 조합장 선거도 대의원 간선제로 바꿨다. 교하농협시절 1억원을 상회하던 조합장의 연봉도 3000여만원선으로 대폭 줄였다. 신교하농협은 개혁조치로 조합장 비상임과 전문경영인제 도입에 덧붙여 임·직원들의 급여도 대폭 삭감, 조합원들의 신뢰를 얻었다. 신교하농협의 초대 조합장엔 ‘원만형’ 유근만씨가 선출됐고, 상무이사엔 ‘실무형’ 김연복씨가 취임했다. ●권한축소 거부감… 시행 꺼려 신교하농협의 명예 조합장제도는 한때 전국 각지 농협의 벤치마킹의 대상이었으나, 막상 이를 따라 채택하는 단위조합은 거의 없다. 이에 대해 교하농협 개혁의 선봉에 섰던 전 대의원협의회 황영진 회장은 “농림부나 농협중앙회에서도 교하농협이 택한 조합장 비상임·명예제를 바람직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막상 현장에선 권한축소를 달가워하지 않는 기득권층의 반발로 시행하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황 전 협의회장은 “조합원 모두가 전문경영인의 능력과 함께, 단임 임기를 마치면 퇴임하므로 자기 사람심기에 골몰하거나 눈치 볼 필요없이 대외적으로 조합을 대표하며 소신있게 일할 조합장에게 거는 신뢰와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는 현재 자산 1000억원이상 조합(전체 1300여 조합의 3분의1 정도)만이라도 상임이사를 두는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농협법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위한 의견수렴절차를 밟고 있다. 파주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이헌재부총리 사퇴 파장] 땅투기 파문서 사퇴까지

    [이헌재부총리 사퇴 파장] 땅투기 파문서 사퇴까지

    재산공개로 불거진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부인 진진숙씨의 부동산투기의혹은 이 부총리의 사임으로 일단락됐다. 이부총리는 8일 사의를 표명하면서 “본인과 처는 투기목적으로 부동산을 매매하거나 불법이나 편법에 의한 거래도 없었다.”면서 투기의혹을 강력히 부인했으나 석연치 않은 부동산 거래과정 등에 대한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광주 땅 거래과정 석연찮아 이 부총리에 대한 변함없는 신임을 고집하던 청와대가 소신을 굽히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일 부인 진씨의 광주면 초월리 일대 전답 5800평을 트럭운전사가 매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라는 분석이 지배적. 앞서 지난달 28일 이 부총리 부인의 경기도 광주, 전북 고창 위장전입 의혹 등 부동산투기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만 해도 재신임 방침을 고수해오던 청와대는 이후 자체 진상조사의 뜻을 내비치며 한발 물러났지만 트럭운전사인 차모씨의 재정상태와 대출과정, 그리고 차명계약 여부 등이 거론되면서 입장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7000여만원에 아파트 전세를 살고 있는 차씨가 15억원가량의 대출을 받아 한달에 700만∼800만원의 이자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계약 자체에 대한 진위 여부마저 도마 위에 올랐고, 현재까지도 ‘X파일’로 남아있는 상태. 따라서 차씨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지난 1년여 동안 무리없이 부담해온 고액의 이자비용에 대한 추적조사가 필요하다. 대출압력에 대한 의혹도 여전히 미지수다. 차씨의 대출을 담당한 성남농협 하대원지점은 “그 땅의 소유자가 부총리 부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대출과정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또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앞둔 시점에서 땅을 서둘러 매각한 흔적도 여기저기 엿보인다. 이어 지난 7일에는 부동산 매매계약서가 허위가 아니냐는 의혹이 추가로 대두됐다. ●의혹들 속시원히 해명된것 없어 이 부총리의 부인이 지난 2003년 10월30일자로 광주땅 매매계약서를 작성, 현지 땅 관리인 김모(71)씨를 중개인으로 내세웠지만, 김씨는 “공인중개사 자격이 없을 뿐더러 본인 스스로도 계약을 중개한 사실이 없고 계약서 작성도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경부는 문제될 게 없는 것이라며 해명했지만, 이 부총리는 8일 오전 서둘러 사임을 표명했다. 이 때문에 이 부총리의 전격 사임이 그동안 제기된 의혹들과 어떤 함수관계에 있는지는 자칫 추측으로만 남게 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의혹들 가운데는 조사결과에 따라서는 형사처벌 대상이 될 만한 소지가 있는 것들도 없지 않아 이부총리 퇴임 하나로 여론을 완전히 잠재우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광주 윤상돈기자 yoonsang@
  • 이해찬총리 업무추진비 6개월간 5억3400만원

    이해찬총리 업무추진비 6개월간 5억3400만원

    국무총리실은 6일 이해찬 국무총리가 취임 다음날인 지난해 7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6개월간 국정활동을 수행하면서 총 5억 3400만원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사용내역에 따르면 민의수렴을 위한 간담회 등에 2억원이 사용돼 가장 큰 비중(37.4%)을 차지했으며 ▲현안대책수립 관련 회의비 1억 6100만원(30.1%) ▲민생현장 방문 위로·격려 1억 3800만원(25.9%) ▲내·외빈 접견시 기념품비 3500만원(6.6%) 등의 순이었다. 이번 이 총리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은 총리실 인터넷 홈페이지(www.opm.go.kr)에 올라 있다. 한편 이 총리의 업무추진비는 고건 전 총리가 지난해 1월1일부터 퇴임 전날인 5월24일까지 사용한 3억 9900만원보다 1억 3500만원이, 지난 2003년 하반기(7월1일부터 12월31일)에 사용한 4억 100만원보다는 1억 3300만원이 각각 많은 액수이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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