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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이즈미 ‘빗나간 계산’

    |도쿄 이춘규특파원|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에 대한 비난이 아시아는 물론 세계 도처에서 거세지는 가운데 다음달 퇴임하는 그는 ‘파장 분위기’에 들어간 분위기다. 16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 내·외의 비난여론 고조에 강력한 지도자, 약속을 지키는 지도자로 각인되려던 이미지를 구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본 정치무대에서 주연 역할도 종말을 고했다.9월 말 그의 퇴임은 야스쿠니참배 강행으로 한결 쓸쓸해질 것으로 전망됐다.언론에 따르면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부터 24일까지 휴가에 들어갔다. 특별히 여행 계획 없이 총리공관에서 가족 등과 보내게 된다.9월 말까지의 재임 기간엔 외유 이외의 중요한 일정은 없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공란이 계속되는 관저의 일정을 보면 ‘종식무드’가 가득하다.”고 표현했다. 닛케이는 15일 야스쿠니 참배를 끝낸 고이즈미 총리의 심경을 두고 “이것으로 총리 직분은 일단락된 것이 아닌가.”라는 기운이 주변에 감돌고 있다고 전했다.taein@seoul.co.kr
  • ‘3非’ 헌재소장

    ‘3非’ 헌재소장

    노무현 대통령은 16일 다음달 14일 퇴임하는 윤영철 헌법재판소장 후임에 전효숙(55·사시 17회) 헌법재판관을 지명했다. 전 지명자는 국회 동의 절차를 통과하면 1988년 헌재가 출범한 이래 첫 여성소장이 된다. 헌재 내부에서 발탁된 첫 소장이자 최연소 소장이며 진보 성향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시 동기라는 점에서 ‘코드인사’ 논란에 휩싸여 있다. 전 지명자는 앞으로 6년간 소장직을 맡게 돼 노 대통령의 이임 이후에 더 많은 임기가 남아 있다. 전 지명자는 여성법관들의 ‘대모’로 통했다. 이영애 전 춘천지법원장, 전수안 대법관과 함께 서울고법 내에서 여성 부장판사 ‘트로이카’로 불렸다. 가는 곳마다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녔다.2003년 ‘사법파동’에 직면했던 최종영 당시 대법원장이 전 지명자를 헌법재판관에 추천하는 ‘파격인사’를 해결카드로 선택했을 만큼 전 내정자는 사법개혁의 ‘아이콘’이었다. 여성에다 흔치 않은 비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도 전 지명자를 돋보이게 했다.1998년 서울지법에서 여성관계법 연구회를 발족하는 등 여성계를 대변했다. 그는 곧 연구관들을 이끌고 여성모임을 주선했다. 늘 세인들의 주목을 받던 전 지명자는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된 뒤 2004년 한 여성단체가 개최한 정기 포럼에서 남성의 성적욕구를 해소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발언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전 지명자는 사법연수원 시절 노 대통령과 반도 달랐고 나이 차도 많이 나 어울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여성법조인이 희귀했던 시절이라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이 통하던 때였다고 회상했다. 연수원 시절 사시 일년 선배인 남편 이태운 의정부지법원장을 만나 결혼했다. 전남 순천 출신으로 순천여고를 졸업한 전 지명자와 순천고를 졸업한 이 법원장은 1남1녀를 두고 있다. 남편과 서울고법에서 부장판사로 함께 근무하기도 했으며 금실이 대단했다는 전언이다. 와인 한 잔 정도가 적량인 전 지명자와는 달리 남편은 법원내 대표적인 애주가로 알려져 있다. 일선 법관시절은 ‘튀지 않는’ 비교적 무난한 판결을 내린 것으로 동료들은 기억한다. 그러나 할 말은 하고 마는 스타일이었다. 작은 목소리지만 논리와 설득력으로 대화 상대를 압도한다. 헌재 재판관이 된 후 그는 탄핵, 수도이전 등 주요 정책에 대해 현 정부에 유리한 의견을 냈다. 이런 성향도 ‘코드인사’ 논란을 부른 계기가 됐다. 한편 노 대통령은 이날 전 지명자와 함께 김희옥 법무부 차관을 신임 헌재 재판관으로 내정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민형기 인천지방법원장과 김종대 창원지방법원장을, 국회는 이동흡 수원지법원장과 목영준 법원행정처 차장을 신임 재판관으로 내정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4기 헌법재판소 보수→중도

    4기 헌법재판소 보수→중도

    다음달 15일 출범할 4기 헌법재판소의 전체 성향은 ‘중도’로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전효숙 헌재 소장 지명자를 비롯해 재판관으로 내정된 5명의 재판관들의 상당수가 중도 또는 중도개혁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기 때문이다. 13일 정년퇴임한 ‘Mr. 소수의견’ 권성 재판관을 비롯해 다음달 14일 퇴임할 윤영철 소장, 김효종, 김경일, 송인준 재판관 모두 성향으로는 보수로 분류할 수 있다. 남아있는 주선회 재판관도 보수로 분류된다. 현 재판관 9명 중 6명이 보수적 색채를 띠고 있어 그동안 헌재의 인적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 출범할 4기 헌재는 중도 색채가 강해질 전망이다. 전 헌재소장 내정자는 진보로 분류돼 왔다. 하지만 헌재는 재판관들이 각자 독립되어 있는 만큼 소장도 위헌결정 등에서는 9분의1의 결정권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독립적이기 때문에 소장의 색채가 전체 무게중심을 좌우한다고는 할 수 없다. 전 내정자외에 이번에 내정된 재판관 5명의 성향은 중도개혁 1, 중도 2, 보수 2명으로 분류할 수 있다. 목영준 내정자는 중도개혁, 민형기·이동흡 내정자는 중도로, 김희옥·김종대 내정자는 보수로 분류할 수 있다. 목 내정자는 사법개혁에 주도적으로 관여하는 등 중도개혁으로 평가받고, 합리적 원칙주의자라는 평을 받는 민 내정자는 중도로 분류된다. 한나라당의 추천을 받은 이 내정자도 판사 시절 전향적 판결을 내리는 등 중도 성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종대 내정자도 성향으로는 보수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사시 동기인 8인회 멤버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안에 따라서는 중도 또는 개혁 성향의 의견도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노 대통령이 추천한 김희옥 내정자만을 보수 성향으로 볼 수 있다. 4기 헌재 구성원 9명 전체로 보면 보수 3, 중도 4, 진보 2로 분류할 수 있다. 때문에 중도성향의 4기 헌재가 현재 계류중인 사학법, 종합부동산세법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쟁점 안건들의 처리에 어떤 의견을 내릴지 주목되고 있다. 아울러 대법원장과 같은 예우를 받는 헌재 소장에 이용훈 대법원장보다 사법시험 18년 후배인 전 재판관이 소장에 지명됨에 따라 대법원과 함께 사법부의 양대 축을 형성해 온 헌재의 위상이 다소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고이즈미 8·15 도발] 고이즈미 강행 퇴임뒤 정치영향력 유지 ‘계산’

    [고이즈미 8·15 도발] 고이즈미 강행 퇴임뒤 정치영향력 유지 ‘계산’

    |도쿄 이춘규특파원|예상대로 일본 총리가 패전 기념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그는 8·15를 앞두고 최근 기회있을 때마다 참배 강행 의사를 표명하며 분위기를 조성해왔다. 총리가 되기 전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그가 그뒤 매년 정기적으로 야스쿠니를 참배한 것은 다분히 정치적 동기가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2001년 자민당 총재선거 때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공약, 예상을 뒤엎고 승리했다. 아울러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때마다 한국·중국 등이 강력 반발하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본 국민들의 잠재된 민족주의가 분출, 고이즈미 지지를 강화하는 흐름을 보였다. 그가 이런 흐름을 적절히 탔다는 지적도 많다. 상당수 일본 언론사 여론조사에서도 절반 이상 응답자가 총리의 참배에 문제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국민성을 감안하면, 국민 다수가 반대하지 않는다고 보아도 큰 문제 없다. 특히 올해의 경우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각국이 강력히 반발하는 8월 15일을 택해 참배를 강행한 것은 어느 때보다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약을 지키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심어주길 기대했다는 해석이다. 이같은 여론의 지지를 토대로 9월 말 퇴임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해석도 적지 않다. 실제로 고이즈미 총리 취임 전 15년 가까이 일본에서는 단명총리가 계속 나오는 등 정치혼란이 계속됐다. 그래서 일본 국민들은 강한 지도자를 원했고, 고이즈미 총리가 이같은 흐름에 부응했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의 퇴임 뒤 자민당내 리더십이 약화되면 국민들이 다시 부를 수 있고, 이때를 대비해 이날 참배를 강행했다는 해석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는 더욱 경직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변국 정부와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반성과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반일 감정은 고조되고 경제협력 퇴조 등의 강한 후유증이 예상된다. 그렇지만 고이즈미 총리가 ‘지는 태양’이기 때문에 후유증이 그리 크지 않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차기 총리가 유력한 아베 신조 관방장관의 태도에 따라 파문이 조기 진정될 여지도 있다는 해석이다. 아울러 다음달 20일 예정된 자민당총재 선거에 대한 영향도 미미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taein@seoul.co.kr
  • 고이즈미는 버린 카드 아베 겨냥 계산된 침묵?

    고이즈미는 버린 카드 아베 겨냥 계산된 침묵?

    노무현 대통령은 15일 제61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 및 한·일관계 등 외교·안보 문제를 비롯, 최대 현안인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는 이미 예고됐기에 노 대통령의 대응 수위에 한껏 관심이 쏠려 왔던 터다. 그러나 ‘동북아 평화 및 질서론’과 연계,‘대일 원칙론’을 밝혔을 뿐이다. 내용도 지난 3·1절 기념사와 같이 일본에 “진실으로 반성하고 사과를 뒷받침하는 실천”, 즉 ‘실질적인 조치’를 촉구하는 정도였다. 물론 독도·역사교과서·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 등을 해결토록 압박했다. 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일본에 강경 태도를 견지했던 것과 사뭇 다르다. 노 대통령은 지난 4월 일본의 EEZ 배타적 경제수역 수로탐사 움직임 때에는 ‘조용한 외교’라는 일본과의 외교 기조까지 바꿨다.“침략을 정당화하고 대한민국의 광복을 부인하는 행위다(2005년 3월23일 일본의 다케시마 날 선포와 관련)”,“독도 문제를 자주독립의 역사와 주권수호 차원에서 정면으로 다뤄 나가겠다.(2006년 4월25일 한·일관계 특별담화)”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고이즈미 총리의 행위를 경축사에 끼워넣는 일은 경축사의 격에 맞지 않다.”면서 “큰 틀에서 일본에 대해 할 말을 다 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경축사를 통해 국가 도약을 위한 미래 지향적 과제를 제시했다. 전시 작통권 환수의 정당성과 한·미 FTA의 필요성을 포함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 동북아의 평화와 협력 질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일본의 우경화와 팽창주의에 대한 강한 경고도 당연히 포함했다. 때문에 고이즈미 총리를 적시했을 경우, 노 대통령의 메시지 초점이 흐트러진다는 점이 십분 고려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나아가 노 대통령은 다음달 퇴임할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해 아예 무시하는 쪽의 ‘계산된 전략’을 구사했을 법하다. 실제 고이즈미 총리 후임 총리로 확실시되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을 겨냥, 새로운 외교적 접근을 시도하려는 ‘복선’을 깔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노 대통령은 직접 나서지 않은 대신 외교통상부에서 오시마 쇼타로 주한 일본 대사를 불러 신사참배에 대해 강한 유감과 항의의 뜻을 전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고이즈미 8·15 도발] 盧대통령-고이즈미 총리 ‘애증의 세월’

    [고이즈미 8·15 도발] 盧대통령-고이즈미 총리 ‘애증의 세월’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의 관계는 ‘애증’으로 점철돼 왔다. 노 대통령은 지난 2003년 2월25일 취임식부터 다음달 퇴임하는 고이즈미 총리와 3년 7개월간 끊임없이 ‘화해와 갈등의 곡예’를 벌였다. 그동안 가진 정상회담은 8차례나 된다. 하지만 교과서 왜곡과 독도를 둘러싼 해양조사, 북한 미사일 사태와 유엔 대북 결의문 채택 등 휘발성 높은 사안이 겹쳤고, 결국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으로 마지막까지 냉기류를 걷어내지 못했다. 지난해 10월17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로 한일간 정상외교가 사실상 중단으로 이어졌으며, 고이즈미 총리 시대의 마지막 시점까지 양국관계의 발목을 잡게 된 것이다. 우의의 상징인 셔틀 외교는 2004년 12월 이후 1년 9개월 동안 중단 상태다. 겨우 한달 남은 고이즈미 총리의 임기를 감안하면 두 정상은 ‘냉랭’한 상태로 공식 관계를 마감하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두 정상 간의 관계가 처음부터 나빴던 건 아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엔 ‘미래로 향하는 한·일 관계’에 주안점을 두었고, 고이즈미 총리 역시 새로운 한·일관계 정립을 외교적 화두로 삼았다. 미·일 동맹에 기대면서 고이즈미 총리는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 갈등을 증폭시키면서 최악의 외교 관계를 스스로 초래했다는 진단이다. 특히 고이즈미 총리는 국민적 지지가 떨어지는 시점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카드’를 활용했고 노 대통령 역시 초강경으로 대응, 갈등이 최고조로 향했다. 두 정상의 ‘입씨름’도 시간이 갈수록 거칠어졌다. 노 대통령은 지난 4월25일 한·일 관계 특별담화를 통해 ‘독도는 우리땅’임을 다시 한번 전세계에 공개 선포했다. 이 땅의 바다의 주권 수호를 위해 어떤 희생과 비용도 감내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노 대통령이 담화발표 직후 “일·한 우호관계를 대전제로 냉정히 대처하고 싶다.”면서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며 나는 (정상회담에 응하겠다고) 언제나 말하고 있다.”고 신경전을 벌였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부산 APEC(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고이즈미 총리와 30분간 ‘냉랭한’ 양국 정상회담을 가졌다. 의례적으로 등장하는 덕담도 생략한 채 처음부터 가시돋친 언사가 오갔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야스쿠니 신사참배나 역사교육, 독도문제 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고이즈미 총리의 응수도 간단치 않았다. 그는 지난해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거부하는 한국을 겨냥,“후회할 때가 올 것”이라고 거친 언사를 쏟아냈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고이즈미,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

    고이즈미,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결국 8.15 ‘종전 기념일’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15일 오전 7시 30분 총리관저를 출발한 고이즈미 총리는 10분 두; 41분쯤 야스쿠니 신사에 도착했다. 차량편으로 본전앞까지 간 뒤 본전으로 올라가 신도의식을 갖춰 참배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그동안 5차례 참배를 했는데, 4차례는 예복을 입고 들어갔지만 지난해 10월에는 양복차림으로 일반 참배전에서참배만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연미복으로 입고 본전에 올라가 신도의식을 갖춰 참배를 했다. 공약을 실천하는 마지막 기회인 만큼 공식적인 참배라는 기록을 남기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방명록에도 ‘내각 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라고 기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막판 강경수를 두고 있는 것이다. 주변국의 반대와 국내 반발여론, 그리고 히로히토 전왕의 메모로 밝혀진 A급 전범 합사 반대의사도 불구하고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야수쿠니 신사 앞에는 새벽부터 생중계를 준비한 일본 방송사 취재진들로 붐볐다. NHK는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고이즈미 총리의 총리관저 출발부터 생중계했다. 한국과 중국 정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기로 한 것은 보수층을 결집시키고 차기 총리가 확실시되는 아베 장관의 정국 운영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또 자신은 취임전 공약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음으로써 퇴임후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도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고이즈미 총리는 그동안 5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지만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고려해 종전 기념일에는참배를 피했다. 따라서 다음달 퇴임을 앞둔 시점에서 8.15 참배 공약을 마지막으로 지키겠다는 강경수를 둔 것이다. 현직 총리의 8.15 참배는 지난 1985년 나카소네 총리 이후 21년만이다. 그러나 한국 중국의 반발을 무시한 채 참배를 강행함으로써 주변국과의 마찰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일본 언론들은 우려하고 있다. 노컷뉴스(www.nocutnews.co.kr)
  • 독재시절의 우울한 시험답안

    <1987학년도 2학기 서울대 사회학과 사회변동론 기말고사>문제=사회심리학적 변동론에 대하여 논하시오./답=사랑하는 후배의 분신 소식을 듣는 순간, 책을 잡고 있는 제 모습이 너무 역겨웠습니다. 지금 제게는 지식이 아니라 비굴한 저를 벌할 수 있는 채찍이 필요합니다.(경영학과 4학년 김○○) 진보학계의 거두였던 고 김진균(1937∼2004)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과목에서는 유난히 이런 시험 답안이 많았다. 여러 학과에서 모여든 학생들은 문제와 상관 없이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와 울분을 답안지에 토해내곤 했다. 그 속에는 시대의 아픔을 스승과 함께 나누려는 제자들의 정열과 믿음이 담겨 있었다. 고인의 수택(手澤·손때)이 밴 제자들 답안지 1만 1000장이 오는 10월 세상에 공개돼 제자들과 해후한다. 답안지는 고인의 학교기증 유품의 일부. 딸 지인(36)씨는 2004년 2월 타계한 부친의 유언에 따라 그해 6월 부친이 갖고 있던 자료를 서울대에 기증했다. 책, 논문, 강의록, 연구자료, 비디오자료 등 5t 트럭 하나 가득이었다. 모든 학생들의 답안지를 문서파일(PDF)로 바꿔 저장한 석장의 CD는 고인이 투병 중에 손수 제작했다는 데서 더욱 의미가 크다. 줄곧 대장암과 싸워 온 고인은 2003년 정년퇴임 후 제자들과의 인연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1985년부터 퇴임 직전까지 18년간 단 한장도 버리지 않고 모아 온 1만 1000여장의 답안지를 딸의 도움을 받아 일일이 스캐닝해 PDF파일로 만들었다. 고인은 독재정권에 의해 필화, 해직 등 갖은 수난을 당했지만 학생들을 통해 삶의 보람과 의미를 찾았다. 제자였던 86학번 김모(회사원)씨의 말.“학생들은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제해직 되기도 했던 김 교수님을 진보적 실천 지식인으로 믿고 따랐습니다. 수업·시험 거부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운동권 학생들을 포함해 많은 학생들이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시험을 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답안에는 87년 말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씨가 당선된 뒤의 절망과 체념도 녹아 있고 연일 이어지는 시위로 성적이 좋지 않음을 헤아려 달라는 애교도 담겨 있다.“올해는 기필코 해방을 쟁취하는 해가 되길 바라며 저희들도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시험거부 과목이 너무 많아 성적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대기과학과 3학년생) 서울대 기록관은 10월 개교 기념일에 즈음해 김 교수 유품을 기획전시할 계획이다. 기록관 관계자는 “방대한 양의 답안지들 중에서 시대상황에 따른 학생들의 의식을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추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권성 헌재재판관 퇴임… “역풍 몰아칠수록 원칙 지켜야”

    권성 헌재재판관 퇴임… “역풍 몰아칠수록 원칙 지켜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의견마다 소수의견을 제시해 ‘Mr. 소수의견’이라고 불렸던 권성(65·사법시험 8회)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11일 헌재 대강당에서 퇴임식을 가졌다. 권 재판관의 정년퇴임은 13일이다. 권 재판관은 퇴임사에서 “재판관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 기본적 인권을 누리고 살 수 있었던 건 대한민국이 가진 민주헌법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국가의 진로에는 따로 그늘이 지고 역풍이 몰아닥치는 수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원칙을 굳게 지켜 나라의 민주주의 체제와 헌법을 수호하는데 힘쓰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관에 임명되기 전 명지대 석좌교수였던 권 재판관은 퇴임 후에도 후학양성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1969년 부산지법 판사로 법관의 길에 들어선 권 재판관은 99년 서울행정법원장을 마치고 2000년 헌재 재판관에 취임했다. 권 재판관은 판사시절이던 96년 12·12와 5·18사건 항소심 재판장을 맡아 사형과 징역 22년 6월을 선고받은 전두환·노태우씨를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으로 감형해 주면서 “항복한 장수는 죽이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겨 논란이 되기도 했다.87년에는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과 관련,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권리라는 ‘신원권’을 도입, 배상판결을 내리기도 했었다. 헌법 재판소 재판관이 된 뒤에서도 그는 이슈가 되는 사건마다 독자적인 논리로 눈에 띄는 소수의견을 내놨다.2001년과 2002년 간통죄 위헌 소송이 제기됐을 때 헌재는 각각 8대1과 7대2로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권 재판관은 간통을 국가가 형사처벌하는 것은 성적 예속을 강제해 인간 존엄성을 침해한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그는 2004년 신행정수도 건설 관련 특별법, 지난해 행정 중심복합도시건설 특별법, 지난 6월 신문법 대부분 조항에 대해서도 모두 위헌 의견을 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퇴임 시장 관사물건 싹쓸이

    박신원 전 경기도 오산시장이 퇴임하면서 관사에 있던 1900만원(구입 당시 가격)어치의 비품을 자신의 집으로 가져간 사실이 드러났다. 오산시는 뒤늦게 환수에 나섰다. 11일 오산시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은 퇴임 직후인 지난달 5일 관사를 비우면서 장롱(130만원), 가죽의자(110만원), 카펫(75만원) 등 관사 가구와 집기를 모두 자신의 집으로 가져갔다. 박 전 시장이 가져간 관사 물품엔 드럼세탁기(80만원), 비데(67만원), 다리미(5만 5000원) 등 생활용품까지 포함돼 있었다. 이들 비품은 박 전 시장이 재임하던 2002∼2003년에 시 예산으로 구입한 것이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日 ‘다케후지’ 창업자 다케이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최고 부호였던 대형 소비자 금융업체 ‘다케후지(武富士)’의 창업자 다케이 야스오(武井保雄) 전 회장이 11일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고인은 1993년 일본 고액납세자 1위였으며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지난 6월 발표했던 ‘일본 부호’ 2위(56억 달러)로 뽑혔던 인물이다.‘다케후지’는 고인에 의해 1966년 ‘후지상사’로 창업했으며,‘소비자금융의 제왕’으로 번창해 1998년 도쿄 증권거래소 1부 종목으로 상장됐다.고인은 2003년말 자사에 비판적 기사를 쓴 자유기고가의 전화도청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됐으며 이후 일선에서 퇴임했다.고인은 2004년 11월 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의 유죄판결을 확정받았다.taein@seoul.co.kr
  • 유인촌 서울문화재단 대표 임기만료 3개월 앞 ‘아름다운 퇴임’

    “제가 아니라도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 물러날 때를 알고 돌아가도록 도와 주십시오.” 유인촌(54)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가 오세훈 서울시장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직에서 중도 퇴진할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주변에서는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유 대표는 1년 동안 니혼대(日本大) 연극학과 교수진과의 공동연구를 위해 오는 9월 출국할 예정이다.3년 임기 만료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유 대표는 이명박 전 시장이 영입했다. 하지만 유 대표를 붙잡기 위한 오 시장의 노력은 남다르다. 오 시장이 유 대표를 직접 만나 같이 일해보자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8일 “유 대표가 2004년 출범한 재단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오 시장의 문화중심 정책을 이끌어가는 데 적합한 대중예술인이어서 한두 달만 더 있어 달라고 옷소매를 붙잡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유 대표는 지난 6월 사표를 제출했다. 오 시장이 당선된 뒤 물러나는 이 전 시장에게 제출했다.그는 연간 150억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재단의 초대 책임자로서 문예지원 사업을 합리적으로 체계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 대표는 전화 통화에서 “재단 출범초기에 시민단체 등 주위로부터 따가운 눈총도 받았지만 재단의 틀을 어느정도 갖췄다는 점이 자랑스럽다.”면서 “그러나 일본행은 재단 일을 시작할 때부터 마음을 먹었던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오 시장과도 오래 전부터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인 만큼 한국에 돌아오면 오 시장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생활 15년 ‘행복살림 전도사’ 이다도시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생활 15년 ‘행복살림 전도사’ 이다도시

    카사노바는 초콜릿을 ‘사랑의 특효약’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행복의 묘약은 없을까. 작년 이맘 때였다.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 피가로’는 이례적으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뜬 스타’라는 제목으로 전면을 할애해 다음과 같은 기사를 게재했다. ‘당신에게는 생소한 인물일지 몰라도 한국에선 지단이나 소피 마르소, 파트리샤 카스보다 더 유명한 프랑스인이다. 그와 함께 서울 거리를 걷다 보면 얼마나 유명한지 곧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사인을 부탁하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느라 분주하다….’ 그러면서 ‘해외에서 가장 성공한 프랑스인 중 한 사람’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맞다. 분명 그는 한국인으로 귀화한 외국인 가운데 성공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방송 데뷔시절, 특유의 밝은 표정에다 서툰 한국말을 섞어 ‘울랄랄(어머나) 아줌마’로 인기를 끌었다. 강산이 한번 반이나 변한 요즘에는 이미지를 확 바꿨다.‘한국문화 홍보대사’이자 ‘행복살림 전도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 또한 ‘살림 9단’에다 얼마 전 ‘소믈리에 6단’의 실력을 새로 추가해 행복의 향기를 더욱 뿌려가고 있다. 또 두 아들을 키우며 ‘빡세게’ 살아가는 ‘대한민국 주부’이기도 하다. ●10월초 프랑스서 자전에세이 출간 방송인 이다도시(Daussy Ida·37).1991년 기업체 연수시절을 시작으로 한국에서 생활한 지 꼭 15년째를 맞는다. 최근 자신의 네번째 저서인 ‘이다도시의 행복공감’을 펴내 숨겨진 수필가의 자질을 한껏 드러내 주목을 끌고 있다. 뿐만 아니다. 지난달 프랑스 굴지의 출판사인 ‘JC라테스’와 출판계약을 맺었다. 오는 10월초 ‘이다도시, 조용한 아침의 방문’이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출간하기 위해서다. 책 내용이 대부분 한국의 전통문화와 토속생활을 담고 있어 단순히 개인적 영예보다도 유럽에 한국을 제대로 알리는 모처럼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개방적인 외국여인이 보수성이 강한 경상도 집안의 외아들 며느리로 살면서 온몸으로 체험한 생활문화이기에 유럽인들에겐 어쩌면 가장 솔직하게 다가갈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판 출간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다. 이다도시를 만난 곳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의 한 레스토랑. 출판계약 겸 프랑스 와인축제에 한국대표 자격으로 다녀온 직후였다. 한국의 몽마르트르 언덕이라고 불리는 서래마을에는 프랑스인 500명가량 모여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다(Ida)는 노르망디 지역의 한 신(神)에서 유래됐다. 또 도시(Daussy)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았으며 프랑스에서는 희귀 성에 속한다. 먼저 최근 보르도 와인축제에 다녀온 얘기부터 시작했다.2년마다 열리는 보르도 축제는 행사 4일동안 35만명이 찾을 정도로 아주 흥겨운 이벤트라고 강조했다. 여기에서 와인 홍보대사로 위촉장을 받았으며, 내년에는 와인엑스포가 열리는데 이 행사에도 초청을 받았다고 귀띔했다. 포도주를 한국의 막걸리와 비교해달라고 하자 “막걸리는 텁텁하고 곡식주라는 점에서 다르지요.”라고 했다. 와인에 취해 본 적은 없지만 반병 정도 마시면 기분 좋아진다며 웃는다. 프랑스에서도 한국처럼 인기가 좋을까.“고향인 노르망디에 가면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요.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에게서 ‘고향 잊지 말고 자주 오라.’는 얘기를 하지요.”라고 했다. 또 이번에 파리의 출판사에 갔을 때 여러 기자들과 만나 인터뷰도 했다고 덧붙인다. 유럽판 출판과 관련,“원고는 5개월정도 도서관에 틀어박혀 준비했어요.‘다빈치코드’를 출판한 곳인데 사장이 대우를 아주 잘 해주더군요.”라고 말했다. 다른 유럽나라의 출간도 고려하겠다는 대답을 전해들었다. 담겨질 주요 내용은 ▲맏며느리로서 1년에 제사 다섯번을 치르는 얘기 ▲한국인 남편을 택한 과정 ▲왜 방송을 하는지 ▲이다도시가 본 한국 ▲대학원생부터 한국에서 겪은 일 등이다. 단행본 312쪽 분량이다. ●‘한국문화 홍보대사´ 어깨 무거워 “한국을 알린다고 생각하니 정말 어깨가 무거워져요. 하지만 한국의 문화, 한국이란 나라가 어떤 곳인지 있는 그대로 오해 없이 전달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축구 등을 통해 한국을 어느정도 알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동방의 고요한 나라정도로만 여기고 있으며 한국문화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도 많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개고기의 경우 기르던 개를 무참하게 잡아먹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는 것. 그래서 만나는 프랑스인에게 “한국의 정육점에는 개고기가 전혀 없어요. 옛날부터 복날이라는 전통이 있는데 좋아하는 사람은 먹고,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 않아도 돼요.”라고 꼭 설명해준단다. 그러면서 프랑스인들 사이에 말고기와 비둘기고기, 달팽이요리를 먹는 전통과 다를 바 없지 않으냐고 이해를 시킨다. 한국의 보신탕을 먹어본 적이 있느냐고 하자, 남편은 소음인이라 열량 높은 것을 잘 안먹고 자신은 아직 경험이 없다고 대답했다. 독일 월드컵 때에는 각자 자기네 나라를 응원했는데 한국과 프랑스가 1대1로 비기자 프랑스 출판사 사장이 현지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와 “너무 잘 됐다. 어느 한쪽이 이기거나 졌으면 감정이 생겨날텐데 책 내는 일에도 좋게 작용될 것”이라고 격려를 해줬다. ●바이킹의 후예… 어릴 적 꿈은 여행가 화제를 바꿔 고향인 노르망디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 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바이킹의 후예로 회계사이고 어머니는 학교 선생. 지금도 고향에 부모가 살고 있으며 부친이 정년 퇴임하는 올 가을에 한국으로 초청할 예정이다. 바닷가에서 자란 이다도시는 어릴 적 할머니한테 자주 옛날 얘기를 들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자전거를 타고 할머니네 집에 가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특히 2차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대한 얘기도 접했다. 어느날 연합군 낙하산부대원들이 마을에 우수수 떨어졌다. 할머니는 그 낙하산을 얼른 주워다가 천과 실로 아이들의 속옷과 웨딩드레스까지 만들어주곤 했다는 얘기는 지금도 또렷하다. “어릴 적 꿈은 여행가였어요. 일찍부터 여행 바이러스에 걸렸지요. 방학 때면 식구들끼리 유럽 전지역을 다니곤 했으니까요. 학창시절에는 장난꾸러기로 소문나 선생님께서 제게 영화배우나 연극배우가 되라고 했지요.” 끼가 풍부해 고교 때 문학과 철학을 별도로 공부한 뒤 대학에 진학, 경제를 전공했다. 대학원에서는 아시아 비즈니스 분야를 택했다.88서울 올림픽 등을 통해 역동적인 한국을 알고 싶어서였다. 석사학위 논문제목이 ‘남북통일이 가능한가’라고 할 정도로 한반도에 관심이 많았다. 결국 91년 석사학위 준비차 부산의 신발 공장에서 3개월동안 연수과정을 마쳤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 후 박사과정에 들어가려 했지만 한국에 대해 1,2년정도 머물면서 연구를 더하기로 결심했다. 이때만 해도 한국인 남편을 만나고 방송인으로 활동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러던 92년 EBS방송국에서 ‘봉주르 라 프랑스’라는 수업을 진행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외국인 친구들과 사귀면서 우연한 기회에 남편(사업가)을 만났다. 곧 친구가 됐고 나중에는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게 된다. 연애시절 때부터 둘은 여행을 자주 다녔다.7번국도로 동해안을 몇차례 답사했고 제주도만 해도 수십차례 다녀올 정도였다. ●“행복의 묘약은 습관 속에 있나봐요” 결혼생활 13년,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가 됐다. 유진(10)·태진(4)은 아버지와 있을 땐 한국어로, 어머니와 있을 땐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스트레스를 안 주고 서로 스킨십을 습관화한다. 특히 요리할 때 비타민, 단백질, 무기질 등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쓴다. 아이큐가 얼마냐고 묻자, 똑같은 기회를 주기 위해서 절대 비밀로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울랄랄 아줌마’라는 개그우먼으로 쳐다봐서 좀 힘들었습니다. 이젠 ‘행복살림 전도사’로 불러주세요. 인생은 너무나 짧고, 또 단 한번뿐이잖아요. 그러니 즐기셔야죠.” 제사 다섯번을 치르는데 고생이 되지 않느냐고 하자 “일년 365일 중에 딱 5일이잖아요. 보고싶은 친척들도 오고…. 습관 속에 행복의 묘약이 있지 않을까요.”라고 하면서 특유의 함박웃음을 짓는다. ■ 그가 걸어온 길 ▲1969년 프랑스 노르망디 출생 ▲89년 르아브르(Le Havre) 대학교 언어·경제학 학사 ▲91년 동 대학원 경영학 석사(아시아 비즈니스 전공) ▲92∼96년 연세대학교 불문학·불어과 강사 ▲92∼95년 교육방송 불어 강사.▲93년 결혼, 한국으로 귀화 ▲95년 KBS 아침마당으로 데뷔 ▲96년∼현재 방송 3사 및 라디오, 케이블 채널 등에서 방송인으로 활동 ▲2003년 프랑스 여성부 주최 ‘프랑스의 이미지상’ 수상 ▲05년 보르도 와인 테스팅, 와인 전문가 과정(디플로마 취득). 경찰청 주최 인권마라톤 대회 홍보대사 위촉 및 대통령표창 ▲06년 2월 까사 리빙아트스쿨 ‘플라워 데커레이션 전문가 과정’ 이수 ▲06년 3월 프랑스 도빌영화제 심사위원 ▲06년 5월 외국인 정책회의 민간위원 위촉(법무부) ●주요 저서 봉주르 여봉 싸랑해요(96년), 이다도시의 참 맛있는 요리(97년), 이다도시의 생활체험 프랑스식 감성교육법(00년), 이다도시의 행복공감(06년) km@seoul.co.kr
  • 김병준 부총리 퇴임…17일간 보수 450만원

    김병준 부총리 퇴임…17일간 보수 450만원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에 이어 역대 두번째 ‘단명 부총리’로 7일 사표가 수리된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는 지난 17일 동안 근무한 대가로 급여 433만원, 퇴직금 17만원 등 450만원 정도를 받는다. 7일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임용된 김 전 부총리는 이미 7월분 급여를 받았다. 지난달 급여는 교육부총리의 연봉 9471만원을 12개월로 나눈 금액 789만원에 7월중 재직 일수(11일/31일)를 곱한 280만원이었다. 또 이달에는 퇴직일 전날까지 재직 기간으로 간주,6일치 월급인 153만원을 추가로 받는다. 여기에는 소득세·주민세와 같은 세금은 물론, 건강보험료 및 공무원연금 납부액 등이 포함돼 있다. 김 전 부총리는 공무원연금을 낸 만큼 두달치 퇴직금도 받게 된다. 공무원연금법에 따르면 퇴직연금이나 퇴직연금일시금을 받으려면 20년 이상 공직에 몸담아야 한다. 따라서 김 전 부총리는 해당 사항이 없으며, 다만 20년 미만 재직자가 퇴직할 때 지급하는 퇴직일시금을 받을 수 있다. 퇴직일시금은 월보수액에 재직 일수(17일/365일)와 5년 미만 재직자에게 부여하는 가중치 1.2를 곱한다. 이를 통해 산출된 김 전 부총리의 퇴직일시금은 113만원. 그러나 급여에서 퇴직금으로 약 96만원을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퇴직금 실지급액은 17만원 정도이다. 한편 김 전 부총리는 이날 이임식에서 ‘꿈으로 끝난 꿈’이란 제목의 이임사를 통해 “교육부(장관직)를 맡아 나름대로 하고 싶었던 일이 참으로 많았다. 그러나 이런 꿈은 채 한 걸음 옮기기도 전에 ‘박제’가 되어 버렸다.”고 아쉬움을 털어 놨다. 그는 “당분간 (논문표절 논란 같은)이번 일을 잊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면서 “(교육부 공무원)여러분도 저와 제가 겪었던 일을 잊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헌재 재판관 후보추천 시작…보·혁 갈등?

    7일 대한변호사협회가 후임 헌법재판소장 후보를 추천한 데 이어 시민·사회단체들도 다음주 후보를 추천할 것으로 알려져 후임 헌재소장과 재판관 인선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변협은 이날 이임수(64·사시 1회) 전 대법관, 신창언(63·3회) 전 헌법재판관, 김효종(63·8회) 헌법재판관, 이강국(60·8회) 전 대법관, 손지열(59·9회) 전 대법관 등 5명을 후임 헌재소장으로 추천했다. 변협은 특히 “개혁과 다양성을 빙자한 코드인사는 철저히 배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사회연대,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등 13개 단체로 구성된 ‘인권과 민주 실현을 위한 헌법재판관 임명 공동대책위원회’도 조만간 헌재 소장과 재판관 후보를 추천할 계획이다. 이 단체들은 지난달 토론회를 갖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인권 감수성, 사상표현의 자유에 대한 확고한 신념 등을 재판관 인선원칙으로 밝힌 바 있다. 대통령 탄핵 심판사건과 신행정수도 위헌 심판사건 등을 거치면서 헌재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헌재 재판관 인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9명의 재판관 중 13일 퇴임하는 권성 재판관을 시작으로 다음달 14일 윤영철 헌재소장, 김효종·김경일·송인준 재판관 등 모두 5명의 재판관이 물러난다. 이중 헌재 소장을 포함해 대통령이 2명을, 대법원장이 1명, 한나라당 1명,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합의로 1명씩을 지명하게 된다. 추천기관에 따라 자신의 성향에 맞는 후보자들을 지명할 것으로 보여 다양한 성향의 인물들로 자리가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후임 헌재소장으로는 이강국·손지열 전 대법관과 주선회(10회)·조대현(17회) 헌재 재판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 또 재판관으로는 국회 몫으로는 김진기(14회) 대구고법원장과 목영준(19회) 법원행정처 차장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지고 있는 검찰 몫으로는 김희옥(18회) 법무차관, 홍경식(18회) 법무연수원장, 정동기(18회) 대구고검장 등이 언급되고 있다. 또 대법원장 추천으로는 이우근(14회) 서울중앙지법원장, 민형기(16회) 인천지법원장, 이태운(16회) 의정부지법원장, 김종대(17회) 창원지법원장, 손용근(17회) 춘천지법원장 등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반외교, 아베관방에 전할 메시지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대일 조문외교가 주목된다. 반 장관은 8일 열리는 고 하시모토 류타로 전 일본 총리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7일 도쿄를 방문한다. 카운터파트인 아소 다로 외상을 만나는 외에, 아베 신조 관방 장관을 만날 예정이다. 아베 장관은 오는 9월 총리 선거에서 이변이 없는 한 새 총리로 선출될 게 유력시 되는 인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재임 중 뒤틀릴 대로 뒤틀린 한·일 관계의 복원, 즉 포스트 고이즈미 시대의 신 한·일 관계 정립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란 점에서 의미가 큰 만남이다. 핵심 메시지는 야스쿠니 참배 등 역사인식 문제. 정부 고위 당국자는 6일 “반 장관은 ‘일본 지도자들이 정확한 역사 인식을 가져야 한·일 관계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한·일관계 악화의 도화선이 되었던 만큼 ‘야스쿠니 신사 참배’ 입장 재고가 향후 한·일 관계 복원·발전의 기본이라는 직설적 언급을 할 가능성도 높다. 정부 안팎에선 최근 수개월 독도 영유권 문제까지 포함해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치닫자 ‘고이즈미는 포기하고 새로운 정권이 등장하는 계기를 포착할 수밖에 없다.’는 기류가 확산돼 왔다. 고이즈미 총리는 퇴임을 앞두고 8·15 광복절 때도 야스쿠니를 참배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베 장관은 일본 자민당내 ‘강경 우파’로 분류된다. 지난 4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던 사실이 지난주 뒤늦게 언론에 보도됐지만 정작 본인은 현재까지 시인도 부정도 않는 엔시엔디(NCND)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본은 고이즈미 총리 재임시 과거사 문제로 한국·중국과 냉랭해지고 지나친 미국 중심의 외교를 펴면서 국내외적으로 동북아의 ‘외톨이’ 국가란 비난을 들어왔다. 현 시점에서 아베 장관이 총리에 취임할 경우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지는 미지수다. 일단 한국은 반 장관의 아베 장관 면담을 통해 “우리는 갈등을 넘어서, 잘해 보고자 한다. 일본이 ‘행동’을 어떻게 할지 선택하라.”고 공을 던질 듯한 분위기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박수받을때 떠난다” 조 인사위원장 퇴장

    “박수받을때 떠난다” 조 인사위원장 퇴장

    조창현 중앙인사위원장이 3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공개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이날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조 위원장은 “칭찬받을 때 떠나는 게 좋다.”고 했다. 들어올 때보다 나갈 때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례적인 이날의 퇴임 기자간담회는 이런 지론을 적절히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교체설이 나돌면서, 후임자가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모양새 있는 퇴장의 적기라는 것이다. 조 위원장은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2년 5월24일 중앙인사위원장을 맡았다.2000년부터 정부혁신위원장으로 활동하다 김광웅 초대 위원장의 바통을 이어받았다.3년 임기는 지난해 5월 끝났지만 1년 이상을 더 했다. 참여정부에서 가장 롱런한 장관급이다. 정부혁신위원장까지 포함해 장관급 자리에 7년 동안 있었다. 그를 지켜본 공무원들은 롱런 비결로 ‘철저한 자기관리’를 꼽는다. 특히 의전에 밝다.71세의 고령자가 예의를 챙기다 보니 상대방 역시 걸맞은 대접을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평소에도 체력관리를 잘해 나이에 비해 활력이 넘친다. 점심시간이면 식사를 간단히 하고 운동을 한다. 조 위원장은 임기중 가장 큰 성과로 고위공무원단 도입을 꼽았다. 건국 이래 반세기 동안 지속된 낡은 인사제도의 틀을 벗겨낼 수 있었던 것이 보람이란다. 그는 “지난해 12월8일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가 가장 감격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앞으로는 교육을 ‘핵심자본에 대한 투자’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인사위원장이 지녀야 할 덕목으로는 청렴성과 공정성을 들었다. 후임위원장에 어떤 인물이 적임자라고 보느냐는 물음에는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결정할 사항”이라고 한 발 뺐다. 김병준 교육부총리 사태로 인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중앙인사위원회는 직업공무원 문제를 총괄하는 곳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즉답했다. 이루지 못한 것도 많다고 했다. 공무원 공채제도를 시대에 맞게 바꾸어야 했는데 아쉽다는 것이다. 특히 행정고시제도가 시대에 맞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체계도 개편하고 성과평가를 늘려야 하며, 인사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숙제도 남겼다. 전날 사의를 밝힌 김병준 교육부총리와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가깝게 지낸다. 지방자치제도가 정착되지 않았던 시절 조 위원장은 한양대, 김 부총리는 국민대에서 각각 지방자치를 가르쳤다. 이 분야에 ‘인력풀’이 충분치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친분이 쌓였다. 연구와 관련된 각종 제안을 받고 손이 비지 않으면 김 부총리를 소개해 주기도 했단다. 그동안 정부에서 일하면서 서로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하지만 퇴임 방식은 너무나도 크게 엇갈렸다. 조 위원장은 “퇴임한 뒤 당분간은 쉬고 싶다.”면서 “하지만 기회가 닿으면 강단에 다시 서는 등 보람된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막후역할 빛난 ‘부드러운 카리스마’

    막후역할 빛난 ‘부드러운 카리스마’

    한명숙 국무총리가 한숨을 돌렸다. 단순히 부담을 더는 차원에서 벗어나 국정운영에 자신감도 갖게 됐다. 한 총리는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자진 사퇴를 이끌어내면서 공언해온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줬다.‘김 부총리 파동’의 진행 과정에서 다소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시중의 인식도 잠재울 수 있게 됐다. 한 총리는 2일 김 부총리의 사의 표명에 “저는 당과 청와대, 당사자의 입장을 고려해 최선의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고 소회를 밝혔다. 학문적·윤리적 논란을 뛰어넘어 정치적 타격을 입은 김 부총리를 끌어안고 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물러나는 ‘모양새’를 갖추는 데 주력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실제로 한 총리는 당초 ‘해임 불가’에서 김 부총리가 국회에서 해명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자진 사퇴’를 이끌어냈다. 전날 한 총리는 국회 교육위원회 직후 “의혹이 상당부분 해명됐다.”면서 “하지만 거취 문제는 이미 정치적 이슈화된 만큼, 여론을 수렴해 대통령께 건의하겠다.”고 입장 표명을 미뤘다. 이 역시 “사퇴는 무슨 사퇴냐.”며 자진사퇴 관측을 일축했던 김 부총리에게 퇴로를 만들어준 셈이 됐다. 다만 김 부총리 퇴임 문제의 주도권을 한 총리 또는 노무현 대통령, 여권 수뇌부 가운데 누가 쥐고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김 부총리의 퇴진 문제를 둘러싸고 당·청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한총리가 청와대에 여당측 기류를 전달하고, 당·청간 대책을 조율한 뒤 김 부총리에게 자진 사퇴를 권유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게다가 김 부총리의 사의 표명으로 한 총리는 해임 건의라는 무리수도 피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한 총리는 당·청 사이의 조정자 역할을 톡톡히 함에 따라 앞으로의 행보와 입지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국조실 차관급 누가” 술렁술렁

    국무조정실이 차관 인사를 앞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정경제부, 외교통상부, 행정자치부, 산업자원부 등의 차관 인사가 단행될 때 국무조정실의 차관급도 교체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국무조정실은 지난해 3월 차관급으로 승진한 유종상 기획차장의 퇴임을 기정 사실화하는 분위기이다. 따라서 누가 후임이 될 것인지 말들이 많다. 이미 유 차장의 후임으로는 내부 인사와 외부 인사가 각각 1명씩 추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내부 인사보다는 외부 인사의 기용 가능성에 더 무게를 싣는다. 김영주 국무조정실장의 ‘친정’인 재경부나 기획예산처 출신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내부 인사로는 박기종 기획관리조정관이 가장 유력한 후보자.4년째 1급 자리를 지킨 선임 조정관이기 때문. 업무 능력으로 박철곤 규제개혁조정관도 물망에 오른다. 당초 이달 말쯤 단행될 것으로 보였던 차관 인사가 노무현 대통령의 여름 휴가 일정이 늦춰지면서 다음달 중순으로 순연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물밑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젊은이들이 국악 꿈 펼칠 장 마련해야”

    “젊은이들이 국악 꿈 펼칠 장 마련해야”

    서울대 국악과 최초 입학, 국내 가야금 전공 최초 석사학위 취득, 국내 최초 가야금 독주회 개최,26세에 서울대 음대 최연소 교수 임용, 서울시립 국악관현악단 최초 여성 악장 역임, 가야금 산조 여섯 유파 최초 완주(完奏). ‘최초’라는 수식어로 빽빽한 서울대 음대 이재숙(65·여) 교수의 프로필이다. 이 교수가 다음달 31일 39년 3개월간 정들었던 강단을 떠난다. ●가야금 산조 여섯 유파 모두 섭렵 이 교수는 가야금 산조 여섯 유파를 각각의 명인들로부터 직접 전수받은 현존 유일의 연주자다.1994년 김죽파류를 시작으로 95년 강태흥류,97년 성금연류,98년 김윤덕류,99년 김병호류에 이어 2000년 최옥산류 산조까지 모두 완주했다. “김죽파류는 여성적이고 섬세한 데 비해 최옥산류는 남성적인 기품과 절제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김병호류는 심오함, 강태흥류는 발랄함, 성금연류는 화려함이 특징이고 김윤덕류에서는 점잖은 ‘선비가락’이 느껴지지요.” 그는 유파마다 다른 짜임새와 느낌을 비교·분석해 후학들에게 이어주는 것이 ‘가야금 1세대’로서의 소임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30여년 전 명인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채보(採譜·곡조를 듣고 악보로 만드는 것)해 최초로 책을 내기도 했다. 이후 시대에 따라 변하는 산조의 느낌을 연구하는 작업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가야금 산조도 옛 명인들이 원래 짰던 가락에서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럴수록 저같은 사람이 원형을 보존하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고 봅니다. 원형이 있어야 변화와 발전도 가능하니까요.” ●‘박사 가르치는 석사’ 이 교수는 산조 여섯 유파를 총정리한 ‘한국 가야금 산조 총집’(가칭) 발간을 준비하며 40년간의 교수생활을 정리 중이다. 여기에는 명인들로부터 채보한 내용과 녹음자료 등 국내 가야금 산조의 모든 것이 담긴다. 그가 서울대 교수로 임용될 당시만 해도 가야금에는 박사과정이 없었다. 석사학위 소지자인 이 교수가 최고 학력이었다. 그러다 3년 전 서울대에 박사과정이 개설되면서 그동안 박사 학위 없이 학생들을 가르쳐 왔던 나이 지긋한 교수들이 대거 등록했다. 이 교수는 현재 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교수는 젊은 사람들에게도 인기 있는 퓨전 국악단 ‘가야금 앙상블 사계(四界)’ 팀을 만든 주역이다. 서울대 젊은 선·후배로 구성된 ‘사계’를 만든 데 이유가 있다.“젊은이들이 국악의 꿈을 펼칠 장(場)을 마련해 주는 것이 저를 비롯한 원로들이 할 일입니다. 그것이 곧 국악 발전의 원동력이죠.”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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