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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꼼수 사퇴 논란 洪 “국민만 볼 것”

    꼼수 사퇴 논란 洪 “국민만 볼 것”

    시한 3분 전 지사직 사퇴로 경남지사 보궐선거 무산돼‘꼼수 사퇴’ 비난을 받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10일 경남지사직에서 4년 4개월 만에 물러났다. 그는 퇴임사에서 “지금은 위기에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한 달 남은 대선,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고 밝혔다. 홍 후보는 이날 경남도청에서 퇴임식을 하면서 “4년 4개월의 귀중한 경험과 성과를 가지고 천하대란의 현장으로 나간다”고 말했다. 퇴임사 도중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모든 것을 희생한 제 어머니 같은 분이 좌절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울먹였다. 홍 후보는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한 시한을 단 3분 남긴 전날 밤 11시 57분에 사퇴했다. 경남도선관위에는 당일 사퇴가 통지되지 않아 도지사 보궐선거는 결국 무산됐다. 홍 후보는 보궐선거를 하면 300억원이 넘는 비용을 경남도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퇴임식 후 홍 후보가 탄 차량은 시민단체 회원으로부터 항의성 소금 세례를 받고 도청 청사를 빠져나갔다. 퇴임식을 마친 홍 후보는 경북 상주와 충북 괴산을 잇달아 방문해 4·12 재보궐선거 지원 유세를 하며 본격 대권 행보에 나섰다. 상주·군위·의성·청송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하는 김재원 후보 지원을 위해 방문한 상주 서문사거리에서는 “단순한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대구·경북(TK)에서 한국당이 부활하느냐가 달렸다”며 “상주시민 여러분이 용서해 주고 다시 한번 한국당과 홍준표가 일어설 수 있도록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홍 후보는 상주 중앙시장을 둘러본 뒤 기자들과 만나 “보도를 보니 바른정당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출당시키라고 하는데 내 선거에 유리하기 위해 다시 박 전 대통령 등 뒤에 칼을 꽂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박 전 대통령은 파면과 구속으로 이중 처벌을 받았고 정치적으로는 이미 사체가 됐다”고 말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해서는 “경선이 끝나면 지지율이 올라야 하는데 거꾸로 내려온 건 문 후보의 안보관 때문”이라며 “북·미 관계가 아주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고 선제타격설이 계속 나오는데 우리는 조용하다. 선거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의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창원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최성준 방통위원장 오늘 퇴임… 조직개편 쓴소리

    최성준 방통위원장 오늘 퇴임… 조직개편 쓴소리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 6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로 이원화된 방송·통신 업무를 하나의 기관으로 합쳐야 한다고 밝혔다. 방송·통신 산업 진흥은 미래부가, 규제는 방통위가 각각 담당하도록 한 현 정부의 조직 개편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정책 최고 책임자 스스로 밝힌 것이다.최 위원장은 3년 임기를 마치고 7일 퇴임한다. 최 위원장은 “방송과 통신도 융·복합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기 때문에 같은 기관에서 맡아서 해야 한다”며 “다만 통신이나 정보통신기술(ICT) 중 인공지능, 자율주행 등 새로 커 나가야 하는 부분들은 전담 부처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의 조직 개편에서 그런 부분이 고려돼 업무가 정의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5명의 방통위 상임위원 중 차기 위원장과 위원 1명에 대한 임명이 지연돼 업무 공백이 우려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위원회가 공백이더라도 사무국의 조사나 검토 등은 계속 이뤄지고, 필요한 것은 앞당겨 다 처리했다”고 답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中 ‘올드보이’·‘트럼프 비선’들이 회담 성사 주도적 역할

    中 ‘올드보이’·‘트럼프 비선’들이 회담 성사 주도적 역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첫 정상회담이 중국 외교의 올드보이들을 되살려 냈다.중국 양제츠(67) 국무위원은 사실상 퇴임 상태였다. 그가 이번 회담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트럼프 정권 출범 후 회담 성사까지 고비마다 숨통을 틔우게 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선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과 느닷없는 전화통화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 때 중국은 트럼프와의 접촉 루트를 찾지 못해 당황했다. 이때 양제츠가 나섰다. ●中 부총리 가능성 거론되는 양제츠 지난해 12월 9일 미국으로 건너가 대외 정책의 초안을 그리던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나 ‘핫라인’을 구축했다. 그러고는 격앙된 양국 정상을 달래 통화를 성사시켰다. 두 번의 미국대사 경험과 6년 외교부장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부총리(정치국원) 가능성이 거론될 정도다. 직업 외교관이 권력서열 25위 이내의 정치국원으로 발탁된 일은 1990년대 첸치천 전 부총리 이후 사례가 없다. 추이톈카이(65) 주미 중국대사도 역시 퇴임이 유력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딸과 사위인 ‘이방카 트럼프-재러드 쿠슈너’를 집중 공략한 주포였다. 전임자들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인들에게 설맞이 인사를 하지 않아 양국 분위기가 급속히 냉랭해졌을 때 이방카를 중국대사관으로 불러낸 주인공이다. 중국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 발언을 누그러뜨리고, 첫 회담을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소유 리조트 마라라고에서 개최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美와 별 인연 없는 왕이 부장 ‘머쓱’ 외교 실세인 현직 외교부장 왕이는 중간에서 머쓱해진 상태다. 일본통으로 미국과는 별 인연이 없었다. 지난 5년간 모든 정상회담의 밑그림을 그려 왔던 시진핑의 양팔 ‘리잔수-왕후닝’조도 이번엔 뒤로 빠졌다. 리잔수 비서실장은 외교정책까지 완전히 장악했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경제 책사 류허는 무역 전쟁 대응책을 책임진다. 리커창 총리보다 경제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이들은 준비 과정에서 물러났을 뿐이다. 회담장에서는 시 주석을 조종할 인물들이다. 중국의 외교 시스템과 지형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트럼프 정권의 ‘시스템 부재’다. 트럼프 정권은 지금껏 ‘백악관 이너서클(문고리)’을 중심으로 정상회담을 치러 왔다. 행정부는 이제 막 장관직 정도만 형태가 구비된 상태로, 특히 아시아 라인의 실무진은 곳곳이 구멍이다. 이너서클로 외교를 움직이는 대표적인 나라가 중국이지만 이번에는 모처럼 공식 외교라인이 움직여 미국의 비선조직과 선을 댔다. 외형상 기형적이지만 가장 실질에 부합하는 조합을 만들어 낸 것이다. 시 주석과 그의 팀을 미국에서 맞을 그룹은 ‘백악관팀’이다. 회담 성사부터 장소 결정까지 막후에는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쿠슈너 선임고문이 있다. 북핵 문제 등 외교안보 이슈와 관세·환율 등 무역 이슈는 각각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국가경제위원회(NEC)가 나눠서 모든 인력을 동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5일 “정상회담이니 당연히 백악관이 챙기지만 국무부와 국방부, 재무부, 상무부 등 각 부처들이 장관 이외에는 실무급에서 중국을 제대로 담당할 만한 라인을 완전히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백악관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다른 소식통은 “백악관 내에 자칭, 타칭 ‘중국 전문가’가 상당수 포진해 있다”며 “이들이 중국을 ‘열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백악관 내 中 전문가들 중국 ‘열공’ 쿠슈너는 추이톈카이의 제안을 접수한 뒤 스티븐 배넌 수석고문 및 백악관 보좌관들을 비롯해 국무부 등과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핵·미사일 대응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남중국해 문제 등 외교안보 현안은 허버트 맥매스터 NSC 보좌관과 캐슬린 맥팔런드 부보좌관이 맡고 있다. 중국 전문가로 꼽히는 맥팔런드 부보좌관은 특히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 검토를 주도하면서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방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매슈 포팅어(43) 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양국 정상 간 전화통화 등의 실무를 담당했으며, 이번 정상회담의 의제부터 의전까지 모든 과정에 관여하고 있다. ●틸러슨은 중국 측 카운터파트役 예상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은 정상회담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앉아 중국 측 카운터파트를 상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백악관이 짠 각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제통상라인 총괄은 트럼프 대통령 측근인 게리 콘 NEC 위원장이 맡는다. 상무부·국무부 출신 케네스 저스터 NEC 부위원장 겸 NSC 국제경제 담당 부보좌관은 NEC와 NSC를 넘나들며 실무를 이끌고 있다. 경제통상라인은 분야별로 역할이 나뉘어 있다. 환율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관세는 피터 나바로 무역위원회(NTC) 위원장과 로버트 라이시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반덤핑 이슈는 윌버 로스 상무장관이 각각 맡는다. 이들 모두 중국에 강경한 입장을 취해 왔기 때문에 협상이 녹록지 않게 전개될 것으로 보이지만 모종의 합의를 이끌어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盧 꼬리표’ 떼고 ‘정치근육’ 붙인 文…“두번 패배 없다”

    ‘盧 꼬리표’ 떼고 ‘정치근육’ 붙인 文…“두번 패배 없다”

    문재인(64)의 두 번째 도전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고 노무현(1946~2009) 전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 오롯이 ‘정치인 문재인’으로 승부를 겨루려고 한다. 오랜 세월 그를 지켜본 이들은 “눈빛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정치인에게 꼭 필요한 절실함과 권력의지, ‘정치 근육’이 생겼다는 의미일 게다.5년 전 운명에 떠밀리듯 대선 무대에 강제 소환됐지만, 2017년의 문재인은 더는 ‘운명’을 담지 않는다. 2011년 자전에세이 ‘문재인의 운명’의 마지막 페이지에 “당신(노무현)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고 한탄하듯 말했다. 하지만 노무현의 ‘친구’(실제로는 문 전 대표가 여섯 살 적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고,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이자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이란 꼬리표는 더이상 문재인의 전부가 아니다. 대신 ‘왜 대통령이 되려는가’란 물음에 “재조산하(再造山河)”라고 답한다. 폐허가 된 나라를 다시 만든다는 의미다. 그 기반은 ‘노무현의 자산’이 아닌 ‘문재인의 자산’이다.여전히 노무현을 언급하지 않고 문 후보를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1982년 첫 만남 이후, 둘은 인권변호사의 길을 함께 걸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로 들어가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 등을 역임하며 참여정부의 성공과 좌절을 함께 경험했다. 노 전 대통령 탄핵 때는 대리인단 간사 변호인을 맡았고, 퇴임 후에도 양산 자택과 봉하마을을 오가며 곁을 지켰다. 노무현은 그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인 동시에 아킬레스건이다. 2012년 대선 당시 “참여정부는 모든 면에서 큰 성취가 있었던, 총체적으로 성공한 정부였다”고 강변하다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문 후보를 소환해 미완의 참여정부를 완성하고, 정치적 복권을 하려는 친노(친노무현)의 욕망이 외려 ‘정치인 문재인’의 성장을 가로막은 셈이다. 문 후보의 지갑에는 여전히 노 전 대통령의 유서가 있다. ‘운명’에서 그는 “별 이유는 없다. 그냥 버릴 수가 없어서 그럴 뿐”이라고 썼다. 문 후보의 측근은 “지금도 그때처럼 버리지 못해 넣어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 후보는 5년 전처럼 참여정부에 대한 강박적 옹호를 펴지 않는다. 지난달 24일 광주에서 열린 대선 경선 토론회에선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호남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은 호남의 인사차별을 뿌리 뽑지 못했고, 일자리 문제 등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자성하기도 했다. 정치인 문재인으로 홀로 서기를 한 이후 얻은 건 세력이다. 친문(친문재인) 진영은 당 지도부를 장악했고, 소위 ‘문빠’란 말이 생길 정도로 충성도 높은 지지층도 있다. 물론 세력의 또 다른 얼굴은 ‘패권’이다. 문 후보 측이 항변하듯 경쟁자들이 만든 근거 없는 프레임이든, 실제 권력에 도취한 ‘패거리 권력’이든 문 후보에게는 양날의 칼이다. 한솥밥을 먹었던 안철수, 김한길, 박지원, 김종인 등은 패권주의를 지목하며 당을 떠났다. 자연인 문재인은 구여권과 반문(반문재인) 인사들도 인정할 정도로 소탈한 사람이다. 여전히 연필을 즐겨 쓰는 문 후보는 양복 주머니에 고무지우개를 넣고 다니기도 한다. 진지한 설득형으로, 법조인 출신답게 논리에 진정성을 담아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래서 그의 화법은 어눌하지만 담백하고 설득력 있다. 대충 얼버무리면 될 것도 기자들이 질문하면 모범답안으로 답하려고 노력한다. 겸손과 배려, 외유내강, 원칙주의자 등은 문 전 대표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단어들이다. 부산에서 변호사를 하던 시절 부인이 청약 저축에 가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청약저축은 집 없는 사람들에게 우선 분양권을 주기 위한 제도니, 우리처럼 집 있는 사람들은 가입해선 안 된다”며 크게 화를 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문 전 대표는 청와대에 있으면서 출입기자들과 단 한 차례도 식사 자리를 갖지 않았고, 동창회에는 물론,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그런 그도 경남중·고교 시절에는 공부만 하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싸움에 말려 친구와 의리를 지키려다 정학을 당했고, 술과 담배도 하는 ‘문제아’(실제 경남고 시절 별명)였다. 1·4 후퇴 흥남철수 작전 당시 고향(함경남도 흥남)을 떠난 실향민 부모를 둔 문 후보는 1953년 경남 거제에서 피란살이 중 태어났다.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와 교사의 설득으로 꿈을 포기하고 재수 끝에 경희대 법대에 4년 전액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심리학자 김태형씨는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에서 ‘기대를 저버리지 못했던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고 표현했다. 문 후보는 유신 반대시위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1975년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 제적됐고 강제징집을 받아 특전사로 배치됐다. 특전사 경력은 안보관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그의 방패막이가 됐다. 1980년 복학한 문 후보는 복학생 대표를 맡아 ‘서울의 봄’의 복판에 나섰다. 5·17 확대 계엄조치가 발동되면서 또 구속됐다.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지만, 시위 전력 탓에 판사로 임용되지 못했다. 덕분에 노 전 대통령과의 운명적 만남이 이뤄졌다. 종종 극우·보수진영에서 ‘좌파’, ‘안보관이 불안하다’는 공격을 받지만 그의 정치적 성향은 ‘진보’보다는 ‘중도개혁’에 가깝다. 특히 경제 정책에서는 균형과 안정을 중시한다. 재벌개혁을 주장하나 법인세 증세는 증세의 후순위에 뒀다. 이런 이유로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친재벌’이란 비판도 받았다. 문 후보 측 관계자는 “이념적 진보가 아니라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민생진보”라고 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인권변호사에서 ‘적폐청산 선봉’으로

    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인권변호사에서 ‘적폐청산 선봉’으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문재인 후보가 3일 확정됐다. 2012년에 이어 두 번째 대권에 도전하는 ‘대선 재수생’이다. 이날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문 후보는 “이제 우리 대한민국에서 분열과 갈등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고 선언한다”며 “이번 대선은 보수 대 진보의 대결이 아니라 정의와 불의, 상식과 몰상식, 공정과 불공정, 미래개혁세력과 과거 적폐세력에 대한 선택이다. 적폐연대의 정권연장을 막고 위대한 국민의 나라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했던 인권변호사의 길, 정치 신인에서 ‘적폐청산 선봉’을 자임하는 현재까지 문 후보의 여정을 되짚어 봤다. ◆ 어머니 연탄배달 돕던 소년, ‘반유신’ 운동권으로 문 후보는 1953년 1월 경남 거제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함경도 흥남이 고향이었던 부모는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미군 함정에 몸을 실으며 남한으로 정착했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부산 영도로 이사했다. 가난은 여전했다. 문 후보는 모친의 연탄 배달일을 돕다 리어카 채로 길가에 처박힌 일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공부만 했다. 명문 경남중·고에 입학했다. 중학교 때 부유한 친구들을 보며 세상의 불공평을 느꼈다고 한다. 고3때는 술을 마시고 담배도 배웠다. 이름 탓에 ‘문제아’ 별명이 붙여졌다. 재수로 입학한 경희대 법대 시절에는 ‘반유신’ 운동권이었다. 1975년 인혁당 사건 관계자들의 사형을 계기로 대규모 시위를 이끌다 구속됐고, 결국 학교에서 제적됐다. 석방과 동시에 강제징집돼 특전사에서 군 생활을 했다. 상병 때는 북한이 일으킨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대응작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문 후보는 제대 직후 부친을 잃은 회한으로 전남 해남 대흥사에서 고시공부에 매달렸다. 1979년 사시 1차에 합격했다. 그러나 부마항쟁과 10·26, 12·12 쿠데타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다시 구속됐다. 그는 유치장 속에서 2차시험 합격 소식을 들었다. ◆ 시위 전력으로 판사 지망 ‘좌절’…노무현과 운명적 만남 사시 합격으로 ‘평탄한 길’로 들어섰다. 7년 연애 끝에 부인 김정숙씨와도 결혼해 1남 1녀를 뒀다. 고 조영래 변호사·박원순 서울시장·박시환 대법관·송두환 헌법재판관·고승덕 변호사 등 걸출한 동기들이 즐비한 가운데 차석으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문 후보는 판사를 지망했다. 그러나 시위전력으로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그는 대형로펌 스카우트를 거절하고 부산행을 택했다. 이는 1982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운명적 만남의 시작이 됐다. 의기투합한 노 전 대통령과 문 후보 두 사람에게 각종 인권·시국·노동 사건이 몰렸다. 문 후보는 ‘대한민국이 묻는다’ 저서를 통해 “인권변호사의 길을 간 이유는 변호사가 단순히 밥벌이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6월 항쟁 때인 1987년, 부산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결성 시 노 전 대통령이 상임집행위원장을 문 후보가 상임집행위원을 맡으며 부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13대 총선에 출마하며 정치권에 들어섰다. 반면 문 후보는 노동문제 변호사 길을 이어갔다. 2002년 대선 경선에서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의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으며 두 사람은 재결합했다. ◆ 참여정부 ‘왕수석’…노 전 대통령 곁 지킨 ‘친노적자’로 문 후보는 참여정부 시작과 끝을 함께했다. 이빨을 10개나 뽑을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다. 그러나 총선에 출마하라는 당의 요구를 거절하며 불편함이 커진 탓에 청와대 민정수석을 1년도 못하고 물러났다. 문 후보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향했던 히말라야 트래킹에서 노 대통령 탄핵 소식을 들었다. 중도 귀국한 그는 변호인단을 꾸렸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기각 후 시민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복귀했던 문 후보는 이후 민정수석으로 옮겼다.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비서실장을 맡으며 ‘동지 노무현’과 흥망성쇠를 같이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김해 봉하마을로 가면서 문재인도 인근 양산에 거처를 마련했다. 가끔 들르자고 했지만, 이명박 정권은 이를 그냥 두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문 후보는 변호인 겸 대변인으로 적극 방어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국민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 장례를 도맡았고, 이후 노무현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했다. ◆ ‘정치신인’ 대선후보에서 ‘적폐청산 기수’로 재도전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2009년 경남 양산 국회의원 재보선과 이듬해 부산시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현실정치와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그를 향한 정치참여 압박은 거셌다. 결국 문 후보는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 속에서 야권대통합 과정에 뛰어들었다. 2012년 4·11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서 당선된 뒤 대선후보로 나섰다. 안철수 후보와의 우여곡절 끝 단일화로 48.02%라는 역대 야권 대선후보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박근혜 후보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인고와 침잠의 세월을 보내던 그는 2014년 12월 당 대표에 출마했다. 당 대표가 되면서 쇄신을 거듭했지만 친문(친문재인) 프레임에 갇혔고, 이듬해 안 후보가 탈당하는 분당 사태로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영입하며 지난해 4·13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문 후보를 향한 ‘패권주의’ 공세는 계속됐다. 작년 하반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문 후보가 적폐청산의 최적임자로 거론되면서 ‘문재인 대세론’이 바람을 타고 있다. 경선에서는 승리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라이벌이던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을 보듬으며 그들로 향한 지지율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김종인 전 대표 등 문 전 대표와 한 때 당을 같이 했던 정치인들이 모두 등을 돌린 만큼 포용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당장 반(反)문재인을 기저로 한 정치권의 연대 움직임도 돌파해야 한다. 반년 가까이 이어온 ‘대세론’을 문 후보가 대선 끝까지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黃대행, 방통위 상임위원 내정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방송통신위원회 차기 상임위원으로 김용수 미래창조과학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을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권한대행이 차기 정부가 해야 할 인사를 강행함으로써 ‘방통위에 알박기 인사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김 실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초에 청와대 정보방송통신비서관을 지냈다. 일각에서는 방통위 행정 공백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의견도 있다. 2일 방통위 등에 따르면 황 권한대행이 김 실장을 방통위 상임위원으로 내정하고 3일 공식 임명할 것으로 전해졌다. ‘방통위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상임위원 5명 중 위원장을 포함한 2명은 대통령이 지명한다. 단, 위원장은 국회의 인사청문을 거쳐야 한다. 나머지 3명은 국회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황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지명권 중 국회의 인사청문이 필요 없는 1명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한 것이다. 김재홍 방통위 부위원장(야당 추천)과 이기주 상임위원(대통령 지명)이 최근 임기를 마무리하면서 현재 상임위원 5명 중 3명이 남아 있다. 김석진 상임위원(여당 추천)은 임기가 끝났지만 최근 연임됐다. 최성준 위원장도 오는 7일자로 임기가 끝나며, 고삼석 상임위원(야당 추천)은 6월 8일 임기가 종료된다. 이 때문에 방통위는 행정 공백을 우려해 상임위원 2명이 퇴임하기 전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등 주요 안건들을 앞당겨 처리했다. 고삼석 위원은 “황 권한대행이 정말 행정 공백을 우려했다면 중립적인 인사를 선택했어야 한다”며 “40일도 안 남은 ‘시한부 과도 정부’가 차기 정부에 부담을 주는 ‘알박기 인사’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통위 한 직원은 “박근혜 정부가 출발하면서 방통위를 반 토막 냈던 인물(김 실장)이 방통위로 오는 것에 대해 직원들의 반발이 심하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박홍기 칼럼] 거리에서 전직 대통령을 보고 싶다

    [박홍기 칼럼] 거리에서 전직 대통령을 보고 싶다

    정해진 시간은 빠르다. 대통령 선거가 40일 남았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기본 정신을 국민 스스로 다시 확인하고, 권력에 거듭 각인시키는 날이다. 지금 대한민국엔 대통령이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있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할지 기각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재판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서 “통치 행위였다”,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는 진술을 또다시 듣는 현실에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22년 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그랬다. 당시 그들은 수의를 입고 법정에 섰다.헌정사 70년 동안 11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8명의 끝은 비극적이다. 이승만은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 혁명에 쫓겨 하야한 뒤 망명했고, 윤보선은 5·16 쿠데타로 물러났다. 박정희는 18년 집권하다 부하의 총에 숨졌고, 최규하는 신군부의 강권에 8개월 만에 사임했다. 전두환·노태우는 퇴임 뒤 군사반란죄로 옥살이를 했고, 노무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근혜는 탄핵당해 파면됐다. 나머지 3명 역시 평탄했다거나 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준 상처는 유독 깊다. 한때나마 품었던 희망은 좌절을 넘어 절망으로 바뀌었다. 소신과 원칙, 청렴의 뒤편은 추악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처럼 반대편 벽에 드리운 그림자의 이미지만으로 실제를 판단하도록 한 이미지 전략에 말려든 결과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었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다. 그 대가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헌법의 가치는 유린되고 민주주의는 퇴보했다. 무기력한 국회를 대신해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온 이유다.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을 거리에서 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대선 정국이다. 너도나도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국민을 찾아 전국을 돌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헐뜯고 치고받는 강도는 갈수록 세지고 있다. 대통령만 되면 도깨비 방망이로 원하는 대로 뚝딱 대한민국을 개조할 수 있는 양 떠벌리고 있다. 외침은 한결같다. 정권교체, 적폐청산, 모든 게 탈(脫)박근혜로 통하고 있다. 정국 혼란을 직간접적으로 초래한 정치인으로서의 반성이나 성찰에서는 진정성을 찾을 수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야가 따로 없다. 낯 두껍다. 다음 정부의 국정 과제가 쏟아지고 있다. 양극화 완화, 정치개혁, 저성장 극복과 일자리 창출, 저출산, 삶의 질, 국민통합, 국가안보, 남북관계, 교육개혁, 제4차 산업혁명 등등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지만 난제들이다. 변화된 환경과 여건에 맞춰 비중이 달라졌을 뿐 18대, 17대 대선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연결에서 존재하듯 새로운 과제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통령은 모든 것을 알 수도 없고, 다 해결할 수도 없다. 국민도 알고 있다. 많은 희생을 치르며 터득한 학습 효과다. 국가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능력과 함께 적재적소의 인재 기용, 시스템적 국정을 요구하는 까닭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민주 정치의 핵심인 말과 소통이다. 자기 생각의 합리성과 타당성을 설득시켜 과제를 실천에 옮기는 행위까지 포함한다. 박 전 대통령이 철저히 실패한 것들이다. 국가도 끊임없이 보완하고 발전시켜야 할 대상이다. 현실을 뛰어넘기 위해서다. 그 중심에 대통령이 있다. 위임받은 권력인 만큼 군림 아닌 통치를 해야 하는 것이다. 임기 내내 꾸준하게 과제를 추적하고 확인해야 함은 당연하다. 진보니 보수니, 좌니 우니 하는 이분법적 흑백 논리를 떨쳐내야 한다. 통합이다. 더 나은 사회, 국가를 만드는 데 이념과 진영 논리가 있을 수 없다. 국정에는 줄탁동기(?啄同機)의 순리가 필요하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려면 어미 닭과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하듯 안과 밖에서 힘을 합쳐야 하는 이치와 같다. 참여와 공감을 이끄는 지혜이자 리더십이다. 다음 대통령은 퇴임 이후 시민들과 함께 자유롭게 거리를 걷는 자신을 그려 봤으면 한다. 임기 5년 길지 않다.
  • 이선애 재판관 취임… 헌재 8인 체제로

    이선애 재판관 취임… 헌재 8인 체제로

    이선애(50·사법연수원 21기) 신임 헌법재판관이 29일 취임 일성으로 “사회의 진정한 통합에 이바지하겠다”고 밝혔다.이 재판관은 이날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으로서의 헌법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는 우리 헌법 최고의 이념이 구현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성 법조인으로서 살아오면서 얻은 경험과 문제의식을 잊지 않고 우리 사회가 여성재판관으로서의 저에게 기대하는 바를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이 재판관은 지난 13일 퇴임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후임으로 양승태 대법원장에 의해 지명됐다. 지난 2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아파트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이 일부 제기됐지만 이 재판관이 사과하면서 청문보고서는 무난히 채택됐다. 이로써 이 재판관은 전효숙·이정미 전 재판관에 이어 헌재 역사상 3번째 여성 재판관이 됐다. 이 재판관은 1992년부터 12년간 판사로 재직한 뒤 2004~2006년에는 헌법연구관으로 근무했다. 이후 변호사로 개업해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 증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재판관의 취임으로 헌재는 16일 만에 ‘8인 체제’로 복귀하게 됐다. 탄핵심판을 진행하며 재판부가 잠시 미뤄뒀던 사건들에 대한 처리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31일 퇴임한 박한철 전 헌재소장의 후임은 대통령 지명 몫이어서 5월 9일 대선 이후에 ‘9인 체제’가 완비될 수 있을 전망이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당권이 우위에 있을 땐 與 후보가 대권 잡았다

    MB 땐 ‘절대 우위’ 박근혜 승리 정동영·노무현, 갈등으로 실패 여당 없는 19대 적용될지 주목 역대 대선에서 ‘당·청 관계’가 집권 여당 후보의 운명을 결정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당권이 우위에 있을 땐 여당 후보가, 당·청 마찰이 심할 땐 야당 후보가 각각 승리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변수가 돌발한 이번 5·9 대선은 과거 선거와 어떻게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지 주목된다. 옛 대선 사례를 살펴보면 대통령과 여당 후보의 ‘힘겨루기’ 결과가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난다. 2012년 대선에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세력이 집중됐다. ‘지는 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근혜’라는 강력한 당권 앞에 이렇다 할 힘을 쓰지 못했다. 박 후보는 결국 대권까지 거머쥐었다. 2002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호남 화합’이라는 명분 아래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를 비공식적으로 지원했다. 노 후보는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체제에서 치러진 1992년 대선에서도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에게 권력이 집중됐고, 정권은 유지됐다. 하지만 2007년 대선은 달랐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각종 현안을 놓고 ‘파워게임’을 벌였다. 당·청 관계는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대선에서 정 후보는 26.1%의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쳤고 노무현 정부는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29일 “정권 초기에는 대통령이 주도권을 쥐고, ‘권력 누수 현상’이 찾아오는 임기 말에는 당이 주도권을 쥔다는 ‘정치적 순리’가 지켜졌을 때 정권이 재창출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이 탄핵으로 퇴임해 버린 상태다. 자유한국당도 여당의 지위를 상실하면서 이번 대선은 전례 없는 구도로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유효했던 ‘당·청 관계와 정권 재창출 공식’이 이번 대선에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이선애 헌법재판관 취임…“절차탁마의 마음으로 맡은 바 소임”

    이선애 헌법재판관 취임…“절차탁마의 마음으로 맡은 바 소임”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후임으로 지명된 이선애(50·사법연수원 21기) 헌법재판관이 29일 공식 취임했다. 헌재는 이날 오전 10시 청사 대강당에서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등 헌법재판관과 헌재 직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이 재판관의 취임식을 개최했다. 이 재판관은 취임사에서 사회 통합과 소수자 보호에 앞장 서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는 지역·세대·이념·계층 간 가치관의 충돌에서 비롯된 다양한 모습의 갈등과 분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는 우리 헌법 최고의 이념이 구현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또 이 재판관은 여성 법조인으로서 받는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이어 “여성법조인으로서 살아오면서 얻은 경험과 문제의식을 잊지 않고, 우리 사회가 여성재판관으로서의 저에게 기대하는 바를 고민하겠다”며 “소외된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면서도 모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 사회의 진정한 통합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재판관은 “30년 전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초심과 오늘 이 자리에서 밝힌 각오와 다짐을 잊지 않고 절차탁마(切磋琢磨:학문이나 덕행 등을 배우고 닦음)의 마음으로 맡은 바 소임을 다 하겠다”며 취임사를 마무리했다. 이 재판관은 지난 13일 퇴임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후임으로 양승태 대법원장에 의해 지명됐다. 2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아파트 다운계약서 작성 등 일부 의혹이 제기됐지만, 청문보고서는 무난히 채택됐다. 이 재판관은 1992년부터 2004년까지 12년간 판사로 재직한 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헌법연구관으로 근무했다. 이후 변호사로 개업해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 증진과 법치주의 확립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헌재는 이 재판관 취임으로 재판관 7인 체제에서 16일 만에 8인 체제로 복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국암웨이 대표이사 김장환

    한국암웨이 대표이사 김장환

    한국암웨이는 김장환(53) 전 한국암웨이 최고운영책임자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고 28일 밝혔다. 김 신임 대표는 정년 퇴임으로 물러나는 박세준 대표이사의 뒤를 이어 오는 6월 1일부터 한국암웨이를 맡는다.
  • 검찰 박근혜 구속영장 청구…역대 세 번째 구속 전직 대통령되나

    검찰 박근혜 구속영장 청구…역대 세 번째 구속 전직 대통령되나

    검찰이 27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로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 수감되는 역대 세 번째 전직 대통령이 될지가 관심사다. 박 전 대통령에 앞서 구속 수감된 역대 대통령으로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있다. 1995년 10월 20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박계동(65) 당시 민주당 의원이 폭로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그 해 11월 1일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았던 노씨는 재임 기간에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로부터 2000억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같은 해 11월 16일 구속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같은 해인 1995년에 출범한 검찰 ‘12·12 사건 및 5·18 사건’ 특별수사본부는 1979년 ‘12·12 군사반란’(전두환·노태우를 앞세운 신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킨 사건)과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및 학살’의 주범인, 노씨와 전 전 대통령을 그 해 12월 21일에 기소했다. 두 사람에게는 반란수괴·내란수괴·내란모의참여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앞서 검찰은 1995년 12월 2일 전씨에게 피의자 소환 조사를 받을 것을 통보했다. 하지만 전씨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앞에서 “종결된 사안에 대한 검찰의 수사 재개는 진상규명이 아니라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므로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골목 성명’을 발표하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가 버렸다. 이에 검찰은 전씨에 대해 반란수괴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다음날인 1995년 12월 3일 법원이 영장을 발부해 전씨는 안양교도소에 수감됐다. 이후 노씨는 1997년 4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7년을 선고받고 추징금 2688억원 납부를 명령받았다. 전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추징금 2205억원 납부를 명령받았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같은 해 12월 김영삼 정부로부터 사면을 받았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전직 대통령에게 경호 및 경비 지원 혜택만을 제공한다. 재직 중 탄핵결정으로 퇴임한 박 전 대통령과 같은 처지다.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검찰이 3주 넘게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이후 고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관천 “이재만·안봉근 구속수사해야”…추가 비리 폭로 예고

    박관천 “이재만·안봉근 구속수사해야”…추가 비리 폭로 예고

    2014년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이하 ‘정윤회 문건’)의 작성자인 박관천(51)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경정)이 문건을 작성하고 청와대에서 쫓겨나 좌천됐을 당시 상황에 대해 털어놨다. 박 전 행정관은 ‘정윤회 문건’ 속에 등장하는 ‘십상시’라는 표현은 “주변에서 떠도는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윤회 문건’ 속에 등장하는 ‘십상시 모임’은 최순실(61·구속기소)씨의 전 남편인 정윤회(67)씨가 박근혜 정부의 ‘문고리 3인방’에 속한 정호성·이재만·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을 자주 만나 국정을 논한 일을 가리킨 표현이다. 검찰은 2015년 1월 당시 ‘십상시 모임’은 실체가 없다고 발표했지만, 박 전 행정관은 “여러가지를 ‘크로스 체크’(대조 검토)해서 만들었다”면서 허위가 아니라는 취지로 맞섰다. 실제로 이 문건의 내용은 대부분 현실로 나타났다. 당시 검찰은 ‘정윤회 문건’의 진위 여부에는 주목하지 않은 채 문건 유출에만 집중했다. 27일 JTBC 탐사보도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 따르면, 박 전 행정관은 “나는 상사의 지시로 ‘십상시 문건’을 작성했는데, 어느 날 ‘할배의 뜻’이라며 나보고 청와대에서 나가라고 했다. 이것은 ‘할매’의 뜻이기도 하다더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할배’는 김기춘(78·구속기소)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을, ‘할매’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가리키는 말이다. 김 전 실장은 재직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 ‘풍문으로 떠도는 비서실장 교체설을 알아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결과로 작성된 문건이 ‘정윤회 문건’이다. 이 문건이 상부로 정식 보고된 시점은 2014년 1월 6일이다.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조응천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이 문건에는 ‘십상시 모임’에서 “이정현(당시 청와대 홍보수석) 근본도 없는 놈이 VIP 믿고 설치고 있다”, “김덕중 국세청장이 일을 제대로 못한다”라는 등의 말이 나온 것으로 적혀 있다. 실제로 이정현 당시 홍보수석은 자리에서 물러났고, 김덕중 당시 국세청장도 문건 작성 시점으로부터 7개월 뒤에 돌연 퇴임했다. 또 이 문건에는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라는 취지의 내용도 포함돼 있다. 박 전 행정관은 “정윤회도 문제가 있지만 앞으로 최순실이 더 큰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순실이 최고고 그 다음 박 대통령이라고 말했다”면서 “최순실이 가장 강하고, 대통령이 최순실로부터 많은 의견을 받고 의견을 반영한다는 말을 또 듣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전 행정관은 ‘정윤회 문건’을 작성·보고한 뒤 ‘좌천 인사’라는 불이익을 당했다. ‘정윤회 문건’ 작성 후 갑자기 서울경찰청 정보부서로 인사 발령이 났다. 그런데 이틀 후에 발령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후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 인사과로 발령받았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또 취소됐고, 결국 서울의 한 경찰서로 보내졌다. 박 전 행정관은 “알아봤는데 누가 그러더라. 당신이 쓰지 말아야 할 보고서를 썼다고 하더라. 김 전 실장이 지시했다고 하더라. ‘박관천이는 문건을 다루는 자리에 가서는 안 된다. 좋은 자리도 배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박 전 행정관은 “지금 이렇게 국민들 가슴을 아프게 하는 국정 운영에 안 좋은 사태가 일어난 것에 한 때 대통령을 모시고 근무한 것에 일말의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라도 왜 이런 사태까지 왔는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처자식에게 부끄러운 짓은 하지 말자고 위안 삼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고리 3인방 중 구속된 정호성 말고도 이재만과 안봉근을 구속해야 한다”면서 “당시 이들의 위세는 김기춘조차 컨트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들 수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제가 가진 그들의) 감춰진 비리를 공개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서울고법 판사 80% 퇴임 후 김앤장 취업

    올해 퇴직한 법관 10명 중 4명은 소속 변호사 수 100명 이상인 대형로펌행을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조합)는 올해 퇴직한 서울고등법원 판사 5명 중 4명을 영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형로펌들의 ‘전관’(前官) 선호 현상이 지속되는 분위기다. 지난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올해 퇴직한 법관 58명 중 50명이 변호사로 개업했고, 이 중 20명(40%)이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등 대형로펌에 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펌별로는 김앤장이 8명의 전직 법관을 채용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8명 중 4명이 서울고법 판사 출신이다. 이어 ▲법무법인 바른 4명 ▲법무법인 지평 2명 ▲법무법인 광장·태평양·화우·동인·로고스·대륙아주 등 1명 등의 순이었다. 고법 판사는 법관인사규칙 제10조에 따라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는 대신 고등법원 대등재판부(고법 부장 및 지법 부장급 2명으로 구성) 배석판사를 맡는 직책이다. 재판 전문성 강화와 인사적체 해소, 법원 인사 이원화 등을 위해 도입됐다. 중요 사건이 몰리는 서울고법 고법판사는 핵심 보직으로 꼽힌다. 고법 판사의 로펌행을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법원 인사 이원화를 위해 도입된 고법판사 제도가 법관의 대형로펌 진출 창구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고법 부장판사의 영입이 어려워진 대형로펌들이 실력이 검증됐으면서도 고위 법관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젊어 활동 역량도 뛰어난 고법 판사 영입에 열을 올린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 홍준표 “노 前대통령 뇌물사건 재수사해야”

    자유한국당 대선 주자인 홍준표 경남지사는 26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640만 달러 뇌물 수수 사건을 재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지사는 이날 서울 여의도 경남도 서울본부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돈을 받은 시점이 2007년이고 그 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이어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퇴임 후에 끊임없이 뇌물 환수 절차를 취해 왔듯이 노 전 대통령 사건도 재수사해서 뇌물 액수를 확정하고 가족들에게 가 있을 70억원을 국고에 환수하는 것이 사회 정의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홍 지사는 또 “당시 수사 기록이 대검찰청에 영구 보존돼 있고 그것을 공개하면 새로운 사실이 또 나올 것”이라며 수사 기록을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의 뇌물 사건이 대선 과정에서 쟁점이 된다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수사 기록을 공개하는 게 옳다”고 덧붙였다. 홍 지사는 “문 전 대표가 알았다면 공범이고 몰랐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을 몰랐다’고 하는 것과 똑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 전 대표는 입을 싹 닦지 말고 70억원에 가까운 뇌물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홍 지사는 야권의 ‘정권 교체론’에 대해 “정권 교체가 아니라 새로운 정부로 어떤 정부를 수립하느냐가 이번 대선의 화두”라고 강조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헌재 ‘박근혜 탄핵심판 사건’ 백서 만든다

    헌재 ‘박근혜 탄핵심판 사건’ 백서 만든다

    지난 10일 현직 대통령 파면 결정이라는 역사적 결단을 내린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사건번호 2016헌나)의 전 과정을 담은 백서를 만들기로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헌재가 직접 개별 심판 사건을 다룬 백서를 펴내는 것은 1988년 헌재의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이끄는 헌재 전원재판부는 최근 이 사건의 헌정사적 의미를 기록하기 위해 백서를 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26일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비록 백서에 담을 내용이 현재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 12월 9일 국회로부터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서를 받은 뒤로 지난 10일 박 전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기까지 약 3개월에 걸쳐 진행된 모든 과정을 정리해 시민들에게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백서에는 헌재의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심리 과정에서 열린 20차례의 변론기일에서의 청구인(국회)과 피청구인(대통령)의 주장 내용, 최순실(61·구속기소)씨 등 25명의 증인 신문 내용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또 증거로 채택된,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 결과 등 사건 기록 6만 5000여쪽 역시 백서 작성에 상당 부분 반영될 것으로 전망된다. 헌재는 특히 그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재판부 내부의 논의나 의사 결정 과정도 백서에 일부 담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에 따른 대통령 직무 정지로 재판관의 공석을 채우지 못해 생긴 절차적 시비처럼 이번 탄핵심판을 통해 노출된 제도적 미비점에 대한 개선 방향도 제언할 전망이다. 헌재는 통상 한 사건이 종결되면 양측 주장과 심판 진행 과정을 종합한 ‘자료집’을 만들어 연구용 기록으로 남긴다. 사상 첫 정당해산심판 결정이었던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때도, 그 과정을 다룬 ‘자료집’만 제작된 점을 고려하면 백서 편찬은 헌재가 이번 탄핵심판 사건에 남다른 역사성을 부여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는 국가의 최고 권력자라도 헌법질서를 거스르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청구가 인용된 사건이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는 점도 백서의 사료로서의 가치를 더한다. 지난 13일 퇴임한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당시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지난 10일 탄핵 선고 결정문을 읽으면서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보아야 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고 밝힌 바 있다. 통상적 사건의 자료집 제작이 6개월에서 1년이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탄핵심판 백서는 이르면 올해 하반기에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헌재는 또 89페이지 분량의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을 영어로 완역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모든 날이 안 좋았다…사진으로 돌아본 박근혜 4년

    모든 날이 안 좋았다…사진으로 돌아본 박근혜 4년

    헌정 사상 첫 정당 해산 결정, 그리고 첫 대통령 탄핵 인용. 박근혜 정부 4년이 우리 헌정사에 남긴 기록이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던 박 전 대통령 측의 슬로건은 결국 박 전 대통령 개인과 최순실의 꿈만 이루어지는 나라였다. 지난 대선부터 ‘민간인 박근혜’의 검찰 소환 조사까지 주요 사건을 사진으로 돌아봤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18대 대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당선2012년 12월 19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51.6%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국가정보원이 대선에 개입, 박 후보의 유력 대항마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조직적으로 비방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그러나 경찰은 12월 16일 3차 대선 후보 TV토론회가 끝난 직후인 밤 11시에 “혐의가 없다”는 취지로 중간 수사결과를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이후 이 사건은 검찰 수사를 통해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이 드러났다. ●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간첩 사건, 결국 국정원의 조작으로박 전 대통령의 취임식을 앞두고 있던 2013년 1월 21. 동아일보는 1면 머리기사를 통해 탈북한 서울시 공무원이 간첩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단독 보도했다. 피의자는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인 유우성씨로, 국가정보원은 유씨가 간첩이라며 체포했고 검찰 또한 유씨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정원이 유씨를 간첩으로 몰아가기 위해 관련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고, 검찰이 국정원의 증거 조작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국정원의 조선족 협력자와 국정원 소속 과장이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결국 유씨의 간첩 혐의는 2015년 10월 29일 무죄가 확정됐다.● 박근혜, 제 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다국정원의 대선 개입 논란에도 제 18대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2013년 2월 25일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 김학의 법무부 차관 성접대 파문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 법조계의 관심사는 새 대통령의 첫 검찰총장이었다. 당시 검찰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이 김학의 대전고검장을 낙점했다는 평이 우세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대통령 입맛에 맞게 임명하지 못하도록 법을 바꿔 실제 검찰총장에는 채동욱 당시 서울고검장이 임명됐다. 법조계에서는 채 총장 임명 직후부터 채 총장의 임기가 길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박 대통령과 코드가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를 방증하듯 총장 후보에서 낙마한 김 전 대전고검장은 사법연수원 동기(14기)인 채 총장이 임명됐음에도 검찰 관례에 따라 검찰을 떠나지 않았고, 박 전 대통령도 김 전 고검장을 법무부 차관으로 중용했다.하지만 차기 김 전 법무차관은 같은 해 3월 한 건설업자로부터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확산되면서 공직에서 물러났다. ●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이미 대선 직전 일부 정황이 포착 된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정황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했다. 검찰은 2013년 3월 18일 서울중앙지검에 특별수사팀을 구성했고, 처음 사건을 맡았던 권은희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국민의당 의원)은 “국정원 수사에 윗선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후 특별수사팀은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 등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선거 및 국내 정치에 관여했다며 관련자들을 재판에 넘겼다. ● 국정원 수사 방패 채동욱, 조선일보 ‘혼외자’ 보도로 물러나다‘살아있는 권력’과 국가정보기관을 상대로한 검찰 특별수사팀의 든든한 방패는 채동욱 검찰총장이었다. 하지만 그런 채 총장도 조선일보의 보도를 계기로 무너졌다. 조선일보는 2013년 9월 6일자 1면에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을 보도했다.이에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은 채 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고 결국 채 총장은 13일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났다. 검찰은 채 총장이 물러난 이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던 윤석열 특별수사팀장도 교체했고, 윤 팀장은 이후 국정감사에서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수사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 사망 295실종 9명...대한민국을 절망케 한 세월호 참사탑승자 476명. 사망 295명, 실종 9명. 채 꽃피지도 못한 단원고 2학년 학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차디찬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 침몰했다. 2014년 4월 16일 수요일이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당시에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미용사를 불러 머리 손질을 한 것으로 확인됐고, 세월호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인양 반대 및 사고 진상조사 반대에 부딪히다 최근 인양에 속도가 붙고 있다.● 통합진보당, 헌정 사상 처음으로 해산2000년 1월 창당한 민주노동당을 모체로 한 통합진보당은 옛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등 보수 정당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이런 통진당은 결국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헌법재판소 심리를 통해 해산이 결정됐다. 당시 법무부는 통합진보당 전체가 종북화되어 북한의 대남전략에 따라 움직이는 당이 되었다며 헌정 사상 처음으로 헌재에 위헌정당해산심판을 청구했고, 헌재는 찬성 8대 반대 1(김이수 재판관) 의견으로 해산을 결정했다. ● 정권 뒤흔든 성완종 리스트2015년 4월 9일 옛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출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 사건이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정부 지원금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성 전 회장은 억울하다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연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 전 회장의 자살로 일단락 되는 듯했던 수사는 숨진 성 전 회장의 옷 안에서 유력 정치인의 이름과 현금 등의 액수가 적힌 메모지, 그리고 생전 육성 폭로 내용이 공개되면서 ‘성완종 리스트 로비’ 수사로 확대됐다.해당 메모지에는 김기춘·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 유정복 인천시장, 홍준표 경남도지사, 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 서병수 시장으로 추정되는 ‘부산시장’, 이병기 당시 비서실장과,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 사망자 속출 속 ‘연출’ 논란 낳은 메르스 사태 2015년 5월 20일 중동 국가 바레인을 다녀온 한 국민이 중동호흡기 질환(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이른바 ‘중동 독감’이 한반도에 상륙했다. 첫 확진자를 시작으로 사싱살 메르스 종식이 선언된 7월 28일까지 36명이 숨졌다.이 과정에서 서울대병원을 방문한 박 대통령의 배경에 ‘살려야 한다’는 문구가 붙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청와대의 연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연출 논란과 관련해 서울대병원 내부에서는 청와대 관계자의 연출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지만, 서울대병원 측은 이를 부인했다. ● 교육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교육부는 2015년 10월 12일 한국사 국정 교과서 발행 계획을 공식 발표하고, 각종 진통 끝에 2017년 1월 31일 최종본을 공개했다.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 미화 등 집필 전부터 제기됐던 우려가 현실로 확인되면서 실제 학교 채택률 0%를 기록하며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 피해 할머니들 무시한 한일 위안부 합의 강행2015년 12월 28일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 합의안을 타결했으며 이는 ‘불가역적’(되돌릴 수 없는) 합의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이는 양국 정부의 일방적인 합의로, 실제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다수는 여전히 이 합의안은 무효라고 반발하고 있다. ● 16년의 노력도 물거품…문 닫은 개성공단박근혜 정부는 2016년 2월 북한의 4차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 도발에 대응,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2000년 현대아산과 북한의 공업지구 개발에 관한 합의서 채택으로 시작된 남북 화해협력의 상징적인 공동 사업이 전면 중단된 것이다. 현재 개성공단에 입주 했던 기업은 거리로 내몰려 생계의 절박함을 호소하고 있다. ● 국민 사찰 일상화…세계 최장시간 필리버스터참여 의원 38명, 총 의사발언 시간 8일 27분(192시간 27분). 2016년 2월 23일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추진하던 테러방지법 국회 통과를 막기 위한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진행됐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법안이라며 이를 추진했고, 야당은 이를 일상적인 국민 사찰은 물론, 정치적 탄압을 위한 법안이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끝난 3월 2일 밤 새누리당 단독 표결로 통과됐다. ● 무용론 속 사드 배치 결정미군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한반도 배치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4년 주한미군의 요청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발사 위협에서 한반도를 방어할 수 있다는 게 미군의 논리였으며, 박근혜 정부들어 논의가 급속화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사드는 북한과 남한의 거리와 미사일 발사 각도상 무용지물이며, 사드 배치를 위한 레이더 기지가 인근 지역 주민의 건강을 위협하게 될 것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거센 반발에도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7월 8일 한반도 사드 배치를 공식 발표했다. ● 경찰 과잉진압 논란…백남기 농민 사망2015년 11월 14일 제1차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농민 백남기씨가 경찰이 직사로 살수한 고압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의식불명에 빠졌다. 백씨는 의식을 잃은채 무려 317일이나 병상에 누워있다 지난해 9월 25일 숨을 거뒀다. 경찰의 과잉 진압 논란이 제기됐고, 경찰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무리하게 시신 부검을 시도하기도 했다. 지리한 법정 공방 끝에 부검은 무산됐고, 고(故) 백남기씨의 장례식은 같은해 11월 5일에서야 진행됐다. ● 분노한 민심, 촛불로 타오르다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국정농단 사태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분노한 민심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29일을 시작으로 서울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 광장과 거리에서는 매주 토요일 촛불집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촛불집회 참가자는 3번째 집회에서 100만명을 넘었고, 대통령 탄핵안 가결 2주 전인 지난해 12월 3일 6차 집회에서는 전국 230만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쳤다. ● 국회, 대통령 박근혜의 직무를 정지시키다퇴장 1명, 찬성 234표, 반대 56표, 무효 7표. ‘1234567’이라는 숫자 조합을 남기며 지난해 12월 9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국회는 연이은 언론의 박 전 대통령의 권력 사유화와 최순실의 국정농당, 특검 수사로 드러난 범죄 혐의에 따라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표결 당시 퇴장한 사람은 친박계 좌장격인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헌정 첫 대통령 탄핵“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21분. 대를 이은 대통령이자,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의 직무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역사는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새롭게 쓰였다. 박한철 전임 소장의 퇴임으로 8명의 헌법재판관이 진행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재판관 전원은 박 전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했으며, 대통령으로서 헌법 수호의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 ‘피의자 박근혜’ 21시간 검찰 조사대통령직 파면 후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간 ‘민간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1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적용된 혐의는 뇌물수수를 비롯해 직권남용과 공무상 비밀누설 등 무려 13개. 이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오전 9시 24분에 시작돼 같은 날 밤 11시 40분 쯤에 끝났지만, 박 전 대통령 측이 조서를 거듭 검토하면서 22일 오전 6시 54분까지 이어졌다. 박 전 대통령 측은 혐의를 모두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순자 “5·18 발포 명령, 전두환과 무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씨가 24일 자서전을 내고 전 전 대통령과 5·18 발포 명령은 무관하다면서 12·12쿠데타 이후 권력을 잡은 것도 최규하 당시 대통령의 권유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서전에는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전 전 대통령 내외의 관점에서 전하는 내용이 다수 담겨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이씨는 약 720쪽 분량인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에서 “12·12, 5·17, 5·18에 대한 편집증적인 오해와 정략적인 역사 왜곡 앞에서 나는 몇 번이고 전율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5·18 당시 수사책임자인 동시에 정보책임자였던 그분은 결코 발포 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쿠데타에 대해서는 “최 대통령이 광주사태의 뒷수습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1980년 7월 말 그분을 불러 광주사태에 대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남편에게 자신의 후임이 되어 줄 것을 권유했다”면서 “(최 전 대통령이)우리나라가 놓여 있던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갈 지도력을 갖춘 사람은 ‘전 사령관뿐’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또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초기 ‘전두환 일가 추징금 환수 프로젝트’가 고강도로 진행되자 ‘생을 포기할 뻔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전 전 대통령 역시 다음달 초 회고록을 출간한다. 회고록은 모두 2000쪽에 달하며 대통령 취임 과정, 재임 시절, 성장 과정 및 퇴임 후 등 3권으로 구성된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부고] ‘영원한 수사반장’ 최중락 前총경 별세

    [부고] ‘영원한 수사반장’ 최중락 前총경 별세

    TV 드라마 ‘수사반장’의 실제 모델인 최중락 전 총경이 24일 오전 11시 51분 별세했다. 88세.충북 음성 출신인 최 전 총경은 1950년 4월 순경 시험에 합격한 뒤 40년간 경찰 생활을 하다 1990년 총경급인 경찰청 형사지도관으로 정년 퇴임했다. 최 전 총경은 주로 강력계 형사로 활동하며 강력범을 870명이나 검거했다. 육일사 전당포 살인 사건, 샛별 룸살롱 살인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해결해 120여개의 훈·포장과 표창을 받았다. 최 전 총경은 1972년부터 1989년까지 방송된 인기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탤런트 최불암씨가 연기한 ‘박 반장’의 모델로 알려졌다. 드라마 제작 과정에 참여하며 1년에 두 번 정도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부능씨와 아들 병각씨, 딸 병헌·명순·병숙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6일 오전 9시. (02)3410-6912.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이선애 헌법재판관 후보자 청문보고서 일사천리로 채택…이유는?

    이선애 헌법재판관 후보자 청문보고서 일사천리로 채택…이유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4일 이선애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법사위가 청문회를 마치자마자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신속히 채택한 것은 9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헌재가 ‘7인 체제’로 장기간 운영돼선 안된다는 정치권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아울러 대선 국면인 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 후보자는 지난 13일 임기만료로 퇴임한 이정미 전 재판관의 후임으로, 양승태 대법원장의 지명을 받았다. 법사위원들은 이날 인사청문회에서 이 후보자가 양 대법원장의 지명을 받은 배경을 캐물었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이력을 보니 ‘양승태의 공주’인가 싶을 정도”라고 꼬집었다. 이 후보자는 서울고등법원 판사로 있던 지난 2003년 당시 양승태 법원행정처 차장이 법관제도개선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을 때 위원으로 참여했다. 당시 빚어졌던 ‘사법파동’에 이 후보자의 남편인 김현룡 판사는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50명의 ‘대법관 인사제도 개선안’에 서명하는 등 법원 수뇌부에 반발했으나, 이후 소장 판사들의 연판장 제출에선 빠졌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김 판사는 법원 내부망에 양승태 차장을 옹호하는 듯한 글을 올렸고, 양 차장의 사의가 반려되는 등 사태가 수습된 ‘보답’을 헌재 재판관 후보자 지명으로 한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한 직후 후보자는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으로 2011년 위촉됐고,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에 제청됐다. 얼마 전 연임했고, 이번에 헌재 재판관 후보자로 또 추천됐다”고 말했다. 이에 이 후보자는 “양 대법원장과 개인적 인연은 전혀 없다”고 반박하면서 “(후보자 추천 제안에) 3∼4일 고민을 많이 하고 수락했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가 변호사 시절 ‘도가니법’ 관련 사건과 ‘친일파 후손 변호’ 사건을 맡았던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사건 수임을 거절하는 게 적절하지 않았느냐는 것. 도가니법은 광주 인화학교의 장애인 학생 학대와 성폭행 사건 이후 사회복지법인이 외부추천이사와 외부감사를 선임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후보자는 사회복지법인 등이 제기한 위헌 소송에 참여했다. 그는 “우리나라 사회복지는 국가가 모든 것을 해주는 게 아니라 민간 복지에 의존하고 있다”며 “도가니법이 나오게 된 사건을 만들어낸 법인도 있는데, 그렇지 않은 법인 입장에서 헌재의 판단을 받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1942∼1944년 조선총독부 참위를 지낸 박필병의 후손이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대리한 데 대해서도 “참위로 활동한 사실만으로 반민족 행위를 했다고 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구체적 친일 행위까지 요구하는 게 법 취지 아닌가. (최종심의) 판단을 받아보고 싶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후보자는 다만 ‘다운계약서 의혹’에 대해서는 시인했다. 그는 남편의 과거 부동산 거래에서 실제 거래가격보다 낮은 금액으로 계약서를 꾸며 신고하는 ‘다운계약서’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 “부적절한 다운계약서로 취·등록세를 적게 낸 부분은 다른 변명을 하지 않고 매우 부적절한 처사였다. 사과의 말씀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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