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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년동안 내게 야단맞은 당뇨환자 많지요”

    “70년동안 내게 야단맞은 당뇨환자 많지요”

    “당뇨환자들을 처음 만나면 호통을 많이 쳤어요. 왜 관리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70년 동안 진료를 하면서도 환자들의 생각은 잘 바뀌지 않더라고요. 아마 제가 본 환자들 중에서 저한테 악감정을 갖고 있는 환자도 많을 겁니다.” ●테니스·골프로 몸 단련… 37만여명 진료 퇴임을 앞둔 93세 노()의사의 하루는 마지막 진료를 하루 앞둔 23일에도 어김없이 오전 7시에 시작됐다. 입원한 당뇨환자들의 혈당을 점검하고 약을 처방하기 위해서다. 지난 50여년간 시간이 날 때마다 테니스와 골프로 열심히 몸을 단련한 탓인지 가운을 벗어야 할 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을지대 을지병원 김응진 교수는 ‘정정하다.’는 말보다 ‘건강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했다. 김 교수는 담배를 피우지는 않지만 술은 즐겨 마신다. 그는 5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소주 1병씩을 거뜬하게 마시는 애주가였다. 당뇨병 전문의인 그가 70여년 동안 진료한 환자는 많이 보면 37만명쯤 될 것이라는 게 병원측의 계산이다. 그를 따라 을지병원 인근으로 이사온 환자들이 있을 정도였다. 최근까지도 월·화·목·금요일 오전에 하루 50~70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그는 의사로서 선구자적인 경력을 갖고 있다.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 숭실중학교까지 다녔고 남북이 갈린 뒤에는 서울대병원에서 국내에 몇명 안 되는 당뇨병 전문의로 활동했다. 대한당뇨병학회도 1968년 그가 처음으로 12명의 동료와 함께 설립했다. 이후 1981년까지 서울대병원에서 일하다가 퇴임한 뒤 을지대로 이직해 1985년까지 서울 을지병원장과 의무원장을 역임했다. 79세가 된 1995년에는 당뇨센터장을 맡기도 했다. ●“환자들에게 더 봉사하고 싶지만…” 퇴직을 이틀 앞둔 23일 오전 11시, 김 교수는 다음날 마지막 진료를 위해 일찌감치 집으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힘에 겨울까봐 부축하려는 기자와 직원들에게 “부축하지 말라. 운동은 자신있다.”고 가볍게 만류했다. 환자들에게 더 봉사하고 싶지만 건강을 염려하는 직원들과 가족들의 만류로 그는 25일 퇴임식을 마지막으로 가운을 벗을 예정이다. 그는 “미네소타대 교환교수 시절 지도교수도 없이 독학하는 중에 국내에도 당뇨병 환자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귀국 후 당뇨병 진료를 시작했다.”면서 “누구보다 먼저 당뇨병을 공부하고 환자들에게 봉사해 온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법과 원칙 세워야 민주국가로 더 도약”

    “법과 원칙 세워야 민주국가로 더 도약”

    17일 6년간의 대법관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고현철 대법관은 퇴임사를 통해 ‘법치주의’를 강조했다. 고 대법관은 서울 서초동 대법원 무궁화홀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상대방을 무조건 배격하는 풍조가 만연한다.”면서 “민주국가로 더 도약하기 위해선 법치주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 대법관은 이어 “우리 사회가 다양화되면서 자기에게 유리하면 법을 내세우고 불리하면 법을 무시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보게 된다.”면서 “법원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가운데 공정한 재판을 통해 법과 원칙을 세워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법관으로 지낸 고 대법관은 “스물일곱에 법원에 들어와서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법원을 떠나게 됐다.”면서 “무거운 짐을 이제는 내려놓게 됐다는 안도감과 함께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고 소회를 밝혔다. 고 대법관은 대전 출신으로 사시 10회에 합격한 뒤 대전·인천지법 부장판사, 부산·서울고법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인사관리실장, 서울행정법원장, 서울지법원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법관으로 재직하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장도 겸임해 왔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데스크 시각] 어청수와 김석기/주병철 사회부장

    [데스크 시각] 어청수와 김석기/주병철 사회부장

    어청수 전 경찰청장이 지난달 29일 퇴임식에서 눈물을 떨궜다. 가족들도 함께 있는 자리에서 흘린 눈물은 임기 2년 중 1년만에 중도하차한 소회, 가족에 대한 미안함, 억울하게 물러난 데 따른 서운함 등이 한데 묻어 있는 듯했다. “지난해 봄부터 여름까지 우리 경찰은 촛불시위로 100일 넘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땀과 의지로 법질서를 바로 세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경찰은 누구나, 모든 정부하에서 국가와 국민에게 충성을 다해왔습니다. 배신을 한 적이 없는 자랑스러운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이 퇴임사는 경찰의 태생적 한계와 어려움을 웅변하고 있다. 경찰 스스로 자신들의 목숨을 ‘파리목숨’이라고 비하할 정도로, 경찰 수뇌부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경질과 사퇴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허준영 전 경찰청장과 이기묵 전 서울청장도 그런 케이스다. 두 사람은 2005년 12월 말 여의도 시위농민 사망사건과 관련해 옷을 벗었다. 그때도 공권력의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버텼지만 역부족이었다. 시위사건은 아니지만, 홍영기 전 서울청장도 2007년 3월 눈물을 흘리며 사퇴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폭행사건으로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렸다는 게 문책 사유였다. 이들의 낙마는 법과 원칙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불미스러운 결과, 또는 경찰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 수장으로서 책임을 진다는 의미였다.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경찰의 악몽은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석기 서울청장이 경찰청장에 내정된 지 하루만인 지난달 20일 용산 화재 참사사건의 과잉진압 여부를 둘러싼 책임론에 휩싸여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경찰특공대 1명과 철거민 5명 등 6명이 불에 타 죽은 대형참사로, 종전의 시위충돌이나 촛불시위 때와는 성격이 다르다. 보기에 따라서는 무모한 충성심이 부른 인재사고로도 볼 수 있다. 사안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화염병이 등장한 불법시위라는 점 때문에 김 내정자에 대한 동정여론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검찰은 수사초기 철거민의 불법시위에 초점을 맞춰 김 내정자를 감싸기 시작했다. 지휘부를 조사하지도 않고 ‘경찰을 형사처벌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성급한 판단을 내놓는가 하면, 망루에서 흘러내리는 액체를 시너라고 단정지었다가 물대포일 수도 있다는 지적에 재확인작업을 하는 촌극을 벌였다. 자진사퇴쪽으로 저울질하던 청와대도 검찰 수사를 지켜보겠다며 한발 물러서 있다. 경찰은 자숙하기는커녕 경찰 홈페이지에 ‘김석기 살리기’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물론 경찰도 억울하다는 지적에 공감 못할 바는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이번 진압작전이 성공한 작전이 아니라 ‘실패한 작전’이라는 점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진압의 최종 책임은 경찰이다. 이는 지휘책임자가 실패한 작전에 대해 법적,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다. 김 내정자가 자리를 지킨다고 법과 원칙이 지켜지고, 물러난다고 법과 원칙이 허물어지는 것은 아니다. 김 내정자는 법적 책임 여부를 떠나 도의적 책임에 먼저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검찰과 청와대의 의중에 자신의 거취를 맡기는 듯한 태도는 적절치 않다. 김 내정자가 숨진 부하의 영결식에서 흘린 눈물이 30대 초반에 저승으로 떠난 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철거민들의 불법 시위와 경찰의 과잉진압 여부 등은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잘잘못이 가려지게 돼 있다. 사건의 본질과 김 내정자의 거취 여부를 동일선상에 놓고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어 전 청장이 퇴임사에서 노자의 도덕경에서 인용한 공성명수신퇴(功成名遂身退·그 자리에 머물지 않음으로써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구절을 김 내정자가 곱씹어봤으면 한다. 주병철 사회부장 bcjoo@seoul.co.kr
  • 치안정감 인사… 김석기 굳히기?

    치안정감 인사… 김석기 굳히기?

    ‘용산 화재 참사’ 사건으로 김석기(현 서울경찰청장) 경찰청장 내정자의 거취가 불확실한 가운데 정부가 29일 치안정감급 4명에 대한 승진 내정 인사를 단행했다. 정부는 서울경찰청장에 주상용(57·간부후보26기) 대구경찰청장을, 경찰청 차장에 이길범(55·간부후보29기) 경찰청 경비국장을, 경찰대학장에 김정식(54·행시30회) 경찰청 정보국장을, 경기경찰청장에 조현오(54·외무고시15회) 부산청장을 각각 내정 발령했다. 주 내정자는 경북 울진 출신으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경찰청 생활안전국장과 수사국장 등을 거쳐 2007년부터 대구경찰청장으로 재직해 왔다. 이 내정자는 전남 순천 출신이며 지난해 경찰청 경비국장으로 있으면서 촛불집회를 성공적으로 막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인사로 임재식 경찰청 차장과 한진희 경찰대학장, 김도식 경기청장은 명예퇴직한다. 주 내정자는 김 경찰청장 내정자의 거취가 결정될 때까지 대구경찰청장으로 근무하며, 김 경찰청장 내정자도 인사청문회를 통해 정식 임명될 때까지는 서울청장직을 유지한다. 그러나 경북 영일 출신의 김 경찰청장이 임명되면 주 내정자와 같은 TK(대구·경북) 출신으로 지역편중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어청수 경찰청장의 퇴임에 따른 지휘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뤄졌다.”면서 “보직인사가 먼저 진행된 뒤 승진인사가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주 내정자를 제외한 3명은 30일 보직임명을 받는다. 경찰청 안팎에서는 이번 인사에 대해 김 경찰청장 내정자 체제를 다지기 위한 인사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경찰 고위관계자는 “새로 임명된 4명의 치안정감 가운데 특정인을 곧바로 경찰청장에 임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김 경찰청장 내정자 체제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인사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경찰청장 내정자가 참사 책임 여론에 밀려 낙마할 경우까지 대비한 인사라는 분석도 있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이번 인사와 관련, “일각에서 김 경찰청장 내정자의 자진사퇴를 염두에 둔 사전포석 차원의 인사라는 해석을 내고 있는데, 그런 상상이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그것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다.”면서 “치안총감 인사와 치안정감 인사는 별개로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한편 어 청장은 이날 오전 퇴임식을 갖고 30년의 경찰직 생활을 마감했다. 어 청장은 퇴임사에서 “개인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조직의 위신을 실추하거나 근거 없는 비방과 음해로 당사자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전체 조직의 분열을 조장하는 구태가 사라지지 않아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모닝 브리핑] ‘정부 코드인사’ 김철호 국립국악원장 퇴임

    김철호(57) 국립국악원장이 16일 퇴임식을 갖고 물러났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이날 “김 원장의 사퇴는 본인 스스로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전 원장은 지난해 3월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발언한 뒤 노무현 정부에서 ‘코드인사’로 발탁된 인사로 분류되어 왔다. 그의 임기는 오는 9월까지였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부릅 뜬 눈으로 국가 안녕 지키는 검찰되기를”

    “부릅 뜬 눈으로 국가 안녕 지키는 검찰되기를”

    ‘뚝심의 칼잡이’로 불렸던 박영수(57·사법시험 20회) 서울고등검찰청장이 15일 25년간의 칼잡이 생애를 마감하고 검찰을 떠났다. 이날 퇴임식에서 “우뚝 서서 부릅뜬 눈으로 국가의 안녕을 지키는 장한 모습을 기대하겠다.”는 당부를 끝으로 검사로서의 마지막 일정을 마감한 박 고검장은 그의 말대로 땅땅한 체구의 예리한 눈빛으로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면서 스타검사로 칭송됐다. ●2002년 SK 비자금 수사 진두지휘 전국 조직폭력배 계도가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다는 전설을 만들어낸 박 고검장은 이후 서울중앙지검 2차장과 대검 중수부장을 거치면서 대형 특수 사건들을 진두지휘하며 칼 중의 칼로 꼽혔다. 2002년 서울중앙지검 2차장 시절을 “제일 스릴 있어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하는 그는 그해 정·재계의 반대와 성화를 무릅쓰고 SK 비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국가 성장의 잣대가 재벌의 성과에 달렸다면서 수사가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염려가 무수했지만 그는 사상 첫 재벌 회장 집무실 압수수색에서 결정적 단서를 확보하고 보란 듯이 분식회계 혐의를 밝혀냈는가 하면, 대선 자금 수사의 실마리를 잡아내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당시 박 고검장은 압수수색에 나서는 수사팀원들에게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돌아올 생각 말라.”며 비장함을 강요(?)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거침없지만 사심 없는 화통한 성격으로 주변을 동화시키는 능력이 탁월했던 박 고검장은 임채진 검찰총장의 한 기수 후배로 유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꼽히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행복하고 축복받은 검사” 그는 “25년이 넘도록 몸담았던 공직을 갑자기 떠나려 하니 망설임과 번민도 없지 않았으나 ‘감사하다.’는 마음만 간직하고 떠난다.”면서 “돌이켜 보면 행복하고 축복받은 검사”라고 자신을 돌아보며 서초동 청사를 떠났다. 박 고검장은 1952년 제주 출생으로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78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1983년 서울지검 북부지청 검사를 시작으로 검찰에 줄곧 몸담아왔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국사학계 거목’ 이태진 서울대 교수 새달 정년퇴임 “외계충격설 완성할 계획”

    ‘국사학계의 거목’ 이태진(66) 서울대 인문대 국사학과 교수가 30여년 정든 강단을 떠난다. 이 교수는 지난 1977년 모교 강단에 섰다. 역사학회 회장, 한국학술단체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고종시대의 재조명’ 등 저서와 논문도 남겼다. 이 교수는 특히 일본이 대한제국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맺은 조약의 불법성을 파헤치는 데 주력해 왔다. 대한제국을 통감부 체제로 만든 문서에서 순종 황제의 결재 서명 필체가 원래 필체와 다른 점을 발견했고, 1905년에 체결된 ‘을사조약’에 고종의 서명이 빠져 무효라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역사학자 대부분은 근대사를 연구할 때 일본 역사학자들이 심어 놓은 식민 역사관에 지배를 받기 쉬운데 그러면 조선의 저항 역사를 놓치기 쉽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규장각 도서관리실장을 역임한 그는 외규장각 도서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과정을 밝혀내고 환수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대학 행정가로서도 빛났다. 지난해까지 2년 동안 서울대 인문대학장을 맡으면서 캠퍼스에 다양한 변화를 일으켰다. 외부 기관에 인문대의 종합 진단을 맡겼고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AFP)도 개설했다. ‘인문학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시도다. 퇴임 후 그는 못했던 연구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다. 특히 외계 충격이 백성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는 ‘외계충격설’을 완성하겠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그는 “유성이 떨어지고 금성이 낮에 출현하는 등 자연이상이 발생하면서 조선 사회가 혼란에 빠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동료 서울대 교수 25명과 함께 다음달 27일 교내 문화관 중강당에서 열리는 정년퇴임식을 끝으로 교단을 떠난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KBO는 정거장이 아니다”

    “총재직을 정거장으로 생각하지 말고 정열을 쏟을 분이었으면 좋겠다.”지난 3년간 프로야구를 이끈 신상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5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열린 KBO 시무식에 참석, 퇴임식을 갖고 “내 생애 맛보지 못한 환호와 감격의 시간들이었다.”고 돌아봤다. 지난달 16일 사퇴 의사를 밝힌 신 총재는 3월까지 임기다.시무식에 이은 기자 간담회에서 신 총재는 “나보다 진취적이고 유능한 인사가 왔으면 좋겠다.”고 차기 총재에 대한 바람을 언급했다. 차기 총재는 8개 구단이 추대한 유영구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이 정치권 압력에 스스로 물러난 뒤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신 총재는 “자율 총재를 뽑는다면 공모가 가장 객관성이 있다.”면서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 출신이 총재로 오면 어떻고 선수 출신이면 어떠냐. 성과로서 평가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강조했다.아울러 그는 “현대 문제와 관련해 현정은 현대 회장을 두 번이나 찾아가 7개 구단으로 축소되는 것을 막아 달라고 했고, KT를 비롯해 STX그룹까지 현대를 떠안을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그런데 소통이 부족했다. STX의 현대 인수는 성사단계에 이르렀다가 특정체육단체장이 훼방을 놓아 많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그는 “전국 사찰을 돌면서 각박했던 삶을 털어내고 재충전의 기회를 가지려 한다. 야구와 인생을 주제로 책을 집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전 성공회대 총장 김성수 주교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전 성공회대 총장 김성수 주교

    성자(聖者)의 시선이다.때묻지 않은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본다.마음을 열고 더불어 영혼들을 보듬는다.어려운 이웃들에게는 금쪽같은 촌정(寸情)을 나누고 희망의 불빛을 쬐게 한다. 전 성공회대 총장 김성수(78) 주교.소외된 이웃,정신지체장애인들의 영원한 대부로 알려져 있다.지난 2000년 3월 강화도 온수리에 정신지체 장애인 재활시설인 ‘우리마을’을 개원한 것은 물론 성베드로학교 교장 등을 맡아 이들과 함께 살아왔다.그의 삶은 대부분 ‘낮은 곳을 향한 구도자의 길’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이임식 고사하고 퇴임기념집 헌정만 받아 이같은 성품이 잘 드러나는 몇 가지 일화가 있다.지난 9월말 8년간의 성공회대 총장직을 그만둘 때까지 학생들은 그를 ‘총장 할아버지’ ‘장미꽃 총장’이라고 불렀다.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호주머니에서 점심밥 챙겨 먹으라며 식당 쿠폰을 몇장씩 꺼내 건넸고,“총장 할아버지!”하고 달려오는 학생들에게 “오늘 점심 먹고 영화구경 가자!”라고 격의 없이 제안하기도 했다.고민이 많아 보이는 학생들에게 뒷짐지고 다가가 장미꽃 한 송이를 불쑥 내밀어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가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찾아와 “총장님,등록금 좀 꿔주세요.”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기죽지 말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그는 대학을 떠날 때도 주변의 끈질긴 권유를 물리치고 이임식을 치르지 않았다.그를 따르는 주교,신부,교수 등이 정성을 모아 ‘느티아래 강의실’이라는 ‘김성수 총장 퇴임 기념집’을 헌정한 것을 이임식으로 대신했다.그것 자체가 잔잔한 감동이었다. 퇴임한 뒤 3개월,그는 요즘 모처럼 삶의 여유와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부인 프리다(76) 여사와 마주 앉아 여생에 대한 얘기를 도란도란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총장 재임시절에는 새벽에 나가 밤늦게 귀가하는 바쁜 일정이 계속됐기 때문이다.그는 총장 재임시절부터 “은퇴하면 ‘우리마을’로 돌아가 장애인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그래서 일 주일에 한 차례씩 ‘우리마을’에 가서 앞으로 같이 지낼 친구들과 낯을 익히고 있다.내년 3월쯤 현재 공사 중인 사택이 완공된면 그곳으로 부인과 이사할 생각에 천진한 아이처럼 꿈에 부풀어 있다. ●결혼 선물 양복 40년째 입고 다녀 서울 여의도 자택에서 김 전 총장을 만났다.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는 48평.1993년까지 오래된 23평 아파트에 살았으나 대주교가 되면서 “세계 성공회 지도자 중 한 사람인데 23평 집에서 손님이라도 한번 제대로 치르겠느냐.”는 주위 성화에 못이겨 지금의 집으로 이사했다.초인종을 눌렀더니 프리다 여사가 문을 열어 반겼다.부인은 장애 유아들을 위한 도서관이자 유치원인 레코텍학교를 만드는 등 특수학교의 선구자적 역할을 해왔다.검소하고 소박한 성품도 천생연분이다.이날도 김 전 총장은 결혼 직전 부인이 손수 짠 털스웨터를 입고 있었다.또 김 전 총장은 결혼할 때 장인한테 받은 양복을 지금도 입고 다닌다.소매끝과 앞섶에 얇은 가죽을 덧대어 40년째 소중하게 입고 또 간직하고 있다.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티없이 살아온 성품이 그러해서인지 웃는 모습이 동안(童顔) 그 자체였다.건강 얘기가 나오자 “아직 큰 지장은 없으나 심장 스텐트 시술과 전립선 수술을 받아서 무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어떤 일로 바쁘신지. “푸르메재단 이사장,그리고 몇몇 단체 회장 등 얽힌 데가 좀 있어요.연말에 약속 날짜 보면서 한번씩 나가고 있습니다.빨리 정리를 해야 되는데 이름만이라도 빌려달라고 자꾸 그래서 마음이 약해 어쩌지 못하고 있습니다.” →총장직 물러나시면서 퇴임식은 왜 안하셨나요. “떠날 땐 말없이 떠나야지,요란하게 할 필요 없어요.생각조차 못했는데 퇴임기념집을 헌정한다고들 하기에 지금 와서 생각하니 참 고맙더군요.” →기념집에서 한 교수가 총장님을 가리켜 ‘짜식아,임마, 잘해.’외에는 별다른 말씀을 안 하신다고 추억하던데요. “난 무식하거든요.아는 게 없으니 함부로 나설 수도 없고,총장도 지도자이기에,다른 지도자도 마찬가지겠지만 참고 견뎌야 합니다.여러 소리를 하면 여기저기 옮기게 되고 결국에는 망하고 맙니다.‘짜식~’소리는 옛날 운동할 때 버릇이 남아 있어 그랬지요.좋아하는 사람들한테 그런 소릴 잘해요.인간미가 있잖아요.” 그는 배재중학 시절 아이스하키와 농구,검도 등을 즐겼던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우리마을’에는 자주 가시는지요. “매주 화요일을 가는 날로 잡았어요.사위가 건축업을 하는데 그곳에 제가 지낼 사택을 짓고 있습니다.‘우리마을’ 원장인 허용구 신부가 고맙게 허락을 해주셔서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게 됐습니다.허 신부가 ‘화려한 백수’에게 일거리를 주셨지요.내년 봄에 이사를 하면 아마 ‘콩나물공장 공장장’으로 취임할 듯합니다.그게 제 인생의 마지막 직업이 되겠지요.” ‘우리마을’은 김 전 총장이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강화도 온수리땅 2000여평을 기증해 8년 전 문을 열었다.현재 56명의 정신지체장애인들이 콩나물과 버섯재배 등 무공해 자연농법을 통해 재활의 길을 걷고 있다.아울러 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해 부품조립 등의 수익사업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으며,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제빵교실,음악치료교실 등도 열고 있다. ●지도자는 더불어 가는 숲 가꾸는 자세 중요 →추운 겨울이고 연말입니다.경제도 안 좋고 사회가 점점 얼어붙는 느낌입니다만. “결국 우리가 많은 욕심을 부린 탓입니다.개인이나 단체,특히 정치권에서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우리 모두 한 발짝만 뒤로 물러서서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자신의 마음을 열면 자연히 나눔이 생기고,그러면 존경하는 마음도 우러나 이웃을 섬기게 됩니다.금년이 어렵더라도 절약하고 검소한 자세로 돌아가면 내년은 분명 희망이 있습니다.어려운 사람도 많지만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훌륭한 사람들도 많습니다.우리는 6·25전쟁도 겪었습니다.지금이 그때보다 어렵지는 않거든요.지도자는 더불어가는 숲을 가꾸는 자세가 중요합니다.우리 동화에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하는 것이 나오지요.결국 부지런한 거북이가 토끼를 이기는 내용 아닙니까.그런데 앞으로는 잠자는 토끼를 깨우고 같이 가야 합니다.나무가 하나 있으면 비바람에 무너지지만 같이 숲을 이루면 절대 그럴 일이 없거든요.” →직장을 잃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미래를 어떻게 대비해야 합니까. “흔히 부모님들이 아이들 소풍가는 준비는 잘해 주지만 정작 천국 가는 준비에 대해서는 소홀합니다.우린 IMF체제도 겪었는데 그걸 쉽게 잊어버렸어요.과거를 잊지 않고,또 준비하는 과정이 없으면 어떤 일이 닥쳤을 때 땅속으로 꺼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열림’‘나눔’‘섬김’의 자세로 살면 어려움이 결코 닥쳐오지 않습니다.” 강화도 출신인 김 전 총장은 어릴 적 개방적이었던 할아버지가 성공회에 귀의하면서 자연스럽게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했다.어머니의 교육 열정으로 유치원을 거쳐 서울 교동국민학교에 들어갔다.개구쟁이였던 그는 공부보다는 학교 특별활동 등에 더 관심을 두었고 배재중학 때 보이스카우트와 군사훈련 대대장까지 했다.그가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18세 때 폐결핵을 앓으면서.친구들과 아이스하키 시합을 하다가 각혈을 하면서 쓰러졌다.병원에서 폐결핵 3기 진단을 받았다.6·25전쟁이 발발해 모두들 피란 보따리를 챙길 때도 꼼짝 못하고 석달 동안이나 집에 드러누워 지냈다.그러는 바람에 남들 나서는 의용군에도 못 들어가고 덕분에 인민군에도 징발되지 않았다.배재중학 졸업 무렵에는 연세대에 운동선수로 진학하려다 가족들의 정성 어린 기도 덕분에 병이 나으면서 부모님과 친지들의 권유로 신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성미가엘 신학원’ 재학 중 노동자의 삶을 알기 위해 탄광촌과 영산강 간척사업 현장에 몸을 던지기도 했다.이후 성공회대 안에 있는 정신지체장애아 학교인 ‘성베드로학교’를 맡게 됐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한 뒤 이들이 오갈 곳이 없게 되자 선산인 온수리 땅에 ‘우리마을’을 건립하면서 장애인을 평생 친구이자 스승으로 삼았다.이런 그를 가리켜 주변에서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울림이 큰 사람,언제나 평화스러운 웃음을 띠고 손을 내미는 사람,장애인들의 대부이자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이라고 일컫는다.슬하에 아들과 딸을 두었다.아들은 연세대 체육학과를 나와 몸담고 있던 교수직을 그만두고 지금은 홍대 앞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며느리는 미국에서 발레를 공부하고 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그가 걸어온 길 1930년 인천 강화군 온수리에서 출생했다.배재중학(6년제)을 거쳐 연세대 신학과를 나왔다.영국 셀리오크신학대학을 수료했으며 연세대에서 명예신학박사를 받았다.이후 대한성공회 초대 관구장 대주교,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남북 기독교자회의 회장(스위스 글리온),대한성서공회재단 이사장,바른 언론을 위한 시민연대 공동대표,성공회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했다.현재는 푸르메재단 이사장,사랑의 친구들 회장 등을 맡고 있다.
  • [Local] 부산교통공사 사장 안준태씨

    부산시는 안준태 행정부시장이 새해 1월1일자로 부산교통공사 사장에 취임한다고 26일 밝혔다.안 사장 내정자는 행정고시 22회 출신으로 부산시 공무원으로 30여년간 일하면서 교통국장,경제진흥국장,행정관리국장,기획관리실장,정무부시장,행정부시장 등 요직을 거쳤다.오는 29일 오후 5시30분 부산시청 1층 대강당에서 공무원 명예퇴임식을 갖는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법관 경험·지식 활용할것”

    “법관 경험·지식 활용할것”

    김황식 감사원장 내정자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사무실에 첫 출근, 본격적인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에 착수했다. 김 내정자는 이날 이욱 감사원 비서실장으로부터 청문회 준비를 비롯한 현안보고를 받았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이 입주해 있던 이곳은 한승수 총리가 내정자 시절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준비하던 곳이기도 하다. 김 내정자는 앞서 이날 오전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법관 생활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감사원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고히 해 공직사회가 국민 앞에 떳떳하고 바로 서게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감사원장직에 나아가기 위해 대법관 임기도 마치지 못하고 34년 몸담은 법원을 떠나려 하니 한없이 허전하고 안타깝다.”면서 “법과 원칙이 바로 서고 인권과 정의가 살아 숨쉬는 선진 민주국가, 모든 국민이 더불어 잘사는 경제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법원에서 해온 일과 감사원장의 직책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며 감사원장 지명을 받아들인 배경을 설명했다. 김 내정자는 지난 7일 청와대의 인사 발표에도 불구하고 국회 개원이 늦어지고, 청문회 절차가 차질을 빚으면서 대법관직을 계속 수행해 왔다. 하지만 국회가 열리고 11일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이후에도 감사원장 청문회는 여전히 안개속이다. 쇠고기 협상 국정조사의 증인채택을 놓고 여야가 다시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법상 감사원장 인사청문위원회는 임명동의안이 회부된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청문회를 마쳐야 한다. 그후 5일 이내 본회의를 열어 임명동의안을 처리해야 한다. 즉 임명동의안 제출 이후 20일 이내에 국회 본회의 의결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전윤철 감사원장 사퇴 이후 석달여 동안 원장이 공석인 감사원의 관계자는 “인사청문회법에는 청문회 절차를 지키지 못할 경우에 대한 규정은 없다.”면서 “다만 8월 임시국회가 5일까지 열리므로 그때까지 원장 임명동의안이 처리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최광숙 홍지민기자 bori@seoul.co.kr
  • [김형준 정치비평] 한나라당 새 대표의 실천적 과제

    [김형준 정치비평] 한나라당 새 대표의 실천적 과제

    한나라당 새 대표를 선출할 전당대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10년만에 집권 여당으로 탈바꿈한 이후 처음 실시되는 경선인 만큼 많은 국민들이 대회를 주시하고 있다. 그런데 쇠고기 파동과 촛불집회로 어수선한 정국을 감안해 조용하게 치르자는 당초 의도와는 달리 선거가 막판으로 치달으면서 과열 혼탁 양상이 뚜렷하다. 심하게 평가하면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국민은 없고 오직 계파간의 다툼만 부각되면서 실패의 독배를 마시고 있는 듯하다. 국민들에게 희망과 변화, 미래를 보여주지 못한 채 어두운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책을 논의해야 할 때 상호 비방에 매몰되고, 통합과 화합을 추구해야 할 때 분열과 갈등이 난무하고 있다. 준법을 실천해 모범을 보여야 할 때 탈법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의원 선거 운동 금지’ 당규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파별로 노골적인 줄 세우기가 판을 치고 있는 실정이다. 한나라당이 계파 싸움에 탐닉하고 있는 동안 국민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최근 한국 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 지지도는 3년 6개월만에 30%대 아래로 떨어졌다. 더구나,20∼30대 젊은 세대층에서는 민주당의 지지도가 한나라당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변화를 거부한 채 오로지 현상 유지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나타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여진다. 한나라당이 집권 여당으로서 성공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과거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역주의 타파와 정치개혁을 기치로 창당한 우리당은 탄핵 역풍으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지만 몇 가지 치명적인 실패로 4년도 안 돼 해체되는 비운을 맞았다. 첫째, 청와대는 당권분리라는 어설픈 명분으로 우리당을 철저하게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유력 대선 후보를 내각에 조기 포진시킴으로써 당의 청와대 눈치 보기를 강화시켰다. 결과적으로 대통령과 우리당 지지도가 동반 하락하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나라당 새 대표는 이러한 실패를 답습하지 않도록 당의 위상과 권위를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 주례 회동이라는 형식으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관행에서 탈피해 대통령에게도 할 말은 하는 꼿꼿함을 보여야 한다. 둘째, 우리당은 친노-반노의 계파간 이전투구로 변화를 주도하지 못했다. 한나라당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대선 후보 경선이 끝났지만 친이-친박의 내전은 종식되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 새 대표의 최대 과제는 계파정치를 종식시키기 위한 대담한 변화를 이뤄내는 것이다. 정보 기술(IT)의 황제 빌 게이츠는 퇴임식에서 “큰 변화를 놓치고 뛰어난 인재들을 그 기회에 기용하지 않는 것이 가장 위험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새 대표는 빌 게이츠의 이러한 충고를 받아들여 “한나라당은 변화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각오로 충격적인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계파와 지역을 뛰어넘어 각계각층의 뛰어난 인재를 영입하고, 당의 운용 체계를 선진화할 필요가 있다. 의원들이 강제적 당론의 구속에서 벗어나 소신에 따라 의정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혈세인 국고보조금이 아니라 당원들이 내는 당비에 의해 당이 운영되도록 하고, 사무총장직 등 주요 당직을 외부 인사에게 개방해 인재 풀을 넓혀야 한다. 셋째, 우리당은 4대 개혁 입법으로 상징되는 이념 과잉에 빠졌다. 이념적으로 아무리 좋은 법안이라도 국민이 필요성을 인정하고 체감하지 못하면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한나라당 새 대표는 이념성이 강한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국민과 야당의 목소리를 듣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윈-윈 정치’의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더불어 거리의 정치가 대의 정치를 대신하는 일이 없도록 국회와 정당을 정상화시키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
  • 빌 게이츠 ‘33년 MS’ 아듀

    빌 게이츠 ‘33년 MS’ 아듀

    정보기술(IT)업계의 ‘황제’ 빌 게이츠가 지난 27일(이하 현지시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은퇴식장에서 지난 33년을 회상하던 그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AP통신은 이날 “33년 동안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이끌던 빌 게이츠가 800여명의 임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퇴임식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하버드대학을 중퇴한 ‘몽상가’는 “세계 모든 책상에 컴퓨터를 놓겠다.”던 꿈을 이루고 퇴장했다. 게이츠는 “우리는 세계 최대 컴퓨터 회사 IBM을 이겨낸 다윗이었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계 ‘도스’와 ‘윈도’를 개발해 IBM의 ‘OS2’를 제압했다. 이후 사실상 세계 PC시장을 장악했다. 그는 “회사 창립 이후 가장 큰 실수는 인터넷 검색시장의 중요성을 간파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 검색·광고시장에서 구글에 뒤져 고전을 계속해 왔다. 게이츠는 “3∼4년만 검색시장의 중요성을 간파했다면 역전하기가 훨씬 쉬웠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게이츠는 “실수를 두려워하지는 않는다.”고 역설했다. 그는 “우리가 실수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실수에서 배운다.”고 강조했다.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일상 업무에서는 손을 뗐지만 여전히 이사회 의장직은 유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데스크시각] 전윤철과 소렌스탐/곽태헌 산업부장

    [데스크시각] 전윤철과 소렌스탐/곽태헌 산업부장

    전윤철 전 감사원장은 40여년의 공직생활 동안 비교적 좋은 이미지를 심어왔다. 원칙을 중시하는 ‘꼬장꼬장한´ 관료라는 인상을 심어왔다.2003년 ‘실업자´ 생활을 하는 동안 사기업이나 로펌에도 가지 않아 후배관료들에게 ‘민원’ 부담도 주지 않았다. 그는 경남 출신인 YS(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1997년 3월) 장관급인 공정거래위원장에 오르기는 했지만 영남 출신인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 때에는 그리 잘나가지 못했다. 전남 목포 출신의 전윤철 전 원장에게 기회는 왔다.DJ(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은 전윤철 전 원장의 전성기였다. 전윤철 전 원장은 DJ 집권 5년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공정거래위원장, 기획예산처 장관, 청와대 비서실장, 재정경제부 장관을 차례대로 지냈다. 공정거래위원장 시절에는 재벌개혁을, 기획예산처 장관 시절에는 노조의 반대에도 공공개혁을 밀어붙였다. 비서실장 때에는 공공노조의 불법파업에 원칙대로 대응해 성과를 얻어냈다. 전윤철 전 원장은 옛 경제기획원 출신이어서 금융분야에는 다소 약했지만 재경부 장관 시절의 평가도 괜찮았다. 부하직원들을 믿었던 게 주요인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세세한 지시나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큰 틀을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으면 된다. 외풍을 막고 부하들의 사기를 올려주면 금상첨화다. 전윤철 전 원장은 승진할수록 후한 평가를 받은 편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전윤철 전 원장에는 다른 의미에서 ‘기회’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헌법상 감사원장의 임기는 보장돼 있지만 전윤철 전 원장은 그동안의 이미지로 볼 때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깨끗하게 사퇴하면서 존경받는 원로로 남는 게 좋았을 것 같다. 국가나 경제가 문제가 있을 때, 가끔 조언을 하는 길을 선택했어야 했다. 감사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혁신도시 건설을 독려하는 감사를 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자마자 혁신도시에 문제가 있다는 감사결과를 내놓았다. 혁신도시와 관련한 감사원의 상반된 모습을 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전윤철 전 원장은 ‘코드감사’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윤철 전 원장이 자리를 지키려고 그런 감사를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전윤철 전 원장은 억울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자두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동여매지 않는 법이다. 그는 지난달 13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표를 낸 뒤 기자들과 만나 “감사원장은 헌법정신에 따라 임기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나 나를 임명했던 대통령이 바뀌었고 나를 신임했던 국회가 5월30일 종료되기 때문에 5월말이 가까워오는 시점을 택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압박에 떼밀려 사표를 냈다는 게 정설이다. 전윤철 전 원장이 퇴임식을 하던 지난달 14일 골프의 여제(女帝)로 통하는 안니카 소렌스탐은 전격적으로 은퇴를 발표했다. 소렌스탐은 지난해에는 부진했으나 올해 3승을 거두며 완벽하게 부활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은퇴를 선언했다. 잘나갈 때, 박수를 받을 때, 남들이 아쉬워할 때 물러나는 현명한 길을 선택한 셈이다. 현 정부는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공기업의 기관장들한테 사표를 받고 있다. 과거 정부 때 선임됐다는 이유만으로 옥석(玉石)을 가리지 않고 사표를 받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누가 봐도 과거 정부의 ‘코드인사’로 자리에 오른 사람들, 과거 정부 때의 실세 덕으로 자리에 오른 사람들, 과거의 여당에 몸담았던 사람들까지 자리에 욕심을 내는 것도 정상은 아니다. 노욕(老慾)이나 노추(老醜)로 비쳐져 좋을 건 없다. 아름답고 멋진 퇴장을 많이 보고 싶다. 곽태헌 산업부장 tiger@seoul.co.kr
  • [공기업 민영화·통폐합 방향과 파장] 금융위 “새 産銀총재 곧 발표”

    산업은행 등 금융공기업 기관장 인선이 빨라지고 있다.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는 19일 이임식을 가졌고 금융위원회는 후임자를 조만간 발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 유재훈 대변인은 19일 정례브리핑에서 “산은 총재 인선결과를 조만간 발표할 수 있다.”면서 “(금융공기업) 기관장 발표 시기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산은 총재는 다른 공기업 기관장과 달리 공모절차 없이 금융위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따라서 다른 금융공기업보다 발표시기가 빨라질 수 있다. 유 대변인은 “산업은행 총재는 금융공기업 최고경영자 재신임의 시금석이 되는 만큼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산업은행 총재로는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가급적 넓게 찾아보려고 한다.”며 관료 출신도 배제하지 않았다. 관료 출신으로는 김석동·진동수·임영록 전 재정경제부 차관이 거론되고 있다. 이들은 전 정권에서 차관을 지낸 바 있어 의외의 인물이 부각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 이날 퇴임식을 가진 김 총재는 “공기업 관리 방식이 한 차원 높게 승화되고 변해야 한다.”면서 “경영진에게 경영의 자율성이 충분히 주어지도록 하는 여건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영화를 앞둔 직원들에게 “민영화 이후 살아남아 승승장구할 것인지, 소리 없이 사라질 것인지는 직원들의 결단에 달려 있다.”며 직원들의 노력을 당부했다. 산은 총재는 후임자가 선임될 때까지 김종배 부총재가 대행한다.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우리은행장은 후보추천위원회가 구성돼 후보 지원서를 받고 있다. 회장 후보로는 이팔성 전 우리증권 사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우리은행장으로는 이종휘 전 수석부행장과 이순우 부행장 등 내부 인사 등용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회장과 행장의 겸임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총리·장관이 먼저 구정물 손발 담가야”

    전윤철 감사원장이 14일 42년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는 퇴임식에서 새 정부를 향해 거침없는 ‘쓴소리’를 쏟아냈다. 감사원 전 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퇴임식장에서 그는 우선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과 관련,“쇠고기 문제가 터지니까 (부처들이)‘네 잘못이다.’며 서로 탓을 하고 있는데 이는 부처 뒤에 이해관계 집단이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총리와 장관이 이 문제에 앞장서 구정물에 손발을 담가야 한다.”면서 공직자의 책임 있는 자세를 강조했다. 전 원장은 이어 감사원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공직사회는 가장 책임이 무거운 집단인데 특히 감사원은 가장 중립적·독립적 입장에서 국정을 살피고, 조정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징계요인을 찾아 벌을 주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우리 사회의 곪아 터진 것이 무엇인지 시스템적으로 접근해 감사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관가 포커스] 조달청 차장의 ‘씁쓸한 퇴진’

    지난 7일 오후 정부대전청사 2층 대강당은 조달청 공무원들로 북적였다. 갑작스러운 염재현 차장(1급)의 퇴임식이 있어서다. 지난달 10일 장수만 청장 부임 후 대전청사 차장 중 가장 먼저 용퇴 의사를 밝힌 지 한 달 만에 마련된 자리다. 이 자리에서 염 차장은 “아무리 힘들어도 공무원은 공무원”이라며 “(공무원은)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하고,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항상 고민해야 한다.”는 말로 28년 공직생활을 정리했다.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고 선배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리를 뜨는 이가 없었다. 퇴임식에 참석한 조달 공무원들은 아쉬워했다. 감사원에 대해 원성이 터져 나왔고 “영혼이 필요없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왔다. 염 차장은 지난해 8월 구매사업본부장 재직 당시 감사원의 특별감사를 받으면서 공직생활에 오점을 남겼다. 감사원은 레미콘·아스콘 조달구매의 문제를 지적했다. 단체수의계약이 폐지됐음에도 조합을 참여시킨 것에 대해 대가성 및 특정업체 결탁 의혹을 제기하며 조사개시 통보를 한 것. 때문에 그의 명예 퇴직은 불허됐다. 게다가 감사 6개월이 지나도록 처분이 내려지지 않자, 후임 인사 지연 등 부담을 느껴 사직(명퇴금 포기)을 택했다는 후문이다. 한 관계자는 “감사원의 최대 치적인 단체수의계약 폐지에 반하지만 비리가 아닌 물품의 특성과 당시 상황을 고려한 집행기관의 정책 운용에 대해 징계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의도된 감사’,‘지나친 실적주의’,‘괘씸죄’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감사원이 당시의 상황과 물품의 특수성을 잘 알면서도 원칙의 잣대를 고수한 것과 장기간 처분을 미룬 것에 대해 후배들은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존경받는 선배의 씁쓸한 퇴진을 보면서 ‘실용’과 ‘원칙’ 사이에서 이들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자신보다 뛰어난 후배 양성하는 리더되길”

    “자신보다 뛰어난 후배 양성하는 리더되길”

    ‘샐러리맨 성공신화’의 대명사로 통하는 조정남(67) SK텔레콤 부회장이 24일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조 부회장은 이날 서울 을지로 SK텔레콤 본사 수펙스홀에서 퇴임식을 갖고 42년간의 직장생활을 마감했다. 회사 고문으로 위촉되지만 업무와 관련된 일은 하지 않는다.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온 조 부회장은 1966년 대한석유공사에 입사해 ㈜유공을 거쳐 95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전무로 임명되면서 통신사업과 인연을 맺었다.98년 SK텔레콤 사장,2000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제가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우리나라가 전쟁과 가난을 겨우 벗어나 중화학 공업이 국가산업으로 발돋움하는 시기였습니다. 국가경제 발전의 영광과 보람을 함께했던 게 인생에서 큰 행운이었지요.” 조 부회장은 업무와 관련해 가장 기억나는 일로 96년 세계 최초의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 이동통신의 상용화를 꼽았다.SK텔레콤이 전 세계적 통신업계를 이끄는 회사로 도약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 부회장은 퇴임식에 참석한 후배들에게 “사회에 필요한 훌륭한 리더는 자신의 역량을 뽐내고 자랑하기보다 넓은 아량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장점을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서 “자기 자신보다 유능한 후배를 양성하는 참된 리더가 되도록 노력해 달라.”라고 당부했다.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은 송별사에서 “수많은 성공한 역사의 중심에 서 계셨던 분을 10년 넘게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었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었다.”면서 “조 부회장은 항상 존경하고 추구해야 할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짠 소금 검찰, 이젠 단 설탕 역할도”

    “짠 소금 검찰, 이젠 단 설탕 역할도”

    임채진 검찰총장의 사법연수원 동기(9기)인 안영욱 법무연수원 원장과 조승식 대검찰청 형사부장, 강충식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장, 박상길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이 30년에 가까운 검사 생활을 끝내고 6일 퇴임했다. 검찰에선 동기가 총장이 되면 용퇴하는 게 관례였으나 지난해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 임 총장이 취임하자 안 원장 등은 조직 안정을 위해 ‘동기 총장’을 보좌해왔다. 대표적인 공안통이었던 안 원장은 이날 퇴임사에서 “법무·검찰에 대한 국민 평가는 내가 처음 검찰에 입문할 때인 30년 전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면서 “권위의식과 독선·편견을 버리고 성심성의를 다해 상대의 마음을 얻는 것이 신뢰회복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조폭 잡는 검사’로 이름을 떨친 조 부장은 퇴임식에서 “국민에게 검찰 강력부가 존재하는 한 다시는 우리나라에 조직폭력의 전성시대가 도래하지 않으리라는 굳은 믿음을 심어준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면서 “조직폭력세계에서 내가 해방 이후 최고의 악질검사라는 닉네임으로 불리고 있는 것을 평생 훈장처럼 생각하고 살아가겠다.”고 소회를 밝혀 후배 검사들의 박수를 받았다. 형사·외사에 정통했던 강 부장은 “검찰은 부패방지를 위해 짠 소금의 역할을 수행했는데 방부제는 짠 소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달콤한 설탕도 있다.”면서 “국민에게 따뜻한 검찰의 모습, 설탕 요법으로 부패를 방지하는 모습을 보이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특별수사의 달인’ 박 고검장은 “한밤에 검찰청사를 환하게 밝힌 불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요, 불철주야 일하느라 옷깃에 말라붙은 검사의 땀은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이라면서 “국민에게 겸손하고 절제된 자세를 보일 때 검찰은 국민에게 진정한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한편 정진호 법무부 차관은 7일 퇴임한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씨줄날줄] 최후의 만찬/ 이목희 논설위원

    몇명의 대통령이 퇴임하는 모습을 비교적 가까이서 지켜봤다. 끝까지 기세가 등등했던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직을 떠난 후에도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으로 상왕(上王)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꿈에 불탔다. 전 전 대통령 측근들은 퇴임식을 성대하게 가지려 했다. 다음 대통령 취임식과 한꺼번에 열려는 생각을 했다. 후임 노태우 전 대통령 쪽은 팔짝 뛸 일이었다. 취임식 날은 새 대통령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데, 공동주연을 하자고 하니…. 온갖 해외사례를 찾아 ‘불가(不可)’를 설득했다. 결국 식사자리를 겸한 환송연으로 따로 퇴임식을 갖기로 결론지었다. 퇴임 환송연에는 당대 최고 시인의 헌시가 낭독되었고, 각계에서 바치는 기념물과 병풍이 줄을 이었다. 그런 전 전 대통령도 몇달이 못가 후임자로부터 ‘팽(烹)’ 당하는 권력의 쓰라림을 맛봤다. 이후 대통령 퇴임식은 환송연으로 대체하는 전통이 확립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제 청와대 영빈관에서 참여정부에서 장·차관급으로 함께 일했던 인사 230여명과 이임 환송연을 가졌다. 임기중 ‘최후의 만찬’이었던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자기 가치를 하루아침에 부정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쓸쓸한 마음을 표현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인심 좋은 고향 봉하마을로 내려가 환대를 받았다. 그래도 퇴임 직후 대통령이 느끼는 정신적·육체적 허탈함은 클 것이다. 격무를 떠나는 탈진감, 국민들의 냉소적 시선에 기분이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나온 뒤 위독설이 돌다가 얼마 후 건강을 되찾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사석에서 퇴임 직후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청와대 관저는 천장이 높잖아. 상도동 집으로 돌아와 첫날 밤 낮은 천장 아래 누우니, 머리가 빙빙 돌더라.” 전직 대통령이 이제 5명으로 늘어났다. 퇴임 대통령이 밝은 표정으로 청와대를 떠날 수 있도록 현직때 잘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들만의 ‘최후의 만찬’이 아닌, 국민에게 신고하는 공식 퇴임식을 가져도 괜찮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다음 대통령 취임식에 누가 되지 않도록 날짜와 행사범위를 조정하면 가능하다고 본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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