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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웰다잉과 100세 시대/임창용 논설위원

    며칠 전 집에서 TV로 영화 ‘아무르’를 보았다. 칸영화제 수상작이다. 늙는다는 것과 사랑, 그리고 죽음에 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영화다. 성공한 음악인 노부부 안과 조르주가 주인공이다. 불행은 아내 안에게 치매 증세가 나타나며 갑자기 찾아온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오히려 그 후유증으로 반신불수가 된 아내. 조르주는 지극정성으로 집에서 아내를 돌보지만, 상태는 계속 악화된다. 그래도 조르주는 병원에 다시 입원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아내를 돌보려 한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를 하며 숨쉬기조차 힘들어하는 아내의 고통을 더이상 보지 못하고 끝내 베개로 눌러 숨지게 한다. 영화는 요즘 화두가 된 ‘웰다잉’(Well-Dying)과 맞물려 미처 생각지 못한 질문을 툭툭 던진다. 갑자기 쓰러져 회복불능 상태에 빠지면 어떻게 할래? 의사 표현조차 할 수 없다면? 중증 치매에 걸려 인격을 완전히 잃어버린다면? 준비는 돼 있는 거야? 웰다잉이 꼭 노인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지난해 11월 미국에서는 뇌종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브리타니 메이나드라는 여성이 존엄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예고한 날짜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통스러운 삶보다 최소한의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한 그녀의 나이는 29살이었다. 논란이 뜨거워지면서 오리건, 워싱턴, 버몬트 등 3개 주는 6개월 미만의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환자의 존엄사를 합법화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는 소식이다. 지난 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을 통과시켰다. 웰다잉을 향한 의미 있는 큰 걸음을 뗀 것이다. 회생 가능성이 없고, 원인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를 연명의료 중단 대상으로 정했다. 연명의료는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으로 임종기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행위다. 1997년에는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던 환자를 가족의 요청으로 퇴원시켰던 의사가 살인 방조로 처벌받은 적이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중 연명의료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은 3.9%에 불과하다. 연명의료가 그동안 본인의 의지보다는 유교에 바탕을 둔 자식들의 효 사상에 의한 것임을 잘 보여 준다. 우리 사회는 이제 100세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지난해 태어난 여아 100명 중 5명은 100세까지 장수할 것이라고 한다. 장수는 축복이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하면 늘어난 수명은 고난이고 족쇄일 뿐이다. 노화와 건강이 반비례한다는 점에서 웰다잉의 의미는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노화를 늦춰 건강을 유지하려 노력하되 웰다잉을 위한 준비도 해야 하지 않을까.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질병휴직, 일반 공무원엔 강제… 선출직은 스스로 ‘결단’?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들도 직무수행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검진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나오고 있다. 일반직 공무원은 직무수행이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면 질병휴직을 강제하지만 선출직은 본인이 스스로 ‘결단’하지 않으면 병을 숨기고 임기를 채울 수 있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전북 장수군의회는 최근 최용득(68) 군수의 건강 문제를 공식 제기하고 나섰다. 지난달 19일 오재만 의장 등 7명 전원이 서명한 성명서를 통해 최 군수에게 6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성명서의 주요 내용은 ▲군정수행 미흡에 대한 공개 사과 ▲건강 문제를 소상히 밝힐 것 ▲군정에 친·인척 간섭 배제 ▲흩어진 공직기강 대책 ▲책임 있는 군정수행 일정 등을 명확히 밝히라는 것 등이다. 군의회가 이같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은 최 군수의 건강 문제가 1년 이상 제기되면서 지역 사회가 술렁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 군수는 취임 직후인 지난해 9월 뇌경색으로 쓰러져 전북대병원에 한 달가량 입원해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최 군수는 당시 언어장애 등의 증세를 보여 군 공무원과 지역주민들이 군정 수행 능력을 우려했다. 현재까지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최 군수의 병세를 둘러싼 소문들이 확산하는 것이 문제다. 최 군수가 ‘측근도 잘 알아보지 못한다’거나 ‘자신이 한 말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다’, ‘건강 탓에 친·인척 등이 군 행정에 개입한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이다. 군의회에서도 지자체장이 정책결정을 하고 인사권을 행사해야 하는데 인지능력이 불완전하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내년에 주민소환 운동에 들어가겠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여론도 두 갈래로 나뉜다. “최 군수의 건강이 나빠지긴 했지만 어렵게 당선된 만큼 임기를 채워야 한다”는 동정론과 “1년 넘게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면 최 군수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결단론이다. 일부 의원들은 또한 단체장이나 군의원들도 치명적인 건강 문제가 생기면 강제로 직무를 중지시키거나 사직을 요청하는 조례 재정 등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 최 군수가 직접 이 소문을 종식시킬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군은 “최 군수가 매주 간부회의를 주재하고 부군수가 군정을 잘 보좌하고 있어 큰 문제는 없는 상태”라고 해명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메르스 투병 삼성병원 의사 퇴원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는 한때 자가 호흡이 불가능해 에크모(ECMO)를 부착했던 35번째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자가 6일 오전 퇴원했다고 밝혔다. 이 환자는 삼성서울병원 의사다. 본부에 따르면 이 환자는 지난 5월 27~29일 삼성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하다 14번째 확진자와 접촉해 메르스에 감염됐다. 6월 4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다가 7월 1일 치료가 마무리돼 음성 판정을 받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 환자가 서울 개포동 재건축조합 행사에서 시민 1500여명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했다고 발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환자는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 상태가 호전돼 일반 병실로 옮긴 뒤 최근까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와 운동 재활 치료를 받았다. 질병관리본부는 “퇴원 후에도 외래를 통해 재활 치료를 계속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메르스 사태는 지난달 25일 마지막 확진자였던 80번째 환자가 숨지면서 사실상 종식됐다. 방역 당국은 지난 1일 메르스 위기경보단계를 ‘주의’에서 ‘관심’으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메르스 감염병 위기경보단계가 낮아진 것은 지난 5월 20일 첫 번째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이후 6개월 만이다. 과거 메르스 확진자 가운데 현재 입원 치료 중인 환자는 삼성서울병원 1명, 강동경희대병원 1명 등 2명이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北 지뢰 부상’ 김정원 하사 “뛰면서 퇴원 신고합니다”

    ‘北 지뢰 부상’ 김정원 하사 “뛰면서 퇴원 신고합니다”

    “가족처럼 관심을 갖고 정성 어린 치료를 해 준 물리치료사와 보장구센터 관계자의 모습을 보며 다친 몸도 치료했지만 마음도 치료받고 퇴원합니다.” 지난 8월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 지뢰 도발로 오른쪽 발목이 절단되는 부상을 입었던 김정원(23) 하사가 2일 서울 강동구 둔촌동 중앙보훈병원에서 퇴원하며 밝은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김 하사는 이날 의족을 착용하고 두 다리로 걸어 퇴원했다. 김 하사는 지난 8월 DMZ 수색팀 선두로 추진철책 통문을 통과하다 뒤에 있던 하재헌(21) 하사가 지뢰를 밟고 크게 다치자 그를 후송하던 중 2차 지뢰 폭발로 오른쪽 다리를 다쳤다. 김 하사와 하 하사는 지난 10월 재활 치료를 위해 함께 중앙보훈병원에 입원해 재활의학과, 정형외과, 피부과 등의 협진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 등 정신적인 손상 부분에 대한 진료를 받았다. 김 하사와 하 하사는 지난달 20일 정기 진급 심사에서 둘 다 중사 진급 예정자로 선발됐다. 김 하사는 취재진에 “깨어 보니 중환자실이었고 한 발로만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암담했다”면서 “지금은 잘 걷고 뛸 수도 있으며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꼈고 기쁘기 그지없다”고 퇴원 소감을 밝혔다. 이어 “(부상 전에는) 수색대대에서 근무했지만 지금의 몸 상태로 (같은) 임무를 할지는 모르겠다”며 “앞으로도 군에서 내 능력을 크게 쓰임받고 싶다”고 말했다. 김 하사는 취재진의 요청에 짧은 거리를 달리기도 하고 두 팔을 위로 들고 펄쩍 뛰어오르기도 하며 정상적인 몸 상태를 증명했다. 김 하사는 부대로 복귀하기 전 1~2개월 동안 체력적인 준비를 위해 국군수도병원에서 재활 운동을 한다. 오른쪽 다리 무릎 위와 왼쪽 다리 무릎 아래쪽이 절단되는 부상을 입었던 하 하사는 이달 말까지 중앙보훈병원에 남아 계단 보행 등 난이도 높은 재활 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두 다리로 펄쩍…퇴원하는 김정원 하사

    두 다리로 펄쩍…퇴원하는 김정원 하사

    지난 8월 북한군의 목함지뢰도발로 오른쪽 발목 절단상을 입은 김정원 하사가 2일 두달여간 재활치료를 받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 중앙보훈병원에서 열린 퇴원 축하 행사에서 의족을 착용한 다리로 펄쩍 뛰어오르며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김하사는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전원조치돼 마무리 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늠름한 경례’…퇴원하는 김 하사

    ‘늠름한 경례’…퇴원하는 김 하사

    지난 8월 북한군의 목함지뢰도발로 오른쪽 발목 절단상을 입은 김정원 하사가 2일 두달여간의 재활치료를 마치고 의족을 착용한 채 서울 강동구 둔촌동 중앙보훈병원에서 퇴원하면서 경례를 하고 있다. 김하사는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전원조치돼 마무리 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北지뢰에 다리절단 김하사 껑충 뛰었다

    北지뢰에 다리절단 김하사 껑충 뛰었다

    “가족처럼 관심을 갖고 정성어린 치료를 해준 물리치료사와 보장구센터 관계자의 모습을 보며 다친 몸도 치료했지만 마음도 치료받고 퇴원합니다.” 지난 8월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로 오른쪽 발목이 절단되는 부상을 입었던 김정원(23) 하사는 2일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에서 밝은 표정으로 퇴원하며 이같이 말했다. 김 하사는 이날 의족을 착용하고 두 다리로 걸어 퇴원했다. 김 하사는 지난 8월 DMZ 수색팀 선두로 추진철책 통문을 통과하다 뒤에 있던 하재헌(21) 하사가 지뢰를 밟고 크게 다치자 그를 후송하던 중 2차 지뢰 폭발로 오른쪽 다리를 다쳤다. 그는 당시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동료인 하 하사를 먼저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 감동을 줬다. 김 하사와 하 하사는 지난 10월 재활 치료를 위해 함께 중앙보훈병원에 입원해 재활의학과, 정형외과, 피부과 등의 협진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 등 정신적인 손상 부분에 대한 진료를 받았다. 김 하사와 하 하사는 지난달 20일 정기 진급 심사에서 둘다 중사 진급예정자로 선발됐다. 김 하사는 취재진에 “깨어보니 중환자실이었고 한 발로만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암담했다”며 “지금은 잘 걷고 뛸 수도 있으며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꼈고 기쁘기 그지없다”고 퇴원 소감을 밝혔다. 이어 “(부상 전에는) 수색대대에서 근무했지만 지금의 몸 상태로 (같은) 임무를 할 지는 모르겠다”며 “앞으로도 군에서 내 능력을 크게 쓰임 받고 싶다”고 했다. 김 하사는 취재진 앞에서 내내 차렷이나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으면서 조금도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김 하사는 취재진의 요청에 짧은 거리를 달려 보이기도 하고 두 팔을 위로 들고 펄쩍 뛰어오르기도 하며 정상적인 몸 상태를 증명했다.  중앙보훈병원에서 퇴원한 김 하사는 부대로 복귀하기 전 1~2개월동안 체력적인 준비를 위해 국군수도병원에서 재활 운동을 한다. 군 관계자는 “김 하사가 군에 복귀하기를 희망하고 있으나 보직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관련 행정절차를 진행하는 동안 수도병원에 머물며 군 복무를 위한 추가적인 준비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른쪽 다리 무릎 위와 왼쪽 다리 무릎 아래쪽이 절단되는 부상을 입었던 하 하사는 이달 말까지 중앙보훈병원에 남아 계단 보행 등 난이도 높은 재활 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애완견, 발작으로 질식사 할 뻔한 6살 주인 살리다

    애완견, 발작으로 질식사 할 뻔한 6살 주인 살리다

    개는 우리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가 확실한 것 같다. 최근 영국에서 6살 소녀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자 곁에 있던 반려견이 주인에게 알리기 위해 크게 짖는 행동으로 아이 목숨을 구해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19일 영국 스코틀랜드 남서부 글래스고에 사는 ‘박스터’라는 이름의 생후 9개월 된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자신의 단짝 친구인 6살 소녀 올리비아의 목숨을 구했다고 영국 일간 익스프레스 등 현지언론이 보도했다. 사고 당일 올리비아는 몸살감기로 열이 심하게 나서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었고, 엄마 아만다 굿맨(32)은 방에서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평소 잘 짖지도 않는 박스터가 크게 짖으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고 아만다는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아만다는 처음에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거실 쪽 박스터를 향해 “조용히 해!”라고 외쳤지만, 그 견공은 더 크게 짖기 시작했다. 박스터가 긴박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아만다의 관심을 끌려고 했던 것. 그제서야 아만다는 무슨일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거실로 나왔고 딸 올리비아가 엎드린 채 발작을 일으켜 입 주위에 토사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아만다는 급히 아이의 몸을 바로 눕히고 입안에 걸린 이물질을 제거해 기도를 확보했다. 그녀는 “박스터가 올리비아의 발작을 알리지 않았더라면 딸은 질식해 사망했을 것”이라면서 “우리 아이의 생명을 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는 퇴원 후 집에서 회복 중으로 여전히 친구 박스터가 그 옆을 지키며 안전한지 확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아만다 굿맨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가택 연금’ vs ‘구속’ 역사적 악연… 전두환 前대통령 빈소 찾아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가택 연금’ vs ‘구속’ 역사적 악연… 전두환 前대통령 빈소 찾아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는 조문객 발길이 나흘째 이어졌다. 특히 김 전 대통령과는 질긴 악연이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가거나 장남을 통해 영결식을 하루 앞두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정적’을 배웅했다. 전 전 대통령은 오후 4시쯤 굳은 표정으로 빈소에 들어섰다. 다소 야위었지만 몰려든 인파 속에서 혼자 거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정정한 모습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방명록에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라고 눌러 적은 뒤 영정 앞으로 향했다. 조심스레 목례와 분향을 한 뒤에는 차남 현철씨를 비롯한 유족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가며 조의를 표했다. ●전 前대통령 유족들 위로 후 10분 뒤 떠나 김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의 ‘35년 악연’은 10·26 사태 직후인 1980년 전후부터 시작됐다. 김 전 대통령은 12·12 사태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에 의해 상도동에 가택 연금을 당했다. 1983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맞아 23일간 단식투쟁으로 전두환 정권에 맞섰다. 취임 이후에는 하나회 척결을 통한 숙군을 단행했고, 1995년에는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을 군사반란 주도와 수뢰 혐의로 구속했다. 전 전 대통령은 헌화 뒤 접객실에서 현철씨와 유족들을 위로했다. 건강 상태를 묻는 현철씨에게 “나이가 있으니 왔다 갔다 하는 거다”라며 “이제 담배 안 피우고 술 안 먹고 그러니까 좀 나아졌다”고 답했다. 이어 “임의로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 자다가 싹 가버리면 나를 위해서도 그렇고 가족을 위해서도 그 이상 좋은 일은 없다”고 말했다. 10분간의 짧은 조문을 마치고 장례식장을 떠나던 전 전 대통령은 취재진을 향해 “수고들 하시라”라고 말했지만 ‘(조문을) YS와의 역사적 화해라고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않고 떠났다. 역시나 김 전 대통령 집권 당시 구속되는 악연을 가진 노 전 대통령은 장남 재헌씨를 대신 보냈다. 재헌씨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셨고 한때 아버님과 국정도 같이 운영하셨고, 이어서 대통령도 되셨다”며 “정중히 조의를 드리는 것이 도의라고 생각하고 아버님도 또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현철씨는 미소를 지으며 조문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YS 막내딸 “부친의 過 부각돼 안타깝다” 재헌씨는 아버지가 특별히 전한 메시지가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지금 거동하기 힘들기 때문에 가서 정중하게 조의를 표하라고 전하셨다”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이 YS정부에서 겪은 ‘고초’에 대해서는 “(아버지께서) 그런 말씀은 딱히 없었다”고 말했다. 83세인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 이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연희동 자택에서 10년 넘게 투병하고 있다. 영결식을 하루 앞둔 빈소에는 김 전 대통령과 크고 작은 인연을 간직한 사회 각계 인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1987년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단일화 운동을 할 때 찾아뵙고 (단일화를) 요청드린 적이 있었다”며 “그 이후에 (김 전 대통령이) 그걸 못 해서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말했다. 15대 총선에서 김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른바 ‘YS키즈’ 정의화 국회의장도 독일 공식 일정을 일부 취소하고 급거 귀국해 빈소를 찾았다. 정 의장은 “외환위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고인에게 다 가하는 측면이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오해를 할 수가 있다”며 “(김 전 대통령이) 안 계셨으면 우리는 유신독재로 다 망치는 거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막내딸인 혜숙씨도 기자들과 만나 “모든 지도자는 공과 과가 있다”며 “과가 부각된 것이 안타깝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결혼 후 미국 워싱턴 DC서 생활해 온 그는 “평소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다”며 “업어주시기도 하고, 막내딸이니만큼 정말 사랑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활약한 야구선수 박찬호씨는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고 조언해 주면서, 늘 겸손한 마음을 갖고 국민에게 사랑 받는 선수로 성장하라는 뜻깊은 말씀을 하신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11월 LA 다저스에서 빼어난 성적을 거둔 박씨를 청와대로 초청해 “올해 우리나라는 빛낸 가장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 칭찬했었다. ●신동빈·권오준·삼성 사장단 등 재계도 애도 서거 첫날부터 빈소를 지켰던 ‘상도동계’ 김수한 전 국회의장,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 김기수 전 대통령 수행실장은 이날도 아침 일찍부터 조문객을 맞이했다.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서청원 최고위원, 정병국 의원도 나흘째 빈소를 지켰다. 재계에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최상순 한화그룹 부회장, 이관우 전 한일은행장 등이 빈소를 찾았다. 유족들은 하루 앞으로 다가온 영결식을 준비하기 위해 문상객을 맞이하는 틈틈이 회의를 했다. 유족들은 26일 오전 10시 서울대병원에서 발인 예배를 가진 뒤 영결식이 열리는 여의도 국회로 이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 집안이 3대째 기독교 신앙을 지키고 있어 예배 형식으로 발인을 하는 것이다. 예배가 끝난 뒤 운구차는 서울대병원을 떠나 오후 2시쯤 국회에 도착할 예정이다. 전국에 설치된 220여개 분향소에는 지금까지 15만명이 넘는 추모객이 다녀갔다. 여의도 국회에 설치된 정부 대표 분향소에는 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의원들과 강신명 경찰청장, 박근희 삼성사회공헌위원회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주요 사장단 50여명 등이 방문하며 추모 행렬을 이어갔다. ●정상회담한 日 무라야마 전 총리도 분향소 찾아 해외에서도 조문이 이어졌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는 도쿄의 주일본 한국대사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고인에 대한 예를 표했다. 김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인연이 있는 무라야마 전 총리는 지난 22일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그 시대 한국에 가장 잘 어울리는 대통령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26일 영결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비롯한 중국 정부 조문단도 베이징 주중 한국대사관 1층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했다. 류 부부장은 방명록에 “침통한 심정으로 애도를 표시한다”(沈痛悼念)는 글을 남겼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172일 사투’ 메르스 마지막 환자 사망

    ‘172일 사투’ 메르스 마지막 환자 사망

    국내 마지막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가 172일간의 투병 끝에 25일 숨을 거뒀다. 질병관리본부는 메르스 유전자 검사에서 최종 음성 판정이 나오지 않아 격리 치료를 받아 온 80번째 환자(35)가 급격한 병세 악화로 이날 새벽 사망했다고 밝혔다. 80번째 환자의 사망으로 국내 메르스 환자 186명 가운데 사망자는 38명(치명률 20.4%)으로 늘었고, 감염자는 한 명도 남지 않게 됐다. 80번째 확진자는 기저질환으로 혈액암의 일종인 ‘악성림프종’을 앓고 있었다. 지난달 1일 두 차례 유전자 검사에서 메르스 음성 판정을 받아 퇴원했으나 열흘 만에 다시 양성 판정을 받아 11일 서울대병원에 재입원했다. 의료진은 환자의 상태를 급격히 악화시킨 질병으로 메르스보다는 악성림프종을 지목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사실 메르스 치료는 어렵지 않았으나 악성림프종이 재발해 치료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80번째 환자는 폐렴 증세로 지난 5월 27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메르스 바이러스에 노출됐다. 6월 7일에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이후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172일간 음압격리병상에서 투병 생활을 하며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메르스와 싸웠다. 환자의 가족들은 환자가 격리된 탓에 항암치료를 제대로 못 받고 있다며 보건 당국에 지속적으로 격리 해제를 요청했다. 환자가 검사실로 나갈 수 없어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하지 못해 종양의 잠식 정도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도 했다. 80번째 환자는 지난달 1일 음성 판정을 받고 잠시 퇴원해 9일간 가족과 생활했으나 가족 등 접촉자 129명에게서 메르스 감염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국은 감염력이 극히 낮아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조치해야 한다며 격리를 해제하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적극적으로 항암치료를 했고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도 했다”며 유족의 주장을 부인했다. 부인 배모(36)씨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이날 서울대병원을 상대로 림프종 치료를 위해 격리병동 음압실 입원 조치 해제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었으나 환자가 사망하는 바람에 취소했다. 보건복지부는 메르스 공식 종식 선언 여부에 대해 “아직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국제 기준에 따르면 환자가 사망한 이날부터 28일 후인 다음달 23일 메르스 공식 종식 선언을 하게 된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최형기 성공비뇨기과, 고도의 신기술 발기부전수술 성공시연

    최형기 성공비뇨기과, 고도의 신기술 발기부전수술 성공시연

    ‘최형기 성공비뇨기과’(www.ssclinic.com)가 지난 16~17일 미국 발기부전 수술의 1세대인 드로고 몬테규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성의학센터 소장을 한국으로 초청, 국소마취를 통한 3조각 보형물 삽입 발기부전 수술을 시연했다고 24일 밝혔다. 3조각 보형물 삽입 발기부전 수술을 전신마취가 아닌 국소마취로 실시하는 기술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신기술이다. 최형기 성공비뇨기과의 최 박사는 “발기부전 환자의 상당수가 심혈관계 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안전하고 획기적인 신기술”이라며 “국소마취 지속시간이 1시간 내외이기 때문에 매우 숙련된 의료진이 아니면 시행하기 어렵다. 이 기술은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한국 성의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최형기 박사는 1983년부터 세브란스에서 국내 최초로 성 기능장애 클리닉을 개설하고 30여년간 아시아 성의학 분야를 개척하며 국내 발기부전 수술을 주도해 왔다. 2010년부터 성공비뇨기과 클리닉을 개원하여 아들 최현민 원장과 함께 세브란스 비뇨기과 3대(최 박사의 부친은 1940년 세브란스의전 졸업)를 이어가고 있다. 성공비뇨기과 클리닉은 가족같은 분위기에서 원스톱 서비스로 환자들의 문제를 바로 해결하는 명품 클리닉으로 키워가고 있다 최 박사는 2013년 미국비뇨기과학회에서 발기부전 수술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브란틀리 스콧 상’을 아시아인 최초로 수상했다. 최 박사는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이번에 몬테뉴 박사를 초청해 최현민 원장을 키워내 가르친 신기술로 국내 수술 수준을 시연할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최현민 원장은 그간 모든 수술의 노하우를 전수받고 국소마취로 3조각 보형물을 삽입하는 새로운 신기술을 개발했다. 이번 시연은 이틀에 걸쳐 총 3건의 수술을 시행하는 절차로 진행되었다. 몬테규 박사의 감수 하에 최현민 원장이 집도하고 최형기 박사의 보조로 국소마취 하에 신기술을 이용해 3조각 보형물 삽입 수술을 진행했다. 3건 모두 각각 45분~1시간 내에 성공적으로 마쳤고 환자들은 당일 퇴원했다. 이명선 전문기자 mslee@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생존해 있는 3명의 전직 대통령 근황은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생존해 있는 3명의 전직 대통령 근황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을 역임하고 퇴임한 사람은 현재까지 총 10명이다. 지난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이제 생존한 전직 대통령은 전두환(84), 노태우(83), 이명박(74) 대통령 등 세 사람이다. ●전두환… 동문 체육대회 챙기는 등 외출 잦아 1931년생으로 가장 고령인 전 전 대통령은 심신쇠약 증세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외 활동이 잦은 편이다. 그는 지난해 8월 연희동 이웃사촌으로 와병 중인 노 전 대통령의 자택을 직접 방문해 병문안을 하면서 화제가 됐다. 지난달에는 부인 이순자 여사의 손을 꼭 잡은 채 대구공고 총동문회 체육대회에 참가해 동문들로부터 깍듯한 환대를 받기도 했다. 현재 회고록 집필도 직접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에는 한·미 법무부 간의 회담 결과에 따라 전 전 대통령의 미국 내 재산 112만 6951달러(약 13억원)가 한국으로 반환되기도 했다. ●노태우… 10년 투병에 의사소통도 어려운 편 반면 한 살 아래인 노 전 대통령은 10년 넘게 자택에서 와병 중이다. 2002년 전립선암 수술 이후 입·퇴원을 반복하며 의사소통이나 거동은 힘든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0월엔 천식 증세로 서울대병원 특실에 입원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현재는 부인 김옥숙 여사의 간호를 받으며 주로 집 안에서 지내고 있다. ●이명박… 회고록 쓰고 4대강 홍보에 외교까지 이들보다 열 살 정도 아래인 이 전 대통령은 가장 활발한 외부 행보를 하고 있다. 재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테니스를 즐기고 올해 1월엔 청와대 참모들과 함께 정책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출간하기도 했다. 평소 골프와 테니스로 건강을 다져 온 이 전 대통령은 2013년엔 자전거를 타고 북한강변을 직접 돌며 4대강 업적을 소개하기도 했다. 당시 팔당역에서 출발해 대성리까지 약 25㎞를 자전거로 이동했다. 2013년 퇴임 직후 첫 해외 일정으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등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외교 행보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악연’ 전두환 “좋은 곳 가셨을 것”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22일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정치권 인사들은 고인의 업적을 기리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보도자료를 통해 “근래 언론 보도를 통해 병고에 시달린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는데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며 “기독교 신앙이 깊었던 분이니까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라고 위로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직접 문상을 하지 못한 노태우 전 대통령도 측근들에게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깊은 애도를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전직 대통령은 문민정부 시절 김 전 대통령이 ‘과거사 바로 세우기’ 작업을 추진했을 당시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된 ‘악연’이 있다. 빈소를 직접 찾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완전한 한 축이 떠났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대병원에 계실 때 병문안을 갔었는데 그때 꼭 완쾌해서 전직 대통령끼리 자주 뵙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고 회고한 뒤 “오늘 퇴원을 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이 나라의 마지막 남은 민주화의 상징이 떠나셨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 국민들은 김 전 대통령을 대한민국을 변화시킨 대통령으로 기억할 것”이라며 명복을 빌었다. ‘양김’으로 불리는 두 전 대통령이 민주화 투쟁의 동지이자 영원한 정치적 경쟁자였던 점에서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은 남편과 함께 민주화를 위해 오랫동안 투쟁했다”고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도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운동과 문민정부 출범을 통해 민주주의의 길을 넓힌 지도자로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에도 영향을 끼친 분”이라며 고인의 명복을 기원했다. 독일을 공식 방문 중인 정의화 국회의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우리나라 민주화의 최선봉장이었던 이 시대의 영웅을 잃은 슬픔을 무엇에 비견하리오”라며 깊이 애도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2차 수술 받은 마라도나, 4일 만에 8kg 감량 성공

    2차 수술 받은 마라도나, 4일 만에 8kg 감량 성공

    과체중 때문에 최근 다시 수술대에 오른 아르헨티나의 축구영웅 디에고 마라도나가 무서운 속도로 감량에 성공하고 있다. 수술을 집도한 베네수엘라 의사 헨리 가르시아는 20일 인터뷰에서 "마라도나가 빠른 효과를 보고 있다" 면서 "벌써 8kg 정도 체중을 내렸다"고 밝혔다. 가르시아는 "워낙 튼튼한 체질이라 그런지 회복속도 역시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면서 "예정대로 (수술일로부터) 12일 뒤에는 퇴원이 가능하겠다"고 덧붙였다. 마라도나는 은퇴 후 몸무게가 불어나면서 2005년 처음으로 위장축소수술을 받았다. 당시 마라도나의 몸무게는 120kg. 현역 시절의 다부진 몸매를 잃은 마라도나는 거듭된 다이어트 실패 끝에 수술대에 올랐다. 덕분에 마라도나는 수술 직후 50kg 감량에 성공하면서 날씬한 몸매를 되찾았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마라도나의 모습은 상당히 살이 붙어있었다. 현지 언론은 "마라도나가 2년 전부터 다시 몸무게가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마라도나가 재수술을 결심하게 된 이유다. 마라도나는 베네수엘라로 날아가 16일 마라카이보의 한 병원에서 다시 위장축소수술을 받았다. 수술 4일 만에 8kg 감량 효과를 봤다는 얘기다. 엄밀하게 말하면 2005년 수술 부위를 다시 손 본 것이다. 집도의 가르시아는 "10년 전 받은 위장축소수술을 보완한 것으로 보면 된다" 면서 "다시 살이 찌지 않도록 2005년 수술의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위장축소수술 후 다시 살이 찌는 이유는 대략 5가지 정도 된다"면서 "이번 수술로 마라도나가 다시 예전의 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수술 직전 마라도나의 체중은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현지 언론은 "마라도나가 70kg 이상 살을 빼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보도해 현재 체중이 100kg을 넘겼음을 강하게 암시했다. 마라도나는 현재 걷기운동을 하는 등 안정적으로 회복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자료사진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속보]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양김 시대’ 역사의 뒤안길로

    [속보]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양김 시대’ 역사의 뒤안길로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金永三)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0시 22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혈액감염 의심 증세로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고 서울대병원 관계자가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올해 88세로 고령에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종종 서울대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아왔으며 그 때마다 며칠씩 입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9일 몸에서 열이 나 서울대병원에서 입원했고 21일 오후 상태가 악화돼 중환자실로 옮겼다. 지난 10일 검진차 병원을 찾았다가 17일까지 입원했다 퇴원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민주화 세력의 양대 산맥이었던 ‘김대중·김영삼’의 ‘양김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은 1927년 12월 20일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에서 아버지 김홍조(金洪祚)와 어머니 박부연(朴富蓮)의 외아들로 태어난 김 전 대통령은 장목소학교, 통영중학교, 경남고등학교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5·6·7·8·9·10·13·14대까지 9선 의원을 지냈다. 한국 헌정사에서도 최연소(만 26세) 국회의원과 최다선(9선) 국회의원이라는 기록도 함께 갖고 있다. 야당 당수 세 차례, 야당 원내총무를 다섯 차례나 지냈다. 1970년대 후반에는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야당 당수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체제에 정면으로 맞섰다가 1979년 총재 직무를 강제로 정지당하고 의원직에서도 제명됐다. 신군부 정권 시절이던 1980년대에는 23일간의 단식 투쟁, 장기간의 가택연금 등의 정치적 박해와 고난을 겪으면서도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하고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하는 등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평생의 민주화 동지이자 라이벌 관계를 이어갔다. ‘상도동’과 ‘동교동’으로 상징됐던 양김의 민주화 세력은 민주화 운동의 양대 산맥을 이루며 역사를 이끌었다.김 전 대통령은 1987년 12월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뒤 통일민주당 후보로 독자출마한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에게 패해 2위로 낙선한 바 있다.그러나 이후 민정당과 신민주공화당과의 3당 합당을 통해 만들어진 민주자유당에 합류하면서 박철언 전 의원과의 대결 끝에 대선 후보가 되었다. 1992년 대선에서 당시 김대중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됐다. 그는 ‘군정 종식’을 선언했고 ‘문민시대’를 열었다. 특히 ‘칼국수’를 즐겨먹는 것으로 검소함과 청렴함을 표방하면서 하나회 청산과 금융·부동산 실명제 도입, 지방자치제 실시, 전방위적 부패 척결 등을 통해 군사정권 시절에 비해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외환 위기에 따른 국가 부도 사태를 초래했고 친인척 비리가 불거지는 등 임기 초반에 누렸던 절대적인 지지를 대부분 상실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상도동계’의 영원한 리더이자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의 ‘대부’로 자리하며 오랫동안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손명순 여사와 아들 현철 씨가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영삼 전 대통령 오늘 새벽 서거

    김영삼 전 대통령 오늘 새벽 서거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서거했다. 88세.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0시 22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으로 숨을 거뒀다고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이 긴급 브리핑에서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정오쯤 고열과 호흡곤란 증상으로 입원했으며, 상태가 악화돼 21일 오후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악화하면서 사망에 이르렀다고 오 원장은 설명했다. 서거 당시 김 전 대통령 옆에는 차남 현철씨 등 가족이 자리해 임종했으나 부인 손명순 여사는 곁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 전 대통령은 고령인 데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종종 서울대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아왔으며, 그때마다 며칠씩 입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앞서 지난 10일 검진 차 병원을 찾아 17일까지 입원한 뒤 퇴원했다. 1927년 12월20일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에서 김홍조와 박부연의 외아들로 태어난 김 전 대통령은 장목소학교, 통영중, 경남고를 거쳐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 최연소로 당선된 이후 9선(5·6·7·8·9·10·13·14) 의원을 지냈다.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채 통일민주당 후보로 독자출마한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정당 노태우 후보에게 패해 2위로 낙선했다. 하지만 민정당·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통해 탄생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에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합류했고, 박철언 전 의원과 사활을 건 대결 끝에 대선후보를 쟁취했다. 1992년 대선에서 필생의 라이벌 김대중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돼 문민시대를 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야당 당수 세 차례, 야당 원내총무 다섯 차례를 역임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섰다. 양김의 ‘상도동·동교동’은 민주화 세력의 양대 산맥으로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둘은 1970년대 후반에는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야당 당수로서 유신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다 1979년 총재 직무를 강제로 정지당하고 의원직에서도 제명되는 고초를 겪었다. 신군부 정권 시절이던 1980년대 들어서는 23일간의 단식 투쟁, 장기간의 가택연금 등의 정치적 박해와 고난을 겪으면서도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해 87년 ‘6월 항쟁’ 등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 직선제 개헌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PK(부산·경남)를 지역 기반으로 삼은 민주화 세력을 일컫는 상도동계의 리더로서 오랫동안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평생 거르지 않다시피한 새벽 조깅과 영문이니셜 애칭 ‘YS’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가장으로 거행하고 장지는 현충원으로 하기로 유족 측과 행정자치부가 합의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손명순 여사와 딸 혜영(63), 혜정(61), 혜숙(54)씨, 아들 은철(59), 현철(56) 씨 등 2남 3녀가 있다. 정부는 22일 낮 12시 30분 김 전 대통령의 장례 절차를 논의하는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이를 공식 결정할 예정이다. 임시 국무회의에서는 국가장 진행, 장례위원회 구성, 장지, 영결식과 안장식 등 장례 절차 전반을 심의한다. 국가장 절차는 정부와 유족의 협의 후 행정자치부 장관이 제청하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현직 대통령이 결정한다. 5일간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면 김 전 대통령은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화보]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한국 현대사의 ‘거목’

    [화보]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한국 현대사의 ‘거목’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金永三)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0시 22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혈액감염 의심 증세로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고 서울대병원 관계자가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올해 88세로 고령에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종종 서울대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아왔으며 그 때마다 며칠씩 입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9일 몸에서 열이 나 서울대병원에서 입원했고 21일 오후 상태가 악화돼 중환자실로 옮겼다. 지난 10일 검진차 병원을 찾았다가 17일까지 입원했다 퇴원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민주화 세력의 양대 산맥이었던 ‘김대중·김영삼’의 ‘양김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화재 진압중 얼굴 잃은 소방관 사상최대 ‘안면이식’ 성공

    화재 진압중 얼굴 잃은 소방관 사상최대 ‘안면이식’ 성공

    -화재 진압중 얼굴 잃어...사상최대 ‘안면이식’ 성공 화재진압 중 큰 부상을 당해 얼굴을 모두 잃었던 미국의 전 소방관이 ‘사상 최대의 안면이식 수술’을 통해 최근 얼굴을 되찾은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2001년, 소방관이었던 패트릭 하디슨은 이동식 주택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던 중 무너져 내린 천장 때문에 얼굴에 불이 붙는 사고를 당했다. 그와 함께 화재를 진압했던 동료는 “그가 집 밖으로 나왔을 때는 연기와 함께 얼굴이 녹아내리고 있었다”며 당시의 참사를 설명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하디슨은 이후 63일 동안 자신의 허벅지 피부를 이식하는 방식으로 안면재건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귀와 입술, 코 대부분과 눈꺼풀 조직은 되살릴 수 없었다.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그는 결국 퇴원해 세 자녀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정작 그의 자녀들은 하디슨을 보고 겁에 질려 도망치고 말았고 하디슨은 큰 좌절을 경험해야만 했다. -10년간 71회 수술에도 삶은 악화일로 이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는 총 71회의 수술을 받으며 피부 이식을 통해 입, 코, 눈꺼풀 등을 재건해 나갔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반복된 수술로 진통제에 중독됐던 탓에 새로 시작한 타이어 판매 사업은 파산했고, 아내와도 이혼하고 말았다. 계속되는 고통은 자연스럽게 우울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해, 이런 하디슨을 딱하게 여긴 그의 교회 친구가 안면 이식수술을 성공적으로 집도한 경력이 있는 유명 의사 로드리게즈에게 연락을 취해 그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로드리게즈는 요청에 응하면서도 하디슨에게 수술이 아주 위험할 것이라며, 생존 확률은 겨우 50%에 불과하다고 사전 경고했다. 그러나 하디슨은 주저하지 않았다. “죽음보다도 못한 삶”을 사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었다고 그는 설명한다. 이후 하디슨과 로드리게즈는 하디슨과 동일한 피부색, 머리색, 혈액형, 두개골 형태 등을 지닌 ‘피부 기증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1년의 기다림 끝에 지난 8월에 기증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기증자는 데이비드 로데바흐라는 26세 남성으로 자전거를 타던 중 사고를 당해 뇌사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로데바흐의 어머니는 그가 항상 소방관이 되길 원했었다며 기증 제안을 승낙한 것으로 전해진다. -눈꺼풀 등 보강수술만 남아 이윽고 시작된 이식수술은 로데바흐의 얼굴과 머리, 상반신 일부에 해당하는 범위의 피부, 신경, 근육 등을 떼어내 하디슨에게 이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수술은 수십 명의 의료진에 의해 26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의사 로드리게즈에 따르면 이번 수술은 2005년 세계최초로 안면이식이 이루어진 이래 '가장 넓은 범위'에 대해서 이루어진 최대 규모의 얼굴 이식수술이었다. 그렇게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3개월이 지난 현재, 하디슨은 아직 회복 단계에 있으며 앞으로도 눈꺼풀 등에 대해 몇 번의 수술을 더 거쳐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도 예전에 비해 자연스러운 얼굴 모습을 가지게 됐으며 눈꺼풀과 귀, 코 등도 되찾았다. 로드리게즈 박사는 하디슨이 결과적으로 본인의 원래 얼굴 구조와 기증자 로데바흐의 얼굴 특징이 섞인 외모를 지니게 될 것이며, 사람들은 그의 얼굴에서 어색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이제 눈꺼풀이 제대로 기능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시야 또한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현재 하디슨은 예전보다 훨씬 자신감을 되찾은 상태다. 강연 활동을 통해 어려운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으며 상이군인들을 돕는 봉사에도 매진 중이다. 그는 “이제야 평범한 남성으로 돌아온 기분”이라며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 사진=ⓒAFPBBNews=News1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파리 테러] 치료 의사 “전쟁터 수준, 피해자들 충격으로 말 잃어”

    [파리 테러] 치료 의사 “전쟁터 수준, 피해자들 충격으로 말 잃어”

    지난 주말 벌어진 파리 연쇄 테러사건 당시 부상자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들이 그들의 신체적·정신적 피해 수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사건 발생 직후 환자들은 빠른 치료를 위해 파리 내의 여러 병원으로 분산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중 하나였던 조르주 퐁피두 병원의 필립 쥐벵 응급센터장은 이번 상황에 대해 “마치 전쟁터 같았다”고 증언했다. 쥐벵은 2008년 아프간전쟁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쥐벵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장기 파열, 흉곽 관통, 내출혈, 두부(頭部)손상 등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며, 이에 더해 강한 심리적 충격에 빠진 상태였다. 쥐벵은 “환자들은 병원에 도착한 이후에도 충격으로 침묵을 유지했다”며 “영화에서는 (이런 사건의) 피해자들이 모두 울음을 터뜨리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다른 의사들 또한 심리적 외상으로 인해 무감각해지고 말았던 환자들에 대해 증언했다. 도미니크 파트롱 파리 생땅뚜안느 병원 응급센터장은 환자들이 “마치 돌이 된 것처럼 어떠한 감정도 내보이지 않았다”며 “팔에 총상을 입은 어떤 환자는 당시의 상황과 자신의 상태를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의사들은 이들에게 심리치료를 제공했으며, 퇴원 환자들에 대해서도 향후 병원에 다시 찾아와 심리 치료를 받을 것을 권장했다고 밝혔다. 또한 의료팀에게도 심리적 치료가 요구되는 실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쥐벵은 “심리적 충격은 평생에 걸쳐 후유증을 남길 수 있는 문제인 만큼 환자들과 의료팀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다”며 치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안타깝게도 환자들 중 일부는 부상 치료가 장기간으로 이어지면서 계속하여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쥐벵은 “15~20여 명의 환자들은 부상 정도가 심각했다”며 “아직 판단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지만 이들 중에 평생 동안 부상을 안고 살아갈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테러 피해자들 중에는 장기간에 걸쳐 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 단적인 예로 지난 1월 발생한 샤를리앱도 사건의 피해자인 필립 랑송의 경우 턱에 큰 부상을 입어 현재까지 무려 총 13회의 회복 수술을 받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미러 캡처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헬무트 슈미트 전 서독 총리 사망

     헬무트 슈미트 전 서독 총리가 10일 지병으로 사망했다. 96세.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1974~1982년 총리를 지냈다.  동·서독 대치 국면에서 동독 지원을 받는 적군파들의 서독 요인 납치·암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안보 위기와 제1차 석유파동으로 경제 위기 속에서 슈미트의 임기가 시작됐다. 그는 타협 없는 단호한 자세로 안보 위협에 대처했고, 통상외교를 강화해 경제 위기를 극복했다. 독일의 수출 증대를 위한 포석으로 자국 보호주의를 막기 위해 슈미트가 주도한 협상 체제가 주요 6개국(G6) 회의로 지금은 원래 회원국인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에 더해 캐나다가 합류한 주요 7개국(G7) 회의로 발전했다.  슈미트는 또 유로존 단일 통화인 유로화 탄생의 초석을 닦는데 기여한 인물로 평가 받는데, 석유파동 이후 변동환율제가 도입될 때 유럽 내 복수 통화 간 등락 폭을 2.5% 이내로 제한하는 공동 변동환율 시스템을 채택하도록 처음 아이디어를 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슈미트 제안에 따라 도입된 유럽통화체제(EMC)가 유로화 체제로 발전했다.  동서독 통일 문제와 관련, 슈미트는 전임자인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계승했다. 동·서독 정상회담, 서독·소련 정상회담을 열었고 1974년 동·서독 수도에 대사관 격인 상주대표부를 설치했다. 동독 고속도로 연간 운행료로 5억 마르크를 지불하고, 동독 내 정치범 석방을 위해 차관을 제공하는 슈미트에게 “동독 정권에 이익을 준다”는 정치적 비판이 가해지기도 했다.  역으로 슈미트가 소련의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에 대한 서방의 공동대응 일환으로 독일에 크루즈미사일을 배치하는 2차 세계대전 종전 뒤 재무장 결정을 내렸을 때 진보 진영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슈미트의 재무장 결정은 독일 녹색당이 결성되는 계기가 됐다.  정계은퇴 뒤 슈미트는 고향인 함부르크로 돌아가 프리미엄 잡지 ‘디 차이트’ 공동 발행인으로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다. 1960년과 1993년에 방한했다. 지난 8월 탈수 증상을 보여 입원했다가 퇴원하는 등 고령으로 건강에 이상을 보여 왔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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