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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건설 ‘건설사관학교’로 부상

    현대건설이 ‘건설 사관학교’로 떠오르고 있다. 건설사마다 현대건설 출신 임직원을 앞다퉈 영입 중이다.해외건설을 시작하는 한 중견 건설사는 최근 현대 해외건설사업 출신 임원을 사장으로 앉혔다. 다른 회사 출신과 달리 현대건설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진득하다. 현직에서 옮기지 않고 퇴사 뒤 여러 곳에서 ‘러브콜´을 받는다.●해외건설 전문가 영입 1순위 반도건설은 최근 김호영 전 현대건설 해외건설 담당 부사장을 사장으로 영입했다. 김 사장과 함께 자리를 옮긴 현기춘 부사장과 나도상 전무도 현대출신이다. 반도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펼치는 주상복합 아파트 사업을 성공시키고, 알제리 신도시 개발 등 해외사업 활성화 차원에서 현대 출신 전문인력을 영입했다. 한동진 부사장은 현대건설을 퇴사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올 4월 현대중공업 부사장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해외 플랜트건설사업 일감을 확보한 현대중공업이 중동 시장에 밝은 한 부사장을 영입한 것이다. 함께 근무하는 윤호철 전무도 현대건설 출신의 정통 해외건설맨이다. 안인식 풍림산업 해외사업 본부장(부사장) 역시 현대건설에서 잔뼈가 굵었다.●대형 건설사 간부급 두루 포진 GS건설에서 동부건설로 옮긴 황무성 대표이사 부사장도 뿌리는 현대건설이다. 황 사장은 건설 안전 분야 베테랑이다.지난 6월 새 둥지를 튼 오명길 CJ개발 부사장도 현대건설에서 자리를 옮겼다.CJ출신 강세영 부사장과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송형진 효성 건설부문 사장도 옮긴 지 오래됐지만 맥은 현대건설이다. 채희수 두산산업개발 부사장도 현대→고려산업개발→두산산업개발로 이어지는 현대 출신이다. 원현수 코오롱건설 부사장 역시 현대에서 잔뼈가 굵었다. 동양건설산업에는 안효신 부사장, 이봉기·김광욱 전무가 현대 출신으로 주요 포스트를 차지하고 있다. 포스코건설에는 조영희 송도사업본부 전무를 비롯해 김덕태·박상곤 상무 등이 과거 현대맥을 잇고 있다. 태영 김외곤 부사장과 김영민 상무도 현대건설이 배출했다. 전창영 엠코 부사장(건축사업본부장), 김광석 한진중공업 전무, 강대신 한화건설 전무, 문인수 경남기업 전무 등도 현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사람들이다. 이들 역시 국내 토목 및 건축·주택사업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풍부한 경험+추진력…영입 메리트 아예 내 회사를 차린 ‘현대맨’도 수두룩하다. 현대가 유통쪽에도 건설 출신이 많다. 최동주 현대아이파크몰 사장, 홍성원 현대홈쇼핑 사장, 김병훈 현대택배 사장이 현대건설 출신이다. 현대 출신 임직원의 주가가 올라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업계 최고 수준의 전문 지식과 국내외 현장에서 풍부한 경험을 지녔기 때문이다. 때문에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거나 대규모 프로젝트가 나오면 현대건설 임직원에 먼저 손길이 뻗친다. 영입 제의는 많지만 현직에서 바로 옮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현대에서 일단 퇴사한 뒤 영입되는 경우가 많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20&30] 이직 “삶 업그레이드 위해 그래~ 옮기는 거야”

    [20&30] 이직 “삶 업그레이드 위해 그래~ 옮기는 거야”

    ‘평생직장’이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이 첫 직장에서 근무하는 평균 기간은 1년 9개월. 첫 번째 일자리를 구하기까지 평균적으로 무려 12개월이나 걸리지만,2년도 안돼 과감히 뿌리치고 나온다. 그들이 이직이라는 모험을 감행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입사 3년이 못돼 직장을 옮긴 2030들의 다양한 속내를 들어봤다. ●“10년 뒤의 내 모습을 떠올려봤지요” 석달 전부터 한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김모(29·여)씨가 전 직장을 버린 이유는 자기계발 때문이었다. 김씨는 10년 뒤를 내다보고 당장의 안정을 과감히 버렸다. 김씨는 2004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했다. 남부럽지 않은 연봉에 사내 복지 등은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10년 뒤 미래를 생각했을 때 떠오른 영상은 꼭 ‘맑음’이 아니었다. 여전히 여성으로서 대기업 임원이 될 수 있는 기회는 적었고 전문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기에도 경쟁이 만만치 않았다. 연봉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김씨는 지금 직장에서 충분히 자기계발을 해가며 전문 컨설턴트로서 이름을 날릴 미래를 꿈꾸고 있다.“대기업에선 결국 하나의 부속으로 종속될 가능성이 크지만 지금 회사에선 경영 컨설팅 등을 직접 해가며 기업의 미래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하고 있어요.”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채모(28·여)씨도 중견 기업 회장 비서직을 1년만에 훌쩍 내던졌다. 영문학과를 졸업한 채씨에게 비서직은 당초 원하던 직업이 아니었다.3000만원이 넘는 연봉과 불확실한 미래가 발목을 잡았지만 질끈 눈을 감고 호주로 유학을 떠났다.2년 동안 호주의 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지금, 채씨는 고객 회사들에 대해 분석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일을 하면서 보람도 얻고 고액의 연봉도 손에 쥐고 있다.“아마 지금까지 비서 일을 해서 3년차가 훌쩍 넘었다면 그만두기 힘들었을거예요. 나이도 있고 2년간 유학으로 자기 계발을 하지 않았으면 지금같은 직장 구하기도 힘들었을 테니까요.” ●“상사가 지독하게 싫어서….” 직장 상사와의 트러블도 중요한 이직 사유 가운데 하나였다. 외국계 무역회사에서 일하던 이모(29·여)씨는 40대 여자 부장과의 트러블을 참지 못하고 1년 만에 회사문을 박차고 나왔다. 외국 바이어들과 만나 수출입 전반에 대해 논의하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이씨에게 부장은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았다. 한번은 실수로 단순 계산이 틀린 이씨에게 부장은 “넌 수학도 못하니. 아니 이건 수학이 아니고 산수지 산수.”라며 굴욕을 안겼고 동료와 외모를 비교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취직이 급해 들어간 직장에서 나름대로 보람을 찾고 있었지만 괴팍한 상사와 싸우다 보니 세상사는 게 참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 늦기 전에, 더 나이들기 전에 새로운 길을 찾아야할 것 같아 1년 공부 끝에 좋은 회사에 재입사했죠.” ●“쥐꼬리만한 월급이 지겨워…” 2002년 대학을 졸업하고 의료 진단키트를 개발하는 벤처기업에 입사한 오모(27·여)씨. 오씨는 전공인 생물학을 살리기 위해 벤처기업을 선택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하루 12시간 몸바쳐 일해도 돌아오는 월급은 한달에 80만원도 채 되지 않았다. 연구개발에서 보람을 찾으려해도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5명밖에 안되는 직원들 때문에 빈자리가 너무 커보여 이직을 망설였지만 6개월 만에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지금은 대학교 사무직으로 직장을 옮겼다.“함께 일하던 직원들과의 정 때문에 회사를 등지기가 쉽진 않았어요. 하지만 그 정도의 월급으론 미래를 담보하기 어려웠죠.” ●“이직은 ‘삶의 업그레이드’수단” 홍모(25·여)씨는 잡지사에 다니다가 최근 사보 제작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지 1년 반밖에 안됐지만 이번이 세 번째 직장이다. 홍씨가 생각하는 직장상은 주5일제와 초과근무에 대한 적정한 보상, 쾌적한 근무환경 등 세 가지. 첫 직장은 모두 갖춰지지 않았지만 취직을 해야겠다는 급한 마음에 들어가 1년 3개월 동안 일했고, 두 번째 직장은 조건이 얼추 맞았지만 상사와의 충돌을 견딜 수가 없어 한달 반만에 그만뒀다. 이번 직장은 세가지 조건에 거의 맞는데다 꽤 만족스럽지만 그는 3∼5년정도 경력을 쌓은 뒤에 다시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제게 있어서 이직은 삶을 ‘업그레이드’시키는 하나의 방편이기 때문이죠.” ●“유유자적한 삶을 위해서…” 삶의 여유를 생각하는 2030도 많았다. 남부럽지 않은 IT관련 대기업에 다니던 김모(29)씨가 2년 반 만에 회사를 그만 둔 이유는 재충전 시간의 부족 때문이었다. 김씨에게 재충전 시간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지만 잘 나가는 그의 회사는 명목상만 주 5일제일 뿐 사실상 토요일이나 일요일 중 하루는 회사에 나오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재충전 시간을 놓치는 것을 수당과 분위기 때문에 참고 넘어간다면 언젠가 후회할 것 같아 과감하게 사표를 내던졌죠.”그는 경력을 희생해서라도 근무시간이 명확한 한 은행으로 최근 재입사했다. 2002년 대학을 졸업한 장모(31)씨는 우수한 성적으로 한 증권사 IT담당 애널리스트로 뽑혔다. 하지만 매일 이어지는 야근에 주말조차 바쳐야하는 애널리스트 일을 하면서는 도저히 사람답게 살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장씨는 수천만원대 연봉을 뿌리치고 직장을 나와 한 재수학원에서 1년간 공부를 거쳐 지난해 한의대에 입학했다.“정신없이 살다보니 일에 치여 사는 내 삶이 이해되지 않아 좀더 안정된 삶을 찾고 싶었죠. 한의학 공부로 미래를 개척하면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돼요.” 이재훈 서재희기자 nomad@seoul.co.kr ■ “인간적 신망 잃지말고 떠나라” 근속자들의 충고 한 회사에 오랫동안 근무한 ‘근속 직장인’들은 3년도 안돼 직장을 옮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대구의 한 시내버스회사에서 40년 동안 근속한 이상한(63)씨. 그는 요즘 젊은이들의 이직은 새로운 트렌드로 꺼릴 것이 아니하고 생각한다. “60∼70년대에는 다양한 직업군이 형성되지 않아 한 회사에 충성을 다하며 신임을 얻지 않으면 생계수단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자기 적성과 보다 높은 임금을 찾아 이직하는 것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씨는 이직을 하더라도 전 직장에서의 인간관계에서 신망을 잃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했다.“직장에서 만난 사람과의 인간관계는 언제 어디서 다시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동료들이 ‘배신당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도록 적절한 이직 이유 등을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중에 개인 사업을 하더라도 결국 자기가 일했던 직종과 관련한 일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하죠.” 올 해로 15년째 한 식품회사 홍보팀에 다니고 있는 조모(40)씨도 “발전적인 이직은 권장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왜 직장을 옮기려 하는가는 중요하다고 본다. 적어도 특정 상사와의 충돌 때문에 회사를 옮기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자기가 정말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다시 시작하는 것은 이를수록 좋고 선배 입장에서도 적극 권장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직 사유중 상사 때문이라는 얘기가 많던데 이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와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떤 직장이냐보다 오히려 운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 적극적으로 부서를 옮기거나 조직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가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20년 동안 한 대기업에 다니다가 90년대 말 외환위기를 맞아 어쩔 수 없이 퇴사한 김형태(가명·58)씨는 너무 잦은 이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회사에 너무 애착을 갖는 것도 문제지만 최소한의 책임감도 없이 그만두는 젊은이들을 보면 솔직히 이해가 안가요. 특히 몇 개월마다 직장을 옮겨다니며 공백기를 갖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회사에 불만이 있어도 일단 그만두고 보자는 생각보다는 일을 하면서 자립할만한 기반이나 대안을 찾아야 하죠.” 서재희 이재훈기자 s123@seoul.co.kr
  • [‘바다이야기’ 의혹 확산] 노씨 직책 영업이사로 등재 ‘靑의 기술이사’ 해명과 달라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우전시스텍에 대한 지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조카인 노지원씨가 이 회사 기술이사로 있던 2005년에 집중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특히 우전시스텍이 발행한 자산유동화채권(ABS)을 후순위채권으로 인수해 일반인 투자를 유도하는 등 유·무형의 혜택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공단이 우전시스텍에 최초로 자금을 지원한 것은 지난 1998년 11월이다. 이 때에는 구조개선자금 1억 3300만원을 빌려줬다. 자금은 은행을 통해 나갈 만큼 까다롭게 지원됐다.2차 자금은 2000년 7월 중소벤처창업자금으로 3억원을,3차는 2001년 7월 경영안전자금으로 5억원을 각각 대출해줬다.3차례 지원의 경우 각각의 지원액은 5억원 이하의 소액이지만 모두 은행이나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보증서를 받은 뒤 대출해줬다. 하지만 공단은 노씨가 우전시스텍에 영입돼 기술이사로 활동하던 지난해 2월 서울 금천구 가산동 아파트형 공장 매입자금(시설자금)으로 16억원을 빌려줬다. 대출은 공장 담보만으로 이뤄졌다. 공단은 또 2005년 12월 우전시스텍이 발행한 30억원의 자산담보부채권 중 18.7%인 5억 6100만원어치를 후순위채권으로 인수했다. 이 경우 업체가 잘못되면 인수금액 총액이 날라갈 수 있다. 이에 대해 공단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일반인이 쉽게 인수하겠느냐.”며 “정부(공단)의 매입은 곧 정부보증으로 통하기 때문에 일반인 투자가 활성화된다.”고 말했다. 공단이 우전시스텍의 어려움을 해소해 준 꼴이어서 의혹과 함께 논란이 예상된다. 공단은 “공단의 자금지원 25억 3300만원에 대해서는 모두 상환받았다.”고 밝혔다. 한편 우전시스텍은 노무현 대통령의 친조카 노지원씨가 근무했던 지난 2003년 말부터 2006년까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지원씨의 담당직책을 영업이사로 공시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우전시스텍은 당시 공시에서 노씨가 입사한 시점인 2003년말부터 올해 7월 퇴사할 때까지 기술이사가 아닌 영업이사로 등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그동안 청와대측과 노씨 본인이 노씨의 보직을 기술이사로 밝혔던 것과는 다르다. 이에 대해 노씨는 “중소기업의 특성상 영업이사와 기술이사의 구분은 무의미하다.”며 자신의 영향력 행사가능성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靑 “대통령조카 이용말라 수차 경고”

    靑 “대통령조카 이용말라 수차 경고”

    청와대는 20일 노무현 대통령의 친조카 노지원씨와 성인오락게임인 ‘바다이야기’와의 연루 의혹에 대해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한마디로 “노씨와는 무관하다.”는 설명이었다. 전해철 민정수석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자청, 노씨의 우전시스텍 근무에서부터 스톡옵션 취득, 이사 사임 등에 이르는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전시스텍 영입 과정 노씨는 90년 9월 KT에 입사,13년 동안 근무하다 2003년 10월 희망 퇴직했다. 노씨는 2003년 8월 평소 알고 지내던 김모 변호사의 주선으로 코스닥 등록 업체인 우전시스텍 이명곤 대표를 소개받았다. 이 대표는 이후 노씨에게 공동대표직을 제의했다. 노씨는 2003년 9월 우전시스텍이 14억원 상당의 제3자 배정방식의 유상증자를 하는 과정에서 공동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빌려 2억 5900만원어치의 주식 28만 2600주를 샀다. 전 수석은 “노씨는 금오공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데다 KT에서 근무한 경력자로서 우전시스텍에 입사한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면서 “하지만 대표직 취임은 부적절하다고 판단, 기술이사직으로 입사토록 했다.”고 밝혔다. 빌린 주식인수대금의 경우,“불필요한 오해를 우려해 2개월 뒤인 같은 해 11월 돈을 빌려준 공동투자자들에게 주식 전량으로 반환했다.”면서 “주식인수를 통한 이득은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이 사장에게 수차례 ‘경고’ 민정수석실은 우전시스텍 이 사장에게 “대통령 조카라는 신분을 사업목적으로 이용하지 말 것을 수차례 경고하거나 당부했다.”고 강조했다. 이 사장은 노씨에게 국내 분야를 담당했을 때 구설수에 휘말릴 것을 감안, 중국 담당 영업이사 겸 기술이사를 맡겼다. ●스톡옵션 10만주 배정 노씨는 지난 2004년 3월 우전시스텍에서 스톡옵션으로 주식 10만주를 받았다. 노씨를 비롯한 임원 3명은 10만주씩, 직원 9명은 2만 100∼4만주를 받았다는 것이다. 현재 주가는 1770원이며, 권리행사는 3년뒤인 2007년 3월에나 가능하다. ●퇴사 및 지코프라임과의 관계 전 수석은 “노씨는 지난 5월23일 우전시스텍 부사장으로부터 우전시스텍이 지코프라임에 인수합병 계약을 체결한 사실을 처음 통보받았다.”면서 “노씨는 인수합병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됐다.”고 강조했다. 또 “노씨는 6월중 지코프라임 경영지원본부장으로부터 이사 사임요구를 받고, 노씨도 사행성 게임 관련업체에 근무하는 것은 대통령 조카로서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임시 주주총회 하루전인 7월5일 지코프라임 사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덧붙였다. 임시주총은 7월6일에 개최돼 노씨의 이사해임건이 처리됐다. 전 수석은 “민정수석실은 지난해 11월 무한투자의 우전시스텍 인수 당시부터 IT업체에서 인수합병회사로 넘어감에 따라 회사의 성격이 달라졌다고 보고 노씨에게 사직을 권유했다.”고 말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성인오락 바다이야기 상장회사 노대통령 조카 한때 이사 재직”

    “성인오락 바다이야기 상장회사 노대통령 조카 한때 이사 재직”

    사행성 성인오락인 ‘바다이야기’의 판매업체가 코스닥에 우회 상장하기 위해 인수한 회사에 노무현 대통령의 친조카가 이사로 재직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MBC가 18일 보도했다. MBC는 이날 밤9시 뉴스에서 머리기사로 “(바다이야기 판매업체인)지코프라임이 코스닥 등록업체인 우전시스텍을 인수하면서 코스닥 우회상장에 성공했고 주가도 올랐다.”면서 “우전시스텍 법인 등기부 등본에는 노지원이라는 이름이 있다. 노 대통령의 친조카”라고 밝혔다. 이어 “두 회사의 합병 과정에서 노씨가 무슨 역할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서 “노씨는 이사직을 사임하기 전에 스톡옵션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노씨는 노 대통령의 사망한 형의 아들로 노건평씨 슬하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청와대측은 “지원씨는 지난 2003년 IT업체인 우전시스텍에 입사했으며, 지난 7월 지코프라임이 우전시스텍의 대주주로 등기변경시 자진해 (오해를 받을까봐)우전시스텍을 퇴사했다.”고 노씨가 바다이야기 우회상장에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 제기를 일축했다. 청와대측은 이어 “우전시스텍과 바다이야기는 관계 없으며 노씨는 회사가 인수되자마자 그만둬 무관하다.”면서 “MB C가 부풀려 허위보도했다.”고 말했다. 특히 “지원씨는 우전시스텍 기술 이사 당시 스톡옵션으로 주식 10만주를 받았을 뿐 지코프라임 인수 관련 스톡옵션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노지원씨측은 MBC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은 지난 13일 서울신문 등 일부 언론사 간부들과의 오찬회동에서 “내 집권기에 생긴 문제는 성인 오락실·상품권 문제뿐”이라고 밝혀 관심을 끌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성격이 청와대가 직접 다룰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으나 정책상의 문제인지, 각종 의혹과 관련된 문제인지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았다. 이와 관련, 감사원은 18일 “게임장 및 PC방의 불법 사행행위 만연실태 전반에 대해 감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감사원 관계자는 “게임 사업에 대한 전반적 감사인 만큼 바다이야기도 살펴보겠지만, 바다이야기만 타깃으로 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은 “노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가 ‘바다이야기’ 게임기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가 허가를 밀어 붙였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여당 관련 인사들의 개입설은 전혀 근거 없으며, 야당이 또다시 부풀리기 공세를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명계남 노사모 전 대표는 자신이 도박산업을 통해 차기 대선을 위한 정치자금을 마련하고 있다는 내용의 인터넷 소문과 관련, 이날 측근을 통해 “악성 루머를 퍼뜨린 네티즌들에게 법적 대응을 하겠다. 확인 없이 기사를 쓴 일부 언론사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는 바다이야기 관련 수사 결과를 이르면 21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박홍기 전광삼 장세훈기자 hisam@seoul.co.kr
  • “임신땐 해고 공포”…멀고도 먼 2세 낳기

    “임신땐 해고 공포”…멀고도 먼 2세 낳기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위기의식이 높지만 정작 저출산 극복의 열쇠를 쥐고 있는 기업들은 여성의 출산과 임신이 달갑지 않은 모습이다. 범정부적으로 저출산 극복을 위한 구호는 요란하지만, 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임신과 출산이 해고 사유가 되고, 공직 사회 내에서도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 있다. 최근 5개월간 서울여성노동자회 평등의 전화에 접수된 상담 내용들은 출산친화 문화가 아닌 반(反)출산 문화의 현실을 보여준다. 평등의 전화측은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추진한다고 해도 현장에서 임신 여성들이 호소하는 어려움에는 변화가 없다. 임신과 출산 때문에 해고됐다는 상담도 여전히 많다.”고 전했다.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평등의 전화에 접수된 100여건의 모성보호 상담 사례 가운데 대표적인 경우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해고다. 서울의 모 치과에서 간호사로 2년째 근무하던 A씨는 임신 6개월이 되자 쫓겨날 처지가 됐다. 원장 의사로부터 보기 안 좋다는 이유로 사직 권고를 받은 것이다.A씨는 “원장이 임신해서 보기 안 좋고 힘들어 하니 일도 못한다며 나가라고 한다.”고 하소연했다. 제조업체에 근무하던 30세 여성은 지난 2월 출산휴가를 끝내고 출근을 하니 이미 책상이 치워져 있었다. 그는 “출산휴가 중에 회사에서는 이미 정리해고 대상으로 결정해 나 대신 계약직 직원을 채용해 놓고 있었다.”고 황당해했다. 미용업체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던 30대 B씨는 산전후 휴가가 끝나 출근을 일주일 정도 앞둔 상황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B씨는 “회사에 항의를 하니 다른 지점으로 옮기라고 하더라. 출산 전에는 지점장으로 근무를 했는데 다른 지점의 텔레마케터로 일하라고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직접적으로 해고 통보를 하지는 않지만 퇴사를 종용하는 사례도 많다. 엉뚱한 부서로 발령을 내거나 직급을 강등시켜 회사를 나가도록 유도하는 경우다.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던 C씨는 산전후 휴가 90일을 쓰고 복귀를 했더니 팀장에서 팀원으로 강등돼 있었다. 그는 “임신 전에 영업부 팀장을 맡고 있었는데 복귀 직전에 팀장을 면하게 됐으니 팀원으로 일하라는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와서 보니 영업 경험이 없는 엉뚱한 사람이 팀장으로 와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라는 소리인지 너무 분하다.”고 했다. 공기업에 다니는 20대 여성도 지난 3월 엉뚱한 배치를 받았다. 기술직으로 정산을 담당하던 그는 출산 후 90일 만에 출근을 했더니 고객창구 업무로 담당업무가 바뀌어 있었다. 30명 규모의 기업체에 다니던 D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사업주가 임신한 그의 얼굴에 대고 담배연기를 뿜어댄 것이다. 그는 “화가 나 항의를 했다가 그만 두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억울해했다. 임신과 출산이 죄가 되는 것은 규모가 작은 민간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출산친화 문화를 이끌어야 할 국가 기관에서조차 임신 여성을 홀대하는 상황이다. 어린이집 교사인 E씨는 지난달 출산 예정일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묶어쓰려다 담당 구청 직원에게 욕을 들었다. 어린이집 원장이 허락한 사안에 대해 담당 구청 직원은 “요즘 그런 용감한 X이 어딨느냐.”며 사직을 종용했다는 것이다. 실업수당을 받으려다 임신이 걸림돌이 된 경우도 있다. 직장에서 해고돼 고용안정센터에 실업수당을 신청했던 한 실직 여성은 ‘임신한 상태이기 때문에 구직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답변만 들었다. 그는 “남편은 행방불명이 된 상태고 두 돌된 아기까지 있는 가장이기 때문에 직장을 구해야 하는데, 배도 안 나온 사람에게 국가기관에서 임신 때문에 구직 능력이 없다고 할 수가 있느냐.”면서 “나중에 담당직원의 착오로 드러나긴 했지만 어이가 없다.”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모성보호 고용지원금 실효 거둘까 산전후 휴가, 유·사산 휴가, 육아휴직 등 법 테두리 속의 모성보호 규정은 많다. 당장 7월1일부터는 비정규직 여성 근로자를 위한 계속고용지원금이 지원되지만 법과 현실의 괴리는 크다. 현행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여성 근로자 300인 이상 또는 근로자 500인 이상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직장보육시설을 갖추거나 보육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직장보육 의무를 따르는 사업장은 전체 40%도 안 된다. 올 상반기 현재 직장보육 의무 사업장은 모두 817곳으로 이 가운데 직장 보육시설 등을 갖춘 곳은 302곳뿐이다. 지자체의 이행률이 95.5%로 높지만, 학교는 21.8%, 민간은 24.8%로 저조하다. 중앙 정부기관 역시 34.9%에 불과하다. 정부에서 출산·가족 친화 경영의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기업들의 동참을 유도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은 탓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직장 보육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 출산친화 문화를 유도하고 있지만, 의무로 규정만 할 뿐 제재도 없고 그렇다고 인센티브도 없어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법 의무규정 사항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근로기준법은 산전후 휴가 90일을 보장하고, 이 중 60일은 유급휴가로 정하고 있다. 육아휴직 역시 1년 이상 근무자가 생후 1년 미만의 영아를 양육해야 할 경우 10개월∼1년 동안 의무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육아휴직 이용률이 전체 26%에 불과할 정도로 모성보호가 열악하다. 특히 비정규직 여성은 일자리를 보전하는 것조차 어렵다. 때문에 정부는 이달부터 계약직, 파견직 등 비정규직 여성들이 출산 후에도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사업장에 비용을 지원키로 했다. 산전후 휴가나 임신 34주 이후 계약 기간이 끝나는 계약직 직원을 1년 이상 계속 고용하는 사업장에 매월 40만∼60만원을 고용비용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성보호에 대한 인식이 낮은 상황에서 계속고용지원금이 얼마나 실효성을 보일지 미지수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밀착취재] 사내부부 차별 여전

    [밀착취재] 사내부부 차별 여전

    사내부부가 늘고 있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면서 생긴 직장문화의 한 단면이다. 사내연애를 아예 금기시하는 기업도 있으나 사내결혼을 적극 권장하는 기업도 있을 정도로 사내부부에 대한 시선이 너그러워졌다. 결혼 적령기의 젊은이들이 일상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지내다보면 사내부부의 출현은 필연적이라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과 가정을 분리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강한 문화에서 사내부부는 아직 낯설다. 때문에 기본적 권리 침해조차 도외시되기도 한다. 새로운 문화인 만큼 바람직한 정착을 위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사내부부는 구조조정 1순위란 말이 있다.1990년대 말 외환위기 직후 통용됐던 말이다. 당시 모 금융사는 ‘경제적 충격이 덜한’ 부부사원 중 여성의 명예퇴직을 강요하고 무더기로 해고해 소송까지 가기도 했다.7∼8년 전의 일이다. 지난 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일부 회사에서는 여전한 현실이기도 하다. ●남편에게 해될까 ‘쉬쉬’ 대기업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A씨는 사표를 내야 할 처지에 처했다. 회사가 구조조정을 하면서 임신한 여성과 사내부부를 우선 해고한다는 소문이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A씨는 “사내커플인 데다 임신까지 해서 확실한 해고 대상인데 노조에서도 사내커플은 알아서 나가라는 분위기다.”라고 하소연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유명기업체 과장으로 있는 B씨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얼마 전 사내결혼을 했는데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 둘 중 한 명은 나가는 게 관행이라는 것이다. 사내부부였던 C씨는 이혼 때문에 궁지에 몰렸다.C씨는 “사내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하게 됐는데, 회사에서 전 남편과 함께 근무하는 게 불편할 거라며 그만두라고 한다. 공사를 확실히 구분했는데 이혼 때문에 쫓겨날 처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내부부·성차별 이중문제 이처럼 사내부부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이 여전히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여성노동 전문 상담창구인 ‘평등의 전화’에도 사내부부의 하소연은 심심치 않게 올라 온다. 사내부부라는 이유로 퇴직을 종용하는 것은 위법이지만, 구조조정시엔 관행처럼 사내부부가 타깃이 되다 보니 이혼을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10월 한 여성은 “회사 구조조정 때마다 사내부부가 타깃이 되는데, 남편과 법적으로 이혼을 하면 사내부부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느냐.”고 평등의 전화에 묻기도 했다. 사내부부에 대한 차별은 부당대우 문제뿐만 아니라 성차별 문제도 안고 있다. 해고 대상이 대부분 여성이고, 임신이나 출산시에도 사내부부라는 조건이 약점으로 작용하는 탓이다. 부산의 중소기업체에 다니던 여성은 “출산한 지 12일 만에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는데, 만약 부당해고로 문제를 삼으면 사내커플인 남편에게도 영향이 있을 거라고 해서 그냥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법을 위반한 기업을 실제로 처벌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사내부부는 부당해고를 당하더라도 한 쪽이 회사에 남아 있기 때문에 회사에 불만을 드러내지 못한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내부부 부당 해고는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지만 실제 신고가 들어오는 경우가 없어 정부에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입사동기 부부가 털어놓은 속얘기 임왕섭(34·KT&G 브랜드국 과장)·김경선(31·KT&G 북서울본부 대리)부부와 김영곤(32·삼성SDS 전자해외팀 대리)·오윤정(30·삼성SDS 전자해외팀 대리) 부부는 사내부부다. 회사라는 공적인 공간에서 부부라는 개인적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에게서 사내부부의 속얘기를 들어봤다. 왕섭 아내와는 입사동기인데 발령을 다른 지점으로 받았지만 맡은 업무가 비슷해서 힘들 때나 고민있을 때 전화를 주고 받다보니 정이 들었다. 영곤 신입사원 수련회에서 지금 아내를 처음 봤는데 같은 부서에 배치받은 게 계기가 됐다. 워낙 해외출장이 많은 부서라 같이 출장다니면서 가까워졌고 2년 정도 몰래 데이트를 했다. 왕섭 4년 넘게 연애했는데, 거의 첩보영화를 찍는 수준이었다. 퇴근 후에 만날 때도 회사에서 몇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접선하듯이 몰래 만났고, 회사 내에서는 꼭 필요할 때만 복도 계단 통로에서 살짝 만나곤 했다. 윤정 사내부부라서 좋은 점이 많다. 같은 일을 하기 때문에 이해도가 높다. 업무상 해외출장도 많고 야근도 많은데 서로 다른 일을 한다면 여자 입장에서 남편을 신경쓸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런데 같은 회사 사람이다보니 굳이 설명을 안 해도 당연하게 생각해서 일할 때도 편하게 할 수 있다. 경선 예를 들어 회식이 늦어져도 서로의 상사 스타일을 아니까 그러려니 하는 식이다. 대화거리가 많은 것도 장점이다. 영곤 부부간에 대화가 없는 경우도 많은데 사내부부의 경우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많아진다. 서로 업무에 대해 잘 모르면 아예 얘기조차 안 꺼내게 되질 않나. 특히 힘든 일이 있을 때 위안을 받을 수 있어 든든하다. 경선 물론 사내부부라는 조건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한 사람이 사내에서 자기관리를 잘못하게 되면 그 흉이 상대에게까지 돌아가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사내부부라는 걸 항상 의식하게 된다. 그래서 일이나 인간관계에서나 한 번 더 생각하고 신중하게 된다. 회사생활뿐만 아니라 가정사에서도 남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도록 긴장하게 된다. 왕섭 남자는 특히 왕따가 될 수도 있다. 너무 투명한 유리지갑이어서 보너스조차 따로 챙길 수가 없다. 친구들끼리 2차,3차를 가는 경우에도 친구들이 알아서 열외를 시켜줄 정도다. 영곤 회사의 시선도 신경쓰이는 부분이다. 결혼 전에 사내커플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봤다. 경영진의 호응도가 낮은 편인데 가정사를 회사까지 가져온다, 보안유지가 힘들다 등의 이유 때문이더라. 우리의 경우는 특히 결혼 후에도 같은 팀에서 일하고 있다. 윗선에서 부서배치를 달리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그럴 필요성을 못 느낀 것 같다. 회사에서 신뢰를 보여준 만큼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더 조심한다. 윤정 남편과 사내에서는 둘이서 따로 행동을 하지 않기로 했다. 호칭도 회사에 들어서는 순간 서로 공식 직급을 부른다. 왕섭 회사에 위기가 있을 때 사내부부가 타깃이 된다는 점도 항상 염두에 둔다. 아예 와이프에게는 우리 중 하나가 나갈 일이 생기면 내가 나간다고 공언을 해놨다.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서 남자가 직장을 옮기기가 쉽지 않나. 하지만 그런 위기의식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미래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자극제가 된다. 정리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사적인 문제로 업무에 지장” CEO 60% “사내결혼 반대” 사내부부의 증가는 기업의 새로운 고민거리다. 연애나 결혼은 사생활이지만, 사내 분위기나 업무와 직결돼 모른 척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전 직원의 7% 정도가 사내결혼을 했다.1만 2000명의 직원 중 사내부부가 424쌍이다. 우리은행측은 “사내결혼을 반대하지도 않고 특별히 장려하는 분위기도 없다. 다만 인사발령 때 부부가 너무 떨어지지 않도록 고려해 배치한다.”고 했다. 유한킴벌리는 사생활은 사생활이라는 주의다.1700명의 사원 중 46명이 사내결혼을 했다. 사내 동아리 활동이 활발해 동아리에서 만나 결혼하는 커플이 많다. 부부가 원하면 같은 사업장에 배치할 정도로 개방적이다. 삼성SDS도 사내부부가 많은 기업 중 하나다. 직원 7100명 중 사내부부가 90쌍 정도다. 팀 프로젝트와 밤샘작업이 많고 여성인력 비율이 높다 보니 사내커플이 많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모든 회사가 개방적이진 않다. 공개적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사내연애를 금지하거나 사내결혼 때 한 쪽을 퇴사시키는 곳도 있다. 사측의 이같은 고민은 사내결혼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다. 헤드헌팅업체 아인스파트너가 직장인 1100여명과 최고경영자(CEO) 15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직장인들의 70% 이상이 사내결혼에 긍정적인 반면 CEO는 60% 이상이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CEO들은 사내결혼을 반대하는 이유로 ‘사적인 문제가 회사에서도 이어져 업무에 지장이 생긴다.’,‘회사에 이로울 것이 전혀 없다’,‘출산이나 육아지원에 대한 책임이 무거워진다’는 점들을 들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20&30] 나이에 걸맞지 않게…

    흔히 20대는 사회로 처음 진입해 좌충우돌하는 시기,30대는 자기 자리를 찾아 바닥을 다지는 시기로 일컬어진다. 하지만 이런 공식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몇 살이나 됐다고 벌써부터 그러느냐는 핀잔이나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렇게 사느냐는 구박에도 개의치 않는 그들, 또래답지 않은 2030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애늙은이 20대 “건강이 최고 따라와” 입사 3년차 이지은(27·여)씨의 신조는 ‘건강이 최고´이다. 세상에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씨는 또래와 비교도 안 될 만큼 건강을 챙겨 주변에서 ‘애늙은이´란 소리를 듣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보약은 기본이고 조금이라도 기력이 떨어진다 싶으면 대추, 해바라기씨, 늙은 호박 등 몸에 좋다는 음식은 모조리 구해 달여 먹는다. 지난해에는 뱀술을 구해 먹는 바람에 가족들까지 기겁을 했다. 직장에서는 비공식 동호회인 ‘몸보신 클럽´에 가입해 있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1주일에 한 번 정도 몸에 좋다는 보양식을 먹으러 다니는 모임이다. 이씨를 제외하고는 회원 대부분이 40∼50대다. 지난주에는 애인과 데이트를 하는 대신 회원들과 행주산성 근처에 가서 오리고기를 먹고 왔다. 너무 일찍 유난을 떤다고 핀잔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씨는 이것이 자기를 소중히 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당당히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취업준비와 회사생활이 힘들다고 어머니가 먼저 챙겨주셨는데 좋은 음식과 보약을 먹고 효과를 보고 나니 이제는 제가 알아서 찾아 먹어요. 건강은 젊었을 때 챙기는 게 최고 아니겠어요?” 지난해 가을 취직한 김영진(28)씨는 지금까지 밖에서 점심식사를 해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도시락을 싸오거나 구내식당으로 간다. 대학에 다닐 때에도 하루에 최소 두 끼는 학생회관 식당에서 해결하는 소문난 ‘학관 마니아´였다. 회식을 할 때에도 회비를 내고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다 먼저 일어나서 꼭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에 간다. 이런 절약습관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한동안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중학교 때 생겼다.“그때는 어쩔 수 없이 아꼈지만 지금은 이게 옳다고 생각해서 아낍니다. 남들은 젊은 사람답지 않게 궁상을 떤다고 하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그 덕에 입사동기보다 두 배는 더 많이 돈을 모을 수 있었으니까요.” 학원강사 김현지(26·여)씨는 쇼핑 전문가다. 하지만 또래들처럼 백화점이나 인터넷 쇼핑몰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재래시장에 주로 간다.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도 꼭 오후 10시 이후에 찾는다. 바가지를 안 쓰기 위해서다. 이때쯤 도매상에 가면 물건을 사러 오는 소매상들로부터 시세와 물가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들을 수 있다. 김씨의 책상 위에는 채소, 우유, 생선 등 가격을 근처 시장과 슈퍼마켓별로 비교해 적어놓은 메모지가 붙어 있다. 업데이트는 1주일에 한 번, 이 메모를 보고 슈퍼마켓을 돌며 가장 싼 물품들을 산다. 주변상가에는 ‘깍쟁이 처녀´로 소문이 다 났다. 꼭 어머니 대신 장을 봐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워낙 즐기다 보니 어머니도 딸에게 장보는 일을 위임했다. ‘20대 애늙은이´ 중에는 이렇게 일찍 철 들었다는 평을 받는 사람들도 있지만 너무 눈치 빠르게 행동해 얄밉다는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다. 회사원 박모(29·여)씨는 두 살 차이 나는 1년 후배 여사원만 보면 어린 나이에 왜 저렇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후배는 차장, 부장 등 자기 인사고과와 관련 있는 상사의 집안 대소사를 절대로 놓치는 법이 없다. 생일이나 장례식 같은 잡다한 경조사는 물론이고 어떻게 알았는지 결혼기념일에 꽃다발까지 챙겨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커피 심부름 같은 일도 먼저 발벗고 나서 동료 여직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주변에서는 군대에라도 다녀온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한다. 박씨는 “윗사람에게는 그렇게 살갑게 잘하면서 후배들은 얼마나 견제하는지 회식 자리에서 자기가 신경쓰는 상사의 옆에는 앉지도 못하게 한다.‘늙은 여시´라고 악명이 자자하던 입사 20년차 40대 노처녀 선배도 ‘어린 여시´가 더 무섭다며 두 손 들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철없는 30대 “백수, 내스타일이야” 백수 3년차인 김모(32)씨의 별명은 ‘국가시험 전문가’이다. 대학 2학년 때부터 행정고시를 준비하다 계속 미역국을 먹고 포기했고, 졸업 직후에는 교사 임용고사를 준비하다 성격에 맞지 않는다며 그만뒀다. 운이 좋아 대학 교직원으로 취업했지만 답답하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한 학기를 겨우 채우고 사표를 냈다. 지금은 3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지만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등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것저것 번갈아가며 매달린다. 물론 결과는 모두 낙방. 가족과 친구들은 이제 제발 한 우물만 파라고 안달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직 시간은 많다.”고 여유만만이다. 김씨의 이런 ‘시험벽’에 애인은 떠나간 지 오래이고, 생활패턴이 달라진 친구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소외되지만 김씨는 아직도 “이것이 내 스타일”이라며 오늘도 꿋꿋이 도서관을 찾는다. 4년째 공사 시험을 준비중인 이모(31)씨는 졸업 직후 딱 한 번 회사생활을 하다가 깐깐하게 구는 선배와 한바탕 맞짱을 뜨고 스스로 그만둔 경우다. 퇴사 직후 철밥통을 찾겠다며 공기업 취업준비를 했지만, 아직도 소싯적 버릇을 못 버린 것이 문제. 이씨는 지금도 스타크래프트 등 온라인 게임을 꼬박꼬박 하루 2∼3시간씩 하고 있다. 본인은 취업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항변하지만, 주변에서는 그 버릇 버리고 공부에 올인하기 전에는 절대 취업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혀를 찬다. 결혼시장에도 또래답지 않은 기준을 대입시키는 30대들은 적지 않다. “적어도 결혼하려면 제대로 된 사람과 만나야 하는 것 아닌가요.” 회사원 정모(37·여)씨의 맞선은 기억나는 것만 120여차례다.20대 후반, 속칭 소개팅으로 시작한 자리가 어느덧 맞선이라는 이름으로 변했지만 배우자 후보를 고르는 그의 신념만은 10여년간 변한 게 없다. 기준은 ‘운명 같은 사람’. 그는 뭐라고 꼭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몇 차례 만나보고 감흥이 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씨는 “무슨 멜로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극적인 만남은 아니더라도 뭔가 가슴시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평생을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확실하게 느낌이 오는 사람이 없네요.” 그간 죽자고 정씨를 따라다닌 사람만도 3∼4명이나 됐다. 학벌이나 직장, 가문 등 일반적인 기준으로 따지면 결코 처지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상대의 일방통행’에 맘을 내줄 순 없었다고 했다. 정씨는 “30대 후반에 단지 느낌이 오는 남자를 찾는 걸 보고 친구들도 철없다고 하지만 한번 ‘이 사람이다.’라는 느낌을 받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한편 결혼 정보업체 등에 따르면 혼기가 꽉 찬 30대들 가운데도 이상이 지나치게 높거나 10대 같은 사랑을 꿈꾸는 남녀가 적지 않다. 주로 남성은 상대의 ‘외모’, 여성은 상대의 ‘직업’이나 ‘나이’ 면에서 현실파악이 안 된다는 것. 웹 기획을 하는 고모(34)씨는 앞선 정씨보다는 기준이 뚜렷했다. 그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대장금의 이영애 같은 스타일이다. 정확히 따지면 얼굴이라고 했다. 그는 “물론 이영애씨와 똑같지는 않더라도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성을 만나면 성취동기가 높아져 연애에도 최선을 다할 테고 당연히 성공률도 높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결혼정보업체 행복출발 오미경 팀장은 “자신은 원래 어려보이는 얼굴이라며 연하의 남성을 찾는 여성이나 특정연기자와 닮은 여성과 만나고 싶다며 외모를 강조하는 회원들을 보면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면서 “나이에 걸맞은 생각이 꼭 옳다고 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배우자를 찾는 데 있어선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이직때마다 핵심기술 ‘슬쩍’

    삼성전자와 개발용역을 맺은 부품 제조업체에서 삼성 휴대전화 회로도 등을 빼낸 연구원이 기소됐다. 얼마 전 카자흐스탄 업체로의 휴대전화 기술유출 시도가 적발된데 이어 관계사에서의 기술유출 정황이 포착된 셈이다. 어디서 샐지 모르는 첨단기술에 대한 보안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부장 이건주)는 27일 회사를 옮길 때마다 전 회사의 핵심기술을 빼돌린 연구원 김모(27)씨를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김씨는 2004년 11월 휴대전화 관련 장비 제조업체 E사에서 P사로, 이듬해 다시 K사로 직장을 옮겼다. 옮길 때마다 그는 휴대전화 회로도 파일 등을 유출했다. 특히 부품 제조업체인 E사는 삼성전자와 개발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13억여원을 들여 국내와 일본에서 동시에 통화가 가능한 서비스를 연구하고 있었다. 김씨는 퇴사하며 두 회사가 공유하고 있던 휴대전화 회로도 등 파일 1만 1400여개를 통째로 빼낸 뒤 P사로 옮겼다. 1년 뒤 다시 K사로 이직한 김씨. 이번에는 P사가 개발 중이던 최신기종인 위성DMB 휴대전화 샘플 모델의 회로도를 갖고 나왔다. 개발에만 64억여원의 연구비가 투자된 모델이다. 검찰은 P사가 동종업계 이직규정을 어겼다며 김씨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자 수사에 착수, 김씨의 상습적인 기술유출 행각을 밝혀냈다. 한편 K사측은 “김씨는 스카우트가 아닌 공채로 들어왔다. 관련 분야도 휴대전화 오디오쪽이어서 회사는 기술유출과 무관하다.”라고 해명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10개 은행 작년 신입사원 퇴사율 1%

    10개 은행 작년 신입사원 퇴사율 1%

    은행권이 신입사원 퇴사율 0%에 도전하고 있다. 서울신문이 5일 국책은행을 포함해 10개 은행의 지난해 하반기 채용 신입사원들의 퇴사율을 조사한 결과, 퇴사한 직원의 비율이 1%에 그쳤다. 이들 10개 은행은 하반기 채용에서 모두 1096명을 선발했고, 지난 3월말 현재 11명만이 은행을 떠났다. 반면 취업전문업체 인크루트가 최근 대기업 62개사, 중소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지난 1년간의 ‘신입사원 퇴사율’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대기업의 평균 퇴사율은 22.8%, 중소기업은 30.8%나 됐다. 인크루트 최승은 과장은 “3개월 만에 퇴사한 인원과 1년 내 퇴사한 인원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신입사원 퇴직이 대부분 3개월 이내에 이뤄진다는 점과 전통적으로 업무 강도가 높은 은행권의 퇴사율이 높았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1%대에 그친 것은 놀라운 결과”라고 말했다. ●산업·수출입은행은 ‘0%´ ‘신이 내린 직장’ 또는 ‘신도 모르는 직장’ 등으로 불리며 은행 취업준비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각각 67명과 29명을 채용했는데 아무도 그만두지 않아 퇴사율이 ‘0%’였다. 역대로 퇴사율이 10%를 넘던 시중은행들도 비율이 제로(0)에 가까워졌다. 30명을 뽑은 SC제일은행과 18명을 뽑은 외환은행에서는 아무도 퇴직을 하지 않았다. 200명 이상의 대규모 채용을 실시한 국민은행과 우리은행도 각각 2명과 1명만이 직장을 그만뒀다. 퇴사자가 가장 많은 은행은 162명을 뽑은 신한은행이었지만 이 역시 퇴사자는 3명에 불과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최근 은행을 떠난 1명도 수년간 치료를 요하는 지병 때문에 은행측의 휴직 권고에도 불구하고 폐를 끼치기 싫다며 굳이 사표를 냈다.”면서 “은행 역사상 처음으로 신입사원 퇴사율 0%를 기록하려 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입사후 후견인제도 등 관리 철저 은행권의 퇴사율이 낮은 이유로는 다른 업종에 비해 월등히 높은 연봉이 우선 꼽힌다. 인크루트 조사를 보면 금융업 신입사원 평균 연봉은 3156만원으로 2위 전기전자업(2890만원)보다 266만원이나 많다.2위와 3위(건설업·2850만원)의 차이는 40만원에 불과했다. 더욱이 증권·카드·보험을 뺀 순수 은행권의 신입사원 평균 연봉은 무려 3445만원이나 된다. 퇴사율이 낮은 또 다른 이유로는 은행권의 철저한 ‘맞춤형’ 인재 선발 방식에 있다. 지난해부터 시중은행들은 학력과 연령 제한을 철폐하거나 토익 등 영어 점수 기준을 낮춘 반면 다양한 면접으로 충성도가 높은 인재를 집중적으로 찾았다. 국민은행의 경우 2004년 하반기에 채용한 인원 258명 중 25명이 퇴사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전공 제한을 없애고, 토익 성적 기준도 낮추고, 지방대생 채용 비중을 늘리는 등 ‘맞춤형’ 인재를 뽑은 결과 퇴사율이 크게 줄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에는 입사 후 6개월 동안은 동전 세는 일만 했는데 요즘은 지원할 때부터 전공 분야를 선택하게 한다.”면서 “신입사원들의 직무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중도하차하는 사례가 크게 줄었다.”고 밝혔다. 입사 후 철저한 관리도 퇴직을 막는 중요한 요소다. 시중은행들은 대부분 기존사원과 신입사원을 1대 1로 연결하는 멘토(후견인)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면접시험을 연수원에서 2박3일 동안 실시했던 우리은행은 행장 명의로 신입사원 부모들에게 꽃다발을 배달하는 정성을 보였다. 외환은행은 사령장 수여식에 가족들을 초청했고, 모든 신입사원들을 일본 오사카로 연수를 보내기도 했다. 외환은행 인사팀 관계자는 “신입사원의 퇴사율이 높으면 은행의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물론 추가 채용에 따른 비용도 만만치 않다.”면서 “조직에 대한 충성도와 성실성 위주로 뽑는 채용이 지난해를 기점으로 거의 정착됐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방송 진행자 변신 ‘베스트셀러 작가’ 공지영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방송 진행자 변신 ‘베스트셀러 작가’ 공지영씨

    나는 마흔 셋이고 마흔 세 해를 살아온 힘으로 너를 사랑한다…. 그랬다. 온몸으로 사랑했다. 열심히 마음주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좌절 앞에서 ‘진심’이라는 지줏대에 의지해 일어섰다. 그렇게 마흔 셋까지 열렬히 살아오면서 낳은 자식들, 즉 ‘봉순이언니’ 150만부,‘고등어’ 70만부,‘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가 40만부에 이른다. 또 있다. 최근에 발간된 ‘사랑후에 오는 것들’은 벌써 20만부 이상 팔렸다. 지난해 봄 발간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배우 강동원과 이나영의 주연으로 한창 영화촬영 중이어서 곧 스크린을 통해 재현된다. 더 이상 무슨 주저리가 필요할까. 이 시대의 베스트셀러 작가 공지영(43)씨.1980∼90년대를 치열하게 살면서 우리 문학의 특별한 개성으로 여전히 수많은 독자들의 가슴에 깊이 파고들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말 잘한다는 얘기 많이 들어 이런 그가 요즘 ‘외도’라는 신선한 맛을 보고 있다. 다름 아닌 방송 진행자로 변신한 것. 지난 13일부터 매일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공지영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월∼토 오후 4:05∼5:00 98.1㎒, 연출 정혜윤) 코너를 맡아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88년 중편 ‘동트는 새벽’ 이후 소설가의 길을 쭉 걸어왔기에 얼핏 ‘방송 출전’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서울시내 한 음식점에서 공씨를 만났다. 시간 약속 때문에 집에서 서둘러 나와서인지 머리모양은 덜 정돈된 듯한 ‘집안형’이었다. 옷차림은 소탈하고 수수한 아줌마의 느낌이다. 먼저 방송 진행의 소감을 물었다.“시간 제약만 안 받으면 재미있어요. 원래 인물탐구를 좋아하거든요. 다양한 사람을 만나잖아요.”라고 대답했다. 또 “고등학교와 대학 다닐 때 방송반에서 아나운서 경험을 했어요.”라고 덧붙인다. 이어 “시사평론가 정범구씨가 진행하는 CBS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됐어요. 말도 잘 한다고 판단했던지 담당 PD한테 연락이 왔더군요. 처음엔 거절했는데 나중에 고집이 꺾였죠.”라며 웃는다. 대신 조건을 내세웠다고 했다. 진행을 하면서 출연자들에게 예의나 차리는 식의 입에 발린 말로 동의해주는 것은 탈피하겠다고. 즉 ‘공지영식’으로 솔직하게 진행하는 여유를 달라고 했다. 흔쾌히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방송진행에도 독특한 스타일이 어김없이 반영돼 톡톡 눈길을 끈다. 예를 들어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최고위원과 인터뷰에서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느냐.”고 질문한다.“옳은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라는 대답에 공씨는 즉각 “왜 혼자만 옳다고 생각하느냐.”고 치받는다. 영화배우 안성기씨한테 “연애 몇번이나 해봤어요.”라는 질문을 툭 던진다. 안씨가 부인과의 사랑 얘기로 피해가려(?) 하자 공씨는 “아니요, 아내는 빼고요, 첫사랑과는 왜 헤어졌어요.”라고 지체없이 잡아당긴다. 이에 대해 “푼수처럼 구니까 오히려 편안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라고 전한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말을 잘 못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하자 “글쎄요, 어렸을 때부터 말 잘한다는 얘길 많이 들었어요. 사물을 늘 신선하게 아이의 눈으로 보고 싶거든요.”라고 일축해버린다. 공씨는 인터뷰 도중 물을 자주 마셨다.“어제는 술도 안마셨는데…, 잠을 못자서 그런가.”라고 설명했다. 사실은 어젯밤 집에서 그냥 우두커니 앉아 뭔가 골똘히 생각하다보니 두시간밖에 못잤다고 고백했다. 자연스럽게 술 얘기가 나왔다. 공씨의 술친구들은 두 그룹이 있다. 연세대 81학번 출신들로 모인 언론인·화가그룹, 또 얼마전에 생긴 ‘공사모’가 있다. 저녁 7시에 만나 새벽 2시까지 술판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술버릇은 음주가무. 적당히 술에 취하면 대부분 노래방으로 가 노래와 현란한 춤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애창곡은 ‘광화문연가’와 혜은이의 ‘열정’이다.1차 만나는 장소는 주로 홍익대 주변이다. 거나하게 취해도 집앞까지 데려다 주는 친구들이 있어 걱정이 없다고 했다. 그들 중 혹시 애인이라도? 그러자 “정들었다면 단둘이 마시지 왜 몰려다녀요?”라고 즉각 반박한다. ●“결혼하려면 다섯 남자와 동거를” 채플시간에 강의 방송 외에 다른 외도, 강사 러브콜은 없는지 궁금했다.“얼마 전이더라, 이화여대 채플시간에 강의를 한 적이 있었어요. 거기서 ‘결혼이 중요하다, 이혼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결혼하려면 다섯남자와 동거를 해보라.’는 식으로 했지요. 그것도 채플시간에. 다음부터는 연락이 안오데요.” 이어 소설이란 강의를 통해 가르칠 수가 없다는 지론을 편다. 음악과 미술, 무용 등과 달리 소설작법에는 어떤 정형이 있는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인간이라는 소프트웨어가 갖춰지면 그 자체가 소설의 시작이라는 주장이다. 공씨는 어렸을 때부터 시를 즐겼고 원래 시인이고 싶었다.85년 기성문단에 첫 발표된 것도 시였다. 하지만 곧 방향을 틀었다. 시는 천재의 장르이자 타고난 재능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노력하는 소설’이 좋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책을 내는 족족 베스트셀러가 되는 까닭을 물었다. 잠시 망설이더니 “원래 지겨운 거 싫어해요. 성격도 급하고 직설적이지요. 쓸 때, 읽는 독자들이 바로바로 책장을 넘기는 것을 늘 염두에 두지요.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그럴 듯하게 잘 하나봐요.”라며 웃는다. 얼마나 벌었을까.“아직 빚도 다 못갚았어요.”라고 했다. 몇해전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 인간답게 사는 게 뭔지 절실해 강원도 평창에 집을 하나 큰 맘 먹고 사두었다고 했다. 주로 여름에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공간이다. 주위에 텃밭이 조금 있어 배나무 몇그루 등을 심어놓았다. 또 고3인 큰딸과 초등학생인 두 아들 등 네식구를 위해 자전거를 장만했다. 공씨 자신은 중학교때 이후 30년 만에 자전거를 샀다. 자택인 성남시 분당구 탄천 주변을 식구들과 가끔 자전거로 달린다. 아이들은 성씨가 각각 다르지만 어머니를 잘 따르고 화목하게 지낸다. 큰딸이 엄마의 기질을 닮아 글을 썩 잘 쓴다고 했다. 몇군데 대학에서 벌써 오라고 해 요즘 기세가 등등해졌다며 웃는다. 그러나 큰딸에게 이러쿵저러쿵 간섭 안 한다. 다만 “문학은 일단 놔두고 딴 곳의 삶을 봐라. 무슨 책이든 읽어라. 세상 어디든 가봐라. 밀림도 가고, 사막도 가고, 우주도 가봐라.”라는 말을 자주 해준다. 공씨는 잡·박식 스타일. 한달에 책구입 비용으로 적게는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쓴다.‘해방전선의 재인식’이라는 사회과학 서적을 비롯해 부동산, 요리, 탤런트 수기, 여행, 맛집멋집 등의 다양한 책을 구입한다. 잠 안오고 배고플 땐 여행과 요리책을 즐겨본다. 집안에는 6000여권의 책을 꽂을 수 있는 책장이 있는데 오래전부터 꽉 찼다. ●다음달 10년 만에 두번째 산문집 펴내 공씨는 요즘들어 글쓰기가 더욱 여유로워졌다. 한국사회도 많이 변했고 시대적 조건이 성숙해진 덕분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유쾌·경쾌하고 발랄한 소설을 쓸 생각이다. 우선 다음달 10년만에 두번째 산문집을 내고 오는 6월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주제로 한 월간지에 연재할 예정이다. “결혼과 이혼에 43년 꺼둘렀어요. 첫사랑에 결혼했고 헤어지고 또 사랑했어요. 그때는 너무 싫었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다 이해와 용서가 돼요. 요즘 곰곰이 생각하면 저 멀리서 제 인생의 방향을 나침반의 각도처럼 가리키는 것 같아요. 여러 시냇물이 한군데 모이듯 편해진다고나 할까요.” 지나온 세월이 40년이라면 400년을 산 것 같다고 했다.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봐서 여한이 없단다. 공씨는 얼마전 자신의 사후(死後)에 누군가가 평전을 써준다면 머리에 올리고 싶은 글을 생각해봤다.‘나 열렬하게 사랑했고 열렬하게 상처받았고 열렬하게 좌절했고 열렬하게 슬퍼했으나, 모든 것을 열렬한 삶으로 받아들였다. 하느님, 이제 그만 쉴래요.’라고. 공씨는 사랑하지 않는 순간 영혼은 죽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이 70 넘어서도 연애를 할 것이고 그때에도 자신의 속을 다 퍼주고 말겠다며 활짝 웃는다. 주말매거진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3년 서울 출생 ▲81년 중앙여고 졸업 ▲85년 연세대 영문학과 졸업 ▲85년 무크지 ‘문학의 시대’에 시 ‘이태원의 하늘’ 발표. ▲87년 구로공단 근처의 전자부품제조업체에 취업했다가 한 달 만에 프락치에게 걸려 강제 퇴사. ▲88년 ‘창작과 비평’에 중편소설 ‘동트는 새벽’으로 등단. ▲2006년 3월 CBS라디오 ‘공지영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진행 ■ 주요 작품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89년),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91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93), 고등어(94), 착한 여자(97), 봉순이 언니(98), 별들의 들판(2004),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05), 시랑후에 오는 것들(05) 등. ■ 수상경력 21세기문학상(01), 한국소설문학상(01), 오영수문학상(04) 등.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신증권-양재봉 명예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신증권-양재봉 명예회장家

    주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큰 大 믿을 信’ 하면 대신증권을 단박에 떠올린다. 한때 큰 주목을 받았던 광고 카피가 알반인의 뇌리에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숙한 이름만큼 회사의 규모나 역사는 일반인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대신증권은 증권업계에서 여타 대형 증권사와 다른 몇가지 ‘독자적인’ 위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우선 재벌 계열이나 은행 계열이 아니면서 40년간 업계 상위권을 지켜왔다.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이후 재벌이나 은행을 끼지 않은 증권사가 살아남기 힘든 환경속에서도 여전히 ‘빅5’ 안에 든다. 대신증권은 또 선진국형 증권 시스템을 가장 먼저 도입한 곳으로 꼽힌다. 증권사 흑판에 분필로 시세를 적던 시절 최초로 ‘전광판’을 도입했다. 이후 ‘온라인 거래의 최강자’란 명성을 얻었고 사이버 누적거래 1위 자리를 지켜 오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3세 경영’을 잇게 된다.‘거상(巨商)의 꿈’ 하나로 빈손으로 대신증권을 일군 양재봉(81) 명예회장의 역할을 현재 아들과 며느리, 사위가 잇고 있으며 머지않아 손자가 이 역할을 대물림받을 전망이다. ●빈손 ‘송촌’ 거상의 꿈 양 명예회장은 1925년 전남 나주군 나주읍 송촌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에 대한 애착으로 호를 ‘송촌(松村)’으로 지었고 훗날엔 이 명칭을 딴 ‘송촌문화재단’을 설립했다. 그가 거상의 꿈을 품기 시작한 것은 송촌을 떠나 당시 ‘수재의 집합소’로 불리던 목포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15대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나주에서 간 유일한 합격자’가 된 양 명예회장은 이곳에서 ‘일본인들에게 뒤져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공부하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꿈도 키웠다. 그의 첫 목표는 한국은행 전신이었던 조선은행 입사였다. 양 명예회장은 “대학 졸업자들도 번번이 낙방하는 판에 상업학교 재학 중에 그 좁은 관문을 뚫어 자부심이 컸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이 때 생긴 ‘하면 된다.’는 자신감은 모험에 대한 열망으로 자라났다. 하지만 그는 안정된 은행원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다. 거상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후 장사를 할 기회를 살피며 아이디어만 생기면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목포와 나주 일원의 쌀을 사서 부산에 파는 미곡상을 하기도 했고, 양조 사업에도 손을 댔다. 겁없이 뛰어든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다시 조흥은행 신입 은행원의 자리로 돌아와야 했고, 이후 여러 은행을 거치면서도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끊임없는 새 사업 궁리끝에 시작한 극장 사업에서 성공하면서 그는 자신감을 되찾게 된다. 금융업 경영자로서 본격 나선 것은 한일은행 서울 청량리 지점장으로 재직하던 1970년대초 무렵이다. 지점장 부임 1년도 안 돼 예금 계수를 2배로 만들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어 단자회사 설립을 권유받던 양 명예회장은 미원그룹 임대홍 회장, 해태제과 박병규 사장과 함께 ‘대한투자금융’을 설립했다. 증권 회사 설립은 그로부터 1년 뒤 일본 방문을 계기로 추진한다. 도쿄에 있던 ‘노무라증권연구소’의 선진적 체계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돌아오자마자 증권업 진출을 서둘렀다. 당시 정부는 소규모 증권사 난립을 경계해 새 증권회사 설립 허가를 꺼려했다. 양 명예회장은 75년에 직원 11명의 ‘망해가던’ 증보증권을 전격 인수한다. ●망해가던 증보증권 잘나가는 대신증권으로 증보증권은 경영 실적이 형편없는 하위권 회사였지만 그는 ‘꿈에도 그리던 증권회사를 세웠다.’는 생각에 희망에 넘쳐 있었다. 우선 회사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대신증권’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이름을 바꾼 뒤부터 대신증권은 연일 승승장구했다.75년 대기업들이 탐내던 명동 국립극장 입찰에 성공해 ‘주식 투자자들의 베이스 캠프’로 만들었다. 77년 양 명예회장은 대한투자금융 전무이사직을 버리고 대신증권 사장으로 나섰다. 이어 업계 최초로 ‘전광시황 속보판’을 세우는 등 혁신을 거듭한 끝에 업계 2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성공 가도를 달리던 양 명예회장에게도 암흑기는 찾아온다. 사장 취임 4개월만에 회사 영업부장이 고객과 회사의 돈을 빼돌려 피해자만 100명에 이르는 대형 금융사고를 일으켰다. 대신증권과 자신의 신뢰에 엄청난 손상을 입힌 사고였다. 그 여파가 얼마나 컸던지 양 명예회장은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3년간 시골 농장에서 가축을 기르며 은둔 생활을 해야 했다. 다시 증권계로 돌아온 것은 81년. 대신증권의 대주주들이 양 명예회장을 찾아와 쓰러져가는 대신증권을 살려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가 대신증권 사장에 복귀했을 때, 회사는 이미 자본잠식 상태였다. 그는 “죗값을 치르겠다.”는 심정으로 일을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흐트러진 임직원들을 단합시키는 것이었다. ‘구두쇠 100일 작전’,‘개미작전’ 등 전 직원의 단합을 유도하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를 짜냈다. 잘 나가던 대한투자금융 주식을 주고 미원 임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대신증권 주식을 인수, 최대 주주가 됐고, 회사 재건에 ‘올인’했다. 다행히 80년대 중반 국내 증시는 최고 활황의 시기를 맞이한다. 양 명예회장은 대신증권의 회생에 성공해 84년 대신경제연구소,86년 대신개발금융,87년 대신전산센터,88년 대신투자자문,89년 대신생명보험,90년 송촌문화재단,91년 대신인터내셔널유럽 등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대신을 명실상부한 종합금융그룹으로 만들었다. ●신뢰 중시 경영으로 IMF 극복 하지만 그에겐 또 한번의 어려움이 닥친다.IMF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연 20%대의 살인적인 고금리 상황이 발생해 수많은 기업이 어려움에 빠졌다. 대형 증권사인 동서증권, 고려증권이 환매 사태로 하루아침에 부도에 이르면서 ‘재벌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비재벌 단독 증권사인 대신증권에도 이 분위기는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대신증권은 단기 차입금을 모두 상환해 빚이 없는 상황이었다.90년대 말 펀드 열풍으로 시중의 자금도 증권사로 몰렸다. 하지만 양 명예회장은 회사채를 편입한 수익증권 판매를 전면 중지시키고 안전한 국공채 위주의 채권형 펀드만을 취급하라고 지시한다. 예상은 맞았다. 대우그룹 부도, 하이닉스 사태,SK사태 등이 연이어 터지며 회사채로 수익증권을 판 증권사들은 잇따라 위기를 겪었지만 대신증권은 안전한 국공채를 편입한 수익증권만 판매한 덕에 손실을 입지 않았다. 결국 90년대 초반 업계를 대표하는 5대 대형사의 주인이 모두 바뀔 정도로 부침이 심한 증권업계에서 대신증권은 살아남았다. 양 명예회장이 이처럼 오뚝이처럼 일어선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업부문에 대해 과감하게 투자하는 결단력 때문이었다. 오래 전부터 전산부문이 증권회사의 성장을 이끌 것으로 본 양 명예회장은 전산부문에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초기 집중 투자를 통해 온라인거래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로 인해 99년 이후 온라인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자 대신증권은 또 한번의 중흥기를 맞게 됐다. ●내실화 일군 고 양회문 회장 양 명예회장은 2001년 현업에서 물러나고, 차남인 양회문(2004년 작고, 당시 53세) 전 회장에게 회사 경영을 물려줬다. 양 명예회장의 4남4녀 중 차남인 고 양 회장은 75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신증권 공채 1기로 입사했다.10년동안 지점영업에서부터 인수, 법인, 자산운용, 기획, 인사 등 증권 전부문에 걸쳐 실무경험을 쌓으면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고 양 회장은 회장 취임후 외형 성장보다는 내실을 다지기 위해 재무 구조 정비에 나섰다. 생명, 정보통신 등을 계열 분리하고 대신증권, 투신운용, 경제연구소 중심으로 그룹을 정리했다. 그는 2002년 초 폐암진단을 받은 후 2004년 작고 때까지 약 3년간 초인적인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리더십을 발휘했다. 대신증권이 외국인 지분율이 가장 높은 내실있는 회사로 재탄생한 것은 고 양 회장의 공이 크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양 회장 작고 이후 대신증권을 이끄는 주역은 고 양 회장의 부인이자 양재봉 명예회장의 둘째며느리인 이어룡(52) 회장이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이 회장은 남편이 투병생활을 하던 3년여동안 집중적으로 경영수업을 받은 뒤 2004년 10월 회장에 취임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종종 비교되는 이 회장은 특유의 세심함으로 회사를 이끌어 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 달만에 109개 전 영업점을 순회방문하면서 직원들을 격려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뿐만 아니라 강단도 함께 갖췄다. 최근에는 자본통합시장법 제정에 따라 일본의 SPARX그룹과 자본 및 업무 제휴를 통해 향후 종합금융투자회사로의 전환에 대비하고 있다. 대만의 IBTS와 제휴하는 등 외국 금융기관과 국제적인 제휴를 진두지휘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 회장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며 조용히 책읽기를 좋아한다. 남편의 투병 중에는 국내·외에서 발간된 대부분의 암 관련서적을 섭렵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서울과학종합대학 최고경영자과정에 다녔다. 동기로는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유한킴벌리 문국현 사장,SK텔레콤 김신배 사장이 있다. 이 회장과 함께 대신증권의 제2도약을 이끌 인물로는 양재봉 명예회장의 사위이자 차녀 회금(52)씨의 남편인 노정남(53) 현 대신증권 사장이 있다. 연세대 행정학과를 나온 노 사장은 지난해 10월 대신증권 사장에 취임했다. 노 사장은 77년 한일은행에 입사한 뒤 29년간 금융업에만 종사해온 탁월한 금융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87년 대신증권에 입사해 영국 런던사무소장·지점장,IB담당임원, 상품운용본부장, 국제본부장 등을 두루 거쳤다.99년부터 6년 동안 대신투신운용 대표이사로 재직해 왔다. 런던 소재 코리아유럽 펀드의 이사를 지내는 등 국제적 감각이 뛰어나고 강력한 추진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신증권의 1대 주주이자 실질적인 대신증권의 차세대 주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사람은 양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이어룡 회장의 아들인 홍석(25)·홍준(22)씨다. 장남인 홍석씨는 현재 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며, 차남 홍준씨는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이다. 홍석씨는 올해안에 대신증권에 입사해 아버지인 고 양회문 회장이 밟았던 것처럼 말단에서부터 시작해 경영 수업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첫째이자 장녀인 정연(27)씨는 이화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외국계 컨설팅회사 베어링포인트에서 근무하다 현재 미국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다. ●단출한 혼맥… 정략결혼은 없다 양재봉 명예회장은 부인 최갑순(78)씨와의 사이에 고 양 회장 외 3남4녀를 두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연애결혼을 해 평범한 집안에 시집·장가를 갔다. 양 명예회장이 자식들의 의사를 존중해 정략적 결혼을 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송촌 회장 및 전 광주방송 회장을 역임한 장남 회천(57)씨는 대구 교육자 집안 출신의 문홍근(58)씨와 결혼했다. 회천씨는 처음부터 대신그룹에 근무하지 않고 대신전기 등 제조업체를 경영했다. 문홍집(56) 대신경제연구소 사장이 회천씨의 처남이다. 문 사장은 비즈니스 위크에서 아시아를 이끌 50인으로 선정하기도 한 금융 IT부문 한국 최고의 전문가로 꼽힌다. 대신증권 IT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개발한 온라인거래 시스템인 ‘U-사이보스’는 지금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격찬을 받는 등 전산부문을 한국 최고로 이끈 실력자로 평가받고 있다. 둘째인 고 양 회장과 현 이어룡 회장 역시 연애결혼을 했다. 이 회장은 충북 괴산 출신으로 부친이 한학자였다. 이 회장 동생인 제봉(43)씨는 대학 교수이고, 제영(41)씨는 대신증권 IB 1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3남인 용호(48)씨는 코스닥 상장 창업투자회사인 대신개발금융회장과 아인스 회장을 역임했다. 아인스는 세계 유명 건축물 모형 전시시설인 경기도 부천의 아인스월드를 운용하는 회사다. 서울시 공무원 집안의 조선미(45)씨와 결혼해 2남1녀를 두고 있다. 4남인 정현(37)씨는 현재 코스닥 상장 금융 IT전문 회사인 대신정보통신 전무이사로 있다. 부인 이현아(30)씨는 조선내화 이훈동 회장의 손녀이자, 민주당 이정일 국회의원의 딸이기도 하다. 장녀 영애(59)씨는 대학때 연애를 통해 만난 나영호(60) 현 경원대 겸임교수와 결혼했다. 재무학 박사인 나씨는 대신경제연구소 사장으로 재직하다가 2005년 은퇴했다. 차녀 회금씨와 노정남 대신증권 사장도 연애결혼했다. 노 사장은 한국행정연구원장을 역임했던 노정현(77) 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의 친동생이다. 3녀 미경(42)씨는 이시영(46) 현 중앙대 교수와 결혼했다. 이시영 교수는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받은 뒤 중앙대에서 사회과학대학 상경학부 교수와 동대학 국제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이 교수의 부친은 전북지사와 공보부 차관을 지낸 이춘성씨다. 4녀 회경(41)씨는 이재원(46) 현 대신정보통신 대표이사와 결혼했다. 이 대표는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93년부터 금융솔루션 업체인 대신정보통신에 근무하고 있다. s123@seoul.co.kr ■ 슬로건 ‘큰大 믿을信’ 어떻게 지었나 대신증권을 오늘의 위치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은 ‘큰大 믿을信’이라는 슬로건이다. 이 슬로건은 양재봉 명예회장의 작품이다. 양 회장은 증보증권을 인수해 새 회사를 만들면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믿음이 없이는 그 어떤 일도 이루어 낼 수 없다.”는 신념으로 ‘대신’이라는 이름을 붙인다.‘큰 대 믿을 신’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 후인 1986년부터다. 당시 증권 산업은 성장하고 있었지만 국민들의 증권사에 대한 인식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양 회장은 주식 투자의 대중화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회사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홍보활동을 강화했다. 86년 3월 처음으로 TV CF를 제작했지만 시청자에게는 크게 파고 들지 못했다. 새로운 홍보전략을 구상하던 양 회장은 어느 날 열차를 타고 가던 중 열차바퀴가 레일과 마찰하면서 일어나는 소리가 매우 경쾌하다고 느낀다. 그는 “마치 옛날 서당에서 ‘하늘천 따지’하고 천자문을 읽을 때의 리듬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소리가 곧 우리 정서에 잘 맞는 3·3조 가락과 닮았다는 생각에 바로 큰 대 믿을 신 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이후 TV 광고에는 ‘큰 대 믿을 신’ 이라는 슬로건을 빠짐없이 사용하게 됐다. 이 슬로건은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증권회사 하면 ‘큰大 믿을信=대신증권’을 떠올리게 할 만큼 히트했다. 이후 ‘큰大 믿을信’은 20여년간 대신증권 광고의 슬로건으로 사용되면서 대신증권을 증권명가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 s123@seoul.co.kr ■ 금융통 대거 배출한 ‘증권계 사관학교’ ‘증권업계 사관학교’로 불리는 대신증권은 금융계에서 내로라할 만한 인물들을 숱하게 배출했다. 주택은행장과 중소기업은행장을 지낸 박동희(76)씨, 정해왕(59)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장, 김정태(59) 전 국민은행장, 이강원(56) 한국투자공사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1986년 대신경제연구소에 대표이사로 입사한 박 전 중소기업은행장은 대신개발금융, 대신투자자문, 대신증권 대표이사를 거쳐 대신그룹 부회장을 역임했다. 정 금융경제연구원장은 미국 켄터키 주립대에서 경영대 조교수로 있다가 대신경제연구소 상무이사로 입사,89년부터 4년간 대신경제연구소를 이끌었다.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도 대신증권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조흥은행 출신인 김 전 행장은 양재봉 명예회장이 설립한 대한투자금융에 74년 스카우트됐다. 양 명예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그는 대신증권 비서실장으로 발령났고,80년 34세의 나이로 대신증권 최연소 임원으로 승진했다. 이강원 한국투자공사 사장은 89년 대신증권 국제영업담당 상무이사로 대신증권에 입사했다. 퇴사 후 아시아개발은행을 거쳐 외환은행장, 굿모닝 증권 사장을 역임하는 등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이밖에 이준호(61) 대한화재 사장은 77년 대신증권 종합기획실 실장으로 입사한 뒤 이사, 상무이사를 거쳐 94년에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김한(52) 메리츠증권 부회장은 89년 대신증권에 입사한 뒤 만 35세의 젊은 나이에 이사직에 올랐다.97년까지 대신증권에서 국제본부장, 인수본부장, 기획본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증권계의 거목으로 성장했다. s123@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하루키 화났다

    하루키 화났다

    일본 최고 인기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화가 났다. 과거 자신이 만년필로 썼던 원고들이 고서점이나 인터넷 등에서 고가에 거래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무라카미는 10일 발간된 시사월간지 분게이쥬(文藝春秋) 4월호에 기고한 ‘어느 편집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16쪽 짜리 글에서 이러한 사실을 폭로하고 자필원고가 거래되는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유출된 여러작품의 원고는 인터넷 경매에 부쳐졌거나 고서점에서 팔리고 있다고 한다. 이들 원고는 무라카미가 과거 출판사 주오고론(中央公論)의 한 편집자에게 직접 건넨 것이다. 편집자는 이후 퇴사했다. 현재는 고인이 된 이 편집자가 원고를 유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쿄 연합뉴스
  • [커리어 우먼] 김세진 산업은행 수입금융팀장

    [커리어 우먼] 김세진 산업은행 수입금융팀장

    1998년 봄. 산업은행 인사담당 이사실로 4급 여성과장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이사님, 산업은행은 왜 저를 활용하지 못하는 겁니까. 경력이나 실력에서 제가 모자란 게 도대체 무엇입니까.”그녀는 전날 승진인사에서 탈락한 4급의 최고참 과장이었다. 이사로부터 끝내 “딸 가진 아버지로서 당신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답변을 얻어낸 이 겁없는 여성은 지금 산업은행 외환영업실의 김세진(51) 수입금융팀장이다.2급 팀장인 그녀는 산은 역사상 가장 높게 올라간 여성간부이다.‘이사실 항의 사건’ 이듬해 김 팀장은 기어이 승진해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잠실지점장으로 부임했다. ●“여직원이 아닌 산업은행 직원이 되고 싶었다.” 김 팀장은 왜 그렇게 승진에 목을 맸을까. 김 팀장은 유엔이 ‘여성의 해’로 정했던 1977년 공채로 입행했다. 그해 정부는 대기업 및 금융기관에 여성 전문직을 대거 채용할 것을 명령(?)했고, 그 영향으로 교사발령 대기중이던 김 팀장도 여성 동기 20명과 함께 은행에 들어왔다. 그러나 여성 동기들은 대부분 1년도 안 돼 남성중심의 문화를 견디지 못해 퇴사했다. 과장급까지 승진한 여성 동기는 5명뿐이었다. 외환위기 한파가 한창이던 때 김 팀장을 제외한 나머지 4명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은행을 떠났다.“혼자 남으니까 더 용감해졌습니다. 여직원은 똑똑해도 안 되고, 아둔해도 안 되는 어정쩡한 현실이 싫었습니다. 미련없이 사표 쓸 생각도 해봤지만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더라고요.” 현재 산업은행에는 과장급 이상 여성간부가 100명이 넘는다. 전체 직원 가운데 22%가 여성이고, 지난해 뽑은 신입행원 가운데는 33%가 여성이다. 시대 변화에 따른 당연한 흐름이기도 하지만 보수적인 국책은행의 ‘금녀의 벽’을 허무는데 김 팀장의 역할이 컸음을 부인하는 이는 없다. ●담보물건 회수하러 보름간 전국 헤매기도 김 팀장이 집요할 정도로 조직에서 살아남으려고 한 것은 일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잠실지점장으로 발령나서는 지점을 현재의 프라이빗뱅킹(PB) 점포와 비슷한 ‘살롱형 점포’로 꾸몄다. 수신 기능이 별로 없는 산업은행으로서는 파격적인 변신이었다. 여신담당 대리 시절이던 1991년에는 거래하던 건설업체가 부도가 나자 담보물건을 잡기 위해 보름간 전남 화순에서 경기도 포천까지 찾아다녔다. 결국 굴착기 등 공사장비를 챙겨 경매에 부쳐 원리금 대부분을 회수할 정도로 ‘독종’이었다. 외환위기 당시 김 팀장이 주선했던 업체의 수출입신용장을 외국은행이 인수를 거부하자 한 달 이상 설득해 기어이 5000만달러에 이르는 부도를 막아내기도 했다. 입행 초기 김 팀장은 여느 행원들처럼 기업여신을 담당했다. 그러나 모든 행원들이 기업여신 전문가를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일찌감치 외국환 업무로 방향을 틀었다.29년의 직장 생활 가운데 15년을 외국환 업무에 집중했고, 지난해에는 그녀를 중심으로 한 팀이 105억달러의 수출입금융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동료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헌신하라” 김 팀장은 직장에서 집안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여자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1985년 둘째 아들의 돌잔치 전날이었다. 같이 일하던 동료 3명 중 2명이 지방출장을 간 상황이었다. 가슴을 졸이다 밤 9시쯤 상사에게 조심스럽게 “내일 하루 휴가를 내면 안 되겠느냐.”고 했더니 상사는 예상대로 “이 와중에 무슨 휴가냐.”고 버럭 화를 냈다.“둘째 아들 돌이라서….”라며 말끝을 흐리자 상사는 “김세진씨도 자식이 있었냐.”며 미안해했다. 김 팀장은 이제 업무보직이나 승진에서 여성이 차별받는 것을 당연시하던 시대는 갔다고 믿고 싶다. 여성을 숨죽이게 했던 환경도 ‘사회적인 편견’이 만든 것이지 남성들이 일부러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여성 후배들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전문가가 되라.”고 충고한다. 전문가가 되려면 고객과 동료, 상사, 부하직원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헌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월급 때문에 일하는 ‘삯꾼’에 머물지 않는다.’는 신념 하나로 29년을 달려온 김 팀장에게는 아직도 앞으로 달려갈 길이 멀어 보였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김세진 팀장은 ·1955년 전북 순창 출생 ·77년 서울여대 졸업 및 산업은행 입행 ·96년 산은인상 수상 ·97년 산은 최우수 리더 선정 ·99년 잠실지점장 ·2003년 외환영업실 수입금융팀장
  • 첨단기술 유출 시도 연구원 구속

    휴대전화로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차세대 핵심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려던 연구원이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청 외사3과는 9일 자신이 근무하던 회사에서 개발한 CDMA 휴대전화 모뎀칩 개발자료를 회사 밖으로 빼낸 E사의 전 연구원 임모(33)씨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임씨는 2003년 3월부터 퇴사 직전인 올 1월까지 이메일 등을 통해 2369개의 기밀파일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임씨는 퇴직 직후 헤드헌팅사를 통해 이적을 시도, 관련 기술을 국내외 경쟁업체들에게 넘기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임씨가 근무하던 E사로부터 “컴퓨터 하드디스크 3개가 회사 밖으로 유출됐던 흔적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임씨 집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해 증거자료를 확보했다고 밝혔다.경찰 관계자는 “임씨가 몸값을 올리기 위해 기밀문서 등을 자진해 빼낸 것으로 보인다.”면서 “해당 기술이 해외로 빠져나갔을 경우 2조 3490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씨가 빼돌린 파일은 초고속 인터넷과 맞먹는 속도의 무선통신을 할 수 있는 고속 패킷 데이터 전송(HSDPA)방식으로 3.5세대 CDMA 휴대전화의 핵심기술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현천 스님의 아헹가 정통요가] 똑바로 서는 타다아사나(산 자세)

    [현천 스님의 아헹가 정통요가] 똑바로 서는 타다아사나(산 자세)

    이 자세에서 우리는 산처럼 확고하고 똑바로 서는 것을 배운다.‘tada’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산’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다리로 완전히 균형을 잡지 못하는데, 이 때문에 피할 수도 있는 질병을 앓게 된다. 타다아사나는 올바로 서는 방법을 가르쳐 주며 자신의 몸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자각하게 한다. 이 아사나는 다른 아사나에 대한 주춧돌이다. 이 아사나의 수련으로 확고함, 힘, 평온 그리고 안정의 느낌을 얻을 수 있다. 만일, 파킨슨씨병을 앓고 있거나 척추의 디스크에 이상이 있다면 벽을 마주보고 두 손바닥을 벽 위에 대고 서는 것이 도움이 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척추 측만이 있는 사람은 두 개의 벽이 만나는 돌출된 모서리에 척추를 기대고 서야 한다. 1. 평평한 맨 마루바닥 위에 발을 모으고 선다. 반드시 두 엄지발가락과 발 뒤꿈치끼리 맞닿게 하여 두 발이 서로 일직선에 놓이게 한다. 두 발을 모으는 것이 힘들면 2∼3인치정도 떨어지게 한다. 체중을 두 발의 오목한 부분 가운데에 실어야지 발 뒤꿈치나 발가락에 실어서는 안된다. 발가락을 살짝 펴고 이완된 상태를 유지한다. 2. 두 발을 마루바닥 쪽으로 단단히 누르고 두 다리를 위로 편다. 발목은 서로 일직선에 놓이게 한다. 다리는 마루와 수직을 이루어야 하며 서로 일렬로 정렬되어야 한다. 종지뼈와 대퇴사두근(quadriceps)을 단단히 죄면서 위로 당겨 올린다. 둔부를 안으로 끓어 당기면서 꽉 조이고 엉덩이를 단단하게 만든다. 3. 팔은 몸의 양측면을 따라 뻗고 손바닥은 넓적다리와 마주보게, 손가락은 아래를 가리키도록 한다. 머리와 척추는 일직선에 있어야 한다. 근육을 긴장시키지 않으면서 목을 신장시킨다. 하복부를 안으로, 그리고 위를 향해 당긴다. 흉골을 들어 올리고 가슴을 넓힌다. 이 아사나의 모든 단계에서 정상 호흡을 한다.((1)) 4. 발 뒤꿈치나 발가락에 체중을 싣지 말고, 양쪽 발에 고르게 체중을 싣는다.((1)) 5. 두 손을 가슴 앞에 합장한다. 어깨는 수평을 유지한다.((2)) 6. 숨을 들이 마시며 합장한 손을 위로 쭉 뻗는다. 흉골과 몸통을 더 뻗으면서 30초∼1분간 유지한다.((3)) 숨을 내쉬며 양팔을 내린다.((1)) 7. 손가락을 단단히 깍지 낀다. 손가락의 사이에 아무런 틈도 있어서는 안 된다. 깍지 낀 손을 가슴 쪽으로 가져간다. 이 때, 손바닥은 가슴을 향한다. 8. 손목을 돌려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하고, 숨을 들이쉬며 두 팔을 겨드랑이에서부터 들어 올린다. 이 때, 두 팔이 바닥과 수직이 되는 지점까지 쭉 끌어 올리고 팔꿈치를 고정시키고 팔을 쭉 뻗는다. 고르게 호흡하면서 이 자세를 1분 동안 지속한다.((4)) 반대로 깍지 껴서 한번 더 실시한다.4번 자세로 돌아간다. 자료제공:대구수성구 만촌동 아헹가 요가선원 053)753-1737 www.iyengar.co.kr 효과 척추를 곧게 펴 나쁜 자세를 교정한다. 무력감이나 우울증을 치료한다. 몸의 조정을 개선한다. 노화로부터 오는 척추, 다리, 발에 미치는 퇴행적 영향력을 예방한다. 엉덩이 근육을 조절한다. 요가교실 우리나라의 요가는 불교가 들어오면서 전래되어, 신라, 고려시대에 번성했으며, 요가수행을 위주로 한 종파도 여러 갈래로 나뉘어졌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억불정책과 일제통치기간을 지나면서 요가는 물론 불교의 좋은 수행법이 많이 사장됐다.
  • 버스운전도 자격시험 도입

    택시 사업자에 대한 평가제도가 도입되고 운수종사자의 자격시험이 택시에서 버스 운전자까지 확대된다. 건설교통부는 20일 이같은 내용이 포함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령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예고했다고 밝혔다.건교부는 택시 사업자에 대한 경영·서비스를 평가, 우수업체에는 인증표시를 부여하는 등 자발적인 서비스 개선을 유도하기로 했다. 또한 양질의 운수종사자 확보하기 위해 현재 택시에만 시행되고 있는 자격제를 버스에까지 확대한다. 이와 함께 현재 사업자 단체에서 관리하고 있는 운수종사자의 입·퇴사, 교통사고 및 법규위반 현황 등에 대한 자료를 건교부가 넘겨 받아 교통사고 예방자료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올해 6월8일부터는 특정강력범죄나 마약범죄 등으로 금고 이상의 선고를 받고 2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택시 운전자격을 제한하는 규정이 신설됨에 따라 자격시험 전에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절차 등도 마련된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사회플러스] 손석희 아나운서 사표 수리

    손석희(50) MBC 아나운서 국장의 사표가 15일 전격 수리됐다. 이에 따라 손 국장은 당초 계획대로 성신여대 문화정보학부 교수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손 국장은 지난해 연말 최문순 MBC 사장에게 사의를 표명했으나 MBC측에서 적극 만류해왔다. 현재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100분 토론’을 진행하고 있는 손 국장은 퇴사 이후에도 당분간 두 프로그램의 진행을 담당할 것으로 전해졌다.
  • [커리어 우먼] 김선주 SC제일은행 상무

    [커리어 우먼] 김선주 SC제일은행 상무

    34년 전, 제일은행(현 SC제일은행) 농구단의 전도유망한 한 선수가 갑자기 농구를 그만두고 은행 업무를 보겠다고 나섰다. 은행 인사부는 운동만 해 온 여고 졸업생이 얼마나 버틸지 반신반의했지만 의지가 워낙 강해 심사부로 보직을 바꿔줬다. 이 여성은 제일은행 역사상 첫 여성대리, 첫 여성차장, 첫 여성지점장, 첫 여성 임원이라는 ‘최초 타이틀’을 모두 거머쥐었다.SC제일은행 소매영업운영부 김선주(53) 상무는 여성이라는 장벽과 고졸 출신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었고, 지금은 행내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장부’로 통한다. ●“자서전 써 주고 싶은 상사” 김 상무를 만나기 전에 부하 직원들을 먼저 만나봤다. 소매영업운영부에서 5년째 함께 일하는 손경화 부장은 “자서전을 대필할 능력이 된다면 내가 꼭 써주고 싶은 분”이라고 말했다. 여성 행원들이 김 상무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자신이 나갈 ‘좌표’로 삼는다는 것이다. 같은 부의 조종복 팀장은 “휘하에 500여명을 거느린 김 상무는 부하 직원의 이름은 물론 집안 사정이나 특기까지 모두 파악하고 있다.”면서 “한 번 통화한 사람의 목소리도 죄다 기억하는 비상한 능력을 가졌다.”고 말했다. ●지점 이름을 바꾼 지점장 부하 직원들의 이런 칭찬에 김 상무는 “‘뻥’이 심하다.”며 웃었다. 그러나 걸어온 길을 보면 그리 과장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농구명문 숭의여고를 졸업한 김 상무는 청소년대표를 지낸 유망주였다. 일본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 이옥자씨 등이 그와 한솥밥을 먹었다. 배구계의 ‘대모’ 조혜정씨와 ‘탁구영웅’ 이에리사 태릉선수촌장도 숭의여고 동창생들이다. 1년 반을 농구부에서 뛰던 김 상무는 ‘평생 직장’을 갖기 위해 전직을 결심했다. 당시 여성행원들은 ‘전직고시’를 거쳐야만 남성과 같은 ‘행원’ 반열에 오를 수 있었고, 결혼과 동시에 퇴사한다는 ‘결혼 각서’를 써야 했다. 김 상무는 전직고시에 합격해 남성들과 동일한 ‘신분’을 확보한 뒤 입행 10년차이던 1981년에 남자 동기들을 제치고 대리가 됐다. 남자 동기들이 노조 사무실로 달려가 항의할 정도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1995년 김 상무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고덕출장소 소장에 임명됐다. 출장소는 분양도 안돼 텅텅 비어 있는 상가 2층에 있었고, 오전 내내 고객이 한 명도 오지 않는 날이 허다했다. 김 상무는 출장소 위치가 그려진 전단지를 만들어 아파트 부녀회를 찾아다녔고, 자영업자들을 일일이 만나며 ‘적립식 신탁대출’을 판매했다.1년 뒤 출장소를 동종 그룹군 경영평가 1위에 올려 놓았다. 2001년 신사 중앙지점장으로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신사동에는 비슷한 이름을 가진 제일은행 지점이 서너개나 됐다. 고객들이 비슷비슷한 지점 이름으로 혼란을 겪자 김 상무는 7개월 동안 본사를 설득해 이름을 ‘로데오 지점’으로 바꿨다. 제일은행 76년 역사상 지점장이 점포 이름을 바꾼 것은 김 상무가 유일하다. ●“기회되면 결혼하고 싶다.” 김 상무는 36년 은행 생활 대부분을 고객들과 함께 현장에서 보냈다. 일선 지점 근무 때 만난 인연으로 아직까지 자산을 관리해 주는 고객도 많다.“고객을 거래 대상이 아니라 가족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야 고객들이 감동을 합니다.”김 상무는 10만원을 예치한 고객 100명이 1억원을 거래하는 고객 1명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금액보다 사람을 확보해야 고객을 더 많이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1993년부터 골프를 하기 시작한 김 상무는 드라이버 비거리가 230야드가 넘는 장타자이다. 남성 고객들과 허물없이 만나기 위해 골프를 배웠고, 남성과 같은 티잉그라운드에서 티샷을 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50대인 그녀는 ‘미혼’이다. 일부러 안한 게 아니라 바빠서 못했다고 한다.24평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는 김 상무는 “기회가 되면 꼭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선주 SC제일은행 상무 경력 ·1953년 충북 옥천생 · 71년 숭의여고 졸업, 제일은행 입행 · 95년 고덕출장소장 · 96년 가락본동지점장 · 98년 반포지점장 · 99년 로데오지점장 ·2001년 고객서비스팀장 · 02년 서울CS센터부장 · 04년 운영지원단 상무 대우 · 05년 소매영업운영부 상무 글 이창구 사진 정연호기자 window2@seoul.co.kr
  • 따뜻한 앵글로 잡은 아름다운 세상

    따뜻한 앵글로 잡은 아름다운 세상

    동양인으론 처음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편집팀장을 지낸 세계적인 사진가 에드워드 김(66·한국명 김희중). 상명대학교 사진학과 석좌교수로 후학을 지도하고 있는 그가 포토에세이집 ‘그때 그곳에서’(바람구두)를 냈다. 연세대 재학중인 1960년 미국으로 건너가 1967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입사,1985년 퇴사한 그는 그후 미 시사주간지 ‘타임’의 서울특파원으로 7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이 책엔 고등학교 시절부터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우리 땅의 모습,1973년 서방기자로선 최초로 북한을 취재한 사진 등 50년 사진 역정이 그대로 담겨 있다.‘그때 그곳’의 추억들은 정감어린 글로도 갈무리돼 있어 작가의 총체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사진가의 눈을 통해 보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1만 98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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