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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509)-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31)

    儒林(509)-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31)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31) 일어나 앉은 율곡의 머릿속으로 문득 노자를 만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났던 공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천하의 성인 공자도 예에 대해서 묻기 위해 노자를 만나러 그 먼 주나라까지 여행을 떠나지 않았던가. 사마천은 사기에서 그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남궁경숙과 함께 주나라로 간 공자는 노자를 만나 예에 대해서 물었다.” 일찍이 ‘열 집이 있는 고을이라면 반드시 충성과 신의에 있어서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겠지만 배우기에 있어서는 나만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자신을 평가하였던 공자. 그러므로 지성이었던 공자도 예에 대해 가르침을 얻기 위해 수만리의 여정을 거쳐 주나라의 낙읍으로 간다. 공자는 마침내 노자를 만나게 되자 마차에서 내려 노나라로부터 가져온 기러기 두 마리를 선물로 바쳐 올리고는 ‘예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고 사마천이 기록하였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 쓴 ‘자경문’에서 ‘성인(공자)을 본보기로 삼아서 조금이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하면 나의 일은 끝난 것은 아니다.’라고 뜻을 세웠던 율곡으로서는 예에 대해 가르침을 얻기 위해 수만리의 여정을 불사한 공자를 본받는 것도 지극히 마땅한 일인 것이다. 더구나 퇴계는 해동공자(海東孔子)로 불리던 당대 최고의 철인(哲人). 나 역시 공자의 말처럼 ‘배우기에 있어서 나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 호학지인(好學之人)인 것이다. 물론 공자는 노자로부터 냉대를 받는다. 예를 묻는 공자에게 노자는 다만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이를테면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이 감추고 있어 얼핏 보면 점포가 빈 것처럼 보이듯 군자는 많은 덕을 지니고 있으나 외모는 마치 바보처럼 보이는 것일세. 그러니 제발 그대도 예를 빙자한 그 교만과 그리고 뭣도 없으면서 잘난체하는 말과 헛된 집념을 버리란 말일세.” 이처럼 노자로부터 수모를 당하고 빈손으로 돌아온 공자. 그러나 공자는 노자로부터 정말 아무런 배움도 얻지 못하였던 것일까. 아니다. 율곡은 머리를 흔들며 생각하였다. 날이 벌써 밝아 어둑새벽이 되었는지 먼 인가로부터 홰를 치며 울어대는 닭의 울음소리가 까마득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공자는 노자로부터 수욕(受辱)을 당하였으나 오히려 이로 인해 자신의 학문을 정립할 수 있었으니,‘공자가 주나라를 떠나 노나라로 돌아오자 제자들이 점차로 많아지기 시작하였다.’는 사기의 기록이 그 증거인 것이다. 더구나. 율곡은 빙그레 웃으며 생각하였다. 나의 이름은 이이(李珥). 사마천은 노자의 신분을 ‘노자의 성은 이(李)씨고, 이름은 이(耳)다’라고 밝히고 있지 않은가. 율곡의 이름은 ‘귀걸이(珥)’를 뜻하고 노자의 이름은 ‘귀(耳)’를 뜻해 의미는 서로 다르더라도 음은 같아 두 사람은 시공을 초월한 동명이인이 아닐 것인가.
  • 儒林(508)-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30)

    儒林(508)-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30)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 (30) 퇴계는 49세 되던 명종 4년 9월에 풍기군수를 끝으로 사임장을 감사에게 올린 것을 시작으로 70세 되던 해 선조3년에 최후사장인 걸치사장(乞致辭狀)을 올리기까지 21년 동안에 무려 53회의 사퇴원을 제출한다. 간곡한 임금의 부름으로 한양에 올라와 성균관대사성, 공조판서, 예조판서, 홍문관 대제학 등 요직에 오른 적도 있었지만 잠깐만 몸을 담고 있었을 뿐 대부분 상소를 올리고는 곧바로 귀향하여 학문에 정진하였던 것이다. 율곡이 퇴계를 떠올린 바로 그 무렵에도 퇴계는 명종에게 자신이 벼슬에 나올 수 없다는 이유를 어리석음과 병, 헛된 이름(虛名), 그리고 직무를 수행하지 못함 등 다섯 조목으로 제시한 후 다음과 같이 간곡히 읍소한다. “…어리석은 것을 숨기면서 벼슬의 지위를 도둑질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겠습니까. 병으로 폐인이 된 자가 마땅한 것이겠습니까. 헛된 이름으로 세상을 속이는 것이 마땅한 것이겠습니까.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면서 물러나지 아니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겠습니까. 이 다섯 가지 마땅하지 못함을 가진 채 조정에 선다면 그 신하된 자로서 ‘의(義)’가 아님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엎드려 원컨대 신의 사정에 어둡고 어리석은 것을 살피시옵고 신의 잔약하고 수척한 것을 불쌍히 여기시어 앞서 허락하신 대로 이 곳 시골에 물러나와 허물을 고치고 병을 조리하게 하여 여생을 마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율곡은 이미 퇴계가 명종에게 올린 그 상소문을 읽고 마음속에 깊은 감명을 받은 바 있었으며 자신도 언젠가는 퇴계를 본받아 물러나 시골에 집을 짓고 ‘사람의 할 도리를 날로 더욱 힘쓰고(臨流日有省)싶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벌떡 일어나 앉은 율곡은 소리를 내어 중얼거렸다. “퇴계선생을 찾아 안동으로 가자.” 그 무렵 퇴계는 아직 도산서원을 세우지 못하고 시냇물 동쪽 초당골에 단칸 서당을 지어서 이를 계상서당(溪上書堂)이라 이름 짓고 이곳에서 찾아오는 제자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때 퇴계는 한서암에 부엌과 방 둘을 만들어 아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이 집에서 퇴계는 질그릇의 세숫대야, 짚으로 엮은 자리, 갈대의 문발과 자리, 베옷에 실로 꼰 허리띠, 미투리신에 대나무 지팡이를 짚는 철저한 청빈 생활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퇴계를 찾아온 영천군수. 허시(許時)가 그 광경을 보고 다음과 같이 물었다고 한다. “어른께서는 찌는 더위와 겨울의 추위를 어떻게 견디십니까.” 그러자 퇴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별 불편없이 지낼 수 있네.” 이처럼 신선처럼 은둔하여 살던 퇴계. 아들 준이 가난하여 처가살이를 하게 되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지만 빈궁(貧窮)은 선비의 떳떳한 일이거늘 너무 부끄럽게 여기지 말아라.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서 하늘을 믿고 인간이 할 도리를 잘 지켜 순리에 맞게 대처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라고 청렴한 청빈을 가르쳤던 퇴계는 이 무렵 실제로 적빈(赤貧)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 儒林(507)-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9)

    儒林(507)-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9)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 (29) 베개를 베고 누운 율곡의 얼굴 위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이 흘러내렸다. 눈물이었다. 미처 닦을 생각도 없이 율곡은 소리죽여 울고 또 울고 있었다. 성인. 율곡은 성인 공자를 자신의 목표로 삼고 있었다. 율곡이 자경문의 제1조를 입지(立志)로 하였던 것도 공자가 논어의 ‘위정(爲政)’편에서 ‘나는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는 자립하였으며, 마흔 살에는 미혹되지 않게 되었으며, 쉰 살에는 천명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예순 살에는 귀로 듣는 대로 모든 것을 순조롭게 이해하게 되었으며, 일흔 살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하였던 것을 인용하였던 것이다. 공자가 열다섯 살 때 ‘배움의 뜻’을 두었다면 나 역시 스무 살 때 ‘배움의 뜻’을 두었다. 그러나 나는 그 결심을 실천하고 있음인가. 성인을 본보기로 삼아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인가. 나의 스승은 어디 있는가. 성인공자를 본받아 성인이 되기를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하더라도 그 길을 가르쳐 줄 스승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리석은 당나귀. 앞장서서 어리석은 당나귀를 이끌어 줄 명마는 어디에 있음인가. 일찍이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던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는 반드시 내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 그 중에 좋은 점이 있으면 골라서 좇을 것이요, 좋지 못한 점은 살펴서 고쳐야 할 것이다.” 공자의 말처럼 내 인생길에도 반드시 내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공자는 성인이지만 너무 멀고 아득하여 근접하기 어려운 상대. 그렇다면 내 곁에서 함께 길을 가는 사람,‘삼인행(三人行)’중에서 내가 본받아 그의 가진 좋은 점을 골라 좇을 만한 스승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 때였다. 율곡의 머릿속으로 영감처럼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율곡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이황. 벼락과 같은 전율이 율곡의 몸을 흘렀다. “그렇다.” 율곡은 소리를 내어 중얼거렸다. “퇴계 이황 선생뿐이다.” 율곡은 이퇴계의 대한 명성을 일찍부터 전해 듣고 있었다. 그 무렵 퇴계의 나이는 58세.23살의 율곡과는 25세의 차이로 부자지간이나 다름이 없었다. 풍기군수를 끝으로 49세의 나이로 사직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뒤부터 불러들어 벼슬을 맡기려는 명종과 학문에 정진하려는 퇴계와의 사이에는 치열한 진퇴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50세 때에야 고향시냇가에 한서암(寒棲庵)을 짓고 일체의 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퇴계는 학문을 통하여 자기의 뜻을 펴보려는 집념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분수대로 살고 싶어 벼슬에서 물러나 학문하러 돌아오니 나이 이미 늙었구나. 시냇가에 집을 짓고 거처를 정하여 사람의 할 도리를 날로 더욱 힘쓰리라.”
  • 인기스타들 얼마나 잘사나

    인기스타들 얼마나 잘사나

    ◇ 김진규(金振奎) 요리집「희원(喜苑)」경영, 문화영화 제작사도 <집> 서울 한남동에 건평 1백평의 2층 저택. 아래층은 한식, 2층은 양식, 40평 가량의 넒은「홀」. 잘 꾸며지기로는「스타」중 최고. <자가용> 2백 50만원짜리「닷지」1대 <부업> 한식요정「희원」을 경영하고 문화영화「센터」를 갖고 있다. 「아리프렉스」촬영기와 5백mm「줌·렌즈」도 있고. 한동안 광산에 투자했으나 오래 전에 중지. <동산> 값비싼 골동품, 그림, 글씨를 갖고 있다. 가구는「톱·스타」답게 1류. 현금액수는 밝히기를 꺼리고. <가족> 3남 3녀와 부인 김보애(역시 배우)씨 등 8식구. 김씨 전속이 운전사 포함 3명. <출연료> 1편에 50만원. <사족>「예총」부회장직을 내놓은 뒤 영화촬영에 전심하고 있는데 공직 때문에 지난 해에 못 번 몫을 올해엔 보충할 심산인 듯. 교외에 목장, 과수원을 낀 농장을 물색 중인데 아직 적지를 못 잡고 있다. ◇ 김지미(金芝美) 건평 4백 20평 집에 보석 3천만원 어치 <집> 정릉의 8백평 대지에 건평 4백 20평,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배우 중 가장 큰 집. 김지미·최무룡 부부가 3년 걸려 지었고 지금도 공사가 진행 중인데 지하실은「스튜디오」로도 쓸 수 있을 정도. 아래층「홀」은 50쌍의 남녀가 어울려「댄스·파티」를 열어도 충분한 넓이. <자가용> 남색「크라운」은 김지미양이 쓰고「밀크」색「코로나」는 최무룡씨가 탄다. <부동산> 부군의 영화사. <동산> 김지미양이 취미로 모은 보석·귀금속 90점 가량, 싯가 3천만원 상당. <가족> 어머니, 부부, 자녀 5명, 동생 1명에 운전사 등 동거인이 9명, 모두 18명. 이 밖에도 평균 10여명의 식객이 있고. <출연료> 김지미 50만원, 최무룡 40~50만원. 부군은 감독, 제작을 겸하면서 영화출연은 별로 않는다. <사족> 한국배우 중 돈을 제일 많이 만지지만 지출도 최고. ◇ 신성일(申星一) 남이섬엔 별장 하나, 극장 신축할 계획도 <집> 이태원 2층 양옥을 4층으로 증축. 3백 50만원짜리 공사를 지금 한창 벌이고 있다. 1백평 가량의 뒤뜰 잔디밭이 명물. <자가용>「코로나」가 2대, 부부가 각 1대씩 쓴다. <부동산> 화곡동에 극장용 대지 8백평을 샀으나 착공은 못했고 남이섬에 2층 별장이 하나. <동산> 상업은행에 액수 미상의 예금이 있고 배우 중 제일 화려한 응접실을 갖고 있는데 명물은 왕궁용의 호피(虎皮). <출연료> 1편 40~45만원. <사족> 상반기 납세액 2백 40만원으로 한국배우 중 최고액 납세자. 「톱·스타」의 위치를 가장 오래 누려온 신성일은 치부 면에서도 첫손 꼽힐 것으로 추측되지만 표면엔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게 또한 특징. 약수동 처가댁과 정릉 어머니집 생계비를 대주고 있다니 그 방면 지출도 적지 않을 듯. ◇ 윤정희(尹靜姬) 6백만원 집을 사고 자가용 자동차 2대 <집> 석관동에 석조 1층의 아담한 양옥. 대지 70평, 건평 25평. 차고와 창고, 방이 4개. 작년에 6백만원에 사서 손질. <자가용> 영국산 초록색「오스틴」과「코로나」. 「코로나」는 월부로 샀고「오스틴」은 지난해에 1백 80만원에 샀는데 임자 나서면 팔 예정. <부동산> 퇴계로 모처에 가게를 살 예정이었으나 미결. <동산> 피아노, TV 2대, 전축, 전화 등 갖출 건 다 갖췄으나 보석류는 즐기지 않는다. 옷은 3백여 벌. 2백만원짜리 적금을 붓고 있다. <가족> 부모, 6남매 포함 8식구에 운전사,「스케줄·맨」, 식모 등 윤양 전속 4명. 월 인건비 지출이 10만원 이상. <출연료> 1편에 30~35만원. <사족> 배우되기 전인 3년 전엔 가회동서 전셋집. ◇ 신영균(申榮均) 극장·빌딩 주인으로, 관광호텔 지을 계획 <집> 쌍림동에 대지 2백 30평, 건평 70평의 2층 양옥. 넙은 정원과「뜰」이 특색. 응접실은 향나무「세트」로 향내가 흐른다. 싯가 3천만원 상당. <자가용> 흑색「크라운」1대. <부업> 금호동의 금호극장, 충무로의「아데네」극장 등 2개 극장주였는데「아데네」는 팔았다. 인현동에 있는 6층「빌딩」(지하 1층 포함) 주인인데 지하다방, 1층의 명보제과 등 모두 자영(自營). 치과의사인 그는 4층에 치과병원도 개설할 예정. 관광「호텔」을 짓기 위해 광나루에 4천평 대지를 샀다. 3억 5천만원짜리 명동의 국립극장을 차지하고 싶어하기도. <동산>「스타」중「재산관리인」을 두고 있는 유일한 재벌(?). 동산은 밝히기를 거부. <가족> 편모와 부인 김선희씨, 슬하에 남매 합해 5식구. <출연료> 1편에 50만원. <사족> 금년도 상반기 납세액이 사업소득세 포함해서 3백여 만원. 배우 중 최고. ◇ 문 희(文 姬) 백만원 들여서 집 고쳐, 미장원 차릴 궁리도 <집> 장위동에 2층 양옥을 7백만원에 샀는데 1백만원을 들여 개수했다. 길가여서 아래층은 가게로도 쓸만한 곳. 미장원이라도 내어볼 생각. 세 번 이사했는데 그때마다 집이 커진다. <자가용> 계속 애용한 독일제「베이지」색「폴크스·바겐」과 새로 산「크라운」이 있다. 「폴크스·바겐」은 팔려고 내놓았고. <동산>「피아노」, 2대의 TV, 보석류 약간. 아직은 집, 가구 등에 신경을 쓰고 치부를 위한 투자는 않는다. <부동산> 별로…. <가족> 부모, 5남 1녀의 외동딸인데 큰오빠는 분가해서 7식구. 문양 전속이 4명. <출연료> 1편에 30~35만원. <사족> 한때 겹치기 출연편수 38편으로 국내배우 중 최고였으나 요즘은 작품 위주로 가려서 출연한다. 돈보다는 작품에 욕심이 많아서 돈벌이는 천천히 하겠다는 것. ◇ 김희갑(金喜甲) 동산 없다고 하지만 영화계에선 알부자로 <집> 광희동에 한양절충식 2층, 건평 70평, 대지 1백평. 신당동, 약수동 등에 5, 6개의 가옥을 갖고 있었는데『모두 팔고 지금은 2개 뿐』이라고. <자가용>「코티나」1대. <부동산> 부평에 5만평 가량, 광나루에 또 2만평 정도의 토지를 갖고 있었는데『지금은 모두 팔았다』고. <동산> 모 은행의 은행원이 불친절하다고 예금을 모두 찾겠다는 바람에 은행장이 와서 무릎을 꿇었다는 소문이고 보면 상당한 저축이 있는 듯. 그러나 본인 말로는『동산이 전혀 없다』. <출연료> 10~20만원. <사족> 영화계의「알부자」중 한 사람. 적어도 5위 이내의 실속파란 게 주변의 얘기지만. 생활은「스타」의 화려함보다 수수하고 평범한 걸 즐기는 성미. 이런 알찬 생활태도는 악극단 출신의「스타」가 지닌 공통점. 김희갑씨는 그 대표적인 예. ◇ 남정임(南貞妊) 2천만원 새집 짓고 땅 2천평도 사들여 <집> 홍제동에 있는 단층양옥에 살고 있다. 홍은동에 1천만원짜리를 지었다가 너무 커서 팔아버렸는데 얼마 전엔 미아리에 2천만원짜리를 또 지었다니 살기 위한 것은 아닌 듯. <자가용> 녹색「코로나」1대. <부동산> 영등포에 대지 2천평을 샀는데 자동차 교습소를 낼 예정. 오빠가 독립적으로 운수업을 하고 종로에 있는「피아노」가게는 어머니 소관. <동산> 단골 미용사를 통해 금전관리를 시킨다는 소문이었는데 요즘은 모종관계로 해제하고 주로 은행을 이용한다. 집에는「피아노」, 영사기 등 화려한 가구와 3백여 벌의 의상이 있다. <가족> 어머니와 단 두 식구지만 남양 전속이 4명. <출연료> 1편에 30~35만원. <사족> 재산관리를 독립적으로 한다. 「스타」중 2위의 고액납세자. ◇ 구봉서(具鳳書) 3천만원짜리 집과 부동산 투자 소문도 <집> 지난해 여름 신축한 동선동의 검정 벽돌집. 앞면은 검정, 뒷면은 붉은 벽돌로 멋을 부렸다. 2층 양옥, 싯가 3천만원. <자가용>「베이지」색「크라운」1대. <부동산>『집이 전부』 <동산>「피아노」, TV 2대, 기타 가구는 모두 고급. <가족> 양친, 아내, 자녀 4남매 포함 8식구. 운전사 등 구씨 전속이 5명, 월 지출 인건비 7만원. <출연료> 20~25만원. <사족> 광고「모델」료로 국내 최고액인 1백만원을 제일 먼저 받았다. 방송, TV, 영화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가장 수입이 다채롭지만 본인의 말은『벌어서 먹고 세금내기 빠듯하다』. 희극배우 중「개런티」도 제일 비싸고 출연편수도 많으며 소문은 부동산 투자가 상당하다는 것. ◇ 서영춘(徐永春) 궁궐 같은 한옥 비롯, 숨은 재벌이란 말도 <집> 제기동과 종암동에 궁궐 같은 한옥 3채. 모두 20간 정도의 싯가 1천만원짜리. <자가용> 검정색「크라운」1대. <부동산> 3채의 집. 그동안 모은 돈으로 사업을 벌일 예정이지만 업종은 미정. <동산> 모 은행에 상당한 예금이 있으나 액수는『밝힐 수 없다』. <가족> 부부, 자녀 3, 운전사 포함 8식구. <출연료> 20~25만원. <사족>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방송「쇼」, 영화에서 상당한 수입을 올렸다. 한번 손에 넣으면 다시는 내놓지 않는 꼼꼼한 성미여서 숨은 재벌이란 소문도. 요즈음은 방송, TV에서보다 지방「쇼」나 영화출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기판도가 서울에서보다 지방에 치중되어 지방극장의 흥행사들은 아직도 그의 이름을「달러·박스」로 알고 있다. [ 선데이서울 69년 5/11 제2권 19호 통권 제3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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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도로공사 ◇부처장급 승진 △본사 이전 계획팀장 鄭震旻△경영평가〃 全榮烈△사업개발〃 崔光鎬△기획〃 高采錫△대외협력〃 朴承甲△대관령지사장 崔源坤△강릉〃 彭佑善△무주〃 姜錫富△서해대교관리소장 金鐘炘△전주지사장 徐俊鎬△순천〃 金希暻△남원〃 李商俊△부안〃 沈棋述△함평〃 申宰先△구미〃 裵基陽△고령〃 郭東洲△울산〃 全康烈△양산〃 姜鎬東△창녕〃 金成熙 ◇부처장급 전보 △조사팀장 裵英晳△사업개발실(인도네시아 파견 팀장)金性煥△방재총괄팀장 朴律奎△ITS 사업실장 金在洽△건설계획팀장 李相槿△대전·당진건설사업소장 池東漢△목포·광양〃 尹文鎬△부산·울산〃 金兪植△경기〃 朴權濟△영동·김천〃 李忠求△남원·광양〃 李相龍△일산·퇴계원〃 金在永△대구·부산〃 姜漢旭△인천지사장 崔潤和△시흥〃 辛元建△화성〃 盧英宅△수원〃 金會政△강원지역본부 기술처장 許福一△원주지사장 黃堯性△제천〃 李信宰△충주〃 李昌聖△충청지역본부 관리처장 裵淳建△〃기술처장 崔孝相△천안지사장 金英泰△대전〃 李在旭△논산〃 張貞植△당진〃 姜重遠△보령〃 鄭柄壽△호남지역본부 관리처장 金泳燮△〃기술처장 柳煥奉△광주지사장 姜相明△경북지역본부 관리처장 孫禎杓△〃기술처장 白元煜△대구지사장 崔泰珍△경남지역본부 관리처장 裵鐘燁△〃기술처장 崔潤澤△인력관리처부 金榮成△인력개발센터 桂勳燦 ◇부처장급 파견 △서울대 李潤宰 金敬熙 全德洙 洪淳旭 金在賢 ◇부장급 전보 △진주지사장 직무대리 安鍾甲△고성지사장〃 孫海銖△충주지사 고객지원팀장 尹昇鎭△호남지역본부 姜聲彬■ 한국토지공사 ◇승진△신도시사업 이사 직대 김주열△개성지사장 김대년△국유재산처장 김영식△경제자유구역사업〃 강재욱△신도시사업〃 김호경△인사처 임홍구△남양주지사장 박정석△용인〃 지상근△평택〃 김종령△판교사업단장 윤여산△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사업2〃 배효동 △성과관리팀장 신종갑△도시환경사업〃 손경중△경제자유구역사업처 용지〃 유태기△수탁사업〃 유춘재△인재육성〃 신재만△인사처(교육파견) 구남걸△건설지원처 설계단장 추병철△비서실장 박인서△감사1팀장 전태호△감사2〃 금철수△삼송사업단장 박성수△양산〃 전국진△청라〃 이승우△김포〃 임규청△죽전〃 홍석기△흥덕〃 이진수△동탄〃 윤문진△향남〃 김진호△판교사업단 OK팀장 이차관△전북지역사업단장 유제록 ◇전보 △기획조정실장 최문수△경영정보처장 신경우△도시사업〃 최영△지역균형개발〃 홍경표△신도시계획〃 정만모△시설사업〃 서원동△환경교통〃 김종원△토지정보센터장 성도용△단지사업처장 김향태△개성〃 김은종△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기획〃 이동국△재무〃 박환직△건설지원〃 박종천△연구개발〃 이덕복△연구개발처 사업지원연구소장 최기성△서울지역본부장 양영모△부산울산〃 공창두△화성지사장 홍창현△대전충남지역본부장 김광수△전북〃 정해동△광주전남〃 변동원△대구경북〃 배판덕△경남〃 정만구△제주〃 배상철△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사업1단장 유인출 △기획총괄팀장 이현주△전략기획단장 유영일△단지사업처 사업총괄팀장 김연광△국외사업단장 김재윤△디지털도시건설〃 봉원익△송파거여건설〃 김성태△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기획처 사업총괄팀장 홍용석△〃 개발〃 김성종△〃 사업1단 OK〃 유준현△〃 사업2단 OK〃 김태겸△중개사시험관리단장 임진묵△자금지원팀장 최부성△기술〃 최창열△정책홍보단장 한헌△연구기획팀장 갈종완△시험연구소장 이병춘△서울지역사업단장 윤호재△서울본부 지역발전협력〃 이길영△별내사업〃 김갑성△부산울산지역사업〃 전병재△인천지역사업〃 오일섭△인천본부 지역발전협력〃 방천호△경기지역사업〃 김재목△경기본부 토지정보팀장 겸 국유재산〃 윤영운△동백사업단장 안재호△강원지역〃 명용주△충북지역〃 성태기△오송〃 구관서△대전충남지역〃 박종선△군산〃 윤여공△대구경북지역〃 하진수△경남지역〃 엄기헌△영동지사장 김홍수 △국방대 성백륜△세종연구소 박관민△서울대 김도종△고려대 강대가△경원대 채천석■ LG그룹 △㈜LG 부사장 金柱亨△LG경영개발원·LG인화원 상무 金經洙■ GS건설 ◇전무 승진 △기술본부장 권오훈△토목사업본부 총괄 박종인△주택사업본부장 이찬호◇상무보 선임 △최희태 신문도 신동민 김종규 장기복 유재욱 김진만 이병인■ 데이콤 ◇승진△상무 孫宇澤 崔炳昶 ◇전입△상무 成基燮 姜絃求■ 풀무원 △BHC지원부문 재무담당 부사장 柳漲夏△영업본부 영업지원담당 상무 朴南珠
  • [수도권플러스] 남양주시 풍양출장소 내년 개청

    남양주시의 진접·오남읍과 별내·퇴계원면 등 4개 읍·면을 관할하는 풍양출장소가 내년 1월20일 개청된다. 시는 22일 인구증가에 따른 구청체제 전환의 첫 단계로 퇴계원면 퇴계원리 일석빌딩에 출장소를 설치, 5과 18담당 부서에 직원 72명이 근무하게 된다고 밝혔다. 출장소에선 ▲취·등록세 신고 ▲토지거래허가 신고 ▲부동산거래계약서 확인 ▲의료보호업무 ▲장애인 등록 ▲오수처리시설·정화조 설치신고 ▲농지전용허가 ▲토지개발행위허가 ▲건축허가(4층이하,2천㎡) ▲그린벨트내 행위허가 ▲통합민원발급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 [부고]

    ●공대화(전 현대모비스 전무)씨 모친상 최재노(선교사)신용봉(현대오일뱅크 상무)씨 빙모상 공태희(INI스틸)씨 조모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9일 오전 7시 (02)3010-2294●박우섭(인천시 남구청장)씨 빙모상 16일 인하대병원, 발인 18일 오전 10시 (032)890-3199●하일(대한야구협회 중앙대의원)씨 모친상 이진우(자영업)씨 빙모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7시 (02)3410-6906●이성동(사업)명동(외환은행 대치동 지점장)인동(건강보험공단 평창지사)영춘(시인·전 원주여교 교장)씨 모친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7시 (02)3010-2238●차영문(기아자동차 흥덕대리점 대표)형근(국민은행 성산로지점장)재호(삼성화재 천자봉대리점 대표)씨 부친상 이광필(상우아파트 관리소장)정광직(충청대 학생복지실 팀장)씨 빙부상 15일 충북 청주 참사랑병원, 발인 17일 오전 9시 (043)286-9534●윤희용(마포구청 민원봉사과장)희선(사업)희석(한국관광공사 비서실장)희철(외환은행 퇴계지점 차장)씨 모친상 김기철(사업)씨 빙모상 16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 (02)392-3499●김일곤(농업)길곤(삼남조경 대표)씨 모친상 종구(한국일보 광주취재본부장)씨 조모상 16일 광주 사랑병원, 발인 18일 오전 10시 (062)949-9441
  • 儒林(497)-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9)

    儒林(497)-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9)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9) 기묘사화의 참화를 경험한 뒤로는 뜻있는 선비들이 성현을 목표로 도를 추구할 뿐 의식적으로 과거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성혼도 17세에 사마시의 생원과와 진사과 두 시험의 초시에 합격하였으나 복시에는 나가지 않고 스스로 벼슬의 길을 포기하였다. 표면으로 내건 이유는 ‘건강이 좋지 않음’이었으나 실은 ‘산림거사(山林居士)’로 평생을 일관하였던 서경덕(徐敬德)을 존경하고 그를 본받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특히 성혼은 직접적인 기묘사화의 피해자였다. 그의 부친 성수침(成守琛:1493∼1564)은 조광조의 직계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조광조의 문집 ‘정암집’에는 성수침과 그의 아우 ‘성수종(成守琮)’에 대한 기록이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 두 사람은 모두 기묘사화 이후에는 관직을 버리고 은둔생활을 했던 피해자였던 것이다. 성수침의 호는 청송(聽松)으로 사람들은 그의 호를 따서 흔히 ‘청송선생’이라고 불렀다. 대사헌을 역임한 성세순(成世純)의 아들이며, 전통적인 유학자의 기품이 있어 가산을 경영하는 데 관심이 없고, 정자나 주자의 글을 공부하여 흥이 나면 시를 읊는 은둔생활을 즐겨하였다.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성수침은 서울의 순화방(順和坊:오늘날 순화동)을 떠나 파주에 은거하였다. 재야에 숨어사는 인재인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지방관리인 주부(主簿) 현감직을 받기도 했으나 모두 사양하고 취임하지 않았다. 율곡은 평소에 성수침을 마음깊이 존경하고 있었다. 성수침이 죽었을 때 퇴계는 묘갈명을 쓰고 기대승은 지명(誌銘)을 짓고 율곡이 행장기를 지어 바친 것으로 이를 알 수 있는데, 특히 절친한 친구였던 성혼의 아버지 성수침이 별세하자 ‘곡청송선생(哭聽松先生)’이라는 조시(弔詩)를 지어 이를 청송의 영전에 바치고 있는 것이다. “산악의 정기 한쪽으로 몰려 석인(碩人)의 풍채 훤칠하시어 앉아서 유림들로 하여금 우의(羽儀:봉황의 날개)를 쳐다보게 하셨도다. 봉새의 날개는 북극에 오르는 것을 아직 보지 못하였도다. 상영(霜英:서리 맞으며 피는 국화꽃)이 동리(東籬:동쪽울타리)에서 늙어가는 것이 아깝구나. 맑고 온화한 바람과 달은 음성과 그림자에서 흐르는 듯하고 아래위의 시내와 산은 편안히 수양하기를 도와주었네. 장부가 평생에 있는 눈물을 여기서 다 뿌렸으니, 이런 분을 위해 통곡하지 않고 누구를 위해서 통곡할 것인가.” 성혼은 율곡이 ‘이런 분을 위해 통곡하지 않고 누구를 위해 통곡할 것인가.’하고 절규하였던 청송 성수침의 아들. 율곡과 성혼이 처음으로 만난 것은 율곡이 어머니의 심상(心喪)을 마치고 관례를 올려 성인이 된 직후인 19살의 춘(春) 3월이었다. 성혼은 율곡보다 한살 위로 이미 정혼을 하여 처자가 있는 몸이었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파주. 원래는 창녕사람이었으나 성혼이 10세 되던 해 한양을 떠나 파주에 은거하였고, 율곡 역시 파주가 선영이 있는 곳이었으므로 두 사람은 동향지우(同鄕知友)였던 것이다.
  • 儒林(496)-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8)

    儒林(496)-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8)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8) 평생 지기였던 성혼에게 보낸 율곡의 편지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과거를 보는 한가지 길로 노친을 봉양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뜻을 굽힌 것이지 감히 가난으로 인해 녹봉을 구하는 것을 공맹의 바른 맥으로 삼은 것은 아니라네.” 편지의 내용으로 미뤄보면 성혼이 율곡이 과거를 보아 급제하여 ‘녹봉을 구하는 짓’에 전념한다고 비판하자 이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율곡은 성혼에게 자신이 과거를 보는 것은 노친, 즉 늙은 아버지를 봉양하기 위한 방편일 뿐 ‘공맹(孔孟)을 버리고 녹봉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율곡의 이러한 변명은 그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퇴계의 처신과 매우 흡사하다. 퇴계 역시 자신의 평생 과업이 벼슬의 길이 아니라 학문의 길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다만 늙은 어머니가 가난으로 고생하고, 가세가 궁핍하자 어쩔 수 없이 과거를 보아 벼슬길에 나섰던 것이다. 이러한 퇴계의 심정은 그의 행장기에도 자세히 실려 있고,53세 때 남명(南冥) 조식(曺植)에게 보낸 편지에 절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나는 집이 가난하고 모친이 늙으셔서 억지로 과거를 보아 녹봉을 받게 되었습니다.…그 뒤 병은 더욱 깊어가고 또 세상에 나가 일할 만한 능력이 없음을 스스로 안 뒤에야 비로소 뉘우치고 물러나 옛 성현의 글을 더욱더 힘써 읽어보니 이전의 나의 학문방향과 처신한 것이 모두 옛날사람에 비해 크게 어긋났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두려운 마음으로 지난날의 잘못을 깨닫고 그들을 따르고자 길을 바꾸어 노년기의 삶을 수습코자 하였습니다.…” 퇴계가 집이 가난하고 모친이 늙으셔서 억지로 녹봉을 마련하기 위해 벼슬길에 올랐다면 율곡 역시 집이 가난하고 노친을 봉양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과거를 보아 벼슬길에 올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율곡의 도의지우(道義之友)였던 성혼은 왜 그토록 율곡이 과거를 보아 입신출세하는 것을 만류하였던 것일까. 율곡의 생애를 논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단 한사람의 벗 성혼. 성혼이 없었더라면 천재 율곡은 대정치가로만 성장하였을 뿐 편지의 내용처럼 공맹의 바른 맥은 끊겼을지도 모른다. 성혼은 율곡을 평생 동안 학문의 길을 병행케 채찍질하였던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퇴계가 율곡의 정신적 스승이었다면 성혼은 율곡의 정신적 도반(道伴)이었다. 그렇다면 성혼은 어째서 율곡이 녹봉을 받는 벼슬길에 오르는 것을 그토록 반대하였던 것일까. 그것은 그 당시의 시대상황과 무관하지 않음이었다. 기묘사화(己卯士禍). 정암 조광조를 중심으로 하는 신진사림파들이 정치의 개혁을 부르짖다 구세력들에 의해 숙청당하였던 비극적인 사건인 기묘사화가 일어난 것이 중종14년(1519년). 율곡이 태어나기 17년 전의 일이었으나 율곡의 청년기에도 여전히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었던 것이다.
  • ‘퇴계 오솔길’에 오세요

    퇴계 이황 선생이 거닐던 오솔길이 새 단장을 마치고 일반에 공개됐다. 11일 경북 안동시에 따르면 도산면 단천리∼가송리 3㎞에 걸친 ‘퇴계 오솔길’ 준공식을 가졌다. ‘가던 길’이라는 뜻의 우리 옛말 ‘예던 길’로 불렸던 이 길은 퇴계 종택에서 봉화 청량산 방향으로 뻗어 있다. 퇴계 선생이 산책을 하거나 학문 수양을 위해 청량산을 오가던 길로 전해지고 있다. 안동시 관계자는 “퇴계 오솔길은 퇴계 사상과 시 작품이 형성된 역사적인 장소”라며 “도산서원 등 인근 관광지와 함께 경북북부지역의 볼거리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안동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儒林(494)-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6)

    儒林(494)-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6)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6) 율곡이 길을 떠난 성주는 그의 장인이었던 노경린이 목사로 있던 곳. 노경린은 이곳에 연봉서원을 세워 유학을 크게 장려하였으며,6년 동안이나 크게 선정을 베풀어 조정으로부터 포장을 받기도 하였던 명신이었다. 그가 세운 서원은 훗날 이퇴계가 천곡서원(川谷書院)으로 명명할 만큼 크게 성장하였다. 성주는 정인지(鄭麟趾)가 기문에서 ‘성주는 고을의 생긴 것이 산천이 수려, 기이하고 인물이 번성하여 상주, 진주, 경주, 복주와 더불어 서로 상하를 다툰다.…성주는 큰 고을이어서 국가에서는 반드시 진신(搢紳) 가운데 영준한 사람을 뽑아서 목사로 보내니 이 선발에 응하는 사람은 참으로 강명(剛明) 준걸한 인재들이다.’라고 표현할 만큼 역사적으로도 유서가 깊은 곳이었다. ‘진신’이란 벼슬아치를 통틀어 지위가 높고 행동이 점잖은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율곡의 장인 노경린이야말로 진신이었던 것이다. 성주는 원래 가야의 땅으로 ‘성산가야(聖山伽倻)’가 있었던 본향이었다. 정인지가 기문에서 표현한 대로 ‘성주에 땅이 산천이 수려하고 기이한’ 중요원인은 서남쪽 48리에 있는 가야산(伽倻山) 때문이다. 가야산은 해인사가 있는 명산으로 유명한데, 특히 우리나라가 낳은 최고의 문장가였던 최치원(崔致遠)이 말년에 어지러운 난세를 비관하여 해인사 경내에 은둔하면서 들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꽂고 ‘내가 살아 있다면 이 지팡이도 살아 있으리라.’하고 읊으며 사라졌던 곳. 그리하여 가야산 홍류동에서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로 유명한 고장이었던 것이다. 율곡의 장인 노경린이 이곳에 서원을 세운 것은 우리나라에 최초로 ‘주자서(朱子書)’를 베껴오고 공자와 주자의 진상(眞像)을 모시고 들어와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安珦:1243-1306) 때문이었다. 안향은 일찍이 충렬왕과 공주를 호송하여 원나라의 원경에 들어가 주자전서를 필사하여 돌아옴으로써 우리나라의 주자학이 들어오게 한 유학의 비조(鼻祖)였다. 원나라에서 돌아온 안향은 섬학전(贍學錢)이란 육영재단을 설치하고 국학대성전(國學大成殿)을 낙성하여 공자의 진영을 비치하는 한편 제기, 악기, 육경, 제자(諸子), 주자신서(朱子新書) 등의 경전을 구비하여 유학진흥에 큰 공덕을 남긴 태두였던 것이다. 안향은 그가 남긴 ‘회헌실기(晦軒實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 일찍이 중국에서 주회암(朱晦菴:주자)의 저술을 얻어 보니 성인의 도를 가르치고 선불의 학을 물리친 것으로, 그 공이 족히 중니(仲尼:공자)에 비할 수 있다. 중니를 배우려면 먼저 주자를 배우는 것이 제일이다.” 공자의 학문을 배우려면 먼저 주자를 통해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던 안향. 주자를 경모하여 주자의 화상을 항상 벽에 걸어 놓았으며, 자신의 호도 주자의 호인 ‘회암(晦菴)’의 ‘회’를 따서 ‘회헌(晦軒)’으로 삼았던 안향. 이처럼 안향이 도입한 성리학은 한국 유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여 쇠퇴하고 어지러웠던 고려의 불교세력과 대항하고 마침내 불교를 압도함으로써 조선시대의 건국이념으로까지 성장하였으니, 그런 의미에서 안향은 우리나라에 있어 ‘제2의 주자’였던 것이다.
  • 수도권 5개산업벨트 육성

    1일 국토연구원이 마련한 3차 수도권정비계획안은 수도권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가 수도권정비계획안을 새로 마련한 것은 제4차 국토종합계획 수정에 따라 2차 정비계획안을 마무리짓고 새로운 장기 계획(2006∼2020년)의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또 행정복합도시건설, 공공기관지방이전 등으로 현재의 수도권 공간 구조가 크게 흔들릴 것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수도권 공간구조 개편…낙후지역 집중 지원 정부는 내년쯤 수정법 개정작업이 마무리되면 지자체의 신청을 받아 하반기에 3,4개 정비발전지구 시범사업지를 선정할 방침이다. 수도권에 앞으로 3년간 한해에 60만평(2㎢)씩 모두 180만평의 산업단지를 새로 공급한다는 계획도 들어있다. 서울 중심 일변도에서 탈피, 수도권을 10개의 지역 중심 도시로 묶고 이곳에는 산업시설을 집중적으로 배치키로 했다. 인천-부천-김포권, 수원-화성권, 성남-용인권, 안양-군포-의왕권, 남양주-구리권, 평택-안성권, 의정부-양주-동두천권, 안산-시흥권, 파주-고양권, 이천-광주-여주권 등으로 나누어 집중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5개의 산업특성화 벨트도 조성한다. 서울 및 주변은 동북아 금융·업무허브로 키우기 위해 ‘업무 및 도시형 산업벨트’로 조성한다. 수원·인천은 반도체, 인천공항 등을 거점으로 한 ‘국제물류 및 첨단산업벨트’로 키운다. 경기북부는 파주 LCD단지 중심의 ‘남북교류 중심의 산업벨트’로 만든다. 경기동부지역은 ‘전원 휴양벨트’로, 경기남부는 ‘해상 물류 및 복합산업벨트’로 육성한다. 수도권내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규제 위주의 권역도 대폭 정비된다. 과밀억제, 성장관리, 자연보전 등 3개 권역으로 나눠 공장 신·증설, 공장총량, 대학정원, 택지조성 및 관광지 개발사업 등에서 차등 규제를 두고 있다. 그러나 3차계획안은 2008∼2009년까지는 현행 권역을 유지하되, 행정도시 건설과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마무리되는 2012년 후에는 권역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수도권 교통망 대폭 확충 수도권의 공항과 항만 등 국제 교통인프라를 확충하는 동시에 순환형 간선도로, 광역 전철망이 대폭 확충된다. 수도권 광역전철망 확충을 위해 ▲수도권남부순환선 광명역∼분당▲수도권외부순환선 삼릉∼경서역, 주안∼소래▲서울외부순환선 녹번∼목동∼광명∼하남▲수도권내부순환선 능곡∼의정부▲경의선2복선 서울역∼수색역▲경원2복선 용산∼청량리▲제2공항철도 신공항∼인천∼남서울▲수도권외부순환선 의정부∼도농▲수도권외부순환선 도농∼광주 등을 건설할 계획이다. 도로망은 ‘남북7축, 동서4축,3개순환망’간선도로망 체계를 구상중이다. 남방향으로는 ▲1축(서평택∼시흥∼서안산)▲2축(평택∼화성∼서울)▲3축(평택∼수원∼서울∼문산)▲4축(평택∼오산∼용인∼서울)▲5축(용인∼하남∼서울∼연천)▲6축(안성∼이천∼광주∼하남)▲7축(여주∼양평∼화도∼포천)등이다. 동서방향으로는 ▲1축(인천국제공항∼김포∼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구리∼화도)▲2축(인천∼안양∼성남∼이천∼원주)▲3축(인천∼의왕∼수원∼용인∼여주)▲4축(평택∼안성)이 구축된다. 내부순환도로망은 ▲기존 ‘내부순환’도로와 ▲‘제1순환’(판교∼안산∼부천∼일산∼의정부∼퇴계원∼하남∼송파∼성남)▲‘제2순환’(봉담∼인천∼일산∼파주∼동두천∼양평∼곤지암∼오산)망이 새로 건설된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儒林(487)-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9)

    儒林(487)-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9)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9) 퇴계의 편지를 보면 율곡은 23살 때의 봄에 치른 시험에서 낙과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율곡의 상심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보낸 퇴계의 편지는 맹자의 ‘고자장 하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인용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늘이 큰 인물을 그 사람에게 내리려 하실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심지(心志)를 괴롭히며 그 늑골(肋骨)을 수고롭게 하며, 그 몸과 피부를 굶주리게 하며, 그 몸을 궁핍하게 하며, 그의 하는 것을 어그러트리고 어지럽히는 것이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질을 참게 하여 그 능하지 못한 부분을 증익시키려 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러므로 명종13년 봄. 강릉의 외갓집을 가기 위해서 성주의 처가를 나선 청년 율곡의 발길은 천근처럼 무거웠을 것이다. 이미 한성시에서 장원급제하여 문명은 떨쳤지만 초시에 불과하여 벼슬길에 오르지도 못한 백면서생이었다. 아내 노씨부인을 얻어 정혼하였다고는 하지만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였다. 전도유망한 청년이었지만 나라는 어지럽고 질풍노도의 난세였다. 암중모색의 10대를 보낸 열혈청년의 나이였으나 여전히 미래는 불투명하고 덩굴에 매어달린 조롱박과 같은 절망감이 율곡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때의 율곡의 심정을 나타내는 시 한 수가 오늘날 남아 전하고 있다. ‘자성산 향임영(自星山 向臨瀛)’이란 제목의 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객지에서 봄도 꽤는 지났는데 우정에는 오늘 해도 지려 하네. 가는 당나귀 먹일 곳이 어디냐. 연기나는 저 밖에 있는 인가가 있겠네.(客路春將年 郵亭日欲斜 征驢何處 煙外有人家)” 당나귀를 타고 쓸쓸히 성주에서 바닷길을 따라 고향인 강릉을 찾아가는 율곡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명시 중의 하나이다. 우정(郵亭)은 말을 갈아타는 객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아마도 율곡은 나귀를 타고 종자 하나를 앞세우고 정처 없이 길을 떠나 낯선 객사에서 지친 몸을 누이면서 바닷길을 따라 북쪽으로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던 듯 보인다. 청년 율곡으로서는 고행의 가시밭길이었다. 어머니 신사임당은 이미 7년 전에 돌아가셨으나 효성이 지극하였던 율곡에게 어머니는 여전히 ‘상심의 바다’였다. 특히 율곡으로서는 어머니에게 치명적인 불효를 저질렀던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사실이었다. 16세 때 여름. 율곡은 수운판관으로 조운(漕運)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관서지방으로 출장가는 아버지를 따라 맏형 선(璿)과 함께 집을 떠나게 되었다. 수운판관이란 직책은 7품관에도 미치지 못하는 하급직위로 호조(戶曹)에 예속되었으며, 전함의 수리 및 감독을 맡아보는 전함사(典艦司)에 소속되어 있는 말단관리였다. 전함사는 본청이 서울의 중부에 있었고, 외사(外司)가 서강에 있었는데, 율곡은 아버지 이원수를 따라 서해바다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변고를 당한다. 율곡의 회상에 의하면 율곡의 일행이 서강에 있는 외사에 도착하였을 무렵 아버지의 행장에 들어있던 유기그릇이 갑자기 모두 빨갛게 변색해 버린 것이다.
  • 儒林(486)-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8)

    儒林(486)-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8)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8) 불과 10살밖에 되지 않은 율곡이 ‘아, 인생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짧은 일백년이고, 신체는 넓은 바다 가운데 한 개의 좁쌀이라네.’하고 노래한 것은 불교적 사유에 이미 도달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고향을 그리워하며 자신을 헛되이 떠도는 당나귀에 비유하였던 왕찬과는 달리 ‘좋은 경치를 찾아 하늘과 땅을 집으로 삼겠다.’는 문장은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겠다는 불교적 해탈을 꿈꾸는 율곡의 의지를 드러내보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천재소년 율곡은 곧 거친 물결(狂瀾)에 휩싸이게 된다. 즉 다정한 어머니이자 스승이었던 신사임당을 사별하게 되었으며,3년 동안 파주 두문리 자운산의 무덤옆에 여막(廬幕)을 짓고 아침저녁으로 몸소 제사를 올리며 시묘한 후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홀연히 금강산에 입산하여 불교에 귀의하게 되는 것이다. 19살의 율곡은 금강산으로 들어가면서 ‘동문을 나서면서(出東門)’라는 시를 짓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늘과 땅은 누가 열었으며/해와 달은 누가 갈고 씻었는가. 산과 냇물은 이미 무르녹아 어우러져 있고/추위와 더위는 다시 또 서로 갈리는구나. 우리 사람 만물 가운데 있어/지식이 제일 많도다. 어찌 조롱박처럼 되어/쓸쓸이 한 곳에 매여 있으랴. 전 세계와 온 나라 사이에/어디가 막혀 마음껏 놀지 못할까. 저 봄빛 짙어가는 산 천리 밖으로/지팡이 짚고 내 장차 떠나가련다.” 조롱박. 넝쿨에 달려 한 곳에 매여 있는 조롱박.16살의 나이에 출가를 단행하면서 지은 율곡의 시는 이 무렵 율곡이 얼마나 삶의 고통에 매어 달려서 몸부림치고 있었던 할례기(割禮期)였던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음인 것이다. 이처럼 율곡의 청년기는 암중모색(暗中摸索)의 혼돈기였다. 1년 만에 금강산에서 하산한 율곡은 다시 한성부에서 과거시험을 보아 장원급제한다. 이때 율곡의 나이는 21살. 훗날 율곡은 9번이나 과거시험에 수석으로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으로까지 불렸다. ‘아홉 번이나 장원급제 한 분’이라는 뜻의 이 별칭은 율곡이 우리나라 역사상 보기 드문 수재이자 천재임을 나타내는 용어이지만 그렇다고 율곡이 시험을 볼 때마다 급제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사실은 명종 13년(1558년) 이퇴계가 율곡에게 보낸 편지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통해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젊은 나이에 과거에 오르는 것은 하나의 불행이다.’고 하였으며, 자네가 이번 시험에 실패한 것은 아마도 하늘이 자네를 크게 성취하려는 까닭인 것 같으니, 자넨 아무쪼록 힘을 쓰게나.”
  • 퇴계집안 보러오세요

    조선시대 종가는 어떻게 살았을까? 아파트가 밀집된 서울에서 전통 있는 종가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서울역사박물관이 마련한 ‘진성이씨 기증유물특별전-옛 종가를 찾아서’는 600년 전통의 사대부 종가의 생활모습을 고스란히 서울로 옮겨왔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15세기 초 경북 안동에 정착한 뒤 퇴계 이황 등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진성이씨(眞城李氏) 대종가. 대지 760평에 본채와 사당, 정자, 사랑채, 행랑채 등으로 이뤄진 넓은 종가에 대대로 내려온 고문서와 전적류, 유품 등 2500여점을 대종손 이세준(59)씨가 최근까지 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동안 유물을 정리하고 도록을 펴낸 역사박물관은 기증유물 중 전시 가치가 높은 110점을 추려 첫 특별전을 마련한 것. 전시품으로는 퇴계의 증조인 이정(李禎)이 세종에게 하사받은 ‘선산부사임명장’을 비롯, 조선 초기의 교지(告身),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 이정의 종손인 이정회가 1577년부터 1612년까지 30년이 넘게 쓴 일기인 송간일기(松澗日記·4책) 등이 눈에 띈다.1590년경에 작성된 조선조 관직자 명부인 관안(官案)도 볼 수 있으며, 퇴계가 1567년 당시 종손 이정회에게 사당의 건립에 대한 의견을 써서 보낸 간찰도 있다. 특히 1600년에 간행된 이 가문 족보인 ‘진성이씨족보’도 서울 나들이를 했다. 현존하는 족보 중 세번째로 오래된 것으로, 목판본 3책으로 찍어내 그 양식과 내용이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후기 이후 족보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와 함께 사랑방에서 종손이 애용하던 먹감서류함·담뱃갑 등과 안채에서 종부가 사용한 사주단자·족두리·성주단지 등 생활·민속신앙 유물, 제사와 의례에 사용된 신주독·만장 등 유물도 전시된다. 사대부가의 혼인 및 시집살이에 대한 상세한 소개와, 이정에 대한 불천위제사의 절차를 담은 25분짜리 영상물도 흥미롭다. 전시는 내년 2월12일까지.(02)724-0114.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유림] 儒林(479)-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

    [유림] 儒林(479)-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 1558년 명종 13년 봄. 한양에서 600여리나 떨어진 경상도 성주(星州)에서 한겨울을 난 율곡은 해동이 되자 강릉의 외할머니를 만나기 위해서 길을 떠났다. 성주는 율곡의 처갓집으로 그곳에는 장인 노경린(盧景麟)이 목사로 재임하고 있었다. 노경린은 성주목사로 재임할 때 서원을 세워 유학을 장려하였으며,6년 동안 그곳에서 크게 선정을 베풀어 조정으로부터 포장을 받을 만큼 바른 시정을 펼치고 있었다. 노경린이 세운 서원은 훗날 퇴계가 천곡서원(川谷書院)으로 명명할 만큼 유서 깊은 서원이 되었는데,1년 전에 율곡은 노경린의 딸과 혼인하였던 것이다. 이때 율곡의 나이는 22살. 당시로서는 드문 만혼(晩婚)이었다. 원래 율곡의 장인 노경린은 서울의 수진방(壽進坊), 즉 오늘의 청진동에 함께 살던 이웃이었다. 그러므로 율곡의 부친이었던 덕형 이원수(李元秀)와 노경린은 벌써부터 알고 있었던 사이였다. 따라서 노경린의 딸과 율곡 간의 혼례는 덕수 이씨 집안과 곡산 노씨 집안의 결합이기도 했던 것이다. 율곡의 정부인이었던 노씨는 율곡과 여섯 살의 차이로 이 무렵 17살이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폐질을 알아서 건강한 몸은 아니었으므로 율곡이 처갓집이었던 성주에서 월동을 하였던 것은 어쩌면 신행(新行)겸 처가살이였던 것처럼 보인다. 겨우살이를 끝낸 율곡은 봄이 되자 성주를 떠난다. 목적은 강릉에 살고 있는 외할머니를 만나기 위한 것. 그러나 실은 정처 없이 사립문을 나선 나그네의 여정이었다. 왜냐하면 율곡의 고향이었던 강릉의 오죽헌에는 이미 사랑하는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이 아들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사임당.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현모양처 상으로 손꼽히는 신사임당은 이미 7년 전 율곡의 나이 16세 때 세상을 떠났다. 부덕과 재능을 갖추고 남다른 교육열로 직접 율곡에게 글을 가르쳤던 신사임당은 율곡에게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엄격한 스승이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율곡은 외할머니 이씨를 어머니 이상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이씨는 사임당의 아버지인 진사 신명화(申命和)의 부인으로 신씨 가에 시집가서 율곡의 어머니인 사임당을 비롯하여 딸 다섯을 낳아 키우고 ‘삼강행실도’를 외워 부덕을 닦기에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남편이 병으로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자 자기 손가락을 칼로 잘라 쾌유를 빌었다고 ‘중종실록’은 기록하고 있을 정도였다. 당시의 강원도 관찰사가 왕에게 보고한 치계(致啓)에 의하면 이씨는 서울에서 돌아온 남편이 전염병에 걸려 목숨이 위태롭자 밤낮없이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였다고 한다. 그래도 효험이 없자 어느 날 새벽 몰래 남편의 패도(佩刀)를 품고 선영에 나아가 향불을 피워 기도하며 남편의 쾌유를 간절히 빌었으며, 왼손 가운뎃손가락을 잘라 지극정성으로 간구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그날 밤 그녀의 꿈에 하늘에서 대추만한 약이 떨어지는 장면이 현몽하였고, 이튿날 남편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던 것이다.
  • 서울의 20층 매머드 빌딩

    서울의 20층 매머드 빌딩

    ◇ 정부종합청사 <23층 / 높이 82.95m> 지상 20층 옥탑(屋塔) 3층을 합해서 23층, 지하 3층, 높이 82.95m. 대지 4,500평에 연건평은 21,540평. 총 공사비 32억원. 17대의「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건물 밖에 200대가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과 지하에 500대를 수용할 수 있는 차고를 만들 예정이다. 70년 6월에 완공되면 한국에서 제일 높은「빌딩」의 하나가 된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직속기관을 비롯해서 총무처, 문공부, 법제처, 경제기획원, 재무부 등이 들어가게 된다. ◇ 한진(韓進)빌딩 <25층 / 높이 82.70m> 건물 주인은 한진상사의 사장인 조중훈(趙重勳)씨. 미도파 백화점과 상업은행 본점 사이에 세워지고 있다. 680평 대지에 연건평은 12,500평. 지하 2층, 지상 23층으로 높이는 82.70m로 정부청사보다 0.25m밖에 낮지 않다. 금년 3월초에 착공, 7월말에 완공시킬 예정의 돌격공사다. 옥상에「헬리포트」를 설치한다. KAL이 들어앉게 되어 있어 옥상에는 무전「안테나」가 선다. 완공되면 16층까지 한진 본사와 방계회사가 들어가고 나머지는 임대(賃貸)한다. 17층~23층까지는 객실 165개의「호텔」로 쓴다. 30인승 고속도 승강기 6대를 설치하고 지하에는 주차장을 둔다. ◇ 대연각호텔 <23층 / 높이 79.2m> 충무로 1가, 건물주인은 극동건설의 김용산(金用山)씨. 지하 1층, 지상 22층, 높이 79.2m. 그러나 앞으로 3층을 더 올릴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면 높이에서 정부청사를 누를 수 있다. 전 무학성(舞鶴聲)「카바레」자리 560평에 연건평은 1만평. 공사비는 내자 13억원과 차관으로 들여온 외자 196만「달러」의「호텔」과「오피스」용이다. 8천평이 사무실용이고 2천평이「호텔」객실 3백개로 쓰인다. 사무실쪽은 완공해 방계회사를 합해 13개 상사가 들어갔다. 지하에 60~70대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다. 사무실쪽의 낮 상주인구는 약 1천명. 밤인구는 밝힐 수 없으나 수위 10여명. ◇ 쌍룡회관(가칭) <24층, 높이 77.7m> 쌍룡양회(雙龍洋灰)와 한일은행의 합자. 대지 750평에 지하 2층, 지상 22층의 건물로 연건평 1만 5백평, 높이 77.7m. 8월말께 완공 예정. 공사비는 15억원. 층마다 4백평의 사무실용 평면이 생기는데 8층까지는 본사와 방계회사가 쓰고 그 위층은 임대한다. 사무실의 낮 상주인구를 3천명으로 보고 있다.「호텔」사용계획은 없다. 이「빌딩」하나를 위해 큰 전화국이 하나 주변에 설치된다. 옥상에는 5인승「헬리콥터」이·착륙장과 전국을「커버」하는 무전시설을 한다. 지하에 주차장, 고속도 승강기, 냉·난방시설을 둔다. 5mm 두께 유리 두 장을 써서 2중창으로 하는 것이 특색이다. ◇ 타워호텔 <20층 / 높이 76m> 처음에는 참전 16개국 기념관으로 착공했으나 돈 부족으로 4년을 끌다가 67년 6월에 겨우 준공했다. 정부소유에서 69년 1월에 7억 3700만원으로 삼화「빌딩」회장 남상옥(南相沃)씨에게 팔렸다. 대지 2만 3천평의 널따란 장소에 탑처럼 솟았다. 연건평은 1,349평이다. 연날리는 때의 얼레에「힌트」를 얻어 김수근씨가 설계했다. 높이 76m. 지하 2층, 지상 18층. 객실 91개「호텔」이므로「레스토랑」과 오락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67년에 이 건물이 섰을 때『대 서울을 한눈 아래로 볼 수 있는「빌딩」』이라는「캐치·프레이즈」를 낳았다. 이 탑 같은「빌딩」은 그 높이로 해서 서울 고층화의 한「모뉴멘트」가 됐다. ◇ 삼원(三原)데파트·맨션 <18층 / 높이 55.77m> 주인은 삼원건업주식회사의 임병주씨. 세운상가의 고층「빌딩」중에서 제일 높다. 지난 날 불량(不良)지구의 하나였던 인현시장을 헐고 초근대식 건물이 솟아 오른 셈이다. 69년 9월말에 완공 예정. 지하 2층, 지상 16층, 높이 55.77m. 현재 6층까지는 완성했고 10층까지 골조공사를 끝내놓았다. 4층까지가 백화점이고 5~15층까지가 30평~53평짜리의「아파트」274동이 든다. 임대조건은 보증금 최고평당 28만원에서 최하 12만원과 계약금액의 1%를 월세로 받는다. 고급「아파트」이기 때문에「맨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완전자동방화시설을 갖추었다고 주인은 자랑이 대단. ◇ 조선호텔 <20층 / 높이 69m> 소공동의 옛터에 지상 18층, 지하 2층, 객실 5백개의 위용을 보여주게 된다. 높이는 69m. 현재 골조공사가 거의 끝났다. 완공은 금년 12월말. 국제관광공사와 미국의「아메리칸·에어·라인」이 550만「달러」씩 공동출자, 준공이 되면「주식회사 조선호텔」로 새로 발족한다. 따라서「아메리칸·에어·라인」과 공동운영을 하다가 25년이 지난 1995년에 전재산이 한국인 손으로 넘어온다. 처음에는 32층의「매머드·호텔」을 세울 계획이었다. 고전적인 벽돌집 옛건물이 시대의 물결에 씻겨 내려가고 현대의 기능만을 살린「콘크리트」건물이 선다. ◇ 조양(朝陽)빌딩 <15층 / 높이 45.3m> 주인 박상섭(朴相燮)씨(48·조양상사, 조양운수, 조양상운, 조양물산 사장). 위치 충무로 2가의 퇴계로와 삼일로 입구의 일반상가 자리. 69년 2월 15일에 완공했다. 지하 1층에 지상 14층으로 총 건평은 2천 3백평. 주차장 2백평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주인 박상섭씨는 원래「코로나」1대의 운전사 출신이라고 한다. 그가「조양」이라는 이름이 붙은 숱한 기업체를 세웠으니 입지전적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삼일로가 생기고 고가도로가 설치되어 새 교통요충지에 거구(巨軀)를 자랑한다. ◇ 서울호텔(가칭) <18층 / 높이 55m> 태평로 1가에 높다랗게 솟아오른다. 대표자는 이상수(李相秀)씨. 지하 2층, 지상 16층, 높이 61m. 객실 165개. 중앙 냉·난방시설을 했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을 주차장으로 쓴다.「호텔」이므로 생활에 필요한 시설은 다 갖추어진다. 땅값을 빼고 총 공사비는 2억원. 금년 5월말께 준공 예정. 국회 앞 태평로 일대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다. 남대문 방면에서 시청쪽을 바라다 보면 비둘기들이 나는 시청옥사 둥근 탑 위에 날카롭게 솟아있다. 옥내에는 복도와 방에 고급「카피트」를 깔아「딜럭스·호텔」의 맛을 풍기게 하리라고 주인은 말하고 있다. ◇ 삼윤(三鈗)빌딩 <17층 / 높이 52m> 주인 이연갑(李演甲)씨(54·삼윤상사, 한양금속 사장). 위치 충무로 2가의 세종「호텔」뒤편으로 일제 때 보옥장(금은방)자리였고 최근까지는 보옥당구장과 양장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하 1층, 지상 14층과 오상에 급수탑과 기계실 2층이 있어서 도합 17층. 높이 52m. 현재 21개의 대소(大小) 회사가 들어있다. 싯가는 4~5억원. 임대료는 보증금이 평당 4만원이고 월세가 4천원이지만「오피스」가의 중심에 자리한 탓인지 혹은 사무실 구득(求得)난의 반영인지 짓자마자 다 나갔고 방은 비우는 대로 메워진다. [ 선데이서울 69년 3/30 제2권 13호 통권 제27호 ]
  • [주말 탐방] 멧돼지 서울습격사건

    [주말 탐방] 멧돼지 서울습격사건

    서울 도심 한 가운데, 창경궁에도 멧돼지가 나타났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관람객들이 놀라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서울의 멧돼지 출현은 올들어서만 4번째다. 서울시는 갈수록 멧돼지 출현 빈도가 높아질 것으로 판단하고 시민들에게 ‘멧돼지 대처요령’등을 알리는 등 잔뜩 긴장하고 있다. 자칫 서울시에서 멧돼지에 의한 인명사고라도 발생하는 날이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서울시 몫이기 때문이다. 멧돼지, 그들은 누구인가. 서울에 자주 출현하는 이유는 뭘까. 서울 인근에는 얼마나 많은 멧돼지가 살고 있을까. 농작물 피해·인명사고 우려로 차츰 ‘공공의 적’으로 변신하고 있는 ‘불청객’, 멧돼지에 대해 살펴본다. ■ 얼마나 살고 어디서 오나 지난 9월29일과 10월19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호텔 주변에 멧돼지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서울시 관계자와 많은 사람들이 놀라긴 했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멧돼지 출현지가 서울 외곽이고 인근에 산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27일 밤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과 지난 24일 도심 한가운데 멧돼지가 출현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도심으로 내려온 멧돼지’는 인명피해 등 심각한 상황을 유발할 소지가 다분하다. 서울시는 부랴부랴 서울 주변지역 멧돼지 개체수와 이동 루트 파악에 나섰다. 지난 5월 24일 노원구 공릉2동 아파트단지에 나타난 멧돼지는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별내면을 거쳐 수락산과 불암산 등을 지나 서울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별내면 일대에는 537m 수리봉이 638m 수락산과 바로 이어지고 불암산과도 연결된다. 구리 인창동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인근에 두차례 나타난 멧돼지는 남양주시 별내면을 거쳐 퇴계원을 지나 용마산과 아차산을 통해 출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이 루트는 앞으로도 더 많은 멧돼지가 나타날 수 있는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서울 도심에 나타난 멧돼지는 양주군 일대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영역 싸움에 밀려 도봉산-북한산을 거쳐 종로구 창경궁에 출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멧돼지가 도심까지 내려오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개체수 증가에 있다. 멧돼지 수가 증가하면서 영역확보를 위해 도심 근처까지 진출하게 되는 것이다. 환경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경기지역에 서식하는 멧돼지는 2001년 100㏊당 0.5마리에서 2004년에는 2.3마리까지 급증했다. 수치만으로 보면 500%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물리적으로 멧돼지 영역이 확장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환경부 자연자원과 관계자는 “멧돼지 개체수가 급증한 2001년 이후부터 멧돼지에 의한 농작물 피해 접수도 크게 증가했다.”면서 “전국적으로는 20여만마리, 서울 인근 경기도 지역에는 약 1만여마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2001년 2000여마리로 추정되던 것에 비하면 5배나 증가한 수치다. ‘도심으로 내려온 멧돼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부분 개체수가 늘어난 상황에서 겨울철을 앞두고 식욕이 왕성해진 멧돼지들 사이에 영역 경쟁이 심해지면서 경쟁에서 밀려난 멧돼지들이 도시 근교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멧돼지 개체수가 증가한 원인을 여러 곳에서 찾고 있다. 첫째, 호랑이 곰 삵 늑대 등 멧돼지 천적이 없다. 멧돼지는 이미 먹이사슬 구조에서 꼭대기에 위치할 정도로 천적이 없는 상황이다. 사람이 아니고서는 멧돼지를 잡을 만한 동물은 없다. 둘째, 입산금지 구역이 늘어나 멧돼지 서식 공간이 넓어졌다. 특히 경기도 지역은 군부대로 인한 입산금지 구역이 많기 때문에 멧돼지가 크게 늘었고 앞으로 더 많이 도시에 출몰할 수 있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멧돼지에 의한 피해는 지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전국적으로 164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까치의 피해 171억원에 이어 다음이다. 그러나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까치 등 조류에 의한 피해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멧돼지에 의한 피해가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멧돼지에 의한 피해가 전체 피해의 40%를 차지했으며 까치는 27%를 차지했다. 야생동식물보호법에는 멧돼지를 허가 받은 사람만 포획하고 처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시중에서 멧돼지 고기를 맛보는 것은 쉽지 않아야한다. 그렇지만 이미 경기도를 비롯한 전국 많은 농가에서 멧돼지를 기르고 있다. 경기도 양평에서 멧돼지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임정용 사장은 “순수 야생 멧돼지 고기는 질겨서 먹을 수가 없다.”면서 “육질이 좋은 ‘듀록’종 돼지와 교배시킨 F1(50% 멧돼지)이 소비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멧돼지 고기는 돼지고기의 두배정도의 가격에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에서는 약 20여곳의 음식점에서 멧돼지 고기를 맛볼 수 있으며, 고기는 경기도 분당 삼성플라자에서 공급되고 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멧돼지와 맞닥뜨리면 “멧돼지와 갑자기 맞닥뜨릴 경우 등을 보이지 말고 눈을 똑바로 쳐다본 채 움직이지 마세요.” 창경궁을 비롯, 올들어 서울에만 4차례나 멧돼지가 출현하자 서울시는 최근 ‘멧돼지 발견시 대처요령’을 발표,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고취시켰다. 먼저 멧돼지를 만나게 되면 뛰거나 소리지르는 행동을 반드시 삼가야 한다. 멧돼지가 오히려 놀라 공격하기 때문이다. 또 등(뒷모습)을 보이거나 겁먹은 표정을 보여서는 안된다. 대한수렵관리협회 이덕재 부장은 “야생동물은 상대가 등을 보일 경우 직감적으로 겁을 먹은 것을 알고 공격한다.”고 설명했다. 멧돼지는 흥분하게 되면 움직이는 물체를 보고 달려들기 때문에, 주위에 나무나 바위가 있다면 그 뒤로 몸을 숨기는 것도 멧돼지를 만날 경우 호신법이 될 수 있다. 만약 우산을 가지고 있다면 멧돼지 앞에 우산을 펼쳐보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경우 멧돼지는 우산을 바위로 착각해 달려들지 않고 멈추게 된다. 서울시는 멧돼지 출현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고 판단, 멧돼지 전문수렵인으로 이뤄진 전문포획단을 구성하는 긴급대응 시스템을 구축키로 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정부 멧돼지사냥 대책 멧돼지에 의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개체수 조절’을 꼽는다. 자연상태에서 개체수 조절은 천적을 통해 이뤄지는데 멧돼지는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국립환경과학연구원 김원명 박사는 “호랑이 삵 곰 등 멧돼지의 천적이 이미 멸종했기 때문에 자연적인 멧돼지 개체수 조절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사람이 나서서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행 규정대로라면 사람이 잡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재 멧돼지나 청설모 등 유해 야생동물은 포획허가제와 수렵장제도를 통해 잡히고 있다. 현행 포획허가제도와 수렵장제도는 여러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돼, 이에 대한 개선책이 검토되는 중이다. 우선 환경부는 경찰청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포획허가 절차를 최대한 간소화할 방침이다. 또 야생동물 피해 예방을 위해 야생동물이 싫어하는 기피제를 만들어 농민들에게 보급할 계획이다. 또 피해예방시설 설치비를 국고에서 지원하고 야생동물 대리포획자 등의 활동비를 지원하는 것을 검토중이다. 현재 유해야생동물 대리 포획자에 대해서는 포획을 의뢰한 농민들이 개별적으로 활동비를 지급하고 있다. 수렵장제도 운영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서울지역 멧돼지 출현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경기도 지역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수렵장으로 지정된 적이 없다. 올해도 오는 11월21일부터 내년 2월28일까지 전국적으로 수렵장을 운영할 계획이지만 경기도에서는 단 한곳도 신청이 접수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경기도 지역에 멧돼지 수렵장을 개설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중이다. 수렵장제도가 시작된 이래 경기도 지역에 처음으로 수렵장이 개설되면 서울지역 ‘사냥꾼’들이 크게 환영할 것으로 기대된다. 환경부는 일반수렵장 설정기간 외에 농작물 피해가 심한 기간에 특별수렵장을 지정해 운영하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는 우선 ‘유해야생동물 피해예방 및 방지대책’을 법령화해 내년 상반기에 제정할 방침이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멧돼지는 몸길이 1.1∼1.8m, 몸무게 50∼280㎏인 멧돼지는 활엽수가 우거진 깊은 산속에 주로 서식한다. 한자어로는 산속에 사는 돼지 혹은 들에 사는 돼지라는 의미로 산저(山猪)·야저(野猪)라고 한다. 주둥이가 길며 원통형이다. 눈은 비교적 작고, 귓바퀴는 삼각형이다. 머리 위부터 어깨와 등면에 걸쳐서 긴 털이 많이 나 있다. 생식·번식기 12∼1월, 임신기간 114∼140일이며 5월에 6∼8마리 많게는 10마리까지 낳는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있어서 부상을 당하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반격하는데, 송곳니는 질긴 나무 뿌리를 자르거나 싸울 때 큰 무기가 된다. 본래 초식동물이었지만 토끼·들쥐 등 작은 짐승부터 어류와 곤충에 이르기까지 아무 것이나 먹는 잡식성동물로 변화했다. 청각과 후각이 아주 예민해 300m밖에서도 사람을 알아챈다.
  • 경춘선 망우~금곡구간 복선전철 사업 착공

    경춘선 망우~금곡구간 복선전철 사업 착공

    경춘선 망우∼금곡 복선전철 사업이 본격적으로 착공된다. 건설교통부는 경춘선 복선전철화 사업구간 가운데 망우∼금곡의 ‘철도건설사업실시계획승인’이 완료돼 전구간 사업이 본격화됐다고 25일 밝혔다. 이 구간은 경춘선 망우∼춘천구간(81㎞)의 마지막 17.2㎞ 시공구간(2개공구)으로 총사업비 5354억원이 투입돼 2009년 완공예정이다. 이와 함께 기존의 갈매·퇴계원·사능·금곡역사를 현대식으로 바꾸는 작업도 병행된다. 망우∼금곡간 복선전철은 현재 경원선 성북역에서 갈라져 갈매·퇴계원역으로 운행되던 노선을 중앙선 망우역을 분기역으로 갈매(역사위치 변경)∼퇴계원역으로 노선을 변경해 신설된다. 건교부 관계자는 “공사가 완공되면 망우역에서 중앙선, 신상봉역에서 지하철 7호선과 각각 환승이 가능해져 구리·남양주 지역의 고질적인 교통체증이 완화되고 중랑구(45만명), 경기 구리시(20만명), 남양주시(45만명) 주민의 대중교통 편의가 크게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2집이 맛있대] 춘천 녹차 솥뚜껑 삼겹살

    [2집이 맛있대] 춘천 녹차 솥뚜껑 삼겹살

    추적추적 가을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소주 한잔에 토실토실 맛깔스러운 삼겹살 생각이 절로 난다. 녹차와 한약향기가 솔솔 풍기며 혀끝을 자극하는 녹차 삼결살은 그야말로 일품요리가 부럽지 않다. 강원도 춘천시 석사동 퇴계4지구에 있는 녹차 솥뚜껑 삼겹살집에서 내는 고기 맛이 바로 그맛이다. 계피, 황기, 감초 등 돼지고기와 궁합이 맞는 한방재료에 녹차잎을 넣고 우려낸 물에 48시간 숙성시킨 삼겹살은 잡냄새가 없이 향긋하고 부드러운 육질의 고기로 다시 태어난다. 숙성된 삼겹살은 특수제작된 숱뚜껑 모양의 불판에 숭덩숭덩 썬 포기김치와 새송이버섯, 팽이버섯, 두부, 양파, 고구마 등과 함께 올려 손님상에 낸다. 이때 나오는 고기에는 녹차잎이 그대로 붙어 나와 녹차 삼겹살의 운치를 더한다. 한술 더떠 고기가 육수를 내며 지글지글 익어갈 때쯤 주인이 고기 위에 녹차가루를 듬뿍 뿌려주면 한약과 녹차향이 어우러져 침샘을 더욱 자극한다. 담백하면서 향기로운 삼겹살을 한입 가득 물고 씹으면 그야말로 살살 녹는다. 특히 소주 한잔에 주인이 직접 담은, 새콤달콤하게 적당히 익은 김치에 버섯류와 함께 노릇노릇 익은 삼겹살을 싸서 먹는 맛이란…. 고기는 강원도 횡성지역의 청정 고기만을 고집하는 전문 정육점에서 가져다 쓴다. 김치와 고추, 상추, 깻잎 등 채소류도 춘천 인근에서 재배한 저농약 채소만 쓴다. 때문에 ‘안심 먹을거리’를 찾는 단골손님들로 늘 북적인다. 녹차도 국내 보성산만을 쓴다. 함께 나오는 메뉴 가운데 녹차냉면은 녹차가루를 사용한 면을 삶아 내고 있어 녹차를 좋아하는 손님에게는 그만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여주인은 손님에게는 좋은 재료로 맛깔스러운 음식을 내는 것이 무엇보다 큰 기쁨이란다. 그래서인지 음식에 주인의 정성이 배어나온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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