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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도, SSM갈등 첫 자율조정

    기업형 슈퍼마켓(SSM)과 지역 상인들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경기도내 SSM과 지역 상인들간에 첫 합의가 나왔다.경기도는 26일 남양주시 퇴계원면에 GS슈퍼마켓 퇴계원점을 개점할 예정이던 GS리테일과 지역 소상공인 대표가 도의 중재로 갈등해소를 위한 합의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합의서에는 GS슈퍼의 영업시간과 판매 품목의 조정, GS리테일 측의 소상공인 교육과 컨설팅, 인근 지역 점포에 대한 다양한 상품공급 등을 통해 서로 이익을 증진시키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노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GS리테일은 지난 8월부터 퇴계원면에 955㎡ 규모의 SSM 개점을 추진해 왔으나 인근 상인들이 “생존권을 위협받는다.”며 반발, 갈등을 겪어 왔다. 지역 상인들은 같은 달 6일 중소기업청에 GS슈퍼마켓 입점으로 따른 피해 등에 대한 사전조사를 신청했고, 도는 같은 달 31일 이 슈퍼마켓에 대해 사업개시를 일시 정지시켰다.이어 같은 달 5일 SSM 진출 사전조정업무를 중소기업청으로 이관받은 도는 지난달 6일 사전조정협의회를 구성, SSM과 지역 상인들간 갈등 조정작업을 벌여 오다 이번에 자율조정에 성공했다. 도는 이번 자율조정이 경기도는 물론 전국의 SSM 관련 갈등 해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내에서는 남양주 GS슈퍼마켓 외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수원 ‘구매탄점’과 용인 ‘죽전점’, 롯데슈퍼 수원 ‘우만점’ 등 9곳이 조정을 진행 중이다.도 관계자는 “도는 남양주시 사례를 계기로 나머지 SSM 사업조정신청 지역에 대한 갈등 중재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언행일치로 청렴한 세상 만들어가요”

    국민권익위원회는 23일 ‘제1회 전국 초등학생 청렴 글짓기 대회’ 본선 수상자를 발표했다. 올해 처음 개최된 이번 글짓기 대회는 ‘나와 우리 가족이 정직한 생활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일은?’이라는 주제로 펼쳐졌다. 대상은 서울 남성초 5학년 이연희(11) 학생이 차지했다. 이 학생은 “퇴계 이황 선생이 ‘경’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듯이 언행이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청렴한 세상은 내가, 우리 가족이, 우리나라 국민이 직접 만들어 가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지었다. 금상은 서울 문래초 전세영, 경기 비룡초 최성임, 인천 논현초 이예지, 서울 진관초 성은지, 안동 강남초 이화진 학생이 받았으며, 은상에는 충북 의림초 정영실 학생 등 10명이 선정됐다. 이재오 위원장은 “청렴은 어릴 때부터 생활습관으로 자리잡아야 하는 만큼 초등학생 청렴 글짓기 대회를 통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청렴 가치관과 인식을 심어 주고, 청렴의 중요성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서울 ‘세운 초록띠 공원’ 2단계 사업착수

    서울 청계천과 을지로 사이에 대규모 녹지대를 조성하는 ‘세운 초록띠 공원’사업 2단계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서울시는 종로와 퇴계로 사이 세운상가와 청계·대림상가를 철거하고 폭 90m, 길이 290m의 녹지를 만드는 도시계획안을 지난 1일부터 열람공고했다고 4일 밝혔다. 이에 따라 시는 청계상가에 대해 연말까지 보상계획을 수립해 내년에 시행할 방침이다. 세운상가 가동과 대림상가 등 나머지 2단계 구간도 단계적으로 사업에 착수해 2012년까지 2단계 사업을 마무리하게 된다. 시는 아울러 풍전·진양상가 일대의 을지로~퇴계로 구간에 폭 90m, 길이 500m의 녹지대를 만드는 3단계 사업을 2015년까지 마무리한다. 종묘와 남산을 연결하는 세운 초록띠 공원 조성사업은 종로와 퇴계로 사이 상가들을 철거하고 대규모 녹지대를 조성하는 사업으로, 1단계 종로~청계천 구간은 지난 5월 완공됐다. 시는 청계상가 건축물 철거 및 공원조성에 쓸 비용을 인접 재정비촉진사업과 연계해 조달할 방침이다. 시비를 우선 투입한 뒤 추가 소요비용을 가까운 세운5-1구역 사업시행자가 추후 부담하게 된다. 서울시 균형발전본부 정유승 담당관은 “초록띠 공원조성사업이 완료되면 청계천 축과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등이 하나의 문화관광벨트로 연계돼 서울의 도시 경쟁력 강화에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역귀성’ 부모님 서울오기 전 이것만은

    ‘역귀성’ 부모님 서울오기 전 이것만은

     3일간이란 짧은 추석연휴에 자식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서울로 오는 ‘역귀성’을 택한 노부모님들.이번 추석엔 서울의 주요 관문인 서울역 등지의 대중교통 시스템이 많이 달라져 꼼꼼히 익혀놓지 않으면 부모님을 고생시켜드리기 십상이다.자식·손자손녀 주려고 바리바리 싼 꾸러미를 두손에 든 노부모님이 고생하실 것을 생각하면 바뀐 버스정류장 정도는 숙지해 놓아야 할 것같다.  서울역과 반포 서울고속터미널 인근 교통시스템이 지난 설때와 달리 많이 달라졌다.서울고속터미널 앞에 버스중앙차로제가 시행돼 기존의 버스정류소가 옮겨졌고, 서울역 앞에는 버스환승센터가 생겨 이곳 또한 버스정류소의 위치가 싹 바뀌었다.또 지하철 9호선이 개통되면서 서울고속터미널에서 이용할 수 있는 노선도 늘어 굳이 택시를 타지 않아도 편하게 도착할 수 있다.  ●서울역 앞에서 버스타려면 노선도 꼭 참조  서울역에 내려 버스를 타러 이리저리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졌다.서울역 주변 10여곳에 산재됐던 버스정류소를 한 곳에 모은 시내버스환승센터가 지난 7월 25일 개통됐다.기존 버스정류소에 익숙했다면 많이 헷갈릴 수 있다.  원칙만 알면 간단하다.서울역에서 나오면 바로 정면에 보이는 1~7번 정류소 중 1~2번은 택시를 이용하는 곳이다.용산·김포(인천)공향 방향으로 가려면 3번 정류소에서,용산·광명·시흥·노량진 방향으로 가려면 4번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면 된다.강남·분당·퇴계로 방향은 5번,고양·은평·구리 방면은 6번 정류소를 이용하면 된다.한강로→한국은행·시청 방면 버스는 7번 정류소에서 탈 수 있다.    서울역 계단을 내려와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있는 전체 노선도를 참조하면 편리하다.  자세한 정보는 서울시 교통정보센터 홈페이지(http://topis.seoul.go.kr) 혹은 120 다산콜센터(전화 120번)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고속터미널 앞에서 버스 타려면 차도 중앙에서  반포 서울고속터미널 앞도 많이 바뀌었다.지난 6월 13일부터 구 반포삼거리∼논현역 사이 3.5㎞ 구간에 중앙차로제도가 시행됐기 때문이다.  중앙차로 정류장에서 이용할수 있는 버스는 143,148,360~362,401,4212,4318,4425,4425(심야),462,540,540(심야),6000,640,6411,642,642(심야),643,8541,9408번이다.가장 가까운 중앙차로 정류장은 신세계백화점이 입점한 센터럴시티(호남선) 빌딩 바로 앞에 있다.이외 노선은 주변에 있는 가변차로 정류장,마을버스·공항버스 정류장을 이용하면 된다.  ●터미널에 내려 9호선 타고 ‘슝~’  지하철 9호선의 개통도 고속터미널에서 내린 어르신들이 알면 좋은 정보다.9호선이 지난 7월 24일 개통되면서 서울 동남 지역과 서북부 지역을 바로 잇게 됐다.신논현역에서 개화역까지 52분이면 간다.고속터미널에서 동작(현충원)까지 5분40초 거리가 급행을 타면 3분15초로 줄어든다.고속터미널에서 김포공항까지 급행을 이용하면 43분에서 27분30초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단 다른 노선으로 환승이 바로 되지 않는 곳이 있으니 지하철 9호선 홈페이지(http://www.metro9.co.kr/index.do)에서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지하철·시내버스 연장 및 증편  한편 3~4일에는 서울의 지하철과 시내버스 막차 운행시간이 연장된다.또 추석연휴기간 고속·시외버스도 증편된다.  3~4일 지하철 1~9호선은 종착역을 기준으로 다음날 새벽 2시까지 12~30분마다 1대꼴로 하루 총 142차례 늘어난다.또 같은 기간에 시내버스는 서울역·청량리역·영등포역·용산역 등 기차역과 반포 서울고속버스터미널·동서울·남부·상봉 등 주요 버스터미널에서 새벽 2시까지 탈 수 있다.연휴기간 고속·시외버스는 하루 1828회를 늘려 모두 7166회 운행되고 30일 오전 4시부터 10월5일 자정까지 개인택시 부제가 해제된다.  1일 오전 6시부터 4일 자정까지 남부순환로 남부버스터미널~서초IC 구간(0.5㎞) 양방향의 도로변 1개 차로는 임시 버스전용차로로 운영된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나사 풀린 경찰

    경찰이 엉뚱한 피의자를 풀어준 데 이어 감시소홀로 피의자를 놓치는 일이 또다시 벌어졌다.서울 수서경찰서 산하 개포지구대는 26일 오후 11시쯤 보험사기 혐의로 붙잡아 조사하던 홍모(31)씨를 놓쳤다. 홍씨는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도망쳤다. 이후 홍씨는 22시간 뒤인 27일 오후 9시쯤 서울 서초동의 한 고시원에서 붙잡혔다. 지명수배로 긴급체포된 피의자를 수갑도 채우지 않고 의자에 앉혀 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앞서 수서경찰서는 지난 15일에도 유치장에 수감 중이던 피의자 강모(50)씨의 출감지휘서를 작성하던 중 다른 사람을 풀어주는 실수를 저질러 비난을 샀다. 또 지난 주말 서울 도심 대로에서는 교통신호 마비로 극심한 교통혼잡이 빚어졌지만 경찰이 뒤늦게 10여통의 신고전화를 받고서야 상황을 파악해 빈축을 샀다.지난 26일 오후 5시40분부터 6시10분까지 30여분간 서울 남산1호터널과 명동성당 뒷길로 이어지는 퇴계로2가 사거리의 신호가 마비됐다. 이 여파로 한남동부터 안국역까지 3㎞에 이르는 구간에서 1시간가량 정체가 계속됐다.박건형 오달란기자 kitsch@seoul.co.kr
  • 57인 선현들의 묘비명으로 본 성찰과 지혜

    57인 선현들의 묘비명으로 본 성찰과 지혜

    “나는 젊어서는 성실하다가 장성해서는 근심이 많았고 늙어서는 어둑어둑하므로, 시원을 따져보고 끝에서 처음으로 되돌려 몸뚱이와 함께 변화해 없어지지 않을 것을 찾아본다 해도, 끝내 그림자와 음향처럼 방불한 것을 찾을 수가 없다. 게다가 80년 세월을 죄다 낭비해 버린 탓에, 뻔뻔하게 붓을 잡고 편석(片石)을 빌려서 문장으로 꾸미면서, 휑하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모르고 있다니, 아무래도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조선 후기 농업백과전서 ‘임원경제지’의 편찬자인 서유구(1764~1845년)는 죽기 전 남긴 자찬 묘표(무덤 앞에 쓸 묘표에 스스로 글을 적는 것)에서 이렇게 탄식했다. ‘오비거사생광자표(五費居士生壙自表)’란 제목 그대로 서유구는 이 글에서 자신이 인생에서 낭비한 다섯 가지를 정리했다. 그러면서 손자 태순에게 이르기를, “내가 죽은 뒤에는 우람한 비를 세우지 말고, 그저 작은 비석에 ‘오비거사 달성 서 아무개 묘’라고 써준다면 족하다.”고 당부했다. 해박한 학식으로 큰 업적을 남겼음에도 “80년 세월을 죄다 낭비해 버렸다.”고 자책하는 대목에선 자신을 평가하는 선비의 서릿발처럼 엄정한 잣대가 느껴진다. ●옛 선비들은 생전에 묘표·만장 등 만들어 우리 조상들은 살아 생전 자신의 무덤을 만들고, 스스로 묘지(墓誌)와 묘표(墓表), 묘비명, 만장(輓章)을 짓는 풍습이 있었다. 중국 후한 시대에 비롯된 이 풍습은 고려 때 김훤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많은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살아있을 때 죽음과 대면하는 연습을 하며 나약해지거나 게을러진 내면을 추스르고, 남은 인생을 진실되게 살고자 마음을 다잡았던 것이리라. 고려대 심경호 한문학과 교수가 지은 ‘내면기행’(이가서 펴냄)은 김훤부터 일제강점기 이건승까지 역사속 인물 57명의 묘비명을 통해 그들이 추구한 삶과 가치관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현대인 ‘웰다잉’시대에 참고할 만해 퇴계 이황(1501~1570년)은 4언 22구의 글을 지어 자신의 묘비에 쓰도록 했다. “태어나 크게 어리석었고, 자라서는 병치레가 많았다. 중간엔 배운 것이 얼마나 되었나, 늘그막엔 왜 외람되이 작록을 받았나?(중략) 시름 가운데 즐거움 있고, 즐거움속에 시름 있도다.” 허균과 동문수학한 금각(1569~1586년)은 폐결핵으로 18세에 세상을 떴는데 숨지기 직전 “뜻은 원대하지만 명이 짧으니 운명이로다.”란 간결하면서 강렬한 묘지를 남겼고, 조선 인조때 문신 이준(1560~1635년)은 “어찌 감히 게으르랴, 죽은 뒤에나 그만두리라.”며 쉼없는 정진을 후손에게 독려했다. 조선 전기 시인 남효온(1454~1492년)은 “다섯 딸은 애비 찾아 울부짖고, 아들은 하늘 부르며 통고하며 종 아이는 와서 막걸리를 올리고, 승려는 와서 명복을 비네”라며 장례식 풍경을 상상한 시를 남겼다. 이어 “다만 한스럽기는 세상 살았을 적, 끔찍하게 여섯 액운이 모였던 일”이라며 용모가 추해 여색을 가까이 못한 것 등을 들었다. 책에 따르면 선인들은 죽음에 대처하면서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자신의 본래성을 추구했다. 웰다잉 프로그램의 하나로 묘비명을 써 보는 현대인들이 늘어나는 요즘, 옛 사람들의 묘비에서 성찰과 지혜를 찾아볼 일이다. 2만 3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경북 봉화 청량산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경북 봉화 청량산

    청량산(870m)은 낙타의 등처럼 생긴 12봉우리(육육봉)의 웅장한 기상이 일품인 산이다. 중부 내륙의 첩첩산중에서 청량산의 아름다움을 알아본 사람은 퇴계 이황이었다. 퇴계는 청량산이 세상에 알려지는 게 싫었다.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흰 기러기뿐. 기러기가 날 속이랴 못 믿을 건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 가지 마라 어주자(魚舟子)가 알까 하노라.”라고 읊으며 청량산에 대한 짝사랑을 고백했다. 그리고 자신의 호를 아예 청량산인으로 고쳐 불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퇴계 덕분에 청량산은 널리 알려져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경북 내륙의 오지 중의 오지였던 봉화가 요즘 뜨고 있다. 예전에는 수도권에서 5∼6시간 걸렸지만 지금은 길이 좋아져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접근성이 좋아진 덕분에 청정한 오지의 자연이 관광자원으로 거듭난 것이다. 매년 열리는 은어축제와 송어축제, 그리고 올해 초에 상영해 큰 인기를 누린 영화 ‘워낭소리’ 촬영지, 또한 5월에 개통한 국내 최대 규모의 청량산 하늘다리를 찾는 인파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청량산은 전체적으로 험하지만 비탈과 봉우리 사이를 부드럽게 타고 도는 산길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산행 코스는 입석에서 시작해 응진전, 어풍대, 김생굴을 차례로 거쳐 자소봉(840m)에 올랐다가 능선을 타고 하늘다리를 찍고 청량사로 하산하는 것이 좋다. 거리는 약 5㎞, 4시간쯤 걸린다. 청량산 입구에서 산으로 들어가려면 낙동강을 건너야 한다. 옛 선비들은 이곳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배 안에 올라 갓끈을 풀어 땀을 닦던 퇴계는 강물에 흔들리며 얼마나 설레었을까. 그러나 지금은 차를 타고 널찍한 다리를 몇 초 만에 건너 버린다. 참으로 분위기 없는 입산이다. 다리 건너 2㎞쯤 떨어진 입석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산길 초반엔 급경사… 10분쯤 지나면 순해져 산길은 초반부터 급경사가 이어지지만 10분쯤 오르면 순해지면서 금탑봉 아래 다소곳이 들어선 응진전이 눈에 들어온다. 응진전 뒤로 보이는 큰 암봉 위에 작은 바위가 올려져 있는데, 이를 동풍석(動風石)이라고 한다. 저절로 움직인다는 전설의 바위다. 예전에 어떤 스님이 이곳에 절을 지으려 했다. 그런데 암봉 위에 바위가 있는 걸 보고 스님이 올라가 떨어뜨렸다. 그런데 다음날 보니 그 바위가 도로 올려져 있어 절을 짓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응진전 안에는 특이하게도 16나한상과 함께 공민왕의 부인인 노국공주가 모셔져 있다. 공민왕과 함께 홍건적의 침입 때 피란 온 노국공주가 손수 16나한을 깎아 응진전에 모시고 홍건적 퇴치와 국가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응진전을 지나 모퉁이를 돌면 청량산 최고의 전망대인 어풍대가 나온다. 어풍대는 천 길 벼랑으로 철 난간 쪽으로 가까이 가면 청량산 육육봉이 연꽃처럼 펼쳐지고 그 안 꽃술자리에 청량사가 포근히 안겨 있다. 과연 청량사의 자리는 청량산의 기운이 모이는 기막힌 명당이다. 어풍대를 지나면 신라 최치원이 마시고 머리가 좋아졌다는 총명수, 명필로 유명한 김생이 은거하며 글씨를 썼다는 김생굴을 차례로 지난다. 이어 길은 어풍대에서 보았던 암봉들 사이를 이리저리 부드럽게 휘돌아가며 자소봉에 이르는데, 그 오묘한 조화에 힘든 줄 모른다. 코가 닿을 듯한 급경사 철계단을 오르면 자소봉 정상이다. ●북쪽 멀리 백두대간 소백산 구간이 아스라이… 스님들은 보살봉, 주민들은 탕건봉으로 부르는 자소봉은 청량산의 실질적인 정상이다. 청량산 최고봉인 장인봉보다 40m쯤 낮지만 육육봉의 중심축을 이루며 그 생김새가 수려하기 때문이다. 북쪽 멀리 웅장하게 흘러가는 백두대간 소백산 구간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자소봉을 내려오면 본격적인 능선길이다. 탁필봉과 연적봉을 우회해 급경사 철계단을 내려오면 뒷실고개 삼거리. 여기서 작은 고개를 넘으면 웅장한 하늘다리가 버티고 있다.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이 다리의 고도는 약 800m, 길이 90m, 지상높이 70m로 국내 최대 규모의 현수교다. 다리로 들어서니 워낙 튼튼하게 지어 흔들림이 거의 없다. 가운데 멈춰서니 왼쪽 병풍바위 뒤로 유장하게 흘러가는 낙동강이 장관이다. 하산은 왔던 길을 되짚어 뒷실고개에서 청량사로 내려가는 것이 정석이다. 뒷실고개에서 급경사 계단 800m를 쉬엄쉬엄 내려오면 청량사다. 주지인 지현스님과 신도들은 험한 산비탈에 옹색하게 들어앉은 청량사를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가꿔 놓았다. 길에는 시멘트 대신 침목을 깔았고, 정갈한 장독대, 기왓장으로 만든 수로, 아담한 찻집 등의 모습이 정겹다. 공민왕의 친필이라 알려진 유리보전 건물 앞 의자에 앉으니 기다렸다는 듯, 가을바람이 찾아와 처마 밑의 풍경을 건드린다. 저물어 가는 산사에서 기분 좋게 산행을 마무리한다. 글ㆍ사진 mtswamp@naver.com ●가는 길과 맛집 자가용은 중앙고속도로 풍기 나들목으로 나와 영주를 거쳐 봉화에 이른다. 서울에서 3시간쯤 걸린다. 버스는 동서울터미널에서 봉화행 버스가 07:40, 09:40, 11:50, 13:50, 16:10, 18:10에 있다. 소요시간 2시간40분. 봉화에서 청량산행 버스는 06:20, 09:20, 13:30, 17:40. 안동에서도 청량산행 버스가 05:50 08:50 11:50 14:50 17:50에 다닌다. 봉화는 질 좋은 약초를 먹고 자란 한우가 유명하다. 한약우프라자(054-674-3400)는 1++ 등심 200g이 1만 4000원으로 저렴하다. 청량산도립공원관리사무소 (054)673-6194.
  • [Home&토지시장] 수도권 보금자리주택지구 주변 땅값 가파른 상승세

    [Home&토지시장] 수도권 보금자리주택지구 주변 땅값 가파른 상승세

    집값에 이어 땅값이 심상치 않다. 보금자리주택지구 등 개발지를 중심으로 하반기 들어 땅값이 가파르게 뛰고 있다. 경기가 회복국면에 접어든 데다가 정부가 쏟아내는 각종 개발정책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풍부한 시중의 유동성이 토지시장으로 서서히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7월 전국 땅값은 전달보다 0.21% 오르며 4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이같은 상승세는 올 들어 가장 높은 것이다. 지역별로는 전국 249개 시·군·구 가운데 236개 지역이 올랐다. 하락한 곳은 13곳으로 전국 대부분의 지역이 땅값이 오른 것이다. 특히 수도권이 특히 강세였다. 서울이 0.28%, 인천 0.31%, 경기 0.3%가 올라 전국 평균을 웃돌았다. ●남양주 그린벨트내 농지 3.3㎡당 70만원 하반기 들어 토지시장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은 보금자리주택지구 등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지역이다. 정부가 지난 5월 서울 세곡·우면지구와 경기 하남 미사·고양 원흥 등 4곳을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로 지정한 데 이어 10월 중 5곳을 추가로 지정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정작 보금자리주택지구가 들어서는 곳보다는 그 주변지역의 땅값이 꿈틀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하남시 일대와 남양주다. 7월 지가동향 조사에서도 전국에서 땅값이 가장 많이 오른 곳은 경기 하남이었다. 미사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 지정 영향을 받아 전달보다 0.9%나 올랐다. 인근 남양주도 뛰고 있다. 오는 10월 이 일대에 보금자리주택지구가 추가로 지정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여기에다가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분당급 신도시’ 건설을 언급한 것도 한몫했다. 실제로 남양주와 구리시 일대는 확인되지 않은 개발소문이 나돌면서 매물은 회수되고, 호가가 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신도시나 보금자리주택지구로 거론되는 지역은 남양주 진건면 신월리 일대. 퇴계원에서 한강에 이르는 왕숙천 동쪽은 6000여만㎡ 규모의 개발 가능한 땅이 펼쳐져 있다. 이에 따라 신월리와 진관리 일대에는 땅값 문의가 늘면서 그린벨트 내 농지 가격이 3.3㎡당 70만원 안팎을 호가한다. 최근 들어 10만원가량 올랐다는 것이 현지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얘기이다. 신도시 개발설이 나도는 와부읍과 양정동, 금곡동, 지금·도농동 일대도 토지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그린벨트가 있는 지역 주변 땅을 찾는 투자자들이 최근 급증했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의 얘기이다. 남양주 수동면 일대의 일반 주거용지 가격은 지난해 말 3.3㎡당 200만원대에서 지금은 250만원대로 뛰었다. 논과 밭은 3.3㎡당 100만~120만원 선을 호가한다. 이밖에 민자고속도로 개통으로 강원도 일대도 땅값이 많이 뛴 곳으로 꼽힌다. ●여주 남한강변 5년전 가격의 7~8배 4대강 유역은 그동안 땅값이 많이 오른 때문인지 아직은 조용한 상태다. 향후 3년간 총 22조원이 투입되는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의 마스터플랜이 발표됐지만 정부 주도 대형 프로젝트가 나올 때마다 들썩였던 땅값은 아직은 조용하다. 그동안 너무 많이 뛴 탓에 투자자들이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국토부가 조사한 지가동향에서도 4대강 유역은 두드러진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경기도 여주의 남한강변 인접 땅 시세는 3.3㎡당 150만∼200만원 선이다. 강변 조망이 가능한 임야는 3.3㎡당 70만원 안팎이다. 현재 시세는 5년 전에 비해 7~8배 오른 가격이다. 그동안 손바뀜도 많았다. 이 과정에서 손해를 본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요즘은 매수세가 없다. 구미, 안동 등 낙동강 주변도 매수세가 사라지면서 호가가 기존 가격을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 금강, 영산강 일대는 개발호재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예전처럼 들썩거리지 않는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이 본격화되고 시중의 유동성이 몰리기 시작하면 금세 이들 지역 땅값이 뛸 것이라는 기대감은 여전하다. 여주시 한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D공인 관계자는 “지금은 매수세가 없지만 사업이 본격화되면 값이 뛸 것”이라며 “요즘 거래되는 물건들은 이런 기대감의 산물이다.”라고 말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Home&별내·삼송지구] 국도 4개노선·경춘선 인접… 수도권 동북부 ‘명당’

    [Home&별내·삼송지구] 국도 4개노선·경춘선 인접… 수도권 동북부 ‘명당’

    수도권 동북부지역 택지지구 가운데 가장 입지여건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경기 남양주 별내지구(조감도) 분양이 시작됐다. 이달부터 다음달까지 3000여가구가 분양될 예정이다.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둘러싸여 녹지공간이 풍부하고 서울외곽순환도로를 비롯해 국도 4개 노선(6·43·46·47호선)이 지나는 데다가 경춘선 별내역(2011년) 등이 계획돼 입지여건이 뛰어나다. 별내지구는 국민임대단지로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광전리, 덕송리, 퇴계원리 일원에 자리잡고 있으며 총 면적은 509만 1574㎡(154만평)에 달한다. 국민임대 1만 500여가구 등 총 2만 4137가구의 주택을 지어 7만 3000명을 수용하게 된다. 공동주택이 2만 2555가구, 단독주택 1074가구, 주상복합 아파트 508가구 등이다. 현재 택지조성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며, 2011년 말부터 입주가 이뤄지게 된다. 첫 스타트를 끊은 쌍용건설 ‘예가’는 지난 14일 특별공급분 20가구를 제외한 632가구 청약결과 7484명이 접수해 11.84대1로 1순위에서 분양을 마치는 돌풍을 불러 일으켰다. 쌍용건설의 분양 성공에 고무돼 현대산업개발은 ‘별내 아이파크’ 753가구, 신일건업이 ‘신일유토빌’ 547가구, KCC건설이 ‘KCC스위첸’ 680가구, 대원이 ‘대원칸타빌’ 491가구를 각각 분양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A2-2블록에서 이달 23일 공급하는 별내 아이파크는 지하 1~2층, 지상 10~25층 131~168㎡(전용면적 107~141㎡) 13개동 규모로, 중대형으로 이뤄져 있다. 입주는 2011년 12월 예정이다. 별내 아이파크는 택지지구를 가로질러 흐르는 덕송천변에 위치해 생활환경이 쾌적하며, 외곽순환도로 별내 IC와 인접해 있어 진출입이 편리한 것이 장점이다. 초·중·고등학교가 인근에 들어설 계획이어서 교육환경도 양호한 편이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며, 계약 1년 후부터 전매가 가능하고, 5년간 양도세도 100% 면제된다. 131㎡(전용면적 107㎡) 244가구, 149㎡(전용면적 124㎡) 351가구, 168㎡ A타입( 전용면적 141㎡ A타입) 108가구, 168㎡ B타입(전용면적 141㎡ B타입) 50가구 등으로 구성된다. 단지설계에 있어서는 타워형과 판상형을 조화롭게 배치하고, 전체 13개동 중 7개 동에 필로티를 설치해 개방감을 높였다. 아울러 지상 전체를 공원화해 단지 내에 어린이놀이터, 휴게소, 수경시설, 산책로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별내지구 국민임대주택은 주택공사가 2011년 중반에 분양한다. 국민임대아파트는 공정률이 70% 진행된 시점에서 분양하기 때문이다. 입주는 2011년 말 예정이다. 별내지구는 서울시청에서 동쪽으로 약 16㎞ 지점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대중교통 여건도 뛰어나다. 불암산을 경계로 서쪽으로 서울 노원구와 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경기 구리시와 맞닿아 있다. 지구 서쪽과 북쪽으로 불암산과 수락산이 위치하고 지구 중앙을 덕송천과 용암천이 가로질러 흐르는 등 주거환경이 뛰어나다. 별내지구는 다른 택지지구에 비해 녹지가 풍부하다. 불암산과 수락산이 경계를 이루고 있고 도시 남북을 철마산, 천마산, 백봉산, 예봉산 등이 가로지르고 있다. 중심 상업지구는 지구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중랑구 신내지구와 구리시 일대 백화점, 대형마트 등을 차량으로 이용할 수 있다. 경춘선 별내역은 대규모 역세권 개발(특별계획구역 지정 및 PF사업)을 통해 지역 중심지로 육성된다. 별내지구는 다양한 교통수단을 확보했다. 서울외곽순환도로가 별내지구를 관통한다. 별내 인터체인지(IC)를 이용해 서울 강남권, 경기 남·북부 이동이 수월하다. 경춘선 복선전철 별내역(2010년 개통 예정)이 신설돼 서울 출퇴근 거주자들의 교통시설 이용이 편리하다. 서울지하철 8호선은 암사에서부터 별내지구까지 연장하는 노선이 추진되고 있다. 개통시기는 2016년으로 예정돼 있다. 국도 17호선(검문소삼거리~광전IC) 5.7㎞ 및 국도43호선(동창마을~퇴계원) 3.2㎞ 확장 등 총 23.6㎞(사업비 4154억원)를 신설 및 확장할 계획이다. 제2외곽순환고속도로도 추진 중이다. 별내지구에는 유치원 3곳, 초등학교 6곳, 중학교 4곳, 고등학교 2곳 등이 들어서게 된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Home&서울 재건축·재개발] 남산 롯데캐슬 아이리스 조망 프리미엄 강점

    남산 조망과 남산 생활권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는 ‘남산 롯데캐슬 아이리스(조감도)’ 주상복합 아파트가 현재 분양 중이다. ‘남산 롯데캐슬 아이리스’는 중구 회현동 남산3호 터널 북단에 입지하고 있으며, 지하 7층, 지상 32층 2개동 규모, 46~314㎡ 386가구로 구성되어 있는 고급 주상복합 단지이다. 최근 명동과 남대문을 가로막았던 회현 고가차도가 철거되고, 그 대신 평면 교차로와 횡단보도가 들어섰다. 또 한국은행에서 명동 방향의 좌회전 2개 차로가 3개 차로로 늘어나고 퇴계로 방향도 1개 차로가 늘어나 교통 소통이 원활해졌다. 단지 남쪽으로는 남산 산책로 이용이 가능하며, 남산의 절경을 가까이에서 누리는 조망 프리미엄이 ‘남산 롯데캐슬’의 강점이다. 최근에 운행을 시작한 남산 ‘경사형 엘리베이터’가 단지 바로 건너편에 있다. 을지로, 남대문, 명동 일대의 다양한 생활편의시설 이용은 물론 남산1, 3호 터널을 이용한 강남 진·출입이 용이하다. 계약금은 5%이며, 중도금은 40평형대는 이자후불제, 50평형 이상은 무이자 융자로 초기 자금 부담이 적다. (02)785-0606.
  • 돈·학벌 중심… 12일의 한국 남성상 계보찾기

    돈·학벌 중심… 12일의 한국 남성상 계보찾기

    책 제목이 ‘씩씩한 남자 만들기’이다. 언뜻 제목만 보면 건강하고 튼튼한 아이 기르기를 알려주는 아동교육서나 이상적인 남성상을 찾도록 도와주는 자기계발서가 떠오르기도 한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의 ‘씩씩한 남자 만들기’(푸른역사 펴냄)는 학문적으로 접근한 한국의 남자 이야기이다. ●구한말 급격한 변화 겪으며 ‘몸의 훈련’ 중시 책은 ‘한국에서 남자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저자는 오늘날 각광받는 ‘한국의 남성상’으로, 자본주의의 보편적 원리인 ‘경제력’과 함께 ‘학교’ 간판을 가진 학력 자본의 소유자를 꼽는다.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정기적으로 체력을 단련하는 남성일수록 자본주의적 생산 능력이 좋다는 것이 근대 세계의 통념이다. 구미 남성이 마치 중산계층의 표시처럼 조깅을 하고 몸을 만드는 것도 이런 까닭일 수 있다. 동유럽이나 중남미에서도 ‘근육이 없는 남성’은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명문대 졸업생’과 ‘엘리트 대기업 사원’이라면 그 정도의 (체력적으로 떨어지는)결함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심지어 근육질형 남성보다는 밤을 새면서 잔업을 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남성이 ‘철인’ 소리를 듣는다. 저자는 ‘경제력’이 최우선인 한국 남성상 속에 서로 무관해보이는 ‘훈련주의’가 묘하게 녹아 있다는 데에 흥미를 느끼며 한국 남성상의 계보를 캐낸다. 학창시절에서 군복무, 직장생활에 이르는 기간동안 거듭되는 훈련으로 한국 남성들에게 ‘훈련주의’는 일상이다. 군대에 다시 끌려가는 것을 ‘악몽’이라고 하면서도, 남자라면 군대에 갔다와야 한다거나 군대 경험담을 늘어놓으며 대화를 이어간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해병대 캠프에서 극기훈련을 받기도 한다. 이런 ‘이중적 모습’이 어떻게 익숙해진 것일까. 저자는 이 원인을 1890∼1900년대에 진행된 급격한 변화에서 찾는다. 퇴계, 율곡 등으로 대표되는 유교적 전통사회의 남성상은 보통 ‘부드럽고 온화한’ 모습이었지만, 19세기 말 나라가 위태로워지면서 ‘몸의 훈련’이 사회 전반에 중요한 기본으로 인식됐다는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사대부를 비롯한 선비들은 비상한 학습 능력으로 어른들을 놀라게 하고, 고상한 몸가짐을 갖춘 이들을 대장부라 불렀다. 세상의 부조리에 화를 내는 비분강개의 정신을 갖췄지만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폭력 행사라는 것은 ‘상것’들이나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라의 존립이 위협받으면서 선비들도 행동을 요구받게 됐다. ●미래 남성상은 ‘배려’와 ‘돌봄’ 1904년 러·일전쟁 발발 후 일본의 한반도 점령이 가시화되자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일간지들이 새로운 남성상을 강조하면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켰다. ‘제국신문’은 부국강병, 식산흥업(殖産興業) 등의 담론을 전개했고, 학회지 ‘서우’는 강장(强壯) 활발한 남성을 국가 융성의 기본으로 보며 고정란의 상당부분을 ‘체육 장려’에 할애했다. 급진적 민족지 ‘대한매일신보’의 편집자 박은식은 잡지 기고에서 “문사를 익히고 무예를 배우는…방법이 실로 활동적이요…감히 동작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니 이렇게 하고서야 어떻게 몸을 기를 수 있단 말인가.”라며 새로운 남성적 국민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국민적 체력을 독립과 근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삼은, 소위 ‘신체적 민족주의’는 운동장에서 더욱 공고해진다. 운동회, 체조, 군사 훈련 등을 애국적이고 심신건전한 국민이 되는 핵심 과정이라 여기면서, 운동장에서 몸을 지속적으로 훈련하고 정해진 규율을 정확히 수행하는 이상적 남성상이 길러졌다. 이 분위기는 유럽 열강에서 들어온 스포츠 문화와 만나 더욱 확산된다. 1890~1900년대 남성상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던 저자는 ‘한국의 남성상의 지향점은 어디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박정희 시대의 ‘체력 단련을 위해 노력하는 국민’, 재벌 시대의 ‘수출 전사’, 2000년대 ‘웰빙족’까지 당대의 남성상을 언급한 저자는 이를 대신할 미래의 남성상으로 ‘배려’와 ‘돌봄’을 할 줄 아는 남성을 제안한다. 가족 안에서는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고, 사회에서는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과감히 자신을 던지면서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애쓰는, 폭넓은 의미의 ‘배려’와 ‘돌봄’이다. 1만 29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문화마당] 우리에게 우주란 무엇인가/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문화마당] 우리에게 우주란 무엇인가/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와 함께 우리 역사에서 한 시대의 종말과 더불어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 나로호 발사를 통해 우주시대라는 새 시대가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위성이 정상궤도로 진입하지 못하고 지구로 떨어짐으로써 새 시대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전 국민적 열망과 자부심을 담은 위성이기에 실패에 대한 아쉬움과 실망은 매우 크다. 우리는 대기권을 뚫고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실감했다. 이 같은 좌절감을 딛고 8전9기해서 우리는 우주시대를 개막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는 ‘우주란 무엇인가’ 하는 화두를 먼저 잡는 것이 필요하다. 우주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무한대 세계다. 그래서 우주시대란 전 지구를 인간 삶의 무대로 하는 세계화시대를 훨씬 능가하는 신기원임에 틀림없다.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가 전 지구로 확장되는 결정적 계기는 1492년 콜럼버스 항해다. 미국의 환경사가 크로스비(Alfred W Crosby)는 이 사건의 세계사적 의미를 아주 오래전 베링 육교로 이어져 있었던 두 세계를 신이 갈라 놓은 것을 인간이 다시 연결하여 두 세계가 점차 하나로 통합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정리했다. 콜럼버스 항해로 시작된 대항해시대를 거치면서 인간과 동식물뿐 아니라 세균까지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하나의 생태계에서 서로 생존투쟁을 벌이는 상황이 연출됐다. 그 상황을 연출한 주역은 유럽인들이다. 그들의 정복사업을 통해 구대륙과 신대륙 사이에는 ‘콜럼버스의 교환’이라 불리는 생태학적 교류가 이뤄졌다. 이 교환을 통해 감자와 옥수수 같은 신대륙 작물뿐 아니라 매독이 구대륙으로 유입되고, 천연두와 흑사병 같은 구대륙 질병이 신대륙 원주민 문명의 몰락을 초래했다. ‘콜럼버스의 교환’은 서구가 주도한 전지구시대의 개막임과 동시에 베링해를 통해 갈라진 두 대륙이 5억년 동안 유지한 지구생태계의 균형을 파괴한 ‘재난’이었다. 오늘날 인류는 전지구시대와 똑같은 방식으로 우주시대를 열어서는 안 된다. 문명의 도전에 대한 지구의 응전이 지구온난화와 같은 환경재난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아는 인류가 우주를 정복하겠다는 오만으로 우주로 나간다면 우주의 징벌이 내려질 것이다. 인간은 지구에 살고 있고, 지구는 태양계에 놓여 있으며, 태양계는 우주 안에 존재한다. 우주 밖에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의 사유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우주란 모든 존재자가 존재할 수 있는 근거다. 인간이 제기하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다. 전근대에서 인간은 이 문제를 신이라는 절대자를 상상하거나 퇴계 이황처럼 태극이라는 이치를 상정하는 방식으로 풀고자 했다. 근대 자연과학은 이 문제를 종교와 형이상학으로 치부하고 탐구영역에서 제외시켰다. 그 결과 우리는 ‘과학적’ 세계관을 가질 수 있지만 ‘과학’ 그 자체를 세계관으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인간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를 도외시함으로써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 사라진 이후 나는 무엇인가? 부모가 날 낳기 이전에 나는 없었다. 죽음을 통해 그 원래 없었던 것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궁극적인 문제는 우리가 되돌아 갈 그곳은 어디인가이다. 인간은 지구의 생성 이후에 탄생했고, 지구는 태양계가 생겨난 다음에 태동했고, 태양계는 우주로부터 나왔다면, 모든 것의 기원은 우주다. 우주가 우리의 본바닥이고, 그 본바닥으로부터 나라는 존재가 생겨났기에 나는 곧 우주다. 따라서 나로호를 통해 우리가 열고자 하는 우주시대란 우주라는 미지의 영역을 정복하러 떠나는 우주경쟁의 출발이 아닌 나의 본바닥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시작이 돼야 한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 [보금자리주택 공급] 수도권 5대신도시 웃도는 ‘물량 공세’… 집값 안정 기대

    [보금자리주택 공급] 수도권 5대신도시 웃도는 ‘물량 공세’… 집값 안정 기대

    ‘1980년대 말 5대 신도시를 능가하는 주택공급으로 집값 잡는다.’ 정부가 ‘8·27 서민주택 대책’을 내놓은 것은 집값을 잡는 데에는 공급확대 외에는 뾰족한 방안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공급 수단으로는 기왕에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 짓기로 했던 보금자리주택의 공급시기를 앞당기는 방안을 택했다. 애초 2018년으로 예정됐던 물량을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인 2012년까지 앞당겨 주택 수요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심어줘 집값을 잡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2012년까지 그린벨트 보금자리주택 단지에 짓는 주택은 44만 6000가구에 이른다. 이 가운데 보금자리주택은 32만가구이다. 여기에 현재 추진 중인 신도시나 도심 재개발 등을 통해 공급되는 보금자리주택 등을 포함하면 물량은 모두 60만가구로 늘어난다. 보금자리주택 공급 물량은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등 5대 신도시 물량(29만 2000가구)을 웃돈다. 그래서 신도시 건설을 능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금자리주택단지에는 일반분양 물량도 12만 6000가구 들어선다. 일반 분양주택은 전용면적 85㎡를 초과하는 중대형이어서 중산층의 주택 수요도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오는 10월 수도권에서 2차로 그린벨트 보금자리주택단지 5~6곳을 추가로 지정한다. 이후에도 매년 두 차례씩 보금자리주택단지를 지속적으로 공급하게 된다. 정종환 국토부 장관은 “가급적 조속히 보금자리주택지구를 지정해 땅값 상승 등 부작용을 막겠다.”고 밝혀 지정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후보지로는 경기 구리와 시흥, 남양주, 광명 등지가 거론된다. 이들 지역은 도심과 가깝고 비닐하우스와 축사, 창고 등이 들어서 있다. 남양주에서는 국도 47호선 동쪽 퇴계원과 진접지구 중간지점 비닐하우스 지대가 꼽힌다. 이곳은 쓸 수 있는 땅이 6000여만㎡로 일부만 활용해도 신도시급 단지로 개발할 수 있다. 서울에서는 서초 내곡지구와 강남 수서2지구 등 2~3곳을 보금자리주택단지로 지정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하지만 국토부는 당분간 강남권 보금자리주택단지 추가지정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어서 조율 여부가 주목된다. 보금자리주택이 사전예약 이후 입주까지 4~5년의 시간이 걸리지만 향후 4년 동안 수도권에서 32만가구를 집중 공급하면 주택 수요자들은 관망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도태호 주택정책관은 “1980년대 말 5대 신도시 건설을 통해 집값을 잡았는데, 당시 물량이 모두 30만가구가 안 됐다.”면서 “이 정도 공급 규모면 집값은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오는 10월 사전예약을 받는 보금자리주택 시범단지의 경우 서울 강남 세곡, 서초 우면지구는 3.3㎡당 1150만원으로 시세의 50% 선, 하남 미사는 3.3㎡당 950만원, 고양 원흥은 850만원으로 시세의 70% 선에 분양할 계획이어서 상당수 수요자들이 내집 마련 시기를 늦추며 보금자리 주택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보금자리주택 분양가가 싼 만큼 투기세력이 몰릴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투기를 막기 위해 당첨자는 5년 동안 의무적으로 살도록 했다. 또 전매제한 기간을 종전의 5년(수도권 과밀억제권역 기준, 비과밀억제권역은 3년)에서 7년으로 강화하되 시세차익이 30% 이상 예상되는 곳은 10년 동안 전매를 금지할 계획이다. 하남 미사와 고양 원흥에는 7년, 강남 세곡·서초 우면지구에는 10년의 전매제한이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매기간 내에 지방 근무나 해외로 이주하면 주택토지공사 등 공공기관이 분양가에 정기예금 금리만 더해 매수하도록 했다. 채권입찰제 시행도 검토했으나 저렴한 주택을 공급한다는 취지와 맞지 않고 채권매입 부담이 있어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문화마당] 개성있는 호(號)를 지어보자/양세욱 한양대 중문과 교수

    [문화마당] 개성있는 호(號)를 지어보자/양세욱 한양대 중문과 교수

    우리는 일생 동안 여러 이름을 가질 수 있었다. 태어나서는 아명(兒名)을, 성인식(남자의 경우 관을 쓰는 관례, 여자의 경우 비녀를 꽂는 계례)을 치르고 나서는 자(字)를 지어 불렀다.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이라면 사후에 생전의 행적을 참작하여 나라에서 시호(諡號)를 내려주었다. 물론 이런 이름들은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 출생 전 태아를 부르는 이름인 태명(胎名)처럼 예전에는 좀처럼 쓰이지 않던 이름이 유행하는 일도 있다. 이런 이름들 외에 누구나 허물없이 부를 수 있는 이름이 호(號)다. 한호, 이황, 이이 등은 석봉(石峯), 퇴계(退溪), 율곡(栗谷)이라는 호가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다산(茶山) 정약용, 연암(燕巖) 박지원, 춘원(春園) 이광수처럼 호와 성명이 병칭되는 일도 흔하다. 금호(錦湖) 박인천, 아산(峨山) 정주영, 호암(湖巖) 이병철, 연강(蓮崗) 박두병, 성곡(省谷) 김성곤처럼 창업주의 호가 그룹명이나 그룹 산하 재단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넓게 보면 수계식이나 세례식 때 받는 법명이나 세례명, 연예인이나 문예계 인사들이 즐겨 쓰는 예명이나 필명도 호의 한 갈래다. 인터넷 문화의 산물인 ID까지 호의 변화된 형태라 할 수 있다. 호를 짓고 부르는 문화는 이만큼이나 보편적이다. 지난주에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은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後廣)리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 고향마을 이름은 그대로 김 전 대통령의 호가 되었다. 사실 출생하였거나 인연이 있는 곳의 지명을 호로 삼는 것은 호를 짓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전북 고창군 부안면 인촌(仁村)이 고향인 김성수의 호는 인촌, 서울 도동 우수현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이승만의 호는 ‘우수현 남쪽’이라는 뜻의 우남(雩南)이다.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등도 인연이 있는 곳의 지명을 호로 삼았다. 호는 때로 지어 부르는 이의 인생관과 지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노자’의 한 대목을 딴 여유당(與猶堂)이라는 호에는 숱한 고초를 겪고 난 뒤 인생을 경계하며 살겠다는 정약용의 결심이 엿보이고, 백정의 백(白)과 범인의 범(凡)을 딴 백범은 김구 자신의 말처럼 “가장 미천한 사람까지 모두 나와 함께 애국심을 가져야겠다는 것이 나의 소원임을 표시한 것”이다.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공약 이행의 차원에서 부동산 등 재산 330여억원을 출연해 장학과 복지사업을 위한 ‘청계재단’을 설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청계(淸溪)는 바로 이 대통령의 호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일송(一松)이던 호를 청계로 바꾸었다. 1970년대 현대건설 사장의 신분으로 세워 올렸던 청계고가를 한 세대가 지난 뒤 서울시장의 신분으로 걷어낸 인연이 각별한 때문이다. ‘한 그루 소나무’라는 뜻의 일송이 지조와 소신을 상징하기는 하나 너무 외롭다는 주변의 권고가 주효했다는 후문이다. 호는 스스로 지을 수도 있고 은사나 벗이 지어줄 수도 있다. 한 가지 호를 쓰기보다는 처소에 따라 처지에 따라 다양한 호를 바꾸어 쓰는 일이 흔하다. 완당(阮堂), 추사(秋史), 예당(禮堂), 시암(詩庵) 등 200여개의 호를 사용했던 김정희가 대표적일 것이다. 한자만 사용해야 되는 것도 아니다. 한힌샘 주시경, 가람 이병기, 외솔 최현배, 늘봄 전영택, 한뫼 안호상, 쇠귀 신영복처럼 멋진 한글 호를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 생각해 보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지는 다른 이름들과 달리 호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자신의 개성과 지향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호칭이다. 직업 작명가들이 사주·음양·오행·원리에 따라 지어준 이름을 평생 써야 하는 일이 드물지 않은 사정임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호를 복고 취향을 가진 인사들의 한가한 취미나 정재계나 문예계 등 특수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의 전유물로 여겨둘 수 없는 까닭이다. 양세욱 한양대 중문과 교수
  • 서울 명동서 남산가기 편해진다

    서울 명동서 남산가기 편해진다

    2012년까지 서울 명동 등 도심에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한결 편리해진다. 보행에 불편을 주면서도 불필요한 차로의 교통섬이 철거되고 남산 정상까지 곤돌라 리프트가 설치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총 139억여원을 들여 명동·충무로에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중구 예장동 일대 공간과 교통체계를 전면 개편할 계획(위치도)이라고 20일 밝혔다. 예장동 4의1 일대 옛 중앙정보부 건물에 자리한 시 균형발전본부와 소방재난본부, 교통방송(TBS) 등은 2011년까지 모두 철거된다. 이곳에는 1만 1500㎡ 규모의 광장과 별빛공원 등이 조성된다. 건물이 사라지는 균형발전본부와 소방재난본부는 시 신청사로, 교통방송은 상암동 DMC(디지털미디어시티)로 각각 이전한다. 공원을 따라 소방재난본부~소파길의 보행자 녹지축도 만들어진다. 보행자뿐 아니라 휠체어나 유모차를 미는 시민도 손쉽게 오르도록 ‘무장애 공간’으로 설계된다. 서울시는 또 예장동에서 삼일로를 건너 남산 한옥마을로 연결되는 430m 길이의 산책로 2개를 신설한다. 예장동 지하에는 남산과 명동, 한옥마을 등지를 방문하는 차량 100대를 수용할 수 있도록 주차장을 지을 계획이다. 주차장에는 대형버스 주차공간 30면도 확보된다. 시는 예장동~남산 정상까지 1㎞ 길이의 곤돌라 리프트인 ‘에어카’도 2011년까지 만들기로 확정했다. 아울러 교통체계 개편을 위해 소방재난본부~소파길 간 폭 20m, 길이 150m의 왕복 4차로를 신설한다. 또 삼일로~예장동 간 2개의 연결로가 만들어진다. 공원 인근 기존 소파길과 퇴계로, 삼일로에는 각각 1개로씩 차로가 추가된다. 퇴계로가 확장되면 명동에서 1호 터널로 곧바로 연결되는 길이 열린다. 현재는 명동에서 1호 터널로 올라가기 위해선 지하차도와 연결램프롤 우회해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김병하 도심활성화기획관은 “공사가 마무리되면 남산이 다가가기 쉽고, 오르기 편한 새로운 명소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서울광장]8월의 대한민국이 아껴야 할 것들/박재범 논설실장

    [서울광장]8월의 대한민국이 아껴야 할 것들/박재범 논설실장

    러시아 동부의 하바롭스크는 한국과 역사적으로 밀접하다. 조선이 후기 지식층의 공허한 이념논쟁 끝에 망한 1910년대, 항일독립군들은 국경에서 이곳까지 일제에 의해 쫓겨났다. 시베리아의 차가운 북서계절풍을 거슬러 수백㎞를 걷던 사회주의 계열 독립군들은 길에 숱하게 뼈를 묻었다. 100년 전의 참상을 끄집어내는 것은 하바롭스크의 ‘김유천 거리’ 때문이다. 그는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 때 적군에 들어가 활동하다 차르의 백군 총에 맞아 죽었다. 소련은 외국인임에도 그의 이름을 도로명으로 붙여 고마움을 나타냈다. 미국 플로리다 포코시티에는 밴플리트 스트리트가 있다. 2차대전 참전용사인 밴플리트는 한국전쟁 때 미 8군사령관으로 전쟁을 총괄 지휘했다. 한국에 4년제 육사를 설치하도록 했고, 한국군 장교의 미국유학 길을 텄다(백선엽 ‘군과 나’). 플로리다는 미국의 국가이익을 지킨 그에게 이런 방식으로 감사를 표했다. 물론 러시아와 미국 등에는 마르크스, 엘리자베스 여왕 등 수백년 전 인물의 이름이 붙은 거리가 훨씬 많다. 다만 나라를 세우고 지킨 같은 시대의 사람도 간과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도로명 역시 역사적 인물들이 많다. 퇴계로, 율곡로, 충무로, 을지로 등. 그러나 러시아나 미국 등이 김유천이나 밴플리트라는 동시대인을 상찬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수백년 전 사람만 존경할 뿐이다. 오는 29일은 경술국치일이다. 국파군망(國破君亡) 이후 99년 동안 한민족은 광복을 맞았고 대한민국을 건설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민족의 국가 틀을 만들고 지키는 데 목숨을 바쳤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훈장 등 포상한 독립운동가들이 1만여명이고, 사료에는 명단이 있지만 유가족이 없어 포상 못한 독립운동가가 2만여명에 이른다.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내던진 사람들도 수십만명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라는 국체는 존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선 이들을 곁에서 찾아볼 수 없다. 전시관에 기념품처럼 모시고 있다. 천안의 봉주로 등 문화예술체육인의 이름이 생활 속에 자리잡은 정도다. 대한민국을 건설하고 유지한 사람들도 완벽하지는 않다. 이승만, 백선엽, 박정희, 그제 타계한 김대중… 그리고 맥아더, 밴플리트. 인간이기에 흠이 있다. 세상에 완벽한 이가 누구인가. 대학(大學)은 사리분별력이 있는지를 경중, 완급, 선후를 따질 수 있는지로 가른다. 이런 측면에서 맥아더를 살펴보면 공은 대한민국을 김일성과 스탈린, 마오쩌둥으로부터 지킨 것이요, 과는 전쟁통에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일이다. 이제는 경중, 완급, 선후를 제대로 가려야 한다. 우리는 타인의 희생으로 지켜진 국가의 틀 안에서 때로는 행복하게, 때로는 갈등을 빚으며 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자신들이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애쓴 사람들에게 성인도 통과 못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까탈을 잡으려고만 한다. 이제는 변방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때도 됐건만. 최근 재조명되는 일제하 작가의 한 명인 백신애는 단편소설 ‘꺼래이’에서 1930년대의 삶을 눈물로 그렸다. “이리에게 잡혀가는 목자 잃은 양떼와도 같이 헤매어 넘어온 국경의 험악한 길을 다시금 쫓겨넘는 가엾은 흰옷의 꺼래이 떼….” 나라를 잃었고 나라를 되찾은 8월을 맞아 러시아·미국에 못지않게, 우리 스스로 대한민국을 건설하고 지킨 사람들을 아껴보자고 제안해본다. 박재범 논설실장 jaebum@seoul.co.kr
  • [도시와 산] (20) 안동 학가산

    [도시와 산] (20) 안동 학가산

    백두대간에서 힘차게 뻗어 나온 문수지맥이 남쪽으로 내달리다 마지막으로 불끈 치솟았다. 경북 안동과 예천군 경계에 있는 학가산(鶴駕山·882m)이다. 산세가 수려하고 하늘로 비상하는 학을 닮아 이렇게 불린다. 안동과 예천주민들은 학가산을 그야말로 진산과 명산으로 여긴다. 산다운 산이 없는 가운데 홀로 산의 풍채를 지녔고, 이 속의 영험한 기를 받아 많은 인재가 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영남 인물의 반은 안동·예천에 있다고 했다. 주민들은 이를 오로지 학가산의 덕택이라 믿으며 산에 기대어 산다. 지난해 6월에는 학가산 자락의 안동·예천 땅이 나란히 경북의 새천년 도읍지로 결정되는 경사를 맞으면서 학가산은 주민들로부터 더욱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0여년간 학가산을 연구하는 안동 길주초교 장두강 교장은 “학가산은 영남의 거령(巨靈), 가장 영적인 산”이라고 평가했다. ●농암·퇴계 등 수많은 인재 배출한 진산 학가산은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다. 신라시대 의상 대사의 10대 제자 중 한 명인 능인 대사가 학가산에서 법문에 정진한 이래 조선 초까지 불교가 번성했던 곳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학가산 남쪽 자락에는 안동에서 가장 컸다는 광흥사를 비롯한 사찰과 암자가 200여개나 됐다. 사찰 등이 화재로 많이 소실된 지금도 ‘팔(8)방 구(9)암자’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학가산은 봉화와 안동 땅의 청량산과 더불어 ‘산수(山水) 문학’의 보고다. 한국국학진흥원 임노직 수석 연구위원은 “청량산이 퇴계 산수문학의 단일 성지라면 학가산은 예천, 영주 등 경북 북부지역의 수많은 유학자가 산의 골골을 돌아다니며 산수문학을 즐긴 곳”이라고 설명했다. 영남의 각종 문집에는 학가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주옥 같은 시 1000여편과 유산기(기행문) 30여편이 전해진다. 학가산의 문인으로는 농암 이현보, 퇴계 이황, 학봉 김성일, 은둔의 선비였던 청음 김상헌 등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이처럼 학가산은 절경과 함께 문학이 흐르고, 불교의 문화와 정신이 골짜기마다 배어 있다. 고려 공민왕(1330~1374)의 흔적도 엿볼 수 있다. 홍건적의 2차 침입으로 안동에 몽진 온 공민왕이 쌓은 것으로 알려진 학가산성이다. 성은 허물어지고 터만이 휑한 모습이다. 공민왕은 두 차례나 침입한 홍건적을 전멸시켰지만 국력을 쇠퇴시켜 왕조의 멸망을 재촉한 원인의 하나가 됐다. ●꼬불꼬불해서 행복한 광흥사 코스 인기 안동 쪽 산행코스는 모두 14개다. 광흥사 코스를 택하면 산행의 즐거움과 묘미가 더한다. 정상까지는 2시간 정도. 산 들머리인 천주(天蛛)마을까지 30여분 거리인 등산로는 숲이 울창하다. 흙길은 기름져 비단길같이 부드럽다. 풋풋한 흙냄새와 신선한 공기, 이름 모를 숱한 풀벌레 소리가 어우러져 오감이 즐겁다. 평탄한 길은 꼬불꼬불 나 있어 정겹다. 마치 낙원 같다. 길섶에서 만난 윤삼숙(50·여·안동시 옥동)씨는 “등산객들은 이 구간을 ‘행복한 길’이라 한다. 산행을 전후해 몸을 푸는 구간으로는 이만 한 곳이 없다.”며 즐거워했다. 어느새 ‘하늘 거미’ 뜻이 있는 천주마을에 다다른다. 10여가구가 사는 하늘 아래 첫 동네다. 이 마을의 한 노파는 “마을에는 하늘거미가 앞산 복지봉과 뒷산 학가산에 거미줄을 치면 중앙이 마을이 된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고 들려줬다. 이 마을에 들어와 살면 식복은 저절로 해결된다는 의미란다. 마을에서 산 정상까지는 선물 보따리가 널렸다. 등산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원시림과 기암괴석, 분재처럼 자란 노송은 길손에게 자신을 기꺼이 내놓는다. 정상부에 오르면 능인 대사의 이름을 딴 능인굴이 나온다. 능인이 수행과 포교를 하면서 살았다는 거대한 자연 석굴이다. 굴 막장의 항상 마르지 않는 석간수는 길손에게 반가운 존재다. 학가산의 압권은 단연 정상에서의 조망이다. 정상인 국사봉에 서면 사방이 탁 트인다. 산 아래 무수한 산은 올망졸망 멋을 부리고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 줄기가 간간이 시야에 들어온다. 동쪽으로는 청량산과 일월산이, 서쪽, 남쪽, 북쪽으로는 예천, 의성, 영주의 때묻지 않은 산야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장관이다. 경북의 새 천년 도읍지가 들어설 안동 풍천면과 예천 호명면 일원은 용틀임 중이다. 안동시 산악연맹 이홍영(54) 이사는 “전국의 산 정상에서 사방이 모두 바라다보이는 곳은 학가산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산자락엔 온천·메밀밭 등 온통 즐길거리 학가산 자락은 각종 즐길거리가 풍성하다.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을 수 있는 학가산 온천은 알칼리성 중탄산나트륨 온천으로 첨가물을 쓰지 않는다. 메밀 꽃이 피는 가을이면 산자락의 안동 북후면 신전리 일대는 온통 하얀색으로 변하다. 메밀밭이 자그마치 20㏊에 달한다. 이 마을 입구를 지키는 수령 400여년의 이른바 ‘김삿갓 소나무’는 또 다른 볼거리다.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삿갓이 신전리 석탑사에 들렀다가 이 나무 아래에서 쉬어간 뒤 나뭇가지가 삿갓 모양으로 변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가을이면 신전리와 이웃한 옹천리 일원에서는 ‘안동 학가산 산약(마) 맛 축제’도 열린다. 학가산 예천 북쪽 계곡 140만㎡엔 자연휴양림이 터를 잡았다. 안동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학가산 세 이름 안동 “도심 품은 배산” 영주 “앞산 같은 안산” 예천 “해가 뜨는 동산” 경북 안동과 예천, 영주의 중심에 있는 학가산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명칭과 해석이 제각각이다. 이들 지역의 읍지 등은 학가산 혹은 하가산(下柯山·아랫가지 산)이라 하며 안동의 서쪽 40리, 영주의 남쪽 40리, 예천의 동쪽 31리에 있다고 했다. 안동 8경 중 제5경 학가귀운(鶴駕歸雲)편에는 학가산영조삼군(鶴駕山影照三郡)이라는 말이 나온다. 즉 학가산의 그늘이 (이들) 세개 군에 드리운다는 것이다. 18세기 영주 출신의 뛰어난 문필가 송정환은 학가산의 관점에 따라 “안동에서는 작(爵)이 되고, 영주에서는 문(文)이 되고, 예천에서는 부(富)가 된다.”했다. 이는 풍수 사상에 근거한 것으로 안동에서는 벼슬하는 사람, 영주에선 글쓰는 선비, 예천엔 부자가 많이 난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늘날 학가산 구역도 상에는 안동과 예천에 걸쳐 있다. 총 면적 1557㏊의 53%인 826㏊가 안동, 나머지 731㏊는 예천 땅이다. 또 지역마다 산의 위치에 따라 안동은 학가산이 도심을 감싸고 있다 해서 배산, 영주는 앞산이라 안산, 예천은 해가 뜨는 산이라 해 동산이라 한다. 산 정상의 생김새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 영주에서는 평평해서 선비봉, 안동에선 울퉁불퉁해 문둥이봉, 예천은 인물이 수려하다 하여 인물봉으로 부른다. 이렇듯 소백산을 명산으로 하는 영주를 뺀 안동과 예천은 서로 학가산을 자기 고장의 명산이라 주장하며 자랑한다. 심지어 안동과 예천은 각각 학가산 정상(예천쪽 870m, 안동쪽 882m)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등 산을 둘러싼 자존심 싸움까지 벌이고 있다. 학가산 자연휴양림 관계자는 “몇 년 전 예천 쪽에서 학가산 정상에 표지석을 세웠으나 이후 안동 쪽에서 이를 몰래 허물어 표지석을 다시 세우는 등 지역간 신경전이 만만찮다.”고 귀띔했다. 안동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그의 삶 그의 꿈] 한 달에 한 시간, 교훈 하나 이야기 두 개

    [그의 삶 그의 꿈] 한 달에 한 시간, 교훈 하나 이야기 두 개

    교육은 백년대계라 했다. 그런데 먼 앞날을 내다보고 세워야 할 중요한 계획이 목표부터 잘못된 듯하다. 일류대 진학이 교육의 목표가 되면서 학교는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을 양성하는 게 아니라 안하무인 독불장군을 배출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무한경쟁과 1등제일주의가 교육의 다른 말이 된 오늘날, 우리에게 인성교육이 절실한 이유다. 정보통신 발전, 선진국으로 가는 길 삼보컴퓨터 창립자인 이용태 박사가 인성교육 전도사로 변신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개인용컴퓨터(PC)의 개념조차 확립되지 않았던 1980년부터 삼보는 국내 컴퓨터 시장을 성장시켜 온 선두주자였다. 대한민국이 정보통신 대국이 된 과정과 삼보컴퓨터의 발자취는 맥락을 같이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보의 역사는 바로 이용태 박사의 역사이기도 하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이용태 박사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것은 1969년. 귀국 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소)에서 일하던 1970년, 그는 인텔에서 발명한 IC 컴퓨터를 접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1세대 컴퓨터의 구성소자는 진공관입니다. 진공관은 가지만한 크기인데 이때의 컴퓨터는 공장과 맞먹을 정도로 어마어마했습니다. 다음에 나온 게 콩만한 크기의 트랜지스터인데 이 컴퓨터는 장롱 10개를 펼쳐놓은 것만 했죠. 그리고 1970년에 나온 게 3세대 컴퓨터입니다. 손톱만한 칩 안에 수천 개의 트랜지스터를 인쇄해 놓았어요. 엄청난 혁명이죠.” 복잡하고 거대한 컴퓨터의 시대가 종식되는 것을 목격한 이용태 박사는 두 가지 이유에서 흥분했다. 하나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겠구나’, 또 하나는 ‘국산 컴퓨터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겠구나’. 그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정보통신기술을 보유하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임을 확신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다들 로켓트 만들어 달나라 가자는 사람 취급했지요. 정부와 재벌을 상대로 10년을 설득했지만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제가 직접 만드는 수밖에요. 1980년 청계천에서 자본금 1,000만 원 가지고 삼보컴퓨터를 시작했습니다.” 최초의 국산 컴퓨터 개발, 정부기관의 행정전산망 통일, 초고속 인터넷 보급…. 뛰어난 통찰력과 결단력으로 그 모든 일을 해온 그가 2005년 삼보컴퓨터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인성교육 전도사로 변신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정보산업 발전에 평생을 바쳐온 그는 “컴퓨터 만드는 일보다 인성교육 사업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IT 산업보다 더 중요한 인성교육 이용태 박사가 1996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는 박약회는, 초대 회장인 포항공대 김호길 총장과 지인들이 도산서원 내 박약제(搏約劑:학문은 넓히고 예술은 줄이다)에 모여 퇴계 이황 선생에 관한 스터디모임을 가진 것이 시작이었다. 모임의 횟수가 거듭되면서 회원이 늘어났고, 이용태 박사가 회장이 되었을 때는 회원 수가 3,000명에 이르렀다. 그는 박약회 회장으로서 오늘날의 선비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에 관해 고심했다. “과거와 미래 중에 어디에 중점을 둘 것인지 생각했습니다. 문집을 간행하고 서원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과거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미래는 후진을 바르게 인도하는 것이죠. 저는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005년 삼보컴퓨터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손자 손녀들을 모아놓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 것이 인성교육 사업의 첫 걸음이었다. 아이들에게서 긍정적인 변화를 본 그는 ‘인성교육을 국민운동 차원으로 벌이자’, ‘나부터 인성교육의 전도사가 되자’라고 결심했다. 먼저 박약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인성교육법을 강의했고 22개 박약회 지회에서 젊은 어머니들에게 전도했다. 이것이 인성교육 사업의 1단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부산 동래교육청으로부터 인성교육을 특별사업으로 실시할 계획이니 강연을 해달라는 전갈이 왔다. 2007년 그는 여러 차례 부산을 방문해 동래교육청의 공무원, 초등·중학교 교장,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그리고 2008년 동래교육청에서 본격적으로 인성교육을 시작하면서 각 가정으로 인성교육에 관한 안내문을 보냈고 900여 가정이 신청했다. 이로써 인성교육 사업 역시 2단계로 접어들었다. 한 달에 한 시간, 교훈 하나 이야기 두 개 그가 말하는 인성교육법은 쉽다. ‘한 달에 한 시간, 교훈 하나 이야기 두 개’면 충분하다. “인성교육을 신청한 가정에 한 달에 한 번 교훈 하나와 교훈에 맞는 이야기 두 개를 보냅니다. 그걸 가족들이 다 함께 읽은 다음에 토의합니다. 정말 쉽죠?” 이토록 간단한 인성교육의 실천사례는 실로 놀랍다. 동래교육청과 박약회가 펴낸 《감화이야기를 통한 가정 인성교육 실천사례》를 읽어보면, 새옹지마에 관한 교육 후 실패를 두려워하던 아이가 실수를 하고도 자신감을 잃지 않아 기쁘다는 어머니, 양보와 배려에 관한 교육 후 싸움이 잦던 연년생 형제의 사이가 좋아져 뿌듯하다는 어머니 등 감동적인 실천사례가 가득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아이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변화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인성교육의 날을 정하고 가족이 둘러앉아 토의의 시간을 가지면서 평소에도 가족 사이에 대화가 늘었다. 부모가 솔선수범하여 그달의 교훈을 실천하다 보니 부부 사이가 좋아졌다는 감화사례도 있다. 이용태 박사는 이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는 데 ‘한 달에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강조한다. “한 달에 한 시간, 일 년이면 열두 개의 교훈을 아이에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덕목은 생각만큼 많지 않습니다. 열 가지면 충분하죠. 3년이면 열 가지 이야기를 서너 번쯤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요.” 왜 인성이 중요하냐는 질문에 그는 “모든 건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취업할 때에는 일류대 나온 게 중요할지 몰라도 입사 후엔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는가, 열의와 의지가 강한가, 일을 하는 데 있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가, 하는 것이 판단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우수한 사원은 인성으로 판가름 나는 셈이다. 사회활동만이 아니다. 화목한 가정을 유지하느냐 못하느냐도 결국 가족 구성원의 인성 문제다. “부부 사이에 불만이 있다면 상대가 라틴어 문법을 몰라서도 아니고 칸트의 철학을 몰라서도 아닐 겁니다. 남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아서, 함부로 말해서, 이기적인 태도를 취해서 불만인 거예요. 그게 바로 인성 아닌가요?” 인성교육을 해야 하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전후 우리는 잿더미 속에서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범죄률과 자살률이 날로 높아가는 현재, 우리가 정말 예전보다 행복한지 자문해 볼 일이다. 이용태 박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GDP를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 모두가 반듯한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 “예전에 저는 우리가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선 선진국을 숨 헐떡이며 쫓아갈 게 아니라 그들 앞으로 껑충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컴퓨터였고요. 지금 우리나라는 정보통신에 있어 세계 1등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앞서 가기 위해서 그보다 더 우선해야 할 것이 교육이에요. 그래서 인성교육 사업이 제게는 컴퓨터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그는 교육의 목적이 일류대에 진학하는 것이 되어버린 세태가 안타깝다. 크게는 사회에 유용한 인간을 기르고 작게는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을 만드는 게 교육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불어 사는 법과 스스로를 경영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서양학문엔 없지만 예부터 우리 교육이 중시해 왔던 게 바로 그것이다. 다행히 5년간의 인성교육 사업이 호응을 받고 있어 그는 요즘 너무 기쁘다. “아침부터 밤까지 만나는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반듯하고 착하면 그보다 더 좋은 세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글_ 하재경 소설가
  • 젊은 시절 새로운 세상 꿈꿨던 공초 오상순, 에스페란토·바하이교 국내 첫 소개

    젊은 시절 새로운 세상 꿈꿨던 공초 오상순, 에스페란토·바하이교 국내 첫 소개

    30~40대라면 공초(空超) 오상순(1894~1963)을 1920년 동인지 ‘폐허’를 결성, 최초로 ‘폐허 의식’을 설파한 시인 정도로 기억할 것이다. 20대 즈음이라면 국어교과서에 실린 ‘짝잃은 거위를 곡하노라’라는 시를 지은 주인공쯤이 될 것이다. 시인으로서 오상순의 작품세계와 청년기 동아시아 지식인으로서 행적은 거의 묻혀져 있다. 그저 하루에 담배 20갑을 피웠다는 등의 일화만 남았고, 퇴계로 청동다방, 부산 피란지 에덴다방 등 ‘다방 문학’ 등으로 더 잘 알려진 ‘한국 문단의 대표 기인(奇人)’이었다. ●日·中 잇는 동아시아 지식인의 면모 보여 월간문예지 ‘문학사상’ 8월호에서 1920년대 문학과 철학, 종교에 심취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오상순의 활동에 대한 특집 기획을 실었다. 일본 교토조형예술대학 비교예술학연구센터 박윤희 연구원은 ‘오상순의 문학과 사상-1920년대, 동아시아의 지적 교류’라는 글을 통해 오상순이 일본에서 수학하는 동안 세계 평등사상과 상호이해의 정신을 기조로 한 세계공용어 에스페란토를 가장 먼저 배워 국내에 보급한 이라는 사실, 인류의 평화를 궁극적 목표로 삼아 세계적 보편 종교를 지향했던 바하이교(19C 바하알라가 창시한 이슬람 계열의 종교)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했다는 점 등을 자료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일본·중국을 잇는 동아시아 지식인으로서 오상순의 새로운 면모를 밝힌 것이다. 실제로 톨스토이는 “에스페란토를 널리 펼치는 것은 신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고도 했고, 프랑스 대문호 로맹 롤랑 역시 “에스페란토는 인류 해방의 무기”라고도 이야기할 만큼 20세기 초반 에스페란토는 지식인의 필수적인 과제이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독립운동가 이재현, 곤충학자 석주명, 소설가 홍명희 등 지식인들이 에스페란토를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으로 건너가 루쉰·저우줘런과 지적 교류 박 연구원은 “오상순의 청년기 활동이 재조명됨에 따라 1920년대 조선과 일본 사이의 문화 전파 구조는 ‘일본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본과 함께’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일본에서 활동한 뒤 중국 베이징과 간도로 건너가 루쉰(迅), 저우줘런(周作人) 등과 지적 교류를 나눈 내용 등에 대해 더 체계적으로 연구될 필요가 있다.”고 서술했다. 한편, 시인 구상이 만든 ‘공초오상순선생숭모회’는 30주기인 1993년부터 서울신문 주관으로 ‘공초문학상’을 제정, 17회째 시상하고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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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재정부 ◇부이사관 파견 △미래기획위원회 이국형 ■행정안전부 △전남도 행정부지사 이개호△기업협력지원관 박경국 ■환경부 ◇국장급 전보 △영산강유역환경청장 정회석 ■방위사업청 △기획조정관실 규제개혁법무담당관 김대희 ■우정사업본부 ◇부이사관 △우편사업단 소포사업팀장 홍만표 ■국립암센터 △부속병원장 조재일△기획조정실장 이주혁△임상연구대외협력〃 남병호◇연구소△암관리연구과장 윤영호◇부속병원△갑상선암센터장 정기욱△전립선암〃 이강현△소아암〃 박병규△특수암〃 유헌△지원진료〃 김호진△진단검사〃 이건국△적정진료관리실장 겸 감염관리실장 최영주△마취통증의학과장 겸 수술실장 김지희△중환자실장 조대순△응급〃 정진수△외래주사치료〃 박숙련△장기이식〃 이광웅◇국가암관리사업단△암검진사업과장 전재관 ■중소기업진흥공단 △기업신용관리실장 김정영△기술연수〃 김원종△이러닝연수〃 김대규△경북동부지부장 이은성△울산지역본부장 조영규△경영혁신실 총무팀장 박창기 ■전북도 ◇직급 승진△지방이사관 문명수 이금환◇직위 승진△건설교통국장 직무대리 홍성춘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학생부학장 전재성△농업생명과학대학 교무부학장 김기선△〃 학생부학장 김정한△국제대학원 부원장 은기수△법과대학 학생부학장 겸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부원장 송옥렬△교수학습개발센터소장 임경훈△기초과학공동기기원장 박동은△기초교육원 부원장 정자아 ■서울대 발전기금 △사무처장 조성곤 ■고려대 ◇경영대학장 겸 경영전문대학원장 장하성△산학협력단 부단장 겸 안암산학협력실장 윤철원△양성평등센터장 겸 여학생감 이미혜 ■건국대 <충주캠퍼스> △사회과학대학장 박남규△디자인조형〃장 명계수△KU미디어센터장 최영근△언어교육원장 탁계래△교양학부장 이우학△자율전공학부장 장이채 ■세계일보 △논설위원실장 백영철 ■KBS △정책기획센터 지역정책팀장 김부일△포항방송국장 임오진 ■불교방송 <보도국> △정치외교팀장 김봉래△경제산업〃 박경수 ■신한금융지주 △리스크관리팀 상무 이삼용△전략기획팀장 정운진△감사〃 이영철 ■신한은행 △시너지지원본부 팀장 이재근△전략영업본부〃 이준권△기업고객부 〃 박현준△FSB연구소 〃 이준구△여신심사부 선임심사역 이환용 임영하 홍기운△리스크총괄부장 조재희◇지점장△가좌동 성영수△강남스포월드 안효진△경기광주 정영식△계동 황규현△구성언남동 박호광△구월힐스캐슬 곽의권△구의현대아파트 이형락△국민연금강남 윤현호△군자역 송윤식△남원주 김대수△도곡남 박종오△동래중앙 이기학△둔촌2동 송만금△마포 장준현△명일동 박민영△목3동 이정호△부천역 최명기△부천위브더스테이트 최용준△비산동 이창희△삼성동아이파크 최성조△서산 이명훈△성내역 김영수△숭실대역 임대연△신월중앙 이민호△쌍문동 서동재△쌍문역 김원배△암사역 오세성△압구정중앙 이하영△언주로 탁승훈△영통대로 김보현△울산북 조동철△월배 김춘환△은마아파트 배승훈△이수역 이병도△인천국제공항 김일조△일산호수공원 임채성△잠원동 허일곤△정릉 최창학△제기역 윤종준△주안남 김인중△철산동 장기탁△테헤란로 윤창길△퇴계원 김영성△하남풍산 임연택△서초남 금융센터 최광해△스타시티 금융센터 장래관△신한 Private Bank 강남센터 진영섭△풍무동 김재철◇금융센터장 겸 PRM△가락동 문만호△강남 조영준△김해 한순금△반포남 안해준△송현동 이명규△시화스틸랜드 현홍주△역삼역 구본익△의정부 조상열△충무로극동 정상용◇기업금융센터장 겸 PRM△광화문 김명홍△부전동 김웅조△시화 김순종△안산에스버드 권순섭◇기업금융센터 지점장 겸 PRM△남동공단 최동영△시화중앙 최동욱△역삼동 이필수△평천 이연호◇이동△대기업영업부장겸 PRM 편흥섭 한창우△GS타워 대기업금융센터장 겸 PRM 민정기△동경지점 조사역 이효선△기업여신관리부 심사역 박희조△검사부 검사역 신오식 ■KT텔레캅 ◇전무 △경영부문장 박원상 ■한라건설 △해외담당 부사장 이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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