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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보에 길을 묻다 7] “분당으로 양당 모두에게 도움 됐다”

    ●민주노총 지도부를 사상 처음 직선제로 뽑는다는데도 국민들은 아무도 이를 모르는 사실이 민주노총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것 같다.  맞다.규약대로라면 지금 단게에서 조합원들에게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알리는 일마저 소홀했다.직선제를 도입하는 규약 개정만 해놓고 초래할 상황들에 대해 심도있게 생각하지 못했다.크게 두 가지 쟁점이 있는데 투표권을 전조합원에게 줄 것인지,조합비를 낸 조합원에게만 줄 것인지가 있고 두번째는 투표소 설치 문제가 있다.첫 문제는 조합비를 내야 하는 질서가 무너질 수 있고 두 번째로는 투표소 설치와 감독을 엄밀히 할 것인지,모든 조합원 사업장에 설치할 것인지가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창피한 얘기지만 경남본부,대전본부, KT노조 등 부정투표 논란 등의 문제가 현재도 불거지고 있는데 투개표에 대해 감독이 제대로 안되면 필히 부정선거 시비로 갈 거다.해답을 못 찾고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선거를 연기하자,아예 직선제를 없애버리자,직선제는 가되 경선 대신 통합지도부를 구성하자,민주노동당 식으로 임원 후보가 다 나가 1위가 위원장하자 다양한 얘기가 나오는데 지도부 보궐선거 뒤에 본격화될 것이다.보궐선거 지도부가 곧바로 해결해야할 난제 중의 하나다.  ●금속노조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으로 알고 있다.대기업 노조의 한계가 가장 두드러진 것이 금속노조인데.  민주노총과 같은 맥락에서 금속노조도 똑같은 문제에 봉착해 있다.그러나 그래도 금속노조가 민주노총에서는 가장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민주노총이 파업하라면 파업하고 비정규직 사업에 관심을 쏟고 있고 사회문제 실천에서 앞서있다.내부에서 논란이 있지만 정갑득 위원장 기자회견에 정부나 자본측에선 콧방귀도 안 뀌었지만 일자리 나누고 지키기에 협력하자는 메시지는 민주노총 바깥에 던진 메시지에 의미가 있다.  그나마 건강성이 확보되는 것은 역사성 때문이다.87년에 주축이었고 전노협 시대 큰 싸움을 어렵사리 계속 해내 노조를 지켜냈다.여기에 정파의 순기능 덕도 있다.서로 조합원 지지를 얻으려고 경쟁하다보면 조직이 발전하는 측면도 있다.  또 체계적으로 훈련되고 학습된 조합원과 활동가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이유도 있다.  ●민주노총 안에서의 정파간 갈등을 풀려는 움직임은.  ‘다름’의 문제를 ‘틀림’의 문제로 대응하고 판단하는 한국적 풍토가 있는 것 같다. 상대방을 향한 비판이 내부를 향해서는 작동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지난 98년 노사정 합의와 총사퇴 이후 정파갈등이 매우 심각해 대의원대회가 무산되고 유회되는 등의 일이 반복됐다.선거에서의 격렬한 갈등 때문에 민주노총 힘이 반감되는 상황에 이르는 점을 보고 어느 쪽이 집행부가 되더라도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란 인식이 싹텄다.  사실 성폭력 파문이 터지기 전인 지난 1월21일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정파들의 비공개 간담회가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동당 분당은 정말 불가피했나.  분당 뒤에 친한 동지가 ‘같이 운동을 해왔고 앞으로도 함께 운동할 사람에게 종북파란 딱지를 붙였는데 평생 괴롭지 않겠느냐.’고 얘기했을 때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평생 안고갈 부담이라 생각했다.  선도탈당파가 내세운 분당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다.첫째 종북주의 문제다. 2006년 10월 북한 핵실험이 나왔을 때 민주노동당 내의 격렬한 내부 논쟁이 있었다.다수파인 자주파는 미국에 맞선 자위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고 평등파는 모든 핵을 용인해선 안된다는 것이 진보란 이유로 반대했다.일심회 때도 자주파는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평등파는 공당의 정보를 북한 정보원에 넘기는 건 해당행위란 일관된 입장을 갖고 있었다.  둘째 패권주의 문제인데 다수파가 선거 때마다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당비 대납, 대리투표, 위장전입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상황이 몇년 간 누적된 것이다.이런 문제를 지적하면 그것이 왜 문제냐는 태도를 보이거나 노선을 관철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수단 아니냐고 하는 식으로 대응했다.우리로선 맞서서 타락하든가 결별하든가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보았다.난 개인적으로 패권주의에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통합을 하든 할 수 있지만 현재 시점에서 통합이 안된다고 본다.그 이유는 자주파가 패권주의적인 양태를 보여왔던 것이 전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지난 1월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선거를 보고 다수파가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이쪽에서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법한데.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모른다.2001년 용산 지구당을 만들자고 해서 사업을 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인천에서 100여명이 당적을 용산으로 이동하면서 빼앗아갔는데 그들 중에 결혼하지 얼마 안 된 부부에 남성들이 몇명 얹혀 사는 것이 확인됐다.대리 투표 문제가 잦아 징계도 많이 줬는데 고쳐지지 않았다.조승수 전 의원이 당대표 경선 나갔을 때는 그가 당선되면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는,사실과 다른 문자메시지를 날린 것이 확인됐다.  종북파란 안 좋은 감정을 갖고 한 표현보다는 자주파가 적절한데 분당 과정에서 그쪽의 핵심 리더를 만나 ‘절망스럽다.한 당에 같이 하려면 룰을 지켜야 하지 않느냐.민주주의가 아니더라도 룰이 지켜질 수 있다는 전제가 없으면 상대에게 나가버려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따졌더니 ‘몰상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판단의 차이’라고 하더라.그 때 분당을 더욱 확고히 결심했다.  ●짧은 기간 분당을 밀어붙였다면 반대로 통합할 때도 빨리 할 수 있는 힘이 델텐데.  두 달 만에 (분당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밑바닥에서 용솟음쳐 올라온 힘이 당시까지도 분당은 안 된다는 노회찬 심상정 단병호 시도당 위원장 등의 마음을 돌리게 만들었다.역으로 민주노동당이 혁신하고 이것이 확인되면 각종 선거나 실천에서 연대하고 연합하면 신뢰감이 회복되고 하면 통합하든 상시적인 선거연합을 하든 그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분당했기 때문에 두 당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당선자를 못 냈다는 평가가 대세를 이루는데 사실 분당 않더라도 그 수준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 본다.노회찬 심상정이 비록 낙선했지만 나름대로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분당 과정에서의 역할을 보고 지지세력이 늘어난 측면도 있다.(분당으로 힘이 약화됐다면) 대선 때 권영길 후보의 낮은 지지율을 설명할 길이 없다.  분당되고 나서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상대보다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민주노동당도 민생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오고 진보신당 안에서도 최선을 다해 뭔가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진보신당은) 밑으로부터의 자발성이 살아났다.민주노동당 같으면 싸우느라고 기진맥진하는데 이제는 자신 소신대로,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의 논의를 해볼 수 있고 진보신당은 편하게 노선과 흐름에 따라 가는 거다.  우리는 ‘촛불당원’이라 표현하는데 당원 1만 5000명 가운데 60%가 새로 들어온 당원이다.민주노동당 세대 당원은 40%밖에 안 된다.새로 들어온 당원들은 “예전 민주노동당은 맞는 것 같기도 하면서 뭔가 칙칙해 망설였다.”고 말한다.진보신당이 뜨면서 칼라TV 같은 거,과거 같으면 ‘어느쪽에서 하지.(다른 쪽에서 하는 거라는 말 듣고) 그럼 안 되지.’하는 식으로 바로 막혔는데 지금은 제안하고 실천하면 바로 사업이 돼버리는,창의성과 역동성이 발현되는 측면이 있다.  ●앞으로 3~4년 뒤 두 당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동시에 똑같은 문제를 놓고 공방과 고민이 있을 것이다.MB정부가 이렇게 막무가내식으로 밀어붙이는 기조를 계속하면 민주당과 시민사회를 통괄하는 반MB 전선 구축이라는 난제에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이다.민주노동당은 반MB 전선 구축에 찬동하는 이들의 숫자가 조금 더 많을 것이고 진보신당 안에선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은 극소수일 것이고 당론으로는 꿈도 못 꿀 얘기인데 대신 강한 압박을 받을 것 같다.반MB 전선에서 왜 따로 나가느냐는 강한 압박을 받을 것 같다.  이미 일부에서는 그런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반대하는 이도 있고.진보신당이 왜 그렇게 어렵냐 하면 87년 민중의 당 시절,독자적인 세력화와 비판적 지지로 갈라졌던 것과 유사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진보신당은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계속 매달려온 사람들이어서 그런 선택은 어려울 것이다.   ●진보정당 운동의 앞날을 예측한다면.  민주노동당은 민족주의 정당으로,진보신당은 사회주의와 사민주의,자유주의 연합 정당으로 위치지을 수 있다.얼마 전 여론조사에서는 당내 여론의 가장 많은 이가 사민주의로,27% 정도가 사민주의로 가자는 의견이었다.  진보정당운동 재편의 축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이 하나이고 사노련과 사회주의정당건설 준비모임 등을 아우른 사회주의 정당으로 갈 것이냐,진보정당으로 갈 것이냐가 두 번째다.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할 만큼 내용도 실력도 없기 때문에 우회로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물론 언젠가는 사회주의 정당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공감한다.민주당과의 반MB 전선에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다수의 뜻에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절대로 그 안에서 우리 쪽으로 끌어올 수 없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증명이 됐지 않은가.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대통합을 외치는데.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오늘의 대한민국은 기층 민중의 축과 지배세력의 축이 충돌하고 타협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대한민국을 긍정한다는 것은 민중들이 끌고 가려 했던 축에 대해 인정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이승만 박정희 친일파 지배세력이 끌고 가려 했던 대한민국마저 뭉뚱그려 인정하라고 하면 잘못된 얘기라 할 수 있다.근거가 잘못돼 있고 본인이 가고자 하는 운동의 길에 설명이 필요하니까 그런 것 아닌가 외람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진보정당 실험은 실패했고 미국식 양당제로 가야 한다는 취지에서 진보세력은 민주당과 손잡고 가자,이런 식으로 주장하는데 난 동의하지 못 하겠다. ●한석호가 걸어온 길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용산고를 졸업한 뒤 1983년 서강대 도시행정학과에 입학했다.아버지가 노동자로 힘겨운 삶을 영위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 같은 노동자들이 힘들게 살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고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87년 6월 항쟁 때 처음 구속돼 4개월을 복역했다.박종철이 사망하기 일주일 전 서빙고분실에 끌려가 물고문을 당했다.이듬해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시작,22년째 노동운동에 몸담고 있다.인노협 선봉대로 역량을 인정받은 그는 90~95년 전노협 선봉대와 조직 쟁의를 담당했고 96년 민주금속연맹을 조직해 쟁의 담당으로 일했고 98년 금속연맹(민주금속연맹 자동차연맹 현총련) 등에서도 마찬가지 역할을 했다.  서울의 경찰서란 경찰서는 다 가봤다고 할 정도로 각종 집회와 시위 등을 기획하고 주도했다.스스로도 “수만명 앞에서 선동하는 것은 겁이 나지 않은데 카메라 앞에만 서면 잔뜩 긴장한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  1999년 주 40시간 쟁취투쟁과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에도 구속돼 ‘별’이 세 개인 그의 복역 기간은 2년1개월로 상대적으로 짧은 편.  2004년 노조운동 진영 안의 최대 정파로 불리는,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들의 연대 ‘전진’ 창립을 주도해 임시의장,조직위원장,집행위원장 등을 맡았다.2007년 민주노동당 분당기획 문서 ‘진보신당을 창당하자’를 작성하고 기획자 및 조직자를 차처했다.지난해부터 진보신당 확대운영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노동운동 판에서 초유의 일로 보이는 ‘노동운동과 나’란 제목의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1월24일 이후 연재가 끊긴 것은 성폭력 파문으로 인한 괴로움 때문이라고 하면서 조만간 다시 시작해 연말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분당 고민하면서부터 진보신당 창당까지 시간대별로 일지를 기록할 정도로 꼼꼼한 면모가 있다.  어딜 가나 무지개 사회주의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평등 자유 민주 생태 여성 소수자 양심적인 기업인까지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다른 사상과 이념을 존중하는 사회주의여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진달래 사회주의를 하고 싶다는 얘기도 곧잘 곁들이는데 진달래처럼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가는 그런 모습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사막에 홀로 떨어져도 운동의 씨앗을 뿌리자.”는 소신을 갖고 있다고 했다.
  • [진보에 길을 묻다 7] “민주노총 위기는 계급연대·사회연대에 소홀했던 탓…비정규직에 따듯한 손 내밀어라”

    [진보에 길을 묻다 7] “민주노총 위기는 계급연대·사회연대에 소홀했던 탓…비정규직에 따듯한 손 내밀어라”

    ”비정규직과 미조직 노동자들을 위한 사업에 민주노총의 예산과 인력 50% 이상을 배정해야 한다.그래야만 그동안 잃어버린 운동성을 회복하고 계급연대와 사회연대를 통해 본연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다.”  22년을 노동현장에서 활동가로 살아온 한석호(45) 진보신당 확대운영위원은 최근 성폭력 파문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민주노총의 활로를 찾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 없다고 단언했다.’진보에 길을 묻다’ 시리즈 7회 주인공으로 지난 23일 서울신문과 만난 그는 민주노총이 지금의 어려움에 처하게 된 원인을 “일부의 권력화 문제,정파간 갈등도 있고 투쟁력과 협상력이 떨어진 문제도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운동성의 상실”이라며 “2000년대 초반부터 노동운동의 위기가 운운될 때 수많은 대책과 논의,대안들이 언급됐지만 그 가운데 10%라도 실행됐다면 작금의 상황에 몰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말부터 인터넷 매체 ‘레디앙’에 ‘한석호의 노동운동과 나’란 제목의 자기 성찰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는 한석호 위원은 성폭력 파문이 현장활동가들에게 가져온 엄청난 심리적 타격을 소개하면서 “민주노총이 대기업 중심의 조직된 노동자(조합원)만을 대상으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조직이란 인식을 바꾸지 않고선 한발짝도 전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처음 운동을 결심하게 만들었던 아버지와 지금 운동의 동력이 되고 있는 딸 등 내밀한 얘기도 털어놓았다.  그는 사실 민주노동당 분당을 가장 앞장서 주창하고 이를 관철시켰던 인물.분당 기획 문서 ‘진보신당을 창당하자’를 작성했다.그래서 1년이 지난 지금도 민주노동당의 다수파인 자주파로부터 ‘분열주의자’란 숱한 ‘악플’을 받고 있다.그는 끝까지 함께 가야 한다고 했던 노회찬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 등을 격렬한 논쟁 끝에 돌려놓은 과정을 돌아보며 “자주파가 드러낸 종북주의와 패권주의 문제는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오랜 시간 누적된 문제”여서 분당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또 분당을 통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영향력이 약화됐다는 다수의 관측과 달리 “오히려 쓸모없는 내부 논쟁에 기진맥진하는 대신 자기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노동운동에 뛰어든 지 22년 동안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매개하는 데 한몫 했다고 자부하는 그는 “보궐선거 등의 계기를 통해 선거연합 등은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먼저 민주노동당이 과거 종북주의나 패권주의에서 탈피했다는 것이 확인되기 전까지 다시 합치는 일은 어렵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또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반(反)MB 전선 구축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드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민주당과도 힘을 합치는 식의 통합 논의에는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오히려 미조직 노동자와 비정규직,기층 민중 등의 계급연대와 사회연대를 통해 진보정당 건설의 기반 확대에 힘을 집중하는 것이 더 절실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운동권내 지위를 스스로 매긴다면.  대중적으로 유명하지도 않고 내세울 것도 없는 사람이다.추진력 있는 조직가,투쟁 전문가이며 노동운동 진영의 분류법을 따르자면 중앙파의 핵심 참모 중 한 사람이며 정당운동 진영 분류법을 따르면 평등파의 영향력 있는 활동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중앙파의 핵심 참모 그룹이라면 지금은 지도자급이 됐지만 심상정과 연구자로 돌아선 손낙구,신언직,이근원 등 너댓 사람을 포함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조직운동가로서 민주노조운동 20년을 평가한다면.  1987년 대파업투쟁 이후 대중적 노동조합운동 시대가 시작돼 민주노조운동의 토대가 구축됐다면 90년에는 전노협 시대가 열려 민주노조운동을 사수하기 위한 선봉대로서 핵심 역량을 구축하던 단계였다.95년 민주노총 시대가 열리면서 민주노조운동이 ‘시민권’을 획득하며 양적으로 확산됐다.  민주노조의 임투와 단협 투쟁은 사회적으로 전체 노동자의 임금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었으며 노조 사수 투쟁은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97년 IMF 체제 이후 형식적 민주주의가 갖춰지고 노조가 시민권을 얻고 자본이 노동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대기업과 중소기업,남성과 여성등으로 분핱통치하면서 조직된 노동자,조합원들만의 투쟁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란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현재 민주노조운동을 비관적으로 요약하자면 ‘육지와 연결된 다리마저 끊어진 섬’이라고 할 수 있다.따라서 비정규직이나 국민들과 만나려면 헤엄을 치든 쪽배를 타든 택일해야 할 상황이다.80만 조합원을 거느린 조직으로 양적인 면에서 성장했지만 질적으로는 저하됐다고 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성폭력 사건으로 민주노총 위상에 금이 갔다.어떻게 보는지.  한마디로 참담하다.운동한답시고 돈도 못 벌고 가족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영예를 얻지 못하면서도 단 하나,우리 사회를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드는 데 이바지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버텼는데 딸에게도 노동운동을 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렸다.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첫째 조직강화특위장이라는 핵심간부에 의해 성폭력 사건이 저질러졌다는 점,그것도 직장에서 쫓겨나고 감옥에 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수배 중인 위원장의 도피를 도운 여성 조합원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은 그 자체로 용납이 안 된다  더 큰 문제는 그 사건을 접수한 집행부의 태도였다.2차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를 보아야겠지만 피해자측의 기자회견이 사실이라면 피해자들을 더욱 큰 고통으로 밀어넣었던 것은 신속하고 엄격하게 처리했어야 할 지도부가 오히려 사건을 은폐하고 감추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를 찾아가 회유하려 했다는,2차 가해를 가했다는 점이다.운동이나 인권을 떠나 상식적으로 용납이 안 된다.  마지막으로 사건이 처음 언론에 보도됐을 때 그 책임을 언론에 떠넘기고, 집행부 책임을 회피하고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개인적 문제이므로 조직 차원에서 사과할 것이 없다.”, “상대 정파가 집행부를 몰아내기 위해 사퇴 공세를 취하고 있다.”는 등으로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던 것이 민주노총이 ‘막장’ 상태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2005년 강승규 전 부위원장 비리 이후 또 지도부가 총사퇴했다.  입이 백개라도 할 말이 없다.강승규 파문 이후 4년 만에 또 문제가 발생했다.시민권을 획득한 민주노총이 운동성을 상실한 필연적인 결과라고 본다.운동성을 상실한 운동에 권력만 남고 자기 밥그릇 챙기기만 남았다.근본적인 혁신을 하지 않는 다면 민주노총은 또다시 이런 곤혹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릴 것이다. ●운동권이 비판하던 정부의 회전문 인사가 민주노총에도 있다는 지적이 있던데.  민주노총이 시민권을 획득한 뒤 운동성을 상실하고 권력화 성향만 일부 남아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많은 활동가들이 묵묵히 헌신하고 있는 점이다.권력의 위치에 올라갈 생각도 없이 노력하는 이들까지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건 가슴아픈 일이다.  우리가 한국노총을 비판할 때 커다란 논거였던 하나가 전임이 해제돼도 한국노총을 기웃거리거나 권력을 좇아 가거나 한다는 것이었다.그러나 한국노총만큼 많거나 일상화되지는 않지만 있다.전임자 역할이 끝나면 사업장,현장으로 돌아가 일을 하고 또 역할이 주어지면 나와야 하는데 무슨 선거다,직책을 맡아야 할 일이 있으면 서로 맡겠다고 다투는 일이 발생한다.  전임이 끝났는데도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성폭력 파문의 당사자도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기웃거리다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다.스스로 운동성을 버린 상태였다.  다행인 것은 안 그런 이도 많다는 것이다.금속연맹 위원장을 하면서 2002년 발전파업 이후 지도부가 총사퇴했을 때 백순환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은 전임으로 8~9년 역할을 한 뒤 대우조선으로 내려가 작업복을 입고 그라인더를 잡았다.한화 매각이 논의되자 위원장 출마자가 경험있는 이도 필요하다며 단위 사업장 부위원장으로 도와달라고 하자 민주노총 비대위원장까지 맡았으면서도 기꺼이 응해 돌아왔다.현장 노동자들은 참으로 존경할 만하다고 하고 다른 이도 저렇게 해야 하는데 라고 입을 모은다.  ●일부에선 정파간 갈등이 문제의 본질인 것처럼 보도했는데.  민주노총에 정파 문제 있는 것 맞지만, 원인과 이유를 따지지 않고 모든 것을 정파문제로 치부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성폭력 사건에 국한하면 정파 문제는 “정파적 이해로 해석한 집행부의 문제”였다고 판단하고 있다.사퇴한 국민파 집행부와 경쟁하는 이른바 중앙파와 현장파는 오히려 공세를 취하지 않고 입조심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총사퇴 공방이 벌어진 시발점은 국민파 안의 세 가지 부류 가운데 한 부류 안에서 였다.정파관계가 작용했다기보다는 사퇴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가 그런 식으로 대응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건가.  투쟁력도 없고 협상력도 없고 전노협 시절과 비교하면 내부 조합원들로부터도 신뢰를 얻지 못하고 노사정위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교섭력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지금까지 네 차례 지도부 총사퇴를 동일한 시각에서 접근하던데 엄밀히 분류할 필요가 있다.1998년 1기 노사정 합의,2002년 발전노조 총파업 이후 지도부 총사퇴는 투쟁과정의 오류에 책임을 지는 내부적이었던 것인 반면 2005년 강승규 비리, 2009년 성폭력에 따른 총사퇴는 외부에서 밀려온 거대한 쓰나미였다.  문제의 심각성은 쓰나미가 몰려왔는데도 민주노총은 국민들로부터 고립돼 있고 조직 바깥의 90%가 넘는 비정규,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조직으로 인식되고 있는 점이다.  ●활로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민주노총에는 권력화 문제도 있고 정파간 갈등 문제도 있다.투쟁력과 교섭력이 약한 문제도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운동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계급연대와 사회연대에 소홀했다는 것이다.또 국민들의 삶을 옥죄고 있는 교육, 의료, 주택, 노후 등의 복지문제, 21세기의 새로운 가치인 여성, 소수자, 생태문제 등 사회 다른 부문에 연대하지 않고 있다.이 지점에서 노동운동 모두의 반성이 있어야 한다.  비정규직, 미조직 사업에 실제 역량을 투입하는 것이다.민주노총 예산과 인력의 절반을 비정규, 미조직 사업에 투입해야 한다.복지와 21세기의 가치와 연대하여 투쟁하는 것이며 그렇게 싸우다 보면 비리,성폭력,권력화의 문제나 정파간 갈등도 해소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분당이나 민주노총의 방향 상실 등에 대한 현장활동가들의 소회는. 어제도 노동운동 활동가들과 파주 감악산에 갔는데 “노동운동한다고 말하기 창피하다.”는 반응이 대다수다.”청춘이 아깝다.“조합원들에게 미안하다.”는 반응도 있다.자리를 탐하지도 않고 이름도 없이 열심히 살아온 이들이 왜 이런 고통을 느껴야 하는지 자괴하는 분위기다.그래도 활동가들이라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할 것인지 얘기를 나눴다.  나같은 경우 “딸이 커서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희생하고 헌신했는데 이제 딸이 비정규직이나 실업자가 되는 세상을 물려주게 생겼다는 자괴감이 드는 것이다.  ●지나치게 아파해선 안 될 것 같은데.  지금까지는 그렇다고 해도 앞으로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면 의욕을 보일 수 있겠다 싶은데 과연 그게 될까.민주노총이 지금은 혁신을 얘기하고 대안을 내놓고 있는데 이게 소나기 피해보자에 그치고 관심에서 멀어지고 나면 언제 우리가 혁신을 고민했느냐는 식으로 나오지 않을가 싶어서다.이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 고통은 더 내적으로 상처를 주면서 스스로를 갉아먹을 것 같다.강단을 길러야겠다.2000년대 초반부터 노동운동의 위기론이 나오면서 혁신하자는 좋은 내용들,수많은 분석들,대책들을 다 내놓았는데 그 중에 10%만 실천했어도 오늘처럼 고립된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많은 과제들을 실천하지 못하고 딱 하나,직선제라도 해보자 했는데 이 직선제가 어쩌면 조직을 초토화,식물 상태에 빠뜨리고,복수노조와 맞물려 치유할 수 없는 분열을 경험하지 않을까,그런 분석들 때문에 아파했던 것 같다.(계속)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한석호“민주노총 위기는 계급연대·사회연대에 소홀했던 탓”

    “비정규직과 미조직 노동자들을 위한 사업에 민주노총의 예산과 인력 50% 이상을 배정해야 한다.그래야만 그동안 잃어버린 운동성을 회복하고 계급연대와 사회연대를 통해 본연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다.”  22년을 노동현장에서 활동가로 살아온 한석호(45) 진보신당 확대운영위원은 ‘최근 성폭력 파문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민주노총의 활로를 찾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진보에 길을 묻다’ 시리즈 7회 주인공으로 지난 23일 서울신문과 만난 그는 민주노총이 지금의 어려움에 처하게 된 원인을 “일부의 권력화 문제,정파간 갈등도 있고 투쟁력과 협상력이 떨어진 문제도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운동성의 상실”이라며 “2000년대 초반부터 노동운동의 위기가 운운될 때 수많은 대책과 논의,대안들이 언급됐지만 그 가운데 10%라도 실행됐다면 작금의 상황에 몰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말부터 인터넷 매체 ‘레디앙’에 ‘한석호의 노동운동과 나’란 제목의 자기 성찰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는 한석호 위원은 성폭력 파문이 현장활동가들에게 가져온 엄청난 심리적 타격을 소개하면서 “민주노총이 대기업 중심의 조직된 노동자(조합원)만을 대상으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조직이란 인식을 바꾸지 않고선 한발짝도 전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처음 운동을 결심하게 만들었던 아버지와 지금 운동의 동력이 되고 있는 딸 등 내밀한 얘기도 털어놓았다.  그는 사실 민주노동당 분당을 가장 앞장서 주창하고 이를 관철시켰던 인물.분당 기획 문서 ‘진보신당을 창당하자’를 작성했다.그래서 1년이 지난 지금도 민주노동당의 다수파인 자주파로부터 ‘분열주의자’란 숱한 ‘악플’을 받고 있다.그는 끝까지 함께 가야 한다고 했던 노회찬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 등을 격렬한 논쟁 끝에 돌려놓은 과정을 돌아보며 “자주파가 드러낸 종북주의와 패권주의 문제는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오랜 시간 누적된 문제”여서 분당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또 분당을 통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영향력이 약화됐다는 다수의 관측과 달리 “오히려 쓸모없는 내부 논쟁에 기진맥진하는 대신 자기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노동운동에 뛰어든 지 22년 동안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매개하는 데 한몫 했다고 자부하는 그는 “보궐선거 등의 계기를 통해 선거연합 등은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먼저 민주노동당이 과거 종북주의나 패권주의에서 탈피했다는 것이 확인되기 전까지 다시 합치는 일은 어렵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또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반(反)MB 전선 구축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드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민주당과도 힘을 합치는 식의 통합 논의에는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오히려 미조직 노동자와 비정규직,기층 민중 등의 계급연대와 사회연대를 통해 진보정당 건설의 기반 확대에 힘을 집중하는 것이 더 절실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맞수] (1) 鄭동영 vs 丁세균

    [맞수] (1) 鄭동영 vs 丁세균

    정치는 경쟁이며 승부다. 파괴력으로 싸우고 콘텐츠로 쟁취한다. 정치인과 정당, 정치 단체는 상대를 누르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힘과 실리를 추구한다. 민심을 얻고 시대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저마다 명분과 가치를 지향한다. 서울신문은 정책 이슈나 정치 쟁점 등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맞수의 면면을 조명한다. 여야의 맞수, 여당 내나 야당 내의 맞수, 학연이나 지연에 따른 맞수 등 다양한 라이벌 열전을 소개한다. #1. 2007년 3월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 외곽 조직인 평화경제포럼 출범식에서 정동영(鄭東泳·56) 전 통일부 장관과 정세균(丁世均·59)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은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맞잡았다. 정(鄭)과 정(丁)은 4~5월 국회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와 대선 관련 심포지엄, 7~8월 봇물을 이룬 대선 후보 출마선언식에 잇따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수개월 뒤 의장직에서 물러나 대통합민주신당 상임고문을 맡은 정(丁)은 정(鄭)의 대선 행보를 도왔다. #2. 지난 8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칩거에 들어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정 전 장관이나 손학규 전 대표 등과 거리를 둬온 노 전 대통령은 정 전 장관 복귀설로 계파 갈등이 불거진 때에 정 대표의 방문 요청을 이례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배경을 두고 당 안팎의 시선이 쏠렸다. 오는 4월 재·보선을 앞두고 민주당에서 소리 없는 ‘정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고향인 전주 덕진 재선거 출마를 저울질하는 정 전 장관과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정 대표측의 물밑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다. 정 대표를 추대한 당내 386세력은 정 전 장관의 덕진 출마에 불만을 쏟아냈고, 정 전 장관의 지지세력은 “공천배제는 어불성설”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鄭)과 정(丁)은 전북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정(鄭)은 순창, 정(丁)은 진안 출신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은퇴 후 무주공산이 된 호남의 패권을 놓고 라이벌로 성장했다. 두 사람은 78년 같은 해에 기자와 대기업 샐러리맨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정계 입문 뒤 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통합민주당으로 정치적 행보도 같이했다.1996년 15대 국회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으로 같이 정계에 입문한 뒤 참여정부 때 잇따라 입각했다. 2004년 정(鄭)이 통일부 장관을 맡았고 정(丁)은 2년 뒤 산업자원부 장관에 임명됐다. 열린우리당 의장이 11차례 교체될 때, 정(鄭)이 2004년과 2006년, 정(丁)이 2005년과 2007년 각각 2차례씩 의장을 맡았다. 정 전 장관이 범민주계 17대 대선 후보로 나선 반면 정 대표는 현재 강력한 야당 대표 이미지를 굳히며 차기 대선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총선에서 연승한 정 대표가 4선인 반면 정 전 장관은 2차례 낙마로 재선이다. 이들은 지역적 동질성 탓에 다른 한쪽을 넘어야 하는 숙명적 관계다. 정 전 장관은 젊은 시절, 모친이 재봉틀로 만든 아동복을 동대문 평화시장에 직접 내다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정 대표도 밥 세끼를 챙기지 못하는 형편 탓에 검정고시를 거쳐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장학금을 받고 인문계 고교로 전학했다. 정 전 장관은 대선 후보 선출 뒤 첫 유세장소로 평화시장을 택했고, 정 대표는 고향 후배들을 위해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 대선에서 500여만표 차이로 낙선한 뒤 18대 총선에서도 고배를 마시고 도미(渡美)했다. 반면 정 대표는 열린우리당계와 386세력의 지원을 받아 지난해 7월 민주당 대표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정치 재개를 모색하는 정 전 장관과 굳히기를 시도하는 정 대표는 오는 4월 재·보선을 앞두고 정치적 대립이 불가피하게 됐다. 내달 공천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정 전 장관이 당 상임고문·최고위원 연석회의에 고문자격으로 참석, 의견을 개진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정 대표는 “뭐라 얘기하기 힘들다.”며 당내에 함구령을 내렸지만 정세균호(號) 출범 뒤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당내 소장파 모임인 ‘개혁과 미래모임’과 정 전 장관 계열이 참여한 ‘민주연대’도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00년 재선 의원으로 권노갑 전 고문을 상대로 ‘정풍 운동’을 일으킨 정 전 장관이 복귀 논란에 빠져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사설] 마구잡이로 통보한 불법시위단체

    경찰이 지난해 촛불시위를 주도한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에 참가한 단체 1840여곳을 모두 불법·폭력 시위단체로 규정했다. 그리고 그 명단을 정부 부처에 통보했다. 명단이 행정안전부의 심의를 거쳐 확정되면 해당 단체에 대해서는 정부의 지원금이 지급되지 않게 된다. 경찰은 지난해에도 불법·폭력 시위단체로 68곳을 통보했고 행안부는 25개 단체를 지원제외 대상으로 분류했다. 이에 비하면 단체의 수가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단체의 숫자가 늘어난 것만이 아니다.대통령까지 나서서 사과했던 촛불시위에 참가했다고 몽땅 불법·폭력 시위단체라고 규정하는 것은 집회 시위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선정기준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옥석을 가리지 않은 채 이름이 오른 단체를 모두 불법 시위 단체로 규정하는 것은 행정적으로도 지나치게 편의주의적이다.경찰이 규정한 단체 가운데는 민노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3개 야당이 포함돼 있다. 헌법에 의해 보호되고 국민의 지지를 통해 국회의원까지 배출하는 공당들이다. 민노총도 포함돼 있다. 양대 노동 조직의 하나다. 구체적 행위에 대해 불법성을 따지는 것은 별개로 단체 자체를 불법·폭력시위단체로 낙인찍는 것은 민주적 기본질서를 무시하고 사회적 대화를 거부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블랙 리스트에 올려놓고 늘 감시하겠다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정부의 행위는 공정하고 합법적이며, 국민통합적이어야 한다. 눈엣가시 같다고 마구잡이로 불법과 폭력의 낙인을 찍어서는 안 된다. 이 같은 조치는 정부가 국민과 널리 소통을 하는 데도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다. 재고할 것을 촉구한다.
  • [특파원 칼럼] 거듭나는 프랑스 좌파/이종수 파리 특파원

    [특파원 칼럼] 거듭나는 프랑스 좌파/이종수 파리 특파원

    최근 프랑스 좌파 진영의 움직임이 부쩍 활발해졌다. 극좌파 진영인 ‘혁명공산주의연맹(LCR)’이 외연을 넓혀 6일(현지시간) ‘반(反)자본주의 신당(NPA)’을 창당했다. 다른 축에서는 좌파 정당이 연대해 유럽의회 의원 선거,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개혁 노선 수정 요구 등 사안에 따라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프랑스 좌파 진영은 그동안 너무 미세한 분화와 현실적 대안 제시 실패 등 몇가지 원인이 겹쳐 ‘무기력증’에 걸려 있었다. 특히 186석의 의석을 가진 거대 야당인 사회당의 존재는 거의 유명무실했다. 당내 중진들이 이끄는 계파간 불협화음으로 적전 분열상마저 드러냈다. 또 사르코지 대통령의 ‘이슈 선점’ 앞에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허둥지둥하면서 제1 야당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전통의 공산당과 녹색당도 2007년 대선에서 예상 밖으로 저조한 지지율을 얻으면서 ‘잊혀진 정당’이 돼가고 있다. 이처럼 주요 좌파 정당이 무력해지자 극좌파 진영이 나섰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트로츠키주의 성향의 LCR이다. 일간 르 몽드와 르 피가로 등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LCR 5일 역사속으로… 6일 NPA로 확대 탄생’을 주요 기사로 보도했다. LCR는 1969년 태어났다. 1968년 5월 혁명 뒤 ‘친 트로츠키주의-반 스탈린주의’ 진영의 좌파 그룹이 결집한 정당이다. 관념적 과격성을 보이다가 1997년부터 총선에 자체 후보를 내고 노동총동맹 등 노조연합과 연계해 현실 운동에 참여했다. 특히 2002년 대선 당시 후보였던 올리비에 브장스노는 ‘좌파 스타’ 로 급부상했다. 현재 집배원으로 일하고 있는 34세의 브장스노는 2007년 대선에서도 4.08%대의 지지율로 전통의 공산당 후보를 제치며 기염을 토했다. 또 지난해 여론조사에서는 2012년 대선에서 사르코지에 맞설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면서 ‘브장스노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브장스노는 지난해 말 사회당과 거리를 둔 범좌파의 통합을 주창하면서 LCR보다 몸집이 3배나 불어난 NPA 창당을 주도했다. 정치학자 드니 팽고는 5일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브장스노가 이끄는 NPA의 창당으로 정치 영역이 요동을 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좌파의 활발한 움직임은 LCR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3일에는 좌파 진영 12개 정당·정파가 모처럼 회동했다. 그들은 지난달 29일 노동계가 주도한 총파업 당시 분출한 다양한 주장에 대한 지지를 공식 밝히고 현실적 대안을 모색하기로 합의했다. 또 사르코지 대통령에게는 “개혁 노선을 바꾸라.”고 촉구했다. 앞서 지난해 11월28일에는 공산당의 당수로 연임한 마리 조르주 뷔페 당수가 2009년 유럽의회 의원 선거에서 좌파가 공동 전선을 형성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물론 이들의 정치적 힘은 아직 크지 않다. 2007년 대선에서 10% 정도의 지지율을 확보한 정도다. 그리고 하원의 의석 수도 많지 않아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기 위해서 일부는 사회당과 연대하거나 비슷한 성향의 소수 그룹이 연합해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 맞는 대안을 모색하고 거듭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면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좌우의 균형을 맞추는 데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좌파의 이런 활발한 움직임을 보노라면 침잠한 한국 좌파의 현실이 더 크게 다가온다. ‘종북주의’ 논란으로 분당한 민주노동당과 진보 신당, 당 정체성 혼란으로 무기력증에 빠진 듯한 민주당…. 그들은 언제 ‘정치 기지개’를 켤까? 이종수 파리 특파원 vielee@seoul.co.kr
  • “연기자 강부자씨에 사과” 최재성 민주 대변인 퇴임

    “지난 17대 대선 때가 가장 힘들었다. 하루 10번 (국회 기자실인) 정론관에 선 적도 있었다.”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이 3일 대변인직을 내려놓았다. 지난해 7월 취임한 지 6개월 남짓 만이다. 하지만 2007년 2월 열린우리당 대변인과 같은 해 8월 대통합민주신당 원내대변인, 통합민주당 대변인까지 합하면, 그는 2년 남짓 여야를 두루 거치며 최전선을 지켰다. 정치적 격변기나 마찬가지였던 기간 동안 1000여개의 논평이 최 대변인의 입을 통해 국민에게 전달됐다. 그는 “대변인이 과거 당 총재의 명을 받들어 단순 스피커 역할을 하지 않고, 당의 공식 입장을 전달하려 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 대변인은 연기자 강부자씨에게 특별한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명박 정권의 인사 문제를 지적하면서 ‘강남·부동산·부자’라는 뜻으로 공격했던 ‘강부자’라는 표현 때문이다. 그는 “3개월 전 어느 행사장에서 강부자씨를 만났는데, ‘이름을 쓰지 말아 달라’는 (강씨의) 부탁을 받고 ‘강부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최재성 고별브리핑 “강부자씨에 가장 미안”

    최재성 고별브리핑 “강부자씨에 가장 미안”

     ”대변인 생활하면서 탤런트 강부자씨에게 가장 미안했다.”  지난 2007년부터 열린우리당과 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을 거쳐 민주당의 ‘입’을 맡았던 최재성 대변인이 3일 고별 브리핑을 끝으로 공식 사임했다.최 대변인은 달변이 아니지만 뚝배기 같은 용모에 가끔 날리는 시국 멘트는 서민들의 가슴을 한방에 녹이는 것으로 유명했다.  최 대변인은 이날 “처음 대변인을 맡았을 때 역대 대변인 중 가장 큰 얼굴로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는 농담을 시작으로 소회를 밝혔다.  그는 “더 강하게 논평하라는 지지자들과 너무 세다는 중도자들 사이에서 어려웠다.”는 고충을 밝히면서 “논평에서 희망과 기쁨을 찾는 것은 현 정치구조에서는 어렵다.대변인에 대한 국민적 착시현상은 벗어던져야 한다.”며 정당 대변인의 한계를 밝혔다.  대변인의 역할에 대해 “국민적 판단을 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최 대변인은 “대변인의 입을 통해 당의 전략과 가치·노선이 건조하게 정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이어 “열린우리당 시절 통합 과정에서 원내 대변인을 하면서 전략을 이끌었지만 민주당에서는 그런 논평이 줄었다.정상적인 정당의 모습을 갖춰가는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 자유롭게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싶다.”는 희망을 말한 뒤 “진지하게 민심의 바다로 뛰어들어가 민심의 실체를 현상 그대로 읽어내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최 대변인은 “대변인 23개월 동안 가장 미안한 것은 탤런트 강부자씨”라면서 “(강씨를)어떤 자리에서 만났더니 이름쓰지 말아 달라고 해서 그 이후로 3개월 동안 ‘강부자 정부’ ‘강부자 내각’이란 말은 쓰지 않았다.”는 뒷이야기도 밝혔다.최 대변인은 현 정부 출범 이후 ‘강남·부동산·부자’를 의미하는 ‘강부자’란 신조어로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었다.  최 대변인은 “긴 기간 대변인을 하면서 마음에 상처를 받은 분이 있다면 죄송하다.”고 사과하면서 “나도 그런 말을 하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며 마지막 브리핑을 마무리했다.   한편 대변인 바통을 넘겨받은 노영민 신임 대변인은 이날 “대안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경제 분야에 대한 논평을 강화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부자 증세하고 삽질 예산 깎아 교육재정 확충”

    “부자 증세하고 삽질 예산 깎아 교육재정 확충”

    “진보진영이 부자 증세와 ‘삽질(건설) 예산’ 축소를 통해 교육재정을 확대해야 한다는 슬로건으로 하나가 되면 국민에게 의미있는 정치세력으로 비칠 것입니다. ”  2000년 삼성그룹 증여세 포탈을 규탄하며 국세청 앞에서 국내 최초로 1인 시위를 벌였던 윤종훈(48) 회계사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오를 다졌다.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 법무법인 씨엘 회의실에서 만난 그는 소액주주운동의 성과와 한계로 말문을 열었다. ●“감세와 재정개혁 미진 끔찍한 결과 부를 것”  “재벌 총수의 전횡을 막고 IMF(국제통화기금)체제 이전 시절 관행화 됐던 비자금 조성과 분식회계의 문제점을 파헤친 것은 의미가 컸습니다.하지만 기업과 재벌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공공성으로 담론을 확대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실책으로 부자 감세와 재정 개혁 등한시를 꼽았다. 윤 회계사는 “대공황 이후 경기 불황 극복 방법으로는 서민과 중산층의 가처분 소득을 늘리고 일자리를 창출해 공공투자를 늘리는 것이 유일한데 이명박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그는 “ 부자 감세로 이명박 정부 기간 90조원 가까이 날아갈 것인데 그 혜택은 5%의 부자와 대기업들 주머니로 들어간다.그로 인한 재정적 충격은 고스란히 서민과 중산층이 안게 된다. ”고 우려했다.  오바마노믹스도 이런 보편적인 길을 좇고 있는데 유독 현 정부만 역주행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 윤 회계사의 주장. 특히 정부가 올해 성장률을 4%나 7%로 보고 70조원 정도의 재정적자는 감수할 수 있다고 하는데 마이너스 성장에 그친다면 끔찍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분노했다. 1인시위 이후 8년여가 흐른 지금, 그는 보편적 복지를 겨냥한 북유럽식 복지국가 모델, 즉 사회민주주의를 사회경제적 대안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보편적 복지란 극빈층 구제를 뛰어넘어 광범위한 근로계층과 서민층, 나아가 중산층까지 복지 혜택을 누리게 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증세가 불가피하다.  문제는 세금 징수에 민감한 국민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관건. 윤 회계사는 진보진영 일부에서 거론되는 선복지 후증세 전략에 공감했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의미있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하는 게 더 급선무일 터 ●“국민에게 의미있는 정치세력 인정받는 게 중요”  “지금까지 진보진영은 ‘쌈빡한’ 논리나 정책이 없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정치역량이 부족했습니다. 거대담론보다 지역적 생활정치 의제가 부각되는 지방선거에서 이명박 정부의 ‘건설족’에 맞선 정책의제를 발굴해 후보를 단일화하거나 표를 몰아주면 의미있는 정치 공간이 확보될 것입니다.”  그는 종부세 감소와 SOC 예산 증액으로 교육이나 아동복지에 주름살이 졌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 심플하게 ”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 예를 들어 교육에 대한 투자를 핀란드 수준인 GDP의 2~3% 정도 확보하려면 20조원 정도가 더 필요하다. ”고 밝힌 그는 “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지역에 맞는 정책의제를 개발해 하나의 요구로 엮어나갈 때 진보진영이 믿음직한 세력으로 인식될 것 ”이라고 결론내렸다.  작은 차이를 뛰어넘자는 말도 거듭했다.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이라면 한나라당과도 손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 그는 “ 집권 1년 만에 역사를 20년 이상 후퇴시킨 이명박 정부보다 우리 안의 차이와 감정의 골이 더 크고 더 밉다는 말이냐고 되묻고 싶다. ”는 말로 절박함을 대신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다음은 인터뷰 전문.200자 원고지 50장 가까운 분량이어서 둘로 나눠 싣는다. 살아온 이력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자랑하고 내세울 일이 아니어서 밝힌 적이 별로 없다.1982년 초 대학 재학 중 시국사건에 연루돼 강제징집돼 그날로 대학에서 제적당했다.제대한 뒤 먹고 살기 위해 1984년부터 88년 복학할 때까지 노동현장에 있었다.처음 2년은 정비공으로,나중에 2년은 택시회사에 다녔다.박노해(본명 박기평) 시인은 버스였고 난 택시였다.  1988년 노태우 정권때 이른바 ‘운동권 장학생’으로 복학했다.등록금 1학기 분이 장학금으로 주어진 파격적인 조건이었다.1990년 졸업과 동시에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평범한 공인회계사로 삼일과 산동 같은 대형 회계법인에서 근무하며 지냈다.그러다 1994년 개인사무실을 내면서 참여연대와 인연을 맺어 장하성 교수와 함께 소액주주운동을 하게 됐다.조세 문제가 앞으로 사회의 큰 쟁점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국가의 미래를 논할 때 경국 조세와 재정에서 방향이 잡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장하성 교수는 소액주주운동에,난 일종의 역할 분담으로 참여연대 조세개혁팀 초대 팀장을 맡아 경제개혁센터를 세우는 등의 일을 하면서 삼성그룹의 탈세 의혹을 파고들었다.민형사 소송 외에 조세포탈을 걸고 넘어져야 겠다는 판단 아래 삼성그룹의 증여세 포탈 증거를 찾아내야겠다고 결심,1999년 초 결국 찾아냈다.  같은 해 4월 말에 안정남 국세청장 등을 만나 삼성그룹의 증여세 포탈에 대한 검찰 고발을 검토하겠다는 말을 듣고 기다렸으나 시간만 끄는 듯해 11월부터 행동에 들어갔다.국세청 앞에서 일인시위(국내 1호였다)를 벌인 것이다.그러면서 회계사로서 내 생명은 끝났고 힘든 생활이 이어졌다.생활은 찌들어졌다.  (2004년 16대 4·15총선에서는 총선연대 조사팀장으로 후보자들의 납세실적을 공개하는 등 의미있는 활동을 전개해왔다.현재 그는 법무법인 씨엘 소속 회계사 일을 하면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진보진영의 단결과 미래를 모색하는 활동에 주력하는 한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기획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소액주주운동의 성과와 한계라면. =기업회계의 투명성을 높이라고 주장한 것은 역사에 분명한 한 획을 그은 것이라고 평가한다.재벌 총수의 전횡을 막고 IMF 이전 관행이 되다시피 했던 비자금 조성과 분식회계의 문제점을 파헤친 것 또한 간단찮은 성과다.난 회계사로서 기업의 잘못된 행태를 뼈저리게 느꼈던 처지다.소액주주운동이 비자금 조성 관행을 차단하고 주주로서의 권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기업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계기를 만든 것은 분명하지만 기업과 재벌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공공성으로 담론을 확대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 얘기는 스웨덴식 사회와 재벌의 대타협론으로 확장하지 못했다는 반성으로 들린다. =섣불리 우리 사회에서 대타협을 얘기해야 하나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스웨덴의 발렌베리 같은 재벌의 기업가 정신과 삼성그룹의 그것이 대등한 것인가 의문이다.협약 당사자로서 재벌이 사회를 바라보는 정신과 관점 등이 많이 다르다.그래서 재벌 해체를 주장하는 이들 입장에선 어림없다는 얘기가 나온다.경향성과 자세,국가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시선 등에서도 스웨덴과 우리의 재벌은 많이 다르다.충분히 재벌기업이 과거 행태를 반성하고 형사상 민사상 책임을 진 다음 그런 협약으로 나갈 수 있지 않느냐 생각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내가 알기에 스웨덴에 연구팀을 보내 할렌베리 사례를 연구했다.우리(진보진영)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이 선제적으로 치고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그럴 경우 재벌의 책임은 온데 간데 없어질 우려가 있다.재벌이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전제가 중요하다.이건 진보진영 안의 분열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재벌옹호론자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진보진영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도 이점은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 진보진영이 대타협론을 관철시킬 역량이 있다고 보는지. =지금은 없다고 본다.현재 진보진영의 문제점이라면 쌈박한 담론이나 정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치력 부재다.참여정부에 참여했던 분들조차 정책이 없어 실패한 것으로 보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하지만 진보진영의 정치적 역량,소통과 통합의 능력 부재,또는 마인드가 아예 없는 것이 진짜 문제다.진보진영은 백가쟁명식으로 논쟁하고 국민들 앞에 심각한데 정작 대중들이 잘 모르는 문제 갖고 싸우느라 시간만 허비하곤 한다.이론적으로 정치해지고 다양해지는데 국민들 눈높이에서 승부하는 것은 영 부족하다.국민들의 표를 모으는 역량이 부족하다.’골방 진보’로 무엇을 하겠느냐.  이렇게 하면 일본식 고립된 진보로 전락하고 돌연변이 진보,비정상적 진보로 안위하는 처지로 떨어질 수 있다.  현재 진보진영은 여러 갈래로 찢겨져 있다.내년 지방선거가 굉장히 중요하다.대선이나 총선처럼 거대담론이 맞부딪히는 게 아니라 지역현안들을 놓고 생활정치를 실현하는 좋은 싸움판이다.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주민들과 밀착할 수있는 좋은 기회다.중앙도 중앙이지만 지역에서 진보진영의 분열로 인한 감정의 골은 정말 심각할 정도다.참여정부때 친노와 반노로 갈려 싸우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합치지 못하면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정권이 아무리 개판을 쳐도 진보진영에게 영영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우리끼리 심각하게 물어봐야 한다.우리가 이명박을 미워하는 만큼 우리 사이의 의견 차이가 그렇게 대단한가 라고.  우리가 역사를 20년 후퇴시키는 이명박 정권 만큼 우리를 서로 미워해야 하는 가 말이다.공동의 적을 설정하고 그를 막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하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다.중국을 통일한 마오저뚱처럼 국공합작 과정과 논쟁 과정을 깊숙이 연구해볼 것을 권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1980년대 사회운동 이후 진보진영이 자기 공간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의견이 많다.진보진영이 성찰하고 돌아보아야할 일은. =IMF까지 오게 된 것은 필연이다.역량이 그것밖에 안 됐으니.과거 워낙 혹독한 정치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진보진영이 사회주의 논리에 심취해 있었다.사회민주주의란 대안이 설 자리가 없었다.그런 와중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민생과 관련된 사회경제적 대안에 대해선 진보진영의 담론이 형성되지 않은 마당에 외환위기를 맞아 신자유주의 물결이 급속하게 들어왔다..마치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사회민주주의 이념인 것처럼 오해되는 일이 벌어졌다.주주의 권익확보,경영 투명성 증대,정경유착을 차단해야 한다는 절박감 등이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마치 진보처럼 비치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진보진영은 대안 없이 신자유주의 비판만 수차례 지적하는 상황에서 뒤늦게나마 사회민주주의라는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해 새로운 진보진영의 모델로 심각하게 나오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세력이 형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민주주의 담론,유럽식 복지국가의 담론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다가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한 번 놓쳤다.2004년 민주노동당의 지지율,부유세 지지율,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식 자본주의보다 유럽식 복지국가를 선호하는 여론이 폭발적으로 형성된 한해였다.국민들에게 대안을 제시하고 국회라든가 공개적인 정치의 장에서 적절히 제시했더라면 그 흐름들이 더 굳건히 자리잡을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쳤다.내부적인 논쟁과 분열,감정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쳐왔고 지금 진보진영이 사분오열된 모습으로 귀결된 것이 아닌가 본다.  이때 적어도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세력과 자유주의 구도에 안주하는 보수 정당,그리고 박정희 향수를 기억하고 의존하는 세력으로,소위 3강 구도만 유지했더라도 지금처럼 역사가 후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민주노동당은 강기갑 대표 개인의 이미지에만 의존하고 있지 정당한 정치세력으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지금 진보신당도 노회찬,심상정 두 분의 개인적 퍼스낼리티만 있지,그 뒤에 든든한 세력이 보이질 않는다.노회찬 심상정 두 분은 지금 대중들이 연예인 보듯하는 것이다.시간이 지나면 관심은 멀어진다.지금 갖고 있는 자산을 조그마지만 소중한 것으로 가꾸기 위해선 대단한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과거는 어쩔 수 없고 지금이라도 분열된 모습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겠는가를,국민들은 아무리 자기가 똑똑해도 분열된 사람은 믿지 않고 표를 주지 않는다.분열되지 않고 국민들을 위해 조금씩 양보해서 하나가 되는 모습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아닌가 이렇게 본다.  타협하지 않으려면 혼자 운동하지,당이란 것은 왜 만드나.지리산에서 화염병 던지는 연습이나 하면 된다.정치의 기본은 적을 최소화하고 우군을 최대한 끌어들이는 거다.반한나라도 넓다.반MB로 좁혀야 한다.박근혜와 이명박을 갈라서게 만들어야 한다.그 둘을 가깝게 만들어놓아서 좋을 게 뭐 있겠나.한나라나 민주나 다 똑같은 놈들이라면 무슨 싸움을 하겠는가.  논란과 전선을 동일시하지 않아야 한다.전선은 전선대로,논쟁은 논쟁대로 벌여 나가야 한다.2010년 지방선거를 맞아 정책연합을 거쳐 선거연합을 이뤄내야 한다.국민들은 똑똑한 놈을 원하지 않는다.그보다는 믿음직한 정치세력을 바란다.시민사회단체와 민주당이 연대하면서 통 크게 양보하고 진보신당과 민노당이 서울시장 공동경선을 통해 단일후보를 뽑아야 한다.휴대전화 투표 방식도 개발돼 있지 않은가.이런 방법으로 두 당이 후보단일화하고 하나된 모습을 보여주면 국민들로부터 표를 모을 수 있지 않을까.<계속>
  • ‘타임’ 표지 폭력국회 여야 책임 떠넘기기

    여야는 11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한국의 ‘폭력국회’ 사진을 표지에 실은 것과 관련, 신경전을 벌였다.타임은 아시아판 최신호(12일자)에서 아시아 민주주의의 후진성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본회의장 내에서 여야 의원들이 뒤엉켜 있는 우리나라 국회의 사진을 태국 시위대가 절규하는 모습 등과 함께 표지 사진으로 사용했다<서울신문 1월10일자 4면 보도>.이 사진은 17대 국회 때인 2007년 12월 대통령선거 직전에 빚어진 여야간 물리적 충돌을 담고 있다. 당시 민주당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겨냥한 ‘BBK 특검법’을 처리하려 하자 한나라당이 이를 반대하며 본회의장을 점거했고, 신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국회의장석을 확보하려는 과정에서 심하게 충돌했다.한나라당은 타임지 사진으로 과거 본회의장 점거 경험이 있는 구태의 당사자였다는 사실이 부각될까봐 신경쓰는 눈치이고, 민주당도 최근의 ‘입법전쟁’에서 물리력을 동원했다는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이 사진을 크게 부각할 의도는 없는 듯 보인다. 그러면서도 이번 ‘폭력 사태’의 원인을 상대방에 넘기며 신경전을 펼쳤다.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은 “우리 국회가 국제적인 망신거리가 된 데 대해 민주당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은 “한나라당은 본회의장 점거의 원조로 폭력행사 당사자들이 권력의 병풍 뒤에 숨어 비폭력을 외치는 사람인 것처럼 가장하고 있다.”고 말했다.오상도 김지훈기자 sdoh@seoul.co.kr
  • 주대환 ② “엄청난 평등의 나라”

     -엄청난 평등의 나라란 얘기시지요.  “정치적으로도 선진 민주주의 제도들,법률체계를 거의 그대로 도입했지요.처음부터 뿌리내린 건 아니지만,아닙니다만.당시 세계사적 분위기라는 게 반파쇼 투쟁이 승리한 직후라 굉장히 진보적인 민주주의 시기였지요.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으로 출발한 거지요.처음부터 글자 그대로 실행된 건 아니지만 어쨋거나 방향을 잡았다는 건 중요하지요.대한민국이 60년동안 발전할 수 있는 기본 토대를,사회경제적 토대와 정치적 조건을 만들었다, 전 그렇게 보고 있지요.”  -80년대 이후 사회운동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시각이 있었다고 지적하시는 것 같은데.  “이럴 겁니다.지금 제가 이런 얘기하면 아직도 대한민국 부정하는 사람 있어 이렇게 다를 말합니다.그런데 정직하게 마음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 몸은 대한민국을 긍정하고 대한민국 사회에 잘 살고 있습니다.그러면서도 마음 저 깊숙한 곳에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거죠.그래서 몸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는,이런 것이 좌파의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그런데 더더욱 큰 문제는 왜 그런가를 깊이 반성을 해보면 좌파의 입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자의 관점에서 나온 거거든요.친일파가 주도를 하고 어떤 말하자면 반민족행위가 충분히 정리되지 못했다,친일행위를 한 사람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 가장 큰 결함으로 생각해온 거지요.거기 반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정통성이 있는 정부로 볼 수 있다.이것이 우리의 콤플렉스가 된다는 것입니다.그런데 좌파라면,순수한 좌파의 입장이라면 민족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다른 관점이 되어야 합니다.좌파의 관점은 하나는 민주주의 하나는 사회주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민주주의 관점에서 일당독재 현대적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한 대한민국이 우월하고요,또 토지개혁을 먼저 하긴 했지만 바로 몰수해 집단농장화를 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보다 토지개혁을 해서 전국민에게 토지를 나눠준 대한민국이 더욱 우월하다고 볼 수 있는,경제학적 토론의 여지가 있지만요.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관점,자유와 평등의 두 개의 가치로 보면 대한민국은 결코 엄청난 결격사유를 가진 것이 아니었지요.민족주의,민족주의에 포획된 포승줄에 묶여 있던 좌파라고 생각합니다.진정한 좌파의 길을 가려면 민족주의의 포승줄을 끊어야 된다,벗어나야 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직도 마음 속에 그런 게 있나 생각하는 건데요.  “세대에 따라 그 느낌과 감은 다를 것 같습니다.그런데 이제 어떻게 보면 저희 세대에 해당이 될 것 같기도 하구요.70년대 80년대 젊은 시절을 보냈던 그때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에게 많이 해당될 것 같습니다.”  -(지난 연말) 여의도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견지해온 이들끼리 의견 차이로 충돌하고 있는데 진보진영은 그 빈틈을 메우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것 같은데 이를 타개할 방법은.  “그러니까 DJ와 MH를 넘어서야 한다고 누군가 했더군요.10년의 문제,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가 워낙 신자유주의에 치우친 정책을 했다고 보는 거지요.여기에 제가 깊이 생각했던 NL과 PD를 넘어서야 한다는,둘다 다르면서도 같이 동시에 이뤄져야 할 것 같습니다.NL과 PD는 민족주의에 포획된 좌파라는 점에서 공통적이고요.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같은 경우는 민주주의를 추구할지는 모르지만 사회경제 정책으로는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문제가 있었지요.그런 문제를 극복하는,양자가 만나는 지점이 사회민주주의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그러니까 전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참여했던 분들을 본다면 그분들은 자유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이 결함이 될 것 같고요.노동운동이나 근본적 좌파 운동 세력에선 민족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던 점이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해 초 민주노동당의 분열은 현실적으로 진보적인 생각과 비전,믿음을 갖고 있던 이들에게 충격이었다.주 대표께선 분당 뒤 차라리 갈라서서 종북주의를 추종하지 않는 이들이 민노당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게 오히려 통합을 위해 낫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많은 이들이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저를 보는 선입견과 달리 전 분당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분당을 주도하신 분들과 저하고 차이가 어떻게 나느냐 하면 일심회 사건때 저는 발언을 했고요,그분들은 침묵했습니다.그 다음에 분당할 때는 그분들이 앞장을 섰고요 전 반대했습니다.묘하지 않습니까.저는 말하자면 노동당을 만들려고 하면 당내에서 그런 문제를 극복해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분들은 노동당 노선에 대한 인식이 얕았다고 생각하는데요.주사파 문제를 갖고 내내 일심회 사건처럼 명명백백하고 국민들에게 문제를 폭로하고 드러낼 수 있는 기회에도 그냥 아무 말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던 친구들이 당을 깨고 나가고 말았어요.둘다 대중적이지 못하다.국민 대중과 노동자 대중은 당내 숫자만 가지고는 NL이 다수니까 RNR국민들이 다 보고 있는 거거든요.국민을 믿고 노동자 대중을 믿고 드러내고 얘기를 해야 하는데,반드시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보는 거거든요.그런데 그런 노력을 전혀 안하다가 매맞는 아내가 동네 사람들에게 밝히고 법정에서 따지고 하지를 않고 그냥 참고만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가출해버린 거지요.그들의 정치적 판단이 옳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문제 해결이 썩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어쨌거나 두 개 다 지리멸렬하고 방향을 잃고 있는 것 아닙니까.  양쪽에선 희망은 없다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노동자들을 만나보면 분당할 때 예를 들면 부산에서 1000명의 노동자 당원 1000명이 탈당했는데 진보신당에 입당한 이들은 100명밖에 안 됩니다.900명은 뭐냐.양 쪽 다 꼴 보기 싫다.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다시 합치라고 얘기합니다.민주노총이 다시 합치라고 권고안도 내고 있고 그렇지요.그런데 그냥 합쳐지질 않거든요.기왕에 이렇게 됐으니 더 발전적으로 통합이 돼야 한다.질도 높고 방향도 넓은 통합이 되어야 한다.제3의 세력이 형성되어야 한다.기존의 민주노동당 바깥의 사람들을 생각하는 거거든요.지식인이라든지 민주당에 실망한 분들이라든지 제가 생각하는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그런 거지요.그런 세력에 의해 더 넓은,보다 현실적인 현실주의적인 좌파가 형성되어 그런 세력에 의해 어떻게 보면 더 넓은 통합,민주당 내에도 좌파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이 분명히 좀 있고요.현실 정치적인 이유로 불가피하게 몸담고 있는 분들이 있거든요..창조한국당 참여했던 분들까지 그런 새로운 진보정당의 탄생으로 가는 과정,불가피한 것 아닌가 것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건가.  “일전에 토지정의시민연대를 이태경 사무처장이 제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써놓았던데.저런 목소리 한두번 나와 될 얘기는 아니지요.엄청난 얘기니까요.왜 불가피하냐.그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보수정권이 그대로 간다는 겁니다.필요하고 불가피 보수정권이 그대로 간다는 겁니다.한나라당이 민주당이 대안이 되지 못하지 않습니까.한나라당이 아무리 뭘 잘못해도 다음에 민주당이 집권하냐,그럴 수 없다는 거지요.5년이든 10년이든 간다는 겁니다.정권이 바뀌기 위해선 새로운 야당 대안 야당이 나와야 한다.그런 얘기들이 나온다.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요.이제는 최소한 지역주의는 벗어난,사회민주주의 루스벨트 오바마가 새로운 뉴딜 정책 그런 정도라도,사민당적인 내용을 가진,그런 정치철학에 기초한,이름은 중요하지 않지만 이름은 어떻든간에 사민당 현대적 정책정당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한나라당 집권이 영원히 간다는 거지요.야권의 분열은 오래 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그런 양상 자체가 새로운 정당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이 아닌가.그렇게 볼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런 일을 해낼 만한 현실적인 파워가 있다고 보는 건지.  “15년전부터 노동당을 만들면서 노동운동의 힘을 종잣돈으로 밑천으로 해가지고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어보려는 거였는데 민주노동당의 분당으로서 그런 프로젝트는 이상 힘들어진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전 지식인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겁니다.지식인 사회로 돌아온 거지요.노동운동의 힘만으로는 힘들다.지식인들이 힘을 보태야겠다.노동당을 강조하던 제가 사민당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런 데 있는 것이다.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지식인들이 앞장을 서야 하는 것 아닌가.사회민주주의연대 단체의 역할도 그런 거고요.그런 힘이 있느냐.여건이 만들어지고 조건이 형성돼 있기 때문에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글쎄 우리나라는 소선거구제입니다.소선거구제에서 제일 큰 유혹은 지역주의 정당에 기대는 거거든요.진보적인 인사란 분들도 기존의 지역주의 정당에 들어가서 국회의원이 되고 그래야만 정치를 할 수 있는 거거든요.그러다보니 결국 그 쪽에 몸을 의탁하다 보니까 그 속에서 활동을 추구하게 되고,본래의 자기 진보성을 후퇴시키는 방향으로 왔는데 여전히 어려운 문제지요.다들 그런 유혹을 느끼고 있는 거거든요.그래서 저처럼 현실 정치에서 뭔가 해보겠다는 생각이 없는 분들이 70년대에 민주화운동을 같이 했던 분들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데 이제 나이들 50대,60대 넘어섰으니까.오바마가 훨신 후배거든요.81학번,61년생이라고 했거든요.저보다 일곱살 젊은데 한국의 정치도 60년대 출생한 사람들이 주도할 때가 됐거든요.”  -조금 다른 얘기인데 책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 얘기하셨는데 특별히 좋아하는 노래가 있는지.  “80년대는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그 노래를 좋아했었는데 다 비슷한 정조의 노래들이었죠.자기희생이라든지 사명감을 고취하는 운율의 노래들이었다.제 노래는 특별히 군대생활 할 때도 군가인데 ‘보병의 노래’일 겁니다.’그 누가 싸움을 좋아하려만 이름없이 죽어갈지라도 정의를 위해 어쩌구저쩌구’ 하는 기조의 노래였는데 우리 세대가 그런 정조를 많이 가지고 있었지요.시대가 바뀌었으니 조금 바뀌어야죠.”  -소위 “빵잡이”인데 시위 후 바로 징집돼 군에 가셨는군요.엄청나게 힘들지 않으셨는지.  “그렇지 않았어요..전두환 70년대는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았으니까 군대에 지침 같은 게 없었고요.사찰 대상이긴 했겠지만 군대생활 큰 불편은 없었습니다.혹시 그런 생각 하는 분이 있으면 로맨틱하게 받아들이라고 해주세요.”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에 대해 묻고 싶은데요.국가의 소외된 부문을 부축하는 사회민주주의의 기조에 비춰봐도 잘못된 거라 보이는데요.한국에서의 조세부문 개혁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그러니까 이명박 정부가 다른 일은 모르겠지만 감세 이거는 정말 잘못한 겁니다.거의 도둑질 수준입니다.정권 잡았다고 종부세 정책은 약탈하고 거저 나눠가지는 종부세가지고 어쩌구저쩌구 하지만 그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크게 심판받을 겁니다.노무현 정부가 잘하네 못하네 하지만 종부세는 제대로 한거거든요.미국을 기준으로 봐도 부동산 보유세가 현저히 낮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자는 건데 그걸 환급까지 해주는 건 도둑질 수준이고.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건지. 몇년 가면 복지재원 엄청나게 소요되는데 세금은 감세해버리고 세수는 줄어들거고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조세 개혁의 여지는 여전히 많이 있지요.다 아는 얘기지만 간이과세제 폐지해 투명성을 높이면 지하경제로 돼있는 자영업자들의 세금 신고 안하고 누락하는 것을 잡으면 거둬들일 여지가 많고요,세원은 새로 상당히 많이 있다고 보고 부동산보유세의 내용을 현실적으로 높이고 그러면 세금을 앞으로도 많이 확보할 수가 있고 그걸 해가지고 단박에 할 수는 없겠지만 계속 늘려 OECD 평균 수준 가려면 한참 멀었지만요.그렇게 가는 것이 기업에게도 좋습니다.공공부문에 의해 지탱이 돼줘야 사람을 필요에 으해 경기부침에 의해 함부로 새로 짜를 수도 있고 고용의유연성이 확보될 수 있는 건데 이런 식으로 가서는 걱정이 많습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개발도상국처럼 우리나라가 한참 막 연 10%씩 성장하는 단계가 아니거든요.중고등학교때 1년에 10㎝씩 자라던 학생이 성인 되서도 그만큼 자랄 수 없는 거거든요.상당한 성숙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성장률이 10%씩 될 수가 없거든요.기술이 고도화되고 해서 실업자가 늘 수밖에 없는 단계인데 유럽이나 선진국 사회적 일자리를 늘려야 하고 국가예산이 많이 소요되고 그런 인식이 있는지 없는지,경제위기가 지나면 7% 성장이 될 것이라고 믿는지,그것이 인식이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그 인식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박정희 향수가 있고 박근혜에 대한 기대가 있는 거 아닌가.좋았던 과거,연 10%씩 성장하던 과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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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용△심의위원 김용백<편집국>△정치담당 대기자 이강렬△취재·기획담당부국장 성기철△경제담당부국장 직대 정진영△경제부장 이용웅△산업〃 박현동△생활과학〃 김혜림△정치부장직대 김의구△체육〃 신종수△인터넷뉴스〃 손영옥<종교국>△국장직대 임순만△종교부장 임한창△종교기획부장직대 염성덕△i미션라이프부장 이승한 ■전자신문 ◇승진 <편집국> △취재담당 부국장 신화수△뉴미디어 〃 직대 겸 사진부장 고상태△편집2팀장 김인기△경제교육부장 김상용◇전보 <편집국>△포럼사무국장(부국장 직대) 유성호△편집1팀 부장 조휘광△신성장산업〃 이경우△생활산업〃 홍승모△국제〃 김종윤△뉴스속보팀 〃 임지수<광고마케팅국>△영업총괄담당 부국장대우 김성회△경인센터장 〃 원유붕△부장 김태계 ■비씨카드 ◇본부장 승진 △경영지원부문 이강혁△발행매입사업부문 최희섭△마케팅사업부문 조중화◇본부장 전보△회원사서비스본부 고규영△경영혁신단 윤병한△준법감시인 오경섭△글로벌사업단 변준석△영업본부 박귀순△가맹점서비스본부 정수현△IT서비스본부 이정규 ■국민은행 ◇부장 △전략기획 이재림△홍보 이승재△사회협력지원 홍공표△채널기획 김태성△개인영업추진 김동언△기업금융 최병기△PB사업 정진섭△기업경영개선 이명규△심사 오현철△카드심사 백강호△업무지원 권헌주△수탁업무 김동섭△총무 겸 통합구매 이오성△인사 송인성△인재개발원장 김덕수△기금업무 배길휴△신탁 황경문△퇴직연금사업 이강설△신용감리 김용호△준법지원 강익환△법무실장 김채윤△감찰반장 이상효△명동법인영업 정호열△여의도법인영업 양기일△심사부 수석심사역 김종국 정명규△일반사무관리 신강환◇지점장△가산디지털 배진수△가산IT 배창덕△가야 강영호△가양2동 김태헌△가양동 조순옥△가장동 차정환△가좌동 유경민△간석동 신훈섭△강남구청역 김철△강동구청역 김상재△강릉 유헌철△강북 안석현△강화 권오원△개롱역 김용진△개봉동 송화자△갤러리아팰리스 이규열△거여동 박선동△경산 이태준△계룡대 김국연△계룡로 남경현△계산동 신석우△고덕역 이인영△고잔 김선희△고현 이형래△곡선동 이두종△공릉역 고영권△광교 천영국△광명 박가순△광산 김택중△괴정역 안상현△교하 김명원△구로남 최해규△구리역 주낙신△구월동 김재룡△구월북 최순영△구의남 홍기문△구포 안승수△국토연구원 구은향△군산 최강일△권선동 공승배△금곡동 김말룡△금남로 고광숙△금암동 유조영△금정동 배상철△금천 겸 시흥2동 이광일△금촌중앙 김형국△금촌 조정례△금호동 손동호△길2동 최관진△길동 권영복△김제 주현수△남동공단 이용만△남산동 임채경△남양주 이종현△남역삼 이인호△남영동 서우석△내발산 민영현△내방역 장영란△노량진중앙 이남홍△노원역 이규철△노원 변수우△노유동 겸 영동교 김선주△노은 이현태△논산 최완도△논현역 이민수△답십리 차중렬△당리동 이용경△당산동 최승배△당진 이기세△대구3공단 이남동△대구유통단지 김영두△대덕특구 이안숙△대림3동 전병호△대림동 추창호△대명동 조재호△대방로 박윤수△대연동 임영한△대전중부 여일수△대천 서원익△대치동 오권태△대치북 안중엽△도곡렉슬 차정호△도농 하기용△도마동 이철수△도산로 김종준△독립문 원종호△독산동 홍성창△독산홈플러스 이학무△돈암동 박승규△돈화문 김정진△동대신동 김채신△동삼동 이동범△동소문동 전병훈△동암 안성수△동여의도 박종출△동역삼 박순옥△동의정부 서남종△동인천 김영호△동자양 강용원△동춘동 김철수△두실역 김이열△두암동 김창권△둔산크로바 전형남△둔촌동 임석기△둔촌서 김주현△등촌1동 이영기△마두역 겸 신일산 이우진△마산역 정연모△마천동 천학도△만수동 박해성△망우용마 이윤희△망원역 강의수△매교동 홍재근△매봉역 김순덕△매봉 김온섭△메트로시티 주규원△명륜동 정미향△명일역 유병남△모라 최영근△모래내 이기수△목동7단지 이경은△목포 오병태△무거동 정천규△문흥동 안동근△미금역 유재화△반야월 최문진△반포남 김동구△반포중앙 백철현△반포 이용우△발산역 김형률△방배동 김성우△방촌동 홍재환△범물동 김철섭△범박동 함봉식△범일동 겸 범일동역 이용덕△벽제 강창규△보문동 엄지용△봉덕동 박춘락△봉선동 양한승△봉천동 이경석△부개동 김중곤△부송동 원유훈△부천계남로 김겸석△부천서 오영수△부천중동 김석기△부천중앙로 송기봉△부천홈플러스 조원상△북아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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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구△대출지원 이양호△부산업무지원 허응도△자금물류지원 김지학△전주업무지원 김성순△창원업무지원 채희종△대전콜 박문수◇PB센터장△방배 한성석△압구정 겸 압구정로 심재오△여의도 김현걸△이촌 김성학△잠실롯데 김해경△청담 김형태◇개설준비위원장△동아솔레시티지점 전부영△스타시티지점 이낙원△용산파크타워지점 강현구△풍산동지점 정해진 ■현대상선 ◇신규 △컨테이너사업부문장(전무) 김윤기△벌크사업〃(상무) 최형규△해사〃(전무) 권주석△기획지원〃(상무) 강성일△CIO(〃) 김창우△CHO(〃) 이백훈△CFO(〃) 최경호△컨테이너기획본부장(〃) 신재희△컨테이너영업관리〃(〃) 이석동△컨테이너운영본부(상무보) 정한기△한국영업본부장(상무) 김지택△부산운영〃(부장) 김인용△WET 벌크〃(상무보) 나성화△DRY 벌크〃(상무) 최형규△해사지원〃(〃) 이택규△선박정비〃(상무보) 황정수△경영기획〃(〃) 임영수△경영지원〃(〃) 김덕만△미주〃(상무) 송요익△구주〃(〃) 김수호△동서남아〃(상무보) 이영준△중국〃(〃) 손영일 ■한국애보트 ◇승진 △부사장 지동현 그렉 윌리엄즈(Gregory G Williams)△상무 윤태원 강소영△이사 김상용 최영진
  • 헌재 ‘美 쇠고기 헌소’ 26일 선고

    헌법재판소는 올해 마지막 정기 선고일인 26일에 농림수산식품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고시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을 선고한다고 22일 밝혔다.지난 5월30일 진보신당과 통합민주당·자유선진당·민주노동당에 이어 6월5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9만 6072명 명의로 헌법소원을 제기해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청구인이 참여했다.청구인들은 위생조건 고시가 인간 광우병을 발생시킬 가능성을 늘려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생명권, 보건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민주 “휴대전화로 당비 내세요”

    민주 “휴대전화로 당비 내세요”

    무기력증에 빠진 민주당이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활용한 당비납부를 통해 세(勢)불리기에 나섰다. 민주당은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홈페이지 접속 방식의 새로운 모바일 납부 시스템을 선보였다. 기존 방식은 문자메시지를 받은 뒤 재접속하거나 인증번호를 넣어 정액을 납부하는 것으로 다소 번거롭다는 반응이 많았다. 새로운 방식은 네이트 등 이동통신사 모바일 홈페이지에 접속해 곧바로 당비를 낼 수 있도록 했다. 한결 간편해진 셈이다.1만~10만원 범위에서 당비를 결정한 뒤 주민번호 13자리를 입력하면 결제된다. 민주당측은 “정치 후원금에만 적용되던 기존 방식을 처음으로 당비 납부에 활용했다.”면서 “당비도 연말정산시 10만원까지 공제된다는 사실에 착안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또 신용카드의 잠자는 마일리지(포인트)를 당비로 납부하는 방식도 도입했다. 진보신당이 처음으로 도입한 이 방식은 납부자가 연말 세액공제로 10만원까지 현금으로 되돌려 받을 수 있다. 민주당의 이 같은 움직임은 단순히 당비 모금뿐 아니라 외연확대의 뜻도 포함돼 있다. 당 관계자는 “모바일·인터넷을 활용한 당원과의 소통을 확대해 지지층인 20~40대를 다시 모아들일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여당 시절에는 한때 당비를 낸 당원은 5만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 이후 당비를 내는 당원의 수는 외부에 공개할 수 없을 정도로 줄었다. 당원들의 활동도 대폭 줄어 민주당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김윤옥 여사 명품시계” 주장 김현미 前의원에 실형 구형

    지난해 대선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값비싼 외제 시계를 차고 있었다고 발언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현미 전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에게 징역 1년 6개월형이 구형됐다.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이광만)심리로 열린 1일 공판에서 검찰은 “허위 사실 공표는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는 중대 범죄”라며 이같이 구형했다. 김 전 의원은 최후 진술에서 “‘프랭크 뮬러’ 시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렇게 브리핑한 것은 결코 아니다.”면서도 “결과적으로 이 대통령과 김 여사에게 피해를 줘 죄송하다.”고 사과했다.이 대통령의 차명재산 보유나 성매매업소 임대 의혹 등을 제기한 것에 대해서는 “대변인으로서 한 이야기”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도록 한 당시 후보나 선대위원장은 (검찰이)기소유예 처분하고 유독 나만 공소 유지하는 것은 책임의 경중을 가리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선고 공판은 15일 오후 1시30분에 열린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한보 인수로비’ 수사 정치권 확대…김현미 前의원 외 1~2명 더 연루

    대검 중수부(부장 박용석 검사장)는 과거 한보철강 인수 로비 의혹과 관련해 김현미 전 대통합민주신당 의원 말고도 또 다른 정치인 1∼2명이 연루된 단서를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검찰은 한보철강을 인수하려던 AK캐피탈의 실무책임자였던 문모(46·구속)씨 쪽에서 복수의 정치인에게 현금이 건너간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문씨에게 압수한 수첩을 통해 이 같은 혐의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AK캐피탈은 지난 2003년 한보철강을 인수하려고 계약금 320억원을 냈지만 매입대금을 완납하지 못해 인수가 무산됐다. 검찰은 AK캐피탈 쪽이 계약금을 돌려받거나 인수 작업을 되살리기 위해 문씨와 이모(61·구속)씨를 통해 당시 국회의원 등을 상대로 로비를 시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날 검찰은 문씨에게 1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김 전 의원을 소환해 대가성 여부를 조사했다. 김 전 의원은 “영수증 처리한 합법적인 후원금 말고 대가성이 있는 돈을 받은 적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검 관계자는 “로비자금으로 의심되는 규모가 수억원 정도이며 조만간 다른 정치인도 조사할 방침”이라면서 “결국은 실패한 로비로 이 부분에 대한 수사는 최대한 신속하게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18대 국회 상임위 배정] 상임위원장 프로필

    [18대 국회 상임위 배정] 상임위원장 프로필

    *한:한나라당 민:민주당 선:선진-창조모임 ●홍준표 운영위원장(한) 여권 신실세…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 여권의 ‘신 실세’로 떠오른 4선 의원.‘양보·상생의 정치’로 원 구성 협상을 마무리했다.6공화국의 황태자’ 박철언 전 의원을 구속한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하다. 부인 이순삼(53)씨와 2남.▲경남 창녕 (54) ▲고려대 법학과 ▲청주·부산·서울·광주지검 검사 ▲한나라당 제1정조위원장·혁신위원장 ●유선호 법제사법위원장(민) 박종철·부천서 성고문 사건 맡은 인권변호사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부천서 성고문 사건 등을 변론한 ‘인권변호사’ 출신의 3선 의원. 사법시험 합격 후 독재 정권하에서 임용을 거부하고 변호사의 길로 들어섰다. 부인 곽경리(48)씨와 1남 1녀.▲전남 영암(55) ▲서울대 법대 ▲사시 23회 ▲인권운동 사랑방 운영위원 ▲15·17·18대 국회의원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김영선 정무위원장(한) 야당의원 ‘싸가지 발언’ 사과 받아내 변호사 출신으로 36살에 등원해 당 대표를 잠시 맡기도 한 4선 의원.15∼16대 비례대표를 거쳐 17·18대 경기 고양 일산에서 내리 당선됐다.1999년 12월 당시 야당 의원의 ‘싸가지’ 발언에 맞서 본회의장 철야농성 끝에 사과를 받아내는 강단을 내보이기도 했다.▲경남 거창(48세) ▲서울대 법대 ▲한나라당 대변인·대표최고위원 ●서병수 기획재정위원장(한) 민선구청장 역임한 친박계 핵심인사 기업인과 대학교수, 민선구청장 출신의 3선 의원.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지난 17대 하반기 재정경제위에서 활동했다. 친(親) 박근혜계의 핵심인사로 분류된다. 부인 권순진(51) 씨와 2남.▲울산(56) ▲서강대 경제학과 ▲미국 북일리노이주립대 경제학 박사 ▲민선 해운대구청장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여의도연구소장 ●박진 외교통상통일위원장(한) 美민주당 바이든 부통령후보와 친분 서울대 법대, 미국 하버드대 행정학 석사,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학 박사 등 화려한 학력의 외교통. 서울 종로에서 내리 3번 당선됐다. 미국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조지프 바이든 상원 외교위원장과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부인 조윤희씨(52)와 1남1녀. ▲서울(52) ▲서울대 법대 ▲청와대 비서관 ▲17대 대통령직인수위 전문위원 ●김학송 국방위원장(한) 당내 전략·조직 아우르는 기획통 당내 전략과 조직을 아우를 수 있는 중진 의원으로 지난해 대선 때 당 전략기획본부장과 중앙선대위 전략기획단장을 겸한 전략통이다.8년 연속 국정감사 및 의정활동 우수위원으로 선정됐다. 부인 손영희(53)씨와 2남 ▲경남 진해(56)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북핵위원장·전략기획본부장 ●조진형 행정안전위원장(한) 8년만에 재등원… 당내 두번째 재력가 기업인 출신으로 8년간의 와신상담 끝에 중진 반열에 오른 3선 의원.14대 무소속으로 인천 북을에 출마해 당선됐으며,15대 땐 당시 신한국당 후보로 인천 부평갑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정몽준 의원에 이어 두번째 재력가다. 부인 유명숙(62) 씨와 3녀 ▲충남 예산(65) ▲건국대 경영학과 ▲부평장학재단 이사장 ●김부겸 교육과학기술위원장(민) 우리당 창당 참여… 재야운동권출신 운동권 출신의 3선 의원.2000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경기 군포에서 금배지를 달았다.2003년 동료의원 4명과 함께 탈당,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한 ‘독수리 5형제´ 중 한 명이다. 부인 이유미(51)씨와 3녀.▲경북 상주(50) ▲서울대 정치학과 ▲열린우리당 원내수석부대표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원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 ●고흥길 문체관광방통위원장(한) 기자 출신 문화관광위 터줏대감 기자 출신으로 문화관광위의 터줏대감격인 3선 의원.2004년 열린우리당의 신문법 개정에 반발, 문화관광위원을 자진 사퇴하는 등 소신과 강단을 보여 줬다. 부인 임현빈(64)씨와의 1남2녀 ▲서울(64) ▲서울대 정치학과 ▲중앙일보 편집국장·논설위원 ▲한나라당 문화관광위원장·미디어대책위원장·홍보위원장·중앙위의장 ●이낙연 농림수산식품위원장(민) 새천년민주당·盧대통령 당선자 대변인 기자 출신의 3선 의원.2002년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변인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대변인, 지난해 대선과정에서 대통합민주신당 대변인을 맡았다. 부인 김숙희(53)씨와 1남.▲전남 영광(56) ▲서울대 법대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논설위원 ▲새천년민주당 대변인·원내대표 ▲대통합민주신당 대변인 ●정장선 지식경제위원장(민) 대통령 비서실 정무과장 근무때 정계입문 대통령 비서실 정무과장으로 근무하다 정계에 입문한 3선 의원. 경기도의원을 거쳐 2000년 새천년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여의도에 입성했다. 부인 이성숙(44)씨와 2남. ▲경기 평택(50) ▲경기도의회 의원 ▲열린우리당 민생특별위원장 ▲열린우리당 제4정책조정위원장 ▲열린우리당 정책위 수석부의장 ●변웅전 보건복지가족위원장(선) 아나운서 출신… ‘DJP’ 라는 말 만들어 아나운서 출신 3선 의원이다.1995년 김종필 전 총재의 자민련 창당준비위원회 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DJP’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16대 때 낙선했지만 비례대표를 승계해 재선에 성공했고,17대 때 다시 낙선했지만 18대엔 당선됐다. 부인 최명숙(62)씨와 2남.▲충남 서산(68) ▲자민련 대변인 ▲자유선진당 최고위원 ●추미애 환경노동위원장(민) 개혁 성향의 ‘차세대 여성 지도자’로 꼽혀 ‘차세대 여성 지도자’로 꼽히는 개혁 성향의 3선 의원.1995년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눈에 띄어 정치에 입문했다.‘탄핵 역풍’으로 17대 총선에서 패배한 뒤 18대 총선에서 부활했다.▲대구(50) ▲경북여고 ▲한양대 법대 ▲인천·전주지법, 광주고법 판사 ▲15·16·18대 의원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대책위원장 ●이병석 국토해양위원장(한) 협상조정력 뛰어난 중국 전문가 중국 전문가로 꼽히는 3선 의원.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거쳐 16대 때부터 경북 포항 북구에서 내리 세번 당선됐다.17대 때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아 협상 조정력을 인정받았다. 부인 신은희(54)씨와 2남.▲경북 포항(56) ▲고려대 중문과 ▲한나라당 독도 수호 및 일본 교과서 왜곡대책특위 위원장▲한·중의원외교협의회 간사 ●최병국 정보위원장(한) 검사 요직 두루 거쳐… 원칙 중시 소신파 대검찰청 공안부장과 중수부장거친 검사 출신 3선 의원으로 ‘원칙’을 중시하는 소신파다. 해박한 법률지식과 친화력을 겸비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친이(친이명박)측 의원 모임인 ‘함께 내일로’의 공동대표다. 한명숙(62) 씨와 1남2녀 ▲경남 울산(66) ▲서울대 법대 ▲공안부장·중수부장·인천지검장 ▲국회 법사위원장 ●신낙균 여성위원장(민) DJ때 문화부장관 역임한 여성 운동가 여성운동을 하다 정계에 입문한 민주당 재선 의원.15대 때 비례대표로 첫 금배지를 달았고 국민의 정부 초대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다. 남편 김훈섭(74)씨와 1남 2녀.▲경기 남양주(67) ▲이대 기독교학과 ▲한국여성유권자연맹 회장 ▲국민회의 부총재 ▲문화관광부 장관 ▲15·18대 의원 ▲통합민주당 최고위원 ●이한구 국회 예산결산특위원장(한) 환율·부동산 청책 비판 여당내 ‘쓴소리맨’ 재무부, 대우경제연구소장을 거친 경제통 3선 의원.16대 비례대표로 입문해 17대부터 대구 수성갑에서 내리 두번 당선됐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환율·부동산 정책 등을 비판해 여당 내 ‘쓴소리’로 불린다. 부인 나임구(59)씨와 2녀.▲경북 경주(63세) ▲서울대 경영학과 ▲대우경제연구소장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심재철 윤리특별위원장(한) 1980년 서울대 총학회장 지낸 운동권 출신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운동권 출신의 3선 의원.MBC 노조 초대 전임을 거쳐 1996년 신한국당 부대변인으로 입문,16대부터 안양 동안에서 내리 세번 당선됐다. 부인 권은정(45) 씨와 1녀.▲광주(50)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MBC 기자 ▲한나라당 전략기획위원장·원내수석부대표
  • [李대통령 취임 6개월] 지지율 회복세…국정은 4.2점

    [李대통령 취임 6개월] 지지율 회복세…국정은 4.2점

    취임 6개월을 맞은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3일 조사에서 31.2%로 집계돼 서울신문이 지난 7월14일 실시한 조사에 비해서 4.3% 포인트 상승했다. 대통령 지지도는 지난 6월에는 10%대까지 떨어졌었다. 이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응답은 연령이 높고 학력이 낮을수록 높은 경향을 보였다. 또 한나라당 지지자(60.4%)와 지난 대선에서의 이 대통령 지지자(51.4%)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반면 ‘못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응답은 광주·전라 지역 거주자(84.4%)와 비(非)한나라당 지지자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는 이 대통령의 지지도가 회복하는 단계에 있지만 지지층은 여전히 제한적임을 보여주는 결과다. 국정 운영에 대한 분야별 평가의 평점은 10점 만점에 4.2점이었다. 평균 이상의 점수를 받은 항목은 ▲우리나라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4.9점) ▲우리나라의 국익을 지키는 것(4.5점) ▲부정부패를 줄이는 것(4.4점)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민과 소통을 하는 것(4.0점) ▲경제를 살리는 것(4.0점)▲국민 통합을 하는 것(4.0점) ▲빈부간의 격차를 줄이는 것(3.5) 등의 항목에서는 평균 이하 점수를 받았다. 분야별 평점은 국정 지지도와 마찬가지로 연령이 높을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높은 경향이 나타났다. 또 한나라당 지지자와 대선에서 이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들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경제를 살리는 것’에 대한 평가는 40대의 평점이 3.6점으로 가장 낮았다. 또 ‘빈부간의 격차를 줄이는 것’에 대한 평가는 소득이 낮을수록 평점이 높았다. 정당 지지도는 지난 7월 조사에 비해 한나라당이 5.1% 포인트 상승한 35.1%로 조사됐다. 이는 한나라당과 친박연대간의 화합의 결과로 해석된다. 민주당의 경우 지난 조사에 비해 3.1% 포인트 올라 17.8%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6.2%로 0.6% 포인트 소폭 하락했다. 자유선진당(3.2%). 창조한국당(2.2%), 진보신당(1.5%) 등 다른 정당의 지지율은 5% 미만이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민주 고위당직자 4인 프로필

    민주 고위당직자 4인 프로필

    ● 이미경 사무총장 - 재야 여성운동 경력 4선의원 여성운동가 출신의 개혁성향의 4선 의원. 고 박홍수 전 사무총장의 뒤를 이어 2주 남짓 사무총장을 역임한 김영주 전 의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정당사상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 ▲부산(58) ▲이화여대 영문과 ▲15·16·17·18대 의원 ▲한국여성민우회 부회장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국회 문광위원장 ▲대통합민주신당 최고위원 ● 박병석 정책위의장 - 기자출신 충청권대표 정치인 중앙일보 기자 출신의 3선 의원.1998년 국민회의 수석부대변인으로 정계 입문했다.18대 총선에서 당내 후보 중 대전에서 유일하게 당선, 충청권의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자리잡고 있는 중도개혁성향의 정치인이다. ▲대전(56) ▲성균관대 법학과 ▲16·17·18대 의원 ▲중앙일보 경제부장 ▲서울시 정무부시장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국회 정무위원장 ● 최재성 대변인 - 대변인만 세 번하는 386세대 동국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386 정치인’. 대변인만 이번이 세 번째다.18대 총선에서 386 정치인들이 대거 낙선한 가운데 재선에 성공했다. ▲경기 가평(43) ▲동국대 불교철학과 ▲동국대 행정대학원 석사 ▲노무현 대통령 후보 선대위 청년특보단 리딩코리아 상임부회장 ▲17·18대 의원 ▲열린우리당 대변인 ▲대통합민주신당 원내공보부대표 ● 김유정 대변인 - 행정경험 많은 비례대표 초선 구 민주당계 출신으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사회복지·교육문화비서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한 뒤 2007년 민주당 여성국장으로 당에 복귀했다. ▲전남 광주(39)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서강대 행정학 석사 ▲15대 대선 대통령선거기획단 국장 ▲청와대 행정관 ▲환경분쟁연구소 이사 ▲민주당 원내부대표
  • 정책위의장 박병석·사무총장 이미경 내정

    민주당 정세균 대표 체제의 당 운영과 관련한 첫 시험대가 될 일부 당직 인선이 공개됐다. 새 정책위의장에 3선의 박병석 의원, 사무총장에 4선의 이미경 의원이 사실상 내정된 것으로 7일 알려졌다. 대변인에는 최재성 의원이 공동 대변인 중 한 사람으로, 비서실장에는 강기정 의원이 각각 내정됐다. 나머지 공동 대변인에는 청와대 공보수석 출신인 박선숙 의원과 비례대표 김유정 의원의 이름이 비중있게 거론되고 있다. 정 대표는 이날 송영길·김민석·박주선·안희정·김진표 최고위원 등과 비공개 오찬을 갖고 이 같은 당직 인선 내용을 조율했으며,8일 중 공식발표할 예정이다. 박병석 의원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열린우리당 기획위원장, 국회 정무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정 대표의 선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미경 의원은 개혁 성향 중진으로 열린우리당 정책조정위원장과 국회 문화관광위원장, 대통합민주신당 최고위원 등을 지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호남 출신 대표, 수도권 출신 원내대표와 사무총장, 충청권 출신 정책위의장의 지역 구도를 갖추게 됐다. 공동 대변인으로 내정된 재선의 최재성 의원은 열린우리당과 대통합민주신당 시절 당 대변인과 원내대변인으로 활약했다. 여성 최고위원엔 조배숙·박영선 의원이 유력하다. 하지만 조 의원은 정세균 대표와 같은 전북지역 출신이고, 박 의원은 현재 정책위 부의장이라 운신의 폭이 크지 않다. 이미경 사무총장 내정자가 겸직하는 방안과 당 대표 경선에서 대결했던 추미애 의원에게 제안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지명직 최고위원엔 정 대표가 영남 몫으로 배정하겠다고 밝혀 재선의 최철국(경남 김해) 의원이 유력하다. 하지만 현재 경남도당위원장을 맡고 있어 겸직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도 만만찮다. 당 관계자는 “지명직 최고위원은 2010년 지방선거 승리에 기여한다는 측면에 최우선을 두고 인선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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