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우리당
퇴근길 대포 한잔이 그리워지는 이때쯤이면 서울 시내 무교동에 단골로 다니는 정종 대폿집이 생각난다.옥호(屋號)가 ‘우리집’이다.친구들에게 “‘우리집’에 가서 한 잔 하지.”라고 권하면 대개 우리 가족이 공유하는 공간인 ‘우리 집’으로 알아 듣는다.괜스레 좋아하는 친구도 있고,부담스러워 하는 친구도 있다.대포 한잔 놓고 밤이 이슥하게 나누는 대화도 좋고,가끔 친구들에게 농담 건네는 것도 재미있어 곧잘 애용하였는데,최근 서울 여의도에 비슷한 옥호로 신장 개업한 정당이 정가를 시끌시끌하게 만들고 있다.통합신당인 ‘우리당’이다.
공식 명칭은 ‘열린 우리당’이고 약칭은 ‘우리당’이다.영어 명칭은 ‘열린’도 빼고,‘우리’는 소리나는 대로 ‘Uri Party’로 했다.정당명은 대개 지향하는 이념을 내세워 짓는다.자유,민주,공화,국민,사회,통일,개혁 따위가 정당 이름으로 자주 동원된다.하지만 선관위에 정당 등록이 시작된 1963년 이후만 해도 104개의 정당이 창당되고 스러져간 우리나라에서,신당이 마땅한 이름을 찾기는 쉽지 않았을터이다.그래서 파격적인 작명이 이뤄졌을 게다.여기에다 ‘우리당’이란 이름이 갖는 홍보 효과도 계산에 넣었음직하다.
하지만 다른 정당들은 발끈하고 있다.야당들은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당명’,‘남의 당을 우리당으로 불러야 한다니 말이 되느냐.’며 문제를 삼고 있다.우리당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지지자들이 한나라당이 ‘딴나라당’이나 ‘당나라당’으로 이기죽거림을 당한 것처럼 우리당도 ‘돼지우리당’ 등으로 빈정거림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글들이 올라 있다.
예전에 한빛은행이 ‘우리은행’으로 이름을 바꿀 때도 금융권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자신이 속한 은행을 ‘우리 은행’이라고 부르던 타은행 임직원들이 골머리를 썩인 것은 물론 내부 문서에 ‘우리 은행’이라는 단어를 쓰던 한국은행은 ‘당행(當行)’으로 급히 표현을 바꾸기도 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우리 당’을 ‘당당(當黨)’이라고 하기도 어색할 테고.쩝쩝….에라 온통 헷갈리는 세상이니 술이나 한잔 먹세.무교동 골목에 접어드니,‘우리집’은 그 자리 그대로다.술집 옥호보다 자주 바뀌는 정당 이름에 ‘상도의’가 있을쏘냐.‘내 사랑’술집이 아직 그대로이면 됐지.
강석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