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GT ‘계급장 뗀 결투’ 정계개편 시작?
‘왜’ 그랬을까.28일 정치권의 화두는 의문부호로 시작됐다. 청와대의 일방적인 정치협상회의 제기, 여당의 반발, 대통령의 전효숙 헌재소장 임명 철회와 중대발언까지 급박한 흐름은 정치적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당청간이나 여야간 극적 반전을 위한 사전교감설이 거론되지만, 현실성은 적어 보인다. 그보다는 결별을 각오한 각자도생의 셈법이 격랑의 ‘미필적 고의’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1.노대통령·김근태 불화 속내
노무현 대통령과 김근태 의장의 충돌은 무한 질주의 ‘치킨 게임’을 연상케 한다.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정치권에서는 정치협상회의 카드의 무산이 한나라당에 부메랑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역설이 제기된다. 이미 등을 돌린 당·청 모두에게 현 상황이 결코 불리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과정이야 어쨌든 며칠 사이 정국의 흐름은 청와대를 중심축으로 움직였다. 지지층의 결집 효과도 노릴 법하다.
김 의장으로서는 ‘미스터 햄릿’의 유약한 이미지를 탈피하는 계기가 됐다. 여당 의장으로서는 마이너스가 될지 몰라도,‘정치인 김근태’에게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계산법이다. 오히려 최대의 손실은 협상의 손을 ‘속좁게’ 뿌리친 한나라당의 몫일 수 있다. 한나라당이 ‘6자회담’을 적절히 활용했다면, 얼마든지 창의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란 얘기다.
이같은 역설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계급장 뗀 결투’는 근본적으로 상호 불신을 깔고 있다는 점에서 심상치 않은 시나리오를 예고한다. 김 의장은 “대연정 구상, 국회의원 배지 몇 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발언, 부산·영남 정권 인식 때문에 노 대통령에게서 마음이 돌아섰다.”고 말해왔던 터다. 노 대통령의 정계개편 개입 움직임도 통합신당을 추진하려는 김 의장에겐 편치 않은 상황이다. 김 의장은 지난주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대통령이 계파 보스냐. 위기 상황에서 직계 의원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따졌다. 노 대통령으로서도 물러설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 특유의 싸움꾼 기질은 둘째치고라도 퇴임 후 ‘정치 공간’을 염두에 둔다면, 스스로 보폭을 제약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영남 출신 정치엘리트라는 최소한의 정치지분을 안고 있다는 점도 노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를 이해하는 단초일 수 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2. 별 반응없는 친노세력 왜
“여야정 정치협상회의 만들자.”,“당 지도부 만찬간담회에 들어와라.”(노무현 대통령)▶“끌려다니지 않겠다.”,“일방독주에 응하지 않겠다.”(김근태 의장)
숨가쁜 반전을 거듭하고 있는 여권의 소용돌이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세력이 있다. 친노그룹이다. 평상시라면 최소한 노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동조하는 입장이라도 밝힐 법한데 이번만큼은 별다른 반응이 없다. 왜일까.
오히려 일련의 파문에 대해 “청와대가 당에 소홀한 것은 문제가 있었고, 당이 섭섭함을 표현한 것은 정당하다.”(김형주 의원),“청와대도, 당도 모두가 서투른 것 같다.”(김혁규 의원)는 식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물론 참정연 소속의 한 의원은 “꼬인 정국에 청와대가 아무런 노력도 안 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점을 불안해한 것 같다. 도와달라는 호소 아니겠느냐.”며 노 대통령의 의중을 짚었다.
친노그룹 입장에서는 연속되는 여권의 격랑이 딜레마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28일 친노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 2일 의총 당시 당내 밥그릇 싸움에 동조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음달 9일 정기국회 종료 직후 비대위가 정계개편 초안을 내놓으면 입을 열겠다는 것이다. 벼르고 있다는 분위기를 강하게 풍긴다. 정계개편 초안이 나오는 대로 열린우리당의 공과를 짚는 일부터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명분 있는 정계개편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친노그룹의 또 다른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당적 언급을 한 것은 여당을 향해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는 신호”라면서 “당연히 친노그룹도 같은 배를 타야 하는 것 아니냐.”며 침묵의 배경을 전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3. ‘전효숙 빠진 국회’ 앞날은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 등이 요구해온 대로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지명을 철회함에 따라 여야 대치로 사실상 ‘마비 상황´에 있던 국회가 정상화될지 주목된다. 열린우리당은 지난 16일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합의한 대로 사법개혁관련 법안 등의 주요 법안을 30일 본회의에서 처리하자며 한나라당을 압박했다. 강봉균 정책위의장은 28일 국회에서 열린 당 고위정책조정회의에서 “일부 상임위는 정상 가동되고 있지만 일부 상임위에서는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은 약속대로 사법개혁 관련 법안과 노사관계선진화 법안,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부적격 인사’로 규정한 이재정 통일부·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 후보자, 정연주 KBS사장 등 3명에 대한 인사 철회를 요구하면서도, 국방개혁법안과 노사관계법안 등은 합의·처리한다는 방침이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상임위 합의를 전제로) 30일 본회의에서 국방개혁법안과 노사관계법안을 처리해주려고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사립학교법 재개정 문제와 주요 쟁점법안을 연계 처리할 방침이어서 사법개혁 관련 법안과 새해 예산안 심의 과정 등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사학법은 이 법안(국방개혁법안·노사관계법안)들을 처리하고 난 다음에 본격 추진하려고 한다. 여당에서 사학법은 절대 안 된다고 하면 우리는 다른 법안들과 연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법개혁 관련 법안의 핵심인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법안의 경우 여당 내에서조차 소관 상임위인 교육위와 법사위 위원들 간 의견 조율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여서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박지연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