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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 치안유지속 병원엔 부상자 북적/LA지진 이틀째 스케치

    ◎약탈혐의자 하루사이 75명 붙잡혀/재보험사 피해보상액 10억불 추정 ○…경찰과 캘리포니아주방위군들이 질서유지를 위해 밤새 거리를 순찰하고 있는 가운데 할리우드에서는 6명이 약탈혐의로 체포되는등 지진이 발생한뒤 하루사이에 지진을 이용한 범죄로 75명이 체포됐다고. ○…1천1백명이상이 이번 지진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밀려드는 부상자들을 위해 주차장에 「간이응급치료시설」이 설치되기도 했다.노스리지시에서는 구세군과 적십자사 단원들이 나와 이번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커피·샌드위치·담요등을 나눠주기도. ○…세계 최대 재보험회사인 뮤니히 리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지진피해에 대해 약10억달러의 보험료를 지급해야할 것으로 18일 추정. 뮤니히 리사의 크리스천 자코비대변인은 이번 지진에 따른 보험지급액은 지난 89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한 지진당시 약10억달러의 보험금이 지급된 전례에 비춰 비슷한 규모가 될 것이라고 설명. ○…에베르하르트 디프겐 베를린시장은 18일 과거 냉전당시 미국의 지원을 결코 잊을 수 없다면서 베를린시당국은 로스앨젤레스 지진희생자들을 위한 성금모금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약속. 베를린은 냉전당시 미국과 영국,프랑스군의 지원덕택에 공산 동독의 위협을 견뎠으며 지난 48∼49년 구소련의 봉쇄조치때문에 미국 주도의 연합군의 생필품 공수를 받은 적이 있다. 디프겐시장은 리처드 리어던 LA시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베를린시민들은 절망적인 시기에 우리를 지원해준 미국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지난 68년 자매결연을 한 LA시의 복구사업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18일 빌 클린턴 미대통령에 보내는 애도전문을 통해 LA 강진 희생자 유가족을 위로. 옐친대통령은 이 전문을 통해 자신은 미국인들이 타고난 결단력과 강인함으로 이같은 재앙을 딛고 빠르게 재기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일본총리는 18일 LA지진으로 숨진 사망자들에게 애도를 표시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빌 클린턴대통령에게 전달. 앞서 하타 스토무(우전자)일본외상도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 앞으로 애도의 뜻을 전달했으며 두명의 일본 지진전문가는 이날 LA 지진 피해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현지로 출발. ○…LA통합교육구 교육위원회는 지진으로 통학이 어려워지고 난방 등에 문제가 생기자 유치원과 초·중·고교를 휴교조치,64만여 학생들이 집에서 재해 복구를 돕도록했다. 교육위는 관내 8백여 학교에 대한 피해상황 조사에 나서는 한편 2만8천여 교사들을 포함,7만여 학교 근무자들에게 출근할 수 있는지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교위는 개교일자를 18일중에 결정키로 했다. ○…동부 연안의 혹한과 남부 캘리포니아의 지진피해에 따른 공급차질 우려로 인해 17일 뉴욕 상품거래소에서는 원유,난방용 기름,천연가스의 가격이 폭등세를 기록. 시장 분석가인 제리 사무엘스씨는 『가격인상은 주로 동부지역의 추운 날씨에 기인한 것이지만 지진도 한가지 요인이 됐다』고 설명. ○75% 보험미가입 ○…이번 지진은 1백건 이상의 화재를 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1천여 건물이 피해를 입고 정전으로이번 지진은 1백건이상의 화재를 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1천여 건물이 피해를 입고 정전으로 이번 지진 피해자 4명중 3명이 보험 가입을 하지 않아 대부분의 피해주민이 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캘리포니아 주택과 빌딩의 약 75%가 지진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으며 이는 정말로 비극』이라며 아쉬움을 표시. ○…지진 발생으로 인해 이날 아침 LA 국제공항이 일시 폐쇄되는 바람에 항공사들이 여러편의 운항을 취소하거나 항로를 변경하는 소동을 벌여야 했으며 미국내선 항공망 운항에도 상당한 차질이 빚어졌다고. 또한 한 전화교환소가 정전돼 LA 일원의 4개 지역번호 지역에 대한 일부 장거리 전화서비스가 불통되고 있다고 아메리칸전화전신회사가 전언. LA 공항이 항공기 이착륙을 재개한 가운데 주요 항공사들은 상황이 호전되고 있다고 밝혔으나 항공기 승무원들과 승객들은 지진으로 뒤틀려진 도로때문에 공항까지 가는데 애를 먹고 있다. ○…17일 새벽 미캘리포니아주 남부를 엄습한 지진으로 LA는 물론 서부 다른 5개주와 캐나다에 전력을 공급하는 전선망의 일부가 끊기는 사고가 발생.그 결과 LA 일원의 수백만 가구가 단전되면서 이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는 유타주 델타시 소재 인터마운틴 발전소가 헛돌기도 했다고. LA에서는 이날 정전이 수시간동안 지속됐으며 유타,오리건,워싱턴,와이오밍,몬태나 및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등지에서는 잠깐씩 정전사고가 발생했다고. ○5백 ㎞까지 영향 ○…LA지역을 대혼란으로 만든 지진은 이 지역 상업 중심가에도 영향을 미쳐 캘리포니아와의 통신을 두절시켰으며 주식시장의 거래도 지연시켰다. 이번지진은 1백건 이상의 화재를 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1천여 건물이 피해를 입고 정전으로 1백만명이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편 이지역에서 약 4백80㎞ 떨어진 라스베이가스에서도 지진이 감지돼 이번 지진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이 입증. ○…17일 LA를 중심으로 한 남부캘리포니아를 휩쓸고 간 강진이 멈추기가 무섭게 재해지역의 거주자들과 미국 및 각국의 주민들은 국제 컴퓨터통신망을 이용,사고상황과 친인척들의 생사여부를 묻는등 컴퓨터를 주요한 뉴스매체로 활용. 컴퓨터이용자들은 대학이나 직장에 있는 인터네트나 상업용 컴퓨터서비스의 「잡담」채널의 전자메일을 사용,사고소식의 진전상황을 신속히 주고받는 등 분주한 모습.
  • 한대 이완재교수「한국사에 비춘 성남지역의역사」펴내(저자와의 대화)

    ◎“고향 분당의 역사정리… 가슴 뿌듯”/기록보존 소홀… 자료수집에 어려움/“정통학자가 쓴 국내 첫 향토사” 큰의미 누가 『고향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면 고향땅·고향마을은 옛날과 다름없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찾아갈수 없게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보통이다.그러나 고향이 가까이 있지만 완전히 고향을 잃어버리다시피 한 사람들이 있다.바로 이미 거대한 아파트의 숲으로 변해 버렸거나,하루하루 변해가고 있는 신도시 땅에 살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고향은 잃었지만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역사가 끊긴 아쉬움에 고향을 더욱 소중하게 여긴다. 「한국사에 비친 성남지역의 역사」(민족문화사간)를 펴낸 한양대 사학과 이완재교수(52)도 그런 사람가운데 하나다.그는 『고향친구들이 강력히 권유해 더 늦기전에 고향의 역사를 내 손으로 정리해보고 싶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교수의 고향은 신도시가 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분당동으로 그 전에는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 분당리였다. 그는 서울에 나와 살고 있지만 아직도 선친의 뒤를 이어 농협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며 이 동네 출신들의 대소사에 빠짐없이 초대되는 분당토박이다. 『올해는 성남이 시로 승격된지 20년이 되는 해입니다.이를 기념해 시청에서 시지를 만드는데 역사부문을 맡겨 지난 2월에 원고를 넘겨주었지요.이 지역 출신인 데다 신도시 개발을 위한 문화유적 조사에 참여하기도 해 적임이라고 생각했나 봅니다.그런데 성남시에는 동장이나 농협조합장 등으로 일하는 고향친구들이 많아요.책 좀 달라고 아우성인데 시지는 몇권만 만들어 필요한 곳에만 돌리는 비매품이라 줄수가 있어야지요.그러자 이 친구들이 시지에서 역사부문만 들어내 단행본으로 만들자고 부추기더군요』 이교수는 마침 지난 3월부터 내년 2월까지 강의를 쉬는 안식년을 얻어두고 있었던 터.그러나 막상 단행본으로 만들려니 이왕에 썼던 것으로는 크게 미진함을 느꼈다고 한다. 『이 작업을 하며 우리가 기록보존에 너무 소홀하다는 반성을 했습니다.국민학교에 가도 농협에 가도 불과 얼마전의 자료가 없었어요.광주군청에 가면 있겠거니 했지만 실망 뿐이었습니다.할수없이 성남시를 샅샅이 돌아다니며 옛날 일을 기억하는 사람을 일일이 만날수 밖에 없었지요』 「한국사에 비친…」는 사실 이교수가 가볍게 말하는 것처럼 「별거 아닌」 책이 아니다.이 책은 시·군 단위의 지역사에 이른바 향토사학자가 아닌 본격적인 역사학자가 참여해 나온 최초의 성과이다. 『향토사학자가 자기 고장을 긍정적으로 그리려다 보면 과장되게 마련이고 역사도 왜곡되기 쉽지요.잎새 하나까지 세세히 그리려다 숲을 보지못하는 경우도 많구요.지역사나 지방사라 해도 나라 역사의 큰 흐름속에서 발전해나가는 것이지요.그런 점에서 과거를 아는 마지막 세대가 아직 살아있는 지금 역사학자의 지역사에 대한 관심이 더욱 필요합니다』 이교수의 전공은 한국근대사.안식년 한해를 다바쳐 「한국사에…」를 일구어냈지만 지역사는 학자의 연구성과로 잡아주지 않는 것이 우리 학계의 현실이다. 『그래도 보람있는 작업이었습니다.고향에 대한 빚을 갚은 것도 같구요.더구나 이 책이 나온뒤 성남사람들이나 분당신도시에 새로 입주한 사람들이이 책에 보여준 관심은 놀라웠습니다』 이교수는 『최근 성남·분당지역에서 발간되는 한 지역신문에 이 책이 소개된뒤 책을 구해볼수 없겠느냐는 주민들의 전화가 하루에도 10통 이상 걸려오고 있다』면서 『고향은 아니지만 자신이 새로 자리잡은 동네 역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높은 관심은 역사학자로서의 할일을 다시 생각케 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 일철도 이용료 한인학생 차별/도쿄 이창순(특파원코너)

    ◎정기통학권 할인혜택 대상서 제외/“시정”요구 6년째… 아직까지 안고쳐 일본철도(JR)회사의 정기통학권이 일본학생에 비해 재일한국학생이 더 비싸 전철운임에도 「차별」이 엄존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재일조선인학교 고교생등은 6년전부터 이같은 차별의 시정을 요구하며 일본변호사연합회에 「인권구제」신청을 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시정되지 않고 있다고 아사히(조일)신문이 20일 보도했다. JR의 정기통학운임은 어른과 대학생들을 1백으로 할 경우 일본고교생은 10% 할인한 90,중학생은 30% 할인한 70이다.그러나 재일한국인 중·고생은 어른과 똑같은 1백이다. 일본철도 당국자는 차별의 이유를 학교교육법때문이라고 말한다.재일조선인학교는 다른 외국인학교와 마찬가지로 학교교육법상 「각종학교」로 분류돼 있는데 JR영업규칙은 일본의 정규 국민학교,중고등학생에게만 할인정기통학권을 발급하도록 돼있다는 것이다. JR의 차별과 유사한 차별이 체육행사에도 있다.재일조선인 학생들은 일본의 전국고교종합체육대회에 참석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나 전국고교체육연맹은 19일 이사회를 열고 내년부터 재일조선인학교등 가맹교 이외에도 참석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이같은 결정은 일보 전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특별조치에 의한 경기참가만 허용하는 것으로 보다 근본적인 차별철폐가 필요하다고 재일한국인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 통학버스,교회 차받아/신도 5명 사망

    【성남=윤상돈기자】 19일 상오5시55분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진덕아파트 508동 앞 교차로에서 경기5노 8906호 태원고교 통학버스(운전자 유병학·48)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다 신성제일교회 소속 경기5노 7336호 그레이스승합차(운전자 이부성·39)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승합차에 타고 있던 김정순씨(55·여)등 새벽예배를 보고 집으로 가던 신도 5명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 책가방 너무 무겁다(교육 개혁해야 한다:4)

    ◎현장서 진단하는 문제점·개선방향/「청소년 정서」 짓누르는 “과다학과목”/한학기 무려 24과목… 외국의 2배/도시락 2개씩… 짐꾼같은 등·하교 서울 경복고 3학년생인 권경준군(18)은 매일 아침 6시30분이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등교준비를 시작한다. 권군이 속한 이과반 4반의 매주 월요일 수업시간표는 상오8시40분 1교시인 정보산업과목을 시작으로 체육·수학·영어·독어·국사까지 모두 6교시로 짜여져 하오3시10분이면 일과가 끝난다. 물론 이에앞서 상오7시30분부터 50분간의 보충수업 준비도 해야한다. 권군은 수업을 위해 이들 과목의 교과서 뿐만 아니라 참고서·영어사전·공책·필기구·체육복·도시락등을 챙겨 넣는다. 권군은 아침밥을 먹으면서도 복어처럼 책으로 가득찬 가방을 들고 20분동안 걸어서 등교해야 한다는 사실이 지겹다는 생각뿐이다. 권군이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걸어서 통학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고교3년은 물론이고 중학교·국민학교 시절도 그러했다. 그나마 요즘은 대입준비로 교련·미술등 준비물이 많은 학과목이 빠져 한결 부담이 줄어든 셈이다. 이날 보충수업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본고사를 준비하는 학생들로 분반돼 있으나 권군은 본고사반에 속해있다. 권군의 친구들은 방과후 1∼2시간씩 보충수업을 받기도 하고 학원 또는 그롭과외를 받거나 도서관등을 찾아 뿔뿔이 흩어진다. 이 때문에 친구들의 상당수가 도시락을 하나더 준비해야하고 교재들도 많아 보조가방까지 가지고 다니느라 고생이 더하다. 이럴때면 권군은 이따금씩 텔레비전에서 본 외국고교생의 학교생활을 떠올린다. 학교에 설치된 개인사물함,대학생들처럼 간단한 준비물만을 들고 이동수업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었다. 권군은 물론 우리나라 중·고교생들은 책가방을 「고생 보따리」라고 부른다.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와 빽빽이 들어있는 교과서와 참고서가 보기만해도 지겹다는 뜻이다. 인문계고교 자연계열 학생들의 경우 이수과목수는 무려 24개과목. 국민윤리·국어·국사·일반수학·체육·교련등 공통필수과목이 12개 과목이고 이과생의 선택과목은 문학·작문·세계사·수학(◎)·물리·화학·생물 또는 지구과학·한문·제2외국어·기술 또는 가정,실업·교양등 12개이다.그것도 하루종일 교실에서 딱딱한 걸상에 앉아 열심히 외고 쓰고 들어야 하는 힘든 수업이다. 외국과 비교해 보면 학과목수가 평균 2배이상 많다. 이같은 많은 과목을 소화하자니 하루 6∼8교시를 꼬박 교실에서 생활해야 한다.따라서 개인의 적성이나 특기·취미등은 살리기 위한 특별활동 등은 전혀 상상조차할 수없는 것이 우리교육의 현실이다. 물론 정부에서도 이같은 현실을 고려,앞으로 교과개편을 통해 유사한 과목을 통폐합하거나 느슨한 고교과정을 단축시킨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마침 대학수학능력시험도 교과목통합방식으로 출제되는 만큼 이번 수능시험을 계기로 유사한 과목이 통폐합돼 과목수가 대폭 줄어들었으면 하는 것이 권군의 생각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인근 시립종로도서관에서 가장 부족한 과목인 국어를 중심으로 본고사대비에 열중한다. 정확히 하오9시면 귀가해 식사를 하고텔레비전 앞에서 휴식을 취하지만 그것도 잠시일뿐 『공부하라』는 어머니(56)의 성화에 짜증이 나기도 한다. 권군의 지난 제1차 수능시험성적은 2백점 만점에 1백81.8점. 이 성적은 경복고 이과생 가운데 전체 수석이며 수능시험 전체응시생 71만여명중 8백여등에 해당한다. 그는 학교에서 줄곧 1∼2등을 다투어 왔고 수능시험에서도 높은 점수를 얻었지만 지망예정대학인 서울대의 전기·전자·제어군이나 건축과가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이 몰리는데다 수능시험의 반영비율이 20%에 불과해 처음 치러보는 본고사로 당락이 결정되는 만큼 불안해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어머니가 항상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것도 이해한다. 권군은 이날도 좋아하는 텔레비전을 뒤로하고 책상앞에 앉는다. 책꽂이와 책장속에 즐비하게 진열돼 있는 수많은 교과서와 참고서,사전등등. 권군은 고교3년 줄곧 왜 이토록 많은 교과서와 참고서에 매달려 씨름해야 하는지 부아가 치민다. 그에게는 대전EXPO가 그림에 떡이고 청소년들을 위한 가을 음악회나 연극제등도 먼 나라의 이야기이다. 좋아하는 영화도 못본지 오래이다. 아름답게 낙엽진 숲속에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도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부담 어떻게 줄일까/“교과 통폐합·사물함 설치 급선무”/교과서 분책도 바람직/예산확보등 과제 산적/이정근 서울중경고 교감 학생들이 책가방 무게 때문에 신체가 이상 성장하고 학교가는 것을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은 불행이다.가장 발랄한 학창시절을 보내야 할 학생들이 과중한 학과목 위주의 학교교육에 얽매어 고통을 당한다는 것은 우리 교육이 해결해야될 최대 과제이다. 견학·실험·실습등 이동식 수업이 거의 없고 교실에서만,학교 울타리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잘못된 학교교육이 어린 학생들에게 몇십㎏씩의 무거운 책가방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책가방만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며 도시락가방·신발주머니·체육복이나 교련복,거기에다 학숩준비물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힘겨운 짐이 되고 있다. 국민학교 학생이면 거의 도보 등교가 가능하지만 중학교·고등학교학생은 버스를 타고 등교해야 하는 학생이 상당히 많다.맨몸으로도 버스타기가 힘이 드는데 두세가지 이상의 짐을 들고 만원버스를 탈 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시내 모 남자중학교 3학년 2학급 93명중 책가방,도시락등 등교시 지참하는 물건으로 인해 느끼는 부담은 ①괜찮다 14명 ②좀 무겁다 59명 ③꽤 힘들다 18명 ④아주 힘들다 2명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모 고등학교 3학년의 경우 남학생 52명중 ①괜찮다 18명 ②좀 무겁다 23명 ③꽤 힘들다 9명 ④아주 힘들다 2명으로 나타나 비교적 남학생의 경우는 부담을 덜 느끼는 편이다. 그러나 여학생의 경우 53명중 ①괜찮다 1명 ②좀 무겁다 11명 ③꽤 힘들다 2명 ④아주 힘들다 39명으로 나타나 대부분의 학생이 아주 힘들어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까.우선 교과목수를 대폭 줄여야 한다.또한 학생마다 사물함을 설치해 주고 교과서를 분책해야 한다.그러나 이 사물함도 관리가 힘든데다 설치할 장소가 마땅하지 않고 예산의 확보 문제로 아직 소수의 학교에서만 운영되고 있다.교과서를 2∼3권으로 나누는 분책은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물론 분책을 하면 교과서 공급문제·단가의 인상·학습 시간에 연결단원의 참조가 안되는 문제점이 없지 않다.그러나 일부 학생 가운데는 스스로 분책해서 가지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가방을 가볍게 해주는 것은 학교교육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가장 상징적인 과제이다. ◎외국의 경우/「교과서 교육」 탈피… 흥미과목 치중/교과서·교재등 무상 제공… 학교에 비치/스웨덴/학교마다 사물함… 꼭 필요한 책만 휴대/미국/독 사흘 실습·이틀 강의·이틀 가정학습/독일 선진국들은 이미 학교에서 교과서위주교육을 탈피한지 오래다. 교과목수와 교실안에서의 수업시간을 대폭 줄여 견학학습과 실험·실습 및 다양한 특기 및 취미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능력과 적성을 세밀히 파악,진로지도를 하고 있다. 이같은 교육의 덕택으로 학생들은 일찍부터 자신의 직업이나 삶의 방향을 선택,학습에 흥미와 관심을 갖고 학교생활을 하고있다. 우리나라처럼 전과목 우등생을 기르는 것이 학교교육의 목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찾아내 이를 최대한 계발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학교교육이 대학입시의 볼모가 되어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우리와 같은 교육행태는 눈을 씻고도 찾아 볼 수 없다.선진외국에서는 우선 일선 학교가 대학 또는 상급학교 진학에 대한 아무런 책임이 없고 학부모들도 그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진학문제는 순전히 학생 개인의 문제이며 학교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학교에서는 다만 친절한 상담을 통해 상급학교에 진학하고자하는 학생들에게 정보와 조언을 해준다.때문에 특정 학교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스스로 입시준비를 한다. 스웨덴 학생들의 경우 의무교육기간은 9년이다.교과목수는 1∼3년은 스웨덴어·영어등 8과목,4∼6년은 12과목,7∼9년은 16과목에다 외국어등 선택 4과목이다. 결코 적은 학과목은 아니다.그러나 진학또는 취업을 앞둔 7∼9년을 제외하고는 과목수가 우리나라의 절반수준에 불과해 다양한 특별활동에 열중할 수있다. 교과서나 소모적인 교재는 모두 국가에서 무상으로 제공,학교에비치되어 있고 가정은 학교에서 배운 과정을 실천하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다.때문에 학교측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가정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갖가지 특별활동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제공하고 있다. 미국은 반드시 이수해야 할 과목이 고교 3년동안 10여개에 불과하며 그 외의 시간은 자신이 스스로 찾아 활용한다. 학교마다 개인 사물함이 설치돼 있어교과서는 이곳에 보관하고 참고서나 꼭필요한 책만 2∼3권정도 들고 다닌다.게다가 도서관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비싼 참고서를 구입할 필요가 없다. 미국의 경우 각 주마다 과목수나 이수 내용에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비슷하며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는 불편함은 이미 해소된지 오래다. 특히 공통필수과목을 크게 줄이는 대신 선택과목수를 늘려 원하는 학생에 한해 수강하게하는 이동식수업을 하고있다. 완전한 지방자치제로 운영되는 영국의모캄고교는 전교생이 1천3백명이나되는 큰 학교인데 1∼3학년은 전교과목이 공통필수이나 4∼5학년은 영어·수학만 필수과목이며 6∼7학년은 필수과목없이 일반교양과목과 함께 선택과목을 공부한다. 6∼15세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뉴질랜드는 건강교육이나 미술·실과등 실제적인 과목을 중심으로 교육하고 학제도 전일제나 부분시간제로 운영돼 학생들의 무거운 책가방은 있을 수 없다. 우리와 학제가 전혀 다른 독일은 18세까지 2단계로 실시되는 의무교육기간동안 3일동안은 현장 실습,2일간은 학교공부,나머지 2일은 가정학습으로 짜여져 있다. 학생들은 1단계 9년간의 의무교육을마치면 대학진학 또는 도제로 진로를 정하며 도제일 경우에도 계속 학교에 나갈 수 있어 지식과 기술이 접목되어 있다.
  • 우리말·글 통해 나라사랑 실천/외솔 최현배선생(이달의 문화인물)

    ◎기념문집·추모행사등 다양 「10월의 문화인물」에 우리말과 글을 통해 나라사랑을 실천한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선생(1894∼1970년)이 선정됐다. 문화체육부는 그의 생애와 업적을 오늘에 되살려 우리 말과 글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아릅답게 가꾸기 위해 한글날이 들어있는 10월을 맞아 그를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외솔은 경남 울산군 하상면 동리에서 태어나 한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뒤 1910년 일본인들이 학교운영의 주도권을 잡자 주시경선생이 있던 조선어강습원에 나가기 시작했다.그곳에서 우리말과 글로 교육하는 것이 우리 겨레의 소망이라는 신념을 갖게된 그는 연희전문과 이화여전에 재직하며 배달말과 배달정신을 젊은이들에게 심는데 힘썼다.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한 그는 해방직후 문교부 편수국장으로 있으며 황무지였던 국어교육의 터전을 마련하는 한편 한글의 체계화와 과학화에 진력했다. 그의 저서로는 「조선민족 갱생의 도」「우리말본」「글자의 혁명」「나라사랑의 길」 등이 있다. 문화체육부가 외솔회 한글학회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등 관련단체와 함께 펼칠 기념행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외솔의 국어학과 그 영향」주제의 강연회 23일 상오10시 한글학회강당 ▲「국어학자 및 사회사상가로서의 외솔」주제 특별강연회 28일 하오2시30분 연세대 ▲「외솔문법과 맞춤법 통일안」주제 학술발표회 16일 하오3시 문예진흥원강당 ▲제15회 외솔상 시상식 30일 한글회관강당 ▲외솔추모행사 19일 경기도 양주군 장현리 묘소▲기념문집과 글모음 어록집 발간 등.
  • 첨단학과(외언내언)

    물리학이 세계역사의 진로를 바꿔놓고 있는 동안에도 생물학에서는 20세기가 몇십년이 지난 19 53년 까지 생물학의 토대가 될만한 보편적 원리를 갖고있지 않았다.그러나 지상의 모든 생명체가 유전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하는데 동일한 복합적 분자를 사용하고 있다는 DNA(디옥시리보 핵산)발견후 생물학자들은 생체물질을 자유롭게 조작할수 있게 되었다.19 70년 미위스콘신대 H·G코라나는 유전의 기본단위인 유전자를 합성하는데 성공,드디어 유전공학·생명과학이 새로운 학문으로 등장했다. 요즘의 대학교육은 산업및 과학문명 발달과 함께 좀더 기능적으로 세분화되어 신설첨단 학과만으로도 급변하는 세계의 흐름을 한눈에 실감할수 있다. 몇년전까지만해도 듣도보도 못한 생명과학·대기과학·교통학과 출판학과 광고홍보 정보통신에 북한학과까지 등장하더니 컴퓨터·반도체의 경우도 전자계산·기억제어장치등 인간두뇌의 지평을 넓혀가는 컴퓨터분야와 우주통신·화상통신·데이터통신등의 통신분야,산업로봇이나 무인공장과 같이 인간의 수족 능력을 확장하는 자동제어 분야등으로 세밀하게 나뉘고있다. 관련학과만도 전기공학·전자공학·전산기공학·전자계산공학·전자전산공학·전선과학·반도체공학·전자통신공학·제어계측공학·통신공학·전파공학·정보통신공학·컴퓨터공학교육과 이번 신설된 항공탐사공학 산업시스템 공학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더 세분 화될지는 예측불가능하다. 더구나 산업시스템공학의 경우 공학의 기본 이론뿐만아니라 전문경영인에게 필요한 로봇공학 미래산업전략 CAD(컴퓨터 그래픽디자인)CAM(공장자동화)시스템시뮬레이션 인간공학 원가관리등을 가르쳐 첨단기술시대를 맞는 전문경영인을 육성한다는 목표다. 이미 신설된 202개 학과외에 이번에 새로 신설된 학과는 해사안전관리·해양환경공학등 13개.그러나 아무리 좋은학문도 이에 따르는 교수진과 시설이 문제가 아닐수 없다.
  • 소규모 중교 1백18개 통폐합/학생수 1백50명이하 대상

    앞으로 학생수가 1백50명이하인 공립중학교는 가까운 다른 중학교와 통폐합,운영된다. 그러나 지역여건 등으로 통폐합하기가 어려운 소규모중학교는 분교로 개편,통학버스를 운행하거나 기숙사를 확충해 학생들의 불편을 덜어주기로 했다. 교육부는 12일 이같은 내용의 소규모공립중학교운영개선계획을 마련,각 시·도교육청에 통보했다. 이는 그동안 중학교 학령인구가 줄어든데다 생활인구의 도시유입등으로 소규모학교의 경우 교육재정의 운용과 교육과정의 정상화에 어려움을 겪어온데 따른 것이다. 이 운영개선계획에 따라 통폐합대상이 되는 중학교는 ▲50명이하 7곳 ▲51∼1백명 32곳 ▲1백∼1백50명 72곳등 모두 1백18개 학교다. 교육부는 전국의 중학생수는 올해 2백41만명선에서 오는 2000년대는 1백90만5천명선으로 21%가량 줄어들어 통폐합대상 중학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 조국 광복에 몸바친 삶 2제

    ◎“나운규기념회 운영 어려움… 지원 기대”/공적증명위해 노력… “훈장추서돼 기뻐”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감독인 고 나운규선생의 아들 봉한씨(60·영화감독·동작구 상도1동 388의2)는 12일 『영화를 통해 민족혼을 일깨워온 선친의 뜻이 이제야 빛을 보게돼 자식된 도리를 조금이나마 한 것같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나씨는 그동안 정부문서보관소 및 국회도서관등을 오가며 관련자료를 찾던중 경찰청에서 보안법위반죄등의 죄명으로 된 형량자료를 찾아내 이를 근거로 지난 92년 3월에 서훈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나씨는 선친과 함께 활동했던 윤봉춘선생도 독립운동공로를 인정받게돼 더욱 기쁘다고 말했다. 나씨는 『선친의 뜻을 기리기 위해 4년전 발족된 「춘사 기념사업회」가 재원부족으로 매년말 실시하는 「춘사 예술상」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번 추서를 계기고 뜻있는 분들의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친의 대를 이어 대전 엑스포 정부관에서 상영하는 「전통의 뿌리에서 미래의 열매를」이라는 4분짜리 멀티비전 영상물과 독립기념관 원형극장에서 상영하는 「내사랑 금수강산」이라는 20분짜리 홍보영화도 만든 나씨는 오는 15일 선친의 훈장을 들고 망우리 묘역에 참배할 예정이다. ◎동래고 재학중 항일시위,8개월 옥고/“사회 그늘진곳서 봉사로 여생 보낼것” 『오로지 민족정기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으로 젊은 한몸을 던졌을 뿐인데…』 광복 48주년을 맞아 새롭게 독립유공자로 선정돼 훈장추서를 받게된 정두렬씨(71)는 뒤늦은 공적인정에 못내 쑥스러워했다. 일제의 침략전쟁이 한창이던 40년 11월 부산에서 학생시위를 벌이다 1년여의 옥고를 치른다. 부산동래고등보통학교 5학년시절이었다.부산 대신동의 공설운동장에서 벌인 제2회「전력증강국방대회」에서 일본심판관의 편파성과 대회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벌인 가두시위에 참여한데 이어 일본인 심판장이었던 내대염치 일본육군대좌의 관사를 부순 혐의로 다음날 체포돼 1심 2심을 거쳐 8개월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했다. 정씨는『부산학생시위는 할말을 못하고 살던 암흑시대에 민족의 정기를 일깨우려는 몸부림이었다』고 50여년전 그날을 회상했다. 출감후 일제의 감시와 생활고에 못이겨 중국 심양으로 건너갔다 해방되던 해 7월 귀국한 정씨는 미군 군정청 비서실등에서 국가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은 무엇이든 했다. 전쟁고아를 돌보는 사회사업을 10년 넘게 참여한 경험등을 토대로 그늘진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해 남은 여생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 방학식후 귀가길/물놀이 자매 익사

    【예천=남윤호기자】 20일 하오 6시10분쯤 경북 예천군 감천면 미석3리 옥계천에서 이마을에 살고 있는 윤성옥(10·영주남부국 4년·경북 예천군 감천면 미석3리 469)·성희(8·〃 2년)자매가 물에 빠져 숨졌다. 이날 이들을 마중 나온 성옥양의 남동생 성일군(6)은 『누나들과 함께 옥계천 옆 바위위에서 함께 놀다 작은 누나 성희양이 바위를 헛디뎌 냇물에 빠지자 큰누나 성옥양이 동생을 건지려 냇물에 뛰어들어 2명이 수심 2m의 옥계천에 빠져 숨졌다』고 말했다. 이들 자매는 집 가까이 학교가 없어 걸어서 20분 거리인 중앙선 간이역인 미룡역에서 열차를 타고 15㎞쯤 떨어진 영주시까지 통학을 해왔으며 이날 방학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이같은 변을 당했다.
  • 장애인들에 주는 정상의 자리(사설)

    내년부터 장애인도 일반학교에 들어가 정상인과 나란히 앉아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됐다.또 운동능력이나 이동능력이 뒤떨어진 장애인에 대해서도 가정방문교육등 교사의 순회교육을 통한 섬세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진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잘못된 시각으로 인해 마치 그들이 소외계층인 듯이 취급되는 시점에서 이루어진 이같은 배려는 모처럼 접하는 밝은 뉴스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지금까지의 특수교육진흥법은 「차별의 금지」가 또렷이 명시되어 장애를 이유로 입학지원을 거부하거나 시험합격자의 거부를 할수 없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었다.그러나 「감독청의 승인을 얻을 경우는 예외」라는 단서조항 때문에 이를 악용한 일부대학이 장애인의 응시기회 자체를 근본적으로 박탈한 예는 얼마든지 있어 왔다. 교육부의 이번 개정안은 이런 모순된 단서조항을 처음부터 아예 삭제하여 장애인도 일반인과 동등하게 일반학교의 일반학급에서 통합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데 의미가 있다. 장애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그들이 별다르게 취급되어질 하등의 이유란 없다.공부를 잘하면 어떤 대학에라도 갈 수 있고 수학능력이 떨어지면 학교에 갈 수 없다.또 나와 함께 나란히 앉아있는 장애학생은 나보다 몸이 불편할 뿐 나와 다를바 없다. 불상사와 불운으로 인해 신체가 불편한 것도 불행할진대 어떤 불이익을 받거나 소외되거나 차별되어진다면 그처럼 부당한 노릇은 없을 것이다. 현재 전국에는 중증장애인 4만3천여명,경증장애인 18만6천여명,이중에서 교육을 받지못한 사람도 2만여명으로 나타났다. 가정이나 장애자보호시설에 격리되어 교육의 혜택을 전혀 받지못한 이들에게도 이번기회에 교과교육 치료교육 직업교육의 혜택이 고루 돌아갈 수 있게 해야한다.따라서 법적인 근거없이 운영중인 현재 1백여개이상의 조기특수교육기관중 설치기준에 맞는 곳은 양성화하고 취학편의를 위해 특수교육기관에 기숙사를 설치하거나 통학버스를 운영,이것이 여의치 못할 경우 최소한의 통학에 필요한 실비를 지급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교육부가 이런 개정안을 내기에 앞서 학교 스스로가누구에게나 평등한 교육을 베푸는 일에 솔선했었으면 하는 점이다. 호킹박사나 헬런 켈러가 아니더라도 각계 각층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장애인 숫자는 적지 않다. 모처럼 주어진 장애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자리잡을 수 있을때까지 가족과 주변 모두가 이를 이해하고 협조할 수 있어야겠다.
  • 유휴농지 소유·이용 규제 점차 완화/「신농정 5개년계획」 주요내용

    ◎정부미방출 탄력조정… 쌀값 안정 도모/기술개발 투자 97년까지 2천억 확대 ▲양곡관리제도=양곡관리기금의 건전한 운용을 꾀하기위해 양곡관리기금 결손액과 양곡증권 발행규모를 앞으로 올해 수준에서 동결한다.이를위해 현재 발행규모가 1조6천4백20억원인 단기채의 양곡증권을 내년부터 점차적으로 장기채로 전환한다.또 수매가 인상을 가급적 자제하는 것과 함께 정부미 방출가를 단계적으로 조정,수매가와 방출가의 격차를 축소해 나간다. 민간유통기능의 활성화를 위해 수확기와 비수확기간 쌀값의 계절진폭을 유지한다.이를위해 정부미의 방출시기와 방출량을 시장가격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정,연평균 쌀값은 전체 물가범위 안에서 안정을 도모한다.또 정부미 방출도 시가공매를 확대하는 등 시장경쟁원리를 단계적으로 도입한다. 쌀생산 농가에 대한 소득보전을 위해 지역별,품종군별로 수매가격을 차등화함으로써 양질의 쌀을 생산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한편 수매예시제 도입을 추진,농가가 주체적으로 장기영농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한다. ▲농지제도=경자유전원칙은 지켜나가면서 농지소유와 이용규제를 점차 완화해 나간다.농어촌구조개선을 촉진하기위해 현재 농업진흥지역을 농림지역으로 편입,전용을 억제하는 대신 농업진흥지역 밖은 준농림지역으로 편입해 농업이외 목적의 전용수요를 충당할 수 있도록 한다.이와함께 농어촌지역의 활성화와 도시자본의 적극적인 유치를 위해 한계·유휴농지의 소유와 이용규제를 대폭 완화한다. 농지소유제도 개선면에서는 농업발전과 농촌활력증진을 위해 현재 농민과 영농조합법인만 소유할 수 있도록 돼있는 농지소유 범위를 확대,농업시험연구기관이나 농업자재생산기업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한다. ▲인력개발및 기술혁신=농림수산업 분야 기술혁신을 위해 올해 8백23억원인 농림수산업 기술개발 투자액을 오는 97년까지 2천억원 수준으로 늘린다.또 농어업인력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농과계 고교 가운데 지역별로 30개교를 선정,영농후계인력 양성을 위한 중심학교로 운영하는 한편 국립농대는 지역특성에 맞게 축산·임업·쌀·수산등의 기능별 특성대학으로 육성한다.전문농업 교육제도를 정립해나가기 위해 농과대학에 농업후계자나 우수전업농을 재교육하는 과정의 「농업전문경영자과정」을 설치,운영한다. ▲농어촌종합정비와 복지기반확충=주택등 생활환경과 생산소득기반이 마을단위로 집중 정비될 수 있도록 하기위해 「농어촌정비구역」을 지정한다.또 마을구조를 유형별로 3개 마을로 구분,농림수산업 생산기반과 연계해 개발해 나간다. 농어민 복지기반 확충을 위해 내년까지 「농어민연금제」 실시방안을 마련하고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통학거리등 지역실정에 맞게 통폐합하거나 농어민 자녀가 인근 도시학교로 진학하는 방안도 강구한다.농약사용등 시설농업 발전에 따른 농민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농부병 연구소를 설치하는 한편 현행 의료보험료 부과체계도 개선,농어민의 의료부담을 경감해 나간다. 농민의 농외소득원을 개발하기 위해 농공단지를 신규로 조성하는 것을 지양하는 대신 내실화를 기하고 산지가공공장을 유치하며 농어민이 운영하는 특산단지를 확대해 나간다.또 농업과 연계한 휴양·관광자원 개발을 위해 민간참여를 촉진한다.
  • 지식암기보다 지혜·창의력에 중점/유태민족 영재교육 본받자

    ◎한국우주정보소년단 심포지엄/이스라엘,교육예산 37% 꿈나무 육성 투자 이스라엘은 천연자원도 없고 인구도 우리의 8분의1 밖에 안된다. 세계 인구의 0.4%도 안되는 유태인들이 노벨상 제정이후 경제부문에서 65%,의학 23%,물리학 22%,화학 11%,문학 7%나 휩쓴 배경은 무엇일까. 올해는 과학교육의 해.과학교육의 해를 보내며 한국우주정보소년단(총재 이상희)은 26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이스라엘 영재교육을 중심으로 한 정보·과학 꿈나무육성 심포지엄」을 개최,이스라엘 교육을 모범삼아 21세기 정보화사회에 대비한 우리 청소년들의 과학교육 향상을 꾀해 나가야 할것임을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이상희박사는 『2000년대 한나라의 훌륭한 자원은 교육의 경쟁력』이라고 전망,『이스라엘민족이 과학기술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등의 세계적 인물을 배출한 데는 한마디로 가정을 중심으로 한 어머니의 자녀교육과 영재육성을 위한 체계적 학교교육에 있다』고 강조했다.이스라엘의 어머니는 예를들어 자녀에게 「종이」를 가르칠 때 단순히 이름(지식)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제조과정과 역사,종류 등 종이에 대한 전반적인 「지혜」를 알려준다.유태인인 아인슈타인은 만년에 회고하기를 『나는 천재가 아니다.다른사람보다 호기심이 많았고 지적탐구를 위한 모험을 즐겼을 뿐』이라고 했다.소아마비 왁친을 발견한 에드워드 소크는 『나는 왁친을 발견하기까지 수천번의 실험을 했다.내가 이같은 실험정신을 갖기까지에는 어머니가 매일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유태인 어머니는 자녀의 창의력과 모험심을 길러 주기 위해 매일 먹는 음식도 메뉴를 달리할 정도로 작은 부분까지 무척 신경을 쓴다.미국의 학교들에서 끈질기게 질문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유태인인 경우가 많다고 할 정도인 것. 이날 세미나에서 아나하임 주한 이스라엘대사는 『유태인의 높은 업적과 성취동기는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이스라엘 정부는 매년 교육예산의 37%를 어린이 영재교육 부문에 투자하고 어머니의 자녀교육을 돕기 위해 중앙정부와 학교,지역사회간의 협조도 긴밀하다.정부는 영재교육전담부서를 두어 10여개의 영재교육 특수학교를 운용한다.이 학교는 전체 학생의 성적상위 15%만 시험을 보게 하고 그 가운데 1∼3%를 특수 프로그램에 참여시킨다.영재학생들은 1주일에 5일은 보통학생과 마찬가지로 지역학교에 다니면서 사회성을 기르고 하루만 영재프로그램이 있는 중앙학교에 나간다.영재과목은 수학,화학,미생물학,예술과 미술조각,신문학,유전공학,컴퓨터 등 20여개이다. 이날의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물리학자 뉴턴이나 상대성원리의 아인슈타인,고흐,자멘호프,수소폭탄의 아버지 오펀하이머,마르크스(유물론)등은 바로 전통적 유태 교육을 배경으로 키워진 인물들임을 재인식,우리도 국가의 자원빈곤을 극복하고 생존전략을 갖추기 위해서는 과학꿈나무를 널리 키워 나가는 영재교육에 보다 힘을 쏟아야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 여류명창 김명하씨(이세기의 인물탐구:28)

    ◎청류의 음색·유창한 성조… “타고난 소리꾼”/12가사·시조 등 정가 두루 통달… 명인 경지에/장려한 성색·거침없는 음역엔 감탄사 절로/“한의 세월 노래로 용해”… 사재로 문화재단 설립,후학 길러 /모란은 화중왕이요 향일화는 충신이로다.연화는 군자요 행화소인이라,국화는 은일화요 매화한사로다­/ 두 손을 무릎위에 가지런히 얹고 단정하게 노래부르는 월하의 편수대엽은 세파에 시달린 흔적없이 계류처럼 맑고 청아하게 흘러내린다. 특히나 그의 세청은 비단실을 뽑아내는듯한 명가의 격조와 경제특유의 화려하고 힘있는 성색을 지닌것이 특징이다. 처음을 높이 질러부르는 언롱은 쉽사리 달아오르거나 쉽사리 자지러들지 않는다.넘어가고 이어지고 휘어지고 늘어지는 가락마다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굽이굽이 드리우면서도 풍류를 생략하거나 정가특유의 기품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명주 명주 명주 비유 원로국악인 성경린씨는 일찍이 월하의 노래를 일컬어 「무늬없이 짠 치렁치렁한 비단」이란 의미의 명주,또 현란한 구슬을 끝없이 꿴듯한 명주,그 깊고 유창한 성조에 취하지 않고는 배길수 없는 명주에 비유했고 「월하의 정가를 들을수 있는것은 우리로서는 얼마나 경행스러운 일인가」를 찬탄해 마지않았다. 관현악반주에 맞춘 가곡12가사를 비롯,시조·한시·칠언절구에 뛰어나고 양금·거문고 연주솜씨도 수준급이다. 평시조 엇시조·사설시조·지름시조,가곡의 우락·계락등 어느 대목에 이르러도 구구절절 막힘이 없고 중간에서 곡조를 잠깐 변조시켜 질러부르는 계면조(중거)는 시의 참맛을 살려 시절가다운 흥취를 능란하게 펼쳐나간다. 아련한 피리소리 전주에 실린 피리소리 못지않은 그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재능은 과연 타고나는 것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올수밖에 없다.만약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면 어떻게 저런 청추의 음조를 끝없이 울릴수 있을 것인가. 집안대대로 소리를 하거나 춤을 추거나 어릴때부터 유랑극단을 쫓아 일찍이 자신의 기량을 갈고닦아온 다른 국악인들과는 달리 월하의 국악계 입신은 참으로 극적이고 의외의 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의 본명 김덕순대신 여창 김월하로 다시 태어나기까지는 마치 백락천의 비파타는 여인을 연상케하는 참담하고 기구한 사연이 오뇌의 흐느낌처럼 얼룩져있다. 그는 본래 경기도 고양군 한진면 보광리,지금의 이태원부근에서 평범한 가정의 2남3녀중 막내로 태어 났다.그러나 나이 세살때 전국에 창궐하던 호열자에 걸려 어머니와 두 오빠가 죽고 부친 김희문씨가 실성하다시피 집을 뛰쳐나가자 세자매는 뿔뿔이 흩어져 남의 집 양녀로 키워지게 되었다. 그가 양녀로 간집은 종로구 사간동 모녀이대가 사는 전통있는 가문으로 그는 조모와 양모밑에서 절도있는 여성이 갖춰야할 모든 덕목과 예절을 배우며 자라났다. 재동보통학교에 다녔으나 15살때부터 혼인말이 나오더니 16살되던해 경기도 양주출신으로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던 김용복씨와 결혼,부군은 부인을 끔찍히 사랑하여 묘동학원 속성고등과에 보내주는등 자녀는 없었지만 부부의 금실은 유난히 좋았던 추억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6·25때 부군이 납북되자 그는 손재봉틀 하나를 들고 부산 피란길에 나섰고 그때부터 이루 말할수 없는 가난과 고초를 겪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낮에는 낙동강 하구 하단에서 푸성귀를 받아다가 동대신동 시장에 나가 팔고 밤에는 삯바느질,착실하게 돈을 모아 집한채를 마련했으나 먹고 자는것 잊어 버린채 건밤샘으로 일거리에 쫓기다보니 영양실조에 걸려 덜컥 몸져 눕게 되었다. ○시조 동호모임 가입 그때 동네노인의 권유로 지금은 없어진 구덕수원지쪽에 산책을 나가기 시작했고 새벽마다 그곳에서 시조연습을 하던 시조동호인들을 만난 것이 그의 운명을 바꾼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멀찌감치 비켜앉아 그들의 연습을 구경이나 하는 입장이었으나 입속에서 조금씩 따라부른것이 차츰 시조에 빠져들어 그 모임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모르고 있었고 어디서 노래부른적도 없어 그저 남이 하는 대로 따라부를수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느리고 길게 뽑는 호흡도 그렇지만 노래의 맛을 깊이 알아 우조를 부르고 계면우를 부르는 툭 터진 소리는 「마치 통나무를 끌고 산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화미하면서도 시원하다」하여 당장에 시조하는 사람들의 눈에 띄고 말았다. 마침 동호인의 한사람이던 두봉 이병성이 두세번씩 그의 노래를 따로 청해 듣고는 「성색의 단아함과 장려함」에 무릎을 치며 기뻐해 마지 않았다.두봉은 이왕직 아악부에서 하규일의 지도를 받은 성악의 큰 봉우리로 그는 모처럼 만난 이 재능있는 여성에게 시조와 12가사 완창지도를 자청하고 나섰다.그때 얻은 아호가 달을 지고 있다는 뜻의 월하였다. 그는 장사를 때려치우고 낮에는 두봉 밑에서 배우고 또는 동네유지들을 모아 가르치거나 여기저기 불려나가 가곡을 부르게 되었다. ○소남 이주환에 사사 또 절색의 미모탓에 그를 바라보는 뭇시선이 많았으나 깔끔하고 쌀쌀한 성품은 한눈파는법 없이 오로지 시조에만 매달렸고 밤에는 여전히 삯바느질을 해냈다. 『어릴때 친부모 형제를 잃고 양녀로 키워지던 소년시절과 남편과 행복했던 결혼생활,피란지에서의 가난과 슬픔』을 마감하고 시조수업 3년만 59년 서울 중앙방송국이 주최한 이승만대통령 탄신기념명창대회에서시조부문 1등 수상,당대최고 율객으로 손꼽히던 소남 이주환역시 「정려하나 격발이 없는,이처럼 가곡을 위해 태어난 청류의 음색」은 결코 흔치않음을 심사평에서 지적했다. 그는 이를 계기로 피란길 10년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와 국립국악원에서 본격적인 소남의 가곡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그때 나이가 43세. 일장월취로 시존의 모든 갈래를 꿰뚫었고 한시도 세갈래로 섭렵하여 그의 이름은 널리 회자되기 시작했고 정부행사나 모든 축하모임에서 당당히 가곡독창자로 출연하는 화려한 월하시대를 개막했다. ○검약실천,저축상받아 국악원과 국악예술고를 비롯,서울대 한양대 추계예술대 정신문화원 강사로 하루 5∼6시간 강의가 있을때도 그는 바느질만은 손에서 놓지 않는다.마포와 낙원동에 각 5층짜리 빌딩 주인에다 저축상을 받기도 한 재산가지만 단칸방에서 손수 밥을 지어먹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다닌다.아무리 배가 고파도 국수한그릇 사먹기위해 혼자서 식당에 들어가본일도 없다.화투짝 한번 만져 본적도 없고 술잔한 담배 한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그는 찬밥에 물을 말아 내손으로 담근 김치로 식사를 때우고 새벽에 일어나면 그가 사는 낙원동 골목길을 일일이 청소한다. 수없이 길러낸 자녀들의 미국유학도 하고 박사나 교수가 되기도 했지만 공부를 시키고 나면 독립시킬뿐 은혜에 보답받기 위해 그들을 공부시킨 것은 아니다. 지난 90년 50억 재산을 몽땅 털어 월하문화재단을 설립,마포에 있는 연구소에 나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금도 집에는 대학 국악과에 보내고 있는 서너명의 양녀를 데리고 있다. 『나는 그저 평범한 아녀자에 불과할뿐,다행히 시조를 좋아하여 이 세계에 빠질수 있었고 나의 모든 시름과 외로움을 덮어준것을 늘 감사하고 있다』그래서 특별한 사명감이나 포부때문은 아니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속요와는 달리 김천택의 청구영언 박효관·안치영의 가곡원류 김수장의 해동가요등 바둑판처럼 또렷한 정간보에 의해 비교적 체계있게 전수된 우리의 가곡을 후대까지 잇게하기 위해 국악에 뜻을 둔 젊은이들을 한명이라도 더 가르치고 싶다는 일념이다. 시조강의할때가가장 행복한 그는 그의 소리를 원하는 곳은 부산이든 대전이든 마다않고 달려간다.그리고 어떤 무대에서도 「어전에서 부르던 정갈하고 깔끔한 노래답게 소리에 한도 싣지않고 흥도 치우치지 않게」몸가짐·마음가짐을 흐트리지 않는다.두성과 비음을 다 쓰면서도 잡소리가 섞이지않은 그의 노래가 곧잘 범패에 비유되는 것은 불교신자로서의 그만의 독특한 득도의 경지때문일 것이다./바람은 지동치듯 불고 궂은비는 붓듯이 온다.눈 정에 거른 님은 오늘밤 서로 만나자고 판접쳐서 맹서 받았더니 이 풍우중에 제 어이오리,진실로 오기 곳 오량이면 연분인가 하노라­. 이 짧은 우락이 10여분.그는 부군을 잃은대신 「가곡」으로 꽃피운 그의 세월속에서 도무지 오지않을 님을 한시도 기다리지 않은적이 없는듯,그 높고 긴 가락속에 임그리운 여운을 절절히 끌고있다. 웅려 정대한 스케일과 함께 옥쟁반에 쏟아붓는 은구슬 금구슬의 그 현란한 사연은 아마도 「나이나 세월은 사랑을 멈추게 하지않는다」는 단 한마디,그래서 그 끝없는 마음속의 계류는 어쩌면 눈물일지도 모른다. □연보 ▲1917년(양력 19 18년2월8일)경기도 고양군 한진면 보광리 출생(본명 김덕순) ▲1932년 서울재동보통학교졸업 ▲1936년 서울묘동교회 부설 묘동학원 야간부고등과 졸업 ▲6·25 부산피란시절 부산 시조동호인 국립국악원 부산지원 두봉 이병성선생(이왕직아악부출신)사사 ▲1958년 서울중앙방송국주최 이승만대통령 탄신기념 명창대회 시조부문 1등 수상,소남 이주환선생(초대국립국악원장)사사를 비롯,전라도 임석윤·이창배·정운산 선생 사사 ▲1959년 「월하시조」(오아시스레코드 출반) ▲1961년 서울귀환(종로구 낙원동 정착) ▲1968년부터 국악고교 졸업식장서 장학생선발(장학생육성시작) ▲1969년 국악협 시조분과위원장 ▲1970년 전국시우단체 총연합회 발족 초대 회장취임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여창가곡 예능보유자지정 ▲1974∼92년 국립국악원·국악예술고강사 ▲1975∼92년 서울대·한양대·추계예술대강사 ▲1981년부터 해마다 조선일보사주최 국락대공연 참가 ▲1983년 「김월하시조(1집·2집)」(아시아레코드출반) ▲1984년9월 문예진흥원주최 가곡발표회(문예회관대극장) 10월 가곡보존협회주최 가곡발표회(세종문화회관대강당) ▲1986년 「김월하가곡집」(LP3장,문화재보호협서출반) ▲1987년 국립국악원주최 중요무형문화재 발표 해마다 참가 ▲1990년 월하예술단및 월하어린이 예술단창단(KBS­TV출연및 해마다 지방공연) ▲1991년 뮤지컬 「콩쥐팥쥐」(월하 어린이 예술단공연) ▲1991년 재단법인 월하문화재단 발족(월하국악상 제정및 국악경연대회 국악연구발표및 관련단체지원,장학생 선발 등의 사업) ▲1992년 월하문화재단설립1주년기념 전통음악발표회(예술의전당)주한외국인초청 공연(워커힐서)월하예술단공연(세종문화회관대강당)수십차례의 국내공연및 해외공연등 ▲1976년∼현재 법원연수원·서울교육원·정신문화연구원·한국표준공업학회 국립국악원 출강(현재)월하문화재단이사장,월하예술단및 월하어린이예술단대표,국악협회고문 84’국악대상·세종문화대상·88’저축의날 국민목련장
  • 학교주변 폭력배 1,150명 구속/경찰청/전국 8일간 일제단속

    ◎3천3백명 검거… 9월까지 계속 경찰청은 4일 학교주변에서 금품을 갈취하거나 여학생을 폭행하는등 학생들을 괴롭히는 폭력배 3천3백66명을 적발,이가운데 1천1백50명을 구속하고 2천2백16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최근들어 범죄유발업소나 호화사치업소 주변에 청소년 폭력배들이 늘고 이들이 유흥비를 마련하기위해 학생들을 상대로 금품을 뜯는등 피해사례가 그치지 않고 있다고 보고 지난달 23일부터 말일까지 8일간 일제단속을 벌여 이들을 사법처리하는 한편 오는 9월말까지 계속 단속키로 했다. 경찰의 이번 단속으로 학교 안팎에서 폭력서클을 만들어 폭행을 일삼던 3백70명이 검거됐고 통학로 주변폭력배 1천6백96명이 단속되는가 하면 여학생들에게 성폭행을 가한 71명도 사법처리됐다. 경찰은 앞으로도 ▲학교내외 불량 폭력서클 ▲입시학원·독서실및 통학로주변 불량배 ▲제적생등 무위도식 불량배 ▲만화가게·비디오가게등 음란물취급소배회 불량배 ▲볼링장·음악다방등 놀이공간주변 폭력배 ▲본드등 환각물흡입자 성폭력사범등에대해집중 단속을 벌여 나갈 방침이다.
  • 연극인 강계식씨(이세기의 인물탐구:26)

    ◎“무대를 신앙으로” 외길인생 50년/열과 성으로 완벽하게 배역 소화 “관객 매료”/“40∼50년대 최고 명우” 「춘향전」 등서 불꽃연기/진실일념으로 삶 일관… 고 이해랑씨 “진정한 연기자” 칭송 햄릿이나 위대한 줄리어스 시저는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관객의 감동과 갈채를 한몸에 받는다.하나의 연극에서 주역으로 발탁된 이들은 종횡무진 무대를 누비며 자신의 기량을 활기차게 펼친다.관객은 그때마다 환호하며 주인공의 희비에 침몰하듯 매료된다.그때도 이를 희생적으로 뒷받침하는 단역배우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그들은 있는듯 없는듯 미미하게 존재할 뿐,모든 영광과 기쁨은 주인공의 차지다. 원로 연극배우 강계식씨의 연극인생은 언제부턴가 단역에 머물러있다.흥분한 어조로 「정의」와 「불의」에 대하여 「사랑」과 「미움」에 대하여 열렬히 외치는 극중 주인공은 이미 아니다. 역할이 크든 작든 대사가 짧든 길든 한마디의 대사가 없을 때라도 그의 역할은 작품전체를 구성한다는 사명감에 투철하다.따라서 어떤 배역이 돌아와도 그 역할에 완벽하게 용해되어 한낱 연기가 아닌 무대의 한 모습처럼 형형하게 서있다.그리고 확실한 목소리와 움직임과 형상을 보여준다.그의 나이에서는 연극속의 각 배역과 그 배역들이 하나같이 살아 숨쉴 수 있도록 섬세하게 보조하는 위치다. 어차피 하나의 역할은 무대에서 창조될 뿐 현란한 조명과 불꽃같은 연기는 폐막과 함께 속절없이 소멸된다.주역의 영광도 단역의 비감도 일순간에 지나지 않아 또다른 다음 역할을 위해 새로운 삶속에 곤두박질치듯 파고들어야 한다. ○자신의 역할 예감 연극에 몸담은지 50년이 넘었건만 강계식씨는 지금도 첫무대에 서는 듯한 긴장과 설레임을 떨치지 못한다.무대는 그에게 있어 고통이자 환희다.삶이자 희망이며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다. 대본을 받아든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역할을 귀신처럼 예감한다.그것이 누구의 작품이며 연출자가 누구냐에 따라 인물이 갖는 사회적 시대적 환경과 성격,인품과 직업,체질과 용모를 몸속에 형성한다. 동네노인으로 나와 서성거리는 역에 불과할 때도 자신의 움직임이 어떤 모양새로 연극을 바쳐주느냐.연극의 흐름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를 자연스럽게 몸짓해준다.번뜩이는 열기와 광기,돋보이는 개성을 어필시킬 기회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다만 다른 연기자의 대사와 동작을 효과적으로 살려내고 대사와 대사사이,동작과 동작사이의 침묵을 묵시적인 연기로 다음 장면에 연결시킨다.그에게 있어서의 연극은 「신앙이자 종교」다.역할을 맡을 때마다 「내 생애 최고의 역할」로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다. 연습시간에도 언제나 남보다 일찍 나온다.두시간 공연에서 맨 마지막 장면의 한 동작을 위해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극의 흐름에 호흡을 맞추고 있다.무대를 떠나지 않는 그를 가리켜 연출가 오사양씨는 「선생이 창출하는 역은 항상 진실과 신뢰가 뒤따르고 높은 격조와 깊은 함축을 시사하고 있다」고 존경해 마지않았다.그의 연극초기시절부터 연극활동을 함께 해왔던 고 이해랑씨는 「작은 역이라도 열과 성을 다해 몰두하는 진정한 연기자」가 있음을 언제나 자랑삼았다.그리고 「그의 나이와 그의 성격에 맞는 역할로 그의 노년을 빛내주고 싶다」고 별러왔으나 숙제를 마치지 못하고 먼저 길을 떠났다. 물론 그는 처음부터 조역·단역배우는 아니었다.40년대와 50년대 우리 연극사에서 그는 단연 뛰어난 주역배우의 한사람이었다. ○토월회극 보고 꿈꿔 특히 유치진작 서항석연출의 「춘향전」에서의 이도령은 유치진씨가 살아생전에 「40년대 강계식의 춘향전은 지금까지 최고」였다고 손꼽던 무대다.그는 당대 명우였던 유계선 김양춘을 상대로 수차례의 「춘향전」앙코르 무대를 탄생시켰고 당시의 극단 현대극장 극단 민예와 청포도·신지극사·신청년·창조·상록극회에 이르기까지 각 극단의 간판배우로서 관객을 매료했다. 강계식씨가 연극을 하게된건 보통학교시절 고향인 충남 온양에 지방공연왔던 토월회의 연극 「디아블로」를 보고나서다.삭막하고 쓸쓸한 어둠을 가슴속에 뿌렸던 이 연극을 보고 그는 막연히 연극의 주인공이었던 이백수같은 배우를 꿈꾸게 되었다. 후에 서울로 올라와 경성실천상업학교에 다닐때도 연극구경에 미쳐있었고 북경에 있는 일인회사에 다니다가 연극을 포기할수없어 39년에 귀국,같은해 유치진 함대훈 이해랑씨가 주축이 된 극단 현대극장의 부설 연기자 양성소인 국민연극연구소에 들어갔다.3백명의 응시자중 10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하여 본격적인 연기수업 받는동안에는 꿈에 그리던 토월회의 이백수씨와 「흑룡강」을 공연,연구소 수료후 41년 유치진작 서항석 연출의 「대추나무」에서 주인공인 「동욱」역을 맡아 부민관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그때 광화문 네거리까지 길게 늘어섰던 구경꾼의 행렬은 지금 생각해도 잊을수없는 감격이다.충청도 양반다운 예절과 겸손이 몸에 밴 그는 말과 행동이 한결같이 의연하여 연출자·선배들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모든 공연에서는 주인공을 도맡았다.남부럽지않은 주인공시대를 마음껏 누린 황금기였다. 그러나 50년 극단 창조를 창립하고 「황진이」지방공연중 6·25를 만나 가족을 고향에 남겨둔채 부산으로 피란,피란지에서 영화배우 조미령의 남편인 이철혁을 비롯,변기종 김승호 최남현과 함께 박동근 연출의 중국고전인 「추해당」공연을 갖기도 했다.주인공엔 그와 유계선이 캐스팅됐다. ○전례없는 흥행 기록 다른 사람들은 단칸방이나 판잣집이라도 제집이 있었지만 그는 국제시장이나 남성여고 교실에서 합숙으로 새우잠을 자던 때여서 도무지 연극연습을 할수가 없었다.그는 몸이 달아 뜬눈으로 밤을 밝혀야했다.공연이 임박하자 이를 보다못한 유계선씨가 연출자에게 『연극을 살리기위해선 배역을 바꿀수밖에 없다』고 제의했다.그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말에 눈앞이 아찔했다.배우가 배역을 뺏긴다는 건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단한번도 선배들을 거역해본적이 없던 그는 「죽을 결심」으로 연출자인 이철혁씨를 찾아갔다. 『개런티는 안줘도 좋다.연습할수있는 방만 해결해달라.나는 죽어도 이 연극을 해내고야 말겠다』고 사정했다.이렇게해서 남포동 해변가에 하숙방을 얻어 1주일을 앞두고 동작연습 대사연습에 들어갔다.이 연극은 부산극장에서 상연되어 전례없는 흥행을 기록했고 사람들은 『그의 진실한 몸짓은 바위라도 뚫을수 있다』고 호평해주었다.자존심을 굽힌것이 결국자존심을 지킨 결과임을 경험한 순간이다. 그는 충분한 연습으로인해 무대에서 실수한 적은 없다.동랑청소년극단의 「방황하는 별들」에서 손주뻘의 어린 연기자들과 공연할때도 충실하게 자신의 할바를 지키면서 미숙한 연기자들을 말없이 감싸주었다.「일체의 영합을 배격하며 연극의 공리적 속념을 거부하고 진실일념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잃지 않은 것이다. 인생을 관조하는 노년의 노련미와 진실의 모순속에 방황하는 지성인,삶의 무게가 힘겹게 느껴지는 스산한 서민층,숱한 인생을 재현하고 체험하면서,그가 연극에서 확인한것은 인생은 「무상」이며 「고통이 할퀴고 간 사랑이라야만 진실하다」는 진리다.그리고 『언제 어느장소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있건 그것은 그에게 있어선 연극을 위한 터득이었으며 연극은 그의 인생을 터득케해준 바로미터였음을 술회한 바 있다. 그는 극단 현대극장시절의 동료였던 이용남여사(68)와의 사이에 4남3녀. 『7남매의 등록금을 대느라고 돈도 많이 꾸러다녔고 울기도 많이 했다』『세 아이가 한꺼번에 대학에 다닐 때는 다른아이는 시험에서 떨어져으면 한적도 있으나』7남매가 모두 대학에 합격하여 장남(희열씨·47)은 서울대공대 졸업후 현재 미국 컴퓨터회사에 근무,6남매가 모두 출가하고 지금은 노부부가 이대미대를 졸업한 막내딸과 도봉동아파트에 살고있다. ○“연극인생 후회없어” 주역의 뒷자리,그의 생애가 헤아릴수 없는 시련과 고통 가난의 슬픔으로 얼룩졌다해도 그는 결코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다.황금이 정신을 지배하는 시대에서 그의 연극은 황폐한 인간사이에 구원의 빛을 뿌리고 있음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이제 더이상 자기자신이 적나라한 정오의 햇살이 아님을 그는 알고있다. 『이로스야!이 갑옷을 좀 벗겨다오.하루일이 끝났다』연극 시저에서의 마지막 대사처럼 어느날 그도 무대위에서 연극의상을 벗게 될지 모른다. 오로지 정직하게 천직을 지켜온 이 노 예술가의 가슴은 값지고 아름다운 금빛훈장으로 현란하게 장식되어도 다하지 못할것 같다. □연보 ▲1917년 4월21일 충남 온양출생(호 화방) ▲1937년 경성 실천상업학교 졸업 ▲1938년 지방 관리 양성소 수료 ▲1940년 극단 현대극장부설 국민 연극연구소수료(연수기간중 유치진작 서항석연출 「순정해협」「흑룡강」 함세덕작 허집연출 「전설」출연) ▲1941년 극단 현대 극장입단 유치진작 서항석연출 「대추나무」 정식대뷔,지방공연외 「청춘」「봉선화」「맴도는 남편」「춘향전」「에밀레종」「산적」「낙화암」「무장선샤먼호」외 ▲1945년 극작가 이광래와 극단 민예 극장 창단 「카츄샤」「젊은그들」「민족의 전야」「백일홍 피는집」「동학군」「피는 물보다진하다」「피어린 역사」「지옥과인생」외 ▲1946년 연출·극작가 이상백등과 극단 청포도 창단,「초원의 발전」 ▲1947년 극단 신지극사 창단 「태양의 그리워」「언덕에 꽃은피고」 ▲1947년 중앙극장 전속극단,극단 신청년 창단 「오남매」「혈맥」「사랑의 가족」「상해야화」「골든보이」「어머니와아들」「여죄수의 고백」「공작부인」「송화강의 애수」「반역자」「사육신」외 ▲1950년 극단 창조극단 창단「황진이」지방공연중 6·25 ▲1951년 상록 극회창단 ▲1953년 극단 신협 창단멤버입단 「빌헬름텔」「햄릿」「오델로」「맥베드」「줄리어스 시저」「붉은장갑」「마의태자」「원술랑」「맹진사댁경사」「나도 인간이 되련다」「한강은 흐른다」외 ▲1957년 국립극단입단 「인생차압」「딸들자유연애를 구가하다」「가족」「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대수양」「카라마조프의 형제들」「성웅 이순신」「죄와벌」「손탁호텔」「마을의 봉팔이」「순교자」 80년대까지 70여편 ▲1980년∼현재 극단 배우극장 소속 「천일의 앤」「정복되지 않는여자」「분노의 계절」「신장한몽」「어머니」외 「그래도 우리는 볍씨를 뿌린다」「이대감 망할대감」「붉은 카네이션」「밤주막」「출세기」등 타극단 공연 참가 ▲1986년 고희기념공연 윤정선작 주요철 연출「나는 어이 돌이되지 못하고」 등 2백여편 1946년부터 영화 「청춘의 행로」「쌍룡검」외 TV드라마등 1백여편. ▲국립극단 부단장·총무역임. 86,동아연극상 특별공로상 87,백상연극상 특별상 92,문화훈장 옥관장 서훈·고희기념문집 발간
  • 서예가 김기승씨(이세기의 인물탐구:21)

    ◎“힘차고 남성적인 운필” 원곡체 창안/한자명체 두루 통달… 독창적 변형경지 도달/고 최현배박사도 “한글 본연성품 표출” 칭송/성경구절 작품화 유명… 도산선생 묘비문 등 명필남겨 글씨를 이루기전 작업대앞에 선 원곡 김기승씨의 모습은 신을 향한 기도처럼 절실하고 경건하다. 눈부신 백지위에 붓길이 닿는순간 율동처럼 이어지는 묵향,어느때는 일필휘지,어느 때는 점 하나에도 혼신을 다해 멈출듯 흐느끼는 ▦황은 그 자체가 이미 통신의 경지다. 마치 자신의 손이 아니라 신에 의해 움직이는것처럼 힘차게 그어내린 획마다에선 맑고도 밝은 상서로운 향기를 뿜어낸다.그리고 그 몇순간의 긴장은 폭풍전야의 정적인듯 은은히 주위를 압도한다. 원곡의 문향실은 그가 38년간 머물렀던 종로구 적선동에서 이곳 워커힐 아파트로 옮긴지 올해로 만 10년이된다. 요즘도 여전히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독교 방송을 들으면서 하루일과를 시작하고 근처 아차산에 올랐다가 내려와서 바로 작업에 임한다. 그리고 하루 2시간에서 3시간,전날 독서로 구상해두었던명언·명구를 마음속에 새겨 우러나오는 진한감동을 작품속에 담아낸다. 그는 글씨를 이루는데 있어 아름다움은 언제나 「선」이어야함을 전제하고 있다.이른바 선하지 않은 것은 미가 될 수 없다는 논리다.기술이 피부라면 인격은 근골이다.티없이 청정한 피와 살과 뼈대가 합일될때만 비로소 미의 영혼이 글씨와 글속에 첩식된다는 것이다.순수한 서체에서의 체삽이나 시속기는 천착스러움의 극치다.글이 뜻하는 바를 거르거나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타내기 위해선 심혼의 혈서로 성자에 임해야 한다고 말한다. ○글씨 내재의미 중시 「초학자시 불가진형세 선상자성의 재필전」­글씨는 처음 대할때 그 형세를 알수없으니 먼저 글씨가 이루어짐을 생각하면 뜻은 쓰기전에 있게 된다,즉 원곡은 서의 진수는 글씨의 모양에 두기보다 그 내부에 내재된 뜻을 소중하게 여기는 투철한 작가정신으로 일관되어 있다. 해서·행서·초서·전서·예서등 한자체에 두루 통달하여 일가를 이룬동안에도 그는 한때 중국말로 된 성경을 국전에 출품한 적이 있었다.막상 이를 내놓았으나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 그때부터 그만의 독특한 원곡체를 창안,한문각체의 독창적 변형을 한글에 적용시킨 이 서체는 한자와의 대련 작품을 쓸때도 조화와 균형을 깨지않는것이 특징이다. 옛날 궁중에서 궁녀들이 소설을 베낄때 사용한 궁체가 부드러운 반흘림의 반행초의 실용글씨라면 원곡체는 한문보다 힘차고 남성적인 운필,구슬을 꿴듯한 우아미보다 먹물이 뚝뚝 듣는 힘의 분출이 돋보이는 서체다. 한글학자 고 최현배박사는 원곡의 한글체를 보고 『산같이 망막하고 강같이 줄기차다.우리의 한글이 제본연의 성품으로 온전히 나타났다』고 칭송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그의 독창성이 지나쳐 그 자신이 스스로 「전위예술」이라 일컬었던 「묵영기법」은 서예계에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큰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묵영기법이란 청묵의 번짐을 사용하거나 먹물의 농담으로 거듭써서 시각효과를 앞세운 일종의 회화적 서예 회화인 셈이었다. 서예계는 『전위예술,즉 묵영은 서예에서는 있을수 없다』고 발칵 뒤집혔고 심지어는 『전통을모르고 전통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나타난 예술』로 혹평되기도 했다. ○「묵영기법」 논쟁불러 이때도 젊은감각과 시대에 부응하는 예술을 지향해온 원곡으로서는 전통예술을 지키기 위해선 고루하게 전통만을 고집하기 보다 오히려 여러각도의 실험과 시도를 언해 새로운 조형언어를 발굴,전통의 소중함은 물론 각자의 개성과 특성을 살려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평생동안 그가 써온 작품은 개인전때마다 40점에서 60점씩 32회.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평소에 아끼는 성경구절들은 그때마다 아름다운 작품으로 담아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육당 최남선의 「삼·일독립선언문」을 비롯,제갈량의 「전후출사표」는 3천자이상,아가서8장 4천여자,무위자연의 노자 「도덕경」5천여언,특히 굴원의 「이소경」의 경우는 사적고증,한자구성·암기 등으로 6개월준비,집묵만도 10일이상 걸린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랜 연륜과 우수사려가 없는 마음가짐으로 인해 그의 글씨에는 향기는 물론 불가사의한 힘이 담겨 있다. 올해나이 84세.그러나 그 음성과 행동에서 연노의 기색은 찾아볼수 없다. 또 서예계 최고 원로의 권위의식 같은것도 없다.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격의없이 친절하고 편안하게 대한다. 1909년 충남 부여군 홍산면 조현리에서 김정현씨와 김취옥여사의 2남중 차남으로 출생.5세때부터 조부인 동효공이 설립한 한문서당 삼언재에서 글씨와 천자문을 배웠고 홍산소년백일장에 나가 한시짓기 장원,11세때 보통학교 2학년에 들어가면서 신교육을 받게됐으나 공주고보 2학년때 일인체조교사를 배척하는 맹휴의 주동자로 지목되는 바람에 서울 휘문고보로 전학,그후 만주로 건너가 봉천 문회고급중학과 상해중국공학대학 경제과에 다녔다. 상해유학시절 흥사단 원동위원부에 입단하여 도산 안창호선생을 모신 독립운동에 가담,국내신문의 주요기사를 발췌정리하여 국내정세를 보고하거나 흥사단 행사때마다 글씨를 잘 쓴다고 해서 식순을 쓰는 일 등을 맡아보기도 했다. ○흥사단서 독립운동 그때부터 대학에서 공부한 경제학보다 글씨 쓰는 일에 심취하여 졸업후 고향에 돌아오자 고장의 명필인 산정 신익선선생에게 본격적으로 글씨를 배웠다. 하루종일 쓴 글씨가 집안마당에 흰눈처럼 수북히 쌓였던 기억은 지금도 그에게 불길같은 작업의지를 당겨준다고 한다. 그후 다시 서울로 올라와 소전 손재형선생에게 사사.『재주는 있으나 헛 공부했다』는 혹독한 질책을 받으면서 그는 구양순 안진경 왕희지의 법첩으로 겨울밤이 지새도록 수련을 쌓아갔다. 봉천 문회고급중학교때 남경서 신학대학을 나온 백영엽목사의 영향을 받아 크리스천이 된 그는 조국에 돌아가면 목사가 되려했으나 글자 한자한자의 그 묘한 성자에 빠져 글씨쓰는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게 되었다.그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글씨로 전한다는 의도에서 성경구절을 작품에 담게 되었고 성경구절을 쓴 작품만도 6백여점에 이른다. 새문안교회에 다닌지 45년,출중한 건강을 타고난 그는 담배나 커피·술은 입게 대지 않는다. 산부인과 의사인 부인 차인실씨(82)와는 1939년에 결혼,외아들인 명호씨(53·미앨라배마에서 병원)와 4녀가 있다. 원곡은 주변을 조금씩 정리해 본다는 뜻에서 지난83년 그가 아끼던 자작품 2백87점을 골라 국립현대미술관에 보내던날,아들 딸을 결혼시켜 내보낼때보다 더 가슴저미는 허망함과 섭섭함에 그날밤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고 말한적이 있다. 지난 90년에는 그가 한평생동안 소장해왔던 추사 김정희의 「고시행서」위창 오세창·김구선생의 글씨,청전 이상범과 절친했던 운보 김기창,청계 정종여의 금물로 그린 「독수리」등 30억 상당의 골동서화를 아들의 모교인 연대박물관에 기증. 1958년 제1회 개인전을 필두로 신세계미술관이 주관하는 개인전이 끝나면 부인과 자녀들이 권유하는대로 이대와 고려대 중앙대등 각 대학에 작품을 나누어 보낸다. ○33회째 개인전 준비 그가 제정한 원곡서예상은 올해 16회째,오는 10월25일부터 제33회 원곡서예개인전을 역시 신세계미술관에서 갖게된다. 도산 안창호선생의 묘비문을 비롯,수백여개의 비문과 동상문 현판글씨 시비등 전국 방방곡곡에 그의 글씨가 산재해 있으나 단 한글자도 그는 허트로 내놓는 일은 없다. 그의 마음가짐은 「논어」에 나오는­ 「불지명이면 무이위군자야요 불지례면 무이립야요 불지언이면 무이지인야라(천명을 알지못하면 군자가 될수 없고 예를 모르면 세상에 나서 행세할수 없고 말의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지 못한다)」를 실천하며 앞만보고 살아왔다.분한이 있으면 향기로운 글,빛을 발하는 글에 이를수 없기 때문이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대덕약곡」(큰덕은 골짜기 같아야 한다)」에서 따온 그의 아호인 원곡처럼 그래서 나를 낮추고 남을 섬기고 마음을 텅비운 맑고 깊은 골짜기,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포용하면서 묵묵하게 자신의 일에 정진하는 예인의 자세를 지킬 뿐이다. □연보 ▲1909년 충남 부여 홍산출생 ▲1927년 만주 봉천 문회고급중학졸업 ▲28년 흥사단 원동위원부입단 안창호 김구 이동령선생이 이끄는 한국독립당입당 ▲1932년 중국 상해 중국 공학대학부 경제과 졸업 ▲1936년 소전 손재형선생사사 ▲1939년 조선서도 진흥회 주최 전국서도전 입선 ▲1942년 중국 상해서 전중국서화전 입선 ▲1946년 전국 서화전 이등상 ▲1949년 제1회국전 서예부 특선(문교부장관상) ▲53∼55년 국전 제2·3·4회 특선 ▲〃 대성 서예학원 설립 ▲〃 서울대·숙대·상명여대 출강(15년간) ▲56∼58년 국전 제5·6·7회 추천작가(출품) ▲58년 제1회 원곡 서예전 ▲59·60년 〃 제8·9회 초대작가(출품) ▲61∼82년 국전 제10∼30회 국전심사위원·운영위원 ▲59∼89년 원곡서예전 제2회∼29회 개최 ▲1976년 미국·유럽 미술여행 ▲78년 제1회 원곡서예상 제정 ▲79년 동아일보 주최 원곡서예 회고전 ▲79년 북유럽및 캐나다 미술여행 ▲〃 제1회 원곡 미술상 제정 시상 ▲79∼92년 제2∼15회 원곡서예상 시상 ▲83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자작 대표작(2백87점 기증) ▲84년 주일 한국 대사관 한국문화원 초대 서예전 ▲87년 봄베이·카이로등 유럽지역 여행 ▲기독교 미술인 협최 회장역임 고왕경·김강경·경천애인·시편23편·이소경·삼일독립선언문·애경·전후출사표·1오일삼성오신·불원천불우인·묵시록등 1천여점 은관문화훈장 한국서예사 원곡서문집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12)

    ◎암흑속의 공로/언어탄압에도 우리말 지켜와/한국최초의 여기자 1920년에 선발/인신매매 비리 등 추적… 언론기능 수호 한일합방후 그 제호에서 「대한」을 떼버리고 조선총독부의 기관지로 전락한 매일신보(1938년부터 매일신보로 개제,이하 「매신」으로 통칭)는 일제의 한국병탄을 합리화하는데 이용됐다.민족의 존재를 부인한 언론으로 오욕의 역사를 대변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그래서 민족주의적 입장의 신문사 연구학자들 가운데는 일제통치하에서 민족지가 존재하지 않던 1910∼20년,1940∼45년의 두 시기를 「무신문기」로 분류하는 이도 있다. ○일제치하 1차사료 그러나 정진석교수(외국어대)는 그의 저서 「한국언론사」에서 ▲민족지가 없던 시기의 1차사료 ▲민족지와의 비교 대상 ▲우리 언론인및 문인들의 피난처및 발표지면 제공등의 이유를 들어 매신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매신은 비록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보도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지만 사회·문화 보도에 있어서는 문제점을 적시,총독부의 그릇된 정책을 일깨우기도 했다.그리고 일제말기 우리글 말살정책하에서 유일한 한글매체로 우리글 보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매신은 또 조선 동아의 강제폐간으로 오갈데 없어진 당시 언론인들의 은신처로 제공돼 그들이 해방후 민족정론을 펼칠수 있는 기반을 닦을수 있도록 했다.특히 최초로 기자공채제도를 도입,여기자를 채용하는등 부분적으로는 신문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는 사실도 부인할수 없는 것이다. 매신은 인재의 폭넓은 등용을 위해 최초로 기자공개채용을 실시했다.이는 당시 아는 사람의 소개등으로 신문기자가 되던 관행으로는 혁신적인 것이었다.매신의 첫 기자채용은 1918년 이다.이무렵 홍란파와 유지영이 매신에 합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들은 후에 음악도로 이름을 날렸는데 당시 신문사는 시인 소설가뿐 아니라 음악·미술학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예술인들의 집합소이기도 했다.그후 기자공채가 지상에 보도된 것을 중심으로 보면 20년7월,29년8월,35·36·38·39·40년 1월에 이뤄져 비교적 정기적으로 이뤄졌음을 알수 있다. 40년 이후에도 여러차례 견습기자를 모집했다.매신보다는 10여년 늦은 민간지는 조선일보가 1930년에 처음으로 기자를 공채했으나 그나마 지속시키지 못했던데 반해 매신은 공개채용의 제도화와 함께 타사와의 활발한 기자교류도 시도했다.당시 기자채용의 자격요건은 전문학교 졸업자로 초기에는 30세미만이었으나 40년부터는 27세로 연령을 낮추었다. ○인재를 폭넓게 등용 기자공채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여기자 공채였다.매신 20년 7월2일자에는 부인기자를 채용한다는 사고가 실려있다.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기자 탄생을 알리는 신호같은 것이었다.당시의 사고는 부인기자의 채용이유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부인계의 해방을 위해 가정개량및 부녀개조의 완벽을 기함에는 현숙박학한 숙녀의 책임있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시세의 요구」때문이라고 강조했다.또 응시자격은 ①가장있는 부인 ②20세 이상 30세 이하 ③고등보통학교 졸업정도 이상으로 문필취미가 있는 부인등으로 못박았다. 이무렵은 조선과 동아가 창간된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때다.그때까지 유일한 우리말 신문으로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던 매신은 경쟁상대들의 출현으로 편집국을 개편하고 그들과의 차별화와 새로운 이미지를 심기위한 노력을 기울였다.여기자채용은 그 일환으로 실시된 것이지만 여자들의 문밖출입마저 철저히 금하고 있던 당시의 사회분위기에서 여성의 기자직 진출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이때 뽑힌 여기자가 이각경이다.지금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여기자로 알려져온 최은희(1924년 조선일보 입사)보다 4년이 앞섰다.1897년 2월 서울에서 출생한 이각경은 한성여자고등학교(현경기여고) 기예과와 사범과를 나와 2년간 교편생활을 하다 매신에 입사,9월5일 정식으로 발령을 받았다.그녀는 9월14일자부터 기사를 쓰기 시작해 「부인기자의 가정방문기」「축첩에 대한 이해」「위생에 대한 주의」를 비롯,가정·여성·아동·교육문제등 수많은 기명기사를 남겼다. 총독부기관지로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매신의 기자들은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파헤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30년대말 「기생 박애란 음독자살사건」은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권번기생 출신인그녀는 24세때 돈많은 지주의 소실로 가게 되었다.그러나 그녀는 따로 좋아하는 남자가 있어 끝까지 거절하자 기생어미가 그녀를 창녀굴에 팔아넘기려 했다.그러자 머리물들이는 약을 입에 털어넣고 자살한 사건이었다.매신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인신매매가 공공연하게 허용되고 있는 사회비리에 초점을 맞춰 심층보도했다. ○사회의 문제점 고발 그 결과 한달후 총독부령으로 전국적인 인신매매행위 엄단이 공포되었고 현재 빚에 묶여있는 기생이나 창녀들을 무조건 해방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지기에 이르렀다.또 「용인보통학교 생도구타사건」도 비슷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용인 어느 학교 3학년생이 수업료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본인 교사에게 매를 맞고 늑골이 부러졌는데 이를 항의하던 생도의 아버지도 교장에게 구타를 당한 사건이었다. 생도가 서울 의전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독자의 제보를 받고 뛰기 시작,사건의 전모와 학생체벌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보도를 했다.결국 보도가 나간지 얼마 안돼서 그 교장과 교사가 파면되었으며 각급학교에 생도들에 대한 체벌을 경고하는 지시가 내려졌다. ○40년대 45만부 발행 매신은 40년대들어 일제의 우리 언어말살정책에 따라 각급학교에서 우리말을 못가르치게 하고 일상생활에서도 일체 우리말의 사용을 금지시킨 상황에서 우리말과 글을 지켜나간 유일한 매체였다.이때문에 전쟁중 45만부에 달하는 엄청난 부수 신장을 가져오기도 했다. 매신은 또 조선 동아가 폐간당하자 해고된 수많은 언론인들에게 호구지책이든 호신지책이든 일종의 피난처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다.매신은 전쟁중 어려운 시기에도 자체 감원이나 감봉없이 사원들을 안정시켰다.그리고 오갈데 없어진 언론인들을 포용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이무렵 매신에 들어온 대표적 언론인들은 백철 정비석 정현웅 이관구 우승규 서승효 김규택 조풍연 곽복산 조경희 노천명 이홍식 박종수 홍종인씨등이다.이들은 광복후 대한민국의 문화·언론계를 이끌어나간 인재들이기도 했다.매신은 이들이 좌절하지 않고 때를 기다릴수 있도록 피난처를 제공해준 것이다. 매신이 총독부기관지라는 굴레속의 언론이라는 사실은 결코 숨길수 없다.그러나 일제통치 기간중 한번도 중단됨없이 우리말 신문의 위치를 지키는 가운데 많은 역할들을 수행해 왔다는 점에서 그 존재가치가 새롭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한국언론사」(정보석·나남 1990) 「언론비화 50편」(한국신문연구1978) 「한국언론인물사화」상·하(대한언론인회 1992)
  • 전교생 「5년 무사고」 결실/무안국교교사 사랑의 「교통안전교육」

    ◎가족과 밤새워 안전표지판 제작… 교내 설치/준법 생활화… 사고줄이기운동 대통령상 전남 무안군 무안읍 성내리 무안국민학교(교장 김상빈)는 학교 전체가 거대한 교통안전학습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문을 들어서면 바로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설치돼 있고 모든 건물 복도에는 중앙선이 그려져 있으며,복도 벽면에는 올바른 횡단보도이용방법등 41가지의 보행수칙 그림과 교통안전 표지판등이 걸려 있다. 학교를 찾은 외부사람이 무심코 교통신호를 무시하거나 중앙선을 넘어 걸으면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주위에 있는 어린이들의 시선이 따갑게 꽂힌다. 무안국민학교가 교통안전학습장이 된 것은 지난 88년 박학수교사(38)가 부임해오면서부터. 주변에서 교통사고의 피해를 자주 보았던 박교사는 무안국민학교가 광주∼목포간 고속화도로변에 위치해 있어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교통안전교육을 철저하게 시키기로 결심했다. 박교사는 자기 학급부터 교통안전에 관한 그림그리기·글짓기를 시작했으며 퇴근해서는 가족과 함께 밤을 새우며 교통안전표지판을 만들어 교내 곳곳에 설치했다. 이같은 노력은 전체 교사에게 확대돼 어린이교통경찰대 조직,자전거통학자에 대한 면허증 발급등 각종 교통안전 교육방안이 학교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지난해 교통안전진흥공단이 주최한 교통사고줄이기운동촉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박교사는『지난 5년동안 무안국교 학생가운데 교통사고 피해자가 한명도 발생하지 않은 것이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 「핵가족」가속…1가구 3.7명꼴/90년인구·주택센서스 부문별 내용

    ◎30∼34세 여자 5.3%가 미혼… 남자는 13%/아파트비중 갑절로… 평균건평 2.6평 늘어/입식부엌 52%·수세식 화장실 51%·목욕시설 44% 11일 발표된 「90년 인구주택센서스」는 90년 11월1일 현재의 한국 가정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이번 조사결과는 85년의 조사결과와 대비할때 우리사회가 얼마나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가를 수치로 보여주고 있다.문화시설은 5년전에 비해 거의 배가 늘어났고 주택사정도 크게 호전되고 있다.만혼·독신인구의 증가도 뚜렷한 현상이다.또한 태아감별법의 발달등으로 남녀간 인구구조가 인공적으로 깨어지고 있음도 실증됐다.다음은 분야별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인구◁ 총인구 4천3백41만1천명중 남자는 2천1백78만2천명으로 2천1백62만8천명인 여자인구보다 15만4천명이 더 많다.남아선호를 반영,여자인구가 7% 증가하는 동안 남자인구는 7.6%가 늘어났다. 시도별 인구분포는 서울이 총인구의 24.4%로 가장 많고 다음이 경기로 14.2%,경남 8.5%의 순이다.인구의 도시집중을 반영,전남(◎11.8%),강원(­8.4%),전북(­6%),충남(­5.7%),경북(­5%),충북(­0.1%)등의 인구가 각각 감소했다.나머지 시도의 인구는 인천이 31.1% 늘어난 것을 비롯,모두 증가했다.경기가 28.4%,광주 25.7%,대전이 21.2%,서울은 10.1%가 증가해 평균 인구증가율 7.3%를 웃돌았다. 외국인의 수는 2만5백25명으로 85년보다 8천3백9명이 감소했다.주로 화교들의 본국귀환 때문으로 보이는데 국적별로는 여전히 중국이 47.8%로 가장 많다. ○서울 전체의 24% 여자 1백명당 남자인구는 0∼4세에서 1백11.4명으로 가장 많았다.5∼9세는 1백8.2명,10∼14세는 1백8.1명으로 태아의 성감별등이 인구구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북에서 출생한 인구는 41만7천명으로 43.8%가 서울에 살고 있고 출신 도별로는 황해도가 33.5%로 가장 많고 다음이 평남 18.1%,함남 16% 순이었다. ○만혼·독신화 뚜렷 연령별 혼인상태는 남여 모두 만혼 또는 독신화 경향이 높아가고 있다.여자의 경우 30∼34세의 5.3%가 미혼으로 85년의 4.2%보다 크게 높아졌고 남자의 미혼율은 9.4%에서 13.9%로 더더욱 높아졌다. ▷가구◁ 총가구수는 9백59만8천개에서 1천1백37만6천개로 늘어났다.가구수 증가율은 18.5%.평균 가구원수는 4.1명에서 3.7명으로 감소함으로써 핵가족화가 진전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2세대 가구는 66.3%,3세대 가구 12.2%,1세대 가구 10.7%,단독가구 9%였다. ○상수도보급 76% 가구주의 혼인상태는 배우자가 있는 가구가 79.7%로 가장 많고 다음이 사별 10.5%,미혼 8.3%순이었다. 가구별 편의시설은 입식부엌 사용이 52.5%,수세식 화장실 51.3%,목욕시설이 44.1%에 불과해 주거시설이 아직 선진국권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다만 상수도시설 보급률은 시 이상 93.1%,전국 평균 76.6%로 비교적 높았다. 6공화국이 최대의 사업으로 펼치고 있는 2백만호 주택건설의 효과가 분명한 것으로 나타났다.아파트가 집중적으로 건설됨에 따라 85년 13%였던 아파트의 비율이 배에 가까운 23%로 높아졌다.네집중 한집이 아파트에 사는 셈이다.그러나 단독주택의 비중은 66%(85년 77%)로 여전히 제일 높았다. ▷주택◁ 전체 주택의 72%에는 한가구만이 살고 있다.2가구가 사는 주택은 전체의 13.7%,3가구 주택은 6.8%였다.1가구 거주주택이 85년의 69.7%에서 2.5%포인트가 증가해 주택사정이 호전됐음을 입증하고 있다. ○신규주택 대형위주 주택당 평균 방수는 4개로 85년의 3.6개보다 크게 늘어 대형화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연건평으로 보면 7평 미만이 2.4%에서 1%로 줄고 7∼8평은 4%에서 2.5%로,9∼13평은 19.4%에서 16.1%로,14∼18평은 27.6%에서 26.4%로 각각 줄어들었다.반면 19∼28평은 29.2%에서 31.5%로,29∼38평은 9.1%에서 10.8%로,39∼48평은 4.1%에서 5.2%로 각각 늘어났다.신규로 공급되는 주택이 대형 위주로 흐르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이에따라 주택당 평균 연면적도 85년의 22.9평에서 25.5평으로 2.6평이 늘어났다. ▷통근·통학◁ 총인구의 49.3%인 1천7백3만1천명이 매일 통학 또는 통근을 하고 있다.남자는 12세이상 인구의 64%,여자는 34.7%가 통학·통근을 한다. 지역별 통근율을 보면 인천이 41.2%로 가장 높고 서울 39.9%,부산 37%,경기 36% 순이다.통근율이 가장 낮은 지역은 전남으로 14.8%에 지나지않는다. 대도시의 주야간 인구이동 추이를 보면 서울은 주간 유입인구가 67만6천명인데 비해 유출인구는 35만6천명이어서 유입인구가 32만명이나 많다.서울은 1백3.8%,경북은 1백2.6%,경남 1백1.1% 등으로 주간인구가 야간인구보다 많은 지역들이다.그러나 인천은 유입인구가 8만3천명인데 비해 유출인구는 14만9천명이나 돼 주간 인구지수가 95.2%,경기는 94.3%로 주간 활동인구보다 야간인구가 더많다. ○서울 순유입 32만명 서울시만 떼놓고 보면 주간 인구지수가 제일 높은 곳은 중구로 3백37.2%,다음이 종로구로 2백24%였다.반면 중랑 성동 도봉 마포 송파 강동구등은 주간인구가 야간인구보다 적어 주간 인구지수가 1백 이하였다. 6대 도시의 통학·통근인구가 집을 나서는 시각은 거의 7할 정도가 아침 7시에서 8시30분 사이이다.30분 간격으로 보면 인천을 제외한 5대 도시에서는 8시에서 8시30분에 출발하는 사람이 가장 많고 인천은 7시에서 7시30분 사이에 출발하는 사람이 가장 많다.인천의 경우 7시 이전에 출발하는 통학·통근인구도 15.9%나 됐다.평균 출발시간에서도 인천이 제일 이른 7시37분이다.다음이 부산으로 7시53분,광주 7시55분,서울 7시56분,대전 7시57분,대구 8시2분의 순이다.인천이 서울보다 작은 도시이면서도 평균 출발시간등이 이른 것은 서울로 출퇴근 또는 통학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통학·통근인구가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서울의 경우 시내버스 이용이 35.9%로 여전히 가장 많았다.다음으로 승용차가 11%,전철 지하철 10.4% 순이었다.택시와 버스 지하철등 2개 이상의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비율도 9.9%나 됐으며 그중에서도 시내버스와 전철 또는 지하철을 복합이용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6.1%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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