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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통대우」 받는 미 대통령 딸/김수정 국제부 기자(오늘의 눈)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무남독녀 첼시아양(17)이 오는 가을,서부의 명문 스탠퍼드 대학에 입학한다.하버드·예일·프린스턴·브라운 등 내로라 하는 대학들로부터 입학허가서를 받아 올초부터 관심을 모은 그녀의 진로가 확정된 것이다. 92년 클린턴이 아칸소주 지사에서 백악관으로 입성할 당시 공립학교 8학년(한국의 중학교 2학년)이던 그녀는 고수머리에 치아교정보철기를 낀 장난기 넘치는 중학생이었다.최근엔 시드웰 프렌즈 고교 축구선수로 맹활약하는 모습도 간간이 소개됐다. 외신에 비친 미국 「대통령의 딸」은 항상 밝고 건강했다. 그녀가 입학원서를 낸 지난달 30일 스탠퍼드대학측은 『입학을 환영한다.하지만 보통학생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의 상류급 인사나 그 자녀들이 특정단체에 들어갈 때마다 이들 단체들이 심심찮게 밝혀왔던 논평들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주목할 것은 거취가 이렇게 공개된 첼시아가 바로 아직도 청소년기인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이다. 첼시아의 스탠퍼드 입학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는 이땅의 전현직 대통령 자녀들의 일그러진 초상을 떠올리게 된다. 요직인사의 자녀가 성인이 된 뒤 자신의 책임하에 저지르는 각종 범죄의 모태는 바로 그들이 그늘의 「황태자」「황녀」로 성장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대통령 자녀들의 근황을 『누구때문에 과외를 금지한다더라…』 『누구 때문에 단기 장교제도가 생겼다는군…』 『누구 때문에 어느 대학이 급성장했대…』 등의 소문과 얽힌 뒷소리로만 들어왔을 뿐이다.교육문제에 관한 한 지극히 민감한 우리 국민들의 속을 끓인 소문들이었다. 이 소문들의 진위를 가리자는게 아니다.대통령 자녀들의 건전하고 밝은 청소년기의 중요성,또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의 「열린 대통령 가족」됨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이든,현 대통령이든 그들의 자녀를 「그늘의 황태자·황녀」로 키우는 일은 없어야겠다. 얼마전 거액 외화 밀반출을 기도해 한국을 망신시킨 전 대통령의 딸,히로뽕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해 동정받고 있는 또다른 전 대통령의 아들,그리고 현재 나라 전체를 기우뚱거리게 만든 대통령의 아들.그들은 모두 「그늘의 황태자·황녀」였기 때문이다.
  • 대학기숙사 대학·지역발전의 한축/장수영 포항공대 총장(시론)

    우리나라에는 163개 대학에 150여만명의 학생이 있다.그러나 이렇게 대학이 많아도 기숙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대학도 있고 기숙사가 있어도 수용능력이 학생수의 5%에도 못미치고 있다. ○학생수용 고작 5% 미만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대학에는 여러 가지 전공을 하는 학생들의 기숙사를 겸한 칼레지가 각각 30여개씩 있다.여기서 말하는 칼레지는 우리의 단과대학과는 전혀 다른 기숙사와 식당,도서관을 갖추고 가족과 함께 사는 학장이 있는 기관이다.칼레지에서는 강의는 안하고 개인교수만 받고 강의는 학부(패컬티)에서 받는다.그러므로 대학 주변은 출퇴근시간에 교통이 혼잡스럽지 않다. 우리나라 도시의 교통혼잡은 대학에 기숙사가 없기 때문에 야기되는 부분이 많다.서울에 있는 대학생수가 38만명이나 되는데 매일 아침저녁 통학이 교통혼잡의 큰 원인이 되는 것이다.한 학생이 하루 통학하는데 2시간이 걸린다고 볼 때 기숙사에 산다면 그 시간에 공부를 할 수 있으므로 엄청난 시간을 절약하게 된다.전국의 대학생을 모두 수용할 기숙사를 한꺼번에 지을수는 없으나 이와같은 사실을 인식해서 정부가 낮은 이자로 대학에 기숙사 건축비를 융자해 주면 각대학은 기숙사를 매년 지어서 10여년후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기숙사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지금도 그와같은 융자계획이 있기는 하나 액수가 너무 적어서 혜택을 받는 대학이 극소수다. 이와 관련해서 지방의 의회가 그 지역 출신학생들을 위하여 서울에다 기숙사를 짓겠다는 발상은 재고해야 한다.서울소재 대학은 무조건 지방소재 대학보다 좋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각종대학평가에서도 지방소재 국립대학들과 일부 사립대학은 서울소재 대학들보다 교수진과 설비가 더 나은 곳이 많이 있음이 증명되고 있다. ○건축비 저리융자 혜택줘야 예컨데 부산·경남지역에는 부산대학교,대구·경북지역의 경북대학교,광주·전남지역의 전남대학교,전주의 전북대학교와 대전의 충남대학교 등은 대부분의 서울소재 대학들보다 내실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지역의 도의회나 시의회는 서울에 기숙사를 지을 것이 아니고 그 지역의 대학을 아끼고 지원해 주어야한다.이 대학들을 국립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고 광역시와 도민의 대학으로 간주하여야 한다. 인구가 불과 57만밖에 안되는 미국의 버몬트주는 버몬트주립대학을 운영하고 있으며 인구 68만의 델라웨어주도 역시 좋은 주립대학을 가지고 있다.로드아일랜드주도 인구는 백만밖에 안되지만 주립대학을 잘 운영하고 있으며 인구 280만의 아이오와주는 두 개의 큰 주립대학을 가지고 있다.인구 450만의 미네소타주는 세계적인 미네소타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이 주들보다 인구가 더많은 우리의 도와 광역시들은 대학교육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대학들이 그 지역의 경제에 끼치는 영향도 엄청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의 대학에 기숙사를 지어줄 생각은 안하고 서울유학생들에게 기숙사를 지어 주겠다는 생각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서울유학생들은 대부분 서울에 남아서 활동하며 고향에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돌아오는 경우는 교수나 변호사가 되어서 돌아온다고 하나 그 수는 극소수다. ○교통난 해소에도 도움 이제 광역시와 도의 시장·도지사와 의회는 그 지역 대학들에게 기숙사를 지어줌으로써 지역에 공헌할 인재를 기를 뿐 아니라 교통혼잡을 줄이는 이중의 효과를 본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조속히 실천하기를 바란다.
  • 초등교에 영어 전담교사 둔다/각의 시행령 개정안 의결

    정부는 25일 이수성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초등학교에 영어 전담교사를 둘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교육법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초등학교가 12학급 이하이거나 중학교가 6학급 이하이면 학교 설립·경영자가 통학거리 등 교육여건을 고려,두 학교를 통합운영할지를 결정토록 했다.
  • 초등교 4대 동문 서울서 첫 탄생(조약돌)

    ○…서울 금천구 시흥동 시흥초등학교 졸업식에서 4대 동문가족이 탄생.서울에서는 처음이다. 19일 열린 졸업식에서 안준혁군(12)은 1916년 졸업생인 증조부 안일준씨(작고·3회),과거 15년동안 이 학교교사로 재직하기도 한 할아버지 병덕씨(76·21회),아버지 광찬씨(45·52회)을 이어 4대 동문가족으로 감사장을 수상. 특히 안군의 형제 및 사촌 등을 모두 합하면 18명 친인척이 이 학교 동문.현재 안군의 여동생도 이 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다. 1911년7월 시흥공립국민학교로 개교한 시흥초등학교는 올해까지 84차례 졸업생을 배출.한때 시흥동뿐 아니라 독산동·광명시·안양시에서도 통학할 정도로 큰 학교였다.분교로 분리돼 나간 초등학교만도 은천·백산·문백·신흥·독산·금천 등 13개 교에 이르러 지역학교의 「모태」로 불린다.
  • 이거룡씨 「인도철학사」 제2부 출간

    ◎B.C.6∼2세기 「인도사상」 해부/당시 불교·정통힌두교 철학적 친화성 초점/“「붓다」 절대성도 우파니샤드 전통위에 존재” 현대 인도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라다크리슈난의 「인도철학사」(한길사 펴냄) 제2부가 소장 인도철학자 이거룡씨(동국대 강사)에 의해 번역·출간됐다. 「인도철학사」는 인도철학사상 예외로 취급됐던 자이나교·불교·유물론 등에 대한 새로운 자리매김을 시도,인도철학을 세계철학의 반열에 올려놓은 고전.1부가 베다와 우파니샤드로 상징되는 아리아적인 사색의 결실이라면,2부는 비아리아적인 요소 즉 인도의 토착적 요소가 강조되던 기원전 6∼2세기의 인도사상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서사시 시대」라고 할 이 시기는 어느 때보다 다양한 학파들이 생겨났으며 일반대중 사이에는 성전서가 널리 유행하는 등 철학적 실험정신이 팽배했다. 이 책은 인도철학을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라는 세개의 축을 중심으로 살핀다.특히 불교와 정통 힌두교 철학간의 친화성을 밝히는데 초점을 맞춘다.라다크리슈난은 불교를 힌두교가 발전 혹은 변형된 것으로 간주한다.그에 따르면 불교와 힌두교는 공동의 토대를 지니며 붓다는 우파니샤드의 전통위에 서있다.나아가 붓다의 사상이 아무리 독창적이라 해도 그 시대의 역사적인 상황을 떠나서는 이해될 수 없으며,붓다의 「절대존재」도 우파니샤드의 아트만 또는 브라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인도 사상사를 살펴볼때 불교는 언제나 힌두교 정통학파의 비판대상이 되어왔으며,그 비판의 핵심은 불교의 무아설과 그 근저에 놓인 찰나설이었다.그러나 라다크리슈난은 붓다의 침묵을 우파니샤드의 아트만에 대한 묵인으로 해석함으로써 전통적인 인도 사상가들의 불교이해와는 상당한 편차를 보인다. 자이나교에 대해 라다크리슈난은 어떤 입장일까.그는 우선 자이나교가 불교의 한 분파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불교와 자이나교가 제1원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출가 수행자집단을 지니며 어떤 명분으로든 산 생명을 죽이는 것을 죄악시하는 점은 비슷하다.하지만 자이나교의 개조인 바르다마나는 붓다와는 다른 역사적 인물일뿐 아니라 자이나교는 불교와 완전히 독립적인 종교라는게 그의 해석이다. 이와 관련,이거룡씨는 『세계종교로 발전했으면서도 인도 자체에서는 쇠퇴하고 만 불교에 비해 자이나교는 여전히 인도사람들의 사유체계를 지배하고 있다』며 『이는 자이나교가 힌두교에 가까운 형이상학을 지닌 종교일뿐 아니라 카스트에 대해 보다 긍정적인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 자전거 전용로(외언내언)

    서울의 교통난은 숨이 막힌다.러시아워라는 개념이 없어진지도 오래된다.하루종일 정체되니 온종일 러시아워다.얼마전 방배동 4거리근처에서 1㎞를 빠져나가는데 한시간이나 걸렸다.도심에서 흔히 겪는 일이다.그때 떠오른 생각이 『자전거 길이 있었으면 이 고생을 안해도 될 것을…』이었다. 간편한 자전거야말로 교통난 해소의 첩경이라는 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어디 교통난 뿐인가.무동력의 자전거는 공해방지와 에너지절약의 이점에 시민의 건강증진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그래서 지방도시에서는 다투어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고 있다.서울 근교의 일산·분당등 신도시는 자전거길이 나있어 시민의 환영을 받고 있다.일산의 경우 차도와 별도로 보도에 붙여만든 자전거 전용선이 단지안 구석구석에 연결돼 있어 아주 편리하다. 고도의 경우는 자전거 통근·통학이 일찍부터 성행했던 곳.아황산가스로부터 유적을 보존하기 위해서도 안성맞춤이다. 서울에서도 한강변에 「자전거길」 37㎞가 개통됐고 서초구·강동구등 여러곳에 전용로가 개설돼 있다.그러나 자전거전용로의 이용도는 낮다.그 이유는 전용로가 위험하다는 것 때문이다.교통개발연구원의 한 조사에서 조사대상자의 35%가 「교통사고의 불안감 때문에 자전거를 탈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자전거도로가 안전하기만 하다면 자전거를 타겠다는 시민은 77%나 된다. 마땅히 자전거를 보관할 곳이 없는 것도 자전거타기를 꺼리는 이유의 하나다. 시민의 절반이상이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는 독일의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에서는 보도와 접한 자전거 전용도로에 잠시 서성거렸다가는 곧바로 벌금을 물어야 한다.자전거 타는 시민을 최대한 보호해주기 위한 조치다.그러니까 너도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자전거를 탄다.그런 정책의지가 없으면 자전거길의 정착은 요원한 일이다.지난 19일 「자전거타기 범시민운동연합」이 결성됐다.자전거 전용길이 안전하다면 누가 교통지옥에서 그 고생을 치르려 하겠는가.정부와 민간에서 이 운동이 효율적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 통학버스 어린이 승·하차때/주변차량 일시정지 의무화

    ◎국무회의,기상예보 민간업자 참여 허용 정부는 22일 이수성 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재외동포재단법 제정안을 의결했다.〈관련기사 6면〉 이에 따라 앞으로 설립될 재외동포재단은 국적을 불문하고 외국에 거주하는 동포를 위한 각종 교류사업과 조사·연구,교육·문화·홍보사업을 펴게 된다. 국무회의는 이날 외국인도 변호사자격취득이 가능하도록 변호사의 자격요건에서 국적요건을 제외하는 내용의 변호사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또 기상예보에 민간사업자의 참여를 허용,일정한 자격을 갖춘 예보사업자가 특정수요자를 위해 기상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기상업무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이와 함께 유효기간이 지난 상품권의 상환액을 권면가액의 70%에서 90%로 높이고,잔액을 현금으로 되돌려주는 범위를 현재 권면가액의 80%이상 구매했을때에서 60%이상으로 낮추는 상품권법 시행령 개정안도 의결했다. 이밖에 내년부터 「어린이통학버스」가 어린이의 승·하차
  • 이상적 학교모델 수원 중앙기독초등교/공부가 즐거운“어린이 천국”

    ◎책가방·촌지 없애고/대화·토론방식 수업/전원 스쿨버스 통학… 영ㅇ어회화 고교수준/다양한 특별활동에 예체능 과외 안받아/청바지차림 교사들 하루종일 교실서 학생과 어울려 책가방과 교무실·촌지가 없는 학교.학년별로 학생의 체격에 맞춰 화장실변기의 높낮이를 달리하고 어린이에게 식수로 생수를 공급하는 학교.초등학교 6학년의 영어회화실력이 일반고교 3년보다 더 유창한 학교. 수원시 팔달구 원천동 산 73의 6에 자리잡은 수원 중앙기독초등학교(교장 김경한·81)가 그곳이다.가장 이상적인 교육환경을 갖춘 학교로 평가받는다. 학교방문이 허용되는 매주 목요일이면 국내는 물론 미국과 일본·독일 등 선진 각국에서도 앞다투어 견학을 온다. 기독교재단인 중앙학원이 지난 94년5월 설립했다.학년당 4학급에 학급당 정원이 40명이다.전교생 960명에 교사수는 교장을 포함,27명이다. 연건평 3천여평,지상 4층의 교사는 「전천후」수업공간이다.냉·난방시설을 완비,강의와 체육 등 모든 수업이 실내에서 가능하다. 학생 모두는 등하교 때 학부모중 자원봉사자가 운행하는 스쿨버스를 타고 다닌다.물론 빈 몸이다.교재가 모두 2벌씩 지급되기 때문에 한벌은 집에,한벌은 학교에 두고 다닌다. 청바지에 티셔츠차림으로 출근하는 교사는 하루종일 교실에서 어린이와 함께 뒹군다.교무실 대신 교실에 딸린 교사방이 있을 뿐이다. 치맛바람도 없고 촌지도 없다.학부모가 학교를 방문하면 먼저 학교측에서 학부모의 가방부터 검사한다.촌지에 관한 한 최소한의 허점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화와 토론방식으로 진행하는 수업도 특이하다.말하자면 어린이 스스로가 수업을 이끌어가는 셈이다. 특별활동시간에는 미술·음악(합창·작곡·악기연주)·스포츠(수영·농구·라켓보·배드민턴)·컴퓨터 등을 가르친다.때문에 별도의 예체능과외를 하는 학생이 없다. 월 교육비는 10만원.하지만 다른 학교 학생의 과외비를 생각하면 비싸지 않다는 것이 학부모의 생각이다. 학년마다 100여명이 입학대기자로 등록한 채 자리가 나길 기다릴 정도로 인기다. 김교장은 『사용자 편의의 전인교육을 통해 창의적인 어린이를 길러내려고 한다』고 밝혔다.〈주병철 기자〉
  • 용산고 국제고 전환/주민 반대로 백지화

    내년 3월로 예정된 용산고의 국제고 전환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유인종 서울시교육감은 4일 국회 교육위 국정감사 답변에서 『내년 3월 개교를 목표로 용산고의 국제고 전환을 추진해 왔으나 용산구 주민들이 학생들의 원거리 통학 등을 들어 국제고 전환을 반대해 이를 백지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교통표지판 식별 쉬워진다/판형·글자 크게… 99년까지 연차개선

    고속도로 및 국도상의 모든 도로표지판이 식별이 쉽고 운전자에게 빠른 시간내에 목적지를 안내할 수 있도록 개선된다. 건설교통부는 그동안 대한교통학회와 택시운전자 등으로부터 의견을 수렴,도로표지규칙 개정안을 마련하고 오는 99년까지 1천억원의 예산을 들여 도로표지판을 연차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3일 발표했다. 개정안은 도로 표지판의 인지도 및 시인성 기능을 높이고 방향예고표시,도로표지의 연계성,표지판 규격 및 영문표기 확대 등에 주안점이 두어졌다. 표지판의 경우 단판식은 현재 보다 1.3배(면적기준),복판식은 1·2배로 확대된다.글자의 크기도 한글은 1.35배,영문은 1.6배 더 확대,야간운행은 물론 다차선화와 고속주행시 시인성을 높이게 된다. 안내지명은 전국 국도를 연계,원·근거리 안내지명을 선정하고 이정표지는 현행 5∼8㎞에서 4㎞로 조정된다.
  • 조선족 이주 역사(송화강 5천리:2)

    ◎30년대 일제이민정책에 1만가구 정착/“주택·식량 제공” 감언이설에 속아 집단이주/「만척」서 안전촌 건립… 항일 세력과 연결 차단/부여국­고구려­발해 고대사 무대… 아직도 조선지명 남아 송화강의 큰 원류는 두 갈래가 있다.이도송화강인 이도백하 말고 두도송화강이 그 원류다.두도송화강은 이도송화강을 이도백하라 하는 것처럼 그냥 두도강이라고도 한다.그런데 두도강은 본래 두갈래 물줄기가 합수하여 강을 이루었다.두도강의 한 갈래는 만주어로 어허러인(액혁낙인)이고,다른 한 갈래는 역시 만주어로 사인러인(새인낙인)이라는 이름를 가지고 있다. 어허러인은 백두산 옥설봉에 쌓인 만년설의 눈이 녹아 험준한 바위산을 지나면서 시작되었다.그래서 낙차 57m나 되는 큰 폭포에서 작은 폭포에 이르기까지 폭포군을 이루었다.물이 급하게 흐를 수밖에 없다.일명 긴강이라는 이유가 여기 있다.이에 비해 사인러인은 완만하다는 뜻을 가졌거니와 강의 흐름도 온화했다.일명 만강이라 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부여족 유적 대량 발굴 이들 두 물줄기는 화라자에서 합수했다.바로 두도강인 것이다.두도강은 2백30㎞를 달려서 길림성 화전시 백산진 양강구에서 이도백하를 만나 드디어 합류,장강다운 송화강 물길을 잡아나갔다.송화강유역은 비옥할 뿐 아니라 광활했다.이 풍요로운 땅에 세운 맨 처음의 읍락국가는 해모수를 우두머리로 한 부여국이었다.「자치통감」기록에 나오는 첫 도읍지 녹산지도는 그 어디인가. 오늘날 길림시에는 동단산성과 동단산 평지성,용담산성이 있다.근래 동단산 부근에서는 대량의 부여족의 문물(문화재)이 발굴되었다.금 은 동 철제유물과 도자기 옥석 칠기 등의 유물만 해도 8천여점에 이른다. 또 1978년 동단산 서쪽 서단산 무덤군 돌널무덤에서는 무덤주인공의 머리를 감싼 모직물이 나왔다.양털과 개털을 꼬아 실을 자아내고 이를 천으로 짠 것이다.간단한 직조기를 사용하여 짠 이 모직물은 부여족의 문화가 상당 수준임을 입증했다. 그런데 동단산 일대는 광개토대왕 시기에도 고구려 판도였다.오늘날 길림시내에 남아있는 고구려산성은 용담산성이다.용담산은 산 자체가함지박처럼 중간이 낮고,사방은 높은 산등성이에 둘러싸인 산세를 했다.성은 산세를 이용하여 황토와 자갈로 쌓았다.높낮이는 일정치 않았다.성 서북쪽에 있는 길이 53m,너비 26m에는 용담이라는 못이 있다.이 연못은 1만㎥의 물을 가둘 수 있는 인공 못이라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견해다. 용담산성 망루자리에 올라서면 성 아래로 도도히 흘러가는 송화강과 강 양안에 우뚝우뚝 솟은 길림시의 고층건물들이 한 눈에 조망되었다.망루에 올라 문득 역사를 거슬러 뒷걸음질하고 있을때 피맺힌 비명이 들리는 착각에 사로잡혔다.서기 668년 2월 당나라 장군 설인귀의 공격을 받고 울부짖는 고구려군사들의 비명이….고구려는 용담산성에서 패하고 다시 군사 5만을 모아 공략에 나섰으나 실패했다는 것이다. 고구려 이후 한 때는 발해가 용담산성의 주인이 되었다.그러나 역사는 변화하는 것이어서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그 역사의 체취가 배인 송화강유역으로 조선족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압록강유역이나 두만강유역에 비해 훨씬 뒤의 일이다.1922년 「동북3성실황」은 이를 뒷받침했다.당시 두만강유역 화룡,연길,왕청 3개현의 조선족은 44만4천4백20명,송화강유역인 안도,돈화,길림,장춘은 4만5천6백명에 불과했던 것이다.그리고 흑룡강성에는 고작 6백61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을 뿐이었다. 송화강유역의 조선족 이주민 유형은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두만강과 압류강 이주민들의 재이주,러시아 이주민들의 유입,일제 이민정책에 의한 집단이주 등이 그것이다.이 가운데 절대적인 비중은 일제 이민정책과 맞물린 한반도로 부터의 조선인 집단이주가 차지했다.일제는 중국 동북지방의 항일세력을 소멸하고 동북에다 중국내지와 동남아를 침략하기 위한 병참기지를 만들 목적으로 이민정책을 서둘러 폈다. ○동남아 침략 병참기지화 그들이 1936년 8월 입안한 이민정책에는 2년내에 일본인 1백만가구 5백만명을 이주시킨다는 계획이 포함되었다.이와함께 일본은 1만가구의 조선인 농민들을 동북지방 23개현으로 집단이주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1937년 이를 실행에 옮겼다.일본 이주민들도 적지 않게 들어왔으나 큰 성과는거두지 못했다.그러나 한반도에 사는 조선의 가난한 농민들은 일망무제한 북지대륙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가기만 하면 집과 먹을 것을 주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조선총독부 속임수에 넘어간 사람들이다.그래서 조선농민들은 이주증을 받기가 무섭게 남부여대하고 고향을 등졌던 것이다. 그 당시 집단이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러 길림성에 살고있다.장춘시의 정병남(71)노인도 그런 이주민의 한 분이다.전남 함평군 학교면 학교리 태생인데,당시 사정을 소상히 설명했다. 『우리는 1937년 2월에 길림성 유하현에 도착했습니다.함평군 함평면,대동면,광주 송영리에서 각각 열다섯 가구씩 마흔다섯 가구가 집단이주를 한 것이지요.눈보라가 치는 한겨울에 다시차란 데에 떨어지니 집은 커녕 먹을 식량도 없었어요.언땅에 막을 칠 수밖에….만주척식회사(만척)에서 뜬 수수와 좁쌀을 주어 그나마 배불리 먹었습니다.그냥 준 것이 아니라 변리곡이었지요.일년 내내 뼈 빠지게 일해서 가을에 갚고나면 식량이 없어요.또 만척에서 변리곡을 다시 먹어야 했습니다.빚은해마다 늘고….광복이 나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노예로 살았을 겁니다』 유하현 삼원포는 조선독립운동 진원지의 하나였다.1911년에 경학사가 서고 나서 신흥무관학교,1919년에는 대한독립단이 조직되었다.그런데 일제의 수탈기관 만척은 이 일대 땅을 헐값에 사들여 안전촌을 만들었다.경찰을 주둔시키고 무장자위단을 조직했다.마을마다 소총 열자루와 권총 한자루씩을 내주었다.그리고 양민증이 없으면 마을을 드나들지 못했다.항일세력들과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였다. ○양민증 없이 출입못해 집단이주민 무장화 과정에 나타난 유명한 무장자위단은 1944년에 조직한 풍향의용개척단이다.조선에서 보통학교 고등과를 나온 청년 90명을 모집,유하현 대통구촌 신가가에 이주시켰다.이들은 군복을 입고 무기를 휴대한 군사·농업조직이었다.단장을 비롯,군사교관·청치교원 등의 간부는 모두 일본인이 맡았다.조선인 단원 20명은 뒷날 관동군에 편입되었다.일인 간부와 조선인 단원들은 휴가로 고향에 돌아갔다가 식솔들까지 데려와 살았다. 오늘날 송화강유역에는집단이주민마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조선족이 있든 없든 간에 한반도 군명에서 따다 만든 마을 이름들이 그대로 전해 내려왔다.유하현에서는 아직도 창성,벽동,가평이라는 이름이 보였다.또 안도현에는 금화,원주,고성,장수,정읍,김제,익산마을이 있다.이밖에 두군의 이름을 딴 청흥(북청·신흥),안산(진안·익산)이 있는가 하면 조선의 양양이라 한 조양마을이 존재했다.이들 마을 이름에서 집단 이주민들의 진한 노스탤지어를 읽었다.
  • 인성교육/“전인교육 개념서 실시돼야”

    ◎초등학회 창립 10돌 세미나서 주장/효의 연장선상에 있는 전통교육방법 바람직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인성교육은 현재의 교육패턴에 대한 부정차원이 아니라 우리 전통교육에서 보여지는 전인교육의 개념에서 실시될 때 실효를 거둘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같은 주장은 한국초등교육학회가 지난 19일 서울교육대 합동강의실에서 창립 10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초등학교 인성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발표된 것으로 인성교육이 현행 주입식교육에 대한 반대개념으로 인식되는 분위기에서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춘천교육대 장성모 교수는 「인성의 개념과 인성교육」이란 발표를 통해 『교육개혁위원회가 밝힌 인성교육의 성격과 실천방안은 대체로 기존 교과·도덕교육이 전인적 인간교육에 실패했고 그 실패가 교육과정에서 가정(사회)과 학교가 유기적인 관련을 맺고 학습자의 인성발달과 함양에 기여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는 판단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장교수는 『인성교육에 관한 최근의 논의에서 기존 교과교육외에 상이한 형태의 교육적 조치나 처방의 필요성을 강조함은 교과교육과 인성교육의 관계에 대한 이해부족을 드러낸다』면서 올바른 의미의 인성교육은 사회적 병리현상을 해결하는 일과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교육대 유한구 교수는 『교육개혁위원회 제2차 대통령보고에서 인성교육과 관련한 교육방안은 인성교육과 창의성교육을 별개의 것으로 규정하고 실천적 활동과 적성과 능력에 따른 다양한 학습을 각각 처방하고 있다』면서 이는 교육에 대한 심각한 개념적 혼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유교수는 또 『지식교육을 인성교육에서 제외시킨다면 지식교육에 심혈을 기울여온 지금까지의 교육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라고 반문하고 오늘날의 교육을 개혁대상이 아닌 이해의 대상으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유교수는 특히 가정에서의 효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우리 전통학교교육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교육개혁과는 차원이 다른 바람직한 인성교육형태로 보고 이같은 인성교육의 성공은 결국 교사의 몫임을 강조했다.〈김성호 기자〉
  • 「95 인구·주택 총조사」 주요내용

    ◎가구당 평균인원 3.3명­방 3.1개/5년간 주택증가율 대전 70.5% “최고”/교육수준 향상… 초등교육이상 92.7%/강원·충남·전남북·경북 전출초과 현상/통근·통학수단은 버스·도보·승용차 순 통계청이 17일 발표한 95 인구주택총조사 2%표본 속보 집계결과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구 ◇교육정도별 인구=95년 11월1일 현재 만6세이상 인구 4천45만명중 초등학교 이상 교육을 받은 사람(재학생 포함)은 3천7백48만4천명(92.7%)으로 90년의 91.8%보다 증가,국민의 교육수준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15세이상 인구 3천4백21만명중 고등학교 이상 졸업자의 구성비는 57.8%,전문대 이상 졸업자는 16.6%로,90년의 50%와 11.6%에 비해 각각 크게 늘어났다.여자는 5년간 전문대 이상 졸업자 증가율 68.9%,대학이상 졸업자 증가율 65.5%로,남자의 42.5%,42.2%를 크게 앞질러 여성의 고등교육 이수가 급증하고 있다. ○여성 고등교육 급증 ◇혼인상태별 인구=15세이상 인구중 배우자가 있는 인구의 비율은 59.1%에서 61.2%로,사별인구는 7.2%에서 7.5%로,이혼인구는 0.8%에서 1.1%로 각각 늘었으나 미혼인구는 결혼적령기 인구의 절대감소로 인해 32.9%에서 30.2%로 줄었다.그러나 20∼30대 인구중 미혼비율은 크게 늘어 만혼추세를 드러냈다.20대 남자의 미혼비율은 77.5%에서 80.5%로,20대 여자는 50.8%에서 56%로,30대 남자는 9.5%에서 13%로,30대 여자는 4.1%에서 4.8%로 각각 늘었다.이혼인구 비율은 85년 0.6%에서 계속 증가추세다.배우자와 사별해 재혼을 안하고 사는 인구는 여자가 13.2%로 남자 1.8%보다 훨씬 많다.여자의 평균수명이 남자보다 높은 반면 재혼율은 남자보다 낮기 때문이다. ◇출생지별 인구=태어난 시·도를 떠나 다른 시·도에 거주하는 사람은 2천4백41만1천명(44.3%)으로 90년의 41.3%보다 늘어 이동이 많아졌다.6대도시와 경기도는 타시·도 출생자 비율이 과반수를 넘어 51.4∼61%이나 나머지 8개도는 타시·도 출생자 비율이 30% 미만으로 낮게 나타났다.출생시·도를 떠나지 않고 사는 사람의 시·도별 구성비는 전남(89.1%) 전북(86.3%)이 높고 대전(39%) 인천(39.2%) 경기(39.9%)가 낮았다.서울은 43.5%다.6대 도시중 서울과 인천은 각 지역 출생지 인구가 비교적 고르게 전입된 반면 부산·대구·광주·대전 등은 인근 도지역의 인구가 주로 전입됐다. ◇5년전 거주지별 인구=5세이상 인구 4천37만4천명중 1천12만2천명이 5년전 거주지를 벗어난 다른 시·군·구에 살고 있어 25.1%의 이동률을 나타냈다.시·도경계를 벗어나 이동한 인구는 5백73만9천명으로 90년에 비해 24만7천명(4.5%) 증가했다.서울과 부산은 전입보다 전출이 많으나 대구·인천·광주·대전과 수도권 인접지역은 인구집중현상이 지속되고 있다.강원·충남·전남­북·경북 등 5개 도는 계속 전출초과현상을 나타냈다. ◇통근·통학인구=6대도시의 12세 이상 인구중 다른 읍·면·동으로 통근·통학하는 인구비율은 90년의 55∼60%보다 높은 60∼65% 수준이다.서울이 64.6%로 가장 높고 대구가 60.1%로 가장 낮다.광주가 55.5%에서 62.9%로 통근·통학인구 비율 최고증가율을 기록했고 부산이 57.3%에서 61.7%로 최저였다.주·야간 인구이동은 6대도시중 서울만 신도시 개발 등의 영향으로 주간유입(95만5천명)이 유출(51만8천명)보다 43만7천명 많아 주간유입초과현상(주간인구지수 1백5.2%)을 보였고 나머지 5개 도시는 인근 외곽지역에 위치한 공장 등 산업시설과 대학 등으로의 통근·통학으로 인해 낮에 유입보다 유출이 많았다.서울시내 25개구중 상주인구에 비해 주간인구가 많은 지역은 대기업 본사와 도산매업 및 서비스업체가 밀집돼 있는 중구(낮인구가 밤인구의 3.9배)와 종로구(2.4배)를 비롯한 10개 구이고 강북·은평·중랑·양천 등 15개 구는 주간인구가 더 적다.6대 도시의 교통수단별 통근·통학인구는 시내버스 이용이 31.7%,도보 22.5%,승용차 20.4%,전철 7.8% 순이다.승용차 이용객은 5년전 9.6%에서 배이상 늘어난 반면 시내버스 이용객은 40.8%에서 크게 줄었다.단일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통근·통학 인구가 92.8%다. ◆가구 ◇가구현항=가구수는 1천2백96만1천가구로 90년보다 14.1% 늘었고 가구당 평균 가구원수는 3.7명에서 3.3명으로 줄어 가구분화가 지속되고 있다.4인가구가 31.4%로 가장 많고 3인가구 20.7%,2인가구17.3%,1인가구 12.7%다.혼자 사는 단독가구는 5년전 1백2만2천가구에서 1백65만가구로 61.4%나 증가했다.독신자와 농어촌 노인단독가구 급증 때문이다.단독가구중 29세 이하는 51만4천가구(31.1%)로 36.4% 늘어난 데 비해 30∼59세는 64만4천가구(39.1%)로 75%나 늘었다.60세 이상 단독가구도 49만2천명(29.8%)으로 77.8% 증가했다.단독가구중 도시지역에서는 30∼59세가 42%로 가장 많고 29세 이하 39.5%,60세 이상 18.5%인 반면 군지역에서는 60세 이상이 58.9%로 가장 많고 30∼59세 31.5%,29세 이하 9.6%여서 농촌지역일수록 단독가구중 고령자 비율이 높다.단독가구중 여자가 58%로 남자보다 많다. ○4인가구 가장 많아 ◇세대 구성별 가구=단독가구 12.7%,1세대가구 13%로 5년전의 9%,10.7%에 비해 크게 늘어난 반면 2세대가구 62.8%,3세대가구 9.9%,4세대 이상 0.2% 등 2세대 이상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추세다. ◇점유형태별 가구=자기집에 거주하는 가구는 6백91만3천가구(53.4%),전세가구는 28.1%로 90년의 49.9%,27.8%에 비해 높아진 반면 월세는15.5%로 낮아졌다. ◇주택당 거주가구수=주택당 거주가구수는 평균 1.4가구로 90년의 1.6가구보다 감소했다.독립거주에 적합한 아파트·연립주택·다세대주택이 많이 신축됐기 때문이다.도시지역의 주택당 가구수는 1.5로 군지역의 1.1에 비해 아직 많다. ◇가구별 사용방수=가구당 사용방수는 3.1개로 5년전의 2.5개보다 크게 증가했다.도시지역은 3.2개,군지역은 3.0개로 90년에 비해 각각 0.7,0.5개 늘어났다.방을 1∼2개 사용하는 가구는 3백80만2천가구(29.3%)로 90년에 비해 38.6% 감소한 반면 3개 이상 사용하는 가구는 9백15만9천가구(70.7%)로 대폭 늘어났다. ◇주거시설 형태별 가구=입식부엌시설·수세식화장실·온수목욕시설을 갖춘 비율은 각각 84.5%,75%,75.1%로 90년의 52.4%,51.3%,34.1%에 비해 크게 개선됐으나 도시지역과 군지역의 주거시설 차이는 여전히 크다. ◆주택 ◇주택종류별=빈집을 제외한 총주택수가 9백21만6천호로 90년에 비해 28.7% 증가함에 따라 주택보급률도 72.4%에서 86.1%로 높아졌다.단독주택은 5년간 34만4천호가 감소한반면 아파트는 1백11.7% 증가했다.공동주택의 비중(48.9%)이 단독주택의 비중(47.6%)을 앞서 주거환경 변화를 나타냈다.나머지 3.5%는 비거주용건물내 주택이다.5년간 시·도별 주택증가율은 대전이 70.5%로 가장 높고 전남이 9.1%로 가장 낮다. ○주택당 방수 4.4개 ◇연건평별 주택=주택당 평균건평은 25.1평으로 5년전에 비해 0.6평 증가했다.시지역은 26.3평으로 오히려 0.4평 줄어든 반면 군지역은 1.6평 늘었다.19평 미만주택은 16.4% 증가에 그쳤으나 19∼29평 주택은 48.5%나 증가했다. ◇총방수별 주택=주택당 평균방수는 4.4개로 90년의 4개보다 늘었다.방4개인 주택이 3백55만5천호(38.6%)로 가장 많고 방5개 이상인 주택이 2백58만2천호(28%),방3개인 주택이 2백42만5천호(26.3%)로 각각 증가추세인 반면 방1∼2개짜리 주택은 65만4천호(7.1%)로 감소추세다. ◇대지면적별 주택=전국의 단독주택 평균 대지면적은 77.5평으로 90년의 73.8평보다 3.6평 늘었다.군지역의 대지면적이 1백1.7평으로 도시지역의 54.2평보다 배 가까이 크다.〈김주혁 기자〉
  • 빗길 통학버스 굴러 전문대생 45명 사상

    【이천=윤상돈 기자】 하교길 대학생들을 싣고 가던 통학버스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2m 아래 논바닥으로 굴러 1명이 숨지고 4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10일 하오 2시5분쯤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이황리 구룡가든 앞 3번국도에서 충북전문대생 44명을 싣고 가던 홍성제일관광 소속 강원 72바 7111호 관광버스(운전사 최진돈·38)가 길옆 2m 아래 논바닥으로 굴렀다. 이 사고로 추윤희양(20·안경광학과 1년)이 숨지고 운전사 최씨와 최유정양(20)등 4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 「학교폭력 근절 대책협」 발족/폭력서클·유해업소 집중 단속

    ◎6백45개 중고에 「담당 경찰관제」 운영/통학로 주변 정·사복 경관 배치 서울지방 경찰청(청장 황용하)은 3일 서울시와 시교육청·서울지방국세청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학교폭력근절 대책협의회」를 공식 발족시키고 학교주변 유해환경업소의 집중단속과 학교폭력 근절활동에 들어갔다. 대책협의회는 본청 이외에 서울시내 30개 경찰서에도 각각 구성돼 교내 학생선도반과 교외 폭력단속반,유해환경 단속반을 두고 교내 폭력서클,학원과 독서실 주변 폭력,환각물질 흡입,청소년 유해업소 등에 대한 집중단속을 벌일 계획이다. 황청장은 회의에서 『최근 학교폭력이 기성 폭력조직과 연계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지속적인 단속활동을 통해 학교폭력을 근절시키겠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또 시내 6백45개 중고교를 2천1백56명의 경찰관이 담당하는 「학교담당 경찰관제」를 운영,학교측과 긴밀한 협조체계를 유지하고 불량서클 해체와 비행학생 선도대책을 함께 마련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일선 경찰서와 파출소에「학교폭력 신고센터」를 설치,피해자 신고를 유도하는 한편 등하교때 통학로와 학교주변 골목길 등에 정·사복 경찰관과 112 순찰차를 배치,선도와 단속활동을 펴기로 했다.
  • 어린이 통학버스 특별보호/승하차때 주변차량 정지 의무화/내년부터

    ◎충돌 방지위해 끼어들기도 금지/위반땐 범칙금 10만원·벌점 20점 내년부터 유치원 및 초등학교의 「어린이 통학버스」 주변을 지나가는 모든 차량은 반드시 일단 정지해야 한다. 경찰청은 26일 통학버스가 어린이나 유아의 승·하차를 위해 정차할 경우 차선과 그 옆차선을 통과하는 모든 차량은 반드시 일시 정지해 안전 여부를 확인한 뒤 서행하도록 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마련,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개정안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및 사설학원 차량에 통학버스임을 알리기 위해 노란색을 칠하거나 뒷면에 빨간색 점멸 등을 부착하도록 하고 있다. 또 중앙선이 없는 도로나 2차선 이하의 도로에서는 반대 방향에서 진행하는 차량일지라도 통학버스가 지나갈 때는 일시 정지하도록 하고 있다. 통학버스를 뒤따라 운행하는 모든 차량이 통학버스 앞으로 끼어들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통학버스가 급정거했을 때 충돌을 피할 수 있도록 충분한 안전거리 확보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를 위반한 운전자에게는 10만원 이하의 범칙금과 벌점 20점이 부과된다.〈박용현 기자〉
  • 섹스 숍(외언내언)

    신촌에 구미나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성인 섹스 숍이 문을 열어 화제가 되고 있다.이 「성인용품 전문판매점」은 음란물 판매행위로 법에 저촉되지 않을 범위내의 에로물 비디오,성인용 잡지,성적 기구,그리고 각양각색의 콘돔등 40여가지를 팔고 있다는 보도다. 20대의 이벤트회사 대표가 개점한 이 섹스 숍을 향해 하필 대학가 대로변에…도대체 그런 가게가 왜 필요하냐는등 대뜸 비판적 견해들이 대두되고 있다.성의 공개적 거론을 점잖지 못한 일로 금기시 해온 유교문화의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이 섹스 숍 개점은 성에 대한 우리의 스테레오 타입화한 오랜 시각을 재점검할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을것 같다.성교육도 하는 시대인데 언제까지 사회적 성문제를 덮어두려고만 할 것이냐는 지적인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도시 곳곳에 구미의 컴컴한 뒷골목처럼 섹스 숍이 줄지어 들어서고 매춘과 마약,범죄가 들끓게 돼도 좋다는 것이 아니다.문제는 우리의 현실이다.이미 우리 영화가 에로물에 편중되고 성인 비디오가 가정에 확산돼 청소년 교육상 문제가 되고 있다.외국 음란 비디오,외설잡지는 물론 PC통신,인터넷등을 통해 국경도 없이 밀려드는 섹스물들이 청소년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또 단속법령의 강화에도 불구하고 무슨 텍사스촌이다 하는 사창가가 통학로에서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섹스문제에 대한 이중적 자세를 벗어나 대책을 세워야 하는것 아닐까.성인영화관 설치를 허용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성인 영상물과 출판물의 제작·배포에 관한 법규를 어떻게 하는 것이 사회적 교육적으로 바람직스런 것인지를 토의해야 한다.앞으로 섹스 숍 같은 업소에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이며 인터넷의 음란규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성문제에 대한 사회적 허용과 금지의 구체적 선을 긋고 법제화하는 공청회가 조속히 열려야 한다는 것이다.
  • 어린이 보호구역은 「성역」(사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가 다치는 사고율이 유난히 높은 편이라는 통계가 최근에도 나왔다.어린이들이 교통정리를 하는 통학로에서 그들이 장난을 치느라고 지체를 해도 자동차들이 꼼짝없이 참고 기다린다는 외국의 경우와는 너무 대조적이다.이른바 선진국을 지향하는 우리가 진정으로 부끄럽게 여겨야 할 대목이다. 통학구역이나 통학로는 교실의 연장이다.치열하게 시가전을 벌이다가도 어린이들이 하교할 시간이 되면 잠시 휴전을 선언하고 어린이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나라다운 나라끼리가 지키는 암묵의 약속이다.노란 칠을 한 것은 스쿨버스고 그 차에 대해서는 주변운전자가 추월하거나 위험하게 굴지 않는 것이 국제적 관례다. 학교주변에서는 경적을 울려 수업에 방해되는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운전자가 지켜야 할 수칙이다.학교주변에 대한 인식이 이만한 수준으로 향상되어야 한다.통학로에 집채같은 대형차가 아무 때나 예사로 주차해 있고 어머니 교통이 정리하는 신호쯤은 아예 무시하고 달리는 차들이 얼마든지 있는 우리 현실은 크게잘못된 것이다. 경찰청은 전국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주변에 어린이 보호구역을 두배가량 늘리고 등·하교 시간에는 그 주변에 교통경찰을 집중 배치하여 법규를 위반하는 차량을 단속하기로 했다고 한다.또 학생수송차량에는 깃발을 달게 하여 안전거리나 진로양보를 받게 하며 수학여행 같은 장거리운행에는 경찰의 에스코트도 받을 수 있게 한다고 한다. 늦게라도 어린이보호에 대한 조치를 이렇게 강화하는 일은 다행하고 합당한 일이다.문제는 이런 조치들이 외형적이고 명목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게 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머니나 어린이들의 교통정리를 무시하고 달리는 운전자에게는 보통보다 무거운 벌칙이 가해지게 하는 등 특단의 조치도 병행하고 시민의 참여도 유도하면서 단호하고도 지속적인 의지로 정착시켜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학교종이 땡땡땡」 출간차 귀국/김메리 할머니 특별 인터뷰

    ◎“요즘 부모들 「가르침없는 자유」 주는게 문제”/「뭐든지 배워라」 어머님 말씀 내인생의 좌표/우리교과서 만들며 작곡… 50년 애창 큰 보람/20년만 젊어도 그림 배울텐데… 서울신문 초대에 감사드려요 □대담=임영숙 문화부장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우리 국민에게 애국가 다음으로 친근한 노래 「학교종」의 작사·작곡가 김메리할머니(92·미국 뉴욕거주).격동의 한 세기를 현대여성도 엄두를 못낼 도전과 모험으로 치열하게 살아 온 「영원한 젊은이」이기도 하다.자서전 「학교종이 땡땡땡」의 출판기념회와 어린이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한 김할머니를 2일 임영숙 문화부장이 만나 보았다.〈편집자 주〉 ­자서전을 단숨에 읽었습니다.재미있고 감동적이더군요. 『고마워요.할 이야기가 많아서 「속 학교종이 땡땡땡」을 써야 할까봐요.처음엔 영어로도 쓰려고 했는데….우리 딸 귀인(조귀인 미국 뉴욕타임스 매거진 편집국장보)이가 「학교종이 땡땡땡」을 영어로 다시 쓰기로 했어요.미국에서도 책이 나올거예요』 숙소인 남산의 힐튼호텔을 찾은 이날 상오,김할머니는 진분홍 꽃무늬가 돋보이는 하늘색 옷에 같은색 스카프,브로치를 단 흰 털실 베레모 차림으로 햇볕 가득한 방에서 일행을 맞이했다.뉴욕에서 서울까지 13시간의 비행에도 아랑곳없이 꼿꼿한 자세에 웃음을 잃지 않고 80여년전의 일까지 하나하나 기억해 얘기하는 모습은 거의 「소녀」에 가깝다.아직도 마음은 25∼29세라고 말했다. ○남산 신사참배 “생생” 『일제때 저 남산언덕배기에 학생들이 신사참배를 했어요.한달에 두번씩 신촌에서 이화학당 학생들 20여명이 함께 걸어와 저기서 절 한번하고 또 신촌까지 걸어갔습니다.지금 남산을 보니 그때 가슴아팠던 것이 사라지는군요.아주 시원해요』 ­한국이 많이 변했지요. 『나쁜쪽으로 보다 좋은쪽으로 변화가 더 많아요.이제 남은 것은 북한이 문제인데 통일도 곧 될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불리는 「학교종」의 가사가 원래와 달라졌다고 어제 공항에서 말씀하셨는데… 『아동문학가 윤석중씨가 나중에 바꾸었어요.문법상 문제가 있다면서.그래서 미국에서 전화를 걸어 「내가 한국에만 있었어도 가만두지 않았다」고 항의를 해서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죠.그러나 지금은 좋아졌어요.그리고 올해부터 미국 뉴욕주 국민학교 음악책에 「학교종」이 실리는데 종소리가 「딩딩딩(Ding)」으로 번역돼 좀 우스워요.』 ­해방직후 이화여전 음악과장 시절 현제명 김성태씨등과 음악교과서를 만들면서 20여곡을 작곡하셨다는데 「학교종」말고 다른 작품은 남아있지 않습니까. 『당시 교과서가 있으면 찾을 수 있을텐데 안타까워요.1950년 미국에서 내 손으로 직접 써서 출판한 「한국민요집」은 아직도 미시간의 도서관에 남아 있는데…』 「학교종」이 지난 95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지 않고 교사용 지도자료에만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에도 매우 섭섭해 했다. ○김규식씨가 사촌오빠 ­「학교종이 땡땡땡」을 읽다 보면 나이와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새로운 삶을 사는 선생님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구한말 명문가의 규수로서 결혼하기 싫다고 만주로 도망가고,이화여전을 졸업한 뒤 장학생으로 미국유학을 떠나 전공인 영문학대신 음악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귀국후 이화여전 음악과장이 됐다가 학칙을 어긴 고위층 자녀 학생을 유급시킨 일로 말썽이 나자 음악과장 자리를 박차고 다시 미국으로 떠나 화학과 미생물학 석사가 돼 49세부터 미국 병원실험실에서 임상병리사로 일하고,정년퇴직후 70세가 넘은 나이에 평화봉사단이 되어 아프리카로 떠나고,80세에 서예를 새로 배워 전시회를 열고….그런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살면서 어머니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어요.어머니는 늘 나에게 무엇이든 배우라 하셨어요.도둑질 빼고 무엇이든지요.항상 남을 도우라는 말씀도 하셨어요.또 그 시대의 여성치고는 개방적이어서 내가 하려는 일이 옳으면 막지 않으셨어요.소학교때 선생님의 얘기도 가슴 속에 살아 있어요.한 사람이 나뭇가지에 올라갔는데 그 나뭇가지가 약해서 부러지러 하자 빨리 그 옆의 든든한 가지로 옮겨 살았다는 거예요.우리의 삶도 「좀 더 나은길」을 찾아 부단히 움직야 합니다』 ­지금도 새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하고 싶은 일을 거의 다 했는데 한가지만 아직 못했어요.그림 그리는 일이예요.79세때 뉴욕대학 평생교육 과정에 들어가 3년간 소설 쓰는법도 배웠어요』 ○공부하고 싶어 만주로 ­어린시절 이름은 지금과 달랐지요. 『셋째딸이라 해서 삼식이었지요.그러나 기독교신자인 어머니가 메리(Mary)라고 부르셨습니다.아버지(김익승)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일본유학을 한 뒤 일본어,영어에 능통해 외무대신까지 지냈고 김규식박사가 사촌오빠됩니다.보통학교를 나온 뒤 배화학교를 다녔으나 졸업반이던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 졸업은 못했지요.그러나 그때 교사들이 잡혀가 보통학교 졸업반 학생이 임시교사가 됐어요.나도 15세 되던 해 논산의 보통학교에 교사로 부임했는데 17,18세나 되는 남자학생들이 가득찬 학교에 도착하니 「아기선생 왔다」며 놀려대는 것 아니겠어요』 ­지금까지 살아 오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만주에 3년간 있을때 였어요.논산에서 6개월만에 올라 오니 아버지가 결혼하라고 하시더군요.당시 궁중전의였던 다섯째 삼촌이 고종황제가 독살됐다는 소문을 역이용한 일본인들때문에 만주로 떠나게 돼 영어사전 하나만 달랑 챙겨들고 따라갔어요.삼촌의 병원 일을 도우면서 영어사전을 통째 외우고 교회에서 풍금반주를 하기도 했는데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괴로웠어요』 ○74세에 아프리카 봉사 ­만주에서 돌아 와 이화학당에 입학하셨을 때의 동급생이나 후배들 얘기 좀 해주시죠. 『이화학당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는데 그때 동기중 이기붕씨의 부인이 된 박마리아가 있어요.1,2등을 다투는 라이벌이었죠.하지만 이씨와의 결혼은 내 중매로 이루어졌어요.게다가 한 학년 밑에는 모윤숙 백낙준씨의 부인이 된 최이권 등이 있었는데 이들도 여간 극성이 아니었어요.학생회장도 선배인 우리들을 제치고 서로 맡겠다고 난리였어요』 ­미국으로 다시 떠나서 뒤늦게 전공을 바꾸신 이유는…. 『안정된 직업을 갖기 위해서 였어요.70세까지 병원 실험실에서 일했어요.75년 남편(조오흥)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이어 벙원에서도 정년퇴임 하고 나자 이제는 또 무얼할까 하다가 74세가 되던 1978년 미국 평화봉사단에 지원,아프리카 라이베리아로 떠났어요.2년동안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80년 4월 라이베리아에 쿠데타가 일어나 미국으로 돌아왔지요』 ­대단하십니다.건강유지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음식과 운동이예요.매일 동네를 3블록씩 산보하고 비가 오는 날은 집안에서 자전거등 운동기구로 운동을 해요.아침은 과일주스나 과일,보리죽과 볶은 가루에 우유를 타서 먹든지 달걀반숙을 먹어요.점심은 좀 양이 많은데 7첩반상으로 차려먹죠.맵지않게 만든 김치와 깍두기,생선,나물무침,전을 즐기지요.돼지고기,닭고기는 안 먹고 일주일에 세번 생선국,두번 야채국을 먹어요.외식은 안해요.또 뇌세포 생성을 돕기 위해 매일 TV 교양프로의 토론을 보며 받아쓰기도 하지요.아직 돋보기도 안쓰고 바느질도 직접 해요.지난 89년 뇌일혈로 한때 쓰러졌던 적이 있어요.그때도 기억력,시력을 그대로 유지해 의사가 「신비하다」고 말했어요.지난해 기억력테스트를 해보니 25∼29세 연령의 기억력으로 나오더군요.「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우리 옛말의 그 정신으로 삽니다』 ○주일학교 교사 맹활약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지금은 주일학교에서 한국인 어린이들의 교사로 일해요.「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도와주면 좋은 인물됩니다」라는 노래를 직접 만들어 우리말,영어로 가르쳐주기도 하죠.월요일이면 하루종일 드러누워야 할 정도로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가르치는 동안에는 생기가 나요.20년만 젊다면 더 많은 봉사활동을 할 수 있을텐데…』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노래를 배우고 자라는 우리 어린이들과 부모님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요즘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린이들이 가짜 동물,식물만 보면서 놀잖아요.그게 못마땅해요.자연에서 진짜 동물,식물을 보면서 놀아야 배우는 것도 많아요.그리고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자유는 무제한으로 주지만 지도를 안하는 것 같아요.지도하면서 자유를 주어야합니다』 ­서울에 얼마나 머무실겁니까 『2∼3주일 있을 생각이예요.떠나기전에 서울신문을 방문하겠습니다.서울신문에서초대 해 줘서 고마워요』〈정리=서정아 기자〉
  • 「학교종이 땡땡땡…」작곡가/재미 김메리 할머니 자서전 출간

    ◎13세때 첫 교사생활… 90평생 남위해 봉사/근대화의 격랑 헤쳐온 삶 진솔하게 드러내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해방후 우리 손으로 처음 만든 교과서,그 가운데 초등학교 1학년 음악책에 실렸던 동요 「학교종」은 여지껏 애창되는 노래이다. 요즘도 노래 자리에서 사람들이 「학교종이 땡땡땡…」을 부르는 모습을 가끔 보게 된다.그럼에도 이 노래를 작곡한 김메리할머니(92·미국 거주,미국이름 Mary Kimm)에 대해서는 대부분 잘 모르고 있다. 김할머니의 자서전 「학교종이 땡땡땡」이 최근 출간됐다(현대미학사 펴냄).이 책에는 90여 인생을 자기계발과 이웃사랑으로 치열하게 산 한 여성의 삶이 진솔하게 드러나 있다. 김메리는 1904년 서울에서 김익승의 셋째딸로 태어났다.아버지가 대한제국 외무대신을 지냈고,해방정국에서 이승만·김구와 함께 민족 지도자로 추앙받은 김규식이 4촌오빠인 명문가 출신.「메리」는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가 붙여준 이름이다. 평생 자기 공부를 계속하면서 한편으로 남을 가르치는그의 삶은 어려서 시작된다.배화 고등보통학교를 마친 그가 논산의 한 보통학교에 교사로 부임할 때의 나이는 열세살.김메리는 『새 선생이 온다고 교장과 학생들이 마중나와 있다가 나를 보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그러나 「아기 선생」노릇은 여섯달만에 끝나고 그는 집으로 돌아온다.그러자 집에서는 결혼을 서둘렀고,김메리는 삼촌을 따라 만주 용정으로 도망가 그곳에서 3년을 보낸다.귀국후 이화학당 대학과를 마친 그는 1930년 미시간대학으로 첫 유학을 가 거기서 전공을 피아노로 바꾼다. 이후 남편이 되는 조오흥씨와의 만남,석사학위 취득과 귀국,이화여전 음악과 교수로 부임,약혼자의 뒤따른 귀국과 결혼으로 이어진다.남편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생활해야 했고,태평양전쟁이 터지자 이산가족이 된다. 해방이 되자 김메리는 초등학교 음악교과서 편수에 참여,「학교종」을 비롯한 동요들을 작곡한다.해방된 조국의 모교에서 후진양성에 애쓰던 그는 어느날 음악과 학과장 자리를 떨쳐버리고 다시 미국길에 오른다.남편과 합쳐야 하는데다 새로운 학문을 해보겠다는 계획을 가졌기 때문. 이때부터 평범을 거부하는 그의 치열한 삶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웨인대학에서의 화학·미생물학 공부,칠순 나이에 평화봉사단원으로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의 2년 활동들이 그것.아울러 미국에서 한국민요집을 발간하거나 서예전을 갖는등 한국문화 홍보에도 애쓴다. 지난 89년 뇌일혈로 쓰러졌던 김메리할머니는 젊은이 못잖은 의지로 건강을 회복했다.국내에서 자서전을 출간한 것과 관련,5월3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리는 출판기념회에 직접 참석할 예정이다.〈이용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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