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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우디 파드국왕 사망

    |리야드 외신|사우디아라비아의 파드 빈 압델 아지즈(84) 국왕이 1일 오전(현지시간) 수도 리야드의 파이살 왕립 병원에서 사망했다. 사우디 왕실은 파드 국왕의 이복동생으로 지난 10년간 사우디를 실질적으로 통치했던 압둘라 이븐 압둘 아지즈(82) 왕세제가 왕위를 계승했다고 밝혔다. 또 압둘라 왕세제가 왕위를 계승함에 따라 국방장관인 술탄 왕자가 왕세제가 됐다고 사우디 국영TV가 전했다.
  • [종전 60년·수교 40년 韓·日관계] 노대통령 對日정책 “잘한다”16% “못한다”31%

    [종전 60년·수교 40년 韓·日관계] 노대통령 對日정책 “잘한다”16% “못한다”31%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한·일문제 해결 방식을 못마땅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국이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신문이 창간 101주년과 광복 60주년 및 한·일수교 40주년을 맞아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와 공동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민들은 일본에 대해 강한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정부의 한·일관계 해결방식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여론조사는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2·23일 실시됐으며,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이다. 먼저 ‘노무현 대통령의 한·일문제 해결방식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31.1%로 ‘잘하고 있다.´(16.2%)보다 2배가량 많았다.47.2%는 ‘보통이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KSDC는 “노 대통령과 일본 고이즈미 정부간의 신뢰가 무너진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 과거사보다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에 한·일관계의 초점을 맞추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본측이 독도·역사교과서·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민감한 문제에 오히려 더욱 보수적 입장을 보임으로써 노 대통령의 한·일문제 해결방식에 국민들이 회의적 반응을 보이게 됐다는 해석이다. 한·일관계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을 묻는 질문에는 부정적인 응답이 46.5%로 긍정적 답변(16.8%)보다 3배가량 많았다. 반미감정이 강한 20·30대에서 부정적 평가가 많았으며, 학력과 소득이 높을수록 부정적 경향이 강했다. 또 과거사 문제에 대한 국민감정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정부가 종군위안부들에게 사과와 배상을 해야 한다는 데 87.6%가 동의했고, 일본이 한국 식민통치에 충분히 사죄하지 않았다는 의견이 89.7%를 차지했다. 같은 맥락에서 양국관계 발전을 위한 과제로 56.1%가 과거사 문제를 꼽았다. 그 결과 일본에 대한 이미지는 제국주의 등 부정적인 것이 42.3%인 반면 강대국 등 긍정적인 것은 19.8%에 불과했다. 일본의 재무장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이 42.7%로 찬성(23.4%)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응답자의 68.5%는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고 답해 일본에 대해 실리적·포용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또 과학기술(19%)과 함께 시민의식(15.9%), 근면·성실성(16.4%)을 일본의 장점으로 인정했다. 연령별로는 일제시대를 겪은 70대 이상 고령층은 일본의 재무장에 특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으며,20·30대가 과거사 문제를 중시하는 반면 40·50대는 보다 현실적인 경향을 나타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한·일 공동 국민여론조사 원본 자료 보기
  • 뮤지컬 ‘아이다’ 하루8시간 연습 강행군

    뮤지컬 ‘아이다’ 하루8시간 연습 강행군

    제작비 120억원을 들인 초대형 뮤지컬 ‘아이다’가 오는 27일 출항한다. 8개월간의 긴 항해. 지금껏 누구도 엄두내지 못한 최장의 항로다. 순풍을 타고 저 건너 신대륙에 안착할지, 모진 풍파에 좌초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 브로드웨이 현지 프로덕션에서 날아온 연출가 키이스 배튼의 진두지휘로 후반 준비에 한창인 ‘아이다’연습 현장을 찾았다. ●세 남녀의 엇갈린 운명 그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대학로 신시뮤지컬극장 지하 연습실. 이집트 파라오의 딸 암네리스 공주와 라다메스 장군의 결혼식이 막 열릴 찰나 노예로 잡혀온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가 탈출했다는 전갈이 들려온다. 라다메스 장군은 가슴에 품고 있던 연인 아이다를 위해 조국을 배신하고, 사랑을 잃은 암네리스는 두 사람을 무덤에 함께 묻으라고 명령한다. 세 남녀의 엇갈린 운명을 첨예하게 드러내는 극의 하이라이트이자 대미를 장식하는 장면답게 시종일관 박진감이 넘친다. 바짝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하던 연습실 공기는 ‘10분간 휴식’이라는 연출가의 말이 떨어지자 그제서야 ‘탁’하고 풀어진다. 배해선(암네리스), 이석준·이건명(라다메스), 문혜영(아이다) 등 주역들은 감자, 초콜릿 같은 간식거리를 손에 쥐고 배고픔을 달랜다.“안 먹으면 쓰러져요.”(배해선).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을 버텨 내려면 체력은 필수란 설명. 그러고 보니 또 한 명의 아이다인 옥주현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한달간 방송 스케줄을 줄이고,‘아이다’에 매달렸던 옥주현은 과로로 편도선이 부어 이날 처음 연습에 불참했다고 제작사 관계자가 전했다. ‘아이다’의 캐스팅은 여러 모로 화제였다. 그중 타이틀 롤인 ‘아이다’의 두 주역, 옥주현과 문혜영은 이변이었다. 한 명은 전문 뮤지컬배우가 아닌 가수라는 점에서, 또 한 명은 앙상블 출신의 무명배우라는 점에서. 하지만 연습을 지켜본 이들은 두 배우의 가능성에 신뢰를 보내고 있다. ●문혜영 ‘원숙미´냐 옥주현 ‘신선미´냐 단독 출연인 배해선을 빼고, 더블 캐스트인 아이다와 라다메스역의 배우들은 내심 경쟁에 따른 부담감도 만만치 않을 터. 동갑내기로 절친한 친구인 이건명과 이석준은 상대방 연기를 평가해 달랬더니 사뭇 조심스러운 눈치다. “기본 캐릭터는 같지만 건명씨는 외향적이고 밝은 측면을 자유롭게 잘 표현한다.”(이석준),“석준씨의 라다메스는 섬세하고 깊이가 있다.”(이건명) 문혜영은 “주현씨는 주현씨 나름의 색깔이 있고, 나는 나만의 색깔이 있기 때문에 일부러 차별성을 두려고 애쓰지는 않는다.”면서 “‘문혜영의 아이다’는 강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이석준이 한마디 거든다.“음, 한마디로 원숙미와 신선미의 대결이라고 할까. 혜영씨가 그동안 뮤지컬 무대에서 갈고닦은 기량을 한껏 발휘한다면 주현씨는 의외의 돌발성으로 신선한 에너지를 뿜어내죠.” 안 그래도 평소 ‘공주과’로 분류되던 배해선은 암네리스역을 통해 확실히 신분상승했다면서 웃는다.“뮤지컬 ‘아이다’는 사실 암네리스가 주인공”이라고 운을 뗀 그녀는 “철부지 공주에서 냉철한 통치자의 이미지까지 매 순간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며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LG아트센터.(02)2005-0114.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종전 60년 수교 40년 韓日 여론조사 ②] 일본 하면 떠오르는 것

    [종전 60년 수교 40년 韓日 여론조사 ②] 일본 하면 떠오르는 것

    ■ 연상 이미지와 배울점 광복 60주년을 맞았지만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부정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일본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제국주의’라는 응답이 27.5%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일본문화’(12.7%),‘강대국’(9.7%),‘독도문제’(7.3%) 등 순이었다. 일본과 관련된 이미지 중에는 부정적인 것들이 긍정적인 것들을 크게 앞섰다. 제국주의에 이어 ‘나쁘다.’(13.6%),‘역사왜곡’(3.2%),‘종군위안부’(2.3%)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42.6%에 이르렀다. 반면 ‘강대국’(12.7%),‘국민성이 좋다’(7.1%) 등 긍정적인 이미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19.8%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문화’(12.7%),‘인접국가’(3.8%),‘섬나라’(2.8%) 등 중립적 이미지는 19.8%를 차지했다. 특히 20대는 ‘일본문화’(27.6%)를 가장 많이 꼽아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일본 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30대 이상은 ‘제국주의’를 많이 들었는데,30대 23.6%,40대 27.6%,50대 33.8%,60대 42.2%,70대 이상 40.8% 등 나이가 많을수록 ‘일본=제국주의’를 떠올렸다. 직업별로도 ‘일본문화’(31.5%)를 꼽은 학생을 제외하고는 농립어업(34.9%), 자영업(31.8%), 가정주부(31.5%), 무직(40.7%) 등 대부분이 ‘제국주의’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이처럼 일본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훨씬 많이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의 다수인 68.5%는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배울 점이 없다.’는 답은 26.4%에 불과했고,‘배울 점이 매우 많다.’는 적극적인 답도 14.0%에 달했다.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는 답은 특히 대학재학 이상의 고학력층(79.0%), 고소득층(81.7%), 화이트칼라(79.6%) 일수록 많았다.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으로는 ‘과학기술’(19.0%)을 가장 많이 꼽았고,‘근면성실성’(16.4%)과 ‘시민의식’(15.9%) 등 선진의식을 드는 비율도 높았다. 이어 ‘경제력’(11.5%) ‘문화우수성’(8.2%),‘친절성’‘애국심’(각각 6.6%) 등을 배울 점으로 들었다. 배울 점으로 과학기술과 경제력 등 물질적 측면 외에도 근면성실, 문화우수성 등 인적·문화적 측면이 많다는 것은 그간의 한·일간 인적·문화적 교류 확대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특히 여성들은 ‘근면성실’(20%)을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으로 가장 많이 꼽은 반면, 남성은 가장 많은 21.8%가 ‘과학기술’을 배울 점으로 선택했다. 세대별로도 차이가 뚜렷했다.20대(28.7%)와 30대(19.3%)는 일본으로부터 ‘과학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답한 반면 40대(18.2%)부터 70대이상(27.6%)까지는 일본에서 배울 점으로 ‘근면성실’을 가장 많이 꼽았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노대통령 대일 정책 노무현 대통령의 대일 문제해결 방식에 대해 절반에 가까운 국민들은 그저 그렇다는 식의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다. 설문 대상의 47.2%가 ‘보통’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보통이다.’를 제외하고는 긍정적 평가보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2배 정도 높았다.‘잘하고 있다.’는 반응은 16.2%에 불과했지만 ‘잘못하고 있다.’는 대답은 31.1%나 됐다. 노 대통령의 대일 강경책이 일본에 대한 강경 대응을 촉구한 여론을 반영했음에도 불구, 노 대통령의 이같은 태도가 ‘점수’를 얻지 못한 것은 의외였다. 연령별로는 20,30대가 후한 평가를 내렸다. 반면 40∼60대는 젊은층에 비해 ‘잘못’ 쪽에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노 대통령의 지지층이 20,30대에 집중돼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응답자들의 기존 편향성이 이 문제에도 그대로 투사됐다고 할 수 있다. 30대의 20.7%,20대의 17.5%가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 반면 40대와 50대는 14%,60대는 14.7%가 각각 ‘잘하고 있다.’는 데 점수를 줬다. 반면 50대의 38.2%,60대의 36.3%,40대의 34.2%가 ‘잘못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연령대별 선호가 두드러진 셈이다. 그러나 학력·소득·직업·지역·도시규모·출신지에 따른 차이는 외교문제란 특성 때문인지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소득별로는 고소득층이 중산층보다 2.5%포인트, 저소득층보다는 3.5%포인트 더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출신지역별로는 제주(36.4%)가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 이는 제주와 제주 출신들이 여행업, 무역 등 일본인 대상의 생업 종사 비율이 높고 접촉이 비교적 많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취임 초 노 대통령의 전향적인 태도에도 불구, 한·일관계 진전 방향의 괴리, 강경책에 따른 한·일관계 악영향 우려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직업별로는 화이트칼라(31.8%)보다 블루칼라(45.2%) 종사자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 한·일관계를 언급하면서 일본측에 더이상의 사과나 사죄를 언급하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두 나라 관계를 구축해 나가겠다며 호의를 보였다. 그러나 그뒤 좋은 결과는커녕 한국인들의 민족 감정과 자존심을 훼손하는 일본의 행동이 잇따라 돌출, 노 대통령의 정책에 의구심이 들게 했다. 시마네현 의회의 지난 2월 ‘다케시마 날’ 제정조례 통과, 과거역사를 미화하는 후소샤 역사교과서 검정통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따른 한국인의 대일감정 악화 등이 악재로 작용했다. 반면 노 대통령이 국가원수로는 외교사상 유례없이 직설적 발언을 구사하며 강경한 태도로 바뀐 것도 일부 계층에선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외교 관행과 금기를 깨고 일본을 직설적으로 공격하는 노 대통령의 태도가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한·일관계의 미래에도 나쁜 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과거사 문제 대다수 한국 국민들은 종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측의 사죄와 보상이 불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과거사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먼저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사과와 피해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61.2%),‘동의하는 편이다.’(26.4%) 등 동의한다는 의견이 87.6%로 나타났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1%에 불과했다. 특히 일본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고 있는 한국 내 일본 우호 계층에서도 동의한다는 의견이 88.2%에 달한다는 점은 일본 정부가 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이어 ‘일본이 과거 한국 식민통치에 대해 충분히 사죄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사죄하지 않았다.’는 의견이 89.7%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연령별로는 40대(92.1%), 직업별로는 블루칼라(96.2%), 지역별로는 읍면지역(55.7%)에서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 이는 일부 일본 정치인들이 과거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고 미화하는 발언을 끊임없이 내뱉고 있고, 일본 정부 차원의 성의있는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한·일관계 발전을 위한 당면과제에 대해 응답자의 과반수 이상인 56.1%가 ‘독도, 종군위안부, 역사 교과서 등 과거사 문제 해결’을 지적했다. 특히 20대(61.8%), 30대(60.2%)가 60대(54.9%),70대 이상(52.1%)보다 많았다. 양국 관계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젊은 세대가 과거사 문제를 더욱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 ‘경제협력 강화’(15.4%),‘문화교류 확대’(10.3%),‘우방으로서 외교문제 공동대처’(10.6%) 등에 대해서도 골고루 언급된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한국인들은 한·일관계에 있어 과거사 문제에 비중을 두면서도 경제와 외교, 사회문화 등 실리적 이해관계 역시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국교정상화후 잘된점·못된점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간에 가장 잘된 일로 ‘모르겠다.’는 응답이 36.3%로 가장 많았다.‘없다.’는 답도 14.4%에 달해 한국인 2명 가운데 1명은 지난 40년간 한·일 간에 잘된 일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아 주목을 끈다. 그래도 가장 잘된 일로 꼽은 것은 ‘교류확대’(21.2%),‘경제협력’(12.7%),‘월드컵 공동개최’(10.4%),‘한류붐’(3.1%) 등이었다. 특히 일제 식민치하를 몸소 겪은 70대 이상은 국교 정상화 이후 잘된 일이 ‘없다.’는 대답이 25.4%를 차지, 전국 평균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모른다.’는 응답도 42.3%로 모든 연령층 가운데 가장 많았다. 한·일간 잘된 일에 대해 이처럼 무응답 비율이 높은 것은 최근 독도문제 등으로 양국 관계가 악화된 탓으로 보인다. 즉 잘된 일이 있다 해도 이를 부정하려는 감정적 태도가 앞서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양국간 교류확대를 가장 잘된 일로 평가한 것은 한·일관계의 긍정적 측면이라 할 수 있겠다. 국교정상화 이후 잘못된 일로는 가장 많은 22.3%가 ‘독도문제’를 꼽았다. 한국 국민들은 한·일관계 40년을 평가하면서 최근 불거진 문제를 가장 잘못된 일이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어 잘못된 일로 ‘과거사 청산’(16.4%),‘역사왜곡’(15.7%),‘일방적인 정치외교’(2.4%) 등을 지적했다.‘모른다.’거나 ‘무응답’은 31.3%,‘없다.’는 6.3%를 차지했다. 70대 이상은 ‘독도문제’(22.5%) 못지않게 잘못된 일로 ‘과거사 청산’(18.3%)에 큰 비중을 뒀다. 반면 20대는 ‘과거사 청산’(11.5%)보다 최근 현안인 ‘독도 문제’(24%)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美역할 평가 국민들의 다수는 한·일관계에 있어 미국의 역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일관계에 미국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응답(46.5%)이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응답(16.8%)보다 약 3배 높게 나타났다.‘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응답은 25.8%였다. 모든 연령대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앞섰는데 특히 반미감정이 상대적으로 강한 20대(53%),30대(53.3%)에서 높았다. 성별로는 남성(51.1%)이 여성(42%)보다 미국에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학력별로는 대학재학 이상의 고학력층(55.1%)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높게 나타났다. 소득별로는 고소득층(53.9%)과 중산층(50.5%)에서 부정적 평가가 50%를 넘어섰다. 직업별로는 학생(56%)과 화이트칼라(54.6%)층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높게 나왔다. 이외에 도시규모별로는 읍면지역 거주자(56.6%)가 대도시나 중소도시 거주자보다 한·일관계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출신지역별로는 강원(54.9%)과 제주(54.6%)가 부정적인 평가가 높았고, 이북 및 기타 지역은 유일하게 긍정적인 평가(33.4%)가 부정적 평가(33.3%)를 근소하게 앞섰다.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과거 전통적인 한·미·일 안보 공동체제에서 벗어나 한국이 주도권을 갖고 동북아 안보에 탄력적으로 대처한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구상은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미·일 간에는 이해와 협조가 잘 되고 있으나, 한국의 입장이 미·일과 달라 고립되는 양상이 반복됨으로써 이를 차단하기 위한 포석으로 받아들여졌다. 결론적으로 한국 국민들은 미·일 동맹체제의 강화가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한·일 공동 국민여론조사 원본 자료 보기
  • [종전60년 수교40년 韓日여론조사] 韓 44%·日 52% “양국관계 더 좋아질것”

    [종전60년 수교40년 韓日여론조사] 韓 44%·日 52% “양국관계 더 좋아질것”

    한·일 국교정상화는 올해로 40주년이 된다.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왔지만 한·일관계는 정치·경제의 영역을 넘어 사회·문화적 영역으로까지 확대 발전돼 가고 있다. 한·일 수교 4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과 도쿄신문은 공동으로 한·일 국민여론조사를 실시해 한·일관계 현주소를 점검해보고 향후 발전가능성에 대해 탐색하고자 했다. ■ 양국관계 평가·전망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 등으로 최근 반일의식이 고조되고 있지만 한·일관계 자체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종전 60년, 한·일 국교정상화 40년 동안 한·일관계가 ‘좋아졌다.’는 응답은 44.1%로 ‘나빠졌다.’ 15.7%보다 3배 이상 많았다. 그러나 ‘변함 없다.’는 다소 냉소적인 응답도 37.0%로 나타났다. 한·일관계가 좋아진 이유(복수응답 허용)로는 ‘월드컵 축구 공동 개최’를 꼽은 응답자가 34.7%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경제 교류’ 33.8%,‘한류붐’ 26.5%,‘자매도시 교류를 비롯한 민간 교류’ 18.8% 순이었다. 관계가 나빠진 이유로는 ‘독도 영유권 문제’가 70.7%로 압도적 다수가 지적했다. 우리 국민 세 명 중 두 명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가장 못마땅해한다는 뜻이다.‘과거의 역사’ 35.7%,‘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26.1%,‘문화 관습의 차이’ 13.4% 등도 관계 악화의 원인으로 열거됐다. 특히 일본에 친근감을 느끼면서도 관계는 악화되었다고 보는 국민들의 72.2%가 독도 문제를 그 이유로 지적했다. 또 일본이 한국을 위해 필요하지만 관계는 악화됐다고 보는 국민들도 77.0%가 독도 문제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만큼 한국 국민들에게 독도는 단순한 영토 분쟁을 넘어 민족의 자존심과 정체성에 직결되는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사안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 우리 국민들의 대다수인 84.3%가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반성하고 있다.’는 비율은 12.4%에 그쳤다. 일제 식민지를 몸소 경험했던 70대 이상(69.0%)에서보다 20대(84.8%)와 30대(86.6%)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았다. 그럼에도 한국 국민들의 다수는 양국 관계의 전망에 대해 비교적 낙관하고 있다.44.1%가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고 답했고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은 14.1%에 불과했다. 다만 ‘변화 없을 것’이란 비율이 36.5%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그럼 일본 국민들은 어떨까. 한·일관계가 ‘좋아졌다.’는 응답은 51.2%로 우리 국민보다 후한 점수를 주었다.‘변함 없다.’거나 ‘나빠졌다.’는 각각 24.6%,20.6%였다. 좋아진 이유로는 ‘한류 붐’이 56.6%로 가장 많았고 ‘월드컵 공동 개최’ 49.2%,‘경제 교류’ 46.1%,‘민간 교류’ 39.6% 등 순으로 경제 교류나 월드컵보다 한류 붐을 먼저 꼽는 약간의 인식차를 보였다. 한류 붐이 몇몇 대중 스타의 반짝 인기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한국에 대한 국가 이미지 자체를 변화시켜 양국 국민들의 우호 관계를 증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빠진 이유는 한·일 간 서로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독도 문제’가 63.6%로 역시 높았고 ‘과거사’ 55.3%,‘신사 참배’ 51.5%,‘문화 관습의 차이’ 33.0% 등이었다. 일본 국민 역시 향후 한·일관계가 ‘좋아질 것’이라고 과반수인 52.3%가 답했다.‘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은 14.1%,‘변화 없을 것’ 29.9%였다. 이같은 징후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한국과 중국이 반발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고 답한 일본 국민이 53.9%로 나타난 데서도 일단을 엿볼 수 있다. 특히 20대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비율이 60.3%로 전체 평균보다 높은 점은 앞으로 한·일관계 미래를 밝게 점칠 수 있도록 하는 긍정적 대목이다. 그러나 여전히 43.4%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답해 한·일 간 장벽을 느낄 수 있다. 총리의 신사 참배를 한국과 중국이 문제 삼는 것은 “내정 간섭”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양국민 감정’ 총평 한국인에게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감정적으로는 일본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지만 현실적으로는 일본을 필요한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감정과 현실인식 사이에 부조화현상이 발견된다. 반면 대다수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해 비교적 친근감을 가지고 있고 현실적으로도 한국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감정과 인지가 비교적 일관성있게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40년간 한·일관계에 대해서는 두 나라 국민 모두 좋아졌다는 평가를 하고 있으며 향후 한·일관계가 좋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향후 한·일관계가 더욱 확대재생산될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일본의 역사 반성태도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고, 일본인들은 고이즈미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한 주변국들의 반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한·일관계에 대해서는 양 국민 모두 상대방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고 있지 않으며, 특히 상당수 한국인들이 일본을 동아시아 안정에 위협을 줄 수 있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대다수 한국인들은 일본이 종군위안부 문제 등을 포함한 과거 식민통치에 대한 사죄를 아직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일본의 재무장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국인 대다수는 한·일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독도, 종군위안부, 역사교과서’ 등의 문제가 시급히 해결돼야 한다고 응답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일본측의 진지한 과거사문제 해결 없이는 한·일관계는 피상적일 수밖에 없음을 강력히 드러낸다. 그러나 대다수 한국인들은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고 응답하고 있다. 이는 일본에 대해 한국인들은 불쾌감을 가지고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그들과 교류하고 배워나가야 한다는 실용적 태도를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조사결과가 한·일관계 개선과 발전에 도움을 주리라 기대한다. 양 국민이 서로 감정과 인식의 차이에 주목하면서 현안들을 솔직하고 대담하게 풀어나간다면 한·일관계는 상생의 틀 속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남영 KSDC소장 nlee@ksdc.re.kr ■ 동아시아 최대 안보위협국은 한국인들은 미국이, 일본인들은 북한과 중국이 동아시아 안보에 가장 큰 위협이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의 경우 젊은 세대의 반미감정이 강했으며, 일본에선 젊은 세대의 반북(反北)감정이 거셌다. 한국인 응답자 가운데 가장 많은 24.2%가 미국이 동아시아 안보에 가장 큰 위협이라고 대답했다. 중국과 일본·북한을 지목한 응답자는 각각 21.7%와 20.6%,17.1%였다. 한국에서는 젊은 세대일수록 미국을 위협 국가로 인식하고 있었다.20대와 30대의 각각 34.4%와 29.1%가 미국을 지목했다. 반면 40대와 50대,60대에선 미국을 꼽은 비율이 21.5%,19.1%,7.8%에 그쳤다. 40대는 최대 위협 국가로 중국을,50대는 중국과 일본을 지목했다.60대에선 북한이 24.5%로 가장 많았고 일본이 1%포인트 차이로 뒤를 이었다. 예상과 달리 70대 이상에선 미국이 21.1%로 가장 많았고, 일본이 16.9%로 그 다음이었다. 이는 2차대전을 체험한 이들 세대의 경우 전쟁을 주도한 미국과 일본에 대한 경각심과 공포심이 무의식 속에 내재하기 때문인 것으로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측은 분석했다. 일본인 여론조사에서는 북한과 중국이 각각 37.7%와 37.2%로 나와 월등하게 높았다. 미국은 10.8%에 그쳤다.20대에서 40대까지 젊은 세대들은 북한을 지목한 비율이 높았고 50대 이상은 중국을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꼽았다.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릴수록 북한을 위협 국가로 지목했으며 부정적으로 평가할수록 중국을 꼽았다.‘한국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느낀다.’고 밝힌 응답자 556명 중 가장 많은 43.5%가 북한을 지목한 반면,‘느끼지 않는다.’고 답한 280명의 46.4%가 중국을 첫번째로 꼽았다.‘한·일 관계’에 대한 질문에서도 ‘관계가 좋아졌다.’고 평가한 경우 북한을,‘나빠졌다.’고 대답한 경우 중국을 지목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한·일 공동 국민여론조사 원본 자료 보기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3)차는 어떻게 인간 곁으로 왔나

    중국 천목산에는 원숭이들을 ‘희롱’해 채다(採茶)해낸 원우차(猿愚茶)라는 차가 있다.500∼600년 된 차 나무는 그 키가 매우 크다. 원숭이들은 그 차나무에 올라가 맛있는 찻잎을 따먹고 살았다. 도저히 차를 딸 재주가 없던 사람들은 원숭이들에게 돌멩이 세례를 퍼붓고 약을 올렸다. 사람들의 돌멩이 세례에 화가 난 원숭이들은 차나무 가지 중 오래된 것을 꺾어 사람들에게 던졌다. 사람들은 또 일부러 원숭이들을 다른 나무로 옮겨가게 했다. 그래야 새로운 차나무 가지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원숭이들이 꺾어 던진 차나무 가지의 찻잎을 모아 귀한 차를 만들어 팔았다. 그것이 바로 세계적으로 희귀한 명차로 손꼽히는 원우차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의 나이는 어떻게 될까. 그 답은 중국의 윈난성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 윈난성 사모지구 진위안현 애뢰산에는 2700년 된 차나무가 ‘생존’해 있다. 현재까지 지구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차나무인 것이다. 세대와 세대를 넘어, 역사와 역사를 넘어 2700년을 살아온 차나무가 있다니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듯한 ‘품세’(品勢)를 가진 그 차나무는 오랫동안 한 마을을 지키며 ‘공존’과 ‘화해’의 다리를 놓고 살아온 촌로의 후덕함을 그대로 닮아 있다. 넓고 넓은 긴 팔을 벌리고 세상의 온갖 번뇌를 다 담아낼 듯한 품세를 지닌 그 차나무를 중국에서는 ‘과로’(瓜蘆)라고 부른다. 오래고도 오랜 차나무란 뜻이다. 차나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나무 중 인간에게 그 효용가치가 가장 뛰어난 것이다. 나무, 잎, 꽃, 향기 등 식물로서 갖출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식용으로도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기 때문이다. 육우는 ‘다경’에서 “차나무는 남쪽 지방에서 자라는 상서로운 나무다. 나무의 높이는 한 자나 두 자나 수십 자에 이르기도 한다. 파산과 협천에는 두 사람이 함께 껴안아야 하는 것도 있는데 이런 차나무는 가지를 베어야만 잎을 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차의 근원은 어디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슴없이 중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말은 사실 적당하지 않다. 그것이 차나무에 대한 근원인가, 아니면 하나의 음료문화의 근원인가를 먼저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식물학적 특성으로서 차의 근원을 따진다면 중국이 될 수 없다. 지정학적으로 차나무는 북위 42도에서 29도인 남아프리카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고 식물학적으로는 사철 푸른 다년생 종자식물로 약 6500만년 전에 출현했다고 알려져 있다. 나라별로 살펴본다면 중국을 비롯해 일본, 인도, 스리랑카, 코카서스, 남아메리카 일부 등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차나무의 존재로 그 근원을 따지기 매우 어려운 대목인 것이다. 차는 나무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존재해 왔다. 단순히 차나무와 관련된 식물학적인 특성으로 그 근원을 밝힐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차를 인류의 삶과 결합시킨 문화로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그 발원지이며 근원지라는 데 이의를 달 수 없는 것이다. 중국에서 발원했다고 하는 차의 기원은 다양한 이론(異論)이 있다.‘신농씨설’(神農氏說),‘편작설’(篇鵲說),‘달마설’(達磨說),‘기바설’(嗜婆說) 등이 그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것들이 나름대로 ‘신화’(神話)적인 전설을 통해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는 것처럼 차의 기원 역시 마찬가지다. 차의 기원은 그 약리성에 먼저 바탕을 둔다. 지금처럼 병든 인간의 육신을 다스릴 수 있는 약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고대인들은 자연에서 그 치료제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차의 발견과 보급 역시 마찬가지로 그 약리성에 바탕을 둔 신화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다. 차를 발견해 인류에게 전한 사람은 중국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전설의 삼황오제중 한 사람인 ‘신농씨’라는 점에 많은 사람이 크게 이의를 달지 않는다. 신농씨는 백성을 교화해 농업을 일으킨 사람이다. 인간에게 불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해서 ‘화덕왕’(火德王) 또는 염제(炎帝)라고도 한다. 그는 ‘농업의 신’답게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풀들을 씹어서 맛을 본 후 그 약성을 가리고 약을 만들어 백성들을 치료했다. 신농은 뱃속이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배를 갖고 매일 산하대지를 누비며 하루에 100가지가 넘는 풀을 맛보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산을 누비며 갖가지 풀을 맛보던 신농은 그만 독초에 중독되고 말았다. 지금껏 풀잎을 맛보며 크고 작은 독초에 중독될 때마다 해독약을 만들어 먹었던 신농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어찌된 일인지 그가 만든 갖가지 해약도 소용이 없었다. 해독할 방법을 찾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던 신농은 향긋한 냄새가 나는 나뭇잎을 따서 먹었다. 뱃속으로 들어간 그 녹색잎은 신기하게도 들어가자마자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돌며 뱃속을 깨끗하게 청소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녹색잎이 위장을 돌며 독초의 독성을 깨끗하게 청소해 버린 것이다. 신농의 배는 곧 씻은 듯이 나았다. 그뒤 신농은 녹색잎을 품에 넣고 다녔다. 그리고 백초를 맛보며 독을 만날 때는 꼭 그 녹색잎을 마시고 해독했다. 신농은 신비로운 약효를 지닌 그 녹색잎에 대해 ‘검사하다’란 뜻을 가진 ‘사’(査)라고 불렀다. 지금도 중국에 가면 후난성 주저우시 옌링현 당전향 녹원파에 신농이 누워있다고 전해지는 거대한 ‘차릉’(茶陵)이 있다. 청나라때 크게 중수했다는 차릉은 베이징의 자금성과 그 격을 같이할 만큼 정성들여 지어졌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신농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를 꺼린다. 신농이 동이족이기 때문이다. 동이족의 시조 신농은 4500여년전 지금 중국 후베이성 쑤이현 역산에서 태어난 실제 역사인물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중국의 위대한 문자학자 뤄빈지(駱賓基)는 갑골문자보다 1000년 앞서 동이족 수장이라는 ‘신농’이 문자를 만들었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해 중국 문자학회를 들끓게 한 적이 있다. 만약 뤄빈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차 문화의 종주국은 중국이 아닌 우리 ‘동이’(한국) 문화가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차가 하나의 어원으로 자리잡은 것은 8세기경 당나라 때로 알려져 있다. 그 이전에 ‘차’는 ‘도’( )로 불리어졌다. 중국에서 ‘다’는 산스크리스트 글자로 소리나는 대로 표현하면 ‘투’(tu)로 발음된다. 그 발음을 한문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도’였다. 전한시대까지 ‘차’는 ‘도’자로 쓰여졌다. 글자는 ‘도’로 썼지만 발음은 ‘차’로 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후한때부터 ‘도’자의 한 획을 떼어버리고 그대로 ‘차’(茶)로 썼다고 한다.‘도’를 글자 그대로 풀이해 보면 ‘쓴맛 나는 풀’이 된다.‘쓴맛 나는 풀잎’이라는 것은 차가 지금처럼 음용으로서보다는 약용으로서 그 가치가 더 높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도’가 아닌 ‘차’(茶)라는 글자가 담고 있는 뜻도 무궁무진하다. 차는 한자의 초(艸=草)와 나무(木)사이에 사람(人)이 있는 모양으로 상형화되어 있다. 또 다르게 풀이해 본다면 인간과 자연을 이롭게 하는 상서로운 ‘풀’(草)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좀더 한발짝 나아가 본다면 ‘차’라는 글자가 가진 상징성과 효용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육우는 ‘다경’에 이같은 차의 명칭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차는 가(價), 설( ), 명(茗), 천( )이라고도 하는데, 주공은 ‘가’라고 하는 것은 쓴차(苦茶)라 했고, 양집극은 서남쪽 사람들은 차를 ‘설’이라고 한다고 하였으며, 곽홍농은 일찍 딴 것을 ‘차’라고 하고 늦게 딴 것을 ‘명’이라 하며, 혹은 전부를 ‘천’이라 할 뿐이라고 했다.” 신농이 독을 치유할 수 있는 상시적인 약으로 복용했다고 하는 ‘차’는 그후 중국인들에게 모든 질병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사용되며 귀하게 취급되었다. 중국인들은 ‘귀하디 귀한 차잎’과 함께 파·생강 등 귀한 약재들을 혼용해 죽을 끓여 먹었다. 이같은 음다풍속은 차의 약리성에 기반을 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이 차가 하나의 음용으로 상용화되기 전에 독특한 음용법을 개발해 ‘귀한 단방약’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차의 식물학적 학명은 차나무과(Theaceae) 차나무속(Thea) 차나무(Sinensis)로 6500만년 전에 출현한 사철 푸른 다년생 종자식물이다. 나뭇잎은 약간 두꺼우며 윤기가 있고 긴 타원형으로 질기며 그 끝은 뾰족하며 잎 둘레 주위에 톱니가 있다. 땅속으로 바로 깊이 들어가는 직근성이다. 신기하게도 차나무는 인간이 가장 최적의 조건으로 살 수 있는 곳에만 분포한다는 사실이다. 먼저 사계절이 존재해야 하고, 온도 날씨 강우량 등이 적정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그런데 그러한 조건을 가진 지역대가 바로 인간의 가장 쾌적한 환경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오랜 결혼풍습중에 봉채(封采)라는 것이 있다. 봉차(封茶)라고도 불렸던 이 풍습은 고려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결혼하기 전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차를 보냈다. 봉차를 결혼 전에 보내는 것은 차나무가 가진 성질대로 평생을 살아가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차나무는 성질이 씨앗으로 심어야만 잘 자라고 직근성으로 세근(細根)이 없기 때문에 옮기면 잘 자라지 않아 한번 결혼하면 절대 움직일 수 없는 정절을 의미한다. 또한 씨앗을 따로 심어도 한 나무로 합해져 나오므로 신랑과 신부가 천생연분임을 상징한다. 그런 점에서 결혼예물의 봉채로 차 씨앗을 보내는 것만큼 완벽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어졌던 봉차의 풍습은 일본에도 전해져 지금도 혼숫감에 차 씨앗 2개를 신부집에 보내기도 한다. 차나무는 또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겨울에 순백의 하얀 꽃잎을 피운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꽃과 열매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라는 점이다. 마치 구름처럼 피어난다고 해서 ‘운화’(雲花)라고도 부르는 차의 꽃잎은 5장으로 차의 다섯가지 맛인 고(苦), 감(甘), 산(酸), 삽(澁), 함(鹹)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말을 풀이해 보면 너무 인색하지 말고(鹹), 너무 티(酸)내지도 말며, 복잡(澁)하게도, 너무 쉽고 편(甘)하게도, 어렵게(苦)도 살지 말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차가 가진 깊은 정신세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대목이다. 신농에 의해 ‘발견’됐다는 차가 인간과 접목된 것은 바로 그 약리성 때문이다. 약효가 뛰어나다고 하는 중국의 명차 중 하나인 몽정차 이야기를 한번 해 보자. 수행을 하다 그만 중병에 걸린 늙은 스님이 있었다. 여러 가지 약을 써봤으나 허사였다. 그러던 어느날 한 노인이 스님에게 말했다.“춘분 전후로 봄 천둥이 처음 칠 때 몽산에서 증정차를 제다하여 그곳의 물로 달여 마시면 숙환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 노인의 말을 들은 스님은 몽산에서 제일로 치는 상청봉에 석실을 짓고 봄 천둥이 치길 기다렸다. 마침내 봄 천둥이 치자 그 스님은 노인이 가르쳐준 방법에 따라 몽정차를 채집했다. 그 차를 달여서 복용하자 과연 병이 낫고 눈썹도 검은색으로 변했다. 뿐만 아니었다. 신체도 건강해져서 그 모습이 30여세로 보일 정도였다. 사람들은 처음에 차를 병을 낫게 하고 몸을 튼튼하게 하려는 약용 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중국의 다성인 육우는 ‘다경’을 지을 때 차의 약리적인 가치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육우는 “만약 열이 나서 갈증이 생기거나 고민이 있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눈이 깔깔하거나, 사지가 번거롭거나, 뼈마디가 쑤시면 네댓 모금만 마셔도 제호 감로와 더불어 손색이 없다. 또한 차를 음료로 삼은 것은 신농씨로부터 시작되어 주공에 이르러서 널리 알려졌다.”고 말하고 있다. 초기 양쯔강 하류지역 차산지를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음용됐던 차는 수나라시대 대운하의 개통으로 본격적인 ‘개화’를 하게 된다. 초의 스님은 이같은 차의 역사에 대해 ‘동다송’에 “천인과 신선 인간세상 귀신까지 다같이 사랑하고 아끼었으니, 그대(차) 타고 난 성품이 참으로 기이하고 절묘함을 알겠구나. 차의 신 신농도 일찍이 너(차)를 맛보고 식경에 실었나니…제호와 감로라 불리며 예부터 그 이름 전해왔다네.”라고 찬탄하고 있다. 차에 대해 이런 말이 예부터 전해온다.“새는 날고 짐승은 달리고, 사람은 입을 벌려 말한다. 이 셋은 함께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나 먹고 마시면서 살아간다. 마신다는 것은 그 의미가 참으로 깊고 멀다. 목이 마르면 장을 마시고 근심과 번뇌를 벗어버리려면 술을 마시고, 정신을 맑게 하고 잠을 깨려면 차를 마시면 된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9)이득윤과 ‘서계이선생가장결’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9)이득윤과 ‘서계이선생가장결’

    ‘정감록’에 수록된 예언서의 저자들 중에도 비교적 낯선 인물이 있다. 서계(西溪) 이득윤(李得胤·1553∼1630)이 그런 경우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서계 역시 조선시대엔 상당히 유명한 예언가였다. 서계가 살던 16세기는 우리 역사상 별들의 시대였다. 퇴계 이황, 화담 서경덕, 하서 김인후, 율곡 이이, 고봉 기대승, 우계 성혼, 남명 조식 등 조선 유학사(儒學史)의 거장들이 일시에 배출되어, 성리(性理)를 궁구했다. 노수신·백인걸·유희춘임억령 등 선비의 기개를 떨친 이도 많았고, 최경창·백광훈·이달 등 시문의 대가도 적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북창 정렴, 토정 이지함, 격암 남사고 등은 신선의 세계를 드나들어 이채를 띠었다. 불가(佛家)에도 서산대사 같은 거물이 있었다. 위에 언급한 16세기의 인물 가운데 상당수는 예언서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우선 토정과 북창이 그렇고, 격암과 서산대사도 예외는 아니다. 서계도 이 부류에 속한다. 서계는 유학자인 동시에, 역술가요 음악가였다. 그가 지었다는 ‘서계이선생가장결’(西溪李先生家臧訣)은 현재 ‘정감록’의 일부로 되어 있다. 서계는 누구였는가? 그의 저술로 알려진 ‘서계이선생가장결’은 또 어떤 책인가? 그리고 서계가 살던 16세기가 ‘예언가들의 전성시대’로 불릴 수 있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서계 이득윤이란 예언가 서계는 어려서부터 성리학 공부를 많이 했다. 선조 21년(1588년)에는 진사(進士)가 되었으므로, 그의 실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서계는 수학과 역학(易學)에도 밝았다. 당시 역술의 대가 박지화(朴枝華)를 방문해 수준 높은 토론을 펼쳤다 하며, 이를 계기로 역학의 대가로 이름을 얻었다. 그는 우주자연의 생성과 운행원리에 관한 전문가였다. 쉽게 말해, 서계는 주역 점을 잘 치기로 유명했다. 아마 그런 덕택이었겠지만 정유재란이 일어나던 1597년 서계는 관직에 등용되었다. 처음엔 희릉 참봉(禧陵參奉)에 임명되었고 얼마 후 왕자사부(王子師傅)가 되었다. 이밖에 한두 가지 벼슬을 더 지냈다. 그러다 광해군이 집권하자 조정에서 물러났다. 오늘날 충북 청원군 미원면이 서계의 고향이었다. 그는 낙향 직후인 광해1년(1609) 미원면 일대 9곳에 이른바 ‘옥화구곡’(玉華九曲)을 정했다. 일찍이 성리학의 대가 주희(朱熹)가 송나라 때 푸젠성 무이산에 머물며 무이구곡(武夷九曲)에 묻혀 지낸 사실을 모범으로 삼은 것이다. 서계는 청원군 미원면을 남북으로 흐르는 박대천을 따라 하류에서 상류 쪽으로 만경대(萬景臺), 후운정(後雲亭), 어암(漁巖), 옥화대(玉華臺), 천경대(天鏡臺), 오담(鰲潭), 인풍정(引風亭) 및 봉황대(鳳凰臺)를 두었다. 옥화구곡이란 이름이 암시하듯 구곡 가운데서 서계에게 가장 중요한 곳은 제4곡 옥화대였다. 옥화란 옥구슬이 떨어지듯 아름답다는 뜻이다. 옥화대의 이름에서 유래한 미원면 옥화리엔 서계가 지은 추월정(秋月亭)도 남아 있다. 서계처럼 ‘구곡’을 정해놓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에 침잠하는 태도는 16세기 이후 선비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했다. 전라도 해남의 고산 윤선도 같은 이도 ‘고산구곡’을 노래한 것으로 유명하다. 무려 십여 년 동안이나 서계는 옥화구곡에 칩거했다. 이 때 그는 기호지방의 대표적인 성리학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과 서신을 통해 태극도(太極圖)와 역학에 관해 토론을 벌였다. 여기서도 재차 확인되듯, 일평생 서계의 가장 큰 관심거리는 역학이었다. 그에겐 또 하나 전문분야가 있었다. 음악이었다. 정두원(鄭斗源)을 상대로 거문고에 관한 지식을 교류했는데, 나중에 서계는 한국의 역대 금보(琴譜·거문고 악보)를 집성하여 ‘현금동문유기’(玄琴東文類記)를 만들었다. 일종의 거문고 악보였고, 이를 통해 서계는 한국음악사에 길이 남을 자료를 남겼다. 서계가 못마땅하게 여긴 광해군이 축출되고 인조가 즉위하자 그는 관직에 복귀했다. 선공감정(繕工監正)을 거쳐 충청도 괴산 군수에 임명됐다. 바로 그 때의 일이다.‘실록’에 보면, 서계는 서울에 올라와 국왕에게 사은(謝恩)하는 길에 의미심장한 예언을 했다. 서울 사람들의 음성을 듣고 나서 서계가 이렇게 말했다.“아직도 쇳소리가 거세게 나오고 있으니, 난리가 끝이 안 났다.” 그 뒤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서계의 예언이 맞았다며 그의 예언능력에 감탄했다. 예언가 서계는 매우 유능한 지방관이기도 해 통치 실적이 당대 최고였다 한다(실록, 인조8년 5월28일 정미). 요컨대, 서계는 주역(周易)의 대가로 출세해 훌륭한 목민관(牧民官)이 되었고 정묘호란을 예언하기도 했다. 물론 예언가 서계의 명성은 그의 탁월한 주역 실력에 기인했다. 뒷날 서계는 후손과 후학들에 의해 청주 신항서원(莘巷書院)과 귀계서원(龜溪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그들은 서계를 주역의 대가로서보다는 성리학자의 전형으로 기렸다. 이것은 예언가 서계에 관한 일반 민중들의 기억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서계이선생가장결’의 내막 서계가 남겼다는 예언서의 제목엔 ‘가장결’이란 용어가 포함돼 있다. 말 그대로라면 집안에 보존되어 오던 비결이어야겠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다. 앞서 말한 대로 후손과 후학들이 기억하는 서계는 근본적으로 성리학자였다. 그런데 그 ‘가장결’의 내용을 보더라도 그것은 서계의 집안에 전승된 비결은 아니었다. “선생이 사기막(沙器幕)에 살 때 이웃에 살던 최생(崔生)이 와서 여쭸다. 임진(壬辰)의 화는 피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 2백여 년 뒤엔 반드시 큰 난리가 일어날 텐데, 그 일을 조목조목 적어두어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러자 선생이 그럼 네게 말해줄까 라고 대답했다.”(서계이선생가장결) 이 말을 곧이곧대로 따른다면, 문제의 예언서는 서계 집안에 전해진 것이 아니었다. 서계의 제자로 추측되는 최씨가 애써 부탁해서 얻은 예언서였던 만큼 그 전승과정에서도 최씨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봐야 한다. 과연 최씨는 서계의 예언을 받아 적었을까? 우선 당장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만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이 예언서가 ‘정감록’과 대체로 일치한다는 점이다. 잠시 예를 들어보자. “적호(赤虎):이인(異人)이 남쪽으로부터 오니 한곳에 소동이 일어난다. 왜인(倭人) 같으면서도 왜인은 아닌데 화친을 주장한다.(중략) 청계(靑鷄):천리 강산이 셋으로 나뉘니 어찌할 것인가.(중략) 흑룡·현사(黑龍·玄蛇): 푸른 옷과 흰옷이 함께 동쪽과 남쪽에서 나온다.”(‘서계이선생’) 위에 인용한 내용은 말세의 시운을 말하는 것인데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말세엔 이인 또는 진인이 등장한다. 둘째, 국토가 분단된다. 셋째, 남동쪽에서 정체불명의 침략군이 쳐들어온다는 것이다. 참고로 말해, 인용문에 나오는 ‘적호’와 ‘청계’ 같은 것은 60갑자를 이용해 연도를 표시한 것이다. 예컨대 ‘청계’의 ‘청’은 갑(甲)과 을(乙),‘계’는 유(酉)를 가리킨다. 청계는 곧 을유년이다.‘서계이선생은’ 을유년에 천리강산이 셋으로 나뉜다고 하였다. 이미 말했다시피 3국 분국설은 18세기 이래 정감록의 골자를 이뤘다.‘서계이선생’은 그 전통에 충실한 예언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일제식민지에서 해방되던 1945년이 바로 을유년이었다. 예언서의 내용과는 달리 나라는 셋으로 쪼개지진 않았다. 하지만 그 해에 남북으로 분단된 것은 틀림없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서계의 예언이 또 적중했다고 믿었다. 그것은 물론 우연이었다. 적호(병인)에 이인이 나와 화친을 주장한다는 내용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적중했다고 볼 수 있다. 무리한 점이 없지 않으나 고종 3년의 병인양요(1866)를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흑룡(임진) 현사(계사) 연간에 정체불명의 외국군대가 침략해 온다고 본 것은 전혀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만일 병인양요에 관한 예언이 들어맞았다면 그 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병인양요를 겪은 뒤에 창작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서계이선생’은 일단 1860∼1870년대에 창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서계이선생’의 저술연대에 대해 좀더 생각해보자. 첫째,‘서계이선생’이 19세기 후반에 저술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그 근거는 예언서에서 발견된다.“이상하도다, 세상의 재난이여! 병란도 아니요, 칼날도 아니로다. 가뭄이 아니면 수재요, 흉년이 아니면 역병이다.”(‘서계이선생’) 여기서 보듯, 이 예언서에서 거론되고 있는 말세의 가장 중요한 조짐은 외침이나 내전을 비롯한 전쟁이 아니었다. 문제는 천연재해와 전염병이었다. 인플루엔자와 장티푸스, 콜레라가 한국을 강타해 많은 피해를 주었던 시기에 ‘서계이선생’은 쓰여졌다고 본다.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가며 민중을 몹시 괴롭히던 때 ‘서계 이선생’을 빙자한 말세의 예언이 나왔다고 추정된다. 그 때는 다름 아닌 19세기 후반이었다. 그러나 아직 갑오동학농민전쟁이나 청·일전쟁 같은 대사건이 터지기 전이었다. 그렇다면 병인년(1866) 이후 갑오년(1894) 이전에 저술됐다는 이야기다. 둘째,19세기 후반 창작설을 뒤집을 만한 근거도 ‘서계이선생’에서 발견된다. 문제의 예언서를 자세히 분석해보면 서계가 활동하던 16세기의 사정을 반영하는 부분도 있다. 이 기회에 ‘서계이선생’의 특징을 간략히 요약해 보자. ●‘서계이선생가장결’의 특징 이 예언서의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위에서 언급한 대로 말세의 징후를 전염병과 자연재해에서 찾았다는 점이다.‘정감록’은 대체로 전쟁의 발발을 말세의 시작으로 본다. 둘째, 피란지를 충청도, 그것도 주로 충청북도에 설정하였다는 점이다. 충북 보은에 있는 속리산의 증항(甑項), 황간(黃澗)과 영동(永同) 사이, 청주(淸州) 남쪽과 문의(文義) 북쪽, 옥천(沃川)이 주요한 길지로 부각된다. 충청남도의 경우 진잠(鎭岑)과 공주의 유구(維鳩)와 마곡(麻谷)도 거론된다. 길지로 선정된 지역이 충청북도에 많고, 특히 청주와 보은을 중심으로 사방에 배치된 점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서계 이득윤의 고향이 충북 청원군 미원면 옥화리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연치 않은 것 같다. 설사 말세의 징조에 관한 예언은 서계의 붓끝에서 직접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길지에 관한 언급은 서계와 모종의 관련이 있었을 법하다. 서계와 동시대의 인물이던 격암 남사고가 그랬듯, 서계도 자기 고향을 중심으로 길지를 논의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셋째, 이 예언서엔 부지런히 농사짓는 것이 말세를 헤쳐 나가는 최고의 방법으로 돼 있다.“이런 세상을 맞아 남편은 땅을 갈고 아내는 베를 짜되 벼슬자리에 오르지 말고 농사 짓는 데 부지런히 힘씀으로써 스스로 살길을 버리지 않도록 하라.”고 하였다. 또 이런 구절도 있다.“밭이여, 밭이여!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농사일에 진력하면 난세를 이겨낸다고 주장한 것이 흥미롭다. 이것은 여느 예언서와는 다른 점이다. 간혹 ‘정감록’에 밭(田) 또는 개활지에 살길이 있다고 된 부분이 있긴 하다. 하지만 ‘서계이선생’처럼 뚜렷하게 독농(篤農)을 주장한 경우는 없다. 굳이 부자가 될 필요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서계이선생’은 힘써 농사짓기를 거듭 강조한다. 이런 대목은 생전에 훌륭한 지방관으로 이름을 날리던 서계의 진심과 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계이선생’엔 비록 부분적으로나마 서계의 본뜻을 담고 있는 대목도 있지 싶다. 그러나 어떤 부분은 서계가 작고한지 300년가량 지난 19세기 후반, 그 이름을 빌려 위작한 것으로 봐야 옳겠다. ●16세기는 예언가들의 전성시대 신기하게도 서계가 활동하던 16세기에는 문화계에 많은 별들이 등장했다. 특히 그 가운데 이름난 예언가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쏟아져 나왔다. 왜 그랬을까? 어쩌면 이것은 내 억단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 이유를 나는 다음의 세 가지로 짐작한다. 첫째, 당시 사회가 무척 불안정했다는 점이다.16세기에는 여러 차례 사화(士禍)가 일어나 억울하게 핍박을 받는 선비들이 많았다. 그들은 자연히 인간의 길흉화복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고, 그런 문제를 직접 연구하는 선비들도 생겨났다. 토정 이지함과 북창 정렴 등은 그 대표적인 경우다.16세기 후반에 이르러 당쟁이 심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왜적이 침략해 사회는 위기감에 젖어들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은 16세기에 활동한 기인(奇人)과 이승(異僧)의 언행에서 예언을 발견하려는 분위기가 더욱 강화됐다. 둘째,16세기까지만 해도 한국의 문화계는 성리학 일변도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그 시기엔 성리학계에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대두해 자웅을 겨뤘다. 하지만 조선의 사상계는 아직 그다지 경화되지는 않았다. 이 시대의 유학자들은 성리학의 여러 학설에 골고루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유학자들은 성리학의 대가들이 이단으로 지목한 불교, 도교 및 음양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한 마디로, 학계의 분위기는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런 까닭에 격암 남사고의 경우처럼 역학 또는 음양학의 대가들도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을 받았다. 이 번호의 주인공 서계 이득윤 역시 그러했다. 셋째, 한국역사상 드물게 지방문화가 융성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실 통일신라시대는 물론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고급문화의 생산과 소비는 수도에서만 가능했다. 그 시대엔 지방에 고급문화가 거의 존재하지 않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앙과 지방의 문화적 편차는 조선시대에 들어가자 급격히 줄어들었다. 중국에서 창안된 강남농법(江南農法)이 전해지면서 지역개발 붐이 일어났고, 새 시대의 국가적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의 이상에 따라 전원문화(田園文化)가 고급문화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16세기에는 경상, 전라, 충청도 각지가 경제적인 면에서 골고루 개발됐고, 그 문화적 수준도 서울과 비등하였다. 각지에 고급문화의 거점이 들어섬으로써 성리학이든 역술이든 대가들이 대거 배출되었다. 예컨대 남사고는 경상도 출신이며, 이지함과 이득윤은 충청도 출신이었다. 서산대사는 평안도에서 자라나 전라도와 강원도를 비롯한 각지에서 활동했다. 조선 후기에도 사회적 불안은 수그러지지 않았다. 어떤 점에서는 더욱 심해졌다고까지 하겠다. 지방의 문화적 수준은 여전히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16세기에 비해 서울과의 문화적 편차는 더욱 커졌다. 사상적인 면에선 어떠했나? 이른바 ‘이단’(異端)이 공식적인 논의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심지어는 성리학 내부에서도 사상적 통일을 강조하는 경향이 지나쳤다. 지배층이 내세운 이론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멀쩡한 성리학자들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 배척되었다. 이처럼 사회분위기가 경직되다 보니 새 예언가가 ‘공식적으로 탄생’하기란 불가능했다. 예언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더욱 늘었지만 누구도 자기 이름을 내걸고 예언가로 행세할 수는 없는 분위기였다. 이런 판국이라 16세기를 수놓은 예언가들의 화려한 이름은 계속 도용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본래 예언가로 정평이 나있던 토정이나 서계의 이름을 빌려 새 예언서가 여러 차례 만들어졌다. 그와 더불어 그들은 해묵은 명성을 더욱 드날렸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사설] 비리 정치인 사면기준 속 보인다

    열린우리당이 8·15 대통령 특별대사면과 관련해 그 기준을 제시한 것을 보면 속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지난 대선에 연루된 정치인의 경우,‘선거기구의 공식직책’을 가졌던 사람들이 기준이라고 한다. 결국 불법 선거자금을 받은 핵심 정치인 몇명을 풀어주려고 수백만명의 민생사범을 들먹이며 그토록 요란을 떨었다는 얘기 아닌가. 그럴 것이면 차라리 처음부터 사면대상자를 솔직하게 공개하고 국민에게 양해를 구했어야 할 일이다. 열린우리당 박병석 기획위원장의 해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잘못된 관행으로 인해 대선 때 그 직책에 있었기 때문에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면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죄보다는 관행 탓으로 돌리고 있으니 구시대적 사고다. 더구나 그런 사람들이 일반 정치자금법 위반 사범과 무엇이 다른지도 궁금하다. 이래가지고는 깨끗한 정치를 아무리 떠들어도 불신만 가중시킬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시절 불법 정치자금에 대해서는 절대로 봐주지 않겠다고 대국민 약속까지 했다. 집권 2년 반만에 약속을 없는 것으로 한다면 제대로 된 정치는 아닐 것이다. 특히 사면대상자를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 등 야당 정치인 명단을 물밑으로 받았다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무엇이 두려워 이렇게 몰래 일을 처리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공식직책’ 없이 정치자금을 불법으로 받았던 노 대통령의 측근 몇명은 통치의 부담을 생각해서 사면제외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공식직책을 갖고 일한 사람들에겐 더 엄격하게 법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따라서 열린우리당은 정치인 사면 기준을 재고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신뢰를 지키는 일이다.
  • 日서 ‘한국혐오’ 만화 시판 물의

    |도쿄 이춘규특파원|‘한·일 공동주최의 2002 월드컵은 한국측이 반칙과 오심 등으로 더럽혔다.’‘한국은 독도에 등대와 헬기장 등을 건설, 경비대를 상주시키며 불법점거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을 비하·비난하는 내용으로 가득찬 일본 만화 ‘혐한류(嫌韓流)’가 26일 시판에 들어갔다. 앞서 일본의 대형 인터넷 서점 등에서 일본 서적부문 예매율 1위를 기록하며 한·일 네티즌간에 논란을 일으킨 만화책이다. 이 만화가 시중에 판매되면서 광복 60주년을 앞두고 네티즌들의 거센 반발 등 향후 큰 논란이 예상된다. 대대적인 판매공세를 펼쳐 대형서점들의 인기 판매대에 자리잡고 있는 이 만화가 앞으로 얼마나 팔려나갈지 주목된다. 표지에는 “위험천만하다며 출판사들이 출판을 거부한 문제작”이라고 표기, 우익들을 선동하는 듯했다. 이 책은 월드컵축구, 전후보상문제, 재일한국인,‘일본문화를 도둑질하는 한국’, 반일 매스컴의 위협, 한글·한국인, 외국인참정권문제, 한일합병의 진실, 독도문제 등 9개 주제별로 한국을 비난하거나 비하하는 내용 일변도이다. 이와 함께 ‘밖이 보이지 않는 가련한 민족’이라는 평론가의 칼럼 등 4편의 칼럼도 함께 실어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몸부림치기도 했다. 특히 한국언론 비난에 집중, 만화와 칼럼 등을 통해 “식민지 시절 등에 대한 날조보도를 일삼는다.”고 억지를 폈다. 한글에 대해서는 저주를 퍼부었다.“한글이 세계 최우수 문자냐?”고 비아냥거리면서 한글 창제 뒤 반포까지 3년이 걸린 것에 대해 “종주국인 중국으로부터 반역이라고 여겨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깎아내리려 했다. 특히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기 이전에는 조선인의 문자해독률이 10% 정도에 머물렀지만 합병(1910년) 뒤 일본은 학교교육에서 조선어(한글)를 필수과목으로 해 한글 보급이 급속히 진행됐다.”고 주장했다.taein@seoul.co.kr
  • [서울광장] 돈 다스리기/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돈 다스리기/육철수 논설위원

    어딜 가나 돈이, 아니 돈 가진 사람들이 말썽의 중심에 자리잡은 걸 보는 심정은 늘 착잡하다. 문민정부 시절 안기부의 불법 도청으로 불거진 ‘X파일’ 문제로 나라는 온통 벌집 쑤신 듯 어수선하다. 사회지도층을 도청한 테이프를 다 털어놓으면 어마어마한 파괴력이 있을 거라니, 아마 나라가 발칵 뒤집힐지도 모를 일이다. 남의 말을 엿들어 통치에 악용하는 위정자들의 사악함이나, 돈으로 정권을 창출할 수 있다는 가진자의 교만함에는 이젠 두 손을 들었다. 돈과 정치에 얽힌 반갑잖은 소식을 또 접하면서 문득 몇해전 어느 논객이 쓴 글이 떠오른다. 그는 정치자금과 관련해서 돈의 속성을 나름대로 재치있게 소개했다. 돈에는 눈이 달리고 코가 달려서 용케 권력을 알아보고 쫓아다닌다는 게 요지였다. 의도는 충분히 알겠는데 그 글을 읽고 난 뒤 혼자서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한 번 따져보자. 만원짜리 지폐 앞뒤 어디를 살펴봐도 이목구비는 달려 있지 않다. 일은 돈을 쓰는 사람이 다 저질러 놓고 괜히 애꿎은 돈한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 같아서였다. 돈이란 가진자의 마음가는 대로 따라간다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물론 권력이든 경제적 이익이든 ‘수익’이 보장되는 곳으로…. 지금 시중에는 새 투자처를 노리는 수백조원이 오도가도 못한다며 아우성이다. 벌써 몇달째 우리 경제의 고정 레퍼토리다. 기업은 기업대로 부자는 부자대로 정부의 강공으로 돈이 코너에 몰린 형국이다. 미래가 불확실하고 투자수익이 확실치 않으니 돈 가진자들의 마음이 움직일 리 없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로 얻은 이익을 한푼도 남김 없이 환수하겠다고 벼르고, 으름장을 놓아도 적당한 퇴로조차 없으니 숨통이 막힐 지경이라고 한다. 요즘 들어 정부가 워낙 초강경으로 투기를 몰아치니까 집값이 다소 진정세로 돌아서는 현상은 다행이다. 일부 자금은 증시로 이동하는 조짐도 보인다. 그러나 부동산에 갇힌 뭉칫돈은 여전히 미동도 없다. 이럴 때 돈의 속성, 아니 기업이나 부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정책입안자라도 나서 교통정리를 해주면 좋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돈은 사실 그 성격을 가리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누가 봐도 확실한 경우를 제외하고, 그것이 투자자금인지 투기자금인지는 제아무리 경제학 박사학위 수십개를 갖고 있어도 가려낼 재간은 없다. 따라서 부동산에 들어있는 자금을 일단 투기성으로 간주하는 정부의 태도는 문제다. 그러니 돈만 가졌다 하면 아무한테나 대고 윽박지르는 게 대책의 전부다. 돈이 부동산에 지나치게 묻혀있거나 은행에서 쉬고 있는 단기자금은 분명 나라경제의 손실이다. 불로소득이나 탈루·탈세·불법 행위는 법대로 엄격하게 제어하되, 건전한 자금은 빨리 생산성 있는 곳으로 유도해 주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옛날 전제군주시대에는 치산치수(治山治水)만 잘해도 훌륭한 군주 대접을 받았다. 농경이 경제의 전부나 다름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그래서 지도층에게 필요한 덕목 하나를 더 꼽자면 바로 돈 다스리기,‘치금(治金)’ 능력이라 할 수 있겠다. 국가지도자는 물론이고 각계각층의 사회지도층과 부자 등, 권력이나 부를 가진자 모두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돈이 권력이나 이권을 무리하게 쫓아다니지 않고 국리민복과 산업발전 등 유용한 곳으로 흘러가도록 이끄는 치금술이 아쉬운 지금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 개그계 대부 김웅래 인덕대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 개그계 대부 김웅래 인덕대 교수

    ‘그분의 시대’가 왔다. 만병(萬病)을 통치한다. 설명할 수 없는 묘약, 웃음이다. 고종 황제 때였다. 유성기(留聲機)가 황실에 처음 나타났다. 이를 본 고종 황제는 매우 신기하게 여겼다. 시험해보려고 소리꾼 박춘재를 불렀다. 영문도 모르는 박춘재는 황제의 거듭된 독촉에 목소리를 가다듬고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을 기계 가까이에 입술을 대고 부른다.‘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의 찬자리에∼’ 이어 고종은 유성기 기술자를 불러 기계 작동을 재촉했다. 그러자 기계에서 갑자기 귀신(?)이 나타난다. 박춘재의 목소리가 그대로 재현된 것.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한 물체를 통해 흘러나오자 박춘재는 깜짝 놀라 거의 까무러쳤다. 이를 본 고종 황제가 “수명이 십년은 줄었겠구나. 자네의 정기를 기계에 빼앗겼으니.”라고 했다. 이때부터 ‘십년감수’란 말이 생겨났다. 박춘재는 당시 소문난 소리꾼이기도 했지만 임금의 심사(心思)를 즐겁게 해주는 공인된 재담가였다. 팔도의 온갖 장사꾼 흉내를 기가 막히게 잘도 냈다. 자료에 의하면 당시 가무별감(歌舞別監)의 직책까지 얻었다. 이런 까닭에 학계에서는 박춘재를 현대 코미디언의 효시로 해석한다. 구한말의 박춘재 재담에서 오늘날의 만담가-코미디언-개그맨 등으로 변천돼 왔다는 것이다. 김웅래(60) 인덕대 방송연예과 교수. 우리나라 개그계의 대부로 일컬어진다. 한국 코미디 역사를 한달음에 관통할 만큼 많은 연구와 발품을 통해 내로라하는 이 시대의 ‘웃음스타’들을 배출했다. 임성훈 최미나 고영수 정광태 곽규호 김학래 임하룡 심형래 전유성 김형곤 김미화 김한국 이봉원 김국진 이창훈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지금도 김 교수를 ‘형님’ ‘스승’ 으로 깍듯이 모신다. 김 교수를 더욱 주목케 하는 것은 그가 최근 국내 처음으로 ‘웃음문화학회’를 만든 일. 웃음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지금이라도 진지한 연구를 통해 더욱 많은 웃음을 창출해보자는 취지로 학회 창립을 선언했다. 학자와 개그맨들이 함께 뭉쳤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회장은 서대석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맡았고, 김 교수는 수석 부회장. 전유성 김성녀씨가 부회장단에 합류했다. 오는 27일 첫 임원 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일정과 향후 계획을 논의한다. 이뿐만 아니다. 김 교수는 강원도 평창에 200여평 규모의 ‘코미디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에 있다. 내년 4월 완공 예정으로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쯤되면 김 교수의 ‘웃음 열정’이 궁금해지지 않을까.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33년동안 방송에서 개그프로 연출만 전문적으로 맡아오다 지난해 3월 정년 퇴임한 뒤 인덕대를 비롯, 몇몇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방학이었지만 방송국을 오가며 개그맨 오디션 심사위원을 맡으랴, 대학로 모 극장에서 개그맨 조련을 하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KBS개그프로인 ‘개그콘서트’와 ‘폭소클럽’에 최근 두 팀씩을 투입해 웃음작전을 지휘 중이다. 먼저 국내 코미디 역사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박춘재에 이어 ‘신불출’을 거론했다. 구한말의 박춘재를 거친 재담은 일제시대의 신불출을 만나 ‘만담’으로 자리잡았다는 것. 신불출은 월북한 문예인 중 무용가 최승희와 함께 유일무이하게 별도의 연구소가 생길 만큼 북한 내에서도 최고의 만담가로 명성을 날렸다. 자료에 따르면 신불출은 월북 후 1957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문예총) 중앙위원,1961년 국립만담연구소 소장,66년 중앙방송위원회 만담가로 활동했다. 서울의 전력난을 풍자한 ‘서울의 전기세’, 미국을 비난한 ‘승냥이’ 만담은 주민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전해진다. 남한에서는 장소팔 고춘자 부부, 김영운씨 부부, 김뻑국씨 등으로 대표되는 만담이 TV가 생기면서 코미디를 이어주는 웃음사(史)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게 됐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웃음문화학회 출범과 관련,“현장에 있는 연기자들과 여러 학자, 교수들이 만나 머리를 맞대고, 가슴을 맞대고, 무릎을 맞대고 얘기할 수 있어야 좋은 결과물이 생겨난다.”고 했다.“PD 활동을 하면서 가장 듣기 싫었던 소리가 ‘코미디가 저질이다.’ ‘소재가 한정돼 있다.’라는 말이었다.”면서 “앞으로 웃음 연구를 통해 이 두가지 문제를 극복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방송프로 ‘웃찾사’ ‘웃으면 복이 와요’ ‘개그콘서트’ 등도 사랑받아야 하지만, 잊혀져 가는 만담을 되살려야 한다.”면서 “조선시대의 ‘앙천대소’ ‘소천소지’ 등 과거의 유머를 알리고 미래의 웃음을 창조하기 위해 격월간지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기자와 학자들이 상호협력할 경우 극대화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웃음도 패션이듯, 복고풍도 있고 시대에 맞는 웃음도 있게 마련이 아니냐는 반문도 한다. 80년대 들어서면서 코미디는 쇠퇴하고 대신 개그가 살아났다는 그는 웃음 발전을 위해 매년 ‘올해의 웃음대상’을 제정하겠단다. 올 연말부터 사회 전반에 걸쳐 가장 웃긴 사람을 선정, 신선한 충격을 주겠다는 것. 국내 처음 개관될 코미디 박물관에는 대한민국 웃음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하겠단다. 고 서영춘씨의 유물도 처음 공개하며, 고구려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30여년 동안 PD 활동을 하면서 수집한 각종 자료 1000여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왕년의 코미디언 구봉서 배삼룡, 개그맨 전유성 심형래 등이 박물관 추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학창시절 서울 YMCA에서 레크리에이션 진행방법과 포크댄스도 배웠지요. 학교 시험이 있던 전날에도 이기동 서영춘씨가 등장하는 ‘웃으면 복이와요’ 프로그램을 꼭 봐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학교 수업 빼먹고 서울 명동의 시공관 극장의 연극관람도 자주 했지요.” 김 교수는 민통선 지역인 경기도 파주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6·25전쟁으로 서울로 피신해 수색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대성동이 낳은 인물이 아니냐고 하자 웃을 뿐이다. 이곳엔 아직도 친척들이 살고 있다고 귀띔했다. 어릴 때부터 유머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그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73년 동양TV에 입사했다. 면접 때 코미디프로를 맡고 싶다고 해 ‘코미디전망대’의 고 김경태 PD와 사수-조수로 만났다. 이어 양훈-양석천 콤비 프로그램인 ‘좋았군 좋았어’를 처음으로 맡았다.75년에는 ‘살짜기 웃어예’라는 최초의 개그프로를 연출했다. 외국잡지를 들여다보고 대학 축제 현장을 다니며 꾸준히 개그 아이디어를 모았다. 대학 다닐 때 다 외우다시피했던 ‘세계 해학전집’(정음사刊) 등의 자료도 많은 참고가 됐다. 밤이면 서울 무교동 일대를 뒤지며 DJ쇼에 출연했던 임하룡 김학래 주병진 등을 만나 방송에 출연시키는 등 웃음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동서고금 어디를 가나 웃음처럼 좋은 보약은 없습니다. 지나온 세월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웃음 연구를 위해 평생을 바칠 생각입니다.” 내친김에 서울 대학로에 개그 전용극장을 짓고 있다.160석 규모로 이달 말 간판을 내걸 예정이다. 그동안 거쳐간 수백명의 후배와 제자, 여러 개그맨들이 드나들 것으로 보여 ‘웃음의 메카’가 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 그가 걸어온 길 ▲1946년 경기 파주 대성리 출생 ▲66년 배재고 졸업 ▲73년 고려대 영문학과 졸업 ▲73년 동양방송PD ▲80년 한국방송공사PD ▲93년 중앙대 신문방송학 석사 ▲94년 제34회 골든로즈상 심사위원(이후 4회) ▲98∼2000년 한국방송공사 코미디프로그램 담당 전문프로듀서 ▲2002년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 ▲2004년∼현재 인덕대 방송연예과 교수 ■ 주요 작품 최초 개그프로 ‘살짜기 웃어예’ 연출(75년),‘유머1번지’연출(82∼92년), 시트콤 ‘아무도 못말려’ 연출(97년)시카고 코미디페스티벌 참가(2000년) ■ 주요 저서 유머개그야사(91년), 입술터진 하마도 노래방 가냐(92년), 웃음은 국민의 기본권이다(93년), 훔쳐보는 공포(94년), 김웅래PD폭소카세트북(96년), 한국을 웃긴 250가지 이야기(96년), 잡담으로 성공하기(98년) km@seoul.co.kr
  • [사설] 불법도청, 政·經·言 유착 모두 밝혀야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가 김영삼(YS) 대통령 시절 불법도청팀을 운용했고, 그 팀이 했다는 녹취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다. 불법도청이 있었는지 과거사 규명 차원에서 밝혀야 한다. 군사독재정권에서 그렇게 해도 용서받지 못할 일인데, 문민통치를 내세웠던 YS정부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더욱 충격적이다. 이와 함께 도청 내용의 진실여부가 가려져야 한다. 정치권과 특정 대기업·언론사 고위층이 유착해 불법자금을 주고받고 대통령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면 실상을 국민에게 알리고 책임을 따져야 할 것이다. 일부 언론은 당시 안기부가 ‘미림’이라는 특수도청팀을 가동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통신도청은 물론 술집, 밥집에서의 은밀한 대화를 현장도청했다고 한다. 도청팀 운용이 일부 안기부 간부들의 충성심에서 비롯된 일탈행동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용납되고, 정권 내내 이어졌다면 구조적 문제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은 어제 긴급대책회의를 가진 뒤 “잘못된 과거를 씻어버린다는 자세로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해 국민에게 밝힐 것”을 다짐했다. 통신기밀보호법, 국가정보원법 등의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는 지적이 있지만, 정치적·도덕적 책임이라도 반드시 물어야 한다. MBC가 확보했다는 ‘X파일’ 도청테이프 내용은 법원 결정으로 육성 방송되지 못했다. 그러나 1997년 대선자금 지원을 놓고 모 대기업 고위인사와 모 언론사 고위층이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고 한다. 정계와 재계, 언론계가 불법을 도모하는 양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국정원 등 관계기관의 진상규명 노력과 더불어 거론되는 기업이나 인사들 스스로 해명할 필요가 있다. 이번 도청 파문은 과거 일로만 치부할 수 없다. 현 정부는 정보기관의 정치사찰이 지금은 사라졌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어느 구석에라도 예전의 잘못된 관행이 남아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정부와 여야 정당, 언론사들은 자신들의 유·불리, 경쟁자 흠집내기 차원을 넘어 국가를 바로 세운다는 자세로 이번 사안에 임해야 한다.
  • 여고동창생 미나·주연 “유럽서 2승”

    “이제 우리는 유럽으로 간다.” 한달 새 미여자프로골프(LPGA)시즌 2승을 합작한 ‘여고 동창생’이 무대를 유럽으로 옮겨 나란히 시즌 2승에 도전한다. 무대는 20일 밤 프랑스 에비앙레뱅의 에비앙마스터스골프장(파72·6192야드)에서 개막하는 에비앙마스터스대회(총상금 250만달러). 메이저대회는 아니지만 상금 규모에선 US여자오픈(310만달러)에 이어 LPGA 두번째다. 대회측은 지난해부터 올시즌 지난 10일 현재까지 LPGA와 유럽여자골프(LET)에서 한 차례 이상 우승한 챔피언들을 비롯한 ‘거물’ 78명에게만 출전권을 부여했다. 컷오프가 없는 데다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의 전초전이기 때문에 경쟁은 더없이 치열할 전망. 모두 10명이 출전하는 한국선수들 가운데 BMO캐나디언오픈에서 감격의 투어 첫 승을 올린 이미나(사진 왼쪽·24)와 US여자오픈의 ‘여왕’ 김주연(오른쪽·24·KTF)의 각오는 남다르다. 루키 시즌인 올해 세 차례의 ‘톱10’을 모두 2번의 준우승과 마수걸이 첫 승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이미나는 본격적인 신인왕 경쟁에 뛰어들었다. 올해 33명의 신인 가운데 ‘0순위’는 고교를 갓 졸업한 폴라 크리머(19·미국). 그동안 루키 포인트 839점으로 독주 중이었다. 하지만 이미나가 캐나디언오픈 우승으로 포인트를 451점까지 끌어올려 판도 변화를 예고했다. 이미나는 이번 대회에서 우승해 역전의 발판을 놓겠다는 다짐이다. 이미나와 청주 상당고 동기생인 김주연도 시즌 2승에 욕심을 내는 건 마찬가지.US여자오픈 우승 이후 출전한 2개 대회에서 공동30위 안팎의 신통치 않은 성적을 냈다.‘운좋게 우승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선 또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한편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은 2주간의 휴식을 마치고 시즌 7번째 우승 사냥을 위해 에비앙에 모습을 드러냈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행정플러스] ‘행정도시 위헌’ 의견서 제출

    이명박 서울시장은 18일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 헌법소원’ 사건과 관련,‘행정중심도시 건설은 수도 분할에 해당돼 위헌’이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헌법재판소의 요청으로 서울시에서 준비한 1800쪽 분량의 의견서에서 이 시장은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법’은 이미 위헌 결정을 받은 ‘신행정수도법’과 실질적으로 목적, 장소, 방법 등이 거의 동일한 ‘제2의 입법’”이라고 지적했다. 이 시장은 또 “국무총리를 포함한 국가 중추기관을 3분의2 이상 이전하는 것은 국가 정체성과 통치의 근본을 쪼개는 ‘수도 분할’에 해당된다.”면서 “수도 분할은 이전보다 더 나쁘므로 수도 이전이 위헌이듯 수도 분할도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 [낮은소리] “장애인 눈높이로 세상보기 나섰죠”

    [낮은소리] “장애인 눈높이로 세상보기 나섰죠”

    ■ ’장애인 주권알리기 활동’ 김주영씨 “하고 싶었던 것은 나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스스로 나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만나기로 한 그 날, 하필이면 늘 다녔다는 그 길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약속장소에서 직선거리 10m를 남긴 채 잠시 난감해하던 그는 전동휠체어를 이내 돌렸다. 인터뷰는 그렇게도 ‘지극히 현실적’으로 시작됐다. 지체 1급 장애를 지닌 김주영(26)씨.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었다. 휠체어가 아니면 외출은 꿈도 못 꾼다. 장애가 심한 그가 지난해 직접 주인공으로 나서고, 내레이션은 물론, 기획부터 촬영 편집까지 도맡으며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외출 혹은 탈출’.11분 54초라는 짧은 러닝 타임에 장애인으로서의 삶을 고스란히 담았다. 이 다큐는 지난 5월 KBS 1TV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인 ‘열린채널’을 통해 전국으로 전파를 탔다. 또 최근 각종 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덕분에 이제는 유명인. 동네 지하철역 직원에서부터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까지 그를 알아보고 “잘봤다.”며 말을 건넨다. 그럴 때면 마음이 한결 가볍다. 자기를 알아봐줘서가 아니라 “내가 만든 작품을 보고 장애인에게 한발 더 다가오는 비장애인들이 있다면 그것으로 대만족”이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기가 두려워 안에만 있으면 악순환만 계속되는 것 같아요. 장애인이 편하게 나다니기에는 너무도 열악한게 우리 현실이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서 시각을 바꾸면 안 나오려고 해도 결국 나서게 되더군요.”그가 다큐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해 여름. 비장애인과 함께 하는 미디어교육이 광화문 미디액트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말 그대로 ‘무작정’ 갔다. 아니 작정은 하나 있었다. 어려서부터 영상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 달랑 그거 하나였다. 김씨 역시 취직을 생각 안해본 것은 아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수술받아 몸을 추스린 뒤 전문학사를 따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다. 역시나 어느 곳에서도 답신은 오지 않았다. 보통의 장애인처럼 그에게도 ‘밖’이라는 단어는 ‘공포’나 ‘두려움’일 뿐이었다. 어려운 길일수록 이것저것 고민하면 안된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아닌가. 그냥 무엇인가 해보자며 나섰다. 그 첫걸음이 그의 삶을 차츰 바꿨다. 말이야 쉽지, 처음에는 광명 집에서 광화문까지 가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간다한들 강의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카메라를 만져야 하는데 김씨에게 그나마 자유로운 손은 오직 오른손 한쪽뿐. 처음에는 카메라 만지기조차 무서워 멍하니 쳐다만 봤다. “그만 둘까도 했는데 이럴거면 왜 나왔나 싶은 오기가 생기더군요.”오기는 무서웠다. 촬영을 도와주는 다른 사람의 손길도 뿌리쳤다.“직접 해보고 싶다.”, 정말 그거 하나였다. 아예 6㎜ 비디오카메라를 휠체어에 달았다.“내 눈높이에서 세상을 그대로 담기로 했죠.”한시간짜리 테이프는 어느새 6개나 쌓여갔다. 물론 온전히 혼자의 힘은 아니었다. 저시력장애인 김언식씨와 비장애인 홍승아씨와 함께 작업했다. 처음에는 참 많이 다투기도 다퉜다.“돌이켜 보면 장애와 비장애를 뛰어 넘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었지요.” 김씨는 내친 김에 한발 더 나아갔다. 다큐 찍은 인연으로 지난 3월부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인턴으로 취직했다. 맡은 업무는 장애인 관련 방송 모니터링. 매주 20시간에 월급은 30만원, 기간은 6개월이다. 그래도 김씨는 즐겁다. 제 힘으로 번 돈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정보처리사 자격증까지 땄다. 여기에다 이번 가을 두번째 장애인미디어교육 때는 ‘조교’로 나선다. “장애인이 이동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하지만 장애인의 하루가 마치 48시간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비장애인이 아직도 많아요.‘외출’이 ‘탈출’이 아니라,‘진정한 외출’이 될 때까지 영상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인터뷰 말미에 그는 ‘서글프게 웃긴’ 에피소드 하나를 전했다. 김씨가 휠체어를 타고 가면 꼬마들이 엄마를 붙잡고 물어본다.“엄마, 저 누나는 왜 저래?”어머니는 뭐라 대답했을까.“엄마 말 안들어서 그래.”장애인의 진정한 외출을 위해 그가 카메라를 들고 찍고 또 찍어야 할 이유다. 광명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현실의 벽’ 깨는 장애인단체들 김씨는 사실 예외적인 경우다. 현실의 벽은 여전하다. 장애인 4명 가운데 3명은 한 달에 한 번 외출할까 말까다. 여기다 장애인들은 대부분 실업자다. 당장 생계문제가 급하다. 이런저런 문화행사가 있다지만 ‘그림의 떡’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김씨처럼 나 스스로의 힘으로 나 스스로를 표현해 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연극 영화 노래 등 장르도 다양하다. 고생해가며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간단한다. 그들도 표현욕구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제 장애인들도 “문화 즐기기”에서 “문화 만들기”로 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무대에서, 카메라 들고, 마이크 잡고… 비장애인들이 장애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스스로 말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3회대회가 열렸다. 여기에는 장애인들이 직접 제작한 영화들이 출품됐다. 김씨처럼 장애인 작품이 퍼블릭액세스 채널을 통해 공중파를 타기도 했다. 이에 따라 장애인단체들이 서서히 문화로 시선을 옮기고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에서는 서서히 미디어교육이나 영상워크숍 등을 꾸리고 있다. 이 가운데 장애여성문화공동체 끼판은 연극에서 영상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미 연극을 통해 인정받은 연출력과 연기력이 자산이다.2003년부터 연극팀 ‘춤추는 허리’를 결성해 활동하는 장애여성공감도 있다. 중증 장애인이 중심이되 비장애인과 함께 활동하는 극단 휠도 단발 공연에서 순회공연으로 슬금슬금 영역을 넓히고 있다. 노래도 인기다. 2003년 장애인노래패 ‘시선’을 앞세워 공연을 열었던 장애인문화공간은 올 가을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노래 공연을 다시 열 생각이다. ●우리 얘기는 우리 입으로… 이들의 공통점은 스스로의 시선으로 자신들을 얘기한다는데 있다. 기존 문화나 매체들이 장애인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존 문화 매체들이 나빠서라기보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시선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근원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왜곡된 모습을 스스로의 힘으로 바로잡고 싶다는 욕구, 그것이 서서히 흘러나오고 있다. 최재호 장애인문화공간 대표는 “왜곡을 고치려면 직접 말하는 수밖에 없다.”면서 “이제는 장애인 스스로 느껴서 만든 문화를 비장애인과 함께 나누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혹, 먹고 사는 문제와 이동권마저 보장이 안된 상황에서 조금은 사치스러운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이에 대해 정영란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은 “장애인 역시 비장애인들처럼 문화에 대한 재능과 끼가 있다.”면서 “그동안 가려져 있었던 것이 이제 나타나는 것일 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아직은 일부 장애인들의 얘기들일 뿐이다. 그래도 희망은 접지 않는다. 누군가 통로를 열어두면 다른 장애인들도 적극적으로 문화 활동에 뛰어들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박성준 장애인문화센터 팀장은 “아직 바깥 세상과 단절된 장애인들이 더 많다.”면서 “이들을 열린 공간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문화를 만들고 즐길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태성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장애인 창작활동 애로점 장애인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과정은 산넘어 산이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 연습할 수 있는 공간도, 실제 공연 무대도 마련하기 어렵다. 장애인 입맛에 맞는 영상 기자재도 없다. 그 중 으뜸은 역시 재정 문제다. 최근 늘고 있는 장애인 주체 문화 창작 활동은 대부분 비영리 민간단체가 주도하고 있다. 회비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이들 단체는 사무실 유지 등 기본 운영비를 마련하는데도 헉헉 거리는게 현실이다. 그러니 의욕적인 출발에 비해 결과는 신통치 못한 경우도 종종 눈에 띈다. 때문에 이들 단체들은 대부분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이나 기금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서울시 장애복지계정이나 여성발전기금, 사회복지기금 등이 내건 이런저런 사업 공모에 지원서를 내는 것이다. 이것도 거의 각개격파식이다. 각 개별 기관에서 따로 추진하는데다 정례화된 것도 아니고 단일화된 창구조차 없다. 노리고 있다가 재깍 신청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기금이, 어떤 예산이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다 보니 이름이 덜 알려진 소규모 단체들은 지원서 한장 내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 박성준 장애인문화센터 팀장은 “예산이나 기금이 급격하게 늘어나기를 바라기가 어려운 현실”이라면서 “예산·기금 등을 다루는 곳과 장애인 문화창작단체 사이의 정보를 한꺼번에 공유할 수 있는 센터나 인터넷사이트 등 허브축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했다. 올해 정부 예산 가운데 장애인 복지재정은 7393억원. 지자체 소관으로 이전된 부분이 있어 지난해보다 9.5% 줄었다. 내역을 들여다 보면 창작 활동과 관련된 예산을 찾기 힘들다. 최근 정부는 장애인의 문화 향유권을 강화하기 위해 공연 관람을 지원하는 ‘문화바우처’ 제도를 도입했지만, 걸음마 수준. 창작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까지는 범주를 넓히지 못하고 있다. 올해 문화예술진흥기금 가운데 장애인 문화예술 사업을 위해 약 6억원의 예산이 그나마 책정됐다. 하지만 실제 장애인 창작 활동으로 연결된 부분은 1억 7500만원(13건)에 불과했다. 지난해 문화관광부는 ‘창의 한국’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발표했다. 그 가운데 장애인 창작 공연 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센터 건립 등 관련 내용이 있어 기대를 모았지만, 구체적으로 실현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조태성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월드 이슈] 가난·빈곤·분쟁…눈물의 아프리카

    [월드 이슈] 가난·빈곤·분쟁…눈물의 아프리카

    검은 대륙의 눈물이 멈추지 않고 있다.8일 폐막되는 G8 정상회담에서 지난달 G7 재무장관회의에서 확인됐던 수준 이상의 빚 탕감이나 극적인 원조 증액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지난 40년 동안 대외원조만 4500억달러(450조원)가 제공됐지만 대륙의 실상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프리카를 한숨 짓게 하는 빈곤과 기아, 에이즈, 내전과 분쟁을 돌아보고 바람직한 원조 방법을 모색해본다. 하루 60센트(630원). 아프리카 인구의 약 절반인 3억 3000만명이 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돈이다. 사하라 이남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 1인당 한해 국민총소득(GNI)이 765달러를 밑돈다. 에티오피아와 브룬디 국민들은 90달러(9만 4500원)로 1년을 버텨내고 있다. 유엔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만 하는 세계 최빈 48개국 중 이 대륙에만 32개 나라가 포함돼 있다. 80년대 이후 이들 나라의 1인당 소득은 13%나 줄어들었고 극빈층 숫자는 곱절로 늘었다. 세계은행은 1990년대 10년 동안 잠비아에서 1인당 GDP가 2% 하락하는 사이 극빈 인구도 똑같은 비율로 늘어나고 우간다의 GDP가 3.7% 증가하자 빈곤층 숫자도 같은 비율로 줄어든 것에 주목한다. 원조나 지원보다는 국가의 경제성장 자체가 빈곤 해결에 더욱 결정적이라는 분석이다. 대학살과 인종청소, 내전으로 인한 식량난도 심각해 한해 50만명 이상이 기아로 숨진다. 그리고 오염된 물을 마셔 숨지는 사람은 1년에 70만여명에 이른다. 이렇게 상황이 계속 악화되는 데는 무능하고 부패한 절대권력에 지원금을 통제할 권한을 부여해왔기 때문이다.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스와질란드 국민과 달리 국왕 일족은 벤츠승용차 구입에 88만달러 이상을 썼고 미국의 콩고민주공화국 지원금은 제트기와 궁전 건축에 전용됐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한해 아프리카에서 비밀계좌로 빼돌려지는 금액은 26억 5000만달러”라고 주장했다. 역내 국가들이 지금까지 상환한 대외원조만 5500억달러에 이른다. 아직도 상환해야 할 2950억달러가 대륙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옥스팜과 같은 구호기관들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강대국들의 광범위한 수탈, 그리고 아프리카의 농광업 자원 수출을 가로막는 부국들의 무역보호와 농업부문 보조금이 빈곤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자립기반 마련이 우선 “구걸로 아프리카의 미래를 창조할 수 없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지난 5일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 개막연설 중 한 대목이다. 과거 식민지배와 수탈에 대해 책임이 있는 G8 국가들을 상대로 추가적인 부채 탕감이나 원조 증액을 호소하는 다른 정상들을 공박한 것이다. 이번 G8 정상회담에서 15개 아프리카 국가를 포함,18개국의 부채 400억달러를 탕감해주는 방안이 승인되겠지만 아프리카의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들 나라의 전체 부채 2950억달러의 13%에 불과하고 부패한 관료들의 배만 불릴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합의를 주도한 영국조차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일이 많았다. 다른 프로그램에 쓰이는 예산을 슬쩍 돌려 새로 제공하는 것처럼 꾸미는 수법이 자주 등장했다. ●현물원조 부패관료 배만 불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2년 전 에이즈 치료 명목으로 150억달러를 약속했으나 의회에 예산 요청을 할 땐 지원액을 줄여버렸다. 케냐의 경제전문가 제임스 시그와티는 독일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원조는 이익보다 해만 끼친다.”며 “제발 원조를 중단해달라.”고 주장했다. 케냐에 원조가 끊길 경우 우간다나 탄자니아와 식량 교역을 하고 이를 위해 내부 기반시설을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취지다. 앤드루 낫시오스 미 국제개발처(USAID) 처장 역시 “(선진국의) 원조가 부패를 키워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동조했다. ●농산물 보조금·관세 철폐해야 파이낸셜타임스는 자그디시 바그와티 컬럼비아대 교수가 현지인 기술 교육과 아프리카에서 일할 자원봉사대의 운영에 비중을 두는 방식으로 원조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강조했다. 또 설탕과 면화 등 아프리카의 대표 상품들에 대해 선진국들이 보조금과 관세를 철폐하는 것도 당장 돈 몇푼 지원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했다. 카다피 원수도 역내 국가들의 교역 증진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식민지배도 혼란의 원인 아프리카에는 왜 내전이 끊이지 않는가? BBC 인터넷판은 시에라리온 내전에 참전했던 용병을 통해 아프리카의 눈으로 바라 본 아프리카 문제를 진단했다. 코버스 클라센스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군대에서 복무하다 사설 군대 회사로 옮겨 1995년부터 시에라리온 내전에 참전했다. “사람들이 산 채로 집과 함께 태워지고, 소녀들이 성당에서 강간당한 뒤 목이 잘려지는 등 아프리카에서 들려 오는 끔찍한 이야기는 실제로 모두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아프리카에는 아무 할 일도, 미래에 대한 전망도 없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이들이 쉽게 전쟁에 빠진다고 클라센스는 말했다. 수입이 두 배가 되면 내전이 일어날 확률이 절반으로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만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에서도 전쟁이 일어나는 아이러니도 있다. 전쟁을 할 만한 일이 생기면, 돈은 오히려 전쟁을 진행시키는 재원이 된다. 시에라리온 장관인 오케르 아담스는 “다이아몬드가 발견됐을 때 농업은 사실상 중단됐고, 광산 지역에선 무력충돌이 일어났으며 해외에서도 사람들이 다이아몬드를 캐려 몰려들었다.”고 설명했다. 앙골라의 반란군 지도자였던 요나스 사빔비가 살해됐을 때 그가 광물 자원으로 쌓은 부는 40억달러에 달했다. 식민통치가 끝난 뒤 발생하는 혼란도 아프리카 내전의 주요 원인이다. 앙골라 내전은 종족 생활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식민통치는 종족의 터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국경을 일방적으로 나눴다. 아프리카 내전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성공적인 해결 사례를 통해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에서 일어난 비극은 피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남아공의 케이스는 독보적이다. 만델라의 강력한 지도력 아래서 흑인들은 과거를 용서했고, 백인들은 실용주의와 상식을 배웠기 때문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보츠와나 에이즈전쟁 성공 티없는 순백의 정장을 입은 올해의 미스 유니버스 나탈리 글레보바는 지난 5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 요하네스버그의 병원에서 에이즈 검사를 받았다. 그녀의 명성으로 남아공의 다른 젊은 여성도 똑같은 일을 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남아공에서는 500만명 이상이 에이즈로 고통받고 있다. 에이즈 공포도 심각해 감염사실이 알려지면 사회적으로 배척당하거나 폭력에 시달리기도 한다.2000년 남아공 사망 통계에 따르면 사망 원인의 3분의1이 에이즈였다. 스와질란드는 성인의 40%가 에이즈에 감염돼 있다. 현재 2500만명의 아프리카인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됐으며 20년 후에는 그 숫자가 900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유엔이 최근 경고했다. 에이즈와의 전쟁에서 별다른 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20년 후에는 아프리카 대륙 인구의 10%가 에이즈 환자가 되는 셈이다. 현재 전세계 에이즈 환자의 64%가 아프리카인이다. 보츠와나는 정부의 적극적 노력으로 세계 최대 에이즈 감염국이란 멍에를 스와질란드에 넘겨줬다. 보츠와나 정부는 모든 에이즈 환자들에게 무료로 약을 제공했다.2만명 이상의 보츠와나 에이즈 환자는 3∼4가지 치료제를 섞어먹는 칵테일 요법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국민들은 정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하는 것처럼 에이즈 감염 검사를 받는다. 보츠와나의 에이즈 치료법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진일보한 것이다. 보츠와나의 경우는 바다에 물 한방울 떨어지는 것에 불과하지만, 아프리카 대륙의 귀감이 될 만하다. 보츠와나의 성공 사례를 목격한 이들은 정부의 적극적 의지와 노력이 에이즈 치료의 중요한 열쇠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논술이 술술] 장자/글쓴이: 장자

    ‘철학’과 ‘사상’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과는 직접 관련 없이 어렵고 딱딱한 것으로 생각하기 일쑤이다. 중국의 고전 사상이라면 더 그렇다. 뭔가 모르게 엄숙한 교훈들로 가득차 있거나,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말들과 심오한 내용들로 되어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하지만 후대의 인물들이 덧붙여 놓은 온갖 해석과 주석들을 제외하고 순전히 원래의 내용만을 살펴보면 ‘논어’나 ‘맹자’,‘장자’와 같은 책들은 결코 읽기 어렵지 않다. 공자나 맹자, 장자와 같은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들은 어떤 개념들의 논리적 전개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일상적 삶 속에서 나타난 예화들을 통해서 자신의 사상을 설파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실은 애당초 철학과 사상이 인간의 삶과 독립된 형이상학적인 사색의 취미가 아니라, 인간의 현실과 삶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극복해 갈 것인가 하는 실천적인 고민들의 산물임을 알려 준다. 또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변화시키기 위한 ‘설득의 사상’의 성격이 유독 강하다. 특히 ‘장자’는 더욱 그러하다. 이 책에서 장자는 ‘포정’과 같은 백정이나 매미 잡는 사람, 호랑이 사육사, 활 잘 쏘는 사람 등을 등장시키며 그들이 삶에서 얻은 지혜들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드러내고 있다. 때로는 곤(鯤)과 붕(鵬)이나 혼돈(混沌)과 같은 허황된 이야기들을 예로 들기도 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장자는 당대의 인간들을 지배했던 상식적인 사고와 세속적인 가치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하지만 그의 비판은 상식의 세계와 세속적인 가치에 맞서서 또 다른 세속적 가치와 권위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의 비판은 세속적 가치와 권위를 근본적으로 초월하는 광대함과 통쾌함을 지니며, 그것들에 길들여지지 않는 인간의 무한한 자유를 지향한다. 오늘날 사회의 규모가 날로 커져가고, 조직 체계가 고도화될수록 거꾸로 인간들은 더욱 무력해지고, 그들이 삶에서 지닐 수 있는 자유로운 선택의 폭은 더욱 작아지고 있다. 각종 매체를 통해서 통일된 삶의 방식과 규범, 가치관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어느덧 인간들은 무의식과 욕구마저도 사회의 통제를 받는 자동 인형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자신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돌아볼 여유도 없이 자본과 과학기술의 융합과 부추킴에 의해 생기는 여러 가지 환상과 욕망들에 얽매여 그것을 따라가기에만 여념이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인간 인식의 유한함과 만물의 평등성,‘쓸모없음의 쓸모’를 강조한 장자의 사상은 특히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대입 논술고사의 제시문으로도 가장 많이 출제되고 있는 책이 ‘장자’이기도 하다. ‘장자’에 담긴 많은 이야기들은 우리 자신을 근원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지혜를 회복시킨다. 장자의 사상은 우리 자신의 상식과 가치를 근원적으로 뒤집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번역자인 안동림씨의 말처럼 “상식의 척도에서 보면 그는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인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터무니없기 때문에 위대한 사상가일지도 모른다.‘장자’ 가운데는 ‘논어’나 ‘맹자’에 보이는 경건 독실한 인생의 지혜도 착실한 이상주의의 설교도 찾아보기 어렵다.‘논어’나 ‘맹자’가 그대로 도덕 교과서라면 ‘장자’는 그렇지 않다는 데 그 특유의 가치가 있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www.unidream.co.kr) ■독서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중3∼고3 -관련 교과:고등 사회, 도덕, 국사, 윤리와 사상, 전통윤리 -함께 읽어 볼 책:맹자(맹자), 논어(공자), 동양철학에세이(김교빈 외), 동양철학은 물질문명의 대안인가(〃) -기출논제:서강대 2001학년도 정시 논술, 인하대 2002학년도 수시1학기 논술, 서울교대 2004학년도 정시 논술, 고려대 2005학년도 정시 논술, 경희대 2000학년도 모의논술, 서강대 2000학년도모의논술, 서강대 2003학년도모의논술. ■생각해보기-장자가 말한 ‘제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장자가 말한 ‘지인’은 어떠한 존재인가. -‘사람들은 모두 쓸모있는 것의 쓸모(유용지용)는 알아도 쓸모 없는 것의 쓸모(무용지용)를 모른다.’는 장자의 말이 오늘날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자신의 생각을 써보자. -장자가 말한 ‘다스리지 않음의 다스림’은 어떤 뜻인가. -장자가 말한 ‘자연의 순리에 따른 통치’와 ‘신자유주의’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 ‘日 역사교과서 근대사인식’ 학술회의

    역사연구단체협의회는 ‘일본교과서의 근대사 인식과 역사교육’을 주제로 8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역사연구단체협의회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사태를 계기로 한국의 역사 관련 학회들이 결성한 단체다. 이번 학술회의에서 주목을 끄는 대목은 일본에 침략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동아시아 각국의 사례 발표다. 팜 꾸옥 수 베트남 하노이국립대 교수, 폴 크라토스카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등이 베트남·싱가포르·필리핀·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역사교과서 문제를 다룬다. 이들 나라는 서구제국의 오랜 지배를 받은 경험 때문에 일제의 대동아공영권 구호에 열광했던 국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서구제국보다 더 잔인한 일제의 통치방식에 곧 환멸을 느꼈다. 주최측은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일본 역사교과서가 가지는 문제점을 확인하는 동시에 아시아의 미래를 위한 역사교육을 전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평화 연대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비타민E 노인여성 심장병 예방효과”

    수백만 미국인이 만병통치약쯤으로 여기고 있는 비타민E 보충제가 여성들의 심장질환·마비를 예방하지는 못하지만 65세 이상 여성들에게는 상당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심장혈관연구소는 이날 미국 약학저널에 게재한 보고서에서 캡슐 형태의 이 약에 포함된 산화방지제가 동맥에서의 플라크(班) 형성을 억제, 심장질환 예방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45세 이상 3만 9876명의 여성을 아스피린 100㎎과 위약(僞藥),600 국제단위의 비타민E와 위약, 아스피린과 비타민E, 위약 처방 등 4개 그룹으로 나눠 지난 1992년부터 지난해까지 추적, 관찰한 결과 이같은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65세 이상 여성들의 경우 탁월한 효능이 입증됐다고 강조하고 있어 비타민E의 효능을 둘러싼 논쟁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고 신문은 전했다. 오리건주립대 마렛 트레이버 박사는 “유전학적으로 심장병 발병이 시작되는 이 시기 여성에게 비타민E가 탁월한 효능이 있음을 증명한 흥미있는 연구”라고 평가했다. 65세 이상 4000명 중 비타민E 보충제를 복용한 노인들의 경우 24%나 주요 혈관질환이 줄어들었고 심장충격은 34%가 감소했으며 심장마비 사망은 49%가 줄었다고 트레이버 박사는 소개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대통령 연임·의회해산권 주장

    노무현 대통령이 말하는 “비정상적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한 대안”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5일 “이 문제에 관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 어느 학자의 글도 읽은 적이 있다.”고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숭실대 강원택(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지은 ‘한국의 정치개혁과 민주주의’라는 책을 말한다. 이 책을 통해 노 대통령의 여러 대안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는 유추는 가능한 셈이다. 강 교수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반복된 정국의 파행이 여당이 과반 의석을 갖지 못하는 ‘분점정부’ 출현과 이에 따른 대통령과 의회 권력간의 갈등 구조에 기인한다고 분석하고 있다.즉 지역주의의 한계에 따라 여당이 의회 과반을 갖기 힘든 구조적 모순 속에서 야당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의원 빼내오기’ 등 사회공학적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나선다는 것이다. 저자는 제도적 개선책으로 내각제나 대통령에게 연임과 함께 의회 해산권을 부여하는 프랑스형 준대통령제 도입을 제안했다. 내각제 도입이 국민 정서상 어렵다면 현행 대통령제의 틀을 유지하는 선에서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성 제고를 위해 ▲단임제 폐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분점정부 출현 최소화 및 통치력 회복 방안으로는 ▲대선과 총선 시기 및 임기 조정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국회의 해임 관련 권한 폐지 등을 내놓았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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