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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 마지막 총독 ‘패튼 신드롬’

    지난주 자서전 홍보를 위해 홍콩을 찾은 ‘마지막 총독’ 크리스토퍼 패튼의 인기가 심상찮다. 사인회가 열리는 곳마다 수백명씩 줄을 서는 것은 예사다. 자서전 ‘별 볼일 없는 외교관’의 판매량은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를 능가한다. 현지 서점가에서 ‘해리포터’ 시리즈에 이어 베스트셀러 2위를 기록중이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26일 “중국으로의 반환 이후 확산되고 있는 대중적 좌절감이 식민지 시절에 대한 향수와 만나 ‘패튼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교관 패튼’에 대해서는 자서전 제목대로 “별 볼 일 없었다.”는 게 중평이다. 존 볼턴 유엔주재 미국 대사를 “세계 평화에 약간 위험이 되는 인물”로 불렀는가 하면, 싱가포르를 “사형제가 있는 디즈니랜드”라고 표현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솔직함이 ‘정치인 패튼’에겐 플러스 요인이 되고 있다. 물론 패튼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부추기는 가장 큰 요인은 영국 통치기보다 악화된 경제상황이다. 반환 1년만에 아시아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은 홍콩은 2003년엔 실업률이 9%까지 치솟을 만큼 고용사정이 악화됐다. 올해 1·4분기 실업률 5%도 영국 통치기 말년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주민들의 열망과 달리 민주화 이행이 지체되고 있는 현실도 ‘식민지 민주주의’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지고 있다. 마거릿 엔지 시민당 의원은 “영국 통치기에도 많은 불만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물러간 뒤 사람들은 ‘열린 정부’가 통치했던 식민지 시기가 더 공정하고 나은 시절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 체류 마지막 날인 24일 패튼은 외신기자 클럽 만찬에서 홍콩의 민감한 정치 현안을 건드려 주목받았다. 그는 홍콩인들이 투표권을 가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점진적 민주화’ 옹호론을 “완벽한 난센스”라고 질타했다. 홍콩과 본토의 지도자들을 향해선 “행정장관과 의원에 대한 직선제 일정을 조속히 제시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조황 정보]

    # 민물 장맛비가 내리면서 대부분의 저수지마다 만수위를 보이고 있는 요즘, 무더운 여름밤을 보내기에 알맞은 계곡지로 가족과 함께 피서를 겸한 출조도 많아지고 있다. 서로 이해와 배려로 정을 나누며 자연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해 보는 건 어떨까.◇수도권-김포지역 저수지 및 수로들은 호황이 이어지고 있다. 안성 고삼지 오름수위 속에 대형 떡붕어 낱마리. 평택호도 십여수는 무난하고, 진위천 조황도 좋아진 상태.◇강원권-파로호 상류 조황은 주춤한 편. 수위가 더 오르면 좋아질 듯. 소양호는 수위가 상승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조과가 없고, 원주·횡성지역 소류지는 야간 대물낚시에 도전해볼 만하다.◇충청권-예당지는 오름수위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조과없다. 부여 반산지는 호조황. 서태안지역 조과도 신통치 않은 편. 당진지역 계곡형 소류지에서는 떡밥에 짭짤한 재미. 수위상승 중이어서 좋은 조과가 기대되는 충주호는 요즘 장어낚시가 한창. 달천강 조정지댐은 낱마리 조과. 영동 장찬지 오름수위덕에 호조황.◇영남권-경북지역은 많은 비가 내려 대물밤낚시에 좋은 조과가 기대된다. 경남 합천호는 육초대가 물에 잠기면서 대형떡붕어 많이 낚이고 있다.◇호남권-전북지역 소류지는 대물낚시 시즌. 완주 대아댐 떡붕어 호조황.# 바다 장마와 태풍의 영향으로 전체적으로 다소 부진한 편이다. 그러나 곧 여름 휴가철. 누구나 쉽게 바다낚시의 매력에 빠지는 계절이다. 뜨거운 태양이 서해바다 물속으로 가라앉으면 자그만 낚싯대 하나 메고 가까운 방파제를 찾아 하얀 파도 부서지는 소리 들으며 밤바다를 향해 낚싯줄을 던져보자.◇동해권-고성지역 선상 가자미낚시 조황 꾸준한 가운데, 울진에서는 선상 열기낚시, 후포방파제에서는 뱅에돔 조황 좋은 편이다. 포항지역 신항만 방파제에서는 밤볼락낚시가 활발.◇남해권-부산지역 태풍과 장마 영향으로 다소 부진. 일자방파제 뱅에돔 작은씨알 낱마리. 선상낚시에는 전갱이, 참돔 등이 짭짤. 통영과 거제지역 갯바위에서는 참돔과 뱅에돔 대박. 여수지역도 갯바위 뱅에돔, 감성돔 호조황.◇서해권-부안지역은 장마속에서도 감성돔을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선상 우럭조황도 좋은 편. 군산지역 어청도에선 대형돌돔 출현.
  • [문화마당] 거꾸로 가는 일본의 역사시계/허동현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패전이전 일본의 군국주의가 여성용 속옷 브래지어라면, 일본의 우파는 그 속에 든 찌그러뜨려도 원형으로 돌아가는 형상기억 합금이며, 일왕은 호크라고 할 수 있다. 좀 민망하지만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일본의 우경화 현상을 설명할 때 종종 드는 예화다. 군국주의의 사전적 정의는 “군사력에 의한 대외적 발전을 중시하여, 전쟁과 그 준비를 위한 정책이나 제도를 국민생활에서 최상위에 두고 정치·문화·교육 등 모든 생활 영역을 이에 전면적으로 종속시키려는 사상과 행동양식”이다.“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일왕이 통치한다.” 대일본제국헌법(1889) 제1조이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세계 모든 나라의 헌법이 공통적으로 보장하는 국민주권과 이를 지킬 국민저항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타이완침략, 운요호사건, 청·일전쟁, 의화단 봉기 진압, 러·일전쟁, 제1차 대전시 대독 선전포고, 러시아혁명에 간섭한 시베리아 침략, 만주사변, 중·일전쟁, 소련과 충돌한 모몬한 사건, 그리고 태평양전쟁. 당시 이웃나라를 상대로 열 손가락도 모자랄 만큼 쉼 없이 전쟁을 일으킨 나라는 일본 이외에는 없다. 그 죗값으로 맞은 원자폭탄 두 발에 군국 일본은 무릎을 꿇었다. 침략전쟁의 두 주역 군부와 재벌이 해체되고(1945), 일왕은 살아 있는 신에서 인간으로 내려앉았으며, 전쟁을 금지하는 평화헌법이 만들어졌다(1946). 미국은 일본인들의 가슴을 옥죄고 있던 브래지어를 풀어내려 하였다. 하나 이게 웬일인가? 1947년 중국 국민당이 공산당에 밀려나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주저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역코스(reverse course)라 부르는 점령정책의 전환이다. 미국은 민주주의라는 선물을 일본 시민에게 주었다 포장도 뜯기 전에 다시 빼앗아갔다. 역사의 시곗바늘은 거꾸로 돌기 시작하였다. 1948년 재벌기업의 자회사 폐지계획이 축소되었으며, 극동 군사재판은 침략전쟁의 주역들 대다수에게 면죄부를 주었다.1949년 중국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쫓겨 가고 1950년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자, 전범자는 죗값도 치르지 않고 정계에 복귀하였다. 이들은 1951년 미군주둔을 허용하고 미국의 전략체제 속에 일본을 종속시키는 미일안전보장조약을 맺는 대가로 1952년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립을 얻어 내었다. 반공의 이름으로 전범세력과 타협한 미국은 군국주의라는 때묻은 브래지어를 다시 일본 시민들에게 채웠다. 일왕이라는 호크와 침략전쟁의 주역인 형상기억 합금은 그대로 남았다.1954년 미·일 상호 방위원조협정에 따라 방위청이 세워지고 자위대라는 미명하에 다시 군대가 들어섰으며, 이듬해에는 평화헌법 개정을 당헌으로 내건 자민당이 집권하였다. 전후 집권세력의 뿌리는 군국주의 전범세력이다. 이들은 형상기억 합금처럼 미군정에 의해 구부러지기 이전 군국주의 시절로 되돌아가려 했으며,1991년 냉전의 해체는 그 복원력에 탄력을 더해주었다. 침략의 과거사를 미화하는 역사교과서 왜곡, 전범세력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전쟁도 벌일 수 있는 ‘보통국가’ 만들기, 일장기 달기와 기미가요(일본국가) 부르기의 의무화나 ‘애국심’ 교육 강화를 통한 전체주의 되살리기, 독도 영유권 주장, 그리고 작금의 북한 선제공격론은 모두 일본 우익이 벌이는 원형찾기 작업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이처럼 지배 엘리트가 철저한 역사적 성찰을 하기는커녕 원폭을 핑계로 마치 전쟁의 피해국인 양 침략의 역사에 분칠을 하는 일본의 역사시계는 아직도 뒤로만 가려 한다. 하나 우리는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불빛을 본다.2001년과 2005년 일본 우익이 주도한 역사교과서 왜곡파동 때 역사의 기억을 둘러싼 내전에서 승리한 일본 시민사회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력으로 가슴을 옥죄는 브래지어를 벗어버리고 동아시아와 함께 사는 진정한 평화국가 일본을 이룰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기꺼이 연대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허동현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 [씨줄날줄] 광복절 특사/진경호 논설위원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그리스의 패권을 다투던 기원전 5세기. 스파르타에 패한 아테네에 ‘30인 참주’가 다스리는 친 스파르타 정권이 집권한다. 그러나 폭정이 도를 넘으면서 몇 년 만에 아테네엔 새로운 민주적 형태의 정부가 들어선다. 폭정을 일삼은 이들 서른 명의 참주를 처형하라는 민중의 요구가 거세게 일면서 이들의 목숨은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인다. 그러나 새 정부는 뜻밖의 조치를 내린다. 처벌은 물론 재판조차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인류 역사상 국가 차원에서 처음 이뤄진 사면(赦免)으로 전해지는 내용이다. 100여년이 흐른 기원전 250년 중국에서도 최초의 사면이 이뤄진다. 진(秦)나라 효문왕이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기에 앞서 정적들의 죄를 사하고 벼슬을 내려준 것이다. 아테네의 경우 나라가 둘로 쪼개질 것을 우려했다면, 진나라는 취약한 아들의 권력기반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면이 쓰였다. 왕권과 사면은 이렇게 수천년을 함께 해왔다. 법치국가가 들어선 지금도 사면은 핵심적인 국가통치수단이다.“세상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져야 한다.”며 사면을 법치주의의 최대 위협으로 간주한 칸트와 벤담 등 법철학자의 저항이 거셌지만 지금껏 대통령이나 총리의 사면권을 금한 나라는 찾기 어렵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1948년 8월30일 제정한 법률 제2호 사면법을 강산이 여섯번 변한 지금까지 단 한 차례 개정 없이 지켜오고 있다. 언도(선고), 형무소(교도소) 등 법안의 용어가 고색창연하지만 그 효력은 맹위를 떨친다.3·1절과 8·15광복절 등 주요 경축일엔 어김없이 대통령 특별사면이 단행되고, 이를 둘러싼 갑론을박도 끊이질 않는다. 대사면 이듬해엔 교통사고율이 5%포인트 정도 올라간다는 주장도 있는 걸 보면 사면은 화해보다 박탈감, 거부감으로 국민들에게 비쳐지는 상황이다. 비리권력자 봐주기로 남용되면서 국민통합 대신 권력기반 강화의 수단으로 악용돼 온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이 8·15대사면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정부 수립후 90번째 사면이다. 재작년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된 사면법 개정 움직임이 다시 일고 있으나 사면의 그 강렬한 유혹을 뿌리칠 권력은 찾기 어려울 듯하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레바논사태 최상 시나리오는?

    레바논사태 최상 시나리오는?

    지난 12일부터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 공격으로 레바논 내 희생자가 380명을 넘어섰고, 내전의 상처를 딛고 재건을 본격화하던 레바논은 50년 전 상황으로 돌아갔다는 분석이다. 영국의 진보 일간 인디펜던트는 5차 중동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레바논 사태의 5가지 시나리오를 제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내다봤다. 우선, 국제 여론이 더욱 악화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를 설득, 이스라엘군이 퇴각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교전 전 어정쩡한 휴전상태로 되돌아가게 되고, 승리를 자축한 헤즈볼라는 무장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둘째, 이스라엘이 승산 없는 전쟁을 시작했음을 깨닫고 외교적 해법을 찾는 경우다. 미국은 유럽의 지원을 받아 레바논 국경에 완충 병력을 보내 헤즈볼라의 무장해제를 감독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22년간 이스라엘 점령에서 레바논을 ‘해방시켰다.’고 믿는 헤즈볼라는 이란과 시리아의 압력이 없는 한 쉽사리 무릎을 꿇지 않을 것이다. 셋째, 이스라엘이 게릴라 전술의 덫에 빠지는 경우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점령에도 살아남았고, 공격 이후에는 병력을 더 많이 모집하고 있다. 헤즈볼라의 후원자이자 부시 대통령이 ‘테러의 축’으로 보고 있는 이란과 하마스가 나서면 로켓 공격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게릴라전이 확산되면 국제적 비난 속에 적어도 ‘양심의 깃발’만 세울 수 있을 뿐이다. 넷째, 이스라엘이 시리아를 먼저 치면 교전을 원치 않는 시리아는 질 것이고, 유약한 레바논 정부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종교가 뒤섞인 레바논이 정부마저 사라지면 극심한 무정부 상태에 빠지게 되고, 시리아가 다시 막후 통치를 할 수 있다. 레바논 남부는 온갖 무장세력이 들끓는 ‘테러 천국’이 될 것이다. 다섯째, 이스라엘이 대대적인 레바논 침공에 나서면 국제 무기상과 전쟁을 원하는 헤즈볼라만 좋게 된다.1982년 이스라엘 침공이 재연되지 말란 법도 없다. 하지만 그런다 해도 헤즈볼라를 완전 무장해제할 수는 없고 피해자에서 침략자로 전락하는 이스라엘은 국제적 비난의 수렁에 빠질 것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월드 리포트] 파리의 새로운 상징 ‘케 브랑리 박물관’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 앞은 입장을 기다리는 관광객들로 일년 내내 북적인다. 에펠탑 지척에 한달 전부터 또다른 줄이 생겼다. 지난달 23일 문을 연 케 브랑리 박물관(Le Musee du Quai Branly)에 들어가려는 이들이다.24일 박물관 관계자에 따르면 한 달새 벌써 15만 1000명이 다녀갔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임기 7년의 대통령에 첫 당선된 1995년 취임 일성으로 건설 계획을 발표한 지 11년, 착공 5년만에 완공된 케 브랑리 박물관은 문화대국 프랑스의 저력과 전통을 유감없이 발휘한 사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전 트로카데로에 있던 인류 박물관과 포르트도레에 있던 아프리카·오세아니아 문명사 박물관을 합친 이 박물관은 그동안 대중으로부터 소외됐던 비유럽 문명을 재조명한다는 의미가 크다. 총 30만점에 이르는 소장품 가운데 세계적 문화유산 3500여점이 영구 전시돼 관람객들은 복도 하나만 건너면 아마존에서 파푸아뉴기니, 마다가스카르까지 다양한 문명을 접할 수 있다.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이 건물은 길이 220m, 높이 10m의 유리 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본관, 테라스, 행정동, 미디어테크 등 총 4개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박물관 본관은 기둥과 가교, 원색으로 채색된 거대한 큐브를 끼고 있으며 다양한 식물종으로 구성된 1.8㏊의 정원 한가운데 들어서 있다.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재인식의 장’을 표방한 이 박물관은 미래적인 디자인의 독특한 외관 못지않게 전시 컨셉트도 21세기 박물관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각종 기획전시회와 이에 어우러지는 문화예술 행사들이 계획돼 있으며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전세계 박물관 연구소,15개의 대학과 협약이 체결돼 연구와 교육을 동시에 진행할 예정이다. 이 박물관에 대해 일부 비평가들은 비유럽권의 토착 예술만을 따로 모아 전시하는 것은 서구와 비서구를 분리하는 정신구조를 심화시켜 특정 문명에 대한 평가절하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특히 많은 소장품이 과거 식민지에서 수집된 것들이어서 제국주의 색채가 강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 박물관의 개관을 계기로 파리가 ‘다양한 세계문화가 만나는 교차점’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인류학자들과 민속학자들은 물론 문화적 호기심이 강한 프랑스인과 수많은 관광객이 앞으로 이 박물관을 찾을 것이다. 세계적인 수준의 박물관 하나가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계산이 불가능하다. 프랑스 제5공화국 역대 대통령들은 재임 중 위대한 문화유산을 후대에 남기는 전통을 갖고 있다. 조르주 퐁피두의 퐁피두센터,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의 오르셰 미술관, 프랑수아 미테랑의 그랑 루브르에 이어 시라크 대통령은 재임 중 케 브랑리 박물관을 완성함으로써 그 전통을 이었다. 끊이지 않는 악재로 시라크 대통령은 우울한 통치 말년을 보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라크 대통령은 케 브랑리 박물관과 더불어 문화 정책 성적표에서만은 역대 대통령에 견주어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후손들은 자질구레한 정치적 실책을 기억할 리 없지만 케 브랑리 박물관은 그의 이름과 함께 영원히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함혜리 파리 특파원 lotus@seoul.co.kr
  • 인도네시아 ‘미신과의 전쟁’

    인도네시아가 ‘미신과의 전쟁’에 돌입했다.최근 잇따르는 대규모 자연재해를 집권세력의 실정과 부패에 대한 신의 분노로 해석하는 주민들이 급속하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 과학자들을 채근하기 시작했다. 24일 미국 일간 크리스천사이언스 모니터에 따르면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최근 천재지변의 원인을 국민들이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과학자들의 TV와 라디오 출연을 늘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동요하는 민심을 방치할 경우 심각한 통치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국영 여론조사기관 LSI에 따르면 지난 6월 지진피해를 입은 욕야카르타 주민의 78.1%가 “최근의 재해는 자연이 인도네시아에 보내는 경고”라고 답했다. 유명 정치인들까지 나서 재해에 대한 비합리적 해석을 부추기고 있다. 역술가 출신의 정치인 페르마디는 19일 TV에 출연,“유도요노는 ‘뜨거운 손’을 가졌다.”면서 “모든 재앙은 그로부터 야기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같은 신비주의적 해석이 도시 중산층 사이에서도 힘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자카르타의 자동차 판매상 겐두트 이리안토는 “지진은 인도네시아인들에게 보내는 신의 경고라고 생각한다.”면서 “재앙을 막는 길은 회개하고 기도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인구의 88%가 ‘세속화’된 무슬림이지만 농촌지역에서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자연숭배의 전통이 강하다. 지난 5월 므라피 화산 중턱에서는 한 무속인을 따르는 주민 수백명이 정부의 소개령을 무시하고 마을에 남았다. 화산활동이 잠잠해지자 이 무속인은 일약 전국적 유명인사가 됐다. 디노 파티 드잘랄 대통령궁 대변인은 “미신과 신비주의가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면서 “과학자 집단과 언론, 종교지도자들이 나서 그릇된 신념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전운 감도는 소말리아

    전운 감도는 소말리아

    15년간의 내전에 시달려온 ‘아프리카의 뿔’ 소말리아에 대규모 국제전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유엔이 정통성을 인정한 과도정부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에티오피아군 수천명이 국경을 넘어 진입하자 이슬람 군벌세력이 즉각 ‘지하드(聖戰)’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교전이 벌어지고 군벌세력을 지원해온 에티오피아의 ‘앙숙’ 에리트레아까지 개입한다면 동북아프리카가 전면전에 휘말리는 것도 시간문제다. ●에리트레아 개입 땐 대규모 국제전 에티오피아 군인들을 태운 차량 수십대가 과도정부가 자리잡은 바이도아 시가지에 진입했다고 BBC 방송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에티오피아는 최근 수도 모가디슈를 장악한 소말리아 군벌 ‘이슬람 법정연대(UIC)’가 과도정부를 공격할 경우 즉각 개입할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에티오피아군의 진입은 UIC의 지원을 업은 이슬람 민병대가 과도정부 통치지역 안 35㎞ 지점까지 접근한지 하루만에 이뤄졌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현지 전문가들은 최대 5000명이 소말리아 영토 안에 들어온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이슬람 민병대 지휘관 셰이크 무크타르 로보는 “신의 의지에 따라 에티오피아인들을 몰아내기 위해 성전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UIC의 성전 선포에 대해 “다른 이슬람 국가들로부터 지원을 얻어내려는 ‘어리석고 값싼 선동질’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에티오피아는 그동안 UIC의 목표가 “합법적으로 구성된 과도정부를 무너뜨리고 에티오피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난해왔다. ●1977년 소말리아가 에티오피아 침공 국민의 과반수가 기독교도인 에티오피아는 이슬람 급진주의를 거부하는 압둘라히 유수프 대통령의 소말리아 과도정부를 2004년 출범 때부터 지원했다. 그런데 최근 이슬람식 정교일치를 추구하는 UIC가 미국이 지원하는 군벌들을 제압한 뒤 수도를 장악, 과도정부 관할지역을 포함한 소말리아 전역을 통치하겠다고 선언하자 무력개입을 준비해왔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의 이번 행동이 소말리아인의 반감을 부추겨 과도정부의 지지기반을 더욱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진단도 있다. 로이터 통신은 ‘대(大) 소말리아’를 추구하는 UIC가 전 국토를 장악할 경우, 소말리아인들이 많이 사는 에티오피아 오가덴 지역을 병합하려 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개입을 서두른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 소말리아는 1977년 오가덴에 대한 통치권을 주장하며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전례가 있다. 숀 매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은 “파국을 막기 위해 조만간 미국과 유럽국가를 포함한 ‘콘택트 그룹’이 만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색깔’드러낸 서울대 이장무號

    서울대 ‘이장무 체제’의 수뇌부가 윤곽을 드러냈다. 새 핵심 보직 교수들은 대부분 현 참여정부와는 ‘코드가 다른’ 인물들로 알려져 앞으로 대학 운영에서 정부와 마찰을 빚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장무(61) 서울대 신임총장은 21일 부총장에 김신복(59) 행정대학원 교수, 교무처장에 김완진(52) 경제학부 교수, 대외협력본부장에 송호근(50) 사회학과 교수를 각각 내정했다. 이들은 모두 참여정부와 한번쯤 ‘각’을 세운 인물들이다. 이에 따라 법인화, 입시제도 등 다양한 부분에서 정부와 머리를 맞대야 하는 상황에서 향후 서울대와 정부간 관계가 어떻게 설정될지 주목된다. 당초에는 전임 정운찬 총장에 비해 정부와 갈등이 덜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었다. 김 부총장 내정자는 교무처장, 행정대학원장 등을 거친 뒤 2002년 4월부터 1년간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교육부 차관을 지냈다. 참여정부 출범 때 초대 교육부총리 후보로 거론됐다가 ‘코드가 안 맞는다.’는 이유로 배제됐다. 김완진 교수는 2002∼2004년 정 전 총장 때의 첫 입학관리본부장을 지냈다. 입시문제로 정부와 대립하는 모양새를 자주 보였다. 서울대가 입시에서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등 참여정부와는 교육철학이 다른 인물로 평가받아왔다. 송 교수는 참여정부에 비판적인 지식인 중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힌다. 국내보다는 국제 업무를 맡아 정부와 맞상대할 일은 별로 없겠지만 서울대 내부에서도 송 교수 발탁을 의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송 교수는 지난해 6월 한 강연에서 “지금은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않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니라 새날을 올 수 있게 하는 ‘21세기 노래’를 불러야 할 때”라며 참여정부의 ‘운동권 성향’을 비판했다.5·31선거 직후에는 여당 참패의 원인을 ‘정권의 오만과 독선에 찬 통치 스타일에 대한 시민들의 응징’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서울대 내부에서는 “정부 관계가 악화돼 서울대의 입지가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없지 않다.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사진으로 제2인생 허형구 전 법무부장관

    사진으로 제2인생 허형구 전 법무부장관

    노을이 산과 벌판을 덮기 시작한 저녁. 백로 한 마리가 석양을 물고 둥지로 돌아온다. 새끼는 목이 빠져라 고개를 들어 어미를 부르고 기다림 끝에 짝을 만난 백로 한 쌍은 정에 겨운 듯 고개를 한껏 젖힌다. 온종일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허형구(80) 변호사는 그때를 놓칠세라 렌즈의 초점을 맞춘다. ●검찰 근현대사의 산증인 허 변호사는 1926년 김해에서 태어났다. 김해평야로 유명한 그의 고향은 겨울이면 넓은 벌판을 가로질러 찬바람이 쌩쌩 불던 곳이었다. 수문을 넘어가 조개를 줍고 가을이면 도랑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끓여 먹던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책읽기를 좋아했던 그는 초등학교를 마친 뒤 가정형편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직공생활을 했다. 그후 독학으로 부산대학에 들어갔으며 제2회 고등고시에 합격했다. 부산대 출신으로 고시에 합격한 것은 허 변호사가 처음이었다. 6·25 직후인 1953년 부산지검에서 검사로서 첫발을 뗀 허 변호사는 “법과 원칙을 무엇보다 중시했던 시절이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부산에 근무할 때 3·15 부정선거와 관련해 시위를 벌이던 김주열군이 진압하던 경찰이 쏜 최류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을 수사해 공산당의 폭동선동이라는 조작·은폐 시도를 파헤쳤다. 그는 “말못할 압력도 있었지만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수사했다. 그뒤 4·19혁명을 보면서 민중의 힘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30년간의 검사생활 끝에 1981년 제17대 검찰총장과 88년 제38대 법무부장관을 지낸 그는 검찰 근현대사의 산증인이다. 그는 “민주화와 사회발전, 통치권자의 생각도 진보해나가고 발전해가는 측면도 있지만 요새 검찰이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검찰의 중립은 밥그릇 문제가 아니라 헌법정신의 기본인 삼권분립 차원에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5공화국 시절 검찰총장으로 근무하면서 이른바 ‘저질연탄 사건 수사’로 9개월 만에 총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그가 강조하는 검찰의 중립성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수사에 대한 뒤숭숭한 소문이 있은 뒤 얼마 전까지 수사를 칭찬했던 대통령이 어느날 검찰에 책임을 물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검찰 고위간부가 대통령에게 사과하는 게 좋겠다고 했으나 결국 물러나기로 했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이후 6년가량 변호사로 활동하다 다시 노태우 정부 때 다시 나라의 부름을 받았다. ●백로와 사랑에 빠진 팔순의 사진작가 허 변호사는 사진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검사 생활하는 틈틈이 사진을 즐겨 찍었다. 답답한 도심을 떠나 복잡한 사건을 잊고 자연의 품에 안겨 스트레스를 풀어보자고 시작한 사진이었다. 하지만 공직에서 떠난 그에게 사진은 제2의 인생을 선물했다.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난도 길러봤지만 사진만 한 매력은 없었다. 사진동호회에 가입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아직은 아마추어’라며 겸손해하지만 좋은 풍경과 벗할 수 있다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을 만큼 열정만은 프로다.“법률은 강직하게 사회를 지켜야 하고 예술은 부드럽게 세상을 보듬어줘야 한다. 사진 한 장에 낭만을 담고 싶다.”며 사진에 대한 철학을 밝혔다. 허 변호사의 사무실에는 각종 법률서적과 더불어 사진관련 서적, 필름뭉치와 벽에 걸려있는 풍경 사진들이 눈에 띈다. 어려서부터 문학 책을 좋아했던 터라 그의 사진에는 ‘토지’,‘메밀꽃 필무렵’ 등 문학작품의 무대가 자주 등장한다. 또 안개에 둘러싸인 숲, 이슬을 머금은 꽃 등 자연도 단골손님이다. 팔순의 사진작가는 특히 백로와 사랑에 빠졌다.“백로 사진은 상당히 찍기 어렵습니다. 좋은 장소에서 오래 참고 기다린 사람에게만 그 자태를 보여주기 때문에 단순한 사진 한 장이 아닙니다.”자신의 일생을 회상하듯 “고고하면서도 거만하지 않고 거만하지 않으면서도 올곧은 자태를 렌즈에 담고 싶었다.”고 말하는 노신사의 머리에도 백로가 내려앉았다. 백로를 사진에 담기 위해 밟아보지 않은 서식처가 없을 정도로 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는 백로 사진을 위주로 전시회를 세 차례나 열었고 지난해 7월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백로와 무학 그리고 사계비경’이라는 제법 규모있는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올초에는 대검찰청 로비에서 전시회를 열고 후배 검사들에게 그동안 갈고 닦은 사진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현재 한국사진작가협회 운영자문위원직도 맡고 있다. 허 변호사는 “3∼4월이면 백로가 오기 시작해 5∼6월초까지 많이 찍는다. 하지만 요즘은 백로 서식지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백로가 사람을 피해 숨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디카’보다는 아날로그가 더 매력 허 변호사는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지금은 손자·손녀만 20여명이 넘는다. 자신의 손자·손녀 또래의 젊은이들이 월드컵을 맞아 거리에서 펼치는 응원을 보고 있자면 그들이 조국에 애착을 갖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그의 눈에 비친 젊은 세대는 ‘열정’ 그 자체다. 해방과 6·25, 산업화와 민주화를 겪어온 허 변호사는 이들에게 “기다릴 줄 알아라.”고 조언한다. 허 변호사는 “디지털 카메라도 좋지만 필름으로 찍어서 현상하며 기다려야 하는 아날로그에도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좋은 사진은 시간과 장소가 맞아야 하며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참아야만 찍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좌우명은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수적천석(水滴穿石)이다.“물 방물 하나하나는 약하지만 수없는 세월 동안 견디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돌을 뚫듯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려면 참고 노력할 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팔순에 접어든 허 변호사는 요금 건강이 예전같지 않아 오전에만 법무법인 사무실에 나와 근무하고 오후에는 산보 등을 하며 건강을 관리한다. 그는 “사진에 빠져 곁을 비웠어도 지금까지 싫은 내색을 안한 아내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검찰과 법무부의 총수까지 지낸 그에게 욕심은 없다. 다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지면 일생을 정리할 수 있는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게 그의 작은 소망이다. ■ 허형구 변호사는 ▲1948년 부산사범학교 졸업 ▲1952년 부산대 법과대 졸업 ▲1953년 부산지검 검사 ▲1966년∼서울지검부장, 대전·부산지검·서울지검 차장검사 ▲1974년 청주지검장 ▲1981년 검찰총장 ▲1988년 법무부 장관 ▲1990년 변호사(현) ▲저서 검찰실무, 주석형사소송법(3권)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삶의 일탈 낯선 세상으로

    삶의 일탈 낯선 세상으로

    북적거리는 도시, 스트레스를 한아름 안겨주던 일에서 뛰쳐나와 “나 이번 휴가에는 정말 푹 쉬고 싶어∼.”라며 울부짖고 있다면. 조금은 독특한 추억과 경험이 담긴 여행을 하고 싶다면. 갈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태국, 그 중에서도 깐짜나부리의 자연에 나를 맡기자. 깊은 산 속, 콰이강가에 걸린 해먹에 누워 좋아하는 음악을 귀에 꽂고 책 한 권 펼치는 순간. 세상만사 모든 시름을 다 벗어버린 ‘나’만이 존재한다. 글 사진 태국 깐짜나부리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태국 콰이강의 깐짜나부리 정글 래프트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수풀이 무성한 밀림 사이를 흐르는 연한 갈색의 강물, 그 위에 둥실둥실 방갈로가 떠있는 그림을 상상해보라. 어둠이 내려앉으면 전등 대신 호롱불에 의지해 길을 밝힌다.TV도, 에어컨도, 컴퓨터도 쓸 수 없다. 완벽하게 세상에서 벗어나 있다. 혹, 그래서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것은 당신이 들어갈 만한 그림이 아니다. 강가에 쳐놓은 흔들거리는 해먹(그물침대)에 누워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극도의 한가로움’이 그려지고, 어느 순간 그런 여유를 동경하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이곳에 당신을 던져보라. # 자연 속에 그려넣은 한가로운 나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5시간 남짓 떨어진, 멀지 않은 태국에는 방콕, 푸껫, 파타야, 치앙마이 등 유명한 여행지가 많다. 방콕에서 서북쪽으로 120여㎞ 떨어진 깐짜나부리도 어떤 면에서는 꽤나 잘 알려진 곳이라 하겠다. 우리나라에는 다소 생소한 지명이지만, 면적상으로는 태국에서 3번째로 큰 지역인데다, 그 유명한 콰이강의 다리가 있으니. 이런 곳에서 어떻게 ‘휴(休)’를 즐길 수 있겠냐고? 성급한 판단은 잠시 접고, 깐짜나부리 시내에서 서북쪽으로 차를 몰고가자. 태국에서도 손꼽히는 천혜의 밀림, 사이욕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길이다.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연갈색 물이 흐르는 콰이강을 만난다. 이 강변에 있는 작은 선착장에서 롱테일 보트를 타고 달려가면, 바로 그 ‘그림’이 나온다.‘리버콰이 정글 래프트(River Kwai Jungle Raft)’다. # 머리를 비우고, 그냥 자연에 맡기자 콰이강의 연갈색 물은 울창한 밀림, 정글 래프트의 나무 방갈로와 한데 어우러져, 자연스럽고 안정된 그림을 만들어내는 가장 적합하다. 들뜨고 지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연한 베이지톤의 그림이다. 이런 곳에서 누군가 내게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연락을 해야 한다는 걱정은 필요하지 않다. 당장 컴퓨터를 켜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버렸다. 방갈로 기둥 사이에 매달아 놓은 해먹에 누워 MP3플레이어에 가득 채운 음악을 듣는다. 일에 치여 읽지 못했던 책을 폈다.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가끔씩 지나는 롱테일 보트가 만들어내는 파도에 해먹이 움직인다. 그네처럼 흔들흔들, 재미있다. 책을 읽다가 눈이 피로해지면 눈 앞에 펼쳐진 울창한 밀림을 바라보며 달래준다. 시력까지 좋아지는 듯하다. 테라스에 누워 선탠을 즐기는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어둠이 내려앉고, 호롱불이 리버콰이 정글 래프트를 은은하게 밝힌다. 저녁식사는 양꿍, 쁘리오 완 등 태국음식으로 차려져 있다. 작은 불빛에 의지해야 하는 어둠이 약간 불편하고, 어색하더니 어느새 적응이 됐다. 오히려 아늑한 느낌이다. 강가에 있어 푹푹 찌던 도심의 더위는 이곳에 없다. 바람이 살랑이며 불어와 에어컨이나 선풍기 따위는 필요 없다. 눈을 뜨는 아침부터 잠자리에 드는 밤까지, 스트레스를 벗어버린 편안함과 시간에 쫓기지 않는 넉넉함, 자연에 동화되는 여유를 그저 만끽하면 된다. # 정글 탐험, 몬족 마을 여행도 좋아 이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활동적인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다면-그럴 일은 없어보이지만 혹 지루해졌다면- 콰이강으로 뛰어들어 보자. 카누를 타거나, 대나무로 만든 뗏목을 타고 조금 더 멀리 나가서 수영을 즐기는 대나무 래프팅을 해도 좋다. 구명조끼를 입고 잔잔한 물결에 몸을 맡겨 흘러흘러 가는 것도 꽤나 재미있다. 물살이 세지 않아 조금만 발장구를 치면 원하는 방향으로 쭉쭉 전진한다. 방갈로 뒤편 밀림 속에 태국의 소수민족 ‘몬족 마을’을 돌아보는 코끼리 트레킹을 해도 되겠다. 전통 생활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이들의 마을을 찬찬히 둘러보는 것도 이국적인 문화를 만끽하는 방법. 단, 모기약은 필수다. ■ 이곳에서 休~ 리버콰이 리조텔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속의 산책, 세상에서 벗어난 여유, 여기에 약간의 ‘문명 생활’을 추가하고 싶다면 ‘리버콰이 리조텔(River Kwai Resortel)’이 딱이다. 사이욕 국립공원 선착장에서 롱테일 보트를 타고 달려가면 밀림을 배경으로 한 목조 건물이 나타난다. 이곳이 리버콰이 리조트다. # 밀림을 정원 삼아 산책하는 맛 선착장에서 보면 그리 넓어보이지 않는 2층 건물이 이 리조트의 본관이다. 롱테일 보트에서 내려 로비로 올라가는 곳곳에 태국 전통 장식품들이 놓여있어 작은 박물관 같다. 로비 한쪽에 맑고 푸른 물이 가득한 수영장과 콰이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레스토랑이 있고, 방갈로로 가는 길에는 ‘매점’도 있다! 확실히 정글 래프트보다는 현대적이다. 50여채의 방갈로가 숲 속에 난 좁은 길을 따라 띄엄띄엄 놓여있다. 함부로 나무를 자르거나 길을 내는 등 밀림을 훼손하지 않고 방갈로를 짓다 보니 이렇게 방갈로들이 멀찍이 놓여졌단다. 자연을 보호하고자 함이었지만, 결국은 울창한 밀림을 리조트의 정원으로 만들어버린 셈이 됐다. 다양한 허브를 재배하는 허브공원이 가까이 있어, 은은한 허브향이 풍겨온다. 밀림을 정원 삼아 산책도 하고, 자연 아로마 요법으로 마음까지 다스린다. 조금 더 걸어가면 태국에서 손꼽히는 규모(길이 280m)의 ‘라와동굴’ 표시가 나온다.107개의 계단을 올라 동굴로 들어갔다. 온갖 기이한 형상으로 만들어진 자연 인테리어로 동굴 안이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동굴 안 햇빛이 들어오는 곳에 불상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도 독특하다. 역시 독실한 신자가 많은 불교국가답다.(어른은 200바트, 아이는 100바트) # 여유 속에서 찾는 알찬 즐거움 평상시에 태국식당에서 먹어본 얼큰한 국물 ‘양꿍’과 볶음국수 ‘팟타이’를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은 이곳에서 준비한 독특한 코스다. 주방장이 직접 나와 태국의 채소, 양념 등을 소개하며 만드는 법을 설명한다. 커다란 팬을 들고 온갖 재료를 넣으며 요리를 직접 만들어 보고, 한끼를 즐기는 재미있는 시간이다. 통돼지 바비큐 뷔페와 캠프파이어가 이어지며 리조트의 밤이 저문다. 연갈색의 콰이강물과 대조되는 깨끗한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거나, 햇살을 즐기는 선탠을 해도 좋다. 콰이강에서 카누, 수영, 대나무 트레킹을 즐기고 온 뒤 피곤함이 밀려온다면 산들바람을 느끼며 태국 전통 마사지를 받아보자. 호사가 별건가. 몸이 노곤해지며 피로가 풀리고 정신이 맑아지는, 여기서 누리는 이것이 바로 호사다. # 여행 정보 ■ 가는 길:태국 방콕의 북부터미널에서 깐짜나부리로 가는 에어컨버스(120바트·100바트는 약 2600원)가 매일 오전 2차례 출발한다.3시간 정도 소요. ■ 여행상품:㈜황금깃털여행(마타하리)는 태국전통안마, 바비큐 파티, 코끼리 트레킹, 뗏목 트레킹(또는 카누), 태국 전통음식을 만드는 쿠킹 클래스 등이 포함된 ‘리버콰이 리조텔’상품을 89만원에 준비했다.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리버콰이 정글 래프트’ 는 79만원. 두 상품 모두 콰이강의 다리, 담넌 사두악 수상시장, 사이욕 너이 폭포, 전쟁박물관 등의 일정이 포함돼 있다.3박5일. 1577-2585,www.goldtravel.co.kr ■ 이곳 뺀다면 아니온만 못하리 # 휘파람이 들려오는 듯, 콰이강의 다리 제2차 세계대전에 지어진 미얀마로 넘어가는 철도용 다리. 영화 ‘콰이강의 다리’(1957년)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푸른 숲으로 둘러싸여 흐르는 연갈색의 콰이강은 전시 상황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고즈넉하다. 다리 위를 걸으면 멀리서 경쾌하면서도 비장한 콰이강의 휘파람 행진곡이 들려오는 듯하다. 다소 허술하게 관리되는 곳도 있어, 발 아래 흐르는 황토빛 강물이 그대로 보이기도 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경우라면 다리 전경만 보는 것이 좋을 듯. 난간의 모양이 아치형이 아닌, 사다리꼴로 된 곳이 폭파 이후 복구된 부분이다. 콰이강의 다리 위를 달리는 기차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운행한다.20바트. 기차가 지날 때에 대비해 곳곳에 대피공간이 있다. 주로 일본인이 많이 오는 편. 적어도 다리를 만들 당시는 일본이 ‘패전국’이 되기 전 ‘점령국’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근처 수상 레스토랑(Floating Restaurant)에서 콰이강을 보며 맛있는 태국음식을 먹을 수 있다. 유명 관광지의 식당인 만큼 다른 곳에 비해, 또 보통 태국의 물가에 비해 약간 비싼 편이다. 대다수의 메뉴가 100바트 이상. # 전쟁 관련 갤러리, 전쟁박물관 콰이강의 다리 근처에 ‘제쓰 전쟁박물관(JEATH War Museum)’이 있다. 세계대전 당시 태국에서 일어난 전쟁에 참가했던 일본(Japan), 영국(England), 미국(America), 태국(Thailand), 네덜란드(Holland)의 앞글자를 딴 이름이다. 당시 일본군의 무기와 사진들을 전시해 놓았다. 또 콰이강의 다리 건설 당시의 열악하고 잔혹한 환경을 밀랍인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조악해보이는 인형의 모습이 오히려 더욱 잔인하고 사실적으로 보인다. 입장료 20바트,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 ‘태국스러운’ 시장, 담넘 사두악 서민의 생활을 보고 싶다면 시장을 가라고 했다. 태국인의 순수함이 남아있는, 방콕 근처에서 가장 크고 활발히 움직이는 수산 시장이 바로 이곳. 황토빛 짜오프라야강 곳곳에 나무로 지어진 주택들과 배를 타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모인다. 비좁은 수로를 황야우라는 배들이 부대끼며 다니는 진풍경이 펼쳐진다.1시간 정도 구경을 하면서 싱싱한 과일, 먹을거리, 수공예품들을 즉석에서 구입할 수도 있다. 황야우 빌리는 데 500∼1000바트 정도. # 사이욕 너이 폭포 깐짜나부리 외곽 열대밀림 지대인 ‘사이욕 국립공원’ 안에 있는 폭포. 큰 규모의 폭포가 ‘사이욕 야이’, 그보다 작은 것이 ‘사이욕 너이’다.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에는 사이욕 너이가 폭포의 웅장함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경관을 연출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 축제의 천국 말레이시아 말라카 ‘치트라와르나 말레이시아(citrawarna malaysia)’.‘말레이시아의 색깔’이란 뜻의 말레이어로 다인종·다문화 국가인 말레이시아의 다양한 색깔을 한껏 뽐내는 축제다. 지난 8일 개막돼 말레이시아 전역을 뜨겁게 달궈가고 있다. 독립기념일 축제나 메가세일 축제 등 연이은 축제의 신호탄이기도 하다. 이 축제의 개막식에서 사이드 시라주딘 말레이시아 국왕은 2007년을 ‘말레이시아 방문의 해’로 공식선포하기도 했다. 내년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 그동안 이룩한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풍요 등의 바탕위에 관광지로서의 명성 또한 한층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것이다. 엄격한 회교율법이 지배하는 말레이시아 여행에 매력을 못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조용하고 자연친화적인 분위기속에 다양한 색깔을 숨겨둔 말레이시아의 관광지들에 주목하는 사람들 또한 점차 늘고 있는 추세. 그중의 한 곳이 말라카다. 스펙트럼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빛처럼 동서와 고금을 아우르는 다양한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말레이시아의 심장, 쿠알라룸푸르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여행지. 세계적 랜드마크인 페트로나스 트윈빌딩 등의 현대적 건물이 눈을 부시게 하는가 하면, 도심에서 1시간거리인 부키팅기 같은 고산지역의 원시림이 폐부를 씻어주기도 한다. 그곳에 야자수 늘어진 해변은 없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느껴보고 싶다면, 그네들만의 다양한 전통과 생활상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될 곳이다. 팔색조의 현란한 날갯깃과 같은 다양한 색깔을 가진 나라 말레이시아. 물이랑 열대과일 몇개 싸들고 팔색조의 중심부를 관통해 보자. 글 사진 말레이시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역사의 향기 가득한 말라카 말라카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의 도시.‘말라카의 역사는 말레이시아의 역사’라는 말처럼 옛것과 새것, 동양과 서양이 절묘하게 융화되어 있는 곳이다.14세기말 수마트라섬에서 쫓겨온 한 왕자에 의해 세워진 말라카 왕조는 해상 실크로드의 동방거점으로 성장하며 풍요로운 시절을 구가했지만,1511년 포르투갈의 침공으로 멸망한 이후, 수백년에 걸쳐 네덜란드와 영국 등 유럽열강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이같은 외세 통치기간의 역사가 토착화되면서 동서양의 문화가 혼재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게 된 것. 말라카 관광은 현지인들이 에이 파모사(A´ Famosa)요새라고 부르는 산티아고 요새(porta de santiago)에서 시작된다. 포르투갈의 점령 직후 세워진 난공불락의 요새.1641년 네덜란드의 침공으로 파괴됐다가 정복자들의 손에 의해 복원된 다음, 다시 영국과 일본 등의 공격을 받아 정문외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질곡으로 점철된 말레이시아 역사를 웅변하고 있는 곳이다. 하모니카를 불며 관광객들의 동정을 자극하는 악사를 뒤로하고 산티아고 요새 뒤쪽 언덕을 오르면 세인트 폴 처치(St.Paul´s church). 포르투갈의 그리스도교 포교 거점지였지만, 이곳 역시 가톨릭을 박해하던 네덜란드와 영국의 공격으로 파괴되어 벽만 남아있다. 요즘엔 ‘밤이면 밤마다’ 말라카 해협을 배경삼아 내레이션 쇼가 진행되고 있다. 세인트 폴 교회앞에 서 있는 프랑스 신부 성 사비에르(St.Xavier) 동상의 왼쪽손이 가리키는 대로 언덕을 내려오면 스태더이스 광장이다. 말라카 왕국부터 외세 통치시절과 현재까지의 유물들이 보관된 스태더이스기념관, 네덜란드 건축 양식의 크라이스트 처치 등이 있는 곳이다. 얼핏 보기에도 유럽의 시골마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받는다. 스태더이스 광장 왼쪽의 존커 스트리트(Jonker Street)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골동품 골목이다. 수백년된 골동품을 파는 가게들과 불교·이슬람교·힌두교 사원이 모여있는 평화의 거리, 그리고 기념품 등을 파는 가게 등이 뒤섞여 있다. 이곳 상권을 주름잡는 사람들은 화교. 그래서인지 중세유럽식 건물에 중국식 홍등이 매달려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조그마한 기념품은 이곳에서 준비하는 것이 좋다. 공항 면세점보다도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유적지외에 특별한 관광코스가 없는 이곳에서 말라카 강(강이라기보다는 수로에 가깝다)을 따라 뱃놀이를 즐겨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 강변에 빼곡히 들어선 전통가옥들과 허름한 현대식 건물에 매달린 빨래들, 그리고 개흙을 뒤져 조개를 잡는 사람 등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 거리가 다소 짧은 것이 흠. 날은 무더운 데다 이곳저곳 구경 하며 돌아다니느라 다리는 아프고…. 숙소까지 편하게 가는 방법을 찾는다면 트라이쇼(trishaw)가 제격이다. 트라이쇼는 세발 자전거 모양을 한 일종의 인력거. 스태더이스 광장이나 존커 스트리트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꽃으로 장식된 트라이쇼에 앉아 야자수 나뭇가지에 걸린 석양을 바라보자면 남국의 정취가 여실히 느껴진다. # 말레이시아의 심장 쿠알라룸푸르 “자동차 기름값보다 사먹는 식수값이 비싼 나라”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귀를 의심케했다. 휘발유는 1ℓ에 600원-그것도 최근에 올랐기 때문이란다- 정도. 식수는 300㎖가 채 못 되는 페트병에 800원 가까이 된다. 혹시 이 나라 부자들은 물을 낭비하는 자식들에게 “물을 돈쓰듯 한다.”고 야단칠는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 뺨치는 차량숲을 지나 세계적인 랜드마크,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앞에 섰다. 높이가 452m에 달하는 세계 2위의 마천루다. 쌍둥이 건물로는 세계 최고층 건물이다. 이슬람 모스크 형태를 하고 있는 둥그런 지붕을 밑에서 올려다 보자니 뒷목이 뻐근할 지경. 하지만 이 건물 한쪽을 국내의 한 건설업체가 지었다는 설명에 뻐근함은 곧 으쓱거림으로 바뀌어 졌다. 쿠알라룸푸르 전경을 감상하기에는 KL타워만한 곳이 없다. 특히 야경이 아름다워 ‘다이아몬드 인 블랙(diamond in black)’으로 불리기도 한다. 선웨이 라군(sunway lagoon)리조트도 그냥 지나치면 서운한 곳.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와 경기도 용인의 캐리비안 베이를 합쳐놓은 듯한 대형 테마파크다.2m에 달하는 파도풀장과 170m짜리 인공해변, 그리고 공원 전체를 가르는 길이 400m의 초대형 현수교가 이곳의 자랑거리. # 서늘한 고원(高原) 부키팅기 푹푹 삶는 듯한 도심의 열기를 피하고 싶다면 쿠알라룸푸르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는 부키팅기를 찾아가 보자. 말레이어로 ‘높은 언덕’이란 뜻을 가진 곳. 해발 1400m 고원에 위치해 우리나라의 초가을 날씨를 연상케 할 만큼 선선하다. 연평균 기온은 18∼20℃정도. 현지인들이 ‘여름에는 가죽점퍼, 겨울에는 밍크코트’를 입고 찾는단다. 그래서인지 ‘밍크코트’는 몰라도 긴팔옷을 입은 사람들은 간간이 눈에 띈다. 말을 빌려타고 울울창창한 밀림지대를 둘러보는 프로그램이 권할 만하다. 유의할 점은 음료수나 과자 등의 가격이 쿠알라룸푸르 시내보다 무려 6∼7배에 달할 만큼 비싸다는 것. 또 다른 자랑거리는 골프코스다. 동남아 골프 여행객들 사이에 간간이 회자되는 곳.18홀 규모에 총길이는 6312m다. 페어웨이의 기복이 심해 난이도는 높은 편이다. 하지만 워낙 시원한 곳이니 잘 안 맞는다고 ‘열받을’ 일은 없을 듯하다. # 싱마타이 여행 떠나볼까 10일이상의 동남아시아 배낭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그리고 태국 등 3개국을 돌아보는 ‘싱마타이 여행’을 고려해 볼 만하다.3국을 연결하는 철도와 선박, 버스 등의 교통편이나 게스트 하우스 등 숙박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어 별다른 불편함없이 여행할 수 있다.3개국 모두 우리나라와 비자면제 협정이 맺어져 있는 것도 장점. 체류기간이 30일 이내라면 별도의 비자가 필요없다. 싱가포르(visitsingapore.com), 말레이시아(mtpb.co.kr), 태국(tatsel.or.kr) 관광청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다. 말레이시아 현지여행사인 FM투어(myfmtour.com)의 윤지환씨, 싱가포르 룩 싱가포르여행사(65-6270-8812)의 정 실장(looksingapore@yahoo.co.kr), 그리고 태국 필그림 여행사(66-1-510-0101)의 임 실장(pilgrimthai@hotmail.com ) 등을 통해서도 현지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엔투어(www.ntour.co.kr) 등의 여행사에서는 ‘싱마타이 기차 배낭여행’ 상품을 팔기도 한다.90만∼120만원선. # 여행정보 ●말레이시아는 차량통행 방향이 우리와 반대. 횡단보도 또한 없는 곳이 많다. 도로를 건널 때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고온다습한 아열대 기후지만, 호텔 등에 냉방시설이 잘돼 있어 긴팔 옷 하나쯤 준비하는 것이 좋다. ●물인심이 짠 편이다.4성급 호텔인 데도 음료수가 비치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심지어 미니바가 텅 비어 있기도 하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음료수 등은 미리 사둘 것. ●사먹는 식수는 ‘drinking→air mineral→mineral water’ 등 3등급. 물갈이 등에 민감한 사람이면 ‘air mineral’이상을 마시는 것이 좋다. ●욕실에 드라이어나 면도기 등 생활용품이 비치되지 않은 경우도 흔하다. ●전기용품을 사용하려면 국내에서 3핀 어댑터를 준비해 가야 한다. 전압은 220v. ●호텔 등에서 지급하는 영수증은 반드시 확인하고 꼼꼼하게 챙겨둘 것. ●국제전화 요금이 엄청 비싼 편. 출국전에 국제전화 카드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 싸고 재미난 해외여행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이 시작된다.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올여름 가볼 만한 해외 여행지를 소개한다. 유럽, 남태평양 등 좋은 곳도 많지만 시간과 경제적인 여건을 생각하면 동남아나 중국쪽을 권해본다. 동남아를 제집 드나들듯 돌아다녔다는 엔투어(02-775-0900,www.ntour.co.kr)의 김신철 동남아 팀장이 일반적인 패키지 여행이 아닌 저렴하고 새로운 여행 방법과 여행지를 소개한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태국, 가이드없이 떠나보자 가족이 함께 해외를 간다면 ‘돈’이 만만치 않게 드는 것이 사실이다. 태국 전지역을 싸게 여행할 수 있는 타이항공의 에어텔 프로그램인 로열오키드 할러데이스(ROH)를 이용해보자. 어른 두명이 ROH를 이용하면 12세미만의 아이 한명은 ‘공짜’로 경제적인 부담이 확 줄어든다. ROH는 패키지 여행이 아닌 전 일정에 가이드나 인솔자가 없이 오붓하게 가족들만이 즐기는 자유여행이다. 옵션이나 쇼핑의 강요도 없고 팁을 요구하는 것도 없다. 미리 가고 싶은 곳과 일정을 정해서 움직이면 된다. 공항과 호텔이나 여행지로 픽업서비스가 포함되어 있어 자유여행을 처음 떠나는 가족이라도 전혀 어려움이 없는 새로운 상품이다. 가능한 도시는 방콕, 푸껫, 파타야, 크라비, 코사무이, 치앙마이 등 태국의 주요 관광지이며 상품가격은 왕복항공료와 조식이 포함된 숙박 2박, 그리고 픽업서비스를 포함하여 1인 45만원부터다.(02)775-0900. # 열차를 타고 떠나는 동남아 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을 잇는 철로를 이용해 이들 나라를 돌아보는 ‘싱마타이.’ 전세계 배낭여행객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동남아 3개국의 관광청이 오랜기간 준비해 온 야심찬 프로젝트다. 유럽여행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야간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기차여행의 낭만을 동남아에서도 즐길 수 있게 됐다. 각국의 서로 다른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또 앙코르와트가 있는 캄보디아나 홍콩 등 동남아 전 도시로의 연결이 가능해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여행이다.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싱마타이 simple 푸껫 10일’. 싱가포르나 쿠알라룸푸르 같은 대도시 여행과 야간열차 이동으로 피곤해진 심신을 태국 푸껫의 아름다운 해변에서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상품이다. # 아름다운 자연과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 모여라 깨끗한 산과 바다, 문화 유적지가 어우러진 맥주의 도시 중국 칭다오(청도)는 요즘 인기 상한가. 칭다오가 관광지로 주목 받는 이유는 아름다운 산과 해변·섬뿐 아니라 시내에는 여러 나라의 독특한 문화를 담은 건물들, 다양한 쇼핑거리와 저렴한 해산물 그리고 무엇보다 빠질 수 없는 칭다오 맥주까지 세계적인 여행지로서 모든 조건을 갖춘 곳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표 맥주 칭다오 맥주의 고장인 칭다오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해수욕장인 제1해수욕장에서 물놀이뿐 아니라 칭다오의 상징인 잔교를 걸으며 산책도 하고 저녁엔 시원한 칭다오 맥주 한 잔으로 일상을 잊고 쉬기에 그만이다. 특히 매년 8월에 열리는 ‘칭다오 맥주 페스티벌’은 전 세계 20개 유명 맥주 회사들이 참가하는 세계 최대 맥주축제.10일이 넘는 축제 기간동안 온 도시에 맥주 파티가 열려 우리를 더욱 즐겁게 한다. 올해는 8월13일에 축제가 시작된다. # 세계 7대 불가사의 앙코르와트로 떠나는 사원여행 영화 툼레이더의 촬영 장소로 잘 알려진 앙코르와트는 동남아 전체를 호령했던 크메르 제국의 수도인 시엠리아프, 그리고 그 속에 남아있는 수천 개의 사원들을 가리킨다. 신을 위해 지어진 신전인 이곳은 분명 인간의 세상이 아닌, 신의 세상이다. 유럽과 동남아 여행을 한 사람이라면 이번 여름 꼭 앙코르와트에서 ‘신’들을 느끼며 세속의 때를 벗기를 권한다. 앙코르와트 유적군 외에도 시엠리아프 시내에 있는 올드(old)마켓에서는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엿보고 저렴한 기념품도 살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관심이 있는 여행지 중 하나이다. # 유토피아 ‘샹그릴라’를 찾아서 영국의 작가 젬스 힐턴의 베스트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의 배경이 되었던 중국 윈난성. 태곳적 웅장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실존하는 유토피아’라고 불린다. 미얀마, 베트남, 라오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윈난성에는 티베트, 리수족, 라오족 등 약 26개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 이들이 함께 만들어 가고 있는 독특한 전통과 풍습도 전세계 여행객들이 운남성을 찾게 하고 있다. 윈난성의 대표 도시인 다리와 리장에는 마치 수천년전으로 돌아간 듯한 고성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고, 특히 윈난성의 쿤밍은 세계 배낭 여행자들이 모여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같이 여행을 떠나는 곳으로 변신하고 있다.
  • [사설] 北, 남북교류마저 끊자는 건가

    북한이 더이상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없다고 선언했다.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도 모자라 인도적 차원에서 진행되어온 이산상봉까지 일방적으로 끊겠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은 어떡하든 대화로 문제를 풀어보려고 하는데 북한이 거듭 찬물을 끼얹고 있다. 남북관계마저 이렇게 경색시킨다면 북한은 더욱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평양당국은 깨달아야 한다. 북한은 남한이 쌀과 비료 지원을 거부해 이산상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의 강력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강행했다. 북한을 두둔하던 중국도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안에 결국 찬성했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이 어떻게 대규모 쌀·비료 지원을 할 수 있겠는가. 쌀·비료 지원이 절실했다면 도발 행위를 자제해야 마땅했다. 북한은 지난주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그들의 선군(先軍)정책이 남측을 지켜준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 대가로 쌀·비료를 달라는 식이었다. 대북 동정론의 싹을 꺾는 억지 주장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안보장관회의에서 “불필요한 긴장과 대결국면을 조성하는 일각의 움직임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미국·일본의 과도한 대북제재 추진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북한은 몇시간 뒤 이산상봉, 특별화상상봉, 금강산면회소 건설을 중단하겠다고 남측에 통보했다. 정부가 뒤통수를 맞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남북간 의사소통 채널이 너무 부실한 것도 문제였다. 미국은 대북 경제제재 복원을 검토하고, 해외에 분산되어 있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을 단속할 뜻을 레비 재무차관을 통해 우리 정부에 전달해왔다. 정부 당국자는 부인했지만, 북한이 개성공단·금강산관광으로 벌어들인 달러를 미사일개발에 전용할 가능성을 미국이 우려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일의 전면적 대북제재 추진과 북한의 극한 반발이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키지 않도록 한국·중국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 때다.
  • [’서울신문 102년-中·유럽의 미래 성장전략] 중국

    |베이징 이지운특파원|2050년까지 중국의 국가적 목표는 ‘중등’ 발전국가를 실현하는 것이다.2000∼2010 국내총생산(GDP)을 이전의 두배로 늘리고 2020년까지 다시 또 두배로 늘린 뒤,2050년까지 부유하고 민주적이며 문명화된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위해 계속 발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같은 중국의 미래 생존전략 측면에서 볼 때, 지난 3월 열린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4차회의는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된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정부 공작보고’에 포함된 ‘국민경제사회발전 제11차 5개년규획(11·5)’은 ‘성장’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간의 ‘고도 성장’이 안팎으로 많은 불화와 마찰을 야기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50년까지 ‘중등´ 국가발전 실현 당장 내부적으로는 성장의 그늘인 빈부격차가 사회의 균열을 조장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존폐 위기에 몰린다면 그 원인은 이 사회 균열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의 위험성을 내포한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그간 보여준 무서운 성장 속도가 ‘중국 위협론’을 확산시키며 서방세계의 견제를 부추겨 왔다. 무역 수지 불균형에 따른 미국 등의 끊임없는 불만과 불평을 감수해야 하는 것도, 자원과 에너지의 블랙홀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성장의 속도가 주는 위협감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평화적으로 일어서겠다.(和平 起)’는 데에도 주변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에 중국은 11·5를 통해 지난 20여년 유지해온 경제 기조를 바꾸었다. 한계에 부딪힌 양적 성장 일변도의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내수를 진작하고 농촌을 비롯한 낙후지역을 일으키는 정책들이 포함됐다. ●서방세계 ‘中위협론´ 불식시킬 코드로 국가발전계획위의 마카이(馬凱) 주임은 ‘11·5의 목표와 임무분석’에서 “세계 정치·경제의 변화와 중국 국내 발전 요구에 적응하기 위한 윈윈(상생)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표면상으로는 새 경제 기조를 확정한 것이지만 이면(裏面)에는 이처럼 정치·외교까지 아우르는 고려가 담겨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지역 강대국에서 진정한 세계 강대국으로의 부상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중국은 세계 강대국으로의 발전을 위해 경제·군사·과학기술력에 더해 정치·외교·문화력 등 ‘소프트 파워’를 강화해 나가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옛 소련이 세계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잃은 것은 막강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소프트 파워가 약화되면서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했기 때문으로 보기 때문이다. 나아가 소프트 파워는 대외적인 측면에서뿐 아니라 국내 발전 전략 차원에서도 강조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영역에서의 제도 개혁을 통해서만 지역불균형, 환경파괴, 에너지 부족, 도농(都農)격차 등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톈진(天津) 난카이(南開)대학의 팡중잉(龐中英) 교수는 “세계 강대국으로 도약하려면 소프트 파워가 필요하며, 이는 양호한 국내 통치체제에 기초한다.”고 주장했다.‘2005년 중국국제지위보고’는 공산당의 통치능력 강화, 법제 사회 건설 등 국내 제도개선을 연성권력 강화의 사례로 들었다. 결국 소프트 파워론은 중국의 현재를 아우르고 미래를 관통할 수 있는 핵심 용어 가운데 하나다. 우선 공산당으로서는 내부 제도 개혁을 통한 사회적 안정으로 정권의 지속성을 강화해 나가야 하는 측면이 있다. 중국 위협론을 불식시키며 굴기에 성공해야 하는 점도 있다. ●최소 연 7~8% 경제성장률은 유지해야 비록 주변국의 반감과 견제로 현재 ‘화평굴기’가 ‘화평발전’으로 대체돼 쓰이고는 있으나,‘굴기’에 대한 중국의 의지는 소프트 파워에 대한 지향 노력에서도 충분히 읽힌다. 문화와 인터넷·방송 등을 통해 중국의 사회주의를 ‘약화’시키려는 미국의 ‘평화적 체제전복’ 시도에도 대처해야 한다. 동시에 중국은 지난 10여년간 매년 두자릿수의 군사비 지출 증가세를 보이는 등 국방·과학기술·자원·경제력 등 하드 파워 측면에서도 실력 향상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이미 지난 2003년 ‘전국과학기술공작회의’에서는 ‘과월(跨越·뛰어넘기)’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공식화했다. 그간에는 ‘근종(近踪·추격하기)을 목표로 삼던 과학기술 분야다. 경제력 관점에서 보더라도 중국이 성장을 소홀히 하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실업문제 등 사회적 압력을 버텨내려면 최소 연간 7∼8% 경제성장률은 유지해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jj@seoul.co.kr
  • [이슬람 문명과 도시] (14) 동·서양이 공존하는 요르단 암만

    [이슬람 문명과 도시] (14) 동·서양이 공존하는 요르단 암만

    아라비아 반도 서북쪽에 위치한 요르단은 정말 작은 나라다.8만 9342㎢에 불과한 영토는 남한보다 조금 작고, 그나마 전체의 90% 이상이 사람이 살 수 없는 척박한 사막이다. 인구도 지난해 기준으로 590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그중 절반 이상은 원래 요르단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아니라 1948년 제1차 중동전쟁 때 전쟁을 피해 요르단으로 이주해 정착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더구나 석유 자원으로 부를 일군 중동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요르단은 산유국도 아니다. 덩치가 작다보니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는 나라도 아니다. 응집력이 있는 국가라기보다 모래알 같은 사회를 연상시킨다. 으로 보기에 이렇게 허약해 보이는 요르단이지만 막상 요르단인들을 접해 보면, 이들에게는 국가와 자신에 대한 굳건한 자존심과 긍지가 있음을 곧 알게 된다. 평소 알고 지내던 요르단 사람에게 미국으로 이민간 요르단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 미국 가정의 가정부로 일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전한 적이 있다. 그러자 필자의 친구이기도 한 이 요르단 사람은 ‘요르단 사람이 그럴 리가 없다.’고 정색을 하며 부정해 필자를 무안하게 만든 적도 있다. GDP 4700달러(2005년) 정도에 불과한 이 작은 나라 사람들에게 자신의 국가와 스스로에게 이처럼 강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이게 바로 이방인인 필자가 가질 수밖에 없는 궁금증이다. 이 궁금증은 요르단이 이슬람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그 역사 발전 과정을 이해하면 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요르단의 정식 국명은 ‘The Hashemite Kingdom of Jordan’,‘요르단 하심 왕국’이다. 이슬람교의 교조인 무하마드는 쿠라이시족의 하심 가문 출신이다. 요르단의 정식 국명은 바로 이슬람교조의 직계 가문이 다스리는 나라임을 뜻한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이슬람의 ‘종가(宗家)’인 셈이다. 여기다 요르단은 고대부터 남부의 아카바항에서 다마스커스를 잇는 전통적인 대상들의 교역로인 ‘King´s road’에 위치하고 있어 이집트·아시리아·그리스·페르시아·비잔틴·이슬람 등 찬란했던 고대 문명들의 자양분을 흡수했다. 그 결과 중계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나바트 왕국은 현대 아랍어의 기초가 되는 문자를 발명하고 화폐를 사용하는 등 일찍부터 문명이 발달해 인근 국가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종가의 자부심에다 역사적·문화적 자부심까지 요르단 사람들의 의식속에 깊이 남아 있는 셈이다. 그들이 드러내는 자존심과 긍지는 이유가 있다. 늘의 관문인 알리야 공항을 통해 요르단에 도착하면 다른 아랍 국가의 도시들과 달리 공항이 잘 정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먼저 받는다. 아랍 국가의 공항에서 의례적으로 겪는 택시 호객꾼들의 환영(?)이나 택시비 계약도 암만에서는 즐길 수 없다. 오히려 너무도 얌전하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택시와 목적지까지의 요금을 미리 알려주는 친절함이 넘친다. 낯선 도시를 찾는 이방인으로서는 걱정과 우려를 덜어낸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는 택시의 대부분은 한국산이다. 아무래도 필자 같은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반가운 환영인사다. 암만으로 들어가는 택시 안에서 반가운 환영인사는 계속된다. 택시 기사로부터 ‘우리 집에는 마누라는 빼고는 모두 한국산’이라는, 한국 제품에 대한 다소 과장된 칭찬을 계속 들을 수 있다. 이쯤 되면 요르단은 이미 너무도 친숙한 나라로 다가온다. 1999년 현재의 압둘라 국왕이 즉위한 뒤 요르단의 수도 암만은 급속한 현대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암만은 다른 아랍의 도시들처럼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구분되어 있는데, 암만 신시가지가 변하는 모습은 1∼2년마다 정기적으로 암만을 찾는 필자에게도 현기증을 불러올 정도다. 40대의 젊은 국왕은 부존자원이 빈약한 요르단이 살아갈 길은 관광과 영어라는 인식하에 대규모 개발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그 결과 암만 신시가지의 스카이 라인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대식 고급 호텔과 대형 백화점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들어서고 웅장한 고가도로와 지하도로까지 줄줄이 세워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다른 곳에서도 느껴진다. 다른 아랍 도시에 비해 여성들의 옷차림도 비교적 개방적이고, 수년 전까지만 해도 찾으려면 제법 시간이 걸리던 생맥주집도 이제는 거리 곳곳에서 번쩍이는 네온사인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전통적인 이슬람 도시에서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암만의 새로운 풍경들이다. 반면, 암만의 구시가지는 여전히 전형적인 이슬람 도시다. 아니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역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시장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는 크고 작은 이슬람 사원들이다. 이 사원들 안에는 쿠란을 읽거나 삼삼오오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북적대고, 복잡하고 차량이 질주하는 도로에서는 차들 사이를 여유있게 가로지르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한가롭게 길거리 카페에 앉아 물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무리가 있다. 이러한 광경은 전형적인 아랍 도시의 모습이다. 또한 구시가지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원형 극장과 도시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로마 시대의 유적들은 암만이 다마스커스, 제라시 등과 함께 과거 로마제국시대의 주요한 데카폴리스 가운데 하나였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데카폴리스란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래 중근동 지역 통치를 위해 로마제국이 관리한 주요 거점도시를 말한다. 암만은 이슬람 국가의 수도로서, 국교가 이슬람임에도 불구하고 서구와 동양, 기독교와 이슬람교,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잘 간직하며 이들이 공존하고 있는 도시다. 2000년 3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종교간 화합’을 선택한 곳이 바로 요르단 암만이다. 역사적·문화적 맥락도 있지만 동시에 요한 바오로 2세가 종합운동장에서 대규모 예배를 집전하는 모습이 생중계될 정도로 다른 종교와 문화에 대해 개방적이고 관대한 나라가 요르단이어서기도 하다. 암만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인 말리크 압달라 사원과 함께 나란히 서 있는 성당의 모습이 단적인 예다. 다르다는 것은 싸워야 할 이유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깨달아 가는 과정임을, 요르단 사람들의 모습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 브루나이 국왕 60세 생일 1만명 초대 호화파티

    부유한 산유국인 브루나이의 하사날 볼키아 국왕이 60세 생일을 맞았다고 BBC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만명의 손님을 궁궐에 초대한 볼키아 국왕은 이날 “해외 투자와 환경친화적 정책, 경제적 다양성이 국가의 생존을 위해 중요하다.”고 연설했다. 인구 38만명의 소국인 브루나이는 수출품의 93%가 석유와 가스다.1984년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으며, 볼키아 국왕은 68년부터 재임 중이다. 총 재산은 200억달러(약 20조원)로 알려져 있다. 국왕은 총리, 국방장관, 재무장관, 종교지도자의 역할을 함께 맡고 있다. 국왕은 고유가로 국가 재산이 크게 늘자 3만명에 이르는 공무원의 월급을 22년만에 처음으로 올려줬다. 브루나이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3600달러(약 2300만원)다.1인당 소득으로만 보면 선진국 수준이다. 브루나이 국민들은 개인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교육과 건강보험은 무료다. 집과 자동차를 국가가 보조해준다. 메카로 성지순례를 갈 때도 국가가 재정 지원을 할 정도다.40년 가까이 브루나이를 통치해온 볼키아 국왕은 말레이시아 TV 방송기자 출신인 아즈리나즈 마르하르 하킴(26)을 지난해 두번째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그녀는 지난달 국왕의 11번째 자식인 아들을 낳았다. 21발의 축포가 쏘아지고 1700개의 방이 있는 궁궐에서 호화로운 연회가 열렸지만 BBC는 그 규모가 가수 마이클 잭슨과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초대됐던 50살 생일보다는 작았다고 소개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농업에도 길이 있다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진행되면서 정부와 농민·시민단체들이 대립하고 있다. 이미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으로 농·축산물 시장이 개방된 뒤 값싼 수입 농산물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다. 우리나라 농업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는 것일까. 농사꾼들에게 희망은 없을까. ‘한국의 부농들’(박학용·차봉현 지음, 부키 펴냄)은 이같은 절박한 질문에 “아니다. 길이 있다.”고 답한다.2년 이상 우리나라 농업현장을 발로 뛰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성공한 농업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필자들은, 이들을 성공 스토리를 통해 농업이야말로 21세기 최고의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농업 CEO 28명이 들려주는 ‘농촌 희망가’는 품질과 문화, 서비스, 새로운 제품, 마케팅, 유통, 연구개발 등으로 승부해 ‘논과 밭을 일구는 시대를 넘어’ 최첨단 농업경영의 싹을 틔운다.전남 여수에서 양계장을 운영하는 양일영씨는 일반 닭보다 2배나 비싼 닭을 유통하는데 날개 돋친 듯 팔린다.2004년 1년간 12억원이나 벌어들인 그의 성공비밀은 바로 매실 발효 사료를 먹인 ‘매실 닭’에 있다. 30년 전 서울 압구정동 배밭 5000평을 팔아 경기도 화성에 정착한 이윤현씨 부부는 계속 배 농사를 했으나 매출이 신통치 않았다. 배는 맛있는데 왜 그럴까 고민하다가 생각한 것이 배밭에서 여는 음악축제인 ‘배꽃 축제’다.2002년 시작한 공연이 성공을 거두자 이듬해부터 한해 두 차례 축제를 열었고, 매출도 쑥쑥 늘어났다. 품질·서비스로 성공한 이들 사례와 함께 다양한 농산물 아이템으로 성공한 부농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교훈을 준다.유기농 채소를 파는 전북 김제의 김병귀씨는 저렴한 가격 대신 믿음을 팔았고, 체험관광을 시작한 경기도 이천의 이기열씨는 마을 주민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마을을 브랜드로 만들었다. 부농들은 또 청정돼지, 장생도라지, 조리법이 간편한 5분 청국장, 깎아 먹는 홍시, 황토느타리, 이온쌀, 흙 없는 잔디 등 품질이 뛰어나고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이들은 “고급화 전략, 한 우물 파기, 고부가가치 상품 개발, 소비자 생활패턴 읽기 등이 부농이 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농민의 벤치마킹, 농업교육의 필요성과 함께 정부정책 방향도 제시함으로써 국민 모두가 농업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1만 2000원.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미사일 사거리만큼 멀고 먼 南과 北

    미사일사태 해결과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우리측에 맞서 북한은 ‘성동격서식’ 정치공세로 맞섰다. 우리측이 이번 회담 의제를 미사일·6자회담으로 정해 놨는데도 북측은 오히려 쌀 50만t을 달라고 요구했다.●기조발언을 뜯어 보면… 12일 오전 전체회의 기조발언에서 우리측은 남한을 사정거리로 하는 스커드 미사일을 동시에 발사한 것은 ‘우리 민족끼리’ 정신을 무색케 하는 행동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북측은 얼토당토 않은 선군(先軍)사상으로 맞섰다. 북측 권호웅 단장은 선군이 남측에 안전도 도모해 주고 남측의 광범위한 대중이 선군의 덕을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선군사상은 군이 우위에 있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 이념이다. 북한은 지난 2002년 핵 위기 때 선군사상을 편 적이 있으나 미사일 사태와 연결짓기는 처음이고, 앞으로 북측은 선군논리를 계속 펼 것 같다. 이에 대해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누가 남쪽에서 귀측에게 우리 안전을 지켜 달라 한 적이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선군정치나 미사일이나 핵이 우리측 안전을 도와 주고 있다는 주장은 맞지도 않고, 받아들일 수 없으니 앞으로는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고 못박았다.이 장관은 북측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그 미사일 사정거리만큼 남북간의 거리도 멀어진다고 지적했다. 이 장관은 “선수가 위험한 플레이를 하고도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상대 선수나 심판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위험한 것”이라고 북측의 일방적 주장에 쐐기를 박았다. 이 장관은 북 미사일의 남한 위협은 지적했으나 일본을 겨냥하는 중거리 노동 미사일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외부 재앙은 일본발? 북측 권 단장은 회담이 시작되기 전에 이 장관과 환담하는 자리에서 일제시대에 부산이 관부연락선의 출발지라는 점을 들면서 “100년 전에 조상들이 화승총이 없어 망국조약을 강요당해 우리 왕국에 왜군이 와서 난도질을 하는 비극이 재연됐다.”고 말했다. 이 장관이 공감을 표시하면서 회담 진행을 위해 기자들에게 나가줄 것을 요청하자 권 단장은 “기자들 나가기 전에…”라면서 “재앙이 우리 민족 내에 발붙일 자리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이어 일제 당시에 친러·친청파로 갈린 점이 민족 단합을 저해했다고 지적하고 “이 장관은 역사학자니까 잘 알 것”이라고 아리송한 발언을 했다.양측은 이날 오전 전체회의가 끝난 뒤 오후에 수석대표접촉을 가졌다.부산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北 “先軍이 南안정 도모” 궤변

    北 “先軍이 南안정 도모” 궤변

    남북 장관급회담 이틀째인 12일 우리측은 북측에 6자회담 복귀와 미사일 사태 해결을 강력하게 촉구했으나 북측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북측은 대신 내년부터 한·미합동 군사훈련 중지,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요구하는 ‘엉뚱한’ 정치공세를 폈다. 우리측 수석대표인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이날 누리마루 아태경제협력체(APEC) 하우스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북측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대응은 더욱 엄중해질 것”이라면서 지체없는 6자회담 복귀를 강하게 촉구했다고 남측 대변인인 이관세 통일부 정책홍보실장이 전했다. 이 장관은 “현재의 상황이 추가로 악화돼서는 안 된다.”고 추가 미사일 발사 자제를 촉구했다. 북측은 이에 대해 미사일 발사는 자위적 국방력 강화를 위한 훈련이라고 주장했던 외무성 대변인 담화대로 이해해 달라면서 6자회담 복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북측 단장인 권호웅 내각책임참사는 “정세 변화의 영향을 받지 말고 6·15 공동선언의 이행을 통해 정세를 위협하는 제반 요인을 제거하자.”면서 공동선언 7돌이 되는 내년부터 외세와의 합동군사연습을 완전히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선군(先軍)이 남측의 안정도 도모해 준다.”는 엉뚱한 논리와 함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 이념인 이른바 선군정치를 들고 나와 파문을 예고했다. 부산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한국축구 거품붕괴? FIFA랭킹 56위로 추락

    ‘FIFA랭킹의 거품(?)이 빠졌다.’ 한국 축구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56위로 무려 27계단이나 추락했다. 한국의 랭킹이 5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은 2000년 1월(52위) 이후 6년여 만이다. FIFA는 12일 독일월드컵 성적과 새로운 산정방식을 반영한 7월 랭킹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랭킹포인트가 무려 120점이나 깎여 29위에서 56위로 곤두박질쳤다. 랭킹이 요동친 것은 산정기준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 종전까지 8년 간의 A매치를 반영한 것과 달리 7월부터는 4년 동안의 A매치 만을 반영했다. 또한 대회 비중에 따라 월드컵 본선은 4.0, 대륙별 선수권 및 컨페더레이션스컵은 3.0, 월드컵 지역예선은 2.5, 친선경기는 1.0 등 가중치를 두었다. 이런 방식으로 지난 1년 간의 경기 결과를 100%, 그 이전 해 결과를 50% 반영해 랭킹이 매겨졌다. 가중치가 높은 최근 1년 동안 A매치 성적이 신통치 않았던 한국축구의 현주소를 반영한 셈. 아시아에선 독일월드컵 16강 진출에 실패한 일본과 이란이 49위와 47위, 사우디아라비아는 81위까지 밀렸다.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원국 가운데는 ‘사커루’ 호주가 9계단 오른 33위로 가장 높았다. 하지만 한국이 독일월드컵에서 3전 전패한 토고(48위)보다 8계단이나 낮고 본선 진출에 실패한 AFC산하 우즈베키스탄(50위)보다도 순위가 낮은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 브라질이 4강 탈락에도 불구하고 1630포인트로 여전히 1위를 지켰고 통산 4번째 우승을 차지한 이탈리아는 11계단 뛰어올라 2위를 차지했다. 이어 아르헨티나, 프랑스, 잉글랜드,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이 3∼8위에 올랐고 독일은 10계단 뛰어오른 9위였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石頭 김일(金一), 박치기 1만번 돌파!

    石頭 김일(金一), 박치기 1만번 돌파!

    서울에서 「프로·레슬링」의 「아시아·타이틀」 방어전을 가질 김일(金一)이 1천5백경기 돌파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안고 돌아왔다고 「프로·레슬링」계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그의 특기인 박치기를 한 경기에 7회씩 했다면 1만회를 돌파한 셈. 「프로」나 「아마추어」를 가릴 것 없이 또 단체경기나 개인경기를 따질 것 없이 1천5백 경기를 치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얼마전 「프로·복싱」의 김현(金炫)이 1백경기를 치렀다고 「프로·복싱」계의 화제를 휩쓸었던 일을 생각하면 김일(金一)의 1천5백경기 돌파는 15배나 비중이 무거운 화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프로·복싱」과 「쇼」적 색채가 짙은 「프로·레슬링」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김일(金一)이 역도산(力道山)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가 「프로·레슬링」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1959년. 따라서 김일(金一)의 「프로·레슬러」경력은 올해로 만 10년을 넘는다. 만 10년 동안에 1천5백경기라면 평균 1년에 1백50경기를 치른 꼴이며 한달에 12번 내지 13번을 「매트」위에 올라간 셈이다. 『있는 힘을 다해서 싸우는 진지한 결기라면 어떻게 일주일에 서너 차례나 경기를 가질 수 있는가?』 라고 잦은 경기 회수를 들어 「프로·레슬링」이 「쇼」적 색채를 지니고 있음을 밝히려는 주장도 있다. 또 「프로·레슬링」에 공식기록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프로·복서」만해도 그가 활약하는 실적에 따라 은퇴할 때까지는 O승 O패 O무승부라는 기록이 늘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그러나 미국처럼 4천명을 넘는 「레슬러」들이 그 넓은 지역을 돌면서 일주일에도 몇차례 경기를 치르는데다 통할 단체만해도 여러개가 존재하고있는 실정이라 공식기록이란 있을 수도 없고 또 설사 그런 기록이 있다해도 「쇼」적 요소를 지닌 「프로·레슬링」의 본질을 이해하고 즐기는 미국의 「팬」들은 그런 기록보다는 하나 하나의 「게임」내용에 보다 흥미를 나타내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단 하나의 예외를 구태여 쳐든다면 그래도 실력 위주의 정통파(正統派) 「레슬러」의 마지막 기수(旗手)로 꼽혔던 철인(鐵人) 「루·테즈」가 49년 11월부터 55년 5월까지 NWA(미국 「레슬링」협회) 「챔피언」으로 군림하면서 세운 9백 36전 연속무패의 기록이 의심받지 않고 받아들여질 정도다. 이 기록도 「루·테즈」가 하도 뛰어난 「레슬러」였던 데다가 「챔피언」의 「타이틀」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한번도 지지않은 놀라운 기록이 뻗어났기 때문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공식기록이 없고 잦은 경기 회수를 치러 「쇼」적 요소를 지녔다해도 거의 한시간동안 무거운 「레슬러」를 상대로 「다이내믹」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결코 피땀나는 「트레이닝」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런 움직임을 일주일에 서너차례, 많을 경우에는네댓차례씩 되풀이 한다는 것은 역시 그 「레슬러」의 체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감당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김일(金一)의 1천5백 경기 돌파가 사실이라면 그 기록자체보다도 오히려 10년동안 그 많은 경기를 소화할 수 있을만큼 체력이 뛰어난 국제적인 「레슬러」였다는 점에서 그 뜻을 찾아야 될 것이다. 11월 9일 장충체육관에서 김일(金一)이 일곱 번째로 방어한다는 「아시아·타이틀」은 14년 전 역도산(力道山)이 제정한 것으로 63년 역도산(力道山)이 사망한 뒤 비어 있었으나 김일(金一)의 간청으로 일본 「프로·레슬링」협회도 부활에 동의, 작년 11월 서울에서 「타이틀」 부활전을 치러 김일(金一)이 미국의 「오스틴」을 물리치고 「타이틀」을 차지한 뒤 오늘에 이른 것. 이번 김일(金一)의 「타이틀」에 도전하는 「레슬러」는 미국의 「미스터·아토믹」이라는 복면 「레슬러」로 10년 전 역도산(力道山)과는 마주친 일이 있는 「베테랑」. 「멕시코」가 원산지라는 복면「레슬러」는 제각기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복면을 쓰고있다. 그 이유란 대략 크게 나누어 4가지. 첫째 나이든 「레슬러」가 자기 나이를 감추기 위해서 쓴다. 육체의 노쇠는 적당한 운동으로 어느정도 감출 수있으나 벗겨지는 이마, 얼굴의 깊은 주름살 등은 어쩔 도리가 없어 복면을 쓰게되는 것이다. 둘째 과거에 신통치 않았던 「레슬러」가 새출발을 할 경우 지난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서도 쓴다. 그대로 「매트」위에 올라갔다가는 「팬」들로부터 야유를 받고, 생명이라고도 할 인기가 떨어질까봐 두려워서 복면을 쓴다는 것. 셋째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만들기위해서도 쓴다. 몸은 좋으나 얼굴자체가 우습게 생겼거나 너무 순해보일 때 이를 감추기 위해서 쓴다. 네째 정체가 탄로나면 곤란할 경우에도 쓴다. 좀 오래된 이야기지만 미국의 대학생 「아마추어·레슬러」가 돈을 벌기위해 복면을 쓰고 「프로·레슬러」로 활약했다가 정체가 탄로되어 「아마추어」 자격을 박탈당한 사건이 있다. 다른 사람 아닌 복면 「레슬러」의 우상적 존재였던 「제브라·키드」의 젊었을 시절 이야기다. 따라서 복면 「레슬러」들은 복면이 벗겨지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몇해 전 우리나라에 찾아왔던 「타잔·조로」라는 복면「레슬러」의 「마스크」를 김일(金一)이 벗겨버린 일이 있다. 막상 「마스크」를 벗기고 보니 나타난 얼굴은 이마가 많이벗겨진 독일계 「레슬러」인 「한스·모티어」였다. 이 「한스·모티어」는 「프랑스」영화배우 「브리지도·바르도」의 경호원 노릇도 했으며 그 여자의 구애를 물리쳤다고 선전하면서 다니는 사나이다. 그러나 이번 김일(金一)과 마주칠 「한스·모티어」의 정체는 이미 미국에서는 밝혀져 있다. 본명은 「프라이드·스티븐스」로 금속회사의 기사로 있으면서 부업삼아 「프로·레슬러」로 활약하기로 결심했단다. 장영철(張永哲)과의 불화가 해소되지 않아 국내흥행을 가질 「무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이 김일(金一)이 이번 「타이틀」방어전을 서울에서 갖는 까닭은 적어도 1년에 한 두 차례의 국제경기를 치르면서 또다시 지난날의 황금시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두현(高斗炫)기자 [선데이서울 69년 11/9 제2권 45호 통권 제 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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