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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與 잔류파·탈당파 엇갈리는 행보

    ■ “全大성공위해 대의원 감축” “난파선에서 물 퍼내고 조각을 맞추려는 마지막 땀방울을 지켜봐달라.” 열린우리당이 코앞에 닥친 전당대회에 사활을 걸고 있다. 당 부활과 해체를 결정짓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당 주위를 여전히 맴도는 추가 탈당기류도 경계해야 한다.11일 김근태 의장과 정세균 차기 당의장 후보 등 지도부들은 전북·충북지역을 돌며 전당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지역 대의원에게 협조를 당부했다. 당 차원에서는 공문과 전화를 돌리며 참석을 독려했다. 그러나 기대 못지않게 현실적인 위기감이 곳곳에 엄존하고 있다. 우원식 사무총장 직무대행은 “예전 휴일에 치러졌던 당의장 선거 때도 대의원 참석률이 80% 수준이었는데 이번에는 당 위기만을 호소해서 참석률 50% 이상 장담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고 걱정했다. 당 지도부는 재적 대의원 수를 기존 1만 2000여명에서 1만여명으로 줄였다. 따라서 전대 의결정족수도 6500명에서 5000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당대회가 평일에 열리는 데다 탈당사태 후유증이 겹쳐지면 개최여부마저도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다. 우 사무총장 직무대행은 “국회의원이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으로 당선된 후 탈당한 지역이 13곳, 당원협의회를 열지도 못한 지역인 최재천·천정배·임종인 의원의 지역구 등 3곳은 사고당원협의회로 처리했다.”면서 “당비를 내지 않는 등 제대로 활동하지 않은 당연직 대의원의 자격을 박탈하면 2000여명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당내에서는 ‘꼼수’를 동원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상민 의원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대의원 숫자를 줄여 박수치면 되는 것이냐. 전대를 못 열 상황이면 솔직히 고백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전과 달리 참석 대의원 수가 전당대회 당일에 집계되기 때문에 참석률 조작 가능성이 제기될 수도 있다. 열린우리당은 입장할 때 출석체크를 면밀히 하는 것은 물론, 전당대회가 열리는 장소 86곳에 부스를 만들어 명단을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집단탈당파 “5월까지 창당” 열린우리당을 집단탈당한 의원들이 오는 5월 신당 창당을 목표로 정했다.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통치스타일과 자질 등을 비판하며 본격적 차별화에도 나섰다. 집단탈당한 국회의원 23명과 염동연 의원 등 24명이 ‘중도개혁 통합신당 추진모임’이란 명칭으로 12일 교섭단체로 등록한다. 원내대표는 최용규, 정책위의장은 이종걸, 대변인은 양형일, 전략기획위원장은 전병헌, 홍보기획위원장은 최규식 의원 등이 맡는다. 모임에 참여키로 한 의원들은 지난 10∼11일 경기 용인에서 워크숍을 갖고 이같이 결정했다. 이들은 추가로 여당을 빠져나올 의원 등을 끌어들여 신당 창당을 추진하기 위해 교섭단체 지도부 임기를 다음달까지로 한정했다. 교섭단체에 ‘신당으로 가는 디딤돌’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겠다는 것. 모임은 5월 창당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모임의 ‘전략가’인 이강래 의원은 워크숍에서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2월 교섭단체 등록과 신당 추진체 구성 ▲3월 통합신당을 위해 다양한 정파가 참여하는 원탁회의 출범 ▲4월 창당준비위 발족과 시·도당 창당 ▲5월 창당대회 개최 등 일정을 제시했다. 이 의원은 “대선후보 선출은 (9월)정기국회 전까지, 오픈 프라이머리(개방형 국민경선제) 전국 순회는 7∼8월에 이뤄져야 한다.6월 한달 이상 준비기간이 필요해, 새 집 마무리 시점은 늦어도 5월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집단탈당파 의원들은 워크숍에서 “입만 있고 귀와 눈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는 등 노무현 대통령을 자질까지 거론하며 비판했다. 공식적인 결별 선언이었다. 이강래 의원은 “훌륭한 후보감이기는 하지만 훌륭한 대통령감인가에 대해선 많은 지적들이 있다.”고 말했다. 최규식 의원은 “대통령의 그림자 아래 있는 열린우리당 중심 통합신당으로는 희망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사설] 비리 사면이 국민통합인가

    여러 갈래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어제 또다시 특별사면 및 복권 대상자를 최종 확정해 발표했다. 당면 과제인 경제 살리기에 전념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묵은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대통합 차원이라고 밝혔다. 비리의 사면·복권이 국민통합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공허할 뿐이다. 정권의 생색내기용 사면·복권은 또 다른 논란과 통합을 저해할 뿐이라는 게 다수 국민들의 정서다. 정권 담당자들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이번 사면·복권 대상 인사는 434명이다. 규모 면에서 크다 할 수 없지만, 정치·경제계 주요 인사가 망라돼 있다.YS,DJ정권 시절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사람들과 전 재벌그룹 회장 등이 두루 포함됐다. 한결같이 국민들에게 엄청난 실망을 안겨주고 지탄을 받았던 인물들이다. 또 일부 제외된 인사들과의 형평성을 보더라도, 자의적인 잣대로 선정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참여정부 말기에, 그것도 대통령 선거의 해에 이뤄진 사면이 더욱 곱지 않게 보이는 이유다.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사면이라는 지적이 그럴듯해 보이는 소이이기도 하다. 무리한 사면·복권은 통합보다는 법의 엄정성과 형평성을 훼손할 뿐이다. 흔들리지 않는 법적용과 집행은 법치주의의 근간이다. 우리가 기회 있을 때마다 통치권자의 신중한 사면권 행사를 당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권 등에서 제기해온 사면권 제한 및 투명성 확보를 위한 장치 마련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제도적인 틀을 통해 원칙 없는 사면 등의 전근대적 ‘시혜’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 [기고] 노무현 대통령 교황청 방문을 앞두고/성염 駐 교황청 대사

    1984년 5월3일 오후 2시14분 김포공항에 도착, 알리탈리아 전용기에서 내린 백의의 인물이 트랩을 내려와 땅바닥에 입맞추며 “순교자들의 땅이로다.”라고 뇌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경외하여 그 흙에 입을 맞추는 다른 국가원수가 또 있을 성싶지 않다. 서툰 발음으로 “벗이 먼데서 찾아왔으니 기쁜 일 아닙니까?”라는 우리말 인사가 그의 입에서 나왔을 적에 국민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첫 번 방문에서만도 “분단된 한국의 고난은 분열된 세계의 상징”이라고 한탄하면서도 “지나간 시대의 고통이 보다 나은 시대를 내다보는 자신감을 감소시켜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인간에 대한 존중, 정의와 평화의 항구한 추구라는 굳건한 바탕에서 한국의 현시대와 미래를 정위시켜 나가십시오.”라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광주를 직접 찾아가 그 지역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으로 아직도 시달리는 이들, 불안과 환멸로 가득찬 상처입은 가슴들의 아픔을” 달래주던 격려나 나환우들이 있는 소록도를 방문하여 그들의 처지를 나누던 모습을 국민들은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선지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85세로 서거한 2005년 4월8일 바티칸 장례식에 국가원수 및 행정수반들이 대거 참석하고 400만명의 젊은이들이 유럽에서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던 장면에 우리 시청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나라 조문사절단장 이해찬 총리를 수행하여 장례식장에 간 필자의 바로 눈앞에서 이스라엘 카사브 대통령이 시리아 아사드 대통령, 이란의 하타미 대통령과 차례로 악수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거기서는 군대와 돈과 권력이 아닌 다른 힘이 지배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경사롭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경악스럽게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면서 자정에 다가가는 듯한 인류종말의 시계가 인류를 다시 군사와 경제의 논리가 아닌 도덕적 인도적 호소의 소리가 나는 쪽으로 귀를 기울이게 하고 있다. “정의가 없는 국가는 강도떼”에 불과하다고 외치는 곳,“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그 깊은 경탄을 일컬어 복음, 곧 기쁜 소식이라고 한다.”고 타이르는 곳, 이라크 전쟁에 끝까지 반대하다 전쟁이 일어나자 “하늘 무서운 줄 알라!”고 호통치는 양심을 향해서. 교황청과 수교를 맺은 지 44년째 되는 해에,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문 이래로 두 번째로 노무현 대통령이 교황청을 방문하고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정상회담을 갖는다. 북핵으로 야기된 한반도의 긴장을 두고 “핵무기는 점진적으로, 평등하게, 또 결연하게 폐기되어야 한다.”던 선교황의 호소도 있었고, 지난 1월8일 전세계의 주교황청 외교단을 향하여 “한반도에는 위험스러운 불씨가 잠재해 있다.”면서 “한민족을 화해시키고 한반도를 비핵화하려는 노력은 주변지역 전체에 혜택을 가져다 줄 것이지만, 이 같은 목표는 어디까지나 협상의 틀 안에서 추구되어야 한다.”는 발언으로 우리의 6자회담을 격려한 교황, 그리고 “이런 대화가 북한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 돌아갈 인도적 지원을 좌우하는 조건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는 교황과의 회담에서 우리 겨레의 하나되려는 노력을 성사시키는 지혜로운 길이 열렸으면 한다.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교황직에 취임한 후 외교단과 처음 상견하는 자리에서 “나는 분단의 아픔과 상처를 겪은 나라에서 왔습니다.”라고 자기를 소개하였기 때문에 우리 겨레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분이라고 여겨지는 까닭이다. 성염 駐 교황청 대사
  • [세계의 싱크탱크] (20) 끝 獨 베를린폴리스

    [세계의 싱크탱크] (20) 끝 獨 베를린폴리스

    |베를린 이종수특파원|“산업화시대 방식의 싱크탱크로는 지식정보사회에 대응할 수 없다.” 지난 2000년 11월 법학박사이자 법률가인 대니얼 데틀링(36)과 경제학자 토마스 가블리타(33) 등 소장학자들이 의기투합해 세운 ‘21세기형 싱크탱크’ 베를린폴리스(http//www.berlinpolis.de). 창립 6년을 갓 넘은 베를린폴리스는 독일은 물론 유럽 주요 정책입안자들이 주목하는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들)로 성큼 커버렸다. 세계적 명망가들로 구성된 유럽의 싱크탱크 ‘리스본 위원회’로부터 “독일에서 가장 개혁에 성공한 싱크탱크 모델’로 호평받았다. 그 저력은 ‘젊은 힘’에서 나온다. 특징은 ‘차세대를 위한 네트워크’라는 점. ●신기술 이용 21세기 걸맞은 정책개발 유럽 전역을 누비며 활동하는 데틀링 소장과 인터뷰 일정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대신 이메일 답장에서 “베를린폴리스의 모토는 ‘21세기에 걸맞은 정책 개발’이다.”며 “이를 위해 ▲뉴미디어와 신기술을 이용한 시민사회 발전 ▲변화하는 조직의 동력을 활용한 민주주의 혁신 등의 두 가지 원칙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젊은 지도자들의 사상으로 정치와 사회분야를 풍부하게 하면서 기존의 정치·경제·사회 구조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이곳에선 매주 1회 브레인 스토밍 회의를 통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이어 연구 주제와 관련된 정치·경제·사회 단체를 묶어 온·오프라인 토론회, 세미나 등을 연다. 대부분 젊은 리더들이 이끄는 단체들이다. 뿔뿔이 흩어진 여러 기관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새 통치철학과 공공영역의 어젠다를 개발하는 교량 역할을 하는 게 이곳의 몫이다. 개별 기관들의 정보와 입장을 소통시켜야 다음 세대를 위한 정책이 가능하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연구원 3분의2가 40세 미만 연구원은 거의 40세 미만. 연구소 정관에 연구원 3분의 2 이상이 40세 미만이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젊은 전문가들의 시각으로 독일의 차세대를 준비하겠다는 취지다. 주요 활동 방향도 이전의 싱크탱크들처럼 정당의 요구나 연방정부의 주문에 따라 경제전망을 발표하거나 정치적 이슈를 연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독일은 물론 유럽이 맞게 될 미래 과제에 치중한다. 구체적으로 ▲에너지 ▲이민자 통합 ▲교육 ▲문화 ▲인권 등이 주 영역이다. 그 동안 해낸 주요 프로젝트는 ‘유로 미션’‘독일의 정보기술사회의 견인차로서의 베를린의 역할’ ‘독일·유럽의 사회주의 모델의 미래’ ‘인재 유출’ 등이다. 그 결과물을 모아 18종의 책으로 출간했다. 특히 지난해 베를린폴리스가 주도해 조사·분석한 ‘유럽의 사회복지 상태’는 독일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베를린폴리스가 독창적으로 마련한 ▲노동 ▲교육 ▲양성 평등 ▲세대간 평등 등 35개 지표를 토대로 유럽 24개국을 분석한 결과 경제 규모 세계 4위의 독일이 21위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중심으로 활동한다는 특성 때문에 베를린폴리스는 규모가 작다는 것도 이전 싱크탱크와는 다른 점이다. 예산도 미리 책정하지 않는다. 프로젝트를 마련한 뒤 정치·경제·사회 단체로부터 4만∼5만유로의 지원금을 받아 활동한다. 여성가족청소년부, 이민망명청 등 연방정부와 BMW 등 18개 기업,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등의 후원으로 매년 평균 6개의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vielee@seoul.co.kr ■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들이 꼽는 베를린폴리스의 장점 |베를린 이종수특파원|지난달 18일. 옛 동베를린 시절 세운 딱딱하고 음산한 건물들에 둘러싸인 스트라우스 거리 67∼69번지. 베를린폴리스의 ‘프로젝트 코디네이터’인 이자벨라 암부르스트(27)와 바네다 리즈크(25)를 만났다.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란 연구소의 브레인 스토밍 회의를 주관하는 것을 비롯, 그 결과에 따라 결정된 프로젝트의 준비부터 마무리를 도맡아하는 베를린폴리스의 일꾼들이다. 암부르스트는 연구소 모토인 ‘차세대 네트워크’에 대해서 “정치·경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젊은 리더가 기존 정당이나 조직에 들어가면 활동이 제한된 게 그 동안의 현실이었다.”며 “노동력이나 생활 정치에 대한 이들의 변화 욕구를 자유롭게 사회에 접목시켜 이전의 제도·기관들의 한계와 획일화된 규범을 극복하려는게 우리 연구소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엘리트 산실 그랑제콜인 정치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리즈크는 “세계는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기존 조직들의 활동 형태는 새로운 지식과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며 “베를린폴리스는 전문가들과 함께 다음 세대의 관심사에 걸맞은 과제와 해결 방안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고 가세했다. 연구소 특성상 연구원 한명이 3∼4개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다보니 팀워크가 좋아진다고 한다. 젊은 세대의 특징을 “정치적으로 감염되지 않은 것”이라고 꼽은 두 사람은 구조화되지 않고 위계질서가 없는 데서 무한한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리즈크는 인상적인 프로젝트로 지난해 ‘책임을 위한 용기’를 주제로 자신이 주도했던 ‘주니어 캠프’를 들었다. 그녀는 “미래 단체 특히 청소년의 정치적·시민적 참여 경험을 제공한 프로젝트였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다.”고 설명했다. 암부르스트는 현재 에너지 문제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러시아의 자원무기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이에 대한 유럽의 대응책 마련을 모색하는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는데 정치권에서도 관심이 많다.”고 귀띔했다. 두 사람은 베를린폴리스가 3년 동안 추진할 역점 과제로 ‘건설을 위한 적응’을 꼽았다. 또 ‘2020년 독일·유럽·세계의 모습’ ‘차세대를 위한 개혁회의’‘창업정신을 가진 독일’ 등의 프로젝트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 목소리로 “틀에 박힌 과제를 수행하는게 아니라 우리의 아이디어를 모아 창조적으로 구성해가는 활동 방식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베를린폴리스가 극복해야할 과제가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대부분의 소규모 싱크탱크가 그렇듯 베를린폴리스 역시 개인의 네트워크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 두 사람은 이에 대해 “물론 데틀링 소장의 네트워크에 주로 의존하는 게 약점”이라면서도 ““외부 전문가들과 공동 작업이 많고 연구원들의 네트워크가 확충되면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vielee@seoul.co.kr ■ 독일의 싱크탱크 현황 |베를린 이종수특파원|현재 활동 중인 독일 싱크탱크는 140개 안팎.2000년 수도를 베를린으로 정한 뒤 외교·안보 정책 등을 연구하는 주요 싱크탱크들이 베를린으로 몰려들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주요 특징은 운영 형태가 국가 혹은 정당과의 연계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국가지원을 받는 싱크탱크만 10여곳이 되는데 주로 경제와 외교·안보 연구에 무게를 두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140명의 상근 연구원을 갖춘 ‘학문과 정치재단’으로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대부분의 정당이 느슨한 관계로 싱크 탱크와 연계돼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사민당-프리드리히 에르베트재단, 녹색당-하인리히 뵐 재단, 기민당-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기사당-한스 자이델재단, 자민당-프리드리히 노이만 재단, 좌익당-로자 룩셈부르크 재단 등의 결합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 싱크탱크는 주요 재원을 연방 의회로부터 지원받으면서 연계된 정당의 정책·정강을 개발하고 있다. 자칫 정부나 정당에 매이게 되는 관계지만 독립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초당적 합리성을 내세우면서 공평한 정책 개발에 비중을 둬 왔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그러나 최근 새 바람이 불고 있다. 민간 혹은 민·관 혼합 성격의 싱크탱크가 많이 늘어나면서 정치적 중립지대의 공간이 넓어졌다. 알프레드 하우젠 협회와 베를린폴리스가 대표적이다. vielee@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8월 ‘사상계’ 복간하는 장준하 선생 아들 호권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8월 ‘사상계’ 복간하는 장준하 선생 아들 호권씨

    ● 1953년 4월1일 서울 종로구 청진동 백조다방 4층.‘사상계’ 창간호 3000부 발행. ● 1970년 5월 ‘사상계’ 폐간조치.232쪽에 게재된 김지하 시인의 ‘오적’을 이유로.‘∼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예가 바로 재벌(1), 국회의원(국獪의猿·2), 고급공무원(고급功無猿·3), 장성(長猩·4), 장차관(暲차관·5)이라 이름하는/간뗑이 부어 남산하고 목질기기가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의 소굴이렷다∼’. ● 1975년 8월17일 경기도 포천군 소재 약사봉에서 장준하 선생 의문의 추락사. ● 2007년 1월25일 한국관광공사 대강당.‘사상계’ 복간 발기인대회 개최. 복간추진위원장 박정훈 전 국회의원을 비롯, 김근태 열린우리당의장, 함세웅 민주화추진협의회 이사장, 김상현 민주협 공동의장,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장영달·권영길 의원 등 300여 명 참석. 지난 2005년 8월 ‘교수신문’은 광복 60주년을 맞아 분야별 학자 100명을 대상으로 ‘광복 이후 60년간 학문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 무엇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사상계’를 1순위로 꼽았고 이어 ‘자본론’과 ‘전환시대의 논리’의 순으로 나타났다. 그랬다. 독립 운동가이며 민주투사인 장준하 선생의 주도로 창간된 ‘사상계’는 민족과 분단문제, 민주주의, 경제발전 등 당시 지식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졌던 문제를 가장 선도적으로 다뤘다.1960∼70년대 춥고 배고팠던 시절에 따뜻한 인문(人文)의 샘으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함석헌 선생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와 장준하의 ‘백지(白紙)권두언’ 등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가슴 뭉클 기억에 남는다고 당시 지식인들은 입을 모은다. 하기야 1961년 4·19때에는 발행부수가 8만부에 달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당시의 관심도가 어느정도인지 충분히 짐작된다. ●부친만큼이나 많은 恨 가슴에 안고 살아 이제 그 ‘사상계’가 오는 8월호로 37년 만에 복간된다. 발행인은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58)씨가 맡는다. 그의 현 직함은 ㈜장준하 思想界 대표.2005년 11월 온라인을 통한 ‘e-사상계’(www.esasang ge.com)를 창간, 운영해오고 있다. 그는 부친이 사망하자 테러를 당하는 등 국내에 머물 수 없어 오랫동안 해외 도피생활을 해와 부친만큼이나 많은 한을 가슴에 안고 살아왔다. 복간호 준비에 여념이 없는 장 대표를 지난 주 서울 종로구 내수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때마침 박정훈 전 의원과 함께 복간호 견본 표지를 살피고 있었다.“7월말쯤 발간하고 기념식은 장준하 선생의 기일(8월17일)에 맞춰 실시할 예정이다.”고 하면서 발행인은 자신이 맡되 CEO역할만 할 뿐 편집권은 철저히 보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편집주간은 언론인 출신이자 청와대 통치사료비서관을 지낸 윤무한 강원대교수가 정해졌고 편집위원 6명이 곧 짜여진다고 밝혔다. 아울러 광화문 주변에 사무실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복간준비 과정과 관련,“주변에서 오늘날의 어려운 잡지현실을 예로 들면서 ‘돈벌이가 되겠느냐.’는 걱정을 많이 했다.”면서 “하지만 장준하 선생이 손수레를 끌면서 사상계를 운영했던 옛날과 비교하면 지금은 훨씬 나은 편”이라고 했다. 아울러 사상계 복간을 갈망하는 사람들도 이 같은 경제적 어려움을 공감하면서,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보자는 뜻도 있어 복간준비에 많은 힘을 얻고 있다. 편집 방향에 대해서는 “중도가 아닌 중용이다.”고 전제한 뒤,“이념이나 방향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면 나중에는 그쪽으로 중독되고 만다.”면서 “장준하 선생의 철학처럼 진취적인 보수와 따뜻한 진보의 성향을 추구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따라서 좌·우이념과 통일문제, 기득과 비기득층 등을 아우르는 국민적 통합차원의 논조를 지향하면서 진정한 언론의 사명을 다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예를 들어 이 나라의 진정한 지도자는 어떠해야 하며 또 국민들 스스로가 차기 지도자감에 대해 잘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박근혜 전대표 대선 출마해선 안돼” 대통령 후보로 꼽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만날 수 있느냐고 불쑥 물었다.“광복군 출신의 아버지는 박정희 독재에 항거하다 사망했다. 나 역시 오랜 외국 도피생활로 집안꼴이 뭐가 됐겠느냐. 박정희 집안과는 한이 맺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박근혜 전 대표는 어쨌거나 군사독재의 상징이기 때문에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서는 안 된다. 만약 출마하려면 정수장학회, 육영재단, 부산일보 등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시킴과 동시에 정말로 바를 ‘정(正)자’의 정치를 하겠다는 진심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따라서 박 전 대표와 만나는 문제는 그때가서야 다시 생각해 볼 일이라고 했다. 화제를 바꿔 한많은 세월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장준하 선생이 사망하던 이듬해 1976년 4월19일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낮 백범사상연구소에 들렀다가 저녁에 운동권 학생들과 만나 술을 몇잔했다. 밤이 되어 이들과 헤어져 서울 상봉동 집골목으로 막 들어서는데 갑자기 청년 3명이 다가와 다짜고짜 얼굴을 가격하더라는 것. 잃었던 정신을 차려보니 경희의료원 응급실. 턱뼈가 여덟조각으로 깨졌고 8시간에 걸치는 대수술을 받았다. 이후 3개월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고된 병상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국 주재 주미대사를 역임했던 필립 하비브가 미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방한하는 길에 장준하 선생의 아들을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이를 미리 안 당국요원들의 저지로 무산됐다. 대신 하비브의 편지를 받게 된다.“조용히 살고 있으면 당신의 아버지 장준하 선생이 바라는 세상이 곧 올 것이다.”는 내용이었다. 하비브의 귀띔대로 퇴원하자마자 그는 평소 장준하 선생을 흠모했던 법조계 인사의 도움으로 여권을 발급받아 도망치듯이 말레이시아로 출국했다. 손에 쥔 것은 미화 20달러가 전부였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장준하 선생한테 신세졌다는 한 건설사 사장의 도움으로 건설현장에서 일을 했다. 그러던 중 10·26으로 박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귀국했다. 하지만 몇달 뒤 집 주변에서 낯선 이들에게 눈을 가린 채 납치돼 감금당했다. 일주일만에 극적으로 탈출한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가족을 남겨두고 혼자 싱가포르로 떠났다. 여기에서는 화교 사업가와 인연을 맺으면서 금융컨설팅 등을 배웠으며 외국 투자회사들을 상대로 한국 외자유치 세일즈 등에 나섰다. ●“현실도피한 것처럼 얘기할 때 마음 아파” “외국생활을 하면서 육체적인 고생이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지만 가족을 두고온 처지와 또 아는 분들이 현실 도피한 것처럼 얘기를 자주할 때에는 마음이 정말 아팠습니다.” 아픈 추억은 군 복무 시절에도 있다. 해군 사병으로 있던 그가 1968년 부대 동료 몇명과 함께 베트남 전에 참전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 파병부대원들과는 달리 자신에게만 주월 사령부에서 보직을 받으라는 것. 사령부로 갔더니 다시 한국에서 타고 온 수송선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하지만 수송선은 사이공에서 나트랑으로 떠나 있었다. 다시 나트랑으로 갔으나 수송선은 없었다. 이후 나트랑 부근의 부대를 전전하다가 최종적으로 십자성부대에서 귀국하게 된다. 이 같은 경우는 매우 드믄 일로 나중에 당시 동료들과 만났을 때 “그건 당국에서 장준하 선생이 베트남 파병을 반대해 아들인 장대표가 실종되도록 방치했을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이처럼 장준하 선생의 아들로 파란만장과 가슴에 커다란 멍을 안고 살아온 장 대표.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의문사 진상규명에 대한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비로소 외국생활을 접고 2003년 12월 다시 한국땅을 밟게 된다. 이후 그는 여러 인사들을 만나 사상계 복간의 뜻을 모았고 이에 앞서 ‘e-사상계’를 먼저 창간하기에 이르렀다. 진상규명과 관련,“어떤 실적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해야 가능한 일”이라면서 처음 기대보다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슬하의 딸 둘은 미국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마쳤고 큰딸은 현지 변호사로 있다. 장 대표는 서울 일원동 전셋집에서 노모 김희숙(81)여사와 함께 산다. 김 여사는 천주교 ‘열령회’ 등을 통해 봉사활동을 하며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9년 서울 출생 ▲67년 이대부고 졸업 ▲68년 해군입대, 베트남 파병 ▲76년 테러 뒤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생활 ▲89년∼2000년 싱가포르서 사업 ▲2003년 엠렛테크놀로지 고문 ▲04년 ㈜장준하 사상계 법인설립 ▲06년 3월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졸업 ▲07년 8월 사상계 복간호 발간예정
  • [열린세상] 진실과 화해/김형태 변호사

    국제평화모임에 가면 늘 겪는 일이 하나 있다. 일본 사람들은 매번 원폭피해자 입장만을 애써 강조할 뿐 우리나라, 중국, 동남아에서 자신들이 벌인 전쟁과 학살,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독일이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쟁과 유대인 학살을 반성하고 배상하는 것과 대조된다. 일본이 과거에 대해 ‘유감’ 이상의 표현을 쓰지 않는 것도 딱하다.‘다 지난 일을 가지고 왜 끝도 없이 이야기를 꺼내는가.’ 일본 사람들의 이런 생각을 우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요즈음 유신시절의 평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30년 전 일을 가지고 왜 아직도 들먹이는가. 지금의 잣대를 가지고 그때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 정략적 의도가 보인다. 이제는 그런 일이 없다. 과거를 가지고 미래의 발목을 잡는다.’ 일본 사람들의 항변과 흡사하다. 하긴 최근 들어 우리 사회 일부에서도 일제 식민통치가 조선 근대화에 단초를 제공했다거나 구한말 상황에서 친일을 한 사람들도 이해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혁당 재심과정에서 충격적인 정황들이 나왔다. 중앙정보부는 억지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수사지침’이라는 각본까지 만들었고, 이 각본대로 자백을 받아내지 못하면 수사경찰까지 유치장에 가두었다. 일본인 기자가 민청학련 학생들에게 취재비조로 7500원을 준 것을 폭력혁명을 위한 자금으로 표현하라고 지시하는 문건도 나왔다. 창자가 빠져나오는 고문과 조작으로 8명이 사형을 당하고 16명이 오랜 세월 옥고를 치렀다.32년 만에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죽은 이들을 되살릴 길은 없다. 당시 대통령을 비방하다 술자리에서 잡혀가 수년간 징역을 살았던 이들도 수두룩하다. 장기집권을 꿈꾸었던 대통령은 죽어 말이 없고 그의 지시대로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를 만들고, 국민들을 잡아다 고문하고, 재판했던 수많은 사람들 중 누구하나 ‘내탓이오.’를 말하는 이가 없다. 일본이 전쟁과 식민통치에 대해 취하고 있는 태도와 똑같다. 긴급조치 관련 판결에 이름을 올린 한 분을 안다. 개인적으로 참 좋은 분이다. 도매금에 사회의 매도를 받을 분이 아니다. 하지만 과거사 정리는 한 개인에 대한 윤리적 평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형법교과서는 ‘책임’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책임은 개별적 행위에 대한 책임이지 인격책임 또는 행위자 책임이 될 수 없다.’ 과거사 정리 과정에서 책임을 논하는 것은 그가 처한 상황에서 과연 윤리적, 인격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었다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잘못된 행위에 가담했다면 그 역사적, 사회적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의 관점으로 유신체제하의 법관, 수사관들에게 돌을 던지는 이들도 그때 그 상황에 처했더라면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을 수 있다. 개인 윤리차원에서는 ‘누가 이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라는 식의 자기 성찰적 접근이 가능하다. 하지만 과거를 직시하고 이를 토대로 올바른 미래를 그리는 공적 차원에서 보자면 그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일본의 식민통치에 대해, 유신체제하 인권을 유린한 이들에게 과연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내고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그 당사자가 잘못되었다고 고백하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해 일방적 매도나 보복을 하지 않고 화해하는 것. 그래서 외국의 수많은 과거사위원회 이름 앞에는 ‘진실·화해’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우리의 과거사를 정리하는 기관 이름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로 되어 있다. 그 이름 그대로 잘못한 이들이 먼저 진실을 고백하고 이를 토대로 서로가 화해하여 더불어 함께 살아갈 일이다. 김형태 변호사
  • [월드 이슈-세계의 大選] (하) ‘4월의 선택’ 프랑스 대선 관전포인트

    [월드 이슈-세계의 大選] (하) ‘4월의 선택’ 프랑스 대선 관전포인트

    |파리 이종수특파원|오는 4월22일 치를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투표는 역대 어느 대선보다 역동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집권당 니콜라 사르코지(52) 후보와 사회당 세골렌 루아얄(54) 후보의 오차범위 내 접전, 인터넷 선거운동 효과 증대 등 다양한 변수가 맞물리면서 갈수록 열기를 띠고 있다.3가지 관전 포인트를 중심으로 ‘엘리제 궁으로 가는 길’을 짚어본다. ●우파 분열? 2002년 대선은 ‘분열=패배’라는 ‘선거 진리’를 뼈저리게 각인시켰다. 좌파 후보가 난립하며 사회당 리오넬 조스팽 후보가 극우파인 장 마리 르펜에게 1차투표에서 석패하는 이변을 낳은 것. 그 ‘학습 효과’ 때문인지 좌파는 단결된 모습이다. 반면 집권당의 내홍이 불거졌다. 비록 팽팽하던 긴장감은 가셨지만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의 갈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시라크 대통령이 아직 3선 출마 여부를 밝히지 않은 것도 내분을 방증한다. 시라크 대통령은 29일 대표적인 시라크계 인사였다가 최근 사르코지 지지를 선언한 미셀 알리오 마리 국방장관이 사르코지의 영국 방문에 동행하려 하자 강력 저지한 것도 가시지 않은 앙금을 보여준다. 급기야 사르코지는 30일자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시라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화해 제스처를 취했다. 양측의 내분이 봉합되지 않으면 집권당의 승리는 불투명하다. 일각에서는 시라크가 출마하지 않더라도 ‘현역 프리미엄’을 이용, 사르코지의 승리를 방해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좌파 유권자, 사회당에 표를 모아줄까 사회당 루아얄 후보는 지난해 11월 당 경선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아 대선 후보로 자리매김하면서 ‘선점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게다가 2002년 따로 출마한 좌파 공화국시민연합의 장 피에르 슈벤느망 전 국방장관이 지난해 말 출마를 철회하면서 ‘백만 원군’을 얻었다. 그러나 최근 캐나다 퀘벡 독립문제, 중동·중국 방문에서의 잇단 실언으로 여론조사에서 사르코지 후보에게 역전당했다. 선거 캠페인 방식을 재정비하고 전열 재정비에 나섰지만 더 절실한 것은 좌파 유권자들의 표심이다. 물론 공산당·녹색당 등 좌파와 노동자의 투쟁’‘혁명적 공산주의 연맹’ 등 극좌파 정당도 독자 후보를 내세웠다. 그러나 극우파 돌풍을 견제하려는 유권자들의 심리가 실제 투표에서 사회당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 2002년 대선에서 극좌파 진영과 공산당·녹색당은 각각 13%대,8.6%대의 지지율을 얻었다. 조스팽 후보가 르펜에 0.68% 차이로 진 것을 감안하면 범좌파 유권자의 표심은 루아얄 후보에게 1차 투표는 물론 결선투표 승리를 좌우할 결정적 요인이다. ●극우파 돌풍 재연될까 사르코지와 루아얄이 5월6일 결선투표에서 격돌할 것이라는 것이 전반적인 여론조사 결과다. 그러나 극우파인 장 마리 르펜 국민전선 당수의 선전 여부는 여전히 큰 변수다. 잇단 여론조사에서 15%대 안팎의 고정 지지율을 보이는데다 최근 지지층이 두꺼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딸 마리아 르펜이 선거본부장을 맡아 창당 이후 처음으로 홍보 포스터의 모델로 유색인종을 등장시키는 등 지지계층 확대 전략이 효과를 거두면서 국민전선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TNS의 조사 결과 르펜의 이념에 동의한다는 응답자 비율이 26%까지 나왔다. 유럽연합 가입에 따른 노동시장 개방 등으로 생활난이 심해진 노동자계층이 국민전선의 가장 두꺼운 지지층으로 자리잡으면서 르펜의 선전은 사회당의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르펜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1차 투표에서 루아얄을 누르고 2차 투표로 직행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대선 후보가 되려면 선출직 공무원 50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르펜은 극우파 후보를 공개지지하는 것을 꺼려하는 관행 때문에 고전했다. 그러나 그의 출마가 사회당 루아얄 후보의 표를 잠식할 것이라고 판단한 사르코지 후보가 “서명해도 불이익이 없을 것”이라고 공표하면서 걸림돌이 사라진 상태다. vielee@seoul.co.kr ■ ‘엘리제’ 향해 뛰는 군소후보들 |파리 이종수특파원| “틈새가 보인다.” “대선 후보가 두명 뿐인가.” 프랑스 대선에 뛰어든 군소 후보들의 목소리가 거세다. 유력 후보에만 집중하는 언론에 문제를 제기하고 차별성을 강조하면서 이미지 제고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입증하듯 29일 현재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보는 45명. 이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후보는 중도파 프랑스민주주의연합의 프랑수아 바이루(54) 당수다. 그는 2002년 대선 1차투표에서 6.84%의 득표율로 4위를 차지했다. 안정된 이미지를 내세워 강경 이미지의 사르코지와 돌출 행동의 루아얄의 틈새를 공략해 2차 투표행 티켓을 거머쥐겠다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또 2002년 대선에서 13%대의 지지율을 확보하면서 ‘돌풍’을 일으킨 극좌파 후보들의 행보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노동자의 투쟁’ 당수 아를레트 라귀에(66)는 7번째 출사표를 던졌다. 그녀는 2002년에 득표율 5.72%로 5위에 올랐다. 트로츠키주의자인 ‘혁명적 공산주의자 연맹’의 대변인 올리비에 브장스노(32)도 패기를 내세워 다시 도전장을 냈다. 그는 좌파 진영과 ‘반자유주의 블록’을 결성했지만 후보 단일화에 실패했다. 좌파 진영도 정당별로 독자 후보가 나섰다. 반세계화 농민운동가의 상징인 조제 보베(53)는 1일 출마를 공식 선언한다.1999년 프랑스 미요의 맥도널드 건물을 트랙터로 들이받아 체포되면서 대표적 반세계화 운동가로 부상한 그는 유전자조작농산물(GMO) 재배지를 습격해 몇차례 수감되기도 했다. 최근 출마를 결심한 뒤 “자유 경제의 세계와 지구의 상업화에 저항하기 위해 나섰다.”고 설명했다. 명망있는 환경운동가 니콜라 윌로의 불출마 선언으로 환경운동 진영에서는 녹색당의 도미니크 부아네(47) 전 환경장관이 나선다. 마리 조제 뷔페(56) 공산당 당수는 ‘참된 좌파’를 모토로 사회당과 차별화 전략을 내걸고 있다. vielee@seoul.co.kr ■ 올해 관심끄는 대선 국가들 세계의 주목을 받는 선거는 프랑스 대선뿐만이 아니다. 국제선거제도재단(IFES)에 따르면 남미의 아르헨티나, 투르크메니스탄, 세네갈, 나이지리아, 인도 등 24개국에서 올 한해 대선을 치른다. 각국의 대내 정치 발전은 물론, 세계 정치지형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 가운데는 12월19일 대선을 치르는 한국도 포함돼 있다. ●아르헨 집권좌파 대통령 재선 가능성 오는 10월28일 선거를 치르는 아르헨티나의 경우 최근 이어진 중남미 좌파 열풍의 이정표로 주목된다. 좌파인 네스토르 키르츠네르 현 대통령이 재선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중남미 좌파 열풍은 주춤거림 없이 진행된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석유를 무기로 미국에 맞서온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영향력도 더 확고해질 전망이다. 키르츠네르에 맞설 후보로 최근까지 경제장관을 역임한 로베르토 라바그나가 유력하다.‘아르헨티나의 힐러리’로 불리는 키르츠네르의 부인 크리스티나가 남편을 대신, 출마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이달 선거 앞둔 투르크메니스탄과 세네갈 21년간 독재자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의 ‘엽기’철권 통치 아래 있던 투르크메니스탄이 11일 대선을 치른다. 지난해 말 니야조프 대통령의 급사 이후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민협의회’결정에 따른 것이다.6명의 후보가 나섰지만 대통령 대행을 하고 있는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전 부총리가 유력하다. 니야조프가 자신의 사람들로 만들어놓은 국민협의회 인사 2500명이 만장일치로 베르디 무하메도프를 대통령 대행으로 선출했고, 그를 위해 최근 ‘대통령 대행은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는 헌법안까지 수정했다. 니야조프의 21년 그림자가 사후에도 짙게 드리우고 있다. 베르디 무하메도프는 국민들에게 무제한의 인터넷 접근(현재는 국민의 1%만 가능)과 학생들의 해외유학 허용 등 개혁안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이어 25일에는 세네갈에서 대선과 총선이 함께 치러진다. 압둘라이 와드 현 대통령은 지난 2000년 3월 야당인 세네갈 민주당 후보로서 사회당 40년 장기 집권을 깨고 대통령에 올랐다. 최근 신년사를 통해 에너지 자립 정책, 농어촌지원, 사회간접 자본개발 등에 대해 비전을 제시한 와드 대통령의 재선이 주목된다. 아프리카 최대 인구대국이자, 산유국인 나이지리아도 4월21일 대선·총선을 함께 치른다.3선을 시도하던 올루세군 오바산조 현 대통령의 시도는 의회 견제로 무산됐다. 대신 그의 후원을 받는 우마루 무사 야라두아(카치나 주지사)가 집권 PDP당 후보로 나서고, 야당 ANPP에선 2003년 오바산조 대통령에게 패한 전 군부지도자 무하마두 부하리가 나설 전망이다. 지긋지긋한 종교·민족 분쟁으로 수천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 나이지리아가 이번 대선·총선을 통해 정국 안정을 조금이나마 이룰지는 미지수다. 이밖에 인도, 알바니아가 7월에, 에티오피아 과테말라가 11월 대통령을 뽑는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시드니 셸던 사망

    ‘게임의 여왕’‘내일이 오면’ 등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시드니 셸던이 8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고인의 친구이자 개인홍보 담당자인 워런 코원은 셸던이 30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렌초미라지의 한 병원에서 부인 알렉산더와 작가인 딸 메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폐렴 합병증으로 숨졌다고 말했다. 셸던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이야기꾼이었다. 베스트셀러 소설가 이전에 토니상을 수상한 극작가였고, 아카데미상을 거머쥔 시나리오 작가였으며, 또한 시트콤 ‘내사랑 지니’로 에미상을 받은 TV 드라마 작가였다. 1917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셸던은 일찌감치 문학에 관심을 보였다. 열 살때 시를 썼고, 노스웨스턴대 재학 시절에는 단편 희곡을 발표했다. 이후 시나리오 작가의 꿈을 품고 할리우드로 건너갔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2차 대전 당시 공군조종사로 복무한 셸던은 전쟁이 끝난 후 뉴욕으로 향했다.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여러편의 작품을 발표하며 ‘다작 작가’라는 평을 듣던 그는 뮤지컬 ‘붉은 머리’로 토니상을 수상한 데 힘입어 다시 할리우드에 도전한다. 그리고 마침내 1947년 ‘독신남과 사춘기 소녀’로 아카데미 극본상을 수상했다. 1960년대 TV로 무대를 옮겨 여러 편의 히트작을 내놓았던 셸던은 1969년 처녀작 ‘벌거벗은 얼굴’로 소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평단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310만부가 팔려나간 이 책을 계기로 그는 ‘깊은 밤의 저편’‘천사의 분노’‘신들의 풍차’ 등을 잇따라 내놓으며 세계적인 대중소설 작가로 명성을 굳혔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결국 일해공원

    경남 합천의 ‘새 천년 생명의 숲’ 공원 명칭이 ‘일해(日海)공원’으로 결정되자 시민 사회단체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일해공원 반대운동을 벌여 온 ‘새천년 생명의 숲 지키기 합천군민운동본부’는 29일 군민 불복종 운동 및 개명철회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특히 이날 공원명칭을 확정한 군정조정위원들의 명단을 공개하기로 했다. 다음달 초에는 도내 시민·사회단체 등이 참여하는 대규모 반대집회를 개최할 방침이다. 합천군민운동본부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합천 군민들은 5공 추종세력으로 국민의 비웃음과 역사의 죄인이라는 멍에를 뒤집어 쓰게 됐다.”면서 “군부 쿠데타의 주역이자 부정축재자로 기록된 전 전 대통령을 기념하기 위해 군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쉼터를 강제로 빼앗았다.”고 비난했다. 합천군은 이날 군정조정위원회를 열어 시민·사회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레니엄 기념사업으로 조성한 공원의 명칭을 일해공원으로 확정했다. 공원의 명칭이 된 ‘일해’는 이 고장 출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호다. 군은 지난해 12월 공원명칭 변경을 위해 실시한 군민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1.1%가 일해를 선호했으며, 군의회 의원 11명 중 9명이 찬성했다고 주장했다. 군은 같은달 15∼20일 사이 군내 지방의원과 새마을지도자, 이장, 농협장 등 각계 대표 136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후보 명칭은 ‘군민공원’과 ‘일해공원’,‘죽죽공원’,‘황강공원’ 등 4가지였다. 한편 명칭이 확정되자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전직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한 평가는 후세 사가들의 몫”이라며 “일해공원 명칭 결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합천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지방시대] 해외민족문화유산의 보전을 위하여/김준태 시인 조선대 교수

    반가운 소식 하나 전하고 싶다. 올 봄쯤에 구소련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고려인들의 노래를 담은 ‘재소고려인의 구전가요집’이 국내에서 출간된다는 소식이 바로 그런 반가움이다. 지난 70여년 동안 고려인들이 부른 600여곡의 노래를 채록·채보한 이 방대한 구전가요집의 공동저자는 고려인 3세이며 음악가인 한 야꼽씨와 14년 전에 카자흐스탄 공화국으로 가서 활동하고 있는 시인 김병학씨다. 돌이켜보면 올해는 구소련 지역에 거주하는 고려인들한테는 각별한 해이다.1937년, 그러니까 일제강점기 시절이었던 1937년 10월부터 1938년 2월 사이에 한반도의 북쪽 블라디보스토크·하바롭스크 등 연해주 일대에서 살던 20여만명의 고려인들이 소련 총리 스탈린의 계략에 의해 머나먼 동토의 땅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당한 해이기도 하다.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면서 그러나 끝끝내 살아남은 우리의 동포들…. 시베리아 일대는 물론 모스크바를 비롯하여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전 지역에서 ‘카레이스키(고려인)’란 이름으로 살고 있다. 그 깊고도 아픈 ‘맺힌 한’을 카자흐스탄공화국에 거주하는 고려인 3세이며 러시아 문학권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는 시인 이(李) 스따니슬라브의 시 한편을 보는 것으로 고려인들의 한 많은 내력을 같이 느껴보자. 러시아 제11학년(한국의 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 문학교과서에 실리기도 한 ‘우리의 이름은 없어졌다.’ 전문은 이렇다. 우리의 이름은 없어졌다/우리의 짧은 성(姓)씨만 남았다/옛날부터 우리의/매운 음식은 남아있고/할아버지한테 옛날이야기를 물어보니/침묵만 지킬 뿐 대답이 없다. 李 스따니슬라브 시인의 할아버지 역시 강제이주당한 고려인이다. 그래서 그의 시 또한 우리 민족 특유의 ‘한’의 질량감과 ‘매운맛’이 같이 버무려져서 담겨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시의 행간에는 노래와 흥을 가진 우리들 한민족의 내재율이랄까 하는 것들이 짙은 실루엣으로 깔려 너울댄다. 20세기 중국대륙의 통치자였던 마오쩌둥도 그러함에 감탄한 나머지 “조선민족은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서도 ‘가무’가 특출하다!”라고 극찬했다 하지 않는가. 아무튼 한반도 안에서는 완전히 잊혀졌거나 소멸되어 가고 있는 우리 민족의 위대한 노래문화유산을 다시 되살려낸 ‘재소고려인의 구전가요집’은 주제별로도 큰 특징을 이룬다. 조국을 그리워하는 노래, 향수를 달래는 망향가, 애국가요, 일제강점기에 불린 항일가요, 노동요, 동요, 혁명가요, 계몽가요, 예의범절과 도덕성을 담은 가정노래, 사랑가, 이별가, 강제이주 서러움을 담은 노래, 한반도에서 이미 수수백년 불렸을 각양각색의 전통민요, 유목민(노마드) 혹은 추방된 사람들(디아스포라)의 운명을 노래한 것들이 이 구전가요집의 주제요 특색이라고 볼 수 있겠다. 고려인 구전가요집에 조언과 자문을 맡은 올해 80세의 현지고려인 한상진 문학평론가는 말한다.“과거가 없이 미래가 없다.”고. 이 노래집의 채록·채보자인 한 야꼽 선생은 말한다.“할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내 피가 나로 하여금 이 작업에 뛰어들게 했다.”고. 역시 그런 의미에서라도 세계 곳곳에 꽃망울 피운 민족문화의 보전 차원에서 학자들은 물론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업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준태 시인 조선대 교수
  • [병자호란 다시 읽기] (2) 여진족과 만주1

    [병자호란 다시 읽기] (2) 여진족과 만주1

    조선 사회에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남긴 병자호란의 발발은 16세기 후반∼17세기 중반 중국 대륙에서 벌어진, 이른바 명청교체(明淸交替)의 여파가 조선으로 밀어닥친 결과였다. 명청교체의 주역은 여진족(女眞族)이었다. 그들은 병자호란 7년 뒤인 1644년 베이징을 접수하고 마침내 중원을 차지하게 된다. 병자호란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먼저 여진족과 누르하치의 성장과정을 살펴본다. ●여진족, 만주, 그리고 한국사 여진은 상고 시기 숙신(肅愼), 말갈(靺鞨) 등으로 불리던 퉁구스 계통의 소수민족이다. 그들의 발상지이자 활동무대는 우리가 보통 만주(滿洲)라고 부르는 오늘날의 중국 동북지방이었다. 만주란 과연 어떤 곳인가? 많은 한국인들은 만주 하면 먼저 고구려를 떠올린다. 동시에 그곳은 독립운동가들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말을 달리던 벌판이기도 하다. 해마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고구려의 옛 수도인 지안(集安)을 찾고, 백두산 천지(天池)에 오른다. 한국인들은 광개토대왕비와 장군총을, 그리고 천지의 푸른 물결을 바라보며 잃어버린 ‘고구려의 영광’을 추억한다. 한국인들에게 이렇듯 각별한 의미를 지닌 만주는 지난 1000년 동안 그야말로 풍운의 땅이었다. 고구려와 발해가 멸망한 뒤 만주는 한국인들과는 멀어졌다. 이후 19세기까지 만주에서는 거란, 여진, 몽골, 한족, 그리고 다시 여진족의 순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19세기 후반부터는 만주를 놓고 일본과 러시아가 치열한 다툼을 벌였고,1945년 이후에는 공산당과 국민당의 격전이 벌어진 뒤, 만주는 중국 땅이 되었다. 만주에서 일어나 대제국 청을 세운 여진족은 오늘날의 중국에 커다란 선물을 남겨 주었다. 청나라가 차지했던 광대한 땅이 고스란히 오늘날 중국의 영토로 계승된 것이다. 명나라 시절, 한족 지식인들은 여진족을 야만인이자 ‘금수(禽獸)’라고 멸시했다. 하지만 청은 1644년 명을 접수한 이래 영토를 확장하여 신장(新疆), 티베트, 내몽골 지역을 자신들의 판도 속으로 집어넣었다. 청나라의 지배 아래서 중국의 영토는 과거 명나라 시절보다 거의 40% 가까이 불어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1644년 베이징을 접수할 무렵, 여진족의 인구는 대략 50만, 한족의 인구는 1억 5000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었다. 이후 여진족은 자신들보다 300배 가까이 많은 한족들을 300년 가까이 지배한다. 좀처럼 믿기 어려운 사실이자, 동시에 여진족과 청조 지배층의 정치적 역량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오늘날 만주에서는 700만 정도의 여진족이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고유의 말과 문자를 말하고,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실상 한족에게 동화되어 버린 것이다. 조선은 비록 병자호란에서 청에 항복했지만 한(韓)민족은 여전히 살아남아 독자적인 국가와 민족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조선을 굴복시킨 청 태종 홍타이지가 지하에서 이같은 사실을 안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병자호란은 비록 치욕의 역사였지만, 중국의 무시무시한 동화력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자부심만은 우리의 ‘엄청난 자산’이라는 사실을 환기하면서 글을 이어간다. ●아구다(阿骨打)의 추억 오늘날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신빈(新賓)에 있는 만족(滿族) 자치현(自治縣)에 가면 허투아라(赫圖阿拉)라는 성이 남아 있다. 이곳은 바로 누르하치와 홍타이지가 태어나고 자랐으며, 장차 청 제국을 건국하는 기반이 되었던 흥경노성(興京老城)의 옛터이다. 왕궁이 있었던 곳의 면적은 기껏해야 우리나라 시골의 여느 초등학교 넓이 정도에 불과하다. 최근 과거 누르하치와 홍타이지가 집무했던 한왕전(汗王殿)을 비롯한 몇 개의 건물을 복원해 놓았다. 왕성(王城)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소박한 허투아라성의 모습은 16세기 후반까지 중화제국 명의 지배를 받으며 만주의 이곳저곳에 흩어져 살던 여진족들의 초라한 상황을 상징한다. 하지만 누르하치의 먼 조상들은 결코 초라하지도, 호락호락하지도 않았다. 926년 발해가 거란에 멸망당한 이후 여진족들은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만주 각지에 흩어져 살았다. 거란족은 요(遼)를 세워 10세기부터 12세기 초까지 만주와 화북일대를 차지하는 제국이 되어 남쪽의 송(宋)과 각축을 벌였다. 1115년 그런 와중에 여진족 내부에서는 아구다(阿骨打)라는 영걸이 나타났다. 그는 주변의 여진 부족들을 아울러 나라를 세웠는데 국호를 금(金)이라고 했다. 훗날 누르하치도 나라 이름을 한때 대금(大金)이라 지칭했는데, 사람들은 보통 후자를 아구다가 세웠던 금과 구별하여 후금(後金)이라고 부른다. 아구다의 금은 이후 더욱 세력을 키워 요를 멸망시키고 1127년엔 한족 왕조 송을 양자강 남쪽으로 밀어냈다. 송의 흠종(欽宗)과 휘종(徽宗)은 금의 포로가 되었고, 이후 남송(南宋)은 금에 세폐를 바쳐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한족들에게는 굴욕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금은 비록 1234년 몽골에 의해 멸망했지만, 이후 한족들에게 아구다와 금의 존재는 기억 속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368년 중원에는 다시 한족 왕조 명(明)이 들어섰다. 중원을 지배했던 몽골족의 원(元)나라는 베이징을 버리고, 북으로 도주하여 고비사막 방면까지 쫓겨갔다. 명은 다시 만주 쪽으로 세력을 뻗치면서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던 여진족들을 통제하기 위한 방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한다. ●너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하라 1279년 남송 멸망 이후 거의 백년 만에 중원을 되찾아 한족들의 자존심을 회복한 명의 여진정책은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여진족을 통제하되 그들을 너무 강하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약하지도 않게 ‘섬세하게’ 길들이는 것이었다. 명은 흩어져 있는 여진족들 사이에서 과거 아구다와 같은 패자(覇者)가 출현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 그렇게 되면, 여진족이 다시 커다란 세력으로 뭉치게 될 것이고 송나라가 겪었던 ‘끔찍한 경험’을 되풀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여진족들을 뿔뿔이 흩어진 상태로 방치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명은 북으로 도망간 몽골의 원나라(보통 北元이라 부름)를 여진족을 이용하여 견제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명은 몽골을 견제하기 위해 이이제이(以夷制夷) 방식을 고려한 셈이다. 그러려면 여진족이 어느 정도까지는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한마디로 명의 여진정책은 일종의 ‘딜레마’였다. 명은 고심 끝에 14세기 후반부터 만주의 여진족들을 분할지배 방식으로 통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명은 랴오허(遼河)를 기준으로 서쪽, 즉 오늘날 랴오닝성에 해당하는 지역에는 요동도사(遼東都司)라는 기구를 설치, 지역의 한족들을 직접 통치했다. 그리고 요동도사가 관할하는 산하이관(山海關) 부근부터 관전(寬奠)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변장(邊牆)이라 불리는 담을 쌓았다. 여진족들은 이 담을 넘어 서쪽으로 올 수 없었다. 랴오허 동쪽, 오늘날 지린(吉林)성과 헤이룽장(黑龍江)성에 해당하는 광대한 지역에는 노아간도사(奴兒干都司)라는 기구를 두어 여진족을 통치했다. 그 아래에는 위소(衛所)라는 기관을 두어 여진족 출신을 우두머리로 임명하고 자치를 허용했다. 하지만 위소의 우두머리를 임명할 때나, 여진족 내부에서 분쟁이 생겼을 때에는 명의 지휘부가 개입했다. 여진족의 자치를 허용하되, 여진족 유력자들을 명의 행정체계에 포섭하여 통제하는 전형적인 ‘분할통치(divide and rule)’였다. 건국 직후부터 16세기 중반까지 명의 여진정책은 그럭저럭 성공적이었다. 비록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 기간 동안은 명 내부의 정치가 그런대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6세기 후반에 이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만력제(萬曆帝)의 정치적 태만과 무능, 그에 더하여 임진왜란과 같은 명 외부의 격변까지 맞물리면서 여진정책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침 이 무렵부터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던 누르하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고종·순종실록 완역 인터넷으로 본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두 황제인 고종과 순종의 통치기록이 완역돼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유영렬)는 태조실록부터 철종실록까지 열람할 수 있었던 조선왕조실록 인터넷 서비스에 고종·순종실록을 추가하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국사편찬위는 2005년 12월부터 조선왕조실록의 한문 원문과 한글 번역문을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sillok.history.go.kr)를 통해 공개하고 있지만, 일제때 편찬된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빠져 있었다. 왜곡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고종·순종실록은 국보뿐 아니라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목록에도 빠져 있다. 국사편찬위는 “두 실록은 조선시대의 엄격한 실록 편찬규례에 맞게 편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실의 왜곡이 심해 실록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면서 “두 실록과 나머지 실록의 위상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두 황제의 실록이 조선왕조 마지막 순간의 통치자료인 만큼 근세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홈페이지를 통해 열람할 수 있는 고종·순종실록은 한문 320만자에 달하는 분량이다.원문에는 없는 17종의 문장 기호를 추가했으며 기존 조선왕조실록과 동일한 문체로 수정한 번역문을 함께 실었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정조와 노대통령 통치 “닮은꼴”

    정조와 노대통령 통치 “닮은꼴”

    몇해 전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정조와 닮았다고 해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 유 청장은 노 대통령이 수도이전 정책 등을 추진한 것을 그렇게 표현했지만, 야권에서는 노 대통령이 어떻게 위대한 정조와 비교될 수 있느냐며 강력히 반발했다. ‘정조실록학교’를 관장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박현모(42) 연구교수는 15일 노 대통령과 정조의 통치행태가 비슷한 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유 청장과 다른 분석 포인트는 정조의 부정적인 측면도 감안했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정조는 언로를 틀어막은 국왕이었다.”면서 “아버지였던 사도세자나 이복동생 은언군 문제 등이 논란이 되면 상소 등을 아예 올리지 말라는 금지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일종의 ‘언론탄압’으로 반대파였던 노론의 벽파 관료들은 “중국의 나쁜 임금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비판했다는 것이다. 최근 노 대통령과 청와대 측근인사들이 언론과의 대립각을 세우고, 한나라당 등 야당 및 보수세력이 “언론탄압을 중단하라.”고 주장하는 것과 무관치 않느냐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연초 노 대통령이 기자회견 등을 통해 개헌 추진을 공약한 것은 정조의 ‘오회연교’와 부합한다. 오회연교(五晦筵敎)는 정조가 서거하기 한달 전인 1800년 5월 그믐날 신하들을 모아놓고 한 일종의 연설을 말한다. 정조는 당시 ▲뜻에 맞는 인사들을 주기적으로 등용하고 ▲개혁정책에 노론 벽파가 동참하는 한편 ▲국정 운영구도에 끝까지 동참하지 않으면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역설했다. 일종의 최후통첩인 셈이다. “이번에 개헌하지 않으면 2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선언’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조와 노 대통령의 이같은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다변(多辯)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정조의 다변에 대해 최측근이었던 정약용은 “등용했으면 일을 시켜야 하는데 오히려 말이 많고, 가르치려 든다.”며 불만을 제기했을 정도다. 박 교수는 ▲집권 초기의 열세를 극복하고, 대세를 장악한 점 ▲화성 건설(정조)과 행정도시 건설을 추진한 점 ▲뜻에 맞는 인사들을 중용, 개혁을 추진한 점(코드인사) 등을 정조와 노 대통령의 공통점으로 꼽았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열린세상] 억압당하는 대통령의 말/김정란 상지대 교수 시인

    3공화국 시절, 나는 나 자신을 ‘유령’이라고 불렀다. 나는 말할 수 없었다. 내 혀에는 밧줄이 칭칭 묶여 있었다. 의지대로 말한다는 것은 박정희 치하에서는 곧장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지배자가 원하지 않는 말은 모두 악의 언어로 처단되었다. 정치적 자유란 특히 말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했고, 독재자들은 죽거나 물러났다. 그리고 우리는 말의 자유를 얻었다. 그런데, 그 시대에 말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독재자 입 속의 혀처럼 굴며, 독재자의 편에 서서, 모든 말의 자유를 억압했던 세력이, 사람들이 죽어 가며 얻어낸 말의 자유를 한껏 누리며, 다시 말을 억압하고 있다. 그들은 다시 박정희의 재갈을 들고 위협을 가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어법을 연일 언론이 문제삼고 있다. 참견 수준이 아니라, 가히 억압이라 할 만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대통령이 좀더 계산된 어법을 사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어의 외양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실질적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말로 서민이기 때문에 서민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뿐이다. 실사적 층위에서 살펴보면 그의 언어는 논리적으로 매우 섬세하게 분절되어 있다. 다만 형용사적 층위에서 매끈한 포장을 하지 않을 따름이다. 언론은 그 부분만을 물고 늘어져 부정적인 이미지를 유포한다. 그리고 재갈을 씌우려 든다.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하라는 것이다. 고구려 시조 주몽은 매우 흥미로운 방법으로 금와왕에게서 탈출한다. 그의 재능을 시기했던 금와왕의 적자들은 사생아인 주몽(사실은 빛으로 잉태된)을 제거해야 한다고 금와왕에게 계속 속살댄다. 그들의 성화에 떠다밀린 금와는 주몽을 시험하기로 하고, 주몽에게 말을 기르게 한다. 영리한 주몽은 금와왕의 준마의 혀에 바늘을 찔러 먹지 못하게 만들고, 신통치 않은 말은 잘 먹여 통통하게 키운다. 금와는 만족하여 통통한 말은 자기가 가지고, 야윈 말은 주몽에게 준다. 주몽은 혀에 바늘을 꽂아두었던 바로 그 준마를 타고 탈출한다. 주몽이 바늘을 꽂았던 그 준마의 혀는 주몽이 금와왕 앞에서 현명하게 감추었던 주몽 자신의 언어는 아니었을까? 정신분석학자는 그 혀가 남성 성기를 상징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장면은 주몽이 원초 부성을 극복하는 장면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언어의 문제에 민감한 내 눈은 ‘혀’를 언어로 읽는다. 그 해석은 정신분석학적 해석과 충돌하지 않는다. 결국, 주몽은 아버지의 원리를 드러내는 언어를 극복했다는 해석이 되므로. 이 가설을 뒷받침할 다른 장면이 있다. 주몽의 어머니 유화가 ‘중매 절차’ 없이 빛의 신 해모수와 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알고, 유화의 아버지 하백은 그녀의 입을 좌우로 잡아당겨 3척으로 늘인 다음 우발수 물에 빠뜨린다. 금와가 그녀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입을 세 번 자르고 나자, 그제야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유화를 억압했던 숫자 3은 대표적인 남성성의 숫자이다. 하백은 왜 하필 유화에게 ‘말을 하지 못하는’ 벌을 내렸을까? 그것은 그녀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말을 가지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노 대통령이 주몽의 방식에서 힌트를 얻었으면 한다. 용(用)은 억압자의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체(體) 안에는 미래의 가치를 담보하는 혁명성을 보존하기. 보들레르가 ‘악의 꽃’을 쓸 때 사용했던 방법. 그러나 만일 노무현 대통령이 매끈한 어법을 사용했다면 이번에는 “진정성이 없다”,“인간미가 없다”며 물어뜯었을 것이다. 그들 편이 아니라는 것, 그것이 노 대통령의 말이 문제되는 진정한 이유이다. 대한민국의 언어는 아직 해방되지 않았다. 말의 폭군들이 3공화국 뒤에 서서 여전히 군림하고 있다. 김정란 상지대 교수 시인
  • “왜 하필 일해공원인가”

    경남 합천군이 ‘새천년 생명의 숲’ 공원의 명칭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호인 일해공원으로 바꾸려 하는 것과 관련해 12일 찬반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합천군민들로 구성된 새천년 생명의 숲 지키기 합천군민운동본부 회원 10여명은 이날 오전 합천군청 마당에서 일해공원 명칭 철회 및 민주적 공원명칭 선정을 위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회원들은 “일해공원 명칭을 반대하는 대다수 군민들의 뜻에도 불구하고 합천군수는 일해공원 명칭 추진이 합천군민의 뜻이라는 엉터리 주장을 펴고 있다.”며 “일해공원 명칭 추진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본부측은 일해공원 명칭 철회와 생명의 숲을 지키기 위해 15일 천막농성에 돌입하고, 군민서명운동 본격화, 각계 대표 선언발표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계획이다. 열린사회희망연대와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등 7개 사회시민단체과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등에서 10일과 11일 일해 공원명칭 사용계획 철회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잇따라 여는 등 반대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반해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회장 김광호) 회원과 군민 등 70여명은 이날 오후 ‘새천년 생명의 숲’ 종각 옆 공터에서 일해공원 명칭 지지를 표명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이들은 “전직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한 평가는 후세 사가들의 몫이며 현 정권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합천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씨줄날줄] 유해발굴감식단/황성기 논설위원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유지하는 은밀한 영적(靈的)장치였다.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유족의 슬픔을 “죽어서 신이 된다.”는 기쁨으로 바꾸어 젊은이들을 전장에 내보내는 통치 기제로 이용했다.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는 진보 지식인이 쓴 야스쿠니 관련서 중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된 ‘야스쿠니 문제’를 통해 야스쿠니에 ‘감정의 연금술’이 내재한다고 분석했다.2차대전과 한국전, 베트남전 개입에 이어 이라크 전쟁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냈고, 이 시각에도 사상자를 내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이런 미국이 30년 된 육군중앙감식소 등을 통합해 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JPAC)를 하와이에서 창설한 것이 2003년이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라는 모토에서 알 수 있듯 전사자건 실종자건 전쟁포로건 최후의 1인까지 고국으로 귀환시킨다는 게 이들의 목표다. 미국은 한국 전쟁 당시 북한 땅에 두고온 미군 유해를 수습하기 위해 처음에는 북측이 발굴한 유해를 감식한 뒤 사들였다. 그것도 모자라 북한에 들어가 유해를 발굴하며 그 대가로 2500만달러를 지불했다. 북핵 문제로 2005년 5월 중단하긴 했어도 미국이 전쟁 희생자에 쏟는 집착은 유별나다. 국가를 위해 희생했으면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보증을 JPAC는 유형무형으로 보여준다. 연중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계 유일의 국가인 미국에 이 같은 보증은 전장에 나가거나 내보내는 사람들에겐 든든한 기제로 작동한다. 정치적 안경을 벗어 던진다면 유해든 포로든 찾아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하다. 국방부가 그제 JPAC를 본뜬 ‘유해발굴감식단’의 창설행사를 가졌다. 한국전쟁의 전사·실종자 13만여명을 찾아내는 일을 한다. 낙동강변, 백마고지 전투가 벌어진 철의 삼각지를 포함한 중부전선이 주 대상이다. 서둘러 퇴각했던 평북 운산을 비롯한 북한 내 유해발굴도 장기과제다. 다만 생존한 국군포로의 귀환은 업무 밖이라는 점이 아쉽다. 이 점만큼은 미국을 본뜨지 않은 모양이다. 단장인 박신한 대령은 하나 더 덧붙인다.“발굴이 군만의 일이 아닌데도 경찰과 지방자치단체의 협력이 없다.”고. 새겨들었으면 한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시론] 개헌은 필요하다/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헌법학

    [시론] 개헌은 필요하다/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헌법학

    2007년 새해 벽두에 나온 노무현 대통령의 헌법개정 제안은 주목할 만하다고 본다. 현행 헌법의 개정이 한국정치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4년 연임제의 대통령은 한 번 당선되면 그만인 5년 단임제 대통령과는 달리 국민과 함께해야만 살아 남는다. 국민이 주인 되고 대통령이 머슴이 되는 대통령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처럼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같은 시기에 뽑아야 정치인이 만들어 내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이 원하는 정치가 자리잡게 된다. 개헌은 해야 하는데 지금은 시기가 아니라고 반대하는 것은 정치적 이해타산만을 고려한 구태의연한 발상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불행은 법을 지켜야 하는 헌법이 유린당한 데서부터 시작됐다. 한국의 정치와 법의 끝없는 방황도 헌법을 노리개쯤으로 취급해온 정치꾼들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헌법사는 ‘정치세력간의 야합에 의한 정치권력의 변천사’였다. 제헌헌법은 제정 당초부터 헌법안을 기초하는 자(내각제 주장)와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자(대통령제 고집) 간의 야합으로 탄생했기에 매우 기형적인 정부 형태를 갖게 됐다. 속은 내각제고 겉은 대통령제였던 제헌헌법의 전통은 우리 헌정사의 위정자들에게 대통령제, 내각제, 유사 이원집정제 등 온갖 통치 메뉴를 제공했다. 제헌헌법 이후 제1·2차 개헌은 이승만 대통령을 위한 대통령직선제와 3선 개헌,5·16쿠데타 이후 제6차 개헌은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 유신쿠데타와 유신체제 개헌, 그리고 5·17신군부 쿠데타와 제8차 개헌은 전형적인 국정유린이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에는 ‘헌법제정 권력’에 의한 헌법제정과 ‘헌법개정 권력’에 의한 헌법개정이 없었다. 현행 헌법인 제6공화국의 제9차 개헌헌법은 1987년 ‘6·10시민항쟁’이라는 저항권 발동과 여야 합의에 의한 헌법개정 논의와 절차로 인해 역대 헌법개정 과정과는 크게 달랐다. 하지만 5년 단임의 대통령제 도입은 당시 1노3김(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의 사정을 감안한 정치결단의 결과였다. 유신체제와 5공정권의 대통령 독재를 경험한 국민들은 대통령을 직접선거로 뽑을 수 있다는 그 자체에 만족해서 더 이상의 변화와 꿈을 접었다. 현행 헌법은 6·10항쟁 국민투쟁의 산물로서 정치참여 욕구가 헌법개정권력의 동인(動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개헌과정에서 국민과 전문가의 참여는 상당부분 배제됐다. 21세기 정보화사회의 한복판에 있는 우리 사회에 있어서 과거 일당독재와 1인 장기집권을 막아준 현행 헌법은 사명과 생명을 다했다. 새로운 대한민국에 새 헌법이 필요하다. 그 필요성에 모든 정치인과 정당이 공감하고 있다. 언론들도 오래전부터 5년 단임제의 폐해와 4년 중임제로의 개헌을 역설해 왔다. 이제 국민이 원하는 헌법을 헌정 60년사에 등장시킬 때가 됐다. 정치인이나 언론에 헌법 발의권자인 대통령과 국민의 대화를 가로막지 말 것을 주문하고 싶다. 지난해 11월에는 한국헌법학회에서도 4년 중임제와 함께 국민이 뽑지 않은 국무총리의 대통령대행의 불합리성과 지역주의 해소를 위한 부통령제 도입, 결선투표제 등을 담은 헌법개정안을 제안한 바 있다. 많은 정치인과 언론, 그리고 전문가들의 생각이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노 대통령은 모두가 원하는 개헌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헌법학
  • [2007 월드 포커스] (5) 아프리카에 평화 찾아올까

    [2007 월드 포커스] (5) 아프리카에 평화 찾아올까

    종교와 영토 분쟁으로 붉게 얼룩진 아프리카에 평화의 기운이 감돌 수 있을 것인가. 대량 인종학살로 악명높은 수단 다르푸르 사태와 ‘제2의 이라크’우려를 낳았던 소말리아 내전이 최근 의미있는 진전을 보이면서 한가닥 희망의 빛이 비치고 있다. 수단은 오마르 알 바시르 대통령이 지난달 말 유엔 평화유지군 파병을 승인함으로써 좀체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사태가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고 있다. 소말리아도 에티오피아의 지원을 받은 과도정부가 지난 연말 수도 모가디슈를 6개월간 장악했던 이슬람군벌을 몰아내고 전국적인 통치력을 회복했다. 하지만 식민지 탈피 이후 수십년간 누적돼온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려면 더 획기적인 해결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점에서 향후 전망은 아직 장밋빛보다는 회색빛에 가깝다. ●3년간 250만명 난민 발생한 다르푸르 사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취임 일성으로 다르푸르 사태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공언하면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유엔 평화유지군 파병을 강하게 거부해온 수단 정부가 한발 물러선 것도 긍정적이다. 유엔은 1단계로 수단 정부에 2100만달러를 지원하고,2·3단계에는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다르푸르 사태의 근원은 흑인 기독교도와 아랍계 무슬림간의 갈등이다. 영국 식민통치 시절부터 차별을 당해온 남부 흑인들은 1989년 이슬람계의 지원으로 쿠데타에 성공한 현 정권이 다르푸르를 비롯한 남부 억압 정책을 실시하자 2003년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정부가 아랍계 민병대인 잔자위드를 내세워 무차별적인 학살을 감행함으로써 다르푸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국제사회의 지탄이 높아지자 정부와 일부 반군은 지난해 5월 평화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협정에 참여하지 않은 반군세력은 잔자위드에 맞서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게다가 차드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 인접국으로 폭력이 확산되면서 국가간 분쟁으로까지 치달을 공산이 커지고 있다. ●내전 일단락된 소말리아, 전후 처리협상 고민 모가디슈에서 이슬람군벌을 몰아낸 과도정부는 지역 안정을 구축하기 위한 전후 처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압둘라히 유수프 소말리아 과도정부 대통령은 지난 3일(현지시간) 음와이 키바키 케냐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아프리카평화유지군의 조속한 배치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유엔은 지난 12월 아프리카평화유지군의 소말리아 파견을 결의한 바 있다. 하지만 평화를 장담하기엔 아직 이르다. 이슬람세력이 무장투쟁을 멈추지 않고, 이라크식 게릴라전을 지속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BBC방송 인터넷판은 4일 과도정부 각료의 말을 인용해 모가디슈에 이슬람전사 3500여명이 아직 잔존해있다고 보도, 이같은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소말리아는 1991년 바레 정권이 축출된 이후 15년간 반군 세력간 내전에 시달렸다.2004년 유엔의 지원으로 과도정부가 출범했지만 이슬람군벌의 연합체인 UIC를 통제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난해 6월 UIC가 모가디슈를 점령하자 과도정부는 기독교국가인 에티오피아를 지원세력으로 끌어들였다. 당분간 에티오피아군이 소말리아에 계속 머물 예정이어서 이슬람과 기독교간 종교 갈등의 불씨도 남아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노대통령 “말귀 안통해 온몸으로 소통”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일련의 ‘작심 발언’에 대한 파문과 관련,“말귀가 서로 안 통하는 것이 요즘 너무 많다.”고 전제,“환경이 이렇다보니 부득이 온몸으로 소통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21일 ‘민주평통’ 발언 등에 대한 입장 설명인 셈이다. 청와대는 2일 청와대 브리핑에 지난달 28일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밝힌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을 자세하게 정리해 올렸다. 노 대통령은 “저더러 말을 줄이라고 한다. 방송뉴스를 봤더니 말이 많다고 한다.”면서 “독재자는 힘으로 통치하고, 민주주의 지도자는 말로써 정치를 한다.”고 ‘반박’했다. 이어 “제왕은 말이 필요없다. 권력과 위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왜 성공했느냐.”고 물은 뒤 “말을 잘해서 성공한 것”이라고 했다. 또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도 말의 달인, 말의 천재 아니냐.”고 반문,“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말 못하는 지도자는 절대로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특히 “대통령이 가진 수단 가운데 중요한 것이 인사권과 말”이라고 규정한 뒤 “말로써 토론하고 그렇게 해서 성장하고 말로써 선거하는 것”이라면서 “내가 선거할 때 말 못하게 했으면 대통령이 어떻게 됐겠느냐. 말이 안되는 얘기”라고 스스로 묻고 답했다. 그런 뒤 “그 속에서 정치가 이루지는 것인데 날 더러 말을 줄이라고 한다.”고 강조,“합당한 요구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소말리아 내전 끝나나

    소말리아 내전 끝나나

    소말리아에도 평화가 올까. 소말리아 과도정부가 반군인 이슬람군벌(UIC)의 최후 보루 키스마요를 1일(현지시간) 점령함으로써 내전에서 일단 승리를 거뒀다. 지난 91년 이후 처음으로 중앙정부가 지역 군벌을 모두 진압하고 전국적인 통치력을 회복한 것이다.15년 만에 내전이 종식되고 평화가 찾아올지 기대를 모은다. UIC 세력은 남쪽으로 후퇴, 케냐 국경 지대인 캄보니를 향해 달아나고 있다고 BBC 등은 전했다. 지난 6월 모가디슈 장악 이후 남부와 중부를 지배하며 위세를 떨쳤던 UIC 통치는 6개월만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15년 만의 평화를 장담하기에는 아직 이른 상황이다.UIC 사령관 시크 야굽 이삭도 “과도정부와 이를 지원하는 에티오피아 군과의 전투를 중단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이슬람 세력이 무장투쟁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이라크식 게릴라전을 펼쳐 기독교국 에티오피아군을 몰아내고 이슬람국가를 세우겠다고 UIC와 주변 이슬람 무장세력들은 날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11월 과도정부를 지원해 내전에 공식 개입한 에티오피아군이 상당기간 주둔할 것으로 보여 종교간 대결 구도도 점쳐진다. 이슬람 군벌들을 몰아내느라 전통적 적대관계였던 에티오피아군의 지원을 업고 있는 과도정부가 어떻게 국민들을 설득해야 할지가 발등의 불이다. 군사력이 취약한 과도정부는 당분간 에티오피아군의 주둔을 필요로 하고 있다. UIC는 해외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의 지원도 받고 있어 게릴라전 또는 테러행위를 감행할 가능성도 높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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