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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보와 보수, 위기의 남북관계를 말하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북측의 조문단 파견을 계기로 개성관광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이 논의되는 등 모처럼 남북관계의 긴장이 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 기조와 북한의 2차 핵실험 강행으로 야기된 남북 위기 상황은 여전히 심상치 않다. 진보 성향의 계간지 ‘역사비평’과 뉴라이트 계열 ‘시대정신’이 가을호에서 각각 남북관계의 현 지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을 마련해 눈길을 끈다. 먼저 ‘역사비평’은 특집 ‘위기의 남북관계와 10대 현안’에서 남북관계의 평화적 재구축을 위한 전문적이고 실리적인 방안을 살펴 본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교수는 현재 진행되는 남북관계 위기의 원인을 남북한 당사자의 상호인식에 심각한 충돌이 있기 때문으로 본다. 즉 남한 당국자들은 북한 정권이 비정상적인 권력이기 때문에 대화의 상대로 인정할 수 없고, 북한 당국자들은 이명박 정부가 ‘보수반동’ 정부이기 때문에 대화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인식한다. 이런 상황에서 “남과 북, 양자의 인식을 바꾸기보다는 정치적·민족적 의미를 뛰어 넘는 경제적·실용적 접근만이 현재의 실타래를 푸는 유일한 방안이 될 수밖에 없다.”고 박 교수는 지적한다. 경제적 접근은 북한에 대한 실용적 접근조차 반대하는 보수세력을 잠재우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는 주장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부교수도 “핵 없는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으로 향하는 최후의 열쇠는 남북한 당사자들이 쥐고 있다.”면서 “남북문제의 해법은 흡수통일이 아니라 실리중심의 평화공존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사비평’은 이와 더불어 남북 합의의 지속과 단절, 한반도 비핵화의 해법, 이산가족문제, 문화교류 등을 10대 현안으로 꼽고, 분야별 전문가가 각 문제에 대한 현황과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글을 실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시대정신’은 특집 ‘북한의 선군정치, 핵개발, 붕괴 및 대책’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선군정치가 어떻게 핵 개발로 이어지고, 필연적으로 북한의 붕괴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가를 분석한다. 오경섭 세종연구소 연구원은 기고문 ‘선군정치와 강성대국 건설’에서 “경제정상화를 포기하고 핵무기 보유를 선택한 것이 북한 선군정치 노선의 본질인 만큼 교류협력을 통해 김정일 정권의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유도할 수 있다는 가설은 잘못됐다.”면서 “대북정책은 김정일 정권의 변화가 아닌 약화로 설정하고, 이에 부합하는 다양한 정책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은 ‘북한의 붕괴와 재건’에서 “북한은 밖으로 드러난 몇가지 사실만을 가지고도 이미 붕괴단계에 들어섰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체제가 붕괴됐고, 재정체계와 관료체계가 무너졌으며, 통치체계와 사회기반 시설이 거의 마비됐다는 것이다. 안 이사장은 이어 북한이 붕괴하는 경우 혼란과 통일비용을 줄이고, 북한의 국제분쟁지화를 회피하는 한편 북한 주민의 주권을 보장하기 위해 북한을 당분간 지금과 같은 독립적인 정치경제단위로 존치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스탈린이 유럽 살려” 러 역사왜곡 심화

    “전쟁? 스탈린은 아무 상관없어!”1일 제2차 세계대전 발발 70주년을 앞두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소련의 전쟁책임론을 부인하고 나서 유럽이 격분하고 있다.논의의 핵심은 누가 진짜 전쟁을 시작했느냐는 것이다. 지난 7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히틀러와 스탈린 둘 다 개전의 책임이 있다며 이들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러시아는 폴란드를 지목했다.독일과 소련은 2차 세계대전 직전인 1939년 8월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으면서 양국이 동유럽을 분할 점령한다는 비밀의정서를 교환해 전쟁을 촉발시켰다.그러나 크렘린은 이제 와서 “소련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지난 30일 국영 로시야TV와의 인터뷰에서 스탈린 책임론에 대해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유럽을 살린 건 스탈린이었다.”고 반박했다. 메드베데프는 또 “외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해 3국과 우크라이나가 전체주의를 미화하고 유럽 해방을 이룬 러시아의 주도적 역할을 덮는 등 역사를 왜곡했다.”고 비난했다. 이들이 나치를 국가적 영웅으로 규정했으며, 서유럽은 관계악화 우려 때문에 동유럽의 이런 ‘괘씸한 수정주의’를 수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문제는 이 발언이 1일 폴란드 항구도시 그단스크에서 열릴 2차 세계대전 발발 70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터져나왔다는 것이다. 이 회동에는 러시아, 독일, 폴란드,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정상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러시아는 이 자리에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를 보냈다. 그러나 메드베데프의 ‘도발’로 오랜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이 지적했다.이 회동을 위협하는 건 사실상 과거나 역사가 아니라 ‘현재’라고 신문은 꼬집었다. 러시아는 지금도 옛 소련 국가들에 대한 과거의 영향력을 회복, 특권을 누리려 한다. 크렘린은 또 ‘역사 바로잡기’라는 명목 아래 과거사 미화 노력도 꾸준히 펴왔다.“2차 세계대전의 승리는 소련의 위업”, “나치주의를 무너뜨리고 세계의 운명을 결정한 건 우리”라고 주장해온 메드베데프는 지난 5월 “러시아의 국익을 해치는 역사 왜곡에 대응하겠다.”며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역사학자들이 아닌 연방보안국(FSB) 멤버들이 장악한 이 위원회는 전쟁 당시 러시아의 ‘영웅적 희생’을 가르치는 데 역점을 둔다. 또 러시아의 통치를 받는 40여개 민족을 상대로 소련식 국가통합을 꾀하려 한다. 뉴스위크는 위대한 새 러시아의 건설을 꿈꾸는 푸틴과 메드베데프에겐 흠 없는 ‘위대한 역사’가 필수조건이라고 꼬집었다.이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별 감흥도 없다는 반응이다. 러시아의 역사학자이자 야당 지도자였던 블라디미르 리즈코프는 “매우 멍청한 논쟁”이라며 “크렘린은 자신들의 독재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스탈린 정부를 옹호하고 복권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新일본시대] 한·일 전문가 분석

    30일 치러진 일본 총선에서 전후 반세기를 지배해온 자민당 정권에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는 ‘선거 혁명’이 일어났다. 일본의 민심이 섬뜩하리만큼 무서운 쏠림현상을 보인 원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일본의 정권교체가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에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등에 대한 분석을 한국과 일본의 전문가들로부터 들어본다. ●김무곤 동국대 교수 일본의 보수 정치 시스템이 자정작용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번 총선으로 증명됐다. 민주당이 승리했다고 일본 사회가 왼쪽으로 이동한 게 아니다. 민주당은 이념면에서 자민당과 같은 완전한 보수정당이다. 결국 보수가 자기혁신을 한 것뿐이다. 정권교체라는 이벤트를 통해서 썩을 대로 썩은 전후 보수 정치 시스템을 재건한 셈이다. 일반 국민은 물론 재계까지 자민당을 지지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압승은 온 국가 주체들이 더이상 자민당으로는 안된다는 컨센서스(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 1990년대 초반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고도성장이 멈추면서 이미 자민당의 몰락은 예견됐다. 직접적으로는 유권자들이 자민당의 파벌, 세습, 정경유착 등의 문제에 대해 엄중한 심판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 정권은 역사인식이나 안전보장 등의 정책에서 자민당 정권에 비해 건전하고 전향적인 자세를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정부는 새로 등장한 민주당 실세들과 긴밀한 대화 채널을 구축해 역사문제 등에 있어 마찰을 빚지 않도록 예방에 신경을 써야 한다.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 조교수 민주당의 압승은 통치구조의 대전환을 예고한다. 관료 주도의 정치를 정치 주도로 바꾸는 것이다. 당장 개선될 수 있는 정책은 많지 않지만 국민들의 열망이 크기 때문에 민주당은 이른 시일안에 가시적인 정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또 사민당·국민신당 등과의 연립에서 하토야마 정권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민주당의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 대표대행과의 역할 분담 등이 관심거리다. 한·일 관계는 현재 나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 같은 기조가 계속 유지될 것 같다. 다만 인식이 정책으로 전환될지는 미지수다. 대표적인 예가 영주 외국인에 대한 참정권 부여다. ●이종원 릿쿄대 교수 고이즈미식 신자유주의 개혁에 대한 반발이다. 취약계층의 반란으로 볼 수도 있다. 때문에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정치·사회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이 높다. 대외적으로는 대미 외교보다 아시아 외교에 집중할 것 같다. 아시아 외교에서는 특히 북한 문제가 주목된다. 만약 민주당 정권이 납치문제에 대한 북·일 교섭을 재개하는 등 일정 부분 진전을 이뤄낸다면 외교적 발판을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역사문제 등에 적극적인 입장을 가진 만큼 한·일 관계도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정리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감히 성골의 몸에 손을!”…덕만 vs 미실 본격 전쟁

    “감히 성골의 몸에 손을!”…덕만 vs 미실 본격 전쟁

    덕만은 백성의 희망을 이야기 했고 미실은 환상을 이야기하며 설전을 벌였다. 황권을 놓고 벌인 덕만(이요원 분)과 미실(고현정 분)의 기싸움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백성을 통치할 것인지 백성과 함께 할 것인지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위정자의 자세를 취했다. 낭도복에서 공주복으로 갈아입은 덕만은 아직은 미약하지만 전보다 한층 더 강해지고 현명해졌다. 반면 미실은 일식과 함께 나타난 덕만으로 인해 위상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정치적으로도 위기를 맞게 됐다. 특히 자신 앞에서 긴장한 모습의 덕만을 발견하고 손을 잡아 위협하려던 미실은 “감히 성골의 몸에 손을 대느냐?”며 뿌리치는 덕만의 행동에 큰 충격 받는다. 한편 ‘선덕여왕’ 시청률은 42.2%(TNS미디어코리아 기준)을 기록하며 최고시청률을 다시 한번 경신했다. 덕만이 사람을 얻어 더욱 강해지고 미실이 점차 쇠퇴하는 과정을 예고한 ‘선덕여왕’은 시청률 50% 달성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다. 사진 = MBC ‘선덕여왕’ 화면 캡처 서울신문NTN 우혜영 기자 w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1993년 10개월여 ‘깜짝 야당’… 고이즈미 시절 민심이반 심화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을 54년간 통치해온 이른바 ‘1955년 체제’의 자민당이 사실상 궤멸된 상태다. 중의원선거에서 처음으로 제1당도 빼앗겼다.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탄생한 자민당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권력을 장기 독점해 왔다. 하지만 2007년 7월 참의원선거 패배에 이어 이날 중의원선거도 완패했다. ●1955년 자유당+민주당으로 탄생 자민당은 창당 이래 10개월간을 빼고는 사실상 집권당의 위치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던 터다. 1990년 중의원선거 때 리쿠르트 사건, 우노 소스케 전 총리의 여성스캔들 등 최악의 상황에서도 버텼다. 1993년 중의원선거에서는 과반수에 실패했지만 제1당을 지켰다. 물론 당시 자민당 장기 집권에 반발한 야당들이 비(非)자민, 비공산 연립정권에 합의해 호소카와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한때 처음 야당으로 전락했다. 총리도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이치 의원이 맡았다. 하지만 호소카와 내각의 자중지란에 따라 자민당은 1995년 6월 일본사회당 등과 연립, 다시 여당으로 복귀했다. 10개월 만이었다. 이후 자민당은 한층 쇠퇴의 길에 빠져들었다. 중의원·참의원선거에서 잇따라 기존의 표를 잃어갔다. 자유당, 공명당과의 연립을 통해 정권을 겨우 유지했다.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우정(郵政·우체국) 선거’는 예외다. 우정 민영화로 대표되는 대대적인 개혁 표방에 유권자들은 열광했다. 자민당은 296석을 획득했다. 언론들은 ‘진통제 효과’로 평가했다. 실제 고이즈미 총리의 재임 5년 5개월 동안 도시와 지방간의 격차 심화, 농촌의 피폐화 등 개혁의 피로증에 민심 이반은 심화됐다. 세습 정치인의 전형인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중도 퇴진, 아소 다로 총리의 좌충우돌 행동과 발언은 자민당에 대한 반감과 불신을 한층 키웠다. ●16선 가이후 전총리도 첫 고배 반자민당 정서는 정치 원로와 중진들에게도 직격탄이었다. 16선의 가이후 도시키 전 총리는 정치인생 49년 만에 처음 고배를 마셨다. 자민당내 최대 파벌의 수장인 마치무라 노부타카 전 관방장관, 야마자키 다쿠 전 부총재, 아소 총리의 친구인 나카가와 쇼이치 전 재무상, 9선의 요사노 가오루 재무상 등도 힘을 쓰지 못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나의 전투력은 돈에서 나온다…국적·충성심 따윈 없는 어둠의 전사들 ‘용병’

    나의 전투력은 돈에서 나온다…국적·충성심 따윈 없는 어둠의 전사들 ‘용병’

    “나는 청부인이오. CIA는 수십년 동안 민간 청부인을 써 왔소. 우리들은 공식적으로 군인도 아니고, 공무원도 아니고, 정보요원도 아니오. 모든 건 베트남에서 시작됐소. 없다고 부인할 수 있는 요원들이 필요했으니까. 붙잡혀도 미국 정부에서 보낸 사람들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는 사람들 말이오. 요즘은 CIA가 돈이 많아서, 사람들을 새로 뽑아 훈련시키느니 그냥 우리를 고용하는 게 편하다오.” 막후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미 중앙정보국(CIA)과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어떻게 조국도 없는 어둠의 전사들을 만들어 냈고, 또 활용했을까? 이런 상식 수준의 의문을 가졌다면 앞의 자술적 인용구가 상당 부분 답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들을 ‘용병(mercenary)’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고용인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주저없이 살육을 감행하거나 한 국가를 전복시키는 어마어마한 일도 서슴없이 저지르지만 누구도 이들의 후사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철저한 일회용 소모품일 뿐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들은 국가적 혹은 도덕적 신념의 집단이 아니라 달러가 필요한 개개인의 결집체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용병들에게 이데올로기나 조국, 신의 가호를 기대한다는 건 그들의 생존 방식에 대한 몰이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달러벌이’ 민간 군사기업 그렇다고 용병의 수요와 공급이 언제나 미국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것은 아니다. 로마제국은 기원전부터 누미디아, 갈리아 등 주변국에서 수많은 용병을 모아 전쟁을 치렀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제국들이 이런 전통을 이어받았고, 미국은 이를 기업형으로 전환시켰다. 현대 용병의 효시인 ‘이그제큐티브 아웃컴즈(Executive Outcomes)’나 ‘샌드라인 인터내셔널(Sandline International)’ 등의 ‘민간군사기업’이 그것이다. 옛날의 ‘건달’이 ‘조폭’으로 바뀌었듯 ‘용병’도 ‘청부인(Private Military Contractor)’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 한다.’는 이들의 직업관이 바뀐 건 아니다. 개개인이 주체이던 ‘달러벌이’가 집단화된 비즈니스로 바뀌었을 뿐이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며, 이윤 창출의 바탕에는 투자라는 경제 형식이 개입된다. 기업화된 현대의 용병집단은 돈 되는 일이라면 한 나라를 뒤집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 나라의 실체와 지향이 악인지, 선인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사례가 있다. 2004년 2월 아프리카의 기니에서 음바소고 대통령을 권좌에서 축출하려는 쿠데타 음모가 사전에 발각됐다. 이 쿠데타 음모는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의 아들 마크 대처가 핵심 투자자인 용병집단이 기니의 천연자원을 노리고 꾸민 일이었다. 이들은 ‘말이 통하는’ 통치자를 권좌에 앉혀 두고 기니의 석유와 천연가스 이권을 마음대로 주무를 생각이었다. 이를테면 ‘쿠데타 비즈니스’였던 셈이다. 이 사건에서도 용병의 가치가 거듭 확인된다. 돈만 주면 용병, 즉 사설 병력은 주문대로 움직여 준다.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평가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러면 이런 용병이 우리와는 무관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지난 6월 철원 평화전망대에서 열린 ‘육군 토론회’에서 국방연구원 김종탁 박사는 이런 사실을 공개했다. “육군은 2025년까지 제대군인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민간군사기업 설립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민간군사기업 관련 계획은 ‘2020국방개혁 기본계획’에도 포함돼 있다. 그런가 하면 일각에서는 해외에서 빈발하는 한국인 피랍사태에 대비해 민간군사기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계획이나 주장의 이면에 기업적 의도가 개입돼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머잖아 용병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점이다. ●세계 분쟁지역 누비며 용병실체 파헤쳐 우리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이런 용병의 문제를 CNN과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탐사보도 전문 저널리스트인 로버트 영 펠튼이 전쟁산업의 시각에서 파헤친 신간 ‘용병-Licensed to Kill’(윤길순 옮김, 교양인 펴냄)이 나왔다. 펠튼은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을 발로 누비며 반군과 테러조직, 비밀작전의 실체를 파헤쳤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 이런 청부인들로 구성된 비밀작전팀을 운영한 사실도 그의 탐사보도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펠튼은 세계 도처에서 전쟁산업 종사자들을 만난다. 미국의 3대 민간군사기업인 ‘블랙워터’의 최고 경영자, 베트남전쟁에서 빈 라덴 체포작전까지 수십년 간 미국의 용병작전을 수행해 온 CIA 비밀요원, 기니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잡힌 레바논 출신 용병대장과 이라크 바그다드의 전장에 몸을 던진 전쟁청부인 등을 통해 용병의 세계가 적나라하게 실체를 드러낸다. 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국적이나 충성심, 도덕적 명분에 얽매이지 않는 용병들이 곳곳에서 정규군 대신 총을 들고 있다. 가장 근접한 계기는 ‘9·11 테러’였다고 펠튼은 진단한다. 그는 이런 용병산업이 신자유주의시대 최고의 블루칩이라고 말한다. 이런 그의 전망에서 세기말적인 우울한 징후를 본다. 신자유주의적 가치인 ‘저비용 고효율’을 명분으로 삼아 국가가 공권력을 민영화했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2만 3000원.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그래픽 김송원기자 nuvo@seoul.co.kr
  • 日 민주 “의원 100명 내각 배치”

    日 민주 “의원 100명 내각 배치”

    ■중의원 선거 대승확신 정권운영 틀짜기 정치주도 책임행정 체제로 대변혁 예고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민주당이 정권 운영을 위한 틀을 짜고 있다. 오는 30일의 중의원선거에서 이변이 없는 한 대승이 확정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공약대로 관료 중심에서 탈피, 정치 주도의 정책결정에 맞춰졌다. 소위 ‘통치구조’의 대변혁이다. 민주당은 총리를 중심축으로 ‘국가전략국’과 ‘각료위원회’, ‘행정쇄신회의’ 등 3대 조직을 두기로 했다. 국가전략국은 예산의 골격이나 외교의 기본방침, 인사 등을 총괄하는 민주당 정권의 최고 핵심조직이다. 국가의 비전을 수립하는 역할도 맡는다. 전략국은 10명가량의 국회의원과 외교 및 재정·경제 분야의 민간 전문가, 당의 정책조사회의 직원, 관료 등 30명 규모로 구성된다. 전략국 의장은 ‘부총리급’으로 당의 정조회장도 겸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히 총리의 직속 기관인 만큼 전략국의 참모 가운데 일부가 총리비서관도 같이 맡을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아소 다로 내각에서 정부담당 1명, 부처인 성청 출신의 사무담당 5명 등 6명에 불과했던 총리비서관은 민주당 정권에서는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 총리비서관에 국회의원도 기용, 당과의 보다 원활한 소통도 꾀하기로 했다. 각료나 부대신만 겸임토록 규정된 현행법의 개정도 추진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또 17개 성청의 각료는 물론 부대신, 정무관 등에 100명 정도의 국회의원을 배치, 내각을 완전히 정치 중심체제로 탈바꿈시키기로 했다. 여당과 정부의 정책결정 일원화인 셈이다. 더욱이 각료에게 부대신과 정무관의 임명권을 부여, 권한을 강화했다. 각료·부대신·정무관 등 ‘정무 3역’에게 책임 행정이 가능토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자민당이 파벌의 뜻이나 당선 횟수를 근거로 내각을 꾸렸던 관행과는 전혀 다르다. 각료위원회에서는 각료회의의 전 단계로 정책과제별로 관계 각료끼리 미리 협의, 조율한다. 부처의 이기주의나 폐쇄주의를 극복, 종합적인 정책조정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대신 기존의 사무차관회의는 폐지된다. 행정쇄신위원회는 행정 전반에 대한 재점검과 방만한 재정운영을 감시하는 업무를 맡는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승리하면 31일 곧바로 전략국 의장, 관방장관, 주요 당료 등의 내정자들이 모여 정권인수 작업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hkpark@seoul.co.kr ■비례대표 부족… 의석 일부 他黨에 넘겨야 │도쿄 박홍기특파원│민주당이 ‘8·30’ 중의원선거에서 여론조사처럼 300석 이상을 얻을 만큼 너무 많이 득표할 경우 비례대표 후보의 부족으로 확보한 의석의 일부를 다른 당에 넘겨주는 기현상이 일어날 것 같다. 중의원선거는 선거구별로 1명씩 300명을 뽑는 소선거구제와 11개 권역으로 나눠 180명을 선출하는 비례대표제로 짜여졌다. 후보들은 소선거구와 비례대표에 동시에 중복 등록이 가능, 소선거구에서 낙선해도 비례대표에서 당선될 수 있다. 문제는 일부 권역에서 민주당이 등록한 비례대표 후보수가 실제 당선권에 든 수보다 적을 때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차기 순위의 다른 당 비례대표 후보에 배분해야 한다. 최고평균방식으로 불리는 이른바 ‘돈토식’이다. 민주당은 전체 후보 330명 가운데 59명만 단독 비례대표, 나머지는 중복이다. 아사히신문이 27일 내놓은 여론조사를 보면 오사카·교토 등의 긴키(近畿)권역과 후쿠오카·나가사키 등의 규슈권역 등지에서 이같은 조짐이 있다. 민주당은 긴키권역에서 52명의 비례대표 후보를 냈지만 단독 후보는 8명에 불과하다. 후보는 선거구에서 당선되면 비례대표 명부에서 빠진다. 때문에 민주당이 비례대표 의석 15석을 얻고도 낙선자가 7명 미만이라면 나머지 의석을 다음 순위의 정당에 줘야 한다. 지난 2005년 중의원선거에서 도쿄권역에서 ‘고이즈미 선풍’에 힘입어 자민당이 비례대표에서 8석을 차지했지만 단독 후보 6명에 낙선자가 1명에 그쳐, 결국 1석을 사민당 후보에게 넘겼다. 정당들이 선거의 흐름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유권자들을 의식, 비례대표 후보를 적정선에서 자제하는 데 따른 현상이다. hkpark@seoul.co.kr
  • [데스크 시각] 성공할 인사, 실패할 인사/이종락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성공할 인사, 실패할 인사/이종락 정치부 차장

    지난 2006년에 장관에 오른 A씨는 31년 동안 세종로정부청사 계단을 걸어 올랐다. 거의 매일 새벽 6시30분쯤 청사에 들어섰다. 바로 19층 국무회의실까지 내달렸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굳게 닫힌 국무회의실 문 고리를 잡았다. 기도를 올렸다. 반드시 장관이 되게 해 달라고. 이 회의실에서 국사(國事)를 논할 수 있게 해달라고. A씨는 지방대학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최근 자신의 무덤앞에 세울 묘비명도 정했다고 한다. ‘공문서의 밑줄 하나, 글자 한 줄까지에도 국가와 국민, 역사를 생각했던 공직자 여기 잠들다.’라고. A씨의 예를 드는 것은 인사철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청와대 개편과 개각이 이르면 다음주 초에 동시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총리와 장관, 수석비서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검증에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청와대 인사비서관실에 눈길이 쏠린다. 성공할 총리와 장관, 수석비서관들을 발탁해야 순탄한 이명박 정부의 2기를 맞을 수 있다. 우선 A씨의 경우처럼 투철한 사명감은 성공할 고위 공무원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장관과 수석비서관이 되어야 할 소명의식이 뚜렷한 사람들에게만 기회를 줘야 한다. 정책목표, 정책의 우선 순위 및 정책구도가 담긴 청사진을 지니고 있는지 옥석을 가려야 한다. 소명의식이 뚜렷한 인사들은 퇴임 이후에도 공직에 몸 담은 것을 자랑스러워할 가능성이 높다. 장관의 경우는 정치력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정치권, 이익집단 및 시민사회 등과의 ‘정치적’ 교섭을 발휘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번 개각에 정치인 2~3명의 입각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에 비해 대학교수를 중용한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이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어서 다행스럽다. 도덕성은 두말할 필요없다. 불명예스럽게 낙마한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후보자의 도덕성에 대한 공방과 검증으로 얼마나 많은 행정력을 허비했는가. 언론과의 관계설정도 중요하다. 대통령의 인사는 통치행위의 핵심이다. 언론보도의 주요 대상이다. 인사 과정에서 청와대와 언론은 그러나 이율배반적 요소를 겪게 된다. 청와대는 인사의 적절성을 적극 홍보해야 한다. 보안을 유지할 필요성도 있다. 언론은 정확한 취재가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비중있는 보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인사 혼선과 후유증을 걱정한다. 언론은 오보의 부담을 고민한다. 이런 측면에서 고려해 볼 만한 방안이 ‘인사예고제’다.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인사 정보를 언론에 적절한 방법으로 사전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언론은 그 같은 정보를 바탕으로 인사에 대한 부정확한 보도를 자제한다. 그동안 무분별한 인사기사는 공직사회의 동요와 개인의 명예훼손 등 부작용을 낳았다. 청와대와 언론이 신사협정을 맺어 올바른 인사 보도 관행을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성공할 인사를 위해서는 임명권을 가진 대통령의 인사철학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국정쇄신이니 민심수습이니 하며 ‘깜짝 인사’를 반대하는 이 대통령의 생각에 공감한다. 개인적인 업무능력보다는 정치적 이유로 물러나야 했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총리를 포함한 이명박 정부의 장관 평균 수명은 현재까지 약 13개월이다. 역대 평균 14개월보다 한 달이 짧다. 어떤 이유로 물러나든 대상자가 명예스럽게 퇴진하도록 모양새를 갖춰야 한다. 뭔가 열패감을 느끼면서 쫓기듯 사퇴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실패한 공직자는 퇴임 후에도 자신이 몸담았던 정부를 실패한 정부로 규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종락 정치부 차장 jrlee@seoul.co.kr
  • [사설] 김 전 대통령 가신 길 평화·화해로 기려야

    이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떠나고 우리는 남았다. 이 땅의 민주화를 앞당기고, 인권을 살찌우고, 얼어붙은 한반도에 화해와 평화의 햇살을 안겨다 준 김 전 대통령이 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영면의 길에 들어섰다. 김대중, 그 이름 석자는 역사가 됐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가 있어서 행복했다. 지금 우리가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자부할 수 있는 토양을 갖추는 데 있어서 고인이 이룩한 업적은 실로 지대하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외침으로 암울한 군사정권 시절 민주주의의 불꽃을 지켜냈다. 혹독한 외환위기를 맞아 나라가 흔들릴 때 국민을 하나로 묶었고, 장롱 속 금붙이들마저 끌어내며 이룩한 경제 회복으로 다시금 세계를 놀라게 했다. 분단 한반도에 대화의 물꼬를 텄고, 남북이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공영의 대상임을 일깨웠으며, 인류는 그런 평화의 전령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며 갈채를 보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권의 숭고한 가치와, 용서와 화해만이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을 힘이라는 가르침을 고인은 안겨주었다.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로 지난 엿새 이 땅엔 용서와 화해, 평화와 사랑의 물결이 넘쳐났다. 동서로는 평생 민주화 동지이자 정적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화해가 이뤄졌고,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손을 잡았다. 남북으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의를 받아든 북한 조문단이 빈소를 찾았고, 우리 정부와 막힌 대화의 실타래를 풀 방안을 논의했다. 서울광장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분향소로 신분과 계층을 떠난 조문행렬이 꼬리를 물었지만, 거기에 이념과 지역 대립의 흔적은 찾기 힘들었다.고인의 자취가 크고 깊은 만큼 그의 빈자리를 메워야 할 우리의 과제 또한 막중하다. 지역과 이념, 계층의 대립이라는 이 나라 3대 갈등을 치유하고 극복하는 데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나서야 한다. 우선 고인이 평생을 바쳐 극복하려 했던 지역주의의 골을 메워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권은 당파를 떠나 지역갈등 극복을 위한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데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 말로만 지역주의 극복을 외칠 것이 아니라 이를 실천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른 행정구역 개편과 선거제도 개선 등을 논함에 있어서 이 나라 백년대계를 설계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이념 과잉의 대결구도 또한 극복해 내야 한다. 정치권뿐 아니라 학계와 언론, 시민사회단체 등 사회의 모든 주체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식민통치와 남북 분단, 군부통치라는 현대사의 굴곡이 만든 이념의 덫에서 우리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한다. 나라가 이념의 굴레에 묶여 주춤거리기에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너무도 멀다. 탈이념의 세계사적 조류에서 우리만 퇴행할 수는 없다. 이를 위해 정부는 무엇보다 친서민 행보를 보다 강화, 빈부 격차에 따른 계층 갈등을 극복하는 데 더욱 매진해야 한다. 기회의 균등과 정의로운 분배를 통해 우리 사회 전체가 하나가 되는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인동초가 피워 낸 평화와 화해의 꽃을 이제 우리가 가꿔야 한다. 삼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면을 빈다.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사선 다섯번 넘어… 민주주의 유토피아 꿈꿨다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사선 다섯번 넘어… 민주주의 유토피아 꿈꿨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동초’,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리며 반세기 한국 정치사를 풍미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3김(金)시대’의 한 축이었던 고인(故人)은 1997년 겨울, 반세기만에 ‘선거혁명’을 통한 정권교체를 이뤘다. 3전4기로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한반도 정세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5차례의 죽을 고비와 5년여의 감옥생활, 6년여의 가택연금, 3년의 망명생활 등 고인의 삶은 견디기 어려운 시련으로 점철됐다. 가톨릭 세례명인 ‘토마스 모어’처럼 고행하는 구도자의 삶을 이어온 셈이다. “정이 많은 분이다.” 영원한 비서실장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을 이같이 묘사했다. 말년에도 거의 매일 서울 동교동 자택을 드나든 박 의원은 “지난 1월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방문해 용산참사에 대해 말을 꺼내자 이내 김 전 대통령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면서 “평소에도 드라마 속 (비참한) 사람들을 보며 눈시울을 붉힐 만큼 평소 인정도 많으셨다.”고 전했다. 말년에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등장과 맞물려 케네디 전 대통령과 관련된 책을 탐독하고 여론주도층을 만나 서민과 비정규직을 위한 사회 안전망, 생산적 복지를 강조했다고 한다. 전남 목포에서 뱃길로 150리. 김 전 대통령은 1924년 매서운 바닷바람을 등진 하의도라는 작은 섬에서 3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는 지금도 생가터가 남아 있다. ‘후광’(後廣)이라는 호(號)도 여기서 따왔다. 중농의 아들이었던 그는 목포상고(현 전남제일고)에 수석 입학한 수재였지만 반일운동으로 학적부에 ‘시찰계요’라고 적힐 만큼 반골기질을 드러냈다. 1945년 약관의 나이에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 신민당에 입당했지만 8개월 만에 탈당한다. 이어 3단계 통일방안(1972년)과 광주 민주화운동(1980년) 등을 거치면서 색깔론에 휘말렸다. 고인은 1946년 첫 부인 차용애 여사와 가정을 꾸리고 해운회사를 경영, 큰돈을 모은다. 뛰어난 상술로 목포일보를 인수한 뒤 주필을 겸하기도 했다. 자금을 끌어대고 경쟁상대를 꺾으며 사람의 마음을 낚는 장사와 정치는 닮은꼴이다. 1950년 한국전쟁 때는 우익단체 참여를 빌미로 인민군에게 처형될 위기에 몰렸지만 이송 중 극적으로 탈출, 첫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서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3대를 포함, 4차례 낙선의 쓴잔을 연거푸 마셨다. 1958년 강원도 인제군 민의원 선거 때는 후보등록이 취소됐고, 1959년 보궐선거에선 색깔론에 휘말렸다. 4·19혁명이 일어난 1960년 선거에서도 낙선했다. 1961년 인제군 보궐선거에서 당선의 첫 기쁨을 누린 김 전 대통령. 하지만 사흘 만에 5·16을 맞아 반혁명사건에 연루돼 교도소로 직행한다. 토머스 모어의 교훈은 오히려 고난 극복의 힘이 됐다. “늦어도 100년 뒤면 (토머스 모어처럼) 역사에서 재평가받을 것”이라며 고통을 이겨냈다. 1962년 이희호 여사와 재혼한 고인은 이듬해 목포에서 민주당 후보로 공화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1964년 5시간20분간 행한 ‘필리버스터’ 발언과 6개월간 13차례 본회의 발언 등은 지금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71년 7대 대선은 기회이자 시련의 계기였다. 1970년 45세의 나이에 ‘40대 기수론’의 라이벌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물리치고 신민당 후보로 나섰지만 이듬해 선거에선 94만표 차로 패배했다. 이후 20년간 혹독한 시련이 밀려왔다. 일본 망명 중인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을 시작으로 전두환 군사정권까지 55차례의 연금생활, 5년반 동안의 감옥생활, 2차례의 망명생활을 겪었다. 1976년 명동 3·1구국선언으로 구속(긴급조치 9호 위반)됐고, 1981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훗날 고인은 “솔직히 죽는 것이 두려웠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고 회고했다. 가톨릭계의 구명운동 덕에 목숨을 건진 고인은 1982년 도미, 두 번째 망명길에 오른다. 한국인권문제연구소와 민주화추진협의회를 이끌며 민주화 운동의 외로운 무게중심이 됐고, ‘인동초’란 별칭도 얻게 된다. 19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전격 귀국한 고인은 김포공항에서 연행돼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만든 신한민주당이 2·12총선에서 109석을 확보, 1987년 6월 항쟁의 기틀을 마련한다. 사면복권 뒤 1987년 13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3위에 머무르며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 실패에 따른 비난에 휩싸였다. 1988년 총선의 평민당 ‘황색 돌풍’으로 일선에 복귀했지만 1992년 12월 대선에서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고인은 “40여 년의 파란 많았던 정치생활에 사실상 종막을 고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며 대선 낙선의 소회를 곱씹었다. 막을 내릴 것 같던 정치인생은 영국으로 건너간 지 6개월만에 다시 불꽃을 살렸다. 1993년 귀국해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했고, 빗발치는 비판 여론을 무릅쓰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듬해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올라서자 대선 4번째 출마를 선언한다. ‘대통령병 환자’라는 비난이 일었지만 단 1.6%포인트의 표차이로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색깔론과 지역감정의 벽을 넘었다. 보수세력인 자민련과의 DJP연합이 힘이 됐지만, 역설적으로 색깔과 지역의 부조화스러운 조합이기도 했다. 고인의 대표 브랜드는 ‘햇볕정책’이다. 반세기 동안 닫혔던 북쪽의 문을 열게 하는 열쇠로,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뤄진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가 ‘레드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탈냉전체제로 진입하는 촉매제가 됐다. 고인을 한반도 유일의 노벨상 수상자로 만든 일대 사건이었고, 퇴임 뒤에도 논쟁이 있는 사안에 대해 비중있게 언급할 수 있는 유일한 지위를 부여했다. 고인은 대통령 임기말 측근들의 비리가 뒤늦게 터진 데다 아들들이 구속되는 등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북한과 밀거래한 사실은 안타까운 기록으로 남게 됐다. 또 완벽주의와 제왕학적 리더십은 권위주의적 통치라는 오명도 남겼다. 오상도 허백윤기자 sdoh@seoul.co.kr
  • 출생에서부터 장례까지… 조선국왕의 삶 어땠을까

    출생에서부터 장례까지… 조선국왕의 삶 어땠을까

    천하를 호령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자. 하지만 국정 수행에 바빠 ‘소의간식(宵衣 食·새벽에 옷을 입고 일을 시작해 한밤에 밥을 먹는다.)’할 수밖에 없고, 침소조차 나이 많은 상궁에 둘러싸여 한치의 사생활도 허용되지 않는 고독한 인간. 조선 국왕의 근엄한 얼굴 이면에는 이처럼 인간적 애환들이 드리워져 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다면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였던 조선 국왕에 관한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 나왔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엮은 ‘조선 국왕의 일생’(글항아리 펴냄)이다. 출생에서부터 교육, 왕비 간택과 혼례, 국정 운영, 거주와 통치공간인 궁궐, 음식, 궐 밖 행차, 연회, 사망과 장례에 이르기까지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국왕의 삶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했다. 지난해 금요시민강좌로 진행했던 내용을 수정·보완한 것으로, 이종묵 서울대 교수 등 한국학 전문가 12명이 집필했다. 왕자의 잉태는 국가적 대사여서 국왕과 왕비의 합궁 날짜를 정하는 것부터 매우 까다로웠다. 초하루, 그믐, 보름날은 피했고, 비와 천둥이 치거나 바람이 세게 부는 날도 꺼렸다. 때문에 국왕과 왕비가 만날 수 있는 길일은 한 달에 하루나 이틀 정도에 불과했다. 출산 1~3개월 전에 궁중에 산실청이 설치돼 출산 때까지 전국에서 형벌의 집행이 중지되고, 왕자가 태어나면 전국의 죄수들을 석방했다. 왕은 하늘이 내리지만 성군은 사람이 길러낸다. 문치를 지향한 조선 왕실에서 세자는 덕성과 인성, 예학을 습득하기 위한 철저한 교육을 받았다. ‘왕은 어떻게 교육받았을까’를 쓴 김문식 교수에 따르면 왕세자는 날마다 전날 배운 것을 확인하는 쪽지시험을 봤다. 매월 두 차례 중간고사에는 왕세자를 가르치는 20명의 스승이 모두 참석하고, 국왕도 참관하는 경우가 있었다. 조선 사회에서 국왕은 신성의 세계와 세속의 세계를 아우르는 절대 권력자였다. 국왕은 수시로 사직과 산천 등에 제사를 올리고, 중요한 국사를 신하들과 의논해 결정하며, 이웃 국가와 외교 문제를 처리하는 등 행정과 사법, 외교 가릴 것 없이 업무 범위가 매우 방대했다. 조선 후기, 특히 영·정조대에는 민심을 보살피기 위해 수시로 궐 밖 행차를 하는 일까지 더해졌다. 공식 일과가 끝나도 밤새워 책을 읽고, 국정에 대한 구상에 매진한 탓에 역대 성군들은 장수하지 못했다. 정호훈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는 ‘왕은 평소 어떻게 일했는가’에서 “역대 국왕 가운데 누구보다 바쁘게 국정을 챙기며 업무를 진행한 인물은 정조”라고 꼽았다. 승정원일기의 정조 6년(1782) 2월20일자 일기를 보면 정조의 일과는 아침 여덟시에 공식적으로 시작돼 밤 9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제사를 지내는 날은 하루종일 머물며 의식을 주재했다. 정조 4년(1780)1월1일에 있었던 사직단 제사의 일정표에 따르면 정조는 오전 10시 사직단으로 거둥해 다음날 새벽 3시 제사를 마친 것으로 돼있다. 궁궐의 주인은 왕이지만 궁궐 안에 왕의 사적인 장소는 없었다. 국왕의 일거수일투족은 기록의 대상이었고, 모두에게 공개된 존재였다. 때문에 이름 없는 궁녀의 처소에 군주가 갑자기 방문해 로맨스가 싹트는 일은 실제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강녕전이나 대조전 같은 침실에도 주변 방에 나이 많은 상궁이 대기하고 있었고, 심지어 임금의 똥도 버려지지 않고 의원들이 직접 맛을 볼 정도였다. 정병설 서울대 교수는 “아무리 호화롭다 해도 감옥이나 다를 바 없는 고립된 공간인 궁궐에서 태어나 살다 죽었던 것”이라며 ”감옥 같은 궁궐에 갇혀 왕은 늘 정변이 나지 않을까 걱정했고, 왕자들은 자신이 과연 왕이 될 수 있을까, 왕이 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늘 불안해했다.”고 말했다. 왕은 죽음까지도 대단히 정치적이다. ‘너무나 정치적인 사건, 왕의 죽음’에서 김기덕 건국대 교수는 “죽은 자의 무덤 하나가 생사람까지도 잡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정치적 이슈가 바로 왕릉의 입지였고, 그래서 양반들은 풍수 공부를 목숨 걸고 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책은 시민강좌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 전문서라기보다 요약본에 가깝다. 쉽게 읽히지만 다소 아쉬운 측면도 있다. 각 주제별로 보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려면 책 말미에 소개된 참고 문헌과 관련 저서들을 찾아보면 좋을 듯싶다. 1만 98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5080] ‘잘 먹기’는 기본… ‘잘사는 법’ 배워 노후 업그레이드

    [5080] ‘잘 먹기’는 기본… ‘잘사는 법’ 배워 노후 업그레이드

    잘 먹고 잘사는 게 바로 웰빙이다. ‘참살이’라는 우리말로 순화해 사용하기도 한다. 역사는 1980년대로 올라간다. 당시 ‘알로에’는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질 만큼 히트했다. 1990년대에는 강낭콩처럼 생긴 투명한 캡슐에 든 스쿠알렌이 건강보조식품으로 유행했다. 그 이후에는 DHA, 검은콩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웰빙 식품들이 쏟아졌다. 한동안 웰빙의 중심은 ‘잘 먹는’ 데 있었다. 최근에는 ‘음식’보다 ‘활동’에 초점을 둔 웰빙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무용, 합창, 등산, 수영, 요리 등으로 심신의 건강을 단련해 잘사는 데 비중을 둔 활동들이다. 노후 삶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여가생활도 실버 웰빙활동으로 각광받고 있다. 14일 서울 사직동 종로문화체육센터에서 만난 이순선(63·여)씨는 하늘색 한복 치마를 허리에 두르더니 가볍게 몸을 날렸다. 멈출 듯 멈추지 않고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손끝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이씨의 단아한 자태는 그녀의 나이조차 잊게 만들었다. 일주일 생활계획표는 평범한 60대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씨의 일상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들로 가득 차 있다. 60대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녀의 계획표에 어울리는 적절한 표현이라면 바로 ‘웰빙’이다. 이씨의 삶 자체가 웰빙이었다. 그녀는 10여년 전 처음 배우기 시작한 한국무용을 최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종로문화체육센터에서 무형문화재 이수자로부터 한국무용을 배우고 있다. 또 올 초에는 용강동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고전무용교실에서 무용을, 연남동 주민센터에서 한국무용을 배우기도 했다. 무용이라면 어디든 쫓아다닌다. 이씨는 “무용을 배우면 일단 운동이 되고 빠른 박자의 음악보다 느린 국악이 몸에 무리가 가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다. 또 이씨는 집에만 갇혀 있는 같은 또래들에게 “동 주민센터 자치회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잘 살펴보면 무용뿐만 아니라 탁구, 단전호흡, 노래, 풍물, 에어로빅 등을 다양하게 배울 수 있다.”면서 “우리 주변에 젊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어디든 널려 있으니 늦기 전에 어서 찾아나서라.”고 조언했다. 또 이씨는 은평구 응암동에 있는 심택사라는 작은 암자에서 찬불가를 부르는 합창단원이기도 하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심택사를 찾는 이씨는 두 번은 예불을 하기 위해 찾고 한 번은 찬불가를 부르기 위해 찾는다. 합창단 멤버 수는 12명 정도라고 했다. 10여년 전 은평구 구립합창단 소속으로 세종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구 대항 합창대회에 나가 당시 고건 서울시장이 수여하는 대상을 거머쥐었다고 회고했다. 이씨가 비장의 카드로 내세우는 ‘웰빙 비법’은 바로 ‘한방교육’이다. 이씨는 동네 주민들끼리 한의학을 전공한 강사로부터 한방 이론교육을 받고 있다. 이씨는 강사로부터 “아플 때 이렇게 하라. 음식조절은 어떻게 하고, 장기와 경락을 좋게 하려면 이런 원리를 알아야 한다.”와 같은 내용의 한방이론 교육을 받으며 건강상담을 한다고 했다. 덕분에 이씨는 “음식 만들 때 소금의 양을 줄이게 됐고, 탄 음식은 아예 입에도 안 댄다.”면서 “몸이 건강하니 마음도 즐겁다.”고 말했다. 경남 진주시에 사는 최정옥(55·여)씨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웰빙족이다. 최씨의 웰빙생활은 열거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린다. 최씨는 수영을 통해 건강을 다졌다. 자유형, 배영, 평영에 이어 영법 중 가장 어렵다는 접영까지 마스터했다. 최씨는 등산도 무척 좋아해 주말이면 어김없이 산을 찾는다. 전국에 가보지 않은 산이 없을 정도다. 최씨는 수지침도 배워 가족들의 건강도 책임진다. 특히 지압솜씨가 좋다는 최씨는 “엄마손은 약손이라는 말이 참말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또 최씨는 한·양식 자격증을 모두 땄다. 가족들은 “요리사가 따로 없다”면서 “어머니가 해 주는 밥을 먹다가 밖에 나가서 먹으면 맛 없어서 못 먹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건강·운동 등 섭렵하지 않은 분야가 없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복도 직접 만든다. 옷감만 있으면 하루 만에 한복 한 벌은 뚝딱 해치운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최씨가 직접 만든 한복을 꼭 챙겨 입는다. 뿐만 아니라 최씨는 홈패션에도 일가견이 있다. 스텐실, 테디베어 등 집안을 꾸미고 있는 모든 장식들이 최씨가 직접 만든 핸드메이드 제품들이다. 얼핏 보면 ‘웰빙’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 같지만 최씨는 “직접 길러 먹는 유기농 음식이 웰빙인 것처럼 생활용품도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바로 ‘참살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최근 최씨는 컴퓨터만 켜면 키보드와 마우스에 얹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복지관, 시청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워드, 인터넷 검색, 엑셀 등을 배웠다. 물론 주로 하는 것은 독학으로 배운 온라인 고스톱이지만, “늦게나마 문명의 이기를 배운 것이 삶의 활력소가 된다.”고 너스레를 늘어놓는다. 최씨는 최근 펀드 투자에도 관심이 많다. 꼭 투자로 돈을 벌어 보겠다는 목적은 아니라고 했다. 살림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여윳돈을 가지고 펀드에 투자한다는 최씨는 “수익이 나거나 손해가 나는 것을 보며 경제 공부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펀드 투자는 분산투자가 중요하다. 리스크가 큰 중국 펀드와 안정적인 국내 펀드에 분산투자하는 것이 전략”이라며 전문가 같은 견해도 덧붙였다. 최씨는 “요즘은 직장 다니는 아들이 직접 예매해 주는 영화를 남편과 함께 보러 다니는 게 행복”이라면서 “실버 웰빙족은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자랑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뉴스다큐 시선] 설 자리 잃어가는 가판대

    [뉴스다큐 시선] 설 자리 잃어가는 가판대

    가판대(街販臺). 길거리에서 판매하는 물건을 놓기 위해 설치한 대이다. 도시의 가판대는 물건을 사고 파는 공간인 동시에 도시인의 일상생활과 도시 변천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사소해 보이는 가판대는 도시마다 특색을 갖기도 한다. 서울의 가판대가 올해 초 달라졌다. ‘디자인서울’을 표방한 서울시가 가판대 외양과 시설물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부터다. 한 평 남짓한 가판대 안에서 상인들이 도시와 사람들을 어떤 시선으로 보아 왔는지 그들의 공간 안으로 들어가봤다. 글·사진·동영상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섭씨 30도가 넘는 더위로 푹푹 찐 지난 10일 오후 2시, 서울 종로2가 버스 정류소 앞 가로판매대(이하 가판대). 하루 중 손님이 가장 뜸한 시간이다. 띄엄띄엄 오는 손님들은 음료수나 담배 등 물건을 사기보다는 버스카드를 충전하려는 이들이 더 많다. “버스카드 3000원어치 충전되나요?” 주인인 이남주(73·여)씨 표정이 어두워진다. “미안하지만 안 돼요.” 손님이 가자 한숨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1만원 충전해봐야 70원이 남는 장사인데… 100만원을 충전해야 7000원이 겨우 남는다오. 3000원, 5000원 충전하려는 손님은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가 없는걸.” 한여름 도심 한복판 가판대인데 음료수조차 도통 팔리지 않는다. 기자가 지켜본 1시간여 동안 생수, 식혜 등 음료수 5개가 팔렸다. 담배라도 팔리지 않으면 당장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담배가 하루 매출의 70%를 차지할 정도다. 이 할머니는 “판매 1순위가 담배, 2순위가 음료수, 3순위가 껌”이라고 했다. 88올림픽을 전후해 전성기를 누렸던 가판대 영업은 이미 생기를 잃은 지 오래다. 현 상인들만 소유권을 인정하고 명의이전이나 세대간 증여를 허용치 않는 현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가판대는 이제 10여년 후면 생명을 다하고 사라질 시한부 인생인 셈이다. 가판대 장사로 가족들을 먹여 살린 시절도 있었다. 이 할머니 역시 좌판으로 시작해 가판대 장사 35년으로 2남3녀를 장성시켰다. 옆으로 앉아 발을 뻗으면 꽉 차는 이 공간에서 ‘가판대 인생’을 보내고 이제 인생의 황혼기를 맞고 있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부터 점점 내리막길인데다 요즈음처럼 장사 안 되는 때가 또 있을까 싶어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담뱃갑만 한 공간 안에서 세상 내다봐 할머니의 하루는 오전 6시에 경기 하남시에 있는 집에서 좌석버스를 타고 나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7시쯤 도착해 가판대 문을 펼친다. 그 새 신문배달 청년은 접어놓은 가판대 천장에 신문을 꽂아놓고 간다. “이 바닥에도 룰이 있어서…” 신문을 도둑맞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한 평이나 될까. ‘담뱃갑’만한 공간 안에 앉아 자정쯤까지 오가는 손님을 맞으며 바깥 세상을 내다보는 게 하루 일과다. 오전 7시에서 9시 사이가 하루 중 손님이 가장 몰리는 시간이다. 출근하는 직장인과 종로 근처 학생 손님들이 몰린다. 11시쯤 늦은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한다. 사먹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솥단지도 들여놨다. 이씨의 가판대 장사는 먼저 좌판에서 시작됐다. 종로통에서 판자를 펼쳐놓고 신문, 음료수를 팔았다. 한여름 냉장고가 없을 땐 찬물 대야에 발을 담가놓기도 했고 한겨울엔 연탄불을 피워놓고 장사했다. 물건을 맡길 데가 없어 저녁마다 근처 구멍가게에 물건을 맡겨놓을 땐 눈칫밥을 먹기 일쑤였다. 당시 하루 매상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때에 비하면 요즈음은 천국일 수도 있다. 장사 준비하는데 이것저것 늘어놓을 필요도 없고 가판대가 땡볕·칼바람을 피할 피난처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길을 묻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가판대를 먼저 찾는다. 국민은행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는 아주머니에게 이 할머니는 친절히 길을 가르쳐주고 덧붙인다. “길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아는대로 가르쳐줘야지 어찌 내치겠소. 보도 주인은 가판대가 아니라 행인들인데.” 마냥 앉아있기가 답답할 텐데 행인들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했다. 사람들을 지켜보는 사이 세월도 변했다. 예전엔 취객들이 가판대를 잡고 행패를 부리는 것 말리는 게 하루 일과였는데 그런 사람들은 눈에 띄게 줄었다. 88올림픽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가 가로판매대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도시 규모가 커지고 서울 주변 베드타운이 자라면서 퇴근 시간대 이후 손님이 부쩍 줄었다. 유동인구가 강남 지역으로 옮겨간 타격도 컸다. 점차 가판대는 설 자리를 잃었다. 세월따라 유행따라 손님들을 빼앗겼다. 음료수는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편의점과 테이크아웃 전문점에, 신문은 지하철 무가지에, 복권은 복권방에 손님을 내줬다. 쓸쓸히 길거리를 지키고 서 있는 가판대는 마치 소박맞고 친정에 돌아와 멀뚱히 서 있는 누이같은 존재가 됐다. 같은 날 서울 종로3가 단성사 앞 가판대. 바로 길건너편에 편의점 ‘패밀리 마트’가 성업 중이다. 바로 40여m 길을 따라올라가면 편의점 ‘바이더웨이’가, 또 50여m 위쪽에도 ‘패밀리마트’가 자리하고 있다. 방학이지만 영화관 앞은 한산해 가판대는 손님도 없이 개점 휴업상태였다. 22년간 한 자리를 지킨 사장 정기호(60)씨에게 가판대의 전성기는 영화관이 오프라인으로 예매를 하던 단관 시절이었다. 당시는 관객들이 상인들보다 부지런했다. 해뜰 즈음부터 유명 조조영화를 보려는 관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오징어와 쥐포, 팝콘도 덩달아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정씨는 “가판대에서 파는 물건도 소비패턴 변화와 궤를 같이 했다.”고 설명을 곁들였다. 영화 온라인 예매와 영화관 안 매점이 발달하면서 가판대 판매는 현저히 줄었다. 10년전 쯤 해외브랜드의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이 생기면서 음표수 판매도 급감했다. 길거리 장사다보니 유동인구에 민감할 수밖에 없지만 버스중앙차로가 생기는 바람에 행인 수도 줄었다. 규제 일색의 시설물 관리도 상인들을 힘들게 한다. “가판대 판매는 대개 충동구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가판대 정책이 바뀌어서 이제는 물건을 바깥에 진열해놓을 수가 없어요. 자연히 매출도 70% 가까이 줄었습니다. ” 그나마 팔리는 담배는 10% 정도가 마진으로 남지만 세금과 도난방지 보안시스템, 상인이 3분의1씩 나눠가져야 한다. 복권 수수료도 판매금액의 5% 남짓한 수준. 인건비를 감안하면 두 사람 맞교대 기준으로 한달 매출이 300만원은 나와야 하지만 택도 없다. ●유행따라 판매상품도 변화 가판대도 ‘퓨전’이라는 이름 아래 고달픈 변신을 꾀하고 있다. 4~5년 전부터 생과일 주스도 메뉴로 등장했다. 키위, 토마토, 딸기 등 알록달록한 과일을 썰어 선반에 내놓고 손님을 끌어보지만 신통치는 않다. 서울 북촌 등지에는 ‘퓨전가판대’가 테이크아웃 커피도 내놓고 있지만 얼마나 오래갈지는 미지수다. 가로매점연합회 종로지회장인 정씨는 “오늘 8000원 벌었다.”며 “손익계산이 안되는 주변 상인들의 하소연 전화가 하루 2~3통씩 걸려온다.”고 말했다. 주5일제 정착으로 주말장사마저 뜸해지면서 주말엔 문을 닫는 가판대도 늘고 있다. 이제 가판대를 떠날 상인들은 이미 떠나고 다른 방도가 없는 상인들만 남았다. 가판대는 현재 종로 일대에만 200여곳, 서울 전체에 2600여곳이 넘는다. 정씨는 “돈벌 수 있는 실력(?)을 마지막으로 발휘하게끔 규제는 이제 그만 좀 들이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판대는 언젠가는 행인들에게 돌려줘야 할 보도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만 아직은 상인들의 생존무대였다. [다른기사 보러가기] ☞면허정지 6만명 15일부터 ‘핸들’ 잡는다 ☞600년 성곽이 117년 교회 눌렀다 ☞“웬 날벼락” 제주 으뜸저축은행 6개월 영업정지 ☞교과서값 오른다 ☞토성의 고리들이 하루 동안 사라진다 ☞해운대 1000만 누가 먼저 찍을까
  • [사설] 여야, YS와 DJ의 화해 무겁게 새겨야

    우리 정치사의 한 장을 정리하는 순간이라 할 장면이 어제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펼쳐졌다. 병세가 위중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병실로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찾아가 화해의 뜻을 밝힌 것이다. DJ의 병세로 인해 두 눈을 마주하고 두 손을 굳게 잡는 모습까지는 볼 수 없었으나, YS가 화해를 말하고 DJ의 가족과 측근들이 감사의 예를 갖추는 모습만으로도 의미 깊은 자리였다고 할 것이다.지난 40년 한국 정치를 이끈 두 거목이 드리운 명암은 지금 이 시대에까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뚜렷한 굴곡을 남기고 있다. 암울한 군사정권 시절 반독재투쟁을 이끌며 민주화의 꽃을 피웠고, 훗날 문민통치 시대를 열어 국민들에게 민주화의 결실을 안겨준 반면 영·호남과 민주계·평민계라고 하는 지역분파적, 정파적 갈등 구조를 고착화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정치 분열과 지역 갈등의 깊은 뿌리에 두 사람이 자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엊그제까지 현실 정치에 대한 상반된 발언으로 상대를 폄하하던 양김(兩金)이 오늘 화해를 말했다고 해서 수십년 된 앙금이 하루아침에 눈 녹듯 사라질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것은 화해를 향한 양김의 노력이 지금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이며, 현 정치권은 이를 무겁게 받들어 지역화합, 국민통합에 힘써야 한다는 점이라고 믿는다.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인사정책을 둘러싸고 지역편중 논란에 여념이 없는 여야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정세균 대표까지 나서서 호남홀대론을 펴고 있는 민주당이나, 그런 제1야당 대표에게 ‘저급 정치인’ 운운하며 맞불을 놓는 한나라당의 행태는 양김 정치가 만든 갈등의 골 속에서 헤매는 정저지와(井底之蛙)의 모습일 뿐이다. 양김을 영영 지역갈등의 뿌리로 둘 것인가. 아니면 한국 민주화의 견인차로 높일 것인가. 여야의 깊은 성찰을 촉구한다.
  • 美 신종플루 가짜예방약 판친다

    신종인플루엔자(인플루엔자A/H1N1)에 대한 공포심을 이용한 상술이 판치고 있다. 신종플루 예방용 샴푸에서 수천달러짜리 기계 등 갖가지 제품이 현대판 ‘만병통치약’으로 둔갑돼 팔리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8일 보도했다. 지난 5월 이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경고를 받은 제품의 절반 이상인 120개가량의 제품이 모두 신종플루 예방 또는 치료를 내세웠다가 적발됐다. FDA의 감시망에 포착된 제품은 비타민제에서 허브차, 살균 스프레이, 공기 청정제까지 다양했다. 한 회사가 판매한 ‘신종플루 영양 공급 세트’에는 활성산소 제거제 1병도 포함돼 있다. 이 제품이 호흡기를 통한 바이러스 감염을 막아준다며 소비자를 속였다. 또 다른 회사는 머리카락을 통해 바이러스가 침투하는 것을 막아줄 수 있다며 음이온으로 만들어진 샴푸를 129달러(약 15만 8000원)에 팔기도 했다. 한 연구소는 면역 체계를 강화시켜 신종플루 감염을 예방하고 치료해 준다며 ‘광양자 지니’라는 기계를 2995달러에 내놓았다가 단속됐다. 다른 규제 기관의 경고를 받으면 통상 보름의 시간이 주어지지만 FDA의 경고를 받으면 해당 회사는 48시간 내에 응답을 해야 한다. FDA 건강제품 사기 단속 담당자인 게리 쿠디는 “이같은 제품은 그 자체로도 불법일 뿐만 아니라 적절한 의학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치료 기회마저 빼앗는 것”이라면서 “FDA는 사스나 조류 독감 등이 유행했을 때보다 더 강화된 감시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FDA는 아직 적발되지 않은 회사들에 경고하는 차원에서 이번에 단속된 회사와 제품 명단을 계속 보관키로 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내 책을 말한다] 절대군주 이미지 속 숨은 전략

    프랑스의 루이 14세(1638~1715)는 흔히 절대군주의 전형으로 손꼽힌다. 5세에 즉위한 그는 72년이라는 유례없이 긴 기간 동안 왕위를 지켰다. 조선 왕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긴 영조보다 20년이나 더 정치적 지속성을 유지한 셈이다. 이 기나긴 치세에 그는 봉건귀족 세력을 제압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 65만명의 상비군을 갖춘 거대한 중앙집권 체제를 기반으로 유럽의 패권 장악에 성공했다. 살아 생전에 그는 ‘대왕’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다. 우리에게 알려진 루이 14세는 오만한 독재자이기는 하지만 정치적 신념과 탁월한 통치력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그와 측근이 남긴 수많은 회고록과 공문서, 법령집은 오랫동안 그 증거 역할을 했다. 전 세계에서 관람객들이 몰려드는 베르사유는 지금도 절대군주 루이 14세의 존재를 웅변해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와 정반대되는 증거도 많다. 베르사유에 거주하며 루이 14세와 그의 치세를 목격하고 경험한 궁정귀족, 외교사절의 회고록과 편지는 그가 보여주고 남기고 싶어 한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그들의 기록에 의하면 루이 14세는 새로운 국가 건설의 이상에 불타오른 인물이 아니었다. 백성의 고통을 배려하는 자상한 군주도 아니었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절대군주로서의 영광을 과시하는 데 있었다. 치세 내내 전쟁을 계속한 것도, 궁전 건축에 집착한 것도 그 때문이다. 백성의 대다수인 농민들은 잔혹한 전쟁과 무거운 세금에 짓눌린 희생양이었을 뿐이다. 수취 구조와 재정 제도의 모순은 여전하고, 귀족의 횡포와 비리도 근절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루이 14세의 치적으로 일컬어지는 중앙집권화는 불완전한 것이었으며, 절반의 성공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절대군주의 모델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루이 14세는 중앙집권화의 한계와 귀족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런 그가 전력을 기울인 것은 정치선전 문화이다. 파리의 광장에 설치된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베르사유를 건설하고 엄격한 궁정예절을 체계화한 것은 군주권을 강변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에서였다. 왕과 궁정을 사회 지배의 모델로 선전하는 이 대규모 프로젝트에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동원되고 귀족들도 적극 동참했다. 대신 그들에게는 사회적 지위와 특권, 막대한 부가 보장되었다. 루이 14세의 신화는 거대한 사회적 타협과 치밀한 정치선전 문화의 결과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우리의 머릿속에 고정관념처럼 굳어져온 절대군주 ‘루이 14세는 없다’(푸른 역사 펴냄). 루이 14세의 신화를 바로잡기 위해 이 책은 다양하고 상반된 증언과 증거를 길잡이 삼아 베르사유 깊숙이 들어간다. 그곳에서 벌어진 왕과 주변 인물들 사이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엿보고, 궁전의 공간 배치와 실내장식 뒤에 숨은 의도를 분석한다. 루이 14세 시대의 관료제와 상비군 조직, 수치보다는 그 제도를 만들어내고 운영한 인간의 권력 다툼에, 화려한 궁전의 겉모습과 근엄한 군주의 이미지 자체보다 그 이미지를 만든 사람들과 그들의 전략에 더 관심을 기울이며 책을 썼다. 이영림 수원대 사학과 교수
  • “美, 케냐 가르칠 생각마라”

    “미국은 우리를 가르치려 들지 말라.”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아프리카 7개국 순방에 나선 가운데 첫 순방지인 케냐에서 미국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와 주목된다. 케냐 주재 미국 대사의 발언에 케냐 정치권이 발끈하고 나선 것. 6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마이클 란네버그 케냐 주재 미 대사는 20 07년 12월 대선 개표 조작을 둘러싼 유혈사태의 책임자 처벌에 케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과 관련, “케냐는 책임자 처벌을 위한 메커니즘 구축에 관심이 없다. 이는 케냐의 근본적 개혁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면서 “우리는 개혁을 지지하지 않고 폭력을 원하는 세력의 해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1300여명이 사망하는 유혈사태가 발생,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의 중재로 연립 정부가 출범했지만 반목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이에 라일라 오딩가 케냐 총리는 노골적인 불쾌감을 나타냈다. 오딩가 총리는 “케냐를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에 대한 ‘강연’은 필요없다.”면서 “우리를 가르치려 하는 것이 무척 불편할 따름”이라고 반발했다. 오딩가 총리가 힐러리 장관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힐러리 장관이 방문 첫날 특별법정을 설치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 유감을 표시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리카 민주주의 정착을 촉구하는 식의 계몽주의적 발언(?)을 부쩍 많이 내고 있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어서 주목된다. 한편 힐러리 장관은 이날 나이로비 미국대사관 폭파사건 11주년(7일)을 맞아 추모지를 방문해 희생자를 위로했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이동,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을 만나 짐바브웨 사태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어 앙골라와 나이지리아 등을 방문하고 11일 귀국길에 오른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팔 ‘파타’ 20년만에 全大… 세규합 나선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이끄는 ‘파타’가 20년만에 요르단강 서안 지구 베들레헴에서 3일간의 전당대회를 개최, 세력 회복을 도모하고 있다. 일부 지도층의 부패와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 실패 등으로 급속히 세력이 약화된 파타는 2006년 총선에서 강경파인 경쟁세력 하마스에 패배한 뒤에 2007년에는 가자지구를 빼앗기고 서안지구만 통치하고 있다. 6일(현지시간) 끝나는 전당대회에서 당원 2000명은 새로운 강령을 채택하고 의사결정기구인 중앙위원회와 혁명위원회 위원들을 뽑는다. 파타의 청·장년층이 의사결정기구에 새로운 피를 수혈할 수 있도록 전당대회 개최를 끊임없이 요구해 왔기 때문에 위원들의 면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새 강령에는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에 대한 저항 외에도 이스라엘과 평화협상을 추구하는 것이 주요 정책으로 채택될 예정이다. 20년 전인 1989년 튀니지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투쟁만 언급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저항에 대해서도 다양한 형태가 가능하지만 반드시 매주 집회, 행진 등 불복종 운동을 먼저 시도해야 한다고 명시된다.서방의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같은 연유에서다. 파타의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긴 했지만 이스라엘과 평화협상을 이끌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당대회를 계기로 파타가 잃어버린 팔레스타인의 민심을 회복할 수 있다면 이달 중 카이로에서 열릴 파타와 하마스의 협상에서 파타가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하지만 파타의 우위를 원하지 않는 하마스는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파타 당원 400명이 가자지구를 떠나는 것을 불허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베들레헴에서 전당대회가 열렸다는 것 자체로도 파타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전당대회 참석자들은 이번 전당대회가 파타의 회생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 여기고 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파타는 1965년 고(故)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에 의해 결성됐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월드이슈] ‘아프팍 (아프간+파키스탄) 전쟁’ 불똥?… 중앙亞 테러공포 확산

    [월드이슈] ‘아프팍 (아프간+파키스탄) 전쟁’ 불똥?… 중앙亞 테러공포 확산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날 두샨베에서는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 아시프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하고 있었다. 사망자가 없어 크게 보도가 되지는 않았지만 타지키스탄 국민들은 또 한번 불안감에 휩싸였다. 바로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탈레반이 중앙아시아로 넘어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 탓이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아프팍(아프간+파키스탄) 전쟁’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서남아시아의 테러 위기가 중앙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는 징후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서남아시아 국가들의 움직임도 과거와 다르다. 미국에만 의존할 수 없어 중국·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는 등 강대국 사이에서 외교적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타지키스탄 등 치안 갈수록 악화 새로운 위기의 진원지는 아프간과 1300㎞가량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타지키스탄이다. 타지키스탄은 아프간에서 유입된 마약이 서유럽으로 건너가는 중간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타지키스탄 정부는 국경 산악지역 내에서 반군·마약집단과 크고 작은 교전을 벌여 왔다. 최근 몇달 간의 충돌은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지난달 16일에는 아프간·타지키스탄 국경지대에서 교전이 발생, 반군 5명이 사망했다. 타지키스탄 정부는 “살해된 이들은 테러조직의 일원”이라고 밝혔지만 정확한 소속은 함구했다. 7월 초에는 타빌다라 밸리 지역에서 정부군과 마약밀매 집단의 교전이 일어났다. 정부는 “이들은 아프간과 파키스탄 테러집단에 자금을 전달하기 위해 타지키스탄을 경유하고 있었다.”면서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단체와 연계된 국제적 테러 네트워크의 일원”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5월 있었던 파키스탄의 스와트밸리 탈레반 소탕전에 관심이 밀려나 있었지만 같은 기간 우즈베키스탄 정부도 페르가나밸리의 안디잔에서 탱크까지 동원한 대규모 탈레반 소탕전을 펼쳤다. 이 지역은 탈레반과 연계된 우즈베키스탄이슬람운동(IMU)의 근거지로 알려진 곳이다. ●美 아프팍 전쟁의 ‘풍선효과’ 중앙아시아의 치안이 악화되는 이유는 아프팍 전쟁의 ‘풍선효과’인 것으로 분석된다. 악명 높은 지하드 지도자 압둘로 라히모프가 고국 타지키스탄으로 복귀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파키스탄의 스와트밸리 소탕전으로 거점을 잃은 라히모프가 그곳 탈레반과 관계를 끊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1992~1997년 일어난 타지키스탄 내전 이후 아프가니스탄 등으로 쫓겨난 반군 세력들이 복귀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올해 초 타지키스탄 정부가 마약 밀매집단을 소탕하겠다며 벌인 ‘포피2009 군사작전’도 실상은 이들 반군의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이 아프간·파키스탄과 함께 테러에 맞서겠다고 공언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파키스탄의 불안이 타지키스탄으로 반사되고 있음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말한 피에르 모렐 유럽연합(EU) 특별대표의 지난달 14일 발언은 이미 서방국가들도 이러한 위기를 감지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하지만 만연한 빈곤과 종교분쟁, 정치불안 등으로 점철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점증하는 안보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내총생산(GDP)의 40%가량을 해외송금에 의존하고 있는 이들 국가들은 자국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벅찬 모습이다. 또한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지금의 테러 위기를 자초했다는 지적도 있다. 군사기지를 제공하며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협조한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카리모프 정권은 미국의 용인 아래 철권통치를 이어갔다. 카리모프 정권은 미국의 묵인 아래 이슬람을 탄압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이 지역 이슬람 세력은 더욱 폭력적이고 급진적으로 변화했다. 미 시사주간 타임은 “서방 국가의 관심 표명이나 러시아의 군사적 지원 등도 파도처럼 밀려드는 위기를 잠재울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김정일 백화원 연회 최고 예우

    4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전격 방북을 맞은 북한의 태도는 이례적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방북한 클린턴 전 대통령을 접견한 뒤 백화원 영빈관에서 연회를 열고 ‘환대’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김 위원장이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회담에 이어 만찬까지 참석하면서 환대한 것은 미국 측에 화해 제스처를 보낸 것으로도 해석된다.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한 후한 대접을 안팎에 과시하려는 게 깔려 있다. 만찬에는 북측에서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겸 노동당 중앙위원회 대외 담당비서, 강석주 외무성 제 1부상, 김양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 겸 통전부장, 우동측 국방위원회 위원 등이 참석했다. 우동측 위원은 국가안전보위부 수석부부장으로 미국 여기자 사건의 책임자이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은 연회 자리에 북한 권력 핵심층이라 불리는 고위 관계자들을 배석시켜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해 최고 수준의 예우를 다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들은 “김 위원장은 이를 통해 북·미간 대화의 의지가 강하다는 점과 자신이 현재 정상적인 통치를 하고 있다는 건재를 과시하면서 대외적으로 불거지고 있는 건강이상설 및 사후 급변시에 대비한 후계구도 논란 등을 잠재우려는 의도도 내비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TV, 평양방송 등 북한의 언론매체들은 오전 10시48분쯤 평양 순안공항에 클린턴 전 대통령이 도착한지 약 1시간 10분 뒤인 정오 뉴스를 통해 “미국 전 대통령 빌 클린턴 일행이 4일 비행기로 평양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관행에 비춰보면 신속한 보도였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회담과 만찬 사실도 비교적 빨리 보도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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