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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우병 파동] 광우병 연구 어디까지 왔나 ??

    미국의 광우병 소식에 전 세계가 들썩이는 이유는 광우병의 치사율이 100%에 가까운 불치의 질병이기 때문이다. 꾸준히 연구되고 있지만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으로 불리는 변종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은 물론 광우병의 원인으로 알려진 변형단백질 ‘프리온’에 대해서도 거의 파악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공동연구를 진행하는 황대희 포스텍 시스템생명공학부 교수는 “프리온 연구는 아직까지 찾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일 정도로 진척이 느리다.”면서 “1982년 처음으로 발견해 노벨상을 수상한 프루지너 교수조차도 아직 이 분야에 매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리온은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생물에 존재하지만 양이 워낙 적어 검출 자체가 힘들다. ●스위스 “공기로도 감염” 뒤집어 프리온의 특성이나 광우병·CJD 감염경로 등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연구성과들만 보고되고 있다. 기존에 정설로 받아들여졌던 결과들이 틀린 것으로 판명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프리온은 오염된 피에 접촉하거나 오염된 고기를 먹었을 때만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지난해 스위스 연구진은 “제한적인 환경이라면 공기로도 감염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또 2010년 미국 스크립스 연구소는 “프리온 단백질이 환경에 따라 다르게 변형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전까지 과학계에서는 한 번 생긴 프리온 단백질은 변하지 않는 것으로 여겼었다. ●유전적 광우병 등 특이사례 등장 소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육골분 사료를 먹고 전염되는 전형적인 광우병과 다른 사례들이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늙은 소에게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광우병이나 선천적인 유전자 결함 탓에 발병하는 유전적 광우병이 대표적이다. 이영순 서울대 명예교수(수의학)는 “전형적이지 않은 광우병은 프리온의 양 역시 기존 광우병에 비해 현저하게 적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소 수백만 마리 중 한 마리 정도로 비전형 광우병이 발생하는 만큼 어떤 나라에서도 자연적인 광우병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국내 ‘프리온 내성복제소’ 올스톱 국내 연구 성과 역시 신통치 않다. 광우병이나 CJD의 국내 발병 사례가 거의 없는 데다 실험이 가능한 물질도 철저히 통제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황 교수는 “해외의 경우에는 CJD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들도 종종 나오지만, 국내에서는 프리온을 사용한 동물실험 정도만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익명을 요구한 한 국립대 교수는 “암이나 에이즈 등 비교적 보편적인 질병의 경우에는 실험 자체도 쉽지만, 자본이 투입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며 “지난 10년간 전 세계적으로 불과 300명이 되지 않는 CJD에 대한 연구 활성화도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같은 이유로 광우병 촛불 시위 이후 큰 화제를 모았던 ‘프리온 내성 복제소’ 등도 현재는 연구 자체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역사적 단죄… ‘피 묻은 다이아’ 찰스 테일러

    10만명 이상이 숨진 이웃국 내전에 개입해 반군을 돕고 그 대가로 ‘피 묻은 다이아몬드’를 챙겼던 찰스 테일러(64)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이 유죄 선고를 받았다. 국제 재판소가 전직 국가 정상을 단죄하는 것은 2차 대전 후 처음 있는 일로 역사의 새 장이 열리게 됐다. 유엔의 시에라리온 특별법정은 26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재판에서 테일러 전 대통령에게 유죄 평결을 내렸다. 테일러는 1991년부터 10년간 이웃나라 시에라리온 내전에 개입해 반인륜 범죄를 도운 혐의로 2006년 체포됐다. 검찰은 그가 살인, 강간, 아동 강제 징집, 테러 등 11개 죄목을 위반했다고 판단해 왔다. 리처드 루시 재판장은 평결문에서 “심리부는 피고인이 반인륜 범죄와 전쟁 범죄를 방조한 데 형사법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테일러에 대한 최종 형 선고는 다음 달 30일 내려진다. 영국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테일러 전 대통령이 영국 형무소에서 징역형을 살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은 양복 차림으로 법정에 출석한 테일러 전 대통령은 판결이 내려지는 동안 묵묵히 들었다. 평결의 일부 내용을 메모하는 모습도 보였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보도했다. 그는 그동안 “나에게 덮어 씌워진 모든 혐의는 거짓말이고 나는 아프리카의 평화를 위해 일했다.”며 결백을 주장해 왔다. 전쟁 피해국인 시에라리온 국민들도 수도 프리타운의 법원 건물에서 생중계된 재판을 모니터로 지켜봤다. 나비 필라이 유엔인권 최고대표는 “국제 정의의 진전에서 역사적 순간”이라면서 “이번 평결은 폭압적 통치자가 더 이상 피 묻은 돈을 챙긴 채 물러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라이베리아에서 1948년에 태어난 테일러는 1972년부터 미국 대학에서 공부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 1997년 대통령이 됐다. 그는 앞서 1991년부터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생산지인 이웃국 시에라리온 내전에 개입해 반군인 혁명연합전선(RUF)에 무기를 제공했고 그 대가로 다이아몬드를 받았다. 당시 시에라리온에서는 내전으로 10년 동안 12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RUF는 수천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의 팔다리를 자르는 등 잔혹한 만행을 저질렀다. 테일러는 2003년 라이베리아 내 반대 세력에 의해 축출된 뒤 나이지리아로 망명했으나 2006년 3월 체포됐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이후 시에라리온 특별법정을 구성해 이 사건을 다뤄 왔다. 재판 과정에서 테일러가 세계적 모델인 나오미 캠벨에게 다이아몬드를 선물했다는 증언이 나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탈북민 교회 연합기구 ‘북기총’ 초대 대표회장 임창호 목사

    탈북민 교회 연합기구 ‘북기총’ 초대 대표회장 임창호 목사

    지난 21일 서울 연지동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선 특별한 행사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다름 아닌 북한기독교총연합회(북기총) 창립식. 탈북민 목회자·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구의 탄생을 공식적으로 알린 이날 모임은 탈북민 100여명의 가족잔치 같은 출범행사로 치러졌다. 탈북민 정착이며 선교, 북한교회 재건을 목표로 삼은 북기총. 한국 개신교회의 분열과 위기가 입초시에 오르는 지금, 북기총은 둥지를 틀고 나래를 펼 수 있을까. 북기총 초대 대표회장에 선출된 부산장대현교회 담임 임창호(56·고신대 교수) 목사를 24일 서울신문 편집국에서 만났다. “탈북민을 위한 ‘착한 사마리아인의 사역’에 뜻을 같이하는 어느 단체와도 연대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정치성을 띠거나 목적성을 갖고 접근한다면 철저히 거부할 것입니다.” 오로지 탈북민 선교와 장차의 통일에 대비한 북한 교회 재건과 일꾼 양성에만 힘을 쏟겠다는 임 목사. ‘북기총’ 타이틀과는 달리 그는 탈북민 출신이 아니다. “그동안 미국의 이민교회나 남한 교회들을 북한 주민과 연결해 온 때문인 것 같아요.” 고신대를 졸업한 임 목사는 일본 히로시마국립대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아 모교인 고신대 교수로 4년간을 일하다가 미국 휴스턴 한인 장로교회에 담임 목사로 초빙된 인물. 10년간 몸담았던 이 한인교회에서 2003년 만난 탈북 여성이 지금의 그를 만든 계기였다. “수용소에 감금됐다 풀려난 그 여성으로부터 들었던 북한 주민의 실상은 충격적인 것이었지요. 당시 미국 내 이민 교회들이 북한 주민의 실상을 보지 못한 채 오히려 북한 통치자와 군부를 돕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너무 실망했습니다.” 그때부터 각국을 순회하며 목회자 계몽에 나섰고 2004년 미국, 유럽, 호주, 뉴질랜드 등지의 교회 지도자 1700명이 모인 ‘북한 자유를 위한 한인교회연합’(KCC) 창립을 이끌어 냈다. 국내에서도 북한실상 제대로 보기와 탈북민 대상의 선교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며 지난 2010년 탈북민교회연합회를 결성, 회장을 맡고 있다. ‘북기총’은 탈북민교회연합회를 주축으로 2006년 창립된 탈북민목회자연합회, 탈북민선교연합회가 모여 세운 첫 탈북민 교회 연합기구이다. “북한의 칠골교회나 봉수교회, 그리고 이 교회를 토대로 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은 조선노동당 소속인 만큼 정상적인 종교활동과 교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한국 6만 교회와 그 목회자들이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그들과의 교류에 쏟는 정성과 물질적인 지원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래서 북기총은 북한의 교회며 조그련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임 목사는 단호하게 말한다. “북한에서 벗어나 한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숱한데 왜 그 거짓의 교회와 손을 잡고 복음에 나서야 합니까.”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탈북자는 어림잡아 2만 4000명. 이 가운데 30%에 해당하는 7200명이 등록교인이란다. 전체 인구 중 신자율이 20%에도 못 미치는 한국 개신교회 신자 수를 훨씬 능가한다. 탈북민 교회도 18개나 되고 목회자도 안수받은 목사를 포함해 100여명이 활동 중이다. “교단에 소속된 한국의 일반 교회들은 한기총이나 NCCK와 관련될 수밖에 없지만 북기총은 철저히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한 이름 아래 뭉칠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탈북민 교회며 목회자들이 보고 배운 기성 교회들이 빨리 분열상을 극복해 한국사회의 큰 일꾼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탈북민은 결코 소외당하고 차별받아야 할 부끄러운 존재가 아닙니다. 통일이 된다면 할 일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한국이 일부러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이 사람들을 챙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소금이 제 역할을 못한다면 길에 버려져 짓밟힌다.’는 성경 구절을 입에 올린 임 목사. 한 군데로 뭉친 탈북민 교회와 목회자들이 이제 거꾸로 귀감이 되어 한국교회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다짐한다. 글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5·8 선택 2012] ‘극우’ 르펜 득표율 18% 돌풍… 두 남자의 운명 그녀가 가른다

    “사르코지의 운명은 르펜의 손에 달렸다.” 22일(현지시간) 프랑스 대선 1차투표에서 최대 이변은 마린 르펜(43)이 이끄는 극우 정당 민족전선(NF)의 약진이었다. 다음 달 6일 결선투표에서는 1차투표에서 예상을 깨고 2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기록한 르펜의 지지자들이 누구에게 표를 던질 지가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르펜은 대선 1차투표의 99%를 개표한 결과, 당초 예상을 깨고 18.01%라는 괄목할 만한 지지를 얻었다. 특히 높은 실업률에 반발한 20대 안팎의 청년층이 강경한 이민정책을 표방한 르펜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현지 외신은 분석하고 있다. 프랑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체 실업률은 9.8% 였지만, 15~24세 실업률은 22.4%에 이르렀다. 때문에 법적 이민자의 한도를 연 20만명에서 1만명 규모로 줄이겠다는 르펜의 공약이 젊은층에 먹혀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신들은 “올랑드가 축배를 들기엔 너무 이르다.”는 우파 진영의 목소리를 전했다. 르펜의 득표율은 1972년 창당 이래 최고 수치로, 2002년 부친 장 마리 르펜의 16.86%보다도 높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외신들은 “지난해 부친에게 당권을 물려받은 르펜 후보가 부친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 “르펜의 성과는 놀라운 일”, “르펜이 결선 투표에서 킹 메이커 역할을 하게 됐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르펜은 “10년 뒤엔 우리가 프랑스를 통치하게 될 것”이라며 ‘차차기 대권’을 선언했지만, 정작 결선투표에 진출한 두 후보는 르펜 지지표가 어디로 쏠릴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현지 복수의 여론조사에서는 결선투표에서 르펜 후보 지지자의 39~48%가 사르코지를, 18~31%가 올랑드를 지지할 것으로 나타났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수치, 개원국회 등원 거부

    미얀마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가 제도권 정치에 입문했으나 23일 개원한 국회에 등원하지 않았다. 수치 여사는 군부 주도로 제정된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선서를 할 수 없다며 등원을 거부했고, 테인 세인 대통령은 선서 내용을 변경할 수 없다고 평행선을 달려 결국 수치 여사의 등원이 불발됐다고 AP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제도권 정치에 진출한 수치 여사와 정부의 첫 충돌이다. 미얀마 현지에서는 의원선서 문제가 다음 달 초쯤 해결될 것으로 예측했다.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소속 의원 당선자들은 이날 열린 국회에 예고했던 대로 등원하지 않았다. NLD는 의원 선서 내용을 ‘헌법 수호’에서 ‘헌법 존중’으로 변경해 줄 것을 세인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세인 대통령은 “의원직을 수행할지는 수치 여사에게 달려있는 문제”라면서 “의원 선서 내용을 변경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수치 여사가 정부로 들어오는 길도 열려 있다”며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수치 여사가 결정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수치 여사는 지난 1일 국회의원의 내각진출로 공석이 된 45개 선거구의 보궐선거에 NLD 후보들과 함께 출마해 43곳에서 승리를 일궈냈다. 선거 당시 의원 25%를 군인에게 할당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2008년 헌법을 개정하겠다고 공약했다. 미얀마는 지난해 3월 수십년 간의 군부통치를 종식시키고 민간정부를 출범시켰고, 세인 대통령은 정치범 석방과 소수민족 반군과의 평화협상 등 민주개혁 조치들을 잇달아 취하고 있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열린세상] 김정은 체제 출범을 바라보는 한·중 시각차/임강택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열린세상] 김정은 체제 출범을 바라보는 한·중 시각차/임강택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정일 사망 이후 100일간의 애도기간을 마친 뒤, 연이어 개최된 제4차 당대표자회(4월 11일)와 제12기 제5차 최고인민회의(4월 13일)를 통해서 주요 직책을 승계한 김정은 체제가 공식 출범하였다. 이와 함께 추진된 ‘광명성 3호’ 발사는 대내적으로 김일성 탄생(태양절) 100회를 기념하면서 김정은 체제의 출범을 축하하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를 강성국가에 진입하는 목표 시점으로 정한 북한으로서는 식량문제 등 당면한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 대한 핑곗거리가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광명성 3호’ 발사가 성공했다면, 과학기술강국 진입의 상징으로 선전함으로써 경제강국의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강조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 로켓 발사의 실패는 북한이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100번째 태양절 행사에서 ‘강성국가 진입’을 선언하기 어렵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자랑해 왔던 ‘군사강국’의 위상마저 의심받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매우 불편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례적으로 실패를 인정하였으며, 김정은 제1비서는 별일이 없었다는 듯이 태양절 기념 열병식에서 육성연설을 하는 등 전임자와는 다른 통치 양태를 부각시키고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한국 사회와 중국의 평가가 판이하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로켓 발사 실패가 김정은 지도력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을 것으로 평가하였다. 그동안 김정은 체제로의 권력 이양작업이 빠르고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김정일 사망 이전에 준비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광명성 3호’ 발사도 김정일 생전에 수립된 계획에 따른 결정일 수 있다. 문제는 ‘그 계획’에 발사 실패의 상황에 대한 대비책은 마련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고, 따라서 이러한 ‘돌발 상황’이 북한의 새 지도부를 몹시도 당혹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북한의 새 지도부가 “패닉상태에 빠졌을 것”이라거나,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내부갈등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등의 주장이 제기되었다. 중국의 전문가들은 대체로 ‘광명성 3호’ 발사 실패가 김정은 체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근거로 제시하는 점이 북한주민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전과는 달리 잘못을 숨기지 않는, 떳떳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에서 오히려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기대감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중국의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김정은 체제가 향후 매우 안정적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김정은 체제에서의 한반도 미래를 주변국과 함께 준비하고 만들어 가는 일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한국과 중국 사회 모두가 북한체제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한·중이 긴밀하게 협력하여 김정은 정권의 정체성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정책적 유연성과 개방성 그리고 개혁성이 강화될 수 있도록 견인해 나가야 한다. 물론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다. 한국과 중국의 국가전략과 이해관계가 많이 다르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과 접근성도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협력이 용이한 부분부터 협력사례를 만들고, 성공모델을 창출하여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그동안 논의되어 왔던 북한의 노동력과 한·중의 자본·기술이 결합할 수 있는 3각 경제협력사업 방안을 중국과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지역의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는 문화교류 협력도 추진되어야 한다. 특히 미래의 주역인 젊은 세대들의 공감대 형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 교류프로그램의 개발이 요구된다. 보다 쉽게는 한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중국인 학생들이 한국사회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노력이 확대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양국의 협력을 저해하는 요소를 해소하기 위한 작업도 중요하다. 여기에는 양국 언론의 역할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중 언론인 교류가 보다 활성화되어야 한다.
  • [열린세상] 건국 아버지들의 공과/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열린세상] 건국 아버지들의 공과/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공화국을 세우기 위한 일제하 독립운동전략은 두 방향에서 추진됐다. 1919년부터 6년간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은 외교를, 그리고 1940년부터 5년간 주석을 맡았던 김구는 무장투쟁을 통해 독립을 이루려고 했다. 1941년 6월 김구는 이승만을 임정을 대표하는 주미외교위원장 겸 주미 전권대표로 임명했다. 방법론은 달랐지만 두 사람은 그때 나라의 독립을 위해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러나 광복을 맞은 조국은 미·소 양국에 의해 분할 점령됐으며, 1945년 9월 20일 스탈린은 북한에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이승만과 김구가 귀국하기도 전에 이미 남북의 분단은 결정되고 말았다. 1945년 12월 한반도에 대한 4개국 신탁통치를 결정한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가 전해지자 김구와 이승만은 임시정부를 모태로 한 반탁운동의 선봉에 함께 나섰다. 반공·반소·반탁 노선을 함께 취한 두 사람은 1946년 6월 이승만이 단독정부 수립을 촉구한 정읍선언을 내면서 갈라섰다. 5·10 총선거를 코앞에 둔 1948년 4월 19일 김구는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連席)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38선을 넘었다. 그러나 이 회의는 그가 김일성에게 보낸 2월 16일자 서한에서 제안했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 정치지도자 간의 정치협상’, 즉 책임 있는 당국자끼리 머리를 맞대고 현안을 논의하는 구수(鳩首)회담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북회담 문제는 세계에서 소련 정책을 아는 사람은 다 시간을 연장해 공산화하자는 계획에 불과한 것으로 간파하고 있는데 한국 지도자 중에서 홀로 이것을 모르고 요인회담을 지금도 주장한다면 대세에 몽매하다는 조소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이승만의 논평(동아일보 1948년 4월 2일자)은 정곡을 찌른다. 1945년 말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우익 탄압, 이듬해 6월 폴란드 공산당의 국민투표 결과 조작, 그리고 1947년 8월 20%밖에 득표하지 못한 공산당이 소련군의 비호하에 정권을 강탈한 헝가리 사태 등을 볼 때, 당시 남북협상은 북한의 통일전선 전술에 이용될 가능성이 컸다. “조국은 지금 독립의 길이냐, 예속의 길이냐, 통일의 길이냐, 분열의 길이냐 하는 분수령의 절정에 서 있다. 우리의 지표와 진로는 가능·불가능의 문제가 아니라 가위(可爲)·불가위의 당위론인 것이니 올바른 길일진대 사력을 다해 진군할 뿐일 것이다.” 북행(北行) 하루 전날 나온 문화인 108인의 지지성명처럼, 김구는 실패할 줄 알면서도 민족통일의 대의를 위해 북으로 갔다. “공산주의나 여하한 주의를 가진 것을 불문하고 외각(外殼)을 벗기면 동일한 피와 언어와 조상과 풍속을 가진 조선민족이다.” 북행 4일 전 연설은 그가 남북협상의 성공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었음을 잘 보여 준다. 그러나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이미 결의문은 ‘채택’돼 있었다. 4월 23일에 나온 결의문은 ‘연석회의 개최와 관련해서 김일성에게 조언을 제공할 데 대하여’라는 4월 12일자 스탈린의 지령을 그대로 베꼈다. 4월 28일과 29일에 열린 김구·김규식·김일성·김두봉 ‘4김 회담’과 30일에 나온 ‘남북조선 제정당 및 사회단체 공동성명서’도 구속력 없는 휴지 조각과 다름없었다. 그의 구상이 성공하려면 김일성과 김두봉이 자주적 결정권이 있어야 했지만, 당시 북한은 소련 군정 치하였고 공산진영의 황제였던 스탈린의 지령은 불가침의 성헌(成憲)이었다. 이미 정읍선언 네 달 전인 1946년 2월에 북한은 이미 실질적 정부인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를 세웠으며, 1948년 2월에는 ‘조선인민군’을 창설하고 ‘헌법’ 초안도 공표한 상태였다. 김구의 북행으로 북한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한 소련의 정치공작은 성공한 반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큰 상처를 입었다. 그때 김구는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우(愚)를 범했고 이후 이승만은 독재의 과(過)를 범했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하면 다른 것이 보인다. 대한민국 건국사를 임정이 수행한 민족독립운동의 역사와 연속선상에서 파악할 때, 이승만과 김구 모두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로 우리 역사에서 함께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 [AFC 챔피언스리그] 성남 ‘신공’, 5골 神功

    신통치 않았던 성남의 ‘신공(신나게 공격) 축구’가 모처럼 이름값을 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G조 조별리그에서 3무를 기록하며 헤매던 성남은 18일 탄천 종합운동장으로 센트럴코스트(호주)를 불러들여 이창훈의 두 경기 연속 골과 ‘브라질 듀오’ 에벨톤(2골 1도움)과 에벨찡요(2도움)의 활약을 엮어 5-0 완승을 거뒀다. 1승3무로 승점 6이 된 성남은 톈진 터다(중국)와 0-0으로 비긴 나고야 그램퍼스(일본)를 골득실에서 제치며 단박에 조 선두로 뛰어올랐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 “센트럴코스트를 혼내주겠다.”던 신태용 감독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에벨톤의 측면 돌파가 초반부터 위력을 발휘한 가운데 몇 차례 기회를 놓친 성남은 전반 39분 이창훈이 페널티지역 안에서 에벨찡요의 패스를 침착하게 선제골로 연결했다. 지난 주말 대전과의 K리그 경기에 이어 두 경기 연속골. 기세가 오른 성남은 5분 뒤 요반치치가 프리킥으로 연결한 공을 에벨톤이 환상적인 발리슛으로 그물을 갈라 전반을 2-0으로 끝냈다. 전반 막바지 뜻하지 않게 두 골이나 내준 센트럴코스트는 후반에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임대한 무스타파 아미니를 앞세워 거센 반격에 나섰지만 오히려 성남에 허점을 내보인 꼴이 됐다. 후반 25분에는 주장 김성환이 에벨찡요의 패스를 받아 슛의 각이 나오지 않는 공간에서 강력한 오른발 슛으로 세 번째 골을 뽑아내 상대의 추격 의지를 꺾었다. 3분 뒤 김성준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에벨톤이 성공시킨 데 이어 후반 39분에는 요반치치가 5-0 대승의 마침표를 찍었다. 한편 포항은 호주 애들레이드의 힌드마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애들레이드와의 E조 4차전에서 후반 44분 카시오의 가위차기 크로스를 수비수 조란이 상대 브루스 지테와 경합하며 머리로 걷어낸 것이 그만 지테의 머리에 맞고 골문 오른쪽 구석에 박히며 0-1로 무릎을 꿇었다. 포항은 2승2패(승점 6)로 애들레이드(3승1패 승점 9)에 조 선두를 내주고 말았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8)정도전과 이방원

    [선택! 역사를 갈랐다] (8)정도전과 이방원

    1398년(태조 7) 음력 8월 26일 밤, 정도전은 이방원과 마주하였다. 정도전은 살려달라고 부탁했지만, 이방원은 거절했다. 1차 왕자의 난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정도전이 꾸었던 꿈은 뒤틀리고 변하였다. 정도전과 이방원, 두 사람은 조선 초기의 신권과 왕권론을 대표하는 역사적 라이벌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정말 역사적 라이벌로 이해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은 나이 차이부터 상당했다. 1392년 조선이 만들어질 때 정도전은 50세의 중년, 이방원은 25세의 청년이었다. 당시로는 아버지와 아들뻘 정도의 차이였다. 혹시 1383년(우왕 9) 정도전이 처음 이성계를 만났던 함주 막사에서 보았던 이방원은 16살의 똑똑하고 야심에 찬 아이로 기억했을 수 있다. 그만큼 라이벌 의식을 느끼기 어렵다는 뜻이다. 두 사람이 살아온 길도 조금 달랐다. 정도전은 경상도 향리 집안 출신이고, 어머니의 혈통 문제로 곤란을 겪기도 했다. 귀족 가문이 얽혀 있는 중앙정계에서 그는 과거시험과 자신의 실력만으로 권력의 정글을 헤쳐나가야 했다. 이 때문에 정도전은 유배를 갔다. 그 후에도 노골적으로 차별을 받았다. 자신이 세운 삼각산 아래 학교를 옮겨야 했고, 이사도 여러 차례 했었다. 아마도 그의 성격은 원칙적이고, 때로 과격했던 것 같다. 이방원은 그보다 좋은 주변 환경에서 좋은 조건에서 살았다. 그는 이성계가 중앙 정계에 등장한 이후에 태어났다. 또한, 이성계의 많은 아들 중에서 드물게 과거시험에 합격했다. 벼슬길에서도 크게 어려운 일을 겪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귀족적 나약함보다 정치적 판단력과 추진력이 있었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살해하는 과정은 그의 냉혹함과 판단력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새 술은 새 부대로’ 의견 모은 정도전과 이방원 정도전과 이방원이 당면했던 현실은 국가운영의 문제였다. 고려왕조는 힘들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국제적으로는 새롭게 등장한 명나라와 이전 원나라 사이에서 방황했다. 더구나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은 견디기 쉽지 않은 시련이었다. 특히 왜구의 침략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졌고, 바닷가 지역 사람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냈다. 국내 상황은 더 문제였다. 고려의 귀족들은 지배층이면서도 사회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들은 권력과 경제력을 이용해 남의 땅을 삼켰다. 넓어진 땅에 필요한 일손은 백성을 노비로 만들어 보충했다. 이들에겐 법적 소송도 먹히지 않았다. 귀족들은 자신의 수하에 있던 사람들을 관료로 만들었다. 세금을 내야 할 땅과 군대에 가야 할 사람들이 계속 줄어 갔다. 한마디로 국가운영이 파탄나고 있었다. 새로운 질서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공감했다. 여기까지가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정도전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 이성계와 손잡았다. 고려말 여러 지식인이 정도전처럼 개혁을 생각했다. 그들은 성리학을 공통된 이념적 무기로 삼아 현실에 적용하려 했다. 자신들의 학문을 실학이라고 불렀다. 그들이 본 불교는 인륜을 해치는 껍데기 학문이었다. 위화도 회군은 이성계와 개혁을 꿈꾸었던 세력이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된 사건이었다. 당시 요동 정벌을 추진했던 우왕과 최영 장군 등은 구세력으로 물러나야 했다. 그렇지만, 개혁세력은 점차 분화되어 갔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고 싶어한 정도전과 조준. 적어도 고려왕조의 틀은 유지하려 한 이색, 권근, 정몽주 등은 대립해야 했다. 정몽주의 죽음은 고려의 가을을 재촉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정도전, 고려 귀족을 관료로 대체를 시도하다 정도전은 정치의 근본이 민(民)이라고 했다. 유교 정치의 원리인 셈이다. 권력이 이곳에서 출발하고, 통치자가 민심을 잃으면 덕(德)이 있는 다른 사람에게 권력을 넘긴다. 그래야만 이성계가 국왕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이 백성에서 선비가 등장해서 관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도전에게 선비와 농민은 둘이 아니었다. 그의 의도는 과거 문벌 귀족들이 차지했던 관료 자리를 더 많은 계층과 지역에 개방하는 것에 있었다. 이를 위해 정도전은 지방관 등의 천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또한, 관료들은 통치를 위한 지식과 능력이 필요했기에 반드시 학교를 거쳐 과거시험을 보도록 했다. 그는 고려시대처럼 과거 시험관과 합격자 사이의 개인적 인맥이 생기는 것을 막고, 이를 위해 사립학교를 약화시켰다. 정도전이 추구한 것은 중앙집권적인 국가운영이다. 그는 중국 고대의 제도인 6부를 원리로 한 중앙 관제를 만들었다. 말하자면 권력이 중앙에 모여 마치 물고기를 잡는 그물처럼 행정망이 펼쳐지는 그런 국가였다. 고려의 행정체계는 마치 벌집처럼 복잡한 자율성을 지녔다. 이 체계가 고려말 국가위기에 대응하는 일에 무기력했다. 국가 자원의 효율적 분배와 동원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이다. 정도전은 이를 중앙에서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가문과 개인 등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조선의 중앙집권적인 국가운영방식은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이방원, 고려 귀족문벌 다시 정치로 흡수하다 이성계가 집권한 이후 정도전이 당면한 정치적 문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국왕의 후계자 문제, 다른 하나는 명과의 외교 문제였다. 후계자 문제는 빨리 정리되었다. 이성계의 둘째 부인인 강씨 소생의 막내가 후계자로 결정된 것이다. 이성계는 첫째 부인인 한씨 소생으로 6명의 아들을 두었고, 이방원이 그중에서 다섯째 아들이었다. 정도전 등은 공로가 있는 아들을 세우자는 의견이었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이 문제는 정도전이 죽게 되는 원인이 된다. 또 큰 문제는 명과의 외교 마찰이었다. 명 태조인 주원장은 조선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았다. 주원장은 조선이 명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명에 사신으로 왔던 이방원 등에 대해 좋은 대우를 해주었다. 특히 명은 외교 문서의 문구가 건방지다는 이유로, 조선에 문서 작성자를 보내라고 요구했다. 명은 정도전에게 책임의 화살을 돌렸다. 정도전은 이 문제에 정면 대응하려 했다. 그는 요동 정벌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그는 이를 통해 정권에 위협이 될 최대 변수, 즉 왕자와 개국 공신들이 거느린 사병(私兵)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요동 정벌 추진은 조준 등과 같은 개혁파까지 이를 반대하게 한 카드가 되었다. 개국 공신들도 자신의 사병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찬동하지 않았다. 이방원은 이런 분위기를 놓치지 않았고, 결국 1398년(태조 7)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방원은 일단 형을 국왕의 자리에 앉혔다. 그렇지만, 그는 본인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한편, 수하들을 요직에 포진시켰다. 이방원이 주로 손을 잡았던 세력은 현실 개혁이 아닌 개선을 주장했던 세력들이다. 이들은 보수파는 아니지만, 기득권층의 이해는 나름대로 보존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던 사람들이다. 고려말 이색 아래에서 공부했던 권근, 하륜 등이 그들이었다. 물론 이방원의 뛰어난 정치적 감각은 이를 뛰어넘고 있었다. 그는 숙청이 끝난 이후에는 모든 정치세력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개혁파였던 조준은 영의정으로 내세웠고, 사돈 관계를 맺었다. 또한 자신이 살해한 정몽주를 복권하고, 정도전의 동생과 아들의 벼슬길도 열어 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과거 귀족 가문으로 중심을 재편하였다. 단, 이들 가문 간의 결속력을 막고자 종실 세력을 키웠다. 한마디로 이방원은 정도전처럼 중앙 정계에 지방세력을 끌어들이지 않고, 이들의 참여를 막았다. 대신에 이들에게는 군역의 면제나 면세와 같은 특권을 주었다. 이처럼 정도전이 추구했던 개혁의 방향은 이방원에 의해 변질되었다. ●일본 학자의 정치적 방법론이 조선사를 왜곡? 그렇다면, 이방원은 왕권 강화론자, 정도전은 신권론자였을까? 여기에는 국가 권력을 보는 시각의 문제가 전제된다. 원래 왕권과 신권의 대립 구도로 정치사를 이해하려 했던 학자들은 일본 학자들이었다. 그들이 메이지 유신을 겪으면서 천황과 봉건 영주의 대결로 정치사를 이해하려는 방법론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왕권이나 신권 등의 말은 모호하고 피상적이다. 예컨대 외척이나 소수 공신에게 특권을 주는 것은 신권의 강화이면서 국왕권의 강화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오해가 바로 정도전의 경우이다. 그는 총재인 재상이 행정실무를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국왕은 도덕적으로 완성된 성인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재상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주장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었다. 정도전은 공민왕 이후 여러 고려 국왕들의 파행적인 정치운용과 도덕적 문제를 목격했다. 그는 조선에서 국왕이 소수 귀족가문과 결탁하여 개인적 이익을 취하려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가 재상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측근인 남은과 함께 군사권을 태조 이성계가 장악해야 한다고 건의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비록 그의 개혁구도는 이방원에 의해 변질되었지만, 그가 지향했던 중앙집권체제는 조선 왕조를 규정짓는 설계도가 되었다. 김인호(광운대 교양학부 초빙교수)
  • [사설] 김정은 고립과 미몽으론 북 주민 못 살린다

    북한이 어제 김일성-김정일을 잇는 김정은 3대 후계체제를 대내외에 선포했다. 고 김일성의 100세 생일인 이른바 ‘태양절’ 행사를 통해서였다. 김정은은 첫 공식 연설에서 세습의 정당성만을 강조했을 뿐 도탄에 빠진 북한 주민의 민생을 돌보겠다는 언급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김정은 정권은 이른바 ‘백두 혈통’을 강조한다거나, 핵·미사일에 의존하는 ‘선군주의’에 기댄다고 체제의 미래가 보장될 수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김정일 생전에 이미 북한은 김일성 100회 생일을 맞는 올해를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선전해 왔다. 그러나 태양절 직전 축포인 양 쏘아올린 광명성 3호는 허공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굶주리는 북한 주민의 2년치 식량 부족분을 충당할 수 있는 1조원을 날린 꼴이다. 북한은 위성으로 가장한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으로 대내적으로 강성대국의 위용을 과시하고, 대외적으로는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이는 카드로 활용하려는 요량이었을 게다. 하지만 애당초 헛된 기대였다. 당장 미국이 대북 영양지원을 중단하고 유엔 안보리가 강도 높은 대북 추가 제재를 예고하는 상황이 아닌가. 북한이 로켓 발사에 이어 핵실험을 강행한다고 해서 강성대국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미몽(迷夢)일 것이다. 그런데도 헛된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 세습체제 구축 작업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얼마 전 당대표자대회에서 제1비서로 추대됐던 김정은은 13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2차회의를 통해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직에 올랐다. 아버지인 김정일을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옹립하면서다. 과거 김정일이 김일성의 주석직을 프로 스포츠계에서의 선수 등번호 영구결번처럼 남겨둔 방식을 그대로 흉내낸 것이다. 민심을 얻기보다 유훈통치에 의지해 체제를 지키려는 심산이다. 어제 김일성광장 열병식에서 김정은은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라는 구호와 함께 연설을 마쳤다. 하지만 그런다고 김정은 체제가 안착될 리는 만무하다. 3대 권력세습은 근·현대사를 통틀어 성공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인 데다 세계 문명사의 큰 흐름을 거스르는 퇴행이 아닌가. 북한정권은 과거 혈맹이었던 중국도 사회주의 배급경제를 버리고 개혁·개방을 선택하면서 활로를 열었음을 뼈저리게 되새기기 바란다.
  • 英-미얀마 64년 만에 ‘화해의 악수’

    미얀마가 1948년 영국 식민통치에서 독립한 이후 처음으로 영국 현직 총리가 미얀마를 방문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13일 미얀마 행정수도인 네이피도의 대통령궁에서 테인 세인 대통령과 만나 민주화와 미얀마에 대한 제재 완화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서방 지도자가 미얀마를 공식 방문한 것도 1962년 군사 쿠데타 이후 처음이다. 캐머런 총리는 미얀마 도착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얀마는 수십년 동안 독재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개혁을 시작했다.”며 미얀마 정부의 개혁 의지를 높게 평가했다. 지난해 3월 민간정부를 출범시킨 테인 세인 대통령은 캐머런 총리의 방문을 ‘역사적인 일’이라고 환영했다. 캐머런 총리는 테인 세인 대통령과의 회동이 끝난 뒤 옛 수도인 양곤으로 이동해 민주화 운동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와 만났다. 캐머런 총리는 공동기자회견에서 “수치 여사는 전 세계인들에게 영감을 준 인물”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수치 여사는 미얀마에 대한 제재 조치를 완화하겠다는 캐머런 총리의 발언을 환영하며 “갈 길이 멀지만 우리는 목표를 이룰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유럽연합(EU)은 오는 23일 미얀마에 대한 제재 해제를 논의할 계획이다. EU는 올해 초 미얀마의 개혁 조치들을 높게 평가하면서 미얀마 각료 등에 대한 비자발급 금지 조치를 해제하는 등 제재를 일부 완화했다. 주요 8개국(G8) 외교 장관들은 이날 워싱턴에서 회담을 가진 뒤 공동성명을 통해 “미얀마가 국제사회에 편입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제재 완화를 고려할 것”이라며 “미얀마는 모든 정치범들을 석방하는 등 개혁 조치들을 계속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三國志’ 권모술수 백과사전

    ‘三國志’ 권모술수 백과사전

    ‘쌍전’(류짜이푸 지음, 임태홍·한순자 옮김, 글항아리 펴냄)은 속이 후련해지는 책이다. 저자는 중국 문학의 4대 기서로 꼽히는 삼국지, 수호지, 홍루몽, 서유기 4권 가운데 삼국지와 수호지 두 책을 쌍전(雙典)이라고 지칭한 뒤 혹독하게 비판한다. 홍루몽과 서유기는 “그래도 동심(童心)과 불심(佛心)이 있”지만, 수호지와 삼국지는 “전자에는 흉악한 마음이, 후자에는 교활한 심보가 충만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폭력과 권모술수를 숭배하는 책들이어서다. “이 두 권의 ‘위대한 고전 명저’에 심취하고 있을 때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면서 쌍전을 일컬어 ‘지옥의 문’이라고 부른다. 아니, 그렇게 위험한 책이 왜 수백년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단 말인가. 저자는 쌍전의 문학적 성취는 탁월하다고 본다. 수호지는 독특한 캐릭터, 그것도 3~4명도 아니고 108명에 이르는 엄청난 수의 캐릭터를 생생하게 만들어 냈다. 삼국지는 수호지에 비하자면 조조, 유비, 관우, 제갈량 같은 몇몇 전형적인 인물을 만들어 내는 데 그쳤지만, 그 인물들이 너무나 성공적이어서 대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문학 비평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 서사예술이 매우 높은 단계에 이르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문학’ 비평과 ‘문화’ 비평을 구분한다. 일본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예를 든다. “미시마는 문학적인 파급력, 영향력 면에서 높게 평가받을 수 있지만 노벨문학상 비평가들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에게 노벨상의 영광을 안겼다.” 미시마가 추구한 무사도 정신에다 노벨상과 문학이 지향하는 고귀한 이상을 내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도 비교한다. 맥베스 역시 폭력과 권모술수에 대한 얘기다. 그러나 권력찬탈 과정에서 도덕적 각성 문제도 함께 다룬다. 단순히 맥베스가 몰락했다는 권선징악적 구조 때문이 아니라, 맥베스의 독백을 통해 끊임없이 그 괴로움에 대해 언급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쌍전에는 이런 도덕적 괴로움에 대한 언급이 단 한 곳도 없다. “두 나라 소설의 사상적인 경지, 인생의 경지, 미학적인 취미는 그 차이가 하늘과 땅처럼 컸다.”고 본다. 저자가 이런 관점을 취하는 이유는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 정부의 압박으로 전 세계를 떠돌아다녀야 했던 경험과 관련 있다. 저자는 중국이 겉으로는 마르크스주의니 마오주의니 하지만 “잠재의식 차원에서는 여전히 쌍전의 통치를 받았다.”고 본다. 실제 저자가 문화대혁명 당시 어떤 홍위병 조직의 승리비결을 들여다봤더니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첫째, 성실성은 필요없다. 둘째, 사당(死黨)을 결성한다. 셋째, 상대방에 먹칠을 한다.” 문화대혁명이란, 삼국지의 ‘도원결의’(桃園結義)를 흉내낸 각 파당들이 수호지의 ‘조반유리’(造反有理)를 실행한 난잡한 쇼였다는 것이다. 해서 저자는 1부 수호지 비판, 2부 삼국지 비판을 통해 조반유리와 도원결의라는 것이 얼마나 한심하고 웃긴 논리인지 조목조목 지적한다. 사실 수호지는 워낙 그 내용이 폭력적이어서 비판이 손쉽다. 그래서 눈길을 끄는 것은 도원결의에 대한 비판이다. 이 문제를 다룬 7장 ‘의리의 변절’은 이 책의 백미다. 저자의 탁견을 엿볼 수 있는 구절들이 넘쳐난다. 저자가 고문헌을 보니 원래 의(義)는 순수한 우정이었다. 서양에서 이것은 정의(正義)로, 중국에서는 인의(仁義)로 발전했다. 그런데 ‘의’자에 결(結)자가 붙었다.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다. 남을 배제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우리끼리 나눠 가질 이익이 있다는 뜻이다. 저자가 “결의의 의란 단지 패거리 집단의 협소한 윤리에 불과한 것이지 결코 사회의 일반적인 윤리가 아니다.”라고 말한 이유다. 자기네들끼리 화목하지도 않다. 이익이 걸려 있어서다. 저자는 “역사는 결의, 즉 형제간의 맹세는 결코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부단히 증명했다. ‘의’는 최후에 결국 ‘이익’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역사상 수많은 형제들이 결의해 수많은 반란을 추진했지만, 일단 반란이 성공하면 “수많은 형제들이 의심받고 살해당했다.”는 것. 저자의 이런 날선 비판에 속이 시원해지다가도, 꺼림해지기도 한다. 저자가 한(漢)족 민족주의에 매여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가령 “중화민족의 가장 원시적인 기질” 운운하면서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논의를 빌려 원형(原形)문화와 위형(僞形)문화를 논하는 대목, 쌍전이 명나라 말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출몰했고 삼국지가 일러준 반간계에 걸려들지 않았더라면 만주족이 중원으로 진입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대목, 명대에 유행한 양명학을 ‘위대한 심학(心學)’이라고 거듭 예찬(정통 성리학은 마음을 중시하는 양명학이 불교와 비슷하다 해서 이단 취급한다.)하는 대목 등이다. 한족이 제 앞가림을 잘못해 만주족이 집권했고 그 만주족이 이상한 문화를 만들었다는 뉘앙스 같다. 그런데 저자가 쌍전과 비교하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는 홍루몽은 청나라 때 대히트를 기록한 작품이다. 청나라 ‘덕’은 없고 청나라 ‘탓’만 느껴진다. 쉽게 말해 민족성과 국민성을 운운하는 이론에 대한 의문과 연결된다. 이는 저자가 문예이론가로서 루쉰의 영향권에 있다는 점 때문으로 보인다. 청말 만주족 때문에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는 한족 지식인들의 민족주의적 주장이 은근히 깔려 있는 것이다. 1만 8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美, 추가 대북제재 검토

    북한이 13일 장거리 로켓의 발사를 강행함에 따라, 미국은 식량지원 중단은 물론 추가적인 양자 제재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 역시 독자 제재를 검토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즉각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나서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반면 중국은 상당 시간 침묵을 지키다 관련국들의 냉정과 자제를 강조하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백악관은 13일 오전(현지시간) 북한의 로켓 발사에 따라 ‘2·29 북·미합의’ 사항인 24만t의 대북 식량(영양) 지원을 취소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폭스뉴스가 보도했다. 폭스뉴스는 특히 백악관이 미국 정부 차원의 추가적인 단독 제재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 2005년 방코 델타 아시아(BDA)의 북한 통치자금 동결과 같은 강력한 양자 제재가 취해질지 주목된다.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도가 실패했으나 이번 도발행위는 지역안보를 위협하고 국제 법규와 자신들의 약속을 위배했다.”며 ‘도발’로 분명히 규정했다. 유엔 안보리는 이달 순번제 의장국인 미국 요구에 따라 13일 오전 10시(현지시간) 긴급회의를 열어 대북 제재 논의에 착수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한의 로켓 발사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단호한 입장을 거역한 만큼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후지무라 오사무 일본 관방장관은 북한의 로켓 발사는 수많은 유엔 결의를 무시한 “중대 도발”이라고 규정하고 북한에 대한 일본의 독자적인 추가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류웨이민(劉爲民)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관련국들이 냉정과 자제를 유지하고 접촉과 대화를 견지하여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함께 수호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도쿄 이종락·워싱턴 김상연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carlos@seoul.co.kr
  • [씨줄날줄] ‘헛방’ 출구조사/곽태헌 논설위원

    선거를 앞둔 여론조사의 원조 격은 미국이다.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지(誌)는 1916년부터 전화와 자동차 등록명부를 이용, 많은 모의투표 용지를 보낸 뒤 회수해 결과를 예측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1936년 대통령선거 때 결과와는 정반대의 예측 결과를 발표해 망신을 샀다. 많은 표본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역과 소득·연령·성별 등에 따른 비례할당법에 따른 정교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 계기가 됐다. 선거 전에 하는 여론조사보다 정확도가 높은 게 출구조사(Exit Poll)다. 출구조사는 투표소에서 투표를 막 마치고 나오는 유권자를 상대로 어느 후보를 선택하였는지를 조사하는 방법이다. 여론조사에서 응답한 유권자가 실제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출구조사의 정확도는 여론조사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수정헌법 1조에 의해 출구조사가 보장돼 있다. 1993년엔 출구조사만을 전담하는 투표자뉴스서비스(VNS·Voter News Service)라는 컨소시엄이 설립됐다. 여기에는 ABC, NBC, CBS, CNN 등이 참여하고 있다. 2000년 대통령선거 때 당시 부통령이던 앨 고어의 당선을 성급하게 잘못 예측해 VNS와 전 회원사가 의회 청문회에 불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국내 방송사들도 정확한 선거 예측을 위해 출구조사를 하고 있다. 1996년 15대 총선 때는 선거법상 투표소로부터 500m 내에서는 투표자를 상대로 한 출구조사를 할 수 없었으나 1999년 말 선거법 개정에 따라 그 범위가 300m로 완화됐다. 2004년 3월 선거법 개정으로 100m로 더 완화됐다. 출구조사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였지만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15대 총선 때에는 당시 여당의 의석수를 175석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는 155석에 불과했다. 2000년 16대 총선 때에는 제1당과 제2당을 잘못 예측하는 ‘굴욕’을 당했다. 2008년 18대 총선의 출구조사에도 직접 출구조사는 40%였고, 전화예측조사가 60%였다. KBS, MBC, SBS 등 방송 3사는 그제 실시된 19대 총선을 앞두고는 70억원이나 들여 100% 직접 출구조사로 정확도를 높이려고 의욕을 보였지만,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방송 3사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의석수를 각각 20석 정도의 여유치를 둔 예상치를 발표했지만, 이마저도 정확히 맞히지 못했다. 참고는커녕 괜한 혼란만 주는 무용지물에 가까운 출구조사라면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이대로라면 출구조사 무용론이 나오지 않을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美, 北 추가제재 경우의 수

    북한이 로켓 발사를 강행할 경우 미국이 지금까지 명시적으로 밝힌 대응방안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즉각 소집하겠다는 것, 그리고 대북 식량(영양)지원 방침을 취소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2·29 북·미 합의’ 파기를 감수하고 로켓 발사를 강행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식량지원 취소는 북한 입장에서 큰 타격이라고 볼 수 없다. 또 유엔 안보리가 소집돼 의장성명이나 결의안을 채택하더라도 북한이 얼마나 아파할지는 회의적이다. 미국은 이미 북한에 대해 안보리 결의안 1718호와 1874호를 통해 더 이상 제재할 수 없는 수준만큼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따라서 더 이상 추가할 제재가 마땅치 않고, 만약 추가 제재가 이뤄진다면 기존 제재안을 더 촘촘하고 철저하게 준수하는 정도로 결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2005년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에 예치된 북한 통치자금을 미국이 동결시켜 북한이 큰 고통을 겪었던 것과 비슷한 수준의 양자 제재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일각에서는 북한이 해외 통치자금을 대부분 중국 내 은행으로 옮겼다는 얘기도 있어 이 역시 얼마나 타격이 될지는 불투명하다. 결국 중국이 북한을 비호하는 한 아무리 미국이 제재에 나서도 북한에 결정적 타격을 줄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가 연일 중국을 통한 대북 압박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런 상황을 방증한다. 중국이 미국의 입장을 수용해 대북 압박에 최소한의 성의를 표시한다면 대북 송유관을 잠그는 등 대북 지원을 중단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지난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 직후에도 중국은 며칠간 북한에 송유를 중단했다는 관측도 있다. 또 유엔 대북 제재 결의안을 철저하게 적용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결정적으로 북한이 무너지게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여전히 우세하다. 미국으로서는 이번 북한의 로켓 발사 강행을 명분으로 이 기회에 한국, 일본과의 미사일방어(MD) 시스템 구축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중국, 러시아 등을 압박하는 방법을 구사할 가능성도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대선 때까지 외교적으로 분쟁이나 악재를 줄이고 경제회생에 전념함으로써 재선에 성공한다는 전략이기 때문에 북한의 도발에 초강경 대응을 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가뜩이나 이란 핵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북한 문제까지 악화된다면 선거에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거를 반년 정도 앞둔 이 시점의 북한 도발은 오바마 행정부에 심각한 딜레마를 안겨주는 형국이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승계 4개월만에… 김정은체제 초고속 구축

    승계 4개월만에… 김정은체제 초고속 구축

    북한이 11일 평양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제4차 대표자회에서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을 당 제1비서로 추대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후 4개월 만에 김정은 체제 공식화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김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따라 초고속 권력 승계가 이뤄지면서 김정은이 단기간에 최고 권력을 거머쥔 것이다.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라는 공식 직책을 처음 받은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김 위원장 사망 후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올랐으며, 이날 1년 7개월 만에 다시 열린 당대표자회에서 실질적 최고 직책인 제1비서직에 추대됐다. 당 규약 개정을 통해 제1비서가 당 중앙군사위원장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이 김정은을 제1비서로 추대하면서 제1비서가 조선노동당의 수반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며 “김정은이 당의 최고 직책에 추대된 것과 같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에 대한 충성심 과시 차원에서 그를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하고 김정은이 제1비서직을 새로 만들어 추대된 것은, 후계자의 조건에 충족함과 동시에 실질적인 최고 권한 행사도 가능하도록 만든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1998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 회의에서 국방위원장으로 재추대되면서 사회주의 헌법을 개정, ‘영원한 지도자’를 강조하며 김일성 주석을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하고 주석제를 폐지한 바 있다. 북한이 당대표자회를 개최한 것은 1958년과 1966년, 2010년에 이어 네 번째로, 김정은의 권력 공식화를 위해 서둘러 연 것으로 분석된다. 김정은의 권력 구축 과정은 아버지인 김 위원장과 큰 차이가 있다. 김 위원장은 20대 초 당에 입문, 1974년 후계자로 확정돼 1991년 군 최고사령관이 되기까지 17년이나 걸렸다. 1993년 국방위원장에 이어 1997년 총비서로 추대되는 과정도 상당히 길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2010년 9월 후계자로 등장한 뒤 2년도 되지 않아 최고사령관에 당 제1비서, 국방위원장 등 최고위직에 오르는 이례적인 상황에 처했다. 정부 소식통은 “20대 후반에 후계자가 된 김정은은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정도만 맡아 실제 통치 경험이 없다.”고 말했다. 30대에 접어든 김정은이 최고 직책을 갖게 됐지만, 당·군 등 핵심 지도층 인사들에게 휘둘릴 가능성이 있어 실제 권력 행사는 두고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 공고화를 위해 이달 중 예정된 행사들을 통해 권력 안착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내부 결속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13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장에 오를 것으로 보이는 김정은은 15일 김일성 생일 100회 태양절에 앞서 ‘광명성 3호’를 쏘고 ‘강성대국 원년’을 선포하는 등 최고 수반 역할에 나설 전망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카다피 둘째아들 리비아 국내서 재판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의 둘째 아들 샤이프 알이슬람(39)이 리비아 국내에서 재판을 받게 되며, 오는 6월 중순 이전에 판결이 나올 예정이라고 AP·로이터통신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리비아의 이 같은 결정은 리비아에서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국제 인권단체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리비아를 통치하고 있는 국가과도위원회 모하메드 알하레이지 대변인은 샤이프 알이슬람이 열흘 안에 트리폴리로 이송될 것이며 그의 재판은 2개월 후로 예정된 총선 이전에 마무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샤이프 알이슬람은 리비아 과도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저항 무장세력 중의 하나인 진탄시 시민군에 생포돼 구금돼 있는 상태로, 진탄시 시민군은 그의 신병을 트리폴리의 리비아 과도정부에 인도하기를 지난 몇 달 간 거부해왔다. 이에 따라 샤이프 알이슬람에 대한 리비아 국내 재판은 지난해 카다피 사망 이후 리비아 전역의 통치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는 리비아 과도정부에 중앙정부로서의 위상 정립을 돕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국제 인권단체들은 리비아에서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며 그의 재판을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8일 알리 아슈르 리비아 법무장관은 샤이프 알이슬람이 지난해 생포된 진탄 지역 반군 비밀 감옥에 있으며 금융 부정부패와 살인, 성폭행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슈르 장관은 샤이프 알이슬람을 ICC로 보내지 않을 것이라며 그를 재판할 수 있는 리비아 법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北 로켓발사 임박…금융시장 엇갈린 전망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가 임박한 가운데,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북한이 2009년과 마찬가지로 로켓 발사에 이어 핵실험을 강행하면 충격이 클 것이라는 예상이 많지만, 단기적이고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10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일본 노무라증권은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부위원장의 통치 행태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다르지 않다며 ‘로켓 발사→국제사회 강경 대응→강도 높은 북한 도발’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 경우 시장 불안이 악화될 수 있다는 경고다. 북한의 로켓 발사 자체가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겠지만, 국제사회 변수 등을 고려하면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무라는 특히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과거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때보다 시장 충격이 훨씬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변지영 우리선물 연구원도 보고서를 통해 “광명성 발사 위험은 지난달 19일 발표 이후 이미 시장에 반영됐으나 추진체 연료주입 및 로켓 공개 등으로 경계심이 나타나는 모습”이라며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 불안이 확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가부도 위험 수준을 나타내는 지수인 한국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지난 2일 117bp에서 9일 125bp까지 상승하는 등 북한 리스크에 따른 불안감이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과거 ‘이벤트’가 금융시장에 줬던 충격이 크지 않았던 만큼 파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우리 금융시장은 지난해 유럽 재정위기와 김정일 위원장 사망처럼 동시 악재를 무난히 버틸 체력이 있다.”며 “(광명성 발사 등) 대내외 불안요인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으며, 필요할 때 적절히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호윤 하나대투증권 연구원도 “북한 리스크 발생 당시 코스피는 평균 4거래일 만에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면서 “북한 리스크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 시장의 내성이 강화됐고 외국인 매수 기조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1차 핵실험을 실시한 2006년 10월 9일 코스피는 32.60포인트 빠졌지만, 16일에는 회복했다. 2차 핵실험(2009년 5월 25일) 때도 코스피는 4거래일 만에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돌아왔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阿말라위, 첫 여성대통령 탄생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말라위의 조이스 반다(62)부통령이 지난 5일 심장마비로 사망한 빙구 와 무타리카 대통령의 뒤를 이어 7일(현지시간) 취임식을 가졌다고 BBC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반다는 말라위뿐 아니라 남부 아프리카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이름을 올렸다. 아프리카 대륙의 첫 여성 대통령은 2005년 선출된 엘렌 존슨 설리프(74) 라이베리아 대통령이다. 반다의 대통령직 승계는 그녀가 무타리카 전 대통령의 가장 신랄한 비판자였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2009년 부통령에 지명된 반다는 2010년부터 무타리카와 불화를 빚어 여당인 민주국민당에서 쫓겨나 국민당을 설립했다. 당시 무타리카는 반다의 부통령직을 박탈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무타리카의 공식 사망 확인이 이틀이나 늦춰지면서 나라 안팎에선 권력 투쟁에 대한 우려가 증폭됐다. 헌법은 대통령 유고시 부통령이 승계하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대통령 측근들이 이를 무시하고 무타리카의 동생인 피터 무타리카 외무장관을 옹립하려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반다 대통령은 취임선서에서 “헌법을 수호하고 준수하며, 법이 정한 국민의 권리를 위해 일할 것”을 다짐했다. 또 10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말라위의 옛 수도 좀바에서 태어난 반다는 비서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여성기업협회를 만들어 여성 권리 강화 프로그램에 힘을 기울이는 등 남녀평등 정책에 크게 기여하면서 곧 유명 인사로 주목받았다. 여학생 교육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1999년 정계에 입문해 의원에 선출됐고, 2006년 외무장관에 취임했다. 무타리카는 2009년 재선에서 그녀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했다. 8년간 말라위를 통치한 무타리카는 식량증산에 성공해 주목받는 지도자로 부상했지만 최근에는 경제 실정과 독재 성향으로 비난을 받아 왔다. 특히 영국 등 원조 공여국이 지원을 중단하는 바람에 연료와 외환부족 사태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말라위는 국민의 75%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최빈국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초박빙 판세 ‘최종병기’ 후보단일화…與도 野도 막판 승부수] 종로 정세균·정흥진 단일화

    [초박빙 판세 ‘최종병기’ 후보단일화…與도 野도 막판 승부수] 종로 정세균·정흥진 단일화

    4·11총선전이 종반으로 접어들면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그리고 정통민주당과 무소속 등 범야권 후보들의 2차 단일화가 가시화되고 있다. 6일 현재 서울 종로와 전북 전주 완산을 등 7~8곳에서 2차단일화가 성사됐거나 추진되고 있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이 지난달 17일부터 전국 76곳에서 1차 후보단일화를 한 이후 2차 단일화다. 막판 단일화는 수 백표 차이로도 당락이 갈리는 접전지 판세를 바꿀 수 있다. 몇 개 지역구가 성사되고, 승패를 달리 하느냐에 따라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1당 경쟁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140석 안팎의 의석을 놓고 제1당 경쟁을 벌이는 치열한 접전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날 3곳의 단일화가 성사됐다. 서울 종로의 민주통합당 정세균 후보는 정통민주당 정흥진 후보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이 단일 후보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전날 양측 간 합의에 의해 단일화 여론조사를 실시해 이같이 결정했다. 지난달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간의 단일화에 이은 2차 단일화다. 새누리당 홍사덕 후보와 정세균 후보 간 박빙경쟁 구도였던 정치 1번지 종로에서 정 후보로 추가 단일화가 됨에 따라 판세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정세균 후보는 “정흥진 후보에게 미안함과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면서 “압승해 이명박 새누리당 정권 심판이라는 국민의 명령을 반드시 완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단일화 예외지역으로 무소속 후보들이 강세를 보이며 새누리당 후보 등이 어부지리를 얻고 있는 호남지역서도 단일화가 성사됐다. 민주당 박혜자, 무소속 조영택 후보가 경합하고 있는 광주 서갑과 민주당 배기운 후보와 무소속 최인기 후보가 경합 중인 전남 나주·화순 지역에서 각각 통합진보당 후보들이 사퇴하며 민주당 후보들로 단일화됐다. 광주 서갑 선거구는 민주당 박혜자 후보와 통합진보당 정호 후보가 이날 박 후보로의 단일화를 선언했다. 나주·화순은 민주당 배기운 후보로 단일화됐다. 양당은 오후 한명숙 민주당 대표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나주·화순과 광주서구에서 ‘후보단일화 선포식’을 갖고 합동으로 표몰이에 나섰다. 2차 단일화가 진전되지 않은 곳도 여전히 남아 있다. 전주 완산을은 지난달 말 새전북신문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이상직 후보 31.1%, 새누리당 정운천 후보 30.5%로 박빙이었다. 통합진보당 이광철 후보가 19.6%를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보들은 각각 중앙당에 단일화 추진을 요청해 놓은 상태다. 야권단일화가 만병통치약만은 아니다. 광주 서을은 친야(親野) 무소속 후보가 사퇴했음에도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단일 후보로 나선 통합진보당 오병윤 후보가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와 오차범위 내 접전을 펼치고 있다.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민심이 통합진보당 쪽으로 쉽게 이동하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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